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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 탄환’ 샤니 데이비스(32·미국)는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평가받는 스타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남자 1000m에서 흑인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고,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는 사상 최초로 이 종목 2연패를 일궜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주관하는 월드컵 대회 개인 종목에서 딴 금메달만 무려 53개다. 그런 데이비스가 경기장에서 만날 때마다 꼭 말을 붙이는 선수가 있다. 밴쿠버 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25·대한항공)이다. 데이비스는 모태범과 같이 빙상에 설 때면 “헤이, 태범.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도 500m는 네게 줄 테니까 1000m는 나한테 양보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모태범은 이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고 한다. “No(싫어).”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데이비스가 10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바로 옆 은메달 시상대에 올라선 선수는 다름 아닌 모태범이었다. ○ 1000m에 다걸기 기록상으로 보면 모태범이 올림픽에서 남자 500m를 2연패할 가능성이 크다. 2013∼2014시즌 남자 500m 월드컵 랭킹에서 모태범은 527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와 3위는 미헐 뮐더르(네덜란드·458점)와 나가시마 게이이치로(일본·414점)다. 올림픽 남자 500m에서는 두 차례 레이스를 합산해 순위를 정하는데 꾸준함에 있어 모태범을 따라갈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남자 1000m는 여전히 ‘데이비스 천하’다. 데이비스는 월드컵 1∼3차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370점으로 압도적인 랭킹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모태범의 월드컵 랭킹은 4위(173점)다. 하지만 모태범은 입만 열면 1000m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15일 만난 그에게 “왜 그렇게 1000m에서 우승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 것 같다. 지난 올림픽에서 500m 금메달을 따봤으니 이번에는 1000m에서 일을 내 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무적인 것은 지난해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에서 모태범이 처음으로 데이비스를 꺾었다는 것이다. 모태범은 그 대회에서 1분09초50으로 골인해 데이비스를 0.09초 차로 앞섰다.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는 “개인적으로는 500m보다 1000m에서 모태범의 금메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0.2초에 메달 색깔이 바뀐다 비록 한 번이었지만 모태범이 데이비스를 꺾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1000m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모태범은 1000m에 모든 초점을 맞춰 훈련을 해 왔다. 좀더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체중을 작년 여름에 비해 4kg이나 줄였다. 그 대신 체력 운동의 강도는 높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온몸이 근육질이다. 관건은 레이스 중반까지 얼마나 데이비스를 압도할 수 있느냐다. 500m에 강점을 가진 모태범은 초반 600m까지는 데이비스보다 빠른 레이스를 한다. 경마로 따지면 추입마 스타일의 데이비스는 후반 레이스가 특기다. 대개 600m까지 모태범은 데이비스보다 1초가량 빠르다. 김 전무는 “만약 태범이가 600m 지점을 통과할 때 데이비스와의 격차를 1.2초로 벌릴 수 있다면 금메달은 모태범의 차지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모태범의 후반 지구력이 몰라보게 좋아졌기에 제아무리 후반 레이스가 좋은 데이비스라 할지라도 남은 400m에서 1.2초 차를 뒤집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모태범은 후반 지구력 강화를 위해 장거리 간판이자 절친한 친구인 이승훈(26·대한항공)과 꾸준히 장거리 훈련도 병행하고 있다. 이날 모태범은 “올림픽에서 정말 잘 탄다면 대회 후 자동차 광고를 찍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1000m 금메달이 자동차 광고 모델의 열쇠가 될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왕멍은 감독도 아무 소리 못하는 선수예요.” 최광복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말처럼 중국 여자 쇼트트랙의 간판 왕멍(29)은 팀 내에서 제왕 같은 존재다. 빼어난 실력을 갖고 있지만 종종 물의를 일으켜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뉴스 메이커’다. 왕멍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500m와 1000m,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에이스 왕멍의 맹활약 속에 중국 여자 쇼트트랙은 여자 경기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모두 가져갔다. 당시 한국은 3000m 계주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 실격 판정을 받는 불운을 겪었다. 올림픽 다음 해인 2011년 8월 술에 취한 채 감독을 때리는 사고를 쳐 대표팀에서 퇴출됐던 왕멍은 2012년 말 대표팀에 복귀했다. 2013년 3월 헝가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왕멍은 주 종목인 500m에서 우승하는 등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대회 마지막 날 비신사적인 플레이로 한국 팬들을 경악시켰다. 개인 종합 1위를 달리던 왕멍은 마지막 경기인 3000m 슈퍼 파이널을 앞두고 개인종합 2위를 달리던 박승희(22·화성시청)에게 역전당할 위기를 맞았다. 마지막 경기에서 박승희가 우승하고 왕멍이 3위 안에 입상하지 못하면 박승희가 종합우승을 하게 되는 것. 장거리에 자신이 없던 왕멍은 마지막 경기에서 잘 달리고 있던 박승희를 고의로 밀어 넘어뜨려 실격을 당했고, 박승희는 우승은커녕 3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결국 왕멍은 자신의 계획대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박승희를 비롯한 한국 팀에는 두고두고 큰 상처가 됐다. 그런 왕멍이 다음 달 개막하는 소치 겨울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신화왕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왕멍은 16일 중국 상하이에서 훈련을 하다가 오른 발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중국 대표팀은 자세한 부상 원인과 상태에 대해서는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 개막이 한 달도 남지 않아 사실상 올림픽 출전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왕멍은 2013∼2014시즌에도 4차례의 월드컵 대회 500m에서 3번이나 금메달을 따내며 강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지난해 11월 4차 월드컵에서는 중국 대표팀을 이끌고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대표팀의 경계 대상 1순위에 꼽혀 온 왕멍이 부상을 당하면서 심석희(17·세화여고), 박승희 등 한국 여자 대표팀의 메달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진짜 진짜 마지막일 거 같아요.” 다음 달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피겨 여왕’ 김연아(24)는 15분 내외의 기자회견 동안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7, 8차례나 사용했다. 마지막이라는 말 앞에 ‘진짜’라는 말을 두 번이나 쓰기도 했다. 선수 생활에 대한 고단함과 함께 선수로서의 마지막 올림픽을 준비하는 치열한 마음가짐이 여실히 드러났다. 소치 올림픽에 출전하는 빙상 국가대표 선수단의 미디어데이가 열린 15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 한국의 메달밭을 책임질 빙상 선수들은 제각각 올림픽에 임하는 각오와 마음가짐을 밝혔다. 