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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명에 관한 옥사(獄事)는 군현에서 항상 일어나고 목민관이 항상 마주치는 일인데도, 실상을 조사하는 것이 언제나 엉성하고 죄를 결정하는 것이 언제나 잘못된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흠흠신서’에 그가 적어 놓은 집필 동기다. ‘흠흠신서’는 중국과 조선에서 발생한 여러 살인 사건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사건 처리 문제점과 비평 등을 덧붙인 법률서이자 형법, 수사학 지침서다. 그는 살인사건 등의 1차 조사 및 처리를 담당해야 할 지방관들의 무거운 책임을 일러주고자 했다. 이 책은 정치학, 철학, 과학, 경제 등 다양한 학문에 일생을 바쳐온 정약용의 법학자적 면모에 주목한다. 저자는 “다산이 가진 여러 면모 가운데 법학자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며 연구 활성화를 강조했다. 오늘날 법학과 유사한 ‘율학(律學)’은 조선 선비들에게 등한시됐다. 잡과시험에 율과가 있었지만 중인 이하 신분층이 주로 율학을 공부했다. 당시 사대부인 그는 어떻게 법학에 관심을 갖고 독보적인 법률 전문서적을 쓸 수 있었을까. 이 책은 그의 생애를 차분히 펼쳐놓는다. 28세 나이로 관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암행어사에 임명돼 전·현직 수령들의 수많은 비위행위를 목도했다. 마지막 관직인 형조참의 시절에는 정조 재위기간에 벌어졌던 형사 사건에 관한 수사, 검시, 재판기록을 모아놓은 ‘상형고’를 열람했다. 법 집행 관리로서 백성들의 누명을 풀어준 적도 많았다. 저자는 이런 그의 경험이 “전무후무한 판례연구서 ‘흠흠신서’를 편찬하는 데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법관의 중립적인 태도도 강조했다. 그는 법관의 덕목으로 옥사를 신중히 처리하고 옥사에 연루된 자를 불쌍히 여긴다는 뜻을 지닌 ‘흠휼(欽恤)’을 꼽았다. 또 철저한 진술 청취, 명쾌한 판단과 신속한 옥사 처리, 뇌물 수수 금지를 명심하라고 조언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단순 여행기라고 치부하기엔 어딘가 특별하다. 85세인 저자가 찬란한 태양, 일 년 내내 춥지 않은 날씨, 꽃이 많이 피는 탓에 ‘천국의 땅’이라고 불리는 시칠리아를 여행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조용하고 느리다. 10대에 6·25전쟁을 겪은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래서 줄곧 이민자, 이웃나라의 침략에 고초를 겪은 시칠리아에 동질감을 느낀다. 반도국인 한국과 섬나라인 시칠리아를 지리적으로 분석하고 한국과의 유사성, 차이점을 찾는다. 정처 없이 시칠리아를 떠도는 그가 묘사하는 자연의 풍광도 읽는 재미가 있다. 노년의 여행인 만큼 준비 과정, 시행착오 등 현실적 어려움도 담겼다. 자신이 집을 비우는 동안 혼자 있을 남편(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 대한 미안함, 집안일에 대한 걱정, 마음 같지 않은 건강이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자신의 마지막 방문이 될지 몰라서일까. 저자는 시칠리아에 도달하자마자 기적적으로 몸을 회복했다. “다시는 못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 여행하는 시간들이 아주 귀하게 느껴졌다. 시칠리아는 자연이 더없이 아름다웠고, 도시마다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MBC 시사 프로그램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진행을 맡고 있는 주진우 기자(45·사진)의 회당 출연료가 600만 원가량인 것으로 밝혀졌다. 연간 3억 원이 넘는 액수로 MBC 사장 연봉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MBC 공정방송노동조합은 27일 성명서를 내고 “개국 이래 최악의 경영난을 겪는 MBC가 주 기자에게 회당 600만 원의 출연료를 지급하고 있다”며 “이념적인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개편 프로그램에 MBC 직원들을 투입하라”고 했다. 올 2월부터 매주 일요일 방영 중인 ‘탐사기획…’은 시청률 2∼3%대에 머물러 있다. 공동 진행자인 영화배우 김의성도 회당 300만 원을 받는다고 노조 측은 덧붙였다. 지난달 종영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김어준 씨(50) 출연료도 회당 500여만 원으로 알려졌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91세인 송해 씨가 30년째 진행 중인 KBS1 ‘전국노래자랑’의 회당 출연료는 300만 원이다. 이순임 MBC 공정방송노조위원장은 “최승호 사장 체제가 10개월째 접어들었지만 MBC는 일평균 시청률이 1%대에 머물러 있고 올해 17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주 기자의 회당 출연료를 연 52주로 셈하면 3억1200만 원으로, 지방 MBC 사장 연봉보다 높고 최승호 사장 연봉과 맞먹는 고액을 지불하는 근거를 밝혀라”라고 지적했다. MBC 측은 “출연료는 스튜디오 촬영뿐 아니라 취재 활동까지 포함한 액수로 타 방송사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이 아니다”라고 밝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한국인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불편하기만 하잖아요. 이웃이 모이는 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0일 경기 고양시 EBS 사옥에서 ‘조식포함 아파트’를 연출하는 최수진 PD(41·여)가 말했다. 11일 첫 방송을 한 ‘조식포함…’은 개그맨 박명수, 요리 연구가 이혜정,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 등 출연진이 아파트를 방문해 주민들이 건넨 식재료를 모아 조식 뷔페를 차려주는 프로그램이다. 4월 파일럿 방송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아 정규 편성이 됐다. 최 PD는 “기존 EBS 프로그램과 다르게 ‘예능스럽다’는 사내 비판도 있었지만 좋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포맷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파일럿 방송을 제작할 때만 해도 주민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프로그램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아파트 신청 게시판’에 수백 개의 글이 올라온다. 