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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의 민정수석 우병우 덕분에 배운 게 있다.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고 다가 아니라는 거다. 비선 실세 문건이 2014년 말 불거졌을 때 ‘문건 유출 사건’으로 본말을 뒤바꿔 대통령 눈에 든 사람이 우병우였다. 그 좋은 머리로 대통령 주변 관리 같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으면 좋으련만 그는 검찰을 장악하고 청와대는 곪아터지도록 방치해 결국 박근혜 정부 몰락에 일조했다. 빠릿빠릿한 명석함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독(毒)이 된다면 좋은 대학 나와 벼슬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조국 민정수석에게도 배우는 게 많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키 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지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놓고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이 충돌한 지난주 조국의 페이스북은 싱거운 정도를 넘어선다. 국회 회의를 방해하면 처벌한다는 국회법에 이어 ‘좀비’ 노래를 올린 건 대통령 비서 자질이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국회법 위반으로 벌금형 또는 실형을 받으면 5∼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는 선거법까지 언급한 데선 촉법소년 같은 치졸함이 엿보인다. 검찰과 사법부를 동원해 ‘촛불민심이 반영되지 않은 20대 국회’를 처리하고 새판을 짜겠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보좌역다운 엄중함은 없대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안 보이는 고위공직자는 ‘사람이 먼저’라는 이 정부에 독이 될 수 있다. 국민이 선출한 의원과 사법제도까지 능멸하는 가벼움도 좌파의 싸가지 없음을 재차 확인시킨다. 그러고도 의회주의 운운하다니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는 게 무슨 소용 있나 싶다. 적어도 우병우는 말이 많진 않았다. 검찰에 불려가서도 전관예우 받는 모습을 노출해 본의 아니게 검찰개혁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우를 범했을 뿐이다. 조국은 작년 9월 페이스북에 “대통령 장관 청와대 실장과 수석들이 대통령의 인사권 영향하에 있는 검찰이 아니라, 국회의 인사권 영향하에 있는 공수처의 감시와 수사를 받겠다는데 왜 막는 것인가”라고 외침으로써 대통령이 인사권으로 검찰을 장악하고 있음을 만방에 공개했다. 그래서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줄줄이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제 입으로 알린 셈이다. 공직자가 말이 많아선 안 되겠다는 것도 조국을 보며 배운다. 사실 대통령 장관 청와대 실장과 수석들 감시는 민정수석 책임이다. 조국이 제 할 일만 잘했어도 혈세 들여 공수처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더구나 페이스북과 딴판으로 공수처를 국회의 인사권 영향하에 두지 않은 건 국민을 속인 행위나 다름없다. 여당 법안에 따르면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에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의 7명으로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공수처 역시 대통령 영향하에 두는 무소불위의 사정기관을 또 만드는 의도가 궁금하다. 조국은 2010년 ‘진보집권플랜’ 책에서 “대통령이 검찰을 이용하듯 고비처(공수처)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하려면 고비처장을 여야가 합의해 대통령에게 추천해서 임명하도록 하면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법안이 현실화할 경우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기는커녕 대통령에게 검찰처럼 이용당하는 괴물이 될 판이다. 공수처가 보장받은 게 있긴 하다. 대통령 인사권으로도 장악되지 않는 간 큰 검찰을 통제할 기소권이다. 조국은 “검찰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부엉이바위에 올라가도록 ‘토끼몰이’를 했다”고 분노한 적이 있다. 민정수석으로서 정권 후반기 칼을 꽂을지 모를 검찰을 제압하는 마지막 제도적 독극물을 박아놓고는 ‘새로운 100년’을 여는 꽃가마에 오를 듯하다. 조국이 검찰과 법원을 장악하고, 선거제도 등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과정은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내용과 놀랍게 비슷하다. 잠재적 독재자는 이런 반(反)민주적 행태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안보 위협도 이용한다는 대목만은 제발 닮지 말기 바란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하지만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조국은 ‘문재인의 우병우’로 기억될 수도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일종의 직업병이다. 놀러 가면서도 뭐 쓸 게 없나, 강박관념을 갖는 건. 처음 가보는 오키나와에선 2박3일 바다만 보다 늘어지게 자는 호캉스를 즐길 참이었다. 그런데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이라는 책을 본 뒤 휴가는 등산이 돼버렸다. ●오키나와는 일본이 아니었다구글에서 오키나와 관광을 검색하면 거의 맨 앞에 등장하는 붉은 궁전이 슈리성이다. 일본의 궁전은 붉지 않다. 도쿄의 고쿄(황궁)도 무슨 색인지 말하려면 궁해진다. 2016년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을 쓴 요나하라 케이는 “경복궁을 보고 지붕 형태나 선명한 색채가 슈리성과 닮아 눈을 크게 떴다”고 적었다. 내가 본 슈리성의 색깔은 한국의 궁궐보다 붉다. 새빨강 랑콤 립스틱 같다. 오키나와가 일본이 아니었음을 슈리성은 온몸으로 말하는 셈이다. 1879년, 그러니까 일본이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의 문을 열어젖힌 지 3년 뒤 ‘류큐처분’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합병하기 전까지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이었다. 조선보다 일찍 중화제국의 세계 질서에 편입돼 중계무역으로 번영을 누린 왕국의 찬란한 왕궁이 슈리성이다. ●군사력 없는 류큐왕국의 비극슈리성에서 눈을 크게 뜬 건 자칫하면 우리나라가 오키나와처럼 될 수도 있었다는 충격 때문이었다. 류큐왕국도 조선처럼 덕치(德治)를 강조하는 ‘비무(非武)의 문화’였다. 지배계급은 오키나와말로 ‘유캇추’, 공식적으로는 ‘사무레(士)’라고 하는데 일본같이 칼을 찬 사무라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대부에 가까운 문사(文士)를 뜻했다. 그러고 보면 조선이 600년을 살아남았다는 것부터 천운이고 기적이다. 우리역사에 관심 많은 사람 중에는 임진왜란 때 차라리 나라가 망했어야 한 게 아니냐며 울분을 터뜨리는 이들이 없지 않다. 왜놈들 침략에서 죽다 살았으면 그때부터라도 위아래가 똘똘 뭉쳐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써야 마땅하건만 이 나라는 경험에서도, 역사에서도 배우지를 못했다. 왕과 386세력 뺨치는 양반들이 자기들만의 이념과 권력투쟁에 매달리느라 세계적 흐름과 담을 쌓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조선이 오키나와처럼 됐을 수도…그래서 이건 정말 상상인데, 임진왜란 때 조선이 일본에 정복당했다고 가정을 해봤다. 지금의 한반도는 일본처럼 바뀌어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키나와가 보여준다. 임진왜란 뒤 힘이 남아돌아간 사쓰마번의 3000여 사무라이들은 실제로 1609년 류큐왕국을 정복했다. 군사력이 없는 류큐의 왕은 거의 싸워보지도 못하고 일개 사쓰마 번주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그리고 조공을 바친 역사가 이어진다. 류큐왕국은 일본과 한 나라가 되지도, 일본처럼 발전하지도 못했다. 그로부터 250여년 후 사쓰마번이 메이지유신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도 류큐의 수탈로 부를 쌓았기에 가능했다. ●‘내부의 식민지’ 오키나와 차별메이지유신으로 근대국가의 길로 들어선 일본은 류큐왕국에 청과의 조공 책봉관계 정지와 일본 연호 사용을 강요한다. 중화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류큐왕국을 기점으로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을 꾀한 거다(중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뒤흔들어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을 꾀하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리고는 끝내 1879년 무력으로 강제 합병했다. 이름도 가증스러운 ‘류큐처분’이다. 2차 대전 막바지 미군이 상륙하자 일본은 “식량제공을 위해 주민은 깨끗이 자결하라”며 집단자결을 명령했다는 전쟁사는 끔찍하다. 27년간의 미군 점령, 1972년 본토 반환 이후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 ‘내부의 식민지’ 같은 차별이다. 오늘 퇴임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오키나와 국민들이 견뎌온 희생의 마음’을 각별히 언급하곤 했지만 오키나와의 아픔은 쉽사리 사라지지 못할 터다. ●우리에게 우리를 지킬 힘은 있나구불거리는 언덕길 꼭대기, 불타는 색깔로 복원된 슈리성에 올라 소름이 돋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오에 겐자부로가 지적했듯 아시아의 중심이 일본이라는 ‘중화사상’은 그들에게 뿌리 깊은 고질병이다. 그럼에도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적과 맞짱 뜰 수 있는 군사력, 동맹과 힘을 합칠 수 있는 외교력 없는 ‘평화 타령’은 개수작에 불과하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다. 유사시 한반도로 출격할 수 있는 오키나와의 전술핵과 전투기 퇴거까지 포함된다. 내일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와 함께 일본이 새 시대로 간다는데도 정부가 최악의 한일관계를 풀 태세를 안 보이는 것도 이를 염두에 두어서가 아닌지 의문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장해제를 거듭하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하다. dobal@donga.com}

또 국회 난투극이다. 이 꼴 안 보려 이름도 역설적인 국회 선진화법 만들지 않았냐고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면 쉽다. 그러기 전에, 왜 청와대와 여권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기를 쓰는 건지 따져봤으면 한다. 대통령 측근 같은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잡기 위해서라고? 아니라고 본다. 그건 특검으로도 충분하다(청와대 의지만 있으면). 박근혜와 최순실도 특검이 잡아냈다.● 말 안 듣는 검찰 기소를 위한 공수처 설치 공수처가 필살기(必殺技)인 이유는 검찰을 확실히 잡을 수 있어서다. 22일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4당의 공수처 합의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검사에 대해 기소권을 갖게 돼 있다. 쉽게 말해 정권의 말을 안 듣는 검찰은 공수처를 통해 기소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공수처엔 판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한 기소권도 부여됐지만 이건 물타기라고 본다.여기서 잠깐, 왜 검찰개혁이 필요했나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나 같은 민간인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막강 검찰이 대통령이나 측근 실세의 부정부패에 눈 감기 때문에 개혁을 해야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정치 검찰’을 정치권력에서 독립시키는 게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도 검찰의 막강 권력을 통감한다. 그래서 검찰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며 검경 수사권 분리와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를 검찰권력의 ‘민주적 통제’라고 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선출된 권력(집권세력)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을 따라야 한다”는 盧와 文 안 믿기는가. 노 대통령이 임명한 첫 검찰총장이었던 송광수는 2009년 신동아 9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이 양반이 임명장을 주시고 나서‘어제 청문회하는 걸 보니 총장님이 뭐 내 생각하고 다른 말도 많이 합디다’이러더라. 국가보안법과 한총련 문제를 마음에 두신 것 같던데 가만히 있었더니‘검찰총장이 높다 해도 대통령 밑에 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따라야 한다’딱 이러시는 거였다.”송광수는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뒤 김각영 검찰총장이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새정부의 의사가 확인됐다”며 사퇴한 후임으로 임명됐다. 노무현 대선 자금 수사로 대통령 측근 최도술 총무비서관을 구속 수사하는 등 청와대 권력과의 거리를 지킨 검찰총장이었고, 당시 민정수석이 문재인 현 대통령이다. ● 충성하지 않는 검찰권, 어떻게 잡을 것인가 현 정부는 그러나 검찰 인사권을 장악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고 여긴 듯하다.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는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찰에서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거스르는 검사가 나타났다고 하자. 파헤쳐보니 그가 ‘스폰서 검사’임이 드러나도 제 식구 감싸기에 호가 난 검찰이 기소를 안 해버리면 청와대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수처라는 거다. 문 대통령이 쓴 ‘검찰을 생각한다’에는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제도적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라는 노무현의 회고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수사를 검찰 권한 남용의 대표사례로 봤다. 이 같은 검찰권력 남용을 감시, 견제, 분산하기 위해선 공수처가 필수라는 논리다. ● 벌써부터 검찰은 설설 기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공수처 기소대상 합의안에 대통령 친인척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이 빠져 있다며 대통령이 대통령 주변 견제 기구로서의 공수처가 안 된다는 데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나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부르고 싶다. 대통령 주변 견제는 지금도 검찰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25일 검찰이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임종석 전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 4명은 전부 무혐의로 처분한 걸 보면 모르는가. 다만 안 하고, 못할 뿐이다. 공수처는 정치적으로 독야청청할 것이라고? 공수처 법안 분석 결과 ‘공수처 검사 인사위원회’의 과반을 친여인사로 채울 수 있다(특검이 측근비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인사의 독립성 덕분이었다). 이런 공수처를 설치한 뒤 만에 하나, 어떤 물정모르는 검사가 대통령 측근 비리 잡겠다고 날뛴다면 누군가 조용히 말릴지 모른다. 너 공수처 잡혀가서 기소당하고 싶니? ●“비례대표제는 좌파집권에 유리한 제도” 이런 공수처를 놓고 자유한국당을 뺀 야당은 왜 합의해준 걸까. 공수처의 무서운 의미를 몰라서라면 차라리 낫겠다. 그들은 꼬마정당의 의석수나 자신의 정치생명을 늘리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나라의 운명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개·돼지여서 연동형 비례제의 복잡한 계산법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정의당을 교섭단체로 만들고, 꼬마야당들 의석 늘려주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공수처-선거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내년 총선 직전 통과되면 정의당과 민주당이 연대해 좌파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굳히는 건 기본이다. 작년 11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보도는 이렇게 전했다. “정치경제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아이버슨과 소스키스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주요 17개국 민주주의 국가의 전후 50여 년 동안 다수대표제 하에서는 우파 쪽의 집권기간이 75%,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좌파 쪽의 집권 기간이 74%였다.”● 이러려고 100년 평화집권 자신했나 앞으로 남북연합이나 코리아연방을 주장하는 다양한 친북정당이 확대되고 환경, 동성애 등 좌파적 이슈를 내건 미니정당이 튀어나오면 좌파연대 영구집권도 가능해진다. 숱한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문책은커녕 검찰개혁에 매진해온 조국 민정수석이 마침내 빛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올 초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것을 기반으로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는 100년을 전개할 것” 이라고 밝힌 건 농담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어디로 달려갈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미국의 포린어페어즈지(誌)가 언급했던 ‘사법부에 대한 신뢰’ 만은 기억하고 싶다. 신권위주의 독재자들은 총칼에 의지하는 대신 언론과 사법부 억압으로 독재를 강화한다. 그래도 그 나라 국민이 희망을 가질 곳은 검찰을 비롯한 사법부뿐이었다.dobal@donga.com}

