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 “염소가 ‘음매’ 하고 소리 내듯 아이들도 말수가 줄고 ‘대박’ ‘헐’ 같은 감탄사만 내뱉고 있어요. 아이들이 계속 자라는데 우린 권위적인 말만 하고 있으니 우리부터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마포구립 성산글마루 작은도서관 회의실. 어머니 독서모임 ‘책과 노니는 사람들’ 회원 9명이 함께 본 뮤지컬 ‘위키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뮤지컬 속 염소교수가 마법사의 저주로 언어를 잃게 되는 장면을 놓고 단순히 재밌다, 좋았다는 인상비평을 넘어 마법사·마녀의 역사적 의미, 말의 소중함, 소통의 중요성까지 논의가 확장돼 갔다. 이들의 수다 속에는 1년 반 동안 이어온 내공이 묻어났다. 》초등학생 남매를 둔 주부 최경미 씨는 독서모임을 하면서 웃음을 찾았다. 최 씨는 “아이를 키우며 인생을 희생해 왔는데, 여기서 내 인생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책을 손에 잡고 나서 삶의 지혜도 배우고, 이제는 지역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한다”고 말했다. 중학생 쌍둥이를 둔 성은숙 씨(43)도 “사춘기 자녀와 소통이 안 돼 늘 고민이었다. 청소년 책을 읽다 보니 자녀의 고민이 나도 겪었던 문제였음을 알았고 아이들과 대화도 잘 통하게 됐다”며 웃었다. 성산글마루는 2011년 12월 문을 열었다. 아파트 주민이 자발적으로 도서관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주민의 요구를 들은 마포구는 시설비와 운영비, 도서구입비를 지원했다. 도서관 단체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초기 건립을 도왔고, 위탁 운영은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맡았다. 장서 1만1000여 권을 갖춘 도서관에는 하루 평균 100∼150명이 찾는다. 반면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북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5월 관내 주민센터에 만든 어린이 작은도서관. 이곳에서 책을 읽는 어린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기존 새마을문고에 간판만 바꿔 단 이곳 서가에 꽂힌 책은 성인, 어린이로만 구분돼 있어 어린이가 원하는 책을 찾기도 힘들었다. 자동차로 10여 분 떨어진 민간 어린이 작은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가 어린이들로 북적거리고, 도서관이 마련한 어린이 독서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 중인 모습과 대비됐다. 해당 지자체는 10여 개의 작은도서관을 한꺼번에 개관하며 “지역 문화공동체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은도서관 운영 노하우를 익히기는커녕 경험 없는 자원봉사자를 뽑아 관리를 맡겼다. 자원봉사자는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어린이들 대부분이 주민센터에 볼일 보러 온 부모를 따라왔다가 잠시 들른다. 아직 지역주민과 연대하는 프로그램도 없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규정된 작은도서관은 건물 면적 33m², 열람석 6석, 보유장서 1000권 이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작은도서관은 2010년 3349개에서 2012년 3951개로 2년 새 600여 개 늘었다. 전국의 서점 수 1752개(2011년 현재)의 2배가 넘는다. 지난해 8월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는 ‘작은도서관 진흥법’이 시행되고, 올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작은도서관을 모범 복지 사례로 언급함에 따라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작은도서관을 세운 뒤에는 관리 소홀로 방치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마을작은도서관협의회 공동대표인 김소희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 관장은 “작은도서관은 규모가 작다고 작은도서관이 아니라 지역주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주민이 함께하고 같이 성장하는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지자체가 작은도서관 수에만 집착할 게 아니라 지역에 어떤 도서관이 필요한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에 어떤 작은도서관이 있는지 궁금하면 작은도서관 포털사이트(www.smalllibrary.org)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웃 간 전쟁 유발자’로 불리는 층간소음. 올해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 방화 폭력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사회 문제가 됐다. 책은 아파트 중심 사회에서 공포로 떠오른 층간소음을 소리공학에 근거해 설명해 준다. 충격음은 바닥이나 벽의 콘크리트, 철근을 타고 위아래층으로 전달되는데 특히 저주파 소음이 크게 전달된다. 층간소음은 50Hz 이하 저주파로 이뤄져 있다. 저주파 소음은 공명을 일으켜 거실이나 방에 큰 울림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저주파 소음이 사람의 귀보다는 신체나 촉감을 자극해 머리나 가슴에 통증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실제 실험에서도 저주파 소음을 들은 사람들이 어지러움과 가슴울림을 호소했다.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소음이라면 귀를 막으면 그만이지만 신체나 촉감을 자극하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아파트 구조도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거대한 울림통으로 변하고 있다. 아파트 높이가 올라갈수록 층간은 좁아지고 건축 자재는 가벼워져 소리는 더 크게 울린다. 사람의 코 고는 소리도 저주파로 이뤄져 있다. 코 고는 사람 옆에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띵한 것도 저주파가 머리를 울리는 공명 특성이 있어서다. 물론 사람을 살리는 소리도 있다. 책은 여름철 해변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으면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해변을 소개한다. 몽돌해변에는 주먹돌이 깔려 있어 파도가 밀려 나갈 때면 ‘짜자작∼’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백령도 해변은 손톱만 한 크기의 굵은 모래가 있어 ‘싸∼’ 하는 소리를 낸다. 파도 소리는 3∼7초 주기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음이 편안할 때 하는 심호흡과 주기가 비슷해 졸음을 유발한단다. 이런 자연이 내는 소리는 백색광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가지 무지갯빛으로 나누어지듯, 음폭이 넓어 백색소음이라 부른다. 대중매체에 자주 출연해 우리에게 익숙한 배명진 교수는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를 만들고 소리공학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 배 교수는 소리공학자답게 소리 분석과 소리 활용에 대해 썼고, 같은 대학 영어영문학과의 김명숙 교수는 사람의 목소리에 얽힌 이야기를 썼다. 책은 재밌는 TV 교양 프로그램을 보듯 잘 읽힌다. 1, 2초 찰나에 담긴 살인자의 목소리를 분석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고, ‘개도 웃을 일’이란 표현의 진위를 가리려고 개가 웃는 소리를 녹음해 다른 개에게 들려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굵어지는 이유도 들려준다. 배 교수의 꿈은 늙지 않게 만드는 소리라는 의미의 ‘불로(不老) 톤’을 찾는 것. 소리로 질병과 탈모, 마음의 병을 고친 사람들의 체험도 소개한다. 책에서 이미 불로 톤을 찾는 해법을 알려 줬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답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내부고발자의 용기가 사회를 정의롭게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공익을 위해 희생한 대가가 컸습니다. 