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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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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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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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일반3%
  • [김순덕의 도발]조국의 반일 종족주의

    “우리 국민들은 한일 우호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려고 의연하고 성숙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했다. 13일 청와대 오찬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러고도 대통령은 전혀 의연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하게 대응했던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할 게 분명하다. 이런 식이면 인사 청문회는 무력화되고, 앞으로 누가 어디 임명돼도 국민은 무관심해질 것이다(이걸 노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적어둔다. 명백한 법적 근거도 없이 자국민을 ‘부역·매국 친일파’라는 사람은, 다른 부처라면 몰라도 법무부 장관 될 자격이 없다. 조국은 8월 5일 오전 7시 44분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이하 인용문장으로 요약되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학자,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치인과 기자를 ‘부역· 매국 친일파’라는 호칭 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 한다…”●조국은 책을 읽었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이하 인용문장으로 요약되는 주장’이라고 쓴 데 주목하기 바란다. 인용문장은 한국일보 8월 5일자 ‘지평선’의 한 대목이다. 즉 조국은 ‘반일 종족주의’라는 논란의 책을 읽고 ‘구역질나는 내용’이라고 쓴 게 아니라 신문 칼럼을 보고 썼다는 얘기다. 그가 맨 끝에 적은 인용문장은 이렇다. “필자들은 일제 식민지배 기간에 강제동원과 식량 수탈, 위안부 성노예화 등 반인권적·반인륜적 만행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돈을 좇아 조선보다 앞선 일본에 대한 ‘로망’을 자발적으로 실행했을 뿐이란다…”물론 책을 안 읽고도 비난할 수 있다(학자라면 그렇게 안 한다). 그 책에 대한 칼럼만 보고 동조 비난할 수도 있다(칼럼 필자는 좋겠다). 조국이 쓴 대로 “시민은 이들을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러나 曺國(한글로 쓰면 헷갈릴까봐 한문을 썼다)은 그냥 시민이 아니다. 며칠 전까지 대한민국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이었고, 곧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될 것을 본인도 아는 서울대 로스쿨 교수다(페이스북을 쓸 때는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기 전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전문가여야 마땅할 사람이 자기가 읽지도 않은 책을 놓고 ‘…로 요약되는 주장’을 공개 제기하는 학자(책의 저자만을 말하는 게 아님에 유의바람)는 물론, 동조하는 정치인과 기자들까지 ‘부역· 매국 친일파’라고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 법무장관이 되면 필시 잡아다 경(黥)칠 사람 같다. ●김낙년 교수도 “수탈 아닌 수출”‘이하 인용문장’을 쓴 한국일보 필자 역시 미안하지만 책을 꼼꼼히 본 것 같진 않다. 제대로 읽고도 “필자들은 일제 식민지배 기간에 강제동원과 식량 수탈, 위안부 성노예화 등 반인권적·반인륜적 만행은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썼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서술이다. 1939년 9월~1945년 8월 15일 일본에 건너가 노동한 조선인 근로자들을 보통 ‘강제동원’됐다고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징용’은 1944년 9월부터 길게 잡아 1945년 4월까지 8개월간 실시됐다. 그 전의 ‘모집’이나 ‘관알선’은 법률적 강제성이 없었다는 것이다(69쪽). 쌀 수탈 논문은 소득통계 권위자인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썼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했다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가 아니다. “‘수탈’은 강제로 빼앗아 갔다는 것이고 ‘수출’은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해 갔다는 것”이라는 김 교수는 “당시의 자료나 신문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쌀은 통상의 거래를 통해 일본으로 수출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다”(46쪽)고 했다. 위안부 희생자에 대해선 간단하게 요약하기 어려워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당시 조선인 청년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로망’(69쪽)이라는 대목을 현재의 한국인이 부인하거나 나무랄 순 없다고 본다. 노동자 아닌 지원병에 대한 언급이긴 하지만 문학평론가 고 김윤식도 박경리의 ‘토지’ 한 대목을 인용해 “‘무지랭이들’에게야말로 신분상승을 위한 절호의 기회에 다름 아니었다”고 쓴 적이 있어 하는 소리다(‘한일 학병세대의 빛과 어둠’). ●어디가 틀렸는지 똑바로 지적하라조국이 언급한 인용문장 “‘을사오적’을 위해 변명(제17장)하고, 친일청산 주장은 사기극(제18장)이고 독도는 반일 종족주의의 최고 상징(제13장)이라고 힐난한다” 역시 칼럼 필자가 각 장의 제목을 나열한 뒤 ‘힐난한다’고 붙인 것이다. 그러나 책 속을 들여다봤다면 이렇게는 안 쓸 것 같다. “대한제국 멸망의 모든 책임을, 특히 을사조약의 책임을 이완용과 을사오적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을사조약의 체결은 당시 황제였던 고종의 책임이었기 때문입니다.”(204쪽) “1948년 건국 후 제헌국회가 추진한 건 반민족행위자 처벌이었습니다(214쪽). 왜 그들은(노무현 정부의 집권여당과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족행위자를 친일행위자로 바꿔치기 했을까요? …좌익은 이른바 대한민국 건국의 원훈, 공로자들을 친일파로 격하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을 흠결 많은 나라로 만들려 한 것입니다(222쪽).” “김대중 정부까지 이어진 역대 정부의 냉정한 자세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독도는 국제사회가 영해를 가르는 지표로 인정하는 섬이 아닙니다. 그것을 민족의 혈맥이 솟은 것으로 신성시하는 종족주의 선동은 멈추어야 합니다.”(173쪽)물론 정해진 칼럼 분량 속에 책 내용을 다 담을 순 없다. 독자가 꼼꼼히 안 읽는 것도 자유다. 인터넷 댓글에선 기사 제목만 보고 냅다 악플을 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학자, 정치인이나 기자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조국 같은 위치에서 읽지도 않은 책을 ‘구역질나는 내용’이라고 규정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연구자는 국익우선주의에 반대한다책의 대표필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서양에서 발흥한 민족주의와 달리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란 범주가 없다고 지적한다. 일본을 세세(歲歲)의 원수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수준의 적대감정이라며 이런 ‘반일 종족주의(反日 種族主義)’를 그냥 안고선 나라의 선진화는 불가능하다고 책 프롤로그에 썼다. “오늘날의 한국인이 가지는 통념이 실증적으로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논증하고 싶었다”며 많은 분이 불쾌감을 갖고, 국익에 반하는 일이라고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익을 위해 잘못한 주장을 고집하거나 옹호하는 일은 학문의 세계에선 용납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잘못으로 판명될 경우 주저하지 않고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고 고칠 것”이라는 자세가 진정한 학자라고 본다(아일랜드에서도 이런 과정을 거쳐 수정주의 역사가 대세로 올라섰다). 조국이 페이스북 인민재판으로 연구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영훈은 법적 대응도 시사했다. 그러나 조국은 곧 법무장관이 될 것이고, 검찰은 물론 사법부도 얼이 빠진 듯하다. 제소를 한들 공정한 판결이 나오겠나. ●군국주의 일본제국처럼 될 것인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감행했을 때 그 나라 많은 지식인들이 전쟁을 찬미했다. 그러나 그건 표면상 그랬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감옥에 들어간다는 공포 때문에 딴소리를 못한 것이라고 최근 번역 출간된 ‘민주와 애국;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공공성’에서 오구마 에이지는 지적했다. 조국의 ‘부역· 매국 친일파’ 단죄가 위험한 것도 이런 과거사 때문이다. 1년 전 미국의 포린어페어즈지는 ‘종족적 세계’ 특집에서 “최근 몇 년 새 종족주의(tribalism)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이, 특히 학자와 정치인, 기자가 공포 때문에 할 말을 못하게 된다면,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치를 떠는 과거 군국주의 일본제국과 똑 닮은 나라를 만든 꼴이 된다. 만족하는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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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反日감정 불 지르는 정치는 애국인가

    이제 나올 만큼 나왔고, 알 만큼 알려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언급하며 “한국이 국가 정상화의 기본이 된 국제조약을 깼다”고 그제 말했다. 작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청구권협정 위반이고, 한일 갈등의 직접적 원인도 여기 있다는 확인이다. 하지만 일본이 혐한(嫌韓) 감정을 자극해 지난달 참의원선거에 이어 평화헌법 9조 개정에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안다. 마이니치신문은 “눈앞의 이익을 얻고 장기적인 국익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사설까지 썼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연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비난하며 대책 마련에 열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미 집권당 싱크탱크는 반일(反日)감정이 내년 총선에 이롭다고 천기누설을 해버린 뒤다. 정치 감각이 발달한 양정철 민주연구소장은 황급히 사과했지만 집권세력은 반일감정 선동을 멈추지 않을 모양이다. 애국과 매국, 의병과 죽창을 거론한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 등을 언급하며 “왜 이 정부는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을 존중하지 않느냐”는 6일 야당 의원의 질의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주권, 헌법을 부정하는 사람까지 우리가 포용하고 갈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대통령 측근쯤 되면 의례적인 말이라도 “이제 정부를 믿고 국민은 감정을 가라앉혔으면 좋겠다” 정도로 말해주길 바랐다. 정부 입장 또는 대법원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외교적 해법을 강조한 국민을 대한민국의 독립과 주권, 헌법 부정으로 본다는 청와대 시각은 섬뜩하다. 강제징용 피해자 재판에 2006년까지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했던 문 대통령으로선 대법원 판결이 정의(正義)일 것이다. 판결 직후 이낙연 국무총리가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도출한 한국기업+일본기업+한국정부의 2+1 공동보상 해법도 청와대는 거부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 출신 일각에선 박정희 대통령 때의 한일협정 체결 역시 잘못이라며 ‘1965년 체제 극복’까지 밀어붙일 기세다. 한일협정은 ‘한미일 정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고, 한일협정 반대운동은 5·16 쿠데타 이후 최초의 민주화운동이라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기록해 놨다. ‘운동권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파기해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의 고리를 끊을 경우 불평등한 한일관계 극복은 물론 한미동맹도 흔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충격은 남북 경제협력으로 달래면서 남북연합이든 낮은 단계의 연방이든 성사되면 북이 오매불망하는 반제(反帝)민족해방혁명도 완성이다. “남북경협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5일 문 대통령 발언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은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성숙한 민주주의 위에… 경제강국으로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것”이라고도 말했다. 미안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 수준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전 국민이 알게 됐다. 불법적 식민 지배를 당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 도덕적 우위가 있대도 도덕성 같은 연성권력으론 군사적, 경제적 우위 국가를 압도할 수 없는 것이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식민지를 경영했던 숱한 제국들이 피지배국에 ‘배상’한 전례는 없다. 그런 국제법도 안타깝지만 없다. 독일은 거듭 사과하고 있다지만 엄밀히 보면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과이지, 아프리카 식민지들에 배상하진 않았다. 구한말 정치세력은 국익과 국제 정세를 외면한 채 이념과 정권다툼에 골몰해 나라를 잃었다. 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원한다면 이런 폐습부터 청산해야 한다. 천운이라면 우리 국민이 양국 위정자의 정치적 의도를 알 만큼 알게 됐다는 점이다.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국내정치와 달리 국제정치는 우리 힘만으로 변경할 수 없고 한국이 다른 데로 이사 갈 수도 없다는 것”이라고 안병준 연세대 명예교수는 강조했다. 일본은 어쩔 수 없어도 국내정치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선 희망적이다. 다행히 여권 일부에서 일본 국민과 아베 정부의 잘못된 정치인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자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숙한 국민이 정치적 목적으로 반일감정에 기름을 붓는 한국의 잘못된 정치인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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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복수를 하려면 아일랜드처럼 Ⅱ