남자들끼리 하는 말 중에 ‘남자 망신 다 시켰다’는 말이 있다. 성차별적이고 요즘엔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은 말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믿고 써본다면, 여자 망신 다 시킨 자리였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얘기다. 이미선이 간택된 주요인 중 하나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사실 빼고는 헌법재판관이 되어야 할 어떤 능력이나 자질도 보여주지 못했다. 주식이 많다거나 법관 출신의 변호사 남편에게 재산을 맡겼대서가 아니다. 서울고법 판사를 지낸 여상규 법제사법위원장이 지적했듯, 법관이 거의 전 재산을 직무 관련이 의심스러운 주식거래로 갖고 있는 건 특이한 경우다. 이미선이 출장비를 증권계좌로 받을 정도면, 후보자 지명 뒤 적어도 자기 명의 주식에 대해선 벼락치기 공부라도 해서 청문회 때 설명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는 “후보자는 재판에 전념하고 재산 문제를 전적으로 배우자에게 맡겼다”고 되뇌었다. “내부정보나 이해충돌의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답한 것도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품목 선정도, 매수 판단도 남편이 했다면서 문제가 없다는 걸 이미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이미선은 남편의 말만 옮길 만큼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다고 광고한 것도 모자라 청문회 뒤 남편이 학부모처럼 해명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부장판사까지 올라간 직업인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마치 매 맞고 주눅 든 아내, 보호자가 필요한 아동이나 금치산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문제의 주식은 35억 원대 이미선 부부의 주식 중 70%를 차지하는 이테크건설과 삼광글라스 주식이다. 두 기업은 시총 2조 원으로 추정되는 비상장기업 군장에너지㈜의 지분을 70%나 갖고 있어 비상한 주목을 받는다. 요즘 뜨고 있는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비즈니스여서 상장이 되면 5∼10배 차익도 가능하다. 부동산으로 치면 재개발을 노린 알박기 투기인 셈이다. 부부가 이테크 주식을 상당액 보유한 상태에서 이미선은 2018년 이테크 관련 민사소송 재판까지 맡아 직업윤리를 의심케 했다. 청문회에선 이테크가 관련된 소송이 아니라고 답해 정직성도 의문스럽다. 이테크 하청업체가 군장에너지의 발전설비공사 중 일어난 사고이고, 더구나 막대한 보험금이 얽힌 사건이기 때문이다. 법관윤리규정을 모르는 일반인도 그런 재판이면 재판장이 회피하는 게 상식이라고 본다. 그의 남편은 이테크의 모기업인 OCI의 특허 관련 소송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5억 원쯤 손해 봤는데 무슨 내부거래냐”며 그들 부부와 여권 인사들이 펄쩍 뛰는 건 이미 양심에 털이 났다는 의미다. 손해를 봤든 이익을 봤든, 직무 관련 기업의 주식을 매매하는 것은 분명한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장은 지적한 바 있다. 법적,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후보자를 놓고 전수안 전 대법관에 이어 여당 여성 의원들이 어제 ‘어렵게 겨우 탄생한 여성 재판관’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비극이다. 판사들 사이에서도 부끄럽다는 평이 나오는 이미선을 생물학적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한다면 전체 여성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혈연, 지연, 학연도 지겨운데 성연(性緣)까지 확대하는 것도 ‘공정’이라는 가치에 어긋난다. 전수안은 “오랫동안 부부법관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게 생활하다 남편이 개업해 가계를 꾸리고 아내가 헌법재판관이 되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 어긋난다고 누가 단언하느냐”고 주장해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이미선이 청문회에서 밝힌 부장판사 월급이 700만∼800만 원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진보성향의 ‘독수리 5형제’로 이름났던 그가 부부법관의 생활고를 말하다니, 좌파도 많이 타락했다. 청와대가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하는 것도 ‘쉬운 여자’로 봤기 때문인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헌재 창립 30주년 기념사에서 “헌법은 완전무결하거나 영원하지 않고, 헌법해석 역시 고정불변이거나 무오류일 순 없다”는 말로 헌법과 헌재 개혁을 시사했다. 문형배 후보자와 함께 이미선까지 입성하면 헌법 재해석을 통한 행정수도 이전이나 국가보안법 위헌 결정도 가능해진다.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한 재판관들로 헌재를 채운 문재인 정부가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두렵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최우석 소장’ 이름으로 스마트폰 문자가 온 순간,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응? 소장님 돌아가셨는데…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하늘에서 온 편지 같은 건가 하면서 열어보니(사람은 종종 터무니없이 머리가 안 돌아가는 때가 있다) 고인의 가족이었다.“삼가 감사말씀 드립니다…” 세상을 떠난 분의 휴대전화를 그냥 해지하지 못하고 그 전화로 마지막 인사를 보낸 유족들의 마음을 나는 알 것 같았다. 내 전화에도 그대로인 그 번호로 “도발 잘 보고 있다”는 문자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他社 후배에게도 자극을 준 언론인4월 3일 별세한 최우석 전 중앙일보 주필과 나는 같이 일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분은 남의 회사에서 일하는 나를 1년에 두어 번씩 불러서는 밥을 먹이며 자극을 준 언론인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장 시절이었을 거다. ‘SERI CEO’를 돈 내고 받아보는 기자는 처음 봤다고 한 것 같다. 제대로 쓰지 못해 죽고 싶을 때 내 안의 손톱만한 잠재력을 주목해준, 내게는 고마운 선배였다. 최우석을 만나고 나면 한달은 밥을 안 먹어도 살 것 같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싶어 마음이 바빠지곤 했다. “여자들은 작은 정의에 예민하다”는 말을 해준 것도 그 분이었다. 실력이 비슷했던 여기자가 둘 있었는데 한 사람은 작은 정의에 예민해 늘 부르르 떨었고, 또 한 사람은 그 반대였다. 결국 부르르 여기자가 일찍 회사를 떠났다며 뭐가 더 중요한지 잘 보라고, 남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사회생활의 지혜도 말해주었다. 들은 때는 열심히 들었는데 그때뿐이다. 나는 여전히 작은 정의에 파르르 떨고(그러고도 살아남은 게 다행이다), 공부 해야겠다는 마음만으로 입때껏 살고 있다(죄송해요 소장님). ‘초창기의 경제기획원’ 원고를 보니양심이 찔려 그 분이 몇 해 전 읽어보라며 보내준 원고 ‘초창기의 경제기획원, 장기영·김학렬 부총리를 중심으로-한 출입기자의 체험적 풍경’을 다시 들여다봤다. 1965~1971년 젊은 기자 최우석이 체험한 경제 컨트롤타워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경제해법을 찾고 싶었다(다행히도 그 원고는 마음대로 활용하라고 하셨다). 내가 찾아낸 답은 ‘경제는 경제부총리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물론 기획원이 예산, 기획, 외자도입, 심사평가 등 핵심 권한을 장악한 막강 부처이니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쉽다면, 1961년 기획원 출범 이후 3년 간 수장이 7명이나 바뀐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장기영의 약속 “6개월만 기다려달라”1963년 대선에서 15만 표 차로 간신히 제3공화국을 출범시킨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실적으로 정통성을 입증해야 했다. 63년 말 최두선 총리-김유택 부총리의 초대 내각은 경제 혼란 수습에 실패했다. 이듬해 5월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6개월만 기다려달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리고 정말 6개월 만에 상황을 바꿔버렸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행동력으로 기획원을 장악했고, 여세로 경제부처들을 제압해 일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일을 밀어붙이면서도 세심한 포석을 잊지 않았다고 최우석은 강조했다. 부총리 주재 경제장관회의는 물론, 녹실회의로 불렸던 경제장관간담회를 최대한 활용해 경제시책과 법안들을 미리 조율했다. 이런 섬세하고도 불도저같은 추진력이 있어 장기영은 한국경제를 고도성장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못하면 경제수석이 나설 수밖에후임 박충훈 부총리는 장기영과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그러자 청와대 비서실이 득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엘리트 관료 출신 김학렬 경제수석이 예산과 외자도입 등 기획원 고유 업무부터 경부고속도로 등 대형사업까지 주도권을 가져온 것이다.결국 김학렬은 1969년 5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목표를 초과달성하고는 불꽃처럼 떠났다(당시 췌장암은 불치병이었다). 최우석이 기록한 김학렬의 기획원 순시 장면은 거의 감동이다. 부총리가 한 사무관을 붙잡고 “미국 (무상지원)원조가 끝난 것을 알고 있나” 대뜸 물었다. 사무관이 알고 있다고 하자 김학렬은 “그럼 대응책은? 한국경제는 어떻게 되나?”하고 속사포를 쏘았다. 사무관이 답했다. “그건 부총리님 하시기에 달렸습니다.”실제로 김학렬 취임 첫해인 1969년 경제성장률이 무려 14.5%. 건국 이후 최고성적이었다. 면도칼 같은 논리와 날카로움으로 난제를 하나씩 풀어간 결과다.관치경제 할 만큼 실력은 되는가오해말기 바란다. 지금도 1960년대 같은 관치경제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므로. 당시는 민간경제의 수준이 관료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주도 경제’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다. 민관의 수준이 역전됐으면 규제를 틀어쥔 관치경제도 서비스행정으로 역전시켜야 한다. 단, 부총리의 아이디어와 추진력, 실행력은 그대로 지닌 채. 실력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공무원들을 공정한 인사로 혹독하게 훈련시키면서. 마침 우리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재웅 쏘카 대표의 혁신성장추진단 민간본부장 사퇴를 의지부족 때문이라고 비판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추진단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경제부총리는 왜 손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홍남기 패싱’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차라리 경제수석을 부총리로 임명하시라경제부총리가 제 역할을 못하면 차라리 김학렬처럼 경제수석을 부총리로 임명하기 바란다. 문재인 정부에선 윤종원 경제수석보다 오랜 인싸(인사이더) 김수현 정책실장을 부총리 시켜야 한다. 그럼 내각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 죄 청와대만 바라봐야 했던 모습은 사라질 터다. 솔직히 말하자면,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고 싶다. 경제기자로도 이름을 날렸던 최우석은 “폭풍 같은 김학렬 시대가 끝나면서 거인(巨人)과 기인(奇人)들의 시대를 마감하고 보통사람의 시대가 열렸다”고 원고를 접었다. 과거의 취재수첩과 관계기록, 신문스크랩과 보고 들은 경험을 50년 후 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진다. 언론계에도 최우석과 함께 거인과 기인들의 시대가 가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아무리 훌륭한 언론인이래도 내게 잘해준 분이 더 훌륭한 법이다…). 죽었다 깨도 최우석처럼 될 수 없는 나는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dobal@donga.com}

