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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차가 하나의 맛이라는 선다일미(禪茶一味)에는 선은 바로 그 현장에서 체험을 통해 이뤄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바로 차를 마시는 순간, 그 맛의 오묘함을 체험하듯 선도 마찬가지다.” 7년 전 인터뷰 뒤 나이를 묻자 ‘부처님 인연 따라 사는 코끼리 띠’를 자처했던 지원 스님(75)은 여전했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과 호계원장, 동국대 이사를 지낸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경기 양주시 육지장사와 서울 은평구 삼보사 회주(會主·사찰의 큰 어른)로 있으면서 선다일미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4일 찾은 삼보사 입구에는 어린이법회와 합창단 등을 통해 도심포교에 앞장섰고, 나중 육지장사 창건의 뿌리가 됐던 삼보사의 과거를 알 수 있는 비가 있었다. ―삼보사 창건이 1983년이다. 당시 도심 포교당은 드물었다. “1979년 신군부에 의해 불교가 유린당하는 법난(法難)을 겪으면서 불교가 인재 양성을 못 해 힘이 떨어져 큰 어려움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성불(成佛)을 미루더라도 포교에 힘쓰기 위해 세운 곳이 삼보사였다.”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전단 1만5000장을 돌렸는데 그걸 보고 아이 둘이 왔다. 허허. 부모가 맞벌이라 심심해하는 아이들과 같이 놀아줬다. 아이들 성적이 쑥쑥 오르자 부모들이 궁금해하며 찾아오더라. 나중에는 법회 때 하루 500명 이상 모였다. 불교를 포함한 종교, 뭐 다를 게 있겠냐?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잘 놀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 ―요즘 총무원 소임도 없어 너무 한가한 것 아닌가. “천만의 말씀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 쓰고 법문하다 보면 하루가 너무 바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찰들의 어려움이 많다. “지금은 4차 혁명으로 10년의 변화가 1년 안에 이뤄진다. 예를 들어 그냥 햄버거 하나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수십 가지 다양한 형태의 햄버거를 주문하는 시대다. 아이들 방식으로 놀아주듯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의 만남, 포교가 필요하다.” ―그게 무엇인가. “불교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사찰과 오랜 시간 축적해온 마음과 건강 프로그램이 있다. 선 수행과 차 문화 등을 중심으로 어린이, 청소년, 성인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줘야 한다. 요즘은 SNS가 상징하듯 시공을 초월한 시대다. 절에 사람이 오지 못한다고 한숨 쉬고 있을 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단식과 효소 체험 등을 접목한 육지장사의 템플스테이가 인기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해 3000여 명이 몰렸다. 사람들은 마음이 먼저라고 하지만 저는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편안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마음공부도 가능하다.” ―이곳 다실의 선문답(禪問答) 치유법회는 계속되나. “지난해 가을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있도록 입식으로 구조를 바꿨다. 코로나19로 사람이 아직 많지는 않지만 차를 마시면서 선문답과 함께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조주 스님도 ‘끽다거(喫茶去),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하지 않았나.” ―선문답이 어렵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선문답은 화두를 들기 위한 것도 있지만, 불교 공부와 세상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교육적 효과도 크다. 조주 스님의 끽다거는 특별한 것을 찾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조주 스님이 스승 남전 스님에게 도가 무엇이냐고 묻자, 남전 스님은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라고 했다. 저울을 쓸 때 좌, 우로 기울지 않고 평형을 이뤄야 무게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의 세계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올해 의료방역 관계자와 소상공인, 여행업계 종사자 등을 위한 사회공익형 템플스테이가 확대된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원경 스님)은 최근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올해에도 이어지는 만큼 코로나19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지난해 의료방역 관계자 2400명, 소상공인·여행업계 관계자 3500명에게 사회공익형 템플스테이를 무료 운영하며 휴식의 시간을 제공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특별치유 템플스테이’를 통해서도 2만4000여 명이 사찰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 단체는 의료방역 관계자와 소외된 이웃 등 1만6000여 명에게 사찰음식도시락과 간식을 제공했다. 원경 스님은 “코로나19가 끝나는 날까지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들이 마음 놓고 쉬어갈 수 있도록 ‘토닥토탁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여행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했던 ‘쓰담쓰담 템플스테이’의 대상을 확대해 더 많은 이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사업단은 지난해 많은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공연계 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공익형 템플스테이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 불교문화 콘텐츠를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디지털 콘텐츠도 강화할 계획이다.김갑식 문화전문 기자 dunanworld@donga.com}

“지금은 교회가 선교 전단지가 아니라 방역기를 들고 나서야 할 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신자와 지역 주민을 섬겨야 합니다.” 지난달 28일 인천의 한 교회에서 만난 작은교회살리기연합 대표이자 ‘우리마을지킴이 연합방역단’(이하 연합방역단) 단장을 맡은 이창호 목사의 말이다. 최근 출범한 연합방역단에는 서울 경기 인천 충청 등지에서 35곳의 교회가 참여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이후 자체적으로 방역활동에 힘써온 교회들이다. 무엇보다 출석 신자 100명이 안 되는, 이른바 ‘작은 교회’들이 힘을 모았다는 의미가 있다. 이들은 방역당국의 힘이 못 미치는 지역의 일상적 방역과 다른 지역 교회를 위한 ‘방역 품앗이’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이날 만난 목회자들은 일부 교회와 선교회, 센터 등의 이름을 쓴 단체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코로나19 확산을 막아 신자들과 이웃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올바른 자세”라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예수사랑교회 손인식 목사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교회에 대한 시선이 차가워진 것을 체감했지만 숨어있을 수만은 없었다”며 “교회는 자신들만의 고집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작은 교회들의 어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인천 좋은교회 송영수 목사는 “이전에도 출석 신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코로나19 이후 10여 명으로 줄었다”며 “어려움이 많지만 방역과 봉사 활동을 통해 ‘동네의 좋은 교회’로 자리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충남 청양군 새에덴교회는 코로나19 방역에 적극적으로 나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었다. 이곳은 교회뿐 아니라 지역의 경로당과 마을회관 등 공동시설에 대한 방역에도 힘써 도지사의 감사패를 받았다. 윤재천 목사는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려운데 ‘교회 때문에 더 힘들다’는 말이 들려 힘들었다”며 “방역 활동을 꾸준하게 하니 이제 방역통을 메고 다니면 반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요즘 거의 헌금이 없다는 작은 교회들의 입장에서 방역에 들어가는 비용은 큰 부담이다. 경기 포천시 한마음교회 임병만 목사는 “지난해 방역 활동을 하면서 3000만∼4000만 원이 들었다”며 “어려울 때마다 신자와 후원자들이 돕고,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시더라”고 말했다. 