    지난주는 휴가였다. ‘복수를 하려면 아일랜드처럼!’을 올려놓고 낯선 곳에 도착해 보니 댓글이 난리였다(고맙게도 네이버 댓글에선 맞짱 토론하자는 분도 있었다). 후속 칼럼을 쓸 작정으로 가져온 랩톱은 40도 넘는 불더위 때문인지 말을 듣지 않았고, 격주로 쓰는 신문칼럼은 건너뛰기로 한 까닭에 나는 그런 악플을 보고도 목매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릴 길이 없었다. 진짜 최고의 피서지(회사)로 돌아왔으나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본은 보복조치 2탄(백색국가 배제)을 예고했고, 우리의 집권당 싱크탱크는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 영향에 긍정적”이라는 보고서까지 뿌려댔다. 그래서 나는 내 글에 (분노로) 관심을 표해 주신 독자님들에게 답장을 하는 식으로 후속 칼럼을 쓰기로 했다. ●아시아의 4龍 중 하나였던 한국먼저, 아일랜드처럼 작은 나라와 우리나라를 비교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 있었다. 맞다. 영국 옆에 붙어있는 아일랜드 섬 크기가 영국(24만3610㎢)의 거의 3분의 1인데 거기서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를 뺀 아일랜드 국토(7만282㎢)는 한반도의 3분의 1, 남한의 약 82% 크기다. 2017년 인구는 501만 명,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작은 나라와 비교하면 왜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우리보다 큰 미국이나 일본과 늘 비교하는 건 정상인가? 게다가 한때 우리는 ‘아시아의 4마리 용’ 중 하나로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비교되곤 하던 과거를 갖고 있다. 1992년 에즈라 보걸이 ‘아시아의 네 마리 작은 용’ 책에서 우리나라와 이들 국가를 아시아의 경제 기적으로 소개한 걸 비롯해 2000년대 초반까지 숱하게 한 묶음으로 언급될 때는 왜 우리가 코딱지만 한 저들과 비교되느냐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와 역사와 기질이 비슷한 아일랜드와 비교해선 안 될 이유가 뭔가(덕분에 찾아본 3용의 크기와 인구는 다음과 같다. 대만 3만5195km²에 인구 약 2300만 명 /홍콩 1104㎢ 인구 740만 명/ 싱가포르 692.7㎢ 인구 567만 명).● GNI에서도 아일랜드는 부자나라아일랜드엔 애플, 구글 같은 외국투자기업이 많아 국내총생산(GDP)이 영국보다 높은 것이 당연하다고 비판한 독자님도 적지 않았다. 수준 높은 지적이고 맞는 말씀이다. GDP에는 아일랜드 비거주자가 제공한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에 의해 창출된 것이 포함돼 있어 1인당 GDP를 그대로 국민소득으로 보면 왜곡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파격적으로 낮은 법인세(12.5%)에 매료돼 세계적 정보기술(IT)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몰려드는 것이고, 그래서 아일랜드는 경제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났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가 법인세 감세 경쟁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일랜드 경제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외국기업이나 외국인이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를 뺀 국민총생산(GNP)을 봐야 한다(지난번에 이것까지 쓰려다가 빼먹은 것이 불찰이다. 글이 길어지면 독자들은 그만 읽고 바로 댓글로 넘어간다는 불안감에 그만…). 실제로 아일랜드 정책 당국자들은 (현명하게도) GNP를 선호한다고 2015년 파이낸셜타임스는 소개한 바 있다.●부활의 핵심은 외국인 투자였다그럼에도 이 소리 저 소리 나오는 게 싫었던지 아일랜드는 보다 정확한 소득 통계를 위해 국민총소득(GNI)을 강조한다. GNI는 GDP에다 교역조건 변동에 따른 실질 무역손익을 더한 것이다. 하하 이것도 아일랜드 수준이 영국보다 높다. 요컨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아일랜드는 경제로 식민지 종주국을 능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이다.2001년 처음으로 영국을 추월했다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거의 따라잡힌 아일랜드였다. 획기적 구조개혁 조치가 탄력을 받으면서 2014~2017년 OECD 최상위 성장률을 기록한 과정은 감동적이다. 부활의 핵심은 ‘외국인 투자유치·수출확대’에 기반을 둔 켈틱타이거 모델의 복원이었다(강유덕 한국외대 교수 ‘경제위기 이후 아일랜드 경제의 회복과 그 요인에 관한 연구’). 아일랜드가 애플 같은 글로벌 디지털기업에 지식재산권 특례조항(Patent Box) 등 강력한 조세회피 특례조항수단을 제공해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이 높게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2015년 GDP가 전년 대비 26.3%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불가사의한 현상이라며 아일랜드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요정 이름을 붙여 ‘레프러콘 경제학(Leprechaun Economics)’라고 비꼬았을 정도다.크루그먼은 1998년 IMF처방이 아시아 경제를 망친다고 비판했던 사람이다(그러나 우리 경제는 살아났고 결과적으로 ‘위장된 축복’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작년에 방한해선 주 52시간제를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그래도 연구소까지 52시간에 묶인 나라인데 일본에 영구 기술속국으로 살아가라고?●아일랜드 부활 배울 수 있을까2010년 말 85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은 아일랜드는 죽을힘을 다한 구조개혁으로 2013년 유로존 빚쟁이 국가 중 가장 먼저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국제사회의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 ‘공무원부터’ 임금을 삭감했고(공무원부터 임금을 올리는 등 좋은 건 제일 먼저 차지하는 어떤 나라와 대조적이다), 외국기업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사회연대협약을 파기하는 등 비상한 조치를 취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안다. 걸핏하면 파업하는 강성 노조가 버티는 나라라면 어느 외국기업이 들어와서 비즈니스 하겠나. 해외투자기업이라 해도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그 나라 사람들이 많다. 그게 다 임금으로 개개인에게 돌아오고, 소득세로 정부에 들어와 국민 복지에 쓰인다. 아일랜드의 성공모델을 우리가 들여오기엔 난관이 많기는 하다. 무엇보다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고 EU 같은 단일시장도 없다. 아일랜드의 가톨릭처럼 나라와 국민을 하나로 모아주는 종교가 없다는 점도 안타깝다(노사정 사회적대타협이 가능한 문화도 가톨릭에서 비롯됐다는 연구가 있다. 북아일랜드 분쟁에 종교 차이가 작용했던 역사를 떠올리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아일랜드의 사회적대타협이 무너진 것도 모르고 이걸 따라해야 한다고 외치는 세력을 보면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Factfulness는 우리에게도 중요아일랜드가 암만 잘살게 됐대도 골고루 누릴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따질 수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의 금융위기를 자초했던 고질적 연고주의는 우리의 지연, 학연 뺨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부실은행 빚을 정부가 떠맡고는 피나는 금융개혁을 단행했고 ‘성장을 통한 분배’를 가속화하기 위해 과감한 노동개혁을 강행했다. 그 결과 우리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말처럼 외치는 ‘포용적 성장지수’에서도 아일랜드(8위)는 영국(21위) 앞이다. 이 자료를 찾으면서 나도 놀랐다. 우리의 대통령은 우리나라 불평등이 미국 다음으로 심하다며 소득주도성장을, 요즘엔 포용적 성장을 목 놓아 외치고 있지만 세계경제포럼이 집계한 2018년 우리나라의 포용적 성장지수는 이미 16위다. GDP는 물론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와 다음 세대에 전가될 공공채무까지 포함한 이 지수에서 미국(23위), 일본(24위)까지 앞선 순위다(하하 일본을 이기기는 했다).문재인 정부가 벌써 성과를 냈나, 싶어 2017년도를 찾아봤다. 한국은 14위다. 미국과 일본은 전년도와 같은 23, 24위였다. 이것이 fact다. 순위가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fact는 중요하다.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에 “아니다”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요즘 ‘팩트풀니스(Factfulness·사실충실성)’이라는 책이 주목받는다. 이 참에 우리도 fact에 근거한 판단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도 그랬다. 민족은 순결하고, 가난은 영광스럽다는 ‘희생자 신화’에서 벗어나자 국익과 실용주의가 성큼 다가온 거다. ●‘슬픈 역사’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우리도 그러했듯, 오랜 식민지 경험을 가진 아일랜드에서 역사 서술이 강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띤 것은 당연했다. 민족국가 성립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봤고,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 이후엔 일종의 신정(神政)국가처럼 영국에 비해 아일랜드가 문화적으로 우위라고 강조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신화와 역사를 분리하는 수정주의 역사학 1세대가 나타났다. 1970년대엔 수정주의 역사가 2세대가 등장해 ‘식민주의적 착취를 당했다’라는 식의 서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민족주의 역사학에서 “하나님이 감자병을 보내셨지만 1840년대 대기근의 원인은 영국”이라고 본다면, 수정주의 역사에선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대기근이 일어났다’고 본다. 수정주의 역사가들의 강한 도전과 논쟁 끝에 대세는 현재 수정주의의 승리로 기울었다고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슬픈 아일랜드’에 썼다. 1980년대 아일랜드가 민족주의적 자립경제를 버리고 외국기업에 활짝 문을 연 데는 이 같은 지식인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자각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의 힘을 믿는다는 점에서 오늘날 아일랜드는 영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티쇽(Taoiseach)이라고 발음하는 총리 리오 버라드커가 인도 이민 출신의 동성애자인 것만 봐도 안다. ●언제까지 일본만 탓할 건가 물론 1997년 영국 노동당 총선 승리 후 토니 블레어 총리가 150년 전 대기근으로 인한 아일랜드인의 죽음을 공식 사과하고, 2011년 국빈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다시 한번 진솔하게 사과하는 등 문명국다운 태도를 보인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이 역시 아일랜드 경제가 받쳐줬기에 가능했다. 아니라면, 영국이 왜 진작 사과하지 않고 아일랜드 경제가 동등해진 다음에야 사과했겠나. 영국의 ‘뻘짓’ 덕분에 잘하면 아일랜드가 통일을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의 새 총리 보리스 존슨이 유럽연합(EU)과 합의 없이 갈라서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연일 강조하자 북아일랜드 민족주의 정당인 신페인(Sinn Fein)당 대표가 지난달 30일 “그렇다면 영국연방을 탈퇴하고 아일랜드와 통일해야 한다”고 폭탄을 터뜨린 거다. 상상해보시라.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2002년 소니를 앞지른 것처럼 우리나라가 일본을 경제로 추월하고, 일본이 뻘짓을 계속하면서 마침내 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하겠다며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을! 천년 묵은 한이 풀리면서 세상에 대해 너그러워질 것 같지 않은가. ●무능한 선조 코스프레 집어치우라꼭 경제적으로 앞서야만 일본을 이기는 것이냐며 썩어빠진 물질주의를 질타하는 독자도 있었다. 문화적 우위를 따지자면 당연히 우리가 우위다(모든 나라는 언제나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 우위에 서있다). 더구나 ‘정신 승리’로 치면 우리 집권세력을 따를 집단이 없다고 확신한다. 경제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면, 전쟁으로 일본을 이길 작정인가? 대통령은 그러고 싶은 것 같다. 거북선 횟집에서 식사를 하며, 휴가는 반납하고 경남 거제 저도까지 찾아다니며 연일 이순신 장군을 강조하는 모습은 “내가 바로 (무능한) 선조”라는 표현 같아 보기 민망하다. 의병도 애국심에 불타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으키는 거다. 북에서 탄도미사일을 쐈는지 신형 방사포를 쐈는지도 모르는 정규군이나 만든 집권세력이 어떻게 감히 국민에게 의병 일으키라는 소리를 할 수 있나. 아일랜드는 우리의 집권세력이 징글징글하게 증오하는 신자유주의적 해법, 즉 ‘작은 정부, 큰 시장’ 정책으로 식민지 종주국을 이겼다. 여기에 사회적대타협을 맺었다 글로벌 환경 변화에 따라 깨뜨릴 줄도 아는 용감한 정치가 오늘의 아일랜드를 만들었다고 본다. FDI 유치 정책을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뛰어난 자국 인력과 자국 기업을 키우는 것도 필수다. 복수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소재산업 육성 관련 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내일은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다고 했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다만, 민간연구소까지 오후 6시면 불 끄게 강제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으론 어림도 없다는 게 우리의 비극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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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복수를 하려면 아일랜드처럼!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문재인 정부는 성공했다. 작금의 일본 처사가 옳다는 건 아니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가 옳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제 국민을 청와대가 친일, 토착왜구를 넘어 이적(利敵)이라고 공격하는 건 옳지 않다. ●한일갈등 확대하면 국익에 도움 되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기는커녕 이참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NIA)도 적폐로 몰아 깨버리겠다는 것도 불길하다. 한미일 3각 군사협력에 이어 한미동맹까지 청산해서는 3·1절 기념사대로 ‘신한반도 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해 통일을 준비’할 태세다. 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잘못된 과거를 성찰해야 미래로 갈 수 있다”며 “민족정기확립은 국가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했을 때는 3·1절이니까 의례 나오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섬뜩하다. 민족정기가 뭔데 그걸 확립하는 게 국가의 책임과 의무란 말인가. 과거 100년과는 질적으로 다른 ‘체제 전환’을, 그것도 담대하게 왜 하겠다는 건가. 일본과 ‘경제전쟁’을 치르면서 한일 군사협력도, 한미동맹도 깨버리고 남북통일로 가려고…계속 문제를 확대시키는 건 아닌가. ●우리는 일본을 앞설 수 없나식민지 종주국에 당한 분함과 억울함으로 치면, 영국에 700년 지배받은 아일랜드가 우리 뺨칠 거다. 그 나라가 지금 영국보다 엄청 잘 산다. 2018년 1인당 국민소득이 8만4000달러로 영국의 거의 2배다. 복수를 하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나라 국민소득이 그 나라 국민의 목숨 값이고, 자존심이다. 우리가 일본보다 잘 살면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감히 저러겠나? 정권을 잡았으면 부국강병(富國强兵)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뭐, 민족정기 확립해서 체제전환 하겠다고? 1980년대까지 ‘유럽의 낙오자’로 꼽히던 아일랜드였다. 1922년 자유국으로 독립하고도 영국은 아일랜드를 ‘하얀 원숭이’라며, 자치능력이 없다며 멸시했다. 그랬던 나라가 1인당 소득으로 식민지 종주국 영국을 누른 것이 1998년, 독립한지 76년만이었다(영국 2만3500달러/아일랜드 2만5000달러). 상상해보시라. 우리나라가 경제로 일본을 누른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광복 76년인 2021년, 그때 우리가 일본을 앞설 수 있을까. ●브렉시트 앞두고…지는 런던, 뜨는 더블린 아일랜드는 기질과 역사에서 우리와 많이 닮았다. 격정적이고 가족한테 끔찍하다. 우리 민족은 가장 순수하고 뛰어난데 못된 이웃나라 때문에 수난의 역사를 겪고 분단까지 됐다고 믿는다. 학교에선 교사들이 “우리 조상 100만 명이 감자가 없어 굶어죽을 때 영국은 도와주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꼭 잉글랜드사람 닮았다”고 야단을 친다. 2008년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PIGS(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에 아일랜드의 ‘I’를 하나 더 넣어 PIIGS로 꼽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일랜드가 쫄딱 망했는지 알았다. 자료를 뒤져보니 2009년에도 1인당 소득 4만1000달러로 영국(3만4700달러)보다 잘 살았다. 게다가 놀라운 개혁조치로 3년 만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다 갚고는 영국과의 경제 격차를 더 벌려놓았다. 브렉시트를 앞둔 영국에선 미국 트럼프 뺨치는 포퓰리스트 총리가 나오네, 노 딜이 노 답이네 난리다. 아일랜드는 이참에 메릴린치, 바클레이즈, 뱅크오브어메리카 등 영국을 탈출하는 글로벌 금융사까지 ‘줍줍’했다며 희희낙락이다. “영국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무모한 허영과 오만으로 비극에 빠졌는데 아일랜드는 브렉시트 여파로 왕관을 쓰나”라고 지난 2월 미국의 포브스지는 격찬을 했다. ●사회적 대타협, 더는 외치지 말라 유럽서 가장 가난한 이 나라가 식민지 종주국을 뛰어넘은 비결은 ‘사회적 대타협’이다. 국수주의와 보호주의, 공공부문이 고용의 3분의 1일만큼 꽉 막힌 나라였다. 이러다 진짜 망한다는 위기감에 1987년 노조는 임금인상 자제-기업은 재투자로 일자리 창출-정부는 감세와 사회보장을 약속하는 사회적 대타협에 성공했다(여기까진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리고 10년 만에 영국을 추월한 거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사회적 대타협을 깸으로써 위기극복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의 집권세력은 유럽 선진국처럼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만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는 모양인데 글로벌 현실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2000년대 들어 국제화, 금융화가 진행되면서 고도성장기 핵심 요인이었던 사회적 파트너십은 이미 약화됐다…(중략) 2008년 위기가 발생하자 사회적 파트너십은 민간과 공공부문을 아우르는 협약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고 충남대 정세은 교수는 최근 논문 ‘위기 이후 아일랜드 모델의 변화와 지속성장을 위한 과제’에서 밝혔다. 경영자단체는 2009년 노조 요구를 못 맞추겠다며 사회연대협약 개정안을 철회하고 파트너십에서 이탈했다. 단체교섭은 민간 기업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노동개혁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공공부문 임금삭감, 인력감축으로 재정조정에 나섰다. 생산성과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외국인투자와 수출이 급증했고, 마침내 켈틱 타이거는 켈틱 피닉스로 부활했다. ●힘없는 민족, 못난 나라로 살기 싫다경제가 풀리면 감정도 누그러진다. 영국보다 잘 살게 됐다는 자부심에 영국인들에 대한 아일랜드 사람들의 미움도 거의 사라졌다. 요즘 아일랜드는 영국을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가장 가까운 경제협력 파트너로 본다. 자국 역사가 가장 비참하다며 ‘사악한 영국인’과 ‘고결한 아일랜드인’으로 구분하던 민족주의 역사관도 다양해졌다. 일자리와 부(富)가 ‘영광스러운 가난’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죽기 살기로 개방정책을 추진한 결과 경제성공이 가능했다고 박지향은 ‘슬픈 아일랜드’에 썼다. 우리도 경제로 일본을 뛰어넘으면 감정이 누그러질 수 있을까. 일본에 대한 분함과 억울함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외치고 또 외치는 일도 사라질까. 그랬으면 좋겠다. 민족주의 정부가 반일(反日)감정을 부추기고, 부국강병을 우습게 알며, 모두가 평등한 가난을 분배하지만 않는다면. dobal@donga.com}

