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이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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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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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뜨는 출판사엔 뭔가 특별한 것이… 詩전문 독립출판사 ‘아침달’

    지난해 8월. 크라우드 펀딩 업체 텀블벅의 후원으로 시집 9권이 동시 출간됐다. 세련된 디자인에 기성 시인과 신인을 아우르는 라인업. 눈 밝은 독자들은 ‘신상’ 시집선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독립 출판사 ‘아침달’이 화제다. 시집을 내는 출판사 가운데 곳간이 비교적 넉넉한 대형 출판사는 4, 5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등단을 해야 출간 기회가 돌아온다. 아침달은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큐레이터들이 출간을 결정해 편집까지 돕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디자인·편집회사를 운영하던 손문경 대표가 출판사를 연 건 2013년. 유희경 오은 김소연 등 기성 시인과 계약을 맺고 신인을 발굴했지만 2016년 ‘미투 운동’으로 출판계가 급격히 침체됐다. 묵혀둔 원고를 출간하려니 출판사와 일부 저자의 낮은 인지도가 마음에 걸렸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아침달 서점’에서 2일 만난 손 대표는 “6명은 기성 시인, 3명은 무명 시인이었다. 한 번에 ‘짠’ 하고 동시에 출간하면 출판사와 신인 시인의 낮은 인지도를 극복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시집선의 평균 판매량은 2000∼4000권. 독립 출판사로선 ‘대박’에 가까운 성적이다. 아침달은 그 뒤로 2권을 더 펴내 모두 11권의 라인업을 갖췄다. 아침달의 저력은 틀에 얽매이지 않은 실용 전략이다. 우선 큐레이터들이 원고를 받아 옥석을 가린다. 출판사 기획자로 일하는 송승언 시인이 1차로 심사한 뒤 큐레이터인 김소연 김언 유계영 시인이 ‘○(합격), △(보류), ×(불합격)’로 투표를 한다. 유계영 시인은 “1인당 시 30∼50편을 검토한 뒤 3명이 모두 찬성해야 시집이 출간된다. 3∼5편에 대한 완결성만 보는 등단 제도보다 오히려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김소연 시인은 “큐레이터와 시인이 소통하면서 시집을 만들어가는 점도 새롭다”고 설명했다. 디자인도 재판 때마다 색을 바꾸는 등 수시로 변화를 준다. 시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한 편의 장시로 구성된 이호준 시인의 ‘책’, 시인 20명의 ‘삽화+반려견에 대한 시 2편+사진+산문’을 담은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가 대표적이다. 데뷔 무대로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의 조해주 시인은 민음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호준 시인은 각종 계간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손 대표는 “시를 둘러싼 생태계에 애정을 지닌 기성 시인들의 힘”이라고 공을 돌렸다. 소정의 활동비만 받는 큐레이터 3인방은 “순수하게 즐거워서 하는 일이다”(김소연), “원고를 검토하며 많이 배운다”(유계영), “신인은 좋은 출발을, 기성 시인은 좋은 경험을 하길 바란다”(김언)고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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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성 시인과 신인의 콜라보…독립 출판사 ‘아침달’의 성공 비결은?

    #지난해 8월. 텀블벅 후원으로 9권이 시집이 동시에 독자와 만났다. 모양은 같되 색상과 디자인은 제각각. 시집 주인은 유희경 유진목 오은 서윤후 김소연 등 유명 시인부터 미등단 신인으로 다양했다. #최근 출간된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는 반려견을 키우는 시인 20명이 함께 썼다. ‘삽화+반려견에 관한 시 2편+반려견 사진+조각 산문글’로 구성됐다. 각 글의 제목은 ‘시인 이름X반려견’이다. 시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아침달’이 화제다. 규격화된 크기, 기성 시인, 대형 출판사….시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문법을 깨부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지난 2일 ‘아침달 서점’을 찾아 시 전문 독립 출판사의 성공 비법을 들여다봤다. ○9권 동시 출간 ‘시집 쇼’ 지난 2일 찾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의 ‘올 화이트’ 주택 2층. ‘아침달 서점’과 ‘아침달 출판’이 함께 둥지를 튼 곳이다. 서점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을 메운 ‘아침달 시집선’이 눈에 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간한 9권의 시집을 동시 출간하며 ‘아침달’ 브랜드를 알렸다. 그 뒤로 2권을 더 펴내 모두 11권의 라인업을 갖췄다 . 디자인·편집 회사를 운영하던 손문경 대표가 출판사를 연 건 2013년. 의욕적으로 기성 시인과 계약을 맺고 신인을 발굴했지만 2016년 ‘미투 사태’를 맞았다. 신생 독립 출판사, 미등단 시인…. 지난해 전열을 가다듬고 출간에 시동을 걸었지만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다. 손 대표는 ‘텀블벅 후원’과 ‘기성 시인과 신인의 콜라보’로 상황을 돌파했다. “7명은 기성 시인, 2명은 첫 시집을 내는 시인이었어요. ‘아침달’도 독립 출판이라 존재감이 없었죠. 한번에 ‘짠’ 하고 동시에 출간하면 출판사와 신인 시인의 낮은 인지도를 극복할 수 있겠다 싶었죠.” ○“무기명 원고 놓고 난상토론” “매달 한 번 큐레이터 회의가 열려요. 곧 시인들이 방문할 겁니다.” 손 대표와 대화를 마무리할 즈음. 출판사 기획자로 일하는 송승언 시인이 부지런히 서점 책상을 치우며 이렇게 말했다. 아침달 시집의 맨 뒷장엔 모두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큐레이터 김소연 김언 유계영’이다. 아침달의 모토는 ‘등단이라는 장벽과 별개로 좋은 원고를 세상에 소개하기’. 좋은 원고를 캐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김소연 시인의 제안으로 큐레이터 제도를 도입했다. 송 시인이 1차 심사한 원고를 놓고 큐레이터 3인방이 ‘○(합격) △(보류) X(불합격)’으로 투표를 한다. ‘미니 신춘문예’를 닮은 방식. 어떤 부분이 새로운 걸까. 유계영 시인은 “30~50편 이상의 시를 읽은 뒤 3명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시집이 출간된다. 3~5편의 완결성만 보는 등단제도보다 오히려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김소연 시인은 큐레이터라는 용어에 주목해 달라고 당부다. 그는 “권력구조가 묻어나는 편집위원 대신 사용하는 호칭이다. 출간 여부를 결정하고, 원고에 특히 애정을 보인 큐레이터가 조력자로서 저와 소통한다”고 했다. 소통 중심의 편집 과정은 기성 시인을 이끄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김언 시인은 “아침달에 참여한 기성 시인들이 적지 않다. 기존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면 안정적일 테지만, 직접 시집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아침달의 저력은 ‘즐거움’ 미등단 시인이 시집을 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시집을 펴내는 출판사는 곳간이 넉넉한 대형 출판사 4,5군데 정도. 이마저도 등단을 해야 차례가 돌아온다. 아침달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시집 출판 방식을 개척한 것.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로 데뷔한 조해주 시인은 민음사와 계약을 맺었다. ‘책’을 펴낸 이호준 시인은 각종 계간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시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선 디자인. 오은 시인의 ‘나는 이름이 있었다’는 1쇄 초록에서 2쇄 오렌지로 표지 색을 갈아입었다. 유희경 시인은 1쇄 때 눈으로 표지를 가득 채웠다가 2쇄 부터는 여백을 많이 뒀다. 시 선별 기준도 자유롭다. 이호준 시인의 ‘책’은 한 권 전체가 하나의 장시로 구성됐다. 시 동인 ‘뿔’의 공동 시집과 절판된 최정례 시인의 ‘햇빛속에 호랑이’(1998) 도 다시 출간할 계획이다. 시 전문 출판사는 아닌데 어쩌다 보니 시집만 12권 냈다. 평균 판매량은 2000~4000부. 독립 출판사로서는 ‘대박’을 친 셈이다. 손 대표는 “큐레이터를 비롯해 시의 생태계에 애정을 지닌 기성 시인들의 힘이다”고 했다.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활동하는 ‘시인 3인방’은 이 말에 손사래를 쳤다. “순수하게 즐거워서 하는 일이에요. 원고를 놓고 토론하는 일 자체가 문학의 즐거움과 비슷합니다.”(김소연) “출판사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좋은 시집이 묻혀서는 안 되겠지요. 신인은 아침달에서 좋은 출발을, 기성 시인은 좋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김언)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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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곡 발표 즉시 SNS에 번역가사 공유… 케이팝 세계화 이끌어

