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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 인상을 앞두고 정부가 담배 사재기를 막기 위해 합동단속반을 구성해 특별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1일 노형욱 기재부 재정업무관리관 주재로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담배 매점매석 합동단속반 운영방안을 논의하고 12월 한 달 간 특별합동단속을 집중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합동단속반은 기재부 국고국장을 단장으로 한 중앙점검단과 18개 시도별 지역점검반으로 구성되며 담배 제조·수입업자와 도소매업자를 대상으로 매점매석행위에 대해 점검할 예정이다. 정부는 제조·수입판매업자가 담뱃값 인상 방안이 나오기 전인 올해 1~8월까지 월 평균 반출량(3억5900만 갑)의 104%(3억7300만 갑)를 초과해 담배를 유통시키면 폭리를 목적으로 과다 반출한 것으로 보고 처벌하기로 했다. 담배 도소매업자는 같은 기간 월 평균 매입량의 104%를 초과해 담배를 사들이면 사재기로 처벌받는다. 정부는 단속 결과 위법 행위가 적발되면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대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해당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여야가 내년 1월부터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하기로 합의하면서 사재기의 영향으로 편의점 등의 담배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GS25는 29일 담배 매출이 22일보다 31.6% 급증하는 등 대부분의 편의점 담배매출이 10% 이상 증가했다.세종=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2015년 경제정책방향’의 핵심은 단기 부양책에서 구조개혁으로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돈을 푸는 ‘대증요법’만으로 회생시키기에 한국경제의 병세(病勢)가 너무 위중하다고 보고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들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대겠다는 뜻이다. 특히 노동시장 개혁 과정에서 ‘정규직 기득권을 줄이는 만큼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처우의 연계성을 강조할 방침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에 이어 정규직의 기득권까지 손을 대려는 정부의 시도는 사회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 일반해고 등 ‘뜨거운 감자’에 메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기재부 기자단과의 세미나에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과도한 수준”이라고 발언하자 일각에서는 정부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정리해고가 아니라 일반해고 부분을 손보기로 했다. 정리해고의 경우 이미 법체계가 갖춰져 있어 손댈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24조는 ‘정리해고는 기업에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가능하고 해고 예정일 50일 전에 노조에 통보해야 한다’, ‘3년 이내에 해고된 근로자를 우선 재고용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반면 일반해고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일반해고 절차와 관련해 근로기준법 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부당해고하지 못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정당한 이유’ 이외에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실적이 현저히 낮은 임직원도 해고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또 수년간 근무기록을 축적하고, 다른 부서로 배치해 성과를 낼 기회를 부여하는 등 ‘해고 회피 노력’을 한 뒤 근로자를 해고해도 지방고용노동청이 부당해고로 제재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일반해고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지 않고 사내규정인 ‘취업규칙’에 관련 내용을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기준을 구체화할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요건을 명확히 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력 전환배치 문제도 정부가 손대려 하는 ‘뜨거운 감자’다. 예를 들어 일감이 부족한 자동차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잘 팔리는 차종의 생산라인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해 인력의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노조 측은 전환배치가 부당해고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있어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 일자리 미스매치, 교육개혁으로 접근 교육개혁 분야에서는 고교과정과 대학과정이 결합된 ‘고등전문대학’을 내년에 신설할 방침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고교생이 입시를 치르지 않고 특별전형으로 전문대에 진학한 뒤 졸업 후 연계된 기업에 쉽게 취업할 수 있게 된다. 중소기업과 구직자의 눈높이가 달라 발생하는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다. 고등전문대는 내년 3월 또는 9월에 개교해 2016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할 계획이다. 당초 올해 안에 공모를 통해 1곳의 고등전문대학을 뽑아 시범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최근 교육개혁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시기를 늦춘 대신 내년까지 5곳 안팎으로 시범운영 학교를 늘리기로 했다. 일단 산업단지 가까이에 설립하고 취약계층 자녀를 중심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학생들은 기업으로부터 장학금 형태로 학비를 전액 지원받고 전문대 과정을 졸업하면 자동적으로 해당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현재 중학교 2학년생부터 입학이 가능하다. 이들 학교는 지난해 정부가 미래성장동력으로 지정한 자율주행차, 안전로봇 등 ‘13대 산업엔진 프로젝트’에 맞춰 소프트웨어, 에너지, 자동차, 로봇 등 분야에서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된다. 이 밖에 정부는 금융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자영업자를 위한 상권관리제를 도입하는 한편 서민금융진흥원을 설립하는 방안 등을 내년 경제정책 방향에 반영하기로 했다.유성열 ryu@donga.com / 세종=문병기·홍수용 기자}
업무 성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비(非)성과 정규직을 지금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일반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정부가 내년에 추진한다. 기업이 경영 여건에 따라 일감이 부족한 생산라인의 정규직을 다른 생산라인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논의할 계획이다. 정규직의 과도한 보호막을 걷어내는 대신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인다는 취지다. 아울러 대형 민간건설사들이 임대아파트를 지어 일정 기간 직접 임대하도록 하는 ‘순수민간 임대주택’ 육성 방안도 내놓을 예정이다. 30일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노동, 부동산, 교육, 금융 부문 시장구조를 개혁하는 데 초점을 맞춘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마련해 12월 중순 공식 발표한다. 우선 노동시장에서는 각 기업 노사가 정한 ‘취업규칙’ 등을 고쳐 일반해고를 쉽게 하는 방안을 노사정위에서 논의할 방침이다. 