조직은 조용히 넘어갈 일을 쓸데없이 문제 삼아 분란을 일으켰다며 교묘하게 보복하고, 내부고발자는 배신자란 낙인이 찍혀 재취업도 못한 채 숨어 살아야 했어요.” ‘고발 역사의 수레바퀴’(이담북스)의 저자는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심의관 곽형석 씨(49). 행정고시 출신인 그는 2001년 부패방지법 제정 이후 부패방지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부패방지 업무를 맡아왔다. 지난달까지 신고심사심의관으로 일하며 내부고발 신고, 보상, 보호업무를 총괄했다. 곽 씨는 내부고발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로잡을 방법을 고민하던 중 역사에서 길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주말이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했다. ‘고발’을 키워드로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사를 정리해 나갔다. “고발을 수용하는 기관인 고발관아(告發官衙), 고발을 유도하는 불고지죄(不告知罪), 불법을 행한 자가 자수하면 죄를 감경하는 자수지례(自手之例), 적극적인 고발자 보호가 네 개의 바퀴가 되어 역사를 이끌어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죠.” 고발 풍토가 생긴 것은 고려 광종 때다. 광종은 미약한 왕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하급관리나 노비들까지 귀족이나 지방호족을 고발하도록 권장했다. 조선시대에는 고발정치가 제도로 자리 잡아 신문고(申聞鼓)가 생겼다. 고려·조선시대 조정은 봉사(封事), 밀봉(密封)같이 상소를 비밀리에 할 수 있는 제도도 운영했다. 특히 내부고발자를 보복한 자를 찾아 벌을 주고 고발한 노비는 면천시켜주거나 양인이면 관직을 주고 관리이면 승진을 시켰다. 오늘날보다 진일보한 정책을 펼친 것이다. 그렇다면 내부고발자를 ‘의리를 저버린 배신자’로 낙인찍는 정서는 어디서 왔을까. 고려·조선시대에는 탐욕에 눈먼 관리들에 저항해 민란을 일으킨 임꺽정 같은 인물을 고발한 자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내부고발을 식민지 지배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본은 자기들에게 유익한 밀고를 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정책을 폈다. 그런 밀고로 독립군이나 의병장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며 ‘모든 내부 고발은 나쁘다’는 인식이 쌓였다. “역사를 보면 고발을 이용해 자신의 죄를 덮거나 경쟁자를 무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짐을 수레에 올려도 수레는 앞으로 갑니다. 긴 역사 속에서 내부고발자는 분명 공신이었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비싼 대학(앤드루 해커, 클로디아 드라이퍼스 지음·지식의 날개)=평균 25만 달러(약 2억6000만 원)의 등록금을 받는 미국 명문대의 교육 내용이 형편없음을 폭로한다. 학생 교육은 외면하면서 시간강사만 착취하는 종신교수 연봉에 가장 많은 등록금이 지출된단다. 등록금은 싸지만 교육이 알찬 대학정보도 담겼다. 1만7800원.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김용희 지음·작가세계)=중견 평론가 김용희의 첫 소설집. 영화와 대중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해 온 저자의 2009년 소설 데뷔작 ‘꽃을 던지다’를 비롯해 8편의 단편을 엮었다. 1만2000원. 삶의 여백 혹은 심장 야구(김은식 지음·한겨레출판)=굴곡 많은 인천 야구 100년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야구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장감 넘치는 사진과 기록을 바탕으로 개항 이후 사회사도 함께 풀어냈다. 1만1000원.어쩐지 돌연변이(조유현 지음·21세기북스)=2002년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페리에서 바다로 투신한 천재 극작가 강월도의 삶을 추적한 논픽션. 그가 남긴 일기, 수첩, 편지, 사적 자료를 통해 그의 고뇌를 엿보고 그가 남긴 유산을 집중 조명했다. 1만5000원.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청어람미디어)=달라이 라마는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20세기 인도 사상가인 저자를 추앙했다. 저자가 숨지기 전 2년간 녹음한 27개의 녹음일기를 담았다. 1만4800원.교양인의 독서생활(시미즈 이쿠타로 지음·기담문고)=일본 대표 지식인인 저자는 책읽기를 고독함으로 정의한다. 고독은 성숙한 내면의 강화를 이뤄 내고, 고독을 즐길 줄 아는 것은 교양인의 특권이란다. 1만3800원.Hi, 미스터 갓(핀 글·파파스 그림·위즈앤비즈)=가정에서 학대받는 일곱 살 꼬마로부터 어른도 몰랐던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인생 통찰을 배운다. ‘무지개 원리’의 저자 차동엽 신부가 편역했다. 1만2000원.누군가는 나를 바보라 말하겠지만…(김남희 지음·이와우)=저자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대형 로펌 소속 억대 연봉의 변호사로 일했다. 연봉을 버리고 참여연대 복지노동팀장으로 변신해 행복을 찾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1만4000원.문성실의 요즘 요리(문성실 지음·상상출판)=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간단하지만 폼 나는 요리를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밥숟가락 하나로 재료를 계량하는 방법처럼 실용적인 정보를 알차게 담았다. 1만6800원.장사 잘되는 카페(전기홍 지음·마일스톤)=대기업 마케터 출신인 저자는 부업으로 카페를 창업해 하루 15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을 거뒀다. 카페 장사 10년 노하우를 전수한다. 1만5000원.}

《 #1장: 2013년 겨울 숨바꼭질 영화 ‘숨바꼭질’을 보면 남의 집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나는 학교에 숨어 산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다음 달이면 꼬박 1년째다. 노숙인이냐고? 천만에! 비록 나이는 스물여덟이지만 난 엄연한 대학 2학년생이다. 내 집 주소는 경기 의왕시 모락산 자락에 자리 잡은 계원예술대 캠퍼스 평생교육관 1층. 원래는 학생회에서 쓰는 창고였지만 현재는 ‘디자인 그룹 점, 점’이라는 동아리방이다. 내가 여기 산다는 것은 교직원이나 대부분 학생에겐 비밀이다. 밤늦게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동아리방에서 잠드는 친구도 많으니까 잠자는 건 큰 문제가 안 된다. 빨래를 해결하고 몸을 씻는 게 큰 문제다. 》 빨래를 해야 할 때는 야음을 틈타 10L 세탁기가 실린 손수레를 민다. 새벽 2시 학교 경비원도 잠들었을 시간, 세탁기 호스를 공용화장실 안 대걸레 씻는 수도꼭지에 연결한다. 사람들이 대소변을 해결하는 공간에서 내 옷들은 때를 벗는다. 9월 중고 가전센터에서 10만 원을 주고 산 구형 세탁기는 늘 소리가 요란하다. 일주일 치 빨래를 먹은 세탁기가 힘이 부치는 듯 윙윙거리며 몸을 떤다. 나도 혹시 누군가가 볼까 불안에 떤다. 손수레를 밀고 텅 빈 복도를 지나 다시 방에 들어선다. 사람들 눈을 피해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하던 때를 떠올리면 호사가 따로 없다. 자취방 살림은 단출하다. 책상, 책장, 접이식 침대와 매트리스, 소형 냉장고. 모든 살림은 학교 주변 폐기물재활용장에서 주워 온 것이다. 겨울엔 역시 주워 온 전기요 위에서 잠을 청한다.#0장: 2013년 여름 투명인간 겨울보다 무서운 게 여름이었다. 방은 손이 닿는 곳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질퍽거렸다. 곰팡이가 눈에 띈다 싶더니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방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곰팡이가 방을 삼키는 건 찰나였다. 옷걸이에 걸어둔 겨울 코트 지퍼를 내렸더니 검은색 안감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곰팡이의 습격을 피한 건 매일 입는 여름 티셔츠 몇 벌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곰팡이가 몸에 옮겨 붙지 않았는지 살폈다. 학교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 동기보다 예닐곱 살 많다는 이유로 학부 대표가 되면서부터였다. 신입생을 맞을 준비로 매일 밤늦게까지 학부학생회 회의실에서 회의를 했다. 동기들이 집에 돌아가면 할 일이 더 있다며 회의실에 남아 잠을 잤다. 눈치가 보이면 학생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다른 동아리방에 갔다. 