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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76)은 2013년 은퇴 선언 이후 손으로 그리던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조만간 그의 신작을 볼 수 있습니다.”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을 찾은 일본 ‘스튜디오 지브리’의 호시노 고지 대표(61)의 말이다. 5일부터 내년 3월 2일까지 이 미술관에서 열리는 ‘스튜디오 지브리 대박람회―나우시카에서 마니까지’ 전시 개막행사에 참석한 그는 “올여름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팀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했다”며 “동화와 배경미술 파트에 각각 다섯 명씩 뽑았고, 최연소 직원은 18세”라고 설명했다. 월트디즈니저팬 사장(1991∼2007년)을 거쳐 2008년부터 스튜디오 지브리 사장을 맡아온 호시노 대표도 지난달 28일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했다. 1985년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 미야자키 감독은 2013년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지만 올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공식 복귀 의사를 밝혔다. 당시 일본 외신들은 그의 복귀 결심에 대해 “지난해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세계적 흥행이 그의 창작 욕구를 자극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호시노 대표는 “미야자키 감독은 아날로그 애니메이션, 그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 감독은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을 각각 제작하고 있다”며 “이렇게 두 가지 작품이 동시에 병행되는 건 지브리에 획기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호시노 대표는 “지속적으로 지브리 작품을 소개해온 한국 대원미디어 정욱 회장의 열정 덕분에 이번 전시도 마련됐다”며 “한국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들의 제작과정을 정작 못 보여준 것 같아 풍부한 자료를 준비해 전시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 배달부 키키’ ‘추억의 마니’ 등 일본 극장 개봉작 24개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드로잉, 포스터, 영상, 입체, 캐릭터 상품 등 30여 년에 걸친 ‘지브리의 역사’가 소개된다. 특히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기계들이 입체조형으로 제작돼 관람객들을 맞는다. 이날 동석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아오키 다카유키는 “미야자키 감독은 늘 ‘자기 반경 3m’라는 말을 하면서 가까이 있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3m 이내의 대상을 잘 관찰한 결과 지브리의 다양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런 철학을 한국 관람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어느 날 가슴이 쿵 내려앉는 줄 알았다. ‘이웃 여러분 감사해요. 11월 30일 일터 정리합니다.’ 우리 동네 ‘함승현 옷 고치는 전문집’. 옛날 단층 건물 앞에 키 작은 나무가 있어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단풍 드는 곳. 이름 석 자를 넣은 상호가 자신감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데 비해 간판 글씨체는 삐뚤빼뚤한 곳. 그 집이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올해로 77세인 함승현 씨는 교회 가는 일요일을 빼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23년간 이 가게에서 동네 사람들의 옷을 고쳐 왔다.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친정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발간 눈가로 손을 잡아주던 일, 넘어져 레이스 장식이 찢긴 재킷을 가져가자 “여자가 조신해야지”라며 나무라던 일, 일하는 엄마가 보기 힘든 아이들 하교 모습을 틈만 나면 알려주던 일…. 가게에 들어갔다. 그 정다운 삐뚤빼뚤 글씨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일터를 사랑합니다’ ‘즐겁게 살자, 칭찬하며 살자’ ‘고마워요, 사랑해요’…. “아니, 왜 가게 문을 닫으시게요”라고 묻자 말씀하신다. “이젠 일 그만하고 쉬려고. 매일 아이들 건사해 주는 친정엄마 잘해 드리고. 다니다 넘어지지 말고.” 코끝이 찡해져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어드렸다. “꼭 사진 뽑아줘야 해.” 같은 동네에 사는 이사라 시인은 2008년 이 가게를 소재로 ‘함승현 옷 수선집’이란 시를 썼다. ‘…한 평 반의 실낙원에서 혼자된 몸으로 오랫동안 효녀였던 돋보기 쓴 사람 하나가 신의 이름을 빌려 시간을 늘리고 줄이고 꿰매고 있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평소에는 침묵에 익숙한 그 사람이 동네 뒷길에서는 오래된 뒷심이다.’ 사진관 갈 시간이 마땅치 않아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려 하니, 이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오랜만에 사진관을 다녀왔다. 사진 속 ‘동네 뒷길의 오래된 뒷심’을 가만히 본다. 종종 그리울 것이다. 옷보다 마음을 수선해준 그분이….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 올해 9월 프랑스 파리 튀일리 정원에서 열린 ‘라코스테’ 패션쇼. 단정한 캐주얼 셔츠를 내놓던 라코스테가 확 달라졌다. ‘Lacoste’ 상표 디자인은 ‘L’ 크기를 키워 브랜드의 상징 동물인 악어 형태로 거듭났다. 글꼴 디자인 하나 바꿨더니 유쾌해졌다. #2. 영화 ‘어둠 속의 댄서’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비외르크는 아이슬란드가 자랑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얼터너티브 록, 일렉트로니카 등 여러 음악 장르를 넘나드는 그가 2013년 펴낸 앨범은 ‘Biophilia(생명 사랑)’. 이 앨범 커버 제목은 글씨를 음표로 형상화했다. 대표곡 ‘Moon(달)’의 곡조처럼 음표들이 은하수 입자같이 톡톡 떠다니는 느낌이다. 라코스테와 비외르크에는 공통점이 있다. 창의성을 불어넣고 더해주는 어느 전문 디자인그룹과 협업한 것이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래픽디자인 듀오 ‘M/M(Paris)’이다.