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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2기 개각을 앞둔 문재인 정부가 ‘협치(協治) 내각’ 구상을 꺼내들었다. 야당 인사들의 입각을 통한 사실상의 소(小)연정을 통해 개혁의 동력을 이어가겠다는 구상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 있다면 협치 내각을 구성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입법 절차가 필요하고 이런 관점에서 야당과 협치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이 시점에서 해결해야 할 긴박한 과제들에 대해 서로 손을 잡고 어려움을 넘어가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집권 2기를 맞아 민생 성과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각종 경제개혁을 위한 입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등 굵직한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선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하다는 것. 문 대통령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핵심 참모진과 여당 지도부에 협치에 대한 획기적인 구상을 마련해주길 당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낙연 국무총리와 여당이 협치 내각 구성을 위해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등 야당 의원들과 만나 협치 내각 참여 의사를 타진해왔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협치 내각의 범위와 대상은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당초 현재 공석인 농림축산식품부를 포함해 2, 3개 부처의 소폭 개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야당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개각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는 바른미래당 등 ‘범(汎)보수’ 야권도 입각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과 연대하는 소연정의 형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청와대는 김영록 전 장관의 출마로 공석이 장기화된 농식품부 장관은 이번 주 우선 지명한 뒤 8월 후속개각에서 야권 인사를 발탁한다는 구상이다. 농식품부 장관에는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되던 협치 내각 구상을 청와대가 공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야당에 빠른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야당이 협치 내각 참여를 조건으로 내건 각종 정치적 요구가 과도하다고 보고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사인을 보냈다는 것. 평화당 관계자는 “정부 고위관계자로부터 ‘대통령이 협치에 뜻이 있다’는 언급을 전해 듣고 몇 차례 논의가 오갔다”며 “청와대가 협치 내각 구상을 공개했는데, 연정을 구성하는 대신 ‘자리 한두 개 나눠줄 테니 따라와 달라’는 식이 돼선 곤란하다”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장관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2기를 맞아 새로운 경제정책 기조로 ‘포용적 성장 정책’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였던 소득주도성장 대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인 포용적 성장을 앞세운 것. 특히 문 대통령은 다음 달부터 매달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열기로 하는 등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 활력을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2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가 걷고 있는 포용적 성장 정책은 신자유주의 성장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주요 선진국들과 국제기구가 함께 동의하는 새로운 성장정책”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포용적 성장과 소득주도성장의 유사성을 언급해 왔지만 경제정책 기조를 포용적 성장이라고 규정한 것은 처음이다.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은 2009년 세계은행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소득 양극화 해소를 통한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말 윤종원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한 이후 이 개념을 앞세우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과감한 규제혁파와 혁신성장 가속화에 주력하겠다”며 “제가 직접 매달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해 규제개혁 속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필요하다면 저부터 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계와 직접 만나겠다”며 기업과의 소통 강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최근 인도 방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것처럼 대기업 총수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문 대통령은 “특별히 하반기 경제정책에서 자영업 문제를 강조하고 싶다”며 “청와대에 자영업 담당 비서관실을 신설해 직접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고 밝혔다.문병기 weappon@donga.com / 세종=송충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 자영업 담당 비서관실을 신설하고 직접 현장 목소리를 듣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특별히 하반기 경제정책에서 자영업 문제를 강조하고 싶다”며 “자영업은 기업과 노동으로만 분류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독자적인 산업정책 영역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하반기 자영업자를 위한 대대적인 대책 마련을 예고한 것이다. 신설되는 자영업비서관은 경제수석실이 아닌 일자리수석실에 설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자영업은 중소기업의 일부분으로 다뤄져 왔다”며 “그러나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전체 취업자의 25%다. 이 중 중·하층 자영업자 소득은 임금 근로자보다 못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지원 차원에서 이뤄진 자영업 대책을 일자리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문 대통령은 “상가 임대료와 임대 기간 등 임대차 보호 문제, 각종 수수료 경감, 골목상권 보호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대해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하겠다. 