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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로 가족을 잃은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비자가 없는 유족들이 입국할 방법을 찾지 못해 본국에서 발만 동동 구르자 화재 발생 나흘 만에 법무부가 이런 조치를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외국인 사망자 유족은 ‘무비자 입국’ 28일 법무부와 화성시 등에 따르면 정부는 비자가 없는 유족들이 입국할 경우 공항에서 바로 입국을 허가해 주는 무비자 입국 조치를 27일부터 시행했다. 중국과 라오스 등 무비자 협약국이 아닌 국적의 사람은 한국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입국할 수 있다. 당초 법무부는 유족들에 한해 비자 발급 서류를 줄이고, 수수료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유족들이 대사관에 방문하기 어렵고 비자 발급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점 등을 감안해 무비자 입국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대상은 화재로 사망한 중국인 17명과 라오스인 1명 등 18명의 직계존비속과 형제자매로 한정했다. 유족들은 28일부터 입국하기 시작했다. 딸을 잃은 채성범 씨(73·중국 국적)의 아내와 아들도 그동안 비자가 없어 애를 태우다 이날 오후 3시 30분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채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몸도 아픈 아내가 이제야 딸을 보러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라오스 국적의 아내를 잃은 이재홍 씨(51)도 “아내의 가족이 비자가 없어 못 오고 있었다”며 “이제 한국행 비행기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28일 경기 시흥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는 한국인 사망자 A 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망자 23명 중 빈소가 마련된 것은 A 씨가 처음이다. 사망자 신원 확인과 유가족 입국이 지연되면서 다른 사망자들은 빈소가 아직 차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망자 전원에 대한 장례 절차가 끝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족들은 28일 협의회를 구성하고 장례와 보상 절차 등을 함께 대응하기로 했다. 협의회 측은 “사용자(회사) 측이 불쑥 찾아와 생색 내기식 사죄를 했다”며 “유족 전체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망자 전원의 신원이 파악된 가운데 이날도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졌다. 경찰 등에 따르면 한국으로 귀화한 40대 남성 B 씨와 중국 국적 여성 C 씨는 부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50대 여성과 40대 여성 두 사람은 일곱 살 터울의 중국인 자매였고, 두 살 터울의 20대 이종사촌도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4시간 40분 후 유해물질 측정 노동 당국은 아리셀의 불법 파견 의혹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 민길수 지역사고수습본부장(중부고용노동청장)은 28일 브리핑을 갖고 “경기지청에 수사팀을 꾸려 조사 중”이라며 “법 위반 여부를 철저하게 확인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했다. 한편 화재 발생 4시간 40분 후에야 화재 현장의 일부 유해화학물질 유출 측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화재 발생 후 현장의 유해화학물질 유출 농도를 측정한 결과 “검출이 되지 않았거나 기준치 이하로 파악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유해화학물질로 꼽히는 염화티오닐의 유출 측정은 24일 오후 3시 11분경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화재 발생 4시간 40분이 지나서야 이뤄진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강유역환경청(경기 하남시)과 화학물질안전원(충북 청주시) 모두 현장과 거리가 먼 데다 염화티오닐 측정이 고성능 장비를 요해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화성=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화성=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정부가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로 가족을 잃은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비자가 없는 유족들이 입국할 방법을 찾지 못해 본국에서 발만 동동 구르자 화재 발생 나흘 만에 법무부가 이런 조치를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외국인 사망자 유족은 ‘무비자 입국’28일 법무부와 화성시 등에 따르면 정부는 비자가 없는 유족들이 입국할 경우 공항에서 바로 입국을 허가해주는 무비자 입국 조치를 27일부터 시행했다.중국과 라오스 등 무비자 협약국이 아닌 국적 사람은 한국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입국할 수 있다. 당초 법무부는 유족들에 한해 비자 발급 서류를 줄이고, 수수료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유족들이 대사관에 방문하기 어렵고 비자 발급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점 등을 감안해 무비자 입국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대상은 화재로 사망한 중국인 17명과 라오스인 1명 등 18명의 직계존비속과 형제자매로 한정했다.유족들은 정부의 조치를 환영했고, 28일부터 입국하기 시작했다. 딸을 잃은 채성범 씨(73·중국 국적)의 아내와 아들도 그동안 비자가 없어 애를 태우다 이날 오후 3시 30분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채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몸도 아픈 아내가 이제야 딸을 보러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라오스 국적 아내를 잃은 이재홍 씨(51)도 “아내의 가족이 비자가 없어 못 오고 있었다”며 “이제 한국행 비행기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28일 경기 시흥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는 한국인 사망자 A 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사망자 23명 중 빈소가 마련된 것은 A 씨가 처음이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가 이날 빈소를 찾아왔지만 유족들이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해 돌아갔다.사망자 신원 확인과 유가족 입국이 지연되면서 다른 사망자들은 빈소가 아직 차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망자 전원에 대한 장례 절차가 끝나려면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족들은 28일 유가족 협의회를 구성하고 장례와 보상 절차 등을 함께 대응하기로 했다. 협의회 측은 “사용자(회사) 측은 진정성 있는 설명이나 보상안 마련 없이 불쑥 찾아와 생색내기식 사죄를 했다”며 “이런 시도에 유족 전체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협의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사망자 전원의 신원이 파악된 가운데 이날도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졌다. 경찰 등에 따르면 한국으로 귀화한 40대 남성 B 씨와 중국 국적 여성 C 씨는 부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50대 여성과 40대 여성 두 사람은 7살 터울의 중국인 자매였고, 두 살 터울의 20대 이종사촌도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불법 파견 의혹 본격 수사노동당국은 아리셀의 불법 파견 의혹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 민길수 지역사고수습본부장(중부고용노동청장)은 28일 브리핑을 갖고 “불법 파견 문제는 경기지청에 수사팀을 꾸려 조사 중”이라며 “법 위반 여부를 철저하게 확인해 엄중 조치하겠다”고 했다.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인정 여부에 대해선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산재 처리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산재보험 규정에 따르면 사업장의 가입 여부나 고용 형태, 국적 등과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는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한편 공장에 남아 있던 폐전해액 1200L는 이날 수거가 완료됐다. 전해액은 전지 내 리튬이온의 이동통로 역할을 하며 인체 노출 시 유해하고 화재 위험도 있다.화성=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화성=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불법사채의 ‘연결고리’로 지목된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앞으로 금융감독원이 직접 감독하는 방안을 정부가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과 정부는 법을 개정해 불법사채를 하다 걸리면 이자는 물론이고 원금까지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아무나 대부업체를 차리지 못하게 등록 문턱을 높이는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다. 27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중개 플랫폼의 감독 주체를 현행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금감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대부업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한국대부금융협회, 대부업 전문가와 함께 불법사채 근절 대책을 논의해 왔는데, 그중 플랫폼 감독 강화를 서두르기로 한 것이다. 플랫폼은 정식으로 등록된 대부업체의 광고를 보여주는 사이트로, 약 30개가 운영 중이다. 모두 지자체에 ‘대부중개업자’로 등록돼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금감원은 인력을 비정기적으로 파견해 감독을 간접 지원해 왔다. 하지만 지자체엔 대부업 감독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적어서 사실상 촘촘한 감시가 이뤄지지 못했고, 플랫폼을 통해 불법사채로 연결되는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금감원이 직접 감독하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금감원은 이와 별도로 올해 하반기(7∼12월)에 대형 플랫폼 업체가 몰려 있는 경기도부터 합동 점검을 하기로 했다. 국회에선 불법사채 계약 자체를 무효로 하는 개정법도 이르면 다음 주 발의된다. 현재는 불법사채로 처벌돼도 원금과 법정 이자(연 20%)는 보장해 준다. 이를 바로잡는 법안에 다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적극적이고, 국민의힘도 취지에 공감하고 있어 22대 국회에서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관련 법안이 발의되면 정부도 이를 지원할 방침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이달 24∼28일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시리즈를 통해 플랫폼에 숨어 있는 불법사채 조직의 실태를 고발했다. ‘불법사채 계약 무효화’ 법개정 탄력… 민주당, 이르면 내주 발의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법 개정 땐 원금-이자 다 돌려받아… 피해복구-불법사채 처벌 동시효과금융당국 “국회 움직임 맞춰 개정… 대부업 등록 요건 개선에도 공감”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불법사채 근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불법사채 계약 무효화’다. 대부업법을 개정해 불법사채 계약을 무효로 하는 근거 조항을 추가하면,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원금과 이자를 모두 돌려받게 된다. 피해 복구와 불법사채 조직의 일벌백계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불법사채 계약 무효화’ 법 개정 탄력 지금은 불법사채를 하다 걸려도 원금과 법정 상한(연 20%)의 이자를 보장받는다. 현행법상 20%를 초과한 이자만 범죄수익으로 보고 추징을 통해 국고로 환수할 수 있다. 또 피해자가 업자를 상대로 ‘부당이득을 돌려 달라’고 소송해서 이겨도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만 돌려받을 수 있다. 게다가 미등록 영업의 법정 형량도 5년 이하 징역과 5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금전적인 불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이 불법사채를 뿌리 뽑지 못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정부와 국회는 2010년대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업법 개정을 시도했다. 21대 국회에서도 불법사채 계약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무효화하는 법안(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 발의), 연 40%를 초과한 고금리 계약의 경우 원금과 이자를 무효로 하는 법안(민주당 이재명 의원) 등 다양한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전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불법사채 계약과 정상적인 개인 간 거래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정부는 차선책으로 불법사채 피해자가 조직을 상대로 낸 계약 무효 소송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피해 복구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해당 소송을 대리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은 ‘반사회적 법률행위는 무효’라는 민법 103조를 근거로 계약 무효를 주장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조항으로 계약 무효가 인정된 사례가 없다. 공단 관계자 역시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할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는 다를 거란 기대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이르면 다음 주 불법 고금리나 미등록 영업을 하다 걸리면 모든 이자 계약을 무효화하는 취지의 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국민의힘도 올해 4월 총선 공약으로 불법사채 무효화를 내거는 등 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여야 모두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정부도 국회 움직임에 맞춰 개정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법안을 어떻게 정교하게 만들지가 남은 숙제”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금전 거래였는데도 불법사채로 몰아가며 돈을 갚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도록 계약 무효 범위와 대상을 세심하게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 “등록 요건 개선 필요성 공감” 금융당국은 대부업 등록 요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지금은 통장 잔액 1000만 원과 한국대부금융협회 18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정식 대부업체로 등록할 수 있다. 등록에 필요한 비용은 교육비와 수수료 등을 합쳐도 46만 원 수준이다. 불법사채 조직으로선 정식 대부업체의 가면을 쓰고 영업하기에 더없이 손쉬운 조건인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등록 요건이 낮아 자격 미달 업체들이 쉽게 진입하는 문제가 있다”면서도 “등록 요건을 너무 높이면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영세 업체들이 음지로 숨어들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법 개정에는 다소 시일이 걸리는 만큼 정부는 채무자 대리인 지원제도를 적극 알릴 계획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가 무료로 불법사채 피해자 대리인으로 선임돼 추심에 대응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대신해 주고 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아내가 ‘인력업체(메이셀)가 근로계약서도 안 써준다’고 자주 하소연했습니다. 업체 측에서 ‘(계약서를) 독촉할 거면 그냥 나가라’고 했다네요. ” 27일 오전 11시 10분경 경기 화성서부경찰서 앞. 사흘 전 경기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로 사망한 라오스 국적 주이(본명 숙사완 말라팁·33) 씨 남편 이재홍 씨(51)가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이같이 말했다. 주이 씨는 사고 직전 한국으로 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24일 화재 사고 날 뇌수술을 받은 이 씨는 여전히 이마 두 곳과 왼쪽 귀에 거즈를 붙이고 있었다. 아내의 신원 확인을 마쳤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무덤덤하게 “그렇다”고 답한 이 씨는 이어 “(아내 시신이) 함백산(장례식장)에 있다고 한다”며 눈물을 쏟았다. 이날 이 씨는 딸 이모 양(11)과 함께 아내의 신원 확인 결과를 들으러 경찰서를 찾았다. 라오스에 있는 아내의 어머니와 동생은 여전히 한국으로 오지 못했다. 이 양은 “엄마가 날 많이 사랑했다”며 소리 없이 울음만 삼켰다.● “포장 일로 불러 놓고 용접 일까지” 주장도 아리셀은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파견 형태로 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아리셀은 올 5월부터 인력파견업체 메이셀로부터 외국인 인력을 공급받았다. 또 메이셀의 등기상 주소는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3동 2층으로 나타났다. 다만 아리셀 측은 27일 취재진 앞에서 “엄연한 (도급) 계약서를 가지고 있다”며 반박했다. 이 씨는 아내가 2년 가까이 일자리를 받던 메이셀에 최근까지 근로계약서를 써달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업체가 매번 “다음에 써주겠다”며 미뤘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2주 전인 이달 10일까지 근로계약서 작성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씨는 “아내가 또 한번 요구하니 업체에서 ‘그런 식으로 재촉할 거면 그만두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씨는 인력업체 지원 당시 주이 씨가 포장 등의 업무를 택했으나 업체에서는 용접 업무까지 맡겼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아내가 ‘용접 업무를 못 하겠다’고 해서 내가 대신 용역업체 직원한테 항의했다”며 “업체(메이셀) 측에서 ‘우리는 관여 안 하고, 업무 지시는 아리셀 공장에서 하는 거다’라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파견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은 원청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있다. 도급은 용역업체에 지휘 권한이 있다. 파견법상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 업무는 원청 사업주가 파견 근로자를 쓸 수 없다.● “우리 애들 왜 대피 못 시켰냐” 유족 오열 유족들은 이날 오후 3시 반경 화성시청 모두누림센터를 찾은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회사 관계자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유족은 오열하다 쓰러지기도 했다. 한 중년 여성 유족은 박 대표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겨우 스물네 살밖에 안 된 애다. 어떻게 할 거냐”며 바닥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센터 2층 세미나실을 찾은 박 대표에게 유족들은 “사흘밖에 일 안 했다. 안전 교육을 똑바로 한 것은 맞냐” “모르니까 소화기 들고 뿌리다 죽은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전 교육을 모두 마쳤다”는 사측 답변에 또 다른 유족은 “애들 대피 좀 시키지 그랬느냐. 아침에 ‘엄마 출근해요’ 라고 말했던 애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며 오열했다. 박 대표는 연신 유족을 향해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유족들은 전날부터 이어진 유전자(DNA) 채취 및 신원 확인 결과를 들으러 경찰서를 오갔다. 26일 오후 신원 확인을 마친 뒤 나온 한 유족은 “우리 딸 어떡해, 다 키웠는데”라며 연신 가슴을 내리쳤다. 27일 오후 5시 기준 사망자 23명(내국인 5명, 외국인 18명)의 신원은 모두 확인됐다. 