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강원도 속초에서 미시령 고개를 넘어갈 때 당당하게 서 있는 울산바위는 외설악의 상징이다.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거대한 설악의 봉우리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는 가운데 산줄기에서 불끈 솟아 있는 울산바위는 장쾌하기 그지없다. 북부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지역의 웅장한 바위산맥이 부럽지 않은 한국의 명소다. 요즘 MZ세대들이 열광하는 울산바위 찍기 좋은 핫플레이스 4곳을 찾아 강원도로 떠났다. ● 거대한 파도가 나를 덮치는 신선대 강원 인제군에서 속초시를 잇는 미시령터널을 빠져나가면 오른편으로 울산바위(해발 873m)가 웅장하게 서 있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있는 울산바위는 둘레만 4km에 이르고, 6개의 기암괴석 봉우리로 이뤄진 돌산이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에서 볼 수 있는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매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우람한 봉우리 위에 작은 바위들이 화려하게 수놓여 있어서 왕관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장쾌한 남성미뿐 아니라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까지 어우러져서 예술적 감동까지 느끼게 하는 자연의 위대한 작품이다. 울산바위를 감상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울산바위를 직접 올라가보는 것이다. 속초의 설악산 소공원에서 시작해 신흥사, 흔들바위를 지나 울산바위 정상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흔들바위부터 울산바위까지는 철제 계단으로 편도 1㎞ 거리임에도 1시간 정도 걸리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울산바위 동봉 정상에서 보면 대청, 중청봉과 천불동계곡, 화채능선이 펼쳐져 선경이 따로 없다. 울산바위를 오르면 주변 설악과 동해의 풍경을 볼 수 있지만, 막상 울산바위 전체를 조망하긴 힘들다. 울산바위를 감상하기보다는 체험하는 것에 가까운 코스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제대로 보려면 에펠탑에 오르기보다는, 맞은편 언덕인 트로카데로 광장이나 몽파트나스 타워 전망대로 가야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요즘 MZ세대들이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으려 오르는 봉우리는 따로 있다. 바로 금강산 화암사에서 올라가는 신선대(성인대)다. 지난 주말 속초에 살고 있는 지인과 함께 ‘금강산 화암사 숲길’을 찾았다. 그는 “화암사에서 올라갈 수 있는 신선대는 해발 645m로 설악산에서는 낮은 봉우리에 속하지만 울산바위 조망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귀띔해주었다. 화암사 입구 찻집 앞에서 등산화에 아이젠을 신는다. 이곳에서 신선대(1.2km)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은 등산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숲길을 오르다 보니 중간 즈음에 ‘수암(穗巖)’이라는 바위를 만난다. 바위 모양이 벼 낟가리를 쌓아놓은 모습이라 ‘쌀바위’라고 불리는 바위다. 바위를 두드리면 쌀을 보시한다는 쌀바위 덕분에 이 절의 이름이 ‘화암사(禾巖寺)’가 됐다고 한다. 이후 한참을 오르다 보니 신선대(성인대)에 도착한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전망이 탁 트이는 널찍한 암반이 나타난다. 낙타바위가 있는 이곳이 울산바위를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다. 설악산 달마봉부터 미시령 옛길, 신선봉, 동해바다와 속초 시내까지 360도의 전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신선대 낙타바위에서 마주 본 겨울의 울산바위는 산이 아니라 파도였다. 미시령에서 올려다봤던 울산바위는 육중한 병풍이나 성채 같았는데, 높은 곳에서 마주 보는 울산바위는 기운생동(氣韻生動), 살아 움직이는 파도였다. 설악에서 금강으로 이어지는 산맥의 물결 위로 갑자기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파도. 영화 ‘인터스텔라’나 ‘퍼펙트 스톰’에서 봤던 파도이자, 언젠가 태풍이 지나가는 포항 앞바다에서 직접 마주쳤던 하늘에서 덮쳐내리는 파도였다. MZ세대들이 인생샷 명소로 꼽는 곳이니만큼 보기만 해도 아찔한 바위 앞에서 과감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만난 등산객 황현주 씨는 “드라마틱한 바위산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신선대는 탁 트인 전망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서 자주 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보는 울산바위는 철마다 다르고, 날씨와 바람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다”며 “아무리 피곤해도 한걸음에 달려오면 피로가 풀리고 기운과 힘,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호수에서, 카페에서 감상하는 울산바위 울산바위 오른쪽 미시령 고개 너머에 솟은 봉우리는 신선봉이다. 금강산 1만2000봉의 남쪽 제1봉인 산이다. 신선봉에 살고 있는 성인이 양간지풍(襄杆之風)을 일으킨다고 전해진다. ‘속초 바람’ ‘미시령 바람’이라고 불리는 양간지풍은 봄철 동해안의 산불을 일으키는 바람으로 유명하다. 울산바위의 틈새 구멍에서 양간지풍이 불 때마다 바위가 큰 소리로 울어 ‘울산’ 바위로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울산바위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유명한 스토리도 있다. 조물주가 전국의 유명한 바위를 모아 금강산을 만들 때 울산바위도 금강산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울산을 떠나 설악산을 지날 즈음 1만2000봉이 모두 채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런데 설악산 유람을 나섰던 울산의 원님이 찾아와 “울산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이니, 신흥사에서 울산바위를 차지한 대가로 세금을 내라”고 했다. 주지스님이 돈이 없어 걱정하자 동자승이 나섰다. “세금을 낼 돈이 없으니, 바위를 울산으로 옮겨 가세요.” 한 방 맞은 울산의 원님은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맞섰다. 동자승은 속초의 영랑호와 청초호 사이에 자라는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에 둘러놓은 다음 불을 놓아 재로 꼰 새끼를 만들었다고 한다. 동자승의 지혜로 양민을 수탈하는 관리의 횡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이 때문에 울산바위 아래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동네 이름이 ‘묶을 속(束)’ ‘풀 초(草)’자의 ‘속초’가 됐다고 전해진다. 속초의 아름다운 석호(潟湖)인 영랑호는 울산바위를 감상할 수 있는 세 번째 포인트다. 영랑호의 맑은 물 위로 비친 울산바위와 설악의 능선은 알프스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최근엔 영랑호 호수 위로 ‘뜬다리’(부교)가 놓여 울산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사진촬영 포인트가 되고 있다. 울산바위를 즐기는 네 번째 방법은 미시령 터널 부근에 있는 고성 소노펠리체 델피노 10층에 있는 카페 ‘더 엠브로시아’다. 울산바위 설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전면의 대형 유리창 앞 자리를 맡기 위해 오전 8시 카페 문을 열면 오픈런이 벌어진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울산바위 6개의 봉우리 모양으로 조각된 디저트 ‘울산바위 오렌지 판나코타’. 크림, 설탕, 우유를 젤라틴과 섞어 시원하게 먹는 이탈리아 후식인 판나코타와 함께 곁들이는 ‘솔방울 라떼’는 설악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가볼 만한 곳 속초 청초호에 있는 칠성조선소는 동해안의 고기잡이배를 만들던 소형 선박 조선소였다. 요즘처럼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배의 모양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목수가 직접 손으로 나무를 깎고, 휘고, 다듬어서 배를 제조하는 공장이었다. 1952년 원산조선소로 시작해 2017년까지도 배를 만들고 수리를 했던 곳이다. 입구에는 조선소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고, 배를 진수시키는 레일이 놓여 있는 야외 작업장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조선소로 쓰이던 천장 높은 컨테이너 작업장은 복층 카페 건물이 됐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속초항과 청초호의 풍경은 색다른 맛이다. 커피에 곁들이는 소금버터빵이 인기 메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MZ세대 사로잡은 울산바위 강원 속초에서 미시령 고개를 넘어갈 때 당당하게 서 있는 울산바위는 외설악의 상징이다. 공룡의 등줄기를 닮은 거대한 설악의 봉우리들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는 가운데 산줄기에서 불끈 솟아 있는 울산바위는 장쾌하기 그지없다. 북부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지역의 웅장한 바위산맥이 부럽지 않은 한국의 명소다. 요즘 MZ세대들이 열광하는 울산바위 사진을 찍기 좋은 핫플레이스 4곳을 찾아 강원도로 떠났다. ● 거대한 파도가 나를 덮치는 신선대 강원 인제군에서 속초시를 잇는 미시령터널을 빠져나가면 오른편으로 울산바위(해발 873m)가 웅장하게 서 있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있는 울산바위는 둘레가 4km에 이르고, 6개의 기암괴석 봉우리로 이뤄진 돌산이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에서 볼 수 있는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매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우람한 봉우리 위에 작은 바위들이 화려하게 수놓여 있어서 왕관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장쾌한 남성미뿐 아니라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등이 어우러져서 예술적 감동까지 느끼게 하는 자연의 위대한 작품이다. 울산바위를 감상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울산바위를 직접 올라가 보는 것이다. 속초의 설악산 소공원에서 시작해 신흥사, 흔들바위를 지나 울산바위 정상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흔들바위부터 울산바위까지는 철제 계단으로 편도 1km 거리임에도 1시간 정도 걸리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울산바위 동봉 정상에서 보면 대청, 중청봉과 천불동계곡, 화채능선이 펼쳐져 선경이 따로 없다. 울산바위를 오르면 주변 설악과 동해의 풍경을 볼 수 있지만, 막상 울산바위 전체를 조망하긴 힘들다. 울산바위를 감상하기보다는 체험하는 것에 가까운 코스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제대로 보려면 에펠탑에 오르기보다는 맞은편 언덕인 트로카데로 광장이나 몽파르나스 타워 전망대로 가야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요즘 MZ세대들이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으려 오르는 봉우리는 따로 있다. 바로 금강산 화암사에서 올라가는 신선대(성인대)다. 지난 주말 속초에 살고 있는 지인과 함께 ‘금강산 화암사 숲길’을 찾았다. 그는 “화암사에서 올라갈 수 있는 신선대는 해발 645m로 설악산에서는 낮은 봉우리에 속하지만 울산바위 조망에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귀띔해 주었다. 화암사 입구 찻집 앞에서 등산화에 아이젠을 신는다. 이곳에서 신선대(1.2km)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은 등산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 숲길을 오르다 보니 중간 즈음에 ‘수암(穗巖)’이라는 바위를 만난다. 바위 모양이 벼 낟가리를 쌓아놓은 모습이라 ‘쌀바위’라고 불리는 바위다. 바위를 두드리면 쌀을 보시한다는 쌀바위 덕분에 이 절의 이름이 ‘화암사(禾巖寺)’가 됐다고 한다. 