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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는 본래 비밀외교로 시작됐다. 오늘날의 공개외교가 오히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정보원들은 주로 외교부에 속했다. 각국 대사관 직원은 정보의 최전선이었다. 공개외교가 대세를 이루면서 정보기관이 외교부에서 독립하기는 했지만 오늘날에도 중요한 외교 무대의 막후에서는 늘 외교부와 정보기관이 함께 펼치는 비밀외교가 펼쳐진다. ▷북-미 정상회담의 길을 닦는 미국 측 두 주요 실무자가 모두 한국계다. 먼저 중앙정보국(CIA)에서 한국지부장 출신의 앤드루 김 코리아임무센터장이 나서 회담의 발판을 깔았고 이번에는 국무부에서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나서 실무회담을 벌이고 있다. 앤드루 김은 서울고 1학년 때 이민 가기 전 한국 이름이 김성현이다. 미국명을 따로 갖기 전까지는 성현 김이었고 일상에서는 미들네임을 생략하는 관례를 따라 성 김이라 불렸다고 하니 두 ‘성 김’의 활동에 싱가포르 회담으로 가는 청신호가 켜질지 말지가 결정된다. ▷성 김 대사의 풀네임은 영어로 ‘Sung Yong Kim’이다. 그는 따로 미국명을 만들지 않고 중학교 1학년 때 이민 가기 전에 쓰던 한국명 김성용을 그대로 쓰고 있다. 성 김 대사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낼 당시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이 김성환, 그 밑의 2차관이 김성한이던 때가 1년 남짓 있었다. 당시 미국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한미 양국에서 ‘성 김’이 판을 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성 김 대사가 한국통인 건 분명하지만 근무지인 마닐라를 떠나 홀연 판문점과 서울에 나타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앤드루 김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날 때 유일한 미국 측 배석자로 깜짝 등장했다.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미국 방문길에 안내를 맡을 적임자도 그다.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린다면 두 ‘성 김’은 역사에 남을 외교 드라마의 진정한 연출자였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미국의 각 지방 연방검찰청에는 단 1명의 검사가 있을 뿐이다. 가령 영화 ‘쓰리빌보드’의 배경인 미주리주에서 강간살인 사건을 다루게 될지도 모를 미주리주 서부 연방검찰청에 검사(District Attorney)는 티머시 개리슨 씨뿐이다. 이 검찰청에는 어토니(Attorney)로 불리는 사람이 50명이 넘지만 이 사람만이 온전한 의미에서의 검사이고 나머지는 부검사(Deputy District Attorney)이거나 검사보(Assistant District Attorney)일 뿐이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공화국 검사(Procureur de la R´epublique)’라고 한다. 그 밑의 차장검사 부장검사 검사는 말이 검사일 뿐이지 모두 ‘공화국 검사’의 대리(代理·substitut)에 불과하다. 그리고 검사의 행위는 모두 검사 개인이 아니라 ‘검찰의 이름으로(au nom du parquet)’ 이뤄진다. 귤이 바다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우리나라의 일부 검사들은 대한민국에 2000명의 독립된 검사들이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2500명의 독립된 판사가 있다는 말은 가능하지만 2000명의 독립된 검사가 있다는 말은 불가능하다. 판사는 독립해서 재판을 하지만 검사는 독립해서 수사하지도 기소하지도 못한다. 실은 지방검찰청 단위에서 보면 전국에 지방검사장이라고 불리는 15명의 검사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는 말하자면 검사에 대한 정명(正名)이 제대로 된 나라다. 정명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은 정명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귤을 탱자로 만드는 이유다. 우리도 한 지방검찰청에서 법원에 대응할 검사는 한 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나머지는 부(副)나 보(補)를 붙여 불렀다면 평검사가 부장검사 지시를 어기고 맘대로 구형을 하거나 구속영장을 치고, 검사장에게 외압 운운하며 맞짱 뜨는 풍조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바로 판사로 임용하지 않는다. 판사보로서 10년을 지내게 하고서야 판사로 임용한다. 판사보들이 주로 지방법원 배석판사를 한다. 우리나라도 지방법원의 합의는 사실상 배석판사들이 부장판사와 동등한 입장에서 합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한 합의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일본처럼 판사보 정도로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독립해서 재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판사라고 부르니 판사가 다 된 것처럼 착각하고 10년도 안 된 판사들까지 사법행정권을 갖겠다고 날뛰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본은 검사의 경우 임용하자마자 바로 검사로 부르는 대신 검찰청법으로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지휘감독 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 독일이 같은 방식을 택한다. 미국 프랑스의 방식을 택하든 한국 일본 독일의 방식을 택하든 검사동일체 원칙은 어느 나라에나 다 통용되는 원칙이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도 충돌하는 생각들이 교차하는데 왜 조직에 의견 차이가 없겠는가. 다만 상하 간의 의견 차이는 내부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도 조율이 안 되면 상급자의 뜻을 따라야 한다. 하급자가 자신의 의견을 외부로 표출해 관철시키려 하는 것은 자신을 판사로 착각한 황당한 검사나 할 짓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강조할수록 검찰 조직의 최상부에 위치한 검찰총장에 대한 신뢰 확보가 중요해진다. 우리나라 검찰총장은 대통령 지명만으로 임명되는 결함이 있다. 최근 미국 상원에서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내정자에 대한 인준 투표가 찬성 54표, 반대 45표로 가결됐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모든 고위직에 대해 상원이 인준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상원 인준은 우리나라의 국회 임명동의와 거의 같은 구조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의 제왕화를 막기 위해서는 검찰총장을 비롯해 경찰청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개헌에서 권력구조 개편의 최소한이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이런 요구를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뻔뻔하게 의결시한인 24일까지 국회 표결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야당도 국회가 국무총리 선출권을 가진 대통령제 운운하면서 권력구조를 통치 불가능의 짬뽕으로 만들려 했다. 정부와 여당은 좀 더 양심적이 되고 야당은 좀 더 현실적이 될 필요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백아(伯牙)라는 거문고 명인에게는 종자기(鐘子期)라는 친구가 있었다. 백아가 높은 산에 오르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켜면 종자기는 ‘태산이 눈앞에 우뚝 솟은 느낌’이라고 말했고, 도도히 흐르는 강을 떠올리면서 켜면 ‘큰 강이 눈앞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한탄하며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 부르는 것은 이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다. ▷김정주 NXC 대표로부터 넥슨 주식을 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에 대해 어제 파기환송심에서 뇌물 무죄가 확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30년 지기’인 두 사람을 보통 친구 사이를 넘어선 ‘지음’이라고 부르며 그 정도로 친한 사이에서 “진 전 검사장이 검사의 직무와 관련해 김 대표에게 금전을 제공받았다면 개별적 직무와 대가 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보험성 뇌물’은 인정하지 않았다. ▷진 전 검사장은 남들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비상장 주식을 1만 주나 매입할 기회를 제공받고 그 매입마저 제 돈이 아니라 김 대표 돈으로 했다. 실은 항소심조차도 주식 매입 기회 자체는 뇌물로 보지 않고 매입 자금만 뇌물로 봤으니 법정의 정의는 애초 일반인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법원은 매입 자금마저 공소시효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진 전 검사장은 주식 매입 자금으로 김 대표에게 4억2500만 원을 빌린다고 해놓고 갚지도 않았다. 주식은 대박이 터져 11년 만에 팔아치웠을 때 차익이 126억 원에 이르렀다. 진 전 검사장은 대한항공을 압박해 처남에게 일감을 몰아준 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긴 했지만 126억 원은 고스란히 손에 쥐었다. 두 사람은 장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할 만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친구였는지는 몰라도 그 관계는 결코 지음이라고 할 수 없고 그 판결도 정의라고 할 수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핵주먹’으로 불린 전 헤비급 세계권투챔피언 마이크 타이슨이 “사람마다 그 나름의 계획이 있지만 주둥아리를 한 방 맞고 나면 계획이고 뭐고 다 사라지는 법(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이라며 자신의 한 방을 자랑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하면서 쓴 책 ‘불구가 된 미국’에서 그대로 갖다 쓴다. 트럼프는 지금 북한 김정은이 한 방 맞고 코피가 터질 것 같으니까 고분고분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도 벼랑 끝 협상에는 노하우가 쌓일 만큼 쌓여서 상대가 거친 말부터 할 때는 가능한 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니 그 이상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싸울 의지 없이 거친 말을 앞세우는 구두쇠들은 돈 안 들어가는 협상을 시작하면 자기 계획대로 된 것처럼 좋아한다는 것까지 꿰뚫어 보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은 두 번 속았다. 