화성=서지원 기자 wish@donga.com화성=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화성=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습니다.”2021년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했던 직장인 이철민(가명·33) 씨는 올 2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직에서 나온 뒤 지인과 함께 직접 조직을 차렸다가 2022년 10월 그만뒀다.이 씨는 한국에서 불법사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대변한다. 한국에선 대부업 등록이 식당을 차리는 것보다 쉽다. 자본 요건인 ‘통장 잔액 1000만 원’은 등록할 때 한 번만 증명하면 된다. 이후 출금해도 등록이 취소되지 않는다. 이론상 같은 돈을 입출금하며 대부업체를 무한정 만들 수 있다.‘고정 사업장’을 갖춰야 하지만 주택이나 숙박시설만 아니면 된다. 직원이 상주하지 않고 공유오피스 등에 주소만 올려두면 월세는 1만 원대로 낮출 수 있다. 이런 ‘페이퍼 대부업체’ 운영은 고정 사업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불법이지만 등록 시 현장실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적발될 가능성은 작다. 한국대부금융협회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교육비는 23만 원이고 총 18시간 중 11시간은 온라인 동영상 강의만 들으면 이수증이 나온다.여기에 손해배상 공제료, 등록 수수료, 면허세 등 약 33만 원을 더 쓰면 등록증을 구할 수 있다. 불법사채 조직은 이런 등록증을 약 200만 원에 사들여 여러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렸다. 이게 수많은 피해자를 속인 ‘정식 대부업체’라는 이름의 실체다.● 9년 전 잘못 끼운 첫 단추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현행 대부업 등록제는 2002년 도입됐다. 당시 등록 요건 자체가 없다가 2009년에야 교육 이수 의무가 부과됐다. 이후 소재가 불분명한 대부업체가 난립하면서 2010년 사무실 요건이 생겼다. 자본 요건은 2015년 추가됐다.원래 정부는 최소 자본 기준을 5000만 원으로 정할 방침이었다. 국회에는 이를 3억 원으로 정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허들이 높으면 영세 대부업체가 폐업하고 음지로 숨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렸다. 결국 2015년 개정된 법에는 최소 자본 기준이 1000만 원으로 정해졌다.자본금을 여러 업체를 설립하는 데 ‘돌려쓰기’ 할 수 있다는 지적은 그때도 나왔다. “등록 이후 자본금 유지 의무를 추가하자”는 국회 보고서도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태생부터 한계가 명확했던 자본 요건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불법사채 피해자를 돕고 있는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믿을 수 없는 대부업체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일본처럼 부채를 뺀 ‘순자산액’만 자본금으로 인정하고, 설립 기준액도 최소 3억 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채 10명 중 1명만 징역아무나 불법 업체를 차릴 수 있고, 검거마저 어렵다면 일벌백계로 범행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미등록 대부업의 법정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21년 전 법이 제정됐을 때 그대로다. 그나마 대다수는 실형을 받지 않는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2022년 4년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9.1%만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징역형 집행유예가 39.2%, 벌금형이 39%로 훨씬 많았다.불법사채로 벌어들인 수익을 환수하는 건 더 어렵다. 현행법으론 법정 상한(연 20%)을 초과한 이자만 범죄수익으로 추징할 수 있다. 불법사채를 하다 걸려도 빌려준 돈뿐 아니라 이자도 20%까지는 보장받는 셈이다.법정 형량을 높이는 게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다만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은 “불법사채 조직엔 전과자가 많아 감옥에 가는 걸 그리 무섭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2년 불법사채로 기소된 피고인의 51%가 전과자였다. 이는 마약 사건 피고인 중 전과자의 비율(47%)보다 높은 수준이다.따라서 불법사채를 뿌리 뽑는 데엔 금전적 불이익이 더 효과적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벌금을 올리고, 불법사채 계약 자체를 무효화해 업자에게 원금도 돌려주지 말자는 것이다.정부는 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법 개정엔 신중한 태도다. 그 대신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불법사채 피해자 4명이 업자를 상대로 낸 계약 무효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공단은 ‘반사회적 법률행위는 무효’라고 명시한 민법 103조를 근거로 계약 무효를 주장할 방침이다. 단, 지금껏 이 조항으로 계약 무효가 인정된 사례는 없다. 박 회장은 “일본이나 독일처럼 불법사채 계약을 무효로 해서 원금까지 뱉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불법사채 연결창구 된 대부중개 플랫폼 “대부중개 플랫폼은 불법사채 조직의 무대입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수사 경찰과 전문가들은 채무자들이 불법사채를 접하는 주된 창구로 대부중개 플랫폼을 지목했다. 피해자들의 증언도 일치했다.대부중개 플랫폼은 대부업체 광고를 모아 보여주는 사이트다. 약 30개가 영업 중인데, 모두 ‘정식 대부업체만 광고 중’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검증한 플랫폼 광고 업체 62곳 중 36곳이 불법사채 조직과 손을 잡고 있었다.정부와 플랫폼 업계는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아무나 플랫폼에 광고를 올리지 못하도록 플랫폼 업체들은 2017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등록증 제출을 의무화했다. 대출 상담을 위해 플랫폼에 남긴 연락처를 업체들이 마음대로 열람하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2월부턴 연락처를 못 남기게 바꿨다.대형 플랫폼 5곳을 회원사로 둔 대부중개플랫폼협의회 관계자는 “협의회 소속 플랫폼들은 등록증 사본을 확인하고 본인인증을 거친 뒤에 광고를 내보낸다. 폐업한 업체 광고가 노출되는 것을 걸러내기 위해 매주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구멍’은 여전했다. 불법사채 조직이 바지사장 명의로 등록증을 받고 본인인증까지 시키면 광고를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것. 플랫폼에서 채무자 연락처를 직접 볼 수 없더라도 채무자가 광고를 보고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플랫폼 광고를 보고 전화한 이용자가 불법사채 조직에 넘겨져도 플랫폼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플랫폼은 ‘대부중개업자’로 분류되는데, 지금처럼 광고만 올려주는 건 ‘불법 중개’ 행위로 처벌하기 어려워서다. 관리·감독도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 있다.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부중개업자가 광고만 하는 건 해외엔 없는 영업 방식”이라며 “법에 명시된 ‘중개’ 행위를 폭넓게 해석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지자체가 아닌 금융당국이 직접 플랫폼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2000년대 초반 일본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야미킨’으로 불리는 불법사채를 굴리는 조직의 악랄한 추심에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피해자가 급증했다. 지금 일본에선 더 이상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이 불법사채 ‘지옥’에서 벗어난 비결은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회(下)에서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1년 전이에요. ‘너도 다 컸으니 이젠 돈 벌러 가야지’라며 떠나셨는데….” 26일 오후 1시 반경 경기 화성시 화성서부경찰서 본관 1층 앞. 전날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중국에서 한국에 왔다고 밝힌 중국 국적 A 양(18)은 덤덤한 듯 말하다가 경찰서 안쪽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어머니는 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23명 중 한 명이다. 아직 신원도 특정되지 않았다. 이날 A 양은 어머니의 신원 조회에 필요한 유전자(DNA)를 채취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한국어가 낯선 부녀(父女)는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경찰서 바깥 한쪽에 서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유족들, 신원 특정 기다리며 눈물 경기남부경찰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시신을 이송해 DNA 채취 작업을 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화재로 사망한 23명 중 신원이 특정된 14명을 제외한 9명은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돼 지문 감정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이날 한국인 여성 1명과 중국인 9명(남성 2, 여성 7), 라오스 여성 1명 등 총 11명의 신원이 추가로 확인됐다. 전날 발견된 마지막 실종자의 시신에 대한 부검도 이날 오전 내 국과수에서 진행됐다. 아리셀 화재 유가족지원실이 마련된 경기 화성시청 모두누림센터 3층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DNA 채취를 마친 유족 10여 명이 모여 혹시 모를 ‘신원 특정’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DNA 채취를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무작정 시청으로 온 유족들도 일부 있었다. 전날에 비해 비교적 차분해진 분위기였으나 울음소리가 들려오면 다른 유족들 역시 눈물을 훔쳤다. 일부 유족들은 “부검과 관련해 들은 이야기가 없느냐”며 오히려 취재진에게 물어오기도 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경 센터 옥상에서 만난 한 유족은 “(담당 기관으로부터) 부검했다는 얘기조차 못 들었다. 언제, 왜 부검을 했느냐”고 했다. 사인 확인이 필요해서 부검했다는 설명에는 “부검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데 왜 막아서는 거냐”며 연신 줄담배를 피웠다. 한 유족은 “사고 당일 뉴스에서 (화재 소식을) 보고 (사망자에게) 문자메시지를 계속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영정사진 없이 국화만 덩그러니 놓여 전날 오후 5시부터 화성시청 본관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는 추모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영정사진 한 장 올라와 있지 않았다. 위패도 없이 오직 국화와 백합꽃으로 장식했다. 희생자 신원이 완전히 특정되지 않아 위패를 모시기 어려운 탓이다. 분향소 운영이 시작된 26일 오전 9시경 가장 먼저 분향소를 찾은 이들은 유족이었다. 사진 하나 없는 빈 추모대 앞에서 엎드려 오열하는 유족들도 있었고, 일부는 떨리는 손으로 추모대 위에 국화꽃을 놓았다. 이번 사고로 딸을 잃고 중국에서 온 한 유족은 “어떻게든 딸만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며 “불쌍한 우리 딸”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침부터 이어진 시민들의 추모는 오후 6시 넘어서자 100명 가까이 달했다. 이날 퇴근길 분향소에 들른 직장인 박모 씨(31)는 “타지로 돈을 벌러 온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죄스러운 마음에 잠시 들렀다”고 했다. 위패가 있는 공식 합동분향소 설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신원 확인은 물론이고 유족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화성시는 화성시 서신면체육관 2층, 동탄역, 병점역에 추가로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화성=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화성=서지원 기자 wish@donga.com화성=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일본에선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하는 일은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지난달 29일 도쿄에서 만난 우쓰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78) 변호사는 정식 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 조직이 판치는 한국의 현실과 관련해 이렇게 단언했다. 그는 50년 넘게 불법사채 피해자를 지원해 온 대표적인 활동가다. 일본의 사채 문제를 다룬 소설 ‘화차’(1992년) 속 변호사의 모델이기도 하다.특히 대부업체 설립 문턱이 낮고 처벌이 약한 탓에 업체 등록증이 200만~300만 원에 암거래되는 국내 현실에 대해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일본에선 대부업 등록 자체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앞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국내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서 광고 중인 대부업체 62곳을 검증한 결과 합법적으로 영업한 업체는 3곳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한국에선 아무도 (불법사채를) 단속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그의 사무실 책상엔 약 20년 전 야미킨(闇金), 즉 불법사채 피해자를 상담한 자료와 함께 신문 기사 스크랩이 앉은키 높이로 여러 더미 쌓여있었다. ‘야쿠자가 차주(채무자) 납치’, ‘일가족 자살’, ‘채무자 자살 명소로 전락한 후지산’…. 오늘날 한국보다 심각했던 일본의 불법사채 문제를 보여주는 제목들이다.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이런 광경을 상상하기도 어려워졌다. 2006년 대금업법(한국의 대부업법)을 뜯어고치고 연달아 제도를 개선한 덕분이다. 기상천외한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니었다. 도쿄에서 만난 현지 전문가들은 “단순한 두 가지 원칙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였다”고 입을 모았다. 아무나 대부업을 못 하게 한다. 걸리면 엄하게 처벌한다. 그 결과 불법사채 조직은 발을 붙이기 힘들어졌다.한국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업 진입 단계부터 불량 업체를 걸러내고, 위법을 일벌백계하려는 시도는 다른 현안에 밀리거나 ‘시기상조’라는 우려 속에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가 불법사채를 근절하겠다며 2년 전 출범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도 합동 단속이나 예방법 홍보 등 핵심을 비껴간 대책만 내놓고 있다. 불법사채가 비대면 플랫폼을 장악하도록 방치해 피해자의 고통이 커지는 한국과 이를 해결한 일본. 두 나라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자살과 납치 횡행했던 2000년대 일본‘밤마다 걸려 온 추심전화에 죽음을 결심.’2003년 6월 15일, 일본의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야미킨을 쓰고 조직의 협박을 받던 일가족 3명이 전날 오사카에서 철로에 누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가족이 빌린 금액은 3만 엔(약 26만 원).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이처럼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선 불법사채 조직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후지산 자락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생을 내려놓는 채무자가 늘자 피해자 지원 단체가 숲길 입구에 “빚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어요. 일단 저희랑 상의해요”라고 적힌 자살 방지 안내판을 설치했을 정도다.● 대부업체 설립비용, 한국의 45배당시 일본 불법사채 시장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자격 요건이 헐거워 영세 대부업체가 난립했다. 불법사채 조직도 활개 쳤다. 더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다.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였다.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참고한 건 한국이었다. 당시 한국은 불법사채 억제를 위해 대부업법을 제정한 지 4년째였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2005년 ‘한국금리조사단’를 꾸리고 한국에 머무르며 물렀다. 결론은 ‘좌고우면하다가 제대로 된 규제를 도입하지 못한 한국처럼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규제가 약한 한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했다.일본에선 ‘역시 강력한 규제가 필수다’라는 여론에 힘이 실리면서 국회와 정부가 대부업 관련 법 개정에 착수했다. 2006년 개정된 법에서는 대부업 등록 요건을 대폭 높였다. 대부업체를 차리려면 순자산이 5000만 엔(약 4억3500만 원) 이상이어야 했다. 18년 전부터 오늘날 한국 기준(1000만 원)의 45배에 달하는 문턱을 세운 것.업체를 차리려면 3년 이상 대출 업무 경력이 있어야 하고, 대부업 자격시험을 통과한 직원을 꼭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 시험은 관련법과 재무, 회계 지식을 평가하는 국가 공인 필기시험이다. 올 3월 기준 누적 수강생 10만793명 중 2만8244명(28.0%)만 합격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업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시험도, 인력 상주 규정도 없다.물론 법 개정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정식 대부업체의 문턱을 높일수록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은 불법사채로 내몰릴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 정부와 국회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면 시행 전까지 4년이나 계도 기간을 두고 준비했다.● “걸리면 원금까지 환수”2006년부터 불법사채 처벌도 강화됐다. 법정 상한을 넘는 이자를 요구하는 불법 고금리 영업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엔(약 8700만 원) 이하 벌금에, 미등록 영업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엔(약 2억6100만 원) 이하 벌금에 각각 처할 수 있게 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업법 위반에 따른 가장 높은 벌금액이 5000만 원이다. 범죄수익의 최고 10배까지 벌금을 물리는 특정경제범죄법이 불법사채에는 적용되지 않아서다.법이 바뀌면서 불법사채 수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이전에는 경찰이 ‘야쿠자에게 팔이라도 잘려야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라며 “하지만 법 개정과 시민단체의 집단 고소가 이어지면서 전국 경찰서가 ‘야미킨 대책본부’를 꾸리고 집중 수사했다”고 회상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가 이끈 시민단체가 2002~2010년 고소한 불법사채 사건은 6만3458건에 이른다. 일본 경찰청은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매년 백서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 검거 현황을 따로 공개하고 있다.사법부도 이런 사회적 변화에 화답했다. 2008년 6월 일본 대법원은 “불법사채는 위법한 계약이기 때문에 (사채 조직에) 원금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놓았다. 최대 규모의 야미킨 조직 ‘야마구치파’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결론이었다. 법조계는 이를 ‘불법사채 근절에 본보기가 된 판결’이라고 평가한다. 불법사채를 하다 걸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불법사채로 처벌돼도 빌려준 원금과 법정 이자는 법으로 보장받는다.● 대부업체 한국의 6분의 1로 줄어일본의 정식 대부업체는 지난해 3월 기준 1548곳. 한국(8771개)의 6분의 1 수준이다. 인구 대비로는 한국의 14분의 1이다. 법 개정 여파로 영세 대부업체들이 문을 닫고 탄탄한 중견업체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업체 수가 줄면서 촘촘한 관리·감독이 가능해지면서 대부업 시장도 투명해졌다. 강력한 단속으로 불법사채 사건도 급감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검찰에 접수된 불법사채 사건이 2003년 1679건에서 2022년 231건으로 줄었다.물론 일본도 여전히 숙제가 남았다. 