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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6620장’.지난달 20일 약 5년 만에 우리 곁에 돌아온 종묘 정전(正殿)에 새로 올린 기와의 숫자다. 2020년 안전 문제로 보수에 들어갔던 정전은 기존 기와 중 상태 좋은 약 5000장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갈아야 했다. 기와 한 장당 완성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1개월. 4년 가까이 쉼 없이 빚고 굽고 말리고, 다시 부수고 빚는 과정을 반복해 정전 지붕은 본모습을 되찾았다. 여름 땡볕에도 900∼1000도를 오가는 가마 앞에 불을 때며 이를 이뤄낸 건 김창대 제와장(53)이다. 국가무형유산 제91호 보유자인 그는 1998년 일면식도 없던 한형준 제와장을 찾아가 무작정 매달렸다. 그렇게 사제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당시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전통 기와 제조법을 되살렸다. 그리고 2008년 화마로 잃어버린 숭례문 복원에 수제 기와을 얹으며 우리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드높였다. 정전에 이어 현재 사직단 기와까지 제작하며 종묘사직(宗廟社稷)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김 제와장을 지난달 30일 오후 종묘에서 만났다.》―오늘 오전에도 작업하셨다고요.“새벽 4시까지 전남 장흥 작업장에서 가마를 때다 왔지요. 불을 균일하게 유지해야 고른 기와가 나오거든요. 마침 오늘 사직단 현장에 올 일이 있어서…. 기와는 만든다고 끝이 아닙니다. 결국 건축물에 제대로 올라가야 매조지는 거니까요. 현장과 소통하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겸사겸사 종묘도 들렸습니다.” ―올해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지 30년 됩니다. 뿌듯하겠습니다.“웬걸요. 올 때마다 걱정만 가득합니다. 행여 실수한 건 없는지, 종묘에 모신 왕들께서 노여워하시진 않길 바라며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도 ‘아, 그건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하고 아쉬운 게 떠오르네요. 4년 동안 정전 기와 작업하며 신가한 경험을 했어요. 희한하게 가마 불 때는 날이면 기온도 바람도 딱 맞아떨어졌어요. 하늘이 보살펴 주시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제가 부족했을까 봐….” ―종묘가 지닌 무게감이 컸나 봅니다.“아무렴요. 다른 기와 작업 때도 제일 신경 쓰이는 건축물이 사당 같은 제례 공간이에요. 조상님을 모시는 곳이잖아요. 하물며 종묘 아닙니까. 물론 더 자긍심을 갖고 일하기도 했어요. 돈벌이로 여겼으면 맡지도 않았겠죠. 평생 닦아 온 재주로 우리 문화유산을 정비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책임감은 말로 못 합니다.” ―이런 큰 공사를 마치면 이문도 남는 거 아닙니까.“그런 거 바라면 이 일 못 합니다. 요즘에야 사정이 좀 나아져서 겨우 적자나 면하는 수준입니다. 국가유산청도 신경을 많이 써 주시니까요. 숭례문 때 생각하면 훨씬 나아졌죠. 그땐 정말 마이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숭례문 복원하고 손해를 보셨다는 건가요.“이런 얘기 조심스럽긴 한데, 처음부터 스승님하고 각오하고 했던 일이에요. 당시 전통 기와는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실전되다시피 한 상태였어요. 그걸 스승님 혼자 되살리려 버티고 계셨던 건데, 숭례문은 적당히 해선 안 되잖아요. 안 그래도 비통하게 잃었는데, 제대로 살려내야 할 거 아닙니까. 옛 문헌 등을 다시 뒤지고 뒤져서 전통에 가장 가까운 방식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수없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했겠어요. 스승님이 2013년 숭례문 기공식 끝내고 한 달 뒤에 돌아가셨어요. 모든 걸 다 쏟아부으신 거죠.”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계속하신 겁니까.“이게 ‘제 일’이니까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스승님이 걸으신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도 싶었어요. 저도 관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죠. 도자 전공이니 번듯한 작품 만들면 좀 근사하게 살 수도 있으련만. 내일은 관둬야지 하고 잠들었다가도, 다음 날이면 새벽같이 가마 앞에 나와 앉아 있어요. 하얗게 피어나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또 마음을 빼앗기고 몰두하는 거죠. 그러다 30년 세월이 흘러버렸네요.” ―수제 전통 기와의 장점은 뭡니까.“비용 생각하면 기계로 찍는 기와가 효율적이죠. 시간도 인력도 몇 배는 줄어드니까. 공장 기와가 더 단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문화유산엔 우리 전통 기와가 가장 잘 어울려요. 미학적인 측면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정전을 대규모로 수리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건축물이 무거운 하중에 짓눌려 사고가 날 위험이 컸기 때문이에요. 1970, 80년대 하나둘 교체해 올린 공장 기와들 영향이 큽니다. 전통 기와보다 2배 가까이 무겁고 둔탁하죠. 선조들이 수제 기와를 올린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원래 회화 전공이라고 들었습니다.“미술 배울 땐 수채화로 입문했어요. 근데 부산공예고교(현 한국조형예술고교)에 가며 도자에 관심을 가졌죠. 실력도 나쁘지 않아 모교에 9급 공무원으로 취직했어요. 근데 우연히 스승님 나오시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어요. 부산에서 살던 놈이 장흥까지 물어물어 찾아갔죠. 근데 어찌나 박정하게 대하시는지. 3개월 꼬박 매달리니 겨우 받아주셨어요.” ―왜 매몰차게 대하셨을까요.“제 미래가 걱정되셨던 거죠. 당신이야 평생 해 온 일이라지만, 젊은 놈이 밥 벌어먹고 살지 못할 게 뻔했거든요. 공무원이니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힘든 길을 가려 하느냐고 하셨어요. 그땐 젊은 혈기에 큰소리 땅땅 쳤죠. 할 수 있다고, 걱정 말라고. 기와로 성공해 보이겠다고.” ―그렇게 뛰어드니 천직인 걸 알았군요.“아이고, 웬걸요. 여러 번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하하. 그저 하다 보니 오기가 생겨서…. 기와 한 장 굽는 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아십니까. 그저 빚고 굽는 게 아닙니다. 크게는 16단계, 세밀하게는 39단계를 거칩니다. ‘쨀줄질’ ‘고마괘기’ 같은 전통 방식은 설명드려도 이해하기 어려울 테고 …. 쉽게 말해 5가지 흙을 용도에 맞게 배합하고, 가마에서 일곱 빛깔을 띠도록 구워 내고, 그걸 자연 바람에 제대로 말려내야 하죠. 형태에 따라 암키와 수키와 암막새 수막새 장식기와, 크기 따라 소·중·대·특대와 등등 맞춤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왜 도망가지 않았나요.“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1980년대만 해도 수제 기와하는 곳이 몇 있었지만, 이젠 저랑 제 동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종묘 제안이 왔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동료랑 소주 한잔하며 자신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죠. 뭣보다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이 작업 하는 4년 동안 다른 청탁은 일절 받지도 못 해요. 6일마다 가마에 불을 때며 매달려야 하는데, 자칫 실수라도 할까 봐 그것도 두려웠고요.” ―결과가 나쁠까 봐 걱정됐던 건가요.“그런 점도 없진 않겠지만, 기와라는 게 올린다고 끝이 아니거든요. (정전을 가리키며) 오늘처럼 맑은 날에 찬찬히 보세요. 기와마다 색깔이 죄 다르지 않습니까. 수제로 구웠기 때문에 하나하나 독특한 색을 지닌 거예요. 이게 5년은 지나야 풍우를 받으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요. 그 사이에 금 가거나 깨지는 건 하나씩 교체하면서 세월을 겪어내야 진정한 기와가 완성되는 거죠. 근데 행여 그걸 잘못 만들었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을까 걱정됐죠.” ―말씀대로 기와는 흙과 나무에 따라 다 다르다면서요.“기와 작업은 사람이 하는 일은 50%밖에 안 돼요. 불 때는 나무가 40%, 흙이 10%입니다. 셋이 조화를 이뤄야 제대로 된 기와가 나옵니다. 무슨 흙을 어떻게 섞느냐, 소나무를 때느냐 편백나무를 때느냐에 따라 굳기도 색도 달라집니다. 가마 온도를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맞추는 건 수십 년 경험을 쌓아야 가능하죠. 이젠 제자들도 믿고 맡길 정도까지 된 게 다행입니다.” ―제와에 관심 있는 후학들에게 당부할 게 있을까요.“뭐든 욕심부리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문화유산을 보수하고 지키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일입니다. 서로 대화하며 물 흐르듯 해야 해요. 독불장군처럼 굴면 아무것도 되지 않죠. 하나 더 보태자면, 기본을 지키는 겁니다. 