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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쓰시면 언젠가 길이 보일 겁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지난달 20일 선보인 글쓰기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강 대상은 전업 작가가 아닌, 집필 경험이 별로 없는 평범한 이들. 글을 쓰고는 싶지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탓에 섣불리 문장을 써내려가기 어려운 이들이 펜을 들도록 하겠다는 게 강의 목표다. 최근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이 늘면서 소설가나 에세이 작가들의 작문 강의나 글쓰기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작가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과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일반인들의 에세이가 속속 출간되고 있다. 한 문학전문 출판사의 에세이 담당 편집자는 “전업 작가의 글이 아니라도 독자들이 보통 사람들의 인생과 이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직접 글을 써 자신의 사연을 나누려는 욕구도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영하는 교육 콘텐츠 기업 패스트캠퍼스에서 진행 중인 온라인 강의를 통해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부터 눈길을 끄는 스토리텔링 기법까지 구체적인 작문 팁을 알려주고 있다. 장르도 에세이와 소설을 두루 다룬다. 인기 ‘북튜버(북+유튜버)’이자 작가인 김겨울도 이 강의에 참여해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해법을 함께 논한다. 김영하는 “25년간 글을 쓰며 고민한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는 법’을 담았다”고 말했다. 소설가 장강명도 지난해 11월 글쓰기 책 ‘책 한번 써봅시다’(한겨레출판사)를 내놓으며 관련 강연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 영상에서 장강명은 “당신도 책을 쓸 수 있으니 도전하라”고 격려한다. 박연준 시인은 지난달 출간한 산문집 ‘쓰는 기분’을 소개하면서 “에세이지만 실용서로 읽힐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썼다”고 밝혔다. 책은 시와 산문을 쓰는 작가의 마음과 더불어 평범한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작가들의 글쓰기 강의를 들은 일반인이 자신의 책을 낸 사례도 있다. 최훈 씨는 장강명의 유튜브 강연을 보고 올 6월 에세이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정미소)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3년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한 온갖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교열 전문가가 쓴 글쓰기 책도 주목받고 있다. 출판사에서 20년 넘게 단행본 교열 업무를 담당한 김정선 씨가 2016년 출간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유유)는 10만 부 이상 팔려 지난달 기념 리커버판이 나왔다. 김 씨는 이 책에서 ‘∼적’ ‘∼의’ ‘것’ ‘들’과 같은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내라는 식의 구체적인 지침을 준다. 문장 끝에 붙이는 ‘∼있다’로 인해 어색해지는 사례들도 정리했다. 독자들은 “긴 글이 아니라도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실용 팁이 유용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한번 떠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발시(發矢)에 이르기까지의 동작이 부정확했다면 아무렇게나 쏘기보다는 중간에 동작을 멈추는 편이 낫다. 하지만 단지 실수가 두려워 경직될 때는 망설이지 말고 쏴라.’ 자아를 찾아 나선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가 여행길에서 만난 연금술사와 신비로운 경험을 하는 이야기 ‘연금술사’로 전 세계 3억2000만 독자를 사로잡은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또 다른 지혜를 안겨주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번 소설의 중심에 놓인 소재는 바로 활. 산티아고가 긴 여정 끝에 꿈과 자아를 찾았다면 이 소설 속 인물과 독자들은 활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는 궁술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방인이 전설적인 명궁 ‘진’을 찾아오며 시작한다. 이방인은 진의 명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며 진에게 도전한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게 된 한 소년은 그저 평범한 목수인 줄로만 알았던 진이 화살을 쏘는 모습을 보고 단숨에 활에 매료된다. 활을 통해 마음을, 인생을 들여다보는 진과 소년의 여정이 그렇게 시작된다. 화살을 정확히 과녁에 꽂기 위해서는 화려한 궁술보다 정갈한 마음가짐이 우선이다. 소설이 궁술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마음과 정신 수련을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를테면 진에게 도전해온 이방인은 40m 떨어진 작은 체리에 화살을 관통시킬 정도로 훌륭한 사수다. 하지만 산 정상의 낭떠러지 앞에 설치된 흔들다리 한가운데서는 20m 거리에 있는 복숭아도 맞히지 못한다. 진은 이방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궁사가 언제나 전장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화살을 정확하게 잘 쏘는 것과 영혼의 평정을 유지하고 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저자는 오랜 기간 직접 궁술을 배우며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화살을 쏠 때마다 표적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활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가서는 화살과 표적 자체가 돼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활을 쏘며 직관적으로 익히게 된 지혜를 하나하나 기록한 결과가 이번 소설이다. 활쏘기를 사랑하는 그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딴 우리나라 양궁 대표팀 안산 선수의 기사를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하며 “축하한다. 내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는 대로 사인본을 보내겠다”고 쓰기도 했다. 저자의 문학세계는 1986년 떠난 스페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순례에서 잉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순례가 연금술사와 ‘순례길’ 등 각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소설에도 그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고 저자는 밝혔다. 한국에 연금술사가 처음 번역 출간된 지 꼭 20년이 흘렀다. 연금술사가 책장 어딘가에 먼지와 함께 꽂혀 있는 독자라면 이번 소설과 교차해 읽어보며 다시금 코엘료가 역설해 온 인생의 진리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년간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다 지난해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직장인 임모 씨(28)는 올 6월 출간된 자기계발서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알에이치코리아)를 최근 샀다. 직장 상사가 일을 가르쳐주기보다 실수를 다그치는 방식으로 자신을 대한다고 생각해서다. 임 씨는 “사수가 원망스럽지만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책의 지적이 솔직히 뼈아팠다. 일터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는 문구를 보고 이 책을 덥석 집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난관들에 대한 해법을 책에서 찾으려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늘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취업’ ‘이직’ ‘퇴사’를 키워드로 하는 직장생활 관련 도서의 26∼35세 구매 비율이 2017년 15.1%에서 2021년 상반기 24.9%로 크게 높아졌다. 종래에는 주로 간부급 직장인들이 현명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직장생활 관련 자기계발서를 찾던 것과 달라진 양상이다.