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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는 눈으로 유명한 여행지다.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였던 오타루는 겨울에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여름에 시원한 홋카이도는 골프와 단풍여행 명소로도 인기다.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고 불리는 요테이산(羊蹄山)이 바라보이는 니세코와 시코쓰도야 국립공원 지역은 온천과 등산, 스키, 골프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귀여운 ‘갓파’가 살고 있는 조잔케이 온천 홋카이도 삿포로시 남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시코쓰도야 국립공원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요테이산과 시코쓰 주변이 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칼데라호(화산의 분화로 만들어낸 호수)인 시코쓰는 해발 250m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이지만, 깊이가 363m나 되기 때문에 호수 바닥은 바다보다 아래다. 일본 내 청정 수질 1위로 꼽힌 시코쓰 호수에서 투명 카약을 타면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도 볼 수 있다. 조잔케이 호헤이쿄 협곡의 거대한 호헤이쿄 댐 위에서 펼쳐지는 붉은빛 단풍 바다는 순간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절경이다. 스키와 골프 여행객들이 많이 묵는 조잔케이(定山溪)는 도야코 온천, 노보리베쓰 온천과 더불어 삿포로를 대표하는 3대 온천마을 중 하나다. 1866년에 미이즈미 조잔(美泉定山)이라는 수도승이 아이누족 원주민의 안내로 도요히라강(豊平川) 상류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을 발견했다. 조잔은 그곳에 초막을 짓고 몸 아픈 사람들을 데려와 치료했고, 그때부터 이곳의 명성이 조금씩 퍼져 나갔다. 조잔케이 지역에서는 56개의 온천이 발견됐는데, 1분당 8t 이상의 온천수가 샘솟고 있으며, 수온은 80도에 이른다. 도요히라강 양쪽 계곡에는 20여 개의 료칸과 온천호텔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계곡을 연결해주는 쓰키미바시(月見橋) 다리에 서면 강바닥에서 콸콸 흘러나오는 온천수가 하얀 김을 내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는 조잔 스님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지어진 조잔원천공원(定山原泉公園)이 있다. 공원 안 스님 동상 앞에는 족탕(足湯)이 있어 무료로 족욕을 즐길 수 있다. 온천 폭포 밑에는 ‘달걀 삶기 온천수’가 있어 관광객들이 달걀을 가져와 온천수에 삶아 먹기도 한다. 다리 주변에는 조잔케이의 수호신인 물의 요정 ‘갓파’ 조형물이 곳곳에 놓여 있다. 거북이와 개구리를 닮은 갓파는 수륙 양생의 상상의 동물로, 머리에는 쟁반을 올리고 있고, 손과 발에는 물갈퀴가 달렸으며, 입이 튀어나온 귀여운 모습이다. 마을 산책길에는 갓파 대왕을 비롯해 엄마 갓파, 아기 갓파 등 곳곳에 숨어 있는 20개의 물 요괴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기념품 가게에는 갓파 캐릭터로 만든 쿠션, 티셔츠, 온도계, 장난감 등이 즐비하다. 조잔케이 마을에는 갓파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도요히라강은 1909년 상류에 댐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큰 물줄기가 흐르고 물고기도 많이 살던 강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도로공사 인부로 일하던 세야마 모씨가 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다 강에 빠져 행방불명이 됐는데 탐색 작업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 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밤. 세야마의 아버지 꿈속에 그가 나타나 ‘갓파 부인을 만나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이곳에서는 단 한 명의 익사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다. 조잔케이의 전통 료칸인 시키시마 벳테이(別邸)에서 온천을 한 후 이른 아침 도요히라강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산책로에서 만날 수 있는 붉은 ‘후타미 현수교(二見吊橋)’ 위에서는 화려한 단풍이 수면에 비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다리 주변 숲에서는 밤이면 루미나리에 조명 쇼가 펼쳐져 애니메이션 ‘토토로의 모험’을 보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홋카이도의 니세코 파우더스키장으로 유명한 니세코의 호텔 리조트의 창가에서는 ‘홋카이도의 후지산’으로 불리는 요테이산의 설원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니세코는 1990년대 호주의 스키어들이 터를 잡으면서 글로벌 명소로 떠올랐다. 니세코의 스키장이 몰려 있는 안누푸리산 주변에는 현재 한화그룹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콘도를 짓고 있고, 그 앞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다국적 자본이 투자한 리조트와 호텔들이 즐비하다. 홋카이도의 가을에는 ‘유키무시(雪蟲·눈벌레)’라고 부르는 작은 벌레들이 눈송이처럼 날아다닌다. 유키무시는 홋카이도 겨울의 전령사다. 스키어와 보더 사이에서 니세코의 눈은 ‘니세코 파우더(Niseko Powder)’라고 불린다. 시베리아의 찬 대기에 부딪혀 홋카이도 니세코에 내리는 눈은 건조하고 가벼워 마치 가루와 같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 무려 15m씩 내리는 눈이 니세코를 파우더 스키의 성지로 만들었다. 폭죽처럼 터지는 눈가루를 헤치며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슬로프를 내려올 때의 쾌감은 대단하다. 홋카이도에서는 넓은 들판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를 흔히 볼 수 있다. ‘칭기즈칸’으로 불리는 홋카이도식 양고기 요리는 불판에 채소와 함께 구워 먹는 양고기의 쫄깃한 맛이 매력적이다. 니세코 로프트 클럽(Loft Club)에서는 1인분(250g)에 2310엔(약 2만2000원)인 양고기가 동그랗게 썰려 나오는데, 양배추와 양파, 피망, 감자, 호박 등 야채와 함께 숯불에 구워 먹는다. 보통 홋카이도식 칭기즈칸은 철판 냄비에 양고기와 야채가 주방에서 조리돼 나오는데, 요즘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식당처럼 환기 장치가 달려 있는 테이블에서 손님들이 직접 숯불에 구워 먹는 칭기즈칸 요리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로프트 클럽에서는 별미로 사슴고기 구이도 맛볼 수 있다. 붉은색이 감도는 사슴고기는 미디엄 레어로 살짝 구워서 먹으면 부드러운 식감이 그만이다. 홋카이도 관광청 관계자는 “홋카이도에서는 민가에 피해를 주는 늑대를 없애다 보니 몇 년 전부터 사슴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며 “사슴 수가 늘면서 산림이 훼손되고 생태계 파괴가 골칫거리로 떠올라 사슴고기 구이, 사슴고기 버거도 등장했다”고 말했다.○안도 다다오의 ‘붓다의 언덕’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1)는 자연, 바람, 물, 빛을 이용한 종교 건축으로도 이름이 높다. 그는 콘크리트 벽 사이 틈으로 십자가 모양의 빛이 들어오는 ‘빛의 교회’(오사카), 물 위에 떠 있는 십자가 주변에 자연이 비치는 ‘물의 교회’(홋카이도)로 영적인 충만함을 주는 공간을 만들어낸 바 있다. 홋카이도에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붓다의 언덕(Hill of the Budda)’이 있다. 삿포로시 인근에 있는 북해도 공립공원묘원인 마코마나이 다키노 레이엔(眞駒內瀧野靈園) 30주년을 기념해 만든 신성한 공간인 ‘두대불(頭大佛)’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모아이 거석상이 줄지어 서 있고, 라벤더가 심어진 언덕 위에 불쑥 솟아오른 부처님의 머리가 보여 호기심을 자아낸다. 입구에 다다르니 언덕 아래로 콘크리트로 만든 석굴이 조성돼 있다. 우선 직사각형의 연못을 만나는데, 영혼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의미라고 한다. 석굴 입구에서는 불상의 발치만 보이다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마치 실크로드의 둔황 석굴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불상 위 천장에 둥그런 구멍이 뚫려 있어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빛의 교회’에서 십자가 모양의 빛이 들어왔다면, ‘붓다의 언덕’에는 불상 위에 원형의 하늘이 신성한 느낌을 준다. 석굴에는 불교 음악에 사용되는 악기들이 놓여 있어 관람객이 두드리면 맑고 투명한 울림소리가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석굴은 물론 불상까지 안도 다다오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지어졌다. 불상의 옷 주름까지 콘크리트로 표현해낸 사각형 판을 붙여서 만든 모습이 이채로웠다. 불상 주변을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정면과 옆면, 어깨, 등까지 햇빛과 그림자의 각도에 따라 미소가 달라지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글·사진 홋카이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박은실)은 19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매주 주말 ‘2022 하반기 문화예술교육 원데이클래스-예술을 만나자’를 운영한다. ‘예술을 만나자’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를 비롯해 전 국민이 체험할 수 있도록 9개 문화예술 분야의 총 13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프로그램은 10~20명의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하며, 총 60회 내외로 진행될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음악 ‘꼬마작곡가(소수정)’ △미술 ‘몸에 좋은 드로잉, 점점크게 점점작게(제롬)’ △무용 ‘몸의 날씨, 마음의 기상청(김유미)’ 등이다. 