좋은 흙을 찾고, 좋은 나무를 쓰고, 정성껏 가마를 때면 결과는 나옵니다. 괜히 이것저것 딴거 하려 들면 문제가 발생해요.” ―정전이나 숭례문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하고픈 말은 없나요.“딱히 그런 게 있겠습니까. 각자 마음대로 즐기시면 되죠. 그저 ‘좋네’ ‘괜찮네’ 하고…. (김 제와장은 잠시 울컥했다.) 혹시라도 고생한 사람들이 있겠구나 여겨주시면 고마운 거죠. 스승님 묘가 장흥 작업장에서 멀지 않습니다. 정전 기와 작업 끝나고 술 한 잔 따라 드리며 절 올렸어요. ‘그 힘겨운 세월 동안 스승님이 버텨주신 덕에, 저도 이어받아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삽니다’ 하고요. 앞으로도 제 힘이 필요한 곳이면, 지금까지 배운 대로 지금까지 공부한 대로 보탬이 되면서 살겠습니다.”김창대 제와장(製瓦匠)△1972년 부산 출생△1990년 부산공예고 도예과 졸업△1997년 부산동의공업대 산업디자인과 졸업△2009년 한국전통문화대 졸업△2009년 국가무형유산 ‘제와장’ 전수교육조교△2019년 제와장 보유자 인정정양환 문화부장 ray@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조선에선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백(魄)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다. 섬과 바다를 섬겼던 오세아니아 사람들에겐 죽음 이후 바다가 있었다. 죽은 자의 시신을 돌보던 사람의 머리카락과 새의 깃털, 얼굴이 새겨진 나무로 만든 가면을 쓰고서 바다 밑 영혼을 기렸다.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2에서 오세아니아 문화권을 다루는 특별전 ‘마나 모아나-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가 9월 14일까지 열린다. 비서구권 문화를 주로 소개하는 프랑스 케브랑리-자크시라크박물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18~20세기 유물 171건과 현대 작가 작품 8점을 전시했다. 오세아니아권으로 잘 알려진 호주, 뉴질랜드를 넘어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등 지역까지 폭넓게 다룬다. 전시에는 바다가 의례, 사냥, 외교의 공간이었던 삶에 얽힌 유물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연옥으로 만든 목걸이 ‘헤이 티키’는 폴리네시아어로 ‘모든 존재에 깃든 신성한 힘’을 뜻하는 ‘마나’를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고기잡이나 섬 사이 교류에 쓰이면서 ‘작은 우주를 품고 있는 임시 거처’로 여겨졌던 카누는 ‘경계 없는 거대한 바다’(모아나)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 코코넛 섬유와 박쥐 털로 만든 족장의 도끼, 바다 달팽이 껍데기와 거북 등딱지로 된 결혼식 머리 장식 등 이국적 재료로 만든 섬세한 장신구는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사랑하는 동생에게. 뜻하지 않은 너의 편지를 받고 나의 마음이 긴 악몽에서 깨인 듯이 반갑기 한량없다. 긴 세월 모진 세파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6·25전쟁이 치열하던 1952년, 가족이 무사하다는 동생의 편지를 받고 전선에 나가 있던 한 병사가 쓴 답장이다. 우리 역사의 여러 풍경을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물을 모은 광복 80주년 특별전 ‘기록, Memory of you(메모리 오브 유)’가 1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국립청주박물관, 국가기록원의 공동 주최로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구석기 시대부터 고려, 조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자료를 폭넓게 다뤘다. 조선 효종의 딸 숙명공주가 가족과 주고받은 한글 편지를 모은 ‘숙명신한첩’ 등 보물 2건, 국가등록문화유산 6건을 포함해 기록물 100여 점을 선보인다. 국가기록원 소장 ‘1948년 관보 제1호’의 원본도 이번에 최초로 공개됐다. 관보에는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와 함께 헌법 전문이 실렸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제헌헌법 제정 당시의 원본이 사라지고 없는 오늘날, 그 기록적 근거가 되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국권은 인민에게 있음”으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1927년 ‘대한민국 임시약헌’(국가등록문화유산)도 만나볼 수 있다. 일기, 편지글 등 당대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도 다양하다. 1940년대 충남의 한 마을에서 여섯 식구가 찍은 가족사진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없다. 이명주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제에 의해 가족들이 전쟁터에 끌려갔던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했다. 6·25전쟁 중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란한 국민학교 6학년 학생의 일기, 파독 광부가 남긴 편지 등도 볼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6·25전쟁 한복판이던 1952년. 전선에 나가 있던 병사는 가족이 무사하다는 동생의 편지를 받자 기쁜 마음으로 답장을 썼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뜻하지 않은 너의 편지를 받고 나의 마음이 긴 악몽에서 깨인 듯이 반갑기 한량없다. 긴 세월 모진 세파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국립청주박물관, 국가기록원과 공동 개최하는 광복 80주년 특별전 ‘기록, Memory of you’이 1일 개막한다. 전시는 3, 4만 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고려, 조선, 근현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한 자료를 폭넓게 다룬다. 조선 효종의 딸 숙명공주가 가족과 주고받은 한글 편지를 모은 ‘숙명신한첩’ 등 보물 2건, 국가등록문화유산 6건을 포함한 기록물 100여 점이 전시됐다.국가기록원 소장 ‘1948년 관보 제1호’의 원본도 이번에 최초 공개돼 눈길을 끈다. 관보에는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와 함께 헌법 전문이 실렸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헌법 원본이 사라지고 없는 오늘날, 그 기록적 근거가 되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국권은 인민에게 있음”(1조)으로 시작하는 국가등록문화유산 ‘대한민국 임시약헌’도 전시됐다.일기, 편지글 등 당대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도 다양하다. 1940년대 충남의 한 마을에서 여섯 식구가 찍은 가족사진에는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이 빠졌다. 이명주 학예연구사는 “일제에 의해 가족 구성원이 전쟁터에 끌려가던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외 6·25 전쟁 중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란 간 6학년 학생의 일기, 파독 광부가 남긴 편지 등이 전시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조선 영조 대 치러진 과거시험 모습을 그린 병풍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근정전 정시도(庭試圖) 및 연구시(聯句詩) 병풍’(사진)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총 8폭인 이 병풍의 제1폭은 1747년 경복궁 근정전 터에서 시행된 과거시험의 모습을 기록했다. 숙종의 비 인원왕후 김씨의 회갑에 존호(尊號·덕을 높이 기리는 칭호)를 올린 것을 기념해 치러진 시험이다. 제2폭에는 영조가 지은 어제시(御製詩)가, 제3∼8폭엔 좌의정 조현명을 비롯한 신하 50명이 이에 화답한 연구시가 쓰여 있다. 국가유산청은 “궁중 행사를 표현한 병풍 중 이른 시기의 사례로 회화사적 가치가 크다”며 “영조가 추진한 탕평책의 핵심 인물들이 연구시를 지었다는 점에서 영조의 정치 철학과 국가 운영 방식이 담긴 자료”라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주인공 남녀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지만, 거기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 10명이 기술적, 감정적으로 같은 선상에서 균형을 잡고 있죠. ‘카멜리아 레이디’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다음 달 7∼1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아시아 최초로 전막 공연되는 국립발레단 신작 ‘카멜리아 레이디’의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사진)는 이 작품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이마이어는 1973년부터 독일 함부르크 발레단을 이끈 예술감독으로 세계적인 발레 안무가다. 그는 29일 공연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최고의 버전을 선보이고자 서울에 왔다. 