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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원 학생인지 저도 몰라요…” 서울 양천구 목동 한 수학학원의 직원은 4일 수화기에 대고 머뭇거렸다. 이날만 학부모로부터 걸려온 100번 째 전화였다. 전날 목동의 한 학부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12번째 확진자 옆자리에서 영화를 봤다고 자가 격리된 사실이 알려진 뒤였다. 그 학부모의 자녀들이 이 학원에 다녔느냐는 문의가 끝없이 이어졌다. 실제로 목동 학원가는 비상이 걸렸다. 학원 수천 곳이 몰린 이 일대는 서울은 물론 여러 지역 학생들이 모여든다. 시민들은 만약 신종 코로나가 유입되면, 어린 학생들을 통해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동아일보가 4일 확인한 결과, 자가 격리하는 학부모 자녀들이 다니던 목동 학원은 모두 6곳이었다. 그중 4곳은 이날 오후 운영을 중단했다. 서울시교육청이 목동 일대 학원 50곳에 휴원을 권고한데 따른 것이다. 이날 운영한 다른 학원들도 혼란하긴 마찬가지다. 자가 격리한 학부모 자녀들이 다녔느냐는 문의 전화로 불통이 났다. 이날 동아일보가 둘러본 목동 학원 8곳은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쉴 틈 없이 전화 응대를 하고 있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우리도 어떤 학생이 해당 자녀인지 몰라 답답하고 혼란스럽다”고 했다. 두려움이 만연하자 결석생도 늘었다. 한 대형 어학원은 이날 정원 1000명 가운데 10%가 넘는 학생이 “전염이 걱정 된다”며 출석하지 않았다. 한 영어학원에는 강의실마다 상당한 책상이 비어있었다. 이 학원 특목고 준비반은 결석이 많아 수업을 취소하기도 했다. 학부모 김명아 씨(36·여)는 “일반 시민들은 접촉자 자녀가 어느 학원에 다녔는지 알 수 없어 안심하고 학원에 보낼 수가 없다”며 “특히 목동 학원들은 한 건물에 같은 엘리베이터를 쓰는 경우가 많아 아이를 보내기 두렵다”고 했다. 자가 격리한 학부모 자녀가 다닌다는 이유로 휴업한 목운초 인근도 오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바로 옆 목운중도 이날 단축 수업을 했다. 2학년 정모 군(15)은 “동네에서 접촉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급식을 먹지 않고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이 늘었다”며 “기침만 해도 친구들이 놀라서 째려본다”고 했다. 인근 중학교와 시의회 의원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목운중은 이날 오전 학교장 명의로 학부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목운초 학부모는 보건소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명됐다고 한다”고 알렸다. 하지만 양천구 등은 이 학부모가 발열 등을 호소하지 않아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목운중 관계자는 “시의회 의원이 해당 학부모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알려줘 긴급하게 안내 문자를 보냈다. 나중에야 허위 정보였다는 걸 알았다”고 해명했다. 고도예기자 yea@donga.com}
“수험생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 채로 서로 2m씩 떨어져서 시험을 봤습니다.” 2일 서울 노원구 삼육대. 제63차 전문의 자격시험을 마치고 나온 홍모 씨(36·여)는 시험장 분위기가 ‘얼음’ 같았다고 전했다. 시험 전 기침 증상을 보인 홍 씨는 4일 전 주최 측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이날 별도로 마련한 특별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렀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엔 세정제로 손을 닦고 발열체크도 두 번 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영향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각종 시험장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시험 주최 측은 수험생들이 시험장에서 신종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도록 서둘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외출을 자제하는 등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날 한국삼육중고교와 삼육대에서는 응시자 총 3500여 명이 참여한 전문의 자격시험이 열렸다. 주최 측인 대한의학회는 지난달 15일 이후 중국을 방문했던 수험생과 발열 혹은 호흡기 증상이 있는 수험생, 능동감시자로 분류된 수험생 등을 사전 파악해 이들을 위한 특별고사장 3개를 마련했다. 이날 대한의학회는 특별고사장에 갑자기 환자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방호복을 비치하고 의대 교수들에게 시험감독을 맡겼다. 건물 1층 입구마다 손 세정제도 놓아뒀다. 응시자 정모 씨(31)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사람들도 손을 깨끗이 씻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시험을 봤다”고 했다. 이달 9일 열릴 토익시험과 중국어능력시험(HSK)의 경우 응시생 가운데 신종 코로나 감염을 염려하는 이들은 원한다면 시험을 연기할 수 있다. 한국토익위원회와 HSK한국사무국은 각각 3일 홈페이지에 올린 공고문에서 “시험 응시자 가운데 신종 코로나 확진자와 의심환자, 격리 대상자 및 직계가족은 시험 연기 또는 응시료 전액 환불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각각 23, 29일 열릴 예정인 ‘공인회계사(CPA) 시험’과 ‘2020년 국가공무원 5급 공채 및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을 앞둔 수험생들도 긴장감이 돌고 있다. 시험이 코앞인데도 학원에 발길을 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5급 공채시험 학원은 “신종 코로나 여파로 출석률이 기존보다 절반가량 줄었다”고 했다. 수험생 김모 씨(27)는 “4년 동안 준비했는데 아프면 큰일이다. 전염될까 봐 학원도 관두고 한 달 먹을 음식도 전부 인터넷으로 샀다”고 했다. 김소영 ksy@donga.com·고도예·김태언 기자}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 목운초. 학교 앞은 오가는 사람 한 명도 없이 썰렁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학생과 데리러 온 학부모로 붐비던 평상시와 완전히 달랐다. 굳게 닫힌 학교 건물 앞에는 ‘방역을 위해 휴교한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목운초는 4일부터 8일까지 수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간 동안 학교 건물 전체를 방역할 계획이다. 학부모 A 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12번째 확진자와 접촉했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중국인 남성(49)이 1일 12번째 확진자로 양성 판정을 받은 뒤 이 남성과 접촉한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특히 12번째 확진자가 11일 동안 서울 중구와 강원 강릉시, 경기 수원시, 군포시 곳곳의 다중이용시설을 돌아다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여러 곳에서 이 남성과 접촉한 사람이 나오고 있다. 목운초에 다니는 자녀를 둔 A 씨는 지난달 26일 경기 부천역 인근에 있는 CGV부천역점에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관람했다. A 씨는 이때 12번째 확진자의 옆 좌석에 앉아 있었다. 12번 환자는 이 당시 근육통 등 신종 코로나 초기 증상이 나타났다. A 씨는 자녀가 3명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자녀가 다니던 양천구 목동의 한 어학원도 학부모들에게 “잠시 영업을 중단하겠다”는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목동의 또 다른 수학학원도 같은 이유로 문을 닫았다. A 씨의 막내가 다니던 유치원도 휴업했다. 목동 일대 학원들은 상당수가 목운초 학생들의 등원을 이번 주 금지할 방침이다. 목동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학원 전 층을 방역할 것”이라며 “직원을 포함해 원생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목동의 또 다른 어학원도 “휴교령이 해제되는 날까지 목운초 학생들은 학원을 쉬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 씨의 자녀들이 여러 입시생이 모이는 목동 지역의 학교와 학원을 오갔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소셜미디어 등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목동 지역 학부모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누리꾼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목운초와 목운중은 울타리도 없이 사실상 같은 학교”라며 “목운중도 휴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동의 주부라는 또 다른 누리꾼도 “전국에서 목동의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이 가장 많은데 바이러스가 학생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질까 우려된다”고 썼다. 12번째 확진자는 군으로도 파장을 퍼뜨렸다. 