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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2일 오후 7시 40분경 한명수 씨가 세상을 떠났다. 나이 31세. 교통사고였다. 경기 평택시 안중읍 덕우리의 한 농장 앞 공터에서 후진하던 1t 트럭이 바닥에 누워 있던 한 씨를 그대로 치고 지나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다. 관할 경찰서는 단순 사고사로 처리했다. 부검도 하지 않았다. 한 씨의 시체는 그가 일하던 인력사무소 사장 A 씨(당시 41세)에게 인계돼 사흘 만에 화장됐다. ‘바보’라고 불렸던 그의 죽음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8억 원이 넘는 사망보험금 “이상하단 말이야.” 한 씨가 사망한 지 보름 후 사건이 일어난 농장을 둘러보던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정창호 경사(당시 41세·현 경기 광주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위)가 중얼거렸다. 당직 근무를 마치자마자 평택으로 차를 몰고 내려온 그였다. 사고를 낸 B 씨(40)가 가로등이나 별다른 조명시설도 없는 농장에서 왜 굳이 후진으로 주차를 시도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농장 앞 공터는 트럭 전면으로 들어가 차를 세운 뒤 그대로 다시 차를 돌려서 나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었다. 의심스러웠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보험금’이라는 세 글자가 스쳤다. 숨진 한 씨는 두 개의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2006년 4월 4일과 12월 8일에 가입한 이 두 보험의 월 보험료는 총 32만5400원. A 씨가 운영하는 인력사무소에서 청소, 잔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하며 일정한 수입 없이 살아온 한 씨에게는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알아보니 보험료는 A 씨가 대신 납부해주고 있었다. A 씨는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자신이나 가족들 명의로 가입한 보험의 보험료보다 많은 금액을 한 씨의 보험료로 내고 있었다. 그리고 4월에 가입한 보험은 그해 5월에, 12월에 가입한 보험은 다음 해 3월에 보험금 수령자가 A 씨로 변경됐다. 한 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받게 되는 사망보험금도 8억 원이 넘었다. 교통재해사망특약이 최고 한도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한 씨가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은 사망을 전제로 하는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 수술, 입원 등 치료비도 함께 보상받을 수 있는 특약을 주로 설정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누군가를 죽여 보험금을 타낼 속셈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보험금 살인’에서는 사망보험금을 최대한 받아낼 수 있도록 특약을 구성한다. 실제 올해 3월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누리마루 선착장에서 발생한 보험금 살인 사건의 경우 남편은 부인을 살해하기 3개월 전 보험을 갱신하며 사망보험금을 대폭 높이는 특약을 넣어 모두 11억2000여만 원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함께 타고 있던 차량을 바다에 빠뜨려 아내를 살해한 뒤 운전 미숙으로 인한 차량 추락사로 위장하려 했다. 또 범행에 앞서 보험금 수령자를 자신들로 변경해 놓는 특징도 있다.“시신이 화장돼 증거가 없다” 다른 실마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왔다.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관할 소방서를 찾아 근무일지, 최초 신고 내용 등을 확인하던 정 경사에게 119 구급대원 한 명이 “직접 찍었다”며 사진 다섯 장을 건넸다. 사진 속 한 씨의 배 위에는 자로 잰 듯이 정확히 심장 부근을 지나간 트럭의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눈 주위가 부어 있었고 눈꺼풀의 출혈, 안면 울혈도 보였다. 질식사에서 관찰되는 특징이었다. 누군가 미리 한 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차 사고로 위장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시신이 이송됐던 안중 백병원에는 한 씨의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가 남아 있었다. 정 경사는 CT를 들고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는 “한 씨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1t 트럭이 배 부위를 밟고 지나갔다면 복부 손상으로 다량의 피가 고여 있어야 한다”며 “CT 결과에는 복부 출혈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과 CT 결과만으로 사인을 결론 내릴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신이 화장됐다.’ 보험금 살인을 조사하는 경찰이 맞닥뜨리게 되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다. 2010년 인천에서 발생한 이른바 ‘산낙지 살인사건’의 피고인에 대한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린 것도 근본적으로는 피해자의 시신이 사망 이틀 후 화장돼 직접적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올해 4월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산낙지를 먹다 숨이 막혀 숨진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32)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심폐기능이 정지됐을 당시 수사기관의 조사나 부검이 이뤄졌으면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있었는데 경찰은 타살 의혹이 없다고 보고 조사를 하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김 씨 진술 외에는 사망 원인을 밝힐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보험금 살인의 범인은 대부분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다. 처음부터 피해자가 보험금 수령자로 자신을 지정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이 있어야만 범행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험금 살인의 범인은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간직하고 있는 시신이 빠르게 처리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상당수의 보험금 살인에서 시신이 빨리 화장되는 이유다.수상한 통화 증거가 더 필요했다. 정 경사는 평택의 한 여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주변 탐문에 나섰다. 한 씨를 아는 사람들은 “예전에 흔히 동네에서 볼 수 있었던 ‘바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 씨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찾아갔다. 한 씨의 생활기록부에는 ‘부모가 일찍 죽었다’ ‘지능이 떨어지고 글씨를 못 쓴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인력사무소 사장 A 씨의 휴대전화 사용 기록도 살폈다. 사건이 발생한 날 오후 2시 30분경 인근의 다방 여종업원에게 전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여종업원은 정 경사에게 “A 씨가 그날 농장으로 칡즙을 배달시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A 씨는 한 씨와 여종업원을 데리고 충남 아산만 방조제 인근의 조개구이 집에 가 소주 3병을 나눠 마셨다. 