단순한 재연을 넘어 새로운 작품으로 재창조할 것”이라고 했다.‘카멜리아 레이디’는 프랑스 소설 ‘춘희(La Dame aux Camlias)’를 재창작한 드라마 발레다. 사교계 여성인 마르그리트와 귀족 아르망이 운명적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비극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1978년 세계 초연됐다. 무용수들은 19세기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녹턴, 발라드 등 여러 음악에 맞춰 춤춘다. 명장면으로 꼽히는 ‘퍼플 파드되’에서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마르그리트가 아르망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에 맞춰 표현한다. 노이마이어는 “베르디, 베를리오즈의 음악도 후보였지만 쇼팽의 실제 인생과 이야기가 일부 닮았다는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카멜리아 레이디’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에게 1999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동양인 최초로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노이마이어는 “감탄을 자아내는 단장”이라며 “무용수에게 방향성을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작품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했다. 강 단장은 “발레리나로서 사랑했던 작품이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춤추던 순간들이 떠올라 벅찼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1일(현지 시간) 미국 최대 음악축제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블랙핑크 멤버 제니의 무대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023년 블랙핑크가 아시아 가수 최초로 코첼라 헤드라이너(Headliner·주연 가수)로 섰던 것에 이어, 제니는 솔로 가수로도 올해 헤드라이너인 레이디 가가와 동급으로 대접받는 위용을 과시했다.2000년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에 수만 명의 현지 팬이 몰려들자 “한류(韓流)가 몰려온다”(베이징청년보)며 대서특필한 지 25년이 지났다. 그간 ‘K콘텐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 왔다. 올해 역시 지난해 말부터 ‘오징어게임’ 시즌2와 로제의 ‘아파트(APT.)’ 열풍에 이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까지 세계적인 붐을 이끌고 있다. 4회에 걸쳐 해외석학 인터뷰 등을 통해 K콘텐츠가 가진 저력의 원천은 무엇인지 점검해 봤다.》“K팝은 한국인의 고유한 감정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확장성을 동시에 지닌 희귀한 문화예요. 한국의 솔풀(soulful)한 문화적 콘텐츠는 세계인에게 정서적 몰입감을 가져다 줍니다.” 미국 예일대의 그레이스 카오 교수(57)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K팝 전문가다. 사회학자인 카오 교수는 5년 전부터 예일대에서 강의 ‘브리티시 뉴웨이브, K팝과 그 너머의 인종과 공간(Race and Place in British New Wave, K-pop and Beyond)’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1970∼1990년대 대중음악부터 방탄소년단(BTS)이나 스트레이키즈까지 폭넓게 다룬다. 카오 교수는 “오늘날 대중음악의 본류가 된 K팝은 그 뿌리부터 세계인을 끌어당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K콘텐츠의 ‘뿌리’가 어떤 잠재력을 가졌다고 보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낯설지 않은 감정선을 동시에 건드린다. 1972년 발표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내 수업에서 학생들의 가장 강렬한 반응을 끌어낸 노래다. 한국 특유의 트로트풍인데 학생들은 ‘감정적으로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음악’으로 받아들였다. 컬러TV와 뮤직비디오가 (서구보다) 늦게 보급됐을 뿐, 오늘날 시스템이었다면 한국의 ‘전설적 가수(legendary singers)’들은 벌써부터 세계에서 통했을 것이다.” ―K팝 전문가로 현재 한류를 평가한다면…. “평생 미국에서 살면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어떤 위치인지 50년 동안 겪었다. 10대였을 때 미국인들은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6·25전쟁이 배경인 TV시리즈 ‘매시(M.A.S.H.)’ 정도나 알았을 뿐이다. 지금은 한국적인 것 자체가 ‘쿨하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됐다. 모든 게 K콘텐츠 덕이다. 이제 대중문화를 넘어 패션과 언어 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반짝 유행’으로 치부할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 ―K팝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보나. “서구 팝 음악과 비교하면, 노래의 구조 자체가 복잡하다. 아이돌 멤버가 많다 보니 랩과 노래를 파트별로 나눠주며 다채로운 구성이 이뤄졌다. 이게 결국 K팝의 개성이자 독자적인 음악 언어가 됐다. 여기에 고난도 퍼포먼스와 철저한 트레이닝 시스템, 팬덤 중심의 유통 구조 등이 결합되며 한국적 정체성과 글로벌 확장성을 동시에 갖춘 문화로 발전했다. 앞으로도 이런 고유의 매력을 유지해야 장기적 성과를 낼 것이라 본다.” ―한류가 빠르게 확산된 요인은 뭐라고 보는가. “K콘텐츠의 또 다른 특징은 ‘경계를 넘나드는 소비’다. 통상 한류를 좋아하는 이들은 미디어나 장르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콘텐츠를 소비한다. 아이돌 그룹 팬은 ‘내 최애가 드라마 배경음악(OST)을 불렀으니 드라마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드라마에서 K팝의 매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국의 정서가 담긴 웹툰 역시 K콘텐츠의 주요 유입 경로다.” ―최근 K팝 기획사들은 ‘글로벌 팝’으로 도약하려고 노력한다. “하이브나 SM엔터테인먼트가 시도하는 글로벌 전략은 K콘텐츠의 진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어로만 부른 노래나 미국 스타일에 맞춘 판매 전략은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소위 ‘미국화’에 치중해 대중 인지도를 넓히려다가 변별점이 사라지면 오히려 기존 팬도 잃을 수 있다. 세계의 한류 팬들은 단지 한국 제작사가 만들어서 드라마를 보거나 한국 가수가 불렀다고 음악을 듣는 게 아니다. 한국적 정서와 시스템을 소비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2020년 BTS의 ‘Dynamite(다이너마이트)’는 한국어 가사가 없다. 뮤직비디오도 한국적 요소가 없다. 그런 곡들을 통해 유입된 ‘라이트 팬(light fan)’들은 꾸준히 콘서트에 가거나, 앨범을 반복 구매하는 방향으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K팝을 산업적으로 성장시킨 주역은 충성도 높은 팬들이다. 지난해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발표한 ‘2023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정규 앨범 20장’ 가운데 19장이 K팝이었다. 나머지 1장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이었다.” ―K팝의 장기적 성장에 우려가 되는 점도 있나. “(아이돌을) ‘노력광(狂)’으로 만든 현 시스템은 한류의 위상을 높인 원동력이다. 해외에선 따라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로 인해 K콘텐츠 산업이 지속 불가능한 속도로 굴러가고 있다. 요즘 신인 아이돌은 1년에 미니앨범을 3장씩 내기도 한다. 연습과 뮤직비디오 촬영, 국내외 콘서트, 소셜미디어 홍보 등이 빠른 속도로 끝없이 반복된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아티스트의 수명이 점차 짧아진다. 음악과 안무 등도 창의성이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이 K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류 열성팬들과 (아티스트가) 정서적으로 더 세밀하게 연결될 가능성이 열린다. ‘아이돌 친구 챗봇’ 등의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열릴 수도 있다. 한류의 많은 팬들은 실제로는 만난 적도 없는 스타들과 정서적 유대감을 가진다. K팝 팬심의 본질은 이렇게 상호작용하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닐까. 물론 기술에 따른 윤리 문제는 해결 과제다. 한류에 또 다른 과제가 생겨날 테고, 새로운 경쟁자들도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K콘텐츠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형태와 속도는 달라지더라도 (한류라는) ‘파도(wave)’는 계속 퍼져 나갈 것으로 본다.”