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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시댁에 왔는데 코팅된 종이 하나를 주더군요. 거기에는 한국 대통령과 국회의원, 청와대 비서관 등 30여 명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자신은 이런 걸 많이 가지고 있으며 우리도 가지고 다니면 좋을 거라고 자랑하더군요.”‘상하이(上海) 마타하리’ 덩신밍(鄧新明·33·여) 씨의 시댁 사람들은 덩 씨를 좀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인 며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8일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덩 씨 남편 진모 씨(37)의 이모 박모 씨(61)와 이모부 이모 씨(67)는 “(덩 씨가) 처음에는 외국인답지 않게 가족에게 싹싹하게 너무 잘했다”며 “그러다 3년 전부터는 아예 시댁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열린 덩 씨 결혼식에 ‘부모 역할’을 할 정도로 덩 씨 부부와 친밀했다. 덩 씨 부부는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 때 이 씨 집에 들렀다.이들에 따르면 덩 씨는 여러 가지 이름을 쓰고 있었다. 그는 “코코, 신디에서부터 덩신밍이라는 이름까지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쓰는 것 같았다”며 “사실 정확한 이름과 나이도 잘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직업도 가끔 시댁에 올 때마다 매번 바뀌었다. 진 씨의 이종사촌 누나 이모 씨(38·여)는 “상하이 부시장 비서가 됐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경찰복을 입고 와서 상하이 경찰 간부라는 소리도 하더라”며 “항상 ‘내가 그 유명한 등소평 손녀’라고 말해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한다고 다들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 가족은 원래 진 씨와 거의 매일 통화할 정도로 친밀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통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누나 이 씨는 “최근에는 (진 씨가) 덩신밍이 도청해서 듣고 있다고 말해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덩 씨의 도청 및 감시 능력에 대해 상당히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덩 씨는 한국에 올 때마다 수원의 이 씨 집에 머물렀다. 그때마다 하루 이틀 정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외박하는 일도 잦았다는 것이 가족의 전언이다. 이모부 이 씨는 “(덩 씨가) 한국에 올 때마다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도 만나고 식사도 하고 왔다’고 말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에 갔을 때 자신이 통역을 한 적이 있다고도 말하더라”고 전했다. 덩 씨는 한국에 올 때도 3대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끊임없이 통화를 계속했다. 이들에 따르면 진 씨 부부 사이에는 딸 하나만 있다. 상하이 총영사관 측에 따르면 진 씨 부부가 친딸 외에 2, 3명의 입양한 아이가 있다고 한다. 누나 이 씨는 “입양한 아이는 없으며 (덩 씨가) 가끔 미혼이라고 말하기 위해 본인 아이를 입양했다고 평소에 거짓말을 계속하던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모 박 씨도 “유산을 세 번 하고 낳은 아이라 평소에는 아이를 끔찍이도 아꼈다”며 “하지만 상하이 H 영사와 바람이 난 이후부터 우리에게 전화해 ‘아이를 버리겠다’고 말하는 등 사람이 변했다”고 전했다. 덩 씨의 한국어 실력에 대해서는 “조카(진 씨)와 사귄 이후부터 배우기 시작했으며 결혼한 이후에 한국어가 확 늘었다”며 “그전에 한국어를 공부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진 씨는 지금도 덩 씨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모부 이 씨는 “한 번은 코코가 남편과 싸우다 권총을 꺼내 위협한 적도 있었다고 스스로 말하더라”며 “조카(진 씨)는 지금도 도청될까 두려워 우리와 통화할 때도 늘 짧게 통화를 끝낸다”고 말했다.수원=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40년 가까운 세월을 저와 함께한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을 기부하렵니다.” 지난해 11월 2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서울여대 이광자 총장실로 기부 의사를 밝히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황영옥 씨(72·사진). 황 씨가 기부하기로 한 건물은 시가 60억여 원으로 서울여대 기부 사상 최대 액수다. 황 씨는 1971년 대학총장 기도모임에서 서울여대 초대 학장이던 고 고황경 박사를 처음 만났다. 설립된 지 10년밖에 되지 않는 서울여대를 이끌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고 박사는 교육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았다. 황 씨는 “어려운 시절 암흑 속에서도 바늘구멍 하나 있으면 희망을 볼 수 있다는 고 박사님 말에 감동을 받았다”며 “이 일을 계기로 고 박사가 학장으로 있는 서울여대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황 씨는 그동안 자신이 가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건물에서 35년째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교육 분야에 대한 기부도 열성적으로 해 왔다.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생각하던 차에 어느 날 라디오에서 이광자 총장의 방송 내용을 듣고 서울여대에 건물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여성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야말로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다”며 “젊은 여성을 위해 쓸 수 있다면 재산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24일 오전 서울여대 본관에서는 황 씨가 기탁한 건물을 재원으로 한 ‘성정(聖情) 황영옥 장학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황 씨의 꿈이 이뤄진 것. 황영옥 장학금은 내년부터 학생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광자 총장은 “황 할머니의 뜻을 기려 장학금이 학생들에게 바르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황 씨의 기부정신을 기리기 위해 학교 안 사택에 황 씨의 집도 마련해줬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