제네바합의로 북한에 한 번 속았고 6자회담에 헛된 기대를 걸었다, 미국은 이번에도 속을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의 사업가처럼 트럼프도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는 성과를 못 내는 사람을 견디지 못하고 ‘넌 해고야(You are fired)’라고 말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선 더 참지 못하리라는 건 분명하다. 헨리 키신저의 책 ‘외교’는 명저이긴 하지만 ‘강대국주의’적 사고로 약소국의 희망 따위는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대목에서는 냉혈함이 느껴진다. 그는 한국전쟁에서 더글러스 맥아더가 평양∼원산 선 이북으로 치고 올라간 것을 실수라고 지적한다. 그것이 단순히 군사전략적 실수라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한반도 북쪽 지역에 대한 중국의 헤게모니를 인정해야 한다는 고약한 함의가 들어 있다. 트럼프가 역사에 도대체 관심이라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동아시아 역사에 무지한 건 분명하다. 지난해 트럼프는 워싱턴에서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반도가 과거 중국의 일부였다더라”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말했다. 그는 과거 중국과 주변국의 조공(朝貢)관계가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의 관계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차이를 ‘도 아니면 모’인 트럼프에게 긴 시간을 설명한다 한들 이해시킬 자신이 없다. 트럼프는 지난달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는 말을 했다.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할 때는 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런 사실을 몰랐다가 최근에야 알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휴전상태를 종전상태로 바꾸는 건 돈 한 푼 안 드는, 아니 오히려 들어가는 돈을 아끼는 길인데도 ‘멍청한’ 전임 대통령들이 방치해왔고, 관료들이 쓸데없이 생각을 복잡하게 해 과거의 상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키신저는 ‘외교’에서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소련 붕괴 이후 미국에 유일한 초강대국의 위상이 부여됐는데도 이에 현혹되지 않고 미국이 강대국 중의 하나로 자리잡아야 할, 당시로서는 보이지 않은 미래에 적응해갔다. 이후 9·11테러가 발생하고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을 감행하면서 일탈이 있긴 했지만 큰 흐름에서 보면 초강대국으로부터의 후퇴는 계속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었던 ‘전략적 인내’도 그런 후퇴를 보여준다. 키신저 식 외교는 강대국들끼리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통해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18, 19세기 유럽 대륙의 외교에 모델을 두고 있다. 그에게는 이것이 모범적인 현실주의 외교다.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이 공산주의 소련과의 경쟁과정에서 추구했던 가치외교는 냉전 이후 쓸모가 없어졌으며 몇몇 강대국끼리의 협상을 통해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현실주의 외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에 적용될 때 분단을 계속 연장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간혹 키신저를 만나 조언을 듣는다. 키신저의 강대국주의와 트럼프의 ‘돈 안 드는 전략’이 한반도에서 교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 틈을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고 싶어 하는 문재인 정부가 파고들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큰 기러기와 고니에 비유해 큰 뜻을 지칭하는 홍곡지지(鴻鵠之志)는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사자성어다. 진나라를 무너뜨린 진승은 출신이 천한데도 명구(名句)를 잘도 토해내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王侯將相寧有種乎), 제비와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어찌 홍곡의 뜻을 알리오(燕雀安知鴻鵠之志哉)’ 등 신분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말이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한다. ▷중국 베이징대의 린젠화 총장이 4일 개교기념식에서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훙후(鴻鵠)를 훙하오(鴻浩)로 잘못 읽어 구설에 올랐다. 그는 “베이징대 학생은 스스로 분발해 홍곡지지(鴻鵠之志)를 세워야 한다”고 말할 시점에 잠시 머뭇거린 뒤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떠올렸는지 홍호지지(鴻浩之志)라고 말해 버렸다. 그는 다음 날 “중학생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정상적 교육을 받지 못해 실수를 했다”고 사과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총리 시절 ‘한자 못 읽는 총리’로 조롱받았다. 그는 2008년 모교인 가쿠슈인(學習院)대를 찾아 강연하면서 “중일(中日) 간에 이만큼 빈번히 정상이 왕래한 적이 없다”는 대목의 일본식 표기 빈번(頻煩)을 한자쓰(煩雜·번잡)라고 잘못 읽었다. 일본에서 한자는 훈독과 음독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실수하기 쉽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빈(頻)이란 한자를 읽지 못한 것이 분명했나 보다. ▷우리나라는 한자도 한글로만 쓰는 문화가 돼 버려 뜻을 모를지언정 한자를 잘못 읽는 실수는 드물다. 다만 교수 출신인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달 검경 수사권 관련 발표를 하면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구존동이(求存同異)로 잘못 말해 뜻을 알 수 없게 만들었는데도 그대로 받아쓴 언론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과거 일본식 B급 한자로 의심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이란 말도 썼다. 목적어가 동사 뒤에 나오는 한자의 문법을 안다면 이런 엉터리 한자는 쓰지 않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카를 마르크스는 200년 전인 1818년 5월 5일 독일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5일 트리어에서 가장 주목을 끈 행사는 중국이 기증한 5.5m짜리 거대한 마르크스 전신 동상의 제막식이었다. 동상은 트리어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고대 로마 유적 포르타 니그라 인근에 세워졌다. 마르크스가 태어난 곳이지만 그동안 마르크스 동상 하나 없었다는 것이나 이제야 세워지는 마르크스 동상이 중국 조각가의 손길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 트리어는 우연찮게 중국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됐다. 이 관계는 2000년 이후 중국인 관광객들이 유럽을 찾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오늘날 트리어에는 매년 이곳 인구 10만 명보다 50%나 많은 15만 명가량의 중국인 관광객이 찾는다. 트리어는 유럽 대륙의 관문인 프랑스 파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부터 모두 멀다. 모젤강가의 가파른 언덕은 에곤 뮐러의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같은 고급 와인을 만들지만 고속열차의 접근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그런 곳이 중국인 유럽 단체관광의 필수 코스처럼 돼 있다. 마르크스 생가는 지난해 한국 촛불시위대에 인권상을 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오래전에 사들여 마르크스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르크스 생가를 방문한 중국인들은 대개 입장료가 드는 기념관에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떠났다. 중국 정부의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때 중국인 한국 단체관광이 싹 끊긴 데서 알 수 있듯이 단체관광에는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다. 중국인의 유럽 단체관광은 트리어를 끼워넣어야 허가가 잘 난다고 한다. 그런 반(半)강제적 관광이니 굳이 기념관까지 들어가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트리어 시내의 갤러리 ‘카센바흐’의 주인 이름은 카를로스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 집안과 관련이 있느냐고 하니까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트리어에는 마르크스란 성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그는 “트리어 주민들은 중국인 관광객을 반길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은 중국과 트리어가 자꾸 연결되는 데다 현실적으로는 중국인 관광객이 트리어에 1시간 정도 머물다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관광수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 마르크스는 겨우 30세이던 1848년 ‘공산당 선언’을 썼다. 베를린에 있는 독일역사박물관에는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독일어로 발행한 ‘공산당 선언’ 초판이 전시돼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Ein Gespenst geht um in Europa)’로 시작하는 첫 장이 펼쳐져 있다. 그 책의 마지막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Proletarier aller L¨ander, vereinigt Euch!)’는 구호로 끝난다. 독일어에 포어매르츠(Vorm¨arz·3월 전)라는 말이 있다. 1848년 3월 혁명에 이르는 전까지의 정치적 요동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프러시아 정부가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세력을 탄압하고 그에 반발해 독일의 중북부 도시에서 입헌체제 수립 운동이 벌어지던 때다. 