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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생들은 웃음에 굶주린 것 같아. 배꼽 빠지도록 웃기게 만들어 볼까?” 지난해 가을 유튜브 채널 ‘흔한남매’가 박현미 미래엔 출판사업본부장의 눈에 들어왔다. 크리에이터 정다운, 한으뜸 씨가 초등학생 남매의 일상을 연기하는 코믹 채널이었다. 학습 만화를 주로 만들어온 박 본부장과 박소영 만화콘텐츠개발팀장은 “어떠한 학습적 요소도 없이 순수하게 웃긴 책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결과는 핵폭탄급 성공. ‘흔한남매’(아이세움·1만1000원) 1권은 출간 11주 만에 16만 부가 팔렸다. 2권은 예약 판매만으로 8월 넷째 주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남매가 동시에 서로의 볼을 꼬집은 채 “네가 먼저 놓으라”며 신경전을 벌이거나 “싫으면 시집가라”며 말다툼하는 일화를 담았다. 4일 서울 서초구 미래엔 사무실에서 만난 박 본부장은 “계약 당시에도 ‘흔한남매’의 구독자 수는 80만여 명에 이르렀다. 기본 팬덤에 만화라는 형식과 코믹 요소가 더해져 시너지를 낸 것 같다. 특히 만화로 펴낸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자평했다. “유튜브를 다룬 책은 흔하지만 만화로 펴낸 건 ‘흔한남매’가 처음이에요. 대부분 크리에이터와 채널 내용에 초점을 맞추죠. 티격태격하는 남매 이야기는 만화가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책에서는 (유튜브처럼) 어린이를 연기하는 어른이 아닌, 진짜 초등학생 캐릭터를 내세워 몰입을 높였습니다.” ‘와이(Why)’ ‘내일은 실험왕’ ‘마법 천자문’…. 한국은 학습만화의 요람이자 천국이다. 한국에서 학습만화 장르가 싹텄고 출간도 활발하다. 요즘에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이나 ‘Go Go 카카오프렌즈’처럼 캐릭터와 결합한 형태가 흐름을 주도한다. 박 본부장은 학습만화 시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웠다. 오롯이 초등학생을 위한 만화책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아했다. 그 옛날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과 꺼벙이 시리즈 같은 책이 머릿속을 스쳤다. 때마침 만난 ‘흔한남매’가 운명처럼 느껴졌다. “‘흔한남매’는 영상이 드라마처럼 기승전결이 분명했어요. 하나의 영상을 만화 에피소드로 뽑을 수 있겠다 싶었죠. 특히 90년대 개그적인 요소가 매력적이었어요. 실제 아이가 만화책 보는 걸 말리려다가 같이 보게 됐다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영상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캐릭터를 만들고, 에피소드를 추리고, 초등학생 감정을 고려해 이야기를 다듬었다. ‘흔한남매’, 글 작가(백난도), 그림 작가(유난희)가 영상을 돌려보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박 본부장은 “몸동작이나 유행어가 지나치게 많은 영상은 만화로 옮기면 밋밋했다. 만화에 맞는 연출에 특히 공을 들였다”며 “조석 작가의 웹툰이 좋은 본보기가 됐다”고 했다. 출간 직전까지 유튜브 채널의 팬들이 마음에 걸렸다. 책이 유튜브에 못 미쳐 혹여 동심에 실망을 안길까 걱정됐다. 다행히 유튜브와 별개로 책에 대한 팬덤이 싹트며 순항하고 있다. 책을 통해 ‘흔한남매’를 구독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뭣보다 ‘흔한남매’ 당사자들이 책을 좋아해주셔서 기뻐요. 내년에 세 권을 더 펴내고 글 중심의 책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채널과 책이 서로 밀고 끌어주는 모델을 꿈꿉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요즘 초등학생들은 웃음에 굶주린 것 같아. 배꼽 빠지도록 웃기게 만들어 볼까?” 지난해 가을 유튜브 채널 ‘흔한남매’가 박현미 미래엔 출판사업본부장의 눈에 들어왔다. 크리에이터 정다운·한으뜸 씨가 초등학생 남매의 일상을 연기하는 코믹 채널이었다. 학습 만화를 주로 만들어온 박 본부장과 박소영 만화콘텐츠개발팀장은 “어떠한 학습적 요소도 없이 순수하게 웃긴 책을 만들자”며 의기투합했다. 결과는 핵폭탄 급 성공. ‘흔한남매’(아이세움·1만1000원) 1권은 출간 11주 만에 16만 부가 팔렸다. 2권은 예약 판매만으로 8월 넷째 주 예스24, 인터파크, 영풍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남매가 동시에 서로의 볼을 꼬집은 채 “네가 먼저 놓으라”며 신경전을 벌이거나 “싫으면 시집가라”며 말다툼하는 일화를 담았다. 4일 서울 강남구 미래엔 사무실에서 만난 박 본부장은 “계약 당시에도 흔한남매의 구독자수는 80만 여 명에 이르렀다. 기본 팬덤에 만화라는 형식과 코믹 요소가 더해져 시너지를 낸 것 같다. 특히 만화로 펴낸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자평했다. “유튜브를 다룬 책은 흔하지만 만화로 펴낸 건 ‘흔한남매’가 처음이에요. 대부분 크리에이터와 채널 내용에 초점을 맞추죠. 티격태격하는 남매 이야기는 만화가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책에서는 (유튜브처럼) 어린이를 연기하는 어른이 아닌, 진짜 초등학생 캐릭터를 내세워 몰입을 높였습니다.” ‘와이(Why)’, ‘내일은 실험왕’, ‘마법 천자문’…. 한국은 학습만화의 요람이자 천국이다. 한국에서 학습만화 장르가 싹텄고 출간도 활발하다. 요즘에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이나 ‘Go Go 카카오프렌즈’처럼 캐릭터와 결합한 형태가 흐름을 주도한다. 박 본부장은 학습만화 시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웠다. 오롯이 초등학생을 위한 만화책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아했다. 그 옛날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과 꺼벙이 시리즈 같은 책이 머릿속을 스쳤다. 때마침 만난 ‘흔한남매’가 운명처럼 느껴졌다. “‘흔한남매’는 영상이 드라마처럼 기승전결이 분명했어요. 하나의 영상을 만화 에피소드로 뽑을 수 있겠다 싶었죠. 특히 90년대 개그적인 요소가 매력적이었어요. 실제 아이가 만화책 보는 걸 말리려다가 같이 보게 됐다는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영상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캐릭터를 만들고, 에피소드를 추리고, 초등학생 감정을 고려해 이야기를 다듬었다. 흔한남매, 글 작가(백난도), 그림 작가(유난희)가 영상을 돌려보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박 본부장은 “몸동작이나 유행어가 지나치게 많은 영상은 만화로 옮기면 밋밋했다. 만화에 맞는 연출에 특히 공을 들였다”며 “조석 작가의 웹툰이 좋은 본보기가 됐다”고 했다. 출간 직전까지 유튜브 채널의 팬들이 마음에 걸렸다. 책이 유튜브에 못 미쳐 혹여 동심에 실망을 안길까 걱정됐다. 다행히 유튜브와 별개로 책에 대한 팬덤이 싹트며 순항하고 있다. 책을 통해 ‘흔한남매’를 구독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뭣보다 흔한남매 당사자들이 책을 좋아해주셔서 기뻐요. 내년에 세 권을 더 펴내고 글 중심의 책도 출간할 예정입니다. 채널과 책이 서로 밀고 끌어주는 모델을 꿈꿉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5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3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4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4명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3, 4명씩 참여해 7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 ▼ 이론-경험 겸비한 대표적 교육철학자 “교육은 백년대계 의미 명심해야할 때” ▼[교육]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일반적으로 교육 부문은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의 다음에 위치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촌상은 수여하는 상 가운데 교육 부문을 가장 앞세웁니다. 망국의 시기, 교육으로 나라를 구하려 했던 인촌 선생의 뜻을 이어받은 상을 받게 돼 영광입니다.”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82)는 4일 인촌상 수상 소감으로 “교육계의 일원인 저는 누구보다도 이 상을 무겁게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수상 사실을 통보받은 뒤 내가 인촌상을 감당할 정도로 교육 분야에 기여한 것이 있었는지 되돌아봤다”며 “앞으로도 인촌의 정신을 기리고, 교육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명예교수는 한국 교육학계에서도 대표적인 교육철학자로 평가받는다. 30년 동안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를 지내며 교육철학과 교육정의론 등을 연구했다. 그가 가르친 제자들은 전국 각 대학에 포진해 한국 교육계의 핵심 학자로 성장했다. 더불어 이 명예교수는 이론과 현장을 모두 아우른 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본인 스스로 “초등학교 외에 거의 모든 교육현장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교수를 지내며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교육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3년간 한국교육개발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2003년 서울대 교수직을 퇴임하고 강원 횡성군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전직 교육부 장관이 일선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건 처음이어서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여기에는 이 명예교수의 ‘철학’이 숨어 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당시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자립형사립고 도입을 주창했고 장관이 돼서 실제로 도입 방안을 연구했다”며 “과학자가 실험실에 가듯 교육학자로서 내가 만든 정책이 반영되는 현장을 찾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에는 숙명여대를 운영하는 숙명학원 이사장을 맡아 재단 경영에 참여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전문대인 김포대 총장을 맡기도 했다. 자립형사립고의 주창자였던 이 명예교수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자율형사립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남겼다. 그는 “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정책은 이를 역행하고 있다”며 “획일화된 교육 방식으로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다양한 분야의 영재를 발굴하고 양성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립학교 정책에 대해서도 “사학마다 각자의 건학 이념이 있는데 이를 지나치게 평준화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교육에 정치 이념이 개입돼 정권에 따라 주요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교육을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불렀던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교육계에 당부했다.