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습관의 심리학“10분만 보다 자야지.”자기 전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각종 사건 사고 기사부터 연예인 가십, 지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데이트 소식까지 확인할 게 많다. 아뿔싸! 무심코 쇼츠 영상을 누르고 말았다. 철저히 나만을 위해 준비된 유혹적인 알고리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10분은 너무 짧다. 20분만 더, 30분만 더…. 어느새 눈이 말똥말똥해져 버리고 말았다. ‘꿀잠’은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내일도 피곤한 하루가 예약됐다.할까말까 고민하게 되는 유혹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온다. 식사 후 ‘단짠단짠’의 유혹 앞에 설탕이 들어간 달달한 음료에 눈이 간다.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도 보인다. 출출한 밤 치킨과 라면의 야식 유혹도 치명적이다. 금주·금연 실패 사례는 우리 주변에 셀 수 없이 많다. 왜 몸과 마음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은 습관들은 하나같이 즐거울까.안 좋은 줄 알면서도 자꾸 반복하는 나쁜 습관들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기에 상당히 중독적이다. 물론 우리가 항상 유익하고 건설적인 행동만 하며 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의지와 관계없이 습관에 끌려다니며 수면 부족, 체중 증가 등 부작용에 힘겨워한다면 얘기가 좀 다르다. 의지박약의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끊어버리고 싶은 나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살펴보자.● 참는 데도 에너지가 쓰인다마음먹은 대로 한순간에 딱 끊어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쁜 습관을 없애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미국 듀크대 연구진에 따르면, 하루 일상 행동의 약 45% 정도는 습관적으로 일어난다. 자잘한 일에 들어가는 뇌의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주의를 많이 쏟지 않도록 자동화된 덕분이다. 그래서 습관을 깨기 위해서는 원래 쓰지 않던 에너지를 들이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심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의지력과 습관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그런데 아직도 인간의 의지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다르다. 이 가운데 의지력 연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의지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보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의지력과 관련해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자기 통제(self control)와 관련한 의지력을 많이 쓸수록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돼 다른 일에 쓸 힘이 모자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우마이스터 교수가 의지력이 유한하다고 주장한 여러 연구 중에 초콜릿과 무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대학생 67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누고, 두 그룹 학생만 갓 구운 초콜릿 쿠키 냄새로 가득한 실험실로 초대했다. 사전에 한 끼를 굶고 오라고 요청받은 학생들은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다. 연구진은 학생들 눈앞에 초콜릿 쿠키와 무가 각각 담긴 접시를 놔뒀다. 그리고 얄궂게도 한 그룹 학생들에게만 쿠키를 먹으라고 했다. 나머지 한 그룹 학생들은 눈앞의 달콤한 쿠키 대신 무의 쓴맛만 봤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은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아무 음식도 없는 공간에 따로 불렀다.그런 다음 종이에서 연필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기하학적 모형을 한 번에 그려 완성하는 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했다. 문제 풀이 결과를 살펴보니, 세 그룹 중 무를 먹으며 쿠키를 향한 욕망을 꾹 눌러 참았던 학생들만 문제 풀이 의지가 크게 떨어졌다. 이들은 단 8분 만에 포기해 버렸다. 쿠키를 먹은 학생들은 평균 19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학생들이 평균 21분을 도전한 것과 비교된다. 문제 풀이 시도 횟수에서도 차이가 났다. 무 그룹 학생은 평균 도전 횟수가 19회에 불과했지만, 초콜릿 그룹은 평균 34회,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그룹은 평균 33회 였다. 연구진은 “무를 먹은 학생들이 쿠키의 유혹을 참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써버려 문제 풀 여력이 없었다”고 봤다.자아 고갈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억지로 참는 의지만으로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 참을 때마다 에너지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마침 에너지가 부족한 날엔 절제에 실패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의지력이란 마치 근육과 같아서 일정 시간에 쓸 수 있는 힘이 한정돼 있다”고 했다.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인간의 의지력을 너무 단순한 구조로 바라봤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자기 의지력을 과신할수록 유혹에 잘 넘어간다는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 오히려 ‘내 의지력엔 한계가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도움 된다. 로런 노드그렌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하고 ‘나는 유혹에 끄떡없는 사람’이라고 과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배고픔이나 금연 중 흡연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유혹을 잘 견디는 독한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이 실험에서 주목할 점이 또 있다. 쿠키의 존재를 몰랐던 세 번째 그룹 학생들은 쿠키를 먹은 그룹과 비슷한 수준으로 끈기 있게 문제 풀이에 도전했다. 즉, 애초부터 유혹이 없으면 심리적 에너지를 쓸 일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유혹을 잘 참는다기보다 애초부터 참아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빌헬름 호프만 독일 보훔 루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어떤 사람들이 나쁜 유혹에 잘 넘어가는지 살펴봤다. 여기서 나쁜 유혹이란 다이어트나 금연, 금주 다짐 등을 흔드는 상황을 말한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05명을 모집해 일주일 동안 실험용 호출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알람이 울릴 때마다 당시에 가장 유혹적인 욕구는 무엇인지, 잘 참아 냈는지, 어떤 상황에 누구와 있었는지 기록하도록 했다.자료를 분석해 보니 원래 유혹을 잘 참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유혹적인 상황에 놓이면 심하게 갈등했다. 그런데 유혹에 굴복한 횟수가 적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이들은 애초부터 유혹을 느낄 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 기회를 원천봉쇄하기유혹을 차단해 놓으면, 갈등을 겪을 일도 없다. 연구진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강인한 통제력을 가졌다기 보단 유혹에 노출되지 않도록 상황을 선택하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예를 들어 이들은 다이어트 중에는 집에 있는 과자를 전부 버리거나, 먹음직스러운 디저트가 전시된 카페에 가지 않는다. 반면,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은 집에 여전히 과자가 널려 있고, 맛있는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지나가면서 사 먹을까 말까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들은 유혹을 이겨내 보려고 심리적 에너지를 훨씬 많이 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그래서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유혹에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치는 게 훨씬 도움 된다. 의지력은 순간을 잘 모면하는 것뿐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적인 능력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으려면 담배 가게를 멀리 돌아서 가야 하고, 살을 빼려면 퇴근 길에 치킨, 아이스크림 등 맛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가면 안 된다. 또 스마트폰 의존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자주 접속하는 SNS 앱 알림을 끄거나 삭제해 버리면 도움 된다. 침대에 눕기 전 쉽게 손이 닿지 않는 먼 발치에 스마트폰을 두고 오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뭘 원하는가?습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혹을 원천 봉쇄하는 것만큼 추천하는 다른 방법은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일까.핵심은 나쁜 습관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살펴보는 데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보는 것이다.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는 습관이 ‘신호→반복적 행동→보상’ 순서로 이어진다고 봤다. 특정 환경은 습관을 부르는 신호로 작동하고(예를 들면 ‘밤늦게까지 TV를 본다’), 습관 행동이 따라오면(‘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는다’), 그에 따른 보상(‘일탈감’)을 얻게 된다. 마지막에 보상으로 얻는 것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다.브래드 듀프린 미 서던미시시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원리를 이용해 손톱이 거의 다 없어질 때까지 병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학생을 치료한 과정을 ‘손톱 물어뜯기 치료의 기능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소개했다. 그는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학생이 혼자 있거나 TV를 보며 지루할 때(신호) 손톱을 물어뜯고(반복적 행동), 신체적 자극을 느끼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보상)’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보상은 유지한 채 다른 행동으로 손톱 물어뜯기를 대체해 보기로 했다. 손톱을 물어뜯고 싶을 때마다 얼른 주먹을 꽉 쥐거나 물건을 손에 잡는 습관으로 바꿨더니 손톱을 훨씬 덜 물어뜯게 됐다.자, 그러면 보상은 유지한 채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꿔 보자. 우선 어떤 상황에서 욕구가 올라오는지 신호를 파악하고, 나쁜 습관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게 뭔지 골똘히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침대에 누워 자기 직전 스마트폰을 보고 싶을 때, 이때 얻는 보상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자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이완되고 싶다거나, 자유 시간을 즐기고 싶은 게 진짜 목적이라면 명상이나 독서, 음악 감상 같은 좋은 습관으로 바꿔 볼 수 있다. 또 점심을 잘 먹고도 오후에 초콜릿이나 과자를 먹는 습관이 있다면, 이로 인해 잠을 깨고 싶은 건지, 쉬고 싶은 건지, 진짜 배가 고픈 건지 살펴보자. 목적에 따라 바람 쐬기, 커피 마시기 등 뱃살 걱정 없이 대체할 행동이 얼마든지 있다. 진짜 배가 고픈 거라면 건강한 음식으로 바꿔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 그렇다고 꼭 무를 먹을 필요는 없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10분만 보다 자야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각종 사건 사고 기사부터 연예인 가십, 지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데이트 소식까지 확인할 게 많다. 아뿔싸! 무심코 쇼츠 영상을 누르고 말았다. 철저히 나만을 위해 준비된 유혹적인 알고리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역시 10분은 너무 짧다. 20분만 더, 30분만 더…. 어느새 눈이 말똥말똥해져 버리고 말았다. ‘꿀잠’은 멀어지고, 자연스럽게 내일도 피곤한 하루가 예약됐다. 왜 몸과 마음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은 습관들은 하나같이 즐거울까.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식사 후 커피와 함께 생각나는 케이크의 유혹은 다이어트 다짐을 흔들리게 한다. 출출한 밤 치킨과 라면의 야식 유혹도 치명적이다. 금주·금연 실패 사례는 우리 주변에 셀 수 없이 많다. 안 좋은 줄 알면서도 자꾸 반복하는 나쁜 습관들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기에 고치기 쉽지 않다. 물론 우리가 항상 유익하고 건설적인 행동만 하며 살 수는 없다. 다만 의지와 관계없이 습관에 끌려다니며 수면 부족, 체중 증가 등 부작용에 힘겨워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의지박약의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끊어버리고 싶은 나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살펴보자.● 억지로 참는 데도 에너지가 들어간다 마음먹은 대로 한순간에 딱 끊어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쁜 습관을 없애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심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의지력과 습관에 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그런데 아직도 인간의 의지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다르다. 이 가운데 의지력 연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의 의지력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보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의지력과 관련해 ‘자아 고갈(Ego Deple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의지력을 많이 쓸수록 심리적 에너지가 고갈돼 다른 일에 쓸 힘이 모자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우마이스터 교수가 의지력이 유한하다고 주장한 여러 연구 중에 초콜릿과 무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대학생 67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누고, 두 그룹 학생만 갓 구운 초콜릿 쿠키 냄새로 가득한 실험실로 초대했다. 사전에 한 끼를 굶고 오라고 요청받은 학생들은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다. 연구진은 학생들 눈앞에 초콜릿 쿠키와 무가 각각 담긴 접시를 놔뒀다. 그리고 얄궂게도 한 그룹 학생들에게만 쿠키를 먹으라고 했다. 나머지 한 그룹 학생들은 눈앞의 달콤한 쿠키 대신 무의 쓴맛만 봤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그룹은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아무 음식도 없는 공간에 따로 불렀다. 그런 다음 종이에서 연필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기하학적 모형을 한 번에 그려 완성하는 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했다. 문제 풀이 결과를 살펴보니, 세 그룹 중 무를 먹으며 쿠키를 향한 욕망을 꾹 눌러 참았던 학생들만 문제 풀이 의지가 크게 떨어졌다. 이들은 단 8분 만에 포기해 버렸다. 쿠키를 먹은 학생들은 평균 19분, 아무것도 먹지 않은 학생들이 평균 21분을 도전한 것과 비교된다. 연구진은 “무를 먹은 학생들이 쿠키의 유혹을 참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써버려 문제 풀 여력이 없었다”고 봤다. 자아 고갈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억지로 참는 의지만으로는 나쁜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 참을 때마다 에너지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마침 에너지가 부족한 날엔 절제에 실패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의지력이란 마치 근육과 같아서 일정 시간에 쓸 수 있는 힘이 한정돼 있다”고 했다.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인간의 의지력을 너무 단순한 구조로 바라봤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자기 의지력을 과신할수록 유혹에 잘 넘어간다는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 오히려 ‘내 의지력엔 한계가 있다’는 겸손한 마음이 도움 된다. 로런 노드그렌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기의 의지력을 과대평가하고 ‘나는 유혹에 끄떡없는 사람’이라고 과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배고픔이나 금연 중 흡연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이길 수 없으면 피해라 이 실험에서 주목할 점이 또 있다. 쿠키의 존재를 몰랐던 세 번째 그룹 학생들은 쿠키를 먹은 그룹과 비슷한 수준으로 끈기 있게 문제 풀이에 도전했다. 즉, 애초부터 유혹이 없으면 심리적 에너지를 쓸 일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유혹을 잘 참는다기보다 애초부터 참아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빌헬름 호프만 독일 보훔 루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어떤 사람들이 나쁜 유혹에 잘 넘어가는지 살펴봤다. 여기서 나쁜 유혹이란 다이어트나 금연, 금주 다짐 등을 흔드는 상황을 말한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205명을 모집해 일주일 동안 실험용 호출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알람이 울릴 때마다 당시에 가장 유혹적인 욕구는 무엇인지, 잘 참아 냈는지, 어떤 상황에 누구와 있었는지 기록하도록 했다. 자료를 분석해 보니 원래 유혹을 잘 참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누구나 유혹적인 상황에 놓이면 심하게 갈등했다. 그런데 유혹에 굴복한 횟수가 적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이들은 애초부터 유혹을 느낄 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중에는 집에 있는 과자를 전부 버리거나, 먹음직스러운 디저트가 전시된 카페에 가지 않는다. 반면,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들은 집에 여전히 과자가 널려 있고, 맛있는 케이크를 파는 카페를 지나가면서 사 먹을까 말까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들은 유혹을 이겨내 보려고 심리적 에너지를 훨씬 많이 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나쁜 습관을 고치려면 유혹에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치는 게 훨씬 도움 된다. 의지력은 순간을 잘 모면하는 것뿐 아니라 환경을 조성하는 전략적인 능력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으려면 담배 가게를 멀리 돌아서 가야 하고, 스마트폰 의존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자주 접속하는 SNS 앱 알림을 끄거나 삭제해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 습관 바꿔치기의 열쇠 습관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유혹을 원천 봉쇄하는 것만큼 추천하는 다른 방법은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과연 말만큼 쉬운 일일까. 핵심은 나쁜 습관을 반복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살펴보는 데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아보는 것이다.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는 습관이 ‘신호→반복적 행동→보상’ 순서로 이어진다고 봤다. 특정 환경은 습관을 부르는 신호로 작동하고(예를 들면 ‘밤늦게까지 TV를 본다’), 습관 행동이 따라오면(‘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는다’), 그에 따른 보상(‘일탈감’)을 얻게 된다. 마지막에 보상으로 얻는 것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다. 브래드 듀프린 미 서던미시시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원리를 이용해 손톱이 거의 다 없어질 때까지 병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학생을 치료한 과정을 ‘손톱 물어뜯기 치료의 기능적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소개했다. 그는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학생이 혼자 있거나 TV를 보며 지루할 때(신호) 손톱을 물어뜯고(반복적 행동), 신체적 자극을 느끼면서 만족감을 느낀다(보상)’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보상은 유지한 채 다른 행동으로 손톱 물어뜯기를 대체해 보기로 했다. 손톱을 물어뜯고 싶을 때마다 얼른 주먹을 꽉 쥐거나 물건을 손에 잡는 습관으로 바꿨더니 손톱을 훨씬 덜 물어뜯게 됐다. 자, 그러면 보상은 유지한 채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바꿔 보자. 자기 직전 스마트폰을 보면서 얻는 보상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자기 전 아무 생각 없이 이완되고 싶은 게 진짜 목적이라면 명상이나 독서 같은 건설적인 습관으로 바꿀 수 있다. 또 점심을 잘 먹고도 오후에 초콜릿이나 과자를 먹는 습관이 있다면, 이로 인해 잠을 깨고 싶은 건지, 쉬고 싶은 건지, 진짜 배가 고픈 건지 살펴보자. 목적에 따라 바람 쐬기, 커피 마시기 등 뱃살 걱정 없이 대체할 행동이 얼마든지 있다. 진짜 배가 고픈 거라면 건강한 음식으로 바꿔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 그렇다고 꼭 무를 먹을 필요는 없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한국환경공단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은 전 세계 먹는 물과 수질 분야 검사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국제숙련도 평가에서 최우수 분석기관으로 선정됐다고 10일 밝혔다. 먹는 물과 수질 분야의 총 44개 검증 항목에서 모두 ‘만족’ 평가를 받아 5년 연속 최우수 분석기관으로 선정됐다. 세계적인 숙련도 평가 운영기관인 미국 환경자원협회는 환경 분야 기관의 숙련도를 평가하는국제숙련도 시험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이 시험을 통해 전 세계 분석기관의 시험능력이 검증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증 대상은 수질, 토양, 대기, 악취 등 다양한 환경 분야가 포함된다.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은 올해 2, 3분기에 먹는 물 분야에서 암모니아성질소(NH3-N)와 염소이온(Cl) 등 20개 항목에 대한 시험능력 검증에 참여했다. 또 수질 분야에서는 총질소(T-N) 등 24개 항목에 참가했다.국가 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 관계자는 “이번 평가로 5년 연속 최우수 분석기관으로 선정돼 국제적 수준의 수질분석 기술력을 입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뿐 아니라 한국인정기구(KOLAS)로부터는 먹는 물, 미생물, 수질오염도, 수처리제, 표준재료시험 등 5개 분야 570항목에 대한 공인 시험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이로 인해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은 아시아태평양인정기구(APAC) 및 국제시험소인정협의체(ILAC)에 가입된 109개국에서 상호 인정되는 국제 공인 성적서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은 2019년 물 관련 수질 분석뿐 아니라 수도기자재에 대한 역학시험까지 가능하도록 먹는 물, 표준재료시험 등 8개 분야 173종 329대 장비를 도입하는 노력을 해왔다. 