술자리는 다시 평택의 한 식당으로 이어졌고, 이곳에서 세 사람은 소주 4병을 마셨다. 이후 오후 7시경 A 씨는 한 씨를 농장에 내려주고 여종업원만 데리고 포장마차로 가 소주 3병을 더 마셨다. “A 씨가 함께 술을 마시다 갑자기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얼굴이 붉어지면서 황급히 나가더라고요.”(여종업원) 휴대전화 기록을 뒤졌다. 사고를 낸 B 씨와의 통화였다. 두 사람의 공모 정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정 경사는 바로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해 두 사람을 체포했다. B 씨는 “A 씨가 보험금을 받아 내 빚 6000만 원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다. 사고를 가장해 한 씨를 살해하기로 하고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고 자백했다. 현장검증이 이뤄지던 날 정 경사는 한 씨의 넋을 위로하며 그가 잠든 공터에 소주 한 잔을 따라 명태포와 함께 올려놨다. A 씨가 보험회사에 한 씨의 사망보험금을 청구한 날짜는 2008년 5월 2일. 한 씨가 사망한 지 20일 만이었다. 보험금 살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보험금 청구 시점이 빠르다는 것이다.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산낙지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 씨에 대해 의심 가는 이유 중 하나도 보험금 청구 시점이다. 피해자는 2010년 5월 5일 사망했다. 김 씨는 8일 뒤에 보험금을 청구해 7월 23일 자신 명의의 계좌로 2억51만 원을 송금 받았다.징역 20년, 그리고 15년 다음 해 12월 24일 대법원은 A 씨에 대해 징역 20년, B 씨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확정했다. 3심까지 이어지는 재판 과정에서 두 사람의 변호인은 한 씨의 살인 혐의를 뒷받침할 직접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 형성돼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증거에 의할 수도 있고 이때 간접증거는 모든 관점에서 상호 관련시켜 종합적으로 평가해 모순 없는 논증을 거쳐야 한다”며 경찰이 수집한 간접증거로 인정되는 사실들 사이에 모순이 없는 만큼 살인 등에 대한 두 사람의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보험금 살인에서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A 씨는 한 씨를 죽이기 8개월 전에도 차에 한 씨를 태우고 가다 조수석 쪽으로 다리 교각을 들이받아 살인미수 혐의로 함께 처벌됐다. 한 씨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지만 법적으로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지도 않았다. A 씨가 들고 다니던 명함에는 ‘모 장애인협회 평택시 안중지구 소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확인한 결과 해당 장애인협회는 없는 단체였다. 처음부터 장애인 단체를 운영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한 씨를 데리고 있었던 A 씨는 재판이 끝나는 날까지도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박희창·박훈상 기자 ramblas@donga.com}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사진)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300호 회원이 됐다. 이 회장은 12일 서울 중구 정동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이동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에게 1억 원을 기부하고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했다. 산악인 최초의 아너 회원이 된 이 회장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동료와 함께 호흡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소규모 학원 영어강사 김모 씨(31·여)는 ‘반드시 의사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 씨는 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7명의 의사를 소개받았지만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고 2010년 8번째 만난 사람이 서울 강남지역 대형종합병원 의사 A 씨다. A 씨 집에선 김 씨에게 결혼 지참금으로 12억 원을 요구했다. 의사와 꼭 결혼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김 씨는 중견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졸라 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2011년 결혼한 부부는 1년여 만에 이혼했다. 12억 원으로 병원을 개업한 남편이 계속해서 병원 투자 비용을 처가에 요구하자 불화가 생긴 것.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소위 ‘사’자 전문직 사위를 맞으려면 아파트, 자가용, 개업사무실 등 ‘열쇠 3개’와 밍크코트, 최고급 예물 등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릇된 결혼 예단 문화가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최근에는 ‘현금 거래’ 방식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어려운 형편(개천)에서 출세했다는 뜻의 ‘개룡남’을 둔 집에선 단박에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듯 노골적으로 거액의 현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30대 B 씨는 올해 초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또래 여성 C 씨를 만났다. 명문대를 나와 사법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B 씨는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진 빚 8억 원을 한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신붓감을 물색했다. 부모가 B 씨에게 그런 요구를 하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마침내 빚 8억 원을 갚아주고 지참금 3억 원까지 챙겨주는 조건에 응한 C 씨와 올봄 결혼했다. 과거에는 중매를 전문으로 하는 ‘뚜쟁이’가 중간에서 결혼 지참금을 조정했다. 복수의 결혼정보업체에 따르면 과거 뚜쟁이들은 지참금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았기 때문에 신랑 쪽엔 ‘더 받으라’, 신부 쪽엔 ‘더 챙겨줘야 한다’고 부추겼지만 신랑 쪽과 신부 쪽이 직접 마주치지는 않아 얼굴 붉힐 일이 적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정보업체가 자리 잡은 요즘에는 양가가 직접 지참금 액수를 조정하다 보니 분쟁이 더 늘어난다는 게 결혼정보업계의 설명이다. 치과의사 아들을 둔 예비 시어머니가 신부 어머니와 합의해 억대 결혼 지참금을 받고선 이유 없이 결혼을 미루다가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일부 전문직 남성들은 결혼 지참금 요구를 당연시하고 같은 직종의 또래들과 지참금 액수에 대해 상의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한 의사는 의사만 가입이 가능한 비공개 커뮤니티에 “지참금 2억 대기업녀 vs 무일푼 초등교사”란 글을 올렸다. 다른 조건을 제외하고 경제적인 면만 고려했을 때 누가 좋을까란 질문이었다. 동료 의사들은 줄줄이 댓글을 달며 관심을 보였다. ‘목돈부터 챙기라’는 식의 노골적인 충고까지 나왔다. 이 커뮤니티에는 ‘지참금 받는 방법’이란 제목으로 지참금으로 받을 아파트 명의를 누구로 할지, 3억∼4억 원이 적당할 듯한데 통장으로 받아야 할지 등을 묻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연봉 1억 원당 지참금 15억 원’을 주장하는 셈법이 나오기도 했다. 