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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3일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 응원단 등 300여 명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남북 대화 기조를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지난달 1일 신년사 발표 후 전개하고 있는 평창 드라이브를 넘어 남북 간 교류 확대를 구체적이고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김정은, 한국에 이례적 감사 표시까지 김정은은 이날 김여정 등 고위급 대표단의 한국 방문 결과를 보고받고 “이번 올림픽 경기대회를 계기로 북과 남의 강렬한 열망과 공통된 의지가 안아온 화해와 대화의 좋은 분위기를 더욱 승화시켜 훌륭한 결과들을 계속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남북교류 발전에 대한 실무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은 또 “김여정 동지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 고위인사들과 접촉 정형(상황), 이번 활동기간에 파악한 남측의 의중과 미국 측의 동향을 자상히(상세히) 보고했다”고 전했다. 2011년 12월 집권한 뒤 북한 땅을 벗어난 적이 없는 김정은이 여동생을 통해 서울과 평창에서 파악한 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동향을 보고받았다는 것. 이어 신문은 “(김정은이 김여정의 보고에) 만족을 표시했고 남측이 우리 측 성원들의 방문을 각별히 중시하고 온갖 성의를 다하여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하면서 사의(謝意)를 표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한국에 감사를 표한 것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조문에 사의를 표한 후 처음이다. 이런 내용은 노동신문 1면 톱기사로 실렸다. 10일부터 나흘 연속 남북교류 기사가 노동신문 1면을 장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정은이 평창을 계기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쥐어보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진짜로 대화 기조를 이어가려는 것인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을 잠시 벗어나려는 것인지는 지난달 고위급회담의 결과물 중 하나인 남북 군사회담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군사회담에서 북한이 4월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무조건 중단이나 연기를 막무가내로 요구한다면 다시 남북, 한미 관계가 복잡한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고 말했다. ○ 靑, “속도조절하되 남북, 북-미 대화 원샷 추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에 대해 “미국이 ‘최대압박(maximum pressure)’과 함께 ‘관여(engagement)’ 정책을 취하겠다고 밝힌 것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이 평창 개회식을 마치고 11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할 것이며 이게 최대 압박과 관여 정책”이라고 말한 것을 언급하면서다. 청와대는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를 병행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인도적 교류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비핵화 협상으로 나가려는 구상이었지만 이젠 한 테이블에 다 놓고 협의하면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미국의 반응이 아직 유동적인 만큼 속도를 조절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방침이다. 한편 정부는 14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고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지원을 위한 남북협력기금의 집행 규모를 정할 예정이다. 본보 확인 결과 23억 원이 기금에서 나갈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hic@donga.com·문병기·신나리 기자}

10일 오전 11시 청와대 본관 접견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은색 007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김여정은 가방에서 파란색 파일을 꺼내든 뒤 한시도 몸에서 이를 떼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하자 핸드백을 떨어뜨리는 등 긴장된 모습을 보인 김여정은 오빠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가 담긴 파란색 파일을 전달하며 “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라고 말했다. 한국을 찾은 지 하루가 지난 뒤에야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힌 것. 청와대는 이때까지 김여정이 김정은의 특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방한 후 거의 발언을 하지 않았던 김여정은 이날 접견과 만찬에선 전권을 위임받아 파견된 특사답게 북한 측 대화를 주도했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께서 통일의 새 장을 여는 주역이 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당장 통일을 원치 않는다”며 북핵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1928년 2월 4일생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제 어머니가 1927년생이다. 아흔을 넘기셨는데 뒤늦게나마 생신 축하한다”고 했다. 김영남이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건재했으면 한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젊었을 때 개마고원에서 한두 달 지내는 것이 꿈이었다. 저희 집에 개마고원 사진도 걸어놨었다”고 화답했다. 부모가 함흥 출신 실향민인 문 대통령은 김영남이 함흥 식해 얘기를 꺼내자 “저도 매일 식해를 먹는다. 함경도는 김치보다 식해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김영남은 “역사를 더듬어 보면 문씨 집안에서 애국자를 많이 배출했다”며 “문익점이 붓대에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와 인민에게 큰 도움을 줬다. 문익환(목사)도 같은 문씨냐”고 묻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의 면담은 2시간 40분 동안 진행됐다. 이날 오찬에는 여수 갓김치, 북한 백김치, 제주의 한라산 소주 등이 올랐다. 청와대는 “한반도 8도의 음식이 메뉴에 다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정은의 서기실장(비서실장) 출신인 김창선은 김여정을 밀착 수행하며 이날 문 대통령 접견과 오찬에 동행했다. 김창선은 2000년 9월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의 방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접견하기도 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일본 정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한 데 대해 “완전한 양동(陽動)작전”이라며 경계하고 있다.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방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은 10일 기자들에게 “북한의 핵미사일 정책이 바뀌는 것이 (방북의) 대전제”라며 “핵미사일 개발 포기를 끄집어내지 못하는 한 방북하면 안 된다고 한국에 강하게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1일 아사히신문은 이 같은 시각이 일본 정부만의 것이 아니라 미국과 공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미일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9일 평창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 직후 미국 측 요청으로 급히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만났으며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이 주최하는 리셉션 장소로 가는 자신의 차에 아베 총리를 태우고 향후 대책을 협의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이 이상 북한에 경도되지 않도록 미국과 일본이 연대해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고립이 심해진 북한이 유화 공세를 펴는 의도는 미국 측에서 한국을 떼어내 자국에 대한 포위망을 붕괴하려는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에게 ‘조기에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신문은 “정상회담은 미국 등과 조정해야 함은 물론이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 효과를 손상하는 행동은 철저히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한반도 비핵화로 연결되지 않는 회담은 의미가 없다. 