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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과 구분되는 통치 행태는 ‘공개주의’다. 김일성, 김정일 체제에서 비밀리에 행해졌던 일들이 김정은 체제에서는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13일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 판결문을 보도한 것도 ‘김정은식 뒤틀린 공개주의’의 한 단면이다. 이례적으로 ‘피고인’ 장성택의 반혁명 계획 진술까지 공개해 일반 주민들도 볼 수 있도록 했다. 독재정권이 자신의 존엄이 손상 받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김정은 집권 2년간 정책 실패의 책임을 장성택에게 돌리면서 △체제 유지 강화를 위한 공포정치를 본격화하는 ‘복합 극약처방’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의 이런 의도가 북한 사회에 얼마나 먹히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단 정권 장악력은 약하고 경제정책 실패는 거듭되며 지도층 부패는 만연한 김정은 체제의 부끄러운 속살이 국제사회에 고스란히 전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1] 張을 ‘1번 동지’ 호칭… 민심 이반 드러나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장성택에 대한 판결을 보도하면서 오래전부터 반역행위를 할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었으나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代)가 바뀌는 시기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판결에 적시된 장성택의 각종 혐의가 2009, 2010년에 집중된 이유다. 하지만 이는 지난 2년간 장성택이 김정은 후계구도가 착근하도록 도왔으나 그 성과가 제대로 안 나오자 그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은 2009년 공개활동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010년 9월 열린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당 중앙위 위원에 선출돼 후계구도를 공식화했다. 통신은 당시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자 장성택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또 김정은의 친필서한을 새긴 비석을 그늘진 구석에 건립하게 했으며 대원수님들(김일성, 김정일)의 모자이크 영상작품과 현지지도 사적비를 건설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장성택 개인의 불만이라기보다는 부족한 자원이 김씨 일가 우상화에 쓰이는 데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발이 반영된 행동으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서 ‘동까모(김일성 동상을 까부수는 모임)’ 형태의 활동이 생겨나고 김일성종합대에서도 반체제 유인물이 발견되는 등 체제 이완 현상이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택의 추종자들이 그를 ‘1번 동지’라고 불렀다는 것도 김정은이 주민들로부터 제대로 추앙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북한에서 ‘1호’ ‘1번’은 김씨 일가 관련 사업을 일컫는 고유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장성택이 “당과 국가 최고 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 총리 자리에 오르려 했다”고 밝힌 점도 주목된다. 이는 당과 군 내부에 장성택의 협조자가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1당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권력 찬탈을 위해서는 내각이 아닌 노동당을 장악하는 것이 필수다. 무력을 쥐고 있는 군대도 반드시 당의 협력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장성택이 맡고 있던 당 행정부 외에도 당과 군을 상대로 협조자 색출이 필요하며 김정은의 대대적인 숙청이 뒤따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2] 화폐개혁 등 경제 실패, 張에 책임 떠넘겨 지난 2년간 드러난 경제정책의 난맥상의 책임도 고스란히 장성택에게 씌워졌다. 통신은 “장성택이 수도(평양) 건설과 관련한 사업체계를 헝클어놓아 건설건재기지를 폐허로 만들다시피 했고 평양시 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말했다. 평양은 북한의 특별시로 자원과 인력이 집중돼 개발이 이뤄져온 곳이다. 김정은 시대에 창전거리에 40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 준공되고 문수물놀이장을 비롯해 곱등어관(돌고래관), 아이스링크 등 과시형 유희시설 건설이 줄을 이었다. 그 과정에서 김정은의 지시대로 시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담당자를 총살하고 해당부대 사령관이 해임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북한이 2009년 11월 김정은 체제 출범을 앞두고 시장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시도했던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도 장성택에게 돌려졌다. 당시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이 정책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살됐다. 하지만 정책실패의 여진이 계속되자 당시 화폐개혁을 배후조종한 장본인이 장성택이라고 몰고 가는 것이다. 또 북-중 무역의 핵심인 무연탄 등 지하자원 수출이 장성택의 심복에게 속아서 많은 빚을 지게 됐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나선경제무역지대 토지를 50년간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나선(나진-선봉)지대는 개성공단과 더불어 사실상 북한에서 유일하게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경제특구다. 하지만 이곳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토지분양이 장성택의 농간이었다고 북한 당국이 주장하면서 특구의 운명도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또 나진항을 축으로 하는 한국 해운사의 물류사업과 나진∼하산을 잇는 러시아 철도 사업의 지분 참여도 불확실성이 높아지게 됐다. ▼ 김정은, 공개주의로 공포정치 극대화… 김정일과 다른 길 ▼[3] “비밀돈창고서 67억 탕진”… 부정부패 만연판결 보도문은 “장성택이 2009년부터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를 심복들에게 유포시켜 자본주의 날라리풍이 우리(북한)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했다”고 밝혔다.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란 음란 영상물을 뜻하는 것이다. 북한 소식통들은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이 음란물 제작에 관여한 혐의로 최근 총살됐다는 소식을 여러 차례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재력가 또는 권력층 사이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음란물이 퍼져 있는 상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도 ‘알판’(CD) 또는 USB 메모리스틱 형태로 한국 드라마가 깊숙이 침투해 있다. 또 북한은 장성택이 1980년대 평양의 광복거리 건설 때부터 걷은 귀금속을 모아왔고 은행에서 거액을 빼내 귀금속을 사들였다고 주장했다. 판결대로라면 국가사업에 쓰일 예산을 개인이 착복해 보석을 사는 데 써버린 심각한 도덕적 해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착복행위가 30년 넘게 진행돼 왔는데 이제야 그 책임을 물었다는 뜻도 된다. 북한 주민 처지에서는 ‘권력자에게는 법 적용도 느슨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알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이다. 판결 보도문은 장성택이 ‘비밀기관’ ‘비밀돈창고’를 만들어놓았으며 2009년 한 해에만 장성택이 탕진한 돈의 규모가 460만 유로(약 67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1년 예산이 60억∼65억 달러(6조3000억∼6조8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진 것을 감안하면 한 나라의 1년 예산 중 1000분의 1이 한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좌지우지됐다는 말이다. [4] 법정진술 상세 소개… 처형 정당성 선전 북한이 이날 장성택의 혐의를 밝히고 재판받는 사진까지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손광주 데일리NK 통일전략연구소장은 “비밀주의를 채택했던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은 젊은 나이에서 비롯된 혈기로 장성택 체포 장면과 법정 진술을 보여주는 공개주의로 차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생전에 ‘조선 인민군에 영광 있으라’는 단 한 문장의 육성 연설을 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태양절) 행사에서 했던 대중연설을 시작으로 공개주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장성택 판결을 전하면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서) 100% 입증되고 피소자에 의해 전적으로 시인됐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공화국 형법 60조(국가전복음모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 점을 확증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8일에는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에게 ‘반당·반혁명 종파행위’ 혐의를 적용하고 모든 직위에서 해제하며 출당시킨다고 공개했다. 8일 내려진 조치가 당적(黨的) 결정이라면 12일에는 법적(法的) 조치가 내려진 셈이다. 