인천 큰기쁨교회는 홀몸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반찬과 생필품 등을 전달해왔다. 이곳 최종철 목사는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 있는 어르신들을 찾아 안부를 묻고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며 “경제적 어려움이 많지만 좋은 뜻에는 좋은 방법이 나온다”고 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면서 이후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게 연합방역단에 참여한 교회들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새에덴교회 최종천 목사는 “이웃과 지역의 아픔에 공감하는 교회의 모습이 절실하다”며 “그래야 슬픔이 가득한 교회를 희망이 가득한 교회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창호 목사는 “일부 교회와 단체들의 무모한 행동이 국민들께 많은 실망을 드렸지만 대다수 목회자와 교회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전국 5만여 교회의 70%가 넘는 작은 교회들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인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갤러리와 야외 공연장의 프로그램을 재개해 문화적 즐거움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다.” 원불교 교단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오도철 교정원장(59)과의 인터뷰는 14일 서울 동작구 현충로 소태산기념관에서 진행됐다. 2019년 문을 연 이곳의 이름에는 교조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 대종사(大宗師)의 호가 들어 있다. 1916년 소태산 창시 이후 개교 100년을 넘어 200년을 향한 원불교의 다짐을 읽을 수 있다. 1979년 출가한 오 교정원장은 교정원 기획실장, 중앙중도훈련원 부원장, 신촌교당 주임교무 등을 지냈다.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10층 업무동과 2층 규모의 종교동으로 나뉘는데 환경 문제를 감안해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종교동에는 강연장과 공연장, 갤러리, 첨단 영상을 갖춘 명상실 등이 있다. 교도들만의 것이 아니라 지역민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공간이다.” ―신년사에서 서로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임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세계의 지성인들은 한목소리로 모든 생명체가 깊게 관계돼 있음을 강조해왔다. 원불교는 만물이 연관돼 있다는 연기설(緣起說)에서 특히 은혜의 관계를 중시한다. 교리 중에는 천지은,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의 사은(四恩)이 있다. 전산 종법사(宗法師·원불교 최고 지도자)께서도 ‘아무리 어려워도 모든 인연을 부처로 모시고 집집마다 부처가 살게 되면 그곳이 바로 낙원’이라고 하셨다.” ―천지은은 무엇인가. “지난해 지구상에서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 화재를 비롯해 홍수와 가뭄이 이어졌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과 인간의 관계가 천지은이다. 사은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이에 보은해야 우리 사회와 인류 문명이 제대로 전개될 수 있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모두 함께 잘사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 사회 전체를 배려하는 마음이 커지길 바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성(靈性) 또는 마음공부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물질만능의 가치관과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 만연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겉으로 화려하고 풍족해 보이는 세상에 큰 성찰이 필요함을 보여줬다. 대종사께서는 100여 년 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하셨다. 인류의 참다운 문명은 돈이나 물질이 아니라 보람과 공동체에 대한 기여에서 찾아야 한다. 비대면, 온택트의 세계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어줬다. 일방이 아니라 쌍방향 대화가 이뤄지고, 지역적 한계를 넘어 세계 시민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독신을 의무화했던 여성 교무(성직자)들이 결혼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미 대종사님 당대에 결혼 유무로 차별받지 않도록 규정을 만들었는데 100여 년 전 한국 상황이니까 시행을 보류한 상태였다. 교단도 사람 사는 곳이라 의견이 많을 수밖에 없어 이번에 차별 금지를 법제화한 것이다.” ―최근 원불교 최초의 해외 종법사로 미국 종법사가 임명됐다. 어떤 의미인가. “해외 교화활동에서 가장 활발한 미국 지역을 대표하는 종법사가 탄생했다. 13일 서울교구장을 지낸 죽산 황도국 종사(69)께서 미국 초대 종법사로 임명됐다. 미국 종법사의 임명은 국내에서 성장한 원불교가 세계 종교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거라고 본다. 추대식은 9월 12일 미국 뉴욕주 원다르마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 교단에 여러 종법사가 있다는 것이 낯설다. “교단 내에서는 ‘각국에 종법사가 있게 될 것이다’라는 대종사님 말씀이 전해져왔다. (전북) 익산 총부가 맏형이면 미국 총부는 아우 격이다. 익산 총부의 전산 종법사께서는 중앙 종법사가 될 것이다. 향후 생겨날 총부들은 발전에 따라 자치권한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법(敎法)에 관한 판단과 종법사 임면권 등 중요 권한은 중앙 종법사께서 담당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이 위험한 수준이다. 진정한 통합을 위한 지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사심(私心)이 없어야 한다. 사회 지도자들은 나, 우리 회사, 우리 정당 등 나의 범주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하루빨리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중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대봉공인(大奉公人)의 자세가 필요하다. 일을 맡다 보면 사람의 눈이니 구분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속해 있는 경계를 허무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특정 정당에 속해 있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본래의 꿈과 목표를 되새겨야 한다.”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지도자들에게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우선 말씀만이라도 덕스러우면 좋겠다. 그래야 선거 뒤에도 지혜를 나누고 힘을 합쳐 이 어려운 위기를 넘길 수 있지 않겠나.” ―마음공부나 법문 중 특히 되새기는 경전 구절을 들려 달라. “개인의 분별이나 사적인 이익을 공익을 위해 비우는, ‘대공심 대공심(大空心 大公心)’이다. 원불교인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한 3대 종법사 대산(大山) 김대거 종사(宗師·1914∼1998)의 가르침이다. 올해 신축년은 하얀 소의 해다. 원불교는 목우십도송(牧牛十圖頌)을 외는데, 소를 마음에 비유해 길들지 못한 검은 소가 길이 잘든 하얀 소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마음 소를 잘 길들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오도철 교정원장은△ 1962년 전북 익산 출생△ 원광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1979년 원불교 출가△ 1984∼1987년 원불교 대연교당 부교무△ 1995년 교화연구소 과장△ 2003년 교정원 기획실장△ 2010년 중앙중도훈련원 부원장△ 2013년 신촌교당 주임교무△ 2018년∼ 교정원장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와 전기차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고 부자를 다투는 억만장자들이다. 그들이 2015년 설전을 벌였다. 베이조스가 로켓 발사에 성공한 머스크에게 “클럽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며 우위를 표하자 머스크는 베이조스의 로켓이 지구 궤도를 아주 잠깐 벗어난 것을 비꼬며 “우주는 궤도가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우주정거장에 화물을 보내는 데 여러 차례 성공한 머스크로서는 ‘우주클럽’ 선배처럼 행세한 베이조스의 말이 거슬렸을 법하다. 이 책은 민간 우주산업 분야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두 사람뿐 아니라 우주관광용 로켓을 개발 중인 리처드 브랜슨, 소행성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사업을 추진 중인 피터 스티브래니, 우주 호텔을 꿈꾸는 로버트 비글로 등 우주클럽의 여러 멤버를 다룬다. 저자는 독일 과학잡지 ‘스펙트럼’과 일간지에 20년 이상 기고해온 과학전문 저널리스트다. 