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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윤 화백(68·사진)의 시사만화 ‘황우럭’이 30일 1만 회를 돌파한다. 국내 시사만화의 1만 회 기록은 김성환 화백이 1955년부터 1980년까지 본보에 연재한 ‘고바우 영감’ 이후 처음이다. 1968년 5월 10일자 제주신문(현 제주일보)에 첫선을 보인 황우럭은 1960, 70년대 유신 독재정권과 1980년대 신군부 시절의 검열과 탄압상을 촌철살인의 익살로 그려내 인기를 끌었다.}

같은 재료로 만드는 음식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 마찬가지로 만화도 플랫폼에 따라 변한다. 책장을 넘기며 보던 만화가 네모반듯한 4컷으로 압축이 되고,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며 스토리를 전개하던 웹툰은 이제 손 안의 스마트폰에서 자유롭게 확대축소가 가능해졌다. 플랫폼의 변화는 새로운 소비 패턴과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 내면서 새로운 형식의 만화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해진 규격에 따라 그림을 그리던 작가들은 플래시나 OST를 삽입하면서 2차원적인 틀을 깨고 다양한 형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신문 시사만화에서 비롯된 4컷 만화는 만화가들 사이에서 오랜 기간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박석환 만화평론가는 “4컷 만화는 1920년대 동아일보에서 연재했던 김동성 작가의 ‘이야기 그림이라’를 시초로 보는데 1920년대 신문에 실린 노수현 작가의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계기로 점차 대중화됐다”고 전했다. ‘광수생각’ 등 웹툰 이전 단계에서 4컷 만화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에 웹툰이 도입된 초기까지도 압도적이었지만 포털이 발달하면서 긴 스크롤다운 형식으로 바뀌게 됐다. 스마트폰 이용자 3000만 명(8월 기준) 시대에 주목받는 콘텐츠가 된 웹툰은 네이버가 지난달 출시한 ‘스마트툰’을 통해 다시 변신을 시도했다. ‘마음의 소리’의 조석, ‘노블레스’의 손제호 이광수,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김규삼 등 인기 작가들이 새로운 형식의 웹툰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단순 스크롤 방식을 떠나 스마트 폰 화면을 터치하면 여러 방향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스토리 전개에 맞게 줌인-줌아웃(Zoom-In, Zoom-Out) 기능과 상하좌우 이동 효과를 낼 수 있어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듯하다. 스마트툰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스마트폰 환경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어서 좋다” “색다른 재미를 주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면 웹툰 생태계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평가한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매년 11월 세계 유수의 애니메이션 영화제들의 수상작들을 모아 ‘왕중왕’을 가리는 행사가 열린다. 오늘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내 서울애니시네마에서 열리는 ‘2012 최강애니전’이다. 7회째로 닷새 동안 열리는 올해 행사에선 경쟁부문 128편(33개국)과 초청작(비경쟁부문) 79편 등 207편을 선보인다. 이 영화제는 세계 4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로 꼽히는 프랑스 안시, 일본 히로시마, 캐나다 오타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비롯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과 브라질 아니마문디 등을 세계 10대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로 선정하고 이 행사들의 수상작 가운데 금년도 최고 작품을 뽑는다. 그랑프리 상금은 100만 원에 그치지만 수상자는 다음 해 심사위원으로 자동 지명돼 감독들에게는 이력상 혜택이 된다. 올해 최강애니전은 10대 영화제 수상작들의 출품 비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영화제 관계자는 “2005년 ‘애니충격전’이란 이름으로 출범할 당시엔 출품 비율이 20∼30%에 불과했는데 3∼4년 전부터 세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결과”라고 전했다. 요즘은 매회 유료 관객 수 기준 평균 2000∼3000명의 관객이 다녀간다. 먼저 주목할 만한 작품들은 당연히 10대 영화제들의 그랑프리. 올해는 안시영화제의 단편 그랑프리인 ‘트램’과 자그레브의 그랑프리 ‘오 윌리’, 오타와의 장편 그랑프리 ‘노인들’과 단편 그랑프리 ‘폐기물 처리장’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최강애니전에서도 그랑프리를 차지한다는 법은 없다. 외국 감독 12명과 한국 전문가 16명 등 심사위원 28명의 심사를 거쳐 다른 우수작들의 ‘반란’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묘미다. 경쟁부문 상영작은 관람 등급과 작품성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어린이, 가족 단위를 대상으로 한 ‘최강패밀리’,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최강임팩트’, 성인 대상의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로 꾸며진 ‘최강마니아’와 별도로 장편 애니메이션 6편이 속한 ‘최강장편’이다. 김성주 프로그래머는 “성인들이 1년에 닷새만이라도 애니메이션에 흠뻑 빠지고 애니메이션이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가 아님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경쟁부문 프로그램 가운데 ‘최강감독열전’에는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감독 3인방 일본의 야마무라 고지(29일), 영국의 필 멀로이(30일)와 베라 노이바우어(1일) 부부가 내한해 각각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마련한다. 상세 일정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홈페이지(www.ani.seoul.kr)와 최강애니전 홈페이지(www.animationfestival.kr) 참고. ○ 관람료: 일반 4000원, 청소년·어린이 3000원, 장애인·단체 2000원, 2012 수능 수험생은 수험증 지참 시 무료. ○ 문의 및 예매: 02-3455-8341, 2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운문일기(김선향 지음·서정시학)=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들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을 동시에 보는 작가의 개인적 삶의 기록을 시로 옮겼다. 1998년부터 14년 동안 기록해 온 담담한 자기 고백을 정리했다. 1만3000원○ 신화의 질서(송효섭 지음·문학과지성사)=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작품 속에서 인류의 끝없는 관심사로 자리매김해 온 신화. 회화, 공예, 조각 등 다양한 형태로 반복해 만들어졌던 신화도상을 기호학적 모델로 파악했다. 1만8000원○ 서태후와 궁녀들(진이, 선이링 지음·글항아리)=청나라 황실의 마지막 궁녀의 구술을 토대로 19세기 청의 현실을 복원한다. 백성을 등지고 권력을 누린 서태후의 호사스러운 일상과 궁녀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소개된다. 2만4000원 ○ 장파 교수의 중국미학사(장파 지음·푸른숲)=중국의 미학자가 상고시대부터 청나라까지 2000년에 걸친 중국 미학의 태동과 변천을 철학적 문화사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3만5000원 ○ 행위와 사건(도널드 데이빗슨 지음·한길사)=20세기 후반 미국의 분석철학계를 대표한 저자의 논문 15편을 모은 책. 