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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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칼럼97%
정치일반3%
  • [김순덕 칼럼]나도 ‘꼰대’가 무섭다

    이건 ‘꼰대’에 대한 퇴출명령이다. 6·13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보수 궤멸’을 보고 나는 혼자 속으로 부르짖었다. 개표 한 시간 만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내가 진다)”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다음 날 물러났다. 그가 ‘꼰대 정당’ 대표로서의 책임도 알고 물러난 것 같진 않다. 꼰대는 나이와 서열, 지위를 앞세워 간섭과 명령을 일삼아 거의 기피 인물이 되곤 하는데 홍준표의 이미지가 딱 꼰대다. 괜한 음해가 아니다. 그는 넉 달 전 “내가 문재인 대통령보다 호적상으로는 한 살 밑”이라며 “나보고는 꼰대라고 하고 문 대통령은 꼰대라고 안 부른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를 약속한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우환이자 듣는 이를 욱하게 만드는 ‘국민 민폐’가 꼰대일 것이다. 그는 “한국당의 청년공천 정책이 가장 혁명적이고 획기적인데도 ‘꼰대정당’ 이미지가 굳어진 것은 내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지적하기 때문”이라며 이런 자신을 꼰대라고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야단치듯 말했다. 꼰대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무오류성과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다. 물론 당 대표 한 사람의 꼰대질에 한국당이 궤멸했다고 할 순 없다. 참패 다음 날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참회 의총까지 열더니, 하루 이틀 지나면서는 ‘나 빼고 혁신’으로 돌아와 이대로 2020년 총선까지 의원 기득권이나 누리겠다는 한국당 분위기를 보면 진심으로 나라 걱정하는 국민이 불쌍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지방선거 한 달 전에 이런 야당을 예견한 보고서를 내놨다. 촛불혁명 직후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51 대 49의 보수 대 진보의 진영정치가 해체되면서 대통령 지지율 65%가 이미 진보진영으로 넘어온 상황이다. 여기에 판문점 선언이 더해져 ‘냉전 보수’는 무력화됐다. 6·13선거 이후에는 탄핵 찬성 80% 대 반대 20%와 같은 ‘중심정당 민주당’과 ‘주변의 보수정당’ 체제가 열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될 경우 민주당은 일본 자민당처럼 장기 집권하겠지만 보수정당은 당권 다툼에나 골몰하는 영원한 야당에 머무를 것이라는 무서운 전망도 가능하다. 결국 불임정당으로 선거 승리를 포기하고 ‘태극기 부대’ 같은 고정 지지층에만 영합하면서 ‘발목 잡기’로 대한민국 실패에 올인(다걸기)할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금껏 잘해서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게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6·13선거 결과를 “전혀 상식 없는 세력에 대한 심판”이라고 평가한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도 야당이 워낙 ×판 치니까 이쪽에서 잘못하는 게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이념성 정책이나 인사를 둘러싼 정부여당의 꼰대질도 한국당 뺨친다. 대학입시 개편 공론화도 그중 하나다. 아이들과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사임에도 단순하고 공정하게 고치겠다며 일반 시민부터 학생들까지 모아 결정하는 것도 기이하다. 교육문제 공론화의 모범 사례라며 민주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프랑스 대국민 교육토론회가 무려 15년 전인 2003년 것이라는 데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평등교육 때문에 교육의 질이 낮아졌음에도 번번이 교육개혁에 실패했던 프랑스가 마침내 9월부터 단계적 개혁에 들어간다.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피에르 마티오 전 릴정치대학 총장을 바칼로레아 개혁위원장으로 임명해 오랜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친 내용으로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돌려주는 경쟁력 혁신이 골자다. 한국당의 꼰대질이야 표 안 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라의 명운을 뒤흔들 교육개혁을 놓고도 ‘공론화’라는 한물간 제도의 무오류성과 정당성을 확신하다가는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꼰대가 욕이라도 안 먹는 방법은 둘 중에 하나다. 입을 다물거나 아니면 돈을 쓰는 것. 야당이어서 국민 세금을 내 돈처럼 풀 수 없는 홍준표는 처음부터 입을 다물거나, 그럴 수 없으면 최대한 품격 있게 발언했어야 했다. 집권당이 아직까지 비난을 덜 듣는 이유는 대통령의 인기와 돈줄 덕분이다. 유능하면 또 모른다. 나라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책임지겠다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빚까지 물려줄까 걱정스럽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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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북한보다 남한 체제가 불안한 이유

    이제야 평화의 비결을 알 것 같다. 쉽게 말해 맞고도 “왜 때려?” 덤비거나 보복하지 않고 가만있으면 된다. 이유가 있겠지. 내재적 접근법으로 상대가 원하는 바를 신속히 해결해 주면 싸움은 절대 안 일어난다. 조폭 세계나 학대 가정의 평화는 그렇게 지켜진다. 노예의 굴종이지만 잘하면 먹고사는 건 지장 없다. 설마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가 이런 모습일 것이라곤 믿고 싶지 않다. 1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선 개성공단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설 같은 풍성한 합의가 쏟아져 나왔다. 북한이 지난달 한미 공군훈련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국회 증언 등 ‘엄중한 사태’를 트집 잡아 돌연 취소했다 사안이 해결되자 재개한 일정이지만 어쨌든 평화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스파이대장을 만나 “북한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는 나라”라며 북한 원조에 쓸 돈을 한국더러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자칫하면 우리는 머리 위에 핵무기를 그대로 매단 채 수시로 맞으면서 “그래도 전쟁보다 낫다”며 햇볕이나 쬐던 시절로 돌아가야 할 판이다. 아니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기적을 보게 되든지. 김정은이 원하는 북한 체제 보장과 개혁·개방이 병진(竝進) 가능할지는 나중 문제다. 우선은 김정은 체제 보장에 앞장선 호위무사가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부럽다. 1일 고위급 회담에선 ‘엄중한 사태’가 해결됐느냐고 묻는 우리 측 기자에게 리선권 북한 측 대표가 “무례한 질문”이라고 답하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언론 질문도 남북관계의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해야 한다는 거다. 이젠 한국 언론에서 남북관계 기사는 성역(聖域)처럼 다뤄질지 모를 일이다. 죽을 뻔한 북-미 회담을 살려낸 데는 김정은과 번개 미팅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의 공이 컸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대변인처럼 “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건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할 경우 미국이 체제 안전을 보장해줄지의 문제”라고 나선 것은 혼돈스럽다. 내게 불분명한 건 미국이 얌전히 있는 북한 체제를 괜히 침공해 무너뜨릴지 말지가 아니라 김정은이 진짜 핵무기를 폐기할지 말지여서다. 2007년 북한 김정일과 만난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다. 회담 자리에 등장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북핵 폐기-북한 체제 보장을 약속한 9·19공동성명 이행 관련 조치를 설명하며 “그러나 핵물질 신고에서는 무기화된 정형은 신고 안 한다. 왜? 적대 상황인 미국에다가 무기 상황을 신고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분명히 밝혔다. 2013년 국가정보원 녹취록에서 공개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노무현은 “현명하게 하셨고 잘하셨다”며 대규모 남북 경협을 골자로 한 10·4선언을 해버렸다. 결국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실이 2008년 드러나면서 9·19공동성명은 깨졌고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 실패한 길을 지금 김정은과 트럼프, 문 대통령 세 사람이 평화와 번영의 길이라며 다시 나선 셈이다. 그럼에도 모처럼 잡은 손을 놓칠 순 없다. 북한 주민들이 우리와 같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불안한 건 남한의 체제 안전이다. 북을 위한 호위무사들이 적대적 법과 제도 보완을 요구할 경우 헌법 3조 영토 조항이나 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조항을 고쳐야 할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상식과 정의라며 “성실하게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 이런 상식이 기초가 되는 나라를 만들 기회를 해방 직후 놓쳤다”고 대선 직전에 낸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밝힌 적이 있다. ‘친일’ 세력이 ‘반공’으로, ‘산업화’로, ‘보수’로 이름만 바꿔가며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며 경제 교체, 시대 교체, 과거 낡은 질서나 체제, 세력에 대한 역사 교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로 여겨 전방위 주류세력 교체를 계속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까지 함부로 교체하다가는 김정은처럼 북에서 청했던 노래 ‘뒤늦은 후회’를 부르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요.”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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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자유민주주의가 울고 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새 우리나라가 북한에 항복을 한 건 아닌가 싶다. 4·27 판문점 선언 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사라졌고 남북은 화해협력의 길로 간다고 했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는 법이다. 그런데 다음 달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지금 우리가 뭔 죄를 지었는지 혼사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각시 꼴이라면, 북한은 지참금 더 받아 오지 못하면 이 혼사 깨겠다고 을러대는 모양새다. 지난주엔 북한이 탈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발언과 한미 연합 공군훈련을 구실로 남북 고위급 회담을 돌연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태 전 공사가 못 할 소리를 한 것도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성격이 급하고 거칠다는 것,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북한 체제상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한다는 정도다. 여당 반응은 충격이었다. ‘인간쓰레기들을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었다’는 북한 비난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그의 근거 없는 발언이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거들고 나선 것이다. “태 전 공사가 북한에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는 김경협 의원의 비판은 섬뜩할 정도다. 태영호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의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나의 자유이기도 하다. 목숨 걸고 우리나라로 온 탈북민에게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이 북한에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고 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그럼 운동권 출신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대체 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가며 민주화운동을 했는지 궁금하다. 국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잡아 주류세력을 교체해서는 북한 김정은 집단에 호의적인 사회라도 만들 작정이었단 말인가. 세상이 바뀌었다. 판문점 선언에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가 명시돼 있는 것을 잊었다. 대북 적대행위 중지가 비무장지대(DMZ) 확성기 방송이나 대북전단만이 아니라 국회에서까지 적용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젠 김정은 위원장 같은 ‘최고 존엄’이나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처음엔 정부가 부인했으나 한미 공군훈련에서 미 전략폭격기 B-52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내까지 비행할 계획이었다가 북한 반발에 바뀐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향후 북한이 변덕을 부릴 때마다 CVID도, 한미 동맹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보다 두려운 것은 집권여당 수석대변인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과 말하는 데 국익을 고려해 달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공직자만 공적 책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민간인도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한마디로,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국익이 걸린 부분이 어디 한두 곳이겠나.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전체주의다. 국익이든 정의든 평화든, 혹은 최고 존엄을 위해서든 마찬가지다. 6·25전쟁 중 인민군 점령하의 인민재판을 목격했던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는 옳든 그르든 다수파의 주장에 동조하는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되기 쉬운 사회”라고 저서 ‘역사의 역습’에 썼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신바람에 깜빡 죽는 한국인은 정치적 종교적 카리스마에 쉽게 복종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북에선 주자학에 주체사상을 결합시킨 김일성 수령의 3대 신정(神政)체제가 자리 잡았고, 남에서는 주자학 근본주의에서부터 노사모, 박사모, 문빠, 심지어 ‘촛불정부’까지 이어진 거다. 통역 없이 말이 통한다고 우리나라가 ‘김일성 민족’과 전체주의로 수렴되는 희비극이 벌어질 판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 같은 ‘댓글 민의’가 드루킹이 조작한 여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촛불민심을 받드는 직접민주주의가 중요하다며 ‘코드 위원회’를 양산하면서 대의민주주의를 외면하는 건 제대로 된 민주정치라고 하기 어렵다.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핵심인데 새 역사 교과서의 ‘자유민주주의’ 표기에서 ‘자유’를 뺀 것은 자유주의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출범 1년이 넘도록 촛불정부를 자처하며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문화혁명’을 계속하는 것도 법치주의와 어긋나는 ‘분노와 복수’라는 지적도 있다. 집권 세력이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불렀다는 민주주의, 그것이 자유민주주의가 맞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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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부르지 못할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네이버 검색창에서 ‘분단극’까지만 쳐도 ‘분단극복’이 자동 완성된다. 그러곤 관련도 순으로 뜨는 것이 주로 통일에 대해서다. 절망을 극복하면 희망이 되듯, 분단극복도 당연히 통일을 뜻하는 줄 알았다. 친북인사들도 통일을 원할 것으로 여긴 건 물론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 남북 정상회담 발표문을 보고 깨달았다. 통일은 독일처럼 분단됐던 나라가 하나 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국가연합’이라는 1국가 2체제, 아니면 두 개의 국가로 좋게 말하면 ‘사실상의 통일’ 또는 분단의 영구화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극복이야말로 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이라고 한 것도 의미심장해졌다. 물론 발표문 제목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었다. 하지만 정작 통일에 대해선 “남과 북은…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라고 달랑 한 줄이다. 어떻게 앞당길지도 1-①에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정도다. 2000년 6·15선언에 나온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성’을 의미할 터다. 문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에서 두 개의 국가 인정도 시사했다. 쉽게 말해 3월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북 특사단에 밝혔듯이 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준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그달 21일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굳이 ‘따로 살든’이라는 말로 통일 포기를 암시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위해 올해 6·25 종전(終戰) 선언 및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으로 가는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과 북-미 수교까지 한국이 ‘운전자’ 역할을 해야 한다.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로 유엔이 승인했던 대한민국이, 6·25 불법남침으로 침략자로 낙인찍혀 정상적 국제사회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북한을 위해서 무슨 죄를 지었다고 ‘우리의 소원은 평화’라며 뛰어야 하는지 억장이 무너질 판이다. 특히 한미동맹은 북한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한 동맹이어서 두 정상국가의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무의미한 조약이 될 수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2005년 국회의원 시절 “평화협정 체결에 따라 미군은 역할을 변경해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2+2평화협정의 실천적 논의를 위하여’ 보고서를 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가 “북핵 사태 해결 이후 북-미 관계 개선을 전망해 볼 때 평화협정은 우리의 시대정신”이라며 개헌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은 선견지명으로 전율이 일 정도다. 헌법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와 함께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에서도 공평하게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인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 완수’ 대목의 개정을 지적했다. 사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북한의 비핵화였지 통일은 아니다. 오히려 통일이 될까 봐 겁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2월 여론조사에서도 20대는 북한의 독재체제를 혐오했다. 그러나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일 발표한 새 중·고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최종안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표현이 빠진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인지,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바뀐 것도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적 논쟁을 떠나 모두 헌법에 위배되는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헌법 3조와 4조, 영토와 통일에 관한 조항이어서 거대한 플랜이 있는 것은 아닌지 더욱 의심이 드는 것이다. 핵 포기를 대가로 김정은 체제를 보장해 준다는 데 대해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였던 황장엽 선생은 살아생전 “그것이 무슨 민주주의적인 태도냐”고 비난한 바 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면 통일은 저절로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 내 친북반미 좌익정권을 세우는 데 필요한 것이라던 핵무기다. 과연 김정은이 포기하고 개혁개방할 것인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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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청와대 ‘도덕성의 평균’은 얼마인가

