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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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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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5~202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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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3%
  • [횡설수설/송평인]붉은 깃발法

    자동차 운전자의 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을,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전방 50m 앞에서 걸어가며 말을 끄는 마부나 행인에게 위험을 알려야 했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영국에서 1865년 만들어진 ‘붉은 깃발 법’의 내용이다. 이 법의 진짜 문제는 조수의 걸음보다 느린 자동차 최고 속도였다. 그 속도는 시내에서는 시속 2마일(약 3.2km), 교외에서는 시속 4마일(약 6.4km)로 제한됐다. 19세기 말까지 최고 속도가 시속 12마일(약 20.2km)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버린 다음이었다. ▷한국인은 페이스북의 성공을 보면서 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페이스북이 미국에서 선보인 소셜미디어 개념의 서비스를 한국인은 페이스북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전에 이미 싸이월드를 통해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브스쿨 열풍이 불어 불륜을 조장한다는 비난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럼에도 싸이월드가 페이스북 앞에서 맥을 못 춘 것은 인터넷실명제라는 규제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인의 근대 경험에서 공백 중 하나가 수표에 대한 경험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자기 명의 수표를 써본 적이 없다. 고작 써본 것이라곤 은행의 자기앞수표다. 서구에서는 지금도 자기 명의로 사인한 수표를 많이 쓴다. 우리는 신용결제에서 수표를 건너뛰어 더 편리한 신용카드로 넘어왔다. 하지만 어느샌가 다시 기존 결제시스템 중심의 금융 규제가 질곡이 돼 핀테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인터넷전문은행의 진입장벽 완화를 강조하며 ‘붉은 깃발 법’을 거론했다. ▷정부마다 규제개혁 정책의 상징이 하나씩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전봇대였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손톱 밑 가시였다. 그럼에도 전봇대도, 손톱 밑 가시도 제대로 뽑혔다고 할 수 없다. 이번에는 붉은 깃발을 뽑아낼 수 있을까. 어느 시대나 규제개혁은 쉽지 않은 듯하다. 이 주의 붉은 깃발, 혹은 이달의 붉은 깃발, 혹은 올해의 붉은 깃발을 선정해 퇴치하는 지속적인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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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비만세

    경제학자 토빈의 이름을 딴 토빈세처럼 경제학자 피구의 이름을 딴 피구세가 있다. 피구세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externality)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환경오염이 대표적인 외부효과다. 공장에서 배출하는 매연은 환경을 오염시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만 그 피해에 대한 보상 비용은 업체의 생산 원가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정부가 대신 오염세를 부과해 보상 비용을 지불받는다. 마땅히 보상해야 할 피해가 시장 내부에서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외부효과라고 한다. ▷담뱃세나 비만세도 피구세다. 담배를 피우거나 살이 찌는 식음료를 먹어 병든 사람이 많아지면 건강보험기금에서 지출하는 돈이 늘어나는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그에 대한 보상 비용을 누군가가 내야 한다면 담배나 식음료를 생산하는 업체일 수밖에 없다. 담뱃세에 비하면 비만세는 비교적 최근에 부과되기 시작한 피구세다. 덴마크가 2011년 10월 세계 최초로 도입한 이후 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탄산음료와 패스트푸드 등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6일 ‘국가 비만관리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그 대책의 하나가 폭식을 조장하는 ‘먹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국가주의’를 화두처럼 내세우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국가가 먹방까지 규제하겠다는 것이냐”며 대표적인 국가주의 사례로 비판했다. 정부는 먹방을 규제하겠다는 건 아니라고 한 걸음 물러섰지만 또 다른 대책으로 비만세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피구세는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업체는 담뱃세나 비만세를 부과받으면 담배나 식음료의 가격을 올린다.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어들지만 담배에서 보듯이 가격이 올라가는 만큼 그에 비례해 수요가 줄어들지도 않는다. 더구나 빈곤층은 총지출액 중 먹는 데 들이는 비용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건강에 더 좋은 식음료를 구입할 여분의 능력이 부족하다. 비만세는 현재의 식습관을 바꾸기 힘든 빈곤층을 더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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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기무사 계엄 문건 사태의 프레임

    액자(額子) 소설은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을 말한다. 기무사 계엄 문건 사태도 비슷한 액자 구조를 갖고 있다. 기무사 계엄 문건의 작성이라는 사건이 있고 이 사건을 둘러싸고 그 문건을 돌출시킨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액자는 영어로 프레임(frame)이다. 사건의 본질을 결정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프레임일 때가 적지 않다. 기무사 계엄 문건 사태는 국방부 장관에 대한 기무사의 하극상이라고 표현된 사건을 통해 그 액자 구조가 뒤늦게 드러났다. 지금 국가의 각 조직은 어떻게든 적폐를 ‘발굴’해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기무사 근무는 처음인 이석구 사령관이 올 3월 기무사 계엄 문건에 대한 내부 제보를 받고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찾아가 ‘위중하다’고 보고를 했더니 그가 뭉개버렸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자 치받았다는 것이 사태의 전모다. 위중하다는 말은 ‘군대스럽다’. ‘민간인’들은 병세가 위중하다는 말은 하지만 사안에 대해서는 심각하다고 하지 위중하다고는 잘 하지 않는다. 병세가 위중하다는 말은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나 쓴다. 시리어스(serious)한 정도를 넘어 크리티컬(critical)하다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사용했다면 기무사 계엄 문건은 위중하지 않다. 촛불시위 때 탄핵이 기각되면 한쪽에서는 혁명밖에 없다고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계엄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둘 다 극단적이었다. 다행히 탄핵이 인용돼 다수 국민이 받아들였고 혁명도 계엄도 필요 없어졌다. 헌법과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상황은 종료됐다. 물론 계엄 문건에는 국회의원들을 불법시위 현행범으로 체포해 계엄령 해제를 막는다는 등 어처구니 없는 몇 가지 위헌적 발상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문건은 실행과는 거리가 먼 데다 3월까지는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몰랐으며 발견하고도 4개월이나 태연히 흘려보냈는데 무슨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이 있다고 위중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무사는 작은 흠도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보고하는 조직이다. 기무사의 눈으로 보면 위중하지 않은 게 없다. 남의 흠을 잡아내는 쪽은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예상외로 커졌을 때 면피할 수 있다고 여긴다. 기무사 사람들이 평소 위중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고 다니니까 듣는 쪽은 그냥 흘려듣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사령관의 ‘위중하다’는 판단은 정권의 구미에는 딱 맞았다. 기무사 개혁을 벼르고 있는 청와대는 하극상 이후 관심이 하극상에 쏠리자 문건 자체로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면서도 하극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오히려 송 장관의 책임을 물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사령관은 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사람이다. 기무사는 눈치가 9단인 조직이다.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군대는 비합리적일 정도의 상명하복(上命下服)이 다반사인 조직이다 보니 숨기는 것이 용이하고 실제 숨기는 것이 많다. 그걸 찾아내 군 기강을 확립하는 게 기무사의 기본 임무다. 그렇다 보니 하극상처럼 보일 때도 많다. 그럼에도 그 일을 할 수 있어야 방첩도 보안도 가능하다. 송 장관이 국방부 간담회에서 했다는 ‘계엄 문건 큰 문제 없다’는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를 부인하는 사실관계확인서를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받아 은폐하려 한 국방부 아닌가. 일선 부대장이 숨기는 게 있으면 담당 기무부대장은 상급 지휘관이나 국방장관에게 알리고 국방장관이 숨기는 게 있으면 대통령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별도의 보고 라인이 있어야 최고 군 통수권자의 군 통제가 가능하다. 그래서 과거 기무사령관은 대통령을 독대하기도 했던 것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은 기무사가 조직 보호를 위해 안간힘을 쓰다 돌출한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건을 둘러싼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의 공방은 기무사의 존재 이유를 부각시켰다. 남의 기무사가 아니라 자기의 기무사라면 얘기는 달라지는 법이다. 군의 잠재적 쿠데타 가능성까지 제기하면서 심각하게 봤는데 군 감시를 안 한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그렇다고 기무사 축소를 하지 않으면 개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결국 기무사 본연의 업무인 방첩과 보안은 건성건성 하면서 군 감시만 하는 더 고약한 기무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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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댄디한 보수를 위하여

