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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 친자확인 검사해주는 해외 업체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배 속 아이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해외 업체에 태아 친자확인 검사를 의뢰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2005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국내에서는 태아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DNA) 검사가 불법이다. 인터넷에서는 태아 친자확인을 해준다는 해외업체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 업체는 한국인 브로커를 두고 친자확인 검사 방법을 묻는 글에 댓글을 달거나 업체 블로그를 인터넷 검색에 노출하는 방식으로 고객을 모으고 있었다. 17일 기자가 미국의 A 업체 소속 한국인 브로커에게 문의해 보니 “임신 8주가 지난 산모부터 혈액검사가 가능하며 검사 결과는 99.9% 정확하다”며 “미국에서 보낸 혈액 채취 키트에 산모 혈액을 담고 남성의 머리카락과 함께 미국으로 보내주면 5일 만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로커는 “친자확인뿐 아니라 태아 성별을 알아보려는 부부까지 찾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현상은 다수의 파트너와 혼전 성관계를 맺는 풍조 때문이다. 한 남성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는데 내 아이인지 확신이 안 서서 검사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임신해서 현재 남자친구와 결혼하려는데 잠깐 만났던 다른 남자가 마음에 걸린다”며 친자확인 검사 방법을 수소문하고 있다. 문제는 해외업체들이 국내 일반 DNA 검사 비용 20만∼25만 원에 비해 10배 정도 비싼 200만 원 정도를 받지만 신뢰도나 안전성이 전혀 검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태아 친자확인이 급해 의뢰했다가 엉터리 결과를 받거나 돈만 떼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A 업체가 광고하는 산모혈액 검사법은 산모의 혈액에서 태아의 DNA를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A 업체 홈페이지에서는 검사 신뢰도를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를 찾을 수 없다. 게다가 홈페이지에 게재된 연구실 사진 10여 장은 유전자 검사와 관련 없는 엉뚱한 장비 사진뿐으로 비전문가인 고객의 눈을 속이고 있었다. 이들 업체는 고객이 한국 내 산부인과에서 융모막검사나 양수검사를 해서 채취물을 보내주면 더욱 정밀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이런 검사에 따른 유산 위험성은 안내하지 않는다.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융모막검사는 임신 초기인 9∼12주에 이뤄지는 탓에 염증과 출혈로 유산까지 일으킬 수 있다”며 “염색체 이상을 진단할 때만 한정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전문의는 “출산을 기다리지 않고 임신 중 친자 감별을 하는 것 자체가 ‘친자가 아니면 낙태하겠다’는 뜻이므로 산모에겐 정신적으로도 큰 스트레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종원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태아 친자확인처럼 국내법상 불법인 검사를 위해 혈액 등을 해외로 반출하는 일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며 “이대로 방치하다간 우후죽순 격으로 한국에서 금지된 검사를 대신해 주는 해외업체가 생겨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은 처벌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내 의사나 업체가 직접 해외업체를 중개해 주면 몰라도 개인이 미국 업체에 문의해 혈액 등을 보내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 규제할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법원이 성범죄 전과자들을 방치한 사이 또 한 여성이 쓰러졌다.충북 청주시에서 일어난 여성 성폭행 살해사건의 피의자 곽광섭(45)은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였지만 검찰의 청구를 법원이 번번이 무시했던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그에게 제때 전자발찌를 채웠다면 억울한 희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이 재범 방치한 셈지난해 5월 24일.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곽광섭에게 전자발찌 착용 명령을 내려 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검찰은 그가 2004년 수차례 친딸을 성폭행하고 내연녀의 딸을 강제 추행한 죄로 5년 복역한 뒤 2009년 출소했지만 전자발찌 착용 명령을 받지 않았다는 데 주목했다. 전자발찌 제도가 시행된 2008년 9월 이전의 일이라 착용 명령을 받지 않았지만 2010년 7월 소급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친딸을 범한 곽광섭에게 전자발찌를 소급 적용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한 것이다.하지만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부(부장판사 이영숙)는 석 달 뒤인 지난해 8월 17일 청구를 기각했다. 기각사유서엔 “재범 위험을 단정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법원은 △출소 이후 부모와 함께 살며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열심히 일한 점 △교도소 생활을 하며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이용사 자격을 딴 점 △2004년 사건 이전까지 성폭행 전과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안종렬 대구지법 공보판사는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성도착증 같은 이상 증세를 증명할 정신과 의사 소견이 없었다”며 “죗값을 치르고 성실하게 사는 이에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리는 것은 가혹한 이중처벌”이라고 말했다. 당시 청구를 심사한 뒤 기각한 장재원 주임판사는 “공식 답변은 할 수 없다”며 통화를 거부했다.검찰은 답답했다. 열다섯 살 된 친딸을 범할 정도로 비뚤어진 성욕을 가진 그가 성도착 기질을 다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폭행 전력은 없어도 폭행 등 전과가 9개에 달했다. 친딸을 성폭행했을 때마다 만취 상태였다는 점도 주의 깊게 봤다. 평소 성실히 생활하다가도 술에 취하면 재범할 우려가 높은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곽광섭의 내연녀에 따르면 곽광섭은 이번 범행 때도 술에 취해 있었다.대구지검 서부지청 관계자는 “곽 씨에게 성적 문제가 있고 재범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할 근거는 충분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법원 결정에 불복해 곧바로 항고했지만 재판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법원에 묶여 있다.대구고법 형사부(부장판사 유해용)는 검찰의 항고를 받은 지 1년이 지나도록 곽광섭에게 전자발찌를 채울지 판단을 미루고 있다. 청주지법 충주지원이 2010년 8월 전자발찌 소급 적용을 두고 헌법재판소에 제청한 위헌심판의 결론을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다.○ 전자발찌 미루는 사이 3명 숨져위헌 결정이 나기 전까진 현행법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법원도 “전자발찌 소급 적용이 적법하다”고 3건의 재판에서 일관되게 판결했다. 