    • 2019-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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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외교적 해결” 강조하면 ‘토착왜구’ 몰리는 현실

    대통령의 복심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마침내 금 모으기 운동을 입에 올렸다. 물론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도 미국에 한일갈등을 설명하고 오는 길에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1997년 금 모으기 운동을 언급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 정부 탄생까지 기획· 전략에 매진한 양정철의 발설은 다르다. 온라인 韓日戰은 시작됐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까지 했었던 국민들이다. 우리 국민의 애국심을 얕보는 나라가 있다면 굉장히 낭패를 본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물론 나라가 어려울 때는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한다. 하지만 정권 실세는 애국심이 아니라 해결책을 말해야 한다.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도 정부가 경제를 잘못 운용해서 벌어진 것이었고, 그 정권은 결국 국민에 의해 교체됐다. 이미 온라인에선 애국시민과 보통시민 간의 한일전이 시작됐다. 방송에서 “반일감정 자극은 해답이 아니다”라고 멘트를 날린 방송앵커는 “의병이 나라를 구하지 않았으면 친일파가 구했느냐”는 공격을 받는다. 일본상품 불매운동하다 우리 점원 일자리 잃으면 어쩌느냐는 말도 못 꺼낼 분위기다. 현 정부 핵심부의 내심을 발신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이런 판국에 (일본 총리) 아베를 편드는 듯한 발언을 하는 분들은…동경으로 이사하든가”라고 말했듯, 외교적 해결책을 촉구하는 사람은 친일파 아니면 토착왜구로 몰릴 판이다(그럼 북한 김정은을 편드는 사람은 왜 평양으로 이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反日감정으로 총선·대선까지?정권 핵심부에선 일본의 보복 조치에 문재인 정부를 ‘레짐 체인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유시민이 “아베 총리는 한반도에 평화가 자리 잡고 통일로 가까이 가는 걸 원치 않는다”며 “정권 교체에 유리한 환경을 한국사회 내에 만들어주자는 계산도 아베 정권 일각에선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걸 보면 안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기조를 바꿀 리 없다. 일본이 그런 의도라면 반일감정을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이 이 정부의 행동방정식에 더 들어맞는다. 양정철의 말도 내년 총선, 잘하면(아니 잘못하면) 다음 대선도 애국심과 반일(反日)마케팅으로 치를 수 있다는 계산이 엿보여 개운치 않다. 만일 정부가 일본과의 마찰이 격화될수록 총선, 대선에서 유리하다고 본다면 국민의 불행이다. 유일한 경쟁력으로 남은 반도체까지 흔들려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는 건 안타깝지만, 다 일본 탓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덕분에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실패 소리도 쑥 들어갈 것이다. ‘죽창가’를 들먹이는 청와대 참모, ‘이순신의 열두 척의 배’를 언급한 대통령은 전혀 든든하지 않다. 그건 백성의 대사이지 리더가 할 말이 아니다. 나랏님이 암만 잘못해도 나라에 기대지 말고(또는 기대하지 말고) 애국심으로 보위하라는 조선말 위정척사파의 주문 같다. 북한도 1990년대 경제 파탄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을 미 제국주의 탓으로 선전해 김씨 왕조체제를 지켜냈다. “3억불에 강제동원 피해 감안됐다”민정수석이, 대통령이, 그래선 안 될 이유는 또 있다. 2005년 8월 26일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에서 “1965년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 받은 무상 3억불은 개인재산권(보험, 예금 등),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임”이라고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노무현 정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뿐 아니라 법률가, 외교관, 사학자, 시민단체, 피해자단체까지 최고의 전문가들이 13년 8개월에 걸친 한일회담 전 과정의 문서 156권, 3만5354쪽을 샅샅이 검토해 공개한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을 처음 포기한 것은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노무현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1975년 보상이 불충분했다고 판단해 2007년 특별법을 만들어 7만여 명에게 6000여억 원의 지원금까지 지급한 건 잘한 일이다. 文, 2005년의 해결 왜 말하지 않나? 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강제징용과 다르다. 당시 위원회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음”이라고 봤다. 사할린동포, 원폭피해자 문제도 한일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협상에 타결한 다음인 2016년 초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한일회담문서 공개 때 저는 청와대에서 관여했다”면서 “한일회담 문서 공개에 의해 확인된 것은 위안부 문제는 회담 내내 단 한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선 한일회담에서 논의가 있었고 결론이 났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 과정에 정부 측 위원으로 참여한 문 대통령이, 당시 국무총리이자 당연직 위원장이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3억불에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이 감안됐다”고 밝히지 않는 건 기이하다. 노무현 정부가 피해자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지원했다는 사실을 다시 알릴 좋은 기회인데도 ‘없었던 일’로 덮는 셈이다. ‘외교 적폐청산’ 후유증, 누가 책임지나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협상으로 참여정부 이후 민관이 해온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과거 정부가 타결한 국가간의 협상 결과를 ‘외교 적폐 1순위’로 낙인찍고, 일본정부가 돈을 댄 ‘화해·치유재단’까지 해산해버린 건 또 다른 문제다. 노무현 정부처럼 과거 정부의 잘못을 대신 짊어질 아량도, 역량도 없다는 의미다. 2012년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을 썼다”며 ‘2005년의 과거 청산’을 뒤집은 김능환 대법관은 어떤 나라를 건국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정부 간에 재판거래가 있었다는 공격에 2018년 10월 ‘김명수 대법원’이 적폐청산 식 결론을 내린 이유는 알 것 같다. 18일 대통령과 야당 대표들의 회동도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달라는 결론이라면, 한일 갈등 해결은 난망이다. 문 대통령은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결론에서 “이해찬 국무총리는 60년 이상 지속해 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여 국민통합을 도모하고…”의 결론을 다시 살펴보기 바란다. dobal@donga.com}

    • 2019-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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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조직을 사랑한 윤석열, 조폭과 뭐가 다른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8일 청문회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명언을 유감없이 입증했다. 자정 너머 뉴스타파를 통해 공개된 2012년 주간동아 기자와의 인터뷰 녹음파일은 윤석열의 거짓말만 들통 낸 게 아니었다. 조직에 대한 지나친 충성이 나라와 국민에게는 배신일 수 있음을 생중계로 보여준 것이다. 여야 의원들이 돌아가며 “재직 중 변호사를 소개한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그런 사실 없다”고 하루 종일, 일관되게,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부인했던 윤석열이다. 명백한 거짓말이고 위증인데도 검찰은 물론이고 여권에서도 검찰 후배를 보호하는 의리 있는 사나이라며 미담처럼 보는 분위기다. 두 야당과 언론이 문제 삼아도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할 게 뻔한데 괜히 미운털 박히게 반대할 필요 있느냐는 냉소와 무기력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총장이면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는 국가 최고 법집행기관의 수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자기 직업에 ‘대한민국’을 붙여 “대한민국 검사”라고 자부하는 조직은 검찰이 거의 유일하다. 조폭도 검사 앞에선 무릎을 꿇고, 2007년 ‘변양균-신정아 사건’의 신정아도 “대한민국 검찰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냐”는 윤석열의 호통에 앉은 채로 오줌을 싸고 말았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그렇게 대단한 검찰이, 다른 고위직도 아닌 검찰총장 후보자가 온 국민을 속였다. 검찰 내에선 장군, 그것도 주윤발 같은 성향으로 평가된다는 윤석열이 “변호사 선임(選任)되지 않았으니 소개가 아니다”라고, 주윤발은커녕 남자답지도 못한 변명을 했다. 국회 청문회라는 법과 질서를 우롱했는데도 검찰 조직을 위한 일이니 문제없다는 윤석열의 ‘조직 이기주의’는 조폭의 충성심과 뭐가 다른가. 청문회 다음 날 “후보자가 나를 보호하려 그랬다”며 나선 ‘아그’들의 의리 역시 완전 삼류 조폭 영화였다. 그러고 보면 윤석열의 불후의 명언도 2013년 국회 국감에서 정갑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조폭보다 못한 조직’이라고 질타하던 끝에 나왔다. 그때는 수사팀-법무부의 갈등과 이로 인한 신뢰 추락이 지적됐는데 이번 녹음파일에선 ‘검찰지상주의자 윤석열’의 편향된 시각이 노출돼 신뢰가 지하로 떨어지게 생겼다. “분위기를 딱 보니까 아, 대진이(윤대진 현 검찰국장)가 이철규(전 경기지방경찰청장)를 집어넣었다고 얘들(경찰)이 지금 형(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을 건 거구나 하는 생각이 딱 스치더라고. … 내가, 중수부 연구관 하다가 막 나간 이남석(변호사)이 보고 일단 네가 대진이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대진이 한참 일하니까, 윤우진 서장 한번 만나봐라….” 경찰의 윤우진 내사를 윤석열은 검찰의 경찰 구속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 강경파를 대변해온 이철규는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무고한 시민 아니라 경찰도 감방에 보낼 수 있고(그러나 1∼3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윤우진은 검찰 동생 있으면 수뢰 혐의로 해외 도피했다 잡혀도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이렇게 제 식구의 식구까지 감싸는 검찰 조직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검경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논리다. 윤석열의 과잉 조직 사랑이 검경 수사권 조정의 빌미가 될 판이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 칼 찬 순사 같은 정보경찰들이 국민의 자유까지 탈탈 털게 된다면, 윤석열은 나라와 국민에 불충한 검찰총장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과거 정권에선 외압에 항명했던 그가 문재인 정부에선 100대 국정과제 1호 적폐청산 수사에 매진해 초고속 출세에 성공했다. 검찰 내에선 윤석열의 특수통 조직연(緣)이 공안과 기획라인까지 장악하고는 요직을 돌아가며 해먹는다는 불만이 부글거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석열은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면 못 참지만 망나니처럼 휘두르라는 하명 수사는 외압으로 치지도 않는 천생 칼잡이였던 셈이다. 조직의 특성상, 일단 맛본 권력의 속성상 윤석열이 국민에 충성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체질에 맞지 않는다면 검찰의 관행대로 집권세력의 비리를 차곡차곡 캐비닛 속에 쟁여 두고 있다 정권 말 사정없이 칼을 휘두르기 바란다. 정의(正義)가 5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더라도 영영 안 오는 것보다는 낫다. 대통령감으로 뜰지 누가 아는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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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자사고, 없앨 게 아니라 추첨으로 뽑자

    “나는 고등학교 재학 중 과외를 받아본 적도, 학원을 다닌 적도 없다. 학교 선생님을 믿고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선생님의 수업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그 결과 한의대에 진학했고 지금은 공중보건의로 일한다. 우수한 친구들 사이에 있다 보면 기가 죽을 때도 있었지만 다양한 동아리를 통해 취미활동, 봉사, 토론, 실험 등 다양한 분야를 체험하며 자신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전주 상산고 졸업생이 모교 총동창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런 학교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학교 아닌가? 이렇게 훌륭한 교육을 왜 동네 일반고에선 받을 수 없단 말인가??그래서 주장한다. 자사고(자립형 사립고)는 없앨 것이 아니라 더 확대해야 한다고. 자사고도 공부 잘하는 학생만 뽑아 잘 가르친다고 자부할 것이 아니라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같은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추첨제’로 선발하라고!입시 명문고·고교 서열화가 문제?왜 자사고 같은 수월성(秀越性) 교육이 필요한지부터 쓰다보면 날 새고 만다. ‘세계적으로 사립학교(우리로 치면 자율성을 지닌 자사고를 말한다)가 붐이고, 정부는 억제할 게 아니라 축하해야 한다’는 4월 13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특집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그런다고 좌파 평등주의에 사로잡힌 정부가 알아먹을 리 없다. 0.39점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을 취소한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전북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커트라인을 80점으로 올린 이유로 ‘대통령 공약사항’을 꼽았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외국어고·자사고·국제고가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 명문고가 돼버렸다”며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해 고교 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고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마침 올해가 5년마다 돌아오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여서 자사고가 첫 매를 맞게 된 거다. 김승환은 자사고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상산고에 철퇴를 내림으로써 작렬하는 존재감으로 차기 교육부총리 자리를 예약했다. 2014~15년 자사고 재지정 철회 결론을 내렸다가 당시 교육부총리가 ‘부동의’하는 바람에 실패했던 조희연 교육감은 다음주 서울지역 발표를 앞두고 이를 갈고 있을 듯하다. 대통령 발언에서 드러난 자사고 폐지의 표면적 이유는 입시 명문고라는 것과 고교 서열화였다. 그럼 이 두 가지를 해소하면 될 게 아닌가? 우수학생만 모였으니 대학 잘 가지!자사고가 입시 명문이 된 건 상산고 졸업생 편지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선생님, 스스로 공부하며 함께 성장하는 학생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교사도 잘 가르치겠지만 원체 우수한 학생들이 모였으니 일반고보다 좋은 대학 잘 가는 건 당연하다. 특히 상산고처럼 전국 단위로 선발하는 자사고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피나는 사교육이 성행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 전국 단위 자사고도 서울처럼 내신 제한 없이 추첨으로 뽑자는 거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가? 서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2014학년도까지 내신 상위 50% 이내 지원자를 대상으로 추첨 선발했지만 우수학생 선점한다는 바로 그 비판 때문에 2015학년도부터 1단계 추첨, 2단계 면접으로 바꿨다. 면접에선 교과 관련해선 질문도 못하게 해놨다. 서울 자사고에선 성적 안 본다그 이후 서울 자사고의 질이 떨어졌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작년 8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논문 ‘자율형 사립고의 교육성과와 과제에 관한 질적 연구:A자사고를 중심으로’(서울대 대학원 문하은 석사논문)를 보면 눈물이 날 정도다. 이렇게 좋은 학교에 왜 더 많은 아이들이 다닐 수 없는지 억울하다. 2009년 일반고에서 자사고로 전환했고, 2015학년도부터 성적 제한 없이 추천으로만 뽑는데도 여전히 훌륭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 “무작정 입시를 목표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과목들, 입시에 필요하지 않는 과목들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수업도 있고 (다른 일반학교는 어떤 과목을 만들어 놓고 입시와 관계없으면 자습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저희 학교는 실제로 영화도 만들고 춤도 추고 그랬어요. 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하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면학 분위기로 말미암아 저를 포함한 공부를 안했던 아이들도 정신 차리고 공부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저도 자사고 가서 정신 차린 케이스거든요. 다들 목표도 높다 보니 저도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게 되고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다들 열심히 하니까요.”(A자사고 졸업생)못하는 학생도 끌어올려야 좋은 학교그들은 자사고 진학 동기로 면학 분위기를 꼽았다. 자사고에 지원을 한다는 것은 ‘공부할 자세’가 돼 있다는 뜻이다. 설령 지금은 성적이 좋지 않아도 자세가 돼 있으면 사람은 성장한다. 또 공부 잘하는 학생만, 부모 잘 만나 비싼 사교육 받은 학생들만 자사고처럼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도 배 아픈 일이다. 그래서 성적 제한 없이 자사고 선택의 기회를 주자는 거다. 훌륭한 교육을 자부하는 자사고라면 최상위 학생들만 선발하겠다고 고집할 게 아니라고 본다. 원래 공부 잘하는 애들만 뽑아 서울대에 대거 보내는 건 (일반고 교사들이 보기엔 솔직히) 땅 짚고 헤엄치기다. 교육이란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것이고, 진짜 잘 가르치는 학교라면 좀 뒤떨어지는 학생도 잘 하게 만들어야 한다. 70점짜리 학생을 받아 90점으로 키울 자신 없다면, 자사고 간판 내려도 할 수 없단 소리다. 최상위 학생들만 가득했던 자사고에 공부 좀 못하는 학생이 들어온다고 해서 우수 학생들이 손해 볼 것도 없다. 내신 바닥을 깔아줄 터이니 성적에 대한 부담은 외려 준다(^^). 또 이 나이 돼서 깨달은 것이지만, 공부만 잘하는 게 무에 그리 대단한가. 공부 못하는 친구 무시하지 않고, 어려운 친구 도와줄 줄도 아는 인재가 사회 전체로 봐도 훨씬 바람직하다. 미국서도 추첨 선발 주장이 나온다추첨으로 엘리트학교 학생을 뽑는 것이 과연 공정하냐는 비판도 나올 것이다. 최상위 학생이라면 왜 내가 저 공부 못하는 애 때문에 떨어져야 하느냐고 억울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본다면, 최상위 학생은 어디서 공부해도 결국 원하는 대학 가게 돼 있다. 미국서 연구결과 밝혀진 사실이다.세계 경제학계 스타였던 앨런 크루거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했지만 경제적 이유든, 무슨 사정으로 덜 좋은 대학에 진학했던 사람도 결국 아이비리그 출신 뺨치는 직장에서 성공하더라는 연구결과를 2002년 내놨다. 아이비리그 갈 만한 학생은 설사 못 가도 그 실력, 그 자세로 어디서든 잘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달튼 콘리 프린스턴대 사회학 교수 같은 사람은 “아이비리그 대학도 로터리(제비뽑기)로 선발하라”고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주장했다. 특히 학원에서 실력을 다진 아시아계 학생들 때문에 흑인과 라틴계 학생들이 엘리트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며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자사고 없애면 죄받을 것제비뽑기라는 게 거의 운(運)이다. 추첨으로 입시에서 떨어지면 기분 나쁘겠지만(실력으로 떨어지면 더 기분 나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의 상당부분이 운인 것도 사실이다. 잘난 부모 아래 태어난 것도 ‘삼신할머니의 랜덤’이고, 좋은 머리나 건강을 가진 것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행운이라고 봐야 한다(그 똑똑한 앨런 크루거도 지난 3월 무슨 연유인지 58세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ㅜㅜ).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운과, 시기와, 내가 모르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세상에 대해 겸허하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겸손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운 좋게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가 함부로 자사고를 폐지해선 안 될 이유도 여기 있다. 정부가 벽돌 한 장 사주지 않았으면서, 좌파 전교조에 휘둘려 일반고 전성시대는 열지도 못하면서, 제 자식들은 자사고 보냈지만 남들 잘 되는 꼴은 못 본다는 비뚤어진 이념으로 자사고를 없앤다면 필시 죄받고 말 것이다. dobal@donga.com}