지참금 관련 글엔 “뼈 빠지게 일하고 아내의 현금인출기(ATM)로 살 수 없으니 받을 건 받자”라는 식의 댓글도 여러 개 달렸다. 로스쿨 도입의 영향으로 변호사의 인기는 다소 줄고 있다. 경기불황 속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사’자보단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은 2세들이 인기 배우자감으로 등장하고 있다. 차일호 방배결혼정보회사 회장은 “부모로부터 부동산을 물려받아 일에 얽매이지 않고 건물임대수입으로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부잣집 자식이 변호사보다 인기가 높다”며 “변호사 수가 크게 는 뒤로는 먼저 10대 대형 로펌 소속인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혼소송 전문 김채영 변호사는 “결혼 지참금을 주고받는 걸 문서로 약속했다면 계약 자체는 유효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상규에 반하는 권리 남용에 해당돼 법적 효력을 잃을 수 있다”며 “지참금이 전제조건으로 깔린 결혼은 결국 서로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법적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박훈상·김성모 기자 tigermask@donga.com}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6·25전쟁 참전용사 고 김찬중 이병 묘역에는 60여 년간 가족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가족들은 이곳에 김 이병이 묻혀 있는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바친 군인의 행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옥 할머니(70)의 아버지 김 이병은 “나라가 위급한데 나만 살 수 없다”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에 입대했다. 젊은 아내가 부둥켜안으며 말리고,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친구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을 떠나는 뒷모습이 김 할머니가 일곱 살 때 본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아버지가 떠나고 한 달여 뒤 어머니는 폭격으로 숨졌다. 김 할머니는 “당시 하늘 위로 전투기가 ‘쌕쌕’거리며 무섭게 날아다녔다”며 “어머니가 폭격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어른들께 들었다”고 기억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조부모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피란길을 떠났다. 세 살 터울인 남동생은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 죽었다. 짧은 순간에 전쟁고아가 된 할머니는 친척집을 오가며 컸다. 아버지와 함께 입대했던 친구는 살아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전투 중에 죽었다.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에 갖은 고생을 하며 살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도 희미해졌다”며 “어머니와 남매를 두고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휴전 뒤 당시 국방부는 김 이병이 6·25전쟁에서 전사했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 모셨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 몰라 제사도 지내지 못했다. 할머니도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는 유해도 수습하지 못한 미안함이 더 커졌다. 8년 전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전사자 유해를 찾아주는 국방부 유해발굴사업에 신청했다. 오매불망 아버지 소식을 기다렸지만 매년 “아버지 유해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찾아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현충일을 앞둔 이달 초 할머니는 아버지의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가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기념공원에 안장된 카투사의 유가족을 초청하려고 수소문하던 중 할머니 연락처를 찾은 것. 육군으로 입대한 줄 알았던 아버지는 미2사단 소속 카투사로 입대해 1950년 9월 낙동강 전투 때 전사한 뒤 이곳에 안장돼 있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부산에 모셔놓고 60년 동안 왜 안 가르쳐 줬느냐”며 오열했다. 할머니뿐 아니라 카투사 고 반봉영 씨의 아들 반종수 씨(75)도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 모셔왔던 아버지가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가보훈처와 국방부가 국군 전사자에 대한 관리를 허술하게 한 탓이었다. 정부는 전쟁 직후 카투사 전사자 36명이 유엔이 관리하는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는데도 유가족에게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통보하고 60년 동안 확인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보훈처는 김 할머니 사례를 알게 된 뒤 이곳에 묻힌 카투사 중 무명용사 5명을 제외하고 나머지에 대해 유가족이 있는지 찾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카투사 유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벌어진 일로 앞으로 관리 주체가 달라 보훈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없도록 하겠다”며 “국가유공자에 미등록된 카투사 전사자의 유족을 찾아 하루빨리 예우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충일인 6일 김 할머니는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60여 년 만에 첫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대구 여대생 살해범 조모 씨(24)가 시민의 발인 지하철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해 왔는데도 그가 소속된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조 씨의 성범죄 전과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공익근무요원은 시민 안전 등과 직결된 분야에서 직접 시민을 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속 기관조차 범죄 전과를 모를 정도로 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3일 “조 씨를 모집한 병무청에선 공익요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밖에 알려주지 않았다”며 “조 씨가 성범죄자인 사실을 몰랐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2011년 1월 울산 중구에서 16세 미만 여자 청소년을 강제 추행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과 함께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명령 3년 등을 선고받았다. 현행 병역법상 6개월 이상 1년 6개월 미만의 징역·금고를 선고받거나 1년 이상 징역·금고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공익요원 대상자인 보충역으로 분류된다. 조 씨는 지난해 8월부터 여성과 아동이 많이 왕래하는 지하철역에서 근무했다. 지하철 공익요원은 승하차 안전관리 지도를 비롯해 지하철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추행 예방 등 치안활동도 보조한다.○ 해마다 늘어나는 ‘공익 범죄’ 공익요원의 범죄와 일탈 행위는 계속 늘고 있다. 1월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각종 범죄 행위로 구속된 공익요원은 2010년 94명에서 2011년 102명, 2012년 1∼9월 89명으로 증가했다. 