하지만 곽광섭 사건 때 대구고법이 그랬듯 상당수 법원은 헌재 판단을 지켜보겠다며 성범죄 전과자들을 방치한 채 허송세월하고 있다. 서울 한 지방법원 판사는 “나중에 위헌 결정이 나면 소급 적용된 전과자들을 모조리 재심해 전자발찌를 풀어줘야 하는데 이는 판사들에게 큰 부담이다”라고 말했다.반면 위헌 제청이 헌재에 걸려 있지만 판사가 적극적으로 결정을 내려 전자발찌가 소급 적용된 성범죄자도 391명에 달한다. 전자발찌의 재범 억제력을 높게 본 판사들이 헌재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현행법 규정에 따라 판단한 결과다.만약 대구지법 서부지청이 곽광섭의 재범 위험성을 정확히 판단했다면, 대구고법이 원칙에 따라 현행법을 적용했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검찰은 재범 위험이 높은 성범죄자를 선별해 전자발찌 소급 적용을 2675건 청구했다. 법원은 그중 15.9%인 424건만 받아들였다. 231건은 기각됐고 나머지 2019건은 계류 중이다. 이처럼 법원에서 판단을 미루는 사이 전자발찌 없이 지내다 다시 흉악범으로 돌변한 전과자에게 숨진 피해자는 알려진 것만 3명이다. 이들에게 성폭행당한 미성년자는 6명이다. 이렇게 재범한 전과자는 지난해 10월까지 집계한 것만 19명인 것으로 확인됐다.지난달 21일 경기 수원시에서 1명을 살해하고 4명을 다치게 한 강모 씨(39)는 특수강간으로 7년 복역한 소급 적용 대상자였다. 지난해 3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7세 소녀를 추행한 양모 씨(51)는 이전에도 세 차례나 아동들을 강간하려 했던 전과자다. 이들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없었다.14일 재판관 9석 중 절반을 넘는 5석이 빈 채로 남게 된 헌법재판소에 빠른 결정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제2,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다.이영란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성범죄 피해가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해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DNA 일치’ 확인… 경찰, 이웃집 용의자 곽광섭 공개수배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성폭행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피해자 A 씨(25)의 몸에서 채취한 체액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 곽광섭(45)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14일 공개수사에 나섰다.청주상당경찰서는 이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A 씨의 몸에서 나온 체액과 타액 등이 국과수에서 보관 중인 곽광섭의 DNA와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곽광섭을 피의자로 확정하고 그의 최근 사진 등이 담긴 수배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다.신연식 상당서 수사과장은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어 공개수사로 전환했다”며 제보를 당부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A고등학교 국어교사 윤모 씨(33·여)는 방학이 되자 병원을 찾았다. 학기 중 칠판에 글씨를 많이 썼더니 목과 오른쪽 어깨가 아프다며 의사 최모 씨(47)에게 진료를 받았다. 방학이 끝날 때쯤 23일 동안 병원에 입원한 기록을 보험사에 제출하고 보험금 780만 원을 받았다. 윤 씨의 보험사기 혐의를 조사하던 경찰은 그가 단 하루도 병원에 머물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보험상품에 해박한 어머니에게 보험사기 수법을 배운 윤 씨는 2010년 2월부터 매달 방학을 앞두고 보험사 여러 곳의 상해보험에 집중 가입한 뒤 의사 최 씨와 짜고 방학 동안 병원에 입원한 것처럼 꾸몄다. 그는 올 1월까지 11개 상해보험에 가입해 5차례나 허위 입원하고 보험금 4100만 원을 챙겼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런 수법으로 보험금 2억3000만 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윤 씨 등 현직 교사 14명(국공립 교사 7명)과 이들의 범행을 묵인하고 도운 의사, 보험설계사, 병원 사무장, 교사 가족 등 1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적발된 교사들은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보험사기를 짭짤한 부업으로 여겼다. 고교 체육교사 주모 씨(42)는 스노보드를 타다 다친 것처럼 꾸며 입원하고는 버젓이 스노보드를 타러 갔다. 학교 계단에서 넘어졌다거나 체육수업 중에 공에 맞았다고 핑계를 댄 뒤 보험금을 타낸 교사도 적발됐다. 경찰 관계자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뻔뻔한 사기 행각을 저지르고 거짓말하는 행태에 놀랐다”며 “윤리나 도덕 과목 교사가 적발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3일 오전 경찰청 트위터 계정(@polinlove)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도는 소문의 진실은?”이라는 트윗이 올라왔다. 최근 잇따른 강력범죄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가짜 택시 괴담’ ‘할머니 괴담’ 등의 괴담이 확산되자 경찰이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 경찰은 이 트윗에서 “(괴담들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조심하는 것은 좋지만 사회적 불안감을 조장하는 괴담 유포는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가짜 택시 괴담’은 마취제를 적신 휴지가 부착된 택시 문 안쪽 문고리를 만졌다가 느낌이 이상해 손을 코에 대본 승객이 기절하면 장기를 적출해 판매하는 가짜 택시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다. ‘할머니 괴담’은 할머니가 버스에서 여학생에게 싸움을 걸어 내리게 한 뒤 승합차로 납치해 장기를 적출한다는 내용이다. 누구나 이용하는 택시나 버스를 배경으로 범죄 과정을 지인이 겪은 것처럼 생생히 묘사한 괴담을 읽은 시민들은 ‘조심하자’며 인터넷 게시판이나 휴대전화 메신저로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올 초에도 비슷한 괴담이 번졌는데 최근 불안한 사회분위기를 타고 다시 괴담이 고개를 들고 있다”며 “만약 실제로 택시나 버스 등을 이용한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이 숨기지 않고 먼저 알릴 테니 절대 괴담에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안철수 서울대 교수 불출마 협박 논란’ 당사자인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11일 교통사고로 다쳤다. 서울 서초경찰서에 따르면 11일 오후 3시 53분경 서울 서초구 지하철 2호선 서초역에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방향 내리막 도로를 주행하던 정 전 위원의 트라제 차량이 도로 경계석과 가로등을 들이받고 왼쪽으로 넘어졌다. 목과 왼쪽 어깨 등에 찰과상을 입은 정 전 위원은 출동한 119 구조대에 의해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동승자는 없었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과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 측정 결과 술은 마시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나 과로 때문에 운전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 취재가 시작되기 전인 이날 오후 7시 10분경 의료진에게 “다른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알린 뒤 스스로 병원에서 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정 전 위원은 이날 오후 4시 50분경 방영하는 채널A 시사토크 프로그램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할 예정이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국세청 산하 세무서장이 세무조사 무마 명목으로 뇌물을 받은 단서가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세무서장 윤모 씨(57)가 근무했던 서울 성동세무서를 3일 압수수색했다고 10일 밝혔다. 