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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한강에서 Boat Race가 열리다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습니다. 여기, 흐릿한 흑백사진이지만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시원한 항공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것 같습니다. 백년 전에 이런 앵글의 사진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4년 5월 26일자 동아일보 3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설명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강상(江上)의 단정경조(短艇競漕)조선에서 처음 보는 “보트레스”대회는 만철사우회(滿鐵社友會) 운동부 주최로 얄궂은 여름 비가 오락가락 뿌리다 마다하는 어제 25일 아침 7시 반부터 한강 인도교 아래에서 성대히 열리었다. 강물 위를 육지로 삼고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더 신선한 여러 가지 재조가 많았으며 만철각과(各課)의 경주로부터 27종의 흥미진진한 경기가 마친 후 결승 경주가 있어 강상의 풍미 있는 경기도 성황리에 마치었다 한다. 경기의 성적은 내일에... 사진은 강 위에 뜬 “보트”의 우승을 다투는 찰라. 한강에서 단정(Boat) 경주(Race)가 열렸습니다. 만주철도 사우회 주최로 한강 인도교 아래에서 1924년 5월 25일 열렸는데 우선 26일자 신문에는 위의 사진을 먼저 싣고 경기 결과는 27일자에 상세하게 알려주겠다는 기사입니다. 27일자 신문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기사가 또 실려 있습니다. 滿鐵社友會運動部主催의第一回全朝鮮短艇竸漕大會를再昨二十五日午前七時半부터漢江人道橋下에서盛大히開催하얏다함은既報한바어니와經過中第一先着者는如左하다고第一囘驛務二年(三分十九秒)▲二囘工塲旋盤(三分五十三秒)▲第三囘工塲製鑵A(三分一秒)▲第四囘工務事務所C(三分二十秒)▲第五囘十五俱樂部(三分)▲第六囘工塲體育協會B(二分五十秒)▲第七囘(日船)(一)金順三、金昊成(四分二十二秒)▲▲第八囘(各課代表豫選)(一)工務課(四分五十七秒五分之二)▲第九囘橫濱火災(二分五十五秒)▲第十囘(各課代表豫選)(一)機械課(四分五十六秒)▲第十一囘司計課타임不明▲第十二囘(各課代表豫選)▲第十三囘經理課B(三分十八秒五分之三)▲第十四囘(貸ボ│ト)(一)金仁植外二人▲第十五囘燃料硏究所(四分十四秒)▲第十六囘實業俱樂部(四分二十四秒)▲第十七囘庶務課B(三分十一秒)▲第十八囘鐵工土木科三年(四分十八秒)▲第十九囘記者團A(三分三十二秒)▲第二十囘殖產銀行(三分三十九秒)▲第二十一囘工塲體育協會B(四分五秒)▲第二十二囘工務建築係(三分九秒)▲第二十三囘工塲現塲組(三分七秒)▲第二十四囘京釜線(三分十七秒)▲第二十五囘(番外)(一)記者團B(三分十四秒)▲第二十六囘(番外)(一)遞信局(三分十七秒)▲第二十七囘(各課代表决勝)(一)機械課(四分五十二秒五分之四).● 누가 항공 촬영을 했을까?공중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지금도 규제의 대상입니다. 내 나라 내 땅이라고 하더라도 언론사가 함부로 비행기를 띄워서 촬영을 하지는 못합니다. 지금도 드론 촬영을 하려면 사전에 정부에 신고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물며 일제 시대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게다가 당시 동아일보는 자체적인 비행기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사진은 최소한 주최측인 만철 사우회 또는 비행기를 갖고 있는 기관의 도움을 받아 동아일보 사진기자가 함께 탑승해 찍었거나 아니면 주최측이 촬영해 신문사에 제공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같은 날 매일신보에는 강변 선착장에서 한강 쪽을 지켜보고 있는 관중을 찍은 사진이 실렸습니다.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한강에서 펼쳐진 이색 볼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진기자의 눈으로 볼 때는 선착장에서 찍은 사진보다는 하늘에서 찍은 사진이 훨씬 좋습니다.● 신문에 실린 최초의 항공 촬영 사진요즘은 드론의 가격이 저렴해져서 200만원 정도면 신문에 쓸 사진을 충분히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로서는 아주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드론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언론사 중에서 공중파 방송국과 중앙일보만 항공촬영용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회사들은 경찰이나 산림청 등의 협조를 받거나 청와대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보도에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사진을 찍는데 아주 제한적이었고 안전 문제로 서로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기관의 헬기를 탈 경우 사진기자들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당사자가 직접 지겠다는 서약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가 비행기를 운용한 것은 1962년부터입니다. 이 해 2월 13일에 경비행기 (세스나 185형. 6인승)를 1대 구입하고 항공과를 신설해 조종사와 정비사를 고용합니다. 1963년 6월 18일에는 경비행기 (스틴슨 L5. 2인승) 1대 구입하고 1965년 12월 12일에는 3인승 헬리콥터 1대를 구입합니다. 이상은 1968년 4월 1일자 동아일보 9면에 실린, ‘격동 48년 동아 48년’ 특집 기사에 나온 내용입니다. 비행기의 이착륙은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는 수색 비행장에 격납고를 두고 기자들이 필요할 때마다 수색으로 출동해 그곳에서 타고 내렸습니다. 동아일보 사진기자들이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탑승한 것은 1984년에 입사했던 수습 기자들의 경험이 마지막입니다. 1996년에 입사한 저는 회사 비행기는 타지 못하고 선배들의 무용담만 많이 들었습니다. 1963년부터 1985년까지 약 21년간 자체 비행기를 운영했지만 항공 사진은 그 전후로도 신문 지면에 게재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지면에 나타나는 최초의 항공 촬영 관련 자료는 1933년 6월 ‘경성 부감기(俯瞰記)’입니다. 부감이라는 표현은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는 뜻인데 영어인 ‘Bird Eye’가 훨씬 이해하기 쉬운 표현입니다. 