그가 행위와 사건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 ‘무법칙적 일원론’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3만 원 ○ 에너지·자원정책의 재도약(김영학 지음·포스코경영연구소)=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낸 저자가 30년간의 공직 생활에서 천착해 온 에너지·자원 이슈를 아우르고 향후 국가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1만6000원 ○ 지금 왜 경제 민주화인가(김종인 지음·동화출판사)=12월 대선의 가장 큰 이슈인 경제민주화. 저자는 이것이 재벌 문제만 다뤄서는 해결되지 않는 시대적 과제라고 말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기 위해서 본래의 의미를 짚어본다고 설명한다. 1만4000원○ 인간화 시대(최노석 지음·21세기북스)=인간이 중심이 되는 거대한 변화의 시초를 감지하고 그 실상을 전한다. 산업화와 정보화의 법칙에 충실한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인간 존중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만5000원 ○ 고용 없는 성장과 응원석 경제(박웅서 지음·북치는마을)=강제 고용, 강제 실업의 고통을 반복하며 살아온 현대인들의 분노를 주목하며 21세기 고용 없는 성장이 가져올 문제들을 고찰한다. 1만8000원.}

《휴대전화, 매트리스, 변기, 칫솔, 치약 튜브와 뚜껑, 빗, 반찬통, 냉장고 손잡이, 요거트 통, 컵, 로션 뚜껑, 비닐 랩, 강아지 사료통, 신용카드, 이어폰, 전등 스위치, 점퍼, 엘리베이터 버튼, 사원증 케이스, 컴퓨터, 마우스…. 아침에 눈을 떠 회사로 출근하기까지 손에 닿은 플라스틱을 모두 기록해봤다. 약 2시간 동안 줄잡아 20가지가 훌쩍 넘는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물건들도 있을 것이다. 기록해보기로 마음먹은 건 단지 오기에서였다. 책 서문에 저자가 밝힌 ‘플라스틱에 전혀 닿지 않은 채로 하루를 보내는 실험’ 실패담을 읽은 뒤였다. “그 실험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실험이었는가는 눈을 뜬 지 10초 만에 변기 의자가 플라스틱인 걸 보고 알았다. 접촉한 플라스틱을 모두 적어보았더니 45분 만에 노트 한 페이지가 다 찼고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네 페이지가 찼다.”(12쪽)》1940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거의 0에 가까웠지만 70년간 꾸준히 증가해 2010년에는 2600억 kg이 됐다. 21세기 첫 10년간 만든 플라스틱의 양은 20세기 전체 기간에 만든 양과 비슷하다고 한다. 직접 손에 닿은 플라스틱을 적어 보니 백문불여일견이고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었다. 플라스틱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덟 가지 물건들을 통해 플라스틱의 역사와 문화, 경제, 과학, 정치를 살펴본다. 머리빗으로 플라스틱이 가져온 소비의 대중화를 분석하고, 라이터로 플라스틱이 낳은 ‘버리는 문화’를 고찰하며 비닐봉지를 통해 플라스틱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들여다본다. 플라스틱의 등장 시점은 논쟁적이다. 희소한 자연물질을 대체하기 위해 식물에서 추출한 준(準)합성 물질을 만들어낸 19세기 중반이 그때라고도 하고, 1907년 벨기에 출신 미국 이민자가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 분자들을 이용해 중합체(重合體)를 발명했다는 때를 기점으로 해야 한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플라스틱을 실험실에서 시장으로 끌어냈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이의가 없다. 진주만 공격이 벌어진 1941년 미군이 모든 군수 물자를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려 하면서 본격 플라스틱 시대가 시작됐다.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은 신속히 현대인들의 삶을 파고들었다. 플라스틱에서 파생된 문제들도 시나브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옥죄어 들어왔다. 한 세기 전 미국 하와이 섬의 라이산 앨버트로스에게 가장 큰 위협은 깃털을 노린 사냥꾼이었지만 지금의 최대 위협은 플라스틱이다. 어미가 바다에서 삼킨 오징어와 날치알을 토해 새끼에게 먹이는 이 새는 매년 태어나는 50만 마리 중 20만 마리가 플라스틱 조각으로 위장이 꽉 차서 죽는다. 새의 배를 가르면 병뚜껑, 펜 뚜껑, 라이터는 예사이고 심지어 60여 년 전 9600km 떨어진 곳에서 격추된 해군 폭격기의 부산물도 발견된다. 여러 장에 걸쳐 지적하는, 플라스틱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이미 새롭지 않다. 플라스틱 장난감의 유해물질 검출, 플라스틱제 병원 장비들의 호르몬 교란 등은 이미 숱하게 다뤄져온 주제들이다. 전 세계 장난감의 80%가 제조된다는 중국의 주강 삼각주와 광둥 성 공장 노동자들의 작업 여건, 비닐봉지를 대체한 종이봉지도 실상 쓰레기나 다름없어 환경 보호에 무익하다는 내용도 놀랍지 않다. ‘그래서 플라스틱을 쓰자는 것인가, 말자는 것인가’라며 책장을 넘긴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불멸의 플라스틱, 제대로 알고 써서 줄이자’ 정도가 될 것이다. 책 말미에 소개된 플라스틱 소비 추적 실험도 의미는 있지만 자못 미련해 보인다. 반납 가능한 유리병에 담아 파는 유기농 우유가 플라스틱 뚜껑으로 덮여 있다는 이유로 사지 않은 인물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나는 우유 안 마셔도 된다”고 말하는 부분은 시쳇말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장면으로 다가온다. 의미 있는 실험을 통해 얻은 “물질을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물건의 소유를 통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물질과 관계를 맺는가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교훈은 진부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쉽지만 유에서 무로 돌아가기란 어렵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탄생한 산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인류가 끝까지 플라스틱 숲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답은 저자도 기자도 모른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온라인 서점 5대 업체 중 하나인 대교 리브로가 12월 31일 문을 닫는다. 2001년 도서 유통사업을 시작한 지 11년 만이다. 1997년 국내 첫 등장 이후 온라인 서점의 폐쇄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교 리브로는 20일 출판사들에 공문을 보내 “도서 직매입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연내 사업 철수가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12월 21일 도서 판매 중단에 이어 24일 출판사 도서 직거래를 마친 뒤 31일 사이트 운영 종료와 함께 최종 폐쇄한다. 리브로는 홈페이지에 회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중단 세부 일정과 마일리지 등 회원 혜택의 처리에 관한 공지를 띄웠다. 리브로는 지난해 매출이 300억 원을 넘었지만 적자가 계속돼 사업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인터파크INT가 인수한다는 설이 나돌았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폐쇄 조치에 대해 출판계는 온라인 서점들의 저조한 수익과 맞물려 예상 가능했던 결과라는 분위기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는 “리브로 폐쇄는 온라인 서점도 브랜드화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며 “실핏줄이 있어야 몸 전체에 영양 공급이 되듯 곳곳에 물류가 공급되는 크고 작은 채널들이 다양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는 “온라인 서점들이 할인율을 높이면서 경쟁의 풀이 파괴됐다”고 설명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온라인 서점들의 판매부수가 줄어들고, 오픈마켓의 할인 공세가 이어져 다른 온라인 서점들이 생존하는 길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독자와 출판사, 유통업체가 공생할 수 있는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1911∼1995)는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 “환자(患者)의 ‘환’은 꿰맬 관(串)자와 마음 심(心)자로 이뤄져 있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야 한다는 뜻이다. 