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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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황인찬입니다.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의 오늘을 보여드립니다.

hic@donga.com

취재분야

2026-03-04~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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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리뷰]무대에 오른 웹툰… 감칠맛은 어디 갔지?

    “6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에게 차인 뒤 새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헤어졌던 여자친구가 돌아왔네요.” 이런 상황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한번 떠났던 여자는 다시 떠난다”거나 “새 여자친구에게나 잘해라”는 의견이 주로 달릴 법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얘기라면 쉽지 않다. 이성적, 도덕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부터 무대에 오른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연출 허희진)는 20대 청춘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렸다. 강도하 작가가 2005년 인터넷 포털 ‘다음’에 연재한 웹툰(인터넷 만화)이 원작. 2007년에는 케이블채널 tvN이 동명 드라마로 만들었고 같은 해 처음 뮤지컬로 선보였다. 줄거리는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법한 얘기다. 청년 백수인 캣츠비 연인인 페르수는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 임신을 했는데 이 아이가 남편도, 캣츠비도 아닌 캣츠비 친구의 아이라는 설정이다. 웹툰은 잔잔한 전개와 풍부한 배경 설명, 미려한 그림으로 이 같은 상황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지만 공연은 공감을 얻어내기보다는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데 급급했다. 총 74편(편당 50컷 내외)으로 이뤄진 웹툰은 풍부한 분량에 걸맞게 곳곳에 여운을 남겼지만 110분의 공연은 주요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 페르수의 남편인 브루독이 캣츠비에게 “(페르수와) 같이 자봤나”라고 채근하다가 “농담일세”라고 얘기하는 등 주요 장면의 대사마저 대부분 웹툰과 똑같다. 하지만 배우들이 몸소 뛰어다니며 입체영화관 풍경을 표현하거나 닭갈비집 아줌마가 미친 듯이 밥 비비는 장면은 공연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웃음을 주었다. 걸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의 심은진은 이번 뮤지컬 데뷔 무대에서 귀엽고 톡톡 튀는 ‘선’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캣츠비에게 버림받은 뒤 이별 노래를 부를 때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정이입에 충실했다. 하지만 캣츠비 역의 박재정은 아쉬움이 남았다. 꺼벙한 연기를 빼면 감정 표현도 부자연스러웠고, 고음을 소화 못해 코러스 음이나 동료 배우와의 합창에 의지했다. 캣츠비 역에 더블 캐스팅된 그룹 god 출신의 데니안이 보다 무난한 가창력을 선보인다고 제작사는 설명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i: 2만∼5만 원. 12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트원씨어터 1관. 02-501-7888}

    • 201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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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극단 초대 감독 손진책씨

    문화체육관광부는 9일 재단법인 국립극단 초대 예술감독에 연출가이자 극단 미추 대표인 손진책 씨(63·사진)를 임명했다. 손 씨는 서라벌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연극 ‘지킴이’ ‘오장군의 발톱’ ‘열하일기만보’ 등 20여 편과 마당놀이 ‘심청전’ ‘춘향전’ 등 10여 편을 연출했으며 동아연극상, 한국연극예술상, 한국백상예술대상 등을 받았다. 임기는 3년.}

    • 201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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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깨사-튀는 국악공연 펼치는 경기소리꾼 이희문 씨

    공연장 밖에서는 첫 만남이었다.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내 커피숍에 들어서는 경기소리꾼 이희문 씨(34)의 모습은 회색 재킷에 스누드(넓은 머플러)와 부츠,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큰 반지까지, 딱 일본 신주쿠를 배회하는 ‘노는 청년’ 같았다. “복장이 튄다”고 말하자 그는 웃었다. “하하∼ 국악 처음 할 때는 선생님들이 혀를 끌끌 차셨어요. 그런데 전 이게 편하거든요. 국악 한다고 꼭 두루마기 입을 필요는 없잖아요.”○ 가수 지망생에서 뮤직비디오 제작자로 어릴 적엔 가수 민해경의 팬이었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소년의 가슴을 뛰게 했다. 가수가 못 된다면 백댄서도 좋았다. 매일 서너 시간씩 춤 연습에 매달렸다. 그런 그도 홀어머니 고주랑 씨(63) 앞에서는 작아졌다. 중요무형문화재 경기 12잡가 이수자인 어머니는 “예인의 길은 힘들다”며 말렸다. 그래도 대학(단국대 동물자원학과) 입학 후엔 유명 연예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갔고 학업은 뒷전이었다. 1998년 군에서 제대한 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뮤직비디오 제작자가 되고 싶었다. 2000년 일본 동방방송전문학교에 들어간 그해 말 지역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당시 인기그룹인 ‘미스터 칠드런’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회사에서 채용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운이 없었다. 대학 담당자의 실수로 유학비자를 취업비자로 바꿀 시기를 놓쳐 강제출국당했다. 2003년 한국에 돌아와 김종국의 ‘사랑스러워’ 등 뮤직비디오 제작 일을 계속했다.○ 늦깎이 국악인으로국악인으로의 갈림길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경기민요 명창 이춘희 씨와 국악공연을 보다 우연히 가락을 흥얼거린 것이 이 씨의 눈에 띈 것. 이튿날 그를 부른 이 씨 앞에서 그는 ‘긴 아리랑’을 구성지게 불렀고, 이 씨는 한마디 했다. “얘, 너 아무래도 소리해야겠다.”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들었던 국악을 20대 후반에 그렇게 다시 만났다. 어릴 적부터 틈틈이 소리도 배웠기에 습득은 빨랐다. 이 씨 아래서 하루 8∼9시간씩 연습에 매달렸고, 5개월 연습 후 처음 참가한 2003년 10월 경서도 소리공연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온나라국악경연대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시작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국악은 제 팔자였나 봐요.” 30대 중반인 그의 소리가 정점에 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대중음악 작업 경험(가수 지망생, 뮤직비디오 제작자)을 살려 새롭고 즐거운 국악을 들려준다. 그가 7월 무대에 올린 ‘황제, 희문을 듣다’는 ‘옴니버스 국악 뮤지컬’로 부를 만하다. 이 무대에서 그는 경기소리 명창이자 재담의 대가인 박춘재(1881∼1948)의 궁중 연희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각 지역 장사꾼의 얘기를 다룬 ‘각색 처녀 장사치, 흉내’에선 사회자로 변해 여성 장사꾼들을 소개한다. “마장리 처녀를 한번 만나볼까요”라고 말하면 ‘마장리 처녀’가 나와 “사랑합니다. 고객님 어떤 미나리를 원하십니까? 봄미나리 1번 가을미나리 2번 돌미나리는 3번 나리나리 개나리는 4번 다시 들으시려면 샵버튼….” 하고 전화 안내원을 흉내 내 웃음을 유발한다. 1960년대 ‘한양합주단’의 모습은 카페에서 치근거리는 남자와 도도하게 이를 받아지는 여자의 모습을 통해 한 편의 콩트로 재현했다. 국악에 생소한 관객들도 익살스러운 장면에 자연스레 몰입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를 가르친 이춘희 씨는 “국악의 변천사를 잘 조명해 천박하거나 유치하지 않게 공연으로 이끌어 낸 점이 좋았다”고 칭찬했다. “저는 역사 속의 재료들을 바탕으로 각색을 해 관객들의 입맛에 맞게 포장을 하는 거예요. 재미있고 신선하게 만들어 관객들이 우리 전통을 멀리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새롭지만 전통 잃지 않는 국악 추구 최근 퓨전국악, 월드뮤직이란 이름으로 여러 신세대 국악인이 활동 중이지만 일부에선 국악이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씨의 음악은 이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국악작곡가 이태원 씨는 “서양음악에 함몰되지 않고, 기존에 알고는 있었지만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전통음악을 끄집어낸다. 대중음악 경험을 살려 국악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했다. 그는 경기소리 프로젝트그룹 ‘나비’를 만들어 연출가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움집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옛날 경기지역에선 농한기에 사람들이 땅을 파고 만든 움집에 소리꾼들을 불러 소리를 청했는데 이를 재현하는 무대다. 무용과 영상을 국악과 접목시키는 데도 그는 관심이 많다. “찾아보니 할 게 많아요. 전통이 좋아도 옛것만 답습하는 것은 재미가 없지요.” 이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고 있지만 그는 말한다. “저는 ‘메이저’가 되기보다는 계속 마이너로 머물고 싶어요. 이름이 알려질수록 기대도 커지고 작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것저것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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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 “참신한 공연 창작물 제작비-노하우 지원”