    아무래도 전향을 해야 할 것 같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 책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나는 우파라고 여기며 살았다. 나도 내 딸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 그런데 국가가 내 삶을 책임져 준다니 굳이 애쓰고 살 필요가 없어졌다. 개인보다 사회, 자유보다 평등이 중요하다고 외치기만 하면 정의로운 좌파에 낄 수 있을 거다. 강남에 아파트가 몇 채 있든, 애들이 자사고를 나왔든 괘념할 것 없다. “아이의 선택이었다”며 가슴 아픈 척하면 양심적 좌파로 보일지 모른다. ‘댓글 테러’의 시대, 요즘 좌파의 큰 미덕은 좌파끼리 절대 비판하지 않는 무조건적 연대의식이다. 참여연대 출신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도덕성 논란 끝에 현 정부 8번째로 낙마했는데도 청와대에선 인사라인 문책설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하거나 의원들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사임시키겠다”는 말로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쐐기를 박았다. 김기식이 의원 임기 만료 직전 자기가 속한 ‘더좋은미래’ 단체에 후원금 땡처리를 한 데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위법으로 결론 내자 같은 단체 의원 13명은 즉각 비난에 나섰다. 국민이 맡긴 입법권으로 선거법을 바꿔 사적 보복을 하겠다는 국정의 사유화나 다름없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판공비 과다 지출을 폭로하며 ‘정권 차원의 도덕성’까지 공격해 임명 사흘 만에 퇴진시켰던 당시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도덕성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청와대의 부인(否認)에도 불구하고 홍일표 청와대 행정관의 부인(夫人)이 남편과 감사원 국장이라는 자신의 공직을 이용해 해외연수를 따낸 사실도 드러났다. 부인은 대기발령을 받았으나 ‘청와대 개입설’이 제기된 홍일표는 건재하다. 심지어 2012년 대선 때 문 캠프에서 조직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응을 하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사람도 지금 의전비서관으로 남북 정상회담 준비에 분주하다. 그러고 보면 좌파로 살기는 참 쉽다. 어떤 잘못이 있어도 문책은커녕 감싸주기 바쁜 온정적 사람 사는 세상이다. 문 대통령도 2012년 대선 패배에 2015년 4월 재·보선 패장이었지만 책임진 적이 없다. 18대 대선평가보고서를 냈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당의 치명적 결함은 정당의 생명인 책임윤리가 고갈됐다는 점”이라며 자유공론이 없는 현실을 개탄했을 정도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우파의 도덕성 평균보다 낫다고 자부하는 그들이 왜 과거 집권세력 뺨치는 반칙을 저지르고도 잘못했다는 의식조차 없는 건지. 2011년 한국정치학회보에 실린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는 구약성경 속 다윗왕의 '밧세바 신드롬'에서 답을 찾는다.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집단적 도덕성’을 입증받았다고 믿는 386정치인들은 제도권 정치와 기존 사회질서를 불신한다. 이들이 집권에 성공하자 정권의 정당성과 전승(戰勝) 파티의 해방감에 취해 권력 남용, 도덕적 해이에 쉽게 빠졌다는 것이다. 민중민주주의를 추구한 그들은 노무현 정부 도덕성의 밑바닥까지 보이며 정권을 잃었다. 그럼에도 진보적 기획으로 민족의 이상적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과 정서는 여전하다. 정서주의에선 무엇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지적이다. 순결한 좌파의 오류는 부패한 우파보다 깨끗하다. 말을 바꾸고 법을 위반하고 갑질을 하고도 눈 하나 깜짝 않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책임지지 않는 사랑이 불행을 낳는다면,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제왕적 통치를 낳는다. 꼭 1년 전 오늘 문 후보는 TV 대선토론회에서 “헌법만 지키면 제왕적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다”며 현행 헌법의 3권 분립을 강조했다. 지금은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대통령비서실장으로부터 방자한 질의를 받고, 여당한테는 정치적 해석을 했다는 비난을 받아 3권 분립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내 삶은 책임져주지 않아도 좋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권력은 자칫 전체주의로 갈 위험이 있다. 내 딸의 삶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왕적 청와대권력은 과감히 줄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하루에도 몇번씩 비서들 보고만 받을 것이 아니라 장관들과 일하며 국회의 견제를 받는 ‘책임 정치’로 가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본보 4월 23일자 A30면에 소개된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 논문 필자인 김태승 씨는 인하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입니다. 원문보기: 본보 4월 23일자 A30면에 소개된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 논문 필자인 김태승 씨는 인하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입니다. 원문보기: 본보 4월 23일자 A30면에 소개된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 논문 필자인 김태승 씨는 인하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입니다. 원문보기: 본보 4월 23일자 A30면에 소개된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 논문 필자인 김태승 씨는 인하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입니다. 원문보기: 본보 4월 23일자 A30면에 소개된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 논문 필자인 김태승 씨는 인하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입니다. 원문보기: 본보 4월 23일자 A30면에 소개된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 논문 필자인 김태승 씨는 인하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입니다. 원문보기: ◆ 바로잡습니다 본보 4월 23일자 A30면에 소개된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 논문 필자인 김태승 씨는 인하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입니다. 원문보기: 본보 4월 23일자 A30면에 소개된 ‘노무현 정부 386정치인들의 도덕적 실패에 대한 연구’ 논문 필자인 김태승 씨는 인하대 교수가 아닌 서울대 행정대학원 연구원입니다.}