북한이 종파주의자에 내려진 제재를 이처럼 소상하게 밝힌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생활 경험 등을 토대로 최소한의 법치주의 흉내를 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 공개는 결국 ‘김정은식 공포정치’의 확대와 강화를 위한 조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은 판결문 공개를 통해 ‘내가 고모부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김정은 체제가 문제인 이유’를 북한 주민에 알리는 꼴이 됐다”며 “공포정치가 강화되는 만큼 북한 주민의 냉소와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동아일보-전문가 ‘장성택 보도’ 긴급 TF 회의 ▼동아일보는 북한의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북한 내부의 상황을 진단하고 전문성과 균형감 있는 보도 방향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전문가들과의 긴급 태스크포스(TF) 회의를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가졌다. 이 회의에는 △손광주 데일리NK 통일정책연구소장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 △동아일보 정치부 박성원 부장, 정용관 부형권 차장, 이정은 기자(통일부 출입) △국제부 주성하 기자(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출신)가 참석했다.}

12일 전격적으로 집행된 장성택의 처형은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북-미, 북-중 등 북한의 대외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측근까지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최고지도자의 통치 스타일이 정책결정 과정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외부 도발을 통해 내부 동요를 잠재워야 할 필요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약해지는 조짐이어서 ‘핵 통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깜깜이’ 남북관계 북한은 판결 보도문에서 장성택이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편승해 정권 붕괴를 획책했다는 점을 죄목 중 하나로 들었다. 한국 미국과 협상하거나 관계 개선을 시도했던 북한 인사들을 벌벌 떨게 할 만한 내용이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국지적 도발을 통한 긴장 조성이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을 단행할 경우 한반도 정세가 더 얼어붙을 가능성도 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장성택 처형 다음 날인 13일 최근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의 방한을 언급하며 “괴뢰패당이 구걸외교로 사면초가의 궁지에 빠져들었다”고 주장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 같은 도발) 예측이 일리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핵개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직접 밝힌 ‘핵과 경제 병진노선’의 양대 축 중 하나다. 2인자를 숙청하고 ‘위대한 영도자’로 올라선 혈기 넘치는 김정은이 자신의 핵심 정책 방향을 뒤집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장성택 숙청 전후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약화되어 가는 조짐이 보인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다. 중국이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북한의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장성택의 숙청이 외교와 상관없는 북한의 내정(內政)이긴 하지만 북-중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중국의 조용한 태도는 이례적”이라며 “김정은 정권 들어 중국의 대북 파워가 줄어드는 추세가 이번에도 일부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상황 전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이른 시간에 안보실에 출근했다가 귀가하지 않고 청와대 인근 모처에서 머무는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통일부는 대변인 성명에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차분한 가운데 만전을 기해 나갈 것”이라며 “동맹국 및 관련 국가들과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정부의 차분하고 면밀한 대응을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와 긴급최고위원회의를 잇달아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나아지지는 못해도 전체적으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1인자의 신변 변화가 없는 한 대외 정책에 큰 변화는 없었다”며 “더구나 남북관계는 이미 경직될 대로 경직된 상태”라고 말했다.○ 북한 특구사업 표류 가능성 전문가들은 장성택이 추진하던 각종 특구와 개발구 프로젝트도 표류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장성택에게 씌운 또 다른 죄목 중 하나는 “나선경제무역지대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투자하고 있는 나선특구의 개발과 관련해 ‘매국행위’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중국을 자극할 여지도 있다. 중국 베이징의 한 대북소식통은 “내각과 당, 군 등 여러 부분에 지장이 발생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며 “(외자 유치를 맡은) 국가경제개발위원회도 조금 기다렸다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베이징 소식통은 “장성택 처형은 김정은이 중국에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의 성격도 있는 듯하다”며 “중국은 상당히 난처해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장성택의 처형과 상관없이 그런 부분이 판결에 거론됐다는 것만으로 밑의 실무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부정적인 영향이 없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선특구와 광물수출 사업은 물론이고 수자원 수출 같은 사업의 담당자들은 다 날아갈 수밖에 없고 이후에도 새로 하겠다는 사람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나선특구는 중국의 필요에 의해 진행되는 부분이 많고 중국 자본이 이미 꽤 투자돼 있다”며 “북-중 관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베이징=고기정 특파원}

‘17일 북한 김정일 추도행사의 연단을 주목하라.’ 북한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2주기를 맞아 준비 중인 추모 행사의 주석단에 어떤 인물들이 서게 될지가 관심이다. 이날 참석자들의 면면은 2인자였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이 이른바 ‘장성택 라인’의 추가 숙청과 대대적인 인사 물갈이로 이어질지를 가늠할 중요한 근거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지도부 내부의 동요를 막기 위해 장성택의 측근들까지 껴안는 이른바 ‘광폭(廣幅) 정치’를 할지, 아니면 핏빛 숙청을 이어가는 ‘광기(狂氣) 정치’를 할지를 판단할 무대이기도 하다. 통일부 당국자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17일 0시에 김정은 지도부가 (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할 때 어떤 인물들이 어떤 자리에 갔는지 확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이날 공개를 앞두고 이미 지금 내부적으로 새로운 인물들이 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보당국은 현재 북한 지도부의 내부 동향과 인사, 조직 개편 등 관련 정보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가장 큰 관심은 장성택의 측근들이 여전히 건재한지이다. 장성택의 숙청을 결정한 8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주석단에는 있었지만 그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 등 간부들이 여전히 얼굴을 드러낼지는 미지수다. 