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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IT(정보기술) 경력이 20년인데… 막상 공직에 들어와 보니 나를 고장 난 컴퓨터 수리하는 사람으로 보더군요.” 지난해 초까지 한 정부 부처의 과장으로 정보화 업무를 담당했던 A 씨.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20년 넘게 활약한 IT 솔루션 전문가다. 그런데 공직에 발을 들였던 지난 3년을 돌아보면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A 씨는 2016년 인사혁신처로부터 “정부에서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제안 받은 자리는 공직 가운데 민간에 열린 ‘개방형 직위’였다. 민간의 경쟁력을 활용해 공직사회의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1999년 도입된 제도다. 인사혁신처 담당자는 당시 그에게 부처의 정보시스템을 총괄하고 정보화 역량을 키우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기업에서 조직의 전략과 문화를 IT로 구현하는 최고정보책임자(CIO)를 지냈던 터라 그런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민간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라에 봉사한다는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실제 맡게 된 업무는 그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A 씨의 부서는 그 부처에서 ‘PC 배급하는 부서’나 ‘PC 고장 나면 고쳐 주는 부서’로 인식돼 있었다. 제대로 일을 해보려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좌절의 연속이었다. 한 부서원은 아예 “여기는 새로 뭔가를 하는 부서가 아니다. 편안하게 지내다 가시라”고 귀띔했다. ▼ 장벽 친 공무원들 “뭔가를 하지말고 쉬다 가시라” ▼20년 IT전문가의 좌절민간 전문가를 공직사회 혁신에 활용하겠다는 개방형 직위 제도가 본래 취지와 달리 운영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공무원 사회가 민간 출신 전문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가한 자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각 부처는 민간 출신 전문가들에게 견고한 벽을 치고 핵심 요직을 내주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나랏일’에 대한 사명감으로 들어온 민간 전문가 중 적지 않은 수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직사회를 조기에 떠난다. 2015년 7월 도입된 정부헤드헌팅과 국민추천제를 통해 공무원이 된 민간 인재 중 최초 임용 기간(3년)이 만료된 인물은 26명. 본보 조사 결과 이들 중 절반 이상인 14명이 3년이 되기 전에 공직을 떠났거나 3년 계약을 채운 뒤 재계약을 포기했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공무원에게 주는 임금으로는 민간의 일류 인재를 데리고 오기도, 붙잡고 있기도 쉽지 않다. 일부 민간 전문가는 개방형 공직을 이력서에 추가할 수 있는 경력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공직사회가 60년 이상 바뀌지 않는 것은 기득권 때문”이라며 “공직은 전리품이 아닌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로, 시대 변화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흐름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김준일 jikim@donga.com·홍수영 기자}

《정부는 지난해 ‘적극행정 운영규정’을 제정했다.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취지다. 면책 조항까지 뒀다. 연말에 공직사회 개선 정도를 설문했다. 적극행정은 9개 분야 중 꼴찌였다. 정권마다 적극행정을 외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공무원들도 혁신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정치권이, 때로는 감사원이, 때로는 관치의 유산이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 공무원이 타성에 젖으면 민간은 규제에 질식당한다. 공무원이 신바람 나게 일하면 민간도 신바람 나게 전진한다. 공직사회가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 혁신의 걸림돌도 뽑아내 줘야 한다. 동아일보가 ‘2020 新목민심서’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 A: ‘공무원 청원제’를 도입해 정책 현안을 적극 해결하자. B: 공무원증에 결제 기능을 넣어 구내식당에서 쓰게 하자.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9, 10월 43개 정부 부처의 주니어 공무원에게 정부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니 이런 제안들이 나왔다. 제안 A는 실무자의 권한 밖에 있는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공무원 5000명 이상이 청원에 참여하면 협의체를 구성해 해당 사안을 반드시 풀게 하자는 것.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극복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가 작년 11월 상을 준 것은 식당 밥값 계산을 편리하게 하자는 제안 B였다. 부처 간 칸막이를 뛰어넘자는 ‘공무원 정보공유제도’, 부실 인수인계 문제를 풀려는 ‘인수인계법’도 모두 탈락했다. 수상권인 6위 안에 든 아이디어는 ‘출장 정산을 간소하게 하자’ 등 공무원 복지나 편의와 관련된 게 많았다. 공모전을 주관한 행안부 관계자는 “실현 가능성에 점수를 많이 줬다”고 했다. 당장 성과를 낼 수 없거나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제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공직 혁신을 원하는 국민과 공무원 간 인식의 괴리를 드러낸 사례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행정연구원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공무원이 무사안일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62.1%가 ‘그렇다’고 답했다. 공무원들은 17.2%만 ‘그렇다’고 했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이런 인식 차가 읽혔다. 한 공무원은 “‘권력 지향+서울대 경제학과’면 기획재정부에 가거나, 서울서 일하려면 금융위원회에 가라”고 했다. 중앙부처 대신 업무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처, 청, 위원회로 가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공직사회가 태생적으로 ‘갓(god)9급’(신이 내린 9급 공무원)에 안주하는 건 아니다. 행정연구원이 공무원을 대상으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 원인을 묻자 ‘보상 미흡’ ‘일이 잘못되면 책임져야 해서’ ‘자율성 부족’ 순으로 나왔다.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혁신 아이디어마저 절차와 관행을 따지며 ‘귀찮은 업무’가 돼버리는 문화에서는 복지부동이 체질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홍수영 gaea@donga.com·임보미 기자}

#1. 서울시의 6년 차 주무관 A씨의 최근 경험담이다. 인사발령이 나서 새 보직의 전임자를 찾아갔다. 업무 인계는 사실상 한마디가 전부였다. “PC에 다 있어. 읽어보면 알아.” PC에 저장된 인수인계서는 아래아한글 2장 분량. 그는 여느 때처럼 기타자료를 보면서 혼자 업무를 익혀야 했다. A 씨는 “그나마 전임자가 친절하면 PC 모니터에 연락처를 붙여둔다”고 했다.#2. 지난해 10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한 외교사절 B 씨의 얘기다. 첫날 도쿄 고쿄(皇居·왕궁)에서 1000여 명이 참석한 궁정연회 때 B 씨 탁자에는 7, 8종의 술이 올라와 있었다. 긴장을 풀 수 없던 상황이라 그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이튿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마련한 만찬장. B 씨 탁자에는 술이 한 잔도 없었다. 첫날은 궁내청이, 둘째 날은 총리실이 주최한 자리였는데, 궁내청이 B 씨의 첫날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해 다른 기관인 총리실 담당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고밖엔 해석이 안 됐다. 고지식하리만큼 충실한 인수인계였다. 한국 공직사회는 인사이동이나 조직개편이 상당히 잦다. 하지만 이에 따른 업무 인수인계는 주먹구구로 이뤄진다는 지적이 많다. 젊은 공무원들이 공직의 일상에 좌절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부실과 무성의로 화석화된 인수인계 시스템이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다. 부실한 인수인계는 일반 행정과 정책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민원인의 돈 낭비, 시간 낭비를 초래한다.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구조화된 관행과 함께 메뚜기처럼 보직을 옮겨 다녀야 승진이 유리한 인사 시스템 때문이다.○ 인수인계 없는 ‘독학생 공무원’ 정부는 2016년 5월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국제적으로 안전성이 확보된 원료를 건강기능식품에 쓸 수 있도록 해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8년 4월 “쑥, 로열젤리 등 66종의 원료는 자료를 보완하면 허용할 수 있다”는 용역 결과도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3년 7개월간 추가 허용된 원료는 1개뿐이다. 식약처 담당자는 “2017년 3월 조직개편으로 주무부서가 바뀌었고, 인사발령도 있어 이 건이 업무과제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인수인계 과정에서 중요한 규제개선 과제가 공중에 뜬 것이다. 정부만 믿고 새로운 건강기능식품을 만들려고 한 영농법인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대통령령에 따르면 공무원은 ‘해당 업무에 관한 모든 사항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도록’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 한 공무원은 “공무원 사회에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공무원이라는 종족의 특성이라는 말이 돌 정도”라고 했다. 인수인계가 요식행위에 그칠 때도 많다. 공개된 업무 목록은 넘겨도 전임자가 익힌 노하우나 인적 네트워크를 넘기진 않는 식이다. 후임자가 업무를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민원인들은 늘 초보 공무원을 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한 지방 공무원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업무를 배울 때 같은 지자체 전임자 말고 다른 시군구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라. 카톡 친구 추가하고 음료 쿠폰이라도 선물하라”고 조언했다.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으로 사는 것’의 저자 이진수 경기 안양시 부시장은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면 더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을 텐데 공무원은 매번 원점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1, 2년마다 ‘벼락 인사’ 인수인계가 부실한 것은 인사이동이 갑자기, 자주 이뤄지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순환보직제로 인해 1, 2년마다 자리를 옮기는데 대개 일주일도 안 남기고 ‘벼락’ 통보를 받는다. 교육부의 한 공무원은 “후임자에게 인계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 발령 난 곳에서 인수를 받아야 하고, 그곳의 전임자도 또 어딘가에서 인수를 받아야 하니 서로 대면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2018년 기획재정부는 국산 포도 출하 시기인 5∼10월에 수입한 칠레산 포도에 대해 관세 12억4000만 원을 잘못 면제했다. 관세를 면제한 2013년부터 4년간 담당 과장은 5차례, 실무자는 8차례 바뀌었다. 드물긴 하지만 전임자의 업무를 깊게 파악하면 과실 책임까지 떠안을 수 있어 일부러 인수인계를 피한다는 말도 있다.○ 日, 전임-후임자 3주간 인수인계 인사발령 사전 예고가 관행으로 자리 잡은 일본은 업무 인수인계 기간이 길게는 3주다. 특히 일주일은 전임자와 후임자가 대면한 상태에서 인수인계를 한다. 도쿄 중앙부처의 한 사무관은 “이번에 닷새 동안 후임자와 같이 있을 수 있어 인수인계서를 넘겨줬을 뿐 아니라 업무 설명까지 꼼꼼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일본 관가에는 전임자와 후임자가 함께 업무 관련자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는 ‘아이사쓰마와리(애찰回·인사 돌기)’라는 표현도 있다. 상시 인수인계 시스템을 갖추는 경우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한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는 “IMF에선 각자 얻은 정보나 연락처 등을 중앙 컴퓨터에 올려놓게 돼 있다. 누구나 언제든 검색이 가능하니 따로 인수인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어 “평소 보고서에 회의장 바깥 날씨까지 쓰는 경우도 있다. 보고서만 봐도 전임자가 갖고 있는 모든 정보, 숨은 통계까지 알 수 있다”고 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조은아 기자}

