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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다. 독일식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해서 난 상당히 선진적이고 공정한 선거법 개정안인 줄 알았다. ‘진보’를 자부하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시절에 내놓은 합의안이니 사특(邪慝)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정당의 득표율에 의석수를 맞추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문제는 ‘연동형’ 아닌 그냥 비례대표제도 분명 존재하는데(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비례대표제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는 거다. 비례대표 수를 계산하는 방법을 기자들이 묻자 심상정은 “산식(算式)이 복잡하다”며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오만을 떨었다. ● 내 칼럼 비판한 뉴스톱에 감사하지만 29일 뉴스톱이라는 매체는 동아일보에 쓴 내 칼럼 을 놓고 “전체 의석수를 지지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에 독일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럽 여러 나라를 줄줄이 열거한 뒤 “김순덕 대기자 같은 이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만 실시한다’는 거짓말 또는 말장난을 얹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는 비례제는 순수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4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처럼 소선거구에서 다수대표제로 지역구 의원을 뽑고, 비례대표를 따로 뽑는 경우를 혼합제라고 하는데, 여기서 또 연동형과 병립형이 갈라진다. 병립형이란 우리나라처럼 지역구 당선자에다 정당득표율로 얻은 비례대표를 더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헝가리, 리투아니아, 멕시코가 이렇게 한다. ● 정의당을 위해 연동형 도입한 셈 그럼 연동형은 뭐냐.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얼마 나왔든, 전체 의석수는 정당득표율과 연동시켜 조정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렇게 연동형을 하는 나라는 독일과 뉴질랜드 2곳이라고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인용해 밝혔다. 뉴질랜드는 독일과 또 다르다. 독일처럼 초과의석 발생 시 조정 작업을 통해 추가의석을 주지도 않고, 독일처럼 권역별 비례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뽑는다(김한나, 박현석의 2019년 논문 ‘연동형 비례제와 정당 민주화: 독일과 뉴질랜드 주요 정당의 공천제도 비교연구’). 독일식 연동형은 비례의석을 군소야당만 받는 게 특징이다. 오히려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많이 나올수록 비례의석을 얻기 어렵다. 민노총처럼 확고한 지지층을 지닌 정의당이 연동제에 목을 맨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구에 자신 없는 기타 정당들에도 당연히 유리하다. ● 2차대전 패전국 독일의 슬픈 연동제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도 작년 말 이슈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혀 놨다.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독일을 제외하고는 그 사례가 많지 않음.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구상의 가장 좋은 선거제도라면 모든 나라가 채택할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독일식 선거제도에도 역기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됨. 뉴질랜드는 전국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 네덜란드와 스웨덴은 지역구 의원이 없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임”(‘권역별 비례대표 의석배분방식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의 시사점 검토’ 김영재 민주연구원 수석연구위원·행정학박사)그렇다면 왜 독일은 다수당에 절대 불리한 이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것일까. 독일에서 수학한 김종인 박사는 “2차대전 패전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는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특정 정당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독일식 연동형은 의석 배분 과정이 매우 복잡해 선거전문가조차 혼란스러워한다는 논문도 나와 있다(김종갑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비판적 평가와 대안모델의 탐색’). 비례성을 높이려면 ‘스칸디나비아식’ 비례대표제를 택하면 된다. 비례의석 배분만 지역구선거의 의석 과점과 연동시키는 거다. ● 민주당 “좌파연정 위해 손해 감수”그럼에도 집권세력은 굳이 독일식 ‘연동형’을 고집하니 의도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첫째는 군소야당에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꿔주는 조건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다. 아니라면 굳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안을 패키지로 패스트트랙에 올렸을 리 없다. 둘째는 정의당과의 연정으로 장기집권을 꾀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이 한국당을 빼고 폭력사태를 유발해가며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뒤, 이 당의 전략통인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가 솔직하게 밝힌 바다. “비례성이 올라가면 민주당은 다수파가 못 되지만 진보파 전체는 넉넉한 다수파가 될 수 있다. 단독 집권해봤자 100석 넘는 제1야당이 막아서면 아무것도 못한다. 진짜 20년 집권을 하려면 진보파가 넉넉한 다수파가 되고, 민주당은 진보파 연정을 주도하는 길로 가야 한다. 이거 하면 우리 의석은 손해다. 그래도 담대하게 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꿀 힘이 생긴다.”(주간지 ‘시사인’ 5월 7일자) ● 대통령제+다당제, 南美의 길로 민주당이 순수하게 독일식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정하되 그중 절반만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비례대표 의석은 현행처럼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준연동제’다. 그래서 음선필 홍익대 교수는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관한 헌법적 검토’라는 최근 논문에서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정당득표율에 상응한 의석수보다 더 많은 지역구의석을 차지하였음에도 추가로 비례대표의석을 배분받음으로써 이득을 많이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소야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제로 가면 다당제 시대가 열린다. 뉴스톱은 ‘내각책임제 아닌 대통령제에서도 연정이 가능하며, 연정이 되지 않은 여소야대라도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낫다’고 주장했다. 나는 다당제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를 하는 대부분의 나라가 내각책임제라는 점은 중요하다. 뉴스톱도 ‘대통령제이면서 다당제인 여러 나라들(특히 남미 지역)이 고질적 여소야대와 정당 난립에 시달리는 건 사실’이라고 적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남미로 뚜벅뚜벅 갈 모양이다. ● 집권당과 영합한 군소야당, 부끄럽지 않나연동형 비례제든, 보통 비례제든, 다수당제든, 어떤 제도로 개벽을 하든 국회의원들이 국민만 생각하며 정치 잘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상향식 공천제도를 정당법과 선거법에 명시한 독일에서도 실제로는 정당 엘리트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연동형 비례제와 정당 민주화’ 논문은 지적한 바 있다. 누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게 실세들이 비례대표 후보를 주무르는 우리나라에선 문재인 키드, 심상정 키드, 손학규 키드, 정동영 키드가 쏟아져 나오기 십상이다. 제2의 이석기가 나와도 국민은 알 도리가 없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목숨 걸고 단식을 한 것도 좌파 영구집권을 막기 위해서라고 믿고 싶다. 한국당을 좋아하긴 어렵지만 의원 수 늘리려 제1야당 빼돌리고 공수처까지 만들어 바칠 군소야당보다는 백번 낫다. dobal@donga.com}

결국 수순대로 가는 모습이다. 민주국가가 독재로 후퇴하는 공식은 ①위기 때 카리스마적 지도자처럼 등장해 ②계속 적(敵)을 만들면서 ③사법부와 언론, 군부를 제 편으로 만들어서는 ④영구집권을 위해 선거제를 바꾸는 것이라고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소개했다. 우리의 집권세력은 ③번과 ④번을 패키지로 묶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우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으로 사법부와 검경을 확실히 장악하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으로 군소야당 특히 위성 정당 같은 정의당 의석을 늘려줌으로써 좌파 독재를 꾀하는 ‘야만의 트랙’ 또는 트릭이다. 자유한국당에선 “공수처를 주고 선거법을 막자”는 소리가 나온다. 공수처는 한국당이 집권하면 폐지할 수 있다는 정치 공학적 해법인 듯하다. 그들에겐 더 중요한 선거제가 개편돼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돌이킬 방법도 없다는 논리다. 일리가 없진 않다. 독일식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내각책임제 아닌 우리나라에서 독일처럼 협치와 연정(聯政)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많은 나라가 도입하지 달랑 독일만 할 리도 없다. ‘초과 의석이 발생해 정치적 불안정성을 높이고 여소야대가 일상화돼 입법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민주연구원 이슈브리핑에서 지적됐을 정도다.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50% 연동률이어서 비례성이 높지도 않다. 심상정 같은 정의당 실세는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가 될 수 있게 석패율제까지 집어넣었다. 정당 민주화나 정치개혁과는 거꾸로 갈 판이다. 심상정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사법개혁의 상징’이라며 싸고돈 것은 선거법 개정 이후 닥칠 좌파연대 독재의 ‘미리 보기’였던 셈이다. 안 그래도 지금 집권세력은 공수처 설치가 다급하고 절실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을 겨냥한 경찰 수사가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였다는 의혹까지 터진 상황이다. 검찰은 청와대 심장부까지 칼날을 겨누고 있다. 물론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친문 핵심인 당시 백원우 민정비서관에게 김기현의 비리첩보를 받아 경찰에 보낸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반부패비서관실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 민간인 사찰이 의심스럽다. 대통령 절친인 송철호의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경찰 수사를 유도했다면 징글징글한 ‘국정의 사유화’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검찰의 청와대 수사는 공수처로 이관된다. ‘조국보다 윗선’이라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특별감찰 무마 수사 또한 공수처로 넘어갈 것이다.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기 때문에 수사와 기소는 윗분의 뜻을 받들어 조용히 뭉개질 공산이 크다. 우리들병원의 특혜 대출 의혹을 비롯해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온갖 비리 의혹이 튀어나와도 검찰은, 국민은 눈과 귀를 가려야 한다. 그러자고 집권세력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공수처를 설치하려는 것 같다. 개돼지에게 잠깐 욕을 먹고 군소야당 요구대로 의원 정수를 늘려주거나, 제1야당 요구대로 선거법 개정을 포기하면 빅딜은 가능하다. 여당과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칭)은 어제 한국당을 뺀 ‘4+1 협의체’에서 공수처 단일안 만들기에 들어갔다. 위헌적, 반(反)민주적 공수처를 선거제와 거래해 자기네 밥그릇 키우겠다는 야당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한국당이 합세해 공수처의 기소권을 없애는 식으로 독기를 뺀다 해도 ‘정권 보위처’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야만의 트랙 위에서 한국당이 사는 길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밖에 없다. 선거법 개정 막겠다고 삼권분립까지 위협하는 공수처를 허용하는 것은 당신들 금배지 지키기에 불과하다. 현행 선거제로 총선을 치른대도 지금 같은 한국당은 승리 못 한다. 집권해서 공수처를 없애면 된다는 한국당의 착각이 더 놀랍다. 현행 선거제인 소선거구제 선거법 개정안도 1988년 3월 8일 새벽 2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날치기로 통과됐다.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이 전국구 의석(75석)의 절반을 가져가는, 기울어진 운동장법이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만들어 여당을 응징했다. 국민의 현명함을 모두가 믿고 힘을 냈으면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문빠’를 제외한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나라가 북한이 원하는 대로 가고 있다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남북관계가 보람스럽고 전쟁 위협도 제거됐다고 했지만 다수 국민에겐 그렇지 않다.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로 무장해제를 하는 사이, 북은 핵 폐기는커녕 우리 요격미사일로도 못 막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신종 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게임 체인저 3종 세트를 완성했다. 한 국가의 파워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 전쟁 아니면 공갈이다. 북에서 한번 공갈을 치면 이 정부는 설설 긴다. 남북 권력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23일 0시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에 이어 자칫하면 북의 수십 년 숙원사업인 주한미군 철수까지 실현될 조짐이다.● 김정은이 한미군사훈련 이해했다고? 그 맨 앞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국가안보실장이 국방·외교·통일·행정안전부 장관 역할을 합친 듯한 역할을 해서 엄청 높아 뵈지만 헌법기구인 NSC와 달리 국가안보실은 대통령비서실의 한 조직이다. NSC 의장인 대통령은 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국무총리로 하여금 그 직무를 대행하게 할 수 있지만 비서인 정의용은 NSC회의에서 위임한 사안을 처리하는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일 뿐이다.작년 3월 6일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와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국민 앞에 밝힌 사람이 정의용이었다. 북측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보고한 거다. 작년 4월 진행 예정이던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김정은이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정의용은 강조를 했다. 이 대목은 특히 중요하다. 최근 북이 한미연합공중훈련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고, 미국이 연기를 발표했는데도 19일엔 완전 중단까지 요구했기 때문이다. ● 정의용수첩 메모, 김정은 발언 맞나김정은과 면담 당시 정의용이 펼쳐놓은 수첩이 수상하다. 그가 귀국하기 전 사진으로 먼저 공개된 수첩엔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미 연합훈련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김정은이 한미훈련을 반대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밑에는 ‘또 한번의 결단으로 이 고비를 극복 기대’라는 메모가 있다. 김정은이 “4월 한미훈련을 앞두고 있지만 또 한번 결단을 내려 이 고비를 극복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메모다.그 아래 ‘전략무기 전개’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작년 핵·미사일 실험은 유일한 대응조치’ ‘다른 선택 無’ ‘새로운 명분 필요’라고 적혀 있다. 김정은이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개한 데 대해 작년 북에서 핵·미사일 실험을 한 것은 유일한 대응 조치였고,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도 못 믿는다정의용은 귀국보고에서 그 메모가 김정은의 말이 아니라고 극구 강조를 했다. 김정은과 면담할 때, 한미훈련 문제가 제기될 경우 남북관계가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설득해야겠다 싶어 자신이 적어놨다는 거다. 