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안영배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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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영배 기자입니다.

oj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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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관의 동북9성이 두만강 북쪽 中·러 국경지대에 있었다?

    고려의 명장 윤관이 세운 동북9성이 두만강 북쪽의 중·러 국경지대 부근에 있었다는 학술 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경복대학교 이인철 교수는 “윤관이 여진족을 몰아내고 국경선으로 삼은 동북9성의 최북단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둥닝(東寧)현 일대임을 관련 문헌과 현지 답사를 통해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동북9성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지목한 학술적 성과이자, 고려의 국경선을 북만주까지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둥닝 현 일대는 중국 동북방의 변경 지역으로, 우수리스크 등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다. 대일항쟁기 시절 이청천 등 독립군들이 일본 관동군과 전투를 벌인 역사의 현장이자,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의 유물과 유적이 대거 출현한 고적지이기도 하다. 그간 학계에는 동북9성의 위치 문제를 놓고 여러 설이 난무했다. ‘길주(吉州) 이남설’(북한의 마운령 진흥왕순수비를 윤관의 정계비로 오인한 한백겸 등이 주장한 설)과 ‘함흥평야설’(대일항쟁기 시절 일본의 관학자들이 주장한 설) 등 동북9성이 두만강 이남에 존재했다는 설이 주류를 이루었다. 반면 이익 등 조선의 실학자들이 고대 문헌을 근거로 주장한 ‘두만강 이북설’은 소수설로 묻혀 있었다. 이익은 “윤관의 비가 선춘령에 있으니, 두만강 북쪽 700리(약 270km) 되는 곳”이라고 하면서, 조선에 들어서서 김종서가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정하는 바람에 영토가 축소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성호사설). 실제로 ‘고려사’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 동북9성의 위치를 알려주는 결정적 단서는 ‘공험진(公¤鎭)’과 ‘선춘령(先春嶺)’이라는 옛지명. 동북9성의 최북단에 있는 공험진은 선춘령 인근에 세워진 군사적 거점기지였다. 따라서 이 두 지역을 찾으면 동북9성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이 교수는 “문헌 기록을 근거로 중국의 현지 지명을 찾아 방위와 거리 등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탐사한 결과 헤이룽장성 둥닝현 도하진(道河鎭) 일대에서 공험진과 선춘령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동북9성은 북단의 이곳을 기점으로 옌볜(延邊) 등 지린(吉林)성 일대까지 펼쳐져 있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의 연구는 26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주관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국회 김세연의원실)에서 발표된다. 이 학술회의를 주관하는 인하대 복기대 교수는 “고대 한국의 국경선 문제는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차원이면서 동시에 동북아의 현실 정치에서 여전히 민감한 주제로 다뤄진다는 점에서 국회에서 학술회의를 마련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고려의 국경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축소되다 보니 조선의 국경선도 왜곡됐고, 이로 인해 만주와 연해주 일대의 역사 공간을 중국의 역사로 해석하게 하는 빌미를 주었으며(동북공정), 미·중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발언까지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이 학술회의에서는 이 교수의 발표(‘고려 중기 동북 국경에 관하여 ¤ 윤관 9성을 중심으로’) 외에 ‘고려 전기의 서북 국경에 관하여(윤한택)’, ‘명대 한중 국경선은 어디였는가(남의현)’ 등 고대 한국의 국경선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고대한국의 국경 문제는 남북통일 이후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 정치, 외교적으로 다투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 학계 내부에서 먼저 국경 문제와 관련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키고, 나아가 국가 차원의 연구 지원 사업을 통해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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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개와 고양이의 식스센스

    대학생 딸이 강아지 한 마리를 집에 데려왔다. 해외여행을 가는 친구를 위해 강아지를 맡아주게 된 것이다. 한 달간 함께 생활하게 된 강아지는 4년생 몰티즈. 이름은 ‘마리’였다. 강아지 주인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설쳐대니까 잠잘 때는 마리가 아예 움직이지 못하도록 목줄을 한곳에 매놓아야 한다’는 메모까지 첨부했다. 그렇게 부산스럽다던 마리가 우리 집에서는 무척 얌전히 지냈다. 식구들을 볼 때마다 쉴 새 없이 혀로 ‘얼굴 공격’을 해올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는 품성이니 낯선 환경 때문에 얌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목줄이 없어도 밤에 아무데나 돌아다니지 않았다. 처음 집에 들어올 때 붉게 충혈돼 있던 눈의 흰자위와 몹시 가려워하던 귓병도 어느새 말끔해졌다. 딸이 마리의 사진을 찍어 해외여행 중인 주인에게 스마트폰으로 보냈다. 주인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며 놀라워했다. 마리의 변화는 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마리 주인이 사는 집은 수맥파의 영향을 크게 받는 터였다. 강아지는 수맥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맥파가 있는 자리를 피하려다 보니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눈과 귀까지 이상 증상이 생겼던 것. 그러다가 수맥파에서 비켜난 터에서 생활하면서 심리적 안정과 건강을 빨리 되찾을 수 있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에도 수맥지대가 있다. 마당 한구석에 조성해 놓은 화단은 1m 폭으로 수맥파가 방사(放射)되고 있다. 밤이 되면 길고양이들이 잠을 자기 위해 화단으로 찾아오곤 했다. 자기들끼리 ‘침실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밤마다 길고양이들이 내는 아기 울음 같은 소리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결국 수맥파 차단 조치를 단행했다. 그 후부터는 길고양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수맥파 등 유해한 지기(地氣)를 선호하는 특성을 보인다. 물론 유해한 지기, 즉 ‘살기(殺氣)’는 사람 입장에서의 관점일 뿐이다. 고양이 입장에서는 수맥파 지대가 ‘생기(生氣)’이자 명당이다. 터와 관련한 개와 고양이 얘기는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등장한다. 대만(臺灣)에는 ‘묘래궁(猫來窮),구래부(狗來富)’라는 민간 속설이 있다. 떠돌이 길고양이가 찾아오는 집은 살림이 궁핍해지는 징조이며, 길강아지가 방문하는 집은 부유해지는 길조라는 뜻이다. 이를 풍수적 시각에서 해석해 보자. 길고양이가 본능적으로 끌림을 느끼는 집은 사람에게는 유해한 기운이 서린 곳이므로 거주자의 건강과 운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 반면에 길강아지가 스스로 찾아오는 터는 사람에게도 좋은 기운을 주는 명당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떠돌이 길고양이와 길강아지들에게 해당하는 경우다. 반려묘(伴侶猫)에 대한 속설들은 북유럽과 러시아에 많이 전해진다. 북유럽 각국에는 고양이의 특징적인 행동과 습성에 따라 날씨, 길흉 등을 점치는 얘기들이 널리 퍼져 있다. 특히 러시아 사람들은 새집으로 이사할 때 고양이를 이용해 주인의 잠자리 위치를 찾는다고 한다. 고양이가 나쁜 기운을 가려내는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터에 대한 탁월한 감각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찌감치 주목했다. 2000여 년 전 고구려의 제2대 유리왕은 도읍지를 새로 정할 때 돼지를 이용했다(삼국사기).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꿩, 제비, 까치가 알을 낳는 곳이나 노루가 쉬는 곳에서 좋은 터를 구했다는 등 동물을 이용한 명당구득(明堂求得) 설화가 전국 각지에서 전해 내려온다. 지금도 반려견을 이용해 명당을 찾을 수 있다. 야외에서 개가 실컷 뛰어놀다가 즐겨 쉬거나 편안히 잠을 자는 터는 명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래는 사람도 터에 대한 감지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추정한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은 사람도 철새처럼 지구의 자기장 감지력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과학 실험으로 증명했다. 자기장은 땅 기운보다 더 미세해 감지하기가 쉽지 않은 파동(波動)이다. 사람이 자기장을 느낄 정도의 식스센스를 가지고 있다면, 터의 기운을 파악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퇴화된 현대인의 능력을 반려동물이 대체해 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반려동물은 사람에게 터의 기운 정보를 알려주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단지 사람이 무심해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에 이르는 시대를 맞아,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동반자로서의 반려동물을 다시 생각하는 요즘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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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장남 왕’ 거부한 경복궁, 청와대 주인은 어떨까

    “한양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아서 장자(長子·장남)가 눌리고 지자(支子·맏아들 외의 아들)가 잘된다. 왕위 계승자와 높은 벼슬아치들 중에는 대개 지자 출신이 많다.” 조선 중기 유학자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1504년)에 실린 한양 풍수론이다. 실제 산세가 그렇다. 북악산 자락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남쪽의 낙산(해발 125m)은 나지막한 산으로 청룡(靑龍)에 해당한다. 경복궁에서는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반면 서북쪽의 인왕산(338m)은 기세당당한 호랑이가 웅크려 있는 모습으로 백호(白虎)에 해당한다. 대체로 청룡은 장자·남성을 주관하고, 백호는 지자·여성을 주관한다고 본다. 낙산보다 인왕산 기운이 강하므로 장남보다는 차남 등 지자가 더 힘을 발휘한다는 게 전통 풍수적 시각이다. 한양의 ‘지자득세(支子得勢)’ 풍수설은 당시로서는 매우 위험천만한 표현이었다. 왕위를 이어받는 장자(왕세자)들의 용린(龍鱗)을 건드리는 반역 행위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성현이 이런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조선의 장자승계 원칙에 거스르는 글을 남긴 이유는 뭘까. 성현은 23세(세조 8년)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연산군까지 모두 4명의 왕을 모신 고위 관리였다. 왕실과도 가까운 인척이다 보니 ‘장남 왕’들이 단명하거나 왕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현장을 보며 자랐다. 그가 어린 시절 임금이었던 5대 문종은 조선 역사상 첫 번째 장남 왕이었다. 병약했던 문종은 재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문종의 장남인 6대 단종도 재위 3년여 만에 세조의 쿠데타로 쫓겨났다. 이후 10대 연산군에 이르러 세 번째 장남 왕이 탄생했다. 그런데 연산군마저 날이 갈수록 폭정을 했다. 결국 성현은 연산군의 무자비한 숙청 등을 지켜보면서 ‘용재총화’를 집필했고, 사후 부관참시를 당했다. 성현의 풍수적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연산군은 집권 12년 만에 폐위돼 강화도로 유폐됐다. 네 번째 장남 왕인 12대 인종 역시 재위 1년을 못 채우고 사망했다. 14대 선조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에 풍수적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전쟁으로 완전히 불타버린 경복궁을 버리기로 했다. 그 대신 응봉 산줄기에 자리한 창덕궁 등에서 정사를 펼쳤다. 궁의 주산(主山)이 바뀌었으니 한양 기운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 이로써 조선의 법궁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이 중건하기까지 무려 270여 년간 방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에서 배출한 총 27명의 제왕 중 장남이 왕위에 오른 경우는 단 7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대부분 단명하거나 왕위를 제대를 누리지 못했다. 경복궁의 지자득세설은 현대에도 작동할까. 대한민국 건국 이후 과도기적 수장인 윤보선·최규하 전 대통령, 여성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들의 가족 이력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장자가 아닌 지자였다. 장남으로 알려진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도 원래 장남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2남 중 장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필자가 10여 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생가 일대를 답사할 당시 만난 지역 원로는 달리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모는 일찌감치 아들 하나를 잃어버렸고, 다시 어렵게 얻은 아들(노태우)의 이름에 장수와 출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우(愚)’ 자를 썼다는 것.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형제 두 명을 어린 시절 모두 잃어버리는 바람에 외아들이 됐다고 한다. ‘장남 액땜’을 한 경우라고나 할까. 5월 장미대선의 유력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공개된 가계대로라면 남동생을 둔 ‘완벽한’ 장남이다. 조선 왕조에서도 장남으로서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고 천수를 다한 왕이 딱 한 사람 있다. 제19대 숙종(1661∼1720)은 무려 46년간 통치하면서 임진왜란 이후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장자(외아들) 출신이다. 장남도 경복궁에서 버텨낼 수 있음을 보여준 유일한 사례다. 만약 두 후보 중 한 명이 당선돼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다면 경복궁의 후원 자리에 자리한 청와대에서는 더 이상 지자득세설이 유효하지 않음을 입증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만일 ‘장남 대통령 후보’가 청와대의 주인이 될 경우 그에겐 땅 기운도 이겨낼 만큼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바라보는 대선 관전 포인트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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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산업혁명 시대의 주인공은 “모범생 아닌 모험생”