당장 쓸 물건은 가방 서너 개에 나눠 담고 옷가지는 캐리어에 넣어 끌고 다녔다. 무거운 짐은 박스에 넣어 건물 후미진 곳에 보관해뒀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완벽한 투명인간이 될 순 없었다. 나의 숨바꼭질 생활을 눈치 챈 몇몇 술래가 압박을 해왔다. “형. 여기 우리 학생회 공간인데, 올 때마다 형 집에 오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빠요.” 주섬주섬 짐을 쌌다. 동기들은 어질러진 이불과 옷가지를 훑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3월 총학생회에 부탁을 해 창고로 쓰던 공간을 얻었다. 하지만 9월 학비 마련을 위해 휴학을 하자 다시 문제가 제기됐다. 나를 안쓰럽게 여긴 친구 20여 명이 동아리를 만들어 내가 안거할 공간을 마련해줬다. 다음 학기에 복학할 몸이지만 여전히 신분이 불안한 나는 더욱 숨죽여 산다.#2장: 기자의 현장답사 기자가 그의 사연을 접한 것은 10월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비밀리에 숨어 살 수 있단 말인가. 반신반의하며 그가 ‘자취방’이라고 주장하는 동아리방으로 찾아갔다. 문을 열자 동아리방에 있어야 할 커다란 회의용 탁자나 의자들은 없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 천장에 걸린 속옷, 양말, 수건이 영락없는 자취방 모양새였다. 바닥에는 목욕 바구니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방 크기는 싱글 침대 4개를 넉넉히 놓을 수 있는 크기였다. 집주인은 계원예대 2학년 조선종 씨. 조 씨가 정말 1년 동안 살았을까. 자취방 앞에서 조 씨와 마주친 청소부 아주머니는 자주 봐서 친근하다는 듯 서로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청소부 아주머니와 학교 경비원은 “집이 멀어서 여기서 자주 잠을 자는 학생” 정도로 알고 있다고 했다. 9월 학생 자치공간을 점검하러 나온 한 교직원에게 자취방이 발각되기도 했단다. 교직원은 “동아리 공간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돌아갔다고 한다. 조 씨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이 궁금했다. 한 학생은 9월 총학생회를 찾아가서 자취방 점거를 문제 삼았다. 조 씨 동급생인 여학생 A 씨(21)는 “친한 친구들은 신기하다, 딱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싫어하는 친구는 학교 전기와 물을 공짜로 쓰니까 뻔뻔한 도둑놈 심보라고 욕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인터뷰 도중 바로 옆방인 학생회 사무실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그의 목소리는 쪼그라들었다. 그는 “누군가가 자취방을 문제 삼을까 봐 늘 불안에 떨며 산다”고 했다. 잘 살고 있어도 불안한 20대 후반인데, 불안한 주거공간에 홀로 누워 있으면 외로움과 설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래서 여름부터 ‘고다미’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를 친구에게 얻어 동거하고 있다.#3장: 투명인간의 변명 “방값 벌려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잠깐이지만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이지만 학교에 살 권리는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그도 원래 학교 앞 고시텔에서 살았다. 한 달 방값은 48만 원. 방은 침대와 책상만으로 꽉 찼다. 딸린 화장실은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았다. 주말이면 인근 지하철역 커피전문점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시급 5000원. 방값을 내면 남는 돈은 없었다. 그는 2001년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고 학교를 관뒀다. 그가 드러머로 활동했던 밴드 ‘워터멜론’은 같은 해 10월 국내 록페스티벌 원조 격인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 8개 팀에 뽑혀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중도 포기한 음악에 대한 아쉬움은 음악활동을 이어간 나머지 밴드 멤버의 공연 무대 사진을 찍으며 달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연평도 포격 현장,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현장을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현장에서 홀로 뛸 때마다 사진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었다. 배움의 갈증이 극에 달해 대학 문을 두드렸다. 창의적인 예술가를 키우는 학교 커리큘럼과 교수진이 좋아 12학번으로 아트앤플레이군(群·학부)에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는 대신에 학비, 생활비를 모두 책임지겠다고 부모님께 약속했다. 입학금 500만 원은 벌어둔 돈으로 충당했다. 1학년 2학기부터 학자금 생활자금 대출을 받았다. 꿈에 그리던 학교에 왔는데 교수들은 주말에 각종 전시회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과제를 자주 냈다. 주말에 커피숍에서 일하느라 번번이 전시회를 가지 못했다. 주중에 배운 게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까, 늘 조바심이 났다고 했다. “제게 주어진 대학생활은 딱 2년밖에 없어요. 잠은 어디서든 잘 수 있지만 예술 공부는 지금 아니면 할 수가 없어요.”#4장: 지금도 어디선가 숨바꼭질 벌일 청춘들 계원예대는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했던 고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했다. 그가 만든 설계도에는 기숙사가 포함돼 있었다. 학교에는 기숙사 예정용지임을 알리는 팻말과 함께 공터가 있었다. 지금은 팻말은 사라지고 텃밭으로 변해 있었다. 기숙사 문제는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소재 주요 43개 대학 기숙사 수용률도 9.6%에 불과하다. 청년주거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민달팽이 유니온’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지난달 펴낸 ‘청년 주거빈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청년(20∼34세)의 14.7%인 139만 명이 지하 방과 고시원 같은 주거빈곤 상태에서 살고 있다. 최저 주거기준인 4평(약 14m²)을 마련하는 데 월 평균 50만 원이 든다. 시급 5000원을 고려하면 월 평균 10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에필로그 마지막으로 기자가 물었다. “기사화되면 시끄러운 일이 생길 수 있고 자취방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조 씨가 답했다. “1980년대 대학생 선배들처럼 짱돌을 던지면서 시위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 대신 저는 예술대 학생이니까 청년 주거문제를 학교에 직접 살아봄으로써 퍼포먼스 아트로 풀어낼 순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쫓겨나면 학교에서 노숙하던 그때부터 다시 시작해야죠.”의왕=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름 전정식. 피부색깔 꿀색. 정이 많고 마른 편이다. 음식은 맛있게 먹는다. 뭐든 잘 소화한다. 배설 능력 완벽. 순하고 친절하며 매우 착하고 귀엽다. 입양에 추천한다.’ 벨기에 입양아 출신 만화가 전정식(융 헤넨·48) 씨는 1970년 다섯 살 때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굶주린 아이를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겼고, 아이는 다음 해 이런 메모와 함께 벨기에 가정에 입양됐다. 그가 그린 자전 만화 ‘피부색깔=꿀색’(길찾기·사진) 개정증보판이 이달 출간됐다. 낯선 땅에서 한국계 입양아로 자란 성장기를 담은 2009년 한국어판에 2010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소회를 더했다. 