확진자가 지난달 23일 강원 강릉시의 한 리조트에 방문했을 때 육군 모 부대 소속 최모 일병이 같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최 일병은 휴가 때 부모와 함께 12번째 확진자와 같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뒤 같은 날 부대로 복귀했다. 이런 사실은 이달 2일 오후 4시경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연락을 받은 최 일병의 부모가 부대로 알리면서 확인됐다. 군은 이에 따라 최 일병을 포함한 생활관 인원 8명을 모두 부대 의무실에 격리시켰다. 최 일병은 곧 음압격리 병상이 있는 국군대전병원으로 옮겨간다. 군은 3일 오후 군 중앙역학조사반을 통해 현장 조사에 착수했고, 최 일병은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정됐다. 동료 군인들의 검체는 국군의학연구소에 보낼 예정이다. 이 부대는 전 장병에게 마스크 착용을 지시하고 건물 외부 이동을 금지시켰으며 6일까지 휴가와 외출, 외박 등을 통제하기로 했다.고도예 yea@donga.com·신규진·이청아 기자}

“두 시간만 있으면 엄마가 데리러 올게….” 3일 오전 경기 고양시 한 어린이집 앞. 김경희(가명·38) 씨가 아들 성호(4)의 마스크를 올려 씌우면서 한참을 도닥거렸다. 잠시 뒤 보건용 마스크를 쓴 교사는 말없이 기다리다 성호를 어린이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놀이방 안에는 아이 2명만이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원래 이 놀이방에선 성호를 포함해 87명이 함께 지내왔다. 현재 이 어린이집은 공식적으로는 ‘임시 휴원’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환자가 고양시 일대를 오간 것으로 확인되자, 시가 어린이집에 휴원을 권고했다. 하지만 김 씨처럼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부모는 그대로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김 씨는 “지금부터 친척에게 전화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지 물어보려 한다”며 “엄마가 돈 벌겠다고 아이를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찮은 맞벌이 부모들이 신종 코로나 여파로 때아닌 ‘보육 대란’을 겪고 있다. 전국 어린이집이 10곳에 1곳꼴로 문을 닫으며 해당 부모들이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곤란에 빠졌다.○ 긴급보육 신청하고 친척에게 전화 돌리고 갑작스럽게 휴원 통보를 받은 부모들은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긴급보육’을 신청할 수 있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이 긴급보육이 신청된 아이를 돌본다. 동아일보가 어린이집에 휴원 명령을 내린 4개 도(경기·충북·충남·전북)에 확인한 결과, 전체 어린이집 등원 아동(9만6067명) 가운데 1만9614명(20.4%)은 이날 긴급보육 서비스를 받았다. 휴원 어린이집 3188곳 가운데 2881곳이 긴급보육 아동을 돌봤다. 하지만 어린이집 곳곳에선 긴급보육을 신청했던 부모들이 도중에 아이를 데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모가 직장에 출근하면서 아이를 급하게 어린이집에 데려다놨다가, 뒤늦게 돌봐줄 지인이나 친척을 찾은 경우다. 충북 청주시에서 온 한 할머니는 네 살 손녀를 데려가면서 “아이가 경기 고양시 어린이집에서 마스크를 벗은 적이 있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 경기 고양시 한 어린이집 원장은 “부모들이 아침에 긴급보육을 신청해 아이를 등원시켰는데, 오후에 친척이 아이를 데리러 온 게 오늘 하루만 세 건”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 어린이집도 썰렁한 분위기였다. 신종 코로나 8번 환자가 사는 전북 군산시 한 어린이집은 정원 134명 가운데 9명만 등원했다. 전날까지 40가구가 아이를 맡기겠다고 했지만, 당일엔 31가구가 “불안하다”며 아이를 보내지 않았다. 경기 수원시 한 어린이집도 원아 38명 가운데 2명만 등원했다.○ 아이 데리러 온 학부모도 어린이집 못 들어가 이날 운영한 어린이집은 신종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 때문에 자녀를 집에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학부모도 어린이집 건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경기 의왕시 어린이집에 딸을 데리러 온 김모 씨(38·여)는 어린이집 건물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렸다. 5분 뒤 교사가 마스크를 쓴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김 씨와 교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숙이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경기 고양시 한 어린이집은 건물 바깥에서 하는 체육 수업을 없앴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원아들을 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밀착 마크’하는 곳도 있었다. 경기 고양시 한 어린이집에선 마스크를 쓴 원아들이 점심을 먹는 모습이 건물 유리창 바깥에서 보였다. 아이들은 서로 양옆을 비워 놓고 앉아 있었다. 어린이집 관계자는 “외부에서 들여오는 우유나 과일 급식도 중단했다”고 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관내 어린이집에 추가로 휴원 명령을 내리면서 원아들이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보였다. 경기 시흥시 한 어린이집은 이날 오전 6시 30분경부터 휴원 메시지를 보냈고, 찾아온 원아들은 전부 집으로 돌려보냈다. 보건 당국으로부터 “원아가 신종 코로나 14번 환자와 접촉했다”고 전달받은 어린이집 측은 이날 문을 닫고 방역 작업에 나섰다. 고도예 yea@donga.com / 고양=김태성 / 의왕=김소민 기자}
“한국행 비행기가 뜨는 순간 긴장이 탁 풀렸습니다. 악몽이 끝났구나 싶었어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31일 전세기로 귀국한 안모 씨(33)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씨는 이날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에 격리됐다. 이곳에서 2주 동안 감염 증세를 보이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안 씨는 “우한에선 기한 없이 호텔에만 갇혀 있었다”며 “지금은 비록 격리돼 있지만 2주 후 건강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했다.○ ‘안내방송’ ‘통지문’ 활용해 철저히 격리 안 씨를 포함한 한국인 368명은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지인 우한시와 인근 지역에서 전세기로 귀국했다. 이 가운데 18명이 발열 등 감염 의심 증상을 보여 공항에서 곧바로 병원(국립중앙의료원 14명, 중앙대병원 4명)으로 옮겨졌다.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은 350명은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나뉘어 이동했다. 아산과 진천에 각각 200명과 150명이 남겨졌다. 격리 시설에 입소한 교민들은 사실상 방 안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다. 방마다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딸려 있다. 방 밖으로 나서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주간 건물 밖을 나갈 수 없는 건 물론 가족과 면회도 할 수 없다. 시설에선 상주 지원단과 교민들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안내 방송’을 주로 활용한다. 지원단은 방 앞에 도시락을 갖다 놓고 “도시락이 준비됐다”고 방송으로 안내한다. 교민들이 방문을 열고 나와 도시락을 챙겨 방 안에서 먹는다. 안 씨는 “거의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며 “2주간 독방 생활이 걱정되지만 주민들에게 폐를 끼친 미안함이 더 크다”고 했다.○ 착륙 후 6시간 ‘긴장’ 속에서 비상수송 작전 이날 오전 6시 5분경 우한을 출발한 전세기는 7시 58분경 김포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교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 메신저방에서 ‘고맙다’ ‘고생 많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순간부터 김포공항에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교민들은 이날 오전 8시 40분경 방역용 N95 마스크를 쓴 채 전세기 계단을 내려왔다. 