이를 입주 기업의 기술 검증 수행과 기술 개선에 활용하고 있다. 이제원 한국환경공단 국가물산업클러스터사업단 단장은 “미국 환경자원협회가 주관하는 숙련도 평가에서 공단의 측정분석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물 관련 전문 분석기관으로서 정확성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물 기업의 연구개발에 고품질의 시험 및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중소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 A 씨는 사장단 앞에서 업무 계획을 발표하다가 내용에 대한 몇 가지 지적을 받았다. A 씨는 지적받은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잘 설명하고 발표를 마쳤지만 ‘무능하다고 찍힌 게 틀림없다’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그는 ‘앞으로 승진은 글렀고, 연봉은 한 푼도 오르지 않을 것이며, 곧 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이직(移職)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6세 딸을 키우는 40대 주부 B 씨는 딸이 유치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친구들이 딸에게 조금이라도 불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 날엔 걱정으로 잠을 설친다. 혹시 왕따는 아닌지,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친구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그로 인해 평생 큰 상처를 받진 않을지 걱정돼서다. 아예 유치원이나 학교를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위기 상황에 걱정을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위 두 사례처럼 중간 과정 없이 극단적인 결론으로 치닫는 경우엔 얘기가 좀 다르다. 이들은 특정 생각에 꽂히면, 마치 고속도로에서 액셀을 밟듯 최악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그러다 보면 상황을 실제 일어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착각하기 쉽다. 사소한 일에도 ‘망했다’ ‘끝장이다’라며 스스로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람들은 왜 그런 걸까. 이런 생각을 완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최악의 결말 상상… 논리적 ‘점프’걱정되는 상황에서 가능한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을 파국화(破局化·catastrophizing) 또는 재앙화 사고라고 한다. 사소한 일이 비합리적으로 과장돼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게 특징이다. ‘중간고사를 망치면 대학에 못 가고, 취업도 못 해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또는 ‘회사에서 실수하면 잘리고, 노후 준비도 못 한 채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다’라고 상상하는 식이다. 매우 빠르고 자동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부정적 사고는 불안, 우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그래서 파국화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미국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사람들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과 관련한 극단적인 신념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했다. ‘인간은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래서 엘리스는 잘못된 신념을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 심리학자 에런 벡은 우울증 환자를 연구하면서 이들에게 파국화와 같은 공통된 사고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사고 과정을 통틀어 인지 오류(cognitive errors)라고 불렀다. 생각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는 의미다. 파국화를 비롯해 한두 사례만 가지고 일반적 사실로 믿어버리는 과(過)일반화, 세상을 흑백논리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 등도 인지 오류다.● 한국인 10명 중 9명이 인지 오류 습관인지 오류는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펴낸 ‘한국 국민의 건강행태와 정신적 습관의 현황과 정책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만 명 중 90.9%가 인지 오류에 해당하는 사고 습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을 해치는 습관적 사고가 그만큼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다.특히 파국화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만약 ~한다면?’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최악의 결과를 답변하면서 걱정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파국화 사고를 ‘파국적 걱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실에 없는 재앙을 상상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보단 방해가 될 때가 많다. 또 최악의 결과가 일어날 거라고 믿는 ‘주관적 확률’이 실제 그러한 결과가 일어날 확률보다 훨씬 크다고 지각한다. ● ‘시험을 망쳤다→지옥에 간다’?평소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일수록 파국화 사고가 잘 나타난다. 마이클 베이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평소 자주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파국화 양상이 각각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봤다.사전 검사를 통해 자주 불안을 느끼는 24명(일명 ‘걱정 그룹’)을 선발했다. 이들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평균 60%를 걱정하는 데 쏟았다. 별다른 걱정 없이 사는 24명(일명 ‘평온 그룹’)을 추가로 뽑았다. 이들의 하루 평균 걱정 시간 비중은 5% 미만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삶에서 가장 걱정되는 주제를 뽑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우려되는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 보라고 했다.그 결과 걱정 그룹은 평온 그룹보다 2배 많은 걱정을 쏟아냈다. 결말도 훨씬 비극적이었다. 예를 들어 ‘만약 시험을 망친다면’이라는 주제에 대해 걱정 그룹은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이다’부터 ‘내 삶 전반에 대한 자신감을 잃을 것이다’ ‘불안감이 커지고 극도로 예민해질 것이다’ ‘정신적으로 미쳐버릴 것이다’ ‘약물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죽고 싶을 것이다’ ‘지옥에 갈 것이다’까지 극단적으로 뻗어 나갔다. 이들은 최악의 상황이 실제 일어날 거라고 믿는 수준도 상당히 높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동안 불안감이 급격히 커졌다.반면 평온 그룹은 ‘평균 성적이 낮아질 것이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급여가 적을 것이다’ ‘원하는 데 돈을 쓸 수 없어 불행할 것이다’ 같은 비교적 현실적인 걱정을 했다. 결정적으로 최악을 상상하는 동안 별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평소 걱정이 많은 사람은 기억 속에 저장된 최악의 시나리오 정보가 많기에 안 좋은 생각을 더 잘 떠올릴 수 있다”며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현실 가능성을 크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안 일으키는 정보에 유독 민감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위협적인 정보에 남들보다 ‘촉’이 예민하다. 불안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단서는 확대해서 지각하고, 긍정적인 단서는 무시하는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 일어나서다. 작은 단서에도 불안감이 쉽게 불붙고, 불행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쉽다.실제로 뇌신경 활동을 관찰하면 이런 현상이 그대로 관찰된다. 미 플로리다대 연구팀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어려워하고, 대인관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회불안장애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타인의 표정을 관찰할 때 뇌의 변화를 살펴봤다. 사회불안장애 수준이 높은 그룹과 낮은 그룹 17명을 각각 선발해 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웃는 표정, 무표정(중립), 화난 표정을 보여주고 뇌파검사(EEG) 등을 통해 관찰했다.그 결과 사회불안이 높은 이들은 유독 화난 얼굴에만 더 강한 신경 반응을 보였다. 다른 표정보다 화난 얼굴에 주의를 더 쏟았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화난 얼굴은 대인관계 문제로 이어지는 불안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난 얼굴로 인해 나타난 뇌신경 활동이 꽤 오랜 시간 지속됐는데, 한번 불안감이 발생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불안 수준이 낮은 이들이 화난 표정보다 웃는 표정에 더 많은 주의를 쏟은 것과 대비된다.● 파국화 사고, 몸 아플 때 치명적파국화 사고는 몸이 아플 때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 왜 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고 계속 아픈지, 더 큰 병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더 크게 뻗어나가서다. 이러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다’라거나, ‘여기저기 아픈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최악의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국내외에서는 환자들의 파국화 사고 수준과 주관적 통증 강도, 치료 예후 등의 연관성을 활발히 연구해 왔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파국화 사고를 하는 환자는 일반 환자보다 몸이 아픈 통증 강도를 세게 느끼고, 이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남들보다 크기에 몸과 마음의 불쾌한 느낌에 집요하게 집중하고 과장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다른 곳에 주의를 돌리기도 어려워한다. 몸이 나을 때까지 여러 의사를 만나러 다니는 ‘병원 쇼핑’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만, 치료 예후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건강에 대한 병적인 걱정은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심지어는 몸이 다치거나 아플 것을 대비해 외부 활동을 완전히 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신체 활동 자체를 피하게 되면 오히려 신체 기능이 더 약해지고 부정적 기분이 오래 가면서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어떻게 완화할까탈(脫)파국화의 첫걸음은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스쳐 가는 부정적 생각을 순간순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된다. 박기환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장)는 “불안에 휩싸여 안절부절못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불안한지, 이때 신체감각은 어떤지, 무슨 생각이 드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그 생각이 적절한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특히 최악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 혼자서도 해볼 수 있다. 최악의 결과를 지지하는 객관적 근거와 그에 반하는 근거를 각각 나열해 보고, 더 확실한 쪽을 택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앞서 사장단 앞에서 발표 후 이직을 고려하는 A 씨 사례로 살펴보자. ‘회사에서 무능하다고 찍혔다’는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로 ‘발표 내용을 지적받았다’ ‘사람들이 왠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는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난 뒤 아무도 잘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반박할 근거로 ‘지적받은 내용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마무리 지었다’ ‘발표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듣는 사람도 있었다’ ‘발표를 못했다고 직접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때 ‘다른 사람의 한심하다는 표정’ 같은 주관적인 느낌은 실제 사실과 다를 수도 있으므로 판단 근거에서 제외한다.● 파국화 사고에서 벗어나는 연습부정적 생각: 발표를 못해 회사에서 무능하다고 찍혔다.부정적 생각의 근거 떠올리기1. 발표 내용을 지적받았다.2. 사람들이 왠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는 것 같았다.3. 발표가 끝난 뒤 아무도 잘했다고 말하지 않았다.반박 근거 생각하기1. 지적받은 내용을 잘 설명하고 마무리 지었다.2. 발표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사람도 있었다.3. 발표를 못했다고 직접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이렇게 하나씩 따져보면 회사에서 찍혔다고 확신할 만한 근거는 부족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반대 근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직해야 한다는 최악의 결과는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부정적 생각은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떠오르기에 반복적 훈련이 요구된다. 박 교수는 “잘 풀리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가장 실현 가능한 결과는 무엇인지 스스로 답하면서 현실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걱정스러운 생각이 비집고 들어와 방해한다면 걱정을 몰아서 하는 ‘걱정 타임’을 따로 정해두는 것도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일과 중에 10분간 다른 생각을 차단하고 걱정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오히려 10분이 길게 느껴지는 역설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잠자기 직전에는 수면을 방해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니 일과 시간 중간이 더 좋다는 점을 기억하자.※불안 다스리는 법에 대한 또 다른 기사: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중소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 A 씨는 사장단 앞에서 업무 계획을 발표하다가 내용에 대한 몇 가지 지적을 받았다. A 씨는 지적받은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잘 설명하고 발표를 마쳤지만 ‘무능하다고 찍힌 게 틀림없다’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그는 “앞으로 승진은 글렀고, 연봉은 한 푼도 오르지 않을 것이며, 곧 잘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이직이 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6세 딸을 키우는 40대 주부 B 씨는 딸이 유치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친구들이 딸에게 조금이라도 불친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 날엔 걱정으로 잠을 설친다. 혹시 왕따는 아닌지,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친구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그로 인해 평생 큰 상처를 받진 않을지 걱정돼서다. 아예 유치원이나 학교를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위기 상황에 걱정을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위 두 사례처럼 중간 과정 없이 극단적인 결론으로 치닫는 경우엔 얘기가 좀 다르다. 이들은 특정 생각에 꽂히면, 마치 고속도로에서 액셀을 밟듯 최악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간다. 그러다 보면 실제 일어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착각하기 쉽다. 사소한 일에도 ‘망했다’ ‘끝장이다’라며 스스로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람들은 왜 그런 걸까. 이런 생각을 완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 중간 과정 없는 걱정의 ‘고속도로’ 걱정되는 상황에서 가능한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을 파국화(破局化·catastrophizing) 또는 재앙화 사고라고 한다. 사소한 일이 비합리적으로 과장돼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 게 특징이다. ‘중간고사를 망치면 대학에 못 가고, 취업도 못 해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또는 ‘회사에서 실수하면 잘리고, 노후 준비도 못 한 채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다’라고 상상하는 식이다. 매우 빠르고 자동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부정적 사고는 불안, 우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파국화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미국의 심리학자인 앨버트 엘리스는 “사람들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과 관련한 극단적인 신념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했다. ‘인간은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고언을 인용한 것이다. 그래서 엘리스는 잘못된 신념을 수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런 벡은 우울증 환자를 연구하면서 이들에게 파국화와 같은 공통된 사고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사고 과정을 통틀어 인지 오류(cognitive errors)라고 불렀다. 생각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는 의미다. 파국화를 비롯해 한두 사례만으로 일반적 사실로 믿어버리는 과(過)일반화, 세상을 흑백논리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 등도 인지 오류다. 인지 오류는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펴낸 ‘한국 국민의 건강행태와 정신적 습관의 현황과 정책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만 명 중 90.9%가 인지 오류에 해당하는 사고 습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건강을 해치는 습관적 사고가 그만큼 알게 모르게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다.● 시험을 망치면→지옥에 간다? 평소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일수록 파국화 사고가 잘 나타난다. 마이클 베이시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평소 자주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파국화 양상이 각각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봤다. 우선 사전 검사를 통해 자주 불안을 느끼는 24명(일명 ‘걱정 그룹’)을 선발했다. 이들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평균 60%를 걱정하는 데 쏟는 사람들이었다. 또 별다른 걱정 없이 사는 24명(일명 ‘평온 그룹’)을 추가로 뽑았다. 이들의 하루 평균 걱정 시간은 5% 미만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삶에서 가장 걱정되는 주제를 뽑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우려되는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안 좋은 상황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걱정 그룹은 평온 그룹보다 2배 많은 걱정을 쏟아냈다. 결말도 훨씬 비극적이었다. 예를 들어 ‘만약 시험을 망친다면?’이라는 주제에 대해 걱정 그룹은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이다’부터 시작해 ‘내 삶 전반에 자신감을 잃을 것이다’ ‘불안감이 커지고 극도로 예민해질 것이다’ ‘정신적으로 미쳐버릴 것이다’ ‘약물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죽고 싶을 것이다’ ‘지옥에 갈 것이다’까지 극단적으로 뻗어 나갔다. 이들은 최악의 상황이 실제 일어날 거라고 믿는 수준도 상당히 높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동안 불안감이 급격히 커졌다. 반면 평온 그룹은 ‘평균 성적이 낮아질 것이다’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급여가 적을 것이다’ ‘원하는 데 돈을 쓸 수 없어 불행할 것이다’ 같은 비교적 현실적인 걱정을 했다. 결정적으로 최악을 상상하는 동안 별로 불안해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평소 걱정이 많은 사람은 기억 속에 저장된 최악의 시나리오 정보가 많기에 안 좋은 생각을 더 잘 떠올릴 수 있다”며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현실 가능성을 크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 사람 왜 화났지? 불안해” 또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위협적인 정보에 남들보다 ‘촉’이 예민하다. 불안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단서는 확대해서 지각하고, 긍정적인 단서는 무시하는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 일어나서다. 그래서 작은 단서에도 불안감이 쉽게 불붙고, 불행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쉽다. 실제로 뇌신경 활동을 관찰하면 이런 현상이 그대로 관찰된다. 미 플로리다대 연구팀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어려워하고, 대인관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회불안장애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타인의 표정을 관찰할 때 뇌의 변화를 살펴봤다. 사회불안장애 수준이 높은 그룹과 낮은 그룹 17명을 각각 선발해 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웃는 표정, 무표정(중립), 화난 표정을 보여주고 뇌파검사(EEG) 등을 통해 관찰했다. 그 결과 사회불안이 높은 이들은 유독 화난 얼굴에만 더 강한 신경 반응을 보였다. 다른 표정보다 화난 얼굴에 주의를 더 쏟았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화난 얼굴은 대인관계 문제로 이어지는 불안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난 얼굴로 인해 나타난 뇌신경 활동이 꽤 오랜 시간 지속됐는데, 한번 불안감이 발생하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불안 수준이 낮은 이들이 화난 표정보다 웃는 표정에 더 많은 주의를 쏟은 것과 대비된다.● 파국화 사고, 어떻게 완화할까 탈(脫)파국화의 첫걸음은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스쳐 가는 부정적 생각을 순간순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된다. 박기환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장)는 “불안에 휩싸여 안절부절못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불안한지, 이때 신체감각은 어떤지, 무슨 생각이 드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그 생각이 적절한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최악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 혼자서도 해볼 수 있다. 