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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열린 집회는 여성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현실을 바꾸자고 외쳤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를 덮은 건 해당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경찰의 주장이었다. 사건은 시각에 따라 여성혐오 범죄로도, ‘묻지마 범죄’로도 볼 수 있었지만 경찰은 나서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시각으로 사태를 보는 것 자체를 꺼린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이 책은 40여 명의 연구자들이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 살해를 뜻하는 ‘페미사이드’를 설명한 논문과 에세이를 엮었다. 가부장제와 함께 만들어진 ‘마녀사냥’부터 페미사이드를 즐길 거리로 다루는 영화까지 광범위한 역사를 다룬다. 여성의 기록 자체가 많지 않기에 쉽지 않았던 연구 과정은 지금이라도 잊혀진 목소리를 되살리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목소리를 내려는 출발점이다. 우리 사회도 갈등이 심해지기 전에 이런 연구와 공론화가 시작되길 기대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 류더화(劉德華·유덕화) 주연의 영화 시리즈 ‘무간도’. 홍콩 누아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개봉한 이 영화는 경찰과 범죄조직에 스며든 언더커버 스파이(위장 첩보원)의 심리 묘사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연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맷 데이먼 주연 영화 ‘디파티드’(2006년)로 리메이크되기도 한 이 영화를 투자배급사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내년 국내 드라마로 제작할 예정이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로 국내에 진출한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국내에서 김지운 감독의 ‘밀정’, 박훈정 감독의 ‘마녀’ 등 영화를 투자·배급했다. 최근에는 소녀시대 출신 배우 최수영이 출연하는 반사전제작 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의 투자와 공동제작을 맡는 등 국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무간도’ 외에도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의 한국판 드라마도 제작한다. ‘멘탈리스트’는 CBS에서 시즌 7까지 방영된 인기 드라마다. 해외 흥행으로 검증된 콘텐츠 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2020년까지 6, 7편의 국내 드라마 제작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메이저 영화 투자배급사들의 드라마 제작 투자도 활기를 띠고 있는 추세다. NEW는 사전제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년)를 성공시킨 뒤 제작사 스튜디오앤뉴를 설립해 드라마 여러 편을 만드는 중이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가 드라마로 방영됐으며, 강풀 웹툰 원작의 ‘무빙’, 국회의원 보좌관을 소재로 ‘라이프 온 마스’의 이대일 작가와 ‘추노’의 곽정환 감독이 연출하는 ‘보좌관’도 제작하고 있다. 쇼박스 역시 웹툰 ‘이태원 클라스’와 ‘대세녀의 메이크업 이야기’를 원작으로 드라마 제작을 준비 중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을 제작한 필름몬스터도 OCN 드라마 ‘트랩’을 만들고 있다. 영화 등 콘텐츠의 IP를 활용해 영화 투자배급사들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드는 것은 수익 구조 다변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 제작비는 높아지지만 극장 수요는 늘어나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비해 드라마는 해외, 온라인 등 여러 플랫폼을 활용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어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여기에 기존 드라마 공식을 벗어난 새로운 내용에 대한 수요가 생긴 것도 한 요인이다. 장경익 스튜디오앤뉴 대표는 “드라마의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영화, 드라마 간 전환이 용이해졌다”며 “콘텐츠 간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실험과 긍정적 교류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넷플릭스, 왓챠 등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도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경계를 허무는 요소다. 최근하 쇼박스 홍보팀장은 “플랫폼의 변화로 극장뿐 아니라 웹으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났다”며 “자체 IP를 구축해 영화, 드라마, 부가사업 등 여러 방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 류더화(劉德華·유덕화) 주연의 영화 시리즈 ‘무간도’. 