당국은 곧장 차량으로 교민들을 김포공항 청사에서 600m 떨어진 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로 이동시켰다. 교민들은 이곳에서 입국 수속을 밟고 검역을 받았다.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공무원과 경찰관들이 교민들을 안내했다. 센터의 출입구는 봉쇄됐다. 교민들이 이용할 이동식 화장실 차량과 구급차량만 센터 안팎을 오갔다. 정부 당국의 2차례 검역 절차에서 교민 18명이 유증상자(우한 폐렴 증상과 유사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전세기 안에서 이뤄진 1차 검역에서 교민 12명이 검역 기준인 37.5도보다 체온이 높은 것으로 측정됐다. 간이 검역소에서 진행된 2차 검역에선 6명이 감염 의심자로 추가됐다.○ “우한 폐렴 옮길라” 침묵의 귀국길 고국으로 돌아온 교민들은 우한 공항에서 격리시설까지 이르는 과정을 ‘침묵의 귀국길’이라고 표현했다. 전날인 30일 오후 9시 우한 공항에 모인 교민들은 공항에 대기하는 8시간 동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우한 폐렴을 옮길까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 전세기 탑승 후에도 침묵은 계속됐다. 방호복을 입은 승무원들은 입국심사 서류와 생수를 미리 자리에 갖다 뒀다. 당국과 항공사는 승무원과 교민들의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교민들은 전세기에 탄 다른 교민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할 때도 말 대신 눈짓, 손짓으로 소통했다고 한다. 이날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격리된 한 20대 남성 유학생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착륙 순간을 떠올리며 “드디어 살았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며 “감사한 마음뿐이고 내가 폐가 되지 않도록 격리 생활을 잘 마치겠다”고 했다.고도예 yea@donga.com·이청아 기자·이소연 기자}
“목숨을 걸면서 돈을 벌고 싶진 않습니다.” 31일 오전 서울 성북구의 한 의류 매장. 주인 A 씨가 가게 문을 닫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음식점은 지난달 3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진자가 다녀간 영화관과 같은 건물에 있다. A 씨는 ‘3차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아예 가게 문을 잠시 닫기로 했다. A 씨는 “건물을 오가는 수백 명의 사람들 중에 또 다른 감염자가 있을 수 있다”며 “당분간 집에 머물며 유치원생 아들을 돌보겠다”고 했다. 우한 폐렴 확진자들이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영화관, 음식점 등 다중 이용업소를 다녀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확진자들이 방문했던 업소들은 상당수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고 인근 가게들도 덩달아 문을 닫기도 했다.○ 확진자 다녀간 곳은 ‘휴·폐업’ 5, 6번 확진자가 다녀간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입구역의 한 영화관은 30일부터 사흘간 영업을 중단했다. 건물 입구에는 ‘극장 내부 위생 강화를 위한 긴급 방역으로 휴업한다’는 안내문만 붙었다. 31일 영화관이 입점한 건물의 한 의류매장에선 마스크를 쓴 시민 2, 3명만 보였다. 점원이 말을 걸려고 하자 고객들은 뒤로 물러서며 “알아서 보고 가겠다”고 답하며 마스크를 올려 쓸 뿐이었다. 8번 확진자가 방문했던 전북 군산시의 한 대형 할인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할인점은 아예 31일 오후 6시부터 휴업에 들어갔다. 해당 업체는 영업을 종료한 뒤 건물 내부에서 방역 작업을 진행했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발열 검사도 실시했다. 중국 우한 교민들의 임시 보호시설로 지정된 충남 아산시 경찰인재개발원 일대 호텔에선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온양제일관광호텔은 8일까지 예약된 객실 중 110개가 갑자기 취소됐다. 이는 전체 140개 객실 중 78%에 해당한다. 호텔 관계자는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온천 관광지로 겨울철 특수를 기대했는데 앞으로 몇 개월간 예약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백화점도 재래시장도 발걸음 ‘뚝’ 백화점, 재래시장 등 사람이 몰리는 곳은 방문객이 크게 줄었다. 31일 오후 7시 경기 수원의 한 백화점에는 마스크를 쓴 고객 대여섯 명만 돌아다녔다. 이 백화점의 신발 매장 직원은 “금요일 저녁엔 퇴근하고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하루 종일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들다”고 했다. 재래시장도 한산했다. 서울 성북구 돈암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A 씨(66)는 “평소 오후 2시 무렵이면 8만 원어치는 팔았을 텐데 오늘은 2만 원도 팔지 못했다”며 “우한 폐렴 확진자 발생 이후 손님이 계속 줄고 있다”고 했다. 인근에서 떡볶이를 파는 조미란 씨(38·여)는 “준비한 재료를 버릴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장사하고 있다”고 했다.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국제 카페리 10개 항로 대부분에선 선박들이 여객 운송을 중단한 채 화물만 싣고 입항했다. 31일 인천항에 도착한 중국발 카페리 4척 중 웨이하이(威海)와 단둥(丹東), 스다오(石島)발 카페리 3척은 화물만 싣고 입항했다. 인천∼중국 항로 전체 카페리가 화물만 싣고 운항하는 것은 1990년 첫 항로 개설 이후 처음이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기승을 부릴 때도 선박들은 수십 명의 승객을 태웠고 여객 수송은 중단되지 않았다.김태성 kts5710@donga.com·이청아·고도예 기자}

“굉장히 감격스러웠고, 고국의 하늘이 예뻤습니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 거주하는 20대 교민은 자신을 태운 전세기가 31일 서울국제김포공항에 도착한 직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민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방에는 ‘고맙다’, ‘고생 많았다’는 메시지가 줄지어 올라왔다. 전세기 탑승객 안종현 씨(33)는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벗어나 2주 격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말했다. ● “독방 생활보다 주민들에게 미안함 더 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지인 우한시와 인근 지역에 고립됐던 한국인 368명이 전세기로 이날 귀국했다. 이 가운데 18명은 발열 등 우한 폐렴 의심증상을 보여 공항에서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은 교민 350명은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오전 10시 45분부터 버스 36대를 나눠 타고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동했다. 아산과 진천에 각각 200명과 150명이 격리됐다. 교민들은 1인 1실을 사용한다. 각 방에는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딸려 있다. 교민들은 마스크와 체온계, 손세정제, 속옷, 수건, 생수 그림책 등을 지급받았다. 각방에는 TV와 달력, 거울도 비치돼 있다. 2주간 외부로부터 외출은 물론 가족과 면회도 할 수 없다. 식사동 방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하고, 방밖을 나설 때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안 씨는 “2주간 독방 생활이 걱정되지만 주민들에게 폐를 끼친 미안함이 더 크다”고 했다.● ‘감염 의심자’ 발견에 긴장감 커져 이날 오전 6시경(한국 시간) 우한시를 출발한 대한항공 전세기는 7시 58분경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두꺼운 외투 차림의 교민들은 방역용 N95 마스크를 쓴 채 전세기 계단을 내려왔다. 곧장 버스를 타고 자가용 비행기 터미널인 비즈니스항공센터(SGBAC) 인근으로 이동했다. 항공센터 격납고에 마려된 간이 검역소에서 검역을 했다. 정부 당국은 교민을 대상으로 2차례 검역 절차를 진행해 18명을 유증상자(우한 폐렴 증상과 유사한 사람)로 분류했다. 전세기 안에서 이뤄진 1차 검역 과정에서 12명이 발열 증상을 보였다. 간이 검역소에서 진행된 검사에서 6명이 추가됐다. 당국은 이들 18명을 소방 구급차를 이용해 국립중앙의료원(14명)과 중앙대병원(4명)으로 옮겼다. 비즈니스항공센터는 개인용 전세기 이용객들이 입출국하는 시설로 국제선 청사에서 약 800m 떨어져 있다. 경찰은 일반 이용객과 접촉을 막기 위해 교민들이 이동하는 통로마다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 방호복을 입은 경찰관이 교민들을 안내했다.● 검역 또 검역, 고된 귀국길 교민들은 한국 시간으로 전날 오후 9시경 공항에 집결했다. 8시간가량 공항을 머무는 동안 침묵이이어졌다. 