강간으로도 2010년 8명, 2011년 11명이 구속됐다. 근무 실태도 엉망이었다. 복무이탈, 근무명령 위반자가 2010년 2597명에서 2011년 3068명으로 늘었다. 올 4월 30일 기준 공익요원은 4만9070명으로 8700여 개 기관, 근무지 2만여 곳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빌딩에서 전 여자친구 A 씨와 다투다 뇌사 상태에 빠뜨린 김모 씨(21)도 강북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공익요원이었다. 김 씨는 공익 복무 중이던 지난해 9월에도 A 씨와 다퉈 경찰에 폭행 혐의로 입건되는 등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김 씨 입건 사실을 김 씨의 관리감독기관인 강북구에 알려주지 않았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한 달에 한 번 면담하지만 여자친구 고민이 있는지 몰랐다”며 “지난해 경찰에 입건된 것도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과 시간에 근무지에서 범죄를 저지른 공익요원도 있다. 전북 군산시의 한 면사무소에서 민원인들의 신분증 사본을 훔쳐 대포폰을 개통해 판매한 혐의(사기 등)로 전 공익요원 김모 씨(30)가 지난달 20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김 씨는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6월부터 두 달여 동안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휴대전화로 민원인들의 신분증 사본을 촬영하거나 서류를 훔쳐냈다.○ 감독 사각지대 공익요원 공익요원은 군인도 공무원도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복무기관에서 근무를 지휘·감독하지만 징계는 병무청이 담당한다. 현재 공익요원과 함께 일하는 한 공무원은 “현역병 근무에 적합하지 않아 보충역 판정을 받았는데도 정작 이들에 대한 관리는 부족하다”며 “전반적인 관리는 공익요원을 뽑은 병무청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법상 공익요원의 1차 관리 책임은 복무기관의 장이 지도록 돼 있다”고 답했다. 병무청은 공익요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해 복무지도관을 두고 있다. 모두 77명으로 1인당 공익요원 637명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박효선 청주대 군사학과 교수는 “성범죄 등 위험한 전과가 있는 공익요원이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에 배치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일괄적으로 출퇴근할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함께 생활하도록 하는 등 현역병에 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박훈상·박희창 기자 tigermask@donga.com}
건설업체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직 시절 10여 차례에 걸쳐 원 전 원장에게 고가의 선물을 건넨 의혹을 검찰이 포착하고 건설사를 압수수색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담당하는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는 별도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여환섭)는 지난주 서울 중구에 있는 H건설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또 검찰은 이 건설사 대표 H 씨(62)도 불러 원 전 원장에게 선물을 건넸는지, 건넸다면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회사가 원 전 원장에게 공사 수주 등에 도움을 달라는 청탁과 함께 선물을 건넨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회사가 수백억 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 회사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에는 상당량의 순금을 포함해 페라가모 남성용 손가방과 여성용 핸드백, 산삼을 비롯한 고가의 건강식품 등 수천만 원 상당의 선물을 원 전 원장에게 건넸다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H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친분관계에 따라 선물을 건넸을 뿐 대가성은 없다. 돈은 건네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H 씨에 대해 조만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H건설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의 하청을 여러 건 따냈다. H건설은 2010년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이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건설공사에 참여했다. 삼척그린파워발전소 대비공사를 수주한 D중공업 컨소시엄으로부터 2011년 2월 이 공사의 일부인 2공구 용지 정지 공사를 하청받은 것. 당시 계약금액은 173억1000만 원이었다. 2010년 12월 기준 H건설의 총자산이 79억9800여만 원이었던 걸 감안할 때 상당히 큰 규모의 계약이었다. 당시 H건설은 D중공업 컨소시엄의 협력업체가 아니었는데도 하도급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H건설은 토목공사 초창기에 드는 거액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경영이 악화돼 지난해 11월 말 폐업했다. 검찰은 한국남부발전 이모 대표를 최근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H건설은 한국전력의 또 다른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이 발주한 당진화력발전소 9·10호기 토건공사에 지난해 4월 하청업체로 들어가려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에 거절당하기도 했다. 본보 취재팀은 당시 한국동서발전이 공문을 보내 H건설을 하청업체로 추천한 사실을 확인했다. 삼성물산 측은 H건설이 공사를 맡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이길구 당시 한국동서발전 전 사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H건설의 H 대표가 하청업체를 맡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 선에서 거절했다”며 “삼성물산에 공문을 보낸 적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이어 “H 대표와 원 전 원장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어 보였지만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H건설은 행정복합중심도시건설청(행복청)이 발주한 ‘정안 나들목∼세종시’ 도로 건설에도 참여했다가 공사 도중 도산하면서 굴착기, 덤프트럭, 포장장비 등에 대한 사용대금 2억500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2008년엔 대전의 상징건물이었던 ‘중앙데파트’의 폭파·해체 공사를 주도했다. 취재팀이 4월 말경 서울 중구 남산로에 있는 H건설 사무실을 찾았을 때 주소지는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 대신 그 옆에 조그마한 가건물이 한 채 있었다. 사무실을 홀로 지키던 직원 A 씨는 “삼척그린파워발전소 대비공사 2공구 공사가 H건설에 독이 됐다고 들었다. 규모가 작은 회사가 큰 공사를 맡았으니 무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이 H건설 주소로 등록된 경기 파주시의 또 다른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텅 비어 있었다.