정식 대부업체의 대출 심사가 엄격해져 저소득층은 돈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서민 금융 제도를 확대하고 민간 차원의 채무자 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병행하면서 이런 ‘풍선효과’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다. 도모토 히로시(堂下浩·60) 도쿄정보대 교수는 “정식 대부업체에 한해서는 법정 이율 상한을 높이는 등 ‘숨통’을 틔울 필요가 있다. 다만 불법사채는 수법이 교묘해짐에 따라 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게 누가 사채 쓰랬냐”는 한국…日 ‘채무자 탓 그만’불법사채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건 부실한 규제뿐만이 아니다. 사채를 쓰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시선도 장애물 중 하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31명의 불법사채 피해자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다. “그러게 누가 사채 쓰랬냐”는 말과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한국보다 앞서 불법사채 문제를 겪은 일본은 일찍이 이런 인식의 개선에 힘썼다. 1970년대부터 사채 피해 구제에 힘써온 기무라 타츠야(木村 達也·80) 변호사는 서면 인터뷰에서 “당시엔 ‘차주책임론’(借主責任論·빌린 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이란 용어도 있었다”며 “이런 시선이 사채 피해가 고발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했다.1970년대 일본에서는 고리대금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과한 추심과 채무자의 자살이 늘었다. 샐러리맨이 주로 빌리는 사채, 이른바 ‘사라킨’(サラ金)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기무라 변호사는 1976년 오사카 변호사회 안에 사채 문제 연구회를 결성했다.“세간에는 다중 채무에 빠지는 사람들은 낭비나 도박, 유흥 때문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뤘지만, 변호사들은 대부업의 고금리·가혹한 추심·과잉 대출이 근원이라고 생각했어요.”이듬해에는 700여 명의 젊은 변호사와 학자 등이 모여 ‘전국사라킨문제대책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피해자 설득에 나섰다. 인식개선이 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에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최소 1개씩, 총 85개의 피해자 단체가 생겼다. 매년 한 번, 전국의 변호사와 피해자 약 2000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생활고, 지병, 실업 같은 피해자들의 비참한 호소가 사회에 공유됐다.기무라 변호사는 “‘빌린 사람 책임’이라던 시각이 ‘소비자 보호’로 바뀌게 된 때”라며 “집회를 통해 사채업자들의 악질적인 수법이 고발되면서 사회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 흐름을 타고 1983년 ‘대금업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대부업 등록이 의무화됐고, 대부계약사항과 추심에 관한 세부 조항이 생겼다. 다소 느슨했던 규제의 빈틈은 2006년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일본과 달리 누구나 마음먹으면 불법 사채가 가능한 한국 상황은 ‘불법사채 못 막는 사회-(上) 한국편’에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도쿄=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습니다.”2021년 불법사채 조직에서 일했던 이철민(가명·33) 씨는 올 2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직에서 나온 뒤 지인과 함께 직접 조직을 차렸다가 2022년 10월 그만뒀다. 지금 그는 평범한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불법의 세계에 발 담글 수 있다’는 그의 말투는 평온했다.이 씨의 한국에서 불법사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대변한다. 한국에선 대부업 등록이 식당을 차리는 것보다 쉽다. 자본 요건인 ‘통장 잔고 1000만 원’은 등록할 때 한 번만 증명하면 된다. 이후 출금해도 등록이 취소되지 않는다. 이론상 같은 돈을 입출금하며 대부업체를 무한정 만들 수 있다.‘고정 사업장’을 갖춰야 하지만 주택이나 숙박시설만 아니면 된다. 직원이 상주하지 않고 공유오피스 등에 주소만 올려두면 월세는 1만 원대로 낮출 수 있다. 이런 ‘페이퍼 대부업체’ 운영은 고정 사업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불법이지만 등록 시 현장실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적발될 가능성은 작다. 한국대부금융협회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지만, 교육비는 23만 원이고 총 18시간 중 11시간은 온라인 동영상 강의만 들으면 이수증이 나온다.여기에 손해배상 공제료(16만 원)와 등록 수수료(10만 원)와 면허세(6만5000원) 등 약 32만5000원을 더 쓰면 등록증을 구할 수 있다. 불법사채 조직은 이런 등록증을 약 200만 원에 사들여 여러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거느렸다. 이게 수많은 피해자를 속인 ‘정식 대부업체’라는 이름의 실체다.● 9년 전 잘못 끼운 첫 단추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현행 대부업 등록제는 2002년 도입됐다. 당시 등록 요건 자체가 없다가 2009년에야 교육 이수 의무가 부과됐다. 이후 소재가 불분명한 대부업체가 난립하면서 2010년 사무실 요건이 생겼다. 자본 요건은 2015년 추가됐다.원래 정부는 최소 자본 기준을 5000만 원으로 정할 방침이었다. 국회에는 이를 3억 원으로 정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허들이 높으면 영세 대부업체가 폐업하고 음지로 숨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힘이 실렸다. 결국 2015년 개정된 법에는 최소 자본 기준이 1000만 원으로 정해졌다.자본금을 여러 업체를 설립하는 데 ‘돌려쓰기’ 할 수 있다는 지적은 그때도 나왔다. “등록 이후 자본금 유지 의무를 추가하자”는 국회 보고서도 나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태생부터 한계가 명확했던 자본 요건은 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다.믿을 수 없는 대부업체가 난립한 문제를 줄이려면 합리적인 진입 장벽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불법사채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의 송태경 사무처장은 “일본처럼 부채를 뺀 ‘순자산액’만 자본금으로 인정하고, 설립 기준액도 최소 3억3억 원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사채 10명 중 1명만 징역아무나 불법 업체를 차릴 수 있고,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쓰는 탓에 검거마저 어렵다면 일벌백계로 범행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미등록 대부업의 법정 형량은 5년 이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21년 전 법이 제정됐을 때 그대로다. 그나마 대다수는 실형을 받지 않는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2022년 4년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9.1%만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징역형 집행유예가 39.2%, 벌금형이 39%로 훨씬 많았다.불법사채로 벌어들인 수익을 환수하는 건 더 어렵다. 현행법으론 법정 상한(연 20%)을 초과한 이자만 범죄수익으로 추징할 수 있다. 불법사채를 하다 걸려도 빌려준 돈뿐 아니라 이자도 20%까지는 보장받는 셈이다.법정 형량을 높이는 게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다만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은 “불법사채 조직엔 전과자가 많아 감옥에 가는 걸 그리 무섭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22년 불법사채로 기소된 피고인 51%가 전과자였다. 이는 마약 사건 피고인 중 전과자의 비율(47%)보다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불법사채를 뿌리 뽑는 데엔 금전적인 불이익이 더 효과적이라는 제언이 나온다. 벌금을 올리고, 불법사채 계약 자체를 무효화해 업자에게 원금도 돌려주지 말자는 것이다.불법사채 ‘무대’ 전락해도 책임 안 지는 플랫폼 “대부중개 플랫폼은 불법사채 조직의 무대입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수사 경찰과 전문가들은 채무자들이 불법사채를 접하는 주된 창구로 대부중개 플랫폼을 지목했다. 피해자들의 증언도 일치했다.대부중개 플랫폼은 대부업체 광고를 모아 보여주는 사이트다. 약 30개가 영업 중인데, 모두 ‘정식 대부업체만 광고 중’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검증한 플랫폼 광고 업체 62곳 중 36곳이 불법사채 조직과 손을 잡고 있었다.정부와 플랫폼 업계는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아무나 플랫폼에 광고를 올리지 못하도록 플랫폼 업체들은 2017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등록증 제출을 의무화했다. 대출 상담을 위해 플랫폼에 남긴 연락처를 업체들이 마음대로 열람하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2월부턴 연락처를 못 남기게 바꿨다.대형 플랫폼 5곳을 회원사로 둔 대부중개플랫폼협의회 관계자는 “협의회 소속 플랫폼들은 등록증 사본을 확인하고 본인인증을 거친 뒤에 광고를 내보낸다. 폐업한 업체 광고가 노출되는 것을 걸러내기 위해 매주 모니터링도 하고 있다”고 했다.하지만 ‘구멍’은 여전했다. 불법사채 조직이 바지사장 명의로 등록증을 받고 본인인증까지 시키면 광고를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것. 플랫폼에서 채무자 연락처를 직접 볼 수 없더라도 채무자가 광고를 보고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었다.플랫폼 광고를 보고 전화한 이용자가 불법사채 조직에 넘겨져도 플랫폼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플랫폼은 ‘대부중개업자’로 분류되는데, 지금처럼 광고만 올려주는 건 ‘불법 중개’ 행위로 처벌하기 어려워서다. 관리·감독도 지방자치단체에 맡겨져 있다.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부중개업자가 광고만 하는 건 해외엔 없는 영업 방식”이라며 “법에 명시된 ‘중개’ 행위를 폭넓게 해석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지자체가 아닌 금융당국이 직접 플랫폼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2000년대 초반 일본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야미킨’으로 불리는 불법사채 조직의 악랄한 추심에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피해자가 급증했다. 지금 일본에선 더 이상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이 불법사채 ‘지옥’에서 벗어난 비결은 에서 이어진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일본에선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하는 일은 발생할 수가 없습니다.”지난달 29일 도쿄에서 만난 우쓰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78) 변호사는 정식 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 조직이 판치는 한국의 현실과 관련해 이렇게 단언했다. 그는 50년 넘게 불법사채 피해자를 지원해 온 대표적인 활동가다. 일본의 사채 문제를 다룬 소설 ‘화차’(1992) 속 변호사의 모델이기도 하다.특히 대부업체 설립 문턱이 낮고 처벌이 약한 탓에 업체 등록증이 200만~300만 원에 암거래되는 국내 현실에 대해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일본에선 대부업 등록 자체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앞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국내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서 광고 중인 대부업체 62곳을 검증한 결과 합법적으로 영업한 업체는 3곳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한국에선 아무도 (불법사채를) 단속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그의 사무실 책상엔 약 20년 전 야미킨(闇金), 즉 불법사채 피해자를 상담한 자료와 함께 신문 기사 스크랩이 앉은키 높이로 여러 더미 쌓여있었다. ‘야쿠자가 차주(채무자) 납치’, ‘일가족 자살’, ‘채무자 자살 명소로 전락한 후지산’…. 오늘날 한국보다 심각했던 일본의 불법사채 문제를 보여주는 제목들이다.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이런 광경을 상상하기도 어려워졌다. 2006년 대금업법(한국의 대부업법)을 뜯어고치고 연달아 제도를 개선한 덕분이다. 기상천외한 대책을 내놓은 게 아니었다. 도쿄에서 만난 현지 전문가들은 “단순한 두 가지 원칙을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결과였다”고 입을 모았다. 아무나 대부업을 못 하게 한다. 걸리면 엄하게 처벌한다. 그 결과 불법사채 조직은 발을 붙이기 힘들어졌다.한국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업 진입 단계부터 불량 업체를 걸러내고, 위법을 일벌백계하려는 시도는 다른 현안에 밀리거나 ‘시기상조’라는 우려 속에 번번이 무산됐다. 정부가 불법사채를 근절하겠다며 2년 전 출범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도 합동 단속이나 예방법 홍보 등 핵심을 비껴간 대책만 내놓고 있다. 불법사채가 비대면 플랫폼을 장악하도록 방치해 피해자의 고통이 커지는 한국과 이를 해결한 일본. 두 나라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자살과 납치 횡행했던 2000년대 일본‘밤마다 걸려 온 추심전화에 죽음을 결심.’2003년 6월 15일, 일본의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야미킨’, 즉 불법사채를 쓰고 조직의 협박을 받던 일가족 3명이 전날 오사카에서 철로에 누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일가족이 빌린 금액은 3만 엔(약 26만 원).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이처럼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선 불법사채 조직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하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후지산 자락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생을 내려놓는 채무자가 늘자 피해자 지원 단체가 숲길 입구에 “빚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수 있어요. 일단 저희랑 상의해요”라고 적힌 자살 방지 안내판을 설치했을 정도다.● 대부업체 설립비용, 한국의 45배당시 일본 불법사채 시장은 지금의 한국과 닮아 있었다. 자격 요건이 헐거워 영세 대부업체가 난립했다. 불법사채 조직도 활개 쳤다. 더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다.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였다.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참고한 건 한국이었다. 당시 한국은 불법사채 억제를 위해 대부업법을 제정한 지 4년째였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는 2005년 ‘한국금리조사단’를 꾸리고 한국에 머무르며 물렀다. 결론은 ‘좌고우면하다가 제대로 된 규제를 도입하지 못한 한국처럼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규제가 약한 한국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했다.일본에선 ‘역시 강력한 규제가 필수다’라는 여론에 힘이 실리면서 국회와 정부가 대부업 관련 법 개정에 착수했다. 2006년 개정된 법에서는 대부업 등록 요건을 대폭 높였다. 대부업체를 차리려면 순자산이 5000만 엔(약 4억5000만 원) 이상이어야 했다. 18년 전부터 오늘날 한국 기준(1000만 원)의 45배에 달하는 문턱을 세운 것.업체를 차리려면 3년 이상 대출 업무 경력이 있어야 하고, 대부업 자격시험을 통과한 직원을 꼭 고용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 시험은 관련법과 재무, 회계 지식을 평가하는 국가 공인 필기시험이다. 올 3월 기준 누적 수강생 10만793명 중 2만8244명(28.0%)만 합격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업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시험도, 인력 상주 규정도 없다.물론 법 개정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정식 대부업체의 문턱을 높일수록 신용이 낮은 저소득층은 불법사채로 내몰릴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 정부와 국회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면 시행 전까지 4년이나 계도 기간을 두고 준비했다.● “걸리면 원금까지 환수”2006년부터 불법사채 처벌도 강화됐다. 법정 상한을 넘는 이자를 요구하는 불법 고금리 영업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엔(약 8700만 원) 이하 벌금에, 미등록 영업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엔(약 2억6100만 원) 이하 벌금에 각각 처할 수 있게 했다. 반면 한국은 대부업법 위반에 따른 가장 높은 벌금액이 5000만 원이다. 범죄수익의 최고 10배까지 벌금을 물리는 특정경제범죄법이 불법사채에는 적용되지 않아서다.법이 바뀌면서 불법사채 수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는 “이전에는 경찰이 ‘야쿠자에게 팔이라도 잘려야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라며 “하지만 법 개정과 시민단체의 집단 고소가 이어지면서 전국 경찰서가 ‘야미킨 대책본부’를 꾸리고 집중 수사했다”고 회상했다. 우쓰노미야 변호사가 이끈 시민단체가 2002~2010년 고소한 불법사채 사건은 6만3458건에 이른다. 일본 경찰청은 그 무렵부터 지금까지 매년 백서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 검거 현황을 따로 공개하고 있다.사법부도 이런 사회적 변화에 화답했다. 2008년 6월 일본 대법원은 “불법사채는 위법한 계약이기 때문에 (사채 조직에) 원금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놓았다. 최대 규모의 야미킨 조직 ‘야마구치파’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결론이었다. 법조계는 이를 ‘불법사채 근절에 본보기가 된 판결’이라고 평가한다. 불법사채를 하다 걸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불법사채로 처벌돼도 빌려준 원금과 법정 이자는 법으로 보장받는다.● 대부업체 한국의 6분의 1로 줄어일본의 정식 대부업체는 지난해 3월 기준 1548곳. 한국(8771개)의 6분의 1 수준이다. 인구 대비로는 한국의 14분의 1이다. 법 개정 여파로 영세 대부업체들이 문을 닫고 탄탄한 중견업체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업체 수가 줄면서 촘촘한 관리·감독이 가능해지면서 대부업 시장도 투명해졌다. 강력한 단속으로 불법사채 사건도 급감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검찰에 접수된 불법사채 사건이 2003년 1679건에서 2022년 231건으로 줄었다.물론 일본도 여전히 숙제가 남았다. 정식 대부업체의 대출 심사가 엄격해져 저소득층은 돈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서민 금융 제도를 확대하고 민간 차원의 채무자 구제 활동을 활발하게 병행하면서 이런 ‘풍선효과’를 최대한 억누르고 있다. 도모토 히로시(堂下浩·60) 도쿄정보대 교수는 “정식 대부업체에 한해서는 법정 이율 상한을 높이는 등 ‘숨통’을 틔울 필요가 있다. 다만 불법사채는 수법이 교묘해짐에 따라 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게 누가 사채 쓰랬냐”는 한국…日 ‘채무자 탓 그만’불법사채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건 부실한 규제뿐만이 아니다. 사채를 쓰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시선도 장애물 중 하나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31명의 불법사채 피해자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여겼다. “그러게 누가 사채 쓰랬냐”는 말과 따가운 시선 때문이었다.한국보다 앞서 불법사채 문제를 겪은 일본은 일찍이 이런 인식의 개선에 힘썼다. 1970년대부터 사채 피해 구제에 힘써온 기무라 타츠야(木村 達也·80) 변호사는 서면 인터뷰에서 “당시엔 ‘차주책임론’(借主責任論·빌린 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이란 용어도 있었다”며 “이런 시선이 사채 피해가 고발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했다.1970년대 일본에서는 고리대금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과한 추심과 채무자의 자살이 늘었다. 샐러리맨이 주로 빌리는 돈, 이른바 ‘사라킨’(サラ金)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기무라 변호사는 1976년 오사카 변호사회 안에 사채 문제 연구회를 결성했다.“세간에는 다중채무에 빠지는 사람들은 낭비나 도박, 유흥 때문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뤘지만, 변호사들은 대부업의 고금리·가혹한 추심·과잉 대출이 근원이라고 생각했어요.”