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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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박훈상입니다.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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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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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상… 민폐여행… 내맘대로 독립잡지 붐

    궁상, 잉여, 옛 여자친구, 병맛…. 요즘 대한민국 청춘의 우울하거나 발랄한 삶을 상징하는 이 키워드들을 다룬 잡지가 많다. 어린이 손바닥 크기부터 펼치면 벽걸이 달력만 한 것까지 판형도 다양하다. 디자인도 각양각색이어서 심지어 매번 제호만 남기고 디자인을 새로 바꾸는 잡지도 있다. 다음 달 11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제4회 KT&G 상상마당 어바웃북스’에서 만날 수 있는 180여 종의 독립잡지다. 한 여행 잡지의 책장을 펼쳤더니 현지에서 공짜 밥 먹는 법을 소개하는 ‘민폐여행 tip’이 실려 있다. 책장을 더 넘기니 밀양 송전탑 현장 르포도 소개해 놓았다. 이런 주제를 다룬 잡지를 과연 누가 볼까 싶지만 대부분 5000∼1만5000원의 유료인데도 많게는 1000부가 나가는 잡지도 있다. 독립잡지를 글자 그대로 정의하면 광고주의 입김에서 벗어나 내용의 독립을 추구하는 잡지. 하지만 현장에선 홀로 또는 몇 명이서 저마다 좋아하는 주제를 파고들어 보통 매호 100∼1000부를 정기적으로 찍어내는 잡지면 모두 독립잡지라고 부른다. 2000년대 이후 약 500종이 등장한 것으로 추산되는 독립잡지의 성장세가 주목받고 있다. 독립잡지를 유통하는 전문서점이 전국 20여 곳에 이른다.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에도 일부 독립잡지가 입점했다. 공짜로 독립잡지를 홍보해주고 판매도 돕는 ‘독립잡지유통조합’도 활약 중이다. 문화예술 전반을 다루는 격월간 ‘싱클레어’는 14년째 장수하고 있다. 독립잡지의 경쟁력은 다양한 주제, 세련되고 파격적인 편집, 사소한 취향을 파고드는 디테일, 독특한 문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가을 창간한 ‘보편적인 여행잡지’의 경우 1000부를 찍은 창간호가 50부만 남기고 다 팔렸다. 올봄에 나온 2호는 1000부 중 700부 이상 팔렸다. 단순한 여행 목적지 소개보다는 새로운 여행방법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을 주 독자층으로 삼았다.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잡지 ‘NO-NAME’. 인터넷 신조어 ‘병맛’(‘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어떤 대상이 황당하고 형편없다는 부정적 뜻도 있지만 기발하고 창의적이란 의미로도 쓰임)에서 착안해 ‘병신 같지만, 멋있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유료 판매를 시작한 4호에는 디자인 패션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20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김예림 편집장(24·여)은 “광고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작업을 모두 잡지에 담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소한 개인사도 타인의 공감을 얻으면 잡지가 된다. ‘9여친’(옛 여자친구란 뜻) 1집은 ‘솔직하고 수치스러운 청춘’을 내세웠다. 박영경 9여친북스 대표(26·여)는 “이별 후 울컥한 순간, 폭풍감성으로 썼던 (나 자신과 주변 사람의) 일기나 글을 잡지에 담았다”고 했다. 그저 일기처럼 읽히지만 100부가 팔려 나갔다. 독립잡지 제작 길라잡이 강좌나 워크숍도 인기다. 6년째 강연을 진행해온 ‘싱클레어’ 김용진 편집장은 “수강생 중 절반이 첫 잡지를 내고 다시 그중 절반은 이를 이어가고 있다”며 “출판물을 만드는 편집 프로그램과 디지털 프린팅 기술 보급으로 한 명 또는 두세 명으로 구성된 작은 집단도 잡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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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요리책… 편지 매뉴얼… 실용서로 본 조선의 속살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활 속 궁금증이 생길 때면 찾아 읽은 다양한 실용서를 통해 조선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조선시대 관료가 행정업무를 처리할 때 필독서로 삼았던 ‘고사촬요(攷事撮要)’, 다양한 편지쓰기 매뉴얼이 담긴 ‘간식유편(簡式類編)’, 온돌설치법과 도구제작법, 음식치료법, 질병치료법 등 당시 최신 실용정보를 모아놓은 ‘소문사설(-聞事說)’, 거문고를 비롯한 현악기 악보를 한자기호와 약어로 담아낸 ‘합자보(合字譜)’, 17세기 영남 양반가의 요리비법을 한글로 담은 ‘음식디미방’에 얽힌 사연과 내용을 흥미롭게 풀어준다. 규장각 교양총서의 9번째 책.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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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나온 책]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外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천정환 외 지음·푸른역사)=2011년 11월부터 1년간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이뤄진 한국문화사 강의를 엮었다.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생장해 온 ‘네트워크로서의 한국사’를 살피고 주류 문학사가 배제한 ‘문학들’을 새롭게 조명했다. 2만5000원.열쇠(타니자끼 준이찌로오 지음·창비)=일본 탐미주의 소설가가 70세 때 발표한 소설. 56세 남편과 45세 아내가 번갈아 가며 쓰는 일기를 통해 인간 내면에 숨겨진 성적 욕망을 그렸다. 1950년대 일본에서 연재 당시 삽화로 들어갔던 판화가 실려 원서의 맛을 살렸다. 1만2000원. 장계향 조선의 큰어머니(정동주 지음·한길사)=가난한 사람을 위해 집안 어른을 설득해 곳간을 열었던 조선의 여인. 한글로 쓴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을 남긴 그녀의 삶이 소설로 부활했다. 2만3000원.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찰스 페로 지음·알에이치코리아)=저자는 일찍이 1984년 복잡한 시스템 속성에 따라 발생한 사고를 ‘정상사고(Normal Accidents)’라고 명명했다. 2013년 정상사고 위험을 안고 사는 현대인에겐 여전히 유효한 지침서. 2만5000원.글, 절대로 그렇게 쓰지 마라(장진한 지음·행담출판)=26년 동안 신문사 어문기자로 일하며 매일 남의 글을 고치고 다듬은 저자가 신문 잡지에 실린 저명 문필가의 글에도 칼을 댔다. 1만5000원.티베트 비밀 역사(박근형 지음·지식산업사)=티베트 개국 신화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폭넓게 다뤘다. 오락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2만9000원.}

    • 201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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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아이 앞에서 짜증 솟는 당신, 이 책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우리네 부모님들은 핏줄이 당겨서 손자를 원하려니 했다. 제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알겠다.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달라진 건 분명한데 지금도 헷갈린다. 잘하고 있는 건가. 좋은 엄마, 근사한 아빠이고 싶은데, 불끈불끈 짜증이 치솟는다. 아, 아직 부모 될 자격이 없었나 보다. ‘왜 엄마는…’은 그럴 때 펴보라고 나온 책이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다들 그러고 산다고 토닥거린다. 저자는 미국에선 꽤 유명 인사다. 블로그 ‘불량한 엄마’를 운영하는 전업주부인데, 속만 끓이던 육아의 고충을 진솔하게 담아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느꼈던 ‘불량한 속내’가 여과 없이 실려 있다. 아이를 키워본 이라면 이 책은 무조건 재밌다. 남성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다. 도대체 세상엔 ‘육아 전문가’가 왜 이리도 넘쳐나는지. 막상 조언이 소용없어도 책임도 안지면서. ‘천사 같은 아이’도 틀린 말이다. 천사에 근접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아이다. 그것도 대부분 잘 때. 더 솔직해지자. 신생아는 결코 예쁘지 않다. 생김새는 쭈글쭈글한 고구마에 가깝다. 그럼에도 저자가 아이를 셋이나 키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그 ‘가끔’ 찾아오는 행복이 너무나 소중하다.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만지작거리거나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품에 안기는 순간을 세상 무엇과 바꾼단 말인가. 왜 엄마는 내게 아이를 낳으라고 했냐고? 낳아 보면 금방 안다. 로또도 이런 로또가 없으니까. 공감은 여성이 더하겠지만, 오히려 책은 남성이 읽으면 얻는 게 크다. 아이 낳고 아내가 왜 그리도 남편에게 실망하는 순간이 잦은지 이해할 수 있다. 미혼이거나 아직 아이가 없어도 권하고 싶다. 숨겨둔 부모의 일기장을 펴보는 기분이랄까. 민망하긴 해도 코끝이 찡해진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아기였으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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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마술 같은 상상 속 미술쇼

