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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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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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제3%
국제인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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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비극과 희극 사이… 묘하게 끌리는 노통브 소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며 유쾌했을까 불쾌했을까. 이 소설은 꽤나 두께가 얄팍하다. 집중하면 1, 2시간이면 끝낼 분량이다. 그런데 자꾸만 읽다가 몇 장씩 되돌아오게 된다. 그리 가물가물할 정도로 복잡한 건 아니다. 왠지 묘하게 질퍽질퍽 발길을 붙잡는 달까. 깜깜한 숲속의 부엉이소리처럼. 벨기에 어딘가 있다는 플뤼비에 성(城). 그곳에 사는 느빌 백작은 요즘 심사가 복잡하다.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나 돈 버는 재주가 없다 보니, 결국 성까지 팔아야 할 처지. 하지만 백작은 사교계에서 언제나 훌륭한 파티 접대로 이름 높은 인물. 마지막으로 누구에게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가든파티를 준비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점술가 포르탕뒤에르 부인이 가출한 막내딸 세리외즈를 보호하고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별것 아닌 양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점술가는 보자마자 악담에 가까운 예언을 들려준다. 백작이 파티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 거라고. ‘최후의 만찬’을 벌이고픈 그에게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고민으로 며칠째 밤잠을 설치는 느빌 백작에게 세리외즈는 더 충격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다름 아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노통브의 스물네 번째 소설이라는 ‘느빌…’은 읽는 이를 참 엉거주춤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잔혹동화 같기도, 한바탕 부조리 연극을 감상한 기분도 든다. 솔직히 재미없단 소린 못하겠다. 어디선가 ‘쿵짝쿵짝’ 흥겨운 재즈 가락이 들려오는 듯 리듬감도 절묘하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 가지는 우화적인 분위기도 세련됐고. 실제로 프랑스 현지에선 ‘비극과 희극이 버무려진 풍자극’이라며 상찬을 받은 모양이다. 2015년 출간돼 19만 부 이상 팔렸단다. 그런데 작가는 어떤 심정으로 이걸 썼을까. 그가 주고픈 메시지는 묵직함일까 경쾌함일까. 왠지 이 소설에서 의구심 한 줄기가 물씬물씬 피어올랐다. “실은 자기도 헛갈리는 거 아냐?” 열혈 팬이 아니라면,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겠다. 원제 ‘Le crime du comte Neville’.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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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총-한교연 통합 ‘한기연’ 창립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다시 합쳐진다. 양측은 16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두 단체를 통합한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창립총회에선 김선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장과 이성희 예장 통합 총회장, 전명구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감독회장, 정서영 한교연 대표회장이 당분간 ‘4인 공동회장’을 맡아 한기연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한기연은 정관 작업 등을 거쳐 12월 총회를 열고 대표회장 1인을 추대할 예정이다. 한기총과 한교연은 원래 하나였으나 2011년 대표회장직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며 둘로 나뉘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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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양환의 뉴스룸]그녀의 리볼버

    최근 사석에서 한 여성 경영인을 만났다. 나름 ‘유리 천장’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 분인데, 어렵사리 들은 속내는 영 딴판이었다. 한마디로 위로 갈수록 더 외롭더란 얘기다. “물론 예전보단 양성평등이 훨씬 나아졌죠. 여성 상사라고 가벼이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지시를 내리면 성별이 자꾸 해석의 잣대가 돼요. 여성이라 그런 데에 관심이 많다, 여성이라 이해 못 한다는 식이죠. 오히려 남성 보스처럼 굴어야 ‘역시 트였다’는 피드백이 돌아옵니다. 그럴 땐 또 다른 벽에 갇힌 기분이 들어요.”딱히 별다른 말을 건네진 못했다. 조심스럽기도 했고. 다만 최근 책들을 검토하다 눈에 띄는 작품이 있어 소개해 드리고 싶다. 11일 국내에 출간된 미국 소설 ‘여자는 총을 들고 기다린다’이다. 여주인공 콘스턴스는, 요즘으로 치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의 신조어)’이었다.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였던 1910년대. 서른다섯 미혼에 정규교육을 받은 적 없다. 당시 여성은 투표권조차 없던 시절. 직업 구하기도 어려웠다. 두 여동생과 입에 풀칠하기 빠듯한 지경. 현재라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해야 할 판이다. 원래 나쁜 일은 몰려오는 법. 어느 날 세 자매는 마차를 몰고 가다 마구잡이로 돌진한 자동차에 들이받혔다. 하필이면 운전사는 악덕 사장으로 유명한 무뢰배. 여성이라 만만했는지 똘마니까지 끌고 와 공갈 협박을 일삼는다. 심지어 납치 방화까지 시도하고…. 우리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제목에서 눈치챘듯, 그는 총을 뽑아들었다. 영화 ‘황야의 7인’(1960년)처럼 해결사 총잡이가 된 건 아니다. 뭐, 굳이 따지자면 ‘OK목장의 결투’(1957년)의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버트 랭커스터)라고나 할까. 바로 미 역사상 첫 여성 보안관보가 된 콘스턴스 아멜리에 콥(1878∼?)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소설가 에이미 스튜어트가 2015년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를 알지 못했다’. 작가는 자신의 논픽션 ‘술 취한 식물학자’ 집필 자료를 모으다가 뉴욕타임스에서 콥 자매를 다룬 짤막한 옛 기사를 마주했다. 시쳇말로 ‘확 꽂힌’ 그는 2년여 동안 동네 땅문서까지 샅샅이 뒤지고 일가친척도 찾아가 만났다. 그렇게 나온 ‘여자는…’에는 콘스턴스가 보안관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스튜어트는 앞으로 콥 자매 시리즈를 8권까지 출간할 계획이란다. 소설 자체도 흥미롭지만, 작가 홈페이지도 들어가 볼 만하다. 