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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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sys1201@donga.com

취재분야

2024-05-19~20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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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숯검정 얼굴로 情 나누고… 올해도 300만장 사랑을 쏩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겨울철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탄’. 새벽에 연탄을 갈기 위해 일어나신 아버지,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않게 깨서 뿌리던 다 탄 연탄들, 연탄불에 구워 먹던 쥐포와 오징어…. 하지만 이제는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그칠 정도로 사용자가 줄고 있다. 그나마 산업용은 없고, 대부분 서민들이 난방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네 연탄가게도 거의 사라진 요즘 누가 어떻게 연탄을 쓰고 있을까.○ 대부분 난방용으로 현재 연탄의 주 사용처는 서민 가구의 난방용과 가게 등의 난로 정도다. 그나마 주거 개선 사업 등으로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소비량도 2014년 162만8000여 t, 2016년 125만5000여 t 등으로 줄고 있다. 전국적으로 13만여 가구가 사용하고 있고, 이 중 4만∼6만 가구는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사랑의 연탄),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같은 사회단체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대구에서 연탄 판매업을 하는 한성연탄 최학석 사장은 “예전에 동네에서 흔히 보던 연탄가게는 거의 사라졌고, 주문 배달로 연탄을 받아 사용한다”고 말했다. 최 사장처럼 연탄 제조공장과 연결된 판매업자에게 전화를 해 필요한 수량을 말하면 직접 트럭으로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최 사장은 “집 난방이나 가게 등의 난로에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많이 줄기는 했지만 겨울철에는 하루에 5∼8번 정도 배달을 한다”고 말했다. 수량은 주문자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번에 300∼500장이고, 많게는 1000장도 있다고 한다. 연탄은 대표적인 서민 난방 연료지만 지난달 23일 공장도 가격이 534원에서 639원으로 19.6% 올라 부담이 늘어났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소매가격은 대략 760∼1100원. 이 때문에 ‘사랑의 연탄’도 연탄 1장 후원금을 740원에서 840원으로 올렸다. 최 사장은 “1000장씩 많이 사면 할인해 주고, 반대로 배달 장소가 2층이라거나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곳은 더 받고 있다”며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곳은 리어카로 나른다”고 말했다. ‘사랑의 연탄’ 원기준 사무총장은 “우리 단체의 경우 재작년 서울 본부와 전국 지부를 다 합쳐 약 330만 장, 작년 300만 장, 올해도 300만 장 정도를 지원할 것 같다”며 “지원량이 준 것은 기부가 줄기 때문이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연탄을 때는 집이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사들의 합창 12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동 용마산 기슭의 주택가에서는 얼굴 여기저기에 탄가루를 묻힌 남녀 어린이 20여 명이 열심히 연탄을 나르고 있었다. 이들은 인근 신내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집까지 연탄을 나르는 봉사를 하는 중이다. 시작하기 전 주의사항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다소 어색해하던 아이들은 금방 익숙해져 서로 얼굴에 탄가루를 묻히며 즐거워했다. “수염이 생겼어, 하하 호호∼.” “야! 이빨에 바르면 어떻게 해∼ 크크.” 산기슭은 시내와 달리 매섭게 추웠다. 옮겨야 할 연탄은 800장. 한 집당 200장씩 네 집이다. 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겨울을 나는 데 방 하나 기준으로 보통 1000∼1500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날 봉사활동을 연결한 ‘사랑의 연탄’의 경우 가구당 300∼400장을 지원하고 있다. 필요량의 3분의 1 정도다. ‘사랑의 연탄’ 측은 “보통 나라에서 ‘연탄 쿠폰’으로 3분의 1 정도, 우리 같은 단체에서 3분의 1 정도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봉사는 담임선생님이 나눔 실천 차원에서 연탄 배달 봉사를 제안하자 학생들이 공감해 이뤄졌다. 연탄 한 장은 약 3.6kg. 보통 두 장씩 들고 나르면 7kg 정도다. 몇 번 정도는 몰라도 아이들이 수십 번을 나르기에는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몇몇은 팔을 주무르고, 몇몇은 뻐근한지 기지개를 켰다. 원 사무총장은 “돈만 기부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기부와 함께 직접 연탄을 배달하는 봉사활동까지 패키지로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탄 봉사’ 어디까지 아니? 연말을 맞아 기업과 단체, 개인들이 연탄 배달 봉사를 많이 하지만 ‘사랑의 연탄’의 경우 자신들이 직접 봉사활동을 언론에 알리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대부분은 해당 기업이나 단체에서 알리는 것이다. 원 사무총장은 “우리로서는 효도하는 마음으로 정을 나누는 것이고, 우리가 조금 더 가진 것을 나누자는 것”이라며 “하지만 봉사활동이 뉴스가 되면서 받는 분들이 ‘달동네’ ‘쪽방촌’ ‘독거노인’ 등 굉장히 불쌍한 사람들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분들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어렵지만 결코 불쌍하고 불행한 분들이 아니다”라며 “그래서 연탄 배달 봉사를 하러 온 분들께 절대로 그분들을 아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거나 자신이 마치 엄청난 자선활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 봉사에 회사나 단체 이름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일회용 비닐 옷을 입는 것도 가급적 피해야 할 일이다. 이런 비닐 옷은 땀이 배출되지 않아 30분만 지나면 그야말로 땀복이 되고, 정전기 현상으로 탄가루가 더 많이 묻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의 연탄에서는 두툼한 천에 겉이 코팅된 큰 앞치마(고깃집 앞치마 모양이다)와 팔에 끼는 토시를 제작해 제공하고, 봉사활동 후 다시 거둬 세탁해 재사용한다. 하지만 홍보가 더 큰 목적인 단체일수록 회사 로고가 없는 이 옷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온 비닐 옷을 선호한다고 한다. 봉사를 한 뒤 비닐 옷을 길에 버려서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도 문제다. 홍보용 사진 촬영에 더 신경을 쓰는 단체일수록 뒷정리는 소홀히 해 봉사활동이 끝나고 나면 주민들이 쓰레기와 연탄재로 지저분해진 동네를 청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탄 기부를 받는 주민은 동네에서 소수이기 때문에 다른 주민들이 “그 사람들 때문에 동네가 지저분해진다”며 눈치를 주기도 한다고 한다. 연탄을 나르는 방법은 각자 들고 가는 법과 릴레이식으로 서서 전달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릴레이식은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서서 전달하는 것보다 한 사람씩 엇갈려 마주 보고 전달하는 것이 좋다. 이럴 경우 옆으로 전달이 아니라 비스듬히 앞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떨어뜨릴 위험이 작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치인 등 사진 촬영이 우선인 단체일수록 이렇게 하지 않고 모두가 앞을 보고 서서 전달한다. 자기 얼굴이 잘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연탄 배달 봉사는 연탄을 사서 기증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집까지 날라주는 것은 물론이고 골목 청소 등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치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바쁜 데다 진짜 봉사가 목적이 아니다 보니 사진만 찍고 나면 하나둘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사라진다고 한다. 어떤 의원들은 직접 돈을 모아 연탄을 기부하지 않고, 특정 기업이 한 연탄 기부 현장에 와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원 사무총장은 “연탄 배달 봉사의 핵심은 연탄이 아니라 이웃과의 만남”이라며 “받는 분들은 만나지도 않고, 그분들이 고마워서 타주는 커피 한잔 먹어보지 않고 연탄만 쌓아놓고 혼자 뿌듯해하는 것은 일종의 천사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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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수염 생겼어, 하하” 연탄 봉사하는 아이들…주의점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겨울철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탄’. 새벽에 연탄을 갈기 위해 일어나신 아버지,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않게 깨서 뿌리던 다 탄 연탄들, 연탄 불 위에 구워먹던 쥐포와 오징어…. 하지만 이제는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그칠 정도로 사용자가 줄고 있다. 그나마 산업용은 없고, 대부분 서민들이 난방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네 연탄가게도 거의 사라진 요즘 누가 어떻게 연탄을 쓰고 있을까.● 거의 대부분 난방용으로 현재 연탄의 주 사용처는 서민 가구의 난방용과 가게 등의 난로 정도다. 그나마 주거 개선 사업 등으로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소비량도 2014년 162만8000여 t, 2016년 125만5000여 t 등으로 줄고 있다. 전국적으로 약 13만여 가구 정도가 사용하고 있고, 이 중 4만~6만 가구 정도는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사랑의 연탄),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같은 사회단체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대구에서 연탄판매업을 하는 한성연탄 최학석 사장은 “예전에 동네에서 흔히 보던 연탄가게는 거의 사라졌고, 주문 배달로 연탄을 받아 사용 한다”고 말했다. 최 사장처럼 연탄제조공장과 연결된 판매업자에게 전화를 해 필요 수량을 말하면 직접 자신의 트럭으로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최 사장은 “집 난방이나 가게 등의 난로에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많이 줄기는 했지만 겨울철에는 하루에 5~8번 정도 배달을 한다”고 말했다. 수량은 주문자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번에 300~500장 정도고, 많게는 1000장도 있다고 한다. 연탄은 대표적인 서민 난방 연료지만 지난달 23일 공장도 가격이 534원에서 639원으로 19.6% 올라 부담이 늘어났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소매가격은 대략 760~1100원. 이 때문에 ‘사랑의 연탄’도 연탄 1장 후원금을 740원에서 840원으로 올렸다.최 사장은 “1000장 씩 많이 사면 할인해주고, 반대로 배달 장소가 2층이라거나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곳은 더 받고 있다”며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곳부터는 리어카로 나른다”고 말했다. ‘사랑의 연탄’ 원기준 사무총장은 “우리 단체의 경우 재작년 서울 본부와 전국 지부를 다 합쳐 약 330만 장, 작년 300만 장, 올해도 300만 장 정도를 지원할 것 같다”며 “지원량이 준 것은 기부가 줄기 때문이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연탄을 때는 집이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천사들의 합창 12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동 용마산 기슭의 주택가에서는 얼굴 여기저기에 탄가루를 묻힌 남녀 어린이 20여 명이 열심히 연탄을 나르고 있었다. 이들은 인근 신내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집까지 연탄을 나르는 봉사를 하는 중이다. 시작하기 전 주의사항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다소 어색해하던 아이들은 금방 익숙해져 서로 얼굴에 탄가루를 묻히며 즐거워했다. “수염이 생겼어, 하하 호호~.” “야! 이빨에 바르면 어떻게 해~ 크크.” 산기슭은 시내와 달리 매섭게 추웠다. 옮겨야 할 연탄은 800장. 한 집 당 200장씩 네 집이다. 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겨울을 나는 데 방 하나 기준으로 보통 1000~1500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날 봉사활동을 연결한 ‘사랑의 연탄’의 경우 가구당 300~400장을 지원하고 있다. 필요량의 3분의 1 정도다. ‘사랑의 연탄’ 측은 “보통 나라에서 ‘연탄 쿠폰’으로 3분의 1 정도, 우리 같은 단체에서 3분의 1 정도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봉사는 담임선생님이 나눔 실천 차원에서 연탄 배달 봉사를 제안하자 학생들이 공감해 이뤄졌다. 연탄 한 장은 약 3.6kg. 보통 두 장씩 들고 나르면 7kg 정도다. 몇 번 정도는 몰라도 아이들이 수십 번을 나르기에는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몇몇은 팔을 주무르고, 몇몇은 뻐근한지 기지개를 켰다. 원 사무총장은 “돈만 기부할 수 도 있지만 가능하면 연탄 기부와 함께 직접 연탄을 배달하는 봉사활동까지 패키지로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탄 봉사’ 어디까지 아니? 연말을 맞아 기업과 단체, 개인들이 연탄 배달 봉사를 많이 하지만 ‘사랑의 연탄’의 경우 자신들이 직접 봉사활동을 언론에 알리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대부분은 해당 기업이나 단체에서 알리는 것이다. 원 사무총장은 “우리로서는 효도하는 마음으로 정을 나누는 것이고, 우리가 조금 더 가진 것을 나누자는 것”이라며 “하지만 봉사활동이 뉴스가 되면서 받는 분들이 ‘달동네’ ‘쪽방촌’ ‘독거노인’ 등 굉장히 불쌍한 사람들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분들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어렵지만 결코 불쌍하고 불행한 분들이 아니다”며 “그래서 연탄 배달 봉사를 하러 온 분들께 절대로 그분들을 아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거나 자신이 마치 엄청난 자선활동을 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 봉사에 회사나 단체 이름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일회용 비닐 옷을 입는 것도 가급적 피해야할 일이다. 이런 비닐 옷은 땀이 배출되지 않아 30분만 지나면 그야말로 땀복이 되고, 정전기 현상으로 탄가루가 더 많이 묻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의 연탄에서는 두툼한 천에 겉이 코팅된 큰 앞치마(고깃집 앞치마 모양이다)와 팔에 끼는 토시를 제작해 제공하고, 봉사활동 후 다시 거둬 세탁해 재사용한다. 하지만 홍보가 더 목적인 단체일수록 회사 로고가 없는 이 옷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온 비닐 옷을 선호한다고 한다. 봉사를 한 뒤 비닐 옷을 길에 버려서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도 문제다. 홍보용 사진 촬영에 더 신경을 쓰는 단체일수록 뒷정리는 소홀히 해 봉사활동이 끝나고 나면 주민들이 쓰레기와 연탄재로 지저분해진 동네를 청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탄 기부를 받는 주민은 동네에서 소수이기 때문에 다른 주민들이 “그 사람들 때문에 동네가 지저분해진다”며 눈치를 주기도 한다고 한다. 연탄을 나르는 방법은 각자 들고 가는 법과 릴레이식으로 서서 전달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릴레이식은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서서 전달하는 것보다 한 사람씩 엇갈려 마주보고 전달하는 것이 좋다. 이럴 경우 옆으로 전달이 아니라 비스듬히 앞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떨어뜨릴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치인 등 사진촬영이 우선인 단체일수록 이렇게 하지 않고 모두가 앞을 보고서서 나른다. 자기 얼굴이 잘 나와야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연탄 배달 봉사는 연탄을 사서 기증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집까지 날라주는 것은 물론이고 골목 청소 등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치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바쁜데다 진짜 봉사가 목적이 아니다보니 사진만 찍고 나면 하나둘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사라진다고 한다. 어떤 의원들은 직접 돈을 모아 연탄을 기부하지 않고, 연탄 기부는 특정 기업이 하고 와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원 사무총장은 “연탄 배달 봉사의 핵심은 연탄이 아니라 이웃과의 만남”이라며 “받는 분들은 만나지도 않고, 그분들이 고마워서 타주는 커피 한잔 먹어보지 않고 연탄만 쌓아놓고 혼자 뿌듯해하는 것은 일종의 천사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sys1201@donga.com}

