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이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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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설 기자입니다.

snow@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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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3%
  • “암흑의 시대에 맞서는 주인공, 누구나 공감할 가치 전해”

    영국 작가 켄 폴릿(70)은 여러모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지의 기둥’(1989년), ‘거인들의 몰락’(2010년) 등 펴내는 소설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고 스릴러와 역사 분야에서 동시에 거장으로 우뚝 섰다. 최근 그의 소설 가운데 가장 긴 ‘끝없는 세상 1∼3’(문학동네·각 1만6500원)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중세 시대를 다룬 대표작인 ‘대지의 기둥’ 후속작으로, 미국에서는 2007년 출간됐다.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중세 시대 사람들은 폭력과 굶주림으로 고통받으면서도 놀랍도록 아름다운 건축물을 남겼다. 매력이 넘치는 시대”라고 했다. “한국 독자에게 유럽의 중세는 다소 낯설 겁니다. 하지만 고통 용기 희망은 국경과 상관없는 가치예요. 브라질 인도 중국에서도 제 작품이 두루 읽히는 이유겠지요.” 작품의 시대 배경은 14세기 초 영국의 가상 마을 킹스브리지. 기사와 건축가를 꿈꾸는 머딘과 랠프 형제, 부유한 양모 상인의 딸 캐리스, 가난한 행상의 딸 궨다가 암흑의 시대에 맞서 각자의 삶을 개척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는 모든 인물을 아끼지만 똑똑하고 용감한 캐리스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캐리스는 제가 존중하는 가치를 모두 갖췄어요. 페미니즘은 10대 때부터 저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여성은 오래 인내하지만 일단 분노하면 굉장히 단호하죠. 여성을 비중 있게 다루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기자 출신인 그는 원래 스릴러 소설을 주로 썼다. ‘바늘구멍’(1978년)으로 이름을 알린 뒤 신들린 듯 ‘트리플’(1979년), ‘레베카의 열쇠’(1980년), ‘사자와 함께 눕다’(1986년) 등을 쏟아냈다. 1986년 그는 돌연 역사 소설로 눈을 돌린다. 중세 시대 건축물에 대한 애정이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는 “스릴러도 좋지만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을 작품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 그러다가 보편적 가치를 담은 역사 소설로 장르를 바꿨다”고 했다. 폴릿은 오랜 시간 시대 상황을 공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인들의 몰락’을 쓸 때는 역사책 18권을 읽었고, ‘끝없는 세상’을 쓰기 위해 발품을 팔며 영국 각지의 대성당을 취재했다. 그는 “찾는 내용 대부분이 책 속에 있다. 자료가 부족할 때는 지도 사진 영화를 참고하거나 현장 취재를 한다”고 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 에밀 졸라,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앤서니 트롤럽 같은 이야기꾼을 특히 좋아합니다.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 인물에 이입하도록 만드는 건 늘 어려운 숙제이자 즐거움입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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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美 비밀도시 오크리지… 핵 개발 임무 맡은 여성 과학자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하늘에 인공 구름이 걸렸다. 사망자 14만여 명 가운데 4만 명이 즉사했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역사상 최대의 과학 개발이란 도박에 20억 달러를 썼고 결국 이겼습니다. … 추후 국방장관이 테네시주 오크리지를 비롯한 시설들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방송을 듣고서야 오크리지의 클린턴공병사업소(CEW·Clinton Engineer Works)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깨닫는다. 비밀 서약과 치밀한 감시….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 CEW는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시설이었다. ‘아토믹…’은 1940년대 오크리지에서 비밀리에 진행한 CEW를 고증한 논픽션이다. 프로듀서이자 작가인 저자가 당시 CEW 근로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핵 시대의 기원을 되살려냈다. 개인과 집단의 기억, 언론 보도를 다각도로 참고해 역사적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오크리지 인근 주민들은 1940년대 초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하지만 누구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취득 공고, 몰수 공고, 퇴거 요청’을 거쳐 조성된 특별구역에는 CEW라는 이름이 붙는다. 일꾼들이 모이고 식당과 도서관 등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미니 도시로 변모했다. 일급비밀 과제를 수행하는 군사특별구역이지만 민간인과 여성, 아이들도 함께 살았다. 이탈자도 적지 않았다. “좁은 공간, 고립된 위치, 비밀 유지에 대한 주의로 만성적 긴장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오크리지 여성 근로자와 핵 개발을 주도한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시선이 충돌하며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계속 승진해도 남성 부하 직원보다 봉급이 적고, 핵심 역할을 하고도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여성 과학자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짚었다. CEW는 1964년 완전히 폐쇄됐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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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글로 표현해보세요… 내가 모르던 속마음이 보입니다”

    #1.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가 쓴 ‘선택의 가능성’의 문장들은 ‘∼를 더 좋아한다’로 끝난다. 50대 주부 이모 씨도 시인을 따라 써 봤다. ‘나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농담을 더 좋아한다. 요리를 잘하는 나보다 유머를 잘하는 나를 더 좋아한다.’ 이 씨는 “가족이 좋아하는 것만 좇다가 내가 좋아하는 걸 쓰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꼈다”고 했다. #2. “‘∼처럼 외롭다’로 한 줄 시를 써 보세요.”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강사의 지시에 따라 ‘도구처럼 외롭다’고 썼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늘 누군가의 요구대로 움직여야 하니 외롭다고 생각해요.” 그의 설명에 교실 안 남녀노소들은 저마다 좋은 딸, 좋은 상사로 살아가는 고단함을 털어놓았다. 한국상담대학원대의 진은영(문학상담), 김경희 교수(철학상담)는 지난 5년간 다양한 문학의 치유력을 실험했다. 두 사람이 최근 펴낸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엑스북스·1만7000원)에는 그 과정과 결실이 고스란히 담겼다. 9일 서울 서초구 대학 사무실에서 만난 그들은 “낯선 방식의 글쓰기는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게 해준다. 이를 통해 가려진 마음의 무늬를 살피고 치유에 이를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문학상담은 10여 년 전 국내에 도입됐다. 임상심리상담과 달리 ‘증상 진단-처방’의 수순을 따르지 않는다. 여럿이 모여 작품을 읽고 쓰면서 성숙한 인격에 이르는 과정을 추구한다. 병리적 증상이 아닌 일상의 고민을 다룬다는 점도 의학·심리상담과 다르다. “감정을 마주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해요. 일상적 화법이 아닌 문학의 힘을 빌리면 감정으로의 접근이 수월해지죠. ‘시인의 문장 따라 하기’ ‘사전 형식으로 시 쓰기’ 등 다양한 방법을 씁니다. 소설보다 생각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의 활용도가 높습니다.”(김) “문학적 서사와 은유를 통해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불안감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 시적인 방식을 통하면 ‘의무적 청취’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같은 주제를 오래 이야기해도 지루하지 않으니까요.”(진) 뜬구름 잡는 문학이 어떤 힘을 발휘하느냐는 의혹도 있다. 시인이기도 한 진 교수는 “문학의 힘은 섬세함에서 나온다”며 “흔히 ‘말할 수 없이 슬프다’고 하는데, 슬픔을 풍부한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그 정체가 명료해지면서 자신의 슬픔을 직시할 수 있다”고 했다. 문학상담은 특히 감정 표현에 소극적인 이들에게 적합한 방식이라고 한다. 반면 문학 전공자나 중년 남성들은 마음을 여는 데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전공자는 자연스러운 표현보다 탁월한 문장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중년 남성은 감정이 깊이 억눌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음을 담은 시를 쓴 다음 가까운 이들과 나눠 보세요. 그리고 학교나 직장의 과제라며 동참을 유도하세요. 잠깐의 어색함을 참으면 이겨내면 삶이 훨씬 풍요로워질 겁니다.”(김) “나만의 단어 사전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인생의 단어를 꼽은 뒤 의미를 적어 보세요. 중요한 가치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새롭게 보일 겁니다.”(진)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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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론집 펴낸 김언 시인 “詩에 미친 사람 어디 나뿐일까”