이들의 기자회견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 김연아의 ‘마지막’ 밴쿠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역대 최고 점수(228.56점)로 우승한 김연아는 소치 올림픽에 대한 심경을 ‘마무리’라는 한마디로 정의했다. 그는 “많은 분이 올림픽 2연패 말씀을 많이 하시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데 중점을 두지 않고 있다. 어떤 결과를 얻든지 만족스럽게 받아들이고 후회 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동시에 자신감도 드러냈다. 그는 “연습에서는 실수 없이 프로그램을 마칠 때가 많다.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큼 준비가 되어 있다. 최근 두 차례의 대회 출전(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종합선수권) 때보다는 더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인 만큼 마음 편히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삼총사의 ‘밴쿠버’ 4년 전 올림픽에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건 이상화(25·서울시청), 모태범(25), 이승훈(26·이상 대한항공) 등 ‘빙속 3총사’의 화두는 ‘어게인(AGAIN), 밴쿠버’였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의 최강자인 이상화는 “작년 3월 세계선수권이 열린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를 찾았다가 밴쿠버의 리치먼드 오벌과 분위기가 아주 비슷하다고 느꼈다. 좋은 느낌을 받은 만큼 더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거리의 간판 이승훈도 “밴쿠버처럼 소치의 빙질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빨리 미끄러지는 능력이 부족한 내게는 빙질이 좋지 않은 곳에서 경기를 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했다. 500m와 1000m 동시 석권에 도전하는 모태범은 “우리 셋 모두 밴쿠버 때와 비슷한 걸 느꼈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재밌고 즐겁게 경기를 하고 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여자 쇼트트랙의 ‘타도 중국’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가 끝난 뒤 한국 여자 선수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기쁨도 잠시. 중국 선수를 밀쳤다는 실격 판정이 내려지면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이 대회에서 ‘노 골드’에 그쳤다. 반면 중국은 3관왕에 오른 왕멍을 앞세워 쇼트트랙 여자 종목에 걸린 금메달 4개를 모두 가져갔다. 당시 한국 팀의 멤버였던 박승희(22·화성시청)는 “중국을 이기고 싶은 건 당연하다. 개인전도 그렇지만 계주에서는 꼭 중국을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2013∼2014시즌 월드컵에서 10개의 금메달을 휩쓴 심석희(17·세화여고)도 “중국은 어떤 상황을 만들지 모르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더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한체육회는 이날 오후 태릉선수촌 오륜관에서 2014년 국가대표선수 훈련개시식 및 체육인 신년 인사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에리사 국회의원, 김정행 대한체육회장과 임직원, 김재열 2014 소치 겨울올림픽 한국선수단장, 김진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 및 선수들이 함께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벤자민 주키치는 2년 전만 해도 LG의 에이스였다. 2011년과 2012년 2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둔 그는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LG 팬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한국 생활 3년째였던 지난해 주키치는 이전과 달랐다. 완전치 않은 몸 상태로 스프링캠프에 나타났고, 시즌에 들어가서도 좋았던 시절의 구위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전반기 막판 2군으로 내려갔다. 후반기에 한 차례 1군에 올라왔지만 난타당한 뒤 2군으로 떨어졌다. 시즌 막판 순위 경쟁이 한창일 때 김기태 LG 감독(사진)에게 “왜 주키치를 올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팀을 위한 마음가짐이 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감독의 답이었다. 주키치는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왼손 투수가 절실했던 LG이기에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때 김 감독은 “주키치를 엔트리에 포함시키려면 시즌 내내 고생했던 한 선수를 빼야 한다.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에게 그런 아픔을 주기 싫다”고 했다. LG는 지난해 주키치가 없는 상황에서도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며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일궈냈다. 에이스의 빈자리를 팀워크가 채웠다. 그것은 2011년 취임 후 줄곧 이어온 김 감독의 선수단 운영 철학이기도 하다. ○ 중요한 건 절실함 리즈와 일치감치 재계약을 확정한 LG는 최근 2명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 3루와 1루 수비가 가능한 스위치 히터 조시 벨(28)과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 코리 리오단(28)이다. 당초 LG가 원했던 타자는 오른손 거포였다. 왼손 타자가 많은 팀 특성상 오른손 홈런 타자가 들어오면 타선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벨은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4홈런에 그쳤고, 통산 타율도 0.194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히 팬들 사이에서 “LG가 올 시즌 성적을 포기한 게 아닌가”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가족과 모처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 감독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김 감독은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존 선수들과의 형평성과 팀 밸런스를 고려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00개 이상 홈런을 친 타자도 영입 리스트에 있었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돈을 주고 그런 선수를 데려와서 우리 선수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액면가(메이저리그에서의 성적)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름값은 떨어질지 몰라도 야구에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을 가진 선수가 필요하다. 28, 29세 정도의 선수는 선수로서의 전환점을 생각해야 할 나이다.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내가 욕을 좀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 리오단 역시 메이저리그 등판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마이너리그 투수다.○ 두려움 떨쳐낸 선수들 김 감독은 ‘이기면 선수 덕분, 지면 감독 책임’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우리 선수들은 ‘더 잘해야 한다’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의 선전으로 그런 두려움을 많이 떨쳐낸 것 같다. 요즘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감이 넘쳐난다. 감독으로서는 그런 부분에서 행복함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해 선전에 힘입어 LG의 올 시즌 우승을 바라는 팬들이 많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우승보다는 영원히 강한 팀을 만드는 게 내 목표다. 나는 떠나도 LG란 팀은 영원하지 않나. 그런 강한 팀의 발판이 되고 싶다. 물론 그 와중에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운이 맞아떨어진다면 우승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야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피겨 여왕’ 김연아(24·사진)는 5일 끝난 종합선수권에서 227.86점을 받아 우승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228.56점)에 육박하는 점수였다. 