특히 책에 실린 실존인물 설명 가운데 콥 보안관보의 언론 인터뷰 한 자락은 꽤나 인상적이다. “어떤 여성은 집에 머물고 가족을 돌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라고 하세요. 하지만 그런 일을 잘할 사람은 충분히 차고 넘칩니다. 그들과 달리, 어떤 여성은 사람과 사회 속에서 부대끼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한 사람의 여성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이 얼마나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힘들어도 노력하면 된다는 얘기는 요즘 세상에 ‘씨알’도 안 먹힌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콘스턴스는 키가 6피트(약 183cm), 몸무게는 180파운드(약 82kg)였다. 웬만한 사내 못지않은 체격이다. 하지만 덩치만 좋다고 그 굴곡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문제는 심장의 크기였다. 그 여성 경영인도 어디서 배포로 밀릴 양반이 아니다. 이 지구는 그런 심장들이 모여 변화시켜 왔다. 콥이 든 건, 총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였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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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軍 떠나 이젠 널찍한 ‘평상’ 될거요”

    “널찍한 ‘평상’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든지 오다가다 쉴 수 있게. 큰 아름드리나무 그늘까지 있으면 더 좋겠지.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평상을, 매일 쓸고 닦는 거라오.” 최근 찜통을 뒤집어쓴 듯한 더위에 헉헉대며 도착한 서울 서초구 구룡사 앞마당엔 진작부터 정우 스님(65·구룡사 회주·사진)이 나와 있었다. “더운데 뭘 여기까지…”라며 연신 손부채를 부쳐주더니, “젊은 사람들은 이런 커피를 좋아하지”라며 냉장고에서 이까지 시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슬그머니 꺼내놓았다. 거참, 땡볕을 타박했던 속내가 짐짓 부끄러웠다. 대한불교조계종 군종교구장으로 쉼 없이 달려왔던 정우 스님은 지난달 27일 드디어 4년 임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군종교구장으로 그가 세운 공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 영내 법당 100곳 이상을 짓고 고쳤으며, 불자장병 수계법회를 지나간 이는 12만 명이 넘는다. 2014년엔 비구니를 군종법사로 뽑아 국내 종교 최초로 여성 군종장교를 배출했다. 그런데 정작 스님 맘에 제일 깊이 남은 건 따로 있었다. “전국에서 만난 장병들의 눈망울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4년 내내 장갑이랑 초코파이, 핫팩 싸들고 무던히도 돌아다녔지. 시간만 되면 꼭 짜장면을 같이 먹었어요. 불제자면 어떻고 아닌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도 1973년 현역 입대해 그때 심정 다 알지. 작은 것 하나에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가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오.” 임기 동안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경기 파주시의 ‘JSA(판문점 남북공동경비구역) 무량수전’ 건립도 스님은 자신의 공적이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다 이뤄질 일이 불력(佛力) 따라 흐른 거란다. 올해 3월 완공했는데 ‘참 묘하다’란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법당에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 전사자의 위패를 봉안했습니다. 근데 그 위로 난 쪽문이랑 높이를 맞추려고 길이를 쟀더니 딱 62.5cm인 거라. 더 신기한 건 법당 앞 종각에 ‘평화의 종’도 봉안했는데, 이게 만들고 보니 의도치 않게 무게가 625관(약 2344kg) 아니겠소. 또 한번 깊이 머리를 조아릴밖에.” 요즘 스님은 해질녘이면 하루 1, 2시간씩 마을을 걷고 있다. 올해 초부터 꾸준히 걸었더니 체중도 10kg이나 빠졌단다. 열심히 운동하는 까닭? 잡념도 없애주지만, 너무 뻔하게도 건강 때문이다. 그런데 스님이 이렇게 몸을 챙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곧 자신이 출가하고 주지도 지냈던 통도사로 내려갈 계획이기 때문이다. “여기 구룡사가 1980년대 천막 법당으로 시작해 하나하나 맨손으로 일군 ‘가장으로서의 집’이라면, 통도사는 내 모든 시작의 뿌리이자 고향인 셈이라오. 고맙게 그쪽에서도 거처를 마련할 테니 얼른 오라고 합디다. 다 필요 없고 일신이 머물 제일 구석 쪽방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거기 가서 남의 신세 안 지려면 뭣보다 몸이 튼튼해야 하지 않겠소. 괜히 특별 대우할 생각 말라고 미리 으름장도 놔뒀습니다. 똑같이 마당 쓸고 텃밭 돌보고 다 해야죠. 그게 진짜 ‘평상’이 되는 길이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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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권력의 정당함은 도덕성에서 나온다”

    짬짜면(짬뽕+짜장면). 비하할 의도는 없다. 그냥 읽는 내내 그런 잡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딱히 나쁘지도 않다. 오히려 좋은 책이다. 하지만 교과서와 선언문을 같이 펴놓고 읽은 느낌이랄까. 이해는 가는데 살짝 번잡하다. 홍콩중원(中文)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인 저자는 ‘중국의 깨어있는 지성’이란 극찬을 받는 학자다. 중국 정부로선 꽤 탐탁지 않은 인사라는데, 2014년 홍콩을 휩쓸었던 민주화시위 ‘우산혁명’에 참여했던 이들이 바이블처럼 이 책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본토에선 금서로 찍혀 출간되지 않았단다. 책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저자는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스(1921∼2002)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공정으로서의 정의’(롤스의 논문 제목이기도 하다)를 꼽는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모든 시민은 자유롭고 평등하므로 국가에 공정함을 요구할 도덕적 권리가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역시 시민이 부여한 도덕적 근거만이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이를 문장 하나, 페이지 하나마다 묵직하게 새겨 넣었다. 앞서 말했지만 참 ‘좋은’ 책이다. 중국 상황에 대입하지 않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정치가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짚는다. 특히 6장에 실린 중국 누리꾼과의 웨이보 토론은 단연 백미. 다만 이 책은 약력이 없어도 교수님이 썼다는 걸 단박에 알겠다. 사례보단 논리에 치중해 간혹 ‘맹자 왈 공자 왈’로도 들린다. 하긴 원래 옳은 말만 하면 지루하게 보일 때가 많다. 그래도 변치 않는 건, 그게 옳은 거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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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부-스님-목사 ‘유쾌한 작당’