마르크스가 태어난 트리어와 그가 공부한 본은 모두 베를린의 프러시아 정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 시대의 정치적 풍운아가 태어나기 가장 적합한 장소였는지 모른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이라는 정치적 팸플릿을 먼저 내고 그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자본론’을 런던에서 쓰다가 죽었다. 오늘날 경제학자 중에 자본론을 진지하게 연구할 경제학 책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자본론을 나 같은 386세대는 소련이 멸망하고 난 후에까지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머리를 싸매던 시절이 있었다. 함부르크에서 마르크스 200주년을 앞두고 3일간의 학술대회가 열렸다. 중심이 되는 발표는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계승해 비판이론을 펼친 프랑크푸르트 학파 3세대의 좌장인 악셀 호네트가 한 강연이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다이내믹: 마르크스주의의 위대함과 한계’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마르크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를 이해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다이내믹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한계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20세기 후반 독일 엘베강 동쪽의 유라시아 대륙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동유럽의 소련 위성국가들로부터 러시아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과 북조선까지 유라시아 대륙 끝단의 한반도 남쪽을 제외하고는 공산주의가 휩쓸었다. 그 공산주의는 1990년 소련의 붕괴로 몰락했다. 유령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유령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을 배회하고 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유령이다. 중국 정부가 4일 마르크스 출생 2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렀다. 독일의 중국학자 제바스티안 하일만은 시진핑의 사회주의를 ‘디지털 레닌주의’라고 명명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획경제는 실패했으나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의 도움을 받는 중국의 계획경제는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적 사고가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민주화의 기대에서 멀어져 집단지도체제에서 단일지도체제로 회귀한 것도 이런 망상에 기인한다. 그 망상 속에 북한이 들어있고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형이다.▼ “마르크스는 서구적 사상가, 중국과는 거리 멀다” ▼트리어대에서 23∼25일 열릴 마르크스 2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준비를 총괄하는 크리스티안 얀센 역사학 교수(사진)를 만났다. ―트리어 주민은 트리어가 마르크스의 출생지임을 자랑스러워하는가.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한다. 많은 관광객이 마르크스의 출생지라는 점 때문에 이곳을 찾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의 사고가 러시아와 중국, 북한에 영향을 줬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도 갖고 있다. 내 의견으로는 이미 1883년에 죽은 사람에게 20세기에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이 마르크스 저작의 일부를 성서처럼 여긴 것이 문제다. 마르크스의 글은 리버럴한 것도 있고 폭력적인 것도 있다. 그는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용구는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다.” ―왜 독일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트리어에서 19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사상가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는 서구적 사상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쪽 프러시아를 싫어했다. 그는 트리어, 본, 파리, 브뤼셀, 런던에서 살았고 베를린에서는 아주 잠깐 공부했을 뿐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큰 오해가 하나 있다. 마르크스를 러시아 중국 등 동방과 관련짓는 것이다. 그는 계몽주의, 그리스 철학, 유대교와 가톨릭의 서구적 전통 속에 있었다. 트리어는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815년 프러시아에 귀속됐다. 그 때문에 프랑스에서 1848년 혁명이 일어나 유럽으로 번져갈 때 트리어에서도 강력한 반프러시아적인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마르크시즘은 총체성(Totalit¨at)을 추구했다. 베버는 총체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베버에게는 경제학이 없다. 역사와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가. “철학자들은 칸트와 헤겔처럼 총체적 이론 체계를 추구해 왔다. 마르크스는 그런 이론 체계를 세우고자 추구한 마지막 학자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확고한 체계를 세우기에 현실은 너무 복잡하다. 다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가 그것을 말한 19세기에는 아무도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지 않았다.” ―많은 중국인이 트리어를 찾는다. 소련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국민은 중국인이 유일한 듯하다. “중국 체제는 유교와 마르크스주의의 혼합체다. 중국인은 자신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여기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교는 마르크스가 상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마르크스는 한번도 공산주의 혁명이 러시아와 중국에서 올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에 위배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최근 ‘쓰리 빌보드’란 영화를 흥미롭게 봤다. 이 영화는 미국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진짜 범인은 잡지도 못하면서 흑인들이나 두들겨 패는 경찰의 무능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경찰의 명예를 지키는 것으로 끝난다. 무능한 경찰이 갑자기 유능해지는 식의 상투적 결말로 흐르지 않으면서 미국 시민이 경찰에 대해 갖고 있는 오래된 저변의 신뢰를 보여준다. 미국 경찰은 수사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 경찰관은 피의자를 기소하면 유죄를 받을 수 있을지 보장을 얻기 위해 검사라는 국가 변호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마치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법률 지식 자체가 혐의를 결정하는 복잡한 사건에는 검사가 수사권을 갖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수사는 경찰의 몫이고 검찰은 예외적으로 수사할 뿐이다. 검사는 경찰관이 들고 온 사건을 검토해 기소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컴플레인트(Complaint)라는 문서를 작성한다. 중요한 점은 이 문서의 작성명의인이 검사가 아니라 경찰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검사는 기소를 결정하지도 않는다. 기소는 시민들로 구성된 대배심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검사는 대배심에 컴플레인트를 제시할 뿐이다. 다만 혐의자가 대배심에 의한 기소를 원하지 않을 때 보충적으로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 국가이니까 미국과는 다르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대륙법계인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령군 수장으로 온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시행한 가장 중요한 5가지 정책 중 하나가 경찰에게 독자적 수사권을 준 것이다. 맥아더는 통일적 국가기관인 검사가 경찰까지 일괄 지휘하게 되면 민주화와 지방분권은 요원하다고 보고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을 줬다. 물론 이때 경찰은 검찰과 달리 통일적인 하나의 경찰이 아니라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이 수사권을 나눠 갖는 분권적 경찰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일본의 검찰과 경찰은 신뢰도가 높은 조직이 됐다. 일본 경찰은 검찰을 거치지 않고 체포영장을 독자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구속에 해당하는 구류는 일본에서도 검찰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피의자를 체포하지 않으면 구류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는 체포전치(前置)주의를 택하고 있는데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한 후 구류영장을 신청해 기각되는 사례가 없다. 검찰이 기각할 수 없지 않은데도 기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동등한 영장청구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만드는 단 하나의 요인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수사지휘권은 물론이고 직접수사권에 영장청구권 수사종결권까지 갖고 기소권까지 독점하는 검찰을 들겠다.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독일만 해도 연방검찰과 주검찰이 나뉘어 있으나 우리나라 검찰은 전국을 통할하기까지 한다. 이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가진 검찰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런 권한을 휘두르며 산 권력에는 한없이 자비롭고 죽은 권력에는 한없이 잔인한 검찰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는 한 제왕적 대통령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일본과 한국 신문을 펼쳐보면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신문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 수사는 대부분 경시청이 주어로 돼 있고 한국 신문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 수사는 대부분 검찰이 주어로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드루킹 사건’으로 경찰이 모처럼 주요 사건 수사를 맡았으나 역시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로 비판받고 있다. 