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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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4-05-19~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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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소상공인이 살아야 우리도 살지요. 그런데 정부는…”

    《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놓고 ‘난리’가 났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목표로 했던 정부가 지난해 16.4%(7530원), 올해 10.9%(8350원)를 올리자 영세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며 불복종 운동까지 나서기로 한 것. 후폭풍이 거세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 어려워졌음을 사과했고,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회의론까지 일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된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신정웅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 비상대책위원장(46)은 “시급 1만 원이란 용어가 처음 나온 것은 2012년 대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 》  ―‘최저임금 1만 원’이란 개념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2008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는 등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세계적으로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란 논의가 시작됐고, 그 방법 중 하나로 소득주도 성장이 제기됐다. 그리고 그 예로 맥도날드가 미국에서 대표적인 저임금 일자리인데, 당시 7∼8달러이던 시급을 두 배 정도인 15달러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주장이 점차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는데 당시에는 아직 ‘1만 원’이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2년 대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한 청소노동자 출신 후보가 ‘시급 1만 원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청소노동자 출신 후보가 처음 제시했다고? “기호 7번 김순자 후보인데, 당시 울산과학대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던 분이었다. 이 공약 때문에 당시 ‘알바들의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선거가 끝나고 이분이 선거를 도왔던 사람들과 알바연대를 만들었고, 알바연대를 모태로 지금의 알바노조가 만들어졌다. 이후 알바노조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는데,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홍준표 등 모든 대선 후보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알바연대는 일종의 시민단체 성격으로 노조는 아니다. 알바노조는 알바연대를 모태로 조합원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2013년 8월 노조 설립 신고필증을 받은 정식 노조다. ―알바노조의 상급단체는 어디인가. “우리는 한노총이나 민노총 등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노조다. 알바노조가 만들어진 것이 양대 노총이 우리 같은 최저 시급 저임금 노동자를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시급 1만 원이 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3년도 최저임금이 4860원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미국에서 시급이 두 배는 돼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를 우리나라 상황에 맞추면 1만 원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1인 미혼 가구 생계비가 한 달에 200만 원을 조금 넘는데, 이 정도를 벌려면 시급이 1만 원은 돼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 나온 것으로 안다. 물론 이것도 2012년, 2013년 때 이야기다.” ―너무 급격하게 올리다 보니 편의점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큰데…. “그런 곳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편의점이나 소상공인 가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사회 전 직종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근거를 보여줘야 설득력이 있을지 고민하다 인터뷰 하러 오기 전에 알바몬과 알바천국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대부분이 이 두 곳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여기 구인 광고가 곧 우리의 일자리 수다. 오늘(19일) 서울이 약 4만5000건, 경기가 5만 건 정도였는데 이 중 맥도날드 일자리가 2700여 건이었다.” (많은 것인가?) “수도권 전체 아르바이트 일자리 중 맥도날드만 2.7%라면 엄청나게 많은 것 아닌가. 버거킹, 롯데리아도 있고….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직군 중에 햄버거, 커피 등 대기업 중심의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가장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회사들은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편의점이 마치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가장 대표적인 직군처럼 됐다.” ―가장 많은 아르바이트 일자리 중 하나가 패스트푸드점이라고 했다. 마침 당신이 맥도날드에서 일하는데, 최저임금으로 인한 인력 감축이나 근무 형태의 변화는 없나. “올 4월 서울 신촌점 등 주요 도시 중심가에 있는 일부 매장이 폐점됐다. 수익성 때문인데, 신촌점은 건물주가 올해 임대료를 두 배나 올려 달라고 했다더라.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지만 임대료를 두 배나 올려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인건비도 영향을 줄 수 있었겠지만 임대료만큼 크진 않았던 것으로 안다.” ※맥도날드 측은 신촌점 폐점에 대해 “신촌점은 장사가 꽤 잘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건물주가 두 배나 임대료 인상을 요구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어떻게 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건가. “원래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일했다. 잘 안돼서 나왔는데 지금도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알아보고 있다. 때때로 단기 프로젝트 같은 것도 하고 있고…. 아르바이트는 자리를 찾을 때까지 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많은 시간을 하기도 어렵다. 내 경우는 보통 휴식시간을 포함해 밤에 6시간 정도만 일한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노후 걱정도 들고 해서 시간을 늘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6시간이면 그리 수입이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100만 원이 좀 넘는 정도? 지난해 최저임금이 인상되고는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더 받는 것 같다. 그래도 꽤 큰돈이다.” ―비대위원장인데 원래 노조 운동을 좀 했나. “아니다. 전임 지도부가 지방 출장을 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활동을 못하게 됐다. 그래서 다음 지도부를 뽑을 때까지만 맡은 것이다. 지난달에 됐는데 그 사이에 회사와 어떤 협상을 한 것도 아니라 아직은 회사에서도 모를 것 같다.” (위원장 할 생각은 없나?) “하하하. 안 한다. 나도 일을 해야 살 수 있으니까. 대기업 노조처럼 노조 일만 해도 월급이 나오는 전임자도 아니고….” ―주변의 다른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어떤가. 알바노조 안에서도 사람마다 상황이 다를 텐데…. “다 알 수는 없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괜찮아졌다는 쪽이 많은 것 같다. 근로 성격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기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많은데, 같은 시간을 일하면서 소득이 약간 높아진 것이니까.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전부 편의점에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매장은?) “번화가는 휴가철이면 사람이 빠져야 하는데 강남역 지역은 오히려 많아지더라. 근처에 학원이 많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는 밤 시간에 3명에서 5명으로 늘렸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서 항의는 없나. “그런 건 없고 ‘왜 문 대통령을 비판하느냐’는 항의가 99%다.” (응? 무슨 소리인가?) “최근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포기를 비판하는 시위를 청와대 앞에서 했다. 이걸 놓고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공약을 포기한 적이 없는데, 왜 포기했다고 시위를 하느냐’고 하더라. 청와대 앞 시위는 비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재고하고 소상공인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 달라는 뜻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우리라도 나서서 소상공인들을 살려 달라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다.” (알바노조가 왜?) “그들이 살아야 우리 일자리도 사는 것 아닌가. 이 문제를 해결할 곳은 정부밖에 없다.” ―경영계는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지금도 사실상 최저임금이 8350원이 아니라 1만30원이라고 하는데…. “항상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일하고 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분야는 근무 변동이 심하다. 가게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느라 1, 2주를 쉬면 그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다. 받지 않은 사람에게 계속 일해서 받는 것을 전제로 1만 원이 넘는다고 하면 얼마나 피부에 와 닿을까. 지금도 지방도시나 시골 편의점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시급으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간당 8350원을 받는 것을 전제로 주휴수당까지 계산하면 맞을까. 나도 개인 사정으로 근무시간이 짧아 주휴수당을 못 받은 적도 있는데….”※주휴수당은 근로기준법상 일주일 동안 소정의 근로일수를 개근하면 지급되는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 단시간 아르바이트도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길 바라나. “우리 같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비용’으로 본다면 당연히 가장 적게 올리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다운 삶을 살길 원하는 ‘인간’으로 본다면 지금의 최저임금도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학업이나 취업 준비, 추가 경제 활동 등 미래를 위한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낮은 최저임금 때문에 생활이 힘들어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리면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줄어든다. 일정 시간만 투자해도 어느 정도의 생활이 된다면, 그 여력을 미래를 준비하는 데 사용할 테고 이것이 사회적으로도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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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포커스]관세폭탄 때리고… 패권도전 응징하고… 무역전쟁 총사령관

    “웃음을 띠고 우리를 대하고 있으나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적이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탐욕에 눈먼 거대한 용(龍)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중국산 제품에는 징벌적인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USTR가 6일 340억 달러(약 38조 원) 규모의 818개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언론이 콕 찍어 ‘무역전쟁 도발의 원흉’이라고 지목한 3명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신념들이다. 부동산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가(트럼프), 경제학과 교수(나바로), 통상 전문 변호사(라이트하이저) 등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은 각 분야에서 중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제 미 정부에서 핵심 지위를 차지한 이들은 자신들이 골수에 맺힐 만큼 강하고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현실에 옮기고 있다. 미국이 대중(對中) 무역전쟁을 벌이는 등 국제 자유무역 질서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데는 ‘대중 강경 3인방’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제2의 플라자 협정’ 꿈꾸는 라이트하이저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 후에 국무장관으로 발탁된 제임스 베이커와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5개국 재무장관이 모여 미국 달러의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에 대한 환율 인상(평가 절하)을 추진하는 ‘플라자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 약발은 미국의 기대 이상으로 2년 만에 달러는 50% 이상 절하돼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했다. 달러화 약세는 1987년 2월 22일 5개국이 다시 모여 ‘루브르 협약’으로 하락을 멈추게 하자고 약속할 때까지 계속됐다.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뉴욕의 고층 빌딩을 사들이는 등 호황을 누렸지만 독배를 마신 것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잃어버린 10년(1991∼2000년)’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위협적인 2위 경제국 일본을 ‘한 방’에 보냈다. 당시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로 플라자 협정의 주역 중 한 명이다. 33년 전 추격자 일본을 굴복시켰던 그에게 이제는 상대가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경제 2위국의 도전을 뿌리치는 역할을 맡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환율 한 가지 수단으로도 큰 성과를 달성했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3월 미 재무부의 평가에서도 중국이 ‘환율 조작국’에 지정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 데다 대중 적자 누적의 요인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6일 340억 달러 고율 관세와는 별개로 10일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관세 폭탄을 던지면서 라이트하이저는 “관세 부과 대상은 중국의 산업 정책과 강제적인 기술 이전 관행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제품들”이라고 했다. 환율만으로 일본 독일을 공격하던 때와는 상황이 다른 고민이 담겨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를 마친 후 대형 로펌 ‘스캐든’의 파트너 변호사로 미국 기업들을 위한 징벌관세 부과 업무를 맡아 30여 년간 일해 왔다. 주요 대상이 중국 철강으로 이번 대중국 관세 폭탄의 대표 품목이다. ○ ‘군복을 입고 벙커에서 무역전쟁 지휘’ 말까지 듣는 나바로 “중국 공산당식 변칙적인 국가자본주의는 세계의 자유 시장과 자유무역 원칙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하고 있다. 정부의 후원을 받는 ‘국가 대표 기업’은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결합한 정책을 무기 삼아 휘두르면서 전 세계 산업계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백악관에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일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하고 초대 위원장에 임명한 ‘초강경 반중 학자’ 나바로 어바인대 교수의 기본 생각이다. 그는 중국이 휘두르는 ‘일자리 파괴의 무기’로 △불법 수출 보조금 △지식재산권의 무분별한 위조 △느슨한 환경 법규 △업계에 만연한 노예 노동력 사용 △미국 기업에 대한 높은 중국 진입 장벽 등을 들고 “가장 뻔뻔한 것으로 환율 조작도 있다”고 했다(‘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2011년. 원제 ‘Death by China’). “중국이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으로 정정당당하게 미국의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국의 8가지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창출되는 경쟁 우위가 50%가 넘는다”고 반박한다. 숫자를 동원한 논지 전개는 경제학자답지만 8가지 관행 표현에서는 뿌리 깊은 대중 반감과 ‘전사의 결기’가 느껴진다. △미국의 심장을 겨누는 교묘하고 불법적인 수출 보조금 △약삭빠른 환율 조작 △지식재산 위조, 침해, 절도 △원가 절감을 위한 기업의 환경 파괴 정부 묵인 △국제 표준에 훨씬 못 미치는 근로자 안전 보건 기준 △핵심 원자재 수출 제한으로 관련 산업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 강화 △약탈적인 덤핑으로 경쟁국 밀어내기 △‘보호주의 만리장성’으로 중국 시장 진입 장벽 구축 등이다. 나바로는 “세계사에서 1500년 이후 중국 같은 신흥 세력이 미국 같은 기존 강대국과 대치한 것은 15차례이고 이 중 11차례에서 전쟁이 발생했다. 확률이 70%를 웃돈다”(‘웅크린 호랑이’)며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이 전쟁 등 충돌하는 것)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경제적 이해를 넘어 패권 도전국 중국에 대한 견제 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뒤에 있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30년 전쟁 후유증으로 쇠잔의 길을 걸었다”며 양국이 함정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을 권고한다. ○ “미국이 중국의 봉이라니 기가 찰 노릇” 외치는 트럼프 트럼프는 대중 무역전쟁에서 현장 지휘관이다. 트럼프의 말과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중 피해의식과 보복 의지는 사업가로서 오랜 기간 쌓인 것이다. “중국은 환율 조작으로 우리 주머니에서 매년 1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빼내가고 있다. 내가 중국을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한 뒤 온갖 비난을 받았으나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 트럼프는 중국을 △작정하고 미국을 파탄 내려고 덤비는 사람들 △일자리를 앗아가는 사람들 △기술을 훔쳐 가는 사람들 △기축통화 달러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들인데 ‘적’ 말고 뭐라고 부르냐고 반문한다. 트럼프는 “우리는 중국 일본 멕시코 같은 나라로부터 일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이 만든 세계 최고의 시장을 그냥 내주고 있다”며 “미국의 노동력이 최고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단지 그들이 경쟁하도록 해주기만 하면 된다”(‘불구가 된 미국’)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일자리를 잃은 것은 중국 등의 불공정 행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대응해 내놓은 것이 고율 관세 폭탄이다. ○ 안팎에서 부는 ‘보호주의 3인방’에 대한 역풍 이들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 및 보호주의 논리는 중국과 서방 각국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했던 자유무역 질서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관세 폭탄에 대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통령들이 도입한 가장 비합리적인 일”이라며 “멍청하고 미친 짓이다. 트럼프는 무솔리니처럼 독재자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국내로 가져오는 방법으로 ‘온 쇼어링(본국으로 제조 시설을 옮기는 것)’을 들면서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지만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상하이(上海)에 연간 50만 대 규모의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일부 기업의 탈미(脫美)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구자룡 bonhong@donga.com·이진구 기자}

    • 201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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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우린 위험하다고 탈원전하면서 남에게는 팔다니요…”