성과가 현저히 낮은 정규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기준이 불명확해 해고가 어렵고 이로 인해 기업 효율성 저하, 신규 채용 감소 등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반해고 요건 개선 작업은 주로 노조의 입김이 강한 공기업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등 제조업체들이 인력을 다른 생산라인 등으로 ‘전환 배치’할 때 반드시 본인과 노조의 동의를 구하도록 한 단체협약 규정도 노사정위 테이블에 올려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다만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기업이 정리해고를 할 때에는 근로기준법이 명시한 ‘해고 50일 이전 통보’ 등의 요건을 그대로 지키도록 할 방침이다. 침체돼 있는 임대주택시장에 대형 건설업체를 끌어들이는 정책도 추진된다. ‘래미안임대’ ‘자이임대’ 등 유명 브랜드 순수 민간임대 아파트가 나오도록 할 계획이다. 교육 개혁을 위해서는 특성화고, 전문대, 기업과 연계한 ‘고등전문대학’ 제도를 새로 도입한다. 이 학교 입학생들은 고교 과정을 마친 뒤 시험 없이 특별전형으로 전문대에 입학하며 졸업 후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정부는 내년에 전국의 산업단지에 최대 5개의 고등전문대를 세울 계획이다. 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문병기 / 유성열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세계 3대 경제권과 모두 FTA를 맺었다. 2004년 칠레와 첫 FTA를 체결한 이후 10년 만에 대표적인 ‘FTA 강국’에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과제가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의 경제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패권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무역질서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이 맺은 FTA가 상대국과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주로 따지는 ‘2차 방정식’이었다면 앞으로 맺을 FTA는 정치·외교적 변수가 향방을 가를 ‘다차 방정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중 FTA 타결 이후 정부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한중일 FTA를 남아 있는 3대 통상과제로 꼽고 있다. TPP와 RCEP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자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경제블록을 만들어 지역 경제주도권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에 따라 추진하고 있는 다자간 FTA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이달 초 한중 FTA 타결을 선언한 지 일주일 만인 17일 호주와 FTA 협상을 타결했다. 중국은 또 11일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 출범을 위한 로드맵 채택에 대한 회원국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인도, 호주 등 총 16개국이 참여한 RCEP를 타결한 뒤 이를 중국 중심의 경제블록인 FTAAP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은 미국 주도의 다자간 FTA인 TPP를 견제하려는 대응책의 성격이 강하다. TPP에는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멕시코 등 12개국이 참여 중이며 이 협상이 성공하면 미국과 아시아를 연결해 세계경제의 40%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 형성된다. 한국은 현재 미국, 중국 양쪽과 각각 FTA를 맺고 있다. 또 중국 주도의 RCEP 협상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국 주도의 TPP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중 FTA 타결이 한국이 글로벌 무역질서에서 발언권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중 FTA로 한국이 거대 시장인 중국에서 미국, 일본이 갖지 못한 이익을 누리게 되면서 TPP 협상에서 한국의 위치가 과거보다 중요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펼치고 있는 치열한 통상경쟁의 한가운데에서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한중 FTA 체결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한국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다자간 FTA는 여러 나라가 협상을 벌이게 되는 만큼 미국, 중국, 일본 등에 비해 한국의 이해관계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여서 “실익이 적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정부는 일단 한중일 FTA에 집중하면서 TPP 참여 시기를 저울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중 간의 합의를 토대로 일본을 설득하면 협상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는 만큼 한중일 FTA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정의화 국회의장이 26일 지정한 예산 부수법안은 담뱃세 인상 방안을 담은 지방세법 개정안 등 14건의 법률 개정안이다.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된 법률 개정안은 여야가 합의하지 않아도 내년도 예산안 자동처리 시점인 다음 달 1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附議)된다. 예산 부수법안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 반영된 세법 개정사항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예산안과 함께 처리해야 할 법안들로 국회의장이 지정한다. 가장 논란이 큰 법안은 담뱃세 관련 법률 개정안들이다. 정부가 제출한 지방세법 개정안은 담배소비세를 갑당 641원에서 1007원으로 인상하고 부가세인 지방교육세의 세율을 담배소비세의 50%에서 43.99%로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신설해 담배 출고가격의 77%를 부과하도록 하는 개별소비세법 개정안,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354원에서 841원으로 인상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도 담뱃세 관련 예산 부수법안들이다. 담뱃세를 제외한 부수법안은 대부분 정부가 8월 내놓은 세법 개정안에 포함된 법률 개정안이다.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으면 일시금으로 받을 때보다 세금을 30% 줄여주는 내용 등이 담긴 소득세법 개정안과 자녀가 10년 이상 모시고 살던 부모로부터 5억 원 이하의 주택을 상속받으면 이를 상속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해주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 등이다. 또 법인세법 개정안은 과도한 사내 유보에 세금을 매기는 ‘기업소득 환류세제’ 등을,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은 신용카드 소득공제제도를 2년 연장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정규직에 대한 과잉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신규채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노동시장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이날 충남 천안시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열린 기재부 출입기자 정책세미나에서 "정규직은 한번 뽑으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임금피크제도 잘 안 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최 부총리는 "정규직은 계속 늘어나는데 월급도 높아져 감당이 안 된다"며 "나이가 많아지면 월급을 많이 받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노사가 '제로섬' 게임으로 싸우지 않도록 정부가 사회 대타협을 통해 양쪽이 조금씩 얻어가는 것이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재부는 다음달 발표할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비정규직 처우개선 및 정규직 과잉보호 완화 방안을 담을 방침이다. 