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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해킹 자금 등 전 세계 불법 자금 5조 원을 세탁한 혐의로 미국의 제재를 받은 캄보디아 금융그룹 ‘후이원’이 서울에도 발을 들인 정황이 포착됐다. 온라인 사기와 인신매매 조직의 ‘금융 허브’로 지목된 이 그룹은 현지 관계사를 통해 지금도 한국 자금을 가상화폐로 송금받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관세청 등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건물에는 지난해까지 후이원그룹과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후이원 환전소’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간판과 로고는 후이원 본사와 같았고,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정식 금융업”이라는 문구와 함께 캄보디아 본사 전경 사진이 게시돼 있었다. 현재 한국어 홈페이지는 접속이 불가능하다. 이 환전소는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영업하며 연간 약 2만 달러(약 2800만 원)의 환전 실적을 신고했다. 이는 후이원그룹이 북한 해커 조직 라자루스로부터 15만 달러(약 2억1000만 원) 이상의 가상화폐를 송금받은 시기와 겹친다. 대림동 후이원 환전소의 가상화폐 송금액은 당국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인근 한 식당 주인은 “그 환전소가 자금세탁에 쓰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전했다. 이곳이 후이원의 한국 지사로 확인될 경우 북한 해킹 자금을 세탁한 기업이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영업한 셈이 된다. 실제로 캄보디아 현지의 후이원 관계사는 한국과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하고 있다. 20일 오후(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판다은행’ 관계자는 “한국으로부터 송금받을 수 있나”라는 취재팀 질문에 “가상화폐 테더(USDT)로 송금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은행은 후이원그룹 계열사와 같은 건물에 있으며, 미 재무부 제재 대상인 ‘후이원크립토’의 허얀밍 대표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사실상 후이원의 위성 조직이 한국과의 송금 통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 후이원은 결제 시스템 ‘후이원페이’, 가상자산 거래소 ‘후이원크립토’ 등을 거느린 금융 복합체로, 미 재무부는 이들이 2021년부터 올해 초까지 약 40억 달러(약 5조6000억 원)의 불법 자금을 세탁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3700만 달러(약 526억 원)는 라자루스 등 북한이 탈취한 가상화폐였다. 보이스피싱 등으로 범죄단지에서 뜯어낸 피해액이 후이원 조직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가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20일 후이원그룹과 함께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프린스그룹에 대해 “국내 활동 의혹과 관련해 혐의를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내사나 수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프놈펜=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북한 해킹 자금 등 전 세계 불법자금 5조 원을 세탁한 혐의로 미국의 제재를 받은 캄보디아 금융그룹 ‘후이원’이 서울에도 발을 들인 정황이 포착됐다. 온라인 사기와 인신매매 조직의 ‘금융 허브’로 지목된 이 그룹은 현지 관계사를 통해 지금도 한국 자금을 가상화폐로 송금받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21일 관세청 등에 따르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건물에는 지난해까지 후이원 그룹과 연결된 것으로 보이는 ‘후이원 환전소’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간판과 로고는 후이원 본사와 같았고,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정식 금융업”이라는 문구와 함께 캄보디아 본사 전경 사진이 게시돼 있었다. 현재 한국어 홈페이지는 접속이 불가능하다.이 환전소는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영업하며 연간 약 2만 달러(약 2800만 원)의 환전 실적을 신고했다. 이는 후이원 그룹이 북한 해커 조직 라자루스로부터 15만 달러(약 2억1000만 원) 이상의 가상화폐를 송금받은 시기와 겹친다. 대림동 후이원 환전소의 가상화폐 송금액은 당국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인근 한 식당 주인은 “그 환전소가 자금세탁에 쓰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전했다. 이곳이 후이원의 한국 지사로 확인될 경우, 북한 해킹 자금을 세탁한 기업이 서울 한복판에서 버젓이 영업한 셈이 된다.실제로 캄보디아 현지의 후이원 관계사는 한국과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하고 있다. 20일 오후(현지 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판다은행’ 관계자는 “한국으로부터 송금받을 수 있나”라는 취재팀 질문에 “가상화폐 테더(USDT)로 송금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은행은 후이원 그룹 계열사와 같은 건물에 있으며, 미 재무부 제재 대상인 ‘후이원크립토’의 허얀밍 대표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사실상 후이원의 위성 조직이 한국과의 송금 통로 역할을 하는 셈이다.후이원은 결제 시스템 ‘후이원페이’, 가상자산 거래소 ‘후이원크립토’ 등을 거느린 금융 복합체로, 미 재무부는 이들이 2021년부터 올해 초까지 약 40억 달러(약 5조6000억 원)의 불법 자금을 세탁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3700만 달러(약 526억 원)는 라자루스 등 북한이 탈취한 가상화폐였다.보이스피싱 등으로 범죄단지에서 뜯어낸 피해액이 후이원 조직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가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20일 후이원 그룹과 함께 캄보디아 범죄단지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프린스 그룹에 대해 “국내 활동 의혹과 관련해 혐의를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내사나 수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프놈펜=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공항에 마중 나온 교민은 반듯했다. 국내 포털사이트에 검색도 되는 단역 배우 겸 모델이었다. “현지에서 일본어 통역을 구한다”는 제안에 30대 김민하(가명) 씨가 지난해 4월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했을 때 얘기다. 그 교민은 웃으며 “쉬운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함정이었다. 차로 4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시아누크빌의 바닷가 근처 아파트였다. 가족에게 ‘잘 도착했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직후, 낯선 남성 3명이 방에 들이닥쳤다. “폰 줘.” “왜요?” 저항하자 팔이 꺾였고 휴대전화와 여권을 순식간에 빼앗겼다. 그날 저녁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목표 못 채웠네?” 쇠창살 안 ‘성인방송 노예’김 씨에게 주어진 ‘일’은 성인방송이었다. 카메라 앞에 앉혀 놓고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시청자에게 후원금을 구걸했다. 다음 날엔 실적표가 벽에 붙었다. 목표액에 못 미치면 욕설과 폭행이 돌아왔다. 옆방에선 드문드문 “살려주세요”라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김 씨는 하루 종일 불이 꺼지지 않는 방에서 카메라 불빛만 바라보며 버텼다. 김 씨는 한 달 뒤 극적으로 구조됐다. 가족이 받은 ‘도착 인증샷’ 한 장이 단서였다. 가족들이 김 씨를 찾아나섰고, 현지에서 20년째 거주 중인 교민이 사진 속 바다와 섬의 위치를 추적해 시아누크빌 일대를 한 달간 수색했다. 마침내 평소 알고 지내던 캄보디아 경찰과 함께 건물을 급습해 김 씨를 구했다. 하지만 구조돼 귀국한 후 들은 이야기는 더 끔찍했다. 그녀를 데려온 ‘교민’은 현지 범죄조직에 500만 원을 받고 김 씨를 팔아넘긴 것이었다. 19일 오후(현지 시간) 김 씨가 감금됐던 시아누크빌 건물 입구엔 아직도 경비원으로 추정되는 중국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눈을 치켜뜨고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운전기사로 동행한 현지인은 “저들이 우리를 알아보는 거 같다. 차에서 절대 내리지 말라”며 “여전히 중국계 조직의 범죄단지로 활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연루된 한국 청년 대다수는 남성이지만, 김 씨처럼 여성도 적지 않다. 지난해 캄보디아의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조직에 납치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30대 남성 정민수(가명) 씨는 “조직원 150명 중 납치된 5명 정도가 여성이었다. (남성 조직원이) 대본을 써주면 통화는 여성 대역이 했다”고 말했다. 이달 7일에는 또 다른 30대 여성이 캄보디아와 베트남 접경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중국 공안은 현지에서 직접 단속시아누크빌 교민들은 “중국은 수년 전부터 캄보디아 경찰과 공조해 자국민 대상 범죄조직을 직접 단속해 왔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느리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은 2019년부터 캄보디아 정부와 협력해 현지 피의자를 적극적으로 송환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엔 캄보디아 경찰과 함께 시아누크빌의 리조트를 급습해 약 700명을 붙잡았고, 4월에는 130명을 송환했다. 