    우리나라엔 도(道) 단위 광역행정구역 중심으로 9개의 거점국립대학교가 있다(법인화된 서울대는 제외). 이들 대학은 정부로부터 일정한 지원을 받고 총장은 모두 장관급 예우를 받는다. 대체로 각 도를 대표하는 대학이다 보니 해당 지역 도세(道勢)에 따라 암묵적인 서열도 매겨져 있다. 여기서 돌출적이고 예외적인 곳이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전북대학교다. 전북대는 불과 10년 전인 2007년까지만 해도 국내 대학평가에서 40위권을 맴돌았다. 그런데 최근 수년째 거점 국립대 가운데 최상위권, 국내 종합대학 10위권의 위상을 확고히 지키고 있다. 인구와 경제 규모 등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전북에서 전북대만큼은 국립대중 톱클래스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것. 그 비결은 무얼까. 15일 전주에 있는 전북대 캠퍼스를 찾아가 이남호 총장(58)을 만났다. 이 총장은 “이런 평가도 좀 억울하다”라고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우리 대학이 국내외 대학평가기관으로부터 학생 교육 여건이나 교수진의 연구 경쟁력 등 객관적 지표로 받은 평가를 보면 전국 종합대학 5위권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런데 주관적 지표인 대학의 평판도나 인지도가 30∼40위권에 머물러 실제의 학교 역량에 비해 매우 낮게 평가받고 있다.” Only One 프로젝트  이 총장은 전북대를 주식시장의 ‘성장 가치 최우량주’에 비유했다. 실제 가치와 역량에 비해 저평가돼 있지만, 성장 잠재력이 무궁한 대학이라는 것이다. 이 총장은 개교 70주년을 맞이하고, 개인적으로는 취임 2주년을 맞은 올해를 ‘성숙의 100년’으로 나아가는 터닝 포인트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2의 도약을 위해서 우리 대학만이 갖고 있는 강점들을 살려 ‘온리 원(Only One)’ 브랜드를 만들고자 한다. 우리만이 할 수 있고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했을 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을 찾아내서 적극적으로 키워내면 대학의 위상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성장, 즉 성숙의 대학이다.” 전북대의 ‘온리 원’ 전략은 학교의 평판도와 인지도, 즉 네임 밸류(Name Value)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그 핵심. 이는 우수 학생과 우수 교원 유치, 취업률 향상, 대학 발전기금 확충, 구성원들의 자긍심 고취 등 대학의 전반적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이를 위해 4가지 핵심 과제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색깔 있는 모험인재 양성 △월드클래스(World Class) 학문 분야 육성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 구축 △가장 걷고 싶은 캠퍼스 둘레길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먼저 전북대만의 고유 인재양성 브랜드인 ‘모험생’에 대해 이 총장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이라고 강조했다. “모범생과 모험생은 분명히 구분된다. 단순한 지식 전달과 스펙 쌓기에만 매몰돼 있는 그간의 모범생 교육을 넘어서서, 보다 깊고 넓게 보는 안목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이 모험생 교육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일이기도 하다. 제조업 중심 시대에는 시키는 일을 열심히 잘 해내는 모범생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기계와 인간이 경쟁해야 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현재의 지식과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융합하며, 스스로 일을 찾아 주변 동료와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험인재가 필요하다.” 이 총장은 혁신적 사고를 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구체적으로 오프캠퍼스(Off Campus)와 레지덴셜 칼리지(Residential College)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프캠퍼스는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최소 한 학기 이상 다른 나라나 특정 지역으로 가서 현지 언어, 문화, 생활방식 등을 습득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감각과 타문화 포용력,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 프로그램으로 매년 20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 ‘거주형 대학’으로 일컬어지는 레지덴셜 칼리지는 기숙사가 단순 거주 공간이라는 기존 관념을 완전히 깬 프로그램이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낮에는 학과에서 교양과 전공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기숙사로 돌아와 문제 해결 능력과 팀워크, 커뮤니케이션 스킬, 문화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기숙사를 전인(全人)·전일(全日)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신입생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고 한다. 연구와 임상 중심의 약대 절실   두번째로 대학의 본령인 연구 분야에선 전북대의 7대 연구소를 집중 육성해 월드클래스로 브랜드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북대는 △아시아 최대의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세계 5위 규모의 고온플라즈마응용연구센터 △국내 대학 최대의 식물공장 및 LED농생명융합기술연구센터 △280억 원을 투입한 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 △원자폭탄을 최초로 개발한 미국 로스알라모스연구소 분원 △유네스코 NGO로 선정된 무형문화연구소 △한국 과학문명사를 집대성한 한국과학문명연구소 등 쟁쟁한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몇몇 연구소는 관련 학부 및 학과와 연계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고도 한다. 이 총장은 월드클래스 육성과 관련해 재임중 꼭 성공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밝혔다. 바로 약학대학 유치다. “우리 대학의 경쟁력 향상과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다. 전북의 핵심 전략 산업중 하나가 농생명 바이오산업이다. 특히 농생명 분야의 천연소재를 기반으로 한 신약개발 사업이 그 핵심인데, 정작 이를 위한 약대가 전북대엔 없다. 우리 대학이 생각하는 약대는 단순히 개업 약사만을 양성하는 1차적 소임을 넘어 천연소재의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와 임상 중심의 약대, 즉 성숙한 약대다. 전북대는 이미 의대와 치대, 수의과대, 자연과학대, 대학병원 등 관련 학문 체계를 잘 갖추고 있어 약대를 유치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면 약대 역시 월드클래스 학문 분야 육성과 더불어 세계적 반열에 오를 수 있다.”명품 한옥 캠퍼스 조성  전북대의 모험인재 양성과 월드클래스 육성이 ‘온리 원 브랜드’를 위한 소프트웨어 전략이라면,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 구축과 캠퍼스 둘레길 조성은 하드웨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 총장의 철학이 담겨 있다. “대학의 고유 브랜드를 만드는 데 있어서 지역적 특징과 자산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해 1000만 명이 방문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의 브랜드를 적극 활용해 우리 대학 정문과 국제컨벤션센터, 법학전문대학원 등을 전통 한옥형으로 지어 가장 한국적인 캠퍼스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바로 ‘한스타일 캠퍼스’이다. 또 우리 대학은 세계 어느 대학도 갖지 못한 천혜의 자연경관 자원을 가지고 있다. 40만 평의 캠퍼스(전주)와 바로 인접한 40만 평의 건지산 도시 숲은 우리 대학의 소중한 자산이자 전북의 보물이다. 따라서 11.4km에 달하는 캠퍼스 명품 둘레길과 건지산 수목원을 생태 공간으로 조성해 전주 한옥마을처럼 전 국민이 사랑하고 즐겨 찾는 명소로 가꿔 나가겠다.” 이 총장은 이런 작업을 통해 “스탠퍼드대학 하면 실리콘밸리, 하이델베르크대학 하면 ‘철학자의 길’이 떠오르는 것처럼, 전북대하면 명품 한옥캠퍼스와 가장 걷고 싶은 둘레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총장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올해 10월 전북대 개교 70주년 행사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교직원들이 총장실을 분주하게 들락거렸다. 이 총장에게도 남다른 감회가 있는 듯했다. “전북대는 1947년 이리농과대학을 모태로 설립된 이후 1951년 호남·충청 지역 최초로 국립대 인가를 받아 덕진동 건지산 기슭에 터를 잡았다. 현재는 도내 7개 캠퍼스에 교수 1000여 명, 재학생 2만3000명에 이르는 매머드급 대학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처장급을 단장으로 하는 개교 70주년 기념사업추진단을 꾸렸다. 전북대 69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대학과 지역사회의 역량을 결집해, 100년을 향한 포부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 대학은 빠른 변화보다는 바른 변화를 추구하며, 짧은 호흡보다는 긴 호흡으로 내다보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성숙의 대학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이 총장은 마지막으로 “전북대의 성장은 지역민들의 성원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지역민들과 문화적으로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채로운 사업을 마련해 대학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학교 발전을 위해 교직원간 소통 역시 유난히 강조하는 이 총장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는 표현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이남호 총장은1984년 서울대 임산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2년부터 익산대학, 전북대 교수로 재직하며 국립산림과학원 겸임연구관, 전북생명의숲 운영위원, 전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장, 전북대 산학협력단장 등을 지냈다. 2014년 12월 전북대 17대 총장에 취임한 이후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대학평가인증위원장 및 이사, 전북현대모터스축구단명예홍보대사, 전주한지문화축제조직위원장, 거점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전주=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 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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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진정한 ‘봉황 대통령’을 기다리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가 내려진 10일, 청와대 본관에 게양된 봉황기도 내려졌다. 청와대의 주인이 사라졌으니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깃발도 나부낄 명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간 이튿날,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의 봉황 조형물을 찾아보았다. 여느 때와 달리 ‘기운이 빠진’ 봉황상이 을씨년스럽게 비쳤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봉황을 통치자의 상징으로 사용해왔다. 조선의 궁궐인 창덕궁과 창경궁 정전에는 왕을 상징하는 봉황 문양이 조각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봉황이 날아와 태평성대를 기뻐한다는 뜻의 ‘봉래의(鳳來儀)’ 의식을 궁궐에서 치렀다고 전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황금 빛깔의 봉황 휘장은 대통령의 상징으로 채택됐다. 외교문서 조인 등에 사용하는 국새에도 수컷인 봉(鳳)과 암컷인 황(凰)을 상징하는 봉황 한 쌍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봉황을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봉황은 제왕적 대통령 이미지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이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임기제 대통령을 여전히 왕으로 인식하는 정서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 반대 단체는 왕조시대에나 등장하는 ‘역모’와 ‘반란’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불복 움직임을 보였다. 또 박 전 대통령 스스로도 대통령과 왕을 명확히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쩌면 임시직 대통령과 종신직 제왕을 구별하지 않는 한국적 정서가 오늘의 비극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봉황 문화가 중국을 사대하는 전통이라며 폄훼하는 이들도 있다.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황제의 상징인 황룡(黃龍)을 사용하지 못하고 그 대신 황후를 상징하는 봉황을 채택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봉황과 용은 흔히 음양의 기운으로 대비된다. 용은 ‘물의 지배자’ 이미지로 음을 상징하며, 봉황은 세상을 밝히는 태양의 이미지로 양을 상징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용을 선호해 스스로를 ‘용의 자손(龍孫)’이라고 생각해왔다. 반면 한국인들은 천도(天道)의 전령사인 봉황을 귀하게 여겨 스스로를 천손(天孫)이라고 자부했다. “봉황은 동방 군자의 나라에 출현한다(說文)”는 기록처럼, 한국인들은 하늘의 뜻을 전달하는 봉황을 신조(神鳥) 혹은 천조(天鳥)로 받들었던 것이다. 고대 한국의 봉황 전설을 다룬 ‘봉황의 나라’ 작가 은영선은 용보다 봉황을 한 수 위로 쳤다고 말한다. “물속에서 온갖 조화를 부리는 용은 권력 투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지만 분노의 기운이 강해 가까이 하기가 어렵다. 반면 봉황은 햇볕 같은 따스함과 감동을 통해 세상을 품어주며 분노를 모르는 존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봉황은 뭇 짐승을 굴복시키는 유일한 신수(神獸)다. 이것이 한국인들이 봉황을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라고도 한다. 우리가 유독 대통령에게만큼은 봉황의 덕치(德治)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도 이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통령 상징물인 봉황은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다. 풍수 답사차 발품을 팔다 보면 한국인들의 봉황을 염원하는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 전국적으로 봉황과 관련된 산과 마을 지명이 130여 곳에 이를 정도다. 풍수에서는 봉황 형국(形局)을 갖춘 터에서는 어질고 고귀한 인물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래서 봉황 기운이 오랫동안 머물도록 오동나무(봉황 서식처)와 대나무(봉황 먹이) 등을 심기도 했다. 여건이 안 될 경우 이름 비방(秘方)까지 동원했다. 봉황 혈(穴) 주변에 봉죽리(鳳竹里), 죽방산(竹防山), 오산(梧山), 봉담(鳳潭) 등의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봉황의 기운을 붙들어 놓으려 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비보(裨補)풍수다. 조기 대선체제를 맞아 봉황 관련 도참설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한 대선주자의 조상 묘가 봉황형 명당이라서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다는 풍수설이 나돌고, 지방자치단체장인 또 다른 대선주자는 관할 지역내 오동나무 기운 덕분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 유력 여성 정치인은 자신에게 봉황의 기운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봉황의 꽁지깃처럼 장식하고 다니다 오히려 낭패를 당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진정한 봉황 기운은 사람을 덕으로 감싸고 포용하는 정치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나같이 동물 관상을 가진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지도자들을 제압할 수 있는 참 봉황이 나오기를 그 어느 때보다도 염원하는 요즘이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7-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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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누리당은 ‘샌-우리-당’으로…이름 지을때 부터 깨짐 암시”