이번 추모행사는 떠오르는 실세가 누구인지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앞으로 김정은에게 더 밀착할 것으로 보이는 인물로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과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 거론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불과 1년이지만 이미 당정군의 핵심 인사 중 상당수가 교체됐기 때문에 이번 주석단의 구성 역시 최소한 절반 이상 바뀔 것”이라며 “당시 주석단 서열 아래쪽이었던 조연준의 순서가 위쪽으로 확 당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치국 주석단 외에도 마원춘, 황병서, 박태성, 김병호, 홍영칠 등 5명의 당 부부장을 비롯한 실무진이 얼마나 지근거리에서 김정은을 보좌하게 될지도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이들 ‘5인방’은 김정은이 장성택 숙청 직전 방문한 백두산지구의 삼지연 혁명유적지에도 동행해 주목받았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이들이 아직 부부장급이기는 해도 조직지도부와 기계공업부 같은 핵심부서의 실무를 맡게 될 차세대 신진세력”이라고 말했다. 남편 장성택의 숙청 전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김경희 당 비서가 어떤 표정으로 어디쯤 서 있게 될지도 전문가들이 꼽는 관전 포인트다. 1년 전 임신으로 부른 배를 안고 검은 상복 차림으로 김정은 옆에 섰던 그의 부인 이설주는 이번에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출신인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반당 세력의 ‘머리’로 지목된 장성택은 쳐내되 나머지 사람들은 큰 죄가 없을 경우 끌어안을 것으로 본다”며 “적을 만들기는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인 만큼 ‘광폭정치’를 하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장성택에게 적용된 죄목들은 체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의 범죄들”이라며 “이를 제대로 정비해야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전방위 숙청 작업이 이미 시작돼 상당 부분 진행됐다”고 말했다. ▼ 행정부 인사권까지… 黨 조직지도부 무소불위 권력 되찾나 ▼장성택에 뺏긴 권한 다시 장악할 듯북한이 김정은 집권 3년차를 맞아 조만간 단행할 것으로 보이는 조직개편 과정에서 노동당의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가 다시 몸집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최근 전격 숙청되면서 행정부의 권한과 기능이 조직지도부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고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조직지도부는 북한 내 모든 당원과 간부들의 정치적 동향은 물론 사생활까지 감시, 보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북한 권력의 피라미드 정점에 있는 고위급 인사 3000여 명의 인사를 결정하기 때문에 북한 내부의 어느 권력기관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막강한 권한을 가져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2007년 행정 부문이 행정부로 이관되고 그 수장으로 장성택이 임명되면서 일부 역할이 분산됐다. 조직지도부는 그 과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등 핵심 기관들에 대한 권한을 행정부로 넘겨야 했다. 이번에 조직지도부와 행정부가 다시 합쳐질 경우 장성택이 쥐고 있던 인사권까지 합쳐 무소불위의 권력을 되찾게 되는 셈이다. 조직지도부가 행정부와 그 수장인 장성택에 대해 보복을 벼르고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2010년부터 이용철과 이제강, 박정순, 우동측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교통사고나 폐암, 자살 등으로 사망한 배후에 장성택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두 기관 사이에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이 계속돼 왔다”며 “장성택의 재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행정부는 현재의 기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 숙청한 이후 이른바 ‘장성택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 숙청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끊이지 않는다. 장성택 최측근들의 추가 처형설 및 망명설과 함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부인 이설주까지도 ‘숙청 리스트’에 올랐다는 풍문이 도는 등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운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장성택 관련자들 귀국 조치 후 조사 중”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1일 장성택의 측근인 이수용 전 주스위스 대사가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합영투자위원장을 지낸 이 전 대사는 스위스에 있을 당시 이철이라는 가명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을 주무르며 ‘금고지기’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수용이 관리하던 비자금 규모는 약 40억 달러(약 4조2020억 원)”라며 “그가 비밀 자금을 놓고 김정은과 대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복수의 대북소식통은 “처형설은 신빙성이 낮다”고 했다. 이수용은 8일 장성택의 제명과 출당 등을 결정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한 모습이 노동신문 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성택 밑에서 비자금 관리업무를 했거나 해외사업을 했던 인사들은 ‘숙청 대상 1순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이날 중국소식통을 인용해 “장성택과 관련된 사람들이 전부 귀국 조치됐고 당 차원에서 전면적인 검열과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장성택의 측근으로 이미 처형된) 장수길이 있던 행정부 내 54국이 월권을 했고 여기서 주도한 이권사업 중 ‘해당화’라는 해외 북한식당들의 비리가 실각 사태의 원인”이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김정은의 이복누이인 김설송과 숨은 실세로 알려진 김설송의 남편 신복남이 숙청을 지휘했다”고 말했다. 한 대북소식통도 “장성택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 대부분이 조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장성택에 대해 성토하는 내용의 ‘반영문’(일종의 소감문)을 쓰게 하는 등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교육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북한 핵개발과 비자금 핵심정보 유출? 한국 정보당국이 1차적으로 주목하는 ‘장성택 라인’의 핵심은 이수용 전 대사와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 등이다. 지 대사의 경우 곧 평양으로 소환될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아직까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11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주최한 신년 리셉션에 참석했다. “박봉주 내각총리와 마찬가지로 숙청의 칼날을 피했다”는 분석과 함께 “아직은 더 지켜볼 상황”이라는 분석이 엇갈린다. 연쇄 숙청의 칼부림을 피하기 위한 측근 망명설도 정보당국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부분이다. 중국에서 망명을 시도 중인 고위급 인사가 핵개발 관련 핵심 문서는 물론이고 비자금 정보도 갖고 있고, 제2경제위원회(군수경제 담당)와 제3경제위원회(김 씨 일가의 비자금 담당)까지 관장한 인물이란 구체적 첩보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핵심 당국자는 “현재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다”며 “사실이라면 은밀하고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특급 작전인데 관련 첩보가 흘러나온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다”고 말했다. 최근 근황이 확인되지 않는 인사들 중에는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도 국내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설주는 10월 15일 러시아 21세기 관현악단 공연에 참석한 것을 마지막으로 약 2개월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11일 일각에서는 ‘이설주도 장성택 라인이고 이들의 각별한 관계가 이번 숙청의 한 원인’이라는 풍문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장성택이 이설주가 활동했던 은하수관현악단의 단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 사생활이 난잡했다는 설과 맞닿아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의 범죄를 나열하면서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가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8월 음란물 제작 혐의 등으로 처형된 은하수 관현악단 단원들은 모두 기관총으로 난사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베이징=고기정 특파원}