    “성직자라고 신앙 얘기만 할 거면 이리 모이지도 않았겠죠. 돈 문제나 성(性) 이슈도 허심탄회하게 다룰 겁니다. 우리도 다 돈 좋아해요, 하하. 명쾌한 해답까진 몰라도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 그게 세상 사람들이 종교에 바라는 게 아닐까요.” 참 거침없다. 그런데 편안하고 유쾌하다. 9일 오후 만난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와 진명 스님(전 조계종 문화부장), 김진 목사(밀알디아코니아연구소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정말 ‘도끼 자루 썩는 줄’ 몰랐다. 배가 산을 넘어 우주까지 가는가 싶은데 어느새 딱 맞춤한 장소에 당도한 기분이랄까. 성직자 3명이 최근 흥미로운 작당 모의(?)를 했다. 28일부터 전국을 돌며 ‘3인 3색 토크 콘서트’를 열기로 한 것. 입담 좋기로 소문난 이들이 모여 도대체 어떤 얘기를 들려줄까. 살짝 먼저 엿본 소감을 말하자면, ‘끝내준다’. ▽홍 신부=좋은 분들 만나니 무덥던 날씨도 청명해진 기분이 듭니다. 두 분도 저랑 참 질긴 인연입니다. 지겨워요, 지겨워. ▽김 목사=그러게 말입니다. 신부님이 ‘종교 간 대화와 일치위원회’ 총무 시절이니까 2002년부터죠. 타 종교인을 만나면 어색할 때도 있는데 신부님은 첨부터 만만했습니다. 하하. ▽진명 스님=딱 보고 같은 ‘과’인지 바로 알아봤죠. 신부님은 tvN ‘오 마이 갓’(2014∼16년) 함께 출연하며 친해졌고요. 목사님도 연이 깊습니다. 제가 모신 법정 스님(1932∼2010)이 강원용 목사(1917∼2006)와 절친해 오며 가며 뵀습니다. 언제나 선하고 젊은 기운이 넘치셨어요.▽김 목사=콘서트 제안이 왔을 때 두 분이라 단박에 오케이 한 건 맞습니다. 다만 다양한 종교인과의 만남은 언제 어디서라도 주저할 이유가 없죠. 타 종교에 배타적인 사람은 자신의 종교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거거든요. ▽홍 신부=실제로 김 목사님은 과거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종교 청년 캠프’를 주도하셨죠. 6개 종단 예비성직자 모임인데 당시 반향도 컸습니다. 목사님이 2005년 인도로 사역을 가시며 맥이 끊겨 너무 아쉽습니다. 스님도 불교 원불교 가톨릭의 여성 성직자 모임인 ‘삼소회’를 이끌었고요. 그러고 보니 종교 간 소통은 세 사람에겐 오랜 사업이었네요. ▽진명 스님=이번 콘서트가 그 불씨를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삼소회 때 수녀님 여성교무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면 시민들이 박수를 쳤어요. ‘그냥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하다’고 하더군요. 종교의 화합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바라는 겁니다. ▽홍 신부=맞습니다. 더 보태자면, 일반인이 종교에 바라는 본질은 위안입니다. 그런 뜻에서 종교인은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권위에 기대 현실과 괴리된 건 아닌지…. 첫 토크쇼 주제로 ‘욕심’을 잡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욕심을 버리란 얘기가 아닙니다. 세속에서 그건 불가능하죠. 다만 살짝만 덜어내도 눈과 마음이 개운해집니다. 일상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종교적 조언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김 목사=결국 종교와 사회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최근 종교에 실망해 믿음을 포기하는 분들도 적지 않죠. 충분히 이해하지만 ‘목욕물 쏟으려다 아이까지 버려선 안 됩니다’. 종교의 현재 외양보단 수천 년 이어온 지혜를 볼 때예요. 물론 우리 성직자부터 자성해야죠. ▽진명 스님=지금 시대가 어렵다는 건 다들 인식하고 있어요. 마음이 바로 서야 가족도 지역도 사회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종교는 그걸 돕는 도우미가 돼야 하죠. ▽홍 신부=아이고, 토크쇼에서 할 얘기를 여기서 다 하시네. 이번 만남은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성직자가 참여하는 더 큰 강물을 만들어야죠. 종교와 종교가 만나고, 종교와 세상이 만나는 일. 그건 당연하고도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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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 걸려 성경 1189장을 모두 詩로… “내가 살아온 이유”

    “박목월(1915∼1978), 황금찬 시인(1918∼2017)과 함께 품었던 꿈을 이제야 이룰 수 있게 됐습니다. 선배들도 고생했다 어깨 두드려주겠지요?” 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출판사 ‘성서원’의 김영진 회장(73)은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1965년 시인으로 등단한 김 회장은 한국잡지협회장(1995∼97년) 한국기독교출판협회장(2000년) 등을 거친 출판계 산증인. 하지만 최근 출간한 책 한 권을 그는 “지금껏 살아온 이유”라고 단언했다. 바로 20여 년에 걸쳐 직접 성경 1189장을 시로 지은 ‘성경의 노래’(사진)다. 김 회장이 성경 전체를 시로 짓기로 마음먹은 건 1960년대부터. 당시 박목월 황금찬 시인 등이 참여했던 한국기독교문인협회에서 ‘시를 지어 즐거이 주를 노래하자’(시편 95장 2절)를 실천해 보자는 의견이 오갔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진척은 쉽지 않았다. 결국 감리교신학대 대학원을 나온 그가 1998년부터 방대한 작업에 몰두했다. “거의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 10시까지 매달렸습니다. 다른 일도 많았지만 제 본업은 이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죠. 워낙 고되다 보니 갖은 병마에 시달려 가족도 한사코 뜯어말렸습니다. 하지만 세계 기독교사(史)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을 우리 땅에서 이루어 보자는 사명감이 저를 채찍질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성경의 노래’는 페이지마다 정성이 가득하다. 이번에 나온 1권은 창세기 출애굽기 등 모세오경을 한 장 한 장 시로 지었다. 이를 ‘찬송가 연구의 대가’인 오소운 목사가 잘 어울리는 찬송가에 맞췄고, 삽화가 김청전 씨가 어울리는 그림을 그렸다. 김 회장은 “두 사람도 이 작업에 최소 7년 이상씩 매진하며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책 감수를 맡은 민영진 박사(전 감신대 교수)는 “방대한 내용을 시와 노래로 정리한 것도 훌륭하지만, 정확한 문맥을 파악해 누구나 알기 쉽게 만든 엄청난 역사(役事)”라고 평했다. ‘성경의 노래’는 내년까지 5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시작(詩作)은 마무리했지만 편집 등 마무리 작업은 갈 길이 멀다. 김 회장은 “완성 때까지 건강만 유지하면 좋겠다”며 “벅찬 시도라 두려움도 크지만 복음 전도에 작은 밀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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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의사 유묵-성모자상, 바티칸 간다