이외에도 △목공 △건축 △사운드아트 △디지털아트 △환경 △놀이예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프로그램별로 아동·청소년·성인·가족까지 모든 연령대가 폭넓게 참여 할 수 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예술을 만나자’는 서울을 비롯해 경기 의왕시 왕송못과 부산 기장군 아난티코브, 경남 통영시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의왕시에서 진행되는 ‘왕송못 생태시민(김은지)’은 왕송못의 가을 풍경 속에서 철새를 관찰하고, 일상 생태드로잉을 진행한다. 기장에서 진행되는 사운드아트 ‘소리여행스케치(정만영)’는 여행지에서 소리를 채집하며 듣고 그리는 프로그램이다. 통영에서는 미술 분야의 원 포인트 일러스트 강의 ‘밥장과 함께하는 유쾌한 그림놀이(밥장)가 진행된다. 참여 신청은 ‘예술을 만나자’ 접수 링크(http://shorturl.at/NPRS0)를 통해 각 프로그램별 일정 3일 전 오후 3시까지 선착순으로 진행된다. 프로그램별 상세정보는 교육진흥원 누리집 및 공식 온라인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육진흥원 관계자는 “2022년 하반기 원데이클래스 ‘예술을 만나자’는 지난 10년간 운영되어 온 교육진흥원의 전 국민 대상 주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팡테옹에는 돔 지붕에서 바닥까지 67m 길이의 줄과 28kg 황동으로 코팅된 납이 매달려 있는 진자가 있다. 1851년 실험물리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가 지구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진자는 원래 같은 방향으로만 흔들리는데, 지구 자전의 여파로 미세하게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에도 나오는 이 진자는 1855년 파리기술공예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팡테옹에도 모작이 설치됐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30주년을 맞아 공동 제작한 연극 ‘남편 없는 부두’가 12, 13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극장1에서 공연된다. 이 공연은 ACC 국제공동 창·제작 공연사업에 선정된 (사)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와 베트남 문화체육부 소속 베트남국립극장이 공동으로 제작에 참여했다. 식민 지배와 분단의 역사, 민족전쟁을 경험한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이 연극의 원작인 ‘남편 없는 부두’는 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베트남의 국민 소설이다. 두 나라의 역사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비극적인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강인한 인간의 모습을 조명한다. 베트남은 K팝, ‘기생충’ ‘오징어게임’ 같은 한류 영화, 드라마 팬이 많은 신남방지역 주요 협력 국가다. 이번 공연의 연출은 ‘번지점프를 하다’ ‘파리넬리’ 등을 연출한 김민정이, 극작은 ‘영웅’ ‘왕세자실종사건’ 등을 집필한 한아름 작가가 각각 맡았다. 베트남국립극장 소속 배우 13명이 출연해 베트남어로 연기하고 한국어 자막을 제공한다. 지난달 13일 베트남 현지에서 가진 제작발표회는 현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응우옌쑤언박 베트남국립극장 원장은 “이번 협력은 두 나라 간의 문화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우호와 친밀한 유대감을 보여줄 것”이라며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이번 공연에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가족분들이 많이 찾으셔서 고국의 향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고 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독일 뮌헨의 호프브로이 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술집이다. 동시에 3000명을 수용하며 바이에른 맥주와 하얀 소시지, 슈바인스학세, 프레첼이 인기다. 브라스밴드 공연이 흥을 돋우는 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건배를 나눈다. 1589년 양조장이 지어진 이곳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히틀러, 레닌 부부도 찾아왔다. 레닌은 방명록에 “훌륭한 맥주가 계급 간의 모든 차이를 없애준다”라고 썼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는 수명이 길다. 전국에서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老巨樹) 나무 중에서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현재 전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서울 문묘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등 모두 25그루다. 향교나 서원, 절은 물론 동네 어귀를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일년에 딱 한번 이맘 때 쯤에 황금색 ‘잎비’를 내린다. 그리고 노란색 이불을 환하게 깐다. 일천 번이나 장엄한 잎비를 내린 천년고목 은행나무는 말 그대로 ‘가을의 전설’이다. ●천년고목이 던지는 지혜와 위로 은행나무는 2억7000만년 전, 늦춰 잡아도 공룡시대인 쥐라기 이전부터 지구에 터를 잡아왔다. 공룡이 바라보던 그 은행나무가 지금도 거의 진화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래서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를 두고 ‘살아 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고 칭했다. 세계 최고령의 은행나무는 중국 구이양(貴陽) 서쪽에 있는 수나무로 4000~4500살쯤 된다고 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의 수령은 1100년 가량이다. 지난 1일 강원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176호) 앞에는 평일인데도 아침부터 장엄한 단풍을 보러온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은행잎은 아침 햇살이 비치자 투명한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바람이 불 때마다 춤을 춘다. 수령 800~1000년으로 추정되는 반계리 은행나무는 높이 32m, 최대 둘레 16.27m에 이른다. 한 그루의 나무인데도 마치 10여개의 나무가 한꺼번에 자라서 이룬 숲처럼 보인다. 나무 주변을 한바퀴 돌면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가 만들어낸 넉넉한 풍채와 변화무쌍한 위용을 볼 수 있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버섯처럼 솟아오르는가 하면, 한쪽방향으로 휘청이기도 한다. 뒤쪽으로 돌아가면 엉덩이처럼 둥그런 두 덩어리로 서 있는 모습이 앙증맞기도 하다. 가슴 아픈 사건이 많은 스산한 가을에 은행나무의 넉넉하고 넉넉한 품은 커다란 위안을 준다. 경건한 마음으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가을이 깊어갈 때 우리의 마음도 익어가길 기도한다. 은행나무는 국내에 불교가 전래될 때 중국에서 함께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스님이 지팡이를 꽂으니 자랐다는 등 신비로운 전설도 내려온다. 경기 양평 용문사에는 아파트 14층 높이인 은행나무가 있다. 높이는 42m, 수령은 1100여 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키가 큰 나무다. 신라의 마지막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으니 은행나무로 자랐다는 말도 있다. 세종 때는 장·차관급인 정3품 당상관 품계를 받을만큼 중히 여겨졌다. 화재로 타버린 천왕문 대신 은행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천왕목(天王木)으로 불린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마다 큰 소리를 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고종이 승하했을 때 커다란 가지 한 개가 부러졌고, 8.15광복, 6.25전쟁, 4.19, 5.16 때에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지난 1일 용문사 은행나무는 ‘잎비’가 내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단풍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영화같은 풍경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떨궈버리는 장면인데도 천년고목은 조금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길어봐야 백년 남짓 사는 사람에게, 천년세월 동안 범상치 않는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켜온 은행나무의 정신적 가치는 어떤 것과도 비교불가다. 나도 노거수처럼 늙어가고, 언젠가 저렇게 떠나가기를 소망해 본다. ●노랗게 변화하는 신비한 공간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 노거수(老居樹)를 보러 멀리서 찾아왔는데 단풍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나무 아래 형광등을 켠 듯 환하게 깔린 은행잎을 보는 것만으로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환희다. 서울의 가로수 은행나무는 단풍잎이 떨어지는대로 치우기 바쁘지만, 절이나 향교, 서원에 있는 단풍잎은 노란색 단풍으로 카펫을 깔아 오랫동안 특별한 감흥을 던져준다. 영주 부석사의 일주문부터 안양루와 석등,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은 은행나무 단풍잎이 만든 황금터널을 너머 극락세계로 가는 길이다. 경남 밀양의 금시당도 오히려 단풍잎이 다 떨어진 11~12월에 전국에서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몰려든다. 금시당은 조선 명종 때 좌부승지를 지낸 이광진(1517~?)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와 1566년에 지은 별장이다. 정원에 있는 은행나무는 이광진이 직접 심은 것이라 하니, 수령이 450년 가량 된 셈이다. 은행나무 잎이 거의 다 떨어진 후 금시당은 더 환상적이고 신비한 공간으로 변신한다. 