북한의 전격적인 ‘장성택 숙청’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유일지배체제가 공고화되는 모양새이지만 권력 구도를 흔들 수 있는 각종 억측과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밑에 잠겨 있던 북한 내부의 동요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확산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북 관계에도 당분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 ‘장성택 라인’의 연쇄 망명 시도 가능성 북-중 접경지역 등지의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장성택의 최측근이 해외로 망명했다는 설이 퍼지고 있다. 북한 탈출을 시도한 고위 인사가 노동당 행정부 소속으로 인민군 상장이라는 식의 구체적인 신상 관련 정보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측근 망명설에 대해 “그런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안보 라인의 한 당국자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는 게 없다”면서도 “피의 숙청이 예고된 상황에서 위협을 느낀 인사가 망명을 시도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장성택의 측근들이 11월 초중순경 평양 보통강 인근에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각에서 파티를 벌이며 “장성택 만세” “만수무강” 등의 구호를 외친 것이 숙청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미 처형된 이용하와 장수길을 비롯해 이 파티에 참석한 장성택의 측근은 25명에 달한다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살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암투가 심화되거나 내부의 중요 기밀들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내부 동요를 우려한 듯 북한도 장성택의 숙청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다. 10일 노동신문에 등장한 주민들은 장성택을 ‘쥐새끼 무리’ ‘인간오작품(불량품)’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은 또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도 강화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만 썼던 ‘위대한 영도자’라는 호칭을 최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북한은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 김정일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에 대해서는 ‘경애하는 원수님’으로 구분해 불러 왔다.○ 온건파 장성택 숙청은 남북 관계에도 악재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의 전자출입체계(RFID) 도입 공사는 11일부터 예정대로 시작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RFID 공사 협의나 군 통신 분야 등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현재로서는 원만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북한의 대남 정책은 더 강경해질 개연성이 크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게재한 전면 사설에서 “장성택 일당은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 책동에 편승한 만고의 역적무리”라며 ‘적대세력’을 언급했다. 북한 매체의 기존 논조로 볼 때 대외적으로 한국이나 미국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내부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당장 급격한 대남 정책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장성택 숙청 이후 후속 조치들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대남 긴장 분위기를 조성할 개연성은 있다”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년에는 미중 관계도 지금보다 더 악화될 개연성이 있어 정부가 대북 전략을 운영할 여지가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2월 3차 핵실험을 반대한 대표적 인물인 장성택이 제거되면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북한 내 브레이크’가 사실상 사라진 점도 남북 관계를 어렵게 만들 요인 중 하나다. 장성택은 당시 “이미 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핵실험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만 강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폈던 것으로 전해져 왔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철중 기자}
러시아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10개월 만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2094호의 이행에 본격적으로 동참했다. 러시아 방송인 보이스오브러시아(VOR)는 2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규정한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이 대통령령은 러시아 국민과 기관, 기업체들이 북한 상품을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금융 거래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러시아는 또 북한 항공기가 핵과 미사일 관련 물품 등 금지 품목을 싣고 있다는 정보가 있을 경우 이 항공기가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거나 자국 내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도록 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이자 북한의 ‘2인자’ 역할을 해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후견인으로서 사실상 섭정을 해온 장성택이 김정은의 집권 2주년을 앞두고 전격 숙청된 만큼 북한의 권력구도가 크게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의 향후 대남, 대외 정책이 더 강경해지는 쪽으로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정보원은 3일 “최근 노동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이 확인됐으며 장성택도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고 국회 서상기 정보위원장 및 정보위원들에게 보고했다. 국정원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1월 하순 북한이 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인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을 공개처형한 이후 장성택 소관 조직과 연계 인물들에 대해서도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장성택은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장성택의 오른팔, 왼팔인 두 명이 공개처형된 이후 장 부위원장이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안보당국 관계자는 “(이용하, 장수길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은 믿을 만한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 사항”이라며 “숙청 범위는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라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성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의 남편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뇌중풍 발병 이후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왔다. 2011년 김정은의 권력승계 이후에는 그의 핵심 후견인이자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북한 보위부가 자신의 심복에 대한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에 들어가는 등 일부에서 견제하는 조짐을 보이자 최근 공개 활동을 자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그의 부인인 김경희의 거취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특별히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장성택의 실각과 관련해 발생할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사상교육을 실시하는 등 내부동요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세상 끝까지 김정은과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내보냈다. 