최 부총리는 기업의 정규직 해고절차 완화에 대해서는 "해고를 쉽게 하기보다는 임금체계를 바꾸는 등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노사가) 타협이 가능한 여러 가지를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부총리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력인 만큼 노동시장 개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 중 노동시장을 제대로 개혁한 나라는 다 잘나가고 있지만 일본은 노동시장 개혁을 잘 못해 비정규직이 계속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최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프랑스와 스웨덴은 한 직장에서 30년 근무한 직원에 대한 인건비가 신입직원의 각각 1.4배, 1.1배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2.8배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는 금융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금융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대였는데 지금은 5%대로 줄고, 세금을 10조 원 이상 내다가 이제는 3조 원도 못 낸다"며 "금융이 잘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내년은 구조개혁과 경제활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해가 될 것"이라며 "예산안과 관련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경제가 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한국이 이미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 초기 단계에 진입했을 수 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고가 나왔다. 국책연구기관인 KDI가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 각국에 이례적 저물가 현상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한국에도 현실로 닥치고 있는 것이다. KDI는 25일 내놓은 ‘일본의 19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0%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디플레이션 상황을 의미할 수 있다”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작년 10월 0.9%까지 떨어졌으며 올해 들어 한국은행 물가목표치 하한선인 2.5%보다 크게 낮은 1%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재준 KDI 연구위원은 “기준금리가 2.0%로 역사상 가장 낮지만 물가도 사상 최저라 실질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금리를 추가로 낮출 여지가 있고 좀 더 낮춰야 한다”며 한은의 금리 인하를 촉구했다. 많은 민간 전문가들은 이미 디플레이션을 기정사실로 본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마이너스인 생산자물가 등을 감안하면 디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내년에 디플레이션 징후가 더 뚜렷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인 1060조 원으로 커졌고 기업 수익도 나빠져 디플레이션의 대표 징후인 소비, 투자 동시 부진이 고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전문가 설문조사를 토대로 내년 한국 경제의 키워드가 ‘구조적 장기침체’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2개 분기 연속으로 뒷걸음질치는 등 ‘아베노믹스’의 실패 가능성이 커지면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하는 ‘최(崔)노믹스’로 경기부양에 나선 한국 역시 경제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두 정책에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공통점도 적지 않은 만큼 아베노믹스의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노동시장 등에 대한 구조개혁을 서두르면서 섣부른 증세(增稅) 논의의 확산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 최노믹스 vs 아베노믹스 최근 정치권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의 실패 가능성이 커지는 것과 맞물려 야당을 중심으로 최노믹스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4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시장 평가가 절망적인 수준”이라며 “아베노믹스와 궤를 같이하는 최노믹스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2분기(4∼6월)에 이어 3분기(7∼9월)에도 마이너스로 나타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는 만큼 아베노믹스와 공통점이 많은 최노믹스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아베노믹스와 최노믹스를 연관짓는 시각을 경계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9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막다른 골목에서 비싼 윤전기를 돌리는 것뿐이지만 (한국) 새 경제팀의 정책은 관리 가능한 범위에서 충분히 재정을 확장하는 것”이라며 “아베노믹스와 다르다”라고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두 정책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우선 일본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중앙은행의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극약처방’인 데 비해 최노믹스는 일반적인 범위 내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는 통화정책이다. 또 일본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2.7%에 이르는 대규모 재정확대에 나선 데 비해 최노믹스의 재정지출 확대 규모는 GDP의 0.8%로 경기가 나쁠 때 짜는 추가경정예산 규모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정책은 무기력해진 경제심리를 되살리기 위해 단기 경기부양책을 총동원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 ‘금리인하-재정확대-경제체질 개선’을 큰 틀로 하는 최노믹스는 ‘양적완화-재정확대-성장전략’ 등 이른바 ‘세 개의 화살’로 규정되는 아베노믹스와 정책의 뼈대가 유사하다. ○ “섣부른 증세 경계하고 구조 개혁해야” 이런 이유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노믹스가 성공적인 결과를 내려면 아베노믹스의 위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일본 경기가 일시적으로 회복 조짐을 보이다 소비세 인상으로 다시 침체된 데서 나타난 것처럼 섣부른 증세는 경기부양 노력들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최근의 아베노믹스 위기는 재정 확충을 위해 소비세 인상에 나섰다가 나타난 부작용”이라며 “국내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인세 인상 역시 재정 건전화에 도움이 되기보다 경기에 미칠 악영향이 클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부양책 이후 얼마나 빠른 속도로 경제 구조 개혁, 즉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뤄낼 수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베노믹스는 법인세를 낮춰 기업의 설비투자를 촉진시키고 규제 개혁, 산업재흥(再興) 정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실장은 “한국의 경우 미약한 경기회복세가 201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한 재정 개혁, 유망 서비스업 규제 개혁 같은 산업구조 개혁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특히 기업투자와 가계소득 부진의 원인인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다음 달 발표할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 노동, 금융, 교육, 공공 등 4대 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 개혁 방안을 담을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 경제정책은 경기 활력 제고와 함께 구조 개혁에 중점을 둬 준비하고 있다”며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함께 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정규직 해고의 절차적 요건을 합리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한국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내년에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아지는 ‘여초(女超)시대’가 열린다. 