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주니어 직장인들을 겨냥한 신간 ‘사수가…’는 카카오의 콘텐츠 구독 플랫폼 ‘브런치’에 연재될 당시부터 5700여 명의 구독자를 모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자기계발 커뮤니티 ‘한달어스’의 공동 창업자인 저자 이진선 씨는 과거 웹디자인 회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터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법을 책에 담았다. 이를테면 “좋은 사수의 존재보다는 매일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이 직장생활에 더 큰 안정감을 준다”고 조언하는 식이다. 이정민 알에이치코리아 에디터는 “인터넷에서 이른바 ‘랜선 사수’를 찾아 헤맬 정도로 업무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젊은 직장인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바람을 타고 기존의 리더십이나 조직관리 관련 책보다는 많은 양의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법, 다른 부서원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법 등 저연차 실무자들에게 도움이 될 법한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와 일본 경쟁전략 전문가 구스노키 겐이 함께 쓴 ‘일을 잘한다는 것’(리더스북)은 올 초 출간됐지만 자기계발서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다. 저자는 “업무역량은 기술(skill)이 아니라 감각(sense)에서 나온다”고 지적하고 넷플릭스, 어도비, 레고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의 ‘일 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하는 감각을 기를 수 있는 팁을 제시한다. 2019년 출간된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더퀘스트) 역시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는 자기계발서다. 복잡한 일들을 단순하게 해결해 높은 성과를 내는 이들의 일 처리 노하우로 직장인들의 공감을 샀다. 출간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알라딘의 직장생활 자기계발 분야에서 18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정보기술(IT)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해지면서 일반직 종사자와 전문 개발자의 협업 노하우를 다룬 ‘오늘도 개발자가 안 된다고 말했다’(디지털북스)는 자격증 시험 문제집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컴퓨터/IT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직장 생활을 일찍 그만두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자 하는 MZ세대는 퇴사에 대한 조언까지 책에서 구하기도 한다. 올 4월 출간된 ‘서른살, 비트코인으로 퇴사합니다’(국일증권경제연구소)는 출간 직후 예스24의 종합 베스트셀러 20위권에 오르는 등 2030 직장인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퇴사를 주제로 한 에세이도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5월 출간된 ‘퇴사 전보다 불안하지 않습니다’(푸른향기)는 직장인이었던 부부가 나란히 퇴사한 후 떠난 세계여행을 기록한 에세이다. 직장생활과 퇴사에 대한 MZ 세대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 마흔에 은퇴한 부부가 지난달 펴낸 에세이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한겨레출판사)는 조기 은퇴를 위한 계획과 방법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강현정 예스24 자기계발 MD는 “직장에서의 불안은 온라인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편적인 답변만으로 해소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긴 시간에 걸친 저자의 경험과 통찰이 담긴 책을 독자들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1993년부터 매년 약 2억 원 규모의 한국 문학 번역 출판 지원 사업을 해온 대산문화재단이 2일 올해 지원 대상 작품을 발표했다. 올해 재단의 지원을 받는 작품은 총 13건. 이 중 6건이 30대 이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해외에 번역되는 한국 문학 작품의 작가들이 젊어지고 있다. 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2016년 번역 지원작과 비교했을 때 올해 지원작 작가들의 평균 연령은 7.4세 젊어졌다. 2016년 52.7세였던 것이 45.3세로 낮아진 것. 이미 사망한 작가들은 제외한 수치다. 2016년 지원을 받았던 18건의 작품 중 30대 작가는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김애란(당시 36세) 한 명뿐이었다. 올해는 프랑스어와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로 번역되는 장편소설 ‘9번의 일’의 김혜진(38), 영어로 번역되는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의 임솔아(34)와 소설집 ‘실패한 여름휴가’의 허희정(32)이 모두 30대다. 해외 시장에서 통하는 한국 작가들이 젊어진 이유는 젊은 문인들이 세계 무대에서도 공감을 살 만한 보편적인 소재를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다루는 소재가 한국적 색채가 짙은 작품들에 비해 외국 독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수용된다는 것. 통신회사 설치 기사로 일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일터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 ‘9번의 일’은 노동자들의 삶의 비애를 정면으로 다뤄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평을 받으며 가장 많은 언어권의 번역 지원을 받게 됐다. 우찬제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소설 속 시공간을 서울에 둬도, 미국 뉴욕이나 독일 베를린에 둬도 어색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중견 작가라 할지라도 대표작 위주로 해외 출판시장에 소개됐다면 지금은 비인기작, 혹은 출간된 지 오래된 작품들도 새삼 조명된다는 점이 또 다른 차이다. 한강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이번에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가 선정돼 프랑스어로 번역될 예정이다. 또 다른 지원작인 박완서의 ‘저녁의 해후’(중국어 번역),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영어 번역)는 각각 출간된 지 15년, 9년이 흐른 작품들이다. 중견 작가의 오래된 작품들이 최근 들어 해외 문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11년 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어로 번역된 하성란 소설집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2002년)는 지난해 10월 미국 출판전문 매거진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올해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됐다. 장근명 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 과장은 “최근 몇 년간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 독자들의 관심이 늘면서 중견 작가들의 숨겨진 작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해 100여 건의 한국 문학 번역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도 이 같은 변화를 느끼고 있다. 번역원이 지원하는 작품 중 60% 정도는 해외 출판사가 작품을 미리 계약한 뒤 번역원에 지원을 신청하는 구조여서 해외 독자들의 관심과 선호의 변화를 더욱 기민하게 느낄 수 있다. 지원작 작가의 평균 연령은 2016년 54.8세에서 올해 51.6세로 낮아지는 추세다. 박소연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팀장은 “과거에는 순문학 위주로 번역했다면 최근에는 장르문학 등 분야도 다양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의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사랑과 성애의 여신 비너스, 그리고 원죄 없는 성스러운 여인 성모 마리아.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존재가 실은 이어져 있다면? 40년간 여신의 자취를 따라 그리스 신전과 중동 발굴 터, 폼페이의 가정집 등을 현장 조사한 저자는 “인간의 다양한 사랑을 관장하는 여신은 변신을 거듭했다”고 말한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여신을 원하고 상상하며 사랑해온 인간이 상반된 이미지의 두 여신을 탄생시켰다는 것. 그리스어로 아프로디테라 불리는 비너스의 전신은 아스타르테다. 잦은 전쟁으로 30세가 되면 대부분 죽음을 맞은 청동기시대에 전쟁과 열정, 난폭함, 죽음을 상징하는 여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메르에서는 이난나,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활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로 묘사된 아스타르테는 가장 빛나는 별인 금성(venus)으로 상징되었다. 