그레이스 카오 미국 예일대 교수△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사회학 및 동양어학 학사△1997년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2009~201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사회학과 교수△2017년~ 예일대 사회학과 교수, 계층화와 불평등 실증연구센터(CERSI) 센터장△논문 ‘K팝과 나 —스스로 치유하고 세상을 바꾸다’(2024년), ‘I Need You: 코로나19 시대 온라인 K팝 콘서트와 관객 참여의 중요성’(2023년 공저) 등 발표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1일(현지 시간) 미국 최대 음악축제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블랙핑크 멤버 제니의 무대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023년 블랙핑크가 아시아 가수 최초로 코첼라 헤드라이너(Headliner·주연 가수)로 섰던 것에 이어, 제니는 솔로 가수로도 올해 헤드라이너인 레이디가가와 동급으로 대접받는 위용을 과시했다. 2000년 H.O.T.의 중국 베이징 콘서트에 수만 명의 현지 팬이 몰려들자 “한류(韓流)가 몰려온다”(북경청년보)며 대서특필한 지 25년이 지났다. 그간 ‘K콘텐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 왔다. 올해 역시 지난해 말부터 ‘오징어게임’ 시즌2와 로제의 ‘아파트(APT.)’ 열풍에 이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까지 세계적인 붐을 이끌고 있다. 4회에 걸쳐 해외석학 인터뷰 등을 통해 K콘텐츠가 가진 저력의 원천은 무엇인지 점검해 봤다.》“K팝은 한국인의 고유한 감정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확장성을 동시에 지닌 희귀한 문화예요. 한국의 소울풀(soulful)한 문화적 콘텐츠는 세계인에게 정서적 몰입감을 가져다 줍니다.”미국 예일대의 그레이스 카오 교수(57)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K팝 전문가다. 사회학자인 카오 교수는 5년 전부터 예일대에서 강의 ‘브리티시 뉴웨이브, K팝과 그 너머의 인종과 공간(Race and Place in British New Wave, K-pop and Beyond)’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1970~1990년대 대중음악부터 방탄소년단(BTS)이나 스트레이키즈까지 폭넓게 다룬다. 카오 교수는 “오늘날 대중음악의 본류가 된 K팝은 그 뿌리부터 세계인을 끌어당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K콘텐츠의 ‘뿌리’가 어떤 잠재력이 가졌다고 보나.“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낯설지 않은 감정선을 동시에 건드린다. 1972년 발표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내 수업에서 학생들의 가장 강렬한 반응을 끌어낸 노래다. 한국 특유의 트로트풍인데 학생들은 ‘감정적으로 풍부하고 깊이 있는 음악’으로 받아들였다. 컬러TV와 뮤직비디오가 (서구보다) 늦게 보급됐을 뿐, 오늘날 시스템이었다면 한국의 ‘전설적 가수(legendary singers)’들은 벌써부터 세계에서 통했을 것이다.”―K팝 전문가로 현재 한류를 평가한다면.“평생 미국에서 살면서 아시아계 미국인이 어떤 위치인지 50년 동안 겪었다. 10대였을 때 미국인들은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6·25 전쟁이 배경인 TV 시리즈 ‘매쉬(M.A.S.H.)’ 정도나 알았을 뿐이다. 지금은 한국적인 것 자체가 ‘쿨하다’고 여겨지는 시대가 됐다. 모든 게 K콘텐츠 덕이다. 이제 대중문화를 넘어 패션과 언어 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반짝 유행’으로 치부할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K팝의 특징을 무엇이라고 보나.“서구 팝 음악과 비교하면, 노래의 구조 자체가 복잡하다. 아이돌 멤버가 많다 보니 랩과 노래를 파트 별로 나눠주며 다채로운 구성이 이뤄졌다. 이게 결국 K팝의 개성이자 독자적인 음악 언어가 됐다. 여기에 고난도 퍼포먼스와 철저한 트레이닝 시스템, 팬덤 중심의 유통 구조 등이 결합되며 한국적 정체성과 글로벌 확장성을 동시에 갖춘 문화로 발전했다. 앞으로도 이런 고유의 매력을 유지해야 장기적 성과를 낼 것이라 본다.”―한류가 빠르게 확산된 요인은 뭐라고 보는가.“K콘텐츠의 또 다른 특징은 ‘경계를 넘나드는 소비’다. 통상 한류를 좋아하는 이들은 미디어나 장르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콘텐츠를 소비한다. 아이돌 그룹 팬은 ‘내 최애가 드라마 배음악(OST)을 불렀으니 드라마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드라마에서 K팝의 매력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국의 정서가 담긴 웹툰 역시 K콘텐츠의 주요 유입 경로다.”―최근 K팝 기획사들은 ‘글로벌 팝’으로 도약하려고 노력한다.“하이브나 SM엔터테인먼트가 시도하는 글로벌 전략은 K콘텐츠의 진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어로만 부른 노래나 미국 스타일에 맞춘 판매 전략은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소위 ‘미국화’에 치중해 대중 인지도를 넓히려다가 변별점이 사라지면 오히려 기존 팬도 잃을 수 있다. 세계의 한류 팬들은 단지 한국 제작사가 만들어서 드라마를 보거나 한국 가수가 불렀다고 음악을 듣는 게 아니다. 한국적 정서와 시스템을 소비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2020년 BTS의 ‘Dynamite(다이너마이트)’는 한국어 가사가 없다. 뮤직비디오도 한국적 요소가 없다. 그런 곡들을 통해 유입된 ‘라이트 팬(light fan)’들은 꾸준히 콘서트에 가거나, 앨범을 반복 구매하는 방향으로 잘 이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K팝을 산업적으로 성장시킨 주역은 충성도 높은 팬들이다. 지난해 국제음반산업협회(IFPI)가 발표한 ‘2023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정규 앨범 20장’ 가운데 19장이 K팝이었다. 나머지 1장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이었다.”―K팝의 장기적 성장에 우려가 되는 점도 있나.“(아이돌을) ‘노력 광(狂)’으로 만든 현 시스템은 한류의 위상을 높인 원동력이다. 해외에선 따라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로 인해 K콘텐츠 산업이 지속 불가능한 속도로 굴러가고 있다. 요즘 신인 아이돌은 1년에 미니앨범을 3장씩 내기도 한다. 연습과 뮤직비디오 촬영, 국내외 콘서트, 소셜미디어 홍보 등이 빠른 속도로 끝없이 반복된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아티스트의 수명이 점차 짧아진다. 음악과 안무 등도 창의성이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이 K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한류 열성팬들과 (아티스트가) 정서적으로 더 세밀하게 연결될 가능성이 열린다. ‘아이돌 친구 챗봇’ 등의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열릴 수도 있다. 한류의 많은 팬들은 실제로는 만난 적도 없는 스타들과 정서적 유대감을 가진다. K팝 팬심의 본질은 이렇게 상호작용하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닐까. 물론 기술에 따른 윤리 문제는 해결 과제다. 한류에 또 다른 과제가 생겨날 테고, 새로운 경쟁자들도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K콘텐츠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형태와 속도는 달라지더라도 (한류라는) ‘파도(wave)’는 계속 퍼져나갈 것으로 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깊은 흙과 바다에서 찾아낸, 혹은 이역만리에서 되찾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들. 이 보물들이 박물관 등에서 우리와 만나기까진 여러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귀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을 돌보고 가꾸는 ‘지킴이’들을 격주로 소개한다.》“서서 자귀질한다고 하여 ‘선자귀’, 줄을 죄는 탕개가 달려 ‘탕개톱’…. 전통 연장은 이름만 낯선 게 아닙니다. 현대 전동 도구를 쓸 때보다 시간도 3, 4배 더 걸려요. 하지만 전통 연장이 내는 질감은 비길 수가 없죠. 궁궐을 보수할 때 아직도 전통 연장 40여 종을 쓰는 이유죠.” 45년간 서울 4대 고궁과 종묘, 13개 능원을 보수해 온 대목장(大木匠) 양동호 씨(70)를 최근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만났다. 그는 1969년 창경궁에 입사한 뒤 1980년부터 궁능유적본부 직영보수단에서 전각과 담장, 왕릉 등을 손봤다. 프리랜서로 나섰다면 제법 돈을 손에 쥐었을 터. 하지만 “우리 유산을 지킬 소임이 있다”는 사명감으로 2015년 정년 퇴임 때까지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촉탁직으로 근무 중이다. 양 대목장의 일과는 관람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전 5시 반에 시작된다. 1년 치 잡힌 보수 계획을 꼼꼼히 살핀다. 풍화나 충해 등에 약한 목조 건축물은 언뜻 사소해 보이는 문제도 보수를 지체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붕에 쓰이는 수제 기와는 겨울철 깨지기 쉽다. 