주민들이 몰려 준비한 음식이 부족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일부 주민은 “도와주고 싶다”며 쌀과 밑반찬을 더 가져오기도 한다.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에서 촬영할 때는 500명 넘게 몰려 주민들이 2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했다. 그는 “프로그램 주목도가 높아지니 식사를 제공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상황까지 생겼다”며 웃었다. 출연자 섭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밑반찬을 받고, 조식을 제공하는 당일 오전 3시부터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등 체력적으로 힘든 일정이지만 박명수는 기획 의도를 듣고는 흔쾌히 촬영을 수락했다. 최 PD는 파일럿 방송보다 주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의 비중을 늘렸다. “윗집 아랫집이 ‘연락하고 지내자’며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껴요. ‘조식포함…’이 이웃 간 소통의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 시대 며느리들의 고단한 노동 끝에 완성된 차례상을 떠올리면, 문득 종갓집 차례상의 화려함이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는 종가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다.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밥, 국, 과일, 단술(식혜의 일종)을 포함한 12가지 음식으로 단출한 제사를 지낸다. 제사상에 올린 음식이 10가지도 되지 않는 종가도 부지기수다. 오히려 그릇의 높이는 낮고 음식량도 적다. 형편에 맞게 제사를 지내되, 조상을 기리고 전통을 계승하는 제사의 본질을 중시하는 것이다. 20년 동안 종가를 탐방한 저자에 따르면, 종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과 발자취를 간직한 ‘생활문화 박물관’이다. 각기 다른 예법, 복식, 자녀 교육법, 음식, 유적지, 유물 등이 전국에 산재된 100곳의 종가에 녹아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고택을 감상하는 것도 이 책의 볼거리다. 구시대적이고 거추장스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종가 문화를 한평생 지켜온 이들의 노고는 전통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들에겐 육신의 고달픔보다 훌륭한 조상의 후예로 품위 있게 살겠다는 자긍심이 배어 있다. “이 혼서지(婚書紙·일종의 혼인 서약서)를 저승 갈 때 관에 넣어 가야 남편을 다시 만난답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댁의 종부가 되어 종부 노릇을 더 잘해보고 싶어요.”(김태문 종부·일선 김씨 문충공 김종직 종가)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최고 시청률 5.3%(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숱한 기록을 남긴 ‘도시어부’ 알래스카 특별편을 이틀 연속 방영한다. 프로그램 부제인 ‘WILD WILD ALASKA’처럼 야생에서 낚시를 하며 고군분투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담겼다. 이덕화와 이경규, 마이크로닷, 게스트인 배우 장혁은 알래스카에서 연어, 홍어, 대구 등 낚시에 도전한다. 특히 장혁은 길이 82cm, 무게 10kg에 달하는 북태평양 최고급 어종 ‘옐로아이’를 낚아 화제가 됐다.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알래스카 자연의 모습도 압권이다. 불곰, 범고래, 바다표범, 해달 등 국내에서 보기 힘든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 온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 등 날것 그대로의 알래스카를 화면에 담았다. 특별편은 25일 오후 3시 20분에도 방영한다. 도시어부들과 장혁이 알래스카에서 만든 웃음과 감동의 이야기를 24일 오후 3시 반부터 230분간 확인해보자.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결혼 28년 차 박준규 씨(54) 부부는 한가위를 맞아 10년 만에 처음 한복을 입었다.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18일 만난 그는 아내 진송아 씨(52)를 보며 “예쁘다. 젊었을 때 생각이 난다”고 운을 뗐다. 연신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꿀이 떨어졌다. 박 씨의 누나, 매형과 함께 이들 부부는 5일부터 방영된 채널A, 스카이티브이 예능 ‘식구일지’에 출연 중이다. 촬영을 마친 ‘식구일지’는 이들 부부에게도 어려운 도전이었다. 4인 가족이 정확히 오후 7시에 모여 30일 동안 저녁을 함께해야 상금 1000만 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스케줄 탓에 저녁 시간을 잊거나 진수성찬을 준비했지만 ‘밥상 위 차려진 음식만 먹을 수 있다’는 프로그램 규정으로 밥 없이 3일 내내 반찬으로만 저녁을 해결한 적도 있다. 그래도 3년 전부터 백혈병을 앓고 있는 박 씨의 누나 선빈 씨 부부와 더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 누나는 촬영 중에도 진 씨의 손을 잡고 “몸이 좋지 않았는데 엔돌핀을 돌게 해줘 고맙다”고 했다. 어릴 적 미모가 출중한 누나의 ‘보디가드’를 자처했던 박 씨도 함께했던 추억들을 곱씹을 수 있었다. 아직도 오후 7시가 되면 ‘누나와 매형이 밥을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박 씨 가족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 노력한다. 명절이나 새해는 무조건 가족과 같이 보내야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여행을 가도 4명이 함께 간다. 그만큼 박 씨는 두 아들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다. 아들 둘과 술을 마시며 연애 상담을 해주거나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등 신조어도 배운다. 무명시절이 길었던 박 씨는 배우를 지망하는 두 아들에게 “배우는 오래 기다리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1960, 70년대 액션 배우로 활약했던 박노식 씨(1930∼1995)의 아들인 그는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지 않는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는 “아내가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결혼 후 내조를 위해 뮤지컬 배우의 꿈도 접은 진 씨는 “꿈을 포기했지만 덕분에 가정이 더 화목해졌다”며 미소 지었다. 