기원전 680년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 에사르하돈은 자신을 배신한 자들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이렇게 말했다. “별 가운데 가장 밝은 별인 금성이 네놈들의 아내가 적의 품에 누워 있는 걸 눈앞에서 보게 하시길.” 저자는 아스타르테가 선박의 뱃머리에 그려졌다는 점에서 바다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은 기원전 8세기경 쓰인 그리스 음유시인들의 작품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일부 그리스인은 바다의 거품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프로스’에서 아프로디테의 이름이 유래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스타르테의 페니키아식 이름인 ‘아스테로스’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아프로디테의 탄생으로 여신은 성애와 욕망, 기쁨과 사랑에서 더 나아가 관계와 화합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여성과 남성, 극작가와 철학자를 하나로 묶는 우주적 힘이 아프로디테에게 있다고 여겨졌다. 이처럼 친교를 상징하다 보니 아프로디테를 매춘부의 여신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고대 로마 초기 문인 엔니우스는 “비너스는 원래 매춘을 처음 고안한 여성이었으나 나중에 여신으로 숭배받게 됐다”는 주장을 폈다. 기독교가 서구사회를 지배하면서 아프로디테는 성적 특성만이 강조된 존재로 변질됐다. 하지만 4000년을 버틴 여신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저자는 “아프로디테는 동정녀 마리아의 외피를 두르고 재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지중해 국가 키프로스 중부의 파나기아 트로오디티사 수도원에는 성모 마리아가 축복을 내렸다는 허리띠가 보관돼 있다. 이 수도원의 또 다른 이름은 파나기아 아프로디티사. 애초 아프로디테에게 바쳐진 이 공간에 보관된 허리띠 역시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프로디테의 허리띠와 흡사하다고 한다. 또 마리아의 수태고지 순간을 그린 중세 회화 작품들에는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끼는 비둘기가 함께 그려져 있다. 인류가 상상한 가장 이상적인 여성상이 이토록 변화무쌍했다는 게 흥미롭다. 하지만 창녀와 성녀를 넘나드는 여신의 이미지는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도 읽힌다. 여신의 역사를 통해 인간 욕망의 일대기를 훑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여행길이 막힌 팬데믹 시대,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왕실 수집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면.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거나, 파에야의 발상지 발렌시아에서 지중해를 감상할 수 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전문지식을 갖춘 가이드까지 동행해 ‘멋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있다. 서울 중구 독립서점 ‘스페인책방’의 온라인 책모임을 통해서다. 독립서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답답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한 이색 비대면 책모임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9∼30일 매주 금요일 스페인책방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진행된 ‘여행 대신 여행 토크’에는 약 70명의 독자가 참여했다. 온라인 모임은 테마별로 책 저자들을 초청해 진행됐다. 예컨대 2019년 ‘사적인 가이드북 두 번째 스페인, 발렌시아’(니케)를 펴낸 구민정 여행작가와 함께 발렌시아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식이다. 유럽 각지 미술관을 조명한 ‘90일 밤의 미술관’(동양북스)에서 마드리드 부분을 쓴 이진희 여행가이드와는 프라도미술관으로 떠나기도 했다. 스페인서점을 운영하는 에바(활동명) 대표는 “처음에 용산도서관 제안으로 독서동아리 회원들을 위해 모임을 기획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원하는 독자는 누구든 유튜브를 통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스페인 여행을 놓쳤어도 기회는 남아 있다. 서울 관악구의 독립서점 ‘살롱드북’에서는 6∼27일 매주 금요일 여행토크 ‘여행탐구생활’을 줌(Zoom)에서 진행한다. 관악구 인문학지원센터와 함께 준비한 이번 모임 주제는 ‘여행 기록법’. 여행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 여행작가들을 초청했다. ‘여행할 땐, 책’(수오서재)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웅진지식하우스) 등 여러 여행서를 펴낸 김남희 작가가 유럽,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을 누빈 경험을 6일 첫 모임에서 풀어놓았다. ‘출근 대신 여행’ ‘발리에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방)를 펴낸 방태현 작가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한 여행 기록법을 13일 소개한다.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고 남에게 소개하는 일이 또 다른 여행을 기약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들려줄 예정이다. 3회와 4회 모임을 각각 맡은 변종모, 태원준 작가는 지난 여행 경험을 토대로 여행의 의미와 필요성을 논한다. 각 모임 작가들을 직접 선정한 강명지 살롱드북 대표는 “여행의 필요를 적당히 달래주는 정도가 아니라 여행을 그리는 독자들에게 뜻깊은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작가 경력이 최소 10년 이상인 베테랑만 모셨다”고 말했다. 여행만이 모임 주제가 되는 건 아니다. 팬데믹 이전 책모임처럼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을 정해 토론하되 색다른 경험을 가미한 모임도 있다. 제주시내 독립서점 ‘북스토어 아베끄’는 1일 ‘아무튼, 술집’(제철소)을 쓴 김혜경 작가와 함께 술을 곁들인 온라인 북 토크를 줌에서 열었다. 이름하여 ‘홈술 토크’. 참가자들이 같은 안주를 놓고 술을 마시면 서로 함께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취지로, 귤향 한과와 제주 김부각 등 제주 특산 안주 꾸러미를 독자들의 집으로 미리 보내줬다. 김 작가가 술을 마시며 시를 읽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독자들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낭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모임을 기획한 강수희 북스토어 아베끄 대표는 “참여한 독자들이 모임이 끝난 뒤 ‘정말 재밌었다’는 메시지를 많이 보내줬다. 안주 배송 등 나름 품이 많이 든 모임이지만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열린책들, 창립기념 ‘중단편 세트’ 창립 35주년 맞은 열린책들러 ‘붉은 수레바퀴’ 국내 첫 소개후 다양한 국가 문학책 2100여권 펴내창립기념 스무편 골라 세트 출간 “독자들 부담없도록 권당 3500원”영미권 번역 문학이 인기를 끌던 1980년대, 한 신생 출판사 대표가 모험을 시도했다. 첫 책으로 현대 러시아 문학책을 내기로 한 것.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이 러시아 혁명을 그린 소설 ‘붉은 수레바퀴’는 그렇게 한국에 처음 소개됐다. 총 7권인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을 낼 즈음엔 출간하는 게 손해였지만 다음 권을 기다리는 소수 독자들을 위해 전체 시리즈를 완간했다. 이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등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를 포함해 다양한 국가의 문학책을 내며 출판계의 외연을 확대해 왔다. 출판사 열린책들 이야기다. 국내외 문학을 꾸준히 소개하기 위해 애쓰는 출판사들이 있다. 해외 문학 전문 출판사로 꼽히는 열린책들은 올해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러시아와 동구권 문학에 심취했던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는 1986년 출판사를 세우고 당시 독자에게 생소한 문학세계를 펼쳐 보였고, 이후 출판사는 2100여 권을 펴내며 탄탄하게 성장했다. 열린책들은 35주년을 기념해 자사의 세계 문학 시리즈에서 중단편 고전 명작 스무 편을 골라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출간했다. 정오와 자정을 뜻하는 ‘NOON’과 ‘MIDNIGHT’ 세트로, 각각 10권씩 구성했다. NOON 세트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등 서정적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 MIDNIGHT 세트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 묵직하고 강렬한 작품을 모았다. 