● 공적서울대 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미국 웨인주립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30년 동안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교육개발원장(1995∼1998년), 교육부 장관(2000∼2001년), 민족사관고 교장(2003∼2008년), 숙명학원 이사장(2013∼2017년) 등을 역임했다. 1980년대 이후 근대 학문으로서 한국의 교육철학을 이끈 주도적 학자이면서 동시에 장관과 고교 교장, 학교법인 이사장 등의 직책을 맡아 자신의 교육철학을 현장에 접목시켰다. 자립형사립고 도입을 직접 발의해 현실화하기도 했다. ▼ 역사-폭력 탐구… 한국문학의 지평 넓혀 “박경리-박완서 선생님과 같은 상 기뻐” ▼[언론·문화]한강 소설가“박완서 박경리 선생님 같은 훌륭한 작가들이 수상한 상을 받게 돼 기쁩니다.”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49)은 최근 인터뷰에서 “인촌상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자세히 찾아봤다”며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그는 1993년 11월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정교한 시선으로 세상을 탐구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와 폭력성을 깊이 있게 사유한 작품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2016년 장편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한국 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한국인으로서 처음 이 상을 받은 그는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밀려드는 업무를 차분히 잘 헤쳐 나가자는 생각뿐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그 뒤로 (집필 활동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설가 한승원(80)의 딸이다. 어린 시절 지천에 널린 아버지의 책과 더불어 자랐다. “책 속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으니 현실의 세계가 절대적이지 않았고, 그렇게 두 세계에서 살 수 있었던 점이 유년기의 나를 도와줬다”고 한다. 소설을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3학년 무렵. 대학 시절 습작기를 거쳐 출판사에 취직한 뒤 3∼4시간씩만 자면서 글을 썼다. 뜨거움이나 열정보다 끈기로 소설을 써왔다고 자평했다. 그는 현재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2015년), ‘작별’(2018년)에 이은 ‘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을 집필 중이다. “‘여수의 사랑’에 실린 단편을 쓰던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을 쓰던 2015년 초까지 비슷한 밀도의 끈기로 작업해 온 것 같습니다. 최근 4년여 동안은 개인적 위기를 지나고 있어서 더 강한 끈기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세간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은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수년째 붙들고 있는 이 소설은,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돌파해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올 6월 서울국제도서전을 끝으로 그는 칩거해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소설 생각뿐이다. 그는 “지금까지 쓰고 싶은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왔다. 그 결과는 통제 밖의 영역”이라며 “오직 쓰는 과정에 있는 사람만이 작가이며, 다행히 지금 쓰고 있으니 나는 아직 작가”라고 말했다. 이따금 그는 소설 밖을 꿈꾼다. “전에 만들고 불렀던 노래들을 담담하게 다시 녹음해보고 싶습니다. 그 사이 새로 만든 노래들도 넣고요. 음반 제목은 오래전 보았던 연극의 대사인 ‘안아주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짧잖아요’로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백일몽일 뿐이지만 언젠가 그런 여유가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공적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검은 사슴’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와 소설집 ‘노랑무늬 영원’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냈다.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채식주의자’의 영미판이 해외 언론에서 호평을 받고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 ‘몽골제국의 역사’ 연구서 세계적 성과 “중앙유라시아史로 韓 문화채널 확장” ▼[인문·사회]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인촌상을 받을 만큼 학문적 성과를 냈는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더욱 근실하게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64)는 수상 소식을 듣고 숙연해졌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국내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의 선구자이자 몽골제국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구 성과를 쏟아낸 석학이다. 몽골제국의 제도와 정책을 분석해 제국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유지된 단일한 실체로 입증했다. 1980년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국내에서 불모지와 다름없던 이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다. 중앙유라시아에서 명멸한 여러 민족의 역사를 그들의 입장에서 조명하기 위해 중국인의 시각이 반영된 한문 사료가 아니라 원 사료를 분석했다. 언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1980년대 중앙유라시아는 거의 공산권이어서서 현지 방문도 불가능했다. “15∼18세기 위구르 말은 미국에도 가르치는 분이 없어 독학했지요. 중세 텍스트는 현대어 사전에는 없는 어휘가 있어 여러 사전을 찾아보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그가 해독할 수 있는 언어는 몽골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튀르크어, 위구르어 등 10개 정도 된다. 세계에 흩어진 사료를 수집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요즘은 웬만한 사료의 사본을 온라인으로 구할 수 있지만 2000년대 초만 해도 현지에 가서 사본을 만들어야 했다. 김 교수의 서울대 연구실에는 유라시아 각지의 박물관에서 복사하거나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해 인쇄한 자료들이 빼곡하다. 한때 중앙유라시아를 누비며 찬란한 문화를 만들었지만 현대에는 위축됐거나 다른 나라의 구성원으로 살았던 유목 민족의 역사가 객관적인 시선에서 되살아났다. 19세기 중반 중국 서북부 신장(新彊)지역 무슬림의 혁명운동을 다룬 연구서 ‘근대 중앙아시아의 혁명과 좌절’(사계절)은 미국 스탠퍼드대가 ‘Holy War in China’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몽골제국과 고려’(서울대출판부), 몽골제국의 역사를 페르시아어로 기록한 ‘집사(集史)’의 역주서, 교양서 ‘황하에서 천산까지’(사계절),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돌베개) 등 여러 저서를 냈다. 2017년부터는 국제역사학회 한국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정년을 맞는 그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세계 학자 약 40명의 글을 모아 출판하는 ‘몽골제국사’의 책임편집을 계속하는 한편 몽골제국의 군사, 민정, 교통, 통신 등 ‘제국적 제도’를 몽골인의 관점에서 총괄하는 책을 쓸 계획이다. “우리의 문화적 관심과 지식이 지역적으로 편향돼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중국 일변도였고, 현대에는 서구 일변도지요. 신라부터 조선 초까지 우리의 문화 채널은 초원과 유라시아 멀리까지 연결돼 있었어요. 우리 문화의 또 다른 근원이자 역동성의 원천이죠. 중앙유라시아사 연구를 통해 우리의 문화적 채널도 다양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적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에 40년 가까이 천착하며 이 분야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유목 소수민족의 역사를 그들의 주체적인 시각으로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6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부임해 제자들을 양성했다. 1993년 중앙아시아연구회를 창설했고 2002년 중앙아시아학회장을 지냈다. 대중성을 갖춘 여러 저술도 이 분야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지적 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 데이터로 미래 예측하는 통계학 석학 “길을 잃은 시대,불확실성 줄여나갈것” ▼[과학·기술]박병욱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큰 상을 받아서 놀랍고 감사합니다. 통계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박병욱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58)는 한국 통계학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전 세계 통계학자 및 통계 전문가들의 국제기구인 국제통계기구(ISI)의 부회장에 8월 취임했다. 지난해에는 세계 수학자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통계학자로는 이례적으로 초청강연을 했다. 학문적 성과를 수학자들도 인정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통계학자로서 한국사회에서 큰 상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데이터의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데이터를 다루는 통계학이 설 자리가 그렇게 넓지만은 않다는 생각에서다. “통계에 대한 조예 없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루는 사례를 많이 봅니다. 이에 따라 왜곡된 사실이나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도 하지요. 전문가인 통계학자에게 검토만 받아도 되는 일인데, 잘 안 됩니다.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는 일은 상식이 됐지만, 통계 분석이 필요할 때 통계학자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의사를 찾지 않는 사람은 자신만 손해지만, 통계학자를 찾지 않는 사회는 그 피해가 사회 전체에 미친다. 그 폐해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생각이다. 데이터의 양이 방대해졌고 복잡해진 반면 옥석을 가리기는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잘못된 분석이나 여론조사에 의한 가짜뉴스도 횡행한다. 포털 뉴스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잘못된 정보에 따른 편 가르기 싸움으로 늘 시끄럽다. 