언론사 근무의 매력 중 하나가 남보다 세상일을 좀더 빨리 알 수 있다는 거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고, 늘 그런 것도 아니지만 8일 오전 5G 테크 콘서트를 앞두고 ‘11시 엠바고’를 붙인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말이 나오자 나는 흥분했다. “이동통신 3사가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우리는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이 첫줄을 어떻게 읽을지 대통령의 육성을 듣고 싶어 나는 몸이 달 지경이었다.삼디 프린터부터 일관성 있게 대통령선거 전인 2017년 4월 11일 문재인 대선 후보는 5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뜻하는 5G를 ‘오지’라고 읽었다. “각 기업은 4차 산업혁명과 지식정보화 사회에 대비, 차세대 오지 통신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주파수 경매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대목에서다. 과거의 실수를 조롱하는 게 아니다. ‘오지 사건’이 주목을 끈 건 문 후보 성격의 일단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향후 전개될 문 정부의 특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오지라고 읽은 것”이라고 후보 측은 밝혔다. 이보다 앞서 열린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그가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발표하며 3D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읽은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국가경영자 할 수 없는 심각한 결함” 정치권에선 “잠깐 실수로 잘못 읽었다고 하기엔 심각한 결함”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다 죽어갈 때 살려냈던 김종인은 “국가경영은 3D프린터를 삼디프린터라고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문 후보는 가만있지 않았다. “우리가 무슨 홍길동입니까? 3을 삼이라고 읽지 못하고 쓰리라고 읽어야 합니까?” 트위터를 통해 끓어 넘치는 자주성과 민족주의를 강조한 셈이다.기자들이 설명을 요청하자 문 후보는 말했다. “과거 청와대에 있을 때도 회의를 하면 새로운 분야, 특히 정보통신 분야는 너무 어려운 외국용어들이 많아 사실 상당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저는 가능하면 모든 국민들이 알기 쉬운 용어를 썼으면 좋겠다.”변화와 오류 인정하지 않는 고집IT 용어가 어렵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랴. 그래도 글로벌 세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버가 세계를 달리는데 우리만 택시 잡지 못해 동동거리는 울화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지 사건’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문 대통령의 (무지한 또는 불충분한) 인식과 함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고집, 그리고 인사 청문회 결과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관 인사를 강행하는 오기(傲氣)를 미리 보여주었다. 대통령 취임 뒤 청와대에서 가진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KT 황창규 회장에게 “세계 최초로 평창 올림픽 기간 동안 오지 통신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준비는 잘 되느냐”고 물어 작렬하는 뒤끝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의 인식 변화를 축하합니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5G를 언급한 맥락이 4차 산업혁명 지원 아닌 가계통신비 절감정책 발표였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통신사들이 오지 주파수 경매에 베팅 하는 거액으로 통신비나 확실히 내리라고 주장했던 거다. 그랬던 대통령이 8일 원고에 등장하는 모든 5G를 ‘파이브지’로 읽은 건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만일 후보 때 입력된 대로 오지를 고집했다가 미국 버라이즌이 “당신들은 오지이고, 우리는 5G다”하면 어쩔 뻔 했나. 홍길동 식 용어를 넘어서면서 인식도 진화했을 것으로 믿고 싶다. 대통령 인사말대로 5G를 통해 모든 산업의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하면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던 혁신적 융합서비스로 자율주행자동차, 스마트공장, 스마트 시티 등 4차산업혁명 시대의 대표 산업들이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터다. 규제로 묶어놓고 원격진료하라고?문제는 지금 같은 규제 수준으로는 5G 인프라를 전국에 확산시키기도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대통령은 “규제가 신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게 규제혁신에도 더욱 속도를 내겠다”면서도 중저가 요금제 같은 가격정책을 언급했다. 정부가 가격규제를 붙들고 있으면서 기업보고 날아오르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의료, 교육, 교통, 재난관리 분야가 5G기술과 서비스가 가장 먼저 보급될 곳이라고도 대통령은 강조했다. 원격진료나 승차공유, 빅데이터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외면하는 기득권집단과 이에 영합하는 좌파 정치권의 반대로 꽉 막혀 있음을 알고도 원고를 읽은 건지 안타깝다. 민노총과 ‘공유정부’ 어쩔 것인가 이런 규제가 오지와 함께 없어진대도 해도 더 큰 장애가 남아 있다. 자신들의 철밥통이 위협받는다며 자율주행자동차 생산과 스마트공장 자체를 결사반대하는 민노총 식의 강경투쟁은 어떻게 할 것인가.오지가 파이브지로 바뀐 것이 실수가 아니라면, 써준 대로 그냥 읽은 게 아니고 대통령의 인식이 바뀐 것이라면, 국정운영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인터넷 플랫폼과 앱 기반의 긱 이코노미 같은 환경변화로 상시 고용이 소멸하는 시대다. 글로벌 경제와 담을 싼 민노총 같은 집단과 사실상 ‘공유정부’를 유지하는 것은 홍길동 시대로의 역행보다 더 위험하다.dobal@donga.com}

‘싫은 소리’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조직의 장(長) 자리에 앉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과장, 부장, 사장, 하다못해 학교시절 반장도 입바른 소리 들으면 내색은 못해도 속으론 밉다.왕에게 도덕정치를 설파했던 조광조도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 간신의 모함이지 왕이 자신을 죽일 리 없다며 통곡했다는 전언에 중종은 코웃음을 쳤다. “조광조는 내 곁에 오래 있어서 내가 잘 안다”면서(참고로 나는 조광조 식의 정치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둔다).●권력을 감시 비판하는 존재는 필요하다‘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어릿광대가 왕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조롱하듯, 언론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엔 광대가 그런 역할을 했다. 저 사람은 싫은 소리 하는 게 직업이라고 인정을 한 뒤, 그 사안을 다시 짚어보면 안 보이던 점이 보일 수도 있다. 피차 개인적으로 미워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서로의 업(業)을 살려주니 외려 고맙다. “혁신적 포용국가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는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신문의 날’ 축사가 불편한 것도 이 때문이다.●감시견 애완견 동반견 그리고 반려견?태어나서 지금껏 언론은 정부의 감시견(watch dog)이 돼야 한다고 배웠지, 동반자가 돼야 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애완견 아닌 동반견이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이것도 요즘 애완견을 ‘반려견’이라고 하기에 쓴 단어가 아닌가 모르겠다). 물론 지난해는 그냥 넘겼던 대통령이 처음 신문의 날 기념식을 찾아준 건 고맙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축사라고는 할 수 없는 가시돋힌 대목이 적지 않다.이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습니다.정권을 두려워하는 언론도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다시 높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진실한 보도, 공정한 보도, 균형있는 보도를 위해신문이 극복해야 할 대내외적 도전도 여전합니다.●“언론자유 억압하는 정치권력 없다”는 대통령영어로 challenge라고 번역되는 ‘도전’이라는 단어는 영미권에서 ‘문제’ 대신에 쓰는 말이다. ‘문제가 많다’는 것을 그들은 ‘극복해야 할 도전이 적지 않다’는 식으로 쓴다.대통령이 보는 언론의 문제는 언론자유, 신뢰성, 그리고 공정성 세 가지였다. “정치권력 외에도 언론자본과 광고자본, 사회적 편견, 국민을 나누는 진영논리, 속보 경쟁 등 기자의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앞에서 분명 대통령은 “이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문사주와 광고주, 사회적 편견, 진영논리와 속보 경쟁에 기자들이 양심을 파는 바람에 언론자유가 훼손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신뢰성과 공정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과 연결된다. ●박정희도 정부에 협조하는 언론 원했다대통령은 친절하게도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신문은 존경받는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런가?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할 때가 아니고? 물론 대통령이 언급했듯 ‘공정하고 다양한 시각을 기초로 한 비판,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의제설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비판은 ‘공정하고 다양한 시각’이 아니고,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의제설정’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언론이 국가발전 과정에서 정부에 협조하는 ‘건설적 태도’를 가지고 ‘개발 언론’이 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대한민국은 ‘공정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혁신적 포용국가’다. 이를 신문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는 말씀은 박정희 때와 거의 같은 의미로 들린다.●기자는 아첨꾼 아닌 회의론자가 되어야남의 나라 얘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7년 퇴임 이틀 전, “여러분은 아첨꾼이 아니라 회의론자가 돼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말한 적이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국민들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임을 오바마는 알고 있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여러분이 이 건물에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정직함을 유지하게 하고,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든다”고 했던 그 나라 대통령이 존경스럽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그것이 진정한 동반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dobal@donga.com}

이제 ‘내로남불’이라는 말은 안 쓸 작정이다. 내로남불, 내로남불 하니까 자기들이 진짜 로맨스의 주인공인 줄 안다. 국민의 재산인 관사(官舍)를 활용해 부동산 ‘갭투자’에 매달렸던 청와대 대변인은 물러나면서도 “대통령이 어디서 살 건지 물으며 걱정하더라”고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전세 끼고 집 사는 갭투자를 막겠다고 서민 대출을 거의 막아버린 문재인 정부다. ‘대통령의 입’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었는데도 대통령비서실장은 문책은커녕 대통령과의 고별 오찬까지 잡아주었다. 로맨스를 넘어 아주 비련의 드라마를 연출한 셈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줄임말의 남용은 그 발랄한 어감으로 인해 사안의 심각성을 증발시키는 문제가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본래 문장이 희비극 같은 인간 본성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중잣대와 편 가르기는 본능적일 수 있다. 그러나 공인이나 국가조직의 행위가 사인(私人), 사적(私的) 집단 간의 행위와 같을 수 없다. 그런 본능적 행위의 한계를 국가 공동체 안에서 정한 것이 법과 규범이다. 자칭 진보세력은 법과 규범을 우습게 여기는 기득권 세력의 반칙과 특권을 없애겠다며 촛불시위에 앞장섰다. 공사 구별 못 한 채 국정을 사사화(私事化)했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뒤를 이은 사람이 문 대통령이다. ‘리틀 문재인’ 조국 민정수석은 검경 개혁의 칼을 움켜쥔 채 사정기관을 장악한 상태다. 조국이 물러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정수석의 핵심 임무가 공직 기강 확립과 인사 검증이다. 작년 지방선거 압승 뒤인 6월 18일 ‘문재인 정부 2기 국정운영 위험요소 및 대응방안’ 보고에서 정부 여당의 오만한 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을 위험요소로 지적한 사람이 조국이었다. 민정수석 중심으로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 악역을 맡으라는 대통령 지시도 그때 나왔다. 그러고도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폭로, 특별감찰반 전원 교체, 버닝썬과 청와대 근무 ‘경찰총장’의 연루 사실이 터져 나왔으면 조국은 진작 책임을 졌어야 마땅했다. 인사 청문회마다 비판이 쏟아지는데도 청와대가 민정수석을 극구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공직 기강이 문란해졌다는 반증이다.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하지도 못하고, 정부 여당의 오만한 심리를 제어하지도 못해 문재인 정부를 ‘내로남불 정권’으로 각인시킨 조국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내로남불에 내장된 발칙한 속뜻이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다.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를 절규할 때만 해도 보통사람들은 유무죄를 좌우하는 게 돈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권력이 죄와 벌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됐음을 내로남불의 시대정신이 말해준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동남아 순방을 마치자마자 대통령은 첫 공개발언에서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을 콕 찍어 재수사를 지시함으로써 권력이 법치 위에 있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들의 이중잣대는 집권 중 유권무죄를 향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중잣대가 사회에 만연하면 신뢰자본이 위축된다고 지난해 한국리서치는 분석했다. 사회지도층에 대해 강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질수록 신뢰, 즉 사회자본은 더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정부에 대한 신뢰와 사회자본을 이 정부가 무너뜨리고 있기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재·보선 패배로 사퇴 위기를 맞았을 때 조국이 곁을 지켜줬다는 고마움에 문책을 못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결코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지금까지의 족적으로 볼 때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에 꽃가마를 태워 내보낼 작정인 듯하다. 개인적 의리나 은혜는 개인적으로 갚으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공사 구별 못 하고 국정을 사사화했다는 비판을 안 듣게 하기 위해서라도 조국은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마침내 국민연금이 ‘연금사회주의’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정부에 찍힌 재벌총수 조양호의 대한항공 경영권을 사실상 박탈한 것이다.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표는 결정적이었다. 재벌 총수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초유의 사태다. ●‘땅콩 갑질’로 미운털 박힌 대한항공 물론 대한항공은 조 회장 딸 조현아(사진)의 ‘땅콩 회항’부터 그 일가의 온갖 갑질이 줄줄이 드러나 국민적 지탄을 받긴 했다. 그러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국민의 노후자금을 불려야할 국민연금이 2018년 수익률 -0.92%이라는, 제도 시행 이래 최대 손실을 본 것부터 문책해야 하지 않나? 재계는 얼어붙었다. 당장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신중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입장문을 내놨다(그러나 배상근 전무 명의다. 정부가 전경련을 ‘패싱’하고 있어 최대한 신중하게…). 연금사회주의란 정부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국민연금이 경영참여 등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들을 결국 정부 통제 아래 둔다는 것을 뜻한다. ●정부가 국민연금 장악한 곳은 한국뿐 일부 친여 매체와 인사들은 “반대표를 던진 캐나다연금(CPPIB)도 연금사회주의냐?”고 오늘도 비웃었다. 국민연금에서 ‘사회주의’ 단어를 떼어내고 싶은 모양이지만 웃기는 소리다. 세계 주요연기금 중 의사결정기구의 수장이 행정부 관료인 데는 한국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정부는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했다. 