    《 최근 국내 최고 대학인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 지원자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학교는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을 뽑은 뒤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데, 1학기 5명에 이어 이번 2학기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것. 이를 두고 지난해 시작된 탈(脫)원전 정책으로 관련 분야 고사 현상이 가시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이 학과 학과장인 최성민 교수(53)는 “학생 수 감소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탈원전이 백년대계가 돼야 할 국가 에너지 정책에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정부는 이런 원자력계의 우려를 졸업생 취업만 지원해 주면 되는 문제로 보는 것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  ―올 1학기 지원자도 5명에 그쳤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원래 대부분 1학기 때 전공을 정하기 때문에 2학기 때는 지원자가 적다. 영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내년 1학기 지원자를 보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KAIST 신입생 중 올해 전공 선택자는 1학기 725명, 2학기 94명 등 모두 819명이다. ―과거에는 통상 몇 명 정도가 지원했나. “해마다 차이는 조금 있지만 통상 20여 명이 지원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외부 요인이 발생하면 좀 더 줄기는 한다. 학과별로 규모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략 교수당 학생 비율로 볼 때 20명 정도면 평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22명, 2012년 9명, 2013년 25명, 2015년 25명 수준이었으나 지난해는 9명, 올해는 5명이 지원했다. ―1학기에 지원한 5명은 왜 지원했다고 하던가. 어떤 면에서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지원한 학생들이 더 특이해 보이는데…. “한 학생은 인류의 에너지 문제 해결과 상생 방안을 고민하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하더라. 전공을 원전 산업만이 아니라 인류의 에너지 문제 수준으로 놓고 결정한 것이다.” (허, 기특한 학생인데?) “인류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될 것 같다. 하하하.” ―원자력학과 하면 원전이 떠오르는데 연구·진출 분야가 얼마나 다양한가. “크게 원자력 에너지 분야, 방사선 의료 분야, 반도체 우주 국방 등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활용되는 플라스마 및 방사선 기술 응용 분야, 가속기와 하나로 중성자 연구시설 등 국가기술 및 산업기술 개발의 근간이 되는 대형 국가 연구 인프라 시설 분야 등을 교육·연구하고 있다. 원전만 하는 게 아니다. 국가정보원에도 간다.” (국정원에 왜?) “핵에 대해 뭘 알아야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지, 뭘 터뜨린 건지, 정보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판단할 것 아닌가. 외부 전문가 이야기도 이해할 능력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그래서 실제로 원자력학과 출신들이 국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이고 외교부, 청와대까지…. 원자력이란 게 산업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국제정치 문제가 늘 있어 외교부에서도 필요하다.” ―달리 생각하면 지원자 감소 현상이 계속되면 비단 원전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엄청난 피해가 온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만…, 만약 우리나라에 원자력 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상황이 온다면 모든 전문가적 판단을 외국 인력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의료, 우주, 국방 등 관련 산업은 물론이고 국가 외교 안보 측면에서도 큰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탈원전 자체가 잘못이라는 건가.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매년 바꿀 수 있는 정책도 아니고…. 따라서 결정할 때는 냉철한 과학적 근거와 충분한 논의,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충분했나? 탈원전이 대선 공약이었고, 당선 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탈원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전기료 인상, 온실가스 문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 창출도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결국 탈원전의 근본 이유는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 같다. 고리1호기, 월성1호기의 사례에서 보듯 수명이 끝난 원전을 부품만 교체해 재가동한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럴 거면 왜 ‘수명’이 존재하는 건가. “‘수명’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생긴 오해다. 마치 더 이상 쓸 수 없는 원전을 대충 땜질해 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니…. 법적 용어는 ‘계속운전’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정기검사를 통해 문제가 없으면 계속 사용을 허가해 준다. 마찬가지다. 정해진 수명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백년 천년 쓸 수는 없겠지만 정확한 안전규정이 있으니까 그걸 통과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폐쇄한 고리1호기와 같은 유형의 발전소를 미국은 40년 운영 후 20년을 추가 운영하고 있고, 20년 더 운영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월성1호기와 같은 원전을 사용하는 캐나다에서는 80년 가까운 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설계수명이라는 용어를 쓰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운영허가갱신’ 제도를 일반적으로는 ‘설계수명’, 법적으로는 ‘계속운전’으로 표현하는데 사실 이 제도는 원전의 기계적, 물리적 수명과는 관계없이 독점금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80년, 100년을 허가하면 한번 시장에 들어간 원전 외에는 다른 원전이 들어올 수 없어 사실상 독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짧으면 사업자의 위험이 너무 커 아무도 안 하려 할 테고…. 원전의 물리적 수명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식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묻고 싶다. 원자력발전소는 정말 위험한가. “지금까지 원전 사고를 피해 규모로 보면 우크라이나 체르노빌(1986년), 일본 후쿠시마(2011년), 미국 스리마일섬(1979년) 순이다. 사고 원인은 사람의 실수, 기계 고장, 천재지변 등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다. 노심(爐心·원자로의 중심부로 핵연료인 연료봉 다발)이 녹는 것이다. 체르노빌은 원자로를 덮는 격납용기가 없는 원전이다. 사고가 나면 방사선이 그대로 방출되는 것이다. 이런 원전은 이제 짓지 않는다. 후쿠시마도 원자로를 덮는 격납용기가 허술했다. 국제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체르노빌 방사선의 10분의 1 정도가 외부로 누출됐다고 한다. 스리마일은 노심이 녹아내렸고 수소폭발도 있지만 격납용기가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 외부로 방사선이 누출되지 않았다. 며칠 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방문했으니까…. 우리나라 원전도 스리마일처럼 격납용기가 튼튼한 모델이다. 흔히 원전 사고 하면 영화 ‘판도라’의 장면을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상상이다. 최악의 경우도 스리마일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원전의 안전성과 방사선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납품비리나 부실공사도 발생하고 있고…. “공포심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도구다. 공포를 못 느끼면 위험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죽을 테니까…. 하지만 공포가 세상을 지배하면 안 된다. 방사선의 일반인에 대한 법적 선량한도(線量限度·인체에 해가 없다고 생각되는 방사선의 양적 한계)는 1mSv(밀리시버트)다. 어느 정도를 쐐야 방사선으로 인한 위험이 나타날 것 같은가?” (1mSv 이상이면 위험한 것 아닌가?) “100mSv 이하에서는 사례가 관찰되지 않고 있다. 1mSv는 더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정한 수치다. 100mSv 이하에서도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지 위험 사례는 없지만, 사례가 없다고 완전하게 위험이 없다고 단정 짓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사실상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형아 출산율이 5.5%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수치가 원전 주변 지역을 조사해 나온 것이라면 모두 원전 때문이라고 여긴다. 개연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인과관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원전의 위험성 문제는) 그런 식으로 수십 년간 누적돼 왔다.” ―우리나라는 지금 22조 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건설 수주를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뛰고 있다. 우리는 위험하다고 안 짓는데 남에게는 팔아도 되는 걸까.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해로워서 내 자식은 안 먹이면서, 돈을 벌기 위해 남에게는 파는 것과 뭐가 다른가. 또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부품 공급망이 무너지면 수주를 해도 문제다.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비싼 이유가 미국은 그동안 원전을 안 지어서 자체 공급망이 무너졌다. 그래서 부품을 외부에 의존하다 보니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결국 비싸진다.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한국은 정해진 예산과 기간 안에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원전 수출 분야에서 사실상 황금 기회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고,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은 그 신호탄이었다. 그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산업부가 원자력 관련 학과 지원책을 발표했는데…. “전국 16개 대학 원자력 관련 학과의 취업을 지원하고 핵심 인력 유출 방지도 노력하겠다고 하더라.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자력 전공자 취업도 늘리겠다고…. 탈원전 정책 기조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백년대계가 돼야 할 국가 에너지 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느냐다. 그걸 원자력학과의 고사나 졸업생의 취업 문제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원자력계가 지금 전공자들의 취업 문제 때문에 탈원전 정책을 재고하라고 요구한다고 생각하는지. 정책적, 사회적, 재정적으로 제대로 된 처우를 못 받는다면 유능한 인재가 빠져나가는 걸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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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오 “백범, 치부조차 모두 드러낸 인간적 투사”

    “이 나라가 거저 생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아픔으로 일구어졌는지를 지금 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白凡) 김구 선생 제69주기 추모식에서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라는 책 한 권이 영정에 헌정됐다. 저자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장·사진). 김 전 의장은 27일 “백범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며 “좀 더 친숙하고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백범을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재구성한 책. 보통사람들이 백범에게 가진 의문과 지적을 왜 그때 그렇게 했는지 백범이 직접 답하고, 여기에 저자가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제목의 ‘백범’은 백정과 범부, 즉 평범한 백성을 의미한다. 백범이 답하는 부분은 백범일지를 토대로 했다. 김 전 의장은 “처음 책을 의뢰받았을 때는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았다”며 “위대한 보통사람의 삶을 짧은 글에 잘 담을 수 있을지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먼저 공부를 시작했고, 출간된 백범일지가 300여 종이 넘어 다양하게 각색·편집된 관련 서적 수십 권을 놓고 씨름하느라 출간까지 3년여가 걸렸다고 한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공부하면서 치부조차 솔직하게 드러낸 백범의 인간됨에 감명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범이 일지에서 “감옥에서 굶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있을 때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면 젊은 아내가 몸이라도 팔아서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사식을 넣어주면 좋겠다는 더러운 생각까지 났다”는 고백까지 했었다는 것. 김 전 의장은 “백범을 냉정한 투사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한편으로는 보통사람이면 밝히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사건과 생각까지도 숨김없이 고백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백범 가족과 동아일보의 인연도 소개했다. 백범은 일지에서 ‘1925년 상해에서 두 손자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내 짐을 덜어주려고 네 살배기 막내 신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셨다. (…) 내가 노자를 조금밖에 못 챙겨드려 인천항에 내리자마자 여비가 떨어졌다. 어머니는 동아일보 인천지국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셨다. 그러자 지국에선 상해 소식과 어머니의 딱한 형편을 기사로 읽었다며 서울행 차표와 여비를 드렸고, 서울에서 다시 동아일보 본사를 찾아가니 역시 사리원까지 보내드렸다고 한다’고 적었다. 김 전 의장은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었지만 일제의 보도통제로 국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할 때 동아일보만 호외를 네 번이나 발행하고 이 의사 사진과 집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추모식에서는 ‘백범 묻다…’ 외에 기념사업협회 차원에서 출간한 ‘백범의 길, 조국의 산하를 걷다(국내편)’도 헌정됐다. 백범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거쳤던 장소와 사건들을 일일이 답사해 정리한 것이다. 김 전 의장은 “내년은 백범 추모 70주기,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내년에는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백범이 중국에서 활동한 지역을 중심으로 2부를 낼 계획이며, 3부는 북한 지역의 노정을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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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채용 청탁은 남의 인생을 도적질하는 거 아임니꺼!”

    《 지난해 9월 드러난 강원랜드의 2013년 부정 채용 실태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합격자 518명 중 95%인 493명이 별도로 관리된 청탁 대상자였다. 점수를 조작한 것은 물론이고 당시 최흥집 사장은 부탁받은 사람이 필기시험에서 떨어지자 아예 이 시험을 점수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검찰은 인사 청탁을 한 청탁자를 기소하지 않아 부실 수사 의혹을 받았고, 급기야 외압이 있었다는 현직 검사의 폭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 융단 폭격을 맞은 강원랜드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문태곤 사장(61)은 “부정 합격자 225명의 채용을 취소하고 현재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특별채용을 진행 중”이라며 “하지만 무슨 말로 그분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감사원 출신인 문 사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으며, 2010년 감사원 제2사무차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  ―청탁 대상자 493명 중 225명만 채용을 취소한 이유가 뭔가. “493명은 당시 청탁이 들어온 사람 전부다. 이 중에 검찰 수사 결과 청탁과 서류 및 점수 조작 등 부정 채용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사람이 225명이었다. 나머지는 청탁은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부정 합격으로 이어졌는지, 아니면 자기 실력으로 붙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채용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당시 임의로 채용 인원을 대폭 늘려 뽑았는데 안 들킬 줄 알았을까. “나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일단 뽑아 놓고 나서 떼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에 카지노가 증설돼 인력을 확충할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약 700명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최종적으로 500여 명을 뽑기로 했다. 문제는 이걸 기획재정부와 정원 협의를 한 뒤에 승인을 받고 뽑아야 했는데 안 하고 채용한 거다. 결국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벌어졌다.” (정규직 전환이라니?) “이들은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교육생)이었다. 2015년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기재부에서 기본 정원에 추가로 45명만 증원을 허용했다. 200여 명이 집단 해고를 당할 판이 되자 지역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난리가 났다.” 강원랜드 측은 “2014년까지는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정원을 초과해 채용해도 페널티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기재부와 협의하지 않고도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부정채용이 아니라 집단 해고가 문제였다는 말인가. “그렇다. 2014년 말 드라마 ‘미생’이 엄청나게 히트를 쳤는데 그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미생’이 되게 생겼으니까.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구제하자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흘렀고, 결국 기재부가 200여 명을 추가 증원해줬다. 당시에는 굉장히 잘한 일로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어쩌다 부정 채용이 드러난 건가?) “기재부 입장에서는 화가 난 거지. 정원 협의도 안 하고 일단 뽑아놓고 정규직 전환시키라고 들이민 꼴이니까…. 그래서 우리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진상을 파악해 달라고 요구했고, 산업부가 다시 우리에게 내부감사를 시켰다. 최 전 사장 후임인 함승희 사장 때다. 그랬더니 채용비리가 드러났고, 관할인 춘천지검에 수사 의뢰를 한 거다.” ―우리나라는 감사받느라 일 못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감사가 많다. 내부감사야 그렇다 쳐도 2013년부터 작년까지 5년 동안 상급기관에 감사원, 국정감사를 다 어떻게 피해간 건가. “그게…, 거참…. 내가 감사원 출신이지만, 처음부터 인사 쪽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그 정도까지 알기 어렵다. 감사도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시작하는 것이다. 채용 비리란 게 보통 극소수, 한두 명, 이렇게 생각하지 이렇게 대대적인 부정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나. 상식선에서 가설도 세울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지…. 사장은 물론이고 감사위원장까지 한통속이 됐는데….” ―청탁과 추천의 차이가 뭔가. 그들은 추천했다고 주장할 것 같은데…. “내 생각에 우리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이 너무 강해서 제대로 된 추천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렵다. 추천이란 장단점을 다 객관적으로 써주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점과 함께 ‘하지만 성격이 불같이 급하다’라고 쓰면 누가 좋아하겠나. 서로 원수가 되지. 우리나라 추천서에는 전부 좋은 말만 있다. 그래서 말은 추천이라고 하지만 추천이 아니라 다 청탁이다. 전화로 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당시 채용이 얼마나 엉망이었나. “외부기관에 5000만 원을 주고 필기시험(인성·적성검사)을 의뢰해 치렀다. 그런데 당시 최 사장이 자기가 부탁받은 사람들이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자 이를 참고자료로만 쓰라고 지시했다.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한두 명 끼워 넣는 정도도 아니고 아예 전형 과정 자체를 바꾼 거지…. 자기소개서를 보면 아주 가관이다. 창피해서 말을 못한다.” (내용이 부실하던가?) “두 줄짜리 자소서 본 적 있나?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다’는….” (그런 자소서도 있나?)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자기는 채용시험과 관계없이 이미 합격한다는 걸 알았다는 것 아닌가. 백지로는 낼 수 없으니 몇 줄 적은 거고.) “그렇지. 강원랜드가 아니라 다른 회사 이름을 적은 자소서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복사해 붙인 것이겠지….” (당시 인사팀이 다 봤을 것 아닌가?) “봤지만 탈락시킬 수 없었거나 아예 처음부터 볼 필요도 없이 결정돼 있었거나…. 다 그랬다는 건 아니고 일부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무슨 논리로 채용 취소 소송을 내겠다고 하는 건가. “아직 소송을 냈다고 우리한테 연락 온 것은 없는데… 자신들은 몰랐다는 거다. 아버지가 ‘빽’을 쓸 사람도 아니라면서…. 3월에 채용을 취소하고 한 보름 정도 시끄러웠다. 회사 앞에 부모들이 몰려와서…. 초반에는 퇴근도 못 하고 사무실에서 거의 자정까지 갇혀 있었다.” (대부분 자식들이 서른이 넘었을 텐데 부모들이 항의하러 온 건가?) “자식 문제니까…, 안타까웠겠지….” ―솔직히 2013년에만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전 이후의 채용 과정에 대해서는 왜 조사하지 않나. “증거가 없으니까…. 2013년 건은 청탁 리스트가 있었고…. 추정이지만 당시에는 청탁자가 워낙 많아서 인사담당자가 살기 위해 기록을 해 둔 것 같다.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기억도 안 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들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거겠지. 상식적으로 한두 명이었다면 리스트까지 만들지는 않았을 거다.” ―2013년 채용비리 피해자를 위한 구제 특별채용이 진행 중이다. 몇 명이나 뽑나. “최대 225명이다. 이번에 채용 취소된 그 인원만큼인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더 적을 수도 있다.” (당시 지원자가 5268명인데 너무 적은 것 아닌가?) “5268명 중 부정행위 연루가 확인된 사람, 인성·적성 점수 미달자 등을 제외하고 3198명에게 응시 기회를 부여했다. 그런데 5년이나 지나다 보니 이미 취업한 사람도 있고 해서 응시한 사람이 285명에 그쳤다. 27일 또는 28일경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직접 면접을 보나?) “안 본다. 사장이 들어가면 면접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고, 또 다른 면접위원들이 눈치를 볼 수도 있고…. 그 대신 간부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한 명이라도 청탁받거나 당신들이 아는 사람에게 뭘 해준 게 드러나면 내가 옷 벗는 것 당연한데 그 전에 당신들부터 먼저 꼭 벗기겠다고….” (그 난리를 쳤는데 또 청탁할 사람이 있을까?) “알 수 없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이중 삼중으로 그물망을 쳤다. 전에는 면접위원을 내부 간부들이 했는데 이번에는 반은 외부 인사로 하고, 위촉도 외부 대행기관에 의뢰했다. 또 회사 감사팀이 면접에 입회하도록 했다. 그랬는데도 또 청탁이 벌어지고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집에 가야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집에 못 갈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날아올 것 같은데?) “그럴 것 같기도 하다. 하하하. 아무튼 아직까지는 청탁받은 게 없다.” ―이번 합격자들에게 경력 인정이나 호봉 인상 등 잃어버린 5년에 대한 보상이 있나. “전에는 2년 후 정규직 전환이었는데 이번에는 인턴 6개월 후 전환(8급)하기로 했다. 안타깝긴 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법적으로 보상을 해줄 방법이 없더라.” (당시에는 실력이 좋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처져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지 않겠나?) “그럴 수 있는데…, 어떻게 과거를 돌릴 수도 없고…. 안타까울 뿐이다. 당시 피해자 중에는 자살한 사람도 있다. 얼마나 억울하겠나. 채용 청탁은 진짜 해서는 안 된다. 남의 인생을 훔치는 일 아닌가.” ―최고경영자(CEO)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강원랜드가 카지노 이미지가 너무 강한데, 앞으로는 복합 리조트 단지로서 국민의 진정한 쉼터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340만 명이던 비(非)카지노 부문 이용객을 2025년까지 530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와 사랑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난해 5등급이던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도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 2등급으로 올릴 계획이다. 조직 혁신도 진행했는데 12명이던 임원을 5명으로 줄였다. 대부분 외부에서 온 사람들인데 불필요한 의사 결정 단계가 많았다. 올해가 설립 20주년인 만큼 조만간 신규 BI(Brand identity)와 함께 중장기 경영 전략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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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래의 기술? 이번엔 거래의 본능