이들 가족에게 추석은 어떤 의미일까. 박 씨는 “차례상에 올릴 만두를 먹는 날이다. 아내가 만두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며 웃었다. 진 씨는 “온종일 가족과 있는 시간이 흔치 않아 소중한 명절”이라고 했다. 군입대한 첫째 아들도 이번 추석 때 휴가를 나와 온 가족이 함께 만두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추석에 꼭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세요. ‘혼밥’이 대세인 요즘 가족과의 정이 싹틀 만한 시간이 없잖아요.”(박준규)용인=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3김(三金) 시대가 왔다.” 한국 현대사를 이끈 정치거물들을 일컫는 게 아니다. 요즘 영화와 방송계에서 대세로 떠오른 여배우 3명에게 붙은 수식어다. 실제로 업계 관계자들은 김고은(27)과 김태리(28), 김다미(23)를 두고 21세기를 이끌 ‘신(新)성장동력’으로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3김 시대의 도래는 2000년대 여배우의 상징으로 꼽힌 ‘태혜지’와는 결이 다르다. 김태희와 송혜교, 전지현은 화려한 외모와 출중한 스타성이 첫손에 꼽혔다. 이에 비해 3김은 신선하고 개성 있는 외모, 짧은 경력에도 괴물 같은 연기력으로 평단과 관객을 휘어잡았다.○ 바늘구멍 뚫은 뉴 페이스의 존재감 시작은 김고은이다. 2012년 영화 ‘은교’에서 300 대 1의 경쟁을 뚫고 17세 소녀 ‘한은교’에 발탁됐다. 김태리와 김다미는 각각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와 박훈정 감독의 ‘마녀’에서 1500 대 1의 경쟁을 뚫었다. ‘마녀’는 신인 여배우의 단독 주연 작품인데도 300만 명을 돌파했다. 박 감독은 “촬영이 임박하도록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차에 김다미를 만났다.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방송 영화 관계자들은 이들의 선전 이유를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초기부터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깜짝 스타’ 논란을 잠재웠다. 작품을 위해서는 노출이나 액션도 불사하는 대범함도 갖췄다. 김고은과 김태리는 각각 ‘은교’, ‘아가씨’에서 전라 노출을 선보였다. 김태리는 애초 숙희 역 조건으로 ‘노출 수위 협의 없음’이란 조건이 걸려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녀’에서 김다미는 4개월간 매일 4시간씩 무술 훈련을 받으며 액션 연기를 소화했다. 이들은 “예쁘다”는 한마디로는 정의하기 힘든 외모를 지녔다는 공통점도 있다. 동양적인 마스크에도 각각 개성을 물씬 풍긴다. 김고은과 김다미는 쌍꺼풀 없는 눈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돋보인다. 김태리는 정리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눈썹과 큰 눈이 조화를 이루며 ‘우아함’이 배어 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김태리가 입은 한복이 검색어 순위에 자주 오를 정도. 셋 다 진한 메이크업보다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강점이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전형적인 미인상은 아니지만 여배우 미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고 평했다.○ 이미지 고착, 변신 숙제 이들에게 찬사만 보낼 수는 없다. 김고은에겐 ‘여리고 순박한’ 이미지가 고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교’ 이후 영화 ‘차이나타운’, ‘협녀, 칼의 기억’ 등 범죄물, 사극을 다양하게 오간 것과 달리 최근작은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도깨비’ 같은 멜로에 치우쳐 있다. 그는 올해 개봉한 영화 ‘변산’에 이어 내년 정해인과의 멜로 영화를 준비 중이다. 김태리는 ‘아가씨’부터 ‘1987’과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 시대극은 물론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현대극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다양한 장르로 활동 영역을 확대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다미는 ‘마녀’ 이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소포모어징크스’(데뷔 첫해 성공적인 활동을 한 뒤 두 번째 해에 부진한 경우를 가리키는 용어)를 겪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연기 경험이 없어, 드라마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증명해야 한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무종교 문화와 종교 없는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자의 책이라니. 내용도 짐작이 간다. 기존 종교를 비판하고 종교 없이도 살 만하다는 내용일 터. 반발심이든 궁금증이든 종교를 가진 이로서 책장을 넘기고 싶어졌다. 저자는 “탈종교화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단언한다. 미국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무종교인이 2배로 늘었다. 18∼29세 미국인의 3분의 1이 종교를 갖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1970년대 초엔 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답한 미국인이 9%에 불과했다. 사실 한국도 이런 경향성에 놓여 있는 듯하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무종교인은 56.1%를 차지했다. 1985년부터 첫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란다. 왜 그럴까. 종교는 그간 정치적 보수주의와 결탁이 잦았다. 낙태 불법화, 동성애 반대 등 추구하는 가치가 맞았기 때문이다. 우파 정치인들이 기독교인들의 의제를 포용했던 1990년대부터 미국에선 ‘공화당원=종교인’이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시끌벅적한 종교계 인사들의 부정부패도 탈종교화를 부추긴 요인 가운데 하나다. 