    ‘산통을 왈각왈각 흔들어서 거꾸로 잡아 산대를 빼어 세어보고 부채를 두드리며 점괘를 푼다. 판수 고개를 갸웃거리며 “춘향아!”하고 부른다. “예.” “점괘가 매우 묘리 있다. 천을귀인(天乙貴人)이 지세(持世)한데 응(應)이 세(世)를 생하였으니, 이도령이 과거(科擧)하여 청포를 입은 격이요, 천복귀인성(天福貴人星)에 역마(驛馬) 발동(發動)하였으니 분명 외임(外任)하여 나가는 형상이요, … 열읍 수령 관속들을 형추파직(刑推罷職)할 것이니, 암행수의(暗行繡衣) 분명하다. … 이애 춘향아, 부디부디 잘 조섭하여 염려 말고 두고 보라. 평생에 못 잊던 낭군이 미구에 올 것이니 두고 보라.’ 춘원 이광수(1892-1950)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일설 춘향전’(1925년 12월 18일 자)의 한 대목이다. 춘원이 ‘고본 춘향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개작한 이 소설에서는 점쟁이 판수의 점복(占卜)이 극적 반전의 모티브로 설정돼 있다. 판수가 전라도 남원 사또의 수청을 거부해 고초를 겪는 춘향을 위해 육효점(六爻占)을 쳐본 결과, 춘향의 낭군인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함으로써 소설의 대반전을 암시한 것이다. ‘춘향전’뿐만 아니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끼전’ 등에도 ‘주역’의 팔괘(八卦)를 이용해 미래를 점치는 행위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등장한다. 고전 소설의 무대인 조선 시대에는 주역 괘로 길흉을 점치는 행위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말해준다. ‘주역’ 괘를 이용한 점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역술계에는 개인 운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파악하는 사주명리학과 함께 단기적인 사안을 살피는 육효점을 참고하는 역술인들이 적지 않다. 육효점은 미시적인 운세나 현안의 길흉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매년 정초가 되면 한 해의 국운을 짚어본 육효점이 흥밋거리로 등장하곤 한다. 올해 정유년은 초반에서는 어렵다가 하반기에 평안하다는 ‘초난후태(初難後泰)’라는 어느 역술인의 육효점 결과가 나왔다고 했던가. 기자 출신의 육효점 고수 육효점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상에서 자신의 미래 예측에 유용하게 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언론인 출신의 노응근 씨(59)가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전문 역술인이 아니면서도 육효점의 고수로 역학계에도 소문났다. 그는 경향신문사에서 사회부·경제부 기자, 산업부장, 경제에디터, 논설위원 등으로 30여 년간 일하다 2014년 정년퇴직했다. 기자 시절 후배들 사이에서 육효점을 잘 본다고 소문나 ‘육효 도사’라는 별명까지 들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같은 언론계에 종사하는 기자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그를 만나 어수선한 우리나라의 운세부터 물어보았다. ”굳이 육효점을 쳐보지 않아도 국내 정치와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누구나 알 수 있지 않은가. 점이라는 건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이 잘 서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간절히 알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런 기운에 응해서 괘를 뽑고 해석하는 행위다.“ 그는 뻔한 사실을 가지고 왜 굳이 묻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육효점은 ‘심심풀이 땅콩’용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는 길을 잃었을 때 방향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유용한 나침반이라는 것이다. 물론 역학계에는 여러 종류의 나침반이 있다. 사람의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기반으로 하는 사주명리학, 타고난 얼굴 생김새를 바탕으로 하는 관상학, 제갈공명이 즐겨 보았다는 기문둔갑, 하늘의 별을 기반으로 하는 점성학, 무당이 의지하는 신탁(神託) 등 다양한 나침반이 있다. 노응근 씨는 그중 주역 8괘를 기반으로 하는 육효점을 자신의 나침반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는 육효점의 장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육효점은 사주명리학 등 여러 역학 점에 비해 이론이 복잡하지 않다. 누구나 간단한 규칙을 습득하면 육효점을 칠 수 있다. 이를 테면 궁금한 사안이 생겼을 경우 주사위나 산대 등의 도구를 사용해 ‘주역’의 기본 8괘(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곤(坤)) 중 두 개를 임의로 선택한다. 임의로 추출한 두 개를 위(상괘)·아래(하괘)로 배치하면 모두 64개의 괘가 조합된다(8×8=64). 그리고 3개의 효(爻)로 구성된 기본 8괘가 위아래로 배치되면 6개의 효가 생기므로 육효라고 한다. 전체 64개 괘 중 해당하는 괘의 성격과 특징 등을 풀이한 육효 이론서 등을 참조해 궁금한 사항을 해석하면 된다. 물론 괘를 상황에 맞게 얼마나 잘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고수(高手)와 하수(下手)로 구분되긴 한다.“ 그는 또 육효점은 하나의 특정 사안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뛰어난 적중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신문사에서 근무할 당시 후배들이 결혼·승진·합격 등 특정 사안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육효점으로 해석해서 풀어주곤 했는데, 나중에 신통하다는 얘기가 들려왔다고 한다. 동양학은 스승을 잘 만나야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노 씨가 처음부터 역학계에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 육효점과의 인연이 궁금했다. ”1998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내가 몸담았던 언론사에서 구조조정이 실시됐다. 그때 언론인으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1년간 휴직을 신청했다. 당시 역술에 취미를 붙인 지인이 답답해하던 내게도 역학 공부를 권유했다. 그래서 소개 받은 사람이 육효학의 대가로 알려진 신산(神算) 김용연 선생이다.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육효학을 공부하게 됐다.“ 그는 스스로 철학적, 종교적 성향이 강한 편이라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76학번인 그는 학창시절 불교철학과 명상 수련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 수행도 해보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동양의 역철학에도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육효학에 입문한 지 3년이 지나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스승과 함께 책을 펴내기도 했다. 2001년에 출간된 ‘신산육효-이것이 귀신도 곡하는 점술이다’는 국내 육효 연구의 새 지평을 여는 데 이바지하였고, 역학계에 큰 영향을 준 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양 역학계에서는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는 얘기가 있다. 귀신처럼 계산(예측)을 잘한다고 해서 ‘신산’이라는 호가 붙은 그의 스승은 어떤 사람일까. ”신산 김용연 선생님은 10대부터 기인(奇人) 술사(術士)를 만나 역학에 입문하여 50년 동안 각종 역서(易書)를 깊이 공부해온 분이다.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짜 내 한자 이름을 묻더니 육효로 풀어보면서 ‘관(官)이 부러졌구먼’ 하고 말했다. 내가 휴직을 한 상태고 직장까지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여서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내심 ‘역학이란 게 이런 것인가’ 하고 충격을 받은 뒤 그날부터 바로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 스승한테 육효학을 배운 뒤 독립해 육효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는 역술가들도 국내에 한둘이 아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육효학 외에도 성명학, 사주명리학 등 다양한 역학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가 독자적으로 ‘좋은 이름의 비밀’이라는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작명 이론을 거의 다 모아 소개하는 ‘성명학 교과서’ 같은 책이면서도, 각각의 성명학 이론에 대한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비판도 싣고 있다. 그는 성명학 서적을 낸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그의 아내가 ”아이 이름이 안 좋다고 하니 바꿔야 한다“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아이의 한자 이름을 분파(分破)하니 매우 흉하게 나왔다는 거다. 많고 많은 성명학 이론 중 곁가지 이론에 불과한 ‘분파 성명학’ 이론을 보고 불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명학의 이론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명학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름이 기운(에너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좋은 기운을 가진 이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오히려 성명학이 가진 긍정적인 의미까지 훼손되고 있다. 나는 개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거나 뜻이 흉한 글자가 들어 있는 이름이 아니라면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에 의문을 갖지 말라. 작명소에는 아예 가지 말고, 철학관에 가서도 이름에 대해서 묻지 말라. 그러다 우연히 이름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거나, 스스로가 이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머뭇거리지 말고 개명하라. 그리고 개명 후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새누리당은 ‘샌-우리-당’으로 이미 깨짐을 암시했다 그는 이름이란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면 좋은 이름이고, 안 좋은 이름이란 ‘의심’이 드는 순간부터 나쁜 이름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당명을 개정한 자유한국당(이전 새누리당)을 사례로 들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원래 새누리당은 새로운 누리(세상)라는 뜻으로 지은 당명이지만, 된발음을 하거나 까칠한 발음을 하는 이들에게는 ‘샌 우리 당’으로 발성되기 쉽다. ‘샌’은 물질이 틈이나 구명으로 빠져 나온다는 의미의 ‘새다’라는 뜻이고, ‘우리’는 동물 등이 거처하는 지극히 작은 공간을 말한다. 나의 스승이 새누리당 이름을 보고 일찌감치 해석한 것인데, 실제로 새누리당 의원 일부가 빠져나오는 등 당이 갈라지고 결국 당명마저 바꾸게 되지 않았는가. 이처럼 이름에는 예시적인 것이 암시돼 있으므로 사람이나 단체가 이름을 지을 때는 잘 지을 필요가 있다.“ 그는 언론계에서 은퇴한 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공감 철학원’이라는 사무 공간을 마련해 육효점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육효학 강의를 하고 있고, 지난해 성명학 책을 낸 후부터는 성명학 강의까지 요청받고 있다는 것. 그는 육효학이 단순히 점치는 행위만이 아니라, 자기 수양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육효점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 스스로를 위한 점을 칠 때는 빗나가는 것이 많았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자기 점을 칠 때 자신에게 유리한 점괘가 나오기를 바라는 사욕(私慾)이 개입하면 점괘가 잘 맞지 않았다. 무념무상한 상태에서 점을 칠 때만 점기(占幾)가 응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또 그렇게 점을 치다보니 마음을 비우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들이게 됐다. 자신의 욕심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모든 도가(道家)에서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무위자연을 논하는 도학자(道學者) 같은 말이다. 그는 젊었을 때는 세상은 자기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개척해 나가는 무대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부터 세상은 자기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으며, 더 나이가 들어 육효학을 접한 뒤부터는 인생은 운명(運命)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위에서 함께 굴러가는 존재라고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결과는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여전히 아름답고 귀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노 씨는 마지막으로 점복이라는 술수학을 미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 또한 교만이라고 주장했다. 술수학에서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세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보다 겸손해지고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혜의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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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대권주자의 천도 공약, 대통령의 운명…