    •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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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정부의 외교실패, 대가는 국민이 치른다

    우리가 ‘IMF 위기’로 기억하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1995년 11월 김영삼(YS) 대통령이 일본의 역사 망언과 관련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일격을 날린 이후 독도, 위안부, 한일 어업협정 문제까지 겹쳐 97년 11월 한일갈등은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11월 6일 독도 접안시설 준공식이 열리자 자민당 의원들은 ‘일본 국토의 침범’이라며 흥분했고, 우리 외무부는 “한국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 정부는 다신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고 시퍼런 논평을 날렸다. ●한일 외교전쟁 중 닥친 IMF위기 그 무렵 우리 금융시장은 날개 없는 천사처럼 추락 중이었다. 10월 28일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하루 변동폭 하한선까지 떨어져 외환거래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1월 들어선 ‘서울을 떠나라’(5일 블룸버그 통신), ‘한국은 동남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위기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6일 월스트리트저널)는 외신이 줄을 이었다. 다급해진 정부는 일본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재정경제원의 엄낙용 제2차관보가 11월 10일 일본에 급파돼 ‘미스터 엔’이라는 대장성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재무관을 만났다. 그러나 다음날 빈손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가 IMF를 통해서만 유동성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원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며 우리 정부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여기서 ‘외환위기를 촉발시킨 직접적 원인은 1997년 여름 일본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2016년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논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2008년 글로벌위기 때는 달랐다 물론 외환위기의 원인이 일본이라고 콕 찍는 건 아니다(일일이 열거하다간 날 새고 만다). 외교 갈등을 보복하기 위해 일본 은행들이 일부러, 무자비하게 돈을 빼갔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일본도 금융위기가 닥칠까봐 국제결제은행(BIS)이 정한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자금 회수를 했다는 분석도 있다.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만일 일본과 최상의 외교관계였어도 미국 핑계로 도움을 거절당했을까. 국가 대 국가의 지원은 아니어도 만기 연장의 행정지도나 통화스와프 체결은 가능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서 그렇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명박 정부는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어 빠르게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시절 재경원 차관으로 있으면서 ‘미국의 힘을 빌려야 글로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추진했지만 쉬웠을 리 없다. 외교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대통령이 평소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외교관계를 잘 맺어왔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왔다”고 했었다. ●외교 실패가 경제위기 악화시켰다IMF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우리 측 대표를 맡았던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외환위기 징비록’(2008년)에 이렇게 기록했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절한 데에는 정부의 통상정책에도 원인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과 통상 문제를 놓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업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또 한국 정부는 일본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평소 원만하지 못했던 외교관계로 인해 시장의 실패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정부의 마지막 기대마저 무산된 것이다.’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놓고 일본이 경제 보복을 시작한 지금, ‘역사는 반복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다시 보는 느낌은 섬뜩하다. 외교 실패의 대가를 또 국민이 치를까봐서다.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해결책을 찾자고 다양한 경로로 요구했지만 정부는 ‘무대응’으로 대응해 보복을 자초했다. ●“한일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 말라”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을 제한하는 치명적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언급하자 아베 신조 총리는 2일 “일본은 모든 조치는 WTO와 정합적”이라며 일축했다. 1997년 여름 한국산 컬러TV와 반도체에 반덤핑조치를 취한 미국을 우리 정부가 WTO 제소하자 미국이 “자국의 반덤핑 법규와 관행은 전반적으로 WTO협정에 합치한다”고 했던 딱 그 반응이다. YS가 외교를 망친 데는 ‘문민 대통령’이라는 지나친 도덕적 자부심도 작용했다고 본다. 외교적 능력도 능력이지만, 민주화운동 출신이라는 정당성에 사로잡혀 앞뒤 가리지 않고 일본을 공격했다. 선거에선 불타는 민족주의가 나쁘지 않다는 정치적 이유도 작용했을 터다. ‘촛불정부’라는 도덕적 자부심에 불타는 문재인 대통령도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아야 한다”며 일본을 겨냥한 바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역시 관제 민족주의를 친일파 척결, 적폐청산 같은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국민은 모르지 않는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 회피를 위해 한일관계 악화를 즐긴다는 의심도 없지 않다. ●북한만 잘되면 모든 문제 사라지나 IMF위기가 또 닥칠 수 있다고는 생각도 하기 싫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세계 경기와 딴판으로 하강곡선을 그리는 현실이다. 만에 하나,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를 도와줄 우방이 있는지 이 정부의 외교실력이 걱정스럽다. IMF위기가 ‘위장된 축복’이라는 말도 없진 않다. IMF의 압력이 있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털어낼 수 있었다는 결과적 분석이다. 당정청이 오늘 발표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 매년 1조 원 투자’ 계획이 우리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일관계는 이대로 갈 수 없다. 나라가 이사를 갈 수도 없다. 이 정부가 북한에 공들이는 것의 반(半)에 반만 외교에 신경 써도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나라 밖에서도, 안에서도 북한만 잘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올인 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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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누가 대통령을 핫바지로 만드나

    6월 호국보훈의 달, 삼척항에 들어온 북한 목선은 문재인 정부의 안보 실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2012년 ‘노크 귀순’처럼 군의 대북(對北) 경계 실패와 고질적 은폐 기질을 노출시킨 ‘해상 노크 귀순’ 정도가 아니다. 청와대가 관여한 사건이다. 문 대통령이 어디까지 알고 있었느냐에 따라 차원이 달라질 수도 있다. 노크 귀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사건 발생 일주일 이상 우리 군이 폐쇄회로(CC)TV로 북한군을 발견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해당 부대에서 10월 2일 최초 보고 때 잘못 보고했다가 다음 날 ‘문 두드림 발견’으로 다시 보고했음에도 합참은 물론 국방장관까지 뭉개버린 탓이다. 그나마 그 사건은 현 집권당인 야당의 김광진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동부전선이 뚫렸다”고 폭로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조사 결과 최초의 허위보고, 태만 등이 부대 대대장과 합참 통제실 실무 선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장관 사과와 장성 등의 엄중 문책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 대변인이 초기부터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상황을 공유하고 협의했다고 폭로해 충격적이다. 해양경찰청은 15일 청와대 국정상황실을 비롯한 관계 기관에 ‘삼척항 방파제에 미상의 어선이 들어와 있는데 신고자가 선원에게 물어보니 북한에서 왔다고 말했다고 신고 접수’라고 정확히 보고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17일 안보실 행정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 군은 북한 소형 목선이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멍텅구리 배 같은 브리핑을 한 것이다. 정부 발표와 달리 북한 어선은 삼척항 민간 항구에 유유히 정박했고, 우리 어민들은 해상 경계가 뚫렸다며 불안해한다는 KBS 보도가 다음 날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이 뉴스를 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날 대통령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고, 국가안보실의 소홀함이 있었다고 청와대 대변인 고민정이 22일 뒤늦게 페이스북에 천기누설 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나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문 대통령에게는 정확하게 보고를 했는지 여부다. 북유럽 순방 후 16일 귀국해 17일 연차휴가를 쓴 대통령은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 있다. 만일 문 대통령이 해경 보고는 물론 청와대-국방부 협의 사실까지 알면서도 국방부의 거짓 브리핑을 묵인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속인 것과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신뢰성 있어 보이는 외양 덕분에 운동권 86그룹에 택군(擇君)됐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이걸로 끝이다. 대통령이 어제 통신사 합동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비핵화와 연계시켜 말한 적 없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설령 김정은은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작년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주요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한 것이 한미동맹 와해, 주한미군 철수로 가는 길이다. 만일 문 대통령이 북한 어선에 대해 제대로 파악 못한 채 보좌진 말만 믿다가 국방부 브리핑이 거짓임을 알게 됐대도 문제는 심각하다. 흔히 ‘청와대’로 지칭되는 대통령 보좌진이 주군을 핫바지로 만들고 있다는 의미 아닌가. 군 일각에선 군 수뇌부와 청와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용히 처리하는 게 대통령을 돕고, 정부의 대북 기조에 맞추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청와대가 국민보다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을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방부 합동조사는 청와대를 건드리지 못하고 피라미 사냥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청와대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이번 목선 사건만 속인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가뜩이나 청와대비서실이 내각 꼭대기에 올라앉았다는 ‘청와대 정부’다. 남북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9·19 합의 직후 “사실상 불가침 합의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나선 것도 국방장관 아닌 국가안보실장이었다. 9·19 이후 우리 군의 경계태세가 무너졌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축소 지향의 ‘국방개혁 2.0’으로 강원지역과 동해안을 지키는 2개 군단과 3개 사단 해체설이 돌고 있다. 이번 목선 사건으로 청와대를 다시 보고, 무너진 안보를 다시 세울 수 있다면 천운이겠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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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싫다

    어제 아침에도 성질을 내고야 말았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그 여자 때문이다. “아리아. YTN 뉴스 라디오 틀어줘”라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아리아는 “웨지레 뉴스 들려드릴게요”하더니 “웨지레는 엑스엑스엑스의 방송을 보며 엑스엑스엑스를 치냐고 물었고 이에 엔에스남순은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주절주절 전하는 것이었다.●웨지레방송의 엑스엑스엑스라니물론 나는 웨지레가 ‘아프리카TV의 BJ 외질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이 글을 쓰기 위해 혹시 인터넷방송 성희롱 얘기인가 싶어 ‘XXX’를 검색해보고 알았다). 이게 뭔 외계어인가 이상해서 “아리아” “아리아” 처음엔 부드럽게, 나중엔 점점 소리를 높여 불러가며 “YTN 켜줄래” “라디오 꺼줄래” 외쳤지만 인공지능(AI)스피커는 못 들은 척 “…엑스엑스엑스를 보고 엑스엑스엑스를 친 적 있지…” 하고 계속하는 것이었다(그때 아리아를 부르는 나의 절규와 아리아의 웨지레 엑스엑스엑스 뉴스를 녹음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 결국 나는 “아리아!!!” 악을 쓰다가 홱 플러그를 뽑고 말았다.AI스피커가 내 성질을 돋우는 건 어제만이 아니다. 나는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라디오로 뉴스를 듣는데 거의 YTN과 TBS만 가능하다. CBS표준FM라디오로 김현정의 뉴스쇼를 듣고 싶지만 “아리아. CBS FM라디오 틀어줘”하면 얘는 꼭 CBS 음악FM를 틀어서 명령을 다시 하게 만든다. ●성차별을 말하는 게 아니다다른 방송을 틀어달라고 했다가 “죄송해요. 저는 …(방송국 이름 줄줄이 열거) 틀 수 있어요” 하면서 제 마음대로 음악방송을 들려주는 바람에 신경질 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못하면 가만있기나 하지 인공지능 주제에 왜 자신의 수준 낮은 지능을 발휘한단 말인가. 나를 더 열 받게 하는 건 아리아가 여자 목소리라는 데 있다. 주인님 명령 받아 처리하는 기계가 왜 여자여야 하느냐는 성차별을 말하는 게 아니다(지난달 유엔 산하 유네스코에서 “여성 목소리의 인공지능 음성비서가 사용자에게 여성은 기꺼이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도우미라는 편견을 주입시킨다”는 보고서를 내긴 했다). 업체들이 소비자 조사를 해보면 대개 여자 음성을 선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알고 있다(남자들은 거의 다 그렇단다). 내비게이션처럼 기계 같은 음성이면 저건 기계니까, 아직 기술이 안 되니까, 하고 심플하게 이해하겠다. 그런데 여자 성우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다양한 문장으로 만들어낸다는 스피커가 맹하기 짝이 없으니 화가 나는 것이다. ●왜 아양과 콧소리가 들어가나책 읽는 것처럼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목소리면 차라리 낫겠다. 개인비서 같은 상냥한 느낌을 주려는 모양인데 그게 더 짜증난다. 진짜 비서라면 “죄송하지만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라거나 “…들려드릴게요” 할 때 저렇게 비굴하면서도 약간의 아양과 콧소리와 높낮이를 섞어 말하지 않는다(혹시…남자들은 이런 비서를 더 좋아하시나요?). 전문직이나 사무직 어시스턴트 느낌도 당연히 안 든다. 저렇게 무능하고, 시간이 가도 계속 저 모양이면 오래 못 간다. 내가 남자라고 치고 아주 선의로 해석해도, 이 스피커는 아내 같은 느낌도 주지 못한다. ‘그녀(Her)’ 영화 속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같은 스마트한 매력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 여자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 도저히 같이 못 산다. 굳이 캐릭터를 상상하자면 마치 애인이 되고 싶어 죽겠는데 거부당할까봐 눈치를 보는, 머리도 안 좋고 예쁘지도 않으면서 일은 열심히 하려 드는(하지만 별로 잘하지도 못하는), 그러면서도 애써 귀여운 척 말하는 여성 감정노동자 같아서 화가 나는 것이다(내 분석을 들은 몇몇 남자들은 그 목소리가 그렇다는 걸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며 경악을 하긴 했다). ●인공지능이라니…對국민 사기다동성애자인 앨런 드 제네러스가 스마트폰 속의 시리에게 “I love you” 하는 ‘앨런쇼’를 유투브로 본 적이 있다. 여자 목소리의 시리는 자신 있게 “You can‘t”라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이 만큼의 지능은 안 되더라도 우리나라 스마트폰도 운전 중 근처 주차장이나 맛집을 물어보면 꽤 근사하게 대답을 한다. 하지만 ’인공지능‘라고 자처하면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제품은 문제가 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도 구매자 절반이 ’일상 환경에서 음성인식이 안 된다‘고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2년 전 조사인데 그 사이 국내 기술이 발전되지 않았다면 심각한 일이다. 음성으로 컨트롤한다는 ’AI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현관문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상상해보라. 지금 같은 맹한 제품으로 업체끼리 경쟁이나 할 작정이면 제발 인공지능이란 수식어라도 빼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남자 목소리로 만들든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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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한 국가 두 체제’ 홍콩, 한국의 미래일 수도 있다