한옥과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원이 마치 옐로우 물감을 쏟아 부은 듯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변한 느낌을 준다. 1996년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 궁중악사 종문(한석규)과 미단공주(진희경)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다가 죽은 뒤 암수 은행나무 두그루로 환생한다. 그리고 1000년 뒤에 미단공주의 은행나무는 침대로 만들어지고, 은행나무에 깃들인 미단공주의 영혼이 현실에서 나타나 벌어지는 판타지 스토리다. 이 영화에서 보듯이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별된다. 암나무에서만 은행나무 열매가 열린다. 그래서 어느 지자체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 열매 때문에 멀쩡한 암나무 가로수를 베어내기도 한다. 서울 성균관 문묘(文廟)에는 수령 약 400년의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수령 400년 가량의 문묘 은행나무는 인천 강화 전등사, 강릉 주문진읍 장덕리 은행나무와 함께 암나무에서 수나무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부와 수행, 일상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냄새를 뿜는 열매가 맺히니, 제발 열매를 맺지 않게 해달라고 제사를 거듭 드리자 성별이 바뀌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묘 은행나무 단풍은 담장 밖에서 성균관 명륜당의 기와지붕의 곡선과 함께 사진을 찍어야 더 멋있다. 가을이 되면 담장 앞 포토존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성균관처럼 옛 선비들이 공부하는 향교나 서원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이유는 공자가 제자들과 강학했던 행단(杏亶)의 고사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때 산동(곡부)의 공자묘 대전(大殿)을 이전 확장하면서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강당의 옛 터가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 공자의 45대손인 공도가 이곳에 살구나무를 심었고, 금나라 때에는 행단(杏亶)이라 쓴 비를 세웠다. 행(杏)은 살구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은행나무라는 의미도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행단의 나무를 은행나무로 여겨 배움의 공간 곳곳에 사대부의 상징물로 심었다. 천연기념물 제562호 인천 남동구 장수동 만의골 은행나무는 자연 생태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타원형의 아름다운 수형을 이루고 있다. 지난달 말에 찾아갔을 때 아직 단풍이 충분히 들지 않았는데, 초록색 바탕에 일부 노란색 단풍이 폭포수처럼 층층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더욱 선명해서 아름다웠다. 장수동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 이상 된 은행나무 중 수폭(나무넓이)가 가장 넓어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있는 나무다. 오래된 은행나무에는 ‘유주(乳柱)’라는 혹이 생기기도 한다. 생김새가 여인의 유방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기능은 공기 뿌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는 가장 비싼 은행나무로 회자된다. 1990년 당시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은행나무는 수몰 위기에 처했다. 결국 은행나무는 60억 원을 들여 4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옮겨심어 700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나무를 들어 올리니 무게가 680톤이나 나갔다고 한다. 해마다 은행나무가 떨군 노랑 단풍으로 카펫을 까는 아름다운 길은 전국에 산재해 있다. 홍천군 내면 광원리를 비롯해 괴산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길, 담양군 수북면 대방리, 나주시 남평읍, 거창군 거창읍 의동마을, 경주시 서면 도리마을 등이 유명하다.그중에서도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말 그대로 황금터널이다.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가 공동 주관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거리숲’ 부분에 선정된 길이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 중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아산시에서 ‘차 없는 거리’로 운영 중이라 여유롭게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정류장 갤러리 옆에 6개월 뒤 수신인에게 편지를 전하는 빨간색 ‘사랑의 우체통’도 인기다.18년째 전국의 오래된 나무를 찾아다니고 있는 ‘노거수(老巨樹) 답사’ 전문가 임혁성 씨는 “은행나무는 생존력이 강할 뿐 아니라 조선시대 유교에서 신성시하며 보호했기 때문에 거대한 크기로 잘 보존돼 있는 나무가 많다”며 “수백년 살아남은 노거수 중에서 은행나무는 느티나무, 소나무, 팽나무 등과 달리 선명한 빛깔로 단풍이 들기 때문에 매년 가을이면 전국의 은행나무들을 찾아다니며 감상하곤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은행나무는 수명이 길다. 전국에서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老巨樹) 중에서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현재 전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서울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강원 원주시 반계리 은행나무 등 모두 25그루다. 향교나 서원, 절은 물론 동네 어귀를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는 1년에 딱 한 번 이맘때 황금색 ‘잎비’를 내린다. 그리고 노란색 이불을 환하게 깐다. 일천 번이나 장엄한 잎비를 내린 천년 고목 은행나무는 말 그대로 ‘가을의 전설’이다.○천년 고목이 던지는 지혜와 위로 은행나무는 2억7000만 년 전, 늦춰 잡아도 공룡시대인 쥐라기 이전부터 지구에 터를 잡아왔다. 공룡이 바라보던 그 은행나무가 지금도 거의 진화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래서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를 두고 ‘살아 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고 칭했다. 세계 최고령 은행나무는 중국 구이양(貴陽) 서쪽에 있는 수나무로 수령이 4000∼4500년쯤 된다고 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의 수령은 1100년가량이다. 1일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176호) 앞에는 평일인데도 아침부터 장엄한 단풍을 보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은행잎은 아침 햇살이 비치자 투명한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바람이 불 때마다 춤을 춘다. 수령 800∼1000년으로 추정되는 반계리 은행나무는 높이 32m, 최대 둘레 16.27m에 이른다. 한 그루의 나무인데도 마치 10여 개의 나무가 한꺼번에 자라서 이룬 숲처럼 보인다. 나무 주변을 한 바퀴 돌면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가 만들어낸 넉넉한 풍채와 변화무쌍한 위용을 볼 수 있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버섯처럼 솟아오르는가 하면, 한쪽 방향으로 휘청이기도 한다. 뒤쪽으로 돌아가면 엉덩이처럼 둥그런 두 덩어리로 서 있는 모습이 앙증맞기도 하다. 가슴 아픈 사건이 많은 스산한 가을에 은행나무의 넉넉하고 넉넉한 품은 커다란 위안을 준다. 경건한 마음으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가을이 깊어갈 때 우리의 마음도 익어가길 기도한다. 은행나무는 국내에 불교가 전래될 때 중국에서 함께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스님이 지팡이를 꽂으니 자랐다는 등 신비로운 전설도 간직하고 있다. 양평 용문사에는 아파트 14층 높이인 은행나무가 있다. 높이는 42m, 수령은 1100여 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키가 큰 나무다. 신라의 마지막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으니 은행나무로 자랐다는 말도 있다. 세종 때는 장차관급인 정3품 당상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졌다. 화재로 타버린 천왕문 대신 은행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천왕목(天王木)으로 불린다. 1일 용문사 은행나무는 ‘잎비’를 내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단풍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영화 같은 풍경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떨궈 버리는 장면인데도 천년 고목은 조금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길어봐야 백년 남짓 사는 사람에게, 천년 세월 동안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켜온 은행나무의 정신적 가치는 어떤 것과도 비교 불가다. 나도 노거수처럼 늙어가고, 언젠가 저렇게 떠나가기를 소망해 본다.○노란 카펫이 깔리는 신비한 공간 수백 년 묵은 은행나무를 보러 멀리서 찾아왔는데 단풍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나무 아래 형광색으로 환하게 깔린 은행잎을 보는 것만으로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서울의 가로수 은행나무는 단풍잎이 떨어지는 대로 치우기 바쁘지만, 절이나 향교, 서원에 있는 단풍잎은 노란색 카펫으로 남아 오랫동안 특별한 감흥을 던져준다. 경남 밀양시의 금시당이 대표적이다. 금시당에는 오히려 단풍잎이 다 떨어진 11, 12월에 전국에서 사진을 찍으러 사람들이 몰려든다. 금시당은 조선 명종 때 좌부승지를 지낸 이광진(1517∼?)