이듬해에는 700여 명의 젊은 변호사와 학자 등이 모여 ‘전국사라킨문제대책협의회’가 만들어졌고, 이들은 피해자 설득에 나섰다. 인식개선이 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에 전국 47개 도도부현에 최소 1개씩, 총 85개의 피해자 단체가 생겼다. 매년 한 번, 전국의 변호사와 피해자 약 2000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생활고, 지병, 실업 같은 피해자들의 비참한 호소가 사회에 공유됐다.기무라 변호사는 “‘빌린 사람 책임’이라던 시각이 ‘소비자 보호’로 바뀌게 된 때”라며 “집회를 통해 사채업자들의 악질적인 수법이 고발되면서 사회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 흐름을 타고 1983년 ‘대금업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대부업 등록이 의무화됐고, 대부계약사항과 추심에 관한 세부 조항이 생겼다. 다소 느슨했던 규제의 빈틈은 2006년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일본과 달리 누구나 마음먹으면 불법 사채가 가능한 한국 상황은 ‘’에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https://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도쿄=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불법사채의 주 무대는 이제 거리가 아니라 휴대전화 화면이다. 대다수 조직은 더는 전단이나 명함을 뿌리지 않는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통해 전국에서 영업할 수 있어서다. 대출부터 추심까지 모든 게 비대면이라 흔적도 안 남는다. 지난해 3월 검거된 불법사채 조직 ‘강 실장’ 조직 역시 그랬다. 걸리지 않고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불법사채에 발을 들이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 실장은 검거됐지만, 지금도 플랫폼에는 수많은 강 실장이 ‘먹잇감’을 찾고 있다.“피고인,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93××××입니다.”5월 29일 춘천지방법원 102호 법정. 피고인 박성훈(가명)은 판사의 물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갈색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날은 박성훈의 항소심 첫 재판이었다.생년월일과 주소를 확인한 후 박성훈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양옆의 공범들보다 앉은키가 주먹 하나만큼 작았다. 볼은 폭 들어갔고 피부는 푸석했다. 박성훈의 변호인은 양형 부당 등을 항소 이유로 들었다. 그는 앞서 2월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자 공범 2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박성훈 혼자 판사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박성훈은 재판에 넘겨진 지난해 4월 이후 이날까지 반성문을 230차례나 제출했다.지난해 봄까지 그는 불법사채 조직의 총책 ‘강 실장’이었다. 강 실장 조직은 2021년 2월부터 장사를 했다. 뒤를 봐주는 폭력조직이나 전주(錢主)는 없었다. 강 실장을 수사한 경찰은 “젊은데도 돈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수를 꿰뚫고 있었다”고 했다.경찰이 압수한 강 실장 조직의 대포통장에는 피해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1000억 원대 불법사채를 굴린 흔적이 나왔다. 지난해 3월 붙잡혔을 때까지 강 실장이 챙긴 것으로 의심된 범죄수익은 약 300억 원이다. 하지만 추징이 명령된 돈은 6억6635만 원에 그쳤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강 실장 조직이 덫을 친 과정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직 조직원과 변호인, 피해자, 수사 경찰 등 18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판결문 26건을 분석해 사실과 주장을 골라냈다. 주먹을 쓰지 않고 오직 휴대전화로 돈을 뜯어내는 ‘플랫폼 사채’의 세계 한가운데 강 실장 조직이 있었다. 강 실장 조직이 거액을 굴린 첫 번째 비결은 ‘대부업 등록증’이었다. ● 스물셋 총책 ‘민 실장’강 실장이 되기 전, 박성훈은 ‘민 실장’이었다. 그는 스물세 살이던 2016년 7월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몇몇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아무나 광고할 수 있었다. 불법사채 광고가 문제가 되자 모든 플랫폼이 2017년부터 대부업 등록증을 요구했다. 이후 박성훈은 자기 명의로 정식 대부업체를 차렸다. 서울의 한 건물 지하에 작은 사무실을 빌리고 구청에서 대부업 등록증을 받아왔다.그렇게 박성훈은 불법사채 조직 총책이자 정식 대부업체의 사장이 됐다. ‘소액 대출 당일 가능, 금리는 법정 이율 준수’. 거짓 광고를 올렸다. 민 실장 조직은 이 ‘미끼’를 보고 연락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았다. 3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50만 원을 받아내는 연이율 3476% 고리 영업이 표준 방식이었다. 제때 안 갚으면 피해자를 겁박했다. 그렇게 1년 동안 21억 원을 뜯어냈다.박성훈의 이중생활은 피해자 신고로 2017년 경찰에 검거되면서 막을 내렸다. 압수수색 당시 그의 집에선 일본 사채업계를 다룬 만화책 ‘사채꾼 우시지마’가 나왔다. 그에겐 대부업법 위반뿐 아니라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적용됐다. 박성훈은 정식 대부업체를 운영했을 뿐인데 일부 직원이 불법을 저지른 거라고 잡아뗐다.하지만 박성훈은 실명 석 자가 적힌 등록증으로 플랫폼에 광고를 냈을 뿐 아니라 구인 광고도 직접 올렸다. 조직원과도 얼굴을 맞대고 일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판사는 “사채 조직 전면에 나서서 조직 관리와 운영을 주도했고, (대부업 등록증은) 오직 그 명의로 광고를 내서 피해자의 전화번호를 얻는 데에만 썼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2020년 11월 출소한 그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출소 석 달 만에 새로운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고 ‘강 실장’이라는 새 가면을 썼다.● ‘강 실장’의 탄생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첫 번째 실수를 바로잡았다. 자기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그늘에 숨겼다. 이번엔 대부업 등록증도 돈을 주고 사 오기로 했다. 등록증 조달은 ‘막 사장’에게 맡겼다.“저는 등록증이 뭔지도 몰랐어요. 관공서에서 발급해 주는 거니, 불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취재팀과 만난 막 사장은 자신은 ‘심부름꾼’이었다고 주장했다. 막 사장은 강 실장의 부탁대로 대부업체 바지사장을 수소문했다. 강 실장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대부업 등록 절차가 상세히 정리돼 있었다. 강 실장은 등록증 한 장당 300만~500만 원을 줬다. 그렇게 강 실장이 사간 등록증이 10장 내외였다고 한다.막 사장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을 피하기 위한 휴대용 와이파이를 구해줬다. 범죄수익을 배달하는 역할도 했다. 조직원이 야산 등 인적 드문 곳에 현금 상자를 숨겨두면 막 사장이 이를 도심 모텔이나 오피스텔로 옮겼다.현금을 나를 땐 강 실장이 정한 규칙을 철저히 따라야 했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이동하기 △누구와도 잡담하지 않기 △퇴근할 때도 거처에서 3km 이상 떨어진 곳에 주차하기. ‘안전운전’도 수칙 중 하나였다. 조직원의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현금을 옮길 때 대포차를 사용했는데, 교통사고가 나면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막 사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강 실장 조직에서 이렇게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은 건 막 사장 외엔 거의 없었다. 1심 법원은 “(막 사장은) 총책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얻었다”고 판단했다. 막 사장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제가 배달 사고는 안 냈거든요. 배달 물건이 뭔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딱 보면 현금인 거 알잖아요. 욕심도 났지만 괜히 건드렸다간 뒤탈이 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롱런’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강 실장이 그러더군요. ‘사장님은 착실히 일해주시네요’라고요.”● 그림자 총책강 실장은 조직 안에서도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민 실장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조직은 점조직으로 설계했다. 콜팀은 피해자의 연락처만 수집했다. 상담팀은 대출 계약을 맺고, 수금팀은 빚 독촉을 담당했다. 인출팀은 현금 출금을, 수거팀은 현금 배달을 맡았다. 조직원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섬처럼 각자 맡은 일만 처리했다. 이건 민 실장 때도 써먹었던 방식이다. 과거 항소심 재판부가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했던, 검증된 방식이었다.달라진 건 강 실장 스스로 조직원의 한 명으로 위장한 것이다. 강 실장 조직에서 1년 넘게 일한 조직원은 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 실장은 목소리만 알았어요. 가끔 ‘자기 위에 누가 있다’고도 했어요. ‘실장’이었으니 그 말을 믿었죠. 그가 총책이라는 건 붙잡히고야 알았습니다.”신입 조직원이 들어오면 신분증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 10명 이상의 연락처를 받아뒀다. 조직원이 다른 마음을 품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신상을 채무자나 경찰에 넘기겠다고 겁박했다. 일면식도 없는 조직원을 목소리만으로 통제했던 비결이자, 혹시 모를 ‘배신’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민 실장 재판에서 조직원들이 총책의 범행을 증언한 것을 강 실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수금팀 조직원은 2년 전 친구 소개로 조직에 합류할 땐 정식 대부업체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열흘 정도 일했을 무렵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두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총책이라는 사람이 ‘지금 관두면 네 신상 뿌려버린다’고 했어요.” 조직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강 실장은 채무자도 조직원으로 끌어들였다. 통제하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훗날 조직 서열 2위에 오른 ‘서 이사’도 처음엔 채무자였다. 조직원 중 30%가량을 이렇게 채무자 중에서 영입했다.● 고수익의 유혹나머지는 첫 조직 때 검증된 수법을 그대로 썼다. 조직원은 구인 사이트에 광고를 내서 구했다. 조직원에겐 같이 일할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강력했다. 조직원이 금세 80여 명으로 불어났다.신입 조직원은 합숙 교육을 받았다. 행동강령을 철저히 주입했다. 조직원끼리 이름 등 신상이나 사생활 묻지 않기, 업무 시엔 대포폰만 사용하기, 공용 와이파이 사용 금지…. 모든 보고와 지시는 대포폰과 텔레그램으로 이뤄졌다.조직원이 주로 고향 선후배를 새 조직원으로 끌어들이면서 지역 기반이 생겼다. 콜팀은 광주, 상담팀은 서울과 부산, 수금팀은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전남 여수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 모든 업무가 온라인과 전화, 문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 범위는 전국이었다.대출 수법도 같았다. 대부중개 플랫폼에 접속한 피해자를 노렸다. 철저히 소액만 빌려줬다. 적게는 10만 원, 많아도 150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래야 채무자가 이자가 비싸지 않다고 착각해 돈을 더 빌리기 때문이었다. 혹시 채무자가 돈을 빌리고 잠적해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상담팀 조직원은 실적을 채우려고 동시에 같은 피해자에게 경쟁적으로 연락하기도 했다. 돈을 잘 빌리고 갚는 피해자의 번호를 공유하며 다른 업체인 것처럼 접근해 ‘돌려막기’를 유도했다. 사채를 사채로 갚기 시작하면 그 빚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강 실장 조직에서 25만 원을 빌렸던 한 50대 피해자의 빚이 1억50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총책의 아내얼마를 빌려주고, 누구를 추심하고, 현금은 어디로 배달할지까지. 조직의 모든 의사 결정은 총무팀에서 이뤄졌다. 자금도 총무팀이 관리했다. 총무팀을 이끈 건 박성훈보다 7세 어린 아내였다. 조직 내부에선 ‘아 주임’으로 불렸다. 총무팀은 이 부부의 지인으로만 채웠다. 이들만 부부의 진짜 이름을 알았다.아내는 박성훈과 따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총책의) 통제하에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으면서 배정된 업무를 수행했다”고 봤다.법정에서 만난 아내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죄송하다”, “모든 게 제 잘못”이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조직원이 기억하는 모습은 달랐다. “악랄했죠. 총무팀 직원 중 아 주임만 전화로 ‘일 이따위로 할 거냐’고 막말을 자주 했거든요. 검거된 이후에야 걔가 총책 와이프라는 걸 알았죠.”● 비대면 추심의 비밀수금팀은 매일 낮 12시, 오후 2시, 4시 등 하루 세 차례 실적을 보고했다. 부진하면 윗선에서 폭언을 들었다. 심지어 맞기도 했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야 했다. 피해자보다 가족을 괴롭히면 더 빨리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악랄한 추심의 흔적은 경찰이 압수한 대포폰에 문자메시지 등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조직원은 인큐베이터에서 꼬물거리는 채무자의 갓난아기 사진을 보내며 ‘돈 안 갚으면 죽인다’고 협박했다.빚을 불리는 것도 수금팀 역할이었다. 상환 시간은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넘기면 시간당 10만~20만 원을 연체료로 붙였다. 애초에 빌려준 적 없거나 이미 다 갚은 빚을 다시 받아내기도 했다. 조직에선 이걸 ‘돌림’이라고 불렀다. 여러 번 사채를 쓴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 얼마를 빌리고 갚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단, 채무자를 직접 찾아가거나 물리력을 쓰진 않았다. 직접 만나면 흔적이 남아 붙잡힐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불법사채 피해자를 돕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장은 비대면 추심이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과 지인에게 사채를 쓴 사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계속 돈을 뜯기게 되는 겁니다. 번듯한 직장인처럼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협박에 더 취약합니다.”● 배신의 왕국박성훈은 민 실장 시절 조직원에게 감금돼 폭행당한 뒤 돈을 뺏긴 적이 있었다. 그 조직원은 박성훈의 중학교 선배였다. 300만 원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박성훈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조직원을 믿지 않았다. 조직 2인자인 서 이사에게도 본명과 나이를 숨기고 대포폰으로만 연락했다.강 실장이 총책이라는 걸 아는 소수의 조직원도 강 실장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밑에서 일한 건 돈 때문이었다. 약속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불만이 싹텄다. 2022년 가을, 서 이사 등 핵심 간부들이 강 실장을 몰아내고 조직을 장악하려는 ‘쿠데타’를 계획했다. 강 실장이 먼저 알고 쫓아내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조직원의 배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무렵 충북 진천에 있는 수금팀이 잠적했다. 강 실장 몰래 채무자 연락처를 빼돌려 따로 불법사채 조직을 꾸린 것. 강 실장은 인출팀을 언제라도 내칠 수 있는 채무자 출신으로 채웠다. 하지만 이들은 강 실장 조직처럼 치밀하지 못했다. 지인에게 현금 인출을 맡겼다가 흔적을 남겨 2022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피해자 가족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 만이었다.그렇게 강 실장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고, 경찰 수사는 윗선을 향했다.● 가짜 총책들수사망이 좁혀오자 강 실장은 ‘가짜 강 실장’을 내세웠다. 수거팀 조직원에게 거액을 주겠다며 거짓 자수를 요구했다. 그 조직원은 서울 한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가 “내가 강 실장”이라고 자수했다. 박성훈은 그에게 1000만 원 정도를 건네주고 경찰 출신 변호사도 소개해 줬다. 검찰 처분이 나오면 5000만 원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킬 약속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거짓 자수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박성훈은 지난해 3월 검거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전날 필리핀으로 도주하려다가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알고 변호사를 급히 찾았다고 한다.수사팀 소속이던 배상민 경위(현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체포 당시 박성훈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하진 않았어요. ‘집 수색은 안 하면 안 되냐’고 하더군요. 수갑 찬 모습은 가족들에게 보이기 싫었나 봅니다.”그는 검거 후에도 빠져나갈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석 부장’을 강 실장으로 몰아갔다. 석 부장은 고교 시절 박성훈을 폭행한 고향 선배였다. 그런데도 강 실장은 그를 핵심 측근으로 부렸다. 돈 앞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었다.올해 2월 14일 박성훈은 1심에서 징역 8년과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범죄단체조직과 대부업법 위반 말고도 범죄수익은닉, 범인도피교사 등까지 총 7개였다.박성훈은 항소했다. 변호인은 “죄는 인정하지만 징역 8년은 너무 과하다”며 “가족 재산을 처분해 합의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박성훈은 1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 29명에게 10억 원의 합의금을 줬다. 항소심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나머지 피해자와 모두 합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 빙산의 일각경찰은 8개월간 추적한 끝에 강 실장이 부린 조직원 80여 명뿐 아니라 대포폰, 대포통장 판매자까지 123명을 검거했다. 조직원 대다수는 20대였다. 조직폭력배는 없었다. 경찰이 압수한 대포통장만 300여 개. 그 명세로 파악한 피해자는 1000명이 넘었고, 불법 대출 규모는 1000억 원대로 추산됐다.강 실장의 수익은 그중 최소 3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그는 월세 1800만 원짜리 서울 성동구 초고급 아파트인 트리마제에 살았다.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셰, 벤츠, BMW 등 초고가 외제차 7대를 몰았다.하지만 법원은 약 37억 원만 불법 대출 규모로 인정했다. 검경에 나와 진술한 피해자가 13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팀을 이끈 이정만 경감(현 정선경찰서 통합수사팀장)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피해자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진술을 거부해 모두 조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불법사채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고 숨는 경우가 많아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대표적인 암수(暗數) 범죄다. 금융감독원 미공개 조사에서 2022년 피해자가 82만 명으로 추정됐지만 그해 접수된 피해 신고는 1만350건이었다.강 실장의 경우 대출 원금과 법정 최대 이자(연 20%)를 제외한 약 15억 원만 범죄 수익으로 판단됐다. 현행법에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는 추징 대상이지만, 원금과 법정 이자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그게 불법사채여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박성훈의 추징금은 고작 6억6635만 원이었다. 수익 배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다른 공범과 똑같이 나눴다. 결국 강 실장은 대포통장에 기록된 불법 대출액의 1%도 내놓지 않게 된 것이다.