그 틈으로 눈이나 비가 새서 적심층 목부재까지 상하면 피해가 막대하다. 양 대목장은 “기와는 한두 장 손상됐어도 즉시 교체하는 것이 고건축 관리의 기본”이라고 했다. 고건축 보수는 납품받은 목재를 건조하는 것부터 그의 손을 거친다. 건물에 쓰인 원부재와 가장 비슷한 색깔, 나이테를 가진 목재를 찾아 톱질, 마감까지 손수 한다. 양 대목장은 2002년 서울 강남구 선정릉의 수복방(守僕房) 복원을 포함해 여러 공사에서 총책임자를 맡았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었던 능은 그 뒤로도 예산이 없어 볼품없는 채로 있었어요. 능원 좌우로 있어야 할 수복방과 수라간은 훼손돼 없어진 상태였지요. 너무 안타까워서 직접 나섰습니다. 끈질기게 복원을 설득한 끝에 공사에 착수할 수 있었어요.” 궁궐의 문살 한쪽까지 무엇 하나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는 만큼 궐 내부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다. 대한제국 영친왕의 왕비인 이방자 여사(1901∼1989)의 장례를 앞두고 누구도 행방을 모르던 재궁(梓宮·생전에 제작해 놓은 왕과 왕비 등의 관) 역시 양 대목장이 찾아냈다. 그는 “창덕궁 의풍각에 보관돼 있었다”며 “알 만한 사람은 오래전 퇴직했거나 돌아가셨기에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방자 여사가 생전 기거하던 창덕궁 낙선재를 제가 자주 수리했어요. 어느 날 저를 따로 부르시더니 손수 그린 매화 그림을 허리 숙여 선물하신 적도 있어요. 재궁을 찾았을 땐 그 마음에 겨우 보답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양 대목장은 현재 궁능유적본부 최고참이자 역대 최장기 근무 직원으로서 근대와 현대를 잇는 추억도 다채롭게 갖고 있다. “쪽머리에 하얀 한복을 입으시고 낙선재 툇마루에 앉아 멀거니 남산을 보셨다”는 덕혜옹주(1912∼1989)에 대한 추억도 있다. 그는 “햇볕이 좋은 날이면 툇마루에 걸터앉고는 하셨다”며 “말년에 조울증 등을 앓으셔서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왜소하던 어깨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현재 양 대목장이 소속된 직영보수단은 국가유산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긴급하게 파견되는 조직이다. 2008년 방화로 불탄 숭례문의 지붕을 해체한 것도 이들이었다. 비계를 설치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아 무너진 잔해를 밟고 올라가 시꺼멓게 탄 부재를 아슬아슬하게 끌어내렸다. 그는 “당시 혹여나 밤새 눈발이 적심 속으로 들어가 피해가 커질까 봐 잠 한숨 못 자고 눈을 털었다”고 했다. 요즘 양 대목장은 후배들에게 전통 수리법을 전수하며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 역시 중학교 졸업 뒤 열일곱 살 때부터 여러 스승을 따라다니면서 도제식으로 기술을 배웠다. 최대 10년까지 가능한 촉탁직도 올해 9월 끝나지만 “손에서 연장을 놓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실은 7, 8년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계속 일했지요. 딱히 아픈 것도 못 느꼈거든요. 평생 궁궐에서 받은 정기가 저를 보우한 걸까요, 하하. 돌이켜봐도, 이 일은 내 천직이었어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습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보 ‘동궐도(東闕圖)’를 비롯해 고려대(서울 성북구) 박물관과 도서관이 소장한 국보와 보물 등 문화유산 170여 점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다음 달 1일부터 개최된다. 고려대 박물관은 27일 “개교 120주년 기념 특별전 ‘120년의 高·動(고·동), 미래 지성을 매혹하다’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에 나오는 동궐도는 가로 길이 576cm에 이르는 대작이다. 경복궁 동쪽의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렸다. 궁궐 전각의 모습과 배치, 주변 환경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어 궁궐 건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평소에는 복제본을 전시하지만, 이번 특별전은 실물이 함께 공개된다. 국보 혼천의 및 혼천시계(사진)도 선보인다. 조선시대 천문시계로, 1만 원권 지폐 뒷면에 그려진 유물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회화도 만나볼 수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금강산도’, 단원 김홍도(1745∼?)의 ‘송하선인취생도(松下仙人吹笙圖)’ 등이 소개된다. 국보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육당 최남선(1890∼1957)이 소장했다가 유족이 기증한 보물 ‘삼국유사 권3∼5’도 주목할 만하다. 학교 역사와 관련된 자료도 선보인다. 1990년대 자율주행 자동차 시범 운행에 성공했던 한민홍 산업경영공학부 명예교수의 KARV-1호 관련 자료, 국가지정기록물 제1호로 이름을 올린 ‘유진오 제헌헌법 초고’ 등이 전시된다. 박물관 측은 “고(高)·려(麗)·대(大)·학(學)·교(校) 5개 주제로 나눠 철학, 실용, 세계, 배움, 그리고 미래를 향한 개척 정신을 담고자 했다”며 “도서관과 박물관이 120년간 지키고 기록해 왔던 우리 역사와 문화를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 개막식은 30일 오후 4시 박물관이 있는 고려대 백주년기념삼성관 1층 아트리움에서 열린다. 12월 20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이틀 전 입은 옷 주머니에서 열쇠나 립밤을 발견한 적 있는가? 방마다 불을 켜두고 다니거나 방에 들어간 뒤 ‘여기 왜 왔더라’ 생각한 적은? 그런데 혹시 이 질문을 읽는 도중에도 딴생각에 빠졌다면?책에 수록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빙고 카드 중 일부 내용이다. ADHD는 충동성, 부주의, 과다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는 신경 발달 장애. 책에 따르면 미국 아동의 5∼10%, 성인 3∼5%가 이에 해당한다. “의사도 전문가도 아니지만 ADHD로 인한 좌절과 기쁨에 대해서는 정말 잘 안다”는 당사자 부부가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힘들게 얻은 지혜를 나누고자” 썼다. 책은 ADHD가 일상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또 가려지는지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예컨대 성인 여성은 스스로 ADHD임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이를 숨기기 쉽다. 이들은 ‘수다스럽거나 과도하게 사교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단지 사회적 성향으로 치부된다. 자꾸만 깜박하는 것은 건망증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매사 단정하고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는 사회적 역할은 ADHD를 숨기도록 압박하기도 한다. 저자는 “ADHD는 만성적이지만 관리할 수 있다”며 극복을 위한 다양한 조언도 제시한다. 스스로를 ‘정상’ ‘비정상’의 잣대로 단정 짓지 말 것, 집중력에 도움 되는 신경전달물질 향상을 위해 유산소 운동을 할 것 등이다. “ADHD는 쉽게 지루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큰 것이다” 등 관점의 변화를 권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ADHD의 놀라운 뇌 기능을 세심히 계획해서 사용한다면 죄책감 대신 성취감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당신은 괜찮아질 것이다.”“무언가를 요청할 땐 구체적인 명령어를 사용해달라”처럼 주변 가족과 친구들에게 유용한 정보도 담았다. “ADHD인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쓰는 게 목표였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은 시종일관 쉽고 명료하다. 마치 가까운 선배가 인생 조언을 들려주듯 경쾌하고 정겹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점차 느려지던 독무가 멈추자 무용수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모여들었다. 무대 중앙에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든 무용수 12명. 큰 원을 그리면서 질주하기 시작하며 발소리와 숨소리가 점차 고조됐다. 마치 우주선이 이륙하며 굉음을 내듯, 무용단의 움직임과 음악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한국무용은 느리고 고요하다는 편견을 깨겠다”는 목표를 내건 서울시무용단 신작 ‘스피드’가 24∼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스피드’는 한국무용의 기본 요소인 ‘장단’을 속도와 기교 등에서 다채롭게 실험한 작품으로 이미 전석이 매진됐다. 대극장 스테디셀러 공연이 아닌 한국무용 공연으로는 매우 드문 사례다. 17일 찾은 연습 현장은 그 열기를 미리 가늠해 볼 기회였다. 공연은 묵직하고 단조로운 비트가 점차 빨라지는 군무로 시작한다. 돌연 한 명의 무용수만 남아 느릿하게 한 팔 한 팔 뻗는 등 빨라지고 느려지기를 쉼 없이 반복한다. 