최악의 결과를 지지하는 객관적 근거와 그에 반하는 근거를 각각 나열해 보고, 더 확실한 쪽을 택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앞서 사장단 앞에서 발표 후 이직을 고려하는 A 씨의 사례로 살펴보자. ‘회사에서 무능하다고 찍혔다’는 생각을 뒷받침할 근거로 ‘발표 내용을 지적받았다’ ‘사람들이 왠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는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난 뒤 아무도 잘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반박할 근거로 ‘지적받은 내용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마무리 지었다’ ‘발표를 못했다고 직접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발표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듣는 사람도 있었다’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때 다른 사람의 한심하다는 표정과 같은 주관적인 느낌은 실제 사실과 다를 수도 있으므로, 판단 근거에서 제외한다. 이렇게 하나씩 따져보면 회사에서 찍혔다고 확신할 만한 근거는 부족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반대 근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직해야 한다는 최악의 결과는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부정적 생각은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떠오르기에 반복적 훈련이 요구된다. 박 교수는 “잘 풀리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가장 현실 가능한 결과는 무엇인지 스스로 답하면서 현실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진작 화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I wish I’d made you angry earlier).’헤모글로빈의 분자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영국 생화학자 맥스 퍼루츠는 재미있는 제목의 과학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제목의 기원은 70여 년 전 어느 토요일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에 진척이 없어 좌절하던 퍼루츠는 새로 발표된 논문을 읽다 큰 충격을 받았다. 경쟁 연구자들이 자신이 고민하던 연구 문제에 관한 논문을 먼저 발표했기 때문이다.퍼루츠는 이를 어떻게 만회할지 머리를 싸매고 분노의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당시 소속 연구소의 상사이자 저명한 물리학자인 로런스 브래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엄청난 연구 아이디어를 쏟아 놓는다. 브래그가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지 묻자, 퍼루츠는 “경쟁 연구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해 내지 못한 분노에서 시작됐다”고 답한다. 그때 브래그가 한 말이 “진작 화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였다.때때로 분노는 성취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분노의 이면에는 승부욕 등 동기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는 종종 도덕과 용기의 무기가 된다”고도 했다.이처럼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감정들은 마치 ‘맥가이버의 칼’과 같은 기능을 한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도구가 다른 것처럼 분노 역시 삶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상황이 있다.그런데 분노에는 항상 ‘나쁜 감정’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분노 표출이 너무 과하거나 모자라서 문제인 분노조절장애(간헐적 폭발장애)나 화병같이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탓이 크다. 화를 무작정 참거나 마구잡이로 분출시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적당히’ 다스리고 삶의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화날 때 집중력·끈기 강해져분노는 원래 생존에 필수적인 감정이다. 화가 난다는 것은 뭔가가 나의 물리적, 사회적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화가 나면 그 대상을 ‘제거’해 버리고 싶은 동기가 강하게 일어난다. 화난 퍼루츠가 경쟁 연구자들을 제거하는 방법은 더 큰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 목표물을 제거하려면 고도의 집중력과 빠른 두뇌 회전, 신속한 움직임이 필수다. 놀랍게도 화가 나면 진짜로 우리 몸은 이렇게 반응한다.헤더 렌치 미국 텍사스A&M대 심리학 및 뇌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어떤 감정 상태일 때 일의 능률이 올라가는지 실험해 봤다. 실험 참가자 233명을 모아 이들을 5그룹으로 나눴다. 4그룹에는 분노, 즐거움, 슬픔, 욕망(식욕) 등 그룹별로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는 사진 15장을 각 5초씩 보여줬다. 분노 그룹에는 아동학대 사진을, 욕망 그룹에는 맛있는 케이크 사진 등을 보여주는 식이다. 1개 그룹은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다.사진을 보여준 뒤 상당히 어려운 언어 지능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분노 그룹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 평온한 상태에서 문제를 잘 풀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 그룹은 이들보다 점수가 40% 정도 높았다. 또 이들은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풀어 보려는 끈기도 강했다. 소매 걷어붙이고 성공할 때까지 집요하게 도전하는 힘이 불끈 생겨나서다.테스트 종류가 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화난 참가자들은 집중력과 빠른 반응 속도를 요구하는 다른 테스트에서도 남들보다 성적이 좋았다. 다만 풀기 쉬운 문제에서는 그룹별 성적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쉬운 목표보다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야 할 때 분노가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지적 각성…창의성 ‘번뜩’화가 나면 창의성도 번뜩인다. 화가 나서 교감신경계가 작동해 혈압과 심박수가 증가하고, 동공이 확장되면 인지도 활성화된다. 신체와 정신이 모두 각성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때 잘 정제되고 차분한 사고보다는 광범위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가 더 잘된다. 평소보다 사고의 폭이 넓어지면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하오닝 중국 화둥사범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이 분노와 창의성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 23편을 분석해 봤더니 실제로 화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창의성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대상 논문의 실험 참가자는 총 2513명이었는데, 일부러 분노를 유발하고 창의성을 검증하는 문제를 풀도록 했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해결했다. 결과적으로 화난 상태에서는 집중력, 문제 해결 속도, 끈기, 창의성 정도가 평소보다 높아진다. 슬픔, 불안, 즐거움 등 여러 감정 상태에 있을 때와 비교해도 이런 차이가 두드러졌다. 화난 감정을 무작정 억누르거나 무시하지 않고 건설적으로 사용한다면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떻게 복수하지?” 나쁜 아이디어 잘 떠올라 그런데 화가 날 땐 악한 창의성(malevolent creativity)도 번뜩이는 게 문제다. 그래서 분노라는 감정은 마치 ‘양날의 검’과 같다. 화와 공격성은 매우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난 사람들은 더 잔인하고 독창적인 복수 방법을 생각해 낸다. 앞서 퍼루츠가 분노를 연구 성과로 연결하는 건설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과 반대로 경쟁 연구자에게 해코지하려고 했다면 악한 창의성이 발휘됐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파트 이웃이 자기 집수리를 도와주면 수고비를 주겠다고 해서 당신이 기꺼이 공사를 도와줬다고 가정해 보자. 공사가 끝나고 수고비를 달라고 하자 이웃은 자기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모든 게 당신 머릿속의 상상”이라며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이때 어떻게 되갚아 줄 수 있을까? 이 시나리오는 실제로 악한 창의성을 측정하는 검사 내용 중 하나다. 이 외에도 무례한 반 친구가 값비싼 내 책에 커피를 일부러 쏟았을 때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룸메이트가 내 시험 기간에 손님을 초대해 시끄럽게 놀고 떠들면 어떻게 되갚아 줄 것인지 등에 대한 내용도 있다. 하오닝 교수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102명을 모집해 이런 검사 문항을 토대로 어떤 감정 상태에 있을 때 악한 창의성이 더 뛰어난지 알아봤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을 분노, 슬픔, 평온한 감정 상태의 3그룹으로 나눴다. 분노와 슬픔을 유발하기 위해 살면서 겪었던 화나는 일과 슬픈 일을 5분간 자세히 떠올리라고 했다. 그런 뒤 일반적인 창의성 테스트 문제와 악한 창의성 테스트 문제를 각각 풀게 했다. 그 결과 분노 그룹은 일반 창의성 문제는 물론이고 악한 창의성 문제도 다른 그룹보다 더 잘 풀었다. 다른 감정 상태에 있는 이들보다 다양하고 기발한 복수 방법을 잘 생각해 냈다. 연구진은 “화가 나면 감정적으로 각성돼 공격성이 생겨나고, 이는 악한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다”며 “이를 약화하는 감정 조절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종이에 쓰고 버리면 화도 사라져그래서 분노가 목표 달성을 위한 에너지가 되기보다 남을 해치는 공격성으로 나타날 때 쓸 수 있는 감정 조절 방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분노 표출은 상대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사후에 감당해야 할 몫도 크다. 다행히 학계에서는 쉽고 빠른 분노 해결 방법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나고야대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 57명에게 다소 혹독한 실험을 했다. 이들에게 ‘공공장소 흡연’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글로 쓰게 하고, 일부러 굴욕스러운 평가 결과를 알려줬다. 논리성, 흥미도 등 여러 항목에서 각 2~4점(9점 만점)의 박한 점수를 줬다. 그리고 평가 멘트에 ‘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썼다. 참가자 모두가 같은 평가를 받았다. 평가 결과를 받기 전후로 감정 상태를 측정했더니, 평가지를 받은 후에 분노 지수가 급격히 상승했다. 이 실험의 목적은 그다음 순서에 있었다. 학생들에게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나름의 이유를 분석해 종이에 쓰도록 했다. 또 현재 기분과 그 원인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쓰라고 했다. 그리고 참가자 절반에게는 종이를 책상 위에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보관하라고 시켰다. 나머지에게는 종이를 공처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라고 했다. 이 과정을 마치고 다시 분노 수준을 측정했더니, 놀랍게도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진 사람들은 처음 평온했던 수준으로 돌아왔다. 반면 종이를 통에 보관한 학생들은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종이를 던지면서 화풀이가 된 걸까?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를 다시 모집해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지는 대신 파쇄기에 갈도록 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쓰레기통에 던지든, 파쇄기에 갈든 일단 종이를 없애는 행위가 중요했다.이 실험은 애지중지하는 물건을 못 버리는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물건에 서려 있는 나의 좋은 감정, 추억이 버려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잡동사니를 끼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반대로 이용하면 나쁜 감정이 담긴 물건을 버리거나 파괴할 때 그 안에 담긴 감정까지 없애버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연구진은 특히 이 방법을 부모들에게 추천했다. 집에서 배우자와 싸우거나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종이에 쓰고 버리는 간단한 방법으로 감정을 다스려 보라는 의미에서다. 물론 직장에서도 사용해 볼 수 있다. 다만 욕설 등 분노에 활활 타오르는 격정적인 언어를 쓰면 오히려 화를 돋울 수 있으니 주의하자.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야 화가 식는 효과가 더해진다. ‘분노는 어떻게 삶의 에너지가 되는가’의 저자 황미구 광운대 교육학과 겸임교수는 “분노를 참지 않고 분출했을 때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화가 나거나 충동성, 공격성이 드러나는 역효과도 있기에 감정 조절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분노가 삶의 동력이 되기보단, 남에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양상으로 일어날 땐 이를 잠재우는 나만의 방법을 찾을 필요도 있다. 황 교수는 “사실 화날 때 운동, 명상, 심호흡, 감정 일기 쓰기 등 추천되는 모든 방법들은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라며 “이 가운데 경험적으로 나와 맞는 방법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진작 화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I wish I’d made you angry earlier).’ 헤모글로빈의 분자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영국 생화학자 맥스 퍼루츠는 재미있는 제목의 과학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제목의 기원은 70여 년 전 어느 토요일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에 진척이 없어 좌절하던 퍼루츠는 새로 발표된 논문을 읽다 큰 충격을 받았다. 경쟁 연구자들이 자신이 고민하던 연구 문제에 관한 논문을 먼저 발표했기 때문이다. 퍼루츠는 이를 어떻게 만회할지 머리를 싸매고 분노의 주말을 보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당시 소속 연구소의 상사이자 저명한 물리학자인 로런스 브래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가 엄청난 연구 아이디어를 쏟아 놓는다. 브래그가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는지 묻자 퍼루츠는 “경쟁 연구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먼저 생각해 내지 못한 분노에서 시작됐다”고 답한다. 그때 브래그가 한 말이 “진작 화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였다. 때때로 분노는 성취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분노의 이면에는 동기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는 종종 도덕과 용기의 무기가 된다”고도 했다. 이처럼 분노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나쁜 감정’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분노 표출이 너무 과하거나 모자라서 문제인 분노조절장애(간헐적 폭발장애)나 화병같이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탓이 크다. 화를 무작정 참거나 마구잡이로 분출시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적당히’ 다스리고 삶의 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열받네” 목표 달성 동기 부여 분노는 원래 생존에 필수적인 감정이다. 화가 난다는 것은 뭔가가 나의 물리적, 사회적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화가 나면 그 대상을 ‘제거’해 버리고 싶은 동기가 강하게 일어난다. 화난 퍼루츠가 경쟁 연구자들을 제거하는 방법은 더 큰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 목표물을 제거하려면 고도의 집중력과 빠른 두뇌 회전, 신속한 움직임이 필수다. 놀랍게도 화가 나면 진짜로 우리 몸은 이렇게 반응한다. 헤더 렌치 미국 텍사스A&M대 심리학 및 뇌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어떤 감정 상태일 때 일의 능률이 올라가는지 실험해 봤다. 실험 참가자 233명을 모아 이들을 5그룹으로 나눴다. 4그룹에는 분노, 즐거움, 슬픔, 욕망(식욕) 등 그룹별로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는 사진 15장을 각 5초씩 보여줬다. 분노 그룹에는 아동학대 사진을, 욕망 그룹에는 맛있는 케이크 사진 등을 보여주는 식이다. 1개 그룹은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다. 사진을 보여준 뒤 상당히 어려운 언어 지능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분노 그룹의 성적이 가장 좋았다. 평온한 상태에서 문제를 잘 풀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 그룹은 이들보다 점수가 40% 정도 높았다. 또 이들은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풀어 보려는 끈기도 강했다. 소매 걷어붙이고 성공할 때까지 집요하게 도전하는 힘이 불끈 생겨나서다. 테스트 종류가 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화난 참가자들은 집중력과 빠른 반응 속도를 요구하는 다른 테스트에서도 남들보다 성적이 좋았다. 다만 풀기 쉬운 문제에서는 그룹별 성적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쉬운 목표보다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야 할 때 분노가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의성 자극… 악한 생각도 번뜩인다? 화가 나면 창의성도 번뜩인다. 화가 나서 교감신경계가 작동해 혈압과 심박수가 증가하고, 동공이 확장되면 인지도 활성화된다. 신체와 정신이 모두 각성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때 잘 정제되고 차분한 사고보다는 광범위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가 더 잘된다. 평소보다 사고의 폭이 넓어지면서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그런데 화가 날 땐 악한 창의성(malevolent creativity)도 번뜩이는 게 문제다. 그래서 분노라는 감정은 마치 ‘양날의 검’과 같다. 화와 공격성은 매우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난 사람들은 더 잔인하고 독창적인 복수 방법을 생각해 낸다. 예를 들어 아파트 이웃이 자기 집수리를 도와주면 수고비를 주겠다고 해서 당신이 기꺼이 공사를 도와줬다고 가정해 보자. 공사가 끝나고 수고비를 달라고 하자 이웃은 자기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모든 게 당신 머릿속의 상상”이라며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이때 어떻게 되갚아 줄 수 있을까? 하오닝 중국 화둥사범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102명을 모집해 이런 검사 문항을 토대로 어떤 감정 상태에 있을 때 악한 창의성이 더 뛰어난지 알아봤다. 이번에는 참가자들을 분노, 슬픔, 평온한 감정 상태의 3그룹으로 나눴다. 분노와 슬픔을 유발하기 위해 살면서 겪었던 화나는 일과 슬픈 일을 5분간 자세히 떠올리라고 했다. 그런 뒤 일반적인 창의성 테스트 문제와 악한 창의성 테스트 문제를 각각 풀게 했다. 그 결과 분노 그룹은 일반 창의성 문제는 물론이고 악한 창의성 문제도 다른 그룹보다 더 잘 풀었다. 다른 감정 상태에 있는 이들보다 다양하고 기발한 복수 방법을 잘 생각해 냈다. 연구진은 “화가 나면 감정적으로 각성돼 공격성이 생겨나고, 이는 악한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다”며 “이를 약화하는 감정 조절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화가 날 땐 종이에 적어 던져 버리자 그래서 분노가 목표 달성을 위한 에너지가 되기보다 남을 해치는 공격성으로 나타날 때 쓸 수 있는 감정 조절 방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분노 표출은 상대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사후에 감당해야 할 몫도 크다. 다행히 학계에서는 쉽고 빠른 분노 해결 방법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나고야대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 57명에게 다소 혹독한 실험을 했다. 이들에게 ‘공공장소 흡연’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글로 쓰게 하고, 일부러 굴욕스러운 평가 결과를 알려줬다. 논리성, 흥미도 등 여러 항목에서 각 2∼4점(9점 만점)의 박한 점수를 줬다. 그리고 평가 멘트에 ‘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썼다. 참가자 모두가 같은 평가를 받았다. 평가 결과를 받기 전후로 감정 상태를 측정했더니, 평가지를 받은 후에 분노 지수가 급격히 상승했다. 이 실험의 목적은 그다음 순서에 있었다. 학생들에게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나름의 이유를 분석해 종이에 쓰도록 했다. 또 현재 기분과 그 원인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쓰라고 했다. 그리고 참가자 절반에게는 종이를 책상 위에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보관하라고 시켰다. 나머지에게는 종이를 공처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라고 했다. 이 과정을 마치고 다시 분노 수준을 측정했더니, 놀랍게도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진 사람들은 처음 평온했던 수준으로 돌아왔다. 반면 종이를 통에 보관한 학생들은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종이를 던지면서 화풀이가 된 걸까? 연구진은 실험 대상자를 다시 모집해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종이를 쓰레기통에 던지는 대신 파쇄기에 갈도록 했다.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쓰레기통에 던지든, 파쇄기에 갈든 일단 종이를 없애는 행위가 중요했다. 이 실험은 애지중지하는 물건을 못 버리는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물건에 서려 있는 나의 좋은 감정, 추억이 버려지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잡동사니를 끼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반대로 이용하면 나쁜 감정이 담긴 물건을 버리거나 파괴할 때 그 안에 담긴 감정까지 없애버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연구진은 특히 이 방법을 부모들에게 추천했다. 집에서 배우자와 싸우거나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종이에 쓰고 버리는 간단한 방법으로 감정을 다스려 보라는 의미에서다. 물론 직장에서도 사용해 볼 수 있다. 다만 욕설 등 분노에 활활 타오르는 격정적인 언어를 쓰면 오히려 화를 돋울 수 있으니 주의하자.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야 화가 식는 효과가 더해진다. ‘분노는 어떻게 삶의 에너지가 되는가’의 저자 황미구 광운대 교육학과 겸임교수는 “분노를 참지 않고 분출했을 때 감정이 정화되기보다 오히려 더 화가 나는 역효과도 있기에 감정 조절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사실 화날 때 운동, 명상, 심호흡, 감정 일기 쓰기 등 추천되는 모든 방법들은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이라며 “이 가운데 경험적으로 나와 맞는 방법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새 걸로 준다, 앗싸!”아이돌그룹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은 빵집에서 앞 사람이 빵을 다 사가 버리자 이렇게 외친다. 다음 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게 돼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오히려 좋아한다. 