혹시나 우한 폐렴을 옮길까 교민 가족이나 지인도 서로 조심스러운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전세기 탑승 후에도 침묵은 계속됐다. 방호복을 입은 승무원들도 교민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국 서류와 생수를 미리 자리에 비치했다. 기내식도 접촉 우려 때문에 준비되지 않았다. 우한 폐렴 감염 우려 때문에 다른 교민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할 때도 말 대신 눈짓, 손짓으로 의사를 소통했다. 전세기가 당초 2대에서 1대로 줄면서 교민들은 지그재그로 자리에 앉았다. 정부는 당초 교민 철수 과정에서 기내 감염을 막기 위해 탑승객의 앞, 뒤, 양옆을 모두 띄우고 앉힐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날 운항하기로 했던 전세기가 당초 계획했던 2대에서 1대로 줄면서 교민들은 간격없이 붙어앉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세기에 탑승했던 한 승무원은 “교민이 전세기에 내리며 고생했다, 고맙다는 말을 해주어 뿌듯했다. 교민의 수송에 힘이 되고자 전세기 탑승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서울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55·사진)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직위를 29일자로 해제했다고 밝혔다. 자녀 입시비리 등 12가지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장관은 재판을 받는 동안 서울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게 됐다. 서울대는 이날 “조 전 장관이 교수로서 정상적인 강의 진행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이같이 결정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대학 총장은 형사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교원의 직위를 해제할 수 있다. 서울대는 국립대지만 교원 임명과 면직, 징계 등과 관련해 사립학교법을 따른다. 서울대 관계자는 “재판을 받는 조 전 장관이 강의를 개설하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것이라 봤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2014∼17년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교수 4명이 모두 직위 해제됐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한다. 교원 인사규정 등을 보면 조 전 장관은 총장이 “직위 해제된 사유가 사라졌다”고 판단할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 이 때문에 조 전 장관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지 않는 한 강단에 돌아오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전 장관은 직위 해제된 기간에는 서울대 교수 직함을 내걸고 논문을 게재할 수 없다. 월급도 이날부터 3개월 동안은 50%를 받고, 이후론 30%만 받는다. 서울대는 당분간 조 전 장관에 대해 징계 절차를 개시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대는 적어도 1심 판결 선고 뒤 조 전 장관을 징계위원회에 넘길지 결정하기로 내부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대는 2014∼17년 기소된 교수 4명에 대해선 모두 직위 해제 처분하고 동시에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그동안 직위 해제한 교수들은 학내 성추행이나 연구비 유용, 보고서 조작 등 교수직과 관련한 범죄를 저질러 학교도 내부적으로 조사했다”며 “조 전 장관의 경우엔 학교의 자체조사 자료가 없어 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직위 해제 결정을 통보받은 조 전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 기소만으로 (서울대가) 불이익한 조치를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조 전 장관은 “(학교는) 강의를 할 경우 발생할지 모르는 학내외의 소동과 그에 따르는 부담을 우려했을 것”이라며 “미뤄뒀던 글쓰기를 진행하면서 강의실에 다시 서는 날을 준비하겠다”고도 썼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조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며 지난해 9월 9일 휴직했다. 조 전 장관은 이후 장관직에서 자진사퇴하면서 지난해 10월 15일 복직했다. 검찰은 이달 13일 조 전 장관을 기소한 사실을 서울대에 통보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

25일 가스 폭발로 일가족 6명이 숨진 강원 동해시 ‘미신고 펜션’의 반경 5km 안에 있는 숙박업소들이 대부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불법으로 영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이런 업소들이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에 퍼져 있다며 대책을 촉구했다. 동아일보가 사고가 난 토바펜션 반경 5km 안에 있는 펜션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한 결과 펜션이란 상호를 단 업소는 모두 74곳이었다. 이 업소들의 건축물 대장을 확인해 보니 숙박업소나 농어촌 민박으로 시에 신고한 업소는 10곳뿐이다. 나머지 64개 업소(86.4%)는 사고가 난 펜션처럼 다가구주택으로 등록했거나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상업지구에서 펜션을 운영하려는 업주는 반드시 시에 ‘숙박시설’로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토바펜션 인근 상업지구에 있는 펜션 13곳 가운데 숙박시설로 신고한 곳은 7곳에 불과했다. ‘농어촌 민박’으로 등록된 펜션도 5곳뿐이었다. 숙박시설이나 농어촌 민박으로 신고하지 않은 업소는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실시하는 각종 안전점검을 피해갈 수 있다. 가스 폭발 사고가 난 토바펜션도 9년 동안 불법으로 영업하면서 한 차례도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점검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미신고 펜션은 사고가 난 동해시는 물론이고 전국에 산재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6월 온라인 숙박중개 사이트 등을 확인한 결과 미신고 숙박업소가 최소 1000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 비상구 막히고 소화기 없어… 즐비한 불법 펜션, 안전은 나몰라라 ▼전국 관광지 미신고 펜션 난립28일 오전 8시 강원 동해시 A펜션. 건물에 들어가 초록색 비상구 표시를 찾으려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눈에 띄질 않았다. 객실 10개가 붙어 있는 복도는 폭이 1m도 되지 않았다. 복도엔 물건이 쌓여 있어 유일한 비상구인 건물 입구까지 가는 데 3분 넘게 걸렸다. 천장엔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창고에는 녹슨 소화기 3대만 놓여 있었다. A펜션은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 숙박업소다. 25일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난 토바펜션도 미신고 불법 숙박업소였다. A펜션 업주는 2001년 12월 이 건물을 다가구주택으로 시에 알렸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객실 10개를 둔 펜션으로 운영해 왔다. 실제론 숙박업소를 운영하면서 신고는 주택으로 한 ‘꼼수 영업’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동아일보가 28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한 결과, 토바펜션 반경 5km 안에 있는 펜션은 모두 74곳이었다. 이 펜션들의 건축물대장을 확인해 보니 64곳이 숙박업소나 민박으로 신고하지 않고 불법으로 영업하고 있었다.○ ‘미신고 불법 펜션’은 안전 사각지대 꼼수 영업을 하는 미신고 펜션들은 당국의 안전 점검이나 위생 검사도 받지 않는다. 소방 당국은 호텔이나 모텔 같은 숙박시설을 1년에 한 번씩, 농어촌 민박을 6개월에 한 번씩 점검한다. 하지만 미신고 펜션들은 점검을 받지 않는 데다 스프링클러 등 설비를 갖출 법적 의무도 지지 않는다.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정기 점검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다가구주택’으로 신고한 동해시 B펜션의 비상구는 빨래 더미와 화분에 가로막혀 있었다. ‘음식점’으로 분류된 C펜션은 폭이 약 50cm인 복도가 미로처럼 설계돼 있었다. 불이 나면 탈출이 어려운 구조였다. 객실엔 피복이 벗겨진 전선이 엉켜 있었다. 소화기도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미신고 펜션’에 대한 시의 단속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의 단속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불법 행위를 적발해야만 업주를 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 적발이 어려워 단속은 거의 손을 놨다는 게 담당 공무원들의 해명이다. 