    작곡가 겸 가수인 정예경 씨(27)는 평소 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다. 주로 뮤지컬에 반주로 참여했던 연주가들이 직접 연주와 연기, 노래까지 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 소속사에 이런 바람을 밝혔지만 “작사와 작곡, 연출까지 혼자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접었다. ‘뮤지컬 초보’인 그가 감당하기 힘든 작업이었고 제작비 마련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정 씨는 8월 CJ문화재단의 공연제작 지원프로그램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선정돼 뮤지컬 ‘모비딕’을 제작했다. 재단은 3개월 동안 정 씨의 아이디어에 조용신 연출가의 스토리를 입혔고 배우 섭외, 공연장과 연습장, 무대 제작까지 지원했다. 지원금만 3000만 원가량. ‘모비딕’은 15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신정동 CJ아지트에서 첫선을 보인다. 음악 감독을 맡은 정 씨는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만족했다. 정 씨는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혜택을 입은 첫 번째 사례다. 참신한 공연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제작비와 노하우 부족으로 무대화를 접는 젊은 창작자들을 돕기 위해 새로 마련된 지원 프로그램이다. 편당 3000만∼4000만 원의 제작비 지원에 각종 컨설팅과 섭외, 제작 진행까지 도움을 준다. ‘모비딕’을 시작으로 12월 27일 ‘사랑을 포기한 남자’, 내년 2월 14일 ‘리심’ 등 창작 뮤지컬들을 이 제도를 통해 선보인다. 시장 침체로 창작 뮤지컬이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마련된 새로운 ‘창작 인큐베이터’다. CJ문화재단 김선아 과장은 “창작자들은 수시로 제작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매달 한 편 정도의 창작 공연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02-3272-2652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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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한번 증명된 ‘원작의 힘’-연극 ‘프루프’

    “수학자는 23세가 정점이죠. 그때까지 학계를 놀라게 할 만한 것을 발표하지 못하면 그 이후로는 내리막이에요. 뭐 50세가 되면 고등학생이나 가르쳐야죠.” 28세의 수학과 대학 교수인 할(김동현)은 뛰어난 업적을 기록하지 못해 불안하다. 그보다 세 살 아래인 캐서린은 자신감이 없다. 천재성은 있지만 별다른 정식 수학 교육을 받지 못해 수학계에 선뜻 뛰어들지 못한다. 캐서린의 아버지인 수학자 로버트는 젊은 시절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노년에는 정신병을 앓는다. 지난달 12일 막을 올린 연극 ‘프루프’(연출 이유리)는 ‘무대가 좋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수학자들의 얘기를 그렸다. 2000년 미국 초연 이후 국내에선 세 번째 공연된다. 캐서린이 ‘위대한 수학 증명’을 홀로 만들어 냈지만 진위를 둘러싸고 가족, 연인과 갈등이 깊어지는 게 작품의 뼈대다. 수학자들은 ‘타원형 곡선’ ‘계수 형식’ 등 어려운 수학 용어에는 능숙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어설프다. 그들이 연극에서 천착한 ‘소수 증명’처럼 좀처럼 쉽게 나눠지지 않는 게 인생살이다. 극은 빠른 전개와 속도감 있는 대사, 숨겨진 반전을 통해 탄탄하게 펼쳐진다. 원작자인 미국 브로드웨이 극작가 데이비드 어번은 이 작품으로 2001년 토니상 최우수작품상과 퓰리처상(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무대 전환도 없고, 별다른 음향 효과도 없는 이 연극은 아침과 오후,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시제 변화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선으로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준다. 특히 탁구 경기를 보는 듯이 숨 가쁘게 오가는 배우들의 대사 자체가 톡톡 튀고 감칠맛이 난다. 캐서린 역에 더블 캐스팅된 강혜정과 이윤지는 나란히 첫 연극 도전에 나섰다. 강혜정은 표정 연기는 풍부했지만 감정이 폭발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갈라지는 등 발성이 부족했다. 이윤지는 안정적인 발성과 세심한 연기가 눈에 띄었지만 후반 집중력이 떨어졌다. 전체적으로 20대 초반 여성의 캐릭터, 할과의 자연스러운 애정 연기를 감안하면 이윤지가 캐서린의 모습에 가까웠다. 역시 더블 캐스팅인 로버트 역에는 남명렬이 정원중보다 한없이 다정스럽다가도 광기 어리게 변하는 수학자의 연기를 맛깔 나게 보여줬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i: 4만5000원. 12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이화동 대학로예술마당 3관. 1544-1555}