    ‘(고작) 이걸 위해 그렇게 대대적인 선전을 한 거야? (늘 자랑하던) ‘거래의 기술’은 어디 갔지? 이게 다인가?’ 지난해 영국 BBC의 ‘화제의 방송사고’로 스타가 됐던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인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보여준 태도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국제협약을 탈퇴하며, ‘파투’(화투에서 판이 무효가 되는 것)도 불사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 의아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치밀한 포석(布石)에 ‘말린(?)’ 것일까. 아니면 비즈니스 게임의 고수로서 최후의 순익을 즐기려는 것일까. ○ 사업가 출신의 거래 본능 트럼프 대통령의 잘 알려진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는 사업가로서의 거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가 불확실한 리스크를 피하려 한다는 점과 ‘을’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한다. 5000달러면 살 수 있던 가정집이 30만 달러로 오르더니 나중에는 100만 달러까지 간 것.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투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합법화 전에 사면 큰 차익을 벌 수 있지만 만약 안 될 경우 물거품이 되기 때문. 카지노는 수익성이 엄청난 사업이기 때문에 돈을 더 주더라도 합법화가 된 후 입지가 좋은 곳을 골라 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77년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한 후 3년이 더 지난 1980년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다. 트럼프보다 먼저 사업에 뛰어든 업체들이 공사 지연, 공사비 부족,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거부 등의 어려움을 충분히 본 뒤였다. 호텔 공사도 서두르지 않았다. 통상 다른 업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기 위해 호텔 공사와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절차를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확실하게 카지노 영업 허가를 받은 뒤 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만약 인허가가 지나치게 늦어지면 땅을 팔고 사업을 접겠다는 방침으로 협상에 임했다. 일단 호텔 공사를 시작하면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에 카지노위원회가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경우 거절할 수 없어 계속 끌려다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코가 꿰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한 셈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돌출적이고, 불확실적이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다른 면모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 모르는 게 국제 정세인데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까지 명기할 경우 당장은 찬사를 받겠지만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길 경우 미국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모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과정이 명시될 경우 미국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한 번에 다 털어먹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후에는 차질이 생길 때마다 비판만 들어야 하는 반면에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표를 명기하지 않으면 향후 성과가 나올 때마다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공이 된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비핵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데 11월 선거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한 방’에 털어먹기보다는 성과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명분보다는 이익 대표적인 게임 이론 중 하나인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으로, 서로 마주 보고 달려오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경기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1000억 달러 추가 관세 부과를 지시하고 8, 9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보이콧하는 등 다른 나라가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치킨게임 전술을 자주 써왔다. 물론 그 기저엔 명분이나 고상한 가치가 아닌 ‘머니’가 깔려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적 마인드를 그대로 드러냈다. 북-미 정상회담 후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한국도 돈을 내고 있지만 100%는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 정치인들이 비록 속마음엔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에둘러 말하거나 다른 비유적 수사로 표현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나라한 화법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도 외교안보의 관점이 아닌 사업과 미국의 이익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종수 교수는 “핵이 당면한 문제인 우리에게는 비핵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철저한 해체 프로세스가 우선이지만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큰 고려 사항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꿰뚫은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엔진 시험장 파괴라는 선물을 안겼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실적으로 자랑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CVID를 명기하기보다는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약속을 하나하나 이행하면 이를 비핵화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포장해 성과를 낸 것처럼 알리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게임은 계속된다 트럼프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지는 미지수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이다. ‘허가’를 받아내고 ‘돈’을 버는 게 부동산 개발의 목적이다. 하지만 사적 재화를 다루는 비즈니스와 공적 재화를 다루는 정치는 다르다. 정치 영역은 경제적 이익 외에 고려해야 할 가치가 많다”며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국적으로 게임의 승리자가 될지를 놓고도 관측이 엇갈린다. 이한영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외교 분야의 경우 극단적으로 막장까지 갔을 때 겪을 파국이 전쟁”이라며 “파국의 상황이 (경제 분야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양측이 협상에 더 조심스럽게 임하게 되고, 그래서 더 좋은 협상을 이끌어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업을 할 때보다 덜 저돌적일 수밖에 없었을 테고, 또 이번 회담은 순차게임이라 아직은 결론 내리기가 이르다”고 말했다.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는 “트럼프가 마치 양보처럼 보이는 통 큰 협상전략을 쓴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예전처럼 잔재주를 부리면 반격 전략으로 거칠게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정은 일가가 과거처럼 미국을 상대로 장난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른바 참수작전 등으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해 갖는 불안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 그러나 종신 집권자이자 국가 오너인 김 위원장으로선 임기가 정해져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자기 나름대로의 장기적인 스케줄을 갖고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진구 sys1201@donga.com·이설 기자}

    •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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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임태희 “北을 뗑깡이나 부리는 집단으로만 생각해선 안 돼”

     《 북한은 신뢰할 수 없고, 뒤통수만 치며, 돈을 더 얻기 위해 떼를 쓰는 집단이라고 여기는 시각이 있다. 그들은 역대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은 ‘좌파정권이 자신들의 필요성 때문에 돈을 주고 산 행위’이며, ‘북한은 대화가 아니라, 항복시켜야 하는 상대’라고 여긴다. 수십 년간 북한이 보인 행동을 생각하면 이런 시각을 잘못이라고 탓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믿지 못할 집단과의 대화란 무의미하니 군비 증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까. 이명박(MB)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현 한경대 총장)은 “보수도 이제 북한에 대해 반공 프레임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설사 제자리 뛰기가 되고, 쳇바퀴를 돌더라도 (북한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남북 정상회담이 보통 ‘우리가 필요해서 요청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MB 정부 때는 북한이 먼저 요청했다. “2009년 8월 20일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조문사절이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비공개로 밤늦게 나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니 청와대 방문을 연결시켜달라고 했다. 다음 날 바로 대통령 주재 조찬회의가 열렸는데 구두메시지가 뭔지와 면담을 허용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그는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었다.) ―구두메시지란 게 뭔가. “그들만의 독특한 형식인데…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나중에 청와대 방문 때 보니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직접 전하는 말씀입니다’ 이러면서 적어온 것을 읽는 형식이었다. 남북 정상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조문단을 굳이 만나지 않을 이유가 있었나.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누구는 북한의 생색내기에 이용당하니 안 된다고 하고, 또 누구는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만나면 안 된다고 하고….” (미국 허락을 받고 만나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러다가 조문단에 하루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설득을 내가 하게 됐다. 조문단이 하루 더 머무르려면 반드시 김 위원장의 허락을 얻어야 하니까, 머물면 의지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거다.” ―쉬운 설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김양건 통전부장과 본격적인 회담을 하기 전에 ‘김 위원장이 혹시 나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안다’고 하더라.” (어떻게 아나? 간첩인가?) “하하하. 북한과 사업을 하는 조선족 사업가가 있는데 과거에 ‘김 위원장에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편에 한국영화 CD 10개를 보냈는데 그 얘기를 했다. ‘우리 장군님께 영화 보내주지 않았냐’고…. 그래서 신뢰가 있다고 생각하고 본론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알겠다’며 통신 담당 여군 장교를 부르더라. 하얀 장교복을 입은….” (꽤 늦은 시간이었을 텐데….) “안 그래도 너무 늦어서 괜찮겠냐고 했더니 ‘우리 장군님은 새벽까지 안 주무신다’고 하더라.” (영화광이니까….) “하하하, 답이 바로 올 거라고 했다. 진짜 새벽 1시가 넘은 것 같은데… 답이 왔다. 허락이 떨어졌다고…. 그때부터 진짜 더 마셨다.” ―당시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데는 정부 내 강경파가 온건파를 이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북한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게 해서 무릎을 꿇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 라인에서 끊임없이 대통령에게 백악관 분위기가 북한에 대해 강경하다며 정상회담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강경파는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이 진정성이 없다고 본 건가. “그렇다. 그런데 조문단이 돌아가고 2, 3주 정도 지나 북측에서 ‘왜 청와대는 장군님의 대화 제의를 무시하느냐’는 말이 간접적으로 들려왔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아무 행동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대통령께 알렸더니 그제야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답을 주기로 했다. 그 답을 가지고 상하이에서 다시 김양건 통전부장을 만났다. 싱가포르 회동 전이다.” 당시 임태희-김양건 라인은 2009년 9월 상하이, 10월 싱가포르 회동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 △국군포로 및 납북자 고향 방문 △한반도 비핵화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 △인도적 지원 △국군유해 발굴 등 6개 항목에서 의견 접근을 봤다. ―그동안의 북한을 보면 강경파 시각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강경파는 입장도 간단명료하고 말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러면 도대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가. 무릎 꿇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전쟁밖에 없지 않나.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우리 현실, 특히 보수 정부에서 대화파는 아주 힘들다.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자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또는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몰린다. 그 와중에 북한이 도발을 하면 정말 곤란해지고…. 일이 어떻게 되는지와는 별개로 강경한 사람이 마치 원칙과 소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도 있고….” ―왜 북한이 먼저 제안하고, 추진도 더 적극적이었을까. “이명박 정부 초기였기 때문에 힘이 있을 때 김 위원장이 뭔가 틀을 잡아 놓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당시 김 위원장 수행 의사들이 8명에서 13명으로 늘었다는 말도 있었다. 병이 위중하다는 뜻이지…. 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을 제안해서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올 차례 아니냐’고 했더니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런 요인이 겹친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게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산다’는 시각이다. “그래서 북측과 프라이카우프(Freikauf) 방식으로 정상회담 조건을 이행하기로 협의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미리 다 주는 게 아니라, 정상 간에 합의한 내용이 실행될 때마다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이 상봉하면 얼마, 고향 방문을 하면 얼마를 지원하는 식이다.”(프라이카우프는 ‘자유를 산다’는 의미의 독일어.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오기 위해 현금과 현물을 동독에 제공한 방식을 말한다. 1963∼1989년 3만3755명을 데려오고 대신 34억6400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현물을 지불했다.) ―정상회담 전에 돈을 주면 사는 것이고, 후에 주면 아닌가. “강경파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주나 저렇게 주나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우리가 정상회담에서 요구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북한도 원하는 것이 있다. 우리 요구를 북한이 실행하면, 우리도 북한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게 당연하지 않나. 프라이카우프 방식까지 돈 주고 사는 것으로 간주하면 북한보고 아무 조건 없이 우리가 원하는 걸 다 하라고 하는 것인데 그건 불가능하다고.” (그랬더니 뭐라 하던가?) “국정원 말은 북한 경제가 절박할 정도로 안 좋으니 3개월만 압박하면 무릎 꿇고 나온다는 거다. 되긴… 6개월이 지나도, 그 이후도 아무 것도 안 됐는데…. 강경파는 북한을 ‘믿을 수 없고, 뒤통수만 치고, 뗑깡이나 부리는 집단’으로 치부하는데 그런 시각으로는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없다.” ―솔직히 그런 면이 있지 않나. “강경파는 북한이 늘 우리에게 더 얻어내기 위해 떼를 쓴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그런 잘못된 버릇을 들였다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북한도 원하는 것이 있다. 그걸 주고받는 건 뒷거래나 이면 합의가 아니다. 그런데 북한이 약속을 지키는 것 같으면 우리를 이용한다고 보고, 깨면 ‘그것 봐라’ 한다. 철저하게 상대를 불신하면서 어떻게 남북관계가 진전되겠나. 당시에도 북한은 정상회담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한 뒤에 우리가 지원해주는 것조차 ‘북한의 외화벌이’나 ‘우리가 삥 뜯기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걸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남북관계가 잘 안된다.” ―성사되지 않았더라도 정상회담 추진 과정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경험이다. 혹시 박근혜 정부에 그런 노하우를 알려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당 공동선대위원장들과 함께 저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정을 담은 서류를 직접 줬다. A4지 3장인데 비핵화 방안 등 김양건 통전부장과 논의된 얘기였다. 비핵화 문제는 북한이 당시 상황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불가역적 비핵화 조치를 취한 뒤 6자회담에 복귀하는 걸로 의견접근을 봤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니 혹시 보충 설명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답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는 루트가 없어 못 했다.” ―당시 상황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가 뭔가. “가장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는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못하게 핵 연료봉 저장소를 시멘트로 봉해서 묻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김 통전부장에게 ‘냉각탑 파괴 같은 쇼 말고 핵 연료봉을 폐기하는 건 어떠냐’고 했더니 ‘그건 다시 논의해봅시다’라고 하더라.” ―자유한국당은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도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도 장사로 여긴다”며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아직도 반공보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공화당 출신의 닉슨 대통령이 미중 수교를 이뤘듯이 오해받을 우려가 없기 때문에 보수는 공산권과의 문제를 풀 때 강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왜 정상회담이 필요한지에 대한) 역사 인식도 부족하고…, 언제까지 옛날처럼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노래만 부를 것인가. 그런 시각이면 나도 친북좌파인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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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송송’ 괴담 촛불로 번졌지만… 아무도 책임진 사람 없어