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와 미카엘 암잘라그가 1992년 결성한 M/M(Paris)은 장르를 초월하는 융합적 작품 세계로 ‘컬래버레이션의 귀재’로 통한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내년 3월 18일까지 열리는 ‘M/M 사랑/사랑’ 전시 홍보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오귀스티니아크를 23일 만났다.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는 그는 모자 달린 후드티 차림이었다. ―왜 전시 이름이 ‘M/M 사랑/사랑’인가. “우리 그룹 이름의 첫 글자인 M(엠)이 프랑스어 ‘엠(aime·사랑하다)’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 온 작업들을 중간 결산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왜 컬래버레이션 하는가. “컬래버레이션은 누군가를 만나는 설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상대와 접촉하며 당신의 자세를 살짝 비틀면서 발전하는 것. 컬래버레이션은 예술 중의 예술이며, 좋은 대화다.” ―좋은 대화…. “패션은 문화요소가 풍부해 협업에 최적화된 ‘미디어’다. 요지 야마모토, 발렌시아가 등 여러 브랜드와의 협업은 서로에 영향을 미치는 깊은 대화를 기반으로 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가수 비외르크와의 컬래버레이션이었다. 그의 심오한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디자인한 앨범 커버는 그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리코딩 패키지 상을 받았다. 정작 비외르크는 그래미상을 못 받아 미안했지만….(웃음)” M/M(Paris)은 지금껏 작업해 온 각종 포스터, 현대인을 형상화한 에이전트(Agent) 캐릭터, 사진작가 이네즈 판 람스베이르더와 협업한 알파벳 타이포그래피(글꼴디자인),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협업한 철제 구조물인 ‘레몬 나무’, 태극기를 재해석한 포스터 등을 이번에 선보이고 있다. ―당신이 디자인한 각 알파벳 글씨 안에는 모델 얼굴이 들어 있다. “각각의 알파벳은 실제 사진 속 모델 이름의 앞 글자이다. 알파벳은 누구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 주변에 늘 함께 있는 것들을 식상하다고 치부하면 안 된다. 그 평범한 걸 재해석하는 일에 뛰어드는 게 디자이너가 할 일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어느 날 아침 초등학생 딸이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었다. ‘아,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 영어 단어장을 만드나 보다.’ 기특해 다가가 보니…. 그룹 워너원의 생년월일을 멤버별로 정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딸은 며칠 후 등굣길엔 느닷없이 “엄마, ‘아이더’ 옷 어때?”라고 물었다. ‘아, 요즘엔 초딩 유행 옷이 아이더인가 보다.’ 알고 보니…. 워너원이 아이더 모델이었다. 지극정성 팬심이다. 연일 ‘평창 패딩’이 매진이다. 그 팬심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 옷은 롯데백화점이 자체 기획해 국내 중소업체가 만든 옷이다. 특정 브랜드가 아닌 셈이다. 그러니 워너원도 방탄소년단도 이 옷을 입고 글로벌 팬들 앞에 서면 어떨까. 조성진이 흰색 평창 패딩을 입고 눈밭에서 피아노 치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어떨까. 롯데백화점도 사회공헌 삼아 이 옷을 더 만들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H&M’도 ‘베트멍’도 아닌 국산 옷이 사실상 처음으로 노숙 팬심을 얻고 있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한국이 한 방에 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 여자, 바람나 신난 여자예요.” 한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가로누워 있는 그림이었다. 노랑 바탕색의 그림 앞에는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미니 샘플 크림, 베이비로션, 단추, 립스틱 등이 놓여 있다. 그림 속 여성은 몸에 꼭 맞는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머리엔 꽃핀을 꽂았다. 분홍 립스틱 바른 행복한 표정을 보니 정말로 바람난 것처럼 보였다. 절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는 ‘오세열: 무구한 눈(The Innocent Eye)’ 전시에서 16일 만난 오세열 화백(72)은 “일단 그림들부터 보라”고 했다. 아, 빠져든다. 까만색 얼굴의 아이 옆에는 말풍선이 그려져 있고, 빼뚤빼뚤한 글씨로 ‘애들아, 놀이하자’라고 쓰여 있다. 땅따먹기 놀이일까. 화폭 곳곳에는 숫자들이 연필로 쓰여 있다. “전체적 그림 구도를 고려하면서 숫자를 써 넣어요. 어릴 때 글은 몰라도 숫자 갖고 많이 놀잖아요.” 어린이 그림 같은데 낭만적이다. 콜라주(오려 붙이기) 기법을 즐겨 사용하는 작가는 색종이를 오려 하늘색 달을 만들어 붙이고, 풍성한 단추 꽃다발을 이룬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래서일까. 요즘 오 화백의 작품이 국내외 아트페어와 미술경매시장에서 인기다. 학고재는 올해 2월에 이어 아홉 달 만에 그의 개인전을 다시 열었다. 학고재가 한 해에 같은 작가의 개인전을 두 번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학고재는 그의 인물그림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서라벌예대 회화과를 나와 1984년 프랑스 파리 아트페어인 피아크(Fiac)에서 박서보 이우환 등과 함께 작품을 선보였던 그의 미술인생 40년을 관통하는 주제가 인물이다. 1970년대 빛바랜 색감의 반(半)추상, 1980년대 백묵 낙서, 1990년대 색채와 숫자 도입, 2000년대 높은 채도 등 화풍 변화가 보인다. 공통된 것은 입체파 화가들의 시선처럼 신체 부위마다 전망이 따로따로라는 점이다. 얼굴은 왼쪽, 팔은 정면, 다리는 오른쪽으로 향해 있는 식이다. 또 인물의 다리 또는 눈을 하나만 그릴 때가 많았다. “한쪽만 있어도 다른 한쪽을 상상해 볼 수 있잖아요.” 이번에 전시된 32점 중 12점이 작가가 올해 그린 그림이다. 한눈에 봐도 달라졌다. 그림 속 인물의 눈과 팔이 두 개가 됐고, 색감도 더 따뜻해졌다. 작가가 여유로워졌나 보다. 12월 17일까지. 02-720-1524∼6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6일 개량한복을 입은 양석중 와우목공방 대표(53)와 마주 앉았다. 서울대박물관 인류민속부의 목재(木材) 자료를 수리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느릿느릿 꾸밈없는 말투, 서글서글한 눈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디선가 나무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는 25일부터 12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양석중 木가구전―미래의 전통’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2013년 그가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을 받은 ‘삼층장’ 등 30여 점의 목가구를 선보인다. ‘미래의 전통’은 뭘까. 2015년 프랑스 생테티엔 디자인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그의 찬탁에서 슬쩍 엿본다. 