    매주 일요일 낮과 밤.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3 채널을 틀면 미술 프로그램 ‘파스파르투(Passepartout)’가 나왔다. 만화 주제곡 풍의 시그널 음악은 전자음과 클래식으로 번갈아 연주됐다. 음악이 끝나면 곱슬머리에 안경을 코 위에 살짝 걸치고 나비넥타이를 맨 그가 등장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 평론가 필리페 다베리오다. 영상 속 다베리오는 유쾌하고 익살스럽다. 때론 진지하다. 그를 좇아 가다 보면 방영시간 30분이 훌쩍 지나간다. 이탈리어를 몰라도 그가 ‘판타스틱’을 외칠 때면 함께 흥분한다. 방송은 이탈리아 현지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어 2001년부터 10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다베리오는 프로그램 내용을 책으로 옮겨 2011년 11월 이탈리아에서 출간했다. 책은 방송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둬 예술서적임에도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에 ‘상상박물관’이란 제목으로 국내에서 발간된 이 책에는 오랜 방송 진행 노하우가 녹아 있어 읽으면 한 편의 쇼를 보는 기분이 든다. 책은 원서처럼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번역됐다. 훈계조는 찾을 수 없고 재잘재잘 떠드는 수다에 가깝다.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텔레비전의 힘이 책에 담겼다. 번역가 윤병언 씨는 “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그를 따라가다 보면 책 속의 그림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고 권한다. 상상박물관은 저자가 머리로 그려 낸 박물관이다. 박물관 도면이 있어 독자도 머릿속에 쉽게 그려 볼 수 있다. 저자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공간을 만들었다. 지하층엔 부엌과 지하창고, 세탁실, 1층엔 도서관과 식당, 생각하는 방, 2층엔 그랑갤러리(전시·이벤트 공간)와 손님방, 3층엔 침실과 욕실이 배치됐다. 이제 저자는 박물관 곳곳에 그림 220여 점을 채운다. 집 구경하듯 집 안 곳곳에 걸린 그림을 함께 보는 수고만 하면 된다. 아이들 장난 같다고? 충실한 디테일 덕분에 박물관 동선이 삐걱거리지 않는다. 1층 손님대기실과 건물 서쪽 공간 사이에 놓인 놀이방에 대한 설명이다. “시가 냄새가 배어 있는 곳이라 아침에 들어가면 항상 반갑지만은 않은 곳입니다. 남자 냄새죠. 그래서 다음 방으로 슬그머니 건너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이쯤 되면 상상이 아니라 실제다. 상상박물관엔 소소한 행복도 있다. 바로 저자와 나의 취향이 맞아떨어질 때다. 3층 욕실 문을 열기 전 나는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이 걸려 있었으면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욕실에 들어서자 ‘마라의 죽음’이 떡하니 눈에 들어왔다. 등나무 소파에 앉은 저자는 말한다. “다비드의 걸작을 욕실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자는 가끔 핀잔도 줬다. “책 속 그림을 10초도 바라보지 않으리라”고. 저자는 상상박물관을 읽을 때 인터넷을 켜 놓길 권한다. 책에서 설명이 안 된 부분은 자유롭게 인터넷을 찾아서 보라는 것이다. 그림을 볼 때도 굳이 박물관에 가지 않고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봐도 된단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는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며 꼼꼼히 살펴보길 저자는 추천한다. 그래야 그림 속에 숨겨진 숨 막히는 디테일을 찾을 수 있다. 220점 중에 의외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빠져 있다. 이제 상상박물관 입장료를 따져볼 때다. 입장료(책값)는 5만4000원. 비싸다. 하지만 외국의 유명 박물관을 가기 위한 비행기 삯, 입장료를 머리에 그려 보자. 사람들의 뒤통수에 가려진 그림을 까치발로 서서 봐도 몇 초도 안 돼 뒷줄에 떠밀리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결코 나쁜 가격은 아니다. 게다가 저마다 박물관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한 칸 갤러리를 만들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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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판으로만 돌던 日만화 ‘아키라’ 정식 출간

    국내에서 해적판으로만 유통됐던 일본의 전설적 만화 ‘아키라’(전 6권·세미콜론·사진)가 30년 만에 정식 출간됐다. 오토모 가쓰히로(59)가 1982∼90년 고단샤가 발행하는 ‘영 매거진’에 연재한 아키라는 제3차 세계대전 후 일본 네오도쿄를 배경으로 한 묵시록적 공상과학만화다. 오토바이 폭주단 소년 중 한 명이 수백 명을 죽일 수 있는 살인적 텔레파시 능력을 획득하자 그에 대항할 능력을 지닌 아키라라는 소년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저자는 1988년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아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20세기 걸작 만화의 반열에 오른 이 만화는 지금까지 세계 35개국에서 출간돼 135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국내에선 1980, 90년대 ‘캡틴 파워’ ‘폭풍소년’이라는 해적판으로 소개됐다. 이번 출간은 그동안 국내 여러 출판사의 접촉에 일절 응하지 않던 저자가 지난해 심경을 바꿔 정식 출판의사를 밝히면서 이뤄졌다. 이번 번역판은 2009년 미국에서 나온 페이퍼백 판을 원본으로 삼았다. 국내 만화처럼 그림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진행돼 국내 독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각 권 1만8000∼2만2000원. 일본 오리지널 컬러 표지가 포함된 6권 박스 세트는 12만 원.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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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 트렌드 잘 읽어야 청춘이다”

    베스트셀러 에세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인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청년 일자리 마련의 대안을 제시하는 책을 냈다. 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간기념식을 열며 발표한 ‘김난도의 내:일’(오우아)이다. 김 교수는 “제 에세이를 읽은 청춘들이 ‘울컥하게만 만들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 달라’고 물어 왔다”며 “그 질문에 대한 오랜 고민을 담았다”고 밝혔다. 앞서 출간된 책이 취업 경쟁에 지친 청춘들을 위로만 해 줬다면 새 책엔 일자리를 구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담았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아는 직업을 모두 써 보라고 했더니 직업 사전에 등재된 2만여 개 직업 중 100여 개밖에 써내지 못했다”며 “새로운 잡 트렌드를 읽어야 내 일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를 2008년부터 매년 출간하며 쌓아 온 트렌드 자료를 분석해 미래 직업시장의 6가지 트렌드를 뽑았다. 기피했던 블루칼라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더하는 ‘브라운 칼라’, 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일하는 ‘노마드 워킹’, 눈앞의 성장보다 함께 잘사는 ‘소셜 사업’, 더 많이 쉬고 더 즐겁게 일하는 ‘여유 경영’, 대도시를 고집 않고 고향이나 살기 좋은 곳에 맞는 일을 창출하는 ‘컨트리 보이스’,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스스로 일을 만들어 내는 ‘마이크로 창업’이다. 김 교수는 잡 트렌드 분석을 위해 미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10개국의 수많은 청년과 해외 전문가를 만났다. 영국 집사학교, 네덜란드 말발굽 전문가, 국내 인력거꾼 같은 다양한 직업도 소개했다. 자기 일을 가질 수 있는 5가지 일자리 전략도 제시했다. “청춘들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자리를 선망하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해질 일, 또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합니다. 부모들도 잡 트렌드를 인식하고 자녀의 선택을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길 바랍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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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금관총 출토 환두대도에 새겨진 ‘尒斯智王’은 누구일까