    • 20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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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를 통해 본 대한민국 근현대사] 예술문화 부흥의 중심지가 되다

    1920년 5월 4일 저녁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관 대강당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일본의 여성 성악가 야나기 가네코(1892∼1984)의 독창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이 공연은 한국 최초의 실내 서양음악 연주회였으며 동아일보가 주관한 첫 문화행사이기도 했다. 가네코는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으로 꼽혔고 일제의 광화문 철거에 반대 여론을 주도하기도 했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부인이었다. 낯선 서양음악회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동아일보는 6일자에서 “사람들은 오후 6시 반부터 종로 널분 길로 와서 청년회 정문이 터지도록 꾸역꾸역 모혀들어 오후 7시가 되매 벌써 회장은 터지도록 만원이 되얏다”고 전했다. 당시 황무지에 가까웠던 조선의 서양음악계에 큰 자극을 준 사건이었다. 이어 동아일보는 1920년 6월 구한국군악대(舊韓國軍樂隊)의 후신인 경성악대(京城樂隊)가 재정난을 겪자 후원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광복 이후 전쟁의 폐허와 가난 속에서 동아일보는 문화예술의 싹을 틔우기 위한 여러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1961년 신예 음악가 발굴을 위한 ‘동아음악콩쿠르’가 처음 열렸다. 당시에는 연령 학력에 제한을 두지 않는 ‘대국민 오디션’이었다. 작곡(실내악),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5개 부문에서 58명이 참여해 기량을 뽐냈고, 피아노부의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이 우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10명의 입상자를 배출했다. 올해 제50회로 반세기를 맞이한 동아음악콩쿠르는 대상 수상자로 이방희(11회·바이올린) 김금봉(12회·피아노) 임헌정(14회·작곡) 정준수(17회·바이올린) 송재광(18회·바이올린) 김대진(19회·피아노) 등을 배출하며 한국 음악계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1997년에는 국내 최초의 국제음악콩쿠르인 ‘동아국제음악콩쿠르’가 피아노 부문에서 열렸다. 첫 회부터 21개국 43명의 피아니스트가 참가해 열띤 경연을 펼친 끝에 이스라엘의 아비람 라이케르트(현 서울대 음대 교수)를 우승자로 배출했다. 오늘날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 대회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콩쿠르 중 하나로 매년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부문을 돌아가며 개최되고 있다. 2011년 4월에는 피아노 부문을 대상으로 제7회 대회가 열린다. 국악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1962년 명창명인대회, 1971년 판소리유파발표회, 1985년 동아국악콩쿠르도 잇따라 창설했다. 1984년 9월 20일 국악 전문가와 함께한 자리에서 김병관 당시 동아일보 전무는 동아국악콩쿠르 창설의 필요성을 이렇게 밝혔다. “동아일보사는 그동안 문화주의 사시에 따라 각종 문화진흥에 진력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의 문화 수준도 이러한 문화축적을 바탕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 서양문물에 휩쓸려 설 땅이 없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85년 4월 제1회 동아국악콩쿠르는 24명의 입상자를 배출했다. 사반세기를 맞은 이 대회는 왕기석 왕기철 박애리(이상 판소리) 김일륜 민의식(이상 가야금) 안성우 강은일(이상 해금) 등 800여 명의 국악인을 배출했다. 1964년 창설된 동아연극상은 한국 최초의 연극상이었다. 당시 동아일보가 30만 원의 상금을 내걸고 제1회 참가작을 공모한 일은 연극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쌀 한 가마가 3000원 정도였다. 첫 회 대상은 동인제 극단의 선두주자였던 극단 실험극장의 ‘리어왕’이 차지했다. 이낙훈과 나옥주가 각각 남녀 주연상을 받았다. 역대 연출상을 수상한 김정옥 임영웅 오태석 윤호진 이상우 김석만 김광림 이윤택 김아라 등은 한국 연극의 주축이 됐다. 1964년 창설된 동아무용콩쿠르는 올해 40회를 맞았다. 세계의 국제무용콩쿠르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와 창설 연도가 같다. 첫해 김혜식 김영배 유학자 정주성 등의 입상자를 배출했고 발레니노 이원국 김용걸, 발레리나 김주원, 안무가 홍승엽 차진엽 등이 이 대회를 거쳐 성장했다. 6월 1일 동아무용콩쿠르 4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동아무용콩쿠르는 국내 무용콩쿠르의 생성과 제도화에 선구적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동아일보가 세계적인 예술가와 공연 단체를 초청해 개최한 공연들도 국내 예술계에 크나큰 반향을 몰고 왔다. 1975년 4월 영국 로열발레단이 처음 내한해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사흘 동안 ‘라 바야데르’ 등 5편을 공연했다. 존 퓰러 단장 이하 111명이 모두 방한해 화제가 됐고, 입장료도 1만5000원(A석)으로 당시 최고가였지만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1975년에는 세계 최고의 실내악단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이무지치 실내악단이 처음으로 방한해 비발디의 ‘사계’ 등을 연주했다. 1979년에는 세계적인 안무가인 독일의 피나 바우슈가 동아일보 초청으로 처음 내한했다. 1984년에는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역사적인 내한공연을 펼쳤다. 150명 단원을 전부 이끌고 온 카라얀은 10월 27, 2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운명’과 ‘전원’ 등을 공연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는 세계 발레계의 신화로 불리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이 첫 내한공연을 펼쳤다. 간판스타 니나 세미조로바, 마르크 페레토킨, 그리고 한국계인 스베틀라나 최가 펼치는 열정적인 춤에 관객들은 객석 매진으로 화답했다. 냉전시대가 막내리기 전 열린 이 공연은 광복 이후 최대의 ‘문화적 사건’으로 평가됐다. 동아일보는 1990년 9월 창간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옛 소련의 9개 지역에서 창극 ‘아리랑’ 순회공연을 열었다. 이 공연은 국내외에서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고 이국땅에 흩어져 살던 동포들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됐다. 연출을 맡아 70여 명의 단원을 이끌고 공연에 나섰던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는 2007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객석은 눈물바다였고 공연이 끝난 뒤 고국의 소식을 듣기 위해 동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회상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문예부흥 선구 일민 선생 “적자 나더라도 동아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 일민(一民) 김상만 전 회장(1910∼1994)은 한국이 경제적 성장의 전환기에 휩싸여 있을 때 동아일보의 문화주의를 꽃 피우며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장을 이끌어낸 주역이었다. 그는 1961년 전무이사 겸 발행인에 취임한 뒤 문화사업을 통한 문화예술 육성에 앞장섰다. 1961년 동아음악콩쿠르의 창설을 시작으로 명인명창대회(1962년) 동아사진콘테스트(1963년) 동아무용콩쿠르 동아연극상(이상 1964년) 민속공예전(1967년)을 열었다. 당시 동아일보 내에서는 “적자가 나는 사업을 왜 하느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그는 “동아일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며 반대하는 사원들을 설득했다. 동아일보는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1970년) 동아미술제(1978년) 동아국악콩쿠르(1985년) 등을 잇달아 창설하며 언론을 통한 한국 사회의 문예 부흥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세계적인 공연 단체를 초청해 우리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데도 일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61년 미국 줄리아드 현악 사중주단을 비롯해 독일 베를린 실내오케스트라(1962년)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1964년) 이무지치 실내악단(197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실내관현악단(1976년) 등이 동아일보 초청으로 내한했다. 1979년 안무가 피나 바우슈 내한공연, 1984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이끄는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등 당대 문화지형도를 뒤흔든 대형 공연들도 그의 집요한 관심과 노력에 따라 성사됐다. 일민은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해 가능한한 모든 것을 보관하려 노력했던 ‘수집광’이기도 했다. 동아일보 옛 사옥(현 일민미술관)과 수장고, 사무실 벽장, 책상 서랍에 꼼꼼히 모아놓았던 자료들은 현대문화사 관련 책을 엮어낼 정도로 방대했다. 그가 수집한 미술품은 일민문화재단을 세우는 밑거름이 됐고, 그가 보관해둔 신문인쇄기계와 활자를 바탕으로 동아일보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 국내 최초의 신문박물관을 설립할 수 있었다. 국제언론인협회(IPI)와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 활동에 참여하며 한국 언론의 위상을 높였고 한국 언론 자유 발전에 기여한 점을 평가받아 FIEJ의 ‘언론자유 금펜상’을 1975년 받기도 했던 일민은 생전 이렇게 말했다. “문화가 통일되면 정치적 통일이 앞당겨진다고 나는 믿는다. 문화가 약하면 무력통일을 해도 결국 지게 된다. 선친(인촌 김성수)께서는 단정(單政·단독 정부)에 헌신했으나 통일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문화가 우위에 서면 통일운동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믿는다.” 동아일보는 일민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1995년 일민예술상을 제정했고 2008년 명칭을 일민문화상으로 변경했다. 1996년 7월에는 일민문화재단을 설립해 예술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있다. 1926년 건립돼 1992년까지 66년간 사용된 동아일보 구 사옥은 1994년 6월부터 전시공간인 일민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일민미술관은 리노베이션을 거쳐 2002년 2월 20일 현재의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갈색 타일과 최첨단 투명 아트리움(atrium)이 조화를 이룬 도심의 문화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동아일보사와 일민문화재단은 김 전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일민의 문화-세계의 문화, 전통의 문화’전(1월 19일∼2월 28일)을 열어 평생을 언론과 문화진흥을 위해 헌신한 그의 뜻을 되새겼다.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 20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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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령상 금난새 씨등 4명 수상