국세청은 뇌물수수 의혹이 불거진 윤 씨를 최근 본청으로 대기발령했다. 윤 씨는 서울 성동구 마장동 소재 육류수입 가공업자 김모 씨(57)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금품과 골프접대 등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다. 경찰은 윤 씨가 근무했던 성동세무서의 관련 자료 등을 압수해 분석 중이다. 경찰은 수개월 동안 윤 씨의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내사해 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조석준 기상청장(58·사진)이 기상관측장비 납품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10일 경찰에 소환됐다.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첫 현직 기상청장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오전 10시경 조 청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 청장은 기상관측장비 ‘라이다(LIDAR·순간 돌풍 탐지 장비)’ 입찰 과정에서 기상청 산하 한국기상산업진흥원이 장비의 최대 탐지 반경 기준을 15km에서 10km로 완화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경찰은 조 청장의 이 같은 조치 덕분에 장비 최대 탐지 반경이 10km 정도였던 케이웨더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결국 최종 선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최초 기상전문기자 출신인 조 청장은 케이웨더에서 기상예측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케이웨더 대표 김모 씨(42)와 친분을 쌓았고 기상청 차장을 지냈던 박광준 한국기상산업진흥원장(59)과는 지난해 기상청에서 함께 일하며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날 조 청장은 조사에 앞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케이웨더 측은 “이번 수사는 당시 기상청 사업담당자의 거짓말과 입찰에 탈락한 업체의 모함에서 시작됐다”며 “이들을 경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토요일인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동 신원초등학교 운동장. 무려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T24 페스티벌’이 열렸다. 온라인에서 만난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사실상 국내 첫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스티벌이다. 이날 모인 시민들은 육군 부사관 출신 이광낙 씨(28)가 제한시간 2시간 안에 24인용 군용텐트를 혼자 힘으로 치는 모습을 보며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같은 시각 누리꾼 10만여 명도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지켜봤다. 행사의 발단은 지난달 30일 인터넷 카메라 동호회 커뮤니티 ‘SLR’에서 벌어진 입씨름이었다. 주제는 ‘24인용 군용텐트를 혼자 칠 수 있는가’였다. 길이 10m, 폭 5m에 달하는 군용텐트는 혼자 힘으로 칠 수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트위터를 통해 문의를 받은 국방부는 혼자 힘으로 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의견을 냈다. 텐트를 치려면 가운데 용마루(텐트의 가장 높이 솟은 부분)를 지지하는 3m 높이의 지주 3개를 세우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씨가 “텐트만 구해주면 직접 증명해 보이겠다”고 글을 올리면서 논쟁이 촉발된 것. 성공 여부가 궁금했던 김인홍 씨(38) 등 누리꾼 5명은 자발적으로 ‘T24조직위원회’를 만들고 행사를 기획했다. 얼굴도 모르는 5명은 SNS로 서로 연락하며 공연기획, 행사장비 준비, 협찬물품 접수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SNS로 행사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도 생수나 컵케이크, 책, 카메라가방 등 80여 가지, 3000여 점을 기부했다. 기부 물품은 행사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됐다. 한 인터넷게임업체가 텐트 대여 비용을 냈고 인터넷 방송사가 무료로 중계를 맡았다. 대규모 축제 현장에 덕지덕지 붙는 기업의 광고판은 텐트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행사에서 이 씨는 제한시간 35분을 남겨두고 텐트 치기에 성공했다. 이 씨는 텐트 양쪽 끝의 기둥을 먼저 세우고 천을 씌운 다음 용마루 지주를 세우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한 텐트 치기 내기에서 시작된 행사가 누리꾼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됐다는 점에서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행사 사회를 맡은 김 씨도 “몇몇 누리꾼이 인터넷에서 나눈 대화가 기업의 도움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대규모 페스티벌이 된 과정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첫 SNS 페스티벌 성공의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대기업의 재정 도움 없이도 SNS만으로 사회적 이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벤트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국방부는 다소 머쓱한 표정이다. 국방부 트위터 대변인은 9일 “Lv7벌레(닉네임)님이 2시간 내에 성공하셨다. 24인용 텐트 혼자 치기는∼ 가능한 걸로!!^^”라는 글을 올렸다. 군 관계자는 “야외전술훈련 등을 할 때 24인용 군용텐트는 병사 8명이 10분 이내에 설치해야 한다”고 전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진우 기자 uns@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어젯밤부터 딸의 휴대전화기가 꺼져 있어 연락이 안 돼요.” 영화배우 김민준 씨와 열애 중인 SBS 사회부 안현모 기자(사진)가 7일 오전 1시경 실종됐다는 안 기자 아버지의 112 신고전화가 경찰에 걸려왔다. 최근 잇따른 강력사건으로 비상상황인 경찰은 열애설로 유명해진 안 기자가 실종됐다는 소식에 바짝 긴장했다. 안 기자의 실종 소식에 인터넷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열애설 때문에 잠적했다’ ‘취재 중에 실종됐다’ ‘회사 동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등의 소문들이 확산됐다. 경찰은 즉시 소재 파악에 나섰다. 그러나 이날 오전 안 기자가 전북 익산시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한 사실을 경찰이 확인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됐다. 안 기자는 주변에 알리지 않고 익산시의 한 기도원으로 내려간 것. 이날 오후 경찰은 부모와 함께 익산시로 내려가 안 기자를 만났다. 경찰 관계자는 “안 기자가 열애설 이후 부모와 갈등을 빚으면서 휴대전화를 꺼놓고 지방에 내려갔는데 부모가 오해했던 것 같다”며 “안 기자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안 기자는 현재 휴가 중이며 10일 출근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앳된 얼굴의 15세 가출 청소년 A 양과 성매매를 했던 남성들의 뻔뻔함은 끝이 없었다. 