    경북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이 1600여 년 만에 답답한 녹을 걷어내고 신비로운 글자를 세상에 드러냈다. ‘이사지왕(尒斯智王).’ 칼집의 하단 금동 부분에 새겨진 이 글씨는 일반적인 신라 금석문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신라식 표기다. 수백 기에 이르는 신라 무덤에서 왕명(王名)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대 고분 가운데 주인공이 확인된 것은 충남 공주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뿐이다. 이사지왕이라는 글자가 나왔다고 해서 금관총에 묻힌 주인공을 이사지왕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송의정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은 “1921년 금관총 발견 당시 무덤 주인이 칼을 찬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성의 무덤으로 볼 수도 있다”며 “이사지왕은 남편이나 친척의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사지왕은 누굴까? 신라는 혁거세로부터 경순왕까지 56명의 왕이 이어졌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사료에는 이사지왕이라는 왕호(王號)가 등장하지 않는다. 우선 이사지왕을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초까지 신라의 최고 지배자였던 마립간(내물왕 때부터 지증왕 때까지 신라 임금의 호칭) 중 한 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마립간들이 사용한 다른 이름 중 이사지왕이라는 이름은 나온 적이 없다.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칼에 (‘이사지왕’ 외에도 따로) 새겨진 ‘이’자는 이사지왕이 자신의 소유물임을 나타내려는 표시가 분명하다”며 “이사지왕이 살아 있을 때 애용했던 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글자가 새겨진 칼은 전형적인 5세기 후반의 칼로, 동그란 고리가 3개 달려 있어 당시의 환두대도 중 최고급품”이라며 “왕이나 왕족에 해당하는 최고위층이 쓴 칼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사지왕에서 ‘이’를 빼면 신라의 21대 왕 소지왕(炤知王·재위 479∼500년)과 발음이 비슷한 ‘사지왕’이 되는데, 소지왕 재위 기간이 금관총 및 환두대도의 제작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소지왕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형식 상명대 초빙교수도 소지왕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신 교수는 “소지왕은 4, 5세기 김씨 왕통을 확실히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사지왕을 당시 ‘왕’으로 불렸던 고위 귀족 중 한 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경북 포항 냉수리 신라비(503년 건립)에 보이는 ‘차칠왕(此七王)’ 같은 기록은 마립간이 아닌 귀족도 왕으로 불렸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신라에서 6세기 전반까지 왕의 근친에게 갈문왕이라는 칭호를 내렸다는 기록도 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교수는 “이사지왕은 고위 왕족의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며 “진흥왕순수비에는 진흥왕을 진흥태왕(太王)으로 칭했는데, 이는 태왕 밑에 소왕(小王)이 여럿 있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송의정 부장은 “이사지왕을 고위 귀족으로 본다면 금관총 천마총 등 금관이 출토된 신라 무덤을 마립간의 무덤이라고 추정해 온 연구들은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신라 유물 전문가는 “신라 김씨 왕족의 조상이 알타이 혈통이라는 학설이 있는데, 김씨 왕족이 정신적 고향으로 여긴 알타이 산 부근의 카자흐스탄 이식(Issyk) 지방이 이사지왕의 ‘이사’ 발음과 비슷하다. 신라 왕족의 조상을 기리는 뜻에서 칼에 새긴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사지왕은 신라의 장군 이사부(異斯夫)와도 이름이 비슷하다. 이사부는 생몰연도가 정확하지 않지만 소지왕∼진흥왕 시대의 인물로, 가야국과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고 고구려를 물리친 군사영웅이란 점에서 죽은 뒤 흥무왕이란 시호를 받은 김유신처럼 왕으로 봉해졌을 수 있다. 이번에 확인된 ‘이사지왕’ 외에 숫자를 나타내는 한자들에 대해 박물관 측은 “나머지 유물까지 분석해 봐야 숫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신성미·박훈상·우정렬 기자 savoring@donga.com    ::금관총(金冠塚)은?1921년 9월 경북 경주 노서동의 한 집터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황금의 나라’ 신라를 상징하는 금관(사진)이 처음 출토돼 금관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금관뿐 아니라 관모 장식, 금제 허리띠, 목걸이, 귀고리 같은 각종 장신구류와 무기류를 포함해 유물 200여 점이 발견됐다. 당시 조선총독부와 일본인 학자들이 조사를 독점해 정확한 유물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지 않다. 축조 연대는 5세기 중·후반에서 6세기 초로, 원래 규모는 대형 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관총 발견 이후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 경주 곳곳의 무덤에서 금관이 잇따라 발굴됐다.}

    •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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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정전 60년]“北이 침공했으니 북침 아닌가요”… 용어 헷갈리는 청소년들