    “광우병이요? 맛있기만 하네요. 싸고….” 17일 저녁 서울 종로 C 미국산 수입육 직판장. 미국산 쇠고기를 파는 이곳은 이 근방에서는 싸고 질 좋은 고깃집으로 소문이 난 곳이다. 이날도 가게 안은 손님들이 굽는 고기 연기로 자욱했다. 이 음식점이 인기인 것은 최상급 미국산 쇠고기를 시내 한우 음식점의 3분의 1 가격으로 팔기 때문. 인근 한우 음식점들이 생갈비 1인분(120∼150g)을 3만8000∼4만2000원 정도에 파는 것에 비하면 이곳은 진꽃살 1인분(180g)은 1만9000원, 갈비본살 1인분(180g)은 1만6000원에 팔고 있다. 등심은 1인분에 1만4000원이다. 친구들과 회식을 하러온 김태윤 씨(49)는 “지금 광우병 걱정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안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10년 전 이맘때… 꼭 10년 전인 2008년 4∼7월 한국은 광우병 괴담으로 온 나라가 미증유의 파동을 겪었다. 당시 시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와 대한의사협회가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갖기도 했다. 당시 행사를 주관했던 한 관계자의 후일담. “식당 섭외가 골치였다. 시식회를 한 게 알려지면 식당 문을 닫아야 할 수 있으니 그 비용까지 담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일반 식당을 못 구하고 한 2주일 만에 수입육 직영점에서 가까스로 행사를 열 수 있었다. 격세지감이다.” 광우병 사태의 시작은 2003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워싱턴주에서 소해면상뇌증(광우병) 의심 사례가 발견되자 우리 정부가 수입을 중단한 것.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30개월 미만 소의 뼈를 제거한 살코기’만 허용키로 하고 수입을 재개했으나 검역 과정에서 뼛조각이 발견되면서 전량 반송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고 한미 간 무역 마찰이 빚어졌다. 미국의 압박은 거셌다. 2006년 12월 3일(현지 시간) 미국 몬태나주 빅스카이시의 한 레스토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놓고 5차 협상을 벌이기 위해 온 양국 대표단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맥스 보커스 당시 미국 상원의원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은 뒤 미리 연습한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다섯 차례나 외쳤다. 그는 이어 “미국산 쇠고기는 뼈가 있든 없든 안전하다. 한미 FTA가 원만하게 타결되려면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비프벨트(쇠고기 생산지)’로 통하는 몬태나주 출신의 보커스 의원이 한국 정부와 취재단 앞에서 일종의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5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우리 측은 ‘모든 종류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과 내장, 꼬리 등의 부산물은 받을 수 없고,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제한 규정도 유지하겠다’고 요구했으나 미국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협상이 종료됐다. 이듬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2008년 4월 18일, 새 정부는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을 전격 발표했다. 1단계로 30개월 미만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2단계로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 조치를 강화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가 막 출범한 새 정권을 뿌리째 뒤흔들 것이라고는 이 대통령 자신도 몰랐다. 4월 29일 MBC PD수첩은 인간 광우병에 걸린 여성의 죽음 등을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해 국민 불안감을 최대로 고조시켰다. 5월 1일 배우 김민선 씨(후에 김규리로 개명)는 인터넷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불안은 시위로 이어졌고, 5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번째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당초 300여 명의 소규모 집회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경찰 추산 1만여 명이 모일 정도로 파장은 심상치 않았다.○ MB, 두 차례 대국민 담화 5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이 대통령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8분여간 준비한 원고를 읽기만 한 채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했다. 약 한 달 뒤인 그해 6월 19일 당시 이 대통령은 다시 특별기자회견을 위해 춘추관에 섰다. 이번엔 ‘뼈저린 반성’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려왔다.” 임태희 국립 한경대 총장(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당시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라 청와대도 제대로 안정되지 않았고, 당도 막 18대 총선(2008년 4월 9일)을 치른 뒤라 사실상 지도부 공백 상태여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이 첫 번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5월 22일에서야 홍준표 원내대표, 임 정책위의장을 선출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한 A 씨도 “쇠고기 협상이 체결된 4월 18일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의욕은 높았지만, 국정 경험은 거의 없었고, 민심을 전달할 여당도 선거 때문에 지도부 공백 상태라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첫 촛불시위 이후 1700여 개 시민단체가 모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되고, ‘72시간 연속 촛불집회’ ‘100만 촛불대행진’에 ‘뇌송송 구멍탁’ 같은 괴담이 난무했지만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광우병의 위험 수준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국제 기준에 대한 정상적 토론은 실종됐다. 여기에 6월 10일 등장한 일명 ‘명박산성’이 붙은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6·10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획되자 경찰이 이날 새벽 서울 세종대로 충무공 동상 앞과 안국로 등 청와대로 갈 수 있는 길목을 컨테이너 박스 60여 개로 차단한 것.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시위대가 청와대까지 진격하려던 상황이었고, 당시 경찰 정보로는 시위대가 경찰과 물리적 대치 중에 일부러 인명피해를 일으켜 사태를 더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도 있었다”며 “비난을 받기는 하겠지만 시위대와 경찰을 접촉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도 막을 겸 컨테이너로 장벽을 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박산성’은 이후 불통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청와대 내에선 ‘재협상’이냐 ‘추가협상’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당시 여권 고위관계자의 전언. “협상을 다시 하는 것은 이미 결정됐고, 이것을 재협상으로 부르느냐, 추가협상으로 부르느냐는 문제 때문에 6월 1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김중수 경제수석과 박재완 정무수석은 추가협상을, 이종찬 민정수석과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은 어차피 내용적으로 사실상 재협상이니 빨리 인정하고 사태를 진화하자는 의견을 냈다. 결국 MB가 추가협상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렇게 발표됐다. 그리고 광우병 사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두 번째 대국민 담화는 이처럼 상황 수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와중에 나왔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8년 6월 26일 추가협상을 포함한 협상 내용이 관보에 고시되면서 수입이 재개됐다.○ 10년 후 “언제 그런 일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물량은 2016년(15만6000t)보다 13.5% 늘어난 17만7000t으로 외국산 수입 쇠고기 가운데 가장 많았다. 호주산은 전년 대비 4% 줄어든 17만3000t, 뉴질랜드산은 전년 대비 16.5% 감소한 1만9000t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 조치 이후 줄곧 1위를 달렸지만 2003년 광우병 의심 사례 발생으로 수입이 전면 금지됐고, 2006년 ‘30개월 미만, 뼈를 제거한 고기’라는 조건으로 수입이 재개됐지만, 뼛조각이 발견돼 전량 반송되는 일이 반복된 데다 광우병 파동의 후폭풍으로 1위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그 자리는 2004년 이후 호주산이 지켜왔는데 14년 만에 1위가 바뀐 것이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국내 소비자들이 막연히 갖고 있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광우병 파동 이후 최근 10년 새 전 세계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로 인한 피해 사례가 없어 안전한 쇠고기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 그는 “당시 광우병 문제를 내세워 국가적인 혼란을 부추겼던 사람들이 현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미국산 쇠고기의 부활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미 FTA에 따른 관세 인하 효과 덕분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관세율은 2015년 29.3%에서 올해 21.3%로 매년 낮아지고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산의 관세율도 낮아지고 있지만 미국산에는 못 미친다. 호주의 관세율은 지난해 29.3%, 뉴질랜드는 32.0%였다. 올해는 각각 26.6%, 29.3%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총 12억2000만 달러(약 1조3000억 원)로 일본(18억9000만 달러)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지난해 미국 쇠고기 수출총액(72억6900만 달러) 중 한국이 17%를 차지했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2015년 이전까지 3∼5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6년 멕시코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이후 지난해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2년 연속 2위에 랭크됐다. 당시 시위를 강력히 주도했거나,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지적했던 이들은 여전히 유사한 입장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활약했던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08년 촛불집회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쇠고기를 수입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100% 안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이 발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미국에서 비정형 소해면상뇌증(BSE·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된 직후 열린 ‘미국 다섯 번째 광우병 발생 사태에 대한 전문가 기자설명회’에서 “(2008년) 당시 촛불의 요구는 ‘무조건 수입금지’가 아니었는데 정부가 이를 매도했다. 30개월 미만을 수입하라는 요구에 ‘미국 사람도 먹는 소를 왜 위험하다고 하느냐’며 잘못된 수사적 대응을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부 출신으로 2006년 농림부로 옮겨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민동석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협상 수석대표)은 지난 10년의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저 조용히 잊혀진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2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뒤 2012~2016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이진구 sys1201@donga.com·송진흡 기자}

    • 2018-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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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평양교예단과 동춘의 합동공연 성사됐으면…”

    《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 얘기 들려줬지…. 빼앗긴 들녘에 봄조차 오지 않던 1925년. 그들이 있어 그나마 울고 웃으며 시름을 달랠 수 있었다. “저것이 과연 사람이냐! 귀신이냐! 저 묘기에 박수 한 점 치지 않는 동포는 인정도, 사정도, 피도, 눈물도, 애국심도 없는 것인가!” 박수갈채를 유도하는 사회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한데,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93년. 컴퓨터 그래픽이면 ‘쥬라기 공원’에서 ‘반지의 제왕’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왜 사람들은 공 굴리고, 줄을 타는 완전 아날로그 공연을 아직도 찾는 것일까. 》  ―실례입니다만, 솔직히 아직까지 있는지 몰랐습니다. “하하하, 문 닫는다, 폐업한다 뭐 그런 뉴스가 종종 났으니까요. 위기도 많았지만 국민들 성원 덕분에 잘 견디고 7년 전부터는 대부도에 자리 잡고 잘하고 있습니다.”(동춘서커스는 1925년 동춘 박동수가 창단한 한국 최초의 서커스단. 올해로 93년 됐으며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이다.) ―많이들 보러 옵니까. “평일은 두 번. 주말은 네 번이 고정이고, 40인 이상 단체는 원하는 시간에 맞춰 공연을 해줍니다. 공연장이 400석인데 주말에는 회당 70∼80%는 찹니다. 경남 김해, 경북 안동 포항 등 전국에서 버스 대절해 보러 오지요.”(대부도 관광하는 김에 보러 오는 건가요?) “아니요. 서커스가 메인이지요. 5월 5∼7일 연휴 때는 완전 매진돼서 아주 애먹었습니다.”(처음엔 과장이 좀 심한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실제로 단체 관객이 밀려드는데 400석이 꽉 차 간이의자를 놓고 볼 정도였다.) ―관객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한때 폐업까지 가게 됐나요. “세계 금융위기가 오고,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가 발생하면서 약 5개월간 관객이 다 끊겼죠. 더 견딜 수가 없어서 해체 선언을 했는데 그게 알려지면서 ‘동춘을 살리자’는 운동이 일더라고요. 그때가 유인촌 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일 땐데 ‘동춘 안 살리면 유인촌을 무인촌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항의까지 나왔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해 김포시민회관에서 마지막 공연을 열었습니다. 그게 그해 12월 24일인데….”(많이 왔습니까?) “아,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내리는데… 진짜 망했다 싶었지요. 그런데 공연 한 시간 전부터 새까만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1200석이 회마다 매진되는데…, 한 달 만에 빚 갚고 살아났지요. 동춘서커스단은 국민 극단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울 때마다 국민이 도와줬으니까요. 2003년에도 태풍 매미 때문에 공연장이고 장비고 다 날아가서 망할 뻔했죠. 간신히 경남 진주로 가 엉기성기 천막치고 공연하는데 또 관객이 줄을 잇더라고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해서 손님들에게 물어보니 ‘동춘은 없어지면 안 된다. 우리가 사는 표가 다 기부금이고 후원금이라고 생각해라’라고 하더라고요. 울컥했지요.” ―동춘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습니까. “요새 말로 하면 연예인이 되고 싶었죠. 사회나 연기 쪽으로…, 노래도 좀 불렀고…. 1963년 입단했는데, 그때는 아∼ 동춘,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봉조 선생이 나발(색소폰)을 불었으니까요. 이주일 남철 남성남 등등…. 그때는 서커스단 15개가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이끌었습니다. 코미디언 서영춘 선생도 동춘에서 조명으로 시작했지요.” ―단원이었다가 단장까지 올라간 건가요. “지금이야 기획사가 대주지만 그때는 배우가 되려면 자기 돈이 많이 들었어요. 말 타는 연습 춤추는 연습, 전부 자기 돈으로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시 그만뒀죠. 부산에서 극장 선전부장도 하고 장사를 해 돈을 좀 벌었는데, 1985년인가? 동춘이 어렵다면서 주변에서 인수하라고 권했어요. 동춘이 지방에 가면 사람들이 한 번은 구경 와요. 향수도 있고, 볼거리도 있고…. 내가 보기엔 될 것 같았거든요. 인수하려면 1억 원 정도 필요했는데… 서울 잠실 30평 아파트가 3500만 원 정도 할 때였지요. 반은 주고, 반은 공연하면서 갚는 걸로 하고 인수했지요.” ―대부도에는 언제부터 자리 잡았습니까.(현재 동춘서커스단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의 임대부지에서 공연하고 있다.) “2011년 3월인데 안산시 공무원들이 찾아왔어요. 지원해 줄 테니 대부도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겠느냐고요. 일종의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인데…. 그래서 현장답사를 했는데 ‘딱’이다 싶더라고요. 인근에 해수욕장도 있고, 유원지도 있고 식당도 있고…. 그 자체로는 관광객 유입 동력이 없지만 우리 힘으로 관광객을 당기면 시너지 효과가 있겠다 싶은 거지요. 5개월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꽉 차더라고요. 300명만 보러 와 봐요. 밥 먹고 회 먹고 몇백만 원은 훌쩍 쓰지요. 밥만 먹나요? 잠도 자는데….” ―단원이 50명 정도라는데 모집은 어떻게 합니까. “한국인은 10명 정도고 나머지는 중국인입니다. 중국에는 시립서커스단이 많은데 시와 계약 맺고 데려오죠. 안타까운 게 외국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중국 베이징에서도 관광 산업에 서커스를 가장 많이 활용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2008년 서커스 활성화가 우리나라 관광산업 10대 과제에 들어가 있었는데 정부 바뀌니까 또 흐지부지되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워서 뛰어내릴 각오로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 항의했더니 ‘세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연극협회도 국악협회도 나름의 세가 있는데 우리는 곡예협회라 해봤자 100명도 안 되니까….” ―실례입니다만 서커스를 하면 수입이 좀 됩니까. “줄 타는 일류 한국인 단원을 쓰려면 한 달에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정도 줘야 해요. 얘들은 한 번 외부 공연 나가면 1회에 300만 원 받지요.”(그렇게 많이 받나요?) “요새는 지역 축제가 많으니까요. 한국인 단원으로 다 쓰면 운영이 힘드니까 그래서 중국인을 쓰는 거고…. 중국인 단원은 200만∼300만 원이면 되지요. 그래도 중국에서는 큰돈이에요.” ―볼쇼이나 태양의 서커스와 비교하면 동춘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가 한국에 왔을 때 1회 공연에 1억2000만 원 받았어요. 우리한테 그 10분의 1만 써주면, 국내 연출가 PD 써서 그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어요. 돈이 문제지…. 조명이나 3D(3차원)는 우리가 훨씬 앞서고요.” ―서커스 하면 동물 쇼인데… 안 보입니다. “하나도 안 해요. 동물보호법에 걸리기도 하고….”(걸리다니요?) “동물학대니까요. 동물 서커스는 배고픔과 매로 가르칠 수밖에 없어요. 하지 말라는 걸 굳이 할 필요도 없고, 또 이제는 동물 서커스가 별로 효과가 없어요. 동물원이 많아져서…. 태양의 서커스도 개편하면서 동물 쇼를 다 없앴는데 그래도 지금 연 매출이 1조2000억 원 이상 나오죠.”(그 많은 동물은 다 어디 갔습니까?) “원숭이처럼 작은 건 기증하거나 주고, 코끼리 호랑이같이 큰 건 죽어서 박제해 내가 가지고 있지요.” ―그래도 운영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할인 혜택이 엄청 큽니다.(어른은 2만5000원이지만 예약하면 1만 원 정도 깎아준다. 경로, 장애인, 가족동반도 마찬가지다) “보통 가족 단위로 많이 보러 옵니다. 3대가 함께 오기도 하는데 다 받으면 표 값만 20만 원 가까이 되니까 너무 부담이 되지요. 그리고 우리가 사회적기업이라 뭔가 사회공헌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회적기업이라고요?) “2009년 어려워서 문 닫을 뻔하다가 살아났다고 했잖아요? 마침 그때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을 만들었는데 예비 사회적기업에 선정돼 단원 10명의 월급을 첫해는 100%, 두 번째 해는 80%, 세 번째 해는 60%, 네 번째 해는 40%를 받았어요. 참 고맙지요. 지금은 지원을 안 받지만 그게 어딥니까. 그래서 빚도 갚을 겸 우리가 문화 나눔으로 한 해에 10곳 정도 소외계층이나 지역을 찾아 무료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교예단을 남쪽에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화해 무드를 타고 평양교예단과 합동공연을 추진할 생각은 없습니까. “내가 과거에 평양교예단 단장들을 중국에서 자주 만났어요. 중국에는 서커스대회가 해마다 열리는데 거기서 보는 거죠. 그 사람들이 10개월 전에만 얘기해주면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의 대외경제협력을 담당하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고위층도 만났지요. 문제는 이게 돈이 많이 들어요. 일종의 리베이트가…. 나는 그런 돈이 없어서 당시에 그걸 현대아산에 넘겼지요. 평양교예단도 동춘을 잘 알아요. 요즘 남북 분위기가 좋은데 합동공연 하면 좋지요. 해보고 싶기도 하고….” ―가장 힘든 게 무엇입니까. “솔직히 지금은 힘든 건 없고 내가 그만두기 전에 서커스 아카데미하고 상설극장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 안타깝죠. 어느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동춘을 흡수하려고 하는데, 동춘의 브랜드 가치가 100억 원이래요. 그만한 상품성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힘이 없어서…. 누가 좀 받쳐줬으면 싶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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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조훈현 “정석(定石)은 어디 가고…, 강수 꼼수만…”