프랜차이즈 불공정 관행과 갑질 문제도 적극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24일 자영업비서관 신설 등 청와대 조직개편안 일부를 공개할 계획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국방부가 국군기무사령부의 실행계획이 담긴 계엄령 문건 원본을 청와대에 보고한 데 이어 수도방위사령부와 특수전사령부 등이 계엄 문건과 관련해 기무사에 보고한 문건 등을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또 문건 작성 당시 육군 수뇌부와 계엄령 실행 부대 지휘부 간 비공식 보고와 지시가 오갔는지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와대와 국방부가 예상보다 빨리 민군 합동수사단을 구성하기로 하면서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한 ‘윗선’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계엄 문건 비공식 보고 내용이 핵심 정부 관계자는 22일 “국방부 전투준비태세검열단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 지시로 계엄령 문건에 나온 부대들의 관련 문건들을 확보해 취합하고 있다”며 “조만간 청와대에 보고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가 계엄령 문건에 등장하는 수방사와 특전사 및 예하 부대들에서 계엄령 관련 추가 문건들을 확보했다는 얘기다. 국방부가 추가 확보한 문건들에는 계엄 발령 시 부대별 역할에 대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무사는 계엄령 관련 지시를 일선 부대 등에 하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부대들에 계엄 관련 문건들이 있더라도, 기무사가 이를 각 부대에 지시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계엄 발령 시 이에 참여하는 부대들의 전시(戰時) 작전계획에는 계엄 발령 시 작전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추가 확보한 계엄 관련 문건이 일선 부대들이 평소 보관하고 있던 계엄 관련 작전계획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관건은 추가 확보한 문건들을 통해 기무사가 실제로 계엄 발령을 염두에 뒀다는 정황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확보한 기무사의 계엄령 대비계획 세부자료와 합참의 계엄시행계획 및 일선 부대들의 작전계획을 비교하면 기무사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동시에 청와대와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기무사나 육군본부 등과 일선 부대 지휘관 사이에 오간 작전 지휘나 보고가 계엄령 실행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당시 군 조직 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육군 출신 일부 지휘관들과 기무사 출신들 사이에 공식 문건 외에 계엄령 관련 비공식 논의나 작전 지휘가 오갔는지를 확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계엄 문건과 관련한 중요한 내용은 공식 문건이 아니라 육군 출신 일부 지휘관들끼리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 수사 빨라질 듯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한 ‘윗선’을 겨냥한 수사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부와 법무부는 23일 계엄령 문건 수사를 위한 민군(民軍) 합동수사본부 출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방부 특별수사단과 민간 검찰이 계엄령 문건 수사에 공조하는 합동수사단을 출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합동수사본부 출범은 송 장관의 건의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정부 내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계엄령 문건 수사를 지시했을 때부터 합동수사본부로의 확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민간인은 참고인 조사만 할 수 있는 국방부 특수수사단만으로는 계엄령 문건 작성을 누가 지시했는지 수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권에선 벌써 김관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등을 수사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명령 집단인 군의 특성상 최고 지휘권자나 청와대 하명이 없이는 일선 기무부대에서 이런 일을 추진할 생각 자체를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손효주·장관석 기자}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수사를 둘러싸고 당시 군 수뇌부와 계엄령 관련 지휘관들의 비공개 보고와 작전 지시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계엄령 사태가 육군 중심의 군 조직 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계엄 관련 지시 등 중요한 내용이 군 조직 내 ‘이너서클’을 중심으로 오갔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식적인 계엄 문건 외에 군내 주류 핵심 지휘관들끼리 비공식 회동이나 보고·지시가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20일 기무사의 ‘계엄령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공개하면서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이 맡도록 한 점을 유독 강조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계엄사령부를 편성하기 위해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당시 합참의장을 의도적으로 배제했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은 것이다. 여권 내에선 문건 작성을 ‘알자회’ 중심이었던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이 맡았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육사 34∼43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알자회는 1992년 해체됐으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기무사령관과 특수전사령관 등 요직을 알자회 이전 멤버들이 대물림하면서 사실상 모임이 부활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던 군내 사조직이다. 지난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고 누락 논란 때도 여권 내에선 알자회가 배후로 거론되기도 했다. 반면 육군 관계자들은 계엄령 문건이 군 사조직이 주도한 ‘친위 쿠데타’ 모의라는 해석을 부인하고 있다. 문건이 작성된 지난해 3월 현역으로 남아 있던 알자회 출신은 기무사령관 등 5명 안팎에 불과했다는 것. 특히 실제 진압작전을 수행할 부대에 있었던 알자회 출신은 조종설 특전사령관(현 3군사령부 부사령관) 정도여서 쿠데타를 꾀할 만큼 중심세력으로 보기 어려웠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기무사가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으로 바꾼 것에 대해선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아 후방 치안을 담당하고 합참의장은 전쟁 준비 및 지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군 내부에서도 많았다”는 반론도 많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기무사가 누구의 지시를 받아 어떤 근거로 육군참모총장을 사령관으로 한 계엄 문건을 작성했느냐가 문제”라고 반박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혁신점검회의를 전격 취소한 지 3주 만에 첫 규제혁신 현장방문에 나서며 집권 2기 혁신성장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문 대통령은 19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를 찾아 “혁신기술을 의료현장에서 사람을 살리고 치유하는 데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의료기기 산업의 낡은 관행과 제도,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소아당뇨에 걸린 아들의 혈당측정기를 해외직구로 들여왔다가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김미영 씨의 사례를 언급하며 “누구를 위한 규제이고,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의료기기는 개발보다 허가와 기술평가를 받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며 “규제혁신이 쉽지 않은 분야지만 의료기기 산업에서 규제혁신을 이뤄내면 다른 분야의 규제혁신도 활기를 띨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당뇨측정기 등 체외진단 기기는 기술평가 기간 등을 현행 390일에서 80일로 단축하는 등 의료기기 인허가 규제개편 방안을 내놨다. 