    한국이 30년 후 북한과 합치기로 예정돼 있다고 가정해보자.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돼 문재인-김정은 남북정상은 2049년 ‘합방’을 합의한다(상상이라고 했다). 이미 2000년 6·15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돼 있다. 단계가 높든 낮든 여기서 핵심은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자유는 온전할 수 있을까. ●“공화국 모독은 극형에 처한다”2년 전 우리 신문은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을 출판코너에 소개한 적이 있다. “북한 주민의 생활이 우리와 완전히 동떨어진 게 아님을 보여준다”는 상당히 호의적 내용임에도 북한은 격앙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재판소 명의로 “우리 공화국의 존엄을 악랄하게 중상 모독한 동아일보 △△△기자와 ▽▽▽사장을 공화국형법에 따라 극형에 처한다는 것을 선고한다”고 부르짖었다.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내용을 보면 웃음이 사라진다. “범죄자들은 판결에 대해 상소할 수 없으며 형은 대상이 확인되는 데 따라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추가적인 절차 없이 즉시 집행될 것”이라는 선언은 섬뜩했다. 회사에서도 신변보호 요청을 고려했을 정도다. 만약 남북한 특별협정에 따라 북한이 지목하는 ‘범죄자’는 북으로 보내야만 한다면, 소름이 돋지 않는가. 홍콩이 지금 그런 상태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때, 최소한 2047년까지는 일국양제에 따라 홍콩의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영국과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홍콩이 누리던 자유는 사라진지 오래다. ●법원이 의원직 박탈…법치는 없다홍콩의 행정수반 직선제를 2017년 허용하겠다던 후진타오 전임 국가주석의 약속은 진작 깨졌다. 2015년 홍콩의 정치서적 판매상들이 중국 당국에 납치됐는데도 속수무책이다. 반환 20주년인 2017년 7월 1일 중국 외교부는 “영-중 공동선언은 더는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는 역사적 문서”라며 사실상 무효화를 선언했다.홍콩 반환 때 영국이 각별히 신경을 쓴 것이 홍콩의 법치였다. 특히 ‘범죄인 인도법’에서 중국을 제외한 이유는 중국에선 법이 공산당 아래 있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구처럼 사법부 독립이나 민주주의로 갈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홍콩법원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범민주파’ 의원 4명이 의원 선서식 때 홍콩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우산을 폈다는 이유 등으로 2017년 의원자격을 박탈하는 판결을 내렸다. 마침내 홍콩 시민이 일어섰다. 범죄인 인도법에 중국을 포함시키려는 당국에 맞선 것은 홍콩의 자유, 인권, 법치를 위협하는 시진핑에 맞선 것과 마찬가지다. 15일 행정장관이 이 법의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것도 시진핑의 정치적 후퇴로 봐야 한다. 석 달 전 에서 언급한대로 시진핑은 올해 운명의 변곡점을 맞은 것이다. ●중국도 망할 수 있다, 소련처럼나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미국이 작심하고 나선 체제 경쟁이라고 본다. 미국 주류세력에 존경받지 못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결국은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듯, ‘또라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아예 해체할 작정으로 세계전략을 구동 중이다.설마 중국이 망하기야 하겠느냐 싶을 것이다. 소련이 망하기까지 소련붕괴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점에서 위덕대 박훈탁 교수가 선진국 학자들의 최근 저서와 논문들을 참고문헌으로 챙겨 지난 2월 대한정치학회보에 낸 논문 ‘소련붕괴의 조건과 중국붕괴의 가능성’ 은 매우 흥미롭다. 한때 소련은 개발도상국들의 빛나는 모델이었다. 공산혁명 전까진 농업후진국이었지만 미국과 겨룰 만큼 급속히 발전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무엘슨이 1961년 경제학 저서에서 “1990년대엔 소련경제가 미국보다 커질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국가주도 투자가 처음엔 빠른 성장을 창출해도 투자수익은 곧 감소한다. 공산체제의 경직성 때문이다. 소련의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자본과 노동의 투입 증가 없이 발생하는 체제의 생산성)이 1970년대 제로 가깝게, 80년대는 평균 -0.23으로 떨어졌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총요소생산성 향상이 필수불가결하지만 소련의 중앙계획경제에선 불가능했다. 단기적 성과 달성에 급급한 공산체제의 경직성이 전반적 생산성 향상을 마이너스로 떨어뜨렸고, 결국 소련 붕괴를 초래했다는 거다. ●공산체제는 나라를 질식시킨다중국도 다르지 않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2007~2012년 중국의 총요소생산성은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졌다. 붕괴 직전 소련 수준이다. 3년 전에 국제통화금융(IMF)은 2019년 중국에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결국 시진핑이 공산체제의 경직성을 해소하지 못하면, 중국은 금융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이 논문의 결론이다. 물론 중국의 엄청난 인구와 잠재력을 믿는 사람들은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이 20일 북한을 찾는 것도 미국부터 홍콩까지 전방위로 조여드는 압박에서 벗어나겠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중국이 붕괴된다고 해도 그건 공산체제의 붕괴일 뿐이다.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 인권과 자유와 법치를 억압하는 체제가 유교문명이라는 이유로 성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다. 소련이 망하자 중국으로 달려가 정신적 위안을 찾았던 중국유학 1세대, 좌파 주류세력은 제발 똑바로 현실을 봤으면 한다. ※글 중간에 칼럼 제목을 클릭하면 칼럼 본문으로 연결됩니다. dobal@donga.com}

    •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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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이것은 美中 무역전쟁이 아니다

    “이 문을 여시오! 고르바초프 선생, 이 장벽을 무너뜨리시오!” 1987년 6월 12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연설은 공산주의 소련제국을 무너뜨린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독일 서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향해 ‘자유와 평화를 증진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행동’을 요구했다. 지금은 미국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기억되지만 당시 레이건은 미국 주류세력에 그리 존경받는 대통령이 아니었다. B급 배우 출신다운 쇼맨십과 ‘악의 제국’ 같은 거친 레토릭 때문에 미국의 최악을 상징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베를린장벽 연설 2년 후 정말 장벽은 무너졌다. 1991년 말엔 소련이 붕괴했다.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관 건설을 막아 소련 경제에 타격을 주고, 핵무기 방어체계(SDI) 구축 등 공산체제의 능력을 넘는 군비경쟁을 벌여 악의 제국 궤멸전략을 성공시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처럼 요란하고 거친 언동으로 미국 엘리트사회의 조롱을 받는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이 세계경제를, 특히 우리 경제를 얼어붙게 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하지만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전방위 압박은 과거 미국발(發) 무역전쟁과 차원이 다르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레이건이 감세와 탈규제 등 레이거노믹스로 경제를 살리면서 소련을 압박해 붕괴시켰듯, 전체주의 독재국가 중국을 주저앉히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세계전략으로 보인다. 어쩌면 ‘제2의 레이건’으로 역사에 남을 수도 있다. 전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2013년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장한 ‘신형대국관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사실상 미국의 패권을 양보한 신사였다. 트럼프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시행되는 곳엔 고통과 파괴가 뒤따른다”고 연설할 만큼 사회주의를 혐오한다. 미국이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는 중국을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저해하는 수정세력으로 규정하고, 강제수단을 동원해 주변 국가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활동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굴기(崛起)를 막기 위해 미국의 과학기술이 중국에 유출되는 것을 차단하고, 세계의 제조업을 끌어들여 미국경제는 살리는 것이 트럼포노믹스다. 미중 무역협상에서 미국 요구의 핵심은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중단이다. 국영기업은 공산당 정치경제적 이권의 결정체이므로 중국 공산체제를 해체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시진핑은 작년 12월 개혁개방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중국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개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혀 경제성장이 민주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자유세계의 믿음을 배반했다. 관세폭탄은 시작에 불과하다.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미국이 환율전쟁으로 들어가면 중국은 버텨내기 어려울지 모른다. 중국 왕조의 평균수명이 70년이다. 1987년 말 미소(美蘇)가 합의한 중거리핵전력폐기(INF)조약도 트럼프는 작년에 파기했다. 건국 70주년인 중국과 군비 경쟁을 벌이며 경제적 압박을 병행하는 레이건식 붕괴 전략을 펼칠 태세다. 지금 두 주요국가(G2)는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고, 누가 이기든 새우등 터질까만 우려한다면 한가하다. 중국은 부패 척결을 빌미로 누구든 잡아 가둘 수 있는 일당독재 전체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문명 간 충돌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인권과 자유, 법치를 외면하는 나라를 유교문명으로 존중할 순 없다. 공존은 불가피해도, 인간을 억누르는 전체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응전에서 우리가 서야 할 곳은 자명하다. “냉전 초기 소련의 파워가 커질 때 주변 독재국가가 증가하고 소련 궤멸 뒤에 감소했듯이 이제는 중국이 세계에 권위주의를 퍼뜨리고 있다”고 작년 10월 미국의 포린어페어스지는 지적했다. 청와대 운동권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한 것도 모자라 내년 총선에서 입법부까지 장악하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몰아가는 것도 중국의 영향이 아닌지 두렵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인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노르웨이에서 ‘평화는 힘이 아니라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을 인용해 대화 의지를 역설했다. 평화, 좋다. 그러나 김정은의 북핵도 이해하고 시진핑의 중국몽도 신뢰하는 자칭 ‘작은 나라’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자유는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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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영수회담 요구했던 文, 지금은 왜 거부하나

    정부 출범 3년차. 새로 선출된 제1야당 대표의 당선 연설은 대(對)정부 전면전 선포였다. “경고한다.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 낸다면 저는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다.”2015년 2월 8일 더불어민주당의 전신(前身)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 연설이다. 전쟁을 말했음에도 문 대표는 취임 3주일 후인 26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영수(領袖) 회담을 제의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여야가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는 명분이었다. 그 결과 문 대표는 3월 17일 (여당 대표를 깍두기로 끼워)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도 당 대표 당선된 지 한달 열흘도 안 되어서다!●그때는 군소정당 끼워주지 않았다그때라고 군소정당이 없었던 건 아니다. 문재인 청와대의 여야회담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정의당 의석이 6석이다. 박근혜 청와대 때는 5석이었다. 지금과 별 차이 없는데도 그때 정의당은 여야회담에 끼지 못했고, 거대 여야 어느 당도 합석을 주장하지 않았다. 박근혜-문재인의 영수회담 결과가 어땠는지는 접어두자. 당시 문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의하며 “일단 대통령과 경제를 위해 만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했듯, 만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동아일보가 다음날 사설에서 ‘국민은 국정의 핵심 파트너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썼을 정도다.장황하게 돌아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꽉 막힌 정국, 꼭 닫힌 국회를 여는 데는 영수회담이(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구하고 구차한 청와대-여야 5당 회담 말고, 4년 전 문 대표처럼 대통령과 제1야당이 영수회담을 하기 바란다. ●자유한국당을 대접해줄 수 없다? 여야회담 얘기가 나온 지 벌써 한달 째다. 문 대통령은 5월 9일 KBS와의 회견에서 대북 식량지원을 놓고 여야 5당 대표 회담을 제의했다. 다음 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검경 수사권 조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논의를 전제로 일대일 단독 회담을 역제안 했다. 청와대가 한국당을 뺀 대통령-4당 회담까지 제안했던 건 파국을 각오한 행태로 보인다. 그리고는 7일 오전까지 5당 대표 회동 후 일대일(청와대), 3당 대표 회담 후 일대일(한국당) 지루한 공방전이다. 당연히 청와대는 제1야당을 따로 대접해주기 싫을 것이다. 한국당 황 대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당선 뒤 한달 열흘도 안 돼 대통령을 만났던 제1야당 대표 문재인이었다. 그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를 당선 석 달이 넘도록 만나주지 않는 건 공평하지 않다.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는 개구리 같다. 청와대로선 거대 제1야당이 버티고 있는, 촛불민심이 반영되지 않은 20대 국회는 그냥 패싱 할 것을 각오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국회 협조를 얻겠다고 영수회담이든, 5자회담이든 매달릴 이유가 없다. 패스트트랙에 태운 선거법 개정을 통해 21대 국회 지형을 뒤집어 버리면, 자유한국당을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정국 파행의 책임이 청와대에 갈수도그러나 내년 4월 총선까지는 너무 길다. 제1야당의 장외 투쟁을 그대로 두기엔 경제와 안보, 외교가 위중한 상황이다. 영수회담을 하고도 한국당이 장외를 떠돌면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영수회담을 하지 않는다면 정국 파행의 책임이 청와대로 갈 공산도 크다. 더구나 과거청산을 한대도 기억까지 없앨 순 없는 법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 줄기차게 영수회담을 주장했다. 설령 기대효과가 나지 않아도 대표 자리를 굳히기 위해, 유능한 경제정당 이미지를 주기 위해 영수회담을 요구했고, 결국은 사실상의 영수회담을 받아냈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8월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요구하자 청와대는 여야 대표에 원내대표까지 포함한 5자회담(군소정당 포함이 아니다)을 역제안한 적이 있다. 시청 앞 노숙투쟁을 벌이던 김 대표가 거꾸로 ‘선(先) 양자회담 후(後) 다자회담’을 제안하자 8월 28일 의원 신분의 문재인이 찾아와 영수회담을 촉구한 기록도 남아 있다. “정국이 이렇게 꽉 막혀 있으면 오히려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만나자’고 거꾸로 요청을 해서라도 풀어야 하는데 야당 대표가 만나서 풀자고 하는데도 거부하는 것은 정말 참 납득하기 어렵다.”(하하) ●靑 눈치만 보는 與, 부끄럽지 않나결국 김 대표는 9월 16일 여당 대표를 끼운 3자 회동으로 대통령과의 회담을 할 수 있었다. 2015년에도 청와대에선 ‘3자 회동’이라고 언급한 반면 문 대표는 ‘여야 영수회담’이라고 강조하며 대선주자의 위상, 경제정당의 이미지도 굳힐 수 있었다(그래서 청와대가 한국당 대표를 못 만나는 것이라면 치사하다).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영수회담이 성사되도록 역할을 한 점은 중요하다.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앞둔 3·1절 기념식 행사장에서 김 대표가 먼저 대통령에게 “순방 결과를 여야 대표에게 얘기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 문 대표가 호응했고 대통령이 “다녀와서 뵙겠다”고 화답해 영수회담이 성사됐다. 대통령의 해외방문은 영수회담의 기회로 활용하기 알맞다. 과거 정부에서 김 대표도, 문 대표도 대통령 순방 후 자리를 함께 했다. 9~16일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 전에 황 대표와 영수회담, 아니면 여당 대표까지 낀 3자회동, 그것도 아니라면 황 대표의 제안대로 회동한 뒤 떠난다면 대통령의 발걸음도 가벼울 듯하다. 순방 후라도 좋다. 북한 김정은과의 회동은 어딘들, 어떤 형식인들 마다하지 않으면서 제1야당 대표와의 일대일 만남을 거부한다면 대통령의 정치력은 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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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여자의 성공, 결혼의 성공

