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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아마도 이 책은 출판사 입장에선 ‘가장 적절한 시기’에 출간했으리라. 14일 스타워즈 8편에 해당하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국내 개봉했으니 세간의 주목은 떼어 놓은 당상. 어라, 그런데 28일 기준 관객 수가 100만 명도 되질 않는다고? 아, 이것 참. 띠지에 둘러놓은 ‘워싱턴포스트 No.1 베스트셀러’란 문구가 왠지 휑하다. 저자도 얘기했다. “인류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뉠 수 있다. 스타워즈를 사랑하는 사람,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사람, 스타워즈를 사랑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최신작 관객 수가 스타워즈에 대한 애정을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이야 되지 않겠지만. 이 책을 집어 들 독자들이 누구일지는 뻔해 보인다. 그래도 하나는 분명하게 얘기할 수 있다. ‘스타워즈’엔 별 신경 안 썼거나 갈수록 실망했던 이라 할지라도 다시 한 번 ‘관심’을 갖게 될 거라고. 어쩌면 “그래, 그래도 스타워즈잖아”라며 영화관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또 낙담할지언정. 그만큼 이 책은 스타워즈가 어떤 매력을 지닌 영화인지, 왜 한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세계가 열광하는지를 훑었다. 뜨겁고 깊은 애정을 갖고. 흥미로운 건 스타워즈 ‘덕후’인 저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법학자란 점이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로버트 웜슬리 대학 교수인 그는 2009∼2012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규제정보국 책임자를 맡았던 인물이다. 국내에선 2009년 베스트셀러가 됐던 ‘넛지’의 공저자로도 이름을 떨쳤다.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을 가진 ‘넛지(nudge)’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지칭하는 경제학 용어다. 거창하게 말하면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바탕이 되는 개념이란다. 이런 저자 소개만 들으면 책이 무겁지 않을까 걱정할 수 있겠다. 뭐, 솔직히 말하면 뒷부분엔 그런 대목도 없지 않다. 스타워즈 얘기라고 꼬셔놓고 결국엔 자신의 법철학을 설파하는 ‘선생님’ 본색을 드러내곤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책장 넘기는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너무 찬사 일색이라 살짝 배알이 꼴릴 때도 있지만, 가벼운 맘으로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읽을 만하다. 안타깝지만 이런 흐름은 양날의 검인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어중간하게 문지방에 올라서 있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확 문을 젖히고 들어가지 않아 깊이 있는 깨달음을 건질 기회가 적다. 게다가 너무 여러 주제를 이것저것 다룬다. ‘겉핥기’로 여겨질 정도로. 물론 이건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 ‘스타워즈’를 돌이켜보라. 근사하긴 하나 걸작 예술작품은 아니지 않나. 다소 다양한 해석이 나오긴 해도, 스타워즈는 대사도 줄거리도 알기 쉽고 어렵지 않아 더 애정이 간다. 그럼 그걸 두고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뜻에서 책 ‘스타워즈로…’는 과하지 않고 딱 적당하다. 이미 포스가 함께하는데 뭘 더 바라겠나. 원제 ‘The World according to Star Wars’(2016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970, 80년대 연극의 메카이자 창작극의 산실이던 세실극장이 경영난으로 내년 1월 8일 개관 42년 만에 문을 닫는다.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 중 하나인 세실극장은 1976년 320석 규모로 개관해 이듬해부터 연극협회가 연극인회관으로 사용하며 1∼5회 대한민국 연극제를 개최한 유서 깊은 곳이다.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김민섭 세실극장 극장장은 28일 “극장을 운영하며 월세 1300만 원을 포함해 매달 2400만 원의 운영비가 들었다”며 “1년에 10여 편씩 365일 공연을 올려도 매달 1000만 원의 적자를 메우기 어려웠고, 결국 내년 1월 7일 신체 연극 ‘안네 프랑크’ 공연을 끝으로 문을 닫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실극장 측이 경영난으로 폐관 위기에 처하자 서울연극협회와 아시테지 한국본부가 나섰다. 지난달 서울연극협회 방지영 부회장과 아시테지 한국본부 김숙희 이사장이 세실극장 건물주인 대한성공회 측을 찾아 극장 운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월세 금액을 놓고 성공회 측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다 27일 성공회 측으로부터 ‘세실극장 공간을 성공회 사무실로 활용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방 부회장은 “세실극장이 한국 연극사에서 지닌 의미와 상징성을 고려해 서울연극협회와 아시테지 한국본부가 세실극장 공동 운영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며 “서울연극협회와 아시테지 한국본부는 성공회 측에 월 1300만 원인 월세를 1000만 원으로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고, 성공회는 운영위원회를 연 뒤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성공회 측은 “성공회 역시 세실극장의 역사나 의미를 가치 있게 여기고 있다”며 “성공회가 세실극장을 폐관하려는 게 아니다. 현재 임대차 계약을 맺고 공연장을 운영하는 분이 경영이 어려워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세실극장의 경영난은 과거에도 있었다. 1981년부터 1997년까지 제작그룹 마당이 인수해 한국 창착극의 산실로 자리 잡았던 세실극장은 외환위기가 닥친 1998년 1년간 휴관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건물주인 성공회 측이 사무실로 개축하려던 것을 우여곡절 끝에 1999년 4월 연출가 하상길과 극단 로뎀이 인수해 운영했다. 당시 국내 최초로 네이밍 스폰서십을 도입해 제일화재해상보험의 후원을 받아 극장 이름이 제일화재 세실극장으로 바뀌었고 2010년 한화손해보험이 제일화재를 인수해 한화손보 세실극장이 됐다. 2012년 4월 기업 후원마저도 끊기며 다시 세실극장으로 명칭을 바꿔 홀로서기에 나섰지만, 결국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관하게 됐다. 유서 깊은 연극 공연장의 폐관은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진다. 특히 2015년은 연극인들에게 ‘상실의 시대’로 통한다. 2015년 국내 최초의 민간 소극장인 ‘삼일로창고극장’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관했다. 이후 서울시가 삼일로창고극장이 세 들어 있던 건물을 임차해 재개관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내년 재개관을 목표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2015년 4월 28년간 대학로를 지켜온 ‘대학로극장’이 폐관한 데 이어 ‘품바’로 유명한 상상아트홀(1990년 개관)과 김동수 플레이하우스(2000년)도 폐관됐다. 김정은 kimje@donga.com·정양환 기자}

