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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20주년이 되는 대한제국 선포(1897년)를 기념해 덕수궁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행사가 열린다. 덕수궁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밝힌 곳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는 1일부터 11월 26일까지 덕수궁 야외 및 전각, 행각에서 ‘덕수궁 야외 프로젝트: 빛·소리·풍경’을 연다고 31일 밝혔다. 덕수궁 내 중화전, 석어당, 함녕전 등에서 국내 대표 미디어 작가들이 드로잉, 사진, 사운드 등 각각의 전시를 선보이는 것. 강애란 권민호 김진희 양방언 오재우 이진준 임수식 장민승 정연두 등 9명은 올해 초부터 덕수궁을 드나들며 각자의 방식으로 덕수궁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 왔다. 이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덕수궁은 작은 규모임에도 자연과 건축, 역사와 상상의 만남을 보여준다”며 “작가들이 대한제국 및 덕수궁을 둘러싼 역사를 재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미술 작품을 제작해 그동안 놓치고 있던 근대기 역사와 공간을 재조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012년 덕수궁에서 열었던 ‘덕수궁 프로젝트’의 계보를 잇는 궁궐 프로젝트다. 그동안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함녕전 앞 행각에서는 오재우 작가의 ‘몽중몽’이라는 덕수궁 퍼포먼스 작품을 가상현실(VR)로 감상할 수 있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가까운 중화전 앞 행각에서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 양방언과 2014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이자 황신혜밴드 멤버였던 장민승의 공동작품 ‘온돌야화’가 소개된다. 근대기 사진들을 수집해 촬영한 후 특정 부분을 자르거나 확대해 원본과는 다른 각도를 제시한다. 또 정연두는 대한제국 시기 고종황제와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네 가지 시각을 네 점의 사진으로 보여준다. 전문가 고증을 거친 황실평상복을 제작한 뒤 두 역사적 인물을 닮은 모델에게 입혀 촬영했다. 미술관 측은 이번 관람 예상 인원을 4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람시간은 덕수궁 관람시간과 같은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 9시.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하얗고 포동포동한 무민을 어린아이들은 하마로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데 어쩌나. 무민은 하마가 아니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 ‘트롤’이다. 핀란드에서 1945년에 태어난, 올해로 72세인 무민(그림)이 한국을 찾아왔다. 9월 2일∼11월 2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핀란드 독립 100주년 기념-무민 원화전’을 통해서다. 350점의 오리지널 드로잉과 사진, 책 등이 전시된다. 무민은 토베 얀손 여사(1914∼2001)가 ‘무민 가족과 대홍수’라는 시리즈를 펴내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얀손은 디자이너 어머니와 조각가 아버지 사이에서 자라나 14세 때 처음 잡지에 만화를 게재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제2차 세계대전 무렵에 무민을 탄생시켰다. 전쟁의 공포와 우울을 떨쳐내려면 평화와 유머가 필요했다. 무민의 인기로 세계적 작가가 된 그는 핀란드 최고 예술훈장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았다. 토베 얀손은 어린 조카에게 트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무민 캐릭터를 창조해 나갔다. 그 조카가 현재 핀란드 ‘무민 캐릭터스’ 회사를 이끌고 있는 소피아 얀손 대표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55)다. 그는 1997년부터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최근 그와 이메일 인터뷰했다. ―무민이 하마인지 알았다. “아니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트롤이다. 부엌 싱크대 뒤에 사는 트롤 이야기가 고모의 머릿속에서 진화해 무민으로 거듭났다.” ―당신이 기억하는 고모 토베 얀손은 어떤 모습인가. “핀란드 군도에서 배를 타고 수영하며 탐험하는 걸 즐겼다. 마치 무민처럼.” ―토베 얀손의 집에는 아름다운 북유럽 의자와 조명이 있었을 것 같다. “고모는 물질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고모가 주로 수집한 건 조개, 돌, 배 모형과 같은 것들이다. 가구나 조명 브랜드에 특별한 흥미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고모만의 미적 감각이 있었다.” ―아, 소박한 삶에서 여유를 찾는 북유럽 ‘휘게 라이프(Hygge Life)’! “그렇다. 무민은 북유럽 골짜기에서 자연과 가까운 매우 심플한 라이프를 살잖나. 고모가 딱 그랬다. 삶의 작은 것들로부터 즐거움을 얻고, 그걸 소중하게 여겼으니까.” ―무민은 당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무민 마마’처럼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무민 캐릭터 중 하나인 무민 마마는 늘 앞치마를 두르고 가족이 필요로 하는 걸 가방 속에 들고 다닌다. 맛있는 요리를 하고 집 주변을 꽃으로 꾸민다. 토베 얀손과 소피아의 아버지인 라스 얀손이 1950년에 설립한 무민 캐릭터스는 세계적으로 600여 개의 라이선스를 갖고 침구 가구 조명 문구 등 ‘무민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올해 6월엔 핀란드 탐페레에 ‘무민 박물관’이 개관했다. 토베 얀손이 과거 탐페레 박물관에 기증했던 2000여 점의 무민 작품들이 전시됐다. 2019년엔 일본에 무민 테마파크가 지어질 예정이다. ―왜 이 시대에 무민이 사랑받는 걸까. 무민이 우리에게 주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제와 위기를 극복해 내는 평화주의 시각이 무민의 매력이다. 무민은 우정 믿음 자연 관용도 가르쳐 준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단색화는 그동안 얼마나 가격이 오른 건가요? 지금 사면 ‘막차’ 타는 건 아닙니까?” 미술 애호가인 지인의 질문이 발단이 됐다. 예술 세계를 돈으로만 환산할 수는 없지만 미술품 가격이야말로 시장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 아니던가. 2006∼2007년 최대 호황을 맞았다가 금융위기에 무너진 국내 미술시장을 2012년쯤 살려낸 게 한국의 단색화다. 세계 추상 흐름을 기막히게 잘 탄 단색화의 경쟁력은 계속되는가. 지난 10년간 국내 미술품 가격은 어떻게 변화했고 향후 어떻게 나아갈까. 본보는 국내 최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국내 주요 미술품의 최근 10년간 가격 변동을 조사했다. 미술품은 한 작품이 여러 경매에 나오는 경우가 드물어 동일한 작품을 비교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작 연도 및 크기, 시리즈 등 조건이 유사한 작품을 택해 경매 낙찰가를 비교했다. 