홍콩 누아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개봉한 이 영화는 언더커버 스파이의 심리 묘사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연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맷 데이먼 주연 영화 ‘디파티드’(2006년)로 리메이크되기도 한 이 영화를 투자배급사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내년 국내 드라마로 제작할 예정이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로 국내에 진출한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국내에서 김지운 감독의 ‘밀정’, 박훈정 감독의 ‘마녀’ 등 영화를 투자·배급했다. 최근에는 소녀시대 출신 배우 최수영이 출연하는 반 사전제작 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의 투자·공동제작을 맡는 등 국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해 눈길을 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무간도’ 외에도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의 한국판 드라마도 제작한다. ‘멘탈리스트’는 CBS에서 시즌 7까지 방영된 인기 드라마다. 해외 흥행으로 검증된 콘텐츠 IP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2020년까지 6, 7편의 국내 드라마 제작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의 드라마 제작 투자도 활기를 띠고 있는 추세다. NEW는 사전제작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년)를 성공시킨 뒤 제작사 스튜디오앤뉴를 설립해 드라마 여러 편을 만드는 중이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가 드라마로 방영 중이며, 강풀 웹툰 원작의 ‘무빙’, 국회의원 보좌관을 소재로 ‘라이프 온 마스’의 이대일 작가와 ‘추노’의 곽정환 감독이 연출하는 ‘보좌관’도 제작하고 있다. 쇼박스 역시 웹툰 ‘이태원 클라스’와 ‘대세녀의 메이크업 이야기’를 원작으로 드라마 제작을 준비 중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을 제작한 필름몬스터도 OCN 드라마 ‘트랩’을 만들고 있다. 영화 등 콘텐츠의 IP를 활용해 영화 투자배급사들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드는 것은 수익 다변화의 영향이 크다. 영화 제작비는 높아지지만 극장 수요는 늘어나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비해 드라마는 해외, 온라인 등 여러 플랫폼을 활용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어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힌다. 여기에 기존 드라마 공식을 벗어난 새로운 내용에 대한 수요가 생긴 것도 한 요인이다. 장경익 스튜디오앤뉴 대표는 “드라마의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영화, 드라마 간 전환이 용이해졌다”며 “콘텐츠 간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실험과 긍정적 교류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넷플릭스, 왓챠 등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도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경계를 허무는 요소다. 최근하 쇼박스 홍보팀장은 “플랫폼의 변화로 극장뿐 아니라 웹으로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났다”며 “자체 IP를 구축해 영화, 드라마, 부가사업 등 여러 방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미학적 개념을 구어체로 풀어 쓴 책이다. 현대 미술 초심자가 미술관에 와서 저자를 만나고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대화 형식으로 돼 있지만 그 내용의 뼈대는 현대 철학의 의미론, 상징, 재현 등의 개념을 뼈대로 한다. 이 개념들을 ‘느낌에도 코드가 있다’는 등 최대한 일상어로 풀어 쓰려고 노력했다. 20세기 초반 미학의 흐름을 쉬운 언어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절한 책이다. 책에서 설명된 개념들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이후와 개념미술 이전, 조금 더 범위를 확장한다면 19세기 말 회화에만 한정된다. 가치가 검증된 작품을 인용하기에는 저작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책에서 인용한 몇 작품이 미술사적 흐름과 관련 없는 생소한 작품이라는 점도 아쉽다. 철학적 개념을 토대로 하기에 후반부로 갈수록 설명이 관념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잔뜩 화가 나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는 게슴츠레한 눈, 끝없이 돌진하는 통쾌한 ‘무산소’ 액션, 가볍고 유쾌한 코믹 콤비. 배우 마동석(47)이 팬들이 기다리던 액션 영화를 들고나왔다. 