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노조 사무국장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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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06-29~2025-07-29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아빠 찬스’로 봉사활동 위조…영화 ‘보통의 가족’ 원작 소설 비교[선넘는 콘텐츠]

    “미리 주는 거야. 나중에 대학 가서 꼭 봉사해야 해.”작은 엄마 연경(김희애)은 고등학생 조카에게 ‘가짜’ 봉사활동 증명서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사회공헌단체에서 증명서를 위조한 뒤 조카에게 생색낸 것이다.물론 조카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연경이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비웃을 정도로 오만하다. 하지만 조카는 증명서를 대학 입시 때 활용하기 위해 연경에게 해맑게 웃으며 답한다. “감사합니다!”● “아빠 병원에서 봉사활동”…한국 ‘입시 비리’ 저격한 영화지난달 16일 개봉한 영화 ‘보통의 가족’은 한국 사회의 위선을 파고든 작품이다. 특히 자녀의 ‘입시’ 문제에선 범법행위도 저지르는 한국 부모의 왜곡된 모습에 대한 환멸이 가득하다.겉으로 보기엔 등장인물들은 모범적이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연경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사회공헌단체에서 일하며 아프리카로 봉사활동도 다닌다. 아침이면 남편과 아들의 밥을 차린다. 늦은 밤엔 방에 딸린 작은 베란다에서 업무를 처리할 정도로 성실하다.하지만 연경도 자녀 문제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진다. 고등학생 아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어렵다는 선생 말을 듣자마자 남편이자 의사인 재규(장동건)에게 전화를 건다. 아들을 남편이 다니는 대학병원 봉사활동에 넣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망설이는 남편을 향해 아들이 대학엔 가야 하지 않겠냐며 밀어붙인다. 결국 아들이 엄마의 요구를 거절하지만, 입시에 목메는 한국 부모들의 모습처럼 느껴진다.특히 영화 중반부 아들이 노숙자를 폭행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연경의 위선은 극에 달한다. 아들의 범행을 덮으려고 하는 것이다. 연경은 “우리 아이가 그랬을 리 없다”며 현실을 부정한다.물론 영화는 누구나 처할법한 딜레마를 다뤘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 ‘공정 논란’을 불러온 특정 사건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메가폰을 잡은 허진호 감독은 올 9월 제작발표회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들어갔다”며 “교육 문제, 빈부 문제, 상류층의 책임감 같은 문제를 담았다”고 했다. 허 감독은 “우리가 가진 신념, 도덕, 윤리가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의 양면성은 예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주제”라고도 했다.● “입양아는 장식품”…유럽 ‘입양’ 문제 다룬 소설이에 비해 네덜란드 소설가 헤르만 코흐가 2009년 출간한 원작 장편소설 ‘더 디너’(민음사)는 등장인물들의 위선을 ‘입양아’ 문제로 담았다. 유럽 내에서 논란이 진행 중인 입양 문제를 앞세워 유색 인종에 대한 왜곡된 시선, 친자식과 입양아에 대한 차별을 교묘하게 녹인 것이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유력한 수상 유력 후보이자 정치인인 형 ‘세르게’는 입양아를 키우고 있다. 자신이 낳은 두 아이가 있지만, 따로 아프리카에서 아이를 입양한 것이다. 하지만 세르게의 동생 ‘파울’은 입양 부모들에 대해 이렇게 비관적으로 서술한다.“물품 보관소나 동물보호센터에서 데려온 고양이 같은 것을 상상하면 된다. 만약 그 고양이가 소파 가죽을 물어뜯거나 집 안 곳곳에 오줌을 질질 흘리고 다니면 다시 돌려보내면 그만인 것이다.”또 파울은 세르게를 의심한다. 세르게가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입양아를 키우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부르키나파소에서 데려온 새카만 아이를 친자식들과 차별 없이 사랑한 것은 훗날 세르게한테 커다란 명예를 안겨줬다. 기본적으로 입양은 세르게한테 와인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장식품이었다. 세르게 로만, 아프리카 출신의 아이를 입양한 정치가.”사실 파울의 의심은 어느 정도 합리적인 면도 있다. 세르게는 남들 시선을 위해 살아가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세르게는 더 자주 가족사진을 찍었다. 이미지 관리를 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형님에게 “저기요”…가족 호칭 블랙 유머로 소화한 영화영화가 한국 특유의 가족 간 호칭에 집중해 긴장감을 살린 점도 특징이다. 동서 간인 지수(수현)와 연경 사이에 나이 문제를 집어넣어 신경전을 극화시킨 것이다.예를 들어 연경은 지수에게 ‘저기요’라는 호칭을 쓴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리지만, 관계상으론 손위인 지수를 차마 형님이라 부를 수 없어서다. 연경은 또박또박 존댓말을 쓰면서도 지수를 무시하기도 하다.물론 연경이 젊고 아름다운 지수에게 열등감을 지닌 것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편과 함께 지수의 출신 집안이 보잘것없다는 점을 공격하는 뒷말하는 연경의 모습을 보다 보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다만 위선을 위트로 녹여낸 건 영화의 장점이다. 연경이 지수를 유치할 정도로 비꼬는 장면을 보다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배우 김희애는 지난달 7일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평소 허당이다. 연경은 직설적이고 이기적인 것 같지만 좋은 일을 할 땐 적극적으로 나서는 캐릭터”라고 했다.물론 지수도 만만치 않다. 연경을 향해 “언니라고 불러도 되냐”면서 신경전을 벌인다. 자신의 젊음을 한껏 뽐내며 연경에 맞선다. 수현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수의 캐릭터는 뜬금없는 면이 있다. (해맑은) 반려견처럼 보인다”고 했다.● “와인 메뉴판은 권력”…고급 식당 배경 주목한 소설이에 비해 소설은 고급 식당이란 배경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에 초점을 맞췄다.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 등 코스가 이어지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위선적 행동을 벌이는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내는 것이다.예를 들어 세르게는 레스토랑 여직원들을 추파를 던진다. 식당 주인이 자신을 위해 테이블을 빼놓을 만큼 지위가 높다는 사실에 취해 선을 넘는 것이다. “(세르게는) 이미 화는 다 풀려 버렸다는 듯 슬그머니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 봄눈 녹듯이 순식간에 말이다. 그럼 그렇지. 세르게가 방금 전까지 우리의 화젯거리였던 스칼렛 요한슨의 닮은 꼴을 놓칠 리가 있겠는가. 그는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자비로운 은총을 기다리는 ‘쭉쭉 빵빵한 몸매’의 여종업원을 쳐다봤다.”또 세르게는 고급 와인에 대해 아는 체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세를 과시한다.“그는 레스토랑에서 와인 메뉴판을 제일 먼저 집어 들더니 알렌테호에서 생산된 포르투갈 와인의 ‘토질’에 대해 아는 체를 했다. 그건 일종의 권력 쟁취나 다름없었다. 그날부터 항상 와인 메뉴판은 당연하다는 듯이 세르게 앞에 놓였다.”“세르게의 취미 생활 다음 단계는 창고를 와인 저장고로 개조하는 일이었다. 창고에 와인 병을 보관할 수 있는 선반들을 설치했다. 그는 그걸 ‘와인의 숙성’이라고 불렀다. 식사 때마다 자신이 마셔 본 와인에 대해 강연을 늘어놓았다.”● “망각은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가 큰 법”…냉소적 시선 돋보여영화가 주연 4명의 내면을 돌아가며 따라가지만, 소설은 파울의 시선에서만 진행된다는 점도 다른 점이다. 그 덕에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냉소적인 태도가 강렬히 느껴진다.자녀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 파울은 이렇게 자문한다. “어쩌면 어둠이 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더 쉽게 진실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다음에는? ‘진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대체 어쩔 것인가?”또 파울은 이 문제를 덮자고 결심한 뒤엔 이렇게 속삭인다. 비밀을 저편에 묻은 뒤 모른 채 현실을 찾아가는 우리 인간에 대한 통찰이 보인다.“세상일이란 게 늘 그렇듯이 그 사건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한테서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잊어버려야 할 것은 바로 그 비밀이었다. 둘이서만 알고 있는 비밀. 망각은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가 큰 법이다.”자식을 향한 부모의 뒤틀린 욕망, 고고한 척 살아가지만 제 이익 앞에선 한없이 나약한 인간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 있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전 세계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또 한국 외에도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에서 영화화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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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리 잘리고… 건물에 깔리고… 참혹한 전쟁 ‘진실의 기록’