정부는 장성택의 실각이 김정은 지도부 내 핵심권력 간 권력투쟁 과정에서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북한의 내부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경제통’이자 유화파로 알려진 장성택의 숙청 및 이후의 내분으로 대남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도 면밀히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정은 lightee@donga.com·권오혁 기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이자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은 향후 북한의 세력 구도를 뒤흔들 메가톤급 변수다. 김정은을 대신해 사실상 섭정을 해온 ‘2인자’까지 내친 ‘피의 숙청’은 북한 내 권력 지형을 극심하게 요동치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북한의 향후 대남, 대외 행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친인척 척결? ‘2인자’들의 권력 암투? 북한이 장성택을 숙청한 표면적인 이유는 그의 핵심 측근들이 저지른 비리다. 장성택의 심복인 이용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부정부패 등 비리를 저지른 사실을 11월 군 당국이 적발해 ‘반당(反黨) 혐의’로 공개 처형했고, 장성택까지 책임을 물어 쳐낸 것으로 보인다는 게 안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북한의 사법·검찰·공안기관을 모두 지도하는 노동당의 핵심 부서인 행정부는 장성택을 따르는 심복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평양 내 10만 가구 건설 등 비자금 조성이 가능한 대형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부서이기도 하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의 측근 인사들이 단순히 뇌물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나름의 ‘세력’을 형성했기 때문에 처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숙청되면서 당 행정부는 향후 기능이 무력화할 개연성이 크다. 장성택의 전격 해임은 집권 2주년을 앞두고 김정은의 ‘가신그룹’ 정리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사안의 성격이나 비중으로 볼 때 이번 숙청은 김정은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한 결정”이라며 “김정은이 자신의 정적, 아버지 김정일의 공신을 차례로 정리한 이후 친인척 관리에 나선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최근 북한에서 40, 50대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를 중심으로 한 ‘김정은 신진 세력’이 부상하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이 ‘자기 사람들’을 새롭게 심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친인척과 그 세력을 제거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탈북자 출신인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북한의 1인 지배체제가 공고히 됐다는 뚜렷한 반증”이라며 “2인자가 없다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켜 김정은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지도부는 공개 처형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주위로 전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당국 관계자도 “공개 처형 사실이 믿을 만한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2인자’ 자리를 놓고 장성택과 또 다른 핵심 실세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권력투쟁을 벌인 결과라는 관측도 있다. 최룡해는 항일 빨치산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로 ‘혁명 1세대’의 핏줄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아 왔다. 장성택과 최룡해는 지난해 말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해 3차 핵실험 과정에서 견해차를 보이며 충돌했고 이후에도 불협화음이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 숙청’으로 북한의 대내외 행보 흔들 전문가들은 장성택의 실각이 숙청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온 김씨 일가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은 1950, 60년대 연안파 숙청 등으로 권력을 공고화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1997년 ‘심화조 사건’ 등을 지휘하며 숙청의 칼날을 휘둘렀다. 김정은의 경우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에 군부의 ‘(김정일) 운구 4인방’으로 불리던 권력 핵심을 대부분 숙청했다. 군의 최고 실세였던 이영호 총참모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모두 숙청됐거나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고위 인사가 아닌 경우에도 김정은의 직접 지시로 공개 총살형이 집행되는 등 ‘김정은식 공포정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김정은을 보위하는 양대 축 중 하나였던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북한 내부는 크게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당국도 최근 김정은에 대한 절대 충성을 강요하는 사상 교육을 부쩍 강화하는 등 후폭풍을 어떻게 차단할지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신문이 최근 ‘김정은 유일영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세상 끝까지 김정은과 운명을 함께하자’고 촉구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움직임으로 보인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김정은이 장성택이라는 강력한 협조자를 잃은 상황에서 체제 불안정성이 크게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일이 또 다른 권력투쟁으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향후 대남, 대외 정책이 더 강경해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통이던 장성택이 밀려나고 군부의 인사권을 장악한 최룡해가 실세로 권력을 틀어쥐게 되면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선임연구위원은 “내부 동요가 발생하면 내부단속 목적으로 대외 긴장을 높이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며 “한반도 정세가 다시 악화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최근 시도해온 각종 경제개혁 조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지난해 8월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나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경제지대 관리위원회 설립에 합의하는 등 북한의 특구 개발 및 외자 유치를 주도해온 인물로 알려져 왔다. 그런 장성택이 실각한 만큼 북한이 최근 추진해온 경제개발구 설립이나 6·28 개혁 조치 등도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철중 기자}

북한이 평양에 억류한 미국인 메릴 뉴먼 씨(85·사진)가 작성했다는 사죄문을 지난달 30일 공개했다. 북한 매체들은 뉴먼 씨가 호텔로 보이는 장소에서 사죄문에 지장을 찍고 육성으로 이를 읽는 사진과 영상도 내보냈다. 조선중앙통신은 그의 ‘범죄’에 대해 “조국해방전쟁(6·25전쟁) 시기 구월산 일대에서 정탐, 파괴 행위를 벌이던 간첩 및 테러분자와 그 족속들을 찾아내 남조선의 반공화국 모략 단체인 ‘구월산유격군전우회’와 연계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뉴먼 씨가 북한에 남아 있는 전우회 가족의 생사와 연락처를 관광 안내원에게 문의했던 사실을 문제 삼은 것이다. 북한의 사죄문 공개는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의 미국인을 장기 억류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석방 절차를 밟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내 미국의 영사업무를 대리하는 평양 주재 스웨덴 외교관들은 같은 날 양각도국제호텔에서 뉴먼 씨를 면담하고 의약품을 전달했다고 가족들이 1일 밝혔다. 뉴먼 씨가 10월 26일 억류 이후 서방 외교관들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이르면 금주 중 개성공단 전자출입체계(RFID) 구축을 위한 공사가 시작되고 인터넷 연결을 위한 남북 간 후속 실무 논의도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의 오랜 숙제인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와 관련한 실질적 조치 마련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들은 “남북 관계의 실낱같은 ‘생명선’이자 ‘리트머스 시험지’인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한 진전된 조치가 어떻게든 올해 안에 있어야 한다는 데 남북한 당국 모두 공감했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1일 “3통 문제에 침묵하던 북한이 이와 관련된 논의에 다시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라며 “RFID 공사 시작일을 비롯해 인터넷, 휴대전화 연결 등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을 곧 북측과 다시 협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남북한은 지난달 28일 개성공단 공동위 산하 3통 분과위에서 RFID 구축 공사에 합의했다. 9월 북한의 일방적인 회의 연기 이후 두 달 넘게 진전이 없었던 3통 문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된 셈이다. 3통 문제의 해결은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한 핵심적인 선행 조치로 거론돼 왔다. 