단순한 스토리에 격투 게임 ‘철권’을 보는 듯한 비주얼이 시원한 오락 영화 ‘성난 황소’다.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수산시장에서 유통업을 하던 동철(마동석)은 아내 지수(송지효)가 납치되면서 돌변한다. 납치범(김성오)이 전화를 걸어와 돈을 달라는 대신 아내의 몸값으로 거액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폭발한 동철은 ‘성난 황소’가 되어 흥신소를 운영하는 곰사장(김민재), 춘식(박지환)과 함께 아내 찾기에 나선다. 마동석은 5월 ‘챔피언’을 시작으로 ‘신과 함께―인과 연’ ‘원더풀 고스트’ ‘동네사람들’과 ‘성난 황소’까지 6개월간 영화 5편에서 주연을 맡았다. 영화 ‘베테랑’의 아트박스 사장부터 ‘범죄도시’의 괴물 형사 등 “몸 자체가 장르”라는 평가를 받은 마동석의 이미지에 기댄 영화들이었지만 ‘신과 함께’를 제외하면 흥행 성적이 시원찮았다. “비슷한 이미지를 소모적으로 사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던 차, ‘범죄도시’ 제작진이 다시 힘을 뭉친 ‘성난 황소’는 액션 영화 본분에 충실하다. 심각한 의미를 추구하거나 줄거리를 비틀기보다 순간의 통쾌함에 집중해 마동석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일반 시사 현장에서는 동철이 납치범 일당을 해치울 때마다 ‘와’ 하는 환호성이 터졌다. 마동석 특유의 맨주먹 액션은 물론이고 배우 김민재와 박지환의 코믹 연기도 돋보인다. 사건 해결을 부탁받은 흥신소 곰사장은 파일럿부터 형사, 검사 등 온갖 역할로 변장하며 감초 연기를 선보이고, 어딘가 어설프지만 결정적 순간에 제 역할을 해내는 춘식의 콤비도 재미를 더한다. 사실 그간 나온 마동석 영화들은 그가 직접 기획에도 참여했다. 오래전 촬영한 작품도 있지만 개봉 시기를 못 찾다가 ‘범죄도시’ 등이 주목을 받자 연달아 개봉했다. 누아르나 정치물, 사극 일색이었던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캐릭터로 등장한 마동석은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성난 황소’는 그 과정에 있는 마동석의 단면을 보여준다. 22일 개봉. ★★★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콘텐츠 산업은 기로에 서 있다. 케이팝과 한류 열풍이 불러온 희망의 빛은 영원할 수 없다. 중국은 자국 콘텐츠 산업을 성장시켜 ‘문화 굴기’를 노리고 있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다른 아시아 맹주의 그늘 아래 주저앉을 수도 있다. 도약이 필요할 때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앞서 9회에 걸쳐 소개한 미국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일본 등의 현장에 비춰 국내 콘텐츠 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장르문학 재평가, 극한 제작 환경 개선해야 올 6월 ‘드래곤 라자’의 이영도 작가가 내놓은 신작 ‘오버 더 초이스’(사진)는 출간 일주일 만에 2만 권, 현재까지 3만 권이 팔렸다. 이 작가의 전작들은 일본 대만에서만 100만 권이 판매됐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과 ‘7년의 밤’도 10여 개국에 판권을 수출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셜록 홈스’…. 세계적 콘텐츠의 원작이 된 장르문학은 국내에서 여전히 음지의 문화, 오타쿠 문화로 폄훼되곤 한다.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은 “국내에서 이들 장르는 빌려 보거나 쉽게 읽고 버리는 종류로 취급 받는다”고 했다. 미스터리 소설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의 임지호 주간은 “장르문학은 일반 문학보다 영상화가 쉬운 만큼, 그 가치를 인정하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는 한때 아시아 맹주를 자처했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급박한 제작 일정 탓에 미완성 화면이 송출되거나, 방영 중 제작진과 배우의 마찰로 주연이 바뀌는 웃지 못할 일이 계속됐다. ‘하우스’, ‘굿닥터’를 만든 데이비드 쇼어의 작가룸 운영방식이 보여줬듯, 치밀한 계획에 기반한 제작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작 인원에 비해 너무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한 지상파 방송국 관계자는 “미니시리즈의 경우 광고 편성을 위해 ‘주 2회 70분 방송’이라는 틀을 고정시켜 놓았는데, 주 1회 방송도 가능하게 하는 등 유연성을 발휘해 사전 제작이 가능한 시간과 인력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사전 제작 드라마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은 청신호다.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관계자는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반(半) 사전제작’이 다시 활성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과 웹소설 주목, 전통 서사 재해석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와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만화의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성공한 좋은 예다. 