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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팝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 ‘힙팝’을 통해 글로벌 걸그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5일 서울 강남구 엘리에나호텔에서 열린 엠넷 ‘언프리티 랩스타: 힙팝 프린세스’ 제작발표회에서 정민석 PD는 프로그램의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0년 전 ‘언프리티 랩스타’가 보여준 실력 중심 경쟁과 당당한 여성 래퍼들의 에너지가 이번 프로젝트에도 반영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힙팝 프린세스’는 2015년부터 세 시즌 동안 이어진 여성 래퍼 리얼리티쇼 ‘언프리티 랩스타’의 확장판이다. 기존의 언프리티 랩스타가 실력파 여성 힙합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이번에는 양국의 세대를 대표할 한일 합작 힙합 그룹을 탄생시키는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여자(아이들) 소연, 다이나믹듀오 개코를 비롯해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참가했던 안무가 리에하타, 일본 가수 겸 배우 이와타 다카노리 등 양국 스타들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016년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3에서 고등학생 래퍼로 등장했던 소연은 “그때는 참가자였는데 이제는 성인이 돼 다시 함께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며 “이번 프로그램만큼은 외모보다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참가자들에게 이를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코는 “참가자들의 실력이 좋아 랩 디렉팅이 수월했다”며 “힙합과 팝이 결합된 새로운 그룹이 탄생한다면 내 음악 인생에서도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작진은 기존 오디션 프로와 차별화되는 점으로 ‘실력’을 꼽았다. CJ ENM과 일본 광고대행사 하쿠호도 합작법인 챕터아이의 황금산 사업담당은 “그동안 핸드 마이크로 ‘생라이브’를 하며 미션을 소화할 수 있는 걸그룹이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엔 본인들이 직접 프로듀싱을 하고 안무를 짜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걸그룹을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이 프로그램엔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이력이나 데뷔 경험이 있는 이들뿐 아니라 명문대 재학생, 치어리딩 댄스 대회 수상자, 전교회장 출신, 자작곡을 보유하고 있는 10대 소녀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참가자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최종 선발된 멤버들은 2026년 챕터아이 소속으로 데뷔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한국신문협회(회장 임채청)가 정부에 “인공지능(AI) 기업의 학습 데이터 공개를 의무화하도록 법에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신문협회는 15일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에 AI가 학습한 데이터를 의무 공개하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의견서에서 “정부가 2026년 1월 시행될 ‘AI 기본법’을 앞두고 하위 법령을 마련 중이나, 공개 의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담고 있지 않아 저작권 보호 및 투명성 확보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협회 등 언론 5개 단체는 지난해 12월 AI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에도 “생성형 AI 사업자가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를 투명하게 밝히고, 저작권자가 열람을 요청할 경우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회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사안을 논의한 뒤 “기본법은 우선 통과시키되, 미비한 부분은 개정안으로 보완하는 게 타당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신문협회는 이에 대해 “AI 기본법 제정 뒤 국회 안팎에서 AI 산업 발전과 저작권자 권리 보호 간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법 개정 제안이 이어지고 있으나, 현재까지 관련 개정 논의는 지지부진한 채 시행령 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협회는 “8월 2일 시행된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법(AI Act)은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하는 사업자가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의 출처를 요약해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저작권 보호와 AI 기술의 투명성 확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측면에서 이 같은 조항을 AI 기본법에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12집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The Life of a Showgirl)’이 발매 첫 주에 400만 장 넘게 팔리며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썼다. 13일(현지 시간) 빌보드에 따르면 미국에서 3일 발매된 이 앨범의 주간 판매량은 400만2000장에 해당하는 앨범 유닛(Album Units)을 기록했다. 1991년 빌보드가 전자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앨범 유닛은 실물 음반 판매량에 스트리밍·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환산해 종합한다. 종전 기록은 2015년 영국 팝스타 아델이 앨범 ‘25’ 발매 당시 기록한 348만2000장이었다. 이번 앨범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18일 기준)에 1위로 데뷔하며, 스위프트는 드레이크와 제이지를 제치고 역대 가장 많은 앨범(15장)이 1위를 차지한 솔로 아티스트라는 기록도 세웠다. 전체로도 비틀스(19장)에 이은 단독 2위다. 스위프트는 2008년 정규 2집 ‘피어리스(Fearless)’를 시작으로 정규 및 재녹음 앨범이 모두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 스위프트는 이번 앨범 수록곡들로 메인 싱글 차트 ‘핫100’도 휩쓸었다. 1위를 차지한 ‘더 페이트 오브 오필리아(The Fate of Ophelia)’를 포함해 앨범에 담긴 12곡이 1∼12위에 올랐다. 다만 지나친 상술로 앨범 판매량을 끌어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위프트의 이번 앨범은 모두 38가지 버전으로 출시됐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12집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The Life of a Showgirl)’이 발매 첫 주에 350만 장 가까이 팔리며 역대 최다 기록을 새로 썼다.13일(현지 시간) 빌보드에 따르면 미국에서 3일 발매된 이 앨범의 주간 판매량은 400만2000장에 해당하는 앨범 유닛(Album Units)을 기록했다. 1991년 빌보드가 전자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앨범 유닛은 실물 음반 판매량에 스트리밍·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환산해 종합한다. 