캄보디아 헌병대 관계자는 “중국 공안이 시아누크빌을 직접 순찰·단속한 뒤 해변을 점령하던 중국계 범죄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자국민 보호를 위한 상시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는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해 양국 경찰 간 실시간 소통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20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치어퍼우 캄보디아 경찰청 차장과 회담하고 양국 간 24시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코리안데스크 신설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한편 우리 경찰은 프놈펜에서 범죄단지에 감금돼 고문당한 뒤 살해된 대학생 박모 씨(22)의 시신을 이날 현지 당국과 합동 부검한 결과, 장기 적출 등 시신 훼손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 씨의 유해를 21일 국내로 송환할 계획이다.시아누크빌=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시아누크빌=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공항에 마중 나온 교민은 반듯했다. 국내 포털사이트에 검색도 되는 단역 배우 겸 모델이었다. “현지에서 일본어 통역을 구한다”는 제안에 30대 김민하(가명) 씨가 지난해 4월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했을 때 얘기다. 그 교민은 웃으며 “쉬운 일이예요”라고 말했다.그러나 그 약속은 함정이었다. 차로 4시간 걸려 도착한 곳은 시아누크빌의 바닷가 근처 아파트였다. 가족에게 ‘잘 도착했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직후, 낯선 남성 3명이 방에 들이닥쳤다. “폰 줘.” “왜요?” 저항하자 팔이 꺾였고 휴대전화와 여권을 순식간에 빼앗겼다. 그날 저녁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목표 못 채웠네?” 쇠창살 안 ‘성인방송 노예’김 씨에게 주어진 ‘일’은 성인방송이었다. 카메라 앞에 앉혀놓고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시청자에게 후원금을 구걸했다. 다음 날엔 실적표가 벽에 붙었다. 목표액에 못 미치면 욕설과 폭행이 돌아왔다. 옆방에선 드문드문 “살려주세요”라는 비명이 새어나왔다. 김 씨는 하루 종일 불이 꺼지지 않는 방에서 카메라 불빛만 바라보며 버텼다.김 씨는 한 달 뒤 극적으로 구조됐다. 가족이 받은 ‘도착 인증샷’ 한 장이 단서였다. 가족들이 김 씨를 찾아나섰고, 현지에서 20년째 거주 중인 교민이 사진 속 바다와 섬의 위치를 추적해 시아누크빌 일대를 한 달간 수색했다. 마침내 평소 알고 지내던 캄보디아 경찰과 함께 건물을 급습해 김 씨를 구했다. 하지만 구조돼 귀국한 후 들은 이야기는 더 끔찍했다. 그녀를 데려온 ‘교민’은 현지 범죄조직에 500만 원을 받고 김 씨를 팔아넘긴 것이었다.19일 오후(현지 시간) 김 씨가 감금됐었던 시아누크빌 건물 입구엔 아직도 경비원으로 추정되는 중국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보는 척하며 눈을 치켜뜨고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운전기사로 동행한 현지인은 “저들이 우리를 알아보는거 같다. 차에서 절대 내리지 말라”며 “여전히 중국계 조직의 범죄단지로 활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범죄에 연루된 한국 청년 대다수는 남성이지만, 김 씨처럼 여성도 적지 않다. 지난해 캄보디아의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조직에 납치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30대 남성 정민수(가명) 씨는 “조직원 150명 중 납치된 5명 정도가 여성이었다. (남성 조직원이) 대본을 써주면 통화는 여성 대역이 했다”고 말했다. 이달 7일에는 또 다른 30대 여성이 캄보디아와 베트남 접경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중국 공안은 현지에서 직접 단속시아누크빌 교민들은 “중국은 수년 전부터 캄보디아 경찰과 공조해 자국민 대상 범죄조직을 직접 단속해왔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느리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은 2019년부터 캄보디아 정부와 협력해 현지 피의자를 적극적으로 송환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엔 캄보디아 경찰과 함께 시아누크빌의 리조트를 급습해 약 700명을 붙잡았고, 4월에는 130명을 송환했다. 캄보디아 헌병대 관계자는 “중국 공안이 시아누크빌을 직접 순찰·단속한 뒤 해변을 점령하던 중국계 범죄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전문가들은 한국도 자국민 보호를 위한 상시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해 양국 경찰 간 실시간 소통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외교부·경찰에 실종 전담 센터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찌어 뻐우 캄보디아 경찰청 차장과 회담하고 양국간 24시간 핫라인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코리안데스크 신설에는 합의하지 못했다.한편 우리 경찰은 프놈펜에서 범죄단지에 감금·고문당한 뒤 살해된 대학생 박모 씨(22)의 시신을 이날 현지 당국과 합동 부검한 결과, 장기 적출 등 시신 훼손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 씨의 유해를 21일 국내로 송환할 계획이다.시아누크빌=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시아누크빌=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18일 오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남부 국경도시 바베트. 베트남 국경 검문소 인근 식료품점 앞에 지프 1대와 승합차 2대가 잇따라 멈춰 섰다. 트렁크에는 PC 모니터와 데스크톱 본체 10여 대가 실려 있었고, 차량 안에는 현지인과 다른 피부색의 여성들이 짙은 화장을 한 채 앉아 있었다. 인근 주민은 “이 지역은 정전이 잦아 컴퓨터를 쓸 일이 거의 없다”며 “저런 사람들은 대부분 로맨스 스캠 같은 온라인 범죄에 동원되는 중국계 조직원”이라고 귀띔했다. 프놈펜, 시아누크빌 일대에 몰려 있던 온라인 사기 조직원들이 최근 단속을 피해 바베트 등 캄보디아 국경 지대로 대규모 ‘야반도주’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는 국경을 넘어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까지 활동 무대를 넓히는 정황도 포착됐다. 한국 정부가 캄보디아 당국과 합동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핵심 조직이 인접국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검거와 피해자 구조가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이날 기자가 찾은 바베트는 프놈펜이나 시아누크빌 등지에서 도주한 조직원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통했다. 국경을 넘으면 베트남 최대 도시 호찌민까지 약 62km에 불과해 차로 1시간 남짓이면 이동할 수 있다. 한 바베트 주민은 “바베트로 온 이들 중 상당수는 대형 웬치(범죄단지)에 있던 중국계 조직원들”이라며 “베트남으로 밀입국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범죄조직, 국경마다 비밀 도주로 팠다”… 中 SNS선 ‘돈다발 구인’[캄보디아 범죄 사태] 캄보디아 범죄 현장베트남 접경으로 야반도주캄보디아 접경지역 ‘웬치’ 수십곳… 태국-라오스 등 인접국 도주 목적“거점 옮겨가며 범죄 재개 가능성”… 韓-캄보디아 합동 단속 난항 우려“국경지대에서 검문검색을 피할 수 있는 속칭 ‘개구멍’이라 불리는 비공식 통로가 여러 곳 있습니다.”캄보디아 남부 국경도시 바베트에서 만난 한 현지 주민은 “한 번 국경을 넘으면 정부 당국의 추적이 쉽지 않아 캄보디아를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18일 오후 4시 바베트 도심은 개발도 채 되지 않아 황폐한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곳곳에는 중국어 간판과 허름한 카지노가 한 건물 건너 하나씩 늘어서 있었다.국경 지역으로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삼엄했다. 검문소 주변 도로에는 국경을 오가는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차량 검색 탓에 편도 1차로는 꽉 막혀 있었다. 검색대 앞에 선 10명 중 3명가량은 현지인과 피부색이 달랐고, PC와 모니터 등 장비를 여럿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현지 주민들은 이들 중 상당수가 조직범죄에 대한 단속을 피해 인접국으로 근거지를 옮기려는 범죄조직원이라고 했다.● 베트남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야반도주’앞서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일대 ‘웬치(범죄단지)’에선 한밤중에 조직원들이 짐가방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 검은 비닐로 포장한 PC 등을 길가에 늘어놓은 채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들은 40인승 버스에 줄지어 올라타거나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서둘러 떠나갔다. 현지 경찰은 범죄조직원들이 베트남이나 라오스 등으로 도주하기 위해 캄보디아 국경지대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외에도 크레이툼, 오스마크, 보코산 등 캄보디아 전역의 국경지대에는 이미 수십 곳의 웬치가 형성돼 있다. 