    온몸이 피범벅인 사람들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다. 어떤 이는 한쪽 다리가 잘렸다. 다른 이는 화상을 입어 얼굴이 녹아내렸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포탄에 맞아 실려 온 아이, 미사일을 맞아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을 쉬지 못하는 갓난아기…. 부모들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이를 안고 절규한다. 시신을 치우다 지친 의사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한다. “계속 찍어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 아이의 눈과 우는 의사들을 보여 주세요.” 6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전략적 요충지 마리우폴에서 AP통신 취재진이 20일 동안 촬영한 기록 중 뉴스에 보도되지 않은 영상까지 폭넓게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전쟁은 폭발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한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전쟁이 임박한 마리우폴 시내를 건조하게 비춘다. 외곽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한다. 한 여성은 취재진을 붙잡고 “어디로 도망가야 하냐”고 묻는다. 거칠게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 헐떡이는 취재진의 숨소리가 급작스럽게 돌아가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마리우폴은 점점 폐허로 변해 간다. 거리엔 군인들이 오가고 이곳저곳에서 전투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엔 다치거나 죽은 아이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러시아는 민간인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냐”고 울부짖는다. “전쟁은 엑스레이처럼 인간의 내면을 다 보여준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살기 위해 남의 가게를 턴다. 취재진은 취재 윤리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전쟁 초반 사람들은 “왜 내 모습을 찍냐”, “기레기”라며 취재를 거부한다. 돕지는 못할망정 카메라만 들고 다닌다며 못마땅해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카메라를 반긴다. 8일째부터 봉쇄된 마리우폴에서 인터넷이 끊겨 참상을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돕는 일과 카메라로 찍는 일 중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던 취재진이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은 이유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폭격 장면이나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반격처럼 군사적 줄다리기는 거의 담지 않았다. 그 대신 폭격을 받고 울부짖고 괴로워하며 공포에 떠는 평범한 사람들을 앵글에 담으며 전쟁의 잔인함을 응시한 점이 인상적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어섰고, 최근 북한군까지 참전한 만큼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여럿 던진다. 취재진은 자신들을 뒤쫓는 러시아군을 피해 취재한 사진과 영상이 담긴 저장장치를 탐폰 생리대 속에 숨겨 나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취재진은 전쟁의 참상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상인 퓰리처상 공공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33개의 상을 휩쓸었다. 취재진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이 트로피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거나 공격하지 않은 역사와 맞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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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돕지는 못할망정 사진만 찍는 기레기” 소리에도 카메라 든 이유

    온몸이 피범벅인 사람들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다. 어떤 이는 한쪽 다리가 잘렸다. 다른 이는 화상을 입어 얼굴이 녹아내렸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포탄에 맞아 실려 온 아이, 미사일을 맞아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을 쉬지 못하는 갓난아기…. 부모들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이를 안고 절규한다. 시체를 치우다 지친 의사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한다. “계속 찍어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 아이의 눈과 우는 의사들을 보여주세요.” 6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전략적 요충지 마리우폴에서 AP통신 취재진이 20일 동안 촬영한 기록 중 뉴스에 보도되지 않은 영상까지 폭넓게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전쟁은 폭발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한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카메라는 전쟁이 임박한 마리우폴 시내를 건조하게 비춘다. 외곽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한다. 한 여성은 취재진을 붙잡고 “어디로 도망가야 하냐”고 묻는다. 거칠게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 헐떡이는 취재진의 숨소리가 급작스럽게 돌아가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마리우폴은 점점 폐허로 변해간다. 거리엔 군인들이 오가고 이곳저곳에서 전투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병원엔 다치거나 죽은 아이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러시아는 민간인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냐”고 울부짖는다. “전쟁은 엑스레이처럼 인간의 내면을 다 보여준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살기 위해 남의 가게를 턴다. 취재진은 취재 윤리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전쟁 초반 사람들은 “왜 내 모습을 찍냐”, “기레기”며 취재를 거부한다. 돕지는 못할망정 카메라만 들고 다닌다며 못마땅해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카메라를 반긴다. 8일째부터 봉쇄된 마리우폴에서 인터넷이 끊겨 참상을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돕는 일과 카메라로 찍는 일 중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던 취재진이 끝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은 이유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폭격 장면이나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반격처럼 군사적 줄다리기는 거의 담지 않았다. 대신 폭격을 받고 울부짖고 괴로워하며 공포에 떠난 평범한 사람들을 앵글에 담으며 전쟁의 잔인함을 응시한 점이 인상적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2년이 넘어섰고, 최근 북한군까지 참전한 만큼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여럿 던진다. 취재진은 자신들을 뒤쫓는 러시아군을 피해 취재한 사진과 영상이 담긴 저장장치를 탐폰 생리대 속에 숨겨 나와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취재진은 전쟁의 참상을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상인 퓰리처상 공공보도부문을 수상했다. 영화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33개의 상을 휩쓸었다. 취재진은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이 트로피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거나 공격하지 않은 역사와 맞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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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혹시 나도 소시오패스? 생각보다 흔하대요