    가톨릭의 총본산 바티칸에서 한국 천주교 230여 년의 역사를 만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8일 “다음 달 9일부터 11월 17일까지 바티칸박물관의 ‘브라초 디 카를로 마뇨’ 전시실에서 한국 천주교 유물 203점을 소개하는 특별전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한국 천주교회 230년 그리고 서울’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바티칸에서 한국 관련 전시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해마다 6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바티칸박물관은 특별전시회를 1년에 많아야 2, 3번만 허용할 만큼 진입장벽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 교회의 자생적 탄생’과 ‘순교와 박해의 역사’는 물론이고 근현대 한국 사회의 격동 속에서 이뤄진 ‘교회의 사회 참여’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위해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당시 증언자들이 순교자 16명에 대해 증언한 ‘기해·병오 치명 증언록’과 세례명이 토마스인 안중근 의사(1879∼1910)가 사형 집행 직전 중국 뤼순 감옥에서 남긴 유묵 ‘경천’(敬天·이상 한국가톨릭순교자박물관 소장) 등이 전시된다. 18세기 대표적 실학자이자 천주교인이었던 다산 정약용(1762∼1836·세례명 요한)의 유물도 바티칸에 간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목민심서’와 다산의 무덤에서 발견된 십자가(오륜대한국순교자박물관 소장) 등이 포함됐다. 현대 작품으로는 월전 장우성(1912∼2005)의 그림 ‘성모자상’(1954년)이 눈에 띈다. 성모자상은 흰 한복을 입고 비녀 머리를 틀어 올린 성모 마리아를 그렸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다음 달 9일은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대목구의 설정을 명하는 칙서를 반포했던 날이다. 당일 전시 개막미사에는 바티칸 주재 83개 외교 공관장을 비롯해 6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전시를 주관한 원종현 신부(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는 “이번 특별전은 한국 천주교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문화와 유산을 세계에 알릴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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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로 출간된 일엽 스님 평전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 비구니로 꼽히는 일엽 스님(1896∼1971)을 다룬 영문판 평전이 나왔다. 김일엽문화재단은 8일 “미국 아메리칸대의 박진영 철학과 교수가 집필한 ‘여성과 불교철학: 김일엽 선사를 통해(Women and Buddhist: Engaging Zen Master Kim Iryop·하와이대출판사)’가 현지에서 출간됐다”고 밝혔다. 재단 명예이사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2004년 일엽 스님 관련 논문을 썼으며 2014년엔 스님의 저서 ‘어느 수도인의 회상’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번 평전은 크게 2부로 구성돼 스님의 생애를 꼼꼼하게 짚었다. 1부는 출가 이전의 삶을, 2부는 출가 뒤 스님이 추구한 불교 사상을 다뤘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일엽 스님은 개화기 신여성으로 살았던 당시 모습만 너무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여성의 시각으로 불교적인 삶과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철학 세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재단 측은 이번 출간을 계기로 일엽 스님의 한글판 평전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평남 용강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스님은 1920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신정조론’ ‘자유연애론’으로 대표되는 여성 계몽운동을 펼쳐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33년 만공 스님 문하로 출가한 뒤 비구니의 총본산인 견성암에서 참선 수행에 정진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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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양환의 뉴스룸]겨울은 이미 왔다

    그래, 어쩌면 우릴 기다리는 건 낭떠러지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요즘 소설만 보면 자명해 보인다. 지난달 31일 나온 정지돈 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는 총기 소지가 허용된 2063년 한반도의 디스토피아를 그렸다. 마구잡이 총격전에 일반인도 방탄복을 입는 세상. 심지어 서울만 벗어나면 목숨마저 보장할 수 없는 무정부 상태다. 앞서 국내에 출간된 일본 소설 ‘다리를 건너다’ 속 2085년은 이보단 사정이 낫다. 하지만 유전공학이 빚은 복제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복종부터 배우는 계급사회가 펼쳐진다. 그들은 물건처럼 사고 팔리며 사랑조차 통제받는다. “현실에 대한 불안이 반영된 거라고 봅니다. 단지 먹고살기 팍팍해서는 아니에요. 더 이상 국가나 사회가 미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팽배합니다.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 더 나빠질 거란 피로가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거죠.”(신은영 도서출판 옥당 대표) 실은 이건 우리만의 얘기는 아니다. 서구에서도 디스토피아 문학이 엄청난 인기다. 오마르 엘 아카드가 쓴 ‘아메리칸 워’나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집필한 ‘조안의 책’, 마이클 톨킨의 ‘NK3’…. 하나같이 비관적인 미래가 펼쳐진다. 참고로 NK3는 북한이 쏘아올린 생화학무기 탓에 인류의 기억체계가 파괴됐다는 설정. 미국 잡지 뉴요커는 이런 현상을 두고 “디스토피아 소설의 황금시대(Golden Age)가 열렸다”고까지 평가했다. 물론 이런 작품들이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온 건 아니다. 디스토피아 소설도 나름대로 역사가 짱짱하다. 서양 문학사에선 주로 19세기 후반을 태동기로 본다. 재밌는 건 당시는 사회주의 가치관이 짙게 깔린 유토피아 소설이 성행하던 시기. 이에 대한 ‘저항의식’이 디스토피아 소설의 씨앗이 됐단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을 절정이라 부를까. 최근 몇 년 동안 영화로도 제작됐던 소설 ‘헝거 게임’이나 ‘다이버전트’도 그다지 미래를 희망차게 그리진 않았는데. 미 뉴욕타임스는 이를 “새로운 디스토피아의 출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디스토피아 문학의 붐은 우울한 미래란 ‘설정’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밀어닥친 ‘위기’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미드 ‘왕좌의 게임’ 유행어를 갖다 쓴다면, 이미 벌써 “겨울이 다가온다(Winter is coming).” ‘작은 겁쟁이…’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2063년은 올해부터 46년 뒤. 지금의 웬만한 중장년이 살아있을 시대다. 그런데 이런 아노미가 벌어지게 만든 근원을 훑어보면 기시감이 상당하다. 대기 오염과 빈부 격차, 난민 급증…. 현 시대가 걱정하는 문젯거리들이 결국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망가뜨린 셈이다. ‘아메리칸 워’의 엘 아카드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푸념했다. “난 현재의 몰락이 반영된 소설을 썼다. 