한국의 전통가구 찬탁을 현대 주거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변형한 가구다. 구조와 문양이 좌우 대칭을 이루는 전통가구 양식에서 벗어나 있어 현대 여성의 비대칭 커트헤어 같은 세련된 인상을 준다. 사용된 나무는 참죽나무 오동나무 먹감나무. 미학적 정수는 네 개의 서랍에 사용된 먹감나무 고유의 문양이다. “제가 사는 강화 바다에서 해가 떠 솟아오르는 모습이에요. 먹감나무의 결 그대로입니다. 나무가 상처받았거나 나이 들어 약해진 부분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남겼어요. 각각의 나무의 장점을 알아보고 그것을 살려내는 게 목수의 몫이겠죠.” 먹감나무 속 무늬는 나무를 사서 잘라봐야 비로소 안다. 수납장 하나 만들려면 두 그루가 필요한데, 스무 그루쯤은 사서 골라내야 한다. 그러고는 다듬고 기다린다. 목수의 일은 세월과 함께하는 노동이다. 도자기나 책을 올려놓던 사방탁자의 형태를 재구성한 와인 수납대, 입식(立式)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도록 높다란 다리를 단 콘솔도 만들었다. 과거 현재 미래, 동서양 느낌이 묘하게 섞여 있다. 그는 늦깎이 목수다. 서울대 인류학과 ‘운동권’ 학생이었고, 졸업 후엔 대우자동차에 ‘운동권 특채’로 들어가 다녔다. 회사 측으로부터 요구받은 생산직 노동자 감원을 마친 뒤 2000년 희망퇴직했다. 이후 밥벌이하러 선배의 사업을 도와주러 갔다가 그 회사 사무실 나무 문짝을 만든 것이 목수가 된 계기였다. 하도 집중하는 통에 문을 만들 동안 전화벨이 10여 차례 울린 것도 듣지 못했다. 되짚어 보면 직장 다닐 때에도 숲에 가면 나뭇가지들을 주워 와 액자를 만들던 그였다. ‘뭔가 가치 있는, 손에 만져지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박명배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배웠다. 그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나무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의 일은 변수가 많은데, 나무는 결과가 정직했다. ‘적재적소(適材適所)’란 말의 뜻도 깨달았다. 목수가 억지를 부려 자르고 다듬으면 가구가 된 뒤 결국 갈라지고 뒤틀리는 게 나무다.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남이 어떤 사람일까 의심할 필요도 없는 게 나무의 세계, 목수의 세계다. 그가 만든 다기(茶器)장은 전북 임실에서 제작된 창호지 문을 달고 있다. 문틀에는 손톱만 한 참죽나무 꽃잎이 달려있다. 차 마실 때 쓰이는 도구들이 창호지 사이로 깃드는 정갈한 바람과 나무꽃 내음을 맞을 것이다. 회화나무로 만든 작은 독서대, 느티나무에 옻칠한 작은 서안…. 가까이 두고 쓰다듬으면 나무의 곧고 참한 성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그제 오후 2시 반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일하다가 부르릉 떨림을 느꼈다. 안마의자의 약한 진동과 흡사했다. 곧바로 강한 진동으로 휴대전화에 긴급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난 것이다. 포항의 지진은 270km 떨어진 서울에 도달해 6시간 만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로까지 숨가쁘게 이어졌다. 그러자 나의 기억도 빛의 속도로 25년 전인 1992년으로 이동했다. 1992학년도 후기 대입학력고사를 하루 앞둔 1992년 1월 21일. 갑자기 바로 다음 날 예정이었던 시험이 연기됐다. 서울신학대에서 보관하던 학력고사 문제지가 유출된 게 이날 동아일보 1면 특종보도로 알려진 것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전기에 떨어진 슬픔을 가까스로 다스려 준비한 시험이 도둑맞은 문제지 때문에 미뤄지다니…. 황당하고 짜증이 났다. 그러나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로부터의 ‘추가 수험생활 20일’을 통해 작지만 중요한 삶의 가르침들을 배운 것 같다. 인생은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 인내하는 자가 결국 웃을 수 있다는 것…. 한번 출발한 기억의 시간여행은 1980년대 초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3년간 포항에 살았다. 담벼락 낮고 운동장 너른 초등학교와 정겨운 바닷가, 서울로 온 이후엔 특별히 찾아갈 일이 없던 어린 시절의 그곳. 문득 포항에 친정을 둔 대학 후배가 떠올라 수화기를 들었다. “부모님 괜찮으셔?” “아, 아버지가 오랫동안 모은 분재와 어머니의 도자기 인형들이 다 깨졌대요. 여진(餘震)은 없을지, 오늘밤 부모님은 어디에서 지내셔야 할지 염려되네요. 연락 주셔서 고마워요. 선배.” 오후 8시 반. 당초 어제 치러질 예정이었던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포항의 지진으로 1주일 연기됐다는 정부 발표가 났다. 수험생 자녀를 둔 지인과 친구들이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단체방에 망연자실한 심정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게 실화냐”며 어이없다는 반응, 시험 앞두고 후련하게 학원에 문제집을 다 버리고 왔다는 재수생 사연, 추가로 생긴 1주일 동안 부모와 수험생이 어떻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지 걱정하고 위로하는 대화들이 오갔다. ‘시험 보는 날’만 바라보며 그동안 마음 졸여온 얘기를 밤 깊게 듣다 보니 ‘너나 나나 입시에 모든 걸 거는 이 나라에서 전국 수험생의 운명이 달린 수능 일정을 굳이 연기해야 했을까’란 생각도 잠깐 들었다. 날이 밝았다. 아침 신문을 펼쳤을 때 눈물이 확 쏟아질 뻔했다. 우리나라 역대 두 번째 규모인 이번 지진으로 건물은 참혹하게 무너지고 차량은 파손돼 뒹굴고 있었다. 우리의 부모 형제 친구들이 사는 곳, 찬란했던 역사와 개발시대의 꿈이 깃든 그곳. 만약 수능이 연기되지 않았더라면 포항의 수험생들은 밤새 뜬눈으로 공포와 불안에 떨다가 시험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일부 지역 학생들 얘기라고 눈감아버리고 ‘내 아이’의 시험과 점수만 챙겼더라면…. 갑작스러운 시험 일정 변경은 참으로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진과 그에 따른 수능 연기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챙겼고, 함께 사는 공동체의 힘을 확인했다. 재수생 딸을 둔 친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어젯밤엔 짜증 작렬이더니 오늘은 안정을 찾고 씩씩하게 학원에 가더라고요.” 그 씩씩한 수험생에게 왠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25년 전 ‘연기된 대입 수험생’ 선배로서, 앞으로의 1주일을 격하게 응원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주 주인공은 너야 너∼.” 