이는 북한이 외자 유치 목적으로 추진 중인 13개 경제개발구 설립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북한으로서도 그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부도 3통 문제의 실질적 진전 없이 올해를 넘기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8월 개성공단 재가동 합의 시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개성공단’을 강조했던 정부로서는 그나마 개성공단에서라도 발전적 정상화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으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한 해 농사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시점에 발생한 개성공단 입주 기업 직원의 사망 소식이 향후 북한과의 논의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1일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오전 7시 25분경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섬유업체 ‘아트랑’의 직원 추모 씨(54)가 현지 숙소에서 숨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했다. 정부 당국자는 “남측 숙소 내에서 자다가 숨진 추 씨에게서 특별한 외상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아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철중 기자}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국민감정 같은) ‘상징주의’가 아니라 국가안보라는 ‘현실주의’의 차원에서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가 29일 최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움직임과 관련된 동북아 정세의 변화 및 이에 대한 국내 여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외교부 동북아국장 출신인 조 특임교수는 일본에서만 3번을 근무한 일본통이다. 그는 이날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서울사무소에서 10여 명의 주한 일본특파원과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한일 안보 협력’을 주제로 특강 및 토론회를 진행했다. 조 특임교수는 우선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추구하는 보통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올바른 역사인식부터 가져야 한다”며 “인식의 변화가 정책 변화에 걸맞게 균형을 갖추지 않으면 주변국의 경계를 사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철저한 역사 청산과 반성이 없는 집단적 자위권은 반대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일본이 역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고 해서 한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포함한 일본의 정책 변화를 전부 인정할 수 있을지는 좀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핵과 미사일이 핵심 이슈였던 10년 전과 달리 이제는 중국이라는 변수가 동북아 안보 지형을 더 복잡한 방정식으로 만들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등 현안들은 ‘한국의 안보 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청사진에 따라 답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한 일본특파원들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일(對日) 정책과 한국인의 인식 등에 대한 질문을 쏟아 냈다. “더 철저한 역사 인식이라는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 “(필리핀 등) 다른 주변 국가들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찬성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평양 번호판을 단 차를 보면 욕하고 돌을 던지고 싶다. 식량을 걷어 군인과 평양만 먹여 살리고 있다.” 정통한 북한 소식통이 27일 전한 한 북한 주민의 이야기에는 심화되는 북한의 지역 격차와 이로 인해 누적돼 온 주민들의 불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의 모니터링을 위해 방북했던 인사들의 전언은 대부분 화려해진 평양의 밤거리와 활기가 넘치는 도시 풍경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 소식통들은 “수도 평양에만 국한된 외형상의 변화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 지금 북한은 ‘평양 vs 지방‘의 북북(北北) 갈등 평양의 사정이 좋아진 것은 북한 당국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대대적인 도시 정비와 치적 사업을 진행하면서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평양을 세계적인 본보기 도시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문수물놀이장을 비롯한 대규모 위락시설을 잇따라 짓고 지난해 4월 희천발전소(30만 kW 규모)의 전력을 모두 평양으로 우선 송전토록 하는 등 ‘평양 꾸미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관련해 주요한 근거로 거론되는 휴대전화의 경우, 사용자의 60% 이상이 평양시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0여 대의 택시도 대부분이 평양 지역에서 운행되고 있다. 500병상 이상 규모의 종합병원도 절반 이상은 평양에 몰려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평양을 거대한 공사판으로 만들다시피 한 각종 전시성 프로젝트와 우상화 작업에 들어간 5억 달러는 중국산 옥수수 140만 t을 살 수 있는 돈이다. t당 370달러 정도인 곡물 시세로 따졌을 때 북한 전 주민(약 2500만 명)의 5개월 치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평양에만 자금과 물자가 집중되면서 지방은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공통된 전언이라고 대북 소식통들은 말했다. 양강도나 자강도 같은 지방의 경우 하루 1시간의 전력 공급도 차질이 빚어지기 일쑤이고 식량 사정도 열악하다. 이달 방북했던 한 외국인은 “북쪽으로 갈수록 생활 여건이 열악해 신체 발달이 미숙하고 키가 작은 사람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정은조차 “지방에 가면 창피할 정도”라며 평양과 다른 지역 간 격차 심화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 주민들의 불만은 증폭되는 양상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2000만 지방 동포가 200만 명의 평양 시민을 먹여 살린다”, “평양 시민만 김정은의 시민”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김정은을 “꼴꼴이(돼지새끼)”나 “수탈놀음을 하는 죽일 놈”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한 북한 간부는 “주민들의 생활고가 극에 이르다 보니 멀쩡하던 주민들도 모두 도둑질, 강도질을 하고 다닌다”는 말도 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최근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생계를 위한 매관매직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동장(洞長) 같은 말단직은 800달러에, 인민보안부 보안원(남한의 경찰 격)의 자리도 3000달러 정도면 살 수 있다. 김일성종합대의 교수들은 5000원에 불과한 월급으로 버틸 수가 없어 학생들에게서 500달러씩 상납 받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경제 착시효과의 어두운 이면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북한의 경제사정은 일단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제2차 핵실험 이후인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0.9%, ―0.5%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지만 2011년에는 0.8%, 지난해에는 1.3%로 높아졌다. 날씨가 좋아서 농사가 잘됐고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광물 수출의 수익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 ‘밀어내기’ 식으로 확대한 북한 노동자들의 해외 파견도 수익 증대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국제 시세의 변동과 작황 등에 따른 일시적인 수입 증대일 뿐 경제의 근본적인 펀더멘털이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외교 안보 분야의 당국자들은 지적한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도 “북한이 대규모 정치 행사와 김정은의 관심 사업 같은 비생산적 부문에 돈을 집중적으로 쏟아붓고 있어 성장잠재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조짐”이라고 말했다. 