    지금 어디 가서 보수라고 말하면 나이 든 이는 꼰대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대학가에서는 동성애보다 보수 ‘커밍아웃’이 더 힘들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국 많은 ‘샤이 보수’들은 침묵하고 만다. 현대 보수주의 사상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번역한 이태숙 경희대 교수는 서문에서 “자유주의의 기반이 부족한 한국에서 보수의 강세는 기이한 현상이었다”고 썼다. 한국 보수는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비판으로 지탱했으나 바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보수가 그동안 이만큼이나마 유지된 것은 ‘아스팔트 보수’에 힘입고 있지만 반대로 보수가 지금 이 꼴이 된 것도 아무 데나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고 다니며 태극기를 흔드는 그 아스팔트 보수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무슨 주장을 하더라도 연륜에 걸맞은 말쑥한 차림으로 절제된 주장을 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이 있다. 이제 젊은 보수들이 말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보수도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 젊은이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역사를 모른다고 탓하지 말라. 그들은 마블스튜디오 영화의 진행 속도를 따라가고 스마트폰으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하는 세대다. 어느 세대에서건 젊은이를 탓하는 쪽이 졌다. 젊은이들은 충분히 똑똑해서 내버려두면 그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말한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실은 그런 젊은이들이 없지 않다. ‘서울대 트루스 포럼’에서 시작해 현재 전국 60개 대학의 ‘트루스 얼라이언스’로 확대된 모임에는 700명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한미동맹을 통한 북한의 해방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보수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보수의 박제화(剝製化)다. 같은 주장이라도 젊은 보수들이 하니 박제화된 주장에 확 생기가 도는 듯하다. 이들이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반대를 넘어 평화와 평등의 이념까지 포섭하는, 더 큰 자유주의를 보여준다면 보수도 다시 댄디해질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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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기무사 계엄 문건’ 향한 어설픈 공격

    내가 군 복무할 당시 작전계획 5027에 따르면 우리 대대가 속한 30사단은 군단의 예비사단으로서 북한이 남침하면 일단 전투지역전단(FEBA) 델타(D)나 에코(E)에서 방어선을 친 뒤 역습작전을 감행해 전방 1사단을 추월, 임진강을 건너게 돼 있었다. 임진강 도하 이후 어떤 작전을 수행하는지는 도상으로도 훈련해 본 적이 없다. 이걸 보면 5027작전은 공격작전이 아니라 방어작전임이 분명하다. 군 지휘부는 진격을 계속할 경우 군단이나 사단별로 북한의 어느 지역을 장악할지 막연하나마 계획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전투단위인 대대의 작계로까지 세부화돼 있지 않는 이상 실행계획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30사단은 이번에 ‘기무사령부 계엄 문건’에도 등장하는 부대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충정훈련이라고 불린 시위진압 훈련도 했다. 시위진압 훈련을 따로 하는 것은 군인의 무기인 총기 대신 봉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군이 상시로 시위진압 훈련을 한다는 건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고약한 일이지만 정규전 혹은 비정규전 훈련만 받은 군부대가 투입돼 빚어질 수 있는 우발적 유혈사태를 막는다는 측면도 있었다. 1987년은 대통령직선제를 요구하는 6월항쟁이 있던 해다. 6월에 들어서자 우리 대대는 충정훈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딱 한 차례의 도상훈련이 있었다. 그때 우리 대대가 서울 지역의 한 여대에 투입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향해 미국의 승인 없는 군 투입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하고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이 나오면서 모든 병사들이 불안해하던 그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다. 기무사 계엄 문건에는 30사단도 동원된다. 청와대에 1개 여단, 광화문 일대에 2개 여단이 배치되는 것으로 나온다. 30사단에는 90, 91, 92여단 등 3개 여단이 있다. 막연히 1개 여단, 2개 여단이라고 한 걸 보면 그 자체로는 책상머리에서 스케치한 수준이다. 실행 계획이 되려면 최소한 대대 단위까지의 배치 계획은 마련돼야 한다. 대대만 해도 인원이 500명에 이른다. 500명이 청와대로 가야 할지 광화문으로 가야 할지, 간다면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계획은 있을 수 없다. 군에서는 각 군 참모총장이 검찰총장에 해당한다.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국방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관해 각 군 참모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군 검찰 역시 일반 검찰과 마찬가지로 장관이나 그 상급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수사를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향해서든 각 군 참모총장을 향해서든 구체적 사건에 관해서는 직접 지휘·감독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수사 지시를 하고 싶다면 자신이 임명한 국방장관을 통해서 해야 한다. 수사에 대의가 있는데도 그가 거부한다면 그를 해임하고 새 국방장관을 임명하면 된다. 이런 절차도 밟지 않고 심지어 국방장관을 배제하는 수사 지시를 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군통수권은 군정(軍政)과 군령(軍令)을 다 포함한다는 뜻일 뿐이지 제왕적 권리가 아니다. 대통령의 수사 지시 자체가 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 군대의 모든 작전계획은 최소한 2급 비밀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군의 공식 라인을 통해 당시 국방장관에게 보고가 됐으나 비밀문서로 분류되지도 않고 평문으로 남아 있는 기무사 계엄 문건은 단순한 검토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실행 계획이라면 비밀로 분류됐다가 폐기된 기록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다. 열심히 찾아보기 바란다. 대통령이 지시했으니 뭐라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실은 실행 계획 비슷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대로 내란 음모로 몰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벌써 세월호 사찰 문건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별건(別件) 수사가 시작된 것 같다. 계엄 문건을 작성할 당시 기무사령관은 조현천이었다. 그는 육사 알자회 장교였다고 했다. 알자회가 하나회의 후신은커녕 무슨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알자회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상궤를 벗어난 사법의 칼날이 정권이 바뀌어 똑같은 보복으로 이어지고 사화(士禍)와 당쟁(黨爭)을 반복한 과거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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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中 떠난 류샤, 아름다운 칼날