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와 1566년에 지은 별장이다. 이광진이 직접 심은 은행나무의 단풍잎이 거의 다 떨어진 후 금시당은 노랑 물감을 쏟아부은 듯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신한다. 경북 영주시 부석사의 일주문부터 안양루와 석등,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도 은행나무 단풍잎이 카펫처럼 깔린 황금터널이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1996년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 궁중악사 종문(한석규)과 미단 공주(진희경)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다 죽은 뒤 암수 은행나무 두 그루로 환생한다. 그리고 1000년 뒤에 미단 공주의 은행나무는 침대로 만들어지고, 은행나무에 깃들인 미단 공주의 영혼이 현실에서 나타나 벌어지는 판타지 스토리다. 이 영화에서 보듯이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별된다. 암나무에서만 은행나무 열매가 열린다. 그래서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알 때문에 멀쩡한 암나무 가로수를 베어내기도 한다. 서울 성균관 문묘(文廟)에는 수령 약 400년의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문묘 은행나무는 인천 강화군 전등사,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리 은행나무와 함께 암나무에서 수나무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공부와 수행, 일상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냄새를 뿜는 열매가 맺히니, 제발 열매를 맺지 않게 해달라고 제사를 거듭 드리자 성별이 바뀌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묘 은행나무의 단풍은 담장 밖에서 명륜당 기와지붕의 곡선과 함께 사진을 찍어야 더 멋있다. 성균관처럼 옛 선비들이 공부하는 향교나 서원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이유는 공자가 산동성 곡부에서 제자들과 강학했던 행단(杏檀)의 고사 때문이다. 송나라 때 공자의 45대손인 공도가 이곳에 살구나무를 심었고, 금나라 때에는 행단이라 쓴 비를 세웠다. 행(杏)은 살구나무라는 뜻도 있지만 은행나무라는 의미도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행단의 나무를 은행나무로 여겨 배움의 공간 곳곳에 사대부의 상징물로 심었다. 천연기념물 제562호 인천 남동구 장수동 만의골 은행나무는 자연 생태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타원형의 아름다운 수형을 이루고 있다. 지난달 말에 찾아갔을 때 아직 단풍이 충분히 들지 않았는데, 초록색 바탕에 일부 노란색 단풍이 폭포수처럼 층층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더욱 선명해서 아름다웠다. 장수동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 이상 된 은행나무 중 수폭(나무넓이)이 가장 넓어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낸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는 가장 비싼 은행나무로 회자된다. 1990년 당시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은행나무는 수몰 위기에 처했지만 60억 원을 들여 4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옮겨 심어 700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나무를 들어 올리니 무게가 680t이나 나갔다고 한다. 해마다 은행나무가 떨군 노랑 단풍으로 카펫을 까는 아름다운 길은 전국에 산재해 있다. 강원 홍천군 내면 광원리를 비롯해 충북 괴산군 문광저수지 은행나무길, 충남 보령시 청라면 오서산길, 전남 담양군 수북면 대방리 나주시 남평읍, 경남 거창군 거창읍 의동마을, 경북 경주시 서면 도리마을 등이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충남 아산시 곡교천 은행나무길은 말 그대로 황금터널이다.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가 공동 주관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거리숲’ 부분에 선정된 길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의술과 예술은 모두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고, 삶에 풍요를 더하는 고귀한 가치를 지녀왔습니다.” 11~25일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갤러리 SP에서 열리는 ‘Ars Longa’ 전시회를 기획한 구혜원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은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이래 의술과 예술은 늘 함께 영감을 주고 받아왔다”고 설명한다. 푸른문화재단과 청년의사가 공동주관하는 이 전시의 부제목은 ‘의술과 예술: 인간의 치유를 향한 끝없는 길’이다. 전시에는 총 25명의 작가가 의술을 주제로 150여 점의 장신구·가구·오브제·설치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의학사적 측면에서 주술적 치료·신화·민간요법에 관한 작품,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안과·피부과 등 전문과에서 다루는 신체기관이나 의료기구 및 약품을 구현한 작품이 선보인다. 또한 병원 공간과 어울릴 만한 작품, 삶과 죽음에 관한 근원적인 철학 등 의술을 연상시키는 작품까지 폭넓게 전시된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Ars longa, Vita brevis.(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유명한 문장은 Ars를 기술, 즉 테크네(technē)가 아닌 예술(Art)로 오역해 탄생한 것으로, 본래 인간을 치료하는 기술인 ‘의술’을 익히고 베푸는 길은 끝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Ars가 점차 “미(美)를 규범이나 목표로 하고 있는 활동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니 근사하게 오역된 셈이다. ‘Ars Longa’의 중첩된 의미처럼 의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전시는 시작된다.” 구혜원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은 “도처에 질병이 도사리는 시대에 자신을 아끼지 않고 희생하는 의료인들을 기리고,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며 “올해는 특히 ‘의술’이라는 전시 주제에 맞춰, 창립 30주년을 맞는 의료전문지 ‘청년의사’와 공동 주관하여 진행한다”고 밝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복궁을 배경으로 사당탈을 쓴 50여 명의 아이들이 한국의 전통음악이 아닌 현대적인 리듬과 악기가 섞인 퓨전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최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유튜브에 올라온 리을무용단 ‘춤춤춤, 놀자’ 영상 속 모습이다. ‘춤춤춤, 놀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추진하고 있는 꿈의 무용단 사업의 일환으로, 홍보대사로 선정된 ‘리을무용단’이 추진하는 아동·청소년 무용 교육 프로그램이다. 꿈의 무용단은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무용 분야로 확대한 것으로, 현재 리을무용단(전통무용)을 비롯해 김주원(발레), 안은미(현대무용), 제이블랙&마리(실용무용)가 홍보대사로 참여하고 있다. 올여름 진행된 ‘춤춤춤, 놀자’ 프로젝트는 전통무용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을 위해 좀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전통무용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아이들 스스로 즐기고 재밌게 놀 수 있도록 ‘놀이’ 문화로 접근해 보자는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리을무용단 이희자 단장은 “아이들에게 전통과 문화를 강요하기보다는 우리가 아이들의 문화에 직접 스며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해답은 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meme)’ 문화’에서 찾았다. 밈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 퍼져 나가는 유행, 그리고 그것을 모방하고 파생시키는 행동을 뜻하는 단어다. 꿈의 무용단은 단순히 ‘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 외에도 직접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가는 밈의 ‘창의성’과 ‘주체성’에 주목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무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온라인에 공유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흥미’를 스스로 느끼게 된 것이다. 또한 ‘전통춤의 현대화’ 작업을 꾸준히 해온 리을무용단은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최신 춤과 동작을 태평무, 강강술래 등 우리 고유의 전통무용에 접목했다. 여기에 한국의 전통 색상인 오방색(적, 백, 황, 흑, 청)에 담겨 있는 인간의 5가지 감정(희, 노, 애, 낙, 욕)을 10대 청소년들의 일상에 대입시켜 아이들의 공감과 재미, 익숙함을 동시에 이끌어 냈다. 이 과정을 통해 제작된 ‘춤춤춤 날아올라’ 영상은 총 5개의 주제로 나뉘어 공개됐다. △1부는 적·희(喜), ‘수다는 즐거워’ △2부는 백·노(怒), ‘뿌리 깊은 나무’ △3부는 황·욕(欲), ‘할머니는 요술쟁이’ △4부는 흑·애(哀), ‘한걸음, 한걸음’ △ 5부는 청·낙(樂), ‘춤춤춤, 놀자’로 구성했다. 특히 마지막 5부는 메인 프로젝트인 만큼 가장 한국적인 장소인 경복궁에서 50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창작무용을 펼쳐 높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변화의 시도는 놀라운 결과로 나타났다. 