    방탄소년단(BTS) 해외 콘서트에서 한국어 ‘떼창’은 이젠 익숙한 풍경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이 가사 ‘선행학습’을 해오기 때문. BTS의 ‘IDOL’ 뮤직비디오에는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러”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추임새가 ‘Hooray it‘s so awesome’, ‘Bum badum bum brrrrumble’ 등 외국인도 알기 쉽게 번역돼 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노래”라고 해외 팬들이 치켜세우는 데 번역도 한몫한 셈이다. 이처럼 한국 문화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은 적절한 번역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해외 팬들에게 탄탄한 아이돌 음악은 물론이고 영화나 문학에서도 K콘텐츠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케이팝은 그 중심에 국내 팬들이 있다. 이들은 소속사에서 운영하는 아이돌 공식 계정과 별개로 신곡이 나오면 부지런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러 외국어로 가사를 번역해 나른다. 트위터 ‘감자밭할매’ ‘아미살롱’ 등 일명 ‘번역계’라 불리는 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가사뿐 아니라 아이돌 소식이 담긴 한국어 기사, 멤버들의 일상을 다룬 브이로그 영상까지 번역한다. ‘Oppa(오빠)’ ‘Unnie(언니)’ ‘Aegyo(애교)’ 등 ‘돌민정음’(아이돌과 훈민정음을 합한 신조어)을 소개한 글도 수두룩하다. BTS 팬 박현정 씨(23·여)는 “해외 투어를 다니기 시작하면 정보를 얻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언제 어디서 활동하든 ‘팬질’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영화 번역의 중요성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더욱 조명 받고 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똥파리’(2008년) 이후 독립영화도 외국어 자막을 제작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칠곡 가시나들’(2018년)은 할머니들의 경북 사투리를 미국 남부 사투리로 표현해 말맛을 살렸다. 표현이 한국적일수록 번역이 어려운 건 당연지사. ‘기생충’ 번역을 맡았던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짜파구리’를 라면(Ramen)과 우동(Udong)을 합친 ‘Ramdong’으로 번역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카카오톡’과 ‘곱등이’는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왓츠앱’ ‘노린재(Stink bug)’로 바꿨다.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나)?” 특히 의역과 직역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는 일은 번역자와 감독에겐 큰 고민거리다. ‘기생충’에서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정(박소담)에게 기택(송강호)이 한 이 말은 “서울대가 상징하는 의미가 전달돼야 한다”는 봉 감독의 요청에 따라 옥스퍼드대로 교체했다.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두만(송강호)의 대사는 외국인에게 더 친숙한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가 됐다. 최근 각광 받는 K문학의 번역자는 한국인, 외국인, 교포 2세 등으로 다양하다. 한쪽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공동 번역자를 두거나 제3자에게 초벌 번역을 의뢰하기도 한다. 문학 번역은 다른 분야에 비해 난도가 높다. 작가의 숨은 의도와 문체의 맛까지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로 한국 문학을 수출하는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예전보다 상황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검증된 번역자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시 번역은 뭣보다 까다롭다.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데다 사전에 없는 관용구 빈도가 높아서다. 이 때문에 시인과 번역자 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주어를 넣느냐 빼느냐, 관용 어구를 어떻게 옮기느냐 등 구조가 달라 논의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의 산물은 큰 찬사를 받는 결과물로 탄생하기도 한다. 최정례 시인(54)의 시 ‘얼룩덜룩’은 영국인 번역가 매토 맨더스롯과 협업해 2017년 ‘Zebra Lines’로 번역했다. 나무 그늘에 몸이 얼룩덜룩한 모습을 ‘얼룩말 무늬’로 표현한 것. 당시 옥스퍼드대에서 한국 시 최고 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문화콘텐츠 번역은 여전히 부차적 요소로 취급받는다. 그렇다 보니 번역자들은 여전히 빠듯한 마감 시간에 시달린다. 번역비도 중국, 일본 시장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파켓 씨도 “5일 만에 급하게 완성해 넘긴 영화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번역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웹소설이나 웹드라마 등 새로운 콘텐츠가 출현하고, 유튜브 등 유통 방식도 다양해졌다”며 “번역 방식과 플랫폼도 이런 흐름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이설 기자}

    • 2019-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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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도…영화 ’기생충‘도…K-콘텐츠 세계화의 일등공신은 ‘이것’

