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동아일보

구독 417

추천

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칼럼97%
정치일반3%
  • [김순덕의 도발]하늘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 저는 이집트로 가요

    굳이 이유를 댄다면 지난해 우리 신문이 창간 98주년 특집으로 시작한 ‘신(新)예기’ 첫 회 ‘저승에서 온 조상님 편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 잘하기로 소문났던 노지현 기자의 발칙한 기사에 따르면 “참말로 조상복 받은 자손들은 제삿날 다 해외여행 가 있다”는 거다. 내가 이래 봬도 맏며느리다. 결혼해서 33년, 설과 추석 차례를 빠짐없이 차렸다. 물론 쎄가 빠지게 일한 건 아니다. 시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명절 전날 시댁에 가서 음식 장만하고, 당일 아침 일찍 가서 차례상을 차린 게 고작이긴 하다. 82년생 김지영까지 변하지 않는 풍경하지만 얼굴도 본 적 없는 시조부모님부터 그 윗대와 또 한 윗대까지 3대조 아홉 분의 차례를 지낸다는 것이 내게는 불합리 그 자체였다. 더구나 시아버님은 시조부모님의 양자로 입적된 분이어서 따로 한 상을 더 차려야 했다.처음엔 나도 괜찮은 며느리였다. 생전 안 해보던 음식을 해보는 재미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손 빠르게 한 가지를 해내면 또 다른 일이 주어지는 것이었다(이 사실을 깨달은 다음엔 녹두전이든 생선전이든 아주 공들여 부치면서 시간을 끌었다). 음식 만들 때도, 차례를 지낼 때도 “차례음식은 정성이 제일”이라든가 “집에서 만들어야 정성”이라는 말씀에는 그 전해 먹은 송편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느 해인가 쪼그리고 앉은 채 만두를 산더미만큼 빚다가 두어 달 허리에 침을 맞은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슬픈 건 차례를 다 지내고도 시부모님은 “친정집에 가보라”는 소리를 안 하는 현실이었다. 82년생 김지영도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그래서 출산율이 추락한 거다). 시댁이라는 섬에 사는 사람들은 내 딸을 기다리면서도 사돈댁에서도 딸을 기다린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듯했다.‘주문 차례상’이라고 합리적인가 시부모님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 나는 굳게 결심했다. 이제는 안 지내리라. 이대로 살다가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조상귀신들을 내가 죽거나 이혼할 때까지 모셔야 할 것 같았다. 그해 추석 전날, 나는 종일 열심히 책을 읽는 척하고 있었다. 당연히 장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다 저녁 때 띵똥 소리에 현관을 열어보니 ‘차례상’이 당도한 게 아닌가. 남편이 나 모르게 주문한 모양이었다. 음식 준비 안 해도 되고, 이제 떡국만 후루루 끓이면 되는데 무에 그리 힘드냐고? 요즘 사람들 잘 먹지도 않는 음식을 바리바리 차려서는, 그 음식에다 대고 엄숙하게 절을 해대는 그 말도 안 되는 형식이 싫어서다. 전 세계에 이런 차례나 제사문화가 남아있는 곳은 이 나라밖에 없다. 심지어 제사라는 제도가 시작된 중국서도 이러진 않는다! 명절 칼럼이 히트 치는 이유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으로 지난해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히트 치기 전, 송호근 교수(당시 서울대 교수)도 ‘제사를 회상함’(2013년 2월 12일) 칼럼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사회학자답게 그는 제례를 창안한 조선 건국세력의 비밀을 연구했고, 경국대전에 ‘6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하는 2대, 서민은 부모제사’만 지내도록 못 박았음을 들어 부친과 담판을 벌였다고 했다(그러나 송 교수는 지고 말았다). 남자들도 명절이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다. 내가 가는 이집트에 살던 사람들은 죽으면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고, 합격하면 이승으로 다시 돌아와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믿었다. 거대한 파라오의 무덤, 피라미드와 미라를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파라오라면 다시 살아나 영생을 누리려는 것도 당연하다. 이승도, 저승도, 며느리는 싫다하지만 피라미드를 지어야 했던 노예들도 그러했을까 싶다(이렇게 쓰고 보니 며느리가 노예 같다는 느낌이다ㅠㅠ). 죽어서도 다시 며느리여야 한다면, 그런 저승 나는 가고 싶지 않다. 아무리 현세가 고통스러워도 결국엔 정의가 승리한다고 믿은 나라가 고대 이집트였다. 공공의 양심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표명된 곳도 이집트였다고 한다. 그 위대했던 나라가 왜 멸망해서 오늘날 군부독재국가가 되었을까. 오늘 나는 혼자 이집트로 간다.dobal@donga.com}

    • 2019-02-01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독재자 감별법’을 아십니까

    대통령이 되기 전, 그가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알려주는 경고 신호가 있다. ①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②정치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③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④언론자유를 포함해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있는지 등 네 가지 기준이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면 위험한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네 개 다 걸렸다. 미국서 1년 전, 우리나라에선 석 달 전 출간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리트머스 테스트를 본 순간, 조건반사처럼 우리 상황이 떠올랐다. ①“국민들의 헌법의식이 곧 헌법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기각을 결정하면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헌법을 부정하거나 집권을 위해 쿠데타나 폭동을 지지하는 건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한다는 의미다. ②“우리 정치의 주류세력들을 교체해야 한다.”=경쟁자나 정당의 법률 위반(혹은 위반 가능성)을 문제 삼아 정치무대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경쟁자의 존재 부정이다. ③“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정부가 집회·시위를 탄압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공권력과 시민이 충돌하는 일이 번번이 벌어진다.”=폭력에 대한 비난이나 처벌을 부정하는 건 폭력을 방조, 용인, 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④자신에 대해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을 2015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상대 정당이나 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는 것만으로도 경고등은 번쩍인다(고영주는 2017년 말 이사장 자리에서 해임됐지만 1심 재판부는 2018년 무죄를 선고했다. “이 같은 주장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는 공론의 장에서 논박을 거치는 방식으로 평가돼야한다”면서).타는 목마름으로 불렀던 민주주의 민주화운동에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우리 대통령이 잠재적 독재자 성향을 지녔다고 믿고 싶진 않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으로 떠오른 것이 신(新)권위주의 지도자다. 헝가리 총리 빅터르 오르반처럼 이들은 민주화운동 경험이 있고, 합법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냉전시기, 민주주의 전복의 75%가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투표장에서 이뤄진다). 부패를 척결하고, 과거 엘리트 기득권세력이 만든 법과 제도를 변혁해 지지자들은 열광을 한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싶은가. 민주주의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저들이 한때 타는 목마름으로 불렀다는 그 이름, 민주주의가 바로 저들의 손에서 소프트하게 목 졸리고 있기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삼권분립, 법치주의,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같은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 말이다. 민주주의를 부드럽게 죽일 수 있는 세계적 공식이 궁금한가. 심판 매수! 언론을 시작으로 사법부와 검경, 정보기관, 국세청, 선거관리위원회, 통계청 등의 중립적 기구에 충성스러운 측근을 들여보내 자연스럽게 장악하는 거다.조해주 선관위 입성, 장기집권 전략인가대통령이 인사청문회 없이 1월 24일 임명을 강행한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문제가 심상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작년 4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사퇴를 이끌어낸 것이 선관위였다. ‘5000만원 셀프 기부’는 위법이라는 선관위 판단에 김기식을 임명한 청와대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중차대한 기관의 중책을 맡은 조해주는 2017년 9월 더불어민주당이 발간한 ‘제19대 대통령선거 백서’ 785쪽에 공명선거특보로 명시돼 있다. 물론 본인도, 민주당도 백서 기록은 ‘행정착오’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거백서라는 것은 집권 시 논공행상의 근거가 되는 주요 자료다. 109명이나 되는 정무특보 이름 중 하나가 행정착오로 잘못 들어갔다면 또 모른다. 공명선거특보는 달랑 한명인데 한 일도 없이 이름이 기록됐다는 해명엔, 작년에 먹은 떡국이 올라올 판이다. 만일 다시 김기식 사태가 터진다면 선관위가 같은 판단을 할지 알 수 없다. 더 두려운 것은 이런 무리한 인사를 강행하는 의도가 대체 무엇이냐다. 문재인 정부와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만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촛불정부는 뭘 하든 정의라는 오만, 2020년 선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면 차라리 낫겠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노상 말하던 ‘20년 집권론’에 이어 최근 “20년도 짧다. 20년을 억지로 하겠다는 게 아니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서 한다”고 밝힌 건 단순한 시건방이 아닌 듯하다. 정교한 장기집권플랜이 작동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심판매수로 합법적 민주주의 죽이기‘나는 꼼수다’ 등장인물들이 언론계를 누비고 있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색깔이 달라진지 오래다. 이젠 놀라는 사람도 많지 않다. 독립성이 생명인 감사원에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 김종호를 사무총장으로 들여보낸 데 이어 감사원-청와대-국무총리실이 공직기강협의체를 상설 운영한다는 데도 조용하다. 앞으로 정부의 외교나 안보, 남북관계나 경제정책에 비판적인 공직자의 성(性)비위가 불쑥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날지 모른다. 청와대 사람들의 비위는 그냥 덮힐 가능성이 크다. 심판 매수가 민주주의 살해 공식이라고 하지 않았나. 쿠데타나 계엄령 선포처럼 독재의 경계를 넘어서는 명백한 순간이 없기 때문에 사회의 비상벨은 울리지 않는다.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과장이나 거짓말을 한다고 오해를 받는다.…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이 마지막 문단은 내가 쓰지 않았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베꼈을 뿐이다). dobal@donga.com}