북-미 대화 중개라는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는 문 대통령의 태도에서 위험함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한편 청와대는 10일 브리핑에서 전날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를 요구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은 “아베 총리가 ‘올림픽 이후가 고비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이에 문 대통령은 ‘이 문제는 우리의 주권의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다. (아베) 총리께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 내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대북 강경기조에 편승해 한국을 압박하면서 동북아 내 군사적 영향력 확대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 받은 정부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축소나 재연기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해 아베 총리의 발언에 공개 반박하고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문병기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을 제안하고 친서(親書)를 통해 남북 관계의 개선을 촉구했다. 청와대는 방북 요청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김정은의 제안에 대한 답신을 전달할 대북특사 파견을 검토할 방침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1일 “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으로 ‘평창 모멘텀’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사전에 여건을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상회담 등) 만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방북을 추진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전화 통화도 추진할 방침이다. 김정은의 특사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1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접견 및 오찬을 하고 “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화답하면서도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의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친필 사인이 담긴 친서에는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은 11일 문 대통령과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한 뒤 김정숙 여사에게 “문 대통령과 꼭 평양을 찾아오세요”라고 했다. 직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만찬에서도 건배사로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을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하는 등 이날만 공개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방북을 재차 요청했다. 김정은이 이번 김여정 특사 카드로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를 완화하고 숨통을 틔우기 위해 ‘풀 베팅’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이날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대표단을 환송하며 “잠시 헤어지는 거고, 제가 평양을 가든 또 재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3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선 ‘코피 터뜨리기’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부터 설득해야 한다. 1, 2차 정상회담과는 달리 워싱턴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실전 배치를 눈앞에 둔 북한과 선제타격을 불사하는 미국을 동시에 설득해야 하는 3차 남북 정상회담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외교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 방북 초청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난감한 기류다. 백악관은 10일(현지 시간)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은 비핵화와 함께 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논평을 내놨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함께 이뤄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따로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을 상기시킨 셈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대북 군사옵션까지 적극 검토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김정은의 제의를 받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 언급했던 그 ‘여건’을 만들어 나갈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펜스, “한미일의 대북 압박 공조 빈틈없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과거 두 차례와 달리 북핵이 완성 단계에 있기 때문에 회담 여건을 마련하기가 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미국에 이런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며 어떻게든 평창 모멘텀을 이어가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10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쇼트트랙을 관람하며 대화를 나눈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는 당초 예정에 없던 일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펜스 부통령과 경기를 관람하면서 다양하고 깊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김여정 등 북측 고위급 대표단 방남 결과를 설명하는 한편 한미 공조에 기반을 둔 향후 대응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주미 대사관 라인을 통해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에서부터 김여정 등에 대한 제재를 푸는 과정을 면밀히 조율해 온 만큼 남북 정상회담 역시 실시간으로 협의하며 회담 조건을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남북 대화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한미일 공조를 기반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계속 끌어올릴 방침이다. 사흘간의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펜스 부통령은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경제적 외교적으로 계속 고립시킬 필요성에 대해 미국과 한국, 일본은 빛 샐 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 야욕을 버리도록 압박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이뤄져야만 할 일들을 계속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을 진퇴양난에 빠뜨렸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지 않은 채 우리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에 집착해 한미 동맹이 손상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치전문 매체 액시오스는 “미국 재무부가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를 예고한 시점에서 김정은이 문 대통령을 초대했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제안을 달갑지 않게 보고 있을 것”이라고 썼다. 