고득점으로 자신감을 얻은 김연아는 산뜻한 기분으로 다음 달 열리는 소치 겨울올림픽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최근 다른 나라에서도 소치 올림픽에 출전할 대표 선수를 뽑기 위한 대회가 속속 열렸다. 이에 따라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와 대결할 경쟁자들의 면면도 드러났다. 그들 중 몇몇은 210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김연아의 적수가 되기에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점수 인플레’ 속 고득점 속출 12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우승은 그레이시 골드(18)가 차지했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139.57점을 받은 골드는 쇼트프로그램 점수(72.12점)를 합쳐 211.69점을 받았다. 2006년 새로운 채점제가 도입된 뒤 이 대회 여자 싱글에서 나온 최고 점수다. 하루 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캐나다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에서는 케이틀린 오스먼드(19)가 207.24점으로 우승했다. 지난해 말에는 210점 이상을 받은 선수가 3명이나 나왔다. 일본의 베테랑 스즈키 아키코(29)는 전일본선수권에서 215.18점을 받아 아사다 마오(199.50)를 제치고 우승했다. 러시아 선수권에서는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와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가 각각 212.77점과 210.81점을 받았다. 국가별 대회의 점수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자국 심판들이 선수들의 자신감을 북돋워주기 위해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피겨 전문가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열린 대회 성적으로 선수들을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각 나라 심판들의 기싸움이나 신경전으로도 볼 수 있다. 다른 나라 상대 선수에게 부담을 주려는 의도로 자국 선수에게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넘을 수 없는 벽’ 국내외 전문가들은 “김연아는 수준이 다른 스케이팅을 한다”고 평가한다. AP통신도 최근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를 위협할 만한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최근 열린 국가별 대회에서 골드와 스즈키 등은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골드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큰 실수 없이 연거푸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성공시켰다. 스즈키 역시 프리스케이팅에서 무결점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점프의 질과 표현력, 프로그램 완성도에서는 김연아가 월등히 앞선다. 한 ISU 국제심판은 “같은 점프를 성공시켰다고 해도 거리와 높이, 음악과의 조화 등에 따라 가산점이 달라진다. 다른 선수들의 점프가 ‘성공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 정도라면 김연아의 점프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연아의 몇몇 점프는 국제심판들이 받는 교육 때 만점을 줄 수 있는 예로 소개된다고 한다. 또 다른 심판도 “김연아는 스케이팅 기술, 동작의 연결, 연기, 안무, 해석 등 5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예술점수(PCS)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다른 선수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전체적으로 경쟁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올림픽 2연패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피겨 여왕' 김연아(24)는 5일 끝난 종합선수권에서 227.86점을 받아 우승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228.56점)에 육박하는 점수였다. 고득점으로 자신감을 얻은 김연아는 산뜻한 기분으로 다음 달 열리는 소치 겨울올림픽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최근 다른 나라에서도 소치 올림픽에 출전할 대표 선수를 뽑기 위한 대회가 속속 열렸다. 이에 따라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와 대결할 경쟁자들의 면면도 드러났다. 그들 중 몇몇은 210점이 넘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김연아의 적수가 되기에는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 '점수 인플레' 속 고득점 속출 12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우승은 그레이시 골드(18)가 차지했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139.57점을 받은 골드는 쇼트프로그램 점수(72.12점)를 합쳐 211.69점을 받았다. 2006년 새로운 채점제가 도입된 뒤 이 대회 여자 싱글에서 나온 최고 점수다. 하루 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캐나다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에서는 케이틀린 오스먼드(19)가 207.24점으로 우승했다. 지난해 말에는 210점 이상을 받은 선수가 3명이나 나왔다. 일본의 베테랑 스즈키 아키코(29)는 전일본선수권에서 215.18점을 받아 아사다 마오(199.50)를 제치고 우승했다. 러시아 선수권에서는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와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가 각각 212.77점과 210.81점을 받았다. 국가별 대회의 점수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자국 심판들이 선수들의 자신감을 북돋워주기 위해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피겨 전문가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열린 대회 성적으로 선수들을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어떻게 보면 각 나라 심판들의 기 싸움이나 신경전으로도 볼 수 있다. 다른 나라 상대 선수에게 부담을 주려는 의도로 자국 선수에게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김연아는 '넘을 수 없는 벽' 국내외 전문가들은 "김연아는 수준이 다른 스케이팅을 한다"고 평가한다. AP통신도 최근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를 위협할 만한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최근 열린 국가별 대회에서 골드와 아키코 등은 생애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골드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큰 실수 없이 연거푸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성공시켰다. 아키코 역시 프리스케이팅에서 무결점 연기를 펼쳤다. 하지만 점프의 질과 표현력, 프로그램 완성도에서는 김연아가 월등히 앞선다. 한 ISU 국제심판은 "같은 점프를 성공시켰다고 해도 거리와 높이, 음악과의 조화 등에 따라 가산점이 달라진다. 다른 선수들의 점프가 '성공했구나'하는 느낌을 받는 정도라면 김연아의 점프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연아의 몇몇 점프는 국제심판들이 받는 교육 때 만점을 줄 수 있는 예로 소개된다고 한다. 또 다른 심판도 "김연아는 스케이팅 기술, 동작의 연결, 연기, 안무, 해석 등 5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예술점수(PCS)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다른 선수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전체적으로 경쟁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것은 맞지만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올림픽 2연패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원윤종(29)과 서영우(23·이상 경기연맹)로 구성된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아메리카컵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파일럿 원윤종과 브레이크맨 서영우는 10일(한국 시간) 미국 뉴욕 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2013∼2014 노스아메리카컵 8차 대회 남자 2인승에서 1, 2차 레이스 합계 1분51초71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선수 모두 봅슬레이를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아메리카컵 종합 우승의 쾌거를 이뤘다. 