    •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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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낙태율 반만 줄여도 출산율 증가한다고?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1980년대 정부 시책에 따라 딸 하나만 낳은 모범국민인 나도 독박 육아를 떠올리면 새삼 분노가 치민다. 중국은 2015년 ‘한 자녀 정책’을 폐지하고도 인권침해를 자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 목표에 따라 정관수술도, 낙태도 마다하지 않은 국민이 얼마나 착한지 절감할 따름이다. 형법엔 낙태죄가 있지만 순전히 인구 감소를 위해 정부는 낙태죄에 사실상 눈감아 왔다. 2010년까지는. 국민적 대책이 없진 않았다. 초음파 태아 성감별이다. 그 결과 1985년부터 여아 100명 당 남아의 성비(性比)가 109, 112로 치솟으면서 2006년 106으로 돌아오기까지 20년간 남자가 많아진 남초(男超)의 나라가 됐다. 군 입대 성수기 경쟁이 유별나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 때는 여학생 짝꿍도 모자라더니 이젠 취직도, 장가도 어려워져 여혐(여성혐오)이 생겨난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이들이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1960년대 가족계획 표어를 따를까 걱정될 판이다. 2009년 정부가 돌연 낙태죄를 들고나온 것도 저출산 문제 때문이다.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낙태가 34만 명이라는 2005년 통계치를 들이대며 “낙태율을 반으로만 줄여도 출산율 증가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듬해인 2010년 3월 이명박 정부는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 결과 낙태는 줄었는가. 출산은 과연 증가했는가. 합계출산율은 2009년 1.15명에서 2010년 1.23명, 2011년 1.24명, 2012년 1.3명으로 진짜 증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2013년부터는 1.19명으로 확 줄기 시작해 작년엔 1.05명, 사상 최저까지 내려갔다. 여성을 죄스럽게 만드는 낙태 금지의 약발은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병의원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꺼리면서 30만∼40만 원 하던 수술비가 단박에 10배쯤 올랐을 뿐이다. 반면 2000년 5540명, 2005년 6459명이던 혼인외자는 2010년 9639명으로 급증했다. 2016년엔 7781명, 숫자는 줄었지만 전체 출생아 중 혼인외자 비율로 보면 2000년의 두 배다. 물론 이 아이들이 모두 미혼모의 자녀라고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낙태 원인과 건수를 고려해보면 미혼모 증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성정현 협성대 교수의 지적이다. 당시 전 장관은 10대 미혼모들에게 월 10만 원씩 양육비를 주겠다며 아이 기르면서 공부하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2012년 청소년학부모자립지원 예산은 달랑 29억 원. 2010년 120억 원에서 근 100억 원이 깎였다. 정부만 믿고 낙태하지 않았던 어린 엄마들은 손가락 빨다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여자가 주로 독박 써온 낙태죄를 놓고 헌법재판소가 24일 헌법에 어긋나는지 따져보는 공개변론을 연다. 4 대 4로 합헌 결정이 난 지 6년 만이다.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대해 작년 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통해 현황과 사유를 파악해 논의하겠다”고 했다. 국민청원을 한 23만 명이 희망을 가질 법한 답변이지만 지난달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낙태죄 폐지 권고를 ‘사회적 합의’ 필요성을 들어 수용하지 않았다. 헌재의 심판결과, 그리고 실태조사와 실체를 알기 힘든 사회적 합의에 따라 국민 절반의 몸이 언제까지 인구통제의 마루타가 될지 모른다. 낙태를 금지시켜 인구를 늘린다는 정책은 낙태를 통해 인구를 감소시키는 것만큼이나 전체주의적 발상이었다. 영장류에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암컷은 새끼를 키우기 어려우면 자연유산을 하거나 낳은 자리에서 잡아먹는다. 다른 놈이 잡아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낙태가 합법인 국가일수록 낙태율 감소가 뚜렷하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 협력기구인 미국 구트마허연구소의 최근 연구 결과다. 비혼모도 출산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할 만큼 지원하는 것으로 선진국에선 저출산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주무부처 장관이 모범을 보이지 못할 일을 정부가 국민에게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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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왜 포퓰리즘이 독재로 변할까

    만일 지금 다시 대통령선거를 치른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득표율 두 배를 올릴 것 같다.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뒤 구속된 것도 헌정사의 치욕인데 지난주엔 이명박 전 대통령마저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보수 쪽 후보라면 진저리가 날 듯하다. 한 명 구속에 41.08% 득표율이었으니 두 사람이면 82%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물론 최종 판결까지는 무죄 추정이 원칙이다. 하지만 두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집권 당시 청와대를 견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민 앞에 사죄해야 도리다. 그래야 혹 되갚을 기회라도 생기게끔 정권 교체의 싹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럼에도 가죽을 벗겨내기는커녕 ‘니가 가라, 연탄가스’나 때는 모습이다. 집권세력이 20년 장기 집권을 호언장담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불안하다. 대통령 지지율 71%에,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에다 북한 김정은도 비핵화 카드를 흔들었을 정도면 대한민국은 호랑이라도 잡을 기세여야 한다. 이 불안의 정체가 뭔지, 여럿 붙잡고 물어봤다. 남자들은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미투!’를 외쳤지만 좀 더 캐물으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나라가 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걱정하고 있었다. 작년 대선 결과를 미국 블룸버그나 포린폴리시 같은 외신은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을 몰고 온 포퓰리즘이 한국을 덮쳤다”고 분석했다. 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에 자랑스럽게 올리고 싶어 했던 ‘촛불혁명’과 그 여파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밖에선 주류세력에 대한 불신과 기득권 집단 부패에 대한 ‘홧김에 투표’로 본다는 의미다. 더 불편한 건 ‘왜 포퓰리즘은 독재정치로 가는 길인가’라는 2016년 말 포린어페어스지(誌) 논문을 보고 나서다. 사법부와 보안기관, 미디어를 장악해 서서히, 세련되게, 눈치채기도 어렵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포퓰리즘이 21세기 민주주의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와 보안기관에 자기 사람을 꽂아놓고, 미디어엔 재갈을 물리는 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식의 전략이다. 반발하면 독살하거나 적폐세력으로 몰면 그만이다. 그러고 나서 지난주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의 개헌안 사흘 특강을 들으니 모골이 송연했다. 그는 대법관들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 양심대로 재판할 수 있도록 대법원장의 막강한 인사권을 대폭 축소했다고 ‘촛불 시민혁명의 뜻에 따라 만든 국민개헌’을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관추천위원회에 대통령 추천인 3명을 포함시켰다고 따로 언급하지 않은 건 기이하다. 대통령이 대법관 추천부터 개입함으로써 사법부 독립에 역행한다는 내용을 조 수석이 의도적으로 뺐다면 국민 우롱이다. 포퓰리스트가 장악해야 할 보안·수사기관은 국가정보원, 검경을 비롯해 무궁무진하다. 정부 곳곳의 온갖 적폐청산위원회도 사실상 비밀경찰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어 괜히 불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가 적폐세력을 찍어내 청산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정권 교체 후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KBS, MBC 이사진과 사장 교체 역시 정상적으로 보기 어렵다. ‘왜 포퓰리즘…’을 쓴 안드레아 켄달 테일러 미 조지타운대 조교수는 민주적 규범을 깨는 이 과정을 ‘권위주의화’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권위주의적이라거나 제왕적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는 과거 내각 꼭대기에 앉아있던 ‘박근혜 청와대’를 닮아 간다는 소리가 나온다. 개헌안 통과에 앞장서야 할 여당도 조문안을 못 봤다니 감히 청와대 견제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헌법 개정안을 검토하다 보니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더라”면서도 오늘 아침 개헌안 발의 직전에야 현행 헌법 89조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에 넘기겠다는 청와대의 오만한 발상이다. 아무리 대통령비서실장이 장관에게 공개 경고를 할 만큼 제왕적 권력을 누린다 해도 민정수석은 국민이 못 알아들을까 봐 사흘에 걸쳐 개헌안을 공개하고는 “보좌관들이 발의 이전에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합헌”이라고 해석하다니, 그럼 장관들은 핫바지란 말인가. 대통령 취임사에선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다짐해놓고 ‘국민의 권한을 확대’했다며 내놓은 개헌안이 실은 대통령 권한과 국가의 오지랖을 한참 넓힌 내용이라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설령 이번 개헌안이 통과 가능성 없는 압박용이라 해도 좋다. 포퓰리즘은 국민, 아니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결국 국가주의 통제로 간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면 충분히 유익했다.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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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김정은 3代에게 배우는 협상의 법칙

    ‘통 큰 지도자’를 검색하면 최다 등장인물이 북한 김정일일 듯싶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 순안공항까지 영접 나오는 파격 행보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6·15남북공동선언까지 성사시켜 ‘통 큰 정치’를 그해 유행어로 등극시켰다. 독재자가 뭔들 못하랴만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고 감동 또는 놀라움을 안기는 ‘광폭정치’는 김정일 일가의 통치 스타일인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 로켓맨이라 조롱받았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단 한번 한국 대통령 특사단과의 협상을 통해 통 큰 결단을 내린 세기의 지도자급으로 돌연 주목받는 모양새다. 김정은이 진정 핵·미사일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간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경수로도 좋고, 금강산 관광도, 개성공단 같은 곳도 백 개 천개 만들어 북한 주민들이 잘살 수 있게 된다면 광화문에서 만세를 부르겠다. 그러나 김정은의 통 큰 정치가 아버지를 닮았다면 세계를 속였던 김정일의 협상과 닮은꼴이 될까 걱정스럽다. 이번 특사단과의 협상은 김정은이 외모까지 닮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1933년 중국 군벌 출신 구국군 우이청(吳義成)과 동맹 맺기에 성공했던 담판과 흡사하다. 당시 구국군 행패에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김일성 유격대의 처지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낸 2000년의 김정일이나 민족공조가 절실한 지금의 김정은처럼 진퇴양난이었다. 북한 협상가들 사이에 학습되고 있다는 ‘북한식 협상의 전형’, 우이청 담판의 첫째 법칙은 통 큰 자세다. 김정은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며 뜻밖에 통 큰 이해심을 보였다. ‘또 한번의 결단으로 이 고비를 극복하기를 기대한다’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던 특사단을 감동시킨 것이다. 김일성도 구국군과 적대관계를 풀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우이청으로부터 자기네 낡은 총과 김일성의 신총을 바꾸자고 제안받자 “거저 줄 수도 있다”고 통 크게 말했다. 중요한 건 다음이다. 더 큰 제의로 판을 바꾸는 것이다. 김정은이 “한반도 정세가 안정기로 진입하면 한미 훈련이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인 것은 상황이 달라지면 훈련도 축소 또는 취소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북-미 관계 정상화에 따라선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미동맹까지 뒤흔들 수 있는 얘기다. 김일성 역시 “궁색하게 그런 놀음 할 거 있느냐. 일본 군대와 한바탕 싸우면 될 터인데”라며 아예 연합작전을 역제의함으로써 유격대 공작요원을 구국군 부대에 투입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구국군에 시달리던 처지에서 당당히 공조를 하는 신분으로 바꿔낸 것이다. 둘째 법칙은 선전선동과 사실 왜곡이다. 특사단에 따르면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서도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이는 미국 때문에 핵·미사일 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선전선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일성도 “당신네 공산당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한 이불 밑에서 자고 남의 재산 막 빼앗는다는데 사실이요?”라는 질문에 “우리도 잘했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그런데 지주들도 나쁘다”며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잘못이 있다 해도 잘못을 유발한 쪽이 더 나쁘다고 덮어씌우는 공산주의자들 수법이다. 가장 겁나는 세 번째 법칙은 협상과 이행은 별개라는 점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켰던 로버트 갈루치도 9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플루토늄 동결을 약속했지만 북한은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었다”며 북한의 속임수에 치를 떨었다. 김정은이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는 특사단 발표문은 믿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협박이다. 그럼 북이 핵무기를 ‘통일탄’으로 언급하고, 연방제 통일 아니면 전쟁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뭔가. 김일성 역시 일단 위기를 넘기자 합의기구를 깼다는 것이 ‘북한식 협상의 전형’ 논문을 쓴 김해원의 연구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것은 안 나서는 것보다 낫다. 이제는 우리도 김정은 왕조의 협상법칙을 안 이상, 통 큰 제안이나 사실 왜곡에도 유리그릇 다루듯 할 일이 아니다. 양보만 하면 그들은 우리가 약한 줄 안다. 협상을 하고 이행할 때까지 눈만 부릅뜰 게 아니라 힘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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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3·1운동이냐, 3·1혁명이냐