남아선호 경향의 약화로 성비(性比) 불균형이 바로잡히면서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반면에 늘어난 여성 인구의 사회진출 통로를 넓히지 못하면 ‘고령화 쇼크’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23일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내년 한국의 여성 인구는 2531만 명으로 남성 인구(2530만 명)를 넘어선다.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지는 것은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0년 이후 처음이다. 여초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다.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길기 때문에 고령인구가 늘면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아진다. 지난해 남녀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105.3명으로 1981년 이후 최저로 떨어지는 등 남아선호 경향이 약해진 것도 남녀 인구 역전에 영향을 미쳤다. 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2000년대 초까지 110명이 넘었으나 이후 줄곧 하락해 2007년부터 자연성비(103∼107명) 수준으로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와 여초현상에 따라 나타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여성 고용률 제고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한국의 가계부채가 가장이 50대인 가구에 집중돼있어 이들이 대부분 은퇴하는 10년 후 심각한 가계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인 50대가 은퇴하면서 소득이 줄어들면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가구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1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낸 '가계부채의 연령별 구성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가구주 연령이 50대인 가구가 진 빚이 전체 가계부채의 35.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가구의 평균 부채는 7959만 원으로 전 연령대 평균 가계부채(5858만 원)보다 35.9% 많았다. 30대 가구(4890만 원)와 비교하면 50대 가구는 1.6배 수준으로 부채가 많았다. 50대 가구 부채가 다른 연령대보다 많은 주요 원인은 집값 상승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당시 40대였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내 집 마련'을 위해 은행 등에서 진 빚을 아직 상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KDI는 분석했다. 실제로 집값이 상승하던 2004년에는 가장이 40대인 가구의 부채가 전체 가계부채의 36.8%를 차지해 30대(20.4%)나 50대(29.8%)보다 높았다. 50대 가구의 부채 쏠림 현상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기 전 미국보다도 심각한 상황이다. 2004년 미국의 50대 가구가 진 빚은 전체 가계부채의 22.7%로 30대(24.7%)와 40대(31.8%) 가구보다 낮았다. 최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앞으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퇴직연금 등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한국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은퇴 이후 소득 감소 폭이 큰 만큼 다른 연령대보다 많은 빚을 지고 있는 50대 가구가 모두 은퇴하는 10년 뒤에는 가계 부실과 이로 인한 노후불안이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KDI는 보고서에서 "현재는 50대의 소득이 높아 가계부채 비중이 높아도 가계의 재정건전성은 양호한 편"이라면서도 "이들의 소득이 급감하는 10~20년 뒤에는 고령층 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막기 위해 KDI는 임금피크제 도입 확산으로 은퇴 연령을 늦추고 중장년층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지섭 KDI 연구위원은 "단기 상환 방식의 대출구조를 장기분할상환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을 펴야한다"며 "주택담보대출을 내줄 때 현재 소득뿐만 아니라 미래 소득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산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문병기 기자weappon@donga.com}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놓고 진통을 겪으면서 정치권과 정부가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을 일부 삭감하는 대신에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예산을 증액하는 정치적 거래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9일 동아일보가 국회 각 상임위원회의 내년도 예산안 예비심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예산을 편성해놓고도 다 쓰지 못했던 공공자금 관리기금(공자기금) 관련 예산 등을 올해 정부가 더 늘려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자기금 예산 등은 매년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대폭 삭감되는 대표적 예산들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핵심사업 예산을 지키면서 정치권의 지역구 예산 증액 요구를 받아주기 위해 이런 부분에서 예산안을 늘려 잡아 국회에 제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해 나라살림 규모를 결정하는 예산안 심사는 국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주도하지만 정부 예산안을 편성하는 기획재정부도 깊숙이 개입한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는 국회가 예산을 줄여도 별 영향이 없는 기금 관련 예산, 핵심사업이 아닌 사업예산, 지역구에 영향이 덜한 비정치적 사업예산 등을 주로 삭감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심사과정에 참여했던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기금 관련 예산 등은 정부가 기준금리를 높여 잡는 등의 방식으로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예산안 편성 때부터 국회가 삭감할 것을 예상해 예산을 늘려 잡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기재부는 공자기금 내 국채 이자상환자금의 기준금리를 올해 4.0%에서 내년 4.5%로 높여 잡아 내년도 예산을 올해보다 1조7000억 원 늘려 짰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은 지난해 국채 조달금리가 3.14%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적용한 금리가 지나치게 높다고 보고 있다. 