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원

사지원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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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편견을 허물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4g1@donga.com

취재분야

2024-03-27~2024-04-26
인사일반28%
문학/출판23%
역사23%
문화 일반13%
미술7%
여행3%
사회일반3%
  • “저출산 韓, 이주자 수용國 변화 불가피… 효과적 정책 마련을”

    “한국은 현대사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이입국(移入國·이주자들을 수용하는 국가)으로의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신간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세종서적)의 저자 헤인 데 하스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로코, 아프리카, 중동 등 여러 나라에 거주하며 30년 넘게 이주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는 네덜란드 사회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이번 신간은 그의 첫 대중서로, 이주를 둘러싼 편견과 오해 22가지를 나열한 뒤 데이터를 활용해 반박했다. 그는 “더 효율적인 이민 정책을 수립하려면 무엇보다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역시 경제 성장 후 동남아시아 등에서 외국인이 이주하는 주요 이입국이 됐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인구 고령화와 교육 수준 향상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3D 업종에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가 종사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한국 인구 중 이입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3.5%지만 비율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이는 1960∼1970년대 서유럽에서 나타난 현상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도 1990년대까지 ‘이입국이 아니다’라고 부정했지만 최근 몇십 년 사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다”며 “한국 정부도 입국한 이주자들을 한 번 쓰고 버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하는 정책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 0.65명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저치를 또 경신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떨어지는 출산율을 되돌리는 일은 매우 어렵다”며 “정책을 통해 출산율이 높아진다고 해도 더 많은 젊은이가 경제 활동에 나서기까지 몇십 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법무부가 저출산·고령화를 맞아 인구 감소 대안으로 이민청 신설을 발표한 가운데 저자는 “이민 정책만으로 인구 고령화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현실적일 만큼 높은 수준의 이입이 필요한 데다, 이주자들도 나이를 먹는다”며 “결국 노동력 부족 문제는 지속되거나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포장하지도 말자고 주장한다. 신간은 이 외에도 ‘세계는 난민 위기에 봉착했다’, ‘이입 때문에 범죄가 급증한다’ 등 이민자들을 둘러싼 각종 통념을 데이터로 논증해 나간다. 그는 “한국이 증거에 기반해 더 효과적인 이주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수십 년간 유럽 등이 저지른 실수를 답습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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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피해자의 삶 거부”… 그녀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짐을 짊어졌다.” 2005년 ‘미투(Me too)’ 운동을 처음 시작한 미국의 인권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신간 ‘해방’에서 생애 첫 성폭력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곱 살 소녀였던 버크는 자신이 ‘밖에서 놀 때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 것’ 등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신간은 버크가 미투 운동에 이르게 된 인생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미투’ 해시태그가 사용됐다. 이 운동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책에는 침묵하던 어린 소녀가 세계 여성들에게 용기를 준 인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흑인 문학에 심취한 똑똑한 소녀였던 버크는 고교 시절 흑인 청소년 네트워크에서 활동한다. 청소년 캠프에서 ‘우리는 모두 리더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당찬 소녀였지만, 자신의 피해는 직면하려고 하지 않았다. 죄책감은 침묵을 깬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활동가가 된 버크는 캠프에서 열두 살 소녀 헤븐을 만난다. 헤븐은 버크에게 자신이 엄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버크는 어렸을 적 자신을 닮은 헤븐을 외면한다.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는 버크에게 여전히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을 후회하던 그는 흑인 공동체 지도자들이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묵인하는 상황을 목격하곤 각성한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허겁지겁 수첩을 꺼낸 뒤 두 음절을 적는다. ‘Me too.’ 신간은 ‘피해자의 말하기’가 사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책하며 자신의 잘못을 곱씹는 대신 누군가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가해자의 잘못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폭력과 맞서며 내면을 다듬어가는 버크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다. 말하기를 통해 성폭력의 상처를 치유한 인물이 또 있다. 신간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의 저자 김진주(필명)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다. 2022년 5월 모르는 남성에게 돌려차기를 당해 전신마비가 왔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신간엔 저자가 500일간 법정 투쟁을 이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제외된 성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을 언론에 알린다. 또 1000쪽이 넘는 재판기록을 직접 뒤져 성범죄 정황을 발견한다. 결국 ‘살인미수’만 적용돼 12년에 그쳤던 1심 형량은 항소심에서 ‘강간 및 살인미수’로 변경돼 2심에서 20년으로 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저자는 스스로를 ‘가장 색채로운’ 피해자라고 말한다. 통념에 갇힌 피해자답게 우울해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걸 꺼리지도 않는다. 보복 범죄를 다짐하는 범인을 ‘잡범’이라고 일축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합의해 달라”는 뻔뻔한 범인의 태도에 “미친 것 아니야?”라며 분노한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성범죄 피해자들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그들과 연대하고자 한다. 국적도 나이도 다른 버크의 미투와 겹쳐 보이는 이유다. 사실 그의 말대로 위축되어야 할 인물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김진주가 더 이상 ‘색채로운’ 피해자가 아니기를 바란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당당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든 “내가 범죄를 당한다면 김진주처럼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이 책을 교과서처럼 집어 들 것 같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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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伊 140년 우정 담은 사진 한자리에