새의 시선과 같은 앵글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유일한 조선인 비행사였던 신용욱이 살무손 2A2기를 전세 내서 서울 시내를 촬영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이 해 8월에는 태풍참상을 항공 촬영한 사진으로 화보 지면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사진이 최초가 아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혹시 다른 자료가 발견되면 다시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우리 땅 독도를 1964년 처음으로 항공촬영하다비행기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비행기를 띄우지는 못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정부의 허락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독도를 처음 항공촬영한 것이 1964년인데 그 사진을 찍은 동아일보 기자는 군 전투기를 타고 촬영을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1964년까지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독도가 어떻게 생긴 섬인지 몰랐습니다. 하늘에서 찍은 사진이 없었으니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를 처음 항공 촬영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 최경덕 기자입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을 개탄했던 최경덕 기자는 3년간 공군본부에 공문을 보냈고 회사를 설득해 1964년 12월 30일 전투기를 타고 독도 상공을 비행해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은 이틀 후인 1965년 1월 1일자 신문 1면에 실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동아일보와 정권의 관계가 좋지 않았고 당연히 공군도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협조 요청을 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협조 요청 공문을 3년간 보냈다는 것은 그런 상황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을 겁입니다. 독도를 꼭 찍어보겠다는 사진기자의 제안에 동아일보 경영진이 화답했습니다. 최경덕 기자는 당시 동아일보 부사장이었던 일민 김상만 선생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군사정부가 동아일보를 싫어해서 항공촬영에 대한 결정을 못 내리는 것 같다”는 공군 장교의 얘기를 전했습니다. 김상만 부사장은 최기자에게 촬영 섭외비를 줬습니다. 공군과 최기자 사이에 어떤 설득 과정이 있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지만 결국 공군은 최기자가 F86D 전투기를 타도록 허락했습니다. 당시 조종사는 박용태 소령이었고 비행단장은 ‘2천 피트 이하로는 절대 내려가지 마라’고 명령했습니다. 막상 하늘에 올라가니 최기자가 준비한 카메라와 렌즈로는 독도가 너무 멀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갖고 있던 라이카 카메라 M3와 50미리 렌즈는 최고급 카메라였지만 전투기 위에서 바라 본 독도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죠. 비행단장과의 약속을 어기고 최기자는 조종간을 잡은 박 소령에게 “딱 한번만 내려가 줘”라고 부탁했습니다. 드디어 구름을 뚫고 독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을 선회하는 동아 셔터 속도 250분의 1초로 딱 10장을 찍었습니다. 당시 천관우 편집국장과 김상만 부사장이 크게 기뻐했고 동도와 서도가 공중에서 함께 보이는 최초의 독도 사진이 독자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오늘은 백년 전 한강철교 위에 떠서 행사를 촬영했던 비행기를 상상하며, 신문 속 항공촬영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을 특별하게 보이셨나요?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재개발 현장의 한 웅덩이에서 119구조대원들이 풍수해 대비 종합훈련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6월 장마철을 앞두고 폭우로 반지하 주택이 침수되거나 차량이 지반 침하로 추락하는 상황을 가정해 훈련을 벌였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시민들이 구직 정보를 살피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평화로운 한국에서 아이언맨은 악당을 물리치는 대신 마시멜로를 굽습니다. 말 시키지 마세요. 잘못하면 타니까.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4년 5월 19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100년 전 서울에서 고교 야구대회가 열렸습니다. 야구 대회에서 우승한 대구(DAIKU)야구단과 배재야구단에게 우승기를 수여한 후 기념촬영한 사진이 실렸습니다. ● 사람은 밥으로만 살지 않는다. 건강한 조선 청년의 정신을 위해 야구 대회를 열다 양복에 구두를 신은 VIP가 우승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검정색 선글래스가 이채롭습니다. 그런데 고교 야구이긴 하지만 우승 사진치곤 너무 점잖은 모습입니다. VIP가 우승기를 건네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기념사진은 요즘의 재기발랄한 표정과 비교할 때 정적인 느낌까지 줍니다. 우선 이 당시 고교 야구가 어떤 행사였는지, 왜 이런 대회를 열었는지 초심(初心)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면 하단에 관련 기사가 있어 원문을 읽기 쉽게 옮겨봅니다. [야구대회(野球大會)를 보고 – 조선의 장래를 다스릴 용자는]조선 체육회 주최와 동아일보사 후원의 전(全)조선야구대회는 지난 16, 17 이틀 동안 배재운동장에서 성황리에 원만히 마치었다 한다.◇‘사람이 밥으로만 살지는 않는다’는 옛 성인의 말은 어디로 보든지 옳은 말이지만 건전한 정신을 가져야겠다는 점에서 더욱이 조선의 꽃봉오리인 소학단으로부터 청년단까지 온 조선을 망라한 대회라는 점에서 두 손을 들어 그 원만히 경과함을 축하하여 마지 않는 동시에 장래를 위하여 더욱 간절히 비는 바이다. 과연 우리 조선에 어느 것이 자유로우며 그 무엇이 행복스러우랴! 사면을 보아도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바야흐로 살펴도 온갖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조선의 오늘이다.그리하여 푸르러야할 청년도, 붉어야 할 소년도 모두 잿빛이 아니면 흰빛 밖에 구하여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아! 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 소리인가.◇청년은 청년으로의 원대한 포부가 있어야겠고 소년은 소년으로의 아리따운 새 희망을 가꾸어야 하겠거늘! 