종전 기록은 2015년 영국 팝스타 아델이 앨범 ‘25’ 발매 당시 기록한 348만2000장이었다.이번 앨범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18일 기준)에 1위로 데뷔하며, 스위프트는 드레이크와 제이지를 제치고 역대 가장 많은 앨범(15장)이 1위를 차지한 솔로 아티스트라는 기록도 세웠다. 전체로도 비틀스(19장)에 이은 단독 2위다. 스위프트는 2008년 정규 2집 ‘피어리스(Fearless)’를 시작으로 정규 및 재녹음 앨범이 모두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스위프트는 이번 앨범 수록곡들로 메인 싱글차트 ‘핫100’도 휩쓸었다. 1위를 차지한 ‘더 페이트 오브 오필리아(The Fate Of Ophelia)’를 포함해 앨범에 담긴 12곡이 1~12위에 올랐다. 다만 지나친 상술로 앨범 판매량을 끌어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위프트의 이번 앨범은 모두 38가지 버전으로 출시됐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뇌 속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신경 장애 ‘알렉시티미아’를 지닌 소년 윤재. 어린 시절의 상처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소년 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단절된 두 인물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서울 종로구 NOL 유니플렉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아몬드’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소년의 성장과 화해를 다룬 작품이다. 베스트셀러인 손원평의 동명 소설(2017년)을 원작으로 2022년 초연된 이후 3년 만에 돌아왔다. 남이 다쳐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주변에서 ‘괴물’로 불린다. 다행히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 속에 자랐지만, 길거리에서 벌어진 무차별 흉기 난동으로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된다.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윤재 앞에 어느 날 곤이가 나타난다. 납치, 입양과 파양, 소년원 등을 거친 곤이의 삶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사사건건 부딪치던 두 소년은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무대의 힘은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호흡에서 나온다. 감정이 전혀 없는 윤재와 감정에 파묻혀 사는 곤이가 충돌할 때마다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특히 대사의 상당수가 욕설인 곤이에게 무심하게 대꾸하는 윤재의 대사가 묘미다.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소녀 ‘도라’의 등장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바꾼다. 넘버도 캐릭터에 맞춘 대비가 뚜렷하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윤재의 선율은 절제되고 반복적이다. 반면 통제 불능의 분노를 드러내는 곤이는 격정적인 록 사운드로 표현된다. 다만 심리 묘사에 충실한 원작의 결을 무대에 세세히 옮기다 보니 호흡이 다소 길게 느껴지는 대목도 없진 않다. 이번 시즌은 초연보다 무대의 밀도가 높아졌다. 1000석 규모의 코엑스아티움에서 600석 대의 중형 공연장으로 옮기며 무대를 헌책방 중심으로 압축했다. 12명이던 배우도 8명으로 줄여 배우들이 여러 역할을 소화한다.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한 세심한 연출도 돋보인다. 다른 배우들이 윤재의 감정을 내레이션으로 표현하는 등 ‘관찰자’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번 공연에서 도입된 발광다이오드(LED)는 감정에 따라 색깔이 변하며 전달력을 높인다. 윤재는 배우 문태유, 윤소호, 김리현이 연기한다. 곤이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손명오 역으로 나와 이름을 알린 배우 김건우를 비롯해 윤승우, 조환지가 맡았다. 맑은 감성을 가진 소녀 도라는 김이후, 송영미, 홍산하가 무대에 오른다. 서툴지만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이 모여 따뜻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12월 14일까지.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극심한 혼돈의 시대,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미국 CNN방송 ‘파리드 자카리아 GPS’의 진행자이자 국제 정치 전문가인 저자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근대 400여 년 ‘혁명의 역사’를 파고든 책이다. 근대사의 전환점이 된 주요 혁명을 시간적 흐름에 따라 분석하는 1부와 세계화와 정보, 정체성, 지정학 등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횡적으로 분석한 2부로 나뉜다. 저자는 “혁명은 직선적 진보가 아니라 늘 반발을 동반하는 순환적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근대 세계를 연 네덜란드 혁명은 종교개혁과 해상무역, 금융 혁신이 함께 어우러져 근대 최초로 자유주의를 실험했다는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 갈등과 전쟁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영국 명예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입헌주의를 세웠다는 의의가 있지만, 시민의 정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자유와 평등, 박애를 외친 프랑스 혁명은 공포정치와 나폴레옹 독재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현대를 규정하는 네 가지 혁명도 다뤘다. ‘세계화’는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도록 하며 번영을 가져왔지만 불평등과 보호무역주의를 낳았다. ‘정보 혁명’은 지식과 참여의 문턱을 낮췄지만, 혐오와 음모론 등을 확산시켰다. 인종, 성별, 종교 등 소속 의식을 정치에 내세우는 ‘정체성 혁명’은 권리 확대를 이끌었으나 사회 갈등을 심화시켰다. 소련 붕괴 후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일극 체제가 무너지고 중국과 러시아가 다시 부상한 ‘지정학 혁명’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대결이란 위기를 낳았다. 저자는 변화가 클수록 역풍도 거세진다고 경고하면서도 자유, 존엄, 자율성 같은 가치만큼은 되돌릴 수 없는 진보라고 강조한다. 