    이대로라면 차기 정부에서 명실상부한 천도(遷都)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의 대선 주자들이 너도나도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 이전론은 올 정초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세종시를 정치·행정수도로 완성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불이 댕겨졌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 등 유력 대선 주자들도 덩달아 행정수도 이전론에 동참하고 있다. 아직 대선 주자가 정해지지 않은 여권만 입을 다물고 있을 뿐, 이제는 청와대와 국회 등 국가 중요 기관의 세종시 이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방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삼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역대 정권에 걸친 큰 숙제거리였다. 그렇게 해묵은 수도 이전론이 현 시점에서 또다시 호응을 얻는 이유는 뭘까.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불통(不通) 청와대’ 비판 여론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잖아도 역대 대통령들의 과오를 청와대 터와 연결짓는 풍수적 해석이 적지 않던 참이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불거진 민심 이반과 충청도를 의식한 ‘대선 표퓰리즘’ 등이 가세해 천도 정국이 펼쳐진다고나 할까.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부 수립 이후 천도를 강력하게 추진하거나 부분적으로나마 실천에 옮긴 권력자들은 이후 한결같이 불행을 겪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백지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다 1979년 급작스럽게 서거하는 바람에 행정수도 이전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충남 세종시에 신(新)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밀어붙였으나, 2004년 위헌 판결을 받아 좌절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 탄핵 파동을 맞고 퇴임 후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등 불행을 겪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위헌 판결을 받은 행정수도의 대안으로 마련한 게 현재 세종시에 조성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다. 청와대와 국회 등은 그대로 두고 행정부처 일부만 이전하는 ‘기형적인’ 도시 건설에 대해 반발도 적잖았다. 그러나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부처 이전 강행을 강력히 주장하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더욱 힘을 실었다. 박 대통령은 현재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수도 이전 정책과 전·현직 대통령들의 불운(不運)을 합리적인 인과 관계로 따지기는 어렵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조선시대 때 천도를 주장한 왕들의 운명은 어땠을까. 조선 역사에서 ‘천도 카드’를 꺼내든 왕은 광해군과 정조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도성의 왕기(旺氣)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교하(현재 경기 파주시 일대)에 새 도성을 세워야 한다며 천도를 밀어붙였지만 실패했다. 이후 광해군은 왕에서 폐위되고 ‘군(君)’으로 강등되는 치욕을 겪었다. 광해군에 이어 정조는 공개적으로 천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왕도(王都)를 연상시키는 수원화성을 건축하는 등 천도에 버금가는 일들을 직접 실천했다. 그러나 정조는 수원화성을 완성한 지 4년 만인 1800년 48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독살설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천도를 추진한 권력자들의 단명 혹은 정치적 몰락의 배후에는 천도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 세력이나 정치적 반대 세력의 저항이 만만찮게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천도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명분이 뚜렷하고 민심을 얻어야 한다. 풍수적으로는 도읍의 지기(地氣)가 수명을 다하고,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천기(天氣)가 변해 명분이 서고, 민심이 함께 변화를 원할 때 천도가 이뤄진다고 본다.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과 지방 균형발전, 효율적인 행정 집행 등 일정한 명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대사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민심의 결집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남북통일을 앞두고 새로운 행정수도 모색이라는 거시적, 미래적 접근법이 명분과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서울의 지기가 아직도 수도 기능을 왕성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실천하는 세계적 지도자 배출을 위해 준비된 청와대 터 또한 기세가 아직 등등하다. 서울을 수호하는 한양기지신(漢陽基址神)이 “서울의 땅심은 살아 있고, 경복궁이 두려워 떠나려 하는 정치인은 주인 자격이 없다”라고 필자의 귀에 외치는 듯하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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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흥망이 공존하는 도깨비 터의 진실

     대학에서 잘나가던 A 교수는 제자를 잘 둔 덕에 박근혜 정부의 장관직에 발탁됐다. 옛날로 치면 묘비(墓碑)에 ‘판서’라는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자리까지 올랐으니 가문의 영광이었다. 집도 서울 마포에서 강남 부촌으로 옮겼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새집으로 이사 간 지 얼마 후 A 교수는 구치소로 붙들려갔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된 혐의였다. A 교수가 살던 마포의 아파트를 필자의 지인이 구입했다. 입주하고 나서야 A 교수가 이곳에 사는 동안 장관이 됐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지인은 이 아파트에 사는 것을 흡족해했다. 예전에 살던 집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전 집에서는 매일 밤잠을 설쳐 피로에 지친 생활을 했는데, 새집에서는 가족 모두가 활력이 살아나 살맛이 난다고 했다. 지인은 “아파트에도 명당이란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필자는 A 교수의 예전 집(지인의 현재 집)과 현재 사는 집, 그리고 지인의 예전 집을 답사했다. 풍수로 평가하면 A 교수가 원래 살던 집은 공중에서 천기(天氣)가 내려와 맺힌 혈터였다. 풍수에서 천기는 권력, 명예, 건강 등 좋은 기운을 전달하는 에너지로 본다.  그러나 A 교수가 장관이 된 뒤 이사한 강남 아파트는 수맥파가 강하게 흐르는 터에 위치해 있었다. 반면 지인은 유해한 기운이 있는 집에서 살면서 건강이 상했다가 명당으로 이사 와 천기형 기운을 누리는 경우였다. 이처럼 터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풍수학 고전에도 언급돼 있다. 양택(집)풍수 고전 ‘황제택경’은 “조상의 무덤이 흉해도 집터가 길하면 자손이 관록을 누리지만, 무덤만 길하고 집터가 흉하면 자손이 먹고사는 것조차 힘들다(墓凶宅吉 子孫官祿, 墓吉宅凶 子孫衣食不足)”고 말한다. 물론 좋은 기운이 있는 곳에서 살면 부귀영화가 따른다는 풍수의 속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다만 터의 생기(生氣·좋은 기운)와 살기(殺氣·나쁜 기운)는 각각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의 건강과 생장 등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건강 관련 체험방 사업을 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 온 B 사장은 집에서 직접 생기와 살기를 실험해 보았다. 양파를 유리컵에서 키워 식물의 생장력과 기운의 관계를 살펴보는 실험이었다. B 사장 부부가 자는 침실은 햇빛이 잘 드는 남향 자리이나 수맥파 같은 살기가 있었고, 부엌 쪽 거실은 햇빛이 거의 들지 못해 침실보다 평균 온도가 낮았으나 생기(천기)가 형성된 곳이었다. 실험 3주일이 지난 후 B 사장은 흥분한 목소리로 “양지바른 침실에서 키운 양파보다 어둑한 거실에서 키운 양파가 눈에 띄게 더 잘 자랐다”고 알려왔다(사진). 흥망(興亡) 기운이 공존하는 집에서 사는 B 사장은 이 실험 이후로 수맥파가 없는 곳으로 잠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그런데 수맥파가 흐른다고 해서 무조건 겁먹을 일이 아니다. 건강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미세한 수맥파는 무시해도 좋다. 수맥을 측정한다는 일부 수맥 감별사가 약한 수맥파만 감지돼도 공포심을 부추기며 수맥 차단 제품을 권유하는 것은 상술에 지나지 않는다.  수맥파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3평 규모 C커피숍이 좋은 사례다. 이 커피숍은 주인이 머물며 커피를 제조하는 공간(1평)은 좋은 생기가 감돌고 있는 반면에 손님들을 위한 테이블 공간(2평)은 수맥파가 흐르고 있었다. 이 커피숍은 테이크아웃하거나 잠깐 앉았다 가는 손님이 많아 테이블 회전율이 높고 장사가 잘된다고 소문났다. 손님들이 수맥파가 흐르는 공간을 본능적으로 꺼리므로 잠시 머물다 가고, 생기가 있는 곳에서 제조한 커피는 맛 또한 뛰어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 커피숍은 원래 미용실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들어선 미용실마다 망해 나갔다는 게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이다. 3평 공간에서 장시간 머물러야 하는 미용실은 수맥파에 쉽게 노출돼 사람들이 꺼리기 때문이 아닐까.  B 사장의 집과 C커피숍처럼 흥망이 교차하는 곳을 이른바 ‘도깨비 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풍수적으로 생기와 살기가 공존하는 터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분명한 것은 좋은 기운과 나쁜 기운이 공존하는 사업 공간에서도 기운 활용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기 침체와 기업 구조조정으로 적지 않은 직장인이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요즘, 터와 관련한 풍수 정보 또한 성공의 변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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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대통령, 10·26충격에 안면마비 증세… 1999년부터 週 2, 3회 벌침시술 받아”

     벌침요법 보급자로 활동해온 강혁 씨(강혁벌침민간보급학회장·사진)는 “박근혜 대통령은 10·26 사건 이후부터 간헐적인 안면마비 증세를 보였으며, 특히 2006년 커터칼 피습 사건 이후엔 안면마비가 심해져 지속적으로 대체의학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강 씨는 12일 기자와 만나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인 1999년부터 2003년까지 2, 3일에 한 번꼴로 자신의 집을 찾아와 벌침 시술을 받았으며, 당시 이춘상 보좌관(2012년 사망)이 배석했다고 말했다. 강 씨는 당시 박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 “차가운 공기에 오래 노출될 경우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안면마비 증상 때문에 한여름에도 자동차의 에어컨을 틀지 못할 정도였다. 또 대통령의 피부 색깔은 일반인과는 달리 노란색에 가까울 정도로 피부 트러블을 겪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 씨는 박 대통령은 벌침 치료와 잘 맞는 체질이어서 효과를 크게 보았으나 한의학계에서 벌침 치료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면서 2004년부터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강 씨는 “그러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 중 커터칼로 얼굴을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 뒤 안면마비 증상이 다시 심해졌고 오른쪽 뺨 아래에 있는 삼차신경까지 다쳐 극심한 통증에 따른 간헐적 공황장애 증상도 찾아왔다”며 “벌침 대신 먹고 바를 수 있는 로열젤리를 박 대통령에게 보내 통증과 흉터, 얼굴마비 증상 등을 다스리도록 했다”고 말했다.  강 씨는 박 대통령의 삼차신경 통증과 마비 증상은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충격을 받을 때 재발하는 특징이 있고, 특히 극심한 통증은 현대의학으로도 다스리기가 어려워 대체의학 치료법을 선호했다고 주장했다. 또 박 대통령은 1979년 새마음종합한방병원을 설립해 노인 무료 치료 같은 봉사 활동을 해오면서 자연의학과 한방 치료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강 씨는 주장했다. 강 씨는 최순실이 끼어들면서 박 대통령과의 인연도 끝났다고 말했다. 일면식도 없던 최순실이 어느 날 “로열젤리를 하루에 몇 번,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고 무례한 언사로 물어왔다는 것. 나중에 이춘상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와 “기분이 좀 상하셨겠다. 대표님 속옷을 챙기고 수발을 드는 사람인데 원래 말투가 그러니까 이해하라”며 대신 사과했다고 한다. 이 보좌관이 대선 기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로는 박 대통령과의 연락이 끊어졌다고 강 씨는 말했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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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길흉(吉凶)이 공존하는 전경련회관