영국 역사학자 캘럼 브라운은 “역사적으로 아이들과 남편이 종교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만든 것은 여성들”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가족의 종교적 관심도 자연스레 줄었다. 종교에 의문을 품고 있지만 표출하지 못했던 이들이 인터넷을 매개로 결속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저자는 많은 무종교인들을 만나며 “종교가 없는 삶은 공허할 것”이라는 종교인들의 인식에 반기를 든다. 정체성과 믿음, 성향은 다르지만 무종교인들도 내면의 도덕성, 인간애, 연대의식 등을 중요시했다. 그가 만난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한 여성은 “중독 이후의 공허감을 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로 채웠다”고 당당히 말했다. 좀 세게 말하자면, 무종교인이 보기에 종교인은 “도덕을 (신에게) 아웃소싱하는 것”일 뿐이다. “종교 없는 사람들이 종교와 아무 상관이 없을지는 몰라도 절망에 젖어 있거나 불운한 망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들은 오히려 건강한 윤리적 토대 위에서 예의바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이고 놀랄 만큼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삶은 꽤나 ‘종교적’으로 보인다. 삶의 중심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 두고 자신을 성찰한다는 점에서만 종교인과 차이가 있다. 종교의 핵심인 자기성찰과 사랑을 비종교인들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넘길 책장이 얼마 남지 않을 때쯤, 엄숙해진다. 책의 결론은 “비종교가 무조건 옳다”거나 “종교는 쓸모없다”가 아니다. 무종교의 실체를 이해하면 할수록 ‘가장 종교적인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종교인에게는 의지하던 종교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무종교인에게는 종교 없는 삶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죽음은 곧 삶.” 죽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다. 다소 생뚱맞다면 조금만 더 읽어보자. “살아온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두렵기만 한,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죽음은 금기시돼 왔다. 건물 엘리베이터 4층 번호는 여전히 ‘F’다. 입시생, 고시생은 장례식에 오지 않는 게 관행이 됐다. 2015년 영국의 한 경제지에서 발표한 ‘죽음의 질’ 지수에서 한국은 18위에 머물러 있다. 임종이 가까워질수록 병원비도 는다. 읽다 보면, “잘 죽기 위해선 잘 살아야 했다”는 저자의 말이 이해가 간다. 죽음을 앞둔 노인, 청년, 전업주부, 직장인 등 전국을 누비며 만났던 이들의 ‘사람 냄새’ 나는 사연들도 흥미롭다. 우리는 얼마나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책을 덮기 전, ‘웰다잉 체크리스트’로 판단해 보자.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발랄하기보단 차분했다. 단어 선택, 표정에선 연륜마저 묻어나왔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12일 만난 배우 한승연(30)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눈웃음으로 팬들을 사로잡던 그 이미지와 너무도 달랐다. 그는 다음 달 방영 예정인 채널A 드라마 ‘열두밤’에서 뉴욕 출신으로 사진을 전공하는 여성 한유경 역을 맡았다. ‘열두밤’은 2010, 2015, 2018년 등 세 번의 여행 동안 열두 번의 밤을 함께 보내는 두 남녀의 여행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요즘 알록달록하고 뜨거운 드라마가 많잖아요. 차분한 ‘힐링’ 드라마라는 점이 끌렸어요. 아마 주무시기 전에 보기 좋은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요?” 한유경 역할을 맡은 건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돌 시절이나 전작에서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캐릭터를 맡았는데, 실제 모습과 달라 힘들었다”며 “소심하고 조용하지만 그 가운데 꿈을 향해 차분히 나아가는 한유경이 곧 내 모습”이라고 했다. 단독 주연의 부담감도 상당하다. 촬영 분량도 많아 체력 관리도 힘들었다. 그는 “너무 잘하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연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를 자주 봤다”며 “하루하루 촬영에 온 힘을 다해 집중하면서 부담감을 잊고 있다”고 했다. ‘열두밤’ 촬영은 그에게 소소한 즐거움도 줬다. “날이 좋을 때 낙산공원, 성곽길에서 촬영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나이가 들면서 여유도 생겼다. 유독 어려 보이는 외모가 배우로서 콤플렉스가 된 적도 있었다. 4, 5년 전 드라마에 출연할 때는 “아이돌 가수가 왜 멀쩡한 연기자 자리를 빼앗느냐”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 일”이라며 개의치 않았다. 전작들에서 시선과 어미 처리까지 완벽하게 공부한 후에 연기를 했다면 “지금은 촬영장에서 즉흥적인 연기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실생활에서는 전자기기 수집을 좋아하는 ‘디지털 덕후’다. 그러나 극 중 사진학과 학생으로 나오는 캐릭터 덕분에 아날로그 감성에도 눈을 떴다고 했다. “유경이가 사용하는 필름 카메라에 실제 필름을 넣어 찍어봤는데 작가들이 칭찬을 해주더라고요. 최근엔 카메라 매장에 가서 필름 카메라를 공수하기도 했어요.” 그는 지금도 꾸준히 일본을 오가며 앨범을 내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연기와 음악 양쪽을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 연기도 해보고 싶다. 공포영화의 귀신 역할도 좋다”며 웃었다. 