기재부는 2014, 2013년도 예산안에서 당초 국채 이자상환 기준금리를 4.8%로 적용했지만 국회는 심사과정에서 4.0%로 낮추고 예산을 각각 1조5000억 원, 1조4000억 원 삭감했다. 정부 예산을 줄여도 금융공기업의 보증 등을 통해 자금을 불릴 수 있는 무역보험기금, 에너지특별회계 등 각종 출연금 예산 등도 국회의 단골 삭감 대상이다. 부처 사업예산 중에서는 계약시기가 불투명한 경우가 많은 무기구입사업 등 국방예산이 매년 수천억 원씩 삭감된다. 이렇게 예산이 줄어들면서 마련된 재원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예산이나 복지예산을 증액하는 쪽으로 주로 쓰인다. 실제로 올해 예산에서는 지역구와 관련성이 높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정부안에 비해 4274억 원 늘었으며 복지예산은 6000억 원 증액됐다. 지난해 예산 심사과정에 참여했던 한 의원 보좌관은 “의원들이 ‘관심 예산’을 증액할 수 있도록 정부도 보통 1조 원 안팎의 여유를 둔다”며 “이를 지역구의 인구 수 등을 감안해 정치권이 나눠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예산을 둘러싼 불투명한 정치적 거래가 재정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예산을 심사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바꾸고 지역구 의원들을 배제해야 예산편성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세종=문병기 weappon@donga.com·김준일 기자}
여야 간 정쟁으로 국회의 내년 예산안 심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가 당초 예정한 376조 원의 예산안에서 1조 원 안팎을 떼어내 정치권이 요구하는 증액사업에 배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사업 예산을 무차별적으로 깎으려 할 수 있다고 보고 ‘협상용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53년 국회에 예산결산위원회가 설치된 뒤 계속돼 온 정부와 국회 간 ‘예산안 거래’가 올해에도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일 국회와 정부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인 12월 2일을 약 2주일 앞두고 예산안 중 개별 지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 분야를 중심으로 ‘우선감액대상사업’을 추리고 있다. 이달 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시간에 쫓긴 의원들이 중요한 정부사업의 예산을 대폭 삭감할 것을 우려해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한 분야의 예산을 조정해 ‘정치적 선물’을 마련해두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정부 당국자, 전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 예결특위와 관련된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우선감액대상 사업 규모를 추정한 결과 기재부가 정치적 타협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는 사업비는 1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정부 예산안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통상 5조 원 정도 삭감되는데 정부가 정치적 거래를 위해 이 중 20% 정도를 스스로 감액하는 셈이다.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관련 사업처럼 정권이 중점을 두는 사업을 제외한 주변부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국채 이자상환 금리를 예정보다 낮추는 방식으로 증액자금을 확보한다. 정부 당국자는 “원안대로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심사 과정에서 정부가 의원들에게 ‘이런 사업 규모를 줄이면 된다’는 식으로 의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세종=홍수용 legman@donga.com·문병기 기자}

요즘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순위가 순식간에 바뀌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도의 거의 두 배(89%)로 늘며 오랫동안 아프리카 최고의 경제대국 자리를 지켜왔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쳤다. 케냐 역시 지난해 GDP가 25%가량 늘어 북아프리카의 튀니지 등을 넘어서서 단숨에 중진국 대열에 끼었다. 한 해 만에 경제가 89%, 25% 성장했으니 숫자만 봐선 세계 경제사(史)의 대표적 경제성장 사례로 꼽히는 ‘한강의 기적’이 초라해질 지경이다. 마법같이 보이는 아프리카 경제성장의 비밀은 바로 GDP 통계의 개편이었다. 전자상거래, 이동통신업, 영화 등 각종 무형자산들을 GDP에 포함시키자 경제규모가 크게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통계는 어디까지나 숫자일 뿐이다. 숫자로 표현된 GDP가 커졌다고 삶의 질이 곧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지리아, 케냐 등 GDP가 늘어난 나라들은 통계 개편 전과 마찬가지로 빈곤층의 비율이 높고 전력공급 상황도 열악하다. 이렇다 보니 통계를 개편할 때마다 ‘착시 현상’을 우려하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국의 통계청이 새롭게 내놓은 ‘고용보조지표’를 놓고도 적잖은 논란이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에 따라 만든 고용보조지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 일할 뜻이 있는 경력단절 여성, 구직활동을 미룬 취업준비생 등 기존 고용통계에 실업자로 잡히지 않던 사람들을 포함한 지표다. 공식 실업률 통계에는 빠졌지만 일하고 싶어 하는 200만 명 이상이 고용보조지표에 새로 잡히면서 언론들은 ‘사실상 실업률’이 공식 실업률의 세 배 수준인 10.1%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통계청은 네 차례에 걸쳐 언론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국민들의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 고용보조지표를 ‘사실상 실업률’이나 ‘실질 실업률’로 표현하지 말아달라는 게 설명회의 요지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통계청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애초에 통계청이 이 지표를 내놓은 취지는 공식실업률 통계와 체감실업률 간의 간극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고용보조지표’란 명칭만 고집하며 극구 새 지표와 실업률 간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공식실업률 통계 뒤의 진실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들의 구직난을 해결하기 위해 직속 청년위원회까지 만들었다. 서자(庶子)의 존재를 부인하기 위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했던 홍길동의 아버지처럼 새 지표를 만들고도 가치를 애써 깎아내리려는 통계청의 태도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경제통계는 경제현실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내 정책 수립에 기여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숫자와 용어에 집착하기보다 아픈 현실이라도 가감 없이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고용정책을 마련하는 쪽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정부의 바람직한 태도다. ―세종에서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박근혜 대통령 ‘통일 대박론’의 핵심사업인 유라시아철도에 드는 공사비가 북한 인력을 활용할 경우 당초 예상보다 크게 적은 4조3000억 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또 20년 뒤까지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만 달러로 높이려면 550조 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안에 유라시아철도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통일 대박론을 구체화하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새누리당 심재철 유라시아철도 추진위원장에게 제출한 ‘북한철도 현대화 시나리오별 수송 수요 및 사업비’ 자료에 따르면 남북철도 연결과 북한철도 현대화에 4조3252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남한이 자재와 장비를 지원하고 북한이 자체 노동력을 활용해 철도 현대화에 나서면 공사비가 크게 낮아진다는 계산이다. 