공범조차 ‘말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성훈보다 먼저 재판받은 한 조직원은 억울하다고까지 했다. “제가 죄가 없다는 건 아닌데요. 저랑 박성훈은 재판부가 달랐거든요. 저는 검사가 구형한 그대로 추징금이 나왔는데, 박성훈은 절반 가까이 깎였더라고요.” 국세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박성훈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 이정만 경감은 “금을 사 모았다는 진술과 정황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박성훈 변호인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그 정도 자산이 있다면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가족 자산을 처분하겠냐”고 되물었다.이 같은 입장을 전하자 한 조직원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조직이 가장 컸을 때 하루 수익이 1억4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조직 규모가 줄었을 때도 하루 8000만 원은 벌었습니다. 박성훈이 적어도 150억 원 이상은 챙겼을 겁니다. 금으로 월급을 준 적도 있어요.”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불법사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사채로 돈 벌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었다. 불법사채를 막지 못한 원인과, 한때 불법사채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일본의 이야기는 26일 오후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회에서 볼 수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곧 결혼식을 올릴 기대에 부풀어 있던 딸인데….” 25일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앞에서 만난 중국인 채모 씨(79)는 전날 화재로 타버린 공장(3동)을 바라보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주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딸(39)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을에 새 신부가 될 예정이었던 딸이 갑자기 떠났다는 소식에 채 씨가 급하게 인근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지만, 딸이 안치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시신이 전소한 탓에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서다. 채 씨는 장례식장 2곳을 헤매다가 이날 화재 현장을 찾았다. 채 씨는 공장 안에서 목걸이를 건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목걸이를 건 (시신이 내 딸이라면) 형태만 봐도 내 딸인지 알 수 있다. 아비가 어떻게 몰라보냐”며 경찰에 시신이나 목걸이 사진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신원 확인 못 해 이름 대신 ‘번호’로 구분 경찰 등에 따르면 25일 오후 6시까지 사망자 23명 중 신원이 확인된 건 2명뿐이다. 전날 거센 불길과 유독가스 탓에 화재가 발생한 지 약 5시간 만에야 본격적인 구조 작업이 이뤄지면서 시신의 손상이 심했던 탓이다. 이날 화성시 송산장례문화원 사무실 내부에 설치된 흰색 칠판에는 김 씨를 제외한 나머지 사망자 5명의 인적사항이 이름이 아닌 ‘고(故) 21번’, ‘故 16번’ 등 숫자로만 적혀 있었다. 이번 사고의 유일한 라오스인 희생자인 A 씨의 남편 이모 씨도 아내가 안치된 곳을 찾으려 여러 장례식장을 전전하다가 도착한 화성중앙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서 황망해했다. 그는 뇌 수술을 받고 24일 퇴원하는 길에 지인으로부터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 길로 붕대도 못 푼 채 현장에 달려왔다고 한다. 이 씨는 “‘쭈이’(아내의 애칭)가 ‘수술 잘 받으라’고 보낸 문자가 마지막이 됐다”며 “어느 병원으로 이송됐는지 몰라서 사고 현장과 여러 장례식장을 무작정 ‘뺑뺑이’로 돌고 있다”고 말했다.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의 유가족도 비탄에 잠겼다. 25일 낮 12시 송산장례문화원 지하 주차장에 김모 씨(52·아리셀 연구직) 유가족의 울음이 울렸다. 김 씨는 24일 아리셀 리튬전지 제조공장 폭발 사고로 숨진 23명 가운데 가장 먼저 사망 판정을 받았다. 김 씨 가족에게 허락된 작별 인사의 시간은 짧았다. 김 씨의 시신을 부검 장소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옮기기 전, 단 3분이었다. 김 씨를 마주한 아내와 자녀들은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김 씨를 태운 차가 주차장에서 빠져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중국서 유가족 DNA 채취해 신원 확인 경찰은 사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소지품이나 치과 진료기록 대조 등으로 신원을 밝힐 수 있는 희생자가 거의 없어, 유전자(DNA) 채취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마저도 상대적으로 훼손이 덜한 대퇴골 등에서 채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망자의 DNA를 유가족의 것과 비교해 신원을 확정할 방침이다. 다만 희생자 대다수의 유가족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신원 확인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당국 영사를 통해 현지에서 유가족의 DNA를 채취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경찰 관계자는 “숨진 외국인의 인적사항을 영사 측에 일괄적으로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신원 확인이 지연되면서 사망자가 안치된 화성 인근 장례식장 5곳 모두 장례는커녕 유족 안내조차 못 하고 있다. 송산장례문화원 관계자는 25일 오전 “사망자 다수가 외국인이라 DNA 검사를 해야 하고 신원이 확인된 한국인 사망자도 부검해야 해 대기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화성=임재혁 기자 heok@donga.com화성=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화성=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공장 화재 참사로 23명이 사망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사진)가 25일 “깊은 애도와 사죄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아리셀이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를 불법 파견 형태로 고용했다는 의혹이 협력업체에서 제기돼 향후 수사로 진위가 가려질 전망이다. 25일 오후 2시 경기 화성시 서천면 공장 앞에 화재 발생 28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박 대표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박 대표는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의 대표도 맡고 있다. 그는 화재 이틀 전에도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회사 측이 묵인했다는 의혹에 대해 “(화재가 발생은 했지만) 자체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신고하지 않은 채 작업을 재개한 것”이라고 했다. 아리셀이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를 불법 파견받은 상태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제조업 직접 생산 공정에선 파견 근로가 금지돼 있다. 아리셀 측이 “(합법적인) ‘도급 인력’이었다”며 외국인 근로자 인력을 공급한 업체로 지목한 A업체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와 만나 “현재는 B업체가 인력을 공급한다”면서 “아리셀은 파견이라고 하면 (불법이어서) 모든 책임을 자기들이 뒤집어쓴다고 생각해서 자꾸만 도급(합법 공급)으로 얘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아리셀과 맺었던 계약에 대해 “전형적인 파견 근로인데 위장한 것”이라고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아리셀에 인력을 파견한 B업체는 파견업 허가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직업소개소로 등록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B업체의 법인등기상 주소지는 이번에 화재가 난 공장이었다. 화성=서지원 기자 wish@donga.com화성=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화성=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 돈을 급한 피해자를 먹잇감으로 삼은 불법사채 조직 총책 ‘강 실장’은 스물셋에 처음 불법사채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뒤를 봐주는 폭력조직이나 전주(錢主) 없이 오직 휴대전화만으로 1000억 원대 불법대출을 굴린 강 실장의 수법은 ‘강 실장의 사냥법(上)’에서 볼 수 있다 ● 총책의 아내얼마를 빌려주고, 누구를 추심하고, 현금은 어디로 배달할지까지. 조직의 모든 의사 결정은 총무팀에서 이뤄졌다. 자금도 총무팀이 관리했다. 총무팀을 이끈 건 ‘강 실장’ 박성훈(가명·31)보다 7살 어린 아내였다. 조직 내부에선 ‘아 주임’으로 불렸다. 총무팀은 이 부부의 지인으로만 채웠다. 이들만 부부의 진짜 이름을 알았다.아내는 박성훈과 따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총책의) 통제 하에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으면서 배정된 업무를 수행했다”고 봤다.법정에서 만난 아내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죄송하다”, “모든 게 제 잘못”이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조직원이 기억하는 모습은 달랐다. “악랄했죠. 총무팀 직원 중 아 주임만 전화로 ‘일 이따위로 할 거냐’고 막말을 자주 했거든요, 검거된 이후에야 걔가 총책 와이프라는 걸 알았죠.”● 비대면 추심의 비밀수금팀은 매일 낮 12시, 오후 2시, 4시, 하루 세 차례 실적을 보고했다. 부진하면 윗선에서 폭언을 들었다. 심지어 맞기도 했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야 했다. 피해자보다 가족을 괴롭히면 더 빨리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악랄한 추심의 흔적은 경찰이 압수한 대포폰에 문자 메시지 등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조직원은 인큐베이터에서 꼬물거리는 채무자의 갓난아기 사진을 보내며 ‘돈 안 갚으면 죽인다’고 협박했다.빚을 불리는 것도 수금팀 역할이었다. 상환 시간은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넘기면 시간당 10만~20만 원을 연체료로 붙였다. 애초에 빌려준 적 없거나 이미 다 갚은 빚을 다시 받아내기도 했다. 조직에선 이걸 ‘돌림’이라고 불렀다. 여러 번 사채를 쓴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 얼마를 빌리고 갚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단, 채무자를 직접 찾아가거나 물리력을 쓰진 않았다. 직접 만나면 흔적이 남아 붙잡힐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불법사채 피해자를 돕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장은 비대면 추심이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과 지인에게 사채를 쓴 사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계속 돈을 뜯기게 되는 겁니다. 번듯한 직장인처럼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협박에 더 취약합니다.”● 배신의 왕국박성훈은 민 실장 시절 조직원에게 감금돼 폭행당한 뒤 돈을 뺏긴 적이 있었다. 그 조직원은 박성훈의 중학교 선배였다. 300만 원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박성훈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조직원을 믿지 않았다. 조직 2인자인 서 이사에게도 본명과 나이를 숨기고 대포폰으로만 연락했다.강 실장이 총책이라는 걸 아는 소수의 조직원도 강 실장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밑에서 일한 건 돈 때문이었다. 약속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불만이 싹텄다. 2022년 가을, 서 이사 등 핵심 간부들이 강 실장을 몰아내고 조직을 장악하려는 ‘쿠데타’를 계획했다. 강 실장이 먼저 알고 쫓아내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조직원의 배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무렵 충북 진천에 있는 수금팀이 잠적했다. 강 실장 몰래 채무자 연락처를 빼돌려 따로 불법사채 조직을 꾸린 것. 강 실장은 인출팀을 언제라도 내칠 수 있는 채무자 출신으로 채웠다. 하지만 이들은 강 실장 조직처럼 치밀하지 못했다. 지인에게 현금 인출을 맡겼다가 흔적을 남기면서 2022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피해자 가족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 만이었다.그렇게 강 실장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고, 경찰 수사는 윗선을 향했다.● 가짜 총책들수사망이 좁혀오자 강 실장은 ‘가짜 강 실장’을 내세웠다. 수거팀 조직원에게 거액을 주겠다며 거짓 자수를 요구했다. 그 조직원은 서울 한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가 “내가 강 실장”이라고 자수했다. 박성훈은 그에게 1000만 원 정도를 건네주고 경찰 출신 변호사도 소개해 줬다. 검찰 처분이 나오면 5000만 원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킬 약속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거짓 자수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박성훈은 지난해 3월 검거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전날 필리핀으로 도주하려다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알고 변호사를 급히 찾았다고 한다.수사팀 소속이던 배상민 경위(현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체포 당시 박성훈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하진 않았어요. ‘집 수색은 안 하면 안 되냐’고 하더군요. 수갑 찬 모습은 가족들에게 보이기 싫었나 봅니다.”그는 검거 후에도 빠져나갈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석 부장’을 강 실장으로 몰아갔다. 석 부장은 고교 시절 박성훈을 폭행했던 고향 선배였다. 그런데도 강 실장은 그를 핵심 측근으로 부렸다. 돈 앞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었다.올해 2월 14일, 박성훈은 1심에서 징역 8년과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범죄단체조직과 대부업법 위반 말고도 범죄수익은닉, 범죄도피교사 등까지 총 7개였다.박성훈은 항소했다. 변호인은 “죄는 인정하지만 징역 8년은 너무 과하다”며 “가족 재산을 처분해 합의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박성훈은 1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 29명에게 10억 원의 합의금을 줬다. 항소심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나머지 피해자와 모두 합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 빙산의 일각경찰은 8개월간 추적한 끝에 강 실장이 부린 조직원 80여 명뿐 아니라 대포폰, 대포통장 판매자까지 123명을 검거했다. 조직원 대다수는 20대였다. 조직폭력배는 없었다. 경찰이 압수한 대포통장만 300여 개. 그 명세로 파악한 피해자는 1000명이 넘었고, 불법 대출 규모는 1000억 원대로 추산됐다.강 실장의 수익은 그중 최소 3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그는 월세 1800만 원짜리 서울 성동구 초고급 아파트인 트리마제에 살았다.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쉐, 벤츠, BMW 등 초고가 외제차 7대를 몰았다.하지만 법원은 약 37억 원만 불법 대출 규모로 인정했다. 검경에 나와 진술한 피해자가 13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팀을 이끈 이정만 경감(현 정선경찰서 통합수사팀장)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피해자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진술을 거부해 모두 조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불법사채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고 숨는 경우가 많아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대표적인 암수(暗數) 범죄다. 금융감독원 미공개 조사에서 2022년 피해자가 82만 명으로 추정됐지만 그해 접수된 피해 신고는 1만350건이었다.강 실장의 경우 대출 원금과 법정 최대 이자(연 20%)를 제외한 약 15억 원만 범죄 수익으로 판단됐다. 현행법에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는 추징 대상이지만, 원금과 법정이자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그게 불법사채여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박성훈의 추징금은 고작 6억6635만 원이었다. 수익 배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다른 공범과 똑같이 나눴다. 결국 강 실장은 대포통장에 기록된 불법 대출액의 1%도 내놓지 않게 된 것이다.공범조차 ‘말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성훈보다 먼저 재판받은 한 조직원은 억울하다고까지 했다. “제가 죄가 없다는 건 아닌데요. 저랑 박성훈은 재판부가 달랐거든요. 저는 검사가 구형한 그대로 추징금이 나왔는데, 박성훈은 절반 가까이 깎였더라고요.” 국세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박성훈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 이정만 경감은 “금을 사 모았다는 진술과 정황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박성훈 변호인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그 정도 자산이 있다면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가족 자산을 처분하겠냐”고 되물었다.이 같은 입장을 전하자 한 조직원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조직이 가장 컸을 때 하루 수익이 1억4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조직 규모가 줄었을 때도 하루 8000만 원은 벌었습니다. 박성훈이 적어도 150억 원 이상은 챙겼을 겁니다. 금으로 월급을 준 적도 있어요.”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불법사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사채로 돈 벌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었다. 불법사채를 막지 못한 원인과, 한때 불법사채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일본의 이야기는 26일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회에서 볼 수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불법사채의 주 무대는 이제 거리가 아니라 휴대전화 화면이다. 대다수 조직은 더는 전단이나 명함을 뿌리지 않는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통해 전국에서 영업할 수 있어서다. 대출부터 추심까지 모든 게 비대면이라 흔적도 안 남는다. 지난해 3월 검거된 불법사채 조직 ‘강 실장’ 조직 역시 그랬다. 걸리지 않고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불법사채에 발을 들이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 실장은 검거됐지만, 지금도 플랫폼에는 수많은 강 실장이 ‘먹잇감’을 찾고 있다.“피고인,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93××××입니다.”5월 29일 춘천지방법원 102호 법정, 피고인 박성훈(가명)은 판사의 물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갈색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날은 박성훈의 항소심 첫 재판이었다.생년월일과 주소를 확인한 후 박성훈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양옆의 공범들보다 앉은키가 주먹 하나만큼 작았다. 체격 차이는 더 났다. 볼은 폭 들어갔고 피부는 푸석했다. 박성훈의 변호인은 양형 부당 등을 항소 이유로 들었다. 그는 앞서 2월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자 공범 2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박성훈 혼자 판사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박성훈은 재판에 넘겨진 지난해 4월 이후 이날까지 반성문을 230차례나 제출했다.지난해 봄까지 그는 불법사채 조직의 총책 ‘강 실장’이었다. 강 실장 조직은 2021년 2월부터 장사를 했다. 뒤를 봐주는 폭력조직이나 전주(錢主)는 없었다. 