    대학 2학년 때였다. 교양과목인 ‘청년심리’ 첫 시간. 머리를 동그랗게 커트한 40대의 ‘귀여운’ 여교수가 딱 하루 보강을 맡았다며 들어왔다. “평생 자기 일을 갖고 그 일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자기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남자와 결혼하세요. 남편과 아내는 서로가 서로를 마음 놓고, 끝없이 좋아할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언제 결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을 만난 때가 바로 결혼적령기죠.”●“나를 후원해주는 남자와 결혼하라”써놓고 보니 별로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내용이다. 그때는 충격적이었다. 영문학이라는 내 찬란했던 전공과목 강의는 한개도 생각 안 나는데 유독 이혜성 교수의 이 말씀만 기억에 남는다. 평균 결혼연령이 남자 27.4세 여자 23.6세이던 1981년. 사랑이 결혼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믿었던 여대생들에게는 패러다임을 바꿔주는 강의였다. 1983년 말 내가 동아일보에 입사한 다음에도 ‘결혼 적령기는 없다’ ‘남편 혼자만의 일로만 생각되던 돈벌이에 뛰어드는 아내들이 늘고 있다’ 같은 칼럼이나 기사가 버젓이 신문에 등장하곤 했다. 이혜성 교수는 이화여대 기혼 여교수 12명을 심층 연구해 이들에게는 아들딸 차별 없이 길러준 부모와 적극적 후원자가 되어준 남편이 있었다는 ‘여자교수의 성취동기에 대한 사례연구’ 논문을 1985년에 내놓았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해준 강의는 학문적, 실제적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여성학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기 전에 나는 여성학의 정수(精髓)를 세례 받은 셈이다. ●결국 아내 성공은 남편에게 달렸다?그 결과 나를 후원해주는 남자와 결혼했는지는 묻지 말기 바란다. 다만 내 일을 방해하지 않는 상대를 선택하는 건 중요하다. 실제로 내 또래 주변을 둘러보면, 직장생활을 남편이 반대하는 경우 대개 여자는 직장을 그만두었다.하지만 여자는 남편이 후원을 해줘야 성공한다거나, 성공 못한 여자는 남편이 후원을 안 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결국 ‘아내 성공은 남편에게 달렸다’, 쉽게 말해 여자는 시집 잘 가야 한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어서다(좋은 핑계거리는 될 것이다).여기서 ‘성공’이라는 게 뭘 말하는지 잠깐 짚어보면, 이 교수는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루스 쿤드신의 ‘여성과 성공’을 인용해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분야에서 계속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일하고, 주위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상태’를 성공이라고 했다. 그 책의 바탕이 된 미국 뉴욕의 과학 아카데미 세미나가 1972년에 진행됐고, 거기선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우’까지 거쳐야 성공으로 쳐주었다는 것을 기록해둔다. ● 열렬한 후원자와 결혼한 이혜성 교수이혜성 선생님을 근 35년 만에 다시 만났다. ‘2018년에 나는, 나의 팔순 세상의 신입생이 되었다’고 자서전 ‘내 삶의 네 기둥’에 쓴 대로, 선생님은 여전히 동그란 커트머리에 통통 맑게 튀는 소프라노 목소리의 소녀 모습이었다. 내가 강의를 들은 그 때가 선생님한테는 마음 놓고, 끝없이 좋아할 수 있는 남자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시절이었다. 선생님은 어떤 남자와 결혼했는지 궁금했는데 우리에게 강의한 그대로, 남편은 아내를 끊임없이 지원한 후원자였다. 아내의 꿈을 위해 10년 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라는 ‘아주 특별한 대학원’까지 세워주었다. 국어교사를 하다 1968년 29세의 만학도로 미국에서 상담 교육학을 공부하고 1974년 귀국해 이화여대 교수로 일하던 무렵, 선생님은 스스로도 아주 비현실적이라고 인정하는 결혼 조건을 다섯 가지나 갖고 있었다. 서울대 출신일 것, (내가 작으니) 체격이 클 것, 남자다울 것, (나처럼) 이북출신일 것, 그리고 쩨쩨하지 않을 것.●남편이 세워준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그런데 과히 친하다고 할 수 없는 분의 소개로 딱 그런 사람을 만나 ‘뿅’ 가버렸다. 3명의 자녀를 둔 46세의 홀아비라는 점만 빼고. 하긴 나도 젊은 여성들에게 진지하게 말하곤 한다. 한 가지만 포기하면 원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단다. 키가 작다거나, 머리숱이 심하게 없다거나, 나이가 많다거나, 아니면 아이가 있다거나. 처음부터 부자 남편은 아니었다. 결혼 당시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고, 건설업을 하는 남편이 결혼한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현장 근무를 떠나는 바람에 새엄마 혼자 아이들과 살기도 했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함께 극복한 삶의 역사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기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지닌 멋진 사업가 우천 오병태 동남주택 회장이 2008년 우천학원을 설립해 2010년 3월 아내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만들어준 것은. 심지어 서울 서초구 한복판에 자리 잡은 400억 대 동남주택 사옥은 그대로 이 대학원 건물이 됐다(이 얘기를 들은 후배는 탄성을 질렀다. “타지마할보다 멋지다”면서). ●‘팔순 세상의 신입생’이라는 멋진 인생한국 상담학 1세대인 선생님은 상담이란 좌절한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이끄는 학문이라고 본다.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진정한 자아실현을 향해 성숙해 나가도록 원동력을 제공해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의 특별함은 ‘문학상담’ ‘철학상담’ 같은 인문학적 상담에 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문학상담’을 도입했는데, 내담자들이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게끔 상담자들에게 문학적 통찰력과 표현력을 갖추게 하는 명품 대학원을 추구한다고 말해주었다. 선생님의 남편은 2012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31년간 행복하게 살았고, ‘그는 내 마음 가는 곳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지금도 선생님은 남편과 함께 사랑 속에서 산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세워준 대학원을 일생의 금자탑으로 알고, 두 사람의 인생을 더 빛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매일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일한다는 총장 선생님은 정말 특별해 보였다. 선생님은 필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공주였을 것이다. 이런 사랑, 이런 부부, 이런 삶과 성공은 흔치 않다. 하지만 선생님처럼 ‘환갑을 맞았을 때도 참 기뻤고’ 팔순을 맞아서도 신입생 같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설령 결혼을 안 했어도, 아주 아주 못난 남자를 만났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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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민노총에 굴복한 盧정부 실패 따라가나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기생충’ 속의 송강호 가족은 전원 백수다. 가장은 치킨집을 하다 망한 전력이 있고, 딸은 “서울대에 문서위조과 그런 건 없나” 소리를 들을 만큼 포토샵 실력도 있는데 취업을 못했다. 물론 한국의 실업 문제가 주제는 아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보편적 문제의식이 세계의 인정을 받은 것이고, 우리의 집권 세력은 입만 열면 ‘글로벌 경제 여건이 당초 예상보다 악화돼’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 고용쇼크라고 앓는 소리를 하기에 나는 세계가 다 어려운 줄 알았다. 아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주 발표한 회원국의 올 1분기 평균 경제성장률이 0.6%다. 전 분기의 2배로 증가했다. OECD 회원국 3분의 2가 40여 년 만에 최고의 일자리 붐을 구가 중이라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를 보고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고숙련직 중심으로 더 늘었고, 저숙련직은 노동생산성과 함께 임금도 올랐다는 거다. 믿어지지 않아 지난달 발표된 OECD 고용보고서를 확인했더니 사실이었다. 작년에 청와대는 취업자 수 감소가 신경 쓰이는지 실업문제를 정확히 보려면 고용률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36개 회원국 중 2018년 고용률(15∼64세 인구 중 취업자 비중)이 2017년보다 줄어든 나라는 칠레와 아이슬란드뿐, 일자리는 모두 증가 추세다. 우리 정부도 전년과 같은 66.6%로 역대 최고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한국의 고용률은 OECD 평균(68.4%)보다 낮다. 일자리 풍년과 거리가 먼 3분의 1 회원국에 속한다는 얘기다. 이것도 모르고 잘난 척한 정부라면 우물 안 개구리다. OECD보다 뒤처진 나라들도 칠레를 빼고는 전년보다 고용률이 올라갔지, 그대로인 나라는 한국과 이스라엘밖에 없다. ‘일자리 정부’는 성과를 올린 게 아니라 실패를 한 것이다. 한국의 고용률이 2014년 OECD 평균(65.6%)에 도달하고도 이후 거의 제자리걸음인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기간, 재정 위기로 노동개혁 등을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포르투갈(62.6%→69.7%) 아일랜드(63.1%→68.7%) 그리스(49.4%→54.9%) 스페인(56%→62.4%)은 고용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입성 전 주OECD 대사를 지낸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은 일자리 결정 요인으로 생산인구 감소를 첫손에 꼽는다. OECD가 혀를 찰 무책임한 소리다. 인구가 줄면 고용률은 올라가야 맞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일자리 붐의 주요 이유는 강성 노조와 단체교섭의 힘을 뺀 노동개혁이었다.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는 물론 네덜란드도 2014년 해고수당 제한, 근로시간 규제 완화 같은 더 유연한 노동시장 개혁으로 고용률을 2014년 73.1%에서 2018년 77.2%로 끌어올렸다. 우리 정부도 시도는 했다. 2015년 초부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노동개혁은 일자리”라며 해고요건 완화, 임금피크제 같은 노동개혁을 입이 아프게 촉구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사주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그렇다해도 노동시장 유연안정화는 나라를 위해서도, 청년 일자리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할 개혁이었다. 그걸 한사코 거부한 세력이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고 민노총이다. 문재인 당시 대표는 당 내분으로 사퇴할 판이면서도 “제가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비정규직을 줄이지는 못할망정 늘리는 법안을 용인한다면 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며 결사반대했다. 결국 2016년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고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노동개혁법안 처리는 무산됐다. 정권 교체 후 일반 해고지침도 폐기됐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소득주도성장 정책까지 노동시장은 세계와 거꾸로 갔다. 그 결과가 4년째 늘지 않는 고용률이고 백수 가족이다. 문재인 정부 탄생에 지분을 지닌 민노총은 국회와 경찰에 폭력까지 휘두르며 ‘노동자가 주인 된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중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으로서 불법파업에 두 손 드는 것으로 대응했다는 문 대통령은 “노동 분야에서 참여정부는 개혁을 촉진한 게 아니라 거꾸로 개혁 역량을 손상시킨 측면이 크다”고 자성한 바 있다. 노동개혁을 뒤집은 것도 모자라 또 민노총을 비호해 나라와 국민과 미래 세대에 해를 입힌다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의 경고대로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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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노무현 10주기…공과는 제대로 평가돼야 한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급하게 회사로 뛰어나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 그 자체가 그의 삶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범인(凡人)도 세상을 떠난 뒤 뒤늦게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하물며 대통령을 지낸 고인이야 말할 것도 없다. 감히 비유한다면, 순교자처럼 몸을 던져 그는 자신의 뜻을 지켜냈다. 노무현정신과 함께 ‘폐족(廢族)’은 부활했고, 마침내 친구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부당한 공격’이라는 언론관추도식에선 좋은 말만 하는 법이다. 노무현 10주기에 쓰는 이 글은 자성이 담겨야 마땅할지 모른다. 최근 공개된 그의 2007년 3월 친필 메모엔 ‘대통령 이후, 책임 없는 언론과의 투쟁을 계속할 것.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정부를 방어할 것’이라는 언론관이 적혀 있다. 그 무렵 나는 ‘선군혁명의 나팔수’라는 칼럼에서 대통령의 언론관을 비판한 적이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연례보고서를 인용해 ‘헌법재판소가 언론 자유에 반(反)하는 신문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신문 시장을 통제하려던 노무현 대통령 측의 패배’라고 소개했다. 노무현 정부로선 당연히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깊은 뜻을 몰라보는 부당한 공격이라고 보였을 터다. 지금 고인을 향한 추모 열기 속에도 다시는 ‘부당한 비판’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결연한 의지가 역력하다. 현 정부가 하는 모든 것이 ‘촛불정신’과 함께 노무현정신 이어받기에 있다고 믿는 듯하다. ‘인용 저널리즘’으로 돌아보면고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 그리고 인간적 매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노무현정신 속에 이 세상 선의는 다 포함시키면서 참여정부의 공과(功過)를 제대로 보지 않는 건 무책임하고도 위험하다. 실용과 국익을 우선시한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면, 무능과 이념과잉으로 인한 과오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 고인에 대한 숭배가 참여정부 숭배로 이어질까 두려워서 하는 말이다. 이때, 참여정부의 실패 부분을 내 입으로 거론하는 건 불안하다. 그래서 ‘인용 저널리즘’을 활용해 객관적으로 판단해보기로 했다(저널리즘까지 될지 모르지만 그냥 만들어본 용어다). 가장 안전한 알리바이가 될 수 있는, 이낙연 총리의 과거 발언을 통해서다.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대변인이었지만 참여정부 출범 뒤엔 야당이었던 민주당 대변인, 원내대표를 했다. 그 민주당이 현 더불어민주당의 뿌리이고 이낙연은 지금 여권 대선 후보감으로 선두에 서 있다. 이 총리를 폄훼하려고 인용하는 게 아니라 당시 비판 역시 지금의 이 총리처럼 지극히 합리적이었다는 뜻이다. 국회를 존중하지 않는 청와대-코드 인사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안이 2003년 9월 23일 국회에서 부인됐다. 이낙연은 “인준 실패에 대한 청와대의 첫 반응이 ‘안타깝다’는 것은 선후(先後)가 바뀐 것”이라며 “‘국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먼저 표명해야 옳다”고 지적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둔 2월 이낙연 총선기획단장은 “노 대통령이 잘하는 것 하나 없지만 민주당을 분당시킨 한 가지 죄만으로도 결단코 성공할 수 없다”며 “민주당이 살아야 다시는 이 땅에 배신자가 나타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2004년 이해찬 총리의 ‘동아·조선일보는 역사의 반역자’ 발언에 대해 10월 28일 이낙연은 “5·16쿠데타의 주역이고 ‘유신본당’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아래에서 교육부장관으로 일한 이 총리는 역사의 반역이 아니냐”며 “지도자의 언동은 균형과 품격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말엔 비용이 든다-정권 편향적 수사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2005년 1월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코드인사를 위해 검찰이 이연택 회장에 대한 내사에 들어가자 이낙연은 “검찰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움직임을 내보였다”고 비판했다(결국 2월 김정길 체육회장이 탄생했다). 2005년 11월엔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의 도청 개입 혐의에 대해 수사 받던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이 자살했다. 이낙연은 “김대중 정부를 도덕적으로 흠집 내려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강압 수사’ 문제를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무리였다면, 재임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의 설화(舌禍)에 대해서도 이낙연은 할 말을 했다. 2005년 3월 청와대 만찬에서 그는 대통령의 대일(對日) 강경발언을 두고 “문제의식이 있으니까 말씀한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말을 아껴 달라. 대통령의 말은 영향력이 있지만 비용도 있다”고 했다. 대연정은 위험한 발상, 정부는 낙제수준-2005년 7월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을 협치와 통합의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이낙연은 “대통령이 일정한 조건(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한다면)을 붙여 다른 정치 세력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이낙연의 총체적 평가는 2006년 2월 22일 국회에서의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알 수 있다. 그는 “합리의 눈으로 보고 미래지향의 마음으로 생각하려 한다”고 이렇게 연설했다. “내일모레면 노무현 정부 출범 3년이다. 불행하게도 참여정부는 낙제 수준이라는 진단마저 나왔다. 최대의 실패는 양극화 확대와 사회분열이라고 규정한다…정권 담당자들의 무능과 미숙이 참여정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역량이 특정 가치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더욱 제약됐다. 분열과 갈등 키운 대통령 리더십…게다가 분열과 갈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분열의 리더십, 전투적 리더십은 정부의 어떤 시책도 국민의 광범한 동의를 얻기 어렵게 만들었다…어느 한쪽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아 다른 쪽에 주는 방식은 해법이 되지 못한다. 빈곤의 하향 평준화만 가져올 우려가 있다. …특정 이념에 집착해서는 새롭게 제기되는 복잡다기한 내외 문제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한미동맹은 한국 외교의 축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자주를 내세워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면서도 실제에서는 미국에 속절없이 양보해왔다. 일시적으로는 소수 국민의 기분을 좋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국익을 지키고 키우는 데는 실패해 왔다. …사회통합을 이루고 그 바탕 위에서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데 공헌하고 싶다. 민주당은 작지만 강한 정당이다.” 과거 정권은 모두 공과가 있다이낙연의 국회 연설은 현재의 국회에서 야당이 그대로 읽어도 어색하지 않은 대목이 즐비하다(이 총리도 다시 보면 놀랄 것이다). 안타깝게도 참여정부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무현정부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2006년 10월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당으로의 통합론이 나오자 이낙연은 “큰 틀에서 통합에 공감하지만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들은 확실한 자기 정리를 해야 한다. 통합신당이 ‘도로 민주당’이 아니라 ‘도로 열린당’이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민주당은 다시 합쳐지고 또 갈라지고 많이 변하긴 했다. 도로 무슨당이든, 당시의 공(功)과 함께 적폐도 제대로 평가해야 대한민국은, 역사는 진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 뿐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공과도 마찬가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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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국민분열 자극하는 언어 ‘독재자의 후예’