환자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필요하다.” 병원은 아픈 몸을 고치는 곳이지만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도 될 수 있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환자 또는 보호자로 병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책 읽는 병원’ 프로젝트는 그런 이들에게 무료하고 지친 심신을 달래는 방법으로 독서를 권한다.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별관 1층의 책 읽는 병원 1호관. 일 년에 한 번 갑상샘 정기검진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는 송윤주 씨(45·여)는 건강서적 5, 6권을 쌓아 두고 읽고 있었다. 그는 “1년 전에도 이런 공간이 있었지만 책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며 “외래 환자들이 대기시간을 보내기에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66m² 규모인 이곳에는 2700여 권의 장서가 있다. 하루 평균 100여 명이 다녀간다. 원래는 병원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공간으로 검은색 철제 프레임으로 덮인 칙칙한 분위기였다. 환자들만을 위한 독서공간은 없었고 지하에만 서고를 운영했다. 병원이 ‘쉼의 공간’이 돼야 한다는 인식에 따라 2010년 도서관으로 문을 열었다. 6차례 도서 기획전을 열어 수익금 1700만 원으로 신간 도서들을 구입했다. 산뜻한 인테리어도 병원 이미지 개선에 큰 몫을 하고 있다. 김명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사회사업팀장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 치유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2호관으로 개관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의 함춘서재. 19일 오후 이곳은 환자복을 입은 채 소설을 고르는 이들과 책을 읽으러 온 외래 환자들로 붐볐다. 위 수술로 1주일간 입원하고 있다는 박석주 씨(48)는 “무료할 때마다 이곳에 내려와서 문학 작품을 고른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의 홍보와 사서 업무를 겸하고 있는 맹현정 씨는 “이전에는 어린이병원에 있던 도서실과 일반 병동이 멀어 이동도서실을 운영했지만 같은 건물로 옮긴 뒤 하루 200∼300명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 대출순위를 살펴본 결과 상위 30권 안에 문학이 18권이었다. ‘생로병사의 비밀’ ‘암중모색 암을 이긴 사람들의 비밀’ 등 의학 관련 도서가 5권으로 뒤를 이었다. 책 읽는 병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도서관담당 이수평 간사는 “오래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TV에 질려 있다가 모처럼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환자를 돌보다 지친 보호자들도 책을 빌려 가서 읽으면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들 한다”고 전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지만 미혼자에게 결혼은 확실히 ‘신세계’다. 신혼의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버무린 에피소드와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기혼 여성 작가들의 ‘결혼 웹툰’이 미혼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매회 에피소드가 올라올 때마다 ‘이런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 어디 없나요?’라고 외치는 이들을 위해, 대표적인 ‘결혼 장려 웹툰’들을 작품 속 남편 캐릭터의 입을 빌려 소개한다. △뚱스(‘딩스뚱스 in 아메리카’): 면역학 전공한 박사 출신 부산 싸나이입니더. 직장 고마 쎄리마 때리 치아뿌고 호주로 온 아내 ‘딩스’하고 만나가 결혼했다 아이요. 미국 보스턴 연구소에서 일자리 하나 얻어가꼬 딩스하고 좌충우돌 결혼 3년차 신혼생활기 실감나게 전하고 있습니더. 사람 마음 상가롭게 만들어쌌는 비싼 물가 때문에 일주일 내도록 만두만 묵고 산 적도 있고 어무이 몰래 딩스 대신에 김치 담근 적도 있다 아인교. 최근엔 딸내미 ‘땡스’까지 태어나가꼬 본격 ‘육아툰’도 선보이고 있고요. 아파도 병원비 아낄라꼬 한인커뮤니티에서 항생제를 구해내는 친화력캉 무서운 흑인들을 마주쳐도 싱긋 웃을 수 있는 담대함이 없으모 아예 미국서 살 생각은 싹 치아 뿌는 게 나을끼요. △캐러멜(‘결혼해도 똑같네’): 같은 만화작가인 네온비와 지난해 11월 결혼해 부부애만큼 진한 동지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부가 공동으로 웹툰(‘다이어터’)을 만들어가며 깨소금내 나는 신혼을 즐기고 있습니다. 신혼집이 곧 작업실이고 마감이 가까워져 올 무렵 조용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지만 마감만 넘기면 오후에 영화도 보고 연애 초반처럼 데이트도 합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N밴드와 샤이니의 음악을 같이 들어주고 힘들 때 보듬어주는 저야말로 자상한 남편의 대명사. 10대, 20대 미혼여성들의 로망을 채워줘 댓글로 추파를 던지셔도 소용없습니다. 이미 ‘sold out’이니. △한군(‘어쿠스틱 라이프’): 게임개발자의 아내라면 적어도 RPG와 TRPG의 차이는 앉은 자리에서 읊을 수 있어야지 흠흠. 결혼 5년차면 아내 ‘난다’의 걸음만 봐도 다음 상황이 그려진다.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 연애할 때는 팔베개하며 하트를 내뿜고 있을 당신들, 결혼하면 각자 등을 돌리고 자야 숙면을 취할 수 있음. 특히 남자들, 5년만 지나면 트렁크 팬티는 아내의 잠옷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마시길. 독기 어린 로맨스와 시니컬한 일상조차 공유하고 싶은 여성이 있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하지만 요리는 둘 중 하나는 잘해야 섭생에 지장이 없다. △메브(‘펭귄 러브스 메브’): 나는 영쿡 사람입니다. 마이 와이프 ‘펭귄’은 가끔 내게 한국말을 엉뚱하게 가르쳐줘요.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는’ 뜻이라며 ‘방구쟁이’라는 별명을 선사했는데 그걸 한국인 친구들에게 자랑했다가 놀림 받았어요. 모든 부부가 그렇듯, 우리는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문화와 언어도 달라서 처음엔 오해도 많았지만 펭귄이 다혈질이라 주로 내가 참아요. 가끔은 청개구리처럼 말을 안 들어서 펭귄 속을 썩이지만 집안일은 원래 각자가 잘하는 걸 나눠서 하는 거예요. 그래도 감기 걸렸을 때, 펭귄이 끓여주는 칼칼한 찌개 생각이 제일 먼저 나는 거보면 ‘메 서방’ 맞지요?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아테네는 냄새로 가득하지. 동방의 향료 냄새, 남방의 샤프란 냄새, 북부 산악지대에서 온 황금의 냄새. 포로들과 발을 끌며 걸어가는 노예들의 땀 냄새…. 나는 지금 법정을 향해 걸어간다네. 젊은이들의 힘을 믿고, 노인의 지혜에 기대는 이 애증의 도시는 내 삶과 재판에 대해 들려주고 싶지 않겠지만 난 그 이야기를 꼭 해야겠네. 내가 법정에 가게 된 소상한 전말을, 이 도시와 시대의 모순을 햇볕 아래 생생하게 끌어낸 주인공은 역사학자인 베터니 휴즈. 아래 ‘글로벌 북카페’가 소개한 앤드루 마와 함께 BBC가 신뢰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진행자 중 한 사람이라네. 믿어도 좋을 거야. 