안무를 맡은 윤혜정 서울시무용단장은 “한국무용의 속도감은 무용수 내면의 체화된 움직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그 고유한 감각을 세련되고 몰입되도록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한국 무용의 전형적인 박자감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돋보인다. 프랑스 출신 음악가 레미 클레멘시에비치가 작곡가 겸 연주자로 참여한다. 국악 그룹 ‘SMTO무소음’ 멤버인 황민왕이 협업했다. 두 사람은 장구나 징 등 국악기부터 중국 후루쓰(葫蘆絲·조롱박으로 만든 관악기), 중앙아시아 코무즈(튀르크족 전통 3현 악기) 같은 이국적인 악기까지 활용해 라이브로 연주한다. 공연 후반부에 펼쳐지는 즉흥 무대도 기대된다. ‘박자감과 속도감이 온몸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조건 아래 약 5분 동안 즉흥 독무가 펼쳐진다. 무대 바닥에 설치된 발광다이오드(LED) 미디어아트와 음악까지 무용수의 춤에 따라 즉석에서 완성된다. 윤 단장은 “한국무용의 박자감은 머리로 계산해선 안 된다. 몸이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임을 보여주려 한다”고 했다. 60분간 이어지는 공연은 바닥에 쓰러졌던 무용수들이 다시 천천히 피어나는 듯 일어서며 끝을 맺는다. 윤 단장은 “우주에 도달하기까지의 속도감과 무중력 공간에서의 느린 움직임을 함께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을 애도하는 물결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각국 지도자들과 주요 인사들도 바티칸 장례 미사에 참석할 뜻을 밝히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멜라니아와 나는 교황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티칸 방문이 성사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례 미사 참석은 이례적이란 시각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왔다. 교황은 2016년에도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의 멕시코 국경선 장벽 공약에 대해 “다리를 건설하지 않고 장벽만 건설하려는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만 멜라니아 여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장례 미사 참석 의사를 밝혔다. 1951년 바티칸과 단교한 중국은 교황의 선종 하루 뒤 애도했다. 궈자쿤(郭嘉昆)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교황 선종을 애도한다. 중국은 바티칸과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조문단을 꾸려 교황 장례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이용훈 주교)는 22일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 참석을 위한 주교회의 조문단을 염수정 추기경(전임 서울대교구장), 이용훈 주교, 임민균 신부(주교회의 홍보국장)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주한 교황청대사관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는 공식 분향소를 마련했다. 염 추기경 등은 이날 오후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서울대교구는 24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미사’를 봉헌한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을 애도하는 물결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각국 지도자들과 주요 인사들도 바티칸 장례미사에 참석할 뜻을 밝히고 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멜라니아와 나는 교황 장례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티칸 방문이 성사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이다.트럼프 대통령의 장례미사참석은 이례적이란 시각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왔다. 교황은 2016년에도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의 멕시코 국경선 장벽 공약에 대해 “다리를 건설하지 않고 장벽만 건설하려는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로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 정책이나 기후변화 문제 등을 놓고 자주 충돌했다. 다만 멜라니아 여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장례미사참석 의사를 밝혔다.1951년 바티칸과 단교한 중국은 교황의 선종 하루 뒤 애도했다. 궈자쿤(郭嘉昆)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교황 선종을 애도한다. 중국은 바티칸과 지속적인 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교황의 장례 미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한국은 정부 차원에서 조문단을 꾸려 교황 장례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당시엔 세계 200여 개국에서 지도자와 조문단이 바티칸을 찾았다.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이용훈 주교)는 22일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 참석을 위한 주교회의 조문단을 염수정 추기경(전임 서울대교구장), 이용훈 주교, 임민균 신부(주교회의 홍보국장)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주한 교황청대사관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에는 공식 분향소를 마련했다. 염 추기경 등은 이날 오후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마련된 프란치스코 교황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서울대교구는 24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미사’를 봉헌한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임현석 기자 lhs@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 시간) 선종하면서 국내외 문화예술계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세계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모든 면에서 놀라운 사람”이라 표현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교황은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분이었다. 지혜가 넘쳤고, 선함이 빛났다. 깊은 상실감을 느낀다”라며 ”세상에 닥친 상실은 실로 막대하다. 하지만 그분이 남기고 간 빛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천주교 신자인 스코세이지 감독은 영화 ‘사일런스’(2016년) 등 여러 작품에서 종교를 다뤄왔다.영화 ‘시스터 액트’로 잘 알려진 코미디언 겸 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023년 교황을 만난 사진과 함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모두를 감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한, 오랜만에 등장한 교황”이라며 “인류와 웃음을 사랑한 교황 프란치스코, 평온히 항해하길”이라고 추모의 글을 올렸다. 영화 ‘글래디에이터’ 등으로 유명한 배우 러셀 크로는 2014년 교황을 만났던 일을 떠올리면서 X(옛 트위터)에 “로마의 아름다운 날이지만 신자들에게는 슬픈 날이다. 명복을 빈다”고 썼다.영화 ‘록키’, ‘람보’ 등으로 유명한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과거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났을 때 찍은 사진을 올리고 “훌륭한, 훌륭한 사람(A wonderful, wonderful man)!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유명 TV 토크쇼 진행자 지미 팰런은 지난해 6월 바티칸에서 교황을 만났던 당시 사진을 X에 올리며 “교황님을 뵙게 돼 영광이었다. 웃음을 드릴 수 있어 기뻤고, 격려의 말씀에 감사했다. 평안히 쉬시길”이라고 전했다.국내 문화예술계에서도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2014년 교황 방한 당시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공연을 한 소프라노 조수미 씨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낮은 곳,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으로 다가가는 그분의 말씀이 세계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2023년 몽골에서 교황을 알현했던 팝페라 테너 임형주 씨도 인스타그램에 “가시는 날까지 세계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주셨던 분”이라며 “그 분 앞에서 노래했던 건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이라고 했다.