인프라 투자나 산업 연관 효과가 큰 기간산업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는 것도 주요한 근거라고 그는 설명했다. 국가정보원과 통일부, 청와대의 당국자들은 이런 북한의 경제 사정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최근 북한의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평양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피상적인 인상 평가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도 “강도 높은 대북 제재가 이어지는데도 지금 같은 자원 배분의 왜곡이 계속된다면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은 불가능하다. 수년 내 경제 붕괴로 이어질 개연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남북 경협 전문가인 유니코텍코리아의 유완영 회장은 “가시적인 변화가 아직은 평양에 한정돼 있지만 최근 ‘13개 경제개발구 신설’ 등 북한식 경제 개혁 시도로 볼 만한 새로운 움직임이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이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이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최근 2년간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와 각종 전시성 사업에만 5억 달러(약 5300억 원)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의 경제성장률 등 경제지표가 다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이런 불필요한 재정 지출 때문에 북한 경제의 왜곡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 경제의 붕괴 가능성’마저 거론한다. 27일 복수의 정통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김정은 일가의 우상화를 위해 전국에 설치한 영생탑 3200개와 모자이크 벽화 400여 개, 평양 만수대에 세운 23m 높이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대형 동상 제작에 쏟아 부은 돈은 약 2억 달러로 추산된다. 또 이른바 ‘주민생활 향상 업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동시다발로 건설 중인 스키장 승마장 목장 등 40여 개의 대형 시설물에는 3억 달러가량이 투입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김정은 체제의 재정 지출은 이렇게 많지만 북한의 수입 추이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총수출의 50%를 차지하는 대중(對中) 광물 수출액은 2010년 5억4000만 달러에서 2011년 14억6000만 달러로 급증했으나 지난해 14억5000만 달러로 제자리걸음을 하더니 올해(1∼9월)도 12억5000만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소식통은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북한의 악화된 경제상황 등 때문에 대중 자원 수출이 어느 정도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해외에 파견한 근로자 4만여 명에게서 얻어내는 수익도 연 1억 달러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무기 밀매로 벌어들이던 수입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급감했다고 대북소식통들은 설명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화려해지는 평양의 외관에 현혹되지 말고 북한의 내부 실상을 좀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도 최근 북한의 경제사정이 호전되고 있다는 일부 방북 인사의 전언을 보고받은 뒤 정확한 실상 파악을 위해 북한 지도부의 수입 및 지출 현황과 규모 추이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북한이 지금처럼 과도하게 재원을 낭비하면 경제의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9월 북한에서 최초로 온전한 상태로 반출돼 국내로 봉환된 국군포로의 유해가 유전자(DNA) 감식 결과 유족의 주장대로 국군포로 손동식 씨(1925년생)인 것이 공식 확인됐다. 손 씨의 딸인 손명화 탈북민복지연합회장은 22일 이같이 밝히고 “최근 국방부로부터 유전자 감식 결과 통보서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북한 내 친척과 지인들을 통해 아버지의 유해를 중국으로 반출한 뒤 지난달 국내로 봉환했다. 유골은 이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옮겨져 DNA 검사를 비롯한 확인 절차를 밟아왔다. 국방부의 최종 검사 결과가 나옴에 따라 손 씨의 유해는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연평도 포격 사건 3주년을 하루 앞둔 22일 북한이 ‘청와대 불바다’까지 거론하며 대남 위협 수위를 높였다. 이에 한국군 당국은 북한의 기습 도발을 상정한 국지 도발 대비 훈련으로 맞서면서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말이 아닌 단호한 행동으로 도발 원점과 지원·지휘세력까지 가차 없이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북한 인민군 서남전선사령부는 이날 대변인 담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3년 전에는 보복의 불세례가 연평도에 국한됐지만 이번에는 청와대를 비롯한 괴뢰들의 모든 본거지가 타격 대상에 속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심지어 “일단 무모한 도발이 재발된다면 연평도 불바다가 청와대 불바다로, 통일대전의 불바다로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군 당국은 육해공군 전력이 참가하는 북한의 국지 도발 대비 훈련을 이날 실시했다. 훈련은 북한군이 서북도서 북쪽 개머리 지역에서 연평도를 향해 해안포와 방사포로 기습 포격을 하자 군이 K-9 자주포와 KF-16 전투기, 해군 함정 등 육해공 합동 전력으로 적의 도발 원점과 지원·지휘세력을 타격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군 관계자는 “적 도발 시 최단 시간 내에 서북도서와 서해 내륙지역의 북한군 해안포 및 장사정포 부대와 지휘부 시설 등 100여 곳의 표적에 집중 포격을 쏟아붓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는 갱도에 은폐된 북한군 해안포를 정밀 타격하기 위해 올해 5월 실전 배치한 스파이크 미사일의 시험 발사 성공 장면을 이날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서방사 관계자는 “스파이크 미사일이 해상에 설치된 가로 3.2m, 세로 2.5m 크기의 표적을 정확히 명중시켰다”고 말했다. 통일부도 이날 대변인 성명을 내고 “북한이 대남 비방 중상과 반정부 선동을 계속하면서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조장하려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중앙위원회가 20일 “전교조와 전공노, 자주민보 사수 투쟁에 총궐기해 나서야 한다”고 선동한 것과 관련해 “정부는 북한의 어떠한 정치 개입 시도에도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주민보는 종북 성향 논란으로 이달 초 폐간 결정이 내려진 인터넷 매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남북한이 개성 만월대(고려왕궁 터)의 공동 발굴조사를 재개한다. 이 공동조사는 2007년 시작됐으나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중단됐다. 통일부는 개성 만월대의 남북 공동 발굴조사사업을 위해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남측 관계자 9명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21일 밝혔다. 박근혜 정부에서 종교 및 체육행사 외에 문화재와 관련해 남측 인원이 방북하는 건 처음이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기광서 기획총괄위원장 등 9명은 22일 오전 개성에 들어가 현장조사 및 북측과의 협의를 진행한 뒤 당일 저녁 돌아올 예정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민족공동문화유산 보존 사업의 의미를 감안해 방북을 승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월대 터에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발굴하기로 한 지역(3만3000m²) 중 1만 m²가량이 진행된 상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10월 초 대남 공작부서에 “박근혜 정부에 타격을 줄 선전전을 확대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20일 “최근 대남기구는 물론이고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의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대남 비방을 쏟아 내고 있다. 