이후 한참을 오르다 보니 신선대(성인대)에 도착한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전망이 탁 트이는 널찍한 암반이 나타난다. 낙타바위가 있는 이곳이 울산바위를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다. 설악산 달마봉부터 미시령 옛길, 신선봉, 동해바다와 속초 시내까지 360도의 전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신선대 낙타바위에서 마주 본 겨울의 울산바위는 산이 아니라 파도였다. 미시령에서 올려다봤던 울산바위는 육중한 병풍이나 성채 같았는데, 높은 곳에서 마주 보는 울산바위는 기운생동(氣韻生動), 살아 움직이는 파도였다. 설악에서 금강으로 이어지는 산맥의 물결 위로 갑자기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파도. 영화 ‘인터스텔라’나 ‘퍼펙트 스톰’에서 봤던 파도이자, 언젠가 태풍이 지나가는 경북 포항 앞바다에서 직접 마주쳤던 하늘에서 덮쳐내리는 파도였다. MZ세대들이 인생샷 명소로 꼽는 곳이니만큼 보기만 해도 아찔한 바위 앞에서 과감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만난 등산객 황현주 씨는 “드라마틱한 바위산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신선대는 탁 트인 전망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서 자주 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보는 울산바위는 철마다 다르고, 날씨와 바람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다”며 “아무리 피곤해도 한걸음에 달려오면 피로가 풀리고 기운과 힘,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호수에서, 카페에서 감상하는 울산바위 울산바위 오른쪽 미시령 고개 너머에 솟은 봉우리는 신선봉이다. 금강산 1만2000봉의 남쪽 제1봉인 산이다. 신선봉에 살고 있는 성인이 양간지풍(襄杆之風)을 일으킨다고 전해진다. ‘속초 바람’ ‘미시령 바람’이라고 불리는 양간지풍은 봄철 동해안의 산불을 일으키는 바람으로 유명하다. 울산바위의 틈새 구멍에서 양간지풍이 불 때마다 바위가 큰 소리로 울어 ‘울산’ 바위로 불렸다는 전설이 있다. 울산바위 이름에 대해서는 다른 유명한 스토리도 있다. 조물주가 전국의 유명한 바위를 모아 금강산을 만들 때 울산바위도 금강산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울산을 떠나 설악산을 지날 즈음 1만2000봉이 모두 채워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그런데 설악산 유람을 나섰던 울산의 원님이 찾아와 “울산바위는 울산 고을의 소유이니, 신흥사에서 울산바위를 차지한 대가로 세금을 내라”고 했다. 주지스님이 돈이 없어 걱정하자 동자승이 나섰다. “세금을 낼 돈이 없으니, 바위를 울산으로 옮겨 가세요.” 한 방 맞은 울산의 원님은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맞섰다. 동자승은 속초의 영랑호와 청초호 사이에 자라는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에 둘러놓은 다음 불을 놓아 재로 꼰 새끼를 만들었다고 한다. 동자승의 지혜로 양민을 수탈하는 관리의 횡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이 때문에 울산바위 아래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동네 이름이 ‘묶을 속(束)’ ‘풀 초(草)’자의 ‘속초’가 됐다고 전해진다. 속초의 아름다운 석호(潟湖)인 영랑호는 울산바위를 감상할 수 있는 세 번째 포인트다. 영랑호의 맑은 물 위로 비친 울산바위와 설악의 능선은 알프스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최근엔 영랑호 호수 위로 ‘뜬다리’(부교)가 놓여 울산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사진촬영 포인트가 되고 있다. 울산바위를 즐기는 네 번째 방법은 미시령터널 부근에 있는 고성 소노펠리체 델피노 10층에 있는 카페 ‘더 엠브로시아’다. 울산바위 설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전면의 대형 유리창 앞 자리를 맡기 위해 오전 8시 카페 문을 열면 오픈런이 벌어진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울산바위 6개의 봉우리 모양으로 조각된 디저트 ‘울산바위 오렌지 판나코타’. 크림, 설탕, 우유를 젤라틴과 섞어 시원하게 먹는 이탈리아 후식인 판나코타와 함께 곁들이는 ‘솔방울 라떼’는 설악의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해준다. ● 가볼 만한 곳 속초 청초호에 있는 칠성조선소는 동해안의 고기잡이배를 만들던 소형 선박 조선소였다. 요즘처럼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배의 모양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목수가 직접 손으로 나무를 깎고, 휘고, 다듬어서 배를 제조하는 공장이었다. 1952년 원산조선소로 시작해 2017년까지도 배를 만들고 수리를 했던 곳이다. 입구에는 조선소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고, 배를 진수시키는 레일이 놓여 있는 야외 작업장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조선소로 쓰이던 천장 높은 컨테이너 작업장은 복층 카페 건물이 됐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속초항과 청초호의 풍경은 색다른 맛이다. 커피에 곁들이는 소금버터빵이 인기 메뉴다.글·사진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명태는 말려서 북어가 돼도 눈이 굉장히 맑아요. 그래서 명태에 ‘밝을 명(明)’자가 들어가는지도 모릅니다. 명태에 흰색 명주실을 감아놓은 형태 자체만으로도 정말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릴 적 가게 문 위에 걸려 있던 ‘흰색 명주실을 감은 명태’를 아트 상품으로 만든 정연중 디자인스튜디오 ‘버금’ 대표(사진). 그는 우리 고유의 정신과 멋이 담긴 문화재를 아트 상품으로 개발하는 디자인 전문가다.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금제 유물, 국립고궁박물관의 일월오봉도, 프랑스가 반환한 ‘조선왕조의궤’ 등을 모티브로 한 예술상품을 만들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특히 정조의 화성행차 행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길이 5m의 족자 상품은 500세트가 순식간에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가 지난해 리움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선보였던 새로운 아트 상품은 바로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은 ‘명주실 북어’다. 집이나 사무실을 이사할 때, 차를 새로 샀을 때 복을 빌고, 액운을 막는 의미로 걸어두던 민속이다. 그는 명주실을 감은 북어를 직접 디지털로 조각해 3차원(3D) 프린터로 만들어 레드, 블루, 골드, 그린, 화이트 등 다채로운 색깔의 상품으로 만들고, 자석을 붙여 아파트 문이나 냉장고에 붙일 수 있도록 했다. ‘굿럭피쉬/명태’라고 이름 붙인 이 아트상품은 지난가을 리움미술관 아트숍과 공예트렌드페어에서 3000여 개가 팔렸고, 올 초 카카오메이커스에서 5000개가 팔리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은 꼭 손을 흔드는 고양이 인형을 사옵니다. 한국을 상징하는 아트상품이 없을까 하다가 액을 막아주고, 복을 기원해주는 ‘명주실이 감긴 명태’를 생각하게 됐어요. 명태 자체를 선물하긴 어렵잖아요. 예쁜 물고기 모양의 아트상품으로 만드니 젊은층이 반응한 것 같아요. 집의 인테리어에 맞춰 선물용으로 다양한 색깔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 대표는 “고교 수학여행 때 경주 불국사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 기념품이 너무 조잡해 오히려 좋은 추억을 망쳤던 기억이 있다”며 “우리만의 스토리텔링과 철학, 예술성이 살아 있는 높은 퀄리티의 아트 상품을 개발해 한국관광에 대한 좋은 기억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선자령은 강원도를 영동과 영서로 나누는 대관령 북부에 있는 ‘바람의 언덕’이다. 동해에서 출발해 고개를 넘는 초속 6.7m 이상의 바람이 연중 내내 분다. 선자령은 해발 1157m로 높지만 옛 대관령휴게소(840m)에서 출발하면 완만해서 산책하듯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 서면 발왕산, 계방산, 오대산, 황병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동해 바다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눈 덮인 능선에 거대한 풍차 50여 기가 돌고 있는 모습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 기간 중 어린아이들이 가면을 쓰고 산마르코 광장을 걷고 있다. 12세기에 시작된 이 카니발은 이탈리아 최대 축제다. 매년 사순전 전날까지 10여 일 동안 열리는데, 올해는 2월 4일부터 21일까지 열린다. 카니발이 열리면 화려하게 치장한 보트들이 운하 위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고, 화려한 가장행렬과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코로나로 수년간 마스크를 껴야 했던 시민들이 진짜 마스크(가면)를 쓰고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동아일보는 광화문 네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동아일보 편집국 회의가 열리는 14층 회의실 창문에서 바라보면 북악산 아래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이 한 눈에 보인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북악산과 인왕산, 그 뒤로 보이는 북한산까지 온통 새하얗게 변하고, 광화문 광장에도 하얀 눈발이 흩날린다. 2000년에 동아일보 신사옥이 준공된 이래 광화문 광장의 풍경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명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곳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국가대표 축구팀 붉은악마 응원단들은 처음엔 동아일보 구사옥(현 일민미술관) 옥상에 있는 대형전광판이 마주 보이는 세종로 건너편 동화면세점 앞에서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축구 국가대표팀이 4강까지 진출하자 붉은 옷을 입은 응원단의 숫자는 점점 많아져 광화문부터 시청앞 광장까지 연일 가득 메웠던 것이다. 당시 이러한 장엄한 광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숨은 명소가 바로 동아일보 사옥이었다. 광화문부터 시청앞까지 가득메운 응원단들의 함성과 도약, 어깨를 걸고 추는 춤들이 지신밟기가 되어 광화문이 깨어났다. 그 때부터 광화문은 왕복 20차선의 차도가 아닌 ‘광화문 광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월드컵의 함성이 도로를 광장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후 히딩크 감독과 국가대표팀의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모습을 14층 회의실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 광화문 광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역동적인 정치적 공간이 됐다. 2009년 서거한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가 지나갔고, 광우병, 세월호, 촛불집회, 태극기 집회 등이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완공된 구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은 일제 총독부와 군사독재 시절 청와대를 마주보며 견제하기 위한 공간에 지어졌다. 실제로 구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이 사용하던 남자 화장실은 총독부(청와대)를 마주보고 있는 방향으로 소변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창문 밖으로 총독부를 바라보는 상태에서 소변을 보는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전설이 내려져왔다. 요즘 동아일보 사옥에서 광화문과 청와대를 바라보는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고, 광화문 광장이 대폭 확장돼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제 권력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걸어다니는 문화와 산책의 한 축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인왕산-북악산-청와대-경복궁-광화문-송현동으로 이어지는 도심의 산책 코스는 무궁무진한 역사와 문화가 숨쉬고 있는 답사길이자 최고의 핫 플레이스다. 