     지상 50층에 높이 246m, 3년 동안 400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은 매머드 빌딩. 2013년 12월 준공 이후 국내외에서 각종 건축상을 휩쓴 친환경 녹색 빌딩. 그 빌딩은 바로 서울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전경련회관이다. 그런데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이 건물의 주인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경유착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회원사들이 잇따라 탈퇴하고, 폐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전경련이 걸어온 길을 보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전경련은 1961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기업인들도 국가산업정책에 협조하겠다며 설립한 단체다. 이후 전경련은 재벌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한국 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주도로 설립한 이 단체가 창립 55년 만에 손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이르러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국회의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전경련을 탈퇴하고, 분담금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역사의 묘한 반복은 전경련회관 건물에서도 나타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의도에 전경련회관을 신축한 1979년 ‘창조 협동 번영’이라는 기념 휘호를 써주었다. 2013년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회관 준공식에 참가한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가 남긴 휘호를 거론하며 전경련의 미래를 축복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는 빛이 바랬다. 정경유착의 당사자로 지목된 딸이 아버지의 빛마저 어둠으로 가려버린 셈이다. 동양의 상수학(象數學)으로 보면 전경련의 변화는 이미 예고돼 있었다. 필자는 올 정초에 전경련회관을 살펴보면서 준공 36개월 후인 2016년 12월을 전후해 전경련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전경련회관이 여의도에 처음 자리 잡은 1979년 11월부터 계산하면 36년 후인 2015년 말부터 이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전경련은 이때부터 최순실 주도의 미르재단 등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원리는 간단하다. 역사의 반복과 인과 법칙을 따질 때 12진법의 숫자인 36은 시간의 흐름과 사건의 변화(마디)를 재는 중요 단위이기 때문이다. ‘작심 3일(12時×3日=36)’이란 말이나, ‘남녀 간 사랑의 유효 기간은 3년(12月×3年=36)’이라는 속설도 이런 이치에 따른 것이다. 터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큰 조직이나 단체가 새 건물에 입주했을 경우 짧게는 36개월, 길게는 36년이 지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전경련회관처럼 36이란 숫자가 두 번이나 겹칠 때는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변수가 발생한다. 그 변화의 길흉(吉凶)은 터의 품질이 가른다. 옛 전경련회관은 명당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한쪽 귀퉁이로 꽤 큰 수맥파가 흐르는 흠결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풍요와 안정을 의미하는 지기(地氣)가 충만한 자리였다. 재계의 본산으로 어울리는 터였다. 그런데 새 회관은 마치 자로 잰 듯이 수맥파가 건물의 동서 중심 축선을 정확히 관통하도록 지어졌다. 이 수맥파는 정문이 있는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폭이 30m나 될 정도로 크다. 다행히도 수맥파에서 벗어난 건물 양 옆쪽은 충만한 지기를 누릴 수 있고, 수맥파 역시 비보(裨補)풍수로 제어가 가능한 수준이긴 하다. 문제는 수맥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사람의 신체와 정신 건강이 나쁜 영향을 받는다는 것. 전경련 집행부의 실책은 수맥파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나의 풍수적 판단이다. 최근 필자는 전경련회관처럼 길(吉)과 흉(凶)의 기운이 혼재한 터에서 인체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실험해 봤다. 좋은 터와 나쁜 터에서 모세혈관 관찰 현미경을 사용해 손가락 모세혈관의 혈류 변화를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그 결과 수맥파에 20분 이상 노출된 사람들의 혈류는 원활하지 않은데, 생기(生氣)의 터로 옮기면 시간이 지날수록 혈류가 원활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실험에 참여한 여러 명이 똑같은 결과를 보였다. 길지와 흉지가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보고, 논문 발표를 준비 중이다. 명당에서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것이 성공적인 삶의 활력소로 작용한다는 풍수론의 근거도 확보한 셈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전경련을 지켜보면서 삶의 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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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경복궁(청와대) 설계자’ 정도전의 속뜻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는 북악산 아래 청와대와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은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대명당이다. 그런데 북악산 자락만큼은 자릿값을 못 하는 것 같다. 주말마다 촛불시위가 열리는 세종대로와 청와대 주변을 바라보노라면 ‘경복궁 설계자’ 삼봉 정도전(1342∼1398)이 떠오른다. 청와대는 경복궁의 ‘부속 작품’이니 정도전도 요즘 마음이 편치 않을 듯하다. 600여 년 전, 조선 개국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개국공신 정도전은 조선의 새 도읍지로 한양(지금의 서울보다는 좁은 한양도성)이 결정되자 북쪽의 북악산 아래를 궁궐터로 지목했다. 이유는 하나. ‘제왕(궁궐)은 북쪽에 앉아 남쪽을 바라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유학자 정도전이 규범으로 삼은 ‘주례·고공기’ 등의 도성건축법과도 맞아떨어진다. 정도전은 북악산을 주산(主山·건축물의 배경이 되는 산)으로 삼아 전조후시(前朝後市·앞은 조정, 뒤는 시장)와 좌묘우사(左廟右社·왼쪽은 종묘, 오른쪽은 사직단)라는 유교적 이상도시를 만들려 했다. 먼저 경복궁 근정전을 중심으로 남쪽(앞쪽)인 주작대로(세종대로)를 따라 육조(六曹)거리 등 중요 행정기관을 배치했다. 그런데 평지 위에 만든 중국의 도성 체제를 따르려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궁궐 뒤가 북악산이어서 시장을 만들 수 없었다. 대안으로 종로와 청계천 일대에 시전과 육의전 등을 만들었다. 궁궐 좌우의 산들도 조화가 무너져 좌묘우사 원칙이 민망해졌다. 종묘가 있는 동쪽(왼쪽)의 낙산 줄기(청룡)는 초라하고 짧은 반면, 사직단이 있는 서쪽(오른쪽)의 인왕산 줄기(백호)는 웅장하면서도 길었다.  당시에 다른 주산론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하륜은 무악(毋岳)을 주산으로 삼자고 했다. 그는 도참설과 물길을 중시하는 중국 풍수설을 근거로 한강과 가까운 무악산 아래(지금의 신촌 일대)가 길지라고 주장했다. 태조도 직접 무악을 둘러볼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정도전이 “어찌 술수(術數)하는 자의 말을 믿느냐”고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장했다. 서쪽 인왕산 자락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궁궐을 짓자는 것. 정도전은 이 역시 “임금이 동향(東向)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거부했다. 이에 무학은 “200년이 지나면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무학과 정도전의 다툼을 기록한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의 저자 차천로(1556∼1615)는 무학의 예언처럼 200년 뒤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불탄 일 등을 거론하며 정도전을 비난했다. “정도전은 무학의 말이 옮음을 알지 못한 게 아니었다. 그는 다른 마음이 있어서 듣지 않은 것”이라고 공격했다. 왕권(王權)을 약화시키고 신권(臣權)을 강화하려는 정도전의 욕심 탓이라는 것이다.  사실 정도전의 북악 주산론은 의심스러운 점이 적지 않다. 첫째, 정도전이 근거로 삼은 ‘제왕=남향’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중국 서한(西漢) 시대의 수도 장안성의 경우 제왕이 남향하는 시기도 있었고, 동향하는 시기도 있었다. 둘째, 무학의 주장처럼 인왕산을 주산으로 하면 북악산(청룡)과 남산(백호)이 좌우 균형을 이뤄 한양의 지기(地氣)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셋째, 그는 도참설과 풍수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애써 부인하거나 외면했다.  그러다 필자는 1년 전쯤 경북의 한 지역신문에서 어떤 기사를 읽고 무릎을 쳤다. 정도전이 궁궐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하륜과 자초(무학대사)가 꼽은 곳이 길지(吉地)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무악 아래는 후학들을 위해 숨겨두어야 했고, 종로는 백성들의 생계를 위해 써야 했다. 그러자니 임금은 백악산 아래밖에 없었다. 용상의 자리는 백성을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자고, 백성을 바라보느라 자손과 형제도 버려야 한다. 그러니 비수가 날아다니는 터에 들어간들 어떻겠는가.” 정도전을 위한 변명처럼 들리는 말이다. 조선 말기 고종이, 이방원의 미움을 받아 죽은 정도전을 신원(伸寃)시켜 준 이후 경상도와 강원도의 촌로들 사이에 전해진 얘기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정도전은 선지자였다. 오늘날 무악산 아래는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등 명문 사학이 자리 잡고 있고, 종로와 중구 일대는 지금도 왕성한 상업지가 아닌가.  이 구전을 채록한 작가는 ‘진정한 지도자는 경복궁(청와대 포함)의 비수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는 게 정도전의 감춰진 뜻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복궁은 지도자가 권력을 남용하고 탐욕을 부리는 순간 비수로 작용한다. 반면 국민을 받드는 이에게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축복의 터이기도 하다. 권력자들이 청와대 터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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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왕건이 중시한 서경(西京)은 평양이 아니었다?

    TV사극 드라마를 즐겨보는 기자는 시대 배경에 주목한다. 대본을 쓰는 작가가 어떤 왕조, 어떤 소재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하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최근 종영한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는 1000여 년 전인 고려 초기를 배경으로 구중궁궐의 권력다툼과 남녀간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 판타지성 역사 드라마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광종(재위 949-975년)과 성종(재위 981-997년)은 고려를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로 정비한 업적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성종은 태조 왕건의 유훈을 받들어 북방지역 확보에 힘을 쏟았다. 성종은 거란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서희를 내세워 외교담판으로 오히려 강동6주를 되찾는 등 상당한 치적을 쌓았다. 드라마는 조선왕조에 비해 덜 주목받던 고려시대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신선했지만, 북방 지역 진출에 관심이 많은 요즘의 우리 정서를 드라마에 녹이지 못해 시청률이 그리 높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사실 고려 성종 관련 이야기는 한국 역사학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중요하다. '고려사'에서 전하는 성종 관련 기록에 역사 상식과 맞지 않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990년 7월에 내린 성종의 교서(敎書)다. "태조(왕건)께서 처음 서경(西京)을 설치하고 종실의 친족을 선발해 인후지지(咽喉之地·매우 중요한 길목)를 지키게 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친히 재계하여 제사를 지내고, 오랑캐를 방어해 변방의 국경을 견고하게 했고, 웅도(雄都) 평양(平壤)에 의지하여 우리 조종의 왕업을 공고히 하려 했다. 그 후 성군들께서 왕위를 계승한 후 사직이 안정됨에 따라 때로는 전해온 관례에 따라 직접 서경에 가기도 했고 때로는 신하를 시켜 가보도록 했다. 올해 풍년이 들어 곡식이 잘 여물었으니 10월을 택해 요성(遼城)에 찾아가 선조들께서 정하신 규범을 실행하고 국가의 새로운 법력을 펴고자 한다." 실제로 성종은 이 교서를 내린 후 그해(990년) 10월 서경 즉, 서도(西都)로 행차했다. 또 서경 행차 기념으로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리고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포상까지 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설치한 서경을 '웅도 평양' '요성' '서도'라고도 부르는데 이곳들이 같은 곳이냐 하는 것이다. 왕건은 서경을 고려의 수도 개경 못지않게 중시했다. 그는 유훈으로 남긴 훈요10조에서 "서경은 수덕(水德)이 순조롭고, 우리나라 지맥(地脈)의 근본이 되니, 마땅히 행차하여 나라의 안녕을 이루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학계의 일반적 정설은 고려의 서경은 지금의 북한 대동강가 평양 일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쪽 평양이 곧 요성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요성은 중국 쪽에서도 중국 랴오닝(遼寧) 성 랴오양(遼陽)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곳이다. '고려사'의 기록대로라면 성종은 왕건이 요양에 세운 서경을 방문했다고 봐야 한다. 이 이상한 교서를 보면서 기자는 '고려사'의 기록이 오기(誤記)이려니 하고 찜찜하게 넘어갔다. 그러다 최근 고려사를 연구하는 윤한택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를 만나게 됐다. 윤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경제의 물적 기반인 토지 제도를 깊이 연구하기 위해 고려대 대학원으로 진학해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고려전기 사전(私田)연구'라는 박사 논문은 한국 고대 토지 문제 연구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성종 관련 기록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990년 성종이 행차한 서경은 평양 웅도, 요성이라고 불린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요성은 요동 지역에 존재하고 있었고요. 성종보다 앞서 고려 광종 때인 972년에 고승 영준(英俊)이 중국에 갔다가 고려로 돌아온 것을 '요성으로 돌아왔다(鶴返遼城)'고 표현하고 있습니다(英俊碑). 이로 보면 요성, 곧 고려의 서경이 요동에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고 봅니다." 강단에 서는 정통 사학자의 발언으로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사료를 근거로 더 충격적인 말도 했다. "'고려사' 열전 홍유(洪儒)편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배현경, 신숭겸 등의 추대를 받아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하던 918년 6월 14일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삼한(三韓)이 분열한 이후 도적의 무리가 다투어 일어나니, 궁예가 어깨를 용감하게 떨치고 크게 소리치며, 드디어 초적을 토벌하고 셋으로 나누어진 요좌(遼左)의 과반을 근거로 하여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하였다'고 합니다. 즉 후삼국의 주인공 중 한 축인 궁예가 근거한 곳이 요좌인데, 이곳 역시 중국 요동(遼東)지역이었을 개연성이 매우 큽니다." 궁예가 나라를 세우고 정한 도읍지가 한반도의 철원 지역이었다는 일반적인 역사 상식과는 동떨어진 말이다. 그러나 문헌에 기록된 '요좌'가 중국 북방지역임은 확실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항일투쟁을 한 장석영(1851~1929년)이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를 답사한 내용을 수록한 책을 '요좌기행(遼左紀行)'이라고 명명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옛 문헌에 등장하는 방위 개념으로서의 왼 좌(左)는 동(東)쪽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요좌는 곧 요동의 이칭(異稱)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이제 고려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토지사를 전공했던 그가 지금에 와서야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저는 지금까지 전정(田丁)→사전(私田)→양반전(兩班田)→가령지(家領地)로 이어지는 고려 토지제도의 구조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가문이 영유하는 토지가 가령지라면, 국가가 영유하는 토지가 '영토(領土)'입니다. 경제사적 관점에서 고려의 토지 문제를 연구하다보니 영토 문제까지 연구하게 됐고, 고려국 영토의 범위를 추적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윤 교수는 최근 '고려국 북계(北界) 봉강(封疆)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이런 연구 결과를 일부 발표한 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려사는 영토적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사학계는 이처럼 중차대한 역사적 기록을 단순히 간과한 것일까. "우리 학계가 서경을 북한 쪽 평양이라고 일찌감치 규정한 이후 이에 대한 엄밀한 고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고려가 지목한 서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지역만을 의미하지는 않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가 설치한 서경은 '평양대도호부(平壤大都護府)'라는 이름으로 최소한 성종 14년(995년)까지는 요동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서경유수(西京留守)라는 이름으로 성종 이후 원종 11년(1270년)까지 운영됐고, 원종 이후 충선왕 즉위(1298년) 때까지는 '동령부'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충선왕 이후 고려 말까지는 '평양부'라는 이름으로 운영됐습니다. 문제는 이름이 바뀌는 어느 시기부터 서경이 한반도 평양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처음으로 태조가 설치한 평양대도호부는 약 80년간 중국의 요좌 지역에 있었음은 분명해보이고요." 윤 교수는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한창 진행 중에 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말은 아꼈다. 윤 교수의 해석을 토대로 성종 관련 기록이 오기(誤記)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윤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펴낸 '조선사'를 연구 중입니다. 고려 국경을 중심으로 해서 '조선사'가 기술한 내용들만 살펴보더라도 일제 학자들이 고의적으로 누락하거나 왜곡한 사례가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우리가 광복 이후 일제의 한국 관련 연구 결과를 너무 비판 없이 수용한 것은 아닌지요."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