    살면서 남이 아끼는 물건을 부수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혹은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싶단 충동을 느끼거나, 누군가의 물건을 훔치고 싶었던 적은 있는가. 만약 살면서 이런 충동을 겪은 적이 있었다면 당신은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범죄자라는 말은 아니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반(反)사회적 인격장애를 앓고 있지만, 이 성향은 범죄로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두려움, 죄책감, 연민을 남들보다 덜 느끼지만 제어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심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정신건강 컨설턴트인 저자는 자전 소설인 신간에서 자신을 소시오패스로 소개한다. 연구에 따르면 20명 중 1명이 소시오패스 성향을 지니는 만큼 흔한 성향이라는 것이다. “내 이름은 패트릭 갸그니, 소시오패스”라는 도발적인 첫 문장을 시작으로 소시오패스에 대한 편견을 산산이 부순다. 저자는 어릴 적부터 소시오패스 성향이 엿보였다. 초등학생 때 옷장에 숨겨둔 비밀 상자에는 온갖 훔친 물건이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을 약 올리는 친구의 머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연필로 찍어버린 적도 있었다. 상급생들이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무 이유 없이 문을 걸어 잠그면서 쾌락과 해방감을 느꼈다. “매사에 무감각한 나는 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저자는 큰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다.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하라”며 저자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려줬기 때문이다. 남편 역시 한없이 저자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믿어줬다. 저자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누구든 모자란 부분은 있고, 보살핌과 사랑이 이를 채워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순수한 사랑은 행복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난과 절망 속에서 탄생한 행복은 거칠고 낯설지만 색다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가며 소시오패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도전하는 입담이 인상적이다. 다만 ‘평범한 사람’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키우고 늙어갈 미래를 꿈꾸고 싶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좀 상투적이라 아쉽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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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년 만에 돌아온 GD, ‘파워’ 여전하네…음원 차트 ‘올킬’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36)이 약 7년 만에 내놓은 신곡 ‘파워’로 실시간 음원 순위를 휩쓸었다.지난달 31일 발매된 지드래곤의 디지털 싱글 ‘파워’는 공개와 동시에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인 멜론, 지니, 벅스, 바이브 등에서 실시간 음원 순위 1위에 올랐다. 유튜브에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 동시 시청자 수 10만 명을 돌파했고, 공개 1시간 만에 조회 수 150만 회를 넘겼다. 지드래곤은 인스타그램 실시간 방송에서 ‘파워’를 공개하며 신곡 가사에 맞춰 다양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신곡은 지드래곤이 2017년 6월 미니 음반 ‘권지용’ 이후 7년 4개월 만에 내놓은 곡이다. 중독성 강한 비트에 강렬한 랩을 더한 힙합 장르. 지드래곤이 세계적인 작곡가인 토미 브라운, 테론 토마스, 스티븐 프랭크스와 공동으로 작곡했다. 작사는 지드래곤이 맡았다. 직설적이면서도 중의적 가사가 돋보인다. “아이 돈트 기브 어(I don‘t give a) 쉬-잇 웃다 끝 ‘돈’ 기부 ‘억’ 씨-익 / 권력오남용 묻고 관용 천재 지병 불가항력” 등이 다양한 해석으로 읽힌다.지드래곤은 한 방송에 출연해 “저에게 힘은 음악”이라며 “7년의 공백기 동안 미디어의 힘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꼈다. 미디어의 힘에 대한 풍자와 다양한 힘을 잘 융화하자는 여러 가지 뜻을 담았다”고 작곡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마약 투약 의혹 등으로 유튜브에서 비난받았던 경험 등을 녹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지드래곤은 지난해 12월 마약 투약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았으나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났다. 이후 마약 퇴치를 위한 사회 공헌 재단을 내년에 설립하고 새 앨범으로 복귀한다고 밝혔다.지드래곤은 당시 소속사인 갤럭시코퍼레이션을 통해 공개한 자필 편지에서 “이번 사태로 한 해 평균 마약 사범이 2만 명에 달하고 청소년 마약류 사범이 증가한 사실, 이들 중 치료받는 사람이 500명도 안 된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알게 됐다”고 썼다. 이어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과 잘못된 길인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마약 퇴치와 근절에 적극 나서겠다”며 “약한 존재가 겪는 억울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단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단 첫 기부는 VIP(빅뱅 팬덤)의 이름으로 하겠다고 했다.당시 조성해 갤럭시코퍼레이션 이사는 “경찰은 수사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의혹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수사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 지드래곤의 입장”이라고 전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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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제 ‘아파트’ 빌보드 8위… K팝 女가수 최고기록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APT.)’가 29일(현지 시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8위로 입성했다. 역대 한국 여성 가수 중 최고 순위다. ‘아파트’는 로제가 12월 발표하는 솔로 정규 1집 ‘로지’의 선공개곡으로 이달 18일 공개된 지 11일 만에 이 같은 기록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케이팝 여성 아티스트가 ‘핫 100’에서 달성한 최고 순위는 블랙핑크가 2020년 미국 가수 셀레나 고메즈와 함께 부른 ‘아이스크림’으로 기록한 13위였다. 케이팝 여성 솔로 가수로 한정하면 지난해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더 위켄드, 미국 가수 릴리로즈 뎁과 협업한 ‘원 오브 더 걸스’로 기록한 51위에서 껑충 뛰어올랐다. 로제는 방탄소년단·지민·정국(1위), 싸이(2위)에 이어 케이팝 가수 가운데 ‘핫 100’에서 10위 안에 진입한 다섯 번째 가수가 됐다. 로제는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 이건 미쳤다”며 “‘넘버원’(로제 팬덤), ‘블링크’(블랙핑크 팬덤) 모든 이들께 감사하다. 이건 내 꿈이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브루노 마스도 SNS를 통해 “너무 기쁘다, 로제!”라며 축하했다. ‘아파트’는 이날 발표된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 차트에선 1위를 기록했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의 인기는 더욱 높다는 뜻이다. ‘아파트’는 앞서 25일(현지 시간)엔 빌보드와 더불어 세계 양대 팝 차트로 꼽히는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4위로 진입한 바 있다.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도 이날 1억8000만 뷰를 찍었고, 2억 회 달성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선 로제 곡의 인기에 힘입어 1982년 발매된 가수 윤수일의 곡 ‘아파트’까지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가요계에선 로제의 ‘아파트’가 가수 싸이가 2012년 발표한 ‘강남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파트 아파트/아파트 아파트”(‘아파트’)라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옵옵옵옵 오빤 강남스타일/강남스타일”(‘강남스타일’)과 묘하게 닮았다는 것. 영어 아파트먼트(Apartment)를 한국식 아파트(Apatue)로 불렀다는 점도 한국 지명 강남(Gangnam)에 스타일(Style)을 붙인 ‘강남스타일’과 유사하다. 박성서 음악평론가는 “여럿이 함께 부르기 신나는 곡이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유머를 섞어 한국의 ‘서브컬처’(하위 문화)를 녹여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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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빌보드 핫100 8위…로제 “내 꿈 이뤘다”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APT.)가 29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8위로 입성했다. 역대 한국 여성 가수 중 최고 순위다. ‘아파트’는 로제가 12월 발표하는 솔로 정규 1집 ‘로지’의 선 공개곡으로 이달 18일 공개된 지 11일 만에 이 같은 기록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케이팝 여성 아티스트가 ‘핫 100’에서 달성한 최고 순위는 블랙핑크가 2020년 미국 가수 셀레나 고메즈와 함께 부른 ‘아이스크림’으로 기록한 13위였다. 케이팝 여성 솔로 가수로만 한정해도 지난해 블랙핑크 멤버 제니가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더 위켄드, 미국 가수 릴리 로즈 뎁과 협업한 ‘원 오브 더 걸스’로 기록한 51위보다 껑충 뛰어올랐다. 