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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심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국가적 혼란이 일주일을 맞았지만 여당과 정부가 정국을 수습하지 못한 채 오히려 혼란을 키우는 ‘불확실성 리스크’가 경제, 외교, 안보의 총체적 위기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9일 금융시장은 비상계엄 사태 직후인 4일보다도 더 크게 휘청거렸다. 이날 코스피는 6일 종가 대비 2.78% 내린 2,360.58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5.19% 하락한 627.01을 기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특히 개인투자자가 ‘패닉 셀’ 양상을 보이며 국내 증시에서 1조2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원-달러 환율도 가파르게 치솟으며(원화 가치 하락) 장중 한때 1438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날 오후 3시 30분 종가 기준 달러당 1437.0원으로 6일 같은 시각에 비해 17.8원 올랐다. 내년 1월 20일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을 41일 앞두고 외교가에선 ‘정상외교 올 스톱’으로 인한 후폭풍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요구는 물론이고 트럼프 당선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핵 직거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가장 선제적으로 밀착해야 할 정권교체 초기 한미동맹 정상 외교가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것. 정상 간 개인적 관계를 중시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성향을 고려해 우리 정부가 가급적 빠르게 추진하려던 한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한 정부 내부 우려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당선인 측은 윤 대통령의 거취를 비롯해 정치 상황이 일단락, 안정화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전날 발언에도 9일 국방부가 공개적으로 “군 통수권은 현재 법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지는 등 외교 안보 분야 국정 운영의 난맥상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 군 통수권 행사를 둘러싼 논란이 커질 수 있는 안보 리스크에 직면한 것이다.상황이 이런데도 여당은 한 대표가 내놓은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공동 국정 운영’ 구상이 위헌, 위법 논란을 불러일으킨 데 이어 9일에도 국정 정상화 방안을 내놓지 못해 혼란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즉각 사퇴하지 않고 버티면 환율과 증권시장,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분야에 돌이킬 수 없는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민주당이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 강행 처리 압박을 계속하면서 “국가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예산을 탄핵 흥정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탄핵 정국이 급물살을 타면서 6일 금융시장이 또 휘청거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집행정지 필요성을 언급하고, 일각에서 ‘2차 계엄’ 가능성이 불거지자 코스피는 한때 2,400 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원-달러 환율도 1430원 턱밑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탄핵 등으로 ‘시계 제로’의 상황이 길어질 경우 증시가 장기 침체에 빠지는 한편 1400원대 고환율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도 사태가 장기화되면 신용도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 숨 가쁜 탄핵 정국에 시장 또 출렁 6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9.75포인트(0.4%) 오른 2,451.60으로 오랜만에 상승 출발했다. 하지만 오름세를 키우는 듯했던 증시는 정치 리스크에 또다시 발목이 잡혔다. 오전 9시 30분경 한 대표가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정지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뒤 증시가 즉각 반응한 것이다. 오전 10시 30분경 군인권센터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2차 계엄 의심 정황을 포착했다”고 발표하자 하락 폭이 더 커졌다. 코스피는 오전 장중 2,397.73까지 미끄러져 내렸다. 올 들어 코스피가 2,400 선 밑으로 내려온 건 ‘블랙 먼데이’가 연출됐던 8월 5일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한 지난달 15일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코스닥도 이날 오전 전일 대비 3.96% 하락하며 644.39까지 밀려 2020년 5월 이후 4년 7개월 만에 장중 최저치를 보였다. 오후 하락 폭을 다소 줄여 코스피는 2,428.16(―0.56%)에, 코스닥은 661.33(―1.43%)에 장을 마쳤다. 외환시장에서도 혼란이 이어졌다. 1416.0원에 거래를 시작한 원-달러 환율이 오전 한때 1429.2원까지 뛰어오른(원화가치 하락) 것이다. 주간거래에서 1420원대까지 오른 것은 2022년 11월 이후 2년 1개월 만이다. 1430원대에 임박했던 환율은 그 후 다소 내려 오후 3시 30분 기준 1419.20원을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환율 방어를 위한 외환당국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투자 심리가 더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 정치적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정책 공백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주가와 외국인 수급 변동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도 “탄핵안 가결이든 부결이든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도 6일 보고서를 통해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로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적 성과 또는 재정이 약화될 경우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하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상목 부총리 “대외 신인도 영향 없도록 노력” 경제·금융당국은 비상계엄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이날도 분주한 행보를 이어 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외국 상공회의소 간담회에 참석해 “계엄 조치는 전부 해제됐으며 모든 시스템이 이전과 동일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 했다. 외신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 부총리는 5일 진행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 진입 가능성에 관한 질문에 “너무 과도한 우려”라며 “최근 비상계엄 조치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신속히 해제됐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외국인 국내 주식 투자가 10월 4조 원대 순매도를 기록하면서 3개월 연속 외국인 자금 이탈이 나타났다. 국내 주식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상수지는 14조 원 흑자를 보였다.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국제수지(잠정) 통계에 따르면 10월 경상수지는 97억8000만 달러(약 14조 원) 흑자를 기록했다. 9월 109억4000만 달러에 비해서는 소폭 줄었지만 10월 기준 역대 3위 기록이다. 올들어 경상수지는 4월 외국인 배당 증가 등으로 1년 만에 2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뒤 5월부터 6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항목별로는 상품수지가 81억2000만 달러 흑자로, 지난해 4월 이후 19개월 연속 흑자가 이어졌다. 다만 흑자 규모는 9월 104억9000만 달러에서 줄었다.수출은 600억8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4.0% 늘었다. 반도체(39.8%), 승용차(5.2%) 등이 수출 증가세를 주도했다. 다만 석유제품(―34.5%)의 감소세가 커지면서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9월에 비해 하락했다. 수입(519억6000만달러)은 0.7% 감소했다.서비스수지는 17억3000만달러 적자로 9월(―22억4000만달러)에 비해 적자 폭이 줄었다. 중국의 국경절 연휴 기간 한국 관광객이 늘면서 여행수지 적자폭이 4억8000만 달러로 9월(―9억4000만달러)의 절반으로 줄어든 영향이다.금융계정 순자산(자산―부채)은 10월 중 129억8000만달러 늘었다. 직접투자는 ―19억6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내국인의 해외 직접투자가 9월 24억7000만달러에서 10월 2억8000만달러로 크게 감소한 영향이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이 해외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면서 직접투자가 줄었다.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는 22억5000만달러 늘었다.증권투자에선 외국인의 주식투자가 ―32억2000만달러를 기록해 8월부터 3개월 연속 매도 우위를 부였다. 지난해 8~10월에 이어 1년만에 3개월 연속 주식 순매도가 나타났다. 증가 추세를 보이던 내국인의 해외 주식투자도 ―4억1000만달러로 순매도 전환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투자 경계감이 커졌던 영향으로 풀이된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10만 달러를 넘어섰다. 시가총액은 2조 달러를 넘어 세계 주요 자산 중 7위에 올랐다. 국내 비트코인 관련주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5일 가상자산 가격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40분경 비트코인 가격이 처음으로 10만 달러 선을 넘어섰다. 오후 3시 현재 비트코인은 10만2557.83달러에 거래 중이다. 시가총액 순위 집계 사이트 컴퍼니스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약 2조310억 달러(약 2874조 원)로 금(17조8290억 달러), 애플(3조6730억 달러), 엔비디아(3조554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3조2520억 달러), 아마존(2조2293억 달러), 알파벳(2조1430억 달러)에 이어 7위에 올랐다. 