이들 지역은 태국·베트남·라오스 등 인접국과 도로로 연결돼 차량 등으로 이동하기 쉽다는 공통점이 있다.19일 라오스의 한 교민은 “비엔티안의 산지앙 지역(중국계 거주 밀집 지역)에 캄보디아 범죄단지와 유사한 형태의 건물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며 “캄보디아에서 철수한 조직이 이곳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올해 5월에는 미얀마에서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은 한국인 남성 장모 씨(36)가 태국 국경 인근 미야와디의 범죄단지에 감금돼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미야와디는 중국계 온라인 사기조직의 주요 거점으로 알려진 지역이다.범죄조직의 활동 무대가 캄보디아 국경 밖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캄보디아 정부의 합동 단속도 사실상 ‘허탕’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은 “캄보디아 정부의 협력 의지를 확인했다”며 공조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주요 범죄조직들이 국경을 넘어 도주한 상황에서 실질적 단속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캄보디아 내 남은 웬치들도 대부분 국경과 인접해 있다. 추가 단속에 나서더라도 조직원들이 라오스나 베트남 등으로 재이동할 가능성이 크다.이에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수석최고위원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필요하다면 군사적 조치 또한 배제해선 안 된다”며 “우리 국민의 희생이 계속된다면 정부는 캄보디아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중단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中 소셜미디어선 ‘온라인 유인글’ 여전현지에서는 “단속을 피해 거점을 옮길지라도 언제든 다시 사람을 모집해 범죄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이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중국 내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캄보디아 취업’을 미끼로 한 유인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샤오훙수(小紅書)에는 돈다발, 고급 식당, 5성급 호텔을 배경으로 “캄보디아에서 돈을 벌고 있다”, “궁금하면 물어보라”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었다. 한국 내에서 유통된 유인글이 ‘급구’, ‘고수익 알바’ 등 단순 모집 문구에 그쳤던 것과 달리 중국 게시물은 실제 현금 다발이나 고급 차량, 요트, 식사 장면 등을 함께 게시하며 ‘성공한 삶’을 연출하고 있다.바베트=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바베트=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국경지대에서 검문검색을 피할 수 있는 속칭 ‘개구멍’이라 불리는 비공식 통로가 여러 곳 있습니다.”캄보디아 남부 국경도시 바베트에서 만난 한 현지 주민은 “한 번 국경을 넘으면 정부 당국의 추적이 쉽지 않아 캄보디아를 빠져나가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18일 오후 4시 바베트 도심은 개발도 채 되지 않아 황폐한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곳곳에는 중국어 간판과 허름한 카지노가 한 건물 건너 하나씩 늘어서 있었다. 국경 지역으로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삼엄했다. 검문소 주변 도로에는 국경을 오가는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차량 검색 탓에 편도 1차로는 꽉 막혀있었다. 검색대 앞에 선 10명 중 3명가량은 현지인과 피부색이 달랐고, PC와 모니터 등 장비를 여럿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현지 주민들은 이들 중 상당수가 조직범죄에 대한 단속을 피해 인접국으로 근거지를 옮기려는 범죄조직원이라고 했다. ● 베트남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야반도주’앞서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일대 ‘웬치(범죄단지)’에선 한밤 중에 조직원들이 짐가방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 검은 비닐로 포장한 PC 등을 길가에 늘어놓은 채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들은 40인승 버스에 줄지어 올라타거나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서둘러 떠나갔다. 현지 경찰은 범죄조직원들이 베트남이나 라오스 등으로 도주하기 위해 캄보디아 국경지대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프놈펜과 시아누크빌 외에도 쯔레이톰, 오스마크, 보코산 등 캄보디아 전역의 국경지대에는 이미 수십 곳의 웬치가 형성돼 있다. 이들 지역은 태국·베트남·라오스 등 인접국과 도로로 연결돼 차량 등으로 이동하기 쉽다는 공통점이 있다.19일 라오스의 한 교민은 “비엔티안의 산지앙 지역(중국계 거주 밀집 지역)에 캄보디아 범죄단지와 유사한 형태의 건물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며 “캄보디아에서 철수한 조직이 이곳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올해 5월에는 미얀마에서도 한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주미얀마 한국대사관은 한국인 남성 장모 씨(36)가 태국 국경 인근 미야와디의 범죄단지에 감금돼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미야와디는 중국계 온라인 사기조직의 주요 거점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범죄조직의 활동 무대가 캄보디아 국경 밖으로 확산하면서 한국-캄보디아 정부의 합동 단속도 사실상 ‘허탕’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은 “캄보디아 정부의 협력 의지를 확인했다”며 공조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주요 범죄조직들이 국경을 넘어 도주한 상황에서 실질적 단속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캄보디아 내 남은 웬치들도 대부분 국경과 인접해 있다. 추가 단속에 나서더라도 조직원들이 라오스나 베트남 등으로 재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수석최고위원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필요하다면 군사적 조치 또한 배제해선 안 된다”며 “우리 국민의 희생이 계속된다면 정부는 캄보디아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중단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中 소셜미디어선 ‘온라인 유인글’ 여전 현지에서는 “단속을 피해 거점을 옮길지라도 언제든 다시 사람을 모집해 범죄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이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중국 내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캄보디아 취업’을 미끼로 한 유인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샤오홍슈(小红书)에는 돈다발, 고급 식당, 5성급 호텔을 배경으로 “캄보디아에서 돈을 벌고 있다”, “궁금하면 물어보라”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었다. 한국 내에서 유통된 유인글이 ‘급구’, ‘고수익 알바’ 등 단순 모집 문구에 그쳤던 것과 달리, 중국 게시물은 실제 현금 다발이나 고급 차량·요트·식사 장면 등을 함께 게시하며 ‘성공한 삶’을 연출하고 있다.바베트=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바베트=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캄보디아에는 수많은 ‘옥냐’(상류층)들이 범죄조직의 ‘뒷배’를 보고 있습니다.”17일(현지 시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외곽 종합관광단지 인근. 한 현지인은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시야 끝에 보이는 유흥시설과 호텔, 아파트 단지는 캄보디아 재벌이자 집권 캄보디아인민당 리용팟 상원의원(67)이 소유한 리조트 기업 ‘리용팟 그룹’의 땅이다. 부지 한가운데 자리한 10층 건물은 높은 담장과 쇠창살로 둘러싸여 있었다. 건물 외벽 3층 높이까지 빽빽이 설치된 쇠창살은 외부인은 물론이고 내부인조차 드나들 수 없게 막고 있었다. 현지인은 이 건물을 가리키며 “온라인 사기가 벌어진 ‘웬치’(범죄단지)”라고 말했다.● “경찰도 못 건드리는 ‘유령도시’”프놈펜 시내에서 약 15km 떨어진 이 부지는 총면적 1만 ha(헥타르) 규모로, 국립경기장과 워터파크, 골프장 등이 들어선 관광단지로 조성됐다. 그러나 단지로 이어지는 왕복 6차로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현지인은 “여긴 땅은 넓지만 유령도시(ghost city)”라고 말했다.차로 2분가량 더 들어가자 낮게는 3층, 높게는 9층 규모의 건물 여러 동이 나타났다. 일부는 공사 중이었지만 평일인데도 작업은 중단된 상태였다. 현지에 18년째 거주 중인 한 교민은 “옥냐들이 비싼 값에 웬치로 빌려주고, 안에는 병원이나 상점 같은 걸 넣는다”고 설명했다.부지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실내체육관과 숙소 예정 부지가 나왔다. 교민은 “15층짜리 숙소 건물은 최근까지 온라인 사기 조직이 활동하던 곳”이라며 “지금은 시끄러워 비어 있지만, 옥냐들의 힘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잠잠해지면 언제든 다시 범죄 소굴이 될 수 있다”고 했다.인근 놀이공원 ‘가든 시티 워터파크’도 상황이 비슷했다. 리용팟 의원이 소유한 이곳은 홈페이지에서 ‘모든 연령대를 위한 장소’라고 홍보했지만 미국 재무부는 이곳을 인신매매와 온라인 사기의 거점으로 지목하고 제재한 상태다. 다른 교민은 “요즘 교민 사회 전체가 입조심하는 분위기”라며 “권력층을 건드린 기사라도 나가면 누가 썼는지 찾아내 해코지할 수도 있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美 “캄보디아 고위층, 인신매매 공모”캄보디아 내에서 잇따르는 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의 배경으로 현지 범죄조직과 집권당 권력층의 유착이 지목된다. 