    사단법인 청권사(이사장 이기곤)는 제13회 효령상 수상자로 문화 부문에 금난새 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언론 부문에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 사회봉사 부문에 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 효행 부문에 정동일 한국효도회 회장을 각각 선정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시상식은 11월 3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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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여야 40대 기수 나경원-이인영 대담 外

    나경원과 이인영. 올해 7월과 10월 치러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각각 여야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40대 정치인이다. ‘1960년대생, 1980년대 학번’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상이한 삶의 궤적을 거쳐 집권당과 제1야당의 지도부가 된 두 사람이 만나 ‘젊은 정치인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국감 재탕 질의-응답의 핑계들호통 치는 국회의원, 고개 숙인 기관장. 고성과 반성이 오가지만 1년 뒤 바뀌는 건 질의 의원뿐. 5년째 지적된 금융감독원 낙하산 인사. 매번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국감 끝나면 요지부동. 약속은 하루 가고, 호통은 매년 같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국감 레퍼토리, 도대체 왜? ■ 남한 노래 북한 유행의 역사지금 북한 주민은 ‘곰 세 마리’ 노래를 개사해 3대 세습을 풍자하고 있지만 1980년대에는 ‘사랑의 미로’를 개사한 선전가를 한국 노래인 줄도 모르고 따라 불렀다. 북한 체제 선전에 이용되던 한국 노래가 거꾸로 그 체제를 향해 비수 끝을 돌렸다. 한국 노래의 북한 유입사를 살펴본다. ■ 아이패드 시대 출판시장 향방은몇 년 뒤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듣기 어려워질까. 전자책의 발달로 촉발된 ‘출판 빅뱅’을 진단하기 위해 국내외 출판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의 출판 전문지 ‘퍼블리셔스위클리’ 조지 슬로윅 주니어 대표를 통해 전자책의 미래와 저작권, 1인 출판, 종이책의 생존전략 등을 들어봤다. ■ 해초 속에 빵이? 현미경 속 신세계이런 세계가 또 있을까. 봉선화 속에 새알이 숨어있고 생쥐 고환에는 풋사과가 있다. 해초가 감춰둔 베이글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사람의 세포에 그려진 천마도도 있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바이오현미경사진전에서 신세계를 만나보자.}

    • 201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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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광고 디지털 전송 신문협, 시범서비스 시작