    ‘좌파독재’라는 말이 진짜 대통령을 분노시킨 모양이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자유한국당을 향해 시퍼런 칼날을 번득였다. 지난주 신문칼럼()에서 달○ 아닌 좌파독재라는 ‘막말’에 대통령이 분노한 것이라고 썼던 나는 찌릿한 책임감을 느낀다. 상대의 아픈 곳을 찔렀다는 미안함에, 대통령이 전선(戰線)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우려, 그럼에도 그런 연설문을 거르는 충신 한 사람 없다는 암담함에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다.●어쩔 수 없는 과거 비판이라니여당이 국민 아닌 대통령만 보는 모습은 더욱 절망적이다. 그래도 새누리당 시절엔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여당 의원들이 있었다. 이번 여당은 “당연한 말에 심기가 불편한 자가 있다면 이는 스스로 독재자의 후예임을 자인하는 꼴”이라는 논평으로 장단을 맞췄다. 한심한 자책골이다. ‘좌파독재라는 당연한 말에 심기가 불편한 자가 있다면 이는 스스로 좌파독재임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공격받을 여지를 열어준 셈이다. 좌파독재라는 말이 싫으면 우파독재를 하면 될 것이고, 그것도 싫으면 독재를 안 하면 된다. 요컨대 자유한국당의 정부 비판은 ‘현재’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나의 현재는 나의 책임이므로 잘못이 있으면 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비판은 다른 문제다. 그것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출신문제를 지적하는 건 공정치 않다. ●私人간에도 출신은 건들지 않는다 사인(私人)간에도 상대의 부모를 비판하면 싸움은 다른 차원으로 접어든다. 내 부모가 너무나 중해서일 수도 있지만 내 부모가 못나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죽일 수도 없고, 죽인다 해서 내 부모가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출신을 건드리는 건 비겁하고도 치사하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이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과 1990년 3당 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으로 탄생한 민자당(민주자유당)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당은 민중당 인사 등 반대파까지 영입해 1995년 신한국당으로, 1997년 조순이 이끄는 통합민주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으로 개명했다.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밝혔듯, 노태우 대통령은 5·18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공식 규정했고 김영삼 대통령의 사법부는 5·18 진압 주범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했다. 그런데도 한국당을 ‘독재자의 후예’라고 지목한다면, 부관참시를 한대도 해결책은 나올 수 없다. 독재자는 가도 ‘후예’는 남아 있으니까! ●북한같은 출신성분제 연상시켜물론 한국당이 5·18 망언 3인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3인은 전두환과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고 새누리당 때 정치를 시작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독재자의 후예’라는 말을 한 건 누구를, 무엇을 겨냥했든 지나치다. 지금 살아있는, 대통령의 눈에 보이는 독재자의 후예들이 일제히 정계은퇴를 하고 한국당이 자진폐쇄 한다고 해도 3족을 멸하지 않는 한, ‘그 후예’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과거는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왕조가 가족의 과거사를 기준으로 주민을 관리 통제하는 출신성분제를 연상시켜 소름이 돋는다. 더불어민주당이야말로 1997년 DJP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낳은 새정치국민회의 후신이 아니냐고 굳이 지적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독재자 박정희와 쿠데타를 함께 했던 JP(김종필)가 DJ와 손잡지 않았으면 김대중 대통령이 불가능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5·18 피해자 DJ는 야당 총재시절인 1997년 8월 “김영삼 대통령 임기 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을 언급했다. 대통령 당선 뒤 청와대회동에서 YS가 전·노 대통령 사면을 제안하고 DJ가 동의하는 모양새를 갖춘 건 지금 생각해도 멋진 정치였다. ●화해를 통한 과거사 극복의 정치YS는 스스로 시작한 과거청산을 마무리해 국민역량을 집결시키는 기반을 마련했다. DJ는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화해 통합의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DJ가 화해를 통한 과거사 청산을 꾀한 것은 그래야 민주화운동세력의 도덕적, 역사적 권위가 높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정권교체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도 그래야 극복할 있다고 봤다. 전두환은 2009년 8월 14일 DJ 병문안에서 “현직에 계실 때 전직(대통령)들이 제일 행복했다”며 고마워했다. 부인 이순자도 2017년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우리가 제일 편안하게 살았던 것 같다”고 말한 걸 보면 DJ는 정말 훌륭했다. ●애비는 종이었다. 어쩌란 말인가전직 대통령이 행복한 나라로 가자는 건 아니다. 다만 문 대통령도 3년 후면 ‘전직’이 된다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후예다. 그러나 애비가 종이었다고 해서 종의 후예라고 지적질 하는 정치는 반대한다. 조선왕조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 국민 일부라도 출신성분제에 가두려 해선 좌파독재 소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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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좌파독재’ 아니면 ‘우파독재’라고 해야 하나

    지금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달○’ 발언을 맹공격하는 신(新)주류세력은 문심(文心)을 잘못 짚었다. 충성 경쟁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분노시킨 막말은 그게 아니었다. 13일 청와대 분위기를 복기해 보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은 야권을 겨냥해 “분단을 정치에 이용하는 낡은 이념의 잣대는 버려야 한다”고 작심 비판했다. 지난주 대담 때 한국당이 ‘독재자’라고 한다는 데 대한 느낌을 질문 받고는 “촛불 민심에 의해 탄생한 정부가 독재, 그것도 그냥 독재라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색깔론을 더해서 좌파독재라고 규정짓고 추정한다는 것은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넘어갔던 답변을 주말 숙성을 거쳐 제대로 한 것이다. 같은 날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도 냉전시대의 낡은 사고와 색깔론, 좌파 우파 타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나경원이 이미 사과한 달○ 같은 단어는 이념과 거리가 멀다. 즉 청와대는 여성지지층 모욕 때문이 아니라 ‘좌파독재’라는 막말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거다. 2002년 대선후보 경선 때 장인의 좌익 활동이 거론되자 “그러면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반문해 감동과 침묵을 안겨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 취임 2주년, ‘모두의 대통령’으로 자리를 굳혀도 모자랄 판에 청와대는 이념전쟁에 불을 지를 태세다. 고인의 수사학을 빌려 묻고 싶다. “좌파독재가 아니면… 우파독재란 말입니까.” 청와대는 이참에 좌파라는 단어 자체를 없애버릴 듯이 낡은 이념, 낡은 사고라며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그렇지 않다. 미국 포린어페어스지에서 이데올로기와 좌파를 검색하면 2017년이 가장 많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는 지난해 서유럽 8개국을 조사해 “유권자의 이데올로기가 정당과 정책 선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까지 내놨다. 좌파는 경제와 사회정책에서 정부의 더 많은 역할을 중시한다는 보고서가 맞는다면 한국의 집권세력은 명백한 좌파다. 운동하느라 공부를 안 해선지 규제개혁을 대기업 봐주기로만 아는 낡은 좌파일 뿐이다. 유럽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이민자 문제는 우리의 북한 문제와 비슷하다. 유럽의 좌파가 친(親)이민자 성향이듯 이 땅에선 좌파가 친북 성향이고, 정부는 북한에 두 팔 벌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좌파를 좌파라 부르지 못하고 꼭 ‘진보’라고 말해야 한다면 표현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공인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어떤 정치적 이념을 지녔는지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돼야 한다고 대법원은 2002년 판결한 바 있다. 미국 30대 안팎의 ‘밀레니얼 사회주의자’ 사이에선 사회주의가 힙하고 쿨한 이념으로 뜨고 있다니 국내 좌파도 유권자가 알고 찍도록 당당하게 커밍아웃해 주기 바란다. ‘독재’ 표현을 놓고도 신주류 일각에선 격앙된 분위기다. 독재자 대통령을 줄줄이 배출한 한국당이, 더구나 공안검사 출신 황교안 대표가 어디 감히 촛불정부에다 독재 운운하느냐며 충성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독재정권의 적폐 뺨치는 비민주적 행태를 보이는 데는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잃을 판이다. 필자의 안전을 위해 굳이 외국 언론을 인용하자면, 작년 6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신(新)독재자들이 ①위기 때 카리스마적 지도자처럼 등장해 ②끝없이 적을 찾아내면서 ③사법부와 언론, 군부를 정권 편으로 만들어서는 ④선거제도를 바꿔 영구집권을 꾀한다고 소개했다. 민족주의나 부패척결 같은 명분으로 총칼 없이 진행되는 통에 국민은 넋놓고 있기 십상인데 4번 단계 들어서면 민주주의는 끝이다. 제1야당을 제쳐 놓고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밀어붙이는 대한민국은 지금 어느 단계인가. 2년 전 문 대통령은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 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라고 취임선서를 했다. 평화적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지만 지금은 통일보다 경제가 먼저라는 게 통일연구원의 최근 의식조사 결과다. 대통령이 자유와 복리 증진을 못할 경우 투표로 심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오늘의 사태를 예견한 듯 국민의 복리보다 자유를 앞에 둔 우리 헌법의 혜안에 고개가 숙여진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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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도발적 글쓰기 100일…나는 왜 장영희처럼 쓰지 못할까