돌이켜보건대 나의 죄목은 무엇이었던가? 불경죄. 아테네 신을 숭배하지 않고 젊은이들을 신에게서 등 돌리게 함으로써 타락시켰다는 건데, 진짜 문제는 내가 시끄럽고 허름한 구두장이 공방에서 관습을 벗어난 새로운 생각의 씨앗을 틔웠다는 거였지. “자신과 화해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그들’이 아닌 우리 자신이다.” 하지만 아테네인들에게 젊은이는 신성한 존재이자 절대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될 불가침의 존재였음을 내가 간과했던 건지 모르겠군. 이 도시가 사랑하고 소중히 아끼는 그들이 더 많은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그들과 어울렸던 것이거늘. 오해들 마시게. 나는 고매하신 철학자님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도시를 휘젓고 다니며 술을 마시고 흥청거렸네. 그저 이날 이때까지 시민들에게 구두를 만들면서도, 노를 저으면서도, 빵을 구우면서도 인간은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지. 혹자는 그럽디다, 내가 ‘도넛 같은 사내’라고. 내 철학 얘기는 무궁무진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를 설명하는 자료들은 뻥 뚫려 있어 실속이 없다는 뜻일세. 그래서 알려주겠네. 아테네는 자유와 민주주의, 문명이 완벽히 갖춰진 도시는 아니었어. 외면의 아름다움이 내면의 고귀한 영혼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믿는 이들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나는 추하고 너저분한 남자였네. 시민들이 말하는 자유는 페르시아의 ‘개 같은 야만인’에게 억압당하지 않을 자유와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을 자유였고,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는 아고라에선 1년에 단 하루를 빼고 매일 크고 작은 종교축전이 열렸지. 사람들은 불에 그슬린 염소 털과 비둘기 피를 바쳤고, 아픈 사람의 팔다리와 무릎, 성기를 본뜬 모형도 바쳤다네. 소송을 즐기는 아테네인들에게 법정은 한 편의 연극 같았지. 합의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상대를 이기기 위한 곳이었으니. 남자들이 울고 애걸했고 귀족들이 민중의 발아래 엎드리기도 했지. 원고와 피고의 눈물, 간절한 손동작, 멋진 언변,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최후의 판결까지…. 법정이라는 극장에서 일어나는 교묘한 감정 조작은 수많은 배심원, 아니 관객들에게 중요한 흥행 요소나 다름없었다네. 전쟁이 끝난 후 남성의 3분의 1은 목숨을 잃었고 내전 시기에는 파벌 정치로 일가족이 몰살당하며 울부짖던 아테네는 카타르시스를 간절히 원했고 책임을 물을 대상이 필요했지. 그게 오늘의 나라는 점이 안타깝지만.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네. 나는 한 사람씩 찾아다니며 물었고, 사람들은 내 질문에 화를 냈고 나를 미워했지. 그 사실이 슬프고 두려웠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개인이나 재산에 신경 쓰는 만큼 영혼의 완성에 신경 쓰도록 설득하며 돌아다니고 싶었네. 본질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절대 열등하지 않다며 전통과 관습 그 너머를 보도록 자극했지만, 이 역시도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지. 사랑했지만 날 버린 애증의 도시 아테네에서 나는 너무 이른 꿈을 꾼 것 같네. 이 도시가 나를 받아들이기엔 아직 준비가 덜 돼 있지 않나 싶어. 새로운 미래를 가꾸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거나, 누군가는 앞서서 몰매를 맞아야 하는 법. 자, 이제는 자네가 선택할 시간. 나를 죽일 배부른 돼지가 되겠는가, 나를 따라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후예가 되겠는가.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막이 오르기 10분 전, 무대 뒤는 조용하지만 분주하고 어둡지만 살아 있다. “선생님, 대사 기억 못 하면 어쩌지요.” 두꺼운 분장으로도, 60년 넘게 살아온 경륜으로도 떨림은 감출 수가 없었다. 강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힘을 주었다. “어머니, 욕심내지 말고 평소 어머님답게만 하시면 돼요.” 올 여름과 가을 내내 외우고 익힌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 15분은 짧았다. 하지만 도중에 대사를 잊어 발을 동동 구른 이도, 프로 못지않은 발성과 연기를 뽐낸 이도 모두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15일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열린 ‘청춘 연극제’는 전국 노인복지관 연극반에서 활동하는 60∼80대 ‘연기자’들이 무대를 빌려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를 속 시원히 토해 내는 자리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연극제는 올해로 2회째다. 23개 팀 가운데 온라인 예심과 권역별 예심을 거친 6개 팀이 무대에 올라 창작극 4편과 퓨전마당극, 악극을 선보였다. 노인의 이성 문제, 버려지는 노년의 삶과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부산노인종합복지관 연극반 ‘연빛’의 창작풍자극 ‘강아지집 속 할아버지’는 가정에서 홀대받는 할아버지가 주인공이었다.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강아지 ‘해피’를 부러워하던 주인공. 그를 본체만체하던 가족들은 주인공이 강아지 집 속으로 들어가 멍멍 짓자 그제야 병원에 모시고 간다. “멍멍” 짖으며 실감나게 해피 역을 연기하는 할머니를 보고 즐거워하던 관객들은 할아버지가 “해피 너는 배고프면 알아서 밥 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지만 나는 아무도 돌보질 않는다”며 처연하게 읊조리자 “며느리가 못된 ×이구먼” 하며 흥분하기도 했다. 서울 신내노인종합복지관 ‘붐붐시니어연극단’의 ‘봄이 가면 내가 봄이 되어’는 노년에 찾아온 사랑을 아련하게 그렸다. 연극반 수업 때 설문조사를 했는데 노인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이성 문제였다. 험한 시집살이와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견뎌 온 꽃분이가 연극반에서 첫사랑을 만나지만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이별한다는 줄거리였다. 울산노인복지관 연극반의 ‘동치미’는 사업 실패로 손 벌리는 아들, 배우를 꿈꾸며 대학로를 배회하는 막내딸 등 필요할 때만 부모를 찾는 자식들을 둔 부부가 주인공이다. 자식복은 없어도 금실은 좋았던 부부. 어느 날 부인이 병원에서 사망 선고를 받자 남편은 영정 사진을 염두에 둔 듯 “우리 사진이나 찍자”고 말하고 막이 내린다. 관객들은 오래도록 눈가를 훔쳤다. 서울 도봉노인종합복지관의 연극반 ‘울력’은 씩씩했다. 이들은 ‘99세까지 팔팔하게’라는 뜻을 담은 창작극 ‘9988 쾌지나 칭칭’을 통해 저승사자들에 당당히 맞서는 노인들을 보여줬다. 연극반 4년차에 접어든 임명희 씨(66·여)는 “관중이 내 연기를 보고 우는 모습을 보니 구름 위에 앉은 듯 황홀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김경순 씨(65·여)는 “연극이 끝나고 박수받을 때만큼 값진 순간도 없다”고 했고, 백규탁 씨(65)는 “아직도 무대 뒤에서는 늘 긴장이 되지만 뮤지컬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붐붐시니어연극단’을 지도하는 강사 강혜라 씨(43·여)는 “연기는 경험에서 우러나온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만 제시하면 풍부한 감정 표현이 가능해요. 연륜, 그거 무시 못 하겠더라고요.”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국민 여동생’으로 불려온 가수 아이유(19)가 그룹 슈퍼주니어의 은혁(26)과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실수로 공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10일 새벽 아이유 트위터 계정에는 아이유와 은혁이 머리를 맞대고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아이유는 잠옷을 입은 채였고, 은혁은 윗옷을 탈의한 것처럼 보여 누리꾼들 사이에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이 사진은 곧 삭제됐다.