조동주·박훈상·최창봉 기자 djc@donga.com}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신성식)는 28일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성적조작 등 입학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영훈국제중(서울 강북구 미아동)과 이 학교 관계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3시 반경부터 약 5시간 30분 동안 영훈국제중에 검찰 수사관 20여 명을 보내 입학비리와 관련된 각종 서류와 컴퓨터 자료 등을 확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3월부터 한 달간 영훈국제중과 학교법인을 종합 감사해 비리사실을 적발하고 학교 관계자를 20일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감사에서 교감과 입학관리부장, 교무부장 등이 주도해 특정 학생을 합격시키거나 불합격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중부경찰서가 CJ경찰서인가?’ 경찰이 이재현 CJ그룹 회장 빌라 절도미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취재하면서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경찰은 27일 “22일 발생한 사건 장소는 이 회장 집이 아니다”고 했다가 10여 분 만에 “맞다”고 번복했다. 경찰의 말 바꾸기는 “비자금 의혹에 휘말린 CJ가 또 한 번 구설에 오르는 일을 경찰이 나서서 막았다”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정말 이 회장 집에 도둑이 든 걸 몰랐다”는 중부경찰서 해명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22일 오후 10시경 조모 씨(67)는 서울 중구 장충동 이 회장 빌라에 침입했다. 조 씨는 “술을 마셨더니 옛날에 절도했던 기억이 나 장충동을 찾았다가 낮은 철문이 보여 뛰어넘었다”고 했다. 담을 넘은 조 씨는 곧 빌라 경비원에게 발각돼 옆집 담장을 넘다가 5m 아래로 추락해 검거됐다. 경찰의 해명에 따르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조 씨가 침입한 집이 이 회장 빌라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조 씨가 추락한 빌라 입구에는 ‘OO레지던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어 행인도 누구나 이 빌라 이름을 알 수 있었지만 경찰 보고서에는 엉뚱하게 ‘××레지던스’라고 기재됐다. ‘××레지던스’라는 이름의 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은 피해자 이름을 집주인인 이 회장 대신 경비원 이름을 적어 놨다. 조 씨가 추락한 이 회장 집 옆 빌라의 지번주소는 △△6-1번지다. 하지만 경찰은 △△7번지라고 엉뚱한 주소를 적었다. 경찰의 허술한 대처인지 ‘CJ 감춰주기’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건이 알려진 27일 오후 2시경. 김도열 중부서 형사과장은 언론의 확인 요청이 들어오자 “이 회장 집이 아니다. 이 회장 집 절도 보도는 오보”라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는 나중에 거짓말이 문제되자 “장충파출소에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하길래 언론에도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과장은 “파출소에서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거짓말한 꼴이 됐다”며 “일부러 이 회장 집을 감출 이유가 없다”고 28일 재차 해명했다. 경찰이 몰랐다던 이 회장 집은 장충파출소와 불과 300여 m 떨어져 있다. 빌라촌에는 이 회장뿐 아니라 회장 가족도 살고 CJ경영연구소도 들어서 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는 이 회장 집을 하필 경찰만 몰랐다고 강변하니 ‘중부서는 CJ경찰서’란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이상한가?박훈상 사회부 기자 tigermask@donga.com}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고급 빌라에 도둑이 들었다. 경찰은 사건이 알려지자 “이 회장 집이 아니다”라며 거짓말을 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중부경찰서는 22일 오후 10시경 중구 장충동 이 회장의 빌라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야간주거침입절도 미수)로 조모 씨(67)를 현장에서 붙잡아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22일은 검찰이 CJ그룹 압수수색을 한 다음 날이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당일 조 씨는 이 회장의 고급 빌라 2m 높이의 철문으로 넘어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마당을 배회하던 조 씨는 건물 1층에서 폐쇄회로(CC)TV를 감시하고 있던 경비 직원에게 발각되자 1.2m 높이의 담벼락을 뛰어넘다가 그대로 추락했다. 이 회장 빌라는 급경사에 위치해 담장 바깥쪽 아래는 5m 높이의 낭떠러지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조 씨는 얼굴에 피멍이 들고 골반뼈 등이 골절된 채 담장 밖에 쓰러져 있었다. 조 씨는 현금 100여만 원과 일자 드라이버, 소형랜턴을 소지하고 있었다. 경찰은 현금을 이 회장 빌라에서 훔친 것으로 보기 어려워 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현재 자신의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는 조 씨는 전과 14범으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에서 “내가 왜 거기 갔는지 모르겠다”며 범행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조 씨가 이 회장 자택인 줄 모르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부경찰서 김도열 형사과장은 27일 오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도둑이 든 집은 이 회장이나 이 회장 일가, CJ 계열사 임원 집이 아니다. 전혀 다른 사람의 집”이라며 “관할 파출소에도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차 취재팀이 절도 사건을 취재하자 김학중 중부경찰서장은 “이 회장 집은 맞지만 현재 거주지인지 단순 소유지인지 불분명해서 이 회장 집이 아니라고 했다”고 시인했다. 이후 김 과장은 “관할 파출소에서 이 회장 집이 아니라고 밝혀 아니라고 답한 것인데 다시 확인해 보니 이 회장 집이 맞았다”고 말을 바꿨다. 대기업 총수 집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관할 경찰서 형사과장이 정확한 장소를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장 자택 인근 빌라 경비원은 “27일 오전에도 경찰이 이 회장 빌라를 찾아와 CJ 직원과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을 한 것을 놓고 ‘CJ와 모종의 말이 오간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이 회장 빌라는 장충동 고급 빌라촌에 위치해 있다. 27일 오후 취재팀이 이 회장 빌라를 방문해 보니 CJ 소속 직원 서너 명이 집 앞에 있었다. 평소에는 직원들이 배치돼 있지 않지만 언론사 취재에 대응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박훈상·김성모 기자 tigermask@donga.com}