올 2월 리 의원이 소유한 북서부 국경지대 오스마크 리조트에선 외국인 약 60명이 집단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 재무부는 “이들은 취업 사기 피해자로, 도착 후 휴대전화와 여권을 압수당하고 사기 행위를 강요당했다”며 “구타와 전기 충격 등 학대를 당하고 몸값 등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10대 재력가로 꼽히는 콕안 상원의원(71) 역시 태국 경찰이 국제 온라인 사기 조직의 배후로 지목했다. 17일 오후 5시경(현지 시간) 프놈펜에서 차로 약 2시간 떨어진 콕안 의원 소유의 크라운 카지노 인근 웬치 입구는 중국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음식 배달 오토바이가 도착하면 경비 인력이 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북부 도시 포이펫의 크라운 카지노 등을 거점으로 태국인을 유인해 강제노동과 대포통장 개설을 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미국 국무부는 “인신매매에 대한 공무원의 공모가 만연하고 고질적이다. 고위층이 재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사기 행각을 벌인다”고 분석했다. 현지 교민들은 “정치 거물들과 얽힌 사건은 경찰도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다.프놈펜=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프놈펜=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17일 오후 2시경(현지 시간)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의 번화가 ‘펍 스트리트’ 인근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한 건물은 다른 건물과 다른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인근 건물과는 달리 문을 걸어 잠가두고, 내부에도 불을 다 꺼뒀다. 창살 앞으로 다가가 보니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깜빡이는 불빛만 건물이 기능하고 있다고 알렸다. 취재진과 동행한 현지인은 “온라인 범죄가 이뤄지는 ‘웬치’(범죄단지)다. 관광지라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했다.앙코르와트 인근에 있는 시엠레아프는 유적지는 물론이고 여행자 거리가 있어 세계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한국인들 역시 지난해 한 해에만 약 14만 명이 방문했다. 관광 도시답게 프놈펜이나 시아누크빌 등과 달리 범죄와 무관하다는 인식이 강하다.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전언 등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역에 있는 웬치는 이곳 시엠레아프에도 존재한다. 수도 프놈펜에서 차량으로 약 5시간 거리에 있음에도 범죄의 손길이 뻗친 것. 시엠레아프 내 웬치는 관광지라는 지역적 특성에 숨어 은밀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현지인조차 이곳에 웬치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현지 공무원은 “잘 보이지만 않을 뿐 웬치는 존재한다”며 “도심 속에 숨어들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현지 매체에 따르면 캄보디아 경찰은 7월 시엠레아프의 한 빌라에서 온라인 사기에 연루된 네팔인 13명을 붙잡았다. 이들의 거점은 대규모 범죄단지가 아닌 평범한 빌라였다. 범죄조직들이 일상으로 숨어들어 찾아내기 쉽지 않은 ‘아파트형 웬치’ 형태로 이미 변모한 셈이다.이곳에서 운영되는 웬치는 주로 온라인 도박 등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감금, 폭행 등의 폭력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 교민은 “(시엠레아프는) 관광지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몰리고 이목도 집중되기 때문에 폭행 등이 발생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민도 “시엠레아프에서 고문 등 범죄가 벌어진 적은 없다”고 했다.하지만 캄보디아 곳곳에서 범죄단지가 발견되고 있어 시엠레아프 역시 사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앙코르와트 유적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관광객도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한 현지 관계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범죄단지인 건 변함이 없다”며 “더 큰 문제로 비화하기 전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시엠레아프=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숨진 대학생 박모 씨(22)의 시신이 안치된 프놈펜 턱틀라 사원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센속구의 한 아파트. 16일 오후 5시(현지 시간)경 취재팀이 찾은 이곳은 겉보기엔 평범한 주거지였다. 주민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건물 앞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다. 하지만 위층엔 투자 사기 리딩방이, 1층엔 감금 인력을 감시하는 경비 천막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소규모 ‘아파트형 웬치(범죄단지)’다. 인신매매의 상징이던 시아누크빌의 대규모 웬치가 단속으로 문을 닫자 범죄조직이 도심 속 빌라나 오피스텔 여러 층을 빌려 은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로 숨어든 범죄조직취재팀과 동행한 15년 차 교민 A 씨(63)는 100m 간격으로 붙어 있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여기도 저기도 모두 웬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팀이 웬치의 사진을 촬영하려고 하자, 천막에 있던 중국인들이 제지하려 다가서기도 했다.이 일대는 한인타운을 비롯해 왕립 캄보디아대, 중앙은행이 몰린 중상층 거주 지역이다. 하지만 이런 도심 곳곳에도 범죄조직의 마수가 뻗쳐 있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현지인은 “교민들도 신고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이 웬치인 줄 몰랐다”고 했다. 실제 일부 아파트형 웬치는 도심에 녹아들기 위해 위장 수법을 쓰고 있었다. 외부에 빨래 등을 널어 두거나 한자 ‘복(福)’ 등 중국어가 적힌 문구를 붙여둬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려는 것. A 씨는 “외국인과 여행객이 많이 다니기에 지나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아파트형 웬치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고 대문이 항상 잠겨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웬치가 최근 국제 제재와 단속 강화로 운신하기 어려워지자 조직들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는 ‘분산형 생존 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A 씨는 “(대규모 웬치와 달리) 이건 외관상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단속 조여들자 대규모 웬치는 ‘텅텅’실제로 캄보디아 주요 대규모 웬치에서는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취재팀이 이날 찾은 대규모 웬치 중 하나인 논케우 ‘태자단지’는 이미 범죄자들이 떠나 텅 빈 상태였다. 프놈펜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인 이곳은 3000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면적에 병원과 주점, 미용실, 급식시설 등을 갖춘 대규모 시설이었지만 이날은 인적이 전혀 없었다. 야심한 밤을 틈타 짐을 챙겨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피 직전 급한 상황을 보여주듯 철제 2층 침대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옷들이 걸려 있었다. 한 교민은 “이렇게 큰 웬치인데 현지 경찰이 정보를 흘리지 않고서야 다 이주한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과거 삼합회 계열 중국 범죄조직이 이들 대형 웬치를 운영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단속 강화로 이들 조직은 캄보디아로 본거지를 옮겼다. ‘14K’와 ‘선이온(新義安)’ 등의 조직이 온라인 사기나 감금 범죄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 경찰 협력관 증원 추진경찰은 해외 수사 공조 역량을 대폭 보강하기로 했다. 특히 인터폴 공조 전담 인력을 현행의 2배 넘게 확대하고, 인터폴 적색수배·수배 확장 등 국제 공조 요청 건의 처리 속도와 빈도를 높이기로 했다.경찰청은 시도경찰청 국제범죄수사계 소속 인터폴 공조 담당 직원을 기존 22명에서 47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또 캄보디아 현지 파견 인력을 기존 3명에서 8명으로 증원하고, 시아누크빌 등지에 ‘코리안 데스크’를 2명 설치할 예정이다.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단지를 주도하던 조직이 아파트형 웬치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검거와 구조가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위성 사진이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추적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워 수사·구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 교민은 “우리 정부가 뒤늦게 합동대응팀을 급파했지만, 피해자 구출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프놈펜=정서영 기자 cero@donga.com논케우=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연고 없는 한국 청년의 시신이 두 달에 한 구꼴로 실려 옵니다.”16일 오후 4시경(현지 시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도심의 턱틀라 사원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새 한국인 시신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중 한 명이 8월 보코산 지역의 ‘웬치’(범죄단지)에 감금돼 고문 끝에 숨진 대학생 박모 씨(22)다. 