해가 중천에 떴건만 매서운 한기는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불전을 감도는 향내는 ‘나무아미타불’을 타고 갈수록 진해졌다. 붉고 푸른 지화(紙花)도 극락왕생을 축원하며 향기를 머금은 걸까. 23일 원적(세수 90세, 법랍 77세)한 직지사 조실 녹원(綠園) 스님이 떠나는 날은 시리도록 맑았다. 27일 오전 경북 김천시 직지사에서 열린 스님의 영결식은 새벽부터 사부대중 5000여 명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장례는 제24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1984∼86년)을 지낸 스님을 위해 조계종 최고 의례인 종단장으로 봉행됐다. 조계종이 종단장을 치르는 것은 2014년 해인사에서 열렸던 조계종 전 종정 법전 스님의 종단장 이래 3년 만이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영결사에서 “녹원 대종사는 부처의 종자인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이 불사이니 중생을 위한 일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다”며 “조계종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가는 곳마다 연꽃이 만개하는 맑고 향기로운 일생이셨다”라고 추모했다. 원로회의 의장인 세민 스님도 “종단이 혼란에 빠졌을 때 총무원장을 맡아 난제를 해결하고 통합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했으며, 종회의장으로 법령을 정비해 불교 중흥의 기틀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행자 시절 녹원 스님을 모셨던 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인 호성 스님은 옛 추억을 떠올렸다. 경북 의성군 고운사 주지인 스님은 “38년 전 공양을 지어 올릴 때마다 ‘참으로 맛있다’며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세간, 출세간을 구분치 않고 한없는 자비로 세상을 대하고 거리낌이 없었던 큰스님이 가시는 길에 이렇게 마지막 공양을 올리게 돼 슬프고도 슬프다”고 했다. 2시간 남짓 진행된 영결식이 끝난 직후엔 식장에서 산길로 700m 정도 떨어진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거행됐다. 오색으로 펼쳐진 수백 기의 만장(輓章)으로 가득 찬 길을 따라 옮겨진 녹원 스님의 법구는 1000여 명이 읊는 경소리와 함께 불이 붙여졌다. 이날 다비식은 2006년 최규하, 2009년 노무현,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에서 염을 했던 ‘연화회’에서 맡았다. 이날 영결식에는 청와대 불자회장을 맡고 있는 하승창 대통령사회혁신수석비서관, 이철우 의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박보생 김천시장, 김갑수 문화체육관광부 종무실장 등 정관계 인사도 다수 참여했다. 녹원 스님의 유발상자(속가 제자)이자 국회 정각회장인 주호영 의원은 줄곧 빈소를 지켰다. 천태종 총무원장인 춘광 스님과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 태고종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도 참석해 분향했다. 다비식을 마친 녹원 대종사의 초재는 29일, 7재는 내년 2월 9일 직지사에서 열린다.김천=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참에 앞으로도 쭉 안 했으면 좋겠네.” 결국 무산됐다. 지상파방송 연말행사인 ‘KBS 연예대상’ 얘기다. 1987년 시작했으니, 나름 30년 역사를 지녔건만. 끝내 장기 파업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의외로 반응은 잘됐단 분위기다. 위 인터넷 댓글은 양반이다. ‘연기대상 가요대상도 폐지해라’, ‘추억의 영화나 틀어 달라’. 공들인 제작진 노력도 무심하게. 방송가 시상식은 언젠가부터 천덕꾸러기가 됐다. 좋은 연기, 훌륭한 무대를 상찬하자는 자리가 어쩌다 이런 대접을. 한 드라마 PD는 “누워서 침 뱉기지만 방송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며 “여러 차례 지적받았던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아 시청자가 실망한 것 같다”고 한탄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첫째, 상의 지나친 ‘남발’이다. 지난해 MBC 연기대상 리스트를 살펴보자. 연기상이 부문별로 특별기획 연속극 미니시리즈 3가지나 된다. 또 이걸 각각 최우수연기상과 우수연기상, 황금연기상으로 나눠 놓았다. 다른 방송사도 거기서 거기다. KBS는 장편 중편 단편에 미니시리즈와 일일극까지 있다. SBS는 판타지와 로맨틱코미디, 장르드라마가 공존한다. 판타지가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공동수상은 왜 이리 많은지. 혼자 받는 게 낯설어 보일 지경이다. 지난해 SBS 연기대상은 심지어 10명이 떼거리로 받는 ‘뉴스타상’ 덕에 모두 40명에게 골고루 상이 돌아갔다. 이 정도면 연기자로선 안 받는 게 서운하겠다. 한 방송작가는 “방송국과 연예인 소속사가 ‘수상’을 전제로 스케줄을 조정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했다.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받을지 뻔하니 김이 샌다. 웬만큼 ‘급’이 되는 연예인은 뭔 상일지는 몰라도 분명 스테이지에 올라간다. 실제로 과거 한 여배우가 불참하자 ‘대상이 아닌 걸 알고’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연기 평가란 주관적 요소가 강해 원래 시상식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한국은 연기 외적인 흥행이나 인기도를 강하게 반영해 ‘사내 포상’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의문. 시청자는 비난하고, 내부에선 자성하는 시상식이 왜 지속되는 걸까. 해답은 방영 다음 날 시청률을 보면 나온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은 1부는 전국 기준 15.2%(닐슨코리아)였다. 종편과 케이블방송의 약진에 요즘 지상파 드라마나 예능도 한 자릿수 시청률이 허다한데. 다른 시상식 역시 10% 안팎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혹자는 ‘전파 낭비’라지만 방송국으로선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가 없죠. 회당 몇천만 원 받는 스타 수십 명을 거의 푼돈으로 3∼4시간씩 출연시킬 기회가 흔합니까. 시청률이 보장되니 광고나 협찬도 수월한데. 몇 해 전 논란이 커지니 미국 에미상처럼 통합 시상식을 치르잔 의견이 나온 적 있습니다. 당연히 안 되죠. 3사만 돌아가며 방송해도, 해마다 거둬들이던 수익이 확 깎이는데 누가 반기겠습니까.”(한 연예프로그램 CP) 누리꾼 바람과 달리, KBS 연예대상은 내년에 돌아올 게다. 실은 올해도 방송사마다 연기와 연예, 가요 대상을 치르니 평상시 9분의 8로 줄었을 뿐이다. 일개 방송사가 ‘아시아 최고의 커플 상’을 뽑는 희한한 광경은 또 벌어진다. 우리가 그날 TV 시상식을 보고 있는 한.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아무 일 없이/편안하길 바라지만/풀 수 없는 숙제가 많아/삶은 나를 더욱/설레게 하고/고마움과 놀라움에/눈 뜨게 하고/힘들어도/아름답다/살 만하다/고백하게 하네.” 수녀님은 대뜸 책을 펴들곤 시를 읊었다. 그것도 카랑할 만치 낭랑한 목소리로.