그가 감독한 장편 애니메이션 ‘피부색: 꿀’은 지난해 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서 관객상과 유니세프상을 수상했고, 7∼11일 열린 제15회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 2013)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다. 18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그를 만났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씨는 벨기에, 프랑스에서 판타지 만화 작가로 두꺼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만화에는 일본 중세를 배경으로 사무라이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어릴 때는 한국을 외면했다. 차라리 나와 피부색은 같지만 나를 버리지 않은 일본인이 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는 버려짐, 뿌리가 뽑힌 삶,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는 “만화를 그릴 때마다 겉도는 느낌이었다. 에둘러 가기보다 내 이야기를 직접 그리자고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생애 처음으로 붓을 들고 수묵화 양식으로 만화를 그린 작품이 ‘피부색깔=꿀색’이었다. 판타지 만화를 그릴 땐 종이를 화려한 색채로 가득 채웠지만 이번엔 흑백 그림에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토리에 더 집중하게 했다. 그의 만화에는 페이소스 넘치는 유머와 절절한 슬픔이 교차한다. 어린 나이에 성적 호기심을 못 이겨 동갑내기 벨기에인 자매의 가슴을 몰래 만지는 장면에 웃음이 터지고, 벨기에 어머니가 내뱉은 ‘썩은 사과’란 욕설에 절망하고 잠재의식 속에 남은 친어머니 얼굴이 늘 우산으로 가려져 있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해진다. 만화는 같은 학교를 나온 한국인 입양아 친구들의 불행한 삶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고, 목을 매달고, 손목을 그어 목숨을 끊었다. 살아남은 친구도 정신병원을 오갔다. “그 장면을 그리며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친구들이 자살한 장면을 그리는 일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전적 이야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기에 참고 그렸어요.” 전 씨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 여성과 결혼해 피부색이 똑같은 딸을 낳았다. 그리고 다시 찾은 한국에서 끊어진 인생의 줄을 이으려면 자기 뿌리를 받아들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에게 ‘한국어를 배울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어를 ‘다시’ 배울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다섯 살 때까지 한국말을 했을 테니 다시 배우는 셈이죠. 언젠가 프랑스어를 잊고 한국말만 하고 살지 않을까요. 한국과 관련된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 ‘피부색: 꿀’도 내년 4월경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그는 입양인 유럽인보다 한국인이 자신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 주길 기대했다. “한국인이 (입양아인)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그 대답이 듣고 싶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말(馬)의 해인 2014년 10대 소비트렌드 키워드로 ‘다크호스(DARK HORSES)’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2007년도부터 매년 유행할 핵심 트렌드의 영어 알파벳 첫 자를 엮으면 그 해 간지(干支) 동물로 치환되는 키워드를 선정해왔다. 19일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14’(미래의창·사진)에서 그 첫 번째 트렌드인 D는 ‘Dear, got swag?’(‘스왜그’의 가벼움). 스왜그는 ‘멋지다’ ‘뻐기다’란 의미의 힙합 용어로 ‘쿨하다’에서 한 단계 진화한 ‘정형화되지 않은 자기 고유의 멋과 느낌을 표현하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김 교수는 ‘경박단소’한 가벼움이 때론 참기 어렵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의 주된 흐름이라고 봤다. 이어 A는 ‘Answer is in your body’(몸이 답이다)를 함축한다.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찾으려는 현상이 확대되는 것을 뜻한다. 밤에 달리는 ‘나포츠족’, 블루칼라의 노동과 화이트칼라의 전문성을 접목한 신종 직업 ‘브라운칼라’의 출현을 예로 들었다. R는 ‘Read between the ultra-niches’(초니치, 틈새의 틈새를 찾아라). 니치(틈새)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 작고 협소하지만 특출한 시장의 출현을 예고한다. K는 중년의 생활방식과 결별하는 ‘Kiddie 40s’(어른아이 40대)의 확산을 의미한다. 또 HORSES에 맞춰 △여러 산업이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패치워크’(Hybrid Patchworks) △소비자가 직접 판을 펼치는 ‘판 2.0시대’(Organize your platform)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해석의 재해석’(Reboot everything) △탄탄한 시나리오로 짜릿한 우연을 연출하는 ‘예정된 우연’(Surprise me, guys!) △대중문화 시장에서 확산되는 관음증의 일상화(Eyes on you, eyes on me) △직설화법이 각광받는 ‘직구로 말해요’(Say it straight)를 제시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부제는 ‘건축 거장 15인, 그들의 생각과 스케치를 훔치다’. 앞뒤 표지는 선명하고 군더더기 없이 책 내용을 전한다. 앞쪽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거장 15명의 얼굴 스케치가 하얀 바탕에 새겨져 있다. 뒤편에는 대표 건축물 스케치가 있다. 건축가인 저자가 20여 년간 건축물을 답사하고 쓴 글과 스케치, 직접 찍은 사진을 책에 담았다. 건축물을 만나기 전에 건축가의 건축 세계부터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연두색 바탕 종이 위에 담아 그들의 철학과 생각을 강조했다. 또 건축가가 쓴 글이나 말을 담은 문장은 다른 색깔로 처리해 눈에 더 잘 띄게 했다. 책 말미에는 건축 답사를 위한 안내, 함께 읽으면 좋은 책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독일 베를린의 ‘유럽 유대인 학살 추모관’에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이곳에는 검은색 노출 콘크리트 석비 2711개가 모여 장관을 이룬다. 가로(95cm)와 세로(2.375m)는 같지만 높이는 최대 4m까지 다양하다. 석비 사이의 간격은 95cm.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다. 굴곡진 구릉지 지면과 다양한 석비의 높이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곳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고 애통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석비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어른도 있고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아이도 있다. 저자는 “설계의 개념인 불안정성과 혼돈이 인간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는 아름다운 결과를 낳은 것은 작은 기적이다”라고 썼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남과 북(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문학과 지성사)=영국 빅토리아 시대 남부 여성 마거릿 헤일과 냉정한 북부 출신 사업가 존 손턴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사회소설. 당시 사회문제로 떠오른 신흥 산업자본가와 임금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그렸다. 2만2000원.인간의 조건(고미카와 준페이 지음·잇북)=일본의 소설가 고미카와 준페이가 쓴 대하소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용에 끌려간 주인공 가지의 눈에 비친 침략국가 일본의 만행과 잔학성을 고발했다. 전 6권, 각 권 1만3000원.