비트코인 시총은 코스피(2008조 원), 코스닥(337조 원), 코넥스(3조3000억 원) 등 국내 증시를 모두 더한 액수보다도 많다.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넘은 건 2009년 1월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 15년, 2017년 11월 처음 1만 달러를 돌파한 지 7년 만이다. 비트코인은 2010년 5월 첫 거래 당시 개당 0.006달러에 불과해 1만 개로 피자 2판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었지만 14년 만에 개당 10만 달러를 넘겨 1개로 피자 3000판 이상을 살 수 있는 가격이 됐다. 올 초 4만 달러 선에서 등락하던 비트코인은 1월 미국에서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된 이후 꾸준히 가격이 올라 3월 당시 최고가(7만3800달러)를 새로 썼다. 이후 하락해 5만∼6만 달러를 오가던 비트코인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에 승리한 뒤 급등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4일(현지 시간) 트럼프 당선인이 차기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폴 앳킨스를 지명하며 상승 폭을 키웠다. 2002∼2008년 SEC 위원으로 활동한 앳킨스는 디지털 자산과 핀테크 산업을 지지하는 친(親)가상화폐 인사로 꼽힌다. 앳킨스는 내년 1월 20일부터 현 SEC 위원장 게리 겐슬러의 후임으로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앳킨스는 디지털 자산과 핀테크 기업을 지지하고 있다”며 “그가 의회 인준을 통과하면 규제를 완화하고 벌금을 줄이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국내 가상화폐 관련 종목들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날 한화투자증권은 전일 대비 15.07% 오른 4275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화투자증권은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비트코인 상승의 수혜주로 꼽힌다. 국내 거래소 빗썸의 운영사 빗썸코리아 지분을 보유한 티사이언티픽(19.11%)의 주가도 올랐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10만 달러를 넘어섰다. 시가총액은 2조 달러를 넘어 세계 주요 자산 중 7위에 올랐다. 국내 비트코인 관련주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5일 가상자산 가격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40분경 비트코인 가격이 처음으로 10만 달러 선을 넘어섰다. 오후 3시 현재 비트코인은 10만 2557.83달러에 거래 중이다. 시가총액 순위 집계 사이트 컴퍼니즈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약 2조 310억 달러(약 2874조 원)로 금(17조8290억 달러), 애플(3조6730억 달러), 엔비디아(3조5540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3조2520억 달러), 아마존(2조2293억 달러), 알파벳(2조1430억 달러)에 이어 7위에 올랐다. 비트코인 시총은 코스피(2008조 원), 코스닥(337조 원), 코넥스(3조 3000억 원) 등 국내 증시를 모두 더한 액수보다도 많다.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넘은 건 2009년 1월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나온 지 15년, 2017년 11월 처음 1만 달러를 돌파한 지 7년 만이다. 비트코인은 2010년 5월 첫 거래 당시 개당 0.006달러에 불과해 1만 개로 피자 2판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었지만 14년 만에 개당 10만 달러를 넘겨 1개로 피자 3000판 이상을 살 수 있는 가격이 됐다. 올 초 4만 달러 선에서 등락하던 비트코인은 1월 미국에서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된 이후 꾸준히 가격이 올라 3월 당시 최고가(7만3800달러)를 새로 썼다. 이후 하락해 5만~6만 달러를 오가던 비트코인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에 승리한 뒤 급등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4일(현지 시간) 트럼프 당선인이 차기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으로 폴 앳킨스를 지명하며 상승 폭을 키웠다. 2002~2008년 SEC 위원으로 활동한 앳킨스는 디지털 자산과 핀테크 산업을 지지하는 친(親)가상화폐 인사로 꼽힌다. 앳킨스는 내년 1월 20일부터 현 SEC 위원장 개리 겐슬러의 후임으로 업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앳킨스는 디지털 자산과 핀테크 기업을 지지하고 있다”며 “그가 의회 인준을 통과하면 규제를 완화하고 벌금을 줄이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국내 가상화폐 관련 종목들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날 한화투자증권은 전일 대비 15.07% 오른 4275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화투자증권은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비트코인 상승의 수혜주로 꼽힌다. 국내 거래소 빗썸의 운영사 빗썸코리아 지분을 보유한 티사이언티픽(19.11%)의 주가도 올랐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소식이 외신을 통해 알려진 후 경제부처에는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한국 국채를 들고 있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번 뉴스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불확실성이 커져 국제 신용평가사를 상대로 국내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자료를 보낼지 검토하고 있다. 다만 지금 연락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4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한국의 정치 불안에 질린 외국인은 4000억 원 이상의 주식을 팔아 치웠다. 증시 밸류업을 추진하던 정부가 도리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정치 불확실성, 국가신용 악영향 가능성”4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한국의) 정치적 불안이 제때 해결되지 않을 경우 중요한 법안을 효과적으로 통과시키거나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역량이 약화할 수 있다”며 “이러한 위기에는 취약한 경제 성장 전망, 도전적인 지정학적 환경, 인구 고령화로 인한 구조적 제약 등이 포함된다”고 했다. 가뜩이나 경제 둔화 양상을 보이는 마당에 정치 불안까지 장기화될 경우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신인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갑작스러운 심야 계엄 사태가 해외 투자자들에게는 한국의 정정 불안이 매우 심각하다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대외 신인도 타격은 불가피하다”며 “과거 사례를 보면 정치적 리스크가 신용 리스크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에 사태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당장은 신용등급 자체에 실질적인 영향이 없다는 평가도 있다.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킴엥 탄 전무는 이날 언론 세미나에서 “비상계엄이 몇시간 만에 해제됐고 한국의 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비상계엄 사태가) 투자자들에게 뜻밖의 일이고 향후 투자자의 결정에 부정적인 여파를 미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한국의 현 신용등급을 바꿀 사유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경기 침체 악재에 정치 불안까지 덮쳤다”전문가들은 비상계엄 사태가 한국 경제가 내리막을 걷는 중에 나타난 점을 특히 우려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단 이번 사태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기 때문에 리스크가 많이 흡수될 것”이라면서도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에 불을 지핀 격이라 경기 하강 국면이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기업들의 투자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소비자심리지수가 하락하는 등 내수 침체가 이어진 바 있다. 특히 내년부터 1%대 저성장 국면이 예고된 상태라 정치 불안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유난히 많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 경제 상황이 탄탄하면 모르겠지만 소비와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앞으로의 정치적인 갈등이 얼마나 확대되는지에 따라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악영향을 주는 결과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세종=송혜미 기자 1am@donga.com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전모 씨(65)는 6개월 전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고 있어 고민에 빠졌다. 은퇴 후 보유한 부동산을 정리해 대출금을 갚고 지방 전원주택으로 이사하려고 했지만, 집이 팔리지 않으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전 씨는 “처음 내놨을 때보다 가격을 1억 원 내렸는데도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은퇴 후 고정 수입이 100만 원대로 줄어든 상태라 대출 이자 부담이 상당히 크다”고 했다.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으로 쥐고 있는 한국의 고령층은 보유 자산에 비해 쓸 수 있는 돈이 적다. 현금화가 가능하고 배당 소득 등이 유입되는 금융 자산과 달리 부동산 자산은 즉시 유동화하기 어렵고 대출 이자 등으로 그나마 있는 소득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인이 보유한 순자산의 77.1%가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 비율은 22.9%에 그쳤다. 한국인의 비금융자산 보유 비율은 미국(37.3%), 일본(43.1%, 2022년 기준)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전 씨처럼 한국에선 집 한 채가 고령층 보유 자산의 대부분인 경우가 많아 노인 빈곤층의 비율도 높아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14.2%)의 3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OECD는 빈곤율을 ‘중위소득의 50% 미만 소득을 가진 인구 비율’로 정의하고 있는데, 보유 자산을 고려하지 않는 OECD 기준에선 ‘똘똘한 집 한 채’로 노후를 대비한 한국 고령층 상당수는 빈곤층으로 분류됐다. 