    • 20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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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김정은의 관상, 평양의 명운

     국가정보원이 밝힌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최근 동향을 보면서 얼마 전에 만난 두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한 사람은 관상을 동물에 비유해 주목을 받고 있는 ‘동물관상학’ 전문가. 그는 공포정치를 서슴지 않는 김정은에 대해 “사자와 복어가 섞인 관상”이라고 평했다. 김정은은 이마에서 코까지가 ‘사자상’인데 그 기운으로 권력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금은 입 부위의 ‘복어상’에서 나오는 살기가 너무 강하다고 했다.  복어는 위험을 느끼면 몸을 풍선처럼 부풀려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 덩치에 비해 입이 작아 나약해 보이지만 사람을 죽일 정도의 맹독을 품고 있다. 복어상 인물은 주변으로부터 위협을 느끼면 느낄수록 허세를 강하게 부린다고 한다. 김정은이 자신이 최고임을 과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을 숙청하는 것도 그래서라는 것. 그 관상 전문가는 “여러 동물이 섞인 관상은 원래 불길함을 암시하는데,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허세를 부리는 김정은은 너무 많은 독을 뿜어 대 자신의 미래까지 어둡게 만들고 있다”라고 했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한 한국인 교수는 김정은의 집권 기반인 평양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 줬다. 그는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동북방 지역의 역사고고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최근 평양 문제와 관련한 중국 사학자들의 연구 태도가 달라졌다”라고 전했다. 중국 학자들이 당나라가 668년 고구려를 무너뜨린 뒤 고구려 수도에 설치했다는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지금의 평양이라는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러면서 고구려의 평양은 지금의 북한 평양이 아니라 중국 랴오닝(遼寧) 성 랴오양(遼陽) 어디쯤일 것이라고 추론한다는 것. 그 교수는 “랴오닝 성이 최근 수년간 랴오닝의 역사 연구와 유적 조사를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적잖게 발견하면서 제기하고 있는 견해”라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흥미롭다. 동북공정으로 대동강의 평양성까지 만리장성의 일부로 집어넣으려 한 중국이 아닌가. 중국은 지금까지도 ‘역사 연고주의’에 의한 영토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국제 분쟁이 있는 지역에서 그곳이 예전에 자국 영토였음을 입증함으로써 영유권을 주장하는 정책이다. 얼마 전 분쟁을 겪은 난사 군도가 대표적 예다. 중국이 평양을 넘보고 있는 것도 김정은 정권이 붕괴했을 경우 그 관할권이 중국에 있음을 주장하려는 사전 포석인 것이다. 그런 중국이 현재 북한의 평양에 대한 연고권을 포기하려 한다면 역사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평양이 옛 고구려 수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풍수학적으로는 그동안 평양이 누려 온 지기(地氣)가 쇠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평양은 애초부터 한 국가의 도읍지로서는 땅심이 모자란다는 게 풍수적 판단이다. 한반도에서 최고의 지덕(地德)을 가진 곳은 서울과 경주다. 서울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20%에 해당하는 1000만 명을 먹여 살리고 있는 ‘복(福)명당’이고, 경주는 천년 도읍지의 위상을 잃지 않고 있다. 그 뒤를 고려의 개성과 백제의 공주 등이 잇고 있다. 평양은 임시 수도나 부도(副都)급이다. 실제로 고구려는 독특한 삼경제(三京制)였다. 1개의 수도를 중심에 두고 그 주변에 2개의 부도를 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학계는 장수왕(재위 413∼491년)이 천도한 곳이 북한 평양이라는 설과 요동 평양(랴오양)이라는 설로 크게 나뉘어 있다. 이 문제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했다. 정약용을 대표로 하는 국내 실학파는 북한 평양설을 지지했고, 박지원을 비롯한 중국 견학파는 랴오양 평양설을 주창했다. 이 문제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조선 망국과 함께 묻혀 버렸다.   평양은 풍수오행론(風水五行論)으로 보면 금(金) 기운이 강한 땅이다. 목(木) 기운이 강한 서울에서 이씨(李氏·목의 성씨)가 조선왕조를 건국했듯이, 평양에서는 김씨(金氏·금의 성씨)가 3대째 ‘왕조’를 이어 가고 있다. 지기쇠왕설(地氣衰旺說)이나 도참설에 따르면 김씨가 누리고 있는 평양의 지기(地氣)는 최대 72년이라는 말이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1948년에 세워진 북한 정권의 잔명은 길어 봤자 4, 5년이라는 얘기다. 평양의 땅기운은 과연 김씨 정권을 내칠 것인가.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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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회사 터에 따라 사운(社運)도 변할까

     9월은 음력으로 정유(丁酉)월이다. 내년도 같은 기운을 가진 정유년이다. 동양 역학의 60갑자론(甲子論)에 의하면 올 정유의 달에 생긴 사건들은 내년 정유년에 벌어질 일들을 암시한다. 이른바 시간의 동기감응(同氣感應)이다. 5년 주기로 한 번씩 이런 역법(曆法) 구도가 생기는데, 역학자들이 다음 해를 예측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쓴다. 필자 역시 9월 내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9월 들어 두 가지 상징적 사건이 발생했다. 경북 경주에서 잇따라 지진이 발생하고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배터리가 폭발한 것이다. 먼저 경주 지진은 그간 안전하다고 생각해온 땅에 대한 믿음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과거 한반도에서도 지진은 여러 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리히터 규모 5.8의 공포를 온 국민이 동시에 체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북한마저 이달 9일 5차 핵실험으로 규모 5.0의 인공 지진을 발생시켰다.  남북한 양쪽에서 거의 동시에 발생한 지진은 물적 토대가 무너지거나 흔들림을 의미하는 전조(前兆)다. 즉, 한반도에서 그간 쌓아온 정치·경제적 기반 등이 내년에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토대가 튼튼한지 점검해 보라는 자연의 경고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의 배터리 사고는 무엇을 암시할까. 삼성의 갤럭시 노트7 출시는 경쟁사인 애플의 최신작 아이폰7을 누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때에 발생한 배터리 사고는 일회성 사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최근 삼성그룹의 대대적인 계열사 사옥 이전 작업이 마무리된 직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간 삼성그룹의 사옥 터는 풍수인들에게 화젯거리였다. 서울 중구 태평로의 삼성 본관과 삼성생명 사옥, 을지로의 삼성화재 사옥, 서소문로의 호암아트홀, 강남의 서초 사옥 등은 돈으로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빼어난 명당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서초동 사옥. 강남의 부(富)가 집중되는 대표적인 재물 명당이다. 스마트폰 분야 라이벌인 애플 본사의 명당 터와 견주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 곳이다. 실제로 2008년 서초 사옥에 입주한 삼성전자는 이듬해인 2009년부터 ‘대박’ 기록을 이어갔다. 그러다 삼성전자 본사 인력이 경기 수원의 디지털시티로 이사를 갔고, 대신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이 서초 사옥에 둥지를 틀었다. 삼성의 명당 사옥은 이병철 창업주가 풍수적 안목을 가지고, 그룹 차원에서 풍수 이론을 경영에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명당 사옥에서 발생하는 생기(生氣)는 사원들을 건강하게 만들고, 근로 의욕과 창의력을 고양시킨다. 그룹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삼성의 사옥 구도에서 풍수론이 후선으로 밀려난 듯하다. 필자는 배터리 사고 직후 삼성전자의 핵심 연구개발(R&D) 인력이 새로 입주한 두 곳(수원 디지털시티 모바일연구소, 서울 서초구 우면동 R&D캠퍼스)과 배터리 제작사인 삼성SDI 본사(경기 용인시 기흥)를 살펴봤다. 2010년 이후에 완공된 이 건물들은 풍수적 고려보다는 경제·환경적 입지를 중시해서 설계한 듯했다. 세 곳 모두 외형상 명당의 격(格)을 갖춘 터였지만 군데군데 풍수적 흠결이 눈에 띄었다. 과거 삼성이 보여준 온전한 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배터리 사고로 나타났다는 게 나의 풍수적 해석이다. 비보(裨補)로 허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 규모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터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사건이나 돌발적인 일은 미래에 일어날 일의 전조일 경우가 많다. 필자는 지난해부터 잠실 롯데월드몰 아쿠아리움의 상징인 흰돌고래(벨루가)가 수맥파와 전자파에 치명적으로 노출돼 건강이 염려되고, 롯데의 미래 또한 평탄치 않을 것이라고 주변 지인들에게 여러 차례 말해왔다. 롯데 경영진에게도 알려져 대비하라는 뜻에서였다. 그러다 올해 4월 벨루가 3마리 중 1마리가 폐사했다. 5월부터는 롯데그룹이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는 등 지금까지 수난을 겪고 있다.   물론 삼성은 롯데와는 경우가 다르고 대처도 다르다. 삼성그룹 후계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 추천돼 책임경영 의지를 다지면서 배터리 사고에 발 빠르게 대응한 때도 9월(12일)이다. 이 부회장이 난제를 극복하고 내년에는 삼성그룹의 명실상부한 리더로 활약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9월의 막바지를 보내면서 내년에도 삼성전자를 비롯해 우리 경제가 흔들림 없이 발전하기를 소망한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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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물은 명당을 알고 있다