그렇다면 왜 북이 이제 와서 미-북 비핵화 협상 조건으로 한미훈련 완전 중지를 요구하는지 말이 안 된다. 그 말이 거짓이라면 정의용이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힌 것도 의심스러워진다. 외교관 출신인 그가 단어 하나하나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김정은이 핵포기를 한다는 발언은 없다는 데 전문가들도 주목을 했다. 북에서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란 북에 있는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반도 핵우산 보장 철회, 일본과 괌에 있는 미국의 핵무기 철수까지 거의 무한대의 범위다. 북은 자기네를 불안케 하는 이런 위협 요소가 다 사라져야 핵을 가질 이유가 없어진다고 명백히 밝힌 셈이다. ● 미국선 “김정은이 비핵화 말했다” 발표 정의용이 방북 결과를 설명한다며 미 백악관에서 가진 브리핑 내용은 이와 다르다.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하였다고 하였습니다(I told President Trump that, in our meeting,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said he is committed to denuclearization).” 외교관들은 ‘commit’ 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트럼프로선 김정은이 자기 입으로 ‘북한 비핵화’를 책임질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브리핑이다. 정의용이 대한민국 국민 앞에서와 미국 대통령 앞에서 다른 말을 한 것이다. 둘 중에 하나는 속았다고 할 수 있다. 정의용이 문 대통령에게도 거짓을 보고하진 않았을 것이다. 국민에게 한 말과 똑같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전했다면,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그 이상까지 예상하고 뚜벅뚜벅 수순을 밟아가는 것일 수 있다. ● 북은 ‘왜놈들과 협정’ 지소미아 반대했다북이 한미동맹 만큼 싫어하고 겁내는 것이 한미일 안보 공조다. 2012년 지소미아 체결 직전까지 갔을 때는 “이명박 친일친미 정권이 기어이 미제의 압제에 홀려서 우리 민족의 불구대천과도 같은 원수의 나라인 왜놈들과 협정을 맺은 것은 공화국과 인민들을 기만하고 침략행위 앞에 굴복당한 것”이라고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통해 격하게 비난했다.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주한 미군이 위험해지고 한미동맹 역시 위태로워진다는 우려가 한미 양국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이 원하는 길이기에 청와대는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그래서 국민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1년 8개월 전 북측에 핵 폐기 의지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여기까지 밀고 온 정의용이 의심스러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연 정의용은 정직한 대통령특사였는가. 지나친 애국심이나 충성, 또는 고희(古稀)를 넘겨 올라앉은 고위직에 눈멀어 세상을 속인 건 아니었는가. ● 대통령 책임인가, 비서의 잘못인가국민이 뽑은 국회가 있고, 인사 청문회를 거친(물론 다 경과보고서 채택을 받진 못했다) 장관들이 존재하는데 대통령비서실이 입법·사법·행정의 상위에서, 국방·외교·안보·통일 정책까지 주도하는 것은 정상적 민주정부랄 수 없다. 민주주의의 요건인 ‘책임정치’에 어긋난다. 명나라 때 황제의 명에 따라 대규모 해상 원정에 나섰던 정화는 환관이었다. 대통령의 명에 따라 김정은을 만나 오늘의 단초를 만든 정의용도 결국 대통령비서다. 그래도 경제난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견딜 수 있겠지만 당장 안보에서 ‘환관 통치’의 독(毒)이 퍼지는 형국이다. “지소미아와 한미동맹은 별개”라며 대통령과 국민을 오도하는 정의용의 난리(亂理·도리를 어지럽힘)를 통해. 비서의 잘못된 보고 때문인지, 비서가 대통령에 맞추느라 이 지경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다 10~20년 후에도 대한민국이 자유민주 체제로 존재할지 불안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dobal@donga.com}

불길하다. SM그룹 우오현 회장이 장군처럼 군대를 사열하는 사진을 본 순간, 박연차 회장이 떠올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그가 정권 말 만취 난동을 부린 사건을 보는 것 같았다. 평소 군(軍)에 후원을 많이 해 명예 사단장이 됐다는 우 회장처럼, 태광실업 박 회장도 평소 좋은 일 많이 했다. 하지만 청와대 권력이 없으면 그런 만용은 못 부린다.기업도 아닌 군이 알아서 모셨다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더욱 불길하다는 거다. 정권 말도 아닌데, 안보도 불안한 판에, 벌써 정권 말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 ● 대통령과 총리 동생, SM그룹이 우연히 모셨다고?물론, 당장 범법 행위가 드러났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SM그룹은 대통령의 동생과 총리의 동생을 동시에 고용해 9월 국회서도 거론됐던 요주의 대상이었다.해양수산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작년 7월 출범 이후 올 8월까지 28개 선사(船社)에 1조4465억 원을 지원했는데 그중 거의 10%가 SM그룹 계열사에 쏠렸다. 진흥공사 사장이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인 황호선이고, 당연히 해운 경력 없는 낙하산이다. 야당은 “SM그룹이 대한민국 권력 서열 1, 2위 동생들을 영입한 덕을 본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낙연 총리는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회사에 영입된 것도 우연이라며 일축했다. 흥. 건설업으로 시작해 대관(對官) 업무에 이골이 난 준재벌기업이다. 우연이라고? ● 특별감찰관은 공석, 민정수석은 뭐했나SM그룹은 2017년만 해도 재계 서열 46위였다. 지난해 해운업 계열사인 케이엘씨SM의 선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동생을, 건설업 계열사인 SM삼환의 대표이사로 이 총리의 동생을 모시면서 그룹 서열이 37위(2018년)→35위(2019년 5월)로 뛰었고, 공공사업 수주 건수도 부쩍 늘었다. 야당 지적대로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있다면 진작 들여다봤을 기업이다. 특별감찰관은 지난 정부 때 우병우 민정수석을 들여다보다 되치기당한 뒤 지금까지 공석이다. 청와대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만 고대하는 척하며 문 정부 출범 절반이 지나도록 권력 주변 감시에 손놓은 상태다. 특별감찰관이 없으면, 민정수석이 들여다봤어야 했다. 문 대통령도 2018년 6월 18일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 민정수석실에서 열심히 감시해달라”고 지시한 기록이 있다.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서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도 악역을 맡아달라”고까지 했다. 하하 그 민정수석이 무엇을 해왔는지, 지금 국민은 안다. 조국이 알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대통령책임제에선 비서실장 책임이다권력 붕괴는 청와대에서 시작된다. 전임 정부의 김기춘 비서실장은 ‘윗분의 뜻’을 받드느라 비선 실세는 물론 문고리 권력도 견제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 박연차의 돈을 받거나 그의 딸을 청와대 직원으로 들여놓은 것도 ‘좌희정, 우광재’였다. 대통령비서실장 책임이 크다. 문제가 생기면 내각을 해산하는 내각책임제와 달리, 대통령책임제에선 대통령을 어쩔 수 없기에 비서실장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문제가 생기면 쓴소리 비서실장으로 교체해 심기일전을 꾀하고, 국민을 안심시켰다. 노 정부 말기, 대통령 부인이 박연차의 돈을 받았을 때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이라는 기억은 하고 싶지 않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올 초, 조국 당시 민정수석 아래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유재수 감찰 무마 폭로 이후 청와대에 입성했다. 원조 친문의 귀환이고 강한 청와대를 상징한다. 대통령 지킴이를 자처해온 노영민을 청와대에 들였으니 대통령으로선 편한 실장을 택한 셈이다. ● “밀리면 끝장”이라는 노영민의 ‘환관 통치’2012년 대선, 2015년 재보선 패배 뒤 “실패했던 정무적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비선으로 문재인을 보좌하고 있어 문제”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노영민이었다. 2017년 대선 보좌는 성공 보좌했다고? 미안하지만 나는 탄핵 여파로 거저 얻은 승리라고 본다. 노영민이 탁월한 전략가라면 대통령 발밑이 왜 벌써 무너지겠나. 대통령 임기 중반을 맞았다고 노 실장 등 청와대 3실장은 10일 초유의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도 모자랄 판에 이들은 국정 운영에다 내년 총선까지 언급하는 ‘환관 통치’를 대놓고 드러냈다. 최근 탈북 주민의 북송 결정도 청와대 안보실에서 내렸다고 통일부 장관은 고백했다.‘밀리면 끝장’으로 믿는다는 점에서 노영민의 판단은 맞다. 독재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연구한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의 논문에 따르면, 2011년 ‘아랍의 봄’도 독재자가 시위대에 양보하는 순간 운명이 결정된다. 군과 경찰 고위관료 등 집권 네트워크 내 엘리트들이 독재자를 더는 믿지 못하고 제 살길을 찾아 돌아서면서 정권은 무너지게 됐다. ● 비서진 대거 출마…청와대 탈출인가 밀린다고 다 죽진 않는다. 임기 초반부터 광우병 촛불시위로 공격받은 이명박 정부는 정권 중반 중도실용정부로 국정 방향을 전환해 결국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신군부정권 전두환도 6월 항쟁에 완전 손들었으나 행인지 불행인지 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후계자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줄 수 있었다.문재인 정부도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다. 국정의 방향을 바꿀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위태로운 지금, 이대로 계속 간다면 베네수엘라처럼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대선도 장담 못 한다며 참모진을 대거 내보낼 태세다. 자기들이 엄청 일 잘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믿는 모양이다. 착각은 자유다. 이 엄중한 시기에 서생원처럼 서둘러 청와대를 탈출하려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국민은 비서실장에게 악역을 원한다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드린다면, 국민이 비서실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악역이다. 대통령이 불편해할 만큼 쓴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부인과 대통령비서실장밖에 없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2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김기춘을 택했다. 너무 이른 선택이었다. 친문 원조 노영민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을 편하게 해준다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것이 간신이고, 피곤하지 않게 해준다고 알아서 국정을 처리하는 것이 환관 통치다. 대통령이 불편해야 국민이 편해진다. 노영민이 제 할 일을 못 한다면, 비서실장을 바꿔야 한다. dobal@donga.com}

“지난 2년 반은 대전환의 시기였습니다.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시기였습니다. … 함께 잘사는 나라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데 주력했습니다.”(10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지난 2년 반은 넘어서야 할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간이었습니다. … 함께 잘사는 나라로 가는 기반을 구축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11일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이 자기 비서실장의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을 다음 날 거의 그대로 따라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노 실장 발언 원고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3실장이 원팀이 되어서 무한책임의 자세로 일하겠다”는 한 대목만 빼면 대통령 말씀이라 해도 믿을 뻔했다. 청와대 3실장 간담회가 하필 대통령 모두발언이 공개되는 수석·보좌관회의 하루 전에 열려서라고 간단하게 볼 수도 있다. 노 실장으로선 대통령과 뇌파까지 통하는 관계임을 만방에 알린 셈이니 감동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상은 아니다. 노 실장은 “탕평인사를 강화하겠다”며 인사권을 과시했고 공천권까지 쥔 것처럼 총리 거취도 언급했다. 경제 체질 개선과 전쟁 위협 없는 한반도 평화를 자부한 건 물론이다. 대통령이 이런 비서진에 둘러싸여 있으니 “국민이 변화를 확실히 체감할 때까지 일관성을 갖고 달려가겠다”고 되뇌는 것도 당연하다. 비정상(非正常)도 계속되면 무감각해진다. 청와대가 소통 강화를 위해 현 정부 들어 처음 합동간담회를 열었다지만 3실장 아니라 비서실장 단독으로도 기자들 모아놓고 정견 발표를 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이던 2007년 3월 2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통령 개헌안 4월 중 발의”를 선언했다가 2주 뒤 긴급간담회에서 사실상 철회를 밝힌 정도가 고작이다. 기자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노 실장이 취임 때 말했듯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비서일 뿐”이어서다. 대통령비서실은 헌법에 명시된 정부기관도 못 된다. 정부조직법 14조에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 비서실을 둔다’고 돼있을 뿐이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때 정권의 2인자, 실세, 심지어 대통령급 실장이라고 불렸던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도 “비서는 입이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인 2017년 5월 4일 통합정부추진위원회를 통해 “일상적인 국정 운영은 책임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토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원하는 국민 뜻을 잘 알기 때문일 터다. 거짓이었다. 취임사에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했지만 대통령비서들이 제왕처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고함치는 상황이 됐다. 유능하면 또 모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국정 운영의 중추’라고 한 것도 끔찍한데 문 대통령은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자 두뇌’라고 격상까지 시켰으니 국민은 불안해 못 살 판이다. 진보적 정치학자 박상훈은 작년 5월에 낸 책 ‘청와대 정부’에서 “대통령중심제라고 비서실이 대통령을 대신해 일하는 건 대통령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일”이라고 했다. 군주정이나 권위주의에 가깝다는 지적은 섬뜩하다. 비서실 통치, 옛날로 치면 환관 통치는 박정희 독재의 유산이다. 국회와 집권당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대통령 뜻대로 하기 위해 비서실 역할과 위상을 극대화시킨 대통령이 박정희였다. 조국이 맡았던 민정수석 자리는 1969년 3선 개헌을 밀어붙이려고 박정희가 처음 만든 권력기관이다. 문 대통령이 진정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면 청와대가 아니라 내각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갈등과 이견은 국회를 통해서 풀어야지 청와대 행정명령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정 아쉬우면 노 실장을 총리로, 수석들을 장차관으로 임명하면 될 일이다. 그럴 능력도 자신도 없지만, 민주주의야 거꾸로 가든 말든 청와대가 혁신·포용·공정·평화의 길로 흔들림 없이 달리면 새로운 대한민국이 된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대통령 따님은 이 희망찬 나라를 떠나 동남아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19일 열리는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에서 대통령에게 누가 좀 물어줬으면 좋겠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법무부가 급격히 ‘나꼼수화(化)’하고 있다. 독재 시절 뺨치는 언론통제 규정을 감히 법무부 훈령으로 내놓더니, 1일 ‘버닝썬’ 수사팀 파견검사에게 복귀 명령을 내렸다. 사건의 핵심인물인 윤규근 총경 수사를 여기까지만 하라는 메시지다. ● ‘경찰총장’은 보통 경찰이 아니었다‘승리 단톡방’에서 경찰총장으로 언급된 윤 총경은 버닝썬만 개입한 경찰이 아니었다. 우리들병원의 의문스러운 1400억 원 대출과 사기 사건에 여권 인사들이 얽혀 있는데, 이 수사를 뭉개는데도 청와대 윤 총경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난달 국감에서 야당은 이 문제를 제기해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제가 잘 살펴보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그런데 법무부가 살펴볼 것 없다며 급히 수사 검사를 불러들인 형국이다. 