    • 20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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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수능으로 사교육을 조절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 5일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발부된다. 물수능, 불수능으로 불린 해가 평온했을 때보다 더 많았던 우리 수능. 오죽하면 2002학년도 수능에서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쉽게 출제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다가 충격을 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고 사과까지 했을까. 2007, 2009, 2011학년도 출제위원장을 지낸 안태인 서울대 명예교수(71·생명과학부)는 “수능 하나로 대학수학능력도 측정하고, 고교 교육과정 이수도 평가하고, 또 사교육까지 줄이려는 등 너무 많은 목표를 두다 보니 점점 더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출제위원과 출제부위원장, 그리고 세 번의 출제위원장을 역임했다. 》  ―워낙 부담이 커 남들은 한 번도 안 하려 한다는데 위원장을 세 번이나 했다. “사범대 출신이라 교수가 되기 전에 중고교에서 교사를 잠시 했다. 유학 후 서울대 생물교육과 교수로 부임했는데 사범대에 있다 보니 교원임용시험 출제도 하고, 교과서도 썼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 문제 한 번 출제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와 참여했는데 다행히 문제가 출제 모델로 사용될 정도로 잘됐다고 하더라. 그러더니 그 다음 해에는 출제부위원장으로 와 달라고 했고, 별 무리 없이 했다고 판단했는지 몇 년 후 2007학년도 수능 출제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문제에 오류가 나면 평가원장이 사임할 정도로 출제는 어려운 일이다. 그해 무사고 운전을 하니까 평가원에서 더 해도 좋다고 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세 번이나 하게 됐고…. 문제 오류로 혼이 난 위원장도 있지만 그래도 출제위원장은 보람 있는 자리다.” ―출제위원장이던 2009, 2011학년도 수능이 역대 최고의 불수능이라던데…. “기사를 보면 그런 것 같은데 정확한 것은 평가원 자료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2011학년도는 어려웠다고 하더라.” 2013년 10월 초 한 수험생 카페에 ‘안태인 교수님이 사라졌다는 소문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2009, 2011학년도 수능을 ‘헬’로 만든 분인데 학교에서 안 보이는 이유가 출제위원장으로 합숙에 들어갔기 때문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그 아래에는 ‘만약 사실이라면 전 과목 핵폭탄 각오해야…’ ‘이번 수능 포기해야 하나’라는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다. 다행히(?) 이 해에는 출제위원장을 맡지 않았다. ―거의 해마다 홍역을 치르는데 난이도 조절은 어떻게 하나. “합숙에 들어가면 먼저 평가원에서 매년 수능 문제를 아주 정밀하게 분석한 자료를 보여준다. 연도별 수능의 전체적인 난이도, 개별 문제마다 얼마만큼 어려워했는지, 모의 수능에서 어떤 문제를 가장 많이 틀렸는지, 수리가 평이했으니 한두 문제 정도는 어렵게 내는 게 좋겠다든지, 그런 가이드라인을 다 제시해준다. ‘출제요람’이라고 일정은 물론이고 출제 방법까지 모든 게 매뉴얼로 돼 있다. 질문은 어떤 식으로 제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답을 고르게 하면 난도가 높아지고 낮아지는지 등이 예시돼 있다. 그걸 보고 올해 출제는 어느 영역의 난도를 높이고 낮출지, 문제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지 등을 정한다.” ―그런데 왜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일이 벌어지나. “난이도 조절은 정말 어렵다. 교육과정이 개편돼 책이 바뀌면 더 어렵고…. 이런 심리도 작용한다. 어떤 과목의 전년도 수능 문제가 쉬우면 아이들이 아무래도 덜 공부한다. 쉬우니까. 어려우면 더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사람 심리가 그렇다. 이런 분위기가 은연중에 출제위원들에게도 반영된다. 난도를 좀 올려서 우리 과목을 더 공부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그렇더라도 검토과정에서 걸러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출제위원이 문제를 낼 때 자신이 예측한 난도를 함께 적어낸다. 이걸 보지 않은 상태에서 검토위원들도 문제를 풀고 난도를 매긴다. 양자가 차이가 나면 회의를 하는데 각자가 낸 문제를 모두 올려놓고 출제 의도부터 어떤 지식을 묻기 위해 냈는지, 어떻게 응용하는 걸 알아보기 위한 건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같이 이의 제기를 한다. 속된 말로 ‘씹는’거지. 잘 내는 사람도 있지만 경험이 적은 사람은 아주 쩔쩔맨다. 문제를 냈는데 끌어내려지고, 다시 올렸는데 끌어내려지고 하면…. 출제자 입장에서는 기분 나쁜 정도가 아니다. 더군다나 다 같은 동료 교수이고 같은 분야인데…. 후배가 선배가 낸 문제를 지적하다 보면 다툼도 일고, 또 그 반대로 선배가 낸 문제라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기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불화가 심해지면 이런 과정이 잘 작동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출제위원장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일이 화합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거다.” ―‘EBS 교재 70% 연계’란 말을 수험생과 출제자가 다르게 생각하는 탓도 있다던데…. “상당히 많은 수험생들이 EBS 기출 문제에서 70%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확한 뜻은 수능 문제의 소재를 EBS 교재에서 따온다는 것이다, 문제를 그대로 낸다는 게 아니라. 그러다 보니 조금만 응용해도 어렵게 출제됐다고 느낀다.” (수능에 EBS 교재를 연계한 이유가 사교육 경감을 위해서인데 그렇다고 사교육이 준 것 같지는 않다.) “통계는 모르지만 아마 어떤 방식으로 해도 사교육은 줄이기 힘들 것 같다. EBS 교재를 연계시키자 EBS 교재를 철저히 분석해 가르치는 학원이 나왔고 지금은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수능을 쉽게 내는 이유가 어려우면 사교육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1학년도 수능은 만점을 받고도 서울대에 떨어질 정도로 물수능이었는데 그렇다고 사교육이 준 것 같지도 않다. “어려우면 더 공부해야 한다고 학원 가고, 쉬우면 하나라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학원 가고…. 거참…. 우리 애도 2001학년도 수능을 봤는데 실수를 해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우리 학부모들이 워낙 교육열이 높다 보니 아예 제도적으로 사교육을 막지 않는 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 학원은 허용한 상태에서 수능 문제로 사교육을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수능에 너무 많은 교육 목표를 넣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게 된 것 아닌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말처럼 원래 취지는 대학에서 공부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측정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고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했는지도 평가하고, 대입 전형자료로도 쓴다. 입시 자료로 쓰려면 등수를 매겨야 하니 변별력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어려운 문제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는 두 가지 시험으로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두 가지라니?) “고교 교육을 제대로 이수했는지를 평가하는 것과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한 분석력 이해력 독해력 등을 갖췄는지를 보는 시험 두 가지다. 전자는 정상적으로 이수했다면 만점자가 얼마든지 나와도 상관없다. 사실 그게 더 바람직하다. 모든 학생이 제대로 배웠다는 방증이니까. 후자는 실제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응용 쪽이니까 교과서 밖에서 어렵게 내도 괜찮을 것 같다. 지금은 둘 다 섞여 있으니까….” ―단기간 합숙 출제 시스템 때문에 출제 시간이 부족해 문제가 생긴다고 하는데…. “내 경험으로는 시간이 많다고 더 좋은 문제가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 머리에 한계가 있어서…. 오래 공부한다고 합격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오류는 다소 줄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문제은행식으로 출제하면 안 되나.) “평가원에서 검토한 것으로 아는데, 문제은행식으로 내면 보안을 장담할 수가 없다. 그 많은 문제를 내려면 그만큼 많은 출제자가 필요하다. 수능은 1년에 한 번인데 그 많은 사람들을 문제가 사용될 때까지 합숙시킬 수도 없고…. 또 자기 자녀나 친인척 자녀가 시험을 보면 그해에 사용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런 문제를 냈다’고 알려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숱하게 입시제도가 바뀌었는데 솔직히 과거 본고사, 학력고사 시절에 비해 지금이 더 나은 학생들을, 더 정확하게 뽑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음…, 허허허…. 그건 자신 없는데…. 지금 제도에도 문제는 있다. 또 학생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수시모집을 늘렸지만 최근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극복해서 발전시켜야지 오점만 보고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그건 학생을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단순 암기력 하나만 보고 뽑자는 거니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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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n’t stop me now” 떼창은 그칠 줄 몰랐다

    ‘형님들, 정말 오랜만에 뵙겠네요.’ 내일은 세간의 화제인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보러 가는 날. 그 옛날의 향수를 더 진하게 느끼고 싶어 ‘싱얼롱(singalong)’ 상영관으로 예매를 했다. 설레는 마음에 그 옛날, 30여 년 전에 샀던 낡은 LP(long-playing record)앨범을 꺼냈다. ‘THE WORKS.’ 2년간의 휴지기를 가진 퀸(Queen)이 전작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1984년 내놓은 앨범. ‘작품’이란 앨범 이름처럼 여기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도 나오는 ‘I want to break free’ ‘Radio Ga Ga’ 등 걸작들이 수록돼 있다. 앨범 사진 속 형님들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빨랑 와.’○ 두근두근 울렁울렁 지난달 27일 오후 5시 반. 상영 25분 전. 서울 메가박스 강남의 싱얼롱 상영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길게 줄 선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런 광경은 볼 수 없었다. 좌석도 90여 석 중 3분의 1 정도만 찼고, 40∼60대는 서너 명뿐이고 대부분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었다. 평일인 데다 아직 퇴근시간 전이기 때문일까? 이 상영관이 초대형 화면으로 몰입감을 주는 아이맥스관도, 양 벽면까지 활용해 공연장의 현장감을 살려주는 스크린 X관도 아닌 일반관인 탓도 있는 것 같다. ‘형님들, 죄송합니다. 좀 더 좋은 곳에서 뵈었어야 하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싱얼롱 상영을 하는 곳은 우리를 포함해 16개국. 아이러니하게도 퀸의 고향인 영국에서는 싱얼롱 상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있던 한 중년 여성이 양해를 구했다. “저 죄송한데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다섯 번째 보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중간중간 사진도 좀 찍고 그럴게요. 불편하거나 방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관객이 적어 ‘떼창’이 없을까봐 은근히 걱정하던 차에 불편이라니? 목청껏 따라 불러주시면 제가 더 고맙지요….(기대와 달리 그녀는 영화 막판에 약간 흥얼거리는 정도를 제외하면 상영 내내 영화를 동영상으로 찍는 데만 집중했다. 정말 영화를 좋아한 것 같다. 음악은 아니고.) 영화가 시작됐다. 조금씩 나오는 주옥같은 명곡들. ‘Love of my life’ ‘We will rock you’ ‘under pressure’….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따라 불러야 하는 거야? 모든 노래가 영화 스토리에 맞춰 조금씩만 나오다 보니 감정에 발동이 걸리기가 힘들었다. 막 흥이 나 따라 부를 만하면 끝나는 노래들…. 시작 초 몇몇 곡은 따라 부를 수 있게 자막 아래 영어 가사가 함께 깔렸지만 영화 화면을 보느라 시선이 분산돼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많이 알려진 ‘Love of my life’는 프레디 형님이 피아노를 치며 이 곡을 작곡하는 장면에서 나왔는데…, 가사 자막이 없었다! 그나마 1분도 채 안 돼 끝났고…. 여기에 그다지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보통 한국인들의 성향이 겹치면서 대부분 조용히 영화 감상만 하고 있었다. 러닝타임 120분 중 90여 분이 지날 때까지…. 다 같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어깨동무를 한다는 곳은 도대체 어디인지. 물론 몇몇은 큰 소리는 아니지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은 한 아저씨가 뭐라고 했다. “조용히 합시다. 영화를 볼 수가 없네….” “여기 싱얼롱인데요?” “싱얼롱이 뭔데? 공공장소에서 피해 주면 안 되지. 상식 아닌가?” “헐∼.” 영화가 끝난 뒤 그 아저씨한테 물었더니 “그런 게 있었냐?”며 자기는 몰랐고 하도 영화가 유명하다고 해서 일하다가 비는 시간에 보러 왔다고 했다. 상영관 입구에 싱얼롱 상영 관람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일반 관람 안내문으로 생각하기 쉽다. ○ 드디어 웸블리! 드디어 20여 분을 남기고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1985년 7월 13일, 에티오피아 기아 문제를 돕기 위한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열린 곳. 스타디움에 모인 관중만 7만2000여 명. 전 세계 19억 명이 시청했다는 저 전설적인 공연. 피아노에 앉은 프레디 형님이 ‘보헤미안 랩소디’(1975년 발매된 앨범 A Night at the Opera의 타이틀곡이자, 이 영화의 제목)의 전주를 치며 “Mama∼, just killed a man∼” 하고 부르자 객석에서도 닫힌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이 곡은 국내에서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는데 ‘사람을 죽였다’는 가사 때문이란 설과 제목인 보헤미안이 체코의 지명 중 하나인데 당시 체코가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든 유치한 건 마찬가지다. 이때문에 1985년 MBC가 이 공연을 녹화 중계하면서 이 곡은 뺐다.) ‘Bohemian Rhapsody’ ‘Radio Ga Ga’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로 이어지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달았고, 관객들의 호응과 노래도 점차 고조됐다. 특히 ‘We Are The Champions’에서는 비록 앉은 채였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좌우로 흔들면서 좀 더 목청을 높이며 따라 불렀다. 웸블리 스타디움에 모인 관중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큰 목소리로, 가장 많은 관객들이 떼창을 한 노래는 ‘Don‘t stop me now’였다. 이 곡이 나오면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는데, 대학생 10여 명은 불이 켜진 상태에서도 신이 나서 손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이 곡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곡이었는데, 마지막 곡인 ‘show must go on’이 나오자 따라 부르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곡은 신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진지한 곡이다. 영화가 끝난 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 분명히 옛날 향수 때문에 찾은 것으로 보이는 50대 중년 아저씨에게 물었다. “싱얼롱에 왔는데 노래를 안 따라 하시던데요….” 그는 “돌았수? 나 혼자 부르게?”라며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열심히 따라 부르던 한 여학생은 “영화 보며 함께 노래 부르는 일이 흔한 것도 아니고 재미있을 것 같아 왔는데 오늘은 날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싱얼롱은 ‘케바케’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케바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를 줄인 말.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은 관객 성향이나 그날 분위기에 따라 조용한 곳도, 열광적인 곳도 있는 등 다 다르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뭔가 큰 것을 얻은 듯 아주 좋아라 했다. “아저씨 근데 드럼 완전 잘생기지 않았어요?” 프레디 머큐리 사망 27주기를 추모해 메가박스가 지난달 24일 전국 8개 MX관에서 연 싱얼롱 행사는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프레디 형님은 1991년 11월 24일 에이즈로 사망했다.) 주최 측은 행사를 위해 떼창을 유도할 ‘프로 떼창러’를 모집했는데 500명 넘게 지원해 64명이 선발됐다.(배급사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에 따르면 11월 28일 기준으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이 중 10만 명 정도가 싱얼롱 관람이라고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대했던 것만큼 열광적인 떼창이 없어 아쉬웠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신나기는 했겠지만 뭔가 아련한 여운은 갖지 못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꽃처럼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데는 그것이 더 좋았다. 안녕, 프레디. 안녕 퀸….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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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조두순 출소? 막을 방법이 없진 않지요”