초기 낯설어하고 수동적이었던 아이들은 프로그램 회차가 거듭될수록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리을무용단 이자헌 주 강사는 “초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전통무용에 대해 아이들이 빠르게 적응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무용 교육의 새로운 방향성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통문화와 춤을 자신들의 즐거운 ‘놀이’ 문화로 받아들이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전통무용이 원래 이렇게 재밌었던 춤이었나요?”라고 물어올 정도로 즐거움을 표출했다. 참가자인 윤채은 학생(11)은 무용가가 되겠다는 꿈을 굳혔다. 그는 “케이팝뿐 아니라 한국 전통무용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무용수로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희자 단장은 “이번 ‘춤춤춤, 놀자’를 진행하며 아이들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무용가들도 스스로 창조해 내는 ‘자기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며 “아이들과 어른 무용가들이 함께 춤추고 촬영하면서, 서로의 것에 스며들며 새로운 문화를 즐기고 자기를 표현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가면 빨간색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백파이프 연주자를 만날 수 있다. 백파이프는 가죽으로 만든 공기주머니에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주머니에 달린 여러 개의 관을 울려 연주한다. 야외에서 춤곡이나 군대 행진곡에 많이 쓰인다.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영면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생전에 오전 9시면 침실 창가에서 백파이프 연주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국 런던의 랜드마크인 레스터스퀘어가 매력적인 서울의 밤으로 꾸며지고 있다. 서울관광재단(대표이사 길기연)과 런던아시아영화제(집행위원장 전혜정)가 공동 기획한 프로그램 ‘서울 나잇’이 제7회 런던아시아영화제에서 영국 영화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올해 영화제의 특별한 이벤트로 떠올랐다. 서울관광재단은 영국을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아시아영화제로 성장하고 있는 런던아시아영화제와 꾸준한 협력을 통해 영국에서 서울을 알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특히 올해는 K콘텐츠의 글로벌 인기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서울 방문에 대한 의지가 높아진 분위기를 타고 “런던에서 한국영화를 보고 서울을 여행한다”는 콘셉트로 ‘서울 나잇’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서울 나잇’ 프로그램은 지난 19일 개막한 런던아시아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인 레스터 스퀘어 오데온 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런던의 랜드마크인 레스터 스퀘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데온 극장 2층 행사장을 ‘서울 나잇’으로 꾸미고, 통창으로 이뤄진 행사장 전면을 서울의 다채로운 모습의 이미지로 채워 현지 영화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제에 참가한 관객들이 ‘헌트’ ‘비상선언’ ‘오마주’ 등 한국 영화를 관람한 뒤 ‘서울 나잇’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마치 서울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번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배우 이정재의 연출작 ‘헌트’가 현지에서 단연 화제인 가운데, 개막식에 참석한 이정재와 임시완, 이정은 등 스타들도 행사 리셉션이 열리는 ‘서울 나잇’ 현장에 방문하며 관심을 높였다. 이 곳에는 배우 이정재의 글로벌 히트작 ‘오징어 게임’ 코스튬 촬영 부스도 마련돼 참가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서울 나잇’을 통해 서울의 맛집 등 여행 정보를 담은 서울관광 홍보 책자를 현지 영화 관계자 및 영화 팬들에게 배포했다. 또한 ‘서울 미리 가보기’ 부스를 마련해 서울을 상징하는 소품을 들고 스티커 사진을 찍거나, 서울의 관광 명소를 배경으로 인생샷 촬영 기회도 제공했다.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유럽의 관객들이 한국영화나 OTT 플랫폼의 K콘텐츠를 보고 많이 궁금해하는 서울의 풍경과 서울의 음식 등 문화를 영화제를 통해 경험하게 하고자 마련한 기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참여한 모든 관객이 사진을 찍고 서울에 대한 궁금증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며 “참여자들의 편지와 사진들은 서울관광재단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서울관광재단과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이번 ‘서울 나잇’ 이전에도 서울을 영국에 알리는 다양한 기획으로 주목받아왔다.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은 2019년에는 ‘서울의 지붕 밑’ ‘서울의 휴일’ 등 서울이 배경인 고전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마련해 1960년대 서울의 모습과 당시 결혼 풍속 등을 소개했다. 고전 작품으로 서울의 과거 모습을 처음 접한 영국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한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서울관광재단과 협력해 서울을 영국 등 유럽에 알려왔고, 그 협업은 올해 ‘서울 나잇’까지 이어졌다. 한편 런던아시아영화제는 30일까지 런던의 중심가 레스터 스퀘어 오데온 극장 등 런던 시내 주요 극장 5곳에서 관객을 만난다. <비상선언> <오마주> <범죄도시2> 등 전 세계가 인정한 한국영화를 비롯해 아시아 영화 흐름을 이끄는 중국, 일본, 홍콩 등의 작품 50여 편을 선보인다. 김은미 서울관광재단 글로벌마케팅팀장은 “영국은 K콘텐츠의 인기로 서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은 국가다”라며 “앞으로도 문화 콘텐츠와 협업해 현지에 효과적으로 서울관광의 매력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하겠다”라고 말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국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예술치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무용·미술·음악 분야 비대면 콘텐츠 영상 42개를 보급한다.24일 교육진흥원에 따르면 ‘2022 어디서든 예술치유 – 비대면 콘텐츠 보급’ 사업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 국민들의 심리적 우울감 해소와 정신건강 회복을 위해 일상에서 보다 쉽게 문화예술을 통한 치유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무용·미술·음악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예술치유팀이 콘텐츠 기획에 참여한 ‘어디서든 예술치유 비대면 콘텐츠’는 오는 24일부터 내년 10월까지 약 1년간 KT IPTV 및 교육진흥원 유튜브를 통해 제공된다. 폐쇄시설 이용자 대상 예술치유 프로그램(교육형) 영상 36개와 일반 국민 대상 예술치유 힐링 영상 6개까지 42개다. 교육형 영상은 코로나19 시기 외출이 제한되고 외부인 출입도 자제됐던 폐쇄시설 이용자를 대상으로 이용자의 ‘열두 달’ 활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제작됐다.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치유 힐링 영상은 ‘날씨와 장소’를 주제로 하는 분야별 영상을 통해 시청자에게 심리적 치유를 제공한다. 시청자의 오감을 촉진하고 내면의 우울함·불안감·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교육진흥원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발맞춰 예술치유 영상을 제작·배포하게 됐다”며 “국민들이 예술을 통한 심리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를 위로하고 회복을 경험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했다.‘2022 어디서든 예술치유’ 비대면 콘텐츠는 KT 지니 TV 채널 883번에서 제공되며, 교육진흥원 유튜브 채널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내년은 프랑스 몽생미셸이 1000주년을 맞고, 파블로 피카소 서거 50주기, 르망 24시 100주년 행사 등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돼 있습니다. 프랑스에 여행오세요.” (코린 풀키에 프랑스 관광청 한국지사장) 프랑스 관광청(Atout France)은 25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서울풀만호텔에서 ‘프렌치 데이즈 인 서울(French Days in Seoul 2022)’ 행사를 가졌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첫 대면 행사인 만큼 역대 최대 규모인 22개 프랑스 관광업체가 참여했다. 프랑스 관광청이 주최하는 연례행사인 ‘프렌치 데이즈 인 서울’은 프랑스 관광업계 관계자들과 한국 여행업계 종사자들이 교류하는 자리다. 이번 행사는 미디어 워크숍, 여행사 워크숍 그리고 VIP만찬 행사로 구성되었으며, 한국 여행업 종사자들도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인 약 230여 명이 참가하며 프랑스 여행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드러냈다. 미디어 행사에 참석한 코린 풀키에 한국 지사장은 “올 여름이 프랑스에 25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방문했다”며 올여름 활기를 되찾은 프랑스의 주요 관광 수치를 공유했다. 그는 “한국의 프랑스행 항공편 탑승률은 6월에 80% 넘어섰고 현재는 90% 가량을 기록 중”이라며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에도 ‘한국~파리’간 노선은 끊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인천~파리’ 직항편은 2019년 대비해서 단 한 편을 제외하고 회복했다. 