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려진 가수 바다(본명 최성희)는 “기도의 힘과 아이들의 순수함을 몸소 보여주신 아름다운 우리 교황님 가시는 길에 작은 축복의 기도를 올린다”는 글을 올렸다. 2022년 연극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시절을 연기했던 연극 배우 남명렬은 “높은 자리에 계셨지만 시선은 늘 낮은 곳에 계셨다. 이런 분을 연기했다는 것은 분명 영광”이라고 돌이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소식에 국내외 주요 인사들의 애도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이날 정순택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는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전하며 깊은 슬픔 속에서 함께 기도한다”며 “신앙과 사랑의 길을 몸소 실천하며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적 가르침을 주셨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복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교황청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에게 보낸 조전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란 가르침을 통해 인류에게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평화와 화해의 삶을 실천하시며 평생을 헌신하셨다”고 추모했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세계 가톨릭 신자 여러분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인류의 큰 별이 졌지만 교황께서 남기신 사랑과 헌신의 길은 모두의 마음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원불교도 애도문에서 “종교 간 경계를 넘어 상호 존중과 대화, 연대의 길을 열어주신 숭고한 행적은 세계 신앙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희망을 줬다”고 추모했다. 반(反)이민 정책을 두고 교황과 대척점에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교황과 그를 사랑한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도한다”고 썼다. 가톨릭 신자로 선종 전날 교황을 만난 J D 밴스 부통령은 X에 “어제 그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코로나19 초기에 그분이 전했던 강론을 기억할 것”이라고 썼다. 앞서 교황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0년 3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폭풍에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기도를 올렸다. 유럽 정상들도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9일 교황을 접견했던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성하께서 생애와 사명 전체를 바쳐 섬기신 교회와 세상에 부활절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무거운 마음에 다소 위로가 됐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교황은 교회가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하길 원했고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자연과도 연결되기를 바랐다”며 애도를 표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비록 온돌은 아니나 상탑(침대)이 두껍고 높아 냉기가 조금도 없다.” 1896년 9월,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 황제가 서양식 침실을 두고 한 말이다. 바닥을 데우는 온돌 대신 공기를 데우는 라디에이터(방열기)가 설치됐고 침대와 의자, 커튼 등 입식 생활을 위한 가구들이 사용됐다. 또한 고종은 “양옥은 구조가 넓고 높아 시원한 기운이 한번 들어오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면서 궁궐 내 서양식 건축물에 호의적 반응을 드러냈다. 1876년 개항 이후 궁궐에 건립된 서양식 건축물의 역할을 조명하는 특별전 ‘대한제국 황궁에 선 양관(洋館)―만나고, 간직하다’가 22일 서울 중구 덕수궁에서 개막했다. 전시는 당시 양관의 건축적 특징과 용도, 양관 건립에 따른 생활양식의 변화 등을 살펴본다. 황실 보물을 보관하는 장소로서 간직했던 국새, 어보 등 유물 110여 점도 전시된다. 외교 의례 공간인 폐현실(陛見室)을 대한제국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한 공간도 마련됐다. 일제강점기 변형된 정관헌(靜觀軒)은 원래 모습과 비슷하게 연출돼 눈길을 끈다. 정관헌은 전통 지붕에 서양식 기둥과 발코니형 난간, 기하학적 타일이 접목된 건물이다. 원래는 난간 안쪽이 벽으로 둘러막혀 있었으나, 덕수궁이 공원으로 개발되면서 1933년경 3개 면이 헐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벽을 설치해 변형 이전과 가까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홍현도 덕수궁관리소 학예연구사는 “정관헌은 ‘고종 황제가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던 장소’로 흔히 알려졌으나 실제로 그런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며 “왕의 초상화를 그리고 봉안했던 곳이자 황실 보물을 보관하던 곳임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춰 연출된 모습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7월 13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실은 제 남편 다니엘이 한국인이에요. 서울에 살고 있는 다니엘의 가족 앞에서 춤출 수 있어 이번 공연이 더 기대됩니다.”(이자벨라 보일스턴)“한국 관객에게 ‘신디스’(The Cindies) 춤을 드디어 선보일 수 있어 기뻐요. K푸드를 맛볼 생각에 특히나 설레는 것일지도 몰라요. 부대찌개를 정말 좋아하거든요.”(제임스 화이트사이드) 세계 최고의 클래식 발레단으로 평가받는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24∼27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내한 공연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까지’를 갖는다. ABT ‘간판 무용수’로 세계적인 발레 스타인 이자벨라 보일스턴(39)과 제임스 화이트사이드(41)는 방한을 앞두고 18일 가진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화이트사이드가 언급한 ‘신디스’란 두 사람이 막역한 친구이자 최고의 파트너인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다. 발레계에서 두 무용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통용된다. 신디스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단막극 ‘네오(Neo)’로 첫 한국 무대를 선보인다.‘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까지’는 ABT가 발레단 차원에서 13년 만에 가지는 내한 공연. 한국인 수석무용수 서희, 안주원 등을 포함한 무용수 약 70명이 나흘간 단막극 5편을 펼친다. ABT는 1939년 창립된 미 국립발레단으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등과 더불어 세계 최정상으로 꼽힌다. 보일스턴은 2006년 입단 뒤 2014년부터 수석무용수로 활동해 왔으며, 화이트사이드는 2012년 입단 후 이듬해 수석 무용수로 발탁됐다. 두 사람은 ‘백조의 호수’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 왕자, ‘호두까기 인형’ 소녀 클라라와 왕자 등 다수의 작품에서 합을 맞췄다. 보일스턴은 “제임스는 열정적이고 강렬한 춤을 보여준다. 객석에서도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며 “서로 말하지 않아도 타이밍을 읽을 수 있기에 즉흥적 표현이 가능하다”고 했다. 화이트사이드도 “무대 위에서도 밖에서도 의지가 된다”며 “모두의 인생에는 ‘신디’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했다.26일 공연되는 ‘네오’는 ABT 상주 안무가인 알렉세이 라트만스키가 두 사람을 위해 창작한 9분 길이의 2인무. 팬데믹을 겪으며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던 신디스가 안무가에게 직접 작품을 의뢰해 탄생했다. 2021년 온라인으로 처음 공개된 뒤 지난해부터 정식 무대에 올랐다. 보일스턴은 “우리의 깊은 우정과 개성을 담아낸 작품이다. 때로는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서로 지지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로맨틱한 느낌은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일본 전통 현악기 ‘샤미센’의 신비로운 선율에 따라 두 무용수는 긴장감 높은 춤을 풀어낸다. 고전 발레의 흔한 서사도 마임도 없다. 