노선별로는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현대화에 9064억 원, 속초와 나진을 잇는 동해선과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에는 각각 1조7006억 원, 1조7182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됐다. 유라시아철도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는 부산을 출발해 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철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철도 연결과 함께 북한의 낙후된 철도시설 개량이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의 철도노선은 총 5224km로 남한(3899km)보다 길고 북한 화물 수송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운송수단이지만 시설이 낙후돼 운행속도가 시간당 15∼50km에 그치고 있다. 러시아 등은 북한철도 현대화에 20조∼30조 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남북관계 경색 등 대외 여건과 연구 부족을 이유로 내년 예산안에 유라시아철도 관련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 최근 러시아가 250억 달러(약 26조 원)를 투자해 북한철도 개보수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 유라시아철도를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것과 대비된다. 한편 금융위원회 등 정부부처 및 공기업, 국책연구기관으로 구성된 통일금융 태스크포스(TF)가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1251달러인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20년 뒤 1만 달러로 높이는 데는 5000억 달러(550조 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 유라시아철도 ::부산에서 유럽까지 철도망을 연결해 유라시아(유럽+아시아)를 포괄하는 운송로를 구축하는 사업. 유라시아철도를 완성하려면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우선 구축한 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 등 대륙 철도망과 연결해야 한다.세종=문병기 weappon@donga.com / 유재동·홍수영 기자}

《 12일 예산 심의를 마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국유재산기금에 경찰서 및 파출소 신설 예산을 대거 추가했다. 예산이 증액된 곳은 대부분 기재위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였다. 기재위 예산소위 위원장을 맡은 박명재 새누리당 의원은 9월 추석 민생투어 당시 지역구에 약속한 ‘문덕파출소’ 신설비용 18억6600만 원을 새로 반영했다. 같은 당 박덕흠 의원은 지역구인 충북 보은경찰서 민원실 증축비(3억8300만 원)를,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서울 구로경찰서 청사 신축예산 2억700만 원을 증액하기로 했다.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증액된 것과 동시에 삭감 위기에 있던 정부 예산안 일부가 기사회생했다. 야당이 감액이 필요하다고 꼽은 대표적 항목 중 하나가 박근혜 대통령 공약사업인 ‘글로벌 창조지식경제단지 조성 사업’이었지만 ‘주민 개방’을 조건으로 정부가 짠 예산 55억 원이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이 때문에 기재위 안팎에서는 소속 의원들과 정부 사이에 ‘예산 맞바꾸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도 지출을 올해보다 20조 원 늘린 376조 원 규모의 ‘슈퍼 예산’으로 9월 편성하자 여야가 한목소리로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한 바 있다. 홍문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국회가 예산 심의에 들어간 6일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해 재정건전성 문제 등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며 “예산이 한 푼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회 상임위별 예산 심사 과정에서 이 같은 원칙은 물거품이 됐다. 민원성 선심성 예산이 대거 반영되면서 증액을 요구한 예산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앞에서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던 국회가 뒤에서는 ‘지역구 챙기기’에 나서면서 재정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구 챙기기’에 SOC 예산 대폭 증액 13일 동아일보가 각 상임위의 예산안 예비심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증액 요구는 주로 사회간접자본(SOC)과 복지 분야에 집중됐다. 12일 예산안 심의를 마친 국토교통위원회는 3조3600억 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하기로 했다. ‘교통시설특별회계’와 ‘지역발전특별회계’ 예산이 2조7900억 원 증가하는 등 주로 지역 SOC 사업 예산이 크게 늘었다. 정부가 짜둔 내년 SOC 예산안이 24조4000억 원이므로 국토교통위의 증액 요구가 반영되면 SOC 예산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SOC 투자를 대폭 늘렸던 2009년(25조5000억 원)보다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늘어난 예산은 국토교통위 소속 위원들의 지역구 관련 사업에 집중됐다. 국토교통위 예산소위 위원장인 이윤석 새정치연합 의원의 지역구인 전남 무안군의 무안국제공항 시설 확장 사업에는 200억 원의 예산이 신규 반영됐다. 개항 7년째인 무안국제공항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300여 명에 불과해 감사원 등으로부터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국토교통위는 또 대전, 경기 양주시 등 개발제한구역 주민지원 사업 예산을 130억 원 증액했으며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2148억 원) 등 소속 의원 지역구의 도로건설 사업 등을 대거 증액했다. 특히 국토교통위는 정기국회 파행과 ‘국회선진화법’으로 상임위 예산 심사 기한이 촉박해졌다는 이유로 소속 의원이 증액을 요구한 사업에 대해 대부분 심사 없이 의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위 관계자는 “어차피 예결특위가 다시 심사할 예정이어서 증액 예산은 심사 없이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지역구 챙기기나 선심성 예산 증액이 이뤄진 것은 다른 상임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환경노동위원회는 일부 의원이 “집행률이 낮다”며 반대 의견을 냈지만 위원장인 김영주 새정치연합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구를 포함해 41곳의 하수관 정비사업 예산을 2850억 원 증액하기로 했다. 정부 편성 내년도 하수관 정비사업 예산 400억 원의 7배 수준이다.○ 창조경제 예산 등은 삭감 사업 부진 등으로 기재부가 삭감한 예산을 상임위가 소관 부처의 요구를 받아들여 되살린 선심성 예산도 적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는 정부 예산편성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던 ‘밭 기반정비’ 사업 예산 140억 원을 다시 반영했으며 정무위는 민간투자 유치 부진으로 300억 원만 편성된 금융위원회의 ‘해운보증기구’ 예산을 500억 원으로 늘려줬다. 최근 누리과정을 둘러싼 재원 갈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복지예산 역시 크게 늘었다. 보건복지위는 경로당 냉난방비 예산 600억 원을 증액하기로 했으며 여성가족위는 아이돌봄 지원사업 등 보육사업에 160억 원, 청소년 방과 후 활동 지원사업에 110억 원을 늘렸다. 반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창조경제 관련 예산은 100억 원가량 삭감됐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는 ‘산학연계 지역 중소기업 신사업 창출지원 사업’ 예산 30억 원, 중소기업 신산업 창출 지원사업 예산 30억 원을 깎았다. 또 환노위는 청년 해외인턴 지원사업 예산 등 해외취업 지원사업 예산 30억 원가량을 삭감했다. 정부 관계자는 “의원들이 선심 쓰듯 예산을 증액해 ‘상임위 요구를 다 받아들이면 예산이 600조 원이 돼도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라며 “재정 악화를 우려했던 태도와는 딴판”이라고 말했다.세종=문병기 weappon@donga.com·김준일 기자}