로제는 방탄소년단·지민·정국(1위), 싸이(2위)에 이어 케이팝 가수 가운데 ‘핫 100’에서 10위 안에 진입한 다섯 번째 가수가 됐다. 로제는 이날 자신의 SNS에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 이건 미쳤다”며 “‘넘버원’(로제 팬덤), ‘블링크’(블랙핑크 팬덤) 모든 이들께 감사하다. 이건 내 꿈이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브루노 마스도 SNS를 통해 “너무 기쁘다, 로제!”라며 축하했다. ‘아파트’는 이날 발표된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 차트에선 1위를 기록했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의 인기는 더욱 높다는 뜻이다. ‘아파트’는 앞서 25일(현지시간)엔 빌보드와 더불어 세계 양대 팝 차트로 꼽히는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4위로 진입한 바 있다.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도 이날 1억8000만 뷰를 찍었고, 2억 회 달성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선 로제 곡의 인기에 힘입어 1982년 발매된 가수 윤수일의 곡 ‘아파트’까지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가요계에선 로제의 ‘아파트’가 가수 싸이가 2012년 발표한 ‘강남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파트 아파트/아파트 아파트”(‘아파트’)라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옵옵옵옵 오빤강남스타일/강남스타일”(‘강남스타일’)과 묘하게 닮았다는 것. 영어 아파트먼트(Apartment)를 한국식 아파트(Apatue)로 불렀다는 점도 한국 지명 강남(Gangnam)에 스타일(Style)을 붙인 ‘강남스타일’과 유사하다. 박성서 음악평론가는 “여럿이 함께 부르기 신나는 곡이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유머를 섞어 한국의 ‘서브컬처’(하위문화)를 녹여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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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리 목청에 속이 ‘뻥’… 여자들의 사랑은 우정까지만

    “울지 마쇼. 이쁜 얼굴 마 미워져 부렀나.” 1950년대 서울의 한 거리. 사내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른 소녀 윤정년은 가냘픈 외모를 지닌 또래 소녀 권부용을 이렇게 위로한다. 부용이 거리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본 정년이 끼어들어 대신 싸워주고 구해준 것이다. 부용을 위로하기 위해 손수건까지 챙겨 주는 정년은 실제론 여자지만 마치 숙녀를 보호하는 ‘멋쟁이 신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 부용은 자신을 구해 준 소리꾼 정년에게 푹 빠진다. 부용은 국극 공연이 끝난 뒤엔 정년을 찾아가 “앞으로 영원히 널 응원할래”라며 백합(여성 동성애를 의미)을 건넨다. 정년이 국극단에서 쫓겨나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전향하러 간 뒤에도 정년이 대배우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빨리, 빨리 (공연을) 내게 보여줘. 내가 아직 여학생이어서, 너를 진심으로 축하해 줘도 이상하지 않을 때”라는 부용의 대사에 비춰보면 둘 이야기를 사랑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여자가 좋다” 같은 부용의 혼잣말에서 느껴지듯 2019∼2022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웹툰 ‘정년이’엔 동성애 코드가 농후하다.하지만 12일부터 tvN에서 방영되며 12.7%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동명의 드라마엔 부용이란 캐릭터가 아예 없다. 국립창극단이 지난해 3월 공연한 동명의 창극에서 부용을 출연시키고 “나의 사랑”이라는 대사를 통해 정년과 부용의 동성애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과 다른 선택이다. 원하는 작품만 골라볼 수 있어 동성애에 대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웹툰 플랫폼과 달리 채널을 돌리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드라마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구성 인물에 변화를 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신 드라마는 정년(김태리)이 성공하기 위해 라이벌 허영서(신예은)와 경쟁하는 구도를 부각했다. 웹툰이 정년, 영서, 부용의 3인 구도라면 드라마는 정년, 영서 2인 구도로 압축한 것. 드라마를 연출한 정지인 PD는 올 8월 언론 인터뷰에서 “각색 과정에서 부용이 사라졌지만 부용이 갖고 있던 정서는 다른 캐릭터에 녹이는 식으로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며 “드라마 ‘대장금’(2003년)의 장금(이영애)과 금영(홍리나)처럼 드라마 ‘정년이’는 정년과 영서의 관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웹툰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배우들이 모든 배역을 맡는 여성국극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소리 없이 말풍선으로만 공연 장면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해 드라마에선 배우들이 직접 부른 판소리가 시청자의 시선을 끈다. 예를 들어 ‘춘향전’에서 정년은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같은 대사로 너스레를 떠는 방자 역할을 제대로 소화한다. 김태리는 정년을 연기하기 위해 3년간 판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김태리를 가르친 소리꾼 권송희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김태리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지만 파워풀해 소리꾼으로서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인기 국극 배우인 문옥경(정은채)의 역할을 키워 사제 서사로 확장한 것도 각색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웹툰에서 정년은 전남 목포에서 서울로 상경한 뒤 옥경을 만나지만, 드라마에선 옥경이 목포의 시장판에서 우연히 재능 넘치는 정년을 발굴하고 국극을 연습시킨다. 또 웹툰에서 정년은 어머니 채공선(문소리)이 과거 유명 소리꾼이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지만, 드라마에선 공선의 비밀을 이후에 알게 돼 모녀 갈등의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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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여자 좋다” 부용이 왜 사라졌나…드라마 ‘정년이’ 원작 웹툰 비교 [선넘는 콘텐츠]

    “울지 마쇼. 이쁜 얼굴 마 미워져부렀나.”1950년대 서울의 한 거리. 사내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른 소녀 윤정년은 가냘픈 외모를 지닌 또래 소녀 권부용을 이렇게 위로한다. 부용이 거리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모습을 본 정년이 끼어들어 대신 싸워주고 구해준 것이다. 부용을 위로하기 위해 손수건까지 챙겨주는 정년은 실제론 여자지만 마치 숙녀를 보호하는 ‘멋쟁이 신사’처럼 보이기도 한다.이후 부용은 자신을 구해 준 소리꾼 정년에게 푹 빠진다. 부용은 국극 공연이 끝난 뒤엔 정년을 찾아가 “앞으로 영원히 널 응원할래”라며 백합(여성 동성애를 의미)을 건넨다. 정년이 국극단에서 쫓겨나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전향하러 간 뒤에도 정년이 대배우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빨리, 빨리 (공연을) 내게 보여줘. 내가 아직 여학생이어서, 너를 진심으로 축하해줘도 이상하지 않을 때”, “난 그때 지독한 마법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에로스의 화살이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온 사랑의 묘약 같은”라는 부용의 대사에 비춰보면 둘 이야기를 사랑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여자가 좋다”, “여자애들은 여자 ‘친구’를 사귄다. 자라면 여자가 된다” 같은 부용의 혼잣말에서 느껴지듯 2019~2022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웹툰 ‘정년이’엔 동성애 코드가 농후하다.● “나의 사랑”…레즈비언 캐릭터, 퀴어 코드 지워하지만 12일부터 tvN에서 방영되며 12.7%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동명의 드라마엔 부용이란 캐릭터가 아예 없다. 원하는 작품만 골라볼 수 있어 동성애에 대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웹툰 플랫폼과 달리 채널을 돌리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드라마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구성 인물에 변화를 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이는 지난해 3월 국립창극단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창극 ‘정년이’과는 다른 각색이다. 당시 창극에선 정년과 부용의 동성애 코드도 가감 없이 담겼다. 부용이 부모의 바람에 따라 남자 약혼자와 결혼하자 정년은 상심을 노래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의 사랑”이라는 대사를 통해 둘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마치 ‘대장금’처럼…여성 동료 간 경쟁 구도 부각대신 드라마는 정년(김태리)이 성공하기 위해 라이벌 허영서(신예은)와 경쟁하는 구도를 부각했다. 