우주클럽 멤버들의 꿈과 도전은 무대가 우주로 바뀌었지만,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의 패권 다툼을 연상시킨다. 사람들의 눈에는 로켓 발사 장면이 몇 초간 노출되며 성공과 실패라는 짧은 단어로 요약되지만, 숨겨진 스토리는 차고 넘친다. 저자는 꼼꼼한 취재를 통해 개인적 스토리와 함께 자본 유치와 인재 영입, 특허를 둘러싼 갈등, 정보와 마케팅에서의 수 싸움 등 우여곡절이 많은 우주산업의 실상을 다뤘다. 몇 초의 순간에 수억 또는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돈의 운명이 좌우된다. 왜 이 시대, 우주를 향한 골드러시가 본격화했을까? 억만장자들은 왜 우주로 향하는가? 지구를 위한 플랜 B, 마지막 블루오션, 억만장자의 고상한 취미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우주 프로젝트의 전성기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다. 미국과 옛 소련의 경쟁 속에 유리 가가린이 첫 우주비행에 성공했고 1969년 아폴로 11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하지만 이후 미 항공우주국(NASA)으로 상징되는 국가 기관들은 예산 감시와 경직된 조직의 통제를 받으며 모험적, 혁신적인 시도가 줄어들었다. 반면 수십 년에 걸친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실리콘밸리 특유의 파괴적 혁신 DNA로 무장한 억만장자들이 결합함으로써 ‘뉴 스페이스(New Space)’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처음에 공상처럼 들렸던 머스크와 베이조스의 계획은 놀랍게도 하나둘 실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주클럽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돈이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억만장자 중 25명 이상이 신세대 항공우주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베이조스는 아마존의 첫 구인 광고에 전설적인 프로그래머 앨런 케이의 말을 인용했다고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창조하는 것이 훨씬 더 강하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연등회가 한국의 대표 전통문화 축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사진)은 19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연등회에 담긴 공동체 및 시대정신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세계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이렇게 밝혔다. 조계종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법회를 중단한 데 이어 연등회도 취소했다. 올해는 방역당국과 협의를 거쳐 가급적 연등회를 진행하고 싶다는 게 조계종 입장이다. 통상 연등회는 부처님오신날(5월 19일) 1주 전 치러진다. 원행 스님은 올해 중점 과제로 ‘백만원력 결집 불사’를 꼽았다. 이에 따라 인도 부다가야에 한국 사찰 분황사를 세우고, 계룡대에 호국 광제사를 건립하기 위해 속도를 낼 계획이다. 종단 차원의 첫 ‘불교 성전(聖典)’ 편찬 계획도 발표했다. 조계종은 북한 조선불교도연맹과 협의해 방역물품 지원 등 남북 불교 교류협력 사업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원행 스님은 “올해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년이 되는 해”라며 “봄날 훈풍과도 같았던 지난날 정상회담의 여운이 사라지고 평화의 시계는 멈춘 채 팽팽한 긴장감이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고 말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삶과 신앙을 조명한 라디오 드라마가 나온다. cpbc대전가톨릭평화방송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과 올해 유네스코 세계 인물 선정을 기념하는 특집 라디오 드라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다음달 22일부터 방영한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전통적인 성인전의 전개 방식을 탈피해 자유로운 구성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이 극중 등장해 200년의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김 신부가 살았던 조선과 2021년 대한민국 사회상이 교차된다. 방송사는 “김 신부는 인간 존엄과 평등사상을 구현한 분으로 현대인들에게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올해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禧年)’으로 선포했다. 희년은 구약성경 시대로부터 유래된 가톨릭교회 전통이다. 용서의 정신에 따라 고해성사와 영성체 등을 전제로 신자들에게 잠벌을 면제하는 전대사(全大赦)를 수여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4일 부산 금정구 안국선원에서 만난 수불 스님(68)은 “통상 동안거(冬安居)에는 서울과 부산의 선원을 합해 2000여 명이 함께 수행했는데, 지금 서울은 폐쇄돼 있고 부산은 20명 이내 참석만 가능해 낯선 풍경”이라며 “출가 이후 처음으로 시간이 많아 개인 수행에는 도움이 되는데 다른 이들이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1989년 안국선원을 설립한 수불 스님은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 보급에 힘쓰며 도심 포교의 새로운 모범을 세웠다. 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을 비롯해 불교신문사 사장, 부산 범어사 주지 등을 지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덕담을 들려 달라. “인류는 수많은 전쟁과 자연재해, 질병을 경험했지만 극복하면서 살아남았다. 그 역사를 통해 인류에게는 극복의 유전인자가 새겨져 있다. 이런 힘든 일과 시간도 지나가는 것 아니겠나. 이 어려움을 우리가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삼기 위해 지혜의 눈을 떠야 한다. 미래 인류사회를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찾는 게 이 시대, 우리의 책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우울증과 무기력함,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높은 정신세계를 보여준 국민들도 사태의 장기화로 지칠 수밖에 없다. 종교를 포함한 정신분야 리더와 국가 지도자들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정치권은 여야(與野)를 막론하고 질병과 정치를 연결짓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직해야 한다. 솔직담백하게 잘잘못을 얘기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시대의 영성(靈性)과 수행법은 무엇인가. “스스로 이겨내고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갈등의 소리에 경계(境界)가 흔들리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 힘을 길러야 한다.” ―수행 경험이 부족한 분들이 많은데…. “신도 분들 중 어려운 상황에 더 열심히 수행하고 이웃과 나누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은 자신 주변의 좁은 범위가 아니라 공동체, 사회, 국가 단위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 이런 마음가짐이 어려운 분들은 ‘담담히 자기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자신의 한 생각을 돌이켜 중심을 잡는 담담함이 필요하다. 마음이 급해지면 잡히지 않고 우울감과 분노가 자신을 삼켜버린다.” ―코로나19 속에서도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나.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고 있지만 기후, 환경, 생태 차원에서 문제점이 많았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정치, 경제에 목을 매는 삶을 살면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내면화돼 있었다. 우리가 주인이면서 그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닌가.” ―사회 통합을 위한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국가와 사회 지도층, 원로와 종교계 리더들이 마음을 크게 열어야 한다. 왜 편협한 사회로 치닫고 있나. 정치 경제 종교 사상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큰 모토가 있어야 하는데 각자 자기 생각대로만 가자고 한다. 이런 갈등의 봉합은 물밑에 있다 수면으로 오르면 다시 변질된 모습으로 우리를 괴롭힌다.” ―최근 시국과 관련한 성명을 보면 원로 그룹마저 나뉘어 있다. “좌우라는 이념적 구분보다는 더 큰 안목,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존경 받는 원로가 있긴 할 터인데 그분들은 큰 문제에 나서야 한다. 원로라는 그룹이 정치권의 편 가르기에 들어가니까 힘이 없다. 열린 눈, 큰 안목, 소통의 소리가 필요하다. 국민을 어루만지는 원로들이 많아야 중심이 잡힌 사회다.”