    시인들 사이에서도 “시에 미쳤다”는 평가를 듣는 김언 시인(46)이 첫 시론집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난다·1만5000원)를 펴냈다. 지난 10여 년간 틈틈이 써낸 시론을 묶었다. 김 시인은 “미쳐 있는 건 맞지만 그런 시인이 꽤 된다”며 웃었다. 거대하고 풍성한 시의 바다에서 의미 있는 구절을 뽑아 8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나눈 이야기를 그의 목소리로 정리했다. ○ ‘시에 대한 기록이자 한 시절에 대한 기록’ 시론은 시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이다. 모든 시인이 시론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출간 시집이 꽤 쌓이고 시에 대한 생각이 정리돼야 써낼 수 있는 글 같다. 흥이 붙으면 시처럼 춤추듯 글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으면 문장이 뻑뻑해진다.○ ‘시는 한 마리 작고 보잘것없는 짐승의 면면’ 시는 잘난 힘이 아닌 못난 힘으로 쓰인다. 결핍과 상처로 가득한 밑바닥을 뚫고 내려가 보잘것없는 짐승에 불과한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 한데 그 작업이 쉽지 않다. 못난 힘으로 인해 생이 흔들리는 이들이 예술가 또는 범죄자가 되는 것 같다.○ ‘황지우’ 공대에 진학했는데 문학병에 들었다. 그런 내게 국문과 친구가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년)를 추천했다. 교과서 속 시와 다른 자유로운 작품 세계에 해방감을 느꼈다. ‘시를 써도 된다’는 허락증을 받은 기분이었다.○ ‘난해시는 비평가가 맨 마지막에 꺼내드는 레드카드여야’ 언어는 소통과 배제의 논리로 작동한다. 해석이 비교적 원활한 시라고 해도 소통 만능에 부합할 순 없다. 이런 측면에서 난해시라는 명명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특정 시집에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는 격인데, 내가 그 시에 불통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2010년 이후로 박준 황인찬 유희경 이제니 시인 등 편안한 소통을 지향하는 시가 널리 퍼지고 있다. 뭐든 지나치면 절정을 맞고 쇠락하는 것 같다.○ ‘‘시는 청춘의 장르’라는 저주’ 한국에서는 유독 시가 ‘청춘의 장르’로 고정돼 있다. 기형도 백석을 포함해 현재 활동 중인 대다수 시인의 대표작은 첫 시집이다. 운동 신경처럼 시적 원천도 갈수록 고갈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만년작의 잠재력도 풍부하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73세에 노벨상을 받은 후 시집 3권을 더 펴냈다. 우리도 만년작의 신화를 개척해야 한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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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타지의 옷입은 초한지 “제국의 건국신화 흥미진진”

    《‘다라’ 제도를 통일한 황제는 성대한 축하연을 연다. 포로로 잡혀온 500여 명의 무희를 앞세워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려는 찰나. 하늘에서 연처럼 생긴 자객이 활강해 황제에게 불덩이를 던져댄다. 첫 장면부터 이국적 정취가 물씬한데 읽다 보니 강한 기시감이 든다. 항우와 유방의 기나긴 대립을 그린 중국 역사소설 ‘초한지’와 겹친다. 휴고·네뷸러·세계환상문학상을 동시에 받은 미국 공상과학소설(SF)계 샛별 켄 리우(43)의 첫 장편이 국내에 출간됐다. ‘민들레 왕조 연대기 3부작’의 1부 격인 ‘제왕의 위엄 상·하’(황금가지·각 1만5800원)다. 단편집 ‘종이 동물원’(황금가지·1만5800원)에 이은 두 번째 국내 출간이다.》  6일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적 초한지 영웅들로 이야기를 지어 친구들과 역할 놀이를 했다. 미국에 건너온 뒤 사전을 뒤져가며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그의 인간적인 역사 기록 방식에 깊이 매료됐다. 이후 ‘역사의 기록’과 관련한 작업을 과제로 삼고 있다”고 했다. 초반에 소설은 초한지의 서사를 거의 그대로 따른다. 후세의 영웅 쿠니와 마타의 성장담, 다라 제도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뼈대를 이룬다. ‘지록위마’와 만리장성 쌓기 일화(해저터널로 변주)도 등장한다. 그는 “첫 장편에서 건국 신화의 개념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야기로 사마천을 뛰어넘을 수 없겠지요. 설정의 변주보다는 다라 제국 건국 신화가 어떻게 재구성됐는지를 중심으로 읽으면 흥미진진할 겁니다.” 작품의 배경은 모호하다. 대나무 비단 같은 예스러운 소재와 최첨단 기술이 결합해 미래와 과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시공간을 빚어낸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가상의 과거를 다룬 ‘실크펑크(Silkpunk) 장르다. 치밀한 세계관 설정을 위해 방대한 작업이 동반됐다. 고고학과 기계공학 논문을 뒤져 한(漢)대의 방직기, 한국의 거북선, 폴리네시안의 발화(發火) 기술을 파고들었다. “경제학자 W 브라이언 아서의 ‘언어로서의 기술’ 개념에서 ‘실크펑크’를 떠올렸어요. 소설 속 기술 언어의 어휘는 대나무 산호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 재료로, 문법은 ‘생체모방 기술’을 따르죠. 제가 만든 세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 모형을 만들어 실험하다가 감전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때로 SF의 외피를 입은 현실 은유로 읽힌다. 전쟁의 책임을 묻는 신에게 황제가 “더 많은 피가 흐르지 않도록 흘린 피였다”고 항변하거나, 분서갱유에 빗대 “세상은 아직 너무나 불완전했고, 위대한 인간이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필연”이라 설명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권력, 정의, 공정은 까마득히 오래된 문제다. 판타지는 현실에 기반한다. 사회를 비판하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소설과 현실을 연관 짓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작가는 중국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미국에 건너갔다.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졸업한 뒤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래머, 로펌 변호사를 거쳤다. 지금은 낮에는 기술 전문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그는 ‘중국계 미국인’ 작가라는 꼬리표를 다르게 받아들인다. “많은 이들이 그런 종류의 꼬리표에 분열과 갈등이 내포됐을 거라 여기는데, 저는 오히려 즐거워요. 다양한 전통을 섞어 나만의 문화 공간을 빚어낼 수 있으니까요. 가상의 놀이 공간을 창조하고 싶다는 충동이 저를 글쓰기로 이끕니다. 한국 독자들도 다라 제도에서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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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F 문학계 사상 첫 동시 3관왕 작가 켄리우, 첫 장편소설 국내 출간

