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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상복 차림의 딸(18)은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근조화환의 국화를 어루만지며 멍하니 아빠의 영정만 바라봤다.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사흘째인 19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 차려진 윤병환 씨(47)의 빈소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아빠의 부재’ 앞에서 오열하던 딸은 눈물조차 메마른 듯 침묵을 지켰다. 윤 씨는 군대 간 아들과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둔 가장이다. 그는 매일 승용차를 운전해 딸의 등하교를 함께했다. 대형마트 점원으로 일하는 아내의 퇴근이 늦으면 직접 딸을 위해 간식을 만들어 준 ‘딸 바보’였다. 윤 씨는 19일 군대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러 갈 예정이었다. 아들을 면회하는 날은 집안 잔치가 열린다. 가족과 친척 등 20명 가까운 일행이 늘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윤 씨는 며칠 전부터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오는 일요일에 우리 아들 면회를 가자”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싸늘한 주검이 돼 아들을 만나야 했다. 사고 현장 근처 건물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정연태 씨(47)와 부인 권복녀 씨(46)는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사고 당일도 자녀들에게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간다”고 말했지만 알고 보니 부부끼리 외출 나와 공연을 보던 중이었다. 큰아들(19)은 사고가 난 17일 오전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은 뒤 오후 1시경 집에 돌아왔다. 마침 쉬는 날이었던 아버지가 집에 있었지만 아들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점심식사도 함께하지 못했다. 정 씨가 건넨 “잘 자”라는 짧은 인사가 부자간의 마지막 대화였다. 부부에게는 초등학생인 늦둥이 딸이 있다. 큰아들은 “이제 내가 가장”이라며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숨진 A 씨는 부인과 두 아들을 중국으로 보낸 뒤 홀로 살던 ‘기러기 아빠’였다.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던 A 씨는 내년 초 가족과 함께 살 날을 고대하며 최근 새로운 전셋집을 얻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 가까스로 구조된 한모 씨(32·여)와 이모 씨(31·여)는 친구 사이다. 이날도 나란히 공연을 지켜보다가 사고를 당했다. 두 사람은 떨어지면서 간신히 난간 등을 붙잡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경기도 성남시 합동대책본부에 따르면 16명의 사망자 가운데 30대 이상이 14명이다. 부상자 역시 11명 중 9명이 30대 이상이다. 대부분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당초 부상자라고 주장했던 강모 씨(47)는 이번 사고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사상자는 대책본부 공식발표처럼 27명(사망 16명, 부상 11명)이다. 사고 다음 날인 18일에는 안전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책임감에 세상을 등진 한 가장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이날 오전 7시 15분경 성남시 분당구 테크노밸리 공공지원센터 건물 옆 길가에서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오모 과장(37)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추락사고가 난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의 안전관리 담당자였다. 오 과장은 이날 오전 2시부터 3시 20분경까지 분당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어 오전 4시경 사무실로 돌아온 뒤 6시 50분경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비상계단을 통해 건물 10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오 과장은 오전 7시 1분경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사고로 죽은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진정성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유가족들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책임감이 강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사고 책임에 대한 무게감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 동료는 “사고 발생 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얼굴이 흙빛이었다.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 과장이 죄책감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유가족 요청에 따라 부검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 희생자 가운데 처음으로 홍석범 씨(29)의 발인이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성남=박성진 psjin@donga.com·황성호 기자}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현장에는 안전요원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경찰은 이에 따라 이번 행사 책임자들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수사할 방침이다.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9일 “공연장에는 행사를 주관한 이데일리 직원 등 38명의 진행요원이 있었지만 확인 결과 안전요원은 없었다”며 “과실치사상 혐의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 주최사인 경기과학기술진흥원(경기과기원)이 작성한 행사 계획서에는 경기과기원 직원 4명을 안전요원으로 지정했지만, 이들은 자신이 안전요원으로 지정된 사실조차 몰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행사 관계자들이 행사 전에 어떠한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사고 이후 20여 명의 행사 관련자를 조사한 데 이어 이날 오전 11시경부터 수사관 60여 명을 투입해 서울 중구 이데일리와 이데일리TV, 행사 대행사 플랜박스, 경기과기원 본원과 판교 테크노밸리 지원본부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또 이데일리TV 총괄본부장과 광고사업국장, 판교 테크노밸리 지원본부장 등 중요 참고인 6명의 자택과 차량, 신체 등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경기과기원에서 대외협력을 담당하며 이번 행사 안전계획을 작성한 오모 과장(37)은 18일 오전 1시간 20분간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자신의 사무실로 가 옥상에서 투신 자살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 각종 공연의 안전 시스템을 점검해 현장에 배치될 안전요원을 늘리고 장기적으로 