    • 2019-01-30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왜 ‘도발’이냐면…

    ‘취미는 도발. 심심한 평화보다는 치열한 전쟁이 낫다고 생각한다.’ 생전 처음 내 책을 내면서 책날개에 썼던 자기소개 중 한 토막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이 테러를 당한 날, 나는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연수 중이었다. 1년 간 동아닷컴 블로그에 올렸던 뉴욕일기를 담아 ‘마녀가 더 섹시하다’를 내던 그 무렵, 나는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기자들은 큰 사건이 터지면 가슴이 뛴다.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으면 정말 심심하다. 2002년 여름 동아일보 첫 여성 논설위원(사실 나는 ‘논설위원인데 여자더라’ 쯤으로 봐주기를 바랐다)이 된 뒤엔 ‘횡설수설’ 하나 쓰면 온 세상이 내 꺼였다. 기자회견이든, 인터뷰든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고 나면 꼭 “왜요?” 물었고, 상대방은 당황한 듯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도 새로운 각도에서,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으로 내 글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모바일공간에 새롭게 글 쓰는 자리를 마련하니 나의 도발본능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대개 신문에서 도발이란 단어는 ‘북한의 핵 도발’ 때나 등장하고, ‘정부는 단호히 대처해야’라는 정답으로 끝나지만 도발은 기자의 특권이기도 하다. 도발적 질문!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는 질문에 열흘 이상 대통령과 청와대 관련 기사와 칼럼이 쏟아져 나온 걸 보시라. 도발(挑發).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함.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곤 나는 혼자 픽 웃었다. 저널리즘 책에 등장하는 감시견의 원칙 ‘괴로워하는 사람을 편안하게, 편안한 사람을 괴롭게 만들라(Comfort the afflicted and afflict the comfortable)’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19세기 말 시카고의 기자이자 유머작가가 가공인물의 입을 빌어 한 얘기였지만). 꼭 도발적 질문이 아니어도 좋다. 도발적 눈빛, 도발적 유혹, 도발적 행동, 도발적 글쓰기…. 도발은 가만히 있는 사람을, 잠자는 감각을, 너무 바쁘고 일이 많아 다른 쪽엔 전혀 신경 못쓰는 이성과 지성을 살짝 건드려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이런 도발을 하려면 나부터 내 안 어디엔가 숨어 있는 세포를 찾아야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2019년 나는 도발을 하기로 했다. ※사족…능력 탓에 매번 도발적 글쓰기는 안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오늘은 착해졌네 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

    • 2019-01-30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우리…안아볼까요

    괜찮은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대박일 것 같다. 아니 돈은 못 벌어도 좋다. 내가 체험한 감동적 효과를 전할 수만 있다면.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이고, 휴먼 터치여서 자본금도 거의 안 든다. 영어로 커들링(cuddling). 우리말로 하면, 그냥, 무조건, 따뜻하게, 안아주기다. 작년 말 동아일보 독자들의 전화를 받는 원주 콜센터 송년회에서였다. 신문 배달이 늦거나, 비가 와서 신문이 젖었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가 빠졌다며 화를 내는 독자들을 달래가며 절대 신문 끊지 않게 해주는 직원들이 고맙고 미안해서 나는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이들과 헤어지는 ‘프리 허그’ 시간, 키 작은 내가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고,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하면서 꼭 끌어안자 따뜻함이 밀려왔다. 온몸으로 축복을 주고 싶은 서로의 마음이 동심원 퍼지듯 전해지는 느낌이었다.그러고 보니 연애를 졸업한 뒤 내가 누구와 껴안아본 적이 언제였나 싶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좋아하는 딸과도 이렇게 마음을 다해 안아본 건 얼마 전 딸의 결혼식이 유일한 듯했다. 엄마는 내 손 잡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싫어서 엄마가 손을 잡으면 탈탈 털어내곤 했다(지금 내 딸이 그런다). 엄마가 살아있다면, 조그맣게 오그라든 엄마를 병원 침대 위에서라도 안아줄 텐데 엄마는 지금 없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껴안는 사이는 주로 연인, 아니면 부부다(진짜 부부끼리 껴안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셨으면 좋겠다).이렇게 안아본 게 언제였더라 마침 미국에선 ‘포옹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었다는 뉴스가 지난 연말 뉴욕포스트를 장식했다. 혼자 살거나 오래 살거나 어떤 사연이든 외로움에 사무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포옹 서비스업체 커들리스트(http://cuddlist.com) 고객 예약 건수가 올 한 해 평균 대비 50%, 전년 대비 90% 늘었다는 거다. 전문 교육과정을 통해 양성된 400명의 ‘포옹 전문가’들은 고객과 편안한 장소에서 만나서는 서서 가볍게 포옹하기부터 포옹한 채 소파에 앉거나 침대 위에 누워있기, 스푼을 포개듯 뒤에서 안아주기,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울 수 있도록 대주기, 그냥 포근하게 안고 가벼운 대화를 하거나 어루만져 주기 같은 서비스를 시간당 80달러에 제공한다. 성적 접촉이 아니다. 대기만성(대기만 하면 성감대)이어서 의지와 상관없이 신체적 변화가 생기는 이들도 있지만 커들리스트를 찾는 이들이 진정 원하는 건 따뜻한 관심이다. 터치와 포옹은 수단일 뿐이라는 거다. 실제로 미국 고객들은 불안과 고독, 스트레스, 상실감에 시달리는 40~60대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술집에 가서 아가씨들과 놀면 될 듯한데, 남성이라고 모든 외로움이 섹스로 해결되는 건 아니라고 한다(맞나요?) 충조평판 없는 옥시토신 효과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맞다. 하지만 그들도 각자 바쁘고 힘든 사람들이다. 친구가, 아내가, 부모님이, 심지어 아이들이 내 불안한 마음을 이해할 것 같은가? 너는 그게 문제다, 왜 마음을 고쳐먹지 않니, 같은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으로 내 가슴을 난도질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런 사람들한테 “나 좀 한번 안아줘” 한다는 건, 죽었다 깨도 못할 일이다. 커들리스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따뜻하게 안아준다. 한번 안겨보면, 안아보면 안다. 얼마나 마음이 가라앉고, 푸근해지고, 걱정이 사라지면서, 평화로워지는지. 한 타임에 우리 돈으로 10만 원, 괜찮지 않은가? (비싸다는 분들께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이 정도는 해야 ‘전문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명확하게 비용을 치러야 나중에 “미투” 소리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있다. 그 밖에 성적 관계로 진행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혀두는 의미도 있다고 미국에서는 설명한다나…) 박항서 감독의 포옹 리더십안을 포(抱), 낄 옹(擁), 포옹. 지금껏 내가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포옹의 장점은 무지하게 많다(미국 학자들은 참 쓸모 있는 연구를 많이 한다). 따뜻한 사람의 손끝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퐁퐁 솟구치게 해준다는 게 핵심이다. 옥시토신은 신뢰를 높여줘서 자신감이 생기고, 주위사람들도 믿게 해준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를 낮춰주는 건 물론이다. 그래서 포옹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치유의 행위가 된다. 많은 사람 앞에서 스피치하는 건 대기업 최고경영자도 떨리는 일인데 무대에 나가기 전 한번 안겨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퍼포먼스가 달랐다. 수학시험도 잘 봤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심지어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을 시켰는데 많이 안아주면 감기에 덜 걸리고, 일단 걸렸더라도 심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나도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픈 주사를 맞는 날이었는데(무슨 주사인지는 묻지 마시라) 이 나이에도 아파서 눈물이 나오는 주사였다. 그런데 주사 맞는 내내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아주자 정말 신기하게도 훨씬 덜 아픈 것이었다! 베트남의 영웅, 박항서 축구감독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선수들 발마사지까지 해주는 휴먼 터치라고 나는 믿는다. 포옹이 스포츠 경기 성적을 올려준다는 연구결과도 미국서 진작에 나왔다. 버클리대 마이클 크라우스 교수의 2009년 미국야구 분석에 따르면 포옹이든 하이파이브든 공 한번 치고 나서 주르륵, 선수들과 신체 접촉도 많은 팀이 성적도 좋더라고 했다. 괜찮다…괜찮다…괜찮다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친한 사람이 아니어도,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따뜻한 손길은, 가슴의 체온은 같은 효과를 낸다는 사실이다! 2018년 10월 타임지는 카네기멜런대 스트레스와 면역, 질병연구소의 포스트닥터 연구원 마이클 머피의 연구결과를 통해 포옹이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을 훨씬 긍정적으로 극복하게 해준다고 소개했다. 성과 나이, 인종, 결혼, 친소여부와 상관없이 나온 긍정적 효과다. 대판 싸운 원수(친구든, 상사든, 동료든, 애인이든)를 꼼짝 못하게 만들고 싶은가. 다신 안 볼 것처럼 돌아서 가다 냅다 뛰어와서는, 꽉 껴안아줘 보라. 물론 진짜, 당장 내가 커들링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새해, 힘들고 어렵고 먹먹한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 될 만한 글을 써보고 싶었던 거다.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극악한 말폭탄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가는 세상이지만 우리 모두는 한때 엄마의 따뜻한 품에 안겼던 사람들이고, 그 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임을 말하고 싶었다. 외로운가. 가슴이 아리고, 아프신가. 괜찮다. 당신을 안아주며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사족 ; 아…그러고 보니 우리 대통령이 왜 김정은한테 꼼짝 못하는지 알겠다. 작년 4월 판문점에서의 포옹 장면을 보면 김정은이 먼저 대통령의 목을 끌어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도권을 발휘한 것이다. 8월 판문점 두 번째 정상회담 뒤에도, 9월 평양공항에서는 심지어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이렇게 세 번 김정은이 대통령의 뺨에 자기 뺨을 대는 포옹을 했다(이때 대통령은 한 박자 늦게 대응을 한다. 미처 예상을 못했던 거다). 내가 강조하는 포옹은 아니다. 뺨을 뗀 김정은이 손을 뒤로 돌려 자기 등에 댄 대통령의 손을 뜯어내는 걸 보면 안다. 사회주의 국가 정상들의 의식(儀式)인 ‘사회주의 형제의 포옹’에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들였다고 나는 본다.dobal@donga.com}

    • 2019-01-30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죽고 싶을 때 꼭 해야 할 일