하물며 할 일이 많은 조선의 청년과 소년임에는 더 말할 여지도 없거니와 용기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점에서 한 둘 씩 차례로 온 조선을 망라하여 씩씩한 용기와 튼튼한 기틀을 가꾸움이 결코 긴하고 중요한 일인 동시에 오히려 이와 같은 모임이 늦은 느낌을 일게 한다.◇다섯 살된 동 대회가 무슨 사정으로 인하여든지 참가단체가 다수에 이르지 못한 불만이 있다하나 (그것)보담도 경기의 본정신에 있어서 충분히 또 원만하게 ‘스포츠맨십’을 발휘한 것은 더욱 칭찬하여 마지 않는다.요즘 열리는 고교야구는 보통 보름 정도 걸리는데 당시에는 출전 팀 숫자가 많지 않다보니 이틀만에 최강자를 가릴 수 있었었네요. 요즘 목동야구장과 신월야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제 78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의 경우 5월 14일부터 5월 29일까지의 일정입니다.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는 1947년부터 시작된 대회이니 사진 속 조선야구대회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문사가 주최하거나 후원을 하는 행사라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신문사가 왜 야구대회에 관심이 있었는지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기사에는 100년 전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건강함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대회의 취지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스포츠를 통해 조선의 청년이 호연지기를 길러주고자 만든 대회가 벌써 5년째라는 설명입니다. ● ‘헹가래’ 사진은 196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사진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점잖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선수들을 보면서 요즘 고교 야구의 우승 사진을 상상해 봅니다. 우승을 보여주는 전광판을 배경으로 선수들이 감독을 헹가래 치는 사진이 신문에 실립니다. 카메라를 의식해서 감독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선수들이 그림을 잘 만들어 줍니다. 일부 학생 선수들은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감독도 잘 보이고 선수도 잘 보이는, 어쩌면 자연스럽지 않지만 주인공의 얼굴과 기쁨이 동시에 표현되는 사진이 만들어집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사진을 잘 이해하는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술적으로도 빠른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가 나온 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앵글입니다. 고교 야구 우승팀의 헹가래 사진이 언제부터 찍히기 시작했는지 궁금해 동아일보 DB를 찾아보았습니다. 점잖은 기념사진과 역동적인 우승 사진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있을 거 같습니다. 보관된 사진 중에는 1968년도 사진이 가장 오래된 커트입니다. 우리나라 헹가래 사진의 역사는 55년쯤 되는 셈입니다. 물론, 동아일보 데이터베이스 기록 이전에 헹가래 사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말고 기사에서 헹가래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35년 12월 23일자 동아일보 4면에 실린 이무영(李無影)의 연재소설 “먼동이 틀 때” 제 127편 이었습니다. ‘장정 몇은 내게로 달려들어 팔 다리를 하나씩 잡고 헹가래를 치기도 했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대회 말고 헹가래 사진이 많이 등장했던 상황은 아마 대학 입시 현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지만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학입학의 당락은 해당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대형 벽보판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고 바로 확인하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 친구들과 가족들이 함께 가서 확인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헹가래를 치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헹가래 사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던 중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았습니다. 헹가래가 영어나 외래어가 아닌 순우리말이었습니다. 어감 때문에 여태 외래어로 생각해 왔었는데 아니었습니다. 헹가래의 어원 중 하나로 농사지을 때 하는 ‘가래질’에서 왔다는 주장도 흥미롭습니다. 헹가래를 칠 때 사람의 네 활개를 번쩍 들어 내밀었다 들였다를 반복하는 일이 가래질을 할 때 흙을 떠서 앞으로 던지고 다시 뒤로 돌아와 흙을 떠서 앞으로 던지는 것과 비슷하여 헹가래가 가래질에서 왔다고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외국에서도 헹가래 치는 장면이 나오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진과의 선후 관계는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는 않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독일 선수들의 헹가래 사진이 있어 함께 소개합니다. 오늘은 100년 전 고교 야구 대회 우승팀 모습의 사진을 통해 우승의 기쁨을 표현하는 사진이 어떻게 변해오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특이점을 보셨나요?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알려주세요.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시멘트 덮인 주차장에 뿌리내릴 곳은 유도등 틈뿐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살아내라고, 굳건히 버티라고 응원을 건네 봅니다.―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일 서울 성동구청 대강당에서 진행된 ‘반려동물 건강 시그널 및 응급처리 교육 특강’ 참가자들이 수의사의 지도에 따라 반려견 심폐소생술을 배우고 있다. KB금융그룹이 발간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2022년 말 기준 약 552만 가구다.