김선미 문화부 차장 kimsunmi@donga.com}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는 내내, 두 달 전 다녀온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의 정경이 눈에 어른거렸다. 영화는 세계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남긴 명작 130점을 바탕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107명의 화가가 2년 동안 6만여 점의 유화를 그려 이 ‘그림 같은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고흐는 새로운 장소들을 다니길 좋아했다. 런던과 파리와 같은 도시는 물론 프랑스 남부 생레미드프로방스와 같은 시골 생활도 즐겼다. 그의 운명의 최종 장소는 오베르. 1890년 5∼7월, 세상을 뜨기 전 두 달 동안 고흐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두 달 전. 오베르 교회 앞에는 고흐의 ‘오베르 교회’(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그림 팻말이, 고흐가 묵었던 ‘라부 여관’엔 ‘아들린 라부의 초상화’(개인 소장) 그림이 붙어 있었다. 오베르는 조용하면서도 깨끗한 마을이었다. 일본 도쿄 외곽의 유럽풍 부촌인 덴엔초후(田園調布)와 느낌이 흡사했다. 특히 골목 어귀마다의 화단이 인상적이었다. 고흐는 이 마을에 살던 유명 화가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의 정원을 그렸는데, 그 정원이 환생한 듯했다. 걷다가 그 연유를 알았다. ‘우리 함께 마을에 꽃을 심어요(Je jardine ma ville)’라는 제목의 공고문이 돌담에 붙어 있었다. 그 무렵 심으면 좋은 꽃 사진들과 원예 팁도 여럿 실려 있었다. 2001년 시작된 이 캠페인은 동네를 아름답게 가꾸는 동시에 주민들 간 친목을 도모하는 자원봉사 성격의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이었다. 고흐의 묘소를 거쳐 그의 명작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소장)의 그 밀밭에 다다랐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릴 때 깊은 슬픔과 고독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베르의 그 밀밭에서 생명의 힘, 정원의 힘, 공동체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하늘에서 오베르를 내려다보며 꽃향기를 맡는 고흐는 이제 더 이상 힘들고 외롭지 않을 거라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나는 양아치와 살고 있는 앵무새 ‘지지’다. 양아치의 본명은 조성진(47). 저명한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2010년에 받은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는 요즘 서울 강남구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When Two Galaxies Merge(두 개의 은하수가 만날 때)’란 전시를 하면서 나를 오브제로 두었다. 그래서 난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양아치의 집을 잠시 떠나 에르메스의 새장 속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사람들은 어둑한 전시장에 들어서면 대개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다. 시각적으로, 무엇보다 청각적으로 혼란스럽다. 복숭아와 구슬, 심벌즈가 설치된 곳곳에서 잡음 같은 전자음이 흘러나온다. 양아치는 나 지지 말고도 ‘배배’ ‘딩딩’ ‘동동’ ‘댕댕’ 이렇게 그가 이름 지은 앵무새들과 함께 산다. 인간이 감지하는 소리와 새가 감지하는 소리는 다르다고, 인간은 왜 그토록 ‘보는 것’에만 매달려 왔냐고 양아치는 얘기한다. 그는 2년여 동안 우리 앵무새들에게 여러 다른 음역대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우리가 반응하는 소리를 찾고 있다. 그가 말하는 두 개의 은하수는 시각과 청각, 작가와 관람객일 수도 있다. 에르메스와 양아치. 양아치가 에르메스 상을 받았을 때, 그 두 단어의 조합이 무척 흥미로웠다. 최고급 럭셔리와 시시껄렁한 양아치…. 에르메스 상은 양아치의 인생에 엄청난 빛과 그늘을 동시에 드리웠다. 그는 1990년대 PC방에서 컴퓨터 언어를 작업하며 지내던 ‘백수’였다. 원양어업을 하던 유복한 집안은 그가 미대를 나와 유학을 알아볼 때 폭삭 망했다. 세상사는 알 수 없다. PC방에서 감시와 전자정부에 대해 웹진 형태로 작업한 그의 미디어아트에 미술계는 환호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웹 콘텐츠는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PC방 아이디를 작가명으로 삼은 양아치는 2002년 첫 개인전부터 승승장구했다. 비둘기로 빙의한 여성으로 감시를 시각화해 에르메스 상을 받자 그의 작품을 ‘묻지 마’ 식으로 사들이겠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불안하고 불편했다. 상품으로 소비되는 느낌, 자신의 주장들에 대한 책임감. 우울증이 됐다. 양아치는 요즘 인왕산을 오른다. 우울을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이런 나약하고 난해한 인간에게 에르메스는 왜 상을 주었으며 또 이렇게 새 전시 기회를 준다는 말인가. 에르메스는 한국의 창의적 작가를 발굴, 후원하기 위해 2000년 이 상을 만들면서 영어로 ‘Missulsang(미술상)’이라고 지었다. 이른바 ‘멀티 로컬’ 전략이다. 서도호 박찬경 등이 이 상을 받아 세계적 지명도를 끌어올렸다. 중요한 건 에르메스가 이 상을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얻고 있다는 점이다. 양아치의 미디어아트는 ‘저렴한’ 뉘앙스의 작가명과 달리 진지하며 실험적이다.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혼란의 시대에 새로운 우주를 꿈꿔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에르메스와 양아치의 만남 덕분에, 사람 흉내에 급급했던 나 ‘지지’는 비로소 온전한 새가 된 것 같다. 나와 소통하기 위해 저리도 열중하는 양아치를 보면서 나도 조금 더 쫑긋 귀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대통령 되더니, 우리 화랑에서는 전혀 그림을 들이지 않아요. 허허.” 서울 중구 소공로 금산갤러리의 황달성 대표(64)를 만난 8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한국을 방문한 기간이었다. 그 무렵 청와대 측은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그림 두 점을 대여해 청와대에 걸고 귀빈을 맞았다. 황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부산 남항초등학교 동창으로 50여 년째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문 대통령의 딸인 다혜 씨가 금산갤러리의 큐레이터로 일하기도 했었다. 서운하지 않았을까. “서운하긴요. 