    지난 정부 장관 후보 청문회에서 정말 보기 민망했던 장면이 “5·16이 쿠데타냐”에 대한 답변이었다. 군사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이라던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대놓고 맞설 순 없다는 듯, 후보자들은 ‘쿠데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다음번 개각 때는 3·1운동이냐, 3·1혁명이냐를 묻는 청문회가 등장할지 모른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이 지난주 “역사의식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담론으로서 역사 문제를 제기한다”며 3·1운동의 재정립을 주장해서다. ‘친일인명사전’ 등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가 2014년 ‘3·1혁명 100주년 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키면서 “3·1운동은 단순한 항일운동이 아니라 민주공화제 이념이 뿌리를 내리게 한 혁명”이라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파 후보자라면,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공화국을 수립한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이 오히려 혁명이었다고 답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민석에 따르면 3·1운동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건립과 민주헌정의 역사적 뿌리이자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 평화적 대중운동의 시조이며, 촛불혁명사(史)의 뿌리다. 제헌헌법 초안에도 3·1혁명으로 기술됐으나 정작 제헌헌법에는 3·1운동으로 격하됐다며 그는 “도산 안창호는 이승만 그룹에 의해서 (그 의미가) 격하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3·1운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3·1혁명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독립운동 좌파계열부터 빠르게 확산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혁명을 운동으로 격하시킨 이들이 ‘이승만 그룹’이라고 지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제헌국회 본회의에서 이 표현을 처음 문제 삼은 사람은 유림단체 대성회 소속 조국현 의원이었다. “혁명은 국내적 일에 해당되는 것이지 일본과 항쟁하는 데 쓰는 것은 무식을 폭로하는 일”이라는 이유다. 그러자 앞서 “3·1혁명의 사실을 역사상에 남겨 민주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자발적으로 일본에 대해 싸워온 것이라는 점을 잊지 않도록 하자”고 발언했던 이승만이 찬성했다고 속기록엔 나와 있다. 그럼에도 민족문제연의 이준식 연구위원이 “결과적으로 제헌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이승만 세력과 한국민주당에 의해 3·1혁명은 3·1운동으로 바뀌었다”고 2014년 세미나에서 지적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김민석이 한 말도 결국 같은 얘기다. 민주당 다수 의원들이 국립묘지 참배도 거부하는 이승만과 친일파가 3·1혁명을 운동으로 격하시켜 민주혁명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제거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영록 조선대 교수는 지난해 ‘헌법에서 본 3·1운동과 임시정부 법통’ 논문에서 “그런 이해는 지나치게 오늘날의 관점을 투여해 당시의 의미를 오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속기록에 나오듯 3·1혁명에서 민주주의 전통을 끌어낸 사람이 이승만이다. 해방 후 3·1혁명의 명칭을 꺼리고 의미를 격하한 쪽은 오히려 박헌영 같은 좌파였다는 거다. 정명(正名)은 중요하다.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쿠데타가 지배계급 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으로 이루어진다면 혁명은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정치적 현상으로서의 혁명은 권력주체와 권력구조의 급격한 교체가 핵심이다. “역사는 바른 정치를 시작하는 인식의 출발”이라고 김민석은 강조했다. 임시정부헌법과 제헌헌법을 통해 신민(臣民)을 국민으로, 군주제를 민주공화제로 변혁시킨 3·1운동은 혁명으로 명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승만은 ‘혁명의 대상’으로 끌어내리면서 “한민당-공화당-민정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진 반민주·매국·친일·분단·냉전세력에는 진정한 애국, 자유, 민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역사인식을 당원교육으로 전파해서는 바른 정치가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는 혁명 발발 이전부터 준비한 새로운 권력 주체라는 점에서 ‘혁명정부’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회가 못할 경우 청와대가 나서겠다는 ‘국민주권헌법’ 개헌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닌 어떤 체제 변경을 꾀하는 것인지 궁금하고 불안하다. “해방의 시점에서 요구되는 혁명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고, 북한에선 성공해 민주기지노선을 수립한 반면 미군이 점령한 남한에선 좌절됐다”는 역사인식을 지닌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장이 주관하는 개헌안이어서 더 두렵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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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인권유린 王國서 온 ‘백두공주’ 김여정

    북한 김여정은 미소 띤 핵폭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2000년 6·15공동선언을 뜻하는 ‘PRK-615’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와선 남북 정상회담 카드로 순식간에 미국까지 들끓게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셔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자취를 세우시길 바란다”라는 발언의 정치적 낙진(落塵)도 크다.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뛰어넘는 정상급 경지다. 김정일 살아생전인 2001년 러시아 대사가 물었다고 한다. 아들 중 누구를 후계자로 여기냐고. “아들은 모두 ‘게으른 얼간이들’이고 지적 수준이나 성격으로 보면 ‘믿을 만한 후계자’는 딸”이라고 대답하더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북한 주민 100만 명 안팎이 굶어 죽었다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김정은과 스위스에서 보내고 돌아온 김여정을 놓고 김정일은 “막내딸이 정치에 흥미를 보인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어쩌면 오빠보다 정치적 자질을 타고났는지, 은둔의 왕국 처연한 공주 같은 아우라로 김여정은 첫 외교무대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러나 살짝 턱을 추어올린 미소 뒤에는 누구에게도, 단 한번도 고개 숙여본 적 없는 비수가 시퍼렇게 드러난다. 선거제도가 있다면 제 국민에 대해 재판 없는 처형, 임의 체포 및 구금, 강제노동, 고문 등 불법행위를 자행하고도 3대 세습권력을 유지할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김일성 혈통만이 권력을 세습하는 수령 유일독재체제로 북한을 세뇌시켰기에 ‘백두공주’처럼 대한민국에서까지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김여정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인간의 얼굴을 한 전체주의’라고 했다. 미국이 김정은에 이어 김여정까지 대북제재 인물 목록에 올린 것도 그가 노동당 선전선동부 핵심으로 외부 정보 유입을 막고 체제 선전만 주입시키는 인권유린을 자행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북핵 위협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지만 “북한이 미국과 우리 동맹국들에 가하는 핵 위협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북한 정권의 타락상을 직시해야 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일갈한 바 있다. 프리덤하우스 최근 자료에 따르면 195개 조사 대상국 중 1972년부터 올해까지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 모두 최악의 점수를 받은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안으로는 제 국민을 완전하고도 잔인하게 억압하고, 밖으로는 핵 위협으로 체제 보장과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의 생존 방식인 셈이다. 그들이 원하는 ‘평화체제’로 나아갈 경우, 북한 주민들은 생지옥 같은 인권유린을 언제까지 당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만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통일’을 열두 번이나 되뇐 대로 한미동맹이 깨지고 북한 주도 통일이 이뤄진다면 탈북 여성 상당수가 중국에서 인신매매와 성매매 희생자로 전락하는 상황이 우리 딸들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땅에선 인권을 부르짖는 좌파 진영이 북한 인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표현도 아깝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은 지난해 북한이 최악의 인신매매국이라는 국무부 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나도 엄마이기에 인신매매는 정책 우선순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평창 올림픽 폐회식 때 방한하는 그가 탈북 여성 문제에 관심을 표한다면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미국서 ‘북한판 이방카’로 불린다는 김여정이 그래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만 기다리며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을지 궁금하다. 꼭 통일이 아니어도 좋다. 다만 북한의 인권과 자유라는 기본적 가치에 대해서는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진보적 가치를 자부하는 정부가 최소한 북핵 만큼, 바라건대는 대북 지원 이상으로 진지한 관심을 보였으면 한다. ‘장애인 없는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해온 북한이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참가하는 것도 장애인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비판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 제기는 북핵에 대한 대응 수단 하나를 벌어줄 수도 있다. 김정은 정권의 반인륜적 범죄는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에, 그리고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또박또박 기록해뒀다가 반드시 단죄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북한의 핵·미사일 경거망동도 제약이 가능해진다. 정보와, 정보를 바탕으로 키우는 장마당은 인권이자 김정은에게는 주한미군보다 무서운 자유의 힘이다. 그래야 언젠가 북한이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가 떳떳해질 수 있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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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허니문은 끝났다