그 결과 가장 가파른 가격 상승폭을 보인 것은 역시나 단색화였다. 정상화의 ‘무제’(캔버스에 아크릴·162×131cm·1993년)는 2007년 6000만 원에 낙찰된 데 비해 지난해 12월엔 비슷한 1990년 작품이 5억5000만 원에 거래돼 약 10년 만에 817%의 가격 상승을 보였다. 박서보의 ‘묘법’은 2900만 원에서 2억5894만 원으로 793%나 뛰었다. 이우환은 위작 시비에 휘말렸던 ‘선으로부터’와 ‘점으로부터’는 10년 전 수준이지만, 그 논란에서 비켜간 ‘바람 시리즈’는 821% 올랐다. 지난해 서울옥션의 낙찰가 상위 톱10을 조사해보니 한국 추상화의 거장인 김환기의 작품이 1∼3위를 차지했다. 김환기는 올해 5월 경매에서는 2013년에 비해 가격이 236% 뛰기도 했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그동안 이중섭 박수근 등 근대 작가 중심으로 형성됐던 한국 미술시장이 세계적 추상 흐름과 맞물려 국제 경매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라며 “한국 작가들의 가치는 아직 저평가돼 있지만 ‘시장성’을 갖춘 작가는 극히 일부라 연봉의 10% 이내에서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단색화가 끌어올린 민중미술의 경우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인 황재형의 작품은 2015년 4500만 원에서 올해 5월 6457만 원으로 2년 만에 43% 올랐다. 단원 김홍도의 ‘화조도’는 40%, 서세옥의 ‘군무’는 88% 상승했고,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과 이왈종의 ‘제주생활의 중도’는 10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최근 낙찰됐다. 추상화 강세 속에 꽃과 풍경을 그려온 유명 작가들의 구상 작품은 70% 가까이 떨어졌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강남대 경제학과 교수)은 “세계화 가능성이 큰 작가와 작품만이 살아남는 ‘투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1세대 단색화 작가들은 최근 외국에서 활발한 전시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국내 메이저 화랑에서는 오히려 단색화 전시가 뜸한 편이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1세대 원로작가들의 1970∼1980년대 작품이 고갈돼 가기도 하고, 그 때문에 40∼60대 2세대 단색화 작가를 찾으려는 것 같기도 하다. 고로 단색화의 잠재력은 아직도 크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지인에게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답해야겠다. “‘잭팟’은 아직 터지지 않은 듯합니다. 이제부터가 관건이군요.”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올해 상반기(1∼6월) 글로벌 미술품 경매시장은 현대미술의 성장세에 힘입어 69억 달러(약 7조8000억 원) 규모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그중 세계 10위였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국제 미술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아트프라이스가 최근 발간한 ‘글로벌 아트마켓’ 리포트에 따르면, 각국의 경매 매출을 집계한 결과 올 상반기 한국은 총 3978만 달러(약 449억 원)로 10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지난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세계 10위에 진입해 “네덜란드 일본 벨기에를 제치고 글로벌 미술시장의 10대 메이저 나라가 됐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세계 10위 안에 아시아 국가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5년 만인 지난해 중국을 제치고 1위를 탈환한 미국은 올해 상반기에도 22억3908만 달러(약 2조5301억 원)로 수위를 지켰다. 미국 중국 영국 등 ‘톱3’ 국가의 시장 점유율이 무려 전체의 84.3%였다. 특히 미국 경매시장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8% 증가하면서 글로벌 미술품 경매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 작가별로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가 단연 ‘스타’다. 그의 작품 ‘무제’는 올해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1000만 달러(약 1248억 원)에 낙찰되면서 작가 레코드를 경신했다. 이 작품은 일본의 젊은 재벌 마에자와 유사쿠(42)의 품에 안겼다. 아트프라이스 측은 “전후미술과 현대미술이 2000년에는 각각 8%와 3%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는데, 이젠 각각 21%와 15%일 만큼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매 낙찰가 순위 4위를 차지한 미국 추상주의 화가 사이 톰블리(1928∼2011)는 화풍에 있어 국내 단색화 작가 박서보와 종종 비견되기도 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안녕하세요. 저는 에르메스 버킨 백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버킨 28’이에요. 왜 28이냐고요? 제 신체 사이즈예요. 가로 길이가 28cm이거든요. 프랑스 공방에서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워낙 소량으로 만들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6, 7년 전에 구매를 예약한 고객들이 이제야 매장에서 저를 손에 넣고 있어요. 1500만 원 정도의 거금을 들고도 원할 때 살 수 없는 애타는 가방. 그것이 저, 버킨입니다. 1984년 기내에서 에르메스 사장을 만난 배우 제인 버킨(71)이 “작은 에르메스 가방에 물건을 넣기가 어렵다”고 건의하자 큰 사이즈의 가방을 약속해 그해 태어났어요. 그렇다면 간절하게 절 필요로 하는 분들은 어디를 가야 할까요. 중고 명품 숍도 있지만 과연 진품을 사는 것인지 걱정되잖아요. 그래서 요즘 새로운 구매 장소로 떠오른 곳이 있습니다. 미술경매회사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럭셔리 경매시장입니다. 흔히 미술품 경매라고 하면, 넓은 홀에 모여 앞다퉈 팻말을 드는 오프라인 경매가 떠오르시죠? 그런데 세계적 경매회사들은 10여 년 전부터 온라인 시장을 발 빠르게 개척했답니다. 크리스티 경매는 2006년부터 온라인 경매를 도입했어요. 요즘 이 온라인 미술경매에서 핫한 ‘작품’이 뭔지 아세요? 럭셔리 제품이랍니다. 그중에서도 저, 에르메스 버킨이에요. 올해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245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악어가죽 에르메스 히말라야 버킨 백이 294만 홍콩달러(약 4억3000만 원)에 낙찰됐어요. 럭셔리 패션 아이템 경매가의 세계 기록을 경신한 ‘사건’이었죠. 국내에서는 서울옥션이 지난해 5월 온라인 경매 자회사인 ‘서울옥션블루’를 설립하고 올해 2월부터 온라인 럭셔리 경매를 시작했습니다. 오늘(22일) 오후 2시 옥션블루 사이트()에서 제7회 온라인 럭셔리 경매가 열려요. 총 31개 럭셔리 제품이 1억3000만 원어치 나왔습니다. 