결국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사회적 안전망과 민주적 제도를 보완하며 역풍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 근대의 초기부터 21세기를 아우르는 혁명을 하나의 흐름으로 조망하면서 혼란스러운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고 미래를 모색하려는 이들에게 통찰을 준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올해 노벨 문학상은 ‘묵시록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사진)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예지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23년 만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현지 라디오를 통해 “매우 기쁘면서도 평온하고, 긴장된다”며 “오늘은 내가 노벨상 수상자가 된 첫째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2월 스웨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선 “상을 받으면 놀라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목이라고? 오늘 스톡홀름의 한 약국에 갔더니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라봤다”고 했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작가는 부다페스트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몽골 등에 체류하며 작품을 썼다.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폐허와 종말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림원은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라며 “그의 세계는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다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국내에도 출간된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는 헝가리 남동부의 버려진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인 소설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체제에 유린당하고 끝내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1994년 헝가리 영화감독인 터르 벨러가 동명의 흑백영화를 제작했으며, 상영 시간이 7시간 반(439분)에 이른다. 2015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영국 작가 머리나 워너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음역을 가진 몽상가적 작가”라며 “겁나고 낯설면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웃긴 장면을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작품이 지닌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했다. 국내에 그의 소설은 ‘사탄탱고’를 비롯해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등 6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번역한 노승영 번역가는 “인류 역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라고 했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소설을 모두 펴낸 출판사 알마의 안지미 대표는 “가장 큰 특징은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 ‘라스트 울프’는 하나의 문장으로 이뤄졌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헝가리 문학 전문가인 김보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은 “서사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무게감이 있고, 탄탄하면서도 깊게 심리를 파고드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노벨 문학상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6억5000만 원)다. 관례에 따르면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올해 노벨 문학상은 ‘묵시록 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에게 돌아갔다.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예지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2002년 케르테스 임레(1929~2016) 이후 23년 만이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현지 라디오를 통해 “매우 기쁘면서도 평온하고, 긴장된다”며 “오늘은 내가 노벨상 수상자가 된 첫째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2월 스웨덴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선 “상을 받으면 놀라울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주목이라고? 오늘 스톡홀름의 한 약국에 갔더니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몰라봤다”고 했다.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작가는 부다페스트대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몽골 등에 체류하며 작품을 썼다. 201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 폐허와 종말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기이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형식으로 담아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한림원은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라며 “그의 세계는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다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를 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2018년 국내에도 출간된 대표작 ‘사탄탱고’(1985년)는 헝가리 남동부의 버려진 집단농장 마을이 배경인 소설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체제에 유린당하고 끝내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과정을 그려냈다. 1994년 헝가리 영화감독인 터르 벨러가 동명의 흑백영화를 제작했으며, 상영 시간이 7시간 반(439분)에 이른다.2015년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인 영국 작가 머리나 워너는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강렬하면서도 독특한 음역을 가진 몽상가적 작가”라며 “겁나고 낯설면서 동시에 소름 끼치도록 웃긴 장면을 만들어 낸다”고 평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작품이 지닌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했다.국내에 그의 소설은 ‘사탄탱고’를 비롯해 ‘저항의 멜랑콜리’(1989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년) 등 6권이 번역 출간돼 있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을 번역한 노승영 번역가는 “인류 역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라고 했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소설을 모두 펴낸 출판사 알마의 안지미 대표는 “가장 큰 특징은 만연체 문장으로, 소설 ‘라스트 울프’는 하나의 문장으로 이뤄졌을 정도”라고 소개했다.