이날 행사는 지난달 27일 ‘내용 미흡’을 이유로 규제혁신점검회의를 전격 취소하면서 공직사회에 레드카드를 꺼내든 문 대통령의 첫 규제혁신 현장방문이다. 특히 의료기기를 규제혁신 모범사례로 내놓은 것을 두고 과거 정부와 차별화된 방향을 제시하려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직 대기업이 장악하지 못한 글로벌 신성장 산업에서 중소벤처기업들을 육성하는 데 규제혁신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의료기기 등 바이오 산업은 과거 정부에서도 규제를 폐지하려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분야”라며 “이런 분야부터 과감히 규제를 풀어 성과를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환자들을 위한 첨단 의료기기 수입을 가로막는 규제 사례를 듣고 이같이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과 의료 관련 공공기관장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불합리한 의료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나선 규제혁신 현장방문이다. 집권 2기를 맞아 규제혁신을 통한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문 대통령이 첫 행보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의료기기 분야를 택한 것을 두고 틀을 깨는 과감한 규제개혁을 공직사회에 주문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규제혁신 신호탄 쏜 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첨단기술을 개발하고도 제품 출시가 좌절된 기업들의 사례를 직접 언급하며 규제혁신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의료기기 산업은 혁신적인 제품이 제대로 평가받고, 제때 신속하게 출시될 수 없는 구조”라며 “유방암 수술 후 상태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도 국내에 임상문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출시를 허가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이런 일은 없어질 것”이라며 “저는 오늘 규제혁신 첫 번째 현장으로 찾은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의료기기 규제혁신에 대해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규제혁신 방안으로 문 대통령은 안전성 우려가 작은 체외 진단기기는 원칙적으로 모든 사업을 허용하되 사후 규제를 강화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통상 390일이 걸리는 체외 진단기기 심사 기간도 80일 이내로 대폭 줄이기로 했다. 바이오벤처기업들이 당뇨병 등을 편리하게 진단할 수 있는 의료기기를 개발하고도 장기간 심사에 발목이 묶여 자금난에 허덕이는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또 인공지능(AI), 3차원(3D) 프린팅, 로봇 등을 이용해 의료진을 도와주는 기기는 최소한의 안정성만 확보하면 별도의 심사 없이 바로 의료 현장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세계 의료기기 시장은 매년 5%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다른 제조업에 비해 더 크다”며 “우리 의료기기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우뚝 서도록 정부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규제혁신에도 일자리 우선순위 문 대통령이 첫 규제혁신 현장방문으로 의료기기 분야를 선택한 것은 체감 효과가 크고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서 우선 규제혁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7일 ‘성과 미흡’을 이유로 규제혁신점검회의를 당일 취소한 문 대통령이 이번 현장방문으로 문재인 정부 규제혁신 방향을 제시하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기기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규제 기요틴(단두대)’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 역시 규제개혁 장관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의료기기 규제개혁 방안을 내놨지만 정치권과 관련 단체들의 반대로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통령사회정책비서관실과 복지부는 이번 규제혁신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단체들을 설득하는 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기기가 중소벤처기업 육성이라는 혁신성장 기조와 맞아떨어지는 분야라는 점도 고려됐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중소벤처기업들이 활약할 수 있는 첨단 산업 분야에 우선순위를 두고 규제혁신이 가시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포석이다.문병기 weappon@donga.com·김철중 기자}
집권 2기 조직 개편을 준비 중인 청와대가 교육문화비서관을 교육비서관과 문화비서관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대입제도 개편을 앞두고 교육정책에 대한 청와대의 정책 조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또 자영업비서관은 일자리수석실 산하에 신설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날 “사회수석실 산하에 교육비서관과 문화비서관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며 “이는 교육개혁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정부는 8월 말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 구조 개편 등을 포함한 대입제도 개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청와대가 교육정책을 전담할 교육비서관을 신설하는 것은 앞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과정에서 잡음이 컸던 점을 감안한 조치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교육문화수석실 산하에 교육비서관과 문화체육비서관을 별도로 뒀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사회수석실 산하에 두 자리를 통합해 교육문화비서관을 두는 식으로 조직을 축소했다. 또 신설되는 자영업비서관은 경제수석실이 아닌 일자리수석실 산하에 설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일자리 감소로 경제 전체에 미친 파장이 컸던 것을 감안해 고용정책을 중심으로 자영업자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정책홍보 기능 강화를 위한 국정홍보기획비서관 신설 △혁신성장 분야를 담당할 혁신비서관 신설 등을 검토하며 조직 개편안을 막판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조직 개편안은 이르면 이번 주말 확정돼 다음 주초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해 국방부, 국군기무사령부와 각 부대 사이에 오간 모든 문서와 보고를 대통령에게 즉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군에 독립적인 특별수사단 구성을 전격 지시한 지 엿새 만이자, 수사단이 수사를 개시한 날 군 통수권자 자격으로 각급 부대에 사건의 전모를 직접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의 대통령 지시사항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계엄령 문건에 대한 수사는 국방부의 특별수사단에서 엄정하게 수사하겠지만, 이와 별도로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계엄령 문건이 실행까지 준비가 되었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김 대변인은 전했다. 