공연법 시행령(9조3항)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행 3000명 이상의 야외 공연만 안전관리대책을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돼 있는데 기준 인원수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성남=남경현 bibulus@donga.com / 황성호·김윤종 기자}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현장에 안전요원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로 드러남에 따라 주최자 등의 책임 범위와 형사처벌 대상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행사 계획서상에 안전요원으로 지목된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직원 4명은 테크노밸리 입주 기업들을 대상으로 홍보 활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행사는 안전사고에 대비한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 행사의 실질적 주최자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데도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행사 팸플릿 등에 공동 주최자로 표기된 경기도와 성남시, 경기과기원은 이데일리 측이 무단 또는 일방적으로 명의를 도용했다고 주장한 반면 이데일리 측은 경기과기원의 동의와 성남시와의 협의 아래 주최자로 표기했다고 반박했다. 이데일리 측은 행사비는 7000만 원으로 경기과기원이 3000만 원, 2개 기업체 3000만 원, 성남시가 1000만 원(광고비 명목)을 지원하기로 해 공동 주최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주장했다. 성남시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했지만 행사 당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행사 20분 전에 도착했고, 성남시 공무원들도 행사를 홍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은 “축사를 하러 간 것일 뿐이다. 주최를 했으면 대회사를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해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19일 “행사를 앞두고 주최 측이 경찰과 소방서에 안전점검을 요청했지만 양측 모두 ‘이상 없다’는 걸로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 행사는 소규모라 현장에 나가보긴 했지만 특이사항이 없어서 순찰차와 구급차만 배치했다”고 말했다. 이날 종합대책본부인 성남 분당구청을 찾은 곽재선 이데일리 회장은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을 만나 “보상 등 사고 수습에 대한 모든 권한을 대책본부에 위임하겠다. 보상과 별도로 개인 장학재단을 통해 사망자의 자녀들에게 대학 학비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성남=남경현 bibulus@donga.com / 황성호 기자}
청천벽력이고, 애끊는 통곡이었다. 17일 오후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 공연장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로 사망자 16명과 부상자 12명이 이송된 성남 일대 병원에서는 밤늦게까지 사상자의 가족과 직장 동료 등의 오열이 끊이질 않았다. 사망자 7명의 시신이 안치된 분당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상기된 채 눈물을 쏟은 한 사망자의 이모는 지하 1층에 마련된 안치실에서 조카의 사망을 확인한 뒤에는 “아이고” “아이고” 소리만 반복할 뿐 말을 잃었다. 힘겹게 병원 직원의 부축을 받고 올라온 그는 결국 장례식장 앞 시멘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말을 잃고 흐느낄 뿐이었다. 사망자의 직장 동료들은 차마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 사망자가 다니던 회사 인사과 관계자 또한 눈시울을 붉히며 “현재까지 우리 회사에서만 3명이 사고를 당했다”고 말했다. “회사가 공연장 인근인데 금요일이고 퇴근시간도 다가오고 했다. 그런데 회사 앞에서 공연이 열리니 직원들이 내려간 모양이다. 회사에 있는데 갑자기 사고가 났다고 해서 급하게 빈자리를 수소문해 연락을 했고, 연락이 안 되는 직원들을 찾기 위해 인근 병원을 돌다가 사망을 확인했다. 어떻게 공연 안전에 이렇게 무신경할 수 있느냐”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사고를 당한 직원들은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고 밝은 친구들이었다. 모두 입사한 지 1, 2년밖에 안 된 젊은 친구들이었는데…”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분당제생병원에서도 안타까운 상황은 이어졌다. 중상자 3명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 가운데 밖에 있는 가족들은 오열하며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한 부상자의 여동생은 “누가 오빠를 이렇게 만든 거야.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도대체 누가 책임질 거야”라고 울부짖었다. 차분히 치료를 기다리던 다른 부상자의 가족들도 눈물을 흘려 응급실 앞은 울음바다가 됐다. 병원에는 연락이 되지 않는 가족이 있어 혹시 사고를 당했을까봐 초조한 마음으로 장례식장과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다. 분당구 서현동에 사는 이모 씨(45)는 중학교 2학년 딸과 통화가 되지 않아 제생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이미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병원 관계자에게 딸의 신원을 확인하고 다녔다. 이 병원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아이고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괜찮은 거니”라고 중얼거리며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고가 난 현장 근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김모 씨(27)는 동료를 찾아 병원을 헤맸다. 그는 “동료가 포미닛 공연을 본다며 나갔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신분증마저 책상에 두고 나와 회사 사람들 모두가 찾고 있는 중”이라고 불안해하며 말했다. 분당제생병원 하영록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사망자 4명을 포함해 사상자 8명이 왔다. 사망 원인은 육안으로만 봐서 아직 알기 힘든 상황이다. 중상 2명은 출혈이 많아 아직은 장담하기 힘들다”며 말을 아꼈다. 판교=황인찬 hic@donga.com·장관석 / 황성호 기자}

