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진

신규진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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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에서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newj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대통령70%
정치일반6%
국방6%
사건·범죄6%
남북한 관계4%
칼럼2%
학술2%
검찰-법원판결2%
인사일반2%
  • ‘호텔 델루나’ 1분 장면에 40여 명이 3개월…해외서도 인정받은 CG 업체

    ‘달빛을 받는 델루나의 외경이, 담쟁이 넝쿨로 꾸물꾸물 덮여간다…’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 대본에 실제 등장하는 글귀다. 밤에 찾아오며 낡은 건물이 고층 호텔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이 표현은 참으로 단출하다. 사실 드라마에서 전남 목포시에 있는 2층짜리 근대역사관이 모델인 건물은 해리포터 호그와트 마법학교보다도 근사한 초대형 호텔로 바뀐다. 이제 국내 영화나 드라마도 덜 떨어진 컴퓨터그래픽(CG)을 ‘국뽕’으로 참고 보는 시대는 진즉에 지나갔다. 최고 시청률 10.45%(닐슨코리아)를 찍은 ‘호텔 델루나’는 특히 국내 시각효과의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에서 특화된 판타지 장르답게 CG분량이 넘쳐난다. 귀신이 소멸되는 특수효과부터 간판이나 현장 스태프를 지우는 소소한 기술까지 이미 4000컷 가까이 CG 작업을 완료했다. 이 드라마의 CG 작업을 맡은 ‘디지털아이디어’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시각효과기술(VFX) 업체다. 21일 경기 고양시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진 대표(41)는 ‘호텔의 변신’ 역시 CG가 작품의 질을 끌어올린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실 처음엔 호텔이 한 5층 정도 높이로 변하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호텔이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바뀌어야 드라마 스타일에 어울린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사소한 대목도 CG로 디테일을 살린 것도 비슷한 이유다. 그는 “주인공 만월(아이유)이 매력적인 여성이라 판타지 효과도 더 반짝이고 예뻐야 했다”고 전했다. 디지털아이디어는 ‘퇴마록’(1998년)을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와 드라마 400여 편의 CG 제작을 담당해왔다. 기차를 향해 질주하는 수백 명의 좀비 떼(영화 ‘부산행’)나 고구려와 당의 치열한 전투 장면(‘안시성’)도 이 업체가 맡았다. 판타지 드라마 ‘도깨비’(2016년)와 개화기 시대를 다룬 ‘미스터션샤인’(2018년) 등도 마찬가지. 뭣보다 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증강현실(AR) 기술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화제를 모았다. 국내 최대 규모의 VFX업체지만, 매주 밀려드는 촬영본 400여 컷을 작업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호텔 델루나’는 전담인력만 250명이 넘게 투입했다. 100% 사전제작 드라마는 아닌지라, 대본과 촬영 일정이 밀려 마감 시간이 피가 마를 때도 여러 번이었다. “영화는 촬영 뒤 개봉할 때까지 4~6개월 정도 시간이 있어요. 작업량도 2000여 컷 정도죠. 근데 드라마는 제작기간도 유동적이고 분량도 훨씬 많아요. ‘미스터…’은 8000여 컷, ‘알함브라…’는 6000여 컷을 작업했어요.” 다행히 ‘호텔 델루나’의 CG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특히 드라마 초기부터 눈길을 끈 호랑이 CG는 “실제보다 더 사실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박 대표 역시 섬세한 공정을 거친 호랑이에 대한 애정이 크다. 이빨이나 눈알 등 신체를 꼼꼼히 디자인한 뒤 수만 개의 털이나 피부 질감, 무늬를 표현하는 텍스처 작업도 했다. 여기에 근육의 움직임을 얹고(리깅) 실제 촬영 장면에 호랑이를 배치하며(카메라 트래킹), 동작과 표정 등을 넣는 애니메이션 작업, 주변 환경에 따라 음영을 조정(라이팅 렌더링)하는 등 한 마리의 호랑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10단 계 이상의 고난이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이런 결과물은 그간의 기술이 축적돼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스터 고’(2013년)의 고릴라 링링을 만든 경험과 기술 덕분에 일부 공정은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중국 영화 ‘몽키킹’(2014년)의 호랑이, ‘사바하’(2019년)의 뱀도 ‘호텔 델루나’에 변형해 재창조됐다. 드라마에 나오는 열차는 ‘부산행’의 작업물을 바탕으로 재가공했다. 파란색 배경(크로마키)을 뒤로 우주인(이시언)과 만월이 만나는 3회 장면은 겨우 1분 내외지만, 촬영 화면에 3D 우주정거장을 입히는 작업만 40여 명이 3개월을 들였다. 30여 종 귀신들의 서로 다른 디테일도 CG로 살렸다. 실제 촬영 본에 배우의 얼굴을 스캔해 작업한 CG를 덧입히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분장 후 파란 조명을 비추는 방법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점점 시청자들이 리얼리티를 원하다보니 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CG 장면은 단순히 때깔 좋은 화면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출연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만월의 칼이 고목에 꽂히며 객잔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모형 칼과 나무모양의 스펀지를 활용해 아이유의 이해를 도왔다. 호랑이 대역으로 현장 스태프가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는 모션 연기해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박 대표는 “CG로 대체할 도구를 보고 배우가 먼저 퀄리티를 걱정하기도 한다”고 웃었다. 2011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해 규모를 키워온 디지털아이디어는 지난해 반가운 계약도 따냈다. 지난해 ‘앤트맨과 와스프’, 올해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 등 마블 영화의 스크린X 가공 자격(영화관 좌우벽면 영상 제작)을 획득했다. 박 대표는 “한 달 반 정도 제작한 영상 (수준을) 보고 마블에서 깜짝 놀랐다”며 “제작비가 할리우드 수준만 된다면 그들보다 더 좋은 CG를 뽑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 국내 시각효과 기술 꾸준한 성장…CG산업 전망 밝지만은 않아 ▼ 국내 시각효과 기술(VFX)은 20여 년 동안 줄기찬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적 수준에 버금가는 진보를 이뤄냈다. 국내에서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처음 등장한 영화는 ‘구미호’(1994년)였다. 당시 배우 고소영이 여우로 변신하는 과정은 하나의 형체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하는 ‘모핑’ 기술을 썼다. 물론 ‘쥬라기 공원’(1993년) 등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기술력은 격차가 컸다. ‘쉬리’(1998년)에선 고층 빌딩 폭파와 도심 총격전에 CG가 쓰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길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이후 조금씩 활용도는 늘어났다.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에선 팔다리가 잘려나간 군인들을 비롯해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이 생생하게 구현됐고, ‘중천’(2006년)에선 실제 배우의 외모로 동작을 대신하는 ‘디지털 액터’ 기술을 선보였다. 그 성과로 한국의 CG업체들이 모여 만든 컨소시엄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포비든 킹덤’(2008년)의 특수효과 작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해운대’(2009년)에선 CG작업에만 50억 원을 투입했다. 지진해일(쓰나미)이 부산을 덮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2017년부터 개봉한 ‘신과 함께’ 시리즈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의 약 90%에 CG를 사용했다. 드라마 역시 영화만큼 카메라 등 장비가 동일해지고 스태프 인적 교류가 정착되며 두 분야의 CG기술 격차도 해소되고 있는 추세다. 중국 시장 진출은 2010년대부터 이뤄졌다. 덕분에 국내 업체 수도 100여 개로 늘었고, 100명 이상 인력을 가진 대형업체들도 생겨났다. ‘적인걸2’(2013년), ‘미인어’(2016년), ‘홍해행동’(2018년), ‘유랑지구’(2019년) 등 중국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낸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매크로그래프, 덱스터스튜디오, 디지털아이디어 등 국내 업체들이 참여했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CG 산업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 진출로 활로를 모색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가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업체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악조건이다. 한 VFX업체 관계자는 “제작비에서 인건비를 제하면 연구개발에 비용을 투입할 여력이 없다. 일부 대형업체를 제외한 군소업체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도 걱정거리다. VFX업계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제작 단가를 올릴 수밖에 없지만 경쟁이 치열해 영업이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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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은이 김숙의 영화보장’… 투머치토커의 영화 수다

    예능 ‘송은이 김숙의 영화보장’ 첫 편이 30일 오후 9시 40분 채널A와 스카이드라마에서 방영된다. 2015년부터 시청자들의 고민과 사연을 공유하며 인기를 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스핀오프작으로, 출연자들은 회당 한 영화를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20일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송 씨는 “팟캐스트를 하면서 항상 영상화를 생각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투머치토커’(말이나 설명을 과도하게 많이 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들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들 외에도 수다쟁이 감독 장항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개그맨 황제성, 관객과의 대화(GV) 진행자로 유명한 개그우먼 박지선이 참여했다. 매회 영화계 예능계에서 활약 중인 게스트도 등장할 예정이다. 출연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영화 속 장면들을 포착해 궁금해할 만한 정보들을 소개한다. 자세한 설명 없이도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2000년대 개봉 영화들이 대상이다. 이를테면 1회에서 영화 ‘극한직업’의 16중 추돌사고 장면을 보고 피해 보상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아보거나 형사들의 잠복근무 실상을 조명하는 식이다. 감독이나 배우도 몰랐던 촬영 비화도 공개될 예정이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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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170일 파업’ 주도했던 이용마 기자 별세

    복막암으로 투병하던 이용마 MBC 기자(사진)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50세. 1996년 MBC에 입사해 2011년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MBC노조) 홍보국장을 맡았던 고인은 공정방송을 내걸고 170일간 파업을 주도하다가 최승호 MBC 사장(당시 PD) 등 5명과 함께 2012년 해고됐다. 2017년 최 사장이 취임하자 5년 만에 MBC로 복귀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 기자의 치열했던 삶과 정신을 기억하겠다”며 추모 글을 올렸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6년 12월과 올해 2월 등 두 차례에 걸쳐 고인을 문병하며 쾌유를 기원하기도 했다. MBC는 사우장으로 장례를 치를 계획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수영 씨와 자녀 현재, 경재 군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23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메모리얼파크. 02-3010-2230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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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두만강서 ‘이만갑’ 방송 꿈꿔요”