광화문은 그 자체가 이질적 시간의 복합체다. 과거와 현재, 영광과 오욕, 지배와 피지배, 한국과 외국, 식민과 민족자주의 흔적이 공존하는 이 거리의 특징은 획일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화문의 대로변은 파리의 샹젤리제를 연상시키는 말쑥한 근대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로 안쪽으로 열 발짝만 들어가도 실타래처럼 얽힌 골목들을 만날 수 있다. 골목마다 다른 이력과 단골을 가진 밥집, 술집, 가게…. 광화문의 골목은 이 공간의 자유와 개성을 담보해 왔다. 외국의 구도심에 가면 광장 주변에 수많은 역사 유적과 건물, 시장이 서 있는 곳이 많다. 서울의 경우 자동차에 내주었던 도심이 점차 광장으로 회복하고, 산책로로 연결되고 있다. 올해 말 광화문 광장 북쪽 월대까지 복원되면, 광화문과 경복궁이 얼마나 더 가까워질지 기대가 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눈 덮인 겨울숲으로 가자.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송곳같은 칼바람에도 꼿꼿이 서서 버텨내는 겨울나무에는 눈꽃, 얼음꽃, 서리꽃이 피어난다. 상고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하늘은 바다처럼 푸르다. 나뭇가지에 맺힌 얼음꽃은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탈 보석이다. 강원도의 높은 산에서 ‘살아천년, 죽어천년’을 산다는 주목(朱木)과 하얀 눈밭에서 눈처럼 시린 은세계를 펼쳐내는 자작나무까지. 겨울산을 지키는 나무에게서 진정한 고독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자. 발왕산 천년주목숲길고산지대의 능선에는 다른 큰 나무를 볼 수 없다. 붉은색 줄기에 푸른 잎을 가진 주목만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이다. 주목은 우리나라에서 태백산,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자생한다. 한민족의 끈기와 인내를 상징하는 주목은 오래 살고 죽어도 잘 썩지 않는다. 말그대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사는 나무다. 주목은 왜 그렇게 높고 추운 산에서 더 잘 살아가는 것일까. 주목은 1년에 불과 몇cm 밖에 자라지 않아 성장이 느린 나무로 유명하다. 쑥쑥 자라는 나무와의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그늘에서 햇볕을 받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주목의 선택은 과감하게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혹독한 환경에서 자발적 고립과 무한한 인내를 선택한 것이다. 주목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강추위와 칼바람을 견뎌내며 천년을 살아간다. 푸른 하늘이 가까운 발왕산 정상이, 주목에게는 바로 블루오션이다. 강원 용평에 있는 발왕산(1458m)은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곳엔 천년주목숲길이 있다. 50주년을 맞은 용평리조트가 새롭게 이름을 바꾼 발왕산 모나파크(Monapa가)가 지난해 만든 숲길이다. 발왕산 정상부에 잘 보전된 주목 군락지를 발견한 모나파크는 수년간 산림청, 평창군과 협의해 주목을 한 그루도 베어내지 않고 생태를 살린 무장애 데크길(3.2km)을 조성했다. 케이블카를 타면 15분 만에 용평스키장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발왕산 정상에 있는 드래곤캐슬에 도착한다. 모나파크 스카이워크에 서면 선자령, 안반데기,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밖으로 나오면 발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눈꽃, 얼음꽃 요정이 살고 있는 상고대가 핀 나무들을 지나면 천년주목숲길이 나타난다. 오랜 세월 욕심을 버리고 내면을 비워서 그럴까. 천년을 넘게 산 주목들은 속이 텅 비었다. 참선의 나무, 고뇌의 주목, 왕발나무 주목….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명의 싹을 띄워온 나무들에게는 스토리텔링이 담긴 이름이 붙어 있다. ‘고해의 주목’은 나무 안에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텅빈 공간이 있다. 나무에 감싸여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서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컴컴한 나무 속 작은 구멍으로 한줄기 빛이 쏟아진다. 고해와 명상 끝에 얻을 수 있는 구원의 빛! 한 그루의 나무도 베지 않고 조성했다는 천년주목숲길은 걷다보면 데크길 위로 드리워진 나무들 때문에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누구나 자연 앞에 몸을 낮춰야 하는 ‘겸손의 나무’다. 오래된 주목의 텅빈 몸통에는 다른 나무의 생명이 싹트는 경우도 많다. 성인 세 명이 안아야 감쌀 수 있는 둘레 4.5m의 ‘어머니왕주목’의 몸통 한 가운데에는 마가목의 가지가 삐쭉하게 뻗어나와 있다. 마치 나무가 출산하고 있는 장면처럼 보인다. 어머니왕주목은 작은 마가목을 품에 안고 키운다. 인근에는 든든한 어깨로 발왕산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아버지왕주목’도 있다. 지혜를 상징하는 왕수리부엉이가 이 나무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니 더욱 신령스럽게 보인다. 발왕산 천년주목숲길은 발왕수(發王水) 가든에서 마무리된다. 발왕산의 순백의 눈이 스며든 맑은 석간수가 매일 410톤이나 쏟아지는 곳이다. 천연미네랄을 함유한 발왕수는 톡 쏘는 맛이나 쇠맛 없이 깔끔하고 시원한 물맛을 자랑한다. 모나파크에서는 발왕산 정기가 담긴 이 물로 발왕산 막걸리와 김치를 만든다. 발왕산에는 또다른 명품 겨울숲이 있다. 발왕산 애니포레에 있는 독일 가문비나무 숲이다. 애니포레는 울릉도에서 산나물이나 고로쇠물을 채취할 때 쓰는 작고 느린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간다. 이 곳은 1960년대 화전민들이 이주한 터에 심은 독일가문비나무가 국내 최대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쭉쭉 뻗은 독일가문비나무 숲에서는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온다. 발왕산의 기(氣)를 느끼며 걷다보면 호흡이 맑아지고 머리도 상쾌해진다. 날이 풀리면 독일가문비나무 숲 속에서는 요가 클래스도 열린다. 이 곳에는 알파카 농장도 있다. 남미가 원산지인 알파카는 푸들이나 비숑같은 반려견처럼 몽글몽글한 털이 있어 귀여움 그자체다. 속삭이는 자작나무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들어서면 마치 광활한 시베리아 설원에 온 듯한 이국적 풍경에 가슴이 설렌다.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었던 ‘닥터 지바고’ 영화에서 나오던 라라의 테마 음악이 들릴 듯하다. 연인인 라라가 자작나무 숲 사이로 썰매를 타고 떠나가던 모습을 바라보던 지바고의 눈빛도 떠오른다. 북유럽과 시베리아, 우리나라 함경도, 일본 홋카이도 등 추운 지방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뽀얀 수피가 아름다운 수종이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인제국유림관리소가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 1974~95년까지 41만 평에 69만 그루를 심어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자작나무숲에 가려면 주차장에서 내려 약 3,5km 임도를 걸어야 한다. 눈이 와 있는 요즘에는 등산화와 아이젠이 필수다. 입구에서 1시간 쯤 걸으니 자작나무 숲이 나타났다. 눈부신 수피가 뿜어내는 은(銀)세계. 하얀 눈밭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자작나무 군락의 첫 느낌은 포근함이었다. 숨어들기 좋은 숲이다. 자작나무의 수피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무늬들이 있다. 산모양, 호미모양, 달팽이 모양…. 처음엔 상처처럼 보였는데 나무의 입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불자 자작나무 숲에 있는 수백그루의 나무들이 입을 벌려 나지막히 속삭였다. 자작나무 숲에서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자작나무는 영하 20~30도의 혹한을 그리 두꺼워 보이지 않는 새하얀 나무 껍질 하나로 버틴다. 자작나무의 껍질을 손으로 만져보니 의외로 부드러웠다. 하얀 가루가 묻어날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자작나무는 보온을 위해 종이처럼 얇은 껍질을 겹겹이 입고 있다. 겨울 등산을 할 때 두꺼운 옷 한 벌보다는 얇은 옷 여러벌을 겹쳐 입는 것이 좋다는 법을 자작나무도 아는 것 같다. 자작나무는 얇은 껍질 사이에 풍부한 기름성분까지 넣어 나무의 근원인 부름켜(형성층)가 얼지 않도록 한다. 두께 0.1~0.2mm 남짓한 흰 껍질은 매끄럽고 잘 벗겨지므로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를 비롯해 서조도(瑞鳥圖) 등은 자작나무 종류의 껍질에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일까. 인제 자작나무 숲에는 방문객들이 자작나무 껍질에 낙서를 하거나, 껍질을 벗겨 훼손된 나무가 있었고, 이를 금지하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자작나무란 이름은 작위를 받은 귀족같은 풍모에 붙여진 이름인 줄 알았는데, 탈 때 ‘자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작나무 껍질은 기름기가 많아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가서 부엌 한 구석에 불쏘시개로 놓여 있던 나무였다. 결혼식 등 경사스러운 날에 불을 켜는 ‘화촉을 밝힌다’는 표현 또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그리고 감로(甘露) 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시인 백석(1912~1995)이 1938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하얀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을 담은 시 ‘백화(白樺)’를 썼다. ‘온통 자작나무다’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는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눈 덮인 겨울숲으로 가자.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송곳 같은 칼바람에도 꼿꼿이 서서 버텨내는 겨울나무에는 눈꽃, 얼음꽃, 서리꽃이 피어난다. 나뭇가지에 서리가 잔뜩 붙어 눈꽃을 이룬 상고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하늘은 바다처럼 푸르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얼음꽃은 크리스털 보석처럼 햇빛에 반짝반짝 빛난다. 강원도의 높은 산에서 ‘살아천년, 죽어천년’을 산다는 주목(朱木)과 하얀 눈처럼 시린 은(銀)세계를 펼쳐내는 자작나무까지. 겨울산을 지키는 나무에게서 절대 고독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았다.》 ●발왕산 천년주목숲길고산지대의 능선에는 커다란 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붉은색 줄기에 푸른 잎을 가진 주목만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이다. 주목은 우리나라에서 태백산,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자생한다. 한민족의 끈기와 인내를 상징하는 주목은 오래 살고 죽어도 잘 썩지 않는다. 말그대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사는 나무다. 주목은 왜 그렇게 높고 추운 산에서 더 잘 살아가는 것일까. 주목은 1년에 불과 몇 cm밖에 자라지 않아 성장이 느린 나무로 유명하다. 쑥쑥 자라는 나무와의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그늘에서 햇볕을 받지 못하면 죽을 운명이기에, 주목의 선택은 과감하게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따뜻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혹독한 환경에서 자발적 고립과 무한한 인내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주목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강추위와 칼바람을 견뎌내며 천년을 살아간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발왕산(1458m)은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곳엔 ‘천년주목숲길’이 있다. 50주년을 맞은 용평리조트가 새롭게 이름을 바꾼 발왕산 모나파크(Monapark)가 지난해 조성한 숲길이다. 