지난달 국정감사 때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던 국회의원들이 이달 상임위원회에서는 ‘지역구 챙기기’로 돌아서 내년 예산을 정부안보다 10조 원 이상 늘릴 것으로 보인다. 세수 부족과 복지 확대로 올해 국가 재정에 위기가 찾아왔는데도 지난해보다 예산증액 요구 규모가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 상임위의 예산안 심사가 ‘선심성 돈잔치’로 변질돼 나라 살림살이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1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회 16개 상임위 가운데 예산안 심사를 마친 12개 상임위 소속 의원들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6조9000억 원(순증액 기준) 늘린 예산안을 의결했다. 통상 2조 원 안팎의 증액을 요구해온 보건복지위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등 나머지 상임위가 예산 심사를 마치면 증액 예산 규모는 1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국회 상임위는 10조 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한 바 있다. 특히 의원들은 지난달 초 정부가 낸 예산안 중 사업비를 줄이는 ‘감액 심사’는 철저히 하면서도 자신들이 요구한 사업비 증액안은 대충 심사하거나 심사절차 자체를 생략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위원장인 김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제주 관련 예산을 351억 원 늘렸다. 이 증액 예산에는 ‘낙도(落島)’ 주민을 대상으로 한 ‘도서지역 운임’과 ‘조건불리 수산직불금’ 지원을 제주도에도 지원하기 위한 예산 50억 원이 포함됐다. 김 의원은 기재부가 “제주도는 낙도가 아니기 때문에 지원이 어렵다”며 예산 편성을 거부하자 기재부에 700여 건의 서면질의를 보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또 국토교통위는 지방하천 정비사업 예산을 557억 원 증액하기로 의결했다. 이 사업은 환경부의 생태하천복원사업과 유사 사업이라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정부가 지난해보다 1000억 원 예산을 삭감했다. 하지만 의원들이 타당성을 검증하지 않고 다시 예산을 늘렸다. 이에 따라 국토위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인 전북 전주시, 충북 제천시, 경기 용인시 관련 예산이 집중적으로 늘었다. 특히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의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 당선을 계기로 호남지역 예산을 확대한다는 새누리당의 방침에 따라 순천만정원, 도로 건설 등 순천시와 곡성군 관련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200억 원가량 증액됐다.세종=문병기 weappon@donga.com·홍수용 기자}
“관세가 없어지는 데 20년이 걸린다니 어느 세월에 중국시장에 진출한단 말입니까.” 경기도의 한 막걸리업체 사장 최모 씨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다는 소식에도 좀처럼 웃지 않았다. 중국이 막걸리를 민감품목(보호대상)으로 분류해 20년에 걸쳐 40%의 관세율을 낮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농산물 보호를 위해 다른 품목은 양보했다지만, 당장 판로 개척에 필요한 부분이 해소되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한중 FTA 타결로 13억 인구의 중국 내수시장을 공략할 길이 열렸지만 주요 부문의 보호장벽은 낮아지지 않아 활용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1일 추가 공개한 양허안에 따르면 자동변속기, 클러치 등 자동차 핵심 부품 일부가 관세 인하 대상에서 빠졌다. 또 향후 중국에서 막걸리 열풍이 불어도 시장 확대 기회를 잡기 어렵게 됐다. 개방 폭이 낮은 FTA는 기업들이 잘 활용하지 않는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이 맺은 FTA 중 개방 수준이 가장 낮은 한-동남아국가연합(ASEAN) FTA(품목 수 기준 90% 관세 철폐)의 지난해 활용률은 수출액 기준 38.7%로 한미 FTA(76.1%)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관세 인하 혜택 대상이지만 인하 폭이 낮거나 실효성이 없는 제품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원산지 증명 등 번거로운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혜택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한중 FTA로 중국은 품목수 기준 91%에 해당하는 한국산 상품 관세를 20년 내에 없앤다. 전문가들은 한중 FTA 체결에 만족하지 말고 활용을 극대화할 방안을 찾아 자유무역 기조를 경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상훈 january@donga.com / 세종=문병기 기자}

“균형감을 잃은 복지정책은 표만 의식한 무책임한 논의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포크배럴(pork barrel·가축먹이통)’에 맞서 재정건전성을 복원하겠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1년 9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당시 정치권에 불어닥친 ‘복지 포퓰리즘’ 논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국회의원들을 농장주가 가축먹이통에 고기 한 조각 던져줄 때 모여드는 노예에 비유하며 무상복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저항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여야 합의로 무상보육 대상이 만 5세에서 만 3, 4세로 확대되면서 무상복지를 요구했던 정치권과 재정건전성 강화를 주장한 정부 사이 힘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복지 재원 갈등이 앞으로 닥칠 무상복지 후폭풍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수조 원의 재정이 필요한 복지정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데다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새로운 복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고교 무상교육 재원싸고 갈등 가능성 높아 고교 무상교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공약으로 당초 올해부터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재원 부족으로 연기됐다. 교육부는 2000여억 원의 예산으로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우선 도입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기재부는 내년 예산에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 도입하려면 연간 2조2000억 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누리과정을 위해 시도교육청이 내년 어린이집에 지원해야 할 보육료 총액(2조1429억 원)보다 많은 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재원 부족으로 연기된 이들 복지 정책을 박 대통령 임기 중 시행할 방침이다. 특히 고교 무상교육은 시도교육청들이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으로 부담하도록 돼 있는 만큼 도입 과정에서 누리과정 못지않은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크다. 올해 시도교육감 선거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복지정책을 현실화하려는 움직임도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선거에서 당선된 시도교육감들은 수학여행비와 체험학습비, 교과서 지원 등 수백억 원씩 예산이 들어가는 무상복지 정책들을 내놨다. 