그러면서 “너무 ‘러키(lucky)’하게 갓 나온 빵을 받게 됐다”며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라고 덧붙인다. 부정적 상황을 한순간에 긍정적으로 반전시키는 그에게 ‘충격’을 받은 팬들은 이를 두고 ‘원영적 사고’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영어 단어 ‘러키’와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를 붙인 말인 ‘러키비키’는 운이 좋은 상황에서 쓰는 유행어가 됐다.원영적 사고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탁월하다. 빵이 나오길 기다리는 상황에서 ‘시간 아깝다’는 부정적인 면보다 ‘더 맛있는 빵을 먹는다’는 긍정적인 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을 의식적으로 더 크게 인지하는 것이다.그렇다고 “난 괜찮아, 행복해”라며 억지로 우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정한 긍정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심리적 틀이자 사고방식인 ‘마인드셋(mindset)’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받을 때 ‘완전 러키잖아’로 생각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면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스트레스 잘 견디는 사람은 따로 있다사실 스트레스 받을 때 불평불만을 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르다. 그런데 평생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스트레스가 만성이 되고, 노화를 촉진해 수명도 짧아진다.라지타 신하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2021년 과학학술지 ‘네이처’의 정신의학 전문저널 중개정신의학(Translational Psychiatry)에 스트레스가 몸의 노화를 촉진해 수명을 단축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50세 성인 444명의 혈액을 채취해 연구한 결과 만성 스트레스가 높은 사람일수록 신체 노화 지표가 높았다. 또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 인슐린이 과다 분비돼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에 걸릴 위험도 컸다.●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긍정적 시선(나는 스트레스 받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성취를 이루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건강해지고 활력을 얻을 수 있다.→ 긍정적 효과를 내기 위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스트레스 마인드셋 척도(SMM)’의 일부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아도 신체 노화 지표와 인슐린 저항성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감정 조절 능력과 자기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감정에 휘둘리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이에 대처하는 심리적 능력이 있었다는 의미다. 연구에 참여한 재커리 하버넥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을 연습하면 몸의 노화를 늦추고, 조기 사망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 아닌 운동” 생각 바꾸자 나타난 변화그런데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기는 어렵다. 짜증, 분노, 불안, 우울 등을 조절하는 게 쉽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마인드셋을 바꾸는 게 효과적이다. 스트레스가 주는 화와 짜증에만 집중하지 말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건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다.실제로 몸 쓰는 직장 업무를 노동이 아닌 운동이라고 생각을 바꿨더니 진짜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났다. 에일리아 크럼 미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호텔 7곳에서 일하는 객실 청소 담당 여성 직원 78명을 모집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방 15개를 청소했는데, 매트리스를 들어 침구를 정리하고 욕실 타일 청소, 진공청소기 밀기 등 다양한 신체활동을 했다.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이들 중 호텔 4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만 청소의 열량 소모 효과를 알려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기준에 따라 15분당 매트리스 정리 40kcal, 욕실 청소 60kcal, 진공청소기 밀기 50kcal 등이 소모된다고 교육했다. 또 반드시 격렬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부지런히 움직여 하루 200kcal를 소모하면 살도 빠지고 건강해진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3개 호텔 직원에게는 이런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체중, 체지방, 허리·엉덩이 둘레, 혈압, 업무 외 운동량, 출퇴근 방법, 식단, 흡연·음주 습관 등을 기록했다.4주 뒤에 다시 똑같은 조사를 해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청소의 운동 효과에 대해 교육받은 직원들은 4주 전과 비교해 체중, 체지방, 허리와 엉덩이둘레, 혈압이 감소했다. 업무 외 운동량, 식단 등 나머지는 전부 그대로였고, 바뀐 건 ‘노동이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반면,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직원들은 4주 전과 같았다. 연구진은 “청소를 운동으로 여긴 직원들은 은연중에 더 활기차게 움직이는 등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인과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음가짐을 달리한 것만으로도 확실한 몸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했다.● 암에 대한 인식 바꾸니…통증도 줄어같은 일을 하고도 마음먹기에 따라 살이 빠지는 것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질병과 싸워 이길 가능성도 커진다. 크럼 교수는 이번에는 긍정적 사고의 전환이 암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알아봤다. 연구진은 최근 5개월 이내에 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초기 암 환자 350명에게 연구 동의를 얻었다. 이들을 반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는 10주에 걸쳐 10분 안팎의 짧은 동영상으로 암에 대처하는 사고방식을 바꾸는 교육을 진행했다. 나머지 절반에는 별다른 교육을 하지 않았다.교육에는 ‘암은 재앙이다’ ‘나는 나을 수 없다’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암은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병이다’ ‘오히려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 ‘내 몸은 치유 능력이 있다’ 등 긍정적으로 바꾸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만한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들의 임상 사례 설명도 제시했다. 또 치료 중 좌절이 찾아와도 어떤 생각을 하는 게 도움이 될지 등에 대해 스스로 다짐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10주 교육을 전후로 이들이 암을 대하는 자세, 신체적 고통 지수, 건강 관련 삶의 질 등을 측정했다. 그 결과 긍정적 사고를 교육받은 이들은 10주 전보다 몸과 마음의 총체적 건강 지수가 모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뿐 아니라, 신체 통증 지수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또 운동 등 암을 이기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도 늘어났다. 반면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환자들은 모든 측정 수치에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 “쟨 원래 저래” 불평할수록 헤어질 확률↑긍정적 사고의 힘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반응을 확대해석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 볼 줄 알기 때문이다.산자이 스리바스타바 미 오리건대 심리학과 교수는 평균 연애 기간이 1년 4개월인 20대 연인 108쌍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들의 성격, 연인 관계 만족도, 정서적 지지 정도, 갈등 해결 양상 등을 평가해 어떤 성향이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살펴봤다.조사 결과 낙관적 성향이 높을수록 연인 관계가 안정적이고 갈등을 빠르게 해결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더 만족한다고 했다. 여기서 낙관성이란 비현실적이고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현실 가능성 있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인지적 성향’을 의미한다. 1년이 지나 다시 확인해 봤더니, 연락이 닿은 101쌍 중 67쌍만 헤어지지 않고 계속 만나고 있었다. 이들의 성격을 헤어진 34쌍의 커플과 비교해 보니 역시나 낙관성 지수가 높은 이들이었다.그 이유는 낙관적인 사람들은 상대방의 의도를 더 좋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더 수용해 주고 지지해 준다고 받아들인다. 상대가 짜증이나 화를 내더라도 특정 상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분이 상한 것이고, 충분히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비관적인 사람들은 ‘쟤는 원래 성격이 이상하다’며 전반적 성향 탓으로 돌리고 불만을 품게 된다. 당연히 후자가 더 갈등을 겪기 쉽다. 연인뿐 아니라 가족,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게 뭐가 이로울지 ‘선택’의 문제그렇다고 억지로 좋은 점만 보라는 의미는 아니다. 긍정적 사고의 열쇠는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나에게 주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모두 인지하고 긍정성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달려 있다.크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주는 장점만 떠올리라고 교육받은 학생들과 스트레스의 장단점이 모두 있지만 장점을 바라보는 게 더 유익하다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 간 다른 점을 비교해 봤다. 즉각적으로는 두 집단 모두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생겼다. 그런데 8일 뒤 다시 살펴보니 장점만 떠올리라고 교육받은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다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역경에 부닥치자 바로 무너진 탓이다. 반면 장단점 중에 선택하라고 교육받은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효과가 여전히 이어졌다.이처럼 스트레스의 장단점을 모두 알면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재평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내 생각을 판단하는 메타인지가 생기는 셈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돼 알지 못했던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더 크게 느끼기로 선택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스트레스가 주는 또 다른 긍정적인 가치가 뭔지 생각해 보고, 이를 긍정적인 정서로 연결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그러면 스트레스를 과대 해석하는 실수를 줄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호텔 청소 직원이 ‘청소가 너무 힘들고 짜증 난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가’까지 가는 것은 스트레스를 키우는 태도다. 반면 ‘일이 힘들지만,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하니 건강해지겠지’라는 긍정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좋은 기분으로 연결한다면 스트레스에 대한 메타인지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윤 교수는 “결국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유지하는 비결은 언어 습관에 달려 있다”며 “내 인생이 불행하다는 나쁜 프레임을 씌우고, ‘셀프 가스라이팅’하는 부정적인 언어를 교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하던 일을 마무리 할 때 의식적으로 ‘오늘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꽤 괜찮았다’는 자체 평가를 내리는 것도 도움된다. 하루에 대한 기억을 나쁜 프레임으로 마무리하면 정말 나쁜 하루가 되어버릴 수 있다. 윤 교수는 “기껏 열심히 살고도 마지막에 ‘오늘 진짜 힘들고 짜증 나는 하루였어’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짜증 나는 하루를 산 게 되어 버린다”며 “‘오늘 진짜 훌륭했다’까진 못 가더라도 ‘나름 뿌듯했다’ ‘나쁘지 않았다’ 정도로만 끝낼 수 있어도 스트레스를 관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새걸로 준다, 앗싸!” 아이돌그룹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은 빵집에서 앞 사람이 빵을 다 사가 버리자 이렇게 외친다. 다음 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게 돼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오히려 좋아한다. 그러면서 “너무 ‘러키(lucky)’하게 갓 나온 빵을 받게 됐다”며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라고 덧붙인다. 부정적 상황을 한순간에 긍정적으로 반전시키는 그에게 ‘충격’을 받은 팬들은 이를 두고 ‘원영적 사고’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영어 단어 ‘러키’와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를 붙인 말인 ‘러키비키’는 운이 좋은 상황에서 쓰는 유행어가 됐다. 원영적 사고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탁월하다. 빵이 나오길 기다리는 상황에서 ‘시간 아깝다’는 부정적인 면보다 ‘더 맛있는 빵을 먹는다’는 긍정적인 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을 의식적으로 더 크게 인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난 괜찮아, 행복해”라며 억지로 우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정한 긍정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심리적 틀이자 사고방식인 ‘마인드셋(mindset)’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받을 때 ‘완전 러키잖아’로 생각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면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만성 스트레스… 빨리 늙고 일찍 죽는다 사실 스트레스 받을 때 불평불만을 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르다. 그런데 평생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스트레스가 만성이 되고, 노화를 촉진해 수명도 짧아진다. 라지타 신하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2021년 과학학술지 ‘네이처’의 정신의학 전문저널 중개정신의학(Translational Psychiatry)에 스트레스가 몸의 노화를 촉진해 수명을 단축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50세 성인 444명의 혈액을 채취해 연구한 결과 만성 스트레스가 높은 사람일수록 신체 노화 지표가 높았다. 또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 인슐린이 과다 분비돼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에 걸릴 위험도 컸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아도 신체 노화 지표와 인슐린 저항성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감정 조절 능력과 자기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감정에 휘둘리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이에 대처하는 심리적 능력이 있었다는 의미다. 연구에 참여한 재커리 하버넥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을 연습하면 몸의 노화를 늦추고, 조기 사망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노동 vs 운동’ 어떤 생각이 도움 될까 그런데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기는 어렵다. 짜증, 분노, 불안, 우울 등을 조절하는 게 쉽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마인드셋을 바꾸는 게 효과적이다. 스트레스가 주는 화와 짜증에만 집중하지 말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건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실제로 몸 쓰는 직장 업무를 노동이 아닌 운동이라고 생각을 바꿨더니 진짜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났다. 에일리아 크럼 미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호텔 7곳에서 일하는 객실 청소 담당 여성 직원 78명을 모집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방 15개를 청소했는데, 매트리스를 들어 침구를 정리하고 욕실 타일 청소, 진공청소기 밀기 등 다양한 신체활동을 했다.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이들 중 호텔 4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만 청소의 열량 소모 효과를 알려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기준에 따라 15분당 매트리스 정리 40칼로리, 욕실 청소 60칼로리, 진공청소기 밀기 50칼로리 등이 소모된다고 교육했다. 또 반드시 격렬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부지런히 움직여 하루 200칼로리를 소모하면 살도 빠지고 건강해진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3개 호텔 직원에게는 이런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체중, 체지방, 허리·엉덩이둘레, 혈압, 업무 외 운동량, 출퇴근 방법, 식단, 흡연·음주 습관 등을 기록했다. 4주 뒤에 다시 똑같은 조사를 해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청소의 운동 효과에 대해 교육받은 직원들은 4주 전과 비교해 체중, 체지방, 허리·엉덩이둘레가 감소하고 혈압이 낮아졌다. 업무 외 운동량, 식단 등 나머지는 전부 그대로였고, 바뀐 건 ‘노동이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반면,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직원들은 4주 전과 같았다. 연구진은 “청소를 운동으로 여긴 직원들은 은연중에 더 활기차게 움직이는 등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인과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음가짐을 달리한 것만으로도 확실한 몸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했다.● 장수 커플의 비결은 낙관성? 긍정적 사고의 힘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반응을 확대해석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산자이 스리바스타바 미 오리건대 심리학과 교수는 평균 연애 기간이 1년 4개월인 20대 연인 108쌍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들의 성격, 연인 관계 만족도, 정서적 지지 정도, 갈등 해결 양상 등을 평가해 어떤 성향이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살펴봤다. 조사 결과 낙관적 성향이 높을수록 연인 관계가 안정적이고 갈등을 빠르게 해결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더 만족한다고 했다. 여기서 낙관성이란 비현실적이고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현실 가능성 있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인지적 성향’을 의미한다. 1년이 지나 다시 확인해 봤더니, 연락이 닿은 101쌍 중 67쌍만 헤어지지 않고 계속 만나고 있었다. 이들의 성격을 헤어진 34쌍의 커플과 비교해 보니 역시나 낙관성 지수가 높은 이들이었다. 그 이유는 낙관적인 사람들은 상대방의 의도를 더 좋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더 수용해 주고 지지해 준다고 받아들인다. 상대가 짜증이나 화를 내더라도 특정 상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분이 상한 것이고, 충분히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비관적인 사람들은 ‘쟤는 원래 성격이 이상하다’며 전반적 성향 탓으로 돌리고 불만을 품게 된다. 당연히 후자가 더 갈등을 겪기 쉽다. 연인뿐 아니라 가족,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한 ‘메타인지’ 필요 그렇다고 억지로 좋은 점만 보라는 의미는 아니다. 긍정적 사고의 열쇠는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나에게 주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모두 인지하고 긍정성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달려 있다. 크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주는 장점만 떠올리라고 교육받은 학생들과 스트레스의 장단점이 모두 있지만 장점을 바라보는 게 더 유익하다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 간 다른 점을 비교해 봤다. 즉각적으로는 두 집단 모두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생겼다. 그런데 8일 뒤 다시 살펴보니 장점만 떠올리라고 교육받은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다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역경에 부닥치자 바로 무너진 탓이다. 반면 장단점 중에 선택하라고 교육받은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효과가 여전히 이어졌다. 이처럼 스트레스의 장단점을 모두 알면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재평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내 생각을 판단하는 메타인지가 생기는 셈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돼 알지 못했던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더 크게 느끼기로 선택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스트레스가 주는 또 다른 긍정적인 가치가 뭔지 생각해 보고, 이를 긍정적인 정서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과대 해석하는 실수를 줄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호텔 청소 직원이 ‘청소가 너무 힘들고 짜증 난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가’까지 가는 것은 스트레스를 키우는 태도다. 반면 ‘일이 힘들지만,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하니 건강해지겠지’라는 긍정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좋은 기분으로 연결한다면 스트레스에 대한 메타인지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윤 교수는 “결국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유지하는 비결은 언어 습관에 달려 있다”며 “내 인생이 불행하다는 나쁜 프레임을 씌우고, ‘셀프 가스라이팅’하는 부정적인 언어를 교정해야 한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부부는 살면서 닮아간다고들 한다. 같은 일로 울고 웃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생활 환경에서 살아가고, 서로 같은 표정을 지은 결과 얼굴에 비슷한 노화의 흔적이 나타난다는 이유에서다. 