실은 오만 가지 수사에 개입하던 검찰이 여기서만 유독 뒷짐을 지고 있는 것 자체가 꿍꿍이가 없지 않아 보인다. 걱정되는 것은 검찰이나 경찰이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시각이 확산돼 검경수사권 조정이 흐지부지될까 하는 것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못하니까 경찰에 권한을 줘보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외딴 갈라파고스섬에나 있을 법한 괴물 검찰의 권한 독점을 깨 검찰의 것은 검찰에, 경찰의 것은 경찰에 줘서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검경수사권 조정의 핵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옹호하면서 사용한 ‘실패한 로비’라는 표현은 책에 돈 봉투를 넣어 줬으나 당사자가 그대로 다시 돌려줬을 때나 사용하는 표현이다. 피감기관이나 피감기관도 아닌 민간은행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갔다 와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실패한 로비가 아니라 그냥 얻어먹고 입 닦은 것이다. 얻어먹고 뭔가 해주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더 못한 것은 얻어먹고도 입 닦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여비서까지 데리고 가서 얻어먹었고, 알고 보니 여비서도 아닌 여자 인턴이었다. 얻어먹고 뭔가 해주지도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얻어먹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마음 약한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런 소심함이 일상에서 정의(正義)의 토대가 된다. 실제로는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가서 얻어먹었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김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돈으로 미국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당시 KIEP가 요청했던 유럽사무소 예산을 국회 심의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서 김 대변인의 ‘실패한 로비’라는 변명을 불렀으나 나중에 본인 해명으로는 예산심사보고서에 부대의견으로 절충안을 달아 추후 약 3억 원의 예산이 배정되는 길을 연 것으로 드러났다. 김 원장이 야당 간사로서 KIEP 돈으로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여당 간사였던 김용태 의원은 “당시 KIEP에서 여야 간사를 모시고 출장을 가자고 얘기해 거부했다”며 “우선 피감기관 돈으로 정무위원이 출장을 가는 게 말이 되지 않고 기간도 열흘이나 돼 안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 출장을 김 원장은 비서도 아닌 인턴을 데리고 갔다. KIEP 같은 연구기관은 배정된 예산이 적어서 국회에서 조금이라도 예산이 깎이면 타격이 크다는 약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얻어먹고 뭔가 해주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얻어먹고 입 닦는 것은 인간적으로 못할 일이지만, 얻어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라고 하는 것은 더 나쁘다. 내가 너를 해코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데 해코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라는 것이다. 이때 약자 쪽에서 해코지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대접을 좋게 의전(儀典)이라고 한다. 김 원장은 의원 시절 피감기관인 한국거래소(KPX) 돈으로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정부가 단지 주식을 갖고 있는 민간은행인 우리은행 돈으로 중국과 인도 출장을 다녀왔다. 국회는 감사에 필요한 예산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피감기관이나 민간은행의 예산 집행을 감사하는 데 피감기관이나 민간은행의 돈을 쓰면 그런 감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 그보다 더 나쁜 게 있다. 자기는 얻어먹고 다니면서 남들은 얻어먹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의원 시절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통과에 앞장섰으나 KIEP 출장과 우리은행 출장은 김영란법이 통과된 뒤에 이뤄졌다. 자기는 의원이 돼 얻어먹을 대로 다 얻어먹으면서 공무원들은 직무 관련성이 있으면 밥 한 그릇, 커피 한잔 얻어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는 남들이 얻어먹고 다니는 데는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했다. 김 원장은 의원 시절 국정감사 당시 한국정책금융공사 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투자 기업에서 출장비를 지원받은 것을 두고 “로비나 접대의 성격이 짙다”고 맹렬히 비난한 바 있다. 김 원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1년간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이 대기업이 어디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 누구보다 대기업을 비판해온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대기업 돈을 받아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는 건 모순적이다. 김 원장이라고 변명할 말이 없지 않을 텐데 너무 깎아내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시민운동가나 의원 중에 이보다 더한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문성이 뛰어나서 금감원장이 된 것은 아니다. 자질이 있다면 도덕성일 텐데 도덕성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기대에 못 미치는 데 대한 실망감은 더 크다. 삭제해 버리고 싶은 장차관급 명단에 이름 하나를 더 올릴 수밖에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언론에서는 유명인의 부고기사를 미리 써둔다. 너무 일찍 써두는 바람에 쓴 기자가 먼저 죽는 경우도 있다. 뉴욕타임스(NYT)의 영화연극 기자인 멜 거소는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부고기사를 미리 써두고 2005년 사망했으나 테일러는 정작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산 사람을 두고 부고기사를 써둘 수 있는 것은 부고기사가 실은 죽음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삶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뜻밖에 유관순 열사의 부고기사가 순국 98년 만에 최근 NYT에 실렸다. NYT는 1851년 창립 이래 자사의 부고기사가 백인 남성에 치우친 데 대한 반성으로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간과된 여성 15명의 부고기사를 기획 시리즈로 싣고 있다. 동양 여성은 유관순을 포함해 청(淸) 말 중국 최초의 여성 혁명가 추근(秋瑾), 볼리우드 개척시대에 인도의 메릴린 먼로로 불린 여배우 마두발라 등 3명이다. ▷NYT는 영국 작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일으킨 반향을 그의 생전에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 영어권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설을 쓴 주인공의 부고기사를 쓰지 않았다. 부고기사를 놓친다는 건 신문사로선 뼈아픈 일이다.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해 부고기사를 놓치는 경우보다는 그 인물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놓치는 경우가 더 뼈아프다. ▷3·1운동으로 7000명이 사망하고 4만6000명이 체포돼 수감됐다. 수많은 희생자 속에 유 열사는 사망할 당시만 해도 널리 알려지지 않다가 광복 후에야 소설가 전영택의 발굴에 힘입어 비로소 널리 알려졌다. 식민시대의 ‘간과’를 견뎌내고 뒤늦게나마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평가받게 된 것은 다행이다. 선조들의 위대한 희생이 있었기에 내일로 창간 98주년을 맞는 동아일보도 태어날 수 있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청와대는 시원했을지 모르지만 국민은 답답했다. 청와대가 정말 국회 통과를 목표로 했다면 논란거리가 수두룩한 개헌안은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통과도 되지 않을 개헌안이니까 대통령의 생각이나 맘껏 펼쳐 보이자는 것 같았다. 대통령의 생각이란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개헌안 중 ‘국회 의석은 투표자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한다’는 조항은 사실상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견제하려면 국회에 소선거구제에 바탕을 둔 거대 양당이 있어야 한다. 국회에 군소정당이 난립할 수 있는 선거제를 도입하자고 하면서 대통령제는 거의 현행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국회의 권력을 약화시켜 대통령의 권력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두 제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자신의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의 개헌안은 의미가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국회의 국무총리 선출권이나 추천권을 요구했으나 청와대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 변형된 의원내각제”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거부든 수용이든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논의를 위한 진전이다. 국회가 총리 선출권이나 추천권을 갖게 되면 사실은 이원정부제가 된다. 현행 헌법처럼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영역이 겹치고 총리가 ‘만인지상(萬人之上) 일인지하(一人之下)’인 상황에서 국회의 선출이나 추천으로 권한이 강화된 총리가 대통령과 대립한다면 효율적 국가 운영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통령의 권한은 무엇이고 총리의 권한은 무엇인지 구별해야 하는 문제가 따른다. 