매일 운항했던 에어프랑스가 현재 주 6회편으로 운항 중이다. 프랑스관광청이 밝힌 스카이스캐너의 한국인 해외 항공권 여행 수요에 따르면 목적지 중 프랑스가 전 세계에서 7위, 유럽에서 1위를 기록했다. 코린 풀키에 지사장은 “코로나19 이전까지 한해 최소 75만명이 한국 여행객이 프랑스를 찾았는데 이 수준을 회복하고 더 확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프랑스관광청은 내년엔 미식과 남프랑스를 중점으로 한국 여행객에게 프랑스의 매력을 알릴 예정이다. ‘프랑스 미식여행’ 캠페인은 부르고뉴 프랑슈콩테부터 오베르뉴론알프, 프로방스까지 관통하는 미식 루트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방스 지역의 아름다운 면모를 알리기 위해 진행된 25일 저녁 VIP만찬 행사 ‘프로방스 갈라 디너’는 마르세유 프로방스 공항, 마르세유 관광 안내사무소, 엑상프로방스 관광 안내사무소의 공동 후원으로 진행 되었다. 행사에는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서울시 관광협회 양무승 회장 및 국내 여행업계 주요 인사, 인플루언서가 참석했다. 싱어송라이터 유발이의 샹송 공연, 프라고나르 향수 만들기 아틀리에, 럭키드로우 등이 진행됐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해 11월 19억 유로 규모의 예산을 관광산업 모델 변화 및 발전에 투입하는 ‘데스티나시옹 프랑스(Destination France)’ 계획을 발표했다. 프로방스 갈라 디너행사의 축사를 맡은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는 “현재 한국의 프랑스행 항공 탑승률은 약 90%에 이르고 있으며 주요 여행사들의 프랑스 여행 예약률도 높은 수치를 보인다”며 “프랑스는 향후 10년간 프랑스는 세계 1위 여행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나라, 지속 가능한 관광을 선도하는 여행지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남 순천만습지는 22.6㎢의 갯벌과 5.4㎢의 갈대 군락지에 수달과 갯게 등 다양한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국내 유일한 흑두루미의 월동지이자 240여 종의 철새들이 계절별로 머물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순천만 습지에서 가장 높은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섬과 산으로 둘러싸인 여자만의 모습이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여수반도, 오른쪽은 벌교와 고흥반도가 보인다. 10월 말에는 겨울의 진객인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가 순천만을 찾아온다. 지난해에는 3700마리의 흑두루미가 순천만에서 월동을 한 뒤 시베리아로 날아갔다. 키가 90∼100cm 정도 되는 흑두루미가 날아오를 때 전깃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순천시는 순천만 습지 주변 총 282개의 전봇대를 뽑고 전깃줄을 지중화했다. 또한 습지 주변의 논 중 일부에서는 가을걷이를 하지 않는다. 농부들에게 ‘희망농지’를 신청받아 친환경 농업으로 키운 쌀을 겨울철 흑두루미와 철새의 먹이로 뿌려주기 위해서다. 대신 순천시가 이 쌀을 수매해 농부들에게 보상을 해준다. 순천만 습지에서 5.5km 떨어진 곳에 순천만국가정원이 조성돼 있다. 습지와 국가정원은 ‘갈대 열차’와 ‘스카이 큐브’로 연결된다. 장승희 순천만 자연생태해설사는 “순천만국가정원은 도시가 팽창해 습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중간에 완충지대인 ‘에코 벨트’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시민들의 노력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습지가 좋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골목길 감나무마다 빨간 감들이 주렁주렁 익어가는 전남 순천 낙안읍성 마을. 고려 때부터 ‘즐거울 락(樂)’, ‘편안할 안(安)’ 자를 써서 낙안군이라 불린 곳이다. 과연 주변 산들에 에워싸인 이곳은 오래도록 살 만한 곳으로 평온함이 느껴지는 벌판이다.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성 안의 초가집에는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한바탕 가을 축제도 열린다.》 ○ 사람이 살고 있는 읍성 읍성에 들어서면 전래 동화나라에 온 듯하다. 초가지붕에는 흥부놀부전에 나올 법한 박이 매달려 있고, 나뭇가지로 엮은 사립문 너머로 집 마당이 훤히 보인다. 높이 4m, 총길이 1.4km에 이르는 성벽 위를 돌다 보면 텃밭에서 배추와 고추를 키우고 있는 주민들이 보인다. 대장간에는 시뻘건 불꽃이 이글거리고, 고샅(좁은 골목길)에는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낙안읍성 마을이 여느 민속촌과 다른 점은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88가구 175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초가집 중에는 도예공방, 천연염색, 서각, 대금, 가야금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집도 있다. 70, 80대 전통 초가집 기능인들이 젊은 후계자 양성을 위해 세운 마을 안 ‘향토학교’에서는 짚으로 이엉(날개)과 용마름을 엮는 작업에 바쁘다. 조선 태조 6년(1397년) 낙안 출신 전라좌수사 김빈길 장군이 처음으로 낙안에 토성을 쌓았다고 하니, 읍성 마을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다. 그중에 이순신 장군과 인연을 맺은 나무도 있다.백의종군했다가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이 병력과 군량미를 모으기 위해 낙안읍성 객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당시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장군이 심은 푸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또 하나는 수령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다. 이 장군이 마을을 떠날 때 이 은행나무 앞에서 마차 바퀴가 빠져서 수리를 하느라 출발이 지체됐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다리가 끊어져 있더란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조금 전에 다리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는 것. 만일 은행나무 앞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장군과 병사, 군량미까지 큰 피해를 볼 뻔했던 터라 마을 사람들은 목신(木神)이 조화를 부린 것이라고 믿었다. 낙안읍성에서 지난 21~23일 민속문화 마을축제가 열렸다.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다시 열리는 축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주민들이 21,23일 직접 공연한 ‘낙안읍성 백중놀이’와 ‘낙안읍성 성곽 쌓기’다. 행사 전 기자가 찾아갔을 때에도 마을 주민들이 객사 옆 넓은 공터에서 ‘백중놀이’를 연습하고 있었다. 장구와 북, 꽹과리를 들고 나온 주민들이 흥겨운 가락을 연주했다. 청년들이 들돌 들기, 씨름, 진세놀이, 성벽 쌓기, 덕석기(용을 그려넣은 커다란 깃발) 뺏기 놀이를 하면서 힘을 겨루고 대동단결을 하는 축제다. “음력으로 7월 보름날이 백중입니다. 벼농사에서 모심고, 가꾸는 힘든 일은 거의 끝나고 가을에 수확만 기다리면 되는 시기죠. 그래서 호미를 물에 씻어 걸어두고 하루 흥겹게 노는 ‘호미 시침’ 날입니다. 밀양 백중놀이는 ‘북춤’으로 유명한데, 낙안읍성 백중놀이는 커다란 덕석기(용 모양 깃발)를 뺏는 ‘덕석기 놀이’로 이름이 나 있죠. 20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직접 연습해서 재현하고 있습니다.”(송갑득 명예별감·67) 축제 기간 중 전통 혼례식에는 다문화 부부 등 그동안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순천시 커플들의 실제 결혼식이 열렸다. ○ 초가집에서의 하룻밤 낙안읍성 가을축제의 또 다른 명물은 바로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향토음식이다. 전국의 축제장 풍경을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각설이’ ‘품바’ 공연과 천막에서 파는 파전, 막걸리와는 다르다. 낙안읍성에서는 인근 밭에서 수확한 채소와 순천만과 벌교에서 나는 꼬막, 짱뚱어탕 등 주민들의 손맛이 들어간 현지식 메뉴를 맛볼 수 있다. 3년 만에 재개되는 낙안읍성민속문화축제에는 ‘창극 김빈길 장군’ 공연과 가야금 병창, 동편제 소리, 남사당놀이, 국악과 재즈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남정숙 총감독은 “성벽 쌓기는 낙안읍성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놀이”라며 “실제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살아 있는 축제”라고 말했다. 2019년에도 축제 감독을 했던 그는 낙안읍성 마을에서 여행객들이 초가집에서 숙박하며 전통을 체험하는 체류형 민속문화마을로 변신시켰다. 실제로 읍성마을에는 ‘은행나무 민박’ ‘연못 민박’ ‘별감 민박’ 등 소박하고 예쁜 이름의 민박집이 많다. 돌담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졌다. 오후 6시인데 마을은 삽시간에 고요해진다. 어둑어둑해진 골목길에는 가을 저녁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다. 도시의 번쩍이는 네온사인도, 자동차의 소음도 없는 성 안에선 이따금 개만 컹컹 짖을 뿐이다. 마을 뒤편 금전산 너머로 별빛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오전 6시 반.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라는 확성기 소리에 잠을 깼다. 1970, 80년대 시골마을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장님이 직접 마을 소식을 전하는 마이크 소리다. 동이 터오는 창호지 문 밖으로 벌써부터 분주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주인댁 어르신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해질 녘 노을빛에 물든 초가지붕은 뭔가 애잔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는데, 반짝이는 이슬이 맺힌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돌담길 골목은 아이유의 ‘가을 아침’ 노래처럼 청명하다. 