각 세트는 3만5000원으로, 한 권당 3500원이다. 홍유진 열린책들 이사는 “독자들이 해외 문학을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책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지에서 인기를 끈 작품을 주로 출간하다 보니 자연스레 해외 문학을 다양하게 소개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작품 위주로 출간하겠다”고 말했다. 현대문학은 월간지 800호 발간66년 8개월간 달려온 현대문학토지-태백산맥 등 소설 4000여편, 시 6000여편 산문 4000여편 소개주요작가 작품 71편 실은 특대호… 표지는 윤형근 미발표작으로 꾸며 1955년 1월 창간호를 낸 후 66년 8개월간 휴간 없이 달려온 문예 월간지 현대문학은 올해 8월 800호를 맞았다. 800호를 낸 문예지는 세계적으로 현대문학이 유일하다. 그동안 4000여 편의 소설과 6000여 편의 시, 4000여 편의 산문이 현대문학을 통해 소개됐다. 박경리의 ‘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춘수의 ‘꽃’이 처음 나온 지면도 현대문학이었다. 현대문학 표지는 우리나라 대표 화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창간호는 김환기의 작품이 장식했고 이중섭 천경자 장욱진의 작품도 실렸다. 800호 표지는 현대문학 표지 디자인을 자주 했던 단색화가 윤형근(1928∼2007)의 작품을 채택했다. 유족의 뜻에 따라 고인의 유작 한 편과 미발표 작품 두 편을 꼽아 꾸몄다. 512쪽의 800호 기념 특대호는 구병모 김금희 편혜영 등 소설가 35명에게 짧은 소설을, 박연준 안희연 등 시인 36명에게 시를 받아 실었다. 현대문학은 발행 부수가 한창때의 10분의 1로 줄어 수익이 나지 않지만 한국 문학을 키우는 임무를 묵묵히 해내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열린책들은 각국의 사랑받는 작가들을 발 빠르게 국내에 소개해 왔고 현대문학은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는 정통 문예지를 오랜 기간 이끌어 왔다”며 “두 회사 모두 문학과 독자 사이의 훌륭한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제로니모 작전)을 진행 중이던 2011년 4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대테러센터(NCT)에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이 감시 중인 사람이 빈라덴일 가능성을 평가하라고 지시했다. CIA는 그가 빈라덴일 가능성을 60∼80%로, NCT는 40∼60%로 각각 분석했다. 윌리엄 맥레이븐 합동특수전사령관을 비롯한 고위 군사 전략가들이 빈라덴 사살을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실패 가능성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대통령의 결단만이 남은 상황. 오바마는 신간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가능성을 평가할 더 나은 과정들을 마련할 수 없고, 나의 판단을 도와줄 더 훌륭한 사람들을 영입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오바마가 자신의 대통령 재임 시절을 다룬 첫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임기 첫 2년 반 동안의 에피소드들을 솔직히 풀어냈다. 이 책을 읽으면 오바마가 임기 내내 정치적 반전이 없다는 이른바 ‘노 드라마(No drama)’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닌 이유를 알 수 있다. 표를 얻어야 하는 정치가에게 달갑지 않은 수식어이지만, 오바마는 미국의 숙적 빈라덴 사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주저했다. 4개월의 숙고 끝에 “결국 확률은 반반이다. 시도해 보자”는 오바마의 결단으로 작전이 성공을 거두자 미국 사회에선 통합의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상황에서 오바마는 행정부에 공을 돌리기에 앞서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죽여야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책에는 ‘인간 오바마’의 모습도 담겼다. 여느 10대들처럼 파티를 좋아하는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대학 진학 후 찬 음식도 마다하지 않는 검소한 삶을 살았다. 그러면서 ‘어떤 사회운동이 실패 혹은 성공하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골몰했다. “행동보다 사변을 좋아했다”는 오바마의 회고는 제로니모 작전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 그의 행동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지난해 선희석 씨(56)는 아들 윤호 씨(26)가 운영하는 경기 오산시의 분식집을 찾았다가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굳게 닫힌 분식집 앞 초등학교 교문을 바라보던 아들의 그늘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 것. 아들은 또래보다 빨리 경제적으로 자립하겠다며 학업을 중단하고 분식집을 열었다. 그런데 분식집을 열자마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움켜쥐고 집에 돌아온 선 씨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 윤호 보렴’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20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아들이 줄곧 자신의 희망이었듯, 아버지인 자신도 아들에게 든든한 뒷배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살아가는 게 지치고 힘들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던 사람이 바로 너였음을 기억해주렴. 아빠도 너의 희망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마.” 선 씨가 아들에게 띄운 이 희망의 편지는 지난해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의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주변의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이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의 편지’를 주제로 한 지난해 공모전에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편지들이 주로 답지했다. 공모전 수상작들은 수도권의 독립서점 3곳에서 9월 9일까지 선보이고 있다. 서울 마포구 ‘가가77페이지’와 송파구 ‘무엇보다책방’, 경기 김포시 ‘마리북스’에서 만날 수 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경미 씨(56)는 코로나 여파로 실직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김 씨의 남편은 쉰 살이 넘어 시작한 사업에 실패한 뒤 낮에는 보험 영업, 밤에는 인천국제공항 물류센터 포장 업무로 쉴 새 없이 일했다. 그러다 지난해 코로나로 공항 이용이 급감하면서 남편은 물류센터에서 권고 사직됐다. 남편이 다 해진 작업용 장갑을 보여줬을 때, 마지막 퇴근길 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을 때 김 씨의 마음은 무너졌다. “4월 30일 5년 넘게 한 밤일을 그만두고 운서역에 서서 인증샷을 보내주었는데, 그 사진이 말을 하더라. 더 일찍 그만두게 하고 다른 일을 찾게 해야 했는데….” 이내 김 씨는 밤낮 노동에 시달려온 남편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며 남편을 위로한다. “당신 밤일 안 하고도 의식주 해결하는 희망을 가집시다. ‘근로자의 날’ 근로자는 아니지만 쉴 수 있는 날이었어. 정말 좋았어.” 코로나에 따른 거리 두기로 친구들과 맘 놓고 어울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어린이의 글도 있었다. 초등학생 이민서 양(13)은 ‘눈만 보이는 우리 반 친구들에게’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반에는 아는 친구, 모르는 친구, 친한 친구 다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 친구에게 말을 걸지 못했어. 2m 이상 친구에게 접근 금지였거든. 2m가 1m, 1m가 30cm, 30cm가 0cm가 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파이팅!!”이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올해 편지쓰기 공모전은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주제로 9월까지 접수한다. 이관민 한국우편사업진흥원 문화기획팀 대리는 “지금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스스로를 위한 응원과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며 “올해도 의미 있는 편지들이 많이 모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시는 기분이 전부인 장르거든요. 시를 쓸 때 느껴지는 날개를 펴며 날아오르는 기분, 설사 날개를 버려도 나일 수 있는 그 기분을 함께 느끼고 싶어 책을 썼답니다.” 