신경 과학의 철학(맥스웰 베넷, 피터 마이클 스티븐 해커 지음·사이언스북스)=생리학자와 인지철학자가 철학적 함의를 간과한 신경 과학 연구를 비판하며 인간의 심적 속성이 뇌의 부분이 아닌 인간 전체의 속성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학자 6명이 함께 번역했다. 4만 원.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김영숙 지음·휴먼아트)=‘손 안의 미술관’ 시리즈 첫 책.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 회화 갤러리에 소장된 6000여 작품 중에서 놓쳐선 안 될 그림 100점을 골라 추천한다. 1만4000원.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백영서 지음·창비)=연세대 국학연구원장인 저자가 핵심현장, 복합국가, 근대의 이중과제론, 이중적 주변의 시각이란 4개의 키워드로 동아시아 평화 공생의 길을 모색했다. 1만6000원.예수 모습·성경 미술(정양모 정학모 정웅모 지음·수류산방)=‘삼형제 신부’로 유명한 신부들이 성서학과 미술사 내공을 살려 낸 첫 공동 저서. 성서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미술사에서 돋보이는 그림과 조각을 소개한다. 2만9000원.검은 고독 흰 고독(라인홀트 메스너 지음·필로소픽)=저자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 신화를 세운 전설의 등반가다. 저자의 동생이 낭가파르바트 등반에서 눈사태로 숨진 뒤 8년 만에 낭가파르바트에 오르며 담은 내면의 기록. 1만4500원.명의 14인의 365일 건강 밥상(강재헌 외 지음·서울문화사)=음식으로 암도 잡을 수 있다. 국내 명의들이 각종 질병을 고치는 데 이로운 건강 밥상을 소개한다. 2만 원.2014 세계업계지도(글로벌기업조사회 지음·알에이치코리아)=세계경제를 9개 산업군, 45개 업종으로 나눠 분석해 내년 세계경제 지형도, 기업별 세력도를 그려냈다. 1만6000원.}

나무는 인생을 나이테에 기록한다. 나무 에세이 ‘나무가 청춘이다’의 저자 고주환 씨(53)는 나무가 곧 인생이고 운명이었다. 그는 치악산 자락 복자기나무숲이 울창한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황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6·25전쟁으로 피란 갔다가 돌아왔을 때 마을 집들의 나무문짝은 군인들이 땔감으로 쓰느라 모조리 떼어낸 뒤였다. 아버지는 나무문을 짜서 팔아 생계를 잇겠다며 목수로 변신했다. “아버지가 쉰여덟에 낳은 막내라 목수 일을 하실 때 늘 곁에 붙어 함께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무의 쓰임이나 성질에 익숙해졌어요. 아비 없이 살아갈 날이 많은 막내를 걱정하느라 엄한 모습도 보이셨지만 물참대(속이 빈 낙엽관목) 피리를 손수 만들어 건네주시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고 씨는 ‘민초 작가이자 토속식물의 어원 연구가’를 자처한다. 나무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을까 궁금해서 다방면으로 공부했다. 책에서는 고로쇠가 뼈에 이롭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됐다는 설을 반박한다. 오히려 튼튼한 고로쇠나무가 농사기구로 쓰여 왔기에 농사타령 ‘땅 고르세’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음운은 발음하기 쉬운 쪽으로 변하는데 발음이 쉬운 골리수가 발음하기 어려운 고로쇠로 변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손톱 밑에 때 안 묻은 학자들은 나무 이름을 우리 삶과 상충되게 짓는데 어원에 대한 공개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조 씨는 과거 사대부가 칭송하고 예술적 대상으로 삼았던 소나무 전나무보다 잡목들에 더 진한 애정을 갖는다. 민초의 아들이기에 삶 속에 쓰임이 많았던 싸리나무 물푸레나무를 가장 아낀다. 그는 “나무는 우리 가까이 있는 생활도구 놀이도구였는데 이젠 중장년층마저 나무에 대한 기억을 잊고 단절된 채 살아간다. 자라나는 후손들도 교과서에 실린 충절 기개 같은 나무의 박제된 이미지를 배우고 있는데 그들과 나무를 이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책은 3부작으로 완성될 예정이다. 1부 격인 ‘나무가 민중이다’(2011년)에선 궁핍한 부모 세대에게 도구로, 식량으로 힘이 돼 준 나무에 대해 썼다. 이번에는 청년이 돼 만난 나무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다. 다음 ‘나무가 인생이다’에선 단란한 가정을 꾸려 인생을 알아가며 만난 나무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고 씨는 경기 부천 공단의 금속 제조업체 사원으로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주중에는 금속을 만지고 주말에는 산천을 돌며 나무를 만나고 주말농장에서 농사도 짓는다. 나무와 더불어 살다 보니 생각도 나무와 닮아 있었다. “나무가 그냥 있는 것처럼 보여도 뿌리와 줄기, 잎사귀는 살아남으려고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툭 떨어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죠. 요즘 청춘이 어렵다며 성공한 어른들은 무작정 위로만 건네는데,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지 말고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삶이 값어치가 있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난달 31일 방영된 SBS 드라마 ‘상속자들’ 8회. 주인공 김탄(이민호 분)의 침대에는 임현정 시집 ‘꼭 같이 사는 것처럼’과 김언희 시집 ‘요즘 우울하십니까?’가 놓여있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펴낸 시인선 시집이다. 침대에 누운 김탄은 임현정 시집을 집어 든다. 제목의 ‘사’ 자에 작대기를 그어 ‘꼭 같이 자는 것처럼’으로 고친 다음 표지 사진을 찍어 여주인공 차은상(박신혜)에게 보낸다. 이처럼 ‘상속자들’에는 간접광고(PPL) 계약을 맺은 문학동네 책들이 계속 노출되고 있다. 드라마 배경인 제국고에서는 문학동네 시집의 시를 읽어주는 방송이 나온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도 극중 드라마 전개 복선을 암시하며 등장했다. PPL 효과는 얼마나 될까.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임현정 시집은 드라마 방영 전 2주간 단 1권이 팔렸지만 방영 후 같은 기간 60권이 팔렸다. 방영 전 130권이 팔린 ‘위대한 개츠비’는 방영 후 200권이 나갔다. 예스24 문학담당 김희조 MD는 “최근 PPL 책은 드라마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거나 결말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세계 고전 분야의 책이 주목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전속 PPL은 수억 원? 출판계에서 ‘상속자들’은 방영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드라마 대본을 쓴 김은숙 작가의 이전 드라마에 나온 책들이 연이어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0년)에서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비룡소)가 나와 한 달 만에 12만 부가 팔렸다. 문학동네와 PPL 계약을 한 ‘신사의 품격’(2012년)에서는 신경숙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년)가 등장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재진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신사의 품격’의 PPL 계약금은 1억 원 선으로 알려졌다. ‘상속자들’ 제작사 관계자는 “구체적 계약금은 밝힐 수 없다. PPL 계약을 할 때는 책 노출 조건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에 따라 결정된다. 책은 출판사에서 홍보하고 싶은 책과 작가가 드라마 전개상 녹이고 싶은 책을 절충해 정한다”고 말했다. 문학동네 염현숙 편집국장은 “드라마 PPL로 매출액을 올린다기보다 영상 매체에 익숙한 시청자를 신규 독자로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A출판사는 조만간 방영 예정인 케이블TV 드라마에 주인공이 책을 들고 잠깐 읽는 모습을 노출하는 조건으로 제작사로부터 3000만 원을 제의받았다가 거절한 바 있다. 대형출판사에는 드라마 제작사의 PPL 제안서가 꾸준히 돌고 있다. A출판사 관계자는 “당장 TV에 나오면 책이 잘 팔리겠지만 1, 2만 부만 나가선 오히려 손해를 본다. 