이곳에서 잘 보전된 주목 군락지를 발견한 모나파크는 수년간 산림청, 평창군과 협의해 주목을 한 그루도 베어내지 않고 생태를 살린 무장애 덱길(3.2km)을 만들었다. 케이블카를 타면 15분 만에 용평스키장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발왕산 정상의 드래곤캐슬에 도착한다. 모나파크 스카이워크에 서면 선자령, 안반데기,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주변 산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밖으로 나와 눈꽃, 얼음꽃 요정이 살고 있는 상 고대가 핀 나무들을 지나면 천년주목숲길이 나타난다. 오랜 세월 욕심을 버리고 내면을 비워서 그럴까. 천년을 넘게 산 주목들은 속이 텅 비었다. 참선의 나무, 고뇌의 주목, 왕발나무…. 혹독한 환경 속에서 생명의 싹을 틔워온 나무들에게는 스토리텔링이 담긴 이름이 붙어 있다. ‘고해(告解)의 주목’은 나무 안에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텅빈 공간이 있다. 나무에 감싸여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서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고개를 들어 보니 컴컴한 나무 속 작은 구멍으로 한줄기 빛이 쏟아진다. 한 그루의 나무도 베지 않고 조성했다는 천년주목숲길은 걷다 보면 덱길 위로 드리워진 나무들 때문에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누구나 자연 앞에 몸을 낮춰야 하는 ‘겸손의 나무’다. 오래된 주목의 텅빈 몸통에는 다른 나무의 생명이 싹트는 경우도 많다. 성인 세 명이 안아야 감쌀 수 있는 둘레 4.5m의 ‘어머니왕주목’의 몸통 한가운데에는 마가목의 가지가 삐쭉하게 뻗어나와 있다. 마치 나무가 출산하고 있는 장면처럼 보인다. 어머니왕주목은 작은 마가목을 품에 안고 키운다. 인근에는 든든한 어깨로 발왕산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아버지왕주목’도 있다. 지혜를 상징하는 왕수리부엉이가 이 나무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하니 더욱 신령스럽게 느껴진다. 발왕산 천년주목숲길은 발왕수(發王水) 가든에서 마무리된다. 발왕산 순백의 눈이 스며든 맑은 석간수가 매일 410t이나 쏟아지는 곳이다. 천연미네랄을 함유한 발왕수는 톡 쏘는 맛이나 쇠맛 없이 깔끔하고 시원한 물맛을 자랑한다. 모나파크에서는 발왕산 정기가 담긴 이 물로 발왕산 막걸리와 김치를 만든다. 발왕산에는 또다른 명품 겨울숲이 있다. 발왕산 애니포레에 있는 독일 가문비나무숲이다. 이곳은 1960년대 화전민들이 이주한 터에 심은 독일가문비나무가 국내 최대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쭉쭉 뻗은 독일 가문비나무숲에서는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온다. 발왕산의 기(氣)를 느끼며 걷다 보면 호흡이 맑아지고 머리도 상쾌해진다. 숲속엔 알파카 농장도 있다. 남미가 원산지인 알파카는 몽글몽글한 털이 있어 귀여움 그 자체다.●속삭이는 자작나무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들어서면 마치 광활한 시베리아 설원에 온 듯한 이국적 풍경에 가슴이 설렌다. 195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었던 ‘닥터 지바고’ 영화에서 나오던 라라의 테마 음악이 귓가에 맴도는 숲이다. 자작나무는 북유럽과 시베리아, 우리나라 함경도, 일본 홋카이도 등 추운 지방에서 자생한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인제국유림관리소가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해 1974∼1995년 41만 평에 69만 그루를 심어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자작나무숲에 가려면 주차장에서 내려 약 3.5km 임도를 걸어야 한다. 눈이 와 있는 요즘에는 등산화와 아이젠이 필수다. 입구에서 1시간쯤 걸으니 자작나무숲이 나타났다. 눈부신 수피가 뿜어내는 은세계. 하얀 눈밭에 서 있는 키 큰 자작나무 군락의 첫인상은 포근함이었다. 숨어들기 좋은 숲이랄까. 자작나무의 수피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무늬들이 있다. 산 모양, 호미 모양, 달팽이 모양…. 처음엔 상처처럼 보였는데 나무의 입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불자 자작나무숲에 있는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입을 벌려 나지막이 속삭였다. 자작나무숲에서 포근함을 느꼈던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자작나무의 껍데기를 손으로 만져 보니 의외로 부드러웠다. 자작나무는 영하 20∼30도의 혹한을 견디기 위해 종이처럼 얇은 껍질을 겹겹이 입고 있다. 겨울 등산을 할 때 두꺼운 옷 한 벌보다는 얇은 옷 여러 벌 겹쳐 입기가 좋다는 걸 자작나무도 아는 것 같다. 두께 0.1∼0.2mm 남짓한 흰 껍질은 매끄럽고 잘 벗겨지므로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일까. 인제 자작나무숲에는 방문객들이 자작나무 껍데기에 낙서를 하거나, 껍데기를 벗겨 훼손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자작나무는 탈 때 ‘자작자작’ 하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작나무 껍데기는 기름기가 많아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가서 부엌 한구석에 불쏘시개용으로 비치돼 있던 나무다. ‘화촉을 밝힌다’는 표현 또한 자작나무 껍데기로 만든 초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시인 백석(1912∼1996)이 1938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하얀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을 담은 시 ‘백화(白樺)’를 썼다. ‘온통 자작나무다’라는 표현이 무슨 말인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가면 알 수 있다.글·사진 평창·인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탈리아 북부의 비첸차에는 최대 관객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올림피코 극장이 있다. 유럽에 현존하는 실내 극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공연장이다. 1580년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설계로 시작돼 5년 뒤 제자인 스카모치가 완성했다. 개막작이었던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렉스’를 공연하기 위해 테베의 거리를 3차 원근법으로 재현한 아름다운 무대 장치가 그대로 남아 있다. 대리석으로 보이는 무대는 나무와 회반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리미엄 매트리스 브랜드 씰리침대(대표 윤종효)가 차별화된 수면 경험을 위한 스프링 시스템 ‘포스처피딕’을 새로운 브랜딩 캠페인으로 본격 알리기에 나섰다.포스처피딕(Posturepedic)은 자세(Posture)와 정형외과(Orthopedic)를 의미하는 단어의 합성어. 씰리가 1950년 세계 최초로 정형외과 전문의들과 함께 개발한 이후 진일보하고 있는 독자적인 매트리스 스프링 시스템이다. 최상의 수면 경험을 위한 기술의 집약체로 수면 시 신체 흔들림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지지력을 통한 최적의 편안함을 제공한다.이미 씰리침대는 세계 최대 매트리스 시장으로 꼽히는 북미 지역에서 다년간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한 프리미엄 매트리스 브랜드로 입지를 공고히 해왔다. 올해는 건강 측면에서 수면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매트리스의 본질이자 수면 건강과 직결된 스프링 기술력에 대한 우위성을 알리는 데 집중한다. 최근 공개된 TV 광고에도 포스처피딕의 장점이 잘 드러났다. 포스처피딕 기술력이 집약된 매트리스에서 취하는 편안한 수면이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간접적으로 표현됐다. 특히 포스처피딕 기술이 적용된 스프링과 매트리스 가장자리 처짐을 방지하는 씰리의 또 다른 독자 기술 ‘유니케이스’ 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기술력의 차이가 양질의 수면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최고의 품질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포스처피딕은 갈수록 진보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제품으로는 씰리의 대표 프리미엄 매트리스 제품인 ‘엑스퀴짓Ⅱ’와 럭셔리 하이엔드 컬렉션 ‘헤인즈’ 등이 있다. ‘엑스퀴짓Ⅱ’에는 포스처피딕 기술력의 정점인 티타늄 합금 소재의 ‘ReST Support Coil’이 적용됐다. 가볍지만 강한 내구성과 3단계에 걸친 섬세한 서포트 시스템을 통한 구간별 지지력 강화로 안락한 수면 경험을 돕는다. ‘헤인즈’ 역시 ReST Support Coil이 적용됐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씰리침대 장인의 최소 11단계 공정에 걸친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져 씰리의 헤리티지를 느낄 수 있다.씰리는 소비자 이벤트와 구매 고객 대상 사은품 증정 프로모션도 마련했다. 2월 28일까지 씰리침대 전국 백화점 및 아웃렛, 공식 대리점에서 구매 고객 대상 으로 금액에 따라 다양한 사은품을 증정할 예정이다.씰리침대 관계자는 “편안한 수면 경험이 삶의 질과 직결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건강한 수면을 위한 연구를 이어온 씰리침대는 올해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포스처피딕 스프링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데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계묘년(癸卯年) 설연휴를 앞두고 토끼의 하얀털처럼 보송보송한 눈이 덮인 설산(雪山)을 찾았다. 조선후기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토끼는 1천년을 사는데 500년이 되면 털이 희게 변한다고 한다”라며 흰토끼를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보았다. 용궁에 잡혀가도, 호랑이에게 먹힐 위기에도 지혜로 탈출해내는 토끼는 지혜와 성장, 부부애와 화목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모두 다 친근하게 여기는 토끼의 미덕을 생각하며 겨울산에 올라보자. ●월악산의 달토끼, 옥토끼서울에는 밤새도록 비가 내렸던 지난 주말. 충북 제천에 있는 월악산(月岳山)에 올랐다. 소백산을 지나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월악산의 험준한 산세에서 겨울 산행의 백미인 눈꽃과 상고대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동창교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20여 분 만에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나뭇가지마다 보송보송한 솜털같은 눈이 쌓이고, 기암절벽에 뿌리내린 소나무의 솔잎에도 얼음이 얼어붙었다. 낮게 깔린 구름이 부연 안개처럼 골짜기를 가득메우니 한폭의 수묵화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아이젠을 신고 스틱으로 균형잡으며 조심조심 정상으로 올라간다. 산 아랫부분에서는 눈꽃이 피었는데, 송계삼거리를 지나 높이 올라갈 수록 찬바람이 불면서 서리가 얼어붙은 상고대가 피어난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여. 드디어 월악산 정상인 영봉(靈峰·1097m)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산 중에 주봉의 이름이 영봉인 것은 백두산과 월악산이 유일하다고 한다.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聖山) 또는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산이고, 월악산도 신라시대부터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동창교 입구에 있는 월악산신제의 유래 간판에는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당시 월악산으로 사람들이 피난해 몽골군이 쫓아왔는데, 갑자기 날씨가 사나워져서 몽골군이 월악산의 산신령이 노했다고 여기고 추격을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적혀 있다. 