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코로나 혹한기를 간신히 버텼건만, 볕이 들긴커녕 한파가 몰아치는 업종이 있습니다. 바로 면세점인데요. 다시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려온 ‘큰손’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한국 얘기만이 아닙니다. 홍콩과 동남아시아, 유럽에서도 ‘중국 단체관광객 실종’ 현상에 애가 타는데요. 도대체 그 많던 중국 관광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과연 기다리면 언젠가 돌아오긴 돌아올까요. 오늘은 전 세계 관광업계를 좌절시킨 중국 여행객의 사정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데…‘중국인 입국자 수는 올해 4분기 85% 정도까지 회복돼, 올해 약 220만명을 기록할 것이다. 단체 관광 재개에 따른 중국 관광객 증가로 인한 올해 GDP 성장률 제고효과는 +0.06%포인트이다.’지난 8월 한국은행 ‘경제전망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8월 10일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때였죠. 2017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단체 관광이 끊긴 지 6년 여만이었는데요. 이에 면세점·카지노·화장품주 주가가 며칠 만에 수십 퍼센트 급등하며 환호했습니다.그리고 넉 달이 지난 지금, 업계가 당황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돈 잘 쓰는 중국 단체관광객들은 다 어디로 간 거죠?일단 통계부터 볼까요. 올해 10월 방한한 중국 관광객은 24만9000명. 전달보다 줄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0월(56만7000명)과 비교하면 44% 수준에 그쳤습니다. 다른 나라 관광객은 그럭저럭 회복했는데, 중국만 유독 반토막을 면치 못합니다. 국경절 황금연휴 효과? 그런 거 없었습니다. 지난 9월 정부는 중국 단체관광객 전자비자 발급수수료(1만8000원) 면제 등 지원책을 내놓으며 ‘올해 연간 중국 관광객 200만명’을 내다봤지만, 목표 달성이 만만찮아 보입니다(1~10월 154만명).중국 관광객이 돌아오지 않아 울상인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해외 여행지 하면 단연 태국이 1위로 꼽히는데요. 태국은 올해 1~10월 280만명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그쳤습니다. 올해 연간 목표치(500만명) 달성은 물 건너간 지 오래고, 2019년(1100만명)의 30% 수준에 그칠 걸로 보입니다.일본도 비슷합니다. 올해 10월 일본에 여행 간 중국 관광객은 25만6000명. 4년 전의 35%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회복률 면에서 한국이 나은 편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랄까요.먹고 살기도 빠듯하다‘제로 코로나 끝=보복 해외여행 수요 폭발’이란 공식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나가 놀고 싶어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돈 쓰는 걸 주저하기 때문입니다.지난 국경절 연휴 때 중국 만리장성이 밀려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는 보도 보셨나요? 이 연휴기간 중국 국내 여행객은 지난해보다 71% 급증해 8억2600만명에 달했다고 하죠. 즉, 놀고 싶은 중국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대신 국내 여행을 한 겁니다.현지 언론에 따르면 동남아 단체관광 상품 가격은 1인당 5000위안(약 90만원) 정도. 항공·호텔·교통비가 올라 코로나 이전(3000위안)보다 비싸졌죠. 일본이나 한국 여행을 위한 항공권 가격도 이전보다 뛰어 부담스럽고요. 하지만 ‘꼬치구이 성지’가 된 산둥성 쯔보(淄博)시로 바베큐 여행을 떠나는 데 비용은 몇백 위안이면 충분합니다.이렇게 가성비 국내 여행만 뜨는 배경엔 경기침체가 있습니다. 대만 단장대학의 차이밍팡 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젊은이들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외로 여행하겠어요? 중국인이 해외 여행을 떠날 유인이 크게 줄었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중국은 청년 구직난이 심각합니다. 지난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이 21.3%에 달해 석 달 연속 20%를 웃돌았는데요. 다섯 명 중 한 명이 실업자란 거죠. 이후 중국 정부는 청년실업률 공개를 중단했지만, 올해 여름 대학 졸업생이 역대 최대인 1158만명이나 쏟아져 나왔으니 상황은 더 악화했을 게 뻔합니다.게다가 멀쩡한 직장과 집이 있더라도 예전처럼 여유가 없습니다. 집값과 주가가 고꾸라지면서 예전보다 가난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블룸버그와 인터뷰한 상하이 출신 금융인 토마스 저우는 올해 주식은 30%, 부동산 가격은 20% 떨어졌다고 털어놓는데요. 그는 “나를 지탱하는 건 대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직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대도시 주요 지역 집값은 이미 15% 빠졌고,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보다 비싸진 해외여행까지 갈만한 마음의 여유는 줄어듭니다.아시아태평양항공협회의 수바스 메논 회장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모든 아시아 항공사들이 중국의 여행 수요 증가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의 거시경제적 요인이 아시아 전역 항공 여행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중국인을 부유하게 만들었던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았고, 인플레이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고요.”돈 아껴서 인스타 사진 찍는다여행업계가 중국 여행객을 애타게 기다리는 건 그 규모뿐 아니라 중국인이 ‘큰손’이라는 이유도 있죠. 한국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싹쓸이 해가거나, 홍콩 쇼핑몰에서 지칠 때까지 쇼핑하는 중국 관광객은 큰 환영을 받는 존재였습니다.이제 그게 옛날얘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중국 관광객들은 더 이상 버스를 타고 우르르 가게로 몰려다니지 않습니다. 면세점에서 브랜드 화장품을 사는 대신 올리브영에서 중저가 화장품을 사고, 동네 저렴한 음식점 또는 사진 찍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닙니다. 왜냐. 가성비가 좋을 뿐 아니라 샤오홍슈(중국판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핫스팟으로 통하거든요. 비씨카드의 통계를 확인해보면 중국인이 유니온페이를 이용해 한국에서 올해 1~9월 쓴 돈 중 면세점 비중은 35.9%에 그쳤습니다. 2019년(63.1%)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로 줄었죠.한마디로 중국 관광객들이 이제 예전처럼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훨씬 검소해졌죠. 쇼핑이나 명승지 투어보다는 현지인의 생활방식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요.이런 달라진 트렌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최근 홍콩에서 있었는데요. 영국 명품 백화점 하비 니콜스가 지난달 홍콩 센트럴 랜드마크몰 매장을 철수한다고 발표한 겁니다. 2005년 처음 문 연 지 18년 만의 일이죠. 하비 니콜스 측은 “홍콩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은 더 이상 팬데믹 이전처럼 쇼핑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고 철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올해 이 백화점 방문자 수가 팬데믹 이전의 60% 수준에 머물렀다는데요. 홍콩소매관리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의 지출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특히 전자제품·시계·보석류·의류가 가장 크게 타격을 받고 있죠.하지만 동시에 홍콩의 에그타르트 맛집 베이크하우스나 배우 위엔윙이(양영의) 부부가 좋아한다는 작은 식당 ‘투 그린스’는 본토 관광객이 북적거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성수동·안국동 카페를 찾아가거나 편의점에서 약과 같은 먹거리를 사는 중국 관광객들이 늘고 있죠. “중국인 관광객이 유커(단체 관광객)에서 싼커(개별 관광객)로 변화한 만큼, 이전과 다른 마케팅 전략-지역별 핫플레이스나 체험상품 발굴-이 필요하다”(현대경제연구원 ‘중국인 관광객 회복 지연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인도에 구애하는 동남아“우리는 중국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합니다.”차이 임시리 타이항공 CEO가 지난달 아시아태평양항공협회 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경기 둔화에 발목 잡힌 중국의 부진을 만회할 다른 여행 수요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인데요. 그럴 만한 나라가 과연 있을까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어쩌면 인도가 유력한 후보입니다.인도의 지난해 해외 여행은 1300만 건에 달했는데요.이를 2019년 중국 기록(1억400만 건)과 비교하면 너무 적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도의 1인당 GDP(2021년 2250달러)는 중국의 2006년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중국의 지난 십수년간의 해외 여행 급증세를 인도가 앞으로 따라가게 되겠죠. 그래서 맥킨지는 2040년까지 인도의 해외 여행 건수가 연간 8000만~9000만 건으로 늘어날 걸로 전망합니다.이미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관광객을 잡기 위해 각국이 발빠르게 나서고 있는데요. 태국은 11월, 말레이시아는 이달부터 인도인에 대해 최대 30일의 무비자 여행을 도입했고요. 인도네시아 역시 인도를 포함한 20개국에 대한 무비자 입국 허용을 검토 중입니다. 지난해 일찌감치 인도인에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며 선수를 친 베트남의 경우, 올해 인도 관광객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자, 그럼 우리도? 글쎄요. 올 1~10월 한국을 찾은 인도 관광객 수는 10만명 남짓입니다. 절대 수는 적지만 증가율(10월 한달 기준 2019년보다 46% 증가)면에선 꽤 높긴 하죠.하지만 인도인이 선택하는 해외여행 목적지 톱 20위 안에 한국은 물론 일본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거리 탓이 큰데요. 맥킨지에 따르면 인도인은 비행시간이 4시간 이내인 목적지를 선호하는데, 이는 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이죠. 뉴델리 기준 서울까진 6시간이 걸립니다. 거리를 기준으로 보자면 예컨대 튀르키예 같은 나라와 경쟁해야 하는 겁니다.물론 높은 성장 잠재력을 고려하면 투자를 할 만한 가치는 있겠죠. 글로벌 DMC 그룹인 유로믹의 라지브 콜리 회장은 “인도 관광객은 중국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 중국인이 다시 여행을 시작하면 (인도 관광객을 유치한 국가는) 두 배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데요. ‘중국 과의존’은 문제이고 ‘다변화’가 해답이라는 이야기가 관광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겠습니다. By.딥다이브물론 내년엔 올해보다 더 많은 중국 관광객이 돌아올 거란 긍정적인 전망이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한한령 이전인 2016년 시절로 다시 돌아갈 거란 확신은 없죠.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여러가지가 변했습니다. 달라진 세상에 맞춰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중국이 한국행 단체 관광을 다시 허용하면서, 온 여행 업계 주가가 치솟을 정도로 들떴던 게 지난 8월. 하지만 김칫국만 마셨다는 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유커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도 중국 관광객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요. 부동산 시장 침체와 청년 실업률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국 경제의 영향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인의 여행 트렌드가 바뀌었습니다. 면세점 쇼핑 대신 인스타그래머블한 동네 가게나 카페를 찾아갑니다. 중국 관광객들이 예전보다 훨씬 검소해지면서 홍콩 명품 백화점은 문을 닫게 됐습니다.-이대로 중국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습니다. 동남아시아는 새로운 시장인 인도 해외 관광객을 붙잡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는데요. 한국도 잠재력 큰 인도 시장에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뉴욕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18일(현지시간) S&P500 지수는 0.45%, 나스닥 지수는 0.61% 상승했죠. 다우지수는 0.86포인트 올라 거의 변동이 없었습니다. 지난주까지 S&P500은 7주 연속 상승했는데요. 이는 2017년 이후 가장 긴 상승세라고 합니다. 그만큼 현재 월스트리트는 낙관론에 가득 차 있죠. 연준이 경기침체를 피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은 2% 목표치로 되돌리는 연착륙을 할 거라고 보는 건데요.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메모에서 “투자 심리가 2021년 4월 이후 최고치로 뛰어올랐다”고 밝혔습니다. 지난주 주식형 펀드와 ETF로의 자금 유입은 253억 달러로 21개월 만에 최고치에 근접해있죠.S&P500이 8주째 상승세를 이어갈지는 이번 주 나올 지표들(내구재 주문, 개인 소비 지출 등)이 좌우할 텐데요. 모건스탠리의 크리스 라킨 이사는 “S&P500은 1964년 이후 20번만 7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고, 그중 12번은 8주까지 늘어났다”고 설명합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S&P500지수 목표치를 4700에서 5100포인트로 높여 잡았죠. 한 달 만에 전망치를 상향한 건데요. 앞으로 지수가 8%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이번 주의 큰 이슈 중 하나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죠. 오늘(19일) 오전에 금융정책회의 결과가 발표될 텐데요. 일본은행이 세계 마지막으로 남은 마이너스 금리 체제를 조만간 종료할 거란 추측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일본은행은 2016년 1월 단기 정책금리를 –0.1%로 낮추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는데요.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 안팎으로 높아지면서 정책 전환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 금리 인상 시기를 두고는 내년 4월쯤이 될 거라는 전망이 아직까진 우세한데요. 일본 기업이 내년 봄 춘투(임단협) 때 임금을 얼마나 올리는지를 확인하고 통화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시장은 이날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어떤 발언을 할지에 주목합니다. 일본은행이 내년 1월이나 4월에 정책 전환을 하기 위해 이번에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안내)’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어서죠. 전 일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하야카와 히데오는 블룸버그에 “우에다 총재가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 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바꿀지가 중요한 포인트”라며 “만약 그가 이 관점을 업그레이드한다면 금융시장 전반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어떤 발언이 나올지 관심 갖고 지켜보시죠.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요즘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게 시급한 과제가 되면서 원자력의 필요성이 부각되는데요. 하지만 방사능 사고 위험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만약 치명적인 사고 발생 가능성을 없앤 원자로를 만들면 어떨까요. 중국에 이어 미국도 4세대 원자로 중 하나인 용융염 원자로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약 70년 전 ‘핵 추진 항공기’ 구상에서 유래한 기술인 용융염 원자로(MRS, Molten Salt Reactor)를 알아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원자력 항공기와 액체 소금잠시 옛날이야기부터 해볼게요. 몇 주 동안 계속 하늘을 날 수 있는 전투기가 개발된다면 얼마나 강력할까요. 냉전시대엔 실제 이런 항공기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이 개발을 추진했던 ‘핵 추진 항공기’입니다.인류 최초의 핵 추진 잠수함 노틸러스호(1954년 진수)엔 물로 냉각하는 가압경수로 원자로가 장착됐죠. 이 가압경수로 방식은 이후 전 세계 원자력 발전의 표준이 됐고요. 하지만 비행기에 들어가려면 훨씬 더 작고 가벼운 새로운 방식의 원자로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이 고체 대신 액체연료를 쓰고, 물 대신 용융염(고온에 녹아 액체가 된 소금)이 냉각재 역할을 하는 ‘용융염 원자로’ 개발에 나선 이유입니다. 1954년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용융염을 이용한 소형 원자로 개발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죠.미 공군은 정말 원자력 항공기를 개발하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1955~57년 ‘NB-36H’ 폭격기에 소형 원자로를 싣고 수십 차례 시험비행을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꼬리에 방사선 마크가 박힌 이 폭격기는 실제 원자력 에너지로 구동되진 않았습니다. 대신 원자로를 싣고 다녀도 비행 시스템과 승무원들은 안전하다(납과 고무로 방사선을 차폐)는 건 확인했죠.하지만 이 핵 추진 항공기 계획은 논란 끝에 1961년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취소됐습니다. “약 1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가까운 미래에 군사적으로 유용한 항공기를 개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이유였는데요. 그 후에도 한동안 미국의 용융염 원자로 실험은 계속됐습니다.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1965~69년 실험용 용융염 원자로를 가동하기도 했는데요. 그게 끝이었습니다. 1969년 12월 이 원자로는 폐쇄됐고, 미국 정부는 프로젝트를 중단했죠.시험가동 시작한 중국, 건설 허가 내준 미국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잊혀진 기술이었던 용융염 원자로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가장 앞서 나간 건 중국입니다. 2018년부터 고비사막에 용융염 원자로를 건설해온 중국은 지난 6월에 드디어 이 원자로의 시험 가동을 승인했습니다. 중국 상하이응용물리연구소가 시험 운영을 맡았죠.기술 원조인 미국도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다만 정부가 아닌 민간이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데요. 이달 12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용융염 원자로 스타트업인 카이로스파워(Kairos Power)의 시범 원자로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미국 테네시주에 건설될 이 1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는 2026년 완공될 예정인데요. 카이로스파워 측은 “미국이 수냉식(물로 냉각)이 아닌 원자로 건설을 승인한 건 50년 만에 처음”이라고 설명합니다.카이로스파워 외에도 용융염 원자로 개발에 뛰어든 스타트업은 미국과 유럽에 약 25곳이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TerraPower)도 그중 한 곳이죠.수십 년에 걸쳐 원자력 시장은 물로 냉각하는 수냉식(경수로, 중수로)이 평정한 상태이거든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다시 액체소금 냉각 방식(용융염 원자로)에 여러 국가와 기업들이 주목하는 걸까요.멜트다운 없는 안전한 원자로용융염 원자로의 뚜렷한 장점 때문입니다.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거의 없다는 거죠.원전 사고 중 가장 위험한 게 노심용융(멜트다운, Meltdown)입니다. 냉각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걸 뜻하는데요. 