서울 구로경찰서가 2∼4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A 양에게 10만 원 정도를 주고 성관계를 갖거나 성폭행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최근 불구속 입건한 성인 남성 24명의 이야기다. ‘뻔뻔남’들은 입을 맞춘 듯 처음에는 “A 양을 아예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증거를 들이대면 “연락만 했다”거나 “만났어도 성행위는 안 했다”고 발뺌했다. A 양 진술 등을 증거로 다시 추궁하면 그때는 “성매수는 했지만 어른인 줄 알았다”고 말을 바꿨다. 모든 게 들통 나면 “상대가 먼저 조건만남을 요구했다”며 가출한 A 양 탓으로 돌렸다.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A 양을 걱정한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성매수 남자들은 마마보이? 일부 20, 30대 성매수 남성은 경찰의 전화를 피하다 출석요구서를 받고는 부모의 손을 잡고 경찰서에 왔다. 강모 씨(23)의 부모는 조사실에 따라 들어와 “우리 아이는 착하다. A 양이 억울한 사람 잡는 것”이라며 아들을 두둔했다. 강 씨는 부모가 조사실 밖으로 나가자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경찰 조사 결과 강 씨는 지하철 첫차를 기다렸다가 A 양을 만나러 올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다른 부모들도 A 양을 탓할 뿐 자신의 아들은 꾸짖지 않았다.○ 뻔뻔한 반성문 일부 성매수 남성은 반성이 아니라 변명이 적힌 글을 A4용지 3, 4장에 빼곡히 적어 제출했다. A 양에 대한 사과는 단 한 줄도 없었고 자신의 미래와 가족 걱정뿐이었다. 검정고시 합격 후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인 B 씨(26)는 ‘남자들은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 성매매를 하지 않느냐’며 ‘서울 H대 공대에 가려고 했는데 처벌받으면 (전과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마사지 같은 일이나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떼를 썼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C 씨(23)는 ‘신앙생활까지 하느라 돈이 부족해 애인도 사귀지 못해 늘 외로웠다’며 ‘서울 K대 경영학과로 편입하기 위해 준비 중인데 이렇게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썼다. C 씨는 한 예식장 여자화장실로 A 양을 데려가 유사성행위를 시킨 다음 남자화장실을 잠시 다녀오겠다며 나가 창문으로 도망친 남자였다.○ 비겁한 아저씨들 회사원 이모 씨(34)는 변호사와 함께 경찰에 출석했다. 이 씨와 변호사는 입을 맞춘 듯 “A 양과 통화만 했지 만나지는 않았다”고 했다가 증거를 들이대자 “스물세 살인 줄 알고 만났으니 (처벌이 가벼운) 일반 성매매 위반 법률을 적용해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인 여성을 성매수 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지만 미성년자를 성매수 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청소년 성매수는 신상공개 대상 범죄로, 판사의 결정에 따라 전자발찌까지 찰 수 있다. 남성 24명은 자신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전자발찌를 차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돈을 아끼려고 아파트 화단이나 주차장 계단에서 성관계를 했으며, 임신 위험이 있을 때에도 콘돔을 쓰지 않았다. 한 남성은 “돈을 줄 테니 첩이 돼 달라”고 했고 다른 남성은 학생증을 보고 반색하기도 했다. 구로경찰서 실종수사팀 서제공 팀장은 “미성년자를 성적 도구로 삼은 남성들의 행태는 아동성폭력 범죄자와 다를 바 없다”며 “평범한 이웃 아저씨 얼굴 뒤에 숨겨진 비뚤어진 성의식을 보면 처벌이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성폭행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으나 법원이 기각해 풀려나자 신고한 피해자를 찾아가 보복 살해한 성폭행범에게 징역 25년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용관)는 보복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중국동포 이모 씨(44)에게 이같이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자신을 신고했다고 보복 살해한 것은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범행 수법도 매우 잔혹하다”고 밝혔다. 이 씨는 4월 21일 오전 2시경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 다세대주택으로 옛 동거녀인 중국동포 강모 씨(43)를 찾아가 흉기로 33차례 찔러 살해하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씨가 강 씨를 살해한 이유는 신고에 대한 ‘보복’.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동거했지만 강 씨는 이 씨가 생활비를 벌어오지 않자 3월 이별을 통보했다. 그러자 이 씨는 3월 21일부터 나흘 동안 자신의 집에 강 씨를 감금하고 성폭행했다. 강 씨는 이 씨가 한눈파는 사이 탈출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4월 1일 이 씨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고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 당했다. 풀려난 이 씨는 신고 사실에 앙심을 품고 18일 뒤 강 씨를 찾아가 살해했다. 경찰도 신변보호 요청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 씨를 보호하지 않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부가 성폭력 피해 아동의 치료비 지원 폭을 확대할 방침이다. 성폭력 피해 아동은 늘어나는데 지원 예산이 부족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228억 원이 편성돼 있는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사업 예산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13세 미만 성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의료비와 더불어 피해 아동 가족에 대한 정신적 치료비 지원 폭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여성부는 이달 말까지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예산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수립하기로 했다. 현재 한 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중앙정부의 의료비 지원 예산은 10억3100만 원으로, 1인당 의료비 지원 상한선은 500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여기에 지자체 예산을 추가한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 규모는 2009년 18억 원에서 올해 16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은 2009년 1만5693건에서 지난해 1만9498건으로 30%가량 늘어났다. 이번 나주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A 양의 경우 항문 복원수술 등 외과치료에만 500만 원이 필요해 추가 치료비 지원이 꼭 필요하다. 2008년 나영이도 정부 지원 의료비가 부족해 국민 모금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성인 성폭력 피해자 지원도 절실하다. 지난달 초 직장상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B 씨(25·여)는 한 달이 지나도록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건 발생 후 성폭력상담소를 찾았지만 상담소가 정부로부터 받은 분기별 의료비 예산이 없어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다른 단체들도 예산이 떨어진 데다 A 씨의 거주 구에는 배정된 예산 자체가 없었다. 결국 아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한 A 씨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데다 상사를 고소해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란 씨는 “민간 지원단체는 사실상 의료기관에 빚을 지고 성폭행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다”며 “성폭행 이후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도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영이 주치의였던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성폭력 피해 어린이들이 고통 속에 살고 있는데도 국가 예산이 부족해 상처를 키우는 게 현실”이라며 “아동뿐 아니라 성인 여성의 지원 폭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