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반려동물 건강관리’(55%)인 것으로 나타났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누가 떨어뜨린 졸업사진인가 봐요. ‘국민학교’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세상에 한 장뿐인 사진일 텐데, 주인님 돌아와요!―경기 광명사거리역 개찰구에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카메라가 흔하지 않던 시절, 사진은 전문가들만이 만들 수 있는 매체였고 하루치 신문 전체에 한 장이나 많아야 두 장 밖에 실리지 않던 희소한 기록이었습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4년 5월 15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100년 전 5월 서울 마포의 강변 풍경입니다. ● 마포나루는 물류와 상업의 중심지 서울 마포 나루터의 위치는 현재 주소로는 서울 마포구 도화동과 용강동 일대입니다. 마포대교 북단쪽입니다. 조선시대 마포나루는 삼남(三南·충청 경상 전라도를 통틀어 이르는 말)에서 서해와 한강을 이용해 올라온 쌀, 소금, 새우젓, 옷감 등 물자가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습니다. 일제 시대 역시 마포나루는 물류의 핵심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설명을 보면 마포 나루터에는 물자를 운반하는 배들 뿐만 아니라 직접 어업에 나섰던 어선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명맥이 끊어졌지만 서울에도 어부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류와 시장의 중심이다 보니 먹거리도 발전했는데 포구의 상인과 물건을 사러 나온 시민들이 즐겨 먹던 음식 중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메뉴가 ‘서울식 설렁탕’과 ‘주물럭’입니다. 마포 설렁탕은 국물이 말갛고 담백하며 기름에 갠 다진 양념 대신 청양고추를 볶아서 빻은 다진 양념이 특징입니다. ‘마포 주물럭’은 고기에 간장, 마늘 등 양념을 입혀낸 음식입니다. 이렇게 한강의 나루터였던 마포가 지금은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 지역)이라고 하는 신흥 부동산의 대명사로 젊은층들에게 인기 높은 주거지역으로 변해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 속 100년 전 모습과 현재의 깔끔한 모습 사이에는 난개발의 역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20세기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도시화는 처음에는 제대로 된 계획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라 강변 도로 건설, 다리 건설, 그리고 주변 지역의 상업 시설 및 주거 개발이 가속화되고 2010년대부터 주거지역에 대한 재개발이 다시 한번 이뤄지면서 현대적인 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마포 나루터는 한강의 역사와 서울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곳입니다. ●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풍경의 의미비가 내리는 봄날, 당시 사진기자는 왜 마포 나루터로 카메라를 메고 나갔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루터는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입니다. 도심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지만 시대의 구성원들의 일상 모습이 포구에서는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변화무쌍한 풍경은 사진을 찍는 사람 입장에게 다양한 셔터 찬스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배가 들어오고 나가고,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그리고 물건을 어디론가 나르는 사람들 모습을 기대하고 나갔을 수 있습니다. 어부들이 배를 정박하거나 내일의 일을 준비하는 모습도 운좋게 포착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을 기대하지 않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카메라를 메고 나갔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최종 지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그야말로 목가적인 사진입니다. 아름드리나무의 늘어진 가지 사이로 보이는 두 척의 어선의 모습이 비오는 봄날의 고즈넉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이런 앵글의 사진을 ‘자연적 프레이밍’이라고 하기도 하고 ‘프레임 속 프레임’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적 프레임은 주변 요소를 활용하여 촬영 대상을 감싸는 방법입니다. 나무나 문 등의 구조물, 창문 액자 등 자연적으로 제공되는 요소들을 활용하는 겁니다. 프레임 속 프레임이라는 표현은 사진이라는 게 카메라의 필름이라는 4각 프레임 속에 풍경을 집어 넣는 과정인데 화면 속에 또 하나의 프레임을 넣는다는 뜻일 겁니다. 이런 앵글은 여러분이 스마트폰으로 일상을 촬영할 때도 활용해 볼 만합니다. 풍경 사진을 찍을 때 그냥 저 멀리 산을 찍는 것보다는 내 앞에 있는 나무 가지나 동굴 입구 등을 프레임으로 사용하여 그 안에 풍경을 넣는 겁니다. 도시의 건물이나 구조물 사이로 특정한 장면을 촬영하거나 다리의 구조를 이용해 강이나 도로를 프레임 안에 포함시키는 방법도 좋습니다. 실내에서 인물을 찍으면서 식탁 위에 아이템을 배열하여 배경에 있는 인물을 강조할 수 있고 책꽂이 사이로 방안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앵글을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피사체가 자연 또는 전체 속의 일부라는 느낌을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 오늘은 100년 전 서울 마포의 나루터 풍경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특이점을 보셨나요?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하트 거울에 일행 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 여성이 비치네요. 마음에 저장할 추억 많이 만들고 가시길.