역사상 중대한 원전사고, 즉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모두 노심용융이 원인이었습니다.우라늄원자로는 핵반응을 중단해도 남은 방사선 원소들이 붕괴열을 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계속 냉각수를 공급해서 열을 식혀줘야만 하는데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 1 원전은 정전으로 냉각수 주입 펌프의 가동이 중단됐죠. 냉각수 순환은 멈췄고, 원자로 안에 있던 냉각수가 증발해버리면서 핵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됐고요. 연료봉 온도가 1200도까지 상승해 노심용융이 발생하면서 방호벽이 녹아내리고 수소폭발까지 일어납니다.만약 끓는 점이 매우 높아서 증발할 일 없는 냉각재를 쓰면 어떨까요. 그럼 냉각재를 보충해줄 필요가 없고요. 사고로 전력이 끊겨도 냉각재가 계속 남아서 열을 식혀줄 테니 훨씬 안전하죠. 바로 이런 장점을 지닌 게 용융염입니다. 용융염의 끓는점은 대기압에서도 1500도 이상으로 매우 높죠. 만약 어떤 사고가 발생해서 용융염 원자로에 전기 공급이 끊긴다면? 그냥 두면 저절로 냉각될 겁니다. 퍼 피터슨 버클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용융염은 끓어오르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매력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자력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떠오르는 이유입니다.”우라늄핵연료봉을 묶은 커다란 다발인 ‘핵연료 집합체’를 쓰지 않는다는 것도 용융염 원자로의 큰 특징입니다. 보통은 액체 핵연료를 쓰고요. 카이로스 파워 경우엔 탁구공만 한 크기의 작은 고체연료를 씁니다.핵연료 집합체를 쓰지 않으면 좋은 점이 참 여러가지인데요. 일단 원자로 크기를 줄일 수 있고요(핵연료 집합체는 길이가 4m에 달함). 또 지금처럼 18개월에 한 번씩 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운전을 정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계속 가동하면서 연료를 보충해주면 되죠. 아마 온라인으로 연료를 추가하는 식의 무인 운전도 가능할 겁니다. 또 연료봉 폐기물도 덜 생기게 되고요.용융염은 고온에 강하기 때문에 원자로 운전온도를 기존보다 더 높일 수 있는데요. 작동 온도를 높이면 열효율(시스템에 투입된 열 대비 생산되는 유용한 에너지양)은 높아집니다. 기존 수냉식 원자로의 열효율은 약 32%이지만 용융염 원자로는 45%에 달한다고 하죠.정리하자면 용융염 원자로는 더 안전하고 편리하고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상용화에 이르려면 실증도 거쳐야 하고, 갈 길이 먼데요. 특히 가장 큰 걸림돌은 이겁니다. 부식.소금은 여러 금속에 부식을 유발할 수 있죠. 자칫 원자로 용기나 배관이 부식되기라도 하면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수 있으니, 여간 큰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부식에 강한 소재 개발이 중요한 과제입니다.한국의 MSR 개발 현황은?이쯤에서 궁금하실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 새로운 원자로 기술에서 얼마나 와있는지 말이죠. 그래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용융염원자로원천기술개발사업단을 이끄는 이동형 단장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용융염 원자로를 몇 년 전부터 연구해오셨죠?“네. 다만 정부의 공식적인 국가연구개발 사업이 된 건 올해 4월부터라서 조금 늦긴 했습니다. 중국은 약 10년 전부터 개발에 나섰고요. 미국과 유럽에선 2018~2019년부터 정부 지원뿐 아니라 민간 자본이 엄청나게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연구원이 설계기술이나 용융염 관련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해놓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라서요. 이제 우리가 좀 더 분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중국과 미국을 보면 상업화까진 멀었고, 이제 시범 운영을 막 시작하려는 단계인데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 시범가동 단계까지 가기에도 시간이 좀 걸리겠죠?“저희 사업은 일단 2026년까지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요. 이후 실증을 위해서는 다시 계획을 세워 재원을 투입해야 할 겁니다. 다만 고무적인 건 연구원 단독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들, 현대건설·삼성중공업·HD한국조선해양·센추리가 들어와서 같이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연구개발에 그치지 않고 상업 목적의 개발을 서두른다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개발할 용융염 원자로의 사용처가 혹시 정해져 있나요? 선박 추진용일까요, 일반 내륙 전기 생산용일까요?“현재는 해양플랜트, 그리고 선박 추진용을 우선 타깃하고 있습니다. 용융염 원자로를 활용해 해양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미국·중국·덴마크에서 이미 많이 시도가 되고 있어서, 저희도 그쪽을 목표로 잡았죠. 그런데 해양플랜트이든 선박추진이든 결국 모두 전기를 만드는 것이라서요. 해상에서 실증이 되면 그걸 내륙으로 들여오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조선사가 용융염 원자로에 특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그동안 조선사가 암모니아·수소·메탄올을 친환경 에너지로 보고 개발해왔는데, 이제는 원자력이 또 하나의 옵션으로 떠올랐습니다. 아무래도 연료탱크가 크면 화물을 많이 싣기 어렵잖아요. 그런 점에서 원자력에 메리트가 있습니다.”-용융염 원자로는 핵폐기물 발생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고요?“최근 모든 원자로가 핵연료 교체 주기를 매우 길게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기술 개발 중입니다. 지금처럼 18개월마다 교체하는 게 아니라 12~20년 이상 연료를 배출하지 않는 방향으로요. 사용 후 핵연료 발생량을 줄이는 거죠.또 우리 연구소가 민간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있는데요. 사용 후 핵연료 안에 플루토늄이 많이 쌓이거든요. 그걸 재처리하지 않고 그 안에서 태울 수 있는 원자로를 개발 중입니다. 그렇게 하면 폐기물 발생량을 더 줄일 수 있죠.”-그 기술은 어느 정도 개발된 건가요?“개념적으로는 오래전, 그러니까 60년 전부터 나와 있던 기술입니다. 물론 설계에 여러 방법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실증이죠.”-용융염 원자로를 만들기 힘든 이유가 부식이라는데요. 아직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중인가요?“저희뿐 아니라 각 나라의 연구용 원자로 개발회사들이 부식에 강한 물질로 코팅해서 보호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자금과 인력을 많이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솔루션들이 하나씩 발표가 되고 있죠. 물론 핵심 내용은 공개하지 않지만요. 그 부분이 원자력에서는 가장 큰 토픽 중 하나입니다.”-부식을 막는 건 어렵지 않은 기술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업계에선 훨씬 중요한 이슈이로군요.“안전을 담보해야만 하니까요. 또 선박의 경우엔 수명이 30년인데, 가급적 중간에 교체하지 않는 것이 폐기물이나 모든 측면에서 좋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노력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요즘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e Reactor)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SMR이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테마로 자리잡았을 정도인데요. 오늘 설명드린 용융염 원자로(MSR) 역시 이런 SMR의 종류 중 하나에 속하죠. 우리가 아는 기존 원자로와는 다른 점이 많아서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중국이 올해 6월 용융염 원자로 시험가동을 시작한 데 이어, 미국도 스타트업 카이로스파워의 시범 원자로 건설을 승인했습니다. 액체상태의 소금, 즉 용융염을 이용한 차세대 원자로 개발 경쟁이 본격화됩니다. -용융염 원자로는 1950년대에 이미 나온 기술입니다. 애초엔 ‘핵 추진 항공기’의 동력원으로 쓰기 위해 개발됐는데요. 이 계획이 취소된 뒤 추진력을 잃고 프로젝트가 중단됩니다.-수십 년 만에 다시 용융염 원자로가 주목 받는 건 뛰어난 안전성 때문입니다. 소형화, 무인화가 가능하고 열효율이 높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한국도 올해부터 국가개발사업으로 이를 선정해 원천기술 개발에 나섰는데요. 특히 친환경 선박과 해양플랜트 쪽에 중점을 두고 개발할 계획입니다. *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산타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었군요. 전날 나온 파월 의장의 금리인하 논의 발언에 들뜬 뉴욕증시가 또다시 상승했습니다. 14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43%, S&P500 0.26%, 나스닥 0.19%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6거래일 연속 상승입니다. 중소형주는 더 크게 올라 러셀2000지수는 2.7% 뛰었습니다. 국채금리는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이날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0.1%포인트 넘게 떨어지면서 4%선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지난 8월 이후 처음인데요. 장중엔 3.883%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10년물 금리가 장중 5% 선을 처음 돌파했던 게 10월 19일이었는데,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뚝 떨어진 겁니다.전날 파월 연준 의장은 “언제 정책 제약을 되돌리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분명 오늘 우리 회의에서도 논의됐다”라고 말했죠. FOMC 회의에서 금리인하 논의가 있었다는 뜻인데요. 그동안 ‘갈 길이 멀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을 써가며 금리인하 신호를 주지 않으려 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겁니다. 그야말로 ‘피벗(태세 전환)’이죠.달러화 가치는 이날 하락하고,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뛰었습니다. 이날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 모두 미 연준의 피벗에 동참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 영향을 미쳤는데요. 파이낸셜타임스는 익명의 ECB 운영위원회 참석자가 “(파월 의장의 발언에)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놀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연준의 피벗으로 인플레이션 하락 속도가 늦춰진다면 “삶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이죠.다만 이날 주식시장 상승세는 전날만큼 강하진 않았는데요. 시장이 너무 빨리 달린 게 아니냐는 경계감도 작용했다는 해석입니다. 투자기업 이토로의 칼리 콕스 분석가는 블룸버그에 “10월 말 이후 S&P500은 1% 이상 하락한 적이 없다”며 “주식시장은 ‘열 체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투자중개회사 밀러 타박의 매트 말리 전략가 역시 증시가 너무 과열됐다고 보는데요. 그는 블룸버그에 “뉴스에 팔아라, 대규모 랠리 후 건강한 조정 같은 오래된 문구가 앞으로의 하락세를 나타낼 수 있다”면서 “어떤 시장도 직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죠.이날 높은 상승률로 눈에 띄는 종목은 온라인 중고차 판매업체 카바나(티커 CVNA)입니다. 이날 주가가 12.31% 급등해 올해 들어 상승률이 무려 993%에 달하는데요(1월 초 5달러였던 게 50달러가 됨). 과도한 부채로 파산 가능성까지 나왔던 그 기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성적입니다. 이로써 통신 장비업체 옵토일렉트로닉스(AAOI, 올해 들어 1133% 상승), 바이오기업 솔레노테라퓨틱스(SLNO, 상승률 1597%)와 함께 올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종목에 이름을 올리게 됐네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중국과 미국발 악재가 겹치면서 홍콩 증시가 역사적 침체에 빠졌다. 올해 들어서만 주가지수가 20% 가까이 빠지면서 글로벌 주요 증시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홍콩 당국이 세금을 깎아주며 증시 부양에 나섰지만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홍콩, 전례 없는 증시 침체올해 초 20,000 선에서 출발했던 홍콩 항셍지수는 급락을 거듭해 16,000 선으로 내려앉았다. 국내에서 판매된 주가연계증권(ELS)이 주로 기초자산으로 삼는 H지수의 올해 하락률도 18.8%에 달한다. H지수는 최근 들어 특히 하락 폭이 크다. 13일에도 전날보다 1.13% 떨어진 5,550.90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23일 이후 20일 만에 10%가 빠졌다. 내년 만기를 맞는 은행권 홍콩 ELS 규모는 13조 원에 이른다. 이는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국의 주가지수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글로벌 증시 호황기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경제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보다 훨씬 나쁜 성과다. 홍콩 증시는 4년 연속 하락세로 1969년 항셍지수가 등장한 이래 최장기 하락이다. 홍콩 증시는 최근 인도에도 따라잡혔다. 세계거래소연맹 집계에 따르면 11월 말 인도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의 시가총액(3조9890억 달러)이 홍콩(3조9840억 달러)을 추월했다. 세계 7위 주식시장 지위를 인도에 뺏긴 것이다. 지난달 28일엔 항셍지수가 대만 자취안지수에 추월당하기까지 했다.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홍콩 증시의 부진은 기업공개(IPO)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홍콩의 IPO 규모는 51억 달러로 10년 평균치(310억 달러)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닷컴 버블 붕괴 직후였던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중국·미국발 악재 겹쳐 홍콩 증시는 상장사 중 70% 이상이 중국 본토 기업이다. 올해 초만 해도 중국이 제로 코로나에서 벗어나면서 홍콩 증시가 수혜를 볼 거란 전망이 나왔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채 위기가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어서다. 비구이위안 같은 중국 부동산 개발사, 알리바바·메이퇀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이 상장된 홍콩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첨단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알리바바는 알짜배기 사업부인 클라우드 부문의 분사·상장 계획을 철회해 홍콩 증시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중요한 반도체를 공급받기 어려운 게 철회 이유였다. 중국과 별개인 구조적 요인도 있다. 홍콩은 통화(홍콩 달러) 가치를 미국 달러에 연동하는 페그제를 채택한다. 이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자, 홍콩도 따라서 금리를 16년 만에 최고 수준인 5.75%까지 올려야만 했다. 가뜩이나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 관련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홍콩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유동성을 더 메마르게 만들었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이익은 중국 본토 경기, 이자율은 미국 통화정책 영향을 받는 특이한 구조”가 홍콩증시 부진의 이유라고 설명한다. 중국과 미국 시장 악재가 겹친 셈이다.● 내년엔 반등할 수 있나 올 10월 홍콩 정부는 증시 부양을 위해 2021년 인상했던 주식 거래세를 원상 복구(0.13%→0.10%)하는 세금 감면책을 내놨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주식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올해에만 중소형 증권사 30곳이 문을 닫았다. 홍콩 브라이트스마트증권의 에드먼드 후이 최고경영자는 블룸버그에 “홍콩의 증권사 폐쇄와 해고 물결은 본 것 중 최악”이라고 말했다. 2020년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한 것도 홍콩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무디스는 6일 홍콩의 신용등급 전망치를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본토와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더 긴밀해졌고, 국가보안법으로 자율성이 약화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홍콩 증시가 내년에 반등하려면 미국과 중국발 악재가 해소돼야 한다. 일단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긴축이 끝나간다는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를 예단하긴 어렵다. 중국 경제는 정부가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회복 속도가 아직 더디다. 특히 두 달 연속 소비자물가지수가 하락해 소비 위축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달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미중 갈등이 해소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증권사들은 눈높이를 낮춰 잡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내년 상반기 H지수의 구간을 5,000∼7,000으로 제시했다. NH투자증권 박인금 연구원은 “중국 경기 회복 강도가 약하다”며 H지수의 하한선을 5,400으로 전망했다. 삼성증권 전종규 연구원은 H지수 5,500을 하단으로 제시하면서도 “보수적으로 대응하라”고 당부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요즘 부쩍 신경 쓰이는 해외 주식시장이 있습니다. 바로 홍콩. 국내 투자자가 8조원 넘게 투자했다는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만기가 내년 상반기로 다가왔기 때문인데요.홍콩 주식시장은 올해 역사적인 침체를 기록하고 있죠. 부랴부랴 홍콩 정부가 주식 거래세 감면을 포함한 부양책에 나섰지만 도통 약발이 먹히지 않습니다. 증시 침체로 증권사 폐업이 줄이으면서 홍콩의 금융중심지 위상마저 휘청거리는 판국인데요. 오늘은 흔들리는 홍콩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홍콩 거래소가 유적지라고?“홍콩 여행, 아시아 금융중심지 유적지를 꼭 한번 방문해보세요.”지난 10월 국경절엔 중국 SNS 플랫폼(웨이보·샤오홍슈·위챗 등)엔 이런 글과 함께 홍콩 증권거래소가 있는 센트럴 익스체인지 스퀘어의 사진이 줄이어 올라왔습니다. 홍콩 증시 침체로 인해 금융중심지 홍콩이 이젠 진시황릉 병마용처럼 폐허로 남은 ‘옛 유적지’로 전락했다는 조롱인데요.이를 일부 네티즌의 농담쯤으로 치부하고 넘기지 않고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홍콩의 부동산 재벌인 시윙칭 프라퍼티 대표는 “(금융중심지 유적이란 말을) 가벼이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살리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말이 예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고요.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는 ‘송교수’라는 필명의 중국 블로거는 “세계 3대 금융중심지를 건설하는 데 100년 이상 걸렸지만 홍콩이 폐허로 변하는 데는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탄했습니다.급기야 이달 1일 홍콩의 후이칭위 금융서비스 장관은 공식 블로그에 이렇게 반박글을 올렸습니다. “실제 데이터로 판단할 때 홍콩 금융시장은 국제적, 통합적, 성장적이란 특징을 갖고 있으며 ‘세계 금융중심지의 유물’이 되었다는 주장은 전혀 성립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국제 금융중심지로서의 홍콩의 위상은 압력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 높은 건물이나 기념비가 아닙니다.”홍콩 증시, 최악의 성적표홍콩 정부는 질색하지만, 유적지 운운하는 농담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각종 지표가 현재 홍콩 증시의 침체를 여실히 보여주는데요. 몇 가지만 뽑아보자면①홍콩의 대표 지수인 항셍지수는 올해 들어 20% 하락했습니다. 주요 글로벌 주식 지수 중 최악입니다. 