대출을 지렛대 삼아 부동산 구입에 쓰다 보니 고령자들은 빚만 잔뜩 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1∼3월) 말 기준 92%로 주요국 중 5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자산의 높은 부동산 비중은 경제 성장 동력도 약화시킨다. 주식, 채권 등으로 흘러갈 자본이 부동산에 묶이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한 심포지엄에서 “한국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더 많은 자금이 공급돼야 한다”며 “국내외 금융 여건이 완화되는 상황에서 가계와 기업이 과도한 대출을 받아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 부문으로 자금이 흘러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특별취재팀▽팀장=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영국 남동부 억필드에 거주하는 맬컴 마케시 씨(83)는 농부로 일하다가 2006년에 은퇴했다. 은퇴 전엔 매일 소젖을 짜며 농사일을 했던 그지만 은퇴 후엔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 여행을 즐긴다. 마케시 씨는 “일할 때는 저소득층에 속했지만 지금은 연금 덕분에 도리어 형편이 나아져 중산층에 해당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마케시 씨는 한 달에 2400파운드(약 425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고 있다. 국가연금이 그중 65%를 차지하고 있고 개인연금 17%, 퇴직연금은 10% 정도다. 나머지 8%는 세상을 떠난 마케시 씨의 아내가 고용주로부터 받았을 연금의 절반이다. 마케시 씨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국가연금에 조금씩이라도 항상 추가로 납입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도 한두 개 갖고 있다. 소득세를 피하면서 수익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영국 노동연금부가 관리하는 국가퇴직연금신탁(NEST)은 2012년 디폴트 옵션을 의무화했다. NEST 가입자의 99%가 디폴트 옵션에 가입하고 있는데 연평균 수익률은 8∼9%에 이른다.● 60대에 창업 도전… 고령층 소비가 경제 뒷받침 한국에서 2025년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원년’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장수 국가인 일본은 고령사회(노인 14% 이상)에서 초고령사회로 오기까지 10년이 걸렸고 프랑스는 39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고령사회가 된 2018년부터 불과 7년 만에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게다가 내년 1965년생을 시작으로 954만 명 규모의 ‘2차 베이비부머’들이 10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은퇴 수순을 밟는다. 문제는 기록적인 고령화 속도와 달리 노년층의 은퇴 후에 대한 준비는 미진하기만 하다는 점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소득절벽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대규모로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는 이유다. 준비 없는 초고령화로 신음하는 우리와 달리 선진국은 두둑한 연금을 바탕으로 고령층이 활발한 소비와 경제 활동에 나서는 추세다. 정부가 잘 운용해온 공적연금뿐만 아니라 사적연금이 이를 뒷받침하고, 재취업 시장도 탄탄한 덕이다. 덕분에 노인들은 선진국 경제의 ‘비밀 무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70세 이상 미국인은 현재 총 가계자산의 약 26%를 보유하고 있다. 연금 부자도 많다. 미국 최대 퇴직연금 자산운용사 피델리티는 올해 2분기(4∼6월) 말 기준 자사 401K(미국 퇴직연금제도) 가입자 중 계좌에 100만 달러(약 14억 원) 이상의 잔액을 가진 가입자가 49만7000명으로 사상 최대치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자산을 바탕으로 노인들은 거침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지난해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소비자 지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은 총지출의 약 22%를 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72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이 고금리 추세, 장기화된 코로나 팬데믹, 미중 갈등 등 글로벌 경제 불안정성 속에서도 탄탄한 경제성장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인 소비 덕분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이비붐 세대만 해도 현재 77조1000억 달러(약 10경8109조6200억 원)의 부를 축적했고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라는 쌍둥이 재앙으로부터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들 중 대부분이 은퇴했기 때문에 노년층의 지출은 실업률에도 영향을 덜 받는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연구조사평가 및 통계위원회(DREES)에 따르면 2024년 월 4000유로(약 590만 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 은퇴자가 약 7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전체 연금 수급자 1700만 명 중 4.4%가량이다.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는 장피에르 퐁생 씨(78)는 법정 정년인 60세에 은퇴한 후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 은퇴 땐 뒤늦은 재혼에서 얻은 딸이 고작 한 살이었고, 이듬해엔 아들까지 태어났다. 60대 초반에 ‘늦깎이 아빠’가 된 그는 과감하게 부동산 컨설팅 창업을 결심했다. 60대 창업은 녹록지 않았다. 현직에서 잘 알던 지인들은 이미 퇴직해 고객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부동산 경기가 나쁘면 아예 수입이 ‘0유로’인 달도 있었다. 전기료 등 고정 비용만 나가 적자를 볼 때도 허다했다. 퐁생 씨는 “그래도 든든한 연금보험금이 3곳에서 나왔기 때문에 창업을 시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적연금에 일반 퇴직연금과 고위 임원용 퇴직연금까지 3곳에 ‘연금 파이프라인’을 뚫어놨던 것. 3곳에서 들어오는 연금 수입은 현재 월평균 6000유로(약 882만 원)에 달한다. 그는 ‘3중 연금’ 덕에 어린 두 자녀를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었다. 연금을 든든한 발판 삼아 사업도 키울 수 있다. 퐁생 씨의 지금 소득은 퇴직 전의 60%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제 두 아이는 훌쩍 자라 독립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계속 일할 계획이다. 퐁생 씨는 “일하는 게 재밌어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금으로 크루즈 여행”, 여유 누리는 은퇴 부자들“내년 70세 생일을 맞아 아들 둘, 손자 넷을 데리고 한국-일본 크루즈 여행을 갈 겁니다. 경비는 모두 제가 냅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비크로프트에 사는 애니타 하워드 씨(69)는 학교 교사를 하다가 은퇴 후 주민들에게 미술 수업을 하고 책을 쓰면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혼자 사는 그는 현재 아무런 경제 활동을 하지 않지만 본인의 연금만으로 손주까지 함께하는 크루즈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다. 하워드 씨가 은퇴 후에도 자녀, 손주를 챙길 수 있는 이유는 호주 퇴직연금 ‘슈퍼애뉴에이션’과 노령연금이 생활을 든든하게 받쳐주기 때문이다. 하워드 씨는 매달 4000호주달러(약 360만 원)의 퇴직연금과 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집의 일부 공간을 렌트하며 월 600호주달러(약 54만 원) 정도 추가 수입도 거둔다. ‘슈퍼’(최고)라는 이름을 내건 호주 퇴직연금 슈퍼애뉴에이션은 1992년부터 근로자 가입이 의무화됐는데 연간 수익률 8%대, 지난해엔 수익률 9%대를 기록했다. 맡겨두면 두둑한 연금자산을 누릴 수 있는 호주의 노인들은 “퇴직연금을 중도에 인출해 쓰는 건 인생이 끝장난 사람이나 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워드 씨도 “교사로 근무했을 때 월급의 10%는 퇴직연금에 넣었다”며 “지금은 월요일마다 친구들과 모여 노래를 부르고 주민들에게 1시간 반 동안 미술을 가르치면서 만족스러운 은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일본 도쿄에 거주하는 중학교 교사 출신 시노미야 마사요 씨(70)는 국민연금과 후생연금(퇴직연금의 일종) 등 월 63만 엔(약 585만 원)을 받고,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은 국민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시노미야 씨는 “개인연금도 많이 적립했다. 남편도 조그만 부동산이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 면에서 식사나 의료 등 힘든 일은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도 사회 담당 강사로 재취업해 경제활동을 이어나가는 시노미야 씨는 은퇴 전보다 월급(현재 17만 엔·약 159만 원)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노후가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정규직 담임 교사로 일할 때와 비교하면 책임이 줄어든 데다 학부모들과 부딪칠 일이 없고, 휴일도 많아졌다”며 “여유가 생긴 덕분에 웃는 얼굴로 학생들을 대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누구의 할머니, 아내보다 선생님으로 불리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 밖에 나가서 일할 때가 재미있어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웃었다.특별취재팀▽팀장=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2025년을 앞두고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내년과 후년 성장률이 1%대로 전망되는 등 저성장이 고착화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초고령사회 원년을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2024년 7월 1일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19.2%로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이 기정사실화됐다. 고령사회가 된 2018년 이후 불과 7년 만의 일이다. 가뜩이나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초고령사회라는 난제에 직면한 것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으로 수출이 위협받는 가운데 내수라도 살려야 하는데 고령인구와 노인빈곤율의 급증은 소비 진작과 경제 선순환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드리우고 있다.