물론 법무부는 “검찰 직접수사를 축소하는 검찰개혁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 눈엔 정권 차원의 게이트가 드러날까 봐 서둘러 꼼수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윤 총경처럼 입 안의 혀 같은 경찰한테 수사종결권을 주어 검찰이 관여 못 하게 하는 것이 검경수사권 조정이고, 검찰개혁인 셈이다. ● 정유라 사건 초기처럼 묻힐 수도 우리들병원 사건은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남우)에서 실체가 없다며 종결한 사건이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10월 7일 국감에서 “혹시 우리들병원에 관련된 산업은행의 1400억 원 특혜 대출 의혹 들어보셨느냐”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2014년 4월 8일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안민석 의원이 정유라의 ‘승마 공주’ 특혜 의혹을 제기했었다. 그때 그 폭발성을 모른 채 넘어갔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우리들병원은 이 병원 이상호 회장과 전처 김수경 씨가 친노로 유명하다. 이들이 A 씨와 동업한 사업이 실패하면서 이상호에게 신한은행 대출 260억여 원을 포함해 1000억 원이 넘는 빚이 쌓였다. 이를 갚겠다며 이상호가 2012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1400억 원을 대출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신한은행이 동업자 A 씨의 서명을 위조했고, 이를 알게 된 A 씨는 신한은행 관련자들을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고소했다. ●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나섰다고? 조선일보 6월 11일 인터넷판에 따르면, A 씨는 자신과 알고 지내던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경기고양을)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노무현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맡았던 신현수 변호사 등이 이 사건과 관련해 자신과 신한은행 양측 간 중재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A 씨를 VIP로 담당한 신한은행 측이 신뢰를 바탕으로 서류 작업을 했을 뿐, 범죄의 고의를 가지고 문서를 위조했다고 볼 정황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여권 인사 연루설도 실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는 거다. 검찰은 왜 그런 결론을 내렸을까. 채이배 의원이 들이댄 자료를 보면 정황과 증거는 차고 넘친다. 검찰 이전에 경찰 수사도 중단된 적이 있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3월 13일 “이 사건이 중간에 수사가 중단된 것은 정권 실세들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고 폭로했다. ● 언론은 이미 의혹을 보도했다퍼즐을 찾아 올라가면 주간조선 2월 17일자 단독보도가 나온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실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당시 사건을 보고받았던 민정비서관실의 직원은 경찰 소속이었는데 지난해 8월 인사에서 경찰청 핵심 보직으로 영전했다. 그는 산업은행 대출건 및 A 씨 관련 사건을 계속해서 체크해 왔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그 경찰 소속의 민정비서관실 직원이 바로 윤 총경이었다. 우리들병원은 대통령의 사위와 관련된 사건에도 얽혀 있지만 정말이지, 거기까지 의심하고 싶진 않다. ● 검찰이 어디까지 파헤칠지 두려운가승리네 나이트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사건이 불거졌을 때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의 명운을 걸고 전 경찰 역량을 투입해 범죄 조장 반사회적 풍토를 뿌리뽑겠다”고 했다. 그러나 단속 정보를 알려준 정도만 밝혀냈을 뿐 연예인들로부터 뇌물 받은 건 건드리지도 않았다. 경찰 역량이 그 수준인 것도 당연하다. 윤 총경은 노무현 정부 때도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한 데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사이여서 경찰 내부에선 ‘정부 실세’로 유명하다. ‘경찰총장’인 그를 어찌 감히 경찰청장이 건드리겠나. 윤 총경의 뇌물 건도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았기에 찾아낸 것이었다. 경찰이 거의 고의적 부실 수사를 한 데는 청와대 민정라인이 개입했을 공산이 크다. 바짝 독이 오른 검찰이 여기까지 파헤칠까 봐, 아니 어디까지 밝혀낼지 알 수 없어 청와대는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법무부가 꼼수를 부렸다. 파견검사 복귀하라. 오버. ● 검찰의 힘을 빼서 경찰에 실어준다니윤 총경 사건을 보면, 정부 주장대로 검찰의 힘을 빼자고 경찰 권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여권이 밀어붙이는 대로 경찰에 수사개시권과 종결권을 주면 윤 총경 사건은 그냥 묻히는 거다(물론 검찰도 우리들병원 사건을 그냥 묻어버렸다. 흑흑).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경찰권력의 비대화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고 검찰이고, 이들이 하늘을 쓰고 도리질할 수 있는 힘은 청와대에서 나온다. 청와대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힘을 빵빵하게 실어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검찰은 준사법기관이라는 자존심이 있다지만 경찰의 중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의 명운을 걸었다면 진작 명이 끊어졌어야 마땅한 현 경찰청장이 ‘사냥처럼 시작된 조국 수사’로 시작되는 민주연구원 보고서를 전 경찰간부들에게 읽힌 게 그 증거다. ● 제발 검찰‘개혁’이라고 부르지 마시라정치권에서 어떤 야합을 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검찰‘개혁’이라는 말은 빼기 바란다. 공수처 설치는 괴물 신설이고, 검경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괴물화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불길한 예언 같아 기록하고 싶진 않지만, 기요틴에 의지한 자는 기요틴에 목이 잘렸다는 역사가 있다. 공수처는 그렇게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dobal@donga.com}

더불어민주당에서 보기 드물게 할 말은 하는 금태섭 의원이 15일 김오수 법무부 차관에게 물었다. “고위공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하고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가지는 지금 정부안과 같은 공수처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케이스가, 사례가 있습니까?” 차관은 답을 못 했다. “단 한 곳인가에 그 유사한…” “대개 수사권만 갖고 있지만 기소도 일부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얼버무렸을 뿐이다. 나중에 직원이 찾아줬다며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청을 언급했으나 여기는 공직자만 대상으로 하지 않아 답이 못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가는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세계 최초의 경험을 안겨줄 공산이 크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어제 조국을 입에 올리지도 않은 채 송구하다며 검찰개혁의 대의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강조했다. 여권 따라 검찰개혁, 검찰개혁 하다간 노무현 정부 때 강행했다 위헌 판정으로 도로 물렸던 ‘개혁입법’처럼 될 수가 있다. 여당 법안대로 공수처가 설치되면 정부는 ‘오만한 검찰 권력’을 단칼에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다. 판검사에 대한 기소권이 있기 때문이다. 민변 출신의 황희석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라고 밝혀 조국 일가 수사팀에 대한 단죄까지 예고했다. 공수처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 구속했던 성창호 판사도 직권남용죄로 기소하거나 개인 비리를 파헤칠 수도 있다.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이야 무시하면 그만이다. 공수처 권력이 법원과 검찰을 능가한다는 점에서 국가기관 서열이 사법부를 앞서는 중국 국가감찰위원회와 맞먹는다. 그러나 공수처는 전현직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이라는 ‘귀족’만을 일반 국민과 분리해 수사한다는 것부터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과 어긋난다. 문 대통령이 공수처의 이 같은 불공정성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왜 공수처를 밀어붙이는지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조국 사태에 항의해 삭발한 이언주 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과 수백 명의 정적을 제거하고 돌아보니 임기 후가 겁이 나는 것이냐고 물었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면 대통령으로선 좌를 높이고 우를 잠재울(左高右眠) 공수처가 절실할 수도 있다. 산업은행의 우리들병원 1400억 원 특혜 대출에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다시 불거진 상태다. 7일 국감에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신한은행의 사문서 위조 등에 대해 ‘증거자료와 같이 혐의가 인정된다’고 적힌 서류를 읽어주며 “검찰이 5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했다니 황당하다”고 지적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잘 살펴보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우리들병원은 대통령의 사위가 재직했던 한 게임업체와 관련된 벤처캐피털기업 케이런벤처스와도 관계가 있다. 6월 자유한국당에선 “케이런벤처스가 공기업인 한국벤처투자로부터 280억 원 투자를 받았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주형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당시 한국벤처투자 사장이다. 물론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조국 일가 수사하듯 서울중앙지검이 똑똑히 살펴본다면 결말은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검찰이 수사 중이라고 해도 공수처가 신설돼 이첩을 요구한 뒤 혐의 없다며 덮어버리면 국민은 알 도리가 없다. 대통령 임기 중반이 다 된 지금, 공수처 설치를 서둘러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셈이다. 공수처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법개정안의 국회 부의 시점이 11월 27일이다. 예산안 처리 시한은 12월 2일로 공수처법안이 부의 되는 3일과 맞물려 있다. 여당은 일부 야당에 의원수 확대와 쪽지예산을 얹어주며 ‘거래’를 해서는, 공수처법안까지 한꺼번에 우당탕 처리할 복안인 듯하다. 그리고 나머지 야당의 장외투쟁에 귀 막은 채 내년 총선까지만 버티면 20년 좌파 집권도 가능할 터다. 모든 정치의 원동력은 통치자의 사적(私的) 이해관계에 따른 계산과 조치라고 ‘독재자의 핸드북’이라는 책은 갈파했다. 통치자까진 아니어도 정치판 사람에게는 개인적 정치생명이 최우선이다. 그래도 명심하기 바란다. 금배지에 현혹돼 공수처를 허용한다면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를 만든 공범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신문·방송사에 견학 온 학생들을 가끔 만난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도 받는다. 한번은 한 남고생이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를 참고하느냐고 묻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다스뵈이다는 모르지만 형님 격인 나꼼수는 안다. 2011년 4월부터 2012년 대선 전날까지 팟캐스트로 방송되면서 새로운 미디어가 한국 정치를 어떻게 뒤흔들 수 있는지 보여준 혁명적 미디어콘텐츠였다. ● 2012년 선거 망친 ‘정치포르노’ 인쇄기술이 종교개혁을 낳았듯 신종 미디어는 신종 혁명을 낳는다. 좌파의 정권교체를 위해 ‘가카(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을 내걸었던 나꼼수도 혁명을 낳을 뻔했다. 방송심의를 받지 않는다는 방어벽 뒤에서 입심 좋은 김어준을 필두로 사실과 주장 분간 없이 터뜨림으로써 정치와 농담(아님 말고), 정치와 IT(정보통신기술)연예오락예능프로를 뒤섞은 ‘정치포르노’로 대중을 열광시켰다. 안타깝게도 정권교체에서 나꼼수는 자살골이었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지역구에 공천된 나꼼수 멤버 김용민이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강간해 죽이자” 같은 막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문재인 당시 상임고문은 마냥 싸고돌아 대선 표까지 깎아먹었다. 뭣이 중한지 알아보는 판단력이 의심스럽다는 거였다. 그랬던 나꼼수가 지금은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주류로 벌떡 섰다. 정권교체 뒤인 2017년 11월 ‘가카 배웅방송’을 내걸고 인터넷방송을 개시한 다스뵈이다 역시 내게 질문한 남고생 등등을 사로잡고 있을 터이다. 문제는 나꼼수가 우리 정치를, 대한민국 전체를 나꼼수 수준으로 하향평준화시킨다는 데 있다.● ‘방송의 나꼼수 현상’ 공정성 깨뜨려김어준은 tbs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2016년 9월부터 진행했지만 주진우는 작년부터 MBC TV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김용민은 작년부터 퇴근시간대에 KBS1라디오 ‘김용민의 라이브’를 진행한다. 정권교체와 함께 전리품 챙기듯 일제히 공영방송에 진출한 거다. 정권에 밉보인 방송인이 ‘블랙리스트’로 찍혀 방송을 떠나는 것이 위헌적이면, 정권에 잘 보였다고 ‘화이트리스트’에 올라 방송을 누비는 것 역시 유치한 일이다. 더구나 국민이 수신료를 내는 KBS,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tbs의 황금시간대를 나꼼수 출신이 장악했다는 건 선거공신들이 공공기관장 한자리 차지한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창피했을 어용방송을, 대국민 선전선동이나 다름없는 세뇌작업을 대놓고 하는 모양새다.김어준의 뉴스공장이 9월 전체 아이템 75개 중 50개를 ‘조국 방탄’에 동원하는 식의 편파방송을 하고, 경영난 MBC가 편향성을 지닌 인물에게 사장 연봉과 맞먹는 출연료를 준다는 지적이 이번 국감에서 쏟아졌다. 김용민의 라이브 ‘청취자 청원’ 코너엔 ‘정권의 나팔수-적폐 중에 적폐’ ‘편파방송 그만하라’ 같은 항의가 수두룩하다. 방송법은 ‘방송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방송을 감독해야 할 KBS사장, 서울시장은 문제의식은커녕 당당하다. 공영방송의 공정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박살내는 ‘방송의 나꼼수 현상’이다. ● 약자의 언어는 조롱…강자의 조롱은 폭력 작가 공지영은 2012년 서울 여의도 나꼼수 집회 무대에서 김어준에 대해 “저보다 가슴이 큰 B컵 좌파”라고 소개한 바 있다. B컵 좌파든 B급 좌파든, 나꼼수는 “쫄지마, 씨바”를 위악적으로 외치며 약자의 언어인 조롱으로 강자에게 빅엿을 먹인 B급 비주류 문화였다. 권력자를 제외한 만인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공로, 인정한다. 지금은 나꼼수가 주류이고 강자가 됐다. 강자가 약자에 대해 내뱉는 조롱은 폭력이고, 오만이다. B급 문화란 싼 티와 촌티로 주류문화에 대해 냉소와 조롱, 저항을 할 때 존재의 의미가 있지, 주류가 돼서도 똑같이 굴면 사회 전체를 B급으로 추락시키는 거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상태다.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이나 인성,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사회적 윤리와 정의는 깡그리 무시한 채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내로남불’이 나꼼수를 통해 퍼져나갔다. ‘작전세력’ ‘합리적 의심’ ‘무학의 통찰’ 같은 말을 덧붙여 음모론을 퍼뜨리고는, 아니면 말고! 잘못돼도 책임지지 않는 무도(無道)의 정치도 여기서 확대재생산됐다. ● 이상한 사람은 나꼼수와 얽혀있다현재 우리의 가치관을 혼돈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대개 나꼼수 사단과 얽혀있다는 것이 기이하지 않은가. 증거를 들이대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깻잎머리 나꼼수’ 조국이 대표적이다. 김용민은 2011년 6월 ‘조국 현상을 말한다’라는 책에서 조국이 2017년 좌파진영의 대선주자가 될 가능성을 짚었다. 보은 차원인지 조국은 2012년 총선에서 막말 파문으로 낙선한 김용민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1억 원 피부과 출입설을 나꼼수가 퍼뜨리지 않았다면 박원순은 지금 그 자리에 없었다. 김어준의 편파방송을 왜 감독하지 않느냐는 국감 질문에도 연간 300억 원이 넘는 서울시민의 세금을 퍼주는 그는 태연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쉴드를 쳐 듣는 이의 억장까지 무너뜨렸다. 심지어 조국이 법무장관 때 천거해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을 맡은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도 나꼼수와 관련이 깊다. 조국 딸의 성적이 공개됐을 때 “유출한 검사의 상판대기를 날려버리겠다”고 말해 주변을 경악시켰다는 그는 민변 시절 나꼼수 김어준·주진우의 선거법위반 변호를 맡았다. ● ‘닥치고 정치’ 문재인은 ‘진지한 나꼼수’인가 압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김어준은 2011년에 낸 책 ‘닥치고 정치’에서 “이념과 명분과 논리와 이익과 작전과 조직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보편준칙을, 담담하게, 자기 없이, 평생 지켜온 사람이 필요하다”며 “문재인이란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일찌감치 대통령깜 지지 선언을 했다. 요즘 문 대통령을 보면 ‘진지한 나꼼수’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은 공정을 요구하는데 대통령은 멀쩡하게 수사 잘하는 검찰 대신 검찰 잡는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다. 한일 갈등의 해법으로 남북평화경제를 들고 나오는 식의 ‘자다가 봉창’도 기막히지만 내로남불의 예를 들면 한도 끝도 없다. 너무나 진지한 표정이어서 웃을 수도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깝다.‘민주주의는 곧 쇠퇴하고, 탈진하고, 자살한다. 이제껏 자살하지 않은 민주주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밑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고생하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지켜진 저력은 제도 자체보다는 ‘문화’에 있다고 했다. 나꼼수의 문화혁명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이제 제도혁명까지 강행해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로 끌고 갈 모양이다. ● 대한민국의 나꼼수化…행복한가?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해야 할 적(敵)이 아닌 경쟁자로 인정하기, 자기 세력만 옳다는 외고집에 빠지지 않기, 겸손과 절제 등이 민주주의를 지켜온 문화다. 이런 문화의 향상을 방해하는 세력의 출현을 경계해야 한다고 최근 나온 민주주의 교본 ‘민주주의는 만능인가’라는 책은 강조를 했다. 나꼼수가 이런 문화를 개 패듯 패버린 끝에 마침내 대한민국의 나꼼수화(化)는 완수됐다. 물론 우리 사회를 퇴보시킨 원인을 나꼼수 하나에 뒤집어씌울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적 코드 중 하나가 나꼼수이고, 나꼼수와 함께 나꼼수가 키워낸 세력이 대한민국을 주름잡고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7년 전 우리 국민은 나꼼수의 반윤리적 막말에 냉철히 부표(否票)를 던졌다. 지금 박원순 시장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청취율 1, 2위라며 박수를 친다. 주류세력의 교체, 좋다. 그럼 B급, 아니 B컵의 주류화가 완성된 지금, 대한민국은 좋은가. 낄낄.dobal@donga.com}