아이유의 소속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 측은 “아이유가 아팠을 때 은혁이 문병을 와 소파에 앉아 찍은 사진”이라며 “아이유가 트위터 멘션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본인 트위터 계정과 연동된 사진 업로드 사이트에 해당 사진이 업로드됐다”고 해명했다. 로엔 측은 “은혁은 아이유와 데뷔 때부터 가깝게 지내온 선후배 사이로, 아이유 어머니와도 함께 식사자리를 가질 정도로 절친한 사이”라고 강조하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아이유가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데뷔 후 열애 사실을 밝히면서 “(팬들을) 실망시킬까 봐 부담이 있지만 팬들의 뒤통수를 한 번 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어 이 발언과 삭제된 사진을 결부해 해석하는 글들로 인터넷은 더욱 달아올랐다.드러머 남궁연은 이날 아이유 소속사의 해명을 받아치는 “대한민국 삼촌들의 새로운 로망 ‘병문안’”이라는 트위터 멘션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지음·책세상)=알베르 카뮈와 그의 고등학교 은사인 장 그르니에가 주고받은 235통의 편지를 담았다. 사제 관계를 넘은 문학적 동지의 애정과 배려가 장마다 가득하다. 1만7800원. 이상 소설 전집(이상 지음·민음사)=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번째 책. 전집이 시작된 지 15년 만의 결실이다. 국내 대표적 이상 문학 연구자인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가 원문과 일일이 대조한 이상의 소설 13편을 담았다. 1만3000원. 김준엽과 중국(사회과학원 편저·나남)=광복군 출신으로 고려대 총장을 지낸 중국학자 김준엽 선생의 1주기를 맞아 낸 추모문집. 인간 김준엽을 추억하고, 한국의 중국학과 중국의 한국학에 대한 학자들의 논문들을 모았다. 4만5000원.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 병합 구상과 조선 사회(오가와라 히로유키 지음·열린책들)=일본의 진보사학자인 저자가 한국 강제 병합의 전말을 밝혔다.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 식민지화 정책이 온건했다는 일본 주류 역사학계의 평가를 경계한다. 2만8000원. 근대의 시선, 조선미술전람회(안현정 지음·이학사)=일제강점기의 박람회와 박물관은 거대한 전시를 통해 식민지 규율 권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정치적인 이벤트였다. 근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이 시각 매체들을 통해 권력관계를 내면화했는지 분석했다. 2만 원. 상상된 아메리카(장세진 지음·푸른역사)=한국인들이 박찬호, 박세리, 싸이에 열광하는 배경 뒤에는 백인에 대한 콤플렉스와 미국에 대한 동경이 있다? ‘우리 안의 미국’의 기원을 탐색하면서 상징으로서의 아메리카를 들여다본다. 2만8000원. 하이테크 시대의 로테크(허원순 지음·W미디어)=프로야구와 유럽 프로축구,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속 뉴스가 하이테크라면 달리기와 걷기, 종이신문은 로테크가 된다. 현대를 이해하는 틀로 하이테크와 로테크라는 두 개념을 도입해 현대인들의 모습과 특징을 설명한다. 1만3000원. 거버넌스 시대의 국정개조(박재창 지음·리북)=권력을 나누고, 나눈 것을 연대하고 협력해 새로운 과제 해결 시스템을 만드는 ‘나눔의 시대’. 총 8장에 걸쳐 기존의 거버넌스 논의들을 집약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국정개조 청사진을 제시한다. 2만 원. 누구나 저마다의 실패를 안고 산다(김서곤 지음·휴먼큐브)=국산 수술기업 1호로 시작한 작지만 강한 의료 전문기업 대표의 경영철학서. 1만4000원.}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하라.” 지략서의 고전 ‘손자병법’은 전 13편에 걸쳐 초지일관 이렇게 전한다. 세월이 흘러도 ‘이기는 싸움만 하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지구촌 각국이 선거의 계절을 맞은 요즘, 누가 어떤 방법으로 승자가 될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7일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올해 선거운동 전략은 요약하자면 ‘감성에 호소하라’였다. 4년 연속 1조 달러를 넘어선 재정적자와 8∼9%를 상회하는 높은 실업률은 4년을 더 바라보려던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유권자와의 ‘스킨십’에 힘을 쏟았다. 8월 ‘피플’ 등 연예전문매체들과 만나 잡담성 대화를 나누고, 뉴멕시코의 한 FM라디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운동할 때 비욘세 노래를 듣는다” “초능력이 있다면 모든 나라 언어를 말하고 싶다”며 특유의 유쾌하고 부드러운 면모를 내세웠다.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도 허리케인 ‘샌디’ 피해 주민에게 전력투구한 위기대응 리더십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던 그의 지지율 반등에 큰 몫을 했다.이 책은 ‘이기는 선거’를 위해 힘썼던 미국의 각종 선거캠프가 겪은 시행착오 모음집이다. 워싱턴포스트와 보스턴글로브 등 미국 유력지에서 정치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저자는 학자와 통계학자, 전략가들이 정치적인 캠페인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고안해 냈는지를 상세히 소개한다.어느 날 ‘당신은 이번 선거에 투표하기로 약속했으니 약속을 잘 지켜주세요’라는 편지를 받는다면 어떨까.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든다면 당신은 투표소에 갈 생각이 없었거나 기존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싫증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정치컨설턴트 핼 맬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나 거짓말쟁이로 보이고 싶지 않은 심리를 이용해 100만 명에게 편지를 돌렸고, 민주당은 2010년 번번이 참패했던 콜로라도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비로소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유권자 맞춤형 선거전략, 즉 ‘마이크로 타기팅’의 시작이었다. 2008년 오바마의 ‘버스 광고 전략’은 유권자들의 개별 데이터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예로 소개된다. 대표적인 스윙스테이트(경합주)로 꼽히는 오하이오에서 오바마는 버스 안 천장 부근에 줄줄이 설치된 가로 70cm, 세로 40cm 크기의 판지 광고에서 “기다리지 마세요. 먼저 투표하세요. 우리의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라며 매일 주민들과 출퇴근길을 함께했다. 개별 데이터를 분석하던 도중 유권자들이 대중교통 공간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든 전략이었다. 그때까지 효과가 없다고 치부됐던 버스와 지하철, 정류장 광고 전략은 캠프 최고의 성과로 기록됐다. 이렇게 사회심리학과 과학으로 무장한 현대의 정치커뮤니케이션은 유권자의 행동을 바꾸거나 마음을 얻는 순간을 구별해 내고 있다.“선거 운동은 유권자를 다시 사람으로 대우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제야 선거캠프가 이웃의 노크나 모르는 사람의 전화 등 개인에게 접근하는 ‘인도주의적 방식’을 택했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유권자들을 여전히 ‘한 표’로 보는 오늘의 현실을 두고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해서 그것을 인도주의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후보들에게 유권자는 여전히 목적이 아닌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근본적인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하지만 ‘표심에 대한 관심’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유권자의 취향이 무엇이고, 생활패턴이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 데이터를 마주하는 자세가 인도주의라면 선거가 끝난 뒤 인도주의적인 당선자는 왜 만나보기 힘든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읽는 내내 ‘한국에는 역대 선거캠프의 전략을 모아둔 책이 없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과연 이 책은 한국 대선캠프 활동가들에게 어떤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까. 