비싼 PPL 비용을 생각하면 도박에 가깝다고 생각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진짜 대박은 ‘우연의 대박’을 따른다 하지만 TV 드라마에 등장해 대박 난 책은 정식 PPL 계약을 한 책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에 나왔다가 100만 부가 팔린 미하엘 엔데의 ‘모모’(비룡소)의 성공 이후 출판사도 몰랐던 ‘우연의 대박’이 이어지고 있다. 문학동네만 해도 PPL 계약을 맺은 ‘상속자들’이 아닌, 다른 드라마에 깜짝 등장한 책이 특수를 누리는 바람에 환호했다. 13일 방영된 ‘상속자들’과 동시간대 경쟁 드라마 KBS ‘비밀’에 나온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은 마지막 회를 앞두고 드라마 결말을 암시해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며 폭발적 관심을 모았다. 문학동네 염현숙 편집국장은 “드라마에 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14일 아침부터 주문이 밀려와 2500여 권을 출고했다”고 밝혔다. 6월 29일 방영된 SBS 주말드라마 ‘결혼의 여신’에 나온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다빈치)은 최근까지 6만 부가 팔렸다. 2000년 출간 이후 방영 전까지 1만 부도 팔리지 않은 책이었다. 드라마에 책이 나온 것도 몰랐던 출판사는 다음 날 밀려오는 주문 전화에 어리둥절해했다. 일본 동화 ‘가부와 메이 이야기’ 시리즈(전 6권·아이세움)도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에 나온 다음 매년 1000세트 팔리던 책이 2만 세트가 팔렸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PPL은 영상매체의 영향력에 기대 쉽고 편하게 가려는 방식이라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렵다. 일회성 방송 노출로 승부하려 하지 말고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마케팅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가수와 연기자 신인 선발에만 서바이벌 방식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신예 만화가 선발에도 서바이벌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네이버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하는 ‘2013 대학만화 최강자전’은 독자 투표 방식의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린다. 올해 2회를 맞은 이번 대회에선 지난달 29일부터 29개 대학, 165개 팀이 예선전에 참가해 독자 투표(총 40여만 표)를 거쳐 32개 팀이 살아남았다. 예선전에는 작품 첫 회만 공개됐으며 한 단계씩 올라갈 때마다 다음 회가 공개된다. 32강전 투표는 15일 오전 9시부터 5일간 진행된다. 올해는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12개 팀,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7개 팀, 상명대 만화학과 3개 팀 등이 32강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이현세 세종대 교수가 멘토를 맡은 세종대 강지영 현예지 팀의 ‘오! 마이갓’(사진)이 우승했다. 2년 연속 가장 많은 32강 진출 팀을 배출한 청강문화산업대의 설욕이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최종 우승자는 다음 달 30일 결정된다. 우승상금은 1000만 원. 상위 3개 팀에는 네이버 웹툰 연재 기회도 주어진다. 홈페이지 comic.naver.com/contest/round.nhn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광복 1세대 작가로 꼽히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권영우 화백(사진)이 14일 오전 4시 반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51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1958년 초현실주의적 화풍의 ‘바닷가의 환상’을 그려 ‘화단의 이단아’로 주목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폭격이 있은 후’ ‘고요’ ‘섬으로 가는 길’이 있다. 국전 초대작가상, 대한민국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허백련미술상, 제2회 올해의 미술인상을 수상했다. 유족은 부인 박순일 씨와 장남 오협(건축가) 차남 오현 씨(오산전문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16일 오전 8시. 031-787-1511}

출판계에선 너도나도 책이 안 팔린다며 하소연인데도 멀쩡한 직장을 관두고 출판사를 차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차린 출판사는 1∼3년밖에 안 된 신생 출판사지만 고정 독자층을 꾸준히 확보해 나가고 있다. 다양한 장르소설을 기다려온 팬들도 출판사 창업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겉모습은 아저씨지만 책 이야기만 꺼내면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그들을 만났다. 공상과학(SF) 전문 출판사 불새의 대표 안태민 씨(36)는 공무원 출신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이지만 몰리는 일을 처리하느라 휴일도 없이 일했다. 승진 욕심이 없는 그에게 일은 강제노역이었다. 그때 읽은 책이 로버트 A 하인라인의 SF소설 ‘은하를 넘어서’였다. “소설 속에서 딸이 달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느냐고 아버지에게 묻자, 아버지는 ‘그건 네 문제가 아니냐’고 답합니다. 그때 울컥했습니다. 우주는 드넓고 인생은 한 번뿐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추리 판타지소설 전문 출판사 피니스아프리카에의 박세진 대표(42)는 건축회사 영업직으로 일하다가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사표를 던졌다. 그가 태양을 본 곳은 술집. 박 씨는 “거래처 사장에게 술 접대를 하는데 아침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창밖에 뜬 해를 보며 술잔을 받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회의가 들었다”고 기억했다. SF와 판타지 분야의 국내 작품 출판에 주력하는 온우주의 이규승 대표(42)도 컴퓨터 기술자지만 좋아하는 책을 펴내고 싶어 출판계에 뛰어들었다. 보통 신생 출판사는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독립해서 차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도 “어느 출판사에서 일했느냐”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출판계 외부 출신임을 오히려 장점으로 내세웠다. 피니스아프리카에의 박 대표는 “편집자로 오래 일한 출판사 대표는 인터넷 서점 MD(구매담당자) 앞에서 눈물을 쏟아낼 정도로 영업을 어려워하던데 영업을 오래한 내겐 오히려 신바람 나는 도전일 뿐”이라고 말했다. 온우주의 이 대표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 서서 독자들이 사고 싶은 책을 만들려고 고민하고 시도하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가 한 문화센터에서 강의하는 ‘1인 출판 특강’의 동문이기도 하다. 북스피어는 마쓰모토 세이초와 미야베 미유키 같은 특정 추리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펴내고 있다. 김 대표는 “분야를 정해서 깊이 있는 책을 꾸준히 내고 해당 분야 독자들과 교감하는 전문 출판사가 더 늘어나야 한다. 다양한 이력을 가진 출판인이 늘어나면 출판시장에도 활력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한국인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일중독이다. 유승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일중독이 스스로 어떤 일을 선택해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군가 또는 무엇에 의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제와 구속’을 전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에 몰입된 ‘일에의 중독’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일로부터의 중독’은 몸과 마음을 파괴한다고 경계한다. 직장 동료에게 건네는 “수고하세요”란 인사도 한국인만 쓴단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쉬엄쉬엄하라는 말로 “Take it easy”라고 한다. 