낙안읍성의 고즈넉함을 즐기고 싶다면 관광객이 많은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 초가집 민박에서 하루 이틀 밤 자고 가기를 권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자연이 살아있는 홋카이도에서 온천과 골프, 단풍과 미식을 함께 즐겨 보세요.”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일본 여행 무비자 입국이 2년 7개월여 만에 허용되고, 엔화 약세(엔저)로 어느 정도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관광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홋카이도 관광청은 다음 달부터 인천∼삿포로 직항 비행기 노선이 재개될 예정에 따라 골프와 단풍, 온천과 스키 여행을 소개했다.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겨울 스키로 유명한 세계적인 여행지다. 그러나 여름과 가을철 시원한 날씨에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도 각광받아 왔다. 홋카이도에 있는 골프장 220여 개는 넓은 페어웨이와 산, 호수를 바라보는 자연 풍경을 자랑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그린피가 이점이다. 그린피가 원화로 환산하면 평일에는 6만∼8만 원, 주말에는 8만∼11만 원 정도(전동카트 포함)다. 일본의 대도시인 도쿄와 오사카 주변 골프장과 비교하면 저렴한 가격이다. 그러나 일본의 골프장은 대부분 캐디 없이 골퍼가 직접 카트를 운전하면서 다니기 때문에 한국인 관광객들은 처음에 낯설어 한다. 일본 프로골프 투어가 진행되는 회원제 골프장의 경우 캐디와 함께할 경우 평일에 11만∼12만 원, 주말에는 18만∼20만 원 수준의 그린피를 내야 한다. 홋카이도의 도청 소재지인 삿포로 신(新)지토세공항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더노스컨트리골프클럽은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세가사미컵(총상금 1억8000만 엔) 대회가 열리는 전용 구장이다. 일본의 게임회사에서 출발해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룹이 된 세가사미가 운영하는 골프장이다. 일본의 레전드 골프 선수였던 아오키 이사오(일본 골프투어 회장)가 직접 설계한 코스가 돋보인다. 아웃코스 7번홀 그린 주변에 있는 대형 벙커에는 홋카이도 지도 모양의 꽃밭이 조성돼 있는데, 이 꽃밭 위로 떨어질 경우 무벌타로 그린 주변에 볼을 옮겨놓고 칠 수 있다. 세가사미 골프엔터테인먼트 요시히사 미야카와 과장은 “홋카이도를 상징하는 자작나무와 소나무로 조경된 이 골프장에는 호수 8개가 있다”며 “미국 오거스타의 화려함과 영국 세인트앤드루스와 같은 터프함을 겸비한 도전적인 코스”라고 말했다. 홋카이도에는 다음 달 초순부터 눈이 내려 11월 중순부터 내년 4월 초까지 홋카이도의 골프장 대부분이 문을 닫는다. 이 골프장은 겨울(12월∼이듬해 3월 말)에는 눈에서 썰매를 타며 가족과 함께 놀 수 있는 ‘노스 스노랜드’로 변신한다. 산 정상에 흰 눈이 쌓여 있어 ‘홋카이도의 후지산’으로 불리는 요테이산(1980m)이 바라보이는 니세코 지역은 골프와 스키, 래프팅, 카약, 하이킹, 낚시 등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 있는 하나조노 골프클럽은 요즘 평일 5100엔, 주말 6200엔의 그린피로 18홀을 돌 수 있다. 지금 현재 니세코 지역은 설악산을 방불케 하는 붉은색, 노란색으로 물든 단풍이 절정이다. 하나조노 골프장 인근에 있는 세쓰 니세코, 샬레 아이비, 샤트리움 같은 호텔 펜트하우스에서는 요테이산의 단풍과 일출을 바라볼 수 있다. 홋카이도 관광청 관계자는 “삿포로와 니세코 지역 인근 골프 여행객들은 30분∼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조잔케이(定山溪) 온천마을의 료칸이나 호텔에서 숙식을 한다”며 “골프를 즐기고 낙농, 보리, 옥수수, 감자, 생선 등 일본의 대표적 농어업 생산기지인 홋카이도의 싱싱한 재료를 이용한 현지의 미식과 온천을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에 들어오는 해외 여행객은 많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여행객이 80%가량 줄어들었기 때문에 비행기 예약이 힘들고 공항, 여행사, 호텔도 직원 부족으로 아직까지 문을 닫고 있는 곳이 많았다. 일본 여행 프로모션 회사인 메가컴의 료스케 오미 이사는 “현재 일본 정부가 12월까지 일본 관광 활성화를 위해 여행업계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는 여행업계가 정상화돼 일본과 한국 양국의 관광객들이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삿포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을 세계에 알린 ‘I amsterdam’은 가장 성공적인 도시 마케팅 슬로건 중 하나로 꼽힌다. 2004년 발족한 시티 브랜드로, ‘나는 암스테르담 시민’이란 뜻의 영어를 절묘하게 축약했다. 국립미술관과 반고흐 박물관 주변에 세워져 있던 슬로건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인증샷 명소였다. 14년간 암스테르담의 글로벌 마케팅에 큰 공을 세운 ‘I amsterdam’은 2018년 스히폴 공항으로 옮겨졌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60만, 20조.”숫자로 본 ‘노란우산’(소기업·소상공인공제)의 값진 결실이다. 노란우산이 올해로 출범 15년을 맞으며 9월 기준 재적가입 160만 명, 부금 20조 원을 돌파했다.노란우산은 소기업과 소상공인이 폐업이나 노령 등의 생계위협으로부터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사업 재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운영하고 정부에서 감독하는 공적 공제제도다. 국내 연기금 및 기타 공제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편에 속하지만, 출범 15년 만에 명실상부한 소기업·소상공인의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으로 자리잡았다. 공제금 지급 사유로는 △폐업(법인의 폐업 및 해산 포함) △사망 △질병 또는 부상에 의한 법인 대표자의 지위에서 퇴임 △만 60세 이상으로 부금 납부월수가 120개월 이상인 경우다. 노란우산의 출범 배경이 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폐업 이후 생활안정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납입한 부금에 대해 연간 최대 500만원까지 소득공제와 연 복리 이자가 지급되며, 납입부금은 법률에 의해 압류나 양도, 담보 제공이 금지돼 생활안정 및 사업 재기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노란우산 가입자를 위한 또 다른 특별 혜택도 많다. 가입자라면 누구나 경영·심리상담을 무료로 서비스받고, 건강검진 및 예식장·휴양시설 할인 등의 복지 혜택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아울러 매년 열리는 ‘아름다운 중소기업 나눔콘서트’로 나눔의 실천도 함께하는 중이다. 노란우산의 캐치프라이즈인 ‘대한민국 사장님, 노란우산 쓰세요’처럼 이제 노란우산은 대한민국 소기업·소상공인이라면 반드시 가입해야 할 필수 제도가 됐다.시중은행·지자체서 협력과 지원 이어져 하지만 지금의 값진 결실 뒤에는 우여곡절의 시기가 있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06년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지만, 이를 위해 1990년부터 17년 가까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끈질긴 설득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여러 난관을 뚫고 2007년 출범한 노란우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초라한 상황이었다. 노란우산의 첫해 가입자는 불과 4000명에 그쳤다. 특히 초기 설립자금 부족으로 IBK기업은행으로부터 초기 자금을 지원받아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이에 그치지 않고 중소기업중앙회는 더욱 맹렬하게 대외 홍보와 협력 파트너십 체결을 이어나가며 노란우산의 성장을 도모했다. 당시 마땅히 홍보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연예인 재능기부를 이끌어내며 공익광고도 시작했다.무엇보다 전국 단위의 창구를 개설하는 게 시급했다. 출범 당시에는 공제상담사가 유일한 창구 역할을 하고 있어 노란우산 가입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소기업·소상공인과 접점이 큰 시중은행·지방은행과의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이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하나은행이 2011년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가입자 증대의 물꼬를 트게 된 것이다. 하나은행과의 업무협약 이전에 대구은행, 광주은행, 부산은행과의 가입유치 업무협약도 있었지만, 전국 단위 창구를 지닌 5대 시중은행 중에서 하나은행이 처음으로 노란우산과 손을 잡게 되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하나은행이 노란우산을 창구에 올려놓자 기업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농협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들의 참여 러시가 이어졌고 다른 지방은행이 동참을 하게 됐다. 현재 총 15개 금융기관이 노란우산 가입 유치에 함께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협력도 이끌어 냈다. 2016년 서울시의 희망장려금 지원 시행을 시작으로 노란우산 가입자를 위한 ‘지자체 장려금 지원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이후 현재 17개 광역지자체까지 장려금 지원제도를 펼치고 있다.이처럼 중소기업중앙회의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노란우산 가입자(누적)는 2011년 10만 명을 돌파했고 이어 불과 7년 만인 2018년에는 100만 명(누적)을 넘어서는 쾌거를 달성했다. 복지혜택 강화로 노란우산 ‘시즌2’ 박차이제 노란우산은 2030년까지 재적가입 300만 명, 부금 40조 원 달성을 목표로 미래비전을 설계한다. 정부 역시 이에 공감하며 ‘새 정부 소상공인·자영업 정책 방향’에서 노란우산 관련 법률 개정을 예고했다. 이를 통해 노란우산은 이르면 내년부터 복지·후생사업 및 기금조성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구체적으로 중소기업중앙회는 노란우산 회원들을 위한 복지·후생사업으로 ‘KBIZ노란우산 플라자’(가칭)와 ‘노란우산 온라인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지역과 업종 특성을 조사해 지역별 맞춤 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노란우산 회원에 특화된 카드 발급도 고려하고 있다. 