대통령은 외치(外治), 총리는 내치(內治)로 구별한다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간단하지 않다. 그것을 미리 정하지 않고 총리를 선출하거나 추천하자고 말하는 건 무의미하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누구 말대로 ‘20년 더 집권할’ 자신이 있어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는 시늉만 하고 넘어가고, 한국당은 그렇지 못해 분권형 총리에 목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 상황이란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다. 민주당이 참패해서 또 다른 정치보복의 쓴맛을 볼 날이 올 수도 있고, 한국당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정치 불능 시스템에서 헤맬 수도 있다. 헌법은 승자가 돼도 패자가 돼도 당당히 뛰어놀 수 있는 중립적인 그라운드로 여겨야 한다. 여당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통령 개헌안보다 더 내놓아야 하지만 야당도 총리 문제에서 반드시 승부를 보려 해서는 안 된다. 국회에 총리 선출권이나 추천권을 주지 않아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할 다른 대안들이 없지 않다. 국회 인사청문 대상일 뿐인 장관들과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을 국회 임명동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도 그런 대안 중 하나다.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장관을 비롯해 중앙정보국(CIA) 국장,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 고위 공직자를 모두 상원의 인준을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인준이 임명동의에 가까우냐, 인사청문에 가까우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정치문화의 차이를 고려할 때 임명동의는 한국식 인준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총리를 제외하고는 장관 등 행정부 요직에 대한 의회의 통제가 부족했기에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것이 개헌 요구에 이른 요체다. 이런 반박이 가능하다. 총리와 감사원장은 현재도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지만 독립적인가. 임명은 국회 동의를 얻어 해도 해임은 대통령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독립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문화는 더뎌도 발전하고 있어 당파성이 강한 인물이 총리나 감사원장이 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중남미 국가는 미국과 유사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제도만으로 되지 않는 정치문화적 요소가 있다. 정치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소용없다. 30여 년 만에 개헌이란 거대한 판을 벌여놓고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1987년에는 권력을 쥔 쪽이 망해버렸고 지금은 권력을 쥔 쪽이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 야권이 욕심을 버리고, 거부하지 못할 대의(大義)에 호소하지 않으면 개헌은 성공하기 어렵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시진핑은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에, 시진핑의 오른팔인 왕치산은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됐다. 왕치산은 지난해까지 중국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1인이었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68세가 정년’이란 관례에 따라 은퇴했으나 5개월 만에 돌아온 것이다. 전국인대에서 7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옆에 나란히 앉아 관례에 없는 사실상 ‘제8의 정치국 상무위원’임을 분명히 했다. ▷스탈린에게는 베리야가 있었다. ‘스탈린의 개’라고 불렸다. 스탈린 시대의 잔혹한 숙청은 베리야가 주도했다. 시진핑에게는 왕치산이 있다. 시진핑과 같은 태자당 출신이면서 5년 선배인 그는 ‘시진핑의 저승사자’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왕치산은 시 주석 1기 당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를 맡아 부패 척결을 빌미로 저우융캉 등 시진핑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집단지도체제를 깨고 마오쩌둥 시대의 단일지도체제로 돌아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왕치산은 선출된 뒤 시진핑과만 악수하고 리커창 총리와는 악수를 하지 않았다. 2인자는 리 총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과시한 것이다. 시진핑은 2970표 중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왕치산은 반대표가 한 표 나왔다. 반대표 숫자까지 짜고 친다는 전국인대다. 시진핑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헌법 조항이 반대표 2표가 나온 것과 비교하면 헌법보다 위다. 왕치산은 헌법 선서를 한 뒤 주먹으로 연단을 내리쳤다. 그는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팬이다. 드라마 주인공이 강함과 결의를 보여줄 때 테이블을 두 번 치는 습관을 따라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마오 시대는 저우언라이라는 2인자가 있었다. 장쩌민 시대에는 후진타오라는 후계자, 후진타오 시대에는 시진핑이라는 후계자가 있었다. 시진핑은 후계자를 없애버린 것이 마오와 비슷하다. 2인자만이 가능한 시대다. 저우는 외교를 맡았다. 왕치산도 외교를 맡아 시진핑 장기 집권의 토대를 닦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터프한 굴기(굴起) 외교가 눈에 그려진다. 한반도 정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장이라도 무력을 행사할 것처럼 북한을 위협해왔다. 위협은 때로는 거친 발언이었고 때로는 군사력 시위였고 때로는 ‘코피’ 전략에 반대한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후보자의 내정을 철회하는 것과 같은 인사 조치였다. 그런 전략이 북한 김정은에게 통해 대화에 나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한미 군사훈련은 해도 좋다고 통 크게 말한 김정은이다. 그를 대화에 나서게 한 건 경제제재라는 분석이 꽤 설득력 있다. 트럼프의 위협이 잘 통한 건 오히려 문재인 정부다. 정부는 일본이나 미국 하와이가 하는 전쟁 대비 훈련은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싸움꾼처럼 보이지만 경제적 이익에 관해서는 지독해서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실제 전쟁은 누구보다 꺼린다. 그의 책 ‘협상의 기술’을 읽어보면 거칠게 말하는 것은 실은 진짜 싸움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어서다. 트럼프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무력행사는 북한의 ‘코피’를 터뜨리는 정도다. 그거라도 할 수 있을지 논란이 있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식 무력시위의 이중성을 보지 못하고 전쟁의 전(前) 단계로만 보려 했다면 성급했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개발사업에서는 잘 통했으나 안보에서도 통하는지 불안했던 트럼프식 협상 기술의 효용성을 입증하고 싶어 하던 그에게 북한과의 회담은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었다. 한국 특사단이 ‘트럼프님께서 주도한 압박이 주효해 어쩌고저쩌고’ 하니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5월까지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답했다. 그 자리에서 말했다고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미국 정상이 북한 지도자를 만나주는 것 자체가 미국이 오랫동안 아껴온 카드인데 함부로 썼다는 느낌이 든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백악관이 발표하지 않고 한국 특사단이 미국 기자들 앞에서 직접 영어로 발표하도록 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한국이 주선했으므로 그 성공도 한국이 책임지라는 뜻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1월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유도에서부터 무려 5개월의 시간을 핵 프로그램 완성을 목전에 둔 북한에 벌어준 책임이 오롯이 문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나쁜 결과는 남 탓으로 돌릴 준비도 미리 해두는 것이 그의 몸에 밴 협상 기술인 듯하다. 프레임은 늘 흠잡을 데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문 대통령이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으로부터 받아내려 할 긴박한 양보는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 보류다. 그 대신 북한은 ‘핵 동결=입구, 핵 폐기=출구’로 내걸고 미국과 평화협상을 벌이려 할 것이다. ICBM은 보류한다고 하더라도 핵 폐기를 조건으로 미국과 평화를 맺으면 김일성 일가가 3대에 걸쳐 추구해온 핵 보유의 목적은 달성된다. 핵과 평화의 맞교환은 논리적으로는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에는 난제가 수두룩하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전 보장의 범위도 명확하지 않아 미군 철수 등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요구가 잠재해 있다. 문 대통령은 민족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듯한 비장한 자세로 운전대를 잡았으나 악마들을 다룰 남다른 치트키(cheat key·게임에서 비장의 무기)를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화 말고는 무슨 대안이 있는가.’ 문 대통령은 영수회담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그렇게 물었다. 핵을 갖고도 무너진 옛 소련의 사례는 오히려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핵만 가진 빈털터리로 만드는 것이다. 