―서울 홍대 레드로드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사진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원형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사진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하나씩 선별하여 소개하는데, 독자들의 상상력이 더해짐으로써 사진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4년 5월 11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사진입니다.100년 전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갓과 흰 저고리 차림의 노년 남성 4명이 고궁의 담벼락 아래 앉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사진 찍는 사람을 발견하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고 두 사람은 무표정하게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슨 사연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석가탄신일에 어린이에게 새 옷을 입히던 풍습이 있었다노인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보아선 긴 벤치가 있거나 평평한 돌이 있는 듯합니다. 그들의 뒤쪽 허공에 전봇대 굵은 줄을 이용해 5~6개의 물건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사진은 지면의 왼쪽 상단에 실렸는데 지면의 오른쪽 하단에 관련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오늘은 4월 8일 - 가정에는 복등(福燈)을 달고 사찰에는 인등(引燈)을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인쇄상태가 좋지 않아 사진설명이 정확하게 안 보입니다만 기사를 통해 사진의 제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금일은 4월 8일 - 가정에는 복등을 달고, 사찰에는 인등을 한다〉오늘 11일은 음력으로 4월 8일이니 석가세존이 탄생된 지 제2951회의 탄신일이다. 해마다 8일이 되면 불교와 인연이 깊은 조선 각 가정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고운 옷을 지어 입히며 각 상점에서는 복등을 지어 팔고,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어린 자녀의 수명(壽命) 장수(長壽)를 빌기 위하여 인등(引燈)을 하는데 복등 시세는 지등(紙燈)이면 30전부터 사등(紗燈)이면 1원부터 있다는데, 예년보다는 등(燈)의 산출액이 격증되었다 한다. 시내 각황사(覺皇寺)에서는 낮 12시와 밤 8시부터는 기념 설법이 성대히 열리겠다 하며 기타 시외에 있는 개운사(開運寺), 신흥사(新興寺), 봉원사(奉元寺), 화계사(華溪寺), 흥국사(興國寺) 등 각 사찰에서도 낮과 밤을 이어서 인등과 불공이 있으리라 하며, 창덕궁에서도 특히 유릉(裕陵)에는 인등(引燈)을 하신다더라.지금은 사라진 각황사를 비롯해 전국 유명 사찰에서 행사가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이로 만든 연등과 비단으로 만든 연등의 가격이 다르다는 것은 아마 지금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교를 믿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새 옷을 지어 입히는 풍습이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 내용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은, 왜 ‘연등’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복등’이라는 용어와 ‘인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 하는 점입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두 표현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불교계의 의견을 물었더니, ‘인등’이라는 표현은 부처님 앞에 밝히는 등이라는 의미로 지금도 많이 쓰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다만, 복등이라는 표현은 흔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연등회의 역사와 문화콘텐츠>의 저자 이윤수 박사에 따르면, 일제의 중추원이 1924년 조선 풍습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 보고서에서 ‘연등’의 의미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설명되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슬하의 자녀 숫자대로 등을 올리려고 했고, 등불이 밝으면 좋고 어두우면 좋지 않은 징조로 여겨 추가로 떡 등을 올려 운을 좋게 하려 했다고 합니다. 자녀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연등이 ‘복등’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된 이유를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무병 생존을 위해 등을 달았다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 기도였을지 상상이 됩니다. 불을 밝힌다는 행위를 묘사하는 연등(燃燈)보다는, 불을 밝히는 이유인 ‘복을 가져오기 위한다’는 의미에서 ‘복등(福燈)’과 ‘인등(引燈)’이라는 표현을 썼을 거라는 설명입니다. ● 노인들이 거리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풍경은 사라져부처님 오신 날은 불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중요한 날로, 음력 4월 8일입니다. 2024년 올 해는 다음주 5월 15일입니다. 불교 국가인 고려에서 번성했던 행사가 유교가 중심 사상이었던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국가에서 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50년이 채 안됩니다. 1975년부터 빨간 날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한글화 추세에 따라 공식 명칭이 2018년 4월 10일 국무회의를 통해 ‘석가탄신일’에서 ‘부처님 오신 날’로 변경되었습니다. 사진에서 눈에 띈 점은 사진 속 노인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과 관련해 남성 노인이 포함된 사진은 낯선 광경입니다. 왜 낯설다고 느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문 사진을 찍는 제가 노인을 찍는 경우는 성공한 뉴스 인물이거나 아니면, 고독과 배고픔을 견디는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탑골 공원 주변에서 무료 급식을 기다리시거나 폐지를 줍는 모습들 말입니다. 노령화가 점점 심해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층이지만 신문에 실리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백년 사진 속에서는 노인들이 거리에 하릴없이 앉아 있는 풍경입니다. 