월악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영봉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신라시대 월형산(月兄山)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월악산 달맞이 산행도 일품이다. 월악산 영봉에 걸리는 커다랗고 둥근 달은 자연스럽게 옥토끼(달에 산다는 토끼)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조선시대 한시, 민화, 구비문학에 이르기까지 옛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살고 있으며, 토끼를 달의 정령으로 여겼다. 예로부터 토끼는 선한 품성과 평화로움 때문에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생각했다. 달은 사람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세상이었기에 달에 사는 토끼 전설이 시작됐다고 보기도 한다. 토끼는 달에서 절구로 떡방아를 찧고 있다고 흔히 말하지만, 원래는 약초를 찧어 신선들을 위한 장생불사 약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달토끼의 전설은 만병통치의 약 ‘토끼의 간’으로 이어져 ‘별주부전’ ‘수궁가’에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도 있다. 영봉은 달이 걸리는 멋진 암벽이지만, 낮에 오르면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조망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충주호의 비경과 속리산, 대야산, 조령산, 주흘산의 산세가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봉에 올랐으나 짙은 안개 구름에 싸여 충주호를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다음날 영봉에 오른 지인이 맑게 개인 월악산 사진을 보내주었다. 상고대가 피어 있는 순백색의 산세와 충주호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이 어우러져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날씨가 좋은 날, 충주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보덕암에서 하봉, 중봉, 영봉을 넘어가는 코스로 월악산을 다시 한번 찾으리라. 서울의 명산인 도봉산 망월사(望月寺)에도 달과 토끼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망월사란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원래는 신라시대 수도인 경주 월성(月城)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달토끼의 전설은 우리의 산하의 곳곳에 남아 있는 정겹고 평화로운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북한산 의상능선 ‘쌍토끼 바위’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전국에 토끼 관련 지명은 158개다. ‘토끼골’ ‘토끼섬’ ‘토산’ ‘토끼봉’ ‘묘봉’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토끼모양은 흔치 않은데, 새해 산행 도중 서울 북한산 의상능선에서 영락없이 토끼를 닮은 바위를 만났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의상봉 방향 능선의 가파른 암릉을 네발로 기다시피 하며 올라간지 1시간여. 갑자기 시야가 탁하고 트이는 절벽 위에 용의 뿔을 단 개구리 얼굴같은 바위가 나타났다. 뒤로 돌아가니 쫑긋 선 두개의 귀를 가진 토끼 두 마리가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살짝 감은 둥그런 눈과 찢어진 입술, 토실토실한 엉덩이까지 영락없는 토끼다. 전통적으로 토끼를 그릴 때는 한 마리만 그리지 않고 두 마리를 그린다. 달에서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 쌍토끼를 비롯해 민화 ‘화조영모도’에서도 모란꽃 아래 두 마리의 토끼를 그려 넣는다. 부부애와 화목함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의상봉 능선에서 쌍토끼 바위에 손을 대고 새해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 부부에게도 사랑이 넘쳐나고, 가족도 늘 건강하고 화목하기를. 의상봉 쌍토끼 바위의 넉넉한 엉덩이는 긴 뒷다리를 감추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토끼는 뒷다리는 앞다리 보다 2~3배나 길다. 덕분에 토끼는 오르막과 평지에서 최대 시속 80km까지 껑충껑충 뛸 수 있다. 대신 내려갈 때는 속도를 내지 못해 사냥꾼들이 토끼몰이할 때는 아랫방향으로 몰아간다. 토끼의 높이 오르는 습성 탓에 토끼는 승진과 출세, 성장의 상징이기도 하다. 토끼님, 새해에는 KOSPI 주가도 토끼처럼 오를 때는 팍팍 오르고, 내려갈 때는 조금씩 내려가게 해주시길.경계심이 많은 토끼는 지혜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교토삼굴’(狡토三窟)은 조선시대에는 지조가 없는 선비를 비아냥대는 말로도 쓰였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경구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놓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토끼는 자라의 속임수에 용왕에 끌려가 간을 빼앗길 위기에 몰린 힘없는 서민들의 상징이다. 권력자(용왕)와 그 하수인(자라)의 농간에 멍하고 있다보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앗길지도 모른다. 토끼는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나보다 뜨거운 돌덩이가 더 맛있다’고 속이고, 용궁에서는 ‘간을 빼놓고 왔다’고 꾀를 내고 도망가는 ‘탈토지세(脫兎之勢·우리를 민첩하게 빠져나가는 토끼의 기세)’의 정수를 보여준다. 새해에는 모두들 토끼처럼 샘솟는 지혜로 위기를 헤쳐나가고 퀀텀점프로 높이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월악산 산행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친구가 퀴즈를 냈다. “토끼가 동물의 제왕이 됐다고 한다. 어떻게 됐을까?” 글쎄. 작고 귀여운 초식동물 토끼가 어떻게 제왕이 됐을까? 답은 ‘깡과 총으로’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서운 토끼다. ●토끼해 설연휴 가볼만한 곳=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토끼해 특별전 ‘새해, 토끼왔네’가 열린다. 토끼 생태에 얽힌 다양한 민속이야기를 볼 수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빛초롱 축제’에서는 빨간 복주머니를 든 대형토끼가 야경사진 명소로 인기다. 서울 월드컵공원과 목포 유달산, 대구 앞산 전망대에 설치된 달토끼 인형도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초대형 토끼 인형 ‘래빅’과 함께하는 설날 이벤트가 열린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계묘년(癸卯年) 설 연휴를 앞두고 토끼의 하얀 털처럼 보송보송한 눈이 덮인 설산(雪山)을 찾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토끼는 1000년을 사는데 500년이 되면 털이 희게 변한다고 한다”라며 흰토끼를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보았다. 용궁에 잡혀가도, 호랑이에게 먹힐 위기에도 지혜로 탈출해내는 토끼는 지혜와 성장, 부부애와 화목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모두 다 친근하게 여기는 토끼의 미덕을 생각하며 겨울산에 올라보자.》 ●월악산의 달토끼, 옥토끼서울에 밤새도록 비가 내렸던 지난 주말. 충북 제천에 있는 월악산(月岳山)에 올랐다. 소백산을 지나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월악산의 험준한 산세에서 겨울 산행의 백미인 눈꽃과 상고대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동창교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 지 20여 분 만에 비는 눈으로 바뀌었다. 나뭇가지마다 보송보송한 솜털같은 눈이 쌓이고, 기암절벽에 뿌리내린 소나무의 솔잎에도 얼음이 얼어붙었다. 낮게 깔린 구름이 뿌연 안개처럼 골짜기를 가득 메우니 한 폭의 수묵화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아이젠을 신고 스틱으로 균형 잡으며 조심조심 정상으로 올라간다. 산 아랫부분에서는 눈꽃이 피었는데, 송계삼거리를 지나 높이 올라갈수록 찬 바람이 불면서 서리가 얼어붙은 상고대가 피어난다. 산행을 시작한 지 3시간여. 드디어 월악산 정상인 영봉(靈峰·해발 1097m)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산 중에 주봉의 이름이 영봉인 것은 백두산과 월악산 둘뿐이라고 한다.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聖山) 또는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산이고, 월악산도 신라시대부터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동창교 입구에 있는 월악산신제의 유래 간판에는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당시 월악산으로 사람들이 피란해 몽골군이 쫓아왔는데, 갑자기 날씨가 사나워져 몽골군이 월악산의 산신령이 노했다고 여기고 추격을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라고 적혀 있다. 월악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영봉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신라시대 월형산(月兄山)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월악산 달맞이 산행도 일품이다. 월악산 영봉에 걸리는 커다랗고 둥근 달은 자연스럽게 옥토끼(달에 산다는 토끼)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조선시대 한시, 민화, 구비문학에 이르기까지 옛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살고 있으며, 토끼를 달의 정령으로 여겼다. 예로부터 토끼는 선한 품성과 평화로움 때문에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생각했다. 달은 사람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세상이었기에 달에 사는 토끼 전설이 시작됐다고 보기도 한다. 토끼는 달에서 절구로 떡방아를 찧고 있다고 흔히 말하지만, 원래는 약초를 찧어 신선들을 위한 장생불사 약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달토끼의 전설은 만병통치의 약 ‘토끼의 간’으로 이어져 ‘별주부전’ ‘수궁가’에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도 있다. 영봉은 달이 걸리는 멋진 암벽이지만, 낮에 오르면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조망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충주호의 비경과 속리산, 대야산, 조령산, 주흘산의 산세가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봉에 올랐으나 짙은 안개 구름에 싸여 충주호를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다음 날 영봉에 오른 지인이 맑게 개인 월악산 사진을 보내주었다. 상고대가 피어 있는 순백색의 산세와 충주호의 넘실거리는 푸른 물이 어우러져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날씨가 좋은 날, 충주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보덕암에서 하봉, 중봉, 영봉을 넘어가는 코스로 월악산을 다시 한 번 찾으리라. 서울의 명산인 도봉산 망월사(望月寺)에도 달과 토끼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망월사란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다. 원래는 신라시대 수도인 경주 월성(月城)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달토끼의 전설은 우리의 산하 곳곳에 남아 있는 정겹고 평화로운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북한산 의상능선 ‘쌍토끼 바위’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전국에 토끼 관련 지명은 158개다. ‘토끼골’ ‘토끼섬’ ‘토산’ ‘토끼봉’ ‘묘봉’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토끼 모양은 흔치 않은데, 새해 산행 도중 서울 북한산 의상능선에서 영락없이 토끼를 닮은 바위를 만났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의상봉 방향 능선의 가파른 암릉을 네 발로 기다시피 하며 올라간 지 1시간여. 