속초시 위생과 관계자는 “단속 대상인 업소가 숙박업을 한다는 증거자료를 확보해야 업주를 고발할 수 있다”며 “단속을 나갔다가 업주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 투숙객에게 영수증을 달라고 애원한 적도 있다”고 했다.○ 펜션 업주 “비현실적 규제 탓 불법 양산” 일부 펜션 업주들은 당국이 농어촌 민박업에 너무 높은 기준을 적용해 불법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농어촌 녹지지역에서 펜션을 운영하려면 시에 ‘농어촌 민박’으로 등록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법상 연면적 230m²(약 69.57평) 이하 건물만 ‘농어촌 민박’으로 등록할 수 있다. 본보가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펜션 74곳 가운데 ‘농어촌 민박’ 등록이 가능한 지역에 있는 업소는 모두 20곳이었다. 그런데 15곳은 건물 크기가 230m²를 넘었다. 이 펜션들은 ‘농어촌 민박’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불법 영업을 하고 있었다. ‘다가구주택’으로 신고하고 펜션을 운영하는 D펜션 업주는 “농어촌 민박으로 등록하려고 해도 건물이 커서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불법인 줄 알지만 생계가 걸려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숙박업소로 신고했다가 시에서 까다로운 안전 기준을 제시해 불법 영업으로 돌아선 업주들도 있었다. 바닷가 주변 상업지역에서 이른바 ‘오션뷰 펜션’을 운영하는 업주들이 대체로 그랬다. 토바펜션 업주 남모 씨도 지난해 11월 “건물 용도를 주택에서 숙박업소로 바꾸겠다”고 시에 신고했다가 반려 통보를 받았다. 1973년 지어진 이 건물은 내진 설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숙박업소로 운영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게 시의 판단이었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신고 펜션을 단속하지 않는 건 공무원들의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숙박업소로 신고하지 않고 불법 영업하는 펜션들을 철저히 단속해야 이용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연면적 230m²가 넘는 건물을 ‘농어촌 민박’으로 신고할 수 없게 제한하면 안 된다. 규모에 따라 영업 조건을 다르게 정하는 탄력적인 규제를 고민해야 한다”며 “더 많은 영업장을 정부의 관리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제2의 토바펜션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고도예 yea@donga.com·한성희·동해=박종민·이청아 기자}

설 연휴인 26일 새벽 서울 중구 그랜드앰배서더 호텔에서 불이 나 수백 명이 대피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화재 발생 당시 비상벨이나 안내 방송을 듣지 못했다는 투숙객이 적지 않아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27일 서울 중부소방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4시 50분경 그랜드앰배서더 호텔 지하 1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투숙객과 직원 등 583명이 대피했다. 일부는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자나 중상자는 없었다. 그랜드앰배서더는 지하 2층, 지상 19층 규모에 413개 객실을 갖춘 특급호텔이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는 지하 1층 알람밸브실에서 시작됐다. 불은 더 이상 번지지 않았지만 연기가 환기구와 전기배관실 등을 타고 삽시간에 객실 전체로 퍼졌다. 일부 투숙객은 새까만 연기가 객실까지 들어왔지만 비상벨은 물론이고 대피 안내 방송도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17층에 투숙했던 김모 씨(44)는 “복도에 연기가 심해 나가지도 못하고 30여 분간 객실에서 버텼다. 비상벨은 물론이고 대피하라는 객실 전화나 안내 방송도 없었다”고 말했다. 18층에 머물던 김모 씨도 “80세가 넘은 부모를 모시고 탈출했는데 불이 났다고 알려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피 지시가 달라 혼란이 가중됐다는 투숙객도 있었다. 16층에 투숙한 김모 씨(62·여)와 가족들은 “‘초 타는 냄새’를 맡고 119에 신고했는데 처음에는 ‘옥상으로 대피하라’고 했다가 이후에는 ‘객실에 머무르라’고 했다. 직원 안내도 없이 지시가 제각각이라 우왕좌왕했다”고 말했다. 호텔 측 관계자는 “소방대원들이 도착한 뒤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 작동하던 비상벨이 해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직원들은 최상층부터 직접 객실을 방문해 대피 안내를 했고 개별 안내 전화도 시도했다”고 해명했다. 또 “화재로 스피커 전선에 문제가 생겨 내부 방송이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고층 건물에서는 대피 시 혼란을 막기 위해 화재 발생 층과 바로 위층에 먼저 비상벨이 울리는 ‘우선 경보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연기가 다른 층까지 찼는데도 순차적으로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과 소방당국 등은 28일 오전 합동감식을 실시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구특교 kootg@donga.com·고도예 기자}

25일 강원 동해시 토바펜션에서 일가족 7명이 가스 폭발로 숨지거나 중태에 빠진 사고는 일차적으로 가스 배관을 방치한 펜션 업주의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고질적인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부실 및 관련 업체의 부실 점검 등 구조적인 문제도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뭣보다 이번 사고는 2018년 12월 강원 강릉시 펜션에서 가스가 누출돼 고교 3학년 10명이 피해를 입었던 ‘강릉 펜션 사고’와 닮았다. 당시에도 무자격자가 보일러 설비를 잘못 시공해 배기통 사이로 가스가 퍼져 나왔다. 마찬가지로 가스공급 업체는 이런 부실을 점검하지 못했고, 지자체는 점검 결과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 펜션 업주, 가스레인지 철거하며 배관 방치 동해경찰서 등에 따르면 업주인 남모 씨는 지난해 11월 사고가 난 객실 가스레인지를 직접 철거했다. 전기레인지(인덕션)를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남 씨는 가스통과 연결된 배관 끝을 규정대로 막지 않았다. 현행법에선 사용하지 않는 배관 끝은 가스가 새지 않도록 ‘플러그’나 ‘캡’ 등으로 막아야 한다. 남 씨는 경찰 조사에서 “배관 끝에 고무호스가 달려 있었는데, 가스가 새지 않도록 이 호스를 묶어뒀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펜션 이용객들이 가스 밸브를 열면 언제든 배관을 통해 가스가 방 안에 퍼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사고가 난 25일 오후 7시 46분경에도 객실 안 가스 밸브가 열려 있었다고 한다. 숨진 이모 씨(70·여)를 포함한 일가족은 객실에 딸린 발코니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펑’ 소리와 함께 두 차례 폭발이 일어났다. 경찰은 배관 끝에서 새어나온 가스가 휴대용 가스레인지 불꽃과 만나 폭발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숙박업소 신고 안 해 가스공사 정기 점검서 누락 토바펜션은 그동안 한 차례도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점검을 받은 적이 없다. 남 씨가 시에 ‘숙박업소’로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펜션 등 숙박업소의 가스 설비를 1년에 한두 번씩 정기 점검해야 한다. 업주는 사고가 난 펜션 건물을 ‘다가구주택’이라고 시에 알렸다. 경찰은 남 씨가 2011년 무렵부터 건물을 개조해 숙박시설을 운영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지난해 12월 특별 점검에서 이 펜션을 불법 숙박업소로 적발했다. 하지만 시는 이런 사실을 전달받고도 한 달 넘게 행정 조치를 하지 않았다. 동해시 관계자는 “당시 소방은 300여 곳을 불법 업소라고 통보했다”며 “한 달 만에 업소 300여 곳을 둘러보고 조치하기엔 담당 인력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가스공급 업자는 건물 외부만 ‘겉핥기’ 점검 사고가 난 펜션 같은 다가구주택의 가스 설비는 민간 가스공급 업자가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이 펜션에 가스를 공급하는 T가스는 지난해 객실의 가스 설비를 점검하지 않았다. T가스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4월과 12월 무렵 건물에 가스를 공급하러 가서 시설을 점검했는데 외벽 계량기만 확인했다”며 “객실에 투숙객이 있으면 안에 들어가서 점검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했다. 가스공급 업체의 점검 결과를 감독해야 할 동해시는 공급 업자들이 건물 바깥만 점검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현행법은 가스공급 업체가 1년에 한두 번 가스를 공급하는 건물의 보일러와 배관 등을 점검하고 이 기록을 시나 구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T가스가 시에 사고 펜션에 대한 점검 결과를 보고한 적이 없다”며 “가스공급 업체가 특정 건물의 점검 결과를 빠뜨리고 보고해도 시에서 알 방법이 없다. 시가 업체의 거래처 명단을 점검 보고서와 대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고도예 yea@donga.com / 동해=이인모 기자}