10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는 의사당대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집회 무대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최근 타다 측이 1만 대까지 확대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우리 택시인들의 반발에 직면하자 슬그머니 연말까지 기다려보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거꾸로 보면 법이 연말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1만 대든, 그 이상이든 타다를 확대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설을 듣던 택시 운전사들은 함성과 함께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집회는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의 영업 금지를 국회에 촉구하기 위해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이 주최했다. 주최 측은 이날 택시 운전사 1만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했다. 박 의원이 말한 ‘법’은 타다의 사업 근거가 되고 있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운송법) 시행령 18조를 의미한다. 이 법의 개정안이 이른바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다. 박 의원은 이날 “오늘 여러분의 의지를 담아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내일 발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다음 날인 10월 24일 국회에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달 6일 박 의원이 주도한 여객운송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타다의 운행 중단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택시업계 눈치를 보고 있어 이르면 연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타다가 ‘유사 콜택시’인지, 아니면 ‘혁신 서비스’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국회의 타다 금지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민 편익이나 미래 산업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데는 시각이 일치한다. 정치권이 내세우는 명분도 ‘택시업계와의 상생’ 정도에 머문다. 흩어져 있는 절대 다수의 국민보다 똘똘 뭉친 이익집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의도의 작동 원리를 들여다봤다. ○ ‘플랫폼 택시법’이 ‘타다 금지법’ 된 배경 여객운송법 개정안이 처음부터 타다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국토교통부의 7·17 택시제도 개편 방안 후속 조치로 추진되던 여권의 법 개정은 당초 타다 같은 서비스를 제도권으로 편입하자는 취지였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운송면허를 내주되 택시업계의 반발을 감안해 면허 총량을 제한하고, 면허 대가로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게 골자였다. 여당이 개편 방안의 후순위였던 타다 금지 조항 문제로 행동의 무게중심을 옮긴 것은 10월 타다 측의 1만 대 증차 계획 발표와 맞물린다. 당시 택시업계가 들끓기 시작하자 당내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다. 민주당에서는 “자칫하면 2018년 택시 운전사 2명의 분신 사망과 택시 4개 단체의 총력 투쟁을 낳은 카카오 카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당은 서울개인택시조합의 실력행사가 있자 서둘러 박 의원 주도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7·17 방안의 내용과 함께 당초 시행령으로 손보려 했던 타다 관련 조항을 아예 개정안에 금지 형태로 못 박았다. 개정안의 별칭이 ‘플랫폼 택시법’이 아닌 ‘타다 금지법’이 된 이유다. 박 의원은 택시 운전사들에게 “타다가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전체 개편 방안 실행에 앞서) 타다 금지법이라도 반드시 최우선적으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박 의원이 타다 금지법의 총대를 멘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지역구(서울 중랑갑)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랑구는 택시회사 20여 곳과 개인택시 3000여 대가 밀집돼 서울에서 ‘택시업계의 거점’으로 여겨진다. 박 의원 측은 이에 대해 “당 을지로위원장으로서 택시 사납금 폐지 등 약자들의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타다 금지법은 무소속 김경진 의원이 7월에 먼저 발의했다. 김 의원은 택시 운전사들의 생존권 문제를 줄곧 제기해 ‘택시의 신’으로 불린다. 개정안은 여당이 가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여타 법안과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빠르게 제출된 지 40여 일 만인 이달 5일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다음 날 전체회의를 각각 통과했다. ○ “타다 탈 때 비행기표 소지” 끼어든 과정 택시 문제에는 여야가 없었다. 자유한국당은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처음 심사한 11월 25일에는 다소 신중한 분위기였다. 이해관계자와 함께 간담회를 열어 쟁점을 정리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5일 2차 심사 때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한국당 의원들은 소위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타다 금지 조항(‘대여 시간이 6시간 이상이거나, 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만 승합차의 기사 알선 허용)을 놓고 한술 더 떴다. 인천에 지역구를 둔 민경욱 의원이 운을 떼었다. “택시업계의 우려 사항을 전달하면, ‘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이라고 했는데 공항이 포함될 경우 인천의 택시업계는 타격이 크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이현재 의원이 거들었다. “인천항만에서 30분, 1시간이면 시내 다 다니잖아요. 인천공항에서 다 그렇잖아요. 또 대구공항, 대구 시내에 있다 이거지요. 그러면 이게 또 분란이 생길 것 아니냐….” 두 의원의 문제 제기에 소위에 참석한 김경욱 국토부 2차관은 “(법 집행할 때) 항공기 탑승권이나 선박 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만 인정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법안 의결을 앞두고 이 의원은 집요하게 ‘확실한 집행’을 요구한다. ▽이 의원=시행할 때 ‘항공권이나 탑승권을 소지한 자에 한한다’ 이렇게 한다 이거지요? ▽김 차관=그렇습니다. ▽이=다시 한 번 명확히 정리해 주세요. 속기록에 남게. ▽김=탑승권을 소지한 경우에 한한다, 그렇게 운영을 하겠습니다. ▽이=그러니까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는 어쩌고’ 말씀을 해주시라니까. ▽김=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는 탑승권을 소지한 경우에 한하도록 운영을 하겠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국토위에 ‘특정한 형태의 운수사업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서를 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논의는 없었다. 국토위 소속의 한 한국당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아쉽다”고 말했다. 신사업에 대해선 국제 기준에 맞춰 보다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만약 한국당이 ‘신중히 검토하자’고 하면 택시업계에서 ‘한국당은 이 개정안을 반대한다’고 프레임을 씌워버리니까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며 현실론을 폈다. ○ 여론보다 ‘조직 표’에 민감한 여의도 국회의 타다 금지법 논의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인 택시업계 의견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정작 이용자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타다 이용자들은 택시업계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산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그친다. 반면 택시 4개 단체는 10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만일 개정안 통과가 무산될 경우 100만 택시 가족의 총궐기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의원들은 현재 택시업계의 조직적 압력과 타다 금지 비판 여론 사이에서 일단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 줬다. 국회 생활 10년 차인 한 보좌진은 “대중은 각자 관심사가 다양해 어떤 의원이 타다를 반대했다고 ‘총선에서 안 찍어야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인이든 개인이든 택시는 조직돼 있어서 낙선운동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여론이 집약돼 표출될 때까지는 이익집단의 ‘조직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게 여의도 정치권의 생리이다. 보건의료노조 등에 막혀 20년째 시범사업만 하는 원격의료가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병태 KAIST 교수 겸 컨슈머워치 공동대표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국민 편익을 증진시키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한국 정치는 ‘혁신 경쟁’은커녕 ‘로비 경쟁’만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 여론 뭇매 맞고 부랴부랴 허용 ▼대중 표심은 모래알?… 한번 결집하면 걷잡을 수 없어약사회 눈치 본 의원에 비난 쇄도, 美선 시민 반발로 우버 규제 불발 타다 등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와 택시업계의 갈등처럼 새로운 산업이나 서비스가 등장할 때 기존 산업과 충돌이 빚어지는 일이 많다. 그 과정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은 소수의 이익단체 편에 서기 십상이다. 이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런 상황은 발생한다. 하지만 대중의 표가 흩어져 있다고 국민의 편익을 저해하는 시도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판 여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고 힘을 얻으면 정치권도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소화제 같은 가정상비약을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도록 한 조치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2011년 9월 안전성이 검증된 의약품을 편의점 등 약국 이외에서도 팔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들이 한밤중이나 공휴일에 약국을 찾아 헤매지 말게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간을 손상시키거나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의약품이 무절제하게 판매될 수 있다” “슈퍼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약을 사면 보험 적용이 안 돼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며 아예 개정안에 대한 심의 자체를 거부했다.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회원 6만 명을 거느린 대한약사회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한국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71.2%가 찬성하는 등 약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에게 여론의 비난이 집중되자 해당 의원들은 부랴부랴 2012년 2월 상임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고도 동네 약사들의 ‘입소문’이 두려웠던 의원들이 몸을 사린 탓에 개정안의 최종 본회의 통과는 19대 총선 이후인 2012년 5월에 가까스로 이뤄졌다. 미국 뉴욕에서는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에 대한 규제를 시도했다가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예도 있다. 2015년 당시 좌파 성향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혼잡시간대에 더 비싼 요금을 받는 우버의 횡포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게 시의 임무”라며 우버 차량의 증가를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은 크게 반발했다. 악명 높은 뉴욕 맨해튼 택시의 불친절과 질 낮은 서비스를 참을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며칠 만에 시장에게 1만7000통의 항의 메일이 왔고, 당시 200만 명이 넘는 뉴욕시 우버 애플리케이션(앱) 가입자들 중 상당수가 반대 서명에 나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더블라지오 시장은 방침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환경과 일자리 보호라는 정치적인 수사로 포장했지만 이익집단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패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운송법) 개정안이 6일 국회의 1차 관문인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의 운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개정안은 타다 운행을 사실상 막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어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다. 당초 여객운송법을 개정하려는 취지는 플랫폼 운송사업자를 제도권 틀 안으로 들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현재 ‘100만 택시 가족의 총궐기’를 예고한 택시업계의 압박에 타다 금지에 방점을 찍은 모양새다. 국민 편익은 여의도 논의에서 자취를 감췄다. ‘타다 금지법’ 논란을 통해 흩어진 국민보다 ‘조직 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의도 정치의 생리를 들여다봤다. 개정안에 타다 금지 조항이 덜컥 들어가고, 타다를 탈 때 항공기나 선박 탑승권을 소지하게 하는 지침을 두는 이면에는 택시업계 눈치 보기가 있었다. 홍수영 기자gaea@donga.com}