갑자기 시야가 탁트이는 절벽 위에 용의 뿔을 단 개구리 얼굴같은 바위가 나타났다. 뒤로 돌아가니 쫑긋 선 두 개의 귀를 가진 토끼 두 마리가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살짝 감은 둥그런 눈과 찢어진 입술, 토실토실한 엉덩이까지 영락없는 토끼다. 전통적으로 토끼를 그릴 때는 한 마리만 그리지 않고 두 마리를 그린다. 달에서 계수나무 아래 방아를 찧는 쌍토끼를 비롯해 민화 ‘화조영모도’에서도 모란꽃 아래 두 마리의 토끼를 그려 넣었다. 부부애와 화목함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의상봉 능선에서 쌍토끼 바위에 손을 대고 새해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 부부에게도 사랑이 넘쳐나고, 가족도 늘 건강하고 화목하기를. 의상봉 쌍토끼 바위의 넉넉한 엉덩이는 긴 뒷다리를 감추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토끼의 뒷다리는 앞다리보다 2∼3배나 길다. 그 덕분에 토끼는 오르막과 평지에서 최대 시속 80km까지 껑충껑충 뛸 수 있다. 그러나 내려갈 때는 속도를 내지 못해 사냥꾼들은 아랫방향으로 토끼몰이를 한다. 높이 오르는 습성 탓에 토끼는 승진과 출세, 성장의 상징이기도 하다. 토끼님, 새해에는 코스피 주가도 오를 때는 팍팍 오르고, 내려갈 때는 조금씩 내려가게 해주시길. 경계심이 많은 토끼는 지혜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은 조선시대에는 지조가 없는 선비를 비아냥대는 말로도 쓰였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경구처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놓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판소리 ‘수궁가’에서 토끼는 자라의 속임수에 용왕한테 끌려가 간을 빼앗길 위기에 몰린 힘없는 서민들의 상징이다. 권력자(용왕)와 그 하수인(자라)의 농간에 멍하니 있다 보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앗길지도 모른다. 토끼는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나보다 뜨거운 돌덩이가 더 맛있다’고 속이고, 용궁에서는 ‘간을 빼놓고 왔다’고 꾀를 내 도망가는 ‘탈토지세(脫兎之勢·우리를 민첩하게 빠져나가는 토끼의 기세)’의 정수를 보여준다. 새해에는 모두들 토끼처럼 샘솟는 지혜로 위기를 헤쳐나가고 퀀텀점프로 높이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월악산 산행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친구가 퀴즈를 냈다. “토끼가 동물의 제왕이 됐다고 한다. 어떻게 됐을까?” 글쎄. 작고 귀여운 초식동물 토끼가 어떻게 제왕이 됐을까? 답은 ‘깡과 총으로’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서운 토끼다. ●토끼해 설 연휴 가볼 만한 곳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토끼해 특별전 ‘새해, 토끼 왔네’가 열린다. 토끼 생태에 얽힌 다양한 민속이야기를 볼 수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빛초롱 축제’에서는 빨간 복주머니를 든 대형 토끼가 야경 사진 명소로 인기다. 서울 월드컵공원과 목포 유달산, 대구 앞산 전망대에 설치된 달토끼 인형도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용인 에버랜드에서는 초대형 토끼 인형 ‘래빅’과 함께하는 설날 이벤트가 열린다. 글·사진 월악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마스코트 ‘뭉초’를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연아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 홍보대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강원도가 19일 용평리조트 야외무대에서 ‘2023 윈터코리아페스티벌 데이’를 개최했다. ‘2023~2024 한국방문의 해’를 홍보하고 1년 앞으로 다가온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행사다. 청사초롱과 횃불스키가 방한 관광객들에게 환영 인사를 전하며 행사가 시작됐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용평스키장에 횟불을 든 스키군단이 거대한 붉은색의 ‘K’를 그렸다.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고, 세계에 ‘2023~2024 한국방문의해’를 알리는 스키어들이 횃불을 든 채 K자를 그리며 슬로프를 활강하자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환호했다. 대회 홍보대사 김연아는 직접 마스코트 ‘뭉초’를 소개했다. 뭉초는 2018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가 눈싸움을 하던 눈 뭉치가 유스 올림픽을 앞두고 새롭게 태어났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주제가 ‘위 고 하이(We go high)’도 이 자리에서 공개됐다. 마스코트 공모전 수상자인 박수연(대학생)씨, 주제가 공모전 수상자인 김근학(대학생) 씨를 비롯한 국내외 청소년 60여 명이 마스코트와 주제가, 안무를 선보였다. 대회 상징물은 청소년(만 14세~24세)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마스코트와 주제가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선정한 후 이를 전문가와 대회조직위원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공모 참가자들이 함께 수정·보완해 완성했다. 김연아는 “이번 동계청소년올림픽은 70여개국 1900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역대 최대 규모”라며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과 함께하는, 청소년에 의한 대회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국 최초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 선수가 김연아에 이은 두 번째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김예리 선수는 2018 부에노스아이레스 하계청소년올림픽 브레이크댄스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가수 에일리(K-팝)와 생동감크루(미디어 공연), CPI크루(EDM, 춤) 등이 축하공연을 펼쳤다. 특히 가수 에일리는 한파에도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뽐냈다. 특히 영와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현장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K-한류의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아울러 ‘2023~2024 한국방문의 해’ 홍보부스에서는 퀴즈 이벤트 등 내, 외국인 대상 다양한 참여형 이벤트도 진행됐다. 한국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K-푸드 트럭과 설 연휴를 맞아 팽이치기, 투호, 윷놀이 등 다양한 한국 전통놀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하는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로, 2024년 1월19일부터 2월1일까지 강원도 강릉시·평창군·정선군·횡성군 일원에서 열린다. 문체부와 관광공사는 이번 행사와 연계해 동계스포츠 관광 상품으로 해외 관광객 300여 명을 모집했다. 올해 3월까지 방한 관광객 약 4000명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강원도와 공동으로 말레이시아 여행사와 언론 관계자를 대상으로 강원도 주요 관광지 답사, 스키 체험, 국내 여행업체와의 간담회 등 팸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김동일 한류콘텐츠실장은 “이번 행사는 ‘2023~2024 한국방문의 해’ 1호 행사”라며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365일 K-컬처를 즐기도록 해 2023년 1000만 명의 외래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아이구, 학생들이 힘들텐데…. 여기까지 와주니 너무 고마워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좁은 골목길. 설 명절에 필요한 음식과 필수 약품 등을 박스에 담은 ‘행복 DREAM 사랑의 상자’를 들고 온 학생들에게 집 안에 홀로 거주하고 있는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면서 학생들의 손을 꼭 잡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중앙고등학교와 중앙교우회가 주관한 ‘행복 DREAM 사랑의 상자’ 전달식은 학교 주변에 살고 있는 차상위계층과 저소득층 40가구에 설 명절에 필요한 음식과 약품 등을 직접 찾아가 전달하는 행사였다. 이날 중앙고 보이스카우트 대원 8명의 학생들은 추운 날씨에도 서승원 지도 교사와 함께 일일이 선물을 포장하고, 배달까지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사랑의 상자 전달식에는 채정석 중앙교우회장과 정문헌 종로구청장, 이용균 중앙고 교장 등 중앙고와 중앙교우회, 종로구청 관계자와 가회동·삼청동 동장 등이 참석했다. 사랑의 상자에는 설날 떡국떡을 비롯해 가정 간편식 육개장, 미역국, 사골곰탕, 장조림, 참치캔 등과 함께 한독약품, 대원제약 등 동문 기업인이 기증한 멀티비타민과 영양제, 감기약 등 약품도 담겼다. 채정석 중앙교우회장은 “종로구에서 10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온 중앙학교가 학교 주변의 주민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며 학생들에게도 매우 좋은 교육적 체험이 됐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화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일본 나고야 중부국제공항에는 곳곳에 닌자(忍者) 복장을 한 인형이 숨어 있다. 복면을 한 채 하늘을 날고, 천장에 매달려 긴 칼이나 수리검을 손에 쥐고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한 자세다. ‘닌자의 고향’으로 불리는 나고야 미에현의 우에노성 관광을 홍보하기 위한 장치다. 닌자는 약 400년 전 일본 전국시대에 둔갑술로 유명했던 스파이. 나고야 공항 옥상의 ‘스카이덱’에서는 각국의 비행기가 활주로에 뜨고 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겨울 산행에서 가장 진귀한 구경은 상고대다. 상고대를 구경하려면 강원도의 계방산, 태백산, 함백산, 제주 한라산처럼 서울에서 멀고 높은 산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난 주말 도봉산 산행을 갔다가 정상부근 능선에서 탐스럽게 열린 눈꽃과 상고대를 만났다. 포근한 날씨에 도심에서는 전날 내린 눈이 모두 녹았으나, 도봉산 입구에서부터 눈은 그래도 쌓여 있다. 높이 올라갈 수록 나뭇가지가 얼어붙어 그야말로 겨울왕국을 만들어냈다. ‘상고대’는 눈꽃이 아니다. 나뭇가지에 눈이 쌓여 생기는 눈꽃과 달리 상고대는 공기 중에 수증기가 얼어붙은 서리꽃이다. 그래서 눈이 내리지 않는 날에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해가 떠오르면 상고대는 녹아서 사라진다. 상고대가 녹으면서 나뭇가지에 얼어 있던 얼음조각들이 눈 위로 떨어진다. 부스러지는 얼음조각이 흰 눈에 떨어진 모습은 시루에서 막 꺼낸 백설기 떡 같다. 상고대는 습도와 기온, 바람이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이다. 비나 눈이 온 다음날 푸근했던 날씨가 밤새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하면 공기 중의 수분이 얼면서 나무에 달라붙어 상고대가 생긴다. 바람에 눈가루가 날려 상고대에 붙으면 점점 두꺼운 상고대로 발달한다. 차가운 바람의 결이 만들어낸 상고대의 얼음은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새우의 꼬리처럼 물결을 친다. 눈이 온 다음 날 눈꽃과 상고대가 함께 피어나는 걸 구경하는 것이 최고다.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면 정상 부근에서 최고의 절경을 볼 수 있다. 도봉산은 한북정맥 연봉을 따라 내려오다 북한산에 이르기 전에 화강암으로 된 자운봉(739.5m), 선인봉, 만장봉, 오봉 등 위세있는 봉우리가 겹겹이 우뚝 솟아 ‘서울의 금강산’으로 불릴 정도로 수려함을 과시하는 명산(名山)이다. 도봉산의 다락능선과 포대능선은 도봉산의 전체 경관 조망이 가능하고, 스릴 있는 암릉과 노송이 우거진 숲속 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등산로다. 