    이탈리아는 6·25전쟁 중인 1951년 10월 의료지원 부대 ‘제68적십자병원’을 한국에 파병했다. 유엔 회원국은 아니었지만 국제사회의 요청으로 인도적 지원에 나선 것이다. 병상 150개, 부대원 60여 명 규모로 서울 영등포구에 문을 연 병원은 전쟁이 끝난 1955년까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한 환자 20만 명 이상을 치료했다. 특히 1952년 9월 사상자 170여 명이 발생한 구로동 경인선 열차 충돌 사고 당시에 다수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과 이탈리아 간 교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모든 길은 역사로 통한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로, 조선과 이탈리아가 1884년 6월 26일 ‘조·이 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양국이 교류한 사진 10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선 제68적십자병원의 활동 사진 및 영상이 처음 공개됐다. 부대원들이 물자를 나르고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은 물론 이들의 인터뷰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이지혜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탈리아의 의료부대 파견은 양국 관계가 특히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제3대 이탈리아 영사 카를로 로세티(1876∼1948)가 1902년부터 대한제국에 머물면서 촬영한 사진 컬렉션도 볼 수 있다. 한양 상급학교 대수학 강의시간, 꿩 장수, 1900년대 초 동대문 대로 등 다양한 옛 대한제국 모습이 담겼다. 이탈리아 대표 문화유산인 ‘피사의 사탑’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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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은 쇼츠보다 오랜 행복 주죠”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 도시 ‘멍청(蒙城)’. 소설가, 독자,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20, 30대 7명이 ‘비둘기 북클럽’에 모여 책을 읽는다. 그들은 정적인 활자를 누구보다 동적으로 읽어낸다. 울고 웃고, 때론 전율한다. 활자보다 영상을 선호하는 현대인에게는 낯선 자극이다.“문학은 노력한 만큼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휴대전화 쇼츠(짧은 동영상)가 가져다주는 즐거움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죠.”올 1월 신간 ‘격정세계’(은행나무·사진)를 펴낸 중국 소설가 찬쉐(殘雪·71)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의 필명 찬쉐는 ‘녹지 않고 남은 눈’이란 뜻으로 본명은 덩샤오화(鄧小華)다.‘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찬쉐는 실험적이고 강렬한 언어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영국 베팅 사이트 ‘나이서 오즈(Nicer Odds)’가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그를 지목했다. 1953년 중국 후난성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던 부모가 극우주의자로 몰려 온 가족이 노동교화소로 끌려갔다.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한 뒤 서양문학과 영어를 독학했고, 재봉사로 일하던 서른 살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찬쉐의 첫 장편소설 ‘황니가(黃泥街)’를 한국어로 옮긴 김태성 번역가는 “찬쉐는 유년 시절을 거치며 겪은 삶의 어려움과 부조리함을 몽환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라고 평했다.신간은 북클럽 회원들이 얽히고 설키며 사랑하는 연애소설이다. 지리멸렬한 현대인의 삶에 문학과 사랑이 격정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녹아 있다. 그는 “나의 가장 큰 영감은 몸과 마음이 발동하는 격정에서 나온다”며 “격정이 작품을 쓰는 동안 시종일관 나를 관통해 1년이 안 되는 시간에 소설을 완성했다”고 말했다.다소 난해했던 전작과 달리 신간은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온다. ‘작품세계의 문턱을 낮춘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일부러 낮췄다기보다 실험문학이라는 일관된 속성이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저력이 지금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주인공들은 문학만큼 사랑에도 열정적이다. 독서에만 몰두하던 샤오쌍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대학 동창 헤이스에게 설렌다. 작품 속 같은 비둘기 북클럽 출신의 평론가 페이와 결혼한 작가 한마는 “두 사람이 함께 같은 책을 읽는 것이 ‘이상적인 반려자’”라고 말한다. 찬쉐는 “책에서 묘사하는 건 이상적인 사랑으로 육체를 들뜨게 할 뿐 아니라 영혼을 승화시킨다”고 했다.찬쉐는 매일 낮에는 철학책을, 밤에는 소설을 쓴다. 최근 쓰는 소설은 욕망에 관한 장편소설 ‘양서인(兩棲人·양서류 인간)’이다. 그는 “독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격정세계’에 빠져들어 등장인물들과 함께 격정적인 삶을 경험해 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찬쉐와의 일문일답.―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늘 지목되고 있는데 올해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은 예측하기 쉽지 않고 예측할 필요도 없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문학적 이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확산 속도가 이미 크게 빨라졌다. 이번에 도박 베팅 사이트에서 나를 수상 후보 1위로 선정한 덕분에 중국 국내 언론에도 꽤 많이 보도됐다. 이러한 홍보가 내 문학 영향력을 확대한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나 역시 만족스럽다.”―문학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생의 사건은 무엇인가.“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일 것이다. 그 일로 나는 인간성의 심오함과 복잡함을 알게 되었다. 일흔여덟 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 일과의 관계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보다 더 훌륭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게 희망을 품고 오랜 시간 동안 하루같이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내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글을 쓸 때 구상이나 동기 없이 ‘자동적으로 글을 쓴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자동적으로 현실세계와 유리된 글을 끌어내는 원천은 무엇인가.“사전에 구상하지 않는 건 창작할 때 신체적 욕망의 충동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쓸 때는 중국인으로서의 실천적인 본능에 입각해서 이렇게 했는데 어느 정도 쓰다 보니 조금씩 자각하게 되었다. 서양의 고전 문학과 철학에 깊이 빠져들면서 내 작품이 특히 강한 정체성을 가질 뿐 아니라 작품의 형상이 창작 전체의 화환을 구성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통속적이고 표면적인 해석에 기대지 않고 세계 가운데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세계의 본질과 인간성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낯설지만 친숙한 모습으로 삶에 깊숙이 들어가 끊임없이 사유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소수의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이런 작은 성공은 내게 한층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격정세계’를 쓸 때 내 안에 들끓는 욕망을 어렴풋이 느꼈는데 무엇보다 갈망하던 그것들을 하나의 통합적인 세계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문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 사는 ‘멍청’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삭막한 주인공 샤오쌍의 고향 ‘징청’과 특히 대조되는데, 공간의 대비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나.“‘멍청’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격정의 도시다. 그렇다고 그곳은 결단코 사상누각이 아니라 가능성의 도시다. 생활 속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면 적잖은 사람에게 이런 가능성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행동할 수 있게 독려하는 그런 이상적인 꿈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멍청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징청과 대비시켜 독자들로 두 종류의 삶 가운데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작품 속 인물들은 얽히고설키며 격정적인 사랑을 이어간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이고, 사랑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낸다고 보는가.“사랑은 육체와 영혼의 이중적인 끌림이다. 어디에 중점을 둘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이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묘사하는 건 이상적인 사랑으로 육체를 들뜨게 할 뿐 아니라 영혼을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하며, 우리가 발 딛고 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한다. 세상에서 사랑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과 동성애를 포함해서 자연 속 다른 것들에 대한 집착 역시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어떤 이유로 사랑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는 자신의 인간성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글에 몰입하고 이를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비둘기 북클럽 속 주인공들처럼 함께 감상을 나누는가, 아니면 침잠해 글을 이해하려 하는가.“비둘기 북클럽 같은 것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가 인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감성이 더없이 풍부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북클럽의 광경들은 자신을 각각으로 분열해서 연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이는 마음속 욕망을 자연스럽게 발휘한 것이다. 내 문학에서 등장인물들이 지닌 자질은 하나같이 자신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전부 나의 가능성이며, 하나로 합치면 문학의 소우주를 구축한다. 인물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건 작가가 가진 원시적인 힘이다. 이런 소설은 ‘독창성’의 경지를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서양식 사유의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본토의 자의식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북클럽 주인공들은 제목에 ‘X’가 포함된 소설을 읽으며 몰입한다.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읽기를 바라면서 소설을 집필했는지.“X는 허구적 이상 소설로 미래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내가 말하는 본질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본질에 가장 가까운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적나라하고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인생을 즐기고, 예술을 즐기며 이로 인해 창조의 격정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독자에게 바라는 바다.”―기존작과 신간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예전에 쓴 소설은 ‘격정세계’보다 좀 더 추상적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읽기에는 다소 힘에 부친다. 하지만 내 팬들은 그것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훗날 ‘암흑 대지 어머니의 선물’을 쓰자 가독성이 좋은 편이라 젊은 층에 사랑을 받았다. ‘격정세계’ 역시 비슷한 종류의 소설로 나는 늘 실험 중이다. 끊임없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고, 이는 내게 만족을 가져다준다.”―소설에는 독자를 대표하는 샤오쌍, 소설가를 대표하는 한마, 비평가를 대표하는 페이 등이 등장한다. 이 세 요소가 어떻게 조화돼야 문학세계가 완성될 수 있다고 보는가.“세 가지는 문학의 기본 요소로 문학은 전파를 통해서 발전한다. 소설은 아무도 읽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를 알아챈 사람들은 문학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하기 위해 독자와 비평가를 배출했다. 나는 실험 소설의 독자와 비평가는 필히 창조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설은 양자의 ‘감정이입(공감)’과 연기적 해석을 통해서만 이질적이지만 공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준 높은 요구다. 그래서 대도시 멍청에서 정상급 독자나 비평가가 열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학은 대중적이지 않지만 생명력은 더없이 길다.”―신간을 접할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독자들이 책 속 인물과 함께 춤추면서 진심 어린 즐거움을 얻었으면 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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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베의 뻔뻔한 변명 vs 日 젊은 학자의 역사반성