    “언젠가는 두만강, 백두산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방송하고 싶어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의 MC 남희석이 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남 씨는 2011년 12월 4일 첫 방송부터 자리를 지킨 ‘이만갑’의 터줏대감이다. 종편 최장수 프로그램인 ‘이만갑’은 18일 400회를 맞이한다. ‘이만갑’은 그간 탈북민들을 대규모로 출연시켜 북한의 실상을 면밀히 소개해 왔다. 지금까지 ‘이만갑’에 출연한 탈북민은 600여 명.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탈북민 예능’인지라 워싱턴포스트, BBC, 르몽드, NHK 같은 해외 언론에서 보도됐고 북한 정부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했다.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만갑’이 폐쇄적인 탈북민 사회에 미친 영향은 작지 않다. 중국에 머무는 탈북민이 조선족의 소개를 받고 ‘이만갑’을 시청하는 문화도 퍼졌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삶을 ‘예습’하는 셈. 실제 탈북민 김현정 씨는 2014년 방송을 통해 15년 만에 동생과 재회하는 감격의 순간을 누렸다. 남 씨는 “신분 노출을 극도로 조심하던 탈북민들 사이에서 자신을 ‘북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한다. MC로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만갑’만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남 씨는 “돌발 상황”이라고 답했다. 촬영 전 북한 관련 뉴스를 찾아보고 출연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물어보지만 녹화를 하다 보면 전혀 몰랐던 사연들이 튀어나온다. ‘꽃제비’를 주제로 한 방영분에서 “양치를 5년 동안 못했다” “탈북을 하니 충치가 생겼다” 등 각자의 경험을 경쟁적으로(?) 털어놓는 것과 같은 상황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고 한다. 남 씨는 “배구의 서브, 토스, 스파이크처럼 합을 맞추는 기존 예능과 달라 항상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웃었다. 출연한 탈북민들에게 남 씨는 ‘큰오빠’가 됐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겪는 어려움을 들어주거나 철없는(?) 행동을 할 땐 따끔한 충고를 건네기도 한다. 그는 촬영장에서 수많은 탈북민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스튜디오나 뒤풀이 자리에서 이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는 “고문 경험 등 방송에 내보낼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예능이라고 마냥 웃고 떠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향후 ‘이만갑’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도 크다. 남 씨는 “민감한 북한 이슈에 영향 받지 않고 북한 서민들의 삶을 더 친절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성규 PD도 “과거 남북한 격차를 다룬 주제들이 많았는데, 앞으론 시대에 맞는 북한의 변화상 등 인식 개선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18일 오후 11시 ‘이만갑’에선 400회 특집 가요제가 열린다. 작곡가 돈스파이크, 트로트 가수 설하윤, 가수 서영은 등 심사위원들 앞에서 탈북민들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가요 공연을 펼친다. 특히 탈북민들 사이에서 인기곡인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를 부를 때 촬영장이 눈물바다가 됐다는 후문이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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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민 예능 ‘이만갑’ 400회…MC 남희석 “백두산에서 방송하고 싶어요”

    “언젠간 두만강, 백두산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방송하고 싶어요.” 채널A 예능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의 MC 남희석이 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남 씨는 2011년 12월 4일 첫 방송부터 자리를 지킨 ‘이만갑’의 터줏대감이다. 종편 최장수 프로그램인 ‘이만갑’은 18일 400회를 맞이한다. ‘이만갑’은 그간 탈북민들을 대규모로 출연시켜 북한의 실상을 면밀히 소개해왔다. 지금까지 ‘이만갑’에 출연한 탈북민은 600여 명.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탈북민 예능’인지라 워싱턴포스트, BBC, 르몽드, NHK 같은 해외 언론에서 보도됐고, 북한 정부로부터 견제를 받기도 했다. 7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만갑’이 폐쇄적인 탈북민 사회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중국에 머무는 탈북민이 조선족의 소개를 받고 ‘이만갑’을 시청하는 문화도 퍼졌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삶을 ‘예습’하는 셈. 실제 탈북민 김현정 씨는 2014년 방송을 통해 15년 만에 동생과 재회하는 감격의 순간을 누렸다. 남 씨는 “신분노출을 극도로 조심하던 탈북민들 사이에서 자신을 ‘북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한다. MC로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만갑’만의 매력을 묻는 질문에 남 씨는 “돌발 상황”이라고 답했다. 촬영 전 북한 관련 뉴스를 찾아보고 출연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물어보지만, 녹화를 하다보면 전혀 몰랐던 사연들이 튀어나온다. ‘꽃제비’를 주제로 한 방영분에서 “양치를 5년 동안 못했다” “탈북을 하니 충치가 생겼다” 등 각자의 경험을 경쟁적으로(?) 털어놓는 것과 같은 상황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고 한다. 남 씨는 “배구의 서브, 토스, 스파이크처럼 합을 맞추는 기존 예능과 달라 항상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웃었다. 출연한 탈북민들에게 남 씨는 ‘큰 오빠’가 됐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겪는 어려움을 들어주거나 철없는(?) 행동을 할 땐 따끔한 충고를 건네기도 한다. 그는 촬영장에서 수많은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들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스튜디오나 뒤풀이 자리에서 이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그는 “고문 경험 등 방송에 내보낼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예능이라고 마냥 웃고 떠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향후 ‘이만갑’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도 크다. 남 씨는 “민감한 북한 이슈에 영향 받지 않고 북한 서민들의 삶을 더 친절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성규 PD도 “과거 남북한 격차를 다룬 주제들이 많았는데, 앞으론 시대에 맞는 북한의 변화상 등 인식 개선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18일 오후 11시 ‘이만갑’에선 400회 특집 가요제가 열린다. 작곡가 돈스파이크, 트로트 가수 설하윤, 가수 서영은 등 심사위원들 앞에서 탈북민들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가요 공연을 펼친다. 특히 탈북민들 사이에서 인기곡인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를 부를 때 촬영장이 눈물바다가 됐다는 후문이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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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업장 무게는 가벼워도, 배움의 만족도는 훨씬 커요”

    “수업과 학생문화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올해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A 씨는 한 달 반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대학에서 지적·인격적으로 성장할 거란 기대가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는 수업의 목표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토론으로 수업을 때운다는 인상도 받았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의 권위와 규율도 불편했다. 최근 그는 대안 대학 ‘미지행’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A 씨는 “스승은 정성껏 질문하고 학생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졸업장의 무게는 제도권 대학보다 가벼울지 몰라도 배움의 만족도는 훨씬 커졌다”고 했다.○ 평등하고 능동적인 ‘공부 공동체’ 기존 대학의 문법을 부수는 교육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2015년 문을 연 신촌대가 있다. ‘스피치로 말잘해볼과’ ‘트라우마 극복해볼과’ 등 의문형 ‘까’를 ‘과’로 바꾸고 간판에 대학을 붙였지만 지향점은 대학과 모든 게 정반대다. 학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 교육부 인가는커녕 뚜렷한 조직체계도 없다. 학비는 2과목에 8만 원(한 달 기준). 수업은 신촌 일대의 공간을 빌려서 연다. 이해랑 신촌대 운영위원은 “‘대학’이라는 명칭은 상징적으로 사용할 뿐 모두가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프로젝트 또는 모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입학·졸업증, 학점이수, 스펙이 없는 평등한 공부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핵심 가치는 도전과 변화다. 진로 고민으로 끙끙 앓던 이혜민 씨(28)는 신촌대에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인문과 실용을 아우르는 수업을 듣고 학과장으로 강의(‘SNS해볼과’)를 하다 보니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게 됐다. 영양사에서 금융과 마케팅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신촌대는 학과장들이 동네에서 수업을 열면서 이태원대, 구로대, 분당 캠퍼스, 테헤란로대 등으로 분화됐다. 뿌리 격인 신촌대의 시스템을 따르되 지역의 특성을 덧입었다. 구로대는 은퇴 이후 삶을 고민하는 중장년층 중심으로 운영된다. 분당 캠퍼스는 마을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이태원 캠퍼스는 예술 수업이 활발하고 테헤란로대는 금융 수업을 주로 연다. 금융인 출신인 한연숙 테헤란로대 학과장은 “테헤란로가 경제·금융의 메카라고 하는데 관련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전·현직 금융인을 위한 배움터”라고 했다. 건축가 신혜원, 문학평론가 함돈균, 무용가 안은미가 의기투합해 만든 ‘미지행’은 학교의 배움을 사회로 연결시키는 게 목표다. 학교의 운영 단위는 유닛이다. 생각 몸 미디어 도구 등 유닛별로 학과장 격인 디렉터가 있다. 학위와 논문이 아닌 현장 경험과 네트워크 역량으로 디렉터를 뽑았다. 내년 정식 개교를 앞두고 지난달 20명을 모집해 시험호를 띄웠다. 이번 학기 등록금은 180만 원. 출판사를 다니다 입학한 하연 씨는 “일을 해보니 분절된 전공 지식보다 통합적 사고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뜬구름처럼 들릴 수 있지만 훨씬 실용적인 공부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6년 문을 연 파이청년학교는 청년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초중고교 12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도록 돕는 게 목표다. 이 때문에 인문·심리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년 과정으로, 수강료는 한 학기에 220만 원 선이다. 파이학교는 현장 교육에 특히 공을 들인다. 지난해에는 학생들의 제안으로 게임을 프로젝트 주제로 정하고 게임회사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 주제는 웹툰. 30년 경력의 웹툰 작가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웹툰을 제작했다.○ 대안 대학 붐…“수업 내용 잘 따져봐야” 지적도 독학의 보고인 유튜브에도 대학이 존재한다. 김미경 강사가 진행하는 김미경tv유튜브대는 올해 1월 5일 서울의 한 대학 강당을 빌려 출범식 성격의 입학식을 열었고, 1500여 명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동영상을 시청한 뒤 언급된 책을 읽고 온라인 카페에 A4 용지 5장 내외로 독후감을 올려야 한다. 팬덤 중심의 유튜브 기반 독서 대학인 셈이다. 학칙은 나름대로 까다롭다. 일정 건수 이상 과제를 제출해야 활동할 수 있다. 참여도에 따라 열정대학생, 열정우등생, 열정장학생으로 등급이 올라간다. 열정장학생인 김용현 씨(40)는 “책을 읽고 온·오프라인에서 동기생들과 생산적 관계를 맺다 보면 열정이 고취된다. 운동을 습관화하고 새벽에 일어나게 됐다”고 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대안 대학이 빠르게 번지는 배경에는 기존 대학의 침몰이 있다. 이해랑 위원은 “현재 대학은 비싼 등록금에 비해 효용이 떨어진다. 학문의 범위도 제한돼 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맞춤형 교육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미래 사회에는 빠르게 분야를 바꿔 적응하는 ‘리부팅’ 능력이 중요하다. 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던 정규 교육과정의 쓸모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입시 중심의 교육체제에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교육 관계자는 “말이 대학이지 실용학원과 다를 바 없는 플랫폼이 적지 않다. 싼 게 비지떡일 수 있으니 수업 내용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설 snow@donga.com·신규진 기자}