조두순 김점덕 고종석으로 이어지는 아동성폭력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는데도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비뚤어진 어른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인터넷에는 이런 변태적 누리꾼들이 올리는 사진과 글이 노골적으로 게시되는데도 당국은 법적 허점으로 인해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최근 젊은 남성들에게 인기 있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로○○’ 사진 대방출합니다”는 유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들은 여자 어린이를 등장시킨 게 대부분이다. 입가에 우유를 묻혔거나 수영복을 입은 장면이 많다. 속옷 차림 또는 짧은 하의의 육상 유니폼을 입은 사진도 수두룩하다. 게시글에는 “로○○가 진리다” “로○○를 먹고 싶다” 등 아동을 성적 대상물로 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아동을 성욕의 대상으로 삼는 변태적 누리꾼들 사이에 유행어가 된 ‘로○○’란 단어는 성인 남성이 미성년 여자아이에게 성적으로 집착하는 ‘롤리타 콤플렉스’와 ‘어린이’의 합성어다.‘로○○’류의 게시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아동이 출연한 광고사진이나 노출이 심한 애니메이션에서부터 부모들이 직접 자신의 자녀를 찍은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한 사진까지 무단 도용해 올리고 있다. 전남 나주 성폭행사건의 범인 고종석이 경찰에서 “아동포르노물을 자주 봤다. 어린이와의 성행위를 꿈꿨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간 1일에도 “로○○ 많이 모인 곳에 가서 관찰하며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글이 올라왔다.심지어 일부 누리꾼은 ‘로○○와 우연히 접촉했는데 흥분했던 기분을 잊을 수 없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아동음란물 탐닉자들은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이날을 ‘로○○날’로 부르며 인터넷 곳곳에 아동의 노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이들의 행동에 커뮤니티 이용자들조차 “경찰에 신고해 법의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며 비판을 가하지만 이들은 “어린이를 좋아하는 것과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다르다”는 억지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개개인의 마음속 환상이나 충동은 드러나지 않는 한 문제 삼을 수 없지만 글이나 사진으로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부터는 행동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의도가 로○○류의 글에 담겨 있다고 해도 현행법상으로는 처벌하기 어렵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화상이나 영상에 성교 및 유사성교, 자위행위 등이 담겨 있어야 불법이기 때문이다. 염건령 한양대 사회교육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 법 테두리에서 처벌이 어렵다고 손놓지 말고 법 개정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강화 등 규제책을 마련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며 “비뚤어진 성의식을 가진 어른들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아동 대상 성범죄가 나올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009년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A성형외과. 이모 씨(32·여)는 지방분해 시술을 받으러 병원을 찾았다. 수술에 앞서 수면마취제(프로포폴)를 맞았는데 깨어나 보니 푹 잔 것처럼 개운하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이때부터 이 씨는 이 일대 성형외과 산부인과 피부과 등을 전전하며 프로포폴을 상습적으로 맞기 시작했다. 이 씨가 다녔던 대부분의 병원은 프로포폴을 맞으러 온 사람들로 항상 붐볐다. 침상이 부족할 때는 환자대기실에 누워 맞는 사람도 있었다. 이 씨는 병원을 한 번 찾으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정도까지 프로포폴을 투약했다. 프로포폴 20mL를 10만 원에 구입해 5∼10mL씩 나눠 맞았다. 한 번에 20∼30분간 약효가 지속됐다. 약효가 사라지면 간호사를 불러 다시 주사를 맞았다. 여기저기서 간호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심할 때는 하루에 200만 원을 썼다. 한 병원의 프로포폴 단골손님 중엔 익숙한 유명 연예인도 여러 명 있었다. 얼굴이 익다 보니 이 씨와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그로부터 근 3년 후인 지난달 이 씨는 경기 가평군 청평면 한국사이버시민마약감시단 재범방지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재활교육생이 됐다. 이 씨는 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훔친 프로포폴을 투약한 뒤 의식을 잃고 자신의 차 안에 쓰러져 있다가 시민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씨는 “다시 태어나 평범하고 예쁘게 살고 싶다”며 재범방지센터 입소를 자원했다.동아일보는 23일 가평군의 재범방지센터에서 이 씨를 만나 프로포폴 중독의 위험과 실태에 대해 상세한 얘기를 들었다. 이 씨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번 돈과 빌린 돈 등 총 6억 원을 프로포폴 구입에 썼다고 한다. 그녀는 2009년 프로포폴을 처음 맞기 전부터도 이 약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의사나 유흥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포폴’, 프로포폴의 흰색에서 유래된 ‘우유주사’, 피로 해소에 좋다고 해 ‘힘주사’로 불리며 인기를 끌어 낯설지 않았다.중독의 대가는 컸다. 환각 지속시간은 짧아졌고 곧 우울증이 찾아왔다. 프로포폴을 살 돈이 떨어지면 심각한 불안에 시달렸다. 지난달 쓰러진 채 발견됐을 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이 씨는 여러 차례 자살도 시도했다. 그녀는 “중독이 심한 친구 3명이 목을 매 자살했다는데 무섭지도, 걱정되지도 않았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고 했다.지난해 2월 프로포폴이 마약류인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기 전까지 상당수 병원은 거리낌 없이 원하는 누구에게나 투약해줬다. 