    “‘무라야마 담화’의 실수는 선악의 기준으로 일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전제하에 사죄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2월 일본에서 출간된 ‘아베 신조 회고록’에 실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말이다. 번역 후 한국에서 새로 출간된 이 회고록은 아베 전 총리가 퇴임 후 2020년 10월부터 약 1년간 요미우리신문 기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현직 일본 총리 최초로 한국의 식민 지배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죄한 담화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는 이 담화를 사실상 부정하고, ‘자기반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 회고록엔 “일본만 식민지배를 한 것처럼 여겨진다”는 억울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전 서양 각국도 식민지배를 했을 것”, “벨기에 국왕이 잔혹 행위를 했다며 콩고 공화국에 사과한 것은 2020년” 등 온통 ‘남 탓’하는 그의 말들로 가득하다. “일본은 과거 몇 번이나 사과해 왔습니다. ‘여러 차례 사과를 시켰으면 이제 됐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뻔뻔하면서도 솔직한 ‘가해자’스러운 태도는 다소 말을 잃게 만든다. “역사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등과의) 싸움에서 일본이 왜 이렇게 약하냐”고 묻는 신문기자들의 질문 자체에도 “일본은 억울하다”는 인식이 묻어난다. 아베 전 총리는 이에 대해 “역사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풍화될 테니 그냥 넘어가자는 자세라 외무성이 싸워오지 않았다”며 “내 정권 들어서는 열세를 만회하려 했다”고 변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묻힌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길”이라고 합리화했다. 책을 읽으면 한국에서 아베 전 총리가 그저 대표적인 혐한파 우익 정치인 정도로 평가 절하되는 이유가 이해된다. 2022년 총격으로 사망한 그는 일본에선 8년 8개월을 재임한 ‘최장수 총리’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우익 발언은 한국인의 정서와는 확실히 유리됐다. 한일 관계뿐 아니라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을 받는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에 대해 “재무성의 책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회피하는 등 다방면에서 성실한 회고(回顧)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모리 마유코(森万佑子)의 신간 ‘한국병합’에선 역사에 대한 젊은 연구자의 자기 반성적 면모가 엿보인다. 저자는 서울대에서 한국 근대사를 배운 연구자로서 양국 사료를 고루 제시하며 한일 병합 과정을 촘촘히 파헤친다. 혐한과 케이팝이 공존하는 일본에 정작 균형 잡힌 사료에 근거해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저서가 없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껴 집필했다. 일본인임에도 한국을 주어로 책을 집필한 점이 흥미롭다. 기존 대다수 일본인이 쓴 책들은 ‘일본이 왜 한국을 병합했는가’에 집중한 경향이 컸지만, 이 책은 ‘대한제국이 성립 후 붕괴하는 과정’으로 눈을 돌린다. 대한제국 황제와 정부를 주인공으로 두고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한 인물들을 분석한다. 모리는 “일본이 한국인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 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한다. 1990년대 이후 양국 연구자들이 수행한 한일 병합 관련 연구에서 발생한 논쟁도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일본은 ‘국제법’을, 한국은 ‘역사학’을 근거로 대립하는 가운데 모리는 이 책이 한일 양국의 생각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서양의 핑계를 대며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우익 정치인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이유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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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운동 나선 민초들 “사람 본분 지킨 것, 죄책 없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4시경 황해도 서흥군 능리시장. 인근 마을 주민 200여 명이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앞서 9일 전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촉발된 3·1만세운동이 황해도까지 번진 것이다. 만세 시위는 기독교 전도사 김성항이 민족대표들이 작성한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평양에서 받아 오면서 계획됐다. 시위 전날인 3월 9일 이를 눈치챈 헌병대가 오후 6시경 김성항을 비롯한 주동자들을 검거했다. 하지만 다음 날 서당 교사 김두성 등이 송화리에서 주민들을 모아 계획대로 만세운동을 강행했다. 근처 소사리 주민들도 합류한 상황에서 장터를 찾은 이들까지 현장에서 가세했다. 이날 미리 대기한 일제 헌병과 경찰이 무기를 휘두르며 시위를 진압했다. 면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주민들도 검거됐다. 주동자로 검거된 14명은 1, 2심 법원을 거쳐 6개월에서 2년의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들은 이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상고했으나 결국 기각됐다. 동아일보가 3·1만세운동 105주년을 맞아 1919년 6월 19일 일제 고등법원이 작성한 판결문에서 확인한 당시 상황이다. 판결문에서는 지식인이 아닌 평범한 민초들도 민족의식에 입각해 주체적으로 시위에 나선 사실이 확인된다. 면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검거된 농민 민응식(당시 24세)은 “파리평화회의에서 다룬 민족자결주의를 신문 보도로 봤다. 독립선언서를 통해 조선 독립이 바야흐로 달성된다는 신념이 굳어져 조선인으로서 좌시할 수 없었다”며 상고 취지를 밝혔다. 능리 장터에서 시위 중 체포된 농민 김두성(당시 20세)은 “반만년의 조선 역사가 10여 년의 세월 일장기 아래 묻혀 있었는데 평화의 춘풍이 삼천리에 이르니 2000만 중 한 명으로서 어찌 감동하지 않았겠는가”라며 “조선민족의 독립운동은 인도와 정의에서 우러나온 것인데 어째서 법으로 처벌하려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서당 교사 전종철(당시 21세)은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실을 듣고 조선인으로서 당연히 외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했다”며 “이는 사람으로서 본분을 지킨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아무런 죄책이 없다”고 강조했다. 남녀 차별이 강했던 당시에 여성들이 시위를 주도한 사례도 발견된다. 1919년 4월 15일 전남도장관이 조선총독부에 보낸 ‘도장관 보고’ 문건에는 “4월 8일 오후 2시 목포부 죽동에서 기독교 신자인 부인 4명이 구한국기를 높이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조선인을 선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목포에선 청년과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4월 8일 오전 10시 영흥·정명학교 재학생 및 기독교인 150여 명이 남교동 시내로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제에 강제 해산됐다. 그러자 당일 오후 2시경 죽동 부근에서 기독교인 부인 4명이 또다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앞장선 것. 이날 하루만 일제가 검거한 목포 시민이 80여 명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에 멈추지 않고 이튿날에도 애국지사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 시위를 이어 나갔다. 독립기념관은 ‘황해도 능리시장 만세운동’ 판결문에서 피고 14명 중 아직 포상받지 못한 7명을 밝혀내 2021∼2022년 정부 포상을 이끌어냈다. 김은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자료발굴TF팀장은 “서울에 사는 지식인이 아닌 일반 민중들도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충분히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시위에 참가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3·1만세운동은 민중들이 부화뇌동한 우발적인 시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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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독립 호소’ 외교문건 12점 첫 공개