타다 등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와 택시업계의 갈등처럼 새로운 산업이나 서비스가 등장할 때 기존 산업과 충돌이 빚어지는 일이 많다. 그 과정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은 소수의 이익단체 편에 서기 십상이다. 이는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에서도 이런 상황은 발생한다. 하지만 대중의 표가 흩어져 있다고 국민의 편익을 저해하는 시도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비판 여론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고 힘을 얻으면 정치권도 마냥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감기약과 해열진통제, 소화제 같은 가정상비약을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도록 한 조치가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2011년 9월 안전성이 검증된 의약품을 편의점 등 약국 이외에서도 팔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들이 한밤중이나 공휴일에 약국을 찾아 헤매지 말게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간을 손상시키거나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의약품이 무절제하게 판매될 수 있다” “슈퍼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약을 사면 보험 적용이 안 돼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며 아예 개정안에 대한 심의 자체를 거부했다. 국민 건강에 대한 우려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 회원 6만 명을 거느린 대한약사회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한국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71.2%가 찬성하는 등 약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에게 여론의 비난이 집중되자 해당 의원들은 부랴부랴 2012년 2월 상임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고도 동네 약사들의 ‘입소문’이 두려웠던 의원들이 몸을 사린 탓에 개정안의 최종 본회의 통과는 19대 총선 이후인 2012년 5월에 가까스로 이뤄졌다. 미국 뉴욕에서는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 ‘우버’에 대한 규제를 시도했다가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예도 있다. 2015년 당시 민주당 소속이던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혼잡시간대에 더 비싼 요금을 받는 우버의 횡포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해야 하는 게 시의 임무”라며 우버 차량의 총 대수에 상한선을 두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이에 여론은 크게 반발했다. 악명 높은 뉴욕 맨해튼 택시의 불친절과 질 낮은 서비스를 참을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새로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당시 200만 명이 넘는 뉴욕시 우버 애플리케이션(앱) 가입자들 중 상당수가 반대 서명에 나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여긴 같은 당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소비자들에게 편리한 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더블라지오는 우버 차량 대수 제한 방침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환경과 일자리 보호라는 정치적인 수사로 포장했지만 이익집단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패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10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는 의사당대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집회 무대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최근 타다 측이 1만 대까지 확대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우리 택시인들의 반발에 직면하자 슬그머니 연말까지 기다려보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거꾸로 보면 법이 연말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1만 대든, 그 이상이든 타다를 확대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설을 듣던 택시 운전사들은 함성과 함께 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집회는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의 영업 금지를 국회에 촉구하기 위해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이 주최했다. 주최 측은 이날 택시 운전사 1만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했다. 박 의원이 말한 ‘법’은 타다의 사업 근거가 되고 있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운송법) 시행령 18조를 의미한다. 이 법의 개정안이 이른바 ‘타다 금지법’으로 불린다. 박 의원은 이날 “오늘 여러분의 의지를 담아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내일 발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다음 날인 10월 24일 국회에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달 6일 박 의원이 주도한 여객운송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타다의 운행 중단 여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야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택시업계 눈치를 보고 있어 이르면 연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타다가 ‘유사 콜택시’인지, 아니면 ‘혁신 서비스’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국회의 타다 금지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민 편익이나 미래 산업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데는 시각이 일치한다. 정치권이 내세우는 명분도 ‘택시업계와의 상생’ 정도에 머문다. 흩어져 있는 절대 다수의 국민보다 똘똘 뭉친 이익집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의도의 작동 원리를 들여다봤다. ● ‘플랫폼 택시법’이 ‘타다 금지법’ 된 배경 여객운송법 개정안이 처음부터 타다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국토교통부의 7·17 택시제도 개편 방안 후속 조치로 추진되던 여권의 법 개정은 당초 타다 같은 서비스를 제도권으로 편입하자는 취지였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운송면허를 내주되 택시업계의 반발을 감안해 면허 총량을 제한하고, 면허 대가로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게 골자였다. 여당이 개편 방안의 후순위였던 타다 금지 조항 문제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은 10월 타다 측의 1만 대 증차 계획 발표와 맞물린다. 당시 택시업계가 들끓기 시작하자 당내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다. 민주당에서는 “자칫하면 2018년 택시 운전사 2명의 분신 사망과 택시 4개 단체의 총력 투쟁을 낳은 카카오 카풀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당은 서울개인택시조합의 실력행사가 있자 서둘러 박 의원 주도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당초 시행령으로 손보려 했던 타다 관련 조항도 아예 개정안에 금지 형태로 못 박았다. 개정안의 별칭이 ‘플랫폼 택시법’이 아닌 ‘타다 금지법’이 된 이유다. 박 의원은 택시 운전사들에게 “타다가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전체 개편 방안 실행에 앞서) 타다 금지법이라도 반드시 최우선적으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박 의원이 타다 금지법의 총대를 멘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지역구(서울 중랑갑)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랑구는 택시회사 20여 곳과 개인택시 3000여 대가 밀집돼 서울에서 ‘택시업계의 거점’으로 여겨진다. 박 의원 측은 이에 대해 “당 을지로위원장으로서 택시 사납금 폐지 등 약자들의 민생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타다 금지법은 무소속 김경진 의원이 7월에 먼저 발의했다. 김 의원은 택시 운전사들의 생존권 문제를 줄곧 제기해 ‘택시의 신’으로 불린다. 개정안은 여당이 가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여타 법안과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빠르게 제출된 지 40여 일 만인 이달 5일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다음 날 전체회의를 각각 통과했다. ● “타다 탈 때 비행기표 소지” 끼어든 과정 택시 문제에는 여야가 없었다. 자유한국당은 국토교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객운송법 개정안을 처음 심사한 11월 25일에는 다소 신중한 분위기였다. 이해관계자와 함께 간담회를 열어 쟁점을 정리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5일 2차 심사 때부터 태도가 달라졌다. 한국당 의원들은 소위가 비공개로 전환된 뒤 타다 금지 조항(‘대여 시간이 6시간 이상이거나, 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만 승합차의 기사 알선 허용)을 놓고 한술 더 떴다. 인천에 지역구를 둔 민경욱 의원이 운을 떼었다. “택시업계의 우려 사항을 전달하면, ‘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이라고 했는데 공항이 포함될 경우 인천의 택시업계는 타격이 크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이현재 의원이 거들었다. “인천항만에서 30분, 1시간이면 시내 다 다니잖아요. 인천공항에서 다 그렇잖아요. 또 대구공항, 대구 시내에 있다 이거지요. 그러면 이게 또 분란이 생길 것 아니냐….” 두 의원의 문제 제기에 소위에 참석한 김경욱 국토부 2차관은 “(법 집행할 때) 항공기 탑승권이나 선박 표를 가지고 있는 경우만 인정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법안 의결을 앞두고 이 의원은 집요하게 ‘확실한 집행’을 요구한다. ▽이 의원=시행할 때 ‘항공권이나 탑승권을 소지한 자에 한한다’ 이렇게 한다 이거지요? ▽김 차관=그렇습니다. ▽이=다시 한 번 명확히 정리해 주세요. 속기록에 남게. ▽김=탑승권을 소지한 경우에 한한다, 그렇게 운영을 하겠습니다. ▽이=그러니까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는 어쩌고’ 말씀을 해주시라니까. ▽김=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에는 탑승권을 소지한 경우에 한하도록 운영을 하겠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국토위에 ‘특정한 형태의 운수사업을 원칙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서를 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별다른 논의는 없었다. 국토위 소속의 한 한국당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아쉽다”고 말했다. 신사업에 대해선 국제 기준에 맞춰 보다 유연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만약 한국당이 ‘신중히 검토하자’고 하면 택시업계에서 ‘한국당은 이 개정안을 반대한다’고 프레임을 씌워버리니까 우리도 어쩔 수가 없다”며 현실론을 폈다. ● 여론보다 ‘조직 표’에 민감한 여의도 국회의 타다 금지법 논의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인 택시업계 의견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정작 이용자의 의견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타다 이용자들은 택시업계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산발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것에 그친다. 반면 택시 4개 단체는 10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만일 개정안 통과가 무산될 경우 100만 택시 가족의 총궐기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의원들은 현재 택시업계의 조직적 압력과 타다 금지 비판 여론 사이에서 일단 택시업계의 손을 들었다. 국회 생활 10년 차인 한 보좌진은 “대중은 각자 관심사가 다양해 어떤 의원이 타다를 반대했다고 ‘총선에서 안 찍어야겠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인이든 개인이든 택시는 조직돼 있어서 낙선운동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 여론이 집약돼 표출될 때까지는 이익집단의 ‘조직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게 여의도 정치권의 생리이다. 보건의료노조 등에 막혀 20년째 시범사업만 하는 원격의료가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병태 KAIST 교수 겸 컨슈머워치 공동대표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국민 편익을 증진시키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한국 정치는 ‘혁신 경쟁’은커녕 ‘로비 경쟁’만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소상공인 가운데 꾸준한 노력과 남다른 아이디어로 성공하고 사회에도 기여해온 사람이 있다. 규모는 작아도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강소(强小)기업처럼 여러 방면에서 남다른 성과를 냈다. ‘2019 소상공인 대회’에서 수훈, 수상한 강소 상공인 가운데 8명을 소개한다.》 권대규 세이테크 대표(48·사진)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공단에서 금속 절삭기의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이 4명뿐인 작은 업체이지만 기계기술 특허 11건과 디자인 특허 14건을 보유할 정도로 내실이 탄탄하다. 권 대표가 2002년 세이테크를 설립한 뒤 17년 동안 꾸준히 연구하며 이를 기술과 제품 개발로 연결한 결과다. 그는 올해 10월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높인 공로 등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권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배움을 이어갔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바로 현장에 뛰어들었지만 이제 공작기계 가공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공학박사가 됐다. 그는 “처음에는 사업을 하며 상대적으로 낮은 학력에 스트레스를 받아 공부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만의 노하우를 발전시키고 현장에서 활용하기 위해 계속 연구한다”고 말했다. 요즘도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며 밤에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다듬는다. 