폴란드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왔다. 1962년생 호랑이띠 여성작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2018년 수상자로 선정된 거다. 폴란드에 대해 단 두 번 글을 쓴 것뿐인데 꼭 내가 잘 아는 사람이 노벨상을 탄 기분이다. 그의 수상 소감은 특별했다.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요(13일이 총선이다). 그들은 나라를 바꿔놓을 거예요. 우리 제대로 선택합시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표해 주세요.”● 손님 기다리며 소설 읽는 나라, 폴란드 폴란드에서 작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공산체제 시절에도 택시 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리면서 소설을 읽고, 노동자들도 시를 읊는 나라가 폴란드다. 강대국에 세 번이나 나라가 찢겼던 시련 속에서 폴란드어로 쓰인 폴란드문학은 민족의식과 자부심을 일깨워주었다. 민주화 이후엔 좀 달라졌지만 폴란드 작가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그 어떤 나라보다 크다고 한국외대 정병권 교수는 논문에 썼다. 유럽 지도를 놓고 보면 폴란드는 딱 중국(中國)이다. 독일어 지역과 슬라브어 지역 사이에 위치해 양쪽으로 문화와 이념과 심지어 군대가 제집처럼 들어오고, 또 나갔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민족과 종교가 다른 우크라이나인, 백러시아인, 유태인, 독일인, 리투아니아인 등이 어울려 살았다. 가톨릭국가이면서도 유럽서 박해받던 유태인들의 피난처가 되어준 너그러운 나라였다. 폴란드 여섯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토카르추크는 그 농밀한 역사에 담긴 문화의 다원성과 민속적 다양성에 천착해온 작가다. 집권 법과정의당(PiS) 실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유럽연합(EU)의 중동·아프리카 난민 수용방침에 격하게 반대하며 “‘무지개색 흑사병’이 우리 가족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외칠 때, “아니다”라고 말했던 용기도 폴란드의 역사와 문학에서 배웠을 것이다. ● 총선 앞둔 노벨문학상, 나라 분열시켜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도 기나긴 삶과 역사 속에 오류가 없을 수 없다. 토카르추크는 폴란드의 좋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면도 제대로 봐야 한다고, 겁도 없이 말해왔다. 2차 대전 중 독일에 점령됐다는 이유로 폴란드가 피해자 코스프레에 안주하며 유태인 학살에 가담한 ‘가해의 역사’를 부인하는 건 지적인 정직성에도, 타인에 대한 도덕적 예의에도 어긋난다고도 말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며 민족의 순수함과 고결성만 강조하고 싶은 정치인에게 이렇게 정직한 작가는 불편하다. 집권세력은 토카르추크를 반역자라고까지 본다. 이번 노벨상이 폴란드를 또 분열시켰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 총선까지 앞둔지라 여권에선 “서구 좌파들이 민족주의 정권을 물리치려고 폴란드 스파이들을 지원한 것”이라는 험한 말까지 나왔다. 여권이 아닌 쪽에선 폴란드가 정권이 원하는 대로 규정되는 나라가 아님이 입증됐다고 환호하는 건 물론이다. ● 돈만 퍼준다면 독재인들 어떠냐고?폴란드 실세, 카친스키가 국민을 결집시킨 비법 중 하나가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이민족 혐오와 증오를 증폭시키는 것이다(요즘 잘 쓰는 단어로 바꾸면 인종적 종족주의라 할 수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대거 몰려들자 카친스키는 자국의 안전과 국민 보호를 위해 난민 수용 못하겠다고 EU와 맞짱을 떴다. 당연히 국제사회의 평판은 좋지 않다. 극우 민족주의적 포퓰리즘 정당으로 분류되는 법과정의당이 야당과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사법부 적폐청산과 물갈이를 밀어붙여 삼권분립과 법치의 민주주의 원칙을 뒤흔든다고 EU는 제재까지 하고 있다(지난번 ‘도발’에 쓴 얘기다). 그럼에도 폴란드 국민은 민주주의보다는 포퓰리즘에 표를 줄 모양이다. 법과정의당은 최저임금 2배 인상, 육아수당 확대 같은 달콤한 공약으로 민심을 공략하는 데다 우리 기업들이 폴란드에 많이 진출한 데서 알 수 있듯, 아직은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어서다. 야당도 지리멸렬한 처지라 13일 총선에선 집권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점치고 있다. ●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중요한가사회적 약자를 좀 더 배려하는 경제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만 할 순 없다고 본다. 재정적 여력만 있다면,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누는 데 반대할 사람도 없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시켜 독재자를 쫓아냈고, 비교적 순조로운 민주화 끝에 13일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를 치르는 튀니지에서 “일자리가 없는데 민주주의가 뭔 소용이냐”는 불만이 터지는 걸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 6만 달러가 넘는 홍콩의 반(反)정부 시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3만 달러가 넘는 한국에서 ‘두 세계’의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것 역시 사람만이 할 수 있다(우씨, ‘사람이 먼저다’를 연상시킬 의도는 없다…).다만, 어느 편이 정권을 잡았든 폴란드에는 옳은 건 옳고, 그른 건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있어 희망이 있다. 자칭 작가라는 사람이 싸가지 없는 요설(饒舌)로 혹세무민하는 시절이어서 더 부럽다. dobal@donga.com}

웬만하면 조국에 대한 관심을 끊으려 한다. 정신건강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뿐더러, 조국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내려오든 안 내려오든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아서다. 대통령이 조국을 경질하지 않는 한, 조국은 대법원 판결까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무고한 사람 죄인 만들었다”며 사법부에 대한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고, 무죄가 나와도 그 후폭풍은 만만찮을 게 틀림없다. 요컨대 나라는 이미 갈라졌고 기차는 가열차게 달리고 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다. ● 법무장관 사상 고백 “난 사회주의자”조국이 한 달 전 인사 청문회에서 한 발언에 단초가 있다. 그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서 이제는 사상 전향을 했느냐”는 질의에 “우리 사회주의 사상과 정책이 우리 대한민국 헌법의 틀하에서 필요하다는 점 말씀드린다”고 답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뜻밖에 사상 고백까지 했다. 나는 우리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러나 그 양심이 대한민국과 맞지 않는다면 공직을 맡아선 안 된다고 본다. 2002년 대법원 판례는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의 경우, 그 공적인 존재가 가진 국가·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사회주의자라는 조국에게 전향을 강요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가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대법원 판례대로 공직자의 사회주의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직자 이념은 국가 운명에 영향 미쳐조국의 사회주의 이념은 대한민국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조국은 “우리 민주주의 헌법하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틀하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청문회에서 분명히 말했다(자유민주주의 헌법이라고 말하지 않은 데 유의하길). 어떤 사상과 정책을 의미하는지, 그가 1993년 사노맹 사건으로 체포되기 전에 쓴 논문 ‘새로운 한반도질서와 법률투쟁의 쟁점’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1992년 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발효를 앞둔 시절, 그러니까 공산주의 소련이 무너지고(좌파는 보통 ‘현실사회주의 붕괴’라고 말한다) 평화무드에 젖던 그때, 조국은 계급투쟁과 자유를 뺀 개헌을 주장했다.“남한 정부의 ‘대북외교’에서의 유화가 남한 내부의 ‘계급투쟁’에 대한 유화로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중략) 민중운동은 남한 법체계의 자기모순성을 폭로하고, 나아가 변화한 조건하에서 보다 유리한 투쟁조건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영토조항 개헌·한미동맹 재검토 주장남북한 유엔 가입으로 남북 모두 ‘국가’로 사실상 승인된 이상, 북한은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가 아니라고 조국은 지적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폐기돼야 한다는 것이다. 힘만 생기면 북한 지역도 남한 헌법으로, 즉 자본주의식으로 규율해보겠다는 고토수복(故土收復) 의지는 남북합의서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조국은 남북한 정부 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미군이 한국의 영토 영해 영공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역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 헌법 4조(통일)와 8조(정당)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의 전면적 재규정도 강조했다. 민정수석 때 대통령 개헌안을 추진하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려고 했던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얘기다. 그 이유가 맹랑하다. 논문에서 조국이 펼친 논리는 다음과 같다. “남한 정부의 논리나 헌법학계의 통설에 따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것은 어떠한 수식어를 붙이든 간에 ‘자본주의체제의 상부구조’를 의미하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전면 배제한다.” ●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아는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본주의체제, 즉 시장경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 조국의 주장이다. 또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전면 배제해서 안 된다니, 사회민주주의도 아니고, 사회적 민주주의도 아니고, 생경하지 않은가. 한국학술지인용색인을 뒤져봤다. 방인혁, 손호철의 논문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노동계급의 국가활동의 기본방식.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이른바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소수를 위한 ‘민주주의’이며 따라서 그것은 본래의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북한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1983). 국사편찬위원회는 심플하게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북한식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거다.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 통일되고,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판에 조국은 북한식 이념을 배제해선 안 되므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 30년 전 젊은 날만이 아니라 바로 작년까지도. ● 조국 뺀 ‘개돼지’는 사회주의로 통치?물론 조국은 청문회에서 자신이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노력과 능력에 따른 차등 보상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는 자기네 가족만 누리고, 국가적 시스템과 통제로 결과적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개돼지 국민에게 적용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조국이 그린 ‘새로운 한반도질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자는 것이다. 문장이 복잡하지만 조국 논문의 결론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유엔 가입과 합의서 채택으로 초래되는 남한 법체계의 자기모순성과 ‘세계적 기준’-소위 ‘자유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기준-에의 미달을 폭로하고 법개폐를 쟁취함으로써 민중운동진영에 유리한 합법고지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며, 이렇게 투쟁으로 획득한 진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사회주의 공직자, 조국 하나뿐인가그들이 30년 투쟁으로 획득한 ‘진지’가 이미 대한민국을 바꿔놓고 있다는 느낌이다.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2004년 대법원 판결이 2018년 뒤집힌 게 한 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신(新)독수리 5형제 대법관들의 안보 인식은 이렇게 다르다(그래서 조국도 대법원까지 간다면 무죄 판결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조국 한 사람이 법무장관직에서 물러나든 말든,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우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라 경제가 어찌되든 청와대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하고, 나라가 둘로 갈라졌든 말든 “국론분열 아니다”고 태연하며, 북한이 ‘끔찍한 사변’을 위협하든 말든 정부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아무리 나라가 망한다 해도 설마 우리나라가 북한처럼 될까 싶기는 하다. 그럼에도 기록을 위해 남겨둔다. 서초동 시위에 모이는 분들은 “우리가 조국이다!” 구호만은 부디 외치지 말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강남 한복판에서 “우리가 사회주의자다!” 부르짖는 식이면 좀 그렇지 않은가. dobal@donga.com}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2’가 아니라 ‘남자 박근혜 정부’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제왕적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거의 비슷하게, 심지어 더 고약하게 따라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괴롭다. 박근혜 정부 2년 차 때 비선 실세 의혹을 폭로한 사람이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박관천이었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엔 민정수석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수사관 김태우가 정권 실세 의혹을 폭로했다. 