    “얼마 전 언론에서 실시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역사는 민족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박근혜 대통령은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의 말을 전해 들은 국민도 북한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고교생 3명 중 2명꼴로 6·25전쟁을 ‘남한이 일으킨 전쟁’으로 알고 있다면 2013년 대한민국은 왜곡된 역사관 속에 젊은이를 방치하는 한심한 국가라는 의미가 된다.본보 취재팀은 6·25전쟁 발발 63년을 맞아 24일 전국의 10대와 20대 초반 청소년 2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심층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취재팀은 또 이와 별개로 해양경찰청 관현악단 소속 20대 전경 20명에게 설문조사를 하고, 대학생 100명에게는 단체 카카오톡을 통해 6·25전쟁 발발 원인을 물어봤다.그 결과는 ‘놀라웠다’. 응답자 전원이 ‘6·25전쟁은 북한이 남한을 침공해서 일어난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만 ‘남침이냐 북침이냐’고 물었을 때는 ‘북침’이라고 대답한 청소년이 3명 중 1명꼴로 나왔다. 그렇게 대답한 청소년에게 북침의 의미를 묻자 이들은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으니 북침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했다.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충격이라고 표현한 언론사 조사에서 무려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대답한 것은 남침과 북침이라는 표현을 혼동한 대답이 많았던 때문으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이 인용한 설문은 한 언론사가 입시전문업체와 함께 전국 고등학생 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이 언론사는 ‘한국전쟁은 북침인가 남침인가’라고만 물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용어의 혼동 때문에 빚어졌을 개연성이 큰 ‘69% 북침 대답’의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지 않은 채 우리 사회 청소년의 역사인식 왜곡을 보여 주는 조사 결과로 받아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본보 면접조사에서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답한 서울의 직장인 김태원 씨(25)는 북침을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것’이 아니라 ‘북쪽의 침략’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김 씨는 “먼저 침략을 한 쪽을 주어로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북한이 침략을 했으니 북침이 맞다”고 답했다.취업준비생 문인호 씨(29)는 “학교에서도 배우고 군대에서도 배웠는데 매번 북침이 ‘북한을 침략한 것’인지, ‘북한이 침략한 것’을 뜻하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강원 춘천의 초등학교 5학년 조경민 군(12)은 “북침인지, 남침인지 착각했지만 전쟁은 북한이 일으킨 게 맞다. 친구들도 모두 잘 알고 있다”고 했다.호남대 2학년 김민수 씨(23)는 “학창시절엔 남침으로 배웠지만 질문을 받는 순간 헷갈렸다”며 “주어를 누구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용어를 명확하게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언어를 줄여 쓰는 젊은이의 언어 습관도 혼란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재수생 김모 씨(19·여)는 “‘열심히 공부한다’를 줄여 ‘열공’이라고 쓰듯 북한이 침략했으니 북침이 자연스럽다”며 “친구들과 6·25전쟁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북침으로 표현한다”고 말했다.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북침과 남침은 반공교육을 받은 기성세대에게는 일반명사처럼 써 온 말이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아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것”이라며 “북침과 남침이란 단어의 뜻을 풀어 여론조사를 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북침 남침 표현에 대해 많은 이가 헷갈려 하는 현상은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가 겪어온 이념적 혼란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1980년대 중반 이래 수정주의 사관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특히 중고교에서 좌파적 시각을 가진 일부 교사의 영향으로 6·25전쟁을 어느 일방의 침공에 의한 전쟁이 아닌, ‘남북한 간의 국지전적 무력 충돌이 확전된 내전’ 또는 ‘미국이 북한의 공격을 유도한 전쟁’ 등으로 배운 학생이 늘어났다. 좌파적 역사관이 교단에서 횡행하던 시기에 북침 남침 등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표현 자체가 지닌 의미도 퇴색하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6·25전쟁 발발 원인에 대한 좌파의 왜곡은 1990년대 들어 옛 소련의 비밀문서들이 공개되면서 학술적으로 더는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 그 결과 최근엔 중고교 교단에서 북침을 가르치는 극단적인 좌파 교사의 행태가 거의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북침, 남침 등의 표현을 낯설어하고 혼동하는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젊은 세대가 한자(漢字)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제는 교과서는 물론이고 언론이나 공공기관이 ‘남침’ ‘북침’ 같은 줄임말의 사용을 지양하고 정확하게 ‘북한의 침공으로 일어난 전쟁’ 식으로 풀어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만약 두 음절의 약어를 불가피하게 사용한다면 술어 다음에 목적어를 쓰는 일반적 한자어법에 따라 ‘침남(侵南)’으로 바꿔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역사 교과서도 더욱 친절하게 집필할 필요가 있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발표하고 6·25전쟁의 개전에 있어 북한의 불법 남침을 명확히 밝혔다. 본보가 24일 시중에 나와 있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 6종을 확인한 결과 “북한이 남침을 감행했다”, “인민군의 남침” 등의 표현을 통해 전쟁 발발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명확히 기술해 놓았다. 하지만 ‘북침’이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이 표현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해 놓은 교과서는 없었다.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교과서를 집필하는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것이 문제다”라며 “교과서에서 남침이나 북침으로만 표현하지 말고 ‘북한이 남한을 공격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쓴다면 학생들의 혼란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북침(北侵): (남쪽이) ‘북쪽을 침략한다’는 의미. 남침(南侵): (북쪽이) ‘남쪽을 침략한다’는 의미. 6·25전쟁의 경우가 들어맞는다.수정주의: 6·25전쟁의 기원에 관한 학설 중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설. ‘남침유도설’로도 불린다.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브루스 커밍스 교수로, 1981년 펴낸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주장했지만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자료에 의해 허위임이 드러났다. 그는 최근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남침유도설을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박훈상·이권효·서동일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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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뒷談]보험금 살인, 그 기가 막힌 세계