최근 에세이 ‘쓰는 기분’(현암사)을 펴낸 박연준 시인(41)이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시뿐만 아니라 ‘모월모일’(문학동네) ‘소란’(난다) 등 산문집으로도 사랑받아온 박 시인이 시 쓰기를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에세이의 외피를 입었지만 우아한 실용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그를 2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새롭고, 그래서 시적인 말을 곧잘 하잖아요. 저는 시를 쓰는 능력은 우리 모두가 갖고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거세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신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 쓰는 능력을 일깨워 주기 위해 독자들을 시의 세계로 아주 천천히, 친절하게 안내한다. 1부에서는 처음 시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듯 시가 얼마나 친해지기 쉬운 장르인지 썼고, 2부에는 글쓰기와 삶에 대해 쓴 소소한 산문을 담았다. 3부에서는 시인으로 등단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마지막 4부에는 시 쓰기에 돌입할 때 궁금할 법한 내용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는 “너무 전문서처럼 써서 독자들을 오히려 시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가 독자들에게 “함께 시를 쓰자”고 간곡히 요청하는 이유는 뭘까. 시 쓰기에 필요한 ‘좋은 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시인이지만 “시는 그 자체로 효용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시를 쓰기 위해 어떤 현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느리게 생각하며, 새로운 걸 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더 좋은 세상을 일굴 수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에 마음을 쏟으면 분명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시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낭독을 권했다. 그는 “시는 언제나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라며 “시가 낭독되는 공간에서 ‘언령(言靈)’의 에너지가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시집을 고를 때도 펼쳐놓고 소리를 내 읽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시집을 고르기가 쉬워진다고 했다. 그도 여전히 때때로 좋아하는 시를 소리 내 읽으며 어느새 변화된 공간에 심취한다고 한다. 당장 오늘 밤 시 한 편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무엇부터 하면 될까. 그는 무엇보다 시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문장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내게 도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적인 문장을 쓰기 위해 애쓰기보다 오히려 몸과 정신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게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준비 운동’이지요.”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시는 기분이 전부인 장르거든요. 시를 쓸 때 느껴지는 날개를 펴며 날아오르는 기분, 설사 날개를 버려도 나일 수 있는 그 기분을 함께 느끼고 싶어 책을 썼답니다.” 최근 에세이 ‘쓰는 기분’(현암사)을 펴낸 박연준 시인(41)이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시뿐만 아니라 ‘모월모일’(문학동네) ‘소란’(난다) 등 산문집으로도 사랑받아온 박 시인이 시 쓰기를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에세이의 외피를 입었지만 우아한 실용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그를 2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새롭고, 그래서 시적인 말을 곧잘 하잖아요. 저는 시를 쓰는 능력은 우리 모두가 갖고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거세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신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시 쓰는 능력을 일깨워주기 위해 독자들을 시의 세계로 아주 천천히, 친절하게 안내한다. 1부에서는 처음 시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듯 시가 얼마나 친해지기 쉬운 장르인지 썼고, 2부에서는 글쓰기와 삶에 대해 쓴 소소한 산문을 담았다. 3부에서는 시인으로 등단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를, 마지막 4부에는 시 쓰기에 돌입할 때 궁금할 법한 내용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는 “너무 전문서처럼 써서 독자들을 오히려 시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가 독자들에게 “함께 시를 쓰자”고 간곡히 요청하는 이유는 뭘까. 시 쓰기에 필요한 ‘좋은 눈’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시인이지만 “시는 그 자체로 효용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시를 쓰기 위해 어떤 현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느리게 생각하며, 새로운 걸 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더 좋은 세상을 일굴 수 있다고 믿는다. “글쓰기에 마음을 쏟으면 분명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시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낭독을 권했다. 그는 “시는 언제나 소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장르”라며 “시가 낭독되는 공간에서 ‘언령(言靈)’의 에너지가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시집을 고를 때도 펼쳐놓고 소리를 내 읽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시집을 고르기가 쉬워진다고 했다. 그도 여전히 때때로 좋아하는 시를 소리 내 읽으며 어느새 변화된 공간에 심취한다고 한다. 당장 오늘 밤 시 한 편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무엇부터 하면 될까. 그는 무엇보다 시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문장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내게 도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적인 문장을 쓰기 위해 애쓰기보다 오히려 몸과 정신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게 시를 쓰는데 필요한 ‘준비 운동’이지요.”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요즘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나고 있어요. 이런 시기에 좋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돼 즐겁습니다.”(한영애) 중견 가수 김창기, 김현철, 안치환, 한영애가 올가을 특별한 무대에 선다. 대중음악 플랫폼 사운드프렌즈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26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영애 김창기 김현철은 “1980, 90년대 거장들이 과거를 되돌아보는 무대”라며 “일부 세대에만 통하는 음악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스토리 콘서트’ 형식으로 가수들이 노래 중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9월 1, 2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첫 무대를 여는 김현철의 테마는 ‘City Breeze & Love Song’. 그는 “올 6월 11집을 발매하며 내가 가장 잘하면서도 좋아하는 장르가 시티팝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현철에 이어 9월 3, 4일 공연하는 한영애는 자신의 4집 앨범 제목인 ‘불어오라 바람아’를 주제로 정했다. 그는 “동명의 수록곡 가사를 통해 공연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며 “‘내 너를 가슴에 안고 고통의 산맥 위에서 새 바람이 될지니’라는 가사처럼 어떤 바람이 와도 여러분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9월 5일 공연하는 김창기는 ‘잊혀지는 것’이라는 주제로 1980, 90년대 청년 김창기가 만든 곡들을 무대에서 선보인다. 안치환은 ‘너를 사랑한 이유’를 주제로 올 11월 19∼21일 콘서트를 연다. 한영애와 김창기는 공연과 더불어 LP도 제작한다. 