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나 성철 스님(1912∼1993) 같은 원로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원로는 작은 일에 반응하지 않고 말이 무거워야 한다. 원로들은 더 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가르침을 주고 힘들어도 고언(苦言)을 해야 한다. 그래야 믿음직한 분이 있다는 의지가 생긴다.” ―성철 스님은 어떤가. “그분은 기본적으로 세상과 가까이 하지 않는 수행자의 삶을 지켰다. 세상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과 함께한 분이기도 했다. 세상을 걱정했기 때문에 법문을 멈추지 않았고, 정신적 공부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목소리에 울림이 컸다.” ―우리 사회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이쪽저쪽의 가운데가 아닌 진리에 입각한 중도(中道)의 눈이다. 중도는 보편적, 상식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지혜로운 눈이다. 그런데 세상을 보면 그런 눈을 지닌 분은 나서지 않고, 그렇지 않은 분들만 나서고 있다.” ―더 구체적인 설명을 달라.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상대방을 긍정하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불교에서는 선(善)뿐 아니라 악(惡)도 스승이라고 했는데, 이런 자세를 가져야 갈등을 없앨 수 있다. 바다 같은 대(大)긍정의 세계다. 바다는 온갖 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기 아닌가. 리더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한 덩어리로 안고 나아가야 한다. 내 편은 받아들이고 네 편은 내치는 것은 큰 후유증으로 반복될 뿐이다.” ―마음에 새길 경구를 들려주면…. “인간은 본래청정(本來淸淨)하다. 청정은 물들지 않는 것인데, 물드는 건 아무리 깨끗해도 청정이 아니다. 알아야 수행할 수 있다. 원인을 갖추지 못한 채 결과만 바랄 수는 없다. 짧은 삶을 살다 가도 생명은 소중하니 귀하게 살아가야 한다. 모두 진리에 눈을 뜨기를 바란다.”●수불 스님은△1953년 경남 통영 출생△1975년 범어사 지명스님을 은사로 출가△1989년∼안국선원 개원, (재)대한불교조계종 안국선원 이사장 겸 선원장△2010∼2012년 불교신문사 사장△2011∼2017년 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2012∼2016년 조계종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부산광역시불교연합회 회장△2015년∼BBS부산불교방송 사장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부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함께 절을 찾은 어린 손녀가 부처님이 복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축원하자 할머니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 늘 복을 달라고만 했지, 복을 받으라고 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 짓는 수행자로 알려진 도정 스님(52)의 신간 ‘향수해(香水海)’의 한 대목이다. 향수해는 화엄경의 연꽃 피는 향기로운 바다를 가리킨다. 스님은 경전의 한 구절과 함께 이 사연을 소개하며 “어쩌면 복을 비는 마음과 복을 빌어주는 마음의 갈림에서 과보(果報)의 갈림도 생기는 것 아니었을까?”라고 묻는다. 이 책은 경전 구절에 어울리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엮었다. “네가 지금 빈궁하여 작은 등(燈)이라도 켜서 부처님께 공양하리니, 이 공덕으로 일체중생의 번뇌 어둠 없애게 하소서.” 도정 스님은 ‘현우경’ 중 가난한 여인의 등 공양을 언급하면서 요즘 세상사를 떠올렸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어느 섬의 사찰 연등에는 고등어, 우럭, 광어, 농어 등의 이름표가 달린다. 어부가 고기들을 대신해 등 공양을 올린 것이다. 도심의 어느 사찰에서는 매년 한 차례 고기들을 위한 천도재가 열린다.” 경전을 다룬 책들은 어렵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스님의 삶이 녹아 있는 안성맞춤의 에피소드를 통해 쉽게 전달된다. 기쁨 위로 사랑 외로움 신심 등 다섯 갈래로 구성됐다. 도정 스님은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원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시 ‘뜨겁고 싶었네’로 등단했고 시집 ‘누워서 피는 꽃’, 산문집 ‘사랑하는 벗에게’, 경전 번역 해설서인 ‘보리행경’ ‘연기경’을 출간했다. 스님은 불교계에서 내로라하는 글꾼들이 모인다는 ‘월간 해인’의 편집장도 지냈다. 누군가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이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은 게 꿈이라고 대답했다. 한때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은 게 꿈인 녀석’으로 불렸던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중이 된 지금도 늘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은 걸 보면, 나는 거지이거나 중이 될 싹수였나 보다.’ 13일 통화한 도정 스님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도 반응이 시큰둥하다. “6년째 경남 산청의 비닐하우스에서 화목난로를 피우며 개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자다가 새벽 한기에 깨기도 하는데 그러면 밤하늘도 보고 글도 읽는다. 부처님께 공부하며 살겠다고 발원했는데 불편함이 없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품어주던 보호처이자 한국 가톨릭교회의 상징인 서울 명동대성당에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이 들어선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22일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성당 안쪽 옛 계성여중고 샛별관에 마련된 명동밥집에서 현판식과 축복식을 거행하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다고 12일 밝혔다. 운영은 교구의 한마음한몸운동본부가 맡는다. 현재 명동밥집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명동 주변 소상공인으로부터 도시락을 주문해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 나누어주는 ‘소상공인 온기 배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실내 급식으로 전환해 주 3회 무료 급식을 제공할 예정이다. 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 ‘서울대교구가 세상의 누룩이 되길 바란다’는 글을 남기셨다”며 “염 추기경께서는 명동밥집이 단순히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한 인격체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김갑식 문화전문 기자 dunanworld@donga.com}

‘겨울이 오고야 당신이 꽃인 줄 알았네요.’ 지난해 말 찾은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에 붙은 대형 현수막의 문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 합동) 총회장이자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인 소강석 목사(59)는 “미증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함께 웃으며 대화하고 자유롭게 누리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됐다”며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서로 다가설 수 없고 만날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더 뜨겁게 그리워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장 합동은 개신교 최대 교단의 하나이고, 한교총에는 국내 교단의 대다수가 가입돼 있다. 어려운 시기에 개신교를 이끌고 있다. “너무나 힘든 때 중책을 맡아 두려운 영광이다. 현장 예배를 지키는 분들로부터 정부에 더 강하게 대응하라는 주문을 듣고 있다. 중세의 사제들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자, 교회는 모여야 한다며 공간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결과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예배가 목숨처럼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이웃의 생명과 건강도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 ―코로나19 시대, 신앙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팬데믹의 겨울이다. 교회 내부는 물론이고 정부와 교회의 갈등이 있고, 사회 전체가 갈등하고 분노하는 ‘앵그리 코리아’ 상황이다. 교회 현수막 문구처럼 팬데믹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의 꽃이 되어야 한다.” ―절망 속 낙관론인가. “희생자는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인간을 이긴 바이러스는 없다.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텨야 하는데, 그러려면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절절포’ 정신이 필요하다. 