    꼭 그 의사 같았다. 진료하던 환자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는 정신과 의사의 기사가 뜬 2018년 마지막 날, 나는 ‘우울증 앓는 의사’의 에세이집을 떠올렸다. 이름도, 책 제목도 생각나지 않지만 느낌은 대개 정확하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이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과 전문의 임세원. 빈소를 찾은 사람들 다섯 중 한 명은 환자들이었다니 얼마나 좋은 의사였는지 능히 짐작된다. 절대 고인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는 “결코 원만한 성격이 아니었으며 타인과의 관계도 부드럽다기보다 까칠한 편”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2016년에 쓴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다. 그랬던 사람이 바뀌었다. 미국 연수 중이던 2013년,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어린 두 아들을 생전 처음 보는 미국인들이 구해준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에 그는 감동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크게 바뀐 것처럼 안 보일지 몰라도 타인들에게 가능한 한 친절해지고자 노력하고 있다…내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매일 만나는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고, 외래 진료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전력투구를 한다.”10년 이상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도 한결같이 ‘친절한 선생님’이라는 걸 보면 자신이 까칠한 성격이라는 건 겸손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아니, 실은 까칠했는지도 모른다. 도통하지 않은 이상, 누구에게나 언제나 부드러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긴 대로 살지 않고 허리통증까지 참아가며 친절해지도록 노력을 했고, 그래서 환자들이 원래 친절한 의사로 알고 있다면 더 훌륭한 사람이다. 임세원도 아파서 죽고 싶었다다시 들춰본 그의 책에는 우울증이 아니어도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이 공감할 내용으로 가득했다. 실제로 그 자신이 고통을 끼고 사는 사람이었다. 자기 인생 최고의 전성기 같던 2012년 6월의 어느 금요일, 해외 연수 환송회를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인 뒤 이미 약속이 잡혀 있던 새벽 골프까지 잘 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아파트에 도착해 주차하고 내리는 순간, 마치 누가 허리를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시작됐다. 디스크였던 모양이다. 수술을 포함해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으로 인해 우울증 치료 의사는 그만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면서 모두에게 폐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어 자동차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 자살이라는 것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그는 한국자살예방협회 교육위원장이었다). 드디어 자살을 결심한 날, 자동차를 끌고 나가려는데 글쎄 아무리 찾아도 자동차 키가 안 보이는 게 아닌가.작은방까지 가서 키를 찾던 그는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곤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러고는 자살 생각을 접었다. 차츰 그는 고통과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해갔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책을 썼다.우울해서, 사는 낙이 없어서, 내가 없어지면 고통도 사라지겠지 싶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럴 때 절대로 해선 안 될 일은 너무나 많다. 서두르지 않기(특히 자살. 죽고 나면 영화처럼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원인을 찾지 않기(질병도 대부분 원인을 알 수 없다. 설령 안들, 원인을 바로잡는다고 결과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족들한테 신경질내지 않기(돌아서면 당장 후회한다)…. 이보다 좀 쉬운 일이 있다고 임세원은 친절하게 알려준다. 죽더라도 임세원 말대로 해본 다음에, 죽도록 하자. 첫째, 루틴을 유지한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포함해 다 때려치우고 싶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고통스럽고, 일어나기도 싫고, 밥도 먹기 싫고, 누구를 만나기도 싫고, 누가 말 시키는 것도 싫을 것이다. 그럴수록 이제까지 해오던 일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 직장은 절대 그만두지 말 일이다. 가장 힘든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면 안 된다. 지금은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시기여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 그만둔다고 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도를 닦듯, 제때 일어나고 세 끼 밥시간에 밥을 먹고 동창회에 나가는 일상을 계속하라. 매일 나가는 직장이 없다면 아침 도서관이나 주민센터 운동이라도 규칙적으로 가라. 이렇게 하루하루 견뎌 나가다 보면 정말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조차 마침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단지 내 인생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각 하나로 인해 나머지 인생의 조각들까지 전부 없애 버리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임세원 말씀).다음에 쓴 대목은 거의 성자(聖者)의 경지다. “평생을 고통에 시달린다고 해도, 수많은 오늘을 견디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둘째, 몰입한다. 일에 열중하거나, 좋아하는 영화나 책에 몰두하거나, 하다못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몰입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더 고통스럽고, 죽고 싶은 생각만 들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고? 그럼 새로운 것을 하라. 운동도 좋고, 컴퓨터게임도 좋다. 전혀 모르는 언어, 독일어 강습을 받거나 단체여행을 가보라. 그래도 뭔가에 몰입해 있어야 시간도 후딱 가면서 고통에서 잠시라도 자유로워지고 죽고 싶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때 정말 중요한 팁 하나! 비싼 학원비는 냈지만 막상 갈 때가 되면 분명 가기 싫어질 것이다. 우리의 임세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원래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불안은 기본적으로 예측 불가능성에서 나온다. 불안한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자꾸 변경함으로써 미래를 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계획대로 해보다가 잘 안되면 그때 바꿔도 늦지 않다.” 혹시 아는가. 새로운 것을 해보다가 진짜 좋아하게 되고, 살아갈 이유가 될지. 셋째,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여기서부터는 임세원이 말하지 않은 내 생각이다. 내가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것을 주변에선 모를 수 있다. 설사 알더라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라서 손을 내밀지 못할 수도 있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없으면 천사라고 소문난 직장 동료도 좋다. 생명의 전화도 있다 1588-9191) “죽고 싶다”고 말하시라. 듣고 나서 “그래 죽어라” 할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대부분 위로의 말을 해줄 것이다. 아무리 성의 없는 위로라고 해도, 그게 뜻밖에 알부민 주사가 된다. 전문적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미국에선 ‘관심 산업’이 성장세라고 15년 전 쓴 기억이 있는데 이유는 가장 친한 친구의 자세로 고객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진실과 상관없이 고객이 가장 듣고 싶어 할 말만 해주기 때문이었다(비싼 돈은 그래서 받는 거다)! 가끔은 진실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내가 아무리 알쓸신잡(알아봐도 쓸데없는 신기한 잡놈)이라고 해도, 내게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 같은 사람도 괜찮다면, 오늘은 내가 누군가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당신, 최고의 독자이셨어요. 정말 고맙습니다^^dobal@donga.com}

    • 2019-01-30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노영민은 “손혜원 안된다” 직언할 수 있나