헝가리 문학 전문가인 김보국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은 “서사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무게감이 있고, 탄탄하면서도 깊게 심리를 파고드는 작가”라고 설명했다.노벨 문학상 상금은 1100만 크로나(약 16억5000만 원)다. 관례에 따르면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사랑만 있다면 다 괜찮아.”영화 ‘서울의 봄’(2023년)에서 냉혹한 ‘전두광’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황정민(사진)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푸근한 보모 ‘다웃파이어’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이 뮤지컬의 원작은 영국 작가 앤 파인의 소설 ‘마담 다웃파이어’다. 1993년 로빈 윌리엄스(1951∼2014)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프리랜서 성우인 주인공 다니엘은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믿음직스러운 남편은 아니다. 양육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던 아내 미란다는 결국 이혼을 선언한다. 갑자기 아이들과 생이별을 하게 된 다니엘은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할머니로 변장한 뒤 유모로 취업에 성공한다. 뮤지컬은 2021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이듬해 한국에서도 초연됐다. 이후 3년 만에 국내 무대에 돌아왔다.이번 시즌의 가장 큰 화제는 2015년 ‘오케피’ 이후 10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오른 황정민이다. 평소 스크린에서 카리스마 있는 배역을 많이 맡았던 그는 이번에 장난기 가득한 아빠 다니엘과 다정한 유모 다웃파이어를 자연스럽게 오가며 배우로서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했다.특히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서울의 봄’),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베테랑’), “드루와”(‘신세계’) 등 자신이 출연한 영화 명대사 패러디를 선보여 관객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탭댄스, 비트박스 등도 흥미로웠다. 다니엘 역은 황정민 외에도 초연에서 호평받은 정성화, 특유의 재치와 변신 연기로 주목받는 정상훈이 함께 맡았다.무대 위에선 아빠와 할머니를 순식간에 넘나드는 20여 회의 ‘퀵 체인지’가 압권. 아빠에서 할머니로 변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8초. 가면을 빠르게 쓰고 벗을 수 있도록 탄력 밴드와 자석을 활용한 ‘원터치 버클’을 달고, 지퍼를 한 번만 올리면 되는 보디슈트를 입은 덕이다. 듬직한 남자와 고상한 할머니 모두를 연기하는 목소리도 일품이다.극의 톤은 경쾌하지만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초반에는 다니엘의 좌충우돌이 웃음을 이끌지만, 갈수록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의 심리와 변해 가는 가족 관계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어설픔 속에서도 진심이 묻어나는 다니엘의 부정(父情)은 ‘정상 가족만이 행복하다’는 고정관념에서 한발 벗어나게 만든다.곳곳에 배치된 한국식 유머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낯선 이름 ‘다웃파이어’가 만들어진 계기를 “잘생기면, 다 오빠예요”라는 언어 유희로 풀어낸 설정이 대표적이다. 냉철해 보이지만 속내는 감정이 넘치는 아내 ‘미란다’, 다웃파이어의 변신을 도와주는 명품 조연 ‘프랭크’와 ‘안드레’ 같은 인물들이 작품에 활력을 더해준다.세대가 함께 웃고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코미디로서의 장점이 뚜렷한 작품이다. 12월 7일까지.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길게는 열흘까지 이어지는 한가위 연휴가 한창이다. 이처럼 긴 연휴를 더 풍성하게 보내고 싶다면 극장 나들이만큼 좋은 선택은 없다. 영화도 좋지만 화려한 무대와 음악, 개성 넘치는 서사로 무장한 뮤지컬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과 함께 웃음을 나누는 코미디부터 내면의 성장을 섬세하게 탐구한 작품,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경쾌하게 녹여낸 창작극까지. 다채로운 무대가 추석의 여유를 더욱 특별하게 채워준다.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따뜻한 코미디다. 할리우드 배우 로빈 윌리엄스(1951~2014)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1993년)를 무대로 옮긴 작품으로, 이혼 뒤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아빠 ‘다니엘’이 유모 ‘다웃파이어’로 변장해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10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복귀한 배우 황정민이 다니엘 역을 맡았고, 여장을 찰떡같이 소화한 정상훈과 2022년 초연에서 호평을 받은 정성화가 함께 캐스팅돼 눈길을 끈다. 아빠와 할머니를 오가는 20여 차례의 ‘퀵 체인지’와 유쾌한 웃음, 가족애의 따뜻함까지 두루 갖춘 작품이다. 12월 7일까지.스웨덴의 팝 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을 엮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맘마미아!’는 이달 25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결혼을 앞둔 딸 ‘소피’가 엄마 ‘도나’ 몰래 친아빠를 찾기 위해 나서는 여정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댄싱 퀸(Dancing Queen)’, ‘허니 허니(Honey, Honey)’ 등 22곡에 이르는 아바의 히트곡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엄마와 딸 사이의 애틋한 감정선이 극에 잘 드러나, 모녀 관객들이 함께 보면 좋을 듯하다.7월부터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선보이고 있는 ‘위키드’ 내한 공연은 명절 스트레스를 날려줄 만한 블록버스터급 뮤지컬. 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원작으로 초록 피부로 차별받던 엘파바와 모두에게 사랑받는 글린다가 마법학교에서 만나 갈등과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로도 유명해진 ‘파퓰러(Popular)’와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 등 인기 넘버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 특히 엘파바의 공중 부양 같은 무대 특수효과는 뮤지컬만의 묘미를 더한다. 공연은 26일까지.발랄함을 넘어 몰입할 만한 서사를 원한다면 지난달 23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레드북’이 제격이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런던을 배경으로 사회적 편견에 맞서 글을 쓰는 여성 작가 안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옥주현·아이비·민경아 등 뮤지컬계 톱클래스 여배우들이 안나로 분해 각기 다른 색깔의 무대를 선보인다. 성 역할과 사회적 규범 같은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재치 있고 직관적인 대사와 경쾌한 음악으로 풀어냈다. 12월 7일까지.