한영애는 1993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개최한 공연을 담은 라이브 앨범 ‘我·友·聲(아·우·성)’을, 김창기는 자신의 인기곡들과 일부 미발표 곡을 수록한 앨범 ‘아직도 복잡한 마음’을 LP 음반으로 각각 선보일 예정이다. 참여 가수들은 지금의 트로트 열풍이 지나가면 시대를 뛰어넘어 위안을 줄 수 있는 명곡들을 다시 듣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의 부재는 다양성의 결핍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거장 내지 스타는 어느 시대에든, 어느 장르에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죠.”(한영애) “저는 언제나 한 사람의 격정적이고 복잡한 삶들을 담아낸 노래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 곡들은 시대와 나이를 불문하고 통한다고 생각해요.”(김창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결코 난폭한 사람이 아니다. (…) 그리고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 현재 업무 환경에 비추어보면 도리어 늦은 감이 있다. 인정하건대, 일주일 뒤 여섯 건이 추가되긴 했다.”(‘명상 살인’ 중) 잘나가는 독일의 한 변호사가 어느 날 자신의 오랜 고객인 마피아 조직원을 살해한다. 평생을 엘리트로 살아온 그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수가 아닌 명상. 장편소설 ‘명상 살인’(세계사)의 저자 카르스텐 두세는 남에게 폭력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며 평화를 찾는 인물을 통해 범죄자의 간사한 심리를 묘사했다. 코로나 시대, 바캉스 대신 ‘북캉스(북+바캉스)’를 떠나기로 한 독자들을 위해 올 여름휴가 기간 읽으면 좋을 서늘한 책들을 주요 서점 MD들에게 물었다. ‘명상 살인’을 추천한 박형욱 예스24 소설 MD는 “명상과 살인이라는 예상 밖의 조합으로 써낸 기발한 이야기로, 여름휴가 때 시원하게 읽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옥 교보문고 구매팀 소설담당 부장은 김진명의 ‘고구려’ 시리즈(이타북스)를 추천했다. 2011년 1권이 출간된 이후 올해 6월 7권으로 마무리된 이 시리즈는 고구려 역사 중 가장 극적인 시대로 손꼽히는 미천왕 을불부터 광개토대왕 때 이야기까지 다룬다. 박 부장은 “여름에는 역시 시원한 맛의 김진명 소설이다. 고구려 왕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져 밋밋한 역사서가 아니라 무협지처럼 재미있고 삼국지처럼 유익하게 읽힌다”고 했다. 훌훌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절로 시원해지는 화집(畵集)은 어떨까. 김태희 예스24 에세이·예술 MD는 그림 에세이 ‘풍덩!’(위즈덤하우스)을 추천했다. ‘완전한 휴식 속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풍덩’부터 파블로 피카소의 ‘수영하는 사람’까지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다양한 물 이미지가 담겨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한 올 여름휴가를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보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외로운 도시’(어크로스)의 저자인 영국 비평가 올리비아 랭은 1900년대 쓸쓸한 미국 뉴욕의 풍경을 담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년)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1882∼1967)를 소개하는가 하면 익살스러운 이미지로 익숙한 앤디 워홀(1928∼1987)의 그림들에서 고독의 흔적을 짚어낸다. 김경영 알라딘 인문·사회 MD는 “전 세계 사람들이 제각기 단절된 요즘 이 책을 통해 고독의 의미를 곱씹고 확장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결코 난폭한 사람이 아니다. (…) 그리고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 현재 업무 환경에 비추어보면 도리어 늦은 감이 있다. 인정하건대, 일주일 뒤 여섯 건이 추가되긴 했다.”(‘명상 살인’ 중) 잘 나가는 독일의 한 변호사가 어느 날 자신의 오랜 고객인 마피아 조직원을 살해한다. 평생을 엘리트로 살아온 그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수가 아닌 명상. 장편소설 ‘명상 살인’(세계사)의 저자 카르스텐 두세는 남에게 폭력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 하며 평화를 찾는 인물을 통해 범죄자의 간사한 심리를 묘사했다. 코로나 시대, 바캉스 대신 ‘북캉스(북+바캉스)’를 떠나기로 한 독자들을 위해 올 여름휴가 기간 읽으면 좋을 서늘한 책들을 주요 서점 MD들에게 물었다. ‘명상 살인’을 추천한 박형욱 예스24 소설 MD는 “명상과 살인이라는 예상 밖의 조합으로 써낸 기발한 이야기로, 여름휴가에 시원하게 읽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미옥 교보문고 구매팀 소설담당 부장은 김진명의 ‘고구려’ 시리즈(이타북스)를 추천했다. 2011년 1권이 출간된 이후 올해 6월 7권으로 마무리 된 이 시리즈는 고구려 역사 중 가장 극적인 시대로 손꼽히는 미천왕 을불부터 광개토대왕 때 이야기까지 다룬다. 박 부장은 “여름에는 역시 시원한 맛의 김진명 소설이다. 고구려 왕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져 밋밋한 역사서가 아니라 무협지처럼 재미있고 삼국지처럼 유익하게 읽힌다”고 했다. 훌훌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절로 시원해지는 화집(畵集)은 어떨까. 김태희 예스24 에세이·예술 MD는 그림 에세이 ‘풍덩!’(위즈덤하우스)을 추천했다. ‘완전한 휴식 속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풍덩’부터 파블로 피카소의 ‘수영하는 사람’까지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다양한 물 이미지가 담겨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요한 올 여름휴가를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보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외로운 도시’(어크로스)의 저자인 영국 비평가 올리비아 랭은 1900년대 쓸쓸한 미국 뉴욕의 풍경을 담은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년)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1882~1967)를 소개하는가 하면 익살스러운 이미지로 익숙한 앤디 워홀(1928~1987)의 그림들에서 고독의 흔적을 짚어낸다. 김경영 알라딘 인문·사회 MD는 “전 세계 사람들이 제각기 단절된 요즘 이 책을 통해 고독의 의미를 곱씹고 확장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스포츠란 무엇일까. 아니, 스포츠는 언제부터 스포츠였을까.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한 인류의 조상들에게 오래 달리기, 도약, 던지기 능력은 필수로 갖춰야 할 조건이었다. 이 실력을 서로 겨루기 시작하면서 스포츠가 탄생했다. 신간 ‘스포츠의 탄생’에 따르면 미국 스포츠 사회학자 앨런 거트만은 스포츠를 일반적인 놀이와 구분했다. 스포츠는 보다 체계적이고 경쟁적이며 신체적인 특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자를란트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스포츠의 탄생 배경과 개념을 비롯해 고대 올림피아가 현대 올림픽으로 발전한 과정을 낱낱이 파헤친다. 근대 올림픽의 전신인 고대 올림피아 제전과 범그리스 제전에는 ‘휴전(休戰)’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당시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전쟁을 피하고 동맹을 유지해야 했는데, 스포츠가 그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것. 사람들이 여유시간을 누리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은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도 스포츠는 기사(騎士)를 앞세운 종목들을 통해 명맥을 유지했다.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부터는 부상이 난무했던 거친 경기들에 규칙이 세워지고 신체 단련을 위한 이론서가 발간되는 등 스포츠가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근대 초기부터 현대까지는 스포츠가 본격적으로 전문화, 상업화된 시기다. 저자는 서문에서 “스포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깊이 고민할수록 답을 찾기 어려워지는 질문”이라고 썼다. 도핑은 상업화, 세속화된 스포츠의 한 단면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도핑의 과학’ 저자는 신성한 경기장을 얼룩지게 한 도핑 사태의 역사를 다뤘다. 왜 선수들이 약물의 유혹에 빠지는지, 억울하게 도핑 판정을 받는 경우는 없는지도 살핀다. 우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8개의 금메달을 딴 미국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를 기억한다. 