문 대통령이 군에 별도 보고 지시를 내린 것은 증거문서 파기 등 군의 수사 방해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계엄령 문건 작성과 이후 대응 과정에서 보인 군의 태도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수사 개입 논란을 무릅쓰고 청와대가 자체 조사에 나선 만큼 대대적인 군 적폐 청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김용우 육군참모총장 등 지휘관 20여 명을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긴급 소집했다. 송 장관은 “2017년 당시의 계엄령 관련 준비, 대기, 출동명령 등 모든 문건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최단 시간 내 제출할 것을 명령한다”고 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간) “(북-미가) 국제사회 앞에서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이행과 종전선언 시기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북한과 미국에 지난달 12일 합의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한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참여를 공개 제안하는 등 북한의 ‘정상 국가화’ 조치를 담은 ‘아세안 구상’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 오처드호텔에서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가 주최한 ‘싱가포르 렉처’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과정이 결코 순탄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와는 지금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실무협상 과정에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쟁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북-미 양 정상이 직접 국제사회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정상들의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신속한 비핵화 이행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을 정상 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매우 높았다”며 “김 위원장이 비핵화의 약속을 지킨다면 자신의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 이행 방안을 더 구체화하고 한국과 미국은 이에 상응하는 포괄적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한다면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갈 경우 아세안이 운영 중인 여러 회의체에 북한을 참여시키고 북한과의 양자 교류 협력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싱가포르에서 북한이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나 미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여할 길을 열어주자고 공개 제안을 한 것. 지난해 9월 독일에서 내놓은 ‘베를린 구상’에 이어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비전’을 내놓은 ‘싱가포르 렉처’에서 북한의 정상 국가화 제안을 담은 ‘아세안 구상’을 제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경제협력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도 (싱가포르처럼) 대담한 상상력을 실천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며 “한국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또 하나의 기회가 있다. 바로 남북 경제협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하루빨리 평화체제가 이뤄져 (남북)경제협력이 시작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12일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 수행단과 함께 한 달 전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찾았던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와 가든스바이더베이를 깜짝 방문했다.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역사적인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을 되새겨 후속 이행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당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5박 6일의 인도·싱가포르 순방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날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싱가포르=한상준 alwaysj@donga.com / 문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개혁을 흔드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 사태를 이용해 기무사 개혁을 방해하려는 군과 정치권 일각에 대해 엄중 경고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청와대와 군 소식통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11일 인도 방문 기간 중 기무사 문건에 대해 독립 수사를 특별지시하면서 “국방부가 기무사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흔들려고 하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며 “이 문제도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군 안팎에선 기무사 개혁이 문건 사태 여파로 흐지부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소식통은 “(청와대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 경질설이 제기되는 배경엔 기무사 개혁을 좌초시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계엄령 문건을 국방부와 청와대의 갈등으로 보는 보도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전형적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식’”이라고 했다. 청와대 측 인사에 따르면 송 장관은 3월 말 이석구 기무사령관(육군 중장)에게서 해당 문건을 처음 보고받은 후 4월 말 청와대에 기무사 개혁 관련 보고를 하면서 이 문건을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히 훼손한 사례로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세월호 민간인 사찰과 계엄령 의혹을 파헤칠 특별수사단(단장 전익수 공군 대령)이 해·공군 출신 군 검사 15명 등 약 30명 규모로 13일 발족했다. 수사 1팀(민간인 사찰), 2팀(문건 의혹)으로 나눠 16일부터 공식 수사를 시작한다. 군 특별수사단과 별도로 계엄령 문건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진재선)는 지난해 12월 미국으로 출국한 문건 작성 책임자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 대해 입국 시 통보 조치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문병기·황형준 기자}