그럴듯한 설명으로 인해 부부끼리 닮아간다는 말은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하지만 부부가 닮아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나와 닮은 사람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한 거다. 부부는 결혼 초기에 가장 닮았다가 시간이 갈수록 얼굴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 “혹시 남매?” 처음부터 닮은 사람과 결혼한다‘부부는 서로 닮아간다’는 믿음은 1987년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의 ‘배우자의 신체적 외모 수렴’이라는 연구에서 시작됐다. 당시 실험참가자 110명에게 부부 12쌍의 결혼식 사진과 25년 후 사진을 보여주고,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 비교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실험참가자들은 결혼할 때보다 25년 후 부부의 얼굴이 더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시간이 갈수록 부부가 닮아간다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추후 다른 연구자들이 이 내용을 과학적으로 재검증하려 해봤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미칼 코신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부부 517쌍을 대상으로 다시 제대로 검증해 보기로 했다. 남편과 아내가 결혼한 지 2년 이내에 찍은 사진 1장과 결혼 후 20~69년 후에 찍은 사진 1장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부부 517쌍의 평균 결혼 기간은 49년이었다. 이번에는 부부가 얼마나 닮았는지 분석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썼다. 먼저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안면 인식 인공지능(AI)을 활용했고, 사람들 눈엔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참가자 153명에게 두 부부가 얼마나 닮았다고 느끼는지 물었다. 만약, 부부가 점점 닮아간다는 가설이 맞으면, 결혼 기간이 길어질수록 닮은꼴 수치가 점차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AI 분석과 사람의 주관적 평가 모두에서 결혼 후 20~69년 차 평균 닮은꼴 지수보다 결혼 초 닮은꼴 지수가 더 높았다. 부부가 시간이 갈수록 더 닮게 된다는 말이 틀렸다는 의미다.아래 그래프는 AI가 평가한 부부의 닮은꼴 지수다. 파란색 막대는 결혼 초 닮은꼴 지수, 초록색 막대는 각각 결혼 20~69년 이후 닮은꼴 지수를 의미한다. 가장 왼쪽 그래프는 전체 평균을 나타내는데, 결혼 초 닮은꼴 지수가 더 높게 나타났다. 결혼 40~49년 차, 60~69년 차 부부를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결혼 초 얼굴이 결혼 수십 년 후 얼굴보다 서로 더 닮은 것으로 나타났다.아래 그래프는 사람의 주관적 평가 결과다. 결혼 39년 차까지는 점차 닮아가다가, 오히려 결혼 기간이 40년 이상 길어질수록 덜 닮아 보인다는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나 가치관 등에 의해 자신의 개성이 얼굴에 더 드러나 차이가 더 벌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그런데 여기서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애초부터 서로 닮은 사람을 배우자로 택한다는 것이다. 그래프에 표시된 가운데 점선은 가족이 아닌 낯선 사람들 간 닮은꼴 지수 평균을 의미한다. 모든 그래프에서 닮은꼴 지수 막대가 점선보다 높이 솟아있다는 것은 부부끼리 평균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세상의 모든 부부가 얼굴이 닮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나와 반대의 외모, 성격에 끌리는 경우도 많다. 배우자를 택할 때 나에게 없는 면모를 원하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용하기도 해서다. 그러나 코신스키 교수는 “때로는 반대에 끌릴 수도 있지만, 예외적 현상일 뿐 규칙이라고 볼 순 없다”고 했다.● 나와 22% 닮은 사람에게 끌린다나와 비슷한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을 유사성 효과(similarity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상대가 나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을 때 더 가깝게 느끼게 되고 친밀감을 빨리 형성할 수 있다. 또 나와 닮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편향이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면 많이 닮을수록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는 걸까? 오히려 연애나 결혼 상대를 고를 때는 나를 닮더라도 ‘적당히’ 닮은 사람을 선호한다고 한다. 얼마나 적당해야 이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걸까. 노르웨이 오슬로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사귄 기간이 2년 이상 된 커플 10쌍을 모집해서 서로의 얼굴을 합성해 보는 실험을 했다. 연인 사이인 남녀 각각의 얼굴 사진에서 머리카락, 턱과 귀의 윤곽, 머리 크기 등은 그대로 둔 채 눈코입에만 상대방의 얼굴을 미묘하게 합성시켰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의 얼굴에서 나머지는 그대로 두고 눈코입에만 여자친구의 얼굴을 살짝 합성하는 식이다. 이때 원래 얼굴과 상대 연인의 얼굴이 합성된 수준을 11%, 22%, 33%로 조금씩 높여가며 변화를 줬다. 이와 대조해 보기 위해 이번에는 연인 얼굴에 같은 연령대 표준 남녀 얼굴을 각각 합성한 사진도 따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 눈코입에 해당 연령층 표준 여성 얼굴의 특징을 합성하는 식이다. 이번에도 합성 수준을 11%, 22%, 33%로 다양화했다. 그리고 각자의 파트너에게 조금씩 변형된 얼굴 사진들 가운데 어떤 사진이 가장 매력적인지(섹시한지) 골라보라고 했다. 그 결과 가장 매력적으로 뽑힌 사진 1위는 자신과 22% 닮은 상대방의 얼굴이었다. 그다음은 동성 또래의 표준 얼굴 특징을 각각 33%, 22% 비율로 합성해 놓은 사진이었다. 놀라운 것은 선호도 조사에서 나와 33% 닮은 사진은 꼴찌였다. 나와 너무 닮은 얼굴은 오히려 선호하지 않았던 것이다.연구진은 22%란 수치에 대해 “나와 은근히 닮았지만, 노골적으로 닮진 않아 적당히 매력적인 정도”라고 봤다. 오히려 너무 닮으면 실제로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이일 수 있어서 피하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안 닮으면 매력을 못 느낀다는 설명이다. 또 연구진은 “연인의 얼굴이 객관적으로 잘 생기고, 예쁜 것보다 자신과 비슷할 때 더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정서는 점차 닮아간다…더 ‘센’ 사람을 기준으로외모는 애초부터 닮은 사람을 고르는 게 맞지만, 정서적으로는 점차 닮아간다는 말이 맞다. 시간이 갈수록 ‘끼리끼리’ 어울리는 게 맞는 말인 셈이다. 미 노스웨스턴대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평균 22개월 이상 교제한 연인 60쌍을 대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나 정서적으로 비슷해지는지 알아봤다. 우선 이들을 대상으로 연인 관계의 만족도, 상대적인 권력관계, 성격을 측정했다. 상대적인 권력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내 연인은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내 연인은 내가 참석하는 사교 모임에 영향을 미친다’ 등이 포함됐다. 또 최근 겪은 일 중에 기분이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에 대해 어떤 감정적 반응을 보였는지 자세히 말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요즘 걱정거리는 무엇인지,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설명하는 식이다. 그리고 6개월 뒤에 같은 작업을 한 번 더 똑같이 실시했다. 그 사이에 21쌍이 헤어졌고, 1쌍은 중도 하차해 38쌍만 남게 됐다.이들의 6개월 전후 결과를 비교해 보니 그새 연인 사이 정서적 유사성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일이나 안 좋은 일을 겪을 때 보이는 감정적인 반응이 더 비슷해졌다는 얘기다. 1차 조사할 무렵에도 이미 22개월 이상 교제한 연인을 대상으로 했기에 이미 정서적으로 꽤 높은 유사성이 발견됐지만, 2차 조사에서는 그 폭이 더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둘 중 기가 더 ‘센’ 사람의 정서에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둘 중 권력이 더 낮은 사람은 더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살피게 되고, 반응을 따라하고, 기분을 맞춰주다가 결국 두 사람이 비슷해지게 됐다. 어찌보면 한쪽이 눈치보며 비위를 맞추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정서적 유사성이 높아지면, 결과적으로는 둘 사이의 관계 만족도가 올라가고, 장수 커플이 되는 비결이 된다. 실제로 1차 조사 이후 헤어진 커플들은 2차 조사까지 연인 관계를 유지한 다른 커플들과 비교해 정서적 유사성이 낮았다. 결국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커플들은 이미 외모가 어느정도 닮아있을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점점 더 비슷해 진다. 이 때문에 ‘부부의 외모는 시간이 갈수록 닮아 간다’는 일부의 주장이 30년 이상 정설처럼 여겨진 것은 아닐까.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눈부신 모래, 일렁이는 물결, 쨍한 햇살….기다림은 길었으나 행복한 여름휴가는 언제나 쏜살같이 지나간다. 눈감아도 아른거리는 휴가지의 여유로운 풍경은 사라지고, 어느새 몸은 북적이는 만원 지하철과 고단한 일터로 향하고 있다. 당연히 휴가를 길게, 자주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직장인들은 1년에 쓸 수 있는 연차가 정해져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다 못 쓰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근로자 휴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들의 가용 연차 일수는 평균 16.6일이었지만, 실제로 사용한 연차는 12.7일이었다. 그렇다면 1년에 며칠 없는 휴가를 길게 몰아 써서 충분히 놀다 오는 게 좋을까, 아니면 조금씩 쪼개 짧은 휴가를 여러 번 가는 게 좋을까. ‘작고 소중한’ 휴가를 최대한 만족스럽게 쓸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자.● 휴가 효과, 지속 기간은?두 방법 중에 뭐가 더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 알아보려면 먼저 휴가가 주는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진에 따르면, 번 아웃을 겪는 직장인은 휴가를 다녀오더라도 업무 복귀 3일 차에 휴가 효과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경우엔 어떨까. 안타깝게도 잘해야 최대 2주가 지나면 휴가 효과가 사라진다. 네덜란드 로테드람에라스무스대 연구진은 직장인 1530명을 대상으로 휴가를 얼마나 다녀왔는지, 삶에서 느끼는 행복도 수준은 어떤지 10개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조사했다. 이 기간에 휴가를 한 번도 가지 않은 사람은 556명이었고, 휴가를 하루라도 다녀온 사람은 974명이었다. 휴가 다녀온 일수에 따라 휴가 기간은 5일 미만, 1주, 2주, 3주 등으로 구분했다. 휴가를 가는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여행 전에 특히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다. 휴가가 예정된 사람들이 여행을 기대하면서 평소보다 행복감을 더 느껴서다. 그러나 휴가 이후에는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과 휴가를 가지 않은 사람들 간 행복 지수에 차이가 없었다. 휴가를 다녀왔든, 다녀오지 않았든 간에 출근해서 일하는 처지는 똑같아졌기 때문이다.다만 ‘휴가지에서 아주 편안하게 잘 보냈다’고 답한 521명은 업무에 복귀하고 나서도 행복 지속 기간이 2주로 길게 나타났다. 물론 2주 이후면 행복 효과는 감소했다. 심지어 이런 결과는 휴가 기간의 길고 짧음과 관계없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아무리 충분하게 쉬고 오더라도 최대 2주면 휴가가 주는 행복감이 사라지고 휴가 가기 전과 똑같은 상태가 됐다. 바꿔 말하면 휴가의 길이와 상관없이 만족스러운 휴가를 보내고 오면 2주 정도는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니 휴가’ 자주 가는 게 더 유리이러한 연구 결과에 따라 이론상으론 2주마다 휴가를 가면 계속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2주마다 휴가를 주는 회사는 없으므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짧은 여행을 최대한 자주 가는 것이다. 휴가 길이와 휴가 효과 지속 기간은 큰 상관이 없으니, 휴가의 빈도를 늘려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주일 통째로 휴가를 내는 것보다 주말에 1, 2일 연차를 붙여 여러 번 쉬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번 아웃 근로자의 휴가 효과를 연구한 미나 웨스트먼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조직행동학 교수는 “짧은 휴가를 최대한 자주 갈수록 번 아웃 증상도 감소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휴가에서 돌아오면 행복감이 급속히 사라지긴 하지만, 휴가 중에는 몸과 마음의 여러 긍정적인 지수가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라드보드대 행동과학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휴가 중인 직장인의 기분, 삶의 만족감, 건강 상태, 에너지 수준, 긴장도 등은 평상시와 비교해 급격히 좋아졌다. 따라서 휴가를 자주 간다면, 평상시보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다. ● 남는 건 사진뿐? 진짜 그럴까짧은 휴가를 자주 가는 것 외에도 휴가로 인한 행복도를 오래 유지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 좋았던 기억을 의도적으로 계속 곱씹는 것이다. 휴가지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몸과 마음의 긍정적인 기운이 사라지는 이유는 곧바로 일상으로 복귀해 휴가지에서 좋았던 기분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았던 추억을 곱씹는 회상 단계에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긍정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런 의식적인 과정을 ‘향유하기(savoring)’라고 한다. 좋은 추억이나, 기분 좋았던 일을 의도적으로 하나하나 떠올려 곱씹는 사고 과정을 말한다. 휴가지에서 가져온 기념품이나, 사진을 보면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향유하기를 통해 행복감을 증진하는 방법을 20년 동안 연구해 온 프레드 브라이언트 미국 로욜라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념품이나 사진보다 더 도움 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브라이언트 교수는 실험 참가자 65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누고, 하루에 2번, 10분씩 의도적으로 특정 기억을 떠올려 곱씹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좋은 추억이 있는 사진이나 기념품을 보면서 이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도록 했고, 두 번째 그룹에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좋은 추억이나 기분 좋았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해 보라고 했다. 세 번째 그룹에는 최근의 걱정거리들에 대해 생각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행복 지수를 측정했다. 당연히 행복 지수가 가장 낮은 그룹은 걱정거리를 생각한 세 번째 그룹이었다. 놀라운 점은 기념품이나 사진 없이 생각만 떠올린 그룹의 행복도가 가장 높았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좋은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을 보면 더 행복할 것 같은데 말이다.그 이유는 눈에 보이는 사진이나 물건에 국한되지 않고 당시 기억을 자세히 떠올리려고 뇌를 자극하면, 더 다양하고 생생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서다.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를수록 그날의 좋았던 기분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반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매개체가 있으면 오히려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한계가 생긴다. ● 휴가의 추억을 오래 향유하려면행복한 기억을 곱씹는 다양한 방법이 이외에도 많다. 앞서 연구에서는 비록 효과가 덜했지만, 사진이나 기념품을 보는 것은 여전히 좋은 방법이다. 다만, 스트레스가 많은 장소(회사 사무실)에 기념품을 갖다 놓거나, 업무용 PC 바탕화면으로 휴가 중에 찍은 사진을 설정하지 않는 편이 더 좋다. 업무 스트레스가 좋았던 추억을 상쇄해 버릴 수 있어서다. 추억이 담긴 사진은 긴장을 풀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 보는 게 더 낫다.향을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후각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영역은 연결돼 있다. 그래서 특정한 향을 맡게 되면, 뇌에선 그와 연계된 기억과 정서를 떠올리게 된다. 호텔에서 썼던 세면용품과 같은 제품을 써보는 등 여행지에서 맡았던 향을 맡으면 당시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타는 효과가 있다. 물론 여행지에서 들었던 음악 또는 특정 소리를 다시 듣거나, 현지 음식 다시 먹어보기 등을 통해 시각, 미각 등 다양한 자극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휴가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짜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예를 들어 새벽에 공항에 도착해 바로 출근하는 등 휴가에서 돌아와 정신없이 일상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긍정적인 정서가 훨씬 더 급격히 사라지게 된다. 가능하다면 휴가에서 돌아와 하루라도 쉬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정을 짜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패션 트렌드와 혁신적인 섬유 기술을 소개하는 전시회 ‘프리뷰 인 서울 2024’가 21∼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올해로 25회를 맞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친환경 리사이클(재활용) 제품 등 섬유·패션 산업의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국내외 기업 576곳이 부스 888개를 꾸려 역대 최고 규모로 치러진다. 지난해에는 국내외 507개 기업에서 746개 부스를 운영했다. 전시 품목은 섬유 원사, 직물, 부자재, 패션 의류 등이다. 온·오프라인 행사를 모두 포함해 총 3만3000여 명이 참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에는 해외 글로벌 바이어들이 다수 초청됐다. 버버리, 휴고보스, 보테가베네타, 알렉산더왕, 랄프로렌, 슈프림, 룰루레몬, 리닝, 스피리츄얼 갱스터, 클럽모나코 등 다양한 브랜드가 참여한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관계자는 “유럽, 미주, 아시아 등에 기반을 둔 해외 바이어들은 한국산 소재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데다 실질적인 구매 의사결정권까지 갖고 있다”고 초청 배경을 설명했다. 행사의 콘셉트는 ‘비욘드 더 웨이브’로, 글로벌 불확실성과 위기를 넘어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는 의미다. 특히 천연자원 고갈에 대비한 친환경 기술을 개발해 지속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전시장 구성과 운영에서 인쇄형 안내 책자 대신 전자형으로 대체하고, 플라스틱 대신 종이 출입증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시 부스 등은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로 만든다. 전시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 275곳은 친환경 기능성 원사나 부자재, 의류·액세서리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생분해 기술이나 인조 가죽·모피 제품 등이 포함된다. 다양한 볼거리도 마련돼 있다. 새로 도입한 ‘AI 패션테크관’에선 인공지능(AI) 기술을 패션에 접목해 섬유·패션 산업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할 예정이다. 국내외 섬유 패션 분야의 새로운 기술과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다채로운 세미나도 총 15회에 걸쳐 진행된다. 한국패션산업협회에서 주관하는 ‘2024 트렌드 페어’도 동시에 열린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왜 그랬지? 잘 모르겠어요.”김예지 선수가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사격 25m 권총 결선 진출에 실패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극찬으로 전 세계적 관심 속에 금메달을 노리고 출전한 그는 어이없는 실수로 주 종목에서 탈락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격발하지 못해 한 발이 아예 0점 처리돼서다. 그는 “원래 잘 안 나오는 실수인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올림픽 때마다 큰 무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하는 선수들이 종종 나온다. 허웅 선수는 남자 기계체조 안마 결선에서 다리가 기구에 걸려 떨어지는 뜻밖의 실수를 하기도 했다. 다시 기구에 올라 경기를 이어 갔지만 결국 8명 중 7위에 그쳤다. 사실 연습 때는 잘 하다가 실전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하면 누구보다 선수 본인이 가장 크게 당황할 것이다. 혹독한 훈련과 엄청난 연습량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심리적 압박감이 크길래 이런 일이 일어날까. ● 압박감에 ‘숨 막힘’ 현상스포츠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초킹(choking·숨 막힘)’이라고 한다. 압박적인 상황에서 각성·불안 수준이 과도하게 올라가서 운동수행 능력이 급작스럽게 저하되는 것을 의미한다. 불안감에 압도돼 몸이 평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특징 때문에 국내 학계에서는 초킹을 ‘얼어붙음’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골프나 야구에서 압박감 때문에 동작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현상을 겪는 입스(yips)도 유사한 개념이다.초킹을 경험하는 선수는 평소엔 하지 않던 실수를 하는 등 갑자기 경기력이 뚝 떨어진다. 경기 시작 전에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경기에 집중이 안 되고, 여유가 없어져 급하게 움직이거나, 그동안 훈련해 온 것들을 하얗게 잊어버리고 초보자 같은 동작이 나온다.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거나, 손이 떨려 경기를 방해받기도 한다. 초킹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우선, 자기 초점 이론(self-focus theory)에서는 선수가 자기 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과도하게 모니터링하는 것을 문제로 본다. 복잡한 신체 운동은 훈련을 통해 무의식적이고, 자동화된 행동으로 나올 때 가장 결과가 좋다. 그런데 긴장감으로 인해 동작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 집중하게 되면, 연습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자동으로 나오던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게 된다. 이는 피아니스트가 외운 곡을 자동으로 연주하다가 갑자기 손가락 하나하나에 주의 집중하며 순서를 곱씹으면, 손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며 연주가 갑자기 잘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또 다른 이유는 경기 외 요소에 주의를 빼앗기는 방해 이론(distraction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외에 각종 잡생각, 시끄러운 군중의 소음 등으로 주의가 흐트러지면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주의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 외적 요소에 주의를 빼앗기면, 주의 용량의 한계를 초과해 버려 정작 경기에 집중력을 온전히 쏟지 못한다.● 여론 관심 높을수록 각성 과다사실 스포츠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각성 수준이 너무 높아지면 성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1908년 미국 심리학자인 로버트 여키스와 존 도슨이 주장한 여키스-도슨 법칙(Yerkes-Dodson law)에 따르면, 각성과 성과의 관계는 거꾸로 된 U자 그래프를 그린다. 