당시 은메달 3개를 획득한 헝가리 수영선수 라슬로 체흐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저자는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기에 정상급 선수들은 도핑의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사실 일부 도핑 판정 약물들은 일반병원이나 약국에서 일상적으로 처방되는 품목이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의도로 약을 섭취하지 않더라도 도핑 판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감기약과 알레르기 및 천식 치료제에 많이 사용되는 에페드린 성분은 의도치 않은 피해자들을 낳았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수영선수 릭 데몬트는 천식 약을 복용했다가 도핑 검사에서 에페드린이 검출됐다. 2000년 루마니아의 체조 선수 안드레아 라두칸은 37kg의 작은 체구로 인해 감기약 한 알을 먹고도 혈중 에페드린 기준을 넘겨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도쿄 올림픽이 막 시작된 지금, 스포츠의 세계에 푹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대중들에게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 랩으로 이름이 알려진 래퍼 아웃사이더(본명 신옥철·38)가 도마뱀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위협을 느끼면 꼬리를 끊어버리기 일쑤인 도마뱀들이지만 그가 키우는 것들은 주인의 손길이 익숙한 듯 손바닥과 어깨를 마음껏 돌아다녔다. 그는 도마뱀, 거북이를 키우는 파충류 마니아다. ‘집콕’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가 늘고 있는 코로나 시대, 그가 초대하는 이색 반려동물의 세계를 알아봤다. “솔직히 처음에는 관상용이라고만 생각했어요. 마음이 지친 날에도 큰 수고 없이 돌볼 수 있는 친구로 여겼죠. 하지만 동물들이 성장하면서 서로 교감하는 즐거움이 커졌습니다.” 10년 전 알다브라코끼리 거북이를 시작으로 파충류를 키우기 시작한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 고양시 키즈카페에서 도마뱀, 이구아나 등 약 20마리를 기르고 있다. 한때 300마리 넘게 키웠지만, 한 마리 한 마리 충분히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잘 키울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지인들에게 분양했다. 그는 “강아지, 고양이와 달리 파충류는 지능이 거의 없어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분리불안도 없다. 파충류로선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주인에게 분양되는 게 이롭다”고 말했다. 그가 파충류를 키우게 된 건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었다. 가장 가깝게 지낸 이들과 갈등하며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단다. 심리적 소통이나 교감이 중요한 개나 고양이와는 다른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파충류는 훨씬 예민했고, 그래서 키우는 재미가 컸다. 처음에는 그가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숨던 도마뱀들은 점점 그를 ‘몸집은 크지만 해치지 않는 동물’로 인식한 듯 조금씩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자 핀셋이나 손으로 먹이를 건네면 다가와 먹었다. 그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에 걸쳐 소통한 끝에 파충류들과 스킨십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 기르기 시작한 반려동물들이지만 관계를 구축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초짜’ 파충류 집사였던 그가 길러 온 개체들은 마니아들 사이에 소문이 날 정도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널찍한 키즈카페 마당에서 산책을 시키며 기른 알다브라코끼리 거북이는 좁은 공간에서 사육된 것들에 비해 다리가 튼튼하다고 한다. 계단도 잘 오르고 아웃사이더의 랩 속도만큼이나 이동 속도도 빠르다고.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 때문에 그는 파충류 사육에 필요한 도구들을 직접 개발했다. 그는 오래 기른 파충류들이 푹신한 흙 위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약해지는 게 늘 안타까웠다. 흙에 떨어진 분뇨와 함께 먹이를 섭취해 병에 걸리는 일도 잦았다. 이에 그가 2년간 개발해 2019년 내놓은 사육장 바닥재는 파충류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매진을 거듭했다. 그는 “지금은 파충류 사료를 개발하고 있다. 최적의 영양배합을 만들기 위해 1년 6개월째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파충류 기르기가 안겨 준 의외의 선물은 또 있다. 그의 딸 신이로운 양(5)의 정서에 끼친 영향이다. 어릴 때부터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야채를 씻어 사육장에 넣어준 딸은 자신의 것을 주변과 나눌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그는 “자기 것만 챙기기보다 남을 돌볼 줄 아는 아이로 큰 건 반려동물 덕분”이라며 웃었다. 수많은 반려동물 중 파충류를 기르는 게 어울릴 만한 유형의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집요한 사람’을 꼽았다. “강아지나 고양이는 잠깐 아프다가도 잘 돌보면 낫는 경우가 많지만 파충류는 순식간에 죽을 수 있어요. 파충류의 미묘한 변화를 잘 관찰하는 동시에 파충류 관련 지식을 꾸준히 학습할 수 있는 분들이 훌륭한 파충류 집사가 될 수 있습니다.”고양=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인공지능(AI)이 지금보다 널리 상용화될 2030, 2040년 이후 모습이 궁금할 때 오히려 인간다움에 대해 쓴 인문서를 꺼내 읽습니다.” 네이버에서 9년째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는 김도영 씨(36·사진)는 “책을 청개구리처럼 읽는다. 그럴 때 정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회사 안팎에 이를 공유하는 업무를 맡은 그가 기획 아이디어를 얻는 창구는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아닌 ‘책’. 그는 최근 내놓은 에세이 ‘기획자의 독서’(위즈덤하우스)에서 책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른 경험을 소개했다. 19일 전화로 그를 인터뷰했다. “양극단은 서로 통한다고 하잖아요. 10, 15분짜리 콘텐츠가 유행하는 스낵 컬처 시대에 오히려 느리지만 밀도 있는 콘텐츠들이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책만이 업무나 삶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SNS를 살펴보거나 이른바 ‘핫 플레이스’를 찾아다닌다. 온라인 중심의 흐름 속에서도 책처럼 디테일이 살아 있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적잖이 존재한다는 것. 그는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사람 하나를 탄생시키는 것과 같다. 이 정밀한 작업을 위해서는 빠르고 가벼운 것뿐 아니라 느리되 농밀한 콘텐츠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책에서 아이디어를 찾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5년 전 그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고심했다. 모두가 홈런 한 방을 날리기 위한 방안을 찾을 때 그의 머릿속에 얼마 전 읽은 야구 책이 스쳤다. ‘초반부터 홈런을 치려고 하면 필패, 1루로 나가는 데 사활을 걸라’는 게 책의 교훈이었다. 이에 따라 그는 예산을 다섯 부분으로 나눠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진행했고, 프로젝트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가 한 달간 읽는 책은 평균 6권. 2주 단위로 독서 계획을 짜는데, 마치 식단을 짜듯 한 권의 메인 메뉴와 더불어 사이드 메뉴처럼 곁들여 읽을 책 2권을 정한다. 메인 메뉴는 김 씨가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로 소설, 에세이, 인문서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최근 일을 한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에 빠졌다는 그는 메인으로 ‘일하는 마음’(어크로스)을 읽으면서 ‘일하는 사람의 생각’(세미콜론) ‘혼자 일하는 즐거움’(알프레드)을 동시에 보고 있다. 인상적인 구절을 옮겨 적는 데서 더 나아가 해당 구절의 문체를 좇아 새로운 문장을 써보는 것도 그만의 적극적인 독서 방식이다. 기획자가 아닌 이들도 그처럼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할까? 그는 기획자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백반집 사장님의 ‘오늘 밑반찬은 뭘로 할까’라는 고민, 옷가게 점원의 ‘오늘 쇼윈도에는 어떤 옷을 내걸을까’ 하는 고민도 모두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제 책을 읽은 독자들이 ‘아, 나도 기획자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장편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1926년)는 외설적인 대화가 적지 않아 하마터면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때의 부상으로 성불구가 된 미국 신문기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의 출간을 주장한 외로운 편집자가 있었으니, 미국 스크리브너스 출판사의 맥스웰 퍼킨스였다. 