대통령과 그 가족이 친화력도 뛰어나고 문화예술을 좋아하는데, 오해받을까 봐 전시장 근처엔 얼씬도 안 하네요. 최근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친구의 딸 결혼식이 있었어요. 대통령이 축의금 10만 원을 보냈더라고요. 그만큼 대통령이 조심하는 것이고, 우리 친구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봐 주는 것이고요.” 황 대표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에는 가난하고 젊은 작가들 그림을 꽤 샀다. 도예가 이세용을 눈여겨보라며 소개하기도 했다. 대통령 부인은 어떨까. “영부인의 미술 안목이 무척 높고,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해요. 10여 년 전부터 단색화의 대가 윤형근의 작품에 관심을 보였는데 여유가 없어 결국 못 샀죠. 나중에 안타까워했어요.” 문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미술 상담 일을 하고 싶어 금산갤러리에서 일했으나 기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에 관뒀다고 한다. “어머니 닮아 음식 솜씨가 빼어나 우리 갤러리의 고객 초대 파티 때 칭찬이 자자했다니깐요.” 황 대표는 22∼26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제3회 ‘스푼아트 쇼 2017’을 연다. 젊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2015년 그가 주도해 시작한 미술행사다. 젊은 컬렉터들을 모으기 위해 오디션 제도도 도입했다. 전문가 추천을 받은 작가의 작품을 심의위원이 검증하고, 갤러리들이 최종적으로 출품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발랄한 행사 제목만큼 “엄청 재미난 미술행사”라는 입소문이 이미 많이 났다. 고려대 지질학과를 나온 그가 사료 사업을 하는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지 않고 1990년대 초반 갤러리를 열게 된 것은 아이디어가 넘치니 화랑을 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창설을 이끌었고, 2008년엔 아시아 호텔 아트페어를 처음 열어 호텔에서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문화를 국내에 도입했다. “호텔아트페어와 스푼아트 쇼를 합쳐 내년엔 ‘아시아 아트페어’로 키우려고 합니다. 세계가 아시아 미술을 주목하고 있거든요. 한국의 유망한 젊은 미술가들이 ‘우물 안’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도록 적극 돕겠습니다. 그땐 문 대통령도 적극 우리 미술계 부흥에 나서주면 좋겠네요. 허허.”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흡연하는 시간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7일 동아일보 지면 편집회의에서 든 의문이다. 편집국장이 외신 뉴스를 소개하면서 좌중에 의견을 구한 게 발단이었다. “비(非)흡연자에게 휴가를 더 준다고?” 기사는 일본 도쿄에 있는 한 마케팅회사의 사연이었다. 흡연 직원들의 담배 피우는 시간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비흡연 직원들에게 추가로 6일간의 보상휴가를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흡연자들이 담배 피우러 가는 시간만큼 비흡연자가 더 일하는 것’이라는 직원 불만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란다. 29층에 있는 이 회사 직원이 한 번 흡연하러 나갔다 오는 시간은 평균 15분. 하루 두 번 자리를 뜨면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2시간 반이 사라진다. 정책사회부장이 운을 뗐다. “예전에 저도 담배 피우러 나가니까 당시 한 선배가 진지하게 지적했어요. ‘자네는 도대체 언제 일하나.’ 그때 참 당황스러웠네요.” “건물 안에서 피우게 하면 힘들게 들락날락하겠느냐”는 의견이 나오자 국제부장의 말이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 서울 거리를 보면 한국 남자들은 거의 다 담배를 피우는 줄 알걸요? 거리 곳곳에 떼로 모여 연기를 뿜고 있으니까요.” 신문사야말로 20여 년 전만 해도 담배 연기의 ‘소굴’이었다. 하지만 이젠 금연건물이 돼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러 나가 자리를 비운다. 몇 해 전 ‘흡연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오피니언팀장이 말했다. “비흡연자에게 혜택을 주기보다는 흡연자가 담배 피우느라 까먹은 시간을 보충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침에 일찍 출근하거나 야근을 하거나.” 반대로 ‘채찍보다 당근’이라며 금연과 보상휴가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아니, 그걸 왜 회사가! 정기휴가 때 각자 끊으면 될 일을.” “그런데 휴가는 다 쓰고 있나요.” 급기야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따로 일하면 어떨까”라는 다소 ‘급진적’ 아이디어도 나왔다. 토론의 용광로가 활활 불타올랐다. 경제 담당 부국장의 말. “기업은 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지, 산업혁명시대 테일러주의(노동과정의 통제)도 아니고. 지식사회에 걸맞지 않아요.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서 차분하게 생산성 높일 수 있다면 왜 못 피워요.” 술은 끊어도 담배는 못 끊는다는 30년 애연가 문화부장의 하소연도 있었다. “간접흡연의 문제점은 인정해요. 하지만 살길을 열어 주지 않고 무조건 끊으라니, 생쥐를 궁지로 몰아넣는 형국이에요.” 성공적인 금연정책의 한 사례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 회사는 제도 시행 뒤 직원 120명 중 비흡연 직원 30명이 휴가를 신청했고, 흡연 직원 4명은 담배를 끊었다. 토론은 결국 일본 기업의 사례처럼 비흡연자에게 휴가와 수당 같은 인센티브를 줄 것인가, 아니면 흡연자에게 보충 업무와 월급 삭감 등 페널티를 줘야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페널티로 간다면 또 다른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담배 피우는 시간과 커피 마시는 시간은 또 어떻게 계량해 구분할 것인가?” 어쩌면 이건 흡연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관리의 문제일 수도 있다. 흡연자들이 끼리끼리 담배 피우러 갈 때 정보와 인간관계에서 배제되는 것 같다는 소외감을 호소하는 비흡연자들도 있지 않던가. 경제학자 에드와도 포터는 “가격은 정해지는 방법과 사람들이 반응하는 방식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려준다”고 했다. 과연 흡연 시간의 가격은 정확히 흡연 시간에 비례할까.정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의 한국 방문에 맞춰 청와대가 공수해 건 그림들은 뭘까. 7일 청와대 본관 대통령 부인 접견실. 김정숙 여사와 멜라니아 여사 사이에 걸린 그림은 한국화가 김보희 작가(65)의 ‘향하여(Towards)’였다. 