전 이번엔 전시품 판매로 나왔어요. 누구나 무료 회원가입을 하고 오전 11시까지 온라인 응찰을 하면 오후 2시부터 경매에 참여할 수 있어요. 저, 버킨 28은 지난달 이 회사의 온라인 럭셔리 경매에서 ‘핫템’이었답니다(으쓱). 2013년에 나온, 한 번도 안 쓴 신제품이었어요. 1200만 원에서 시작해 42회의 응찰 끝에 1420만 원에 낙찰됐죠(수수료 19.8% 포함해 1700만 원). ‘그들만의 럭셔리 리그’에서는 가격이 그리 대수이던가요. 몇 년을 기다려도 사기 어려운 에르메스 백. 50대 초반 남성이 비로소 아내가 원하던 선물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나 뭐라나요. 럭셔리 업계 관계자가 한마디 하데요. “희귀한 에르메스라면 모를까, 일반 중고 에르메스 백을 파는 건 경매의 격을 떨어뜨리는 거 아닙니까”라고. 그래도 애호가 입장에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죠. 미술과 럭셔리는 곧 욕망이고 꿈이에요. 그러니 “에르메스 버킨, 네가 무슨 미술이냐”고 하지 말아주세요. 총총.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미래’에 대한 고민이 참 깊고 큰가 보다. 럭셔리 브랜드와 패션 디자이너들이 우주를 향해 눈을 돌렸다. 1960년대 우주 개발 시대와 함께 성행했던 ‘복고 미래주의(Retro Futurism·레트로 퓨처리즘)’ 패션이 2017년에 펼쳐지고 있는 것. 우주복을 연상케 하는 은색 옷과 구두, 미러 선글라스 등이 대세다. 올해 3월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샤넬 2017 가을·겨울 패션쇼’장에 초대받아 들어섰을 때부터 그런 분위기는 감지됐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카를 라거펠트는 쇼 장소 한가운데에 37m 높이의 거대한 로켓을 설치하고, 모델들에게는 우주비행사가 프린트된 시폰 블라우스를 입혔다. 라거펠트는 말했다. “우주비행사를 따라 별자리 속으로 우주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모델들이 크리스털 별자리가 반짝이는 은색 부츠를 신고 피날레 워킹을 마치자, 로켓이 그랑팔레 천장으로 솟아올랐다. ‘샤넬표 우주여행’이었다. 이달 초엔 영국 런던 본드 스트리트의 ‘몽클레르’ 매장 디스플레이에 우주선과 우주비행사가 대거 등장했다. 요즘 ‘핫한’ 영국 남성복 디자이너 크레이그 그린과 협업한 ‘몽클레르 C’ 옷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깃털이 들어가 볼륨감 있는 패딩은 본래 형태가 우주복과 흡사하지 않던가. 보온효과와 첨단 미래 이미지를 동시에 강조한, 럭셔리 패딩 브랜드 몽클레르의 똑똑한 ‘신의 한 수(手)’였다. 인간과 외계인이 몽클레르 재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설정의 3분짜리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가와쿠보 레이가 이끄는 ‘콤 데 가르송’의 이번 시즌 옷은 ‘움직이는 조각’ 같았다. 고성능 충전재, 은색 필름지로 만든 옷들이 ‘실루엣의 미래’라는 주제로 무대 위에 올랐다. 외계인처럼 안테나가 달린 미러 선글라스를 낀 모델(루이까또즈 광고), ‘스타트렉’의 외계인, 로봇, 지구 생명체 모델(구치 광고)…. 온통 우주다. 왜 우주일까. 간호섭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는 “과거엔 도달할 수 없던 꿈인 우주가 기술의 발달로 ‘가능한 현실’이 됐다”며 “우주는 ‘제2의 기회의 땅’이 됐다”고 말했다. 각박한 세태에서 이유를 찾는 분석도 있다. 새 옷을 살 형편이 안 되는 젊은이들이 미국 뉴욕 소호의 헌 옷 가게를 드나들면서 하나의 유행을 이뤄냈다는 것. 어깨 큰 재킷 등 우주복 실루엣과 길거리 패션 감성이 럭셔리 업계에 거꾸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우주를 향한 갈망은 패션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주 영화들이 꾸준히 개봉돼 온 가운데,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은 최근 ‘우주와 예술’이라는 빅 히트 전시를 마쳤다. 넉 달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 들어선 애플사(社)의 신사옥도 우주선 모양이다. 안보와 환경이 염려되는 요즘, ‘미래의 럭셔리는 값비싼 가방이 아니라 청정한 공기’라는 말도 나온다. 불확실하면서도 절박한 미래. 그래서 다들 ‘기승전, 우주’라고 하는 걸까.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저 젊은 여자들이 ‘초코바’라면, 당신은 ‘초콜릿 크림 브륄레’예요.” 캬아. 중년 여성의 매력을 크림 브륄레에 비유하다니. 최근 프랑스 영화 ‘파리로 가는 길’(사진)을 보다가 감탄했다. 크림 브륄레는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올려 가열해 윗면을 캐러멜로 만드는 디저트다. 그래서 딱딱한 표면 속으로 스푼을 넣을 때 의외의 부드러운 속살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살이에서 갑옷을 입었지만 속은 여린 중년의 모습이다. 영화는 남편의 출장을 따라 프랑스 남부에 왔던 미국 여자 앤이 남편 친구인 프랑스 남자 자크의 차를 타고 둘이 파리로 가는 일종의 로드 무비다. 자크는 그 여정에서 프랑스 미식(美食)의 세계로 이끈다. “계약과 수플레는 타이밍이에요.” “이건 크로탱 드 샤비뇰 치즈랍니다.” 수플레는 달걀흰자의 거품으로 한껏 부풀리는, 인생의 ‘찬란한 한때’다. 또 샤비뇰 염소치즈는 숙성이 길수록 맛이 조화롭다. ‘서울로 가는 길’을 찍는다면…. 삶의 기쁨과 숙성을 어느 음식에 담아낼 수 있을지. 우리의 음식을 돌아보게 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12층 회의실에 들어온 한종률 국제건축가연맹(UIA) 2017 서울 세계건축대회 조직위원장(62)은 말했다. “아, 서울 도심이 이렇게 훤히 내려다보이는군요. 저기 보이는 교보빌딩은 제가 몇 년 전 리노베이션했어요.” 삼우종합건축설계사무소 대표와 한국건축가협회장을 지낸 그는 이 일대 금호아시아나 본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건축설계도 했었다. “주한 스위스대사관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3년마다 열리는 ‘건축계의 올림픽’인 세계건축대회가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데, 이때 6년 후 개최국을 결정하거든요. 대회 유치를 희망하는 스위스 측이 저희 조직위를 초대해 홍보 활동을 했어요. 건축을 통해 도시를 알리는 이 대회야말로 문화 올림픽인 셈이거든요.” UIA는 124개국에 130만 명의 회원이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다음 달 3∼10일 열릴 UIA 서울 세계건축대회에는 3만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로 26회째인 이 대회는 아시아에서는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에 이어 서울이 세 번째 주최지다. 국내외 주요 건축사무소들이 참여하는 트레이드 쇼가 열리고 이화여대캠퍼스복합단지(ECC)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미국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의 패트릭 슈마허 소장 등이 강연한다. “2014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직전 대회는 제3세계 낙후된 공간의 건축과 재활용 자재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어요. 올해 서울 대회의 주제는 ‘도시의 혼’이에요. 