워싱턴포스트(WP)도 “이번 초대는 김정은 정권의 핵 프로그램 포기를 위해 ‘최대의 압박을 해 온 트럼프 행정부에 실망을 안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북한과 관계를 맺는 것을 말려 왔는데 이번 제안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군사 동맹인 미국으로부터 한국을 분열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문 대통령이 미국과의 의견차를 각오하고 정상회담을 추진할지, 한미관계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운명을 걸지 진퇴양난의 딜레마를 북한이 선사했다”고 썼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미동맹이 강하게 유지된다는 걸 전제로 북한에 대한 관여정책은 꼭 필요하다”며 “미국이 현 시점에서 남북 대화를 거부할 명분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관여정책은 북한이 핵 포기 등의 호혜적 의지를 보일 때 가능한 것인 만큼 그런 전제가 없는 한 제재의 강도를 낮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문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와 남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놓고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9일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서 1시간 동안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베 총리의 방한은 2015년 11월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등 과거사 문제는 예상을 깨고 문 대통령이 먼저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수차례 밝혔듯이 역사를 직시하면서도 총리님과 함께 지혜와 힘을 합쳐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가 대 국가의 합의로 정권이 바뀌어도 지켜야 한다는 게 국제 원칙”이라고 공세를 폈다. 이어 “일본은 그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약속을 지켜온 만큼 한국 정부도 약속을 실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외교상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북한은 평창 올림픽 기간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북한의 ‘미소 외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하게 우려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가 비핵화를 흐린다거나 국제공조를 흩뜨린다는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며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가 결국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 일본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두 정상이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 원칙은 공감하지만 어렵게 얻은 계기인 만큼 대화 분위기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정상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발표 20주년인 올해 양국 간 미래지향적 발전의 비전을 담은 새 청사진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또 지난해 한일 양국이 합의한 셔틀외교를 본격화하기로 해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조만간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이 열린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 2층. 주최국 대표인 문재인 대통령은 오후 5시 17분부터 리셉션장 앞에서 개회식에 참석한 외국 정상급 인사들을 악수로 맞으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환히 웃는 문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만찬장에 입장했다. 하지만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기념촬영이 끝난 오후 5시 53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분 가까이 기다리다가 오후 6시 11분 만찬장에 입장했다. 문 대통령의 옆자리에는 펜스 부통령 부부의 명패가 놓여 있었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이 만찬장에 들어선 직후에야 행사장에 나타났다. 만찬장에서 문 대통령과 김영남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가운데 두 사람만 따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7일 일본에서 회담을 가진 지 불과 이틀 만에 다시 한번 끈끈한 미일 공조를 과시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리셉션 환영사를 마치고 잠시 만찬장을 빠져나와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가 있는 다른 방으로 이동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두 사람을 만찬장으로 안내했다. 아베 총리는 곧바로 만찬장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은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해외 정상들과 악수를 한 뒤 5분 만에 만찬장을 빠져나갔다.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과는 악수를 하지 않았다. 개회식 자리에서도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은 한마디 대화도 하지 않았고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의 리셉션 보이콧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등장 이후 첫 북-미 고위급 대표의 의미 있는 회동은 무산됐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펜스 부통령은 처음부터 미국 선수단과의 만찬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우리 측은 만찬에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고 최종 순간까지 좌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 측은 리셉션에서 북-미 회동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자 정부에 불참 의사를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은 한미일 기념촬영 후 돌아가려 했지만 문 대통령이 ‘인사는 하고 가라’고 권유해 만찬장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북-미 회동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끝까지 설득했는데도 펜스 부통령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5분 만에 행사장을 떠나는 등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고위급 대표단의 2박 3일 방한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10일 열릴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이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 속에 자신의 피붙이를 한국으로 보내는 ‘깜짝 카드’를 꺼낸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파격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9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11시 청와대 본관에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접견하고 오찬을 한다”고 밝혔다. 북한 측 참석자는 김여정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다. 한국 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한다. 북한 인사가 청와대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1월 남북 총리회담 이후 처음이다. 