그런데 자꾸 점술가의 예언처럼 받아들여 그게 맞나 아니나만 따진다.”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다. 누구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 디스토피아 문학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린 나빠질 거라고, 모두 추락할 거라 저주를 퍼붓는 게 아니다. 주의 깊게 내딛지 않으면 곧장 낭떠러지에 다다른다는 경고가 배어 있다. 그걸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다만 누군가가 답을 주길 멍하니 기다리진 말자. “겨울은 이미 왔다(Winter is here).”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7-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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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감로수

    최근 한 불교 행사에서 ‘빵’ 하고 웃음이 터진 적이 있다. 사뭇 진지한 자린데 큰스님 인사말이 어지간히 기셨다. 살짝 어깨가 뻐근해질 찰나 드디어 끝난 덕담. 그때 아리따운 사회자의 보드라운 음성. “스님의 ‘감로수(甘露水)’ 같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카, 감로수라. 아리수도 아니고. 살면서 저 말을 생(生)으로 들어보다니. 다들 무덤덤한데 혼자 끽끽거리다 눈총깨나 받았다. 땀 좀 쏟았지만, 덕분에 감로수가 맘에 쏙 박혔다. ‘달고 맛난 이슬.’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묵은 해갈이 풀리는 순간이 있다. 나와 중생을 제도하는 깨달음까지야 바라겠나. 기진맥진한 퇴근길을 반겨주는 가족의 포옹 한 자락. 오랜만에 걸려온 벗의 시끌벅적한 전화 한 모금. 그만한 감로수 찾기 힘들다. 다만 뭐든 넘치면 곤란하지 않을까. 한 포털 사이트엔 ‘감로수 다이어트’가 첫 번째 연관검색어로 뜬다. 흐음, 어찌 쓰건 각자 사정이긴 한데. 살도 살이지만 욕심을 덜어주는 게 진짜 감로수 효능 아닐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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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오늘의 선택은 어떤 내일을 만드는가

    여전히, 적당히 스며든다. 요시다 슈이치 글은 원래가 그랬다. 언제나 그리 쇼킹하거나 묵직하진 않다. 딱히 장르도 구분하기 어정쩡하다. 그럼에도 일단 재밌다. 맛깔스러운 데다 울림이 근사하다. 드디어 다다른 바닷가에 시원하게 발을 담근 기분이랄까. 뛰어들고픈 기대와 물러서고픈 주저가 동시에 뒤엉키는. 어느새 무릎 위까지 젖어가는지도 모른 채. ‘다리를…’도 역시나 그렇다. 이 소설은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이라 줄거리 설명이 애매하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4편으로 구성됐는데, 각자 전혀 다른 주인공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처럼 어찌어찌 이어지는 끈은 있어도 남남이나 다름없다. 물론 2085년 미래를 그린 마지막 편에 가면 꽤나 질긴 실타래라는 게 드러나지만. 어쨌든 하나같이 그리 뚜렷하지도 희미하지도 않은 장삼이사(張三李四)다. 이 양반들, 살면서 누구나 그렇듯,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별것 아니라고 모른 척 지나칠 수도 있는. 하지만 두고두고 가슴에 생채기와 찌꺼기를 남기는 그런 갈림길. 예를 들면 ‘여름’의 아쓰코가 남편을 바라보는 감정이 그렇다. 도의원인 히로키는 도의회에서 여성 의원에게 막말을 하고 친구와 입찰 비리를 저지른 게 분명하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아쓰코로선 어떤 상황이라도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노라 다짐한다. 다행히 남편의 부정도 자기만 눈감으면 그럭저럭 넘어갈 낌새다. 그런데 그러면 괜찮은 걸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맘먹으면 정말 좋은 게 되는 걸까. “문득 언제쯤이면 친구들의 죽음을 불의(不意)의 죽음이라고 여기지 않게 될까. …해를 거듭해 가면 주위에 죽음이 늘어간다. 죽음이 적은 동안은 불의의 죽음이고, 그것이 점점 많아지면 ‘뜻밖의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불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죽음은 불의지만, 만 명의 불의의 죽음은 없다고 친다면, 불의의 반대말은 ‘계획적’이나 ‘당연한’이라는 말이 되는 걸까.” ‘다리를…’은 딱 10년 전 작가가 “자신의 대표작”이라 불렀던 ‘악인(惡人·은행나무)’과 비교해봄 직하다. 등장인물은 예나 지금이나 비릿한 살냄새가 찐득하다. 웬만큼 이기적이고 치사하고 엉성한. 또 그만큼 괜찮은 구석도 지닌. 버스 유리창을 내다보는 기분이 그럴까. 무감하게 흘러가는 바깥 인생과 그걸 똑 닮은 차 안의 자신. 여전히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설키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미묘한 변화도 뚜렷하다. ‘악인’ 속 삶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긴 해도 왠지 파도에 휩쓸린 모양새였다. 사회란 큰 물결이 배출한 쓰레기더미에 짓눌린 듯. ‘다리를…’도 도긴개긴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어떤 힘을 지니며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힘차게 파고든다. 작가가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당시 17세)를 자주 거론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는 수상 이듬해 연설에서 이렇게 얘기했단다. “한 명의 아이, 한 명의 선생님, 한 권의 책, 그리고 한 자루의 펜으로도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아마, 그걸 일깨워도, 세상은 또 머뭇거리거나 돌아설 때가 많을 게다. 평범한 우리네는 대체로 ‘다리’를 건너지 않으니까. 그러나 삶에서 매번 다리를 피한다면 결국엔 섬에 갇히거나 강에 빠지는 건 아닐는지. 그 또한 누군가에겐 선택이었겠지만.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다리를…’은 한 권의 책이다. 이런들 저런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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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을 위한 희생이 그리스도의 가치”… 시복시성 새 길 열려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복음 15장 13절)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내놓은 ‘자의교서(自意敎書)’가 국내외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자의교서란 1484년 인노첸시오 8세를 시작으로, 교황이 자신의 권위에 의거해 교회의 특별하고 긴급한 요구에 응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를 가리킨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주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자주 발표해왔다. 이번에 발표한 자의교서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가 뭘까. 