작년 12월 31일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국회에 출석해 “사태의 핵심은 김태우 행정요원이 자신의 비리 행위를 숨기고자 희대의 농간을 부리고 있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너무나 단정하고도 단호한 모습으로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은 이전 정부와 다르게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고 하는 바람에 설마 민정수석이 거짓말하랴, 국민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겠다고 조국이 온 국민 앞에서 태연하게 거짓을 말한 것을 보니 그때 그가 했던 말도 거짓이라는 의심이 든다. 김태우는 억울했을 것이다. 김태우가 폭로하고 조국이 부인했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최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놓고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4월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태우가 폭로했던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무마 사건은 뭉개버렸으나 ‘조국 사태’ 이후 바짝 수사 중이다. 희대의 농간은 김태우가 아닌 조국이 부렸다는 정황이 짙어졌으니 ‘공익신고자’ 김태우의 주장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관천이 폭로했던 정윤회 문건을 당시 제대로 수사했다면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고 조국도 민정수석 시절 장담을 했다. 김태우는 2월 유재수 건 검찰 고발과 함께 “청와대가 드루킹의 대선 댓글 여론조작에 대한 특검 수사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다”며 조국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2018년 7월 25일 오전 11시 11분 특감반장 이인걸이 검찰 출신 특감반원 4명에게 텔레그램 단체방에 드루킹이 60기가바이트 분량의 USB를 특검에 제출했다는 언론 기사를 링크해 올리며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라고 했고, 정확히 13분 후 박모 특감반원이 내용을 보고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한 것을 보면 거짓말일 것 같지가 않다. 유재수 부시장 건은 금융위원회 국장 시절 금품과 청탁을 받았다는 첩보를 청와대 직권으로 무마시켰다는 정도지만 청와대가 드루킹 수사에 개입했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2012년 대선 때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직원을 동원해 대선 개입했다고 재판받는 상황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대선에 민간인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벌인 것도 모자라 대선 승리 후 청와대가 관여했다면 국기 문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김태우는 “증거자료인 텔레그램 대화 내용은 서울동부지검에서 확보하고 있고, 해당 자료는 수원지검에서도 보관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검찰은 즉각 드루킹 특검 개입 의혹을 수사하기 바란다.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특검 수사를 청와대의 누가 그렇게 궁금해했는지, 적잖은 국민이 궁금해하고 있다. 조국은 김태우 때문에 국회 출석한 자리에서 “책략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조국의 책략이 이기고 있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정의당 당원인 동양대 진중권 교수가 “신뢰하던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며 윤리적으로 완전히 패닉 상태라고 했겠나. “청와대는 문재인 정권에 친화적인 인사들의 비위는 묵인했다”는 김태우의 말대로 이 정권의 국정농단은 아직 감춰져 있을 공산이 크다. 남북경협을 예상하고 북한 골재 채취 권한을 약속한 집권당 중진 의원이 누군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비리 의혹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통령 주변 비리 등 특감반에서 생산한 대부분의 첩보를 조국이 보고받아 문재인 정부의 진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됐고, 그래서 대통령이 내치지 못한다는 소문이 맞는 듯하다. 홍위병은 검찰을 흔들고 야당은 무력한 상태다. 책략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조국의 말만은 믿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별일이다. 대통령은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검찰권력을 통제하는 건 당연하다는 의미다. 폴란드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사법개혁을 강행 중인 집권당, 법과정의당(PiS)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의기관에는 과거 기득권 엘리트에 복무했던 부패한 사법기관을 해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이자 실세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헌법에 나오는 균형과 견제 제도 때문에 ‘국가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 의지를 ‘촛불 민심’으로 바꾸면 우리도 많이 듣던 얘기다. 유럽연합(EU)은 이런 폴란드의 사법개혁이 삼권분립과 법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건 지난번 ‘도발’에 썼다. 독자들 중에는 왜 별로 대단치도 않은 폴란드와 비교해 억지 글을 쓰느냐는 분도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런 분들께 묻고 싶다. 그럼 왜 당신의 대통령은 별로 대단치도 않은 나라와 혈세 써가며 정상회담을 했느냐고. 그리고 왜 하필 세계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나라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를 따라가느냐고. ● 댓글 급해도 세줄 요약까진 봐 주세요나날이 민주주의의 새 경지를 보여주는 대통령 덕분에 폴란드까지 훑어보게 됐으니 고맙기 짝이 없긴 하다. 디지털로 글 읽는 분들, 몇 줄 안 보고 휘리릭 내려가 냅다 악플부터 다는 독자들, 아무리 급하더라도 세 줄 요약까지는 봐주셨으면 한다. ① 폴란드와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현실로 인해 역사적, 정서적 공통점이 적지 않다. ② 폴란드는 1989년 공산체제 붕괴 이후,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 이후 잘못된 길로 갔다며 과거 청산에 분주하다. 정권 실세의 개인적 수난사와 관련이 깊다. ③ 10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실세는 뇌물, 법무장관은 드루킹 같은 인신공격 조작 연루가 폭로된 폴란드. 절대 신념은 절대 부패를 낳는가. ●쇼팽…조성진의 피아노를 좋아하세요2015년 10월 20일 미소년 같은 조성진이 폴란드의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금메달을 걸어준 이가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가 뛰어난 것을 보면 쇼팽은 한국과 폴란드의 공동 작곡가인 것 같다”라고 덕담을 한 사람 말이다. 쇼팽(1810~1849)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아…또 조국이다) 폴란드는 1772년과 1793년, 그리고 1795년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2차분할 때는 제외)에 갈라져 먹혔던 약소국이었다.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외세가 힘으로 우리에게 빼앗은 것을 칼로 되찾으세”라는 폴란드 국가는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끝나는 우리 애국가와 참 비슷하다(“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는 좀 슬프다). “한국과 폴란드는 게걸스러운 주변 강대국들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지도 위에서 사라져버린 적도 있었다”고 존 미어샤이머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한국어판 서문에서 콕 찍어 비교했다. 약소국은 죄가 없다! 평화를 사랑했을 뿐…이라고 해봤자 소용없다. 모든 나라의 운명은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의 행동 및 결정에 의해 일차적으로 결정된다는 게 미어샤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이다. 그 이론대로라면 2차 세계대전 뒤 식민지 독립과 새 국가 탄생이 당시 최강국 미국과 소련의 결정에 좌우된 건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일 뿐이다(억울하면 가장 막강한 힘을 갖든가, 아니면 막강 국가의 동맹이 되든가…).●’동양의 폴란드‘라 불렸던 한국연합국 간 가장 논쟁과 갈등을 일으킨 곳이 폴란드와 ’동양의 폴란드‘라 불렸던 한국이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세력 범위를 좌우할 지정학적 요지였기 때문이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은 폴란드에 대해 ①국내외 ’민주적‘ 정당 및 사회단체들과 협의해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②임시정부가 총선거를 실시해 정부를 출범시키기로 정했다. 한국에 대해선 신탁통치가 언급됐지만 결국은 폴란드 모델이 적용됐다(김진웅 경북대 교수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와 한국에서의 정부 수립과정 비교). 종전 전에 이미 폴란드를 점령한 소련에 ‘민주적’이라는 건 공산주의를 의미한다(이 해석 역시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됐다). 폴란드가 공산주의자들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거기서 실시한 ‘자유선거’로 공산 정권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될 뻔했다. 남한에 미군이 진주하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소련과 북한의 억지에 결사반대해 공산화를 면했을 뿐이다. 북한은 지금도 미 제국주의가 대한민국을 지배한다며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대남전략으로 삼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한사코 외면하는 세력은 우리도 과거 폴란드처럼 됐어야 한다는 건지, 그래서 분단 극복과 미군 철수를 외치는 건지 의심스럽다. ●과거청산법 추진하는 폴란드폴란드는 1989년 공산지도부-반체제 인사들 간의 ‘협상혁명’과 ‘선거혁명’을 통해 평화적으로 공산체제를 무너뜨린 대단한 나라다. 그럼에도 현 실세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법과정의당 대표는 지난 30년간 폴란드가 걸어온 길이 잘못됐다며 과거청산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과거 공산세력이 기득권을 그대로 이어왔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폴란드 민주화를 이끈 자유노조 지도자이자 대통령을 지낸 레흐 바웬사도 공산당 이중첩자였다며 압박한다. 여기엔 카친스키의 개인사가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그는 공산세력과도 협조해야 한다는 바웬사의 자유보수 우파와 2001년 결별하고 법과정의당을 창당했다. 도덕적 가치와 정부의 경제 개입을 내건 포퓰리즘 공약으로 2005년 집권했지만 그가 밀어붙인 과거정화법, 미디어규제법 등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뒤집히는 등 국정 혼란을 몰고 왔다(재집권 뒤 헌재법부터 바꿔 장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2007년 조기 총선에서 카친스키 내각은 정권을 잃었다. 이원집정제인지라 대통령직만 유지하던 쌍둥이동생 레흐 카친스키는 2010년 러시아 땅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말았다(포퓰리즘으로 집권… 불의의 죽음… 좀 비슷하지 않은가). ●국정과 역사의 사유화…낯설지 않다과격성으로 민심을 잃었던 카친스키는 자신은 철저히 뒤에 숨은 채 새 얼굴을 내세워 2015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동생이 암살당했다고 믿는 그는 식민 종주국이었던 러시아는 물론, 과거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카친스키는 30년 전의 공산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법과 제도를 만든 것이고, 폴란드의 모든 문제가 여기서 비롯됐다고 믿는다”고 프리덤하우스는 분석했다. 이를 뒤엎으려면 세 번은 더 집권해야 하는데, 2007년엔 개혁을 세게 밀어붙이지 못해 실패했다는 ‘잘못된 교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부친이 나치 독일에 저항했던 전력 때문인지 카친스키는 독일에 나치 점령 때의 피해 배상을 요구하면서,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연합(EU)과도 마찰을 빚고 있다. 국정의 사유화, 역사와 정의(正義) 사유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니 우리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세계적 흐름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백번을 양보해서 국민이 좀더 잘살게 된다면 또 모른다. ●장기집권 노리는 여당, 총선 승리할까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기득권세력의 반칙과 특권을 공격하며 깨끗한 정치, 가톨릭의 전통적 가치를 강조해온 법과정의당도 예외가 아니다. 카친스키는 집권당 초대형 빌딩 공사와 관련해 외국 사업자와 거래했다는 녹음 테이프가 올 초 폭로돼 부패 의혹을 사고 있다. 카친스키의 아바타로 이름난 즈비그뉴 지오브로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은 10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야당 정치인들을 음해하는 공작을 펼치다가 녹음테이프가 폭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물론 차관 해임으로 꼬리를 잘랐다). 그럼에도 법과정의당은 최저임금 2023년까지 2배 인상 같은 참 희한하게 비슷한 공약으로 총선 승리를 노린다. 우리나라 기업도 많이 진출해 2018년 경제성장률 3.4%를 올리는 등 지금까지는 호조세지만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부담이라고 우려한다.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개헌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헌법이 국가 의지(사실은 지도자의 의지) 실현을 막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바꾸겠다고 카친스키는 공언했다.●참 닮은 폴란드와 한국…행운을 바란다부디 잘되길 바랄 뿐이다. 외침(外侵)과 고난의 역사를 지닌 폴란드와 우리나라는 국민성이 참 많이 닮았다. 폐쇄적이지만 개방적이고(임기응변에도 강하다), 비관적이지만 또 낙관적이고(폴란드 사람들도 곧잘 술로 푼다), 너그럽지만(우리끼리 잘 봐준다) 시기 질투도 적지 않다. 정치와 논쟁을 좋아해서 폴란드 사람 둘이 만나면 정당 세 개가 생긴다는 말도 있다.좋은 지도자는 국민의 좋은 점을 크게 발전시킨다. 1차 세계대전 직후 폴란드 최고지도자였고, 1926년 쿠데타로 다시 집권했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희생된 군인들은 어느 편에서 싸웠든 모두 사랑하는 폴란드를 위해 희생되었다”며 정치적 보복 없는 나라를 추구했다고 한다(정병권 한국외국어대 교수 ‘폴란드 민족성과 의사소통 방식’). 카친스키처럼 과거만 바라보는 지도자, 폐쇄성과 시기 질투 같은 부정적 정서를 자극하는 지도자가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더구나 법치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려운 법이다. 조국을 법치의 머리 위에 놓는 지도자가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면… 세계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쓸 일이다. dobal@donga.com}