아메리카컵은 세계선수권과 월드컵보다 수준이 낮은 대회로 봅슬레이 강국들은 국가대표 2진급을 주로 출전시킨다. 아메리카컵 대회가 시작된 뒤 미국 팀이 다른 국가에 종합우승을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일럿 김동현(27)과 브레이크맨 전정린(24·이상 강원도청) 조도 이날 레이스에서 1분52초53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차지하며 종합 2위에 올랐다. 원윤종-서영우가 간판으로 활약한 가운데 김동현-전정린이 가세하면서 한국 봅슬레이는 소치 겨울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2인승에서 2장의 출전권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파일럿 김선옥과 브레이크맨 신미화로 이뤄진 여자 대표팀도 2인승에서 1분58초62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자신이 지도하던 여제자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던 지도자가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10일 “의혹을 받는 쇼트트랙 대표팀 A 코치를 임시 직무 정지시키고 태릉선수촌에서 퇴촌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빙상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국가대표 코치로 일해온 A 씨는 2012년 자신이 지도하던 소속팀의 여제자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선수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지난해 A 코치를 선임할 당시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먼저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빙상연맹은 상벌위원회의 진상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처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한국 남자 쇼트트랙이 지금처럼 홀대 받은 적이 또 있었을까. 다음 달 7일 개막하는 소치 겨울올림픽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요즘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들러리 신세다. 4년 전만 해도 남자 쇼트트랙은 한국 겨울스포츠의 최고 효자였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까지 한국 대표팀이 딴 23개의 금메달 가운데 10개가 남자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하지만 쇼트트랙은 최근 국제대회에서의 잇단 부진으로 언론과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NBC스포츠는 최근 소치 올림픽 남자 쇼트트랙에서 눈여겨볼 선수로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와 샤를 아믈랭(캐나다), J R 셀스키(미국) 등 3명을 꼽았다. 이 3명은 지난해 11월 러시아에서 열린 월드컵 4차 대회에서 각각 500m, 1000m, 1500m 금메달을 나눠 가졌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8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빙상장. 신다운(21·서울시청), 이한빈(26·성남시청), 박세영(21·단국대), 노진규(22·한국체대), 김윤재(25·성남시청)로 구성된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빙판을 돌고 있었다. 속도를 높이라는 코칭스태프의 목소리가 빙상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지난해 11월 중순 월드컵 4차 대회를 마친 대표팀은 하루 휴식을 가진 뒤 지옥훈련에 돌입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의 훈련은 오전 5시 시작된다. 정규 훈련을 마치는 오후 6시 반부터는 선수 각자가 나머지 훈련을 한다. 태릉선수촌에 입소한 종목 선수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하루를 시작해 가장 늦게 일과를 끝낸다. 목표는 명예회복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남자 대표팀의 맏형 이한빈은 “월드컵에서의 부진이 큰 자극이 됐다. 모든 선수들이 절실하게 스케이트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페이스도 급격히 올라가는 중이다. 대표팀이 최고의 스피드를 보였던 지난해 3월 수준에 이미 근접했다. 월드컵 1∼4차 대회에서 노 메달에 그치며 마음고생을 했던 신다운도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 윤재명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은 “누구 할 거 없이 짧은 시간 안에 스피드와 지구력이 크게 좋아졌다. 모든 선수들이 입 밖으로 드러내진 않아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 성적표는 우리 손에 달렸다 소치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의 1차 목표는 금메달 4개 이상으로 3대회 연속 ‘톱10’에 드는 것이다. 피겨스케이팅(김연아), 스피드스케이팅(이상화), 그리고 여자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2개를 기대하고 있다. 남자 쇼트트랙은 금메달 후보에서 빠져 있다. 하지만 부담감에서 한발 비켜선 남자 쇼트트랙은 한국 선수단의 성적표를 좌우할 다크호스로 꼽힌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다면 한국은 밴쿠버 올림픽과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기록했던 역대 최다 금메달 기록(6개)을 갈아 치울 수 있다. 첫 시험대는 2월 10일 열리는 쇼트트랙 남자 1500m다. 쇼트트랙 경기의 첫 테이프를 끊는 이 경기에서 깜짝 금메달이 나온다면 한국 대표팀의 메달 사냥은 한결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윤 감독은 “몸싸움이 치열한 쇼트트랙은 의외의 변수가 많다. 남자 1500m에서 첫 단추만 잘 끼운다면 이후 예상치 못했던 메달이 쏟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쇼트트랙 남자 1500m에는 3명의 선수가 출전한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눈과 얼음의 축제’ 소치 겨울올림픽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올림픽의 모토는 ‘뜨겁게, 차갑게, 그대의 것(Hot, Cool, Yours)’이다. 뜨겁게 4년을 준비한 한국 선수단은 냉정하고 차가운 마음으로 그대들의 올림픽을 즐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역대 겨울올림픽 최다인 65명가량의 태극전사는 2월 7일 개막하는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이상을 획득해 3대회 연속 세계 톱10 안에 드는 것을 1차 목표로 잡고 있다. 결과를 떠나 올림픽을 위해 최선을 다해온 그들은 이미 챔피언이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압권의 표현력으로 관록의 V, 압권의 227.86점, 소치 올림픽을 향해 만전(萬全)….’ 일본 신문들의 제목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24)를 바라보는 일본 언론의 복잡하고 심란한 심경을 잘 보여 주고 있다. 6일 일본 언론은 전날 열린 피겨 종합선수권에서 227.86점이라는 고득점으로 우승한 김연아의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기사들은 모두 김연아의 뛰어난 실력과 높은 점수를 인정하면서도 자국 선수 아사다 마오(24)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스포츠닛폰은 “김연아가 소치 올림픽에서 비원의 금메달을 노리는 아사다의 앞길을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포츠호치도 “마지막까지 아사다의 길을 막는 벽이 됐다”고 전했다. ○ 일본 언론도 인정한 ‘여왕’ 김연아 주니어 시절부터 라이벌이던 김연아와 아사다는 다음 달 소치 올림픽에서 10여 년간 이어져 온 긴 대결에 마침표를 찍는다. 두 선수 모두 이번 올림픽이 선수로서 마지막 대회다.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김연아와 아사다의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김연아는 선수 복귀를 선언한 2012년 여름 이후 출전한 5차례의 국내외 대회에서 모두 200점을 넘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아사다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불안한 모습이다. 