    ‘다라’ 제도를 통일한 황제는 성대한 축하연을 연다. 포로로 잡혀온 500여 명의 무희를 앞세워 승리의 팡파레를 울리려는 찰나. 하늘에서 연처럼 생긴 자객이 활강해 황제에게 불덩이를 던져댄다. 첫 장면부터 이국적 정취가 물씬한데 읽다보니 강한 기시감이 든다. 항우와 유방의 기나긴 대립을 그린 중국 역사소설 ‘초한지’와 겹친다. 휴고·네뷸러·세계환상문학상을 동시에 받은 미국 공상과학(SF)계 샛별 켄 리우(43)의 첫 장편이 국내에 출간됐다. ‘민들레 왕조 연대기 3부작’의 1부 격인 ‘제왕의 위엄 상·하’(황금가지·각 1만5800원)다. 단편집 ‘종이 동물원’(황금가지·1만5800원)에 이은 두 번째 국내 출간이다. 6일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적 초한지 영웅들로 이야기를 지어 친구들과 역할놀이를 했다. 12살에 미국에 건너온 뒤 사전을 뒤져가며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그의 인간적인 역사 기록 방식에 깊이 매료됐다. 이후 ‘역사의 기록’과 관련한 작업을 과제로 삼고 있다”고 했다. 초반에 소설은 초한지의 서사를 거의 그대로 따른다. 후세의 영웅 쿠니와 마타의 성장담, 다라 제도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뼈대를 이룬다. ‘지록위마’와 만리장성 쌓기 일화(해저터널로 변주)도 등장한다. 그는 “첫 장편에서 건국 신화의 개념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야기로 사마천을 뛰어넘을 수 없겠지요. 설정의 변주보다는 다라 제국 건국 신화가 어떻게 재구성됐는지를 중심으로 읽으면 흥미진진할 겁니다.” 작품의 배경은 모호하다. 대나무 비단 같은 예스러운 소재와 최첨단 기술이 결합해 미래와 과거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시공간을 빚어낸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가상의 과거를 다룬 ‘실크펑크(Silkpunk) 장르다. 치밀한 세계관 설정을 위해 방대한 작업이 동반됐다. 고고학과 기계공학 논문을 뒤져 한(漢)대의 방직기, 한국의 거북선, 폴리네시안의 발화(發火) 기술을 파고들었다. “경제학자 W. 브라이언 아서의 ’언어로서의 기술‘ 개념에서 ’실크펑크‘를 떠올렸어요. 소설 속 기술 언어의 어휘는 대나무 산호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 재료로, 문법은 ’생체모방 기술‘을 따르죠. 제가 만든 세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 모형을 만들어 실험하다가 감전되기도 했습니다.” 소설은 때로 SF의 외피를 입은 현실 은유로 읽힌다. 전쟁의 책임을 묻는 신에게 황제가 “더 많은 피가 흐르지 않도록 흘린 피였다”고 항변하거나, 분서갱유에 빗대 “세상은 아직 너무나 불완전했고, 위대한 인간이 당대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필연”이라 설명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권력, 정의, 공정은 까마득히 오래된 문제다. 판타지는 현실에 기반한다. 사회를 비판하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소설과 현실을 연관짓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작가는 중국에서 태어나 12살에 미국에 건너갔다.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졸업한 뒤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래머, 로펌 변호사를 거쳤다. 지금은 낮에는 기술 전문 법률 컨설턴트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그는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꼬리표를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그런 종류의 꼬리표에 분열과 갈등이 내포됐을 거라 여기는데, 저는 오히려 즐거워요. 다양한 전통을 섞어 나만의 문화공간을 빚어낼 수 있으니까요. 가상의 놀이 공간을 창조하고 싶다는 충동이 저를 글쓰기로 이끕니다. 한국 독자들도 다라 제도에서 즐거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이설기자 snow@donga.com}

    • 2019-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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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십대 소녀와 여든 노인의 20년 우정

    영민하고 예민한 10대 소녀 엘리자베스는 옆집 문을 노크한다. 이웃 사람과 교류하라는 학교 숙제를 위해서다. 이웃집에는 80대 노인 대니얼 글럭이 살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늙은 호모’라 부르며 수군거린다. 한 번으로 끝내려 한 만남은 일생의 인연으로 이어진다. 한창때 당대 예술인들과 어울리던 지식인이었던 글럭은 엘리자베스의 성 ‘디맨드’가 프랑스 어원을 따라 ‘세상의’라는 뜻을 지녔으며, 예기치 않게 여왕이 될 운명이라고 알려준다. “평생의 친구. 우리는 때로 평생을 기다려서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된단다.”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조숙한 소녀와 진지한 노인이 주고받는 대화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년) 시리즈 못잖은 재미를 준다. “호텔에 가 놓고 돌볼 책임이 있는 아이에게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척해 본 경험 있으세요?” “질문에 도덕적 판단이 내포돼 있는지 알아야겠는데?” 거대담론부터 시시껄렁한 소재까지 죽이 척척 맞는다. 20년 뒤 소녀는 미술사를 전공한 대학 강사가 되고, 100세를 넘긴 대니얼은 요양원에서 잠들어 꿈을 꾸며 지낸다. 지금과 달리 제법 흥미진진하던 대니얼의 시대는 그의 꿈속에서 환상적으로 되살아나고, 엘리자베스가 발 디딘 2016년 영국은 브렉시트와 난민 문제 등으로 뒤숭숭하다 . “민주주의가 마치 누군가가 깨부숴 무기로 쓰겠다고 위협할 수 있는 유리병쯤 되는 것 같다.” “온 나라에서 돈, 돈, 돈, 돈이 넘쳤다. 온 나라에서 돈, 돈, 돈, 돈이 씨가 말랐다.” 매혹적인 우정 사이로 시대의 아이러니를 무겁지 않게 짚어낸다. “내가 사랑에 빠진 건 사람이 아니었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조금 아는 이들이 우리를 제대로 보았기를 바라야 해”처럼 아껴 읽고 싶은 잠언들도 빼곡하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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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위에 스며든 미소… 옛시간을 더듬다