    《 지난달 14일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29)는 현재 충남 공주에 있는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을 받고 있다. 우리 형법(10조)은 심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거나 감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왜 나라가 세금으로 흉악범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형량을 감해 주려 하느냐”는 비난도 많았다. 허찬희 전 국립법무병원 의료부장(65·마음편한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흉악범의 정신감정이 필요한 것은 형을 감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다수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 의료부장이던 2010년, 부산에서 여중생을 납치,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 등 다수의 흉악범죄자들에 대한 정신감정을 맡은 바 있다. 》  ―김성수 자신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먼저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실제 김성수에게 정신질환이 있는데 정신감정을 안 해 모른 채 다른 일반 범죄자처럼 복역하고 출소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상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끔찍한 범죄가 또 벌어지지 않겠나. 정신감정은 본인이 요청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는 게 아니다.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한다. 그리고 국가가 흉악범의 정신이상 여부를 감정하고, 치료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다수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다. 형량이 감경되는 것만 생각해선 안 된다. 또 형기가 끝났다고 다 나오는 것도 아니다.” ―형기가 끝났다고 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공주치료감호소는 정신질환을 가진 범죄자들이 복역하며 치료를 받는 곳이다. 하지만 형기가 끝나도 치료가 덜되면 치료 기간을 연장해 안 내보낸다. 병이란 게 형기에 딱 맞춰 낫는 게 아니니까…. 치료감호소 내에 의료부장이 위원장인 퇴소심사위원회가 있는데 형기가 끝난 수감자 중 퇴소시킬 사람을 선정해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 올린다. 그러면 여기서 다시 심사해 대상자를 최종 결정한다. 못 나간 사람도 많다.” ―조두순이 불과 2년 후인 2020년 12월이면 출소한다고 걱정이 많다. “지금은 공주치료감호소에만 적용되는 연장 치료를 일반 교도소까지 확장하는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 일반 교도소에서도 복역 중에 정신이상이 생기는 수감자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별도의 교도소에 모아서 치료한다. 단지 이곳에 있는 정신질환 수감자들은 공주치료감호소와 달리 정신병이 다 낫지 않아도 형기가 끝나면 내보낼 수밖에 없다. 어느 교도소에 있든지 심각한 정신질환이나 사이코패스 증상이 다 낫지 않은 수감자는 내보내지 않고 치료하는 제도를 사회적 합의로 만들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을 갖춰야 한다. 일부러 가둬놓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니까…. 인권 침해 논란이 있겠지만 치료가 안 된 채 나와서 저지를 재범 우려를 생각하면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조두순은 경찰의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진단 기준인 25점을 넘는 29점을 받았다. 부녀자 10여 명을 연쇄 살해한 강호순은 27점,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25점이었다. 조두순과 김길태는 현재 흉악범들을 수감하는 경북북부제1교도소(옛 청송교도소)에 있다. ―김성수가 정신감정을 받는 데 한 달 걸린다는데…. 정신감정이 그렇게 복잡한가. “그 한 사람만 하는 데 한 달 내내 걸린다는 뜻이 아니라 그 안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감자도 많고, 또 수사기관에서 정신감정 의뢰를 보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정신감정을 하려면 일이 몰려 그 정도 걸린다.” ―정신이상 판정을 받으면 감형된다는 걸 알고 속이는 경우는 없나. “하하하, 한 달 정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화하다 보면 그런 경우는 다 알 수 있다. 그런 일은 없다.” ―김성수 가족이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우울증은 자기가 죽고 싶은 거지 남을 죽이고 싶은 건 아니라고 하는데…. “극단적인 흉악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분노와 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노는 대부분 아주 어릴 적 엄마의 보살핌이 결핍되면 불만이 쌓이면서 생긴다. 예를 들어 한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면 아이는 항상 불안에 떨면서 살게 된다. 자기를 지켜주지 않는 엄마에 대해 좌절한 갓난아이의 분노는 극심한 거다.” (한 살 때도 그런 걸 느끼나?) “느낀다. 6세 이전에 그 정도의 결핍을 느껴 장애가 오면 정신분열이 생긴다. 극단적 흉악범은 대개 아주 어린 시절에 겪은 깊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 분노가 밖을 향하면 흉악범이 되고, 밖으로 못 나가고 자기를 향하면 우울증을 앓고 자살을 한다. 이 둘이 혼재돼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자살도 엄마와의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치열한 경쟁을 견디지 못해서’, ‘인기를 유지하기 힘들어서’라는 말을 하는데 핵심은 아주 어릴 적 엄마와의 관계다. 자살이 사회적 문제지만 우리가 근본적인 접근을 못하고 피상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 후에 받는 상처로는 사람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안 간다.” ―요즘은 맞벌이가 많아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가 많은데…. “그래서 저녁에 아이와 서로 대화도 많이 하고 마음을 풀어줘야 한다. 낮에도 전화해서 목소리도 듣고…. 그러면 해소가 된다. 그런데 그런 필요성을 모르고 ‘아이는 혼자 크는 거야’ 하면서 간과하면 장애가 생기기 쉽다. 이건 할머니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모든 정신병의 근본은 아주 어릴 적 엄마와의 정서적 관계다.” ―심신미약, 정신질환을 이유로 한 형 감경에 분노하는 여론이 많다. “우리 형법에 그런 조항이 있긴 하다. 하지만 잘못 아는 게 심신미약이라고 무조건 형을 감경해 주는 게 아니라, 그 증상이 범죄와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를 따져서 판결한다. 정신질환자라고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지 않나.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해당 범죄 발생과는 무관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중형을 받는다. 재판부마다 다르게 판단하는 게 문제라고 하지만 질병의 유무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해당 정신질환이 범죄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판사가 판단하기 때문에 사건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2차 정신감정을 맡았던 김길태 사건도 정신감정 때마다 판단이 달랐다. “1차 감정은 다른 사람이 하루 했는데 ‘정신이상이 없고 연기일 가능성도 있다’고 소견을 냈다.” (하루 했다고?) “정신감정에 정해진 시간은 없다. 며칠 만에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주고, 한 번 보고 해달라고 하면 본 대로 보고한다. 그런데 판사가 보니까 아무리 봐도 이상한 거야. 사람이 이상하다는 건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도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당시 공주치료감호소 의료부장이던 나한테 2차 감정을 의뢰했다. 입원시킨 뒤 한 달을 지켜보는데 과거 병력기록을 보니 그 사건 전에도 다른 범죄로 4년간 복역하면서 3명의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더라. 아주 심한 정신병 환자에게 주는 고농도 약물도 4년간 먹었고.” (기록도 있는데 왜 1차에서는 이상 없다고 했을까?) “놓친 것 같다. 그래서 2심 재판정에서 1심 정신감정인에게 과거 기록을 봤냐고 물으니까 못 봤다고 하더라.” ―그렇게 결론이 난 건가. “1, 2차 감정 결과가 다르니까 검찰이 서울대병원에 3차 감정을 다시 맡겼다. 여기서 일주일 정도 했는데 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엉?) “정신감정은 면담을 충분히,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일주일이라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하고, 뇌파 찍고 하는 데 며칠 걸리니까 면담 시간이 적을 수 있다. 또 정신치료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해야 하는데, 약물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이 형식적으로 하면 환자들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의사의 정신감정은 참고일 뿐이다. 판사가 판단하는데 결국 정신장애가 있다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받았다.” ―왜 치료감호소에서 일한 건가. 근무환경이 아주 열악했을 텐데…. “정신의학은 정신치료와 약물치료가 병행돼야 가장 효과가 좋다. 그런데 요즘은 대체로 약물 위주고 정신치료 수련은 미흡하다. 그전에는 개업의를 했는데 사회에서 노이로제 환자 정도만 보는 걸로는 성이 안 찼다. 정말 중증 정신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싶었다. 마침 국립정신병원인 국립부곡병원에 있는 후배가 부탁을 해 2008년 과장으로 갔는데 그해 말에 공주치료감호소 의료부장 자리가 비었다고 요청이 왔다. 생각해 보니 나한테 딱 맞는 자리인 거다. 속된 말로 완전히 미친 데다 나쁜 범죄까지 저지른 사람들이니…. 그때는 의사 한 명당 100명씩 담당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해서 사실 치료보다는 수용소 비슷한 상태였다. 위험한 수감자가 많으니까 어떤 의사들은 병실에 잘 안 들어가고 간호사실에서 보고를 받기도 했고…. 그런 곳을 수용이 아니라 치료하는 곳으로 바꾸고 싶었다.” ―사이코패스 같은 극악무도한 정신이상 흉악범도 치료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의사에게 충분한 치료를 받는다면, 또 환자 자신도 나으려는 의지가 있다면 모든 사람은 치료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어릴 때 상처를 받아서 병이 오래되고 깊으면 치료가 더딜 수는 있겠지만…. 치료가 안 되는 병은 없다고 믿는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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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건강하십시다… 고맙습니다…”

    《 “아침 일찍 수간호사가 신문을 가져와서 단숨에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다. 신성일.” 그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된 지난달 20일 오전, 그로부터 잘 읽었다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전화를 했지만 쉬는 날이라 자고 있던 탓에 전화를 안 받자 대신 문자를 보낸 것이다. 답신을 하자 멀리서 그의 음성이 들렸다. “아, 이 기자, 기사 잘 봤어요. 사진도 좋고…. 영화 장면처럼 만들었더군요. 하하하. 우리 다시 또 봅시다.” 》  그것이 사실상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20여 일 전인 지난달 17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에 대해 기자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전남 화순의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하던 그는 기자가 도착했을 때 마침 병원 뒤뜰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고, “어이∼ 여기요, 여기∼ 잘 왔어요”라며 넉넉한 미소로 반겨줬다. 전날까지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시월 중순답지 않게 전국이 몹시 추웠지만 이날은 닫힌 마음마저 푸근하게 열릴 정도로 부드러운 가을날이었다. 볕이 무척이나 좋았던 그날, 붉게 물든 뒷산의 단풍을 배경으로 한 그의 은발을 보며 왜 그 옛날 보았던 홍콩 영화 ‘가을날의 동화’(1987년)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만큼 멋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기 볕이 참 좋아요. 볕이 좋으면 늘 걷지요.” 인터뷰를 요청했던 것은 그가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인생의 마지막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폐암 투병 중이라 인터뷰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뷰 취지를 말하자 그는 “얼마든지 좋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의 건강에 대해서는 실례인 것 같아 굳이 묻지 않으려 했다. 단지 인사를 나눌 때 가볍게 “건강은 어떠신가요”라고 물었는데, 그는 뜻밖에도 “조금 전이가 돼서…”라고 말했다. 요양병원에는 3월경 왔다는데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건네준 명함에는 이 병원의 명예원장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가 천생 영화배우라는 것은 만나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의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이 병원 시청각실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7시에 상영하는 영화 제목을 적은 A4용지가 붙어 있었다. 9월부터 11월까지였는데 모두 그가 주연을 맡은 작품들이었다. 이 영화들을 광주 등지에서 찾아오는 지인들과 함께 매주 보고 있다고 했다. “옛날에는 서울에도 극장이 단성사 국제극장 등 6개 정도밖에 없는 데다 너무 바빠서 내가 주연인데도 정작 나는 못 본 작품이 많았지요. ‘맨발의 청춘’도 찍어 놓고는 못 보고 있었는데, 광화문에서 다른 촬영을 하다가 마침 쉬는 시간이 있어서 잠깐 들어가서 봤으니까요.” 이야기가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으로 넘어가자 그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중심 촬영 장소에 대해서만 20여 분을 설명했으니…. 대구에 살고 있는 동생뻘 되는 지인의 집 응접실인데 그가 구상하는 작품의 중심 공간이라고 했다. “그 집 응접실이 동서로 긴 모양인데 기막히게 잘 만들었어요. 10여 명이 앉을 수 있는데…, 촬영하기도 무척 좋죠. 그랜드피아노도 있고, LP판도 많고, 진공관으로 된 오디오도 있고….” 영화는 유명 사진작가와 그의 사위들, 외손녀 등 3대의 가족 이야기라고 했다. 시나리오는 최종 수정 중이고 배역도 대부분은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라는 것. “내가 사진작가 역이고 부인 역으로는 처음에는 윤정희 씨를 생각했는데 요즘 몸이 안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은아 씨에게 물었더니 너무 오래 출연을 안 해서 자신이 없다고 해요. 문희 씨도 생각했는데 거기도 자신이 없다고 하고…. 그래서 이장호 감독과 자녀들에게 물었더니 문숙 씨를 추천하더라고요. 나는 그 여인의 자연주의적인 이미지가 참 좋아요. 이만희 감독의 ‘태양을 닮은 소녀’라고 1975년 데뷔작도 나랑 같이 했고….” 영화를 설명하는 그의 눈은 암 환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예리하게 빛났다. 목소리도 처음에는 다소 지친 듯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활기를 띠었다. 특히 그의 사위 역으로 나올 두 배우를 설명할 때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후배들”이라며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 집의 주인이자 유명 사진작가, 스마트폰도 안 쓰고 가능하면 유선전화를 쓰는 아날로그 세대를 대표하죠. 맏사위는 안성기인데 직장생활에 찌든 증권회사 이사, 둘째 사위는 박중훈으로 사업하다 내려와서 세계 최고의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하는 역할이죠. 이 둘은 디지털 세대를 대표하고…. AI 연구원인 외손녀까지 3대의 사랑과 갈등이 주 촬영 장소인 응접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뷰는 그의 방에서 유부초밥과 김밥을 함께 먹으며 진행됐다. 인터뷰에 집중해서인지, 병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유부초밥을 두세 개밖에 먹지 않았다. 인터뷰가 중반을 넘어갈 때쯤이었다. 신군부가 들어선 뒤의 영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때 한 여인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당시 서울 충무로의 한 영화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한창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그때 전화가 왔다는 것. 광주가 고향인 그녀는 마침 그때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보도 통제로 서울에 있는 우리는 간첩들이 내려와 폭동을 일으킨다는 식으로 듣고 있을 때였어요. 근데 그 사람한테 전화가 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군인들이 사람을 난도질하고 죽이고 있다며 통곡을 하더라고. 나중에 시간이 지난 뒤 내려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 사람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그때는 내가 지방에 가면 소문이 날 때였거든요. 서울에 올라와서도 백방으로 찾았는데 못 찾다가 한참 후 소식을 들었는데 수녀가 됐다고 하더군요. 그때 충격으로….”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를 돌리려고 젊은 시절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어떻게 하다가 세금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는 “당시에는 탈세가 많았는데 나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1960, 70년대에는 영수증 처리가 잘 안 될 때니까…, 개념도 없고…. 그래서 탈세가 무척 많았지요. 그런데 우리 집에는 1년에 두 번, 상반기 하반기로 용산세무서 공무원이 찾아왔어요. 근데 올 때 내가 출연한 영화 신문광고를 들고 오는 거야. 광고에 주연 신성일이라고 쓰여 있으니까. 그러고는 이 영화, 저 영화 짚으면서 걷어간 거지요. 하하하. 언젠가는 납세 1등인 적도 있었는데, 아마 박정희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보고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습디다. 그 덕분에 당시 청와대 사람들하고도 많이 친해졌으니까….” 그는 3김(金) 중에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가장 좋아했고 친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의 방 앞 복도에는 그가 출연했던 작품의 장면을 담은 동판(‘만추’·1966년)과 영화 장면, 소장했던 그림 등이 전시돼 있었다. 그중 하나가 JP가 직접 써서 줬다는 ‘사유무애(思惟無涯·작은 사진)’란 한자 액자다. “무슨 뜻인가요?” “하하하, 정확하게는 몰라요. ‘생각에는 끝이 없다’는 뭐 그런 뜻 같은데 원래 있던 고사성어는 아니고 JP가 만든 것 같아. 3김 중에서도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눈 사람이 JP지요.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을지로 입구에 개성상회라는 이북식으로 개고기 백숙을 하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 주인하고 나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 개고기를 먹었지요.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많이 만나진 못했고요.” 처음 인터뷰 요청 때 그는 건강 때문인 듯 “길게는 못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1시간 정도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론 거의 3시간가량이나 이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병원 뒤뜰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한참 만에 그가 와인 빛이 감도는 빨간 스웨터에 스카프, 곱게 빚은 은발 머리 차림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짚고 있는 지팡이가 아주 좋은 것이라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함께 벤치에 앉은 김에 또 몇 마디 물었다. “선생님, 최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청바지를 입으셨던데 청바지를 좋아하십니까?” “아∼, 내가 청바지를 좋아라 하지요. 그게 ‘돌체앤가바나’요. 150만 원짜리.” (150만 원요?) “응, 근데 윗옷이 길어서 상표가 안 보였어. 하하하.” 유머로 인터뷰를 마무리한 그는 “잘 가라”며 우리를 보고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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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은밀하게 더 집요하게… 온라인 ‘집단따돌림’ 광풍