특히 김여정은 친오빠인 김정은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인 만큼 문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서 김정은의 친서(親書)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김여정을 직접 한국으로 보낸 만큼 김정은이 ‘평창 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수 있는 파격적인 제안을 던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CNN은 이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김여정이 문 대통령에게 올해 안에 북한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CNN은 또 “문 대통령의 방북이 광복절인 8월 15일에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매년 8월 15일을 조국해방절로 기념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역시 9일 라디오에 출연해 “김여정은 평양판 문고리, 유일한 문고리”라며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얘기했던 정상회담에 대해 뭔가 답을 보내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건이 갖춰지고 성과에 대한 전망이 선다면 언제든지 정상회담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 회복을 징검다리로 미국과의 대화를 타진하려는 전략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북한과의 회동을 거부하며 비핵화 없인 북-미 대화가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통남통미(通南通美)’ 전술로 태세를 전환했다는 것.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복원을 바탕으로 ‘한반도 운전석’을 잡으려다 미국의 제동에 부딪힌 문재인 정부로서도 남북 정상회담이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전제로 북한의 핵 활동 동결 약속 등을 끌어내고 비핵화 협상의 계기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여정 1부부장이 상당한 재량권을 쥐고 있는 인물인 만큼 오찬 회동에서 평창 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평창 게임’이 막을 올렸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8일 한국과 핀란드의 컬링 경기를 시작으로 17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남북, 미중일이 얽힌 사활을 건 외교전(戰)도 서막을 열었다. 평창이 스포츠 제전과 정치·외교의 장이 되면서 세계의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에 쏠리고 있다. 북-미 간의 신경전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찬회동을 가진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미국은 북한이 영구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핵무기뿐만 아니라 미사일을 폐기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비핵화를 촉구하고 김정은의 ‘평창 공세’로 인한 대북제재 균열을 막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 것. 이에 문 대통령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북한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이날 평앙에서 건군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갖고 “(미국 등) 침략자들이 조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0.001mm도 침해하거나 희롱하려 들지 못하게 하여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북-미는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직전 주일미군 요코타(橫田) 공군기지에서 “앞으로 이틀간 어떤 만남이 이뤄질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9일 오후 1시 반 전용기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한다고 우리 측에 알렸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 등 대표단과 10일 청와대에서 오찬 면담을 갖는다. 지난해 전란 위기를 넘어 북-미 정상급 인사를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데 일단 성공한 문재인 정부의 평창 구상은 진짜 성패의 갈림길에 섰다. 북-미 대화, 최소한 남북 대화 기조로 연결하지 못하면 평창발 훈풍은 꺼지고 다시 한반도에 삭풍이 불 수 있다. 평창에서의 17일 후, 한반도에 봄이 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문병기 weappon@donga.com·황인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미 많은 문제를 다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우리의 공동 목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8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접견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국면이 펼쳐지고 있지만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압박을 통한 북핵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압박을 거둘 생각이 없는 백악관과, 평창 올림픽 개막 전날 열병식에서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며 핵을 놓지 않으려는 북한 사이에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과제가 문 대통령 앞에 놓인 셈이다.○ 펜스 “미국의 결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날 입국한 펜스 부통령은 기존의 강경한 대북 방침을 재확인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영구적으로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날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며 “미국의 이런 결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선수단, 응원단에 ‘백두혈통’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까지 파견하며 대대적인 평창 공세에 나서고 있지만 백악관은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백악관이 북핵에 대해 “우리는 25년간 실패한 접근을 했다”고 밝힌 것처럼 북한의 일시적 대화 제스처에 손을 내밀었다가 북핵 문제 해결에 실패한 과거 미 행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 그러면서 펜스 부통령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펜스 부통령은 “한국에 온 것은 한미 양국 간 강력하면서도 절대 깨뜨릴 수 없는 결속력을 다시 한번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를 향해 ‘대화 국면에 함몰되지 말고 우리와 함께하자’는 사인을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펜스 대통령이 “지난 70년 가까이 양국은 함께 인도 태평양 지역의 평화, 번영, 안보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는 미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인도 태평양 전략’에 대해 “좀 더 합의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 文 “북한을 비핵화 대화의 장으로” 이에 문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으로 시작된 대화 국면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로서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북한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북한이 지금 남북 대화에 나서는 모양새나 태도가 상당히 진지한 변화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을 만나기 전 한정(韓正) 중국 상무위원을 만나 북-미 대화를 언급한 문 대통령은 정작 펜스 부통령과의 회동에서는 북-미 대화를 꺼내지 않았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직접적인 북-미 대화 제의를 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미국이 모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대북 압박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 본인들이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했다”며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로 이끌어내는 것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의 의지를 다 담은 것이다. 