청와대가 집권 2기 최대 이슈로 떠오른 규제혁신과 혁신성장을 담당할 혁신비서관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11일 알려졌다. 인도와 싱가포르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잇달아 만나며 ‘기업 애로 해소’를 강조한 가운데 경제 성과를 내기 위해 규제혁신과 혁신성장 전담 비서관을 신설하자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 여러 비서관실에 분산돼 있는 혁신 업무를 한 곳으로 모아 혁신비서관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전반적인 조직 개편과 연동된 문제로 아직 유동적이지만 혁신비서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혁신비서관은 청와대 정책실 경제수석실 산하에 설치될 가능성이 높다. 혁신비서관이 신설되면 자율주행차와 드론 등 신성장 산업 분야 육성을 비롯한 혁신성장 업무와 함께 규제혁신 정책을 총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규제혁신 업무는 국무조정실이 맡고 있으나 부처별, 업종별 이해관계 충돌이 극심한 만큼 청와대가 직접 이를 조율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청와대 관계자는 “규제를 풀면 그 규제로 이득을 보는 누군가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보니 부처에만 맡겨서는 체감할 만한 진전을 보기가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혁신비서관이 신설되면 청와대 내에 기업과의 소통 채널이 신설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전격 취소한 문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에게 기업 소통과 애로 해소를 강조한 데 이어 9일에는 삼성그룹 행사에 처음 참석해 이 부회장에게 국내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를 당부하기도 했다. 혁신비서관과 함께 자영업자·소상공인 담당 비서관 신설도 검토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일자리 감소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고용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책을 전담할 비서관을 신설하는 방안이다. 청와대 조직 개편 방안은 문 대통령이 인도 싱가포르 순방에서 돌아온 뒤 검토를 거쳐 이달 말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순방 직전에야 여러 조직 개편 시나리오에 대해 대통령 보고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검토가 이뤄지면 7월 말은 돼야 조직 개편 윤곽이 나오고 공석인 일부 비서관 임명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지난해 탄핵 국면 촛불집회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계엄 선포 등 무력 진압 계획이 담긴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수사를 지시한 가운데 해당 문건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선 문건에 시위대 진압을 위해 전차와 장갑차를 서울 시내에 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전사까지 동원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해당 문건 작성 경위나 내용이 ‘과장됐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한민구 전 국방장관 지시로, 靑에도 보고한 문건 정확히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란 해당 문건의 작성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를 20여 일 앞둔 지난해 2월 중순 시작됐다.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은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에게 국가 위기 상황 대응 차원에서 군이 할 수 있는 비상조치에 대해 검토해 볼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 선고를 일주일 앞둔 3월 3일 조 사령관은 한 장관에게 위수령 발령 및 계엄 선포 조건 등이 담긴 문건을 보고했다. 해당 문건이 수면으로 떠오른 건 1년여 만인 올해 3월이었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3월 16일 이 문건을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고 뒤이어 청와대에도 보고했다. 청와대는 국방부에 조사를 지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시 이후에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송 장관은 보고를 받고도 약 4개월간 군 검찰에 정식 수사 지시도, 문건 공개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국방부는 문건을 보고받은 후 관련 전문가들을 통해 문건의 위법성을 검토했다. 그 결과 군사보안 및 방첩을 주 임무로 하는 기무사의 직무범위를 넘어 문건이 작성된 건 맞지만 수사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문건을 공개하지 않은 건 6·13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장갑차로 시위대 진압’ 담겼나? 청와대 관계자는 수사 지시 배경에 대해 “문건에 단순한 안정 대책이라고 하기엔 탱크 전개 등 아주 구체적인 작전 계획이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문건 상당 부분엔 군이 할 수 있는 ‘비상조치 유형’인 위수령 발령과 계엄 선포와 관련한 법적 조건, 절차 등이 계엄법 및 위수령(대통령령)에 근거해 그대로 나열돼 있다. 시행 요건 역시 ‘과격 시위대의 경찰서 난입 및 무기 탈취’ 상황 등으로 한정돼 있다. 오해의 소지는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위수령 발령 시 국민 권리 침해 논란이 일 것에 대비해 “위헌 소지 있으나 군의 책임은 별무”라고 했다. 국회가 위수령 무효 법안 제정에 나설 것에 대비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적시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실행 의지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르는 대목이다. 가장 문제가 된 건 ‘계엄임무수행군 편성(안)’으로 서울 지역을 기준으로 30사단 1개 여단, 경기 지역 2·5기갑여단 등 투입 병력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부분이다. 위수령 역시 발령 상황을 가정해 ‘서울 인접 증원 가능 부대는 기계화 5개 사단(8·20·26·30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으로 동원 병력을 구체화했다. 기무사는 “통상적인 예비 사단 전력을 나열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군인권센터 발표처럼 ‘군이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800명, 특전사 1400명을 투입하려 했다’는 내용은 문건에 없다.○ 세월호 유족 사찰 진실은?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을 사찰했다는 의혹도 있다. 기무사가 2014년 펴낸 ‘세월호 180일간의 기록’ 문건 중 유가족을 ‘강경-중도’ 등 성향별로 분류하고 ‘정부에 대한 불만 지대’ 등 특이사항을 기록한 ‘동향 보고’ 부분이 문제가 됐다. 기무사는 “유가족을 사찰해 얻은 정보가 아니며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구성원들이 실종자 수색 지속 여부를 놓고 빚어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 공유하던 정보를 모아 기록한 것”이라고 해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안, 군사 첩보 수집 등으로 국한된 부대임무를 넘어선 활동으로 민간인 사찰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효주 hjson@donga.com·문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에 대한 수사를 지시했다. 