박 씨의 시신은 두 달 넘게 이 사원의 냉동고에 안치돼 있었고, 출입문 앞은 현지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턱틀라 사원은 공공 장례식장 겸 화장 시설로, 캄보디아에서 숨진 외국인 중 무연고자나 변사자가 이곳으로 옮겨진다. 이날도 사원 화장장 굴뚝에선 시커먼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와, 경내에서 뛰어노는 현지 아이들의 평화로운 모습과 대조됐다. 사원 관계자는 “일본인 등은 주로 수명을 다해서 오는 반면에 한국인 시신은 젊은이가 많다”고 했다. 이 사원은 캄보디아에서 납치, 감금,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유명을 달리한 한국 청년들의 종착지인 셈이다.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캄보디아 경찰과 박 씨의 시신을 공동 부검하기 위해 법의관 등을 파견한다. 경찰 관계자는 “장기의 훼손, 적출 여부도 확인할 것”이며 “장기 매매 피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는 이날 박 씨 시신의 송환에 동의하며 “심심한 유감과 안타까움을 표한다”고 밝혔다. 단속 강화에 아파트-빌라 숨어든 범죄조직 ‘웬치’… 적발 더 어려워[캄보디아 범죄 사태]캄보디아 프놈펜 범죄현장 르포외부에 빨래 등 가정처럼 위장… 대규모 웬치 ‘태자단지’는 텅텅“경찰이 정보 흘리지않곤 불가능”… 韓 경찰 파견인력 3명→8명 증원숨진 대학생 박모 씨(22)의 시신이 안치된 프놈펜 턱틀라 사원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센속구의 한 아파트. 16일 오후 5시(현지 시간)경 취재팀이 찾은 이곳은 겉보기엔 평범한 주거지였다. 주민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건물 앞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다. 하지만 위층엔 투자 사기 리딩방이, 1층엔 감금 인력을 감시하는 경비 천막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소규모 ‘아파트형 웬치(범죄단지)’다. 인신매매의 상징이던 시아누크빌의 대규모 웬치가 단속으로 문을 닫자 범죄조직이 도심 속 빌라나 오피스텔 여러 층을 빌려 은신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로 숨어든 범죄조직취재팀과 동행한 15년 차 교민 A 씨(63)는 100m 간격으로 붙어 있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여기도 저기도 모두 웬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팀이 웬치의 사진을 촬영하려고 하자, 천막에 있던 중국인들이 제지하려 다가서기도 했다.이 일대는 한인타운을 비롯해 왕립 캄보디아대, 중앙은행이 몰린 중상층 거주 지역이다. 하지만 이런 도심 곳곳에도 범죄조직의 마수가 뻗쳐 있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현지인은 “교민들도 신고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이 웬치인 줄 몰랐다”고 했다. 실제 일부 아파트형 웬치는 도심에 녹아들기 위해 위장 수법을 쓰고 있었다. 외부에 빨래 등을 널어 두거나 한자 ‘복(福)’ 등 중국어가 적힌 문구를 붙여둬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려는 것. A 씨는 “외국인과 여행객이 많이 다니기에 지나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아파트형 웬치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고 대문이 항상 잠겨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웬치가 최근 국제 제재와 단속 강화로 운신하기 어려워지자 조직들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는 ‘분산형 생존 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A 씨는 “(대규모 웬치와 달리) 이건 외관상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단속 조여들자 대규모 웬치는 ‘텅텅’실제로 캄보디아 주요 대규모 웬치에서는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취재팀이 이날 찾은 대규모 웬치 중 하나인 논케우 ‘태자단지’는 이미 범죄자들이 떠나 텅 빈 상태였다. 프놈펜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인 이곳은 3000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면적에 병원과 주점, 미용실, 급식시설 등을 갖춘 대규모 시설이었지만 이날은 인적이 전혀 없었다. 야심한 밤을 틈타 짐을 챙겨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피 직전 급한 상황을 보여주듯 철제 2층 침대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옷들이 걸려 있었다. 한 교민은 “이렇게 큰 웬치인데 현지 경찰이 정보를 흘리지 않고서야 다 이주한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과거 삼합회 계열 중국 범죄조직이 이들 대형 웬치를 운영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단속 강화로 이들 조직은 캄보디아로 본거지를 옮겼다. ‘14K’와 ‘선이온(新義安)’ 등의 조직이 온라인 사기나 감금 범죄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 경찰 협력관 증원 추진경찰은 해외 수사 공조 역량을 대폭 보강하기로 했다. 특히 인터폴 공조 전담 인력을 현행의 2배 넘게 확대하고, 인터폴 적색수배·수배 확장 등 국제 공조 요청 건의 처리 속도와 빈도를 높이기로 했다.경찰청은 시도경찰청 국제범죄수사계 소속 인터폴 공조 담당 직원을 기존 22명에서 47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또 캄보디아 현지 파견 인력을 기존 3명에서 8명으로 증원하고, 시아누크빌 등지에 ‘코리안 데스크’를 2명 설치할 예정이다.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단지를 주도하던 조직이 아파트형 웬치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검거와 구조가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위성 사진이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추적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워 수사·구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 교민은 “우리 정부가 뒤늦게 합동대응팀을 급파했지만, 피해자 구출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프놈펜=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프놈펜=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숨진 대학생 박모 씨(22)의 시신이 안치된 프놈펜 떡뜰라 사원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센속구의 한 아파트. 16일 오후 5시경(현지시간) 취재팀이 찾은 이곳은 겉보기엔 평범한 주거지였다. 주민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건물 앞 도로엔 차들이 지나다녔다. 하지만 위층엔 투자사기 리딩방이, 1층엔 감금 인력을 감시하는 경비 천막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소규모 ‘아파트형 웬치(범죄단지)’다. 인신매매의 상징이던 시아누크빌의 대규모 웬치가 단속으로 문을 닫자 범죄조직이 도심 속 빌라나 오피스텔 여러 층을 빌려 은신하고 있는 것이다. ● 아파트로 숨어든 범죄조직취재팀과 동행한 15년차 교민 A 씨(63)는 100m 간격으로 붙어있는 건물들을 가리키며 “여기도, 저기도 모두 웬치”라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팀이 웬치의 사진을 촬영하려고 하자, 천막에 있던 중국인들이 제지하려 다가서기도 했다. 이 일대는 한인타운을 비롯해 왕립 캄보디아대학교, 중앙은행이 몰린 중상층 거주 지역이다. 하지만 이런 도심 곳곳에도 범죄조직의 마수가 뻗쳐 있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현지인은 “교민들도 신고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곳이 웬치인 줄 몰랐다”고 했다. 실제 일부 아파트형 웬치는 도심에 녹아들기 위해 위장 수법을 쓰고 있었다. 외부에 빨래 등을 널어두거나 한자 ‘복(福)’ 등 중국어가 적힌 문구를 붙여둬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려는 것. A 씨는 “외국인과 여행객이 많이 다니기에 지나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아파트형 웬치는) 사람이 드나들지 않고 대문이 항상 잠겨있다”고 말했다.대규모 웬치가 최근 국제 제재와 단속 강화로 운신하기 어려워지자 조직들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는 ‘분산형 생존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A 씨는 “(대규모 웬치와 달리) 이건 외관상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단속 조여들자 대규모 웬치는 ‘텅텅’실제로 캄보디아 주요 대규모 웬치에서는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취재팀이 이날 찾은 대규모 웬치 중 하나인 논케우 ‘태자단지’는 이미 범죄자들이 떠나 텅 빈 상태였다. 프놈펜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인 이곳엔 3000명 넘게 수용할 수 있는 면적에 병원과 주점, 미용실, 급식시설 등을 갖춘 대규모 시설이었지만 이날은 인적이 전혀 없었다. 