    이번 여행의 핵심은 ‘직관’(직접관람)이다. 백제를 대표하는 미소, 천하의 명당, 한국의 대표 사찰…. 한 번쯤 눈으로 만나야 할 명소들이 일정표에 빼곡하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충남 서산 운산정류소. 택시로 10분을 더 달려 마애여래삼존상(磨崖如來三尊像) 입구에 닿았다. 저 멀리 크게 팔을 흔들어 환대하는 스님들이 보인다. 내포문화사업단 공동대표 정범 스님과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이다. 합장을 나눈 뒤 짧은 계단을 오르자 목탁 소리가 산세를 울렸다. 가까이 가야산이 병풍을 둘러 아래위로 초록빛이 펼쳐진다. 유배지에 불시착한 듯 비현실적인 풍경 사이로 ‘백제의 미소’가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온화함과 엄숙함, 푸근함과 날카로움을 동시에 품은 얼굴이다. “바위가 우산처럼 드리워져 비는 들이치지 않고 수분을 천천히 머금었어요. 자연의 과학 덕분에 1000 년 넘게 원형이 그대로 보존됐죠.”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삼존상은 아침엔 햇살이 드리워 은은하고, 정오엔 음영이 두드러져 입체적이며, 저녁엔 그늘이 져 근엄하다. 각기 다른 시간에 여러 차례 다녀간 방문객이 불상이 훼손된 줄 알고 관리자에게 호통을 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서산 보원사지(普願寺址)로 발걸음을 돌린다. 4대강 사업으로 깔린 눈부시게 하얀 인공바위가 눈에 거슬린다. ‘가든’이란 이름이 붙은 숙박업소 겸 식당과 논밭을 지나 20분쯤 걷자 탁 트인 벌판과 맞닥뜨린다. 10만2886m²(약 3만1100평)에 이르는 보원사지다. 절터 귀퉁이에 흙빛을 머금은 석돌 수백 개가 가지런히 누워 있다. 한때 위풍당당하게 사찰을 지탱했을 유적들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통일신라·고려시대에 꽤 번성했던 절로 짐작된다. 대웅전의 철조여래좌상은 현수막에 박제된 신세로 손님을 맞고 있다. 현재 좌상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덤불이 성성한 이곳은 한때 사람과 물자가 빈번히 드나들었다. 바다에서 이어진 강줄기는 가야산 곳곳을 파고들었고, 10여 개 마을이 군락을 이뤄 내포지구를 형성했다.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입니다. 중국에서 내륙으로 가려면 이곳 내포를 거쳐야 했죠.” 정범 스님의 설명이다. 절터 입구의 당간지주에서 오르막을 따라 걷다 보면 숲으로 통하는 오솔길이 나온다. 길은 평탄하지만 산세는 보물급이다. 덕분에 절경을 감상하면서 난도가 낮은 트레킹을 할 수 있다. 발 아래로 계곡과 실개천이 드문드문 흐른다. 30여 분 이어진 길 끝자락에 천주교 성지가 있다. 과거 천주교 사제들이 바닷길을 따라 이곳에 다수 정착했고, 박해 때마다 지역 신자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고 한다. 불교와 천주교 양측에 의미가 깊은 장소인 셈이다. 야트막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언덕 중간쯤에서 만난 고즈넉한 정자. 주먹밥으로 요기를 한 뒤 다시 채비에 나선다. 그늘을 치고 앉을 공간이 중간중간 선물처럼 등장해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 가면 좋다. 다음 행선지는 예산 가야사지(伽倻寺址). 영화 ‘명당’에서 하늘이 내린 명당으로 묘사된 그곳이다. 1시간 정도 느긋하게 걷다 보니 남다른 지기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적당한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인 반듯한 평지. 그 한가운데에 거북이 등딱지처럼 솟은 잘생긴 언덕이 자리한다. 그 위로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묘(南延君 墓)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까지 묏자리를 몰래 파는 사람이 많아요.” 지나가는 어르신이 한마디 던진다. ‘불법 묘지 금지’라는 현수막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언덕을 바라보는 벤치에 오래 앉아 볕을 쪼이러 다시 오리라, 한참 다짐하고선 발걸음을 돌린다. 어느덧 땅거미가 깔려 어둑하고 쌀쌀하다. 수덕사(修德寺)는 백제 위덕왕 재위(554∼598년) 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별미라는 뻥튀기 과자를 한 봉지 사들고 입구에 들어서자 수덕여관이 손을 맞는다. 고 이응노 화백과 얽힌 사적지로, 충남도 기념물 103호다. 이 화백과 화가 나혜석, 일엽 스님 등 시대를 앞서간 예인의 사연이 깃든 곳이다. 수덕사는 천천히 돌아보면 1시간도 부족하다. 다양한 조형물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웅장한 사찰 구석구석을 둘러 대웅전을 만났다. 화려하게 새 옷을 덧입은 다른 건물들과 달리 소담하고 예스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하얗게 머리가 센 노인처럼 나무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오랜 세월 수많은 마음이 모아둔 간절한 기도가 산이 되고 나무로 꽃으로 피었네요.” 누군가가 가만히 말했다. 그림 같은 수덕사를 뒤로하고 찬찬히 터미널로 발걸음을 돌린다. 직관 한 번으로는 부족한 여정이다.▼여행 정보▼추천 코스 오전 8시 서울 출발∼오전 10시 충남 서산 도착. 서산 마애여래삼존상∼보원사지∼가야사지(남연군 묘)∼수덕사를 거쳐 저녁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 가는 법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에서 서산태안행 버스를 타고 운산정류소에서 하차. 1시간 20분 소요. 7600원. 운산정류소에서 용현계곡행 시내버스로 보원사지 하차. 20분 소요. 1200원. 택시로는 10∼15분 소요. 8000원.주변 맛집 △용현집: 민물고기 미꾸라지 등을 갈아 넣어 만든 어죽이 일품이다. 운산면 용현리 5-3 △길따라 인연따라: 운치 있고 인심 넉넉한 찻집. 금∼일요일에만 문을 연다. 천년고수 보이차 1인분 2만 원. 덕산면 상가2길 9-15 여행 팁 △관리사무소에 미리 신청하면 마애여래 삼존상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감성+ △책: ‘길 없는 길’(최인호). 수덕사를 배경으로 경허와 만공 스님의 생애를 다룬 소설(동아일보 문화부 추천).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 흥선대원군이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가야사지의 명당으로 이장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입혔다(동아일보 문화부 추천). 서산=이설 기자 snow@donga.com사진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201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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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들의 등산일기’ 국내 번역 출간한 日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

    《“이번 소설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아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학생에게 복수하는 교사(‘고백’), 고급 주택가를 배경으로 벌어진 가족 살인(‘야행관람차’)…. 일본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湊かなえ·46)의 책을 읽다 보면 괜히 죄지은 기분이 든다. 주인공이 드러내는 질투 분노 원망 같은 어두운 감정에 붙들린 기억이 떠올라서다. 그래서일까. 그의 별명은 ‘이야마스(부정적 감정을 유발한다는 뜻)의 여왕’이다.》 하지만 2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작가는 지난달 31일 국내에 번역·출간한 ‘여자들의 등산일기’(비채·사진)는 “여타 작품과는 결이 다르다”고 소개했다. 실제로도 이야마스와 거리가 멀다. 살인이나 복수, 속죄 대신 치유와 성장, 연대를 내세웠다. 그는 “부엌 구석이나 좁다란 복도에서 스릴러를 쓰다 보면 빛이 절실한 순간이 온다”며 “그럴 때마다 산에 오르는데, 2012년쯤 딸과 등산하면서 이 소설의 뼈대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TV 뉴스에서 산에 오르는 젊은 여성을 뜻하는 ‘마운틴 걸’이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한데 막상 산에 오르니 여성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10년 만에 마주한 산에 제 가슴은 여전히 쿵쾅댔고, 어린 딸의 발걸음은 생각보다 힘찼죠. 이런 단상들이 ‘산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성장담’으로 이어졌습니다.” 책에는 8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뒤틀린 인간관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 사랑으로 인한 고통. 주인공들은 묵묵히 산을 오르며 외면했던 문제와 찬찬히 마주한다. 어린 딸과 로프로 몸을 묶고 산을 내려오는 장면은 작가의 경험담이다. 그는 “여성을 어리고 약하게 지칭한 ‘마운틴 걸’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은 남성 이미지가 강한데, 그들이 만든 틀과 용어에 자신을 가둘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마침 이날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일본어판이 인쇄 부수 13만 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본에서 큰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죠. 아쉽게도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일본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개인이 느낀 문제들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움직임이 생겼지만, 아직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지진 못했죠. 책이라는 도구로 마음을 잇는 한국의 문화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의…’에는 일본의 명산 8곳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묘코산, 히우치산, 리시리산, 긴토키산 등이다. 모두 작가가 직접 다녀왔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데뷔했다. 2008년 내놓은 데뷔작 ‘고백’(2009년 국내 출간)은 일본 열도를 뒤흔들 만큼 돌풍을 일으켰다. 허를 찌르는 서사와 인간관계의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심리 스릴러가 전매특허. 그는 “작품을 쓸 때 내면의 나쁜 것들을 확장해 불러낸다”며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그것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의 심연을 세밀하게 묘파한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빙점’이 인생 책이에요.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미스터리의 문을 열어준 작품이죠. 대다수가 모른 척하는 민감한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고 싶습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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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30여 년 만에 새로 펴내