설날인 25일 강원도의 한 무허가 펜션에서 가스 폭발로 일가족 6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펜션 안전불감증’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 1년 전인 2018년 12월 강릉 펜션에서 가스 누출로 고교생 3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 후 관련 규정을 땜질식으로 정비했지만 관리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이 펜션을 공식 홈페이지에 추천 숙박업소로 소개해 왔다. 이날 오후 7시 46분경 동해시 ‘토바펜션’에서 발생한 액화석유가스(LPG) 폭발사고는 매번 반복되는 고질적 인재(人災)의 총결산이었다. 경찰 등에 따르면 2011년 개업한 펜션은 지금까지 다가구주택으로 등록돼 있었다. 소방당국의 점검은 업주가 거절한다는 이유로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 당국은 이를 알고도 시정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관련법에 따른 민간 LPG 공급업체의 설비 점검도 제대로 받아보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강릉 펜션 가스 누출 사고와 발생 원인이 매우 흡사하다. 펜션 주인 남모 씨는 사고 객실의 가스레인지를 전문업자도 없이 직접 철거했다. 경찰은 이때 배관을 제대로 막지 않아 가스가 새어 나온 것이 폭발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강릉 참사는 무자격 보일러 시공자가 배기관을 부실하게 끼워 맞춘 게 일산화탄소가 새어 나오는 원인이 됐다. 사고가 난 토바펜션은 지난해 11월 소방당국이 관할지역 숙박업소를 대상으로 벌였던 특별조사도 피해 갔다. 정식 숙박업소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동해시는 12월 이를 통보받았지만 단속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개선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시 홈페이지는 2017년부터 무면허인 토바펜션을 추천 숙박업소에 올려 뒀다가 동아일보 취재가 시작된 27일 오후에야 목록에서 제외했다. 결국 동해 사고는 연휴를 맞아 놀러왔던 일가족의 목숨을 앗아갔다. 강원 동해소방서는 2층 객실에 있던 이모 씨(56·여) 등 6명이 숨지고 홍모 씨(66·여)가 전신 화상으로 입원 중이라고 27일 밝혔다.동해=이인모 imlee@donga.com / 고도예·조건희 기자}

경제부처에서 국장급으로 퇴직한 A 씨는 2018년 초 소속 부처 산하에 있는 모 진흥원의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진흥원은 정보기술(IT) 신산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진흥법’에 따라 설립됐다. 당시 정부는 “진흥법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힘을 보태줄 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지금은 슬그머니 퇴직자 재취업 통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공직 낙하산은 다른 업계에서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업계의 한 민간협회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신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일단 자리부터 늘리는데 그 뒤 나온 육성책에는 꼭 규제가 포함된다”며 “그 과정에서 관련 협회가 생기고 퇴직 공무원이 임원으로 간다”고 설명했다. 조직을 키운 뒤 규제 권한을 강화하고, 이 권한을 발판 삼아 퇴직 이후를 보장받는 구조다. 이는 공적 영역의 비대화와 규제 강화를 불러와 결국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 산업 진흥한다며 조직 불리기 각 부처가 인원을 늘릴 때는 늘 그럴듯한 명분을 댄다. 새로운 산업을 ‘진흥’ 또는 ‘지원’하고 ‘시대 변화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종 ‘진흥법’ ‘촉진법’을 만든다. 하지만 결국엔 관료 조직의 비대화와 규제 양산으로 이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율주행차나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정부 규제가 좀처럼 걷히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15년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나온 ‘자율주행차 상용화 지원 방안’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그해 12월 국장급인 ‘자동차관리관’을 신설하고 그 아래 3개 부서를 뒀다. ‘첨단 자동차 개발 가속화’ 등 자동차 정책 환경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조직 확대의 근거였다. 자동차관리관은 출범 때는 2년 한시 조직이었지만 2018년 1월 정규 조직으로 전환됐다. 이후 자동차관리관 소속 각 부서가 담당하는 관련법과 시행령은 자율주행차의 핵심 규제 법령이 됐다. 자율주행차 업계 관계자는 “겉으로는 법령이 지원책 중심이지만 규제도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왔다. 그사이 국내에서는 자동차관리법, 도로교통법의 촘촘한 규제를 받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3월 컨설팅 기업인 KPMG인터내셔널에 따르면 한국의 자율차 관련 제도와 정책은 25개 평가 대상국 중 16위였다. 규제를 없앤다며 이를 위해 조직을 늘리는 사례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2월 “지방 규제 혁신 업무, 조선·해운 분야 협력 과제 발굴 등에 필요하다”며 본부 인력 9명을 증원했다. 부처에서 규제 개혁 업무를 맡았던 전직 관료는 “각종 ‘진흥원’ 명패를 달고 있는 기관이 늘어나면서 정부 조직이 전반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산업 진흥 및 발전을 위한 법령은 600여 개다. ○ 규제 전문성이 재취업 무기 산하기관 등 관련 조직의 비대화는 공무원 사회의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쓰일 때가 많다. 각 부처는 정년을 앞둔 고령 직원들에게 민간 기업이나 공직 유관 단체로 이직할 것을 수시로 권한다. 명예퇴직을 하는 대신 유관 기관에서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기 때문에 사실상 ‘정년 연장’의 개념이다. 다양화, 복잡화된 규제가 퇴직 공무원들의 경쟁력을 높여주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사회부처 출신 고위 공무원들이 대형 로펌으로 옮겨가는 사례가 관가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환경부 실장급을 지낸 B 씨와 고용노동부 국장급으로 퇴직한 C 씨는 각각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영입됐다. B 씨는 화학물질관리법 등 강화된 환경법규를 해석하고 관련 조언을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C 씨는 현 정부 들어 강화된 노동법규와 기업의 노무 관련 소송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로펌들이 예전엔 장차관 출신 관료들을 영입해 눈에 보이지 않는 로비를 했다면, 요즘엔 규제를 다뤄 본 경험과 전문성을 염두에 두고 영입 대상 관료를 선별하고 있다. 환경 노동 보건 등 사회 분야 규제가 부쩍 강화되면서 이런 규제를 다루고 해석하는 것 자체가 기업에 중요한 업무가 됐기 때문이다. 법령에 명시된 것뿐만 아니라 규제를 만든 사람의 의도까지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규제를 다뤄본 공무원 출신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고객(기업)이 요구하는 전문성이란 결국 규제를 잘 피해 가는 방법”이라고 했다. 중앙부처 차관을 지낸 한 인사는 “공무원 조직에서 모두가 승진을 할 수 없으니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외부 일자리를 가져와야 한다”며 “퇴직 공무원을 민간에 잘 내리꽂는 게 공무원 사회에서 장차관의 능력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고 했다.김준일 jikim@donga.com·고도예·배석준 기자}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신혁재)는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 회장에게 17일 무죄를 선고했다. 