    방탄소년단(BTS) 해외콘서트에서 한국어 ‘떼창’은 이젠 익숙한 풍경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이 가사 ‘선행학습’을 해오기 때문. BTS의 ‘IDOL’ 뮤직비디오에는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러”처럼 지극히 한국적인 추임새가 ‘Hooray it’s so awesome‘, ’Bum badum bum brrrrumble‘ 등 외국인도 알기 쉽게 번역돼 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노래”라고 해외 팬들이 추켜세우는데 번역도 한몫한 셈이다. 이처럼 한국 문화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은 적절한 번역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해외 팬들이 탄탄한 아이돌 음악은 물론이고 영화나 문학에서도 K-콘텐츠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케이팝은 그 중심에 국내 팬들이 있다. 이들은 소속사에서 운영하는 아이돌 공식 계정과 별개로 신곡이 나오면 부지런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러 외국어로 가사를 번역해 나른다. 트위터 ’감자밭할매‘, ’아미살롱‘ 등 일명 ’번역계‘라 불리는 팬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가사뿐 아니라 아이돌 소식이 담긴 한국어 기사, 멤버들의 일상을 다룬 브이로그 영상까지 번역한다. ’Oppa(오빠)‘ ’Unnie(언니)‘ ’Aegyo(애교)‘ 등 ’돌민정음‘(아이돌과 훈민정음의 합한 신조어)을 소개한 글도 수두룩하다. BTS 팬 박현정 씨(23·여)는 “해외 투어를 다니기 시작하면 정보를 얻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언제 어디서 활동하든 ’팬질‘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영화 번역의 중요성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더욱 조명 받고 있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똥파리‘(2008년) 이후 독립영화도 외국어 자막을 제작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칠곡 가시나들‘(2018년)은 할머니들의 경북 사투리를 미국 남부 사투리로 표현해 말맛을 살렸다. 표현이 한국적일수록 번역이 어려운 건 당연지사. ’기생충‘ 번역을 맡았던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짜빠구리‘를 라면(Ramen)과 우동(Udong)을 합친 ’Ramdong‘으로 번역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카카오톡‘과 ’곱등이‘는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왓츠앱‘, ’노린재(Stink bug)‘로 바꿨다.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나?) 특히 의역과 직역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는 일은 번역자와 감독에겐 큰 고민거리다. ’기생충‘에서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정(박소담)에게 기택(송강호)이 한 이 말은 “서울대가 상징하는 의미가 전달돼야한다”는 봉 감독의 요청에 따라 옥스퍼드대로 교체했다.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두만(송강호)의 대사는 외국인에게 더 친숙한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가 됐다. 최근 각광 받는 K문학의 번역자는 한국인, 외국인, 교포2세 등으로 다양하다. 한쪽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공동 번역자를 두거나 제3자에게 초벌 번역을 의뢰하기도 한다. 문학 번역은 다른 분야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작가의 숨은 의도와 문체의 맛까지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로 한국 문학을 수출하는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예전보다 상황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검증된 번역자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시 번역은 뭣보다 까다롭다.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데다 사전에 없는 관용구 빈도가 높아서다. 때문에 시인과 번역자 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주어를 넣느냐 빼느냐, 관용 어구를 어떻게 옮기느냐 등 구조가 달라 논의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의 산물은 큰 찬사를 받는 결과물로 탄생하기도 한다. 최정례 시인(54)의 시 ’얼룩덜룩‘은 영국 번역가 매토 맨더스롯과 협업해 2017년 ’Zebra Lines‘로 번역했다. 나무 그늘에 몸이 얼룩덜룩한 모습을 ’얼룩말 무늬‘로 표현한 것. 당시 옥스퍼드대학에서 한국시 최고 번역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문화콘텐츠 번역은 여전히 부차적 요소로 취급받는다. 그러다보니, 번역자들은 여전히 빠듯한 마감시간에 시달린다. 번역비도 중국, 일본 시장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머물러있다. 파켓 씨도 “5일 만에 급하게 완성해 넘긴 영화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번역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웹 소설이나 웹드라마 등 새로운 콘텐츠가 출현하고, 유튜브 등 유통 방식도 다양해졌다”며 “번역 방식과 플랫폼도 이런 흐름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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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어느날 교황청에 아들을 빼앗겼다

    “혼이 나간 아이 엄마는 눈물범벅이고 아빠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고, 그 집 애들은 죄다 무릎을 꿇고 경찰에게 제발 봐달라며 빌고 있었어요. 어찌나 짠하던지 형용할 말도 못 찾겠더라고요. 심지어 사령관이, 루치디라는 자였는데, 아이를 강제로 데려가느니 차라리 범죄자 백 명의 체포명령을 이행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어요.” 1858년 6월 25일 이탈리아 볼로냐. 유대인 상인 모몰로 모르타라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가 들이닥친다. 이들은 여덟 자녀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더니 여섯 살 아들 에드가르도를 납치하다시피 데려간다. 가톨릭 신자인 하녀가 아이의 첫돌 무렵 남몰래 세례를 줬고, 교회법에 따라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아이를 되찾기 위한 모르타라 부부의 사투가 이어진다. 교회법에 따라 게토에 격리돼 살던 유대인 공동체는, 제 아이를 잃은 듯 격분해 모르타라를 돕는다. 명문 유대인 가문을 통해 읍소하고, 세례를 줬다는 하녀를 찾아 사실을 추궁하고, 종교재판관실 문을 두드리고…. 하지만 처절한 노력에도 교황청은 완고했다. 에드가르도는 부모와 떨어져 교황 피우스 9세의 특별 감독하에 가톨릭 교육을 받는다. 종교재판이 서슬 퍼렇던 시절. 이탈리아 유대인에게 모르타라 가족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속으로 분노하면서도 통치자의 역린을 건드릴까 봐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도자 긴급회의를 열고, 비슷한 사건을 겪은 이들의 증언을 모으며 물밑에서 대항할 힘을 다졌다. 이 사건으로 볼로냐 사회는 빠르게 양분됐다. “서로 다른 두 현실의 충돌은 서로 다른 두 서사,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유대인 동족뿐 아니라 교회의 세속통치에 반대하는 기타 세력들이 받아들인 유대인의 서사는 교황 지배하의 광신이 무너뜨린 화목한 가정의 일화를 묘사하고 있었다. …(교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구원의 일화, 그대까지 타락한 삶과 영원한 지옥의 내세가 예정된 소년을 하느님이 친히 구원하셨다는 감동의 일화로 둔갑했다.” 납치 사건 이후 몇 주가 지나 소규모 유대인들이 조직한 운동은 이탈리아 반도 밖까지 알려졌다. 당시 국제 정세는 격변 중이었다. 각지의 다양한 세력이 교황권에 도전했고, 여기에 계몽주의 사상이 가세해 교황의 세속지배에 균열을 냈다. 축적된 변화의 에너지는 국제적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서서히 교황권이 무너지고 종교재판관에 대한 고발이 진행된다. 지난한 재판을 거치지만 관련자들은 혐의를 벗고 풀려났고, 에드가르도는 피우스 9세를 ‘다른 아버지’라 부르며 학업을 이어간다. 교황은 그를 ‘꼬마 개종자’라 부르며 뿌듯하게 여겼다. 훗날 신부가 된 에드가르도의 모습을 당시 한 지역신문은 “적지 않은 유대인도 이 걸출한 설교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묘사했다. 유대인 가족의 분투로 이탈리아가 근대를 맞았을까. 비극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사건, 역사적 인물, 변화의 시기를 대서사시로 엮은 논픽션이다. 2015년 전기·자서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역사학자가 썼다. 사건 자체가 극적인 데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솜씨 좋게 묘사해 빠르게 읽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마크 라일런스 주연으로 영화화될 예정이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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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김애란 “원고를 통해 마주한 나의 시절들, 반가우면서도 쑥스러워”