핵은 절대무기이지만 함부로 쓸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설혹 대안이 없다고 하더라도 있는 척해야 할 판에 ‘대화 말고는 무슨 대안이 있느냐’는 발언은 스스로의 협상력을 깎아 먹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대화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보다 좋은 게 없다. 다만 대화는 시기가 중요하다. 정말 절묘한 시기를 택한 것인지 지켜보자. 대화를 하고도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아 대화에 대한 기대가 더 이상 남지 않는 순간 진짜 위기는 시작된다. 그때 대화의 결과는 제쳐두고 대화의 성사만을 위해 무작정 달려온 사람은 칭송을 고스란히 비난으로 돌려받는다. 위기는 기회가 되고 기회는 위기가 되기도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냉전 시대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정상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마주칠 때를 제외하고는 제3국에서만 만났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60년 니키타 흐루쇼프와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회담했다. 로널드 레이건은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1985년 스위스 제네바와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만났다. 레이캬비크 회담이 계기가 돼 냉전 종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1987년 이후에야 두 정상은 워싱턴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회담을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갖는다면 전례 없는 북-미 정상회담이기 때문에 어디서 만날지 벌써 예상이 분분하다. 워싱턴과 평양은 도청 등의 문제가 있어 양국 모두에 부담스러운 장소다. 그래서 스위스 스웨덴 등 중립적인 제3국이 거론된다. 스위스 제네바는 유엔 유럽지역 본부 등 국제기구가 즐비하고 북-미 간 고위급 접촉이 종종 이뤄진 곳이다. 김정은이 유학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스웨덴은 판문점 중립국 감시위원회 일원이고 평양 주재 스웨덴대사관은 미국인을 위한 영사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남북한 사이의 판문점도 거론된다. 북한 지도자가 된 후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는 김정은이 북한을 사실상 벗어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을 관할하는 미군 기지가 인근에 있어 미국 본토에서처럼 회담을 준비할 수 있다. 판문점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장소라는 상징성도 있다. 판문점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가보려다가 기상 악화로 방문이 취소된 곳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이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면 과감히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예측 불허의 김정은이 워싱턴을 전격 방문하지 말란 법도 없다. 북-미 정상회담의 중매를 맡은 한국의 서울이나 제주에서 보자는 얘기가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조지 부시가 1989년 고르바초프를 만나 냉전 종식에 합의한 지중해 몰타 근처의 크루즈선 같은 멋진 장소를 거론한다면 첫 만남으로는 너무 나간 것일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연극 연출가 이윤택을 향한 미투(#MeToo) 폭로에서 간과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의 성추행이나 성폭력은 단지 나쁜 손의 문제가 아니라 나쁜 의식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에는 사실상의 성추행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그의 출세작 ‘오구’라도 좋고 셰익스피어를 각색했다는 ‘햄릿’이라도 좋고 다른 작품이라도 좋으니 한번 봐 보라. 이윤택 자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의 성적 욕망의 탐구’니 어쩌니 할지 모르겠으나 실은 모두 범죄행위에 가깝다. 범죄적인 성적 욕망을 예술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적인 성적 욕망도 예술의 중요한 소재다. 다만 범죄라는 인식이 작품 속에서 갈등으로 작용하는 한에서 그렇다. 이윤택의 작품에서는 성추행 장면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는데도 범죄라는 인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성추행은 처음에는 여성에 의해 거부되지만 결국 여성에 의해 기꺼이 즐거이 받아들여진다. 그의 작품은 성에 있어서 여성은 솔직하지 못하다는 착각에 기초해 ‘남녀관계는 남자가 밀어붙여야 한다’는 마초적 인식을 관객들에게 부추긴다. 남녀상열(男女相悅)은 인간의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밤하늘 아래서 성욕에 불타올랐던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에게까지도 ‘유혹할 자유’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현대 사회는 성인에게 있어서 자유연애의 사회다. 다만 자유연애라 하더라도 그 속에 어떤 규율이 있다. 상대가 거부의 반응을 보일 때 무시하고 더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다. 이 엄격한 규율이 지켜지지 않으면 자유연애는 부자유연애가 된다. 그것이 성추행이고 성폭력이다. 법적으로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되려면 피해자의 분명한 거부 의사표시가 전제돼야 한다. 문화예술은 일찍부터 거부와 동의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한 영역을 다뤘고, 외면상 동의가 있었다고 보일지라도 돈이나 권력관계에 의해 성립한 동의는 진정한 동의와 거리가 멀다는 비판의식을 갖고 위대한 로맨스를 창조해왔다. 현대 문화예술은 자유분방해 보여도 실은 현실의 법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윤택의 작품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저승에서 온 남성들이 거대한 음경을 흔들며 등장하는 ‘오구’ 같은 작품은 니체 식으로 말하면 디오니소스적 성의 굿판을 벌여놓고 이를 수습할 어떤 아폴론적인 계기도 제시하지 않는다. 디오니소스적 착란 속에 무대 위의 연극과 무대 아래의 현실은 둘로 나눌 수 없는 불이(不二)의 세계가 된다. 무대가 곧 사타구니 안마를 받는 여관방이고 발성연습 시간은 그것을 핑계로 상대의 몸을 더듬는 순간이 된다. 이윤택을 진보예술가라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진보연(然)한 예술가임에는 틀림없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과거 정부가 직접 나눠주던 문예진흥기금을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나눠주도록 했다. 자율성이 강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문화예술계의 상당 부분을 진보 측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개편이었다. 이런 개편에서 가장 이익을 본 것이 이윤택 같은 이들이다. 이런 예술가가 각광을 받았기에 그의 작품이 성공의 모범이 되고 연극판 전체가 성의 난장판 비슷하게 변질된 감이 없지 않다. 이윤택은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표적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나눠줘도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시대착오적인 문예진흥기금을 폐지하는 쪽으로 갔어야 했으나 노무현 정부가 만든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그 배분을 강압적으로 수정하려다가 직권남용의 함정에 빠졌다. 이윤택은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다시 정부 문화지원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지난해만도 문예진흥기금 등에서 4억4600만 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진보연한 문화예술인이 주로 미투의 폭로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 분야의 헤게모니를 그들이 쥐고 있다는 방증일 뿐이다. 미투는 당연히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데올로기적 분류와 상관없다. 검찰같이 보수적인 세력이 헤게모니를 쥐었던 분야에서는 그들이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알량한 헤게모니를 이용해 찰나의 오르가슴을 얻으려다 수치스러운 폭로에 직면한 것이 어디서나 미투 사태의 본질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에 초대형 아스팔트 광장을 만든 건 1972년이다. 이듬해 그곳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0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전도 집회를 열었다. 정치는 암울했지만 개발의 망치 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던 때다. 농촌을 떠나 도시의 삭막한 환경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마음의 안식을 종교에서 구했다. 교회마다 부흥사들의 전도 집회가 열렸고 그런 흐름의 시작에 그레이엄 목사가 있었다. ▷그의 1973년 여의도 집회에 가보지 못했지만 그 못지않게 컸던 1980년 여의도 집회에는 가봤다. 그의 설교는 논리적인 설득보다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말 한 단락이 끝나기도 전에 김장환 목사의 통역이 따발총처럼 이어졌다. 나중에 세계침례교총회장까지 된 김 목사가 유명해진 것은 1973년 집회의 통역을 맡으면서부터. 하지만 거꾸로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 출신인 그의 유창한 통역이 없었다면 설교의 감동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그레이엄 목사는 1950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만나 북한 공산당 격퇴를 촉구하고 1952년 전쟁 중인 한국을 방문해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90년대 두 차례 방북해 김일성과도 만났다. 김일성은 트루먼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영적 조언자였던 그레이엄 목사와의 만남을 마다하기는커녕 미국과의 대화 채널로 활용하려 했다. 