이 전 회장은 2012년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게 도와준 대가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딸을 KT에 부정 채용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유력 인사의 가족이나 지인을 KT에 부정 채용한 혐의(업무방해)로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이 전 회장은 17일 오후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이번 사건에 앞서 그동안 3차례 기소됐던 이 전 회장은 두 차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었다. 이 전 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심리한 재판부는 KT가 2012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서 김 의원의 딸을 ‘특혜 채용’한 사실은 인정했다. 김 의원 딸이 서류접수 기간이 지난 뒤 지원서를 냈는데도 다음 전형 단계로 올라갔고 인성검사와 면접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는데도 결국 채용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KT가 김 의원 딸을 ‘특혜 채용’한 것을 이 전 회장이 김 의원에게 준 뇌물로 볼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을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하면서 서유열 전 KT 홈고객부문 사장의 진술을 증거로 내세웠는데, 재판부는 서 전 사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서 전 사장은 지난해 4월 검찰에서 “이 전 회장이 ‘김 의원이 KT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으니 딸을 정규직으로 취업시키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김 의원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
“감사 나와서 제가 다치면 실장님이 책임지시겠습니까.” 지난 정부에서 100차례 이상 규제조정회의를 주재했던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가 회의에 참석한 공무원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강 교수는 민간기업에 있다가 2014년부터 2년간 규제개혁 업무를 총괄하는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으로 있었다. 그가 규제 개선을 추진할 때 최대 걸림돌은 규제 자체가 아니라 공무원들의 ‘감사 공포증’이었다. 규제조정실에서 규제를 전향적으로 풀자는 의견을 내면 규제 권한을 가진 해당 공무원들은 대번에 “감사 때문에 내가 곤란해질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러면 다시 강 교수는 “규제조정실장이 지시했다고 문서로 남겨라”란 말로 회의를 이어 나가야 했다. 공직사회가 감사 공포증을 앓고 있다. 적극적으로 일했다가 감사원에서 지적을 당해 징계를 당할까 봐 적극행정은커녕 ‘면책권’ 자체를 믿지 않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시민단체나 이해관계자의 감사청구권에 노출돼 있을 뿐 아니라 정권 교체기마다 벌어지는 정책감사를 특히 두려워한다. 과거 정권에서 했던 정책적 선택이 자체 감사, 감사원 감사에 이어 최악의 경우 검찰 통보에 이르는 선례가 굳어지고 있어서다. ▼ “정권 바뀌면 감사표적 될 수도…” 몸사리기 선택 ▼실제로 특정 업무나 사업을 지정해 감사를 벌이는 특정감사는 2016년 136건에서 2018년 179건으로 31% 늘었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법령에서 ‘가능’과 ‘불가능’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다 싶으면 가급적 불가능을 택하려고 한다. 이는 공직생활에서 오래도록 체득한 ‘보신(保身)’의 방편이다. ‘가능’을 택했다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감사에서 빠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 적극행정이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다.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적극행정 활성화 장애요인 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들이 지적한 적극행정을 가로막는 요인 1위(27%)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 A 씨는 “조직 내에서도 적극행정을 권하고, 나 역시 ‘되는 방향’으로 일을 하려 한다”며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면 혹시라도 감사를 받게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여서 수평적, 창의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감사원은 도전을 용인하는 감사가 아니라 도전을 원천적으로 막는 감사를 하고 있어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공직사회에 ‘감사원 감사는 곧 징계’라는 도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고도예 yea@donga.com·김준일 기자}

2015년 5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경기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서울반도체 1, 2공장의 연결통로 공사 계획을 승인했다. 두 공장 간 직선거리는 180m에 불과했지만 각종 규제로 연결통로를 둘 수 없어 1.2km를 돌아가야 했다. 회사 대표가 2014년 3월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규제 개선을 건의하는 등 노력을 계속한 끝에 5년 만에 해묵은 규제가 풀렸다. 이 과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장기간 규제 해소에 어려움을 겪은 근본적인 이유로 공무원들의 감사에 대한 공포를 들었다. 담당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특정 기업의 애로사항을 풀어주면 ‘기업과 유착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생기고, 이어 감사까지 받게 될까 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것. 이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감사원 감사를 ‘걸면 걸린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 인식은 경험을 통해 생긴 것”이라고 했다. 감사원 감사는 예산 낭비와 공직기강 해이를 막아주는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최상위법인 헌법에서도 감사원 감사 기능을 보장한다. 그러나 현재의 감사 시스템은 공직 사회에 감사 공포증을 심어주고 적극 행정을 가로막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정해진 것 외엔 하지 말라” 체득된 공포 적극적으로 일했다가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인식은 공직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쌓이기 시작한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A 씨는 사무관 시절 연구개발(R&D) 사업 평가 업무를 맡았다. 주어진 인력은 없고 동시에 여러 일이 몰아치는 가운데 마감시한도 촉박했다. 그는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총 6단계의 업무 중 4, 5단계 업무를 동시에 처리했고 일을 기한 내에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감사원 직원들은 “업무 처리 순서를 지키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다. 서류에 ‘사인이 있니, 없니’로 며칠 동안 괴롭힘을 당했다는 게 그의 기억이다. A 씨는 “수많은 공무원들이 감사원 징계 위험을 겪어 봤기 때문에 ‘정해진 것 외에는 하지 말라’는 분위기가 공직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공무원들의 인식은 대통령도, 감사원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공직자가 공익을 위해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했을 경우 고의나 중과실, 절차적 하자가 없으면 징계를 하지 않는 ‘적극 행정 면책제도’를 법제화했다. 또 제도나 규정이 불분명해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감사원이 검토해 의견을 제시하고, 컨설팅 내용대로 업무를 처리하면 향후 감사 과정에서 책임을 면제해 주는 ‘사전 컨설팅’ 제도도 만들었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은 제도가 취지대로 운영될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감사원이 옳고 그름을 쉽게 결론내기 어려운 정책적인 판단에 ‘사후 평가 잣대’를 대왔기 때문이다. 