야심한 밤을 틈타 짐을 챙겨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피 직전 급한 상황을 보여주듯 철제 2층 침대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옷들이 걸려있었다. 한 교민은 “이렇게 큰 웬치인데 현지 경찰이 정보를 흘리지 않고서야 다 이주한 게 말이 되나”고 말했다.과거 삼합회 계열 중국 범죄조직이 이들 대형 웬치를 운영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중국 정부의 단속 강화로 이들 조직은 캄보디아로 본거지를 옮겼다. ‘14K’와 ‘선이온(新義安)’ 등의 조직이 온라인 사기나 감금 범죄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 경찰 협력관 증원 추진경찰은 해외 수사 공조 역량을 대폭 보강하기로 했다. 특히 인터폴 공조 전담 인력을 현행의 2배 넘게 확대하고, 인터폴 적색수배·수배 확장 등 국제 공조 요청 건의 처리 속도와 빈도를 높이기로 했다.경찰청은 시도경찰청 국제범죄수사계 소속 인터폴 공조 담당 직원을 기존 22명에서 47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행정안전부에 제출했다. 또 캄보디아 현지 파견 인력을 기존 3명에서 8명으로 증원하고, 시아누크빌 등지에 ‘코리안 데스크’를 2명 설치할 예정이다.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단지를 주도하던 조직이 아파트형 웬치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검거와 구조가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위성 사진이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추적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워 수사·구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 교민은 “우리 정부가 뒤늦게 합동대응팀을 급파했지만, 피해자 구출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프놈펜=정서영 기자 cero@donga.com논케우=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국내 주요 민간 데이터센터 8곳은 서버 등 전기 설비와 리튬 배터리를 나란히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0곳은 불이 나도 원격으로 전원을 끊을 수 없고, 27곳은 배터리끼리 촘촘히 붙어 있는 상태로 파악됐다.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를 불러온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실과 흡사한 구조로, 비슷한 화재가 날 경우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데이터센터 88곳 중 73곳서 지적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11월 과기정통부는 전산실 면적이 500㎡ 이상인 대형 데이터센터 88곳을 대상으로 배터리 화재 확산 방지, 풍수해 대비 방안 등을 점검했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유발한 2022년 10월 경기 성남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가 리튬 배터리 규제 조치를 시행한 뒤 첫 점검이었다.점검 결과 88곳 중 73곳에서 배터리-서버 분리 보관 위반, 적정 이격거리 미확보 등 265건의 지적 사항이 나왔다. KT클라우드와 LG유플러스, 삼성SDS, 네이버 클라우드 등 주요 업체도 여기에 포함됐다. 문제는 이 중 47곳이 올 7월 18일까지 여전히 지적 사항을 보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20kWh(킬로와트시)를 초과하는 리튬 배터리의 경우 서버 등 전기설비와 다른 공간에 보관하도록 규정했으나, 이를 개선하지 않은 센터가 8곳이었다. 배터리 옆에 서버를 보관하고, 간격이 60cm에 불과했던 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과 같은 구조다. 미국 등 해외에선 서버와 배터리 사이 간격을 90cm 이상 띄워야 하고 불연성 차단벽도 세운다. 또 비상전원장치(UPS) 화재에 대비해 전원을 우회(바이패스)할 수 있는 설비를 두지 않은 센터는 8곳, UPS와 리튬 배터리를 같은 층에 보관하면서도 원격으로 전원을 끊지 못하는 센터는 10곳이었다. 리튬 배터리끼리 적정 거리를 확보하도록 한 조치를 어긴 사례는 27곳에 달했다. 이 밖에도 배터리와 UPS를 연결할 때 여러 전력선을 ‘문어발식’으로 설치한 사례, 배터리 화재에 대비한 급속 배기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사례가 각각 6곳이었다. 방수, 배수 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도 4곳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민간 데이터센터 화재도 잇따르고 있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2일 오전 4시 59분 대전 유성구 롯데이노베이트 데이터센터에서 불이 나 UPS 모듈이 소실됐다. 다행히 30분 만에 꺼져 전원 공급용 배터리와 저장장치의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 뻔했다. 이 의원은 “법을 바꾸고 매뉴얼을 강화해도 현장에서 적용이 돼야 소용이 있다”며 “서버와 배터리의 안정적 분리 등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휴 안에 국정자원 전원장치 복구” 정부는 국가전산망 복구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전국 서버 청소업체를 동원해 국정자원 5층 전산실 장비를 분해·분진 제거·재조립하는 작업을 병렬로 진행하고 있다. 당초 2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 분진 제거는 5일까지 마칠 계획이다. 녹아내린 전원장치 수리도 한 달에서 열흘로 단축해 11일까지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일 낮 12시 기준 시스템 복구율은 17.3%로 장애가 발생한 시스템 647개 중 112개가 재가동됐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복구 속도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며 “작업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복구 후에도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용대 경민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불이 나면 꺼지지 않아 다른 전기설비와의 분리가 필수”라며 “데이터센터 화재가 국가적 마비로 이어진 만큼 정례 점검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정자원 화재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대전경찰청은 이날 국정자원과 배터리 이전 공사 관련 업체 3곳 등 총 4곳을 업무상 실화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공사 업체 PC와 계약 및 작업 서류, 배터리 로그 기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대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국내 주요 민간 데이터센터 8곳은 서버 등 전기 설비와 리튬 배터리를 나란히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0곳은 불이 나도 원격으로 전원을 끊을 수 없고, 27곳은 배터리끼리 촘촘히 붙어 있는 상태로 파악됐다. 국가전산망 마비 사태를 불러온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전산실과 흡사한 구조로, 비슷한 화재가 날 경우 대규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데이터센터 88곳 중 72곳서 지적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11월 과기정통부는 전산실 면적이 500㎡ 이상인 대형 데이터센터 88곳을 상대로 배터리 화재 확산 방지, 풍수해 대비 방안 등을 점검했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유발한 2022년 10월 경기 성남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재발을 막기 위해 정부가 리튬 배터리 규제 조치를 시행한 뒤 첫 점검이었다.점검 결과 88곳 중 72곳에서 배터리-서버 분리 보관 위반, 적정 이격거리 미확보 등 265건의 지적 사항이 나왔다. KT클라우드와 LG유플러스, 삼성SDS, 네이버 클라우드 등 주요 업체도 여기 포함됐다.문제는 이 중 47곳이 올 7월 18일까지 여전히 지적 사항을 보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20kWh(킬로와트시)를 초과하는 리튬 배터리의 경우 서버 등 전기설비와 다른 공간에 보관하도록 규정했으나, 이를 개선하지 않은 센터가 8곳이었다. 배터리 옆에 서버를 보관하고, 간격이 60cm에 불과했던 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과 같은 구조다. 미국 등 해외에선 서버와 배터리 사이 간격을 90cm 이상 띄워야 하고 불연성 차단벽도 세운다.또 비상전원장치(UPS) 화재에 대비해 전원을 우회(바이패스)할 수 있는 설비를 두지 않은 센터는 8곳, UPS와 리튬 배터리를 같은 층에 보관하면서도 원격으로 전원을 끊지 못하는 센터는 10곳이었다. 리튬 배터리끼리 적정 거리를 확보하도록 한 조치를 어긴 사례는 27곳에 달했다. 이 밖에도 배터리와 UPS를 연결할 때 여러 전력선을 ‘문어발식’으로 설치한 사례, 배터리 화재에 대비한 급속 배기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사례가 각각 6곳이었다. 방수, 배수 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도 4곳이었다.이를 반영하듯 민간 데이터센터 화재도 잇따르고 있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2일 오전 4시 59분 대전 유성구 롯데이노베이트 데이터센터에서 불이 나 UPS 모듈이 소실됐다. 다행히 30분 만에 꺼져 전원공급용 배터리와 저장장치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대형사고로 번질 뻔했다. 이 의원은 “법을 바꾸고 매뉴얼을 강화해도 현장에서 적용이 돼야 소용이 있다”며 “서버와 배터리의 안정적 분리 등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휴 안에 국정자원 전원장치 복구”정부는 국가전산망 복구 속도를 높이고 있다. 