이번 경기 판교 테크노밸리 지하주차장 환풍구 덮개 붕괴 사고는 약한 시설에 갑자기 수십 명이 위험성을 무시한 채 올라간 데다 그런 상황을 사전에 막지 못했던 미흡한 현장 관리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또다시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강인석 경상대 토목공학과 교수(54)는 “덮개가 지탱할 수 있는 설계하중이 있을 텐데, 그를 초과한 인원이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며 “평소 사람들이 많이 올라갈 일이 없다 보니 갑자기 몰린 사람들의 무게를 견딜 정도로 덮개가 강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고 당시 걸그룹 포미닛의 공연 현장에는 700여 명의 관객이 몰렸고, 무대를 잘 보려고 50여 명이 지상에서 허리 높이로 솟아 있는 환풍구 위로 올라가면서 20m²(가로 4m, 세로 5m) 넓이의 덮개가 평소보다 훨씬 많은 하중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61)는 “공공시설물이기 때문에 현장의 사람들은 여러 사람이 올라가도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설에 대한 허가가 적절했는지, 안전 기준 자체가 미흡하지는 않았는지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등 관계 당국의 조사 결과, 해당 시설이 설계 기준에 맞지 않은 재료를 쓰거나 설계를 잘못해 무너지는 원인이 됐다면 시공사와 감리기관 등에 대한 책임론이 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설계 기준대로 적절한 재료와 시공 방식으로 지어졌는데도 사고가 난 것이라면, 애초에 안전 기준이 허술했던 것은 아닌지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성남시청 건축과 측은 “환풍구와 관련해 하중을 얼마나 견뎌야 한다는 법적인 기준은 정해진 것이 없다”며 “따라서 관리감독의 기준을 삼을 규정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물에 딸린 부속시설의 경우 관리 책임은 건물주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동시에 이번 사고로 구조가 비슷한 지하철 환풍구에 대한 안전 문제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 환풍구도 구멍이 나 있는 철제 덮개로 덮여 있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설치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바람이 나오는 지하철 환풍구 위로 뛰어다니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서울메트로 측은 “관련 규정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규정돼 있는지 파악해 보겠다”고만 밝혔다. 수많은 관객이 몰려 있는 상황에서 환풍구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환풍구에 사람들이 올라가는 것을 막지 못한 만큼 주최 측의 안전 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리 무대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뒤쪽의 관객들이 주변의 높은 곳을 찾아서 올라갈 것이라는 걸 예상해서 환풍기 덮개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임시 담장을 치거나 관리자를 배치해 관객들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직후 공연 주최 측은 “환풍구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했다”고 구청 측에 밝혔지만, 기자가 만난 현장의 목격자들은 모두 “안내방송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현장 관리자가 ‘당시 관객들에게 환풍구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를 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사고가 난 환풍구에 50여 명이 올라갔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성남시 관계자는 “사고가 난 환풍구는 공연장이 아닌 바깥의 자유구역”이라며 “완전히 통제가 안 되다 보니 사람들이 마구 몰렸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와 세월호 사고에 이어 또다시 대형 참사가 터지자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바뀐 게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는 공교롭게도 세월호 사고 발생 6개월이 된 지 하루 만에 일어났다. 이수곤 교수는 “사고가 다발하고 있는데 안전에 대한 ‘학습효과’가 전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김성규 sunggyu@donga.com / 판교=정윤철·황성호 기자}
회사원 A 씨는 15일 오후 2시경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5층에 위치한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천장에서 ‘쿵’ 하는 굉음을 들었다. 대포 소리 같은 굉음은 수차례 이어졌고 천장에서는 정체불명의 가루도 떨어졌다. A 씨는 반사적으로 커피전문점 뒤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달려 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이어폰을 끼고 있어 굉음을 듣지 못한 시민들은 두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A 씨가 “빨리 도망가요”라고 외친 뒤에야 이들은 A 씨를 따라 대피하기 시작했다. 굉음은 백화점이 입점한 건물의 소유주인 센트럴시티 측이 증축공사를 하기 위해 건물 골격을 만드는 데 쓰이는 H빔을 6층 공사 현장에 내려두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인명 피해가 나지는 않았지만 고객 50여 명이 황급히 대피하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백화점 측은 대피 방송을 전혀 하지 않았고, 직원들에 의한 대피 안내조차 하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사고의 경중을 떠나 고객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안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5층에서 쇼핑 중이었다는 B 씨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연상될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그런데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어디로 대피하면 되는지 백화점 측의 안내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백화점 관계자는 “시설물 파손이나 부상자가 없었고 당황한 고객들로 인해 다른 안전사고가 날 것을 우려해 방송하지 않았다”며 “공사 자체는 구청의 허가를 받았고 안전 규정상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굉음의 원인과 앞으로의 대책을 묻는 일부 고객의 문의에도 백화점 측은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A 씨는 백화점 측에 사고 경위와 피해 대책을 e메일로 답변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A 씨는 “담당자가 ‘본사 방침에 따라 법적효력이 있는 e메일로는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업무 환경상 불만을 표시하는 고객이 많아 일일이 문서로 보고하기 어렵다. 그 대신 구두로는 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해명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정윤철 기자}