    3·1절을 맞아 일제강점기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을 호소한 문건들이 독립기념관에서 전시된다.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밝은누리관에서 제105주년 삼일절을 맞아 특별자료를 공개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3·1 독립선언을 전후로 열린 제2차 뉴욕 소약국동맹회의와 파리평화회의 등과 관련된 문건 12점이다. 한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각종 외교활동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독립기념관은 “전시품은 학계에는 소개됐지만 국내에선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들”이라고 말했다. 1918년 12월 작성된 ‘뉴욕 소약국동맹회의 전단지’는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한국 독립 문제를 파리평화회의 안건으로 제출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파리평화회의 자료 중 ‘비망록’과 ‘청원서’도 일제 식민 지배의 부당함을 알리고,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 파리평화회의에 임시정부 대표로 파견된 김규식은 두 문건의 내용을 요약해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김규식은 “일본의 대륙 침략이 궁극적으로는 태평양을 지배하려는 데 있다”며 태평양전쟁을 경고했다. 이 밖에 한국친우회의 ‘설립 공포문 및 설립목적 4개항’ 자료는 미국 사회에 한국의 실정을 알리고, 독립을 위한 지원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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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역사 쓴 두 여경 “범죄자들 속성은 ‘남 탓’”

    “남자는 힘이 세고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힘의 논리만으로 여경을 비하하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박미옥 전 경정) “프로파일링을 할 때는 오히려 여성의 섬세함이 더 큰 강점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이진숙 인천경찰청 경위) 각각 대한민국 1호 강력계 형사, 1호 여성 프로파일러인 이들에게 최근 불거진 ‘여경 무용론’에 대해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앞서 2021년 11월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당시 여성 경찰관이 초동 대응 없이 현장을 이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여성이 소수인 경찰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며 여경 역사를 새로 쓴 이들을 26일 만났다. 최근 ‘내 안의 악마를 꺼내지 마세요’(행성B)를 펴낸 이 경위는 심리학 석사, 교육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5년 경찰청 범죄분석요원 특채 1기로 선발됐다. 연쇄살인범 이춘재와 전남편을 살해한 고유정 사건 등 500여 건의 프로파일링을 맡았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형사 박미옥’(이야기장수)을 출간한 박 전 경정은 1987년 순경으로 시작해 1991년 강력계 형사가 된 뒤 신창원 탈옥 사건, 서울 숭례문 방화 사건 등을 담당했다. 첫 여성 강력반장 및 강력계장 타이틀을 갖고 있는 박 전 경정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며 정년을 7년 앞둔 2021년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으로 명예퇴직했다. 현재는 제주도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형사 박미옥’엔 2011년 박 전 경정이 강남경찰서의 첫 여성 강력계장이 됐을 때 한 기자가 “여성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립스틱 정책’이냐”고 비꼰 에피소드가 나온다. 당시 박 전 경정은 “제가 수사 경력과 실력이 허접하다면 깊이 반성하겠다. 하지만 강력계장으로서 경험이나 실력을 인정받았다면 당신은 여성 비하 발언을 한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어떤 조직이든 남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지식과 지혜가 보태져야 한다”고 했다. 이 경위는 “프로파일링 시 범죄자들이 ‘여성 경찰이라 조금 더 편안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내 안의 악마를 꺼내지 마세요’에 나오는 지난해 3월 ‘현대시장 방화 사건’의 경우가 그렇다. 술에 취해 인천 동구 현대시장에 불을 지른 범인은 이미 방화로 4차례나 실형을 받은 적이 있는 병적인 인물이었다. 이 경위는 “범인이 내게 ‘범행 전 선생님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두 베테랑 경찰이 보는 범죄자들의 속성은 어떨까. 이 경위는 “범죄자들은 보통 외부 요인이 부정적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레짐작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책에 언급된 지난해 2월 ‘편의점 살인 사건’은 범죄자들의 전형적인 ‘남 탓’ 성향을 보여준다. 전자발찌를 찬 30대 남성이 인천의 편의점 창고에서 흉기로 업주를 살해한 뒤 도주한 사건이다. 체포된 범인은 이 경위와의 면담에서 “원래 강도만 하려고 했는데 피해자의 반항이 너무 심해 ‘사고’로 이어졌다”고 진술했다. 박 전 경정은 2015년 10월 ‘강서구 일가족 사망 사건’을 예로 들며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건 범죄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가장이 부인과 고등학생 딸을 죽이고 자살한 사건이다. 박 전 경정은 “당시 범인은 ‘부인의 부채로 인한 생활고를 버틸 수 없었다’는 유서를 남겼지만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가장으로서 심리적 압박이 부른 잔혹 범죄였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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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 호소한 외교문건 12점 국내 첫 공개