    한국신문협회(회장 김재호)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되어있던 신문광고 전달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신문광고 디지털 전송 시스템(애드칸·adKAN)’을 구축하고 시범서비스에 들어갔다고 28일 밝혔다. ‘애드칸’은 광고회사가 디지털 파일 형태로 광고를 제작한 뒤 신문사에 온라인 전송해 신문광고를 만드는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광고회사가 광고파일을 필름으로 출력해 차량 등을 통해 직접 신문사에 전달하면 이를 스캔해 지면에 실어왔다. 이번 온라인 전송 시스템 구축으로 광고 회사와 신문사의 광고 제작이 원활해질 뿐만 아니라 필름 출력으로 발생하는 폐기물에 의한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고 신문협회는 설명했다.}

    • 201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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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예매 서버 다운…‘조지킬’의 화려한 귀환

    뮤지컬 성수기로 꼽히는 연말이지만 올해는 신작보다는 주로 기존 작품들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져 제작사들이 흥행에서 위험한 신작보다는 검증된 작품을 올리는 안정적인 선택을 한 까닭이다. 작품은 같지만 조승우 옥주현 등 뮤지컬 스타가 돌아오고, 데뷔를 앞둔 신인들도 있다. 캐스팅으로 연말 공연을 짚어봤다.○ 더 강해진, 조승우의 티켓 파워23일 전역한 조승우는 11월 30일∼내년 3월 3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지킬 앤 하이드’로 복귀한다. 26일 오전 10시 연말까지의 1차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 그가 출연하는 13회 공연은 15분 만에 매진됐다. 극장이 1200여 석인 것을 감안하면 눈 깜짝할 사이 1만5600여 장이 팔려나간 것. 제작사 오디뮤지컬컴퍼니 신은 대리는 “한때 예매 사이트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접속자가 폭증했다”고 말했다.조승우는 2004년 ‘지킬 앤 하이드’의 국내 초연에도 참여했고 당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가창력으로 지킬 역을 소화해 ‘조지킬’이란 별명을 얻었다. 2006년 같은 공연에서는 티켓 오픈 7시간 만에 1만2000여 장이 전석 매진돼 화제가 됐지만 4년 만의 복귀 무대에서 다시 기록을 갈아 치웠다. 말년 휴가를 나와 연습에 참여할 정도로 작품에 애착을 보였던 그가 국내 뮤지컬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지 관심거리다. 지킬 역은 조승우 외에도 류정한 홍광호 김준현이 돌아가며 맡는다. 지킬의 애인 ‘루시’ 역에는 가수 선민이 첫 뮤지컬 도전에 나선다. 5만∼13만 원. 1588-5212 ○ ‘뮤지컬 여왕’ 노리는 옥주현12월 14일∼내년 3월 27일 경기 성남시 야탑동 성남아트센터에서 막을 여는 ‘아이다’는 주요 배역을 ‘원 캐스팅’해 눈길을 끈다. 실력 있는 배우의 부족, 마케팅 효과 등을 노려 최근 트리플, 쿼드러플 캐스팅까지 빈번한 상황에서 이례적인 사례다.3개월 반의 장기 공연을 이끌어갈 여주인공 ‘아이다’에는 걸그룹 핑클 출신 옥주현이 나선다. 옥주현의 아이다는 ‘조승우의 지킬’만큼 특별한 배역이다. 옥주현은 2005년 ‘아이다’의 국내 초연에 참가하며 뮤지컬에 데뷔했고, 풍부한 성량과 감정 연기로 호평을 받으며 뮤지컬 배우 변신에 성공했다.옥주현은 제작사 신시컴퍼니와의 계약 과정에서 “5년 전에는 더블캐스팅이었지만 이번엔 혼자 소화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고, 제작사도 별도 오디션을 보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신시컴퍼니 최승희 홍보팀장은 “최정원 남경주 씨는 ‘진정한 배우는 원 캐스팅을 소화해야 한다’고 평소 말한다”면서 “옥주현 씨가 이들과 지난해 뮤지컬 ‘시카고’에 함께 출현하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4만∼12만 원. 1544-1555○ 가수 아이비 불발, 김지우 재캐스팅지난해 국내 첫선을 보여 객석점유율 85% 이상을 기록하며 인기를 끈 ‘금발이 너무해’는 11월 19일∼내년 3월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아티움에서 다시 관객을 찾는다. 지난해에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나와 본인이 출연하는 공연의 객석점유율을 95%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 관계자들은 같이 캐스팅됐던 김지우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탤런트 출신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칠 뿐 아니라 가창력도 수준급이었기 때문. 김지우는 올해 가장 먼저 캐스팅됐다.당초 제작사 PMC프로덕션은 올 8월 ‘키스 미 케이트’에서 안정적으로 뮤지컬에 데뷔한 가수 아이비에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아이비의 소속사인 디초콜릿이앤티에프가 내부 사정이 생겨 계약이 불발됐다. 현재는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출연 중인 그룹 S.E.S 출신의 바다(본명 최성희) 등과 추가 캐스팅을 논의하고 있다. 5만∼9만 원. 02-738-8289○ 슈퍼주니어 규현 뮤지컬 데뷔‘삼총사’는 지난해 초연을 이끌었던 엄기준(달타냥), 유준상(아토스)이 12월 15일∼내년 1월 30일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리는 두 번째 무대에도 참가한다. 지난 공연에서 달타냥에 엄기준 박건형이 나섰지만 올해는 엄기준 김무열 제이, 그리고 뮤지컬이 처음인 그룹 ‘슈퍼주니어’의 규현이 나섰다. 규현은 그룹 동료인 강인 희철 동해 예성에 이어 5번째로 뮤지컬에 데뷔한다. 4만∼12만 원. 02-764-7858∼9황인찬 기자 hic@donga.com▲동영상=조승우도 걸그룹을 좋아했다!!!}

    • 2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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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200년 넘나들며 펼쳐지는 서울 연가… 창작오페라 ‘연서’ 12월 1일 막올라