국민연금을 정부가 장악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이다.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에서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선진국 연기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이름으로 민간기업의 대표도 갈아 치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은 (연금)사회주의 쪽으로 성큼 다가서게 됐다. 거칠게 말하자면, 앞으론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재벌의 국영화, 노영(勞營化)도 가능해졌다. ●권력이 경제를 장악하면 경제는 죽는다 팔순을 바라보는 노(老) 경제학자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는 “좌파경제로 성공한 나라는 없다”고 단언했다. 1957년 스푸트니크 위성을 쏘아 올려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소련도 개국 70년도 못가 망했다. 좌파는 사회주의 자체가 실패한 건 아니라고 믿고 싶은지 꼭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졌다는 식으로 말한다. 현실이든 환상이든 사회주의 소련이 망한 원인은 어느 정도 규명돼 있다. 과잉된 중앙집권화, 경제활동의 동기부여 부재, 소비재의 낮은 품질, 경쟁의 부재로 인한 혁신활동 소멸 등이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꼽은 원인이다. 쉽게 말해 당(黨), 즉 권력이 경제를 장악하면 경제는 죽는다는 얘기다. ●거꾸로 정책만 고집하는 문재인 정부 경제를 틀어쥐고 거꾸로 가는 정책만 고집하는 정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박동운이 최근 낸 책이 ‘위대한 7인의 정치가’다.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대한민국의 박정희,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영국의 마거릿 대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까지 집권 순서대로 7명을 분석했다. 허허벌판에서 손가락 빨고 있거나, 다 망해서 손가락 빨게 된 경제를 정치를 통해 살려내고 국가와 세계를 바꾼 국가지도자들에게는 성공 비결이 있었다. 정부가 뛰는 대신 시장이 뛰게 하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면 시장경제이고 두 마디로는 개혁과 개방이다. ●위대한 지도자는 시장경제로 갔다 리콴유는 사회주의를 신봉했던 리더였다. 모두가 자기 몫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사회주의가 옳다고 여겼지만 개인적 동기와 보상이 없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시장경제로 돌아섰다. 가난한 나라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이고(개방), 그러려면 구조개혁, 법인세율 인하, 노동시장 유연화 등 기업하기 좋은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개혁) - 이 공식은 싱가포르는 물론 한국과 중국에 적용됐고 일단 성공했다(문재인과 시진핑 전까지는). 대처와 레이건은 1970년대까지 노조천국, 복지만능 식의 좌파경제로 치달은 나라를 탈규제, 민영화 등 구조개혁을 통해 시장경제로 되돌린 지도자였다. ●신자유주의로 재정위기 벗어난 아일랜드 그 결과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게 아니냐고 좌파는 목청을 높일 것이다. 그럼 20여년 뒤 금융위기 터지지 말라고 정부가 경제를 틀어쥐고 있다가 소련처럼 망해야 옳단 말인가? 글로벌 위기 여파로 2010년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아일랜드가 2013년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화려하게 부활한 것도 좌파가 치를 떠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서였다. 재정건전화와 구조조정! 우리도 징글징글하게 해냈고, 문재인 정부와는 정반대인 IMF 요구사항을 이행해 2014~2017년 연 평균 12.7% 눈부신 성장을 했다. 공무원임금 14% 삭감 등으로 정부 지출을 줄이고 최저임금 12% 삭감, 사회연대협약 폐지 등으로 노동비용을 줄이는 제도개혁으로 해외투자자 유치, 수출확대에 성공한 것이다(강유덕 ‘경제위기 이후 아일랜드 경제의 회복과 그 요인에 관한 연구’) ●헌법에 명시된 경제질서는 시장경제다 결국 경제에선 국가나 사회가 아닌,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해야 나라가 잘 살 수 있음을 역사가, 세계가 보여준다(그 결과 생겨나는 경제적 불평등은 선별적 복지로 균형 잡는 것이 선진국 흐름이다). 이를 내다본 듯, 우리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일찌감치 명시했다. 박동운은 ‘위대한 7인의 정치가’에서 “1962년 헌법에 국가 경제체제로서의 시장경제를 못박은 것이 박정희였다”고 적었다. 반(反)시장정책으로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어 사회주의로 몰고 가려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dobal@donga.com}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 김정은의 북핵 위협도 시시하게 만드는 핵폭탄급 사건에 검경이 명운을 걸게 됐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범벅된 요란한 범죄 행각에 대통령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본격 ‘정치 포르노’가 펼쳐질 조짐이다.엄청 중요한 외교행사로 보이진 않는 브루나이, 캄보디아 등 동남아 순방으로 6박7일간 나라를 비웠던 대통령이었다. 귀국 일성으로 이들 세 사건의 수사를 굳이 지시할 만큼 중요한 건지도 납득이 안 간다. 검찰청법 위반 소지도 있다.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은 법무부 장관에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국면전환 성공한 정치적 묘수 그래서 ‘정치 포르노’라는 거다(외국에선 ‘먹방’이나 ‘요리 쇼’를 food porn이라고 하기에 만든 말이다). 대통령은 구체적 사안에 대해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순식간에 국면을 전환했다. 본질에서 벗어난 쪽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푸드 포르노’처럼, 세 사건도 정치적으로 같은 역할을 한다.확실한 검경 장악은 물론, 북-미 협상 결렬과 그 원천으로 작용한 친북 정책기조의 실패까지 단박에 덮고는 국민의 시선을 사건 수사로 고정시켜 버리는 정치적 묘수를 발휘한 셈이다. 청와대가 규정한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과거 정권 때 특권층에서 벌어진 일을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들이 고의로 부실수사, 더 나아가선 진실규명을 막고 비호·은폐한 정황’이 있다는 거다. ●검찰과 경찰, 둘 중에 하나는 죽는다 방점이 검경에 찍혔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경찰과 검찰 중에서 현 정권의 의중에 맞는 수사를 더 못하는 쪽이 검경수사권 조정의 칼을 맞는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본다. 대통령이 권력형 사건이라고 밝힌 만큼 당연히 전 정권과 전전(前前)정권의 권력 핵심들이 줄줄이 엮여 나오게 돼 있다. 당장 집권당은 김학의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의원을 비호·은폐 권력으로 지목하고 수사를 촉구했다. 그렇다면 버닝썬 사건도 똑같은 기준으로 수사해야 한다. “강남 클럽 사건은 연예인 등 일부 새로운 특권층의 마약류 사용과 성폭력 등이 포함된 불법적 영업과 범죄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과 국세청 등 일부 권력기관이 유착해 묵인·방조·특혜를 줬다는 의혹”이라고 대통령은 규정했다. ●‘경찰총장’, 검증도 없이 청와대 왔나 너무 가볍게 보셨다. 누가 써준 원고인지, 비호·은폐 정황이 엿보이는 프레임이다. 승리의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경찰총장’으로 불린 윤모 총경은 현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여름부터 1년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됐던 사람이다. 그리곤 경찰청 인사담당관이라는 핵심 보직으로 원대 복귀했다.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20일 “문재인 정부 때 백원우 민정비서관 아래 행정관으로 발탁된 백원우의 오른팔”이라고 주장했다. “백원우가 경찰에 자기 사람 앉혀 인사를 좌지우지 하겠다는 의혹이 있다”고 한 건 그냥 ‘의혹’이라 치자.하지만 연예인과 유착한 경찰을 인사 검증에서 걸러내지 못하고 청와대로 끌어들인 민정비서관과 민정수석의 책임은 면키 어렵다. ●경찰총장이 청와대에서 골프만 쳤겠나 윤 총경이 승리 등 유리홀딩스가 투자해 운영한 몽키뮤지엄에 대한 경찰 수사 상황을 알려줬다는 건 지난 정권에서다. 그러나 그가 승리와 유리홀딩스 대표, 연예인 박한별 등과 수차례 골프치고 식사를 한 건 현 정권 민정비서관실에서 벌어졌다. 승리가 여자 연예인까지 동원해 윤 총경과 괜히 골프를 쳤겠나? 2016년 7월 윤 총경이 딱 한번 승리를 봐줬다는 게 말이 되는가? 청와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때 뒤를 봐준 사람이 청와대 들어와서 어딘들 못 봐줬을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에 소속됐다 정권과 투쟁 중인 김태우 전 수사관을 기억한다. 2018년 11월 14일 검찰로 돌아간 김태우는 뒤늦게 ‘비위’로 징계 받게 되자 12월 14일 “나 말고도 청와대에 골프 친 사람 많다”고 폭로했다. ●특감반만 달랑 조사했다는 민정수석실 조국 민정수석이 특감반 전원 교체라는 초유의 사태를 연출한 것이 11월 29일이다. 검찰에 복귀한 특감반원 외에 부적절한 처신과 비위혐의가 있는 특감반원들이 또 있다는 게 이유였다. 특감반의 기강이 이렇게 풀렸을진대 민정수석실 다른 직원들은 골프 안 쳤겠나? 명색이 민정수석이 달랑 특감반만 조사하고 나머지엔 눈 감았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청와대에서 승리와 골프까지 친 윤 총경이 경찰청 인사담당으로 영전했다. 이 기막힌 인사를 조국 수석이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덮었다면 심각하다. 왜 윤 총경이 승리와 골프를 치고 다녔는지 파고들었다면 버닝썬과의 유착관계도 파악했을 개연성이 있다.●조국 민정수석도 수사해야 마땅하다 여권은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당시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도 수사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조국 민정수석도 수사해야 마땅하다. 숱한 인사 검증 실패에다 민정수석실 행정관 감독도 못한 조국 수석은 그러나 사과 한 마디 없다. 마치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이마를 내려 덮은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넘기며 우수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터다. ‘버닝썬 게이트’라는 단어를 일부 여권 매체에서 열심히 쓰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워터게이트에서 비롯된 게이트는 본래 정치권력과 관련된 대형비리 사건이나 스캔들에 붙이지 아무데나 붙이는 말이 아니다. 만일 청와대와 관련됐음을 알고 썼다면 대단한 용기다.·●살아있는 권력은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며 한 말씀이다. 검경이 충성 경쟁을 한대도 어쩔 수 없다. 다만 국민이 눈을 밝히고 지켜본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dobal@donga.com}

이 정부가 ‘충격체감의 법칙’을 아는 것 같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어서 분노가 솟구친 일도 자꾸 반복되면 처음처럼 반응하지 않는 게 충격의 한계효용체감법칙이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된 최정호 전 국토부 차관 인사는 한계를 넘는다. 분당과 잠실, 세종시에 똘똘한 아파트를 3채나 가진 다주택자를 “주택시장의 안정적 기조를 유지하면서 주거복지를 실현할 적임자”라고 발표한 청와대도 낯이 보통 무감각해진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 장관 후보자는 2006년 부인이 서울 창신동의 ‘쪽방촌 딱지’를 샀다가 자진사퇴해야 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참여정부가 부동산 투기 근절에 매달리던 2006년 고위공직자가 투기를 했다는 사실에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며 맹비난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행보에 치명타를 입혔다”고 결정타를 날린 의원이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그래도 보수정부에서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낙마한 주무부처 장관 후보자는 없었다. 더구나 지난주 서울의 고가 아파트뿐 아니라 지방 중소아파트까지 마구잡이로 대폭 올린 공동주택 공시 예정가격이 발표됐다. 국민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동산문제, 세금폭탄에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온몸으로 불을 지른 형국이다. 물론 그의 명의로는 국토부 차관 시절 공무원 특별공급으로 당첨된 세종시 아파트(155.87m²) 분양권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부동산 경기부양책은 대단히 잘못됐으므로 (집값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투기가 심각했던 2003년 초. 부인 명의로 잠실1단지 딱지(조합원 권리)를 사고 세금탈루 의혹까지 받는 것은 가볍게 봐줄 수 없다. 최 후보자는 지난달 장관 인사 검증에 들어가자 살고 있는 분당 아파트(84.78m²)를 장녀 부부에게 절반씩 쪼개 증여한 뒤 보증금 3000만 원, 월세 160만 원에 임대차 계약을 하고 그 집에서 그냥 사는 절세의 묘수를 보였다. 정부가 투기를 막고 집값을 잡겠다고 보유세를 올리고 다주택자 가산세까지 물린다는데 주무부처 장관 될 사람이 꼼수로 피해간 것이다. 아무리 좌파정권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해도 공무원은 달라야 한다. 정책을 내놓으면 솔선수범은 못 해도 어기진 말아야 하고, 못 지킬 정책은 막아내야 책임 있는 관료다. 정치인 출신 국토부 장관이 “계속 오르는 집값을 이대로 두면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희망을 가질 수 없다”며 사는 집 아니면 좀 파시라고 강조한 게 2017년 8월이었다. 작년까지 전북 정무부지사이던 최 후보자는 한 번도 살지 않은 잠실엘스(59.97m²)가 13억 원을 오르내리는데도 팔지 않았다. 2016년 말 공무원 특별분양받은 복층 펜트하우스는 완공도 안 됐는데 웃돈이 7억 원 넘게 붙어 공무원 아닌 국민을 배 아프게 한다. 그런 사람이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시장 안정화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건 소나 웃기는 일이다. 집 가진 사람들은 되레 강남, 분당, 세종시 똘똘한 아파트값이 더 오를 것이고, 보유세나 거래세는 필시 내릴 것이라며 반색을 한다. 쪼개 증여하면 세 부담이 줄어드는 세(稅)테크까지 알려줘 고맙다는 사람도 있다. 최 후보자의 딸과 사위는 좋겠다. 공직자 부친에게 보증금 받아 증여세 내고, 다달이 생활비 보조도 받게 된 30대 초반 금수저가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기여할까 걱정이다. 참여정부 때나 지금이나 고위공직자가 투기에, 부(富)의 대물림과 꼼수 절세에 열심인데도 민주당에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는 소리가 없는 건 오만이 하늘을 찔러서라고 봐야 한다. 조국 민정수석이 인사 검증에서 이 모든 걸 몰랐다면 무능이 재차 확인된 것이고, 알았다면 오만방자를 넘어 불충(不忠)이다. 최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의 ‘정의로운 국가’ 행보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노 비서실장이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을 즐기다 말(馬)이 된 정부는 처음처럼 분노하지 않는 국민을 보며 희희낙락할지 모른다. 분노를 지나 조롱받는 상황이 됐다. 집권세력이 체제의 인위적 안정성과 실제의 취약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때가 위험한 법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남자도 헤어스타일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시진핑(習近平·66)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주 흰머리를 노출했다는 뉴스를 보고서다. 