    3.1절을 맞아 일제강점기 국제사회에 한국 독립을 호소한 문건들이 독립기념관에서 전시된다.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밝은누리관에서 제105주년 삼일절을 맞아 특별자료를 공개한다고 28일 밝혔다.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3.1 독립선언을 전후로 열린 제2차 뉴욕 소약국동맹회의와 파리평화회의 등과 관련된 문건 12점이다. 한국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각종 외교활동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독립기념관은 “전시품은 학계에는 소개됐지만 국내에선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들”이라고 말했다.1918년 12월 작성된 ‘뉴욕 소약국동맹회의 전단지’는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한국 독립문제를 파리평화회의 안건으로 제출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파리평화회의 자료 중 ‘비망록’과 ‘청원서’도 일제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알리고, 독립에 대한 한국인의 열망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 파리평화회의에 임시정부 대표로 파견된 김규식은 두 문건의 내용을 요약해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김규식은 “일본의 대륙 침략이 궁극적으로는 태평양을 지배하려는데 있다”며 태평양전쟁을 경고했다.이밖에 한국친우회의 ‘설립 공포문 및 설립목적 4개항’ 자료는 미국 사회에 한국의 실정을 알리고, 독립을 위한 지원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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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의사 미공개 유묵 1점 日서 귀환

    일본인이 소장하던 안중근 의사(1879∼1910)의 미공개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이 경매를 통해 국내로 들어온다. 서울옥션은 27일 서울 강남구 ‘분더샵 청담’에서 열린 미술품 경매에서 안 의사의 유묵 ‘인심조석변 산색고금동(人心朝夕變 山色古今同·사진)’이 추정가 6억∼12억 원보다 높은 13억 원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19억5000만 원에 낙찰된 안 의사의 ‘용호지웅세 기작인묘지태(龍虎之雄勢 豈作蚓猫之態)’ 유묵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일본인이 소장하던 해당 유묵을 독립운동가 후손인 고(故) 곽노권 회장이 창업한 한미반도체가 구매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유묵의 문구는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의 색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뜻이다. 나라를 위한 자신의 충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뒤 순국하기 전까지 감옥에서 많은 글씨를 썼다. 일본인 관리와 간수(교도관)들이 앞다퉈 안 의사에게 글씨를 요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안 의사가 생전에 유묵을 200여 점 썼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확인된 것은 60여 점이다. 이 중 보물로 지정된 작품은 31점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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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성백제시대 목조 우물, 몽촌토성 인근서 발견

    서울 송파구 방이동 공사 현장에서 백제시대 우물이 발견됐다. 한성백제시대(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 우물로는 세 번째 발견으로, 당시 왕성인 풍납·몽촌토성과 가까워 주변 생활 유구의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발굴 조사 기관인 중부고고학연구소가 방이동 52 일대에서 목조 우물 1기를 발견했다. 이곳은 몽촌토성에서 0.6km, 풍납토성에서는 1.6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백제 왕성 인근에 당시 사람들이 거주하며 우물을 만든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4, 5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은 목판을 서로 끼워 井자 형태로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다. 서울에서 백제시대 우물이 확인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풍납토성 경당지구와 송파구 대진·동산 연립주택 부지에서 한성백제시대 우물이 1기씩 발견됐다. 우물 바닥에선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토기들이 출토됐다. 일부 토기는 주둥이 일부가 깨져 있거나 윗부분에 끈을 묶은 흔적들이 확인됐는데 발굴팀은 제의용 토기로 보고 있다. 고대 우물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는데 동물 뼈나 토기 등 제사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강세호 중부고고학연구소 책임조사원은 “한성백제시대 왕성 외곽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자료를 확보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풍납토성 발굴에 참여했던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이외 일반인들이 살던 마을과 도로, 우물 등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중부고고학연구소는 보존 처리를 위해 우물의 각 부재를 최근 해체했다. 나무 부재와 토기는 보존 처리를 거쳐 한성백제박물관으로 이관될 예정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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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촌토성 인근서 백제시대 우물 발견