    • 2019-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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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라우마 극복해볼과’ ‘말잘해볼과’…대학에 이런 전공도 있다고?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수업과 학교 문화가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19학번으로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한 A씨는 한 달 반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대학의 울타리에서 지적·인격적으로 성장할 거란 기대가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일부 교수는 수업의 목표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토론으로 수업을 때운다는 인상도 받았다.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의 권위와 규율도 불편했다. A씨는 최근 ‘미지행’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통합적 사고를 지닌 세계시민 양성을 추구하는 대안 대학. 올해 시범 학기를 열고 학생 20명을 모집했다. A씨는 “스승은 정성껏 질문하고 학생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졸업장의 무게는 제도권 대학보다 가벼울지 몰라 배움의 만족도는 훨씬 커졌다”고 했다. 연 1000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 4년을 다녀도 멀게 느껴지는 교수님. 유튜브 강의보다 실속 없는 교양 수업. 취업을 목표로 종마처럼 달리는 캠퍼스 친구들. 오늘날 대학의 자화상이다 최근 기존 대학의 문법을 깨부수는 교육 플랫폼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유로운 배움터를 추구한다. 누구나 학과를 개설할 수 있는 신촌대·서초대·테헤란로대, 배움의 공공성을 지향하는 미지행, 유튜브 기반의 김미경tv유튜브대, 전문성에 방점을 둔 파이(PIE)청년학교 등이다. 함돈균 미지행 총괄 디렉터는 “커뮤니티 중심의 취미 모임부터 대학의 틀을 갖춘 교육 기관까지 배움의 통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안학교의 성인 버전인 대안 대학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학과장 해볼과’ ‘스토리텔링 강의기법 배워볼과’, ‘제대로 된 시민참여로 행복해질과’, ‘스피치로 말잘해볼과’, ‘트라우마 극복해볼과’…. 이런 흐름의 중심에는 2015년 문을 연 신촌대가 있다. 신촌대의 전략은 발랄하고 가벼운 비틀기다. 의문형 ‘까’를 ‘과’로 바꾸고 간판에 대학을 붙였지만 지향점은 대학과 모든 게 정반대다. 가방 끈과 별개로 누구나 가르칠 수 있고, 교육부 인가는커녕 뚜렷한 조직체계도 없다. 학비는 2과목에 8만 원(한 달). 수업은 신촌 일대의 공간을 빌려서 연다. 이해랑 신촌대 운영위원은 “‘대학’이라는 명칭은 상징적으로 사용할 뿐, 모두가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프로젝트 또는 모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입학·졸업증, 학점이수, 스펙이 없는 평등한 공부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이곳의 핵심 가치는 도전과 변화다. 진로를 고민하던 이혜민 씨(28)는 신촌대에서 인생 항로를 바꿨다. 인문과 실용을 아우르는 수업을 듣고 학과장으로 강의(‘SNS해볼과’)를 하다보니 스스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게 됐다. 영양사에서 금융과 마케팅 쪽으로 직업을 바꿨다. 이 씨는 “인문, 사회, 과학을 넘나드는 지식을 배우고 때로 가르치다보면 도전 정신이 고양되고, 이런 변화가 일상에서 긍정의 씨앗을 틔운다. 제한된 삶의 테두리를 깨고 싶은 이들은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개교 5년차. 신촌대는 빠르게 외연을 넓히고 있다. 학과장들이 동네에서 수업을 열면서 이태원대, 구로대, 분당 캠퍼스, 동탄 캠퍼스, 서초대, 테헤란로대 등으로 분화됐다. 원조인 신촌대의 시스템을 따르지만 지역의 특성을 덧붙였다. 구로대는 은퇴 후 진로 고민을 안은 중장년층 중심으로 운영된다. 분당 캠퍼스는 마을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이태원 캠퍼스는 예술 관련 수업이 활발한데, 지자체로부터 공간을 제공받으며 새로운 협력모델을 구축했다. 테헤란로대는 금융 관련 수업을 주로 연다. ‘펀드·리츠·P2P로 부동산 간접투자해볼과’, ‘리더라면 이코노미스트읽어볼과’ 등이다. 금융인 출신인 한연숙 테헤란로대 학과장은 “테헤란로가 경제·금융의 메카라고 하는데 관련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전·현직 금융인들을 위한 배움터”라고 했다. 가성비 좋은 ‘실용학원+교양강좌+취미모임’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한 신촌대는 어떤 앞날을 그릴까. 이해랑 위원은 “조직을 정비한 뒤 시니어, 청년, 예술, 미디어 등으로 지역 캠퍼스를 특화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라고 했다. ●“배움을 사회로 연결시키는 미래형 학교” “교수님이 아닌 이름을 불러요. 혜원(신혜원), 돈(함돈균) 이렇게요. 호칭이 평등하니 소통도 편안하게 이뤄집니다.”(미지행 학생 하연) “이수 학점이나 과제는 없어요. 스스로 무엇을 공부할지 정하고, 수업에서는 구성원들과 긴밀히 소통하죠. 초·중·고를 거쳐 갑자기 대학에 진학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아요. ”(미지행 학생 B씨) 미지행은 공존·세계시민·생명을 학교 정신으로 삼고, 미래 의제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교다. 학교의 배움을 사회로 연결시키는 게 목표다. 건축가 신혜원, 문학평론가 함돈균, 무용가 안은미 등이 의기투합했다. 내년 정식 개교를 앞두고 지난달 20명을 모집해 시험호를 띄웠다. 이번 학기 등록금은 180만 원. 내년부터는 학비가 오를 것으로 보인다. 파운데이션과정 1년을 포함한 5년제로 진행된다. 몸, 도구, 공간, 생각, 소통 등의 강좌를 자유롭게 골라 듣는다. 시험 학기 학생은 대안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유학생, 직장인으로 다양하다. 학교 구성원들은 서로를 형, 언니가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 출판사를 다니다 입학한 하연 씨는 “사회에서 일을 하다보니 분절된 전공 지식보다 통합적 사고방식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얼핏 뜬구름처럼 들릴 수 있지만 훨씬 실용적인 공부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학교 운영 단위는 유닛이다. 생각 몸 미디어 도구 등 유닛 별로 학과장 격인 디렉터가 있다. 학위와 논문이 아닌 현장 경험과 네트워크 역량으로 디렉터를 뽑았다. 교육이 사회적 영향력으로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강연과 연구 내용을 토대로 학교 자체가 일터화(미디어) 되는 밑그림도 그리고 있다. 미지행은 연구소로 등록돼 있다. 함돈균 디렉터는 “국가 교육시스템에 예속될 계획은 없다. 대학으로 인가를 받으면 재정 보조를 받을 수 있지만 자율성은 포기해야 한다. 현실적 요구를 반영해 해외 대학과 연합을 구축해 학점을 교류하고, 연합 학교에서 졸업인가를 받는 방식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김미경 팬덤, 유튜브대학 “요즘 미경샘 강의를 들으며 영어와 재테크를 공부해요. 오랜 꿈이었던 그림도 배우고요. 여느 때보다 활기차게 삽니다.‘ 서울에 사는 40대 김상희 씨는 최근 다시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친언니의 권유로 김미경tv유튜브대학에 입학한 것. ’북드라마‘, ’드림머니‘, ’인간관계 대화법‘ 등을 시청한 뒤 영상에서 소개한 책을 읽고 카페에 독후감을 제출한다. 김 씨는 ”자기계발, 꿈, 영어, 시사, 재테크를 두루 다룬다. 문화센터나 취미모임보다 수업 구성이 풍성한 데다 회원들끼리 결속력이 높다“고 했다. 독학의 보고인 유튜브에도 대학이 생겨났다. 김미경 강사가 진행하는 김미경tv유튜브대다. 올해 1월 5일 1500여 명이 서울의 한 대학 강당에 모여 출범식 성격의 입학식을 열었다. 수업은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동영상을 시청한 뒤 언급된 책을 읽고 온라인 카페에 A4지 5장 내외로 독후감을 올려야 한다. 팬덤 중심의 유튜브 기반 독서 대학인 셈이다. 현재 카페 회원은 2만2400여 명. 남녀노소가 두루 참여하지만 40대 이상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연간 9만9000원을 내고 유료회원이 되면 학번과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현재 유료회원은 2300여 명이다. 학칙은 나름 까다롭다. 일정 건수 이상 과제를 제출해야 활동할 수 있다. 참여도에 따라 열정대학생, 열정우등생, 열정장학생으로 등급이 올라간다. 만만찮은 진입장벽을 극복하고 많은 이들이 유튜브대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열정장학생인 김용현 씨(40)는 ”책을 읽고 온·오프라인에서 동기생들과 생산적 관계를 맺다보면 열정이 고취된다. 운동을 습관화하고 새벽기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유료회원 C씨는 ”인맥과 사고의 폭이 넓어지다보니 스스로 브랜드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대안 대학 등장은 필연…”수업 내용 잘 따져봐야“ 지적도 2016년 문을 연 파이청년학교는 청년들의 길잡이를 자처한다. 초·중·고 12년 간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잘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도록 돕는 게 목표다. 이 때문에 인문·심리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년 과정으로, 수강료는 한 학기에 220만 원 선이다. 파이학교는 현장 교육에 특히 공을 들인다. 지난해에는 학생들의 제안으로 게임을 프로젝트 주제로 정하고 게임회사 CEO를 초청해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 주제는 웹툰. 30년 경력의 웹툰 작가의 작업실을 둘러보고 웹툰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밖에 커뮤니티 성격이 강한 오픈 칼리지, 직장인2교시, 취향관 등도 있다. 대안 대학이 빠르게 번지는 배경에는 기존 대학의 침몰이 있다. 이해랑 위원은 ”현재 대학은 비싼 등록금에 비해 효용이 떨어진다. 학문의 범위도 제한돼있다. 이에 대한 불만으로 맞춤형 교육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미래 사회에서는 빠르게 분야를 바꿔 적응하는 ’리부팅‘ 능력이 중요하다. 초·중·고·대로 이어지던 정규 교육과정의 쓸모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입시 중심의 교육체제에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교육 관계자는 ”말이 대학이지 실용학원과 다를 바 없는 플랫폼이 적지 않다. 싼 게 비지떡일 수 있으니 수업 내용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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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있는 드라마인데 어디선가 본 듯… 표현과 아이디어 사이 경계의 모호함