전통과 현대, 자연이 어우러진 서울의 다양한 건축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그는 외국 건축가들에게 서울의 건축을 알릴 장소로 덕수궁∼청계천∼동대문디자인플라자,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자신이 설계해 서울시 건축대상을 받았던 노원구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등을 꼽았다. “덕수궁 일대 정동은 네오 클래식한 유럽풍 건물과 근대의 추억이 돌담길에 스며든 곳이죠. 윤동주문학관은 오랫동안 물탱크로 사용됐던 공간을 아름답게 리모델링했고요. 북서울미술관은 자연과 우리 공동체의 어우러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스타 건축가를 키우지 못했을까. “한국은 그동안 고속 성장을 하느라 건축 설계에서도 ‘빨리빨리’가 요구됐습니다. 설계비도 박하게 책정될 때가 많으니, 건축은 기술적 영역으로만 간주된 측면이 많아요. 기술력, 창의력, 사회에 대한 윤리를 고루 갖춘 건축가를 장인으로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그는 “건축은 도시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이자 얼굴”이라며 “이번 대회가 대한민국의 건축 르네상스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른바 ‘SKY’ 출신으로 강원 홍천에 사는 도공과 목수가 한 공간에서 멋들어지게 만났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이 23일까지 여는 ‘재료에서 예술까지’ 전시는 김시영 도공(60)과 이정섭 목공(46)의 작품 50여 점을 한데 어울러 선보이고 있다. 흙과 나무의 ‘컬래버레이션’인 셈이다. 10일 백악미술관에서 만난 김 도공의 자기는 흑자(黑磁)였다. 그는 연세대 금속공학과 재학 중 화전민 터에서 발견한 검은 파편의 매력에 빠져 흑자를 만들어 왔다. 푸른 바다색, 메탈 색, 하늘의 별자리가 고스란히 담긴 듯한 검은색…. 그중 한 흑자는 윗부분이 녹아내린 듯 찌그러져 있었다. “아, 가마에서 불 온도를 계속 높여봤더니 저렇게 꺼져 내렸어요. 그런데 산에 가보면 바위 모양새들이 신비롭잖아요. 우리는 그동안 반듯하고 예쁜 형태의 도자만 익숙하게 봐 와서 그렇지, 저 형태도 자꾸 보면 좋아 보일 것 같아요.” 이 목공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강원 태백의 한옥학교에서 집짓기를 배우며 목수가 됐다. 2002년 그가 홍천에 세운 내촌목공소는 꽤 유명해졌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선보인 참나무 가구 탁자는 ‘과연 가구 맞나’ 싶을 정도다. 긴 나무 판 10여 개가 터벅터벅 쌓여 있는 게 아이들 장난감 ‘젱가’를 떠올리게 했다. 심플함의 ‘끝판 왕’이다. “인터넷을 보면 이 세상 디자인이란 디자인은 다 있어요. 그런데 그 디자인이 저 개인에게는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잘 깎은 기단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죠. 몸의 움직임을 통해 얻어지는 게 소중해요. 우리가 마크 로스코(1903~1970·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그림 앞에서 감동을 받는 건 빨강과 흰색이 만나는 오묘한 지점, 즉 고귀한 노동의 결과 때문 아닐까요.” 전시를 큐레이팅한 정영목 서울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흙과 나무의 물질 자체의 본성에 천착했다”며 “도자와 가구가 생활 기기로서 조형적으로 윤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도자와 가구의 미래를 물어봤다. “백자와 청자만큼 자연을 담은 흑자도 사랑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요.”(김 도공) “한 치 앞도 모르는데 가구의 미래를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양심 있는 작가라면 계속 새것을 추구해야겠죠.”(이 목공)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된 KTX’ 같은 휴양건물을 짓고 싶었어요.” 최근 만난 민성진 SKM건축사무소 소장(53)은 난해한 말을 했다. 자신이 건축 설계한, 요즘 ‘핫한’ 휴양시설인 ‘아난티 코브’를 두고 KTX라니…. “KTX는 ‘좋은 공유’의 개념을 확장시킨 사례 같아요. 부자들도 부산에 갈 때 기사가 모는 승용차 놔두고 KTX를 탈 때가 많잖아요. 빠르고 편리하니까요.” 바다를 건물 안으로 한껏 끌어들인 감각적 설계로 벌써부터 입소문이 자자한 아난티 코브. 지난달 중순 부산 기장군에 문을 연 아난티 코브는 회원제인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90채)와 아난티 레지던스(128채), 일반 호텔인 힐튼부산(객실 310개)이 어우러져 있다. “회원제 리조트와 호텔을 함께 둬서 부자만 누리던 혜택을 중산층도 함께할 수 있게 했어요. 또 별장을 소유하는 것보다 좋은 리조트의 회원이 되는 게 편리하고요. 지하철, 병원, 학교, 장기적으로는 주거용 건물까지 공유의 영역이 넓어질 겁니다.” 힐튼부산에는 마을 형태의 상업시설과 초대형 서점이 있다. 리조트 회원과 부산 시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어 대개의 호텔에 있는 폐쇄적 지하 아케이드와 다르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곳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벤치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고, 대형 도서관 같은 서점에서 책을 볼 수 있게 했어요.” 그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건축학 학사),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도시계획학 석사)을 마치고 1995년 SKM을 설립한 뒤 경기 파주시 북시티 헤르만하우스(2004년),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2005년) 등을 디자인했다. 이후 부동산개발업체 ㈜에머슨퍼시픽의 이만규 대표(47)와 함께 국내 리조트업계의 ‘스타 건축물’들을 지었다. 유선형 티타늄 건물로 경남 남해의 랜드마크가 된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2006년), 뉴욕타임스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건축 45’로 선정한 경기 가평군 아난티클럽 서울(2012년)…. 서로를 존중하는 이 대표와 민 소장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신뢰의 롤 모델로 통한다. “예전의 콘도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시설이 많았어요. 공유하는 것은 대부분 싸고 안 좋다는 생각을 완전히 바꿔보고 싶었죠.” 아난티 펜트하우스 해운대는 전 객실이 바다를 향하면서 프라이빗 풀과 노천탕을 갖추고 있다. 힐튼부산은 로비를 10층으로 끌어올려 장대한 바다 풍광을 마주하게 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 바다가 고향 같아요. 바다의 깊고 긴 호흡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투숙객이 각각 바다 위 성주(城主)가 되면 좋겠네요.” 그는 경북 경산시의 한 실버타운도 설계하고 있다. 날렵한 메탈 건축물이다. “국내 실버타운의 개념을 바꿔보겠다는 프로젝트예요. 