    15년간의 투옥·감금 끝에 간암이 악화돼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류샤오보 같은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보면 경탄을 넘어 경외의 느낌이 든다. 그들은 마블사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비유하자면 우주를 지배하려는 타노스와 아이언맨의 슈트도 없이,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도 없이 싸우는 사람이다. 중국 고사의 표현을 빌리면 무모하게 왕의 수레를 막아 세우겠다고 덤벼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사마귀와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에 대해서는 비구니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건조한 느낌의 마른 여인이라는 인상이 거의 전부다. 그의 내면은 류샤오보가 류샤에게 쓴 시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릴케의 시를 좋아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을 좋아한 여인, 칸트는 읽은 적이 없고 철학을 모르는 여인, 여러 번 금연을 맹세하고도 담배를 끊지 못한 여인, 종일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 담배가 없는 날은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와 같았던 여인. ▷류샤가 11일 중국을 떠나 독일에 도착했다. 중국 외교부는 “치료를 받으러 독일에 갔다”고 밝혔으나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국 정부를 향해 인권 개선을 요구했다가 몇 차례나 경제 보복을 당했지만 “류샤를 외국으로 보내 달라”는 류샤오보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 인권은 고사하고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한마디 못하는 정부가 집권하는 나라를 향해 진짜 인권을 존중하는 지도자는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보여줬다고 하겠다. ▷류샤는 1982년 류샤오보를 만나 서로의 문학과 사상에 깊은 공감을 나누다 1989년 6·4 톈안먼 참극 고발을 계기로 사랑에 이른다. 1996년 류샤오보가 복역 중인 수용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류샤는 2010년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중국 정부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심장병과 우울증을 앓아왔다.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칼날이 됐던 여인, 그러나 그 칼날은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았던 아름다운 칼날이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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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서울대 총장이라는 자리

    고려와 조선시대에 최고 공립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의 장(長)을 대사성이라 불렀다. 고려 말기 정몽주로부터 조선 전기의 신숙주, 중기의 이황, 후기의 김정희까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 대사성을 지냈다. 오늘날 서울대의 총장은 현대판 대사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서울대 총장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형법학자 유기천 교수같이 지성과 용기에서 모두 존경받는 분들이 없지 않았으나 유신과 5공 시절을 거치면서 그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총장의 위상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1991년부터 총장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학문적 깊이와 열정보다는 ‘마당발’로 총장이 되는 일이 종종 빚어졌다. 총장 이력을 바탕으로 국무총리가 되고 더 높은 자리를 기웃거린 경우도 나타났다. ▷대학 총장에게는 ‘지성의 대표자’라는 역할 외에도 최고경영자(CEO) 역할이 있다. 영국은 대학 총장 자리를 이원화해 챈슬러(Chancellor)를 두고 그 밑에 바이스 챈슬러(Vice Chancellor) 겸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둔다. 챈슬러는 대학교에 상주하지 않는 명예총장으로 지성을 대표하고 프레지던트가 실질적 총장이다. 미국은 대학 총장 자리를 대체로 일원화해 프레지던트라고 부르고 CEO 역할을 점차 중시해 왔다. 동양은 좀 달라서 일본 도쿄대는 총장을 대학의 관리책임자로 보지 않고 ‘지성의 전당’의 상징으로 본다. ▷서울대 총장추천위원회에서 최근 총장 후보로 추천된 강대희 의대 교수가 어제 여기자를 성희롱하고 동료 여교수를 성추행한 의혹에 휘말려 후보에서 사퇴했다. 강 교수도 마당발 계열이다. 지성의 고고함을 버리고 어설픈 CEO 마인드로만 달려온 참담한 결과가 이번 사태가 아닐까. 정희성 시인은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고 했다. 아직도 시인의 말이 유효한지 강 교수와 추천위원회만이 아니라 서울대 전체가 깊이 자성해야 할 일이다. 그래도 서울대 총장은 조국의 미래가 정말 궁금해질 이때 필요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시대의 지성인이면 좋겠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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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아시아나 기내식 사태