그렇게 현장 경험과 이론을 접목해 만든 책들이 대학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전문 기술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권 대표는 든든한 스승이다. 한국폴리텍Ⅶ대에서 100차례 이상 초청특강을 했고, 경남대에서는 20여 차례에 걸쳐 학생들이 실제로 작품을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지역 내 공고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멘티 관계를 맺고 진로 교육도 한다. 그는 “취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자신만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 내가 가진 스펙을 모두 보여줌으로써 그런 뜻을 전달하려 애쓴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요즘 정부에서 발주하는 연구개발(R&D)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의 프로젝트도 한 건 수주했다. 그는 “업체가 작으면 업황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그런 만큼 특허를 가지고 손실을 벌충할 만한 먹거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꽃보다 디자인… 강의 열어 새 트렌드 전수 ▼<6> 유현미 밀알플라워 대표플로리스트 20년… “지금도 열공”, 노인 등 위한 힐링 프로그램도 진행유현미 밀알플라워 대표(54·사진)는 미대를 졸업한 지 10년 만인 1997년 자신의 꽃집을 열었다. 결혼으로 일을 놓고 있다가 취미로 배운 꽃꽂이에서 적성과 재미를 찾게 돼 내린 결단이었다. 유 대표 주도로 2016년 한국플로리스트협회가 운영하던 자격시험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인증하는 민간 플로리스트자격증으로 격이 높아졌다. 유 대표는 “꽃집을 창업하려는 이들이 자격증에 접근하기 쉬우면서도 자부심을 갖고 플로리스트로서 꿈을 펼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플로리스트자격증이 국가 공인 민간 자격증이 되자 시험 응시자도 30% 늘었다. 유 대표는 화훼 창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10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년 넘게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유 대표가 중시하는 것은 초심이다. 소비자들의 수요를 읽으려는 노력이다. 그는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늘 똑같은 디자인만 선보이면 소비자들은 금방 식상해 한다. 패션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일본, 유럽 등의 꽃시장을 찾아가 시들지 않는 꽃 등 선진 기술을 배우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트렌드를 파악하며 변화를 시도한다. 유 대표는 매달 강의를 열어 현역 플로리스트들에게 기술과 트렌드도 공유한다. 그는 “꽃집들의 경쟁력이 높아져 화훼 상품이 고급화하면 결국 화훼 소상공인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창업을 꿈꾸는 예비 플로리스트를 대상으로 A부터 Z까지 맞춤 교육도 한다. 그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꽃집을 차린 이들이 30∼40명에 이른다. 유 대표는 노인, 다문화가정, 장애인 등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그는 “꽃은 금세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이런 활동을 통해 화훼산업의 저변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칼바람이 불던 5일 오후 경남 고성군 영오면의 파프리카 재배 단지. 비닐하우스들 사이에 설치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임창규 공룡삼촌농장 대표(32)가 PC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란히 놓인 모니터 4개는 각기 역할이 달랐다. 서류와 이메일 등을 작성하는 용도를 제외한 나머지 3대는 모두 하우스 내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그 덕분에 임 대표는 사무실에서 파프리카 나무와 각종 시설들을 폐쇄회로(CC)TV 화면을 통해 확인하고, 하우스 내 온도와 습도, 태양광 수준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다. 공룡삼촌농장에서는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순 따기 등 일부 작업을 빼고는 햇볕 조절부터 물 주기까지 재배 과정의 대부분을 컴퓨터가 책임진다. 임 대표는 “스마트팜 덕분에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대생이었던 임 대표가 농사를 짓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렸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농사 경험은커녕 제대로 흙을 밟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농사는 달랐다. 처음부터 PC로 데이터를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배 환경을 자동 제어하는 스마트팜을 구상했다. 그렇게 농사를 시작한 지 7년, 그는 연매출 10억 원을 올리는 어엿한 영농 청년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 청년 농부의 스마트팜 도전기 창원대 토목공학과에 다니던 임 대표에게 농사를 권한 사람은 외삼촌이었다. “농사를 지어보니 수익이 괜찮다”는 얘기였는데, 처음에는 한 귀로 흘려들었다. 이후 농사 규모를 키우는 데 필요한 땅을 알아봐 달라는 외삼촌의 연락을 다시 받았다. 그게 전환점이 됐다. 땅이 좋아 관련된 일을 하려고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스스로 놀랄 정도로 농사에 빨려 들어갔다. 농장 경영을 해보겠다는 아들의 선언에 아버지는 격렬히 반대했다. “대학을 나오면 넥타이 매고 펜대 굴리며 살 것이라 믿었다”며 뚱딴지같은 소리로 여겼다. 아버지는 반년 가까이 그의 인사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하우스 일을 배우겠다고 비닐가게에서 일하고, 부추 농장을 찾아다니며 착실하게 농부 준비를 하는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는 마음을 돌렸다. 임 대표는 경남과학기술대 원예학과로 편입한 이듬해인 2013년 본격적으로 농장 일에 뛰어들었다. 8300m² 규모의 비닐하우스 1개 동에 기상대(기후 측정 시설)와 자동으로 제어되는 천창, 환기팬, 양액기(작물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장비), 난방기, 이산화탄소 공급 장치 등을 설치했다. 임 대표는 “스물여섯일 때라 일단 농사를 편하고 재밌게 짓자는 생각이 컸다. 농사도 게임처럼 접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학교에서 각종 벌레에 대해 배웠지만 하우스에서 잎을 갉아먹는 ‘그 해충’이 어떤 종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농약을 구했지만 냄새만 맡아도 기침이 나고 살갗이 일어나는 부작용 때문에 제대로 사용하기조차 힘겨웠다. 그럴 때마다 스마트팜을 만드느라 생긴 빚 10억 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명증이 생기고,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졌지만 악바리처럼 2년을 버텼다. 그는 교육기관과 스마트팜 업체, 국내외 선진 농가 등을 쫓아다니며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사계절을 몇 차례 겪자 데이터가 쌓이고, 최적의 재배 환경도 만들어졌다. 해충을 막기 위해 외국에서 농약 대신 활용할 천적도 들여왔다. 임 대표는 “농약 알레르기도 있고 농사는 체질적으로 안 맞지만 스마트팜은 나에게 딱 맞는다”며 웃었다. 계속된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노지에서는 3.3m²당 파프리카를 20kg 정도 수확하지만 공룡삼촌농장에서는 평균 60kg을 수확한다. 재배 환경을 연중 균일하게 유지해 규격이나 모양도 뛰어나다. 2015년에는 스마트팜 시설을 갖춘 1만3200m² 규모의 비닐하우스 1개 동을 추가로 지을 수 있었다. ○ “농사는 사람보다 기계가 잘 지어” 공룡삼촌농장을 찾은 5일은 임 대표가 올해 처음 심은 신품종인 바나나파프리카를 처음으로 수확하는 날이었다. 커다란 고추처럼 생긴 바나나파프리카는 일반 파프리카보다 크기가 크고, 비타민C도 더 풍부하다. 기온 28도, 습도 80%로 맞춰진 비닐하우스에 들어서니 한파가 무색하게 후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직원들이 갓 딴 다양한 색깔의 바나나파프리카를 상자에 담고 있었다. 임 대표는 “신품종에 도전해 보려고 네덜란드로 가 이것저것 다 먹어본 뒤 골라온 품종”이라며 하나를 건넸다. 무농약 제품이라 그대로 한입 베어 무니 일반 파프리카보다 달고 아삭했다. 바나나파프리카는 사실 임 대표에게 모험이다. 그간 키워온 일반 파프리카는 재배 데이터가 충분히 쌓였고 판로도 안정적이다. 농업회사법인 코파㈜(코리아 파프리카의 줄임말)를 통해 전량 일본으로 수출한다. 그런 파프리카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을 포기하고 8300m²짜리 하우스 1개 동 전체에 신품종을 심은 것이다. 그는 신품종에 적합한 재배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한동안 매일 나무를 관찰하고 기온, 습도 등을 추적했다. 올해 5월에는 직접 판매처를 발굴하려고 일본의 업체들을 찾아가 “네덜란드 파프리카보다 맛있다. 열심히 하겠다”며 구애했다. 다행히 두 곳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날 포장한 상품들은 이곳으로 보낼 시제품이다. 임 대표의 과감한 도전은 시행착오 속에 다져진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그는 “금수저도 아니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닌 내게 스마트팜은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지금은 일 배우고 싶다고 진지하게 연락해오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또래 직장인보다 높은 수익을 올린다. 7년 차 청년 농부는 창농을 고려하는 청년들에게 “농업은 블루오션이지만 막연한 환상으로 들어왔다가는 고생만 한다”며 신중하게 선택할 것을 당부했다. 오랜 경험의 농부들이 가진 ‘감’이 없을뿐더러 갈수록 농산품 단가가 떨어지는 환경에서 의지만으로 버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젊은층이 농사를 시작할 때 해법은 경제적이고 과학적인 농업을 할 수 있는 스마트팜에 있다는 게 임 대표의 결론이다. 그는 “농사를 지으려면 무조건 스마트팜으로 승부를 보라. 농사는 사람보다 기계가 잘 짓는다”며 환하게 웃었다.고성=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스마트팜에 관심 있으세요?” 2일 전남 장성군 진원면 불태산 끝자락에 있는 딸기 농장 투베리 농원. 여러 동의 시설하우스 사이에 들어선 80m² 남짓한 강의장에서 이장호 투베리 농원 대표(52)가 견학 온 20여 명의 농민에게 물었다. 여기저기서 “네”라고 답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들은 제주 제주시 한경면 고산1리 농민들이다. 스마트팜을 통해 ‘전문 농군’으로 자리 잡은 이 대표에게 성공 비결을 전수받으러 먼 길을 왔다. 농민들은 하우스로 옮겨 시설을 살펴보면서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한 농민이 “실내 온도, 습도가 자동으로 조절되느냐”고 물었다. 일반하우스에서는 밤낮 온도 차나 여름철 치솟는 온도를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컴퓨터가 온도, 습도, 풍향 등을 모두 고려해 천창을 자동으로 여닫기 때문에 항상 설정해둔 재배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2단 높이의 재배단 위로 설치된 환풍기도 스마트폰으로 작동이 가능했다. 이 대표는 농민들 사이에서 ‘딸기 명인’으로 불린다. 이곳 딸기는 다른 농장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단단하고 맛이 좋다. 농산물 공판장과 온라인몰 가릴 것 없이 투베리 농원 딸기는 큰 인기를 누린다. 놀랍게도 이 대표가 딸기 농사를 지은 지는 불과 7년밖에 되지 않는다. 농촌 출신도 아니다. 낫 한 번 들어본 적 없던 초보 농부가 영농 기술을 전수하는 전문 농군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데는 스마트팜이 있었다. ○ 정보 장교에서 딸기 명인으로 이 대표의 인생 경로는 두 차례 크게 바뀌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공군 학사장교에 지원한 게 첫 번째였다면 2012년 3월 25년 동안 복무한 군에서 소령으로 퇴역하며 농사에 뛰어든 게 두 번째다. 퇴역 당시 이 대표의 딸과 아들은 모두 중학생이었다. 그는 당초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은퇴이민을 생각했다. 하지만 은퇴이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찾은 퇴직박람회의 귀농귀촌 부스에서 발이 멈췄다. 귀농은 말이 통하는 곳으로 이민 가는 것이고, 아이들이 시골에서 성장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2012년 농사 첫해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우스 4개 동을 빌려 딸기 모종을 심었지만 물을 뿌리면 그대로 고여 있을 만큼 땅이 척박했다. 그해 8, 9월엔 태풍이 잇달아 강타해 하우스가 참담하게 망가졌다. 포기를 모르는 ‘군인 정신’이 뼛속 깊이 박혀 있었지만 ‘5급 군무원 자리가 났으니 지원하라’는 제안에는 농사를 접을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이듬해 봄에 상황이 달라졌다. 태풍이 올 때 예보를 일찍 파악한 뒤 모종 3만 주를 미리 거둬들여 저온 창고에 보관해둔 게 도움이 됐다. 9월에 이를 다시 심었더니 해를 넘겨 엄청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퇴로를 스스로 닫았다. 기왕 농사에 올인(다걸기)하려면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전남도는 정보통신기술(ICT)을 농사에 활용하도록 지역 농가에 스마트팜 설치를 지원했다. 군에서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일을 했던 이 대표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스마트팜을 통해 각종 딸기 재배 관련 데이터만 쌓이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처음에는 2300m² 규모의 하우스 4개 동에 온도, 습도, 일사량 등을 관찰하는 기상대와 기상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작동하는 천창과 환풍기, 분무기 등을 설치했다. 현재 투베리 농원은 총 7300m² 규모인 15개 동의 스마트팜 단지로 커졌다.○ 노하우 나누는 ‘스마트팜’ 전도사 그는 스마트팜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우선 고된 농사일에서 벗어났다. 이 대표는 “하우스 환기창을 관리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스마트팜이 아니라면 오늘처럼 빗방울이 쏟아졌다가 해가 났다가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는 온종일 하우스에 머물며 천창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배 환경을 컴퓨터로 제어하고 하우스를 자동으로 관리하다 보니 이 대표 부부와 직원 3명이 여유 있게 농장을 돌볼 수 있다. 