강 실장을 수사한 경찰은 “젊은데도 돈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수를 꿰뚫고 있었다”고 했다.경찰이 압수한 강 실장 조직의 대포통장에는 피해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1000억 원대 불법사채를 굴린 흔적이 나왔다. 지난해 3월 붙잡혔을 때까지 강 실장이 챙긴 것으로 의심된 범죄수익은 300억 원이다. 하지만 추징이 명령된 돈은 6억6635만 원에 그쳤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강 실장 조직이 덫을 친 과정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직 조직원과 변호인, 피해자, 수사 경찰 등 18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판결문 26건을 분석해 사실과 주장을 골라냈다. 주먹을 쓰지 않고 오직 휴대전화로 돈을 뜯어내는 ‘플랫폼 사채’의 세계. 한 가운데 강 실장 조직이 있었다. 강 실장 조직이 거액을 굴린 첫 번째 비결은 ‘대부업 등록증’이었다. ● 스물셋 총책 ‘민 실장’강 실장이 되기 전, 박성훈은 ‘민 실장’이었다. 그는 스물세 살이던 2016년 7월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몇몇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아무나 광고할 수 있었다. 불법사채 광고가 문제가 되자 모든 플랫폼이 2017년부터 대부업 등록증을 요구했다. 이후 박성훈은 자기 명의로 정식 대부업체를 차렸다. 서울의 한 건물 지하에 작은 사무실을 빌리고 구청에서 대부업 등록증을 받아왔다.그렇게 박성훈은 불법사채 조직 총책이자 정식 대부업체의 사장이 됐다. ‘소액 대출 당일 가능, 금리는 법정 이율 준수’. 거짓 광고를 올렸다. 민 실장 조직은 이 ‘미끼’를 보고 연락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았다. 3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50만 원을 받아내는 연이율 3476% 고리 영업이 표준 방식이었다. 제때 안 갚으면 피해자를 겁박했다. 그렇게 1년 동안 21억 원을 뜯어냈다.박성훈의 이중생활은 2017년 경찰에 검거되면서 막을 내렸다. 압수수색 당시 그의 집에선 일본 사채업계를 다룬 만화책 ‘사채꾼 우시지마’가 나왔다. 그에겐 대부업법 위반뿐 아니라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적용됐다. 박성훈은 정식 대부업체를 운영했을 뿐인데 일부 직원이 불법을 저지른 거라고 잡아뗐다.하지만 박성훈은 실명 석 자가 적힌 등록증으로 플랫폼에 광고를 냈을 뿐 아니라 구인 광고도 제 명의로 올렸다. 조직원과도 얼굴을 맞대고 일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판사는 “사채 조직 전면에 나서서 조직 관리와 운영을 주도했고, (대부업 등록증은) 오직 그 명의로 광고를 내서 피해자의 전화번호를 얻는 데에만 썼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2020년 11월 출소한 그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출소 석 달 만에 새로운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고 ‘강 실장’이라는 새 가면을 썼다.● ‘강 실장’의 탄생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첫 번째 실수를 바로잡았다. 자기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그늘에 숨겼다. 이번엔 대부업 등록증도 돈을 주고 사 오기로 했다. 등록증 조달은 ‘막 사장’에게 맡겼다.“저는 등록증이 뭔지도 몰랐어요. 관공서에서 발급해주는 거니, 불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취재팀과 만난 막 사장은 자신은 ‘심부름꾼’이었다고 주장했다. 막 사장은 강 실장의 부탁대로 대부업체 바지사장을 수소문했다. 강 실장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등록 절차가 상세히 정리돼 있었다. 강 실장은 등록증 한 장당 300만~500만 원을 줬다. 그렇게 강 실장이 사간 등록증이 10장 내외였다고 한다.막 사장은 인터넷주소(IP) 추적을 피하기 위한 휴대용 와이파이를 구해줬다. 범죄수익을 배달하는 역할도 했다. 조직원이 야산 등 인적 드문 곳에 현금 상자를 숨겨두면 막 사장이 이를 도심 모텔이나 오피스텔로 옮겼다.현금을 나를 땐 강 실장이 정한 규칙을 철저히 따라야 했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이동하기 △누구와도 잡담하지 않기 △퇴근할 때도 거처에서 3km 이상 떨어진 곳에 주차하기. ‘안전운전’도 수칙 중 하나였다. 조직원의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현금을 옮길 때 대포차를 사용했는데, 교통사고가 나면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막 사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강 실장 조직에서 이렇게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은 건 막사장 외엔 거의 없었다. 1심 법원은 “(막 사장은) 총책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얻었다”고 판단했다. 막 사장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제가 배달 사고는 안 냈거든요. 배달 물건이 뭔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딱 보면 현금인 거 알잖아요. 욕심도 났지만 괜히 건드렸다간 뒤탈이 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롱런’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강 실장이 그러더군요. ‘사장님은 착실히 일해주시네요’라고요.”● 그림자 총책강 실장은 조직 안에서도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민 실장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조직은 점조직으로 설계했다. 콜팀은 피해자의 연락처만 수집했다. 상담팀은 대출 계약을 맺고, 수금팀은 빚 독촉을 담당했다. 인출팀은 현금 출금을, 수거팀은 현금 배달을 맡았다. 조직원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섬처럼 각자 맡은 일만 처리했다. 이건 민 실장 때도 써먹었던 방식이다. 과거 항소심 재판부가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했던, 검증된 방식이었다.달라진 건 강 실장 스스로 조직원의 한 명으로 위장한 것이다. 강 실장 조직에서 1년 넘게 일한 조직원은 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 실장은 목소리만 알았어요. 가끔 ‘자기 위에 누가 있다’고도 했어요. ‘실장’이었으니 그 말을 믿었죠. 그가 총책이라는 건 붙잡히고야 알았습니다.”신입 조직원이 들어오면 신분증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 10명 이상의 연락처를 받아뒀다. 조직원이 다른 마음을 품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신상을 채무자나 경찰에 넘기겠다고 겁박했다. 일면식도 없는 조직원을 목소리만으로 통제했던 비결이자, 혹시 모를 ‘배신’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민 실장 재판에서 조직원들이 총책의 범행을 증언한 것을 강 실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수금팀 조직원은 2년 전 친구 소개로 조직에 합류할 땐 정식 대부업체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열흘 정도 일했을 무렵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두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총책이라는 사람이 ‘지금 관두면 네 신상 뿌려버린다’고 했어요.” 조직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강 실장은 채무자도 조직원으로 끌어들였다. 통제하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훗날 조직 서열 2위에 오른 ‘서 이사’도 처음엔 채무자였다. 조직원 중 30%가량을 이렇게 채무자 중에서 영입했다.● 고수익의 유혹나머지는 첫 조직 때 검증된 수법을 그대로 썼다. 조직원은 구인 사이트에 광고를 내서 구했다. 조직원에겐 같이 일할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강력했다. 조직원이 금세 80여 명으로 불어났다.조직원이 주로 고향 선후배를 새 조직원으로 끌어들이면서 지역 기반이 생겼다. 콜팀은 광주, 상담팀은 서울과 부산, 수금팀은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전남 여수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 모든 업무가 온라인과 전화, 문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 범위는 전국이었다.대출 수법도 같았다. 대부중개 플랫폼에 접속한 피해자를 노렸다. 철저히 소액만 빌려줬다. 적게는 10만 원, 많아도 150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래야 채무자가 이자가 비싸지 않다고 착각해 돈을 더 빌리기 때문이었다. 혹시 채무자가 돈을 빌리고 잠적해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상담팀 조직원은 실적을 채우려고 동시에 같은 피해자에게 경쟁적으로 연락하기도 했다. 돈을 잘 빌리고 갚는 피해자의 번호를 공유하며 다른 업체인 것처럼 접근해 ‘돌려막기’를 유도했다. 사채를 사채로 갚기 시작하면 그 빚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강 실장 조직에게 25만 원을 빌렸던 한 50대 피해자의 빚이 1억50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하루 수익 1억4000만 원에 이르는 거대한 불법사채 왕국을 세운 박성훈은 자신을 배신한 조직원들이 남긴 흔적 때문에 경찰에 쫓기게 된다. 가짜 총책까지 내세운 박성훈은 수사망을 피해 해외로 도주하려다 검거됐다. ‘강 실장’ 조직의 몰락과 법의 심판대에 선 박성훈의 이야기는 ‘강 실장의 사냥법(下)’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신원 확인도 아직 안 된다는데….” 24일 오후 9시경 경기 화성시 서신면 아리셀 리튬전지 제조공장 앞. 이날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희생된 외국인 근로자 유족들이 애타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사망한 중국 국적 여성 근로자의 남편도 신원 파악이 안 돼 빈소도 찾아가지 못한 채 공장 바로 옆 골목 귀퉁이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화재로 고립됐던 근로자 20여 명은 화재 발생 약 8시간 만인 오후 6시 35분경 모두 주검으로 발견됐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사망한 외국인 20명 중 중국 국적 외국인은 최소 18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시신 5구가 안치된 화성시 송산면 육일리 송산장례문화원에도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촌누나 2명과 연락이 닿지 않아 직접 장례식장을 방문했다는 중국 국적 강모 씨는 “누나들이 전화기가 꺼져 있다. 이곳으로 오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며 “작은누나는 중국에 딸이 한 명 있다”며 망연자실했다. 강 씨는 결국 시신 확인도 못 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망자 22명 중 20명은 외국인 실종자들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실종자 중 22명은 화재 발생 8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 중 한국인은 2명, 외국인은 20명(중국 18명, 라오스 1명, 국적 미상 1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여성은 16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은 2층에서 리튬전지 완제품을 검수하거나 포장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특히 납품 일정이 몰린 탓에 이날은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력사무소 등에 따르면 이 공장이 있는 전곡산업단지 일대 전지 공장들은 포장과 조립 업무 등을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상당히 많이 고용했다고 한다. 다만 화재가 발생한 공장에 이날 처음 출근한 근로자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와 실종자 중 불법체류자가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사망자 22명의 시신은 화성시내 5개 병원 등으로 분산돼 안치됐지만 신원 확인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진영 화성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일부 시신은 훼손이 심해 성별 특정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추후 유전자(DNA) 감식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발만 동동 구른 가족들 화마(火魔)가 가족의 일터를 덮쳤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공장으로 달려온 실종자 가족들은 걷잡을 수 없이 솟아오른 불길과 까맣게 그을린 외벽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듯 리튬전지에서 타오른 불이 쉽사리 꺼지지 않아서다. 이날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는 한 한국인 여성은 “(화재 소식 후) 회사에 아무리 연락해도 받지 않아 택시를 타고 급하게 달려왔다”며 울먹였다. 또 다른 여성은 “애들 아빠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해”라며 오열하다 이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실종자의 자녀로 보이는 또 다른 여성도 “우리 아빠 어딨는 거야, 아빠 어딨어”를 하염없이 외쳤다. 이번 화재에서 가장 먼저 사망 판정을 받은 김모 씨(52)의 빈소가 차려진 화성 송산장례문화원엔 김 씨의 부인이 두 눈이 벌겋게 부은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 자녀의 아버지인 김 씨는 평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며 이 공장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보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온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구르거나 손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부는 사망자들의 국적 등 신분이 확인되는 즉시 피해자의 국가에 사고 사실을 긴급 통보하고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에 주재 중인 각국 대사관이 유족 및 보호자의 입국 및 체류를 지원하면 외교부는 대사관과 긴밀한 소통을 이어갈 방침이다. 화성=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화성=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화성=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오후 2시 39분, 사무실 책상에 널린 휴대전화 중 한 대를 집어 들었다. 오전에 새로 개통한 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010-6210-××××. ‘대출○○’ 등 주요 대부중개 플랫폼 5곳에 광고를 올린 한 대부업체의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2시 41분. 2분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 번호는 010-5722-××××. 처음 보는 번호였다.“안녕하세요. 대출 문의 주셨죠? 몇 가지만 빠르게 여쭤볼게요.”상담원은 이름과 나이, 사는 지역, 직업, 재직 기간, 월급, 급여일, 기존 대출 유무, 그리고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물었다. 5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상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대출 조건을 알려줬다.“50만 원 빌리시면 1주일 뒤에 90만 원으로 갚으시면 돼요.”1주일 이자 40만 원은 연이율로 따지면 4171%였다. 법정 상한(연 20%)의 200배가 넘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취재팀이 서울 강서구로 적힌 이 업체의 주소로 가보니 3.3㎡(1평)도 안 되는 빈 사무실이 나왔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정식 대부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하기 위해, 대출 이용자로 가장해 취재했다. 62곳 중 단 3곳. 취재팀이 검증한 대부업체 가운데 법정 이율(연 20% 이내)을 지키면서 대부업 등록번호를 공개한 곳이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 여러 곳에 광고하며 활발히 영업하는 정식 대부업체만 접촉했는데도 그랬다. 36곳은 많게는 연 4000%가 넘는 고리를 요구하거나 미등록 업체라고 당당히 밝혔다. 명백한 불법이다. 나머지 23곳은 이자나 등록번호를 묻자 답을 피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불법이 의심되는 비정상적인 영업 행태다.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에 광고하는 수백 개 업체는 “전화 한 통 OK” “이율 준수” 등 문구로 급한 돈이 필요한 서민을 유혹한다. 하지만 ‘상담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며 전화하는 순간, 불법사채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이율 수천 %’가 기본 공식현행법상 대부업자는 정식 업체든 아니든 연 20%가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개인끼리 돈을 빌려줄 때도 이자가 연 20%를 초과하면 처벌된다. 하지만 취재팀이 접촉한 62곳 중 26곳은 불법 고금리를 요구했다. 상담원은 하나같이 친절했다.“웬만하면 1주일에 (원금) 50(만 원)에 (상환액) 70이나 80은 생각하셔야 돼요. FM(공식)이에요.”“60에 90이에요. 원래 60에 95인데 좋은 조건으로 해드리는 거예요.”“지금 처음 써봐서 모르는 것 같은데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대출 이용자의 신용이 낮은 약점을 노리고 엉뚱한 명목으로 돈을 더 뜯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수고비, 착수금, 거마비, 공증비…. 이름은 다양했지만 전부 이자로 계산해야 한다.“첫 대출엔 공증비라는 게 있어요. 50만 원에서 5만 원 떼고 45만 원을 드려요.”전부 광고에선 적법한 이자를 내세웠다. 취재팀이 더 비싼 이자를 요구하는 이유를 묻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못생긴 사람이 미용실에 가서 차은우처럼 머리를 해달라고 하면 일단 ‘해드리겠다’고 하잖아요? 저희도 똑같아요. 손님도 은행에서 대출 안 되고 주변에서 빌리기 민망하니까 저희를 찾으신 거잖아요. 저희도 말씀 잘 드려서 (사채) 쓰게 하는 게 일인 거죠.”● 등록번호 묻자 “원래 없어요”대부업체는 금융위원회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등록번호를 받아야 영업할 수 있다. 미등록 영업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불법 행위다. 등록번호는 사무실에 게시하고, 광고할 때도 밝혀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최고 5000만 원 물린다. 이용자가 돈을 빌리려는 곳이 등록 업체인지 확인하려면 등록번호를 알아야 한다. 금융당국은 등록번호를 알려주길 거부하면 불법사채업자로 본다.그러나 62곳 중 24곳(14곳은 불법 고금리도 요구)은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다고 했다. 대놓고 불법을 인정한 것.“저희는 따로 등록된 게 없어요. 어느 업체를 다 전화해 보셔도 등록된 데는 없어요.”취재팀이 ‘등록하지 않고 영업해도 되냐’고 묻자 질문의 의도를 의심했다.“지금 대부업 하려고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렇게 걱정이 많으시면 다른 데 알아보세요.”등록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업체도 있었다.“제가 이 바닥에서 오래 일했는데 그런 말 처음 들어보고요.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거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주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이자나 등록번호를 묻자 답을 피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은 업체는 23곳이었다.● ‘1명당 500원’ 불법 조직에 팔리는 연락처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 36곳 중 33곳은 처음 전화했을 때 받지 않거나 담당자를 연결해 주겠다고 한 뒤 다른 번호로 연락해온 경우였다. 전화가 다시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게는 1분, 통상 15분이었다. 나머지 3곳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에 전화했는데, 불법 조직으로 연결된 이유가 뭘까.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에 따르면 그 연결고리는 2가지로 요약됐다.하나는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둔 경우다. 대다수는 바지사장을 내세운다. 조직원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거나, 돈이 궁한 사람에게 200만 원 안팎을 주고 등록 명의를 사 온다. 등록증은 통장 잔액 1000만 원을 증명하고 사무실 계약서, 18시간짜리 한국대부금융협회 교육 이수증 등만 내면 2주 안에 나온다.실제로 채무자 3610명에게서 고리를 뜯어내 2020년 검거된 ‘황금대부파’가 조직원을 대부업체 사장으로 내세워 플랫폼에 광고를 올렸다. 지난해 7월 각각 징역 6개월과 3개월을 선고받은 한 ‘부부 사채꾼’은 과거 불법 대부업으로 처벌받은 전력 때문에 자기들 명의로 등록증이 나오지 않자 등록증을 사들여 영업했다.