혹시라도 나이든 분들의 일상에 대한 접근을 현대의 우리들 스스로 꺼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추해 봅니다. 매력적인 볼거리가 많은 시대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들 젊고 바쁘게 사는지라 시내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맞춤형 휴식 공간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내에서 노인들이 저렇게 앉아 있을 공간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100년 전 사진처럼, 거리에 나와 쉬고 있는 노인들 사진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고령화 사회로 가는 우리 사회의 거리 풍경도 점점 달라지겠죠?# 오늘 소개된 백년 사진을 통해 우리는 100년 전 부처님 오신 날 풍경과 조선 사람들의 일상을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우리에게 그 당시 사람들의 삶과 관습을 생생하게 전달해 줍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특이점을 보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 주세요.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제96회 동아수영대회가 9일 경북 김천실내수영장에서 막을 올렸다. 13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대회에는 유년부 초등부 중학부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에서 모두 1173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경영과 다이빙, 수구, 아티스틱스위밍 4개 종목에서 경쟁한다. 사진은 9일 여자 중등부 배영 200m 결선 진출자들의 출발하는 모습. 김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일 개장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별빛내린천 일대 정원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관악구는 별빛내린천 봉림교 구간에 훼손된 채 방치돼 있던 잔디밭을 별을 모티브로 꽃과 자연이 어우러진 정원으로 조성했다고 7일 밝혔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7일 LG유플러스의 ‘스마트폰 배움실’을 찾은 고객이 그룹 영상통화 기능을 사용해 대화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 배움실은 어버이날을 맞아 노년층 고객들이 스마트폰의 각종 기능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사진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원형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사진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하나씩 선별하여 소개하는데, 독자들의 상상력이 더해짐으로써 사진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심판이 포함된 유도 경기 사진 vs 심판이 안 보이는 유도 경기 사진오늘 소개할 사진은 유도 경기의 순간을 포착한 두 장의 사진입니다. 첫 번째 사진은 1924년 4월 28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렸으며, 유도 경기 중인 두 청년의 모습이 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심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 사진은, 관중들의 흐릿한 윤곽만 보여주며 경기에 집중하도록 만듭니다.같은 대회를 촬영한 또 다른 신문 사진이 있습니다. 1924년 4월 28일자 조선일보 3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조선일보 사진 역시 포커스 아웃(focus out)된 관중은, 주제인 유도 경기 모습에 시선이 집중될 수 있게 돕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심판의 모습을 포함함으로써, 경기의 규칙과 진행 과정을 더욱 명확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 사진은 당시 유도가 대중에게 소개되던 초기 단계임을 생각하면, 심판의 포함 유무가 사진의 설명적 가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등장인물 2백 명의 사진 vs 등장인물 20명의 사진같은 날짜에 각각 다른 신문에 실린 또 다른 사진들을 살펴보면, 어린이날 행사를 기념하는 두 사진이 있습니다. 동아일보에는 수백 명의 어린이가 찍힌 전경 스타일의 사진이 게재되어, 행사의 대규모를 강조합니다. 1924년 5월 3일자 동아일보 2면 사진입니다. 한편 조선일보는 어린이들이 고무풍선을 날리는 순간을 포착한, 더 간결한 사진을 실었습니다. 1924년 5월 3일 조선일보 3면 사진입니다. 앞의 유도 경기 사진에서는 동아일보가 상대적으로 간결했었는데 어린이날 행사 사진에서는 조선일보 사진이 훨씬 간결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진 선택은 그 시대와 사회의 편집 기준을 반영합니다. 대규모의 행사를 보여주는 전경 스타일의 사진은 이벤트의 규모와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클로즈업이나 작은 그룹을 중심으로 한 사진은 개별적인 순간이나 감정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포함시킬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사진기자들과 편집기자들이 항상 고민하는 결정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진을 프레이밍하면서 어디까지 넣을 것이고 어디부턴 제외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사진은 뺄셈’이라는 교과서적인 잣대로 보자면 미니멀리즘이 고급스런 사진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신문에는 가끔, 아니 잊을만하면 전경(全景) 스타일의 사진이 게재됩니다. 등장인물이 많은 사진(1924년 5월 3일 자 동아일보 어린이날 축하회)을 전경 스타일의 사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행사의 규모 자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편집기자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풍선 날리기 순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조선일보 편집자의 선택도 존중합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신문 사진에는 등장인물이 많습니다. 