일본(니케이225 +27%), 한국(코스피 +13%), 인도(센섹스지수+14%)와 비교해 한참 부진할 뿐 아니라, 중국 본토(상하이종합지수 –4%)보다도 더 크게 떨어졌습니다(11일 기준).②홍콩 항셍지수는 4년 연속 하락세입니다. 이는 항셍지수가 1969년에 공개된 이래, 역사상 가장 긴 하락세입니다. 이전에 3년 연속 하락(2000~2002년)은 있었지만 4년 연속은 처음이죠. 역사적 침체기라 하겠습니다.③홍콩의 IPO(기업공개) 시장은 닷컴버블 붕괴 직후였던 2001년 이후 최악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IPO 규모는 51억 달러로 지난 10년 평균(310억 달러)과 비교해 84%나 감소했습니다. ④홍콩 항셍지수가 대만 가권지수에 추월당했습니다. 11월 28일 가권지수가 31년 만에 처음으로 항셍지수를 앞서간 뒤 항셍지수는 1만6000대로 더 떨어지고, 가권지수는 1만7000대를 유지하면서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죠. 시가총액이나 거래량을 기준으로 하면 당연히 홍콩 증시가 훨씬 앞서지만, 지수 역전 자체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⑤홍콩 증권거래소는 인도에 추월당했습니다. 세계거래소연맹이 집계한 인도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은 11월 말 현재 3조9890억 달러, 홍콩은 3조984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인도 증권거래소가 홍콩을 제치고 세계 7위 시장으로 올라선 겁니다. 이후 12월 들어서도 인도 증시는 호황을 보이며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홍콩 항셍지수는 13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으니 차이는 더 벌어졌을 겁니다.중국과 미국 경제의 악재 종합판이쯤에서 도대체 왜 홍콩증시는 이 모양인지를 따져봐야겠죠.홍콩 증시는 상장사의 70%가 중국 본토 기업으로 구성돼있는데요. 사실 올 초만 해도 홍콩 증시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습니다. 지난해 말 지긋지긋했던 제로 코로나에서 벗어난 중국 경제가 올해는 빠르게 살아날 거라며 해외 IB 들이 앞다퉈 중국·홍콩 증시 낙관론을 펼쳤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실제로는? 보시다시피 완전히 빗나갔습니다.그 이유는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일단 중국 경기가 심상찮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급랭으로 대형 부동산 개발사가 디폴트 위기에 빠지면서 부채 위기로 번지고 있죠. 비구이위안을 포함한 주요 중국 부동산 기업이 홍콩 증시에 상장된 터라 그 충격이 특히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중국 소비자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0월과 11월 두 달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는데요. ‘디플레이션’, 즉 물가하락을 동반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집니다. 특히 홍콩 증시엔 알리바바·징둥닷컴·메이투안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이 상장돼있는데요. 전반적으로 소비가 부진한데다, 신흥 강자 핀둬둬(拼多多)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어 어려운 상황입니다(참조).게다가 첨단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달 알리바바는 알짜배기 사업부인 클라우드 부문의 분사·상장 계획을 철회해 홍콩 증시에 충격을 안겼는데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인해 중요한 칩을 공급받기 어려워진 게 이유였습니다.중국 경제와는 별개로 홍콩만의 어려운 점도 있는데요. 홍콩은 1983년부터 통화(홍콩 달러) 가치를 미국 달러에 연동하는 페그(peg)제를 채택해왔습니다(1 미국 달러=7.75~7.85 홍콩 달러).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무섭게 인상하자 홍콩도 따라서 금리를 5.75%까지 올려야 했는데요. 가뜩이나 외국인 자금 유출로 유동성이 메말라가는 홍콩 금융시장엔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합하자면 중국과 미국 금융시장의 악재가 동시에 겹쳐있는 게 지금 홍콩 증시가 유독 부진한 이유라 하겠습니다.이런 경제 사이클 이슈와는 별도로 해외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점점 홍콩이 중국화되어 가고 있단 점이죠. 2020년 중국은 홍콩 내 반중국 활동을 최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이 제정했습니다. 홍콩의 자치권을 부정한 조치였죠. 이는 외국인 투자자가 홍콩에서의 비즈니스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지난 5일 중국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강등한 무디스는 연이어 6일엔 홍콩 전망까지 하향 조정했는데요. “중국 본토와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고,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자율성이 약화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중국 본토와의 긴밀한 링크는 “오히려 홍콩 강점의 원천”이라고 반박했습니다.도전 받는 금융중심지홍콩은 전체 GDP의 22%를 금융이 차지할 정도로 금융이 경제의 중요한 축입니다. 이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홍콩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죠.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에선 2022년 49개 증권사가 폐업한 데 이어, 올해도 30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거래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하던 중소형 증권사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인데요. 홍콩 브라이트스마트증권의 에드몬드 후이 CEO가 “브로커리지 폐쇄와 해고 물결은 내가 본 중 최악”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는 “터널 끝에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는다”고 업계의 우울함을 전했죠.대형 투자은행의 정리해고도 이어집니다. JP모건체이스와 UBS 그룹은 아시아 지역 IB 직원을 수십명 해고했는데, 주로 홍콩 직원들이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IB 업계는 과거엔 ‘주 80시간 근무와 엄청난 보너스’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너무 일거리가 없어서 장기 휴가를 떠나는 고위직이 크게 늘었다고 하죠. 알프스·피오르드 하이킹 여행은 부럽지만, 그들이 돌아왔을 때 일할 자리가 남아있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금융산업이 시들하자 높은 임대료로 악명 높던 홍콩 부동산 시장도 함께 꺾였습니다. 홍콩 주택가격은 6년 만에 최저이고, 사무실 공실률(17.7%)은 2004년 이후 최고치입니다. 또 다른 금융중심지 싱가포르가 중국 부자를 포함한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며 매우 낮은 공실률(3.9%)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죠.홍콩 정부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지난 10월엔 2021년 인상했던 주식 거래세를 원상복귀하고(0.13%→0.10%), 비거주자의 주택 취득세를 절반으로 뚝 떨어뜨리는(30→15%) 세금 감면책을 내놨죠. 사실 주식 거래세는 워낙 홍콩 정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내리기가 쉽지 않았는데도 증시 부양을 위해 과감하게 조치를 취한 건데요. 보시다시피 그리 효과를 보진 못하고 있습니다.전망은 어떨까요. 홍콩이 금융중심지 지위를 조만간 잃을 거라고 볼 결정적 근거는 없지만, 상당히 도전적인 상황인 건 틀림없습니다. 특히 라이벌 싱가포르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죠. 금융허브 지위 유지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홍콩이 더 개방돼야 한다는 조언이 가장 눈에 띄는데요. “중국에만 집중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으로 다각화해 중동과 아세안에서 더 많은 IPO를 유치해야”하고(버나드 챈 우리홍콩재단 회장) “아세안의 인재와 자본에 문을 열어야 할 때”(다릴 응 홍콩-아세안재단 회장)라는 겁니다. 하지만 중국화가 가속화되는 홍콩이 과연 이전의 강점이었던 개방성과 다양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중국 네티즌들의 ‘유적지’ 조롱은 어쩌면 시진핑 정부를 향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By.딥다이브홍콩 증시에 대한 전망은 썩 좋지 않습니다. 저평가 국면에 있는 건 맞지만, 증시 반등을 위해선 중국 경기 회복과 미국 금리 인하가 모두 필요해 보이는데요. 과연 투자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느냐도 중요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홍콩 증시가 역사적인 침체에 빠졌습니다. 올해 들어 지수가 20% 빠졌고, IPO 시장은 쪼그라들었습니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홍콩을 두고 “세계 금융중심지였던 유적지”라고 조롱합니다. -홍콩 주식시장은 상장된 기업 상당수가 중국 기업인 동시에, 통화는 미국 달러에 연동된 페그제입니다. 중국 경제의 부진과 미국 금리 인상의 악영향을 한꺼번에 받다보니 유독 더 부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형 증권사가 폐업하고 대형사는 정리해고에 나서면서 홍콩 증권가가 흉흉합니다. 부동산 시장도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고요. 정부가 세금 감면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그닥입니다. -홍콩은 싱가포르의 도전을 물리치고 금융중심지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관건은 개방성과 다양성을 지키고 더 확대할 수 있느냐일 겁니다.*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사흘 연속 상승으로 마감했습니다. 다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둔 터라 움직임은 크지 않았는데요. 다우지수 0.43%, S&P500 0.39%, 나스닥 0.20% 상승을 기록했습니다.이날은 올해 미국 증시를 이끌었던 빅7 종목(애플·MS·알파벳·아마존·메타플랫폼스·엔비디아·테슬라)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중소형주로 몰리면서 빅7의 하락을 상쇄했는데요. 최근 들어서 가치주나 중소형주처럼 올해 상승장에서 소외됐던 종목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이 뚜렷해졌습니다.이날 특히 눈에 띄는 종목은 백화점인 메이시스입니다. 이날 하루 주가가 19.44% 급등했는데요. 부동산 투자회사 아크하우스매니지먼트와 자산운용사 브리게이드 캐피탈 매니지먼트가 최근 메이시스 주식을 주당 21달러, 총 58억 달러(약 7조64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는 소식 덕분입니다. 주당 21달러는 지난주 금요일 종가(17.39달러)보다 약 32% 높은 가격이었는데요. 이날 급등으로 메이시스 주가는 20.77달러로 치솟았습니다. 메이시스 측이 이 제안을 어떻게 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이 소식으로 다른 경쟁 소매업체 주가까지 들썩였습니다. 노드스트롬은 7.16%, 콜스는 7.02% 상승했죠.이번주는 12일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12~13일 FOMC 정례회의가 예정돼있습니다. 이번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거라는 전망엔 이견이 없는데요. FOMC가 내놓을 점도표와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 내용이 시장의 관심거리입니다.11월 이후 미국 주식의 강세는 2024년 경기 연착륙과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때문이죠. 블룸버그의 최근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내년 미국 주식이 글로벌주식 수익률을 능가할 것이란 응답(43%)이 글로벌 수익률과 비슷하거나(31%) 그에 못 미칠 것(26%)이란 답변보다 많았습니다.특히 올해 랠리를 정확하게 예측한 오펜하이머 애셋 매니지먼트의 수석전략가 존 스톨츠퍼스는 2024년 S&P500이 5200포인트에 올라설 걸로 전망했죠. 스톨츠퍼스 전략가는 내년에도 올해 증시 강세를 이끈 기술주와 경기순환주(통신서비스, 임의 소비재)가 양호한 성과를 보일 거라고 내다봤습니다.씨티그룹의 스콧 크로너트 애널리스트도 S&P500이 내년에 사상 최고치인 5100을 기록할 걸로 내다봤죠. 섹터 수준의 이익 성장이 지속되면서 메가캡 기술주를 넘어선 랠리를 펼칠 거라는 낙관적 전망입니다.하지만 좀 더 신중한 이들도 있습니다. UBS프라이빗웰스매니지먼트의 그렉 마커스는 연준이 내년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경제 둔화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하죠. 그는 “어떤 경우엔 시장이 지금과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가성비’라는 말, 이제 익숙하시죠. ‘가격 대비 성능’을 일컫는 이 신조어가 널리 쓰이면서 동아일보 지면 기사에까지 등장한 게 2012년부터인데요. 이 가성비의 원조는 1990년대 후반 경기침체에 빠진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 ‘코스파(Cost Performance의 약자)’였습니다.일본에선 요즘 코스파 못지않게 주목받는 트렌드가 ‘타이파’입니다. ‘Time Performance’의 줄임말로, 번역하자면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쯤 되겠는데요. 지난해 생긴 이 신조어를 두고 최근까지도 심층 분석 기사와 서적 출간이 이어집니다. 그냥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 하겠는데요. 알고 보면 우리에게도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타이파’ 현상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볼 때 혹시 1.2배속, 1.5배속으로 빨리 감기를 하는 편인가요? 보다가 중간 부분을 건너뛴 경험은요?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대신 유튜브의 요약 영상으로 줄거리를 대강 파악해본 적 있나요?아마 ‘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이 꽤 많을 겁니다. 얼마 전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9.9%가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니까요.일본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가 지난해 출간한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서 꼽은 빨리 감기의 이유가 ‘타이파’이죠.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추가 비용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남들과의 대화에 끼어들려면 SNS에서 인기 끄는 콘텐츠의 기본 내용쯤은 웬만큼 파악해둬야 하는데요. 이를 따라잡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세상에 콘텐츠가 넘치는 가운데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많은 걸 보고 싶다’는 생각, 즉 타이파를 추구하게 된 이유입니다.디지털화로 ‘전환’이 너무나 쉬워진 게 그 배경이겠죠. 음악을 예로 들자면 LP판 시절엔 곡을 뛰어넘으며 듣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이후 CD의 등장으로 곡을 건너뛰는 건 한층 쉬워졌지만, 앨범을 바꾸기 위해 CD를 갈아 끼우는 건 여전히 귀찮은 일이었는데요. 지금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곡도, 앨범도, 아티스트도 아주 손쉬운 터치로 한순간에 바꿀 수 있죠. 디지털 도구로 생긴 ‘유연한 소비 능력’이 타이파형 소비를 부추깁니다.그런데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요. 사실 합리와 효율은 인류가 늘 추구하던 바입니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기에 타이파는 너무 평범한(또는 당연한) 개념입니다. 간혹 로봇청소기나 밀키트·냉동식품까지 타이파 사례로 언급되기도 하는데요. 솔직히 그게 뭐 그리 새로운 현상인가 싶어 심드렁해지죠.그래서 타이파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오야마대학의 쿠보타 진히코 교수(마케팅학)가 제시한 기준을 참고할 만한데요. 그는 타이파를 추구하는 사람은 크게 두종류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시간이 정말 없어서, 즉 육아나 직장생활로 너무 바빠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사람이고요. 다른 하나는 시간에 쫓기진 않지만 ‘일정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즐기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후자, 즉 시간이 있는데도 타이파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는 현상입니다.결말 알고 볼지 말지 정한다이런 타이파 현상의 예를 좀 더 들어볼까요. 일본의 플라이어(Flier)는 모바일 독서 앱인데요. 책 한권을 10분 만에 읽을 수 있도록 요약해서 제공합니다. 주로 경제·경영 관련 서적이나 직장인을 위한 교양서적을 요약해서 텍스트와 음성으로 제공하는데요. ‘6시간 걸릴 독서 시간을 10분으로 줄여준다’는 컨셉입니다. 누적 이용자 수가 110만명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죠. 직원 복리후생의 일환으로 플라이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고객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타이파를 추구하는 30~40대가 메인 유저로, 일반적인 비즈니스 서적 독자층인 40~50대보다 10세 정도 젊다”는 게 플라이어측 설명이죠.유튜브에 넘쳐나는 영화·드라마 리뷰 영상도 타이파 트렌드의 전형입니다. 보통 영상을 따서 자막과 나레이션을 붙여 10분 정도로 정리하곤 하죠. 특히 ‘결말 포함’이라고 밝힌 리뷰 영상이 꽤 높은 조회수를 올리는 경우 종종 보는데요. 이런 영상에 저작권 승인을 받았다는 별도 표시가 없다면 그건 저작권을 침해한 영상이라는 거, 알고 계시죠? 아마도 저작권을 침해한 걸 알면서도 보는 시청자도 상당수일 걸로 추정됩니다. 다만 아직까진 콘텐츠 홍보 차원에서 나쁘지 않다고 보고 저작권자가 그냥 두는 경우도 많다는데요. 지난해 일본에선 이런 영상을 제작한 20대 유튜버에게 피해보상금 5억엔을 영화사에 지급하라고 판결한 사례가 있었습니다.책이나 영상 요약본은 일종의 ‘스포일러 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을 보고 괜찮으면, 그때 그 책을 사거나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식이죠.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1분 이내인 ‘쇼츠’도 비슷합니다. 쇼츠에선 일반 동영상의 흥미로운 포인트만 잘라놓은 게 많은데요. ‘이 영상이 지루해서 시간 낭비일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쇼츠를 본 뒤 안심하고 원본 영상을 즐기곤 합니다.손해 보지 않기 위한 소비 전략도대체 왜 요즘 소비자들은 스포일러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찾아볼까요. 알 듯 말 듯한데요. 닛세이기초연구소의 히로세 료 연구원이 지난 9월 낸 책 ‘타이파의 경제학’은 이를 자세히 분석해서 소개합니다.일단 가성비(코스파)와 타이파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가성비는 돈에 여유가 없어서, 돈을 유익하게 쓰려고 추구하는 건데요. 타이파는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절약한 시간을 유용하게 쓰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심리인가 하면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①손해를 회피하기 위한 소비요즘 소비자들은 돈도, 시간도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만약 기껏 시간을 들였는데 지루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다른 재미있는 걸 소비할 기회를 잃었으니 손해인 거죠. 바로 이 점에서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상당히 리스크가 큰일입니다.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영화에 시간과 돈을 모두 걸어야 하니까요. 특히 영화를 보면서 다른 일(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는다거나)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죠. 예기치 않은 감정의 기복을 겪어야 한다는 점도 스트레스 요인입니다.그래서 미리 줄거리를 다 알아본 뒤에 영화를 볼지 말지를 정합니다. 책도 요약된 내용을 보고 나서야 읽고요. 그 작품을 사전 정보 없이 처음 접하면서 받게 될 감동 따위는 포기한 거죠. 