    1998년 처음 대한항공 기내에 비빔밥이 제공됐다. 그 전만 해도 기내식은 대개 ‘서양식+밥’이었는데 한식으로 처음 제공된 것이 비빔밥이었다. 비빔밥이 외국에 널리 소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빔밥이 불고기나 갈비처럼 한류 음식의 대표가 된 데는 기내식 비빔밥을 맛본 외국인들의 입소문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현대 항공문화가 낳은 기내식 비빔밥도 전주비빔밥처럼 명물 비빔밥으로 분류하고 싶다.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을 제공하지 못하는 ‘노 밀(No meal)’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내식 공급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빚어진 차질이다. 기내식 때문에 싼 외국 항공사를 놔두고 비싼 국내 항공사를 선택하는 승객도 적지 않은데 승객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제부터는 간단하나마 전 항공편에 기내식이 제공됐다고 하지만 비빔밥 등이 제공될 정도로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는 기내식 공급업체 LSG스카이셰프와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에서는 처음 기내식을 공급하게 될 게이트고메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회사가 공장 화재로 공급을 맞추지 못한 게 사태의 원인이었다. 아시아나는 급히 다른 기내식 공급업체 샤프도앤코와 단기 계약을 맺었으나 샤프도앤코의 능력으로는 충분한 양을 공급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때 납품 압박을 견디지 못한 샤프도앤코의 한 협력업체 대표가 자살하는 비극까지 빚어졌다. 30분만 공급이 늦어도 가격의 절반이 깎이는 상식 밖 조건에 따른 부담을 그가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배고프다. 고로 화가 난다(I am hungry, so I am angry)’다. 제대로 식사도 못 하고 장시간 비행기를 탄 승객들이 토해내는 말이다. 기내식 사태는 7월 이전부터 충분히 예견됐던 상황이었음에도 아시아나는 태연히 비행기를 띄웠다. 사태가 불거진 5일 동안 승객을 배려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글로벌 항공사라는 곳의 일처리가 겨우 이 정도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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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낯선 곳으로 끌려가는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찬(自讚)하는 대북 관계의 성과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지난 10여 년 이래 가장 정확한 정세분석가는 주사파였던 이용대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핵실험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비로소 한반도에 평화의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봤다. 민노당 내에서조차 그의 발표를 둘러싸고 격렬한 종북 논란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그의 견해는 놀랍게도 현실이 되고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면, 트럼프가 북핵에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면 북-미 관계 개선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문재인 정부에 속속 수용된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사고는 실은 이용대의 인식 속에 대부분 들어 있던 것이다. 북핵을 자위(自衛)를 위한 무기로 보기 시작하면 그것으로부터 일련의 연쇄적 결론이 자동적으로 펼쳐진다. 남다른 학식이나 예지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간단한 발상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이 정부가 주사파 정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주사파의 관점이 강력한 힘을 얻은 새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주사파란 말이 그 말만 붙이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비판의 딱지여서는 안 된다. 주사파의 관점은 북한의 현존하는 정권과 연결된 실효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 정부는 올해 제주4·3사건 기념행사를 통해 남조선노동당 빨치산의 봉기보다는 군경의 민간인 학살을 부각시켰다. 문 대통령은 남로당이 주도한 대구폭동을 대구인민항쟁으로 평가하는 책을 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에게 국가정보원 개조 작업과 개헌 작업을 맡겼다. 그는 해방전후사의 마지막 남은 금기인 남로당과 관련한 금기를 별 설명도 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내년 10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다음 달 15일로 7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남북에서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의 역사로 돌아가 남북 공존의 토대를 다지겠다는 의지를 탓할 생각은 없다. 역사는 결국 각자가 미래의 전망을 갖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의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에 무시로 일관하는 것에 대해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이용대는 경기동부연합의 우두머리였으나 건강이 악화돼 물러나는 바람에 그 자리가 이석기에게 갔다. 문 대통령은 이석기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에서 유일한 반대 의견을 표명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소장으로 앉히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의 김명수 대법원장이 통진당 측 변호인단 단장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출신 김선수 변호사의 대법관 임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대통령과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과 민변 출신 변호사들 사이에 형성돼 있는 통진당 해산 반대 커넥션은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보다는 반대한다는 주장만 커 공감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지만 이를 무시하고 일본처럼 공산당도 허용돼야 한다고 여긴다면 헌법의 위헌 정당 해산 조항 자체를 없애자고 해야 한다. 그러면서 통진당 해산 결정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논리적이다. 문 대통령은 6·13지방선거 전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에서 수많은 조항을 고치면서도 그 조항은 없애지 않았다. 이 정부는 남북관계가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새 시대로 들어선 것처럼 말하지만 북핵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정은은 대부분의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평화를 얻는 대가로 핵을 포기할 것인가. 주사파라면 아니라고 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도 트럼프 정부도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 것 같은 눈치다. 그렇다면 질문을 이렇게 바꿔야 한다. 핵을 가진 김정은과 평화는 가능한가. 정부는 이 질문에 먼저 답하고 국민을 끌고 가더라도 끌고 가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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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휘터 쾰른경제연구소 소장 “대기업 위주 佛보다 中企 비중 높은 獨… 노사 파트너십 좋아”

    독일 쾰른경제연구소 미하엘 휘터 소장(사진)은 독일 중소기업의 강점으로 유연성을 꼽았다. ―독일에는 중소기업이 많다. 중소기업의 강점은 무엇인가. “유연하다는 점 외에도 오랫동안 노사가 함께 일해 파트너십이 좋고 지역에서 관계망을 잘 형성하고 있다.” ―독일이 프랑스에 비해 노사 간 타협이 잘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은 노사 간 타협의 긴 전통을 갖고 있다. 1918년 11월 중앙노사공동체협약 이후 약 100년에 가까운 타협의 전통을 갖고 있다. 프랑스는 대기업 중심 구조이고 독일처럼 중소기업의 비중이 높지 않다.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노사 간 타협이 더 어렵다.” ―독일은 법정 최저임금을 2015년에야 비로소 도입했다. 왜 독일은 그토록 법정 최저임금 도입을 주저했나. “과거 독일은 제조업 공장이 많았고 근로자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서비스업 비중이 늘면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생기고 최저임금 문제가 생겼다. 과거 철강회사 티센크루프는 창문 닦는 사람들도 그 회사의 직원으로 돼 있었다. 철강을 직접 생산하는 근로자들과 같은 월급을 주는 것이 비합리적으로 여겨져 창문 닦는 사람들은 서서히 분사돼 나갔다. 이런 식으로 산업구조가 서서히 변하면서 최저임금 도입을 둘러싼 환경도 변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제조업 비중이 10%밖에 안 되지만 독일은 아직 23%다. 영국에서는 독일보다 빨리 법정 최저임금제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네덜란드와의 국경지대에 루르몬트라는 아웃렛 도시가 있다. 인근에 사는 많은 독일인들이 휴일에 국경을 넘어 루르몬트를 찾는다. 독일은 아직도 휴일 영업은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은 옛날부터 공업이 강한 나라다. 공업에서는 1주일에 5, 6일 일하는데 보통 하루는 쉬어야 한다. 식당 등을 제외하고는 일요일에 쉬어야 한다는 것은 독일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이다. 앞으로도 독일은 이런 점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민주당(SPD) 소속의 미하엘 뮐러 베를린 시장은 장기실업자를 위한 ‘하르츠(Hartz) 4’를 없애는 대신 국가가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월 1500유로를 주자는 연대적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기본소득은 1500유로가 아니라 2000유로를 받아도 스스로 일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갈 동기(動機)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쾰른=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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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포커스]“가족경영 장점은 빠른 의사결정… 지역 고용안정에 큰 역할”