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NOL 유니플렉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아몬드’는 손원평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무대로 옮겼다. 뇌 속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가 또래 ‘곤이’, 자유로운 소녀 ‘도라’와 만나며 변화해가는 성장기를 그린다. 청소년기의 분노와 상처, 타인과의 소통의 어려움을 섬세하게 풀어내지만 단순한 청소년극을 넘어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울림을 전한다. 12월 14일까지.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거북정’으로 유명한, 400년 넘게 이어진 ‘보성 봉강리 영광 정씨 고택’이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전남 보성에 있는 봉강리 영광 정씨 고택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영광 정씨 고택은 정손일(1609∼?)이 봉강리에 처음 터를 잡은 뒤 400여 년간 이어져 내려왔다. 한국 풍수지리의 시조인 도선국사(827∼898)가 설명한 ‘영구하해(靈龜下海·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바다로 내려오는 형국)’ 중 거북 머리에 해당하는 길지로 지어져 ‘거북정’으로도 불린다. 해당 고택은 호남지역 민가의 특징이 잘 보존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안채는 ‘요(凹)’ 자 모양으로 뒤쪽에 사적인 공간과 수납 공간을 뒀는데, 보성 일대의 특징 및 사회상을 잘 반영했다. 국가유산청은 “영광 정씨 고택은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 및 근대기 민족운동 등의 사건 현장을 담고 있는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영광 정씨 고택은 지정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최종 확정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사카모토 선생님의 음악을 연주하다 보면 ‘이분은 나와 다른 중력을 가졌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요.”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한주헌 씨(45)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1952∼2023)의 음악을 “땅 끝까지 관객을 빨아들이는 힘이 너무 크다”고 표현했다. 한 씨는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사카모토 류이치 2주기 트리뷰트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맡는다. 첼리스트 주연선, 바이올리니스트 주연경과 함께 꾸미는 트리오 무대다. 사카모토 트리뷰트 공연은 2023년 3월 타계한 사카모토에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제천영화음악상’을 수여한 게 계기가 됐다. 이듬해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수원, 성남 등을 거쳐 여섯 번째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국내 팬들이 고인의 음악을 만나는 ‘단비 같은 공연’으로 자리잡았다. 한 씨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사카모토의 음악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기분이 든다”며 “그의 음악이 관객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 거장이던 사카모토는 영화 ‘마지막 황제’(1987년)로 아시아인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도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년)의 주제가로 쓰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런스’ 등 많은 곡이 사랑받았다.“선생님의 음악은 동양적인 선율과 신비로운 화성이 어우러져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저는 정신없이 일을 해치우다가도 선생님의 음악을 들으면 시계가 천천히 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 씨는 이번 공연을 위해 일부 곡은 새로 편곡했다. 그는 “피아노 솔로곡인 ‘오퍼스(Opus)’를 바이올린, 첼로 솔로를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트리오로 만드는 등 원곡의 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러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선화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 씨는 영화음악에 매료돼 ‘말죽거리 잔혹사’ ‘마파도’ 등 2000년대 영화 약 40편의 음악 작곡에 참여했다. 뒤늦게 지휘에 매력을 느껴 2009년 독일 만하임 음대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전공했다. 2019년부터 오스트리아 린츠 주립극장에서 상임지휘자로 활동해 왔으나, 지난해부턴 사카모토 트리뷰트 콘서트를 통해 피아니스트로서 다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올가을엔 아예 사표를 내고 한국에서 활동을 늘리기로 했다. 한 씨는 “사카모토의 자서전을 읽으며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그의 모습에 공감했다”고 전했다. 이번 콘서트에선 ‘레인(rain)’ 등 사카모토의 대표곡은 물론이고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와 같은 골수 팬들이 좋아하는 숨겨진 명곡까지 18곡을 들려준다. 한 씨의 ‘원 픽(One Pick)’은 피아노 솔로곡 ‘에너지 플로(Energy Flow)’.“들을 때마다 다른 공간으로 데려다 주는 듯한 차분함을 지닌 곡이에요. 사카모토의 음악이 지닌 깊은 울림과 따뜻한 위로가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사카모토 선생님의 음악을 연주하다 보면 ‘이 분은 나와 다른 중력을 가졌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요.”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한주헌 씨(45)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1952~2023)의 음악을 “땅 끝까지 관객을 빨아들이는 힘이 너무 크다”고 표현했다. 한 씨는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사카모토 류이치 2주기 트리뷰트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맡는다. 첼리스트 주연선, 바이올리니스트 주연경과 함께 꾸미는 트리오 무대다.사카모토 트리뷰트 공연은 2023년 3월 타계한 사카모토에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제천영화음악상’을 수여한 게 계기가 됐다. 이듬해 롯데콘서트홀을 시작으로 수원, 성남 등을 거쳐 여섯번째로 열리는 이번 공연은 국내 팬들이 고인의 음악을 만나는 ‘단비 같은 공연’으로 자리잡았다. 한 씨는 “무대에 오를 때마다 사카모토의 음악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기분이 든다”며 “그의 음악이 관객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 거장이던 사카모토는 영화 ‘마지막 황제’(1987년)로 아시아인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도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년)의 주제가로 쓰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등 많은 곡이 사랑받았다.