그래서 히로세 료 연구원은 “콘텐츠가 감상의 대상이 아닌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타이파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완전 영양식’도 이런 심리와 연관됩니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완전 영양식이란 하루에 섭취해야 할 영양소의 3분의 1 이상을 포함하는 빵이나 음료를 말하는데요. 일반적인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는 시간은 줄여주지만 효율(영양소)은 별로이잖아요. 완전 영양식은 영양소 면에서 실패할 염려 없이 조리 시간까지 단축해주죠. 어떤 식품을 사야 할지 헤맬 수고를 줄여주는 겁니다.②소비는 목적이 아닌 수단영화를 2배속으로 보거나 요약본으로 보는 목적은 뭘까요. 히로세 료 연구원에 따르면 이를 소비(시청)함으로써 즐거움과 감동을 얻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닙니다. 바로 주위와의 커뮤니케이션, 즉 대화에 낄 수 있도록 ‘영화를 본 상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소비는 도구일 뿐이고 ‘소비한 상태가 되는 것’이 목적이라는 거죠. 어차피 SNS 트렌드는 너무 빠르게 바뀌니까요.‘남에게 ~한 상태로 인식되고 싶다’는 욕구가 본질인 건데요. 그래서 심지어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조차 타이파로 소비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있어도 그의 모든 음악을 다 듣거나 그가 과거에 출연한 작품을 정주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추천 리스트’를 보고 쏙쏙 골라서 보거나 듣죠. 그런 건 진짜 팬이 아니라고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의 팬’이라는 정체성으로 남들에게 인식되는 것이기 때문이죠.이런 심리가 공감되시나요? ‘타이파의 경제학’에선 이를 숙제에 비유에 설명하는데요. 보통 숙제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숙제로 학력을 높이는 것, 다른 하나는 숙제를 끝낸 상태로 만들어서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는 것. 첫 번째 목적이라면 숙제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겠죠. 하지만 후자, 즉 ‘숙제를 끝낸 상태’가 되기 위해서라면 숙제를 붙잡고 끙끙댈 필요가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답을 베끼든,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든 빨리 끝내는 게 최고이죠. 바로 이 심리-○○한 상태가 되고 싶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시간 대비 효율을 추구합니다.충성도 낮고 변덕스런 소비자들그런 건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 특징 아니냐고요? 타이파는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이 고객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2023년 2월)에 따르면, 동영상을 빨리 감기해서 보느냐는 질문에 20대 남성(56.5%) 못지않게 50대 남성(46.9%)도 그렇다고 답했죠. 사실상 전 세대에 퍼진 현상입니다.따라서 타이파를 일부 Z세대 얘기로만 치부하고 방심하는 기업은 위험합니다. 이 흐름을 얼른 따라가야만 하죠. 시간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소비자들에 맞추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은 아직 찾아가는 중이라서 뚜렷하진 않은데요.쿠보타 교수는 타이파 추구현상을 ‘리퀴드(Liquid) 소비’와 연결 지어 설명합니다. 시간 효율적으로 여러가지를 즐기고 싶어 하는 변덕스러운 소비자 집단이라는 거죠. 좋은 브랜드 물건을 사서 오래 보유하는 걸 추구했던 전통적인 ‘솔리드 소비’와는 정반대 트렌드라 하겠습니다. 보통 기업들은 고객에게 계속 사랑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충성도 낮고 빠르게 변화하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런 소비자들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데요. 그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고객을 도망칠 수 없게 하려는 ‘락인 효과’는 위험합니다. 그들이 선호하는 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고객과 밀당에 능숙하고 ‘치고 빠지기’를 잘해야 하는 셈입니다. 고객마다 생각하는 ‘시간의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같은 콘텐츠라도 시간을 최소로만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차분히 마주하는 시간에서 가치를 얻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죠. 유튜브의 경우엔 재생속도를 8단계(0.25배속부터 2배속까지)로 나눴는데요. 유저의 다양한 감상 스타일에 맞춰 대응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이제 기업은 소비자뿐 아니라 직원의 타이파 욕구도 신경 써야 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기사에서 젊은 직장인들이 커리어에서도 타이파를 추구한다며 이직 급증 현상을 다뤘는데요. 젊은 직원(34세 이하)이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견기업이나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5년 전과 비교해 18배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스타트업에선) 나이에 관계없이 큰일을 맡아 대기업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연공 서열이 확실한 대기업에선 관리자로 성장하기까지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시간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타이파가 나쁘다)는 겁니다. 올해 3월 전기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이직한 28세 직원은 니케이와의 인터뷰에서 “고속도로로 갈아탄 기분이다. 3배의 스피드로 성장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죠. 이런 추세에 맞춰 일부 대기업은 관리자 승진에 필요한 연한을 대폭 줄였다고 합니다. 영화뿐 아니라 인생마저 1.5배속으로 살고 싶은 타이파 현상. 이게 바람직하냐 아니냐, 찬성하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이들도 많은데요. 그러기엔 이미 우리에게도 현실로 훅 다가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By.딥다이브타이파에 대한 뉴스레터인데 너무 길어 시간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쓰는 내내 조바심이 납니다. 다 읽는 데 너무 오래 걸리겠다 싶은 독자님들을 고려해(고객님이 추구하는 다양한 시간 가치를 존중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영화를 1.5배속으로 빨리 감기 해서 보고, 책 1권을 10분 분량으로 요약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드라마 결말까지 포함된 리뷰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들. 시간 대비 효율성을 추구하는 ‘타이파’, 즉 ‘시성비’ 현상이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시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시간을 아껴 다른 유용한 데 쓰기 위해서도 아니고요. 시간을 소비하는 데 있어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심리입니다. 시간 낭비일지 아닐지 모르는 일에 굳이 뛰어들지 않는 거죠.-무언가를 소비하는 게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소비한 상태’가 되는 게 목적이죠. 영화 감상이 아니라 ‘영화를 본 상태’가 돼서 그 영화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그것이 타이파 소비가 추구하는 진짜 목적입니다.-충성도 낮고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이런 고객들을 잡기 위해 기업은 더 민첩하고 세심해져야 합니다. 아울러 성장에 있어서도 시간 효율성을 추구하는 젊은 직원들에 맞춰 기업 인사도 달라져야 하겠죠.*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또다시 인공지능(AI) 바람이 불어옵니다. 새로운 주인공은 구글과 AMD. 두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7일(현지시간) 뉴욕증시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다우지수 +0.17%, S&P500 +0.80%, 나스닥지수 +1.37%. 이날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 주가는 5.31%나 뛰었는데요. 전날 구글이 공개한 대규모 언어모델(LLM) 제미나이가 오픈AI의 GPT-4를 능가하는 성능을 지녔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제미나이는 텍스트뿐 아니라 코드, 오디오, 이미지, 동영상 정보까지 이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이고요. 구글에 따르면 57개 과목에서 문제 해결능력을 테스트하는 ‘대규모 다중작업 언어이해(MMLU)에서 90.0% 점수를 얻어, 최초로 인간 전문가를 능가했습니다. GPT-4 점수는 86.4%였죠. 구글은 제미나이를 “가장 크고 유능한 AI 모델”이라고 소개했습니다.전날 새로운 AI 전용칩 출시를 발표한 AMD는 이날 주가가 9.89% 폭등했죠. AI칩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에 도전장을 내민 건데요. 리사 수 AMD CEO는 새로 출시한 MI300X가 엔비디아의 H100과 비교할 때 추론능력이 1.4배가량 뛰어나다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실제 메타·MS·오라클 등이 AMD의 칩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죠. 이날 뉴욕증시에선 AI 낙관론이 퍼지면서 메가캡 주식이 일제히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이날 시장의 또다른 관심사는 일본 엔화였습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7일 의회에서 한 발언 때문인데요. 그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뒤 금리를 0%로 유지할지 0.1%로 올릴지, 단기금리는 어떤 속도로 올라갈지 등은 그때의 경제와 금융 국면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소 모호한 발언이었지만, 마이너스 금리를 폐기한 이후 경로에 대해 언급한 것만으로도 시장은 매파적 신호로 받아들였죠. 이에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2% 넘게 급락했는데요. 일본은행은 2016년부터 단기 금리를 연 –0.1%로 유지하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펴고 있죠. 전문가들은 당장 12월 일본은행이 깜짝 인상에 나서기보다는 내년 1월 인상이 유력하다고 보긴 하는데요. 적어도 일본은행이 긴축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건 맞는 듯합니다.8일엔 미국 고용부의 비농업 일자리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죠, 고용시장이 과연 냉각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보고서인데요. 이코노미스트들은 11월 비농업 일자리 증가 수가 18만개로 전달(15만개)보다 늘고, 실업률은 3.9%로 유지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금융회사 소파이(SoFi)의 투자전략 책임자 리즈 영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만큼 (고용시장이) 온도를 낮추되 파괴적으로 너무 많이 냉각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한국의 저출산(출산율 0.7명)이 14세기 유럽 흑사병보다 더 심각한 인구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는 뉴욕타임스 칼럼이 최근 화제였죠. 2일 로스 다우섯 칼럼니스트가 쓴 ‘한국은 소멸하나(Is South Korea Disappearing)?’ 칼럼인데요. 읽다 보면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오거스트 꽁트가 남긴 유명한 말이 떠오릅니다. ‘인구통계는 운명이다(Demography is destiny)’. 정말 한국은 소멸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요.비관론에 빠지는 대신 먼 과거 이야기에서 단서를 찾아보려 합니다. 뉴욕타임스 칼럼 속 문장-‘어느 시점엔 북한(현재 출산율 1.8명)이 침략할 가능성이 크다’-이 상상력을 자극했는데요. 인구 감소로 전쟁에서 지고 결국 멸망한 고대 국가, 스파르타의 저출산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100년 만에 지배계급 인구가 8분의 1 토막스파르타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아마도 용맹한 용사들이 수십만의 페르시아군 대군과 맞서 싸운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를 담은 영화 ‘300’이 아닐까 싶은데요.‘스파르타식’이라 불리는 무자비한 군사훈련 과정은 유명하죠. 인권 유린과 아동 학대로 범벅돼있었는데요. 체격이 왜소하거나 장애가 있어서 전사가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아기들은 버려졌습니다. 스파르타의 지배계급인 자유시민에 속한 남자아이들은 7살이 되면 집을 떠나 공동생활을 하면서 20살까지 교육프로그램인 ‘아고게(Agoge)’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습니다.훈련은 혹독하기 짝이 없었죠. 가시 박힌 쐐기풀에서 잠을 자야 하고, 맞아도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는 데다, 일부러 밥을 적게 줘서 훔쳐 먹게 했습니다. 지옥훈련이 따로 없는데요. 이 훈련을 위한 모든 비용(공동 식비와 교육비, 갑옷·방패 비용 등)은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는 점도 놀랍죠. 사교육비로 부모들 등골이 휘는 요즘과 비슷한 점이 있달까요.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 승리로 그리스의 주도권을 잡고 호황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잠시뿐. 기원전 371년 신흥국인 테베와의 레욱트라 전투에서 대패하고 몰락하게 됩니다.한때 최강의 군대를 지녔던 스파르타는 왜 무너졌을까요. 학자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인구감소입니다. 오죽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 ‘정치학’에서 스파르타의 인구 감소 문제를 지적했을 정도이죠.‘페르시아 전쟁사’를 쓴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기원전 479년 스파르타 자유시민 중 성인 남자 인구는 약 8000명이었는데요. 100여 년 뒤 레욱트라 전투 땐 약 1000명 수준이었다는 당대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이 있습니다. 원래 스파르타는 전투에서 항복하는 걸 수치로 여겨 도망자를 사형에 처하는 법률이 있었는데요. 레욱트라 전투 땐 시민 수가 너무 적어서 도망자를 처형하지 못했을 정도라고 합니다.100년 만에 인구가 8분의 1로 줄어들다니 대재앙 탓일까요. 기원전 464년 대지진이 일어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이후 100년 가까이 꾸준히 가파르게 인구가 감소한 건 단순히 지진 탓으로만 돌리긴 어려운데요. 여러 학설이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스파르타 군대를 세계 최강으로 만든 요인이 인구학적 붕괴를 초래했다는 겁니다.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①완벽함을 추구하는 순혈주의티모시 도란 미국 UCLA 역사학 교수는 스파르타의 특이한 생식 메커니즘이 인구학적 재앙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지나치게 순혈주의에 집착했다는 건데요.스파르타는 전체 인구의 10~15% 정도인 자유시민이 절대다수의 나머지(중간계층과 노예)를 지배하는 카스트 구조였습니다. 이 엘리트 계급이 되려면 우선 부모 양쪽 모두가 자유시민이어야 했습니다. 또 위에서 언급한 혹독한 훈련(아고게)을 반드시 거쳐야 했죠. 둘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스파르타 자유시민이 될 수 없습니다. 지배계급 진입을 위한 기준이 상당히 높았던 건데요. 이는 강력한 전사를 기르는 데는 효과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전투로 인한 전력 손실을 메우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대지진에 이어 장기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까지 거치면서 사망자 급증으로 인한 타격이 컸죠. 그런데도 이 까다로운 기준을 포기하지 못한 탓에 지배계급 인구는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맙니다. 도란 교수는 “스파르타의 극단적인 경쟁 정신은 최고의 전사를 배출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시스템은 최고의 제국주의자를 배출하진 못했다”고 지적합니다.②늘어나는 부, 불평등의 심화전체주의 사회인 스파르타를 떠받친 건 평등주의였습니다. 스파르타 시민이면 거의 같은 크기의 영지를 소유하고 있어 빈부차이랄 게 거의 없었죠. 남성시민은 군인 이외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있었고요. 따라서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었는데요.안정적이던 스파르타 경제를 뒤흔드는 일이 발생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승리로 돈바람이 불어온 겁니다. 각종 전리품과 금화, 동맹국의 세금이 스파르타로 대거 밀려들었죠. 시민들이 돈에 눈을 뜨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스파르타에도 빈부 차이라는 게 생깁니다. 돈을 벌려고 대대로 내려온 영지를 팔았다가 영영 가난해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땅을 넓혀가는 부자도 생깁니다. 결국 약 100개 가문이 전체 영지를 차지하며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결과로 이어지는데요.이렇게 가난해진 스파르타 시민은 공동식사비와 무기 비용을 내지 못할 지경이 됩니다. 결국 이들은 시민권을 상실하고요. 상당수는 스파르타를 아예 떠납니다.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승리로 전성기를 구가했는데도 오히려 인구가 급격히 꺾이게 된 이유이죠. 미국 사학자인 조시아 오버 스탠퍼드대 교수는 “스파르타는 지대를 더 생산적인 방식으로 재분배하지 못했다”며 “지배계급에서 가장 성공하지 못한 스파르타인들이 정기적으로 강등되면서 인구학적·군사적 붕괴를 초래했다”고 설명합니다.다시 말하자면 지배계급의 폐쇄성과 빈부격차 심화가 결합하면서 스파르타 시민 인구는 급격히 쪼그라들었습니다. 스파르타 군대는 자연히 하위 계급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죠. 하지만 계급 간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배계급은 끝까지 아고게 훈련과 토지 소유권을 다른 계급과 공유하지 않았죠. 차별받는 하위 계급 군인들이 이전 스파르타 전사들처럼 용맹하고 충성심 넘칠 순 없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371년 벌어진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은 수적으로 우세했음에도 대패했고, 스파르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미혼·무자녀엔 세금! 로마제국 출산장려책지배계급으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 이질적 존재에 대한 배타성. 스파르타 멸망의 기록을 보다 보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적지 않은데요. 스파르타를 이야기한 김에 몇백 년을 뛰어넘어 이 제국의 저출산 이야기도 해볼까 합니다. 바로 로마제국입니다.로마제국의 멸망도 저출산 탓일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인과관계가 스파르타처럼 뚜렷한 것은 아닙니다. 기근과 질병, 게르만의 침략과 반복되는 내전, 인플레이션과 세금 인상 등. 제국을 몰락으로 이끈 요인이 워낙 많고 서로 얽혀있어서 딱 잘라 말하기 어렵기 때문인데요.확실한 건 로마제국 인구는 전성기(팍스 로마나, 기원전 27년~서기 180년) 7000만명에서 후기엔 5000만명으로 줄었습니다. 인구 감소는 여러 면에서 제국 멸망에 기여했죠. 노동력 부족으로 농업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식량 부족은 심화됐고, 병력 감소로 로마군대가 약화하면서 게르만 용병을 모집해야 했습니다. 납세자가 줄면서 세금 부담은 한층 커졌고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건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가 폐위된 476년이지만, 이는 수백 년에 걸쳐 조금씩 쇠락한 결과라고 봐야겠습니다.로마제국은 일찌감치 인구 규모와 출산율을 걱정해왔습니다. 이 시절엔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 1인당 6명 이상의 출산이 필요했습니다. 여성이 출산 중 사망할 확률이 꽤 높은데다(약 2%), 유아 사망률도 높았기 때문이죠(첫해 사망 확률 30%). 