    독일의 중소기업은 375만 개에 이르고 전체 고용시장의 65.9%를 차지한다. 이들 중소기업 중 상당수는 높은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또 대부분은 가족기업의 형태로 운영된다. 가족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국내 고용을 보호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도 사업체를 해외로 이전하기보다는 국내에 두려 하고 경영자가 장기적인 명성 유지를 위해 지역공동체에 화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 인근 하일브론에 위치한 펌프 및 필터 제조업체 레너(Renner)사도 그런 기업이다. 직원은 60명에 불과하지만 이 업체가 제조하는 펌프 및 필터는 반도체 PCB, 태양광 전지판 등 약품이 사용되는 모든 생산 공정에 쓰인다. 주요 고객은 미국의 물텍(MULTEK) 퍼스트솔라 다우케미컬, 한국의 삼성 LG, 독일의 BASF 등이다. 독일 가족 중소기업의 전형인 레너사를 공동경영하고 있는 4남매를 인터뷰했다. ―중소기업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장이 모든 분야에 관여하기 때문에 결정이 빠르고 융통성 있게 이뤄진다. 중소기업이 다임러벤츠 같은 대기업과 똑같은 연봉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회사로부터 20∼30km 내에 사는 사람들을 채용하기 때문에 지역 고용에 크게 이바지한다. 근로자들로서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는 대기업 근로자와 달리 다양한 일을 다루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직원은 몇 명인가. “대학 학위를 가진 엔지니어 8명을 포함해 마이스터의 일종인 테크니커(Techniker)와 메커니커(Mechaniker) 등 30명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도 7명이 따로 있다. 이들은 3년간 직업교육을 받는다. 우리는 이 중 80%를 채용한다.” ―경영은 누가 맡고 있나. “아버지가 낳은 우리 네 자녀가 공동경영인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장녀 유타(58)가 마케팅, 장남 마르틴(56)이 연구개발(R&D), 차남 울리히(54)가 생산기술, 차녀 카린(48)이 생산설계 담당으로 구별돼 있긴 하다. 그러나 영업은 다 같이 하고 중요한 결정도 분야를 막론하고 4명이 공동으로 한다. 아버지가 장녀 유타에서 한 표를 더 주긴 하지만 유타는 한 번도 추가적인 한 표를 행사해 본 적이 없다.” ―지분과 이익 배분은 어떻게 하나. “4명이 회사에 갖고 있는 지분은 25%씩으로 똑같다. 월급도 똑같다. 회사 이익은 배분하지 않고 회사에 그대로 남겨 두고 R&D 등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투자한다.” 인터뷰 통역을 해준 임효석 세나(SENA)인터내셔널 사장은 도르트문트공대를 나온 독일 교포로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 그가 양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이익을 기업주가 가져가지 않고 회사에 남겨 투자한다는 점이 독일 중소기업과 한국 중소기업의 차이”라고 강조했다. ―자녀들이 모두 다 회사를 이어받는 게 전형적인가. “4명이 다 회사를 이어받는 건 전형적이지 않지만 독일의 가족 중소기업은 대개 1, 2명의 자녀가 이어받는다. 우리 남매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회사 일을 해왔다. 일반 종업원이 일하는 하루 8시간보다 더 많이 일했고 지금도 더 많이 일하고 있다.” 레너사를 방문한 날은 일요일과 국경일인 화요일 사이에 낀 월요일이었다. 독일의 많은 근로자들이 이런 날은 휴가를 내고 쉬는데도 공동경영인 남매들은 모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회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나. “전문 경영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 사람이 현 단계에서 회사의 방향을 우리만큼 잘 이해하리하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세대에도 가족 기업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자식 세대는 우리보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직장 근로자로서 주 35시간 혹은 40시간만 일하고 쉬려고 한다.” ―독일은 프랑스 같은 나라에 비해 기업에 대한 상속세가 낮다고 들었다. “회사를 판다면 상속세가 높다. 다만 회사를 계속 유지하고 매출이나 이익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고용자의 수를 유지하는 한 상속세가 높지 않다. 그러나 근래 들어 정부가 점차 상속세를 높여가고 있어 중소기업 계승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독일은 해고하기 어려운 나라로 알고 있는데…. “정규직 직원은 6개월의 테스트 기간에는 해고할 수 있지만 6개월 이후 채용하면 해고하기 어렵다. 해고당한 직원이 해고 사유에 반발해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법정이 노동자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는 창립 이후 47년이 지난 지금까지 2명을 해고한 적이 있다.” ―직원이 나이가 들면 임금을 낮출 수 있나. “독일은 연장자로 갈수록 연봉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다. 독일에서 임금 하향 조정은 법원에 갈 수 있어 불가능하다. 게다가 연장자들은 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독일 근로자의 정년이 67세로 늘었지만 몇 년 전에 4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은 63세에 은퇴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그 법에 따라 우리 회사에서도 67세까지 더 일할 수 있었는데 63세 나이로 은퇴한 직원이 3명이 있었다. 그때 우리 모두 크게 아쉬워했다.”슈투트가르트=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 취재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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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리본세대

    인생 1막은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라 결혼해 출가시키기까지를 말한다. 그것으로 인생의 한 사이클이 끝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인생 1막을 끝낼 나이의 전국 50∼64세 성인 남녀 107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인생 2막에 가장 소중한 것으로 배우자나 자식보다 ‘나’를 택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센터는 이런 인생 2막 시대에 ‘리본(re-born) 세대’라는 말을 붙였다. ▷산업화와 고령화는 경로(敬老) 사상마저 퇴색시키고 있다. 전통적 농업사회에서는 아들이 농사를 지어 부모를 먹여 살려야 했다. 실은 부모가 죽을 때까지 아들 내외와 함께 일해도 먹고살기 힘들었다. 산업사회라고 해서 자식의 부모 봉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점차 부모는 모아놓은 재산을 갖고 살아가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자식 도움 없이 수명대로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내’가 소중할 수 있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이번 조사에서 이혼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으로는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 생활을 즐기라’는 답이 33%로 가장 많았다. ‘좀 더 참고 살아보라’는 답이 25.2%로 2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졸혼(卒婚)’과 ‘이혼’을 권한 대답이 각각 20.9%로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서로 간섭하지 말고 각자 생활을 즐기라’는 이혼은 하지 않되 주거지까지 따로 정해 살 수 있는 ‘졸혼’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면 백년해로(百年偕老)는 이미 옛말이다. ▷영국 노년학 전문가 세라 하퍼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는 결혼 서약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 기간도 그만큼 늘고 있다. 근래 추세대로 수명이 늘어나면 결혼 기간이 무려 백 년이 될 수 있다고 하퍼 교수는 전망했다. 결혼식에서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것은 수명이 고작 40세나 50세이던 시절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화일 수 있다. 정작 대부분 백년해로할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백년해로는 부담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나 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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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정치가 독일과 프랑스의 성패 갈랐다