어르신들도 세련되고 편리한 건물에 사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 들어갈 땐 심리적 저항이 크지만 정작 들어가면 굉장히 편한, 노년을 공유하는 건축물이 실버타운이에요.” “건축은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고 인간의 삶을 담는 일”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휴양은? “점점 더 자연, 가족,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우리가 가진 걸 나눌 수 있는 쉼을 찾을 겁니다. 공유시설을 업그레이드해 궁극적으로는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개념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비로소 그의 ‘업그레이드된 공유 건축론(論)’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뫼르소에게 바다는 방아쇠를 당기게 했던 강렬한 태양의 해수욕장이었고, 심청에게 바다는 효심을 시험하는 냉혹한 인당수였다. 그런데 이 바다를 자원 패권과 국경, 자본주의 공간으로 규정하는 또 다른 시선을 만났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20일까지 열리는 그룹전 ‘격자에 갇힌 바다’에 참여한 세 명의 작가를 통해서다. 갤러리 1층에 들어서면 김아영 작가(38·한국)의 ‘무한 반복의 역청 지휘’라는 비디오 작품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석유를 정제할 때 잔류물로 얻어지는 역청을 지휘하는 손이다. “1970년대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오일머니를 벌어왔어요. 석유는 근대화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이죠.” 그는 대홍수와 방주의 이미지를 콜라주하기도 했다. 흑백의 대리석으로 각 종교의 경전에 나타나는 인류의 재앙을 몽타주로 표현한 것(‘깊은 애도’). 프랑스 파리 국립 오페라극장을 가라앉는 배로 형상화한 비디오 작업(‘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은 세월호 사건도 떠올리게 한다. 루노 라고마르시노 작가(40·스웨덴)에게 바다는 ‘유럽중심주의’의 상징이다. 그의 대표 프로젝션 작업인 ‘바다 문법’ 앞에 섰다. 슬라이드 화면 80장이 찰칵찰칵 넘어갈수록 지중해 사진에 구멍이 늘어가더니, 종국에는 바다가 사라졌다. “저의 부모는 아르헨티나에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망명했어요. 바다는 불안하고 구멍 난 공간이에요. 오늘날 대규모 난민들이 처절한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으니까요.” 1996년 싱가포르 국가대표 요트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던 찰스 림 이 용 작가(44·싱가포르)는 ‘바다의 국토화’에 문제를 제기한다. “싱가포르는 끊임없이 간척하면서 자본주의 공간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정복해야 할 영토가 됐어요.” 그는 간척사업 현장과 전복된 요트를 세우는 자신의 행위를 찍은 두 영상을 마주 보도록 설치해(‘Sea state 6’) 국가주의적 퍼포먼스와 개인의 몸부림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 명의 작가는 바다를 철학의 공간으로 바꿔 놓고 바다를 새롭게 보게 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콜레트(Colette)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이달 중순 프랑스로부터 날아들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매장 오픈 20년이 되는 올 12월 20일에 오프라인 매장과 웹사이트 운영을 중단하겠다.” 콜레트가 어떤 곳인가. 파리 1구 생토노레 거리에 자리 잡고 트렌드를 이끌어 온 사실상 최초, 최고의 편집 숍(지난해 매출 약 364억 원). 큐레이션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부터 오로지 주인의 안목으로 옷, 음반, 카메라, 그리고 물까지 팔아 온 진격의 ‘취향의 가게’. 에르메스, 샤넬 등 쟁쟁한 브랜드들과 협업 제품을 만들어 온 ‘컬래버 제조기’. 폐점 소식보다 더 충격적인 건 퇴장 이유였다. “창업자인 콜레트 루소가 이젠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그가 없는 콜레트는 존재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제품 구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엔딩 선언은 큐레이션의 핵심, 즉 ‘덜어내기’의 진수였다. 고수(高手)만이 자신감 있게 내릴 수 있는 결단…. 그저 잘나가는 브랜드 몇몇 모아놓고 팔면서 편집 숍입네 하는 ‘영혼 없는’ 자(者)들에게 콜레트가 건넨, 참 콜레트다운 작별 인사였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미추를 신는 순간, 넌 악마에게 영혼을 판 거야.”(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날 좋은 날 예쁘게 신고 와.”(드라마 ‘신사의 품격’ 중 장동건이 김하늘에게 건네며) 고급 ‘욕망의 구두’의 대명사 ‘지미추’가 미국 패션업체 마이클코어스에 팔렸다. 25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이클코어스는 지미추를 총 8억9600만 파운드(약 1조3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지미추 측과 합의했다. 지미추는 1990년대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신어 알려지기 시작한 뒤 미국 TV드라마 시리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여주인공인 캐리(세라 제시카 파커·사진)가 자주 신고 나와 유명해졌다. 말레이시아 출신 구두장인 지미 추와 영국 보그 에디터 출신인 타마라 멜런이 함께 1996년 설립한 브랜드로 30여 개국에 100여 개 매장을 거느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8.5cm 굽 높이의 날렵한 지미추 하이힐은 커리어우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패션 아이템이다. 지난 몇 해 동안 뛰어난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해 매출 감소를 겪던 마이클코어스는 최근 드레스와 신사복, 온라인 판매 비중을 높이며 타개책을 찾고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장욱진 화백님. 화백님이 1973년 그리신 ‘나무와 새와 모자’란 그림을 오늘 봤습니다. 나무에 네 마리의 새가 앉아 놀고, 집 안에는 엄마와 어린 아들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이었죠. 그 나뭇잎의 연두색이 유독 환했습니다. 화백님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친근함입니다. 전시에 다녀왔어요. 가나문화재단이 다음 달 27일까지 여는 ‘인사동 라인에 서다’전(展)에요. 화백님 탄생 100주년(1917∼1990)을 맞아 개인 소장자들이 큰 맘 먹고 전시를 허락한 작품들이 많았어요. 나무와 새와 모자는 미국의 소장자가 내어준 그림이래요. 이 자리서 화백님의 장녀인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을 만났습니다. “딸인 나도 처음 보는 작품이네요!” 전시는 화백님이 살았던 동네를 시기별로 나눈 것이었어요. △경기 남양주시 덕소 시절(1963∼1975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시절(1975∼1979년) △충북 충주시 수안보 시절(1980∼1985년) △경기 용인시 기흥구 신갈 시절(1986∼1990년). 