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

신규진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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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에서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newj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대통령70%
정치일반6%
국방6%
사건·범죄6%
남북한 관계4%
칼럼2%
학술2%
검찰-법원판결2%
인사일반2%
  • 도진기 “법조계 프로 중 가장 리얼… 마니아적인 ‘굿피플’ 내 소설 닮은듯”

    명색이 추리소설가라 굉장히 쉬울 줄 알았다. ‘못하는 척해야 되나’ 고민(?)까지 했다고 한다. 채널A 예능 ‘신입사원 탄생기―굿피플’에서 추리소설가 도진기 변호사(52)의 역할은 과제별 로펌 인턴 8명의 순위를 맞히는 일. 예능에선 능력보다 인간미 등 감동 코드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그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서울 서초구 법률사무소에서 3일 만난 도 변호사는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소설 쓰기가 예능 출연보다 훨씬 쉽다”고 웃었다. 하루 6시간의 녹화를 마치면 자동으로 1kg씩 체중 감량이 된단다. 말을 더듬었던 기억에 VCR 속 인턴처럼 자책한 적도 많다. ‘굿피플’은 그의 말대로, “정말 현실적인 예능”이다. 철저히 실력으로 평가받는 냉혹한 세계다. 그는 “드라마에선 변호사가 변론하다 갑자기 일어나 소리친다”는 MC 이수근의 말에 “실제 법정에서 그렇게 변론하면 판사가 논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현실을 짚어준다. 어려운 법률용어 설명도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법조계의 삶을 드러낸 프로그램 중 가장 리얼해요. 진입장벽은 다소 높지만 그만큼 ‘마니아’적이죠. ‘굿피플’이 제 소설을 닮았다고 생각해요.” ‘선택’(2010년)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한 그는 10편이 넘는 글을 써왔다. 2017년 서울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20여 년의 판사 생활을 마무리하기까지 주말 시간을 쪼개 틈틈이 글을 썼다. 일본 걸작들로 추리소설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이라고 못할 게 뭐 있냐”며 호기롭게 펜을 잡았다. “처음엔 아내가 ‘당신이 무슨 소설이냐’며 비웃었죠. 상을 받으니 마트에서 6만 원짜리 테이블을 사주더라고요.(웃음)” 그는 살아오면서 늘 현실에 입각한 글쓰기를 해왔지만 “항상 상상의 세계를 갈망해왔다”고 말한다. ‘메시지보단 흥미가 중요하다’는 원칙 아래 “독자들이 소름끼칠 만한 트릭을 떠올리면 혼자 키득거리며 글을 쓴다”고 한다.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2016년)의 집필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탐방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로펌 면접에서 당당히 “저는 반골 기질이 있다”고 말하는 임현서 인턴을 보면 왕년의 판사 도진기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해 “동년배들보다 사회화가 늦었고 세상 물정을 잘 몰랐으며 개성이 강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저희 세대는 ‘골든 에이지’였죠. ‘굿피플’ 인턴들은 저보다 낫더라고요. 다들 준비가 돼 있는데도 경쟁에 매몰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요.” 올해만 벌써 두 권을 내놨지만 한 권을 더 쓰는 게 목표다. 논픽션 ‘판결의 재구성’에선 국내 유명 사건 판결문을 분석해 법의 허점을 지적했다. 추리소설 ‘합리적 의심’은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3년 전 판사 시절 초고를 써 놨다. 언젠간 공상과학(SF) 소설에도 도전해볼 생각이다. “논픽션을 쓰다가 다시 추리소설을 잡으니 ‘멀어진 옛 친구’ 같은 느낌이네요. 빨리 슬럼프를 극복해야죠. 하하.”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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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세계관, 익숙한 캐릭터… 한국형 판타지 통할까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2회까지만 지켜봐 달라”는 제작진의 간곡한 요청(?)처럼, 1일 첫 편이 방영된 tvN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방대한 세계관을 천천히 풀어냈다. 답답할 수 있지만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준 김원석 PD의 잔잔하고 섬세한 연출을 떠올리면 수긍이 간다. 어쨌거나, 약 540억 원을 들인 이 대작 드라마는 7%대 시청률로 출발했다. “어떤 사료도 없이 창조했다”는 상고시대 세계관은 신선하면서도 어렵다. ‘어스(지구)’에서 따온 태고의 땅 아스에 세워진 고대 도시 아스달에는 군사와 농경을 담당하거나(새녘족) 제례를 주관하고(흰산족), 청동 기술을 보유한(해족) 부족들이 어울려 산다. 아스달과 대흑벽을 경계로 맞닿은 이아르크 지역에는 수렵과 채집을 하는 씨족사회(와한족)가 형성돼 있다. 옛날이야기가 그렇듯, 혈통이라는 소재도 빠질 수 없다. 사람의 모습과 흡사하지만 더 빠르고 힘이 센 뇌안탈은 파란색 피를 흘린다. 사람과 뇌안탈 사이에서 태어난 이그트는 빨간색과 파란색을 섞은 보라색 피를 지녔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기 위해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의 조언을 받아 음운을 거꾸로 한 뇌안탈어를 창조하는 수고까지 들였다. 하지만 기존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일단 ‘비주얼적’으로 그렇다. 새녘족 타곤(장동건)은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한 존 스노의 털옷을 입고 있으며, 그가 앉아 있는 곰왕좌는 ‘철의 왕좌’를 닮았다.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뇌안탈을 사냥하는 극악무도한 새녘족은 호전적 유목민 도트라키를, ‘외부 세력’ 와한족은 웨스테로스 대륙과 얼음 장벽을 경계로 사는 야만인 와일들링을 떠올리게 한다. 가혹하지만 ‘왕좌의 게임’의 원작 ‘얼음과 불의 노래’를 패러디한, ‘마늘과 쑥의 노래’라는 풍자적 별명은 이 드라마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자연과 공존하는 와한족이 정복 민족 새녘족을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은 마야 문명을 다룬 ‘아포칼립토’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와한족과 함께 사는 이그트 은섬(송중기)이 ‘말의 후손’ 칸모르에 오르는 장면은 제이크 설리가 커다란 새 이크란을 길들이며 나비족에게 인정받는 ‘아바타’와 묘하게 겹친다. 갈라진 가슴골에 더벅머리 송중기는 7년 전 ‘늑대소년’의 순수함 그대로다. 그럼에도 태고의 땅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서사를 한국적인 대사와 비주얼로 풀어내려는 노력은 신선하다. 경기 오산시에 지은 2만1000m²(약 6350평) 규모의 세트와 브루나이 해외 촬영으로 완성된 이국적이고 색감 짙은 자연 풍광은 국내 드라마 중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만하다. 찌르고 잘리는 액션도 살육의 태고시대를 간접 체험하게 한다. 하지만 “한국어에도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알아듣기 힘든 대사는 이 드라마가 극복해야 할 디테일이다. 극 초반 은섬의 탄생부터 방대한 세계관을 장황하게 풀어낸 점은 불가피했더라도,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등을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콤비의 흡인력 있는 전개가 필요하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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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예술가와 철학자에게 수학은 오랜 뮤즈였다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갈릴레오의 절친이었다. 그래서 그는 ‘홀로페우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를 그릴 때 당시 갈릴레오가 발표했던 발사체 운동법칙에 따라 죽은 장수의 피가 포물선을 그리며 뿜어지도록 표현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한 수학과 과학, 예술의 진화, 발전 과정을 총망라했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창조와 진보가 수학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한다. 900명에 가까운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를 통해 수학과 예술의 지적 연결고리를 증명한다. 역사적으로 회화, 조각, 건축, 음악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예술가는 당대의 수학 원리를 발견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수학자들과의 교류도 적극적이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올 수 없다”는 문구를 적어놓았다. 많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피타고라스학파는 수의 조화가 우주 만물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게 한다는 신념을 종교화했다. 천체물리학자 닐 디스래그 타이의 말처럼, “예술가와 철학자에게 수학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뮤즈였다.” 중국의 수학책 ‘구고정리’부터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에 쓰인 기하학, 현대 컴퓨터의 원리에 이르는 문화사를 종횡으로 훑었다. 사진으로 보는 500여 점의 작품들은 예술가들이 어떻게 당대에 중요한 수학적 개념을 표현했는지 보여준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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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시 파켓 “봉준호 감독과 작업은 기분 좋은 어려움”