심지어 한 산부인과에는 산모보다 프로포폴 중독자가 더 많았다. 이 산부인과는 프로포폴 투약 손님이 늘자 주사기에 환자 이름을 쓰고 재사용하기도 했다.의사 처방 없이 사용이 불가능해졌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올 2월 B성형외과 사무장은 프로포폴을 구하기가 어려워진 이 씨에게 밀거래를 제안했다. 사무장은 이 씨와 병원 주변의 아파트 계단이나 후미진 화단에서 만나 50mL 앰풀 한 개에 50만 원을 받고 프로포폴을 50여 차례나 팔았다. 이 씨는 “의사들이 양팔과 다리, 심지어 목의 숱한 주삿바늘 자국을 보고도 대부분 아무 말 없이 투약했다”고 말했다. 24일 동아일보가 이 씨가 지목한 병원 중 세 곳을 방문했으나 이들은 프로포폴 오남용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 씨는 자신과 같은 중독자가 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이 다녔던 병원 16곳의 이름과 투약 날짜, 비용, 시술내용 등을 리스트로 만들었다.성형시술이 늘면서 과거 의사나 연예인 등 특정 직업군뿐 아니라 이제는 일반인도 중독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한국사이버시민마약감시단 전경수 단장은 “프로포폴 중독으로 재범방지센터를 찾은 사람들의 직업과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특히 강남의 부유층 주부 사이에서 크게 확산되고 있다”며 “강력한 단속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평=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예전엔 늦은 밤이나 으슥한 거리만 아니면 성폭행 같은 건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낮밤 구분 없이 사람들 많은 곳에서도 끔찍한 일이 생기니 무서워서 못 살겠어요."(김윤미 씨·24·취업준비생) 성폭행 살인 등 강력범죄가 급증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경제성장과 국격 상승에도 아랑곳없이 흉악범죄는 오히려 늘어가고 있다. 나라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시민들은 더욱 불안에 떠는 '위험 사회'가 되어 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18일부터 22일까지 닷새 사이에 무려 8건의 흉기 난동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2명이 숨지고 2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대부분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하철 승객, 퇴근길의 직장인, 두 아이의 엄마, 하교하던 초등생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이 영문도 모른 채 참변을 당했다. 경남 통영과 제주에서 각각 10세 소녀와 40세 여성이 성폭행을 시도하는 전과자에게 살해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흉악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통계적으로도 우리 사회는 강력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살인 강도 성폭행 방화 등 강력범죄는 2001년 이후 10년간 84.5%나 증가했다. 성폭행은 2002년 6754건에서 2011년 1만9491건으로 3배로 뛰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살인 6위, 성폭행 11위로 범죄율이 높다. '범죄 방정식'도 깨졌다. 범인들은 굳이 으슥한 곳을 찾거나 야심한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범행 동기도 불분명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누적된 분노를 쏟아낸다. 살인사건 가운데 우발적으로 일어난 비율은 1982년 6.8%에서 1998년 28.2%, 2010년 43.3%로 꾸준히 증가했다. 전 국민이 '거리의 악마'의 위험에 노출된 사회가 됐다.실제로 최근 두 달간 주요 흉악범죄를 분석해 보면 야심한 시간에 으슥한 곳에서 일어난다는 상식이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 18일 퇴근시간대 경기 의정부역에서는 30대 남성이 지하철 전동차와 승강장을 오가며 승객 8명에게 공업용 칼을 휘둘렀다. 20일 등교 시간에 두 아이의 엄마는 아이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에 들어왔다가 성폭행범에게 살해됐다. 집에서 50m 앞을 잠시 다녀와 벌어진 참변이다. 22일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흉기 난동으로 4명이 크게 다친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해가 지기도 전인 오후 7시 10분경이다. 여의도의 한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은주 씨(30·여)는 "칼부림 사건이 나기 5분 전까지 사건 현장에 있었다"며 "이제는 매일 오가는 도심 번화가의 출퇴근길조차 혼자 다니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범인들의 면면을 봤을 때도 '범죄자 공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여의도에서 칼을 휘두른 김모 씨(30)와 의정부역에서 공업용 칼을 휘두른 유모 씨(39)는 둘 다 범죄전과가 없다. 김 씨는 한때 신용정보회사에서 부팀장으로 근무했던 화이트칼라였다. 당시 사건의 목격자들도 "안경을 끼고 나약한 인상의 김 씨가 갑자기 칼을 휘둘러 놀랐다"고 했다. 수입이 적은 일용직 노동자나 노숙인이 갑자기 흉악범죄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노성훈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스스로 낙오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노를 범죄로 표출하고 있다"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무너진 사회적 안전망을 하루빨리 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최근 강력범죄 가운데서도 성폭력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10년 새 성폭력 사건이 3배로 증가한 배경에 대해 사회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늘면서 적절한 방법으로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온라인 환경이 좋아지면서 아동 포르노 등 음란물이 무분별하게 유포돼 왜곡된 성의식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도 성범죄가 느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욕구를 해소할 방법이 없는 남성들이 음란물이 불러일으킨 자극적 충동을 자제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단절된 사람이 늘어나면서 성폭력 피해자가 당할 고통을 가늠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욕구충족만을 최우선시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성범죄 증가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물론 범죄 접수 건수가 늘어난 것은 언론 등을 통해 '성범죄 피해를 입으면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의 홍보가 많이 돼 신고 건수 자체가 늘어난 것도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성범죄가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면서 일부 범죄자들이 범행을 들키지 않기 위해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편으론 성범죄자가 성폭행만 저지르고 유유히 사라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피해자가 다치거나 숨지면 범행 후 더 많은 경찰력이 투입돼 추가 범행을 하지 못할까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로 성범죄 건수는 급증했지만 피해자의 신체 상해 정도는 오히려 가벼워지고 있다. 