한국에서 “놀고 있네”라는 말은 비꼬는 말이다. 놀려면 숨어서 놀아야 한다. 일중독을 권하는 사회란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은 가장 긴 반면 노동생산성은 낮은 편에 속한다는 통계는 식상하다. 유 교수는 딱 두 문장으로 일중독의 심각성을 진단한다. “많은 남자들이 발기불능이나 조루로 괴로워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경제력을 잃은 남성 중 상당수는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절망으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살을 시도한다.” 2005년부터 한국인의 정체성을 연구해온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는 연구 결과물을 총정리하는 목적으로 책을 기획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편집위원장을 맡아 각 분야 자문위원들과 함께 38가지 주제와 그에 맞는 필자를 선정했다. 해당 분야 전문가인 교수들은 일반 독자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교양도서 수준으로 글을 썼다. 분량도 주제당 A4용지 5∼10장으로 길지 않다. 책은 오늘날 한국인의 물음에도 답한다. ‘자식에 대해 부모는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라는 물음에는 황매향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가 답했다. 그는 전통적 가치관과 현대적 가치관이 혼재돼 부모의 자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하는 어머니도 가사를 자식과 나누지 않으니 “엄마가 밥해 주고 빨래해 주는 게 편해서 시집은 천천히 갈 거야”라는 말이 나오고, ‘돈 버는 기계’로 여겨지게 돼버린 아버지는 그 기능을 잃는 순간 무능한 아버지로 전락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산단다. 김계현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공무원 직을 선호하는 한국인을 분석하며 “선수는 자녀이지 부모가 아니다. 선수는 코치나 캐디의 조언을 참고는 하되, 항상 그대로 따르지는 말아야 한다. 특히 인생을 거는 직업이라는 종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조언한다. 38가지 주제를 모자이크로 이어붙이면 한국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호영 아주대 의대 명예교수는 한국인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전통적 유교 사회에서는 부끄러움을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근본이라고 봤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해야 하는 오늘날에는 이런 염치를 아는 자세가 홀대받고 있다고 분석한다. 염치가 없는 것은 애나 어른을 가리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기 이미지를 높이려고 부끄럽고 창피한 행동도 불사하고, 애들은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병적인 자기애를 키우며 자라고 있다. 편집위원장을 맡은 김문조 교수는 ‘다채로운 마음의 지도’ 속에서 3가지 큰 축으로 한국인을 정의한다. △‘끼리끼리’ 관계주의 △‘빨리빨리’ 현세주의 △‘다다익선’ 배상(賠償)주의. 이를 종합하면 ‘친한 사람들끼리 한평생 만복을 원 없이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 밑바탕에는 안락한 삶을 향한 지복(至福)의식이 내재돼 있단다. 권력, 공감, 지역감정, 출산, 결혼, 죽음, 일, 종교, 행복, 사교육, 외모지상주의까지 다루지 않은 주제가 없다. 최신 통계와 사례, 그리고 저자의 식견이 담긴 분석과 비판을 담아 책의 짜임새가 조밀하다. 책을 읽으면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 보는 것 같다. 익숙한 얼굴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낯설게 느껴지는 모습에 알쏭달쏭 고개를 갸웃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참을 들여다보면 정체성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이는 찰나가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삼청교육대(정인수 지음·원영)=저자는 1980년 8월 신군부 시절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고통의 기록을 1985년 월간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보내 최우수작품상에 뽑혔지만 전두환 정권의 서슬에 눌려 2년 뒤에야 활자화됐다. 당시 쓴 논픽션을 대폭 보완해 책으로 냈다. 2만 원.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김시천 지음·책세상)=저자는 우리가 ‘노장’으로 뭉뚱그려 말하던 것을 분리해 ‘노자’는 권력의 기술을 전하는 칼로, ‘장자’는 불행과 억압 속에서 버티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패로 정의한다. 1만8000원.리딩(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알마)=‘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이자 이성에 기초한 우상파괴론자인 저자가 2011년 지병으로 숨지기 전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서평 모음. 시간의 마모를 버텨 낸 저널리즘 서평의 진수를 보여 준다. 2만2000원.나치즘과 동성애(김학이 지음·문학과지성사)=독일의 나치는 남성 전사들만의 공동체라는 ‘남성동맹’으로 똘똘 뭉쳤다. 저자(동아대 사학과 교수)는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그 속에 감춰진 동성애에 대한 애증을 포착해 냈다. 3만 원.정신사적 고찰(후지타 쇼조 지음·돌베개)=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수제자로 꼽혔던 저자(1927∼2003)가 1982년 출간한 책. 일본 천황제를 비판한 ‘쇼와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일본의 붕괴와 전환의 가능성을 고찰한 예리한 에세이들을 모았다. 1만3000원.카운슬러(코맥 매카시 지음·민음사)=영화화된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의 작가가 직접 쓴 첫 시나리오.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인간 탐욕이 빚어낸 괴물 같은 세상이 펼쳐진다. 리들리 스콧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1만 원.카페 만우절(양선희 지음·나남)=2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해 온 저자가 내놓은 첫 장편소설. 연극배우의 죽음 속에 숨겨진 인간관계의 중층적 진실을 파헤친다. 1만1800원.고려 한시 선집(이성호 옮김·문학동네)=이제현의 ‘산중의 눈 내리는 밤’에서 정시상의 ‘송인’까지 고려시대 최고 문인들이 남긴 한시 99수를 모았다. 1만4000원.교사여, 칠판으로 돌아가자!(이철웅 지음·서현사)=현직 초등학교 교장인 저자가 후배 교사들에게 청소년에게 공부의 희열을 맛보게 하는 교육법을 전수한다. 1만2000원.}

지난달 말 출간된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의 ‘온도계의 철학’(동아시아)이 최근 대형서점 과학분야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 책은 1주간 70권 팔렸을 뿐이다. 지난달 나온 일본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유머의 공식’(마음산책)은 1주 만에 한국출판인회의 인문분야 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다. 1주간 인터넷서점 4곳에서 팔린 책은 모두 200권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요즘 출판계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일부 대형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10위에 진입하는 데는 1주에 1000권, 하루에 150권 정도만 팔리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스트셀러 진입 장벽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최대 온·오프라인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연간 종합 판매순위 1∼100위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판매량이 전체 도서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1년 10.6%에서 2012년 10.2%, 2013년 9.4%로 계속 줄었다. 