    소설도 쉽지 않지만 산문은 더 어려웠다. 소설에선 내가 아닌 척 시치미를 뗄 수 있었다. 에세이는 숨을 곳이 없었다. 간간이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보고 들은 일화에 기대 글을 “쥐어짰다”. 이따금 자신을 무대에 올리더라도 직접화법은 피했다. 힘겹게 낳은 글을 그러모아 등단 17년 차에야 첫 산문집을 냈다. 제목은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1만3500원·사진). 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애란 소설가(39)는 “원고를 통해 시절을 마주하니 반가우면서도 쑥스럽다. 너무 재치를 부린 부분이나 과잉된 부분들은 빼고 오리고…. 모든 글을 다시 썼다”고 했다. “미숙한 표현이나 문장을 보면 부끄럽고, 과거의 감수성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지만 향수나 아쉬움 없이 담담하게 원고를 마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글을, 한 시절들을 묶은 책이니까요.” 그의 관심은 나에서 우리로, 그리고 더 큰 우리로 외연을 넓혔다. 첫 단편집 ‘달려라 아비’(2005년)에서는 나의 기원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단편 ‘바깥은 여름’(2017년)에서는 울타리 안의 우리를 응시했다. 산문집에 실린 조각글 32편도 ‘1부 나, 2부 너, 3부 우리’로 나눠 담았다. 그는 “시간 순으로 글을 배열했더니 관심의 변천사가 한눈에 보였다. 생물학적, 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20대의 저는 지금보다 능청스럽고 명랑하고 사람을 좋아했죠. 다치고 실망하는 시행착오를 거친 지금은 타인에 대해 더 겸손해졌고요. 중요한 건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때로 잃어버린 것들이 아쉽지만, 과거와 지금의 내가 똑같은 일도 이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 권의 책을 내고서야 직업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됐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고 듣고, 스치는 단상 전부를 수첩에 기록하고. ‘글쓰기의 상태’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에는 기꺼이 스위치를 꺼둔다. 각별히 사랑하는 작가는 웹툰 작가인 윤태호와 도스토옙스키. 각각 “솜씨 좋게 삶의 세부를 그려내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어서”다. 그는 시대의 청춘을 다독이는 소설가로 불린다. 옹색한 삶에 서투르지만 당당하게 맞서는 청춘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내 왔다. ‘중견’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 그의 눈은 위와 아래를 바삐 오간다. 그는 “7년 전부터 1인칭에서 3인칭으로 감각이 변한 것 같다. 과거에는 사회에 막 발 디딘 이들의 깨끗함, 맑음, 낙관을 주시했다면 요즘엔 사회 구조 안에서 딜레마에 봉착한 이들에게 관심이 간다”고 했다. “편의상 후배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동료인 작가들의 책을 자주 봅니다. 작가들의 첫 번째, 두 번째 책에는 그 시기에만 가능한 에너지가 담뿍 담겨 있지요. 김세희 작가가 그린 삶의 구체성, 박상영 작가의 에너지와 활달함, 김봉곤 작가의 섬세함과 에너지에서 기분 좋은 자극을 받습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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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이 아파할까? 전현직 정치인 꼬집는 인물시 33편

    정파를 가리지 않고 전·현직 정치인을 꼬집는 ‘인물시’가 나왔다. 최근 출간된 월간 ‘시’ 7월호에는 이오장 시인(67)의 짤막한 인물시 33편이 실렸다. 우선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시가 눈에 띈다. “안개강 하나 건너와 옷깃 터는가/자연은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오는 것/그대가 받들어야 할 자연은 국민이다.”(‘문재인’ 전문) “이 세상 모든 것은 공주가 갖는 것/공주의 모든 것은 부마가 갖는 것/부마 없는 공주는 국민이 부마.”(‘박근혜’ 전문) 대권 주자로 꼽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이낙연 국무총리도 등장한다. “가마꾼 없는 가마는 전시품이다/가마 탔다고 으스대지 말고/차라리 혼자 걸어라.”(시 ‘황교안’) “부릅뜬 눈에 큰 귀 열고/펜으로 그려낸 스피커 시절로 돌아가라.”(시 ‘이낙연’) 이 시인은 “정치인 158명에 대한 인물시를 썼고, 계속 쓰고 있다. 그 가운데 33편을 월간 ‘시’에 소개했다”며 “초심을 잃고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인을 시로 은유하고 싶었다”고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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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팬이 가고싶은 ‘방탄 여행지’ 1위는?

    방탄소년단(BTS)이 다녀간 곳 가운데 해외 팬들은 어디를 가장 가고 싶어 할까. 한국관광공사가 지난달 137개국 2만227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해수욕장 향호해변의 버스정거장(21.8%)이 1위로 나타났다. 2017년 BTS가 발매한 정규 2집 리패키지 앨범 ‘YOU NEVER WALK ALONE’의 표지에 실린 곳이다. 부산 다대포해수욕장(12.2%), 전남 담양군 메타세쿼이아 길(12.1%), 서울 라인프렌즈 이태원점(11.8%), 경기 양주시 일영역(7%)이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 선호 목적지에 차이가 났다. 10∼30대는 향호해변 버스정거장, 40대는 라인프렌즈 이태원점, 50대 이상은 담양군 메타세쿼이아 길로 나타났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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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으로 만난 사회와의 불화, 평생 짊어지고 산 것 같아”

    6월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신경림 시인(83)이 잔잔한 웃음으로 일행을 맞았다. ‘해방 40년의 문학’, ‘연려실기술’…. 거실 벽면을 메운 책장엔 누런 더께가 쌓인 책들이 빼곡했다. “오늘 주제는 ‘한국시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과 개인적으로 잊히지 않는 사건과 장면’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진행하는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 사업’ 현장. 시인과 마주 앉은 김춘식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가 5차 채록 주제를 알리자 일행의 눈이 일제히 시인의 입에 꽂혔다. 영상과 사진 촬영자, 기록자, 현장 총괄이 원로 예술인의 업적과 생애 전반을 듣고 찍고 기록한다. 이 사업은 문학·연극·음악·미술·대중예술 분야의 예술인을 두루 만나고 있다. 예술위 측은 “2003년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315명의 채록을 마쳤다. 집중적인 구술면담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외부인은 참석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사업 시작 16년 만에 언론이 함께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좋은 세상에 태어났으면 학교 선생 하고 연금 받아서 해외여행도 다녔을 텐데….” “문학으로 만난 사회와의 불화가 계속 이어져서 평생 지고 가게 된 것 같아.” 시인이 유년 시절, 문학에 빠져든 과정, 모진 시대를 견딘 기억을 찬찬히 꺼냈다. 대체로 평온했지만, 때로 격정적이고 이따금 촉촉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길 1시간. 채록자인 김 교수가 휴식 시간을 알렸다. 카메라가 꺼지고 모두가 참았던 숨을 시원하게 내뱉는다. 채록 작업은 보통 2시간씩 5번 10시간 내외로 진행한다. 촬영영상은 편집 없이 그대로 보관한다. 발화(發話)한 내용뿐 아니라 침묵과 표정, 땀까지 기록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오래전 일이라 흐릿한 기억이나 잘못된 정보는 ‘각주’ 처리한다. 아픈 기억일수록 노년에 이르러 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부분도 그대로 기록한다”고 했다. “요즘은 갈등이나 번민이 거의 없어. 삶의 종언에 이르렀다는 뜻이겠지.”(신 시인) 쉬는 시간에도 가벼운 이야기가 오간다. 올해 채록 대상은 8명. 문학 분야는 신경림 시인이 유일하다. 가장 중요한 인물 선정 기준은 시급성이다. 대다수가 노년인지라 삼고초려를 해 섭외를 한 직후에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구술을 끝내자마자 이승을 등진 경우도 있다. “바보 같은 데가 있는 게 시인이지.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뺀질’하고…. 그런 게 시인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 게 조지훈 시인이지.” 다시 카메라가 켜지고 시인이 말을 잇는다. 구술에서 뭣보다 중요한 건 채록자와의 호흡이다. 하나의 인생을 두고 마주한 두 사람의 인연과 관점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과 깊이가 달라진다. 정보원 아르코예술기록원 과장은 “구술 채록은 사실 발굴보다 마음속 이야기를 오롯이 이끌어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2시간 반 넘게 이어진 채록이 끝나면 저녁 자리에서 회포를 푼다. 신 시인의 단골집인 동네 냉면 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진짜 구술은 공식 구술을 마친 이후부터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밀한 시간을 공유한 이들끼리 “라포르(rapport·친밀감과 신뢰)”가 형성되고, 술이라도 한 잔 돌면 꾸밈없는 속내가 나온다. ‘구술 이후의 구술’까지 마친 시인이 가만히 말했다. “제대로 이야기한 것 같지 않고, 많은 이야기를 빠뜨린 것 같고….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상하네. 그런데 더 하라면 못 하겠어.”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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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 시인 “문학으로 만난 사회와의 불화, 평생 지고 가게 된 것 같아”