현재 전국 서버 청소업체를 동원해 국정자원 5층 전산실 장비를 분해·분진 제거·재조립하는 작업을 병렬로 진행 중이다. 당초 2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 분진 제거는 5일까지 마칠 계획이다. 녹아내린 전원장치 수리도 한 달에서 열흘로 단축해 11일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이다.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일 낮 12시 기준 시스템 복구율은 17.3%로 장애가 발생한 시스템 647개 중 112개가 재가동됐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복구 속도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며 “작업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복구 후에도 지속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용대 경민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불이 나면 꺼지지 않아 다른 전기설비와의 분리가 필수”라며 “데이터센터 화재가 국가적 마비로 이어진 만큼 정례 점검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한편 국정자원 화재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대전경찰청은 이날 국정자원과 배터리 이전 공사 관련업체 3곳 등 총 4곳을 업무상 실화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공사 업체 PC와 계약 및 작업 서류, 배터리 로그 기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대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신궁(神弓)’ 김수녕(54·사진)이 고려대 여자양궁팀 창단 감독으로 선임됐다. 고려대는 세종캠퍼스에 처음으로 여자양궁팀을 창단하고 내년 9월 수시모집을 통해 선수를 선발해 창단식을 열 예정이다. 김 감독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단체전 2관왕을 차지한 뒤 세 차례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포함해 총 6개의 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의 전설이다. 2011년 세계양궁연맹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여자 궁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우디 왕실 공주들을 10년간 지도한 뒤 지난해 귀국한 그는 “선수마다 필요한 부분을 맞춤형으로 지도해 올림픽 메달리스트 양성에 힘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신궁(神弓)’ 김수녕(54)이 고려대 여자양궁팀 창단 감독으로 선임됐다. 고려대는 세종캠퍼스에 처음으로 여자양궁팀을 창단하고 내년 9월 수시모집을 통해 선수를 선발, 창단식을 열 예정이다. 김 감독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단체전 2관왕을 차지한 뒤 세 차례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포함해 총 6개의 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의 전설이다. 2011년 세계양궁연맹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여자 궁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우디 왕실 공주들을 10년간 지도한 뒤 지난해 귀국한 그는 “선수마다 필요한 부분을 맞춤형으로 지도해 올림픽 메달리스트 양성에 힘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700여 세대가 입주할 행복주택 청약을 다음 달 초까지 인터넷으로 접수하고 있었는데 연기하게 됐다.”29일 오전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부산도시공사의 전산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공사 관계자는 “로그인 간편인증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돼 청약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도시공사는 간편인증 서비스가 복구되는 대로 다시 시민들에게 안내할 예정이다.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이후 첫 평일 전국 곳곳에선 시민 불편과 혼란이 이어졌다.● 평일 오전부터 혼란… 주택 계약 연기도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을 방문한 직장인 임모 씨는 오전 내내 애간장을 태워야 했다. 지난주 금요일 늦은 시간에 보낸 등기를 사정상 취소해야 하는데 주말 화재로 기록이 날아가 취소 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임 씨는 “등기를 취소하려면 카드 내역을 확인해야 하는데 전산이 날아가서 시간이 지체됐다”며 “업무상 큰 차질이 생길 뻔했다”고 말했다. 무인민원발급기 등이 정상 작동하지 않은 곳들에선 혼란이 발생했지만 오전 10시를 넘어서며 대부분 업무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다만 일부 현장에선 기존엔 요청하지 않던 서류를 요구해 혼란이 가중되기도 했다. 서울 양천구청에서 만난 자동차 영업사원은 “원래 업무상 차량을 등록할 때 주민등록등본을 요구하지 않는데, 오늘은 (구청에서) 갑자기 요청했다”며 “이것 때문에 방금 전까지 고객에게 (등본을) 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고 말했다.금융기관을 방문한 시민들도 신분증 확인이 안 돼 불편을 겪었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 중인 박모 씨(76)는 이날 오전 공과금을 내고 추석 연휴 때 손녀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집 인근의 은행을 방문했다. 하지만 실물 주민등록증으로 신원 확인을 할 수 없어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그는 “전산 화재로 주민등록증을 통한 신원 확인이 불가능하니 (은행 직원이) 운전면허증이나 여권을 가져와야 한다고 하더라”며 “결국 집에 가서 운전면허증을 갖고 다시 지점에 방문했다”고 했다.부동산 계약도 연기됐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 3차 아파트 전용면적 84㎡를 계약하려던 한 30대 남성은 계약을 무기한 연기했다. 매매를 중개했던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매매하려던 아파트가 60억 원에 이르는데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계약을 어떻게 하겠나”라며 “매매 계약이 거의 다 멈춰 섰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지원 업무도 한때 마비온라인 시스템이 마비되자 시민들은 오프라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불편을 겪었다. 서울 중구에서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여성은 이날 오후 보조 지팡이를 짚은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울신용보증재단 명동센터를 찾았다. 그는 “가게 확장을 앞두고 저금리 대출보증을 신청해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며 “원래 모바일로 신청할 수 있는 걸로 아는데 안 된다고 해서 부득이 직접 (센터에) 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광주 북구 광주영락공원 화장장에서는 이날 유족 3명이 직접 시설을 방문해 대면 접수에 나섰다. 온라인 시스템 복구가 늦어지자 장례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불안해 직접 방문을 선택했다. 공원 관계자는 “(방문한 3인 외에도) 화장을 제때 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고객들이 많다”며 “(온라인 시스템이 없어) 직원들이 전화기로 하루 30건 넘는 화장을 처리 중”이라고 했다.국세청, 정부24 등에서 사업자의 휴·폐업, 정상 영업 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서울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서울신용보증재단의 비대면 대출 보증 업무가 한때 중단됐다. 영업점 방문 고객들이 이용하는 디지털 창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의 서비스가 먹통을 겪었으며 오후 4시 무렵에야 전면 재개됐다. 이에 추석을 앞두고 긴급 자금이 필요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서울신보 관계자는 “정부24는 빠르게 복구됐지만 국세청 ‘홈택스’의 정상화가 지연돼 일부 업무가 중단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정사업본부의 경우 통상(일반 편지), 소포, 국제우편 등의 우편물 접수 등 서비스를 복구했다. 다만 신선식품, 착불소포, 안심소포, 미국행 EMS, 수탁상품(수입인지, 알뜰폰 등) 등은 당분간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상태다. 우체국 쇼핑, 인터넷우체국 신규 회원가입, 계약등기 등 외부기관 연계 접수 등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다.시스템 복구가 늦어질수록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 씨(60)는 “부산에 사는 친척에게 과일을 보내려고 해도 (복구가 안 돼) 못 보내고 있다”며 “추석 때 방문도 못 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임유나 기자 imyou@donga.com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주말에 정부24 사이트가 마비돼서 일을 못 봤어요. 어쩔 수 없이 연차를 썼습니다.”29일 서울 동대문구청을 찾은 회사원 김모 씨(27)는 여권 업무를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연차를 내고 구청을 찾았다며 이렇게 말했다.