그는 “길을 잃은 시대에 통계와 데이터 분석으로 진실을 찾아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데이터에서 법칙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이론을 연구한다. 특히 데이터가 추출된 곳(모집단)의 특성과 관계없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비모수 추론’이 그의 전문 분야다. 박 교수는 2017년 대선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기도 했다. 전국 지역구별로 평균 나이와 교육 정도, 주거지 시세, 보험료 액수, 직전 총선에서의 정치 성향별 후보자 득표수 등을 바탕으로 대선에서 지역구별 득표를 예측하는 모형을 개발했다. 모형 예측치는 실제 득표 결과를 비교하니 정확히 들어맞았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가 많거나 돈이 많으면 보수화되고, 교육수준이 높으면 진보 성향을 띤다고 생각합니다. 통계로 검증해 보면 조금 다릅니다. 나이는 정치 성향과 연관성이 있는데, 경제력은 영향이 없더군요. 교육은 오락가락합니다.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을 때까지는 보수 성향을 띠다가도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진보 성향으로 돌아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미래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통계학이 유용한 것은, 바로 그 불확실성을 계량화하고 조금이라도 줄여 나가려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공적 고통스러운 이론 증명 과정을 마치고 그 내용을 논문으로 쓸 때 어떤 취미보다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천생 학자다. 서울대 계산통계학 학사,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를 거쳐 1988년부터 서울대 통계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통계학 분야 양대 학술지로 꼽히는 ‘미국통계학협회저널(JASA)’과 ‘통계학 연보(Annals of Statistics)’ 등에 발표한 논문 30여 편을 포함해 총 1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이설 기자 snow@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 제33회 인촌상 심사위원(가나다순)▽교육 △위원장 김도연 서울대 명예교수·전 포스텍 총장 △위원 김경성 서울교대 총장, 김성훈 동국대 교수, 백순근 서울대 교수 ▽언론·문화 △위원장 윤영철 연세대 미래캠퍼스 부총장 △위원 김은미 서울대 교수, 왕은철 전북대 교수, 최맹호 전 동아일보 부사장 ▽인문·사회 △위원장 박찬욱 전 서울대 총장직무대리 △위원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이재열 서울대 교수 ▽과학·기술 △위원장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위원 김성근 서울대 교수, 김승환 포스텍 교수, 전호환 부산대 총장}

밀레니엄을 목전에 둔 1999년 한 대학 캠퍼스. ‘힙’과 ‘쿨’의 대명사 노마 선배와 어떤 상황에서도 심드렁한 국화가 체스판을 두고 마주한다. ‘나’가 선망하는 노마 선배에게 국화는 직구를 툭툭 던진다. 그런 국화에게 선배는 이상하게도 영 힘을 못 쓴다.(‘체스의 모든 것’) 야심 차게 1인 출판사를 차린 나. 빛과 소금 같은 인문·교양 지식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파산. ‘곰의 자서전’ 같은 재고 서적은 결국 잘나가는 닭갈비집 사장인 장인의 냉동 창고에 잠자는 신세가 된다. 나는 장인과 아내의 은근한 멸시 속에 열패감에 빠진다.(‘오직 한 사람의 차지’) 때론 굴욕의 속편이 더 큰 괴로움을 안긴다. 왜 잠자코 참았을까. 반격하지 못했나. 굴욕의 순간이 초 단위로 무한 증식해 구정물 같은 수치와 모욕을 던진다. 소설가 김금희가 2015년 이후 써내려간 작품 9편을 묶어 세 번째 단편집을 냈다. 올해로 등단 10년 차를 맞은 그는 최근 인터넷 서점 예스24 독자들이 뽑은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에 뽑혔다. 책에는 저마다의 과거에 붙들린 인물이 등장한다. 책에 대해 작가는 “전작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했다. 계속 플롯을 짜는 방식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인물들이 지나온 상처에 집중하려 했다”고 했다 고유한 상처들은 무시로 튀어나와 일상을 지배한다. 해외 농장에서 일할 때였다. 노마 선배는 저지르지 않은 잘못을 고백하고선 모욕감을 느낀다. 이후 “그런 기억에서 자신을 구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벌주고 싶었고 그렇게 벌주고 싶으니까 종종 스스로 학대한다”. 훗날 재회한 노마 선배와 국화는 실패자의 감각을 공유하면서, 한때의 열띤 체스 토론을 회상한다. ‘문상’의 송은 조모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린 자신의 뺨을 몇 번이고 갈긴 아버지로 인해 “어떤 대상과 가까워질 때마다 드는 복잡한 결의 불편함”을 지니고 산다. 과거는 “환각처럼 짜고 물큰한 오래오래 달여진 국물음식의 냄새”처럼 떨치기 힘들다. 송은 문상길에서 희극배우와 대화를 나누면서 상처와 화해한다. ‘새 보러 간다’에서는 지위 차를 들여다본다. 원로 예술가 현석경의 작품을 비평하는 윤. 꿈에 그리던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의 무수한 특징과 암시, 자기만 알아낼 수 있었던 반복과 패턴, 의미 등을 열렬히 설명하지만, 현석경은 그저 침묵만으로 윤을 압도한다. “참으로 냉정한 오리지널리티였다.” 사랑으로 인한 동요를 그린 작품도 아름답다. ‘레이디’는 투명한 만큼 스러지기 쉬운 여중생들의 사랑을 그렸다. ‘누구 친구의 류’는 십수 년 만에 재회했다 다시 헤어지는 첫사랑 이야기다. 상처에 휘청거리면서도 작품 속 인물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동면을 지속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던 시절은 다 잊은 봄날의 곰처럼, 아니면 우리가 완전히 차지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상실뿐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아버린 세상의 흔한 아이들처럼.”(‘오직…’)이설 기자 snow@donga.com}

제7회 수림문학상 당선작으로 최영(43·사진) 씨의 장편소설 ‘로메리고 주식회사’를 선정했다고 연합뉴스와 수림문화재단이 29일 밝혔다. 로메리고 주식회사는 사법시험에 실패한 뒤 손해사정 법인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겪는 기이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소설가 윤후명 성석제 강영숙, 문학평론가 정홍수 신수정이 참여한 심사위원단은 “우리 자신조차 미처 모르고 있던 우리의 얼굴을 발굴해낸 이 작가의 예리한 안목에 갈채를 보낸다”고 했다. 시상식은 10월 열릴 예정이며 당선작은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상금은 5000만 원. 이설 기자 snow@donga.com}

신석정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제6회 석정시문학상’(이사장 윤석정)의 수상자로 신달자 시인(사진·76)이 선정됐다. 또 미발표 시를 대상으로 공모하는 ‘석정촛불시문학상’은 이춘호 시인의 ‘도마’가 당선됐다. 신달자 시인은 초기 시집 ‘봉헌문자’, ‘모순의 방’ 등으로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상식은 31일 오후 3시 전북 부안읍 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

소설가 황순원(1915~2000)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8회 소나기마을문학상’의 황순원작가상에 소설가 윤대녕 씨(57)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라고 황순원기념사업회는 밝혔다. 황순원시인상과 황순원신진상은 각각 시인 김기택 씨(62)와 조수경 씨(39)가 수상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시리즈는 출판인들의 꿈입니다. 당장 많이 팔리지 않아도 오래 독자 곁에 머무르며 독서 패턴을 바꾸고 그 숨결이 계속 이어지는….”(출판인 A) 1900년대 초반까지 책은 영국에서 두꺼운 지식 뭉치에 가까웠다. 하지만 펭귄출판사는 1935년 가볍고 저렴한 문고판 시리즈를 만들어 슈퍼마켓과 기차역에서 팔았다. 책의 물성이 변하자 독서 풍경도 덩달아 바뀌었다. 하지만 출판계에서 성공한 시리즈는 손에 꼽힌다. 우선 성패의 가늠자인 1권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바로 날개가 꺾인다. 권마다 성적이 들쭉날쭉해도 제동이 걸린다. 결국 펴낼수록 손해를 보게 되고, 야심 차게 시작한 시리즈는 용두사미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시리즈는 계속 이어진다. 출판사의 종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대표 시그니처 상품을 만들려면 시리즈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간파해 독자의 마음을 훔친 시리즈의 성공 포인트를 각 출판사 책임자에게 들어봤다. ○ 시리즈 ‘자기만의 방’=주제와 형식에서 타깃으로 개념 비틀기 어떻게 하면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생)가 책과 친해질까. 13개월간 연구한 끝에 가상의 페르소나를 만들었다. 고양이와 원룸에 사는 7년 차 직장인 김시영 씨(32)다. 시영 씨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지만 여혐에 관심이 있고, 일을 싫어하진 않지만 회사의 부속품 같은 기분을 종종 느낀다. ‘자기만의 방’은 시영 씨의 휴식, 사유,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우른다. 소소한 집수리에 대한 ‘안 부르고 혼자 고침’, ‘채식은 어렵지만, 채소 습관’, ‘수채화 피크닉’ 등이다. 편집자가 손 편지를 쓰고 직접 포장한 수채물감을 선물하며 소통을 시도한다. 각 방에 입주한 이들이 모여 마을(취향공동체)을 이루는 게 꿈이다.(김민기 휴머니스트 지식실용부문 주간)○ 시리즈 ‘쏜살문고’=전통+시대정신+큐레이션 창립 50주년을 맞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시리즈를 고민했다. 민음사다움은 ‘고전’이었다. 새로움을 위해선 외피를 바꿨다. 주머니와 손가방에 쑥 들어갈 만큼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교체했다. 고전이 새 옷을 입어 ‘쏜살문고’가 탄생했는데, 가장 상징적인 책은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등이다. 고전 중의 고전 한 편만 단행본화해 ‘민음쏜살×동네서점 에디션’으로도 선보였다. 쏜살문고의 또 다른 핵심은 큐레이션이다. 수백 권에 이르는 기존 문학전집 시리즈와 달리 소설과 비소설을 섞은 총서를 추구한다.”(조아란 민음사 콘텐츠 기획팀 팀장)○ 시리즈 ‘아무튼’=양말·문구·로드무비의 모든 것 생각만 해도 좋은 것에 대한 책을 펴내 보자고 1인 출판사인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대표 셋이 의기투합했다. 취향을 다룬 기존 시리즈는 대체로 와인·LP 등에 주목했다. ‘아무튼’은 양말, 문구, 술, 피트니스 등 소소함을 책 한 권에 담아낸다. 좋아하는 것에 애정을 쏟고 기쁨을 찾는 태도 자체도 요즘 시대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스타일의 느슨한 통일감도 시리즈의 특징이다. 독자들이 ‘아무튼’ 이야기를 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광경을 보면 뿌듯하다.(이정규 코난북스 대표)○ 시리즈 ‘클래식 클라우드’=고전의 현재를 찾아서 ‘고전의 현재’를 거듭 고민한 끝에 ‘사람’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거장에 대한 관심이 원 텍스트로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거장은 공간에 영향을 받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전문가 100인이 거장이 머물던 공간을 여행하는 프로젝트가 지난해 9월 닻을 올렸다. 특히 공들인 부분은 저자 선정이다. 인지도와 파급력이 강연, 팟캐스트, 여행 상품 제휴 등으로 파생되며 다시 시리즈의 매력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시리즈가 자리 잡으면서 관심 분야가 아니라도 시리즈를 사보는 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원미선 아르테 문학사업본부장)이설 기자 snow@donga.com}