하지만 서기 79년 화산폭발로 묻혔던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여성 해골 분석에 따르면 상류층 여성에게서 태어난 평균 자녀 수는 2명 미만이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상류층엔 저출산 풍조가 만연해 있었습니다.로마의 출산 장려 정책은 역사가 꽤 깊습니다. 기원전 403년에도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에게 벌금을 부과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죠. 이른바 ‘독신세’를 매긴 건데요. 이런 강력한 결혼·출산 장려정책의 절정은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재위 기원전 27년~서기 14년)이었습니다.군주제를 확립한 아우구스투스는 엄격한 도덕법을 제정합니다. 25~60세의 모든 로마 남성은 반드시 결혼하게 했고요. 20~50세의 여성은 남편이 사망하면 2년 이내에 재혼하게 했죠(안 하면 상속 받은 재산을 뺏김). 결혼제도를 무력화하는 간음은 공공범죄로 엄격히 취급했고요. 또 세 자녀 이상을 두면 금전적, 직업적 보상을 줬습니다. 예컨대 여성은 셋째를 낳아야 납세 의무를 면제 받을 수 있었고요. 관료를 채용할 땐 자녀가 많은 사람을 우대했죠. 결혼하지 않았거나 자녀가 없는 사람은 상속권을 제한받는 등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는다면 국가가 어떻게 보존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아우구스투스는 강조했다는데요.어떤가요. 미혼·무자녀를 경제적으로 차별하는 건 요즘에도 종종 출산 장려책으로 얘기되지 않나요. 그렇다면 이런 강력한 규제로 로마제국의 출산율은 반등했을까요. 아니요. 심지어 아우구스투스 본인 가정에서도 이 법은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본인도 친자녀는 딸 하나뿐이었는데다, 그 딸이 간통죄를 저질러 로마에서 추방됐으니까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법은 이후 서기 2, 3세기에도 다시 제정됐다고 하죠. 그때까지도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단 뜻입니다.그래서 아우구스투스와 로마제국이 남기는 교훈은? ‘당근과 채찍’식 정책만으로는 출산율 제고에 성공할 수 없더라는 겁니다. 리처드 프랭크 UC어바인대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아우구스투스 법이 시행된 뒤에도 (로마제국) 상류층은 계속 결혼과 출산을 기피했다”면서 “그 깊은 원인, 즉 상류층 남성과 여성 사이의 심오한 심리적 갈등은 더 널리 퍼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적했죠. “상류층은 점점 도시적·개인주의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법안은 개혁과 복원을 목표로 했지만, 옛 가치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현실에 대한 경멸을 조장하는 데만 성공했습니다.”출산율을 높이자면서 알게 모르게 향수와 경멸을 조장하는 경우. 사실 지금도 종종 보이지 않나요. 2000여 년 전 로마제국 이야기가 2023년 대한민국 상황과도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By.딥다이브미래를 예측하는 건 어렵습니다. 영국 사회학자 존 맥니콜은 저서 ‘신자유주의적 노년기’에서 “(인구를) 예측할 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재된 불확실성으로 인해 인구구조 예측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밝혔죠. 종말론적 인구통계학에 사로잡히는 건 비합리적이란 뜻에서 한 말인데요. 저출산은 분명 큰일이지만, 이대로 국가가 소멸하진 않을 거라 믿고 길을 찾아보시죠.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14세기 흑사병 못지않은 인구 감소세로 대한민국이 소멸할까요. 저출산 경고음이 커지고 있습니다.-인구감소로 멸망한 국가 하면 떠오르는 곳은 스파르타입니다. 배타적 순혈주의에 기반해 지배계급을 구축했지만, 너무 까다로운 기준과 빈부격차 심화까지 겹치면서 100년 만에 인구가 8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로마제국 역시 멸망하기 전 인구 감소를 겪었죠. 수백 년에 걸쳐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강력한 법률을 시행하기도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이런 정책은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미 시대가 바뀌었는데, 옛날로 다시 돌아가자고 외치는 건 소용 없다는 사실을 역사가 말해줍니다. *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그동안 너무 달렸나요. 랠리를 이어가던 뉴욕증시가 4일(현지시간)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연준이 금리인하로 돌아설 거란 기대감이 너무 과도했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이날 다우지수는 –0.11%, S&P500 –0.54%, 나스닥지수 –0.84%를 기록했습니다. 시가총액이 큰 메가캡 종목들이 비교적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죠.블룸버그에 따르면 지금 투자자들이 품고 있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연준이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킬까요?’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 참가자들은 연준이 내년 3월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해, 내년 연말까지 총 1.25%포인트 금리를 내릴 걸로 전망하고 있죠. 현재 5.25~5.50%인 기준금리가 내년 말 4.00~4.25%로 하락할 거라는 기대인데요. 혹시 이런 기대가 너무 앞서 나간 건 아닐까요. 골드만삭스의 프라빈 코라파티 전략가는 “시장이 단기적인 경기침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한계에 접근하고 있다”고 신중한 입장인데요.시장은 좀더 확실한 지표를 필요로 합니다. 이번주 금요일에 나올 미국의 월간 고용보고서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죠. 모건스탠리의 크리스 라킨은 “고용보고서에서 냉각추세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2024년 금리인하 전환이 지연될 수 있단 우려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날 눈에 띄는 건 국제 금값의 움직임인데요. 4일 아시아 거래에서 현물 금값은 장중 온스당 2152.3달러까지 치솟으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었죠. 하지만 이날 뉴욕 거래에서는 2.5% 급락해 2024.1달러로 마감했습니다.금 가격은 미국 달러 가치와 채권 수익률에 일반적으로 반비례하죠. 연준이 곧 금리 인하에 나설 거란 기대감이 금 가격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요인인데요. 전쟁 같은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금값 상승을 뒷받침하는 배경입니다.블룸버그에 따르면 금값은 2000년대 들어 600% 이상 상승했는데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1980년 1월의 850달러(현재가치로 환산하면 3000달러 이상)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앞으로의 금값은 과연 기관투자자들이 금 기반 상장지수펀드(ETF) 매수에 다시 뛰어들 것인가에 달려있는데요. 금 ETF 보유규모가 2020년 최고치의 5분의 1에 머물러있기 때문입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그의 이름 앞엔 수십 년 동안 이런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워런 버핏의 파트너. 찰리 멍거(Charlie Munger)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이 11월 28일 9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멍거는 부회장이란 직함을 한참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죠. 버핏은 “멍거는 건축가, 나는 종합건설업자였다”고 말합니다. 버크셔해서웨이 투자전략의 기본 틀을 설계한 장본인이 멍거라는 뜻이죠. 무뚝뚝하면서도 재치 있는 촌철살인의 명언 종합세트였던 찰리 멍거. 그의 삶과 그가 남긴 메시지들을 되짚어봅니다.*이 기사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포커로 연마한 투자기술억만장자(포브스 기준 26억 달러) 찰리 멍거의 투자인생 초반부는 특이합니다. 그는 대학에서 기상학과 법률을 배웠을 뿐, 경제학이나 금융, 회계 수업은 들은 적 없죠. 하버드대 로스쿨을 우등으로 졸업한 젊은 찰리 멍거는 비교적 잘나가는 변호사였습니다. 하지만 법률가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죠. “그들의 변호사가 되기보다는 우리의 부유하고 흥미로운 고객 중 한 명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변호사가 그리 큰돈은 벌지 못하던 시절입니다.부업으로 한 주식투자와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그는 첫 100만 달러를 버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비즈니스 기술을 군대 시절 포커판에서 연마했다고 말하죠. “패가 불리할 때는 일찍 접고, 호기다 싶으면 그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으니까 단단히 잡아야 합니다. 기회는 옵니다. 하지만 자주 오진 않으니 왔을 때 꽉 붙잡아야 하죠.”1959년 그는 고향 오마하에서 친구의 소개로 운명의 파트너, 워런 버핏을 만나죠. 버핏이 28살, 멍거가 35살일 때입니다. 첫 만남에서 멍거가 농담하면서 바닥을 구를 듯이 웃는 모습을 보고서 버핏은 ‘저 사람은 나 같은 유형의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은 바로 죽이 맞았고,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통화하는 사이가 됐죠. 버핏은 “우리의 생각은 너무 비슷해서 으스스하다”고 회상한 적 있습니다.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말다툼한 적도 없다고 하죠.버핏에게서 자극받은 멍거는 1962년 폐쇄형 펀드인 뉴아메리카펀드 운용으로 투자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1976년 청산 전까지 이 펀드가 올린 연 평균 수익률은 23.4%. 다우지수 평균 수익률(6.4%)을 한참 웃돌았죠. 그리고 1978년 멍거는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을 맡아 버핏과 한배를 탑니다.담배꽁초 전략과의 이별멍거는 버크셔해서웨이에 합류하기 전부터 웨스코 파이낸셜(Westco Financial), 씨즈 캔디(See‘s Candies) 같은 기업에 버핏과 함께 투자했는데요. 멍거의 투자 방식은 버핏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초기의 버핏은 이른바 ‘담배꽁초 투자전략’ 신봉자였죠. 멘토였던 벤저민 그레이엄이 가르쳐준 투자방식이었는데요. 버려진 담배꽁초처럼 마지막 한 모금의 가치가 남아있는 헐값의 주식을 찾아내 투자하라는 겁니다. 회사의 장부가치보다도 주가가 저평가된 싼 기업만 골라 사라는 거였죠. 버핏이 죽어가던 직물회사 버크셔해서웨이를 1962년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었고요.하지만 멍거는 담배꽁초 투자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봤습니다. 그레이엄이 활약했던 1930년대 대공황 때는 건질 만한 헐값 주식이 있었겠지만, 1970년대엔 그런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고 본 거죠. 멍거는 1994년 USC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1930년대는 600년 만의 최악의 경기침체였습니다. 벤 그레이엄은 1930년대 붕괴로 인한 잔해 속에서 주당 운전자본 이하로 팔리는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죠. 고전적인 벤 그레이엄 개념의 문제점은 세상이 점차 현명해지면서 그런 명백한 거래가 사라졌다는 겁니다. 가이거 계수기(방사선 검출기)를 잔해 위에서 작동시켜도 딸깍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대신 그는 “시가총액이 장부가치의 2~3배여서 비싸 보이지만, 회사의 내재된 모멘텀을 봤을 때 여전히 엄청난 헐값인” 주식을 찾아내는데 몰두합니다. 그가 버핏을 설득해 연간 세전 수익이 약 4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씨즈캔드를 2500만 달러에 인수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죠. 버크셔해서웨이는 이 투자로 2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습니다.버핏은 2015년 버크셔의 연례 서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멍거)가 나에게 준 청사진은 간단했습니다. 괜찮은 기업을 놀라운 가격에 인수하는 것에 대해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십시오. 대신에 훌륭한 기업을 괜찮은 가격에 구매하세요.”멍거는 버핏에게 항상 “정말 멋진 기업을 사자”라고 강조했다는데요. 멍거의 설득으로 씨즈캔디 투자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후 버핏이 1988년 코카콜라 투자에 나설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멍거를 ‘버크셔 투자접근 방식의 창시자’라고 언론이 평가하는 게 과장이 아닌 거죠.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라버핏이 멍거에게 붙인 별명 중 하나는 ‘가증스러운 노 맨(No Man)’입니다. 버핏이 어떤 기업에 투자하려고 할 때 툭하면 ‘노’를 외치며 막았기 때문인데요. 멍거는 늘 이렇게 강조합니다. “승리자는 거의 베팅하지 않습니다.”앞에서 언급했던 포커판에서 돈 따는 법과 비슷한데요. 1994년 연설에서 멍거는 경마 시스템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즉 가격이 잘못된 것을 찾기 위해 세상을 살펴보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하나를 찾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은 세상이 기회를 제공할 때 큰돈을 걸었습니다. 나머지 시간엔 걸지 않았고요.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주식도 경마 베팅과 마찬가지라는 거죠. 열심히 일해서 투자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 기다린다면, 아주 가끔 가격이 너무 싸게 책정된 경우를 만날 거고 그때 크게 베팅하라는 겁니다. 그는 “좋은 기회가 올 것을 대비해 1000만 달러를 통장에 넣어두는 것이 부자가 되는 방법”이라고 조언하죠.투자를 신중하게 선택적으로 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 멍거는 간접투자, 특히 액티브펀드에 부정적입니다. 소수 종목만 신중하게 골라 사서 장기 보유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데, 뭐 하러 굳이 높은 수수료를 주며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 액티브펀드에 투자하느냐는 거죠. 그는 투자운용사에 돈을 맡기는 게 어리석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낚시도구 판매원과 나눈 대화를 예로 들었죠.“나는 그 판매원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에, 보라색과 녹색이군요. 물고기가 정말 이런 미끼를 먹나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죠. ‘아저씨. 저는 생선을 파는 게 아닙니다.’”투자자에게 의미 있는 것(주식으로 돈 버는 것)과 관리자에게 의미 있는 것(수수료를 버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뜻으로 한 얘기인데요. 그는 “수수료가 높은 곳은 높은 확률로 바가지를 씌운다”고도 경고한 적 있습니다. 그는 분산투자라는 개념 자체를 싫어했죠. “작금의 분산투자에 대한 숭배, 나는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는데요. 그럼에도 좋은 주식을 골라낼 역량이 없는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광범위한 지수에 투자하는 인덱스펀드를 권했습니다. 지수가 하락했을 때 수수료 싼 인덱스펀드에 가입해서 은퇴할 때까지 쭉 들고 있으라는 겁니다. 재치있는 인사이트, 멍거리즘사실 찰리 멍거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를 부자로 만든 투자법만이 아닙니다. 신랄하면서도 통찰력과 유머가 녹아있는 그의 발언들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죠. 이를 일컫는 멍거리즘(Mungerisms)이란 말이 생겼을 정도인데요.워낙 명언이 많아 ‘최고의 멍거리즘’을 추리긴 어려울 정도입니다. 주관적인 기준으로 인상적인 몇 가지를 뽑아보자면.그는 끊임없는 배움을 강조했습니다.“똑똑하지도 않고, 가끔은 근면하지도 않은 사람이 성공하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이런 사람은 학습기계입니다. 그는 잠자리에 들 때면 그날 아침보다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갈 길이 먼 사람에게 이는 큰 도움이 됩니다.”“나는 지금껏 끊임없이 독서를 하지 않는 현명한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명도. 워런이 얼마나 책을 읽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겁니다. 내가 얼마나 읽는지 알아도 마찬가지고. 우리 애들은 나를 발 달린 책이라고 놀리죠.”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죠.“문제는 사람들이 점차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자주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렇게 부자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또 자신의 적성과 역량을 파악하라는 조언을 남겼습니다.“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다면 곧 절망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베미지(미네소타 도시)에서 최고의 배관 시공업체가 되고 싶다면 아마 여러분 중 3분의 2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의지와 지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규율이 주어지면 달성가능한 목표입니다. 우리 대부분의 삶의 게임은 어느 정도 베미지의 훌륭한 배관 공사업자와 같은 것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행복한 사람의 비결을 묻는 질문엔 이런 사려 깊은 답을 들려줬습니다.“매우 간단하고 쉽습니다. 시기심과 원한이 많지 않고, 수입을 과하게 쓰지 않으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쾌활함을 유지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거래하고,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이 모든 간단한 규칙은 삶을 더 좋게 만드는 데 효과적입니다.”그는 사람들이 투기광풍에 휩쓸린다 싶을 때면 상당히 노골적인 표현을 써가며 이를 비판했습니다. 예컨대 가상화폐를 “유독한 독”, “쥐약”으로 묘사했고요.“(가상화폐는) 부분적으로 사기이고 부분적으로는 망상입니다. 그건 나쁜 조합입니다. 나는 사기도 망상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망상은 사기보다 더 극단적일 수 있죠.”파생상품은 도박에 비유했습니다.“파생상품을 지능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훔칠 수 있는 면허증을 가지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모두가 모두와 도박을 하면 대체 무슨 이득이 있나요?”올해 99세였던 찰리 멍거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까지도 유수의 언론들과 연이어 인터뷰했는데요. 자신의 부고 기사를 위해서였습니다. 그의 사망 뒤에 나온 인터뷰 기사 중 최고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가 아닐까 싶은데요. 멍거를 20년 동안 취재해온 제이슨 츠바이크 기자는 그에게 “10단어 이하의 비문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즉각 이렇게 답했죠. “나는 유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I tried to be useful).” 실제 자신이 유용했는지 아닌지는 다른 사람이 판단할 일이라는 겸손함. 억만장자 투자자 찰리 멍거가 돈 말고도 높이 평가받는 이유일 겁니다. By.딥다이브찰리 멍거는 워낙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일과 발언을 남긴 인물이라 기사 하나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네요. 주요 외신 기사(NY, FT, WSJ, CNBC, 블룸버그)와 함께 그의 전기 ‘찰리 멍거 자네가 옳아(Charlie Munger Damn Right)’과 그의 발언을 모은 책 ‘찰리 멍거의 말들(The tao of Charlie Munger)’, 그리고 그가 1994년 USC 경영대학원에서 한 ‘초보적인 세상 지혜에 대한 교훈’ 강연 내용을 주로 참조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변호사였던 찰리 멍거는 그의 나이 35살에 운명처럼 워런 버핏을 만났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투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자신만의 가치투자 철학을 구축해갑니다.