    이제 구름에서 내려올 때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는 자부심에 청와대는 너무 오래 붕 떠 있었다. 작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제천 화재 현장 방문 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숨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것이 한 증거다. 그러고 한 달 뒤 여당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대구 쪽도 분위기 좋으니 대책 잘 세우면 자유한국당 문을 닫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등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이렇게 오글거리는 참모진을 문 대통령이 준엄하게 꾸짖었다면 27일 밀양 화재 현장에서 “거듭된 참사에 참담하다”고 사과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청와대 주류를 이룬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 86그룹이 그들만의 국정목표에 매달려 대통령을 “우리 이니 하고 싶은대로 해” 같은 방탄막으로 가려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권 인수 기간도 없이 시작한 대통령이지만 집권 8개월이 지났다. 과거 정부가 남긴 ‘적폐’가 산더미라고 해도 국정 성과를 내려면 짧다곤 할 수 없는 기간이다. 글로벌 경제도 좋다. 청와대는 구한말 위정척사파 같은 86그룹에 포획돼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는 듯하지만 국민의 인내심도 바닥 난 상태다. 24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프랑스가 돌아왔다”고 연설했다. 작년 5월 7일, 문 대통령보다 이틀 앞서 당선된 사람이 마크롱이다. 2004년 30-50(국민소득 3만 달러, 5000만 인구) 클럽, 2008년 40-50클럽까지 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다 강성 노동투쟁까지 겹쳐 다시 3만 달러대로 떨어진 ‘유럽의 병자 국가’를 문 대통령과 똑같은 기간에 완전히 다른 나라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마크롱의 연설은 2013년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연설 “일본이 돌아왔다”를 연상케 한다. 아베노믹스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는 미일동맹부터 확고히 다짐으로써 미국의 협조로 일본 경제를 살려내고, 그 힘으로 ‘보통국가화’ 등 평생의 숙원을 풀어가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에 페리 제독의 흑선이 나타났을 때부터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세계 최고만을 배움의 대상으로 삼았던 일본의 DNA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마크롱도 마찬가지다. 그는 “프랑스는 국왕 선출을 원하면서도 때로는 시해(弑害)하는 나라”라며 “그럼에도 프랑스를 전진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했다. 정치 지도자는 경제부터 살려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 그가 세계무대에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비결이 노동개혁이었다. “경쟁력을 잃은 일자리를 지킬 순 없다. 그 대신 사람을 지키겠다”는 약속대로 마크롱은 작년 여름 내내 300시간 넘게 노조 지도자들을 설득해 해고는 쉽게 하되 직업훈련과 노동자 보호도 확실히 하는 유연안정성을 얻어냈다. 이미 외신에선 ‘사회주의 프랑스가 창업국가가 됐다’는 기사가 춤춘다. 실업률도 하락 추세다. 작년 9월 세계경제포럼에서 “마크롱의 노동개혁이야말로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이라고 발표된 그대로다. 문 대통령이 청년실업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면 지난주 장관들의 정책 집행 의지를 질책하기 전에 마크롱과 정반대의 정책을 만든 참모들을 질책했어야 했다.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작년 한 인터뷰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공부한 ‘마이너그룹’ 학자들이 정책을 만들었다”며 “한국 사회 양극화, 저성장의 원인을 주류가 제공했고 그래서 우리는 주류의 공격을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중간임금의 50%를 넘는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고용을 줄이면서 양극화를 더 벌려놓아 문 정부의 정책 목표와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이 나라의 지배계급은 왜 세계 최고에서 배우기는커녕 나라를 망하게 했던 명분론적 사고와 감상적 민족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프랑스가 개혁에 성공한 ‘열린 사회’의 선두로 나서는데 국왕 시해 비슷한 문화를 지닌 한국은 포퓰리즘에 무너지는 닫힌 사회로 전락할까 두렵다. 문 대통령이 진정 적폐 청산을 원한다면, 그리하여 정의로운 촛불국가를 세우고 싶다면 최고의 정책으로 경제부터 살려내기 바란다. 그래야 그 탄력으로 정권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자칫하다간 “북한이 돌아왔다”고 외칠 판임을 이 정부의 방탄 지지층이던 2030세대도 벌써 알아버렸다. 허니문은 끝났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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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강남 아파트값 단칼에 잡는 법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지난주 서울 강남 아파트 시장 과열에 대한 간담회를 열 때 나는 ‘유쾌한 반란’을 상상했다.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경제부총리가 되기까지 언제나 변화를 꾀했던 공직자여서다. 어쩌면 달랑 한 채(이 정부 고위공직자의 42%가 다주택자이므로), 심지어 부인 명의로 돼 있는 아파트지만 강남 집값을 잡는 데 일조하기 위해 도곡R아파트를 팔기로 했다거나, 동급인 김상곤 사회부총리를 설득해서 살고 있는 분당 아파트 말고 전세 준 대치동R아파트를 팔기로 했다고 발표할 수도 있다고 봤다. “지난해 ‘8·2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좀 파셨으면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집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팔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책의 핵심이었죠. 그 사이 서울 아파트값이 8·2대책 직전으로 되레 치솟아 국민들께 송구합니다. 이제라도 공직자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김 부총리가 이렇게 말했다면 신선한 충격, 감동의 도가니였을 것이다. 집이 두 채인 김 장관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 1급 이상 고위공직자 655명(배우자 보유 포함) 중 275명의 다주택자들이 합심해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강남4구에 있는 289채의 집을 일제히 호가보다 겸손하게 낮춰 팔기로 했다는 선언이 나오는 순간, 강남의 집값 급등은 단박에 잡힐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정부의 치욕스러운 ‘내로남불’ 브랜드가 쑥 들어가는 건 물론이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폭등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도 투명한 관료주의, 법치주의, 선진국으로 가는 데 꼭 필요한 사회적 자본을 남부럽지 않게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날 김 부총리의 발표는 실망이었다. 관계기관 합동 점검반을 즉시 가동해 무기한, 모든 과열지역 대상, 최고 수준 강도의 단속을 실시하겠다고 그는 화석처럼 말했다. 국세청이 자금출처를 조사하고 불법 청약 전매나 호가 부풀리기를 고발하는 구태의연한 단속으로 강남 집값이 주저앉을 거라고는 김 부총리도 안 믿었을 듯하다. 특히 “올해 주택 공급 물량이 강남을 포함해 예년 대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가격 급등은 상당 부분 투기적 수요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모두발언은 진심인지 묻고 싶다. 과문한 탓인지 고위 공직자 중 강남 아파트를 팔았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살고 싶은 사람은 많고 떠나는 사람이 없으면 그 동네 집값이 오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요컨대 이른바 진보라는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도 그 좋다는 강남 집을 포기하기 싫은 것이다. 그게 사람 심리다. 이 정부는 다주택자를 부동산값 급등의 주범으로 몰아댔지만 집 두 채 이상 가진 공직자치고 부동산 투기 고백하는 사람 못 봤다. 노무현 때만 해도 ‘강남 좌파’라는 말이 조롱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다주택 좌파’도 당당하다. 그러면서도 국민한테만 다주택 팔라고 종주먹을 대는 모습이 안쓰러울 뿐이다.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신화는 끝장내야 한다. 그러나 좀 더 좋은 학교에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마치 불로소득만 노리는 투기꾼으로 몰고 가진 말았으면 한다. 일본은 도심재생으로 르네상스를 구가하는데 국민 상당수를 적(敵)으로 만들고 징벌하듯 몰아붙인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될 일이다. 2008년에 펴낸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보고서는 실거래가 신고제 같은 부동산 시장 안정제도 마련을 성과로 꼽았지만 투기 억제에 치중한 나머지 수요 증가를 외면해 아파트값이 급등하고 국민과 전쟁하듯 불화를 일으킨 기억이 생생하다. 수요 억제에 방점이 찍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남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나는 재건축아파트 전용 84m² 시세가 18억 원이나 한다는 소리에 솔직히 배가 아프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집값 폭등은 일부 좋은 지역에 국한된 일이고, 그런 아파트는 비쌀 수밖에 없다는 점 말이다. 김상곤 부총리 같은 사람이 대치동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지 않는 한 집값은 안 떨어진다. 그렇다면 정부는 강남 잡는 데 정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의 주거복지, 더 많은 보통사람들의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에 힘쓰는 게 백번 낫다. 단 임대소득세, 보유세는 엄격히 받아낼 때가 됐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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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성공하고 개혁에 실패하면…

    왜 하필 콘텐츠진흥원장인가. 탁현민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의 고용주였던 다음기획의 전 대표 김영준 씨가 그 자리에 임명됐다는 보도에 나는 혼자 탄식을 했다. 낙하산이 한둘도 아니고, 3부 요인 인사도 아닌 건 안다. 그럼에도 가슴이 내려앉는 건 그 상징성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비선실세 논란으로 주목받은 문화권력 기관이 바로 콘텐츠진흥원이었다.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이 자신의 대부로 통하는 송성각 씨를 차관급 콘텐츠진흥원장에 앉힌 사실이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불거지면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한 축이 드러났던 거다. 그런 공공기관이면, 암만 김 씨가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선거캠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대도 절대 안 갔어야 적폐청산이다. 누가 봐도 공정한 인사가 와야 정의로운 사회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차은택-송성각-청와대 수석실-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문화 농단을 질문했던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작년 말 실세 행정관의 대부 같은 김 씨를 똑같은 자리에 모시며 “콘진원의 개혁과제를 잘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보도자료를 내놨으니, 하이고 내가 다 낯간지럽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사퇴를 건의했는데도 대통령 방중까지 수행하는 이유는 장소불문 절대 필요한 탁현민의 탁월한 연출력 덕분이라고 치자. 하지만 아무리 대통령 신임을 받는 측근의 측근이라도 음악부터 방송, 게임, 애니메이션, 패션까지 연 3000억 원 예산을 다룰 만큼의 전문성은 입증하기 힘든 인물을 낙하산으로 보내는데 “안 된다”는 참모가 없었다는 건 새해를 암울하게 만든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역할을 해야 할 비서실장의 책임이 크다. 이명박 정부 때 같은 역할이었던 임태희 한국정책재단 이사장은 “자천타천으로 추천이 들어오는 건 별문제 아니지만 ‘깜’이 안 되는 사람이 밀고 들어올 때가 문제”라며 “진짜 대통령비서실장 외에는 풀 사람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당일 임명된 임종석 비서실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예스맨’이 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때문에 심신이 복잡해서라면 몰라도, 탁현민이 최순실 게이트 이후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의 광흥창팀에 같이 속했기에 임 실장이 눈감았다면 공사(公私) 구별 못 하는 국정의 사사화(私事化)다. 안 그래도 1980년대 운동권 중심의 광흥창팀 13명 중 최측근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을 뺀 전원이 청와대를 접수한 터다. 더 두려운 상상은 청와대 참모진 아닌 대통령이 “안 된다”를 못하는 상황이다. 노무현 청와대도 86그룹 운동권이 포진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사안은 전문가와 관료의 의견을 들어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임 실장이 “문 대통령은 알려진 것보다 토론을 좋아한다. 중요한 방향을 잡을 땐 토론해서 했고, 내가 (대통령을) 크게 신뢰하게 된 점이 논의한 것과 집행된 것이 같다는 것”이라고 박주선 국회부의장에게 말한 기사를 보면 누가 비서이고 누가 대통령인지 헷갈릴 정도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를 운동권 출신으로 채운 이유는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를 장악해야 김영삼·김대중 정부의 개혁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개혁의 성공과 실패 조건’ 보고서에 따르면 개혁의 실패 조건이 바로 그거다. 북송시대 왕안석이나 조선 중종 때 조광조는 자신과 이상을 같이하는 개혁세력에 둘러싸여 반대의견의 타당성을 분간 못 하고 무조건 반(反)개혁세력으로 몰아붙이다 결국 실패했다. 반면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처럼 성공한 개혁은 리더 스스로 비전과 역량을 지녔을 뿐 아니라 전문가를 활용하고, 야당 인사를 영입하는 등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공정한 인사로 반대세력의 마음까지 얻었다. 선거 공신은 부담 없는 외국 대사로 내보내는 묘수를 발휘했지 끌려다니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경제 재건에 초점을 두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부문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한 개혁은 성공했지만 기득권 타도 위주의 급진개혁은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누가 내게 적폐청산의 성공과 개혁 성공의 조건은 다르다고 제발 말해줬으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새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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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환관 권력’에 엮여버린 운명공동체