“시리즈는 출판인들의 꿈입니다. 당장 많이 팔리지 않아도 오래 독자 곁에 머무르며 독서 패턴을 바꾸고 그 숨결이 계속 이어지는….”(출판인 A) 1900년대 초반까지 책은 영국에서 두꺼운 지식 뭉치에 가까웠다. 하지만 펭귄출판사는 1935년 가볍고 저렴한 문고판 시리즈를 만들어 슈퍼마켓과 기차역에서 팔았다. 책의 물성이 변하자 독서 풍경도 덩달아 바뀌었다. 하지만 출판계에서 성공한 시리즈는 손에 꼽힌다. 우선 성패의 가늠자인 1권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바로 날개가 꺾인다. 권마다 성적이 들쭉날쭉해도 제동이 걸린다. 결국 펴낼수록 손해를 보게 되고, 야심 차게 시작한 시리즈는 용두사미 꼴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시리즈는 계속 이어진다. 출판사의 종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대표 시그니처 상품을 만들려면 시리즈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간파해 독자의 마음을 훔친 시리즈의 성공 포인트를 각 출판사 책임자에게 들어봤다. ● 시리즈 ‘자기만의 방’=주제와 형식에서 타깃으로 개념 비틀기어떻게 하면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1982~2000년 생)가 책과 친해질까? 13개월 간 연구 끝에 가상의 페르소나를 만들었다. 고양이와 원룸에 사는 7년차 직장인 김시영 씨(32)다. 시영 씨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지만 여혐에 관심이 있고, 일을 싫어하진 않지만 회사의 부속품 같은 기분을 종종 느낀다. ‘자기만의 방’은 시영 씨의 휴식, 사유,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아우른다. 소소한 집수리에 대한 ‘안 부르고 혼자 고침’, ‘채식은 어렵지만, 채소 습관’, ‘수채화 피크닉’ 등이다. 편집자가 손 편지를 쓰고 직접 포장한 수채물감을 선물하며 소통을 시도한다. 각 방에 입주한 이들이 모여 마을(취향공동체)을 이루는 게 꿈이다.(김민기 휴머니스트 지식실용부문 주간)● 시리즈 ‘쏜살문고’=전통+시대정신+큐레이션 창립 50주년을 맞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시리즈를 고민했다. 민음사다움은 ‘고전’이었다. 새로움을 위해선 외피를 바꿨다. 주머니와 손가방에 쑥 들어갈 만큼 크기를 줄이고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바꿨다. 고전이 새 옷을 입어 ‘쏜살문고’가 탄생했는데, 가장 상징적인 책은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등이다. 고전 중의 고전 한 편만 단행본화해 ‘민음쏜살X동네서점 에디션’으로도 선보였다. 쏜살문고의 또 다른 핵심은 큐레이션이다. 수백 권에 이르는 기존 문학전집 시리즈와 달리 소설과 비소설을 섞은 총서를 추구한다.“(조아란 민음사 콘텐츠 기획팀 팀장)● 시리즈 ‘아무튼’=양말·문구·로드무비의 모든 것 생각만 해도 좋은 것에 대한 책을 펴내보자고 1인출판사인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대표 셋이 의기투합했다. 취향을 다룬 기존 시리즈는 대체로 와인·LP 등에 주목했다. ‘아무튼’은 양말, 문구, 술, 피트니스 등 소소함을 책 한권에 담아낸다. 좋아하는 것에 애정을 쏟고 기쁨을 찾는 태도 자체도 요즘 시대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스타일의 느슨한 통일감도 시리즈의 특징이다. 독자들이 ‘아무튼’ 이야기를 하면서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광경을 보면 뿌듯하다.(이정규 코난북스 대표)● 시리즈 ‘클래식 클라우드’=고전의 현재를 찾아서 ‘고전의 현재’를 거듭 고민한 끝에 ‘사람’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거장에 대한 관심이 원 텍스트로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거장은 공간에 영향을 받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전문가 100인이 거장이 머물던 공간을 여행하는 프로젝트가 지난해 9월 닻을 올렸다. 특히 공들인 부분은 저자 선정이다. 인지도와 파급력이 강연, 팟캐스트, 여행 상품 제휴 등으로 파생되며 다시 시리즈의 매력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시리즈가 자리 잡으면서 관심 분야가 아니라도 시리즈를 사보는 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원미선 아르테 문학사업본부장) 이설 기자 snow@donga.com}

서른일곱의 전도유망한 하버드대 뇌과학 연구원이었던 질 볼트 테일러 박사(60)는 1996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예기치 못한 불운 앞에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은 “멋지다”였다. 끊임없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던 좌뇌의 재잘거림이 멈추자 더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8년간 재활을 거친 끝에 그는 기적적으로 테드(TED) 강연 무대에 섰다. 뇌과학자가 직접 겪은 뇌중풍 경험담에 전 세계 500만 명이 열광했다. 그의 이야기를 담아 2011년 국내 출간된 ‘긍정의 뇌’가 올해 초 뇌과학 열풍을 타고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윌북·1만3800원·사진)로 다시 나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만으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며 반년 넘게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e메일로 만난 테일러 박사는 “뇌중풍을 겪으면서 몸을 구성하는 세포와 신경 회로들을 하나하나 자각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든지 감정과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내 영혼이 우주와 하나이며 주위의 모든 것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황홀했다. … 회복이라는 것이 항상 스트레스를 느끼는 삶을 의미한다면 회복하고 싶지 않았다.’(74쪽) 테일러 박사에 따르면 두 개의 뇌는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우뇌는 거시적 관점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좌뇌는 큰 그림을 잘게 쪼개 보여준다. 좌뇌는 사물을 범주에 따라 나누지만 우뇌는 직관으로 파악한다. 좌뇌는 언어로, 우뇌는 그림(이미지)으로 사물을 파악한다. 그는 “좌뇌가 무너져 내린 이후 소통과 학습은 물론이고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지금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하게 돼 ‘행복의 나라’로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뇌의 세상에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다. 인지·학습 능력과 소통 능력을 되찾기 위한 마라톤 여정이 시작됐다. 뇌 속의 언어 파일이 모두 망가져 신생아처럼 알파벳부터 익혀야 했다. “(퍼즐) 조각의 똑바른 면을 위로 놓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똑바로 놓는 게 뭔지, 모서리가 뭔지” 물어야 했다. 재활 과정에서 그는 새삼 수면의 강력한 치유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뇌세포는 에너지를 흡수한 뒤 찌꺼기를 배출하는데, 잠자는 동안에 이른바 ‘환경미화원 세포’들이 찌꺼기를 청소해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이 찌꺼기가 뇌에 남아서 세포들의 소통을 방해합니다.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알람시계 없이 개운함을 느낄 정도로 자는 게 이상적입니다.” 좌뇌를 잠재우지 않고도 평화로움을 얻으려면? 각자가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호흡, 음식의 감촉, 향초, 아름다운 풍경, 새소리, 비경쟁적 스포츠…. 원치 않는 사고 패턴을 오감의 자극으로 대체하면 의식을 평온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테일러 박사는 “목표는 좌뇌를 잠재우는 게 아니라 덜 신경 쓰는 것이다.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좌뇌의 스트레스 회로에 제동이 걸리고, 자유자재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테일러 박사는 1세대 뇌과학자 출신 저술가다. 최근 뇌과학 분야의 화두는 신경을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구성할 수 있다는 신경가소성, 새로운 신경세포의 생성을 연구하는 신경발생, 마음챙김(명상) 등 3가지가 꼽힌다. 세계 각국에서 뇌과학자가 쓴 책이 쏟아지는 요즘에도 그의 책은 여전히 뜨겁다. 그는 “과학과 영성의 세계가 우리 안에 공존한다는 메시지가 흥미롭게 읽힌 것 같다. 뇌를 다스려 평화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한 부분도 다른 저서와 차별점”이라고 자평했다. 어린 시절 예술과 스포츠에 능했던 테일러 박사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해부학이라는 과목과 사랑에 빠졌다. 이때 우뇌에서 좌뇌로 중심축이 이동했다. 이후 좌뇌에 뇌중풍이 생기면서 다시 우뇌가 우세해졌고, 피나는 재활을 거쳐 우뇌의 가치 구조(인간다움)에 의지하면서 좌뇌(언어와 분석력)의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는 올해 두 가지 인지적·감정적 마음을 뇌과학으로 풀어내 두 번째 책에 담아낼 예정이다. “건강한 뇌란 당연하게도 우뇌와 좌뇌가 수평을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건강한 몸에 필요한 충분한 수면, 카페인과 설탕 제어, 적당한 사회활동이 건강한 뇌를 만들지요. 우수한 뇌를 위해선 경쟁보다 놀이가 도움이 됩니다. 뇌는 정답이 아닌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발전해 나가거든요.” 이설 기자 snow@donga.com}