    《 국수(國手)가 보는 정치판이 궁금해 첫 인터뷰를 가진 것이 약 1년 전. 당시 그는 “(정치) 하수인 나도 수가 보이는데, 고수들이 왜…”라며 미생마(未生馬)가 된 뒤에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소속 당을 안타까워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대체적인 민심은 여전히 차가운 상태. 그는 “지난 1년여간 당 혁신이라는 정석(定石) 대신 강수와 꼼수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수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3선은 실리, 2선은 패망, 1선은 사망. 지금 우리는 어디를 달리고 있나. 국민은 다 아는데 우리만 모르는 건 아닐까….● 의원 된 지 2년 정도 됐는데 정치가 좀 보이나.○ 아직은…. 전에는 의원들끼리 대판 싸우면 ‘왜 저러나?’ 하고 놀랐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 정도일까? (지방선거가 코앞인데 지금 한국당은 어느 선을 달리고 있다고 보나. 실리를 얻고 있다고 말하기는 좀 힘든 것 같은데….) 실리선은 아니고… 거참…, 그렇다고 패망선이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2.5선? 잘하면 실리를 얻고, 못하면 패망하다 사망하는…. 지금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대로 투표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내 생각에는 말 안 하고 지켜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한국당 안에서 초재선 의원다운 목소리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다음 총선에 출마할 것도 아니지 않나.○ 물론, 출마 안 한다. 초재선 의원들이 나름의 모임은 갖고 있는데…, 계파 다르고, 생각 다르니 뭉치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상황에서는 특별한 수가 없는 것 같다. 강수가 필요한데… 수가 안 보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좋은 수인지는 모르겠지만 홍준표 대표란 돌이 강수는 강수 아닌가? 잘하고 있다고 보나?○ 의원들 사이에서 말이 많지…. (말이 많다는 게 무슨 뜻인지…, 거칠다는 뜻인가?) 한마디로 할 수 있으면 별문제가 아니지…. 사람이 누구나 하나씩은 결점이 있지 않나. 막말이다, 정책이다, 의사소통이다 다 걸리니까…. 솔직히 소통이 안 되고 있거든. 그렇게 여러 가지가 겹치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그런데 또 거꾸로 보면 단점도 많지만 대체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말도 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단 버티고는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이만큼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 지도부가 좀 생각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차피 그건 알고 뽑은 거니까. 작년에 투표할 때는 지금은 책사 협상 정책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싸움꾼이 필요할 때라는 정서가 더 강했거든. 하나의 운명이 아닌가 싶다.● 탄핵 이후부터 강수 묘수보다 기본에 충실한 정석의 길을 걸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제대로 된 혁신이 정석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건데….○ 그게 정석이고 정도인데…, 한편으로는 이런 게 있다. 사실 바둑도 내가 잘해서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누가 실수를 많이 하느냐로 갈릴 때가 더 많지. 정치든 뭐든…. 우리는 최순실에게 나라가 농락당한 어마어마한 한 방을 크게 먹은 게 아직도 회복이 안 되는 거고…, 그런데 저쪽도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나 드루킹 사건 같은 악수가 나오기 시작하잖아? 나도 점점 정치인이 돼가는 건가? 하하하. 우리 당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잘한 게 있나?) …글쎄 모르겠어. 칭찬해줄 수는 없으니까…. 사실 한국당에 몸담고 있지만 중간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동네가 재미있는 게 (상대 당에 대해) 아예 서로 인정을 안 해. 누구나 백가지를 하면 최소한 하나는 잘하는 게 있지 않겠나. 그 하나는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난 그런 생각인데….● 한국당은 무기가 ‘좌파빨갱이 낙인찍기’ 아니면 막말밖에 없느냐는 지적이 많다.○ 너무 궁지에 몰리니까…, 진짜 안 썼으면 좋겠는데…. 우리 어릴 적에는 무조건 ‘빨갱이’라고만 하면 끝나던 시절도 있었다. 근데 그게 이제는 50, 60대에게도 안 먹히지 않소? 6·25전쟁이 거의 70년 전인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야지….● 2016년 2월 쓴소리를 듣겠다며 대표실에 ‘정신 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라는 백보드를 붙였다가 진짜 총선에서 ‘훅’ 갔다. 이번에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고 플래카드를 붙였는데, 실제로 변한 것이 없다보니 진정성이 안 느껴진다.○ 정치적인 행위지, 뭐…. 지금 상황에서 정당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기도 하고…. 정부나 우리나 사실 똑같은 거 아닌가? 입으로 좋은 얘기만 하는 것은…. (바둑은 승패를 떠나 서로 잘 어우러진 판이 있는데 정치는 그게 안 되나?) 근데 그게 참 묘한 게…, 전날까지 치고받고 싸우면서 ‘죽이네 살리네’ 하더니만 아침에 오면 밤에 합의됐다고 본회의 들어가자는 거야. 그런 거 보면 난 진짜 정신 못 차려…. 이해도 안 되고…. 욕먹는 건 사실인데, 또 누군가는 조금 양보하고 협상하면서 끌고 가더라고. 그런 게 정치인가 싶기도 하고…. ● 최근에 반홍진영 의원 모임에 참여했다는 기사가 났는데….○ 아∼ 그거∼, 포럼이나 세미나에 나와 달라고 하면 시간 되면 웬만하면 구별하지 않고 다 가니까. 전에도 비박 측에서 친한 사람이 뭐 성명 내는데 나와 달라고 해서 ‘네’ 하고 갔더니 그다음부터는 ‘비박이’가 되더라고. 친박 모임에 가면 ‘친박이’가 되고…, ㅋㅋㅋ. 뭐 친박 비박 친홍 반홍 그런 게 다 뭔지….● 숙원 사업이던 ‘바둑진흥법’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람이 뭐라도 하나는 남기고 가야 하는데 그동안 법이 통과가 안 돼 정말 애를 먹었다. 밖에서는 쉽게 봤는데 법 통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정말 몰랐다. 그동안 바둑계는 기업 후원에만 의존해 기업이 안 해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부가 바둑 진흥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해야 한다. 60년 바둑 인생에서 마지막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바둑 격언에 ‘빵 따내면 30집’이라는데…. 누굴, 무엇을 ‘빵’ 따내야 판이 바뀔 수 있을까. 드루킹? 사면초가에서 그런 수가 있기는 한 걸까.● 홍준표 대표의 막말 때문에 선거운동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람이 많다.○ 아∼, 그 얘기 많지, 많이 들리던데…. 우리 지역구에는 제발 (홍 대표가) 오지 말아달라는 말도 많이 나오고…. 그런데 고칠 수가 없으니까…. (홍 대표만 ‘빵’ 따내면 지지율 30%가 될 거라는 말도 나온다.) 쯧쯧쯧, 뭐… 잘 모르겠고…, 나름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으니까…. 그걸 막을 수는 없겠지. (막지는 못해도 조언은 할 수 있지 않나.) 안 들으니까…, 들을 거라면 진즉에 들었겠지. 그런데 거참, 그게 없으면 홍준표가 또 아니지. 싸움 바둑이 갑자기 집 바둑으로 가겠나. 지방선거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겠지.● 지난해 취임 초엔 문재인 대통령에게 너무 조급해하거나 욕심 부리지 말라는 조언을 했는데 지금은 뭘 조언하고 싶나.○ 뭐랄까…, 상식적으로 이해 안 가는 변명이 많아지더라고.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건도 ‘당시 국회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사임토록 하겠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너희들도 했는데 왜 문제 삼느냐는 것인가? 그럼 왜 역대 인사청문회에서 숱한 총리 장관 후보들이 낙마해야 했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법성을 질의한 것도 한 개를 빼면 선관위 소관이 아닌 내용이고…. 그걸 떠나 굳이 누구에게 물어봐야만 알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나.● 고향이 전남 영암인데 한국당 국회의원이 돼서 뭐라 하는 사람은 없나.○ 처음에는 왜 한국당 가느냐고 말이 많았지만 난 그런 걸 안 따진다. 따질 이유가 뭐야. 이 좁은 나라에서…, 그것도 반으로 쪼개졌는데 또 영호남? 합쳐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 안 되는 소리지…. (그래도 그런 정서가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궁지에 몰리면 꼭 그 소리가 나오더라고. 한국당이든 민주당이든 영호남을 따지는 거야. 전라도 ××, 경상도 ×× 그러면서 표 몰아달라고…. 그래서 지역감정을 풀 수가 없는 것 같아. 사람 좋고 일 잘하면 되지 어디 태생이 뭐가 중요한가? 난 그런 게 마음에 안 든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구치소에 있다. 어떻게 푸는 게 좋을까?○ 해법은 난 잘 모르겠고…. 뭐 법대로 처벌받는 건 받는 건데…. 그래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꼭 수갑 찬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지…. 모든 범죄자를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도망갈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 장면을 꼭 보여주고 망신을 시켜야 하는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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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돈이 된다면 뭐든지… 개들의 ‘개만도 못한 삶’

    개 번식장, 유기견 보호소, 개 농장, 도살장…. 처음 듣는 이름도 아니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의 잔인함과 ‘사람은 돈이 된다면 정말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동물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더 섬세한 사람들은 인간 혐오를 느낄 수도 있을 듯. 이 책은 갈 곳이 없어진 강아지 ‘피피’를 기르게 되면서 유기견에게 관심을 갖게 된 저자의 생생한 고발 르포다. 2013년부터 동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유기견 보호소 운영자, 육견업자, 번식업자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국내 개 산업의 놀랍고도 처참한 실태를 그려냈다. 30년 경력의 한 육견업자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왜 이 산업이 그토록 잔혹하고 비정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존속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누가 모르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다못해 개 사료까지도 식당의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주기 때문에 되레 ‘돈을 받고’ 가져온다는 것. 중간 마진을 줄이기 위해 직접 개를 잡아 식당에 납품하고, 어떤 방법으로 도살해도 개는 축산물이 아니기 때문에 법에 걸리지도 않는다. 육견업자 김모 씨가 설명하는 도살 과정을 보면 손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다. 읽기는 매우 불편하지만 이 같은 현실을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해결책도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이 초등학교 교육 교재로 사용된다면 아마 몇십 년 후 우리나라 반려견 문화나 생명을 대하는 수준은 월등히 올라가 있을 것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문득문득 살짝 보이는 행간에서 그래도 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어르신도 개고기 드세요?” 한참 만에 내가(저자) 물었다. 김 씨(육견업자)는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본 뒤 먼 산으로 눈을 돌렸다. “안 먹어.” “왜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개 짖는 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본문 중에서)’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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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교육감, 조희연에 ‘안철수 멘토’ 도전… 보수후보 단일화 움직임