처음엔 각성 수준이 높아질수록 성과가 좋아지지만, 적정 수준을 넘어버리면 오히려 성과가 떨어진다.스포츠 선수에게 각성이 높아지기 쉬운 조건은 대중이나 언론의 관심이 과도하게 높을 때다. 물론 경기장 관객의 응원을 받을 때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켜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심리적 압박이 큰 상황일 땐 이에 압도되는 역효과가 일어난다. 시간, 감정, 에너지, 돈을 투자하며 자신을 응원해 준 이들을 실망하게 할까 봐 부담을 느껴서다.이런 이유로 홈 관중이 많은 경기에서 일부 선수들은 ‘홈 어드벤티지’ 대신 초킹을 겪기도 한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정확도에 더 신경을 쓰게 되면서 동작 하나하나를 모니터링하게 될 수 있어서다. 그러면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자동화된 운동감각에 방해가 되면서 경기력이 떨어진다.● 이름값 못할까 봐 부담명성이 높은 선수일수록 심리적 압박감이 클 수 있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여자 체조 3관왕에 올랐지만,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심리적 압박감을 이유로 기권한 미국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가 대표적이다. 당시 전 세계에서 ‘체조 여왕’ 바일스가 5개 체조 종목 금메달 싹쓸이에 성공할 것인가를 두고 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바일스는 “위와 아래를 구분할 수 없고, 몸을 조금도 통제할 수 없다”며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느낌”이라는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축구 경기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거물급 스포츠 스타들이 결정적 순간에 실수할 확률이 높다. 실패하면 명성에 금이 가는 등 잃을 게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스포츠과학학교 연구진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1982~200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1976~2004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1996~2007년)에서 발생한 페널티킥 366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슈퍼스타’ 선수일수록 페널티킥 실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슈퍼스타의 기준은 FIFA 올해의 선수상 등 공식 수상 경력이 있는 선수로 한정했다. 슈퍼스타들의 페널티킥 성공률은 65%였다. 그런데 수상 경력이 없는 일반 선수들의 성공률은 73.6%로 더 높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페널티킥 당시엔 수상 경력이 없었지만, 훗날 상을 받게 된 ‘예비 슈퍼스타’ 선수들의 성공률은 88.9%에 달했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연구진은 이미 슈퍼스타인 선수들과 나중에 상을 받게 되는 예비 슈퍼스타 선수들의 기량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대신 페널티킥 당시 이들에게는 이름값에 따른 명성과 대중의 기대치가 달랐다는 차이가 있다. 연구를 진행한 게이르 조르데 교수는 “대중의 기대감으로 경기의 결정적 순간에 심리적 압박을 받은 정도에 따라 성과가 갈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이 외에도 마지막 한 번의 기회에 승부가 걸렸거나, 이에 따른 명예나 상금 등 보상이 클수록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할 확률이 높다. ‘한 번에 모든 게 걸렸다’고 생각할수록 압박이 심해져서다. 미 오리건주립대 연구팀은 2002~2010년까지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에서 경기 종료 1분 전 점수 차 1점 이하인 급박한 상황에서 선수들의 자유투 성공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경기중 자유투 성공률보다 경기 종료 1분 전 접전 상황에서 자유투 성공률이 5~10%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미 아이다호대 연구팀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004~2012년 경기 결과를 분석한 결과, 대회 상금이 클수록 선수들이 마지막 18번 홀에서 퍼트를 실수할 확률이 높았다. ● 나만의 마음 안정 루틴 개발하면 도움초킹을 극복하는 방법은 아직까진 전 세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연구 중이다. 이 가운데 일부 효과가 입증된 방법은 경기 전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되는 개인별 맞춤 루틴을 개발하는 것이다.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대 연구팀은 과도하게 긴장하는 볼링 선수들에게 개인이 원하는 행동들을 조합해 경기 전 시행하는 루틴을 지도해줬더니 성과가 나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경기 시작 전 심호흡, 경기에 대한 시각화 시뮬레이션, 스윙 동작 연습, 긍정적인 확언(예: “할 수 있다”) 반복 등이 포함됐다. 올림픽 펜싱 경기에서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할 수 있다” “의심하지 마” 등을 외치는 것도 압박감을 덜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 금메달리스트 박태준 선수도 스마트폰 배경으로 설정한 ‘이까짓 일로 죽기야 하겠냐’ ‘시간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긍정 문구를 공개하기도 했다. 또 바일스 선수는 도쿄 올림픽 기권 후 초킹을 극복하기 위해 경기가 있는 날 아침마다 심리치료사를 만나는 루틴을 만들었다고 직접 밝혔다.이 외에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동물 치료를 도입하기도 했다. 훈련받은 치료견인 4살짜리 골든레트리버 ‘비컨’을 파리에 데려와 선수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인간이 개와 교감할 때 안정된 뇌파가 나오고, 심신이 이완되는 호르몬 작용이 이뤄져 해외 병원에서는 치료견을 도입한 사례가 많다(지난 기사 참고: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자기애 수준이 높을수록 압박적인 상황에서 부담을 덜 느끼고 좋은 성과를 낸다는 점이다. 초킹의 개념을 처음 정의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거듭된 실험 연구를 통해 자기애가 높은 사람들이 긴장되는 상황에서 압박감을 덜 느낄 뿐 아니라, 성과도 좋다는 점을 발견했다. 자기애가 높은 이들은 자기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믿기에 자신감도 높기 때문이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기애란, 성격장애 수준의 나르시시스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평가와 관계없이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특성을 일부라도 갖고 있으면, 누군가를 실망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정도가 훨씬 덜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어쩌면 경기에 대한 압박감 극복의 출발점은 선수 자신이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두바이 초콜릿, 요거트 아이스크림, 아샷추(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 추가), 크루키(크루아상+쿠키), 생과일 하이볼….올해 상반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한 먹거리들이다. 먹고 입고 마시는 각종 트렌드에 민감한 ‘트민남(男)’ ‘트민녀(女)’들은 동나기 전에 사려고 ‘오픈런(매장 문 열자마자 뛰어가기)’을 하고,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유행이 뜨고 지지만, SNS에는 유행을 따르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 올린 인증샷이 넘쳐난다.유행뿐 아니라 내가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질투하고 비교하는 것도 트민남, 트민녀와 비슷한 맥락이다. 홀로 소외되는 것을 불안해 한다는 점이 같다. 예를 들어 금요일 오후 10시, 샤워하고 푹신한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다가 무심코 열어 본 SNS 앱에서 나 빼고 모인 친구들 사진을 봤다고 상상해 보자. 1분 전까진 천국 같았던 소파 위가 갑자기 외딴섬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누가 날 싫어하나?’ 하는 생각으로 복잡해지기도 한다.물론 사람들에게 소외당하는 상황이 즐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나 빼고’ 일어나는 일을 못 견뎌 하는 사람도 있다. 나만 빼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SNS를 강박적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단지 ‘인싸(인사이더)’가 되고 싶어서라고만 보기에는 속내가 꽤 복잡하다. 남들 하는 일에 꼭 끼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도대체 왜 그럴까.● 소외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소외당할까 봐 걱정하며 사는 건 요즘 사람만의 특징은 아니다. 2000년 전 고대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도 대세에서 소외될까 봐 불안해 했다. 키케로는 수도를 잠시 떠나 있을 때마다 하인을 시켜 중앙 정치 쟁점부터 스캔들, 가십 같은 자잘한 이야기까지 모조리 편지로 받아 봤다고 한다. 그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팀도 있었다. 일종의 인간 SNS를 둔 셈이다.디지털 시대 들어 이같이 오래된 두려움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말로는 소외불안증후군 또는 고립공포증후군이라고 한다. 나 혼자 소외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의미한다. 미국 기업가이자 ‘포모 사피엔스’ 저자 패트릭 맥기니스가 2004년 소비자의 조바심을 이용한 마케팅 용어로 처음 소개하며 알려졌다. 이후 심리학 분야에서 대인관계 소외감과 SNS 중독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흥미로운 점은 포모 증후군이란 용어가 국내에서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의 상승장을 혼자만 놓쳐 낙오될까 두려워하는 투자심리’로 쓰임이 변형됐다는 것이다. 소외를 두려워하는 핵심 감정은 같지만 ‘벼락거지(갑자기 된 거지, 벼락부자의 반대말처럼 쓰이는 신조어)’ 같은 경제적 열등감을 더 강조하고 있다.포모 증후군 같은 투자심리를 다룬 책 ‘살려주식시오’를 펴낸 박종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는 “포모라는 말이 국내에서는 원래 의미보다 더 심한 불안과 무기력감, 강박을 유발하는 의미로 변형됐다”며 “초조하고 쫓기게 만들어 한곳에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나 혼자잖아?” 뇌에선 비상 선포양상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소외 불안이 소비, 대인관계, 투자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이유는 집단에 소속돼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는 인간 기본 욕구와 관련돼 있어서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 욕구를 5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안전 욕구다. 1, 2단계에서 최소한의 생존 욕구가 채워지면 3단계로 소속감과 애정을 갈망한다. 신체적 생존 다음으로 중요한 사회적 생존 욕구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면 사회적 생존에서 낙오되는 강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실제로 뇌에서도 소외당하는 상황에 놓이면 생존 위협 신호로 인지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따갑거나 뜨거운 신체 통증에 반응하는 뇌 영역과 대인관계에서 소외됐을 때 반응하는 뇌 영역이 같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이 아플 때나 뇌는 똑같은 위급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그래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네이선 드월 미국 켄터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 결과 대인관계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타이레놀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를 먹으면 심적 고통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소외불안을 유독 많이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 상태를 살피고 공감하는 뇌 영역이 남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카를로 라이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차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소외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사진을 볼 때 뇌 오른쪽 중간측두회가 유독 활성화됐다. 이 영역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모니터링하는 데 관여한다. 연구진은 “다른 사람들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거기에 소속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삶에 불만족…나이와 관계 없이 나타나소외불안이 큰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고 많은 모임에 나가는 등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 우울감, 낮은 자존감 같은 심리적 결핍이 있을 수 있다. 모임에 못 나가면 불안해하고, 혼자 있을 땐 다른 사람들 뭐 하나 신경 쓰여 SNS를 확인하느라 편히 쉬지도 못한다.● 나도 포모 증후군?·내 친구나 지인들이 나를 빼놓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까 봐 걱정된다·주변을 신경 쓰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아 걱정된다·휴일에도 친구나 지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SNS를 계속 확인한다·약속된 모임에 빠지게 되면 불안하다·갑자기 잡힌 약속에 가지 못하면 신경이 쓰인다·친구나 지인들 소식을 접하지 못할 때 불안하다·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은 경험을 할까 두렵다자료: 소외불안증후군 척도 일부앤드루 프시빌스키 영국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소외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22~65세 2079명을 조사했다. 소외불안 수준과 함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대인관계나 자기 능력에 만족하는 수준은 어떤지, 평소 어떤 기분으로 지내는지를 측정했다.그 결과 전반적인 삶과 대인관계, 자기 능력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절, 우울, 불안,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도 소외불안 수준이 높았다. 미 휴스턴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비슷한 연구에서는 자존감이 낮고 ‘더 잘해야 한다’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이 높았다. 즉, 자신과 삶에 관련한 만족감이 전반적으로 낮을 때 외부 집단에 소속돼 안정감을 찾으려는 욕구가 높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두 연구에서 모두 이런 특징들이 SNS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발견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강해 식사나 운전 중, 잠자기 전후에 SNS 앱을 더 많이 켰다. 특히 잠자기 직전 SNS를 많이 해서 수면장애도 겪었다. 이런 결과는 우울, 불안을 더 강화한다.놀라운 점은 이런 현상이 유행에 민감하고 SNS를 많이 사용하는 10, 20대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휴스턴대 연구에서는 실험 참가자를 14~17세, 24~27세, 34~37세, 44~47세로 나눠 총 419명을 모집했는데 모든 그룹에서 이런 결과가 비슷하게 나타났다. 사람들에게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향은 나이와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소외불안의 핵심 문제는 ‘나는 중요한 존재인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 같은 질문일 수 있다. 자기 능력이나 존재 자체를 못마땅히 여기고 삶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는 유행을 따르고 SNS에 집착한들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우선 나만 낙오됐다는 느낌은 대부분 실제보다 왜곡된 경우가 많기에 불안감이 과장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인관계, 소비, 투자 등에서 남들과 비교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이지’ 하는 질투심, 소외감, 조바심을 느낀다면 자신이 소외불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상위 몇 %의 삶과 비교하며 ‘낙오됐다’고 여기는 함정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며 “하루하루 나아지는 내 모습을 스스로 칭찬해 주며 만족감과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앞서 소개한 휴스턴대 연구에서 또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연구진은 ‘더 잘해야 한다’며 자신을 모질게 몰아붙이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꿔 말하면 자기 연민(self compassion) 수준이 높으면 소외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자기 연민이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비난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친절하며 △실패하더라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시련이라 여기며 극복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애쓰며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균형 잡힌 시선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말한다.‘핵인싸(아주 인기가 많은 사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SNS에서 친분, 부(富), 행복을 과장해 ‘인싸력(力)’을 자랑하는 화려한 사진을 보면 뇌의 보상회로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쾌감, 부러움, 질투가 동시에 일어난다. 이런 느낌은 열등감, 초조함, 우울함까지 일으킬 수 있어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 교수는 “허세가 심한 사람의 SNS 계정을 차단하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나오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금요일 오후 10시, 지친 몸으로 귀가해 샤워하고 푹신한 거실 소파에 드러눕는 상상을 해 보자. 이제 가장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한다.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데 아뿔싸! 무심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을 연 게 잘못이었다. 그날 저녁 나만 빼고 모인 친구들 사진을 보고 말았다. 다들 세상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1분 전까진 소파 위가 천국 같았는데, 나 홀로 외딴섬에 고립된 느낌이다. 소외당하는 상황이 즐거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나만 빼고’ 일어나는 일을 못 견뎌 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없이 그들끼리만 돈독한 사이가 되진 않을지, 나는 모르는 이야깃거리로 소외당하지 않을지 걱정돼서다. 더 나아가 ‘누가 날 싫어하나?’ ‘내가 뭘 놓쳤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나 빼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SNS를 강박적으로 확인하기도 한다. 먹고 입고 마시는 각종 트렌드에 민감한 ‘트민남(男)’ ‘트민녀(女)’도 비슷하다. 다른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에서 내가 소외될까 걱정한다. 올 상반기만 해도 SNS에서 두바이 초콜릿, 생과일 하이볼, 요거트 아이스크림같이 빠르게 뜨고 진 먹거리 인증샷이 수없이 올라왔다. 어떤 이들은 ‘인싸템(인사이더+아이템·인기 많은 사람들이 쓰는 물건)’을 사려고 수십 km 떨어진 가게까지 가서 ‘오픈런(개장과 동시에 매장으로 뛰어들기)’을 하거나,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대세를 따르는 데 진심이란 말인가. 단지 ‘인싸’가 되고 싶어서라고만 보기에는 속내가 꽤 복잡하다. 남들 하는 일에 꼭 끼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도대체 왜 그럴까.● 소외감이 만들어낸 공포 소외당할까 봐 걱정하며 사는 건 요즘 사람만의 특징은 아니다. 2000년 전 고대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도 대세에서 소외될까 봐 불안해 했다. 키케로는 수도를 잠시 떠나 있을 때마다 하인을 시켜 중앙 정치 쟁점부터 스캔들, 가십 같은 자잘한 이야기까지 모조리 편지로 받아 봤다고 한다. 그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팀도 있었다. 일종의 인간 SNS를 둔 셈이다. 디지털 시대 들어 이같이 오래된 두려움에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말로는 소외불안증후군 또는 고립공포증후군이라고 한다. 나 혼자 소외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의미한다. 미국 기업가이자 ‘포모 사피엔스’ 저자 패트릭 맥기니스가 2004년 소비자의 조바심을 이용한 마케팅 용어로 처음 소개하며 알려졌다. 이후 심리학 분야에서 대인관계 소외감과 SNS 중독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흥미로운 점은 포모 증후군이란 용어가 국내에서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의 상승장을 혼자만 놓쳐 낙오될까 두려워하는 투자심리’로 쓰임이 변형됐다는 것이다. 소외를 두려워하는 핵심 감정은 같지만 ‘벼락거지(갑자기 된 거지, 벼락부자의 반대말처럼 쓰이는 신조어)’ 같은 경제적 열등감을 더 강조하고 있다. 포모 증후군 같은 투자심리를 다룬 책 ‘살려주식시오’를 펴낸 박종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는 “포모라는 말이 국내에서는 원래 의미보다 더 심한 불안과 무기력감, 강박을 유발하는 의미로 변형됐다”며 “초조하고 쫓기게 만들어 한곳에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유발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나 혼자잖아?” 뇌에선 비상 선포 양상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소외 불안이 소비, 대인관계, 투자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이유는 집단에 소속돼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는 인간 기본 욕구와 관련돼 있어서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 욕구를 5단계로 나눴다. 1단계는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안전 욕구다. 1, 2단계에서 최소한의 생존 욕구가 채워지면 3단계로 소속감과 애정을 갈망한다. 신체적 생존 다음으로 중요한 사회적 생존 욕구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면 사회적 생존에서 낙오되는 강렬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뇌에서도 소외당하는 상황에 놓이면 생존 위협 신호로 인지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따갑거나 뜨거운 신체 통증에 반응하는 뇌 영역과 대인관계에서 소외됐을 때 반응하는 뇌 영역이 같다. 몸이 아플 때나 마음이 아플 때나 뇌는 똑같은 위급 상황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래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네이선 드월 미국 켄터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 결과 대인관계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타이레놀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를 먹으면 심적 고통이 완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소외불안을 유독 많이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 상태를 살피고 공감하는 뇌 영역이 남들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카를로 라이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차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소외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사진을 볼 때 뇌 오른쪽 중간측두회가 유독 활성화됐다. 