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이후 첫 평일인 29일, 전국 행정기관에는 주말 내 불편을 겪은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이 문을 열자마자 방문한 최모 씨는 “직장에서 제 시간 안에 보내야 하는 우편물이 있었는데 주말 내 문제가 생겨 불안한 마음에 (우체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마포구 공덕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한 이모 씨(32)도 “사업 계약상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주말 내내 발급이 안 돼 (센터를) 찾았다”고 했다.현장에서도 서비스 마비로 인한 불편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9시경 광화문우체국 무인우편접수기 4대는 전산 오류로 이용이 중단됐다. 9시 2분에는 우체국 직원이 우편접수기에 ‘장애 발생’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9시 반경 우체국을 찾은 윤모 씨(50)도 “평소에 사용하던 무인접수기가 먹통이라 하마터면 등기를 못 보낼 뻔했다”고 말했다.서비스 중단이 이어지며 대체 서비스를 찾는 사람들도 늘었다. 동대문구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최모 씨(42)는 “주말 새 ‘우체국에 맡기지 못해 (편의점을) 찾았다’며 택배를 맡기는 손님이 늘었다”고 말했다. X(구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정부24 대신 접속해 서류를 발급할 수 있는 웹사이트 목록이 정리돼 올라오기도 했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10년 전 경증 치매 판정을 받은 임모 씨(82)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다. 아내와 단둘이 사는 임 씨는 시장이나 병원에 갈 때 직접 운전할 때가 많다. 최근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잊거나 모자 같은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임 씨는 “수시 적성검사도 통과했고 아직 운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전체 치매 진단 환자 100명 중 6명가량은 임 씨같이 수시 적성검사를 신청해 운전면허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면허 갱신 시험을 치른 치매 환자의 95%가 합격하거나 판정을 유예받아 면허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치매 환자는 상태가 들쑥날쑥해 운전하기에 위험한데 제도가 지나치게 관대해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 시험 응시한 치매 환자 10명 중 9명 합격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도로교통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치매 판정으로 운전적성판정위원회 심의를 받은 1235명 중 불합격자는 58명(4.7%)에 그쳤다. 779명(63.1%)은 ‘운전 가능’ 판정을 받았고, 398명(32.2%)은 유예 처분을 받았다. 즉, 수시 적성검사를 받은 치매 환자 10명 중 9명 이상이 사실상 면허를 유지한 셈이다. 2022년에도 913명 중 868명(95.1%), 2023년에도 1376명 중 1286명(93.5%)이 면허를 유지했다. 치매 환자 100명 중 6명은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수시 적성검사를 받는다. 지난해 치매 환자 1만8568명이 운전면허 적성판정 대상자로 분류됐고, 이 가운데 임 씨처럼 진단서를 제출해 수시 적성검사를 받은 이는 1235명(6.7%)이었다. 나머지 8006명(43.1%)은 검사를 받지 않아 면허가 자동 취소됐고, 4988명(26.9%)은 사망 등으로 면허가 말소됐다. 4339명(23.3%)은 판정이 연기됐다. 지난해 치매 환자 중 1177명(6.3%)은 면허를 유지한 셈이다. 도로교통법 82조와 시행령 42조에 따라 치매는 법적으로 운전면허 결격 사유다. 운전자가 치매로 장기 요양 등급을 받거나 6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하면 건강보험공단을 통해 경찰청에 명단이 통보된다. 경찰청은 이들을 ‘운전 적성판정 대상자’로 지정하고 전문의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1차 통보에 응하지 않으면 2차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를 끝내 내지 않으면 한 달 뒤 면허가 취소된다. 도로교통공단은 진단서를 제출한 환자에 대해 운전적성판정위원회를 열어 수시 적성검사를 진행한다. 위원장·정밀감정인·내외부 위원 등 7명이 진단서와 자기질환기술서를 검토하고, 출석한 환자에게 증상과 운전 필요성 등을 질의한다. 출석위원 과반 찬성으로 ‘합격’ 판정을 받으면 면허를 유지하고, 불합격 시 면허는 취소된다. 유예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1년 뒤 재검사를 거친다.● “실차 주행평가 등 운전 능력 평가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치매는 초기 단계부터 인지 기능 저하와 길 잃기 증상이 동반되기 때문에 실제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병철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는 약물 복용 여부 등 관리 상태에 따라 초기에도 운전에 지장을 주는 신체 현상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1명이 사망한 교통사고를 낸 74세 운전자 A 씨도 사고 직후 초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2023년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뒤 3개월간 치료제를 복용하는 등 문제가 없다고 판단돼 운전면허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결국 교통사고를 냈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실제 주행 환경에서는 운전 능력이 떨어질 수 있어 실효성 있는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운전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본인이 직접 운전하는 차량을 활용해 주행 평가를 실시하고, 인지 기능 검사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의료계와 학계 전문가는 물론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서와 함께 논의하여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한 70대 남성이 초등학생에게 ‘과일을 주겠다’며 유괴를 시도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남성을 붙잡은 건 일선 경찰서장이었다.26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은평경찰서는 이날 오후 3시경 관내 한 초등학교 인근에서 70대 남성 A 씨를 미성년자 약취유인 미수 혐의로 임의동행했다. A 씨는 이날 오후 한 초등학생에게 다가가 “자전거에 실린 과일을 먹어보라”며 유인을 시도했지만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고 있다.이후 도망친 초등학생의 어머니가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 접수 후 출동했고 49분 만에 A 씨를 검거했다. 이 과정에서 직접 출동한 정문석 은평경찰서장이 A 씨를 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미성년자 약취유인 사건이 이어지며 관련 대응을 강화하는 가운데 서장이 직접 초동 조치에 나섰다.은평서 관계자는 “아직 입건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범행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전남 진도경찰서는 함께 숙식하며 일하던 동료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로 베트남 국적 A 씨(44)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26일 밝혔다.A 씨는 전날 오후 10시 반경 진도군 의신면의 한 가정집에 꾸려진 계절근로자 숙소에서 함께 지내던 같은 국적 B 씨(31)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직전 A 씨는 방에서 쉬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동료 2명과 술을 마시던 B 씨가 흉기를 챙겨 들어가 시비를 걸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A 씨는 술에 취한 B 씨가 흉기를 떨어뜨리자 주워 범행을 저질렀다.두 사람은 올 3월과 6월 차례대로 베트남에서 입국해 같은 농가에서 일하며 숙식해왔다. 진도군은 올해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국적 계절근로자 1553명을 배정받았다.A 씨는 경찰에서 “B 씨가 먼저 일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텃세를 부렸다. 자주 괴롭혀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외국인 피의자 검거 인원은 2019년 3만6400명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기였던 2021년 2만9450명으로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23년 3만2737명까지 늘었다. 같은 해 교통범죄(7262건)와 폭력범죄(6989건)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살인 사건(46건)도 해마다 수십 건씩 발생하고 있다.특히 인구 10만 명당 살인율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높다.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2년과 2023년 내국인의 살인율은 각각 1.4명과 1.5명이었지만, 외국인은 2.0명과 1.9명으로 더 높았다. 강도 사건도 외국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강력범죄에서 격차가 뚜렷하다.계절근로자의 경우 열악한 숙소와 근로 환경, 언어 장벽, 분쟁 조정 장치 부재가 갈등을 극단적 범행으로 키우는 배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노동·주거 환경 개선과 심리 상담 지원, 갈등 조정 제도 마련 등 제도적 안전망 확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진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