    《지난달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아동학대로 오해받던 교사가 자살했습니다’란 청원이 올라왔다. 경기 김포시의 한 어린이집 여교사가 지역 맘(MOM) 카페의 신상 털기와 마녀사냥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으니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이다. 이 글은 2일 현재 14만8000여 명이 동의했다. 도를 넘은 무차별적인 ‘사이버불링(Cyberbulling)’이 한 젊은 여교사를 죽음으로 몰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자살까지 부르는 사이버불링 2000년 미국 뉴햄프셔대 아동범죄예방센터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사이버불링’은 인터넷, 스마트폰, e메일 등에서 특정인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가상공간을 뜻하는 Cyber와 집단따돌림을 지칭하는 bulling의 합성어다.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던 왕따 등 집단따돌림 현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과 더불어 사이버 공간으로 확산된 것이다. 김포 어린이집 여교사 자살사건은 사이버불링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여교사는 지난달 11일 아이들을 데리고 가을나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나들이는 별 이상 없이 마무리됐지만 같은 날 밤 늦게 인천·김포 지역 맘 카페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한 아이가 이 교사에게 안기려는데 교사는 돗자리 터는 데만 신경 쓰고 아이를 밀쳤다는 내용이었다. 글쓴이는 (밀치는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들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이 올라오자 이 카페에는 해당 여교사를 비난하는 글이 빗발쳤고, 여교사의 실명과 사진도 게시됐다. 다음 날 해당 어린이집에는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관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여교사는 글이 올라온 지 이틀 만인 13일 새벽 김포의 한 아파트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내가 다 짊어지고 갈 테니 여기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어린이집과 교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 달라.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 사건 발생 후 사망한 여교사의 어머니는 맘 카페에 글을 올린 사람과 신상 털기에 가담한 불특정 다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신상 털기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허위 사실일 경우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더 엄하게 처벌받는다. 해당 맘 카페에는 여교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글이 속속 올라왔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외국에서도 사이버불링의 피해는 심각하다. 올 1월 호주에서는 무분별한 악플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던 소녀 모델 에이미 에버렛(14)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달리(dolly)’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에이미는 호주의 명품 모자 브랜드인 ‘아쿠브라(Akubra)’의 모델로, 호주 농촌의 상징인 카우보이식 모자를 쓴 깜찍한 모습으로 광고에 나와 유명해졌다. 유명세를 탄 에이미는 평소 악성 댓글에 시달려왔다. 부모의 요청으로 악성 댓글 내용이 모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중에는 ‘죽어라’는 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톡 감옥, 떼카, 데이터셔틀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는 만큼 사이버불링의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카톡 감옥’. 카카오톡 감옥의 줄임말로 그룹 채팅방에 참여시킨 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카톡 지옥’, ‘카톡 감금’이라고도 불린다. 카카오톡 채팅방은 참여자가 방을 나가도 다른 사람이 ‘초대’하면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 학교나 학급 같은 단체 채팅방에서 누군가를 집단으로 괴롭히려고 작정할 경우 해당자가 방을 나가도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초대를 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초대를 거부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은 속절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카톡 감옥은 프로필 설정의 아이디 검색을 ‘허용’에서 ‘끔’으로 바꾸고 자동 친구 추천, 메시지 도착 알림 등의 설정을 바꾸면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다른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떼카’는 단체 채팅방 등에 피해 대상을 초대한 후 단체로 욕설을 퍼붓거나 굴욕적인 사진을 공개하는 것. 가장 전형적인 사이버불링 방식이다. 반대로 피해 학생을 카톡 채팅방에 초대한 뒤 여러 사람이 무조건 무시하는 방법도 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 건네는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다가 다른 학생이 말을 걸면 일시에 다 같이 열광적으로 대답해주는 것이다. ‘카톡 멤놀’은 ‘카카오톡 멤버 놀이’의 준말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말투와 행동을 모방하는 10대들의 신종 인터넷 사교 문화를 말한다. 모든 일을 주관하는 총괄과 부총괄, 신입 멤버들을 관리하는 출석 관리자, 신입 관리자 등 간부들과 새로 온 신입을 뜻하는 ‘임관’ 등으로 구성되는데 간부들은 신입들의 행동에 모두 관여한다고 한다. 신입들은 간부의 허가 없이는 채팅방을 나가서도 안 되고, 욕설과 음담패설도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다. 이런 멤버 놀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종합병원’이라 부르며 비하한다. 일정 기간마다 싫어하는 멤버를 투표로 뽑아 일명 ‘물갈이’라고 불리는 강제 퇴장도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도 넓게 보면 사이버불링의 한 형태다.○ 별것 아니라는 인식도 문제 한국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지난해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6000명(학생 4500명, 성인 1500명) 중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4명 중 1명꼴인 26%에 달했다. 피해 수단으로는 ‘채팅, 메신저’가 45.6%로 가장 많았고, 온라인게임이 38.8%, 페이스북 등 SNS가 35.3%, 커뮤니티가 6.8%, e메일 또는 문자 6.6%, 개인 홈페이지 2.1% 순이었다. 사이버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은 가해 이유로 ‘상대방이 싫거나 화가 나서’(42.2%)를 가장 많이 들었다. ‘상대가 먼저 그런 행동을 해서 또는 보복하기 위해서’가 40%로 뒤를 이었으며, ‘그저 장난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라는 대답도 23.8%에 달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상당수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같은 조사에서 피해자들에게 ‘사이버폭력에 왜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무려 76%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23.6%는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27.1%는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서’라고 답했다. 이 밖에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서’(7.9%), ‘더 심한 따돌림을 받을까봐’(4.8%),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할지 몰라서’(4.4%), ‘고자질하는 것 같아서’(4.4%), ‘상대가 보복할까봐’(3.5%)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폭력은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폭력보다 주변에서 알아차리기가 더 힘든 만큼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심각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며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통해 사이버폭력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다양한 소통을 통해 이상 징후를 파악해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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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성일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제 인생작을 올릴 겁니다”

    《 영화배우 신성일(81). 입가에 묻은 밥풀마저 영화 소품처럼 보이게 만드는 남자. 은발의 노신사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멋있었다. 암 투병 중인 그는 지금 지인이 운영하는 전남 화순의 한 요양병원에 머무르면서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인생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볕이 좋았던 17일 오후 그는 세 시간에 걸쳐 새 작품과 그의 인생, 그리고 우리 영화계 모습에 대해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만희 감독과 함께 만든 ‘만추’(晩秋·1966년)란 영화가 있는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필름이 없고 북한에 남아 있다”며 “남북한 교류가 활발해져서 평양에 갈 수 있다면 그걸 꼭 복사해서 갖고 오고 싶다”고 말했다. 》 ―건강은 어떠신가요. “아, 잘 지내요. 몇 달 전부터 지인이 운영하는 여기 전남 화순의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곳 공기가 참 좋아요. 제가 주연했지만 못 봤던 영화도 보고 있고… 지난주에는 ‘여·여·여’를 봤지요.” (방에서 혼자 보시나요?) “아니요. 병원에서 여럿이 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줘서 거기서 보지요. 광주에 사는 아는 동생들이 지인들과 찾아오면 함께 봅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7시에 상영하고 있는데 이번 주는 강대진 감독의 ‘가로수의 합창’, 다음 주는 김기 감독의 ‘가버린 사랑’을 틉니다.” (주연 작품인데 못 보신 게 있으십니까?) “그땐 너무 바빠서…. ‘맨발의 청춘’도 못 보다가 다른 영화 촬영 중에 시간이 나 극장에 들어갔지요. 2층에 앉았는데 신성일하고 엄앵란이 왔다니까 관객들이 영화는 안 보고 우리만 봐서 바로 나오기는 했지만요. 하하하.” 김기영 유현목 정진우 감독이 옴니버스식으로 제작한 ‘여·여·여(女·女·女)’는 그가 최은희 김지미 문희 등 세 여인과 겪는 기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소자 관람 불가. 이곳 엘리베이터에는 그가 주연한 작품의 상영 일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는 이 요양병원의 명예원장도 맡고 있다.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3년 전부터 기획을 하고 있었는데 병 때문에 잠시 미뤘었죠. 시나리오는 나왔는데 작품에 맞게 약간 수정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사진작가와 그의 두 사위, 외손녀 등 가족 이야기죠. 이야기를 풀어나갈 중심 장소도 이미 봐 둔 곳이 있고요.” (어떤 역이신가요?) “저는 아날로그 세대인 할아버지 사진작가 역이죠. 스마트폰도 거의 안 쓰고 가능하면 유선전화를 쓰는…. 디지털 세대인 첫째, 둘째 사위 역에는 안성기와 박중훈.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후배들이지요. 외손녀 역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오디션을 볼 겁니다.” (안성기 박중훈 씨가 승낙을 하셨나요?) “전화로 반승낙은 받았지요. 시나리오 완성본은 이달 말쯤 나오니까.” ―제목이 정해졌나요? 가제라도…. “처음에는 ‘행복(happiness)’을 생각했는데 이장호 감독이 누군가 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가제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했어요. 난 그게 마음에 듭니다.” ―상대 여주인공이 누군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감독과 아들딸들과 이야기하는데 문숙 씨를 추천하더라고요. ‘태양을 닮은 소녀’라고 이만희 감독의 1975년 작품인데 데뷔작을 저하고 같이 했지요. 전 그 여인의 자연주의적인 이미지가 참 마음에 듭니다.” (선생님의 아내 역인가요?) “네. 그런데 제가 이 감독에게 ‘우리 둘이 너무 엇박자 아니냐’고 했더니 ‘형님, 엇박자 가지고 하모니 한번 만들어 봅시다. 둘째 부인으로 하죠’ 그러더라고요.” (왜 하필 둘째 부인으로…?) “화면으로 보면 저하고 문숙 씨가 차이가 많이 나요. 정상적인 노부부로 잘 보이지 않는 거죠. 그래서 첫째 부인은 죽은 걸로 하고…. 작품에 대한 감독의 이미지가 팍팍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선생님, 매우 부럽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매년 참석했어요. 감옥에 있는 2년만 빼고…. 아, 감옥에서 나온 해도 미안해서 못 갔고…. 그 세 번만 빼고는 다 갔죠. 작년에는 제 회고전도 열렸고…. 사실 이번 작품도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입니다.” (촬영은 언제쯤 시작됩니까?) “내 건강이 회복되는 때를 내년 5, 6월 정도로 보고 있는데…. 아마도 그때쯤 크랭크인을 할 겁니다. 출품작이 되려면 7월까지는 어떤 작품이라는 걸 알려줘야 하니까요.”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3, 4개월이면 충분해요. 제가 제작을 해봤지만 대작이 아니면 오래해 봐야 돈만 많이 드니까…. 10월에 개막이니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빨간색 포드 머스탱을 몰고 박정희 대통령 차를 추월했다는데 사실입니까. “하하하, 누가 재미있게 쓴 거지 어떻게 대통령 차를 추월하겠소. 그땐 시간만 있으면 머스탱 몰고 대전, 추풍령까지 돌고 왔지요. 서울에서 추풍령까지는 개통돼 있었고, 그날 추풍령에서 부산까지 뚫린 거니까. 박 대통령 행렬은 부산에서 올라오고 나는 서울에서 내려갔으니 추월이 아니고 지나친거죠. 추풍령휴게소 근처인데 저쪽에서 대통령 행렬이 껌뻑껌뻑 불 켜고 올라오고 있더라고? 어떤 행렬이란 건 알았지요. 라디오로 생중계 중이었으니까. 그 옆을 시속 백 몇십 km로 휙 지나친 거죠.” ―서슬 퍼렇던 시절인데 별일 없었습니까. “며칠 후 시내에서 박종규 경호실장하고 점심을 먹는데 ‘동생, 나 그날 동생 차 지나가는 거 봤어’ 하더라고. 내 차를 본 적은 없지만 외제차 샀다는 소문은 들었으니까 차 보고 안 거죠. 제가 엄청난 속도로 ‘씽∼’ 지나가니까 박 대통령이 ‘저거 누구야?’ 하고 물어서 ‘영화배우 신성일입니다’라고 했답디다. 그랬더니 박 대통령이 ‘그 친구 오래 살라고 해’ 했다더군요. 사고 내지 말고 조심하란 뜻인데… 참 어른스러움이 묻어 있는 말이지요. 별일은 없었어요.” (얼마나 빨리 달렸길래…) “부산까지 두 시간 반 걸렸으니까…. 지금도 좀 달립니다.” (지금도요?) “제 버릇 어디 가겠소?” ―원래 겁이 없으신가요. 1980년 신군부의 국회의원 제안도 면전에서 거절했다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전 청와대에 갔을 때 먼발치에서 이미가 훌렁 벗겨지고 머리가 되게 큰 친구가 가끔 눈에 띄었어요. 나중에 보니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이더라고. 1979년 12·12쿠데타가 벌어지고 이듬해인데 하루는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서 받으니 저쪽에서 ‘선배님, 저 전경환입니다’ 하더군요. 청와대 한 번 다녀가라고…. 갔더니 ‘국회의원 한번 하시면 안 좋겠냐’고 합디다. 첫마디에 ‘안 한다’ 하고 나와 버렸지요. 형님으로 부르던 당시 주영복 국방부 장관과도 절연했고….” (왜요?) “1980년 어느 날 장관 공관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했는데 얘기 중에 전두환이 대통령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두환이 되면 나라 망한다’고 했더니 안색이 확 바뀌면서 ‘그런 말하면 너 혼난다’고 하더군요. ‘혼내라’고 하고 뛰쳐나왔지요.” (그러면 찍혔을 텐데요?) “찍혔으니까 그 뒤에 내가 할 일이 하나도 없어진 거 아니오. 일 년에 한 편? 두 편? 찍었으니까. 영화도 다 죽어버리고….” ―그때도 한자리 차지하려는 사람이 수두룩했는데 왜 거절했습니까. “그땐 전두환의 민정당이 집권할 게 확실했으니까 승낙했으면 국회의원을 몇 번은 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게 끝난 뒤에는 내가 뭐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듭디다. 그때가 40대 초반이었는데….” (역사의 심판대에 섰을까요?) “하하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겠지. 그래서 안 한다고 했지요. 그들이 광주에서 한 짓을 생각하면….” ―요즘 영화계에 아쉬움이 있는지요. “아쉬움이 많으니 ‘소확행’을 만드는 거지요. 말이 났으니까 그렇지만 모 감독은 연기 지도한다고 여배우 뺨을 때렸다는데 그게 무슨 감독이오? 후배들 다 못 쓰게 만들고…. 나는 액션 영화는 많이 안 했어도 맞고 넘어지는 장면은 숱하게 했는데, 진짜 맞았다면 내 턱이 남아났겠소? 카메라 앵글로 (맞는 것처럼) 잡아주고 어색하게 보이지 않게 그걸 연습하는 거지…. 진짜 맞는 게 무슨 훈련이야? 나쁜…. 그러면 안되는 거요.” ―개인적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이만희 감독과 함께 만든 ‘만추(晩秋·신성일 문정숙 주연·1966년)’란 영화가 있는데 참 좋은 영화지요. 근데 필름이 이제는 우리나라에는 없고 북한에만 있어요. 김정일 애장품으로…. 나는 한 장면이 새겨진 동판만 갖고 있지요.” (왜 국내에는 없습니까?) “당시에는 영화 필름 보관에 대한 개념이 약해서 전부 잘라서 밀짚모자 테두리로 썼으니까…. 일부가 당시 홍콩에 수출됐는데 김정일이 영화광이다 보니 그걸 사갔다고 하더군요. 북한에 납치됐던 신상옥 감독이 김정일 소장 영화 목록에서 그걸 봤대요. 남북한 교류가 활발해져서 평양에 갈 수 있다면 그걸 꼭 복사해서 갖고 오고 싶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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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격한 학사관리, 올해까지 91번째 노벨상 배출한 원동력… 1974년 하이에크 이후 경제학상만 30명 ‘시카고학파’ 명성

    미국 시카고대 휘장에는 불사조 머리 위에 ‘Crescat scientia: vita excolatur’란 라틴어 문장이 적혀 있다. ‘지식을 기를수록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뜻. 그래서일까. 시카고대는 미국 명문대 중에서도 공부를 혹독하게 시키기로 유명하다. 시카고대가 유독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것은 이런 학업 풍토 때문인지도 모른다. 2017, 2018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대학교 랭킹인 ‘US News and World Report’에서 미국 대학(학부)부문 3위를 차지했다. 이 외에도 대부분의 세계 대학교 순위에서 10위 안에 들 정도다. 시카고대는 올해 노벨상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로 폴 로머 뉴욕대 교수(62)와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77)가 선정되자 8일(현지 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시카고대가 91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자랑했다. 로머 교수는 이 대학에서 수학 학사(1977년), 경제학 박사 학위(1983년)를 받았고, 1988∼1990년 교수로 재직했다. 이 대학은 특히 다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로도 유명하다. 1950∼1962년 이 대학 교수를 지낸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3년에는 유진 파마와 라스 피터 핸슨 교수가 공동수상을 했고, 지난해에는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수상했다. 대학 측은 “시카고대 소속 또는 출신으로 노벨상을 받은 91명 중 30명이 경제학 전공자”라고 밝혔다. 엄격한 의미에서 시카고학파란 20세기의 시카고대 경제학부의 멤버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요즘은 경제학의 지나친 수리적 접근 및 정형화에 반대를 하고, 자유주의, 자유시장의 가격이론을 고수하는 부류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원래 시카고대는 1857년 S. A. 더글러스가 기증한 토지를 기초로 세워졌으나 재정난으로 1886년 폐쇄됐다. 지금의 시카고대는 실업가 J. D. 록펠러가 새 대학으로 세워 1892년 개교한 것이다. 개교 이후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의 근거지로서 사회학 교육학 자연과학 분야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뤘는데, 1942년 E. 페르미 교수에 의한 최초의 원자로 운전을 비롯해 원자과학 의학 인구학 인류학 등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였다. 경제학 분야 외에도 졸업생이나 교수 중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으로는 허버트 브라운(1972년 화학), 솔 벨로(1976년 문학) 등이 있다. 고고학자 로버트 애덤스, 수학자 조지 버코프,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저명인사들을 배출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시카고대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오바마는 이 대학 로스쿨 교수 출신이고 대학 내에는 그가 데이트했던 장소와 살던 집 등이 있다. 시카고는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이고,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첫 연설을 시카고대에서 했다. 또 미국 대통령의 특권인 대통령 도서관(Presidential Library)을 시카고대에 만들 계획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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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몰카 범죄, 4년간 무려 1만6802명 검거… 애인 등 면식범 소행 2645명 달해