    ‘영빈(靈賓) 전용 호텔 델루나에 호텔리어 구찬성(여진구)이 지배인으로 근무하며, 심술궂은 사장 장만월(아이유)과 함께 특별한 영혼 손님들에게 특급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달 13일부터 방영 중인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 시놉시스의 일부다. 이 드라마는 방영 전인 올 초부터 일본 만화 ‘우세모노 여관’(2016년)과 소재가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만화의 주인공인 사키는 죽은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숙소를 운영하고, 이들을 안내하는 유코의 하수인 마츠우라는 인간임에도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tvN은 ‘호텔 델루나’가 “2013년 작가 홍자매(홍정은 홍미란)가 집필한 SBS ‘주군의 태양’의 초기 기획안”이라고 밝혀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모호한 존재 장만월이 술과 음식, 패션에 관심이 많고 구찬성을 골려 먹는 괴팍한 성격이라는 설정은 2003년 연재된 일본 만화 ‘XXX 홀릭’을 연상시킨다는 의견도 있다. 이 만화에서도 주인공 유코가 죽은 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상점을 운영한다. 이에 대해 “원혼 소재는 기존 작품에서 흔히 반복된 ‘클리셰’다. 인기 있는 드라마에 대한 흠집 내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첨예하게 맞선다. 지난달 25일 종영한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는 미국 영화 ‘미스 슬로운’(2016년)과 플롯이 유사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 작가 커뮤니티에선 포털업계(‘검블유’)와 로비업계(‘미스 슬로운’)라는 소재만 다를 뿐, 청문회 오프닝 장면이나 일부 대사가 “리메이크 수준”이라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 국내 드라마가 외국 작품과 기본 콘셉트나 구성에서 유사한 것에 대한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엔 SBS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이 일본 드라마 ‘아름다운 사람’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논란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전 제작이 정착되지 않은 드라마 제작 구조상 각본 수정이 가능해 논란을 비켜 가거나 표절 의혹 대상이 외국 콘텐츠인 경우 송사에 휘말릴 확률도 적어 객관적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원작자는 각본의 대사나 장면 등 실질적인 유사성을 입증해야 하고, 이마저도 수많은 콘텐츠에서 다뤄진 ‘아이디어’가 아니라 창작자의 고유 영역인 ‘표현’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5년간 진행됐던 MBC ‘선덕여왕’과 뮤지컬 ‘무궁화 여왕 선덕’의 저작권 침해 손해배상 소송처럼, 표현과 아이디어의 경계를 두고 기나긴 법적 다툼도 잦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원작자(원고)가 승소하기 쉽지 않은 구조이지만 최근엔 예능 포맷처럼 기존엔 ‘아이디어’로 여겨진 부분들이 ‘표현’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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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맞춤 뒤 긴 침묵… 젖어드는 눈가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그 정적이 이어진다. 혼을 쏙 빼놓는 속도감 있는 편집이 대세가 된 요즘, 예능에서 벌어지는 이 느린 ‘침묵’이 낯설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눈으로 하는 이 대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5일 오후 9시 20분 첫 방영되는 채널A ‘아이콘택트’는 정적이지만 사람 간 소통에서 진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그런 예능이다. “전 세계에서 눈 맞춤을 가장 안 하는 나라가 한국일 것”이라는 MC 이상민의 말처럼 ‘아이콘택트’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의 눈을 바라본 적이 있는지를 되묻는다. 눈 맞춤은 때론 말보다 더 진심이 담긴다. 연예인, 일반인을 막론하고 사연이 담긴 이들은 밀실에 들어가 5분 동안 서로를 응시한다. 일상을 공유해 온 친밀한 대상일수록 감정의 골이 깊다. 둘 중 한 명은 누굴 만나게 되는지 모르는 상태라 ‘서프라이즈’ 재미도 쏠쏠하다. 이 예능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눈을 맞추는, 그 쉬운 행동조차 10초만 지나도 고개를 떨구기 십상이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딸과 아버지도 처음엔 쑥스러운 웃음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기는 사라지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딸이 고마움과 미안함 등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자 아버지도 20대 초반의 딸을 보내야 한다는 아쉬움으로 눈시울이 불거진다. 흔들리는 눈동자, 움찔하는 콧방울, 떨리는 입가 주름 등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했다. 눈 맞춤이 이끌어낸 감정은 당초 제작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격하고 다양했다고 한다. 김남호 PD는 “말과 다르게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 눈에 드러난 복합적인 감정을 시청자들이 오롯이 느낄 수 있게 자막 사용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솔직하고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눈 맞춤방’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경기 고양시 동국대 고양바이오메디캠퍼스에 설치된 세트장은 성당의 고해성사실을 방불케 한다. 반경 30m 이내에 제작진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 두 사람만을 위한 공간으로 분위기를 잡았다. 방에 설치된 카메라마저 참가자들은 보이지 않도록 ‘매직미러’로 은폐했다. 강호동 이상민 신동 등 세 MC는 참가자들의 마음을 읽는 길잡이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VCR를 보며 함께 울고 웃고, 인간의 눈 맞춤이 이끄는 신비한 변화를 체험한다. 특히 강호동은 ‘침묵’이라는 프로그램 취지에 공감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겉보기와 달리 “경기 후 인터뷰가 씨름을 하는 것보다 어려웠다”며 그는 누구보다 인간이 진심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서툰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강호동은 “(‘아이콘택트’를 보며) 옆에 있는 이들과 눈빛으로 대화해 보시길 추천한다. 제가 느낀 감동을 말로 표현하자니, 백 번의 말보다 한 번 방송을 보고 직접 체험하는 게 확 와 닿을 것”이라고 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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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복을 빕니다]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과학-종교 접목’ 한평생… 학술지원에도 힘써

    원로 학자인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사진)가 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1927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년 고려대 화학공학과 교수로 임용됐지만 1975년 민청학련 사건(1974년)에 연루돼 해직됐다가 4년 뒤 복직했다. 1980년엔 3·1구국선언(1976년)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다시 해직됐다가 1984년 복직됐다. 1981년 대우재단 자연과학분야 자문위원을 맡았고, 1993년 고려대에서 명예퇴직한 이후에도 대우재단이 1986년 설립한 한국학술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해(1999년) 학술지원 사업을 이끌어 왔다. 학술총서 발행 업무를 도맡아 온 그는 1800명의 학자를 지원했고, 그 성과를 담은 학술총서 600권을 발간했다. 고인은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찾고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공로로 2007년 제21회 인촌상 특별부문상을 수상했다. 그는 당시 수상 인터뷰에서 ‘하나의 잣대로 자유를 제약하거나, 잘못된 잣대로 자신의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상가 함석헌 선생(1901∼1989)의 1대 제자였다.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인 그는 1948년 함 선생을 만난 뒤 ‘과학 없는 종교는 미신에 불과하고, 종교 없는 과학은 흉기’라는 신념을 간직해 왔다. 저서로는 ‘과학인의 역사의식’(1986년), ‘현대과학의 윤리’(1988년),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2005년)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여동생 숙희 전 교육부 장관, 남동생 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아들 인중 숭실대 명예교수, 형중 전 서강대 평생교육원 부원장, 사위 여인묵 전 SK케미칼 상무, 며느리 남궁미경 연세대 원주의과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7일 오전 5시 반. 070-7816-0233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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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옥 지휘자, 하바네라 콩쿠르서 최고지휘자상 수상

    김혜옥 지휘자(전 연세대 교수·사진)가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스페인에서 열린 제65회 하바네라 국제 다성음악 콩쿠르에서 최고지휘자상을 받았다. 그가 이끄는 샹떼 자 듀 합창단은 다성음악 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결선에서 ‘리어나도 드림스 히즈 플라잉 머신’(Leonardo Dreams His Flying Machine)과 ‘옹헤야’를 불렀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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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없이도 진심은 통할 수 있을까?”…묘하게 빠져드는 ‘침묵 예능’