그레이엄 목사로서는 평양에 외국인을 위한 교회를 짓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레이엄 목사는 미국 대통령들과 친하고 김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와 친했기 때문에 이 커넥션은 한미 관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때는 아들 프랭클린 목사가 김 목사의 주선으로 사전에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여기서 오간 문 대통령 부모의 흥남철수 얘기가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전달돼 회담을 부드럽게 이끄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국의 영적 지도자였기 때문에 세계 정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던, 개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평창 겨울올핌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이상화 선수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이후 은퇴를 고민한 적이 있다. 이미 올림픽 2연패를 이뤘기에 최고의 자리에서 영광스럽게 떠나라는 유혹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올림픽 3연패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또 4년간을 치열한 훈련으로 보내야 하는 막막한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상화는 어제 “경기가 끝난 후 왜 울었느냐”는 질문에 “4년이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갑자기 압박감이 사라져 운 것 같다”고 답했다. ▷금메달을 딴 일본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이상화에게 다가와 건넨 첫마디는 일본말 ‘요쿠얏타요’가 아니라 서툰 한국말로 ‘잘했어’였다. 금메달은 따는 것도 어렵지만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건 이상화로부터 금메달을 빼앗아오기 위해 20대 청춘을 다 보낸 고다이라가 잘 알 것이다. 고다이라는 어쩌면 이상화가 은퇴하지 않았기에 이상화를 기필코 꺾겠다는 마음으로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비로 네덜란드 유학을 떠나고 올해 32세의 나이까지 필사적으로 달렸는지 모른다.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처럼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경기로는 예민해져서 신경전까지 벌이면서도 빙상 밖에서는 묘한 우정을 쌓았다. 이상화는 “내가 일본에 갈 때는 고다이라가 언제나 돌봐줬다”고 말했고, 고다이라는 “서울에서 경기가 끝난 후 급히 다른 나라로 갈 일이 있을 때 이상화가 직접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고 택시비까지 대신 내줬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과 일본이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했던 사이였다는 사실이 아득히 먼 일로 느껴질 정도다. 양국은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의 분위기까지 거론될 정도로 관계가 악화돼 있다. 그러나 베토벤 합창교향곡에 나오는 실러의 시 ‘세상의 풍조(die Mode)가 나눈 것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이 다시 결합시킨다’처럼 정치가 나눈 것을 스포츠가 하나로 묶기도 한다. 얼음판 위에서 두 빙속 여제의 어깨동무는 스포츠의 신비로운 힘을 보여주는 소중한 장면이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북한 김여정의 어릴 적 해외 생활의 흔적을 취재한 적이 있다. 2009년 김정은이 북한 김정일의 후계자로 부상했을 때다. 스위스 베른 인근의 쾨니츠라는 지역에 김정은과 김여정이 살던 집과 다니던 학교를 찾아 취재했다. 물론 두 사람은 오래전 그곳을 떠난 뒤였다. 김여정은 1997년 무렵 김정은과 함께 헤스구트 공립초등학교에 등록했다. 김정은은 이듬해 중학생이 돼 같은 부지에 있는 슈타인횔츨리 공립중학교에서 7학년부터 9학년 초까지 다녔다. 김여정은 계속 초등학교에 다녔다. 둘은 학교에서 불과 200m 떨어진 연립주택단지 내 3층 벽돌집에 살았다. 북한 대사관에서 나온 여성이 둘을 돌본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2000년 말 학교를 떠났다. 김정은이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는 잘못된 기사들이 지금도 나온다. 베른 국제학교를 다닌 건 세 살 위의 김정철이다. 김정철은 베른 북한 대사관 숙소에 거주하면서 보디가드 학생까지 대동하고 메르세데스벤츠를 타고 학비가 비싼 그 사립학교에 다녔다. 김정철은 1998년 9학년 무렵 학교를 떠났다. 언제부터 다녔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늦어도 1994년부터는 다녔다. 당시만 해도 누가 김정일의 후계자로 키워지고 있었는지는 분명하다. 김정은이 베른 국제학교에 다녔다는 오보가 나온 것은 베른 국제학교 교사와 졸업생이 김정은이 북한의 후계자로 부상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김정은과 김정철을 혼동했기 때문이다. 당시 스위스 신문이 인용한 ‘케렌 클라인’이란 이름의 베른 국제학교 출신 여성을 페이스북에서 접촉해 직접 혼동을 확인했다. 그의 재학시절 학교 앨범에 있는 사진은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철이었다. 당시 스위스 거주 한국인들은 김정은과 김여정이 쾨니츠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뉴스에 놀랐다. 북한 대사관에서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 데다 부자들만 모여 사는 은밀한 동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흥미로운 반응 중 하나는 “김정일이 돈이 없지 않았을 텐데 왜 두 자녀를 학비 무료인 공립학교에 보냈을까”였다. 김정철이 후계자가 된다면 김정은과 김여정이 그보다 잘나서는 안 되는 게 세습 왕조의 룰이지만 그 때문에 스위스의 보통 사람들이 받는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김정일은 자녀들이 세상 물정을 알 만한 고등학생 때는 외국에 두지 않았다. 김정일은 두 아들 모두 중학교 3학년 무렵인 9학년 때 불러들였다. 겨우 중학생 시절을 보낸 두 아들에게도 유학 생활의 영향은 팝송 농구 스키에 대한 열정으로 남아 있다. 김정철은 지금도 에릭 클랩턴 공연을 보러 다니고, 김정은은 집권 후 미국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을 불러들이고 마식령스키장을 지었다. 초등학생이었던 김여정에게는 그 영향이 어릴 적 배운 외국어에 대한 감각처럼 잠재해 있다 더 폭넓게 드러날 수 있다. 김정철이 여성호르몬 과다 분비로 후계 구도에서 탈락하면서 김정은이 졸지에 김정일의 후계자가 됐다. 김정은이 집권한 후 북한 매체에 등장한 김여정의 초기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김정은이 열병식을 하는 무대의 뒤쪽에서 느닷없이 얼굴을 내민다거나 김정은의 시찰행사에 혼자 떨어져 따라가거나 히죽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철이 없어 그랬을 수도 있고 자유분방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김여정은 대외적으로는 이번 방남이 데뷔나 다름없다. 그는 흑백의 단정한 옷차림에 옅은 화장을 하고 턱을 약간 치켜든 도도한 자세로 가능한 한 말을 아꼈다. 그나마 오래 훈련을 해서 ‘도도녀’의 모습을 연출한 듯한데 과거 북한에서 잘나가던 여성들이 보여주던 내적인 도도함을 찾기 어려웠다. 김여정만 아니라 현송월도 그랬다. 자신을 지켜볼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북한 상류층 여성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 아닐까. 상대방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능력을 통해 작용하는 소프트파워의 힘이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헤르메스(使者)로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 초청장을 전했다. 헤르메스는 저쪽의 것을 이쪽에 전달할 뿐 아니라 이쪽의 것을 저쪽에 전달도 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2인자조차도 김정은 앞에서 입을 가리고 말을 한다. 김정은과 흉금 없이 말할 상대는 김여정밖에 없다. 김여정이 이쪽에서 느낀 바를 가감 없이 전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간의 의미는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최근 주한 미국대사 임명이 철회된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한국 특파원들을 만나도 영어로만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미국에 유학 왔다가 정착한 부모로부터 한국말을 배워 한국말을 할 줄 알지만 그의 모국어는 엄연히 영어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최초의 한국계 주한 미국대사가 된 성 김만 해도 중학생 때 미국으로 이주해 모국어는 한국어인 것과 비교된다. ▷빅터 차가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다는 첫 보도는 이미 지난해 8월에 나왔다. 그러나 뒤이어 내정이 취소됐다느니, 내정 자체가 없었다느니 하는 혼란스러운 소문이 흘러나왔다. 임명 절차도 이례적으로 질질 끌었다. 그러다 결국 지난해 12월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임명 동의)까지 받았는데 미국에서 돌연 임명이 철회된 것이다. 구체적인 철회 이유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내에 그의 대사 임명을 저지하려는 지속적인 움직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빅터 차는 1994년 컬럼비아대에서 한미일 관계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 적을 두고 방송 등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조언하다가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국장으로 들어가 2007년까지 일했다. NSC 아시아국장으로 임명됐을 때 “한국에서 내게 갖는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미국의 이익도 강조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의 한층 높아진 충성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듯하다. ▷그는 북핵 문제에서 흔히 매파로 분류되지만 스스로는 강경 네오콘임을 부인한다. 그는 대사 검증 과정에서 미국의 북한 핵·미사일 시설 정밀 타격에 반대 견해를 피력했다. 반대의 명시적인 이유는 군사작전 시 한국인이 입을 피해를 걱정해서라기보다는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인을 대피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대사 내정자가 미국인을 먼저 걱정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가 말하지 않는 내심에는 부모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을 것이라 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최근 임명된 민유숙 대법관에 대해 현재 법원장으로 있는 분이 고등법원 부장판사였을 때 한 얘기가 기억난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민 대법관보다 기수가 아래인 김소영 대법관이 임명된 직후였다. 