    손혜원 의원은 억울할 것이다. 투기(投機)란 ‘시세 변동을 예상해 차익을 얻기 위해 하는 매매 거래’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엔 나와 있다. 그의 가족과 참모의 가족, 그리고 남편이 이사장인 문화재단에서 전남 목포 구(舊)도심 건물과 땅을 집중 매입한 건 맞다. 그러나 차익을 얻기 위해 산 게 아니면, 투기라고 할 순 없다고 나는 본다. 이곳에 자신의 100억 원대 나전칠기 컬렉션을 넣은 박물관을 만들고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었다는 말도 진심일 것이다. 근대문화유산공간을 ‘힙’하게 살려내 세계적 관광지로 키울 전문가를 투기꾼으로 몰다니, 죽어도 결백을 밝히고야 말겠다는 투지도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자기는 선의(善意)이고 비판은 모두 악의(惡意)라는 손혜원의 태도는, 불편하다. 그 자신감의 근거를 전 국민이 알고 있어서다. 손혜원 힘의 원천엔 ‘언론 기사만 읽지 않는 SNS 사용자(사실상 국민 모두)가 있다’고 의원실은 자부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초선 의원의 탈당 자리에 괜히 호위무사로 나섰겠나. 성공한 여성으로서 자기 확신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투기, 피감기관에 대한 압력 행사, 이해충돌 등 한 가지라도 걸리는 게 있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며 검찰 수사를 자청할 ‘멘털 갑’은 흔치 않다. 대통령 부인의 절친(절친한 친구)을 감히 검찰이 건드리겠느냐는 오만이 엿보인다. 손혜원은 가족 친지가 목포 부동산을 사들이던 2017년 10월 31일 문화체육관광부 국감에서 “문화재재단과 박물관재단 등 4개 단체장과 자리를 마련해주면 내년 예산을 얼마나 효율성 있게 쓸 수 있는지 말씀드리고 실천을 해보겠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공모전을 언급했다. 이듬해 1월 문화재청은 근대역사문화공간 공모에 들어갔고 8월 목포를 선정했다. 그래도 손혜원이 “압력을 행사한 바 없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부친의 독립유공자 서훈이든, 문화계 인사 문제든 그가 실제로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 살짝 의견만 귀띔해도 대통령 부인의 절친임을 아는 사람들이 알아서 기었을 가능성도 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손혜원이 이를 의식하지 못할 리 없다. 공직자 이해충돌 금지 의무까지 안 가더라도 보통의 의원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로 민원을 하진 않는다. 보통 아닌 손혜원이 “지금까진 이익 본 게 없어 이해충돌도 없다”고 하는 건 공인의식 결핍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그는 근대역사문화공간 지원금으로 박물관을 세우고, 기부채납 명분으로 사실상 주인이되 평생 자원봉사자로 기록되는 명예를 거머쥘 판이다. 권력자 측근이 ‘국정의 사유화’ 의혹을 일으킨 이번 사태를 놓고 청와대는 지난주 “아무리 대통령 배우자의 친구라 할지라도 현역 국회의원이어서 감찰이나 조사 자체가 월권”이라고 굳이 선을 그었다. 검찰 역시 모든 혐의를 덮는 식으로 알아서 처리해 버린다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 것이 뻔하다. 정무적 판단에 능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서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혜원이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은 조건반사처럼 대통령 부인을 떠올린다. 탈당 기자회견 때 손혜원이 원내대표의 어깨에 손을 척 얹는 장면에서 박근혜 대통령 때 남자 비서관이 휴대전화를 셔츠에 닦아 건네자 척 받는 최순실이 연상됐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최순실을 내치도록 직언했더라면 나라의 명운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누구도 말을 못하는 지금, 그가 의원직을 내려놓고 문화사랑의 본업으로 돌아가도록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것은 비서실장만이 할 수 있다. 조용히 대통령 부인에게 절교를 당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설 연휴 고향에 모인 민심은 손혜원과 최순실을 비교하며 악화될 공산이 크다. “손혜원은 안 된다”고 손절매(損切賣)하지 않을 경우, 숙명여고 출신을 둘러싼 루머가 레임덕을 앞당기고 향후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모양새가 걱정스럽다면 노영민이 빠지면서 공석이 된 중국 대사로 내보내는 건 어떤가. 어차피 전임자처럼 한중 관계 개선 같은 큰일에 신경 쓸 상황도 못 된다. 이참에 손혜원이 중국 나전칠기를 연구한다면 목포에 들어설 나전칠기 박물관의 격이 높아질지 누가 아는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1-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대통령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나도 궁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지표가 부진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고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도 현 정책 기조로 계속 가겠다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10일 신년 회견에서 이 질문을 받은 대통령의 입술은 굳어 있었다. “기자회견문 30분 내내 말씀드린 것이고 새로운 답이 필요하지 않다”며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앞서 중국 기자가 한반도 평화 관련 중국의 역할을 묻자 “아까 답을 드렸다”면서도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같은 내용을 반복 설명한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중심경제 대신 짐승중심경제로 가자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하지만 방향이 옳다고 지금의 방법도 옳다는 주장은 독선적이다. 경제정책이 옳다는 걸 확실히 체감시키는 것이 대통령의 올해 목표라지만 이미 적잖은 국민은 소득주도성장 핵심인 최저임금 급등의 폐해를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다. 최저임금 때문에 직원 10명의 작은 출판사에서 2명이 떠나도 인원 보충을 못 하고, 정부지원책도 복잡해 포기하더라고 9일자 뉴욕타임스까지 세계에 전파했을 정도다. 이런 정책을 바꾸지 않는 근거를 묻자 대통령이 답변을 거부했을 때, 내가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기자는 물어뜯어야 기자다. 대통령 편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 간신이고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충신”이라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되레 대통령답다. 다행스럽게도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감의 원천을 노출했다. 노영민 비서실장 인사를 놓고 “친문(친문재인) 강화라는 평가가 나오는데 안타깝다. 청와대엔 친문 아닌 사람 없다”는 발언을 통해서다. 대통령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작년 말부터 청와대 개편론이 빗발친 건 대통령을 바꿀 순 없으니 비서진이라도 바꿔 국정 쇄신을 하라는 의미였다. ‘운동권 청와대’로 출범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두 번째 비서실장으로는 대선 때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는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영입해 싫은 소리도 청해 들었다. 원조 친문에다 운동권 출신인 노영민 기용은, 마치 원조 친박 김기춘을 불러들임으로써 윗분의 뜻만 떠받들다 결국 몰락을 몰고 온 제왕적 대통령의 퇴행을 연상시킨다. 친문패권주의와 이념으로 뭉친 ‘청와대 버블’ 속에서 비서진이 어떻게 보고하든, 무엇을 써주든 믿고 따르는 대통령이면 자신감에 불타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됐다”는 기자회견문도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잘못 입력한 그대로 나왔을 거다. ‘청와대 정부’는 가짜뉴스 박멸에 나서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진보적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극단적 불평등에 효과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지표’로 주목한 게 팔마 배율이다. 하위 40% 가구의 소득점유율 대비 상위 10%의 비중을 말하는데 2018년 유엔 지속가능발전지수에 발표된 한국의 팔마 배율이 1.0으로 스웨덴과 같다. 눈을 씻고 찾아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자료 역시 한국은 1.04로 네덜란드와 같다(2015년). OECD 36개국 중 우리보다 팔마 배율이 높은 불평등 국가가 무려 22개국이다! “양극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대통령 발언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잘못된 인식에서 만든 정책으로 성과를 내겠다며 무리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더구나 “정책 변화가 두렵고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기자회견문을 읽었으니 대체 이유가 뭔지, 베네수엘라처럼 사회주의경제로 가는 건지 국민은 알고 싶다.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서 과거처럼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대목은 더 섬뜩하다. 청와대가 경제부총리의 대통령 면담도 불허하고, 영장 없이 개인 휴대전화까지 탈탈 터는 등 모든 권력기관을 다 합친 것보다 크게 국민을 실망시킨 일이 미꾸라지와 망둥이의 폭로로 드러났는데도 어떻게 써준 대로 읽을 수 있나. 문 대통령은 “정책의 최종적인 결정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렇게 하라고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그렇게 법과 제도와 국민 위에 존재한다면 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을 당한 건지 꼴뚜기에게 물어보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1-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2018년, 자유민주주의가 저물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어코 천기를 누설했다. 28일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정치권에서 말하는 걸 보면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이 많다. 그 사람들까지 우리가 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건 말실수가 아니다.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하는 정치인은 배제 대상이라는 진심의 토로다. 장애인 폄하 의도는 없었다지만 집권세력 비판을 가짜뉴스로 보는 인식은 드러났다. 여당 대표가 ‘포용’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새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밝힐 ‘포용국가’ 국정비전의 허구성을 폭로했는데 박수가 나왔다니, 자살골에 환호하는 집권당 수준이 걱정스럽다. 민주주의의 첫발이 1인 1표라면, 자유주의의 첫발은 권력의 제한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의 차이는 두려움 없이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느냐에 있다. 이건 겁 많은 나의 주장이 아니라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가 10일 ‘남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 우파 권위주의에서 좌파로?’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다. 퍼시픽포럼의 타라 오 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전투적 언론노조를 통해 MBC와 KBS 이사진을 퇴진시키고 새 사장을 앉혀 정치적 반대자들을 제거했다”며 이를 적폐청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일 뿐이다. 다수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법치(法治)이고 이것이 보장되는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을 구속시킨 한국 정부는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했다. 이른바 진보 정부가 북한이 원하는 한미동맹 폐기 수순으로 가고 있으니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 중 어느 쪽이 국가안보에, 한국 민주주의에 위협적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미 정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의 비판 언론 옥죄기를 특히 우려하는 것은 남북관계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이해찬은 행사장에서 “머지않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답방하는 중요한 시기가 온다”며 “내년에 남북 평화체제를 만들어 내고 그 힘으로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하나의 천기누설이다. 진보세력의 ‘20년 집권’ 비결이 민생 아닌 김정은에게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마침 어제 온 김정은의 따뜻한 친서에 반색을 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이 정부는 과연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원하느냐는 의문까지 제기되는 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국민의 적’이라 욕하는 판에 미국이 한국 걱정할 자격 있느냐고 반미좌파는 코웃음 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엔 백악관의 CNN 기자 출입정지 조치에 즉각적 해제를 명령한 미 연방법원이 존재한다. 사법부의 대통령 권력 견제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미국에 비하면, ‘재판 거래 의혹’을 빌미 삼아 촛불정신 받들라는 대통령 앞에 사법부 수장이 적극 협조를 맹세한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는 곤고(困苦)하다. “자유민주주의 시대는 끝났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지난 3월 선언했듯, 2018년은 자유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이 울린 해였다. 21세기의 비(非)자유주의 독재자는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는다. 대중의 분노나 위기를 이용해 구원자 같은 카리스마로 선출되고, 공포의 적폐청산 속에 조용히 언론자유와 독립적 사법제도를 무너뜨리고는,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으로 영구집권을 꾀하는 것.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지난 9월 분석한 자유민주주의 붕괴 공식이 헝가리, 폴란드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들어맞는다는 현실에 소름이 돋는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도덕성과 정의(正義)를 코에 걸고는 자유민주주의를 모독하는 데는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잃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이들 비자유주의적 권위주의 정권이 워낙 뻔뻔스럽게 해먹는 바람에 결국은 무너진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천만다행히도 문 대통령은 미국까지 ‘정권의 2인자’로 알려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을 경질할 작정이라고 한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문제로 오늘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도 문책 경질하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에 아직 희망이 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길 바란다”는 문 대통령의 성탄절 덕담도 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8-12-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조국이 위험에 처하다

    느낌이 좋지 않다. 해외 순방 중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가 터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정의로운 나라를 이뤄내겠다”며 믿어달라고 했다. 당연히 국민은 조국 민정수석의 경질을 예상했지만 조국은 14일 특별감찰반에서 ‘특별’만 떼어낸 쇄신안을 발표했을 뿐이다. 바로 그날 전 특별감찰반원이 대통령 측근의 비리 의혹을 보고했다가 쫓겨난 것이라고 폭로했고, 청와대는 부실 대응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곡절이 있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다. 요즘 서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조던 피터슨이 베스트셀러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쓴 법칙 중 하나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라는 거다.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실수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틀렸다는 것이 입증돼도 그 방식을 고집하는 정권 때문에 성장은 정체되고 국가는 타락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 마치 한국 실정을 알고 쓴 것 같지 않은가. 미국서 ‘왜 좌파는 피터슨 현상을 두려워하나’ 같은 기사까지 나오는 것은 임상심리학자인 피터슨이 인간 본성과 사회 질서를 예리하게 꿰뚫어 봤기 때문일 터다. ‘승리한 늑대는 패자를 (더 공격하지 않고) 무시한다. 승리자가 된 늑대도 사냥하려면 협력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대목은 보수 궤멸을 위해 적폐청산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는 얘기로 읽힌다. 북한 김정은 답방을 목 빼고 기다리는 청와대에는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자기 영역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착취 대상이 되기 마련’이라는 대목을 읽어주고 싶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피터슨의 핵심 메시지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경고다. 12월 11일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올해 재출간된 ‘수용소 군도’ 서문에서 그는 “부(富)가 쉽게 창출되지 않음에도 공산주의는 분배로 경제적 평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며 “여기서 나오는 건 인간을 개조하겠다는 전체주의적 욕망”이라고 갈파했다. 피터슨은 마르크스주의와 전체주의, 여기서 진화한 네오마르크시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같은 좌파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벗겨낸 유튜브로 스타가 됐다. 그는 현재 좌파가 보이는 행태가 과거 소련의 행적과 닮았다고 본다. 좌파 교수들이 대학을 진지 삼아 집단적 정치행동이 도덕적 의무라며 오류투성이 급진적 학문을 가르친다는 그의 지적은 1992년 울산대 교수 시절 ‘현 단계 맑스주의 법이론의 반성과 전진을 위한 시론’을 쓴 조국 민정수석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조국은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했다고 해서 맑스주의의 존립 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엄존하는 현실자본주의 모순과 대결하면서… 국가법의 사멸과 인민의 자치규범의 창출을 지향”할 것을 밝힌 바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헌법의 영토조항 폐지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재규정,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점이 같은 해 쓴 ‘새로운 한반도 질서와 법률투쟁의 쟁점’에 등장한다. 26년 전에 쓴 논문이라고 해서 생각이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다. 2010년 그가 심사위원 중 하나로 ‘민주법학지’ 게재를 결정한 ‘밖에서 본 민주법연 20년’ 논문에도 조국이 쓴 대목이 그대로 인용됐다. 특히 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것은 어떠한 수식어를 붙이든 ‘자본주의 체제의 상부구조’를 의미하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전면 배제하고 있다”고 적은 점은 눈 씻고 볼 필요가 있다. 올해 초 대통령 개헌안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문구에서 ‘자유’를 빼려고 시도하고, 역사 교과서 집필 지침에선 기어코 ‘자유민주주의’를 빼버린 이유가 여기서 드러나는 듯하다. 그 숱한 인사 검증 실패와 청와대 기강 해이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조국 경질 요구가 “사법개혁을 좌초시키겠다는 특권세력의 반칙”이라고 했다. 조국만이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면 그게 대체 어떤 개혁일지 두렵기 짝이 없다. 프랑스 최초의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인 사노당은 1888년 퇴역 장군 불랑제가 공화정을 무너뜨릴 위험성을 보이자 자신들이 발행하는 신문에 ‘조국(祖國)이 위험에 처하다’라며 자유주의 구하기에 나섰다. 1993년 울산대 시절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조국은 어떤 식으로 나라를 구할 작정인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1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괴물은 정권 초 머리카락을 보인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좋은 점이 있다면 5년 단위로 과거를 비교할 수 있다는 거다. 한 번 본 소설도 다시 읽으면 복선이 보이듯이 머리카락 보일라 숨어 있던 권력비리도 한 자락은 볼 수 있다. 정권마다 이런 과거가 거듭됐으면 교훈을 얻을 만도 한데, 인간은 변하지 않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게 슬플 정도다. 도덕성을 코에 건 문재인 정부도 ‘행정관의 난(亂)’을 피해 가진 못했다. 지난주 전원 교체했다는 청와대 특별감찰반 행정관들의 비리 중에는 장관 이름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나온다. 그런데도 조국 민정수석은 사과 한마디 없이 “소속청 감찰을 통해 사실관계가 최종 확인되기 전에는 일방의 주장이 보도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며 취재 보도까지 제한하려 들었다. 5년 전도 비슷했다. 골프 접대를 받은 청와대 행정관이 징계도 없이 원대 복귀했다는 2013년 11월 동아일보 단독보도에 이정현 홍보수석은 “청와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부처로 원대 복귀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징계”라며 청와대 권력의 오만을 감추지 않았다. 다섯 달 뒤 이들이 정기인사에서 보직까지 받았다는 보도가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기 위해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서실에 유감을 표명하며 개혁 의지도 밝혔다. 지금 생각하면 섬뜩하다. 그때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 같은 문서들을 누군가 빼돌렸음을 깨닫고 유출자 색출로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2014년 말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가 대통령”이라는 전 행정관의 폭로 역시 우습게 듣지 말아야 했다. 만일 ‘기춘 부원군’이 윗분의 뜻만 받드는 대신 직언하는 비서실장이었다면, 대통령이 ‘문고리 3인방’과 최순실을 끊어내는 개혁을 해냈더라면 청와대 주인은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청와대 권력 서열 1위는 문재인, 2위는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3위는 김경수 경남지사”라는 대선 댓글 조작사건 드루킹의 발언도 새겨둘 필요가 있는 건 아닌가.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청와대 A, B, C와 D 의원이 대통령 말도 잘라먹고 강부자(강남, 부동산, 부자) 인사를 했다는 정두언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폭로는 큰 틀에서 틀리지 않았다. ‘만사형통(萬事兄通)’ 이상득의 측근인 ‘왕비서’ 박영준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을 다신 호가호위(狐假虎威)하지 못하게 했다면 민간인 불법 사찰이나 형님의 구속 같은 불상사는 없을 수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도 다르지 않다. 2003년 2월 벌써부터 인사청탁설이 나돌던 대통령의 형 건평 씨를 면담하고는 “해프닝성”이라고 일축했던 ‘왕수석’이 문재인 민정수석이었다. 노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통령은 2009년 한 언론에서 “노건평 씨와 박연차 회장의 관계를 볼 때 사고 날 가능성이 있어 출범 초부터 유심히 워치했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듯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기 한 달 전 인터뷰에서다. 민정수석이, 비서실장이 대통령과 정부의 명운을 좌우할 순 없다. 그러나 이번 같은 청와대 기강 해이 사태는 청와대 대응에 따라 ‘정의로운 나라’로 바뀌었음을 체감할 수도 있는 법이다. 거꾸로 정권의 몰락을 앞당길 수도 있다. 대통령한테 대리운전을 시킨다는 말까지 듣는 ‘전대협 청와대’가 걱정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노무현 시절엔 야당은 물론 여당도 가끔 할 말을 했다. 당시 김우식 비서실장은 택시기사에게 들은 쌍욕까지 대통령에게 전했다. 박근혜 시절에도 집권당 의원이 대놓고 김기춘 실장 경질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제 더불어민주당은 사과 논평을 내면서도 비서실 문책 요구는커녕 “지난 10여 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한 것은 불공정과 불의의 역사였고 심지어 최순실이라는 괴물마저 탄생했다”며 전임 정부 핑계를 대는 방자한 태도였다. 검찰마저 경찰과 충성 경쟁을 하고 특별감찰관은 공석이며 감사원 역시 15년 만에 벌인 청와대 감사에서 내부 매점과 카페 수의계약 같은 가벼운 비리만 잡아내는 마당에 비서실 권력을 견제할 곳은 없다. 지난달 국감에 나온 임종석 비서실장을 향해 야당 의원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최순실 들먹일 것 없다. 청와대나 괴물이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12-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公귀족만 살기 좋은 약탈적 포용국가