    서로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그 정적이 이어진다. 혼을 쏙 빼놓는 속도감 있는 편집이 대세가 된 요즘, 예능에서 벌어지는 이 느린 ‘침묵’이 낯설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눈으로 하는 이 대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5일 오후 9시 20분 첫 방영되는 채널A ‘아이콘택트’는 정적이지만, 사람 간 소통에서 진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그런 예능이다. “전 세계에서 눈 맞춤을 가장 안 하는 나라가 한국일 것”이라는 MC 이상민의 말처럼, ‘아이콘택트’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의 눈을 바라본 적 있는지를 되묻는다. 눈 맞춤은 때론 말보다 더 진심이 담긴다. 연예인, 일반인을 막론하고 사연이 담긴 이들은 밀실에 들어가 5분 동안 서로를 응시한다. 일상을 공유해 온 친밀한 대상일수록 감정의 골이 깊다. 둘 중 한 명은 누굴 만나게 되는지 모르는 상태라 ‘서프라이즈’ 재미도 쏠쏠하다. 이 예능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눈을 맞추는, 그 쉬운 행동조차 10초만 지나도 고개를 떨구기 십상이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딸과 아버지도 처음엔 쑥스러운 웃음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기는 사라지고 얼굴이 일그러진다. 딸이 고마움과 미안함 등이 뒤섞인 눈물을 흘리자 아버지도 20대 초반의 딸을 보내야 한다는 아쉬움으로 눈시울이 불거진다. 눈 맞춤은 소통을 넘어 화해, 치유로도 이어진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하루아침에 무속인이 돼 출가한 남편과 아내는 석 달 만에 서로의 얼굴을 보고 5분 내내 흐느낀다. 사랑과 미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눈을 통해 전달되고, 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이해하게 된다. 흔들리는 눈동자, 움찔하는 콧방울, 떨리는 입가 주름 등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했다. 눈 맞춤이 이끌어 낸 감정은 당초 제작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격하고 다양했다고 한다. 김남호 PD는 “말과 다르게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 눈에 드러난 복합적인 감정을 시청자들이 오롯이 느낄 수 있게 자막 사용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솔직하고 내밀한 감정 공유를 위해 ‘눈 맞춤방’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서울 중구 동국대에 설치된 세트장은 성당의 고해성사실을 방불케 한다. 반경 30m 이내에 제작진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해 두 사람만을 위한 공간으로 분위기를 잡았다. 방에 설치된 카메라마저 참가자들은 보이지 않도록 ‘매직미러’로 은폐했다. 강호동, 이상민, 신동 등 세 MC는 참가자들의 마음을 읽는 길잡이 역할을 맡았다. 이들은 VCR을 보며 함께 울고 웃고, 인간의 눈 맞춤이 이끄는 신비한 변화를 체험한다. 특히 강호동은 ‘침묵’이라는 프로그램 취지에 공감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겉보기와 달리, “경기 후 인터뷰가 씨름을 하는 것보다 어려웠다”며 그는 누구보다 인간이 진심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서툰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강 씨는 “(‘아이콘택트’를 보며) 옆에 있는 이들과 눈빛으로 대화해 보시길 추천 드린다. 제가 느낀 감동을 말로 표현하자니, 백번의 말보다 한 번의 방송을 보고 직접 체험하는 게 확 와 닿을 것”이라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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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 첩보요원-형사 역할… 남성 중심사회에 강펀치

    “미안해. 나도 적응 중이야!” 영국 첩보기관 MI5의 요원이자 백인 남성 빌(데이비드 헤이그)의 이 대사는 상징적이다. 오랜 기간 이브 폴라스트리(샌드라 오)의 상사였다가 부하 직원이 돼 버린 빌은 뒤바뀐 현실이 난감하기만 하다. 이브는 “10년 넘게 밑에서 일해 줬는데, 내가 상관이라고 괜히 자존심 부리는 것 같았다”고 그를 몰아세운다. 지난달 28일 왓챠플레이에 공개된 미국 드라마 ‘킬링 이브’는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깨부수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를 이끄는 두 축도 이브와 사이코패스 킬러인 빌라넬(조디 코머)이라는 여성들이다. 남성 장르로 여겨진 첩보스릴러물에서 아시아계 여성 배우 샌드라 오가 주연을 맡은 것도 이례적인 일. 오죽하면 그도 처음 대본을 읽으며 ‘내가 어떤 역할이지?’라며 고민했다고 한다. ‘킬링 이브’에서 남성들은 철저히 이야기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두 여성을 보조하거나 이들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내가 하는 일을 궁금해 하는 남편 니코(오언 맥도널)에게 이브는 “알아서 뭐해? 내가 지켜줄게, 묻지 마”라고 답하는 ‘나쁜 아내’이고 니코는 그런 그에게 순종적인 ‘현모양부’다. 빌라넬은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섹시녀’나 남성의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청순가련형’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기존 여성의 이미지에 조소를 날리듯 중년 남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한다. 시청자들 가운데는 가부장적인 남성을 향한 냉소를 넘어 여성 우월적 시각을 읽어내는 이가 적지 않다. 이른바 ‘젠더 미러링(mirroring·따라하기)’ 드라마인 셈. 제작자 샐리 우드워드도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익숙한 장르를 여성의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적절한 시기에 시대정신이 반영된 드라마”라고 평했다. 런던에 사는 여성의 삶을 다룬 영국 인기 드라마 ‘플리백’에서 주연 및 각본을 맡았던 피비 월러브리지에게 원작 소설을 각색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여성 중심적인 시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우드워드는 “미투 운동 이전에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문화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바꾸려하진 않았다”며 제작사나 방송사도 이런 시도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전했다. ‘젠더 미러링’은 해외에서 점차 주류가 돼 가고 있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최초로 여성 히어로가 주연인 영화가 제작되거나(‘캡틴 마블’) 자스민이 술탄이 되고(‘알라딘’) 흑인 여성 배우 러샤나 린치가 007 시리즈 ‘본드 25’의 주인공에 낙점됐다. 25일 종영한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도 포털 업계의 세 커리어우먼이 권력 다툼을 벌이거나 남성 부하 직원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등 노골적인 ‘미러링’으로 주목받았다. 물론 논란도 만만찮다. 온라인에서는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여성, 성소수자를 앞세운 콘텐츠에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묻은’이라는 수식어를 달기도 한다. 두 여성 형사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파헤치는 영화 ‘걸캅스’는 5월 개봉 전 ‘평점 테러’와 함께 성대결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방송영화계에서는 ‘젠더 미러링’ 콘텐츠가 계속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때가 된 거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요. 그만큼 미디어 속 여성에 대한 무지, 묘사에 변화를 원하고 저항하려는 이가 많다는 뜻이니까요.”(우드워드)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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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이야기를 중심으로…주목받는 ‘젠더 미러링’ 콘텐츠, 논란은?

    “미안해. 나도 적응 중이야!” 영국 첩보기관 MI5의 요원이자 백인 남성 빌(데이빗 헤이그)의 이 대사는 상징적이다. 오랜 기간 이브 폴라스트리(샌드라 오)의 상사였다가 부하 직원이 돼 버린 빌은 뒤바뀐 현실이 난감하기만 하다. 이브는 “10년 넘게 밑에서 일해 줬는데, 내가 상관이라고 괜히 자존심 부리는 것 같았다”고 그를 추궁한다. 지난달 28일 왓챠플레이에 공개된 미국 드라마 ‘킬링 이브’는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깨부수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를 이끄는 두 축도 이브와 사이코패스 킬러인 빌라넬(조디 코머)이라는 여성들이다. 남성중심적인 장르로 여겨진 첩보스릴러물에서 아시아계 여성 배우 샌드라 오가 주연을 맡은 것도 이례적인 일. 오죽하면 그도 처음 대본을 읽으며 ‘내가 어떤 역할이지?’라며 고민했다고 한다. ‘킬링 이브’에서 남성들은 철저히 이야기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두 여성을 보조하거나 이들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내가 하는 일을 궁금해 하는 남편 니코(오웬 맥도넬)에게 이브는 “알아서 뭐해? 내가 지켜줄게, 묻지 마”라고 답하는 ‘나쁜 아내’이고 니코는 그런 그에게 순종적인 ‘현모양부’다. 타이트한 옷을 입고 성적 매력을 어필하거나 ‘청순가련형’ 여성 이미지에 조소를 날리듯 빌라넬은 중년 남성들을 잔혹하게 살해한다. 시청자들 가운데는 가부장적인 남성을 향한 냉소를 넘어 여성 우월적 시각을 읽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젠더 ‘미러링’(mirroring·따라하기) 드라마인 셈. 제작자 샐리 우드워드도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익숙한 장르를 여성의 관점에서 급진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다. 적절한 시기에 시대정신이 반영된 드라마”라고 평했다. 영국 인기 드라마 ‘플리백’으로 여성의 삶을 다루는데 능숙한 배우 피비 월러 브릿지에게 원작 소설을 각색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여성중심적인 시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우드워드는 “미투 운동 이전에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문화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바꾸려하진 않았다”며 제작사나 방송사도 이런 시도에 대해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전했다.‘젠더 미러링’은 해외에서부터 점차 주류가 돼가고 있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최초로 여성 히어로가 주연인 영화가 제작되거나(‘캡틴 마블’) 자스민이 술탄이 되고(‘알라딘’) 흑인 여성 배우 러샤나 린치가 007 시리즈 ‘본드 25’의 주인공에 낙점됐다. 25일 종영한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도 포털 업계의 세 커리어우먼이 권력 다툼을 벌이거나 남성 부하 직원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등 노골적인 ‘미러링’으로 주목받았다. 물론 논란도 만만찮다. 온라인에서는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이 여성, 성소수자를 앞세운 콘텐츠에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묻은’ 이라는 수식어를 달기도 한다. 두 여성 형사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파헤치는 영화 ‘걸캅스’는 5월 개봉 전 ‘평점 테러’와 함께 성대결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젠더 미러링’ 콘텐츠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건 분명해 보인다. “때가 된 거죠.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어요. 그만큼 미디어 속 여성에 대한 무지, 묘사에 변화를 원하고 저항하려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니까요.”(우드워드)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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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스티벌 취소되자 무료공연 연 英 팝스타

    영국 유명 싱어송라이터 앤마리(28·사진)가 출연 예정이던 페스티벌 무대가 취소되자 무료로 깜짝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다. 26일 방한해 경기에 참가하기로 했지만 벤치만 지켜 논란이 된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와 비교되며 누리꾼의 칭송이 잇따랐다. 앤마리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야외 공연장에서 28일 열린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행사를 주최한 공연기획사 페이크버진은 “우천으로 인해 대니얼 시저와 앤마리의 공연은 뮤지션의 요청으로 취소됐다”고 공지했다. 앤마리는 즉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내가 공연을 취소한 게 아니다. 주최 측이 ‘무대에 오르려면 사망 사고 발생 시 책임지겠다’는 각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며 이날 오후 11시 반 해당 호텔의 지하 ‘루빅라운지’에서 무료 공연을 열겠다고 밝혔다. 앤마리는 페스티벌 취소로 발길을 돌린 팬들을 위해 SNS로 공연을 실시간 무료 중계했다. 이날 모인 600여 명의 팬들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인 그를 위해 ‘떼창’을 하거나 종이비행기를 날리기도 했다. 호텔 측은 “공연을 꼭 하고 싶다”는 앤마리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무료로 장소를 제공했다고 한다. 앤마리가 페이크버진의 공지를 반박하기에 앞서 27일 이 페스티벌에 출연할 예정이던 미국 싱어송라이터 허(H.E.R.)의 공연도 취소되면서 주최 측의 미숙한 행사 진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페이크버진은 SNS를 통해 “프로덕션업체의 안전점검 뒤 진행하려 했지만 시저와 앤마리 측에서 ‘안전 이유’로 진행이 불가능하단 결정을 내려 공연을 취소한 것”이라며 “각서를 요구했다는 주장도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또 공연 취소로 피해를 본 관객들에게 일부 환불도 약속했다. 게릴라 공연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발 빠른 대처”라며 환호했다. 특히 ‘먹튀’ 논란으로 ‘날강두(호날두+강도)’라는 별명이 붙은 호날두와 비교하는 글이 많았다. 서형욱 스포츠 해설가는 SNS에 “호날두의 반대말은 앤마리다”라고 올렸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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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툭 던져진 대사 한마디…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무릎 탁!