    중국 송(宋)나라 시절, 풍수 국사(國師)로 이름을 떨치던 오경란(吳景鸞)이 장시(江西) 성 우위안(무源) 현의 관갱령(官坑嶺)이라는 고개를 지나갈 때였다. 동행한 제자 홍사량(洪士良)이 목이 너무 말라 산속의 샘물을 찾았다. 그러더니 득달같이 돌아왔다. “물맛이 참으로 기이해 분명 귀한 터가 있는 듯합니다.” 제자의 말에 오경란도 샘물을 마셔 보았다. “한묵(翰墨·문필을 가리킴)의 향기가 있으니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큰 현인(賢人)이 태어날 자리가 있다”고 평했다. 오경란은 고갯마루에 올라 지세를 살핀 후 마침내 현자를 배출할 혈(穴)을 찾아냈다. 명(明)나라 때 편찬한 풍수 고전 ‘지리인자수지(地理人子須知)’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오경란이 찾아낸 혈은 1059년에 조성된 주희(朱熹)의 고조모 묘로, 금두형(金斗形)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묘의 기운을 받아 성리학의 대가로 추앙받는 주희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곳은 한국과 중국의 풍수학인들이 즐겨 찾는 답사지로 유명하다. 물맛을 보고 명당을 찾아내는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널려 있다. 전북 완주의 송광사는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종남산을 지나다가 한 신령스러운 샘물(영천·靈泉)을 마셔 보고는 낙점한 절터다. 지눌은 영천 주위를 돌로 쌓아 메워 둔 후 “후일 반드시 덕이 높은 스님이 도량을 열어 길이 번창하는 터전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실제로 조선 광해군 때 이곳에 사찰이 생기고 수천 명의 불도들이 모여들었다고 송광사개창비(전북 유형문화재)는 전한다. 비단 절터뿐 아니다. 조선 선비들이 공부하던 서원,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종가 터 등과 관련해서는 물맛 이야기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 유명한 도사가 여염집에서 물 한 사발을 얻어 마시고는 가상(家相)과 가족의 미래를 점쳤다는 설화들도 적지 않다. 명당의 생기를 받은 물은 그 맛이 달고 부드럽거나, 때로는 기이한 향기가 난다. 반면 지하의 수맥파나 지상의 살기(殺氣)에 노출된 집에서는 물맛이 쓰고, 심한 경우 썩은 내 혹은 비린내 등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풍수서 ‘박산편(博山篇)’은 아예 “(명당) 기운을 알기 위해서는 물맛을 보아야 한다(認氣嘗水)”고 했다. 물은 맛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누기도 한다. △상급의 물은 색깔이 푸르고, 맛이 달며, 기운이 향기롭고 △중급의 물은 색깔이 하얗고, 청량한 맛이 나며, 기운이 온화롭고 △하급의 물은 색깔이 담담하고, 매운맛이 나며, 기운이 사납고 △최하급의 물은 물맛이 시거나 떫고, 음식이 쉰 듯 시척지근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명당 터와 물맛의 연계 고리를 확인해 보기 위해 필자는 오랜 기간 관찰해 왔다. 생기(生氣)가 감도는 명당 집에 살고 있는 10여 가구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면담을 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반응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가구주가 “물맛이 좋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 수원의 아파트에 사는 정모 씨(42)는 “수돗물을 정수기로 거른 물을 마시는데 시원하고 향기로운 맛이 난다”면서 “다른 집의 정수기 물을 마셔 보면 우리 집 물맛 같지가 않다”고 했다. 인천의 단독주택에 사는 김모 씨(52)는 “끓인 수돗물을 차게 해 마시는데도 물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이모 씨(55)는 “예전에 살던 집과 새로 이사 온 집에서 모두 생수를 사 마시고 있는데, 똑같은 생수 제품인데도 예전 집에서보다 지금 물맛이 더 좋다”고 평했다. 명당 터의 물맛이 다르다는 것은 매우 감각적인 표현이다. 이걸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江本勝) 박사가 공명자장분석기(파동측정기)를 이용해 물의 결정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환경과 터에 따라 물의 결정이 달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도 여러 약수터 물과 수돗물 등 물 결정 사진을 촬영했는데, 아름다운 육각형 구조를 이루고 있는 곳과 결정 자체를 이루지 못한 곳을 선명하게 구분해 보여줬다. 그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물은 사람의 말과 마음, 음악, 환경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물질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의 연구를 풍수적으로 풀어보면 ‘물은 명당을 알고 있다’고나 할까.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 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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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가짜 그림엔 生氣가 없다

    올해 들어 미술계가 유난히 시끄럽다. 천경자, 이우환 등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위작(僞作) 논란에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代作) 소동까지. 며칠 전에는 국내에 전시 중인 천 화백의 작품 ‘뉴델리’도 위작이라는 주장이 나와 불에 기름을 부었다. 사실 위작과 진작(眞作)을 가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과 감정가들이 진짜라고 해도 화가가 가짜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위조범이 붙잡히고 가짜 증거들이 많은데도 화가 본인이 진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진위를 가리는 예술품 감정가들의 상당수는 위작과 진작은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근거는 오랜 경험과 직관이다. 가짜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진품을 대할 때와는 달리, 좋지 않은 느낌이 온다는 것이다. 이런 안목감정은 ‘예술 풍수론’과도 연관이 있다. 산수화(山水畵)는 동양에서 탄생했다. 그건 자연의 기운(氣運)을 담아두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감정가들이 작품에서 받는 직관적 느낌이란, 예술혼을 발휘한 ‘작가의 기운(에너지)’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철학자이자 화가인 종병(宗炳·375∼443)은 산수화를 도(道)를 드러내는 신물(神物)로 보았다. 화가가 아름다운 산천을 눈으로 감상하고, 자연에 깃든 신령스러움까지 마음으로 깨달아 화폭에 담아내면, 아름다움과 신령스러움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그림은 감상자에게도 감응해 화가처럼 동일한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는 것이다(종병의 화론서 ‘화산수서’). 이런 주장은 같은 기운은 서로 감응한다는 풍수의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과도 맥이 통한다. 사실 풍수와 산수화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산과 물을 다루고, 그 속의 생기(生氣)를 중시한다. 원나라 때 산수화가로 명성을 떨친 황공망(黃公望·1269∼1354)은 아예 “그림 속에도 풍수가 존재한다”면서 풍수의 명당 기운을 그림에서도 구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또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郭熙·1023∼1085)는 “산수화도 풍수처럼 발복(發福)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림을 통해 복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산수화가 기운을 담고 있다는 것은 필자도 체험한 바 있다. 2014년 5월 중순, 서해 변산의 선유도에서 이 지역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고려왕릉 터를 찾는 풍수답사에서였다. 조선시대에 만든 고지도에 분명히 ‘고려왕릉’이라는 표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터였다. 필자는 면밀히 답사한 끝에 선유도 망주봉의 두 봉우리 가운데에 있는, 말안장처럼 생긴 둔덕을 지목했다. 풍수로 볼 때도 길지(吉地)인 데다,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잘 조화된 곳이었기 때문. 오랜 세월을 거치며 흙으로 뒤덮였지만 고분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여럿 발견했다. 필자는 이를 문화재청에 알리고, 본격적으로 발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필자가 지목한 지역이 놀랍게도 유일한 고려시대 수묵화로 알려진 ‘독화로사도(獨畵鷺S圖)’의 중심부와 같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과 한국에서 미술품 감정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이동천 박사는 최근 출간한 ‘미술품 감정비책’에서 ‘독화로사도’가 선유도의 망주봉을 배경으로 그린 실경 산수화라고 했다. 그는 “송원(宋元) 시기의 산수화는 풍수론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이 화론(畵論)을 들여온 고려 사람들도 산수화에 자연스럽게 명당의 생기를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명당으로 알려졌을 ‘고려왕릉’ 자리를 그림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림 속 물가에 서 있는 새 역시 여름 번식기 때만 두 가닥의 장식깃이 생기는 쇠백로라는 점에서, 자손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풍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했다(사진 참조). 그림에서 생기를 취하려는 행위는 지금도 계속된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중국계 부자들이 재물과 풍요를 기원하며 여성의 나체 그림을 사적인 공간에 걸어놓고 감상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남성 입장에서 보자면 여성의 기운은 풍요와 재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좋은 생기가 있는 그림은 감상자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그림은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기에 말이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린 가짜 그림이 좋은 기운을 담고 있을 리가 없다. 얼마 전 천경자 화백을 기리는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한 적이 있다. 천 화백 고유의 천기(天氣) 에너지가 들어 있는 그림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그림도 있었다. 필자의 풍수적 감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 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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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힐링되는 명당 휴가지 찾기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한층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로 접어들었다. 기상청은 올해의 폭염과 열대야가 평년보다 많을 것이라고 미리부터 겁을 준다. 곧 여름 특수를 기대하는 백화점들이 일제히 세일에 들어갈 것이고, 스트레스로 지친 삶을 위로받고자 ‘힐링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의 마음도 바빠질 것이다. 매년 여름이면 녹화한 비디오를 틀 듯 되풀이되는 현상은 또 있다. 피서와 힐링 여행의 기쁨도 잠시, 막상 집으로 돌아오면 피곤과 스트레스가 더 심해진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이다. 대부분 휴가지에서의 무절제와 오가는 길에서의 교통체증 탓이려니 하고 만다. 과연 그럴까. 풍수학을 하는 필자는 그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다. 바로 잠자리 문제다. 숙박을 낀 여행에서 잠자리 문제는 여행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수맥 같은 유해한 지기(地氣)나 공중의 전자파 등 유해한 천기(天氣)가 흐르는 곳에서 숙박할 경우 잠을 설치거나 아침에 일어나서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 이게 누적되면 만성 피로와 무력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나이가 들수록 심하다. 한창 기운이 팔팔한 시절에는 해외여행이나 지방 출장을 가서 아무 데서나 자도 별로 피곤한 줄 몰랐는데,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젊었을 때보다 면역력이 떨어져 외부의 나쁜 자극(기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외지에서 잠을 자는 것이 고역이어서 여행 자체를 기피하려는 중장년층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풍수 현장 답사를 하다 보면 잠자리가 편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낀다. 천기형(天氣形) 기운이든 지기형(地氣形) 기운이든 생기(生氣)가 있는 잠자리에서는 낮에 무리를 하거나 늦게 자더라도 다음 날 별로 피곤하지 않다. 잠을 푹 자는 동안 방전된 몸이 활기 있는 에너지로 충전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유해한 기운이 감도는 터에서 잠을 자고 나면 하루 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름의 숙박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아무리 시설이 훌륭하고 주변 경치가 좋아도 유해한 천기나 지기가 있는 숙박 장소는 무조건 피한다 △좀 허름해 보여도 기운이 좋거나 최소한 무해무득(無害無得)한 곳이면 합격이다 △이런 곳을 찾을 수 없으면 무리해서라도 당일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잠자는 터는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문제는 일반인이 여행지에서 기운 좋은 터와 그렇지 않은 곳을 가려내기가 힘들다는 점일 것이다. 이때 권하고 싶은 잠자리가 유서 깊은 고택이다. 마침 한국관광공사에서 ‘명품고택’이란 이름의 한옥스테이 관광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택과 종택 중 문화재로 지정되었거나, 70년 이상 된 한옥 중 종부가 직접 살림을 맡고 있는 집을 엄선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고택은 대대손손 집안이 무탈하게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유해한 기운이 적거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운 좋으면 고택의 명당 기운도 누릴 수 있다. 대학에서 유적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최모 연구원은 “경북 경주에 가면 늘 숙박을 하는 한옥이 있다. 그곳에서는 잠도 잘 오고 일어나면 몸에서 활력을 느낀다. 시설 좋은 호텔이나 콘도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해 줄곧 고택만 찾고 있다”고 말했다. 후에 그가 말한 고택을 찾아가 보았더니 천기형 기운이 강한 명당이었다. 여행 잠자리를 구했다면 인근의 역사 유적지도 찾아보길 권한다. 전국에 산재한 청동기 시기의 고인돌, 유서 깊은 석탑과 석상, 선조들의 발자취가 깃든 문화재(주로 조선시대 이전 시기에 만든 것을 추천한다) 등에는 좋은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잠시 쉬고만 있어도 좋은 에너지가 몸속으로 들어와 힐링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유적지가 아니더라도 남해 범바위, 지리산 천년송, 역사적으로 유명한 치유 약수터처럼 특별한 기운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곳도 전국에 많다. 이를테면 남해 범바위는 지기형 기운에 더해 건강에 도움이 되는 자력선도 있다. 이곳에서 나침반을 대면 바늘이 빙빙 돌아갈 정도다. 보이지 않는 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서 여행에서 주의할 점. 익사나 추락사,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은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대개 그런 곳에는 유해한 기운이 서려 있고, 그 기운과 공명(共鳴)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올해는 풍수를 응용한 힐링 여름 여행을 추천해 본다. 안영배 전문기자 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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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트럼프와 힐러리, 집터로 본 승자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살고 있는 미국 맨해튼의 트럼프타워.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 주와 맨해튼 일대의 풍수를 답사하러 갔다가 들른 적이 있다. 당시는 기행(奇行)으로 유명한 그가 160여 년의 전통 보수를 자랑하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풍수 마니아로 소문난 그의 풍수 안목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들 사이에선 트럼프 하면 ‘펑수이(Fengshui·風水)’를 떠올릴 정도로 그의 풍수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맨해튼 서쪽의 리버사이드 지역 개발 등 부동산 사업을 벌일 때 풍수가의 도움을 얻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타워에는 실제로 중국의 풍수설에 입각한 장치가 곳곳에 있었다. 이 건물은 맨해튼의 명소 센트럴파크 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68층짜리 고급 주상복합건물. 순조로움을 상징하는 6과 행운을 상징하는 8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길수(吉數)라는 점에서 건물 층수부터 풍수를 고려한 것 같다. 건물 외관은 전체가 검정 유리인 반면 건물 출입구와 내부는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돼 있었다. 건물 내에는 실내 정원과 물이 흐르는 5층 높이 규모의 인공폭포까지 있다. 중국인들에게 황금색과 물은 모두 재물을 상징한다. 특히 물은 풍수에서 풍요와 부를 불러들이는 중요한 요소다. 1983년에 완공된 이 건물에는 그가 세운 기업(The Trump Organization)의 사무실도 입주해 있다. 트럼프 본인도 2005년 세 번째 부인 멜라니아와 결혼한 후 주로 이 건물의 꼭대기층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미국 곳곳에 여러 채의 호화 별장을 갖고 있지만, 사업장과 주거지가 함께 있는 이곳이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터다. 살고 있는 터나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운세나 상황을 어느 정도 유추해낼 수 있다. 양택(집) 풍수서의 고전 ‘황제택경’이 사람과 집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사람은 집으로 인해 입신(立身)하고, 집은 사람으로 인해 존재한다. 사람과 집이 서로 도우면 천지를 감통(感通)시킨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주택의 길흉이 사람의 흥망성쇠에도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도 비슷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독일의 문학가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1871∼1914)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풍수 명언’을 남겼다. “그대가 어떤 집을 짓고 살고 있는지를 말해 보라. 그러면 나는 그대가 누구인지를 말해줄 터이니!(Zeige mir, wie du baust, und ich sage dir, wer du bist!)” 트럼프타워를 보면 트럼프의 정치 행각이 이해된다. 그의 터는 정치인이나 권력층이 사는 집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천기형(天氣形) 기운이 강했다. 대개 부자들이 지기형(地氣形) 집에서 사는 것과는 대비돼 흥미로웠다. 그는 이곳에 둥지를 틀면서 본격적으로 정치를 꿈꾼 것으로 해석된다. 천기형 기운은 권력, 명예, 승리 같은 욕구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1988년 대선에서는 조지 부시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길 원했고, 2000년에는 제3정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를 고려했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정설이다. 문제는 그의 펜트하우스에는 나쁜 천기(천살·天殺)도 함께 감돌고 있다는 점. 이것이 그에게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인종 차별, 여성 비하 등의 막말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풍수적 해석이다. 현재 그는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할 정도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네거티브 에너지는 결국 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게다가 간접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뉴욕 외곽의 웨스트체스터에 있는 힐러리의 집은 풍수 면에서는 트럼프타워보다 한 수 위인 것으로 평가된다. 힐러리의 집은 천기형 기운이면서도 그 힘의 세기와 밀도 면에서 트럼프보다 순일하면서도 강하다. 물론 변수는 있다. 1946년생 개띠인 트럼프의 운세는 인생의 사계절 중 이른 봄철 시기에 있는 반면, 한 살 아래 돼지띠인 힐러리는 겨울의 막바지 운세에 있다는 것. 대중에게 활력과 신선감을 주지 못하는 힐러리 이미지는 겨울 시기의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니 운으로만 따지면 트럼프가 좀 더 나은 셈. 명리술사(命理術士)들의 세계에서는 ‘첫째 명(命), 둘째 운(運), 셋째 풍수(風水)’라는 말이 회자된다. 풍수보다 운수가 더 ‘계급’이 높단다. 과연 그럴까? 힐러리와 트럼프의 대결을 나는 풍수 우위의 측면에서 보고 있다. 풍수학 박사 안영배 전문기자 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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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기업가의 집터와 회사의 命運