위의 사진들을 보면 100년 전에는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미국 뉴욕타임스와 조선일보 지면을 비교했던 김영수 박사(전 부산일보 사진기자. 현재 미국에서 저널리즘 교수로 활동 중)의 책 『기록자와 해설자: 조선일보와 뉴욕타임스의 사진 비교』에서 실증되기도 했습니다. 김 교수는 신문 사진을 등장인물 숫자에 따라, 군중 사진(15명 이상 포함), 미디엄 사진(5∼14명), 희소 사진(4명 이하)로 구분하면서 군중 사진은 전체 규모를 강조하는 사진이고, 희소 사진은 개별적인 사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형식과 마찬가지로, 사진도 문화적 산물이자 문화적 배경과 연관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인을 중시하는 미국 신문에서는 등장인물이 적은 희소 사진이 많이 선택되고, 전체 맥락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등장인물이 많은 군중 사진이 선택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책에서 밝혔습니다. ● 숲을 보여줄 것인가 나무를 보여줄 것인가전체 맥락을 중시하는 우리의 문화적 배경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신문의 게이트키퍼인 편집기자들이 등장인물이 많은 사진만 선택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전경 스타일의 사진을 골랐다가 다음 날에는 클로즈업 스타일의 사진을 고르기도 합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지면과 뉴스 형식의 변화를 꾀하는 겁니다. 현장을 뛰는 사진기자 입장에서 다양한 앵글의 사진을 취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숲을 보여줄 것인가, 나무를 보여줄 것인가를 현장에서도 계속 판단을 해야 하는 겁니다. 아주 효율적인 사진 취재를 하는 동료 기자가 저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자기는 현장에 가면 군대 사격장에서 훈련하듯이 사진을 찍는다는 겁니다. ‘멀가중 멀가중, 멀중가중’으로.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잘 이해를 하실텐데요. 멀리 있는 타깃(멀), 가까이 있는 타깃(가), 가운데 있는 타깃(중)이 순서대로 올라오고 그 타깃이 올라오는 순서에 따라 몸의 자세를 바꿔가면서 사격을 하는 훈련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전경 스타일(멀), 클로즈업 스타일(가), 중간 스타일(중)을 섞어가면서 취재를 하면 다양한 앵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더라는 노하우였습니다. 꼭 신문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더라도 응용해 볼 만할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학예 발표회나 부모님의 팔순 잔치에서도 한번 시도해보세요. 전체도 찍었다가, 부분도 찍었다가. 최종적으로 앨범을 만들거나 블로그에 그날 행사를 올릴 때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 오늘은 100년 전 유도 경기 사진과 어린이날 사진을 통해, 등장인물 숫자에 따라 사진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은 이 사진들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임현택 신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앞줄 왼쪽)은 2일 서울 용산구 의협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의대 증원 승인 보류를 요구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정부가 진행하는 정책이 얼마나 한심한지 깨닫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넘쳐나는 오늘을 살면서,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한 장씩 살펴봅니다. 독자들의 댓글을 통해 우리 이미지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 미국에서 벌어지는 반(反) 이스라엘 시위 vs 100년 전 일제에 의해 해산된 조선 청년 대회요즘 미국에서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고, 그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들의 모습도 자주 보입니다. 4월 26일자 한 경제 신문에 실린 사진을 예를 들어 보면 사진설명에 “24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에서 경찰이 기마대를 앞세워 친 팔레스타인 시위를 해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텍사스대 재학생 20여명이 연행됐다. 지난 18일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촉발된 대학가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라고 써있습니다. 100년 전 우리나라 신문에도 권력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청년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실려 있어 소개 합니다.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4년 4월 26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결의 전 해산]-십 수명 경관 돌현(突顯)별항과 같이 최창익씨가 낭독한 제의안과 설명이 마치면서 마침에 장내의 공기는 극도로 긴장되였으며 그칠 줄을 모르게 되었으며 순서를 옮기어 결의(決意)하려 할 즈음에 돌연히 기자석 뒷문으로부터 정사복의 십 수명 경관은 살기가 등등하게 달려와 송미(松尾)경부가 해산을 명령하고 한편으로 제안문을 압수하는 등 현장은 수라장으로 화하여 돌연히 참을 수 없는 무슨 소리가 나올 듯 하였으나 아래위층에 부인 틈 없이 꽉찬던 관중과 각 대표 수백명은 흥분에 쌓인 채로 헤어졌다. 이 기사가 실렸던 신문보다 며칠 전 발행된 신문(4월 22일) 지면의 기사에 따르면 이 당시 청년대회에 참가한 단체의 숫자가 무려 223개 입니다. 좌우 이념의 모든 단체들이 참가해 나라의 미래에 대한 토론과 앞으로의 실천 방법들은 논의했다고 합니다. 규모가 큰 행사다보니 행사장에 기자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년대회의 주최자 중 한 명인 최창익씨가 결의문을 발표하려는 순간, 사복을 입은 경찰과 정복을 입은 경찰 십여 명이 기자들이 있는 곳 뒤쪽 문을 통해 갑자기 들어와 유인물을 압수하면서 순식간에 행사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곤 주최자와 관중 들 수 백명이 어쩔 수 없이 해산하였군요. 