이번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2차례 우승했고,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우승컵을 들어올렸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일본선수권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3위(199.50)에 그쳤다. 일본 언론도 김연아를 ‘세계 최고’로 인정하고 있다. 스포츠닛폰과 산케이스포츠는 김연아를 ‘여왕’이라고 칭했다. 미국 NBC스포츠도 이날 ‘YUNA-nimous!’라는 제목을 뽑으며 김연아의 연기를 극찬했다. ‘YUNA-nimous’는 김연아의 영어 이름 YUNA와 만장일치를 뜻하는 ‘unanimous’의 합성어다. ○ 사라진 라이벌 국내 피겨 전문가들은 “아사다는 더는 김연아의 라이벌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한 피겨 심판은 “점점 수준 차가 벌어지고 있다. 점프와 몸놀림 등 모든 부분에서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심판도 “점프 하나만 봐도 김연아가 프로 배구 선수 같은 점프를 한다면 아사다는 학생의 점프를 한다”고 평가했다. 김연아를 이길 비책으로 아사다는 대회마다 트리플 악셀(3회전 반) 점프를 하고 있다. 기본 점수 8.50점짜리 고난도 점프다. 하지만 회전수가 부족하거나 착지가 불안해 감점을 받기 일쑤다. 아사다가 소치 올림픽에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한다 해도 승리는 김연아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는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는 등 무결점 연기를 하며 73.78점을 받았다. 곧이어 연기에 나선 김연아는 78.50점을 받았다. 아사다는 프리스케이팅에서도 2차례나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켰지만 승자는 역시 김연아였다. 결국 합계에서 김연아는 228.56점을 받아 205.50점을 받은 아사다를 20점 이상 차로 크게 이겼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김연아의 선수로서의 국내 고별전이었던 피겨 종합선수권대회는 각종 화제를 낳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김연아가 출전한 4일과 5일 경기 고양시 어울림누리 빙상장은 이틀 연속 3150석의 좌석이 가득 찼다. 김연아에게는 이틀 연속 관중이 뿌린 ‘꽃비’가 쏟아졌다. 관중은 연기를 마친 김연아가 인사를 하는 동안 빙판에 꽃과 인형, 선물 꾸러미 등을 던졌다. 얼마나 많은 선물이 쏟아졌던지 5일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에는 선물을 수거하는 데 화동이 6명이나 동원됐다. 이도 모자라 대여섯 명의 대한빙상경기연맹 직원들이 손을 보탠 뒤에야 겨우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김연아는 이 선물들을 어떻게 쓸까. 정답은 ‘기부’다. 작년에도 그랬다. 지난해 1월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종합선수권대회에서도 김연아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물을 받았다. 올댓스포츠 관계자는 “2.5t 트럭을 불러 선물을 실었는데 짐칸이 가득 찼을 정도”라고 말했다. 김연아 측은 이 선물들 가운데 인형처럼 재활용이 가능한 선물을 따로 모아 유니세프 부산 지부에 보냈다. 유니세프는 다문화 가정 등을 위한 행사에서 이 선물들을 의미 있게 사용했다고 한다. 올해 받은 선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팬들에게 되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올댓스포츠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작년처럼 좋은 일에 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전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놀라운 사실 하나. ‘피겨 여왕’ 김연아(24)도 실수라는 것을 한다. 5일 경기 고양시 어울림누리 얼음마루 빙상장에서 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2014’ 겸 제68회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대회. 국내 고별 무대였던 이날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 더블 악셀-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더블 루프 점프를 뛰지 못했고, 곧이어 더블 악셀 점프는 싱글로 바뀌었다. 더 놀라운 사실 하나. 김연아는 실수를 해도 보통 선수들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는다. 실수를 해도 실수처럼 보이지 않는 데다 워낙 난도 높은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이날도 그랬다. 두 차례의 실수에도 김연아는 기술점수(TES) 70.05점과 예술점수(PCS) 77.21점을 더해 147.26점을 받았다. 전날 세계기록을 작성한 쇼트프로그램 점수(80.60점)를 합쳐 종합 227.86점을 받은 김연아는 2위 박소연(178.17점)을 큰 점수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기록(228.56점)에는 조금 못 미쳤지만 2월 소치 올림픽을 앞둔 그에게는 더이상 좋을 수 없는 리허설이 됐다. 김연아는 “소치 올림픽 전 마지막 무대에서 만족스러운 경기를 했다. 좋은 기분을 갖고 올림픽에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소치에서는 역대 최고의 프로그램을 전날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완벽한 연기를 했다. 80.60점을 받아 자신이 밴쿠버 올림픽 때 세운 쇼트프로그램 최고 기록(78.50점)을 가뿐히 넘었다. 국내 경기여서 비공인 세계기록이 됐지만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최고의 연기였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자신이 밴쿠버에서 세운 최고 기록(228.56점)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성과는 많았다. 중후한 탱고 음악 ‘아디오스 노니노’의 선율에 맞춰 연기를 시작한 김연아는 초반에 집중된 3개의 트리플 점프(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트리플 플립, 트리플 살코-더블 토루프)를 모두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복귀 무대였던 지난해 12월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낮은 레벨을 받았던 스텝과 스핀도 최고 레벨까지 올렸다. 레벨 3였던 스텝 시퀀스는 레벨 4로, 레벨 1에 그쳤던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은 레벨 4로 수직 상승했다. 김연아는 “두 번의 점프 실수는 체력이 달려서라거나 힘들어서 못했던 게 아니다.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부분인데 못한 게 아쉽다. 골든스핀 대회 때 실수했던 걸 발판 삼아 이번 대회에서 더 좋아졌듯이 이번 실수들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오히려 ‘할 수 있다’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날 김연아의 연기를 채점한 한 심판은 “음악과 안무, 표현력 등이 완벽에 가까워 밴쿠버 올림픽 프리스케이팅 예술점수(71.76점)보다 높은 예술점수가 나왔다. 밴쿠버에서처럼 소치 올림픽에서도 무결점 연기를 펼친다면 올림픽 2연패는 물론이고 세계기록 경신도 무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경쟁자는 없다, 부담도 없다 최근 김연아의 입에 붙은 말이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다.” 그런 평정심이 김연아에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올림픽 재도전을 선언한 2012년 여름 이후 김연아는 이날까지 출전한 5차례의 국내외 대회에서 모두 200점 이상을 받았다. 그는 “솔직히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많은 경험을 한 만큼 부담이 덜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매번 나올 때보다 좋은 경기를 하는 것 같다.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도 걱정되는 부분은 전혀 없다. 그냥 마음 편하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객관적으로 김연아의 수준에 근접한 경쟁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한 아사다 마오(일본)는 이번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지난달 열린 일본선수권대회에서 종합 199.50점에 그치는 등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김연아의 경쟁자는 김연아 자신뿐이다. 