    동아일보 기획시리즈 ‘왜 프랑스는 처지고 독일은 앞서갔나’ 취재차 지난달 프랑스와 독일을 다녀왔다.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던 1997년은 독일과 프랑스에도 향후 20년의 진로를 바꾼 중요한 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프란츠 필츠 교수는 “1997년 4월 고용촉진법(Arbeitsf¨orderungsgesetz)의 발효로 독일 노동시장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졌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흔히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노동개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용촉진법은 기독민주당의 헬무트 콜 정부 집권 시절 입안됐다. 슈뢰더 총리는 그 법이 발효된 때로부터 1년 6개월 뒤인 1998년 10월 집권했다. 슈뢰더 총리의 업적은 콜 정부의 방향 전환에 딴지를 걸지 않고 오히려 강화해 ‘어젠다 2010’이라는 개혁안을 만들어 실행한 것이다. 2005년 집권한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또 그것을 이어받았다. 잇단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게 이어진 노동시장 개혁이 오늘날 ‘라인강의 기적’을 넘어서는 독일의 번성을 가져왔다. 프랑스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사실 프랑스는 1995년 알랭 쥐페의 공화당 내각이 출범하면서 독일보다 빨리 노동시장 개혁에 착수했다. 그러나 1997년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집권해 쥐페가 추진한 개혁을 뒤집고 오히려 주당 근무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는 법을 제정하는 등 역주행을 했다. 2007년 집권한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주 35시간 노동제의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지만 실패했다. 2012년 집권한 사회당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비록 자기 당이 도입한 제도이지만 폐해를 인정하고 2016년에 일부 완화를 이뤄냈지만 국민들로부터 사회당 공화당 모두 정치적 불신을 받은 뒤였다. 슈뢰더의 개혁이 반발 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사민당 내에서 오스카어 라퐁텐 경제장관을 중심으로 강력한 저항이 있었다. 슈뢰더의 개혁은 1999년 라퐁텐이 사임하면서 본격화됐다. 라퐁텐은 결국 사민당을 탈당해 좌파당을 결성했다. 사민당과 좌파당의 분리는 사민당의 총선 패배를 가져오고 기민당의 네 차례 연임을 허용한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사민당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망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슈뢰더 총리가 집권 내내 노동시장 개혁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막대한 통일비용의 후유증이 워낙 커 독일은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렸다. 2005년까지만 해도 독일은 평균 1%의 성장률로 유로지역에서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같은 저성장그룹으로 분류됐고 실업률도 11.2%까지 치솟았다. 2006년부터 실업률이 떨어지기 시작해 10년이 지난 2016년 6% 미만으로 떨어져 ‘라인강의 기적’ 당시 수준으로 돌아오고 2017년 말 3.8%까지 떨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2025년까지 3%의 완전고용 수준을 달성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조스팽 총리가 도입한 35시간 노동제는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보였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3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1997년 10.9%였던 실업률은 2001년부터 8%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35시간 노동제는 연장근무수당 지출 비용을 늘려 결국 기업의 인건비를 증대시킴으로써 프랑스의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실업률이 치솟기 시작해 2013∼2016년 실업률은 4년 연속 10%대로 독일의 2배 이상 수준을 기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5년 올랑드 정부의 경제장관으로 의회에 경제개혁안 107개를 제출했다. 이것을 마크롱 법안이라 부른다. 35시간 노동제를 완화하는 주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자 그는 사회당 정부를 뛰쳐나왔다. 그의 압박으로 사회당 정부는 2016년 미리암 엘 콤리 노동장관의 이름을 딴 엘 콤리 법을 통과시켰다. 법보다 단체협약을 우선 적용하고, 중소기업에는 단체협약의 적용조차 면제하는 등 주요 내용은 슈뢰더 이래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을 20년이 지나 그대로 본받고 있다. 결국 프랑스의 ‘잃어버린 20년’이었던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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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獨, 근로시간 산업-지역별 자율로… ‘실업률 3.8%’ 호황 밑거름

    2000년 전후만 해도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독일보다 높았고 실업률은 낮았다. 그러나 2006년을 기점으로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독일에 추월당했다. 실업률은 프랑스가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덕분에 일시적으로 9.4%로 떨어지긴 했지만 2013∼2016년 4년 연속 10%대를 기록한 반면에 독일은 2005년 11.2%까지 치솟던 실업률이 지난해 말 3.8%로 떨어졌다. 무엇이 두 나라의 차이를 낳았나. 전문가들은 여러 요인 중 특히 노동시장 유연성이 두 국가의 경제성적표를 결정지었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키우는 개혁을 추진해 인건비를 절감한 반면 프랑스는 노동을 경직시키는 반대의 길을 걷는 바람에 인건비가 상승해 국가경쟁력이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다른 길은 노동 격변기를 맞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취재진이 직접 양국을 방문해 살펴보고 분석한 차이와 그 이유, 그리고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시리즈로 게재한다. ○ 독일에선 법 위에 단체협약 슈투트가르트 인근 하일브론에 위치한 펌프 및 필터 제조업체 레너사는 직원이 60명 정도인 중소기업이다. 카린 레너 공동대표는 “금속기업의 경우 산업별 단체협약에 따른 주당 노동시간은 37시간이지만 우리 회사는 일반 직원의 경우에는 주당 40시간, 직위가 높은 간부의 경우에는 주당 45시간 정도로 계약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달리 연장근무가 일상근무의 일부처럼 돼 있지 않지만 사업주가 근로자와 노동계약을 맺을 때 한 해 달성할 성과도 계약에 포함한다. 레너 공동대표는 “단체협약을 따르는 금속 대기업에서도 근로자들이 37시간 내에 주어진 업무를 다 하지 못해 퇴근했다 다시 돌아와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은 해고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나라이지만 2년간 연속해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해고 사유가 된다. 그래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자발적으로 연장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연장근무 가산수당 지급 기준이 되는 주당 계약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독일은 산업별 지역별 단체협약이 법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주당 계약근로시간은 천차만별이다. 단체협약 당사자로 가입하지 않아 단체협약을 따르지 않는 중소기업도 많다. 중소기업의 경우 직급에 따라서는 노동시간법이 규정한 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을 넘는 근로시간 계약도 가능하다. 독일에서 주당 최장 근로시간은 법에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연속 24주간(약 6개월) 하루 평균 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에 하루 근로시간을 10시간(주당 5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다. 이마저도 예외 조항이 많아 1년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더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다만 하루 노동 후 그 다음 날 노동까지 최소 11시간의 휴식시간을 엄격히 보장해야 한다. 최근 연방고용주연맹(BDA)은 “하루 최장 노동시간과 휴식시간 규정이 오늘날 디지털로 심화되는 경쟁적인 현실에 더 이상 맞지 않는다”며 근본적인 개정을 요구했다. 후베르투스 하일 노동장관도 최장 근로시간을 노사의 자율적 결정에 맡기는 논의에 열린 태도를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주 35시간 노동제’ 경직성 깬 프랑스 약 20년 전 ‘주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며 독일과 반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프랑스는 최근 경직된 노동의 틀을 깨려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난달 파리 외곽 몽트뢰유의 노동총동맹(CGT) 본부에서 만난 파브리스 앙제이 중앙위원은 “지난해 연장근로를 포함한 프랑스 전일(全日)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당 41시간”이라고 말했다. 프랑스가 2000년 주당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했다고 해서 주당 35시간, 즉 하루 7시간만 일하고 퇴근한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앙제이 중앙위원에 따르면 프랑스인은 평균적으로 주당 6시간은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받는다. 법정근로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는 셈이다. 프랑스 근로자의 주당 최장 근로시간은 원칙적으로는 48시간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연속 12주간(약 3개월) 평균 노동시간이 46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당 60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이 경우 연속 12주간 중 6주간은 하루 12시간씩 주당 60시간 일하고 나머지 6주간은 주당 32시간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프랑스는 2016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엘 콤리’ 법안을 통과시켜 주당 60시간 노동이 가능한 조건을 완화하고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노사 합의로 10%까지 낮출 수 있도록 했다. 기존 35시간 노동제하에서 근로자는 43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하면 시간당 통상임금의 25%, 44시간부터는 50%의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받았다. 안경 제작 중소업체 ‘디렉톱틱’의 카림 쿠이데 사장은 “기존 35시간 노동제 아래서는 최장 근로시간이 별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50%의 가산수당을 주면서 44시간 이상 일을 시키면 인건비가 너무 높아 이득을 내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앙제이 중앙위원은 반대로 “최근 일련의 노동개혁은 35시간 이상을 일해도 임금이 크게 올라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파리·슈투트가르트·쾰른=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 취재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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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금-노동시간 획일적 규제는 위험”