가로 280cm, 세로 180cm 크기로 천 위에 채색한 이 그림은 김 작가가 제주도 작업실에서 바라본 풍광과 자신의 상상력을 뒤섞어 그렸다. 제주 귤나무와 소철, 동물 등이 어우러져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의 서양화 느낌을 주는 한국화다.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관계자는 “청와대가 얼마 전 어느 행사라고는 밝히지 않고 한국화를 물색했다”면서 “화려하고 세련된 색감의 ‘향하여’는 오늘 아침에, 박무생 민화작가(69)의 10폭 모란도 병풍은 지난주에 대여해 갔다”고 말했다. 대여료는 미술계 관행대로 작품값의 0.5%로 책정됐다. 모란도 병풍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부귀영화를 기원하기 위해 국가 중요 행사 때 자주 사용됐다. 이번에 청와대 상춘재에 걸린 박 작가의 모란도 병풍은 옅은 채색으로 수채화 느낌이 나서 고급스럽다는 평가가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이날 청와대 본관에 도착해 방명록에 서명할 때 책상 뒤쪽에 걸린 그림은 오병욱 작가(58)의 ‘바다’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아름다운 가을날, 회사 선배가 화장하지 않은 민낯을 흑백사진으로 찍어주었다. 적나라한 사진 속 얼굴 주름을 본 순간, 진실을 드러내는 드로잉의 본질과 직면한 듯했다. 주로 색 없이 선으로 표현하는 미술 기법인 드로잉은 과거 주인공 대접을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드로잉한 후에 색을 입혀야 비로소 작품이 된다는 의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0년대 개념미술 작가들이 자신들의 개념을 설명하는 방편으로 드로잉을 활용하면서 하나의 독립된 미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이 열고 있는 ‘B컷 드로잉’ 전시는 드로잉의 미적 가치와 현재적 양상을 고찰하겠다는 취지다. 수많은 리터칭 작업으로 매끈하게 완결되는 A컷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를 드러내는 B컷을 통해 드로잉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해 보자는 것이다. 10명의 국내 젊은 작가가 드로잉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한다. 드로잉은 왜 2차원이어야만 하는가. 작가 지니서는 어린 시절 지냈던 한옥에서의 기억을 장판지를 사용한 3차원 드로잉으로 선보인다. 장판지를 잘라 구부려 벽에 붙였다. 백현진은 전시장 벽면 합판에 스프레이 래커를 낙서하듯 뿌려 ‘웃기시시네’라는 문구를 뒤집어 썼다. 심래정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좌절을 연쇄살인자의 ‘식인행위’에 빗대 만화처럼 분할된 컷의 형태로 드로잉했다. 드로잉을 통한 감각과 사유의 이번 전시는 12월 31일까지. 02-720-5114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당신이 미술사에 관심이 있고, 그중에서도 팝아트에 대해 알고 싶다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 전시(내년 1월 21일까지)에 가보기를 추천한다.영국 팝아트의 거장인 리처드 해밀턴(1922∼2011)의 아시아 최초 전시다. 전시의 이해를 돕는 다섯 가지 정보를 소개한다.》 ① 영국 팝아트 우리에게 친숙한 팝아트는 미국 앤디 워홀(1928∼1987)이 1962년 그렸던 ‘200개의 캠벨 수프 깡통’이다. 추상표현주의의 과도한 주관성에 반대해 소비문화와 풍속을 기반으로 삼은 미술의 한 경향이다. 그런데 미국보다 10년 전에 영국에서 팝아트가 태동했다는 사실! 그 중심에는 현대 미술가들로 구성된 인디펜던트 그룹이 있었다. 해밀턴은 그 핵심 멤버였다. ‘팝아트’라는 말도 이 그룹의 영국 비평가 로런스 앨러웨이가 1955년에 처음 사용했다.② 인디펜던트 그룹 1950년대 영국의 미술, 건축, 디자인, 비평 분야 인사들이 당시의 상업문화를 진지한 예술로 다뤄 보자고 뭉쳤다. 레이너 배넘은 자동차, 프랭크 코델은 대중음악, 해밀턴은 소비상품을 주제로 삼았다. 해밀턴의 ‘그녀($he)’는 진공청소기와 냉장고와 같은 현대식 가전제품과 ‘에스콰이어’ 잡지에 실린 여배우 비키 더건의 사진을 조합해 소비주의 욕구의 기계화를 드러냈다.③ 최초의 팝아트 1956년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에서 해밀턴은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란 긴 제목의 작품을 선보였다. 미술사에 기록된 ‘최초의 팝아트’다. 테니스 라켓처럼 막대사탕을 들고 있는 근육질 남자와 누드 여인, 미국 할리우드 영화 간판, 자동차 회사 로고, 천장의 달 표면 사진들의 이미지를 오려 붙인 콜라주다.④ ‘해밀턴’표 토스터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제임스 링우드 큐레이터는 말한다. “해밀턴은 새로운 미디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것을 갈구한 실험가였다. 그가 작업하는 이미지들 사이에 공통점은 거의 없지만 지적인 접근은 일관된다.” 해밀턴은 ‘브라운’ 토스터의 측면을 크롬 도금 철판으로 표현하고, 토스터 왼쪽 상단의 브라운 로고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었다. 후기산업사회의 ‘브랜드로서의 자기 자신’을 예견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다.⑤ 연속적 강박 ‘Swingeing London’은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리더 믹 재거가 마약 투약 혐의로 지인과 수갑을 찬 채 연행되는 신문 사진을 소재로 했다. 이 사진이 유화, 판화, 도금 등으로 다양하게 구현됐다. ‘일곱 개의 방’은 해밀턴이 살던 옥스퍼드셔의 아파트를 공간별로 찍어 디지털 조작했다. 2일 전시장에서 만난 해밀턴의 부인 리타 도나 작가는 “나는 지금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남편이 강박에 가깝게 평생 작업한 작품들이 아름답게 걸려 있어 하늘에서도 기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면 몸은 천근만근인데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친구가 알려줬다. “눈을 감고 잠자리∼해봐.” 서양에서 잠들 때 양을 세는 건 잠(sleep)과 양(sheep)의 발음이 비슷해서라나. 그러니 우리말로 ‘잠자리’ 해야 한다고. 그날 이후 잠자리 덕분에 잘 잔다. 휴일엔 욕조에 몸을 담그고, 구둣방에 들러 망가진 구두 굽을 고친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 부지런히 쏘다녀야 보람찬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생활의 반경을 줄이고 있다. 몸과 정신이 작은 휴식을 원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납 전문가가 쓴 ‘토닥토닥 수고했어. 오늘도’(살림)에도 비슷한 조언들이 나온다. ‘침대의 시야에는 짐을 치우기,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털어 정리하기, 샤워기 헤드를 살짝 큰 걸로 바꿔주기, 욕실에 초콜릿색 타월과 녹색식물 두기, 다음 날 입을 옷을 전날 챙겨두기….’ 