인터넷서점 인터파크에서도 상위 100위의 판매 비중이 지난해 14%에서 올해 10%로 줄었다. 베스트셀러 판매량 감소는 책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출판 시장의 활기가 줄었다는 적신호이기도 하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베스트셀러 판매 비중이 2년 연속 하락한 것은 유의미한 변화다. 앞에서 끌어주는 히트 상품이 있어야 신규 수요가 창출되고 시장이 커질 수 있는데 그만큼 시장의 활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출판계가 사재기 문제로 시끄러우니 베스트셀러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도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전국 2인 이상 가구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지난해 2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서적 구입비가 2만5449원이었지만 2분기(4∼6월)에는 1만6448원까지 떨어졌다. 2013년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주요 서점의 신간 판매 비중도 2007년 56.7%에서 지난해 38.7%로 줄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60년 박인철 씨(2009년 작고)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로터리에 홍익문고를 세웠다. 이후 다른 가게는 수없이 바뀌었지만 홍익문고만은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서점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던 아들 박세진 씨(45·사진)가 이어 받았다. 지난해 11월 재개발계획으로 철거 위기에 놓였을 때는 시민들이 지켜냈다. 일주일 만에 5500여 명이 철거 반대 서명에 동참하는 작은 기적을 이루자 철거 계획은 무산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4일 오후 3시경 홍익문고를 찾았을 때 서점 안은 한산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둘러보았지만 손님은 모두 7명뿐. 녹색 유니폼 차림의 직원이 더 많았다.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 대표를 맡았던 양리리 씨(37)는 “문화적 가치를 생각하면 서점을 지킨 것은 잘한 일이지만 힘들게 서점을 경영하는 박 사장님 처지를 고려하면 과연 잘한 일인지 후회도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홍익문고의 매출액은 지난 1년 동안 10% 이상 줄었다. 많은 사람이 홍익문고 지키기에 나섰지만 서점에 얽힌 추억만 되새김질했을 뿐 책 구매 운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박 사장은 “그래도 시민들 지지 덕분에 서점을 지켜낼 수 있었다. 처음 서점을 물려받았을 때는 아버지의 뜻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서점 100년 역사를 꼭 채우겠다는 사명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홍익문고는 이제 주변 문화를 선도하는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박 사장은 서점 5층 창고를 세미나실로 개조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무료로 개방했다. 자발적인 독서모임 ‘틈새’와 ‘시사톡’이 조직돼 매주 모임을 열고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도서관위원회’ 같은 시민단체 회의도 여기서 열린다. 이들은 모임이 있을 때 책을 자주 구입해 서점에 힘을 보탠다. 서대문구청도 올해 안에 홍익문고 앞 연세로의 170m 구간에 국내 유명 작가들의 핸드프린팅 동판을 설치하는 ‘문학의 거리’를 만들 예정이다. 홍익문고도 매달 독서토론회와 백일장을 열어 힘을 보탤 계획이다. 박 사장은 “홍익문고 지키기에 힘을 보탠 시민 덕분에 문학의 거리가 조성됐다. 문학과 서점이 잘 조화를 이뤄 거리도, 서점도 다시 살아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10년 전인 2004년 1월 30일 홍익문고 창업자인 박인철 씨는 동아일보 오피니언면 발언대에 ‘온-오프라인 서점 함께 사는 길’이란 글을 쓴 바 있다. 인터넷 서점의 왜곡된 상술로 지역사회에 문화를 전하는 실핏줄 같은 중소 서점이 도산 위기에 놓였다는 내용이었다. 2003년 말 2247개에 달했던 서점은 2011년 말 1752개로 급감했다. 할인경쟁을 앞세워 중소 서점을 위협했던 인터넷 서점도 요즘 매출액이 줄고 있다. 중소 서점이 줄어들면서 사람과 책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멀어진 탓이라는 게 출판계의 분석이다. 박 사장은 “도서정가제를 꼭 시행해야 동네 서점이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자들이 동네 서점에서 책을 읽고 만져봐야 자기에게 맞는 책을 골라 볼 수 있어요. 맞지 않는 책을 그저 싸다고 사서 읽다간 오히려 책에서 멀어지게 됩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영화 ‘관상’이 1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50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한재림) 등 6관왕에 올랐다. 남우주연상은 ‘관상’의 송강호, ‘7번방의 선물’의 류승룡이 공동수상했다. 여우주연상은 ‘몽타주’의 엄정화가 차지했다. 남녀조연상은 ‘관상’의 조정석과 ‘늑대소년’의 장영남에게 돌아갔다. 신인남녀배우상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과 ‘짓’의 서은아가 받았다. 신인감독상은 ‘내가 살인범이다’의 정병길 감독이 수상했다. 심사위원 특별상은 ‘7번방의 선물’의 아역배우 갈소원에게 돌아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우리는 코앞의 날씨 예보만 보고 산다. 비 소식에 우산을 꺼내고 한파 소식에 두꺼운 옷을 꺼냈다. 그러나 농부들은 길게 봤다. 태양이 움직이는 스물네 걸음을 따서 만든 절기(節氣)에 따라 움직였다. 보름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며 풍년 농사를 위해 땀 흘렸다. 저자는 현대인도 절기에 따라 살면 삶이 풍성해질 것이라 장담한다. 절기에 얽힌 유래와 절기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책에 담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7일은 입동(立冬)이다. 책은 겨울을 냉랭한 음기가 가득해 물과 땅이 얼고 먹거리는 자취를 감추는 계절로 풀이했다. 하지만 차가운 겨울에도 양기는 있다. 다음 해에도 살아남겠다는 뜨거운 양기가 우리 속에 자리 잡는다. 저자는 혼자서는 이 양기를 끌어낼 수 없고 관계 안에서만 양기가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다. 입동 때 음의 기운이 강한 어르신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치계미(雉鷄米) 풍속도 같은 이유에서 나왔다. 연말에 불우이웃을 돕는 것도 결국 남이 아닌 자신을 살리는 일이었다. 겨울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오매불망 봄부터 기다린다. 입춘(立春)에는 남 몰래 좋은 일을 하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도 있지만 재미난 ‘아홉차리’도 있다. 입춘에는 무슨 일을 하든 9번을 한다. 밥도 9번 먹고 매를 맞아도 9번만 맞는다. 그런데 그냥 웃자고 하는 풍속이 아니다. “약간 모자란 듯 일을 남겨 놓고, 이후에도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는 것이 핵심이다.” 소만(小滿) 때 찾아오는 보릿고개의 현대식 해석도 재밌다. 과거 보릿고개가 찾아오면 ‘일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더 정신 차리고 열심히 움직였다. 저자는 보릿고개를 통과의례의 일종으로 봤다. 모든 것이 풍족해진 지금은 소만의 의미를 어떻게 새겨야 할까. 저자는 스스로 통과의례를 만들라고 말한다. 그것은 ‘욕을 먹는 것’이다. 타인의 욕도 제대로 소화하면 피가 되고 살이 돼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단다. 절기가 주는 무한긍정의 힘이다. 절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다 보면 살아갈 힘도 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