    독일 ‘킬(Kiel) 세계경제연구소’의 노동문제 전문가인 도미니크 그롤 박사(사진)는 “임금과 노동시간을 법으로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은 해고가 어려운데도 어떻게 노동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는가. “정규직은 전일노동자(Vollzeitarbeiter)든 시간제노동자(Teilzeitarbeiter)든 해고가 어렵다. 회사가 힘들 때도 누구 한 명만 해고하는 식으로 개별적으로 해고할 수 없고 10%라는 정해진 비율에 따라 해고해야 한다. 그래서 기간제 노동자(befristete Arbeiter)가 도입됐다. 2003∼2005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총리가 장기 실업자 구직 지원책과 함께 확대한 제도가 기간제 노동이다. 기간제 노동자는 3번 이상 계약을 갱신할 수는 없지만 1년 혹은 2년 지나서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업체에 유리한 제도다.” ―슈뢰더 개혁이 끼친 다른 영향을 들자면…. “무엇보다 임금의 완만한 상승으로 기업의 채용 여력을 늘려줘 많은 사람이 고용되는 계기가 됐다. 독일은 산업별 지역별 단체협약(Tarifvertrag)이 있어서 기업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슈뢰더 개혁으로 단체협약에 예외 조항이 많이 생기고 더 많은 기업이 개별적으로 임금과 노동시간을 정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거꾸로 단체협약에도 영향을 줘 전반적으로 임금 인상시 노동자의 생산성 이상으로 오르지 않게 됐다. 같은 시기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이런 개혁을 하지 못했다.” ―프랑스는 35시간 노동제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법으로 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나 독일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독일은 법으로 단일하게 규정하지 않고 기본틀(Rahmenbedingungen)만 정하고 여지를 줘 현실에 맞게 고칠 수 있게 한다. 노동 분야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쓰인다.” ―독일이 이웃 나라 프랑스에 비해 노사 간 타협이 잘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정해진 것이 많고 사업자들과 근로자들이 스스로 조정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파업이 마지막 수단이 된다. 독일에서는 개별적으로 맞추고, 정부는 별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독일식 모델이 영미식보다 뛰어나다고 보는가. “실업률만 보면 독일이 프랑스보다 좋은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영국도 실업률이 낮아서 독일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영미식이 더 유연한 건 사실이다.”킬=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 취재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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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월드컵에 빠지다

    14일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했다. 개막전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후반 인저리타임에 탄성을 자아내는 프리킥 골을 집어넣었다. 이런 골을 보는 맛에 축구를 본다. 축구팬으로도 유명한 독일계 미국 외교학자 헨리 키신저는 축구를 발레에 비유하곤 한다. 아르헨티나의 메시 같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드리블, 정교한 패스, 절묘한 프리킥은 모두 발레리나에 못지않은 섬세한 발동작의 결과다. ▷프리킥에서 과거 감아 차는 킥이 유행했으나 근래 들어 무회전 킥이 중거리에서는 새로운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려면 공에 회전을 줘야 한다. 그러나 무회전 킥은 공과 공기 사이의 미묘한 마찰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볼의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 골키퍼로서는 눈앞에서 볼이 툭 떨어지거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호날두가 잘 차는 무회전 프리킥이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도 궁금하다. ▷메시의 기술 축구와 호날두의 파워 축구의 대결만이 아니라 ‘이집트 왕자’로 불리는 초특급 신예 무함마드 살라흐의 활약도 자못 기대된다. 살라흐는 잉글랜드 리버풀 소속으로 2017∼2018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해 축구계 최고 권위를 가진 발롱도르의 올해 유력한 수상 후보이기도 하다. 다만 지난달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입은 부상에서 얼마나 회복됐는지가 변수다. 프랑스의 앙투안 그리에즈만,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 독일의 티모 베르너 등도 주목할 신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개막전에서 러시아에 0-5로 참패했다. 아시아 팀들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한국이 18일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 나선다. 한국에도 두말할 필요 없는 특급 선수인 손흥민이 있고 환상적인 드리블과 패스 능력을 갖춘 이승우, 위력적인 무회전 킥을 구사하는 정우영 등이 있다. 한국이 아시아 무승(無勝)의 불명예 행진을 깨줄 것이라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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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사진이 기록한 ‘G7의 분열’

    2018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분위기를 명화(名畵)처럼 완벽하게 포착한 외신 사진 한 장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사진을 보는 독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향한다. 메르켈 총리는 검정 계통 슈트 차림의 남성 정상들에게 둘러싸여 홀로 밝은 톤의 상의를 입고 벨라스케스의 그림 ‘시녀들’ 속 공주처럼 화면의 중심인물로서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쏘아보면서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짚고 서서 말썽꾸러기 학생을 훈계하는 교사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왼편에 옆모습만 조금 보이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수리 라인이, 테이블에 손을 짚느라 약간 몸을 숙인 메르켈 총리를 거쳐 앉아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까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흐르며 화면을 가로지른다. 그 사선(斜線)을 따라 쏟아지는 무게감이 유럽의 정상들이 미국 정상을 압박하는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사의 말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고집 센 표정으로 유럽 정상들의 시선을 멀뚱멀뚱 받아치고 있다. 이 장면을 중간 뒤쪽에 서서 유럽에도 미국에도 속하지 않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답답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다. 그 오른편에는 혼자인 트럼프 대통령 측의 열세를 보완하는 듯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완고함을 감춘 특유의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나라면 이 사진에 ‘G7의 분열’이란 제목을 붙여보겠다. 미디어아트의 대가 빌 비올라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현대식으로 재현한 미디어아트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자코포 다 폰토르모의 ‘성모 마리아의 성 엘리사벳 방문’을 평범한 여인들이 반갑게 만나는 ‘인사’란 동영상 작품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G7의 분열’에는 유럽에 사진이 없던 시절의 고전적 역사화에서나 볼 수 있는 완벽한 구도가 잡혀있어 단순한 시사사진을 보는 이상의 생동감을 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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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센토사섬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센토사섬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비행기로 싱가포르를 경유할 때 반나절 이상 시간이 나면 대개 센토사섬을 들른다고 보면 된다. 센토사섬은 본래 해적의 본거지로 ‘등 뒤에서 죽음을 맞는 섬’이란 뜻의 살벌한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를 뜻하는 지금의 이름은 남북한 모두에서 존경받은 리콴유 전 총리가 1970년대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새로 붙였다. ▷센토사섬에는 일본 오사카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다. 김정은은 7세에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에, 중학생 때 스위스에 유학하면서는 프랑스 파리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서는 꼭 들러보고 싶은 곳일 게다. 한국 선수들이 종종 우승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HSBC 월드챔피언십 대회는 정상회담 장소인 카펠라호텔 인근의 센토사 골프클럽 탄종 코스에서 매년 개최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골프광이라면 라운딩 한번 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원산 갈마지구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싶어 하는 김정은은 센토사섬의 개발에서 배워야 한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를 단지 물류와 금융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국인이 찾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고자 했는데 그 중심 산업이 관광이고 교육이고 의료였다. 엄격한 도덕주의자였던 리 전 총리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카지노는 안 된다”고 완강히 반대하다가 2005년 ‘관광 2015’ 계획을 세우면서 센토사섬에 카지노까지 허용했다. ▷카펠라호텔에서 아름다운 해변 팔라완 비치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두 정상이 해변까지 함께 걸으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크림반도 남단의 항구도시 얄타는 1945년 미국 소련 영국 정상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의 구상을 처음 논의한 장소로 일약 유명해졌다. 센토사섬이 역사에도 오르내릴 지명이 될지는 이번 회담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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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돈키호테적이면서 마키아벨리적인 법관들