무엇이 됐든 부디 ‘겉핥기식 인도주의’가 이기는 선거를 위한 싸움의 기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번 미국 대선에서 가장 관심을 끈 스윙스테이트(경합 주)는 플로리다 주였다. 플로리다는 11개의 경합 주 가운데 선거인단이 가장 많은 29명. 전국 지지율에 관계없이 선거인단 270명 이상을 확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현 선거 시스템을 고려하면 29명은 10% 이상의 막강한 기여도를 지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6일(현지 시간) 핵심 경합 주인 오하이오와 아이오와, 펜실베이니아에 이어 플로리다에서도 승리하면서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를 제치고 재선을 확정지었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의 하나였던 플로리다는 당초 롬니 후보가 오바마 대통령보다 우세할 것으로 점쳐진 곳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주요 여론조사 결과를 평균해 발표한 정치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투표일 직전까지 롬니 후보는 플로리다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오바마 대통령보다 앞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경제 회복이 다른 주보다 느리고 장기간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던 플로리다에서는 공화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유권자들이 우세했다고 로이터통신이 7일 전했다. 치열한 경합을 벌인 플로리다에서 오전 한때 개표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개표가 97% 진행된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4만6000여 표 차로 롬니 후보를 앞섰다. 지역 일간 마이애미헤럴드는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개표가 수요일 오후 늦게 완료될 것”이라고 보도해 한국 시간으로는 8일 오전이 지나야 결과가 완벽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롬니 후보 우세로 알려졌던 플로리다에서 박빙 끝에 오바마 대통령이 신승을 거두게 된 것에 대해 “무당파 유권자들이 조금 더 오바마를 밀어준 것으로 풀이된다”고 UPI통신은 7일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승리함으로써 건강보험 의무 가입에 반대해 왔던 이곳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지 주목된다. 플로리다는 이전 대선에서도 표심의 향방을 가르는 전통적인 격전지였다.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는 36일에 걸친 개표와 재개표, 그리고 대법원 판결 끝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줬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서촌(西村)은 다양한 삶의 질감이 공존하는 동네예요. 갤러리와 카페가 있고, 산이 있고, 재래시장과 사람들이 조화롭게 사는 서촌은 예술인에게 탁월한 영감의 원천이죠.” 서울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 사이에 자리한 옛 동네를 서촌이라고 부른다. 행정구역으로는 종로구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효자동 창성동 통인동 통의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체부동 사직동 필운동 내자동 적선동 등 15개 동이 모두 서촌이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을 만든 이해영 감독 겸 시나리오작가(39)는 6월 필운동의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을 강남에서 보낸 ‘강남 키드’였고 30대에는 시끌벅적한 인디문화의 메카인 홍익대 앞에 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온 그가 돌연 10년간의 홍대 앞 생활을 정리하고 이 조용한 동네로 흘러들어왔다. ‘화차’의 변영주 감독도 자신의 영화제작소 ‘보임’ 사무실을 서촌에 마련했고, 가수 윤건은 이곳에 작업실과 카페를 차렸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촌의 문화예술 공간이 한적하고 예스러운 분위기로 주목받아온 가운데 예술인들도 하나둘씩 서촌에 둥지를 틀고 창작활동을 하는 추세다. 2일 오후 가벼운 ‘동네 복장’으로 나온 이 감독과 서촌 곳곳을 거닐며 ‘서촌 예찬’을 들었다. ○ 화려한 홍대 앞에서 소박한 서촌으로 “홍대 앞에 살 때는 젊음과 에너지를 얻는 대신 새벽에 만취한 사람들의 토하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어요. 마흔에 접어드니 새소리에 깨고 어느 골목에서나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이는 서촌에서 삶다운 삶을 찾고 싶었죠.” 유독 토박이가 많은 서촌 사람들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이웃 간의 유대가 강하다. 이 감독이 이사를 오자 주민센터에서 전입자 대상으로 여는 ‘서촌 골목 도보 투어’에 참가하라는 공지가 날아왔다. “이런 투어가 있다는 것도 신선했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는데도 서촌 토박이 주민이 가이드로 나서 동네 곳곳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통인시장에서 순대를 썰던 아주머니가 처음 보는 손님의 입에 순대를 넣어주고, 목욕탕에서는 때를 밀어주는 아저씨가 구두까지 닦으며 1인2역을 하는 등 동네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그에겐 정답게 다가왔다. 이 감독은 “서촌에 살면서부터 시나리오를 쓸 때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 확실히 넓어졌다”고 말했다. 동료 영화인들과의 사이도 가까워졌다. 허진호 임상수 김정환 감독이 이 감독의 이웃사촌이고 주변에는 명필름, 인디스토리, 누리픽쳐스, 주피터필름 등 영화사들이 있다.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의 구정아 프로듀서가 운영하는 바 ‘퍼블릭’은 영화뿐 아니라 디자인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이 모여 교류하는 사랑방이 되었다. ○ 예술가 발길 잡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 서촌은 예로부터 문인 노천명 이상 윤동주, 화가 이중섭 박노수 이상범 등 유명 예술가들이 살아온 터전. 지금도 이들의 집터나 가옥, 화실이 남아 있다. 건축가 김원과 황두진, 심재명 이은 명필름 공동 대표이자 부부도 서촌 주민이다. 북촌에 살던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최근 체부동에 낡은 한옥을 얻어 한옥 수리 과정과 서촌에서의 삶 이야기를 전하는 ‘체부동 한옥 프로젝트’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그룹 보드카레인의 기타리스트 이해완도 홍대 앞에서 서촌으로 이사하는 등 인디뮤지션들도 서촌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최근 서촌에는 작은 갤러리, 출판사, 서점, 카페 등이 골목 사이사이에 들어서고 각종 문화행사를 열면서 이 일대가 문화의 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7월에는 청운동에 윤동주 문학관이 문을 열었고, 이상이 살던 통인동 집터에 세워진 가옥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이상의 집’이 1월부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이상의 집은 내년 4월까지 이상, 근대, 경복궁 서측 지역 등을 주제로 음악 문학 영화 미술 건축 관련 문화행사를 선보이는 ‘통인동 제비다방’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7월에는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한 폭의 배경이 된 인왕산 수성동계곡이 복원, 공개됐다. 