그는 “법관은 판결문 쓰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판결문 쓰는 능력은 민유숙이 위다. 민유숙이 먼저 대법관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태 이전의 어느 전직 대법원장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더니 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대법관의 능력은 판결문을 쓰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기획·조정력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법관은 그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 정책총괄심의관으로 근무했다. 민 대법관은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적이 없다. 대법원장을 지낸 분과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눈높이가 달랐다고밖에 할 수 없다. ‘재판관은 재판을 잘할 수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재판밖에 할 줄 몰라도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모든 법관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인지는 자신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대법원장에게라면 타당할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적이 없다. 재판만 주로 한 법관은 순수해서 사법행정도 공정하게 잘할 것인가. 칸트의 말처럼 때로는 순수한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얼마 전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조사위는 판사 블랙리스트와는 전혀 관련 없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관련 각계 동향 보고’라는 문건을 공개해 어느 신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판결 빌미로 청와대와 뒷거래한 양승태 대법원’이란 의혹을 던졌다. 이것은 의혹으로 남겨놓고 적당히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전화를 받을 수 있다. 그 자리는 그런 자리다. 대통령민정수석은 청와대의 변호사 격이다. 그의 조속한 상고심 진행 요구는 선거법 위반 사건의 경우 2심 판결로부터 3개월 내에 끝내야 한다는 법률에 비춰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다. 다만 전화 때문에 대법원이 합의체로 넘길 이유가 없었는데 합의체로 넘겼거나 대법관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선거법 무죄취지 파기환송에 동의했다면 그런 대법원을 믿고 최종심을 맡길 수 없다.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마땅하다. 추가조사위 발표에 대해 대법관 13명 전원은 즉각 “이 사건은 소부(제3부)의 합의를 거친 결과 증거법칙을 비롯한 법령 위반의 문제가 지적됐고, 사회적·정치적 중요성까지 아울러 고려해 합의체에 회부됐다”며 “관여 대법관들은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의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합의체 판결은 과반만 찬성해도 되는데 전원 일치 판결이었다. 의혹 제기 자체가 무리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대법관 성명으로 부족하다면 김 대법원장이 직접 당시 재판에 관여한 대법관을 일일이 면담해 진상을 파악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시 제3부에 속한 사건 주심은 퇴임했다. 그를 조사하면 사건이 합의체로 넘어간 과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한 대법관들도 최소한 두 명 있었다고 한다. 진실이 따로 있다면 그들이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잘못이 있다고 한들 대법관들이 순순히 얘기하겠느냐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의 반박을 할 거면 확인도 못할 의혹을 왜 던졌는지 먼저 답해야 한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추가조사의 길을 연 것은 김 대법원장 자신이다. 의혹이 의혹으로 남는 것만으로도 대법원에 대한 신뢰는 훼손돼 그가 져야 할 책임이 크다. “재판이 재판 외의 일로 영향을 받는다고 오해받을 만한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의혹을 증명하든가 증명하지 못하면 대법원장이 물러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판사들에 대한 동향 조사는 사찰과는 거리가 멀지만 과한 측면이 있다. 대부분 공개된 정보를 수집했지만 사적으로 알음알음 수집한 정보도 섞여 있다. 불필요할 정도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한 것이 양승태 대법원이 관료화한 증거일 것이다. 법원행정처 축소 등 김 대법원장이 하고 싶어 하는 개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대법원장이 애송이 ‘판사님’들에 휩쓸려 사소한 것에 불꽃을 튀기다 대법원을 다 태워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권력기관 개혁에 찬성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청와대가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을 통해 최근 밝힌 권력기관 개혁안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개혁의 골자는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가진 수사권의 상당 부분을 경찰에 넘기는 것이다. 경찰은 국정원으로부터 대공수사권을, 검찰로부터 경제·금융 등 일부 특수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의 수사권을 넘겨받는다. 대공수사권이 국정원에 있든 경찰에 있든 국민으로서는 대공수사를 잘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견제고 균형이고 말하기 전에 잘해보자고 하는 것이 개혁일 텐데 잘해보라고 넘기는 대공수사권이 아니란 걸 모두가 안다. 지난해 국정원에서 검찰로 이첩한 대공수사는 한 건도 없다. 이 정부가 대공수사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솔직히 없다고 말하지 못할 뿐이다. 수사권에 대해서는 검찰에 있든 경찰에 있든 수사를 잘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권한 남용을 막으려면 검찰이 기소권을 갖더라도 수사는 가능한 한 다른 데서 해야 한다. 그 다른 데가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혹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경제범죄수사국이든 상관없다. 그래야 상호견제가 가능하다. 대공수사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수사이고 경제·금융 관련 수사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수사다. 대공수사마저 경찰에 넘기는 판에 경제·금융 관련 수사를 검찰에 남긴 건 일관성이 없다. 검찰이 경찰 수사에 끼어드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검찰에 여전히 영장청구권과 보충수사권이 남아 있어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가 검찰총장 동의 없이 낙점해 놓은 ‘믿는 구석들’이 없었다면 수사와 기소의 분리 원칙이 보다 철저히 관철됐을 것이다. 검찰의 제도적 개혁을 철저히 하지 못하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같은 제2의 검찰을 만들 생각부터 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공수처에 대해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개혁 원칙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공수처를 신설한다면 공수처가 수사권을 가질 때 검찰이 기소권을 갖든가,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질 때 경찰 등 다른 조직이 수사권을 갖는 식의 견제와 균형이 모색돼야 한다. 경찰은 대부분 사건의 1차적 수사권을 가짐으로써 훨씬 큰 권한을 얻는 건 틀림없다. 다만 현재의 경찰에서부터 자유당 시절까지의 경찰을 조망해 보면 경찰은 검찰보다 더 권력에 아유굴종(阿諛屈從)했다. 경찰 조직은 매우 커서 같은 직급의 경쟁자가 많고 승진 기준의 공정성이 떨어져 상관의 낙점에 목을 매는 조직이다. 게다가 경찰관은 사퇴하면 검사처럼 변호사를 할 수도 없어 권력 앞에서 강단을 갖고 처신하기 어렵다. 이런 경찰에 권한을 넘기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권한 분산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진국 경찰은 거의 모두 자치경찰제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청와대도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자치경찰제를 도입해 분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그게 고작 치안 분야를 시도지사 관할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수사를 할 수 없는 경찰은 경찰이 아니라 그냥 방범대다. 헌법 제1조 3항을 신설해 지방분권을 명시한 개헌을 하겠다며 읍면동 조직까지 동원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자치경찰제다. 자치경찰제라 함은 자치경찰이 한 지역 내에서 일차적으로 사전적 방범 활동과 사후적 범죄수사 등 모든 종류의 경찰 업무를 수행하고 국가경찰은 테러나 조직범죄 등 전국적 단위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에 국한해 개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미국 뉴욕경찰은 모든 종류의 범죄 사건을 수사하고 연방수사국(FBI)은 연방법 위반 사건이나 기타 중대 사건에 대해 보충적으로 개입해 뉴욕경찰과 협력해 수사를 진행할 뿐이다. 독일 연방경찰과 란트(Land)경찰, 일본 국가경찰과 도도부현(都道府縣)경찰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 권력기관 개혁안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처럼 보이는 건 권한을 주고받는 권력기관들의 눈에만 그렇다. 권력기관들 위에 있는 청와대나 권력기관들 밑에 있는 국민의 눈으로 보면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청와대의 권력기관 장악은 대통령제를 제왕적으로 만든 주요 원인이다. 개혁안에서도 권력기관을 내려놓지 못하고 손아귀에 쥐고 있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