고단한 우리가 쉴 곳은 집. 내년을 이끌 트렌드는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라고 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주관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예술포스터를 2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8전시실에서 전시한다. 문체부와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5∼7월 예술포스터 공모를 진행해 136명의 작품 205점을 접수받아 8점을 최종 선정했다. 선정 작가에게는 1000만 원이 수여되며 선정작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문화유산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사진은 김주성 명지전문대 교수가 한글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한 ‘평창, 강릉, 정선 그리고 겨울’(왼쪽)과 전창현 도예작가의 ‘안녕, 달!’. 고구려 철마를 재해석한 말이 달항아리 표면을 봅슬레이로 내려오는 모습을 통해 기존 도예의 엄숙미를 천진한 유희성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달의 이면’ 전시(내년 2월 4일까지)에 초대해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여러분, 제게 이토록 신선한 전시를 소개할 기회를 주셔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전시 제목인 ‘달의 이면’은 세계적 석학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의 저서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이 2013년 문을 연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MuCEM·뮈셈)과 협력한 전시인데요. 아시아 현대미술 작가 22명이 마르세유에 약 1주일간 머물면서 뮈셈의 소장품 100만여 점을 각자의 관심에 따라 해석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아시아문화전당 전시사업본부장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아시아 작가들에게 유럽지중해 지역의 민속 전통과 일상문화를 해석하도록 제안한 것은 ‘익숙함이라는 낯섦’에 대한 다양한 입장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이라는 낯섦. 레비스트로스의 ‘달의 이면’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누구에게는 낯선 것이 누구에게는 익숙한 것입니다…. 문명들은 서로 존중할 만하며 각자 상대는 모르는 신비한 지식을 알고 있죠. 그러므로 계속해서 퍼낼 지혜의 우물이 서로에게 있는 겁니다.’ 전시를 하루 앞둔 26일 아시아문화전당에 가보니, 일본의 시로키 아사코 작가는 참나무 의자로 대륙을, 푸른색 천으로 지중해를 형상화했더군요. “제가 뮈셈에서 참고한 건 유럽 사람들이 사용하던 두 개의 도자기 접시였어요. 바다를 항해하는 배 그림과 어린이들이 노는 그림이 각각 접시에 그려져 있었죠. 어린 시절의 꿈과 바다의 역동성을 나무, 천, 유리, 돌을 사용해 표현했어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이슬기 작가는 뮈셈에 전시된 왕골 바구니를 보고 아프리카로 가서 현지 장인들과 함께 한글, 벌집 모양의 왕골 바구니를 만들어왔습니다. 지중해 바람을 맞아 해진 형형색색 깃발들을 바구니와 함께 설치했더니 그 바구니는 아프리카도, 한국도, 프랑스도 아닌 독특한 문화로 다시 태어났지요. 인도에서 온 프라바카르 파슈푸테 작가는 뮈셈의 농기구들을 주목했습니다. ‘죽어 있는’ 연장을 인간의 몸과 결합한 혼성 생물체로 재탄생시키고 그걸 전시장 벽화로 그렸죠. 이상혁 작가는 19세기 유럽인의 식생활을 다룬 그림들을 뮈셈 수장고에서 빌려와 걸고, 그림 속 치즈 만드는 도구들을 독창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일례로 그가 설치한 금속 조각은 응고된 우유에서 물기를 제거할 때 사람의 팔이 그리는 움직임을 형상화했다는군요. 감히 말하건대, 보이는 달의 표면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달의 이면을 통해 보면 역사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인류의 과거 가운데 신비롭게 남아있는 부분에 접근하는 데 있어 지중해의 일상도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PS 글의 도입과 마무리를 레비스트로스의 ‘달의 이면’에서 따와 썼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사랑했던 일본을 지중해로 바꿔서요. 전시를 보러 가기 전, 이 책을 일독하시면 동서양의 대칭적 사고를 이해하는 준비가 될 듯합니다.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한국의 DMZ라고 부르는 비무장지대는 길이 241km에 폭 4km 구역으로, 1953년 9월 6일부터 사실상 인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이 없어지자, 한때 동족이 원수가 돼 싸우던 지옥은 오갈 데 없던 생물들이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앨런 와이즈먼 전 미국 애리조나대 국제저널리즘 교수가 저서 ‘인간 없는 세상’에서 한국 DMZ에 대해 썼던 대목이다. 이렇게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DMZ가 역설적으로 생태계 보존지역이 됐다는 것에 착안해 갈등과 분단을 생명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프로젝트가 발표됐다. 2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소개된 ‘대지를 꿈꾸며’다. 설치미술가 최재은이 2014년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DMZ에 남북을 연결하는 20km 길이의 공중 정원과 가교를 짓자는 게 요지다. 이 꿈처럼 들리는 얘기에 공감하여 세계적 전문가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보태고 있다. 2014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 덴마크 디자이너 올라푸르 엘리아손, 인도 건축사무소 스튜디오 뭄바이, 미술가 이우환과 이불, 뇌 과학자 정재승, 건축가 승효상과 조민석 등이다. 와이즈먼 교수도 이날 발표회에 참석해 DMZ의 의미를 강조했다. ‘대지를 꿈꾸며’는 강원 철원군 DMZ 안 평강고원을 장소로 택했다. 고구려의 정통성을 잇기 위해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성이 있던 곳이자 미래엔 서울 용산과 북한 원산을 잇는 경원선이 통과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각 예술가가 디자인한 정자와 탑을 곳곳에 세우고, 생명의 평화적 영속을 위한 종자은행과 지식은행을 두겠다는 것이다. 반 시게루는 이 숲속에 대나무 통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모두 12개의 정자 중 5개는 이우환과 이불 등이 디자인했고 7개는 북한 작가들을 위해 비워 뒀다. 