● 준비 없이 맞이한 초고령화미국 등 선진국에서 부자 노인이 여전한 소비력을 보이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과 달리 한국의 고령층은 지갑을 닫고 있다. 근로소득에 의존하면서 살다가 은퇴 후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연금을 받아들고는 얇아진 주머니 사정에 소비부터 줄이는 것이다. 미국의 퇴직연금제도인 401K의 10년간(2013∼2022년) 연평균 수익률은 7.79%인 반면에 한국 퇴직연금의 10년간(2014∼2023년) 연평균 수익률은 2.07%에 불과하다. 매월 50만 원씩 30년을 꾸준히 퇴직연금을 넣는다고 가정할 경우 미국 근로자는 7억2000만 원을 손에 쥐게 되지만 한국 근로자에게 돌아오는 퇴직금은 2억5000만 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미국 등 선진국 은퇴자가 연금 수익 등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보내는 반면에 한국은 ‘쥐꼬리 연금’, ‘은퇴 거지’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가 나오는 이유다. 벌어둔 자산이 대부분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점도 한국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고령층 자산의 83.66%는 부동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금은 9.41%, 금융투자 자산은 1% 미만이다. 자산은 많아도 이를 바탕으로 풍족한 소비를 할 수 있는 노인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일자리로 근로소득을 확보할 처지도 안 된다. 한국의 일하는 노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37.3%에 달하지만, 이 중 절반 가까운 노인들이 월 100만 원도 못 벌고 있다. 정부에서 노인형 일자리를 양산하지만 월 급여는 21만 원에 불과하다. 고령 취업자를 직군별로 살펴보면 단순 노무(34.6%)와 농림어업 숙련종사자(23.3%)의 합이 절반 이상이다. 한국의 고령층은 연금뿐 아니라 금융자산, 일자리 기회가 모두 부족한 ‘삼저(三低)’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김모 씨(73)도 2010년 그간 운영해온 가게를 닫은 뒤 마땅한 벌이가 없어 생활이 막막해진 경우다. 국민연금에 최소 금액만 넣은 탓에 월 수령액이 4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동안에는 다행히 인근 학교에서 숙직 전담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면서 월 90만 원씩 챙겼지만, 지난해 실직하면서 이마저도 끊겼다. ● 활력 떨어지는 한국 경제도 조로화 기로초고령화는 한국 경제에도 최대 위협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선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이 내년부터 70%를 밑돌기 시작해 2050년에는 51.9%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는 내년 20%를 넘은 뒤 2050년에는 40.1%까지 치솟을 예정이다. 이 같은 문제는 노동생산성 저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4.4달러로, OECD 회원국 38개국 중 33위에 머물렀다. 미국(77.9달러), 독일(68.1달러), 프랑스(65.8달러), 영국(60.1달러) 등의 국가가 한국을 크게 앞섰다. 한국은행은 지난해까지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 연령에 진입하면서 2015∼2023년 연간 경제성장률이 0.33%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기에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가 은퇴할 경우 2024∼2034년 11년에 걸쳐 연간 경제성장률이 0.2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진단한다. 결국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발맞춰 제도 개선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근로 의지가 강하고 교육 수준 및 디지털 친화력이 높은 만큼 이들의 특성을 반영한 취업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은에서는 이들의 고용률이 증가할 경우 경제 성장률 하락폭이 최대 0.22%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연금 제도 개선으로 노인들의 주머니를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의 의무연금 소득대체율은 31.2%로 OECD 회원국의 평균치(50.7%)를 크게 밑돌고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센터장은 “(개인들도) 퇴직금이나 주택 등의 자산을 활용해서 장기간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연금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팀장=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1일 “가상자산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를 2년 유예하는 정부의 소득세법 개정에 동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당초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가상자산 과세가 두 차례 연기된 데 이어 2025년 시행 계획도 2027년으로 미뤄진 것.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앞서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가상자산 과세를 2025년부터 시행하되 공제액을 5000만 원으로 상향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청년층이 다수인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세금을 다 뜯어간다. 다뜯어민주당”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자 지도부가 과세 유예를 최종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 정책위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몹시 당혹스럽다”며 “자본소득 과세가 상황 논리에 따라 이렇게 쉽사리 폐기되고 유예돼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민주당 내에선 “감세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여당은 환영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청년을 위해 좋은 일”이라며 “국민을 이겨 먹는 정치 없다”라고 했다.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에 투자자 환호…“투기 더 조장” 우려도민주 “추가적인 제도 정비 필요”… 청년층 반발에 내년 과세서 선회진성준 “유예 이해안돼” 당내 비판“과세 인프라 정비 시간벌어” 평가속… “여론 눈치, 조세 신뢰 훼손” 비판도더불어민주당이 가상자산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를 2년 유예하는 정부 방안에 동의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4년간 줄다리기를 이어오던 가상자산 과세는 2027년으로 2년 더 미뤄졌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환호하는 분위기이지만, 일각에선 반복된 유예로 인해 조세 신뢰가 하락하고 국내 증시로부터 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모든 소득에 세금이 부과되는데 왜 유독 자본소득만은 신성불가침이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청년층 반발에 과세 유예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1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 방침을 밝히면서 이유에 대해 “(과세를 하려면) 추가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을 양도 또는 대여 시 발생하는 소득이 연 250만 원을 초과할 경우 지방세 포함 22%를 과세’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득세법상 해당 조항은 2022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2차례 유예됐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가상자산 과세를 2027년으로 또다시 유예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민주당이 가상자산 과세 유예로 최종 결정한 것은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조세 강경파’로 분류되는 진 정책위의장이 공식적으로 “가상자산 과세를 2025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되 공제액을 5000만 원으로 상향하자”고 주장해 왔지만, 당 내부적으론 “야당이 굳이 ‘증세’를 얘기해 역풍을 맞을 이유가 있냐”는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상자산 과세 시스템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을뿐더러 해외 거래소를 통한 거래는 소득을 파악할 수 없어 과세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진 정책위의장은 “날이 갈수록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돼 부익부 빈익빈이 고착되고 심지어 대물림까지 되고 있는 현실을 정녕 몰라서 이러는 것이냐”라며 “1%에 해당하는 최상위 부자들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라고 당 지도부 결정을 비판했다.● “투기 더욱 조장” 우려도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과세 유예 소식에 환호하는 분위기다.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는 직장인 박모 씨(33)는 “최근 국내 증시가 침체 중이라 청년층의 자산 형성이 쉽지 않은데, 과세가 유예되면서 기회가 더 생길 것 같다”고 했다.정부 주장대로 가상자산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선 과세 인프라 정비가 우선이라는 견해도 있다. 해외 거래소를 통한 매매가 많아 차익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유예를 통해 시간을 벌고 해외 거래 자료 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도 7월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며 “해외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에 대해선 과세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7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간 암호화 자산 거래 정보를 자동으로 교환하는 체계가 시행된다.