수도검침원 김모 씨(52·여)는 9일 오후 수도계량기를 확인하러 홀로 경북 의성군 봉양면 손모 씨(31) 집을 찾았다. 과거에도 김 씨는 손 씨 집 마당에 설치된 수도계량기를 확인하고 돌아가곤 했다. 이날 집 안에 있던 손 씨는 김 씨가 검침하는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러곤 “욕실에 물이 새는 곳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그후 열흘째인 18일 김 씨는 인근에서 알몸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공무원인 남편과 세 아이를 둔 김 씨는 생활비와 자녀 대학 학비를 마련하려고 수도검침원 일을 시작했다. 사건 당일엔 아내의 일을 돕겠다고 하루 휴가를 낸 남편과 봉양면에 왔다. 담당구역이 넓어 남편과 따로 각 가정을 방문하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은 손 씨가 김 씨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24일 검거된 손 씨는 경찰에 “김 씨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휴대전화를 꺼내기에 경찰에 신고하는 줄 알고 죽였다”며 “성폭행했는지, 인근 야산에 어떻게 유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손 씨는 우울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부모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살았다.○ ‘나쁜 손’에 떠는 여성 방문근로자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수도검침원뿐 아니라 가스검침원, 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등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해 일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이 급증하고 있다. 업체들도 여성의 임금이 싼 데다 남자 직원이 방문하면 여성 고객이 문을 열어 주길 꺼리는 경우가 많아 여성 직원을 선호한다. 한 대형 정수기·비데 렌털업체의 방문 직원 1만3500여 명 중 85%가 여성이며, 수도권의 한 도시가스업체 검침원의 75% 이상이 여성이다. 대부분 40, 50대 주부인 이들은 적은 월급이지만 생활비, 자녀 교육비에 보태려고 억척스럽게 일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이다.그러나 경북 의성에서 살해된 김 씨 사건이 보여 주듯 홀로 남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여성 방문 근로자들은 예기치 않은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2011년 A 씨(55·여)는 자녀 대학 학비를 마련하려고 가스검침원 일을 시작했다. A 씨는 고객의 집에 들어가 가스검침을 하는 데 걸리는 ‘5분’이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집 안에서 여자나 어린아이 목소리 대신 남자 목소리만 들리면 더 불안하다. A 씨는 “혼자든 여럿이든 남성만 있으면 겨울에도 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 주는 일이 흔하다”며 “야한 농담을 건네고, 차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고, 뒤에 서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사람도 있다”고 토로했다.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B 씨(45·여)도 남자 고객의 성희롱이 고민이다. B 씨는 “70대 노인이 ‘딸 같다’며 자꾸 어깨를 주무르고 안으려고 해 피하다가 나중엔 나보다 나이 많은 동료에게 점검을 부탁했었다”며 “그 노인은 대신 간 동료의 가슴을 무턱대고 만지더니 ‘딸 나이라 그런 거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황당한 사고를 당해도 참아야 한다. 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C 씨(53·여)는 지난해 11월 고객이 기르던 애견에게 종아리를 물렸다. 주인은 사과는커녕 “사람을 절대 물지 않는 강아지인데 왜 당신만 물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C 씨는 “우리는 고객이 본사에 불만 접수를 하면 평가점수가 깎이고 예절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성희롱 등 각종 횡포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상한 소리를 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 남자에게 위협을 당해 혼비백산 도망친 사례도 있다. ○ 범죄 예방 대책은 메모지?불안에 떠는 여성 방문노동자들은 각자 노하우를 공유하며 범죄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가스검침원 이모 씨(51·여)는 집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현관문을 열어 둔 채 집 안에 들어간다. 이 씨는 “겨울엔 춥다고 문을 못 열게 하거나 일부러 문을 갑자기 닫아 버리는 남자가 많아 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검침원은 평소 행실이 나쁜 남자가 있는 집을 메모지에 적어 동료와 돌려 읽기도 한다. 또 방문하기 전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여성이나 어린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찾기도 한다.업체들은 방문노동자 안전 대책엔 손을 놓고 있다. 한 도시가스업체 관계자는 “가정을 방문했을 때 범죄 피하는 방법을 따로 교육하지 않는다”며 “다만 피해를 본 검침원이 있으면 다음 번 방문엔 남자 검침원을 보내는 등 지사별로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렌털업체 관계자는 “인적이 드문 곳이나 유흥가엔 남자 직원을 보낸다”며 “두 달마다 가정을 방문해 충분한 신뢰를 쌓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남성만 있는 공간에 여성 검침원이 홀로 방문하면 충동 범죄가 일어날 위험성이 높다”며 “가급적 2인 1조로 검침하도록 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훈상·김성모 기자 tigermask@donga.com}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 30대 형제를 흉기로 살해한 40대 남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황현찬)는 층간소음으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2명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 기소된 김모 씨(46)에게 25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신혼인 형과 세 살 난 아이를 둔 동생이 목숨을 잃었고 그 여파로 아버지까지 사망해 엄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피고인 김 씨는 2월 9일 내연녀(49)가 사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아파트에 갔다가 설 명절을 맞아 가족이 모인 윗집을 찾아가 시끄럽게 군다며 실랑이를 벌였다. 김 씨는 내연녀 집에 내려와 칼을 가지고 다시 올라가 범행을 저질렀다. 사건의 충격으로 당뇨병 환자였던 형제의 아버지(61)는 병세가 악화돼 사건 발생 19일 만에 숨졌다. 검찰은 김 씨의 범행이 잔혹하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배심원 9명 가운데 6명은 무기징역, 2명은 징역 35년, 1명은 사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이 의견을 참고해 형량을 결정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고려대는 안문석 명예교수(사진)가 20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주 국제IT대학의 명예교수로 추대돼 카자흐스탄 교육과학부가 발행한 명예교수증을 받았다고 26일 밝혔다. 또 안 교수는 카자흐스탄 정부 초청으로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아스타나 경제포럼에 참석해 개막식에서 ‘SNS 시대의 정부와 시민의 관계’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경북 안동시 한 사찰 주지 홍모 씨(44)는 2010년 10월부터 절을 찾은 신도들에게 ‘신비의 약’이라며 주사를 놔줬다. 홍 씨는 절의 한쪽을 한의원처럼 꾸몄다. 침과 한약재, 부항기구를 구비하고 승복을 입은 채 진료했다. “3개월만 맞으면 난치병이 낫는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지난해 7월 난소암 진단을 받은 정모 씨(50·여)는 홍 씨의 사찰을 찾았다. 정 씨는 3개월간 한방주사를 맞았지만 병세는 더 악화됐고 2월 결국 사망했다. 홍 씨 말을 믿은 폐암 환자 나모 씨(44)와 간암 환자 지모 씨(53) 역시 각각 2개월, 3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경찰 조사 결과 홍 씨는 ‘무자격 한의사’인 김모 씨(65)가 만든 한방주사 앰풀을 사들였다. 유통기한이 지난 마취제, 중국산 한약재, 미국산 산삼 등을 섞어 만든 약물이었다. 홍 씨 외에도 승려 2명, 무자격 한의사 2명이 이 약물을 구입했다. 김 씨가 앰풀 3700여 개를 팔아 번 돈은 2억여 원이었다. 홍 씨 등 승려 3명은 신자 수십 명에게 주사를 놔주고 2억4000여만 원을 받은 뒤 유흥비로 탕진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불법 의약품을 제조하고 사용한 혐의(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등)로 김 씨와 홍 씨를 구속하고 다른 승려 2명과 무면허 한의사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김성모 기자 mo@donga.com}