청와대는 펜스 부통령이 추가 대북 제재의 필요성을 언급했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날 회동이 “평행선을 달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펜스 부통령이 만찬에서 한국말로 “건배”라고 해 만찬장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펜스 부통령은 와인으로 건배만 하고 마시지는 않았다. ○ 북-미 접촉 이뤄질까 청와대는 김여정을 위시한 북한 대표단이 9일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펜스 부통령과의 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펜스 부통령은 방한 전 방문한 일본에서 “북한과의 회담을 요청한 적은 없지만, 접촉하게 된다면 ‘북한은 반드시 핵을 포기해야 하며 그때까지 경제적 외교적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겠다”며 접촉 가능성을 닫지는 않았다.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평창 공세’가 우리 사회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자신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사진)을 7일 평창 겨울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시키며 ‘백두혈통(김일성 일가)의 첫 방남’을 전격 발표한 것. 김정은이 가장 가까운 ‘혈족 대리인’을 보내면서 김여정을 매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간접 남북대화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10일 청와대에서 접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날 오후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는 고위급 명단을 통보해 왔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앞서 4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보내겠다고 알려온 북한은 이날 김여정과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휘 당 부위원장, 남북 고위급회담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 대표단 3인의 명단을 보내왔다. 이번 북측 대표단은 역대 방남한 북측 대표단 가운데 가장 무게감이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폐회식 때 찾아온 ‘실세 3인방’(황병서 최룡해 김양건)보다 상징성이 크다. 당시 3인방의 방문은 당일치기였지만 이번 대표단은 9∼11일 2박 3일간 한국에 머문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김여정의 방남에 대해 “관련 직책과 다른 외국 정상의 가족들이 축하 사절단으로 파견되는 사례도 함께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여정과 최휘는 지난해 1월 북한 인권 문제로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에 올라 있어 초청 과정에서 한미 간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여기에 최휘는 지난해 6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56호 제재 대상이라 그의 방남을 위해서는 유엔의 제재 일시유예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북한은 올림픽 개막 전날인 8일 건군절 기념 열병식을 대대적으로 가질 예정이어서 김여정 등의 방한 수용을 두고 북-미 간, 한미 간 마찰음이 이전보다 고조될 개연성도 없지 않다. 물론 평창 이후 전개될 수 있는 미국의 ‘코피 작전’(제한적 대북 선제타격)을 감안해 김정은이 여동생 편으로 북핵 이슈에 대한 입장을 문 대통령에게 전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김여정은 노동당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긴장 완화와 관련해) 상당한 재량권을 갖고 내려온다고 볼 수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편 문 대통령은 8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한을 시작으로 김여정이 돌아가는 11일까지 나흘간 평창 외교의 분수령을 맞게 된다. 8일 오후 펜스 부통령과 만찬회동을 가진 뒤 9일에는 북-미 대표단이 모두 참여하는 평창 올림픽 개회식과 사전 리셉션에 참석한다. 북한은 7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응원단 229명, 기자단 21명, 태권도시범단 26명, 김일국 체육상을 비롯한 민족올림픽위원회(NOC) 관계자 4명을 한국에 보냈다. 북측 응원단이 방문한 것은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124명이 온 뒤 13년 만이다. 이날까지 평창 올림픽과 관련해 한국에 온 북측 인사는 569명이다. 황인찬 hic@donga.com·문병기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여동생이자 최측근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31)을 평창 겨울올림픽에 맞춰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달 신년사 발표 이후 계속된 한반도 주도권 잡기 게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백두혈통’(김일성 일가)은 광복 이후 한반도 남쪽 땅을 밟은 적이 없다. 당초 북측 고위급 대표단에 실질적 2인자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의 참석을 기대했던 정부는 김여정 파견이 결정되자 적잖이 놀라고 있다. 통일부는 자료를 내고 “(김여정 등의) 체류기간 동안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하겠다”며 반겼다. 동시에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비핵화는커녕 핵동결 이야기는 쏙 뺀 채 약 600명의 대표단에 이어 김여정 카드까지 꺼낸 김정은의 융단폭격식 ‘평창 공세’ 뒤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지금이라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 오빠는 나쁜 사람 아니다”며 선전전 펼 듯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유성옥 원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여정은 최룡해에게도 반말을 한다. 그냥 ‘최룡해’라고 부른다고 한다. 2인자 최룡해도 김여정 앞에서는 쩔쩔맨다”고 말했다. 어릴 적 강원 원산에 있는 아버지 김정일의 특각(별장)에서 함께 뛰놀았던 여동생 김여정은 김정은에게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다. 김정은이 이런 김여정을 한국에 보내기로 한 것은 평창 드라이브의 대미를 장식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지난달 9일 고위급 회담에서 우리가 비핵화 대화 재개를 요청한 것을 사실상 거부한 후 “핵은 대화 대상이 아니다”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여정을 포함한 ‘역대급 대표단’이 내려오지만 남북은 아직 대화 의제조차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1989년 임수경이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석차 방북했을 때 남한의 풋풋한 여대생을 보고 북한에서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북한도 이번에 그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미지 세탁’을 노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김여정은 ‘우리 오빠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로켓맨도 아니고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란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데 사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에서 벌어질 북-미 간 신경전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문에 맞춰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격’을 맞췄다. 이어 트럼프의 장녀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의 폐회식 참석이 유력해지자 김정은이 맞대응으로 김여정을 보내기로 했다는 것.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정상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이방카가 폐회식에서 주목받으니 김여정은 개회식 스포트라이트를 받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여정, 김정은 메시지 갖고 청와대 가나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면담할 것으로 보인다. 면담은 청와대에서 대표단장인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등 대표단 전원이 모두 참석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주변에선 과연 김여정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갖고 올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김여정 일행을 만나더라도 비핵화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핵”이라면서도 “이제 첫발을 떼는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대화 단계 중) 가장 끝에 있는 것이니 첫 만남부터 본격적인 얘기를 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히려 김정은은 김여정을 통해 문 대통령의 의중을 떠보려 할 수도 있다. 과연 평창 이후 대화를 이어갈 만한지 등을 타진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초대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남북 대화는 물론이고 북-미 대화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성욱 교수는 “(김여정에게) 이번이 북한에 마지막 기회다.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미국과 시작해야 한다고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찬 hic@donga.com·문병기·홍정수 기자}