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 내에 있는 성 분도 은혜의 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해인 수녀(72)는 “왠지 시린 날씨 탓인지 ‘오늘의 행복’을 읽으며 여러분과 만나고 싶다”며 “언제나 오늘이란 선물에 숨어 있는 행복을 찾으며 살고 있단 말로 근황을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가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샘터·사진)을 펴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암 투병에도 뜨거운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그에게도 산문집은 2011년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이후 6년 만이다. 이 수녀는 “내년 5월 23일이면 수도서원(修道誓願·수도회에 들어가 수도자로 살 것을 다짐하는 일) 50주년을 맞는다”며 “그간 열심히 수도자로서 삶을 살며 꾸준히 글도 써온 자신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설명했다. ―수도서원 50주년을 맞는 소회는…. “뭔가 하나의 마침표를 찍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듯한 뿌듯함이 감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막연히 두려웠는데, 여기까지 왔음을 자축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저를 키워준 공동체와 독자에게도 고맙다. 젊은 날만 한 열정은 옅어졌지만, 시간이 준 선물인 여유로움이 찾아왔다.” ―이번 책도 그런 마음이 담긴 건가. “맞다. ‘기다리는 행복’은 1979년 썼던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초심을 놓지 않으려고 인내했던 세월을 칭찬하고 싶었다. 시와 산문은 물론 법정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 세월호 추모시 등도 실었다. 1968년 첫 서원을 하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일하던 시절의 일기는 처음 공개한다. 그런데 정리를 하다 보니 너무 많이 담았다. 뭔가를 비우고 가볍게 살아야 하는 세상에 괜히 무거운 책 하나를 내놓아 죄송할 따름이다.” ―건강을 걱정하는 독자들이 많다. “암 투병한 지 9년 됐다. ‘명랑 투병’ 한다고 말했지만 쉽지 않더라. 그래도 눈물 흘리거나 한탄하지 않았다. 아, 한 번 있었다. 2008년 항암치료가 끝난 뒤였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교수가 치료받을 때 덮으라고 준 분홍 타월을 보는데 울음이 터졌다. 이 사물이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줬다고 생각하니 감동스러웠다. 당시 주치의가 보낸 문자메시지는 아직도 기억한다. ‘수녀님, 이 한 몸 크게 수리해서 더 좋은 몸을 받는다고 여기세요’라고. 말이 주는 에너지가 이런 것일까. 아프고 난 뒤 행복과 기쁨이란 말을 더 많이 쓰게 됐다.” ―연말을 맞아 독자에게 전하고픈 얘기가 있다면…. “아픔이 많았던 해였다. 하지만 남 탓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자문해 보자. 요즘 북한을 보면 너무 밉지만, 그래도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세상으로 눈을 돌리고 함께해야 한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도 글 쓴다는 핑계로 주위에 도움만 받은 건 아닌지 반성한다. 내년엔 좀 더 동료와 이웃을 챙기며 살고 싶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서울에서 멀지 않은 암자에 다녀왔다. 푸른 공기가 시리도록 쨍한 산기슭. 스님과 불자들이 정성을 쏟은 절은 아담한데 정갈했다. 뭣보다 손수 기른 뒷마당 채소가 기막혔다. 강된장을 툭 얹어 싸 먹어봤다. 아삭하다 못해 달달했다. 다 좋았건만. 뒷간은 정이 가질 않았다. 요즘 세상에 ‘푸세식(재래식)’이 웬 말이람. 얼마 되지도 않은 절인데. 왜 굳이 냄새 고약한 아날로그를 고집했을까. 스님께 슬쩍 구시렁거려봤다. 되레 나무람만 돌아왔다. “어허. 이 해우소(解憂所)가 얼마나 귀한 건데. 더럽긴 뭐 더러워. 인분 퇴비로 텃밭을 가꾸니 이토록 싱싱하지. 해우소가 달리 근심을 덜어주는 곳인 게 아냐. 농사지을 걱정도 해결해주는 걸세. 옛 어른들도 그러셨지. 똥이 밥이라고.” 맞다. 세상이 그렇다. 지저분해도 쓸데가 있다. 별것 아니어도 사연이 있다. 그만큼 헛된 일은 왜 없겠나. 억지로 부린 욕심. 줏대 없던 참견과 시비. 뒤죽박죽 뒤섞인 채 또 한 해가 간다. 새벽녘 창밖에 켜켜이 쌓인 상념. 쏴아.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붙잡지 못한 세월만큼 속절없이 지나간다. 꾸역꾸역.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 종교계는 굵직한 현안이 많았다. 2018년 시행을 앞두고 종교인과세가 국민적 관심을 받았고,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교체와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 등 사회 역사적 의미가 깊은 이슈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하나 순탄한 게 없었다. 종교인과세는 보수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정부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 1년 내내 시끄러웠다. 지난달 기획재정부와 종교계가 ‘종교활동비 비과세’ 등에 합의하며 한숨 돌리는 듯했으나, 다른 직종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종교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개신교계에서는 하반기 명성교회를 둘러싼 논란이 컸다. 이 교회는 개척자인 김삼환 목사가 세습을 거듭 부인해왔음에도 결국 아들 김하나 목사가 담임목사를 맡았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논의가 이어졌던 개신교 연합단체들의 통합 역시 사실상 무산됐다. 올해 개신교로선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95개 논제’를 밝힌 지 500년 되는 뜻깊은 해였으나 분위기가 살지 않았다. 불교계는 8년간 조계종을 이끌었던 자승 총무원장이 임기를 마치고 설정 스님이 새로운 4년을 이끌게 됐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뜨거운 쟁점이던 직선제 선거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승려대회 추진과 명진 스님 단식 등으로 시끄러웠다. 지난달 총무원장에 정식으로 취임한 설정 스님은 “대탕평을 통해 불교의 본질을 되살리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며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가톨릭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었다. 하지만 낙태죄 존폐를 둘러싸고 정부와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며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달 초 시작한 ‘낙태죄 폐지 반대 일반인 100만 명 서명운동’이 내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책을 덮자마자,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봤다. 솔직히 소설 ‘3차 면접에서…’를 만나기 전까지 이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단 얘기만 들었을 뿐. 