-버핏이 ‘담배꽁초 투자법’을 버리고 ‘훌륭한 기업을 괜찮은 가격에’ 사들이게 된 것 역시 멍거의 조언 덕분이었습니다. 버크셔해서웨이 투자방식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가 말하는 성공적인 투자법은 간단합니다. 현금을 들고 기다렸다가 정말 좋은 기회가 왔을 때 크게 베팅하는 거죠. 그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걸 인정하고, 자신의 역량 범위를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조언하죠. 억만장자 투자 천재로 불리는 그는 성공의 많은 부분은 행운 덕분이고, 자신은 그저 노력했을 뿐이라는 겸손한 태도를 죽을 때까지 지켰습니다.*이 기사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강력한 랠리를 펼쳤던 11월 뉴욕증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30일(현지시간) 주요 지수는 혼조세로 마감했는데요. 다우지수는 1.47% 상승해 올해 들어 최고치를 경신했고요. S&P500은 0.38% 상승, 나스닥지수는 0.23% 하락을 기록했습니다.월간 기준으로 보면 참 좋았던 11월입니다. 한 달 동안 다우지수는 8.8%, S&P500과 나스닥 지수는 각각 8.9%와 10.7% 상승했죠. 모두 올해 최고의 상승률이었는데요. 미국의 소비지출과 인플레이션, 노동시장이 모두 냉각되면서 연준의 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확신을 줬기 때문입니다.이제 통화정책의 변화, 즉 연준의 금리 인하가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죠. 헤지펀드계 거물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은 최근 블룸버그TV에 출연해서 “연준은 이르면 2024년 1분기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요. 이날 발표된 미국의 10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0% 오르는 데 그쳐, 2년 7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카슨 그룹의 글로벌 거시 전략가인 소누 바게스는 “통화정책 변곡점이 가까워졌고, 연준이 2024년 첫 6개월 동안 최소한 한 차례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를 더욱 확고히 했다”고 말합니다.이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기업은 역시 테슬라입니다. 드디어 전기픽업 사이버트럭 공식 출시 행사와 함께 판매가격이 공개됐는데요. 가장 싼 모델 가격이 6만990달러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2019년에 일론 머스크 CEO가 이야기했던 예상 가격(4만 달러)보다는 50% 높은 가격이죠.정작 이날 테슬라 주가는 1.78% 하락했는데요. 사이버트럭은 이미 백만 명 넘게 예약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고객에게 실제 인도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릴 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머스크는 10월 실적발표에서 “우리는 사이버트럭으로 우리 무덤을 팠다”면서 생산량 확대가 쉽지 않다고 밝힌 바 있죠.한편 이날 OPEC+ 회원국들은 온라인 회의를 열고 원유 생산량 추가 감산에 합의했습니다. 추가 감산량이 하루에 100만 배럴이 될 거라는데요. 그런데 이 발표에 국제유가는 오히려 2% 넘게 하락했습니다. 이날 결정한 추가 감산이 이행 의무가 없는 자발적 감산이기 때문이죠. 실제로는 회원국들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미 앙골라는 주어진 감산 목표량을 거부했다고 합니다.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9월 하루 1320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죠.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네옴시티 같은 야심찬 프로젝트에 착수한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선 유가가 배럴당 88달러 정도로 올라야 수지타산이 맞다는데요. 점점 OPEC+의 추가 감산으로 유가를 떠받치기란 쉽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2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1869년 발표된 소설 ‘해저 2만리’ 속 노틸러스호를 아시나요. 전 세계 해저를 탐험하는 이 잠수함에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건 나트륨(Na) 배터리였죠. 바닷물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는 원소인 나트륨으로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SF적 상상이 150여 년 지나 현실이 되었습니다.중국 CATL부터 스웨덴 노스볼트까지.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사들이 속속 나트륨이온배터리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미 표준 전쟁이 치열한 리튬이온배터리 업계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인데요. ‘그게 되겠어?’라고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기엔 기술 개발 속도가 꽤 빠릅니다. 배터리 시장 ‘게임체인저’를 꿈꾸는 나트륨이온배터리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잇따른 ‘나트륨배터리’ 출사표노스볼트(Northvolt)는 스웨덴의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 스타트업입니다. ‘유럽 대륙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최초의 유럽 기업’이죠. 지난해 말 전기차용 리튬이온전지 생산을 시작했지만, 한국이나 중국 경쟁사와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 노스볼트가 며칠 전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끄는 발표를 했습니다. 나트륨이온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노스볼트가 밝힌 자체 개발 나트륨이온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당 160와트시(Wh). 중저가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180~200Wh/㎏)에 근접한 수준이죠(한국 배터리 3사의 주력인 삼원계 배터리는 240~300Wh/㎏). 노스볼트는 내년에 시제품을 내놓겠다고 했는데요. 이 회사 피터 칼슨 CEO는 이 신기술이 10년 안에 노스볼트의 “현재 포트폴리오(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보다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했습니다.사실 노스볼트보다 먼저 나트륨이온배터리 시장에 뛰어든 제조사는 수십 곳에 달합니다. 대표적인 곳을 꼽자면 중국 BYD(비야디)와 하이나(HiNa)배터리(中科海鈉), 영국 파라디온(Faradion, 인도 릴라이언스그룹이 인수), 미국 나트론에너지 등이 있죠. 중국에서만 34개 나트륨이온배터리 공장이 건설 중이거나 건설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중 선두주자는 단연 CATL(닝더스다이)입니다.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이자,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강자인 바로 그 CATL 말입니다.2021년 여름 CATL의 1세대 나트륨이온배터리(160Wh/㎏) 깜짝 공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실험실에서나 연구되다가 잊힌 기술인 줄 알았던 나트륨이온배터리를 상용화해 전기차에 장착하겠다고 선언했으니까요. CATL은 이보다 월등한 성능의 2세대 제품(200Wh/㎏)을 현재 개발 중인데요. 올해 안에 중국 체리자동차가 CATL의 나트륨이온배터리가 장착된 새 전기차 ‘아이카(iCar)’를 출시할 거란 소식도 예고돼있습니다. 과연 진짜 연말까지 나올지, 나온다면 어떤 스펙과 가격일지가 궁금한데요.중국에선 이미 전기오토바이용 나트륨배터리가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에 출시돼 판매 중이라고 합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이 제품은 영하 30도 추위에도 성능이 끄떡없다고 광고 중이죠. 내년엔 아마도 수십만 개의 나트륨이온배터리 이륜차가 중국 시장에 출시될 거라고 합니다.나트륨, 싸다 싸!종합하자면 리튬 대신 나트륨을 사용한 배터리가 진짜로 나옵니다. 이 신기술에 많은 기업이 열광하고 있고요. 상당한 투자가 이미 이뤄지고 있죠. 그럼 알아봐야겠죠. 도대체 뭐가 그리 좋길래?일단 쌉니다. 리튬이온전지보다 소재값이 훨씬 덜 들죠. 현재 원자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비교해볼까요. 탄산리튬 가격이 급락했다고 하지만(1년 전보다 –77%) 여전히 톤(t)당 13만 위안(약 2400만원). 탄산나트륨은 그 76분의 1 수준인 t당 1700위안(약 31만원)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나트륨이온배터리는 음극에 동박(구리) 대신 알루미늄박을 쓸 수 있죠. 알루미늄은 구리 가격의 4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이 때문에 대량생산만 된다면 LFP(리튬인산철)배터리보다 원자재 비용을 30~40% 낮출 수 있을 겁니다.소재를 구하기도 쉽습니다. 일단 나트륨은 리튬보다 지각에 훨씬 많이 매장돼있죠(나트륨은 지각의 2.7%, 리튬은 0.0065% 차지). 육지가 아닌 바닷물에서도 구할 수 있고요. 호주나 칠레 등 일부 국가에 매장량이 집중된 리튬과는 다른 점입니다.또 추위에 강합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온도가 낮으면 에너지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게 단점이죠. LFP배터리는 영하 20도일 땐 주행거리가 50~70%로 뚝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CATL에 따르면 나트륨이온배터리는 영하 20도 이하 추위에서도 90% 이상 성능을 발휘합니다. 안정성 높은 나트륨의 특성 때문이죠.리튬이온배터리와 생산공정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건 제조사 입장에선 큰 장점입니다. 소재는 대부분 바뀌지만(아래 표 참조) 제조 기술 자체엔 크게 차이가 없죠. 아마도 생산라인을 싹 다 바꿀 필요 없이 기술 일부만 교체하면 제조가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분리막 빼고 소재 다 바꿔?나트륨이온배터리삼원계 리튬이온배터리리튬인산철(LFP)배터리양극크게 3가지 종류로 나뉨(전이금속산화물, 프러시안블루, 폴리음이온화합물)니켈 코발트 망간 화합물리튬인산철음극탄소계 재료(하드카본 또는 소프트카본)흑연전해질헥사플루오로인산나트륨헥사플루오로인산리튬분리막동일음극기판알루미늄박동박양극기판알루미늄박아니, 나트륨이온배터리에선 리튬은 물론 대부분 소재(분리막과 양극기판 제외)가 싹 다 바뀐다고? 배터리 소재 관련 기업에 투자한 사람에게는 상당히 신경 거슬리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요.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나트륨이온배터리가 성공한다면 리튬 수요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업이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셀을 추구함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하는 (배터리) 산업에서 금속 사용량을 예측하는 시도의 위험성을 일깨워줍니다.”하지만 걱정 수위를 조절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적어도 나트륨이온배터리가 리튬이온배터리를 완전히 대체할 거라는 전망은 아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나트륨 이온은 분명 눈여겨볼 도전자입니다. 하지만 1991년 소니가 리튬이온배터리를 처음 상용화한 이래, 리튬이 시장의 지배자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죠. 바로 작기 때문입니다.원자번호 3번의 리튬은 현존하는 가장 가벼운 금속입니다. 스마트폰부터 전기차까지, 모든 전자장치가 원하는 건 작고 가벼운 배터리이죠. 그 점에 있어서는 리튬을 이길 소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트륨은 리튬과 비슷한 특성을 공유하는 알칼리 금속(반응성 강함)이지만, 원자번호 11번으로 크고 무겁습니다. 이 때문에 단위당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 더 높고, 나트륨이 낮습니다. 같은 부피 또는 무게에 담을 수 있는 에너지 양에서 나트륨이 불리하죠.달리 말하면 비슷한 무게·부피라면 나트륨이온배터리 장착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더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성능이 떨어지는 거죠. 만약 CATL이 개발 중이라는 200Wh/㎏급 2세대 나트륨이온배터리가 실제로 나온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요.물론 모든 전기차가 한번 충전에 500㎞씩 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적당히 괜찮은 용량이면 충분한 차량도 있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전망하기로는 리튬이온배터리와 나트륨이온배터리은 공존할 겁니다. 일단은 그리 큰 에너지 용량이 필요 없는 전기 자전거와 이륜차, 저속 전기차(카트)에 나트륨이온배터리가 먼저 쓰이겠죠. 같은 이유로 내연기관 차량에 들어가는 납축전지도 나트륨이온배터리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납축전지는 안정성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시장이 죽지 않고 오히려 커지는 추세인데요. 납과 황을 쓰기 때문에 환경을 오염시키죠. 중국의 신쳉 컨설팅은 “미래엔 나트륨이온배터리가 납축전지 시장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태양광·풍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저장해두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역시 주요 사용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SS는 어차피 움직일 필요 없으니 좀 무겁고 커도 상관없으니까요.소형 전기차에도 나트륨이온배터리가 쓰이겠지만, 초반엔 ‘하이브리드’ 형태로 들어갈 겁니다. 즉, 나트륨과 리튬이온전지 둘을 섞어서 한 차량에 쓰는 형태이죠. CATL이 ‘AB배터리’라고 이름 붙인 방식인데요. 가성비와 주행 성능, 둘 다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BYD 역시 이런 하이브리드 방식을 소형차 모델 ‘씨걸(Sesgull)’에 적용할 예정입니다.리튬가격이 발목 잡을까그럼 나트륨이온배터리가 판을 뒤엎지는 못하더라도 그 앞날엔 비교적 희망이 가득한 걸까요. 글쎄요. 관건은 원자재 가격입니다. 과연 리튬가격이 어디까지 더 떨어지느냐에 사실상 모든 게 달려있달까요.1980년대부터 연구됐던 나트륨배터리가 최근 2년 사이 기업의 주목 받은 건 사실 요동치는 리튬가격 때문이죠. 2020년 말 t당 3만 위안대였던 탄산리튬 가격은 한동안 정말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지난해 11월엔 59만 위안을 넘어서기까지 했죠.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놀라운 속도로 리튬 가격이 폭락 중입니다. 전기차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하면서 리튬 공급이 과잉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이제 글로벌 리튬시장의 공급과잉이 2028년까지 이어질 것(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이란 리튬 비관론마저 등장하고 있습니다.나트륨이온배터리는 이제 막 산업화의 초기에 있습니다. 전기차에 장착해도 될 수준으로 에너지 밀도를 끌어올리려면 갈 길이 먼데요. 리튬가격이 예상과 달리 급락한다면 기업들의 나트륨배터리 개발 의지가 꺾일지 모릅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충분한 새로운 리튬 광산이 생성된다면(리튬 공급이 충분하다면) 나트륨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 과학자와 엔지니어에게 급여를 지급할 인센티브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죠. 리튬배터리의 대체제가 되고픈 나트륨배터리. 정작 그 운명은 리튬에 달려있는 셈입니다. By.딥다이브배터리 관련주에 투자한 분들을 요즘 참 많이 봅니다. 다들 지식 수준도 상당한데요. 문제는 이 산업이 아직 표준화가 안 되어 있고 새로운 기술이라서 변화무쌍하다는 겁니다. 이를 둘러싼 경제환경도 예측이 쉽지 않고요. 솔직히 리튬가격이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 누가 알았나요(). 결국 지속적인 공부밖엔 답이 없겠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의 나트륨이온배터리 개발 소식으로 다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집니다. 중국 CATL은 올해 안에 체리자동차의 소형 전기차에 나트륨이온배터리를 장착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매장량이 풍부한 소재인 나트륨의 가격은 리튬의 76분의 1 수준. 안정성이 높아 고온과 저온에서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문제는 에너지 밀도. 같은 크기나 무게이면 주행거리가 더 짧아집니다. LFP배터리의 80~90%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전기차에 쓰이긴 부족해 보입니다. 우선 이륜차와 카트, 에너지저장장치에 쓰일 거란 전망입니다.-나트륨배터리의 앞날을 결정하는 건 리튬가격이 될 겁니다. 만약 1년 새 77% 급락한 리튬가격이 더 추락한다면 나트륨배터리의 가성비가 그리 빛나 보이지 않겠죠. *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사상 최대 매출의 블랙프라이데이가 지나고, 미국 국채 수익률은 급락했습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데요. 차익실현 움직임 때문인지, 27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소폭 하락세를 기록했군요. 다우지수는 –0.16%, S&P500 –0.2%, 나스닥지수 –0.07%.미국은 24일 블랙프라이데이에 이어, 이날은 사이버먼데이였죠. 이 시기의 온라인 매출로 연말 쇼핑 시즌 성과를 가늠할 수 있어서 투자자들이 눈여겨보는데요. 당초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 전자상거래 매출액이 전년보다 7.5%나 증가했다고 하죠(어도비 애널리틱스 분석). 미국의 소비는 여전히 탄탄합니다. 이 소식에 일부 소비주 주가가 상승세를 탔습니다. 전자상거래업체 쇼피파이 주가는 4.9% 올랐고요. 아마존 주가는 0.67% 상승하며 주가가 2022년 4월 이후 최고 수준(147.73달러)으로 마감했습니다. 후불결제회사 어펌홀딩스 역시 ‘선구매 후지불’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12% 가까이 주가가 급등했죠.이날 채권시장에서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습니다. 미국 재무부의 만기 2년, 5년 국채 입찰에서 강한 수요가 나타난 영향인데요. 이날 발표된 10월 신규주택판매 지표가 예상을 크게 밑돈 것도 국채 수익률 하락을 부추겼죠.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는 0.09%포인트 하락한 4.39%를 기록했습니다. 두 달 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겁니다. 모건스탠리 E트레이드의 크리스 라킨은 “경제 지표 둔화로 인해 시장 친화적인 금리 인하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생각을 시장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전반적으로 채권과 주식시장 모두 안정된 모습인데요. 그래서이겠죠. 연말, 그리고 내년 미국 증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부쩍 늘었습니다. 블룸버그가 구독자 대상으로 실시한 MLIV펄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최근 조사에선 응답자의 60% 이상이 “다음 달 주식이 채권보다 나은 수익을 제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요. 이는 2022년 8월 이 질문을 처음 한 이래 가장 낙관적인 주식시장 전망이라고 합니다.금융회사들이 내놓은 내년 S&P500 전망치도 이런 시각을 반영하는데요. 도이체방크는 인플레이션이 냉각되고 기업수익이 반등하면서 S&P500이 2024년 말까지 5100에 도달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현재 수준보다 약 12% 오른다는 뜻이죠. 뱅크오브아메리카와 BMO캐피탈마켓 역시 S&P500이 2024년 다시 상승해서 2022년 초의 사상 최고치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봅니다.UBS글로벌웰스매니지먼트의 제이슨 드라호는 “시장은 연착륙에 맞춰 가격이 책정되고 소비자 지출이 유지될 것”이라며 “앞으로 몇주 동안 투자자들은 소비자 지출 데이터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가상화폐 업계의 왕이 미국 정부 압박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창업자인 자오창펑(趙長鵬) 이야기인데요. 자금세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막대한 벌금과 함께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됐죠.바이낸스와 자오창펑이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관심 끄는 뉴스가 아닐 수 없는데요. 