    조선 말 한양, 일제강점기 경성, 대한민국 서울…. 변화하는 서울을 배경으로 200년이 넘게 이어진 한 연인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창작오페라가 공연된다.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최우정(서울대 교수) 작곡의 오페라 ‘연서’. 서울시가 주최하고 세종문화회관이 제작한 ‘연서’는 서울을 상징할 수 있는 공연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서울대표창작공연’ 시리즈의 하나다. 이에 앞서 9월에는 뮤지컬 ‘피맛골 연가’를 선보였다. 작품은 조선시대 머슴인 ‘아륵’과 기생 ‘도실’이 서로 사랑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헤어진 뒤 시공간을 초월해 다시 만나고 이별하는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 조선 한양의 저잣거리,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이 활보하던 경성거리, 연말을 앞두고 루체비스타 축제가 벌어지는 21세기 광화문 거리 등이 배경이다. 정갑균 연출가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함께 변하는 서울의 발전상을 청소년과 외국인들에게 한눈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은 한국어로 진행되고 최고가 티켓이 비교적 저렴해 오페라와 친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최우정 작곡가와 뮤지컬 ‘서편제’의 조광화 작가가 50여 개의 창작곡을 작품에 녹였다. 도실 역에 소프라노 김수진 김은경 한예진, 아륵 역에 테너 한윤석 최성수 엄성화가 돌아가며 무대에 선다. 1만∼7만 원. 02-399∼1114∼6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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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과 예술의 만남… 메세나협의회 결연식

    한국메세나협의회(회장 박영주)는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신아트홀에서 ‘2010 기업과 예술의 만남’ 결연식을 열었다. 이 행사는 2005년부터 기업과 예술단체가 후원 결연을 해 예술 발전을 도모하고 소외된 계층에 문화적 혜택을 확대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 결연식에서는 독일계 기업 헨켈 코리아와 대안공간 루프가 결연을 하는 등 기업과 예술단체 총 73쌍이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예술단체에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모두 45억 원이다. 지난해에는 63개 기업이 참여해 34억 원을 지원했다.}

    • 2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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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석]오늘 서울평화상 받는 베네수엘라 ‘엘시스테마’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

    “따뜻한 레몬 티 한 잔 주세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의 인터뷰 룸에 들어온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71)는 자리에 앉자마자 따뜻한 차를 주문했다. 서울의 낮 기온이 영상 5도 안팎으로 떨어진 26일 오후였다. 그는 “춥기는 한데 기분 좋게 춥다”며 웃었다. “레몬 티를 좋아해요. 건강에도 좋고 피로 해소에도 좋고. 적어도 하루 3잔은 마셔요.”(웃음) 단구(短軀)인 노신사의 형형한 눈빛 너머로 묘한 활력이 느껴졌다. 아브레우 박사는 제10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시상식은 27일 오후 5시 같은 호텔에서 열린다. 아브레우 박사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시스테마’(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를 35년째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1939년생인 그는 작곡가를 거쳐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고 고국의 대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유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로 정부의 경제 관련 부서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베네수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교육이었다. 36세였던 1975년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청소년 11명을 모아 악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관현악 합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엘시스테마의 첫걸음이었다. 마약과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던 아이들이 클래식 교육을 통해 점차 협동과 이해를 배우게 됐고, 방황을 접고 삶의 목표도 생겼다. 엘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정부와 세계 각국 음악인, 민간 기업의 후원을 받아 날로 성장했고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만 37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한 명의 음악가로서 저는 음악을 통해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꿈꾸는 것은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청소년 음악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과 유네스코 같은 기관들의 도움을 받아 이 목표도 이뤄나가고 싶습니다.” 35년 전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한 아브레우 박사의 꿈은 아직 현재진행형이었다. ―엘시스테마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상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받는 서울평화상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개인적인 영광보다 저와 동료들이 한 활동을 인정해 주는 것이어서 매우 기쁘다. 한국에는 저희 활동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아서 더 의미가 크다. 한국은 악기를 제공하는 등 그 어느 나라보다 음악 교육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엘시스테마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 “베네수엘라 음악가 몇 명과 함께 음악 교육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해보자는 데 뜻이 맞았다. 악기 가격이 비싸니 가난한 아이들은 음악을 배울 수 없었고, 음악 교사 수도 모자랐다. 아이들에게 개인 레슨을 하는 것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수도 카라카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체계적인 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일단 카라카스에서 오케스트라를 하나 창립해 정부로부터 이 비전의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정부 지원을 통해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었다.” ―엘시스테마의 현재 모습은…. “베네수엘라에서만 37만 명 이상의 청소년과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음악 교사만 6000여 명이다. 오케스트라의 일원이었던 아이들이 세월이 흘러 이제는 교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 젊은 교사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아이들 가운데 90%는 자라서 음악 교사가 돼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소망을 갖는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정부가 운영비의 95%를 지원하고 나머지 5%는 민간 지원을 받는다. 처음에 정부는 교사들의 월급 정도만 지원했지만 이제는 음악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하고 있다. 또한 각국의 음악가들이 교사로 와서 도와주고 있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총과 마약 대신 악기를 줘서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연구조사와 통계에 따르면 엘시스테마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까지 참여해 변화를 이끌고 있다. 마약과 폭력을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인 사례는 없다. 이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회 개혁 프로그램이 됐고, 사회적인 물결이 일고 있다. ” ―1975년 2월 첫 수업은 차고에서 연습을 하며 시작했는데 어려웠던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은…. “처음엔 연습장소도, 본부도 없었다. 차고나 공장, 교회 등 누구나 장소를 빌려주면 가서 연습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번째 교육이다. 100명의 청소년이 배울 수 있도록 의자와 책상을 기부 받아 연습할 장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육 당일 가보니 11명밖에 안 나와 있었다. ‘아, 힘들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웃음) ―독주나 합창, 다른 장르도 있는데 왜 오케스트라를 선택했나.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협동과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 덕분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같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연주회를 할 수도 있었다.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사라 장이 카라카스에 와서 연주를 하기도 했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한국도 ‘엘시스테마’와 유사한 음악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조언을 해준다면…. “딱 꼬집어 할 말은 없다. 나라마다 특성이 있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 다만 한국이 엘시스테마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듯이 우리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1939년생―1957 카라카스음대 수학―1961 카톨리카 안드레스 벨로대 경제학 박사 취득―1975 ‘엘시스테마’ 창립―1983 베네수엘라 문화부 장관―1993 엘시스테마, IMC 유네스코 국제음악상 수상―1998 유네스코 친선대사―2009 세계 경제포럼 크리스털 상, TED 상, 스웨덴 폴라음악 상 수상―2010 서울평화상 수상}