    1986년 출간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3권·탐구당)이 30여 년 만에 전권 복간됐다. 한길사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번역을 수정·보완하고 해설과 도판을 더해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6권·세트 27만 원)을 새로 펴냈다”며 “작가의 해설까지 덧붙여 완역한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라고 했다. 프랑스어판은 작가의 해설을 담았지만 완간되지는 않았다. 이 책은 이탈리아 미술가·건축가로 활동한 조르조 바사리(1511∼1574)가 1200∼1500년에 활동한 화가 건축가 조각가의 생애와 작업을 망라했다. 조반니 치마부에, 조토 디 본도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세계를 깊이 파고든 노작이다. 1550년 초판을 냈고 18년 뒤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해설을 맡은 고종희 한양여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바사리는 화가이자 건축가로도 유능했지만 이 평전으로 미술 비평사에 한 획을 그었다”며 “바사리 덕분에 서양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시대가 유독 풍부하게 다뤄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바사리는 이탈리아 곳곳의 예술품을 눈으로 확인하고 당대의 정치·경제사를 참조해 평전을 완성했다”며 “미술사뿐 아니라 정치·경제·인문서로서도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매너리즘, 드로잉, 르네상스 같은 용어도 이 책에서 처음 언급됐다. 미술 애호가였던 이근배 전 조선대 의대 교수(1914∼2007)는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해 18년간 번역에 매달렸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저본이 된 미국판 평전도 당시 절판된 탓에 사서에게 개인적으로 복사본을 얻어 힘들게 번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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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모서리 접고… 펼친 채 사진 찍고… 파는 책을 내 책처럼 함부로

    《“저렇게 책을 망가뜨리고선 양심도 없지….” 새로 문을 연 서점형 복합 문화공간에서 톡톡 튀는 큐레이션과 개성 있는 생활용품을 구경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 김현경 씨(36)는 최근 불쾌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남성이 모서리를 접어가며 책을 읽더니 책장 맨 아래에 넣어두고선 유유히 사라진 것. 김 씨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조심히 보는 편인데 판매하는 책을 훼손하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며 “그런 책을 다른 이들이 구입하면 누가 책임질지 의문이다”고 했다.》 ○ 서점, 다목적 쉼터가 되다 책만 사고파는 서점은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됐다. 거의 모든 대형 서점이 먹고 마시고 쇼핑하다가 쉬어가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도서 정가제 시행과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위기에 몰린 오프라인 서점이 자구책으로 ‘카페화’와 ‘도서관화’를 택했기 때문이다. 최근 광고회사 이노션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생성된 서점 관련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서점을 문화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점에서 휴가를 즐기는 ‘서캉스’(서점+바캉스) ‘책캉스’(책+바캉스) 문화도 자리 잡았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서울 중구 ‘아크앤북’이 대표적이다. 일본 쓰타야 서점을 본뜬 공간으로 최근 ‘핫’한 카페와 식당이 다수 입점해 있다. 주중엔 직장인들의 틈새 휴식 공간으로, 주말에는 가족 나들이 명소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서점의 변화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다. 출판계의 주된 불만은 책 훼손이다.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서점. 한 20대 남성이 서점 내 카페에서 여행책 대여섯 권을 펼친 채 페이지마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책을 쌓아두고 꾹꾹 눌러가며 읽는 이들도 보였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 서점 풍경도 비슷했다. 기다란 테이블 옆에 에티켓 지침을 담은 표지판을 세워 뒀지만 수험서를 쌓아두고 공부하는 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서가에서도 책을 휙휙 넘기거나 구겨가며 읽는 이가 많았다. 한 서점 관계자는 “시험 기간의 도서관처럼 자리다툼도 종종 벌어진다”고 귀띔했다. ○ “책, 소중히 다뤄야” 출판계는 훼손된 책으로 인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서점에 책을 보낸 뒤 판매되지 않은 책은 모두 되돌려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출판사의 주연선 대표는 “훼손된 채로 반품되는 책이 계속 늘고 있다. 독자들이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는 것은 좋지만 음식을 먹으면서까지 책을 읽도록 허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카페를 겸한 독립서점의 사정도 비슷하다.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는 “커피를 시켰으니 책을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손님이 많은데, 한 시간씩 새 책을 보면 그 책은 다른 사람이 구입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며 “책 훼손을 줄이기 위해 구입한 책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새벽감성1집’의 김지선 대표는 “엄연히 판매용 새 책인데 카페에 진열된 책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 초반에 스트레스가 컸다. 손님들의 인식이 성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불공정한 데다 책을 홀대하는 서점의 방침도 도마에 올랐다. 한 1인 출판사 대표는 “대형 서점의 공간 상당 부분이 카페, 생활용품점 등 다른 사업을 위한 공간이 돼 버렸다”며 “책을 다른 제품 판매를 위한 일종의 ‘미끼’로 사용하는 듯해 불쾌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서점 측이 견본 책을 비치하도록 제도적으로 못 박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에 대해 한 대형 서점 관계자는 “팔리지 않은 책은 출판사에 되돌려 주는데, 그 가운데 손때가 묻은 책이 더러 섞인다. 그런 부분까지 일일이 걸러낼 수는 없다. 출판사에서 반품을 거부하는 경우 책을 구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을 대하는 자세를 비롯해 도서 문화 전반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도서관과 서점은 엄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점업계는 물론이고 시민들도 책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설 snow@donga.com·신규진 기자}

    • 201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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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페형 서점 갑론을박…“판매하는 책을 망가뜨리다니” “책이 미끼냐”

    “저렇게 책을 망가뜨리고선 양심도 없지….” 새로 문을 연 서점형 복합 문화공간에서 톡톡 튀는 큐레이션과 개성 있는 생활 용품을 구경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 김현경 씨(36)는 최근 불쾌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남성이 모서리를 접어가며 책을 읽더니 책장 맨 아래에 넣어두고선 유유히 사라진 것. 김 씨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조심히 보는 편인데 판매하는 책을 훼손하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며 “그런 책을 다른 이들이 구입하면 누가 책임질지 의문이다”고 했다. ●서점, 다목적 쉼터가 되다 책만 사고 파는 서점은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됐다. 거의 모든 대형 서점이 먹고 마시고 쇼핑하다가 쉬어가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도서 정가제 시행과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위기에 몰린 오프라인 서점이 자구책으로 ‘카페화’와 ‘도서관화’를 택했기 때문이다. 최근 광고회사 이노션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생성된 서점 관련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서점을 문화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점에서 휴가를 즐기는 ‘서캉스(서점+바캉스)’ ‘책캉스(책+바캉스)’ 문화도 자리 잡았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서울 중구 ‘아크앤북’이 대표적이다. 일본 츠타야 서점을 본뜬 공간으로 최근 ‘핫’한 카페와 식당이 다수 입점해 있다. 주중엔 직장인들의 틈새 휴식 공간으로, 주말에는 가족 나들이 명소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서점의 변화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다. 출판계의 주된 불만은 책 훼손이다.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대형 서점. 한 20대 남성이 서점 내 카페에서 여행책 대여섯 권을 펼친 채 페이지마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책을 쌓아두고 꾹꾹 눌러가며 읽는 이들도 보였다.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대형 서점 풍경도 비슷했다. 기다란 테이블 옆에 에티켓 지침을 담은 표지판을 세워 뒀지만, 수험서를 쌓아두고 공부하는 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서가에서도 책을 휙휙 넘기거나 구겨가며 읽는 이가 많았다. 한 서점 관계자는 “시험 기간의 도서관처럼 자리다툼도 종종 벌어진다”고 귀띔했다. ●“책, 소중히 다뤄야” 출판계는 훼손된 책으로 인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서점에 책을 보낸 뒤 판매되지 않은 책은 모두 되돌려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주연선 대표는 “훼손된 채로 반품되는 책이 계속 늘고 있다. 독자들이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는 것은 좋지만 음식을 먹으면서까지 책을 읽도록 허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카페를 겸한 독립서점의 사정도 비슷하다.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는 “커피를 시켰으니 책을 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손님들이 많은데, 한 시간씩 새 책을 보면 그 책은 다른 사람이 구입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며 “책 훼손을 줄이기 위해 구입한 책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새벽감성1집’의 김지선 대표는 “엄연히 판매용 새 책인데 카페에 진열된 책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 초반에 스트레스가 컸다. 손님들의 인식이 성숙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불공정한 데다 책을 홀대하는 서점의 방침도 도마에 올랐다. 한 1인 출판사 대표는 “대형 서점의 공간 상당 부분이 카페, 생활용품점 등 다른 사업을 위한 공간이 돼 버렸다”며 “책을 다른 제품 판매를 위한 일종의 ‘미끼’로 사용하는 듯해 불쾌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서점 측이 견본책을 비치하도록 제도적으로 못 박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에 대해 한 대형 서점 관계자는 “팔리지 않은 책은 출판사에 되돌려 주는데, 그 가운데 손때가 묻은 책이 더러 섞인다. 그런 부분까지 일일이 걸러낼 수는 없다. 출판사에서 반품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책을 구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을 대하는 자세를 비롯해 도서 문화 전반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도서관과 서점은 엄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점업계는 물론 시민들도 책의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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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사랑하는 아들의 약물중독… 아버지의 이름으로 치유