고양=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월 소치 겨울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김연아가 자신을 응원해준 국내 팬들에게 값진 선물을 했다. ‘더블 악셀’(2회전 반) 점프다. 제68회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한 김연아는 시상식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멋진 더블 악셀 점프를 뛴 뒤 시상대에 올랐다. 평소의 김연아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국내외 대회나 갈라쇼 등에서 팬들 앞에 설 때 김연아는 얌전히 인사를 하거나 스핀 동작 정도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날은 예상치 못한 점프로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김연아는 이에 대해 “시상식에선 웬만하면 점프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느낌이 달랐다. 이왕이면 경기 때 실수한 걸 해보려고 한 번 뛰어봤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는 11번째 과제였던 더블 악셀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싱글로 처리했다. 국내 팬들 앞에서의 마지막 점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던 그는 시상식에 앞서 완벽한 점프로 아쉬움을 달랬다. 김연아는 “오늘 경기장 안에서, 또 표를 구하지 못해 밖에서 저를 응원해주신 팬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저를 아껴주신 팬들 앞에서 좋은 연기를 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가 열린 어울림누리 얼음마루 빙상장은 3150석이 가득 들어찼다. 대회 전 인터넷 예매 때는 창구 오픈과 함께 모든 표가 팔려 표 구하기 전쟁까지 벌어졌다. 이 때문에 3층 기준으로 2만2000원이던 티켓의 암표 가격이 최고 30만 원까지 치솟았다. 고양=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올 시즌 완벽한 레이스는 딱 한 번뿐이었던 것 같아요.” ‘빙속 여제’ 이상화(24·서울시청)는 올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4차 대회 7번의 레이스에 출전해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중 3번이나 세계기록을 경신했다. 2012∼2013시즌까지 포함하면 올해 들어 4번 세계신기록을 새로 썼다. 전문가들은 그런 이상화를 ‘무결점 스케이터’로 평가한다. 하지만 정작 이상화 자신이 꼽은 완벽한 레이스는 지난달 17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2차 레이스 한 번뿐이다. 이상화는 당시 36초36이라는 세계신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27일 세계신기록 수립 포상금 시상식이 열린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이상화는 “출발부터 피니시까지 완벽했던 건 그 레이스뿐이다. 나머지 경기에서는 약간의 실수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화는 지난달 16일 열린 대회 1차 레이스에서도 36초57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하루 뒤 자신이 그 기록을 넘어섰지만 당시로는 세계신기록이었다. 이상화는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초반 스타트다. 세계 기록을 세우긴 했지만 1차 레이스에서는 두 번째 스텝부터 약간 실수가 있었다. 이후 자세를 가다듬어 무사히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실수가 있었다고 고백한 레이스에서 이상화의 100m 기록은 10초16이었다. 가장 완벽한 레이스라고 자평한 2차 레이스의 100m 기록(10초09)보다 불과 0.07초 늦었을 뿐이다.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는 “상화에게는 첫발이 핵심이다. 초반 레이스에서 약간 실수를 해도 금메달엔 무리가 없지만 초반 레이스부터 완벽하다면 상화를 이길 수 있는 선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을 쉴 새 없이 달려온 그는 최근 국내에서 열린 전국남녀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내년 1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리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도 나가지 않고 체력 보강과 컨디션 조절에 힘쓸 계획이다. 이상화는 “여자 500m 세계기록 보유자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함께 자신감을 느낀다”며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면 감각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가 있지만 그럴 시기는 지났다. 체력을 유지하고 감을 잊지 않으면서 올림픽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세계신기록으로 1000만 원을 받은 이상화는 이날 김재열 빙상경기연맹 회장으로부터 2000만 원의 신기록 포상금을 받았다. 그는 웃으며 “오늘 받은 포상금도 알뜰하게 저축할 것”이라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초등학생 탁구신동 신유빈(9·군포 화산초·사진)이 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학생 언니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초교 3학년인 신유빈은 26일 부산 강서체육공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67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 여자부 개인단식 1회전에서 한승아(18·용인대)를 상대로 4-0(14-12 11-6 11-7 11-5) 완승을 거뒀다. 자신보다 아홉 살이 많은 대학생 언니를 상대한 신유빈은 듀스까지 가는 접전 끝에 첫 세트를 따낸 데 이어 이후 세 세트를 큰 점수 차로 이겼다. 종합탁구선수권대회는 초중고교와 대학, 일반부가 나이에 관계없이 참가해 탁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다. 신유빈은 이미 탁구계에서는 될 성 부른 떡잎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탁구선수 출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세 살 때부터 라켓을 잡은 신유빈은 8월에 열린 전국종별학생탁구대회 초등부에서 고학년 언니를 모두 제치고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폭발적인 드라이브와 다양한 기술을 구사해 또래에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 대회에선 대학생 선수마저 이겨버렸다. 대한탁구협회 관계자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대범하게 경기를 펼쳤다. 탁구 유망주로서의 미래가 기대된다”고 말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옥경 씨(47)는 스케이트 종목에 피겨스케이팅만 있는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밤을 새워 읽고 또 읽었던 순정 만화 ‘사랑의 아랑훼스’ 때문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은 ‘피겨 여왕’ 김연아(23)도 못하는 7회전 점프를 뛰었다. 경기 수원 소화초등학교에 다니던 큰딸 박승주(23·단국대)와 작은딸 승희(21·화성시청)가 빙상부에 들어가도록 권유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찾은 이 씨는 깜짝 놀랐다. 만화에서처럼 우아한 몸짓으로 점프를 하는 줄 알았던 두 딸이 링크 바깥으로만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씨는 “그때까지도 실력이 어느 정도 돼야 피겨를 시켜주는 줄로만 생각했다. 나중에야 스케이트에는 쇼트트랙도 있고 스피드스케이팅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막내 세영(20·단국대)이도 누나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를 신었다. 이렇게 스케이트 선수가 된 3남매는 내년 2월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에 나란히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3남매가 올림픽에 동시에 출전하는 것은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이다. 최근 경기 화성시에 있는 집에서 만난 이 씨는 “얘들이 하도 좋아해서 스케이트를 시켰지만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 40만 km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참 행복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그 생활을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3남매가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뒤 아이들도 이 씨도 고생이 많았다. 