화백님, 이사를 많이 하셨네요. 따님이 말씀하셨어요. “살던 동네가 계속 개발됐거든요. 덕소 시절, 모더니즘 사조가 밀려들 때 아버지는 그림의 정체성을 찾는 고독한 싸움을 했어요. 그래서 그때 그림의 질감이 강해요. ‘너는 뭐냐, 나는 뭐냐’는 말을 하도 많이 하셔서 한번은 제가 대들었어요. ‘아버지가 소크라테스냐’고.” 가정이 화목했는지도 궁금했어요. “아버지는 항상 쪼그리고 앉아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했어요. 그 점을 미안해하는 아버지를 우리 형제들은 가엾게 여겼고요. 한번은 어머니가 그러셨죠. ‘너희는 학비는 나한테 받아가면서 왜 아버지 편만 드느냐’고요.” 그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그림 ‘진진묘’(1970년·진진묘는 장 화백의 부인 이순경 여사의 불교식 이름)를 오늘 봤습니다. 지금 100세를 바라보는 이 여사(98)가 어느 날 “다른 화가들은 부인 초상화도 잘 그려주는데 왜 당신은 안 그려주느냐”고 하자 덕소에서 그리셨다고요. 그림 속 여사는 영락없는 여자 불상입니다. 화백님이 17세 때 만공선사가 계신 충남 예산군 수덕사에서 6개월 동안 정양(靜養)하신 영향인가요. 0호(18cm×14cm) 크기의 작은 그림이 많아 오순도순 대화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참, 전시명이 왜 ‘인사동 라인에 서다’일까요. 술을 사랑했던 화백님에게 인사동은 곧 술 골목이었기 때문이랍니다. 이 여사가 자제분들에게 지금도 말씀하신대요. “술이 너희 아버지를 많이 도왔지”라고. 화백님의 그림 100여 점을 보고 나오며 생각했어요. ‘장욱진 화백님과 술 한잔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고. 하늘나라에도 생일잔치가 있을까요? 100세 생일(1917년 11월 26일생)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장욱진 화백님!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개월여 전 프랑스 총선에서 단 하나의 의석도 없던 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가 다수당이 됐다. 신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각계 전문가 중 특히 주목받은 인물이 천재 수학자로 불리는 세드리크 빌라니 하원의원(44)이다. 프랑스 리옹대 교수와 앙리 푸앵카레 연구소장을 겸하는 그는 2010년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그는 어깨까지 닿는 헤어스타일, 커다란 거미 브로치, 폭이 넓은 스카프형 넥타이 등 독창적 스타일과 활발한 강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정계에 입문하더니 13일엔 프랑스 의회 과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정치인으로 깜짝 변신한 천재 수학자의 한 달은 어땠을까? 지난달 파리 현지 인터뷰에 이어 두 차례 이메일을 통해 그에게 물었다. ―정치인으로 한 달을 살아본 소감은…. “매우 혼란스럽고 바빴다. 스케줄은 ‘괴물’같이 정신없고 계속 바뀐다. 초반부에 힘들다.” ―왜 정치에 뛰어들었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하는 정치라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정치가 되리라 생각했다. 유럽, 발전과 실용 등 그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내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요즘 일과는…. “10년 전부터 운전하지 않는다. 파리에서 약 50km 남쪽에 있는 에손주에서 파리 오르세까지 교외선으로 통근한다. 열차 안에서는 정책을 구상한다. 이따금 낮잠을 잔 뒤 참모들과 토론하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데이터라면…. “지역구 내 거주자 수, 동사무소 근방의 정치적 역사 등의 데이터. 이들을 교차시키며 확장해 나간다.” 요즘 프랑스 언론에는 백팩(배낭)을 메고 현장을 누비는 그의 모습이 종종 비친다. 그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 두 아이와 여름 바캉스를 떠나지 않고 일할 예정”이라며 “일상에서의 여유는 정원에서 암탉들에게 모이를 주거나 화초에 물을 주며 찾는다”고 말했다. ―수학을 정치에 어떻게 접목하는가. “에손 유권자의 69.36%가 날 지지해 준 높은 지지율에 주목한다. 나는 정치 활동에 있어 수학자로 분류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지만 투표, 선거 규칙, 알고리즘, 사이버 보안 등 수학이 중대한 역할을 맡을 정치 활동이 무궁무진하다. 수학이 내 정치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프랑스 과학위원회를 개혁하겠다.” 그를 지난달 파리에서 만난 건 뜻밖에도 미술관에서였다. 그는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콘퍼런스를 기획해 왔다. 지난달엔 자동차 사진전과 연계한 ‘속도의 밤’이라는 콘퍼런스의 진행자로 나서 음악가, 천문학자, 철학자 등 이종(異種) 전문가들과 속도에 관해 토론했다. 의원으로 당선된 지 불과 사흘 뒤의 일이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 재단의 소장품 전시에서도 그가 수학 문제를 푸는 손을 찍은 단편 영상을 볼 수 있다. ―수학자인데 왜 예술과 손을 잡나. “수학과 예술의 만남은 곧 수학과 사람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수학자와 예술가는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풍부한 감정, 상상, 깊은 사고, 그리고 좌절까지….” 그는 ‘왜 거미 브로치를 다느냐’는 질문을 늘 받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답한 지 오래다. 그런데 그가 펴낸 책 ‘살아있는 정리’(2014년)의 저자 소개는 이렇다. ‘거미 브로치를 달면 문제를 풀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 이런 대목도 있다. ‘어렸을 때 피아노 선생님께 배운 대로 손가락을 거미처럼 쫙 펴고 널찍한 책상 위의 키보드를 정력적으로 두들긴다.’ 가족과 함께 애니메이션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는 그는 차와 음악, 치즈를 즐긴다. ―필즈상 수상자를 보면 프랑스인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왜 프랑스인이 수학에 강한가. “수학은 추상화와 이데아(이상)에 관한 것인데, 프랑스 문화와 역사가 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학은 사유 활동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내 친구인 사진가 레몽 드파르동은 수학자들을 촬영하더니 ‘수학자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았다’고 하더라.” ―한국 학생들이 수학을 사랑하고 잘하기 위한 조언이 있을까. “한국 학생들은 매우 뛰어나다. 그런데 지나치게 열심히 공부한다. 발견과 실험의 기쁨을 즐길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게 중요하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프랑스 파리 2구 아부키르가 19번지에 있는 ‘조나스 에 시에(Jonas & Cie)’.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년 전부터 단골로 드나들며 옷을 사 가는 양복점이다. 