    6월 24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신경림 시인(83)이 잔잔한 웃음으로 일행을 맞았다. ‘해방 40년의 문학’, ‘연려실기술’…. 거실 벽면을 메운 책장엔 누런 더께가 쌓인 책들이 빼곡했다. “오늘 주제는 ‘한국시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과 개인적으로 잊히지 않는 사건과 장면’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진행하는 ‘한국 근·현대 예술사 구술채록 사업’ 현장. 시인과 마주 앉은 김춘식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가 5차 채록 주제를 알리자 일행의 눈이 일제히 시인의 입에 꽂혔다. 영상과 사진 촬영자, 기록자, 현장 총괄이 원로 예술인의 업적과 생애 전반을 듣고 찍고 기록한다. 이 사업은 문학·연극·음악·미술·대중예술 분야의 예술인을 두루 만나고 있다. 예술위 측은 “2003년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315명의 채록을 마쳤다. 집중적인 구술면담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외부인은 참석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사업 시작 16년 만에 언론이 함께 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좋은 세상에 태어났으면 학교 선생 하고 연금 받아서 해외여행도 다녔을 텐데….” “문학으로 만난 사회와의 불화가 계속 이어져서 평생 지고 가게 된 것 같아.” 시인이 유년 시절, 문학에 빠져든 과정, 모진 시대를 견딘 기억을 찬찬히 꺼냈다. 대체로 평온했지만, 때로 격정적이고 이따금 촉촉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길 1시간. 채록자인 김 교수가 휴식 시간을 알렸다. 카메라가 꺼지고 모두가 참았던 숨을 시원하게 내뱉는다. 채록 작업은 보통 2시간씩 5번 10시간 내외로 진행한다. 촬영영상은 편집 없이 그대로 보관한다. 발화(發話)한 내용뿐 아니라 침묵과 표정, 땀까지 기록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오래전 일이라 흐릿한 기억이나 잘못된 정보는 ‘각주’ 처리한다. 아픈 기억일수록 노년에 이르러 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부분도 그대로 기록 한다”고 했다. “요즘은 갈등이나 번민이 거의 없어. 삶의 종언에 이르렀다는 뜻이겠지.” (신 시인) 쉬는 시간에도 가벼운 이야기가 오간다. 올해 채록 대상은 8명. 문학 분야는 신경림 시인이 유일하다. 가장 중요한 인물 선정 기준은 시급성이다. 대다수가 노년인지라 삼고초려를 해 섭외를 한 직후에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구술을 끝내자마자 이승을 등진 경우도 있다. “바보 같은 데가 있는 게 시인이지.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뺀질’하고…. 그런 게 시인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 게 조지훈 시인이지.” 다시 카메라가 켜지고 시인이 말을 잇는다. 구술에서 뭣보다 중요한 건 채록자와의 호흡이다. 하나의 인생을 두고 마주한 두 사람의 인연과 관점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과 깊이가 달라진다. 정보원 아르코예술기록원 과장은 “구술 채록은 사실 발굴보다 마음속 이야기를 오롯이 이끌어내 기록으로 남기는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2시간 반 넘게 이어진 채록이 끝나면 저녁 자리에서 회포를 푼다. 신 시인의 단골집인 동네 냉면 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진짜 구술은 공식 구술을 마친 이후부터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밀한 시간을 공유한 이들끼리 “라포르(rapport·친밀감과 신뢰)”가 형성되고, 술이라도 한 잔 돌면 꾸밈없는 속내가 나온다. ‘구술 이후의 구술’까지 마친 시인이 가만히 말했다. “제대로 이야기한 것 같지 않고, 많은 이야기 빠뜨린 것 같고….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상하네. 그런데 더 하라면 못 하겠어.”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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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베 비리 보도 막혀”… 日 기자의 양심선언

    2017년, NHK 오사카 법조팀장이었던 저자는 특종을 낚는다.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명예교장으로 있던 사학법인이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국유지를 매입한, 이른바 ‘아베 사학 비리 스캔들’이다. 초대형 특종을 보도했지만 회사에는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기사를 손보면서 총리 부부 이름이 삭제됐다. 검찰이 사건에 연루된 공무원들을 불기소하기로 결정한 직후에는 기자 업무에서 빠지라는 인사 통보까지 받는다. 현장 기자가 일본 공영방송의 적나라한 뒷모습을 고발한 책이다. 권력이 교묘하게 언론에 개입하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담겼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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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미국-소련의 핵 담판… ‘검은 토요일’의 기억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의 몸과 마음에 맹렬한 변화가 일어난다. 심박수 증가에 운동 기능 저하는 기본. 심하면 배변·배뇨 조절도 힘들어진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은 일촉즉발의 군사 위기 상황인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당시, 국가 시스템이 스트레스에 맞서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추적한다. 당시 세기의 핵 담판을 이끈 인물은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정치인 니키타 흐루쇼프였다. 두 사람은 단호하게 상황을 통제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회자된다. 하지만 저자는 100명 이상의 관련자 인터뷰, 현장 답사, 군사 해제 기밀 자료를 토대로, 당시 두 수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감정을 완벽히 통제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린다. “‘검은 토요일’로 알려진 날, 쿠바 주둔 소련군은 흐루쇼프의 허락 없이 미군 U-2정찰기를 추락시켰다. 소련군 핵무장 잠수함의 함장은 핵어뢰를 쏠 뻔까지 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런 소련 개자식들.’ 같은 소식에 잭이 냉정하게 반응한 반면 바비는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칠 듯 욕하고 주먹을 치켜들며 방에서 서성거리면서 분을 삭였다.” 냉전의 종식, 절정, 기원을 차례로 담은 저자의 ‘냉전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인 ‘1945’는 지난해 국내 출간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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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년차 소방관, 화염보다 뜨거운 ‘늦깎이 문학열정’