하지만 책을 읽은 뒤, 절로 탄식이 쏟아졌다. 이렇게 굉장한 소설가가 어쩌다가. ‘3차 면접에서…’는 길지 않은 분량인지라 줄거리도 단출하다. 갈수록 취업문이 좁아지는 세상. M은 그간 마흔여덟 번쯤 면접을 봤지만 여전히 백수 신세다. 하지만 드디어 그에게도 서광이 비추나. 떨어질 거란 짐작과 달리 한 제과회사에 합격한다. 곧장 4주간 연수원에 입소한 M. 하지만 그 앞엔 예상치 못한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이 소설, 희한하다. 자다가 눈을 떴는데 처음 보는 장소에서 깬 기분이 이럴까. 실은 표지에 나오는 ‘문학을 배워본 적 없는 젊은 작가’란 설명에 수긍이 간다. 여타 소설에서 익숙했던 작법이나 묘사가 없다. 때론 거칠다 못해 흐리터분할 정도로.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칭칭 온몸에 감겨오는 뭔가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게 뭔 줄 아세요? 남들보다 못한 인간으로 도태되는 것? 사람들한테 머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 가장 수치스러운 건 말이죠…. 죄를 눈감아주는 거예요.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거예요. … 나를 이해하는 거.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없어요.” 뭣보다 주인공 M의 감정선은 쫓아가는 내내 긴장감이 탁월하다.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다. 막상 거리를 두고 보면 별거 아닌데. 읽는 내내 불안과 우려와 짜증과 낙담이 뒤죽박죽 밀려온다. 그래, 어쩌면 그의 혼란을 ‘비정상’이라 치부하면 그만일지도. 하지만 다들 안다.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하진 않지만, 마음 어딘가를 스쳐갔던 악의(惡意)를. 어쩜 우리는 21세기 한국판 ‘이방인’(알베르 카뮈)을 만난 건지도 모르겠다. 박지리 작가는 지난해 가을 31세로 삶과 이별했다. 지금까지 이 작품을 포함해 장편 다섯과 단편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내년 하반기쯤 마지막 유작이 공개될 예정이다. 벌써부터 더 이상 그의 자식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서글퍼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불교에서 종단의 역할은 수행자가 수행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게 근간입니다. 솔직히 그간 종단이 너무 정치화, 정치집단화됐다는 점을 반성해야 합니다. 사상이나 이념을 초월해 불교의 본질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세간의 신뢰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설정 스님(75)은 차분하지만 굳은 결기를 내비쳤다. 지난달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 갖는 언론 간담회에서 유독 수행과 화합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불교는 모름지기 깨달음을 향해 정진할 뿐 다른 것에 눈 돌려선 안 되며 자비심을 갖고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정 총무원장은 이를 위해 “총무원을 비롯한 모든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끝없이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리란 모든 열정을 쏟아 철두철미하게 자기 단련을 하는 것이며 이타는 부처님 가르침을 지키며 양보하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솔직히 이 나이에 선방에서 생활하는 게 훨씬 편하고 좋습니다. 도심 속 총무원에 기거하니 공기도 나쁘고 시끄러워 잠도 잘 못 자요. 하지만 여러 차례 거절하다 결국 선거에 나섰던 건 이런 불편함도 모두 감수하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지요. 지금 불교는 망망대해에서 침몰하는 배와 같은 형국입니다. 하지만 해법은 의외로 쉽습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수행에 집중하면 타인과 시비가 생길 일이 뭐가 있습니까. 승가(僧伽·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가 승가다우면 모든 일이 해결됩니다.” 설정 총무원장은 특히 현 조계종의 선거제도가 분란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직선제건 간선제건 선거를 통해 총무원장을 뽑으면서 파벌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선거가 민주주의적 방식인지는 몰라도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화합과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삼보정재(三寶淨財·사찰의 재산)를 헛되이 쓰며,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시스템은 꼭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악법도 법이니까 무작정 폐지할 순 없습니다. 다양한 경로로 대화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하지만 패거리문화를 양산하는 현 체제보다는 부처님의 뜻을 되살린 ‘만장일치제’를 도입하려는 고민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진흙탕에서 싸우는 모습만 보여서야 누가 불교를 신뢰하겠습니까. 이는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는 불교 십중대계(十重大戒)를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최근 설정 총무원장은 무척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16일 지진 피해 지역인 경북 포항시를 방문해 이재민을 찾았고, 다음 날엔 전남 목포시를 찾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을 만나 위로를 전했다. 스님은 “대중과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는 건 불교가 첫 번째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며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진정성을 갖고 종단 안팎의 대화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공양게·供養偈) 한풍(寒風)이 드세던 11일 오후.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찾은 경기 용인시 ‘선재사찰음식문화연구원’에서는 명절 고향집을 찾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깥마당 처마에 걸렸던 눈은 마저 녹지 못하고 달라붙었건만. 뽀얀 김이 서린 부엌 창가로, 한참 뭔가를 다듬느라 분주한 선재 스님(61)이 보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선정 사찰음식 명장 1호. 거창한 이름만큼 선재 스님은 요즘 절밥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이지만, 막상 마주하면 수줍은 웃음이 온기를 뿌렸다. “길도 얼었는데 뭐 여까지 오냐”며 타박을 놓다가도 뭐 하나 더 내놓느라 자리에 앉을 새가 없다. 인터뷰하게 제발 오시라고 만류하길 몇 차례. 어라, 스님의 손엔 ‘김치 국물’ 한 사발이 들려 있었다. “이리 추운데 웬 나박김치인가 싶죠? 그런데 겨울철 절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 김치요. 