지난주 유엔총회 막간에 폴란드와 정상회담이 있었다. 우리 대통령은 쇼팽 서거 170주년 콘서트를 언급하며 “한국이 폴란드 음악과 문화에 푹 빠져들었다”고 했고, 폴란드 대통령은 한국 피아니스트의 뛰어난 연주 실력을 칭찬했다(그러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사여서 기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유엔총회에서 평화를 극구 강조했던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중요하다”는 첫 메시지를 내놨다. 귀국 첫 마디가 이럴 정도면, 분기탱천했다는 얘기다. 이 절제된 발언을 쉽게 풀면 다음과 같다. 고마 해라, 조국 수사.●법무장관-검찰총장 겸직을 시켜버려? 폴란드 같으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수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대통령 명을 받는 법무장관이 아예 검찰총장직을 겸직하도록 ‘사법개혁’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유엔총회까지 가서 일본도 아니고, 중국이나 러시아도 아닌 폴란드 정상을 만난다기에 뭐 쓸 게 없나 찾아보다 알게 된 사실이다. 놀랍게도 폴란드에선 우리나라 뺨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폴란드는 2015년 정권 교체 후 법치를 파괴하는 사법개혁을 계속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② 적폐청산의 일환이라는 폴란드 사법개혁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이 나라 지정학적 역사, 최고 실세의 개인적 수난사와 관련이 깊다. ③ 실세의 아바타,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최악의 스캔들이 터진 상태에서 10월 13일 총선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법개혁이라고 다 개혁이 아니다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선 두 개의 세계관 충돌이 벌어졌다. 조국 수호 집회 측에선 조국 수사와 관련 보도가 적폐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이 정부의 검찰개혁을 주장한다. 조국 사퇴 집회 측은 정반대다. 검찰총장이 잘하고 있다며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 안 보고 제대로 수사해 법치를 수호하는 것이 검찰개혁이라는 주장이다. 개혁이라고 다 개혁이 아니다. 정부안대로 공수처가 설치돼 있다면, 그 공수처는 조국 아닌 윤석열을 잡아갈 것이 뻔하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법관도 잘만 구속하면서 유독 제 식구들만 봐주는 집단이 검찰이다. 그런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기소하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공수처다(거칠게 말하면). 정권의 세퍼드가 감히 주인을 물어? 폴란드는 정권 교체 석 달 만에 입마개를 채워버렸다. 2016년 1월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직하게 만든 것이다.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은 미국도 그렇게 돼 있다며 야당 반대에 눈 하나 깜짝 않고 한밤중에 통과시켜 버렸다(그러나 미국서 연방검찰 아닌 주 검찰총장과 지방검사장은 선거로 뽑히기에 차원이 다르다). 폴란드는 지금 정권의 세퍼드, 즈비그뉴 지오브로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과 법치 수호 편에 선 법관들이 이 나라의 명운을 걸고 치열한 전쟁 중이다. ● 나라를 바꾸기 위해 정권이 필요한 것4년 전인 2015년 10월. 우파 민족주의 정당 Pis가 총선에 승리했다. 5월 안제이 두다라는 43세의 참신한 대통령 후보로 대선 승리를 차지한 데 이은 8년 만의 재집권이다(이 나라는 대통령에게 법률거부권 정도만 부여한 이원집정부제다). 청년일자리 120만개, 최저임금 인상과 육아수당, 폴란드 우선의 자주외교 공약 등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새 얼굴의 대통령, 총리를 내세워 집권한 뒤 Pis의 통치방식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책의 공식과 거의 일치한다. 미디어와 사법부를 포획하고, 경쟁자들을 밀어내며, 룰을 새롭게 씀으로써 영구집권을 꾀하는 것이다.킹 메이커인 Pis 대표 자슬로프 카진스키 의원에게 정권은 수단이다. “그는 나라를 바꾸기 위해 당과 정부를 원한 것”이라고 2016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한 바 있다. 1989년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폴란드가 걸어온 길이 죄다 잘못됐다는 거다(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카진스키의 개인사와 결부된 폴란드 과거청산 작업은 다음에 쓴다). ● ‘사법 독립의 원칙’ 침해는 안 된다 지금 Pis 정부가 사력을 다하는 것이 사법개혁(judicial reform)이다. 여기도 말은 개혁인데 속뜻이 행정부의 사법부 장악이면 과연 개혁이랄 수 있는지, 나는 답답한 것이다. 2017년 영국 BBC는 “폴란드 국민의 81%가 사법개혁에 찬성한다. 그러나 ‘여당 개혁안에 찬성하느냐’는 설문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폴란드 집권세력은 헌법재판소가 정부 추진 법안에 위헌판결 내리기 어렵게 헌재법을 고친 데 이어, 온갖 편법으로 대법원장을 바꾸는 등 사법부에 자기 사람들을 꽂아놓았다. 그리고도 의회(그러니까 집권당을 말한다)가 사실상 판사들을 임명하게 만드는 식의 개혁을 밀어붙여 판사들이 거국적으로 들고 일어난 상태다. 여기서 잠깐. 이 정도의 사법개혁은 우리나라에선 이미 완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재든 대법원이든 대통령은 국회 동의 없이 색깔을 바꿔 버렸다. 이제 검찰만 장악하면 되는데 조국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일이 꼬인 셈이다. 폴란드에 대해선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6월 24일 “폴란드의 사법개혁이 사법독립의 원칙을 침해했다”고 명확히 판결을 내렸다. 그럼 우리는? ●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폴란드, 한국은?ECJ는 “외부로부터 모든 간섭과 압력으로부터의 판사의 독립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대법관 임명부터 집권세력이 좌우하는 건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이미 이렇게 돼 있는데, 그것부터 잘못됐다는 얘기다. 요즘 세계적으로 포퓰리즘과 포퓰리즘이 끌고 가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폴란드와 막상막하인 헝가리가 헌법을 고쳐 권위주의 체제로 갔다면, 폴란드는 개헌 없이 몰아붙여 ‘헌정적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나왔다(그런데 유시민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총칼은 안 들었으나 위헌적 쿠데타나 마찬가지”라니 웃기는 짬뽕이다). 실세 카진스키가 이토록 사법개혁을 밀어붙이는 건 10년 전 사법부에서 막힌 ‘국가 개조’ 실패 때문이다. 2010년 쌍둥이 동생이자 대통령인 레흐 카진스키가 러시아 땅에서 비행기 사고로 숨진 뒤 암살당했다는 음모론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이 얘기 역시 다음에 쓸 예정이다). 그나마 폴란드는 EU처럼 “그건 사법개혁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국제사회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 외쳐야 할 판이다. “그건 검찰개혁이 아니다!” dobal@donga.com}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가장 잘 말해주는 수식어가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하는’ 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노 386이었던 김영춘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친노 유시민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저토록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개탄했대서 유명해진 표현이다.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 덕분에 ‘싸가지 없는 진보’는 좌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민주당이 집권당이 되기 전엔 쇄신론이 일 때마다 “싸가지 있는 집단으로 거듭나자”는 소리도 나왔다. 유시민 자신도 “두고두고 나를 가두는 올가미가 될 것”이라며, 특히 딸을 둔 아빠로서 아파했다고 들었다.마침내 유시민이 이 말에서 벗어나게 됐다. 과거엔 옳은 말을 싸가지 없이 했지만 이젠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고 있다. 24일 ‘유시민의 알릴레오 시즌2’ 생방송에선 법무부 장관 조국의 아내인 동양대 교수 정경심이 검찰의 압수수색 전에 컴퓨터를 반출한 데 대해 유시민은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상상초월 궤변을 쏟아냈다. “검찰이 압수수색해서 장난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정 교수가) 동양대 컴퓨터, 집 컴퓨터를 복제하려고 반출한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검찰이 엉뚱한 것을 하면 증명할 수 있다. 당연히 복제를 해줘야 하는 거다.”●검찰이 장난칠까봐 컴퓨터 반출?별건 수사, 먼지 털이 수사 소리는 들어봤어도 검찰이 압수수색해 가져간 증거에 장난쳐서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자기 머리에서나 나온 생각을 검증된 사실처럼 말하는, 무(無)논리로 논리도 이기고 만다는 뇌피셜(腦+official)인지는 모르겠다. 검찰이 증거 조작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전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의 태블릿 수사에서 알았는지, 이 정부의 적폐 수사를 보고 알았는지 유시민은 분명히 밝히기 바란다. 유신독재도 아니고, 신군부독재도 아니고, 아직은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죄를 조작한다면 촛불 아닌 횃불이 타오를 일이다.그 묵직한 컴퓨터를 사람까지 동원해 빼돌린 이유가 증거보존용 복제를 위해서라는 소리도 생전 처음 듣는다. 좋게 말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이고, 솔직히 말하면 웃기는 짜장면이다. 유시민이 진지하게, 근거 없이 한 말이라면 20일 “불법 정보, 허위 정보 유통으로 여론이 왜곡되고 공론의 장이 파괴되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즉각 가짜뉴스 규제에 나서야 한다. 만일 유시민 단속 전에 우파 유투버부터 잡는다면 역풍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위선좌파’ 검찰수사 막기 총출동유시민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수사를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며 정경심 영장이 기각되면 검찰 책임이라고 직설을 쏘았다. 자칭 ‘어용 지식인’이니만치 문재인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조국을 지켜줌으로써 다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같은 한을 남기지 않겠다는 충정으로 봐줄 수도 있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유시민은 대통령 될 욕심이 큰 사람”이라며 “경쟁자인 조국이 낙마하는 것을 내심 원하지만 대통령이 조국을 임명한다고 하니 잘 보이려고 이런 위선 행동을 한 것”이라고 폭로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도 모자라 이젠 ‘위선 좌파’로 공개 인증이다. 그래도 한때는 싸가지 없지만 옳은 말을 한다던 유시민이 왜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는 ‘변절’을 한 것일까. 2007년 그는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이 맞을 수 있다”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고 오마이뉴스에 소개됐다. 자기는 논리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자기 메시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서적 반감을 줬다고 반성하는 모습이었다(‘민주신당’이라는, 지금은 아무도 기억 못하는 정당의 대선 예비후보 자격으로 한 인터뷰여서인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의 나꼼수화, 국민수명 단축화방송에 시사평론가로, 잡학박사 타이틀의 예능인으로 등장하면서 현란하고도 있어 보이는 말빨로 대중을 즐겁게 했던 유시민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박명수 씨 어록을 들려드리자면 ‘참을 인(忍) 세 번이면 호구’ 된다. 우리도 성질 한번씩 내야 한다”거나, 김정희 추사체를 놓고 ‘기름이 쑥 빠진 글씨’라고 평하는 등 알기 쉬운 ‘지식 도매상’ 같은 말로 잘 팔리는 관종(관심종자)이 된 것도 사실이다(틀린 말도 자신 있게 하는 바람에 제작진은 팩트에 어긋난 말을 편집해내느라 고생했다는 말도 있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어떤 논리로도 풀리지 않는 언사로 정서적 반감은 물론 육체적 반감까지 안겨주는 형국이다. 마치 무엇에 씌었거나, 대통령병(또는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싶은 병)에 걸렸거나, 어디서 조국 수호 지령이나 받은 것처럼. 노 정부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꼼수’가 이 정부 들어 주류로 등극하면서 지지층은 결집시키되 나머지 국민들은 기막혀 제 명에 못 살게 하거나, 최소한 조국 피로증에 걸려 더는 관심 갖지 않게 만들려는 고도의 전략적 꼼수인가 싶기도 하다.●차라리 진중권이 진보답다 싶었으나… 이런 유시민에 비하면, 말빨로 따져 손톱만큼도 밀리지 않던 동양대 교수 진중권이 조국 임명에 찬성한 정의당에 말없이 탈당계를 냈던 것은 훨씬 진중하고 진보스럽다(하고 끝내려 했더니 정의당의 만류로 탈당을 철회했다고 한다. 젠장). 35년 전 ‘서울대 민간인 폭행 사건’에서 무고한 시민을 폭행해 실형을 받고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러시아 시인의 시구로 잘난 척 항소이유서 끝을 맺었던 유시민. 그 조국이 조국(曺國)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dobal@donga.com}

법무부 장관 자리를 차지한 조국이 앉으나 서나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건 당연하다. 고통스러워도 내려놓을 수 없는 십자가를 진 듯, 조국은 10년 전 여한으로 남긴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을 기필코 완수할 태세다. 그런 조국이 바로 검찰개혁의 걸림돌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조국 사퇴”는 야당의 대정부 투쟁 구호가 됐다. 그가 물러나야 검찰개혁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면 위험하다. 이 정부가 ‘검찰개혁’이라고 이름 붙인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되면 누구도 되돌리기 힘든 악법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검찰개혁 요구가 왜 나왔는지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조국 당시 민정수석도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했으면 최순실 게이트를 초기에 예방했을 것”이라고 했다. 모처럼 맞는 얘기였다. 그 해결책이 검찰권력의 분산·견제라는 건 한일 갈등의 해결책이 남북평화경제라는 소리만큼이나 생뚱맞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 문건 수사가 청와대 지라시 유출 사건으로 둔갑하고, 특별감찰관 이석수가 대통령민정수석 우병우를 감찰하다 되치기당한 건 검경수사권 조정이 안 됐거나 공수처가 없어서가 아니다. 청와대가 인사권으로 검찰의 숨통을 죄는 바람에 검찰은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검찰개혁이란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안 봐도 되게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처럼 군부독재를 거치며 검찰을 통치수단으로 이용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가 그렇게 개혁을 했다. 민주화 이후 검찰조직을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헌법상 제4의 독립기구로 만들고, 검찰총장은 상원의 승인을 받아 임명해(칠레는 대법원이 후보 지명) 정치적 중립성과 신뢰를 확보했다는 게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연구결과다. ‘검찰도 행정부’라는 문 대통령은 인사권으로 검찰을 장악하고도 배고팠던 모양이다. 수사권을 지닌 막강 경찰, 검찰 잡는 공수처를 만들어 검찰과 경쟁시키겠다는 것은 국민을 위한 개혁이랄 수 없다. 조국이 2005년 “경찰 내부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검찰의 수사지휘에서 완전 해방된 채 수사종결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경찰국가화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쓴 논문과도 배치된다. 더 섬뜩한 것은 정부안대로 되면 공산당 독재국가 중국의 공안 같은 경찰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작년 2월 국회에서 “도대체 어디서 이런 안(법무·검찰개혁위안)이 나왔는지 알 수 없어 찾아보니 중국과 대단히 유사하다”고 경악을 했다. 수사의 주체 경찰이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주요 도구로 쓰인다는 점에서 북한과도 흡사하다. 경찰은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까지 넘겨받아 비대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금도 정보경찰이 정책정보 수집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을 감시해 경실련과 민변, 참여연대조차 정보경찰 폐지를 요구하는 판에 경찰이 기소 여부까지 판단해 수사를 끝내게 한다는 건 법치국가 포기나 다름없다. ‘수사권은 경찰, 기소권은 검찰’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여권의 주장도 의심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8개국이 헌법이나 법률에 검사의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규정하고, 27개국이 검사의 수사권을 규정하고 있다(신태훈 논문 ‘이른바 수사와 기소 분리론에 대한 비교법적 분석과 비판’). 세상에 어디 본뜰 것이 없어 대한민국 경찰이 공포의 중국 공안을 따라간단 말인가. 검찰개혁이 끔찍한 개악으로 변질된 이유는 문 대통령이 2011년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쓴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찾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을 손볼 데가 없으면 절대 안 된다며 공수처를 추진했다. 참여정부가 끝나자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의 검찰개혁에 대해 복수하듯 노 대통령 수사를 진행했다고 나온다.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에 대해 이번엔 문재인 정부가 복수에 나선 셈이다. 조국은 이 정부의 수준이고, 민낯이며, 본질이다. 법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지만 그가 사라진다고 해서 머리 셋 달린 히드라 같은 검경과 공수처를 허용해선 안 된다. 연동형 선거제에 혹해 문재인 정부의 한풀이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일부 야당은 국민에게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거짓말에도 예의가 있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하는 것이어서 거짓말하는 사람도 사실의 엄중함을 존중한다. 