딱 봐도 염색이다 싶은 새까만 머리를 포마드 발라 넘겨 붙이는 게 중국 지도부의 관행이었다. 젊게 보이려는 이 ‘흑발 정치’의 전통을 시진핑이 깬 것이다. 그것도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시진핑 흰머리는 왜 늘어났나 국내 신문들은 인간적, 서민적, 친근한 이미지 부각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2014년 잠깐 흰머리를 보였을 때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내놨던 해석이다. 그 뒤 5년간 비인간적이었다가 다시 인간적이 될 수도 있나? 자신감과 현명함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중화제국주의를 내건 시진핑의 종신 집권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바꾼 게 꼭 1년 전이다. 관행과 규범도 깰 수 있는 절대 권력! 흰머리 노출이 이를 입증한다고 미국 정치학자들은 분석했다. 흰머리가 자신감의 표현이라면 우리 대통령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겠다. 다시 흑발로 등장하면 자신감이 사라졌다고 할 건가? 나는 아무리 염색해도 사라지지 않는 시진핑의 불안과 딜레마를 드러낸다고 본다. ●9로 끝나는 해마다 변고가 벌어졌다 중국은 올해가 ‘아홉(9)수’다. 올해 건국 70년인 중화인민공화국은 9로 끝나는 해(年)마다 변고를 맞았던 징크스가 있다(1949년 건국도 사실 어마어마한 변고다). 시진핑이 가장 두려워함직한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1989년 6월 4일 일어났다. 민주화 요구를 짓밟고 공산당 일당독재의 민낯을 사정없이 노출한 톈안먼 사태는 그 해 5·4운동 70주년 기념일로 촉발됐다. 1919년 우리의 3·1운동에 자극받아 일어난 것이 중국의 5·4운동이다. 3·1운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탄생시켰듯, 중국 공산당은 ‘무산계급의 혁명성을 최초로 드러낸 5·4운동이 창당의 기반’이라고 주장한다(창당이 1921년이니 좀 오래 걸리긴 했다). ●톈안먼 사태 30주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무슨 소리냐. 개혁정신의 진정한 계승자는 공산당이 아니라 대학생들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 모인 시위대를 덩샤오핑(鄧小平)은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경제가 발전하면 따라 오리라던 정치 개혁의 희망은 죽었다.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봉기도 1959년 3월에 일어났다. 이때 망명한 티베트 정치(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도 1989년이다. 1999년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의 봉기와 대대적 탄압이 벌어졌다.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치면 올해가 독립을 외치다 유혈 진압 당한 우루무치 사태 10주년이다. 그러니 시진핑이 2019년을 머리 염색하며 보낼 수 있겠나. ●중화인민공화국 70년, 왕조의 수명도 70년 강한 것이 이기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승자다. 시 황제는 69년밖에 못 살고 죽은 소련(1922~1991년)의 수명을 넘어섬으로써 사회주의체제의 강고함을 입증하긴 했다. 그러나 중국 왕조의 평균수명이 70년이다. 미국 하버드대 왕유화(王裕華) 교수는 중국을 지배한 49개 왕조를 분석해 중국 공산당이 배워야 첫째 교훈이 “어떤 왕조도 영원히 지배할 수 없다”라고 했다. 물론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왕조국가가 아니다. 그러나 시진핑이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장악하는 바람에 왕조의 운명을 맞을 수도 있는 패러독스에 빠진 거다. ●엘리트 반란의 싹을 키우는 시진핑 왕조가 무너지는 건 주로 구(舊)집권세력의 반란에 의해서다. 282명의 황제 중 자연사한 자는 절반이 고작이다. 제 명에 못 죽은 황제 중 절반이(76명·27%) 엘리트의 반역으로 목숨을 잃었다. 민란(32명)이나 외적의 침입(7명)에 의한 죽음은 훨씬 적다. 시 황제가 중국을 벌벌 떨게 만들고 있는 선별적 부패 청산이 엘리트 반란의 싹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제 명에 죽은 황제들은 집권 초 왕자들 중 가장 충성스럽고도 유능한 후계자를 지명했다는 특징이 있다. 덩샤오핑이 격세(隔世) 간택의 계승 원칙을 만든 것도 공산당 영구집권을 위해선 정치보복을 막아야 한다는 깊은 뜻에서였다. ●시진핑 “백년에 한번 찾아온 큰 변혁의 시기”현재의 주석이 차차기 주석을 미리 지명하도록 한 계승의 원칙은 작년 10월 깨졌다. 시진핑 집권 2기를 시작하는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후계자가 지명되지 않은 것이다. 시진핑이 공산당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진핑은 올해 신년사에서 “글로벌 시각에 입각해볼 때 우리는 지금 백년에 한번 찾아올 큰 변혁의 시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시진핑이 공산당을 구했다”는 찬사가 나왔던 1년 전에 비하면 민망할 만큼 중국은 지금 위기적 상황이다. 우선 공산당 일당독재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경제가 문제다. 과잉투자와 부채로 성장한 경제는 급속 추락하기 쉽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톈안먼 사태로 국제 제재를 받은 1990년 이래 최저였다.●공산당 경제통제 넘어 디지털 독재로 수출주도 성장도 종친지 오래다. 더구나 미국이 중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을 태세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은 밀리는 조짐이다. 고장 난 경제를 고치려면 공산당 독재를 끝내야 하지만 당의 통제를 ‘감시 자본주의’로까지 전락시킨 자가 바로 시진핑이다. 물론 당장 중국이, 시진핑이 망하진 않을 것이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14억 인구를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로 감시하는 ‘디지털 독재’를 빡세게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시가 화웨이의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 시작한 ‘얼굴 찍고 지하철 타기’를 부러워할 게 아니다. 시진핑에 비판적 웨이보를 날린 사람은 앞으론 지하철도 못 탈 수가 있다. ●이런 전체주의에서 ‘사람’ 살 수 있나 인터넷 사용기록과 알리페이 같은 거래내역, 법규 위반 등 모든 개인정보를 수집해 시민의 등급을 매기는 ‘사회적 신용제도’는 더 끔찍하다. 작년까지 비행기 탑승이 금지된 사람이 1700만 명. 입학과 취업, 심지어 결혼까지 공산당이 매기는 등급제에 좌우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당(黨)이든, 국가든, 이념이든, 집권세력의 가치를 온 국민에게 강요하는 전체주의는 이렇게 위험하다. 이런 권위주의 강대국이 국제질서를 주름잡을 경우, 독재국가는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작년 10월 미국의 포린어페어즈지는 “냉전 초기 소련의 파워가 커질 때 주변 독재국가가 증가하고 소련 멸망 뒤엔 감소했듯, 이제는 중국이 세계에 권위주의를 퍼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親中 집권세력도 지금 불안한가 우리의 집권세력이 헌법에서 빼버리려 했던 ‘자유’는 그래서 중요하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라며 친중(親中)으로 달려가는 그들이 안쓰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원수 모독죄’라는 있지도 않은 죄목으로 야당 원내대표를 징계하겠다니, 과거 권위주의 정부와 뭐가 다른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국이 경멸하는 ‘서구식 민주주의’ 그 중에서도 선거라는 제도가 우리에겐 있다는 사실이다. 폭력 없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가장 덜 나쁜 제도라고 했다. 중국은, 친중정권은 2019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dobal@donga.com}

먼저 오해 마시길. 내가 학교 때 공부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죽 쑤고 있다는 얘기도 아니다. 이건 그냥 이 몸이 뉴욕타임스를 보다 눈이 번쩍 띄어서 빌려온 제목으로 봐주시면 고맙겠다. 여학생이 공부 잘하는 건 세계적 현상 학교 공부는 대개 여학생들이 더 잘한다. 중고교 뺑뺑이에서 남녀공학을 받으면 딸 있는 집은 좋아하지만(남학생들이 내신 밑바닥을 깔아준다나) 아들 둔 집에선 곡소리가 난다. 성별 대학진학률도 2017년 남자 65.3%, 여자 72.7%로 벌어졌다. 미국은 더하다. 2018년 전체 학위 취득자 중 여성이 학사 57.3%, 석사 58.8%, 박사 52.9%였다. 퍼센트로 쓰니 감이 안 오는가. 남자 학사·석사·박사 100명당 여자가 각각 134명, 143명, 112명이다(똑똑한 여자들이 결혼하기 힘든 주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서 대학 나온 여자가 남자보다 많아진 것이 1982년부터였다. 석사는 87년부터 추월했다. 그럼에도 S&P 500 기업 중 여자 최고경영자(CEO)는 5%에 불과하다. 그 똑똑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사회에 나가선 학교 때만큼 못 하는 걸까.여자는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성차별? 유리천장? 육아 부담? 그런 뻔한 얘기를 하려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성실하게, 완벽하게! 학교에서 여자가 남자를 앞설 수 있었던 이런 특성들이 사회에선 되레 여자들 발목을 잡는다는 게 임상심리학자 리사 다무어의 주장이다.‘SKY캐슬’을 떠올리면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예서와 공동수석으로 고교에 입학한 남학생 우주는 성적이 좀 떨어져도 여유만만, 외모는 물론 성격도 좋은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다. 반면 예서는 1등 아니면 의미가 없는, 재수 없이 잘난 여자애다. 예서와 전교 1, 2등을 다투는 혜나는 성취욕도 예서 뺨친다. 이를 굳이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특히 학업에서 자기 지향의 완벽주의가 높다’가 된다(논문 ‘남녀청소년의 완벽주의가 사회불안에 비치는 영향’).남녀 차이는 Competence 아닌 Confidence Gap 이런 여자가 사회에 나가면 왜 실력을 발휘 못 하느냐고? 바로 그 안달복달, 악착같은 완벽주의 때문이다. 이건 영어로 해야 어감이 사는데, 남녀 차이는 컴피턴스(competence·능력)가 아니라 컨피던스(confidence)에 있다는 거다. 컨피던스 갭(confidence gap)! 컴피턴스와 컨피던스는 겉에선 구분하기 어렵다. SKY캐슬의 우주 같은 남자는 너무 드라마틱하다. 실제론 남자는 그냥 자신만만한 것뿐인데 능력 있다고 인정받아 승진 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여자는 난 아니야, 이걸로는 부족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늘 자신 없어 한다. 그 바람에 있는 실력마저 보여줄 기회를 잃고 남자들한테 밀린다는 거다. 우리나라는 모르겠고, 외국엔 이걸 확인해주는 연구 결과가 참 많다. 심지어 최근엔 ‘왜 그렇게 무능한 남자들이 리더가 되는가(Why Do So Many Incompetent Men Become Leaders)’라는 책까지 나왔다(남자가 썼음).남자의 자신감이 리더십으로 오인돼 심리학자인 토마스 차모로-프레무지크(Tomas Chamorro-Premuzic)는 40개국 산업계 리더들을 조사한 결과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거만하고, 남을 잘 조종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문제는 이것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종종 오인된다는 사실이다. 추락하는 정·재계 리더를 보시라. 오만, 남을 조종하는 교활함, 위험으로 돌진하는 무모함. 리더를 정상에 올려놓았던 바로 그 성향 때문에 망조가 들지 않던가. 그래서 다무어는 여학생들 부모에게 “너무 악착같이 공부하도록 두지 말라”고 조언했다. 매번 열심히, 성실하게, 완벽하게 해야만 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 믿음을 키우기 어렵다. 남자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는 전교 1등을 해도, 부장이 돼도 이 자리가 내 것이 아니고, 언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내 앞에 있는 남자가 ‘허당’일 수도 드라마 속 예서의 부모들은 개과천선했다. 하지만 나는 똑같이 조언했다가 뒷감당할 자신 없다(자신감 부족 맞다 ㅜㅜ). 자신감이라는 것도 근육처럼 키울 수 있다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위험감수 잘 못 한다 ㅠㅠ).다만, 지금 내 앞에서 잘난 척하는 저 남자도 실은 8할이 ‘허당’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사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때로는 착한 것보다 착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듯, 자신 있는 것보다 자신 있어 보이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마침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다. dobal@donga.com}

“우리에겐 독립운동과 함께 민주공화국을 세운 위대한 선조가 있고, 절대빈곤에서 벗어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건국 2세대와 3세대가 있다.” “사상범과 빨갱이는…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고…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으로 사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달라졌다. 지난해 3·1절 기념식사(위)와 올해(아래)를 비교하면 확연하다. 대통령 연설문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인식과 정책을 드러내는 공식문서다. 작년의 대통령은 근대화, 산업화에 앞장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룩한 보수우파를 ‘건국 2세대’로 평가했다. 이번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다”니, 빨갱이를 빨갱이라 비판한 보수우파는 친일파로 몰릴 판이다. 연설기획비서관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빨갱이라는 자극적 단어를 대통령 연설문에 다섯 번이나 써야 했는지 청와대 안에서 반대가 없었을 리 없다. 이를 관철시킨 것은 문 대통령이었다는 보도다. 북핵을 완성한 김정은의 변화를 남북관계 진전으로 믿고 한반도 운명 주도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생겨서라면, 100년 전과 다름없는 우물 안 개구리다. 대선 직전에 낸 책에서 밝힌 대로 “친일파가 독재와 관치경제, 정경유착으로 이어졌으니 친일 청산이 이뤄져야 사회정의가 바로 선다”고 여전히 믿는 것 같다. 반대할 자유가 없는 김씨 왕조의 북한과는 평화 공존을 강조하면서 색깔론을 제기하는 정치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니 민주주의라고도, 민족주의라고도 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인식으로 국정운영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좌우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라는 연설문을 보면 민족화합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손보거나 친일잔재청산 특별조치라도 내릴 태세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연 심포지엄에선 “많은 식민지 약소민족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공산주의를 통해 새로운 민족독립의 방안을 모색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일제가 우리를 이간질하려고 독립운동가들 모두 ‘아카(アカ)’로 낙인찍었다는 건 지나친 일반화인 셈이다. ‘빨갱이의 탄생’을 쓴 김득중은 빨갱이를 죽어 마땅한 비(非)국민으로 모는 것은 1948년 여순사건 때 양민 학살에서 생겨났다고 했다. 빨갱이 소리 듣기 싫다고 친일 잔재 청산 운운하지 말고 반공(反共) 잔재 청산을 외치는 게 솔직하다는 얘기다. 이 책의 서평으로 정해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은 2009년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해방과 더불어 남한 내부에선 친일파를 포함한 반공 우파세력과 좌파세력 간에 새 정부 수립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과 갈등이 전개됐다”며 “이승만 정부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좌파세력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으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8월 15일을 건국절로 삼는 것은 좌파에 대한 반공 우파의 승리, 북에 대한 남의 분명한 정통성을 확인하는 의미가 된다며 반대를 시사했다. 