고기와 오신채(五辛菜·마늘 파 달래 부추 무릇)를 금하니 어디서 에너지 얻기가 마땅찮지. 그런데 김치는 발효식품이라 영양이 가득하거든. 엄동설한이 와도 아침에 장독대 가서 꼭 이거 한 사발을 들이켜요. 그럼 하루 종일 속이 편해.” 이게 무슨 조화일까. 의심 가득 받아들었는데 절로 탄성이 터졌다. 무슨 국물이 살아있는 듯 목젖을 타고 꿈틀거린다. 젓갈도 없이 어찌 이런 맛이. 스님은 “오히려 그런 게 안 들어 훨씬 깔끔하고 상쾌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절간 김치는 잣이나 호두, 좁쌀 등으로 담백하게 맛을 낸다. ‘슈퍼 푸드’ 견과류는 김치와 궁합이 의외로 잘 맞는다. 치자가루도 근사하다. 혈액순환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치자를 선조들은 고춧가루 대신 썼다. 홍갓도 추천 재료. 나박김치나 동치미에 넣으면 보랏빛 국물이 보기에도 아리땁다. 김치만큼 겨울 사찰음식에 또 중요한 게 있다. 뿌리채소와 해초류다. 예전엔 봄여름에 거둬 말려뒀던 걸 썼지만, 요즘은 식재료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날 스님이 선보인 요리는 ‘파래 연근전’과 ‘버섯 된장 쌈밥’ ‘능이 부침’. 오래 묵힌 된장 간장을 써서 감칠맛을 돋우니 젓가락을 놓을 새가 없다. 긴긴 겨울밤, 후식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빈만찬에 선보였던 ‘송차(松茶)’와 ‘다식’이 대표적인 요리다. 3년 이상 솔잎을 숙성시킨 송차는 막힌 혈을 풀어주고, 측백나무 열매인 백자인(柏子仁)으로 만든 다식은 면역력 회복에 그만이다. 스님은 “채식주의자인 스리랑카 대통령 일행을 위해 기름진 메인요리의 콜레스테롤을 중화시켜 줄 음식으로 골랐다”며 “양국 정상이 크게 만족했다며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열반경(涅槃經)을 보면 중생들이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데 부처님은 엉뚱하게 ‘뭘 먹고 사느냐’고만 물어보시죠. 왜인 줄 아세요? 좋은 음식을 먹어야 심신도 맑아지니까요. 딴 거 없습니다. 건강한 땅에서 키운 제철음식을 먹으면 됩니다. 하나 더,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옛 어른은 콩 심을 때 한 구멍에 세 알을 넣었어요. ‘하나는 벌레, 하나는 새, 하나는 사람’을 위해. 음식엔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깊은 성찰이 담겨 있죠. 겨울 사찰음식은 그런 조화를 첫째 덕목으로 칩니다.” 용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보고서가 이렇게 짠해도 되는 걸까. 부제가 ‘한국의 자영업자 보고서’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자영업자(自營業者)를 다뤘다. 한자어로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 꽤 근사하게 들리지만, 저자들은 영어 표현이자 책 제목인 ‘self employed’가 한국 자영업자를 훨씬 적확하게 표현한다고 봤다. 집필에 참여한 학자들에 따르면 무급 가족 종사자까지 약 669만 명에 이르는 한국의 자영업자는 대부분 영세하고 위태롭기 때문이다. 당장 임금 근로자는 안 힘드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자영업자를 둘러싼 지표는 심각한 경고음을 울린 지 오래다. 지난해 기준 자영업자 평균소득은 임금 근로자의 약 60%밖에 되질 않는다. 1인당 빚도 더 많고, 노동시간도 더 길며, 갈수록 50대 이상 고령이 늘고 있다. 게다가 이미 알다시피 창업을 했다가도 2년 안에 40%가, 5년 안엔 70%가 폐업한다. 그런데도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3만6000여 개)보다 남한 땅의 ‘치킨 집’이 더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북쪽의 도발에 익숙해져버렸듯 ‘그게 어디 어제오늘 일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은 되묻는다. “자영업 문제는 한국 사회의 많은 모순이 집약된 축소판이다. 우리는 계속 이렇게 악순환을 거듭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너무나 얽히고설킨 난제라도 풀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뻔한 얘기지만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다시 세우고,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정비한다면 불가능은 없다. 그게 이 책이 지금 등장한 이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한국교회 안엔 교회공동체를 사유화해서 개인이 소유하려는 욕망에 휩싸인 이들이 존재합니다. 복음의 정신을 온전히 되살리는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운동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임 총무로 선임된 이홍정 목사(61)는 최근 일부 대형 교회의 세습에 대해 “자기우상화의 길을 가는 퇴행적 교권정치 문화”라고 비판했다. 이 목사는 “지난달 20일 취임 첫날부터 바로 회의가 열리는 등 무척 바쁘다”며 “교회 안팎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한 만큼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이 목사는 시종일관 차분하면서도 왠지 모를 결기가 느껴졌다. 그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내면에 일으킨 두려움의 소용돌이를 온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며 “‘두 개의 십자가’를 짊어진 기분”이라고 신임 총무로 선임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친누님이 왜 굳이 스스로 자꾸 고난의 길을 가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이 목사가 말한 심각한 상황이란 두 개의 십자가와도 직결된다. 첫째, 분단과 냉전의 문화를 극복하는 민족공동체의 치유와 화해를 일컫는다. 둘째, 최근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한국교회의 갱신과 변혁이다. 이 목사는 “명약관화한 경고음이 지속적으로 들리는데도 돈과 권력과 명예에 대한 탐욕을 제어하지 못한 채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총무를 맡았다고 지금까지 NCCK가 걸어온 길에서 크게 벗어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지역교회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미래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 훈련을 강화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려 합니다. 또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동북아시아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연대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 목사는 젊은 시절 5·18민주화운동이 인생을 바꾸는 큰 전환점이었다. 당시 그는 광주에서 ROTC(학군사관) 교육을 받다가 시민들이 잡혀와 고초를 겪는 광경을 직접 봤다. 이 목사는 “군인 신분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당시의 내적 고통이 이후 사회운동에 헌신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후 비무장지대 수색대 소대장으로 복무한 경험도 한반도 평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100여 년 만의 귀향.’ 