    • 201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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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리뷰]아는 얘기, 좁은 무대… 연기만은 빛났다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입을 맞춘 뒤 이렇게 읊조린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뜨거운 불길이 환희를 가져왔습니다. 이 입술은 로테의 입술 위에서 떨었습니다. 이 죄의 성스러움을 맘껏 들이마셨습니다.” 이 같은 감성적인 문어체의 사랑 표현이 이 작품에선 넘쳐난다. 진중하고 비극적인 대사 자체는 아름답지만 간혹 낯간지럽게도 느껴졌다. 22일 막을 올린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연출 김민정)은 2000년 창작 뮤지컬로 시작해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고 이번에 10주년을 맞아 다시 제작한 것. 줄거리는 괴테의 동명 소설과 다르지 않다. 감수성이 풍부한 청년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반하고, 로테가 정혼자인 알베르트와 결혼하자 결국 자살을 한다는 내용이다. 무대와 객석에는 내내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았고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도 없었다. 눈길은 배우의 밀도 높은 감정 연기에 쏠렸다. 베르테르 역을 맡은 박건형은 공연에 앞서 “평소 강한 역할만 했는데 베르테르 역을 맡아 감정을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엷은 발성과 섬세한 연기로 나약한 청년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자살을 결심한 뒤 독백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부분에서 객석을 압도했다. 로테 역의 임혜영도 앞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킴 역에서 보여준 것처럼 특유의 맑고 가녀린 고음의 발성과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 앞선 두 배우가 기대치를 충족했다면 이상현은 다소 묻힐 수도 있었던 알베르트 역을 도드라지게 소화하며 기대 이상의 울림을 냈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아내의 부정을 알면서도 사랑을 지키려 인내하는 복잡한 심경을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 배우들의 열연과 안정적인 노래는 빛났지만 아쉬움도 남았다.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동선이 이들의 호연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무대는 각기 다른 높이의 작은 무대로 잘게 쪼개져 배우들은 폭이 넓은 계단을 넘나들면서 연기해야 했다. 공간이 협소한 탓에 춤 동작은 극히 제한됐으며 배우들의 동선도 불편해 보였다. 특히 무대 앞뒤 폭이 매우 넓은 데다 배우들이 주로 뒤쪽에서 연기를 펼치는 탓에 표정을 제대로 읽기 힘들었다(기자가 앉은 자리는 1층 앞에서 아홉 번째 열이었다). 특히 베르테르가 무대 뒤쪽 2층에서 자살할 때는 대사마저 없는 바람에, 그 마지막 결정적인 표정 연기를 보기 위해 이마를 찡그리고 눈을 가늘게 떠야 할 정도였다. 다만 총격 소리 없이 붉은 조명으로 죽음을 암시한 것은 여운을 남기기에 적절한 선택인 듯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i: 4만∼10만 원. 11월 30일까지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02-501-7888}

    • 20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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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파일]봉은사 명진 스님 “격한 말 사죄… 직영 사찰 수용”

    불교 조계종의 직영 사찰 지정과 관련해 정치적 외압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 강남 봉은사 사태가 마무리됐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사진)은 24일 봉은사에서 열린 일요법회에서 “하루 전날 총무원장 스님과 화쟁위원회 위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그동안 수행자답지 않은 격한 말로 갈등을 빚은 것에 대해 사죄했다”면서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원장 스님과 전국 사부대중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원장 스님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신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면서 “(직영 사찰과 관련해) 화쟁위원회의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징계 문제에 대해 “꽃게든 털게든 받아들이겠다”며 수용의사를 내비쳤다. 화쟁위는 이에 앞서 13일 봉은사의 직영 사찰 지정과 종단 인사권의 존중, 징계 과정에서 총무원의 선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중재안을 발표한 바 있다. 명진 스님의 임기는 11월 13일 끝나며 총무원은 화쟁위 안에 따라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후임 주지를 임명할 예정이다.}

    • 201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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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충모 교수“한-미 피아노계 잇는 다리 되고 싶어”

    ■ 한국 피아니스트 최초로 美줄리아드음악원 교수 되는 강충모 한예종 교수 “50세에 무언가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부담이죠. 하지만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생각됐습니다.” 피아니스트 강충모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50)가 내년 9월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음악원 교수로 취임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정경화 교수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다. 강 교수는 22일 기자와 만나 “한국에서 펼친 연주와 음악교육 활동을 인정받아 줄리아드 교수가 되는 것은 개인의 영예를 떠나 한국 피아노계의 세계적 위상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뿌듯함을 나타냈다. 강 교수의 줄리아드 행은 1년 반가량의 막후 작업을 통해 확정됐다. 그는 지난해 4월 예상치 못한 e메일을 받았다. ‘혹 교수직을 제안한다면 미국에 올 수 있겠느냐’고 줄리아드 측이 조심스레 타진해온 것. “당연히 기뻤죠. 세계 최고의 음대에서 저에게 관심을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한국 생활을 완전히 접고 간다는 것이 부담이었습니다”라고 강 교수는 말했다. 그 후 몇 차례 e메일과 직접 만남을 통해 줄리아드 측과 접촉했고, 강의 계획과 처우에 대해 지난달 최종 합의했다. 강 교수는 “줄리아드는 평생 교수를 제안했지만 나는 우선 3년만 해보겠다고 했다. 더 남아 있을지는 그때 가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 피바디음악원에서 아티스트디플로마 과정을 수료했고 국내외에서 피아니스트와 국제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약해 왔다. 2000년부터 한예종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강 교수는 줄리아드 행에 대해 “제가 인복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줄리아드 피아노 학과장인 베다 카플린스키 교수는 강 교수의 피바디음악원 유학 시절 스승. 채용 과정에서 카플린스키 교수는 “강 교수가 가르친 제자들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고 신뢰감을 표시했다. 강 교수는 이번 채용에 앞서 3월 줄리아드에서 특강 형식의 ‘마스터클래스’를 일주일간 진행했다. “30명의 학생을 가르쳤는데 수준이 고르게 좋고, 강의 습득도 빨라 놀랐습니다. 하지만 미국 학생들의 연주는 너무 자유분방해 오히려 연주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줄리아드 피아노과에는 9명의 교수가 재직 중이고 1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 중 20여 명의 학생이 한국계다. “제가 간다고 줄리아드가 확 바뀌는 일은 없겠지만 제가 줄리아드의 한국 학생들을 도울 수도 있고, 유학 오려는 학생들에게 조언도 줄 수 있겠죠. 한국과 미국의 피아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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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이상규 한양대 국악과 교수