    2008년 4월 12일 오후 7시 40분경 한명수 씨가 세상을 떠났다. 나이 31세. 교통사고였다. 경기 평택시 안중읍 덕우리의 한 농장 앞 공터에서 후진하던 1t 트럭이 바닥에 누워 있던 한 씨를 그대로 치고 지나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심장이 멎어 있었다. 관할 경찰서는 단순 사고사로 처리했다. 부검도 하지 않았다. 한 씨의 시체는 그가 일하던 인력사무소 사장 A 씨(당시 41세)에게 인계돼 사흘 만에 화장됐다. ‘바보’라고 불렸던 그의 죽음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그렇게 묻히는 듯했다.8억 원이 넘는 사망보험금 “이상하단 말이야.” 한 씨가 사망한 지 보름 후 사건이 일어난 농장을 둘러보던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정창호 경사(당시 41세·현 경기 광주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경위)가 중얼거렸다. 당직 근무를 마치자마자 평택으로 차를 몰고 내려온 그였다. 사고를 낸 B 씨(40)가 가로등이나 별다른 조명시설도 없는 농장에서 왜 굳이 후진으로 주차를 시도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농장 앞 공터는 트럭 전면으로 들어가 차를 세운 뒤 그대로 다시 차를 돌려서 나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었다. 의심스러웠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보험금’이라는 세 글자가 스쳤다. 숨진 한 씨는 두 개의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2006년 4월 4일과 12월 8일에 가입한 이 두 보험의 월 보험료는 총 32만5400원. A 씨가 운영하는 인력사무소에서 청소, 잔심부름 등 허드렛일을 하며 일정한 수입 없이 살아온 한 씨에게는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알아보니 보험료는 A 씨가 대신 납부해주고 있었다. A 씨는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자신이나 가족들 명의로 가입한 보험의 보험료보다 많은 금액을 한 씨의 보험료로 내고 있었다. 그리고 4월에 가입한 보험은 그해 5월에, 12월에 가입한 보험은 다음 해 3월에 보험금 수령자가 A 씨로 변경됐다. 한 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받게 되는 사망보험금도 8억 원이 넘었다. 교통재해사망특약이 최고 한도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한 씨가 교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은 사망을 전제로 하는 생명보험에 가입할 때 수술, 입원 등 치료비도 함께 보상받을 수 있는 특약을 주로 설정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누군가를 죽여 보험금을 타낼 속셈으로 생명보험에 가입하는 ‘보험금 살인’에서는 사망보험금을 최대한 받아낼 수 있도록 특약을 구성한다. 실제 올해 3월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누리마루 선착장에서 발생한 보험금 살인 사건의 경우 남편은 부인을 살해하기 3개월 전 보험을 갱신하며 사망보험금을 대폭 높이는 특약을 넣어 모두 11억2000여만 원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함께 타고 있던 차량을 바다에 빠뜨려 아내를 살해한 뒤 운전 미숙으로 인한 차량 추락사로 위장하려 했다. 또 범행에 앞서 보험금 수령자를 자신들로 변경해 놓는 특징도 있다.“시신이 화장돼 증거가 없다” 다른 실마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왔다. 사건 발생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관할 소방서를 찾아 근무일지, 최초 신고 내용 등을 확인하던 정 경사에게 119 구급대원 한 명이 “직접 찍었다”며 사진 다섯 장을 건넸다. 사진 속 한 씨의 배 위에는 자로 잰 듯이 정확히 심장 부근을 지나간 트럭의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눈 주위가 부어 있었고 눈꺼풀의 출혈, 안면 울혈도 보였다. 질식사에서 관찰되는 특징이었다. 누군가 미리 한 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차 사고로 위장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다. 시신이 이송됐던 안중 백병원에는 한 씨의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가 남아 있었다. 정 경사는 CT를 들고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는 “한 씨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1t 트럭이 배 부위를 밟고 지나갔다면 복부 손상으로 다량의 피가 고여 있어야 한다”며 “CT 결과에는 복부 출혈은 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과 CT 결과만으로 사인을 결론 내릴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신이 화장됐다.’ 보험금 살인을 조사하는 경찰이 맞닥뜨리게 되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다. 2010년 인천에서 발생한 이른바 ‘산낙지 살인사건’의 피고인에 대한 1심과 2심의 판결이 엇갈린 것도 근본적으로는 피해자의 시신이 사망 이틀 후 화장돼 직접적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올해 4월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산낙지를 먹다 숨이 막혀 숨진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로 기소된 김모 씨(32)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심폐기능이 정지됐을 당시 수사기관의 조사나 부검이 이뤄졌으면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있었는데 경찰은 타살 의혹이 없다고 보고 조사를 하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김 씨 진술 외에는 사망 원인을 밝힐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보험금 살인의 범인은 대부분이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이다. 처음부터 피해자가 보험금 수령자로 자신을 지정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이 있어야만 범행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험금 살인의 범인은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 간직하고 있는 시신이 빠르게 처리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상당수의 보험금 살인에서 시신이 빨리 화장되는 이유다.수상한 통화 증거가 더 필요했다. 정 경사는 평택의 한 여관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주변 탐문에 나섰다. 한 씨를 아는 사람들은 “예전에 흔히 동네에서 볼 수 있었던 ‘바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한 씨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찾아갔다. 한 씨의 생활기록부에는 ‘부모가 일찍 죽었다’ ‘지능이 떨어지고 글씨를 못 쓴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인력사무소 사장 A 씨의 휴대전화 사용 기록도 살폈다. 사건이 발생한 날 오후 2시 30분경 인근의 다방 여종업원에게 전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여종업원은 정 경사에게 “A 씨가 그날 농장으로 칡즙을 배달시켰다”고 말했다. 그리고 A 씨는 한 씨와 여종업원을 데리고 충남 아산만 방조제 인근의 조개구이 집에 가 소주 3병을 나눠 마셨다. 술자리는 다시 평택의 한 식당으로 이어졌고, 이곳에서 세 사람은 소주 4병을 마셨다. 이후 오후 7시경 A 씨는 한 씨를 농장에 내려주고 여종업원만 데리고 포장마차로 가 소주 3병을 더 마셨다. “A 씨가 함께 술을 마시다 갑자기 누군가의 전화를 받더니 얼굴이 붉어지면서 황급히 나가더라고요.”(여종업원) 휴대전화 기록을 뒤졌다. 사고를 낸 B 씨와의 통화였다. 두 사람의 공모 정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정 경사는 바로 검찰에 체포영장을 신청해 두 사람을 체포했다. B 씨는 “A 씨가 보험금을 받아 내 빚 6000만 원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다. 사고를 가장해 한 씨를 살해하기로 하고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고 자백했다. 현장검증이 이뤄지던 날 정 경사는 한 씨의 넋을 위로하며 그가 잠든 공터에 소주 한 잔을 따라 명태포와 함께 올려놨다. A 씨가 보험회사에 한 씨의 사망보험금을 청구한 날짜는 2008년 5월 2일. 한 씨가 사망한 지 20일 만이었다. 보험금 살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보험금 청구 시점이 빠르다는 것이다.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산낙지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 씨에 대해 의심 가는 이유 중 하나도 보험금 청구 시점이다. 피해자는 2010년 5월 5일 사망했다. 김 씨는 8일 뒤에 보험금을 청구해 7월 23일 자신 명의의 계좌로 2억51만 원을 송금 받았다.징역 20년, 그리고 15년 다음 해 12월 24일 대법원은 A 씨에 대해 징역 20년, B 씨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확정했다. 3심까지 이어지는 재판 과정에서 두 사람의 변호인은 한 씨의 살인 혐의를 뒷받침할 직접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인정하기 위한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해 형성돼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증거에 의할 수도 있고 이때 간접증거는 모든 관점에서 상호 관련시켜 종합적으로 평가해 모순 없는 논증을 거쳐야 한다”며 경찰이 수집한 간접증거로 인정되는 사실들 사이에 모순이 없는 만큼 살인 등에 대한 두 사람의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보험금 살인에서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A 씨는 한 씨를 죽이기 8개월 전에도 차에 한 씨를 태우고 가다 조수석 쪽으로 다리 교각을 들이받아 살인미수 혐의로 함께 처벌됐다. 한 씨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지만 법적으로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지도 않았다. A 씨가 들고 다니던 명함에는 ‘모 장애인협회 평택시 안중지구 소장’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확인한 결과 해당 장애인협회는 없는 단체였다. 처음부터 장애인 단체를 운영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한 씨를 데리고 있었던 A 씨는 재판이 끝나는 날까지도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박희창·박훈상 기자 ramblas@donga.com}