청와대는 당시 기무사의 계엄 선포 검토가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어 전(前) 정권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긴급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기무사 문건과 관련해 독립수사단을 구성하여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인도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은 순방 중 이를 결정했다.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에는 지난해 3월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앞두고 계엄령 선포 등 기무사가 작성한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이 담겨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계엄령 선포 시 탱크 전개 방안 등 사실상 작전계획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는 만큼 내용의 심각성이 큰 문건”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계엄령 검토 지시가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어 구속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박 전 대통령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무사는 해당 문건이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조현천 기무사령관(육군 중장)의 지시로 작성됐다고 군 조사에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장관 측은 “촛불집회 당시 위수령 폐지 여부를 검토해 입장을 달라는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측의 거듭된 요청으로 작성된 내부 문건 중 하나로 계엄 실행 계획이 결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손효주 기자}

《 “기업 활동에서 겪게 되는 어려운 점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겠다.”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뉴델리의 총리 영빈관에서 열린 ‘한-인도 CEO(최고경영자) 라운드 테이블’에서 다시 한 번 기업 애로 해소를 강조했다. 청와대 참모들에게 “기업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라고 당부했던 문 대통령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 CEO 앞에서 이 같은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 문 대통령이 전날 취임 이후 처음으로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전자 행사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과 개별 면담을 한 데 이어 이틀 연속 ‘기업 기 살리기’ 행보에 나서면서 집권 2기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변화가 본격화했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文,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되게 하겠다” 한-인도 정상회담 직후 열린 이날 CEO 라운드 테이블에는 문 대통령과 함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참석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인도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계획을 밝히며 모디 총리에게 “수출 세제 지원과 무역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은 수소전기차 등 미래자동차 산업 협력을 위한 부품관세 인하를 건의하는 등 양국 재계 인사들의 요구 사항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현지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들이 모디 총리에게 직접 애로사항을 건의하고 지원을 당부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해결사’로 나선 셈이다. 문 대통령은 양국 재계 인사들의 발언에 하나하나 답변하며 “한국과 인도가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협조하겠다. 한국 정부는 기업의 애로사항에 대해 항상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모디 총리도 국내 대기업의 요청에 직접 답변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해외 순방에서 열린 기업인 행사에 외국 정상이 함께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구 13억 명의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내수 시장을 가진 인도 공략에 공들이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에 확실한 힘을 실어준 것이다. 두 정상은 양국 주요 기업인이 참석한 이 행사를 위해 정상 오찬 시간도 30분 줄일 만큼 큰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이 이번 인도 방문에서 경제 분야에 집중한 것은 미중 무역갈등 속에 인도의 경제적 중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부흥’을 핵심 경제정책으로 내건 모디 총리 역시 문 대통령의 순방을 통해 국내 대기업과 획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 이재용-마힌드라 연쇄 면담으로 진보·보수 고려 이런 문 대통령의 기업 행보 무대가 단순히 인도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경제정책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지만 이번 행보가 집권 2기를 맞아 기업과의 소통 강화를 통한 규제혁신과 혁신성장 강조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는 문 대통령의 핵심 경제 공약인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주도성장’이 대기업의 지원 사격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려 있다. 문 대통령이 전날 이 부회장을 별도로 만나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달라”고 당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서도 “한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노사 화합을 통해 성공하는 모델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틀 연속 ‘일자리와 투자’를 강조한 것이다. 마힌드라그룹은 쌍용자동차의 최대 주주다. 이에 마힌드라 회장은 “지금까지 쌍용차에 1조4000억 원을 투자했는데 앞으로 3, 4년 내에 1조3000억 원 정도를 다시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언급하며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를 고려하는 행보를 보였다. 먼저 마힌드라 회장에게 다가간 문 대통령은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는 노사 간 합의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쌍용차 문제를 직접 언급해 잇따른 친기업 행보로 정부 경제정책이 ‘우클릭’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지층의 불만을 달랜 것이다. 또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면담이 ‘삼성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진보 진영 일각의 지적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일은 일이고, 재판은 재판”이라며 “이번 순방이 특정 기업 관련 재판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뉴델리=한상준 alwaysj@donga.com / 문병기 기자}