    《“소방의 길을 걷는 내내 문학이 그리웠습니다. 20년 넘게 소방관으로 일한 지금은 두 길이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일하면서 부대낀 사람과 그들이 건넨 사연이 제 속에서 영글어 이야기로 꽃피웠다는 걸 알거든요.” 21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만난 박이선 전북군산소방서 현장안전점검관(50). 그의 손에는 다섯 번째 장편 ‘궁정동 사람들’(나남·1만4800원)이 들려 있었다. 1979년 10·26사태가 일어난 하루를 담담한 시선으로 훑은 작품이다. 》 그는 전북 남원시 지리산 산골에서 자랐다. 몰락한 선비였던 조부의 어깨 너머로 글을 깨치고 한학을 익혔다. 물놀이보다 책이 좋았지만, 인근에는 도서관도 서점도 없었다. 누군가 한두 권씩 보태둔 허름한 교실 문고를 읽어치우며 지적 허기를 달랬다. ‘문청’을 꿈꿨지만 방송통신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형편상 취업에 쓰임새가 있는 공부를 해야만 했다. 군대에 다녀온 직후 그의 눈에 소방공무원 시험 공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화염 속을 드나들면서도 오래 문학열병을 앓았고, 2015년 끝내 꿈을 이뤘다. 단편 ‘하구’로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등단하거나 작품을 내지 않아도 작가처럼 읽고 쓰는 이들이 적지 않아요. 초년병 시절 저와 소방서 동료들도 그랬습니다. 문예집을 만들어 시, 소설, 수필을 싣고 돌려봤지요. 군산 월명산 이름을 딴 ‘월명소방’에 소설을 내면서 혼자 이야기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박 작가는 등단 전후로 ‘이네기’ ‘이어도 전쟁’ ‘여립아 여립아’ 등 역사 장편소설을 내리 써냈다. 최근 7년간 쓴 장편은 3권이다. 주요 관심사는 역사나 군사, 안보. 그는 “역사를 특히 좋아한다. 책과 전문가의 도움도 받지만 역시 최고의 스승은 기록이다. 광개토대왕릉비도 한자를 하나하나 연구해 전체 맥락을 살폈다”고 했다. ‘궁정동 사람들’을 구상한 건 201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아닌 박흥주 육군 대령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왼팔이자 엘리트 군인으로, 사건에 연루된 6명 가운데 가장 먼저 처형된 인물이다. 그는 “박 대령으로부터 보통 사람의 고민을 읽어냈다”고 했다. “집에는 어린 자녀와 병약한 아내가 있고, 사살 대상은 형제처럼 지내던 경호원들이고. 사건 30분 전에 그를 괴롭혔을 생각들을 떠올려봤습니다. 한참 상상하다 보니 이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직장에서는 소중한 것들을 제쳐두고 일 생각만 하게 되는데, 교육받은 대로 훈련받은 대로 행동한 건 아닐까 하고요. 소방관들도 긴급한 상황에서는 반사적으로 매뉴얼을 따르거든요.” 소설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선택의 문제’다. 개인이 상관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선택을 하고, 시대의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박 작가는 늦깎이 소설가인 만큼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쌓여 있다. 그는 “탄광 노동 소설은 거의 마무리됐고, 천재 음악가이자 소설가인 홍난파 선생의 이야기에도 마음이 간다. 발굴되지 않은 역사 속에서 따듯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캐내고 싶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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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인이라 설마 했는데… 최돈미 시인 번역에 감탄”

    ‘아님께서 아님을 아니하시고 아님에 아니하고 아니하시니, 아님이 아니하온지라…’ (‘Lord No does not Lord No and none and not at Lord No thus Lord No does not…’) 김혜순 시인(64)의 여섯 번째 시집 ‘죽음의 자서전(사진)’에 실린 시 ‘아님’에는 아님이라는 단어가 길게 이어진다. 시인은 내심 번역자가 이 시를 어떻게 옮길까, 영어로 바꾸는 게 가능하긴 할까 싶었다. 김 시인은 “‘아님’을 ‘Lord No’라고 바꾸다니, 세상에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번역자인 최돈미 시인과 함께 해외에서 시 낭송회를 열곤 하는데, 이 시를 교차해서 낭송하면 감탄이 쏟아진다”고 했다. ‘아님’을 포함해 49편의 시가 실린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1만 원) 영역본이 이달 6일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했다. 시 부문을 둔 문학상으로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으로, 아시아 여성이나 한국인으로는 첫 수상이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김 시인은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벅찬 소감을 전했다. “우리는 아시아인인 데다 여자니까 상을 줄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최돈미 시인과 그저 즐기다 오자는 마음으로 참석했죠. 아니나 다를까, 시상식장에 모인 1000여 명 가운데 동양인은 저희 둘뿐이었어요. 한데 덜컥 이름이 호명돼 정말 놀랐죠. 현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2015년 시인은 삼차신경통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메르스 사태로 진료를 받지 못한 채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당시 이중의 고통 속에 쓴 시 49편이 ‘죽음의 자서전’에 담겼다. 개인뿐 아니라 세월호, 전사자, 시위 대원 등 사회적 죽음을 두루 훑는다. ‘너는 전신을 기울여 매달려요//감당 못 하겠어요 몸을 비틀어/물의 손가락을 붙잡고//물의 머리칼로 짠 외투를 입어요/꿇어앉아 얼굴을 덮어요…’(‘물에 기대요’) 그는 “죽은 자의 죽음에 대한 시가 아니다. 죽음에 처한 산 자가 쓴 자서전이다. 죽음에 처한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경험을 시로 풀어냈는데, 이런 시적 감수성이 그들(해외)에게 닿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이번 수상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근접한 게 아니냐는 평가까지 나온다. 앞으로 노벨상을 염두에 두고 영문 시집을 펴낼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다소 높아진 목소리로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 그건 소설가에게 소설을 쓰지 말라, 시인에게 시를 쓰지 말라는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상금 6만5000캐나다달러(약 5750만 원)는 번역자와 시인이 6 대 4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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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가미에 걸린 삶… 사회 부조리 들추다