또 다른 방법은 정식 대부업체가 대출 문의 고객의 연락처만 모아서 불법사채 조직에 팔아넘기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런 연락처를 ‘DB(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다. 5월 구속 기소된 20대 불법사채업자 최모 씨도 이렇게 사들인 DB로 고객을 꼬드겼다.이런 DB는 보안 메신저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이달 14일 취재팀은 DB 구매자인 척 텔레그램에서 한 판매업자를 접촉했다. 그 업자가 제시한 가격은 대출 문의 고객 1명당 500~1000원이었다. 그는 자기 물건에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저희 DB가 재구매율이 좋은 편이에요. 한번 쓰면 계속 써요. 전날 대출 물어본 사람 정보를 오늘 팔거든요.”● “번호 장사가 나쁜가요?” 당당한 업체들취재팀에 불법 고금리를 요구한 업자 2명은 DB 구매를 인정했다.“거기(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는 등록증만 있지 대부업 하는 곳이 아니에요. 거기서 번호를 뿌려주고 그걸 제가 받은 거예요.”“다 그런 식이예요. 그 사람들(정식 대부업체)은 ‘번호 장사’ 하는 거고, 저희는 받아서 영업하는 거고요. 그게 나쁜 건가요?”취재팀은 대출을 문의한 휴대전화 번호를 불법사채 조직에 넘긴 것으로 의심되는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대표에게 연락해서 해명을 요청했다. 그중 11명은 “그럴 리 없다”거나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머지 3명은 문의해온 연락처를 다른 대부업체에 넘겼다고 했다. 22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이렇게 취재했습니다62개.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이번 취재를 위해 개통한 휴대전화 번호 수다. 취재팀이 검증 대상으로 정한 정식 대부업체는 62곳이었다. 25개 플랫폼에 등록된 업체 818곳 중에서 광고를 4개 이상 사이트에 게재한, 활발히 영업하는 업체였다. 이들 뒤에 숨어 있는 불법사채 조직을 특정하려면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 번호가 필요했다.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에 한 번만 전화해도 그 번호는 여러 경로를 거쳐 조직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경로를 역추적해 최초 유포자를 찾는 건 수사기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취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 번호는 오직 업체 1곳을 검증하는 데에만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원칙을 세웠다.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 정식 대부업체를 특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불법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돈을 빌리려는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 조건과 대부업 등록번호, 업체명을 물었다.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들은 정식 대부업체에 대출을 문의했지만 연락이 온 건 불법사채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은 이런 피해 유형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느 업체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지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려면 위장 취재가 불가피했다. 불법적인 제안을 한 곳엔 재차 연락해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해명을 요청했다.금융감독원과 법률 전문가에게 자문해 정한 기준에 따라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를 요구한 업체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다고 밝힌 업체가 불법사채 조직으로 분류됐다. 이자나 대부업 등록번호를 물었을 때 대답을 피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은 업체는 비정상적인 영업이 의심됐지만 그 자체로 위법은 아니기 때문에 불법 조직으로 분류되지 않았다.새 휴대전화는 모두 동아일보 편집국 소속 기자의 명의로 정식 개통했다. 명의자의 개별 동의를 받았고, 휴대전화 개통 절차도 준수했다. :법률 자문:노희정 경기복지재단 불법사금융피해지원팀장, 박정만 경기도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장(변호사),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 안민석 법률사무소 강물 대표변호사, 윤정원 변호사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불법사채 조직과 손잡은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 주소지를 모두 방문했다. 그 결과 17곳이나 대부업체의 흔적조차 없는 ‘유령업체’였다. 전국을 돌며 추적한 결과는 ‘합법 위장한 플랫폼 사채(下)’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앞선 ‘합법으로 위장한 플랫폼 사채 추적기(上)’에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을 문의해봤다. 그 결과, 대부중개 플랫폼 여러 곳에 광고하며 활발히 영업하는 ‘정식대부업체’ 62곳 중 정상적으로 영업한 곳은 단 3곳이었다.대부중개 플랫폼은 현재 서민이 이용하는 대부 시장의 표준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대출’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대출○○’ 등 사이트들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에 정식 등록된 대부업체만 광고할 수 있다. 그런데 금감원 조사에서 피해자 4313명 중 3455명(80.1%)이 플랫폼에서 처음 불법사채를 접했다고 했다.실제로 취재팀이 접촉한 36곳은 많게는 연 4000%가 넘는 고리를 요구하거나 미등록 업체라고 당당히 밝혔다. 명백한 불법이다. 이들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취재팀이 직접 찾아가 봤다.“저희는 영업 안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지난달 2일, 취재팀이 연이율 365%의 고리로 대출을 제안한 한 정식 대부업체 대표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그는 발뺌부터 했다. 취재팀은 앞서 대출 이용자를 가장해 이 업체에 연락하자, 한 달 안에 65만 원을 갚는 조건으로 50만 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법정 상한의 18배가 넘었다.녹취록이 있다고 하자 대표는 그제야 “저한테 전화가 오면 번호를 다른 대부업체에 넘겨줬다”고 인정했다. 번호를 넘긴 업체 이름에 대해선 “어쩌다 알게 됐다”며 말을 아꼈다. 취재팀은 불법사채와 손잡은 정식 대부업체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이 업체의 주소지로 향했다.‘광주 광산구 XXX 203호 G0016’. 금감원 ‘등록대부업체 통합조회 사이트’에서 확인한 주소에는 4층짜리 상가 건물이 있었다. 203호는 스터디카페였다. ‘소곤소곤 대화 금지’라고 적힌 유리문 안에서 수험생 2명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다. 좌석마다 번호가 붙어있었지만 G0016은 없었다.현행법상 대부업은 반드시 사무실이 있어야 영업할 수 있다. 사무실이 없는 업체가 불법을 저지르면 적발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2010년 생긴 조항이다. 하지만 취재팀이 3주간 전국을 돌며 확인한 현실은 법과 딴판이었다. ● “점검 나오면 직원인 척 해드려요”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주소지를 4월 24일~5월 14일 모두 방문했다. 그 결과 서류상 주소만 있는 ‘유령업체’가 17곳이었다. 다른 12곳은 사무실은 있었지만 비어있었고, 일부는 전용면적이 3.3㎡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7곳은 접근이 막혀 있어 사무실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유령업체 17곳은 광주뿐 아니라 경기, 인천 등 전국에 흩어져 있었다. 모두 공유오피스였다. 공간을 빌려준 공유오피스 측에 묻자 해당 대부업체는 전부 ‘비(非)상주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무실을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고 주소만 등록해뒀다는 뜻이다.일부 공유오피스는 유령 대부업체를 위한 ‘맞춤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취재팀은 인천 부평구 소재 공유오피스에 대부업체 사장으로 가장해 비상주 서비스 이용을 문의했다. 불법사채 조직과 한패로 의심되는 한 정식 대부업체가 이 공유오피스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구청 현장점검 일정만 미리 알려주시면 돼요. 빈 곳에 명패랑 노트북 비치해서 원래 사무실이 있던 것처럼 꾸며드려요. 당일엔 저희가 대부업체 직원인 척 역할 대행도 해드리니 직접 안 오셔도 됩니다.” 공유오피스 관계자는 취재팀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부업은 현장점검에 대비하는 게 최고로 중요한 것 알지 않냐”며 이렇게 말했다. 불법 영업을 위한 생태계가 완성돼있었다.● 14평 사무실에 대부업체 56개취재팀이 방문한 12곳은 공유오피스 안에 사무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너무 좁아 정상적인 업무는 불가능해 보였다. 1곳은 아예 ‘임대 문의’가 붙어 있는 빈 사무실이었다. 나머지 7곳은 접근이 막혀 있어 사무실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대구 남구 소재 공유오피스는 우편함부터 수상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보낸 우편물이 56통 쌓여있었다. 그런데 수신자로 표시된 대부업체는 주소만 같고 이름이 전부 달랐다. 건축물대장으로 확인한 이 공유오피스 전용면적은 45㎡(약 14평), 업체 1곳당 0.8㎡(약 0.2평)만 쓸 수 있는 셈이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문이 잠겨 있었고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듯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한 정식 대부업체가 이 공유오피스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 업체 대표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기분이 나쁘다”며 불쾌해했다. 그리고 이틀 뒤 자진폐업했다.경기 용인시 소재 다른 정식 대부업체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가 빌린 공간은 전용면적 0.6㎡(약 0.2평)에 불과했다. 책상과 의자만 겨우 들어갔다. 외부로 연결된 창문도 없어 사실상 창고와 다름없었다.이러고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은 건 비정상적인 공간을 대부업체 사무실로 등록하는 게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업법 시행령과 금융위원회 해석에 따르면, 정식 대부업체의 사무실은 숙박시설이 아닌 건물 내부이면서 다른 공간과 벽으로 구분되고, 출입문만 따로 있으면 된다. 면적이나 상주 여부에 관한 규정은 없다. 공중전화 부스만큼 비좁은 공간을 사무실로 등록해도 문제가 없는 셈이다.● ‘미리 대비하세요’ 엉터리 점검취재팀은 관할 지자체에 이런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지 물었다. 특히 유령업체는 불법이라, 지자체가 강제로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유령업체 17곳의 관할 지자체는 모두 유령업체가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직접 가서 보면 누구나 알 사실을 관리 당국만 모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정식 대부업체에 등록증을 내줄 때 현장실사가 필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대차 계약서와 건축물대장 등 서류만 제출하면 된다.이미 등록한 업체도 현장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부업 관리·감독 지침에는 지자체가 3년에 1회 이상 현장점검을 실시하라고 적혀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일부 지자체는 연중 현장점검을 실시하지만 전수조사도 아니다.그마저도 사전에 예고하고 나간다. 담당 공무원으로선 허탕 치지 않는 게 중요해서다. 불시에 갔는데 직원이 없으면 강제로 안에 들어갈 권한이 없고, 나중에 다시 방문해야 하므로 일이 많아진다. 아예 관련 지침에 “가급적 불시에 하되 부재중일 가능성이 크니 사전예고로 효율성을 도모한다”라며 권장하고 있다. 수도권 한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은 “혼자 100곳 넘는 대부업체를 담당하면서 다른 업무도 병행한다. 일일이 가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책임 떠넘기는 금감원-지자체-경찰물론 플랫폼에 광고 중인 모든 대부업체가 불법 조직과 연계된 건 아니다. 취재팀의 대출 문의에 법정 기준에 맞는 이자를 제시하면서 등록번호도 알려준 업체가 3곳 있었다. 이 중 한 곳의 상담원은 “50만 원은 1주일 뒤에 80만 원으로 갚으라는 업체들 있죠. 지인 연락처도 달라고 하고요. 그거 무조건 불법이에요. 절대 쓰지 마세요. 진짜 위험해요”라며 걱정해주기도 했다.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정식 대부업체들이 싸잡아 매도당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정식 대부업체 이용자는 2017년 247만 명에서 2022년 98만 명으로 줄었는데, 불법사채 이용자는 같은 기간 52만 명에서 82만 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돈을 빌리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플랫폼에 광고 중인 업체 중 누가 불법인지 구별할 수 없다. 반면 대부업체를 관리 감독하는 기관은 의지만 있다면 옥석을 가려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책임을 미뤘다.금감원 관계자는 “대다수가 지자체에 등록된 업체라서 관리 감독도 기본적으로 지자체 책임”이라고 말했다.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된 업체 36곳의 관할 지자체 담당자들은 “불법은 경찰 수사로 밝혀낼 일”이라고 했다. 반면 경찰은 불법사채 조직이 대포폰과 대포통장, 텔레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미 범행한 후에 추적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대부중개플랫폼협의회 관계자는 “대부업 등록증 도용을 막기 위해 대부업체가 광고를 하기 전에 본인 인증과 등록증 사본 확인을 거치고 피해자의 민원이 접수된 업체는 광고를 올릴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플랫폼이 정식 대부업체들과 불법사채 조직의 연결고리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플랫폼 업계에서도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한 불법사채 조직을 걸러내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대부 이용자를 가장해 접촉한 불법사채 조직원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00억 원대 불법 대출을 굴렸던 전국구 조직 ‘강 실장’ 또한 마찬가지다. 2년간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몬 강 실장 조직의 민낯은 25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3회에서 볼 수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https://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불이 난 지 4시간이 넘었는데 아직 연락 하나 받지 못했어요.”24일 오후 2시 반경 경기 화성시 서신면의 한 리튬전지 공장 정문 앞. 이날 오전 10시 31분경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0명 이상 고립됐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한 여성이 “남편이 연락이 되질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여성의 남편은 화재가 발생한 2층에서 근무를 하다 연락이 두절됐다고 했다.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불이 났다는 뉴스를 보고 회사에 아무리 연락해도 아무도 받지 않아 택시를 타고 급하게 달려왔다”며 “(남편의 생존 여부가) 왜 확인이 안 돼느냐, 도대체 왜…”라고 울먹였다.● 발만 동동 구른 가족들화마(火魔)가 가족의 일터를 덮쳤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공장으로 달려온 실종자 가족들은 겉잡을 수 없이 솟아오른 불길과 까맣게 그을린 외벽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듯 리튬전지에서 타오른 불이 쉽사리 꺼지지 않아서다.한 여성은 “애들 아빠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해”라며 오열하다 이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 앉았다. 소방관들이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버스로 안내했지만 이마저도 뿌리치며 “밖에서 남편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실종자의 자녀로 보이는 또 다른 여성도 “우리 아빠 어딨는 거야, 아빠 어딨어”를 하염없이 외치며 옆에 있던 남동생을 끌어 안고 눈물을 흘렸다.화재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직원들도 가족들과 함께 동료의 생환을 애타게 기다렸다. 1층에서 근무하다 간신히 탈출했다는 이모 씨(59)는 “생산 쪽 책임이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평소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다. 최근에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도 했는데…”며 말을 잇지 못했다.이번 화재에서 가장 먼저 사망 판정을 받은 김모 씨(52)의 빈소가 차려진 화성 송산장례문화원엔 김 씨의 부인이 두 눈이 벌겋게 부은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 자녀의 아버지인 김 씨는 평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며 이 공장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보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온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다리를 동동 구르거나 손으로 연신 얼굴을 쓸어내렸다.● 사망자 22명 중 20명은 외국인실종자들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실종자 중 22명은 화재 발생 8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 중 한국인은 2명, 외국인은 20명(중국 18명, 라오스 1명, 국적 미상 1명)으로 집계됐는데, 절반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은 2층에서 리튬전지 완제품을 검수하거나 포장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특히 납품 일정이 몰린 탓에 이날은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력사무소 등에 따르면 이 공장이 있는 전곡산업단지 일대 전지 공장들은 포장과 조립 등 단순 업무를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상당히 많이 고용했다고 한다. 다만 화재가 발생한 공장에 이날 처음 출근한 근로자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와 실종자 중 불법체류자가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사망자 22명의 시신은 화성시내 5곳 병원으로 분산돼 안치됐지만 신원 확인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진영 화성소방서 재난예방과장은 “시신 훼손이 심해 현재 성별 특정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추후 유전자(DNA) 감식 등을 통해 신원 등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정부는 사망자들의 국적 등 신분이 확인되는 즉시 피해자의 국가에 사고 사실을 긴급 통보하고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에 주재 중인 각국 대사관이 유족 및 보호자의 입국 및 체류를 지원하면 외교부는 대사관과 긴밀한 소통을 이어갈 방침이다. 피해자들이 어떤 비자를 받았느냐 등에 따라 유족을 지원할 부처도 달라진다. 계절근로(E-8) 비자를 받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숨지거나 다쳤을 때는 법무부가,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은 외국인이 피해를 봤을 때는 고용노동부가 지원 업무를 주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앞선 ‘합법으로 위장한 불법사채 추적기(上)’에서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을 문의해봤다. 그 결과, 대부중개 플랫폼 여러 곳에 광고하며 활발히 영업하는 ‘정식대부업체’ 62곳 중 정상적으로 영업한 곳은 단 3곳이었다.대부중개 플랫폼은 현재 서민이 이용하는 대부 시장의 표준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대출’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대출○○’ 등 사이트들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에 정식 등록된 대부업체만 광고할 수 있다. 