보일스턴은 “복잡한 스텝과 고난도 테크닉으로 가득하다. 지금까지 해본 2인무 중 가장 도전적”이라고 평했다. 화이트사이드는 “애초에 영상 촬영을 염두에 두고 안무를 짜 숨 돌릴 틈이 없다. 안무가도 ‘그냥 편집하면 되지’ 생각했던 것(웃음)”이라며 “작품을 할 때마다 기절할 듯한 기분이 든다”고 고백했다. 보일스턴은 27일 단막극 ‘라 부티크’에도 출연한다. 20세기 러시아 안무가 레오니트 마신이 안무한 단막 발레 ‘라 부티크 판타스크’(1919년)를 ABT 무용수 출신 안무가인 제마 본드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그는 “어둡고 역동적인 분위기의 ‘네오’와 달리 로맨틱하고 따뜻하다”며 “평소 환상적이기보단 사실감 있도록 연기하는 편이다. 맡은 인물 안에서 진실성과 정직함을 추구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신디스는 한국을 향한 각별한 관심도 드러냈다. 보일스턴은 2년 전 뉴욕 링컨센터에서 관람한 한국 무용을 떠올리며 “절제되고 아름다운 몸짓에서 한국 문화가 가진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JbDubs’라는 예명의 가수로도 활동하는 화이트사이드는 스스로를 ‘K팝 팬’이라고 강조했다.“블랙핑크와 뉴진스, 르세라핌을 정말 좋아해요. 한국 걸그룹 춤을 안무할 기회가 온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소식에 국내외 주요 인사들의 애도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이날 정순택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는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전하며 깊은 슬픔 속에서 함께 기도한다”며 “신앙과 사랑의 길을 몸소 실천하며 우리 모두에게 깊은 영적 가르침을 주셨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셨다”고 밝혔다. 이어 “복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교황청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에게 보낸 조전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란 가르침을 통해 인류에게 사랑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평화와 화해의 삶을 실천하시며 평생을 헌신하셨다”고 추모했다.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세계 가톨릭 신자 여러분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인류의 큰 별이 졌지만 교황께서 남기신 사랑과 헌신의 길은 모두의 마음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원불교도 애도문에서 “종교 간 경계를 넘어 상호 존중과 대화, 연대의 길을 열어주신 숭고한 행적은 세계 신앙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희망을 줬다”고 추모했다.반(反)이민 정책을 두고 교황과 대척점에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교황과 그를 사랑한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한다”고 썼다. 가톨릭 신자로 선종 전날 교황을 만난 J D 밴스 부통령은 X에 “어제 그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코로나19 초기에 그분이 전했던 강론을 기억할 것”이라고 썼다. 앞서 교황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0년 3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폭풍에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기도를 올렸다.유럽 정상들도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9일 교황을 접견했던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성하께서 생애와 사명 전체를 바쳐 섬기신 교회와 세상에 부활절 인사를 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무거운 마음에 다소 위로가 됐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교황은 교회가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하길 원했고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자연과도 연결되기를 바랐다”며 애도를 표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차기 총리는 “첫 번째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으로서 그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종파의 경계를 넘어 큰 울림을 줬다”고 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실은 제 남편 다니엘이 한국인이에요. 서울에 살고 있는 다니엘의 가족 앞에서 춤출 수 있어 이번 공연이 더 기대됩니다.”(이자벨라 보일스턴)“한국 관객에게 ‘신디스’(The Cindies) 춤을 드디어 선보일 수 있어 기뻐요. K푸드를 맛볼 생각에 특히나 설레는 것일지도 몰라요. 부대찌개를 정말 좋아하거든요.”(제임스 화이트사이드)세계 최고의 클래식 발레단으로 평가받는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가 24∼27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내한 공연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까지’을 갖는다. ABT ‘간판 무용수’로 세계적인 발레 스타인 이자벨라 보일스턴(39)과 제임스 화이트사이드(41)는 방한을 앞두고 18일 가진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화이트사이드가 언급한 ‘신디스’란 두 사람이 막역한 친구이자 최고의 파트너인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다. 발레계에서 두 무용수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통용된다. 신디스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단막극‘네오’(Neo)로 첫 한국 무대를 선보인다. ‘클래식에서 컨템포러리까지’는 ABT가 발레단 차원에서 13년 만에 가지는 내한 공연. 한국인 수석무용수 서희, 안주원 등을 포함한 무용수 약 70명이 나흘간 단막극 5편을 펼친다. ABT는 1939년 창립된 미 국립발레단으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등과 더불어 세계 최정상으로 꼽힌다. 보일스턴은 2006년 입단 뒤 2014년부터 수석무용수로 활동해 왔으며, 화이트사이드는 2012년 입단한 이듬해 수석 무용수로 발탁됐다.두 사람은 ‘백조의 호수’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 ‘호두까기 인형’ 소녀 클라라와 왕자 등 다수의 작품에서 합을 맞췄다. 보일스턴은 “제임스는 열정적이고 강렬한 춤을 보여준다. 객석에서도 그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며 “서로 말하지 않아도 타이밍을 읽을 수 있기에 즉흥적 표현이 가능하다”고 했다. 화이트사이드도 “무대 위에서도, 밖에서도 의지가 된다”며 “모두의 인생에는 ‘신디’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했다.26일 공연되는 ‘네오’는 ABT 상주 안무가인 알렉세이 라트만스키가 두 사람을 위해 창작한 9분 길이의 2인무. 팬데믹을 겪으며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던 신디스가 안무가에게 직접 작품을 의뢰해 탄생했다. 2021년 온라인으로 처음 공개된 뒤 지난해부터 정식 무대에 올랐다. 보일스턴은 “우리의 깊은 우정과 개성을 담아낸 작품이다. 때로는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서로 지지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로맨틱한 느낌은 아니다”라고 소개했다. 일본 전통 현악기 ‘샤미센’의 신비로운 선율에 따라 두 무용수는 긴장감 높은 춤을 풀어낸다. 고전 발레의 흔한 서사도, 마임도 없다. 보일스턴은 “복잡한 스텝과 고난도 테크닉으로 가득하다. 지금까지 해본 2인무 중 가장 도전적”이라고 평했다. 화이트사이드는 “애초에 영상 촬영을 염두에 두고 안무를 짜 숨 돌릴 틈이 없다. 안무가도 ‘그냥 편집하면 되지’ 생각했던 것(웃음)”이라며 “작품을 할 때마다 기절할 듯한 기분이 든다”고 고백했다. 보일스턴은 27일 단막극 ‘라 부티크’에도 출연한다. 20세기 러시아 안무가 레오나드 마신이 안무한 단막 발레 ‘라 부티크 판타스크’(1919년)를 ABT 무용수 출신 안무가인 젬마 본드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그는 “어둡고 역동적인 분위기의 ‘네오’와 달리 로맨틱하고 따뜻하다”며 “평소 환상적이기보단 사실감 있도록 연기하는 편이다. 맡은 인물 안에서 진실성과 정직함을 추구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신디스는 한국을 향한 각별한 관심도 드러냈다. 보일스턴은 2년 전 뉴욕 링컨센터에서 관람한 한국무용을 떠올리며 “절제되고 아름다운 몸짓에서 한국 문화가 가진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JbDubs’라는 예명의 가수로도 활동하는 화이트사이드는 스스로를 ‘K팝 팬’이라고 강조했다. “블랙핑크와 뉴진스, 르세라핌을 정말 좋아해요. 한국 걸그룹 춤을 안무할 기회가 온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