그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배우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한국, 미국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한다. “김영애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대사가 없어도 보는 이들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그런 에너지를 가진 배우가 되길 꿈꿉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전설’의 기타 선율엔 흔들림이 없었다. 8일 오후 10시 서울 마포구 프리즘홀에 모인 록 마니아 100여 명은 일본의 전설적 헤비메탈 밴드 ‘엑스저팬’의 기타리스트 파타(본명 이시즈카 도모아키·53)에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는 이날 열린 한일 합동 록 콘서트 ‘란게이트: 서울-도쿄 핫라인’에 자신이 이끄는 밴드 ‘라인(Ra:IN)’을 이끌고 내한했다. 이날 콘서트 직전 공연장 근처 카페에서 파타를 만났다. 가녀린 체구에 희끗희끗한 긴 곱슬머리를 한 그에게서 도인의 풍모가 느껴졌다. ‘비주얼케이’(visual系·화장과 무대 매너가 특징적인 일본 록의 한 갈래)의 효시로 불렸던 엑스저팬 멤버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 그는 “개인적으로 ‘비주얼 밴드’ 수식어가 정말 싫었다. 사실 그다지 어울리지 않기도 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5번째 내한인 그에게 한국은 “항상 추웠던 나라”다. 그는 2000년대 밴드 ‘도프 헤츠’의 멤버로 수차례 한국에서 공연했다. 그는 “2011년 10월 엑스저팬 첫 내한공연 때도 눈이 내렸다”며 “손가락이 얼어 기타를 못 칠 뻔한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1997년 해산한 엑스저팬은 2007년 재결합했다. 나이가 들면서 밴드 생활도 변했다. 그는 “젊을 때보다 멤버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다”며 “건강식을 서로 추천해주기까지 한다”고 했다. 2016년 건강이 악화돼 중환자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당시 예정됐던 영국 웸블리 아레나 공연도 1년 뒤로 미뤘다. “설마 내가 공연을 취소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라이브를 날리는 건 요시키(엑스저팬 드러머)의 특권이었는데, 하하. 지금은 말끔히 다 나았습니다.” 가장 큰 관심사인 엑스저팬의 새 앨범은 현재 마무리 단계라고 한다. 그는 “기타 파트 녹음은 이미 마쳤다”며 “앨범 전체를 한 번에 들어보진 않았지만 한 곡 한 곡 들어보면 전작에 비해 꽤 많은 변화들이 있다”고 평했다. 신비로워 보이는 이 록스타의 취미는 놀랍게도 롤플레잉게임(RPG)이다. 그는 “집에서 게임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그것 말곤 오로지 록에 대한 생각뿐.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팝(K-pop)도 “솔직히 잘 모른다”며 웃었다. “매번 무대에서 팬들을 바라보면 ‘내가 왜 여기에 있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 록을 하고 싶어요.” 조심스러웠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998년 요절한 엑스저팬 기타리스트 히데 이야기를 꺼내자 ‘글자 그대로’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엑스저팬 전성기를 함께했기에 “히데와의 추억이 더 각별하다”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특별히 하나의 기억을 꼽기는 참 어렵네요. 기타를 잡고, 무대를 오를 때마다 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는 지금도 내 삶 어디에나 항상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이 완성됐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가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전망했다면, 이 책은 과학기술, 정치, 종교, 교육 등 인간이 당면한 현재의 위기를 21개 테마로 나눠 진단한다. 민족국가 차원의 대응으로는 세계적 현안을 해결하기 어려워졌다. 태평양의 한 섬나라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겠다고 결정해도 다른 나라들의 호응이 없으면 바닷물에 잠길 것이다. 미국 정부가 유전공학을 금지해도 중국 과학자들이 하는 연구까지 막을 수는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 자국민 우선주의 세력이 득세한다. 그동안 인류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준 자유주의의 위기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생화학적 메커니즘의 결과라는 인식마저 심어주고 있다. 정보와 힘을 분산해 효율을 높인 민주주의 시스템도 인공지능(AI) 상용화로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AI는 정보량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가 집중될수록 효율적으로 작동해 독재 국가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과연 인류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다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보자. 그 혹은 그녀에 대한 기억은 당신에게 행복으로 남아 있는가. 아니면 연애 과정이나 이별이 준 고통이 더 선명한가. 어쨌든 파국으로 치달은 사랑도 훗날 기억이 된다. ‘연애의 기억’은 행복이면서 고통스러운, 그런 사랑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소설은 노년에 접어든 폴이 50여 년 전 인생을 뒤흔든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꽤 파격적이다. 테니스클럽에 참가하게 된 19세 청년인 그는 49세 중년 여성 수전 매클라우드에게 빠져든다. 두 딸의 엄마인 수전은 그에게 영국 중산층의 가식을 함께 비웃을 수 있는, 세상에서 이야기가 가장 잘 통하는 특별한 사람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은 그에게 완벽한 재난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사랑의 흐름대로 시점도 달라진다.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한 연애 초반은 폴의 1인칭으로 서술된다. 하지만 각자의 가족을 떠나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부터 사랑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수전은 알코올의존증과 우울증에 빠진다. 행복이 사라지는 자리에 파고드는 고통을 저자는 ‘너’로 폴을 지칭하며 덤덤하게 바라본다. 