    영화 ‘기생충’이 상영된 21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화 초반,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집구석을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터진 웃음은 영화 내내 이어졌다. 2000여 명의 관객 중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에 담긴 한국적인 정서를 외국인도 쉽게 이해했다는 뜻이다. 이는 영어 번역을 맡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씨(47·미국)의 공이 크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30일 만난 그는 유창한 우리말로 “훌륭한 영화로 번역의 중요성이 새삼 조명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1997년 고려대 영어 강사로 한국에 와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그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20여 년간 100편 가까이 작업했지만 영어 번역은 여전히 “단점만 보이기 쉬운, 힘든 일”이다. 대사가 많은 ‘기생충’도 시나리오 초고를 번역하는 데만 열흘이 걸렸다. 봉준호 감독과 최종본 수정을 하며 이틀 동안 밤을 새웠다.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나?)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우(박소담)에게 기택이 하는 말은 “직역을 하면 서울대가 상징하는 의미가 전달될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를 지울 것이냐, 직역을 택할 것이냐는 항상 반복되는 고민.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두만(송강호)의 대사도 외국인에게 더 친숙한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로 바꿨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대한 고민도 필수다. 기택이 박 사장(이선균)네 과외 면접을 보러 가는 기우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 하는 대사도 ‘make me proud’보다 더 진지한 ‘proud of you’를 써 우스꽝스러움을 강조했다. “워낙에 ‘브릴리언트(뛰어난)’하잖아요”라는 연교(조여정)의 허세 넘치는 영어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박 사장네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북한 아나운서를 따라 하는 대사도 ‘(North korean news anchor)’라는 설명으로 이해를 도왔다. 극 중 ‘대만 카스텔라(Taiwan cakeshop)’, ‘반지하(semi basement)’ 등 지극히 한국적인 단어들은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 ‘짜파구리’도 ‘ramdong(ramen+udong)’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송강호 특유의 맛깔나는 연기나 사투리를 볼 때마다 너무 아쉽다. 외국인은 100%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봉 감독과 작업하는 것은 기분 좋은 어려움이에요. 대사의 리듬감을 중시해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지만, 영어의 주술을 뒤바꾸기도 해요.” 그는 ‘플란다스의 개’(2000년)의 번역 감수를 시작으로 ‘옥자’(2017년)를 제외한 모든 봉 감독 작품을 번역했다. 봉 감독은 항상 “짧고 한 번에 느낌이 오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마더’(2009년)에서는 영어로 썼을 때 짧은 ‘도준’(원빈)이라는 이름을 택했을 정도다. ‘기생충’ 작업 때도 극 중 반복되는 ‘계획’, ‘상징’ 등 단어에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작업하면서 기생충을 7번이나 봤어요. 2월에 영화를 봤으니 입이 얼마나 근질거렸겠어요. 이제 친구들이랑 ‘기생충’ 얘기를 해도 되겠네요. 하하.”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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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충’ 7번이나 본 이 남자, 칸 관객들에 한국 말 ‘맛’ 전했다