온도 습도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자 딸기 생산량이 늘고 품질도 좋아졌다. 일반 환경에서는 보통 수확한 딸기의 20∼30% 정도는 상품성이 떨어져 버려진다. 하지만 투베리 농원에서는 불량품이 거의 없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일정하게 공급하는 것도 이 대표의 비법이다. 이렇게 수확한 투베리 농원의 딸기 90%가 최상품 판정을 받는다. 이 대표는 지난해 30t의 딸기를 생산해 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처음 초보 농부인 그에게 농사를 알려준다며 ‘감 놔라 배 놔라’ 했던 지역 농민들이 이제는 이 대표에게 영농 기술을 묻는다. 농원을 찾았던 이날도 자문을 하는 농민들로 이 대표의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렸다. 귀농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 한수 씨(21)는 전남대 농업생명과학대 원예생명공학과에 진학해 농업인의 길을 걷고 있다. 이 대표는 “아버지를 보고 농사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이 대표는 다른 딸기 농가를 경쟁자라기보다는 함께 딸기 시장을 키우는 동업자라고 생각한다. 일단 딸기가 맛있으면 소비자들이 더 많이 찾으며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우스 단지 중앙에 교육장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성과가 좋은 농부를 불러 경험담을 듣거나 스마트팜 노하우를 공유한다. 이 대표는 “스마트팜의 취지가 빅데이터를 축적해 농사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다른 농부들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소상공인 가운데 꾸준한 노력과 남다른 아이디어로 사업에서 성공하고 지역사회에도 기여해 온 사람이 있다. 규모는 작아도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강소(强小)기업처럼 이들도 세계에 한류를 알리거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남다른 성과를 냈다. ‘2019 소상공인 대회’에서 수훈, 수상한 강소(强小)상공인 가운데 8명을 4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비앤테일러샵’ 박정열 대표(68·사진)는 한국의 맞춤 양복을 세계적 브랜드로 만든 K패션 전도사다. 1967년 전북의 한 양복점에서 처음 재단을 배운 뒤 52년간 맞춤 양복의 한길을 걸었다. KBS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실제 인물이다. 1990년대 들어 맞춤 양복은 사양산업으로 여겨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박 대표의 양복점도 폐업 직전까지 갔다. 위기 상황에서 온라인은 기회가 됐다. 박 대표는 “동네 교회에서 무료 PC 강좌를 듣고 홈페이지를 만든 뒤 제품 사진을 올리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았더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맞춤 양복의 수요는 최근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외환위기 당시 박 대표가 서울 종로에서 운영하던 양복점은 50m² 남짓한 공간이었다. 현재 비앤테일러샵은 연면적 500m², 4층 규모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고객층도 20∼40대로 젊어지고, 확대됐다. 인스타그램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진으로 제품을 접한 외국인들의 주문도 크게 늘었다. 박 대표는 “디자인과 원단이 좋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중국, 일본 등에서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2017년 일본 이세탄백화점 명품관에도 입점했다. 박 대표는 한국 맞춤 양복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공로로 올해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박 대표의 아들 창우 씨(39)와 창진 씨(37)는 회사 이사로 재직하며 젊은 감각과 기술을 더하고 있다. 박 대표는 “손기술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 옷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열심히 기술을 배워 맞춤 양복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 피부미용 해외시장 개척 ‘K뷰티 전도사’ ▼(2) 스킨블루 권혁환 대표… 2014년 피부미용협동조합 설립업체간 기술-서비스 노하우 공유… 中-베트남 등 찾아 기술교육도 한국의 뷰티 산업은 당당히 한류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심에 권혁환 스킨블루 대표(50·사진)가 있다. 그는 한국피부미용협동조합 이사장, 세계직능중소상공인연합회 K뷰티위원장을 맡아 해외 시장을 개척한 공로로 올해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권 대표는 피부 관리 기술을 개발하고 에스테틱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회사를 15년째 운영하고 있다. 피부 타입에 맞는 화장품을 개발해 공급하는 일도 한다. 권 대표는 개별 숍의 규모가 작을뿐더러 좋은 기술이 있어도 공유가 잘되지 않자 2014년 피부미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는 “업체 간 기술·서비스 노하우를 공유해서 피부 관리업이 함께 성장하는 업종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은 K뷰티를 중국, 베트남 등으로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도 한다. 권 대표는 조합원들과 함께 중국 베이징, 톈진 등의 직업훈련학교에 진출해 피부미용 기술을 교육한다. 한국의 피부미용 기술은 아시아권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권 대표는 “얼굴을 다루는 한국의 손기술은 탁월하다. 여기에 피부 관리 제품과 관리 기계까지 뛰어나 해외시장이 속속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출 유망 지역으로 중국과 베트남을 적극 추천했다. K뷰티의 최대 시장인 중국은 자국 업체들이 가세하며 경쟁이 격화됐지만 여전히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가능성이 많다. 인구 1억 명의 베트남은 이제 막 K뷰티의 열기가 시작됐다. 권 대표는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로 K뷰티의 관심이 높긴 하지만 처음부터 ‘대박’을 노려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해외 교육기관 등과 연계해 경험과 이력을 쌓으며 차근차근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청년은 기성 정당에 ○○○다?’ 20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청년정치크루’ 이동수 대표(31), 김수한 씨(29), 이루다 씨(28)에게 물었다. 청년정치크루는 정치 성향이 제각각인 1988∼1991년생 7명으로 이뤄졌다. ‘청년정책 싱크탱크’를 내걸고 2015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에게 ‘머릿수를 채우는 사람’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는 “여의도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말이 ‘몇 명 되느냐’”라고 전했다. 정당들이 청년 관련 행사를 할 때 얼마나 젊은층을 동원해줄 수 있느냐에 가장 관심을 갖는다는 얘기다. 김 씨는 “청년은 ‘메인 디시의 소스’다. 정당들이 소스 없이 먹어도 되는데 있어 보이니까 소스를 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층을 선거 때 반짝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그래서 직접 나섰다. 청년정치크루는 취업, 청년 주거, 수강신청 등 2030세대가 생활에서 느끼는 문제에 대해 해법을 고민해 정치권에 제안하고 있다. 3월 국회를 통과한 취업준비생 보호법(채용절차공정화법 개정안)과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된 취업사기 방지법(직업안정법 개정안)에 이들의 제안이 반영됐다. 청년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정치를 떠올릴 수 있도록 ‘정책 쇼케이스’, ‘정치 예능캠프’ 같은 정치의 문턱을 낮추는 활동도 한다. 이들은 기성 정당에서 인턴 등을 하며 정치권의 ‘룰’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현재 여의도 정치는 갈라파고스섬 같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최근 청년 간담회를 평일 오후 2시에 했는데 일하는 청년들은 결코 올 수 없는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김 씨는 “국회에서 하는 정책토론회에 관심이 있어 가보면 의원들이 30분가량 돌림 축사를 한다. 의원 자랑 들으려고 여기에 왔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여야 모두 청년과의 소통을 내세우지만 기성 정당이 ‘벽’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이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쪽 모임에 가면 학생운동하며 서로 다 아는 사이더라. 가족이 하는 회사에 혼자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 한국당에서 인턴을 할 때 청년간담회 홍보를 위한 문구로 ‘홍준표×청년’을 제안했다. ‘×’는 컬래버레이션을 할 때 시너지를 낸다는 뜻으로 젊은층이라면 누구나 아는 표현이다. 하지만 핵심 당직자는 감히 홍 대표에게 욕했다면서 호통을 쳤다. 결국 문구는 ‘홍준표♡청년’으로 바뀌었다. 청년들이 직접 정치에 나서면 무엇이 다를까. 이 씨는 “우리 세대를 보고 모래 같다고 하는데 우리는 86세대처럼 관통하는 경험과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다원화 시대의 정치에 오히려 적합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의원들 중에 ‘타다’를 타 본 사람이 있을까. 경제나 외교 문제는 기성 정치인들을 절대 못 이기겠지만 스타트업, 타다 같은 문제는 직접 맞닥뜨리는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장면 1. “장래 20년에 투자해 주십시오!” 16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00년 4월. 서른넷의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임종석 후보는 서울 성동구를 누비며 한 표를 호소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인 그의 공략 대상은 젊은층. 20대 선거운동원으로 ‘2020본부’를 꾸려 대학가와 호프집을 돌았고, 인터넷 세대를 겨냥해 e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정치권 물갈이 열풍에 임 후보와 경쟁한 4선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이세기 의원은 고배를 마셨다. #장면 2.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달 17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21대 총선 불출마를 밝혔다. 그의 느닷없는 선언은 출마하려던 서울 종로에 대한 ‘교통정리’가 불발된 탓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불똥은 다른 데로 튀었다. 앞서 불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86세대는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고 나선 것과 맞물려 86그룹 교체론이 불거진 것이다. 임 전 실장은 쉰셋으로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58.7세)보다 젊다. 하지만 그는 86그룹이라는 틀 안에서 20년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가 20년 만에 인적쇄신의 무대에 다시 소환됐다. 내용은 180도 달라졌다.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에는 정치 세대교체의 주역이었다면 이번에는 쇄신론의 대상이 됐다. 다선 의원의 ‘자의 반 타의 반’ 퇴진은 역대 총선에서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여의도 기준으로 ‘한창 나이’인 86세대에 대한 용퇴론은 기존의 용퇴론과 결이 크게 다르다. 민주화 성취라는 성과를 바탕으로 기회와 자원을 장기간 독점해온 세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 여의도 ‘앙팡 테리블’이던 86세대 86세대를 여의도로 불러낸 것은 1999년 ‘뉴 밀레니엄’ 열풍이었다. 지역 대결구도와 구태정치에서 벗어나 새 정치를 바라는 염원이 대대적인 물갈이 요구로 이어진 것이다. 선제적으로 대응한 쪽은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현 민주당)였다.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은 16대 총선을 1년 앞둔 1999년 4월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젊은 세대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1세기 주역이 될 각 분야의 젊은 전문가를 영입하라는 취지였다. 여당 지도부는 DJ의 ‘젊은피 수혈론’에 곧바로 80년대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인사들을 만났고, 30대의 ‘86 운동권’ 출신들은 영입 대상 1순위로 부각됐다. 당시 우상호 전 연세대 총학생회장,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전대협 1·2·3기 의장, 윤호중 전 서울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간부 등 386 운동권 인사들도 ‘젊은 한국’ ‘녹색연대 21’ 등 개혁적 청년정치를 표방한 각종 모임을 만들어 여의도 진입을 노렸다. 한나라당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영춘 의원, 고진화 전 의원과 함께 ‘신진 엘리트’라며 변호사이던 오세훈 원희룡 등 386 인사를 내세웠다. 16대 총선에서 86세대 몇 명이 국회에 입성할지는 정치 세대교체의 척도처럼 여겨졌다. 총선 결과 전체 당선자 중 30대는 4.8%인 13명. 여야에서 총 37명이 나선 상황에서 386세대의 약진이라고 할 만했다. 특히 1960년 4·19혁명의 주역들이 줄줄이 386 후보에게 쓰러지며 16대 총선은 ‘4·19세대의 퇴진’으로 기록됐다. 386 당선자들은 정치개혁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보스정치 탈피, 거수기 역할 거부 등 서슴없이 당내 민주화를 화두로 던지며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로 불렸다. 이들이 타는 승용차까지 화제가 됐다. 검은 세단이 즐비한 의원 주차장에서 ‘국민차’로 불린 쏘나타나 승합차인 카니발은 눈에 띄었다. 