그래서 사실을 감추려고 기를 쓰고, 사실이 드러나면 당황하거나, 변명하거나, 사과를 하는 식으로 뒤늦게라도 사실을 인정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실을 밝힌 쪽에다 대고 거꾸로 거짓말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사기꾼이 아니면.조국 법무부 장관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을 했다. 가장 간단한 조국 딸의 표창장 위조 건을 보자. 동양대 최성해 총장은 “(조국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가 전화해 (딸의 총장 표창장 발급을) 본인이 위임받은 것으로 해달라고 한 뒤 조국을 바꿔줬다”고 5일 언론 인터뷰에서 분명히 밝혔다. ●거짓말에 권력형 압박…은폐까지다음날 인사 청문회에서 조국은 ‘위임’이라는 핵심단어만 뽑아내 총장이 잘못 들은 것처럼 뒤집어 씌웠다. 자기 아내는 총장에게 “위임해주신 것이 아니냐”고 했다는 거다. 전에 표창장 발행 권한을 위임해주고도 왜 딴소리를 하느냐는 뜻이다. 거짓말도 이쯤 되면 사람 잡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최 총장은 조국과의 두 번째 통화를 하며 위임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라는 압박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조국은 딱 한번 통화했다고 했다. 조국의 배우자가 표창장을 위조하는 데 그쳤다면, 조국은 권력형 압력을 가하고 사실 은폐까지 했다는 얘기다. 그런 조국을 문재인 대통령은 9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이유다. 청문회 전까진 조국이 직접 위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청문회 직전 조국이 최 총장에게 권력형 위협을 가하고 은폐 조작을 종용한 것이 위법행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큰 정의’를 위해선 거짓말도 불사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지난주까지 만끽한 조국을 코앞에 세워둔 채 “정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대통령을 보며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조국 식으로 거짓말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DNA냐. ‘큰 정의’를 위해 작은 거짓말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이 386운동권의 정서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조국도 몸담았던, 유토피아를 꿈꾼 20세기의 모든 진보적 변혁운동에는 독특한 집단 심성이 있다”며 “큰 정의를 위해선 작은 정의는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는 정서가 그것”이라고 했다. 독재의 엄혹한 정치적 탄압 아래 민주화운동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큰 목표에 집중하며 때로 거짓말도 불사할 줄 알아야 했다. 그랬던 행태가 ‘조국 사태’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그러나 무엇이 큰 정의이고 무엇이 작은 정의인지를 누가, 누구 마음대로 정한단 말인가. 과거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사회주의 모국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했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부르며 주사파가 되고, 사회주의를 공부했던 좌파 역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자신들의 목적만이 큰 정의이고 그것을 위해 거짓말도 불사한다면, 대체 무엇이 큰 정의란 말인가. 주류세력 교체와 영구집권? 한반도의 평화번영? 아니면 북한 김정은의 핵과 동거하는 낮은 단계의 남북연방?●“조국은 거짓말” 외쳤던 김태우 “나는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다. 모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조국은 청문회에서 밝혔다. 사회주의자라는 커밍아웃을 듣고 보니, 작년 12월 31일 조국이 민정수석으로 국회에 출석해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은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도 못 믿겠다. 민정수석실에서 민간인을 사찰했고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나왔다는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소속 김태우의 폭로가 나오자 조국은 “제가 정말 민간인 사찰을 했다면 즉시 저는 파면돼야 한다”고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지난번 청문회 때와 똑같이 아주 침착하고도 정중한 모습으로. “모두 거짓말”이라고 외쳤던 김태우는 얼마나 기막혔을까. 문 대통령이 입이 닳도록 북한 김정은의 핵 포기 의사를 대변했던 것도 거짓말인지, 더럭 겁이 난다. 4월 15일에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안팎으로 거듭 천명했다”고 강조했다. 시정연설문을 암만 뒤져봐도 그런 소리는 없는데도, 외려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가 아니라 민족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협박을 했는데도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태연하게 딴소리를 했다. ●안보와 경제, 또 무엇을 속이고 있나한일갈등 해결은커녕 이를 빌미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리고도 청와대는 미국이 이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거짓말을 치명적 도덕성 문제로 보는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가 ‘문 정부의 거짓말’이라고 단언한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한미동맹에 무슨 일이 생겨도 국민은 감쪽같이 속을 판이다. 경제가 나아진다, 나아진다며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을 밀고 가는 것도 거짓말로 봐야 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7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성과를 발표하며 “2022년까지 문재인 케어를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하자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거짓말”이라고 맹비난을 했다. 민주주의는 사실에 근거해 정치적 판단을 내리려는 유권자의 의지와 능력에 좌우 된다고 했다. 소련처럼 거짓말로 지탱했던 사회주의체제는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북한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같은 당에서도 조국의 문제를 지적하면 배신자가 되는 풍토는 당신들이 공격했던 파쇼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조국의 사소한 거짓말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 그러면서도 김정은의 약속은 철썩 같이 믿는(척하는) 괴물 정부는 과연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것인가. dobal@donga.com}

서울대 교수쯤 되는 지식인이 아니라 해도 상식과 양심을 지닌 사람이면 곧 관둘 직장에 복직해 월급을 받아 가는 일은 못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그러지 않았다. 7월 26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떠나 8월 1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복직했고, 9일 청와대 인사 발표가 나오자 곧바로 인사청문회 준비팀 사무실로 출근했다. 방학 중이라 강의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서울대는 17일 국민이 혈세로 지원한 800만 원 넘는 월급을 내줘야 했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그나마 지난달 다시 휴직을 신청했다면 서울대는 날짜를 계산해 무노동 임금을 돌려받았겠지만 조국은 청문회 대비에 골몰하면서도 교수 월급 한 달 치를 고스란히 챙겼다. 장관 임명이 늦어지면 10일 추석 명절 휴가비 339만 원까지 받을 판이다. 셀프 청문회에서 조국은 과거의 조국이 보여준 번지르르한 언행과 숱하게 충돌했다. 딸의 입시부정 의혹에 대해선 “젊은 시절부터 진보와 개혁을 꿈꾸었지만 아이와 주변 문제에서 불철저했다”고 자성하는 듯했다. 거죽에 속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조국이 지금 서울대에 하는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조국은 예나 지금이나,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이다. 조국의 딸과 아내, 동생, 5촌 조카 문제가 그의 죄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이 주는 교수 월급을 일하지도 않고 받아먹는 뻔뻔함은 상식을 초월한다. 조국의 아내가 딸의 표창장 위조로 처벌을 받는다 해도 그는 물러나지 않을 게 뻔하다. 연좌제 없는 우리나라에선 남편의 장관직 수행도 법적으론 문제없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 조국의 미션은 문재인 정부의 변혁 작업에 법적 문제가 없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합법적으로 제도를 바꾸고 법을 집행함으로써 일당 지배를 굳히는 것이 요즘 신(新)독재의 특징이기도 하다. 조국은 울산대 강사 시절인 1992년 “법률관계투쟁은 지배체제가 내세우는 정당성의 모순성을 폭로하는 투쟁”이라며 “법 개폐를 쟁취함으로써 민중운동 진영에 유리한 합법고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기 전에 쓴 ‘새로운 한반도 질서와 법률투쟁의 쟁점’이라는 논문에서다. 촛불 ‘혁명’으로 운동진영이 집권세력에 등극한 지금, 문 대통령이 조국을 기어이 법무부 장관에 앉히려는 것도 단순한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 법무부 장관이 무슨 수를 쓰든 내년 총선 승리를 확보해줘야 혹여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논의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선거제 개편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몸싸움을 벌이다 수사 대상이 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무려 59명이다. 법무부 장관이 국회 회의방해죄를 엄격히 적용하게끔 검찰을 다잡으면, 당선 후에라도 의원직을 박탈해 합법적으로 한국당을 초토화할 수 있다. 선거사범의 자의적 처벌로 정치 지형을 바꿀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정의당 의원까지 의석수의 3분의 2를 넘기면 대통령발(發) 개헌도 가능하다. 헝가리의 신독재자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2010년 총선 승리 1년 뒤 눈 깜짝할 새 개헌으로 입법·사법부까지 장악해 일당 지배를 굳혔다. 법무부 장관의 감독을 받는 행정법원을 설치해 사실상 총리가 정부 관련 재판은 물론 선거와 미디어까지 합법적으로 주무를 수 있게 만들어 버렸다. 조국이 작업했던 대통령 개헌안에는 ‘전문재판부’를 둘 수 있게 돼 있다. 국회의원 소환제가 있어 시민단체든 ‘문빠’든 마음만 먹으면 의원도 끌어내릴 수 있다. 영토 조항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는 아직 살아 있지만 개헌선 확보 뒤엔 알 수 없다. 조국은 ‘법률투쟁’ 논문에서 영토 조항 폐지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재규정을 강조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란 자본주의 체제의 상부구조를 의미하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배제한다는 이유에서다. 무장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사노맹 전력에 대해 조국은 ‘독재정권에 맞서고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던 활동’이라고 미화했다. “자랑스러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고도 했다. 6일 인사청문회가 열린다면 그의 인식이 과연 달라졌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혜택을 있는 대로 누리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며 거부한 위선자의 진실을 알아야겠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인간관계도 그렇지만 국제관계에선 말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과거의 잘못을 인정도 반성도 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난함으로써 악화일로의 한일갈등에 재차 기름을 부었다. 이틀 전 이낙연 총리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했던 발언이 대통령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30일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장으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했으나, 집권세력 내에서 지소미아 재검토를 언급한 건 이 총리가 처음이었다. 병자호란 때 역적이 될 것을 각오하고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처럼, 나는 지일파(知日派) 총리 이낙연이 좀더 강하게 외교적 해결을 모색해주길 바랐다. ●임진왜란 아닌 병자호란에서 교훈을“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라고 대통령은 일본을 비난하며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기억과 성찰도 미련하게 하다간 과거사의 노예가 될 뿐이다. 잘못된 기억과 성찰로는 교훈을 얻기는커녕 더 끔찍한 잘못만 반복할 수도 있다. 일본의 보복 초기, 문 대통령은 열두 척 배로 나라를 지킨 이순신을 언급하는 바람에 무능한 선조와의 동일시를 자초했다(대통령이니까!). 지금 우리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면 임진왜란 보다는 병자호란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가도입명(假道入明·명으로 가려고 하니 길을 빌려 달라), 정명향도(征明嚮導·명을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안내하라)를 외치며 침략해 도리 없이 당했던 임진왜란이었다. 병자호란은 다르다. 그리고 현 정권과 희한한 공통점도 적지 않다.●文정부는 혁명세력이었나첫째, 반정(反正)으로 왕을 갈아 치웠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헌정질서에 따라 당선되고 취임했다고 믿지만(전임 대통령은 시위 때문에 하야한 것이 아니라 탄핵에 의해 해임됐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촛불 ‘혁명’에 의해 탄생했다고, 마치 혁명세력처럼 강조해왔다. 자신들의 도덕성이 전임정부를 능가한다고 믿기 때문인지(조국을 통해 실상은 드러났다), 그래야 혁명적 정책이 가능해서인지(잘하면 자유민주주의도 뒤엎을 수 있다), 아니면 국민 모르게 진짜 혁명을 했기 때문인지는(촛불시위는 좌파의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정부 전복이었던 것이다) 알고 싶지도 않다. ●전임정부 외교 뒤엎어 전쟁 자초둘째, 반정 명분상 전쟁은 불가피했다. 1506년 중종반정 명분이 연산군의 학정(虐政)인 데 비해 1623년 인조반정 명분은 폐모살제(廢母殺弟)와 명청(明淸)과의 외교 잘못이었다. 반정세력의 눈에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명의 재조지은(再造之恩·다 죽어가던 조선을 살려준 은혜)을 배신한 의리 없는 군주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버리는 건 당연했다. 명청 교체기라는 국제정세 변화? 주자학 이념에 빠진 반정세력에게 청은 오랑캐일 뿐, 정권의 안보가 국가 안보보다 중요했다. 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일본 총리와 첫 통화에서 전임 정부의 위안부 합의 수용 불가를 시사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위안부 합의를 놓고 양국의 감정싸움이 고조된다면 지소미아 등 한일 간의 다른 협력 관계도 연쇄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고 썼다. 현 정부 특성상 한일관계 악화는 불가피했던 거다. 운동권 NL파 중심인 집권세력은 야당시절부터 한미일 안보협력은 물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중국의 도전에 맞선 미일동맹 강화 같은 국제정세? 그들의 이념 속에 미국과 일본은 제국주의자일 뿐. 한미동맹 해체도 각오해야 할 판이다. ●당신들과 옛 지배세력, 뭐가 다른가 셋째, 반정세력이 꼭 개혁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건 슬픈 진리다. “(반정세력인) 서인들은 광해군 때의 것이라면 모조리 개혁하고자 하여 폐지해서는 안 될 것도 기어이 고치고 말았다. 광해군 정부의 인사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데 급급했다. 반정 1년 만에 이괄의 난이 일어나 반란군이 입성하자 수많은 백성들이 길을 닦고 환영했을 만큼 민심이 이반됐다.”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광해군시대의 유산과 인조반정’에서 이렇게 썼다. 민생과 재정을 위한 대동법, 호패법, 군적정리 등 개혁정책은 집권세력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인해 실패했다. 그 시절 유행했다는 노래를 소개하는 것으로 현 정부에 대한 서술을 대신한다. 아 훈신들이여/ 잘난 척하지 말아라그들의 집에 살고/ 그들의 토지를 하지하고그들의 말을 타며/ 또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당신들과 그들이/돌아보건대 무엇이 다른가.●예나 지금이나 포퓰리즘은 효과적넷째, 떠난 민심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애국심 마케팅과 외교 포퓰리즘이다.