“그냥 아이를 기다립니다. 그럭저럭 밥도 먹고 운동장을 오가면서도 시선은 항상 아이가 돌아올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요.” 세월호가 침몰했던 4월 16일, 딸 다윤 양(17)을 잃었던 아버지 허흥환 씨(50)의 목소리는 이제 덤덤했다. 다윤 양은 세월호 희생자 304명 가운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 10명 중 한 명이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꼬박 6개월 동안 전남 진도에서 딸을 기다리고 있다. 허 씨는 “(선체) 인양 이야기도 나오지만 아직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며 “매일 조금이라도 수색이 진전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16일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개월이 지났다.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진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 머무르고 있는 유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다. 건강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실종자 권재근 씨(52)의 형 권오복 씨(60)는 “약을 먹지 않는 가족이 드물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서 전기장판 등 난방기구를 지원했지만 체육관 생활이 장기화되다 보니 감기부터 소화불량,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 권 씨는 “동생과 조카만 찾으면 지금이라도 떠날 텐데 그저 기약 없이 기다릴 뿐이라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족들 차원에서 ‘겨울나기’를 위해 진도체육관을 떠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9월에는 진도군 범군민대책위원회가 “지역 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거처를 옮겨 달라”고 요구했지만 최근에는 유가족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실종자 가족과 지역주민, 해양수산부 등이 참여하는 회의가 시작됐다. 한 실종자 가족은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없으니 펜션을 빌리거나 인근 전남대 자연학습관 등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신이 추가로 발견되기만을 기대하고 있다. 수색 인력이 세월호 내부에 들어가 보지 못한 공간이 아직 세 곳 남았다는 것은 유가족들에게 오히려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다. ‘SP구역’으로 통칭되는 이 부분은 장애물이 많아 아직 수색을 끝내지 못했다. 권 씨는 “아직 수색 못한 구역만 찾으면 (시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모두 그 가능성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 선체 인양 주장에 대해선 안타까워했다. 실종된 조은화 양(17)의 아버지 조남성 씨(52)는 “수색이 끝나기도 전에 인양 이야기가 너무 쉽게 나오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세월호 인양은 인양 가능성과 소요 비용, 유가족들의 정서적인 문제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며 “수색이 종료되더라도 바로 인양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이철호 기자}
서울 강남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이모 씨(42)는 강남구에서 7월 26일 오전 3시경 대학 후배와 술자리를 마치고 자신의 벤츠 승용차에 올라탔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기준인 0.1%를 넘는 0.130%였지만 운전대를 잡은 것. ‘이 정도 취한 것쯤이야’ 하며 운전한 차는 7km를 간 끝에 서울 동작구 이수교차로 인근에서 보도블록을 들이박고야 말았다. 시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이 씨는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 씨의 본격적인 범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사고차량의 오른쪽 바퀴축이 파손돼 수리비 4500만 원이 나온 청구서를 본 그는 보험사에 사고 날짜를 이튿날로 써내 보험금을 타냈다. 음주운전을 했을 때 사고를 내면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가 나 운행하기 어려운 상태인데도 이튿날 운행했다는 점을 수상하게 여긴 보험사의 신고로 이 씨는 지난달 14일 검거됐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교통사고 후 보험사에 제출하는 서류를 허위로 꾸민 혐의(사기)로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층 7명을 검거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다들 하는 것이지 않느냐”식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식당에서 손님 차량을 발레파킹하던 중 벽에 부딪치는 사고가 나자 자신의 차와 부딪쳤다며 허위로 신고해 수리비 400만 원을 받아 챙긴 식당주인 강모 씨(53)도 사기혐의로 9월 불구속 입건됐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서울 강남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이모 씨(42)는 강남구에서 7월 26일 오전 3시경 대학 후배와 술자리를 마치고 자신의 벤츠 승용차에 올라탔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기준인 0.1%를 넘는 0.130%였지만 운전대를 잡은 것. ‘이 정도 취한 것쯤이야’ 하며 운전한 차는 7km를 간 끝에 서울 동작구 이수교차로 인근에서 보도블록을 들이박고야 말았다. 시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이 씨는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 씨의 본격적인 범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사고차량의 오른쪽 바퀴축이 파손돼 수리비 4500만 원이 나온 청구서를 본 그는 보험사에 사고 날짜를 이튿날로 써내 보험금을 타냈다. 음주운전을 했을 때 사고를 내면 보험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가 나 운행하기 어려운 상태인데도 이튿날 운행했다는 점을 수상하게 여긴 보험사의 신고로 이 씨는 지난달 14일 검거됐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교통사고 후 보험사에 제출하는 서류를 허위로 꾸민 혐의(사기)로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층 7명을 검거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다들 하는 것이지 않느냐”식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식당에서 손님 차량을 발레파킹하던 중 벽에 부딪치는 사고가 나자 자신의 차와 부딪쳤다며 허위로 신고해 수리비 400만 원을 받아 챙긴 식당주인 강모 씨(53)도 사기혐의로 9월 불구속 입건됐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북한의 대공 사격이 이뤄진 10일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있는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 주민들은 민방공 대피소로 긴급 대피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주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김학용 횡산리 이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후 5시경부터 평소보다 큰 총소리가 들려 왔다”며 “북한에서 쏜 총소리라는 것을 알고 마을 주민들이 모두 놀라 대피에 나섰다”고 밝혔다. 횡산리 주민들은 오후 5시 25분경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25명이 대피소로 피신했다. 오후 7시 20분부터 군에서 원하는 주민의 귀가를 허용했으나 주민 10여 명은 밤늦게까지 마을회관에 모여 북한의 추가 도발을 대비했다. 연천군 주민들은 대체로 차분하게 이번 도발에 대응했다. 북한이 쏜 총탄이 발견된 연천군 중면 삼곶리 문광소 이장은 “북한이 사격했다는 연락을 면사무소에서 받았지만 주민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상황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김규선 연천군수는 “중면사무소 옆 대피소에 실탄 1발이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며 “하지만 주민의 인명이나 재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천군 관계자는 “북한의 사격 사실이 알려진 이후 외부에 있는 연천 주민들 가족의 전화가 관공서에 한꺼번에 몰렸다”며 “초반에 북한의 ‘포격’으로 잘못 알려져 파장이 컸다”고 전했다.연천=황성호 hsh0330@donga.com / 박재명 기자}