포대능선은 6·25 한국전쟁 때 대공포 부대가 있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다락능선에서 보면 저멀리 맞은편 포대능선 아래 망월사가 산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망월사가 결코 작지 않는 절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포대능선 아래에 있는 망월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 639년 해호 화상이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 ‘월성(月城)’을 바라보며 왕실의 융성을 기원했다 해서 망월사(望月寺)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독립운동 33명 중 만해와 함께 불교를 대표했던 백용성스님이 1905년 선원을 개설하고 제자들을 길렀다. 망월사의 천중선원은 근대의 고승인 만공(滿空)·한암(漢巖)·성월(惺月) 등이 후학들에게 선(禪)을 가르친 유서깊은 선원이다. 주지 스님 집무실 등 요사채가 있는 건물 무위당(無爲堂)에 한자로 망월사(望月寺) 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현판 내용이 특이하다. ‘주한사자원세개(駐韓使者袁世凱) 광서신묘중추지월(光緖辛卯仲秋之月)’이 눈에 들어온다. 광서는 청나라 11대 황제 광서제를 말하는 연호로, 마지막 황제 푸이(12대)의 바로 전 기울어가던 청나라의 황제다. 1891년 가을에 원세개(위안스카이)가 썼다는 뜻이다. 원세개는 청말 북양대신 리홍장의 총애를 받아 23세의 나이로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파견된 청군(淸軍)과 함께 조선에 왔다. 원세개는 임오군란부터 청일전쟁 발발까지 혼란했던 19세기 말 조선 정국의 중심에 있었다. 1885년 조선주재 총리교섭통산대신이 된 원세개는 서울에 주재하며 내정과 외교를 간섭하고 청의 세력 확장을 꾀했다. 하지만 그는 망해가는 청을 구하지 못했고 동북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일본을 막지도 못했다. 원세개는 쑨원을 강제로 밀어내고 중화제국 황제에 즉위했지만 100일 만에 열강의 반대와 민심에 밀려 퇴위한 뒤 실의에 빠져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원세개는 황제의 사신이었던 만큼 망월사까지 걸어서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세개가 현판을 쓴 ‘중추지월(中秋之月)’은 도봉산의 가을 단풍이 절정인 음력 8월 추석 즈음이다. 격동의 세월에 그가 쓴 글씨는 생각보다 얌전하다. 황제의 사신으로서의 교만함은 보이지 않고, 서당에서 글씨를 처음 배운 학생이 쓰듯이 반듯한 글씨다. 도봉산의 절경에 둘러싸인 망월사에서 차분하게 달을 바라보며 쓴 글씨인 듯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감싸듯 자리한 엘부르즈 산맥 정상은 1년 내내 만년설로 덮여 있다. 흔히 중동이라고 하면 열사의 사막을 연상하는데, 당황스러운 풍경이다. 서울과 같은 위도에 자리한 테헤란은 사계절이 있고 겨울에는 폭설이 내린다. 엘부르즈 산맥 남단에 있는 토찰산 스키장은 테헤란 시내 어느 곳에서도 웅장한 만년설을 보여준다. 해발 3965m 산 정상까지 리프트가 있어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문화적 개방을 상징하는 도시다. 제다에서는 2021년 사우디에서 처음으로 ‘홍해 국제영화제’가 열흘간 열렸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1980년대 초에 영화관이 문을 닫았었는데, 2018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사회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35년 만에 영화관 영업을 재개했다. 영화관이 문을 연지 3년 만에 제다에서 홍해국제영화제까지 열려 67개국 138편의 영화가 선보였다. ‘영화가 사람들을 타락시킨다’고 영화관 문을 닫았던 보수적인 이슬람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다의 축구경기장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에서는 2019년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가 제다페스티벌의 일환으로 1만석 규모의 경기장에서 단독콘서트를 펼쳤다. 아시아 가수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단독 공연을 연 것은 슈퍼주니어가 처음이었다. 이어 방탄소년단(BTS)도 수도 리야드 킹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사우디 역사상 축구경기장에 남녀가 함께 들어가 춤을 추며 콘서트를 즐긴 것은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사우디 제2의 도시인 제다는 부산처럼 사우디 최대의 항구도시다. 지금도 사우디 수출입 물동량의 70%가 제다항구로 들어온다. 그래서 제다는 역사적으로 글로벌 문화가 융합되는 도시였다. 우선 7세기부터 이슬람 최대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로 오는 순례객과 무역상들의 관문이기도 했다. 중세시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전세계에서 온 순례객들은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향신료와 보석, 몰약, 포목 등 각종 특산품을 배에 싣고 왔다고 한다. 제다 항구에 내린 순례객들은 메카 게이트(Makkah Gate)까지 동서로 길게 늘어선 전통시장인 수크(Souqs) 바닥에서 보따리를 풀었다. 시장 골목길은 바다를 건너온 진귀한 물품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지금도 제다의 주민들은 “모든 물건은 배에서 내렸을 때가 가장 싸다”는 말을 진리처럼 생각한다고 한다.이 때문에 제다 항구의 시장에는 보석, 포목, 약재, 향신료 상가는 지금도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몰려든다. 순례객들은 제다항구에서 물건을 팔아 돈을 마련한 다음에 낙타를 타고 메카로 떠났다. 메카 게이트를 통과해서 낙타를 타고 1주일을 정도가면 메카에 도착한다. 메카에서 순례를 마치고 메디나로 가는 길은 낙타로 약 한달이 걸렸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순례객 덕분에 제다는 각국의 다양한 음식문화가 살아 있는 글로벌 도시가 됐다. 항구 주변의 알발라드(Al-Balade) 구역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자즈(Hejaz)’ 양식의 집들이 밀집돼 있다. 히자즈 양식은 파사드(전면부)가 화려하게 장식한 나무 베란다인 ‘로샨’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된 창문은 밖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아 여성들의 프라이버시가 유지되면서도, 거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들을 수 있고, 시원한 바람으로 환기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다목적 베란다였다. 로샨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오는 순례객들이 배에 싣고 온 목재를 활용해 만들었다. 나무가 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히자즈 양식’의 건축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산호 벽돌로 쌓은 곳곳에 각목을 대놓았기 때문에, 건물은 세월탓으로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고 삐뚤빼뚤하지만 신기하게도 잘 버티고 있다. 알발라드 구역은 해질녘 뜨거운 햇볕이 사라질 시간이 되면 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사람들도 몰려든다. 해가지고 조명이 들어오면 또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사막의 모래흙으로 빚은 무채색의 도시가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아라비아의 화려한 불빛 도시로 변모하는 것이다. 제다에는 대저택을 활용해 이슬람 문화와 건축, 과학과 역사를 소개하는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제다 시내에 있는 ‘사우디 홈 뮤지엄(Soudi Home Museum)‘는 집 안에 수많은 장식품과 함께 분수와 폭포로 꾸며져 있어 놀라운 광경을 선사한다. 홍해 연안의 제다에는 후안 미로와 무어의 작품이 있는 해변 조각공원, 홍해 크루즈, 해변 요트클럽의 해상모스크와 아쿠아리움, F1 경기가 벌어지는 해변도로, 바다뷰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세계 최대의 쇼핑센터까지 볼거리가 많다. 올해 하반기 홍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홍해의 산호초를 즐길 수 있는 스킨스쿠버와 해양스포츠 시설을 갖춘 호텔과 리조트가 문을 열 예정이다. 2만8000㎢에 이르는 구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홍해 프로젝트는 90개 이상의 자연섬으로 이뤄진 군도에서 공항, 요트 정박지, 주택단지, 레크리에이션 시설, 3000개 호텔 객실 등이 건설돼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일 것이라는 계획이다. 사우디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음주가 금지돼 있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해변 레스토랑에서 성인 남자 2명이 커피와 케잌을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은 무척 생소했다. 그러나 그만큼 치안은 안전하다. 휴일 저녁에는 여성과 아이들이 제다 해변의 야외 공원에서 새벽 1,2시가 넘어서도 자연스럽게 여가를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카타르 월드컵기간 중에 호텔 옥상 수영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열띤 응원을 하기도 했다. 히잡을 벗고 화려하게 화장을 한 여성들도 보였다. 프랑스와 모로코와의 4강 경기였는데, 사우디 사람들이 무알콜 맥주를 마시며 같은 아랍국가인 모로코팀을 열띠게 응원하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제다에서 만난 사우디인들은 한국사람만 보면 “매일 밤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산다”며 반가워했다. “안녕하세요” 정도는 누구나 할 줄 알고, 한국 음식점도 인기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이슬람의 최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 알라의 신전인 ‘카바’가 있는 메카는 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이고, 메디나는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전세계 이슬람신자들이 평생 꼭 한번 성지순례를 하고 싶어하는 곳. 그래서 메카와 메디나는 비(非) 무슬림 외국인에게는 금단의 성역이었다. 그런데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가 선포한 ‘비전2030’을 통해 관광대국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메디나를 전격 개방했다. 사우디관광청의 초청으로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는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Prophet‘s Mosque)’에 다녀왔다. 병자도, 가난한 이도 “평생의 꿈 이뤘다” 지난달 중순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제다에 있는 기차역에는 흰색 수건같은 옷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남성들이 눈에 띄었다. ‘이흐람(Ihram)’이라고 불리는 순례자의 복장이다. 순례기간 중에는 국적이나 지위고하, 경제적 능력을 막론하고 똑같이 재봉선 없이 통천으로 된 두 쪽의 흰 옷을 입는다. 수영장에서 쓰는 큰 타월 하나로 상체를 가리고, 다른 하나로 하체를 가린 것처럼 보이는 복장이다. 메카, 메디나 성지로 향하는 사람은 비행기, 기차를 타기 전부터 화려한 옷을 벗고 모두 검소한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메카에서 천사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설법하던 마호메트는 서기 622년 지배층의 탄압을 피해 메카에서 북쪽으로 340km 떨어진 상업도시 메디나로 피신했다. ‘헤지라(성스러운 도망)’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이슬람력 원년으로 삼을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후 메디나는 ‘선지자의 도시’가 되었고, 마호메트와 후계자인 아부바크르, 우마르가 묻혀 있어 메카 참배 후 찾아오는 순례객들로 붐빈다. 마호메트의 무덤은 ‘예언자의 모스크’의 그린 돔(Green Dome) 아래 내부에 있다. 