에덴의 동쪽 같은 분노의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위기보다 무서운 것이 무관심과 미움, 증오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코로나19보다 더 힘든 6·25전쟁도 극복했다.” ―최근에도 일부 교회와 선교단체를 둘러싼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고 있다. “송구할 따름이다. 책임 있는 교단들이 정부의 방역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지만 개별 교회의 독립성을 존중해 온 개교회(個敎會) 주의로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 일사불란할 수는 없다.” ―정부의 방역 정책에 아쉬움도 있나. “코로나19 초기에 교회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지나치게 과장했다. 지난해 여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교계 지도자들은 교단들이 방역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독립교단은 지자체가 담당하는 ‘인증방역제’를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1만 명이 넘게 들어갈 수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20명이 앉아 있는 게 현실적인 방역 조치인가? 그래서 정부가 교회를 너무 모른다는 소리가 나온다.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 영적 정서적 방역도 필요하다. 정부의 비현실적 조치에 반감이 생겨 대면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회 일치와 화합도 중요한 과제다. “사실 한교총이 국내 교단의 95%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꼭 통합해야 하느냐는 얘기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형제이기 때문에 이단 문제만 도려낸다면 같이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역과 예배에 관해서도 여러 목소리가 나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런 시기일수록 원(one) 리더십, 원 메시지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상황은 목회자들의 위기이기도 하다. 특히 많이 기도하는 내용이나 떠올리는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얼마나 성도(신자)들을 사모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목회자들은 코로나19의 비대면 상황에서 성도들을 향해 가슴 절절한 세레나데를 불러야 한다.” ―교회 세습과 금권화 등 교회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교회 밖 세상의 목소리, 메시지를 무시하는 교회는 살아남을 수 없고, 리더십도 가질 수 없다. 과거 한국 교회는 선교뿐 아니라 의료와 교육 등의 분야에서 사회적 약자를 도와 존경받았다. 교회는 자기반성과 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시대정신을 제안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한 지혜를 들려 달라. “일단 정치가 국민을 편 가르기 해서는 안 된다. 좌우, 여야에 관계없이 극단적인 목소리가 커지면 그게 분노사회를 만든다. 우리 국회도 코로나19가 극복되면 한 해 2, 3회 의사당 안에서 음악회를 열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예술과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술과 종교는 높은 산, 깊은 샘과 같다. 산에서 산소를 뿜어내고 샘에서 맑은 물이 흘러야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작은 공동체에서 정부까지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인가.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의 리더십이 떠오른다. 그는 1914년 탐험대원 27명을 이끌고 남극대륙 횡단에 나섰다 빙벽에 갇혀 조난당한다. 그는 남극횡단 대신 무사귀환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정한다. 5명의 대원을 이끌고 구명보트에 몸을 실은 그는 1280km나 떨어진 기지를 향해 구조 요청에 나서고, 조난당한 지 634일째 되는 날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전 대원 구조에 성공한다. 지도자들은 항상 비전을 주고 자기희생의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또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내 사람만 쓰려다 보면 사람이 없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켄터키 촌뜨기’라고 비난하며 사사건건 맞섰던 정적 에드윈 스탠턴을 장관으로 중용했다. 초갈등사회에서는 ‘나 좀 도와 달라’는 화합의 리더십이 절실하다.”●소강석 목사는△1962년 전북 남원 출생△1999년 개신대학원대 낙스신학대학원 공동 목회학 박사△1981∼1987년 전남 화순 백암교회 담임전도자△1988년∼ 새에덴교회 담임목사△1995년 ‘월간 문예사조’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시인)△2007년 마틴루서킹재단 국제평화상 수상△2015년 천상병귀천문학대상, 2017년 제33회 윤동주문학상 수상△2015년∼ (사)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2020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용인=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경북 상주에 있는 종교시설인 BTJ열방센터 방문자를 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500명이 넘어서는 등 크게 확산되고 있다. 10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최근까지 경북 상주시 화서면의 BTJ열방센터 관련 방문자 2837명 가운데 현재까지 30% 수준인 872명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154명이 확진됐다. 방대본은 이들 154명 가운데 45명이 부산과 인천, 광주 등 전국 8개 시도 소재 21개 종교시설 및 모임을 통해 추가로 351명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BTJ열방센터 관련 확진자는 현재 505명에 이르며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BTJ열방센터는 개신교 국제선교단체인 인터콥(InterCP)이 운영하는 훈련원이다. BTJ는 백 투 예루살렘의 약자다. 인터콥은 개신교 평신도를 중심으로 하는 선교단체로 1983년 설립됐다. 이슬람교, 힌두교 등 타 종교 성향이 강한 지역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한다. 센터에서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12월 15일까지 28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1박 2일 일정으로 수련회 등 각종 행사를 열면서 집단감염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상주시 관계자는 “대형 강당에서 다 같이 가깝게 붙어 앉아 행사를 했고 30여 명이 한방에 모여 잠을 자는 등 방역수칙을 다수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BTJ열방센터는 시설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문 진입로에 차단기가 설치돼 외부인 출입이 차단되는 등 폐쇄적으로 운영돼 왔다. 상주시는 대규모 감염 사태가 벌어지자 센터 측에 방문자 명단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응하지 않자 역학조사 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30일 센터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센터 측은 지난해 10월에도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1박 2일 선교 행사를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센터 방문자 중에는 코로나19 검사를 거부하거나 잠적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와 상주시, 포항시 등은 센터 방문자들이 진단검사를 받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상주=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1984년 11월 자일 싱 인도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뉴델리에 퍼졌다. 상인들은 상점 셔터를 내리고 직장인들은 일찍 퇴근해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폭력 사태에 대비했다. 이 공포는 저녁 뉴스 시간에 대통령 궁에서 암살 사건이 발생했지만, 희생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정원사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가라앉았다. 이 거짓 정보는 얼마 전에 일어난 인디라 간디 총리 암살의 비극과 당국의 뒤늦은 확인이 맞물려 8시간의 공포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가짜 뉴스가 어떻게 사회 속으로 파고들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분석했다. 