2012년 1월, 백두산의 칼바람은 박동순(가명·19) 양의 옷 안을 세차게 파고들었다. 여름이면 백두산에 만발한 푸른 들쭉을 팔아 용돈을 버는 북한 양강도 태생 박 양에게 백두산은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털신만으로는 백두산의 겨울이 가져온 동상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박 양은 앞장서는 동네 아주머니를 따라 눈길을 헤치며 중국으로 갔다. 4남매 중 첫째인 박 양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재혼해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박 양이 20세에 가까워지자 “여군에 가서 입을 덜든지 중국에 가서 돈 벌어 오든지 하라”고 수시로 재촉했다. 그러던 차에 동네 아주머니가 “중국 옌지(延吉)에서 종자를 고르는 일을 하면 한 달에 500위안(약 8만7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큰맘 먹고 집을 나섰지만 사흘 만에 도착한 옌지 인근 야산에서 박 양을 기다린 것은 인신매매범이었다. 저녁 무렵 야산에서는 주변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따라오지 않으면 산에 버리고 가겠다”는 인신매매범의 말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인신매매범들의 차에 올라탔다가 눈을 떠보니 ‘연변대학’이라는 한글 간판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안이었다. 앞에 나타난 중국동포 사장은 “내가 돈 주고 샀으니 그 돈 갚을 때까지 시키는 대로 다해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박 양은 1년 반 동안 사장 아래서 식당 서빙, 접시 닦이에서부터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C형 간염에 걸린 것도 그때였다. 일이 너무 고돼 도망가다 붙잡힌 것도 수차례. 그때마다 돌아온 것은 구타였다. 한국행을 도와주겠다며 접근한 한국인에게 속아 모은 돈을 전부 날리기도 했다. 그나마 사장에게 통사정해 몇 푼씩 받아 엄마에게 돈을 보냈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박 양은 지난해 10월 한 기독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한국에 온 박 양은 서울 서초경찰서 보안계의 도움으로 C형 간염 치료와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한 달 전에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대안학교에 다니며 올해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 양은 “대학입시 준비가 너무 어려워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브로커를 통해 북에 있는 엄마와 통화하는 데 8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더라. 아르바이트 월급을 모아 엄마와 통화 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나 정신을 잃어가고 있어. 이대로 가면 큰일 날 것 같아.” 올해 5월 김모 씨(20)는 지인인 여성 A 씨(23)로부터 다급함이 느껴지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A 씨가 서울 용산구의 한 클럽에 놀러갔다는 것을 알고 있던 김 씨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해당 클럽을 찾아갔고, 정신을 잃은 채 외국인 2명에게 둘러싸여 있던 A 씨를 발견해 구출해냈다. 다음 날 A 씨는 “외국인이 술에 뭔가 타서 줬고 이를 무심코 마신 뒤 잠들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클럽 성범죄에 악용되는 ‘물뽕’(물에 탄 히로뽕이라는 뜻의 은어·성분은 감마히드록시부티레이트 등)을 자신도 모르게 먹은 것이다. A 씨는 친구의 도움 덕택에 화를 면했지만 흑심을 품은 외국인들에게 무방비로 성폭행을 당한 여성도 있다. 지난달 10일 B 씨(20·여)는 서울 강남구의 한 클럽에서 외국인 남성 2명, 한국인 남성 1명과 동석했다. 흥겨운 술자리 속에 B 씨는 남성들이 몰래 수면제를 타서 준 술을 마시고 의식을 잃었다. 이후 남성들은 B 씨를 인근 모텔로 유인해 성폭행했고, 휴대전화로 신체의 은밀한 부위를 수차례 촬영했다. 반항하는 B 씨를 폭행해 상처(전치 2주)를 입히기도 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서울수서경찰서는 2주간 수사를 벌인 끝에 지난달 25일 프랑스 국적의 C 씨(29)와 D 씨(31·모델) 등 3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 위반 혐의(강간, 상해 등)로 검찰에 송치됐다. 최근 젊은 여성들이 모이는 클럽 등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성범죄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외국인 성범죄자들의 공통점은 ‘한국 여성은 접근하기 쉽다’는 왜곡된 성의식을 가졌고,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 심리를 악용했다는 데 있다. 본보 기자가 8일 강남의 한 클럽을 찾아가 보니 일부 외국인 남성은 끊임없이 한국 여성의 신체를 훑어보거나 직접 다가가 허리에 팔을 감고 말을 걸었다. 한 30대 백인 남성(미국)은 “친구들 사이에 한국 여성은 애인 삼기 쉽다는 소문이 나 있다”면서 “외국인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은 한국 여성을 쉽게 보는 분위기가 만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성적 우위에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외국인들은 일부 여성이 가진 ‘이방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이용해 성적 욕구를 만족시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해외 영화에 등장하는 외국인을 보며 낭만적인 생각을 갖거나 이국적 호기심을 품은 여성들의 경우 경계심을 쉽게 풀 가능성이 있어 성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범죄는 내국인에 비해 범죄자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클럽 매니저 김모 씨(20)는 “약(수면제 등)까지 가져오는 악질 외국인들은 ‘적발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외국인 성범죄자는 거주지 특정이 어려운 데다 임대폰을 쓰는 경우가 많아 추적에 어려움이 따른다. 경찰 관계자는 “신상정보 관리가 힘들다 보니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이 이미 본국으로 도망간 뒤 피의자가 특정되기도 한다”며 “외국인 범죄를 관리할 외사 인력 확충과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황성호·박성진 기자}