    불과 4일 만에 우리는 중국과 운명공동체가 돼버렸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침대 속에 흉측한 갑충으로 변신해 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건 카프카의 소설에서나 가능했지만 이건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 첫날인 13일 한중 비즈니스포럼에서 “양국은 함께 번영해야 할 운명공동체”라고 말한 것까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봉합하고 상생경제로 가자는 수사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날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양국은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운명적 동반자”라고 말한 것도 모자라 15일 베이징대 연설에서, 리커창 국무원 총리와의 회담에서 운명공동체라고 또 언급한 사실은 불안하고 불길하다. ‘운명적’이라는 표현은 국가 간 외교는 물론이고 연애하는 남녀 사이에도 쉽게 쓸 수 없는 말이다. 더구나 중국은 북한의 동맹이고 시진핑은 한국을 ‘우호적이고 가까운 이웃 협력자’로 칭했다. 대선 전부터 “한반도 운명이 다른 나라 손에 결정되는 일은 용인할 수 없다”며 운전자론을 주장하던 문 대통령이 중국에 나라의 운명을 바치는 패전국 수장이라도 된 형국이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문 대통령은 11월 시진핑을 만났을 때 “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제시한 인류 운명공동체 건설을 지지한다”고 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가려 했을 순 있다. 중국 주도의 운명공동체(community of common destiny)의 동반자가 되겠다는 발언도 가볍게 할 말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 대신 중국이 새로 짜겠다는, 혹은 과거에 주도했다는 천하 위계질서로 들어가 조공국(朝貢國)이 되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혼밥’을 먹었다는 국빈 홀대론 저리 가라는 외교 참사다. 문 대통령이 이를 알고도 중국과의 운명공동체를 말했다면 위험하다. 모르고 써준 대로 읽었다면 더 위험하다. 대통령의 연내 방중을 위해 물밑 작업을 벌였다는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과 국민을 속이고 더 큰 목적을 이룬 셈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이 사드의 단계적 처리에 의견을 같이했고 이를 바탕으로 문 대통령의 방중이 성사됐다”고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밝혔다. 10월 31일 양국 정부가 발표한 사드 합의문 덕분에 방중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핵무장을 완성한 북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판에 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한미일 군사협력을 않겠다는 3불(不), 즉 사실상 안보주권을 포기한 대가로 한중 정상회담을 했다는 뜻인가. “최근 한중 양국은 남관표 대한민국 국가안보실 제2차장과 쿵쉬안유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부장조리 간 협의를 비롯해…”로 시작되는 10·31 발표문에 등장하는 남 차장은 2004년 노무현 정부 외교통상부에서 대미(對美) 자주 외교노선을 강조한 이른바 ‘자주파’였다. '한미동맹파'가 당시 청와대 386 참모들의 대미외교 정책을 반미적이라고 비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해임됐다. 그때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의 조사를 받았던 외교통상부 조약국 소속의 남관표가 오늘날 문재인 청와대의 참모가 돼 마침내 자주파의 꿈을 이룬 꼴이다. 남 차장을 비롯한 자주파와 1980년대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치던 주사파 출신 86그룹이 상당수 지금 청와대에 포진해 있다. “한미동맹이 깨진다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자주파의 거두 문정인은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다. 양국 정상이 14일 합의한 한반도 평화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의 첫 번째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만 보면 문 특보가 외교상왕(上王)이 아닌가 싶다. 9월 국회에서 문 특보에 대해 “개탄스럽다”고 했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으로부터 ‘공개 경고’를 받고 바로 사과를 했다. 임 실장은 김상곤 사회부총리를 비롯한 중앙부처에 ‘적폐청산을 위한 부처별 태스크포스 구성 현황 및 운영계획’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법적 근거도 없이 내려보내는 등 사실상 내각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상태다. 현재의 정부 여당은 전임 ‘제왕적 대통령’과 비서실의 월권을 ‘문고리 권력’의 국정 농단이라며 환관 정치를 비판했던 사람들이다. 대통령 보좌를 넘어선 국정운영도 모자라 그 흔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대한민국을 중국의 운명공동체로 엮어버린 환관들의 ‘외교 농단’이 어떤 운명을 맞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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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마지막 감사원장의 얼굴

    헤어질 때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는 사람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져도 좋다. 자신의 사랑은 변함없지만 단지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이별을 고하는 척함으로써 영원히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자이기 십상이다. “향후 정치권 등에서 제기되는 소속 및 기능 재편 논의에 따라 감사원의 독립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퇴임사를 날리며 황찬현 감사원장이 1일 감사원을 떠날 때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같은 신파를 떠올렸다. 가당찮은 비유라는 것, 안다. 그러나 감사원 독립성을 흔드는 외풍을 막기는커녕 잽싸게 누워버렸던 장본인이 4년 임기를 꽉 채운 날에야 마치 정치권 탓에 이 지경이 된 듯 경고음을 울린 것은 위선적이고 무책임하다. “이런 때일수록 감사원이 정치적 논란에 상관없이 헌법이 부여한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는 대목에선 ‘떠날 때는 말없이!’로 되받아주고 싶을 정도다. ‘코드 감사’ ‘표적 감사’ 소리가 이 정권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KBS에 대한 감사로 정연주 사장을 물러나게 만든 전력이 있다. 그러나 KBS 사장을 갈겠다는 정부 의도에 따라 이사진의 법인카드 명세까지 샅샅이 뒤지는 식으로 감사원을 동원한 황 전 원장은 독립성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그에게는 “감사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부당한 간섭이나 시류에 흔들림 없이 감사를 수행해 나갈 때 확보될 수 있다”며 직(職)을 걸고 말할 기회가 적어도 세 번은 있었다. 첫 번째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2일 만에 4대강 사업에 대한 네 번째 정책감사를 지시했을 때다. 헌법상 독립적 지위를 갖는 감사원에 대해 대통령이 사실상 감사를 요구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데도 황 전 원장은 6월 첫 대통령 대면보고를 하기 전날 때맞춰 4대강 감사 결정을 내려 임기를 지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7월 초 문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인 왕정홍 감사위원이 감사원 2인자인 사무총장에, 대선 때 문 캠프에서 법률지원 업무를 맡았던 김진국 감사위원이 임명됐을 때다. 2013년 인사 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정권 관련 인사가 감사위원으로 제청될 경우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밝힌 것을 기억한다면, 황 전 원장은 “감사원 독립성을 흔들지 말라”며 인사 적폐청산에 앞장서야 했다. 세 번째는 10월 국정감사 때다. ‘세월호 관련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를 미리 받아 코멘트를 주라’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공개되며 세월호 부실 감사를 추궁받은 자리에서 그는 “그때 충실히 감사했더라면 대통령 탄핵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국민 앞에 반성했어야 옳았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석 달 후 청와대 감사 때 황 전 원장은 청와대로부터 달랑 의견서를 받아와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적절히 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감사원이 제대로 감사만 했더라도 그 이후 역사가 바뀌는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제왕적 통치로 달려가는 대통령책임제에서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행정부를 감사·통제하는 기관이 감사원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내건 문재인 정부는 감사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공약했다. 그러나 김종호 공직기강비서관처럼 감사원 출신을 청와대 비서로 임명하는 노무현 시절의 ‘관행’을 답습해서는 감사원의 독립이 가능할지 의심스럽다. 감사원은 2007년 4만여 명의 공무원과 가족들이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사실을 밝혀내고도 이듬해 정권이 바뀔 때까지 감쪽같이 숨긴 과거가 있다. 당시 감사를 지휘한 사무총장이 감사원 출신으로 노 정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김조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이사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와 감사원의 인사 교류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시비를 한 사람은 없다”고 했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감사원 감사 은폐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이 현 정부 ‘적폐청산 1호’로 찍혔던 방산비리 기업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도 관행이 될까 무섭다. 내년 개헌을 논하는 과정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직속 아닌 의회 소속으로, 기능도 회계감사만으로 바뀔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감사원 사무총장, 여기에 낙하산이 지금처럼 연결된다면 감사원의 독립성과 감사의 공정성은 요원할 것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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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 內戰에 대한 대통령의 ‘마음의 빚’