    “닉이 태어날 때만 해도, 나는 아이가 이런 식으로 고통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분명 ‘뷰티풀 보이’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전부를 기억한다. 동틀 녘 태어난 순간. 세 살 무렵 갖고 놀던 쌍둥이 판다 인형. 부모의 이혼 뒤 축 늘어진 조그마한 어깨. 이따금 반항하던 앙다문 입술…. 눈부시던 아이는 그러나 열두 살 무렵 돌변한다. 마리화나 때문이었다. 내 아들이 당최 왜? 아버지는 과거로 돌아가 원인 파악에 나선다. 가장 의심 가는 지점은 이혼이다. 학기 동안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빠와, 휴가철과 여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엄마와 지낸 닉. “이 손에서 저 손으로 패스되는 공처럼” 엄마 아빠 사이를 오가는 일은 분명 큰 시련이었을 테지만 그럭저럭 적응해 나갔다. 캐런과 재혼한 이후엔 어땠나. 둘은 늘 함께 그림을 그렸고, 작품집을 보며 예술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캐런과 닉은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이즈음 멈칫하는 기억.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았던 걸까? 아니기를 바란다.” 저자의 머릿속 시계는 닉의 이복동생이 태어나던 장면으로 건너간다. 닉은 제니퍼에게 푹 빠진 것처럼 보였다. 돌돌 말린 동생을 안아 들고선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대목도 개운치 않다. “내가 너무 좋게만 생각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내 아들이 그럴 리 없다며 합리화한 장면도 수두룩하다. 부스스한 머리와 만사가 귀찮은 얼굴, 나른한 동작. 부인할 수 없는 마리화나의 흔적을 포착하고도 아들을 그저 어리고 활달하고 순진한 어린애로 여겼다. 닉이 멀어질 때는 “예수도 열일곱 살 때는 말썽깨나 부렸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문장을 끌어오기도 했다. “내가 아이를 망친 걸까? 내가 너무 오냐오냐했을까? 내 관심이 부족했을까? 관심이 너무 지나쳤을까? 만약에 우리가 시골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마약을 한 적이 없었다면. 만약에 닉의 엄마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답 없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고문하던 끝에 저자는 이런 결론에 이른다. “학대당하며 자란 중독자가 있는 반면, 이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낸 중독자도 있다.” 그러고선 이렇게 자신과 읽는 이를 다독인다. “이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선 그것부터 아셔야 합니다.” 자녀의 잘못된 미래를 상상하는 부모는 없다. 순탄한 길만 걷길 기도하고 바람직한 어른으로 자라길 기원한다. 저자도 그랬다. 하지만 아이는 추락했고, 반복된 재활의 실패는 가족들의 삶까지 망가뜨렸다. 무엇으로도 아들을 도울 수 없다는 죄책감과 절망이 아버지를 글쓰기로 이끌었다. 아기자기한 육아기록에서 눈물 자아내는 가족 에세이로. 중독의 개념을 다룬 대중 이론서에서 생의 의지를 북돋는 기도문으로. 분절된 세월의 토막마다 이야기 성격이 바뀌어 끝까지 흥미롭게 읽힌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힘을 발휘할 만한 책이다. 올해 같은 제목의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중독은 난해한 질병이며 심리 장애를 동반해 훨씬 더 복잡한 경우가 많다. 중독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도전이고 때로는 시련이다. 하지만 이 질병은 치료가 가능하다. 희망은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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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룩덜룩을 ‘지브라 라인스’로 표현… 기발한 번역 덕분 詩가 더 풍부해져”

    “한 나무에게 가는 길은/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하니?/마침내/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하니?” 27일 저녁 서울 중구 주한 영국대사관저 1층 응접실. 외국인 30여 명이 ‘숲’을 낭송하는 최정례 시인(64)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열었다. 대형 화면 위로는 번역시 ‘포리스트(Forest)’가 흘렀다. 외교 사절의 문학 모임인 서울문학회의 48번째 강연이다. “고저스(gorgeous), 어도러블(adorable), 뷰티풀(beautiful)…. ‘아름다운’을 대신할 단어로 결국 얼티밋(ultimate)을 골랐어요. 덕분에 시가 더 깊고 풍부해진 것 같습니다.” 낭송을 마친 최 시인이 설명했다. 서울문학회는 2006년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야코브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가 회장을,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이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황석영 신경숙 김연수 한강 소설가 등이 초청됐다. 이날 자리에는 영국 스웨덴 스페인 라트비아 대사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얼룩덜룩’을 ‘지브라 라인스(Zebra Lines)’로 바꾼 게 신의 한 수였죠. 다리에 ‘쥐가 났다’는 표현을 영국인 번역가가 ‘쥐가 다리를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고 옮겼답니다.” 최 시인이 번역 후일담을 이야기하자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다. 시인은 이날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영혼 박물관’ 등 6편의 시를 낭송했다. 청중이 외국인인 만큼 번역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작품을 추렸다. 2011년 자신의 시선집 ‘순간들(Instances)’을 공동 번역해 펴낸 최 시인은 “해당 작가의 옷을 입고 말을 흉내 내면서 사랑하는 게 번역”이라며 “해외에 나가면 모든 단어가 새롭고 시적으로 느껴져 언어적 상상력이 풍부해진다”고 했다. 한국 산문시의 세계를 엿본 회원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해외에서 쓴 시는 기발한데 한국에서 쓴 작품은 왜 진지한가요?”(파트리크 에베르 주한 캐나다대사관 참사관) “해외 시인들과 나눈 교감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 최 시인의 답변을 메모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는 “최정례 시인의 시로 인해 현실이 초현실로 바뀌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김사인 원장은 “일상어와 시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최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게 돼 기쁘다”며 “한국은 시인 2만 명이 활동할 정도로 시 창작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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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과 미래를 노래한 신동엽… 그의 詩세계 되새긴다