    6·13 교육감 선거의 시도별 구도는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예비후보들의 물밑 움직임은 활발하다. ○ 서울, 2파전이냐 3파전이냐?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보수 진영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사실상 2파전 또는 3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후보 단일화를 추진 중인 진보 진영은 20일까지 후보 등록을 마감하고, 다음 달 5일 경선 결과를 발표한다.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과 이성대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장, 최보선 전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조 교육감은 20일 후보등록일을 전후해 교육감직을 사퇴한 뒤 경선에 참여할 계획이다. ‘좋은 교육감 추대 국민운동본부(교추본)’와 ‘우리 교육감 추대 시민연합(우리감)’을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를 추진 중인 보수 진영에서는 두영택 광주여대 교수, 신현철 전 부성고 교장, 최명복 한반도평화네트워크 이사장 등이 단일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한 이준순 전 서울시교원단체총연합회장과 곽일천 전 서울디지텍고 교장도 보수 진영 후보로 도전장을 낸 상태. 이 밖에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등도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멘토 출신인 조영달 서울대 교수(사회교육과)가 출마를 선언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지낸 조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교육공약을 입안했다. 보수 진영이 단일 후보를 낼 경우 조 교수와의 막판 단일화 여부도 관심사다. 현역 프리미엄에, 진보 진영의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조 교육감에게 맞서려면 범중도보수 진영이 결집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다. 다만 양측의 단일화는 “희망사항일 뿐 쉽지 않다”는 전망이 더 많다. 조 교수도 이미 “진보·보수 어느 쪽과도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다자 대결 전망되는 경기 경기에서는 임해규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현재 당적 없음)이 일찌감치 보수 진영 단일 후보로 추대됐다. 이재정 현 교육감은 진보 후보 단일화에 불참을 공언한 상태. 이 교육감은 재선 도전을 선언하면서 “교육계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2014년 이 교육감으로의 단일화를 지지했던 전교조 경기지부는 경기도교육청과의 단체협약 갈등으로 지난해 11월 “이 교육감은 더 이상 진보 교육감이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진보 진영 후보 단일화는 구희현 전 전교조 경기지부장, 송주명 한신대 교수, 이성대 신안산대 부교수,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범진보로 분류되는 배종수 서울교육대 명예교수는 독자 노선을 걷기로 했다. 배 교수는 진보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이념 성향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편은 아니다. 이 때문에 경기도교육감 선거는 일단 이 교육감과 진보 진영 단일 후보, 보수 진영의 임 후보, 기타 등 다자 구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2, 3일 중부일보가 여론조사기관인 타임리서치에 의뢰한 조사 결과(1500명·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에 따르면 이재정 24%, 송주명 9.5%, 정진후 7.7%, 임해규 4.5%, 배종수 4.5%, 이성대 3.5%, 구희현 3.2% 순이었다. 진보 진영 단일화에 참여한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포함하면 23.9%로 이 교육감과 비슷하다. 이 교육감과 진보 진영 단일 후보가 끝까지 완주하고 보수 진영이 결집할 경우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중도-진보의 각축장 인천, 부산 인천은 진보 성향의 전임 이청연 교육감이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된 게 변수다. 교육감 권한대행을 맡아온 박융수 전 부교육감은 출마를 선언했지만 아직까지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성향을 거부하고 중도 노선을 걷고 있다. 박 전 부교육감은 양 진영의 단일화에도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인천은 현재까지 보수 진영의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고 있지 않아 4파전 양상을 띠고 있다. 보수 단일 후보를 추진했던 ‘바른 교육감 후보단일화 추진단(바른위)’과 교추본은 고승의 덕신장학재단 이사장을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반면 ‘인천교육감 후보단일화추진통합위원회(통합위)’는 최순자 전 인하대 총장을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진보 진영은 도성훈 전 전교조 인천지부장을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진보 진영의 후보 단일화 경선에는 5만4000여 명의 시민이 시민참여단으로 참가했다. 보수 2, 중도 1, 진보 1의 4파전 양상. 이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수가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2014년 때처럼 보수가 분열돼 패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2014년 선거에서 진보 진영은 이청연 전 교육감으로 단일화해 32%를 얻은 반면에 보수는 이본수(27.4%), 김영태(20.8%), 안경수 후보(19.9%)로 표가 분산돼 패했다. 부산도 보수-중도-진보 후보 간의 경쟁으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재선 출마를 선언한 김석준 현 부산시교육감은 진보 성향. 예비후보로 등록한 함진홍 전 신도고 교사는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반면 좋은 교육감 후보 추진 부산운동본부는 김성진 부산대 교수를 보수 단일 후보로 추대했다. 일단 보수 진영은 단일화 과정에서 탈락한 임혜경 전 부산시교육감, 이요섭 전 부산전자공업고 교장이 김성진 단일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결집하는 모양새라 보수-진보 간 치열한 선거전이 예상되고 있다.○ 복잡한 울산, 조용한 광주 7명으로 가장 많은 예비후보가 등록한 울산은 다소 복잡한 양상이다. 보수 성향인 전임 김복만 교육감은 선거법 위반과 뇌물수수 등으로 지난해 12월 사임한 상태. 보수 진영에서는 권오영 전 울산시의회 교육의원, 김석기 전 울산시교육감, 박흥수 전 울산시교육청 교육국장 등이 출사표를 냈다. 교추본, ‘21세기 울산미래교육연대’, ‘우리 교육감 추대 시민연합’ 등 보수단체는 이달 말까지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현재까지는 각 후보가 단일화에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진보 진영은 노옥희 전 울산시의회 교육의원과 정찬모 전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 간의 단일화가 관건이다. 노 교육의원은 민주노총 울산본부, ‘울산 희망교육감 만들기 시민네트워크’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장평규 울산혁신교육연구소 대표와 구광렬 울산대 교수는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까지 울산시교육감 선거는 다른 지역처럼 보수-진보의 2파전 또는 보수-중도-진보의 3파전이 될지, 아니면 단일화에 모두 실패해 다자 구도로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양상이다. 대구는 현 우동기 교육감이 일찌감치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보수 진영은 강은희 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단일화를 이뤘고, 진보 진영에서는 김사열 경북대 교수, 홍덕률 전 대구대 총장이 단일화를 추진할 계획이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다. 광주는 이정선 전 광주교대 총장, 정희곤 전 광주시의원, 최영태 전남대 교수가 출사표를 냈다. 여기에 현 장휘국 교육감이 3선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광주는 장 교육감과 이 전 총장이 시민경선 불참을 선언한 데다 진보-보수 대결도 없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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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전세계 술 맛본 애주가 “소주, 풍미 없이 달달해”

    프루노, 그라파, 비터스, 페르넷, 셰리주, 마데이라, 괴즈, 압생트 미드, 말레트. 이 책은 술을 정말로 사랑하는, 자칭 애주가라고 하는 저자가 자신이 맛본 전 세계의 술에 대한 이야기다. 정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술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사케 위스키와 중국의 백주(Baijiu), 우리의 소주도 당당하게 출연한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소주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소주에 대해 ‘한국의 진로 소주가 단일 브랜드 판매량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술’이며, ‘연속 증류와 희석으로 만든 한국 소주는 별다른 풍미가 없는 달달한 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달달함은 첨가물 때문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가 이 정도의 미각을 가졌다면 평범한 애주가 수준은 분명 넘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맨해튼의 소주 하우스에서 팔고 있는 ‘오이 소주’, 백세주와 소주를 반씩 섞은 ‘오십세주’까지 소개돼 있다. ‘연장자가 따라준 술을 마실 때 직접 바라보지 말고 옆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마셔야 한다’, ‘잔이 비었을 때는 직접 따라 마셔서는 안 되며, 따라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한국식 주도를 언급할 때는 ‘함께 마시며 가르쳐준 사람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도 살짝 든다. 방대하고 다양한 술 종류를 고려하면 상당히 많이, 깊게 알고 썼다는 느낌. 하지만 술이 그 나라의 수백∼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만들어져 온 ‘문화’라는 것을 고려하면 각각의 술에 대한 분량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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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공무원이 연애질한다고 각하가 대로해서… 잘렸어”

    《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지던 1970년대, 미국에는 ‘형사 콜롬보’가 있었고 우리에게는 ‘수사반장’이 있었다.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날리며 번득이는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던 정의의 사도. 범죄에는 가차 없으면서도 물질만능사회가 빚어낸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빌딩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길어지지∼”라는 명대사를 남긴 사람. 캬∼. 그가 25년 만에 연극배우로 돌아왔다.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바람불어 별이 흔들릴 때’에서 ‘미지의 노인’역으로. 》  ―2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1993년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각색한 ‘어느 아버지의 죽음’ 이후 처음이니까 그 정도된 건데…. TV 하느라 시간이 그렇게 안 됩디다. 대본도 이것저것 받아봤는데… 굉장히 후회스러운 일이지요…. 연극이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이제 내 나이도 있으니 한 번 모든 것을 들여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내가 연극에서 시작했으니까 그동안 못 다한 빚을 갚고 싶은 생각도 있고….”(그는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했다. ‘바람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자신이 우주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한 노인이 만나는 지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연극을 통해 말하고 싶은게 있다면…. “사람들이 많이 아프잖아요. 다들 삶의 의미가 희박해져가는 것도 같고….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가지려고만 하고…. 그게 다 채워질 수가 없는 건데…. 사람은 저마다 빛을 가진 별이에요. 그 별들이 모여 우주가 되는 것이고. 때론 보잘것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나의 삶이 곧 우주라는 걸 이 연극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배우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어떤 방법들이 필요할까를 연극을 통해 호소할 수 있다면…. 그런 사명감이 있죠.” ―교양프로그램을 제외하면 2014년 이후에는 방송 드라마도 안 하셨는데요. “연기를 하면 감독이나 작가로부터 이렇게 해달라는 주문과 지적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모두들 예우만 해주고 별다른 말을 안 해줍디다. 어려워만 하고…. 은퇴는 아니고 그냥 물러남이지요. 후배들에게 불편함이 돼서는 안 되니까요.” (지금 연습에서는 지적을 받습니까?) “혹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지만 참는 건 아닌지…. 지적을 못 받다 보면 왠지 서럽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선생님, 거기는 이렇게 해주셔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은데….”―‘수사반장’ ‘전원일기’ 때와 똑같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 파∼으하하. 요즘도 지방에 촬영 가면 사람들이 ‘당신 구십 넘었지?’라고 묻습디다. ‘그렇게 보여요?’ 하고 되물으면 ‘내가 마흔 몇 살 때 전원일기 김 회장이었으니 지금은 구십도 훨씬 넘은 거 아니오?’라면서요. 수사반장(1971년) 박 반장 역이 서른 하나였고, 전원일기(1980년) 김 회장은 마흔에 했으니…. 지금은 안 해도 되지만 평생 머리에 흰 칠하고 살았을 정도로 아버지 역, 노인 역을 해서겠죠.” ―30대에 노인 역 맡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대학에서 처음에는 연출을 전공했는데 그 당시에는 내 얼굴로 배우 하겠다고 하면 웃었을 때니까…. 근데 연기자들이 노인 역을 못해서 연기 지적을 했는데, 그걸 본 선생님이 ‘최불암 네가 해라’라고 하십디다. 그렇게 시작된 거지요.” ―그 덕분에 한국의 아버지상, 국민 배우로 각인됐는데 아쉬운 점도 있으신가요. “참 해보고 싶은 범죄자 역이 있었는데…. 범죄자의 의식 속에는 성장 배경이나 범행 동기 등 배우로서 연기해볼 만한 요소가 너무 좋은 게 많거든요. 근데 시키지도 않지만 해봐도 별로 효과가 없습디다. 몇 번 해봤는데…. (수사반장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망나니 역도 해봤는데 잘했다는 말은 안합디다. 파∼. 전원일기도 그렇고 너무 이미지가 좋게만 나와서… 그게 사람들 뇌를 아주 고정시켜 놓은 것 같습디다.” ―혹시 멜로드라마는 안 해보셨습니까. 거의 본 적은 없습니다만…. “왜? 한 번 했지요….(이 대목에서 그는 무척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구리 남편’이라고… 뭍에서도 살고, 물에서도 사는….” (제목에서 벌써 느낌이 확 오는데요?) “내가 공무원 남편으로 나오는 일일연속극이었는데 그날은 깜빡 잊고 두고 간 서류를 여비서가 직접 부산까지 가지고 온 내용이었어요. 둘이 태종대에 간 장면이 있었는데…. 난 바바리 깃 세우고, 여비서는 마후라(머플러) 감싸고…. 그날 방송이 나간 뒤에 방송국에서 난리가 나서 빨리 의상 그대로 입고 튀어오라고 합디다. 놀라서 가보니 작가며 PD며 다 나와서 다음 회부터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박정희 대통령이 방송 보고 노발대발했다고….” (왜요?) “국민의 녹을 먹는 국가공무원이 나가서 연애질이나 한다고…. 더구나 자기 여비서랑….” (그냥 드라마일 뿐인데요?) “그냥 드라마인데…. 원래 80회 분량이었는데 10회인가 하고 흐지부지 끝났죠. 그러고 나니까 다시는 연애하는 게 안 들어옵디다. 1969년이었지? 아마?” (박 대통령이 펄펄 날 때였네요) “어이구∼, 말도 못하지…. 무서워서…. 결국 바람 못 피우고 끝났는데 한국 최초의 건전 불륜드라마라고 할까. 하하하. 수사반장도 한 편도 안 빼고 보셨다고 합디다.” ―국사가 다망하실 텐데 매일 본방 사수를 했다고요? “그런 것 같습디다. 1974년인가? 일요일 집에서 그날 방송된 수사반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또 전화가 왔지요. 집사람이 받았는데, 청와대 부속실이라고 합디다. 그땐 부속실이 뭔지도 모를 때니까…. 저쪽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더니 ‘깔깔’ 하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데 갑자기 ‘저 육영수예요’ 하더라고? 그때 나도 모르게 놀라서 탁자를 ‘탁’ 치면서 ‘네!’ 하고 벌떡 일어났지요. 육 여사가 ‘담배를 너무 자주 피우세요’ 하시더라고…. ‘네! 방송에서 도입부, 클라이맥스 때 등 네 번 피우기로 설정했습니다!’ 했더니, 웃으시면서 ‘한두 대만 하세요. 최 선생님 태우실 때마다 이 양반도 따라 피우세요. 그런데 이 양반도 그렇지만 국민들도 다 따라 피우지 않겠어요’ 하시더라고. 멀리서 박 대통령이 ‘쓸데없는 얘기한다’는 말이 들립디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어떻게 되긴, 한두 대로 줄이고 그나마 전원일기부터는 한 대도 안 피웠지요.” ―14대 국회의원도 하셨는데 잘 맞으시던가요. “난 안됩디다. 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진짜 연기자 같고…. 야단만 맞았지요.” (국회의원이었는데 야단을 맞았다고요?) “국회상임위에서 ‘장관께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질의했더니 쉬는 시간에 선배 의원이 불러냅디다. 위아래로 쳐다보면서 ‘장관!’ 하고 세게 불러야지 그게 뭐냐고….” (그때는 여당 아니었나요?) “여당이었는데 그래도 그렇게 야단치라는 거지요. 사실 정치인이 될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정주영 씨를 좋아해서 열심히 찬조연설하고 다녔더니 전국구 의원이 됩디다. 의원이 되는 줄 알았으면 아마 안 했을 텐데….” ―평소 ‘배우란 세상을 비추는 방향판’이라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 “배우도 역시 사회 안에서 의미를 지닌 사람이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거죠. 사회를 걱정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작가들의 펜이 그런 쪽으로 가야 하는데…. 이게 시청률 때문에 쉽지 않지요. 인기를 끌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인기 작가가 돼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갈등 구조를 만들어서 흥미롭게 만들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죠. 그런데 나는 그런 면에서는 좀 달리하고 싶어요. 이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군가 말해줘야 하고 배우도, 드라마도, 연극도 그 소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렇게 해야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내년이면 데뷔 60주년인데 가장 아쉬움이 남는 배역이 있으셨습니까. “40대 중반에 셰익스피어 ‘리어왕’ 역을 맡았는데 기운이 달려 뻗어버렸죠. 수사반장하고 전원일기를 하던 때라 너무 힘들었던 것 같습디다. 연출자가 ‘지금 못하면 결국 못 한다. 꼭 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한 게 지금도 아픔으로 남지요.” (지금 다시 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제는 몸이….”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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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범죄 재범률 14.1%→1.69%로 급감… ‘1인당 18.4명’ 관리인력 태부족