    영화 ‘기생충’이 상영된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화 초반,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집구석을 돌아다니는 장면에서 터진 웃음은 영화 내내 이어졌다. 2000여 명의 관객들 중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에 담긴 한국적인 정서를 외국인도 쉽게 이해했다는 뜻이다. 이는 영어 번역을 맡은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 씨(47·미국)의 공이 크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30일 만난 그는 유창한 우리말로 “훌륭한 영화로 번역의 중요성이 새삼 조명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1997년 한국에 와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그는 한국인과 결혼했다. 20여 년간 100편 가까이 작업했지만 영어 번역은 여전히 “단점만 보이기 쉬운, 힘든 일”이다. 대사가 많은 ‘기생충’도 시나리오 초고를 번역하는 데만 열흘이 걸렸다. 봉준호 감독과 최종본 수정을 하며 이틀 동안 밤을 샜다. “Wow, Does Oxford have a major in document forgery?”(서울대 문서위조학과 뭐 이런 것 없나?) 재학증명서를 위조한 딸 기우(박소담)에게 기택이 하는 말은 “직역을 하면 서울대가 상징하는 의미가 전달될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의 문화를 지울 것이냐 직역을 택할 것이냐는 항상 반복되는 고민. ‘살인의 추억’(2003년)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두만(송강호)의 대사도 외국인에게 더 친숙한 “Do you get up early in the morning too?”로 바꿨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에 대한 고민도 필수다. 기택이 박 사장(이선균)네 과외 면접을 보러가는 기우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 하는 대사도 ‘make me proud’보다 더 진지한 ‘proud of you’를 써 우스꽝스러움을 강조했다. “워낙에 ‘브릴리언트’ 하잖아요”라는 연교(조여정)의 허세 넘치는 영어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박 사장네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북한 아나운서를 따라하는 대사도 ‘(North korean news anchor)’라는 설명으로 이해를 도왔다. 극 중 ‘대만 카스텔라(Taiwan cakeshop)’, ‘반지하(semi basement)’ 등 지극히 한국적인 단어들은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 ‘짜빠구리’도 ‘ramdong(ramen+udong)’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송강호 특유의 맛깔나는 연기나 사투리를 볼 때마다 너무 아쉽다. 외국인은 100%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봉 감독과 작업하는 것은 기분 좋은 어려움이에요. 대사의 리듬감을 중시해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지만, 영어의 주술을 뒤바꾸기도 해요.” 그는 ‘플란다스의 개’(2000년)의 번역 감수를 시작으로 ‘옥자’(2017년)를 제외한 모든 봉 감독 작품을 번역했다. 봉 감독은 항상 “짧고 한 번에 느낌이 오게 해 달라”고 주문한다. ‘마더’(2009년)에서는 영어로 썼을 때 짧은 ‘도준(원빈)’이라는 이름을 택했을 정도다. ‘기생충’ 작업 때도 극 중 반복되는 ‘계획’, ‘상징’ 등 단어에 유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작업하면서 기생충을 7번이나 봤어요. 2월에 영화를 봤으니 입이 얼마나 근질거렸겠어요. 이제 친구들이랑 ‘기생충’ 얘기를 해도 되겠네요. 하하.”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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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란티노 형님 남아있어 시상식 끝까지 긴장감”

    봉준호 감독(50)의 기억 속에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 편의 영화로 남아 있다. 폐막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은 받았지만 어떤 상을 받을지 몰랐다. 다른 부문 시상이 진행될 때마다 “허들을 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전달 과정의 착오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폐막식까지 남아 있어 긴장감이 더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9일 만난 봉 감독은 “타란티노 형님이 오지 않았다면 저희가 상을 수상했을 때 서스펜스가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와 대저택, 두 공간에서 90% 이상 촬영했다. 그만큼 공간의 디테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루 종일 자연광이 내리쬐는 부잣집과 하루 30분 정도 햇살이 비치는 반지하의 대비는 빈부의 차이를 드러내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도 봉 감독에게 “어디서 그렇게 완벽한 집을 골랐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봉 감독이 “세트에서 촬영했다”고 답하자 이냐리투 감독이 놀랐다고 한다. 가난한 집과 부잣집이 한 공간에 얽히는 이야기는 2013년 ‘설국열차’ 후반 작업 당시 떠올린 연극 소재에서 확장됐다. 전작들과 달리 ‘기생충’은 공간의 이동이 적고 대사가 많다는 점에서 다분히 “연극적”이다. 그렇게 묵혀 놨던 시나리오를 2017년 ‘옥자’가 개봉한 뒤 3개월에 걸쳐 완성했다. 다른 영화들을 꾸준히 봐온 덕에 배우 섭외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인간중독’(2014년)에서 조여정, ‘우리들’(2015년)에서 장혜진의 가능성을 봤다. “평소 시나리오를 쓸 때보다 빠르게 완성시켰어요. (주제 면에서) 당시 ‘설국열차’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전작들보다) 후회나 미련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에요.” ‘마더’의 김혜자처럼, ‘기생충’도 송강호를 머릿속에 전제하고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 연체동물처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 가는 기택 역에 생활 연기의 달인인 송강호가 단번에 떠올랐다. ‘살인의 추억’(2003년)부터 4개 작품을 함께한 송강호는 이날 “솔직히 시나리오를 읽고 ‘걸작’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 봉 감독의 작품 세계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좋은 의미에서 ‘정말 이상한’ 영화”라고 했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말은 아직 부담이다. “(봉 감독과) 작품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붙여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의 작품의 깊이나 예술적 비전을 제가 다 담아냈는지는 사실 모르겠어요.”(송강호) 봉 감독은 박 사장네보다는 기택네에 감정이입을 했다고 한다. “같은 듯해도 자세히 보면 다른 두 가족”이라는 의미로 붙인 ‘데칼코마니’라는 처음 제목도 그래서 바꿨다. “칸에서 ‘이 영화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냐’는 외국 기자들의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마다 ‘어느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답했어요. 다들 수긍하더라고요.”(송강호) 그래도 둘에겐 한국 관객의 반응이 가장 궁금하다. 봉 감독은 “미묘한 뉘앙스를 국내 관객이 크게 공감할 것”이라며 “칸에서 웃음이 많이 터졌고, 박수도 나왔지만 배우들 특유의 말맛까지는 공감을 못 하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차기작을 물었다. “미국과 한국에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대작은 아니고 ‘기생충’ 사이즈의 영화요. 장르는 공포? 액션? 지금껏 그래 왔듯 제가 규정한다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 모르겠네요. 하하.”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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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스운데 눈물이 나는… ‘봉테일’이 그려낸 한국인