    끊이지 않는 몰카(몰래 카메라) 범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서울 서초구 몰카 보안관팀이 야심 차게 출정식을 가진 지난달 30일. 공교롭게도 서초구청의 한 직원이 노인 여성과 성매매를 한 뒤 노인의 신체를 찍은 사진 여러 장을 음란사이트에 올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는 보도가 났다. 보고를 받은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노발대발했고 직위해제는 물론 서울시에 파면을 요청했지만 이미 인터넷에는 ‘일베 박카스남, 서초구청 직원…구청에선 몰카 보안관 출정식’이란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한 시민은 조 구청장의 페이스북에 ‘디지털 성범죄는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시는데 직원 단도리(단속)는 어떻게 된 건가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제대로 물을 흐린 셈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는 2014년 2905명(남 2856명, 여 49명), 2015년 3961명(남 3866명, 여 95명), 2016년 4499명(남 4382명, 여 117명), 지난해 5437명(남 5271명, 여 166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최근 4년간 무려 1만6802명이 몰카 등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것이다. 이중 애인, 친구, 직장 동료, 이웃 등 이른바 면식범에 의한 범죄도 2014년 391명, 2015년 541명, 2016년 774명, 2017년 93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1일 해군사관학교에서는 몰카 범죄를 저지른 A 생도(21)가 퇴교조치 됐다. A 생도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여생도 숙소 화장실에 스마트폰을 몰래 숨겨 놓고 10여 차례에 걸쳐 촬영했다가 적발됐다. A 생도의 범죄는 이달 중순 화장실 청소 도중 한 생도가 종이에 감싼 스마트폰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변기 뒤쪽에 놓인 스마트폰은 흰색 A4용지로 감싸 있었고, 카메라 렌즈 쪽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광주센터 탈의실에서 발견된 몰카도 이 기관에서 일하던 30대 남성이 설치한 것이었다. 이 남성은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로 위장한 몰카로 무려 1년간 들키지 않고 촬영했다. 정부와 각 지자체가 대대적으로 몰카 범죄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근절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 이 때문에 각자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화장실에서는 종이컵 등 불필요한 물건이 놓여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기 여주의 한 주민센터에서 발견된 몰카는 일회용 종이컵 속에 숨겨져 있었다. 무려 석 달이나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다가 큰 봉변을 당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는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서는 게 가장 좋다. 버스정류장,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주변을 계속 맴도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수상하다고 느껴지면 개인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즉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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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총격전 난 것도 아닌데… 女화장실 벽에 작은 구멍들 숭숭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구청장 조은희)에서는 ‘몰카(몰래 카메라) 보안관’ 출정식이 열렸다. 몰카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전담 단속반까지 만들어 대응에 나선 것이다. 최근 배우 신세경과 걸그룹 에이핑크의 윤보미 숙소에서 몰카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뜨는 등 몰카 범죄가 사회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나 몰카 단속은 했지만 이번처럼 아예 ‘보안관팀’을 만들어 운용하는 것은 서초구가 처음이다. 19명으로 구성된 몰카 보안관들은 3일부터 2인 1조로 지역 내 건물 화장실을 돌며 몰카 탐지에 나섰다. 19, 20일 이틀간 몰카 보안관들의 현장 점검을 동행 취재했다. ○ 숭숭 뚫린 구멍들 “가관이죠. 화장실 칸막이 벽에 뚫린 구멍들을 보면…. 구멍을 막아 놓은 휴지들을 보면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성들의 절박한 심정이 보이는 것도 같고….” 19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의 노래방, 술집 등이 입주한 한 건물. 이곳은 남녀 화장실이 별도로 분리돼 있고, 각 화장실 안에는 2, 3개의 칸이 있었다. 분명 여성들만 들어오는 곳인데도 화장실 칸막이벽에 송곳 끝으로 판 듯한 구멍이 곳곳에 나 있었다. 적은 곳은 2, 3개였지만 많은 곳은 칸막이벽 하나에 8, 9개나 구멍이 뚫려있었고 대부분 구멍은 휴지로 메워져 있었다. ‘무슨 총격전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벽에 난 이 구멍들은 몰카 설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직접 옆 칸을 훔쳐보기 위해 뚫은 것이다. 몰래 들어가 숨어 있다가 여성이 들어오면 구멍으로 훔쳐보는 식이다. 강남역 일대에는 시민들을 위한 개방형 화장실이 많아 이런 식의 훔쳐보기에 노출된 화장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소극적으로 휴지로 막을 것이 아니라 아예 훔쳐보다가 큰코다치게 바늘로 구멍을 찔러야 한다”고 분개하는 여성이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몰카 보안관들의 점검은 이 건물 7층부터 내려오면서 탐지기로 화장실 내 곳곳을 훑는 식으로 진행됐다. 탐지기를 휴지통, 휴지걸이, 천장, 용변기, 벽면 등에 대고 몰카 신호가 나오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몰카는 특정 주파수 대역의 전파를 사용하는데, 이 전파가 감지되면 ‘뚜뚜뚜’ 하는 소리를 내며 와이파이 모양처럼 생긴 감지등이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넘어간다. 빨간색으로 넘어가면 해당 장소를 육안으로 정밀 점검해 몰카 설치 여부를 확인한다. ○ 쉽지 않은 몰카 탐지 현장 점검에서 몰카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서초구 몰카 보안관팀은 발족 후 3일부터 19일까지 8개 팀을 투입해 건물 427곳의 화장실 2286개를 점검했지만 아직까지 몰카를 발견하지는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경찰, 일부 지자체도 같은 점검을 하고 있지만 신고가 아닌 현장점검에서 발견된 적은 없다고 한다.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경기 여주 주민센터 사건처럼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발견한 적은 있지만 임의 점검에서 몰카가 발견된 적은 없다. 탐지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화장실 탈의실 등에 몰카를 설치하는 것은 에스컬레이터 등에서 휴대전화로 몰래 찍는 것과는 달리 쉽지 않기 때문.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탐지 방식도 몰카 발견이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서초서 측은 “완벽하게 몰카를 탐지하려면 건물 내 모든 전원을 차단한 뒤에 해야 하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우는 가능하지만 일반 점검에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몰카 탐지기를 제작하는 ‘공공칠월드’ 성준기 대표는 “몰카 탐지기는 몰카가 내는 전파를 탐지하지만, 전선이 지나거나 비데가 설치된 곳 등 전기가 강한 곳에도 반응을 한다”며 “1차로 탐지기로 반응을 본 뒤 2차로 육안으로 정밀 점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장에서 반응이 있다면 천장을 뜯어보거나, 휴지걸이에서 반응이 있으면 확인하는 식이다. 19일 강남역 일대의 건물 화장실 점검에서도 탐지기는 종종 빨간색까지 신호가 올라갔다. 이럴 때마다 휴지통 정도는 뒤져볼 수 있지만 천장이나 휴지걸이에서 나온 반응은 모두 확인할 수 없었다. 천장을 임의로 뜯어보거나 사용 중인 화장실 안 휴지걸이를 모두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번 점검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늘 점검해도 내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에 외식업소만 4400여 개가 넘어 수시로 점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 예방 효과도 커 서초구는 모텔 등 숙박업과 찜질방 등 목욕업의 경우 관련 협회 서초지회에 탐지기를 대여해주고 자체 점검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는 아직 점검하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학교장의 허락을 받아 점검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시중에 퍼진 몰카 동영상 중에는 모텔이나 목욕탕 업소 관계자가 찍은 것도 많은데 자체 점검으로 실효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몰카 보안관팀을 관리하는 이보민 서초구 여성행복팀장은 “대상 업소가 너무 많은 것도 이유지만 숙박업, 목욕업 업주들 중에는 몰카 점검을 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구청에서 점검해주고 안심화장실 스티커처럼 ‘안심모텔’이라고 인증해주면 손님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업소 주인들 중에는 점검받고 안심모텔이라고 인증을 받았는데 만의 하나 몰카가 나오면 손님이 소송을 걸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손님 입장에서 ‘안심모텔’이라는 인증을 믿고 투숙했는데 오히려 몰카에 당하면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몰카 탐지는 쉽지 않지만 이들이 곳곳을 다니며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큰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몰카 보안관들은 위험성이 있어 보이는 화장실에는 ‘몰카 금지, 이곳은 서초 몰카 보안관이 불법촬영기기 설치 여부를 점검 중인 장소입니다’라는 문구와 점검 날짜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둔다. 김소연 몰카보안관 대장은 “몰카를 설치하려는 사람이 이 스티커를 본다면 뜨끔하지 않겠느냐”며 “탐지도 중요하지만 범죄를 예방하는 것도 우리가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 인터넷에는 ‘몰카 찾는 법’도 돌아 경기 여주의 한 주민센터에서는 최근 30대 남자 직원이 여자 화장실에 몰카가 설치된 종이컵을 놔둔 뒤 용변 보는 모습을 촬영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적발됐다. 이 종이컵 몰카는 무려 석 달이나 놓여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촬영된 영상은 390여 개로 영화 100여 편에 해당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특히 강남역 일대는 2016년 5월 한 건물 내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피살된,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이 때문에 몰카 보안관들이 돌아다니거나, 이들이 붙인 스티커만 봐도 안심하는 여성이 많다고 보안관들은 말했다. 워낙 몰카 공포가 심하다 보니 인터넷에는 ‘몰카 찾는 법’도 돌고 있다. 빨간 셀로판지를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와 플래시에 붙인 뒤 플래시를 켜고 의심스러운 곳을 비췄을 때 ‘반짝’하는 것이 있다면 몰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성 대표는 “렌즈는 빛을 비췄을 때 반사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한 방법”이라며 “단지 색이 있는 셀로판지가 없이 그냥 비추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내부 회의에서 휴지걸이 등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비품들을 투명하게 속이 보이도록 만들면 몰카도 설치할 수 없을 거라는 아이디어도 나왔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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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모님, 누가 고교 학군 보고 ‘아리팍’ 가요? 촌스럽게∼”