타향에 머물던 보물급 문화재 1점이 최소 한 세기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선 후기 대표적 고승인 묵암 대사(1717∼1790)의 초상화 ‘묵암당 진영(默菴堂 眞影)’이 본가인 전남 순천시 송광사로 전격 환수됐다. 송광사 성보박물관(관장 고경 스님)은 3일 “일본 개인 소장자가 갖고 있던 묵암당 진영을 오랜 협의 끝에 송광사로 모셔오기로 결정했다”며 “묵암 스님이 입적하기 직전에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송광사는 물론이고 한국 불교 전체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밝혔다. 묵암 최눌(默菴 最訥)은 한국의 삼보(三寶) 사찰인 송광사에서도 손꼽히는 학승으로 화엄학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다. 임진왜란 때 서산 대사(1520∼1604)와 함께 송광사를 지켰던 부휴 대사(1543∼1615)의 적통으로 불교 해설서 ‘제경회요(諸經會要·동국대도서관 소장)’, 시문집 ‘묵암집(默庵集·규장각 소장)’ 등 다수의 문헌을 남겼다. 묵암을 기리는 비와 부도는 지금도 송광사에 남아 있다. 이번에 환수된 묵암당 진영은 지긋한 노승의 풍모가 역력한 것으로 미뤄볼 때 스님의 말년인 1780년대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고경 스님은 “많은 후학의 존경을 받았던 묵암 대사가 입적하셨을 당시 법구를 모신 송광사 부속 암자인 보조암(普照庵)에 스님의 초상화를 내걸었다는 사료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언제 송광사에서 자취를 감춘 것일까.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질 않아 확실하진 않으나, 가장 짧게 잡아도 1910년대로 추정된다. 송광사 측은 “일제강점기 직전에 송광사는 조국을 되찾으려는 의병 활동을 지원하는 근거지로 유명했다”며 “당시 일본 헌병의 습격으로 사찰 건물이 파손되고 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했는데 이때 함께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묵암당 진영은 1920년대 일본 교토박물관의 한 전시회에서 ‘조선 승려의 초상화’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어, 이전에 일본으로 넘어간 건 분명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묵암당 진영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데다 불교 회화적 측면에서도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문화재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 시대 승려 초상화는 대부분 19세기 것으로, 18세기에 그려진 작품 자체가 희귀하다. 게다가 이 그림은 묵암 대사를 눈앞에서 마주한 듯 정밀하고 섬세하다. 정우택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표정은 물론이고 신체 비례가 자연스럽고 배경 곳곳에 금니(金泥·금가루 채색)를 적절히 사용했다”며 “실재감이 뚜렷하고 그림 테두리마저 세련되게 묘사한 보기 드문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상단에 세로로 드리운 띠 ‘풍대(風帶)’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선의 불교 회화에서 이런 장식은 주로 부처나 보살을 그릴 때만 나타난다. 김민영 불교학자는 “현존하는 스님 진영에서는 전례를 찾을 수 없다”며 “묵암 대사가 당대에 얼마나 존경받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송광사는 조만간 10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묵암당 진영을 모시는 대규모 봉헌법회를 열 계획이다. 고경 스님은 “어렵사리 스님을 다시 모시게 된 만큼 정성을 다해 다양한 행사로 뜻을 기리겠다”고 말했다. 한편 묵암당 진영은 8일까지 열리는 동국대박물관 특별전 ‘나한’에서 일반 관객도 직접 볼 수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의 낙태 관련 발언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던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29일 천주교 인사들을 만나 고개를 숙였다. 조 수석과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4시 천주교 수원교구청을 찾아 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생명윤리위 총무를 맡고 있는 이동익 서울대교구 공항동성당 주임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인 지영현 신부와 만났다. 낙태죄 폐지 청원 답변 과정에서 불거진 교황 발언 왜곡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조 수석은 청와대 청원 답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천주교주교회의 측은 “교황이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천주교가) 오해하지 않도록 잘 설명하라”고 조 수석에게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다. 면담 이후 박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생명 존중이라는 천주교회의 입장을 겸허하게 청취했다. 청와대의 청원 답변 내용 중 외국 언론 기사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음을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청와대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인 ‘청가회’ 회장이다. 이동익 신부도 “이 주교께서 ‘교황 발언은 전체 맥락을 잘 살펴야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하자 조 수석이 ‘의견을 압축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천주교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며 공식적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신부는 또 “청와대는 천주교가 우려하는 어떤 의도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약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충분한 교감을 이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청와대 안팎에서는 조 수석의 연이은 ‘설화’를 우려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 수석은 20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관련 당정청 회의에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공수처 설치가 시급하지 않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발언을 해 여당 지도부가 대신 진화하기도 했다. 낙태 관련 발언 파문도 박 대변인이 당사자인 조 수석을 대신해 수습에 앞장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 수석의 정무 감각에 대해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한편 천주교 측은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 명 서명 운동’은 이번 면담과 상관없이 계획대로 진행할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신부는 “먼저 천주교 차원에서 시작한 다음에 다음 달부터는 일반 시민들도 동참하는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산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한상준 alwaysj@donga.com / 수원=정양환 기자}