    봉준호 감독의 장기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셀프 오마주를)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전작들에서 보인 봉 감독 특유의 디테일이 ‘기생충’ 곳곳에 포진해 있다. 131분 동안 블랙 코미디를 바탕으로 한 서사에 스릴러 특유의 공포, 긴장감이 한데 어우러져 장르적 일관성은 보란 듯이 파괴됐다. 시작부터 카메라는 햇살이 간헐적으로 스며드는 반지하에 걸린 빨래들을 담는다. 꼬질꼬질한 양말들의 주인은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방역소독제가 창문으로 스며드는, 봉 감독의 말대로 “분명히 지하인데 지상으로 믿고 싶어지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비좁은 반지하방에 오순도순 모여 살지만, 기택네는 평화롭다. 요금을 내지 못해 휴대전화가 끊기고, 남의 집 와이파이를 몰래 쓰지만 처지를 비관하는 이가 없다. 장미(고수희)와 현남(배두나)이 서로를 위로하는 문방구(‘플란다스의 개’), 강두(송강호)의 가족이 함께 몸을 맞대는 매점(‘괴물’)처럼 좁은 공간이 주는 그 안정감이다. 반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경영하는 박 사장(이선균)네는 화려한 노란 조명이 감도는 언덕 위 저택에 산다. 비가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와 극과 극의 공간.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두 가족은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 집에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면서 한 공간에 어우러진다. 드넓은 논두렁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지거나(‘살인의 추억’) 버스 창가로 보이는 한강 둔치에 괴물이 출몰하는(‘괴물)’, 넓은 공간이 주는 정서적 불안감은 ‘기생충’에서도 반복된다. ‘설국열차’가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 이어지는 계층 구조를 수평적으로 담아냈다면 ‘기생충’은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이를 형상화한다. 제작 전 다시 봤다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처럼 극 후반부 계단은 섬뜩한 공간이 된다. “지하철 냄새”, “행주 냄새” 등 냄새도 빈부를 구별 짓는 중요한 장치. 봉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 자는 동선이 달라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냄새는 영화에서 유일한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라고 설명한다. 부자의 환경에 자신을 맞춰 가는 빈자의 처절함은 ‘기생’을 유발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두 4인 가족 모두 누구 하나 선악으로 재단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봉 감독은 “가난한 가족도 적당히 뻔뻔하고, 부잣집 가족도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악당이 아니다.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는데도 끝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더’ 이후 10년 만의 한국어 영화라 그런지 봉 감독 특유의 ‘말맛’은 이 영화가 지닌 큰 무기. 한국 관객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디테일들도 반갑다. 클래식 선율과 롱테이크, 슬로모션의 이질적인 조합은 비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최우식의 노래는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의 일부라고 하니 가사를 곱씹어 보길 권한다. 30일 개봉. 15세 관람가.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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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자의 환경에 맞춰가는 빈자의 처절함…봉준호 특유의 ‘말맛’ 반갑다

    봉준호 감독의 장기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셀프 오마주를)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전작들에서 보인 봉 감독 특유의 디테일이 ‘기생충’ 곳곳에 포진해 있다. 131분 동안 블랙 코미디를 바탕으로 한 서사에 스릴러 특유의 공포, 긴장감이 한데 어우러져 장르적 일관성은 보란 듯이 파괴됐다. 시작부터 카메라는 햇살이 간헐적으로 스며드는 반지하에 걸린 빨래들을 담는다. 꼬질꼬질한 양말들의 주인은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방역소독제가 창문으로 스며드는, 봉 감독의 말대로 “분명히 지하인데 지상으로 믿고 싶어지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비좁은 반지하방에 오순도순 모여 살지만, 기택네는 평화롭다. 요금을 내지 못해 휴대전화가 끊기고, 남의 집 와이파이를 몰래 쓰지만 처지를 비관하는 이가 없다. 장미(고수희)와 현남(배두나)이 서로를 위로하는 문방구(‘플란다스의 개’), 강두(송강호)의 가족이 함께 몸을 맞대는 매점(‘괴물’)처럼 좁은 공간이 주는 그 안정감이다. 반면 글로벌 IT기업을 경영하는 박 사장(이선균)네는 화려한 노란 조명이 감도는 언덕 위 저택에 산다. 비가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와 극과 극의 공간.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두 가족은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 집에 과외선생으로 들어가면서 한 공간에 어우러진다. 드넓은 논두렁에서 연쇄살인이 벌어지거나(‘살인의 추억’) 버스 창가로 보이는 한강 고수부지에 괴물이 출몰하는(‘괴물)’, 넓은 공간이 주는 정서적 불안감은 ‘기생충’에서도 반복된다. ‘설국열차’가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 이어지는 계층 구조를 수평적으로 담아냈다면 ‘기생충’은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이를 형상화한다. 제작 전 다시 봤다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처럼 극 후반부 계단은 섬뜩한 공간이 된다. “지하철 냄새”, “행주 냄새” 등 냄새도 빈부를 구별 짓는 중요한 장치. 봉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자는 동선이 달라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냄새는 영화에서 유일한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라고 설명한다. 부자의 환경에 자신을 맞춰가는 빈자의 처절함은 ‘기생’을 유발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두 4인 가족 모두 누구하나 선악으로 재단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봉 감독은 “가난한 가족도 적당히 뻔뻔하고 부잣집 가족도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악당이 아니다.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는데도 끝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더’ 이후 10년 만의 한국어 영화라 그런지 봉 감독 특유의 ‘말맛’은 이 영화가 지닌 큰 무기. 한국 관객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디테일들도 반갑다. 클래식 선율과 롱 테이크, 슬로우 모션의 이질적인 조합은 비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최우식의 노래는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의 일부라고 하니 가사를 곱씹어보길 권한다.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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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달 5일 개봉 ‘엑스맨: 다크피닉스’ 제작진-배우 내한 간담회 “19년 대장정… 최강 여성 이야기로 대미”