동시에 가상화폐 시장 입장에선 오히려 잘된 일일 수 있단 분석도 나옵니다. 왕좌에서 내려온 자오창펑, 그리고 바이낸스 제국을 들여다봤습니다.5.5조 벌금 맞은 바이낸스43억 달러(5조5000억원). 21일 바이낸스가 미국 정부와 합의한 벌금 액수입니다. 미국인 고객이 북한·이란·러시아 같은 제재 대상 국가 또는 하마스·이슬람국가 같은 테러단체와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걸 알고도 중개한 혐의에 대해 자오창펑 CEO가 유죄를 인정한 건데요. 미국 역사상 기업이 낸 벌금 중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과거 비슷한 혐의로 HSBC가 냈던 벌금과 비교해도 두배 수준이죠.그 정도 벌금이면 회사가 휘청거리는 거 아니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이낸스이니까요.1억6000만명 넘는 고객을 둔 바이낸스는 가상화폐 거래 시장 점유율이 44%에 달합니다. 전 세계 가상화폐 현물과 파생상품 거래의 절반 가까이가 바이낸스를 통해 이뤄지는 거죠. 올해 1분기 62%였던 점유율이 많이 떨어진 게 이 정도입니다. 매출이나 이익 같은 재무정보를 공개하진 않지만, 거래마다 0.1%가량을 수수료로 떼니까 엄청난 돈을 쓸어 담고 있겠죠.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이미 바이낸스는 벌금을 내려고 현금 80억 달러를 확보해뒀다고 합니다.벌금이 아무리 많아도 바이낸스 입장에선 최악은 아닙니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선 계속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재무부 산하기관의 모니터를 받는 조건이 붙긴 했는데요. 적어도 ‘바이낸스가 문 닫을까 걱정해서→고객들이 가상화폐를 인출하려 몰려들고(코인 런)→그것 때문에 회사가 망하는’ 일은 없을 거란 뜻이죠.이번 합의로 자오창펑은 앞으로 3년간 바이낸스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됐는데요. 그래도 바이낸스 최대 주주(지분율 90% 추정) 권한은 잃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의 엄청난 부엔 아무런 타격이 없죠. 가상화폐 호황기였던 2022년 1월 자오창펑의 재산은 무려 960억 달러(약 115조원)에 달해 세계 11위였는데요(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이후 많이 줄어든 게 230억 달러(세계 69위)입니다. 아직 자오창펑에 대한 재판은 남아있는데요. 미국 언론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아도 18개월 이내의 형을 받을 거라고 전망합니다.결론적으로 바이낸스와 자오창펑은 망하진 않았습니다. 샘 뱅크먼 프리드의 FTX(2022년 11월 파산한 미국의 가상화폐 거래소)나 권도형의 테라(2022년 5월 붕괴된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와는 달리, 살아남는 데는 성공했죠.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이에 안도했습니다. 바이낸스 벌금 소식에 비트코인 가격이 살짝 내렸다가 다시 오른 게 이를 반영합니다.하지만 바이낸스와 자오창펑 모두에 고의로 법을 위반한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 표현대로 “두 개의 가장 큰 가상화폐 거래소(FTX와 바이낸스) 중 하나는 사기, 다른 하나는 돈세탁범”인 것으로 밝혀진 거죠. ‘CZ’라는 이니셜로 불리던 가상화폐 업계의 최고 리더, 자오창펑의 신화는 사실상 무너졌습니다.설립 8개월 만에 업계 1위 신화1977년생인 자오창펑은 권도형(1991년생)이나 샘 뱅크먼 프리드(1992년생)처럼 젊지도 않고, 스탠퍼드대학 출신도 아닙니다. 그다지 화려한 스타성 있는 인물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런 그가 가상화폐 업계에서 거물이 된 건 바이낸스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 덕분입니다.중국 출신인 자오창펑은 12살에 캐나다로 이민 간 중국계 캐나다인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뒤 주로 증권 거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요. 2013년 ‘순자산의 10%만 비트코인에 투자해라. 아마 10배가 될 거다’라는 친구 조언을 계기로 가상화폐에 눈을 뜹니다. 그는 비트코인 백서를 읽은 뒤 완전히 빠져들었죠. 상하이 아파트까지 팔아 비트코인에 몽땅 투자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60% 넘는 손해를 봤지만, 더욱 가상화폐 세계에 몰두합니다.2017년 7월 그는 바이낸스 코인(BNB)을 출시해 ICO(초기 코인 공개)로 1500만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이를 밑천으로 바이낸스 거래소를 설립하죠. 마침 가상화폐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던 타이밍이었습니다. 바이낸스는 매일 사용자 수가 5000명씩 증가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커나갔죠. 설립 8개월 만에 바이낸스는 세계 거래소 중 거래량 1위로 올라서며 업계를 놀라게 만듭니다. 무명이었던 그는 단숨에 포브스 표지 모델이 되었죠.이러한 급성장 요인으로는 수수료율이 낮으면서도(기본 0.1%), 웬만한 코인은 다 상장돼 있을 정도로 상품이 다양하다는 점이 꼽힙니다. 한국의 거래소에선 찾아볼 수 없는 최대 125배 레버리지 파생상품도 있다고 하죠(코인 현물 가격이 1% 오르면 125% 수익률). 아울러 람보르기니를 경품으로 내거는 등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벌였습니다. 무엇보다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누구나 바이낸스 거래 계좌를 만들 수 있도록 익명성을 보장해서 큰손들을 끌어모았는데요.정작 자오창펑 본인은 바이낸스 성공 비결이 ‘서비스 품질’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2017년 당시 가상화폐 거래소 시스템은 느리고 인터페이스는 투박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자 모든 사이트가 다운됐죠. 우리는 교환 속도를 더 빠르게 했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훨씬 더 좋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본사 없어서 규제 못 한다?바이낸스가 경쟁사와 가장 다른 점은 본사가 따로 없다는 점입니다. 공식적인 은행 계좌나 공개 주소도 없죠. 점조직 형태의 탈중앙화된 ‘무국적 거래소’를 초기부터 표방했는데요. 따라서 어느 정부의 관할 아래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게 바이낸스의 주장입니다. 이 때문에 2017년 중국 정부가 가상자산 거래소 영업을 전면 중단했을 때도 바이낸스는 끄떡없었습니다. 중국 시장의 선발주자였던 오케이코인(오케이엑스)과 후오비가 크게 타격 입은 것과 대조적이었죠.국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규제도 통하지 않는다? 궤변처럼 들리지만, 이런 주장은 실제로 통했습니다. 바이낸스는 철저히 사무실이나 서버 위치를 비밀로 하며 규제를 피해 갔죠. 이를 위해 자오창펑은 직원들에게 바이낸스에서 일하는 걸 밝히지 말고 내부 커뮤니케이션 기록은 바로 삭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는 대놓고 “불필요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매우 창의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죠.동시에 자오창펑은 돈에 관심이 없고 자동차나 집도 소유하지 않는, 바이낸스 로고가 박힌 티셔츠나 후드티를 입고 다니는 수수한 이미지로 어필했습니다. 본인 추정으로는 2022년 비행기 안에서 580시간을 보낼 정도로 전 세계 가상화폐 컨퍼런스의 단골 초청 게스트였는데요. 지난해 강력한 경쟁업체 FTX까지 무너지면서, 바이낸스 제국의 위상은 더 공고해졌습니다. 참고로 2022년 11월 FTX 파산엔 자오창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자오창펑이 FTX 관련 코인(FTT)을 전량 매도했다고 밝히면서 코인런 촉발)는 지적도 나옵니다.꼼수는 통하지 않았다바이낸스는 오래전부터 미국 정부의 타깃이 되어왔습니다. 수년 전부터 불법 거래 혐의로 조사해왔다고 하죠. 물론 자오창펑은 이를 피하기 위해 근거지를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다녔고요. 하지만 그의 ‘무국적 거래소’ 꼼수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가 미국 거주자에 대한 고객신원확인 규정을 어겼고, 자금 세탁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방조했다는 여러 증거와 증언을 확보하는 데 성공합니다.미국 정부의 법원 서류에 따르면 자오창펑은 바이낸스에 미국 고객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 고객을 차단한다면 “바이낸스는 오늘날처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채팅을 남기기도 했죠. 미국 거주자는 바이낸스 전체 사용자의 16%에 달했지만, 이를 숨기기 위해 바이낸스는 사용자 위치를 “UNKWN(‘UNKNOWN’을 의미)”으로 고칩니다. 이를 두고 자오창펑은 “허락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 낫다”면서 상황을 “회색지대”라고 묘사했습니다. 빠른 성장을 위해 규제 따위는 잠시 모른 척한 거죠.이전에 자오창펑은 바이낸스에 대해 미국 규제당국이 제기한 혐의들이 모두 ‘퍼드(FUD)’라며 적극적으로 반박해왔습니다. FUD는 공포(Fear)·불확실성(Uncertainty)·의문(Doubt)의 약자인데요. 가상화폐 업계에서 가짜뉴스, 악성루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과거 그는 FUD를 의미하는 손가락 네개를 펼친 사진을 자신의 X(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 적 있죠. 하지만 그가 유죄를 인정하면서 이는 벌금 40억 달러를 의미하는 사진으로 패러디됩니다.가상화폐 시장엔 호재라고?자오창펑의 뒤를 잇는 바이낸스 CEO는 싱가포르 규제기관 출신 인물인 리처드 텅입니다. 하지만 실제 주도권은 바이낸스 공동 창업자이자, 자오창펑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결혼은 하지 않음) 허이(He Yi)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쥐게 될 거란 관측도 나오죠.미국 정부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된 바이낸스가 과연 지금 같은 제국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규제를 다 따르면서도 고객 기반을 잃지 않기란 사실 쉽지 않죠. 다만 바이낸스 입장에선 어차피 규제 틀 안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그 길을 택한 건데요. 달리 보면, 미국 정부 역시 까다로운 조건을 달긴 했지만 바이낸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블룸버그 칼럼 표현대로 “미국 규제당국이 합법적인 이민자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죠.바로 이 때문에 이번 미국 정부와 바이낸스의 합의로 다음 단계의 진전, 예컨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현물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 승인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낸스 사태가 ‘가상화폐 시장엔 호재’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는데요. 역시나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시장입니다. By.딥다이브참 극적인 성공도, 갑작스런 몰락도 많은 가상화폐 시장입니다. 권도형, 샘 뱅크먼 프리드, 그리고 자오창펑까지. 신화적 인물들이 줄줄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그 와중에도 충격을 빠르게 회복해 가는 비트코인 가격도 신기하고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미국 정부가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바이낸스가 43억 달러의 막대한 벌금을 매겼습니다. 자오창펑은 유죄를 인정하고 CEO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중국계 캐나다인 자오창펑은 2017년 바이낸스를 설립한 뒤 8개월 만에 전 세계 거래소 1위로 만들어내며 업계 거물이 됩니다. 본사를 따로 두지 않은 ‘무국적 거래소’ 컨셉으로 규제를 교묘히 피해갑니다.-하지만 미국 규제당국의 집요한 조사에 결국 덜미가 잡힙니다. 자오창펑은 바이낸스의 빠른 성장을 위해 규제를 일부러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바이낸스는 규제의 틀 안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다음 단계의 진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정말 이번 사태가 가상화폐 시장엔 호재가 될까요?*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의 내부 갈등 조짐에 유가가 내리막입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개발사 구하기에 나섰다는 소식에 홍콩과 중국 본토 증시는 23일 상승했죠. 미국 증시가 추수감사절로 휴장한 이날, 글로벌 시장은 대체로 조용했습니다. 24일 미국 증시는 다시 문을 열지만 오후 1시(미국 동부 표준시)까지만 단축 운영합니다. 26일 열릴 예정이었던 OPEC+ 정례회의는 돌연 30일로 미뤄지더니, 온라인 비대면 회의로 바뀌었습니다. 당초 이 장관급 회의에선 추가 감산 문제가 다뤄질 걸로 전망됐는데요. 감산을 둘러싼 산유국들의 의견차이가 커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나이지리아나 앙골라 같은 아프리카 회원국들의 반발이 크다고 하죠. 국제유가 상승을 위해 감산을 요구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유국 설득에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입니다.이날 국제유가는 1% 넘게 하락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76.09달러, 브렌트유 선물은 80.89달러에 거래됐습니다. 투자자문사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 창업자는 “OPEC+ 회의 연기로 당분간 에너지주는 비관적”이라며 “WTI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어 60달러 초중반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23일 홍콩 증시에선 중국 부동산 관련주가 급등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개발사 50곳을 뽑아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 덕분입니다. 규제당국이 만들고 있는 명단 초안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개발사들은 일제히 주가가 급등했죠. 이날 홍콩증시에서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은 24%, 위안양그룹(시노오션) 31%, 욱휘홀딩스(CIFI)는 48% 주가가 상승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부동산 위기 종식을 위해 역대 가장 강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는데요.문제는 중국 은행 산업이 이를 떠받칠 여력이 충분하냐는 점입니다. 중국 대형 국영은행은 이미 마진 감소와 대출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중국 은행주 주가가 하락세인 것도 이 영향입니다. 노무라 추산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개발사가 짓고 있던 주택을 완공하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자금은 무려 3조2000억 위안(582조원)에 달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글로벌 경제계에서 현재 시점 가장 핫한 뉴스는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 축출 소식.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던 샘 올트먼이 17일 갑자기 오픈AI 이사회에 의해 해고됐는데요. 19일엔 올트먼이 MS에 합류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놀라운 소식의 연속입니다.자기가 만든 회사를 이끌어오던 창업자가 이사회에 의해 쫓겨난다? 한국에선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국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죠. 오늘은 해고된 유명 창업자들과 그들의 반격 스토리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원조 ‘Mr. 테슬라’ 마틴 에버하드기업의 이사회는 투표를 통해 CEO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 ‘회사와 주주 이익의 보호’라는 명분에서 말이죠. 때로는 창업자라 해도 이사회에 의해 잘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아주 큰 뉴스거리가 되곤 하죠. 해고된 유명 창업자들은 많지만 그중 일부를 소개합니다.마틴 에버하드(Martin Eberhard), 테슬라 공동 창업자테슬라 창업자가 일론 머스크가 아니란 사실, 알고 계시나요. 테슬라는 마틴 에버하드가 2003년 친구인 마크 타페닝과 함께 공동 설립한 회사입니다. 그때 당시엔 새로운 기술이었던 리튬이온배터리를 이용한 고성능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설립한 스타트업이었죠. 이듬해 4월 머스크는 750만 달러를 투자했고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이 됐습니다. 에버하드는 CEO를 맡아 테슬라의 첫 번째 자동차 로드스터(Roadster) 개발을 진두지휘했고요.2006년 7월 테슬라가 할리우드 스타 초청행사를 열고 대당 10만 달러짜리 로드스터 100대를 사전주문 받을 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자신감 있고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괴짜인 에버하드는 ‘미스터(Mr.) 테슬라’로 불렸습니다. 언론은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를 만든 인물’이라며 그를 찬양했죠. 그럼 일론 머스크는? 놀랍게도 그 행사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머스크 이름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아서, 그가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하지만 그해 말부터 에버하드의 로드스터 생산 계획은 삐걱거렸습니다. 수백개에 달하는 부품 공급을 관리할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 테슬라는 최고재무책임자도, ERP 프로그램도 없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에버하드는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큰 조직을 이끌 경영 능력은 미숙한 전형적인 스타트업 창업자였습니다.결국 2007년 여름, 에버하드는 로드스터 생산지연으로 인해 CEO직에서 해고됩니다. 에버하드는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비방 금지 계약’을 맺었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나는 내가 대우받은 방식에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이 테슬라와 고객, 투자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합니다.2008년 테슬라 CEO로 취임한 일론 머스크는 에버하드를 “함께 일한 최악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발끈한 에버하드는 2009년 5월 머스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죠. 머스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퇴출을 주도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는데요. 넉 달 뒤 두 사람은 합의했고 에버하드는 소송을 철회합니다.에버하드는 테슬라를 떠날 때 5% 미만의 지분율 소유하고 있었다는데요. 올해 초 인터뷰에서 여전히 작은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그는 한동안 전기차 관련 기업에서 일한 적 있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은퇴한 기업가’로 소개합니다. 지금은 테슬라 공동창업자였던 타페닝과 함께 소규모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죠. 두 사람은 아직도 1988년부터 해온 대로 매주 수요일에 만나 커피를 마신다고 합니다.‘포털의 황제’ 제리 양제리 양(Jerry Yang), 야후 공동 창업자한때 그는 ‘포털의 황제’로 불렸습니다. 미국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 스탠퍼드대 대학원 조교 시절, 인터넷 사이트를 주제별로 정리한 무료 사이트 ‘제리 양의 월드와이드웹 가이드(Jerry‘s Guide to the World Wide Web)’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1995년 야후를 설립하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나가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성공 신화를 씁니다.2000년대 초반까지 야후는 승승장구했죠. 하지만 검색 기능에서 한발 앞선 구글이 치고 나오면서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특히 2008년 2월 446억 달러(주당 31달러)에 야후를 인수하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제안을 뿌리친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습니다. 