가짜 뉴스의 문제점에 접근한 실용서는 아니다. 여러 사례와 학문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가짜 뉴스라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가를 체계적으로 다뤘다. 저자 제랄드 브로네르는 프랑스 파리 디드로대 사회학과 교수로 ‘신념의 제국’ ‘극단적 사고’ 등을 출간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시장 자유화의 문제점을 비판해 왔다. 책 제목의 ‘쉽게 믿는 자’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 이들은 잘 믿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유산인 과학과 상식보다는 음모론에 휩싸이며 ‘신념’을 믿는다. 이 책에서 신념이라는 단어는 과학에 반하는, 근거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정보에 오염된 생각들을 의미한다. 1950년대 말 집단 히스테리가 미국 시애틀을 휩쓸었다. 시민들은 만나기만 하면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을 이야기했다. 앞 유리창에 작은 균열이 있는 자동차가 시내에 점점 많아진다는 소문이었다. 이 미스터리는 소련의 핵실험으로 산성비가 내려 유리가 파손됐다는 낙진 이론과 대규모 고속도로 정비 과정 중 발생한 산성 방울들이 원인이라는 주장으로 확대됐다. 급기야 주지사의 요청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는 불과 몇십 km 떨어진 도시들의 차량을 검사한 결과 간단히 사라졌다. 균열은 여러 도시에서 비슷한 수치로 발견됐고, 이는 차량 노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시애틀 사건의 원인은 과학적 조사가 아닌 확증 편향으로 초래된 ‘검사 전염병’이었다. 저자는 불행하게도 우리 민주주의의 내부에 가짜 뉴스가 번성할 수 있는 DNA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글을 쓰고 출판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이후 표현의 자유는 다양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훼손할 수 없는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표현할 권리와 의심할 자유가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줬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시장의 자유화다.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과학과 상식에 기반한 지식의 민주주의로 가자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려면 표현할 권리는 물론이고 그 권리에 대한 의무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해 종교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어려움을 맞았다. 일부 종교 활동이 코로나19 확산의 통로가 되면서 어려운 이들에게 힘이 되기보다 짐이 됐다는 비판도 있었다. 주요 종단을 대표하는 종교인의 시리즈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시대의 영성(靈性)과 종교계 안팎의 현안을 살펴본다. 첫 회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자 수원교구장인 이용훈 주교(70)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2020년 12월 30일 수원교구청에서 만난 이용훈 주교는 화합보다는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와 리더십의 위기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2009년 수원교구장으로 착좌(着座)한 그는 지난해 10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됐다. ―코로나19로 한국 교회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초유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해를 위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사실 새해에는 희망적인 덕담으로 시작해야 맞는데 코로나19로 많은 생명이 희생됐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너무 많다. 우선 그분들께 위로와 함께 용기를 내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신자들뿐 아니라 국민들 모두 서로 위로하고 나눠야 할 때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위로의 말씀을 자주 언급했는데…. “교황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아닌지를 분별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셨다. 우리 삶에서 물질적, 경제적인 것을 최상으로 놓지 말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멈추어 서서 과거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해 성탄 전에도 교황님께서 프로그래밍된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이 인간에게는 있다고 하셨다. 바로 사랑과 위로를 전하는 일이다.” ―코로나19 이후 특히 많이 기도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주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코로나19의 종식을 기도하고 있다. 알려진 대로 코로나19의 위기는 지구 생태환경의 파괴가 근본적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데 오용, 남용이 많았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창세기 3장 9절)라고 물으셨다. 죄를 범하고 무서워 숨어버린 아담에게 건네시는 이 질문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건네시는 질문이 아닐까 묵상하게 된다. 코로나19라는 재앙을 초래한 우리의 생태적 회개, 구체적 실천이 필요할 때다.” ―구체적 실천은 무엇인가. “마태오복음 7장 12절에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라고 했다. 신학에서는 이 가르침을 황금률로 여긴다. 교회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이 말씀을 되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내년은 김대건 신부(1821∼1846) 탄생 200주년으로 한국 교회는 희년(禧年)을 선포했다. “1836년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 15세 소년들이 조선에서 중국 베이징을 거쳐 7개월 걸려 마카오에 도착했다. 1845년 사제로 서품된 김대건 신부님은 불과 25세 때인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어린 소년이 험난한 여정을 이겨내고, 젊은이가 순교를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김대건 신부님의 업적이 많지만 특히 기억해야 할 것은 평등 박애를 실천하면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희년의 표어가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다. 우리는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천주교인의 정체성을 정립하면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지난해 10월 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됐다. 선출 당시 분위기가 궁금하다. 향후 주교회의의 큰 방향은 무엇인가. “지난 4년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 서기로 일해 이번에는 직무에서 내려오기를 바랐다. 호선으로 선출됐으니 순명(順命)할 뿐이다. 주교회의는 교황청과 한국 교회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생명 문화를 바로잡아 생명 존엄성을 지키는 데 앞장설 것이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기후와 생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수원교구는 특히 성장을 거듭한 교구로 알고 있다. “통계를 보면 신자 수가 95만 명인데 머지않아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다. 2013년 교구 설정 50주년 행사를 치르면서 100년을 향한 비전을 선포했다. 소통 참여 쇄신이 키워드다. 양적인 성장에 어울리게 내실을 기해야 하고 공동체가 성장한 만큼 사회에 더욱 기여해야 한다.” ―화합보다는 대립, 포용과 용서보다는 분별없는 공격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다. 진정한 통합을 위한 지혜는 무엇인가. “지도자들이 정말 잘해야 한다. 정부뿐 아니라 기업 책임자도 포함될 것이다. 정당 정치 특성상 대립과 견제가 불가피하지만 그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싸워도 점잖게 싸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경청과 상호 존중의 문화 속에 합의, 타협, 양보하는 것이다. 화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겠는가. 