서른 일곱의 전도유망한 하버드대 뇌과학 연구원이었던 질 볼트 테일러 박사(60)는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예기치 못한 불운 앞에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은 “멋지다”였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판단하던 목소리, 즉 좌뇌의 재잘거림이 멈추자 더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8년 간 재활을 거친 끝에 그는 기적적으로 테드(TED) 강연 무대에 섰다. 뇌과학자가 직접 겪은 뇌졸중 경험담에 전 세계 500만 명이 열광했다. 그의 이야기를 담아 2011년 국내 출간된 ‘긍정의 뇌’가 올해 초 뇌과학 열풍을 타고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윌북·1만3800원)로 다시 나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만으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며 반년 넘게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10위 권을 유지하고 있다. e메일로 만난 테일러 박사는 “뇌졸중을 겪으면서 몸을 구성하는 세포와 신경 회로들을 하나하나 자각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든지 감정과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내 영혼이 우주와 하나이며 주위의 모든 것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황홀했다.…회복이라는 것이 항상 스트레스를 느끼는 삶을 의미한다면 회복하고 싶지 않았다.’(p74) 테일러 박사에 따르면 두 개의 뇌는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우뇌는 거시적 관점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좌뇌는 큰 그림을 잘게 쪼개 보여준다. 좌뇌는 사물을 범주에 따라 나누지만 우뇌는 직관으로 파악한다. 좌뇌는 언어로, 우뇌는 그림(이미지)으로 사물을 파악한다. 그는 “좌뇌가 무너져내린 이후 소통과 학습은 물론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지금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하게 돼 ‘행복의 나라’로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뇌의 세상에 주저앉을 순 없었다. 인지·학습 능력과 소통 능력을 되찾기 위한 마라톤 여정이 시작됐다. 뇌 속의 언어 파일이 모두 망가져 신생아처럼 알파벳부터 익혀야 했다. “(퍼즐) 조각의 똑바른 면을 위로 놓으라”는 어머니의 말에 “똑바로 놓는 게 뭔지, 모서리가 뭔지” 물어야 했다. 재활 과정에서 그는 새삼 수면의 강력한 치유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뇌세포는 에너지를 흡수한 뒤 찌꺼기를 배출하는데, 잠자는 동안에 이른바 ‘환경미화원 세포’들이 찌꺼기를 청소해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이 찌꺼기가 뇌에 남아서 세포들의 소통을 방해합니다.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알람시계 없이 개운함을 느낄 정도로 자는 게 이상적입니다.” 좌뇌를 잠재우지 않고도 평화로움을 얻으려면? 각자가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호흡, 음식의 감촉, 향초, 아름다운 풍경, 새소리, 비경쟁적 스포츠…. 원치 않는 사고 패턴을 오감의 자극으로 대체하면 의식을 평온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테일러 박사는 “목표는 좌뇌를 잠재우는 게 아니라 덜 신경 쓰는 것이다. 훈련을 반복하다보면 좌뇌의 스트레스 회로에 제동이 걸리고, 자유자재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테일러 박사는 1세대 뇌과학자 출신 저술가다. 최근 뇌과학 분야의 화두는 신경을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구성할 수 있다는 신경가소성, 새로운 신경 세포의 생성을 연구하는 신경발생, 마음챙김(명상) 등 3가지가 꼽힌다. 세계 각국에서 뇌과학자가 쓴 책이 쏟아지는 요즘에도 그의 책은 여전히 뜨겁다. 그는 “과학과 영성의 세계가 우리 안에 공존한다는 메시지가 흥미롭게 읽힌 것 같다. 뇌를 다스려 평화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한 부분도 다른 저서와 차별점”이라고 자평했다. 어린 시절 예술과 스포츠에 능했던 테일러 박사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해부학이라는 과목과 사랑에 빠졌다. 이때 우뇌에서 좌뇌로 중심축이 이동했다. 이후 좌뇌에 뇌졸중이 생기면서 다시 우뇌가 우세해졌고, 피나는 재활을 거쳐 우뇌의 가치 구조(인간다움)에 의지하면서 좌뇌(언어와 분석력)의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는 올해 두 가지 인지적·감정적 마음을 뇌과학으로 풀어내 두 번째 책에 담아낼 예정이다. “건강한 뇌란 당연하게도 우뇌와 좌뇌가 수평한 상태입니다. 건강한 몸에 필요한 충분한 수면, 카페인과 설탕 제어, 적당한 사회활동이 건강한 뇌를 만들지요. 우수한 뇌를 위해선 경쟁보다 놀이가 도움이 됩니다. 뇌는 정답이 아닌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발전해 나가거든요.” 이설 기자 snow@donga.com}

“벌거벗고 태초의 대지 위에 선 듯 자유로워집니다.” 베테랑 낚시꾼은 바다낚시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제 몸집만 한 참치와 드잡이를 하다보면, 태초의 사냥꾼이라도 된 듯 용기가 솟구친다는 것이다. 같은 경험은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은 갔다. 갑판에서 사나운 파도와 맞닥뜨리거나 방파제 발밑의 시퍼런 바다를 내려다봤을 때 일렁이는 묘한 희열 같은 게 아닐까. 이 책은 취재를 계기로 프리다이빙의 세계에 발을 들인 저널리스트가 썼다. 황홀하고 무시무시한 프리다이빙과 경이로운 해양 과학 이야기가 교차로 전개된다. 흥미로운 소재 둘을 엮어 술술 읽힌다. 수심 2만8700피트(약 8.75km)까지 수직 낙하하는 이야기는 바다에 대한 동경을 제대로 찌른다. 프리다이빙은 원하는 만큼 깊은 바다에 들어가 숨을 참는 스포츠다. 장비 없이 맨몸으로 들어간다. 10분 가까이 숨을 참으며 수백 m를 잠수하는 비결은 ‘마스터스위치’. 중요한 기관으로 혈액을 보내고, 폐가 쪼그라들고, 심장박동 속도를 늦추고…. 수압에 따라 우리 몸은 알아서 최적화된다. 우리는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양수에서 태어난 바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임신 8주 차 태아의 턱 부위에는 아가미를 닮은 틈이 있다. … 임신 1개월 차의 인간 배아는 발이 아니라 지느러미가 먼저 발달한다. 신생아를 물에 넣으면 반사적으로 평영으로 헤엄친다.” 바다를 향한 인류의 열망은 멈춘 적이 없다. 수백 년간 커다란 종 모양 단지에 사람을 넣고, 돼지가죽 잠수복을 입고, 유리 양동이를 쓰고 잠수를 시도했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물속 탐험의 역사는 더 깊이 내려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피와 뼈에 빚진 여정인 셈이다.” 지구에서 가장 깊이 내려간 이들의 무용담은 아름답지만 위태롭다. 사지 마비, 코피 범벅, 블랙아웃은 다반사. 구조 다이버가 항시 대기하지만, 운이 나쁘면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멈출 생각이 없다. ‘심해의 문’을 지나 열리는 초월, 거듭남, 영혼의 정화를 떨칠 수 없어서다. “고요함이에요. 온몸으로 명상을 하는 기분이요.” “새로운 차원의 경계들을 떠밀면서 물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는 겁니다.” “인간의 한계를 깨고 잠재력을 넓히고 싶어요.” 해양과학자들의 분투로 알려진 바닷속 풍경도 흥미롭다. 수심 700피트(213m)에 이르면 생명체는 사라지고 사방이 탁한 푸른색이다. 수심 2500피트(762m)는 햇빛이 들지 않아 식물이 살 수 없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전기가오리는 생체전기의 치사 잠재력을 극대화하도록 몸을 진화시켰다. 프리다이버 중 누군가는 탐험을 즐기고 누군가는 숫자에 집착한다. 직접 프리다이빙에 도전한 저자는 ‘프리다이빙 십계명’을 마음에 새긴다. “심해의 문은 슬며시 밀고 들어가야 한다. 혼자 잠수해선 안 되고, 모두가 평화로운 상태로 바다에 들어가야 한다.” 모든 페이지가 살아 펄떡여 책이 아닌 영화를 본 것 같다. “우주에 관한 책으로 ‘코스모스’가 있다면, 바다에 관해서는 이 책이 있다. 황홀하고, 호쾌하며,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해외 평론가의 말에 공감한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비는 건 지갑이요, 느는 건 소설 목록입니다. 워낙 길어서 한번 빠지면 ‘현망진창’(현실+엉망진창)이 되지만 끊을 수가 없네요. 최근엔 번역기 돌리는 데 지쳐서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어요.” 30대 직장인 임모 씨는 최근 중국 웹소설에 푹 빠졌다. 시작은 2년 전 케이블TV에서 접한 드라마 ‘삼생삼세 십리도화(三生三世 十里桃花)’. 억겁의 세월을 넘나드는 신선들의 사랑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드라마 원작 소설을 하나둘 찾아보다가 지금은 웹소설 마니아가 됐다. 글로 접하면 감정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로맨스와 강렬한 판타지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 장엄하고, 독특하고, 깨알 같은 중국 웹소설 중국 웹소설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국내 웹소설 3대 플랫폼인 네이버 시리즈, 카카오페이지, 문피아에 따르면 2∼3년 전부터 불어온 바람은 지난해 태풍급으로 커졌다. 20일 기준 네이버 시리즈 다운로드 순위 20위 안에 오른 중국 웹소설은 5편. 현대의 의사가 고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겪는 모험담인 ‘천재소독비(天才小毒妃)’는 지난해 최장 기록인 15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카카오페이지는 ‘학사신공(學士神功)’ ‘보보경심(步步驚心)’ 등이 상위권에 랭크됐다. 네이버 시리즈의 웹소설 총괄 박제연 리더는 “2016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원작이 중국 웹소설로 알려지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중국에서 한 번 검증을 받은 작품들이라 대부분 높은 순위에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지 관계자는 “아직은 ‘찻잔 속 태풍’이지만 꾸준히 독자층을 늘려가고 있다”고 했다. 단행본 출간도 활발하다. 인터넷서점 예스24가 집계한 8월 셋째 주 소설 분야 1위는 중국 웹소설을 묶은 ‘잠중록(簪中錄)4’(아르떼). 아르떼 관계자는 “중국 웹소설을 처음 펴냈는데 단행본과 e북 모두 반응이 좋다. 드라마·영화화된 작품 원작을 꾸준히 소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장르 소설을 유통하는 독립서점 서울프렌드의 목책 대표는 “올해 들어 중국 단행본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판타지로맨스와 ‘화천골(花千骨)’ 같은 선협(仙俠·신선+무협) 그리고 현대물까지 두루 인기 있다”고 했다. ○ 진융(金庸)의 맥을 잇는 선협과 로맨스 판타지 중국 웹소설의 매력은 △방대한 세계관 △한국에 익숙한 권선징악 서사 △동양적 판타지 등이 꼽힌다. 특히 인기를 끄는 분야는 로맨스(언정소설·言情小說). 과하다 싶은 복수와 여성 주인공의 한(恨), 복잡한 러브라인, 새드엔딩이 도드라진다. ‘천재소독비’ ‘폐후의 귀환’ ‘화비, 환생’ ‘서녀명란전’ 등이 대표적이다. 로맨스에 판타지와 스릴러를 가미한 작품을 즐겨 보는 30대 직장인 이성경 씨는 “당하는 부분은 한없이 측은하고, 갚아주는 대목은 고구마 없이 시원해서 좋다. 최근 서양식 로맨스 공식에 질려 있었는데,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했다. 남성들 사이에서는 선협 소설의 인기가 뜨겁다. 주인공이 도의 최고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 플롯을 기본으로, 1만 년 도를 닦은 잡초가 사람으로 변하는 등 상상력을 자극한다. 김택규 중국어 전문 번역가는 “김용(진융) 소설을 읽고 자란 중년층 남성들이 지금의 중국 웹소설 선협 장르를 즐겨 본다”고 했다. 중국은 웹소설 강국이다. 시장 규모(2조1500억 원)는 2017년 기준 한국(4300억 원)의 다섯 배에 이르고, 해마다 100편 이상을 2차 저작물로 제작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웹소설)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는데, 작품은 이를 따라잡지 못해 실망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그 틈을 검증된 중국 웹소설이 파고들고 있다”며 “이를 위협으로 느끼기보다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소설 ‘완득이’ ‘아몬드’ ‘위저드 베이커리’의 공통점은? 청소년용이지만 성인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인 작품이다. 어른도 곱씹어볼 만한 문제의식을 담아 책장이 무겁게 넘어간다. 