다음 달이면 거리엔 또다시 정겨운 풍경이 찾아온다. 한국구세군은 최근 “다음 달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모금활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따스한 빨간 냄비와 그 곁을 지키는 종소리. 부모라면 한 번쯤 아이의 고사리손에 돈을 쥐여준 기억도 날 터. ‘함께 나누기에’ 더 깊게 가슴에 남는다. 지난해 모금액을 보면 올해도 기대가 크다. 총 77억4000만 원이 모였는데, 2015년보다 5억1000만 원이나 증가했다. 당시 탄핵 정국으로 사회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떠올려 보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어려울수록 돕고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선냄비의 정신이니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살짝 아쉬운 면도 있다. 거리 모금은 다소 줄었고, 기업 모금액이 늘어난 결과란다. 부진한 실적 탓에 신용카드로 기부하던 ‘디지털 자선냄비’도 지난해 운영이 중지됐다는데…. 189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된 자선냄비는 진짜 수프를 끓이던 솥을 내걸었다. 이웃의 영혼을 데울 불쏘시개는 서로의 관심과 행동뿐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엄마도 꿈이 많았죠. 한땐 예쁘고 젊었죠./우리가 뺏어 버렸죠. 엄만 후회가 없대요./엄마는 아직 몰라요. 시간이 이제 없단 걸/말해줄 수가 없어서, 우린 거짓 희망만 주네요.’ 망했다. 추천받을 때 “조심하라”는 경고를 들었건만. 야근 마친 까만 밤, 한적한 버스 안이라 방심했던 걸까. 귓가를 꼬집던 노래가 세차게 목구멍을 때린다. 제발 앞자리 학생이 눈치 채지 말았으면. 엄지로 꾹꾹, 눈두덩을 마구 눌러댔다. 추태 고백은 그만. 이건 이젠 옛날 가수가 되어 버린, 한 밴드가 내놓은 ‘뻔한’ 발라드에 대한 이야기다. 분명히 얘기한다. 공일오비(015B)는 한물갔다. 1990년대 얼마나 쩌렁쩌렁 했는지 아무 상관없다. 14일 신곡을 발표했는데, 차트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제목도 이게 뭔가. ‘엄마가 많이 아파요’라니. 게다가 윤종신이 불렀다. 그들의 데뷔 곡 ‘텅 빈 거리에서’(1990년)처럼. 시대착오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멜로디나 코드 진행이 상투적입니다. 딱 ‘그 시절’풍이에요. 생활 밀착형 가사도 당대야 신선했지만…. 그런데 왜 이 곡이 사람을 미치게 하냐고요? 그건, 뮤지션의 ‘진정성’이 담겼기 때문이겠죠. 형식이나 스타일만 갖고는 설명하기 힘든.”(대중음악평론가 A 씨) 실은 ‘엄마가…’는 015B가 돌아가신 엄마에게 바친 곡이다. 멤버인 장호일은 한 인터뷰에서 “2013년 겨울 갑작스레 불치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나셨다”며 “처음부터 오랜 벗인 윤종신이 불러주길 바랐지만 그의 어머니도 몸이 편찮으셔 한참 망설였다”고 털어놨다. 그래서인가. 인터넷엔 윤종신이 콘서트에서 노래하다 목이 메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그 울컥함을 뉘라서 탓할까. 혹 찾아볼 요량이면, 꼭 사람 없는 데서 보길. 18일 끝난 KBS2 ‘고백부부’도 그랬다. 이 드라마, 무지하게 전형적이다. 과거로 돌아간단 설정도, 소중한 가족이란 주제도 식상했다. 그런데 돌아가신 엄마와 만나는 대목에서 무장해제가 돼버린다. 마지막 회. “부모 없인 살아져도 자식 없인 못 살아.” 딸과 헤어지는 엄마(김미경)의 한마디. 묵직하다 못해 버거운. 그날 낮, 목포에선 세월호 마지막 영결식이 열렸다. 솔직히 이런 코드, ‘뇌’로는 싫어한다. 모성애는 생물진화에서 종족보존의 본능일 뿐이라 되뇌어 본다. 엄마의 희생이라 떠받들며 여성성을 짓누르는 잣대도 못마땅하다. 갈수록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기댈 유일한 언덕은 사적 안전망인 가족”(김희경의 책 ‘이상한 정상 가족’)일지도. 그렇건 말건, 21세기에도 엄마란 키워드가 주야장천 먹히는 게 개운치는 않다. 하지만 심장은 뇌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줄 안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다. 부모는 부모다. 로런스 그로스버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대중음악의 주요 기능은 수용자를 ‘정서(affect)의 공간’으로 불러오는 것”이라며 “정서는 삶의 느낌이라 설명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된다”고 했다. 015B는 한탄한다. “언젠간 잘해 줘야지 그렇게 미뤄만 두다가, 이렇게 헤어질 시간이 빨리 올 줄 몰랐다”고. 어쩜 뻔한 것이야말로 우리네 인생을 가장 적확히 꿰뚫는 건 아닐는지. 스산해서 남루할지라도. 또 그리 똑 닮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온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국내에 인도 아헹가 요가를 전파해 온 현천 스님이 현대인의 건강과 치유를 위한 책 ‘요가와 스포츠’(선요가)를 펴냈다. 아헹가 요가란 ‘현대 요가의 창시자’라 불리는 인도의 B K S 아헹가(1918∼2014)가 만든 요가 수련법이다. 아헹가는 수천 년 이어져온 요가를 체계적으로 정립해 세계적 요가 열풍을 일으켰다. 현천 스님은 현지에서 아헹가를 모시고 3년 이상 수련하며 최고급 단계까지 마친 직계 제자다. ‘요가와 스포츠’는 아헹가가 생전 스포츠 선수 등에게 요긴한 요가법을 정리한 것을 현천 스님이 번역했다. 현천 스님은 “요가는 호흡과 명상 등 8단계로 이뤄지는데 대중에겐 3단계인 ‘자세’만 알려지며 다이어트 운동으로 오해받고 있다”며 “자세만 잘못 따라 하다간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요가센터를 운영하는 현천 스님은 5년 전부터 대구 지역 중고교생에게도 무료 요가 강습을 진행하고 있다. 스님은 “입시교육에 고통받는 한국 청소년에게 요가는 심신 안정과 자세 교정을 위한 최고의 운동”이라고 권했다. 현천 스님은 향후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가 자세를 소개하는 ‘현대인을 위한 요가’ 개정판도 출간할 예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물질에 치우쳐 정신문명이 쇠퇴해가는 것을 막는 범국민의식 개혁운동을 벌여나가겠습니다.” 이정희 천도교 교령(72·사진)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다음 달 1일 현도기념일을 앞두고 한국 사회에 보국안민(輔國安民) 정신을 고취시키는 ‘대도 중흥 비전 21’을 발표했다. 현도기념일이란 제3대 교조인 손병희(1861∼1922)가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날을 일컫는다. 이 교령은 또 “이러한 대도 중흥을 실천적으로 한국 사회에 전파하기 위해 ‘인내천운동연합’도 출범한다”고 밝혔다. 대도 중흥이란 ‘천도교 한울님의 뜻을 이어 근본을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천도교는 설명했다. 이를 위해 △동학문화센터 개관 △천도교중앙도서관 설립 △청년·여성 포교활동 활성화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 올해 일본 고베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지부를 설립한 천도교는 향후 중국과 유럽 등으로 지부를 확충할 방침이다. 