그렇다면 이승만 정부가 진짜 빨갱이들에게 무너지고, 우리가 김정은 아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살고 있어야 옳단 말인가. 나는 8월 15일을 건국절로 정해 내분을 일으킬 것까진 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럼에도 건국절에 반대하는 세력의 진짜 이유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니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그런 이념을 갖고 있으면서 지난해 사법부까지 장악하는 청와대발(發) 개헌안을 마련했고, 지금 대통령 곁에서 국정기획을 하고 있다는 것도 섬뜩하다. 표현의 자유까지 갈 것도 없다.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를 수 없는 나라는 북한과 다름없는 전체주의 국가다. 좌빨도 아니고, 주사파도 아니고, 빨갱이라는 자유당 때 단어가 다시 들리는 데는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외국 언론에서 북한 대변인이라고 할 만큼 친북적인 언행과 정책을 보이니 시대착오 같은 빨갱이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통합을 말해도 믿기 힘들 판에 대통령은 갈등 조장 언어를 발설했다. 2020년 총선을 내전(內戰)처럼 치르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민주당 50년 집권론’이 핵을 쥔 35세의 김정은과 더불어 자유 없는 평화로 가겠다는 것인지 눈을 부릅뜰 일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야당은 분열로 망한다. 이미 정권을 뺏기고도 책임소재와 투쟁노선, 정당성 등등을 따지다 갈라지고도 모자라 또 찢어진다. 기득권은 있는 대로 누리며 야권 몰락에 기여했던 그때 그 사람들. 단절해야 할 과거와 끈질기게 연결돼 있으면서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권력투쟁에 골몰한다면, 20년 독재정권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까.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기억하는가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자유한국당 얘기가 아니다. “조작 선거에 의해 대통령직이 강탈당했으므로 헌법에 따라 국회의장이 과도정부의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한 달 전, ‘대중의 의지(VP)’당 소속 36세의 젊은 국회의원 후안 과이도가 이렇게 선언하기까지는 베네수엘라가 바로 그 꼴이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종종 비교된 우고 차베스가 지배했던 이 나라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2006년 KBS가 주말 황금시간대에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이라는 일요스페셜을 내보낼 만큼 ‘21세기 사회주의’에 꽂힌 좌파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수 시절이던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전략 토론회에서 “차베스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좌파 교수와 시민단체는 차베스 붐에 앞장을 섰다. 20년 독재집권은 지리멸렬한 야당 탓노동자를 위한다며 해고를 못 하게 만든 노동법, 빈민층을 보호한다는 가격통제, 대학 무상교육과 주민평의회 등등 차베스가 2013년 숨지기까지 민심을 현혹시킨 포퓰리즘 정책은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에게 그대로 이어졌다.유가 하락에 살인적 인플레, 부정부패로 4년 내 지지율 30%를 넘지 못했던 마두로다. 그럼에도 작년 대선에서 승리한 건 지리멸렬한 야권 탓이 크다. 차베스 이전의 지배세력이 주류인 야권 지도자들은 당리당략과 정치공학, 창당과 탈당, 음모와 배신에 골몰해 민심을 얻지 못했다.집권당 아닌 야당은 다 모인 민주연합회의(MUD)가 2015년 총선에서 의석 3분의 2를 얻는 대승리를 했음에도 이념과 노선, 정당성을 놓고 내분투쟁 하느라 대정부 투쟁은 뒷전이었다. 낡고 똑같은 얼굴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작년 말까지 그 모양이었던 베네수엘라 야당이 어떻게 이렇게 돌변할 수 있었을까. 과이도라는 ‘신선한 피’ 덕분이다. 외신을 보면 “낡고 늙은 얼굴들이라면 불가능했을 대정부 투쟁에 과이도가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가 많다. 2011년 보궐선거, 2016년 지역구 선거에 당선된 과이도는 작년까지 거의 무명이었다. 야권 대표도 아니다. MUD가 차지한 112석 중 그가 속한 VP당은 14석에 불과하다. 올 초 국회의장에 취임한 것도 MUD에 속한 야당이 1년씩 돌아가며 맡는 순번 덕분이다.그러나 과이도에게는 내부투쟁과 보이콧이 고작인 오합지졸 야권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있었다. 차베스의 언론 탄압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 VP당 창당에 참여한 그는 첫째가 되기보다 팀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많이 하기보다 결정을 해야 할 때 내릴 줄 아는 용기와 리더십을 지녔다. 야당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VP당 대표 레오폴도 로페스의 힘이 컸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지율 1위를 달렸던 로페스는 민주화 시위 중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징역을 살다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다. 야권 지도자로서 누리는 권력도 만만치 않을 터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미국에 보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키는 등 과이도가 임시 대통령으로 승인받도록 멘토의 역할을 다했다. 당대표 선출을 하루 앞둔 자유한국당을 보며 희망을 갖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얼굴은커녕 그때 그 사람들이다. 누가 대표가 되든 한국당은 과거로부터 놓여나기 힘들다. 박근혜 탄핵에 부역했다는 ‘도로친박당’ 비판은 차라리 약과다. ‘신선한 피’를 위해 물러설 수 있는가그중에서도 한 사람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공안검사 꼰대, 또 한 사람은 그보다는 젊어도 태극기부대 꼰대 같은 이미지다. 민심 여론조사에선 당심(黨心)을 앞선 오세훈이 2위라도 할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번진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로페스도 늘 파벌을 만드는, 오만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도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미국 외교관의 평가에서다. 그랬던 로페스가 비록 연금 중이기는 해도 자신의 욕심을 접고, 과이도의 멘토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독재 타도에 희망을 안겨 줄 수 있었다. 내일 탄생하는 한국당 당대표에게 당부하고 싶다. 신선한 피를 과감히 수혈하시라. 내가 아니면, 우리 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욕심을 버리시라. 다른 당을 합당시키려 분란을 자초하지 말고 한 명이라도 더 힘을 모으는 ‘연대’에 힘쓰시라. 그리하여 당을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 채운다면 한국당에 민심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dobal@donga.com}

김경수 경남도지사 구하기에 집권세력이 총동원되는 분위기다. 김경수가 누군가. 17대 대선에서 ‘드루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로 지난달 30일 법정 구속된 대통령 최측근이다. 19일 집권당은 1심 판결문을 분석해 “형사소송법 대원칙을 망각한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반민주적 행위다. 말은 참 잘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는 이럴 줄 알았는지 “국정원 댓글은 불법이고 ‘문슬람’ 댓글은 적법한가” 공격한 적이 있다. 작년 초, 드루킹과 김경수는 아직 드러나지도 않았을 때였다. 드루킹 댓글 아니면 정권 뒤바뀌었나?물론 1심 판결은 2심에서 뒤집힐 수도 있다. 나는 대선 불복할 의사도 없고, 설령 김경수가 댓글 조작을 했다고 해도 지난 대선 결과가 바뀌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원 댓글 조작도 마찬가지였다. 정권이 17대 대선에 댓글로 개입했으나 그 정도로 박근혜 당선이 뒤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13년 문재인 당시 의원은 “지난해 대선이 대단히 불공정하게 치러졌고 그 혜택을 박 대통령이 받았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댓글만 아니었으면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는 듯한 얘기다. 김경수는 임종석 부려먹을 만큼 대단한가?지난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세력처럼 국가기관을 동원할 수 없어 대신 동원한 것이 드루킹 같은 비선조직이다. 문재인의 과거 논리를 적용하면, 드루킹 댓글만 아니었으면 대선 결과는 달라졌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집권세력이 지나칠 만큼 ‘재판부 때려 김경수 구하기’에 총동원된 것도 바로 이런 가능성 때문일 터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만드는 이 중차대한 일에 왜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김경수가 나선 것일까. 드루킹은 “임종석 비서실장은 김경수가 청와대에 박아놓고 부려먹는 아바타”라고 작년 11월 증언한 바 있다. ‘청와대 실세는 임종석’이라는 당시의 인식을 뒤집는 천기누설이다. 김경수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 임종석을 부릴 만큼 대단한 사람이란 말인가? 전대협의 배후실세, 자민통과 김경수답을 찾기 위해 과거 기사를 뒤져봤다. “전대협이 북한의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 위장 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투쟁지침에 따라 공산 적화통일을 목표로 결성된 친북 지하 비밀조직 자유·민주·통일그룹(자민통)의 배후조정을 받아온 사실을 밝혀냈다”고 1990년 안전기획부가 발표한 기사다.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이라는 일각의 주장도 없지 않다(안전한 서술을 위해 붙이는 말이다). 그러나 전대협 의장들은 얼굴마담이었고 배후 조정한 실세는 자민통이라는 증언이 너무나 많다. 2017년 신동아 4월호(691호)는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는 김경수 의원, 양정철 씨와 정청래 전 의원 등이 자민통 계열’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맞는다면, 임종석은 ‘김경수가 청와대에 박아놓고 부리는 아바타’라는 드루킹의 증언은 의미심장하다. “주사파의 믿음은 종교적 수준”여기서 젊은 날의 사상을 따지고 싶진 않다. 다만 자민통 리더였던 구해우 씨가 “주체사상에 대한 주사파 조직 후배들의 믿음은 거의 종교적 수준”이라고 2012년 신동아에 쓴 대목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주사파 출신 중에는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한 뒤 민족 종교에 입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념은 종교다. 그것도 자신만 옳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일신교다. 광신자들이 그렇듯이 사람의 사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보통의 무슬림과 무슬림형제단(이하 형제단)이 다른 점이 이거다. 관용이나 공존, 전향 같은 건 배교(背敎)라며 성전(聖戰)을 불사하는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다녀왔기 때문일까. 노무현 정부 때는 ‘탈레반’, 지금은 ‘문슬람’이라고 불리는 집권세력 86그룹 중에서도 강경파의 행태는 형제단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무슬림형제단과 문슬람의 닮은 점첫째,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에다 종교적 근본주의를 결합한 저항운동을 벌인다. 1928년 영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해 창설된 형제단은 샤리아가 지배하는 이슬람국가 건설을 꿈꾼다. 아직도 일본 식민통치 청산을 부르짖는 문슬람은 ‘남북이 한민족’이라는 인종적 민족주의에 종교나 다름없는 좌파 이념을 결합시킨 운동집단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둘째, 뛰어난 조직력과 선전선동, 필요하면 적과도 동침하는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한다. 형제단이 내세운 얼굴마담들은 강력한 폭력투쟁을 벌이는 한편 민생복지, 교육, 의료서비스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980년대 이후엔 대학과 지식인, 엘리트사회로 저변을 넓혔다. 2011년 이집트 민주혁명 뒤 형제단 소속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도 통일전선전술의 성공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 이후 운동권 출신의 ‘애국적 사회진출’, 대통령을 ‘도구’로 사용하다 나중엔 택군(擇君)까지 해낸 86그룹과 흡사하지 않은가. 거꾸로 가는 시대착오적 통치를 어쩔 건가셋째, 세상 흐름과 담을 쌓아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ㅠㅠ. 집권을 했거나 안 했거나 현존하는 시장경제와 세계적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안다. 자신들만이 옳고 다른 의견이나 집단은 모조리 틀렸다고 몰아붙이는 반(反)민주주의적 불통의 똥고집은 이집트나 이 나라나 막상막하다. 1952년 이집트 쿠데타로 집권한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1918~1970)은 1947년 무슬림형제단에 가입한 비밀단원이었다. 무슬림형제단 지도자이자 이슬람 원리주의 최고의 이론가인 사이드 쿠틉이 나세르 혁명위원회에서 조직선전을 맡은 것도 이런 인연이 작용했다(포린어페어스 ‘무슬림형제단’). 나세르는 쿠데타 동지로 형제단을 활용했으나 이슬람 근본주의로 나라를 이끌 생각은 없었다. 세속주의에 아랍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시키는 방향을 분명히 하자 형제단은 배신당했다며 나세르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4년 무르시 정권을 끝장낸 쿠데타까지, 군부와 형제단의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던 거다.이집트 국민이 군부의 등장을 요구한 데는 전체주의 독재로 달려가는 형제단의 시대착오적 종교가 크게 작용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우리나라는 군부가 등장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임계치로 달려가는 이 나라의 전체주의적, 시대착오적, 이념적 통치는 어쩔 것인가. dobal@donga.com}