    올 2월 기준 전자발찌 착용자는 전국에 3008명. 성폭력사범이 2406명(80%), 살인 456명(15%), 강도 136명(5%), 유괴 10명(0.3%)이다. 성범죄자만 찰 것 같지만 다른 흉악범도 범행에 따라 재범 우려가 높을 경우 발찌를 채운다. 조두순처럼 상상도 못할 흉포한 성범죄를 저질러야만 채우는 것도 아니다. 기자의 위치 추적을 담당한 법무부 서울남부준법지원센터 백인철 주임은 “지하철에서 엉덩이 서너 번만 만져도 상습성이 인정되면 채울 수도 있다”며 “성범죄 형량이 높다고 반드시 다 차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리적 압박감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전자발찌의 효과는 분명하다. 성범죄 재범률은 제도 시행 전(2004∼2008년 8월) 14.1%였으나 시행 이후(2008년 9월∼2018년 2월) 1.69%로 급감했다. 발찌 훼손도 시행 이후 지금까지 모두 99건(0.38%)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제도 도입 효과는 분명하지만 전자발찌를 채우면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24시간 감시를 해도 늘 보호관찰관이 옆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기로 작정하면 막을 방법은 없다. 또 발찌 절단을 막기 위해 더 크고 무겁거나 강화된 재질로 만드는 것도 인권 등의 문제가 있어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은 관리인력 증원이다. 전국의 전자발찌 착용자를 감독하는 보호관찰관은 160여 명. 보호관찰관 1인당 평균 18.4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산술적인 수치. 서울 남부준법지원센터는 보호관찰관 5명이 80명을 관리하고 있지만 밤에는 야근자 1명이 모두 맡는다. 야근자는 다음 날 쉬기 때문에 실제로는 4명이 80명을 맡는 셈이다. 미국은 전담직원 1명이 10명 미만을 맡고 있다. 이들에게는 공휴일이나 명절이 없다. 야근 다음 날 비번으로 쉬는 날이 있을 뿐이다. 쉬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관리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동시에 출동할 상황이 벌어질 경우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 특히 밤에는 야근자 1명이 전부 맡기 때문에 두 건만 발생해도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도 인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 1인당 100명 정도가 적정 인원이지만 현재는 320여 명을 맡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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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엔 큰 액세서리 찬 느낌… 갈수록 엄청난 압박감

    “어떻게 감시하기에 전자발찌를 차고도 성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끊을 수 있으면 뭐 하러 채워? 좀 더 강하게 못 하나!” 최근 성범죄 전과자가 전자발찌를 끊고 일본으로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발찌 착용자가 해외로 도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찌 착용자의 성범죄 재범이나 발찌 훼손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여론은 당국의 안일한 대처를 질타한다. 전자발찌는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정말 대응이 안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또 어떤 느낌일까? 피상적인 통계나 자료보다 피부로 느껴보기 위해 법무부 협조를 얻어 발찌를 차고 위치추적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전자발찌 제도라 부르지만 정확한 이름은 ‘전자감독제도’다.○ “왼발 찰래? 오른발 찰래?” 마음속에 음란마귀가 들었나. 차고 난 직후 느낌은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살 충동까지 생긴다”던 설명과 달리 조금 큰 액세서리 발찌를 찬 느낌이랄까? 착용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개인 신상은 물론이고 재산, 채무, 집의 방 수, 음주 및 흡연 시작 나이, 가족 및 지인의 신상 정보와 친밀도까지 5장 분량의 신고서를 깨알같이 적어야 했다. 여기에 A4용지 13장 분량의 질문지에 답해야 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배우자, 가족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태도 등도 묻는다. 그리고 ‘부착명령 집행 전 의무사항 고지 확인서’와 ‘전자장치 수령확인서’에 서명. 임의로 전자발찌를 끊거나 손상시키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 등에 처해진다는 내용이다. “기자님, 왼발? 오른발?” ‘이건 뭔 소린가. 아무 데나 채우지….’ 전자발찌 착용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발찌가 노출되는 것. 오른손잡이는 주로 오른발을 많이 쓰기 때문에 그만큼 노출되기가 쉽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덜 쓰는 발에 찬다고 한다. 채운 뒤에는 제대로 채웠다는 증거로 인증 샷도 찍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는 발에 채우는 전자발찌, 항상 소지해야 하는 휴대용 추적 장치, 재택 감독 장치로 구성된다. 휴대용 추적 장치가 발찌를 감지해 위치추적 관제센터로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이 기기는 늘 휴대용 추적 장치를 갖고 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어 올 하반기부터는 둘을 합친 일체형이 보급된다고 한다. 발찌에는 센서가 있어 끊거나 훼손하면 바로 관제센터로 신호가 간다. 재택 장치는 충전 기능과 함께 착용자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해주는 장치다. 기자에게는 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외출 금지가 부과됐기 때문에 이 시간에 집 밖으로 나가면 이 기기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기기는 전원만 뽑아도 경보가 센터로 전달된다. 공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발찌와 휴대용 추적 장치가 3∼4m 이상 떨어지면 관제센터로 신호가 간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 휴대용 추적 장치를 자리에 두고 5m 정도 떨어진 화장실에 갔더니 2, 3분 후 발찌에 진동이 오고 바로 전화가 왔다. “관제센터인데, 어디세요?” “화장실인데 깜빡했어요.” “빨리 돌아가세요.” 마무리할 때까지 진동은 1, 2분 간격으로 세 번이나 울렸다. ‘아, 이렇게 24시간 감시되는구나.’ 착용자가 피해자 거주지 등 출입제한 지역에 들어가거나, 일정 시간 이상 발찌와 휴대용 추적 장치가 떨어져 있으면 일단 전화로 고지를 하고 개선되지 않거나 연락이 안 되면 보호관찰관과 무술 유단자인 무도 실무관으로 이뤄진 신속대응팀이 출동한다. 보호관찰관들은 주기적으로 착용자들을 만나 면담을 하고 상황을 파악하는데, 위험 정도가 높은 사람들은 불시에 방문하기도 한다고 한다.○ 생활을 옥죄는 고통감 착용 직후와 달리 발찌 하나 찼을 뿐인데,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출근하기 위해 평소 입던 슬랙스 바지를 입었더니 ‘오 마이 갓∼’ 바지가 발찌를 덮지 못해 고스란히 보였다. 이대로 나가면 ‘나 성범죄자요’ 하고 외치고 다니는 꼴이다. 지하철에 자리가 났지만 발목이 보여 앉을 수도 없었고, 참석한 모임 자리가 방인 것을 보고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나오기도 했다. 이 모임은 여자가 절반인데, 의자에 앉아도 발목이 보이거늘 하물며 방이면…. 안 신어보고 사면 모를까 신발을 사기도 어려웠다. 신고 벗을 때마다 발목이 보일까 봐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어보지도 않고 사는 걸까. 2년 동안 다니던 헬스클럽도 옮겼다.(헬스클럽 만기일이 며칠 안 남아 옮기는 데 부담은 없었다.) 체육복 긴바지를 입고, 샤워는 집에 와서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땀에 젖은 바지가 말려 올라갈 줄은 몰랐다. 바로 내렸는데 누가 봤을까 싶어 가슴이 콩닥콩닥, 얼굴이 화끈화끈…. 실제로 헬스클럽에서 발찌에 대해 묻거나 말을 건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 봐 봐’ ‘저거 전자발찌 아냐?’ ‘멀쩡하게 생긴 놈이….’ ‘뭐? 우리 헬스클럽에 강간범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별것 아닐 수 있는 시선도 의심과 경멸로 느껴지고, 옆에서 운동하던 여성 회원이 자리를 뜨는 것도 발찌 때문으로 느껴졌다. 운동을 할 만큼 해서 간 것일 수도 있는데…. 실제 착용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게 착용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알려졌을 때 닥칠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극소수 지인에게 알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알릴 수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뒤에 올 것을 감당할 수 없기에…. 기자가 만난 착용자 중에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에게 아직 말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미리 말하면 헤어질 것 같고, 그렇다고 말 안 하고 할 수도 없어서다. 10년을 차야 하기 때문에 끝난 다음에 할 수도 없다. 그는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주변에 착용 사실을 알린 사람들도 대개 남자들은 별 말 안 하지만 여자들은 표정이 달라지고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범죄가 아니라 폭행이나 강도로 교도소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착용자는 “(발찌 때문에) 잠시도 내가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 수가 없다”며 “TV에 관련 뉴스라도 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조마조마해진다. 차라리 다른 중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 숨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성범죄자라도 교도소 안에서는 발찌를 차지 않는다. 발찌는 출소 후 보호관찰 개념으로 부과되는 보안처분이기 때문이다. 죄에 따라 다르지만 부착 기간은 1년에서 최장 30년. 5년 이상 부착자가 전체의 67% 정도다. 한 착용자는 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는데 병원에서 X레이를 찍으려 하자 한사코 거부하고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성범죄 유형에 따라서는 특별한 제재가 부과되는 경우도 있다. 한 전자발찌 착용자의 경우 거주지를 지나는 특정 번호의 버스 안에서만 상습적으로 추행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해당 버스 승차가 제한됐다. 승차 여부는 이동 경로를 알기 때문에 보호관찰관이 불시에 방문해 확인한다고 한다. 이것저것 신경 쓰는 것이 너무 피곤해 주말 약속을 모두 연기했다. 집에도 말을 안 했더니 거실 나가는 것조차 피하게 된다. 주말 내내 방에서 영화만 봤다. 일주일도 이런데 10년, 20년을 이렇게 산다면…. 착용자들이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생활을 옥죄는 느낌. 법무부에 따르면 2008년 9월 시행 이후 지금까지 50여 명의 발찌 착용자가 심리적 부담 등 여러 이유로 자살했다고 한다.○ 착하게 살자 체험 기간 중 받은 성범죄자 단체 교육. 대체로 이런저런 애로점을 진지하게 토로하는데 한 착용자는 “전혀 사는 데 상관없어요. 뭐 신경 안 써요. 한쪽에만 차니까 불편한데 다른 쪽으로 옮겨주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착용자는 누군가 이성을 사귀는 문제를 어렵게 꺼내자 “그러니까 여자를 만나지 말아야지, 나 봐! 안 만나잖아”라고 말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피해자들은 생각이나 하고 사는지…. 100% 완벽한 제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자발찌도 가끔 사고가 발생한다. 최근 일본으로 도주한 착용자의 경우 휴대용 위치추적기와 분리돼 경보가 울리자 차에 두고 내려서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휴대용 위치추적기는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위치 파악이 안 되는 상황. 그리고 공항에서 바로 발찌를 끊고 일본으로 출국했다. 위치 추적은 안되지만 발찌를 차고 있으면 검색대에 걸리기 때문이다. 보호관찰은 말 그대로 보호관찰이지 감금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가능해야 하지만 쉽지는 않다. 기자에게 부과된 오후 11시 이후 외출 금지도 단순히 그 시간에 안 나가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야근도 있고, 갑작스러운 출장도 생기기 마련. 이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일시적으로 외출 제한 시간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사고가 나면 늘 “그럴 거면 뭐 하러 발찌를 채우느냐”고 뭇매를 맞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부착했을 때와는 달리 갈수록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정도가 심해졌다. 방바닥에 누우면 발목이 발찌에 눌려 편하게 자기도 힘들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전자발찌를 떼는 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인간 본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차-카-게 살자. 꼭.’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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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가 공격당하기 전에 너를 저격해야 한다’고 협박했죠”

    《 눈이 펑펑 내린 3월의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섭외한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작은 찻집을 찾았다. 커피를 주문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근디 누굴 인터뷰하는겨?” “밴디 리라고요, 미국 대학교수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성에 대한 책을 쓴 분이에요.” “글치…, 갸가 많이 위험허지….”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란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다(한국은 지난달 말). 이 책은 같은 해 4월 열린 ‘예일콘퍼런스’의 발표문과 이후 기고문을 모은 것이다. 미국 최고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심리학자 27명이 트럼프의 정신건강을 기술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글을 모아 책으로 펴낸 이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예일대 의과대학원 법·정신의학부 임상조교수인 밴디 리다. 》  ―트럼프의 정신상태에 대한 첫 전문 서적인데, 미국에서의 반응은 어느 정도였나. “출판 이틀 만에 재고가 다 나가고, 아마존에서는 다시 인쇄할 때마다 2시간 만에 매진이 됐다. 이후 트럼프 백악관의 뒷이야기를 다룬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가 나오면서 우리 책이 다시 관심을 받았다. (트럼프가 미국 출판업계를 먹여 살린 건가?) 하하하, 워낙 그의 정신상태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까…. 그 흐름을 잘 탄 것 같다.” ―그가 왜 출판금지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 “책에 관심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책 자체를 몰랐을 것 같고…. 이 책이 유명해지자 어느 날 트위터로 책 내용과 소문을 들은 것 같다. 그 다음 날 가장 먼저 트윗한 것이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인지, 좋은 사람인지를 소개한 것이었다. ‘화염과 분노’는 배포를 막으려고 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출판을 예정일보다 3일 앞당겼다. (트럼프가 책을 읽긴 할까?) 거의 안 읽을 것 같은데…, 솔직히 자기 자서전인 ‘거래의 기술’조차 다 읽었을지 의문이다. 이 책의 대필 작가인 토니 슈워츠조차 우리 책에 트럼프의 문제점을 기고했다.” ―책의 의도와는 별개로 대중은 트럼프가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우리는 트럼프가 어떤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수십억 명의 생사를 좌우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명백하게 위험한 정신장애 징후를 보일 때 전문가로서 경보를 울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가질 수 있을 법한 정신질환을 총망라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초등학생이 총을 들고 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인가. “사람이 의사결정을 할 때 논리와 합리에 의한 경우도 있고, 병리적인 양식으로 할 수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하는 일은 그것을 구분하고, 그 병리적 양식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가 병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말인가?) Right! 정신장애와 인지적 장애, 심지어 신경학적인 장애까지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지는 않나?) 그가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갈리는 부분은 이런 식으로 공개하는 것이 직업윤리에 어긋나느냐 아니냐는 것뿐이다.” ―자기 이름을 비행기에 대문짝만 하게 써 붙이고 다니는 심리는 왜 그런 건가. “정신과 중 내 전공이 폭력이다. 그래서 내 환자는 모두 폭력범이고 임상을 하는 곳도 교도소다. 그 안에 트럼프와 같은 특성을 보이는 사람이 수천 명 있다. (트럼프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교도소라는 말인가?) absolutely! 트럼프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절대 권력을 갈망하고, 자기를 과시하는 행동을 한다. 보통은 이런 특성들이 사회 내에서 제한되는데 트럼프는 운과 함께 여러 의심스러운 방법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고, 정치적인 힘도 가지다보니 지금까지는 그런 충동에 충실해도 법적인 처벌을 면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지난달 플로리다 더글러스 고교 총기사건 후 트럼프는 총기 규제보다 교사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당한 주장인데 실제 플로리다주가 7일 교사를 무장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2012년 28명이 사망한 코네티컷주 샌디훅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때도 워낙 비극적이어서 차라리 교사를 무장시키자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황당해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상처럼 여겨지고 있다. ‘악성의 정상성’이 벌어지는 것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에서 증오범죄와 학교 폭력이 늘었는데 아이들이 ‘대통령이 이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며 폭력을 가한다. 백인우월주의에 의한 살인도 두 배가량 늘었다. (임기가 반도 안 됐는데?) 1년 조금 됐다….” ―트럼프가 최근 퇴임을 26시간 남긴 앤드루 매케이브 FBI 부국장을 전격 경질해 은퇴 연금 혜택도 못 받게 했다. 이런 행동에 대한 의학적 병명이 있나. “사디즘(sadism)이다. 남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희열을 느끼는…. 선거기간에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지자들조차 유혹해 끌어들여, 조종하고 이용하면서 재미있어 하는….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사람을 조종할 수 있구나’ 하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그런 행동이 돈을 벌거나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거짓말을 자주 하지만,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도 안 한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한다. 오바마도 하고…. 하지만 거짓말 횟수를 1년 단위로 세야 하는 사람과 하루는 완전히 다르다.” ―트럼프 하면 전쟁이 연상되지만, 린든 존슨, 부시 부자 등 전쟁을 일으킨 대통령은 많다. 클린턴의 지퍼게이트도 제정신이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유독 트럼프만 더 위험하다고 봐야 하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정신장애가 많고,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정말 너무 우려스럽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뇌중풍, 치매를 앓은 대통령도 있었지만 이것은 일반인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경우 일반 대중은 현재 상태가 의학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심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 알기 어려운 정신장애 신호들을 우리 전문가들이 포착한 것이다.” ―그가 확실히 위험하다고 해도, 그 위험을 막기 위한 무슨 방법이 있나. “고위 공직자나 군 요직에 임명되는 인사들은 그럴 능력이 되는지를 검증한다. 그런데 이들 모두를 관장하는 대통령에게 같은 절차가 없다는 것은 너무 큰 결함이다. 헌법에 폭군이 생겨나지 않게 예방하고, 만약 생기면 끌어내릴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현재 정치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탄핵도 가능성이 희박하고…. 지금은 가능한 한 모든 법과 제도를 통해 그가 가진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억제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출간 후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발은 없었나. “일부 지역 신문에서 나와 공저자들을 비판하는 기사가 났다. 개인적으로는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많이 받았다. 내가 국회의원들에게 트럼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브리핑을 했다는 뉴스가 나간 뒤 협박 때문에 한 달 동안 학교에 출근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사무실 주소, 연락처 등이 다 공개된 상황이었다. 인터넷에는 ‘이 사람을 저격해 살해해야 한다. 그가 트럼프를 공격하기 전에’라는 협박 선동도 있었다. (KKK일까?) 하하하. 한 달 만에 사무실에 나가니 편지와 카드, 꽃 초콜릿 같은 선물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용기를 내준 데 대해 감사하고 고맙다고…. 또 협박받고 있는 것을 위로한다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협박보다 양도 질도 훨씬 감동적이었다.” ―트럼프가 치료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늘, 환자는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경우다. 지금 트럼프의 정신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공허함이다. 자신이 굉장히 취약하고 약하다는 생각이 내면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과대포장하고 허풍을 떤다.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자극하고 핵무기를 언급하는 이유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함으로써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계속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의 동의 없이 치료를 강행하는 수밖에 없다. 아예 감금시켜 치료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도 아닌 미국 대통령을 어떻게 감금 치료할 수 있나. “모르는 일이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안 오리라는 법은 없다. (정말?) 지금 너무나도 불안한 상태인데…, 트럼프가 점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 같은 것으로 트럼프가 기소될 위험이 굉장히 농후하다. 만약 기소가 된다면, 그래서 구금이 된다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외에도 푸틴, 두테르테, 시진핑 등 소위 ‘스트롱맨’들이 한 시점에 출현한 게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다. 세계화가 더 고도화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불평등 자체가 폭력의 한 형태다. 모든 범죄와 병으로 인한 사망을 다 합쳐도 불평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죽음이 10배나 더 많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변화가 생긴다. 폭력적인 체제가 탄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그게 세계사적 흐름이라면… 트럼프만 막는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가장 시급하고 큰 불이니까…. 트럼프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고…. 지금의 혼란과 무질서에서 트럼프의 부상은 하나의 증상이지만, 다시 원인자가 되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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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조금씩 줄이겠다고? 술은 그런게 아니야