지역의회 등에서는 이 교육감들이 약속한 복지공약을 달성하는 데 지역별로 500억∼10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도 잇따라 새로운 복지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고용보험법 일부 개정안은 실업급여 지급일수를 현재 최장 240일에서 360일로 확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렇게 고용보험법이 개정되면 매년 2조 원 이상의 재정이 더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엄격한 ‘재정규율’ 도입해야” 무상복지 정책들의 봇물이 터지면서 재정악화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기재부가 내년도에 편성한 복지예산은 115조5000억 원으로 2011년 86조 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34.3% 늘어났다. 늘어난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은 무상복지 정책들이 쏟아진 보육, 노인복지에 집중됐다. 실제로 보육·가족·여성 분야에 대한 복지예산은 2005년 6786억 원에서 올해 5조3105억 원으로 8배 수준으로 늘었으며 노인·청소년 예산은 같은 기간 4797억 원에서 6조5198억 원으로 13.5배 규모가 됐다. 반면 대표적인 저소득층 복지인 기초생활수급 관련 예산은 같은 기간 1.9배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문제는 세금만으론 무상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올해 세수가 당초 목표치보다 10조 원가량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2년 2조8000억 원, 지난해 8조5000억 원에 이어 세수 구멍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 재정수지 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43조2000억 원) 이후 6년 만에 최대인 33조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무상복지 확대로 인한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재정적자나 국가채무 한도를 법으로 규제하는 엄격한 ‘재정규율’ 도입을 통해 복지정책이 마구잡이로 편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재정위원회’ 등 독립기구를 세워 복지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추산하고, 해당 복지정책을 추진한 정치권이나 정부에 증세 등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무상복지 확대는 복지개혁에 나선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증세 등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재정파탄을 앞당기는 만큼 엄격한 재정규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정부가 11년 만에 로또 판매점 신규 모집에 나선 가운데 저소득층 수만 명의 신청자가 몰리면서 경쟁률이 100 대 1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내년에도 로또 판매점 1300여 곳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복권위원회는 올해 로또 판매점 610곳을 새로 지정하기로 하고 지난달 30일부터 신규 판매점을 모집하고 있다. 복권위에 따르면 모집이 시작된 직후부터 신청자가 쇄도해 7일까지 일주일 동안 4만여 명이 접수를 마친 것으로 집계됐다. 복권위는 13일 마감 때는 신청자가 6만 명을 넘어서 최종 경쟁률이 100 대 1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2003년 9845곳에 이르렀던 판매점이 올 6월 기준으로 6056곳으로 줄어들자 올해부터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로또 판매점 2000여 곳을 신규 모집하기로 했다. 로또 판매점 신규 모집에 신청자들이 몰리는 것은 로또 판매점으로 지정되면 판매액의 5%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복권위에 따르면 로또 판매점들은 복권 판매로만 연평균 25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복권위는 이번 신규 로또 판매점 모집부터 신청 자격을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한부모 가족, 국가유공자 등으로 제한해 로또 판매점 확대를 저소득층에 대한 일자리 지원과 연계하기로 한 바 있다. 복권위는 추첨 결과 매장이 없는 저소득층이 로또 판매인으로 지정되면 지방자치단체 등과 연계해 가판 개설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한편 복권위는 신규 로또 판매점 신청이 쇄도하자 당초 내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700곳 안팎의 로또 판매점을 신규 모집하기로 한 계획을 바꿔 내년에 1400곳의 신규 판매점을 일괄 모집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돈을 뿌린 ‘청도 돈봉투 살포사건’이 현지 경찰서장의 강압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한국전력 측으로부터 돈을 받아 주민들에게 돈을 나눠줬을 뿐 아니라 경찰 회식비 명목으로 100만 원을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한전 대구경북건설지사를 압박해 주민 위로금 1700만 원을 마련하도록 한 뒤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7명에게 전달한 이현희 전 청도경찰서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전 서장은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2일부터 연휴 기간인 9일까지 청도경찰서 정보보안과 전모 계장을 시켜 청도군 각북면 주민 7명에게 100만∼500만 원이 든 자신 명의의 봉투를 건넸다. 청도 출신인 이 전 서장은 경찰 조사에서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과 충돌이 계속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치료비 지급을 한전 측에 요청했다”며 “(한전에) 강요한 게 아니라 협의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한전 측은 위로금 지급에 미온적이었지만 이 전 서장의 요구가 계속되자 돈을 건넸다. 한전 대구경북건설지사는 9월 2일부터 7일까지 이 전 서장에게 1700만 원을 전달했다. 이 전 서장이 8월부터 반대 주민 치료비로 요구한 3000만∼5000만 원보다 적은 금액이다. 경찰 관계자는 “한전 측이 송전탑 찬성 주민과의 형평성과 선례를 남기는 것에 부담을 느껴 난색을 표시했지만 압박 수위가 높아져 돈을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전 지사는 송전탑 건설에 찬성한 청도 주민들에게는 개인 보상 없이 5억 원 규모의 마을회관을 건립해 줄 계획이다. 관심을 모았던 돈의 출처는 송전탑 공사 시공업체의 비자금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시공업체인 S사가 근무하지 않는 가짜 직원 20명의 이름을 서류에 올려놓고 매달 급여를 준 것처럼 꾸며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2009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S사가 빼돌린 돈은 13억9000만 원에 달했다. S사는 이 돈의 일부인 600만 원을 한전 이모 전 대구경북건설지사장에게 건넸고, 지사장이 나중에 S사로부터 돈을 돌려받기로 하고 자신의 통장에서 1100만 원을 인출해 모두 1700만 원을 이 전 서장에게 전달했다. 또 S사는 2009년 1월부터 수사 착수 전까지 한전 지사장 3명과 담당부서 직원 7명 등 한전 측에 부임인사 및 설·추석 명절비 등의 ‘떡값’ 3300만 원을 전달했다. 이와 별개로 이 회사 비자금 100만 원이 한전 지사를 통해 청도경찰서의 ‘회식비’로 전달되기도 했다. 경찰은 이 전 지사장 등 한전 직원 10명과 이모 대표 등 S사 관계자 3명도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다만 한전 본사 차원의 조직적인 주민 매수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전은 경찰이 수사결과를 통보하면 해당 직원들을 중징계할 방침이다. 한전 관계자는 “부적절한 행위를 일벌백계하고,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본사 차원에서 보완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박재명 jmpark@donga.com·세종=문병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