옛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정선의 그림 속 경관을 살린 것이다. 서정주 시인 등 많은 예술인이 묵었던 80여 년 역사의 통의동 보안여관은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쓰인다. 2006년 출판사 푸른역사를 용산구 동자동에서 통의동으로 옮긴 박혜숙 대표는 “인왕산 경복궁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서울광장 교보문고처럼 최신 문화가 진행되는 현장과도 가깝다”며 “서촌은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곳으로 출판사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통의동 한옥에 자리한 갤러리인 사진 위주 류가헌의 박미경 관장은 “서촌은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관람객 수는 적지만 관람객들은 오직 전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고 단골이 되기 때문에 작가들에게는 큰 동기 부여가 된다”고 전했다. 한적한 문화 마을 서촌이 카페와 가게들로 급격히 상업화된 삼청동이나 관광객이 몰리는 북촌처럼 변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서촌에 살며 마을소식지를 발간하고 책 ‘서촌방향’을 출간한 설재우 씨는 “서촌은 청와대와 가까워 개발에 규제나 제약이 많아 옛 모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지나치게 상업화되지 않도록 개발과 보존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다섯 사람이 할 일을 혼자 다하는 한국인의 끈기와, 동서양의 이미지를 조합한 그림체에 미국 회사들이 반했죠.” 한국의 ‘그래픽 노블’(소설처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과 구성을 지닌 만화책)을 이끌어갈 신예 작가들이 입을 모았다. 최준혁 작가(32)를 비롯한 작가 6명은 미국 그래픽 노블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K-스튜디오’를 차리고 여섯 달간의 창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8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기획한 ‘K-코믹스 글로벌 공동창작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그래픽 노블은 미국 마블코믹스의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DC코믹스의 ‘슈퍼맨’ ‘배트맨’ 등으로 대표된다. 원작뿐만 아니라 영화화 등을 통해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개념 자체가 얼마간 생소한 만큼 저변이 넓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K-스튜디오에 둥지를 튼 작가들은 100여 일이 지난 현재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장혜미 작가(24·여)는 세계적인 호러물 ‘헬레이저’의 1권 작화 작업에 참여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스토리보드에서 최종 원고까지 책임지는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렸고 2권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만화가들이 단순 채색 작업이나 스케치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장 작가는 “처음에는 미국 시장에 녹아들기 위한 미국식 만화로 발돋움을 시작하겠지만 그 뒤엔 나만의 이야기와 한국인의 마음에도 호소할 수 있는 창작만화로 이름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유명 그래픽 노블 회사와 손잡고 작업하는 작가도 생겼다. 마블코믹스는 윤중근 작가(28)와 김락희 작가(28)에게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을, ‘하벌린 스튜디오’ 출판사는 이찬혁 작가(27)에게 만화 ‘The Abnormal’의 3차원(3D) 페인팅을 맡겼다. 세계적인 게임 콘셉트아티스트로 꼽히는 캉 리는 이인혁 작가(27)의 홈페이지와 포트폴리오를 본 뒤 게임 ‘Hwaken’의 그래픽노블 아티스트 역할을 제안했다. 이처럼 미국 회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것은 한국인 매니저와 미국 현지 출판 관계자가 6명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직접 뛰어다닌 덕분이다. 이인혁 작가는 “내 그림으로 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그래픽 노블에 대한 꿈을 키워 왔다”며 “‘마블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현재 마블의 그래픽노블 테스트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유의 끈기와 책임감으로 단시간 내에 혼자 ‘풀 페인팅’(만화의 올 컬러 작업)이 가능한 것을 한국 작가들의 강점으로 꼽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필, 잉크, 컬러, 원고, 표지 작업이 모두 분화돼 있다. 이현세 만화가 겸 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은 “히어로물 일색인 미국에서 동양적 그림과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작가들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며 “후배 작가들이 미국에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잘 만든 휴재 공지 하나, 열 에피소드보다 낫다?’ 매일 아침 좋아하는 웹툰의 새 에피소드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회사원 김나현 씨(26·여). 한 주 내내 손꼽아 기다렸던 웹툰이 제때 올라오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게시판에 ‘담당자님 지금 주무십니까?’ 하고 댓글을 달 정도는 아니지만, ‘이번 주는 쉽니다’ 하는 갑작스러운 휴재(休載) 공지가 걸리면 더럭 분노가 일기도 한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웹툰 작가들은 이따금 사정상 업데이트가 어려울 경우 연재를 쉰다며 휴재를 알린다. 보통은 포털 담당자 측에서 ‘○○○ 작가의 △△△는 이번 주 작가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 정도를 공지사항 게시판에 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작가들이 직접 간단한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려 올리는 등 다양한 형식으로 휴재를 알리면서 작가 본인이 느끼는 독자에 대한 미안함으로 독자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상쇄하기도 한다. ‘역전! 야매요리’의 정다정 작가는 지난달 19일 휴재 당시 평소에 받았던 질문들을 추려 모은 내용을 Q&A 식으로 정리해 눈길을 끌었다. ‘재료는 어디서 구하나’ ‘오븐은 살 생각 없나’ ‘남자친구 언제 생기나’ 등 17가지 질문에 재치 있게 답변해 호평을 받았다. 일부 댓글에는 ‘Q&A 휴재 공지가 웹툰보다 더 재밌다’는 의견도 나왔다. 휴재 공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작가가 평소에 얼마나 성실했느냐와 작가에 대한 신뢰도를 알아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2주 전 2화를 쉬었던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평소 긴박한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로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만큼 휴재 공지가 나간 뒤 “열심히 하셨으니까 쉬셔도 된다” “푹 쉬고 더 좋은 작품 만들어 달라. 