    서울 송파구 방이동 공사현장에서 백제시대 우물이 발견됐다. 한성백제시대(기원전 18년~475년) 우물로는 세 번째 발견으로, 당시 왕성인 풍납·몽촌토성과 가까워 주변 생활 유구의 양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발굴 조사기관인 중부고고학연구소가 방이동 52번지 일대에서 목조 우물 1기를 발견했다. 이곳은 몽촌토성에서 0.6㎞, 풍납토성에서는 1.6㎞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백제왕성 인근에 당시 사람들이 거주하며 우물을 만든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약 4, 5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은 목판을 서로 끼워 井자 형태로 층층이 쌓아올린 구조다.서울에서 백제시대 우물이 확인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풍납토성 경당지구와 송파구 대진·동산 연립주택 부지에서 한성백제시대 우물이 1기씩 발견됐다.우물 바닥에선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토기들이 출토됐다. 일부 토기는 주둥이 일부가 깨져 있거나, 윗부분에 끈을 묶은 흔적들이 확인됐는데 발굴팀은 제의용 토기로 보고 있다. 고대 우물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는데 동물뼈나 토기 등 제사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강세호 중부고고학연구소 책임조사원은 “한성백제시대 왕성 외곽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자료를 확보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풍납토성 발굴에 참여했던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이외 일반인들이 살던 마을과 도로, 우물 등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문화재청과 중부고고학연구소는 보존처리를 위해 우물의 각 부재를 최근 해체했다. 나무 부재와 토기는 보존처리를 거쳐 한성백제박물관으로 이관될 예정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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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이 해로울 수 있다? 식품처럼 성분표 필요할지도[책의 향기]

    “취급허가 없이 살 수 있는 소비재 중 가장 복잡하고 다층적인 ‘화학 프로필’을 갖고 있다.” 안전한 옷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에코 컬트(Echo Cult)’의 편집장인 저자는 패션 제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공, 직조, 염색 등 제작 전 과정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복잡한 화학물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 기분 좋게 뜯은 새 옷에서 나는 독한 약품 냄새에 얼굴을 찡그린 경험이 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저자는 연구자, 패션 전문가, 승무원, 의류 공장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 책을 썼다. 옷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유독성은 상상 이상이다. 음식, 주거 등 온갖 분야에서 웰빙 바람이 불어도 ‘안전한 옷’에는 여전히 무관심한 편이다. 법에 따라 엄격히 칼로리와 영양성분을 표기해야 하는 음식과 달리 옷의 성분은 규제가 없어 제조사나 유통사조차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옷 한 벌에 많게는 50종 이상의 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이 중에는 호르몬을 교란하고 암과 불임을 유발할 수 있는 독성물질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항공 승무원들이 옷에 묻은 화학물질이 유해하다며 2012년 집단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 밀폐된 환경에서 유니폼을 상시 착용하는 승무원들이 화학물질로 인해 호흡 곤란과 발진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공사는 “개인이 민감한 탓”이라고 반박했고, 법원도 “유해성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항공사 손을 들어줬다. “옷을 먹는 건 아니잖아요.” 집요하게 취재하는 저자에게 어떤 패션회사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어린 자녀가 있는 가구 124곳의 집 먼지를 분석한 결과, 모든 집에서 합성섬유 염색에 쓰이는 ‘아조 분산염료’가 검출됐다. 옷에 묻은 염료가 떨어져 나간 뒤 공기 중에 떠다니다 호흡기를 통해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옷의 화학물질 말고도 근무 환경, 스트레스 등 현대인의 질병 원인은 다양하다. 이에 따라 의류의 화학물질과 건강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저자의 실험정신도 돋보인다. 인도 티루푸르 공장을 직접 방문해 옷 제작 과정을 조사하고, 구매한 제품을 친환경 인증 기관 ‘오코텍스’에 맡겨 실험했다. 분홍 인조가죽 미니스커트, 네온 오렌지색 반투명 하이힐 등의 각종 검사 결과가 책에 담겼다. 책을 읽는 내내 1962년 발표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떠올랐다.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생태계에 일으키는 문제를 보여준 이 책은 출간 당시 감상주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제는 고전이 됐다. ‘죽음을 입는다’는 다소 과장된 제목 역시 언젠가는 당연한 상식이 될지도 모른다. ‘모조품과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피하라’ 등 소비자가 독성물질이 묻은 옷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팁도 유용하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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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계탕, 조선초부터 보양식으로 먹었다”

    “출산 후 몸이 허하고 야위었을 때 멥쌀 반 되와 양념을 넣어 버무린 다음 닭 속에 넣고 삶는다. 이어 배를 갈라 백합과 밥을 취하고….” 1460년(세조 6년) 의관 전순의가 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치료 처방서 ‘식료찬요(食療纂要)’에 나오는 문구다. 닭의 배를 갈라 여러 재료를 넣고 끓여 먹는 오늘날의 ‘삼계탕’(사진)과 비슷하다. 정희정 한국미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 처방은 재료, 조리, 먹는 방식 등에서 오늘날의 삼계탕과 유사성이 높아 삼계탕의 시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삼계탕을 20세기 전후의 근대 음식으로 본 통설을 깨는 견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국 식문화의 연원을 추적한 신간 ‘한국음식문화사’를 최근 발간했다. 중국이 김치를 자국 음식인 ‘파오차이(泡菜·중국식 채소 절임)’로 주장하는 등 ‘문화 공정’ 논란이 일어난 가운데 우리 음식의 역사성을 고증한 것이다. 책은 여러 저자가 밥, 김치, 삼계탕, 나물, 고기, 장(醬), 인삼 등 7가지 주제로 한국 음식의 역사와 발달 과정을 다뤘다. 이 중에는 다채로운 나물 문화도 소개됐다. 한국인이 섭취하는 식물 종류는 약 1000가지에 이르는데 이 중 국어대사전에 ‘나물’ 자가 붙은 낱말은 300종이나 된다. 특히 깨끗한 물로 생채소를 씻을 수 있는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고기에 쌈을 싸먹는 ‘쌈 문화’가 발달했다. 원나라 시인 양윤부는 ‘난경잡영(灤京雜詠)’ 시에서 ‘고려인은 생채에 밥을 싸서 먹는다’고 썼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전통 식문화는 채식 위주의 환경 보존적 식생활”이라고 말했다. 책은 김치가 파오차이와는 명백히 다른 음식이라고 강조한다. 둘 다 절인 채소를 발효시키지만 식초와 술 지게미 등을 사용하는 파오차이와 달리 김치는 동물성 발효식품인 젓갈을 사용한다.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김치는 다양한 재료의 풍부한 양념을 통해 오늘날의 형태로 진화한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이라며 “중국 채소 절임이 2000∼3000년 동안 종류와 조리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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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지리지 ‘여지도서’ 등 6건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조선 영조(재위 1724∼1776) 때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서(輿地圖書)’와 고려시대 청동북 ‘천수원명 청동북(薦壽院銘 金鼓)’ 등 6건을 보물로 지정한다고 21일 밝혔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소장한 여지도서는 각 군현에서 작성한 읍지(邑誌·한 고을의 연혁, 지리, 풍속을 기록한 책)를 모아 55권의 책으로 만든 지리지다. 경기·전라도를 제외한 6개 도의 지도와 영·진 지도 12매, 군현 지도 296매 등이 포함돼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이전 지리지와 달리 읍지 앞에 지도가 첨부됐고, 호구(戶口)와 도로 등 사회경제 항목이 추가돼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온양민속박물관이 소장한 고려 청동북은 1162년(의종 16년)에 제작됐다. 측면에 제작 시기와 무게, 사찰 이름, 주관 승려가 적힌 글씨가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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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가 고하 송진우 선생 학술회의 열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고하(古下) 송진우 선생(1890∼1945)을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19일 열렸다. 고하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는 1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고하 송진우의 민족운동: 3·1운동에서 건국운동까지’ 학술회의를 열었다. 고하는 일제강점기 중앙학교장과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고, 광복 후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로 활동했다.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재단 이사장은 고하의 3·1운동 관련 업적을 발표했다. 중앙학교를 중심으로 3·1운동을 기획하고 민족문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자유와 통합, 민주와 공화: 21세기를 위한 송진우의 사상과 실천’을 주제로 고하의 사상을 조명했다. 박 교수는 “공산주의는 반대했지만 사회민주주의는 수용해 민주적 방법으로 자유와 평등의 길을 제시한 선생의 민주공화국 구상을 제대로 살려내야 한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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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전칠기함 만져보고 범종소리 눈으로 보고, 박물관서 부는 오감 체험 ‘배리어 프리’ 바람