당시 중고 EF쏘나타를 이용한 임 전 실장은 “자동차에서부터 문턱 없이 항상 열려 있는 의원임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16대 총선으로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 86세대는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2004년 17대 총선을 거치며 정치권의 주요 세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86세대가 20년 가까이 권력을 차지하며 새로운 30대는 정치판에서 사라지는 역설이 나타났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86세대는 30대였던 1996년 15대 총선에서 10명(3%)이 배지를 달았다. 이들이 40대에 진입한 2004년 17대 총선에선 106명(35%)의 40대 당선자가 나왔다. 아래 세대는 그만큼 기회를 빼앗겼다. 86세대가 50대로 대거 편입된 2016년 20대 총선 당선자 중 30대는 2명, 40대는 50명(17%)에 불과했다. 반면 50대 당선자는 161명(54%)이나 됐다. 86세대가 정치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다.○ 세대교체 주체에서 대상으로 86세대에 대한 용퇴론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 7월 처음 거론되기 시작했다. 당시 33세였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이동학 혁신위원은 당내 86그룹의 맏형 격인 이인영 의원을 향해 “당의 활로가 돼 달라”면서 ‘적진’ 출마를 요청했다. 86세대인 임미애 혁신위원도 “86세대는 아직도 1987년의 지나간 잔칫상 앞에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며 ‘86 숙주정치’라는 표현까지 썼다. 하지만 외부 인사들의 저격은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이후 4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임 전 실장의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다시 불거진 86세대 용퇴론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권에선 발원지가 86그룹이자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용퇴론에 그만큼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에서 86그룹은 정치 행정 각 분야에서 핵심 요직을 꿰차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입각을 했고 이인영 원내대표를 포함해 송영길 안민석 김태년 우상호 윤호중 조정식 최재성 의원(선수 및 가나다순) 등은 민주당을 이끌고 있다. 86그룹의 용퇴가 여당 내 인적 쇄신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일단 86그룹들은 발끈하는 분위기다. 세대교체라는 깃발 아래 들어왔던 이들이 단지 20년 가까이 정치를 했다는 이유로 물갈이 대상이 되는 게 합당하냐는 것이다. 86그룹의 막내 격인 재선의 박홍근 의원은 “과거 YS, DJ의 ‘40대 기수론’이나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의 정풍운동처럼 정치 개혁이란 명분이 있을 때 물갈이를 하는 거지 지금처럼 특정한 시기를 산 사람은 다 그만두라고 하는 건 반(反)헌법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희생양을 억지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우상호 의원도 “임 전 실장이 그만둔 건 종로 출마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큰 건데 화살을 우리에게 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거론되는 86세대 용퇴론이 비단 여당 내 인적쇄신을 촉발하려는 정치적 전략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86세대의 장기 독점에 따른 피로감이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정치학) 교수는 “86세대 정치인들은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염원 속에 여의도에 들어왔지만 20년이 흐른 현재 국민들이 볼 때는 그들도 기득권”이라며 “개혁의 상징이었던 86세대의 유통기한은 끝났다”고 말했다. 82학번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86세대가 사회 주도세력으로 활동한 것에 대해 “386들이 80년대 10년 동안 나왔던 사람들이니까 10년은 이 세대가 사회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며 (86세대의) 심각성이 더하다고 느꼈다. 86세대 우리 역할은 끝났다.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세대교체의 본질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신진 세력이 낡은 세력을 밀어내는 것이다. 정치혁신을 갈구하던 뉴 밀레니엄 열풍에 따라 들어온 86그룹이 내년 총선의 시대정신 속에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홍수영 gaea@donga.com·황형준·박성진 기자}

“스마트팜이 꼭 각종 센서를 갖춘 유리온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관행적으로 해온 방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생육)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사를 지으면 스마트팜이다.” 이종원 한국농수산대 원예환경시스템학과 교수는 15일 농림축산식품부 주최로 경북 구미시에서 열린 ‘스마트팜 혁신밸리 워크숍’에서 스마트팜에 대한 오해를 지적했다. 스마트팜을 시설의 문제로 접근하면 기존 농업인이나 농촌에서 새 기회를 찾으려는 청년들에게 자칫 넘기 어려운 벽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워크숍은 2021년 조성될 스마트팜 혁신밸리 1차 지역의 마스터플랜을 공유하고 효과적인 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혁신밸리는 교육, 연구개발, 생산, 유통 등 첨단농업 생태계를 아우르는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다. 1차 지역으로 경북 상주시와 전북 김제시가 선정돼 연내 착공을 앞두고 있다. 워크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경북 혁신밸리(상주시 사벌면 일대)는 청년들이 초기 부담 없이 스마트팜을 통해 농업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곳에는 청년 교육생들이 실습할 수 있도록 온실 2개 동의 청년 보육단지가 들어선다. 정주호 경북도 스마트농업육성팀장은 “단지 내 공동주택 30채와 커뮤니티 시설도 지을 계획이라 청년 농업인들이 주거비 부담 없이 교육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임대형 온실과 실증 온실에는 딸기 파프리카 등을 스마트팜에서 키워 해외로 수출하려는 기존 농가를 들일 계획이다. 김제시 백구면에 지어지는 전북 혁신밸리는 스마트팜 연구개발(R&D) 단지로 특화할 계획이다. 전북에는 국가식품클러스터, 농촌진흥청, 한국식품연구원, 한국농수산대 등 연구기관과 바이오 기업들이 밀집돼 있다. 주변의 탄탄한 R&D 인프라를 활용해 신품종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구상이다. 박응규 전북 농식품인력개발원 스마트팜팀장은 “농업에 막 진입한 교육생뿐만 아니라 기존 농업인도 첨단농업을 배우고 실제 적용해 보는 현장으로 혁신밸리를 활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상주와 김제 이외에도 2022년까지 전남 고흥군과 경남 밀양시에도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추가로 조성된다. 박상호 농식품부 농산업정책과장은 “정부는 스마트영농을 농업 전반으로 확산하려 하고 있다. 혁신밸리가 그 마중물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통해 농업과 농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제언도 쏟아졌다. 한 업계 참석자는 “창농을 하려는 청년들은 ‘대박’이 아니라 꾸준한 수입을 창출하는 직장 같은 영농을 원한다. 청년들과 기존 농업인을 멘토와 멘티로 연결해서 서로 배울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이에 정 팀장은 “경북 혁신밸리에서는 청년 보육생과 도내 스마트팜 업체가 네트워킹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운영하려 한다”고 화답했다. 스마트팜을 농가에 구현하려면 로봇,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접목이 필수적이다. 기존 농업인들은 혁신밸리에서 이 같은 기술을 체험해 볼 수 있다. 김대희 한국로봇융합연구원 농업로봇자동화연구센터장은 “농업용 로봇이 스마트팜과 연결되면 고령 농업인들의 복지에 도움을 주고 청년들이 농업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2023년 상용화를 목표로 노지(露地)에서 자율주행하며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는 등의 농사를 짓는 로봇(KIRO-팜로봇)을 개발 중이다.구미=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21대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벌써부터 정치권이 시끄럽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면서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당의 지도급 인사들과 중진을 겨냥한 ‘험지 출마’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른바 ‘인적 쇄신’을 통한 총선 필승 작전이 가동된 셈인데,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이전 총선의 역사를 통해 짚어 봤다.》 정치인에게 지역구는 ‘캐슬(성)’이다. 차지하기도 어렵지만 빼앗기면 탈환하기가 쉽지 않다. 현역 의원들은 ‘생명선’으로 여긴다. 이 줄이 끊어지면 정치 생명이 끝날 수 있다. 국회에서 의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튀는 발언이나 행동들을 할 때 8할은 지역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지역구는 정치인에게 각별하다. 내년 21대 총선을 5개월 앞두고 당의 지도급 인사나 중진을 겨냥한 ‘험지(險地) 출마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험지는 경쟁 정당의 전통적인 텃밭이나 승부를 예상하기 쉽지 않은 격전지를 말한다. 쉽게 말해 당선이 쉽지 않은 곳이다. 험지 출마 요구는 기본적으로는 기존 지역구를 포기하고 한 석이라도 더 건져 오라는 뜻이지만 여러 의미를 내포한 다목적 카드로 쓰이는 경우도 적잖다.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쏟아지는 험지 출마론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험지 출마론의 정치학 우선 험지 출마론은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한 ‘적진 차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전·현직 당 대표나 인지도가 높은 인사들을 험지에 내세움으로써 바람몰이를 기대하는 것이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PK(부산경남) 지역 공략법이 대표적이다. 보수세가 견고했던 ‘낙동강 벨트’를 뚫기 위해 서울에서 재선을 지낸 김영춘 후보(부산 진갑)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던 김경수 후보(경남 김해을)를 앞세웠다. 정치적 야망이 큰 정치인들은 험지 출마를 ‘승부수’로 쓴다. 승리하면 당선증뿐만 아니라 정치적 위상 급등이라는 선물을 챙길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대권을 기대하며 부산 사상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고, 나중에 대통령의 꿈도 이뤘다. 험지 출마가 대권주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때로는 텃밭이 된 지역구에서 여러 차례 당선을 경험한 영호남 중진의원들에게 요구되기도 한다. 다만 이런 험지 출마 요구는 대체로 용퇴해 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와 부총리를 지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황우여 전 의원이 이런 경우였다. 인천 연수에서 4선을 했지만 20대 총선에서 험지인 인천 서을로 출마 지역을 바꿨고, 결국 낙선했다. 한국당에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영남과 서울 강남의 3선 이상에 대한 수도권 험지 출마 요구도 마찬가지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정치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진들에게 ‘험지에 출마해 달라’는 것은 사실상 용퇴해 달라는 말”이라고 귀띔했다. 험지 출마론은 때로는 당내 파워 경쟁의 도구로도 쓰인다.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현재 당내에서 불거진 험지 출마 요구를 자신을 정계에서 퇴출시키려는 친박(친박근혜)계의 ‘작당’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도 친문(친문재인) 측에서 험지 출마론이 나오자 “정치적으로 결단해야 감동을 줄 수 있는데 훈수 두듯 먼저 질러놨다. 엄청난 자해행위다”라고 강력 비판했다.○ 성공 조건은 스스로의 결단 당의 전략이나 정치적 승부수 등 다양한 이유로 험지에 도전하는 이들의 생환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당선과 정치적 위상 제고라는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발적으로 험지에 뛰어든다는 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험지 출마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14대 총선과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이후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로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지만 2000년 16대 총선 때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낙선했지만 끝은 아니었다. 그때 얻은 ‘바보 노무현’ 이미지는 2년 뒤 대선 가도에 큰 자산이 됐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TK(대구경북)판 노무현’이었다. 김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보수정당의 심장인 대구 수성갑에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경기 군포에서 3선을 지낸 그가 고향인 대구로 가 19대 총선, 2014년 지방선거에 낙선한 뒤 세 번째 도전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당시 TK 출신이지만 총선을 코앞에 두고 대구에 내려온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되레 ‘굴러온 돌’로 여겨졌을 정도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이에 대해 “전국적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거나 정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텃밭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진정성을 보여주면 지역민에게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등 떠밀리듯 험지에 나섰다가 실패한 사례는 숱하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민주당 재선 의원이 있는 서울 마포갑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국민검사’로 불리며 한때 대권주자로 거론됐던 안 전 대법관은 이때의 실패로 정치의 꿈을 완전히 접었다. 