“선생님의 음악은 동양적인 선율과 신비로운 화성이 어우러져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저는 정신없이 일을 해치우다가도 선생님의 음악을 들으면 시계가 천천히 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한 씨는 이번 공연을 위해 일부 곡은 새로 편곡했다. 그는 “피아노 솔로곡인 ‘오퍼스(Opus)’를 바이올린, 첼로 솔로를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트리오로 만드는 등 원곡의 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러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선화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 씨는 영화음악에 매료돼 ‘말죽거리 잔혹사’, ‘마파도’ 등 2000년대 영화 약 40여 편의 음악 작곡에 참여했다. 뒤늦게 지휘에 매력을 느껴 2009년 독일 만하임 음대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전공했다. 2019년부터 오스트리아 린츠 주립극장에서 상임지휘자로 활동해 왔으나, 지난해부턴 사카모토 트리뷰트 콘서트를 통해 피아니스트로서 다시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올가을엔 아예 사표를 내고 한국에서 연주 활동을 늘리기로 했다. 한 씨는 “사카모토의 자서전을 읽으며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그의 모습에 공감했다”고 전했다.이번 콘서트에선 ‘레인(rain)’ 등 사카모토의 대표곡은 물론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와 같은 골수 팬들이 좋아하는 숨겨진 명곡까지 18곡을 들려준다. 한 씨의 ‘원 픽(One Pick)’은 피아노 솔로곡 ‘에너지 플로우(Energy Flow)’.“들을 때마다 다른 공간으로 데려다 주는 듯한 차분함을 지닌 곡이에요. 사카모토의 음악이 지닌 깊은 울림과 따뜻한 위로가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직접 와서 본 한국은 푸르고 깨끗한 나라네요. 사람들도 친절해서 또 놀러오고 싶어요.”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 남자친구와 함께 에스토니아에서 온 제인 리 씨(29)는 한국이 무척 맘에 든 눈치였다. 이들은 이날 한국관광공사가 한류에 호감을 가진 외국인들에게 지역 관광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부스 ‘마이 케이메모리(MY K-Memory)’에서 각 도시의 랜드마크들을 담아낸 엽서에다 컬러링 체험을 했다. 서울 여행이 끝나면 부산에 들를 예정인 두 사람은 “남은 여행 일정이 너무 기대된다”고 전했다. 26∼28일 중앙박물관에 마련된 부스 ‘마이 케이메모리’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리 씨가 체험한 ‘엽서 컬러링’을 비롯해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개최지인 경주 등 5개 도시 랜드마크를 활용한 ‘디지털 타투 체험’, 지역 고유의 향을 담은 ‘종이 방향제 만들기’ 등 체험형 콘텐츠들의 반응이 좋았다. 특히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 등장한 더피를 닮은 호랑이를 활용해 만든 키링과 전통 매듭 팔찌는 원하는 이가 무척 많았다. 이날 현장에선 20, 30대 관람객들이 친구들과 디지털 타투를 찍고 휴대전화로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은 엽서를 색색으로 칠하며 즐거워했다. 한국관광공사의 곽재연 한류콘텐츠팀장은 “최근 ‘케데헌’ 인기로 중앙박물관에 외국인 방문이 늘어난 걸 계기로 지역 관광 홍보 부스를 마련했다”라며 “K콘텐츠의 파급력을 지역 관광과 연결해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한국 공연 관광을 대표하는 축제인 ‘2025 웰컴대학로’의 야외 공연 행사인 ‘웰컴프린지’도 27, 28일 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웰컴프린지에선 올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받은 지역 뮤지컬 ‘영월 장릉 낮도깨비’ 등 우수 작품들이 공연됐다. 곽 팀장은 “그동안 웰컴프린지는 명동이나 대학로 등에서만 개최했는데, 올해 처음 중앙박물관에서도 한류 부스와 연계해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9회 차를 맞은 웰컴대학로는 외국인에게 국내 공연콘텐츠를 소개하는 축제. 11월 2일까지 열리며, 공모를 통해 선발한 한국의 매력적인 공연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외국어로 옮긴 공연 대본을 인공지능(AI) 안경으로 볼 수 있는 ‘스마트 씨어터’도 처음으로 도입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K컬처에 대한 관심이 지역 관광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한류 케이패스’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K팝과 드라마, 전통문화 체험 비용을 할인해 준다. 2017년부터 주요 K팝 콘서트와 연계해 선보인 방한 관광 상품들은 지금까지 누적 모객이 26만 명을 넘었다. 7월 5일부터 청와대 사랑채 1층 전시실에서 선보인 전시 ‘K드라마, 러브 챕터’도 반응이 뜨겁다. ‘사랑의 불시착’ 등 인기 드라마를 테마로 한 몰입형 체험 전시다. 24일까지 누적 방문객이 10만4567명에 이른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어느 날 심장이 아파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의사는 심장이 아픈 원인을 두 가지로 추정한다. 시나리오 A가 맞다면 당장 심장 수술을 해야 한다. B가 맞다면 약물만 투입해도 된다. 문제는 의사도 어떤 방향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국 의사는 환자에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민주적 접근법으로, 도시의 모든 사람에게 어떤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게 좋을지 투표해 달라고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의학 지식이 풍부한 의사들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방법이다. 현대 사회를 사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두 번째를 택할 게 뻔하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는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선택하는 게 위험을 줄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넥스트 씽킹’은 이처럼 복잡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문제해결형 실전 사고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와 세계적 철학자, 심리학자가 10년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진행한 강의 ‘원대한 사상’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책으로 정리했다. 