    “권력에 중독된 겁니까?” 지난해 4선 출마를 앞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독일 슈피겔지가 측근 인사를 지적하며 던진 첫 질문이다. “노”라는 짧은 답변에 “휴브리스(hubris·오만)를 막고 권력중독에 빠지지 않을 전략을 갖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메르켈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언론에 나오는 비판적 기사들을 읽는다.” 그리고 덧붙였다. “참모들이 사안을 어떻게 보는지 내게 숨김없이 보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남의 나라 얘기를 들먹이는 건 “대통령이 왕실장 임명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지적 때문이다. 김수현 대통령사회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모자라 ‘다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새 국가비전의 3개년 계획까지 맡겼다니 기가 막힌 듯했다. 대통령이 비판적 기사를 읽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집단사고에 빠진 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경기침체 경고음도 못 듣거나, 들어도 국정기조엔 문제가 없다고 보거나,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정부가 옳다는 대통령의 신념이 워낙 강해 숨김없이 보고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정부 운영의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 ‘사회적 가치’이고 그 대표적 정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부는 ‘사회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로 사회적 가치를 정의한다. 전체 효용의 극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익과 다르다. 진입장벽 제거 등 경쟁 활성화를 ‘넥스트 자본주의자 혁명’으로 제시한 이코노미스트지의 처방과도 거리가 멀다. 2014년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을 발의하며 “사회적 가치를 우리 사회의 운영 원리로 설정해야 협동과 상생이 실현되는 사회로 갈 수 있다”고 한 것이 현실로 된 셈이다. 이 사회적 가치의 잣대로 지금까지의 인사와 정책을 들여다보면 모든 의문이 풀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효율성과 국가경쟁력 등을 고려한 비정규직이나 성과급제는 있을 수 없는 제도였다. 김수현이 사회수석 때 지휘한 원전 폐기야말로 사회적 가치에 딱 맞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의 상위 개념이므로 그가 경제·사회정책을 통합해 포용국가 비전을 설계하는 정책실장을 맡는 것도 당연했다. 문제는 경제·사회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체제 변혁을 방불케 하는 이 가치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사회적 가치는 어떤 시대, 어떤 공동체가 추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도덕국가 조선왕조로 돌아가는 게 아닌 한, 개념을 획정하는 작업이 선재(先在)해야 한다. 기준은 헌법이어야 하지만 아니어도 방법이 없다. 김수현이 9월 ‘포용국가 전략회의’에서 3대 비전으로 소개한 사회 통합의 강화, 사회적 지속 가능성 확보, 사회 혁신 능력 배양에는 ‘사회’가 돌림자로 들어가 있다. 정부가 기회와 권한을 배분한다는 점에서 국가 권력의 비대화, 관료의 특권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결과적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포용국가 전략은 약탈적 성격을 지닌다”고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우려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정부에서 꽃길만 걷는 집단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공공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규제권력과 독점업체를 갖고 있으면서 시장원리는 배제하는 공공부문은 거대한 지대추구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정규직 평균 연봉이 중소기업 3595만 원, 대기업 6460만 원인데(한국경제연구원 조사) 공무원 평균 기준소득이 연 6120만 원이다(인사혁신처 고시). 상위 10%의 최저선이 6746만 원이니 공무원도 상류층에 속하는 마당에 홍장표 소득성장특위 위원장은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줄여 협력업체의 임금 인상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공직자들이 앞장서겠다고 하기는커녕 참 양심도 없는 소리다.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혁신적 포용국가를 국가비전으로 채택했다. 3개년 계획까지 갈 것도 없다. 대통령부터, 공공기관 공귀족부터 봉급 깎아 최저임금 노동자와 나누면 양극화도,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단박에 해소될 것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11-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대통령정책실장’ 이참에 없애라