    《 불어나는 강물을 간신히 버티던 방죽이 마침내 무너진 걸까.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ACRO RIVER PARK) 24평(전용면적 59m²)이 평당 1억 원이 넘는 24억5000만 원에 팔렸다는 보도가 나면서 온 나라가 부동산 패닉에 빠졌다(물론 현재까지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9·13부동산대책을 서두른 데는 이 아파트가 준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간이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극단적이다. 가진 자는 이곳이 더 올라 다른 집값도 올려주길 바라고, 없는 사람은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현실에 가슴을 쳤다. 13일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  “이러다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또 올지도 모르겠네요.” 주민 한모 씨(41)는 “2016년 입주 때 아리팍(아크로리버파크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 비싼 게 엄청나게 화제가 되니까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스를 전세 내 단체로 와서 구경하고 사진 찍고 갔다”며 “조만간 같은 장면을 또 보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과 달리 주민들과 공인중개사사무소들은 극도로 예민해 있었다. 지인이 자신만만하게 “소개해주겠다”고 한 단지 내 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취재 요청을 받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난색을 표했다. 주민 양모 씨(43)는 “불똥이 이상하게 튀어 혹시나 자기 아파트 대금 출처까지 탈탈 털리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24억5000만 원에 팔렸다는 계약이 실제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는 계약 후 60일 이내에만 신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구매자가 법인이라 굳이 값을 깎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도 돌고 있다. 끝내 확인이 안 될 수도 있다. 계약금만 낸 상태에서 소문이 났고, 이후 계약이 깨졌다면 신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은 국토부가 관리하지만 운영은 한국감정원이 한다. 한국감정원 측은 “검증 과정에서 허위신고나 업·다운계약이 의심되면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실제 거래가 있었다면 해당 아파트는 한강에 가장 가까워 최적의 조망권을 가진 104, 111동 중 어느 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 24평은 이 두 동 외에도 101, 102, 107, 108, 113동에도 있지만 모두 단지 뒤쪽이라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이 동네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A 씨의 말.(취재에는 여자 지인이 동행했고 질문은 그가 했다) ―진짜 평당 1억 원인가요? 이 동네가…. “언론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아는 24평은 22억 원 정도예요. 34평은 27억∼28억 원에 나오다가 30억 원에 거래됐다는 말이 나오니까 집주인들이 거둬들였어요. 전망이 좋으면 더 나가고요. 지금은 매물이 다 들어갔어요. 대신 전세는 잘 나가요. 24평은 11억∼11억5000만 원, 34평은 14억∼15억5000만 원 정도예요.” ―집을 볼 수 있어요? “24평은 A∼E형, 34평은 A∼G형 등 5, 7가지가 있어요. 뭐가 나올 줄 알고 미리 봐요? 기다렸다가 나온 거 보고 사는 거죠. 24평 A형은 방 3개에 욕실 2개, 보조주방이 있고 드레스룸이 있어요. 천장도 주변 아파트보다 훨씬 높아 작은 평수도 넓어 보여요.” 인근 다른 아파트의 층 높이가 230cm인 반면 이곳은 260∼270cm다. ―비싸도 여기 사는 게 나아요, 아니면 인근 다른 아파트가 나아요. “지금 이주가 시작된 근처 반포 경남3차 아파트 33평이 26억∼27억 원이에요. 여기에 추가 분담금 내고, 이주비 들고 하면 여기 사는 게 낫죠. 하지만 좀 기다리세요. 지금은 물건이 너무 없으니까 주인이 부르는 값에 살 수밖에 없잖아요. 24억5000만 원에 팔린 게 사실이면 다른 집주인은 25억 원을 부를 텐데…. 사모님, 그 값에 사실 거예요? 사시는 입장에서는 아니잖아요.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전반적으로 손본다니까 그거 보고 사는 게 나아요.” (대책이 몇 번이나 나와도 계속 오르니까…) “계속 오를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대책이 나온 순간에는 값이 잠시 주춤하는 게 있어요. 그때를 보는 게 나아요. 지금 사면 값 올리는 것밖에 없잖아요.” ―주민들은 완전 봉 잡은 거네요. “여기가 옛날 5층짜리 한신1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곳인데 한신 32, 33평에서 아리팍 52평, 한신 28평에서 45평으로 가면 무상이었어요. 만약 30평대에서 34평으로 가면 10억 원 가까이 환급해줬고요.” (10억 원을 돌려줬다고요?) “그때는 그랬어요. 그렇다고 다 떼돈 번 건 아니에요.” (왜요?) “분양 때(2013년 1차) 평균 청약경쟁률은 19 대 1이나 됐지만 실제로는 60%가 계약을 포기했어요. 부동산 상황이 워낙 안 좋은 데다 평당 4000만 원이 넘는, 당시 국내 최고 분양가가 너무 부담이 됐던 거죠. 차례를 받은 대기자 중에도 더 오르기 힘들다고 생각해 안 산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나한테 온 사람 중에는 프리미엄을 300만 원만 주면 넘기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오죽하면 그때 정부가 부양책을 썼겠어요.” ―여기가 왜 그렇게 비싼 거예요. “새 아파트고…. 제가 보기에는 근처에 있는 반포·계성초등학교와 외국인학교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 외국인 회사 간부나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이 많아요.” (고등학교는요?) “아, 사모님, 촌스럽게 요즘 누가 고등학교 학군 보고 집 사요? 초·중학교 보지. 고등학교는 외고 과학고 가면 되고 일반고도 1, 2, 3지망이어서 돌려서 가는데요.” 계성초등학교는 손꼽히는 사립 명문초등학교.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외국인학교(덜위치칼리지 서울영국학교)는 영국계 외국인 학교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단지 안에는 구립 어린이집이 3개나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아파트의 또 하나 ‘대박’은 2013년 12월 1차 분양으로 24, 34평을 받은 사람들이 5년 안에 집을 팔 경우 양도소득세를 전액 면제받는다는 점이다. 2013년 부동산 경기가 침체의 늪에 빠지자 정부는 2013년 4월 1일부터 그해 12월 31일까지 6억 원 이하 또는 주택의 연면적(공동주택 및 오피스텔은 전용면적)이 85m² 이하인 주택에 대해서는 취득 후 5년 내에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전액 감면해 주기로 했다. 아리팍 1차 분양은 2013년 12월, 2차 분양은 이듬해에 있었다. 아리팍은 2016년 입주했기 때문에 2021년까지만 팔면 혜택을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지역 아파트에도 해당되지만 당시 부동산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실제 이 혜택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 34평(공급면적 112.84m², 전용면적 84.97m²)에 사는 B 씨는 당시 1차 분양에 당첨돼 입주했다. 이 평형은 최근 30억 원에 팔렸다는 소문도 났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는 층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7월 21∼31일 사이에 팔린 27억8000만 원(14층)이 가장 비쌌다. ―분양받을 때는 얼마였나요. “이것저것 포함해서 13억 원 정도요. 모아 놓은 거와 대출 받을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받고….” (당시도 너무 비싸서 말이 안 된다고 했다던데요?) “네. 그래서 계약 포기한 사람도 많았어요. 왜 계약하느냐고.” (오를 줄 안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못 먹어도 고(go)’ 하자는 생각에….” 국세청 양도소득세 모의 계산을 통해 이 집을 27억8000만 원에 팔았을 경우 양도소득세가 얼마가 나올지 추산해 봤다. 동네의 민감한 분위기를 우려한 그는 정확한 분양가와 당시 지불한 세금, 필요경비 등은 말하지 않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세표준 42%를 적용하니 양도세액이 약 3억8000만 원이 나왔다. 헐∼. ―관리비는 얼마나 나옵니까. 조경이나 공공시설이 좋아서 좀 나올 것 같은데…. “매달 30만 원 정도? 이번 여름에는 에어컨을 많이 틀어서 전기료가 5만 원 정도 나오던 것이 13만 원 나오더라고요.” (몇 대를 틀었는데요?) “5대 있는데 3대만 틀었지요. 에너지 효율이 좋아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많이 안 나온 것 같던데….” (인상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하하하 뭘…. 고지서도 보여드릴까요?” 이 집 관리비(올 2월)를 인근 서초4동 삼풍아파트 34평(공급면적 114.3m²) 2월과 비교했다. 총액은 아리팍이 34만120원, 삼풍은 23만1280원으로 아리팍이 10만 원 정도 더 나왔다. 전기료는 아리팍 8만310원, 삼풍 3만6890원. 난방비는 거꾸로 삼풍이 15만5640원, 아리팍은 3만5020원이었는데 삼풍은 중앙난방식이고 1988년 입주한 30년 된 아파트라 열효율이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리팍은 개별난방이다. 이 집 부부는 맞벌이라 퇴근 때까지 난방을 안 했다. 경비비도 삼풍 5만4250원, 아리팍 4만4750원인데 동마다 배치된 경비 인력이 없는 아리팍과 달리 삼풍은 동마다 경비 인력이 6∼8명씩 교대 근무를 한다. 이 밖에 아리팍은 커뮤니티 기본비 2만 원, 커뮤니티 운영비 9080원을 받고 있었다. 최근 평당 1억 원 이상에 팔렸다는 이 집 때문에 연쇄 폭등현상이 일어날지, 아니면 그것이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해당 집만의 값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놀라서 아리팍의 모든 아파트가 마치 평당 1억 원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달 초만 해도 34평은 20억 원, 45평은 31억8000만 원에 팔린 집도 있었다. 평당 5800만 원, 7000만 원 수준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랄 수는 있지만 억대 솥뚜껑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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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포커스]‘러시아, 군사-경제대국 부활’ G3 꿈꾸는 푸틴의 야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국의 부활을 꿈꾸나, 아니면 국제 질서를 주요 2개국(G2·미국과 중국)이 아니라 주요 3개국(G3·미국 러시아 중국)으로 재편하고자 하나. 푸틴 대통령이 이달 비슷한 시기에 갖는 대규모 군사훈련과 경제포럼을 보면 유럽에서 극동아시아로 이어지는 거대한 야망이 엿보인다.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 일본의 결속에 대응하려는 의지도 내보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 러, 37년 만의 최대 군사훈련을 동방에서 러시아가 11∼15일 실시하는 ‘보스토크(동방)―2018’ 군사훈련은 1981년 ‘자파트(서방)―81’ 훈련 이후 37년 만의 최대 규모다. ‘보스토크―2018’은 우랄 산맥에서 태평양 해안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서 벌어진다. 러시아 전 병력의 3분의 1가량인 30만 명 이상이 동원되며 전투기 1000여 대, 북해함대와 태평양함대도 참여할 예정이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최근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항공모함과 3만6000대의 탱크와 장갑차 등 군사장비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상상해보라”며 “가능한 한 전쟁에 가까운 조건 아래서 훈련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우리에게 상당히 공격적이고 비우호적인 현재 국제 정세에서 우리의 군사적 능력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이번 훈련의 의미를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도 직접 훈련을 참관한다. 러시아 전체 군사 규모를 보면 이번 훈련이 얼마나 대규모인지 알 수 있다. 러시아 군사편제는 지상군, 해군, 공군, 전략미사일군, 우주군, 공수부대로 나뉘어 있다. 지상군은 36만여 명이며 전차 2만3000여 대, 장갑차 2만5000여 대, 포 3만여 문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은 14만여 명에 순양함 항공모함 잠수함 등 전투함 300척, 지원함 400여 척, 항공기 400여 대 등이다. 공군은 병력 16만여 명에 전투기 폭격기 등 3000여 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전략미사일군 8만여 명, 우주군 4만여 명, 공수부대 3만50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중국과 몽골 군대도 참여한다. 중국 국방부는 지난달 “중국과 러시아 군대가 러시아 동시베리아 자바이칼 지역에서 연합 전투 훈련을 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관영 언론은 ‘전략적 군사 협력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참여하는 중국군은 병력 3200여 명과 전투기와 헬기 30여 대, 각종 장비 900여 대 등으로 알려졌다. 기동방어, 화력 타격, 역습 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훈련은 지난해 동유럽과 인접한 러시아 서부 지역에서 한 ‘자파트―2017’보다 더 큰 규모로 알려졌다. 서방 국가의 침략을 상정한 이 훈련은 지난해 9월 14∼20일 서부 러시아, 벨라루스, 발트해 등에서 열렸다. 러시아 국방부는 1만2700여 명의 병력이 참가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에스토니아 국경에서 실시된 훈련에만 1만2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등 훨씬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측이 참가 병력 수를 축소 발표한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러시아 간의 협약에 따라 1만3000명 이상 병력이 동원되는 군사훈련에는 상대방의 감시와 참가 병사들에 대한 대화를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 훈련 기간 동안 북부 플레세츠크 기지에서 1만2000km 떨어진 극동 캄차카반도를 향해 신형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S-24 야르스’도 발사 시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나토는 이 훈련을 러시아가 전군을 동원해 기습적으로 서유럽을 침공하는 전면전의 축소판으로 판단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보스토크―2018’ 훈련에서도 중-러가 핵공격 모의연습을 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 유럽에서 극동에 이르는 경제대국의 꿈 담은 동방경제포럼 ‘보스토크―2018’이 군사대국 러시아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11∼13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리는 제4회 동방경제포럼(EEF)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영향력을 과시하는 경제대국 러시아를 지향한다. 2015년 9월부터 러시아 정부 주관으로 매년 열리고 있는 EEF는 극동러시아 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유치 및 주변국과의 경제 협력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러시아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포럼은 3개인데 그중 하나가 EEF다. 푸틴 대통령이 2015년부터 역점을 두고 있는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이 포럼을 창설했다. 1회 포럼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극동 최대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인구 60만 명)를 홍콩(인구 700만 명)과 같은 자유항으로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이 포럼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러시아 극동과 아시아태평양의 경제 통합을 위해서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청사진을 1회 포럼 개막연설에서 밝혔다. 러시아 근대화를 이끈 표트르 대제가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키웠다면 푸틴은 극동인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으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다. EEF는 북한 핵개발 ‘암초’를 만나 동북아 정세가 복잡 미묘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포럼이 끼치는 영향력도 경제에 국한하지 않고 외교·안보 분야까지 넓어지고 있다. 북한 핵개발 대응을 위한 6자회담이 2008년 12월 이후 10년간 중단된 상황에서 EEF는 사실상 동북아의 유일한 다자협의체로 존재감이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6년 열린 제2회 포럼은 북한의 잇단 도발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쿠릴 4개 섬 영유권 분쟁 등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 남북한 간 긴장이 고조되던 시점에 열렸다. 당시 푸틴 대통령 초청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 동북아 정상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제3회 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북방정책’을 제안하며 남-북-러 경제협력을 주창했다. 올해 제4회 포럼도 푸틴 대통령이 남북한 정상에게 동시에 초청장을 보내 경제보다 외교·안보 쪽의 초대형 이벤트가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불참하고 우리나라는 문 대통령 대신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다. 중국은 ‘보스토크―2018’ 훈련이 진행되는 시기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 우의와 협력을 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북방 4개 열도 및 극동에서의 경제 협력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러시아학)는 “푸틴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EEF는 경제나 인구 면에서 낙후된 극동지역을 방치할 경우 장기적으로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고 이는 결국 안보 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중국이 참여하는 보스토크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미국의 동북아시아 영향력에 대해 양국이 손을 잡고 대응하려는 의도가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중-러는 때로는 안보 차원에서, 때로는 경제 차원에서 상황에 맞게 파트너를 바꿔가며 2인 3각 경주를 해오고 있다”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를 단편적인 현상에 매몰되지 말고 미-중-러가 그리는 큰 그림을 잘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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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장례도 끝났고… 이제 죽는 것만 남았나요? 하하하”

    《 정승집 개 죽으면 가도 정승이 죽으면 안 가는 게 세상인심. 진심으로 망자(亡者)를 기리기 위해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밥 한 끼라도 함께 먹고 떠나면 참 좋을 텐데…. 지난달 14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에서는 한 노인의 생전장례식이 열렸다. 자신의 부고장(訃告狀)을 보낸 이는 말기 전립샘암을 앓고 있는 김병국 씨(85).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식이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 탓에 몇몇은 쭈뼛거렸고, 몇몇은 울먹였지만, 손을 잡은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 우리 그때 좋았지? 행복하게 살아.” 》  ―생전장례식이 외국에는 더러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젊을 때부터 죽음이란 걸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죽은 뒤에 누가 왔는지도 모르는 장례식보다는 살아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 보고, 밥 한 끼 함께 먹고 가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죽음은 한 인생의 마무리잖아요.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듯이, 삶이란 경기를 끝내는 모든 사람은 결과와 관계없이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했을 뿐이지요.” ―그래도 자신이 죽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있나요? 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안 죽는 것도 아니고…. 원래 3개월 남았다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1년 전에…. 그런데 연명치료도 안 받고, 항암주사도 안 맞는데 아직 견디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아주 마음이 편합니다.” (항암주사도 안 맞으신다고요?) “난 항암주사 맞으면 죽어요, 하하하. 오죽하면 암보다 항암치료가 더 아프다고 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지막 모습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기억되고 싶지도 않고…. 연명치료에 집착하면 대부분 치료 중에 죽으니까 마지막을 준비할 기회도 별로 없지요. 오래 사는 건 생각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죽으면 그 이상 좋을 게 없겠죠.” ―진단이 잘못됐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하하하, 전 조직검사도 받지 않았어요. 1차 검진 때 무슨 수치가 나왔는데, 예를 들면 5정도가 나오면 암 가능성이 있는 거래요. 근데 전 100이 넘었다니까…. 뭐 더 확인할 필요도 없던 거죠.” (그래도 사람 마음이 안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인데….) “주변에서 자꾸 권해서 ‘정 받으라면 받기는 할 텐데 별 의미는 없지 않느냐’고 했지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도 굳이 받을 필요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미 거의 확실한데 두 번 세 번 고통받는 것도 싫고요.” ―장례식을 앞당겼다고 들었습니다만…. “두세 달 전에 마지막으로 고마운 사람들 얼굴이나 보는 자리를 만드는 게 어떠냐고 주변과 상의했죠. 근데 알다시피 엄청나게 더웠잖아요? 죽겠더라고요, 하하하. 제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한가요? 그래서 좀 선선해진 다음에, 9월 초쯤에 하자 그랬는데 의사 선생님이 지금이 제일 몸 상태가 좋으니 하려면 지금 하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1, 2주일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래서 앞당겨 잡은 게 8월 14일이었던 거죠. 날짜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장례식에 검은 옷 대신 예쁜 옷을 입어 달라고 하셨더군요. “예, 초청장(부고장)에 그렇게 썼지요. 장례식 콘셉트를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으로 정했거든요. ‘죽는 게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다. 이 세상 즐겁게 살다가 이제 당신들과 작별할 때가 왔다. 그동안 날 사랑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싶다’ 이러면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 식으로요. 그래서 축하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렇게 즐겁게 보내고 싶었어요. 그런 자리에 검은 옷은 안 어울리잖아요? 우리 장례문화도 이젠 바뀌어야 해요. 조문객 대부분이 망자는 알지도 못하면서 사실 상주(喪主)와의 관계 때문에 가니까요. 고인에 대한 추모보다 얼마를 내야 할지를 더 고민하고…. 망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추모하는 조사도 들을 수 없고,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와도 인사도 할 수 없지요. 그보다는 아직 살아 있을 때 서로 옛이야기 하고 남은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가면 얼마나 좋아요.” 실제로 장례식은 그의 바람대로 조문객들이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작은 축제 같은 행사로 진행됐다. 그는 평소 가장 좋아한다던 여성 듀엣 산이슬의 ‘이사 가던 날’을 불렀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노래가 끝난 뒤 잠시 동안 기력이 빠질 정도로 목청껏 불렀다고 한다. 그는 부고장은 초청장, 조문객은 초청객이라 불렀다. ―많이들 오셨나요. “한 30명 정도 올까 싶었는데 50명이 넘게 왔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누구지?’ 했는데 생전장례식이 어떤 건가 궁금해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초청한 분들은 다 왔습니까?) “네, 다들 왔죠. 요 근래에 사이가 소원해진… 제가 친동생 이상으로 좋아했던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걔도 왔더라고요. 죄송하다고 하면서…. 살아서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더라면 영영 못 보고 갔을 텐데 참 다행이죠.” ―생전장례식에 대한 다른 의견은 없었습니까. “주변에서 반대나 다른 말을 한 사람은 없는데… 병원으로는 생전장례식을 열지 말라는 전화가 왔었다고 하네요. 전화를 받은 우리 간호사가 수상해서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대라고 했더니 뚝 끊었대요.” (왜요?) “이게 좀 더 깊게 생각하면 존엄사나 안락사하고 연결될 수 있어요. 스스로 생전장례식을 치른다는 것은 죽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연명치료를 안 받는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생전장례식이 하나의 문화가 되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존엄사나 안락사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종교계나 의료계에서는 그런 걸 반대하니까…. 아마도 그런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생전장례식이 알려지니까 항의 전화를 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하나 분명히 할 게 있는데 연명치료를 안 받는 것과 삶을 포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전 삶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제 삶을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시키고 싶을 뿐이죠.” 그는 쾌활했지만 살아 있는 그의 죽음에 대해 물어야 하는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작은 침묵도 수차례 이어졌다. 어색함을 풀려고 말을 돌렸는데 그는 나를 배려한 듯 유머로 분위기를 바꿔줬다.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오셨나 봐요?(인터뷰는 병원 앞 작은 벤치에서 했다. 도착했을 때 이곳에 있는 그를 봤고, 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담배 피우려고요.” (네? 담배요?) “하루에 5개비 정도 피우는데 의사 선생님이 더 이상은 피우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암이시라면서….) “지금 제가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또 걸릴 것도 아니고, 하하하.” ―이북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지요. 아버지가 지주였는데 1947년 열네 살이던 신의주동중 1학년 때 북한에서 숙청 바람이 불면서 외삼촌과 둘만 서울로 왔습니다. 위로 누나가 7명이고 제가 막내였죠.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강원도 홍천군청에 들어갔는데 월급이 너무 적더라고요. 그래서 대한전선이란 곳에 취직했고, 월남전 때 파월 기술자 모집한다고 해서 베트남도 갔다 왔고, 이후 건설회사 몇 군데를 다니다가 은퇴한…, 그 뒤에는 노인 복지를 위해 노년유니온이란 곳에서 사회운동을 좀 했고… 뭐 평범한 인생이죠.” 그는 아내와는 사별했고, 자녀들과는 오래전에 절연했다고 한다. 노년유니온은 노인 권익과 복지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조합. 그는 지난해 초 이 단체 위원장에 선출됐으나 병으로 물러났다.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들었는데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글쎄요.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고시원에서 혼자 살았으니 형편이 좋은 건 아닌데…. 나라에서 주는 돈하고, 일부는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서 버는 돈으로 살았습니다. 노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제도들이 있는데 정작 노인들이 그런 게 있는지, 어떻게 하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몰라요. 그런 걸 알려주면서 시작했는데…. 우리나라가 노인 예산 자체는 부족하지 않아요. 제대로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는 게 문제지요.” 노년유니온에서 활동하기 전부터 그는 서울 은평구에서 노인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노령연금의 문제나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열악한 생활을 보도하는 기사나 인터뷰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가요. “노인들을 위해서 기초연금을 개선하는 데 좀 일조했다는 거…. 그거 하다가 건강을 해쳐서 중간에 쓰러졌으니까요. 지금은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어요.” ―마지막으로 주변에 남긴 말이 있으신지요. “유언요? 특별한 것은 없지요. 죽은 뒤에는 따로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바로 화장해서 뿌려 달라고 했을 뿐….” (유품이나 특별히 남기신 것은….) “재산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네, 큰 게 있지요. 저를 지금까지 도와준 사람들…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재산이죠.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회복지사님은 18년 동안이나 저를 돌봐줬어요. 정말 고맙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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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경순 울진해양경찰서장 “경찰과 시인은 어두운 세상에 빛”