서울 강남의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로 꼽히는 타워팰리스에서 수백억 원의 재력가 남편을 부인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강남구 언주로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A 씨(56)를 살해한 혐의로 이모 씨(50·여)를 범행 현장인 자택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씨가 수면제를 복용한 뒤 베란다에서 9일 오전 7시 50분경 갑자기 쓰러져 정신을 잃어 베개를 받쳐 주려다 30년 동안 당한 가정폭력이 생각나 베개로 입을 막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이 씨는 살해 직전에도 A 씨에게 특별한 이유 없이 복부를 발로 한 차례 차였다고 진술했다. 미국으로 유학 간 아들 1명이 있는 이 부부는 10년 전 이 씨 친정의 사업이 부도나 서류상으로만 이혼한 채 계속 동거해왔다. A 씨는 강남 일대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등 수백억 원의 재력가로 알려져 있으며, 불면증에 시달려 종종 수면제를 복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직후 이 씨는 경찰에 스스로 전화를 걸어 덤덤한 목소리로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다. 경찰 조사에서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살해 동기와 수법을 밝히기 위해 현장감식을 벌이는 한편 A 씨 시신의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이모 씨(29·여)는 8월 31일 정오 무렵 한 살배기 아들 한모 군과 함께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내 조용한 벤치를 찾았다. 아기는 벤치 옆에 둔 유모차에서 곤히 낮잠을 청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아기의 울음소리에 정적은 깨져버렸다. 이 씨가 황급히 유모차 속을 살펴보니 아기 오른팔에 빨갛게 부은 자국이 있었고, 기저귀 위에는 불씨가 남은 담배꽁초가 놓여 있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진 담배꽁초에 아기가 2도 화상을 입는 사건이 벌어진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범인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이 가진 유일한 단서는 현장에서 수거된 담배꽁초에 남겨진 ‘남성의 유전자(DNA)’뿐이다. 수사 초기 서울송파경찰서는 담배꽁초에서 확보한 DNA를 통해 범인을 추적하려 했다. 그러나 용의자가 범죄 전력자가 아니다 보니 데이터베이스에 남겨진 대조군과 일치하는 DNA가 없었다. 결국 경찰은 담배꽁초가 떨어진 아파트에서 범인이 거주할 가능성이 높은 위치를 파악한 뒤 주민들의 DNA를 직접 채취해 대조하기로 했다. 담배꽁초가 떨어지는 장면을 포착한 폐쇄회로(CC)TV가 있다면 거주 위치를 특정하기 수월했겠지만 사생활 침해 문제로 해당 아파트를 직접 촬영한 CCTV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씨에 따르면 경찰은 아파트 4개 라인에서 실시한 투척 실험을 통해 범인이 벤치와 동일선상에 있는 라인의 5층 이상에 거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후 경찰은 해당 라인 거주자를 대상으로 구강세포 DNA 채취를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강제성이 없고, 동의를 얻은 뒤에야 채취가 가능하다 보니 협조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경찰은 수차례 설득을 거듭한 끝에 주민 19명의 DNA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으나 모두 범인의 DNA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 났다. 경찰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생활형 범죄의 경우에는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경우 무고한 주민을 용의자로 몰아갈 수 있다는 위험성과 생활형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심리로 인해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력 사건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범죄 사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동시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담배꽁초 사건의 경우에는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희미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의 노력에도 범인의 정체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으면서 ‘송파구 담배꽁초 투기 사건’은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결혼 2년 만에 힘겹게 얻은 아이가 봉변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이 씨는 여전히 범인 색출과 처벌을 원하고 있다. 이 씨는 “아이 팔에 생긴 상처는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아이는 지금도 상처 부위를 만지거나 빤히 쳐다보며 상처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추가적인 협조로 대규모 DNA 조사가 이뤄지거나 자수를 통해 범인이 잡히면 범인은 과실치상죄가 적용돼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황성호 기자}

4일 북한 최고위급 인사 3명의 방남을 두고 국내 탈북자들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로 엇갈렸다. 2007년 11월 남북총리회담 이후 7년여 만에 현직 총리가 북한 고위급 인사를 만나는 등 모처럼 남북 간 대화 국면이 조성된 데 대해 탈북자들은 “과거부터 반복돼온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분석부터 “(북한의) 통일정책의 변화를 보여주는 근거”라는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김정은(북한 국방위원회 제1국방위원장)이 이번 아시아경기의 성과를 본인의 업적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위급 인사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의원은 김일성종합대 출신으로 이 학교 경제학부 상급교원(교수)으로 재직하다 1994년 귀순했다. 그는 “선대에 비해 경륜이나 우상화된 사례가 부족한 김 위원장이 좋은 성적을 거둔, 그것도 적진에서 열린 아시아경기에 최측근을 보내 개인의 업적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김정은 전용기’를 이용한 것 역시 “김정은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고위급 인사의 방남을 통해) 북한이 진일보했다”면서도 “실질적인 진일보가 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북자 출신의 전문가들은 특히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남에 주목했다. 황 정치국장은 그동안 김정은 체제의 핵심 인물로 꼽혀 왔다. 