병자년 인조는 ‘청이 우리나라를 업신여기는 것이 심해졌다’며 ‘수천 리 국토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가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하교로 표현했다(문 대통령은 28일 현대모비스 친환경차 부품 울산공장도 아닌 ‘공장 기공식’에서 “정치적 목적의 무역 보복이 일어나는 시기에 우리 경제는 우리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고 비장한 의지를 표현했다). 나라가 보민(保民)과 양병(養兵)은 못했지만, 척화론자들은 인조가 분연히 진작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의리를 찾는 목소리가 바람처럼 일어나 사기가 저절로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경제를 지키자는 의지와 자신감”이라고 분연히 진작했다).●네네 하면서 물러난 대신들…지금은?명과의 대의와 의리 때문에 후금과의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다는 인조의 말에 대신들은 속으로는 걱정을 하면서도 국왕 앞에서는 네네 하면서 물러났고(인조11년) 도성 사람들은 병화가 조석에 박두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리어 그들을 배척하고 끊은 것을 통쾌하게 여기고 있다(인조14)고 인조실록은 기록했다. 현 집권세력이 이런 과거사를 기억하고 성찰했다면 ‘국가적 자존심’을 이유로 지소미아를 파기할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는 마냥 통쾌하게 웃어도 괜찮은가. ●패배 뒤 이데올로기 강화에 올인다섯째, 가장 슬픈 교훈은 전쟁에 지고도 집권세력이란 반성을 모른다는 점이다. 청 태종 앞에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만신창이가 된 인조는 다시 위신을 세우기 위해 성리학적 종법질서 교조화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독일은 과거에 대해 진솔하게 반성하고 잘못을 시시때때로 확인한다”고 했다. 조선도 그러지 못했다. 나라를 망조로 이끌었던 그 이데올로기로 구석구석 온 나라를 강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청에서 돌아오는 여성들을 환향녀로 몰아붙인 게 한 예다. 다음 세대에선 예송논쟁으로, 당파싸움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배상하면 참 좋겠지만 이 나라 집권세력도 안하는 일을 남의 나라에 강요할 순 없다. 못 참겠으면 전쟁이라도 해서 받아냈으면 정말 좋겠지만 이 정부는 외교로 풀어낼 수 있는 시간도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렸다. ●척화론 후예들,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로 ‘경제전쟁’은 일어났다. 이 위기에 산업경쟁력을 강화해 경제 도약의 기회로 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현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보아 과연 가능할지 불안하다.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 극복’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니, 일본 핑계로 마음 놓고 적자 국채 발행할 수 있어 좋겠다. 지금 자행하고 있는 정부실패 정책실패는 모른척하면서, 과거 우리나라의 잘못도 반성하고 개선할 줄 모르면서, 병자호란과 6·25 때 엄청난 피해를 안긴 중국에는 반성과 배상을 요구한 적도 없으면서,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온 국민을 과거사의 노예로 만드는 의도가 대체 뭔가. 전쟁에 지고도 주자학 교조화에 골몰해 끝내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던 척화론의 후예들. 그들이 다시 이념을 높이 쳐들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끌고 가고 있다.dobal@donga.com}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결정한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문재인 대통령의 오른편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사진이 동아일보에 실렸다. 그것도 그냥 다문 게 아니라 아래턱에 표시가 날 만큼 어금니에 힘을 준 모습이었다.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을 지낸 지일파(知日派) 총리 이낙연은 알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가 어떤 의미와 무게를 지니는지를. 안보 걱정하면 新친일파라고? 그는 작년 10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 이후 정부 대응 총괄을 맡고 있다. 한 달 전 카타르 등 순방 중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쿄의 ‘상황을 볼 줄 아는 분’과 연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 때만 해도 이낙연은 낙관적이었다. “한일양국은 세계경제 성장과 동북아 안보에 협력하며 기여해왔는데 이것을 흔들거나 손상을 줘선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일본에선, 문재인 정부가 존재하는 동안은 양국 신뢰에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소미아는 단순한 정보교환협정이 아니다. 국가 간 신뢰가 파기되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은 물론 한미동맹의 틀도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 지소미아 파기가 불러올 안보 불안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단칼에 ‘신(新)친일파’로 매도했다. 그런 집권세력 내에서 “파기는 안 된다”고 말하기 쉬울 리 없다. 그래서 더욱 이 총리의 목소리가 절실했던 것이다. 이낙연은 왜 직(職)을 걸고, 대통령에게 독대를 청해서라도, 그래선 안 된다고 진작 말하지 못했을까. 대선주자 1등이라고 몸조심하나지난해 미국의 한 고위 관료가 “나는 트럼프 정부 내 레지스탕스”라고 알린 적이 있다. 미국 행정부 안에 트럼프 대통령을 제어하는(심지어 무시하는) ‘어른’이 존재하고, 그래서 미국이 지켜지고 있다는 거다. 청와대는 반미 대신 반일 운동권으로, 민주당은 ‘반일이 총선에 좋다파’로, 내각은 말 잘 듣는 손발로 채워진 문재인 정부다. 그 안에서 아무도 “안 된다” 말을 못할 때, 그래도 어른답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낙연 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무리한 주문(또는 기대)라는 것, 안다. 가만있어도 이낙연은 대선주자 선호도 1등인데 왜 평지풍파를 왜 일으키겠나. 그러나 가만있으면 ‘친문 직계’가 아닌 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을 통과하기 어렵다. 운동권 시절부터 패권주의로 죽고 살아온 친문세력이다. 그들이 노무현 시절 고건 총리를 연상케 하는 이낙연에게 곱게 꽃가마 태워줄 것 같은가.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 사표 던져김영삼 정부 때 이회창은 청와대비서실장 박관용한테 “내각에 지시하지 말라”고 요구했던 대쪽총리였다(하긴 이낙연도 전임 임종석 비서실장의 DMZ 시찰에 격노한 적은 있다). 헌법에 명시된 총리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사사건건 대통령과 충돌하던 그는 해임당하기 직전, 사표를 던져버렸다.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1994년 4월 변호사 문재인이 “김 대통령의 인사 가운데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이 총리가 물러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한겨레신문에 나온다. “그동안 이 총리가 법치주의에 근거한 합리적 행정 구현에 노력해왔음에 비추어 볼 때 총리로서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충분히 행사하려는 것이 사임의 배경이 된 데 대해 현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국민의 성원으로 이회창은 단박에 대선주자급으로 벌떡 일어섰다.예나 지금이나 정파적 이익에 혈안 오해하지 마시라. 이 총리의 대권을 위해 “아니오” 하라는 게 아니다. 나라를 위해 할 말을 해달라는 것이다. 왜 이 나라 위정자들은 임진왜란 때나 병자호란 때나 지금이나, 제 나라 제 국민은 생각 않고 자기네 당파와 권력 지키기에만 혈안인지, 분하고 한심하다. 한창 ‘이낙연 특사’ 기대가 뜨던 지난달, 그가 일본의 협상 파트너로 나섰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친문세력은 2+1(한일기업+한국정부) 해법 등으로 이 총리가 덜컥 한일갈등을 해결하고 나폴레옹처럼 개선할까 봐 불안해 못 보냈는지도 모른다. 내년 총선 전에 해결이 돼도 걱정이고, 경제는 악화일로인데 핑계거리가 없어져도 문제다. 이러다 정말 이낙연이 되면 더 큰일이다, 라는 소리도 친문세력 안에선 나오고 있다. 병자호란 때도 그랬다. 인조반정 명분 중 하나가 광해군이 이른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망각하고 후금과 결탁해 예의 나라 조선을 오랑캐와 금수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성리학 이데올로기에 갇힌 반정세력에는, 화친을 주장하면 패주 광해군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일본과 적극적 외교적 해법을 주장하면 친일파로, 지소미아를 강조하면 신친일파로 몰리는 것처럼.민주당 “지소미아는 매국협상”2016년 말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문 대통령은 “일본이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고 특히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한일간 영토분쟁이 있는 마당에 지소미아를 체결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반대의사를 명백히 했다. 민주당은 ‘굴욕적 매국협상’이라고 펄펄 뛰었다. 설령 대법원 징용 판결이나 화이트리스트 배제 같은 갈등이 없었더라도, 일본과 북한의 군사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이 현 정부는 친일행위처럼 싫었던 거다. 남북의 평화경제를 위해선 주한미군도 부담스러운 판에 일본까지 군사대국으로 만들어줄 순 없다. 집권세력이 이런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으면 10월 22일 일본왕의 공식 취임식 때 이 총리가 대통령 대신 특사로 참석한들, 경제문제(수출규제)부터 안보문제(지소미아)까지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을 잘 알고 일본과 손잡았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수제자답게, 과연 이낙연은 한일갈등을 풀어내고 국민 앞에 리더십을 입증할 수 있을까. 조국의 장관후보자 지명 철회 건의하라그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지금 이낙연이 과거 문재인 말씀대로 총리의 직무상 권한을 행사하면서, 가장 어른답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것이다.25일 조국은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음을 겸허하게 고백’한다고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했다. “기존의 법과 제도에 따르는 것이 기득권 유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과 가족 특히 딸이 법과 제도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고(따라서 잘못은 없고), 자신들은 기득권 영구화에 성공했으나 앞으로 386카르텔 아닌 국민과 그 자녀세대가 기득권에 달려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므로, 국민청문회든 뭐든 간단하게 끝내고 반드시 법무장관이 돼서 기존의 법과 제도를 완전 개비하고 말겠다고 선언했다. 조국은 아직도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국민이 분노하는지, 심지어 왜 촛불을 들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지난주엔 돈으로 장관자리를 사려하더니, 이 정도면 국민의 마음도 살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 총리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아니면 꽃가마 가마꾼이나 하든지우리 헌법은 총리가 국무위원(장관)의 임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총신(寵臣) 조국을 이 총리가 제청하지 않았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총리로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 달 전 카타르에서 기자들이 “조국 수석의 죽창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낙연은 “내가 아직 못 봐서 뭐라고 할 수 없네”하며 넘어갔다고 한다(못 봤을 리 없다). 부자 몸조심도 좋지만 너무 몸을 사리다간, 몸만 남을 수 있다.조국에게 쏟아지는 의혹들도 이 총리가 아직 못 봐서 모른다고는 못할 것이다. 이 정도 의혹과 그 정도 건방이면 조국이 설령 장관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총리로서 대통령에게 장관 해임을 건의해야 마땅하다. 이낙연의 진정한 리더십을 국민이 다시 볼 것이다.그것도 못한다면…이낙연은 조국 장관 아래 국민과 함께 눈치 보는 총리로 연명하다 꽃가마 떠메고 떡고물이나 고대하는 가마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 전에 미-일과 멀어져 북-중-러에 끌려가는 경제 불안, 안보 불안으로 나라와 함께 위기에 빠지든지. dobal@donga.com}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은 억울할 것이다. 유학 간 부모를 따라 미국서 학교를 다녔기에 외고에 들어갔고, 의대에서 2주간 인턴하며 영어 의학논문 작성에 참여했기에 대입 자기소개서에 썼다. 하지만 제1저자로 올려달라고 부모가 압력을 넣은 것도 아닌데 뭘 잘못했다는 건가. 어제 조국이 “딸이 등재 논문 덕분에 대학 또는 대학원에 부정 입학을 했다는 의혹은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밝힌 것도 ‘절차적 불법’은 없었다는 자신감 때문일 터다. 인사청문회가 열려도 조국은 ‘등재 특혜’에 자기 가족 책임은 없다고 강변할 것이고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분위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을 촉발한 것도 정유라의 ‘학점 특혜’였다. 2016년 10월 이화여대 학생들은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최순실이고, 정유라가 최순실의 딸임을 모르는 상태에서 “왜 수업에 한 번도 안 나온 정유라가 우리보다 학점을 잘 받느냐”며 분노했다. 입시비리가 있었다는 건 한참 뒤 특검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그들은 법전까지 안 뒤져도, 그냥 상식적으로 봐도, 실력과 노력에 걸맞지 않은 불공정한 결과를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교육 관련 특혜만큼 청년층에 민감한 문제도 없다. 나는 못 배웠어도 내 자식은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기 바라는 게 한국의 부모 마음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절대 용서 못할 중죄로 각인된 것도 정유라의 학사비리가 청년층부터 부모 세대까지 공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조국은 어떤 잘못을 해도 대통령이 싸고도는 최측근이고, 정부 핵심 세력인 운동권 386세대의 상징적 존재다. 기득권을 누리는 자칭 강남좌파라도 진정 나라를 위한 ‘진보적 사회개혁’을 하고 있다면 존경할 수 있다. 애국을 입에 달고 사는 조국이 남의 자식들은 강남에 진입하지도 못하게 교육 사다리를 부수는 퇴행적 작태를 하면서, 자기 딸에게는 황금 사다리를 받쳐준 사실에 국민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다. 386 세력은 이념을 통해 ‘국가에 대한 점유’ 작전에 집합적으로 돌입한 세대라고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분석한다. 문 대통령이 당선 뒤 가장 하고 싶은 일로 꼽은 것이 주류세력 교체였다. 알고 보니 조국 같은 폴리페서부터 참여연대, 민변, 민노총 등 386 네트워크가 청와대부터 사법부, 온갖 정부위원회, 공기업 노른자위까지 꿰차고 세금 빼먹는 것이 정권 교체의 목표였던 모양이다.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있다면 또 모른다. 운동에 빠져 공부는 팽개쳤던 이들의 시대착오적 정책 탓에 386세대의 자녀들인 청년층은 피해를 뒤집어쓰고 있다. 신입사원 채용 길을 막아버린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린 소주성(소득주도성장) 때문에 알바생 학비 마련 길이 막히고 있다. 강남 아파트값 잡는다며 대출을 막아버려 젊은 부부들은 조국처럼 몇십억 현찰을 쥐고 있지 않는 한 새 아파트 구경도 못 할 판이다. 자기 자녀 아닌 청년층을 N포세대로 만들고도 386 집권세력은 잘못을 모른다. 조직의 이익 앞에선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집단주의 성향이 좌파 운동가들의 특징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실이 발각되고도 비례대표들은 사퇴를 거부했듯, 정부여당은 여론이 들끓어도 정권 재창출에만 신경 쓰는 모습이다. 조국으로 치면 ‘100년 집권’을 위해 내년 총선 전 검찰개혁과 야당 의원들 의법처리를 해내야 할 대통령의 아바타다. 386 집권세력이 “조 후보자를 흔드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일제히 엄호하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정유라가 처벌받지 않은 것처럼 조국의 딸도 죄는 없다고 본다. 말로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치면서 자기들끼리 특별한 기회, 특별한 과정, 특별한 결과를 누리려는 386의 권력욕이 문제다. 국민과 더 유리(遊離)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국을 털고 가야 한다고 믿는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말을 못 한다고 한다. 좋지 않은 징조다. 국민이 불신하는 ‘법꾸라지’가 법무부 장관을 맡는 것은 정권의 불행이다. 박근혜의 최순실처럼 대통령의 최측근이 이 정부의 몰락을 불러오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조국과 갈라서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