웹툰이 정년, 영서, 부용의 3인 구도라면 드라마는 정년, 영서 2인 구도로 압축한 것이다. 특히 집안에서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영서는 정년을 꼭 이기려는 마음에 가득 차 있다. 타고난 소리꾼인 정년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영서가 소리 대결을 펼치며 성장하는 서사인 것. 여성 동료들 간의 경쟁이라는 익숙한 서사로 시청자의 시선을 끈 것이다.드라마를 연출한 정지인 PD는 올 8월 언론 인터뷰에서 “각색 과정에서 부용이 사라졌지만 부용이 갖고 있던 정서는 다른 캐릭터에 녹이는 식으로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며 “드라마 ‘대장금’(2003)의 장금(이영애)과 금영(홍리나)처럼 드라마 ‘정년이’는 정년과 영서의 관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또 “최종적인 각색 방향은 작품 제목처럼 정년이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과 매란국극단 내부의 서사를 끌고 가야 한다는 거였다. 회차가 더 있었다면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3년 동안 판소리 연습한 김태리웹툰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배우들이 모든 배역을 맡는 여성국극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 받았지만, 소리 없이 말풍선으로만 공연 장면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주제의식과 서사는 호평받았지만 각종 공연에서 등장하는 대사와 몸집이 부분 컷으로만 전달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이에 비해 드라마에선 배우들이 직접 부른 판소리가 시청자의 시선을 끈다. 예를 들어 ‘춘향전’에서 정년은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같은 대사로 너스레를 떠는 방자 역할을 제대로 소화한다. 김태리는 정년이를 연기하기 위해 3년간 판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전라도 출신 인물의 억양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기 위해 주 2, 3회씩 목포에서 사투리 수업을 받기도 했다.김태리를 가르친 소리꾼 권송희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김태리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지만 파워풀 해 소리꾼으로서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며 “변신하고 싶어하는 욕심과 열정이 느껴져서 함께 정년이를 찾아가는 동반자라고 생각하며 지도했다”고 했다. 국극 무대를 만든 박민희 공연연출가는 “국극은 한국 최초로 미러볼을 사용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세련된 공연을 선보였다”며 “국극 무대가 만들어내는 환상적 에너지가 화면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게 노력했다”고 했다.● 사제-모녀 서사 확장인기 국극 배우인 문옥경(정은채)의 역할을 키워 사제 서사로 확장한 것도 각색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웹툰에서 정년은 목포에서 서울로 상경한 뒤 옥경을 만나지만, 드라마에선 옥경이 목포의 시장판에서 우연히 재능 넘치는 정년을 발굴하고 국극을 연습시킨다. 정년이 어머니인 채공선(문소리)의 비밀에도 차이가 있다. 원작은 처음부터 정년이가 채공선의 딸인 것을 알고 있다는 설정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정년이가 극단에 들어온 이후 나중에 가서 채공선의 딸임을 알게 되는 것으로 변했다. 원작은 정년이가 어머니의 판소리를 어려서부터 자주 들어왔다는 설정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정년이가 어머니의 비밀을 모르고도 타고난 소리꾼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모녀 갈등의 극적 긴장감을 높인 셈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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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핑크 로제 ‘아파트’, 英 싱글차트 4위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곡 ‘아파트(APT.)’가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에 4위로 진입했다.영국 오피셜 싱글차트에 따르면 25일(현지 시간) 공개한 최신 순위에서 ‘아파트’가 4위에 올랐다. 18일 곡 공개 이후 일주일 만으로, 케이팝 여성 가수가 기록한 최고 순위다. 앞서 지난해 7월 한국인 DJ 겸 음악 프로듀서 페기 구가 ‘(잇 고스 라이크) 나나나’로 같은 차트에서 5위에 올랐었다.영국 오피셜 차트는 미국 빌보드와 더불어 세계 양대 팝 차트로 꼽힌다. 스트리밍, CD 등 영국 내 음악 소비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는데 미국 빌보드보다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평가받는다.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는 “노래 제목 ‘아파트’는 ‘아파트먼트(apartment)’의 한국식 발음”이라며 “한국의 술 문화 중 ‘아파트 게임’으로 알려진 술자리 게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같은 차트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의 솔로 앨범 타이틀곡 ‘후’는 전주보다 10위 하락한 48위로 톱100에 14주 연속 이름을 올렸다. 이 차트에서 브루노 마스는 레이디 가가와 부른 ‘다이 위드 어 스마일’로 3위도 차지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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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와 야광봉 흔든 중년의 ‘마왕’ 팬들…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 떼창

    “제가 아는 형은 추모도 유쾌하게 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가수 신해철(1968∼2014·사진)의 10주기 추모 공연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가 열린 26일 인천 중구 인스파이어 아레나 공연장. 전광판에 가수 싸이의 신해철에 대한 단상을 적은 문구가 뜬 가운데 싸이가 무대 위에 등장하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신인 시절 신해철에게 음악을 배운 싸이는 2014년 10월 27일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위해 2015년 헌정 곡 ‘DREAM’을 발표했다. 이날 싸이는 ‘유쾌한 비관론자’라 불렸던 신해철처럼 신나게 공연을 꾸몄다. 장례식장에 온 듯 검은색 정장을 입었지만, 댄스곡 ‘챔피언’과 ‘연예인’을 연달아 부르며 흥을 띄웠다. ‘강남 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며 무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싸이는 생전의 로커 신해철처럼 마이크를 쥐어 잡고 고인의 대표곡 ‘해에게서 소년에게’ ‘나에게 쓰는 편지’ ‘그대에게’를 연달아 열창했다.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라는 가사에 맞춰 떼창이 울려 퍼졌다. 이날 여러 가수가 신해철의 곡을 재해석했다. 밴드 넬이 ‘날아라 병아리’(1994년)의 가사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를 특유의 아련한 미성으로 소화했다. 가수 김범수는 서정적인 목소리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1990년)의 구절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를 나직이 불렀다. 홍경민과 고유진은 신해철이 활동했던 밴드 ‘넥스트’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슈퍼주니어 예성(‘일상으로의 초대’)과 마마무 솔라(‘내 마음 깊은 곳의 너’)는 고인의 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불러 눈길을 끌었다. 신해철 팬클럽 ‘철기군’은 슬픔보단 환희로 호응했다. 40, 50대 팬들은 신해철이 활발하게 활동한 1990년대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 듯 추억에 잠긴 모습이었다. 사회적 발언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신해철에게 붙은 별명인 ‘마왕’이란 단어가 적힌 야광봉을 흔들며 함께 온 자녀들의 손을 붙잡고 신해철의 옛 곡을 따라 불렀다. 당초 3시간 20분으로 예정된 공연이 5시간 가까이 이어졌음에도 이들은 지치지 않고 공연을 즐겼다. “나를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준 마왕”(BTS 멤버 제이홉), “그가 떠난 가을마다 그가 그리워진다”(DJ 배철수) 등의 추모 메시지도 무대 중간중간 등장해 분위기를 돋웠다. 넥스트 멤버 김영석은 “신해철의 노래가 계속 불리고 기억되길 원한다”고 말했다.인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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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모도 유쾌하게”…4050 환호한 신해철 10주기 콘서트