    • 201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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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 1억 기부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사진)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개인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300호 회원이 됐다. 이 회장은 12일 서울 중구 정동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이동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에게 1억 원을 기부하고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했다. 산악인 최초의 아너 회원이 된 이 회장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동료와 함께 호흡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 201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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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봉 1억당 지참금 15억”… 전문직 남성들 ‘결혼 甲질’

    서울의 한 소규모 학원 영어강사 김모 씨(31·여)는 ‘반드시 의사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 씨는 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7명의 의사를 소개받았지만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고 2010년 8번째 만난 사람이 서울 강남지역 대형종합병원 의사 A 씨다. A 씨 집에선 김 씨에게 결혼 지참금으로 12억 원을 요구했다. 의사와 꼭 결혼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김 씨는 중견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졸라 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2011년 결혼한 부부는 1년여 만에 이혼했다. 12억 원으로 병원을 개업한 남편이 계속해서 병원 투자 비용을 처가에 요구하자 불화가 생긴 것.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소위 ‘사’자 전문직 사위를 맞으려면 아파트, 자가용, 개업사무실 등 ‘열쇠 3개’와 밍크코트, 최고급 예물 등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릇된 결혼 예단 문화가 사회적 지탄을 받으며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최근에는 ‘현금 거래’ 방식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어려운 형편(개천)에서 출세했다는 뜻의 ‘개룡남’을 둔 집에선 단박에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듯 노골적으로 거액의 현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30대 B 씨는 올해 초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또래 여성 C 씨를 만났다. 명문대를 나와 사법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B 씨는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진 빚 8억 원을 한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신붓감을 물색했다. 부모가 B 씨에게 그런 요구를 하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마침내 빚 8억 원을 갚아주고 지참금 3억 원까지 챙겨주는 조건에 응한 C 씨와 올봄 결혼했다. 과거에는 중매를 전문으로 하는 ‘뚜쟁이’가 중간에서 결혼 지참금을 조정했다. 복수의 결혼정보업체에 따르면 과거 뚜쟁이들은 지참금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았기 때문에 신랑 쪽엔 ‘더 받으라’, 신부 쪽엔 ‘더 챙겨줘야 한다’고 부추겼지만 신랑 쪽과 신부 쪽이 직접 마주치지는 않아 얼굴 붉힐 일이 적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정보업체가 자리 잡은 요즘에는 양가가 직접 지참금 액수를 조정하다 보니 분쟁이 더 늘어난다는 게 결혼정보업계의 설명이다. 치과의사 아들을 둔 예비 시어머니가 신부 어머니와 합의해 억대 결혼 지참금을 받고선 이유 없이 결혼을 미루다가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일부 전문직 남성들은 결혼 지참금 요구를 당연시하고 같은 직종의 또래들과 지참금 액수에 대해 상의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한 의사는 의사만 가입이 가능한 비공개 커뮤니티에 “지참금 2억 대기업녀 vs 무일푼 초등교사”란 글을 올렸다. 다른 조건을 제외하고 경제적인 면만 고려했을 때 누가 좋을까란 질문이었다. 동료 의사들은 줄줄이 댓글을 달며 관심을 보였다. ‘목돈부터 챙기라’는 식의 노골적인 충고까지 나왔다. 이 커뮤니티에는 ‘지참금 받는 방법’이란 제목으로 지참금으로 받을 아파트 명의를 누구로 할지, 3억∼4억 원이 적당할 듯한데 통장으로 받아야 할지 등을 묻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연봉 1억 원당 지참금 15억 원’을 주장하는 셈법이 나오기도 했다. 지참금 관련 글엔 “뼈 빠지게 일하고 아내의 현금인출기(ATM)로 살 수 없으니 받을 건 받자”라는 식의 댓글도 여러 개 달렸다. 로스쿨 도입의 영향으로 변호사의 인기는 다소 줄고 있다. 경기불황 속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사’자보단 부모의 사업을 물려받은 2세들이 인기 배우자감으로 등장하고 있다. 차일호 방배결혼정보회사 회장은 “부모로부터 부동산을 물려받아 일에 얽매이지 않고 건물임대수입으로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부잣집 자식이 변호사보다 인기가 높다”며 “변호사 수가 크게 는 뒤로는 먼저 10대 대형 로펌 소속인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이혼소송 전문 김채영 변호사는 “결혼 지참금을 주고받는 걸 문서로 약속했다면 계약 자체는 유효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상규에 반하는 권리 남용에 해당돼 법적 효력을 잃을 수 있다”며 “지참금이 전제조건으로 깔린 결혼은 결국 서로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법적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박훈상·김성모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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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일 현충일]정부 무관심 속 아버지는 홀로 누워계셨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6·25전쟁 참전용사 고 김찬중 이병 묘역에는 60여 년간 가족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가족들은 이곳에 김 이병이 묻혀 있는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바친 군인의 행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옥 할머니(70)의 아버지 김 이병은 “나라가 위급한데 나만 살 수 없다”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에 입대했다. 젊은 아내가 부둥켜안으며 말리고,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친구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을 떠나는 뒷모습이 김 할머니가 일곱 살 때 본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아버지가 떠나고 한 달여 뒤 어머니는 폭격으로 숨졌다. 김 할머니는 “당시 하늘 위로 전투기가 ‘쌕쌕’거리며 무섭게 날아다녔다”며 “어머니가 폭격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어른들께 들었다”고 기억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조부모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피란길을 떠났다. 세 살 터울인 남동생은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 죽었다. 짧은 순간에 전쟁고아가 된 할머니는 친척집을 오가며 컸다. 아버지와 함께 입대했던 친구는 살아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전투 중에 죽었다.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에 갖은 고생을 하며 살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도 희미해졌다”며 “어머니와 남매를 두고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휴전 뒤 당시 국방부는 김 이병이 6·25전쟁에서 전사했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 모셨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 몰라 제사도 지내지 못했다. 할머니도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는 유해도 수습하지 못한 미안함이 더 커졌다. 8년 전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전사자 유해를 찾아주는 국방부 유해발굴사업에 신청했다. 오매불망 아버지 소식을 기다렸지만 매년 “아버지 유해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찾아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현충일을 앞둔 이달 초 할머니는 아버지의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가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기념공원에 안장된 카투사의 유가족을 초청하려고 수소문하던 중 할머니 연락처를 찾은 것. 육군으로 입대한 줄 알았던 아버지는 미2사단 소속 카투사로 입대해 1950년 9월 낙동강 전투 때 전사한 뒤 이곳에 안장돼 있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부산에 모셔놓고 60년 동안 왜 안 가르쳐 줬느냐”며 오열했다. 할머니뿐 아니라 카투사 고 반봉영 씨의 아들 반종수 씨(75)도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 모셔왔던 아버지가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가보훈처와 국방부가 국군 전사자에 대한 관리를 허술하게 한 탓이었다. 정부는 전쟁 직후 카투사 전사자 36명이 유엔이 관리하는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는데도 유가족에게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통보하고 60년 동안 확인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보훈처는 김 할머니 사례를 알게 된 뒤 이곳에 묻힌 카투사 중 무명용사 5명을 제외하고 나머지에 대해 유가족이 있는지 찾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카투사 유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벌어진 일로 앞으로 관리 주체가 달라 보훈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없도록 하겠다”며 “국가유공자에 미등록된 카투사 전사자의 유족을 찾아 하루빨리 예우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충일인 6일 김 할머니는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60여 년 만에 첫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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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 성폭행… 사기… 관리 사각지대 놓인 공익요원 범죄

    대구 여대생 살해범 조모 씨(24)가 시민의 발인 지하철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해 왔는데도 그가 소속된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조 씨의 성범죄 전과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공익근무요원은 시민 안전 등과 직결된 분야에서 직접 시민을 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속 기관조차 범죄 전과를 모를 정도로 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3일 “조 씨를 모집한 병무청에선 공익요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밖에 알려주지 않았다”며 “조 씨가 성범죄자인 사실을 몰랐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2011년 1월 울산 중구에서 16세 미만 여자 청소년을 강제 추행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과 함께 신상정보 공개 및 고지명령 3년 등을 선고받았다. 현행 병역법상 6개월 이상 1년 6개월 미만의 징역·금고를 선고받거나 1년 이상 징역·금고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공익요원 대상자인 보충역으로 분류된다. 조 씨는 지난해 8월부터 여성과 아동이 많이 왕래하는 지하철역에서 근무했다. 지하철 공익요원은 승하차 안전관리 지도를 비롯해 지하철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성추행 예방 등 치안활동도 보조한다.○ 해마다 늘어나는 ‘공익 범죄’ 공익요원의 범죄와 일탈 행위는 계속 늘고 있다. 1월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각종 범죄 행위로 구속된 공익요원은 2010년 94명에서 2011년 102명, 2012년 1∼9월 89명으로 증가했다. 강간으로도 2010년 8명, 2011년 11명이 구속됐다. 근무 실태도 엉망이었다. 복무이탈, 근무명령 위반자가 2010년 2597명에서 2011년 3068명으로 늘었다. 올 4월 30일 기준 공익요원은 4만9070명으로 8700여 개 기관, 근무지 2만여 곳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빌딩에서 전 여자친구 A 씨와 다투다 뇌사 상태에 빠뜨린 김모 씨(21)도 강북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공익요원이었다. 김 씨는 공익 복무 중이던 지난해 9월에도 A 씨와 다퉈 경찰에 폭행 혐의로 입건되는 등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김 씨 입건 사실을 김 씨의 관리감독기관인 강북구에 알려주지 않았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한 달에 한 번 면담하지만 여자친구 고민이 있는지 몰랐다”며 “지난해 경찰에 입건된 것도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과 시간에 근무지에서 범죄를 저지른 공익요원도 있다. 전북 군산시의 한 면사무소에서 민원인들의 신분증 사본을 훔쳐 대포폰을 개통해 판매한 혐의(사기 등)로 전 공익요원 김모 씨(30)가 지난달 20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김 씨는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6월부터 두 달여 동안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휴대전화로 민원인들의 신분증 사본을 촬영하거나 서류를 훔쳐냈다.○ 감독 사각지대 공익요원 공익요원은 군인도 공무원도 민간인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복무기관에서 근무를 지휘·감독하지만 징계는 병무청이 담당한다. 현재 공익요원과 함께 일하는 한 공무원은 “현역병 근무에 적합하지 않아 보충역 판정을 받았는데도 정작 이들에 대한 관리는 부족하다”며 “전반적인 관리는 공익요원을 뽑은 병무청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법상 공익요원의 1차 관리 책임은 복무기관의 장이 지도록 돼 있다”고 답했다. 병무청은 공익요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해 복무지도관을 두고 있다. 모두 77명으로 1인당 공익요원 637명을 관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박효선 청주대 군사학과 교수는 “성범죄 등 위험한 전과가 있는 공익요원이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에 배치된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일괄적으로 출퇴근할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일정한 장소에서 함께 생활하도록 하는 등 현역병에 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박훈상·박희창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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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세훈, 건설업체서 10여차례 고가선물 받은 의혹