수많은 첨탑이 서 있는 대리석 광장과 사원 안에는 전세계에서 온 이슬람신자들이 빼곡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몸이 불편해서 바닥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기도 하고, 백발이 된 노인이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읽고 있었다. 인종과 피부색이 달라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간절한 바램으로 성지를 찾아 와 기도하는 모습은 종교를 떠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전세계 이슬람 신자들은 평생에 한번은 메카 성지를 순례를 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들은 이슬람력 12월7~12일에 행해지는 ‘하지’(대순례) 또는 연중 수시로 하는 ‘움라’를 행하기 위해 메카와 메디나로 찾아온다. 사우디정부는 중동을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전세계 이슬람신자들에게 ‘하지 성지 순례 비자’를 발급하는데, 신청한지 평균 37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는 그린돔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는 “이곳에 와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리석 바닥에 두꺼운 카펫이 깔린 모스크 안에서는 메카에서 가져온 물통에 든 ‘잠잠(Zamzam) 성수’를 마실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사막에 두고 떠난 후 하갈이 천사의 계시로 발견했다는 잠잠 우물에서 나온 성수다. 메카 성지순례에서 아브라함이 건립했다는 ‘카바 신전’과 ‘잠잠 우물’이 가장 중요한 순례지인데, 메디나의 모스크에서도 잠잠 우물에서 가져온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예언자의 모스크’에 입장하기 전에 기자는 이슬람식 흰 모자와 두건을 샀다. 모스크 경내에서는 DSLR카메라로 촬영할 경우 경비원이 제지했다. 그러나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것은 제지하지 않았고, 이슬람식 복장을 갖추니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중동 지역을 여행할 때는 관광객에게는 의무는 아니지만,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간단한 현지식 복장을 갖추는 것만으로 큰 호의를 얻을 수 있음을 다시한번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메디나에는 마호메트가 메디나에 처음 왔을 때 지은 메디나에서 가장 오래된 ‘쿠바 모스크’도 남아 있다. 또한 마호메트가 메디나 주민들에게 환영의 선물로 받은 땅에 조성한 대추야자 농장(알리야 알-마디나 팜)도 유명하다. ‘선지자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오아시스 지대인 만큼 펑펑 흘러나오는 지하수가 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사막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농장에는 대추야자숲이 정글을 이루고 있는데, 알이 굵고 맛이 달짝지근한 대추야자를 맛보고 선물로 사가는 사람들도 많다. 사우디 정부는 현재 연인원 250만 명 규모인 하지 순례객을 2030년까지 500만 명까지 늘리기 위해 교통편과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2018년에 개통된 하라메인 고속철도는 메카~제다~메디나를 이어주는 453km 구간을 시속 300km의 속도로 운행한다. 메디나에 세워진 초현대식 철도역은 기하학적 아라베스크 문양의 외관이 눈길을 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이슬람의 최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다. 알라의 신전인 ‘카바’가 있는 메카는 무함마드가 태어난 곳이고, 메디나는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이 평생 꼭 한 번 성지순례를 하고 싶어 하는 곳. 그래서 메카와 메디나는 비(非)무슬림 외국인에게는 금단의 성역이었다. 그런데 ‘비전2030’을 통해 관광대국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메디나를 전격 개방했다. 사우디관광청의 초청으로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메디나의 ‘예언자의 모스크(Prophet‘s Mosque)’에 다녀왔다.》 ○ 병자도, 가난한 이도 “평생의 꿈 이뤘다”지난해 12월 중순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제다에 있는 기차역에는 흰색 수건 같은 옷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남성들이 눈에 띄었다. ‘이흐람(Ihram)’이라고 불리는 순례자의 복장이다. 순례 기간에는 국적이나 지위 고하, 경제적 능력을 막론하고 똑같이 재봉선 없이 통천으로 된 두 쪽의 흰 옷을 입는다. 수영장에서 쓰는 큰 타월 하나로 상체를 가리고, 다른 하나로 하체를 가린 것처럼 보이는 복장이다. 메카, 메디나 성지로 향하는 사람은 비행기, 기차를 타기 전부터 화려한 옷을 벗고 모두 검소한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메카에서 천사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설법하던 무함마드는 서기 622년 지배층의 탄압을 피해 메카에서 북쪽으로 340km 떨어진 상업도시 메디나로 피신했다. ‘헤지라’(성스러운 도망)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이슬람력 원년으로 삼을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후 메디나는 ‘선지자의 도시’가 되었고, 무함마드와 후계자인 아부바크르, 우마르가 묻혀 있어 메카 참배 후 찾아오는 순례객들로 붐빈다. 무함마드의 무덤은 ‘예언자의 모스크’의 그린돔(Green Dome) 아래 내부에 있다. 수많은 첨탑이 서 있는 대리석 광장과 사원 안에는 전 세계에서 온 이슬람 신자들이 빼곡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몸이 불편해서 바닥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앉아 있기도 하고, 백발이 된 노인이 이슬람 경전인 꾸란을 읽고 있었다. 인종과 피부색이 달라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간절한 바람으로 성지를 찾아와 기도하는 모습은 종교를 떠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은 평생에 한 번은 메카 성지를 순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들은 이슬람력 12월 7∼12일에 행해지는 ‘하지’(대순례) 또는 연중 수시로 하는 ‘움라’를 행하기 위해 메카와 메디나로 찾아온다. 사우디 정부는 중동을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에게 ‘하지 성지 순례 비자’를 발급하는데, 신청한 후 평균 37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무함마드의 무덤이 있는 그린돔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할머니는 “이곳에 와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리석 바닥에 두꺼운 카펫이 깔린 모스크 안에서는 메카에서 가져온 물통에 든 ‘잠잠(Zamzam) 성수’를 마실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사막에 두고 떠난 후 하갈이 천사의 계시로 발견했다는 잠잠 우물에서 나온 성수다. 메카 성지순례에서 아브라함이 건립했다는 ‘카바 신전’과 ‘잠잠 우물’의 순례가 가장 중요한데, 메디나의 모스크에서도 잠잠 우물에서 가져온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예언자의 모스크’에 입장하기 전에 기자는 이슬람식 흰 모자와 두건을 샀다. 모스크 경내에서는 DSLR 카메라로 촬영할 경우 경비원이 제지했다. 그러나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것은 제지하지 않았고, 이슬람식 복장을 갖추니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중동 지역을 여행할 때는 관광객에게는 의무는 아니지만,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간단한 현지식 복장을 갖추는 것만으로 큰 호의를 얻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메디나에는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처음 왔을 때 지은 메디나에서 가장 오래된 ‘꾸바 모스크’도 남아 있다. 또한 무함마드가 메디나 주민들에게 환영의 선물로 받은 땅에 조성한 대추야자 농장(알리야 알마디나흐 팜)도 유명하다. ‘선지자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오아시스 지대인 만큼 펑펑 흘러나오는 지하수가 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사막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농장에는 대추야자 숲이 정글을 이루고 있는데, 알이 굵고 맛이 달짝지근한 대추야자를 맛보고 선물로 사가는 사람들도 많다. 사우디 정부는 현재 연인원 250만 명 규모인 하지 순례객을 2030년까지 500만 명으로 늘리기 위해 교통편과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2018년에 개통된 하라마인 고속철도는 메카∼제다∼메디나를 이어주는 453km 구간을 시속 300km의 속도로 운행한다. 메카의 관문인 제다 항구에 세워진 초현대식 철도역은 기하학적 아라베스크 문양의 외관이 눈길을 끈다.○글로벌 문화가 융성한 제다 항구홍해 연안의 제다는 사우디 최대의 항구도시다. 7세기부터 이슬람 최대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로 오는 순례객과 무역상들의 관문이기도 했다. 중세 시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은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향신료와 보석, 몰약, 포목 등 각종 특산품을 배에 싣고 왔다고 한다. 제다 항구에 내린 순례객들은 ‘메카 문(Makkah Gate)’까지 동서로 길게 늘어선 전통시장인 수끄(Souq) 바닥에서 보따리를 풀었다. 시장 골목길은 바다를 건너온 진귀한 물품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지금도 제다의 주민들은 “모든 물건은 배에서 내렸을 때가 가장 싸다”는 말을 진리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다 항구 시장의 보석, 포목, 약재, 향신료 상가에는 지금도 관광객들과 상인들이 몰려든다. 순례객들은 제다 항구에서 물건을 팔아 돈을 마련한 다음에 낙타를 타고 메카로 떠났다. 메카 문을 통과해서 낙타를 타고 1주일 정도 가면 메카에 도착한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순례객 덕분에 제다는 각국의 다양한 음식문화가 살아 있는 글로벌 도시가 됐다. 항구 주변의 알발리드(Al-Balid) 구역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자즈(Hijaz)’ 양식의 집들이 밀집돼 있다. 히자즈 양식은 파사드(전면부)가 화려하게 장식한 나무 베란다인 ‘로샨’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우디는 홍해 연안을 해양스포츠의 중심지로 만드는 ‘홍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제다는 미로와 무어의 작품이 있는 해변 조각공원, 홍해 크루즈, 해상 모스크와 아쿠아리움, 바다 뷰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쇼핑센터가 밀집돼 있다. ○사우디 여행 팁 사우디의 리야드와 제다는 지난해 9월부터 사우디아 항공 직항편이 개통됐다. 소요 시간은 12시간 40분, 왕복 항공료는 150만 원가량이다. 리야드, 제다, 알울라, 메디나 등 사우디 주요 도시를 여행하는 국내 여행사 패키지 상품은 400만∼600만 원으로 다양하다. 사우디만 일주(6박 7일)하는 경우도 있고 페트라, 두바이, 아부다비 등 인근 중동국가를 포함한 상품도 다양하다. 사우디는 금주 국가라 오후 11시에도 카페에서 남자들끼리 커피와 케이크를 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대신 치안이 안정돼 있어 휴일 밤에는 여성들도 오전 1∼2시까지 공원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외부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응대하는 ‘하파와(Hafawa)’ 문화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아라비아커피와 대추야자를 대접하며 환대한다. 특히 “매일 밤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사우디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무척 반가워한다. 메디나,제다(사우디아라비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