    “제가 아는 형은 추모도 유쾌하게 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가수 신해철(1968~2014)의 10주기 추모 공연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가 열린 26일 인천 중구 인스파이어 아레나 공연장. 전광판에 가수 싸이의 신해철에 대한 단상을 적은 문구가 뜬 가운데 싸이가 무대 위에 등장하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신인 시절 신해철에게 음악을 배운 싸이는 2014년 10월 27일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위해 2015년 헌정 곡 ‘DREAM’을 발표했다. 이날 싸이는 ‘유쾌한 비관론자’라 불렸던 신해철처럼 신나게 공연을 꾸몄다. 장례식장에 온 듯 검은색 정장을 입었지만, 댄스곡 ‘챔피언’과 ‘연예인’을 연달아 부르며 흥을 띄웠다. ‘강남 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며 무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싸이는 생전의 로커 신해철처럼 마이크를 쥐어 잡고 고인의 대표곡 ‘해에게서 소년에게’, ‘나에게 쓰는 편지’, ‘그대에게’를 연달아 열창했다.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라는 가사에 맞춰 떼창이 울려 퍼졌다. 이날 여러 가수들이 신해철의 곡을 재해석했다. 밴드 넬이 ‘날아라 병아리’(1994년)의 가사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를 특유의 아련한 미성으로 소화했다. 가수 김범수는 서정적인 목소리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1990년)의 구절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난 포기하지 않아요”를 나직이 불렀다. 홍경민과 고유진은 신해철이 활동했던 밴드 ‘넥스트’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슈퍼주니어 예성(‘일상으로의 초대’)과 마마무 솔라(‘내 마음 깊은 곳의 너’)는 고인의 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불러 눈길을 끌었다. 신해철 팬클럽 ‘철기군’은 슬픔보단 환희로 호응했다. 40, 50대 팬들은 신해철이 활발하게 활동한 1990년대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 듯 추억에 잠긴 모습이었다. 사회적 발언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신해철에게 붙은 별명인 ‘마왕’이란 단어가 적힌 야광봉을 흔들며 함께 온 자녀들의 손을 붙잡고 신해철의 옛 곡을 따라 불렀다. 당초 3시간 20분으로 예정된 공연이 5시간 가까이 이어졌음에도 이들은 지치지 않고 공연을 즐겼다. “나를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준 마왕”(BTS 멤버 제이홉), “그가 떠난 가을마다 그가 그리워진다”(DJ 배철수) 등의 추모 메시지도 무대 중간마다 등장해 분위기를 돋웠다. 넥스트 멤버 김영석은 “신해철의 노래가 계속 불리고 기억되길 원한다”고 말했다.인천=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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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진스 ‘디토’, 美 음악전문지 ‘2020년대 최고 노래’ 23위

    걸그룹 뉴진스(사진)의 노래 ‘디토’가 미국 음악 전문지 페이스트가 선정한 ‘2020년대 최고의 노래 100선’에 포함됐다.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는 2022년 발표된 ‘디토’가 16일(현지 시간) 발표된 이 차트에서 23위에 올랐다고 24일 밝혔다. 비욘세 등 미국 팝가수들의 노래가 주로 선정된 이 차트에 이름을 올린 케이팝 곡은 ‘디토’가 유일하다. 페이스트는 “2020년대 케이팝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뉴진스만큼 큰 인기를 끈 그룹은 없었다”며 “뉴진스가 새롭게 개척한 장르에서의 입지와 그들의 폭발적인 스타성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했다. 페이스트는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발표한 ‘역사상 가장 훌륭한 미니음반 100선’에서는 뉴진스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곡 ‘겟 업’을 52위로 선정했다. 페이스트는 당시 “케이팝에서 잘 활용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련되고 미묘한 사운드를 선사한다”고 평가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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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발짝 뒤에서 응시한 폭력성, 그리고 남겨진 이의 슬픔

    “담임을 한 건 아닌데 작문해서 내라고 하면 곧잘 쓰던 애여서 기억이 나.” 1980년 초가을의 어느 일요일. 당시 열 살 소녀였던 한강 작가는 식탁에서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다. 작은고모가 “오빠가 가르친 애였어요?”라고 묻자 한승원이 가족 앞에서 한 소년과 얽힌 일화를 꺼낸 것이다. 한승원은 몇 년 전 집을 팔고 이사 가면서 부동산에서 매수인과 계약했다. 한승원이 중학교 선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니 집 사는 사람이 반가워했다. 매수인은 “막내아들이 중학생”이라고 알은체를 했다. 한승원은 학교에서 그 집 소년을 눈여겨봤고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한승원은 1980년 1월 광주에서 선생으로 살던 생활을 정리하고 전업으로 작가 일에 집중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사연을 전해 들은 어른들은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야기를 함께 들은 어린 한강은 사연을 몰라 궁금해했다. 왜 어른들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는가. 왜 소년의 이름을 말하기 직전에 알 수 없는 망설임이 끼어드는가. 34년이 지나 한강은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내놨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펴내면서다. 어린 시절 들었던 질문에 답하려 노력한 그의 집념이 통했던 걸까. 그의 6번째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2014년 출간 직후 한국 만해문학상,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 직후 40만 부가 팔리는 등 국내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돼 밀리언셀러에 등극했다. 소설은 1980년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동호는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친구 정대가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자 시민군의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는다. 매일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동호는 여러 생각에 빠진다.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고,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린다.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그동안 ‘채식주의자’ 등 개인의 내밀함을 주로 다루던 한강이 사회적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등 역사적 사건에 천착하게 된다. “희생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잔혹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내 ‘증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한다”(한림원),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신형철 문학평론가)의 평가가 나온 이유다. 한강이 직접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성인으로서 민주화를 거쳐온 작가들이 자신이 겪은 사건에 대해 마치 르포르타주처럼 생생한 묘사를 해왔다면 한강은 오히려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다룬다. 동호 외에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을 치료했으나 살아남아 치욕스러워하는 은숙, 아들을 잃고 죽을 때까지 괴로워하는 동호 어머니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한 발자국 뒤에서 사건을 응시한다. 한림원이 “환영이 어른거리는 듯하면서도 간결한 스타일로 예상을 비껴간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의 모티브가 떠오른다”며 추켜세운 점이 납득된다. 작품을 읽다 보면 다른 한강 작품도 떠오른다. 예를 들어 은숙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불판 위에서 고기나 생선이 익어가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피를 흘리며 죽어갔던 시민군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며 얼었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고, 벌어진 입에서 희끗한 진물이 흘러나오는 순간”에 대해 묘사하는 대목은 한강의 다른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를 생각나게 한다. 인간의 혼을 ‘새’로 바라보는 한강의 시각도 작품에 녹아 있어 흥미롭다. 작품에서 주인공 동호는 죽은 시민군의 몸에서 ‘새’가 빠져나갔다고 표현한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라며 죽은 이에게도 혼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강이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인 16일 발표한 짧은 산문 ‘깃털’에서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와 새를 비유하는 대목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에게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흰 새의 깃털 같은 머리칼을 가진 분이었다. (중략) 유난히 흰 깃털을 가진 새를 볼 때, 스위치를 켠 것같이 심장 속 어둑한 방에 불이 들어올 때가 있다.”(‘깃털’ 중) 작품의 완성도는 높지만 읽기는 쉽지 않다. 