이들은 직관 대신 과학에 기반한 사고법이 우리의 의사 결정을 합리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제 마우스 몇 번 클릭하면 웬만한 답은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넘쳐나는 허위 정보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기 위한 방법이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응급환자의 생사를 가를 중대한 결정을 다수결이 아닌 전문가에게 위임해 판단하자는 것도 이런 생각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책엔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과학적인 사고방식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확률론적 사고’다. 무언가를 100% 예측하는 대신, 숫자를 부여해 정량화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진이 일어날 것 같다”는 막연한 문장보다, “향후 30년 안에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진도 6.7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2퍼센트”란 문장이 훨씬 많은 정보값을 담고 있다. 책에 따르면 확률론적 사고는 불완전한 정보를 생산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을 지녔다. 나사가 망가질까 봐 막연히 두려워하며 다리를 건설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사가 빠질 확률을 계산해 이를 극한으로 낮춘 뒤 다리를 건설하는 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데이터 속 의미와 잡음을 가려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 복잡한 현실을 쪼개 근사치를 구하는 ‘페르미 추정’ 등 어려워만 보였던 과학을 현실 사고에 접목시키는 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물론 현실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런 사고방식만이 해답이 될 순 없다. 그래서 저자들은 인류의 난제들을 언젠간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적 낙관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후 위기와 인공지능(AI), 정치적 양극화 등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당장은 해법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계의 오랜 난제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400여 년의 세월이 쌓여 결국 한 수학자에 의해 증명된 것처럼, 실패를 단서 삼아 문제를 수정하려는 끈기가 필요할 수 있다. 책에서 제시하는 전략은 일상 속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실용적 도움을 주는 중요한 ‘무기’가 될 만하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신념을 버려야만 살아남는 시대. 그러나 끝내 내려놓지 못한 자들. 10일 서울 종로구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개막한 초연 창작 뮤지컬 ‘데카브리’는 1825년 러시아 청년 장교들이 농노 폐지와 입헌군주제 도입 등을 주창했던 ‘데카브리스트의 난’이 벌어진 직후가 배경이다. 극은 당시 감시가 일상화된 러시아의 어둡고 차가운 공기를 선명히 드러낸다. 이야기의 축은 미하일, 아카키, 알렉세이라는 세 청년의 삼각 구도다. 차르 비밀경찰인 미하일은 한때 문학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던 전직 작가.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준비하던 시절 농노들을 계몽시키려 소설 ‘말뚝’을 쓰기도 했지만, 반란이 실패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목도한 뒤 사상을 꺾고 10여 년간 러시아 왕정에 복무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부하 아카키의 책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말뚝’을 다시 발견한다. 농노 출신인 아카키는 서툴지만 확고하다. 그는 ‘말뚝’을 널리 퍼뜨려 억압받는 이들을 일깨워야 한다고 믿고 움직인다. 미하일은 소설을 금서로 묶고 유통을 막지만, 아카키는 “그 글은 단순한 사상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문학”이라며 맞선다. 미하일은 아카키의 무모함 속에서 꺼지지 않은 자신의 불씨를 보게 된다. 알렉세이는 미하일의 냉정한 수사를 동경하는 동료다. 개인적 이유로 농노를 혐오하는 그는 말뚝과 재회한 뒤 흔들리는 미하일의 기색을 감지하고 그의 뒤를 밟으며 균열의 정점으로 다가간다. ‘데카브리’의 힘은 세 주인공에 대한 입체적 표현에서 나온다. 살아남기 위해 신념을 접었지만 다시 각성하는 미하일과 혁명가의 얼굴을 감추고 일상을 살아가는 아카키, 우정이 유일한 약점이 되는 알렉세이까지. 각자의 선택이 맞물리며 긴장감을 선사한다. 물론 19세기 러시아라는 배경은 다소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감시와 지배 속에서도 빛을 내는 문학’이란 보편적인 주제는 울림을 준다. 무장해 맞선 이들, 교육과 글로 변화를 시도한 이들, 생존을 위해 순응하거나 침묵한 이들이 공존했던 일제강점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무대는 절제미가 돋보인다. 과도한 장치 대신 조명과 정지된 호흡으로 ‘감시의 시선’을 재현했다. 주인공들이 신념의 대립을 드러내며 함께 부르는 넘버들은 서정성과 긴박함을 오간다. 키보드와 기타, 베이스, 드럼 4인조 라이브 밴드 역시 풍성하게 다가온다. 다만 넘버들이 한 번 들어서는 귀에 꽂히지 않아 난도가 조금 높다. 11월 30일까지.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방탄소년단(BTS)의 ‘동생 그룹’인 신인 보이그룹 ‘코르티스’(사진)가 데뷔 앨범으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15위에 올랐다. 24일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코르티스의 데뷔 앨범 ‘컬러 아웃사이드 더 라인스(COLOR OUTSIDE THE LINES)’로 이번 주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5위에 올랐다. 지난달 18일 공식 데뷔한 코르티스는 하이브의 레이블 빅히트뮤직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남성 아이돌 그룹이다. 코르티스의 이번 빌보드 성적은 2021년 이후 데뷔한 K팝 보이그룹 가운데 가장 순위가 높은 기록이기도 하다. 기존에는 프로젝트 그룹 ‘제로베이스원’의 정규 1집 ‘네버 세이 네버(NEVER SAY NEVER)’가 기록한 23위가 가장 높았다. 한편 코르티스 데뷔 앨범의 인트로 곡인 ‘고!(GO!)’는 빌보드 음원 차트 ‘글로벌 200’에 180위로 진입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국민 화가’ 이중섭(1916∼1956·사진)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소와 아동’이 24일 경매에서 35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 지금까지 거래된 이중섭 작품의 경매가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이날 서울 강남구 케이옥션 본사에서 열린 9월 경매에서 ‘소와 아동’은 시작가 25억 원에 출품돼 35억2000만 원에 낙찰됐다. 기존 이중섭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2018년 서울옥션에서 47억 원에 낙찰된 ‘소’로, 이번 작품이 기존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 바 있다. ‘소와 아동’은 2021년 서울옥션에서 15억5000만 원에 낙찰된 ‘가족’을 뛰어넘어 이중섭의 작품 중 두 번째로 경매가가 높은 작품이 됐다. 