    조선·해운·철강업 등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경영자의 책임과 사운(社運)에 대해 생각해본다. 기업의 위기는 경영 여건과 산업 구조가 급변하는데도 회사와 조직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전통 술학(術學)에서는 창업주 혹은 전문경영인의 운이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본다. 기업의 최고 수장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경영자의 운을 중시한 대표적 인물로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경영자가 운을 잘 타고 나가기 위해서는 “운이 오기를 기다리는 둔한 맛(鈍)이 있어야 하고, 운이 트일 때까지 버텨내는 끈기와 근성(根)이 있어야 한다”(‘호암어록’)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운둔근(運鈍根)’이라는 친필 휘호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건강식품판매업으로 일본 최고 부자의 반열에 오른 사이토 히토리(齋藤一人) 역시 운을 얘기했다. 그는 운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운 경영법’을 주창했다.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서양인 중에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의 요소로 개인 생산성, 정보 등을 선취하는 권력, 그리고 우연한 행운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운을 성패의 요소로 꼽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모든 사람에게는 운이 좋은 때와 그렇지 못한 때가 계절의 변화처럼 어김없이 다가온다. 크게는 인생 60년을 한 사이클로 묶어서 여름(희망 15년)과 가을(결실 15년)의 30년을 상승운으로, 겨울(인내 15년)과 봄(노력 15년)의 30년을 하락운으로 본다. 중국 속언인 ‘하동삼십년 하서삼십년(河東三十年 河西三十年·황허의 동쪽에 있던 마을이 30년을 지나 황허 서쪽에 있게 되다)’이란 말도 상승과 하강의 순환 주기를 비유한 것이다. 인생 사계절 중 성공 가도를 줄곧 달려온 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가 있다. 겨울 15년이다. 바로 이병철 회장이 강조한 둔과 근이 필요한 시기다. 동물로 치면 동면하는 계절인데 동면을 하지 않고 여전히 가을인 것처럼 질주하면 혹독한 시련이 기다린다. 수많은 근로자의 밥줄을 책임지고 있는 기업인의 운을 예로 들어보자. 한때 ‘샐러리맨 신화’로 주목받은 A그룹과 B그룹의 두 창업주는 벌이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하며 계열사 수십 개를 거느린 재벌로 성장했다. 인생의 여름과 가을을 알차게 보낸 결과다. 이들은 정상의 위치에 오르자 재벌 회장의 격에 어울리는 집을 물색했다. A그룹 회장은 우리나라 재벌들이 모여 사는 서울 남산 자락의 한남동에, B그룹 회장은 강남의 부자 밀집 지역에 대저택을 마련했다. 그런데 새집으로 옮겨간 후부터 기업 경영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사들인 기업이나 새로 벌인 사업들이 말썽을 부렸다. 결국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두 그룹은 부도를 내고 말았다. 두 회장 모두 인생의 겨울 시기에 접어들어 벌어진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여름과 가을의 호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겨울의 하강 운기에 이르면 혼탁하고 유해한 천기(편의상 천살·天殺로 칭함)나 암반수맥대 등 유해한 지기에 노출된 집을 찾아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두 회장이 새로 사들인 집터는 이전의 집보다 규모는 크고 화려했으나 공통적으로 천살에 노출돼 있었다. 이런 현상은 스타급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등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천살 터에서 살다 보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집, 독선, 불통의 성향이 깊어진다. 심한 경우 판단력까지 무뎌진다. 사람의 건강과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양택(집)이기 때문이다. 사업 초창기에는 필자와도 인연이 있었던 A그룹 회장은 직원과의 소통도 줄어들고, 영입한 인재들도 적잖게 회사를 떠났다는 얘기를 나중에 지인으로부터 들었다. 또 B그룹으로부터 경영 컨설팅을 의뢰받아 회장을 면담했던 한 컨설턴트는 “타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이 가득 차 컨설팅에 회의가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겨울의 운세 꺾임과 집터의 나쁜 기운으로 회장들의 판단력에 문제가 생긴 결과다. 물론 이런 해석은 경영자의 운과 양택 풍수의 눈으로만 보았을 때 그렇다는 전제하에서다. 반면 인생의 겨울을 안락하게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조건 없이 적선(積善)을 하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인들의 경우는 겨울에 접어들면 스스로 둔과 근을 실천하거나, 상승운에 있는 전문경영인이나 후계자를 내세워 겨울을 난다. 미국의 빌 게이츠 같은 이가 본받을 만한 사례다.  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 20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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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알파고는 풍수대가도 이길 수 있을까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왔을 때 나는 본격적으로 도래한 글로벌 도술문명(道術文明)에 찬사를 보냈다. 풍수인 입장에서도 산꼭대기를 헐떡거리며 올라가지 않고 지형과 지세를 살필 수 있어 편리했다. 스마트폰 앱이 제공하는 위성지도 덕분이었다. 손안의 슈퍼컴퓨터(스마트폰)가 등장한 지 10년째인 올해 초 또 다른 도술을 보았다. 알파고다. 혜성처럼 등장한 인공지능(AI)은 세계 최고 바둑기사 이세돌을 무너뜨렸다. 학습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이 ‘신기(神器)’는 변신술까지 부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소설가, 의사, 회계사 등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니 현대의 손오공이나 마찬가지다. 변수가 무한에 가까워 최고의 응용 술수학(術數學)으로 꼽히는 풍수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풍수를 습득하려면 두 가지 유파를 섭렵해야 한다. 풍수학 이론이 크게 형세파(形勢派)와 이기파(理氣派)로 나뉘기 때문이다. 형세파는 산세, 지형, 물줄기, 모양 등 주변의 형세를 살펴 길지(吉地)를 찾는다. 이기파는 주로 사방팔방의 방위를 따져 길한 곳을 가려낸다. 방위에 길흉(吉凶)이 스며 있다고 여긴다. 먼저 인공지능은 형세파 풍수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빅데이터를 쉽게 축적할 수 있다. 답산가, 만산도, 명당도 등의 이름으로 명당 그림은 널려 있다. 명당으로 알려진 왕릉 등 묘지와 명문 고택들도 실물 형태로 각지에 산재한다. 중국과 일본의 풍수 명당까지 보탠다면 인공지능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빅데이터와 위성사진을 통해 길한 터를 정교하게 짚어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형세파 풍수 중 산 모양을 짐승이나 사람 형체에 비유해 명당을 찾는 물형론(物形論)은 인공지능의 뛰어난 판독 능력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이기파 풍수는 더 쉽다. 주역 팔괘, 북두칠성, 음양오행 등을 이용해 길한 방위를 찾아내는 이기파에는 그 나름의 법칙과 규칙성이 있다. 인공지능이 이를 익히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지금도 프로그램만 정밀하게 짜면 주택의 최적 위치와 방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풍수 인테리어 비법을 단 몇 초 만에 제시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풍수인들은 인공지능에 완패할 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아직 풀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기(氣)의 영역이다. 풍수 고전 ‘금낭경(장서)’은 “장사를 지낸다는 것은 생기를 타는 것(葬者乘生氣也)”이라고 말한다. 형세파도, 이기파도 생기(生氣)를 찾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이론상 명당 조건에 부합한다고 해도 생기가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허화(虛花)인 것이다. 생기를 인공지능이 찾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로서는 기를 과학적, 객관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수단도, 데이터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풍수인 입장에서 생기는 실재하는 에너지이자 기운(氣運) 덩어리다. 호흡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기를 감지하듯, 오감(五感)을 통해 생기를 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풍수인도 더러 있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생기는 방향과 크기라는 벡터(vector)의 성질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천기(天氣),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지기(地氣), 수평 혹은 사선으로 흐르는 기 등 운동성을 보인다. 힘의 세기인 밀도도 상태에 따라 제각각이다. 생기의 벡터 성질을 적절히 활용한 우리 문화유산도 적지 않다. 신라시대 고분과 천년 사찰, 중국 지안(集安)의 고구려 시대 적석총, 한반도와 만주 곳곳에 산재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등은 지금도 생기를 분출하는 풍수 걸작이다. 이들은 형세파와 이기파 같은 중국의 이론 풍수가 한반도로 들어오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만일 생기라는 개념이 없는 인공지능이 이들을 명당으로 학습할 경우 기존 이론에 맞지 않아 버그(bug)를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 알파고의 등장을 계기로 나는 풍수와 인공지능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혈압, 심박수, 감정 상태, 피로도 등을 데이터로 축적해주는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기기로 생기 터와 수맥, 살기 등의 흉당 터에서 생체리듬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비교해 보고 있다. 건강정보를 토대로 좋은 터를 찾는 빅데이터가 쌓이면 ‘풍수대가 알파고’가 태어날 수도 있다. 풍수인의 밥줄이 끊어질지 모르겠지만 누구도 호기심까지 막을 수는 없다. 알파고도 호기심의 산물 아닌가.안영배 전문기자 ojong@donga.com·풍수학 박사}

    •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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