올해 5월 대통령 취임식 때 입은 정장(450유로·약 58만5000원)도, 이달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에펠탑에서 만찬을 할 때 입은 정장(390유로·약 50만7000원)도 이곳에서 구입했다. 도대체 어떤 곳일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최근 다녀왔다. ‘대통령의 양복점’은 건물의 2층에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조그만 간판을 보고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계단을 걸어올라 좁다란 복도로 들어서니 벽면에 마크롱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프랑스 유명 정치인들의 방문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장클로드 투불 씨와 그의 아들 로랑 씨가 1980년 시작한 이 양복점에는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마티아스 페클 전 내무장관 등 정치인 단골이 유독 많다. 마크롱 대통령은 측근인 이스마엘 에믈리앵 홍보특보(30)의 소개로 이곳을 다니게 됐다.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부인 브리지트 여사도 함께 들렀다. 오전 10시인데도 이미 고객이 10여 명 있었다. 수수한 분위기의 양복점 내부에는 맞춤 장인들의 작업공간도 딸려 있었다. 기성복은 대개 350유로(약 45만5000원), 주문부터 완성까지 5주일이 걸리는 맞춤복은 550유로(약 71만5000원), 넥타이는 30유로(약 3만9000원), 가죽 벨트는 50유로(약 6만5000원)…. 줄자를 들고 한 손님의 팔 길이를 재던 로랑 투불 사장에게 정치인 단골이 많은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합리적 가격에서 편안하게 옷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며 “마크롱 대통령 측이 취임 이후에도 세 벌을 사 갔다”고 말했다. 이 양복점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푸른색과 몸에 딱 맞는 슬림 핏(slim fit) 스타일을 선호한다. 잉글리시 포켓(왼쪽에 두 개, 오른쪽에 하나의 주머니)이 달린 짙은 푸른색 정장과 흰 셔츠, 작은 점무늬 푸른색 넥타이의 조합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 남성복이 발달한 이탈리아에서는 폭 8∼9cm의 넥타이가 클래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에선 젊은 남성들이 폭 6.5cm 이내의 넥타이를 매는 게 유행이다. 국내 원조 남성 편집숍인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한태민 대표는 “좁다란 넥타이와 바지, 날렵한 구두 앞코가 만 39세인 마크롱 대통령의 젊은 이미지를 강조한다”며 “단조로워 보이던 프랑스 남자 패션을 마크롱 대통령이 바꾸고 있다”고 평했다. 멋쟁이 파리지앵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투불 사장은 특히 ‘조끼의 마법’을 설파했다. “정장 바지에도 청바지에도 입으면 기분이 유쾌해져요.” 그는 덧붙였다. “프랑스 패션의 핵심은 너무 과하게 꾸미지 않는 것입니다. 최대한 절제하며 자연스러울 것. 그리고 거기에 맞는 정중한 태도를 갖출 것.”파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갤러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높이 2m, 폭 2m로 벽에 붙어 있는 도자기 의자(월 체어)였다. 12개의 도자기 판이 타일을 이은 듯 하나의 둥그런 의자를 이뤘는데, 노랑 초록 빨강의 유약이 물감 번지듯 흘러 내려 있었다. 그 모양새가 이글거리는 태양 같기도,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 같기도 했다.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롯데갤러리 에비뉴엘 아트홀의 전시 ‘The Journey’. 8월 6일까지 이 전시를 여는 도예가 이헌정 씨(50)는 줄곧 여행(journey)이란 주제로 작업해 왔다. 도예(홍익대 석사), 조각(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 건축(경원대 박사과정 수료)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여행을 통해 아트 퍼니처(예술 가구)를 만들어 온 것. 월 체어는 건축이라는 거시적 시스템과 도자기를 빚는 손의 감각이 만난, 보다 확장된 가구인 셈이다. 불쑥 튀어나온 두 개의 도자 봉우리는 모자나 옷을 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이들이 매달려 놀 수도 있는 형태였다. “제가 만드는 가구가 애매하게 이해됐으면 좋겠어요. 작가가 아니라 사용자가 쓰임을 결정하는 거죠. 키 낮은 도자기 의자를 누군가는 작은 티 테이블로도 쓸 수 있으니까요.” 그의 작품은 외국에서 먼저 알아봤다. 배우 브래드 피트, 건축가 노먼 포스터, 화가 제임스 터렐 등 유명 예술인들이 구입했다. 전통 소재인 도자와 콘크리트 등의 현대적 재료를 간결한 선으로 결합시킨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화려해졌다. 사람 키 높이의 대형 도자기 화분엔 빨강 꽃 장식이 가득 붙어 있다. 콘크리트 벽에 수백 개의 구멍을 뚫은 뒤 작은 흰색 도자기 꽃을 꽂은 ‘아트 벽’도 있다. “나이 들어 그런가, 꽃과 나비처럼 순수한 것들이 좋아져요(웃음). 사람들이 도예를 어렵지 않게 여겼으면 좋겠어요. 손의 노동, 가마 속에서 유약이 불을 만나 빚는 우연의 흔적을 전하고 싶어요.” 그는 자주 여행한다. 지난해 여름엔 옛 스승이 은퇴해 사는 아일랜드 시골에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지냈다. 특히 그곳의 자연에 푹 빠졌다. “두께가 10cm나 되는 이끼를 보니 사람들의 이야기를 두껍게 제 작품 속에 쌓고 싶어지더라고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배우들의 몸짓을 보며 ‘좀 더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는 최근 서울 중구 신당동 다산 성곽길 모퉁이에 ‘바다디자인 아틀리에 캠프B’라는 공간을 열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그의 아트 퍼니처를 놓은 뒤 시인과 건축가 등을 연사로 초대해 소규모 학습모임을 열고 있다. 창작 여행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왜 캠프B냐고요? 여행에서 따왔어요. 경기 양평에 있는 제 작업실이 캠프A, 이곳이 캠프B예요. 앞으로 또 다른 캠프C와 캠프D로 계속 여행을 떠나려고요.”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 현대 예술가인 토마스 사라세노 씨(44·사진)도 13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15일부터 내년 3월 25일까지 ‘행성 그 사이의 우리’라는 제목의 전시를 선보일 그는 “한국의 광주가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지닌 것처럼 우리 인간들이 비인간적 생명체와 공존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해야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에서 현대예술을 공부한 그의 주된 예술적 관심사는 미래. 특히 우주항공 엔지니어, 천체물리학자 등과 협업하면서 거미와 거미집 구조를 10여 년째 파고들고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전시는 거미와 거미줄, 먼지, 저주파 사운드를 활용한 대규모 영상 프로젝션으로, 먼지의 궤적으로 생기는 저음파가 거미집에 전달돼 그 진동으로 새로운 조합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사라세노 씨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태양열과 공기, 바람으로만 작동하는 ‘에어로센(Aerocene)’이란 신개념을 제안한다. 