감사원이 본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에서는 좋은 사업이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나쁜 사업이 됐다. 해외 자원개발도 마찬가지다. 경제부처의 한 과장은 “지금의 대통령과 감사원은 믿는다. 그런데 정권 교체 이후 감사원은 못 믿는다”고 했다.○ 정책 성과보다 특정감사 비중 높아 공무원들은 특히 감사원의 정책 감사에 불만이 많다. 중앙부처 출신 B 씨는 “정부 사업의 예산 사이클은 2년 정도인데 정책을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그러면 감사원에서 ‘환경이 바뀌었는데 잘못된 정책을 폈다’며 감사를 한다”고 했다. 경제부처 공무원 C 씨는 “공무원들은 보통 모든 경우의 수를 따진 뒤 정책을 추진한다”며 “그런데 갑자기 감사원 직원이 나와 무조건 정책이 잘못됐다고 윽박지르면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정책 성과를 분석하는 ‘성과감사’보다는 ‘특정감사’라는 이름으로 법령 해석, 절차 준수 여부 등의 감사를 하다 보니 공무원들은 정책 달성 여부보다는 문서와 형식에 집착하게 된다. 실제로 2017, 2018년 성과감사는 각각 9건, 13건에 불과했지만 특정감사는 101건, 123건에 달했다. 오스트리아(94%), 스웨덴(90%), 미국(80%) 등 선진국은 성과감사 비중이 높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책 자체에 대한 감사는 국회에서 하도록 하고 감사원은 회계감사나 직무에 관련된 비위, 사생활 문제 감찰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우리는 정책 자체가 정당한지 아닌지를 보는 게 아니라 절차나 법령을 지켰는지 보는 것”이라며 “감사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내부 교육도 하고 외부 전문가 의견도 구하고 있다”고 했다.김준일 jikim@donga.com·고도예·임보미 기자}
지난해 4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몸싸움에 관여한 혐의로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된 국회의원 11명을 법원이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넘겼다. 서울남부지법 약식3단독 설민수 부장판사는 국회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된 자유한국당 장제원 홍철호 의원 등 10명과 공동폭행 혐의로 약식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을 14일 정식 재판에 넘겼다고 16일 밝혔다. 서울남부지법 관계자는 “재판장이 서류만 검토해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정식 재판에 회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식 기소된 한국당 의원 일부에게는 2013년 8월 도입한 국회법상 국회회의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이 같은 혐의로 현역 의원이 재판에 넘겨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국회의원 11명은 직접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검찰이 피고인을 약식 기소하면 법원은 통상적으로 서류만 검토해 벌금형을 선고한다. 하지만 정식 재판이 열리면 재판부는 피고인을 법정에 출석시킨 상태에서 유무죄를 가려야 한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국회의원 11명에게 재판부는 유무죄와 형량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법원은 정식 재판에 넘겨진 한국당 의원 10명의 사건을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환승)에 맡겼다. 이 재판부는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이달 2일 불구속 기소된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의원 등의 사건을 맡아 심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당직자 등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같은 당 박범계 이종걸 표창원 김병욱 의원과 함께 재판을 받게 됐다. 이 사건은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신혁재)에 맡겨졌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대한 재판은 다음 달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공동폭행 혐의를 받는 민주당 의원 5명에 대한 첫 재판은 2월 12일 열릴 예정이다. 나경원 의원 등 한국당 의원 13명과 황교안 대표는 같은 달 17일 첫 재판을 받는다. 앞서 검찰은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여야 의원 28명과 한국당 황교안 대표, 보좌진 8명 등 37명을 이달 2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때 한국당 의원 10명과 박주민 의원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선고해 달라며 약식 기소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국회의원 시절 받은 정치후원금을 자신이 몸담은 단체에 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53·사진)에게 검찰이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16일 서울남부지법 형사3단독 정진원 판사 심리로 열린 김 전 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검찰은 “지출 경위와 액수를 종합해 보면 사회 상규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김 전 원장은 법정에서 “국회의원으로만 이뤄진 정치모임에 연구기금을 출연한 것”이라며 “모임을 통해 정책 중심의 의정 활동을 하려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였던 김 전 원장은 2016년 19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기 열흘 전 자신의 남은 정치후원금 5000만 원을 민주당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에 후원했다. 이 후원금은 ‘더좋은미래’의 싱크탱크이자 김 전 원장이 소장이었던 ‘더미래연구소’에 지원됐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은 임기를 마치면 남은 후원금을 국고에 반납하거나 정당에 넘겨야 한다. 김 전 원장에 대한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3일 열린다.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57·사진)이 청탁을 받고 은행 대출을 알선한 뒤 대가를 받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확정되면 원 의원은 의원직을 잃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환승)는 1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정치자금 부정지출 혐의로 원 의원에게 징역 10개월과 추징금 2500만 원을 선고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벌금 90만 원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 의원이 현직 의원이란 점을 감안해 법정구속하진 않았다. 재판부는 원 의원이 2012년 한 지역구 사업가에게 “대출을 받게 도와 달라”고 청탁받고, 이를 강만수 당시 KDB산업은행장에게 전달했다고 판단했다. 이듬해 그 대가로 사업가에게서 3000만 원도 받은 것으로 봤다. 또 타인의 명의를 이용해 정치 후원금 2500만 원을 챙긴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국회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형사 사건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을 잃는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는 1층 입주민한테 고층 입주민과 똑같은 액수의 엘리베이터 교체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7단독 이광열 판사는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는 조모 씨가 “모든 가구에 똑같은 액수의 엘리베이터 교체 비용을 부과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조 씨에게 승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판결은 피고 측이 항소하지 않아 이달 4일 확정됐다. 이 판사는 “조 씨의 아파트에는 지하 주차장도 없어 1층 입주자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며 “입주자 대표회의는 1, 2층 입주자들의 입장과 다른 아파트 사례를 모든 가구에 충분히 알린 뒤 엘리베이터 교체 비용을 가구별로 얼마나 부담할지를 결정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1층 주민이 고층 주민보다 엘리베이터를 적게 이용하는 만큼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 가구별 교체 비용을 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