    ‘그만 좀 마셔야지’라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비가 와서, 승진을 해서, 승진에서 누락돼서…. 이 책은 그렇게 시나브로 젖어 들어가 거의 알코올 중독 상태까지 이른 저자가 음주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온 이야기다. 당연히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빠져나오는 방법’이겠지만 허무하게도 ‘방법’은 특별한 게 없다. 그저 단칼에 ‘안 마시기 시작하는 것’뿐. 그 대신 저자는 ‘음주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착각’과 ‘금주로 인해 할 수 있게 된, 미처 생각 못했던 것’을 강조한다. 음주가 우연에서 습관, 습관에서 문제로 진행되는 기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고, 술을 끊고 나서도 음주에 익숙해진 뇌 구조는 평생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 따라서 일정 기간 금연했다고 흡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흡연에서 못 빠져나오듯이, 술도 절주로 점차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술이 열정과 도전으로 꽉 채워져야 할 인생의 골든타임을 소멸시킨다고 말한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지금보다 더 승진했다거나, 통장 잔액이 늘었거나,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났을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지금보다는 자신을 위해 더 많이 시간을 썼을 테고 그 만큼의 결과는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실제 저자는 술에 의지해 살던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마감시간까지 마치도록 계획하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점심시간에 요가하기 같은 것들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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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친척이 결혼하면 저도 10만원보다 더 내야죠”

    《 당초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의 시행령 개정 효과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2016년 9월 시행 이후 농수축산 농가의 경제적 피해가 크다는 민원이 거세지자, 정부와 국회는 ‘법 취지를 후퇴시킨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농수축산물 선물비와 경조사비 상한액을 수정했다. 개정안은 올 1월 17일부터 시행됐고, 얼마 후 대목이라는 설 연휴가 있었다. 그런데…. ‘그분’(53·전 도지사) 사건이 터지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질문의 선후(先後)와 주부(主副)도 바뀌었다. 》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오피스텔 편의를 제공받은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4억1000만 원 상당의 이 오피스텔은 그의 친구 S 씨가 운영하는 건설사 소유인 것으로 확인됐다. S 씨는 본보 통화에서 “서울에 출장 왔을 때 필요하면 이용하라고 출입카드를 줬다”고 밝혔다) “법 위반 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겠지요. 단지 아직은 오피스텔 사용에 대한 대가 지급 여부, 수수한 금품 등의 가액, 당사자 간의 직무관련 여부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 수 없어서 단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고발한 혐의는 ‘업무상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간음과 추행’이고, 아직까지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고발한 사람은 없는데…. “고소 사실 외에 추가로 위반 사안이 발견된다면 수사기관의 인지 내지 신고·고발을 통해 조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수사기관이 하지 않는다면 청탁금지법상 개인이나 시민단체 등 누구든지 법 위반 행위를 신고할 수도 있고요.” ―안 전 지사는 이미 사임했는데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되나요. “법 적용은 행위가 벌어졌을 때를 기준으로 하니까 이후 그만뒀어도 청탁금지법 적용에는 상관이 없겠지요.” ―공무원 비리가 발생했을 때 “왜 징계하지 않느냐”고 하면 자주 듣는 말이 “사직해서 기관이 징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안 전 지사도 사직서를 제출한 바로 다음 날 도의회가 수리했지요. 독일은 사직해도 기관이 징계할 수 있다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않는지요. “퇴직제도가 징계 회피 수단으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그걸 막기 위해 공무원이 퇴직을 희망할 경우 징계사유가 있는지 감사원 검찰 경찰에 확인해야 한다는 게 국가공무원법에 있습니다. 그래서 혐의가 확인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 연금같은 부분도 결국 나중에 불이익을 받게 되겠지요. 물론 장기적으로는 퇴직으로 인한 징계 실효성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있다고 보이네요.” ―올 1월부터 5만 원이던 선물 상한액을 농수축산물에 한해 10만 원으로 완화했습니다.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청탁금지법을 완화해 준다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특정인의 사면을 요청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명절 때 우리 농수산물을 차례에 올리고 선물을 주고받는 관행이 있었으니까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농가와 정치권에서 나오긴 했죠. 사실 화훼농가는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법은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데 일부라 해도 심대한 타격을 받는 분야가 있다면 그 부분은 정치적·정책적으로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완화해준 경제적 효과는 나타났습니까. “아직 두 달도 안 돼 분석하기는 너무 이른 것 같고…, 충분히 시간이 지나도 아마 이 법 개정으로 얼마만큼 효과가 있는지 엄격하게 분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수에 미치는 영향은 세계 경제 상황, 자유무역협정(FTA) 등 많은 요인이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늘 한 말이지만, 농업 부문의 어려움은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지 권익위 차원에서 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청탁금지법으로 내수를 진작시키거나 농가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은 한계가 있지요….”(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설 연휴에 비해 올 설 기간 축산 과일 수산 등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의 판매는 17.4%, 5만∼10만 원대 선물세트 판매는 18.7% 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법 개정 효과 때문인지, 다른 요인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법이 없었을 때도 명절에 선물세트가 집으로 오는 국민이 얼마나 됐을까요. 더 큰 혜택은 농가 소득을 핑계로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 가져간 것 아닌지요. “시행령 개정으로 한우가 더 팔리고, 굴비 판매가 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사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경제지표로 보면 내수 진작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만약 이런 점이 확인이 된다면 이제 더 이상 (법 때문에) 가액을 조정하라는 말도 나오지 않겠지요….” ―청탁금지법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이 많습니다. “모든 국민이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농수축산물은 10만 원), 경조사비 5만 원을 적용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법 적용 대상이 아닌 사람은 얼마를 주고받든 상관없습니다. 또 법 적용 대상자들도 받는 것이 안 되는 것이지, 직무 관련성이 없는 친구에게는 50만 원을 주든 100만 원을 주든 상관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러셨나요?) 물론이죠. 제 친척이 결혼하면 저도 10만 원보단 더 내야죠. 하하하.” ―전임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특별히 당부한 것이 있습니까. “취임하고 몇 차례 뵀는데…, 당초 정부안에 있었던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규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빠진 게 좀 아쉽다고 했습니다.”(이 규정은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나 가족이 인허가, 계약, 채용 등에서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부정청탁금지와 함께 청탁금지법의 양대 축이었으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제됐다) ―제정 때도 논란이 있었지만 적용 대상을 꼬리에 꼬리를 물어 확장시키면 법의 명확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지요.(정부 원안은 국공립학교만 있었으나 형평성을 이유로 사립학교가 포함됐다. 언론사도 공직유관단체인 KBS, EBS만 대상이었으나 같은 이유로 모든 언론사로 확대됐다) “그런 부분이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일단 헌법재판소가 대상 확대가 과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공직자만 대상으로 했다면 법의 명확성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가지고 성찰하는 데 기여하기는 쉽지 않았겠죠.” ―한쪽에서는 청렴을 외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2016년 공무원 소청심사 인용률이 36.2%에 달할 정도로 징계를 완화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소청심사제도는 공무원 또는 교원이 징계를 받은 경우 이에 대한 취소·감경을 요청하는 제도. 인용률 36.2%는 소청 신청자 중 36.2%가 징계 감경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전에 저도 교원징계재심위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제도가 아마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은 경우의 구제 차원 제도여서…. 아마 원 처분보다 더 센 처분을 할 수는 없게 돼있을 겁니다. 문제는 문제지요. 우리 위원회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요청이 공직자 부패를 엄격히 처벌해달라는 것입니다. 일벌백계, 원 스트라이크 아웃 등…. 그래서 2014년 부패공직자 현황 공개, 징계 감경 금지 등 ‘부패행위 처벌 정상화 방안’을 권고한 적도 있는데…. (소청심사위는 유형별 감경률 통계조차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경우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아래 들어가 있죠. 취지 자체가 교원 권익을 위한 입장이라 이런 구조적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가장 큰 문제가 청탁에 의한 채용이고, 이것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채용비리를 뿌리 뽑겠다면서 한편으로는 낙하산 인사를 계속하는 것은 안 맞는 것 아닌지요. “핵심적인 질문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페어플레이어 클럽(Fair Player Club)의 반부패 서약 선포식에 다녀왔는데 거기서도 우리가 소소한 부패는 잡으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크고 구조적인 부패에 대해서는 등한시해왔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금품 수수보다 더 큰 게 부정청탁이고, 그중 하나가 채용비리인데…. 저는 이 부분이 낙하산 문제도 있지만, 지역 토착세력의 카르텔형 부패하고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아침에 뿌리 뽑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한창입니다. 5만 원 이상 선물은 금지하면서 얼마를 내는 지 제한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출판기념회는 왜 제재하지 않는지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할지는 고민인 부분입니다. 출판기념회 현장에서는 책을 못 팔게 하고 서점에서만 팔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고, 또 그렇게 금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죠. 금지하려면 입법을 해야 하니까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제도 개선은 적극적으로 제안할 계획입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책을 정가로 파는 안부터 수입·지출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는 안, 출판기념회 자체를 폐지하는 안 등의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되고 현 20대 국회에서는 아직 제출된 관련 개정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사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는 법안이 제출돼도 그분들이 통과시키지는 않겠지요? “하하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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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자본주의 시대, 팔리는 상품이 된 페미니즘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꼽았다. 쉽게 말해 ‘돈’이 될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만들고, 팔 수 있다는 뜻. 아마도 자본주의는 그것이 자신을 부정하는 반자본주의적인 것일지라도 돈이 된다면 기꺼이 사고팔 것이다. 앤디 자이슬러의 ‘페미니즘을 팝니다’는 사회운동의 하나인 페미니즘이 이런 ‘시장 논리’ 속에서 변해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지적한다. 물론 그 시장에 적용돼 가는 페미니즘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페미니즘을 점점 더 많이 소비해가고 있을까. 또 더 많이 페미니즘을 소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안 바뀌거나, 잃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처럼 초기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이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대중매체와 대중문화와의 결합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봤다. 오랜 노력 끝에 양자는 결합했고, 많은 곳에서 대중매체나 대중문화 스타들이 페미니즘을 다루기 시작했다. 가수 비욘세는 800만 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당당히 페미니스트의 개념을 설명했고, 영화 ‘해리포터’의 에마 왓슨은 유엔에서 성평등에 관한 연설을 했다. 동시에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속옷, 매니큐어는 물론 막대걸레에서까지 페미니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마초 잡지인 ‘맥심(Maxim)’이 여자 연예인들의 성적 매력을 더 이상 순위 매기지 않는다고 ‘페미니스트들의 필독 잡지로 등극했다’고 하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저자는 이런 현상에서 ‘페미니즘’이 과거와 달리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른바 ‘시장 페미니즘’이다. 광고는 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 미의 기준에 반발하는 한 여성을 조명한다. 고민 끝에 그녀는 ‘이것은 나의 선택, 나를 위한 일’이라 결정하고, 은연중 페미니즘이 투영된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화장품, 비누(또는 다이어트 음식 회사). 은연중 광고는 ‘여성 개인의 주체적인 삶과 결정’이라는 콘셉트를 자사 상품과 연계시키고, 이를 통해 상품을 소비하게 한다. 이런 유의 시장 페미니즘은 엄청나게 늘었지만 반대로 정말로 필요한 분야―보육, 낙태, 남녀평등헌법수정안 등―는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후퇴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저자는 시장 페미니즘이 선택하지 못한 분야는 과거처럼 주목을 못 받을 수 있겠지만, 그 분야야말로 상업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소수가 아닌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곳이라고 힘을 준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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