급기야 둘의 사랑은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함께하지만 행복하기보다 고통으로 빠져드는 수전을 지켜보며, 폴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행복과 고통 사이를 진동하는 섬세한 감정의 서술이 매력적이다. “그의 공책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 있었다. ‘한 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보다는 사랑하고 잃어본 것이 낫다.’ 그것은 그렇게 그 자리에 몇 년을 있었다. 그러다 그가 줄을 그어 지워버렸다.” 이 소설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0대 후반, 그는 50대 여인 라우리언 웨이드를 열렬히 사랑했고 2009년 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폴의 기억이 그래서 더 절절하고 황량한 걸까.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한일문화교류회의는 10일 오후 7시 반 서울 동작구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한일합동공연 ‘동행―한일교류의 원류를 찾아서(韓日交流源流考)’를 개최한다. 일곱 번째를 맞는 이번 행사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을 맞이해 양국의 전통춤을 한 무대에 선보인다. 국수호 디딤무용단장이 총감독을 맡은 1부에선 노장춤, 미얄할미춤, 사자춤 등 봉산탈춤 중 일부를 공연한다. 대금 해금 등 전통악기 연주도 볼거리다. 일본 측에선 무언의 가면무도극인 기악(기가쿠·伎樂)을 선보인다. 길놀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특징적인 춤과 사자 분신 공연을 볼 수 있다. 일본의 사토 고지 교수가 총감독을 맡은 2부에선 무악(舞樂)의 대표적인 곡 ‘나소리’를 공연한다. 두 마리 용의 흥겨운 춤을 표현했다. 인도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정착한 전설의 새 ‘가루다’의 춤도 형상화된다. 음악과 춤, 대사로 구성된 일본의 전통 가면극인 ‘노’와 일본 최초 희극 장르이자 순수한 대사극으로 구성된 ‘교겐’이 결합된 ‘노가쿠’ 공연도 펼쳐진다. 국악그룹 ‘TAGO’의 축하 공연도 이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주한 일본대사관이 후원. 무료.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번이 진짜 ‘할배’들의 여행이었죠. 제대로 즐기다 왔습니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만난 배우 박근형 씨(78)는 만나자마자 유쾌한 웃음부터 터뜨렸다. 그가 ‘청춘 할배’로 활약한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는 지난달 24일 막을 내렸지만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걸까. 독일 베를린과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 이번 여정을 그는 최고의 ‘꽃보다…’로 꼽았다.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지 일정을 여유롭게 짜주더군요. 오전 10시 넘어서 기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니까요?” 여유가 생기니 주변도 찬찬히 돌아보게 됐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는 특히 좋았다. 그는 “그 지역 주민에게는 멋진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 일상이더라. 그 여유와 윤택함이 내심 부러웠다”고 했다. 뭉게구름을 보며 전북 정읍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도 떠올랐다고. 드넓은 호수는 연기 인생 6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했다. 배우 김용건 씨(72)의 합류도 큰 힘이 됐다. 시시콜콜한 농담과 ‘추억 소환’은 어르신들을 고단한 여정에도 웃게 했다. 그와 백일섭(74), 김용건은 20대 젊은 시절부터 자주 모이던 멤버다. 그는 “독일로 출국하는 공항에서 김용건의 합류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웃음이 났다”며 “할배 4명만 있었다면 이동 중일 때 잠만 잤을 것”이라고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 처음 ‘꽃보다…’를 촬영한 게 벌써 5년 전이다. 그는 “가끔 이전 편을 보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우리 모두 늙긴 했다”고 했다. “몸조심하라”는 부인의 당부도 부쩍 늘었다. 무릎이 아파 고생하는 백일섭을 볼 때마다 남 일 같지가 않다. 그래도 ‘꽃보다…’를 선택한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배우가 사적인 면을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처음엔 출연을 거절했어요. 소속사 대표가 ‘이건 무조건 해야 합니다’라고 설득해 결국 수락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싶어요.” ‘꽃보다…’ 촬영을 계기로 사진을 찍는 취미도 생겼다. 막내아들에게 배워 요샌 외출할 때마다 사진기를 챙기는 편이다. 그는 “어디다 자랑할 데가 없어 아내에게 보여 준다”며 웃었다. 박 씨는 배우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SBS 일일드라마 ‘나도 엄마야’ 등에도 출연하고 있다. 다른 예능 출연엔 관심 없냐는 질문에 “‘꽃보다…’는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예능이라 그나마 할 만했다”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벌써 또 여행에 대한 꿈은 가슴을 뛰게 한다. 그는 “학창시절 북남미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쿠바’를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죠. 근데 나영석 PD가 워낙 바빠서 좀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요? 하하.”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이 정도면 ‘퀴즈의 부활’이라고 할 만하다. KBS 2TV ‘1 대 100’, KBS 1TV ‘도전! 골든벨’ 같은 장수 프로그램도 있지만, 문제를 풀고 상금을 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방식의 퀴즈 포맷이 최근 예능 프로그램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첫선을 보인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퀴즈 포맷에 길거리 토크를 결합했다. 