그는 당시 출간을 망설이던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작품 배경이 된 곳에서 이런 표현이 실제 사용된다면 외설적인 말이라도 써야 한다. 이를 회피하는 건 오히려 작가의 잘못일 것이다.” 전설이 된 명작들을 탄생시킨 편집자의 삶을 조명한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1인 출판 시대가 열렸지만 좋은 책을 만들어낸 편집자들의 신념이나 철학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교훈이다. 신간 ‘편집자의 세계’(페이퍼로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편집자 15명을 소개하고 있다. 퍼킨스뿐 아니라 랜덤하우스 설립자 베넷 서프와 뉴요커 창간자이자 편집자였던 해럴드 로스 등이 주인공이다. 소설 ‘대부’를 발굴해 무명 작가였던 마리오 푸조(1920∼1999)를 일약 스타로 만든 퍼트넘 출판사의 편집국장 윌리엄 타그의 철학은 ‘저자 중심주의’였다. 그는 편집자가 지켜야 할 12가지 에티켓을 철저히 지켰다. 이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저자가 보낸 원고에 대한 회답을 불필요하게 늦춰선 안 된다. 편집자는 해당 작품의 최초 독자이므로 편집자의 의견은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마거릿 애트우드(82),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 등을 발굴한 영국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도 저자 중심의 편집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최근 출간된 에세이 ‘되살리기의 예술’(아를)에서 원고 교정 시 작가가 의도한 본래의 표현을 살리는 데 중점을 뒀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라며 “원고에 손을 대더라도 출간 즈음에 이르러서는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읽혀야 하는데, 이것은 작가와 긴밀한 공조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썼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서양미술에서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신화 속 열두 신과 님프들이,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시대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작품의 단골소재였다. 그런데 모든 미술작품이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신들의 전쟁이 아닌 인간사회의 미시생활사를 담은 고대의 작품이나 영적 가치 대신 세속적 욕망에 초점을 맞춘 중세 그림은 없을까. 이에 대해 ‘다시 쓰는 착한 미술사’의 저자는 아니라고 말하며 “방향을 1도 틀었을 때 보이는 서양미술사는 훨씬 다채롭다”고 강조한다. 홍익대에서 미술학 박사를 취득한 저자는 신간에서 공식 바깥에 존재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 못지않게 실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묘비를 수없이 만들었다. 1870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고대인들의 무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 중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기원전 410년경 제작된 ‘헤게소의 묘비’에는 주인 헤게소와 하녀가 실내에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조각돼 있다. 어머니가 아테네 시민이어야만 자식도 시민권을 인정받은 당시 상황을 반영하듯 헤게소는 자신의 가문을 드러내는 보석을 손에 들고 있다. 세속적 가치를 경시했을 것 같은 중세 때도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작품들은 그려졌다. 기사이자 기독교 성인(聖人)인 성 조지(?∼303)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전설에서 그는 북아프리카 리비아 왕국의 공주를 납치한 용을 무찌른 대가로 왕에게 기독교로 개종을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성인의 면모만큼이나 용맹한 기사로서의 모습이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인 파울로 우첼로(1397∼1475)는 1456년작 ‘성 조지와 용’에서 성 조지가 공주 앞에서 용을 무찌르는 장면을 로맨틱하게 그렸다. 미술 작품을 비틀어 보는 방법에는 또 어떤 게 있을까. 신간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 저자는 의사만큼이나 해부학 공부에 몰두한 서양미술 대가들이 작품 속에 숨겨 놓은 인체해부도에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30구가 넘는 시체를 직접 해부하며 인체를 탐구했다. 그가 남긴 1800여 점의 해부도는 현대 해부학자들을 놀라게 할 정도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역시 조각을 시작하기 전 시체를 해부하거나 나무로 모델을 만드는 등 철저한 사전연구를 진행했다. 미켈란젤로는 죽기 직전 완성된 작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케치를 태워버렸다. 이에 따라 그가 해부학에 정통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의 해박한 해부학 지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24세에 조각한 ‘피에타’에서 죽은 예수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 곳곳의 근육뿐 아니라 실핏줄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휴가철 시원한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며 피서하고 싶은 독자라면 두 책이 제안하는 ‘비틀어 보기’를 시도해보면 어떨까.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우연히 살집이 있는 여성 누드모델이 포즈를 취한 모습을 봤어요. 모델인 저조차 그가 뿜어내는 포용력과 우아함에 순간 아기가 돼 안기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누드모델 하영은 씨(53)가 사람의 몸을 읽어내는 시선은 남달랐다. 1988년 누드모델 일을 시작한 그는 1996년 한국누드모델협회를 설립하면서부터 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국내 1호 공개 누드모델이다. 그는 최근 에세이 ‘나는 누드모델입니다’(라곰)에서 33년간의 경험을 풀어 놨다. 그를 1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누드모델은 직업에 대한 오해가 매우 큰 일 중 하나예요. 순수예술에 가까운 작업이 포르노 취급을 받아 왔기 때문이죠.” 그는 누드모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협회를 설립했다. 무역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던 그는 한 사진작가의 제안으로 누드모델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누드모델을 향한 시선이 워낙 나빠 협회를 세울 때까지 가족에게조차 이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사실을 털어놓은 뒤 부모님은 물론 오빠들도 어떻게 집안에 그런 일을 숨길 수 있냐며 걱정을 많이 했다. 협회를 만든 후 몇 년간 광주의 본가로 내려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음에도 협회를 세운 건 누드모델들이 음지에서 활동하며 성폭력에 노출되고 모델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협회를 만들어 소속 모델들의 피해에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히자 동료들은 환호했다. 현재 협회의 소속 모델은 500여 명. 하 씨는 “과거에 비해 나아진 면이 있지만 요즘 누드모델은 불법 촬영 및 유포라는 새로운 위험에 놓여 있다”고 했다. 그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누드모델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에게 영감을 얻은 사진가나 화가가 수작을 탄생시키는 순간에 중독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봤을 때 ‘건졌다’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누드모델의 또 다른 매력은 성별, 나이 등에 따른 제약이 거의 없다는 것. 호리호리하고 근육이 잘 붙은 체형이 누드모델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예술 분야부터 인체 모형 같은 의료 보건 분야까지 수요가 광범위해 누드모델 몸의 형태와 정체성은 다양할수록 좋다. “살집이 있든, 나이가 많든 사람의 몸은 다 아름답고 우아합니다. 같은 포즈도 누가 취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죠. 이 매력적인 작업을 저는 늙어 죽을 때까지 할 겁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