강명도 경민대 북한학과 교수는 “최룡해(노동당 비서), 김양건(통일전선부장)과는 달리 북한은 이례적으로 황 총정치국장에게 대통령급의 경호를 붙였다”며 “북한 야전군을 대표하는 그를 요란하게 한국에 보낸 것은 대화의 물꼬를 트는 동시에 북한 체제의 견고함을 보여주려는 계획된 이벤트”라고 진단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센터 소장은 “황 총정치국장이 군복을 입고 폐막식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북한은 이번 방문을 통해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체제 과시에 목적을 둔 만큼 이번 방남을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안을 갖고 온 것도 아니고, 오기 전에 밝힌 것처럼 북한 체육선수들을 격려하고 폐막식에 참여한 것밖에 없을 뿐”이라며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이번 방남이 남북 간 화해 국면을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탈북한 고경호 씨(45)는 “북한의 통일정책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겠느냐”며 “통일을 위한 대화가 마련되는 중요한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탈북자 A 씨(57)는 “쇼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번 방남은 분명 의미가 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김정은이 보낸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김정은 건강 이상설’에 대해서는 탈북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김광진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방문연구원은 “김정은으로부터 직접적인 지시나 공인이 없었으면 이번 방문이 힘들었을 것”이라며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성민 대표는 “예고 없이 최고위급의 방남을 진행한 점으로 볼 때 김정은 건강 이상 등 내부 문제를 숨기기 위한 전략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강홍구 windup@donga.com·황성호 기자}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서 수억 원대의 최고급 스포츠카 람보르기니가 가로수에 부딪쳐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 서울 강남경찰서와 강남소방서 등에 따르면 29일 오전 4시 19분경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학동사거리에서 청담사거리로 가는 방향 도로에서 이모 씨(28)가 몰던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차량이 가로수를 들이받은 뒤 불이 나 2분 만에 진화됐다. 이 사고로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차가 전소해 1억3000만 원(소방서 추산)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차량은 람보르기니 중에서도 2007년식 무르시엘라고 모델로 당시 판매가는 4억∼5억 원대 수준이다. 재산 피해 규모 1억3000만 원은 차량의 제조연도 등을 감안해 소방서 측이 추산한 금액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 씨가 운전하던 중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져 가로수를 받은 뒤 변형된 차체에서 기름이 새어 나와 불이 번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운전자 이 씨는 화재가 발생한 뒤 재빨리 대피해 다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측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1차 조사한 결과 이 씨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세월호 일반인 가족대책위원회가 29일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에 안치된 일반인 희생자들의 영정을 회수해 인천 합동분향소로 옮겼다. 전날 유가족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린 지 하루 만이다. 일반인 희생자 수는 모두 43명. 인천 합동분향소에 있는 9명의 영정을 제외하고 34명의 영정이 안산 합동분향소에 있었다. 일반인 유가족들은 분향소에서 단원고 학생들에게 분향한 뒤, 참사로 잃은 31명의 영정을 품에 안았다. 중국동포 희생자 3명의 영정은 영정을 옮길 때 일정한 제례를 지내야 한다는 중국 풍습에 따라 안산에 남았다. 분향소 안에서 울음을 터뜨린 일반인 유가족들은 영정을 앞세운 채 일렬로 길을 나서 인천행 버스에 올랐다. 일반인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의 이른바 ‘김무성 청와대’ 발언 때문에 영정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23일 고려대에서 연 간담회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과 만나 ‘특별법 안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며 종이 한 장을 꺼내 ‘청와대’라는 글자를 써서 보여줬다고 들었다. 이후 일반인 희생자들 입장이 정리됐다”고 주장했다. 장종열 일반인 가족대책위원장은 “(단원고 유가족들이) 일반인 유가족을 폄하하고, 어떤 사과도 없었다”며 유 대변인을 겨냥했다. 하루 이틀 내 유 대변인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소할 방침도 세웠다. 영정을 떼어가는 이들을 지켜보던 한 단원고 유가족은 “우리 애들이 더 울고 있어”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일반인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부터 줄곧 단원고 유가족들에게 아쉬움을 드러내왔다. 주요 결정사항이나 회의 때 연락이나 사전 논의가 없어 일반인 유가족의 의견을 전달하지 못했다. 장 위원장은 “단원고 유가족들은 처음부터 일반인 유가족을 단원고의 분과로 폄하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유가족의 분열은 예견됐다. 일반인 유가족들이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 수용 의사를 밝힌 뒤 단원고 유가족과 더욱 멀어졌다. 당시 한 단원고 유가족은 페이스북에 “치졸한 사람들아, 영정 당장 가져가시오. 아님 밖에 던져버리겠소”라고 썼다. 한 일반인 유가족은 “이 막말이 알려지면서 일반인 유가족이 더욱 화가 났다. 섭섭함이 쌓여 있던 차에 나중에 유 대변인 발언이 나와 만장일치로 영정을 옮기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개혁모임인 ‘아침소리’ 소속 하태경 의원은 29일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그동안 유족들이 아니라 좌파를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자초했다”면서 “대표와 대변인 정도의 최소한의 직책 정도만 남기고 해산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인천=황성호 hsh0330@donga.com / 홍정수 기자}
경찰이 대리기사 폭행 사건에 연루돼 혐의가 확정된 유가족 4명 중 3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9일 “김병권 전 세월호 가족대책위원장과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 한상철 전 대외협력분과 부위원장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같은 혐의로 입건된 이용기 전 간사는 공동상해에 가담한 혐의가 상대적으로 약해 제외됐다. 유족들에게 폭행당한 대리기사 이모 씨(52)는 전치 4주, 이를 말리다 폭행당한 노모(35)와 김모 씨(35)는 전치 2주의 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김 전 부위원장이 쌍방폭행으로 지목한 목격자 정모 씨(35)에겐 조만간 출석을 요구해 정당방위 여부를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대리기사 및 신고자들을 일방적으로 폭행한 사안의 중대성이 크고, 관련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유족 3명의 구속영장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유족 3명은 개별 진술과 대질신문에서 일방적으로 폭행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부인하고 폐쇄회로(CC)TV에 찍힌 본인들의 폭행 영상도 “저건 내가 아니다”라며 부인했다. 