    “엄마는 행복해?” 27일 채널A 드라마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오세연·금토 오후 11시)’에서 딸 아진(신수연)이 수아(예지원)에게 했던 말이다. 전업주부 이명선 씨(45)는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릴 수 있는 대사였지만 중년이 된 여성으로서, 엄마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드라마를 보며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느낀다”고 했다. 16부작인 ‘오세연’이 반환점을 돈 가운데, 드라마 속 대사들을 곱씹어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불륜을 소재로 다뤘지만 일상 속 공감을 주는 메시지가 많기 때문이다. 6회까지 1%(닐슨코리아) 초반이었던 시청률도 26일 7회에 1.8%로 상승하며 시청자의 외연도 차츰 넓어지고 있다. “남편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진 않습니다. 그저 ‘많이 아팠겠다’ 한마디면 됐을 텐데, ‘많이 힘들었겠다’ 한마디면 충분했을 텐데 자꾸만 마음 한구석이 무너집니다.” 지은(박하선)의 내레이션에 결혼한 많은 여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목에 깁스를 하고 누워 있는 지은에게 남편 창국(정상훈)은 “밥 먹자. 배고파”라고 할 뿐이다. 아내보다는 사랑이, 믿음이라는 앵무새에 푹 빠진 창국은 “제발 (앵무새의)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는 지은의 울부짖음에도 계속 “사랑 엄마”라고 말해 상처를 준다. 당연히 부부 관계도 소홀하다.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고장 난 시계가 된 것 같다. 하루에 한 번도 맞지 않는 느낌이다”라던 지은은 남편과 다른 섬세함을 지닌 대안학교 생물교사 정우(이상엽)에게 ‘메꽃’의 꽃말처럼, 서서히 깊숙이 스며들게 된다. “너넨 행복해? 근데 죽을 때까지 새장에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니? 그래도 명색이 새라면 하늘을 날아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신의 처지를 대입해 앵무새를 바라보는 지은처럼, ‘오세연’은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된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다. 고교 시절 촉망받는 발레리나였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자 꿈을 접고 부유한 출판사 대표 영재(최병모)의 아내가 된 수아도 그렇다. 영재는 “하여튼, 우리나라 아줌마들”, “집구석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가 책을 봐서 뭐 해” 같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가부장적인 남성의 전형이다. 수아가 잊고 살았던 발레리나의 꿈을 떠올리며 화가 하윤(조동혁)에게 빠져들자 포털 사이트 실시간 채팅창에는 “불륜은 지탄받아야 하지만 남편들 꼴 좀 봐라” 등 시청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남편들이란, 로또 같을까. 한 번도 안 맞잖아. 일생에 한 번도.”(수아) 이처럼 ‘오세연’에는 현실적인 부부 관계의 민낯을 드러내는 대사들이 많다. 영재는 하윤에게 책에 실을 그림을 그려 달라고 요청하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하윤은 수아를 암시하며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전부인 것”이라고 답한다. 중년 남성에게 아내란 존재는 이런 의미일까. 지은은 부부를 “마음은 한없이 멀고, 몸은 이렇게 가까운 관계”라고 여긴다. “내 이야기 같다”, “건전하지 않아도 공감은 된다” 등 웃픈(?) 반응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출을 맡은 김정민 감독은 “부부들이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돌아볼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불륜 자체보다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여성 시청자에게는 특별한 이야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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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팬클럽과 왜 차별하나요”… 성난 팬덤, 일부는 ‘탈덕’까지

    “다른 거 바라는 건 없고요…. 강다니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25일 오후 5시 서울 광진구의 공연장 ‘예스24라이브홀’ 앞. 서예진 양(18)의 외침에 동료 강다니엘 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장 외벽에 걸린 초대형 포스터 사진 속 강다니엘의 얼굴이 이들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 말은 최근 아이돌 팬덤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금언이다. 팬과 아이돌 사이에 가요기획사가 있다. 아이돌과 전속 계약을 맺고 대개는 그들을 키워낸 회사다. 팬과 기획사. 둘 사이에 줄다리기가 치열하다. 때로 고성이 오간다. 정작 역학구도의 중심에 있는 아이돌 멤버들은 대개 고고한 백조처럼 말을 아끼며 활동에 정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맹목적 추종의 시대는 갔다. 발언하고 행동하는 팬덤, 거대 연예기획사의 줄을 당기는 이들의 변화상을 들여다봤다.○ 전우 같은 팬덤… 함께 말하고 함께 싸운다 서로를 전우처럼 느꼈다. 반년 가까운 강다니엘의 공백기에 팬들은 각개전투식 활동을 벌였다고 했다. 그룹 ‘워너원’에서 솔로로 전향한 뒤 공식 팬클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트위터, 포털사이트 카페, 소속사 팬 페이지로 소통했다. 특히 트위터에 ‘강다니엘 음원총공팀’ ‘강다니엘 이벤트팀’ 등 계정을 만들어 팬들의 단체 행동을 독려하는 게시글을 꾸준히 올렸다. 일부 팬들은 그의 “선한 이미지”를 위해 컴백에 맞춰 121만725원(12월 10일 강다니엘 생일과 7월 25일 컴백일을 조합한 숫자)을 모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전달하기도 했다. 팬들에게는 불안과 기대가 혼재했다. 가요기획사 때문이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김모 양(19)은 “소속사 분쟁 등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만큼 팬들이 소속사의 향후 계획이나 활동 방향에 민감해한다. 그래도 강다니엘이 대표로 있는 회사다 보니 믿고 맡겨 보자는 의견도 많다”고 했다. 김모 씨(23·여)는 “첫 솔로 활동이고 신생 소속사라서 팬들의 지원이 중요하다. 국내 팬과 만남만 자주 가진다면 기꺼이 굿즈(관련 상품)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팬과 만남만 자주 가진다면.’ 김 씨의 말은 세계로 무대를 넓힌 케이팝 시장 상황에서 팬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잘 담고 있다. 연습생을 발굴하고 그룹을 만들어준 소속사에 느끼는 팬들의 감정은 미묘하다. 애증이다. 불만이 터져 나오는 시점 역시 미묘하다. 성공 가도를 탈 때, 즉 한국 시장에 주력하던 데뷔 초기를 지나 팬덤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시기다. 그룹의 해외 공연과 팬 미팅이 잦아지고 ‘본진’을 비우는 날이 많아질 무렵. 이름처럼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팬덤, ‘아미’도 예외가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15일 “앞으로 팬클럽 모집 형태를 상시 모집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빅히트는 “매년 일정 기간에만 가입할 수 있었던 기수제 방식에서 벗어나 언제든 팬클럽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상시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고 공지했다. 특정 기간에만 가입할 수 있었던 팬클럽의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이로써 기수제 팬클럽 모집은 지난해 4월 ‘아미 5기’를 끝으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달 출시한 팬 소통 애플리케이션 ‘위버스’, 상품 판매 앱 ‘위플리’에 가입한 팬들에 한해 3만3000원의 가입비를 내면 누구나 언제든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글로벌 아미에 속하면 콘서트 예매 기회나 팬 전용 상품 구매 가능 혜택을 누린다. 기존 아미에 가입한 일부 팬들은 반발했다. 그간 피, 땀, 눈물을 흘려온 국내 원조 팬들을 무시한 처사라는 것. 글로벌 팬클럽이 시행되면 한국 공연 예매도 해외 팬들과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것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팬들은 ‘팬 기만 빅히트, 상시모집 폐지하고 한국 팬 차별을 중지하라’는 성명문을 내고 “일본이나 미국 등 한국보다 콘서트 개최 횟수가 많은 국가와 비교해 한국 아미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부터 4월까지 진행한 월드 투어 ‘러브 유어셀프’ 기간 동안 한국에선 2번, 일본에선 9번의 콘서트가 개최됐다. 때로 국제 정세 긴장은 정부와 정부가 아닌, 팬덤과 팬덤 사이에도 발생한다. 서울의 아이돌 공연장에서 중화권 팬들의 무질서가 언쟁으로 불거진 일도 있다. 일본 팬덤과의 반목도 오래된 이야기다. 최근에는 일본 불매운동 등 한일 정세 악화까지 겹치면서 일촉즉발의 기세다. 아미 일각에서는 글로벌 팬클럽과 별개로 일본만 독자적 팬클럽이 운영되는 것에 대해 “특별대우”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모 씨(25·여)는 “BTS는 매번 발표하는 앨범마다 일본어 버전을 만들어 공연을 했다. 공연 횟수나 빅히트의 친일본적 행태를 보고 팬들 사이에선 ‘한국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만 열리는 방탄소년단 악수회에 참가하기 위해 친지의 일본 주소로 일본 아미에 가입하는 한국 팬들도 상당수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들이 노래를 일본어로 따로 녹음해 발표하는 것은 보아, 카라 등 그간 일본 시장을 공략한 한국 가수들의 성공 사례를 따라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공연이나 이벤트를 일본에서 특히 자주 여는 것은 친밀도를 중시하고 관련 상품 구매에 더욱 적극적인 일본 특유의 팬 문화를 감안한 활동”이라고 귀띔했다.○ 빈발하는 해시태그 전쟁… SNS도 발언권 확장에 한몫 빅히트가 공지에 넣은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든 행동은 방탄소년단의 이미지와 추후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마저 반발을 샀다. 일부 팬은 ‘알계’(익명 계정)를 만들어 ‘#팬클럽_운영방식_피드백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원조 아미들’의 반발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유별난 충성심에서 나온다. 공식 팬클럽은 아니지만 아미의 필수 코스인 포털사이트 팬 카페 회원 가입 절차만 해도 문턱이 높았다. ‘아파트(AFAT·Army Fancafe Admission Test)’라 불리는 가입 시험은 ‘아미 고시’로까지 불린다. 그룹의 활동상 전반을 달달 욀 정도가 아니면 통과가 힘들다. 그렇게 한솥밥을 먹은 유대감은 진입 문턱만큼이나 높다. 공식 소통 앱이 생기니 팬 카페의 역할이 사라진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팬들도 많다. 3년 차 팬인 한모 씨(24·여)는 “재수하면서까지 힘들게 ‘아미 고시’를 통과해 일원이 됐는데 갑자기 그 메리트가 없어졌다. 문제를 풀기 위해 열심히 찾고 뒤적이던 추억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진입장벽이 낮고 질서가 없으면 쉽게 분열되는 팬클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상당수 팬은 기수제 폐지를 반기기도 한다. 직장인 이선민 씨(26·여)는 “1년에 한 번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는 기존 방식은 팬층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야 하는 아이돌 그룹 특성에 맞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년 차 팬인 김모 씨(24·여)도 “조금이라도 BTS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아미들에게 ‘카르텔’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느냐”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2일 엑소의 일본 공연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이날 발표한 투어 장소에 12월 미야기현의 공연장이 포함된 게 발단이다. 엑소엘(엑소 팬) 일부는 이곳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지역과 가까우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 지역이라며 ‘멤버들을 진정 아낀다면 보내지 말라’고 반발했다. 트위터에는 ‘#SM_엑소_미야기콘_취소해’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번졌다. 여기 동참한 한 팬은 “멤버들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정을 강행하는 것은 아이돌 그룹을 소속사의 전유물로 보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미야기현 공연을 환영하는 일본 팬과 반대하는 한국 팬이 트위터에서 다투는 일도 빈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을, 아미와 비슷하게 일본 팬덤이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여기는 한국 팬덤의 ‘한’이 쌓이고 쌓여 이번 이슈와 함께 터진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 데뷔를 위해 팬들이 소속사를 압박하는 일도 생긴다. 19일 종영한 엠넷 ‘프로듀스X101’의 투표 조작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팬들은 그룹 ‘엑스원’에 참여하지 못한 9명의 차상위 연습생을 데뷔시키기 위해 분투한다. 가상의 그룹명 ‘바이나인(BY9·Be Your 9)’과 로고까지 직접 제작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연습생 소속사에 e메일을 보내 “그룹 결성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프로듀스…’ 투표 조작 의혹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한 강연지 씨(22·여)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받았기에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건 당연하다. 촬영 기간 동안 집중 트레이닝으로 실력과 감을 쌓은 만큼 빨리 무대 위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소속사에 대한 불신과 실망은 종종 ‘탈덕(팬 활동을 그만둠)’으로까지 이어진다. ‘번개장터’ 온라인 사이트엔 ‘탈덕’하려는 팬들의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 2016년부터 세븐틴 팬클럽 ‘캐럿(CARAT)’에서 활동했던 이모 씨(21)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앨범, 포카(포토카드), 멤버 포스터 등 30만 원 상당의 물품을 판매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기획사 ‘플레디스’가 해외 시장을 우선시하게 됐다. 다음 달 컴백하자마자 한국 콘서트 3일을 제외하고 월드투어에 나서는데 일본에선 공연도 10번이나 한다. 멤버들이 미운 게 아니라 소속사가 팬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것 같아 ‘탈덕’을 결심했다”고 했다. 팬들의 적극적 행동과 발언은 업계에 긍정적인 신호로 비친다. 근년에 젠더 이슈가 불거진 데 즈음해 팬덤의 비판의식도 높아졌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케이팝의 이전 세대에서는 팬클럽이 수동적이었다”면서 “당시엔 기획사가 지침을 하달하거나 공식 팬클럽과 지역 팬클럽이 위계 구조로 움직이기도 했다. 기획사가 팬의 의견을 묵살하기도 일쑤였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분위기는 판이해졌다. 미묘 편집장은 “10대 위주이던 케이팝 팬덤의 연령대가 다양화되고 SNS라는 발언 창구가 발달하면서 팬덤에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폭증했다”고 했다. 아이돌과 그 기획사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서 적극적 발언과 참여로 팬덤의 행동 양태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신규진 newjin@donga.com·임희윤 기자}