유재석의 tvN 첫 예능이기도 하다. 유재석과 조세호 두 MC는 시민 퀴즈왕을 찾아 나선다. 제목 그대로, 이들은 길바닥(온 더 블록)에서 시민들에게 “유(you) 퀴즈?”를 묻고 다섯 문제를 출제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음식이 무엇인가” “‘소확행’의 뜻은 무엇인가” 등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문제를 모두 맞히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 100만 원을 뽑아준다. 발 닿는 모든 곳이 세트장이다. 땡볕에 휴대용 탁자, 의자를 들고 다니며 두 MC는 시민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버스 경적, 경찰차 사이렌 소리로 대화가 수시로 끊어질 만큼 ‘리얼’하다. 40년째 열쇠 수리공 일을 하는 노인부터 국악 수업을 들으러 가는 초등학생까지, 시민들이 사는 이야기도 프로그램의 재미 중 하나. MBC ‘무한도전’에서 종종 유재석이 했던 길거리 인터뷰가 떠오른다. 최근 ‘잼 라이브’ ‘더 퀴즈 라이브’ ‘페이큐’ 등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시청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바일 퀴즈쇼가 인기를 끈 것도 한몫했다. KBS 2TV는 21일부터 방송인 서경석이 진행하는 ‘퀴즈방’을 방영한다. 시청자들이 직접 TV를 보며 앱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퀴즈를 푸는 방식으로 모바일 퀴즈쇼 포맷을 그대로 가져왔다. 음악이나 ‘먹방’과도 결합한다. tvN ‘놀라운 토요일’에서 연예인 패널들은 지역 시장의 대표 명물을 먹기 위해 노래를 듣고 가사를 받아쓰기 해 정답을 맞혀야 한다. 옆에서는 ‘입짧은햇님’ 같은 인기 먹방 유튜버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하기 때문에 빨리 퀴즈를 풀어야 맛을 볼 수 있다. MBC ‘뜻밖의 Q’에서는 패널들이 시청자가 출제한 음악 퀴즈를 푼다. 제한시간 안에 노래 제목을 몸으로 표현하는 코너는 과거 유명 프로그램이었던 ‘가족오락관’의 ‘고요 속 외침’을 연상시킨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관찰예능이 대세인 방송계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면서 향수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당신은 가족과 식사를 얼마나 자주 하십니까?” 5일 오후 8시 20분 채널A, 스카이드라마에서 첫선을 보이는 ‘식구일지’가 던지는 질문이다. 직장, 학교, 학원을 다니느라 ‘한 집에서 끼니를 함께한다’는 식구(食口) 본연의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다. TV에서 먹는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은 많지만, ‘식구일지’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색다른 포맷으로 눈길을 끈다. 》 미션은 까다롭다. 4인 가족이 정확히 오후 7시에 모여 30일 동안 저녁을 함께해야 한다. 상금은 무려 1000만 원. 집밥, 배달음식 모두 가능하다. 4인 식구가 모인 곳이면 집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다. 오후 7시에 ‘칼같이’ 식사를 시작해야 한다. 출연진인 배우 박준규, 가수 겸 배우 예원, 모델 장민 가족의 사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5일 방송될 첫 회 스포일러를 잠깐 해보자면, ‘차라리 안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출연진은 오후 6시만 되어도 가족이 모이지 못할까 봐 초조해진다. 각자 일정에 치이다보면 식사시간을 잊는 경우도 생긴다. 집으로 뛰어가는 건 다반사다. 1, 2인분 식사를 해오다 막상 4인분을 준비하려니 요리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가족의 소소한 변화를 보는 재미도 있다. 박준규는 아내 진송아 대신 밥을 하며 식사 준비의 어려움을 깨닫는다. 오후 6시 거실에서 예원 부녀는 식사를 기다리다 어색함을 느낀다. 반찬 심부름을 시키거나 늦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지만, 어쨌든 가족 간 소통도 늘었다. 그날 저녁 메뉴를 정하고 장을 함께 보는 일도 새로운 즐거움이다. 꼭 피를 나눠야만 식구인가. 점점 변화하는 가족의 의미도 담았다. 한국에서 산 지 5년 된 스페인인 장민에게는 동료 모델, 통역사 등 외로울 때 힘이 돼 준 친구들이 곧 가족이다. 박준규는 아픈 누나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갖고 싶어 제작진에게 특별히 요청했다. 그는 “결혼 전 누나가 해주는 밥을 많이 먹었는데 이번 기회에 내가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스튜디오에서 VCR를 보며 프로그램을 이끄는 MC 김성주, 소유진의 ‘케미’도 볼만하다. 먹는 예능이다 보니 남편 백종원 더본 대표(52) 얘기가 나올 때마다 소유진이 당혹스러워하는 표정도 웃음 포인트.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백 대표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성주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하루하루 번갈아 가면서 부부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며 웃었다. 제작을 맡은 김도형 PD는 “최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열풍’과 맞물려 시청자들이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며 “의미를 찾는 데 그치지 않고 재미와 감동을 모두 선사하겠다”고 밝혔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슬라임(액체괴물) 열풍은 어디서 시작됐을까. 본래 슬라임은 미국 공포영화에서 연출을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 이후 1970, 80년대 장난감 회사들이 슬라임을 생산하며 대중화됐다. 꾸준히 인기를 얻어온 슬라임은 2015년경 유튜브를 통해 국내로 퍼졌다. 당시 어린이 유튜브 채널 ‘캐리TV’에 올라온 슬라임 제작 영상은 2400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였다. 지난해부터는 유튜브뿐만 아니라 아이유, 설리 등 연예인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러 종류의 슬라임을 만지고 노는 영상을 올리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MBC ‘나 혼자 산다’ ‘무한도전’ 등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등장하며 국내에서 대중적인 장난감으로 자리 잡았다. 