    19년 동안 이어진 ‘엑스맨 유니버스’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다음 달 5일 개봉하는 ‘엑스맨: 다크피닉스’는 ‘엑스맨’(2000년)으로 시작된 시리즈의 12번째 작품이자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년)부터 이어진 4번째 프리퀄이다. 기존 미국 히어로물들이 1930년대 대공황이나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절대 악과 맞서는 구도로 출발했던 것과 다르게, 엑스맨 시리즈는 1960년대 화려한 성장 이면의 편견과 차별의 정서를 바탕으로 했다. 특히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엑스맨’, ‘엑스맨2: 엑스투’(2003년)는 선악의 대립을 넘어 소수자(뮤턴트)의 어두운 내적 갈등, 계층 갈등 등 사회적 함의를 작품 세계관에 녹여내 히어로 영화의 새 길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뮤턴트와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프로페서 X(제임스 매커보이)와 뮤턴트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의 힘겨루기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 ‘엑스맨: 다크피닉스’에서도 이들은 엑스맨 팀원이자 우주에서 불의의 사고로 강력한 힘을 얻게 된 진 그레이(소피 터너)를 두고 다시 한번 대립한다. 마블코믹스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다크 피닉스 사가’(1980년)가 원작이다.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소회도 남달랐다. 27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감독 사이먼 킨버그는 “대학을 졸업하는 느낌과 유사하다. 기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라며 “각본을 쓰면서 이 작품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낳은 아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맡길 순 없었다”고 했다. 이번 영화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년)부터 시리즈 각본에 참여해 온 그의 첫 연출 데뷔작이다. 매그니토 역할의 마이클 패스벤더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오디션 장은 아직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제임스(매커보이)와의 인연도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회상했다. 시리즈 가운데 이례적으로 여성의 서사를 중심에 내세운 점도 눈에 띈다. 극 중 “엑스맨이 아니라 엑스우먼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미스틱(제니퍼 로런스)의 대사는 노골적이다. 억눌린 내면의 어둠에 잠식돼 가는 진을 연기하기 위해 터너는 다중인격 장애에 관한 자료들을 직접 찾아봤다고 한다.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산사 스타크로 유명한 그는 “영화 속 여성들은 누구도 남성들에게 굽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킨버그 감독도 “여성 중심의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와야 할 때였다”며 “엑스맨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의 이야기”라고 했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 ‘엑스맨 탄생: 울버린’(2009년) 등 화려한 파워게임에 치중해 철학을 잃었다는 혹평을 받을 때도 엑스맨 시리즈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년) 등으로 활로를 모색해 왔다. “19금 히어로”라 불린 ‘데드풀’(2016년) 시리즈도 색다른 재미를 줬다. ‘로건’(2017년)에서 사망한 울버린(휴 잭맨)은 없지만 기존 프리퀄의 미스틱, 비스트(니컬러스 홀트), 사이클롭스(타이 셰리던) 등은 여전히 반갑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년)을 끝으로 히어로 영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던 영화음악가 한스 치머의 복귀도 눈길을 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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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 장르법칙 뒤틀고 융합… 봉준호 자체가 장르”

    장르 영화의 틀 속에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내온 봉준호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들어왔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을 쓴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의 외손자인 봉 감독은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봉준호 자체가 장르”(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라는 말처럼 기존 장르 법칙을 뒤틀거나 융합하는 새로운 시도에도 능하다. 사소한 장면이라도 치밀한 복선을 배치하는 섬세한 연출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연세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그가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영화는 ‘살인의 추억’(2003년)이다. 스릴러 장르의 재미에 1980년대 한국 사회 공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5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웰메이드 한국 영화’라는 평단의 호평 세례도 잇따랐다. 할리우드 괴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그만의 해학과 풍자를 담은 ‘괴물’(2006년)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괴물과 맞서 싸우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무기력함을 꼬집었고 관객 1301만 명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가족은 그의 주된 소재다. ‘마더’(2009년)에서는 광기 어린 모성애를, 첫 할리우드 진출작인 ‘설국열차’(2013년)와 넷플릭스 ‘옥자’(2017년)에서는 계급과 계층 갈등을 그리면서도 가족 구성원의 삶 속에 담긴 희비를 담았다. ‘기생충’ 역시 가족 드라마라는 평범한 소재에서 한국 사회의 불안한 현실을 꼬집는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은 한국을 담은 영화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도 긴급한 이야기”라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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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칸이 사랑한 한국인’ 임권택 박찬욱 전도연 이창동

    올해는 1919년 단성사에서 최초의 한국 영화인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토’가 개봉한 지 100주년을 맞는 해로 영화계는 이번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가 국제무대에서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칸 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첫 한국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2000년 영화 ‘춘향뎐’이다. 임 감독은 2002년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또 2004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밀양’(감독 이창동)의 주연 전도연이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09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해 2회 본상 수상 기록을 세웠다. 이듬해에는 ‘시’(이창동)가 각본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의 칸 본상 수상은 이번이 9년 만이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은 영화 ‘피에타’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의 대상 수상은 100주년을 맞은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높일 사건으로 평가된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세계 영화의 지형도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며 “특히 아시아 영화가 2년 연속 칸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앞으로 세계 영화 시장에서 아시아 영화가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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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감독 “송강호,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