영국에서는 장편소설 ‘널 만나러 왔어’(원제 Fish Boy·사진)가 성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문학동네가 출간했다. 이 소설은 물고기와 대화하는 12세 소년 빌리의 마법 같은 성장담이 바다와 더불어 펼쳐진다. 클로이 데이킨은 데뷔작인 이 소설로 영국 북부 작가상을 수상하고 브랜퍼드 보스상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e메일 인터뷰에서 “바다는 온전한 타자성 속에 자신을 풀어놓게 만드는 미스터리한 공간이다. 어릴 적 육체적 자유로움과 명랑함을 떠올리며 작품을 썼다”고 했다. 아파서 침대를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 무심하고 불친절한 아빠, 틈만 나면 자신을 놀려대는 친구들. 어른들의 세계는 위태롭고, 친구들은 뾰족하게 군다. 어쩔 수 없이 겉늙어버린 빌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고등어들. 환상의 세계는 일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데이킨은 “집필 내내 해방감을 만끽하면서도 아이들의 동심이 얼마나 다치기 쉬운지를 되새겼다”고 했다. “유년기는 실험과 발견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와 서로 다른 존재의 방식들을 배워나가죠.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마음을 터놓을 기회를 줘야 합니다.” 빌리는 누군가가 건넨 믿음과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한다. 외톨이 빌리에게 손을 내밀어준 새 친구 패트릭은 “그 고등어는 오로지 너만 만나러 온 것”이라고 지지한다. 고등어 친구는 “여기서 살자, 여기서 살자”고 빌리에게 손을 내민다. 각자의 방식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대자연의 섭리는 빌리는 물론 어른들까지 껴안고 위로해준다. 데이킨은 “아이들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고 싶겠지만 참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기다리면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과 자신감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작은 친절과 애정을 담아 아이들과 소통하세요. 언젠가 소소하지 않게 될 현재의 소소함을 즐기세요. 독자들이 작품을 통해 웃음, 사랑, 모험, 자신감, 바다와 불가사의한 것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길 바랍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페미니스트라고 커밍아웃하니 저를 ‘나이지리아의 악마’라고 부르더군요.”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42·사진)가 장편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민음사·1만5000원)의 국내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강연, 에세이, 소설로 여성주의를 전하는 그는 요즘 세계에서 가장 ‘핫’한 페미니스트 작가로 통한다.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정도는 다르지만 성평등이 제대로 구현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페미니즘은 오랜 불평등을 바꾸려는 정의구현 운동”이라고 했다. 이어 “페미니즘을 남성 혐오 운동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남성 역시 사회적 기준에 의해 억압당하는 측면이 있는데, 페미니스트가 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라색…’은 나이지리아 소녀가 엄격한 가부장제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데뷔작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영연방 작가상(2003년)을 받으며 스타 작가로 우뚝 섰다. 그는 “데뷔작이지만 자전적인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을 통해 종교의 복잡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장편 ‘태양은 노랗게 타오른다’(2006년), 소설집 ‘숨통’(2009년) 등에서 나이지리아 사회의 혼란과 인종 차별, 성 차별을 짚었다. 에세이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2014년), ‘엄마는 페미니스트’(2017년)는 페미니즘 입문서가 됐다. 패셔니스타로도 잘 알려진 그는 한국의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여성성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외모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며 K뷰티에 관심이 많아 얼른 쇼핑을 하러 가고 싶다”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여성의 언어로 세상을 읽고,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났어요. 뇌 구조가 바뀐 셈입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은 많은 여성에게 그랬듯 윤이형 작가(43)에게도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생각, 언어, 작품이 깨지고 부서지며 기본값을 ‘새로 고침’했다. 최근 펴낸 단편집 ‘작은마음동호회’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내놓은 첫 결실이다.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만난 그는 “나의 언어로 쓰면서도 끊임없이 ‘이게 맞나’ 싶어 괴롭고 힘들었다. 남성의 언어를 떨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절감했다. 부족하지만 변화하는 상태의 나를 솔직히 내보이고, 비판받고, 고쳐 나가려 한다”고 했다. 책에 실린 단편 11편은 제각각 다른 결로 반짝인다. 여성 이슈라는 큰 줄기에 여성 간 갈등, 퀴어, 여성 혐오, 성폭력 등을 얹었다. 표제작 ‘작은마음동호회’는 기혼 여성이 여성주의를 만났을 때 겪는 필연적 분열을 다룬다. 스스로 결혼 제도를 선택했지만, 예상치 못한 부조리와 육아의 무게에 짓눌려 방황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집회·시위에 적극 참석하기란 쉽지 않죠. 정치하는 엄마에 대한 외부 시선도 곱지만은 않고요. 외부의 시선과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만나 기혼 여성의 분열이 극으로 치닫곤 합니다. 하지만 기혼 여성을 가장 혐오하는 건 기혼 여성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비관에서 벗어나 작은 것부터 바꾸고 투쟁했으면 합니다.” 다른 위치에 처한 여성 간 갈등에도 주목했다. 기혼과 비혼 여성(‘작은마음…’), 인간과 로봇 여성(‘수아’), 당사자와 비당사자(‘피클’), 엄마와 딸(‘마흔셋’)이 반목하고 후회하다가 화해한다. 그는 “여성주의 안의 균열과 갈등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차이를 모른 체하기보다 다름을 연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피클’은 각종 미투 사건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유부남 선배와 사귀는 후배 기자 유정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구하지만 동료들은 매몰차게 외면한다. 그의 됨됨이와 평판이 마뜩잖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와 아는 사이일수록 연대가 어려운 아이러니의 핵심을 그는 ‘여성의 여성 혐오’로 파악했다. “익명의 피해자는 선뜻 지지하지만 아는 사이일 경우 신뢰할 수 있나 없나를 점검하죠. 왜 그런 걸 따질까…. 남성 문법에 따른 여성 혐오 때문이더군요. 피해자의 불안정성이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근거가 돼선 안 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란다’는 미러링 소설이다. 외계 존재에게 납치돼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과 착취로 만신창이가 되는 남성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지시를 따르던 남자는 전처의 말을 떠올린다.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거야. 아무 때나 끌려나와 아무렇게나 대해지는 느낌을.” 윤 작가는 “과격한 미러링에 대해 처음엔 회의적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여성이 당하는 폭력과 여성이 가하는 폭력은 무게가 같을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 작품 ‘역사’에는 몸이 잘릴수록 개체가 불어나는 존재가 등장한다. 침묵의 강에 빠뜨려 종족을 절멸시키려는 적들. 그 순간 이들은 강력해진 내성을 확인하며 도약한다. 나약하고 불안정해도 끝내 진화하는 존재에 여성을 빗댔다. “중요한 건 서로를 향한 작은 마음입니다. 자매가 건넨 믿음으로 다시 나를 믿게 되는 그런 마음들요. 서로의 처지가 달라도 대화하고 이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여성에겐 있다고 확신합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항일 시인 이육사(1904∼1944)를 소재로 한 소설 ‘그 남자 264’(문학세계사·사진)를 읽고 저자인 고은주 소설가에게 감상평을 담은 친서를 보냈다. 고 작가는 12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문 대통령에게 받은 친서를 공개했다. 대통령은 “육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고, 특히 그의 시 ‘광야’를 매우 좋아한다”며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 합류한 김원봉의 조선의용대를 말한 이후 논란을 보면서 이육사 시인도 의열단이었다고 주변에 말하곤 했다. 소설에 그런 내용들이 담겨 있어 기뻤다”라고 썼다. 고 작가는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육사가 살았던 서울 성북구에 다음 달 이육사기념관이 완공된다. 성북구청장 시절 기념관 건립에 도움을 줬던 김영배 청와대 민정비서관에게 책을 발송하면서 대통령에게 함께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가요계 : 케이팝 일본서 잘나가도 국내선 홍보 자제 한일 관계 경색으로 가요 업계에 ‘일본 주의보’가 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수들의 일본 내 활약상은 물론 일본 입출국 소식, ‘공항 인증샷’도 자제하는 분위기다. 특히 살얼음판을 걷는 이들이 있다. 전체 매출 가운데 일본의 비중이 높은 기획사, 이제 막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며 가까운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룹들이다. 한 중견 연예기획사의 관계자는 “예전에는 패션 브랜드 협찬을 받아 김포공항 출국 인증샷을 언론에 하나라도 더 노출하려 했는데 최근에는 일본 입출국을 조용히 진행하고 있다”며 “‘또 일본 가는 것 아니야?’ 하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 김포공항이 아닌 인천국제공항발 비행기표를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귀띔했다. 일부 기획사는 최근 일본 오리콘 차트 소식을 보도자료로 배포하지 않았다. 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축하 메시지가 오갔을 뿐이다. 세계 시장에서 두루 강하거나 팬덤의 충성도가 공고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이들 팬덤에서는 ‘이런 시국에 우리 가수가 일본에서 활약해 엔화를 벌어 온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조심하는 것은 일본 내 인증샷이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일본에서 열심히 활동하되 식당에 가더라도 ‘여기 사시미가 정말 맛있다’ 같은 사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지 말자는 암묵적 계율이 생겼다. ‘일본’이 사실상 SNS 게시물 금기어가 됐다”고 말했다. 