‘서로와 서로를 가로막고 있던 딱딱하고 거친 콘크리트 벽. 그 벽이 구부러져 서로와 서로를 잇는 다리가 된다.’ 5일 강원 평창 올림픽 선수촌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구부러진 다리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창 올림픽 휴전벽’이다. 올림픽 휴전벽은 대회 기간 동안 인류가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 휴전 정신을 드러내고자 2006 토리노 올림픽 때부터 선수촌에 설치됐다. 이날 제막식에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이희범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 장웅 북한 IOC 위원이 함께했다. 이들은 휴전벽에 각각 서명 했다. 이날 평창과 강릉 두 곳의 선수촌에 들어선 휴전벽에는 선수, 관계자 등 지나가는 누구나 서명을 남길 수 있다. 이 벽은 디자이너 이제석 씨가 제작을 맡아 ‘평화의 다리 만들기’로 이름 붙여졌다. 가로 7m, 세로 3m의 벽은 대회가 끝나면 평창올림픽플라자와 강릉올림픽파크에 각각 전시된다. 벽에는 ‘I♥YOU’와 비둘기 그림 등이 그려져 있었고 대관령중학교 크로스컨트리스키 꿈나무 학생들도 벽에 서명했다. 휴전벽 제막식 행사 시작 20분 전인 오전 11시경 선수촌에는 장웅 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하 8도에 칼바람이 매서운 날씨였지만 장 위원은 주최 측에서 나눠준 파란색 평창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올해 만 나이 80세로 동갑내기인 마리오 페스칸테(이탈리아) IOC 상임위원을 비롯한 IOC 관계자들과 두루 인사했다. 멀리서 바흐 위원장이 걸어오자 높이 손을 들어 인사하기도 했다. 바흐 위원장 역시 장 위원의 볼을 양손으로 톡톡 치고 포옹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바흐 위원장은 축사에서 “휴전벽은 갈라져 있는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그게 한국이 전 세계에서 오는 손님을 올림픽을 통해 맞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며 화합을 강조했다. 도종환 장관도 “평창 올림픽이 화해와 치유와 평화의 올림픽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열린 IOC 총회에서 “스포츠를 통한 교류와 소통이 곧 평화라는 사실을 이제 평창이 전 세계와 인류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총회 개회식 축사에서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분단된 국가, 전쟁의 상처가 깊은 땅, 휴전선과 지척의 지역에서 전 세계를 향한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여러 나라에서 평창 올림픽의 안전을 염려했다”며 “그러나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선수들이 참가한다. 북한 선수단 참가 규모도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바흐 위원장 및 IOC 위원과 함께 “북한 장웅 위원께도 각별한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평창=임보미 bom@donga.com / 문병기 기자}
춘천지검에서 지난해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했던 안미현 검사(39·사법연수원 41기)가 수사 과정에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58) 등 사건 관련자들은 5일 안 검사가 제기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안 검사는 전날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종원 당시 춘천지검장(52·21기·현 서울남부지검장)이 최홍집 전 강원랜드 사장(67)에 대해 부당한 불구속 기소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안 검사는 “최 지검장이 지난해 4월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을 면담하고 온 뒤, 바로 다음 날 불구속 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 지검장은 “지난해 1월 이미 최 전 사장을 불구속 기소하겠다는 의견을 대검찰청에 보고했다”고 반박했다. 안 검사는 지난해 2월 해당 수사팀에 합류해 그 같은 상황을 몰랐다는 취지다. 안 검사는 또 “수사 대상자인 권 위원장과 당시 다른 지역에 근무하던 A 고검장, 최 전 사장의 측근 사이에 여러 차례 통화한 기록이 있다”며 권 위원장과 A 고검장을 수사 외압의 배후로 사실상 지목했다. 그는 “상부에서 권 위원장과 관련한 통화기록을 법원에 제출한 증거목록에서 삭제하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춘천지검은 이에 대해 “해당 통화기록은 일찌감치 재판부에 제출된 상태였다. 재판부와 최 전 사장의 변호인이 불필요한 증거는 추려 달라고 요청해 내부 논의 과정에서 (추가 수사에 쓰일 자료인) 해당 기록을 빼자는 의견이 나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최 전 사장 측근과 통화한 일이 없다. 동향 후배인 A 고검장과도 이번 일로 통화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A 고검장도 “권 위원장과 이 사건으로 통화한 일이 없다. 수사팀에 전화한 적이 없다는 건 조사하면 다 나온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 출석해 “대검찰청에서 임명하는 특임검사를 포함해 적극적으로 방법을 강구해 보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여검사 성추행 사건 등 일련의 사건은 검찰 잘못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물을 방안이 절실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줬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정성택 neone@donga.com·문병기 기자}

북한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90·사진)을 평창 겨울올림픽에 파견할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파견한다고 4일 통보했다. 이에 따라 평창 올림픽 기간 동안 남북 대화에 이어 북-미 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통일부는 이날 북한이 남북 고위급 회담 남측 수석대표 앞으로 보낸 통지문을 통해 김 위원장 등 고위급 대표단 파견 방침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측은 통지문에서 김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고 단원 3명, 지원 인원 18명으로 구성된 고위급 대표단이 2월 9일부터 11일까지 남측을 방문할 계획임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헌법상 북한 행정부 수반이다.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가 모이는 평창 올림픽에 김 위원장을 파견해 전 세계에 정상 국가임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해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도 김 위원장을 특사로 파견한 바 있다. 당초 일각에선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며 실질적인 권력 서열 2위로 올라선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최 부위원장의 방남 가능성은 낮아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최고 핵심 요직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북한을 비운 사례가 없었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고위급 대표단 포함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예상보다 빨리 대표단을 통보해온 데다 헌법상 국가수반을 파견하는 만큼 북한도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 기간이 9∼11일로 정해진 만큼 북한 대표단은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사전 리셉션에 참석한 뒤 평창 올림픽 개회식을 참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전 리셉션에 참석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의미 있는 만남을 갖게 될지도 관심이다. 