태국인 A 씨(26·여)는 일자리를 찾다가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마사지 업소를 운영하는 한국인 이모 씨(45)를 만났다. 이 씨는 “한국에 가서 마사지사로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 비행기 삯도 일해서 갚으면 된다”고 꼬드겼다. A 씨는 계약기간 85일 중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8만5000밧(약 320만 원)을 위약금으로 지불하기로 하고 이 씨와 계약했다. 이 씨는 한국 내 태국마사지 업주 박모 씨(52)에게 250만 원을 받고 A 씨를 넘겼다. 지난달 24일 박 씨는 90일 관광비자로 인천공항에 입국한 A 씨를 자신의 경기 시흥시 마사지 업소로 데려갔다. 도착과 동시에 A 씨의 여권을 빼앗았다. 박 씨는 애초부터 태국 여성을 85일 동안 쉬는 날 없이 부려서 큰돈을 벌 속셈이었다. 85일이 지나면 태국으로 돌려보내고 다른 태국 여성을 부르면 그만이었다. 나머지 5일은 출입국에 필요한 시간이었다. 첫날 박 씨는 “손힘이 얼마나 되는지 보자”며 A 씨를 업소 내 안마방으로 불렀다. 박 씨는 바지를 내리고 유사성행위를 강요했다. 그는 “이렇게 해야 손님이 몰린다”며 구체적인 행위를 가르쳤다. 여권을 빼앗기고 한국어도 서툰 태국 여성은 응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박 씨가 “손님이 유사성행위를 원하면 다 해줘라. 도망가면 시체만 태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고 나중에 경찰에서 진술했다. 박 씨 소유의 경기도 일대 태국마사지 업소 5곳은 소셜커머스 업체에 광고를 내고 손님을 모았다. 밤에 업소를 찾은 남성들 사이에선 유사성행위를 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5곳에 고용된 태국 여성 14명은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을 만큼 천장이 낮은 방에서 24시간 대기하면서 차례로 손님을 받았다. 업소마다 주·야간 업소 운영실장이 여성들을 24시간 감시했다. 정해진 휴식시간이나 휴일도 없이 일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 틈틈이 쉬어야 했다. 외출은 일손이 모자라는 다른 업소에 지원 갈 때만 허락됐다. 박 씨는 업소를 이용한 남성들에게서 시간별로 5만∼15만 원, 유사성행위를 할 경우 3만 원을 추가로 받았지만 태국 여성에겐 기본급 130만 원에 마사지 건당 4000∼6000원의 수당만 줬다. 첫 달 월급은 입국비용으로 썼다며 주지도 않았다. A 씨는 9일 사정을 딱하게 여긴 손님의 도움으로 함께 있던 다른 태국 여성과 함께 업소를 탈출했다. 곧장 주한 태국대사관에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박 씨가 2010년 4월부터 최근까지 태국 여성들을 불법 감금해 수억 원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씨는 경찰에 “한 달에 700만 원만 벌었다. 태국 여성들이 큰돈 벌 욕심에 스스로 성매매를 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박 씨가 태국으로 유학 보낸 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아빠 엄마가 한 달에 1억 원은 버니까 돈 걱정 마라. 내년이면 3억 원까지 벌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박 씨를 구속하고 같은 혐의로 박 씨를 도운 태국 여성 공급브로커, 업소 실장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씨는 태국 현지 경찰에 체포돼 구속된 상태다. 경찰은 다른 태국마사지 업소를 대상으로 계속 수사할 계획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이동건)는 ‘패밀리 아너스클럽’을 발족했다.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중 가족이 함께 가입한 가족 아너들의 모임이다. 이날 이미 활동 중인 아너 회원의 배우자 3명이 추가로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패밀리 아너스클럽 회원은 부부 아너 11쌍을 포함해 16가족, 33명이 됐다.}
1988년 서울 마포구 사글셋방에서 출발한 지적장애 여성의 자활을 위한 M공동체(현재 마포구 신수동)는 지적장애 여성에게 자립의 꿈을 이뤄 주는 곳으로 명성을 얻었다. 경기 안성시에도 시설 문을 열었다. 그러나 21일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결과 M 공동체 대표 권 모씨(59)는 지적장애 여성들이 낸 시설 이용료로 자신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옷을 구입했다. 자녀 양육비와 학비에도 이 돈을 썼다. 확인된 금액만 3200여만 원. 주택준비금 명목으로 보호자들로부터 받은 4억1500만 원 등 시설 수입금 사용 명세는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았다. M공동체는 지적장애 여성 중 ‘방장’을 뽑아 다른 여성을 통제했다. 2011년 방장 김모 씨(31·여)는 심모 씨(22·여)가 온 뒤 물건이 자꾸 없어진다며 10여 차례나 속옷을 벗겨 검사했다. 물건을 숨기지 못하도록 속옷을 입지 못하게 하거나 몽둥이나 자로 손바닥을 때리기도 했다. 권 씨는 이를 알고도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시설 운영비를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업무상 횡령 등)로 권 씨를 검찰에 고발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개인운영신고 시설의 관리감독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고 21일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지방경찰청 제2기동단 소속 의무경찰로 짜인 ‘청룡극단’이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송파공고 대강당 무대 위에 섰다. 연기와 노래에 재능을 가진 의경 11명은 진압봉과 방패를 내려놓고 학교폭력을 다룬 연극을 선보였다. 연극 제목은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대본은 서울예술대 출신 정민우 수경(22)이 직접 썼다. 연극은 왁자지껄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일진 패거리가 음악에 재능을 가진 친구의 지갑을 빼앗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일진 중 ‘짱’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피해학생과 음악을 이야기하며 친하게 지냈지만 3학년이 되자 돌변했다. 패거리는 돈을 빼앗는 데 그치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고 뺨을 때렸다. 쓰러진 친구에게 발길질도 했다. 이날 연극 속 가해학생으로 열연한 정 수경은 학창 시절 자신이 실제 당했던 학교폭력 경험을 연극으로 옮겼다. 그도 연극 속 피해 학생처럼 축구화를 신은 채 발길질을 해대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넌 죽어도 싸다’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다’라며 퍼붓는 욕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더는 자신과 같은 피해 학생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무대에 올린 것. 정 수경은 “어른이 되고 나니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 친구가 상대적으로 좋은 가정에서 생활하던 나를 질투하다 결국 폭력을 휘두른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며 “가해 학생도 자신의 속마음을 툭 터놓고 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극 속 피해 학생은 정 수경과 달리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다.