그런데 금감원 조사에서 피해자 4313명 중 3455명(80.1%)이 플랫폼에서 처음 불법사채를 접했다고 했다.실제로 취재팀이 접촉한 36곳은 많게는 연 4000%가 넘는 고리를 요구하거나 미등록 업체라고 당당히 밝혔다. 명백한 불법이다. 이들은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취재팀이 직접 찾아가 봤다.“저희는 영업 안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지난달 2일, 취재팀이 연이율 365%의 고리로 대출을 제안한 한 정식 대부업체 대표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그는 발뺌부터 했다. 취재팀은 앞서 대출 이용자를 가장해 이 업체에 연락하자, 한 달 안에 65만 원을 갚는 조건으로 50만 원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법정 상한의 18배가 넘었다.녹취록이 있다고 하자 대표는 그제야 “저한테 전화가 오면 번호를 다른 대부업체에 넘겨줬다”고 인정했다. 번호를 넘긴 업체 이름에 대해선 “어쩌다 알게 됐다”며 말을 아꼈다. 취재팀은 불법사채와 손잡은 정식 대부업체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이 업체의 주소지로 향했다.‘광주 광산구 XXX 203호 G0016’. 금감원 ‘등록대부업체 통합조회 사이트’에서 확인한 주소에는 4층짜리 상가 건물이 있었다. 203호는 스터디카페였다. ‘소곤소곤 대화 금지’라고 적힌 유리문 안에서 수험생 2명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었다. 좌석마다 번호가 붙어있었지만 G0016은 없었다.현행법상 대부업은 반드시 사무실이 있어야 영업할 수 있다. 사무실이 없는 업체가 불법을 저지르면 적발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2010년 생긴 조항이다. 하지만 취재팀이 3주간 전국을 돌며 확인한 현실은 법과 딴판이었다. ● “점검 나오면 직원인 척 해드려요”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주소지를 4월 24일~5월 14일 모두 방문했다. 그 결과 서류상 주소만 있는 ‘유령업체’가 17곳이었다. 다른 11곳은 사무실은 있었지만 비어있었고, 일부는 전용면적이 3.3㎡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8곳은 접근이 막혀 있어 사무실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유령업체 17곳은 광주뿐 아니라 경기, 인천 등 전국에 흩어져 있었다. 모두 공유오피스였다. 공간을 빌려준 공유오피스 측에 묻자 해당 대부업체는 전부 ‘비(非)상주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무실을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고 주소만 등록해뒀다는 뜻이다.일부 공유오피스는 유령 대부업체를 위한 ‘맞춤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취재팀은 인천 부평구 소재 공유오피스에 대부업체 사장으로 가장해 비상주 서비스 이용을 문의했다. 불법사채 조직과 한패로 의심되는 한 정식 대부업체가 이 공유오피스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구청 현장점검 일정만 미리 알려주시면 돼요. 빈 곳에 명패랑 노트북 비치해서 원래 사무실이 있던 것처럼 꾸며드려요. 당일엔 저희가 대부업체 직원인 척 역할 대행도 해드리니 직접 안 오셔도 됩니다.” 공유오피스 관계자는 취재팀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부업은 현장점검에 대비하는 게 최고로 중요한 것 알지 않냐”며 이렇게 말했다. 불법 영업을 위한 생태계가 완성돼있었다.● 14평 사무실에 대부업체 56개취재팀이 방문한 11곳은 공유오피스 안에 사무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너무 좁아 정상적인 업무는 불가능해 보였다. 1곳은 아예 ‘임대 문의’가 붙어 있는 빈 사무실이었다.대구 남구 소재 공유오피스는 우편함부터 수상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보낸 우편물이 56통 쌓여있었다. 그런데 수신자로 표시된 대부업체는 주소만 같고 이름이 전부 달랐다. 건축물대장으로 확인한 이 공유오피스 전용면적은 45㎡(약 14평), 업체 1곳당 0.8㎡(약 0.2평)만 쓸 수 있는 셈이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문이 잠겨 있었고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듯 우편물 도착 안내서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다른 한 정식 대부업체도 이 공유오피스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 업체 대표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기분이 나쁘다”며 불쾌해했다. 그리고 이틀 뒤 자진폐업했다.경기 용인시 소재 다른 정식 대부업체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가 빌린 공간은 전용면적 0.6㎡(약 0.2평)에 불과했다. 책상과 의자만 겨우 들어갔다. 외부로 연결된 창문도 없어 사실상 창고와 다름없었다.이러고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은 건 비정상적인 공간을 대부업체 사무실로 등록하는 게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업법 시행령과 금융위원회 해석에 따르면, 정식 대부업체의 사무실은 숙박시설이 아닌 건물 내부이면서 다른 공간과 벽으로 구분되고, 출입문만 따로 있으면 된다. 면적이나 상주 여부에 관한 규정은 없다. 공중전화 부스만큼 비좁은 공간을 사무실로 등록해도 문제가 없는 셈이다.● ‘미리 대비하세요’ 엉터리 점검취재팀은 관할 지자체에 이런 실태를 파악하고 있는지 물었다. 특히 유령업체는 불법이라, 지자체가 강제로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유령업체 17곳의 관할 지자체는 모두 유령업체가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직접 가서 보면 누구나 알 사실을 관리 당국만 모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담당 공무원이 가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식 대부업체에 등록증을 내줄 때 현장실사는 필수가 아니다. 임대차 계약서와 건축물대장 등 서류만 제출하면 된다.이미 등록한 업체도 현장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대부업 관리·감독 지침에는 지자체가 3년에 1회 이상 현장점검을 실시하라고 적혀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일부 지자체는 연중 현장점검을 실시하지만 전수조사도 아니다.그마저도 사전에 예고하고 나간다. 담당 공무원으로선 허탕 치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불시에 갔는데 직원이 없으면 강제로 안에 들어갈 권한이 없고, 나중에 다시 방문해야 하므로 일이 많아진다. 아예 관련 지침에 “가급적 불시에 하되 부재중일 가능성이 크니 사전 예고로 효율성을 도모한다”라며 권장하고 있다. 수도권 한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은 “혼자 100곳 넘는 대부업체를 담당하면서 다른 업무도 병행한다. 일일이 가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책임 떠넘기는 금감원-지자체-경찰물론 플랫폼에 광고 중인 모든 대부업체가 불법 조직과 연계된 건 아니다. 취재팀의 대출 문의에 법정 기준에 맞는 이자를 제시하면서 등록번호도 알려준 업체가 3곳 있었다. 이 중 한 곳의 상담원은 “50만 원은 1주일 뒤에 80만 원으로 갚으라는 업체들 있죠. 지인 연락처도 달라고 하고요. 그거 무조건 불법이에요. 절대 쓰지 마세요. 진짜 위험해요”라며 걱정해주기도 했다.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정식 대부업체들이 싸잡아 매도당해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정식 대부업체 이용자는 2017년 247만 명에서 2022년 98만 명으로 줄었는데, 불법사채 이용자는 같은 기간 52만 명에서 82만 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돈을 빌리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플랫폼에 광고 중인 업체 중 누가 불법인지 구분할 수 없다. 반면 대부업체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은 의지만 있다면 옥석을 가려낼 수 있다.하지만 이들은 서로 책임을 미뤘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다수가 지자체에 등록된 업체라서 관리·감독도 기본적으로 지자체 책임”이라고 말했다.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된 업체 36곳의 관할 지자체 담당자들은 “불법은 경찰 수사로 밝혀낼 일”이라고 했다. 반면 경찰은 불법사채 조직이 대포폰과 대포통장, 텔레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미 범행한 후에 추적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대부중개플랫폼협의회 관계자는 “대부업 등록증 도용을 막기 위해 대부업체가 광고하기 전에 본인인증을 하는 절차를 거치고 피해자의 민원이 접수된 업체는 광고를 올릴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플랫폼이 정식 대부업체들과 불법 사채조직의 연결고리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플랫폼 업계에서도 정식 대부업체로 위장한 불법사채 조직을 걸러내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대부 이용자를 가장해 접촉한 불법사채 조직원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00억 원대 불법 대출을 굴렸던 전국구 조직 ‘강 실장’ 또한 마찬가지다. 2년간 대부중개 플랫폼에 숨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몬 강 실장 조직의 민낯은 25일 오후 4시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3회에서 볼 수 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62곳 중 단 3곳. 대부업체 중에서 정상적으로 영업한 곳이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4월 15일부터 한 달간 대출 이용자로 가장해 문의하고 주소지를 찾아간 결과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 여러 곳에 광고하며 활발히 영업하는 정식 대부업체만 접촉했는데도 그랬다. 대부업체는 법정 이율(연 20% 이내)을 지키면서 대부업 등록번호를 공개해야 하는데, 이를 지킨 업체가 극소수였다는 뜻이다.현재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은 서민이 이용하는 대부 시장의 표준이다. 플랫폼에 접속하면 정식 대부업체라고 써 붙인 광고 수백 개가 “전화 한 통 OK” “이율 준수” 등 문구로 유혹한다. 하지만 ‘상담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며 전화하는 순간, 불법사채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이 학원비 등 40만 원을 대려다 딸까지 불법사채의 늪으로 빠진 강선주(가명·48)도, 빚을 탕감해준다는 유혹에 조직에 합류했던 김민우(가명·37)도 그렇게 ‘플랫폼 사채’의 덫에 걸렸다.실제로 취재팀이 접촉한 36곳은 많게는 연 4000%가 넘는 고리를 요구하거나 미등록 업체라고 당당히 밝혔다. 명백한 불법이다. 주소에 가보니 태반이 사무실도 없는 유령업체였다. 나머지 23곳은 이자나 등록번호를 묻자 답을 피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대부중개 플랫폼은 어쩌다 불법사채 조직의 소굴이 됐을까.오후 2시 39분, 사무실 책상에 널린 휴대전화 중 한 대를 집어 들었다. 오전에 새로 개통한 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010-6210-××××. ‘대출○○’ 등 주요 대부중개 플랫폼 5곳에 광고를 올린 한 대부업체의 전화번호였다.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2시 41분. 2분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 번호는 010-5722-××××. 처음 보는 번호였다.“안녕하세요. 대출 문의 주셨죠? 몇 가지만 빠르게 여쭤볼게요.”상담원은 이름과 나이, 사는 지역, 직업, 재직기간, 월급, 급여일, 기존 대출 유무, 그리고 필요한 돈이 얼마인지 물었다. 5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상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대출 조건을 알려줬다.“50만 원 빌리시면 1주일 뒤에 90만 원으로 갚으시면 돼요.”1주일 이자 40만 원은 연이율로 따지면 4171%였다. 법정 상한(연 20%)의 200배가 넘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취재팀이 서울 강서구로 적힌 이 업체의 주소로 가보니 3.3㎡(1평)도 안 되는 빈 사무실이 나왔다. 정식 대부업체의 가면을 쓴 불법사채 조직을 추적하기 위해 위장 취재를 시작한 지 이틀째인 4월 16일이었다.● ‘연이율 수천%’가 기본 공식현행법상 대부업자는 정식 업체든 아니든 연 20%가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개인끼리 돈을 빌려줄 때도 이자가 연 20%를 초과하면 처벌된다. 하지만 취재팀이 접촉한 62곳 중 26곳은 불법 고금리를 제안했다. 상담원은 하나같이 친절했다.“웬만하면 1주일에 (원금) 50(만 원)에 (상환액) 70이나 80은 생각하셔야 돼요. FM(공식)이에요.”“60에 90이에요. 원래 60에 95인데 좋은 조건으로 해드리는 거예요.”“지금 처음 써봐서 모르는 것 같은데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대출 이용자의 신용이 낮은 약점을 노리고 엉뚱한 명목으로 돈을 더 뜯어내는 경우도 있었다. 수고비, 착수금, 거마비, 공증비…. 이름은 다양했지만 전부 이자로 계산해야 한다. “첫 대출엔 공증비라는 게 있어요. 50만 원에서 5만 원 떼고 45만 원을 드려요.”전부 광고에선 적법한 이자를 내세웠다. 취재팀이 비싼 이자를 요구하는 이유를 묻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못생긴 사람이 미용실에 가서 차은우처럼 머리를 해달라고 하면, 일단 ‘해드리겠다‘고 하잖아요? 저희도 똑같아요. 손님도 은행에서 대출 안 되고 주변에서 빌리기 민망하니까 저희를 찾으신 거잖아요. 저희도 말씀 잘 드려서 (사채) 쓰게 하는 게 일인 거죠.”● 등록번호 묻자 “원래 없어요”대부업체는 금융위원회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등록번호를 받아야 영업할 수 있다. 미등록 영업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불법 행위다. 등록번호는 사무실에 게시하고, 광고할 때도 밝혀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최고 5000만 원 물린다. 이용자가 돈을 빌리려는 곳이 등록 업체인지 확인하려면 등록번호를 알아야 한다. 금융당국은 등록번호를 알려주길 거부하면 불법 사채업자로 의심한다.그러나 62곳 중 24곳은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다”고 하거나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업체는 대놓고 불법을 인정했다.“저희는 따로 등록된 게 없어요. 어느 업체를 다 전화해보셔도 등록된 데는 없어요.”취재팀이 “등록하지 않고 영업해도 되냐”고 묻자 질문의 의도를 의심했다.“지금 대부업 하려고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렇게 걱정이 많으시면 다른 데 알아보세요.” 말을 빙빙 돌리며 등록번호를 알려주지 않다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업체도 있었다. 등록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업체도 있었다.“제가 이 바닥에서 오래 일했는데 그런 말 처음 들어보고요. 누구한테 그런 소릴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거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주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 ‘1명당 500원’ 불법조직에 팔리는 연락처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 36곳 중 33곳은 처음 전화했을 때 받지 않거나 담당자를 연결해주겠다고 한 뒤 다른 번호로 연락해왔다. 전화가 다시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짧게는 1분, 통상 15분이었다. 나머지 3곳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플랫폼에 광고 중인 정식 대부업체에 전화했는데 불법 조직으로 연결된 이유가 뭘까.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에 따르면 그 연결고리는 2가지로 요약됐다. 하나는 불법사채 조직이 정식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둔 경우다. 대다수는 바지사장을 내세운다. 조직원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거나, 돈이 궁한 사람에게 200만 원 안팎을 주고 등록 명의를 사 온다. 등록증은 통장 잔액 1000만 원을 증명하고 사무실 계약서, 18시간짜리 한국대부금융협회 교육 이수증 등만 내면 2주 안에 나온다.또 다른 방법은 정식 대부업체가 대출 문의 고객의 연락처만 모아서 불법사채 조직에 팔아넘기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런 연락처를 ‘DB(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다. 이런 DB는 보안 메신저에서 은밀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이달 14일 취재팀은 DB 구매자인 척 텔레그램에서 한 판매업자를 접촉했다. 그 업자가 제시한 가격은 대출 문의 고객 1명당 500~1000원이었다. 그는 자기 물건에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저희 DB가 재구매율이 좋은 편이에요. 한번 쓰면 계속 써요. 전날 대출 물어본 사람 정보를 오늘 팔거든요.”● “번호 장사가 나쁜가요?” 당당한 업체들취재팀에게 불법 고금리 대출을 제안한 업자 2명은 DB 구매를 인정했다.“거기(광고 업체)는 등록증만 있지 대부업하는 곳이 아니에요. 거기서 번호를 뿌려주고 그걸 제가 받은 거예요.”“다 그런 식이예요. 그 사람들(광고 업체)은 ‘번호 장사’하는 거고 저희는 받아서 영업하는 거고요. 그게 나쁜 건가요?”취재팀은 대출을 문의한 휴대전화 번호를 불법사채 조직에 넘긴 것으로 의심되는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대표에게 연락해서 해명을 요청했다. 그중 11명은 “그럴 리 없다”거나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3명은 문의해온 연락처를 다른 대부업체에 넘겼다고 시인했다. 나머지 22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이렇게 취재했습니다62개.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이번 취재를 위해 개통한 휴대전화 번호 수다. 취재팀이 검증 대상으로 정한 정식 대부업체는 62곳이었다. 25개 플랫폼에 등록된 업체 818곳 중에서 광고를 4개 이상 사이트에 게재한, 활발히 영업하는 업체였다. 이들 뒤에 숨어 있는 불법사채 조직을 특정하려면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새 번호가 필요했다.불법사채 조직과 연결된 업체에 한 번만 전화해도 그 번호는 여러 경로를 거쳐 조직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 경로를 역추적해 최초 유포자를 찾는 건 수사기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취재팀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 번호는 오직 업체 1곳을 검증하는 데에만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원칙을 세웠다.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 정식 대부업체를 특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불법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돈을 빌리려는 이용자를 가장해 대출 조건과 대부업 등록번호, 업체명을 물었다.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들은 정식 대부업체에 대출을 문의했지만 연락이 온 건 불법사채 조직이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은 이런 피해 유형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어느 업체를 통해 불법사채 조직으로 연결되는지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 연결고리를 확인하려면 위장 취재가 불가피했다. 불법적인 제안을 한 곳엔 재차 연락해 기자 신분을 밝히고 해명을 요청했다.취재팀은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를 제안하면 불법사채 조직으로 판단했다. 또 대부업 등록번호가 없거나, 밝히기 거부한 업체도 불법으로 봤다. 이런 기준은 금감원과 법률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정했다.새 휴대전화는 모두 동아일보 편집국 소속 기자의 명의로 정식 개통했다. 명의자의 개별 동의를 받았고, 휴대전화 개통 절차도 준수했다. :법률 자문:노희정 경기복지재단 불법사금융피해지원팀장, 박정만 경기도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장(변호사),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장, 안민석 법률사무소 강물 대표변호사, 윤정원 변호사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불법사채 조직와 손잡은 정식 대부업체 36곳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 주소지를 모두 방문했다. 그 결과 17곳이나 대부업체의 흔적조차 없는 ‘유령업체’였다. 전국을 돌며 추적한 결과는 ‘합법 위장한 플랫폼 사채 추적기(下)’에서 이어진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히어로콘텐츠팀▽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영상: 송유라CD김소영 기자 ksy@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