멸시와 박해 속에서도 강도당한 이를 도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 배려의 전통을 지켜야 하고, 방관자가 아닌 참된 이웃으로서 형제애를 실천해야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러지 않을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전가된다.” ―사회와 국가의 지도자들은 특히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비움의 리더십을 말하고 싶다. 지도자가 자기 생각에 매몰돼 있으면 구성원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다. ‘나를 따르라’는 중세적 리더십이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온전히 내어놓으신 분이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내놓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이 가진 힘과 권력은 휘두르는 게 아니라, 내려놓고 사람들을 섬기는 데 써야 한다. 가정과 기업, 사회, 국가 등 공동체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십의 강조점이 다르겠지만 그 기초는 경청과 이해다. 리더가 어떤 가치와 비전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이 바뀐다. 리더가 자신의 명예보다 공동체를 살리겠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래야 올바른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 이용훈 주교는△ 1951년 경기 화성 출생△ 1977년 가톨릭대 신학과 졸업△ 1979년 사제 수품△ 1979∼1982년 수원교구 안성 본당 등에서 보좌신부△ 1982∼1984년 정남 본당 주임신부△ 1984∼1988년 교황청립 라테라노대 윤리신학 박사△ 1988∼2002년 수원가톨릭대 교수, 총장△ 2003년 주교 수품△ 2009년 수원교구장 착좌(着座)△ 2014∼2020년 주교회의 교육위, 정평위 위원장 등△ 2020년 10월∼ 주교회의 의장,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이사장수원=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758년 누군가가 훗날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는 조지 워싱턴(1732∼1799)에게 중국인 선원들을 만난 소식을 편지에 적어 보냈다. 그는 중국인들의 피부색이 다양하며 북쪽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남쪽 지방 사람보다 피부색이 밝다고 했다. 이에 워싱턴은 놀란 듯 “자네 편지를 받기 전에는 중국인들이 희다고 생각했네”라고 답장했다. ‘온 컬러’의 일부다. 한동안 황인종이라는 단어는 피부색에 따른 인종적 구분으로 사용됐다. 그런데 선교사의 기록과 외교문서 등을 종합하면 18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동아시아인의 피부색을 ‘희다’고 생각했다. 1895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백인종이 막대한 수의 황인종의 침투를 물리칠 준비를 해야 한다”며 ‘황화(黃禍)’라는 제목의 유화 제작을 주문했다. 아시아인은 노란색 피부라는 고정관념은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두 저자는 영문학자와 화가로 색(色)을 중심으로 한 10년의 교류 끝에 이 책을 내놨다. 문학과 예술, 역사,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상식 또는 흥미로운 해석들이 담겨 있다. 레드, 오렌지, 그린, 블루, 블랙 등 1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가 어떻게 색을 만들고 색은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책이다.” 서론에 실린 이 구절은 책의 핵심을 보여준다. 색을 느끼는 감각은 물리적이지만, 색에 대한 인식은 문화적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민중, 급진 좌파, 피의 희생을 상징하지만, 영국 튜더 왕조는 군주의 지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색으로 이용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검은색은 혼란스러운 색이다. “닌자도 입고 수녀도 입고 파시스트도 입고 패셔니스타도 입는다. …마르틴 루터와 말런 브랜도, 프레드 아스테어도 입었다. …빈곤의 색이자 과시의 색, 경건함의 색이자 변태성의 색, 절제의 색이자 반항의 색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올해 종교계의 화두이자 전례 없는 도전이었다. 성탄절 미사와 예배가 비대면으로 치러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각종 종교적 모임이 중단됐다. 종교계의 한 해를 짚어 본다. 올해 1월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종교계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설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천지예수교(신천지) 대구교회 등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대유행의 서막을 알렸다. 신천지에 이어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다시 대형 교회와 작은 교회에서 1년 내내 교회발 코로나19 확산이 이어졌다. 개신교는 개교회(個敎會) 중심으로 가톨릭, 불교와 달리 구속력 있는 통일된 지침을 줄 수 없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올해 2월 한국 가톨릭교회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16개 교구 모든 성당의 미사 중단이 결정됐다. 교구 협의체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모든 교구의 미사가 중단된 것은 한국은 물론 세계 가톨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의 건강을 지키고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부처님오신날 봉축 행사가 한 달 연기됐고 연등회는 취소됐다. 국내 150만 명의 신도가 있는 원불교도 개교 105년 만에 법회를 멈췄다. 비대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도 나왔다. 종교생활이 위축되자 교회와 성당, 사찰은 영상 예배와 미사, 법회에 나섰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통하고 친교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자동차 극장처럼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예배를 올리는 ‘승차 예배(drive-in worship)’도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었다. 방송과 책, SNS를 통해 힐링 멘토로 인기를 모은 혜민 스님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졌다. 부동산 소유에 대한 시비가 역시 베스트셀러 저자인 현각 스님의 날 선 비판으로 확대된 끝에 혜민 스님은 참회와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조계종은 승단에서 영구 추방됐던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승적을 살려 종단 최고 지위인 대종사 법계까지 품수하고, 종단 행정을 칼럼을 통해 비판한 비구니 종회의원 정운 스님을 징계해 불교계 시민사회의 반발을 샀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우울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맞은 문화적 경사였다. 가톨릭계는 지난달 첫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순교 영성과 인간 존중 사상을 기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禧年)’을 선포했다. 한국교회는 2021년 11월까지 희년과 관련한 세미나와 행사를 개최한다. 종교계를 대표하는 리더십도 교체됐다. 개신교 최대의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가 새로운 대표회장으로 취임했다. 교계 통합과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교회의 위상 정립이 과제다. 천주교주교회의는 김희중 대주교에 이어 수원교구장인 이용훈 주교를 신임 의장으로 선출했다. 제주교구는 강우일 주교 퇴임에 따라 문창우 주교가 교구장으로 임명됐고, 춘천교구에서는 최초로 교구 출신인 김주영 신부가 교구장으로 임명됐다. 한편 춘천교구 제6대 교구장을 지낸 장익 주교가 올해 8월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장면 전 총리의 셋째 아들인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어 교사로 불렸으며 종교계 화합을 위해 힘썼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인 인도 부다가야에 한국 사찰 분황사가 29일 첫 삽을 뜬다. 조계종은 이날 오후 1시 반 서울의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부다가야 현지를 온라인으로 연결해 분황사 기공 법회를 봉행할 예정이다. 이 법회는 분황사 건립 총괄을 맡고 있는 인도 법인 소속 스님의 집전으로 진행되며 서울에서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등이 고불문 낭독과 축원을 할 예정이다. 분황사 건립은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인 부다가야에 한국 불교의 위상에 맞는 사찰을 건립하겠다는 원행 스님의 원력이 바탕이 됐다. 이 사찰에는 대웅전과 수행 공간, 성지 순례객을 위한 숙소동과 보건소 등이 들어선다. 