    “한국은 베트남에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11일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개막된 ‘호찌민-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7’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영상 축전을 통해 과거 베트남 참전에 대해 사과한 말이다. ‘비즐’이라고 하지 않고 ‘비츨’이라고 발음하는 바람에 ‘빛을 지고 있다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대통령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베트남과 한국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었다”고 언급한 대로 문 대통령은 곧바로 현재와 미래를 강조하긴 했다. 그러나 과거 베트남전 파병 과정에서 발생했던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사과를 의미한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13년 전 베트남을 찾았던 노무현 당시 대통령도 “우리 국민이 마음의 빚이 있다”고 사과한 바 있다. 이번엔 국민도 아니고, 한국 전체에 마음의 빚을 지운 문 대통령은 좀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 우선은 베트남이 한국의 사과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 관료들과 자주 접한다는 한 사업가는 “베트남은 세계 최강국 미국과 싸워 승리했다는 자존심이 강한 나라”라며 “가난해서 용병이나 보낸 한국에서 자꾸 사과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고 말했을 때 베트남은 발끈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언행을 삼가 달라’는 입장문을 실었을 정도다. 베트남뿐 아니다. 안정효의 ‘하얀 전쟁’에 등장하듯 당시 베트남의 구원자로, 한국에 대한 애국자로 자부했던 참전 한국군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국가에 대한 사과를 그 흔한 공론화 과정도 없이 해낸 대통령에게 마음 편히 박수칠 수 없는 이유는 베트남전을 보는 대통령의 시각 때문이다. 대선 후보 토론회 당시 “베트남전이 공산주의가 승리한 전쟁인데 대학 시절 (그 내용을 적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희열을 느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고, 그대로 실현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고 답했다. 1970년대 초반 큰 충격을 받았다는 그 책에서 대통령은 베트남전의 부도덕성과 제국주의적 성격을 알게 됐다고 했다. 베트남 내전(內戰)에 미 제국주의 용병으로 참전해 민족통일을 더디게 만든 것을 이번에 사과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과민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유엔에서 “내전이면서 국제전이기도 했던 그 전쟁(6·25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다”고 연설했다. 월남 지역에서도 부패 정부보다 공산당 지지가 많았던 베트남전은 분명 내전이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은 6·25전쟁도 남북 간 공산주의 이념에 기초한 계급 투쟁적 내전으로 본다. 6·25 발발 전 남한에서 좌익은 조직력은 막강했으나 소아병적 좌경주의와 급진성 때문에 민중적 기반이 탄탄치 못했다는 연구에 따르면, 6·25는 베트남전과 동렬의 내전으로 보기 어렵다. 미국이 끼어드는 바람에 국제전으로 확대된 것도 아니다. 나치즘, 제국주의와 싸웠던 미국은 한반도에서도 목숨을 걸고 우리와 함께 공산주의에 맞서 혈전을 치렀고, 지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위협이 되는 기적 같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북에서 일으킨 침략전쟁에 만일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어찌 됐을지, 오늘의 북한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판이다. 1974년 ‘전환… ’을 쓴 리영희는 자료 접근의 어려움 때문에, 또 정신주의에 과도하게 빠진 탓에 중국 문화혁명을 높이 평가한 대목은 오류였다고 뒷날 고백했다. 1991년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실패를 예견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 86그룹의 의식은 죽은 리영희만큼도 진화하지 않은 것 같다. ‘한미방위조약은 한반도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 정책의 문서화’ 같은 리영희류의 반미(反美) 논리가 작용하지 않았다면 왜 한미동맹을 뒤흔들 것이 분명하고, 베트남 적화통일을 불러온 1973년 파리협정과 다를 바 없는 북-미 평화협정에 목을 매다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난해 일본 히로시마의 원폭 위령비를 찾으면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았듯이 미국은 1995년 베트남 국교 정상화 이래 과거사를 들춰내지 않았다. 모든 결정은 지도자가 내리는 것이고 평가는 역사가의 몫이라는 이유에서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적폐청산에 몰두하는 지도자,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마음의 빚을 말하지 않는 지도자를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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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박정희 100년, ‘한국적 기억’의 정치

    꼭 20년 전 ‘박정희 신드롬’을 탄생시킨 주역이 김영삼(YS) 대통령이었다. 복제양 돌리가 태어나고 외환위기 소리까진 아직 안 나왔던 1997년 3월. 고대신문의 ‘복제하고 싶은 인물’ 설문조사 결과 김구, 테레사 수녀에 이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복제해선 안 될 인물’ 1위는 YS였다. 한보게이트로 아들과 측근이 줄줄이 검찰 소환되는 상황에서다. 고대신문은 “최근 혼란한 경제 상황에 따라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독재자 박정희에게 맞섰던 YS다. 그 민주화 투사가, 그것도 유신 철권통치가 끝난 지 18년 만에 죽은 박정희를 무덤에서 불러낸 거다. 우리가 역사 앞에서 겸허해져야 할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까지 받자 박근혜는 ‘어떻게 일군 나라인데 나 혼자 편하게 산다면 죽어서 부모님을 떳떳하게 뵐 수 있을까’ 싶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가 14일 박정희 탄생 100주기를 영어(囹圄)의 몸으로 맞는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지 않았다면 3월부터 중·고등학생들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명시된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배우고 있을 것이고, 박 전 대통령은 성대한 100주기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박정희 신드롬은 역사건망증이라고 역사학자 강만길은 1999년 일찌감치 일갈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교수 시절 “무능한 민주세력이 박정희 부활의 정치적·지적 공간을 제공한다”고 했을 만큼 김대중(DJ), 노무현 정부가 박정희 신드롬을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2012년 박 대통령의 51.6% 득표율 당선에도 분명 박정희 신드롬이 작용했을 터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집권 청사진을 담은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간 기념회에서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군부독재가 연장되는 바람에 청산돼야 할 박정희 체제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한다”며 구체제 적폐청산 의지를 천명했다. 기본권과 삼권분립을 유린한 개발독재나 국가정보원을 동원한 공작정치, 관료-재벌의 부정부패와 관치(官治)경제, 반공을 내세운 사상 통제 등은 진작 사라졌어야 마땅한 적폐였다. 그러나 ‘한국적 기억’ 속에 있는 박정희는 그게 다가 아니다. 신화라고 해도 좋다. 라스푸틴 같은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 박근혜가 이 다음 저승에서 어떻게 아버지를 볼지 나는 혼자 분노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를 발전시킨 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서라는데 원래 장면 정부 때부터 수립해둔 것이고 시행하기 직전에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말은 쉽다. 터키의 케말 파샤도, 이집트의 가말 나세르도 쿠데타에 성공했지만 근대화까지 성공한 건 수출입국으로 나아간 박정희뿐이었다. 애비가 종이었다고 애비를 부정할 순 없다. 경제 없이는 안보도 없다며 1965년 40%였던 극빈자를 1980년 10% 밑으로 끌어내렸고, 그 결과 자주국방을 주장한 대통령은 박정희와 노무현뿐임을 이른바 진보좌파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가 책임지라’는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 베트남 파병국가인 한국과 태국, 필리핀에 독재체제가 들어섰지만 오직 한국만 핵 포기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개발을 얻어내고, 결국 민주화도 이룩한 사실을 좌파가 외면한다면 가증스러운 위선이다. 그들 지적대로 박정희가 만주사관학교에서 보고 배운 것은 군국주의, 전체주의였다. 유신시대 퍼스트레이디 박근혜도 ‘한국적 민주주의’밖에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 86그룹은 민주화투쟁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당장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것이 진짜 적폐청산이고, 통쾌한 복수이자 뼈아픈 교훈을 안기는 거다. 그들이야말로 박정희한테 세계적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실용적으로 국익을 챙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DJ, 노 전 대통령도 못 했던 일이 있다. 그 자신 중국 문화혁명의 피해자였던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을 공칠과삼(功七過三)으로 평가해 사회 분열을 막은 것처럼 문 대통령도 박정희를 공칠과삼이라고 인정한다면, 역사 앞에 겸허한 통합의 대통령이라고 나 혼자라도 고마워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가 다 잘해서가 아니지 않은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참 측은한 박 전 대통령을 적절한 시기에 사면해주는 것도 결국 문 대통령이 짊어져야 할 운명이 아닐까 싶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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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시토크라시와 정치보복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이끈 오현제(五賢帝)와 중국 요순시대를 이끈 성군들의 공통점은 날 때부터 왕자는 아니었다는 거다. 로마의 현명한 다섯 황제는 자신들이 찾아낼 수 있는 가장 유능한 사람을 양자로 들여 통치 기능을 훈련시킨 뒤 권력을 물려줬고, 요순임금을 비롯한 오제(五帝)도 혈연관계 아닌 어질고 능한 인물을 찾아 왕위를 물려주는 선양(禪讓)을 했다. 고대 로마제국과 중국 상고시대의 태평성대가 후계자, 그것도 아들 때문에 끝장이 났다는 건 인간의 본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아들이 없던 로마의 네 황제와 달리 다섯 번째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검투사 뺨치게 잔인한 아들 코모두스가 있었다. 황제가 되기엔 부족한 아들의 자질을 아버지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입양의 원칙을 어기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줘 결과적으로 로마의 몰락을 가져올 만큼, 철학자 황제도 부정(父情)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이 있는데도 인재를 찾아 왕위를 계승시킨 중국이 달리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 임금은 선왕(先王)의 후손 중에서 후계자를 찾았지만 마지막 순임금은 치수(治水)에 유능했던 부하 우(禹)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우임금이 선양의 원칙을 깨고 아들에게 왕위를 세습시킴으로써 요순시대는 끝났다. 이후 성군과 폭군, 그리고 평범한 인물들이 번갈아 천자를 자처하며 하(夏)왕조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즐긴 걸왕을 끝으로 망하고 말았다. 고대 중국과 현대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혼합물이 현재의 중국이다. 18일 개막한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천명하며 집권 2기를 열었다. 런민왕은 ‘중국이 열강의 능욕을 당하던 시대에 탄생한 중국공산당은 국가 독립과 민족 해방 실현을 첫 목표로 삼았다’며 공산당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자부했지만 이 당에서만 최고 권력자를 배출한다는 점에선 또 하나의 왕조다. 마오쩌둥 이래 최대의 권력을 장악해 시황제주의(Xitocracy)를 주창한 시진핑이 어떤 권력자로 역사에 기록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세 번의 실각 끝에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이 극단적 정치 투쟁과 정치 보복을 막기 위해 마련한 격세(隔世)간택의 후계자 계승 원칙을 깬 것은 분명하다. 현재의 주석이 차차기 주석을 미리 지명하도록 한 격세간택은 선왕의 후손 가운데서 후계자를 택했던 요순시대를 묘하게 연상시킨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지금까지 놀라운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데는 불확실한 승계 구도로 인한 권력 투쟁과 정치 보복의 소모전이 보이지 않은 것도 큰 몫을 했다. 내 후계자가 선임자, 그것도 살아있는 선임자와 긴밀하다면 적폐청산이나 과거사 바로잡기에 함부로 나설 수 없다. 내가 물러나는 순간 바로 적폐청산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전임 후진타오가 그를 이을 지도자로 지정한 쑨정차이 전 충칭시 서기를 석 달 전 부패 혐의로 낙마시켰다. 공산당이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에서 부패를 잡아내는 건 식은 차 마시기다. 시진핑의 큰누나 치차오차오 부부와 딸의 자산이 3억7600만 달러(약 4361억 원)라는 2012년 블룸버그통신 보도가 나왔을 정도다. ‘리틀 후진타오’ 후춘화 광둥성 서기도 위태롭다는 외신이 무성하다. 그렇게 지난 5년 집권 1기 내내 반(反)부패 드라이브를 밀어붙이고도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지수 177개국 중 80위가 2016년엔 79위로 겨우 한 칸 올랐으면, ‘부패척결’은 정적(政敵) 제거용이라고 봐야 한다. 시진핑이 이번에 차차기 주석을 지명하지 않고 10년 임기를 마치는 2022년 이후까지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크다. 반부패 드라이브로 무수한 적을 만든 그로서는 정치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쉽게 권력을 내놓지 못할 것이다. 시진핑의 연설대로 중국이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을 실현하기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당과 군과 국가를 구원하고 세계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구원했다”는 찬사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토크라시 아래,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대신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이념 아래 과연 중국 경제가 지금 같은 성장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대국(大國)인 중국은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선양도, 후계자 지명도 아닌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고도 5년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보복을 반복하는 우리나라가 걱정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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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남한산성’과 再造山河