반면 과세 유예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에 위반될뿐더러 반복되는 유예 결정은 세무 당국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또 계속된 과세 유예가 2030 투자자 등 여론의 눈치를 본 결과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현재 세금이 부과되는 해외 주식 투자와 과세 형평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최근 가상자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과열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번 과세 유예 결정이 투기를 더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1월 ‘트럼프 랠리’를 타고 비트코인 가격은 40% 가까이 상승했다.미국, 일본 등 주요국은 가상자산 과세 기준을 마련해 세금을 걷고 있다. 미국은 가상자산 양도에 따른 차익을 부동산, 주식 등을 팔아 발생하는 소득과 동일하다고 보고 ‘자본이득세’로 과세하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10월 보고서에서 “한국은 과세 인프라 구축 미비를 이유로 가상자산 소득을 전부 과세하지 않는데, 국제 현황과 비교할 때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안규영 기자 kyu0@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1월 기준금리를 시장 예상과 달리 ‘깜짝’ 인하한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와 최근의 수출 증가세 둔화가 자리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존의 내수 침체에 더해 한국 경제를 지탱해주던 수출마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둔화될 것으로 점쳐지자, 한은이 경기 부양을 위해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는 얘기다.지난달까지만 해도 금통위원 6명 중 5명은 ‘향후 3개월 뒤에도 기준금리를 연 3.25%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8일 금통위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 인하로 선회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10월 이후 (대내외 경제 상황에) 큰 변화가 있었다”며 우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꼽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 인상을 바탕으로 강도 높은 보호무역주의를 예고했는데, 여기에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며 우려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한은이) 미 대선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했지만 상하원 모두가 한쪽(공화당)으로 쏠린 ‘레드 스윕’은 예상을 뛰어넘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트럼프의 당선으로 한국의 대미, 대중 수출은 동시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최근의 심상치 않은 수출 둔화세가 2연속 금리 인하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3분기(7∼9월)에 수출이 전기 대비 감소(―0.4%)하면서 분기 성장률을 예상보다 훨씬 낮은 0.1%로 끌어내렸다. 한은은 이를 수출의 일시적 부진이 아닌 글로벌 경쟁 심화 등으로 인한 구조적 둔화로 판단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특히 최근 반도체 수출 물량이 감소하고 있는데, 단가까지 내려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한은이) 이 점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내수는 더 문제다. 28일 통계청에 따르면 내수를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올 3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감소해 역대 최장 기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또 처분가능소득에서 얼마나 소비를 하는지 보여주는 3분기 가구당 평균소비성향은 69.4%로, 작년 같은 분기(70.7%)보다 1.3%포인트 하락했다. 평균소비성향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2022년 2분기(4∼6월) 이후 9개 분기 만에 처음이다. 소득이 늘어도 향후 경기 불확실성을 감안해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뜻이다.이 같은 총체적인 경기 부진 상황을 반영해 한국은행은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9%로 낮췄다. 또 2026년 전망치는 1.8%로 내다봤다. 1954년 GDP 통계 집계 이래 성장률이 2%를 밑돈 경우는 1956년(0.6%), 1980년(―1.6%), 1998년(―5.1%), 2009년(0.8%), 2020년(―0.7%), 2023년(1.4%) 등 여섯 해뿐이다. 모두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오일쇼크, 코로나 사태 등 대형 충격이 있었던 시기들이다. 한은은 이제 한국 경제가 평상시에도 1%대 성장률이 상시화될 만큼 저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다수는 이미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내리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HSBC(1.9%), JP모건(1.8%) 등 5개 IB가 내년 성장률이 2% 미만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금리를 얼른 낮추고 시장에 돈을 풀어 침체된 내수라도 살려서 성장률 저하 속도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전체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새 국무총리 기용설과 관련해 질문을 받고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만큼 한은 총재로서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트럼프 2기 앞두고 전력 인프라 관련주 주목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랠리가 주춤한 가운데 원자력 발전과 전력 인프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반도체 기업 주가는 ‘고점론’이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 나오고 있지만 전력 수요는 AI 보급과 함께 계속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관련 기업이 ‘슈퍼 사이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각국마다 노후화된 전력 인프라 교체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과 유럽 등 선진국이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호재로 여겨진다.》AI발 전력 수요, 4년 새 2배 이상 증가 전망 시장에선 AI 상승 랠리의 주인공이 그래픽처리장치(GPU)나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원전, 전력망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초 내놓은 자료에서 전 세계 AI와 데이터센터, 가상화폐 관련 전력 소비량이 2022년 460테라와트시(TWh)에서 2026년 1050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나스닥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는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플랫폼스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3분기(7∼9월) 실적을 발표하면서 미국 내 AI 전력 인프라 분야에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21년 전망 보고서에서 2030년 기준 미국 내 데이터센터의 소비 전력이 88TWh로 뉴욕시 전체가 소비하는 연간 전력의 1.6배가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원전 확대와 전력망 개선을 공약했다. 그는 자신의 공약 패키지 ‘어젠다 47’에서 기존 원전에 대한 이용 확대와 선진 원자로 개발 등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원자력 관련 규제를 줄이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할 것으로 예상된다.원전-데이터센터 전력 관리 분야 유망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소형모듈원전(SMR) 등 신형 원전 개발에도 힘을 실을 전망이다. SMR은 기존 원전의 구성품을 소형화해 하나의 용기에 넣고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건설에 걸리는 기간이 짧고 단가도 낮다. 특히 데이터센터 근처에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기존 원전은 냉각수 공급 문제로 해안가에 건설해야 했지만 원자로를 소형화한 SMR은 전력 소비처 인근에 설치할 수 있어 송배전 비용이 적게 든다. 미국 내 주요 원전 관련 기업으로는 뉴스케일파워, 콘스텔레이션 에너지 등이 있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원자력 규제 위원회로부터 설계 인증을 받은 SMR 선도 기업으로 올 들어 주가가 10배 가까이 올랐다. 콘스텔레이션 에너지는 미국 최대 원자력 발전 기업으로 21개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빅테크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 26일까지 주가는 116% 올랐다. 데이터센터 전력 관리도 유망 분야로 꼽힌다. 대규모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센터는 비용 절감을 위해 스마트 그리드 기술과 전력 효율화 솔루션이 필수다. 전력 손실은 줄이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 최대 에너지솔루션 업체인 슈나이더일렉트릭은 데이터센터 전력 관리에 특화된 솔루션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이 기업 주가는 올 들어 35% 올랐다.국내 상장 ETF로 글로벌 전력 기업에 투자 가능 국내 투자자들이 원전이나 전력 인프라 관련 기업에 직접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주도 기업이 미국과 유럽 등 여러 국가에 분산돼 상장돼 있는 데다 전력 산업 특성상 기업간거래(B2B)로 기업의 수익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투자자 개인의 지식과 판단으로 주가 향방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투자 전문가들은 국내외에 상장된 전력 인프라 및 원전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기를 권한다. 원전과 전력 인프라에 투자하는 국내 ETF로는 삼성자산운용의 ‘KODEX AI전력핵심설비’와 ‘KODEX 미국AI전력핵심인프라’, 신한자산운용이 운용하는 ‘SOL 미국 AI전력인프라’, KB자산운용이 상장한 ‘RISE 글로벌원자력’,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원자력테마딥서치’ 등이 있다. 최근 한 달간(10월 23일∼11월 22일) 수익률이 가장 좋은 ETF는 ‘SOL미국AI전력인프라’로 이 기간 가격이 12.86% 올랐다. 신한자산운용은 ‘SOL 미국 AI전력인프라’에 대해 원자력 밸류체인(43.4%), 전력망 시스템 설비(32.9%), 데이터센터 인프라(23%) 등의 관련 섹터에 고르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KODEX 미국AI전력핵심인프라’도 같은 기간 수익률 11.28%를 보여 뒤를 이었다. 