남편 박진호 씨(53)가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운전은 고스란히 이 씨의 몫이었다. 이 씨는 경차 마티즈에 3남매를 태우고 매일같이 집이 있던 수원에서 과천 빙상장을 오갔다. 이 씨는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과천까지 가서 새벽 운동을 하고 다시 학교로 데려다 줬다. 수업이 끝난 뒤엔 또다시 과천 빙상장으로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개 차 안에서 아침밥을 먹었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양치와 세수를 한 뒤 학교에 갔다. 이 씨는 “스케이트 선수라면 누구나 그 정도의 노력을 한다. 우리 아이들도 어린 나이에 인내를 배우면서 힘든 고비를 넘긴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는 이후 경기 성남시 분당과 서울 목동 등으로 이사를 했다. 그 무렵 큰딸 승주는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다. 쇼트트랙을 하는 승희와 세영은 집 근처 링크장으로 가면 됐지만 승주는 스피드스케이팅 링크가 있는 서울 태릉 빙상장으로 태우고 다녀야 했다. 수명이 다한 마티즈를 버리고 카니발로 차를 바꾼 이 씨는 이 차로 집 앞 빙상장과 태릉 빙상장을 오갔다. 이 씨는 “어떤 날은 경부고속도로를 하루에 여섯 번 달린 적도 있다. 카니발로 10년간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주행거리가 40만 km를 넘었더라. 아이들이 국가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 40만 km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했다. 40만 km는 지구를 약 10바퀴 돈 것과 같은 거리다. 10년간 탄 카니발에 요즘도 가끔씩 아이들을 태우고 다닌다. 너무 노후해서 예전과 달리 가끔씩 저절로 멈춰버리곤 하지만. ○ “얘들아, 맘껏 축제를 즐겨라” 어릴 적부터 쇼트트랙의 샛별로 불렸던 둘째 승희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 2개를 땄다. 소치 올림픽 출전은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막내 세영은 올해 초 열린 쇼트트랙 대표선발전을 2위로 통과해 소치행 티켓을 따냈다. 첫째 승주는 최근에야 소치 올림픽행을 확정지었다. 10월 말 전국남녀 종목별 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에서 국가대표로 뽑힌 뒤 최근 끝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에서 선전해 출전 자격을 따냈다. 이 씨는 “승주 때문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는데 좋은 결과를 받게 됐다. 이미 밴쿠버 대회에 다녀온 승희가 ‘올림픽에 가 보니 왜 올림픽이 전 세계인의 축제인지 알겠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올림픽에 출전하는 승주와 세영이는 결과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그 축제를 마음껏 즐기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쇼트트랙 여자 500m에는 왕멍(중국)이라는 절대 강자가 있다. 둘째 승희는 왕멍을 한 번쯤 이겨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웃었다. 화성=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혼자 크는 자식들은 없다.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뒤에는 정성을 다해 이들을 키운 ‘엄마’들이 있다. 지난해 런던 여름올림픽에서 ‘THANK YOU, MOM! 시리즈’를 연재했던 동아일보는 내년 2월 7일 개막하는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의 드라마를 선사할 국가대표 선수들을 키운 엄마들을 소개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모태범(24)을 키운 정연화 씨(52)다. 》 아들은 놀기 대장이었다. 학교만 끝나면 집에 가방을 내던지고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 깜깜해져서야 들어오기 일쑤였다. 누가 봐도 공부보다는 운동이 적성이었다. 처음엔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을 시킬까 했다. 그런데 단체 운동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자기가 잘못하지 않아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단체 운동보다는 모든 결과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개인 운동이 낫겠다 싶었다. 스케이트를 택한 것은 그나마 돈이 많이 안 들 것 같아서였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 아들의 손을 이끌고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의 야외 아이스링크에 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스케이트를 한번 신겨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웬걸. 뒤뚱거리며 미끄러질 줄 알았던 아들은 빙판 위에 중심을 잡고 섰다. 다른 아이들이 넘어지는 와중에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은 아들은 링크를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정 씨는 “어찌나 신통방통한지 깜짝 놀랐다. 당시 이 모습을 지켜본 코치 분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스케이트를 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 있다. 모태범이 넘어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 이유는 핫도그 때문이었다. 모태범은 “그날은 엄청 추웠다. 그런데 엄마가 스케이트를 잘 타면 핫도그를 사준다고 해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약속대로 핫도그를 사 주셨고 케첩을 잔뜩 뿌려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13년 후인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모태범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1000m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내년 2월 열리는 소치 올림픽에서는 500m 2연패와 함께 1000m 금메달에도 도전한다. 만약 그날의 핫도그가 아니었다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선수 모태범도 없었을지 모른다. ○ 엄마는 믿었고, 아들은 보답했다 시작은 핫도그였지만 다음은 로봇이었고, 그 다음은 장난감 비행기였다. 목표가 생기면 아들은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는 어느 대회든 나가기만 하면 메달을 따서 돌아왔다. 하지만 질풍노도 시기는 어김없이 그에게도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 즈음이었다. “바퀴 달린 것이면 뭐든지 좋다”던 아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밖으로만 나돌았고 운동을 게을리하면서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모태범은 “당시 새벽, 오전, 오후 등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 또래 친구들은 놀 수 있는데 왜 난 운동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반항을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 정 씨는 그 순간에도 아들에게 체벌을 가하거나 혼내지 않았다.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믿고, 타이르고 설득했다. 약 1년간의 방황 후 모태범은 다시 스케이트화 끈을 동여맸다. 그는 “마음을 다잡게 된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내 마음대로 해 보니 결과가 안 좋아지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후에도 모태범이 운동에 싫증을 느낄 때면 정 씨는 “억지로 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나가서 놀아라”며 아들을 다독였다. 모태범의 짧은 일탈은 길어야 이틀이었다. 3일째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 씨는 “귀한 아들을 때리거나 심하게 혼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혼자서 부딪쳐 보고 스스로 느꼈으면 했다. 