김 전 위원장 역시 여전히 일부 폭행 사실은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은 범행 당시 현장에 있었지만 ‘대리기사에게 반말이나 고압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고 폭행 장면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다음 달 3일 출석하라’고 29일 통보했다. 김 의원의 개입을 뒷받침하는 대질신문 내용과 추가 수사 내용을 토대로 김 의원을 조사한 뒤 혐의 유무를 최종 판단할 계획이다. 김 의원과 대리기사 이 씨의 대질신문도 검토되고 있다. 이날 이 씨는 서울남부지검에 변호인을 통해 김 의원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의 공동정범으로 고소했다. 이 씨는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유가족과 김 의원이 죄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면 고소를 취하할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또 4000만 원 넘게 입금된 자신에 대한 후원계좌를 이날 폐쇄했다며 “성금은 치료비와 생활비, 목격자들의 치료비로 쓰고 남으면 대리운전 기사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강은지 kej09@donga.com/인천=황성호 기자}

여야 원내대표와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들은 29일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위해 처음으로 ‘3자 회동’을 가졌다. 이날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된 3자 회동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특별검사추천위원회가 여야와 유가족이 합의해 추천한 4명의 특검 후보 중 2명을 최종 후보자로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3자 회동 직후 경기 안산에서 200여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유가족 총회를 열어 야당 안에 찬성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총회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야당 안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고 밝혔다. 가족대책위는 이날 투표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야당이 제시한 안에 대해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도 반대하지 않았다”며 “30일 오전 9시 국회에서 열릴 예정인 2차 3자 회동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로써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5개월이 넘게 지속돼 온 세월호 정국도 타결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정상적으로 등원할 경우 30일 열릴 예정인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90개 법안 처리와 국정감사 일정 합의를 통해 국회 정상화의 길도 열릴 수 있게 됐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와 전명선 위원장 등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은 이날 오후 3시 30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나 세월호 특별법 처리 방안에 대해 3시간 동안 논의했다. 이날 회동에서는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원내대표는 회동 뒤 “유가족 대표단이 유가족 총회를 통해 총의를 모으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오전 10시 20분부터 약 1시간 30분 동안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났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3자 회동 후 오후 8시 30분부터 의원총회를 열어 30일까지 협상 결과를 지켜본 뒤 본회의 참석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장택동 will71@donga.com·한상준 기자/안산=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전직 대통령 비자금 10억 달러(약 1조410억 원)를 해외에서 곧 들여올 건데 운반비만 조금 보태면 평생 먹고 살 돈을 주겠소." 충북에서 농사를 짓는 이모 씨(53·여)는 2007년 6월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난 김모 씨(64)로부터 '검은 유혹'을 받았다. 남편 없이 혼자 자녀를 키워 그리 넉넉지 않은 형편이던 이 씨는 그의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이 씨는 농사짓던 땅까지 팔아가며 김 씨에게 4400만원을 건넸다. 김 씨는 거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차일피일 미뤘다. 결국 이 씨가 꿈꿨던 일확천금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8월 말 김 씨를 사기 혐의로 검거했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에 투자하면 거액을 주겠다며 피해자를 현혹하는 사기범들이 최근 연이어 검거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 같은 사기 피해사례가 올 들어서만 15차례 발생했다. 피해자들이 외부에서 보기에 뻔한 사기 수법에 속는 가장 큰 것은 일확천금의 유혹 때문이다. 사기범들이 대통령 비자금을 운운하면서 투자금의 10배 이상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는 통에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돈을 주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제주도에서 건설업을 하는 이모 씨(44)는 2009년 100kg에 달하는 금괴를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인 20억 원에 팔겠다는 김모 씨(58)를 만났다. 20억 원을 들고 이 자리에 나간 이 씨에게 김 씨는 더 매력적인 제안을 내놨다. 자신을 미국 정보기관 요원이라 밝힌 그는 "판매하려는 금괴는 한국 전직 대통령의 것인데 해외에서 가지고 오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운반비를 투자하면 원금의 10배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이 씨는 금괴 5개와 현금 1억 원을 줬다. 하지만 이는 사기였다. 김 씨는 올해 8월 서울 송파경찰서에 검거됐다. 이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외제차를 끌고 나온 바람잡이가 옆에서 부추기고, 전직 대통령의 측근 이름까지 줄줄 읊어대는 통에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허경미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기꾼의 말이 허황된 걸 알면서도 한탕을 하려는 심리가 있어 돈을 건네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 퍼진 배금주의가 연이어 벌어지는 비자금 사칭 사건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대통령도 아닌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비자금 수십억 원이 담긴 가방이 언론 등에 계속 보도된 바 있다"며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엄청난 액수의 검은 돈이 실제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