문 대통령은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펜스 부통령의 방한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북-미 회동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접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도 평창 올림픽의 중요한 주체인 데다 평화 올림픽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만큼 북측 대표단을 만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주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를 제안했다. 2일 밤늦게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예고 없이 성사된 한미 정상 통화에서다. 대북 강경 기조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미국과 대규모 열병식 강행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북한 사이에서 ‘평창 모멘텀’을 살리기 위한 승부수를 띄운 것.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인권을 새로운 압박 카드로 꺼내 들면서 오히려 한미 간 온도차가 분명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통화가 이뤄진 것은 2일 오후 11시 반부터 밤 12시까지 약 30분간이다. 당일 오후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제안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 이어 문 대통령과 연쇄 통화를 했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향후 지속되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전했다. 8일 방한하는 펜스 부통령이 평창 올림픽에 파견될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만나는 북-미 대화를 제안한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제안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아베 총리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최대 압박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날 통화가 느슨해질 수 있는 대북 압박의 고삐를 죄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미 간 시각차는 한미 정상 통화 직후 펜스 부통령이 2일(현지 시간) 미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가진 ‘미국 우선주의 정책’ 행사 연설에서 더욱 극명해졌다. 펜스 부통령은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평창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탄도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미국을 위협할 때, 우리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트럼프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인권 문제를 새로운 대북 압박 카드로 꺼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 시간) 탈북자 8명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대화를 나누며 “문 대통령과 통화했는데, 그들(남북)은 올림픽과 관련해서 대화하고 있다. 그것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좋은 일”이라면서도 “올림픽이 매우 잘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다음은 누가 알겠느냐.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매우 빨리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 탈북자들은 “김정은 정권을 제거할 수 있는 나라는 유일하게 미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북한인권단체 노체인의 정광일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일부 의원이 북한 문제를 대화로만 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문 대통령과 통화한 후 낸 보도자료에서도 “두 정상은 북한 인권 개선의 중요성을 논의했으며 이 문제를 위해 협력하는 데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역할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청와대 발표에선 북한 인권 관련 내용이 아예 빠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 인권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잘 봤다’며 먼저 언급한 내용”이라며 “다만 한미 간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북한이 개막 나흘 앞으로 다가온 평창 겨울올림픽에 파견할 고위급 대표단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하기로 하면서 남북, 북-미 간 평창 외교전의 라인업이 윤곽을 드러냈다. 북한은 4일 오후 11시 40분경 예고 없이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통지문을 보냈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김 위원장을 단장으로 단원 3명, 지원인원 18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파견한다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헌법상 북한 행정부의 수반으로 이미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에 여러 차례 등장한 인물이다. 미국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대표단장으로 평창에 파견하기로 한 가운데 북한도 상징적인 인물인 김 위원장을 파견하면서 격(格)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으며 김정은 체제의 실세로 떠오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에 비해 여러 차례 국제사회와의 대화 테이블에 나섰던 김 위원장이 미국 입장에서도 대화 상대로 부담이 적을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13년 방북한 게리 프루잇 AP통신 사장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적 목표는 경제 성장”이라며 “이는 미국이 평양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포기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이 없어 그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상에 오른 적이 없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이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방한하는 것”이라며 대화 국면 전환에 제동을 걸었지만 김 위원장과는 어떤 식으로든 접촉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날 갑자기 김영남 대표 카드를 꺼낸 것은 평창 올림픽 기간 어떤 식으로든 미국과의 접촉을 이끌어 내 평창 모멘텀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도 평창 올림픽이 중요한 기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이번 기회를 흘려보내면 평창 이후 전개될 상황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펜스 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날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김영남을, 그것도 평창 올림픽 개막 전에 이렇게 공표한 전술적 배경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기간 김영남을 만날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김영남이 온다면 펜스 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과도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북한이 급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정은이 ‘2인자’ 최룡해에게 과도하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김영남을 앞세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룡해에게 너무 많은 직함이 몰려, 이번엔 김영남을 내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김영남과 함께 올 가능성이 있는) 최휘나 태종수 등 김정은의 실세로 알려진 사람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측근의 방남을 기대했던 청와대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청와대 회동도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반 참가국과는 다른 측면이 있는 만큼 누가 (대표단장으로) 오든 만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영남이 와서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면 우리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서는 게 급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김정은의 의중을 담고 왔을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이번 방남 하이라이트는 청와대 예방이 될 것이고 여기서 상호 관심사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황인찬·홍정수 기자}