이 교령은 “천도교는 동학 때부터 이 땅의 정신문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며 “인간과 세상이 더불어 잘살고자 하는 천도교 사상을 세계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연을 맺지 않았다면 그저 ‘뻔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NCCK를 통해 세상을 배웠고, 또 그를 바탕으로 한국 교회를 다시 살필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이룬 것보다 얻은 게 더 많네요.” 개신교 교단협의체인 NCCK의 총무를 맡아 7년 동안 이끈 김영주 목사(65)가 20일 퇴임한다. 김 목사는 1989년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30년 가까이 NCCK에 몸담아왔다. 소회가 남다를 법도 하건만 “훌륭한 후임 총무(이홍정 목사)가 더욱더 한국 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줄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굳이 성과를 따지자면 내외부적으로 ‘열린’ 활동을 한 점을 꼽겠습니다. 기존 교단과 색깔이 다른 정교회와 루터교가 NCCK로 들어왔고, 소수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청년·여성 대표 부회장 자리도 마련했죠. 외부적으로도 이웃 종교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남북나눔운동’도 이끌었죠. 특히 나눔운동은 ‘열린 진보와 열린 보수의 결합’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최근 일부 개신교 대형교회의 행보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김 목사는 “명성교회 부자세습은 교회가 지녀야 할 최고의 가치인 공공성과 도덕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모습”이라며 비난했다.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종교는 사회봉사의 책무가 있는데, 교회를 사적 조직처럼 여기고 불투명한 운영을 고수한다면 결국 국민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도 표시했다. “얼마 전까지도 민간·종교 차원에서 ‘3·1절 100주년 공동행사’나 ‘남북 세계 콘퍼런스’ 같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북한과 공유하며 추진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막혀 버렸어요. 정부 간 대화가 막히더라도 민간 쪽 통로는 끊이지 않아야 하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물꼬를 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김 목사는 지난달 물러난 자승 전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교지도자가 나서는 ‘남북평화포럼’(가칭) 같은 기구 창설도 고민하고 있다. 김 목사는 “더 많이 공부하고 협의해서 남북문제는 물론 한국 사회에 보탬이 되는 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 다음 날인 21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순국 100주년을 맞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은 ‘성명회(聲明會) 선언서’ 원본과 함께 당시 성명회와 연관된 귀중한 해외사료 2점도 새롭게 발굴됐다. 근대사다큐멘터리 제작사 ‘더채널’의 김광만 PD는 13일 “조선총독부가 명치44년(1911년) 작성한 비밀보고서인 ‘재외선인에 관한 상황조사표’를 일본 도쿄 외무성 자료실에서, 1910년 러시아의 ‘조선인 추방에 대한 헌병경찰대장의 결정문’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역사문서보관소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재외선인…’은 1911년 4월 일제 내무성이 당시 외무성 정무국장인 구라치 데쓰기치(倉知鐵吉)에게 보낸 기밀문서다. 구라치는 안중근 의사(1879∼1910)의 하얼빈 의거 조사를 맡아 안 의사를 사형에 이르도록 총지휘한 장본인이다. 이 문서는 한마디로 일제의 ‘블랙리스트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성명회 선언서 직후 연해주를 중심으로 해외 각지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 800여 명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했다. 개인 호구조사는 물론이고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세세하게 적시했다. 특히 이상설과 유인석 김학만 등 성명회 관련 인사의 설명은 매우 자세하다. 이상설을 예로 들면, 생김새나 최근 활동까지 꼼꼼히 적시했다. ‘키 5척4촌(약 162cm), 얼굴 길고 단발. 1909년 7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왔음. 조선인 밀집 거주지인 개척리에서 배일(排日) 연설을 자주 함. 1910년 8월 23일 한민학교에서 병합에 대한 과격한 연설. 집에 배일 인사가 식객으로 상당수 머물고 있음.’ 보고서가 성명회 조직만큼 공들인 또 하나는 안중근 의사 관련 인물이었다. 언급된 인물만 60명이 넘는다. 무엇보다 안 의사 주도로 1909년 손가락을 끊어 피로 맹세한 ‘단지동맹(斷指同盟)’에 대한 내용이 놀랍다. 그동안 12명이 참여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문서에선 35명이나 거론되고 있다. 안 의사 재판에 통역을 맡았다는 한기동이나 동행친구 이춘길, 안 의사가 실패할 경우 거사에 나설 예정이라는 한종호, 안 의사에게 총알을 제공한 윤치종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도 등장한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성명회 선언서 이후 일제는 즉각 해외 독립운동에 대한 조직적 탄압에 들어갔다”며 “결국 이로 인해 연해주 한인들은 불모지로 강제 이주당하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러시아 기밀문서는 이 같은 정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1910년 11월 당시 헌병경찰대장인 R. P. 셰르바코프 명의로 작성된 문서는 연해주 한인을 바이칼호 서쪽 도시인 이르쿠츠크로 강제 추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선언서에 서명한 한인 가운데 2324명 명단을 확보해 여기에 포함시켰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이상설을 비롯한 성명회 간부도 대거 체포해 이르쿠츠크에 유폐시켰다. 이상설은 이듬해 석방돼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다시 독립운동에 투신하지만 1917년 병을 얻어 48세의 나이에 순국했다.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는 “이상설 선생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서 성명회를 조직해 이념과 노선을 초월해 헌신했던 인물”이라며 “선언서와 일본, 러시아의 기밀문서를 보면 당시 선조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조국 독립에 헌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고 평했다.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