다행히 크게 어긋나지 않고 좋은 길을 잘 따라와 줬다”고 했다. ○ 소치에선 어떤 상서로운 징조가… 모태범을 가졌을 때 정 씨는 태몽으로 구렁이 꿈을 꿨다. 그런데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실제로 집에 구렁이가 나타났다. 올림픽이 열릴 때였으니 아직 추운 2월이었다. 그런데 경기 포천시 소흘읍 자택 담장에 2m쯤 되는 구렁이 한 마리가 몸을 쫙 편 채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나타나 잠자리채로 잡으려 하자 구렁이는 나무 위로 올라가 똬리를 틀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 씨는 “하도 신기해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었는데 그만 지워버려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모두 같이 봤다. 한겨울에 대체 이게 무슨 징조인가 싶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모태범은 500m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금메달을 땄다. 며칠 뒤엔 1000m 은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아들의 경기를 집에서 TV로 봤던 정 씨는 내년 2월 소치 올림픽 때는 직접 경기장을 찾아 아들을 응원할 예정이다. 정 씨는 “그동안 한국에서 열리는 태범이 경기는 항상 경기장에 가서 말없이 지켜봤어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아들의 경기가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요. 실수만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는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믿는다, 아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31)의 대형 계약 이튿날인 23일 또 한 명의 ‘야구 재벌’이 탄생했다. 부산 수영초등학교에서 추신수와 함께 야구를 시작했던 이대호(31·사진)다. 2년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서 뛰었던 이대호는 이날 퍼시픽리그의 명문 구단 소프트뱅크와 3년간 20억5000만 엔(약 209억 원)짜리 계약에 합의했다. 세부 내용은 계약금 5000만 엔에 연봉은 2014년 4억 엔, 2015년과 2016년 각각 5억 엔씩이다. 옵션 금액은 연간 2억 엔+α로 총액은 20억5000만 엔을 넘을 수도 있다. 계약 금액도 크지만 조건도 이대호에게 유리하다. ‘2+1’ 계약으로 2년은 의무적으로 소프트뱅크에서 뛰어야 하지만 마지막 1년은 이대호가 행선지를 선택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에 잔류하면서 5억 엔의 연봉을 받을 수도 있고, 메이저리그를 포함해 한국과 미국, 일본 내 다른 팀으로 이적해도 된다. 이대호의 영입에는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 기록(868개)을 갖고 있는 오 사다하루 구단 회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활약했던 이대호는 지난 2년간 오릭스의 붙박이 4번 타자로 활약하며 기량을 검증받았다. 데뷔 첫해인 2012년 전 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6에 24홈런, 91타점을 기록했고, 올해도 0.303에 24홈런 91타점의 호성적을 남겼다. 올 시즌 4번 타자 부재 속에 퍼시픽리그 4위에 그친 소프트뱅크는 이대호를 영입해 타선을 한층 보강할 수 있게 됐다. 하와이에서 가족 여행을 하고 있는 이대호는 지인을 통해 “우승할 수 있는 팀을 원했는데 마침 소프트뱅크에서 좋은 조건과 대우를 제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다음 달 4일 사이판으로 개인 훈련을 떠난다. 2월 1일 팀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에 앞서 한국에서 정식 입단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출루 머신, 최고 리드오프(톱타자), 호타준족…. 추신수(31)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메이저리거로서의 추신수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지만 성공의 뒤에는 남모를 인내와 노력이 있었다. 1억 달러의 사나이 추신수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도움과 사연들이 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아내” 부산고를 졸업한 2001년 시애틀과 계약해 미국으로 건너간 추신수의 마이너리그 생활은 여느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땅콩 잼을 바른 빵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타고, 호텔 대신 모텔을 전전하며 미국 전역의 작은 도시들을 돌아다녔다.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을 먹은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도 그는 마이너리그의 모든 단계를 착실히 밟았다. 2001년 루키리그와 싱글A, 2002년과 2003년은 싱글A와 하이 싱글A 팀에서 뛰었다. 더블A 샌안토니오로 승격한 것은 2004년이었다. 이즈음 그는 운명같이 동갑내기 아내 하원미 씨(사진)를 만났다. 2004년 겨울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고 트리플A에서 주로 뛰던 2005년 첫아들 무빈 군을 얻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연봉은 보잘것없다. 30대의 베테랑 마이너리거들도 5만 달러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20대 초반의 추신수는 한 달에 2000달러 정도를 받았다. 몇 해 전 추신수는 한 TV 방송에 출연해 “나도 힘들었지만 아내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잘 참고 못난 나를 내조해준 아내가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하 씨도 “남편을 위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생겨 안 좋은 생각까지도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 생각에 더욱 절실함을 갖게 된 추신수는 2005년 마침내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고 메이저리거가 됐다. 그는 “아내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 이치로와의 악연을 기회로 하지만 시애틀에는 너무나 큰 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 최고 스타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타격 기계’로 인정받던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40)였다. 왼손 타자에 포지션도 추신수와 같은 우익수였다. 2006년 시애틀은 수비 범위가 넓은 이치로에게 우익수 자리를 추신수에게 양보하고 중견수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이치로는 단번에 거절했다. 결과는 추신수의 트레이드로 이어졌다.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추신수는 이후 “나 같으면 양보를 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추신수에게 큰 기회가 됐다. 그해 4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5에 3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2007년 부상으로 주춤했으나 2008년 클리블랜드의 주전 우익수로 처음 풀 시즌을 소화하며 타율 0.309에 14홈런, 66타점을 기록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2년 연속 3할 타율에 20홈런-20도루 이상을 기록하며 추신수라는 이름을 미국 전역에 알렸다.○ 가족의 힘으로 더욱 단단해지다 2011년 추신수는 또 한 번의 시련을 맞았다. 음주 운전을 하다 미국 현지 경찰에 체포됐고, 왼손 엄지 부상까지 겹치며 85경기 출장에 그쳤다. 타율도 메이저리그 데뷔 최저인 0.259를 기록했다. 그때도 추신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이었다. 그해 8월 딸 소희를 얻어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부상으로 쉬는 동안 야구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더 넓혔다. 신시내티로 옮긴 올해는 3년 만에 다시 ‘20-20’ 클럽에 가입하고 출루율에서도 리그 2위(0.423)에 오르며 최고 리드오프임을 재확인시켰다. 추신수와 절친한 한 지인은 “원래 가족을 끔찍이 여기는 추신수였지만 음주 사고 후 가족 사랑이 더 깊어졌다. 이번에 텍사스를 선택한 데도 가족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신수의 가족은 현재 텍사스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인 애리조나 주에 살고 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