    파도를 가로질러/수십 마일 찾아간/바다 위/안타까운 목숨/지키지 못해/가슴 먹먹한/실종자 수색의 나날/조금만 더 버티지/당신 기다리는/아내, 자식들 버리고/가버린 바다엔/멍처럼 파란/하늘만 보였다(시 ‘출항 21’의 일부분) 시의 구절만 봐도 시인은 바다에서 실종자 수색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미처 구조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슴 저리게 느낀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시인이자 65년 해양경찰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20일 일선 해양경찰서장에 취임한 박경순 울진해양경찰서장(56·총경·사진)의 작품이다. 그는 1991년 ‘시와 의식’이란 문학잡지에서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박 서장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경찰관과 시인은 ‘어둡고 고단한 세상에 빛이 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직원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정의로운 법 집행으로 작지만 강한 경찰서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첫 해양경찰서장이 된 뒤 축하 인사도 많이 받았지만 애로도 많다고 말했다.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집이 있는 인천에 한 달에 한두 번밖에 못 간다고 했다. 박 서장은 “그동안 근무지가 강원 동해, 경기 평택, 충남 태안 등 전국을 옮겨 다니는 데다 한 번 출항하면 일주일 이상 바다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어 집에는 부정기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모든 생활을 이해해준 남편(박종환)의 외조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박 서장에게는 늘 ‘처음’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해경 역사상 첫 여경 임용, 해경 첫 여성 총경 승진을 거쳐 이번에는 첫 여성 해양경찰서장이 됐다. 박 서장은 1986년 해경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여경(순경) 공채에서 17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해경학교 교수요원, 태안해양경찰서 1507함 부장(부함장), 평택해양경찰서 해양안전과장 등을 거쳐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여성 총경으로 승진했다. 그는 지금까지 ‘새는 앉아 또 하나의 시를 쓰고’(1997년) ‘이제 창문 내는 일만 남았다’(2002년)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2011년) 등 시집 3권을 출간했다. 2012년 제24회 인천문학상을 수상한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은 태안해양경찰서 1507함 부함장 시설 펴냈다. 불법 외국어선 단속 등 바다를 지키며 느낀 해양경찰의 애환과 고충, 감정 등을 담은 ‘출항’ ‘입항’ 등 연작시와 ‘양로원에서’ ‘경비실 풍경’ 등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느낌을 담담한 시어로 담아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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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월성 핵폐기물 저장소, 88% 차올랐는데… 정부 대책은 차일피일

    폭염으로 원전 가동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를 임시로 보관하는 일부 저장시설이 약 95%까지 차는 등 포화 상태에 육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르면 2020년 6월 월성 원자력발전 2, 3, 4호기의 가동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8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포화도가 94.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연료를 물에 담가 방사능과 온도를 내리는 습식저장시설의 포화도 75.5%를 감안하면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도는 88.3%다.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은 2020년 6월경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쓸 수 없는 핵연료봉을 습식저장하다 옮겨 밀봉 보관하는 건식저장시설은 착공부터 건설까지 22개월이 걸린다. 지금 당장 착공해도 새 저장시설이 완공되기 전에 월성원전 저장시설이 포화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결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2016년 5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해 저장시설 확충을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작년 9월 여론 수렴이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백지화하고 재검토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정부는 8개월이 지난 올해 5월에야 재검토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단을 발족했다. 정부는 준비단이 9월까지 4개월간의 활동을 끝내는 대로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준비단의 활동을 11월까지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주민 반발 등으로 관련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전력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 / 이진구 기자}

    • 20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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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정부서 확충계획 백지화… 재검토委 1년째 구성도 못해

    정부가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 건설 재검토를 위한 준비단의 활동 기간을 예정보다 2개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육박하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정부 논의 과정은 지지부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월성 원전 내 추가 저장시설 건설을 시작해도 월성 원전의 가동 중단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전력대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당장 건설 착수해도 월성 원전 가동 중단 불가피 사용후핵연료는 말 그대로 원자로에서 발전을 하고 남은 폐연료를 말한다. 원전 작업자들이 착용하는 장갑, 작업복 등 저준위 폐기물과는 달리 매우 강한 방사선이 나오는 데다 반감기(방사선이 감소하는 기간)도 수십 년 이상으로 훨씬 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를 영구 처리하는 시설이 없다. 그 대신 원전마다 폐기물을 임시로 보관하는 저장시설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월성 원전 저장시설에는 올해 6월 기준으로 총 저장용량 49만9632다발 중 44만1320다발이 차 있는 상태다. 1호기는 가동이 중단됐고 2, 3, 4호기만 가동되고 있는 월성 원전에서는 매 분기(3개월) 2500다발가량의 폐기물이 나온다. 월성 2, 3, 4호기의 발전용량은 210만 kW(킬로와트)로 여름 최대 전력 공급량(1억73만 kW)의 2%가 넘는다. 만약 해당 발전기가 일시에 중단된다면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를 기록했던 지난달 24일을 기준으로 예비전력은 709만 kW에서 499만 kW로 떨어져 전력수급 비상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지금 당장 추가 저장시설 착공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포화 시점 이전에 완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월성 원전의 건식저장시설은 부지 선정, 인허가, 주민 동의 등에 걸리는 시간을 제외한 순수 공사기간만 기초굴착 1개월, 구조물 공사 약 19개월, 안정성 확인 검사 2개월 등 22개월이 걸렸다. 폐기물을 다른 원전 저장시설로 옮기려고 해도 해당 지역 주민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는 월성 1호기가 가동 중단됐고, 2, 3, 4호기의 가동률도 낮아졌기 때문에 포화 시점이 다소 미뤄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가동률을 80%대 이상 유지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낮아진 가동률(50∼60%)이라면 포화 시점도 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장시설 건설 재검토 결정 후 계속 지연 정부는 지난해 9월 박근혜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 설치 결정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를 재검토위원회에 맡기기로 했다. 올 5월에는 위원회를 구성하기 전 기초 조사를 위해 준비단을 꾸렸다. 당초 정부는 준비단 활동 기간을 올해 9월로 정했는데 조사 과정이 길어지면서 이를 11월 이후로 늦춘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탈원전’을 내세운 정부가 저장시설 확충에 별다른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1983년부터 9차례 논의됐지만 그때마다 지역 주민 반대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5월에야 한수원은 월성 원전 가동에 차질이 없도록 월성 원전 부지 내에 건식저장시설을 추가로 설치키로 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당시 산업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 예고했다. 이 기본계획은 2013년 10월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위원장 홍두승)가 20개월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해 2015년 6월 내놓은 권고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028년까지 영구처리 시설 부지를 확정한 뒤 24년간 건설해 2053년부터 가동을 시작하라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담았다. 또 그 전에 저장시설이 포화되는 원전의 경우 안정적인 저장시설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어수선한 탄핵 정국 속에서 원안위 승인이 늦어지면서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문재인 정부는 결국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아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재검토를 결정한 것이다. 현재 준비단은 각 원전의 정확한 사용후핵연료 저장 상태를 조사하고, 관련 통계를 수집하고 있다. 지역 주민 의견 수렴도 함께 진행 중이다. 준비단 활동이 마무리되고 바로 재검토위원회가 구성되더라도 언제 구체적인 대안이 나올지 불투명하다. 윤종일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2년 동안 월성 원전을 대체할 발전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전력수급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진구 sys1201@donga.com / 세종=이새샘 기자}

    • 20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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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구 기자의 對話]“46도? 김 조교! 이 온도계 고장 난 거 아니니?”

    《 그도 황당해하고, 나도 황당했다. 인터뷰를 한 1일은 강원 홍천이 41도를 기록하며 1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운 날. 정말 자동차 보닛 위에서 계란프라이가 만들어지는지 실험해 보려고 울산 울산과학기술원(UNIST) 주차장에서 온도를 재는데 46도(오후 2시 반경)가 나왔다. 46도라니…. 전문가인 그조차 연신 조교들에게 “이 온도계 맞는 거니?”라고 묻다가 결국 다른 것으로 다시 재도록 했다. 인터뷰 중간에 조교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온도계는 이상 없는데요. 똑같아요.” 》  ―태어나서 46도는 처음 봤다. “나도…. 기상청 기온은 복사열 등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잔디밭 위 1.5∼2m 높이에 설치된 백엽상(百葉箱)에서 재기 때문에 기기가 직사광선을 직접 받지 않는다. 주변의 데워진 공기를 측정하는 방식이라…. 지금 이 온도계는 직사광선을 직접 받고 있어서 더 올라가는 것이고…. 사실은 기상청 기온보다 이 온도가 실제 우리가 체감하는 것에 가깝지만…나도 놀랐다. 46도라니…. 진짜 처음에는 고장 난 온도계를 가져온 줄 알았다.” (계란프라이는 안 만들어지던데….) “자동차 보닛 위에 계란을 깨 떨어뜨리자마자 프라이가 됐다는 말은 좀 과장된 것 같고…, 오래 놔두면 흰자는 좀 익지 않을까? 하하하.” ―국내 최초로 폭염연구센터를 만들었는데…. “기후예측을 전공했는데, 전에는 사람들이 50년 후, 100년 후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었다면 요즘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폭염이나 한파, 태풍 등 통계분포에서 가장 극단에 속하는 강력한 날씨 현상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많았던 자연재해가 폭염이다. 또 폭염만큼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재해가 없다. 그런데 전문가들도 어떤 상황이 폭염 상태라는 것은 알지만, 왜 갑자기 뜨거운 대기가 특정 지역에 정체하는지, 왜 일사량이 계속 늘고 또 언제쯤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갈지 등에 대해서는 우리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충분히 안 돼 있다. 그런 만큼 예측도 어렵다. 마침 기상청이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폭염연구센터를 공모했고, 우리 연구팀이 선정됐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폭염 때문에 발생했다고…. “1994년 폭염 때 3384명이 일사병, 열탈진 등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사망하는 일상적인 숫자를 초과한 것으로, 폭염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사망 피해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환자도 2011년 433명에서 2016년 2125명, 올해는 지금까지 2500명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는 2004년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로 35만 명이 사망하는 등 더 큰 재해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재해 중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가장 많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명피해를 낸 자연재해는 1936년 태풍 3693호로 1104명이 사망했다. ―1932년 8월 1일 대구가 39.3도를 기록하는 등 과거에도 폭염은 있었지만 기후변화라고 하지는 않았다. 최근 폭염을 기후변화 탓이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심했던 1994년 폭염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상당히 어렵다. 빈도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2003년 유럽 폭염(3만5000여 명 사망) 때도 이것이 기후변화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폭염의 강도와 빈도가 예전에 비해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도 2013년 남부지방에 강한 폭염이 왔다. 2016년도 그랬고 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 2010년대 이후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전 지구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고…. 인류가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 대기 중 이산화탄소 양이 늘었고, 이로 인해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대멸종이 있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게 요즘 기후변화 연구의 화두가 되고 있다.” ―폭염을 막을 방법이 있나. “당장 폭염 자체를 막거나 날씨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방법은 없다. 단지 폭염이 예상되면 잘 대비하는 것이 방법이다. 장기적으로는 도시계획을 통해 폭염의 강도를 줄일 방법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 일본에서 그런 연구가 활발하다.” (어떤 연구가?) “에어컨 공조기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지 같은 것이다. 가정집 에어컨은 아니겠지만 대형 건물의 에어컨 공조기는 크기도 크고 열도 많이 뿜어낸다. 이것을 7, 8m 높이로 올려 설치하면 뜨거운 공기가 바로 위로 올라가 보행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차도와 인도 사이에 물 펜스를 설치해 보행자를 폭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물 펜스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종의 벽이다. 일본은 어떻게 도시계획을 해 빌딩 사이의 바람길을 만들지, 고층건물을 어떻게 배치할지 등도 연구한다.” (우리는?) “우리는 무더위 쉼터 정도? 구체적인 대응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번 폭염이 언제쯤 끝날 것 같나. “40도까지는 아니지만 13일경까지는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상공에 있는 상층고기압 때문인데, 우리 기상청이나 외국 예보 모두 이 고기압이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 남부 해상의 열대저기압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상층고기압이 ‘열돔’인가?) “그렇다. 열돔은 정식 학술용어는 아니고 미국 민간 날씨방송에서 쓴 ‘heat dome’이라는 용어를 가져온 것이다. 지상에서 데워진 뜨거운 공기 덩어리가 뚜껑처럼 막고 있는 상층고기압 때문에 주변으로 흩어지지 못하는 상태라 효과적인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라 학자들은 잘 쓰지 않는다.” ―전 세계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상층고기압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이 지역들이 폭염이 극심하다. 상층고기압은 중위도의 제트기류가 약해질 때 나타나는데, 열대와 극지방의 온도 차가 작을수록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이렇게 만드는 중요 원인이 지구온난화다.” (기후 현상을 설명할 때 애매하면 지구온난화로 돌리는 것 같다. 지구온난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던데….) “하하하,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다. 지구온난화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려고 중국이 만든 개념이라고…. 트위터에 ‘이렇게 추운데, 빌어먹을 지구온난화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It‘s freezing outside, where the hell is global warming)?’라고 쓰기도 했고….” (지구온난화가 없다는 주장의 신빙성이 확 떨어지는 것 같다. 그분은 날씨와 기후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하하하,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1990년 1차 보고서를 시작으로 지금 6차 보고서를 준비 중인데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미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고 나오고 있다.” ―트럼프 얘기를 했지만 사실 2011년 1월 96년 만에 해운대 앞바다가 얼었을 때도 “이렇게 추운데 지구온난화가 뭐냐?”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을 말하는 거라 특정 지역의 날씨와는 다르다. 우리가 강추위일 때 다른 나라는 고온일 수도 있고…. 우리는 지금 폭염이지만 베이징은 덥지 않다. 얼마 전에는 홍수도 발생했고….”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2004년)’ 같은 상황이 실제 발생할 수 있을까.※투모로우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해류 흐름이 바뀌고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인다는 내용의 재난영화다. “가능하다. 전 세계 해양은 거대한 해류의 흐름인 ‘해양 컨베이어벨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다. 바닷물이 하나로 섞여 흐를 것 같지만 실제는 차가운 깊은 물과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가벼운 얕은 물이 아래위로 따로 흐른다. 그러다가 표층의 따뜻한 물이 그린란드에 이르면 차가워지면서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가면서 해류 순환이 이뤄진다. 얼 때 소금을 뱉어내기 때문에 얼음은 다 민물이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지고 가벼워진다. 그린란드 부근에서 차가워져 밑으로 내려가야 할 해류가 가볍기 때문에 안 내려가거나 느리게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류 컨베이어벨트가 느려지거나 멈춰져서 더운 해류가 올라가지 못하면 갑자기 추워질 수 있다. 이런 가설에 기초해 만든 영화가 투모로우다.” ―폭염을 자연재해에 포함하는 법 개정이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무더위에 체력이 약해 쓰러졌는지, 지병 때문인지 구별이 쉽지 않을 듯한데…. “직접적인 피해 여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또 보상의 기준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른 자연재해와 달리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풍수해보험도 처음에는 피해의 직접성을 판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보험사에서 날씨 보험을 안 하려고도 했었고…. 하지만 결국 실현시켰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의 구체성이나 직접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쪽방촌 같은 곳에서 폭염을 견뎌야 하는 고령자나 극빈자 등 취약층은 스스로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개인이 막을 수 있는 차원을 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재해에 포함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떻게 하느냐는 점은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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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도? 김 조교! 이 온도계 고장 난 거 아니니?”