    이번엔 ‘남한산성’이다. 정치인들이 화제의 영화를 보고 한마디씩 하는 ‘영화 정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끝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얼마든지 외교적 노력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민족의 굴욕과 백성의 도륙을 초래한 자들은 역사 속의 죄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전란의 참화를 겪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무능과 신하들의 명분론 때문’이라고 나섰다. 박 시장도 지적했듯 무책임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현실 판단과 무(無)대책의 명분론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좌파 시민단체 출신 박 시장의 방점은 이보다 ‘외교적 해결’에 찍혀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사이에 남북 대결이 깊어지고 안보의 위기는 커져간다’는 문장에선 진보진영의 전형적 안보 인식도 엿보인다. 거칠게 해석하면, 북의 핵무장은 무력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는 김정은 세습왕조 때문이 아니라 미국 등 강대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얘기다. 외교보다 전쟁 좋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자신 있으면 박 시장이 당장 외교천사로 나서주면 고맙겠다. 외교도 상대가 있는 것이고, 어떤 내용으로 외교에 나설 건지 국론통일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정묘호란에서 병자호란까지 10년간 인조는 ‘의리 외교’에 몰두했고 주화파와 척화파는 ‘같은 좌석에서 서로 용납하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공론(公論) 합의가 불가능했다. 중원의 패권이 바뀌는 명(明)·청(淸) 교체기, 임진왜란에서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준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론의 척화파 김상헌이나 치욕을 겪더라도 백성은 살려야 한다는 실리적 주화파 최명길을 둘 다 충신으로 그린 것은 영화의 미덕인 셈이다. 나라의 명운을 놓고 보면 둘 다 옳다고 할 수 없다. 명분론에 매달려 백성을 죽음으로 내몬 척화파를 비판한 점에선 홍 대표와 박 시장도 일치한다. 다만 지금의 여야 중 어느 쪽이 척화파에 가까우냐에 대해선 다르다.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는 진보좌파는 “척화파가 보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홍 대표 같은 보수우파의 눈에는 북핵 대처에 무능해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사드에 한사코 반대하는 여권 사람들이 영락없는 척화파다. 특히 진보좌파의 외교론이 낯설지 않은 것은 2005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동북아균형자론이 한미동맹을 이탈하기 위한 수순이라면 오늘날 미국이 멸망 직전의 명나라인지, 강성해진 청나라인지를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그때 동북아균형자론을 옹호했던 동북아시대위원장이 최근 “한미동맹을 깨더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했던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다. 역사는 무심히도 풍부해서 거의 모든 결론에 들어맞는 사례를 찾아내는 게 가능하다. 자연과 역사에선 살아남은 것이 선(善)이고 몰락한 것이 악(惡)일 뿐이다. 미중의 글로벌 패권 경쟁이 명·청 교체기를 연상케 하는 것보다 두려운 점은 반정(反正)세력이 하나같이 이념에 눈멀어 현실과 글로벌 정세 변화를 직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나쁘고 평화는 좋다는 개살구 같은 명분에 사로잡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결기가 안 보이는 점도 한스러울 만큼 흡사하다. 47일간의 남한산성 고투 끝에 영화 속 인조는 “나는 살고자 한다”며 항복을 결정했다. 당시 조선군은 청을 격퇴한다는 전략보다 왕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 전쟁사 연구결과다. 인조는 척화의 주장이 옳은 계책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것이 반정의 명분이었기 때문에 엄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반정세력이 시퍼렇게 버티고 있어 ‘옳은 논의’와 ‘필요한 조치’ 사이에서 결단도 내리지 못했다. 반정 뒤 민생 안정에 힘쓰기는커녕 광해군 추종세력인 북인을 탄압하는 등 민심에 반(反)한 탓에 호란이 터지자 임진왜란 때 같은 의병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런 인조 정권을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고 칭송한 역사학자도 있다.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다시 만들다)라 쓰고 적폐청산이라 읽는 문 대통령의 추석 다짐은 그래서 불안하다. 과연 누가 살고자 하는, 그래서 무엇을 하려는 재조산하인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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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御用시민과 ‘촛불 파시즘’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생각이 복잡해지는 법이다. 지난 주말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분신한 고(故) 조영삼 씨 영결식에서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집약된 국민의 뜻과 달리 미국 압력에 끌려다닌다”는 소리가 나왔다. 고 백남기 농민의 1주기 추모대회에선 “최소한의 농산물 가격 보장, 식량주권 실현을 농정의 중심에 놓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정통성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촛불헌법 요구까지 나왔다. 촛불혁명을 들이대며 영수증을 요구하는 모습들은 불편하다. 문 대통령이 유엔 연설문에서 밝혔듯이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회복하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이 집단지성으로 이어진 역사’였다. 촛불시위에 나섰던 대다수 시민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탄핵돼 단죄받는 것으로, 더러는 문 대통령이 탄생한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여기서 지분을 요구하는 순간, 그가 바로 적폐가 돼버린다. “대한민국의 새 정부는 촛불혁명이 만든 정부”라는 대통령의 말도 이제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엄밀히 말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헌법절차에 따라 청와대를 떠난 것이지 촛불시위대에 끌려 내려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도 이후 민주적 선거에 따라 당당하게 대통령에 선출됐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자꾸 언급을 하니까 “문재인은 우유부단한 비서실장 이미지와 실패한 권력집단으로 간주된 ‘친노(친노무현)’의 정치적 한계 때문에 2012년 대선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으나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촛불항쟁 덕분에 이번 대선에서는 약점을 극복하며 쉬 승리할 수 있었다”는 평가(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나오는 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를 앞두고 어제 김상곤 사회부총리가 “촛불혁명의 정신을 살리고 교육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이 봉합되기를 기대한다”고 한 것도 편하지는 않다. 굳이 국정화 진상조사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럼 촛불혁명 정신을 죽이겠다는 거냐”고 따질 듯한 분위기다. 국가의 지배집단이 조직노동을 배제하거나 장악해 어용화(御用化)하고, 사회영역·시민사회를 탄압해 배제하거나 장악해 각종 끄나풀로 만드는 총동원 운영방식이 파시즘이라고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박근혜 스타일’ 논문에서 지적했다. ‘국민 이데올로기’로 사회를 철저히 통제하며 노조를 배제하고 시민사회를 탄압한 박근혜는 사회적 파시즘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촛불혁명 정신을 받들어 노조를 배제 아닌 어용화하고 시민사회는 탄압 아닌 끄나풀로, 아예 지배집단으로 들어앉힌 문재인 정부도 파시즘과 무관치 않다고 봐야 한다. 어린 시절 무솔리니의 파시즘 아래 살았던 움베르토 에코는 ‘원형 파시즘(Ur fascism)’을 식별하는 방법 14가지를 꼽으며 이 중 한 가지만 보여도 파시즘으로 굳어진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국민은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며 탈원전 공론화위원회니 해가며 대의(代議)민주주의를 비켜간다는 점이다. 특히 ‘어용 진보지식인’을 자임한 유시민 작가를 본받았는지 ‘어용 시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여권이든 야권이든 ‘우리 이니’를 비판하기만 하면 문자폭탄 같은 ‘행동을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한 파시즘이다. 폭력까지 휘두르며 ‘차이의 공포’를 조성해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로 굳어질까 두렵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지못미’ 죄책감 때문이라지만 열정으로만 보기 힘든 반(反)지성주의다. 좌절한 중간계층에 ‘금수저’와 엘리트 지식인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고, 적폐청산 같은 과거에 집착하며, 개인과 자유를 중시하는 근대성을 거부하고 국가가 책임져 준다고 강조하는 국가주의도 파시즘에 속한다. 이 밖에 에코는 남성주의와 전쟁 불사를 파시즘 요소로 꼽았다. 핵·미사일을 거의 완성한 김정은 앞에서 탁현민 청와대행정관 빼곤 남성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문재인 정부가 평화를 외치는 현실을 감사해야 할 것인가. 결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숱한 도상연습을 했다는 문재인 정부다. 노 전 대통령은 반미(反美)·반(反)부자 감정을 부채질하는 포퓰리즘 정치로 비판받는 회한을 남겼다. 민족적 포퓰리즘이 급진화한 형태가 바로 파시즘이다. 지지율 높은 집권 초기 촛불혁명 완수를 밀어붙이는 급진성이야말로 ‘촛불 파시즘’의 위험한 증상이다. ‘노무현 2기 정부’가 포퓰리즘도 모자라 파시즘 정치를 했다는 회한을 남겨선 안 될 일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7-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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