시민군의 처참한 상황을 묘사한 표현들 때문이다. “발가락들은 외상이 없어 깨끗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같은 문장들을 읽다 보면 책장을 넘기는 일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한강의 이런 가감 없는 표현은 폭력에 대한 고민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어떤 군인은 잔인하게 시민군을 진압했지만 진압을 망설인 군인도 있었다는 것. 인간의 폭력성은 광주민주화운동뿐 아니라 어느 때든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설을 쓰기 전 어느 한겨울, 한강은 광주에 내려갔다고 한다. 한강은 광주에서 동호의 모티브가 된 소년이 살던 옛집에 방문했다. 소년의 형을 만나 꼭 제대로 써 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한강은 소년의 무덤도 찾았다. 소년의 흑백사진이 묘비에 붙어 있었다. 한강은 그 앳된 얼굴을 들여다봤다. 가방을 열고, 가지고 온 초를 태웠다. 기도하지도 묵념하지도 않았다. 눈에 묻힌 자신의 발목을 바라보다 돌아왔다. 이후 한강은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에 이렇게 썼다.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웃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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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대 최고의 노래”…뉴진스 ‘디토’, 美음악 전문지 선정 23위

    걸그룹 뉴진스 노래 ‘디토’가 미국 음악 전문지 페이스트가 선정한 ‘2020년대 최고의 노래 100선’에 포함됐다.뉴진스 소속사 어도어는 2022년 발표된 ‘디토’가 16일(현지 시간) 발표된 이 차트에서 23위에 올랐다고 24일 밝혔다. 비욘세 등 미국 팝가수들의 노래가 주로 선정된 이 차트에 이름을 올린 케이팝 곡은 ‘디토’가 유일하다. 페이스트는 “2020년대 케이팝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뉴진스만큼 큰 인기를 끈 그룹은 없었다”며 “뉴진스가 새롭게 개척하는 장르에서의 입지와 그들의 폭발적인 스타성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했다.페이스트는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발표한 ‘역사상 가장 훌륭한 미니음반 100선’에서는 뉴진스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곡 ‘겟 업’을 52위로 선정했다. 페이스트는 당시 “케이팝에서 잘 활용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련되고 미묘한 사운드를 선사한다”고 평가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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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집 낸 조용필 “신곡 발표 어려워… 콘서트가 행복”

    “어떻습니까? 별로예요? 하하.” 2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앨범 ‘20’ 발매기념 기자간담회. ‘가왕’ 조용필(74·사진)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등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 직전 공개한 노래에 대한 소감을 농담 삼아 물은 것. 수많은 히트곡을 낸 그도 신곡 발표에 긴장한 듯 “내 나이 벌써 70을 넘어 신곡을 발표한다는 것이 어렵다”며 “차라리 콘서트가 행복하다”고 했다. 이날 공개된 ‘20’은 그가 2013년 ‘헬로’ 이후 11년 만에 낸 정규 음반이다. 그는 음반 발매가 다소 늦어진 이유에 대해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만들어 놓고 이튿날 다시 악보를 보면 ‘에라’ 하고 딴 곡을 만들어 나오게 되더라. 그런 곡이 한 수백 곡은 됐다”고 했다. 그는 또 “곡을 완벽하다 해서 내놓은 게 한 번도 없다. 지금도 음악을 듣다 보면 한심하다”며 “주위에서 이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해도 나는 속으로 화가 날 때가 있었다”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임을 밝히기도 했다. 신보엔 총 7곡이 담겼다. 2022년과 2023년 연이어 발표한 싱글에 수록됐던 4곡에 새로운 3곡을 추가했다. 신곡들은 록(‘그래도 돼’), 일렉트로닉(‘타이밍’), 발라드(‘왜’)처럼 장르가 폭넓다. 특히 타이틀곡 ‘그래도 돼’는 “자신을 믿어, 믿어봐”처럼 누군가를 응원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조용필은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데 카메라가 패자는 전혀 비추지 않고 우승자만 비추더라”면서 “패자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다 ‘속상하고 섭섭하겠지만 힘을 내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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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필 “지금도 내 음악 듣다보면 한심”…완벽주의 가왕의 신보 발표

    “어떻습니까? 별로예요? 하하.” 2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앨범 ‘20’ 발매기념 기자간담회. ‘가왕’ 조용필(74)은 두 손을 번쩍 들고 등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 직전 공개한 노래에 대한 소감을 농담 삼아 물은 것. 수많은 히트곡을 낸 그도 신곡 발표에 긴장한 듯 “내 나이 벌써 70을 넘어 신곡을 발표한다는 것이 어렵다”며 “차라리 콘서트가 행복하다”고 했다.이날 공개된 ‘20’은 그가 2013년 ‘헬로’ 이후 11년 만에 낸 정규음반이다. 그는 음반 발매가 다소 늦어진 이유에 대해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만들어 놓고 이튿날 날 다시 악보를 보면 ‘에라’ 하고 딴 곡을 만들어 나오게 되더라. 그런 곡이 한 수백 곡은 됐다”고 했다. 그는 또 “곡을 완벽하다 해서 내놓은 게 한 번도 없다. 지금도 음악을 듣다 보면 한심하다”며 “주위에서 이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해도 나는 속으로 화가 날 때가 있었다”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임을 밝히기도 했다. 신보엔 총 7곡이 담겼다. 2022년과 2023년 연이어 발표한 싱글에 수록됐던 4곡에 새로운 3곡을 추가했다. 신곡들은 록(‘그래도 돼’), 일렉트로닉(‘타이밍’), 발라드(‘왜’)처럼 장르가 폭넓다. 특히 타이틀곡 ‘그래도 돼’는 “자신을 믿어, 믿어봐”처럼 누군가를 응원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조용필은 “TV에서 스포츠 경기를 보는데 카메라가 패자는 전혀 비추지 않고 우승자만 비추더라”면서 “패자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다 ‘속상하고 섭섭하겠지만 힘을 내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앨범 발표는 이번이 마지막일까. 짓궂은 질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앨범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새로운 좋은 곡이 있으면 신곡 발표를 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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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현수막’ 앞서 셀카… 독일 국제도서전 주인공 된 ‘K문학’

    한강 작가의 얼굴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 앞에서 독자들이 셀카를 찍는다. ‘소년이 온다’ 등 한강의 주요 작품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한강 같은 한국 작가가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앞다퉈 쏟아진다. 10일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국내 서점에서 펼쳐졌을 법한 풍경 같다. 하지만 이런 ‘한강 열풍’이 분 현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다. 131개국에서 온 출판사들이 부스를 열고, 20만 명 이상이 찾은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의 주인공을 한강 열풍을 앞세운 한국 문학이 차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6∼20일(현지 시간) 열린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출판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강에 대한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곳은 독일 출판사 아우프바우의 부스였다. 이곳엔 한강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엔 올 12월 출간되는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독일어판 사진도 함께 담겼다.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한강의 책 5권이 부스 벽면을 가득 채웠다. 특히 주말인 19, 20일에는 전 세계 독자들이 쉴 새 없이 방문해 한강의 책을 봤다고 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연 서울국제도서전 부스에도 한강의 수상 소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독자들은 현수막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겼다. 