    마침내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을 내보낸다. 청와대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의 ‘경제 투톱’ 교체 시점과 후보군을 놓고 고심 중이라는 뉴스가 주말을 장식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정책실장 후임에 대해선 생각도 말기 바란다. 이유는 첫째, 대통령비서실엔 실장이 1명만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비서실 직제 관련 정부조직법 14조 1항은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을 둔다’, 2항은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정책실장이라는, 비서실장과 동급의 또 다른 실장에 대한 규정은 눈 씻고 봐도 없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 대통령의 국가정책 뒷받침을 위해서라며 ‘대통령비서실에 정책실을 두고, 실장 1명을 둔다’는 대통령령을 국무회의에서 처리했다. 모법(母法)인 정부조직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정입법이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현행 정부조직법의 규정을 위반한 것은 헌법상의 대원칙이며 헌법정신인 법치행정의 원리를 훼손한다’는 논문도 최근 법학논총에 발표됐다(김성배 국민대 교수의 ‘행정조직 법정주의와 대통령 보좌조직 구성상의 한계’). 청와대가 ‘유훈정치’처럼 따르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4월 대통령령을 통해 정책실장을 두기는 했다. 그러나 선례가 있다고 또 법을 위반하는 건 적폐를 쌓는 일이다. 현 정부의 시대정신이 ‘내로남불’이라지만, 2015년 국회법 98조 2항 개정안(행정입법이 법률과 합치되지 않으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을 요구했다 ‘유승민 사태’까지 벌어진 일도 남의 일로 칠 순 없을 것이다. 문재인 당시 야당 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며 “여야가 합의한 입법 취지는 (대통령령을 고치도록) 강제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최순실 사태와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대통령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법치주의와 헌법수호의 엄중함이었다. 여권이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1명 추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에 나선다면 위헌성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 핵심 프로젝트를 위해선 전담 실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나는 반대다. 이참에 정책실장을 없애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이번 정부가 과거 제왕적 청와대 뺨치는 ‘비서실 정권’이기 때문이다. 장하성은 8월 22일 국회 추궁에 “분명히 말한다. 경제 사령탑은 당연히 김동연 경제부총리”라고 했다. 그러고도 나흘 뒤 기자간담회에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당위성을 강변하며 “양극화의 고통을 가져온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최근 시정연설에서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복창한 걸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대통령과 호흡하는 정책실장이 경제 총사령탑인 거다. 대통령에 충성하는 참모조직이 내각의 꼭대기에 올라앉는 것이 적폐 중에서도 왕적폐다. 권력은 만담가도 강심장으로 만든다. “문 대통령이 참모진에게 금융계 인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한 사실이 15일 확인됐다”고 파이낸셜뉴스가 올 1월 16일자 1면에 보도했는데도 정책실장은 1월 30일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에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에 지원하라고 전화했다. 이것이 ‘정의로운 나라’의 청와대 기강인가. ‘꿔온 인사’가 이럴진대 캠코더(선거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가 새 정책실장이 되면 청와대는 얼마나 하늘을 쓰고 도리질할지 나는 두렵다. 인사농단도 겁나지만 국정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는 국정농단은 더 무섭다. 후임으로 거론되는 김수현 사회수석에 대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그가 정책실장 되면, 누가 경제부총리가 되건 똑같이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정책실장을 폐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세계 경제가 하향 국면에 들어서면서 국내 경기는 세계 경기보다 더 뚜렷하고 장기적인 하향 흐름이 이어진다는 2019년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대착오적 이념에 사로잡힌 청와대 실세가 ‘경제 투톱’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시장을 헷갈리게 해도 될 만큼 세계는, 우리 경제는 한가롭지 않다. 그래도 정책실장을 둬야겠다면 차라리 정책반장이나 왕수석이라고 하기 바란다. 장관급 봉급에 들어가는 혈세라도 좀 줄일 수 있게.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11-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대한민국이 공중납치 당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자리 찾는 조카딸한테 진작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권할 걸 그랬다. 용역업체라도 상관없다. 서울시가 산하 서울교통공사의 자회사와 용역회사까지 무기계약직 1285명을 일반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교통공사로 직접 고용했고, 이 중 8.4%(108명)는 임직원 친인척이라는 국정감사 자료에 절로 치민 생각이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혼자 안전문을 점검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열아홉 살 김모 군. 박원순 시장의 페이스북 글대로 우리는 용역업체 직원 김 군의 뜯지 못한 컵라면에 가슴 아파했고 ‘위험의 외주화’를 반성했다. 그래서 사고 대책으로 나온 안전업무 직영화 방침에 진심으로 박수쳤다. 박 시장은 ‘이번에 무기계약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된 분들도 다 김 군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으나 사실과 다르다. 안전업무뿐 아니라 식당과 목욕탕 직원, 청소노동자까지 자회사의 무기계약직(고용 기간이 정해지지 않아 정규직으로 분류된다)도 아닌, 선망의 직장 공기업의 일반 정규직이 됐다. 이런 특혜적 정규직 전환이 “노조 요구를 들어준 게 아니라 정부와 박 시장의 노동정책이 합쳐진 결과”라는 진성준 정무부시장의 말도 절반만 맞을 뿐이다. 권익위원회가 작년 10월에 낸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는 “청소노동자들이 가입돼 있는 민노총 여성연맹에서 자회사가 아닌 공사의 직접고용을 주장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취업준비생은 물론 아직도 관존민비(官尊民卑) 시대에 사는 일반인이 분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적어도 공공기관 채용에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당선 직후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민노총을 믿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 공기업에 들어가 있을지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6월까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었던 진성준은 정규직화가 시대적 요구라고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비정규직 감축이 대선 공약인 건 맞지만 세계적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공공부문…조사’도 독일에서 1990년대 신공공관리 이후 재정 절감과 경쟁시스템 도입으로 시간제와 기간제 등 비정규 고용이 확산됐다고 소개했다. 2015년 6월 현재 공공부문 전체 580만 명 중 400만 명이 기간제를 포함한 전일제 고용이고, 나머지 180만 명이 시간제 고용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하는 이 나라도 최소한 32%가 우리 식으로 치면 비정규직이라는 얘기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독일에선 정규직, 비정규직 간 임금과 처우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공부문 산별직무급에 따라 1∼15등급으로 정해진 임금표가 똑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보고서는 “독일 사례처럼 고용형태상의 차이와 무관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따른 차별 해소가 우리나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기본원칙이 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정규직화부터 강행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위기’를 주제로 열린 구국재단 세미나에서 “현재 대한민국은 공중 납치된 항공기와 같다”고 했다. “기장이 납치범으로 바뀔 때 승무원들은 선한 웃음과 안심시키는 목소리로 승객들을 평안하게 해주어서 비행기가 납치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 교수는 납치범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으나 노동세력도 그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17년 2월 18일, 시위를 사실상 주도해온 민노총의 전·현직 활동가들이 마련한 사회연대노동포럼 결의대회에서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철폐 등이 담긴 그들의 정책제안서를 받았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도 참가한 이 자리에서 지금 주중대사인 노영민 전 의원은 “이번에는 정권을 같이 만들어서 정권교체 이후에도 참여해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덕담이라고 하기엔 무시무시한 발언도 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대기업 정규직 등 대한민국 소득 상위 10%를 거느린 이익집단이 이들 노동권력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대한민국을 공중 납치하지 않고서야 정부가 국민에게 이럴 순 없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10-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유은혜 부총리가 드러낸 운동권 특혜구조

    이것은 가짜뉴스가 아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참 인복이 많다. 2012년 우석대 겸임강사 (계약) 시절,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그가 19대 총선 공천심사에서 마주친 심사위원장이 강철규 우석대 총장일 정도다. 4일 국회 첫 대정부질문에서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야당이 제기한 20여 가지 의혹 중 위장전입과 교통위반을 빼고는 믿을 만한 게 없었다며 ‘아무거나 쓰는 언론’을 준열히 꾸짖었다. 나도 86그룹 운동권 출신의 유은혜가 정의롭고 따뜻하며 성실한 정치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다른 부처라면 몰라도 교육부 장관은 절대 맡겨선 안 되는 인사였다고 본다. 우석대에서 2011년 2학기 때 한 학기만 겸임강사를 했으면서도 2013년 8월까지 겸임강사 및 겸임조교수를 했다고 허위경력을 쓰는 사람이 대학 학사관리를 감독할 순 없다. 겸임강사 경력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이도 있을 것이다. 유은혜도 인사 청문회에서 “그전의 경력으로도 충분히 출마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사소한 문제처럼 말했다. 겸임강사직을 소중한 명예로, 명함에 새길 수 있는 자존심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뺨을 치는 듯한 답변이다. 그렇다면 유은혜는 왜 2011년 말 총선을 앞두고 출간한 자서전 ‘어머니의 이름으로’에는 우석대 겸임교수라고 부풀려 썼는지 답했어야 한다. 그가 청문회에서 2012년 총선 공보물에 ‘우석대 겸임강사’로 적힌 사실을 지적받자 “전직 경력으로 썼던 것 같은데요?” 반문한 것도 정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듬해 설에 낸 2012년 의정보고서에도 겸임전임강사로 적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허위경력 기재는 유권자의 판단을 저해하는 범죄행위다. 지난달 대구지방법원은 6·13지방선거 공보물에 시간강사를 겸임교수로 표시한 모 구의원에게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물론 유은혜는 “우석대 강의는 한 학기만 하고 2012년 총선 출마 때문에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학교 측에 전달했다”고 청문회에서 밝혔다. 이후 급여를 받지 않아 사퇴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계약과 강의 기간이 다른 이유도 “우석대에서 일괄적으로 겸임강사 계약 기간을 2년으로 했기 때문에 (경력증명서를) 그렇게 제출한 것”이라고 대학에 책임을 돌렸다. 그럼 유은혜가 청와대에 이번 인사검증용으로 제출한 자료에 자필로 썼다는 ‘2012년 7월∼2013년 8월 우석대 겸임조교수’ 경력은 대체 뭔가.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에 당선된 교원은 교직을 휴직해야 한다. ‘겸임’교원의 휴직이란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인지 우석대 겸임교원 인사 규정은 겸임교원이 강의를 못할 경우 면직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유은혜는 국회법을 어긴 것도 모자라 국회의원이어서 당연히 강의도 할 수 없었던 겸임조교수 경력까지 써낸 셈이다. 혈세로 봉급 받는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런 사실도 확인하지 않았단 말인가. 내년 1월 시행될 고등교육법 개정안(강사법)을 예상하고 요즘 대학가에선 시간강사 정리에 분주하고도 살벌하다. 2010년 한 시간강사의 자살을 계기로 마련된 법안이어서 시간강사 신분은 사라진다. 그러나 강사라는 이름으로 일단 고용되면 3년은 해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대학에선 기존 시간강사에게 위장취업이라도 하게 한 뒤 겸임조교수로 명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해고가 자유롭고 연봉도 시간강사급으로 줄 수 있어서다. 2017년 국감에서 유은혜는 “대학들이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비전임) 저임금 교원 임용을 남발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일갈했다. 누가 교육수장(首長)이 된들 우리나라 교육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법적 도덕적 양심을 걸고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면서, 겸임조교수 경력을 허위로 청와대에 제출하고도 당당한 유은혜에게 대학의 혁신역량 강화를 외칠 자격이 있는지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2016년 국감에선 “최순실의 딸 입학 부정, 학점 특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낡고 부패한 기득권 구조를 청산해야 한다”던 의원이 바로 유은혜였다.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딸의 입학부터 자신의 인사 검증까지 특혜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믿는 그들만의 기득권 구조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10-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헌법재판소까지 ‘코드인사’…촛불잔치는 끝났다