    조선시대 매장 시 시신의 머리카락을 담는 붉은 주머니 두발낭(頭髮囊)이 매화 무늬로 장식돼 있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는 예부터 군자의 강인한 지조와 더불어 아름다운 여인을 상징했다. 두발낭은 경기도박물관이 지난해 12월부터 진행 중인 ‘배리어 프리’(장애인이나 고령자가 물리·제도적 장벽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 특별전 ‘구름 물결 꽃 바람’의 전시품 중 하나다. 전시에선 과거 조상들이 사용한 전통 무늬가 새겨진 소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이한 것은 각 전시품들 앞에 놓인 촉각 모형이다. 전시품을 본떠 3차원(3D)으로 만든 모형으로, 시각장애인들이 만져 볼 수 있게 했다. 나비 무늬로 장식한 보자기, 당초 무늬로 전시된 나전칠기함을 재현한 촉각 모형도 있다. 신선들의 잔치를 그린 조선 후기 ‘요지연도 8폭 병풍’은 실제 크기의 모조품 안에 3D 무늬를 붙여놨다. 또 풀, 복숭아, 꽃의 세 가지 향을 맡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점자 해설판과 수어 해설 영상도 갖췄다. 정윤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은 있었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는 처음 기획했다”며 “전시는 눈으로 봐야 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 오감으로 즐길 수 있게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박물관에 배리어 프리 공간이 늘고 있다. 그동안 박물관은 유물 훼손 우려 때문에 시각 체험 위주의 전시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시각장애인들은 전시품의 질감이나 색깔, 부피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취약계층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배리어 프리 전시가 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9월부터 공감각 교육공간 ‘오감’을 운영 중이다.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이 비치된 ‘사유의 방’을 시각장애인도 체험할 수 있도록 원래 크기와 재질대로 재현한 반가사유상과 미니어처 등 불상 모형 30점을 배치했다. 미니어처부터 실제 크기의 불상 모형까지 단계별로 반가사유상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 비장애인들도 시각 차단 안경을 쓰고 1시간 반 동안 같은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장은정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은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별도 공간이 아니라 모두가 어우러져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 9월 상설전시실 3층 조각공예관에 범종 체험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청각장애인도 범종을 느낄 수 있도록 소리를 시각 요소로 변환하는 방안을 기획하고 있다. 국보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실물도 함께 전시한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이달부터 선사시대 간석기와 뗀석기, 백제 토기, 조선 분청사기 등을 촉각전시품으로 제작해 전시하고 있다. 석기는 실제 전시품과 유사하게 돌로 만들었으며, 분청사기 모형은 단면을 만질 수 있도록 절반을 자른 형태로 전시한다. 또 촉각 전시품을 제작하는 영상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이 함께 제공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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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화장실은 사적인 공간? “불평등 강화한 정치적 공간”