사찰 건립은 지난해 12월 두 신도가 “부처님 법이 널리 전해지길 바란다”며 50억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통도사와 청하문도회가 현지에 소유한 토지 약 6611m²(2000평·30억 원 상당)를 종단에 기증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제8회 영축문화대상 시상식이 25일 오전 10시 경남 양산의 영축총림 통도사 설법전에서 봉행된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장(학술문화부문)과 동국대 경주병원(봉사실천), 조계종 포교단체인 동련(포교원력)이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금은 각각 1000만 원. 이 재단은 독립운동가이자 근대 통도사의 중흥조인 구하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종정과 통도사 초대 방장을 지낸 월하 스님의 자비정신과 생명존중사상을 전하기 위해 2011년 설립됐다. 통도사 주지이자 재단 이사장인 현문 스님(사진)은 “영축문화대상이 지역불교계를 대표하는 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만큼 재단이 지역의 일꾼을 더 많이 발굴해 맑고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계는 초유의 비대면 성탄절을 맞게 됐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성탄절 전야인 24일 성탄 밤미사와 25일 낮미사, 내년 1월 5일 교구 신년 미사까지 비대면 온라인으로 봉헌하고 이를 유튜브로 생중계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부산교구도 주일 미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24, 25일 미사는 교구장 손삼석 주교 집전으로 영상매체를 통해 생중계한다. 미사 없는 영성체 예식은 별도로 하지 않고 드라이브스루 형태도 금지한다. 서울대교구는 “현재 미사 참석자 수를 20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며 “성탄 미사도 비대면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방의 일부 교구들은 좌석 수의 20% 이내 인원을 참석시킨 채 미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강해지면 비대면 성탄 미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개신교계 역시 비대면 성탄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현재 수도권은 방역 당국 지침에 따라 예배 참석자가 20명 이내로 제한된 상태다. 교계의 한 관계자는 “참석자 20명은 온라인 중계와 찬양 등을 담당하는 필수 인력을 감안하면 일반 신자는 예배에 사실상 참석할 수 없다”며 “극적으로 상황이 좋아져 신자들을 대면으로 만날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비대면 성탄을 맞아 교계에서는 유튜브 등을 통한 온라인 예배와 미사를 예고하면서 신앙생활을 돕기 위한 메시지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24∼26일 성탄절을 기념해 진행하는 ‘2020 명동, 겨울을 밝히다’의 주요 행사를 온라인으로 치른다. 명동대성당 입구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상징하는 구유와 트리, 장미꽃 조형물로 이뤄진 장미정원이 조성됐다. 교구 측은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행사를 비대면으로 진행한다”며 “가톨릭평화방송(cpbc)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과 라디오를 통해 생중계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개신교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 소강석 이철 장종현 목사)은 최근 발표한 성탄 메시지에서 “올해 성탄절은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고 사랑을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언택트(Untact) 시대’로,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 안에서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영(靈)택트’ 성탄절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한교총은 이어 “떠들썩함과 소요를 그치고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를 주신 아기 예수를 만나는 고요하고 거룩한 성탄절 문화를 회복해 보자”고 했다. 부산의 대표적 교회인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는 최근 발표한 목회 서신에서 △꾸준한 말씀묵상과 기도 △작은 행복 찾기 △감사로 반응하기 △관계의 끈 놓치지 않기 △온라인 집회 적극 참여 등 5가지를 제안했다. 이 목사는 “모든 것이 비대면이 되어 버린 세상이지만 하나님과는 대면해야 한다”며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는 시간으로 만들어 보자. 하나님과의 대면이 삶의 활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이 자본주의는 똑똑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정의롭거나 고결하지 않다. 또한 제 할 일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대신해야 할지를 생각할 때면 극도로 당황하게 된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이다. 2009년 영국 BBC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느냐를 주제로 세계 27개국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11%만 자본주의가 순조롭게 작동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자본주의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고 새로운 경제체제가 필요하다고 답한 이들은 23%였다. 이런 거부감에도 한때 자본주의의 ‘적수’로 등장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 다양한 체제는 모두 자본주의에 패배했다. ‘불안한 승리’는 1860∼1914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세계사를 다뤘다. 지난해 출간된 책의 원제는 ‘The Anxious Triumph: A Global History of Capitalism’. 저자인 도널드 서순(74)은 영국 런던대 퀸메리칼리지 교수로 비교유럽사 분야의 석학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에 자본주의의 첫 번째 세계화가 이뤄졌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주춤했다가 20세기 후반, 오늘날과 판박이인 두 번째 세계화가 완성됐다는 설명이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희생자가 발생하기 직전까지를 빅토리아 대호황기, 미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막대한 부의 축적과 부정을 풍자적으로 그린 마크 트웨인의 소설 제목을 빌려 ‘도금시대’(鍍金時代·the Gilded Age)로 불렀다. 세계화는 요즘 일상적인 표현이지만 미국 의회도서관 서지 목록을 분석하면 1987년 이전에 출간된 책들 중 세계화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책은 ‘세계의 상태’ ‘근대화’ ‘대중 끌어들이기’ ‘세계를 마주하다’ 등 4부로 구성됐다.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접근법과 유럽,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아우르는 방대함이 돋보인다. 세계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제3세계의 미시적인 부분까지 들여다보고 있어 놀라우면서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흔히 떠올리는 경제학자의 난해한 자본주의사가 아니다. 경제사적 쟁점을 짚으면서도 정치 역사 종교, 심지어 문학까지 풍부한 사례들을 담고 있어 1000쪽이 넘는 두툼한 책 페이지가 빨리 넘어간다. “우리 천조(天朝·중국)에는 모든 게 풍부해서 국경 안에 부족한 생산물이 없다. 그래서 우리 생산물을 대가로 해서 외부의 오랑캐가 만든 제품을 수입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유럽 나라들과 당신네가 천조에서 생산하는 차와 비단, 도자기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까닭에 호의의 표시로 광둥에 외국 상관을 설치하도록 허락했다.” 1793년 청나라 건륭제가 영국 조지 3세에게 보낸 서한의 일부다. 1820년 중국의 국민총생산은 나머지 전체 세계의 3분의 1 규모로 추정된다. 생산력과 기술에서 가장 선두에 섰지만 몰락한 중국과 위로부터의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 세계화의 넘버 원 자리를 다툰 영국과 독일, 미국의 전략이 펼쳐진다. ‘대중 끌어들이기’라는 제목이 붙은 3부는 자본주의의 세계화 과정에서 논쟁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유일한 성공 기준은 체제의 생존이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변화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그 지배에 대해 가장 큰 위협은 기후변화라는 지구의 생태적 한계다. 책에서 많이 다루지는 않았지만, 흥미로운 진단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