인간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기원을 생각하며 다른 행성 또는 비인간적 실체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광주의 첫인상을 묻는 질문에는 “음식이 맛있다”며 활짝 웃었다. 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그동안 광주비엔날레가 급속한 성장을 해 오느라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행사, 교육의 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전임 대표의 사임으로 5개월여 공석이었던 광주비엔날레 신임 대표이사에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관장(52)이 선임됐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는 13일 이사회를 열고 이사 14명 전원 찬성으로 김 관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그가 국내외 미술계의 폭넓은 네트워크, 미술 분야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지녀 적임자라는 게 재단 측의 설명이다. 이날 재단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 신임 대표는 “광주비엔날레가 예술계에서는 이름이 높지만 작가들을 돕는 부분이 부족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건축과 조각 등의 분야를 강화해 행사가 끝난 후에도 광주 지역과 시민들과의 연계를 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녀인 김 대표는 이화여대 서양화과와 미국 미시간주 크랜브룩 미술대 서양화과 대학원을 나왔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2005년), 광주비엔날레 책임 공동예술감독(2012년) 등을 지냈다. 김 대표는 내년 9월 개막하는 ‘2018 광주비엔날레’ 준비에 매진하기 위해 다음 주 아트선재센터 관장을 사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김해주 씨(37)가 부관장으로 임명됐다. 김 대표는 아직 재단과 협의하지 않은 개인 의견이라고 전제한 뒤, 현재 감독제인 광주비엔날레를 큐레이터제로 바꾸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독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재단이 그저 감독을 돕는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는 다음 달 말까진 감독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광주비엔날레의 교육적, 창의적 기능을 높이기 위해 호주 브리즈번에서 3년 주기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트리엔날레(APT)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며 “어린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광주비엔날레를 즐기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정보의 디지털 자료화에도 힘 쏟겠다는 계획이다. “카셀도큐멘타(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행사)가 유명한데, 실제 가보면 구조는 단순해요. 그 대신 도서관과 자료실이 잘돼 있거든요. 어떤 작가가 큐레이터에게 ‘너 나쁜 놈이야’라고 말한 것까지 기록돼 있을 정도예요.” 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1일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한국가구박물관. 마당을 따라 한옥에 들어서니 대청마루 한편에 의(衣)걸이장이 놓여 있었다. 내부에 막대를 달아 두루마기처럼 긴 옷을 걸쳐두게 했던 19세기 말 한국의 옷장이다. 그 옷장 바로 옆에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인 루이비통의 여행 트렁크가 세워져 있었다. 옷걸이가 안에 달려 주름 없이 옷을 보관할 수 있게 한 가방이다. 1854년 탄생한 루이비통이 트렁크 안에 옷걸이를 달기 시작한 게 역시 19세기 말인 1890년. 루이비통코리아 관계자는 “외형상 닮은 한국 의걸이장과 루이비통 트렁크는 대를 이어 물려 쓴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루이비통이 12∼16일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자사의 최우수 고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맞춤 제작 트렁크 전시회’에 동아일보가 미리 다녀왔다. 이 박물관은 저명한 정치인이었던 정일형 박사와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의 딸인 정미숙 관장(70)이 15년간 한옥 10채를 복원해 2011년 개관한 곳이다. 미국 CNN은 이곳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꼽기도 했다. 루이비통과 한국의 장인정신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이곳을 골랐다는 게 루이비통 측의 설명이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와서 보고 감탄했다는 오동나무 책장은 여러 개의 책함을 쌓아올린 것이다. 그런데 루이비통 트렁크도 두어 개를 쌓으면 티 테이블로 쓸 수 있다. 또 내부에 수납 기능이 있는 트렁크는 한국의 뒤주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 전통문화에 정통한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디자이너)은 “고급문화일수록 전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한국의 고가구와 루이비통은 이질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유목민 럭셔리’를 표방하는 루이비통은 여행을 자주 하는 고객이 제품을 가구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열어 펼치면 책상으로 변신하는 트렁크, 일본 전통 종이접기 방식을 접목한 접이식 가죽 의자가 대표적이다. 꽃을 담는 트렁크, 시계와 향수 트렁크 등 가방 종류도 많다. 고객들은 점점 더 맞춤형 경험을 원하고 있다. 럭셔리 업계가 프라이빗 전시와 ‘나만의 제품’ 서비스를 늘리는 이유다. 루이비통모에에네시(LVMH) 그룹 소유의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은 고객이 원하는 문구와 그림을 제품에 새기는 서비스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2014년 국내에서 시작한 루이비통의 맞춤 제작 서비스는 고객의 이름 이니셜을 새기던 수준에서 사군자와 서울타워 등 다양한 그림 서비스로 발전했다. 이번 전시는 동서양 명품 간 하모니가 돋보인다. 사대부집 안방엔 모란꽃 병풍을 두르고 반닫이 위에 루이비통 ‘트위스트’ 가방을 올렸다. 사랑채 평상에는 체스 트렁크를 두고 남자들의 ‘스타일 있는 놀이’를 제안했다. 루이비통 측은 “평소 베르나르 아르노 LVMH그룹 회장이 ‘꿈의 가격은 매길 수 없다’며 강조하는 럭셔리 정신을 한국 고가구에서 느낀다”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