낙찰자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1954년 제작된 ‘소와 아동’은 가로 64.5cm, 세로 29.8cm 크기의 화폭에 소와 아이가 뒤엉켜 노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중섭 생전에 개최했던 1955년 미도파 화랑 전시에서 공개된 이후 한 번도 시장에 나온 적이 없다. 올 6월 별세한 정기용 전 원화랑 대표가 70년간 소장해 왔다. 하지만 1972년 현대 화랑 유작전,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등 이중섭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중요한 전시에는 빠짐없이 등장할 만큼 가치가 높게 인정돼 왔다. 현재 이중섭의 ‘소’ 연작은 10점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미술관이나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경매에 나올 수 있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이번 작품은 ‘소’ 연작 중에서도 독특한 서사와 분위기가 일품으로 꼽힌다. 특히 아이와 소가 엉킨 모습은 생명력과 희망, 인간과 자연의 원초적 교감을 상징한다는 평이 나온다. 격동적인 붓질이 압권이며 갈색과 회색, 연분홍이 섞인 불투명한 색조는 따스하면서도 절박한 정서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 126점의 작품이 출품된 이번 경매에선 이 밖에도 박수근(1914∼1965)의 1959년 작품 ‘산’이 12억 원에 낙찰됐다. 이 작품은 황갈색과 회백색을 중심으로 산을 표현한 풍경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방탄소년단(BTS)의 ‘동생 그룹’인 신인 보이그룹 ‘코르티스’(사진)가 데뷔 앨범으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15위에 올랐다.24일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코르티스의 데뷔 앨범 ‘컬러 아웃사이드 더 라인즈(COLOR OUTSIDE THE LINES)’로는 이번 주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5위에 올랐다. 지난달 18일 공식 데뷔한 코르티스는 하이브의 레이블 빅히트뮤직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남성 아이돌그룹이다.코르티스의 이번 빌보드 성적은 2021년 이후 데뷔한 K팝 보이그룹 가운데 가장 순위가 높은 기록이기도 하다. 기존에는 프로젝트 그룹 ‘제로베이스원’의 정규 1집 ‘네버 세이 네버(NEVER SAY NEVER)’가 기록한 23위가 가장 높았다.한편 코르티스 데뷔 앨범의 인트로곡인 ‘고!(GO!)’는 빌보드 음원 차트 ‘글로벌 200’에 180위로 진입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조선시대에도 프랑스 요리를 하는 셰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웹소설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이런 현대적 상상력을 덧입힌 작품이다. 역사와 판타지를 섞은 신선한 발상으로 최근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주간 1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공연계에서도 대중에게 비교적 가깝고 친근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흥미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들이 연이어 무대에 오르고 있다. 서양 역사나 인물을 주로 내세웠던 기존 흐름을 벗어나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하되 타임루프와 판타지 같은 장치를 가미해 새롭게 풀어낸 ‘팩션’(팩트+픽션) 뮤지컬이 주목받고 있다. ● 조선시대와 타임슬립의 결합이달 5일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에서 개막한 록 뮤지컬 ‘쉐도우’는 1762년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임오화변’을 모티브로 한다. 사도세자가 시간 여행을 해 어린 영조를 다시 만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 타임슬립물이다.극은 냉혹한 군주가 아닌, 두려움과 외로움에 짓눌린 소년 영조와 마주한 사도세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간다. 사도세자가 실제로 읽었다는 기록이 있는 경전인 ‘옥추경’이 타임슬립의 매개로 등장해 흥미를 더한다. 뒤주 역시 단순한 형벌 도구가 아니라 시간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통로로 설정됐다. 특히 뒤주 아래에 카메라를 설치해 관객들이 뒤주 안 사도세자의 표정을 볼 수 있도록 연출했다.EMK뮤지컬컴퍼니가 12월 2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한복 입은 남자’도 조선시대 사건에 상상력을 결합한 사례다. 이상훈 작가의 동명 장편소설이 원작으로, 세종의 총애를 받던 과학자 장영실이 가마가 부서진 사고로 인해 문책을 받은 뒤 갑자기 기록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사실에 주목하며 “혹시 장영실이 유럽으로 건너가 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난 게 아닐까”라는 상상을 펼친다.뮤지컬 무대는 1막 조선, 2막 유럽으로 나뉘어 전혀 다른 두 장소를 넘나든다. 모든 배역이 1인 2역으로 짜였는데 세종과 방송 PD 진석, 장영실과 학자 강배를 각각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 배역으로도 현재와 과거를 잇는 셈이다. K팝과 한국사가 결합한 색다른 시도도 있다. 11월 13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개막하는 가족극 ‘조선 마법사관 진준’은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형제 유튜버이자 K팝 듀오인 ‘진’과 ‘준’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정체불명의 DM을 받고 조선 마법사관부에 소환되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가로막으려는 비밀 조직과 맞서 싸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의 주요 인물들이 자연스레 등장하게 된다.● “정공법 대신 상상력으로 현대에 소환” 최근 조선시대를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이 잇따라 주목받는 것은 창작의 무게중심이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예전엔 서양 고전이나 역사에서 빌려온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지만, 이제는 우리의 역사와 인물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조(時調)가 금지된 가상의 조선에서 백성들이 비밀 시조단 ‘골빈당’을 만들어 연대하는 과정을 그려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최근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진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연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해외 영웅이나 서양 인물을 무대에 올려야 관객이 공감할 거라는 사대주의도 있었지만, 국내 뮤지컬 수준이 발전한 현재는 우리의 역사를 활용한 창작 흐름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는 “특정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정공법으로 기록하는 대신 상상력으로 새롭게 현대에 소환하는 방식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디테일을 드러내도록 한다”며 “이런 흐름이 한국 뮤지컬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