최 작가는 ‘순환하는 나무’라는 탑을 구상했다. 높이 30m, 폭 7.7m로 꽃의 대궁을 형상화한 나무 탑은 자연의 빛이 내부로 투과돼 꽃과 새와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이 DMZ에 뿌려 놓은 플라스틱 지뢰(M14)를 제거하는 데 498년이 걸린다”며 “플라스틱을 감지하는 인공지능 드론을 띄워 생태를 회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건축가 조민석과 뇌 과학자 정재승이 협업한 DMZ 내 ‘종자은행과 지식은행’도 흥미롭다. 노르웨이 등이 지하에 지식저장소를 짓고 있는 요즘, 우리는 기존에 있는 철원 제2땅굴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정보와 지식을 아날로그 형태로 특정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저장해야 안전하다”며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자산을 DMZ 안에 담겠다는 구상은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염원”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와 기업의 지원 없이 오로지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 작가는 “언젠가는 찾아올 통일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2015년 통일부에 이 기획을 제안했지만 답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본부 집무실에서 지구본 위에 손을 얹은 채 웃고 있다. 그의 서가에는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이 선물했다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국내 초상화 대가’로 통하는 이원희 전 계명대 회화과 교수(61·사진)가 그린 반 전 총장의 초상화다. 이 그림은 지난해 12월 유엔본부 1층 로비에 걸렸다. 작가는 올해 거의 같은 그림을 그려 서울 종로구 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이원희’ 전시(다음 달 4일까지)에 내걸었다.》 김영삼 박근혜 전 대통령, 이용훈 전 대법원장, 김재순 이만섭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 등 우리 시대 오피니언 리더 500여 명의 초상화를 그려온 작가를 23일 만났다. 이번에는 서기석 헌법재판관, 배우 고두심 씨 등 15명의 초상화가 전시되고 있다. ―언제 처음 초상화를 그렸나.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1989년 부회장 시절에 소개받아 그렸다. 무척 만족해하더니 아버지인 구자경 회장의 초상화를 먼저 그려 드리고 난 뒤에야 자신의 그림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전신 초상화를 부탁받았는데 내 실력이 그만큼 안 돼 포기했다. 당시 그걸 그렸으면 대구에 중형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초상화를 배웠나. “계명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90년부터 알음알음 초상화 주문이 들어오기에 프랑스 파리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며 독학했다.”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은…. “대상 인물을 만나 스냅사진 100∼200장을 찍는다. 조명 없이 스냅사진으로 찍어야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온다. 웃을 수 있는 대화를 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모니터에 띄워놓고 최적의 사진을 고른 뒤 그걸 보며 그린다. 앉혀 놓고 그리기엔 대부분 너무 바쁜 분들이다.” ―정치인들을 그리게 된 계기는…. “나와 일하던 샘터화랑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샘터사옥에 세 들어 있던 때, 마침 김재순 국회의장(샘터 창립자)이 초상화를 필요로 했다. 그때부터 죽 연결이 됐다.” ―전직 대통령들도 직접 만났나. “만나야 그린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1997년에 45분 독대하고 나왔더니 당시 어느 청와대 수석이 ‘대통령의 안기부장 독대 시간이 얼마인 줄 알아요? 30분이에요’라고 했다.” ―그때 어떤 대화를 나눴나. “내가 대학교수라고 하니까 대뜸 YS가 ‘내가 문리대 다닐 때 말이야. 맨날 친구들 술 사주느라 시계가 남아나는 일이 없었어. 전당포에 잡히느라…’고 했다. 당시 아들 김현철 씨가 구속될 때였는데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안색이 아기처럼 맑았는데 퇴임 얼마 후 보니 확 나빠졌다. 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 같다.” ―대통령 초상화를 그리며 느낀 점은…. “청와대에 걸려 있는 전직 대통령의 초상화들은 15호 크기(가로 53cm, 세로 65cm)로 증명사진 같아 역사적으로 단절된 느낌이다. 역사적 장면과 대통령을 함께 그리는 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초상화 작업의 매력과 고충은…. “모든 예술의 주제인 인간을 그리는 것이 초상화의 매력이다. 그런데 사실성뿐 아니라 정신적 내면까지 담아내야 한다. 그게 힘들다.” ―요즘 국내에서 초상화 전시를 많이 볼 수 없다. “초상화야말로 미술의 기본인데 국내에서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홀대받는다. 영국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은 30년째 ‘BP 포트레이트 어워드’를 열어 작가들을 지원한다. 조성진 김연아가 우뚝 선 것도 공정한 콘테스트 덕분이다. 우리 미술계에 지금 필요한 것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나는 유행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올가을 빨간색의 유행은 반갑다. 빨간 케이스의 ‘조르조 아르마니’ 쿠션 파운데이션을 꺼내 바를 때 행복감이란. 그 빨강의 힘을 2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패션위크에서 새삼 느꼈다. 디자이너 지춘희의 ‘미스지 콜렉션’ 쇼에서였다. 수입 브랜드가 점령한 국내 백화점들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국내 브랜드, 신진 디자이너들로 물갈이된 서울패션위크에서 40여 년 패션 인생의 관록을 보여주는 브랜드. 온통 빨강으로 꾸며진 무대 위로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음악이 흘렀다. 패션쇼의 클라이맥스는 모델 장윤주가 빨강 드레스를 입고 나온 피날레!(사진) 그 고혹적인 모습이 한 송이 칸나 같았다. 쇼가 끝난 후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왜 빨강이었냐고. “장윤주가 올해 초 출산 후 엄청나게 노력해서 감량했다. 비로소 모델이 된 것 같다고 하더라. 윤주의 복귀 런웨이에서 그 아름다운 생명력을 빨강으로 극대화해 보여주고 싶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