    돌부처도 돌아앉게 만드는 게 시앗(남편의 첩)이라면 민심을 돌아앉히는 건 측근 비리와 인사다. 노무현 정부는 코드인사로, 이명박 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부동산 자산가) 인사로 취임 반년 만에 지지율 20%대로 주저앉았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인사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인사 역시 좋은 소리 듣기 어렵다. 5대 인사 배제 원칙(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도 못 지키더니 작년 11월 음주운전, 성범죄를 덧붙이며 내용은 대폭 완화한 7대 원칙을 내놨으면 이번 개각에선 딱 지켜야 신뢰가 생기는 법이다. 그런데도 2007년과 2010년, 그러니까 인사청문 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후 장남과 위장전입했던 이은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가 11일 인사청문회장에 나온다. 오늘 인사청문을 받는 이석태 후보자는 2015∼2016년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장 때 변호사 겸직 금지 조항을 위반하고도 거짓 해명까지 했다. 더 심각한 건 헌법재판소의 독립성 문제다. 1983년 제1차 사법권 독립 세계대회에서 법관들이 만장일치로 외친 사법권 독립 기준이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이었다. 이석태는 노무현 정부 당시 민정수석인 문 대통령 밑에서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한 전력이 있어 정치적 중립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법원장이 자기 몫 추천으로 이석태를 올리고, 더불어민주당에서 대법원장 최측근인 김기영 후보자를 추천한 건 그들도 켕긴다는 뜻일 게다. 양승태 전임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 의혹이 탈탈 털리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인사 거래’ 의혹을 일으킬 사태에 앞장섰을 것 같진 않다. 통상 대통령이 동향 출신 대법원장을 택하지 않는데(전두환 전 대통령의 예외는 있다)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같은 PK(부산경남) 출신 김 대법원장을 지명해 관행을 깼다. 그러고는 이번에 헌재소장으로 우리법연구회 출신 유남석 재판관을 앉혀 이곳 회장이던 김 대법원장과 함께 두 최고 사법기관을 같은 진보집단 출신이 지배하게끔 혁명적 구도를 만들었다. 삼권분립이 울고 갈 삼선짬뽕이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시킨 ‘비(非)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로 유럽연합(EU)에서 헝가리가 지탄받는 큰 이유도 헌재의 독립성을 흔들었다는 데 있다. 거대 집권당의 독주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장치가 헌재다. 집권 세력은 15명 헌재 재판관 중 5명을 총리 보좌관, 2명은 여당의원 출신 등 충성분자에서 임명해 헌재를 무력화하고 ‘소프트 독재’에 들어섰다. 그래도 이 나라는 2011년 말 헌재 및 사법부 기능과 기본권을 축소하는 개헌을 거쳐 측근인사를 했지 우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코드인사를 하진 않았다. 1998년부터 4년간, 그리고 2010년부터 올해 4월 총선까지 내리 압승한 극우 집권당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공산 헝가리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우리로 치면 586운동권이다. 1989년 6월 부다페스트 영웅광장, 소련군에 체포돼 처형당한 헝가리혁명(1956년) 당시 총리 너지 임레의 뒤늦은 국장(國葬)에서 자유선거와 소련군 철수를 촉구한 젊은 시절 그의 연설 동영상을 보면, 민주화 투사도 독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뉴욕타임스는 그 세대의 정치인들에게 민주주의란 숙달하기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유럽을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슬람 난민 사태도 오르반의 변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일국의 지도자가 민족감정과 편 가르기를 자극하고, 비판언론을 옥죄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시민단체에 돈을 뿌려 선거용병으로 이용하고, EU 지원금으로 공공 일자리는 만들지만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 저숙련 노동 수요를 저하시킨다는 외신과 논문을 보면 남의 나라 일 같지가 않다. 오늘 헌재 인사청문회는 그래서 중요하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사법제도다. 현 정부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촛불혁명’은 박근혜 하야 아닌 탄핵으로 헌재 결정에 따라 마무리됐고, 문 대통령은 41%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제 대통령 지지율 49%(갤럽 조사), 당선 당시에 근접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거품은 꺼졌고 촛불잔치는 끝났다.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헝가리’가 되지 않으려면 헌재와 사법부의 독립성만은 누구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9-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장하성은 ‘계륵’인가

    결국 ‘보수궤멸’로 ‘민주정부 20년 집권’의 주단을 깔아 줄 모양이다. 물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는 25일 당선 뒤 최고 수준의 협치 추진을 말했다. 하지만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이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을 자처한 그가 최고 득표를 한 사실은, 불편하다. 2012년에도 ‘새누리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후보’임을 내세워 당 대표가 됐던 수구적 강성 투쟁 전략이 문재인 정부 성공에 도움 될지도 불안하다. 이보다 불편한 것은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영상 축사였다. 대통령은 “요즘 고용에 대한 걱정의 소리가 많다”면서도 ‘그러나’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고 ‘하지만’ 청년 일자리와 소득 양극화 등이 해결되지 못했다며 “이것이 혁신성장과 함께 포용적 성장을 위한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가…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20일만 해도 고용 상황 악화에 마음이 무겁다던 대통령이 민심과 불통하는 모습으로 또 바뀐 거다. 자칫하면 보수가 궤멸되기 전에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을 판이다. 어제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통령의 축사와 비슷한 내용을 20여 분간 설명했다. 핵심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는 것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식으로 말하면 “그럼 과거 대기업·수출중심 성장정책으로 돌아가자는 거냐”다. 아무도 돌아가자고 한 적 없다. 보수경제학자인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도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성립이 어렵고, 최저임금 상승 속도가 너무 빨랐으며, 업종별 지역별 차별화 없이 획일화한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을 뿐이다. 어쩌면 문 대통령도 장하성의 서생적 오류를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하성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상징이자 진보학자의 아이콘이다. 내치자니 정부의 진보성을 포기하는 것이 되고, 안고 가자니 국민을 버리는 것이 되어서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계륵(鷄肋)이라고 상상하면, 대통령이 아무것도 모르거나 속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 문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 청와대’에서 일했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980년대 철 지난 이념 가진 사람들, 생산성 이상의 몫을 가져가려는 기득권 법외노조에 포획된 국가권력’이라고 꼬집은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불복종 운동을 펴자”고 주장했다. 6월 1회 전자정부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던 그가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이 종국엔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다는 한 달 전 대통령 발언에 격분해 “사람이, 정권이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관찰하지 못하고 성찰하지 못하고 고집부리면 어떤 악의가 있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까지 한 것이다. 한 가지 더 가정한다면 종교처럼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1896년 ‘사회주의의 심리학’을 쓴 귀스타브 르봉은 사회주의를 믿음으로 보면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약속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역사는 사회주의 같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대결인데 민중계급에 “일은 더 적게 하고, 쾌락은 더 많이 즐기라”고 설파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이상이라는 거다. 단, 자신의 책임 아래 행동하고 독창력을 발휘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민족이 문명의 첨단을 지킬 수 있지만 사소한 행동까지 국가의 보호 또는 통제를 받는 민족은 ‘거대한 밥통’으로 전락한다는 그의 지적은 섬뜩하다. 일본은 6월 ‘일하는 방식 개혁’에서 고소득 일부 전문직종을 노동시간 규제에서 제외했다. 우리는 일을 더하고 싶은 사람도 국가가 막겠다고 공무원을 늘리는 판이니 이러고도 국가주의 아니면 뭔가 싶다. 국민은 장하성 같은 참모진에게 포획당할 것까지 예상하고 문 대통령에게 표를 주지는 않았다. 취임사에서 문 대통령은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얼굴로 국민 앞에 다짐했다. 민심을 저버리지 않으려면 이제 문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8-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건국 70주년’을 ‘건국’이라 말할 수 없는…슬픈 8·15

    올해 8·15 광복절엔 문재인 대통령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 묘역을 각별히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2019년이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고 선언한 지난해는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효창공원을 찾아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했다. 대선 후보 시절 현충원의 전직 대통령 네 분 모두를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서거한 순서대로 찾은 것도 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누차 예고됐음에도 건국 70주년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의 8·15를 맞자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된 기분이다. 좌파 진영에선 헌법과 역사를 부정하는 주장이라고 일축할 것이다. 국가 구성의 4개 요소가 국토, 국민, 정부, 주권인데 1945년 5월 1일 임시의정원에선 “우리 의정원과 임정은 토지와 인민주권이 없는 정부”라는 발언까지 나왔다고 해봤자 통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럼 문 대통령은 왜 임정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 따져서 19대 아닌 21대 대통령, 아니면 국무령과 주석까지 포함해 34대 대통령으로 고쳐 쓰지 않는지 묻고 싶어진다. 건국을 둘러싼 논쟁이 10년째 그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념 때문이라고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적했다. 2월에 낸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을 위한 역사의 재정립’ 보고서에서다. 당연히 정통성은 1919년 대한민국을 건국한 임정에 있다는 게 민주당의 답이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하자는 정치세력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독점하겠다는 시도로서 국민 통합을 해친다는 것이다. 동의할 수 없다. 임시정부의 법통, 정통성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의 가치나 신념을 강요하고 이에 대한 비판은 공동체의 통일성을 위협한다고 보는 게 전체주의다.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혔을 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며 거세게 비판했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교과서보다 권위 있게 ‘1919년 건국’이라고 선언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말끝마다 ‘촛불의 명령’을 절대반지처럼 들먹이며 정의와 정통성을 독점하는 것도 이젠 식상하다. 역사 해석을 역사가에게 맡기기는커녕 대통령과 다른 역사관을 말하면 통합을 해친다는 겁박은 ‘촛불 전체주의’로 보인다. 심지어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5, 6학년 사회교과서에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아닌 ‘정부 수립’으로 배우게 만들어 놨다. 국정화까지 요란하게 안 가고도 교육과정만 살짝 고쳐 정부가 원하는 역사를 가르치는 세련된 통치술이다. 대체 왜 임정은 떠받들면서 1948년 탄생한 국가는 폄훼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민주연구원 자료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임정은 ‘좌우 이념과 노선을 초월해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들과 임시정부들을 통합시킨 명실상부한 대한민국통합정부’였다는 거다. 임정 해체를 외쳤고 나중엔 월북한 김원봉과도 합작했던 임정처럼 문재인 정부도 북한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불안하다. 특히 백범은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계급 독재’라고 갈파한 반공주의자임에도 1948년 5·10총선을 앞두고 결행한 평양 방문에서 김일성에게 이용당하기까지 했다. 만일 백범이 좌우 연립 정부부터 세우고 체제 선택은 뒤로 미뤘다면 어땠을까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뒤 동유럽 공산화는 좌우합작, 민족대단결 같은 명분으로 밀고 들어온 좌파 통일전선전술의 승리라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근본주의, 이상주의 DNA의 백범은 이를 꿰뚫어보지 못했고 이런 DNA는 운동권 출신으로 그득한 집권세력에 상당히 박혀 있는 듯하다. 북한 김정은이 아쉬워 손짓할 때마다 달려가는 문 대통령이 걱정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시대는 저마다 신(神) 앞에 직접 선다’는 말이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죽이거나 숙청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1919년은 정신적 건국으로, 1948년은 실체적 건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본다. 화해와 치유,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도 올해는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해낸, 물론 과오도 있었던 임정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특별히 추모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8-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문재인 청와대’ 단단히 고장 났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경제학자 김기원은 ‘발랄한 진보’였다. 노무현 정부 인기가 바닥이던 2007년 말 “이 정부가 뭘 잘못했을까 고민하다 잡은 열쇠가 성매매처벌법”이라고 했다.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나 하는 일이고, 선진국에선 미국과 스웨덴 빼고는 다 합법인데 ‘서민의 정부’를 자처하면서 서민을 괴롭히는 정책을 내놨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노 정부 첫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한 것 같다”며 그 법 때문에 경기가 더 나빠지고 참여정부도 더 욕을 먹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 것도 맞다고 동의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성매매처벌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좌파진영 내 비판이라는 건 근친상간보다 보기 드문 이 나라에서 11년 전, ‘진보세력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잣대로 문제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했던 김기원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지적이 지금도 유효한 현실이 갑갑해서 하는 소리다. 자칭 진보세력을 포함해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치고 도덕적이지 않은 건 거의 없다. 지난주 대통령과의 ‘퇴근길 호프집 대화’에서도 최저임금과 주 52시간 단축 정책을 업종별 지역별로 속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중소기업인의 제언에 문재인 대통령은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 최저임금인데 차별하면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성군 같은 대답을 했다. 성매매처벌법 처리 때도 그랬다. 이상(理想)과 당위(當爲)만 강조할 뿐 세계와 현실은 외면했다. 정책에 대한 다른 견해를 의견 차이 아닌 도덕적 사악함의 표시로 본 성리학이 승하던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중종 때 조광조 역시 정의로운 선비가 집권하면 문제가 절로 해결된다는 믿음이 철철 넘쳤다고 했다. 그러나 말은 도덕적이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 감동은 없는 법이다. 이날 퇴근길 불쑥 이벤트가 청와대의 탁월한 선임행정관 탁현민의 연출임이 알려진 순간, 문 대통령의 귀중한 자산인 신뢰는 날아가고 국민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말았다. 당장 코앞에 앉아 있는 서민들이 과격하고 급진적인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힘들다는데도 대통령은 정책을 고칠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그러니 아무리 보완책을 요청해도 대통령은 ‘자영업비서관’ 자리나 만들어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게 하는 식의 ‘국가주의’ 방식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오만이라는 권력의 치명적 증상을 모를 리 없다. 그는 대통령이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이 참모들의 ‘정보 왜곡’이라며 “청와대 내에서… 서로 의존하며 권력 나누어 먹기를 시작하는 순간 대통령의 비극적 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고 지적했다. 작년 초에 쓴 책 ‘대통령 권력’에서다. 물론 문 대통령은 6·13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둔 뒤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고 두뇌”라며 참모진에게 유능함과 도덕성, 겸손한 태도를 당부한 바 있다. 미안하지만 ‘일자리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도 통계 조작에 청와대 비서관 일자리까지 늘리면서 정책을 밀고 나가는 모습은 유능함과 거리가 멀다. 도덕성도 더는 내세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25일 경찰 간부 인사에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부실 수사 당사자인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유임시킨 것은 낯 뜨거운 인사 철학을 드러낸 것과 다름없다. 공공기관의 기관장이나 감사 265명 중 53.2%가 문 대통령과의 연결고리가 하나 이상인 낙하산 인사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경제 쪽으로는 정책실 줄을 타야 한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자 두뇌가 대통령비서실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비서실이 대통령의 보좌 조직이고 대통령의 두뇌는 될지 몰라도 대한민국의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자 두뇌는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제왕적 청와대’ 뺨치게, 대통령을 진정성 없는 배우처럼 연기시키는 비서실이라면 국민의 눈에는 겸손한 비서실이 아니라 반역의 비서실이다. 휴가 기간 중 대통령은 내각 개편보다 비서실 개편을 고려해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7-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 김상곤 교육부총리 파면 요구하라