    국악 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해온 이상규 한양대 국악과 명예교수(사진)가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6세. 고인은 한양대 국악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거쳐 1982년부터 한양대 국악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1965년 국립국악원 주최 신국악작곡공모전에 입상한 뒤 대금협주곡 ‘대바람 소리’ 등 수십 곡을 작곡했다. 1993년 중요무형문화재 대금정악 전수교육조교가 됐고 KBS국악관현악단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단장 및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1985년부터 동아국악콩쿠르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1978년 대한민국 작곡상 대통령상, 1994년 KBS국악대상, 2007년 백남학술상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진명자 씨와 아들 조형 씨(오렌지베크 대리), 딸 경은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2-2290-9457}

    • 201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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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두 루푸 내한공연 취소

    3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이던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의 독주회가 취소됐다고 주최 측인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가 21일 밝혔다. 주최 측은 “루푸가 일본 투어 첫 공연인 15일 공연 후 건강 이상을 호소해 스위스 제네바의 자택으로 돌아가 진료를 받고 있었으며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이날 내한 공연 취소를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서울시립교향악단도 11월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 예정이던 루푸와의 협연을 취소하고 대체 연주자를 섭외하고 있다. 예매 관객은 환불받을 수 있다. 마스트미디어 02-541-6235, 서울시향 1588-1210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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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루푸 공연 취소

    3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이던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의 독주회가 취소됐다고 주최 측인 공연기획사 마스트미디어가 21일 밝혔다. 주최 측은 "루푸가 일본 투어의 첫 공연인 15일 공연 후 갑작스럽게 건강 이상을 호소해 예정된 일본 공연 7건을 모두 취소하고 스위스 제네바의 자택으로 돌아가 진료를 받고 있었으며 담당 주치의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이날 내한 공연 취소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첫 내한 공연이 취소된 것에 대해 루푸는 깊은 사과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주최 측은 전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도 11월 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 예정이던 루푸와의 협연을 취소하고 대체 연주자를 섭외하고 있다. 예매 관객들은 환불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마스트미디어 02-541-6235, 서울시향 1588-1210황인찬기자 hic@donga.com}

    • 201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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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건반으로만 소통하며 가슴 울리다

    전에 없었고, 이후도 기약할 수 없는 거장 피아니스트의 공연이 찾아온다. 루마니아 출신 피아노 거장 라두 루푸가 31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루푸는 1966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3년 뒤 리즈 콩쿠르까지 석권하며 40년 넘게 세계 피아니스트계의 최정상 위치에서 활동해왔다. 국내 라이선스 음반의 여명기였던 1970년대에 20대의 나이로 데카 레이블에서 슈만과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 슈베르트 즉흥곡집 등 수많은 명 음반을 내놓으면서 일찌감치 한국 클래식팬들에게도 ‘마음의 친구’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연주가 40년 이상 갈채를 받아온 가장 큰 비결은 무엇보다도 깊이 있는 해석으로 가슴을 움직이는 중후한 연주. 특히 19세기 슈베르트, 브람스, 베토벤 등 독일,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에 대한 분석적이면서도 감수성 넘치는 해석으로 명성을 높였다. 이번 공연에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Op.57 ‘열정’,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Bb장조 D960, 야나체크 ‘안갯속에서’를 선보인다. 그는 공연 준비가 충분치 않으면 무대에 서지 않는 완벽주의자로도 유명하다. 이달 일본 투어 중 15일부터 모든 공연 일정을 취소한 것도 그 때문. 공연 주최사인 마스트미디어는 “자신의 컨디션이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껴 공연을 아예 취소한 것으로 안다. 스위스 제네바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국 공연은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푸는 내한에 앞서 공연에 쓸 피아노 건반의 무게를 물어봤고, 피아노 보관소가 아닌 실제 무대에서 연주에 쓸 피아노를 고르고 싶다고 부탁했을 정도로 깐깐한 면모를 확인시켜줬다. 주최 측은 단지 피아노를 고르기 위해 예술의전당 대관 일정을 추가로 잡았다. 이 고집스러운 연주가는 지금까지 40년 넘도록 언론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오직 연주를 통해서만 관객과 소통하겠다는 일념이다. 영국 국적을 갖고 있으며, 스위스 국적의 부인과 함께 스위스에 살고 있다는 정도가 알려진 그의 사생활. 오로지 건반을 통해서만 말을 건네는 ‘침묵의 피아니스트’를 만날 곳은 공연장밖에는 없다. 5만∼13만 원. 02-541-3183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두 연주가가 본 라두 루푸10대 때 이미 중후하고 깊이있는 연주 라두 루푸를 처음 본 것은 1965년 베토벤 빈 콩쿠르였다. 당시 그는 10대였지만 이미 음악적으로 완숙했다. 보통 젊은 연주가들은 패셔너블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도 중후하고 깊이 있는 내면을 표현했다. 그 뒤에도 베토벤 협주곡 연주나 런던에서 열린 독주회 등을 통해 그의 연주를 자주 접했다. 그때도 젊은 연주가가 굉장한 깊이와 무게감을 지녔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후 더욱 완숙해졌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루푸는 사생활을 감추고 은둔한다는 이유로 ‘괴짜’ 이미지가 있는데 내가 만나본 그는 다르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 “내 음악 작업을 도와달라”고 하자 그는 1시간 거리를 차로 달려 직접 찾아왔다. 편안하고 친절한 친구였다.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피아니스트) 슈베르트 연주는 죽기 전 꼭 들어봐야 루푸는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악기를 통해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극히 드문 피아니스트다. 기술적으로 악기를 명확히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음악가라고 부를 만하지만 루푸는 음악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한 예술가다. 1980년대 중반 파리음악원 유학 시절 그의 연주를 처음 들을 때부터 큰 감흥을 받았다. 그 감동이 내 음악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루푸의 슈베르트 연주는 최고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말로 유명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처럼 루푸가 연주하는 슈베르트는 죽기 전에 꼭 들어봐야 한다. 루푸는 인터뷰 없이 음악에만 전념하는 상태가 수십 년 동안 이어지다 보니 그 사실 자체도 일종의 홍보가 되는 셈이다. 그런 만큼 그의 음악도 가는 길이 뚜렷하고 정체성이 명확하다.양성원 연세대 음대 교수(첼리스트)}

    • 201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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