이 영역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모니터링하는 데 관여한다. 연구진은 “다른 사람들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거기에 소속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임 못 나가면 불안… 소속감 갈망 소외불안이 큰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고 많은 모임에 나가는 등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 우울감, 낮은 자존감 같은 심리적 결핍이 있을 수 있다. 모임에 못 나가면 불안해하고, 혼자 있을 땐 다른 사람들 뭐 하나 신경 쓰여 SNS를 확인하느라 편히 쉬지도 못한다. 앤드루 프시빌스키 영국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는 소외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22∼65세 2079명을 조사했다. 소외불안 수준과 함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대인관계나 자기 능력에 만족하는 수준은 어떤지, 평소 어떤 기분으로 지내는지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삶과 대인관계, 자기 능력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절, 우울, 불안,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도 소외불안 수준이 높았다. 미 휴스턴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비슷한 연구에서는 자존감이 낮고 ‘더 잘해야 한다’며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일수록 소외불안이 높았다. 즉, 자신과 삶에 관련한 만족감이 전반적으로 낮을 때 외부 집단에 소속돼 안정감을 찾으려는 욕구가 높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결과는 10, 20대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낙오됐다’는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소외불안의 핵심 문제는 ‘나는 중요한 존재인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 같은 질문일 수 있다. 자기 능력이나 존재 자체를 못마땅히 여기고 삶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는 유행을 따르고 SNS에 집착한들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나만 낙오됐다는 느낌은 대부분 실제보다 왜곡된 경우가 많기에 불안감이 과장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인관계, 소비, 투자 등에서 남들과 비교하며 ‘나는 왜 이 모양이지’ 하는 질투심, 소외감, 조바심을 느낀다면 자신이 소외불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박 교수는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상위 몇 %의 삶과 비교하며 ‘낙오됐다’고 여기는 함정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며 “하루하루 나아지는 내 모습을 스스로 칭찬해 주며 만족감과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핵인싸(아주 인기가 많은 사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SNS에서 친분, 부(富), 행복을 과장해 ‘인싸력(力)’을 자랑하는 화려한 사진을 보면 뇌의 보상회로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쾌감, 부러움, 질투가 동시에 일어난다. 이런 느낌은 열등감, 초조함, 우울함까지 일으킬 수 있어 심각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 교수는 “허세가 심한 사람의 SNS 계정을 차단하거나 단체 채팅방에서 나오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아, 아깝네(AWWWW SO CLOSE)”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총격범의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것을 두고 미국 현지에서 나온 밈(meme)이다. 저승사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다가 떨어뜨리는 그림에 ‘아깝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현직 FBI 직원이 자신의 SNS에 ‘이 밈은 정말 최고’라고 올렸다가 논란이 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글쓴이의 정치적 이념과 직업 등을 차치하더라도, 사람 목숨을 두고 ‘못 죽여서 아깝다’고 밝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일었다.사실 선 넘는 혐오와 경멸은 멀리 미국 사례까지 갈 것도 없다. 국내 정치에서도 상대 진영 간 도 넘는 감정싸움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최근 국민의힘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는 같은 당 안에서도 특정 후보를 비방하며 의자를 내던지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왜 이렇게 정치 때문에 비뚤어진 사람들이 많은 걸까. 또 어쩌다 폭행, 암살 시도 같은 일까지 벌어지게 되는 걸까.● 반복된 분노… “사람 취급 안 해” 보통 우리가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땐,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런데 암만 화를 내봐도 통하지 않는다는 좌절 경험을 반복해서 하게 되면, ‘나는 상황을 해결할 힘이 없다’는 무력감이 생긴다.이때 내가 무력하다는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고 비하하면서 불쾌함을 상쇄해 보려고 한다. 아무리 권력을 쥔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하찮고 혐오스러운 ‘벌레 같은 존재’라고 욕하면 마음이 한결 시원해진다. 싫어하는 정치인을 저주스럽고 치욕적인 멸칭으로 부르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그런데 혐오와 경멸이라는 감정은 폭력과 친하다는 게 문제다. 벌레에겐 인격적 대우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롱하고 욕해도 괜찮고, 심지어 때려도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해 내가 아무리 타당한 비판을 하고, 투표로 심판해 봐도 현실적으로 바뀌는 게 없다고 느껴지면, 거듭된 분노에 경멸이 더해진다.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욕설과 조롱도 시작한다. 이런 감정이 증폭된 일부 사람들은 물건을 던지거나, 때리고, 흉기를 휘두르는 폭력성을 나타낼 수 있다.이렇듯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경멸과 혐오, 폭력성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어떤 감정 상태에서 폭력적인 의사 표현 방식을 선택하게 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대학 등록금 정책에 반대하는 대학생 332명을 조사했다. 조사 당시 학생들은 대체로 학교 정책에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개중에는 화를 넘어 학교 당국과 관련 책임자들을 경멸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항의해봤자 학교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학생들이 이미 이 싸움에서 졌다’는 무력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 강렬한 항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돌·유리병 던지기, 경찰 폭행, 건물 방화를 저지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정책 관련 책임자를 해치거나 그들의 사유재산을 공격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반면,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학교 당국을 경멸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은 청원서 서명, 토론회 참석, 전단지 작성 등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항의하겠다고 했다. 자신들에게 아직 상황을 바꿀 힘이 있다고 인지하는 학생들은 폭력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서로에게 “지능 낮은 멍청이” 상대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우리보다 열등하다’는 근거 없는 편견을 갖게 되면, 상대편을 더 조롱하고 깔보는 마음이 생겨난다. 결과적으로 진영 간 감정싸움은 더 격화되고, 정치가 혼탁해진다. 실제로 온라인 뉴스 댓글에 상대 정당 지지자들을 향해 ‘저능하다’고 비난하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특징은 정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미국에서 공화당,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정말로 서로를 자신들보다 멍청하고, 사악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연구팀은 미국 성인 481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공화당 지지자가 얼마나 지능이 낮고, 사악하다고 느끼는지 조사했다. 실험참가자들은 무당층을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 또는 공화당 지지자들로만 구성했다.그 결과는 위 그래프와 같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자기들보다 더 멍청하고, 사악하다고 답했다(왼쪽 노란색 사각형 표시). 이와 반대로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신들보다 더 멍청하고, 사악하다고 생각했다(오른쪽 초록색 사각형 표시). 이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상대 진영 지지자들을 열등한 존재로 비인간화하는 것은 마음대로 조롱하고 비하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며 “이런 인식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더 심해지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기 삶 꼬여 있을수록 정치 이유로 폭력적개인적 삶의 문제 때문에 과격한 방식으로 정치에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러저러한 심리적 문제를 어딘가에서는 해소하고 싶어 하는데, 그게 정치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내 삶은 썩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 대의를 추구한다는 명분이 있어서다.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연구진 등은 실제로 이런 경향이 문화권이나 이념과 관계없이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프랑스, 터키, 벨기에, 브라질 성인 124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들에게 주관적으로 느끼는 사회적 고립 정도, 삶의 의미, 무력감 등과 함께 정치 성향, 급진주의 정도, 폭력적 정치 행위 참여 의사 등을 조사했다.그 결과 국가, 문화, 정치 이념 등과 관계없이 자기 삶이 무의미하고, 무력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돼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정치적 이유로 폭력적인 행동에 나서겠다고 답한 경향이 상당히 두드러졌다. 살면서 겪은 개인적 수치심, 굴욕감, 상대적 박탈감, 고립감, 무의미함 등을 해소하려고 정치를 일종의 탈출구로 삼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개인의 심리적 상태가 정치 영역에서 폭력적인 극단주의, 테러리즘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더 혐오하라” 정치인들이 지지자 부추겨더 나쁜 건 정치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지지자들의 혐오와 폭력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연설 등 공개석상이나 SNS에서 상대방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지자들을 감정적으로 격앙시켜서 과격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본보 기사 참고: )미 콜로라도 볼더대 연구진은 정치인의 감정 표현이 지지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해 봤다. 연구진은 성인 1390명에게 민주당,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가 서로 정책 토론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실험참가자 일부는 각 후보가 침착하게 발언하는 장면을 봤고, 또 다른 일부는 각 후보가 상대 후보를 향해 격렬한 분노를 드러내며 싸우는 장면을 봤다.그 결과 사람들은 지지하는 정당의 정치인이 화내는 장면을 보고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감, 분노 수준이 상승했다. 반면, 상대 정당의 정치인이 분노하는 모습을 봤을 땐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지자들은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의 감정에만 민감하게 반응했다. 연구진은 “정치인들이 연설에서 어떤 감정을 드러내느냐에 따라 지지자들의 행동을 부추길 수 있다”고 했다.이는 같은 집단에 속한 사람끼리는 정서적 전염(emotional contagion)이 잘 이뤄지는 심리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세계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일수록 표정, 제스처, 발성 등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채 그대로 따라 하기 쉽다. 그래서 지지하는 정치 후보자가 연설에서 상대 후보를 비방하며 화를 냈다면, 지지자들도 그 감정을 그대로 흡수한다. 흥분한 지지자들은 더 결집해 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지고,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은 올라간다.지지자들이 정치인의 감정적 반응을 잘 흡수한다는 점을 역이용한다면 혐오와 경멸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분노, 혐오, 경멸 대신 상호 존중과 이해의 태도를 보여주면 될 테니 말이다.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연구진은 “정치인들은 분노한 지지자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선거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에 화를 부추기는 정치 지도자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점에서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는 여당에서 ‘소시오패스’ ‘좌파 숙주’ 같은 과격한 비난 표현이 나오는 것은 참 씁쓸한 현실이다. 우선 정치권이 진흙탕 싸움과 ‘네 탓’ 공방을 멈춰야 정치 때문에 뿔난 마음들이 조금은 가라 앉을 수 있지 않을까.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롯데워터파크가 본격적인 무더위를 맞아 ‘썸머 웨이브’ 시즌을 시작했다고 16일 밝혔다.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야외 무대 ‘웨이브 스테이지’에서는 공연과 이벤트 같은 다양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실외 파도풀 ‘자이언트 웨이브’는 롯데워터파크의 상징과도 같다. 길이 135m, 폭 120m에 달하는 자이언트 웨이브는 최고 높이 2.4m의 파도를 자랑한다. 2인승 튜브를 타고 300m 길이 트랙을 질주하는 ‘워터 코스터’는 스릴을 즐기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슬라이드 ‘자이언트 부메랑고’는 최다 6명이 튜브를 타고 구불구불한 트랙을 따라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스릴을 즐길 수 있다. 길이 190m, 높이 21m로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더블 스윙 슬라이드’도 준비돼 있다. 거대한 깔때기 모양 기구에서 즐기는 ‘토네이도 슬라이드’에서도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지역을 항해하는 선상 파티를 콘셉트로 한 ‘자이언트 뮤직 웨이브 파티’도 볼거리다. DJ의 전자댄스음악(EDM)에 맞춰 폴리네시안 분위기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댄서들이 화려한 춤을 선보인다. 무대 앞 객석을 향해 물을 뿜어내는 50여 개 장치가 준비돼 관객의 무더위를 식혀 줄 수 있다. 공연은 매일 낮 12시 20분과 오후 3시 20분, 6시 20분(매주 화요일은 쉰다)에 열린다. 밤에는 열대야를 잊게 해주는 파티가 펼쳐진다. 다음 달 17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광복절 오후 8시에 열리는 ‘핫 썸머 나이트 파티’는 폴리네시아 섬들의 밤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EDM 쇼와 레이저 쇼를 비롯한 다양한 특수 효과를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 막바지에는 불꽃놀이도 이어진다. 워터파크 개장 10주년 특별 공연도 준비돼 있다. 브라질 삼바 댄서들이 출연하는 공연에서는 람바다, 살사 같은 다채로운 춤을 비롯한 볼거리가 등장할 예정이다. 물총놀이를 할 수 있는 ‘워터팡팡’도 열린다. 아이들 없이 성인들이 조용한 환경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어덜트 풀’도 마련돼 있다. 실외 수영장과 스파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이용 요금은 1만 원으로 맥주 한 잔이 포함돼 있다. 카바나 및 선베드 대여 그리고 어덜트 풀 입장권이 결합된 패키지를 롯데워터파크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특별 공연과 불꽃놀이 일정 등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토마토 주스’ ‘볼링절(節)’ ‘악덕 은행 종업원’ ‘굿 다이(good die)’최근 서울 시청역 인근 교통사고 희생자들을 두고 온오프라인에서 믿을 수 없는 조롱 표현들이 나왔다. 굳이 사고 현장까지 방문해 조롱하는 쪽지를 두고 가는가 하면,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고를 볼링에 빗대며 지나친 막말·비하가 이어졌다. 9명에 이르는 희생자들을 희화화한 표현들로 많은 사람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안타까운 사실은 우리 사회에 조롱과 경멸의 발언들이 이번에만 특별히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온라인 기사, 유튜브 영상,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게시글 등에 비아냥거리고 저주하는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보가 못된 일부만의 일탈로 보기엔 그 수가 상당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일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공감 능력 결여…가학적 성향남을 조롱하고 깎아 내리는 발언을 하는 이들의 이면에는 다양한 심리적 기제가 작용한다. 악성 댓글 다는 사람들의 성격 특성을 살펴본 해외의 여러 연구에서는 이를 성격의 ‘어둠의 4요소(Dark tetrad)’ 차원에서 설명한다.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중증 상태는 아니지만, 일반인 중에서도 못되고 사악한 성격을 가진 이들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어둠의 4요소에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규범을 무시하는 사이코패스(Psychopath) △거만함이 특징인 나르시시즘(Narcissism) △남을 조종·착취하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anism)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디즘(Sadism) 성향이 포함된다. 그래서 사고 희생자를 조롱하는 이들을 향해 ‘공감 능력 없는 사이코패스 같다’는 일부 여론의 비난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기사 참고:) ● 만성 분노…엉뚱한 곳에 화 풀어이런 악한 성격적 특성 외에도 분노가 많은 게 원인이 될 수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특성 분노(trait anger)가 높은 사람일수록 남들에게 더 많이 비아냥거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성 분노는 평소 작은 일에도 짜증스럽게 반응하고,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성향을 말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특성 분노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협소하고 편향된 인지 처리 △충동적 반응 △지나친 자기애 등의 특성을 보인다. 특히 이들은 긴가민가한 모호한 상황이라도 화낼 만한 상황으로 인지해 기어코 화를 낸다. 자기와 직접 상관없는 일이라도 누군가 자기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싶으면 곧바로 남에게 화살을 돌리며 비난한다. 이때 분노가 소극적인 형태의 공격성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조롱이다. 온라인 기사 등을 읽고 그 내용이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고 느껴지면 바로 조롱, 비하 댓글을 다는 식이다. 현실에서는 남의 기분을 살살 긁으면서 비꼬다가, 막상 남들이 뭐라고 하면 “장난인데 왜 정색하느냐”고 오히려 상대를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일상생활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면 대인관계에서 고립되기 쉽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주변 사람을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는 말을 하면, 당연히 주변 사람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고립된 상황 때문에 더 화가 잘 나게 되고, 조롱하고 무시하는 태도는 더 심해진다. ● 특성 분노 수준이 높은 사람은?성미가 급하다.불같은 성질을 지녔다.격해지기 쉬운 사람이다.늦어지면 화가 난다.인정받지 못하면 화난다.쉽게 화를 낸다.화가 나면 욕설한다.비판을 받으면 격분한다.뜻대로 안 되면 때려주고 싶다.나쁜 평가를 받으면 격분한다.-상태·특성 분노 표현 척도 일부-● “내가 제일 똑똑해” 우월감·관심 확인자기가 잘난 사람이라 생각하는 인식이 너무 강해도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관심을 받기 위해 타인을 조롱하고 공격할 수 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연구진이 자기애와 공격성의 연관성을 살펴본 437건의 전 세계 연구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자신을 과도하게 소중하게 여기며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은 공격성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월감, 오만, 대담함이 특징인 과대형 나르시시스트(grandiose narcissist)가 그렇다. 이들은 자신이 우월해서 남들을 말로 조롱하며,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욕구가 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관심받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남을 조롱하고 비아냥거리고 난 후폭풍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기가 우월하기에 이 상황을 제어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자기가 한 말을 훌륭하게 생각할 거라고 여겨서다. 화가 많은 사람에게서 자기애 성향이 관찰된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화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나서서 화를 내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이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상황 통제력을 과신하는 것과 비슷하다. 심지어 이들은 자기가 실제보다 지능이 높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심리학과의 또 다른 연구진이 303명을 대상으로 특성 분노 수준과 실제 지능,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지능을 각각 측정했다. 