교서 제목은 요한복음에서 따온 것으로,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를 새로운 시복시성(諡福諡聖·복자와 성인으로 추대)의 요건으로 추가했기 때문. 로이터통신은 “기존 기준이 정착된 지 400여 년 만”이라며 “가톨릭 전체 역사에서도 중요한 변화”라고 전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 부소장인 조한건 신부에 따르면 원래 시복시성 단계는 △하느님의 종(Servi di Dio) △가경자(可敬者·공경할 만한 이) △복자 △성인 순. 이번 발표는 정확하게 따지면 ‘하느님의 종’에 오를 길이 늘어난 것이다. 기존 조건은 크게 2가지다. 첫 번째는 일반인도 친숙한 ‘순교자’. 김대건 신부(1821∼1846)처럼 한국에서 배출한 성인 103위와 복자 124위는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증거자’다. 덕행을 통해 신앙을 ‘증거(증명)’했다는 뜻이다. ①영웅적으로 덕행을 실천했거나 ②그에 걸맞은 ‘신성한 명성’을 지녀야 한다. 두 기준은 구분이 애매하나 지난해 성인에 오른 마더 테레사 수녀(1910∼1997)가 전자, 현 교황이 이름을 따온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가 후자의 대표적 사례다. 그렇다면 앞으로 누가 시복될 가능성이 높아졌을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태아를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하다가 출산 뒤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여성 키아라 코르벨라(1984∼2012)가 잘 들어맞는다”고 전했다. 한국에선 그간 국내 첫 증거자로 시복이 추진돼온 최양업 신부(1821∼1861)와 김범우 ‘토마스’(1751∼1787)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조 신부는 “지난해 가경자로 선포된 최 신부는 병사해 ‘땀의 순교자’라 불리고 고문 후유증으로 숨진 김범우는 한국 가톨릭의 첫 희생자”라며 “두 분 다 직접적 순교가 아니라 추진이 쉽지 않았는데 이번 발표로 전망이 밝아졌다”고 설명했다. 2015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된 ‘홍용호 주교와 80위’도 유력 후보다. 이들은 대부분 6·25전쟁 전후 북한 공산정권에 박해를 받다가 피살되거나 옥사 또는 병사했다.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인 장긍선 신부는 “특히 자료가 부족해 순교 입증이 어려웠던 평양교구 24위는 신앙을 꿋꿋이 지키며 목숨을 희생한 성직자의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가톨릭계에선 이번 발표가 지니는 함의도 잘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복시성 역시 결국은 시대적 가치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조 신부는 “누군가를 높은 반열에 올리기보단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들의 삶을 본받자는 의미가 더 크다”며 “과거처럼 순교자가 나오기 어려운 시대에 ‘타인을 위한 희생’ 역시 거룩한 그리스도의 가치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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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불 스님, 인도 방문… ‘간화선’ 전파한다

    수불 스님(안국선원장·사진)이 한국 불교의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 지도를 위해 달마대사의 고향에 간다. 안국선원은 25일 “수불 스님이 인도 기업 ‘TVS모터스’ 베누 스리니바산 회장의 초청을 받아 첸나이시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TVS모터스는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생산하는 인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기업 본사가 있는 첸나이시는 달마대사의 고향으로 알려진 인도 남부의 대표적 도시다. 2014년 부산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스리니바산 회장은 수불 스님과 인연이 깊다. 그는 같은 해 한국 방문 당시 범어사 주지였던 스님을 방문한 뒤 2015년 스님을 인도로 초청해 간화선 지도를 받았다. 수불 스님은 이번 방문 기간 동안 ‘2017 인도-한국문화원 비엔날레’에 참가해 인도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간화선을 지도한다. 안국선원은 “한국 불교가 간직해온 고귀한 인류문화유산인 간화선을 인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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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읽을수록 궁금해지는 ‘웰 메이드’ 막장 드라마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취재차 성형외과를 찾은 서경. 상담에 응해준 의사 조성환에게 왠지 모르게 끌리며 그의 퇴근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동거. 게다가 성환은 그녀를 성형외과에 취직까지 시켜준다. 그런데 이 남자, 한집에서도 손끝 하나 대질 않는다. 사실 서경은 걸그룹 출신으로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여자. 그런데 이 남자 뭐지. 왜 자길 건드리지 않는 거지.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도시 세태의 기록자.’ 소설 뒤표지에 쓰인 이 별칭은 누가 붙였는지 몰라도 정아은 소설가에게 꽤나 잘 어울린다. 헤드헌터의 세계(‘모던 하트’)나 잠실 재건축 아파트(‘잠실동 사람들’)를 그린 전작에서 보듯, 지극히 세속적인 소재를 다루는 데 능수능란하다고나 할까. 술술 잘 읽히면서도 맥을 딱딱 짚는다. 성형외과와 연예계를 다룬 ‘맨 얼굴…’ 역시 이런 강점이 오롯하다. 매끈매끈. 흥미진진. 심지어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착시현상도 벌어진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건지, TV를 보고 있는 건지. 다소 자극적인 소재 탓이겠지만 꽤 수위 높은 막장드라마를 감상하는 기분마저 든다. 살짝 개연성 없는 소재와 에피소드가 뒤섞이는 스타일이 닮았다. 보다 보면 자꾸만 결말이 궁금해지는 것까지. 작가는 여기에 비장의 ‘만두소’도 차려냈다. 얼기설기 벌어진 틈새마다 서경의 심리를 켜켜이 쌓아올린다. 이로 인해 속도감이 살짝 처지긴 해도, 뻔한 막장이 ‘웰메이드 멜로’로 탈바꿈하는 마법을 부린다. 다만 취재를 너무 열심히 한 걸까. 이것저것 다 담으려다 잽만 쏟아진 느낌도 없지 않다. 하긴, 요런 장르는 그래야 볼 맛이 나는 건지도. 어떤 끝맺음이 기다리고 있건 간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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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려가 된 신학생 “緣이란 다 그런것”