대검찰청이 매년 집계하는 '범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성폭행 과정에서 상해를 입은 피해자가 2008년 883명, 2009년 753명, 2010년 412명으로 줄었다. 장기 입원이 필요한 전치 8주 이상의 상해를 입은 피해자도 38명, 26명, 22명으로 감소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최근 흉악한 성범죄 사건이 많이 알려지면서 피해자가 겁을 먹고 반항을 포기해 가해자가 물리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필요가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상습적인 성폭행범은 앞으로도 계속 범행을 할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에 범행 흔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해자를 무리하게 폭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성범죄자들은 아예 잔혹한 수법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히거나 교묘하게 수사망을 따돌리는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낙오되는 사람들 상당수가 가족이 해체되거나 정상적 인간관계에서 멀어지게 된다"며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받지 못하고 추락하면 범죄 유혹에 취약해진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동영상=‘여의도 칼부림’, 묻지마 흉기 난동범 체포 영상}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주택에 사는 박모 씨(44·여)는 고온다습한 날씨에 빠르게 불어나는 바퀴벌레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박 씨는 바퀴벌레 진드기 모기 등 벌레 퇴치 효과가 뛰어나다는 천연 계피 살충제를 만들기로 했다. 21일 오후 10시 반경 박 씨는 냄비에 빙초산과 계피를 넣고 가스불로 끓였다. 마지막 재료인 공업용 에탄올을 펄펄 끓는 냄비에 붓자 열기에 반응하면서 에탄올 유증기가 주방에 가득 찼다. 곧바로 유증기가 폭발을 일으키면서 박 씨는 얼굴과 가슴에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은 유증기가 가스불에 닿아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독성이 적다고 알려진 천연 살충제가 인기다 보니 해충퇴치용 계피가 따로 팔릴 정도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계피를 빙초산과 에탄올에 우려내 분무기에 담아 쓴다’는 간단한 제조법만 소개될 뿐 유증기 폭발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2006년에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진드기 퇴치용으로 계피 살충제 제조방법을 방영했는데 이를 보고 에탄올을 끓인 사람들이 폭발로 화상을 입기도 했다. 소방서 관계자는 “에탄올 유증기는 작은 불꽃에도 쉽게 폭발하기 때문에 에탄올 등 알코올류는 절대 끓이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식당. 전자발찌를 찬 전과 53범 김모 씨(55)는 교도소 생활 1년 동안 앙심을 품고 있던 강제추행 피해자인 식당 주인 정모 씨(59·여)를 찾아가 “나 기억하지? 내 얼굴 똑바로 쳐다 봐”라고 소리를 지르며 10여 분간 행패를 부렸다. 김 씨는 앞서 2010년 경기 지역에서 운전하는 여성을 위협해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1년, 전자발찌 부착명령 3년을 선고받은 성범죄 전과자다. 시흥동 식당에서 행패를 부릴 당시 그의 발목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었다.전자발찌는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과 더불어 성범죄자가 과거 피해자에게 접근할 경우 보호관찰소의 관제센터에 경보음을 울려주게 되어 있다. 시흥동 식당의 정 씨는 지난해 6월 14일 김 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다. 하지만 당시 추행으로 징역 1년을 복역하고 나온 김 씨가 식당을 찾아갔을 때 전자발찌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김 씨의 전자발찌에는 정 씨의 정보가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씨가 차고 있던 전자발찌는 2010년 강제추행 범죄에 따라 채워진 것인데, 현행법상 전자발찌를 동시에 여러 개를 찰 수 없으며, 하나의 전자발찌에 다른 사건 정보는 담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김 씨의 첫 번째 전자발찌 착용기간 3년이 지난 뒤에 시흥동 정 씨에 대한 접근금지 정보를 담은 두 번째 전자발찌를 채울 예정이었다. 시흥동 식당에서 벌어진 김 씨의 난동은 1개의 전자발찌에는 한 사건과 관련된 정보만을 담는다는 꽉 막힌 관료주의가 빚은 비극이었다. 보호관찰소 관계자는 “두 사람이 한 동네에 살고 있는 건 알았지만 김 씨의 접근금지 구역에 정 씨 식당이 포함돼 있지 않아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자발찌를 찬 채 부녀자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전자발찌 착용자 관리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는 집중보호관찰 대상자로 분류돼 보호관찰관과 월 4회 이상 직접 만난다. 그중 2회 이상은 관찰관이 집으로 찾아가 면담한다. 하지만 김 씨의 사례처럼 보복 폭행이나 재범의 우려가 있는데도 법에 얽매여 보호관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전자발찌 착용자가 피해자와 한 건물에 거주할 때는 범행을 밝히거나 예방하기가 더 어렵다. 2010년 10월 출소한 정모 씨(53)는 서울 강남의 한 종교시설에서 신도들과 생활했다. 정 씨의 발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었지만 그는 여성 신도를 수차례 성폭행하고 초등학생을 성추행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피해 신도들이 경찰서에 신고한 뒤에야 알려졌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자신의 주거지에서 저지르는 범행에는 속수무책인 것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밤새 음란물을 본 서모 씨(42)는 20일 오전 날이 밝자마자 자신이 다니는 전기배관 회사에 찾아가 30만 원 가불을 요구했다. 거절당한 그는 집으로 돌아와 주머니에 과도와 파란색 마스크, 청테이프를 넣고 오전 9시경 집을 나섰다. 주변을 배회하는 그의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30분 뒤 서울 광진구 중곡동 다세대주택가에서 서 씨의 눈에 두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려고 집 밖으로 나선 이모 씨(37·여)가 들어왔다. 유치원 버스가 서는 곳은 집에서 불과 50m밖에 되지 않아 이 씨는 여느 때처럼 현관문을 잠그지 않았다. 서 씨는 그 사이 이 씨 집으로 들어가 안방 문 뒤에 숨었다. 이 씨가 들어오자 서 씨는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 씨가 비명을 지르며 거세게 반항하면서 집 안 물건이 큰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래 반지하층에 사는 송모 씨(26·여)가 이 씨의 비명을 듣고 100m 정도 떨어진 인근 파출소로 뛰어가 신고했다. 경찰이 즉시 출동했지만 이 씨는 이미 서 씨가 휘두른 흉기에 목을 세 차례 찔린 뒤였다. 서 씨는 피 묻은 흉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서울 광진경찰서는 21일 서 씨에 대해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 씨는 2004년 서울의 한 옥탑방에 침입해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고 지난해 11월 출소했다. 이 때문에 서 씨에게는 출소 전 전자발찌 착용 7년과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이 내려졌지만 이번 범행을 막는 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서 씨의 범행 장소는 자신의 집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이다. 