그는 당초 부산 해운대에서 출마 채비를 해오다 당의 험지 출마 요구에 뒤늦게 지역구를 옮겼다. 이에 반발한 마포갑의 전직 의원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바람에 험지 출마는 감동은커녕 당내 갈등만 노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이 추진한 험지 출마 전략은 ‘실패의 교과서’로 불릴 만하다. 당시 당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당내 ‘빅 카드’들의 험지 출마 요구를 공식 결의했다. 하지만 정작 최고위원 가운데 지역구를 양보하고 험지에 출마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험지 출마론의 메시지는 자기희생과 솔선수범이다. ‘니가 가라, 하와이’식은 국민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의도 무사귀환이냐, 승부수냐 내년 4·15총선을 앞두고 여야 유력 인사들은 지역구 선택을 놓고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김부겸 김영춘 의원이 각각 TK와 PK에서의 재선을 노리고 있다. 중진들의 험지 출마도 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낙선하더라도 입각이나 기관장으로 ‘보은’받을 여지가 있어서다. 문제는 한국당이다. 정권을 되찾아야 하지만 대선 예비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대부분 원외에 있다. 한 당직자는 “험지에 나가 장렬하게 싸우는 것도 좋지만 다 전사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화살(의원)이 많을수록 과녁(정권 창출)을 맞힐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일단은 이들을 살리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현재 야당에서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꾀하는 모양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일찌감치 험지인 서울 광진을에서 표밭을 다지고 있다. 반면 홍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는 고향인 PK에서 출마해 여의도에 무사귀환한 뒤 훗날을 도모하는 쪽을 택했다. 김 전 지사는 “중요한 것은 총선 이후의 가능성이다. 비난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정치 신인인 황교안 대표와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대구 출마를 고려했던 김 전 비대위원장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정치와 당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찾겠다”고 밝혔다. 보수 통합을 추진 중인 바른미래당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의 유승민 대표는 “내게는 현 지역구(대구 동을)가 험지”라고 말했지만 수도권 차출론이 나올 경우 응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이끈 유력 정치인들은 평가는 엇갈려도 뚜렷한 정치적 상징자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명망가 중심의 인물이 부상하면서 “당신의 정치적 능력을 보여 달라”는 당 안팎의 요구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험지 출마론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이 국내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인종 청소’ 수렁에 빠지면서 군부 독재에 맞섰던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명예가 끝없이 추락 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유엔 특별조사단은 지난해 8월 미얀마 정부군의 로힝야족 토벌 작전을 ‘인종 청소 의도를 가진 중대 범죄’이자 집단 성폭행 등 반인도주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국내외 시선이 실권자 수지에게 쏠렸으나 이튿날 양곤대에 나타난 그는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가치 등 문학 얘기만 했다. 사실상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중요 인권 현안에 침묵한 것이다. 유엔이 ‘인종 청소’라고 비난한 사건은 수지가 집권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유엔 특별조사단 보고서도 “수지는 로힝야족 사태를 막기 위해 실권자로서의 지위나 자신의 도덕적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지적했다. 유엔 보고서는 군부 최고사령관 등 6명을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부 수뇌부나 수지가 국제법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수지에게는 ‘인종 청소’의 오명이 따라 다니게 됐다. 지난해 8월 25일 미얀마군은 반군 소탕을 빌미로 로힝야족을 향한 무자비한 작전을 시작했다. 이후 한 달 동안 로힝야족 6700명이 총기, 폭력 등으로 희생된 것으로 국경없는의사회는 추정한다. 당시 살아남은 주민들은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를 향해 국경을 넘었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로힝야족 91만5000명이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에 머물고 있다. 2016년 3월 수지가 이끄는 문민정부가 출범할 당시 미얀마 내 오랜 소수민족 탄압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국제사회는 기대했다. 수지는 2013년 10월 영국 BBC에서 “독재정권의 통치가 길어지다 보니 국민들이 서로를 불신하며 빚어지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지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지난해 4월 BBC에서 로힝야족 거주 지역의 분쟁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인종 청소는 너무 강한 표현이다. (불교도뿐만 아니라) 무슬림들끼리 서로 죽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지가 로힝야족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먼저 국내 정서상 그가 인권 대신 민족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얀마에는 1885년부터 60여 년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저항운동을 하던 민족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라카인주의 무슬림(로힝야족의 뿌리)에 대해 구원(舊怨)이 있다. BBC는 “수지가 로힝야족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즉시 대중은 물론이고 불교 민족주의자, 군부 관계자 등의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지의 권력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미얀마는 민간정부와 군부의 연립정부 형태다. 군부가 만든 헌법에 따라 수지의 권한은 제한될 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와 치안 관련 3개 장관은 군부 몫이다. 수지의 전기 작가인 피터 포팸은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수지는 정부에서 가장 막강한 민간인이지만 주요 정책에 대해 반대할 권리조차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영국 에든버러시는 옥스퍼드시에 이어 그의 명예시민권을 박탈했다. 수지는 옥스퍼드대 동문인 영국인과 결혼해 영국 국적의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미국 홀로코스트 박물관도 2012년 수여한 엘리위젤상을 철회했다. 노벨평화상 박탈 요구도 거세다. 다만 AFP통신에 따르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지난달 30일 “노벨평화상 규정상 박탈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올해로 정치인 인생 30년을 맞은 수지에게 또 한 번의 큰 고비가 닥쳐왔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국경을 가로지르는 루미차카 다리에는 요즘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넘쳐난다. 에콰도르에 입국하려고 베네수엘라를 출발해 콜롬비아를 통과해 온 사람들이다. 주변국들이 곧 국경을 폐쇄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베네수엘라인들의 ‘엑소더스(대탈출)’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14일 하루에만 베네수엘라인 4만3000명이 루미차카 다리를 건넜다고 외신은 전한다. 유엔에 따르면 2017년 베네수엘라 인구의 5.1%인 164만 명이 브라질,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으로 떠났다. 올해는 7월 말까지 400만 명 이상이 고국을 등지고 떠났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국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주변국에 난민을 내보내 눈총을 받는 남미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정부의 비효율적인 국가 경영과 빗나간 포퓰리즘 정책 등으로 나라 곳간이 거덜 나고 살인적인 물가는 국민들을 ‘경제 난민’으로 내몰고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3년 말부터 시작된 하이퍼(초)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허덕이며 파탄 났다. 베네수엘라 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간 물가상승률은 1만3779%에 이르렀다. 지난주에는 불과 1주일 만에 물가가 무려 3만2000% 상승했다. 현금을 한 상자 들고 가야 고작 두부 한 모를 살 수 있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마이너스 성장률에 제조업 기반이 붕괴됐고 식량과 생필품 품귀 현상도 심각하다. 베네수엘라 주요 3개 대학의 조사 결과 베네수엘라인들의 몸무게도 식량난으로 지난해 평균 11kg이나 줄었다. 경제가 엉망이 되자 다국적 기업들도 줄줄이 철수하고 있다. 미국 식품기업 켈로그는 원자재난과 정부의 가격 통제에 시달리다 5월에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드문 베네수엘라 경제의 추락은 2014년 국제유가 폭락과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기에 만들어진 포퓰리즘 정책이 기폭제가 됐다. 베네수엘라 경제에서 석유의 비중은 막대하다. 2013년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석유 부문이 차지했고 외화의 95%를 석유 수출로 벌어들였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2013년 사망할 때까지 14년간 장기 집권한 차베스는 고유가에 힘입은 오일머니로 각종 선심 정책을 남발했다. 그런 베네수엘라에 장기 저유가 추세는 직격탄이 됐다. 후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차베스보다 더한 포퓰리즘 정책을 폈다. 나라 곳간이 비면 국채를 남발하고 화폐를 더 찍어냈다.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면 시장 가격을 억눌렀고 결국 기업들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런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부정선거 의혹 속에 재선에 성공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금융제재를 강화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 베네수엘라 상황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23년 독일이나 로버트 무가베 독재정권 시절인 2000년대 말 짐바브웨와 비슷하다”고 경고했다. 마두로 정권은 20일 기존 화폐에서 뒷자리 ‘0’을 5개 떼어내는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아울러 최저임금을 3000% 인상하고 법인세율을 높이는 등 ‘경제 회복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오히려 경제난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칼럼니스트인 케네스 라포자는 “국민 상당수가 발효된 지 사흘도 안 된 새 조치를 실패로 보고 난파선을 탈출할 채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어제 악마가 여기 왔다 갔어요. 오늘까지도 연단에서 (지옥의) 유황불 냄새가 납니다.”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 9월 20일 뉴욕 유엔총회장. 단상에 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이렇게 조롱했다. 영국 BBC방송이 2013년 3월 5일 차베스가 사망했을 때 “차베스는 세계무대에서 미국을 대놓고 공격하던 최후의 비판자였다”고 논평한 것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일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뿐 아니라 적지 않은 세계 중소국 지도자들이 슈퍼 파워 미국 혹은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맞섰고 일부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는 아랍권 반미(反美)운동의 기수였다. 그는 정권을 유지하고 미국에 맞서기 위해 핵 개발에도 나섰다가 국제사회의 제재 등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다. 하지만 2011년 내전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무력을 행사해 미국 등 서방이 반군을 지원하는 바람에 정권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운명을 맞았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으로부터 낙마 위협을 받았지만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아사드는 7년 내전 끝에 반군 제압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국토가 황폐화되고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미국 뉴욕 9·11테러 이후 대량살상무기 은폐 의혹을 제기하며 무력행사에 나선 미군에 붙들려 재판에서 사형당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미국의 턱밑에서 소련의 미사일을 들여오려고 시도하는 등 반미 선봉에 섰다. 