    대법원 법원행정처란 곳이 중세의 수도원처럼 밖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를 압박하는 카드로 다음과 같은 구상을 했다. 사법부가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를 설명하되 청와대의 비협조로 상고법원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청와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청와대와 협조했다가 아니라 청와대와 협조하다가도 수가 틀어지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는 그 가벼운 변신의 사고가 눈길을 끌었다. 임 전 차장이 생각하는 사법부는 국가나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법원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정치적 입장으로라도 변신할 수 있는 사법부였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보수든 진보든 그런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엘리트 판사의 마키아벨리스트적인 모습을 봤다. 다만 그것은 돈키호테적인 마키아벨리스트다. ‘판결을 좌지우지하는 법원행정처’는 임 전 차장의 환상 속에나 가능한 것으로, 그 환상 속 창의 위력을 과시하며 돌진하는 돈키호테였던 것이다. 임 전 차장이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극복해야 할 괴물로 여겼던 우병우 민정수석이 청와대 압박 운운하는 그 문서를 봤다면 웃고 말았을 것이다. 사법행정의 달인이 되려고 했다가 괴물이 된 것은 바로 임 전 차장 자신이다. 법원행정처 한가운데 그런 어이없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런 사람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신임을 얻어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대법관 후보 추천 1순위라는 법원행정처 차장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재판 거래’라는 것을 선뜻 믿기 어렵다. ‘재판 거래’ 의혹을 던지려면 최소한 재판 거래가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 가늠해 보고 나서 의혹을 던지더라도 던져야 한다. 사법에 대한 불신, 특히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의혹을 던져 놓고 보자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대법관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대법원장이 얼마나 논리적 설득력을 지녔느냐는 그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다만 대법원장은 소부(小部)에서 종결되는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대법원장이 소부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소속 대법관들과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것 정도가 예상할 수 있는 거의 전부다. 그런 방식의 개입은 설혹 일어난다 하더라도 부지런한 학자가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비교 검토해 학문적으로나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지, 검사가 판사들을 불러다 조사해서 ‘재판 거래’로 밝혀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 돈키호테는 실제로는 위력적인 창을 갖고 있었으나 다만 풍차를 괴물로 여기고 돌진한 사나이다. ‘재판 거래’ 의혹을 검찰 수사로 밝혀내야 한다고 촉구하는 젊은 판사들도 실은 풍차를 괴물로 여기고 돌진하는 돈키호테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재판 거래라는 괴물이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적으로 계산된 돈키호테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판사라면 법은 외면(外面)에서 출발해 내면(內面)으로 향하는 것이어야지, 내면에서 출발해 외면으로 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판사 블랙리스트’를 주장하려면 블랙리스트 때문에 불이익을 본 판사들이 있고 나서 블랙리스트를 찾아야 한다. 정작 불이익을 봤다는 판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판사 블랙리스트를 찾겠다고 남의 일기장 뒤지듯 컴퓨터를 뒤졌다. 결국 블랙리스트는 찾지 못하고 ‘재판 거래’ 의혹이 담긴 문서를 발견했다. 일기장에는 누구를 두들겨 패고 싶다고 쓸 수도 있지만 그것이 폭행이 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청와대 압박 카드로 재판 거래 운운했다고 해서 실제 재판 거래가 있었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문서의 액면은 청와대 맘에 들 것 같은 재판을 모아놓은 것일 뿐 재판 거래는 갖다 붙였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법관들이여, 상식적으로 생각하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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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얌체 휴직 교사들

    교사는 자녀 1명에 대해 1년간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3년 이내에 쓰면 될 뿐 어떻게 쓸지에 대한 제한은 없다. 그러다 보니 얌체처럼 육아휴직을 쓰는 교사들도 있다. 가령 3월 학기 초 한 학기 육아휴직을 신청해 놓고 휴직에 들어갔다가 7월에 복직하면 육아휴직은 4개월 정도만 쓴 것이 되면서 실제로는 방학까지 포함해 6개월을 쉴 수 있다. 게다가 육아휴직 중에는 월급의 40%인 육아수당만 받지만 방학 직전 복직하면 한두 달은 놀면서도 월급 100%를 받는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정교사 육아휴직은 학기 단위로만 허용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교육공무원 인사실무 지침은 육아휴직 1년을 무제한으로 나눠 쓸 수 있게 해놓고 ‘학기 단위로 기간을 정해 휴직하도록 권장하라’는 하나 마나 한 말만 한다. 교장을 지낸 어느 교육청 공무원은 “학교에서 얌체 육아휴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사람은 아마도 기간제 교사나 그 주변인일 가능성이 높다. 정교사들의 ‘개학하면 휴직, 방학하면 복직’은 단순히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기도 하다. 정교사 대신 고용된 기간제 교사는 결원을 보충한다는 개념으로 고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약을 6개월로 했든 1년으로 했든 정교사가 복귀하면 바로 그만둬야 한다. 새 학기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방학 때는 돈 한 푼 못 버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학교 교감이나 교장은 교사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쓰도록 권장한다. 그러나 교사가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직전에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갑자기 아이를 봐줄 수 있게 됐다며 복직을 신청하면 핑계인 줄 뻔히 알면서도 받아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수오지심(羞惡之心) 측은지심(惻隱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같은 거창한 말을 하기 전에 염치가 교육의 시작이다. 자기부터 얌체 짓 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슨 염치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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