    ‘김순덕의 도발’을 시작한지 8일로 100일이다. 그래서 ‘나는 왜 글쓰기로 도발 하는가…’에 대해 쓸 작정이었다. 그런데 5월 9일이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라는 기사를 보고 기가 팍 죽었다. 죽었다 깨도 선생님처럼 쓸 수 없는 나는 괜히 인터넷공간을 어지럽히고 독자들의 시간만 잡아먹는 게 아닌지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너무나 착하고 좋았던 장영희 칼럼선생님은 모르겠지만 나는 선생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이것도 ‘장영희 글’ 매력 중 하나다. 글을 읽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장영희와 가깝다고 느끼게 하는 것). 선생님은 2006년 7월부터 2년간 우리 신문에 칼럼을 썼는데 수차례 내 칼럼이 선생님과 같은 날짜에, 그러니까 신문을 펼치면 나란히 볼 수 있게 실린 거다. ‘-‘’(나), ‘’(장영희)-‘’(나). 제목만 봐도 알겠듯이 선생님 칼럼은 선생님처럼 착하다. 덕분에 안 그래도 착하지 못한 나의 칼럼이 더 못된 글로 보이는 것이었다. ’라는 제목으로 선생님은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지식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착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썼다. 그 옆에서 내가 ‘’이라는 제목으로 “나라와 국민을 개조하겠다는 야심 찬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친다면 과대망상이거나 시대착오라고 봐야 한다”고 거칠게 내질렀으니 얼마나 비교되겠나.●그 옆에서 나는 독한 칼럼만 썼다압권은 2008년 3월 14일 칼럼이다. ‘’(장영희)-‘’(나). 선생님은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 해도 착하게 사는 사람을 찾아내서 희망을 전한 반면, 나는 또박또박 악랄하게 싸우자는 사람을 그냥 봐 넘기지 못하고 ‘반사’의 기염을 토했다. 언젠가 전화로 하소연한 기억도 있다. “선생님과 같이 나간 날은 저 혼자 나쁜 여자가 돼버려요….” 그래서 한번 만나 위로받기로 했는데 그걸 못하고 말았다(마음먹은 건 미루지 말고 해버려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선생님 글은 모두 감동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눈먼 소년이 어떻게 돕는가?’를 읽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어회화 시간이었다. 수녀, 공산주의 의사, 눈먼 소년, 일본인 교사, 갱생한 창녀, 여가수, 정치가, 여류 핵물리학자, 청각장애 농부, 그리고 백수인 나 열 사람 중 딱 여섯 명만 살려서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면 누구를 택할 텐가. 대충 의견이 일치하는데 눈먼 소년에 대해서만 엇갈렸다. 살려준들 다른 사람들에게 짐만 될 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때 평소 말을 잘 안하던 학생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새로운 나라에선 모두가 자기 일을 하느라 아주 바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사회에도 경쟁이 생기고, 질투와 미움에 사로잡혀 권력을 놓고 싸울 겁니다. 그렇지만 이 눈먼 소년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 시간을 쪼개 그를 도와야 할 겁니다. 그러면 남을 위해 나의 작은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결론부분에선 눈물이 핑 돌 정도다. “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아, 착하게 살아야지…장영희처럼선생님의 글은 이처럼 가장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귀한 것을 일깨워주기에 감동적이다. 굳이 (질투심에) 선생님 글의 패턴을 분석한다면, 먼저 셀프디스를 한다. ‘글 속의 장영희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데 반해 실제로 만나는 장영희는 아주 무뚝뚝하고 직설적이고 비판적’이라는 식으로(제목 ‘장영희가 둘?’). 선생님의 자학개그는 성냥불처럼 공감을 일으킨다. 우하하 장영희도 나 같은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구나 싶어 와락 가깝게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스토리가 있다. 동화도 좋고, 어린 조카도 좋고, 어린 시절이나 제자들 이야기도 곧잘 등장한다. 재미있는 건 물론이고 하나같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내러티브다. 악한이 등장하는 듯해도 종국에는 거기서 ‘누군가 나로 인해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같은, 아무도 부인 못할 교훈을 이끌어내면서 막을 내린다. 아 착하게 살아야지 싶어지도록. 글이 바로 사람이라면,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기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다. “삶을 다하고 죽었을 때 신문에 기사가 나고 모든 사람이 단지 하나의 뉴스로 알게 되는 ‘유명한’ 사람보다 누군가 그 죽음을 진정 슬퍼해 주는 ‘좋은’ 사람이 된다면 지상에서의 삶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듯이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었다(그러고도 그 글 끝에는 “내 마음 속 어딘가도 분명히 ‘좋은 선생’보다는 ‘유명한 선생’이 되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반전의 마력까지 구사했다)선생님을 말할 때면 늘 나오는 소리…‘기동성 부족’과 감동의 연관성 같은 건 난 절대 언급 안할 작정이다. 선생님도 어느 글에서 지적했듯, ‘장애를 극복하고’ 같은 말은 ‘못 생긴 얼굴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처럼 결코 해선 안 되는 표현이라고 본다(둘 다 불편하지만 굳이 극복해야 한다는 의지 없이도, 우리는 당연히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바쁘신 독자는 맨 끝으로 가주세요‘그럼 왜 나는 장영희처럼 잘 쓰지 못할까’를 이어서 쓰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장영희의 감동을 잃고 싶지 않은 분은 여기까지만 읽고 휘리릭 맨 끝으로 넘어가셨으면 한다. 나도 한때 선생님 같은 글을 쓰고 싶던 때가 있었다. 더러 기억하는 고마운 독자들이 있는데, 2001년 여름 1년간 뉴욕에서 ‘김순덕의 뉴욕일기’를 쓸 때다. 처음 보는 뉴욕, 처음 접하는 세계화의 현장에서 나와 내 딸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전했었다. 그때는 댓글이 없던 시절이어서인지, 솔직한 글쓰기도 두렵지 않았다. 개인적 글쓰기는 잘하면 독자와 래포(rapport)를 형성할 수 있다. 심지어 딸이 귀국한 뒤엔 혼자 밥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걱정해주는 독자도 적지 않았다.●나는 착하게 쓰고 싶지 않다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착하게 쓰기 싫다”고 혼자 선언을 해버렸다. 한 여성 영화감독의 인터뷰에서 “provocative and controversial issue를 피해가지 않는다”는 대목에 꽂힌 다음인 듯하다.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데 나는 내가 동아일보에서 월급 받는 신문기자임을 새삼 깨달았던 거다(김순덕의 ‘도발’이 provocation으로 번역된 것을 보고 난 쾌재를 불렀다).안다. 핑계라는 걸. 장영희 만큼 나는 아는 게 많지 않고, 내공이 모자라며, 결정적으론(!) 착하지도 않다. 십여 년 전 독자가 “당신 글을 읽으면 불편해진다” 메일을 보내왔는데 나는 “편해지시려면 성경이나 불경을 보시라”고 불경스럽게 답장을 쓴 적도 있다. 이낙연 총리가 신문사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 “자네는 이름도 순하고 생긴 것도 덕스러운데 왜 글은 독하게 쓰느냐”고 했을 때,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내가 사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내 눈에 보이는 가장 논쟁적 이슈를 기자인 나는 피해갈 수 없다. 내가 알게 된 모순, 도저히 입 다물고 있을 수 없는 거짓과 잘못을 한 바닥 써놓고는 “그럼에도 이러저러한 밝은 면이 있다. 착하게 살면 나쁜 놈들이 스스로 개과천선할 것이다”라고 끝내면 희망은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그러기 싫었다.●여자니까 부드럽게 써야한다고?나는 신문기자다. 애완견도, 동반견도 아닌 감시견이다. 여자라고 부드럽고 촉촉하게, 여자니까 여성주변 이슈만 써야한다는 통념은 우습다. 남자가 가장 뜨거운 이슈를 피하는 모습도 가소롭다. 나만의 insight를 증거처럼 내보이면서, 그게 없으면 남들이 모르는 또는 안 쓴 information이라도 가장 날카로운 단도에 매달아 들이대면서, 그러니 어쩔래, 이렇게 지켜보는 언론이 있는데 계속 그러다 망할래, 하고 견제하는 기자답게 쓰고 싶었다. 매번 그렇게 썼다는 건 아니다. 밥값을 하려면 써야 하는데 안 써질 때의 고통은 죽고 싶을 정도다. 다행히도 인터넷공간은 고통스럽지 않아 좋다. 신문에 2주에 한번 쓰는 김순덕칼럼은 뭘 써야 좋은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반면 동아닷컴에 쓰는 도발은 그런 고민이 적다. 그래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글은 자주 써야 곧잘 써진다는 것이다. ●기자는 감시견, ‘영원한 야당’ 기자이자 작가였던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순전한 이기심을 첫 손에 꼽았다. 관종(관심종자)이 미학적 열정이나,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쓴다면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가슴이 쿵쿵 뛰는 글을 쓰고 싶지만 나 혼자 쿵쿵 뛰고 만다는 걸 안다(능력이 안 되면 쓰질 말아야 한다는 법이 없어 천만다행이다). “우파정권 비판하다 좌파정권도 비판한다”고 꾸짖는 독자가 있는데 기자는 ‘영원한 야당’인지라 쓸거리는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다. 개인적 글쓰기도 할 생각이었는데 “너 기레기 맞다…” 같은 댓글에 주변사람까지 상처받을까봐 고민하고 있다. 악플이 무(無)플보다 낫다고 믿는 필자로서 독자와 교감하는 인터랙티브 공간을 추구하고 싶지만 가끔은 심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목매달고 죽어드려야 하나 싶어서. ●장영희처럼 마무리하기이렇게 잔뜩 벌려놓고는 마무리하기 힘들 때, ‘인용’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장영희 버전이라면 이렇게 쓸 것 같다. “누군가 말하더군요.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된다고”(‘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 다시, 희망에 말 걸게 하는 장영희의 문장들’에서) 선생님, 천국에서 잘 계시는 거죠?죄송하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차라리 불덩이 같은 문정희의 시로 끝내고 싶다. 나 죽으면 묘비에 쓰고 싶은 작품이다.●나의 펜…문정희나의 펜은 페니스가 아니다나의 펜은 피다하늘이여 새여먹어라아나! 여기 있다나의 암흑나의 몸새 땅이다너에게 주는 선물이다두 번은 없다dobal@donga.com ※이 글에서 인용된 칼럼의 제목을 누르시면 본 칼럼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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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수사권 조정? 정보경찰 판치는 ‘감시사회’로 갈 것인가

    “국민에 대한 도발이다.” 검경 수사권조정법안에 반발하는 검찰을 여권이 꾸짖고 나섰다. ‘도발’이라는 간판을 달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 말한다. 그건 국민에 대한 도발이 아니다. 석 달 전 기명칼럼에서 “검찰의 경찰 통제도 없이 경찰 정보권과 수사권이 결합한다면, 일제강점기처럼 ‘칼 찬 순사’가 활보하는 거대한 경찰국가가 탄생할 공산이 크다”라고 지적했던 나로선 왜 이제야 검찰총장이 반대를 표명하는지 열불이 날 지경이다. 수사권조정안의 핵심은 ‘검찰 힘 빼기’다. 청와대는 검찰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다고 보고, 수사권을 경찰에 준 것이다. 그러나 검경 밥그릇 싸움이라고만 볼 수 없다. 경찰은 정보권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10만 명이 넘는 정보경찰들이 ‘사회위험요소를 미리 파악해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주요 인사들의 정보를 수집한다. 그런 경찰이 수사권까지 움켜쥐면, 국민은 일제시대처럼 칼 찬 순사에게 잡혀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오죽하면 여당의 소병훈 의원이 정보경찰의 자의적인 광범위한 정보수집 활동을 막고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는 경찰개혁법안을 지난달 발의했겠나. 물론 검찰 이기주의적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국민 입장에서 이 법안은 결코 ‘개혁’이랄 수 없다. 검찰에선 “심장은 공수처에, 팔다리는 경찰에 떼주고 검찰을 허깨비로 만들면 정치 예속화는 더 심해진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검찰, 경찰, 공수처 모두 정치에 예속되면 인권은, 자유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석 달 전에 신문에 나갔던 칼럼을 다시 올린다. 바쁘신 분들은 중간쯤 내려가 ‘검찰개혁의 핵심은…’부터 보시면 된다. 마지막에 적시했듯, 대통령이 양보할 수 없다는 적폐청산 수사에 대해 이제는 검찰이‘헌법과 법률, 인권의 무기’를 쳐들고 저항했으면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민검사 안대희’는 철저한 대선자금 수사로 개혁당할 뻔한 검찰의 명예를 지켜냈었다. 검찰에 일제잔재 청산 요구한 정부입맛에 따른 인사로 ‘정치검사’ 키워막강 정보경찰 수사권 결합되면일제 뺨치는 ‘칼 찬 순사’ 우려검찰은 ‘정치적 수사에 저항하라“이쯤 가면 막가자는 거지요.”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초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남긴 불후의 명언을 다시 들을 줄 몰랐다. 그것도 노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통해서다.그는 ’5·18 망언 3인‘의 징계를 결정한 김영종 윤리위원장에 대해 “평검사 시절 현직 대통령 앞에서 대통령의 과거 잘못된 행위를 당당히 지적해 ’이쯤 가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들었던 분”이라고 했다.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도 문제는 검찰개혁이었다.평검사들은 첫 검찰 간부 인사 직후 참여정부에 과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따졌다. 검찰의 중립성을 흔드는 것은 권력이라는 의미로 김영종 검사는 “노 대통령도 당선 전 부산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 한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막가자는 거지요”라며 노기(怒氣)를 보인 것이다.당시 노 대통령은 “검찰은 권력기관이기 때문에 문민통제가 필요하다”고 코드인사를 강조했다. 이런 믿음은 문재인 정부에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2017년 5월 28일까지 3쇄가 나온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는 “검찰은 행정부인 이상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을 수행해야 하고, 이를 위한 방법은 인사권과 지휘권밖에 없다”며 이는 정치적 중립과 관련이 없다고 못 박았다.그때나 지금이나 인사 앞에 장사가 없는 법이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댓글 수사 와중에 박근혜 정부에서 불명예 사퇴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도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하는 것은 인사권 때문”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권력이 말을 잘 들으면 승진시키고 안 들으면 좌천시키는 인사로는 ’정치검찰‘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채동욱 사태에 반발해 좌천됐다 지금은 ’적폐 수사‘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차기 또는 차차기 검찰총장으로 주목받는 것만 봐도 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에 대해 문 대통령이 ’자신의 행위가 수사 대상‘이라고 한 발언은 검찰 가이드라인으로 적용되는 조짐이다. 결국 정권을 둘러싼 비리 수사에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행태가 문제의 본질이라는 얘기다.검찰개혁의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검찰의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에 맞춰져야 옳다. 2월 15일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는 여기 비춰 보면 턱없이 미흡하다. 문 대통령은 “올해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비뚤어진 권력기관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버리는 원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검찰에선 “친일 잔재를 청산하겠다면서도 오히려 전횡을 부리는 것이 현 정부”라는 거친 평가가 나오고 있다.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최근 공개한 경찰청 정보국 정보2과 업무보고를 보면 현 정부 1년간 청와대 요청으로 정보경찰들이 수행한 인사검증이 무려 4312건이었다. 일제강점기 ’칼 찬 순사‘처럼 정보경찰들이 법적 근거도 없이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및 복무 기강‘, 언론 종교와 사회단체 등 민간 영역의 민심 동향까지 감시했다는 내용은 공포스럽다. 참여연대가 “인권 침해, 민간인 사찰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 대대적인 개혁이 단행돼야 할 사안”이라고 논평까지 냈을 정도다.청와대가 내놓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등의 개혁안대로 검찰의 경찰 통제도 없이 경찰 정보권과 수사권이 결합한다면, 일제강점기처럼 ’칼 찬 순사‘가 활보하는 거대한 경찰국가가 탄생할 공산이 크다. 중국처럼 전 국민의 생각과 행동이 감시받는 ’감시 자본주의‘로 변질될 수도 있다.검찰이 정권의 주구(走狗)로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지 않으려면 ’검찰을 생각한다‘를 봤으면 한다. 저자들은 노 대통령의 비극을 검찰 탓으로 돌리며 ’참여정부가 끝난 뒤 검찰이 충분히 정치적으로 중립화되었다면 반대파 제거를 위한 정치적 수사에 저항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에는 헌법과 법률, 인권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 대목은 지금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국민의 검찰‘로 살아남으려면 정치적 수사에는 헌법과 법률, 인권의 무기를 쳐들고 저항하기 바란다. dobal@donga.com}

    •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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