이 ETF는 전력망, 원자력, 천연가스 발전기 등을 종합적으로 생산하는 GE버노바를 약 14.9%의 비중으로 담고 있다. 증권가에선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전력 수급 정책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은 “원전과 전력 인프라는 대선 이전부터 많은 전문가가 당선자와 무관하게 주목해야 할 분야로 강조해왔다”며 “최근 급등한 전력 가격과 관련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대응책이 효율적인 에너지원 확대와 노후화된 전력망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전력 인프라 및 원자력 밸류체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수요가 10억 원 늘어날 때 일자리는 겨우 8개 남짓 증가하는 등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산업 활동에 따른 부가가치 발생도 2년 연속 줄었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2021∼2022년 산업연관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취업유발계수는 전년(8.7명) 대비 감소한 8.1명으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관표는 한국에서 발생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및 처분 내역을 기록한 통계표다. 취업유발계수는 소비, 투자, 수출 등 최종 수요 10억 원이 발생했을 때 모든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 수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취업유발계수 8.1명’은 10억 원을 추가로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8.1명이었다는 의미다. 취업유발계수는 2000년 25.7명 수준에서 2015년 11.8명으로 떨어지며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취업유발계수가 줄어드는 건 한국 경제 구조가 자동화 등의 영향으로 일자리가 과거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1명의 노동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다. 산업 활동에 따라 유발되는 부가가치도 2년 연속 감소했다. 2022년 부가가치유발계수는 0.729로 2020년(0.806), 2021년(0.775)보다 낮은 수준이었다. 부가가치유발계수는 특정 상품의 최종 수요가 1단위 발생했을 때 모든 부문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부가가치를 의미한다. 우리 경제에서 수입·수출 등 대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다. 2022년 총거래액(총공급액 또는 총수요액) 6808조2000억 원 가운데 31.5%가 수출과 수입을 더한 대외거래로 2021년(28.8%)보다 2.7%포인트 증가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비트코인 가격이 22일 사상 처음으로 9만9000달러를 넘어서며 10만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추진해 온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사진)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는 1월 사퇴하겠다고 발표하자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 것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향후 수년 내 10배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올 초부터 호재들이 누적된 데다가 가상화폐에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친(親)가상화폐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 미 상원의원 “정부, 금 팔고 비트코인 사야”가상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22일 한때 9만9000달러대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은 오후 3시 30분 기준 9만8905.87달러(약 1억3895만 원)에 거래됐다. 전날까지 9만4000달러 선에서 등락하던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 새 5% 넘게 올라 10만 달러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날 급격한 상승세는 겐슬러 위원장이 조만간 사퇴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2021년 4월 취임한 겐슬러 위원장은 가상화폐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조치와 규제를 주도해 ‘가상화폐 저승사자’라고 불려왔다. 바이낸스 등 가상화폐 거래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변동성이 너무 큰 자산”이라는 이유로 지연시키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규제파’ 겐슬러 위원장의 1월 사퇴 예고로 규제 리스크가 제거됐다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가상화폐 친화 정책이 다수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9년까지만 해도 “가상화폐는 돈이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던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 선거 기간엔 “가상화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비트코인을 활용해 미국 정부의 부채 35조 달러를 갚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급속도로 증가한 미국의 국가 부채가 달러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고 달러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당선인의 복안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같은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 준비도 이어지고 있다. 올 7월에는 미국 중앙은행이 비트코인을 5년간 최대 100만 개 사들이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을 발의한 신시아 루미스 의원은 “정부의 금 비축분 일부를 매각해 비트코인을 매수해야 한다”며 “정부의 비트코인 비축이 미국이 세계 기축 통화로서 달러를 지탱하고 부채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국가 준비자산’으로 매입하게 되면 다른 국가들도 비트코인 보유에 뛰어들 수 있는 만큼, 또 다른 가격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공급 줄고 수요 느는 비트코인수급 여건도 비트코인 상승세를 부추기고 있다. 현재 비트코인은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고 있다. 올 4월 4번째 ‘반감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개발 당시부터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채굴에 지급되는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설정했고 이 같은 공급량 감소는 시간을 두고 가격에 반영된다. 투자회사 아크인베스트먼트의 최고경영자(CEO) 캐시 우드는 “4월 반감기가 아직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2030년까지 비트코인 가격 목표를 65만 달러로 전망했다. 외부 환경이 우호적인 긍정적 시나리오에선 100만∼150만 달러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봤다. 비트코인 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 1월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며 기관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이전엔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졌고 기관 자금이 공식 유입되기가 어려웠지만, ETF 승인 이후에는 비트코인을 추종 자산으로 하는 상품이 다수 생기면서 안정적인 자본 유입이 이뤄졌다. 한 가상화폐 업체 관계자는 “ETF 출시와 함께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직접 투자를 꺼리던 개인투자자들의 자금도 상당량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급등세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아무리 트럼프가 친가상화폐 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미국이 경기 침체를 겪는다면 비트코인 역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잭 팬들은 “비트코인은 주식과 양의 상관 관계를 가진 위험 자산인 만큼 경기 침체 시 가격 하락 우려가 있다”며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0년에도 비트코인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바 있다”고 했다. 국가 부채를 비트코인 매입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은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은 본질적 가치가 없는 단순 투기 자산에 불과한 만큼 정부의 재정 적자 관리 능력을 약화하고 재정 균형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비트코인 가격이 22일 사상 처음으로 9만9000달러를 넘어서며 10만 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추진해 온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는 1월 사퇴하겠다고 발표하자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 것이다. 가상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22일 한때 9만9314.95달러(약 1억3940만 원)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은 오후 3시 30분 기준 9만8905.87달러에 거래됐다. 전날까지 9만4000달러 선에서 등락하던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 새 5% 넘게 올라 10만 달러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날 급격한 상승세는 겐슬러 위원장이 조만간 사퇴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2021년 4월 취임한 겐슬러 위원장은 가상화폐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조치와 규제를 주도해 ‘가상화폐 저승사자’라고 불려왔다. 