실리를 추구한 쿠바는 2015년 미국과 다시 수교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관계가 틀어지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전통 우방인 필리핀이 최근 반미 전선에 섰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집권한 뒤 ‘친중국’ 성향으로 돌아선 데 따른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6월 첫 북-미 정상회담을 하며 대반전극을 펼쳤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여부에 따라 올해 1월 ‘핵단추’ 공방을 벌일 때처럼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지난해 4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 독재의 길을 여는 개헌을 강행해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축하 전화를 걸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 대선 직후인 2016년 11월 미국 내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일어나자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트럼프와 에르도안의 관계가 급반전하고 있다. 터키가 구금한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을 석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에르도안이 거부한 것이 뇌관이 돼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터키의 맞불 관세가 난무하는 상황이다. 두 ‘스트롱맨’의 강 대 강 대결에 66년 동맹국인 미국과 터키의 관계도 위태로워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0일자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미국이 터키에 대한 무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동맹을 찾기 시작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세라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16일 “터키가 브런슨 목사를 석방한다 해도 터키산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21세기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중동을 넘어 세계 정치 역학구도를 흔드는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 서방과 중동, 러시아 사이에 놓인 터키 터키는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창립 당시 가입을 신청했으나 ‘아시아 국가’라는 이유 등으로 거절당했다. 그러다가 6·25전쟁에 참전해 1952년 2월 받아들여졌다. 나토 회원국으로 군사·안보 면에서는 서방과 동맹이지만 이슬람 국가로서 아직 유럽연합(EU)에는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 러시아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만큼이나 터키가 처한 복합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미 공영라디오 NPR는 최근 터키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지정학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미국에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국가”라고 전했다. 미국이 터키를 쉽사리 내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 미국으로서는 터키가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막아주는 핵심 완충국이다. 터키는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수니파 이슬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퇴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유럽 국가들도 중동으로의 전초 기지인 터키를 우군으로 삼아야 했다. 시리아 난민의 유럽 유입을 막고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려면 터키의 협력이 절실하다. ○ ‘스트롱맨’ 에르도안 변수 서방과 터키의 전통적인 협력 체제에 균열이 나타난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권력을 강화하면서부터다. 에르도안은 거리에서 레모네이드와 참깨빵을 팔아 학교에 다닌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총리로 10년 동안 지낼 때는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을 3배 가까이로 키워 제2의 국부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2016년 7월 군부의 쿠데타 시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에르도안은 최장 2034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개헌을 밀어붙인 데 이어 자신에게 반대했던 군인, 정치인, 언론인 등을 대거 숙청하며 폭군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EU로서는 불편한 이웃 국가의 지도자가 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르도안의 독재적 통치에 개의치 않고 밀월을 유지했지만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올 초 시리아 내전에서 터키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 민병대를 테러조직으로 간주하고 공격해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어 에르도안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줄타기’를 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돼 미국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터키 정부가 지난달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로 불리는 지대공 미사일 S-400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 한 예다. 당장 미 의회에선 “우리의 기술을 러시아로 넘기는 꼴”이라며 F-35 ‘라이트닝2’ 스텔스 전투기의 터키 수출 계획을 중단토록 했다.○ ‘21세기 술탄’ 자승자박하나 미국이 일부 품목에 대해 특혜 관세를 없애자 터키 경제의 취약점이 두드러지며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는 금융 불안으로 번졌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독단이 터키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에르도안은 집권 이후 터키를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를 호령했던 ‘제2의 오스만 제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보여 왔다. 이를 위해 건설경기 부양과 인위적인 저금리 등 개발 독재 정책을 폈다. 부작용으로 지난해 물가가 10.9%나 올랐지만 가계의 빚 부담을 줄여야 재집권에 유리했기 때문에 저금리를 고집했다. 에르도안이 국민들의 경제 불만을 삭이려고 반미 감정을 활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는 7월 펴낸 보고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반미 발언을 포함한 호전적인 민족주의를 통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리라화 가치 폭락에서 보듯 문제 해결은커녕 나라를 거덜 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터키 카디르하스대의 아흐메트 카슴 한 교수는 NYT에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이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으나 자칫하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브로맨스’를 자랑할 만큼 친분을 과시했다. 지난해 4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장기 독재의 길을 여는 개헌을 강행해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축하전화를 걸었다. 앞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 대선 직후인 2016년 11월 미국내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일어나자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브로맨스가 냉랭한 관계로 돌아선 것처럼 트럼프와 에르도안의 관계도 급반전하고 있다. 터키가 구금한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를 석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터키가 거부한 것이 뇌관이 되어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터키의 맞불 관세가 난무하는 상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0일자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미국이 터키에 대한 무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동맹을 찾기 시작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16일 “터키가 브런슨 목사를 석방한다 해도 터키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21세기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동을 넘어 세계 정치 역학구도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 서방과 중동, 러시아 사이에 놓인 터키 터키는 1949년 결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했으나 ‘아시아 국가’라는 이유 등으로 거절당하다 6·25 전쟁에 참전해 피를 흘리며 싸워 1952년 2월 전쟁 중 가입됐다. 나토 회원국이 되어 군사 안보 면에서는 서방과 동맹국이 됐지만 이슬람 국가로서 아직도 유럽연합(EU)에는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서쪽과 중동 러시아 사이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 만큼이나 터키가 처한 복합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미 공영라디오 NPR은 최근 터키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지정학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미국에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국가”라고 전했다. 미국으로서는 터키가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막아주는 핵심 완충국이다. 터키는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수니파 이슬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퇴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유럽 국가들도 중동으로의 전초 기지인 터키를 우군으로 삼아야 했다. 시리아 난민의 유럽 유입을 막고 테러리스트를 추적하려면 터키의 협력이 절실하다. ● ‘스트롱맨’ 에르도안 변수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서방과 터키의 전통적인 협력 체제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에르도안은 거리에서 레몬에이드와 참깨빵을 팔아 학교에 다닌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총리로 10년 동안 지낼 때는 터키의 국내총생산(GDP)을 3배 가까이 키워 제 2의 국부로 추앙 받았다. 하지만 2016년 7월 군부의 쿠데타 시도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최장 2034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개헌을 밀어붙인 데 이어 자신에게 반대했던 군인, 정치인, 언론인 등을 대거 숙청하며 폭군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EU으로서는 불편한 이웃국가의 지도자가 되어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에는 에르도안이 독재자로 변해가는 것에 개의치 않고 밀월을 유지했지만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올 초 시리아 내전에서 터키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 민병대를 테러조직으로 간주해 공격해 미국과 갈등이 불거졌다. 이어 에르도안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전략적 줄타기’를 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돼 미국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터키 정부가 지난달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불리는 지대공 미사일 S-400을 도입하기로 한 것이 한 예다. 당장 미 의회에선 “우리의 기술을 러시아로 넘기는 꼴”이라며 F-35 ‘라이트닝2’ 스텔스 전투기의 터키 수출 계획을 중단토록 했다. ● ‘21세기 술탄’의 자승자박 하나 미국이 일부 품목에 대해 특혜 관세를 없애자 터키 경제의 취약점이 더욱 두르러지면서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는 등 타격을 받았다. 에르도안의 독단이 위기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에로도안 대통령은 집권 이후 터키를 아시아와 유럽, 북아프리카를 호령했던 ‘제 2의 오스만제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보여 왔다. 건설경기 부양과 인위적인 저금리 등 개발독재 정책을 폈다. 부작용으로 지난해 물가가 10.9%나 올랐지만 금리를 낮춰 가계의 빚 부담을 줄여야 재집권에 유리했기 때문에 저금리를 고집했다. 에르도안이 내부 경제 불만을 삭이려고 반미 감정을 활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는 7월 펴낸 보고서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반미 발언을 포함한 호전적인 민족주의를 통해 권력의 전통성을 확보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리라화 가치 폭락에서 보듯 문제 해결은 커녕 나라를 거덜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없지 않다. 터키 카디르 하스대의 아흐메트 카심 한 교수는 NYT에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이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미국에 맞서고 있으나 자칫하면 파국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