    “화장실? 그 어떤 작은 주제에도 지적 우주의 한 부분이 정말 담겨 있나 봅니다.” 저자가 두 세기에 걸친 미국 공중화장실의 역사를 연구하겠다고 하자 인터뷰 대상이던 어느 연구원이 건넨 말이다. 그러나 화장실은 결코 작은 주제가 아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사회적 불평등을 연구하는 저자는 성별 또는 계층에 따른 공중화장실의 사용 행태를 통해 한 사회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환영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단순한 일상 공간 이상의 의미를 화장실이 갖고 있다는 것. 저자는 공중화장실 관련 문서 7238건과 192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화장실 담론’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화장실은 계급과 젠더의 불평등을 강화한 정치적 공간이었다. 미국 최초의 공중화장실은 19세기 후반 자선 사업가들이 도시 빈민들을 위해 지었다. 그러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결국 대다수 화장실이 호텔과 기차역, 백화점 등 중산층 이상의 공간에 들어서게 됐다. 화장실에서마저 부유한 도시 거주자들이 노동계급과 유리된 것이다. 20세기 초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고용주들은 성별로 분리된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는 여성들의 거센 요구에 직면했다. 결국 188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가 공중화장실 성별 분리를 의무화하는 주법을 처음 통과시켰고, 이어 1889년 뉴욕주도 비슷한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1978년 여성 전용 화장실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고용주들이 고발을 당할 정도로 화장실을 둘러싼 성차별은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저자는 성별 분리 화장실에는 여성의 몸을 성적 약탈의 대상으로 보는 논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20세기 후반 트랜스젠더 운동과 더불어 성별 구분 없이 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성중립 화장실)’ 설치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는 성소수자나 장애인, 성별이 다른 활동보조인 등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성별 구분 표지판을 없앤 화장실이다. 그러나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인해 성중립 화장실 설치는 반대에 부닥쳤다. 저자는 성중립 화장실도 지역의 빈부 격차와 무관치 않음을 보여준다. 개조나 설치에 드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저자는 그럼에도 미국의 공중화장실은 꾸준히 진보했다고 말한다. 1990년 미국 장애인법 시행을 계기로 성중립 화장실 설치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성중립 화장실 설치론자들은 ‘가족용 화장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포용적인 공간을 만들거나, “우리 조직이 더 돋보이기 위해 이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변을 설득했다. 그 결과 학부생들에게 성중립 기숙사 및 화장실을 제공한다고 보고한 대학의 수가 2009∼2016년 7년간 4배 이상 급증했다. 한국과 미국의 상황을 비교하면 한층 흥미롭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미국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2022년 3월 성공회대에 이어 12월 KAIST에 성중립 화장실이 생긴 직후 찬반 논란이 벌어졌고, 관련 지방자치단체에 폐쇄 요청 민원이 잇따랐다. 하루에 몇 번이고 용무를 보기 위해 드나드는 일상의 공간조차 젠더와 계급의 불평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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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CEO “‘오징어게임 시즌2’ 세계관·게임 기대”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8개월 만에 한국을 찾아 “새 시즌으로 돌아오는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2 세트장에 가게 돼 굉장히 기대된다”고 말했다. 서랜도스 CEO는 16일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에서 열린 ‘넷플릭스 서울 사랑방’ 행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국에 돌아와 매우 기쁘다”며 “한국에서 스토리텔링, 콘텐츠에 대해 보여주는 관심이 커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징어게임 시즌2 세트장을 방문할 계획을 언급하며 “황동혁 감독이 이번엔 어떤 세계관과 게임을 보여줄지 굉장히 흥분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기대하는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로 오징어게임 시즌2와 예능 ‘피지컬:100’ 시즌2, 드라마 ‘스위트홈’ 시즌3 등을 꼽았다. 또 지난해 인상 깊게 본 작품으로 영화 ‘길복순’과 드라마 ‘더글로리’를 언급했다. 지난해 6월 이후 약 8개월 만에 한국을 찾은 서랜도스 CEO는 이날 넷플릭스의 자회사인 스캔라인 VFX 산하 ‘아이라인 스튜디오’를 방문해 임직원들을 만날 예정이다. 다음날 충청도 오징어게임 시즌2 세트장을 방문해 황동혁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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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속 ‘현종과 호족의 극한대립’… “시기 다르고 지나친 과장”

    ‘역사왜곡 막장 전개. 이게 대하사극이냐?’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앞. 디씨인사이드 갤러리 회원들이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을 성토하는 문구의 전광판을 실은 트럭을 보내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1월부터 방영 중인 이 드라마는 고려와 거란이 벌인 2, 3차 여요전쟁(1010년 및 1018∼1019년)을 다루고 있다. 일일 최고 시청률이 10%를 넘는 등 인기를 끌고 있지만, 17∼20회에 걸쳐 고려 조정의 내부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졌다. 원작 소설을 쓴 길승수 작가도 “드라마가 원작에 충실하지 않아 역사를 왜곡했다”며 제작진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전문가들은 “일반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정사(正史)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작가나 제작진이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려거란전쟁’의 세 가지 주요 논란에 대해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역사학자들은 극중 지방제도 개편을 놓고 현종(김동준 분)과 호족이 대립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따르면 호족의 힘을 빼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5도 양계와 4도호부, 8목을 설치한 지방제도 개편이 골격을 갖춘 건 3차 여요전쟁(귀주대첩) 당시인 1018년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선 이를 2차 전쟁 직후로 앞당겨 갈등을 과장했다는 것. 허인욱 한남대 사학과 교수는 “나라의 온 힘을 모아도 힘든 상황에서 현종이 내부 분열을 일으켰다는 설정은 과했다”고 말했다. 고려사 등에 따르면 호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과거시험과 노비안검법(본래 양인이었다가 노비가 된 사람의 신분을 회복시키는 법)을 도입한 건 광종(재위 949∼975년)대다. 길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드라마에선 마치 광종 시대의 일을 현종 때 벌어진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극중 왕후 간 갈등은 조선시대 사건을 단순 대입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드라마에서 현종의 첫 번째 왕후인 원정왕후(이시아 분)는 공주절도사 김은부의 딸 원성왕후를 견제하는 악역으로 나온다. 문제는 원정왕후가 병석에 있는 현종을 대신해 정전(正殿)에 들어가 김은부와 그의 딸 원성왕후를 직접 추궁하는 장면. 수렴청정도 아닌데 왕이 대신들과 정사를 논하는 정전에 왕후가 출입하는 행위 자체가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설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려사 전공 교수는 “왕이 거란에 쫓겨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는 마당에 왕후들이 궁중 암투를 벌일 겨를이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현종의 지방제 도입 장면도 조선시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한다.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는 “고려시대에도 군현제가 있었지만 모든 군현에 관리가 파견된 건 조선시대 들어와서다”라며 “극중 현종의 지방제 개혁 장면은 조선시대 정도전의 행적에 가깝다”고 말했다. 극중 현종이 강감찬(최수종 분)과 갈등을 벌인 후 분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타고 질주하다 낙마하는 장면을 놓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현종 비하’ 지적이 나왔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고려전기 문신 최충(984∼1068)은 현종을 “가히 중흥을 이룬 군주”라며 높게 평가했다. 이진한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현종의 낙마는 고려사 자료에 전혀 없는 사실”이라며 “이성계가 공양왕 말년에 낙마한 기록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작가나 제작진이 사극 제작에 앞서 사료를 깊이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소설가 아베 류타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을 다룬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 학계 최신 이론과 답사자료를 엮은 중간 보고서를 최근 책으로 발간했다.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창작자들이 역사 고증을 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며 “퓨전 사극뿐 아니라 고증에 신중을 기울이는 정통사극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2024-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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