    삶은 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17일 오후 경기 고양시 원각사 앞에서 올려다본 하늘도 그랬다. 좀 전까지도 구름 가득 찌푸려 우산을 챙겼다. 근데 막상 당도하니 쨍쨍한 햇볕에 셔츠 깃마저 거치적거린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치려니, 푸른 잔디 곁에 정각 스님(59)이 진작부터 마중을 나와 섰다. 사실 스님만큼 인생의 변환이 극적인 이도 드물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영세까지 받은 그는 누구나 신부가 될 줄 알았다. 허나 군 제대 뒤 철학에 심취하다 불교에 귀의해 1987년 사미계를 받았다. 그리고 불교문헌을 비롯해 고문헌을 수집 보존하는 ‘문화재 지킴이’로 20여 년. 최근 그간의 노고를 집대성한 원각사 소장 고문헌 612점이 담긴 도록 ‘원각사의 불교문헌’(동국대 불교학술원)도 출간됐다. “다 연(緣)이 그렇게 닿았을 따름이지요. 띄엄띄엄 ‘팩트’만 놓고 보면 왜 신부의 길을 걷다 승려가 됐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은 순리 따라 간 겁니다. 그걸 억지로 비틀면 그게 더 ‘사달’이 나는 거예요. 물론 신학교 다닐 때야 짐작조차 못했죠.” 실제 스님은 가톨릭 신앙생활에 오롯이 청춘을 바쳤다. 소신학교를 거쳐 가톨릭대 신학과에서 착실하게 교육을 받았다. 그것도 매주 고해성사할 거리가 없을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마음속 의문이 커졌다. 당시 담임신부였던 최창무 대주교에게 상담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길은 우연히 택시를 타고 “아무 가까운 절이나 가 달라”고 청해 도착했던 서울 성북구 개운사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문선규 전 전남대 교수)는 제가 미학 공부를 하겠다고 할 때부터 반대가 심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사람 모두 제가 신부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고형곤 박사(전 전북대 총장)가 당숙인데 아버지가 여러 차례 고민을 털어놓으셨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깊은 숲속도 길은 어디론가 나 있는 법이죠. 길은 가본 사람들만 그게 길인 줄 압니다.” 고문헌을 비롯한 문화재에 열정을 쏟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억지로 이어붙인 게 없다. 막연히 어린 시절 고고학자를 동경했던 스님은 출가 뒤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계속 공부하고 답을 찾는 건 스님에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창하게 문화재 분야에서 무슨 족적을 남길 뜻은 지금도 없습니다. 그저 배우다 보니 소중한 게 눈에 들어왔고, 소중한 것이니 지켰을 뿐입니다. 불교문헌만 고집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 태극기라든가 독도 지도, 심지어 가톨릭 자료도 허술히 여긴 적이 없습니다. 다 우리 땅, 우리 세월이 깃든 역사니까요.” 그런 스님도 요즘 가슴에 소망을 하나 품고 있다. 그간 모은 보물들을 도록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사찰 옆에 작게라도 박물관 하나를 세우고 싶다. 일신을 위해 모은 돈이 없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 또한 흐르는 대로 내버려둘 요량이다. “생각해 보면 출가 전 절에 가본 거라곤 딱 2번입니다. 중고교 수학여행 때뿐이죠. 그런데도 지금은 소박하나마 버젓이 한 사찰의 주지가 되지 않았습니까. 현재 가진 건 중요치 않습니다. 마음에 무엇을 지녔는가를 봐야죠. 요즘 속인들도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더군요. 근데, 지금 설령 잘못 가더라도 너무 근심에 휩싸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방향만 굳건하면 언젠가 길은 나타나거든요.” 고양=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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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유발 하라리가 풀어낸 인류의 전쟁 경험사

    아, 이렇게 머쓱할 수가.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 그가 누군가.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그 주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끝내주는 글맛의 소유자. 요 책은 또 어떤 장관을 펼쳐놓았을지 당연히 침이 고인다. 그런데…, 책을 펼친 독자는 ‘극한의 (생경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저자가 심취한 거대 담론과 달리 이 책은 전쟁문화사(史)란 비교적 세부 영역에 집중했다. 그러나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중세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지라, 하라리 교수가 가장 잘 아는 분야다.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천의무봉(天衣無縫) 휘젓는 솜씨가 더욱 거침없다. 특히 서구에서 중세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전쟁 회고록을 바탕으로 엮어내는데, 어어 하는 순간 서양 문화의 변천과 근간까지 파고든다. 꽤나 두툼한 책이나 목적지는 의외로 친근하다. 전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경험이다. 이는 개인에게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강력한 변화(혹은 깨달음)를 안긴다. 그런데 여기엔 ‘당연히’ 당대의 시대적 흐름이 반영된다. 신의 섭리가 우선하던 중세엔 전쟁을 숭고한 정신이란 관점에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엔 인본주의나 유물론이 등장하며 참전군인의 감정과 경험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결국 전쟁을 통한 경험을 ‘지식의 습득’이란 틀로 해석하면 인류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 왔는지까지 통찰할 수 있다. 사실 ‘극한의 경험’은 저자가 2008년에 쓴 책이다. 앞서 언급한 두 베스트셀러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쓰였다. 그래서일까. 총기나 매력은 여전하나 다소 논거가 거칠다. 게다가 워낙 보편적이지 않은 소재라 그런지, 뒤돌아서면 뭘 들려주려 했던 건지 살짝 헷갈린다. 호불호야 있겠지만, 하라리 교수는 대단한 필력의 소유자다. 분명 된장찌개 재료인데 뚝딱뚝딱 김치찌개, 아니 똠얌꿍을 내놓는 재주를 가졌다. 그것도 아주 근사하게. ‘극한의 경험’ 역시 신묘하다. 다만 낯선 재료로 만든 이름 모를 요리를 처음 마주한 기분이 이럴까. 이게 맛있는 건지, 아닌지 선뜻 가늠이 어렵다. 원제는 ‘The Ultimate Experience’.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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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발품… 사진 촬영에만 8년… 국내 비로자나불 157좌 모두 담다

    우리 땅 방방곡곡을 비추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빛을 한데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비로자나불은 ‘부처의 진신(眞身·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을 뜻한다. ‘깨달음의 빛-비로자나불’(사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국에 산재한 비로자나불상 157좌 모두를 사진으로 찍고 해석을 곁들인 도록이다. 이 도록은 단순히 기존 자료수집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정확한 숫자 파악도 어렵던 전국의 비로자나불을 일일이 찾아가 현재 모습 그대로 담았다. 