    ‘껍데기는 가라’ ‘4월은 갈아엎는 달’…. 신동엽 시인의 시는 1960년대에 주로 발표됐으나 1970, 80년대에 널리 읽혔다. ‘저항’ ‘혁명’ ‘민족’을 노래한 그의 시는 엄혹한 시절 대학가의 정신을 지배했다.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39세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50년. 더 큰 틀에서 작품 세계를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50주기의 또 다른 키워드는 대중화다. 신 시인의 장남인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는 “깊고 넓은 시인의 시 세계를 널리 알리기 위해 시인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뛰고 있다”고 했다. 김응교 김형수 박준 시인에게 준비 중인 행사와 오늘날 시인의 외침이 갖는 의미를 묻고 이들의 목소리로 각각 정리했다.○ 김응교―평전 재출간·문학길 지정 50주년을 맞아 2005년 발간된 평전 ‘시인 신동엽’(현암사)이 최근 재출간됐다. ‘좋은 언어로-신동엽 평전’(소명출판)으로 제목을 바꾸고 일부 내용을 고치고 더했다. 가난한 농민의 장남으로 태어나 남다른 총기로 명시를 남긴 시인의 일생을 촘촘히 되살렸다. 충남 부여, 제주(4월), 서울(6월)에서 신동엽 문학기행도 열린다. 서울 행사는 배우 김중기 씨가 신동엽 시인으로 분해 성북구 자택과 종로5가 등을 시민 35명과 함께 둘러본다. 중간 중간 상황극과 시 낭송을 곁들인다. 시에 나타난 그의 사상은 생태적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한반도 화해 무드가 조성된 요즘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김형수―신동엽 유튜브 100회 올해 1월 유튜브 채널 ‘문학난장’을 열고 시인의 작품과 생애를 소개하는 동영상 19편을 올렸다. 올해 100편 업로드가 목표다. 생전 시인도 ‘내 마음 끝까지’라는 동양라디오 심야 방송 대본을 집필하며 대중과 소통했다. 새 시대의 채널로 그가 독자와 가까워지길 바란다. 그는 오랜 기간 평론을 공부했다. 그래서 언어 세공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신동엽만큼 문명을 깊이 사유한 시인은 드물다. 쉽고 간결한 어휘로 ‘중립론’ ‘전경인’(인문학적 농사꾼) 같은 개념을 내세워 민족과 역사의 미래를 논했다. ‘향아’ ‘금강’ 등 시 전편에 이런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박준―신동엽문학상 수상 시인 작품집 출간 시인의 기일에 맞춰 ‘신동엽산문전집’과 신동엽문학상 수상 시인과 소설가의 작품집이 나온다. 각각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창비)과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창비)으로, 도종환 시인과 공선옥 김금희 소설가 등이 참여했다. 습작 시절 그의 시집을 펼쳤는데 동시대 시인들과 결이 달랐다. 형식 실험과 전통 시에 몰두한 당시 분위기에서 신 시인은 민족을 파고들었다. ‘금강’ 등에서도 역사성이 현실과 이어지는 자각이 묻어난다. 도시화의 이면을 포착한 ‘종로5가’를 특히 좋아한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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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생은 한 편의 詩”… 소박하고 진솔한 시 예찬

    ‘어울리는 것: 퀭한 눈, 흐트러진 머리카락, 고독….’ ‘동떨어진 것: 번듯한 직장, 저축, 평온함….’ 많이 좋아졌다지만 시는 여전히 편견에 시달린다. 시를 즐긴다면 별종 취급당할 것 같아 흠칫. 공공장소에서 시집을 꺼내려다 괜히 손이 부끄러워져 스마트폰을 뒤적인다. 시심(詩心)과 일상은 동행할 수 없으며, 일상에서 꽃핀 시는 가짜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일부 있다. 시는 정말 특별한 이들이 읽는 걸까. 미국 시 전문지 ‘시(Poetry)’는 각계각층의 50명에게 시에 대한 원고를 청탁했다. 베스트셀러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인 록산 게이를 비롯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수, 작가, 기자, 첼리스트, 철공노동자, 교사, 군인 등이 시에 얽힌 기억을 풀어냈다. 이렇게 해서 시와 인생을 버무린 50개의 이야기가 담겼다. 시는 때로 어떤 학술서보다 더 정확하게 진실을 찌른다. 사랑에 빠진 뇌를 연구하기에 앞서 생물인류학자인 헬렌 피셔는 시집을 들췄다. 시에는 낭만적인 열정에 휩쓸린 뇌가 분출하는 감정의 낙진이 훌륭하게 묘사돼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저 대자리를/차마 치워버리지 못하네/당신을 집에 데려왔던 밤/저걸 펴는 당신을 지켜봤으니.”(9세기 중국 시인) “누워서도 잠들지 못하는 밤, 뜨거워라/점점 커지는 열정의 불꽃.”(19세기 일본 시인) 래퍼이자 교사인 체 스미스는 시는 곧 어머니 아버지의 인생이라고 고백한다. 혼자 아이를 길러야 했던 시카고 출신의 열다섯 살 소녀였던 스미스의 어머니는 ‘어리고, 너무나 가늘고, 너무나 꼿꼿하다/너무 꼿꼿해! 아무것도 그녀를 굽히지 못할 것처럼’(제시 미첼 ‘어머니’) 보였다. 마야 안젤루의 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누구도/어느 누구도/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 말이다’(‘홀로’)에는 거칠지만 역동적인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록산 게이의 글에는 시에 대한 상찬이 빼곡하다. 시를 잘 모르지만 읽고 나면 순수한 기쁨이 뒤범벅된 느낌에 감싸이고, 어떤 식으로든 시는 자신의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단언한다. “내 마음과 몸에 와 닿는 시인과 시는 끝도 없이 쓸 수 있다.” 철공노동자 조시 원은 시와 철공의 공통점을 놀라운 통찰로 짚어낸다. “철공 일이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교가 필요할 때가 많다 보니, 기다란 시를 머릿속에 담는 일에서 까다로운 용접을 마치거나 굽은 계단에 철제 난간을 세웠을 때와 약간은 유사한 만족감이 느껴진다.” 평론가가 쓴 비평서와 거리가 멀다. 시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이들이 시라는 주제어를 받아들고 쓴 에세이에 가깝다. 시를 매개로 해서인지 지나온 시간의 가장 시적인 토막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미국에 이어 한국 독자들의 고백을 한국어판으로 엮을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 시에 얽힌 사연을 투고하면 심사를 거쳐 책으로 만든다. 봄날의 책 출판사로 문의하면 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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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김윤식 교수 “문학으로 얻은 전 재산, 문학 위해 써주세요”

    “평생 읽고 쓰는 것밖에 모르던 분이었어요. 당연히 문학과 관련한 일에 쓰이는 게 맞겠다 싶었습니다.” 수화기 너머 노(老)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지난해 10월 별세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사진)의 부인이자 유일한 유족인 가정혜 여사(84)였다. 가 여사는 “(남편이) 떠나기 100일 전쯤 의식을 차리고선 기부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꺼냈다”며 “어떻게 잘 쓸지 거듭 고민해서 결정했다”고 했다. 고인이 남긴 재산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아파트와 원고료, 인세를 모은 예금 등 30억 원 상당이다. 8일 가 여사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약정식을 열고 유산을 모두 기부하기로 했다. 저서, 원고, 펜, 의류 등 고인이 남긴 물품은 디지털화해 2022년 서울 은평구에 건립될 예정인 국립한국문학관에 기록물로 저장된다. 정우영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위원은 “의미 있는 물품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고 지인들의 인터뷰를 모아 디지털 문학관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약정서에는 고인 또는 근대문학과 관련해 가칭 ‘김윤식 기금’으로 사용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 자문은 고인과 사제 관계로 친분이 깊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맡았다. 장서 목록은 가 여사가 직접 정리해 넘겨주기로 했다. 추모식 때 조시를 읊은 이근배 시인은 “고인은 그 흔한 휴대전화도 없이 집필실과 집을 오가며 검소하게 생활했다. 떠난 후에도 문단 후배들을 위해 큰일을 했다”고 말했다. 1936년생인 고인은 마산상고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같은 대학 국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30여 년간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매달 발표하는 작가들의 신작을 빠짐없이 챙겨 읽고 ‘소처럼’ 평론하는 작업을 80세가 넘어서까지 이어갔다. 200여 권의 저서를 내며 한국 근현대문학 연구의 기틀을 다진 거목으로, 수많은 문인을 배출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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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도우 작가 “장르도 데뷔 경로도 애매모호… 독자 입소문으로 살아남았죠”