국제 정세와 무관하게 일본 내 케이팝 시장은 아직 든든하다. 트와이스는 지난달 말 발표한 일본 싱글 ‘HAPPY HAPPY’와 ‘Breakthrough’ 모두 9일 일본 레코드 협회로부터 플래티넘(25만 장 이상 출하) 인증을 받았다. 트와이스는 이로써 2017년 6월 발표한 일본 데뷔 앨범부터 8연속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달 발표한 열 번째 일본 싱글 ‘Lights/Boy With Luv’로 이날 밀리언(100만 장 이상 출하) 인증을 받았다. 갓세븐, 동방신기도 최근 오리콘 차트에서 정상을 밟거나 최상위권에 랭크되며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한 연예계 관계자는 “케이팝의 주 소비층인 일본 젊은이들은 한일 관계에 관심이 높지 않은 데다 최근 일본 기획사 ‘요시모토 흥업’과 ‘자니즈’가 각각 내분 사태를 겪는 등 잇따른 일본 연예계 대형 이슈에 눈길이 쏠려 있다”면서도 “한일 갈등이 심화돼 한국 가수의 TV 출연 금지, 대형 공연장 대관 금지 조치가 내려질까 봐 염려된다”고 말했다. ▶공연계 : 일제 강점기 연극 무산… “국내 반일 감정 부담”한일 관계 경색이 지속되면서 공연계도 몸 사리기에 나섰다. 추가 공연 논의가 무산되거나 일부 공연을 자체 취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일본 내 반한(反韓) 기류로 인한 피해보다는 국내 반일 감정이 큰 변수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6일 개막해 25일까지 공연하는 ‘루루섬의 비밀’은 지방 및 연말 공연이 논의 중이었으나 최근 연말 공연 계획은 무산됐다. 작품은 한국 인형극단 ‘예술무대산’과 일본 그림자극단 ‘가카시좌’가 5년간 워크숍을 거쳐 만든 어린이 대상의 그림자 인형극. 대관을 담당한 공연장 측은 최근 한일 관계가 악화한 상황에 굳이 논란이 될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취지로 공연 논의를 중단했다. 해당 공연에는 그림자나 인형 등이 주로 등장하며 실제 배우의 대사는 적은 수준이지만, 작품 제작에 참여한 일본인 배우 2명이 무대 앞으로 나서 한국어로 공연을 펼치는 장면도 연출된다. 조현산 ‘예술무대산’ 대표는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공연장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공연을 본 관객들이 ‘이런 문화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고 남기는 후기를 보면 문화와 정치를 구분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국립극단은 9월부터 무대에 올릴 예정이던 연극 ‘빙화’를 전격 취소했다. ‘빙화’는 1940년대 발표된 임선규의 작품으로, 연해주로 강제 이주한 조선인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연극 통제 정책에 따라 시행된 ‘국민연극제’ 참가작으로 친일적 요소가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극단 측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친일 연극의 실체를 드러내 부끄러운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국민들의 심려에 공감해 기획 의도를 참작하더라도 작품을 무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공연장에서는 작은 소동도 있었다. 7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아디오스 피아졸라, 라이브 탱고’ 공연에서는 일본의 탱고밴드 ‘콰트로시엔토스’ 연주 순서에서 한 관객이 “쪽바리!”라고 외친 뒤 공연장 밖으로 사라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24일에는 일본 플루티스트의 독주회가 예정되어 있어 주최 측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다. 공연계 관계자는 “일본 관련해 예정된 공연을 무조건 취소하기도 어려우며, 관객을 완벽히 통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그저 무사히 공연이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라고 답했다.▶출판계 : “일본 소설 안 읽어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국내에서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출판계로 번지고 있다. 12일 인터파크 도서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 일본 문학 분야 도서 판매량은 6월 마지막 주 대비 38% 감소했다. 7월 중반까지 건재하던 일본 소설도 7일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삭제한 이후 판매량이 주춤하고 있다. 일본 소설 스테디셀러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의 7월 판매량은 6월 대비 22% 감소했다. 6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인플루엔셜)의 판매량은 39% 줄었다. 일본과 관련된 역사·사회서는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쓴 ‘반일 종족주의’(미래사)는 8월 둘째 주 인터넷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 책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거세게 비판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오키 오사무 전 교도통신 서울특파원이 아베 신조와 내각 각료 19명 중 15명이 속한 조직 ‘일본회의’의 실체를 해부한 ‘일본회의의 정체’(율리시즈)는 정치·사회 부문 2위였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뿌리와이파리)는 지난달 셋째 주 3위에 오른 뒤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한일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일본인 저자와 관련된 마케팅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출판사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

“수업과 학생문화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올해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A 씨는 한 달 반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대학에서 지적·인격적으로 성장할 거란 기대가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는 수업의 목표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토론으로 수업을 때운다는 인상도 받았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의 권위와 규율도 불편했다. 최근 그는 대안 대학 ‘미지행’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A 씨는 “스승은 정성껏 질문하고 학생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졸업장의 무게는 제도권 대학보다 가벼울지 몰라도 배움의 만족도는 훨씬 커졌다”고 했다.○ 평등하고 능동적인 ‘공부 공동체’ 기존 대학의 문법을 부수는 교육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2015년 문을 연 신촌대가 있다. ‘스피치로 말잘해볼과’ ‘트라우마 극복해볼과’ 등 의문형 ‘까’를 ‘과’로 바꾸고 간판에 대학을 붙였지만 지향점은 대학과 모든 게 정반대다. 학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 교육부 인가는커녕 뚜렷한 조직체계도 없다. 학비는 2과목에 8만 원(한 달 기준). 수업은 신촌 일대의 공간을 빌려서 연다. 이해랑 신촌대 운영위원은 “‘대학’이라는 명칭은 상징적으로 사용할 뿐 모두가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프로젝트 또는 모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입학·졸업증, 학점이수, 스펙이 없는 평등한 공부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핵심 가치는 도전과 변화다. 진로 고민으로 끙끙 앓던 이혜민 씨(28)는 신촌대에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인문과 실용을 아우르는 수업을 듣고 학과장으로 강의(‘SNS해볼과’)를 하다 보니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게 됐다. 영양사에서 금융과 마케팅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신촌대는 학과장들이 동네에서 수업을 열면서 이태원대, 구로대, 분당 캠퍼스, 테헤란로대 등으로 분화됐다. 뿌리 격인 신촌대의 시스템을 따르되 지역의 특성을 덧입었다. 구로대는 은퇴 이후 삶을 고민하는 중장년층 중심으로 운영된다. 분당 캠퍼스는 마을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이태원 캠퍼스는 예술 수업이 활발하고 테헤란로대는 금융 수업을 주로 연다. 금융인 출신인 한연숙 테헤란로대 학과장은 “테헤란로가 경제·금융의 메카라고 하는데 관련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전·현직 금융인을 위한 배움터”라고 했다. 건축가 신혜원, 문학평론가 함돈균, 무용가 안은미가 의기투합해 만든 ‘미지행’은 학교의 배움을 사회로 연결시키는 게 목표다. 학교의 운영 단위는 유닛이다. 생각 몸 미디어 도구 등 유닛별로 학과장 격인 디렉터가 있다. 학위와 논문이 아닌 현장 경험과 네트워크 역량으로 디렉터를 뽑았다. 내년 정식 개교를 앞두고 지난달 20명을 모집해 시험호를 띄웠다. 이번 학기 등록금은 180만 원. 출판사를 다니다 입학한 하연 씨는 “일을 해보니 분절된 전공 지식보다 통합적 사고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뜬구름처럼 들릴 수 있지만 훨씬 실용적인 공부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6년 문을 연 파이청년학교는 청년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초중고교 12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도록 돕는 게 목표다. 이 때문에 인문·심리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년 과정으로, 수강료는 한 학기에 220만 원 선이다. 파이학교는 현장 교육에 특히 공을 들인다. 지난해에는 학생들의 제안으로 게임을 프로젝트 주제로 정하고 게임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 주제는 웹툰. 30년 경력의 웹툰 작가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웹툰을 제작했다.○ 대안 대학 붐…“수업 내용 잘 따져봐야” 지적도 독학의 보고인 유튜브에도 대학이 존재한다. 김미경 강사가 진행하는 김미경tv유튜브대는 올해 1월 5일 서울의 한 대학 강당을 빌려 출범식 성격의 입학식을 열었고, 1500여 명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동영상을 시청한 뒤 언급된 책을 읽고 온라인 카페에 A4 용지 5장 내외로 독후감을 올려야 한다. 팬덤 중심의 유튜브 기반 독서 대학인 셈이다. 학칙은 나름대로 까다롭다. 일정 건수 이상 과제를 제출해야 활동할 수 있다. 참여도에 따라 열정대학생, 열정우등생, 열정장학생으로 등급이 올라간다. 열정장학생인 김용현 씨(40)는 “책을 읽고 온·오프라인에서 동기생들과 생산적 관계를 맺다 보면 열정이 고취된다. 운동을 습관화하고 새벽에 일어나게 됐다”고 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대안 대학이 빠르게 번지는 배경에는 기존 대학의 침몰이 있다. 