노란우산 복지 서비스를 카드에 탑재해 가입자 편의성과 이용률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앞으로도 노란우산 가입을 더 많이 확대하고 더 좋은 복지를 지원해 대한민국 모든 소상공인이 함께 하는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골목길 감나무마다 빨간 감들이 주렁주렁 익어가는 전남 순천 낙안읍성 마을. 고려 때부터 ‘즐거울 락(樂)’, ‘편안할 안(安)’ 자를 써서 낙안군이라 불린 곳이다. 과연 주변 산들에 에워싸인 이곳은 오래도록 살 만한 곳으로 평온함이 느껴지는 벌판이다.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성 안의 초가집에는 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한바탕 가을 축제도 열린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읍성 읍성에 들어서면 전래 동화나라에 온 듯하다. 초가지붕에는 흥부놀부전에 나올 법한 박이 매달려 있고, 나뭇가지로 엮은 사립문 너머로 집 마당이 훤히 보인다. 높이 4m, 총길이 1.4km에 이르는 성벽 위를 돌다 보면 텃밭에서 배추와 고추를 키우고 있는 주민들이 보인다. 대장간에는 시뻘건 불꽃이 이글거리고, 고샅(좁은 골목길)에는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낙안읍성 마을이 여느 민속촌과 다른 점은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88가구 175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초가집 중에는 도예공방, 천연염색, 서각, 대금, 가야금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집도 있다. 70, 80대 전통 초가집 기능인들이 젊은 후계자 양성을 위해 세운 마을 안 ‘향토학교’에서는 짚으로 이엉(날개)과 용마름을 엮는 작업에 바쁘다. 조선 태조 6년(1397년) 낙안 출신 전라좌수사 김빈길 장군이 처음으로 낙안에 토성을 쌓았다고 하니, 읍성 마을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다. 그중에 이순신 장군과 인연을 맺은 나무도 있다. 백의종군했다가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이 병력과 군량미를 모으기 위해 낙안읍성 객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당시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장군이 심은 푸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또 하나는 수령 600년이 넘은 은행나무다. 이 장군이 마을을 떠날 때 이 은행나무 앞에서 마차 바퀴가 빠져서 수리를 하느라 출발이 지체됐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다리가 끊어져 있더란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조금 전에 다리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는 것. 만일 은행나무 앞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장군과 병사, 군량미까지 큰 피해를 볼 뻔했던 터라 마을 사람들은 목신(木神)이 조화를 부린 것이라고 믿었다. 낙안읍성에서 이달 23일까지 민속마을 축제가 열린다. 코로나19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다시 열리는 축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주민들이 23일 직접 공연하는 ‘낙안읍성 백중놀이’와 ‘낙안읍성 성곽 쌓기’다. 축제 기간 중 전통 혼례식에는 베트남에서 온 신부 등 순천시민 다섯 커플의 실제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에도 마을 주민들이 객사 옆 넓은 공터에서 ‘백중놀이’를 연습하고 있었다. 장구와 북, 꽹과리를 들고 나온 주민들이 흥겨운 가락을 연주했다. 청년들이 들돌 들기, 씨름, 진세놀이, 성벽 쌓기, 덕석기(용을 그려넣은 커다란 깃발) 뺏기 놀이를 하면서 힘을 겨루고 대동단결을 하는 축제다. “음력으로 7월 보름날이 백중입니다. 벼농사에서 모심고, 가꾸는 힘든 일은 거의 끝나고 가을에 수확만 기다리면 되는 시기죠. 그래서 호미를 물에 씻어 걸어두고 하루 흥겹게 노는 ‘호미 시침’ 날입니다. 밀양 백중놀이는 ‘북춤’으로 유명한데, 낙안읍성 백중놀이는 커다란 덕석기(용 모양 깃발)를 뺏는 ‘덕석기 놀이’로 이름이 나 있죠. 20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이 직접 연습해서 재현하고 있습니다.”(송갑득 명예별감·67)○초가집에서의 하룻밤낙안읍성 가을축제의 또 다른 명물은 바로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향토음식이다. 전국의 축제장 풍경을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각설이’ ‘품바’ 공연과 천막에서 파는 파전, 막걸리와는 다르다. 낙안읍성에서는 인근 밭에서 수확한 채소와 순천만과 벌교에서 나는 꼬막, 짱뚱어탕 등 주민들의 손맛이 들어간 현지식 메뉴를 맛볼 수 있다. 3년 만에 재개되는 낙안읍성민속문화축제에는 ‘창극 김빈길 장군’ 공연과 가야금 병창, 동편제 소리, 남사당놀이, 국악과 재즈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남정숙 총감독은 “성벽 쌓기는 낙안읍성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놀이”라며 “실제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살아 있는 축제”라고 말했다. 2019년에도 축제 감독을 했던 그는 낙안읍성 마을에서 여행객들이 초가집에서 숙박하며 전통을 체험하는 체류형 민속문화마을로 변신시켰다. 실제로 읍성마을에는 ‘은행나무 민박’ ‘연못 민박’ ‘별감 민박’ 등 소박하고 예쁜 이름의 민박집이 많다. 돌담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졌다. 오후 6시인데 마을은 삽시간에 고요해진다. 어둑어둑해진 골목길에는 가을 저녁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다. 도시의 번쩍이는 네온사인도, 자동차의 소음도 없는 성 안에선 이따금 개만 컹컹 짖을 뿐이다. 마을 뒤편 금전산 너머로 별빛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오전 6시 반. “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라는 확성기 소리에 잠을 깼다. 1970, 80년대 시골마을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장님이 직접 마을 소식을 전하는 마이크 소리다. 동이 터오는 창호지 문 밖으로 벌써부터 분주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주인댁 어르신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해질 녘 노을빛에 물든 초가지붕은 뭔가 애잔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는데, 반짝이는 이슬이 맺힌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돌담길 골목은 아이유의 ‘가을 아침’ 노래처럼 청명하다. 낙안읍성의 고즈넉함을 즐기고 싶다면 관광객이 많은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 초가집 민박에서 하루 이틀 밤 자고 가기를 권한다.○순천만 습지순천만 습지에 있는 160만 평의 갈대밭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산책길이다. 습지에서 가장 높은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섬과 산으로 둘러싸인 여자만의 모습이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여수반도, 오른쪽은 벌교와 고흥반도가 보인다. 10월 말에는 겨울의 진객인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가 순천만을 찾아온다. 지난해에는 3700마리의 흑두루미가 순천만에서 월동을 한 뒤 시베리아로 날아갔다. 키가 90∼100cm 정도 되는 흑두루미가 날아오를 때 전깃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순천시는 순천만 습지 주변 총 282개의 전봇대를 뽑고 지중화했다. 또한 습지 주변의 논 중 일부에서는 가을걷이를 하지 않는다. 겨울철 흑두루미와 철새의 먹이로 주기 위해서다. 시가 농부들에게 ‘희망농지’ 신청을 받아 보상을 해준다. 순천만 습지에서 5.5km 떨어진 곳에 순천만국가정원이 조성돼 있다. 습지와 국가정원은 ‘갈대 열차’와 ‘스카이 큐브’로 연결된다. 장승희 순천만 자연생태해설사는 “순천만국가정원은 도시가 팽창해 습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중간에 완충지대인 ‘에코 벨트’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시민들의 노력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습지가 좋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암사의 승선교낙안읍성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 선암사 앞 계곡에는 아치형 돌다리가 놓여 있다. 무지개 모양으로 만들어진 ‘승선교’다. 이 다리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밑에서 보면 홍예교 반원이 물에 잠긴 그림자가 되어 위의 홍예교와 하나의 원을 이루어 그저 감탄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그리고 원 너머로 누각이 보이도록 절묘하게 지어놓았다. ‘선암사(仙巖寺)’의 문루 역할을 하는 ‘강선루(降仙樓)’다. ‘선암사’는 절 서쪽에 있는 평편한 바위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했고, ‘강선루’는 신선이 내려와서 노니는 누각, ‘승선교(昇仙橋)’는 신선들이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는 다리라는 뜻이다. 온통 신선들의 놀이터인 셈이다. 글·사진 순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체크포인트 찰리’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외국인이 동·서베를린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검문소 인근에 있는 ‘체크포인트찰리박물관’은 연간 100만 명이 찾는 명소. 탈출한 동독인을 지원하던 인권운동가 라이너 힐데브란트가 세운 박물관이다. 장벽을 넘기 위해 자동차 밑바닥에 매달리거나 땅굴을 파거나 고무풍선을 타고 탈출을 시도했던 처절했던 역사가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