    건설업체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직 시절 10여 차례에 걸쳐 원 전 원장에게 고가의 선물을 건넨 의혹을 검찰이 포착하고 건설사를 압수수색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담당하는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과는 별도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여환섭)는 지난주 서울 중구에 있는 H건설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또 검찰은 이 건설사 대표 H 씨(62)도 불러 원 전 원장에게 선물을 건넸는지, 건넸다면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회사가 원 전 원장에게 공사 수주 등에 도움을 달라는 청탁과 함께 선물을 건넨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회사가 수백억 원의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 회사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에는 상당량의 순금을 포함해 페라가모 남성용 손가방과 여성용 핸드백, 산삼을 비롯한 고가의 건강식품 등 수천만 원 상당의 선물을 원 전 원장에게 건넸다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H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친분관계에 따라 선물을 건넸을 뿐 대가성은 없다. 돈은 건네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분식회계 및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H 씨에 대해 조만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H건설은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의 하청을 여러 건 따냈다. H건설은 2010년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이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건설공사에 참여했다. 삼척그린파워발전소 대비공사를 수주한 D중공업 컨소시엄으로부터 2011년 2월 이 공사의 일부인 2공구 용지 정지 공사를 하청받은 것. 당시 계약금액은 173억1000만 원이었다. 2010년 12월 기준 H건설의 총자산이 79억9800여만 원이었던 걸 감안할 때 상당히 큰 규모의 계약이었다. 당시 H건설은 D중공업 컨소시엄의 협력업체가 아니었는데도 하도급 입찰에 참여해 공사를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H건설은 토목공사 초창기에 드는 거액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경영이 악화돼 지난해 11월 말 폐업했다. 검찰은 한국남부발전 이모 대표를 최근 불러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H건설은 한국전력의 또 다른 자회사인 한국동서발전이 발주한 당진화력발전소 9·10호기 토건공사에 지난해 4월 하청업체로 들어가려다 시공사인 삼성물산에 거절당하기도 했다. 본보 취재팀은 당시 한국동서발전이 공문을 보내 H건설을 하청업체로 추천한 사실을 확인했다. 삼성물산 측은 H건설이 공사를 맡기에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거절했다. 이길구 당시 한국동서발전 전 사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H건설의 H 대표가 하청업체를 맡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 선에서 거절했다”며 “삼성물산에 공문을 보낸 적은 결코 없다”고 말했다. 이어 “H 대표와 원 전 원장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어 보였지만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H건설은 행정복합중심도시건설청(행복청)이 발주한 ‘정안 나들목∼세종시’ 도로 건설에도 참여했다가 공사 도중 도산하면서 굴착기, 덤프트럭, 포장장비 등에 대한 사용대금 2억500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2008년엔 대전의 상징건물이었던 ‘중앙데파트’의 폭파·해체 공사를 주도했다. 취재팀이 4월 말경 서울 중구 남산로에 있는 H건설 사무실을 찾았을 때 주소지는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 대신 그 옆에 조그마한 가건물이 한 채 있었다. 사무실을 홀로 지키던 직원 A 씨는 “삼척그린파워발전소 대비공사 2공구 공사가 H건설에 독이 됐다고 들었다. 규모가 작은 회사가 큰 공사를 맡았으니 무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이 H건설 주소로 등록된 경기 파주시의 또 다른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텅 비어 있었다.조동주·박훈상·최창봉 기자 djc@donga.com}

    • 201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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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 입학비리 혐의 영훈국제중-관계자 집 압수수색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신성식)는 28일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성적조작 등 입학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영훈국제중(서울 강북구 미아동)과 이 학교 관계자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후 3시 반경부터 약 5시간 30분 동안 영훈국제중에 검찰 수사관 20여 명을 보내 입학비리와 관련된 각종 서류와 컴퓨터 자료 등을 확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3월부터 한 달간 영훈국제중과 학교법인을 종합 감사해 비리사실을 적발하고 학교 관계자를 20일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감사에서 교감과 입학관리부장, 교무부장 등이 주도해 특정 학생을 합격시키거나 불합격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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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박훈상]경찰만 몰랐던 李회장 자택?… 중부경찰서는 CJ보호署인가

    ‘서울 중부경찰서가 CJ경찰서인가?’ 경찰이 이재현 CJ그룹 회장 빌라 절도미수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취재하면서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경찰은 27일 “22일 발생한 사건 장소는 이 회장 집이 아니다”고 했다가 10여 분 만에 “맞다”고 번복했다. 경찰의 말 바꾸기는 “비자금 의혹에 휘말린 CJ가 또 한 번 구설에 오르는 일을 경찰이 나서서 막았다”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정말 이 회장 집에 도둑이 든 걸 몰랐다”는 중부경찰서 해명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22일 오후 10시경 조모 씨(67)는 서울 중구 장충동 이 회장 빌라에 침입했다. 조 씨는 “술을 마셨더니 옛날에 절도했던 기억이 나 장충동을 찾았다가 낮은 철문이 보여 뛰어넘었다”고 했다. 담을 넘은 조 씨는 곧 빌라 경비원에게 발각돼 옆집 담장을 넘다가 5m 아래로 추락해 검거됐다. 경찰의 해명에 따르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조 씨가 침입한 집이 이 회장 빌라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조 씨가 추락한 빌라 입구에는 ‘OO레지던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어 행인도 누구나 이 빌라 이름을 알 수 있었지만 경찰 보고서에는 엉뚱하게 ‘××레지던스’라고 기재됐다. ‘××레지던스’라는 이름의 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은 피해자 이름을 집주인인 이 회장 대신 경비원 이름을 적어 놨다. 조 씨가 추락한 이 회장 집 옆 빌라의 지번주소는 △△6-1번지다. 하지만 경찰은 △△7번지라고 엉뚱한 주소를 적었다. 경찰의 허술한 대처인지 ‘CJ 감춰주기’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건이 알려진 27일 오후 2시경. 김도열 중부서 형사과장은 언론의 확인 요청이 들어오자 “이 회장 집이 아니다. 이 회장 집 절도 보도는 오보”라고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는 나중에 거짓말이 문제되자 “장충파출소에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하길래 언론에도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과장은 “파출소에서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거짓말한 꼴이 됐다”며 “일부러 이 회장 집을 감출 이유가 없다”고 28일 재차 해명했다. 경찰이 몰랐다던 이 회장 집은 장충파출소와 불과 300여 m 떨어져 있다. 빌라촌에는 이 회장뿐 아니라 회장 가족도 살고 CJ경영연구소도 들어서 있다. 동네 사람들도 다 안다는 이 회장 집을 하필 경찰만 몰랐다고 강변하니 ‘중부서는 CJ경찰서’란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이상한가?박훈상 사회부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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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J 李회장 집 도둑… 경찰 은폐 의혹