바이낸스 등 가상화폐 거래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변동성이 너무 큰 자산”이라는 이유로 지연시키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겐슬러 위원장의 정책을 비판하며 취임 후 즉각 해임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투자자들은 겐슬러가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가상화폐 친화 정책이 다수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차기 SEC 위원장 후보로는 댄 갤러거 로빈후드 최고법률책임자와 크리스토퍼 장칼로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 헤스터 피어스 현 SEC 위원 등 친(親)가상화폐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인공지능(AI) 반도체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새롭게 출시한다. AI와 반도체 붐과 함께 자산운용업계가 관련 ETF를 쏟아내는 가운데 미국 AI 반도체 산업에만 집중 투자하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2일 서울 중구 센터원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6일 유가증권시장에 ‘TIGER 미국필라델피아AI반도체나스닥’ ETF를 상장한다고 밝혔다.이 ETF는 나스닥 증권거래소가 1993년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 지수)를 출시한 뒤 30여 년 만에 새롭게 내놓은 ‘ASOX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ASOX는 기존 SOX 지수에서 AI와 관련성이 낮은 인텔 등 종합 반도체 기업은 제외하고 AI 시대에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팹리스(설계 전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을 선별한 지수다. ASOX는 나스닥 거래소가 올 9월 미래에셋운용과 협력해 개발했다. 나스닥 거래소가 국내 자산운용사를 지수 개발 협력사로 택한 데 대해 이정환 미래에셋운용 ETF운용1본부장은 “현재 미래에셋 운용은 SOX 지수 추종 ETF를 세계 최대 규모로 운용하고 있다”며 “최근 한국 ETF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한국 투자자들이 나스닥 거래소 입장에서 중요한 고객이 됐기 때문에 지수 개발을 함께 추진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 ASOX를 추종하는 ETF는 ‘TIGER 미국필라델피아AI반도체나스닥’이 유일하다. 이경준 미래에셋운용 전략ETF운용본부장은 “글로벌 운용사 다수는 나스닥 거래소 지수를 그대로 추종하기보단 이를 조금씩 바꿔 자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 투자자들의 경우 ETF에 대한 신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수를 최대한 충실히 추종하는 상품을 선호한다. ASOX에 노후 자금을 맡기고자 하는 투자자라면 해당 ETF가 현재 유일한 상품”이라고 했다. ‘TIGER 미국필라델피아AI반도체나스닥’ ETF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면 AI 반도체 주도주 엔비디아 비중이 22.2%로 가장 크고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18.9%로 뒤를 잇는다. 이밖에 브로드컴(15.6%), ASML(8.6%), AMD(7.0%) 등 기업이 포함됐다. 이 본부장은 “승자 독식 경향이 강한 성장산업 특성을 감안해 (기존 ETF에 비해) 한 종목이 차지할 수 있는 상한선을 높였다”며 “빅테크 업체가 내년에도 AI 관련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 내에 가상화폐 정책을 전담하는 직책을 신설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대표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한때 9만8000달러를 넘기는 등 연일 최고가를 새로 쓰고 있다. 21일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경 비트코인 가격은 9만8000달러를 넘어섰다. 비트코인 가격이 9만8000달러를 넘은 건 사상 처음이다. 비트코인 가격은 미 대선 당일인 6일 이후 40% 이상 상승했다. 이날 블룸버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 인수팀이 백악관에 가상화폐 정책을 전담하는 직책을 신설할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백악관에 가상화폐 전담 직책이 생기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다만 보도에 따르면 현재 검토 중인 가상화폐 직책의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새롭게 생길 가상화폐 전담 직책이 단순 자문 역할(advisory role)에 그칠지, 가상화폐 업무를 총괄하며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역할이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대장’ 비트코인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에 다른 가상화폐는 최근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시총 2위 이더리움은 24시간 전 대비 0.01% 오른 3110.37달러를 기록했다. 12일 3400달러 선까지 상승했던 이더리움은 고점 대비 8%가량 하락한 가격에 거래된다.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지한 도지코인은 대선 이후 일주일 새 약 2.5배로 상승한 뒤 0.38∼0.4달러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삼성 SK 현대차 LG 등 주요 16개 그룹 사장단이 “한국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법 개정 논의를 중단하고 경제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 달라는 취지의 이례적인 ‘긴급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불확실성이 더해진 상황에서 입법 규제를 멈춰 달라며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주요 그룹이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으로 인한 내수 침체가 이어지던 2015년 7월 이후 9년 만이다. 2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인 사장단은 특히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동력 발굴에 애로를 겪게 할 것”이라며 논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1·2·3대 주주 또는 소액 주주가 있고, 이들은 이해관계가 굉장히 상충한다. ‘(모든) 주주’를 충실 의무 대상으로 넣을 경우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16개 그룹 사장단은 “우리 경제 성장동력이 약화되면서 2% 성장률 달성도 버거워졌다”며 “많은 투자자들은 기업의 성장성이 둔화되자 국내보다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고, 기업부채는 장기 불황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내수는 가계부채 등의 문제로 구조적 침체를 벗어나기 힘들고, 그나마 버텨 주던 수출마저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글로벌 환경 악화로 앞으로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며 “보호무역주의 분위기 속에서 각국이 첨단 산업 지원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지원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했다. 주요 그룹 사장단이 모여 이례적 성명을 발표한 것은 트럼프발 불확실성 속에 상법 개정안까지 국회를 통과하면 감당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올 10월까지 처리된 법인 파산 선고(인용) 건수가 지난해 연간 처리 건수를 훌쩍 넘는 등 내수 부진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날 성명 발표에는 박승희 삼성전자 대외협력(CR) 담당 사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김동욱 현대차 전략기획실 부사장, 차동석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 등이 각 그룹을 대표해 참석했고,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도 함께했다.트럼프 폭풍속 재계 “상법 개정땐 끝없는 소송전” 위기감 호소[커지는 경제 경보음]16개 그룹 사장단 이례적 긴급성명“소액주주 보호는 자본시장법 충분”… 보호무역 강화 기류에 우려 더 커져野 “합리적 경영판단은 면책 추진”… 재계 “기준 불명확해 실효성 없어”21일 국내 16개 그룹 사장단이 이례적으로 공동 성명을 발표한 데는 그만큼 국내외 경제 여건이 심상찮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내수 침체 장기화와 트럼프발(發) 신냉전 리스크, 중국발 공급과잉 등 안팎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주도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기업들은 끝없는 소송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돼 있다.● 야당 상법 개정안 당론 추진에 강한 반발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지정한 상법 개정안 등 각종 규제에 대한 반발과 우려는 사장단 긴급 성명의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 증시의 ‘나 홀로’ 하락세 속에서 각 기업이 밸류업(가치 제고)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상법 개정으로 접근할 경우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총주주’로 확대하면 소송 리스크가 크고 오히려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성명에 참여한 한 대기업 사장은 “소액주주 보호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상법에서 지나치게 포괄적인 규정을 도입하게 되면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의 공격에 노출되고 중장기 의사 결정에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사장도 “미국을 제외하고 글로벌 경기가 모두 악화되고 있고, 이것이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며 “주가를 올리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기업 경쟁력을 올리는 것인데 상법 개정안은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낮추게 된다”고 강조했다.국민의힘도 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법적으로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일률적으로 포함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계 반발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개정안에 명시하는 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이사가 합리적 근거에 따라 재량 범위 내에서 내린 경영 판단에 대해선 회사 손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법적 기준을 의미한다. 