“세계 정상 가운데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차를 탄 것은 제가 처음이고 세계에서 수소차로 만든 자율차는 현대차가 최초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경기 성남시 판교 기업지원허브에서 열린 자율주행차 간담회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수소 전기 자율주행차인 ‘넥쏘’를 타고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에서 판교 나들목까지 이르는 7km가량을 달렸다. 전날 근로시간 단축과 신규 일자리 창출에 노사가 합의한 한화큐셀 공장을 방문해 “업어주러 왔다”고 밝힌 데 이어 연 이틀 대기업을 방문해 ‘기업 기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대차에 대한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1975년 포니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조그마한 차량을 드디어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 자동차 생산국이 됐고 국민들이 감격했다”며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대한민국이 세계 6대 자동차 생산 국가로 성장했다”고 했다. 당초 대통령 경호처 등은 이번 시승 행사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한 자율주행차 시험장이 아닌 고속도로를 운행하다 돌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고속도로 시험운행을 통해 안전성이 검증됐다는 얘기를 들은 문 대통령이 직접 실제 도로를 주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모르면 용감하다고 조심조심 갈 줄 알고 탑승해봤다”며 “그런데 고속도로 제한속도 110km에 맞춰 아주 빠르게 운행하면서 앞차와 거리를 맞추고 차선을 바꾸고 하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자율주행차에서 좀 더 앞서갈 수 있도록 국가가 모든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됐다”며 “우리가 포니 차부터 시작해서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강국이 됐듯이 수소차,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분야에서도 강국의 힘을 키워가자”고 밝혔다. 간담회에선 자율주행차 등에 대한 규제 완화 건의도 잇따랐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이씨스 김용범 대표는 “자율차 시범사업을 전국 국도, 전국 고속도로로 빠르게 확대해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이인호 산업통상부 차관 등에게 “초소형 전기자동차 규제, 보조금 혜택, 여러 업체가 테스트베드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은 정부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국토부와 산업부는 이날 전기차 급속 충전소 확대, 완전 자동 주행이 가능하도록 도로 기반시설 정비 등 미래 자동차 육성에 2022년까지 35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천호성 / 세종=최혜령 기자}

김현철 대통령경제보좌관(사진)이 2일 “위안부 관련 문제는 국내 문제로 관리해야 한다.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추가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보좌관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말하지 않았고, 추가 요구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정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가 부당하다는 점을 밝히고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을 동결한 것이 국내용 조치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한 인터뷰였고, 김 보좌관은 해당 발언을 한 적도 없다. 정정 보도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김 보좌관은 아베 신조 총리가 자국 내 반발에도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한 것에 대해선 “쿨(cool)하고 어른스러운 관계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가능하면 문 대통령이 10월 일본에 가서 아베 총리와 새 선언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10월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한일 정상 공동선언을 내놓자는 제안이다. 새로운 공동선언에 대해 이 신문은 한국이 한일 취업비자 요건 완화 등 한일 인적 교류 확대를 제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평창 겨울올림픽이 엿새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평창 외교전’의 막이 오른다. 북한의 대규모 열병식 준비와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 작전 등 미국의 대북 강경 기류가 뚜렷해지면서 해빙 기류에 부풀었던 한반도 정세는 다시 출렁이고 있다. 평화 모멘텀을 되살리려는 정부는 다음 주부터 시작될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국 정상 및 고위급 대표들과의 연쇄 회담 일정을 공개하며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일 “문 대통령 내외는 평창 올림픽 관련 첫 일정으로 5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개회식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6일 에스토니아 대통령, 7일 캐나다 총독 및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상 외교 ‘빅데이’는 평창 올림픽 개막 하루 전인 8일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정(韓正) 중국 상무위원과 만난 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만찬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한 상무위원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메시지를 갖고 올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북핵을 놓고 간접적인 한미중 회담을 갖게 되는 셈이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올림픽을 납치할까 봐 걱정된다”며 속도를 내던 남북 화해 무드에 브레이크 메시지를 낸 바 있다. 펜스 부통령은 올림픽 직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와 대북 제재 이행 등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9일에는 북핵 중재 역할을 자임했던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만난 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대화 분위기를 띄우던 정부는 최근 미국의 잇따른 대북 강경 발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코피 터뜨리기’ 작전은 실제로 북한을 타격하겠다는 것이라기보다는 북한을 비핵화 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한 또 다른 압박 전략”이라고 했다. 올림픽 기간에 이뤄질 다자 외교로 미국과 북한을 설득해 비핵화 분야에서도 성과를 이끌어 내겠다는 얘기다. 관건은 북한의 태도다. 고위급 대표단으로 누굴 파견하느냐가 북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첫 시험대다. 다만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대규모 열병식을 예정대로 강행하면 평창 올림픽 기간에도 분위기 경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