이해랑 위원은 “현재 대학은 비싼 등록금에 비해 효용이 떨어진다. 학문의 범위도 제한돼 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맞춤형 교육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미래 사회에는 빠르게 분야를 바꿔 적응하는 ‘리부팅’ 능력이 중요하다. 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던 정규 교육과정의 쓸모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입시 중심의 교육체제에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교육 관계자는 “말이 대학이지 실용학원과 다를 바 없는 플랫폼이 적지 않다. 싼 게 비지떡일 수 있으니 수업 내용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설 snow@donga.com·신규진 기자}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수업과 학교 문화가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19학번으로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A씨는 한 달 반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대학의 울타리에서 지적·인격적으로 성장할 거란 기대가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는 수업의 목표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토론으로 수업을 때운다는 인상도 받았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의 권위와 규율도 불편했다. A씨는 최근 ‘미지행’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통합적 사고를 지닌 세계시민 양성을 추구하는 대안 대학. 올해 시범 학기를 열고 학생 20명을 모집했다. A씨는 “스승은 정성껏 질문하고 학생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졸업장의 무게는 제도권 대학보다 가벼울지 몰라 배움의 만족도는 훨씬 커졌다”고 했다. 연 1000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 4년을 다녀도 멀게 느껴지는 교수님. 유튜브 강의보다 실속 없는 교양 수업. 취업을 목표로 종마처럼 달리는 캠퍼스 친구들. 오늘날 대학의 자화상이다 최근 기존 대학의 문법을 깨부수는 교육 플랫폼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유로운 배움터를 추구한다. 누구나 학과를 개설할 수 있는 신촌대·서초대·테헤란로대, 배움의 공공성을 지향하는 미지행, 유튜브 기반의 김미경tv유튜브대, 전문성에 방점을 둔 파이(PIE)청년학교 등이다. 함돈균 미지행 총괄 디렉터는 “커뮤니티 중심의 취미 모임부터 대학의 틀을 갖춘 교육 기관까지 배움의 통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안학교의 성인 버전인 대안 대학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학과장 해볼과’ ‘스토리텔링 강의기법 배워볼과’, ‘제대로 된 시민참여로 행복해질과’, ‘스피치로 말잘해볼과’, ‘트라우마 극복해볼과’….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2015년 문을 연 신촌대가 있다. 신촌대의 전략은 발랄하고 가벼운 비틀기다. 의문형 ‘까’를 ‘과’로 바꾸고 간판에 대학을 붙였지만 지향점은 대학과 모든 게 정반대다. 가방 끈과 별개로 누구나 가르칠 수 있고, 교육부 인가는커녕 뚜렷한 조직체계도 없다. 학비는 2과목에 8만 원(한 달). 수업은 신촌 일대의 공간을 빌려서 연다. 이해랑 신촌대 운영위원은 “‘대학’이라는 명칭은 상징적으로 사용할 뿐, 모두가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프로젝트 또는 모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입학·졸업증, 학점이수, 스펙이 없는 평등한 공부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핵심 가치는 도전과 변화다. 진로를 고민하던 이혜민 씨(28)는 신촌대에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인문과 실용을 아우르는 수업을 듣고 학과장으로 강의(‘SNS해볼과’)를 하다보니 스스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게 됐다. 영양사에서 금융과 마케팅 쪽으로 직업을 바꿨다. 이 씨는 “인문, 사회, 과학을 넘나드는 지식을 배우고 때로 가르치다보면 도전 정신이 고양되고, 이런 변화가 일상에서 긍정의 씨앗을 틔운다. 제한된 삶의 테두리를 깨고 싶은 이들은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개교 5년차. 신촌대는 빠르게 외연을 넓히고 있다. 학과장들이 동네에서 수업을 열면서 이태원대, 구로대, 분당 캠퍼스, 동탄 캠퍼스, 서초대, 테헤란로대 등으로 분화됐다. 원조인 신촌대의 시스템을 따르지만 지역의 특성을 덧붙였다. 구로대는 은퇴 후 진로 고민을 안은 중장년층 중심으로 운영된다. 분당 캠퍼스는 마을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이태원 캠퍼스는 예술 관련 수업이 활발한데, 지자체로부터 공간을 제공받으며 새로운 협력모델을 구축했다. 테헤란로대는 금융 관련 수업을 주로 연다. ‘펀드·리츠·P2P로 부동산 간접투자해볼과’, ‘리더라면 이코노미스트읽어볼과’ 등이다. 금융인 출신인 한연숙 테헤란로대 학과장은 “테헤란로가 경제·금융의 메카라고 하는데 관련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전·현직 금융인들을 위한 배움터”라고 했다. 가성비 좋은 ‘실용학원+교양강좌+취미모임’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한 신촌대는 어떤 앞날을 그릴까. 이해랑 위원은 “조직을 정비한 뒤 시니어, 청년, 예술, 미디어 등으로 지역 캠퍼스를 특화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라고 했다. ●“배움을 사회로 연결시키는 미래형 학교” “교수님이 아닌 이름을 불러요. 혜원(신혜원), 돈(함돈균) 이렇게요. 호칭이 평등하니 소통도 편안하게 이뤄집니다.”(미지행 학생 하연) “이수 학점이나 과제는 없어요. 스스로 무엇을 공부할지 정하고, 수업에서는 구성원들과 긴밀히 소통하죠. 초·중·고를 거쳐 갑자기 대학에 진학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요. ”(미지행 학생 B씨) 미지행은 공존·세계시민·생명을 학교 정신으로 삼고, 미래 의제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교다. 학교의 배움을 사회로 연결시키는 게 목표다. 건축가 신혜원, 문학평론가 함돈균, 무용가 안은미 등이 의기투합했다. 내년 정식 개교를 앞두고 지난달 20명을 모집해 시험호를 띄웠다. 이번 학기 등록금은 180만 원. 내년부터는 학비가 오를 것으로 보인다. 파운데이션과정 1년을 포함한 5년제로 진행된다. 몸, 도구, 공간, 생각, 소통 등의 강좌를 자유롭게 골라 듣는다. 시험 학기 학생은 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유학생, 직장인으로 다양하다. 학교 구성원들은 서로를 형, 언니가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 출판사를 다니다 입학한 하연 씨는 “사회에서 일을 하다보니 분절된 전공 지식보다 통합적 사고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얼핏 뜬구름처럼 들릴 수 있지만 훨씬 실용적인 공부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학교 운영 단위는 유닛이다. 생각 몸 미디어 도구 등 유닛 별로 학과장 격인 디렉터가 있다. 학위와 논문이 아닌 현장 경험과 네트워크 역량으로 디렉터를 뽑았다. 교육이 사회적 영향력으로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강연과 연구 내용을 토대로 학교 자체가 일터화(미디어) 되는 밑그림도 그리고 있다. 미지행은 연구소로 등록돼 있다. 함돈균 디렉터는 “국가 교육시스템에 예속될 계획은 없다. 대학으로 인가를 받으면 재정 보조를 받을 수 있지만 자율성은 포기해야 한다. 현실적 요구를 반영해 해외 대학과 연합을 구축해 학점을 교류하고, 연합 학교에서 졸업인가를 받는 방식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김미경 팬덤, 유튜브대학 “요즘 미경샘 강의를 들으며 영어와 재테크를 공부해요. 오랜 꿈이었던 그림도 배우고요. 여느 때보다 활기차게 삽니다.‘ 서울에 사는 40대 김상희 씨는 최근 다시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친언니의 권유로 김미경tv유튜브대학에 입학한 것. ’북드라마‘, ’드림머니‘, ’인간관계 대화법‘ 등을 시청한 뒤 영상에서 소개한 책을 읽고 카페에 독후감을 제출한다. 김 씨는 ”자기계발, 꿈, 영어, 시사, 재테크를 두루 다룬다. 문화센터나 취미모임보다 수업 구성이 풍성한 데다 회원들끼리 결속력이 높다“고 했다. 독학의 보고인 유튜브에도 대학이 생겨났다. 김미경 강사가 진행하는 김미경tv유튜브대다. 올해 1월 5일 1500여 명이 서울의 한 대학 강당에 모여 출범식 성격의 입학식을 열었다. 수업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동영상을 시청한 뒤 언급된 책을 읽고 온라인 카페에 A4지 5장 내외로 독후감을 올려야 한다. 팬덤 중심의 유튜브 기반 독서 대학인 셈이다. 현재 카페 회원은 2만2400여 명. 남녀노소가 두루 참여하지만 40대 이상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연간 9만9000원을 내고 유료회원이 되면 학번과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현재 유료회원은 2300여 명이다. 학칙은 나름 까다롭다. 일정 건수 이상 과제를 제출해야 활동할 수 있다. 참여도에 따라 열정대학생, 열정우등생, 열정장학생으로 등급이 올라간다. 만만찮은 진입장벽을 극복하고 많은 이들이 유튜브대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열정장학생인 김용현 씨(40)는 ”책을 읽고 온·오프라인에서 동기생들과 생산적 관계를 맺다보면 열정이 고취된다. 운동을 습관화하고 새벽기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유료회원 C씨는 ”인맥과 사고의 폭이 넓어지다보니 스스로 브랜드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대안 대학 등장은 필연…”수업 내용 잘 따져봐야“ 지적도 2016년 문을 연 파이청년학교는 청년들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초·중·고 12년 간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도록 돕는 게 목표다. 이 때문에 인문·심리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년 과정으로, 수강료는 한 학기에 220만 원 선이다. 파이학교는 현장 교육에 특히 공을 들인다. 지난해에는 학생들의 제안으로 게임을 프로젝트 주제로 정하고 게임회사 CEO를 초청해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 주제는 웹툰. 30년 경력의 웹툰 작가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웹툰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밖에 커뮤니티 성격이 강한 오픈 칼리지, 직장인2교시, 취향관 등도 있다. 대안 대학이 빠르게 번지는 배경에는 기존 대학의 침몰이 있다. 이해랑 위원은 ”현재 대학은 비싼 등록금에 비해 효용이 떨어진다. 학문의 범위도 제한돼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맞춤형 교육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미래 사회에서는 빠르게 분야를 바꿔 적응하는 ’리부팅‘ 능력이 중요하다. 초·중·고·대로 이어지던 정규 교육과정의 쓸모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입시 중심의 교육체제에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교육 관계자는 ”말이 대학이지 실용학원과 다를 바 없는 플랫폼이 적지 않다. 싼 게 비지떡일 수 있으니 수업 내용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