기대하겠다” 등의 격려성 댓글이 많이 달렸다. 웹툰 ‘결혼해도 똑같네’의 네온비 작가는 자신의 생활 이야기를 작품 속에 털어놓다 보니 휴재를 알려도 사정을 잘 아는 독자들이 알아서 이해하고 오히려 건강을 염려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휴재가 자주 이어지는 작가는 독자로부터 외면당하기 쉽다. 웹툰을 평가하는 별점 하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품의 드라마 제작이 결정되는 등 이름을 알린 한 유명 작가는 스토리상 비약이 심하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계속되면서 휴재를 선언했다. 그러자 평소 불규칙한 업데이트에 불만을 품었던 독자들이 “지난주에 작가가 사인회 다니는 것 봤다”며 질타하는 글을 올렸다. 결국 평점이 꽤 크게 하락하면서 작가는 ‘두 달간 휴재’라는 유례없는 결정을 내렸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나는 30대 평범한 ‘주부아저씨’입니다. 낮에는 20개월 된 아들을 돌보고 밤에는 야간 로스쿨을 다니지요. 가끔 집에 널린 물건들을 치우곤 하지만, 빨래나 요리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알면 기절초풍하겠지만 두드러기가 난 아들에게 양동이에 찬물을 가득 채워 놓고 “저런, 화끈거리겠군. 터프가이, 어서 들어가!”라고 시킨 적도 있어요. 아내는 유명 로펌에 취직해 매주 80시간을 일합니다. 처음 아내에게 로스쿨 진학을 제안한 건 나였어요. 전액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그녀는 줄곧 우수한 성적을 받더니 연봉 15만 달러짜리 일자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나는 돈을 안 벌어도 상관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요. 아내가 우리 가족의 부양자니 의당 뒷바라지를 해야 합니다.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남자’라고요? 천만에요. 이기고 싶으면 타석에 제일 잘 치는 타자를 내보내야죠. 누가 우리 집에 쌀을 더 가져올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야 살아남는 겁니다. 요즘은 여성이 룰을 만들고 남성은 따르는 세상입니다. ‘왈가닥 루시’(1950년대 미국 CBS가 방영한 시트콤)에서 주인공 부부가 서로 직업을 바꾼 뒤 일과를 마치고 부인이 “나는 집에 돈 벌어다 주는 일에는 소질이 없네요”라고 하던 건 다 고릿적 이야기일 뿐이에요.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현대적인 결혼이나 젠더 역할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2009년 미국 일자리 중 절반가량을 여성이 차지하면서 남성을 앞질렀어요. 인도 빈민지역 여성들은 남성보다 영어 습득속도가 빨라 글로벌 콜센터 수요를 충족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여자들이 민간 기업의 40% 이상을 소유합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들이 늘면서 새롭게 등장한 사회현상들도 많습니다. 마음은 주지 않고 일회성으로 성관계를 맺고 끝내는 ‘훅업(hookup)문화’가 대학가 여성들 사이에 팽배하고 때때로 그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남성도 존재합니다. ‘자기 돈으로 방세 다 내고, 먹고 싶은 거 사먹고, 옷도 사 입어서 남자 없이도 잘 산다’며 자신 없으면 오지 말라 경고하는 유행가 가사들이 넘쳐난다는 점, 전반적인 남성 체포율이 줄어드는 대신 여성 체포율과 범죄율이 모든 연령대에서 꾸준히 증가한다(미국 기준)는 점도 주목할 만하죠. 책 제목이 도발적인가요? 내용은 더 파격적입니다. 한국의 골드미스, 중국의 ‘성뉘(剩女)’를 멋지다고 찬탄하기 위해, 혹은 빛 좋은 개살구라고 지적하기 위해 쓴 책은 아닙니다. ‘남성들이여 들고 일어나라’며 부추기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외려 현실을 직시하게끔 도와주려는 책입니다. 성공한 여성들이 겪는 딜레마를 통해 남성이 살아갈 방도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종말’은 남성성, 가부장제가 지배하던 자리를 유연한 여성성과 가모장제가 대신한다는 의미입니다. 대학에서 페미니즘 이론 수업을 한두 개쯤 듣고 주디스 버틀러 정도 읽은 ‘배운 남자들’에게 고합니다. “유연해집시다, 남성동지들. 안타깝지만 마초의 시대는 갔어요!”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아침마다 숱한 의무와 강제로 범벅된 삶을 향해 행군하는 보통 사람의 하루는 피곤함과 불안함, 번민으로 막을 내린다. 삶의 낙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보통 사람의 복사본이 아닌 행복한 사람의 원본이 되라’고 말한다. 이 책은 잘못된 자아비판과 자기 비난을 그만두고 명상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라고 주문을 걸어보기를 제안한다. ‘기대가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굳게 믿는 이에게라면 좋은 지침서가 될지 모르지만,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새로운 조언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울긋불긋한 가을 산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등산객이 늘면서 산과 숲속 곳곳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과 독서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번잡한 일상을 뒤로하고 비싼 음료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분위기 있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한다. 서울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는 매표소를 재활용한 ‘시 도서관’이 있다. 국내외 시집 4000여 권을 모아둔 곳이다. 10평 남짓한 단층 건물이지만 주말엔 100명이 넘는 등산객이 몰려와 시집을 보거나 빌려간다. 평일에도 인근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도서관 입구에서 만난 등산객 전영훈 씨(56)는 “시집은 얇아서 휴대도 간편하고,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아 이곳에 자주 들른다”고 말했다. 입구 1광장에는 철거 예정이었던 관리초소가 ‘숲속작은도서관’으로 탈바꿈해 등산객을 맞는다. 환경 및 어린이책을 비롯해 2000권 정도를 소장하고 있다. 이 밖에 컨테이너를 활용해 만든 낙성대공원 도서관 등 관악산 근처에만 독서공간이 5, 6곳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내에는 은평구 불광동 은평구립도서관과 연계된 ‘무인도서예약 대출 및 자가반납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북한산 등산객들과 주민들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이 시스템에서 책을 받아보고 반납할 수 있다. 대출 예약은 인터넷으로 미리 해두어야 한다. 떨어지는 낙엽이 소복하게 쌓인 숲속도 품격 있는 독서공간이 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남산도서관에는 ‘남산 다람쥐 문고’가 인기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이곳에는 약 400권의 문학책이 있다. 책장에 조그맣게 자리한 표지가 정겹다. ‘남산공원에서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재활용해 손수 만든 작은 책장과 의자로 꾸며진 작은 쉼터 및 도서관입니다.’ 남산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부터 산책 도중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들른 노부부까지 나무 밑동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책읽기 좋은 곳이다. 서울 광진구 아차산 자락의 ‘숲속 새참도서방’과 ‘팔각정자 고구려정 도서함’에서도 무르익은 늦가을 향기를 맡으며 운치 있게 책을 읽을 수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