김정은이 선전전을 직접 지시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대남 선전전 강화를 지시한 이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도 대남공작 담당자들에게 ‘남한의 정권 퇴진 투쟁을 전개하고 이를 위한 야권 연대를 강화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내려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들어 비난하면서 ‘유신독재 부활’ 등과 같은 언급을 반복하고 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중국 남부 국경도시인 쿤밍(昆明)에서 탈북자 15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17일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이들은 15일 쿤밍에서 동남아의 한 국가로 가는 버스를 타려다 검거됐다. 올 들어 외부로 알려진 탈북자 검거 사례 중 가장 큰 규모다. 문제는 탈북자들을 체포한 공안이 쿤밍을 관할하는 윈난(雲南) 성 소속이 아닌 북-중 접경지역을 관할하는 랴오닝(遼寧) 성 소속이란 점이다. 이들 공안은 정복이 아닌 사복 차림이었다고 한다. 랴오닝 성 공안이 대륙을 종단해 따라와 국경을 넘기 직전 이들을 체포한 것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탈북 루트와 협조자를 색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탈북자 검거 소식은 탈북지원단체들이 중국 내 지인들을 통해 이들의 구명을 시도하다가 “랴오닝 성 공안이 체포해 곤란하다”는 답변을 받는 과정에서 파악됐다. 쿤밍은 탈북자들이 동남아 국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경유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번에 검거된 탈북자가 15명이나 되는 것도 각기 다른 곳에서 출발한 이들이 쿤밍에서 합류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단체 관계자는 “국경을 넘는 비용을 아끼려 모였다가 화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6월 탈북 고아 9명이 라오스에서 압송돼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지기 전 중간 기착한 곳도 쿤밍이었다. 이번에 검거된 탈북자들의 성별과 연령, 출신 지역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가족단위 탈북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비춰볼 때 미성년자, 영유아 등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탈북지원단체들은 중국이 국군포로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탈북자를 검거한 뒤 풀어준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국제적으로 여론을 환기시켜 중국에 적극적인 외교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때마침 중국은 12일 임기 3년인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에 선출됐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올해 강제북송과 처벌 등 탈북자 문제 전반을 다루는 북한인권조사위(COI)를 설치한 곳이다. 탈북단체 관계자는 “인권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사국이 된 중국이 인권탄압국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탈북자 문제에 전향적 조치를 취할 여지가 있다”며 “더구나 한국은 이달부터 유엔난민기구(UNHCR) 집행이사회 의장을 맡게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공조해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가 조성된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의장직 수임을 결정하면서 탈북자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해줄 것을 중국에 공식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북한반인도철폐국제연대(ICNK)의 권은경 팀장은 “탈북자 처우를 비롯한 북한 인권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고 실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라며 “중국이 이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정부가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숭호 shcho@donga.com·이정은 기자}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최근 속도를 내던 중국의 중재 시도가 사실상 실패하면서 올해 안에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 테이블은 마련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 중국 등 한반도 관련 주요국들 사이의 물밑 조율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올해 6자회담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9월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방미에 이어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10월 말 미국, 11월 초 북한을 잇따라 방문하며 6자회담 재개에 자신감을 보일 때만 해도 “연말에는 뭔가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북한의 핵능력 증강을 언제까지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정치적 부담감이 서로 큰 만큼 일단 대화 재개를 위한 논의는 본격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이 의욕을 보이며 잰걸음을 했음에도 한미일 3국이 중국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하면서 모멘텀이 급속히 상실되는 분위기다. 17일 외교안보 분야의 당국자들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과 한미 양쪽 입장과 요구사항 등을 고려해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중재안을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부적인 내용들까지 포함시키다 보니 분량이 상당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모라토리엄, 영변 핵시설의 가동 중단 같은 ‘비핵화 사전조치’에 대해 기존의 태도를 고수했고 결국 한미일 3국은 “수용하기에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고 결론 내렸다. 외교부 핵심당국자는 “가능성이 0%라고는 말 못하지만 올해 안에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회담 기간에는 북한의 핵능력이 더 고도화되지 않도록 차단할 수 있도록 틀을 잘 짜야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의 중요한 기둥”이라며 “북한의 말만으로는 안 되고 실제 행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도 15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과 중국의 6자회담 재개 주장에 대해 “그들(북한)도 자신들이 (회담 재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것”이라면서 “우리의 입장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에 도착한 양제츠(楊潔지)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18일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을 만나고,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곧 중국을 방문해 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지만 여기서도 논의가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서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는 있지만 북한 문제를 해결할 중재력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라며 “북한이 더 전향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당분간 6자회담의 재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다만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 의사를 보이는 건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방중 가능성도 주목할 부분이다. 내년 상반기쯤 중국이 김정은의 방문 허용과 대북 투자를 조건으로 북한을 설득하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여 비핵화 사전조치에 응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 군부 소장파인 서홍찬 상장(한국의 중장)이 국방부 차관 격인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에 임명됐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인민군 제354호 식료공장 시찰을 보도하면서 그를 수행한 서홍찬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으로 소개했다. 이번 인사는 8월 26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서홍찬은 2007년 4월 소장으로 진급했고 이후 2년 만인 2009년에 중장으로 승진하면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대의원에 오르는 등 김정은 체제의 핵심 군부 인물로 급부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