재계의 “상법 개정 시 경영 판단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재계는 “충실의무 대상에 ‘총주주’가 들어가는 한 사안마다 경영판단의 원칙이 인정될지를 두고 소송전이 벌어지거나 배임 처벌 위험에 놓일 것”이라며 “실효성이 없다”고 우려했다.● 트럼프발 신냉전 먹구름…“1년 내 금융 리스크”이번 공동 성명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도 반영됐다. 트럼프 당선인의 연이은 고관세 정책 천명에 이어 ‘관세 예찬론자’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관세 전쟁, 제조업 리쇼어링(본국 회귀)에 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날 성명에 참여한 또 다른 사장은 “미중 패권전에서 반도체가 수단이 되다 보니 생산 시설을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긴급 공동 성명에 참여한 그룹사는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한화, HD현대, GS, CJ, 두산, 효성, 코오롱, 삼양, 영원무역, 풍산, 삼양라운드스퀘어 등 16곳이다.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에 따른 정책 변화를 한국 금융시스템의 최대 위험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이날 한국은행이 내놓은 ‘2024년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미 대선 이후 정책 변화’(20.5%)가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 및 상환부담 증가’(26.9%)에 이은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꼽혔다. 미 대선 이후 정책 변화로 인한 국내 금융 리스크는 응답자의 70.5%가 1년 이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한편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도 성명을 내고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번째로 높다”며 “(현행 상속세율로는)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곽도영 기자 now@donga.com안규영 기자 kyu0@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21일 국내 16곳 주요 기업 사장단이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한 데는 그만큼 국내외 경제 여건이 심상찮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내수 수요 침체 장기화와 트럼프발(發) 신냉전 리스크, 중국발 공급과잉 등 안팎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주도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기업들은 끝없는 소송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돼 있다. ● 야당 상법 개정안 당론 추진에 강한 반발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지정한 상법 개정안 등 각종 규제에 대한 반발과 우려는 사장단 긴급 성명의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 증시의 ‘나홀로’ 하락세 속에서 각 기업이 밸류업(가치 제고)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상법 개정으로 접근할 경우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총주주’로 확대하면 소송 리스크가 크고 오히려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성명에 참여한 한 대기업 사장은 “소액주주 보호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상법에서 지나치게 포괄적인 규정을 도입하게 되면 해외 행동주의 펀드 등의 공격에 노출되고 중장기 의사결정에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사장도 “미국을 제외하고 글로벌 경기가 모두 악화되고 있고, 이것이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 또다른 문제가 되고 있다”며 “주가를 올리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기업 경쟁력을 올리는 것인데 상법개정안은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낮추게 된다”고 강조했다.국민의힘도 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법적으로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일률적으로 포함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1·2·3대 주주 또는 소액 주주가 있고, 이들은 이해관계가 굉장히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발 신냉전 먹구름… “1년 내 금융 리스크”이번 공동성명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도 반영됐다. 트럼프 당선인의 연이은 고관세 정책 천명에 이어 ‘관세 예찬론자’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임명되면서 본격적인 관세 전쟁, 제조업 리쇼어링(본국 회귀)에 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이날 성명에 참여한 또다른 사장은 “미중 패권 전에서 반도체가 수단이 되다 보니 생산 시설을 자국으로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국내외 금융·경제 전문가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에 따른 정책 변화를 한국 금융시스템의 최대 위험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이날 한국은행이 내놓은 ‘2024년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답한 전문가들이 1순위로 꼽은 리스크 요인은 ‘가계의 높은 부채 수준 및 상환부담 증가’(26.9%)였으며 미 대선 이후 정책 변화(20.5%), 주요국 자국 우선주의 산업정책 강화(9.0%)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미 대선 이후의 정책 변화로 인한 국내 금융 리스크는 응답자의 70.5%가 1년 이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경기 침체 장기화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디스플레이에 이어 화학, 철강 등 국내 제조업을 뒷받침하던 주요 산업 분야도 흔들리고 있다. 롯데케미칼, LG화학 석유화학부문 등 주요 화학 기업이 3분기(7~9월) 적자 전환했고, 국내외 생산 설비 매각에 나서는 등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편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한경협,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상속세 개편 촉구에 대한 성명도 발표했다. 6단체는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중 2번째로 높다”며 “(현행 상속세율로는)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고, 외부 세력에 의한 경영권 탈취 또는 기업을 포기하는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고 주장했다.곽도영 기자 now@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국내 증시의 부진에 지쳐 해외 주식 등으로 눈길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급증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純)대외금융자산도 9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제 한국도 일본, 독일 등과 비슷하게 해외 자산에 붙는 이자와 배당 소득을 취하는 ‘선진국형 경제’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투자 자금의 해외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어 향후 국내 자본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약해질 수 있단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2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3분기(7∼9월) 국제투자대조표(잠정)에 따르면 9월 말 한국의 순대외금융자산은 9778억 달러(약 1360조 원)로 3개월 전보다 1194억 달러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2041조 원)의 약 67%에 달하는 규모다. 전 분기 대비 증가 폭은 2021년 3분기(1212억 달러)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순대외금융자산이 플러스(+)라는 것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투자한 자산보다 우리 국민이 해외에 투자하는 자금이 많다는 의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한국의 순대외자산 규모는 세계 8위다. 지난해 말 9위에서 6개월 만에 한 계단 상승했다. 한국의 순대외자산은 2014년 809억 달러로 처음 플러스 전환한 뒤 10년여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최근 대외 자산 급증세는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 열풍’으로 해외 주식 보유량과 잔액이 함께 증가한 영향이 컸다. 우리 국민이 해외에 보유한 주식, 채권 등을 포함하는 대외금융자산은 4분기 연속 늘어 2조5135억 달러로 집계됐다. 특히 증권(주식) 투자 잔액이 646억 달러 늘었는데, 이는 2020년 4분기 이후 역대 2번째 증가 폭이다.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도 이차전지 기업을 중심으로 302억 달러 늘었다. 박성곤 한은 경제통계국 국외투자통계팀장은 “해외 주식 및 채권 매수가 늘고 보유증권 평가액도 상승했다”며 “미국 증시가 랠리를 지속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 증시가 반등했고, 9월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 등으로 미국 국채 금리 또한 하락한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9000억 달러를 넘긴 순대외금융자산을 두고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형 경제 모델로 변화한 결과라고 풀이한다. 대외 자산이 많은 국가는 해외 자산 보유에 따른 이자 및 배당 등으로 안정적인 가계소득을 확보할 수 있고, 외화 유동성 악화 시 안전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해외 투자 자산이 늘어난 것은 수익률이 저조한 국내 증시를 회피한 결과라는 점에서 이를 무작정 반길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해외주식을 배당 목적으로 투자하는 개인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계 소득 증가는 당장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잠재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선 국내 모험 자본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투자 자본 유출이 이어지면 성장이 둔화되고 국내 주식이 매력을 잃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