서 씨를 관찰하는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서는 “한 달 평균 5차례 면담하며 관찰했다”고 했지만 그의 범행을 눈치 챌 수는 없었다. 서 씨는 출소 뒤 10개월 동안 보호관찰소 출석 면담을 10차례 넘게 받았고 관찰관이 직접 서 씨를 방문해 면담한 것도 40차례가 넘었다.전자발찌도 일용직을 전전하다 전기배관 회사에서 일하는 서 씨처럼 이동이 잦은 이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외출 금지나 이동 제한 등은 법원이 결정하는데 서 씨는 별도의 제약이 없었다”며 “전자발찌가 서 씨에게는 범죄 억제 효과를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 씨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다세대주택 1층의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단칸방에 살았다. 옆방 이웃은 서 씨를 늘 긴 바지만 입는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웃은 “서 씨가 술을 마시면 전자발찌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며 “두 달 전부터 부쩍 술을 많이 마셨다”고 말했다. 서 씨는 출소 이후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컴퓨터부터 장만했다. 퇴근 후에는 주로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경찰 조사에서 서 씨는 “범행 당일 오전 2시부터 세 시간 동안 소주를 마시며 음란 동영상과 사진을 봤다”고 진술했다. 서 씨의 방에서 발견된 컴퓨터에는 불법으로 내려받은 수백 개의 동영상과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잠깐 집을 비울 때라도 외부인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 놓아야 범죄를 피할 수 있다”고 밝혔다.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철로 위를 다니기 위해 고무타이어 대신 열차 바퀴를 단 1t 트럭과 경운기는 각각 2.3t에 달하는 고압 케이블을 옮기고 있었다. 20일 오전 1시 32분경 서울 마포구 중동 경의선 가좌역 2공구 지하 3층 공사 현장의 모습이다. 케이블 드럼(원형의 목재포장 케이블 뭉치)을 밀면서 뒤따라가던 경운기가 어두운 터널 안에서 앞서가던 트럭을 추돌했다. 육중한 케이블이 작업인부 4명이 타고 있던 트럭으로 굴러갔다. 트럭이 찌그러지면서 인부들이 케이블에 깔렸다. 경운기에 탄 6명은 추돌 충격에 밖으로 떨어졌다.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트럭에 타고 있던 T산업 소속 임모 씨(33)가 고압 케이블에 깔려 숨지고 박모 씨(38) 등 8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를 낸 트럭과 경운기는 모두 불법 개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트럭과 경운기의 바퀴를 빼내고 선로 궤도에 맞는 철제 바퀴를 넣어 안전검사도 받지 않고 사용했다. 1t 트럭을 개조한 운반용 차량이 시속 4∼5km로 2.3t 무게의 고압 케이블 3개를 밀고 가다가 정차했지만 같은 개수의 케이블을 밀며 뒤따라오던 경운기가 이를 발견하지 못해 추돌하면서 사고가 일어났다. 경찰 조사 결과 어두운 터널 안에는 차량을 안내하는 신호수도 없었다. 차량에는 형광표지도 없었다. 경운기 운전사 김모 씨(47)는 진행 반대 방향을 보며 후진으로 이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존 선로와 연결되지 않은 구간에는 정식 모터카가 들어올 수 없어 해당 업체가 불법 개조한 차량을 썼다”고 밝혔다. 경찰과 업체 등에 따르면 지하 선로 공사현장에서 불법 개조 차량은 일명 ‘코니카’로 불리며 자주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경운기는 T산업이 다른 업체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개조된 화물용 객차가 공사 현장에 투입되는 걸 알았다면 이를 막았을 것”이라며 “공사 중인 지하 구간의 운반용 차량 운행은 중앙 관제소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문산발 서울역행 열차는 가좌역 지상구간을 이용하고 있지만 문산발 용산역 열차가 11월부터 지하구간을 다닐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으로 차량을 개조하고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은 점이 확인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법정구속 뒤에는 회사에 불만을 품은 ‘블랙 휘슬 블로어(Black whistle blower·자신의 이익을 좇아 내부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가 있었다. 한화그룹 선고공판을 지켜본 다른 기업들도 몇 차례 내부고발에 따른 위기 경험을 거울삼아 위기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대기업 비자금 수사는 대부분 이 같은 블랙 휘슬 블로어의 입에서 시작된다. 한화 비자금 수사도 2004년경 한화증권에서 퇴사한 뒤 한화증권의 객장에서 계약직 투자상담사로 일하던 A 씨의 고발이 단초였다. 그는 계약 갱신 과정에서 회사 측에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근무 중 우연히 알게 된 ‘수상한 휴면 계좌번호 5개’를 2010년 금융감독원에 신고해 검찰 수사의 발단이 됐다. 이에 앞서 2006년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비자금 수사 때는 정몽구 회장의 ‘럭비공식 인사’에 불이익을 당한 고위 임원이 검찰에 제보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2007년에는 삼성 법무팀장 출신 김용철 전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2008년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도 그룹 내부자가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제보해 시작됐다. 이처럼 회사를 떠나면서 비수를 던지는 내부인의 고발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는 일이 거듭되면서 기업들은 고위급 퇴직자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불평불만을 품고 회사를 떠난 퇴직자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퇴직 임원에게 자문역, 고문 등의 직함과 고액 연봉을 보장한다. A 기업은 임원이 퇴직하면 2년간 고문으로 위촉해 억대의 연봉을 줄 뿐 아니라 부품업체 등 협력회사에 재취업시켜 끈을 놓지 않는다. B 대기업도 자문역 대우 자리를 줘 예우한다. 퇴직한 임원들의 OB 모임을 지원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유지시키는 것도 위기 관리 방편 중 하나다. 현직 임직원에게는 직무상 알게 된 사실을 외부에 흘릴 경우 책임을 묻는 ‘정보보호 서약’도 받고 있다. 그러나 기업 비리는 원칙적으로 서약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기밀에 접근하는 사람을 줄이려는 추세다. 홍역을 치렀던 일부 기업은 특정 학교와 지역 출신을 민감한 자리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임원도 자기 업무가 아니면 회사의 기밀사항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문화도 정착되고 있다. 한 중공업 기업 인사부서 관계자는 “불안감을 없애자고 노골적으로 전·현직 직원을 관리하자니 회사 내부에 불법 행위가 있다고 떠드는 꼴이 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내부 고발 없이 수사기관에서 비자금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내부 고발이 가장 강력한 비리 견제 수단”이라며 “기업이 블랙 휘슬 블로어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투명 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