    비자금 조성 및 탈세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고급 빌라에 도둑이 들었다. 경찰은 사건이 알려지자 “이 회장 집이 아니다”라며 거짓말을 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중부경찰서는 22일 오후 10시경 중구 장충동 이 회장의 빌라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야간주거침입절도 미수)로 조모 씨(67)를 현장에서 붙잡아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22일은 검찰이 CJ그룹 압수수색을 한 다음 날이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당일 조 씨는 이 회장의 고급 빌라 2m 높이의 철문으로 넘어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마당을 배회하던 조 씨는 건물 1층에서 폐쇄회로(CC)TV를 감시하고 있던 경비 직원에게 발각되자 1.2m 높이의 담벼락을 뛰어넘다가 그대로 추락했다. 이 회장 빌라는 급경사에 위치해 담장 바깥쪽 아래는 5m 높이의 낭떠러지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조 씨는 얼굴에 피멍이 들고 골반뼈 등이 골절된 채 담장 밖에 쓰러져 있었다. 조 씨는 현금 100여만 원과 일자 드라이버, 소형랜턴을 소지하고 있었다. 경찰은 현금을 이 회장 빌라에서 훔친 것으로 보기 어려워 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현재 자신의 집에서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는 조 씨는 전과 14범으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에서 “내가 왜 거기 갔는지 모르겠다”며 범행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조 씨가 이 회장 자택인 줄 모르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부경찰서 김도열 형사과장은 27일 오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도둑이 든 집은 이 회장이나 이 회장 일가, CJ 계열사 임원 집이 아니다. 전혀 다른 사람의 집”이라며 “관할 파출소에도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차 취재팀이 절도 사건을 취재하자 김학중 중부경찰서장은 “이 회장 집은 맞지만 현재 거주지인지 단순 소유지인지 불분명해서 이 회장 집이 아니라고 했다”고 시인했다. 이후 김 과장은 “관할 파출소에서 이 회장 집이 아니라고 밝혀 아니라고 답한 것인데 다시 확인해 보니 이 회장 집이 맞았다”고 말을 바꿨다. 대기업 총수 집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관할 경찰서 형사과장이 정확한 장소를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장 자택 인근 빌라 경비원은 “27일 오전에도 경찰이 이 회장 빌라를 찾아와 CJ 직원과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을 한 것을 놓고 ‘CJ와 모종의 말이 오간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이 회장 빌라는 장충동 고급 빌라촌에 위치해 있다. 27일 오후 취재팀이 이 회장 빌라를 방문해 보니 CJ 소속 직원 서너 명이 집 앞에 있었다. 평소에는 직원들이 배치돼 있지 않지만 언론사 취재에 대응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박훈상·김성모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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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티만 걸친 男… 목줄 풀린 개… 공포에 떠는 女 방문노동자들

    수도검침원 김모 씨(52·여)는 9일 오후 수도계량기를 확인하러 홀로 경북 의성군 봉양면 손모 씨(31) 집을 찾았다. 과거에도 김 씨는 손 씨 집 마당에 설치된 수도계량기를 확인하고 돌아가곤 했다. 이날 집 안에 있던 손 씨는 김 씨가 검침하는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러곤 “욕실에 물이 새는 곳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그후 열흘째인 18일 김 씨는 인근에서 알몸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공무원인 남편과 세 아이를 둔 김 씨는 생활비와 자녀 대학 학비를 마련하려고 수도검침원 일을 시작했다. 사건 당일엔 아내의 일을 돕겠다고 하루 휴가를 낸 남편과 봉양면에 왔다. 담당구역이 넓어 남편과 따로 각 가정을 방문하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은 손 씨가 김 씨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24일 검거된 손 씨는 경찰에 “김 씨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휴대전화를 꺼내기에 경찰에 신고하는 줄 알고 죽였다”며 “성폭행했는지, 인근 야산에 어떻게 유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손 씨는 우울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부모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살았다.○ ‘나쁜 손’에 떠는 여성 방문근로자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수도검침원뿐 아니라 가스검침원, 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등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해 일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이 급증하고 있다. 업체들도 여성의 임금이 싼 데다 남자 직원이 방문하면 여성 고객이 문을 열어 주길 꺼리는 경우가 많아 여성 직원을 선호한다. 한 대형 정수기·비데 렌털업체의 방문 직원 1만3500여 명 중 85%가 여성이며, 수도권의 한 도시가스업체 검침원의 75% 이상이 여성이다. 대부분 40, 50대 주부인 이들은 적은 월급이지만 생활비, 자녀 교육비에 보태려고 억척스럽게 일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이다.그러나 경북 의성에서 살해된 김 씨 사건이 보여 주듯 홀로 남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여성 방문 근로자들은 예기치 않은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2011년 A 씨(55·여)는 자녀 대학 학비를 마련하려고 가스검침원 일을 시작했다. A 씨는 고객의 집에 들어가 가스검침을 하는 데 걸리는 ‘5분’이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집 안에서 여자나 어린아이 목소리 대신 남자 목소리만 들리면 더 불안하다. A 씨는 “혼자든 여럿이든 남성만 있으면 겨울에도 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 주는 일이 흔하다”며 “야한 농담을 건네고, 차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고, 뒤에 서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사람도 있다”고 토로했다.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B 씨(45·여)도 남자 고객의 성희롱이 고민이다. B 씨는 “70대 노인이 ‘딸 같다’며 자꾸 어깨를 주무르고 안으려고 해 피하다가 나중엔 나보다 나이 많은 동료에게 점검을 부탁했었다”며 “그 노인은 대신 간 동료의 가슴을 무턱대고 만지더니 ‘딸 나이라 그런 거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황당한 사고를 당해도 참아야 한다. 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C 씨(53·여)는 지난해 11월 고객이 기르던 애견에게 종아리를 물렸다. 주인은 사과는커녕 “사람을 절대 물지 않는 강아지인데 왜 당신만 물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C 씨는 “우리는 고객이 본사에 불만 접수를 하면 평가점수가 깎이고 예절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성희롱 등 각종 횡포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상한 소리를 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 남자에게 위협을 당해 혼비백산 도망친 사례도 있다. ○ 범죄 예방 대책은 메모지?불안에 떠는 여성 방문노동자들은 각자 노하우를 공유하며 범죄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가스검침원 이모 씨(51·여)는 집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현관문을 열어 둔 채 집 안에 들어간다. 이 씨는 “겨울엔 춥다고 문을 못 열게 하거나 일부러 문을 갑자기 닫아 버리는 남자가 많아 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검침원은 평소 행실이 나쁜 남자가 있는 집을 메모지에 적어 동료와 돌려 읽기도 한다. 또 방문하기 전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여성이나 어린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찾기도 한다.업체들은 방문노동자 안전 대책엔 손을 놓고 있다. 한 도시가스업체 관계자는 “가정을 방문했을 때 범죄 피하는 방법을 따로 교육하지 않는다”며 “다만 피해를 본 검침원이 있으면 다음 번 방문엔 남자 검침원을 보내는 등 지사별로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렌털업체 관계자는 “인적이 드문 곳이나 유흥가엔 남자 직원을 보낸다”며 “두 달마다 가정을 방문해 충분한 신뢰를 쌓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남성만 있는 공간에 여성 검침원이 홀로 방문하면 충동 범죄가 일어날 위험성이 높다”며 “가급적 2인 1조로 검침하도록 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훈상·김성모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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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면목동 층간소음 살인’ 40대 무기징역 선고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 30대 형제를 흉기로 살해한 40대 남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황현찬)는 층간소음으로 말다툼을 벌이다가 2명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 기소된 김모 씨(46)에게 25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으로 신혼인 형과 세 살 난 아이를 둔 동생이 목숨을 잃었고 그 여파로 아버지까지 사망해 엄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피고인 김 씨는 2월 9일 내연녀(49)가 사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아파트에 갔다가 설 명절을 맞아 가족이 모인 윗집을 찾아가 시끄럽게 군다며 실랑이를 벌였다. 김 씨는 내연녀 집에 내려와 칼을 가지고 다시 올라가 범행을 저질렀다. 사건의 충격으로 당뇨병 환자였던 형제의 아버지(61)는 병세가 악화돼 사건 발생 19일 만에 숨졌다. 검찰은 김 씨의 범행이 잔혹하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배심원 9명 가운데 6명은 무기징역, 2명은 징역 35년, 1명은 사형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이 의견을 참고해 형량을 결정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201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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