청와대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검토 문건 수사를 독립수사단이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장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 별도의 군 수사조직을 꾸려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군내 별도 수사 조직이 구성되는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독립수사단은 비(非)육군, 비기무사 출신의 군 검사들로 구성되고, 독립적이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독립수사단 구성을 지시한 이유는 이번 사건이 전현직 국방부 관계자들이 광범위하게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고 현 기무사령관이 계엄령 검토 문건을 보고한 이후에도 수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민간인 사찰과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등에 기무사의 육군 전·현직 장교들이 다수 개입됐을 수 있고, 육군이 군 수사당국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청와대가 ‘가이드라인’을 내렸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독립수사단은 모두 해·공군 소속 검사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방부 검찰단과 해·공군본부 소속 검사는 40여 명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명하는 독립수사단장도 해군 또는 공군 법무실장(대령)이 기용될 것이 확실시된다. 법무 20기 출신의 김영수 해군본부 법무실장과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수사단장은 수사요원 선발과 수사 방향 등을 독자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인도에 오니 20년 전 트레킹을 다녀왔던 라다크가 생각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한국 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을 과거 인도에서 했던 트레킹 이야기로 시작했다. 인도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인도인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것. 문 대통령은 딸 다혜 씨(35)가 요가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깜짝 공개했다. “한국 국민들은 요가로 건강을 지키고, 카레를 즐겨 먹는다”고 말한 뒤 “제 딸도 (지금) 한국에서 요가 강사를 한다”고 밝힌 것. 포럼에 참석한 인도 기업 관계자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웃으며 박수를 치면서 호응했다. 문 대통령의 자녀는 1남 1녀로 아들 준용 씨(36)와 딸 다혜 씨가 있다. 지난해 대선 기간에 문 대통령 측은 다혜 씨에 대해 “평범한 가정주부”라고 소개했었다. 다혜 씨에 대한 내용은 문 대통령이 직접 연설문에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혜 씨가 요가 강사로 일하는지는 참모들도 몰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인도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 기념관을 방문하며 인도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존중을 표현했다. 문 대통령은 모디 총리에게 “한국인들도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 인도 독립운동과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간디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간디 순교 기념비로 이동하며 규정에 따라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입장한 뒤 기념비에 헌화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8일 악샤르담 사원 방문에서도 신발을 벗고 힌두교 전통 방식에 따라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하기도 했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인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현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한국에서도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 이 부회장을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직접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달라고 당부한 것. 문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와 따로 만나 면담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며 삼성 관련 행사에 참석한 것도, 이 부회장과 만난 것도 모두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뉴델리 인근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삼성전자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 부회장과 홍현칠 삼성전자 서남아 담당 부사장과 별도로 5분간 면담을 가졌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삼성전자 노이다 신공장 준공을 축하한다”며 “인도가 고속경제성장을 계속하는 데 삼성이 큰 역할을 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께서 멀리까지 찾아주셔서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됐다”며 “감사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예정에 없던 이날 면담은 문 대통령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 부회장을 직접 대기실로 불러 성사됐다. 집권 2기를 맞아 기업과의 소통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국내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를 당부하면서 대기업 정책 기조에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이 부회장은 공장 입구에서 문 대통령을 영접하며 여러 차례 고개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문 대통령은 웃으며 이 부회장과 악수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참석한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 축사에서 “노이다 공장이 인도와 한국 간 상생협력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도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모디 총리, 이 부회장과 함께 신공장을 둘러본 문 대통령은 신규 라인에서 생산된 1, 2호 스마트폰 뒷면에 친필 사인을 한 뒤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삼성전자와 협력사 임직원들이 인도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격려했다. 삼성전자 노이다 공장은 인도 최대의 스마트폰 공장으로 이 부회장이 2016년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선임된 직후 모디 총리를 직접 만나 투자 확대를 결정한 곳이다. 문 대통령의 노이다 신공장 방문은 신남방정책의 핵심 시장인 인도를 공략하기 위해 정부와 삼성전자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명분과 실리를 확보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한국-인도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인도와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 강국(미-일-중-러)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안승권 LG전자 사장 등과 라셰시 샤 인도상의연합회 회장,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그룹 회장, 라지브 카울 니코코퍼레이션 회장 등 양국 경제계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뉴델리=한상준 alwaysj@donga.com / 문병기 기자}