“이쯤 가면 막가자는 거지요.”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초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남긴 불후의 명언을 다시 들을 줄 몰랐다. 그것도 노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통해서다. 지난주 그는 ‘5·18 망언 3인’의 징계를 결정한 김영종 윤리위원장에 대해 “평검사 시절 현직 대통령 앞에서 대통령의 과거 잘못된 행위를 당당히 지적해 ‘이쯤 가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들었던 분”이라고 했다.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도 문제는 검찰개혁이었다. 평검사들은 첫 검찰 간부 인사 직후 참여정부에 과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따졌다. 검찰의 중립성을 흔드는 것은 권력이라는 의미로 김영종 검사는 “노 대통령도 당선 전 부산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 한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막가자는 거지요”라며 노기(怒氣)를 보인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검찰은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문민통제가 필요하다”고 코드인사를 강조했다. 이런 믿음은 문재인 정부에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2017년 5월 28일까지 3쇄가 나온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검찰은 행정부인 이상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을 수행해야 하고, 이를 위한 방법은 인사권과 지휘권밖에 없다”며 이는 정치적 중립과 관련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사 앞에 장사가 없는 법이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댓글 수사 와중에 박근혜 정부에서 불명예 사퇴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는 것은 인사권 때문”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권력이 말을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안 들으면 좌천시키는 인사로는 ‘정치검찰’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채동욱 사태에 반발해 좌천됐다 지금은 ‘적폐 수사’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또는 차차기 검찰총장으로 주목받는 것만 봐도 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에 대해 문 대통령이 ‘자신의 행위가 수사 대상’이라고 한 발언은 검찰 가이드라인으로 적용되는 조짐이다. 결국 정권을 둘러싼 비리 수사에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행태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검찰의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에 맞춰져야 옳다. 15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는 여기 비춰 보면 턱없이 미흡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비뚤어진 권력기관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버리는 원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검찰에선 “친일 잔재를 청산하겠다면서도 오히려 전횡을 부리는 것이 현 정부”라는 거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최근 공개한 경찰청 정보국 정보2과 업무보고를 보면 현 정부 1년간 청와대 요청으로 정보경찰들이 수행한 인사검증이 무려 4312건이었다. 일제강점기 ‘칼 찬 순사’처럼 정보경찰들이 법적 근거도 없이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및 복무 기강’, 언론 종교와 사회단체 등 민간 영역의 민심 동향까지 감시했다는 내용은 공포스럽다. 참여연대가 “인권 침해, 민간인 사찰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대대적인 개혁이 단행돼야 할 사안”이라고 논평까지 냈을 정도다. 청와대가 내놓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등의 개혁안대로 검찰의 경찰 통제도 없이 경찰 정보권과 수사권이 결합한다면, 일제강점기처럼 ‘칼 찬 순사’가 활보하는 거대한 경찰국가가 탄생할 공산이 크다. 중국처럼 전 국민의 생각과 행동이 감시받는 ‘감시 자본주의’로 변질될 수도 있다. 검찰이 정권의 주구(走狗)로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지 않으려면 ‘검찰을 생각한다’를 봤으면 한다. 저자들은 노 대통령의 비극을 검찰 탓으로 돌리며 ‘참여정부가 끝난 뒤 검찰이 충분히 정치적으로 중립화되었다면 반대파 제거를 위한 정치적 수사에 저항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에는 헌법과 법률, 인권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국민의 검찰’로 살아남으려면 정치적 수사에는 헌법과 법률, 인권의 무기를 쳐들고 저항하기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죽고 싶을 때 꼭 해야 할 일’을 보고 미국에 사는 독자가 e메일을 보내주셨다. 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며 영어로 번역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독자께서 말씀하신대로 ‘젊은 청년의 삶을 창창한 미래를 열어준다는 기쁨’으로 우리 번역팀이 애를 써주었다. 하늘에 있는 참 좋은 의사선생님, 임세원 교수도 기뻐할 듯하다. 》▶[Provocation by Kim Sun-Duk] Things you must do when you want to die It felt like it was him. When reading a news article on the last day of 2018 that a psychiatrist was stabbed to death by his patient, I instantly thought of a collection of essays written by a doctor suffering from depression. I could not remember the doctor‘s name or the title of the book, but such bad feelings were never wrong.Dr. Lim Se-won was a professor at Sungkyunkwan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and a psychiatrist working at Kangbuk Samsung Hospital. We can easily figure out how good doctor he must have been from the fact that one out of five condolers at his mortuary was his patient. I do not have any intention to disparage the deceased but he described himself in his 2016 book “No One Wants to Die” as “a person with a prickly relationship with others but a person without amicable personality.”Back in 2013 when he was studying in the U.S., Dr. Lim had an opportunity to change himself because complete strangers saved his two sons from drowning. He was deeply touched by “good deed done without expecting anything in return.”“People might not think that I’ve changed greatly, but I‘m just doing my best to be kind to others…I believe the biggest help I can give to others is to do my best to the patients I meet every day. When I meet patients, I literally give all of my heart and strength to them.”His patients, who had seen him more than 10 years, say he was a “kind doctor.” So I guess Dr. Lim was being modest when he described himself as being prickly, and also there would be few people, who can always be kind and generous to everyone. Despite his severe chronic back pain, Lim tried to be kind to his patients all the time, so much so that his patients thought he was kind by nature. That makes him all the more admirable.He once wanted to die because of severe physical pain. I looked into his book again, and it was full of stories that readers regardless of having depression or difficulties might relate to. Dr. Lim, who used to lead a painful life as well.One Friday in June 2012, which seemed like to be at the peak of his career, Dr. Lim played golf in the early morning after a farewell party for celebrating his overseas training the previous night. When he came back to his apartment and got out of his car, he suddenly felt a severe pain in his lower back as if someone was stabbing him. He might have had a bulging disc. The pain did not subside even after trying everything he could do, including receiving a surgery. A doctor, who treated patients with depression, had to undergo depression.As he did not want to live in pain, causing inconvenience to people around him, Dr. Lim thought of killing himself and planned on disguising his death as a car accident. It wasbecause he knew that how much his family would be hurt by his suicide (back then, he was serving as the chairmen in charge of education at the Korea Association for Suicide Prevention). On the very day he planned to carry out suicide, he looked everywhere to find his car key but could not find it. Finally he entered his sons’room to find the key and saw them sleeping. As soon as he saw their faces, he felt his eyes burning with tears. After that, he gave up on suicide and started writing a book to share his feelings with other people.We all think about suicide at least once during our lifetime when we feel depressed, have no pleasure in life, or want to end the pain by death. When you have such feelings, there are so many things that you must not do. First of all, do not rush into doing things, including killing yourself. You must remember that you cannot revive like in movies. Secondly, do not try to find reasons because the cause of illness is unknown in most of the cases. Even if you know the cause, it does not mean that you can cure the illness. Lastly, do not throw a tantrum to your family because you will regret immediately. Dr. Lim kindly tells you easier things you can do when you feel like killing yourself. At least you kill yourself after trying the following.Firstly, maintain your routine.You must feel like giving up on everything, including your job. It must be painful for you to wake up in the morning, eating meals, meeting with someone, or talking with people. If you are in that state, it is all the more important to maintain your daily routine.Most importantly, you must not quit your job. In the most difficult time of your life, you might want to give up everything but you must not quit your job. Your psychological pain could be so intense that you cannot think rationally, but quitting your job will not help you alleviate the pain at all.Maintain your daily routine, such as waking up on time, eating three meals a day, and attending your class reunions as if you are undergoing spiritual training. If you do not have a work you go to everyday, regularly visit library or gym in the morning. If you continue to maintain your everyday life like this, you will learn to live with whatever pain you are experiencing. What good is it?“To acknowledge something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giving up. To acknowledge means not only admitting that there are things you cannot do anything about but also allowing it to be a big part of your life. It is a foolish idea to get rid of other parts of your life just because of that one small part,” Dr. Lim wrote in his book.“Even if you suffer from pain throughout your life, getting through everyday life is meaningful in itself and worth remembering,” added Dr. Lim, who seems to have reached the level of a saint.Secondly, immerse yourself in something.Immerse yourself in things such as working, watching movies or reading books you like, or at least eating something you like. If you do not anything, you will feel more pain and just want to die. What if you do not have anything you like or want to do?Or try doing something new. Working out or playing computer games are also okay. Learn a new language, such as German, or participate in a group tour. When you immerse yourself in something, time passes fast and you will forget about your pain for a moment. Here is a really important tip for you.Dr. Lim says that you would not feel like going to a lesson that you have to pay your good money. “When you don‘t know what to do, just stick to your original plan,” he said. “Basically, anxiety results from unpredictability. People, who easily get anxious, often make a mistake of making the future even more unpredictable by changing their decisions frequently. It is never too late to change your decision after carrying out your plan.” Who knows? You might find something you really love and it could become your reason to live.Lastly but not leastly, find someone who will listen to you.The third tip is not from Dr. Lim but from your reporter. People around you might not know that you are struggling. Even if they do, they might be hesitating to help you because they do not know how to help. Nevertheless, find someone who will listen to you. If you don’t have anyone, any kind person at your work is fine or you can call LifeLine Korea at 1588-9191, and tell them you “want to die.” No one will say “go ahead” after hearing it. Most of them will offer words of comfort. Even if those words lack sincerity, they can unexpectedly work as an albumin shot for you.It is a great idea to get help from a professional counselor or receive psychotherapy as well. Fifteen years ago, this reporter wrote an article that “attention industry” is on the rise inthe United States. It was because professionals in the industry listened to customers like their best friend and told them what they wanted to hear regardless of the truth (That‘s why people pay their good money to them).Sometimes we do not need the truth. We just need someone who tells me that you are a good person even if you are a nobody. Today this reporter wants to become a person who tells each one of you that you are a good person. For those who read my article to the end, you are the best to me. Thank you so much. dobal@donga.com}