    • 2019-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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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속사 때문에 ‘탈덕’” 함께 말하고 함께 싸운다…진화하는 ‘팬덤 전쟁’

    “다른 거 바라는 건 없고요…. 강다니엘!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25일 오후 5시 서울 광진구의 공연장 ‘예스24라이브홀’ 앞. 서예진 양(18)의 외침에 동료 강다니엘 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장 외벽에 걸린 초대형 포스터 사진 속 강다니엘의 얼굴이 이들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이 말은 최근 아이돌 팬덤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금언이다. 팬과 아이돌 사이에 가요기획사가 있다. 아이돌과 전속 계약을 맺고 대개는 그들을 키워낸 회사다. 팬과 기획사. 둘 사이에 줄다리기가 치열하다. 때로 고성이 오간다. 정작 역학구도의 중심에 있는 아이돌 멤버들은 대개 고고한 백조처럼 말을 아끼며 활동에 정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맹목적 추종의 시대는 갔다. 발언하고 행동하는 팬덤, 거대 연예기획사의 줄을 당기는 이들의 변화상을 들여다봤다.●전우 같은 팬덤… 함께 말하고 함께 싸운다 서로를 전우처럼 느꼈다. 반 년 가까운 강다니엘의 공백기에 팬들은 각개전투식 활동을 벌였다고 했다. 그룹 ‘워너원’에서 솔로로 전향한 뒤 공식 팬클럽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트위터, 포털사이트 카페, 소속사 팬 페이지로 소통했다. 특히 트위터에 ‘강다니엘 음원총공팀’ ‘강다니엘 이벤트팀’ 등 계정을 만들어 팬들의 단체 행동을 독려하는 게시글을 꾸준히 올렸다. 일부 팬들은 그의 “선한 이미지”를 위해 컴백에 맞춰 121만725원(12월 10일 강다니엘 생일과 7월 25일 컴백일을 조합한 숫자)을 모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전달하기도 했다. 팬들에게는 불안과 기대가 혼재했다. 가요기획사 때문이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김모 양(19)은 “소속사 분쟁 등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만큼 팬들이 소속사의 향후 계획이나 활동 방향에 민감해한다. 그래도 강다니엘이 대표로 있는 회사다보니 믿고 맡겨보자는 의견도 많다”고 했다. 김모 씨(23·여)는 “첫 솔로 활동이고 신생 소속사라서 팬들의 지원이 중요하다. 국내 팬과 만남만 자주 가진다면 기꺼이 굿즈(관련상품)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팬과 만남만 자주 가진다면’. 김 씨의 말은 세계로 무대를 넓힌 케이팝 시장 상황에서 팬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잘 담고 있다. 연습생을 발굴하고 그룹을 만들어준 소속사에 느끼는 팬들의 감정은 미묘하다. 애증이다. 불만이 터져 나오는 시점 역시 미묘하다. 성공가도를 탈 때, 즉 한국 시장에 주력하던 데뷔 초기를 지나 팬덤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시기다. 그룹의 해외 공연과 팬 미팅이 잦아지고 ‘본진’을 비우는 날이 많아질 무렵. 이름처럼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팬덤, ‘아미’도 예외가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15일 “앞으로 팬클럽 모집 형태를 상시 모집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빅히트는 “매년 일정 기간에만 가입할 수 있었던 기수제 방식에서 벗어나 언제든 팬클럽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상시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고 공지했다. 특정 기간에만 가입할 수 있었던 팬클럽의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이로써 기수제 팬클럽 모집은 지난해 4월 ‘아미 5기’를 끝으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달 출시한 팬 소통 애플리케이션 ‘위버스’, 상품 판매 앱 ‘위플리’에 가입한 팬들에 한해 3만3000원의 가입비를 내면 누구나 언제든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글로벌 아미에 속하면 콘서트 예매 기회나 팬 전용 상품 구매 가능 혜택을 누린다. 기존 아미에 가입한 일부 팬들은 반발했다. 그간 피, 땀, 눈물을 흘려온 국내 원조 팬들을 무시한 처사라는 것. 글로벌 팬클럽이 시행되면 한국 공연 예매도 해외 팬들과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것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일부 팬들은 ‘팬기만 빅히트, 상시모집 폐지하고 한국 팬 차별을 중지하라’라는 성명문을 내고 “일본이나 미국 등 한국보다 콘서트 개최 횟수가 많은 국가와 비교해 한국 아미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8월부터 4월까지 진행한 월드 투어 ‘러브 유어셀프’ 기간 동안 한국에선 2번, 일본에선 9번의 콘서트가 개최됐다. 때로 국제 정세 긴장은 정부와 정부가 아닌, 팬덤과 팬덤 사이에도 발생한다. 서울의 아이돌 공연장에서 중화권 팬들의 무질서가 언쟁으로 불거진 일도 있다. 일본 팬덤과의 반목도 오래된 이야기다. 최근에는 일본 불매운동 등 한일 정세 악화까지 겹치면서 일촉즉발의 기세다. 아미 일각에서는 글로벌 팬클럽과 별개로 일본만 독자적 팬클럽이 운영되는 것에 대해 “특별대우”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모 씨(25·여)는 “BTS는 매번 발표하는 앨범마다 일본어 버전을 만들어 공연을 했다. 공연 횟수나 빅히트의 친일본적 행태를 보고 팬들 사이에선 ‘한국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에서만 열리는 방탄소년단 악수회에 참가하기 위해 친지의 일본 주소로 일본 아미에 가입하는 한국 팬들도 상당수다. 한 대형기획사 관계자는 “아이돌 그룹들이 노래를 일본어로 따로 녹음해 발표하는 것은 보아, 카라 등 그간 일본 시장을 공략한 한국 가수들의 성공 사례를 따라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공연이나 이벤트를 일본에서 특히 자주 여는 것은 친밀도를 중시하고 관련 상품 구매에 더욱 적극적인 일본 특유의 팬 문화를 감안한 활동”이라고 귀띔했다.●빈발하는 해시태그 전쟁… SNS도 발언권 확장에 한몫 빅히트가 공지에 넣은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든 행동은 방탄소년단의 이미지와 추후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는 문구마저 반발을 샀다. 일부 팬은 ‘알계’(익명 계정)를 만들어 ‘#팬클럽_운영방식_피드백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원조 아미들’의 반발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유별난 충성심에서 나온다. 공식 팬클럽은 아니지만 아미의 필수 코스인 포털사이트 팬 카페 회원 가입 절차만 해도 문턱이 높았다. ‘아파트(AFAT·Army Fancafe Admission Test)라 불리는 가입 시험은 ’아미 고시‘로까지 불린다. 그룹의 활동상 전반을 달달 욀 정도가 아니면 통과가 힘들다. 그렇게 한솥밥을 먹은 유대감은 진입 문턱만큼이나 높다. 공식 소통 앱이 생기니 팬 카페의 역할이 사라진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팬들도 많다. 3년차 팬인 한모 씨(24·여)는 “재수하면서까지 힘들게 ’아미 고시‘를 통과해 일원이 됐는데 갑자기 그 메리트가 없어졌다. 문제를 풀기 위해 열심히 찾고 뒤적이던 추억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진입장벽이 낮고 질서가 없으면 쉽게 분열되는 팬클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상당수 팬은 기수제 폐지를 반기기도 한다. 직장인 이선민 씨(26·여)는 “1년에 한 번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는 기존 방식은 팬 층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야 하는 아이돌 그룹 특성에 맞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년차 팬인 김모 씨(24·여)도 “조금이라도 BTS에 대해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오죽하면 아미들에게 ’카르텔‘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느냐”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2일 엑소의 일본 공연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이날 발표한 투어 장소에 12월 미야기 현의 공연장이 포함된 게 발단이다. 엑소엘(엑소 팬) 일부는 이곳이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지역과 가까우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 지역이라며 ’멤버들을 진정 아낀다면 보내지 말라‘고 반발했다. 트위터에는 ’#SM_엑소_미야기콘_취소해‘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번졌다. 여기 동참한 한 팬은 “멤버들의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정을 강행하는 것은 아이돌 그룹을 소속사의 전유물로 보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미야기 현 공연을 환영하는 일본 팬과 반대하는 한국 팬이 트위터에서 다투는 일도 빈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상황을, 아미와 비슷하게 일본 팬덤이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여기는 한국 팬덤의 ’한‘이 쌓이고 쌓여 이번 이슈와 함께 터진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아이돌 그룹 데뷔를 위해 팬들이 소속사를 압박하는 일도 생긴다. 19일 종영한 엠넷 ’프로듀스X101‘의 투표 조작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일부 팬들은 그룹 ’엑스원‘에 참여하지 못한 9명의 차상위 연습생을 데뷔시키기 위해 분투한다. 가상의 그룹명 ’바이나인(Be Your 9)‘과 로고까지 직접 제작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연습생 소속사에 e메일을 보내 “그룹 결성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프로듀스…‘ 투표 조작 의혹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한 강연지 씨(22·여)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받았기에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건 당연하다. 촬영 기간 동안 집중 트레이닝으로 실력과 감을 쌓은 만큼 빨리 무대 위에 올려야 한다”고 했다. 소속사에 대한 불신과 실망은 종종 ’탈덕(팬 활동을 그만둠)‘으로까지 이어진다. ’번개장터‘ 온라인 사이트엔 ’탈덕‘하려는 팬들의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 2016년부터 세븐틴 팬클럽 ’캐럿(CARAT)‘에서 활동했던 이모 씨(21)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앨범, 포카(포토카드), 멤버 포스터 등 30만 원 상당의 물품을 판매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기획사 ’플레디스‘가 해외 시장을 우선하게 됐다. 다음달 컴백하자마자 한국 콘서트 3일을 제외하고 월드투어에 나서는데 일본에선 공연도 10번이나 한다. 멤버들이 미운 게 아니라 소속사가 팬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것 같아 ’탈덕‘을 결심했다”고 했다. 팬들의 적극적 행동과 발언은 업계에 긍정적인 신호로 비친다. 근년에 젠더 이슈가 불거진 데 즈음해 팬덤의 비판의식도 높아졌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케이팝의 이전 세대에서는 팬클럽이 수동적이었다”면서 “당시엔 기획사가 지침을 하달하거나 공식 팬클럽과 지역 팬클럽이 위계 구조로 움직이기도 했다. 기획사가 팬의 의견을 묵살하기도 일쑤였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분위기는 판이해졌다. 미묘 편집장은 “10대 위주이던 케이팝 팬덤의 연령대가 다양화하고 SNS라는 발언 창구가 발달하면서 팬덤에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폭증했다”고 했다. 아이돌과 그 기획사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서 적극적 발언과 참여로 팬덤의 행동 양태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임희윤기자 imi@donga.com}