    장강명 작가(44)는 농반진반 스스로를 ‘월급사실주의자’로 정의 내린다. 월급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월급(사회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뜻이다.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 당대 핫한 사회 이슈를 훑어왔던 작가의 눈에 일자리 문제가 포착됐다. 최근 펴낸 연작 소설집 ‘산 자들’(민음사·1만4000원)에는 밥그릇 앞에 필사적인 장삼이사들의 이야기 10편이 담겼다. 25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사옥에서 만난 장 작가는 “2010년대 들어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소설)로 위로받고 싶은 경향이 움튼 것 같다. 일자리 문제만큼 시급하고 긴급한 문제가 없는데 이를 다룬 소설은 별로 없어 연작 소설집을 구상했다”고 했다. ―해고, 취업난, 자영업 과잉 등의 문제가 1부 ‘자르기’, 2부 ‘싸우기’, 3부 ‘버티기’에 골고루 담겼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자의 혹은 타의로 노동 현장의 부조리를 목격하지 않나. 커피숍에서 홀대받는 종업원의 모습 같은 기억들을 꺼내 이야기를 입혔다. 그런 장면들을 그저 슬프게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비극이 벌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싶었다.” ―빵집이 망한 뒤 주인 할아버지는 경쟁 가게에 취업하려 하고(현수동 빵집 삼국지), 동료였던 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를 공격한다(공장 밖에서). 갑을이 아닌 을을의 싸움 같다. “작품 주인공들은 올가미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생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의미를 껴안아야 하는데, 사회 시스템은 결코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산 자들’이지만 ‘죽은 자들’만 못한 삶이다. 자본주의의 비극, 한국 경제구조, 자영업 과잉 등 여러 층위에서 살펴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한 줄짜리 해결책은 없다. 다만 하나만 바로잡으면 된다는 식의 단순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대기업, 방송국, 고용인 등 하나를 악마화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3부의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에서 서로를 악마화하지 말고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살짝 담긴 했다.” ―1970년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1980년대 ‘원미동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두 작품이 워낙 뛰어나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무엇보다 과거엔 시대의 적이 선명했지만 지금은 적이 모호하다. 가해자와 피해자, 너와 나, 나와 나 자신…. 어쩌면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이론이나 제도, 시스템 같은 것들이 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자리 문제로 고민한 경험이 있는지. “20대와, 30대 후반에 한 번씩 회사를 그만뒀다. 언론사를 그만둔 두 번째 퇴사 때에는 스트레스로 힘들었다.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가 정도는 달라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일자리를 잃고 계급에 변화가 생기면 사람들이 멸시하기 시작하고 존엄에 금이 간다. 그게 일자리 문제의 핵심이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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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이 안 낳는 시대… 인류가 감당할 미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인구는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국경 불문 분야 불문,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인구 문제에 핏대를 세운다. 하지만 인구의 어떤 점이 왜 문제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속 악당들은 “인구가 늘면 지구가 망한다”며 악행을 저지르고, 뉴스에서는 ‘고령화 문제 심각’ ‘출생률 감소 심각’이라고 보도하고. 판이한 주장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인구 증가와 감소. 인류에게 어느 쪽이 재앙일까. 국제적인 여론 조사기관 최고 경영자와 캐나다 유명 저술가인 두 저자는 논문, 통계, 석학의 식견, 개인 인터뷰를 근거로 인구는 감소할 거라고 주장한다. 인구라는 개념의 탄생, 인류가 겪어온 규모의 변화, 미래 인구 시나리오, 인구 감소에 대한 대비책이 이어진다. 7만 년 전 수마트라섬 토바 화산이 폭발했다. 당시 인류에게 빙점 이하의 기온을 견디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폭발로 인해 수천 명으로 줄어든 인구는 1차 농업혁명을 거치며 500만∼1000만 명, 서기 1300년 동·서양의 문명이 부흥하면서 4억 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화려한 시절은 짧았다. 흑사병, 기근, 전쟁으로 1700년 세계 인구는 6억 명을 넘지 못했다. 1800년경 10억 명을 돌파한 것은 식생활 개선, 의학 발달, 농업·상업 혁명 덕분이었다. 20세기에 들어 기대 수명은 늘었지만 출생률 하락으로 인구 증가세는 더뎌졌다. 앞으로 인구 증감 시나리오는 어떨까. 책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근거로 70억∼80억 명 전후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도록 사회화되는 순간, 그들은 가족을 더 작게 꾸리려고 합니다.” “2040년 80억 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하락할 거예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출산율과 기대 수명의 간극이 좁혀지고 있습니다.” 각국의 당면 과제인 고령화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일본 유럽은 물론 개발도상국과 중동 아프리카의 출생률도 줄고 있다. 도시화와 여권 강화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리고 감소 트랙에 올라선 인구가 방향을 틀기란 쉽지 않다. 출생률이 1.5 미만인 상태로 한 세대 이상 흐른 사회는 저출산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상태로 정착하면서 그 흐름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가 낳은 노동력 감소, 경기 침체, 연금 수요 증가 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구가 줄어들면 더 많은 일자리, 더 싼 주택을 안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이를 낳는 남녀 쌍의 수가 준다는 것은 주택 구매자의 수가 줄면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저축할 돈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민자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를 서술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각 사회는 밀려오는 이민자를 달갑게 수용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민은 이민자와 원주민 모두에게 이익을 안긴다고 주장한다. “합법적 이민자가 고도의 숙련 노동력 부족을 메우고 기업가적 추진력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 기존의 일자리를 두고 이민자와 본토박이 간 경쟁은 거의 없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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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종호 “갑질이 판치는 사회… 소수자가 마음놓고 말할 수 있어야”

    문학평론가 유종호(84)는 한국 문단의 산증인이다. 1957년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한 이래 60년 넘게 왕성한 비평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여든 중반, 그의 촉수는 사회와 개인의 행복을 더듬는다. 최근 동시에 출간한 에세이 ‘그 이름 안티고네’(현대문학·1만5800원)와 시 비평집 ‘작은 것이 아름답다’(민음사·1만5000원)에서 그는 개인사, 사람, 사회를 구석구석 살핀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18일 만난 그는 “65세 이후 책을 15권 정도 냈다. 나이가 들수록 소설이나 시는 근력이 달린다고 하는데 비평은 오히려 보는 눈이 깊고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킨들’로 활자를 키워 독서를 즐긴단다. “몇 해 전까지 심사를 하느라 한국 작품을 읽었는데 요즘 국내 작품은 손이 잘 가질 않아요. 읽어야 할 세계의 책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역사서를 찾게 됩니다. 꾸밈 속 진실이 담긴 소설도 좋지만, 진짜의 이야기가 주는 여운이 길더군요.” ‘그 이름…’에서는 노년에 대한 사유가 길게 이어진다. ‘(노년은) 묵묵히 자아를 위해 복무해왔던 육체가 반란을 도모하여 일제히 봉기하는 비상사태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읽을 기회가 있을까 하면서도 수시로 서점에서 책을 사 온다. 왜 그런가 자문해보니 습관을 연장해 삶이 계속되리라는 희망을 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일종의 자기기만이자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푸가인 셈”이라고 했다. 책에서는 사회 문제 전반을 다루지만 특히 소수자성에 주목한다. 그가 그리는 바람직한 사회는 소수자가 마음 놓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 하지만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노인 혐오, 군대 직장 가정 내 가혹 행위와 갑질이 연일 매스컴을 탄다. 그는 “누구나 공격적이고 타인을 희생시키고 싶은 경향을 지녔지만 우리 사회는 정도가 심하다”며 그 이유를 과거 사회 분위기에서 찾았다. “조선 시대 노비 인구는 40%가 넘었어요. 당시 사람을 천대하던 문화는 갑질의 원형으로 보입니다. 주자학에 기반해 적과의 동행을 터부시하는 정치 문화는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이어졌고요. 우리는 타협에서 야합의 뉘앙스를 떠올리는데 타협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이에요.” 악습을 끊기 위한 노력으로는 ‘윤리적 사고’를 제시했다. 타인의 입장으로 바라보라는 뜻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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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세이·비평집 동시 출간한 유종호 “우리 사회 ‘큰 어른 실종’ 이유는…”