업계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만한 가격이었지만, 제리 양은 야후를 팔 생각이 없었습니다. 불과 몇 달 만에 주가는 10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제리 양은 여러 건의 주주 소송에 직면합니다. 결국 2009년 그는 CEO 자리를 내려놔야 했죠.훗날 인터뷰에서 제리 양은 야후가 투자한 알리바바 지분 가치가 엄청나게 커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MS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야후는 2012년 불과 주당 13달러라는 헐값에 알리바바 주식 5억2300만주를 알리바바에 다시 매각했죠. (참고로 2014년 알리바바 나스닥 상장 직후 주가는 약 90달러)제리 양은 야후를 떠난 뒤 투자회사 AME 클라우드 벤처스를 설립해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알리바바의 이사회 멤버이자, 스탠퍼드대학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죠. 포브스에 따르면 아직 55세(1968년생)인 그의 순자산은 26억 달러로 여전히 상당한 부자(세계 순위 1272위)입니다.애슬레저 트렌드 창시자, 칩 윌슨칩 윌슨(Chip Wilson), 룰루레몬 창업자사업 실패나 경영 판단의 오류가 아닌 이유로 축출당하는 창업자도 있습니다. 부적절한 언행으로 말이죠. ‘요가복 계의 샤넬’ 룰루레몬을 창업한 칩 윌슨이 그런 경우이죠.룰루레몬은 1999년 캐나다 밴쿠버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습니다. 기능성 운동복 사업을 했던 칩 윌슨은 요가 수업에 참석했다가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했죠.룰루레몬은 처음부터 단순한 운동용이 아닌 일상복을 위한 애슬레저 의류 회사를 표방합니다. 타깃 고객은 연봉 10만 달러를 받는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는 32세 전문직 싱글 여성. 윌슨은 “자기 소유 콘도를 갖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하고 하루 1시간 30분씩 운동할 수 있는” 고객이라면 기꺼이 100달러짜리 요가 바지에 지갑을 열 거라고 내다봤죠.그의 직감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신축성 있으면서도 탄탄한 소재로 몸매를 잡아주는 룰루레몬 요가복은 대히트를 칩니다. 레깅스 열풍을 일으키며 이후 회사는 엄청나게 성장해 나갑니다.칩 윌슨의 경영철학은 좀 독특했습니다. 집요하게 자신이 원하는 조직문화를 추구했는데요. 직원들이 리테일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1년, 5년, 10년 뒤 목표를 적어서 매장에 걸어두게 하거나, 동기 부여 수업을 참석하게 했죠. 이에 세뇌당하는 것 같다는 직원 불평이 이어졌고요.2011년엔 쇼핑백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 ‘Atlas Shrugged’의 첫 문장(‘Who is John Galt’)을 넣었는데요. 이게 엄청난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타주의를 배척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자유시장주의의 상징적인 책이었기 때문이죠. 이 소란으로 윌슨은 최고 혁신·브랜딩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이후 윌슨은 비상임 회장직만 유지했는데요. 그마저 잃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3년 룰루레몬 검정색 요가 팬츠가 너무 속이 훤히 비쳐 보인다는 이유로 반품이 이어집니다. 이때 윌슨이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망발했습니다. “솔직히 일부 여성의 신체는 (요가)바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여성들이 분노했고, 룰루레몬 주가까지 급락합니다. 이사회와 긴장관계에 있던 윌슨은 회장직 사임을 발표합니다.그는 여전히 룰루레몬 지분 8%를 보유한 개인 최대 주주입니다. 그의 순자산은 62억 달러(세계 431위)에 달하죠. 그는 지난해 낸 회고록 ‘룰루레몬 스토리’에서 자신을 ‘실적주의에 사로잡힌 이사회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는데요. 실패를 두려워하는 ‘합리적인 사고’가 지배하면 창의성이 사라져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없다(즉, 자신은 창의성 넘치는 혁신의 리더였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스티브 잡스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 공동 창업자쫓겨난 창업자 스토리엔 이 사람이 빠질 수 없죠. 궁지에 몰린 모든 창업자에게 희망이 되는 사례, 스티브 잡스입니다.1976년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하고 세계 첫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냅니다. 애플이 급성장하자 1983년 잡스는 펩시콜라 출신 전문 경영인 존 스컬리를 영입하고 본인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매진하죠.잡스는 ‘미친 듯이 위대한’ 제품을 추구하는 인물이죠. 그의 끝없는 완벽주의와 막대한 마케팅에 대한 고집으로 인해 첫 번째 맥 컴퓨터 가격은 무려 2500달러로 책정됐습니다. 당시 주류 컴퓨터는 1000달러 정도. 당연히 맥 컴퓨터 판매량은 형편없었습니다. 예측치의 10%에 불과했죠. 하지만 잡스는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다른 직원을 꾸짖었다는데요. 직원을 향해 ‘똥(shit)’ 또는 ‘멍청이(asshole)’ 같은 욕을 퍼붓는 건 그에겐 일상적인 일이었죠.1985년 스컬리 CEO는 잡스 해고를 위한 이사회를 소집합니다. 익명투표를 벌인 끝에 애플 이사회는 잡스를 축출했죠.분신 같은 회사에서 쫓겨나는 창업자의 기분은 어떨까요? 잡스가 애플에서 해고된 날, 매킨토시 마케팅 담당이었던 마이크 머레이는 너무 걱정돼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몇 시간 동안 함께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잡스가 자살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 때까지 말이죠.잡스 이후 또 다른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1996년 12월 넥스트가 애플에 인수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죠. 그리고 1997년 9월. 마침내 잡스가 애플의 CEO를 맡게 되는데요. 그 이후는 다들 아는 이야기입니다.훗날 스탠퍼드대학에서 한 유명한 졸업식 축사에서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의 무거움은 다시 초보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영웅으로 돌아오려면회사에서 쫓겨난 리더들이 누구나 스티브 잡스처럼 시련을 딛고 일어나 더 위대해질 수 있는 건 아니죠. 사실 축출된 리더의 화려한 복귀는 영웅 신화(초기 성공-시련의 지속-좌절-최종 승리)만큼이나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반등에 성공한 리더들에겐 공통점이 있다는데요.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교수는 오래전 하버드비즈니스리뷰(2007년 1월호)에서 이를 분석했습니다. 시간은 꽤 지났지만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해서 소개해드릴게요.그에 따르면 쫓겨난 창업자나 CEO가 재기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평판입니다. 이전의 대중적 평판을 재건할 수 있어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죠.이사회는 리더를 해고하면서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해고 이유를 일부러 숨기기도 합니다. 예컨대 “개인적인 이유로”, 또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임했다고 발표하는 식이죠. 이어 언론이 추측 기사를 쏟아내면서 쫓겨난 리더의 평판은 더 훼손될 수 있는데요. 이 때문에 소넨펠트 교수는 함부로 ‘비방 금지 계약’에 서명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회사를 떠난 뒤) 발언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수년 동안 실업 상태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반박해 평판을 회복해야 하죠.그런데 이사회가 밝힌 해고 이유에 대해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다면? 그때도 방법은 있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죠. 그에 따르면 “대중은 종종 진정한 회개를 엄청나게 용서합니다.”평판 지키기 못지않게 중요한 건 자신의 실패에 직면해서 인정하는 겁니다. 과거 실패에 연연해 분노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란 뜻이죠. ‘월가의 황제’ JP모건 CEO 제이미 다이먼은 이를 잘 해낸 모범사례입니다. 1998년 씨티그룹의 후계자로 여겨졌던 다이먼은 자신의 멘토였던 샌디 웨일 씨티그룹 회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실직 시절 그는 위대한 국가 지도자들의 전기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하죠. 그리고 해고된 지 1년 뒤 샌디 웨일 회장을 점심식사에 초대합니다. 왜? 감사하다고 말하기 위해서요. “나는 이 사건을 뒤로 하고 계속 나아가길 원했다”는 게 그의 회고입니다. 2000년 다이먼은 뱅크 원 은행의 CEO로 화려하게 돌아왔고요. 뱅크 원이 JP모건과 합병하면서 2005년 JP모건 CEO에 오릅니다.소넨펠드 교수는 반격을 위해선 다른 사람들을 전투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조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지지를 다시 얻을 수 있는 ‘영웅적인 지위’를 추구해야 합니다. 다시 조직을 만들고, 이끌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라는 거죠. 마치 잡스가 그랬듯이 말이죠.그는 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재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했죠. 주 이란 대사관의 인질을 제때 석방시키지 못한 ‘실패한 대통령’이란 낙인도 찍혔습니다. 하지만 아내 로잘린의 열렬한 지원을 받아 사람들을 모집했고, 1982년 ‘카터 센터’를 세웁니다. 그리고 국제 분쟁 조정과 민주주의·인권 증진에서 역할을 하죠. 이 공로로 그는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합니다.‘영웅적인 리더’가 아니라서 이런 조언이 딱히 와닿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소넨펠드 교수의 마지막 당부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 모두가 패배하더라도 삶에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그것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도 우리의 희망과 자부심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유명한 기업의 리더가 이사회에 의해 해고되는 사례는 찾아보면 꽤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내쫓기는 창업자 스토리는 큰 이야기거리가 아닐 수 없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스타 창업자도 사업이 실패하거나 경영 판단에 오류가 있으면 잘릴 수 있습니다. 테슬라 창업자 마틴 에버하드, 야후 창업자 제리 양도 그렇게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경영 능력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부적절한 언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빗는 것 역시 해고의 빌미가 됩니다.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은 여성 비하적 발언으로 자리를 잃었습니다. -해고 이후 오히려 더 대단해진 리더들도 있긴 하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시 영웅적으로 돌아오려면 평판을 지키고 사람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자신의 성공과 실패는 자기 스스로만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유명한 창업자라 해도 이사회가 나서면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다. 한국에선 낯선 일이지만 미국에선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오픈AI 이사회가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을 해고한 것이 가장 최근 사례. 해고 이유는 경영 능력 부족과 주주 반발, 부적절한 언행 등 다양하지만 이사회가 돌아서면 창업자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CEO에서 쫓겨난 스타 창업자들 원조 ‘미스터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가 아닌 마틴 에버하드다. 2003년 테슬라를 공동 창업한 에버하드는 초대 CEO를 맡아 첫 번째 차량인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 개발을 이끌었다. 2004년 테슬라에 투자한 머스크는 이사회 의장에 머물렀다. 열정 넘치는 괴짜 에버하드는 언론이 주목하는 스타 CEO였다. 2006년 테슬라가 10만 달러짜리 로드스터 시제품을 공개하자 100대의 사전 주문 물량은 동났다. 에버하드는 2007년 초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생산 계획은 삐걱거렸다. 테슬라엔 수백 개에 달하는 부품 공급망을 관리할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드스터 출시 일정은 계속 지연됐다. 그해 여름, 에버하드는 로드스터 생산 지연에 책임을 지고 CEO직에서 해고된다. 쫓겨날 때 그의 보유 지분은 5% 미만. 그는 “사람들 생각과 달리 억만장자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1990년대 닷컴 시대 상징인 야후 공동 창업자 제리 양은 경영 판단의 문제를 이유로 CEO에서 잘렸다. 2000년대 들어 야후는 구글의 공세에 크게 밀리던 상황. 이런 야후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08년 놀라운 제안을 내놓는다. 시장 가치보다 62% 비싼 주당 31달러, 총 446억 달러에 야후를 인수하겠다고 한 것. 하지만 야후를 팔 생각이 없었던 제리 양은 이를 거절했다. 몇 달 만에 주가는 10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제리 양은 여러 건의 주주 소송에 직면한다. 2009년 1월 제리 양은 결국 CEO 자리를 내려놓는다. 훗날 인터뷰에서 제리 양은 “야후가 투자해둔 중국 알리바바 지분 가치가 엄청나게 커질 걸 알았기 때문에” MS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야후를 떠난 뒤 그는 투자회사를 설립해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 부적절한 언행도 내쫓기는 이유 회사 실적엔 아무 문제가 없어도 축출당하는 창업자도 있다. 주로 부적절한 언행 때문이다. ‘요가복계의 샤넬’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은 여성 비하 발언으로 회장직을 잃었다. 윌슨은 운동과 여가를 합친 ‘애슬레저’ 트렌드의 창시자다. 1998년 설립된 룰루레몬은 ‘100달러짜리 레깅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윌슨은 독특한 조직문화에 대한 고집으로 경영진, 이사회와 자주 갈등을 빚었다. 아동노동에 찬성하고, “일본인이 L 발음을 못 해서” 회사 이름을 룰루레몬으로 지었다고 말하는 등 망언도 잦았다. 2013년 룰루레몬의 검은색 요가 바지가 너무 속이 훤히 비쳐 보인다는 이유로 소비자 반품이 줄을 이었다. 그러자 윌슨 회장은 TV 인터뷰에서 “솔직히 일부 여성의 신체는 (요가) 바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소비자 몸매 탓을 했다. 이 일로 그는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지난해 낸 회고록에서 윌슨은 자신이 실적주의에 사로잡힌 이사회의 희생양이 됐다고 변명했다. 여전히 룰루레몬의 개인 최대주주(지분 8%)인 그는 순자산 62억 달러의 부자다.● 해고 후 더 위대해진 창업자 쫓겨난 창업자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인물은 역시 스티브 잡스다. 1976년 애플을 공동 창업한 잡스는 1985년 이사회 익명 투표를 거쳐 해고당한다. 해고의 이유는 잡스가 주도한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형편없이 부진한 실적이었다. 잡스의 완벽주의로 인해 첫 번째 맥 컴퓨터 가격은 2500달러로 책정됐고, 판매량은 예측치의 10%에 그쳤다. 잡스는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에 다른 직원을 탓했다. 갈등 끝에 존 스컬리 CEO는 이사회를 소집하고 잡스의 해임안을 상정한다. 잡스 본인이 영입했던 CEO에 의해 쫓겨난 것이다. 잡스는 해고된 직후 유럽 여행으로 마음을 다잡고 또 다른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설립했다. 이후 1996년 12월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다시 애플로 돌아온다. 훗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한 유명한 연설에서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다. 성공의 무거움이 다시 초보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다.” 기업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교수는 과거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문에서 쫓겨난 리더가 재기하려면 먼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잡스를 그 모범 사례로 꼽았다. 아울러 △대중적 평판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지지를 구하고 △사회를 발전시킬 ‘영웅적 지위’를 추구하라고 덧붙였다. “누구도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정의할 수 없고, 오직 우리만이 그것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게 소넨펠드 교수의 조언이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에 다시 인공지능(AI) 바람이 불어옵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주가 상승에 힘입어 증시 랠리가 이어졌죠. 20일(현지시간) 다우지수 +0.58%, S&P500 +0.74%, 나스닥지수 +1.13%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엔비디아는 21일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죠. 월스트리트는 분기 매출 162억 달러, 이익 72억 달러를 예상하는데요. 특히 엔비디아가 지난 20개 분기 중 19분기에서 예상을 웃돈 실적을 내놨기 때문에 실적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습니다.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2.28% 올라 사상 최고치인 504.2달러로 마감했는데요.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날 시장에선 엔비디아 주가 510달러, 또는 550달러에 베팅하는 콜옵션이 활발하게 거래됐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목표주가도 현재가보다 약 30% 높은 655.6달러입니다. 다들 ‘가즈아’를 외치는 분위기로군요.19일 밤 MS는 오픈AI에서 축출된 샘 올트먼을 채용한다고 발표했죠. 투자자들이 이 소식에 열광하면서 20일 주가가 2.05% 뛰었습니다.샘 올트먼은 17일 갑작스레 해고된 뒤 오픈AI로 복귀를 위해 협상을 시도했는데요. 이 제안이 무산되자 MS가 올트먼을 고용해 새로운 첨단 AI 연구팀을 맡기겠다고 한 겁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오픈AI 직원 약 770명 중 700명 이상이 ‘샘 올트먼을 복권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그만두겠다’는 성명에 동참했다는데요. 만약 이런 요구사항이 충족되지 않으면 오픈AI를 떠나 MS가 새로 만들 올트먼 팀에 합류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MS가 이직을 보장해주기로 했다는 점도 공개했죠.MS로서는 샘 올트먼이 오픈AI에서 쫓겨난 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상황인데요. 오픈AI 입장에선 직원 대다수가 실제로 떠나면 회사 자체가 문 닫을 판이죠. 이사회가 직원 성명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심거리입니다.오픈AI 이사회는 여전히 샘 올트먼이 해고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죠. 오픈AI의 임시 CEO를 맡은 에멧 시어는 “이사회는 안전에 대한 의견 불일치 때문에 샘을 해임하지 않았다”고만 설명합니다. 언론에서 추측하는 AI 안전성이냐 수익성이냐 하는 논쟁이 핵심이 아니라는 건데요. 그럼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오픈AI 스토리. 다음엔 또 어떤 반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