청와대는 8일 북-미 고위급 회담 결과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로 가기 위한 여정의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핵화에 별다른 진전 없이 비난을 주고받으며 마무리된 이번 회담에 대한 우려에도 북-미 정상 간 신뢰로 북-미 협상이 다시 원래 궤도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말이 있다”며 “앞으로 비핵화 협상과 이행과정에서 이러저러한 곡절이 있겠지만 북-미 두 당사자가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인 만큼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고위급 회담이 끝나자마자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 들고 나왔다”고 비난하는 등 북-미가 비핵화에 대한 큰 간극을 노출한 데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서로 깊은 신뢰를 보여 왔다”며 “기초가 튼튼하면 건물이 높이 올라가는 법”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비핵화 해법을 놓고 다시 한번 충돌한 북-미가 협상 틀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 데 안도하면서도 자칫 대화 동력이 훼손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는 등 ‘아웃토반’을 달리던 북-미 관계가 일반도로로 내려와 정속 주행을 하는 것”이라면서도 “속도를 높이려는 미국과 동시적 보상을 요구하는 북한 간 기 싸움이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미 종전선언에 대한 북-미 간 이견이 표면화된 데 대한 우려도 나왔다. 종전선언을 계기로 속도를 내려던 남북 경제협력 등도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5박 6일간의 인도 싱가포르 국빈방문을 위해 이날 오후 출국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10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12일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과 신남방정책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또 9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삼성전자의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다.문병기 weappon@donga.com / 뉴델리=한상준 기자}

“우리의 요구가 강도 같은 것이라면 전 세계가 강도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8일 북한이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 비핵화 요구만 들고 왔다”고 비난한 데 대해 이같이 맞받아쳤다. 1박 2일의 방북 기간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9분간의 발언 중 대북 제재를 12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제 더는 북한 핵 위협은 없다”고 장담한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반응이다.○ 김정은 못 만나고 강도로 몰린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하루 앞둔 5일(현지 시간) “이번 방북은 북-미 간 성과를 검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조야에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는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성과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1박 2일간 9시간에 걸쳐 이뤄진 고위급 회담은 사실상 별다른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 비핵화 시간표에 대한 합의는 물론이고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내놨던 ‘선물’인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장 폐기에 대한 확실한 시기도 못 박지 못했다. 특히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 7일 평양을 떠나며 “비핵화 시간표에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자마자 몇 시간 뒤 폼페이오를 ‘강도’라고 비난하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방침을 밝히자 앞선 비난 성명에 대한 사실상의 사과 입장을 담은 ‘정중한’ 담화문을 발표했던 북한 외무성이 다시 태도를 바꿔 미국에 날을 세운 것. 북한은 외무성 담화문에서 북-미 고위급 회담의 의제로 △정전 65주년(7월 27일) 종전선언 발표 △ICBM 엔진 시험장 폐기 △미군 유해 발굴 실무협상 등을 제기했지만 미국은 비핵화 대상 핵시설의 신고와 검증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이 회담에서 끝까지 고집한 문제들은 이전 행정부들이 고집하다가 대화 과정을 다 말아먹고 불신과 전쟁 위험만을 증폭시킨 암적 존재”라고 했다. 특히 북한은 “합동군사연습을 한두 개 일시 취소한 것을 큰 양보처럼 광고했지만 극히 가역적인 조치로 우리가 취한 핵시험장의 불가역적인 폭파 폐기 조치에 비하면 대비조차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가 핵 실험장 폐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만큼 ICBM 엔진 시험장 폐기 등 추가 조치를 위해선 종전선언을 비롯한 가시적인 체제 보장 조치를 내놓으라는 얘기다.○ 대화 판은 깨지지 않은 만큼 협상은 이어질 듯 북한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완료 전 대북 제재 완화 불가 방침을 거듭 강조하며 압박에 나섰다. 폼페이오 장관은 8일 회견에서 북한이 CVID 요구를 ‘강도’에 빗댄 데 대해 “비핵화가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 제재 이행이 계속될 것이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있겠지만 경제 제재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종전선언을 요구한 북한에 ‘비핵화가 먼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앞으로 수일, 수주 안으로 미국이 지속적으로 제재 이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보게 될 것”이라며 대북 제재와 관련해 추가 조치를 내놓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향후 북-미 관계는 지난달 싱가포르 회담 전후로 절정에 달했던 해빙 무드와는 전혀 다른 냉기류를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내 여론이 빠르게 악화되면서 트럼프 행정부 내 ‘대화파’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수도 있다. 다만 북-미가 비핵화 신고, 검증 등을 논의할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하며 대화의 판은 깨지 않은 만큼 비핵화 협상을 위한 실무접촉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킹그룹을 이끌 대표로는 ‘판문점 채널 구원투수’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등판’을 요청한 점도 주목을 끌고 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면담을 거절한 대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제안을 담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미 정상이 아직 성사되지 않은 핫라인 통화나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