    문학평론가 유종호(84)는 한국 문단의 산증인이다. 1957년 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한 이래 60년 넘게 왕성한 비평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여든 중반, 그의 촉수는 사회와 개인의 행복을 더듬는다. 최근 동시에 출간한 에세이 ‘그 이름 안티고네’(현대문학·1만5800원)와 시 비평집 ‘작은 것이 아름답다’(민음사·1만5000원)에서 그는 개인사, 사람, 사회를 구석구석 살핀다.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18일 만난 그는 “65세 이후 책을 15권 정도 냈다. 나이가 들수록 소설이나 시는 근력이 달린다고 하는데 비평은 오히려 보는 눈이 깊고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킨들’로 활자를 키워 독서를 즐긴단다. “몇 해 전까지 심사를 하느라 한국 작품을 읽었는데 요즘 국내 작품은 손이 잘 가질 않아요. 읽어야할 세계의 책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역사서를 찾게 됩니다. 꾸밈 속 진실이 담긴 소설도 좋지만, 진짜의 이야기가 주는 여운이 길더군요.” ‘그 이름…’에서는 노년에 대한 사유가 길게 이어진다. ‘(노년은) 묵묵히 자아를 위해 복무해왔던 육체가 반란을 도모하여 일제히 봉기하는 비상사태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읽을 기회가 있을까 하면서도 수시로 서점에서 책을 사 온다. 왜 그런가 자문해보니 습관을 연장해 삶이 계속되리라는 희망을 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일종의 자기기만이자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푸가인 셈”이라고 했다. 책에서는 사회 문제 전반을 다루지만 특히 소수자성에 주목한다. 그가 그리는 바람직한 사회는 소수자가 마음 놓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 하지만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노인혐오, 군대 직장 가정 내 가혹 행위와 갑질이 연일 매스컴을 탄다. 그는 “누구나 공격적이고 타인을 희생시키고 싶은 경향을 지녔지만 우리 사회는 정도가 심하다”며 그 이유를 과거 사회 분위기에서 찾았다. “조선 시대 노비 인구는 40%가 넘었어요. 당시 사람을 천대하던 문화는 갑질의 원형으로 보입니다. 주자학에 기반해 적과의 동행을 터부시하는 정치 문화는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이어졌고요. 우리는 타협에서 야합의 뉘앙스를 떠올리는데 타협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이에요.” 악습을 끊기 위한 노력으로는 ‘윤리적 사고’를 제시했다. 타인의 입장으로 바라보라는 뜻이다. 큰 어른이 실종된 사회에 대해서는 “진영논리로 분리돼 어른이 설 자리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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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작가 “요즘 핫한 매체가 유튜브라고요? 그 다음은 종이책이 될겁니다”

    “요즘 가장 뜨거운 매체는 유튜브라고들 하지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유튜브 다음은 종이책이 아닐까 합니다.”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 전시관. 청중 100여 명 앞에 선 한강 작가(49)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이날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해 ‘영원히 새롭게 출현하는 것들’을 주제로 종이책과 문학, 작가로서의 삶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강지희 평론가가 작가와 나란히 앉아 질문자 역할을 했다. 한 작가는 종이책과 문학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유튜브가 편리하지만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여러 권 쌓아둔 채 반복해서 읽고 필요한 부분만 뽑아낼 수 있는 종이책이 더 편리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펼치고, 귀퉁이를 접고, 밑줄을 긋고…. 종이책이 주는 특별한 물성이 있는데, 우리가 이런 부분을 점차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패션의 완성은 책’이라는 표현도 있던데, 나중에는 책을 사랑하는 취향으로 특별한 연대의식이 형성되지 않을까 합니다.” 작가가 주목한 또 다른 책의 매력은 소통이다. 오감만을 선사하는 증강현실과 달리, 책을 읽으면 인간의 내면을 끝까지 파고들 수 있다는 것. 그는 “문학은 삶, 고통, 사람, 슬픔을 오래전부터 다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학이 영원히 새로운 것을 다루는 한 책은 계속해서 ‘새롭게 출현할 것’”이라고 했다.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뒤 그는 문단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 됐다. 강연 말미에 한 작가는 집필 활동, 독서 취향, 작가로서의 어려움 등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소년이 온다’와 ‘흰’에 이은 눈 연작 3부작의 마지막 편을 쓰고 있다”며 “눈 속에는 신기하게도 따뜻함과 소멸함이 공존한다. 그래서 시간을 생각하게 되고, 그런 사유가 작품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소설은 아주 좁은 글이에요.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진실을 잃고 상투성에 빠지죠. 아주 좁지만 분명 길이 있을 거라 믿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약해진다 싶으면 책을 읽습니다. 허기를 채울 정도로 몰아서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서울국제도서전은 20일 배우 정우성, 22일 철학자 김형석이 각각 ‘난민, 새로운 이웃의 출현’과 ‘백년을 살아보니’를 주제로 강연한다. 도서전 입장료는 성인 6000원, 학생 3000원.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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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초엽 “과학기술로 인한 사회변화 담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공상과학(SF)에 대한 이미지가 지나치게 과학 중심으로 쏠린 것 같아요. SF 장르를 매개로 인간에 대한 추상적인 질문들을 다루고 싶습니다.” 1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 취재진 앞에 선 신인 작가가 당돌하게 말했다. 7편의 SF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1만4000원·사진)을 펴낸 김초엽(26)이다. 그는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2관왕에 올랐다. 죽은 사람의 마음을 저장하는 마인드 도서관에서 엄마의 마인드를 찾는 딸의 이야기를 담은 ‘관내분실’로 대상을, 신기술로 인해 가족과 헤어진 과학자를 그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받았다. 책에는 이를 포함해 외계생명체와의 소통을 다룬 ‘스펙트럼’, 실패한 여성 우주인의 내면을 들여다본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등이 실렸다. “과학 기술로 인한 사회의 변화를 그리는 게 SF라고 생각해요. 기술로 인한 소외와 편리, 그리고 그 속에서 겪는 개인의 변화 같은 것들을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7편의 작품은 과학을 소재 삼아 기발한 상상력으로 도약한다. SF 장르지만 이야기에 흐르는 정조가 차갑지는 않다. 소수자성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보듬어 인간미가 짙게 배어난다. 청각장애가 있는 그는 “페미니즘, 인권, 소수자성에 관심이 많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실패한 사람, 즉 소수자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고 했다. SF와 순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점도 독특하다. “어느 쪽으로 읽혀도 감사한 마음이지만, SF 장르가 주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외감이 대표적이에요. 광대한 우주와 유구한 시간 속에서 기존 인식을 깨는 건데, 해외에서는 이 지점을 SF 비평의 중요한 잣대로 여깁니다.” 각종 과학 기술을 다루지만 난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는 “기술을 설명하는 장면은 의식적으로 간략화하고 있다. 기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태도와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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