    한강, 히가시노 게이고, 최은영 등이 점령한 대형 서점가에서 꿋꿋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이도우 작가(50)다. 2004년 데뷔작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북박스)은 25만 부 넘게 팔린 스테디셀러. 지난해 6월 출간한 세 번째 장편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시공사)는 6만 부를 찍고 순항하고 있다.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작가는 “장르도 데뷔 경로도 불분명하다. 오로지 독자들의 입소문으로 살아남았다”고 했다. “웹 소설을 쓰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책을 펴내며 데뷔했어요. 장르는 ‘애매모호’ ‘힐링’ ‘이도우표’ 정도? 순문학도 대중문학도 아닌데 읽고 나면 마음이 촉촉해진다고들 해요. ‘이도우표’라니 정말 영광이죠.” ‘날씨…’는 시골 작은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연결된 인물들의 관계를 다룬다. 우연히 재회한 동창생 은섭과 해원, 해원의 어머니와 이모, 서점 독서모임 회원들의 사연이 제각각 반짝이며 이야기를 잇는다. ‘(관계에) 금이 가면 어때?…그런 게 세상에 있기나 해?’ ‘오해는 없어, 누군가의 잘못이 있었던 거지. 그걸 상대방한테 네가 잘못 아는 거야, 라고 새롭게 누명 씌우지 말라고.’ 반응이 뜨거운 대목들이다. “은연중 느껴왔던 감정을 포착한 대목에서 (독자들이) 울컥하는 것 같아요. 사적·공적으로 사과를 잘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해라고 되받아치는 건 2차 폭력과 다름없어요.” 대학 졸업 뒤 10여 년간 쪽잠 자며 문장노동자 생활을 했다. 라디오 작가와 출판 편집자, 카피라이터…. 닥치는 대로 일하다가 건강에 이상 신호가 켜졌다. 두 달간 활자를 딱 끊었는데, 어느 순간 자판을 두드리며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작품이랑 작가가 너무 다르다고들 해요. 목가적이고 얌전한 작가를 상상했는데 웬 개그우먼이 나타났느냐고요. 한데 전 사실 허무주의자예요. 너무 허무해서 더 웃고 웃기고, 현실을 무대로 하되 마법처럼 평화로운 이야기를 씁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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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옥부터 이글루까지… 한국인 위한 이색 숙소 다 있죠”

    “다양한 타입의 숙소, 편리한 서비스, 즉각적인 고객 응대, 정직한 후기.” 세계 최대 여행 e커머스기업 부킹닷컴의 경쟁력으로 임진형 부킹닷컴 한국 대표(45)는 이 네 가지를 꼽았다. 기본에 충실한 전략으로 부킹닷컴은 한국 시장 진출 6년 만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 동북아시아 총괄대표로 승격한 임 대표는 19일 “부킹닷컴은 호텔과 모텔은 물론 한옥, 아파트, 개인주택 등의 숙박을 제공한다”며 “해외에서는 이글루, 수상가옥 등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킹닷컴 모토는 ‘다양한 경험을 편리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수천 명의 기술 인력이 본부에서 근무한다. 애플리케이션 환경은 고객 경험 테스트를 거쳐 생물처럼 매일 변한다. 임 대표는 “모바일 사용이 많은 한국은 부킹닷컴의 주요 시장”이라며 “2017년에는 동북아 지역에서 연중무휴 운영되는 고객서비스센터까지 도입했다”고 했다. 199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설립된 부킹닷컴은 세계 70개국에 직원 1만7000여 명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호텔리어 출신인 임 대표는 “한국 여행객들은 특히 이색경험에 민감하다. 재미있는 여행을 만들어줄 이색 숙소를 찾기 위해 발로 뛰겠다”고 약속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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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의 아픔 품고… K문학 세계로

    최근 문학·출판계 안팎에서 이산문학(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미국의 이창래와 이민진, 일본의 최실 등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내에서도 이들을 끌어안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82년생 김지영’, ‘설계자들’ 등 한국 작가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도 이런 분위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남북한과 해외의 한인문학을 아우르는 ‘K문학’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K문학 열풍 뜨거워 한국문학번역원은 올해 5월 처음으로 ‘소통과 평화의 플랫폼’을 연다. 해외 거주 한인작가 15명을 초청해 ‘이산과 삶’, ‘소수자로 산다는 것’ 등을 주제로 한국 작가들과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해외에서는 시인 석화(중국), 극작가 정의신(일본), 소설가 제인 정 트렌카(미국), 국내에서는 소설가 김연수 전성태, 시인 김혜순 심보선 등이 참여한다. 출판계는 소설 ‘파친코’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포스트 이민진 찾기에 분주하다. 문학 전문 출판사 비채는 올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을 2권이나 출간한다. 정윤 작가의 스릴러 ‘셸터’와 패티 유미 코트럴 작가의 ‘너는 평화롭다’다. 각각 한인 가정과 한국인 입양아 남매를 내세웠다. 이승희 비채 편집1팀장은 “한국계 작가층이 두꺼워지면서 이들의 우수한 작품을 최근 외신이 자주 소개한다”며 “(작가와 작품 주제가) 한국과 연관된 데다 작품성까지 뛰어나 국내 출판계도 주목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창간된 문학계간지 ‘페이퍼이듬’은 아예 이산문학을 주제로 잡았다. 1호에서는 미국의 시인이자 평론가 이해릭, 시인 최치환 신선영 이지윤의 작품을 실었다. 앞으로 중국, 호주, 일본, 독일의 한국계 작가를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 ○ 해외 한인문학 이끄는 이민자·입양아 그룹 ‘우리 어머니, 나의 무거운 승객, 나의 땅, 나의 나라, 나의 오랜 꿈, 나의 피해….’(레이첼 영 ‘더 스칼러’) 전쟁, 분단, 이민자의 삶, 입양의 아픔…. 이들의 작품에선 한국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제인 정 트렌카의 ‘피의 언어’와 패티 유미 코트럴의 ‘너는 평화롭다’는 입양아를 다룬다. 하와이 거주 소설가 게리 박은 일제강점기 한국을 떠난 조부모의 삶을 들여다본다. 6·25전쟁을 사실적으로 되살린 이창래의 ‘이방인’도 있다. 한국계 문학의 역사가 오래된 일본에서는 2000년 이후 한반도의 정치 상황보다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집중하는 경향을 띤다. 전문가들은 한국적 색채는 “최고의 무기이자 극복해야 할 굴레”라고 말한다. 김종회 문학평론가는 “고전이 되려면 언어와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한국적 특수성을 다루더라도 보편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산문학 교류와 관련해 신중론도 나온다. 이는 활동 작가 상당수가 입양아 출신이기 때문이다. 제인 정 트렌카, 신선영, 소설가 아스트리드 트로치 등이 대표적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1970, 80년대 전후 해외로 건너간 입양아들의 삶이 문학으로 꽃을 피웠다”며 “이들을 보면 조심스럽고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 5세 미하일 박 작가는 “한국계 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 땅에 이끌린다”며 “양측 작가들이 5월에 만나 뿌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한다”고 했다. :: 이산문학이란? ::이산문학의 정체성은 국적, 문자, 작품 주제, 작품 수용층 등으로 판단한다. 한국적 정서를 외국어로 쓴 작품, 한국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국어로 쓴 작품 등 다양한 층위를 지닌다. 재미 한인문학, 재일 조선인문학, 재중 조선족문학, 구소련의 고려인문학이 가장 활발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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