    봉준호 감독은 칸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선정된 후 포토콜 행사에서 주연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을 꿇은 채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바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수상자 호명 직후에도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 님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며 스포트라이트를 함께 나눴다. 그의 소개를 받은 송 씨는 숨을 한 차례 가다듬고 “인내심과 슬기로움, 열정을 가르쳐준 존경하는 대한민국 모든 배우들께 영광을 바친다”고 인사했다. ‘살인의 추억’(2003년)부터 4편의 영화를 함께한 송 씨는 명실상부한 봉 감독의 페르소나다. 봉 감독은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송 씨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고 말했다. 반지하에 살면서 경제력이 전무한 기택은 빈틈이 많아 보이지만 “연체동물” 같은 적응력을 지닌 인물. 특유의 표정과 말투로 소시민 연기에 능한 송 씨가 최적이었다. 송 씨는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받아 봤을 때 느낌과 비슷했다. 한국 영화의 진화라 할 만하다”고 단언했다. 봉 감독은 “배우 송강호는 정신적으로도 의지가 되는 존재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규정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대 무명 시절 오디션에 탈락한 송 씨에게 조감독이던 봉 감독이 위로를 해주면서 시작됐다. 그 고마움에 송 씨는 ‘반칙왕’(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로 유명해졌을 때에도 ‘플란다스의 개’(2000년)로 첫 영화 흥행에 실패한 봉 감독의 출연 요청을 단번에 받아들였다고 한다. 봉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송 씨의 해석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송 씨의 애드리브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이후 송 씨는 ‘괴물’(2006년)에서 가족을 이끌고 괴물과 싸우는 장남 박강두를, 첫 할리우드 진출작 ‘설국열차’(2013년)에서 남궁민수를 연기하며 봉 감독이 깔아놓은 판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 왔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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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난감에서 식음료까지 “귀여운 것이 좋아”

    《#1. “병아리 모양 지우개를 살까, 핫도그 모양 자석을 살까.” 직장인 한선주 씨(32)는 요즘 주말마다 ‘소품 가게 도장 깨기’를 하러 다닌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거리와 망원동 일대에 포진한 소품 가게를 돌면서 눈에 들어오는 물건들을 하나씩 사 모은다. 그는 “도장 깨기 목록에 오른 소품 가게 15곳을 섭렵한 뒤 두 번째 투어를 하고 있다. 깨알 같은 소품 쇼핑을 하다 보면 현실 감각은 옅어지고 행복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2. 30대 남성 직장인 김모 씨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이허브’에서 어린이용 비타민을 주문한다. 그가 주로 구입하는 제품은 알록달록한 젤리 종합 비타민과 오렌지 모양 비타민C.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약국에서 곰돌이·공룡 모양 비타민을 사주셨다. 비타민 하나에 행복감에 젖어들던 과거로 돌아간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문화를 즐기는 키덜트(kidult). 장난감·소품에서 식음료, 영상, 화장품, 출판으로 외연을 넓혔고, 소비층은 20대 여성뿐만 아니라 30, 40대 여성과 남성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작년 국내 캐릭터 산업 시장 규모는 12조7000억 원. 롯데백화점의 올해 키덜트 상품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50% 이상 급증했다. ○ 귀여움에 홀린 ‘어른이’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품 시장의 성장세다. 서울에서는 홍대 망원동 이태원 성수동 일대에 2, 3년 전부터 소품 가게가 들어서더니 최근에는 30개 이상으로 늘었다. 홍대의 ‘픽시’ ‘미미도넛’과 망원동의 ‘말랑상점’ ‘망원만물’, 성동구 성수동의 ‘잡화게티’ 등이 대표적이다. 세상의 모든 귀여운 개체를 취급하지만 특히 ‘인스’(인쇄소 스티커), ‘떡메’(떡메모지·한 장씩 떼어 쓰는 메모지), 자석, 지우개, 마우스패드 등이 인기가 좋다. 박민이 잡화게티 대표(35)는 “5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 소품 가게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는데 지금은 오프라인 가게만 30여 개에 이른다”고 했다. 음식과의 결합도 활발하다. “이걸 어떻게 먹어?” “30분 동안 감상하자.” 24일 서울 마포구 ‘디저트연구소’를 찾은 10여 명의 손님은 복숭아와 선인장 모양 케이크를 앞에 두고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케이크 한 조각에 9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다. 강민재 매니저(30)는 “최근 선보인 보노보노와 벌 모양 머랭 쿠키는 판매하자마자 동이 났다”고 했다. 디저트 외에도 ‘뽀로로’ ‘인어공주’ 등을 본뜬 귀여운 밥상, 캐릭터를 내세운 음료수의 인증샷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세를 이룬다. 커피 프랜차이즈도 마시멜로 같은 귀여운 디자인의 음료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작은 물건을 취급하는 답례품 시장도 귀여운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수박 모양 떡설기, 욕조에서 목욕 중인 병아리 모양 방향제, 피카추 디자인의 수세미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외 캐릭터를 내세운 화장품, 출판물, 전시도 잇따르고 있다. ○ ‘남성 편입’ ‘적극 소비’ 귀여운 콘텐츠는 전 세대를 강타하고 있다. 직장인 김현미 씨(46)는 중학생 딸보다 귀여운 인형과 소품을 더 좋아한다. 5년 전부터 하나 둘 사 모은 스노볼, 스티커, 오르골, 봉제인형은 팔아도 될 수준으로 쌓였다. 그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즐기는 기분이 좋다. 만족감이 크다 보니 체면, 쓸모, 경제적 상황, 나이 등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성들도 귀여운 걸 거부하지 않는다. 귀여운 아기 사진을 수집해 공유한다는 직장인 김규민 씨(32)는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을 특히 좋아한다. 최근엔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리락쿠마와 가오루씨’에 빠져 있다”며 “취향일 뿐인데 친한 친구들조차 ‘남자가 이런 걸 좋아하느냐’고 지적하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귀여움을 소비하는 방식은 적극성을 더해가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올해 가장 귀여운 동물’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기’ 등의 순위 영상을 보고 댓글창으로 웃음 참기 놀이를 벌이기도 한다. 취미 모임 사이트에는 소품 가게 동행자를 구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귀여움이 문화 콘텐츠의 중심으로 돌격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에 어른은 어른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팽배했다. 최근에는 개성 존중과 소소한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어른다움에 대한 요구가 옅어졌다. 사회·경제적으로 각박한 현실도 1차원적인 위안을 주는 귀여운 콘텐츠의 주가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이설 기자}

    •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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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심한 영화광 소년’이 거장 되기까지…봉준호의 영화 인생은?