정태호 사진작가(스페이스포토스튜디오 실장)는 “전국 사찰과 박물관을 돌며 사진을 찍는 데만 7∼8년이 걸렸다”며 “크기나 현 상태와 상관없이 모든 비로자나불을 대할 때마다 묘한 경외감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도록의 해설 글을 맡은 이숙희 박사(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성을 지닌 모든 비로자나불을 책에 수록했다”며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불상까지 모두 발굴하고 가치를 알릴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도록을 펼쳐보면 국보 제26호인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부터 조성 시기는커녕 문화재 지정도 되지 않은 불상까지 다양한 비로자나불을 만날 수 있다. 정 작가는 “때로 풍파에 휩쓸려 형체마저 희미해진 부처더라도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고 계신지 귀를 기울이며 촬영에 임했다”고 떠올렸다. 19일부터는 출판을 기념한 사진전 ‘깨달음의 빛-비로자나불’도 서울 종로구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다. 이번 출간은 경남 창녕군 영축산 법성사가 10여 년을 공들인 불사(佛事)의 결과물이다. 2005년 작고한 법성사 회주(會主·절의 창건주나 큰 어른)의 유지를 받들어 2008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법성사 주지인 법명 스님은 “외지고 그늘진 곳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법을 설파하는 비로자나불의 뜻을 세상에 전하자는 법성 보살님의 바람을 이제야 이루게 됐다”며 “종교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출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대한불교관음종 총무원장인 홍파 스님(낙산묘각사 주지)은 “비로자나불은 다양한 불상 형태 가운데에도 부처가 세상에 전하는 ‘진리의 빛’을 상징하는 본질이라 할 수 있다”며 “비교적 작은 사찰에서 오랜 세월과 정성을 들여 대단한 업적의 불사를 이룬 것이야말로 참된 선(善)의 길로 칭송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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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사조영웅전 환갑… 강호의 도리는 어디로

    주말 중국 드라마 ‘사조영웅전 2017’을 봤다. 아마 중년들은 무협소설 ‘영웅문’ 1부라고 해야 친근할 터.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 절대고수 5인을 일컫는 이 호칭은 당시 남자 중고교에선 람보나 코만도에 버금가는 아이콘이었다. 근데 이 작품, 참 끈질기게 리메이크된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1976년부터 7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1994년)도 이 소설이 모티브다. 1991년인가, 학력고사가 끝난 뒤 지인의 집에서 비디오로 봤던 기억도 난다. 그 ‘사조영웅전’이 올해 환갑을 맞았다. 1957년 소설로 출간된 뒤 60년 동안 세계적 인기를 누린다. 실은 10년쯤 전 홍콩에서 작가인 진융(金庸) 선생을 인터뷰했었다. 희미하긴 한데 작가는 “난 펜을 잡았을 뿐, 소설은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며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문득 강호의 도리를 논하며 백주(白酒) 한 잔 들이켜고 싶다. 또 이렇게 술자리 핑계가 늘어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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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해 스님 “본질은 어디서나 하나로 통합니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경(經)’이라 하지요. 그건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다룬 겁니다. 저희가 만든 영화 ‘산상수훈’도 마찬가지죠. 그 가르침을 퍼뜨린다는 뜻에서 하나의 ‘영화경’이라 할 수 있겠네요.” 스님은 거침이 없었다. 아니, 되레 거침 있는 걸 이상히 여겼다. 문제가 있으니 풀어봤고, 답이 나왔으니 내놓았다. 그렇게 세상에 영화 한 편을 툭 던진 대해 스님(58·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원장)을 6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만났다. 무심히 던졌으되 물결은 넘실거린다. ‘산상수훈’은 예수의 산상 설교를 일컫는다. 불제자가 기독교 영화를 만들었단 얘기다. 지난달 배우 손현주가 영화 ‘보통사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제39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초청될 만큼 국내외에서 관심이 크다. 왜 하필 스님이 예수의 가르침을 다뤘을까. 스님은 또 한 번 툭 던졌다. “본질은 어디서나 어디로나 통하니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리 이상한가요? 출가의 목적이 뭐겠습니까. 답을 찾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전하는 거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자는 뜻은 하나님이건 부처님이건 같으니까요. 해외에선 제가 불자라는 점에 크게 개의치 않아요. 함께 진리를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교과서’를 만났다고 반가워했습니다. 그게 이 영화를 만든 이유죠.” 대해 스님의 감독 커리어는 상당히 길다. 2007년 단편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시작으로 91편의 중단편을 만들었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영화기구인 유니카(UNICA)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 경력을 쌓아왔다. 장편은 ‘산상수훈’이 처음이지만, 스님은 현지에서 웬만한 거장 못지않은 대접을 받았다. “작품 줄거리는 간명합니다. 신학생 8명이 동굴 안에 모여 진리를 찾아 격렬하게 토론합니다. 그런데 관객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나 봐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함께 자리한 주연 백서빈(33)도 이번 작품을 “너무나 독특한 체험”으로 떠올렸다. 배우 백윤식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 뒤를 이어 모스크바에 초청됐다. 2003년 같은 영화제에서 백윤식이 출연한 ‘지구를 지켜라!’는 감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영광만큼이나 고민도 컸다. “실은 저를 비롯해 연기자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입니다. 때문에 처음엔 감독님 말씀이 잘 와닿지 않았어요. 게다가 동굴에서 보름을 촬영했는데, 13분 동안 혼자 대사하는 롱테이크가 있을 정도로 어려운 장면이 많았어요. 그런데 함께 하나하나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진심으로 이 영화를 대하게 되더라고요. 연기보단 깊은 공부를 한 느낌입니다.” 스님의 공부는 끝이 없다. 2012년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찍었던 스님은 앞으로 부처와 공자를 다룰 예정이다. 4대 성인을 다 훑겠단 뜻이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본질은 같기 때문이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어야 비로소 답도 보입니다. 왜 하필 그게 영화냐고요. 현대사회에서 이만큼 뜻을 전파할 좋은 수단이 어디 있겠어요. 시공간을 초월해 다가갈 수 있는 도구잖아요. 경(經)은 멈춤도 막힘도 없는 겁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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