또 출판사 판권 담당자들도 여럿 방문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자국 문학에 자부심이 강한 일본 출판인들도 “한강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작가”라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석현혜 서울국제도서전 매니저는 “30분마다 미팅을 소화해야 하는 탓에 쉬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이었다”며 “특히 아시아 출판인들이 저녁 파티마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축하를 건네곤 했다”고 말했다. 출판사 문학동네 부스엔 한국 문학 판권에 대한 문의가 예년에 비해 3, 4배 많았다고 한다. 특히 기존엔 아시아 출판사들의 문의가 다수였지만 올해는 영미권과 유럽 출판사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 2021년 국내에서 출간된 이희주의 장편소설 ‘성소년’(문학동네)의 판권이 미국 대형 출판사 하퍼콜린스와 영국 대형 출판사 팬 맥밀런에 각각 1억 원대의 선인세 조건으로 팔렸다. 팬 맥밀런은 이희주 차기작의 해외 판권을 자신들이 우선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김소영 문학동네 대표는 “60여 차례의 미팅에서 해외 출판인들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축하 인사로 미팅을 시작했다”며 “그동안 해외에서 이른바 ‘힐링 소설’이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는 순수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전했다. 한강의 수상을 계기로 다양한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주목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해외 1급 에이전트들이 단순히 축하를 건네는 정도를 넘어 진지하게 수입할 한국 문학을 검토하고 있다”며 “한강이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중 연배가 어린 축에 속하는 만큼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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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작가 황금기 6년 남아… 책 3권 쓰는데 몰두”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소설가 한강(54)은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일주일 만인 17일 첫 공개 행사에 참석해 이런 바람을 밝혔다. 한강은 이날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의 수상자로 단상에 서서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올해는 그렇게 글을 써온 지 꼭 30년이 되는 해”라고 했다. 또한 한강은 “약 한 달 뒤 저는 만 54세가 된다”면서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작가 황금기’인 60세까지 6년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노벨상에 연연하지 않고 집필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강은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농담을 던졌고,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집필)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한강은 노벨상 발표 날도 회상했다. “노벨위원회에서 수상 통보를 막 받았을 때에는 사실 현실감이 들지는 않았다”면서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그때에야 현실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토록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저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한강은 “저는 술을 못 마신다. 최근에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도 끊었다”며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도 했다. 대신 걷는 것, 아직 못 읽은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의 대화를 좋아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한강은 신작 얘기를 직접 꺼내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 보고 있다”면서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정확한 시기를 확정지어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시상식은 별도로 초대받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나, 한강이 노벨상 수상 결정 뒤 가진 첫 공개 행보였던 만큼 그를 만나려는 취재진과 시민들로 행사장 주변이 일찌감치 북적였다. 한강은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시상식장을 출입하며 취재진 등과 거리를 뒀고, 수상 소감 등은 재단을 통해 공개됐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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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노벨상 후… 5일새 100만부 판매… 출판계에 ‘단비’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소설가 한강(54)의 작품들이 15일 판매량 100만 부(전자책 포함)를 돌파했다. 10일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것을 감안하면 닷새 동안 평균 20만 부씩 팔려 나간 셈. 오랫동안 불황에 시달렸던 출판계는 ‘한강 특수’에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다.15일 오후 4시 기준으로 한강 작품은 국내 3대 서점인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에서 전자책을 포함해 약 105만 부가 판매됐다. 종이책 기준으로는 약 97만2000부다. ‘소년이 온다’(창비) ‘채식주의자’(창비)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흰’(문학동네)처럼 주요 작품만 팔리는 게 아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 ‘희랍어시간’(문학동네) ‘디 에센셜: 한강’(문학동네)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 등 온라인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 이내가 모두 한강 작품이다. 이렇듯 한강 열풍을 통해 출판사의 ‘깜짝 이익’은 얼마나 증가했을까. 보통 서점과 출판사는 각 서적의 매출이나 이익을 공개하지 않기에 출판계의 관행에 비춰 매출이나 이익을 추정해 봤다. 판매 상위 4권의 평균 정가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100만 부(종이책) 기준 총 판매금액은 약 153억 원이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흰’의 평균 가격이 1만5325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서점의 할인정책을 고려하지 않고 정가로만 계산했을 때 총금액은 다소 줄어들 여지가 있다. 이 금액 가운데 69억∼84억 원이 출판사에 들어올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서점에서 출판사에 정가의 45∼55%를 주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받은 금액 중 정가의 10%인 작가의 인세를 제외하면 출판사들 입장에선 54억∼69억 원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처럼 찍는 대로 책이 나가는 경우엔 책을 창고에 보관하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또 한강 작품 같은 베스트셀러는 정가의 60%를 서점이 출판사에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랜 불황이었던 출판계는 ‘한강 효과’로 극적인 반전을 맞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보고서 ‘2023년 출판시장 통계’와 지난해 각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문학동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2억1600만 원에 그쳐 전년(57억6500만 원)보다 44.2% 감소했다. 창비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17억1000만 원으로 전년(27억6200만 원)에 비해 38.1% 줄었다. 두 출판사의 경우 노벨 문학상이 발표된 10일부터 15일까지 5일 동안 지난해 영업이익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그동안 문학동네는 카페 사업, 창비는 아동도서에 전념하며 순수문학에서 잠시 멀어진 문학 전문 출판사들의 상황이 바뀔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더군다나 한강 서적 같은 초대형 베스트셀러는 서점에서 현금을 주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사 간다. 보통 서점이 출판사에 나중에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어음을 주고 이후에 정산하지만, 반품에 따른 손해까지도 서점이 감수하는 것. 한 출판사 관계자는 “현재처럼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책이 판매되는 상황에선 서점 입장에서도 부대 비용이 거의 없다”며 “주요 서점들의 이익도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한강도 수상 발표 후 5일간의 판매 인세만 15억 원 안팎을 받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노벨 문학상 수상 상금인 1100만 크로나(약 14억3000만 원)를 넘어서는 규모다. 3대 서점을 제외한 중소 서점의 국내 판매 미집계분, 해외 판매 인세를 고려하면 인세 수익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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