    12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한 영화광 소년’이 세계 최고 권위의 황금종려상을 받기까지…. 장르영화의 틀 속에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내온 봉준호 감독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들어왔다. “봉준호 자체가 장르”(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라는 말처럼 기존 장르법칙을 뒤틀거나 융합하는 새로운 시도에도 능하다. 사소한 장면이라도 치밀한 복선을 배치하는 섬세한 연출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도 붙을 정도.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영화는 ‘살인의 추억’(2003년)이다. 스릴러 장르의 재미에 1980년대 한국사회 공권력의 무능함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5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평단의 호평 세례도 잇따랐다. 할리우드 괴수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그만의 해학, 풍자를 담은 ‘괴물’(2006년)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괴물과 맞서 싸우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무기력을 꼬집었고 관객 수 1301만 명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가족은 그의 주된 단골 소재다. ‘마더’(2009년)에서는 광기 어린 모성애를, 첫 할리우드 진출작인 ‘설국열차’(2013년)와 넷플릭스 ‘옥자’(2017년)는 계급과 계층 갈등을 그리면서도 가족 구성원의 삶 속에 담긴 희비를 담았다. ‘기생충’ 역시 가족 드라마라는 평범한 소재에서 한국사회의 불안한 현실을 꼬집는다. 대구 출신인 그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을 쓴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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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문화를 배운 유전자, 인류 진화 이끌었다

    인지 능력의 관점에서 2세 아동과 침팬지를 구별 짓는 결정적 차이는 ‘사회적 학습’이었다. 다른 동물에 없는, 습득한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집단두뇌가 있었고 이는 인간을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동물로 변화시켰다.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 교수인 저자는 ‘문화적 진화’를 통해 인류는 “진화의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말한다. 사회의 문화와 인간의 유전자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우리의 심리와 행동의 본성이 진화해 왔다는 주장이다. 스티븐 핑커, 리처드 도킨스,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유명 학자들의 주장을 비판, 보완하면서 그의 주장을 풀어냈다. 불과 조리, 식물 지식, 발사무기 등 인류 초기 지식이 바퀴, 나사, 문자 같은 개념을 낳고, 사회 규범, 제도를 확립해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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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진흥왕이 성류굴에 다녀가셨다”

    신라시대 금석문이 발견된 경북 울진 성류굴에서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560년에 다녀갔다는 명문이 발견됐다. 울진군은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와 신라사를 전공한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함께 판독한 성류굴 명문을 23일 공개했다.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 柵作익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 眞興王擧(진흥왕거) 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라는 명문은 올해 3월 신라시대 문자자료가 대거 확인된 제8광장에서 발견됐다. 문구는 “경진년(560년) 6월 ○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고 울진군은 밝혔다. 글자 크기는 가로 7∼8cm, 세로 7∼12cm 정도로 ‘眞興王擧(진흥왕거)’는 다른 글씨보다 크게 썼다. 울진군은 “568년 북한산·황초령·마운령 진흥왕순수비에는 ‘진흥태왕(眞興太王)’으로 기록된 왕명이 560년에는 ‘진흥왕’이어서 왕명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진흥왕이 생전에도 이름이 ‘진흥’이었다는 사실이 더 확실해졌다”고 설명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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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사로 돌아온 디즈니 만화… 뮤지컬 요소 극대화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년)이 27년 만에 실사 영화로 돌아왔다. 개봉 당시 5억40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려 1990년대 디즈니 스튜디오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메가 히트작이다. 판타지적 요소가 많아 실사 영화에 대한 팬들의 우려가 컸지만 정교한 그래픽으로 이질감을 덜어냈다. 이야기는 원작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그라바 왕국의 좀도둑 알라딘(메나 마수드)이 궁을 빠져나온 술탄의 딸 자스민 공주(나오미 스콧)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마법사 자파(마르완 켄자리)의 협박으로 동굴 속 램프를 찾으러 간 알라딘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윌 스미스)를 만나고, 알라딘은 왕자가 돼 자스민과의 결혼을 꿈꾼다. 알라딘, 자스민에 구릿빛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배우들을 캐스팅해, 인종에 관계없이 백인 배우를 기용하는 ‘화이트 워싱’ 논란을 피하면서도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자스민은 더 진취적인 여성이 됐다. 정략결혼에 불만을 품고 답답한 궁을 벗어나려 하는 원작의 설정에, 술탄이 되고 싶은 욕망을 추가했다. 여성이 술탄이 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며 올바른 정치를 고민한다. “입 다물고 살진 않겠어. 나는 침묵하지 않을 거야”라는 가사의 ‘Speechless’는 이번 영화에서 추가된 자스민의 솔로 곡으로 그의 주체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의 시녀 달리아(나심 페드라드)가 지니와 사랑을 성취해 나가는 모습도 원작에는 없던 설정이다. 뮤지컬적 요소도 극대화됐다. 동굴에서 지니가 자신을 소개하는 ‘Friend Like Me’는 래퍼 출신 윌 스미스의 장기를 살려 랩, 비트박스를 통해 현대식 ‘스왜그’를 담았다. 원작에서 지니 역을 맡았던 로빈 윌리엄스의 노래와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다. 왕자로 변신한 알라딘이 행차할 때는 ‘Prince Ali’를 배경으로 낙타, 공작, 코끼리, 형형색색 의상 등 화려한 볼거리가 압권이다. 양탄자를 타고 알라딘과 자스민이 부르는 ‘A Whole New World’는 여전히 감미롭다. ‘스내치’(2000년), ‘셜록홈즈’(2009년) 등을 연출한 가이 리치의 빠른 컷 편집과 특유의 유머는 화려한 뮤지컬과 궁합이 좋은 편이다. 1억8300만 달러(약 2177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원숭이 아부와 호랑이 라자, 앵무새 이아고 등 동물들의 디테일을 살렸고 지니의 온갖 마법을 현실화했다. 특히 아그라바 왕국을 구현하기 위해 축구장 2개 면적에 야외 세트장을 지었다고 한다. 원작과의 비교가 필연적이지만, 알라딘의 마지막 소원이 지니의 자유를 위해 쓰인다는 ‘다 아는’ 결말에도 그때 그 감동은 여전하다. 23일 개봉. 전체 관람가.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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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진 성류굴서 신라 진흥왕 명문 발견…어떤 내용이?