    • 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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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초신경 자극하는 유튜브 흥신소[현장에서/신규진]

    “영상을 안 내리면 찾아가겠다고 협박하는데 정말 무섭더라고요.” 불법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과정을 유튜브에 올린 한 청년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당초 ‘별일 없을 것’이라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돈을 빌리기 위해 상담까지만 하고 실제 빌리진 않았지만 며칠간 협박 전화에 시달려 외출도 못 했다고 한다. 그는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였을까. 뻔한 답일 수 있지만,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조금만 뒤져봐도, 누리꾼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취재 대행’ 콘텐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른바 신종 ‘온라인 흥신소’인 셈이다. 방송 뉴스 못지않은 완성도로 인기가 높다. 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호스트바 면접 체험기는 조회수만 195만 회에 이른다. 몰래카메라에 담긴 호스트바 종사자는 ‘선수’ 등 전문 용어를 써가며 “시간당 3만5000원” “2차는 무조건 가야 한다” 등 생생한 업계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우성급’이 아닌 이상 돈도 못 벌어요”라는 유튜버 말엔 뉴스가 줄 수 없는 유머도 담겨 있다. 매번 잠입 취재 등 힘든 과제만 도맡는 건 아니다. 의류 수거함에 담긴 옷들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구청 직원과 통화하거나 헌 옷을 되파는 업체에 방문하는 수고도 기꺼이 감수한다. “직접 알아보긴 귀찮고 언론에 제보하기엔 소소한 내용들을 묻는다.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밝힐 필요도 없어 상대적으로 부담도 덜하다”는 경험자의 말처럼, 제보자 맞춤형 ‘알 권리’가 충족될 확률도 높다. ‘1인 언론’ ‘참기자’ 등 댓글을 보고 있자면 이들의 영향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문제는 일부 유튜브 채널의 경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콘텐츠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성매매 오피스텔을 방문하거나 직접 ‘몸캠 피싱(알몸이나 음란행위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은 뒤 협박해 돈을 뜯는 것)’을 체험하는 위험천만한 일들도 적지 않다. 조직폭력배 세계나 장기 매매 실태를 알아봐 달라는 구독자들의 자극적인 피드백도 문제다. 더구나 구독자가 많지 않은 일부 유튜브 채널에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실제와 연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콘텐츠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처음엔 실제 상황을 가정하고 촬영에 들어가지만 현실이 예상과 빗나가는 경우엔 연출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한 유튜버의 말을 참고해보면 판단은 구독자들의 몫이다. 협박 전화를 받았다던 청년은 “경각심을 주기 위해”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이 주목받는 SNS 시대 속 그럴듯한 취지에 도사린 위험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신규진 문화부 기자 newjin@donga.com}

    •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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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스트바 면접 체험해봤더니”…위험 감수한 ‘취재 대행 콘텐츠’, 인기 이유는?

    “영상을 안 내리면 찾아가겠다고 협박하는데 정말 무섭더라고요.” 불법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는 과정을 유튜브에 올린 한 청년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당초 ‘별일 없을 것’이라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돈을 빌리기 위해 상담까지만 하고 실제 빌리진 않았지만 며칠 간 협박 전화에 시달려 외출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였을까. 뻔한 답일 수 있지만,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조금만 뒤져봐도, 누리꾼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취재 대행’ 콘텐츠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른바, 신종 ‘온라인 흥신소’인 셈이다. 방송 뉴스 못지않은 완성도로 인기가 높다. 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호스트바 면접 체험기는 조회수만 195만 회에 이른다. 몰래카메라에 담긴 호스트바 종사자는 ‘선수’ 등 전문 용어를 써가며 “시간당 3만5000원” “2차는 무조건 가야한다” 등 생생한 업계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우성급’이 아닌 이상 돈도 못 벌어요”라는 유튜버 말엔 뉴스가 줄 수 없는 유머도 담겨있다. 매번 잠입 취재 등 힘든 과제만 도맡는 건 아니다. 의류 수거함에 담긴 옷들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 구청 직원과 통화하거나 헌 옷을 되파는 업체에 방문하는 수고도 기꺼이 감수한다. “직접 알아보긴 귀찮고 언론에 제보하기엔 소소한 내용들을 묻는다. 연락처 등 신상정보를 밝힐 필요도 없어 상대적으로 부담도 덜하다”는 경험자의 말처럼, 제보자 맞춤형 ‘알 권리’가 충족될 확률도 높다. ‘1인 언론’ ‘참기자’ 등 댓글을 보고 있자면 이들의 영향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문제는 일부 유튜브 채널의 경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콘텐츠에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성매매 오피스텔에 방문하거나 직접 ‘몸캠 피싱(알몸이나 음란행위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은 뒤 협박해 돈을 뜯는 것)’을 체험하는 위험천만한 일들도 적지 않다. 조직폭력배 세계나 장기 매매 실태를 알아봐달라는 구독자들의 자극적인 피드백도 문제다. 더구나 구독자가 많지 않은 일부 유튜브 채널에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실제와 연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콘텐츠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처음엔 실제 상황을 가정하고 촬영에 들어가지만 현실이 예상과 빗나가는 경우엔 연출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한 유튜버의 말을 참고해보면 판단은 구독자들의 몫이다. 협박 전화를 받았다던 청년은 “경각심을 주기 위해”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것이 주목받는 SNS 시대 속 그럴 듯한 취지에 도사린 위험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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