    그도 황당해하고, 나도 황당했다. 인터뷰를 한 1일은 강원 홍천이 41도를 기록하며 국내 기상관측 이래 1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운 가장 뜨거웠던 날. 정말 자동차 보닛 위에서 계란프라이가 만들어지는 지 실험해보려고 울산시 울산과학기술원(UNIST) 주차장에서 온도를 재는 데 46도(오후 2시반경)가 나왔다. 울산이 46도라니…. 전문가인 그조차 연신 주변 조교들에게 “이 온도계 맞는 거니?”를 묻다가 결국 다른 것으로 다시 재보도록 했다. 인터뷰 중간에 조교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온도계는 이상 없는데요. 똑같아요.” ―태어나서 46도는 처음 봤다. “나도…. 기상청 기온은 복사열 등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잔디밭 위 1.5~2m 높이에 설치된 백엽상(百葉箱)에서 재기 때문에 기기가 직사광선을 직접 받지 않는다. 주변의 데워진 공기를 측정하는 방식이라…. 지금 이 온도계는 직사광선을 직접 받고 있어서 더 올라가는 것이고…. 사실은 기상청 기온보다 이 온도가 실제 우리가 체감하는 것에 가깝지만… 나도 놀랐다. 46도라니…. 진짜 처음에는 고장 난 온도계를 가져온 줄 알았다.” (계란프라이는 안 만들어지던데…) “자동차 보닛 위에 계란을 깨 떨어트리자마자 프라이가 됐다는 말은 좀 과장된 것 같고…, 오래 놔두면 흰자는 좀 익지 않았을까? 하하하.”―지난해 국내 최초로 폭염연구센터를 만들었는데. “기후예측을 전공했는데…, 전에는 사람들이 50년 후, 100년 후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었다면, 요즘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폭염이나 한파, 태풍 등도 통계분포에서 가장 극단에 속하는 강력한 날씨 현상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많았던 자연 재해가 폭염이다. 또 폭염만큼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재해가 없다. 그런데 전문가들도 어떤 상황이 폭염 상태라는 것은 알지만, 왜 갑자기 뜨거운 대기가 특정 지역에 정체하는지, 왜 일사량이 계속 늘고 또 언제쯤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갈지 등에 대해서는 우리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충분히 안 돼있다. 그런 만큼 예측도 어렵다. 마침 기상청이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폭염연구센터를 공모했고, 우리 연구팀이 선정됐다.”―가장 많은 사망자가 폭염 때문에 발생했다고? “1994년 폭염 때 3384명이 일사병, 열탈진 등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사망하는 일상적인 숫자를 초과한 것으로, 폭염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사망 피해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환자도 2011년 433명에서 2016년 2125명, 올해는 지금까지 2500명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는 2004년 남아시아 쓰나미로 35만 명이 사망하는 등 더 큰 재해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재해 중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가장 많다.” ※폭염의 기준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33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이면 폭염경보를 내린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명피해를 낸 자연재해는 1936년 태풍 3693호로 1104명이 사망했다.―1932년 8월 1일 대구가 39.3도를 기록하는 등 과거에도 폭염은 있었지만 기후변화라고 하지는 않았다. 최근 폭염을 기후변화 탓이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1994년 폭염의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상당히 어렵다. 빈도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2003년 유럽 폭염(3만5000여명 사망) 때도 이것이 기후변화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폭염의 강도와 빈도가 예전에 비해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도 2013년 남부지방에 강한 폭염이 왔다. 2016년도 그랬고 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 2010년대 이후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전 지구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고…. 인류가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쓰다보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량이 늘었고, 이로 인해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대멸종이 있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게 요즘 기후변화 연구의 화두가 되고 있다.”―폭염을 막을 방법이 있나. “당장 폭염 자체를 막거나 날씨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방법은 없다. 단지 폭염이 예상되면 잘 대비하는 것이 방법이다. 장기적으로는 도시계획을 통해 폭염의 강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대비해 일본에서 그런 연구가 활발하다.” (어떤 연구가?) “에어컨 공조기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지 같은 것이다. 가정집 에어컨은 아니겠지만 대형 건물의 에어컨 공조기는 크기도 크고 열도 많이 뿜어낸다. 이것을 7~8m 높이로 올려 설치하면 뜨거운 공기가 바로 위로 올라가 보행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차도와 인도 사이에 물 펜스를 설치해 보행자를 폭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물 펜스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종의 벽이다. 일본은 어떻게 도시계획을 해 빌딩 사이의 바람길 만들지, 고층건물을 어떻게 배치할지 등도 연구한다.” (우리는?) “우리는 무더위 쉼터 정도? 구체적인 대응은 아직 없는 것 같다.”―이번 폭염이 언제쯤 끝날 것 같나. “40도까지는 아니지만 13일경까지는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상공에 있는 상층고기압 때문인데, 우리 기상청이나 외국 예보 모두 이 고기압이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 남부 해상의 열대저기압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상층고기압이 ‘열돔’을 인가?) “그렇다. 열돔은 정식 학술용어는 아니고 미국 민간 날씨방송에서 쓴 heat dome이라는 용어를 가져온 것이다. 지상에서 데워진 뜨거운 공기 덩어리가 뚜껑처럼 막고 있는 상층고기압 때문에 주변으로 흩어지지 못하는 상태라 효과적인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라 학자들은 잘 쓰지 않는다.” ―전 세계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상층고기압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이 지역들이 폭염이 극심하다. 상층고기압은 중위도의 제트기류가 약해질 때 나타나는데, 열대와 극지방의 온도 차이가 작을수록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이렇게 만드는 중요 원인이 지구온난화다.” (기후 현상을 설명할 때 애매하면 지구온난화 탓으로 돌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구온난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던데…) “하하하,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다. 지구온난화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려고 중국이 만든 개념이라고…. 트위터에 ‘이렇게 추운데, 빌어먹을 지구온난화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It’s freezing outside, where the hell is global warming?)‘라고 쓰기도 했고….” (지구온난화가 없다는 주장의 신빙성이 확 떨어지는 것 같다. 그분은 날씨와 기후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하하하,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1990년 1차 보고서를 시작으로 지금 6차 보고서를 준비 중인데 지난 수십년간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미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고 나오고 있다.”―트럼프 얘기를 했지만 사실 2011년 1월 96년 만에 해운대 앞바다가 얼었을 때도 “이렇게 추운데 지구온난화가 뭐냐?”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을 말하는 거라 특정 지역의 날씨와는 다르다. 우리가 강추위일 때 다른 나라는 고온일 수도 있고…. 우리는 지금 폭염이지만 베이징은 덥지 않다. 얼마 전에는 홍수도 발생했고….”―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2004)‘ 같은 상황이 실제 발생할 수 있을까?※투모로우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해류 흐름이 바뀌고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인다는 내용의 재난영화다. “가능하다. 전 세계 해양은 거대한 해류의 흐름인 ’해양 컨베이어벨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있다. 바닷물이 하나로 섞여 흐를 것 같지만 실제는 차가운 깊은 물과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가벼운 얕은 물이 아래위로 따로 흐른다. 그러다가 표층의 따뜻한 물이 그린란드에 이르면 차가워지면서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가면서 해류 순환이 이뤄진다. 얼 때 소금을 뱉어내기 때문에 얼음은 다 민물이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지고 가벼워진다. 그린란드 부근에서 차가워져 밑으로 내려가야 할 해류가 가볍기 때문에 안 내려가거나 느리게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류 컨베이어벨트가 느려지거나 멈춰져서 더운 해류가 올라가지 못하면 갑자기 추워질 수 있다. 이런 가설에 기초해 만든 영화가 투모로우다.” ―정부와 국회가 폭염도 자연재해에 포함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무더위에 체력이 약해 쓰러졌는지, 지병 때문인지 구별이 쉽지 않을 듯한데. “직접적인 피해여부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고, 또 보상의 기준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른 자연재해와 달리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풍수해보험도 처음에는 피해의 직접성을 판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보험사에서 날씨 보험을 안 하려고도 했었고…. 하지만 결국 실현시켰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의 구체성이나 직접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쪽방촌 같은 곳에서 폭염을 견뎌야하는 고령자나 극빈자 등 취약 층은 스스로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개인이 막을 수 있는 차원을 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야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재해에 포함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떻게 하느냐는 점은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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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 물렀거라!”… 가족끼리 연인끼리 ‘한강 피서’ 떠나요

    시원한 강바람, 코끝을 간질이는 치킨과 꼬치 냄새, 강 옆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음악가들이 흥겨운 재즈를 연주하고 연인들의 속삭임은 달콤하다. 21일 저녁에 찾은 서울 반포한강공원은 파리의 센강변이나 어느 유럽 도시의 공원 못지않게 활기차고 낭만적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시민, 스케이트보드, 조깅, 단체 요가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자유롭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는 공간. 더위가 무색하게 부둥켜안고 떨어지지 않는 연인들, 준비해온 조명과 캠핑용품, 텐트를 쳐놓고 럭셔리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특히 이날 반포대교 남단 달빛광장에서는 꼬치, 스테이크 등을 창의적으로 즉석에서 조리해서 파는 푸드트럭 수십 대가 먹거리 향연을 펼쳤다. 목걸이 모자 등 젊은 아티스트들이 만든 개성 넘치는 물건을 파는 야시장도 열리고 있었다. 멀리 떠나는 휴가도 좋지만 항상 휴가를 내서 떠날 순 없다. 그럴 땐 한강으로 가자! 돈도 적게 들고 대부분 프로그램은 번거롭게 예약할 필요도 없다. 한강 전역 공원에서는 20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2018 한강 몽땅’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음악, 영화, 수상레포츠, 낚시, 먹거리 등 온갖 종류의 축제가 80여 개 프로그램과 함께 열리고 있다.○ 시네마 퐁당과 다리 밑 영화제 다음 달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8∼10시 망원한강공원 서울함 공원, 여의도한강공원 원효대교 남단 아래, 뚝섬한강공원 청담대교 북단 아래, 광나루한강공원 천호대교 남단 아래에서는 ‘다리 밑 영화제’가 열린다. 야경을 벗 삼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대형 스크린을 통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예술 영화, 국내영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신과 함께-죄와 벌’(광나루), ‘아이 캔 스피크’(뚝섬), ‘쥬라기 공원: 폴른 킹덤’(여의도), ‘국가대표 2’(망원) 등 20편이 상영된다. 모두 무료! 예약도 필요 없다.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는 날에 맞춰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치맥’ 등 먹고 마실 것도 걱정 NO. 현장에 온갖 음식 전단이 즐비해 시키기만 하면 된다. 의자나 돗자리, 방석 등은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밤이기 때문에 벌레나 모기 등을 쫓는 약이나 도구를 준비하면 좋다. 난지한강공원 어린이 물놀이장에서는 행사 기간에 매주 금요일 오후 8∼10시 물 위에서 튜브를 타고 영화를 감상하는 ‘시네마 퐁당’이 열린다. 사전에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하며 500명만 입장할 수 있다. 참가비는 1만 원. ○ 추억의 동춘서커스와 현대 서커스의 향연 8월 3∼5일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앞에서는 전통에서 현대까지 아우르는 서커스의 향연을 볼 수 있다. 모두 무료. 3, 4일 오후 7시 반 수변무대에서는 93년 전통의 동춘서커스단 공연이 펼쳐진다. 1925년 동춘 박동수가 창단한 이 서커스단은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 이봉조 이주일 남철 남성남 등 걸출한 스타들이 이곳을 거쳤으며, 코미디언 서영춘도 동춘서커스에서 조명일로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는 3대 박세환 단장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두 남자의 힘’ ‘실팽이 묘기’ ‘공중수직 밧줄’ ‘서커스 발레’ 등 전통 서커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3, 4일 오후 7시∼7시 반 달빛언덕 무대에서 ‘봉앤줄’의 외봉인생 공연이, 같은 날 오후 8시 반∼9시 달빛광장에서는 ‘프로젝트 루미너리’의 에어리얼 아트 ‘공중퍼포먼스 타.오.름’이 무대에 오른다. 에어리얼 아트란 실크, 로프 등 다양한 소재의 줄을 이용해 공중에 매달려서 움직임을 선보이는 서커스의 한 장르. 프로젝트 루미너리는 에어리얼 아트를 전문으로 하는 공연 예술단체로, 2015년 창단해 주목을 받고 있다. ‘공중퍼포먼스 타.오.름’은 에어리얼 아트와 비올라 라이브 연주, 무용, 불꽃 퍼포먼스가 융합된 작품이다. 불타오른 뒤 떨어지는 불꽃을 우리의 꿈과 행복에 비유해 불꽃에서 꽃이 깨어나는 과정 속에 담긴 쾌락과 고독의 양면성을 섬세한 움직임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명품 재즈와 그림자놀이 8월 14, 15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앞 피크닉장에서는 ‘한여름 밤의 재즈’가 열린다. 세계적인 재즈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준비한 공연이라 연주자 수준도 정상급이다. 14일에는 심성보 퀄텟, 제희 트리오, 김오키 새턴발라드, 15일에는 조정희 밴드, 윤혜진과 브라더스, 프롬 올 투 휴먼이 공연을 한다. 폭우나 태풍, 침수만 아니면 비가 와도 열린다. 여름밤에 공짜로 수준급의 재즈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8월 18일 오후 10시부터 여의도한강공원에서는 한강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쇼도 감상할 수 있다. 8월 10, 11일 오후 8시부터 40분간 여의도 한강공원 이벤트 광장 나무 덱에서는 ‘아트&컬처 연구소’의 ‘섀도 아트-한강의 비밀을 찾아서’가 공연된다.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핸드 섀도와 춤을 추면서 다양한 사물을 표현하는 보디 섀도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을 선사한다. 모든 공연은 무료이고 예약도 필요 없다. ○ 물싸움 축제와 종이배 경주대회 여름에는 역시 물놀이. 8월 4, 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난지한강공원 젊음의 광장에서는 각종 ‘물싸움 축제’가 열린다. ‘20만 개 물 폭탄 대전’은 참가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20만 개의 물 폭탄을 서로에게 던지며 즐기는 것. 행사를 주관하는 한강사업본부 측은 “이 분야에 대한 기네스북 등재 기록이 없는 만큼 올해 행사를 추진한 뒤 내년에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행 NO! 한강행’은 참가자들을 추격해 오는 좀비 분장을 한 스태프와 물총싸움을 하는 놀이. 스태프의 좀비 분장이 지워질 때까지 추격을 피하며 물총을 쏴야 한다. 장소와 장비에 제한이 있어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하며 입장권은 5000원. 방수백과 비치타월 등이 포함된 패키지 입장권은 1만1000원이다. 물총은 개인 장비를 가져와도 되고, 행사장에서 별도 판매도 한다. 한강에서 직접 만든 종이배를 타고 노를 젓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종이배 경주대회’는 이런 로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딱’인 기회다. 8월 10∼12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잠실한강공원 잠실나들목 앞 둔치에서 열린다. 골판지로 종이배를 만든 뒤 직접 노를 저어 50m 반환점을 돌아오는 게임. 참가비는 5만 원이며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참가자격에 제한은 없으나 초등학교 4학년 이하 어린이는 보호자가 동반 탑승해야 한다. ○ 피자, 치킨, 꼬치 먹고 탕수육! 축제에 음식이 빠질 수 없다. 여의도·반포한강공원에서는 8월 19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6∼11시, 토요일 오후 5∼11시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린다. 향초, 목걸이 등 각종 공예품도 팔지만 뭐니 뭐니 해도 관심은 먹거리. 공원마다 40여 대의 푸드트럭이 저마다의 솜씨를 뽐낸다. 음식 종류도 닭발, 치킨, 스테이크, 추로스, 핸드메이드 아이스크림, 곱창, 전, 꼬치, 피자, 떡볶이, 탕수육, 순대, 프랑스 분식, 버거, 한식 등 다양하다. 흡사 음식박람회에 온 듯한 느낌. 푸드트럭 존에서 음식을 산 뒤 공원 내 잔디밭이든, 강 옆이든 원하는 곳에 가서 먹으면 된다. 21일 연인과 함께 반포한강공원 야시장을 찾은 장인석 씨(39)는 “처음 왔는데 마치 유럽 소도시의 축제 같은 느낌이어서 무척 좋았다”며 “특히 젊은 푸드트럭 사장들이 창의적으로 만든 음식은 맛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더해줬다”고 말했다. 음식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격은 2만 원 안팎이면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별도의 가격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업체 선정 시 가성비(價性比)를 고려해 선정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단, 여성들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남성들에게는 양이 좀 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야시장을 주관하는 서울시 푸드트럭활성화팀 측은 “맛은 물론이고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음식이 변질될 수 있어 수시로 점검하는 등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201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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