보통 이런 사진에서는 행사 참석자들의 모습과 함께 경찰의 모습까지도 함께 포함되어야 사건이 잘 설명되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그런 각도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는 공권력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경찰이 물리적으로 참가자를 해산시키는 순간이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었을테지만 현장감이 떨어져 아쉽습니다. ● 시위 사진을 찍는다는 것신문에 실리는 사진 중에서 시위 모습이나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모습은 사진 찍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현장은 질서가 없을 가능성이 높아 사진기자들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보통 시위는 공권력이 원하지 않는 행동이니 경찰들이 기자들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군중 심리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해 기자들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갈등의 상황은 사진기자들이 꼭 챙기는 현장입니다.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한국의 역사에는 시위의 기록들이 많습니다. 특히 1987년 전후 시위 사진은 신문의 단골 메뉴였습니다. 저는 입사하기 전이라 취재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당시 사진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은 매일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학생들이 던지는 돌과 화염병, 경찰이 쏘는 최루탄 가운데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취재를 했었습니다. 아침에 시위 현장으로 곧바로 출근해서 퇴근시간까지 시위 모습을 취재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진기자들의 필수 장비가 헬멧과 방독면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사 사진기자들이 방독면을 마지막으로 쓴 것은 아마 1996년 말~1997년 초 쯤 될 것 같습니다. 한총련이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 교정을 점거한 연세대 사태와 노동관계법 개정에 항의한 민주노총 시위 때 마지막으로 사용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후에도 헷멧을 쓰고 노사분규 현장에 가긴 했지만 최루탄은 더이상 터지지 않았습니다. 2024년 현재 신문사 사진부의 캐비넷에는 헬멧과 방독면이 없습니다. ● 미국 대학생 시위 사진에서 보이는 점미국 대학생 시위 사진에서 보이는 경찰들은 두꺼운 방석복(防石服)을 입고 헬멧을 쓰고 있는데 저의 눈에는 매우 익숙한 모습입니다. 중간중간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미국 학생들의 모습도 우리나라에서 한창 시위가 많던 시절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는 청년들을 공권력이 진압하고 해산시킨다는 점도 특이하고 말을 탄 경찰들의 모습도 이채로와 시선이 갑니다. 미국 텍사스대 시위대와 기마 경찰대의 충돌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특이한 점을 보았습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공권력의 모습을 찍고 있는 학생들 모습입니다. 아마 실시간으로 미 전역과 전 세계가 볼 수 있는 SNS에도 저 장면들이 올라가고 있겠지요? 누군가가 지켜볼 수 있다는 있다는 점만으로도 현재 미국 대학생들의 시위는 다른 나라의 역대 시위보다 덜 외로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오늘은 100년 전 조선의 청년들이 모여 민족의 미래를 토론하던 현장이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롯데월드타워·몰이 2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다음 달 5월 19일까지 ‘포켓몬 타운 2024 위드 롯데(with LOTTE)’ 행사를 열고 있다. 송파구청과 협업해 전시, 팝업스토어, 체험 등 포켓몬과 관련한 콘텐츠를 한 곳에 모은 것. 우선 행사 기간 석촌호수 동쪽에서는 약 16m 높이의 거대한 포켓몬 ‘라프라스’ 아트벌룬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전시되고 있다. 등껍질에 사람과 포켓몬을 태우고 바다 건너는 것을 좋아하는 라프라스의 등 위에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피카츄’가 타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앞 아레나 광장에는 ‘포켓몬 스마일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피카츄를 비롯한 여러 포켓몬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이상해의 도넛 창고’ , ‘꼬부기의 음료수 보관소’, ‘메타몽의 무비하우스’ 등 부스가 설치되어 있다. 5월 11일 토요일과 12일 일요일에는 아레나 광장 일대에서 15시 30분과 18시 30분 각각 두 번씩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롯데월드 어드벤처 퍼레이드팀과 11마리의 귀여운 피카츄가 참가한다. 한편, 실내 1층에 있는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는 새롭게 짜여진 야간 퍼레이드 ‘WORLD OF LIGHT’(‘월드 오브 라이트’)’가 26일(금) 밤부터 펼쳐진다. 어드벤처 개원 35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퍼레이드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빛이 어드벤처의 대표 캐릭터 로티·로리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멋진 파티를 만든다는 콘셉트로 진행된다. 미국, 일본, 홍콩 등의 유니버셜 스튜디오,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에서 다양한 퍼레이드와 공연을 제작한 전문가가 참여하였으며 멀티미디어쇼까지 더해 화려함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것이 롯데월드 어드벤처측의 설명이다. 퍼레이드 개발에만 100억 이상의 투자비가 들었다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나무가 시멘트를 뚫은 걸까요? 아, 구조물을 지을 때 나무를 위해 구멍을 낸 것이군요. 주인의 배려가 엿보이네요.―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챙겨야 할 기념일이 참 많군요. 선물을 팔기 위한 마케팅이긴 하지만 매달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도 새삼 느낍니다. ―서울 혜화동에서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