높은 인기만큼이나 파생된 콘텐츠도 다채롭다. 어린이 유튜버들에게 슬라임은 필수 콘텐츠로 꼽힐 정도다. 문방구에 있는 제품들을 리뷰하거나 각양각색의 슬라임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식이다. ‘50mL에 1500원’이라며 직접 만든 슬라임을 소량으로 판매하는 유튜버도 생겨났다. 구독자 63만 명을 끌어 모은 ‘마이린TV’ 최린 군(12)의 아버지 최영민 씨(47)는 “요새 슬라임 콘텐츠가 많아 단순 리뷰뿐만 아니라 숨겨 놓은 슬라임을 찾아내는 ‘보물찾기’, 슬라임 여러 개를 모아 만든 ‘선물상자’ 등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슬라임을 만지작거리는 영상에 자막을 입혀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콘텐츠도 생겨났다. 슬라임 영상이 아이들 고민 상담 창구가 된 셈이다. “3학년인데 몸무게가 44∼45kg을 왔다 갔다 해요ㅠㅠ”, “여자인데 남자처럼 생겼어요” 등의 고민 동영상을 올리면 시청자들이 댓글을 달아 상담을 해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유해한 콘텐츠도 늘었다. 음란행위나 자해, 자살 관련 내용을 자막으로 풀어내는 식이다. 슬라임 동영상에 대놓고 성인 인터넷 사이트를 홍보하기도 한다. 유튜브에 업로드돼 조회수가 40만 건이 넘은 ‘남사친의 나쁜손 시리즈’에서는 슬라임을 만지면서 친구에게 성희롱을 당한 이야기를 자막으로 풀어놓는다. “어린이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달라” “수위가 많이 높다” 등 안내성 제목이 달려 있지만 나이제한이 없어 누구나 해당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아, 이 쫀득한 것은 무엇인가, 이 알록달록하고 부드럽고 잘 늘어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왠지 반가운 느낌이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어슴푸레하고 희미하게 뇌 속의 뭔가를 자극하는 감각이다. 서울 마포구의 ‘슬라임’ 카페 ‘릴리데이지’에서 1일 기자는 얼토당토않게도 백석(1912∼1996)의 시 ‘국수’를 떠올렸다. 말랑말랑하고 잘 늘어나는 장난감 슬라임과 국수는 묘하게 닮았다. 찰지면서도 심심한 느낌이 푸근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카페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해 봤다. 양푼에 물풀을 붓고 ‘액티’(베이킹소다를 물에 녹인 것이라고 직원이 설명했다)를 넣은 뒤 주걱으로 젓는다. 콘택트렌즈 세척액을 조금 넣고 다시 저으면 기본 슬라임이 완성된다. 여기에 원하는 향이나 색소, ‘토핑’(슬라임 안에 넣도록 만들어진 구슬 모양 등의 작은 플라스틱. ‘파츠’라고도 한다)을 더하면 된다. 》 ○ “‘키덜트’족이 눈치 안보는 시대” 40대라면 말캉말캉한 촉감에, 던지면 벽에 달라붙던 어릴 적 장난감 ‘먹깨비’가 떠오를 것이다. 20, 30대라면 풍선 속에 녹말가루가 들어있는 ‘만득이’를 추억할 수도 있다. 슬라임은 유행한 지 좀 된 아이들 장난감이지만 최근 아이들을 넘어 ‘키덜트’족의 놀잇감으로 떠올랐다. 기자가 방문한 ‘릴리데이지’ 카페도 성인끼리 오는 이들이 전체 손님의 20%가량 된다고 했다. 이날도 20대 남녀 커플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때 문방구에서 파는 ‘액체괴물’이 있었거든요. 그것과 같아요. 추억도 떠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고 놀면 한두 시간이 금방 갑니다. 아이들만 갖고 놀기에는 아까운 아이템이죠.”(황은선 씨·21) “보기에도 예쁘고 이렇게 슬라임에 토핑을 많이 넣으면 주무를 때 ‘빠지직’ 하고 크게 소리가 납니다. 독특한 쾌감이 있지요.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모두 자극하는 장난감이에요.”(김예찬 씨·21) 황 씨는 “풀이나 토핑을 따로 사서 자신만의 슬라임을 만들고 노는 친구가 적지 않다”고 했다. ‘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은 몰두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안정감과 쾌감을 느낍니다. 슬라임을 갖고 노는 건 이 같은 ‘자기 통제’ 느낌과 관련이 있어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으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슬라임의 특성이 스트레스를 낮춰 준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장난감으로 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라임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계란 모양의 초콜릿 속에 장난감이 들어있는 과자를 개봉하면서 어떤 장난감이 나오는지 계속 보여주는 콘텐츠도 인기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별로 없다”며 “슬라임 카페는 키덜트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원하는 걸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안전하게 갖고 놀려면… 슬라임 카페가 성업 중이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슬라임을 만들다가 손이 빨갛게 변했다거나 피부염이 생겼다는 이들도 있다. 슬라임이 젤 같은 특성을 갖게 하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인 붕사도 문제가 된다. 붕사는 물에 녹으면 강한 염기성을 띤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붕사는 만진다고 해서 바로 탈이 나지는 않지만 피부가 민감한 이들은 장시간 만지면 피부가 붓거나 빨갛게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슬라임 카페는 붕사 대신 렌즈 세척액을 넣어 슬라임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붕사가 없을까. 이 교수는 “미국에서 만드는 렌즈 세척액에는 붕산이나 붕사를 보존제로 소량 첨가하지만 그 자체로 인체에 위험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슬라임을 만들며 여러 화학물질이 섞이면 서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이 교수는 △슬라임을 맨손으로 너무 오래 갖고 놀지 말고 △슬라임을 만진 손을 입에 넣거나 눈을 만지지 말고 △놀 때 비닐장갑을 끼는 게 좋다고 권했다. 조종엽 jjj@donga.com·신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