그 결과 특성 분노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실제 지능보다 자기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들은 ‘난 똑똑하고, 당신은 멍청하다’는 생각을 하는 경향 때문에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 무력감·불만…남 무시해야 기분 좋아져화가 많은 사람과 자기애 성향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조롱과 비하를 활용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보통 사람의 경우 상황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느끼는 무력감과 불만을 해소하고자 욕하고 조롱하는 행동이 나올 수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실험참가자 7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밤늦게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누군가가 술에 취해 난동 부리는 걸 목격한 상황을 상상하게 했다. 그리고 한 그룹에는 난동 부리는 사람이 친구였을 때, 나머지 한 그룹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 물어봤다. 두 그룹 모두 그 상황에 화가 난다고 답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비난과 비하, 경멸, 공격성 정도는 상대가 친구일 때보다 모르는 사람일 때 훨씬 심했다. 연구진은 “난동 부리는 사람이 친구일 때 초반에는 화가 더 많이 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옅어졌다”며 “반면 낯선 사람일 때 그룹은 비난, 비하 강도가 시간이 가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다”고 했다.이 핵심에는 친구는 내가 뜯어말려 상황을 통제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차이가 있다. 내가 상황을 바꾸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냥 상대방을 벌레 취급하며 경멸하고 깔아뭉개서 도저히 상종 못 할 존재처럼 무시해 버려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공격성은 욕설, 돌 던지기, 방화 등 사회에서 수용 받기 어려운 방식으로 나올 때가 많다고 한다.연구에서는 술에 취해 난동 부리는 범법 행위를 예로 들었지만, 현실에선 범법 여부와 상관없이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롱 글을 쓰거나 영상 등을 유포할 때가 많다. 방송이나 뉴스, SNS로 접하는 이들의 삶은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꿔버리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서 상대를 가능한 한 힘껏 깎아내리고 비하해서 무가치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걸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이 받을 상처와 충격은 생각하지 않고, 본인은 단순히 ‘스트레스 풀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잠깐 내 기분 좋자고 다른 사람의 삶을 말로 짓밟는 일이 즐겁다면, 내 안에 사이코패스나 사디스트 성향 등 ‘어둠의 4요소’가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다음 기사에서는 △권력자를 조롱할 때 얻는 심리적 이점 △상대 진영 “지능 낮다” 서로 무시 △뭉치면 독해진다 등 조롱과 막말하는 이유에 대해 더 알아볼 예정입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했다간 선배한테 혼납니다.”11년 차 직장인 안소심 씨(가명)는 며칠 전 신입사원 교육에 참관하러 들어갔던 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교육을 맡은 선임이 교육생들 앞에서 안 씨에게 업무 관련 퀴즈를 냈는데, 답이 틀렸기 때문이다. 선임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하면 혼난다”고 말했고, 교육생들 사이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안 씨는 뒤이은 퀴즈 문제를 전부 맞혔다. 그런데도 그는 앞서 틀린 그 문제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안 씨는 “사람들이 연차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두렵다”며 “능력도 없으면서 승진을 괜히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비판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부정적인 평가에 움츠러드는 것은 누구나 비슷할 터다. 더욱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사회에서 비판을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안 씨처럼 타인의 지적을 애초 의도보다 확대해석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다른 문제다. 그의 선임은 단지 오답을 지적했을 뿐, 그가 승진할 자격이 없다고 평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안 씨는 여러 퀴즈 중 하나만 틀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삽시간에 ‘나는 무능하다’ ‘자격이 없다’는 자기 파괴적 생각으로 치달았다. 자신 없는 태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비판은 120% 흡수…칭찬은 튕겨내비판에 대한 과민 반응은 낮은 자존감, 자기 비판적 사고, 완벽주의 등이 복합된 심리적 이유로 나타난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비판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기 쉽다. 비판보다 더 센 강도로 ‘난 왜 이렇게 못났지’ 하고 스스로 질책한다. 사소한 지적에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못났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귀인을 하기 쉽다.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주변 비판에 귀를 더 쫑긋하는 경향이 있다. 자존감은 ‘나는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나타낸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나는 못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기 쉽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평가하면,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익숙한 정보이기 때문에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 ‘역시 나는 못난 사람’이라면서 정체성이 더 견고해지기도 한다.●‘내 탓’ 하는 사람 특징뭔가에 실패하면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실패는 나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다.성공하지 못하면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나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자주 느낀다.내 목표나 이상과 현실의 나를 자주 비교한다.자료: 자기비판 척도(LOSC) 중안타깝게도 이들은 비판은 잘 흡수하지만, 칭찬은 되레 튕겨낸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자존감과 칭찬에 관한 연구를 여러 건 진행한 결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칭찬을 부담스러워해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칭찬은 ‘못난 나’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불일치하는 정보라고 판단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그래서 타인의 칭찬을 받으면 ‘저 사람은 나를 잘 모르고 한 소리야’ ‘듣기 좋으라고 괜히 하는 소리겠지’라며 불편한 마음을 갖는다. 자신이 칭찬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실망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평생 쌓아온 ‘못난 나’라는 정체성을 흔드는 것보다, 일회성 칭찬을 평가절하하는 게 이들에게 더 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이와 반대로 반응한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타인이 자신을 비판하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비판받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의 비판이 자신이라는 존재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선을 그을 수 있기에 충격이 덜하다.● 잘해도 불안…“다음에 더 잘해야”타인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상황을 피하려고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됐다면, 악순환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목표인 ‘사회 부과 완벽주의(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는 삶에 방해가 되는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꼽힌다. 때로는 실패가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려는 적응적 완벽주의와는 구분된다. (2023년 12월 16일 자 기사 참고: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학생상담센터 제니퍼 그제고레크 박사 연구팀이 대학생 273명을 대상으로 적응적 완벽주의자와 부적응적 완벽주의자 그리고 완벽주의 성향이 없는 사람의 심리적 특징을 살펴봤다. 그 결과 부적응적 완벽주의자가 자기를 탓하고 비판하는 수준이 가장 높았고 자존감은 가장 낮았다.이 세 부류 학생은 같은 결과를 두고도 해석하는 방식이 달랐다. 부적응적 완벽주의 학생과 적응적 완벽주의 학생의 학점 평균이 거의 비슷했는데도 부적응적 완벽주의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을 상당히 못마땅해했다. 반면 적응적 완벽주의 학생들은 성적이 꽤 괜찮다고 느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못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엔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했다’는 피드백을 받아도 역시 ‘다음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성과에 만족할 수 없었다.여기에 과(過)일반화(overgeneralization)와 파국화(破局化·catastrophizing) 사고가 더해지면 다른 사람의 비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일반화 사고는 한두 사건만으로 비논리적 결론을 내려 일반화하는 것을 말한다. 앞의 사례에서 안 씨가 단지 퀴즈 하나를 틀리고 ‘나는 무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과일반화 사고다. 파국화 사고는 부정적 사건이 하나 일어났을 때 최악의 결과로 악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안 씨가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나는 앞으로 팀장 승진을 못 하고, 결국 회사에서 쓸모없어져 쫓겨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파국화 사고가 나타난 것이다.● 끝나지 않는 ‘자기 고문 게임’스스로를 다그치는 내면의 작용은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상전(上典·top dog)과 하인(underdog) 개념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상전은 당위적이고 지시적인 목소리로 몰아붙이고 질타하는 내 안의 나를 말한다. 하인은 이 목소리에 ‘난 못 해!’ 하며 대항하지만,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괴롭힘당하는 또 다른 내 모습이다.타인의 작은 지적에도 ‘나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상전은 ‘더 잘해야만 해’ ‘더 완벽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넌 무능해’라고 몰아붙인다. 완벽을 추구하고 이상적 목표를 이루라고 강요한다. 상전 목소리는 주로 어린 시절 엄격한 부모나 교사같이 영향력이 큰 존재가 무의식적으로 심었을 가능성이 크다.상전 목소리가 클수록 작은 실수와 실패에 민감해진다. 하인은 자신이 못나서 상전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수치심을 느낀다. 동시에 타인에게 비판받고 거부당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느낀다. 그래서 상전과 하인 개념을 처음 고안한 게슈탈트 심리치료 창시자 프리츠 펄스는 상전과 하인의 상호작용을 두고 ‘자기 고문 게임’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자기 파괴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어떻게 고칠까?비판받은 상황의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따져 생각하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소개한 워털루대 연구진은 계속된 연구를 통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판이든 칭찬이든 나라는 존재 전체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당시 상황과 맥락에서 특정한 일부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사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만약 직장 상사에게서 “오늘 발표 훌륭했다”는 칭찬을 들었다면 ‘나=훌륭한 존재’라는 추상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고, 발표에서 잘했던 몇몇 구체적 행동에 대한 칭찬으로 쪼개서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한결 쉬워진다.비판도 마찬가지다. “오늘 발표가 좀 부족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나=부족한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 발표에서 완성도가 부족했던 몇몇 구체적 사안만 떠올려야 한다. 실패 경험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면 ‘나는 항상 실패하는 못난 사람’이 되지만, 특정 사건에 국한하면 한 번 실패한 것으로 의미가 작아진다. 연구진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생각할수록 빠르고 자동으로 일어나는 ‘나는 못났다’는 사고를 막을 수 있고, 상황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이는 과일반화 사고를 막는 것에 중점을 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구하면 비논리적인 인지 편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또 자기 패배적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이 같은 생각으로 몰아가는 마음속 상전에게 나만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상황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완벽이’ 또는 ‘불안이’라고 이름 붙이고, 사소한 비판에도 ‘망했다’는 극단적 생각이 들 때마다 ‘완벽이가 화가 났네’ ‘불안이가 또 나를 괴롭히네’ 생각하는 식이다. 그러면 자기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어디서 왔으며,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때그때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된다. 임 교수는 “내 안에 엄격한 내가 스스로 다그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고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자기 위로를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최근 차장으로 승진한 11년 차 직장인 안소심(가명) 씨는 며칠 전 신입사원 교육을 참관한 것이 후회된다. 교육을 진행한 선임이 교육생들 앞에서 안 씨에게 업무 관련 퀴즈를 냈는데 틀렸기 때문이다. 선임이 “이렇게 하면 선배한테 혼난다”고 지적하자 교육생 사이에서 피식 웃는 소리도 들렸다. 안 씨는 뒤이은 몇 가지 질문에는 잘 대답했지만 앞서 틀린 답이 몹시 신경 쓰였다. 안 씨는 “사람들이 연차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두렵다”며 “능력도 없으면서 승진을 괜히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비판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부정적인 평가에 움츠러드는 것은 누구나 비슷할 터다. 하지만 안 씨처럼 타인의 지적과 비판을 애초 의도보다 확대 해석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다른 문제다. 그의 선임은 단지 오답을 지적했을 뿐, 그가 승진할 자격이 없다고 평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안 씨는 여러 퀴즈 중 하나만 틀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삽시간에 ‘나는 무능하다’ ‘자격이 없다’는 자기 파괴적 생각으로 치달았다. 자신 없는 태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난 역시 무능해”… 잘못된 확신 비판에 대한 과민 반응은 낮은 자존감, 자기 비판적 사고, 완벽주의 등이 복합된 심리적 이유로 나타난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비판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기 쉽다. 비판보다 더 센 강도로 ‘난 왜 이렇게 못났지’ 하고 스스로 질책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주변 비판에 귀를 더 쫑긋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나타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나는 못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평가하면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익숙한 정보이기 때문에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 ‘역시 나는 못난 사람’이라면서 정체성이 더 견고해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비판은 잘 흡수하지만 칭찬은 되레 튕겨낸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자존감과 칭찬에 관한 연구를 여러 건 진행한 결과 자존감 낮은 사람은 칭찬을 부담스러워해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칭찬은 ‘못난 나’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불일치하는 정보라고 판단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이와 반대로 반응한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타인이 자신을 비판하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비판받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의 비판이 자신이라는 존재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선을 그을 수 있기에 충격이 덜하다.● 악순환에 빠뜨리는 완벽주의 타인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상황을 피하려고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됐다면, 악순환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목표인 ‘사회 부과 완벽주의(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는 삶에 방해가 되는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꼽힌다. 이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려는 적응적 완벽주의와는 구분된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학생상담센터 제니퍼 그제고레크 박사 연구팀이 대학생 273명을 대상으로 적응적 완벽주의자와 부적응적 완벽주의자 그리고 완벽주의 성향이 없는 사람의 심리적 특징을 살펴봤다. 그 결과 부적응적 완벽주의자가 자기를 탓하고 비판하는 수준이 가장 높았고 자존감은 가장 낮았다. 이 세 부류 학생들은 같은 결과를 두고도 해석하는 방식이 달랐다. 부적응적 완벽주의 학생과 적응적 완벽주의 학생의 학점 평균이 거의 비슷했는데도 부적응적 완벽주의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을 상당히 못마땅해했다. 반면 적응적 완벽주의 학생들은 성적이 꽤 괜찮다고 느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못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엔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했다’는 피드백을 받아도 역시 ‘다음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성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여기에 과(過)일반화(overgeneralization)와 파국화(破局化·catastrophizing) 사고가 더해지면 다른 사람의 비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일반화 사고는 한두 사건만으로 비논리적 결론을 내려 일반화하는 것을 말한다. 앞의 사례에서 안 씨가 단지 퀴즈 하나를 틀리고 ‘나는 무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과일반화 사고다. 파국화 사고는 부정적 사건이 하나 일어났을 때 최악의 결과로 악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안 씨가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나는 앞으로 팀장 승진을 못 하고, 결국 회사에서 쓸모없어져 쫓겨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파국화 사고가 나타난 것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셀프 고문 스스로를 다그치는 내면의 작용은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상전(上典·top dog)과 하인(underdog) 개념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상전은 당위적이고 지시적인 목소리로 몰아붙이고 질타하는 내 안의 나를 말한다. 하인은 이 목소리에 ‘난 못 해!’ 하며 대항하지만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괴롭힘당하는 또 다른 내 모습이다. 타인의 작은 지적에도 ‘나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상전은 ‘더 잘해야만 해’ ‘더 완벽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넌 무능해’라고 몰아붙인다. 완벽을 추구하고 이상적 목표를 이루라고 강요한다. 상전 목소리는 주로 어린 시절 엄격한 부모나 교사같이 영향력이 큰 존재가 무의식적으로 심었을 가능성이 크다. 상전 목소리가 클수록 작은 실수와 실패에 민감해진다. 하인은 자신이 못나서 상전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수치심을 느낀다. 동시에 타인에게 비판받고 거부당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느낀다. 그래서 상전과 하인 개념을 처음 고안한 게슈탈트 심리치료 창시자 프리츠 펄스는 상전과 하인의 상호작용을 두고 ‘자기 고문 게임’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자기 파괴적이라는 의미에서다.● 칭찬도 비판도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기 비판받은 상황의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따져 생각하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소개한 워털루대 연구진은 계속된 연구를 통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직장 상사에게서 “오늘 발표 훌륭했다”는 칭찬을 들었다면 ‘나=훌륭한 존재’라는 추상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고, 발표에서 잘했던 몇몇 구체적 행동에 대한 칭찬으로 쪼개서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한결 쉬워진다. 비판도 마찬가지다. “오늘 발표가 좀 부족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나=부족한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 발표에서 완성도가 부족했던 몇몇 구체적 사안만 떠올려야 한다. 이는 과일반화 사고를 막는 것에 중점을 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구하면 비논리적인 인지 편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자기 패배적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이 같은 생각으로 몰아가는 마음속 상전에게 나만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상황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완벽이’ 또는 ‘불안이’라고 이름 붙이고, 사소한 비판에도 ‘망했다’는 극단적 생각이 들 때마다 ‘완벽이가 화가 났네’ ‘불안이가 또 나를 괴롭히네’ 생각하는 식이다. 임 교수는 “내 안에 엄격한 내가 스스로 다그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고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자기 위로를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