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지만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서로 화해하며 연극이 끝난다. 정 수경은 “나는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친구들이 날 더 얕볼까 봐 그리고 교사와 경찰은 거리감이 느껴져 신고하지 못했다”며 “학교폭력 신고가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당당한 일이란 걸 알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영화 인터넷 예매업자 임모 씨(35)는 ‘기막힌 사업’을 구상했다. 회원가입 때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주는 쇼핑, 영화예매 사이트에 무더기로 가입한 뒤 이를 모아 큰돈을 벌겠다는 꿍꿍이였다. 임 씨는 2010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주민등록번호 17만 개를 구입했다. 해킹 등으로 유출된 주민번호를 개당 1원 정도에 산 것이다. 그는 2011년 3월부터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남의 주민번호로 각종 사이트에 가입했다. 하루 종일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사이버 막노동’이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중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떠났지만 동업자인 김모 씨(32)와 전모 씨(32)는 클릭을 멈추지 않았다. 임 씨는 회원가입 기념으로 2000원짜리 할인쿠폰을 받으면 여기에 자기 돈 5000원을 더해 7000원짜리 영화표를 산 뒤 이를 인터넷에서 5500원에 팔아 돈을 챙기는 방식의 수법을 썼다. 이렇게 손품을 팔아 1년여 만에 2억4000만 원에 달하는 이득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번거로운 인터넷 회원가입 절차를 수만 번 이상 밟은 것으로 보인다. 임 씨의 범행은 2011년 12월 명의가 도용된 것을 알아챈 20대 여성의 신고로 들통 났다. 추적에 나선 경찰은 지난해 5월 임 씨 일당을 붙잡아 몇 명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어떤 사이트에 가입했는지 수사를 시작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1년여 동안 조사한 결과 일단 9개 사이트에서 5만4000여 명의 명의가 도용된 사실을 파악하고 16일 임 씨를 컴퓨터 등 사용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동업자 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매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면 전국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 ‘스승의 은혜’. 유학(儒學) 현대화의 선구자 이기동 성균관대 대학원장(62)은 20여 년 동안 제자들이 자신을 위해 이 노래를 부르는 걸 한사코 만류했다. 바로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란 구절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1월 이 원장이 먼저 제자들에게 이 노래를 권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원장과 성균관대 대학원 유학과 학생 20여 명은 논문 발표회를 겸해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을 찾았다. 일행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 선생의 위패를 모신 서원 내 상덕사(尙德祠)에서 고유제를 올렸다. 이 원장은 “퇴계 선생 정도는 돼야 스승이라 불릴 만하다. 오늘은 스승의 은혜를 불러도 좋다”고 했다. 서원 사람들도 노래를 흔쾌히 허락했다. 제자들은 노래를 합창했고 서원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대학원생 중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인 이치억 박사(38)도 있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이 원장과 제자 이 박사가 만났다. 이 박사는 2002년 대학원에 입학해 이 원장을 만났다. 그는 스승인 이 원장의 가르침 아래 퇴계 철학을 연구해 2월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원장은 “스승의 은혜가 하늘처럼 높다고 하는데 과연 내가 노래를 들을 자격이 있는지 늘 반성해 왔다”고 입을 열었다. 이 박사는 스승이 없는 자리에서 “제자인 나는 이 원장님이 가장 닮고 싶은 스승이지만 스스로는 스승이라 하지 않으신다”고 전했다. 스승이 ‘갑’이 돼 제자를 ‘을’처럼 부리고, 한편에선 교권이 추락해 제자가 스승에게 막말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는 현실. 이 원장은 작금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스승의 탈’을 쓴 스승에게 물었다. 학생의 이름도 모른 채 성적으로 제자를 평가하고 지식만 전수하는 스승들이다. 해법은 제자를 자식처럼 아꼈던 퇴계 선생에게서 찾았다. 이 원장은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바라듯 스승도 제자가 행복하기부터 기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박사도 “퇴계 선생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제자에게 잘못된 견해를 전달한 적은 없는지 걱정했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사제지간이 부모 자식처럼 돈독해지면 ‘갑을 관계’로 변질될 수 없다고 한다. 이 원장은 “부모 자식이 갑을 관계가 될 수 없듯이 스승이 제자를 자식처럼 여기면 갑이 될 수 없다”며 “제자는 급한 일이 생기면 스승에게 도움을 청하러 달려가고 폐를 끼쳐도 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스승의 날에 어떤 선물을 준비할지 고민한다. 이 박사는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이 박사는 “스승에게 선물을 안 드린 지 오래됐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스승에게 큰 선물”이라며 살짝 웃었다. 이 원장은 “제자가 진리를 꿰뚫는 질문을 할 때 그게 가장 큰 선물”이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퇴계 선생의 업적을 계속 연구해 우리 현실에 맞는 교육철학과 인성교육 방안을 만들어 낼 꿈을 꾸고 있다. 일반인에게 퇴계 사상을 가르치는 ‘퇴계 스쿨’ 설립도 고려 중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9일 오후 6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남산생태공원. 대기업인 B사 회장의 부인 나모 씨(72)와 셋째 아들 이모 씨(43)가 함께 공원 내 연못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갑자기 목줄이 풀린 진도개 정도 크기의 개가 나타나 나 씨의 오른손을 물었다. 아들 이 씨는 갖고 있던 우산으로 어머니를 공격하는 개를 위협해 떼어냈다. 개 주인인 주한 독일대사관 소속 무관보(武官補) 독일인 H 씨는 목줄을 잡지 않은 것을 사과하기는커녕 고함을 치며 이 씨 모자를 밀쳤다. 심지어 이 씨의 오른쪽 다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곤 자신의 개를 끌어안았다. 이 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H 씨를 이태원파출소로 연행했다가 외교관 신분을 확인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 나 씨의 상처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H 씨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를 본 나 씨 모자와 연락하곤 있지만 경찰서에 오지 않았다”며 “H 씨에게도 소환 통보를 했지만 외교관 면책특권을 감안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H 씨는 2010년 6월부터 한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