    나는 고위공직자들이 재산 공개는 안 해도 자녀들 학력은 공개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공부가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자식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이고, 그건 우파든 좌파든 마찬가지임을 정부가 알아야 한다고 믿어서다. 교육정책은 이런 부모의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열렸다.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한영외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용산국제학교, 강경화 외교부 장관 용산국제학교, 용산국제학교,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경기외고, 김상곤 사회부총리 강남 8학군에 아이들 다 보냈다”며 이 정부에서 외고를 폐지하겠다니 부끄럽지 않냐고 따진 것이다. 우파의 부패만큼 국민을 분노시키는 것이 좌파의 위선이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면역될 만도 한데 아이들 교육 문제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말끝마다 ‘사람’을 부르짖는 정부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은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에 안착하도록 사다리를 꽉 붙들어주고는 남의 자식은 올라가지도 못하게 걷어차겠다니, 짐승쯤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좋은 대학 가겠다고 공부, 공부 해야 하는 불쌍한 어린 인생은 사실 제도의 탓으로 봐야 한다. 아이들을 들볶을 것이 아니라 교사를 새롭게 훈련시키는 학습혁명이 시급하다. 그래서 혁신학교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은 주장할지 모른다. 그렇게 훌륭한 혁신학교라면 왜 경기도교육청이나 서울시교육청 사람들은 아이들을 거기 보내지 않는지 말해주기 바란다. 작년 10월 국감에서 곽상도 한국당 의원은 “여기 온 분도 (아이들을) 안 보내면서 국민들한테 보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개탄을 했다. 지금 공론화위원회가 개편 작업을 펴고 있는 새 대입제도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 인재를 길러내도록 교사와 수업까지 바꿔내는 것이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12월 국가교육회의 출범 때 제시한 기준은 ‘무엇보다 공정하고 누구나 쉽게 준비할 수 있도록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최종적 해법은 유치원처럼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 말고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 올가을, 청년실업에 제동을 거는 것을 목표로 33년 만에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 개혁을 단행하는 프랑스가 추첨 입학제를 폐지하고(그랑제콜 제외) 대학에 선발권을 준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공론화위에서 시민들이 숙의(熟議) 중인 개편안을 거칠게 요약하면 ①정시 확대 ②수능 절대평가 ③현행 유지 ④수능 위주 전형 확대 및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균형과 수능 상대평가라 할 수 있다. 단순하게 나누면 결국 객관식 수능이냐, 주관식 학종이냐다. 객관식이 공정할지, 주관식이 공정할지, 한길을 막고 물어보면 답은 뻔하다. 대통령이 원하는 답은 객관식인 수능 정시 확대인 듯하다. 그러나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3년 내내 성실하게 공부한 A보다 막판 몇 달 달달 외운 B나 찍은 C가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면 A는 세상이 불공평해 보일 것이다. 사실 고교생들은 학종을 못 믿겠다며 불안해하지만 실제로는 학종으로 합격한 대학생들이 고교 생활도 잘했고, 대학에서도 만족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엇보다 자율성과 창의력, 공감능력 같은 미래 역량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게 바로 10년 전부터 미세 조정되며 이어지는 현 대입 체제다. 문제는 이 정부 교육공약 설계자로 소문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제로 바꾸겠다고 나서 이 모든 사달이 비롯됐다는 점이다. 전교조 소원대로 경쟁 없고 평등한 교육으로 갈 작정이었으나 여론이 나빠지자 ‘정시 확대’로 돌아서게 됐는데 그러자니 암기 위주 교육은 더 망가질 게 뻔하다. 결국 다시 돌아가기도 민망해 대입 공론화위에 책임을 떠넘길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는커녕 얄팍한 인기에만 급급한 이 정부의 속성을 이처럼 드러낸 사태도 없다.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쓰기도 아까운 인민주의의 극치다. 공론화위가 어떤 결론을 내리든 이 일만은 해주었으면 한다. 세금 낭비뿐 아니라 교육을 혼돈으로 몰아간 무책임한 교육수장 김상곤의 해임을 건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 경쟁력의 발목을 잡아온 교육부를 대학에서 떼어내고 자유를 돌려준다면, 김영란 위원장은 대성공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7-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 칼럼]곡학아통

    이것은 순전히 상상이다.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은 아프지 않았다. 경호원 한 명만 데리고 청와대를 빠져나갔을 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듯, 감기몸살 핑계라도 대지 않으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서실, 정책실, 국가안보실 현안보고에서 헤어날 수가 없어서다. 마침 홍제동 옛집 가는 길에 셀프 주유소가 눈에 띄었다면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셀프 주유기를 들여놓은 건 아니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집 근처 편의점을 찾아선 요즘 정말 알바생에게 인건비 주기도 힘든지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을 것 같다. 그리하여 마침내 깨달았기를 바란다. 어떤 장관은 재벌 금고에 800조 원 이상 들어 있는데 서민 지갑엔 돈이 안 돌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편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이 정책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은 영세 자영업자라는 사실을. 공간은 사고를 지배한다. 대선 후보 때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시작은 국민과 함께하는 청와대”라며 광화문 집무를 약속했다. 그러나 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공격했던 청와대에 종일 들어앉고 보니 이젠 대통령 자신이 제왕적, 아니 ‘운동권 청와대 권력’에 포획된 게 아닌 가 싶다. 5월 28일 월요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이 먼저 “하위 20%의 가계 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득분배가 악화됐다”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운을 뗀 것이 한 예다. 빠릿빠릿한 청와대라면 이 말은 임종석 비서실장이든 누구든 참모진이 먼저 했어야 옳다. 5월 25일자 신문마다 ‘소득격차 역대 최악’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정책 점검 아닌 통계를 손봤다. 사흘 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대통령 발언은 그래서 나왔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한다)를 넘어 대통령까지 속이려 한 ‘곡학아통(曲學阿統)’이다. 지난주 홍장표 경질 발표에 나는 당연히 경제성과 미비는 물론 국책연구기관까지 동원해 감히 국사(國事)를 사사화(私事化)한 공직자를 문책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장하성 정책실장은 “정부의 정체성과 방향을 흔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다”며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속도를 높일 태세를 밝혔다. 그러고 보니 좌파는 잘못을 인정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이념이 먼저다. 이념에 안 맞으면 누군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엉뚱한 사람의 손발을 자르고, 공범들은 조용히 입을 다문다. 이념 다음은 능력보다 지연(地緣) 학연(學緣)이다. 특히 부르주아 경제학계에선 얼마간 능력주의가 인정되지만 진보 경제학계는 영남 연고가 더 중요하다고 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일갈한 바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성장도 절로 되는 세상은 장하성이 원하는 ‘정의로운 경제’가 분명하지만 현실에서 성공한 국가는 없다. 홍장표 역시 논문에서나 실증 분석해 그럴 것이라는 ‘함의’를 얻어냈을 뿐이다. 오히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 때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임금 인상을 강요하는 바람에 해고가 늘고 대공황이 심해졌다는 실례(實例)와 연구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달 ‘대통령 5년 임기 동안 54%의 최저임금 인상은 OECD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생산성 증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한국의 국제적인 경쟁력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를 신설해 홍장표에게 위원장을 맡겼다니 과연 대통령이 결정한 인사가 맞나 싶다. ‘운동권 청와대’가 그들만의 집단 문화로 대통령을 에워싸고는 시나리오에 따라 몰아가는 기세가 역력해서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자신을 ‘도구’로 선택한 청와대 사람들에게 “나를 놓아 달라”고 했다. 그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개혁세력이 일거에 청와대에 들어가 주류세력 교체든, 체제 교체든 신속히 해내자고 전략을 짰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만에 하나, 이번 청와대도 문 대통령을 도구로 여길 경우 그들만의 이념이나 정체성을 위해 국민은 물론 대통령까지 또 속이는 일이 벌어질까 우려스럽다. 건강을 회복한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믿고 싶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 2018-07-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