“피라미드를 보고 높이나 풍광을 쓰면 잘해야 기행문이다. 왜 고대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만들었을까. ‘왜’를 물으면 기사의 차원이 달라진다. 이집트문명을 파고들게 되는 거다.”한국의 석학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오래전 우리 회사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다른 내용은 다 잊어먹었는데 이 대목만은 생생하다. 그 뒤론 내 글이든, 남의 글이든 ‘왜’를 쓰지 않은 글은 밍밍하고 답답했다.이젠 피라미드가 왜 만들어졌는지 너무 많이 알려져 내가 더 쓸 말은 안타깝게도 없는 듯하다. ‘사실 피라미드 자체는 사자(死者)가 영생을 누리려는 헛된 허영심에서 만든 약간 어처구니없는 유적’. ‘문명 이야기’를 쓴 윌 듀랜트의 평가는 심플하고도 명쾌하다. 군부독재로 귀결된 ‘이집트의 봄’내 관심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다른 곳 다른 인종은 고인돌이나 매만지던 5000년 전, 이토록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나라가 이집트였다. 그 파라오의 왕국이 어떻게 멸망해 2000년 이상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일까. 1952년 쿠데타로 공화국을 세운 뒤 군부독재를 계속한 것까진 이해할 수도 있다(우리도 겪었으니까). 2011년 튀니지에 이어 ‘아랍의 봄’을 만개시킨 이집트가 어떻게 1년 만에 다시 군부독재를 불러들일 수 있단 말인가. 구글 직원인 와엘 고님이 경찰에 맞아 죽은 청년을 추모하는 코너를 페이스북에 만든 것이 혁명의 시작이었다. 2011년 1월 25일 ‘경찰의 날’, 광장엔 경찰의 가혹행위를 규탄하는 수만 명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5선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다음 대선에 아들을 내보내 대통령직을 물려줄 참이었다. 28일 금요일 예배 후 벌어질 시위를 막으려 전날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불통시키는 꼼수를 부렸지만 악수(惡手)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시민들이 꾸역꾸역 시내로 몰려온 것이다.국민을 또 분노시킨 대통령의 적폐청산 시민혁명의 관건은 군(軍)이다. 대규모 탈옥과 약탈 사태가 터지고, 친정부와 반정부 시위대는 유혈 충돌했다. 그러나 군은 시민에게 발포하지 않았다. 결국 18일 만인 2월 11일 무바라크는 손을 들었다. 군 최고위원회(SCAF)가 권력을 맡아 개헌과 총선이 실시됐다. 2012년 6월 탄생한 최초의 민선 대통령은 무슬림형제단 계열 정당인 자유정의당의 무함마드 무르시였다. 대체로 여기까지 기억하고 넘어간 독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집트의 봄’은 튀니지와 달리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못했다. 적폐 청산! 무르시는 혁명세력에 대한 전임 정권의 범죄를 재조사하겠다며 대통령 자신에게 초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11·22 헌법선언이다. 이슬람 권력을 강화한 건 물론이다. 軍은 진정 국민의 편이었나이젠 이란처럼 이슬람독재로 가겠단 말이냐. 경제난과 부정부패까지 계속되자 대통령 취임 1년인 2013년 6월 30일에 맞춰 퇴진 요구 시위가 격화됐다. 마침내 군이 나섰고 압둘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를 연금했다. 최고헌법재판소장이 임시대통령에 취임해 새 정부에 주단을 깔아주었다. 최고행정법원은 자유정의당 해산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2014년 6월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군복을 벗은 시시다. 자그마치 96.91%의 압도적 지지였다. 이유가 뭔지 아는가. 친(親)무르시 세력의 대선 보이콧이다(그래서 야당의 보이콧은 바보짓이라는 거다). 투표율은 50%도 안 됐지만 당선은 당선이다. 시시는 신헌법에 따라 선거법을 고쳐 우호적 의회를 구성했다. 이들 착한 의원들이 2018년 시시가 재선에 성공하자 바로 3선 개헌 채비에 들어갔다. 카이로대학 석사 가이드 “왕국이 공화국보다 낫다”이번 여행을 안내해준 바다위 아나니는 카이로대학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일한 여왕 하트셉수트를 전공한 석사 출신이었다(청년실업률 33%인 이 나라에선 고용창출을 위해 현지인 가이드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그도 2011년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서 무바라크 퇴진을 외쳤다. 그러나 민선 대통령을 탄생시킨 지 1년도 안 돼 국민은 쿠데타를 요구했고, 군은 응답했다.그럼 민주주의는 개뿔이냐? 내가 심통 맞게 묻자 바다위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왕국이 공화국보다 낫다”고 말했다. 무능한 정치인보다는 태양신 같은 파라오가 차라리 낫다는 의미였다. 그 심정, 이해는 한다. 스트롱맨을 원하는 밀리터리 DNA‘아랍의 봄’ 이후의 반동, 무르시 퇴진을 지켜본 뉴욕타임스 특파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 편에서 개입해달라고 국방장관을 쳐다보기 시작했다”고 썼다. 지난해 나온 ‘군의 손아귀에’라는 책에서다. 그렇다고 쿠데타를 원한 건 아니라고 시민들은 주장했다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그럼 군이 총을 들고 나와서 춤을 추겠는가. “폭력과 테러에 맞설 권한을 위임해달라”는 당시 국방장관 시시의 호소에 수백만 시민은 지지시위까지 벌였다. 파라오의 역사 속에서 내리 군부정부 아래 살아온 이집트 사람들에게 밀리터리 DNA가 박힌 걸까. 8월 14일 군은 진압에 나섰고 1000여 명의 시민들이 희생됐다. 그렇게 정권을 잡은 시시 정권은 과거 군부독재 뺨친다. 삼권분립(三權分立)은 사라졌다. 비판언론도 거의 없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도 스트롱맨을 좋아해 시시를 견제할 파워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13일 596명 전 의원이 참석하는 국회 개헌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이 가뿐히 동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한 2024년까지 군부독재가 계속되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선출된 권력 흔들면 민주주의 흔들린다?이집트 국민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렸다 무르시 정권을 응징했다면 다시 군부독재 밑에 신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출된 정부를 자꾸 흔들어대다간 민주주의까지 박살난다는 게 리버럴신문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하하. 순진한 소리다. 군을 불러낼 단초를 제공한 것은 무슬림형제단이었다. 살뜰하게 챙겨주는 복지서비스에 홀딱 넘어갔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권위주의적, 폐쇄적 근본주의 집단이다. 고대 이집트의 멸망도 종교 때문이라고 듀랜트는 분석했다. 이슬람교는 아니지만 거대한 신전에 공물을 가득가득 채우느라 백성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신을 모시는 신관이라고 성스럽기만 한 게 아니다. 그들도 절대권력에 부패하는 인간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르시는 초헌법적 행정명령으로 적폐청산을 하겠다며 사법부와 전쟁까지 불사했다. 3년 더 지켜보기만 했다면 이집트를 이란 같은 신정(神政)국가로 체제변혁시켜 중동과 아프리카의 지정학을 확 바꿔놨을지 모를 일이다. “포퓰리즘 못 떨치면 극우정권 온다”여기서 ‘탈레반’으로 불리던 청와대 운동권 참모들을 떠올리고 싶진 않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가 넘으면 쿠데타 시도조차 일어날 수 없다고 새뮤얼 헌팅턴은 강조한 바 있다. 아무리 종교재판처럼 적폐청산을 몰아붙인대도 이집트 같은 사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극우적 국가주의의 세계적 부상을 지적한 미 스탠퍼드대 신기욱 교수의 신동아 2월호기고는 소개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기간 내내 과거와 싸우면서 포퓰리즘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면 사회분열과 대립만 커지고 경제는 파탄날 것이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무능한 좌파 정권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로 인한 대가는 대척점에 선 극우 정권의 탄생이 될지도 모른다.’대선까지 3년이 너무 긴가. 합법적 방법은 있다.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 정권 출범에 이집트 사법부가 적잖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시시의 독재를 막을 자는 양심적 법관들밖에 없다고 포린어페어즈지는 강조했다. 한국은 어떤가. dobal@donga.com}

뮤지컬 ‘마틸다’는 경이롭다. 마틸다 역을 맡은 열 살 안팎 꼬마 여주인공의 당찬 노래와 연기를 비롯해 아이들(아이돌이 아니다) 뮤지컬 배우들이 무대를 장악하는 걸 보면, 쟤들이 자라서 전부 방탄소년단이 되는 게 아닐까 경탄을 금치 못한다. ▲뮤지컬 ‘마틸타’ 중 When I grow up 기자(記者)라는 종족의 못 말리는 속성이, 보면 쓰고 싶다는 거다. 작년 9월부터 공연해 볼만한 사람은 다 본 작품이지만 마틸다의 피아노 같은 목소리(그냥 부드러운 소리가 아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처럼 맑고도 강한 터치가 느껴지는 소리다)가 계속 맴돌아 안 쓰고는 못 배기겠다. 노래만큼 놀라운 건 번역이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만든 뮤지컬을 아시아에선 처음, 비(非)영어권에서 처음으로 공연하면서 혀와 귀에 찰싹 달라붙게 번역한 내공은 부러울 정도다. 아이들이 영어 알파벳이 적힌 큐브를 순서대로 교문에 끼워 넣으며 부르는 노래 스쿨송을 “오 그랬쩌요 에이(A)구. 근데 지금부터 삐(B)지고 울지는 마라. 반항할 시(C) 죽이는 블랙코메디(D)…” 식으로 우리말로 기막히게 바꿔냈다. 마틸다 부모도 아들을 기대했다 네 살 반부터 시작해 여섯 살짜리 초등학생으로 그려지는 마틸다는 세살 때 신문으로 글자를 배운 영재 소녀다.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아빠와 춤에 미친 엄마는 마틸다를 ‘불량품’ 취급하는데 학대하는 방법이 우리와 정반대다. 책을 보지 말고 TV를 보라는 거다! 그렇다고 기죽을 마틸다가 아니다. 마틸다는 동네 도서관에 다니면서 사서 선생님과 친해져 ‘동물농장’, ‘노인과 바다’, ‘오만과 편견’, ‘분노의 포도’ 같은 소설을 섭렵한다. 에너지 충만의 마틸다가 초등학교에서 맞닥뜨린 인물은 투포환 선수 출신의 폭군 교장 미스 트런치불. 마틸다는 초능력을 발휘해 교장을 물리치고 천사 같은 담임선생님을 구해낸다는 깜찍한 스토리다. 마틸다가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시작한 2018년이 마틸다 동화가 탄생한지 30년 되는 해였다(마침 이 공연을 제작한 신시컴퍼니도 30년이었다^^). ‘말괄량이 삐삐’가 스웨덴 여자 어린이들의 영원한 롤 모델이듯(사실은 삐삐를 읽고, TV에서 보며 큰 여성들의 로망으로 봐야 한다), 마틸다는 영국 여성들의 어릴 적 꿈과 미래였고, 지금은 향수의 대상이 돼 있었다. 마치 내가 어릴 때 만화책 ‘캔디’를 보며 행복했던 것처럼. ‘마틸다는 지금쯤 무엇이 되어 있을까’라는 영국 가디언지 기사를 보면서 나는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렸다. 마틸다의 작가 로알드 달이 1986년 12월 막내딸 루시에게 “아빠가 눈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꼬마소녀 얘기를 쓰고 있단다”라고 편지를 보냈고 그때 책 속의 마틸다는 네 살 반이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마틸다도 1982년생이다(라고 나는 주장을 할 참이다). 김지영처럼 기죽지 않은 이유 가디언은 마틸다가 영재였으므로 30년 후인 2018년 천체물리학자가 되거나, 모험심을 따라 탐험가, 아니면 최소한 도서관 사서가 됐을 것이라는 재미난 기사를 썼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건 김지영의 부모처럼 마틸다의 아빠도 아들을 기대했고, 엄마 역시 아들과 딸을 차별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기죽지 않았다. ‘똘끼’라고 번역한 노래 Naughty를 보자.▲뮤지컬 ‘마틸타’ 중 Naughty “로미오와 줄리엣. 일찌감치 정해진 운명이었대…왜 쓰여진 대로 꼭 이렇게 살지?” 그러면서 주제가 나온다. “불평하고 또 부당할 때 한숨쉬며 견디는 건 답이 아냐…옳지 않아!…그 누구도 나 대신에 해주지 않지. 내 손으로 바꿔야지, 나의 얘기. 때론 너무 필요해. 약간의 똘끼!” 안타깝게도 우리의 김지영은 그렇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김지영이 살짝 벗고 있던 실내화를 남자 짝꿍이 냅다 걷어차 벌을 받게 됐는데도 김지영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 못하고 울기만 했다. “김지영이 아니라 남자짝꿍이 그런 것”이라고 말해준 건 다른 여자아이였다. 김지영이 마틸다만큼 똑똑하지 않았다거나, 책을 줄줄 읽지 않았다거나 같은 얘기는 하지 말자. 다만 마틸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저, 꼰대 아니거든요…이야기는 상상이다. 꿈과 기대, 희망이자 미래가 여기서 나온다. 아무리 현실이 남루해도 이야기를 꾸밀 줄 아는 사람은 부자다. 물론 과대망상까지 가면 위험하지만 반지하방에서 살아도 ‘여기는 궁전이야’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여왕처럼 살 수 있다. 아빠의 모자에 접착제를 발라서 복수하고, 교장의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마틸다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소설, 그것도 답답한 여성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룬 소설이어서 그렇겠으나 82년생 김지영은 참 답답하다. 이렇게 쓰면 ‘꼰대’라는 소리나 듣는다는 걸 잘 아는데,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되짚어보라. 김지영은 무엇이 되겠다는 꿈도 없었고,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저 할머니 탓, 아버지 탓, 남편 탓, 사회 탓이다. 마틸다는 책을 보며 상상력을 키웠다. 담임선생님을 구한 뒤 마틸다의 초능력은 사라진대도 머릿속에 들어앉은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30년 뒤 ‘미투’가 벌어지는 세상이 됐다 해도 마틸다는 그냥 당하지만은 않을 게 분명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성난 황소 앞,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맞선 소녀의 모습이 바로 마틸다 포즈다. 김지영을 보면서 내 딸을 키우던 시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현실이 가슴 아팠다. 여자가 살아가기 더 힘들어진 나라가 된 건 분노할 일이다. 그럼에도 수학영재였던 여의사가 집에서 ‘재미로’ 초등생 수학문제지를 풀며 살아야만 할까. 더 이상 쓰면 진짜 꼰대 소리 들을까봐 여기서 일단 멈춘다(딸은 내 코너의 간판을 ‘저 꼰대 아니거든요’라고 붙이라고 했었다). 지영아, 다음에 보자.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