    신라시대 금석문이 발견된 경북 울진 성류굴에서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560년에 다녀갔다는 명문이 발견됐다. 울진군은 심현용 울진군 학예연구사와 신라사 전공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함께 판독한 성류굴 명문을 23일 공개했다.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 柵作익<木+益>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 眞興(진흥) 王擧(왕거) 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라는 명문은 올해 3월 신라시대 문자자료가 대거 확인된 제8광장에서 발견됐다. 문구는 “경진년(560년) 6월 ○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고 울진군은 밝혔다. 명문은 세로 6행으로 1행에 5자, 2행 5자, 3행 5자, 4행 2자, 5행 2자, 6행 6자로 총 25자를 새겼다. 글자 크기는 가로 7¤8㎝, 세로 7¤12㎝ 정도로 ‘眞興王擧(진흥왕거)’는 다른 글씨보다 크게 썼다. 울진군은 “삼국사기를 비롯해 기존 문헌에 나오지 않는 자료로 신라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울진 성류굴의 역사적 위상을 밝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했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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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뷰티-K푸드 반응 폭발적… 호찌민 팝업스토어 종일 북적

    채널A 예능 프로그램 ‘팔아야 귀국’이 시즌2로 돌아온다. 25일 오후 5시 50분 처음 방송되는 ‘팔아야 귀국’ 시즌2는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 호찌민으로 촬영지를 옮겼다. 지난해 방영된 시즌1은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진행됐다. 멤버들은 호찌민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K뷰티, K푸드 등 한류 상품을 판매한다. 한국의 음식, 딸기, 배, 곶감, 어묵, 샴푸 등이 포함됐다. 음식에 대한 반응이 좋아 하루 200여 명의 현지인이 팝업스토어를 찾았다. 특히 오토바이 이용이 잦은 현지인들에게 엔진오일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홈쇼핑에 출연해 국내 우수 제품을 판매했던 전 시즌과 다르게 이번 시즌에는 현지인들과 직접 소통하며 고군분투하는 멤버들의 노력이 적나라하게 담길 예정이다. 윤형석 PD는 “시즌1에서는 홈쇼핑 특성상 모니터 숫자로만 반응을 알 수 있어 현장감이 다소 약했는데, 이번에는 오프라인으로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윤 PD는 “현지인들은 저렴하고 실용적인 상품을 선호했다. 베트남에 진출하는 기업들에도 도움이 될 구체적인 정보를 많이 담았다”고 했다. 새 시즌에 맞게 멤버 구성도 바뀌었다. 시즌2에서는 가수 이현우 허영지와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개그맨 장동민 신봉선이 합류했다. 연예계에서 ‘창업의 신’으로 불리는 장동민은 한때 베트남 사업을 준비했을 정도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절친한 사이인 신봉선과 티격태격하는 ‘케미’는 물론 작업반장으로서의 카리스마를 뽐낼 예정이다. 추성훈은 과묵한 파이터 이미지에서 벗어나 상품을 팔기 위해 레깅스 패션, 걸그룹 메이크업을 소화하며 촬영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드라마에도 출연하며 반듯한 이미지를 닦아온 이현우는 든든한 맏형이 아니라 멤버들의 구박을 받는 허당 캐릭터로 반전 매력을 선보인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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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유료부수 3년 연속 2위… 부수도 계속 늘어

    동아일보가 한국ABC협회(회장 이성준)가 올해 종합편성채널 및 케이블 겸영 매체 24개사에 대한 유료부수 인증 결과 3년 연속 국내 일간지 중 2위를 기록했다. 신문 매체와 광고 시장의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동아일보는 상위 매체 3곳 중 유일하게 발행부수와 유료부수가 모두 증가했다. ABC협회는 2019년(2018년 기준) 매체 24개사에 대한 발행부수와 유료부수 인증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ABC협회는 일간지의 발행부수와 유료부수(정기구독자, 가판 등에서 실제 판매된 부수)를 실사해 집계하는 국내 유일의 공인기관이다. 이날 공개된 ABC협회 조사 결과 동아일보의 유료부수는 73만7342부로 집계돼 전체 언론사 중 2위를 차지했다. 동아일보의 평균 발행부수는 96만5286부로 전년보다 6026부 늘었으며 유료부수 역시 796부 증가했다. 조선일보는 발행부수가 전년도에 비해 15만219부 줄었으며 유료부수도 4만4577부 감소했다. 중앙일보는 발행부수가 전년보다 7311부 증가했지만 유료부수는 1만3695부 줄었다. 이로 인해 동아일보(2위)와 중앙일보(3위)의 유료부수 격차는 지난해 약 1만 부에서 올해 2만4647부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 동아미디어그룹 매체인 스포츠동아(유료부수 10만7567부)는 스포츠신문 가운데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스포츠동아는 전체 24개사 중에서도 종합 순위 8위에 올랐다. 어린이동아의 유료부수는 전체 11위(6만9468부)로 어린이 대상 신문 중 가장 순위가 높았다. 어린이조선일보(14위)와는 유료부수가 1만7749부 차이가 났다. 조성겸 ABC협회 인증위원(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은 “이번 유료부수 인증 결과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신문의 위기 속에서도 질 높은 정보에 대한 독자들의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가짜뉴스, 조회수만을 늘리기 위한 뉴스가 만연한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 종이신문이 여전히 중심을 잡아주는 매체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실증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조 위원은 이어 “종이신문에 대한 높은 수요는 기성 언론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감을 나타내기 때문에 신문사는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ABC협회는 이번에 조사한 종편, 케이블 참여 매체 24개사 외에도 한국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등 나머지 일간지를 추가로 조사해 올해 말까지 전국 160여 개 신문사의 발행부수, 유료부수를 발표할 예정이다.이서현 baltika7@donga.com·신규진 기자}

    •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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