한국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가 대만, 홍콩 등지에서 호평 받는 등 국내 웹툰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네이버웹툰은 영상 제작을 위한 자회사 ‘스튜디오N’을 설립했다. 레진코믹스는 영화사 다이스필름과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에 대한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자체 제작 영화 ‘밤치기’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 카카오페이지의 웹소설에서 출발한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내년까지 누적 매출액이 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 메탈 밴드 ‘아모르피스’는 20년간 10장 넘는 앨범의 노랫말을 핀란드 독자 신화 ‘칼레발라’에 기반해 썼다. 칼레발라는 여타 북유럽 신화에 비해 난해해 응용 콘텐츠가 많지 않다. 헬싱키에서 만난 ‘아모르피스’의 멤버 올리페카 레인은 “외부 신화 전문가에게 의뢰해 핀란드어 가사를 먼저 쓴 뒤 이를 전문 번역가가 영어로 옮기는 식으로 가사를 만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의 신화나 역사, 전통문화에도 활용할 여지가 풍부하다. 국악계에서는 황해도 굿을 응용한 그룹 ‘악단광칠’, 남도 씻김굿을 재해석한 그룹 ‘바라지’ 등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전통 서사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의 저자 이경덕 씨는 “단군신화, 삼국유사도 흥미로운 요소와 함께 탄탄한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어, 훌륭한 콘텐츠로 재탄생할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임희윤 imi@donga.com·김민 기자}

한국 콘텐츠 산업은 기로에 서 있다. 케이팝과 한류 열풍이 불러온 희망의 빛은 영원할 수 없다. 중국은 자국 콘텐츠 산업을 성장시켜 ‘문화 굴기’를 노리고 있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다른 아시아 맹주의 그늘 아래 주저앉을 수도 있다. 도약이 필요할 때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앞서 9회에 걸쳐 소개한 미국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일본 등의 현장에 비춰 국내 콘텐츠 산업의 현 주소를 살펴봤다. ● 장르문학 재평가, 극한 제작 환경 개선해야 지난 6월 ‘드래곤 라자’의 이영도 작가가 내놓은 신작 ‘오버 더 초이스’는 출간 일주일 만에 2만 권, 현재까지 3만 권이 팔렸다. 이 작가의 전작들은 일본·대만에서만 100만 권이 판매됐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과 ‘7년의 밤’도 10여 개국에서 판권을 수출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셜록 홈스’…. 세계적 콘텐츠의 원작이 된 장르 문학은 국내에서 여전히 음지의 문화, 오타쿠 문화로 폄훼되곤 한다. 김준혁 황금가지 주간은 “국내에서 이들 장르는 빌려 보거나 쉽게 읽고 버리는 종류로 취급 받는다”고 했다. 미스터리 소설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의 임지호 주간은 “장르문학은 일반 문학보다 영상화가 쉬운 만큼, 그 가치를 인정하고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는 한 때 아시아 맹주를 자처했지만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급박한 제작 일정 탓에 미완성 화면이 송출되거나, 방영 중 제작진과 배우의 마찰로 주연이 바뀌는 웃지 못 할 일이 계속됐다. ‘하우스’, ‘굿닥터’를 만든 데이비드 쇼어의 작가룸 운영방식이 보여줬듯, 치밀한 계획에 기반한 제작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작 인원에 비해 너무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한 지상파 방송국 관계자는 “미니시리즈의 경우 광고 편성을 위해 ‘주 2회 70분 방송’이라는 틀을 고정시켜 놓았는데, 주1회 방송도 가능하게 하는 등 유연성을 발휘해 사전 제작이 가능한 시간과 인력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사전 제작 드라마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은 청신호다.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의 관계자는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반(半) 사전제작’이 다시 활성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과 웹소설 주목, 전통 서사 재해석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와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만화의 지적재산권(IP)을 바탕으로 성공한 좋은 예다. 한국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가 대만, 홍콩 등지에서 호평 받는 등 국내 웹툰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네이버웹툰은 영상 제작을 위한 자회사 ‘스튜디오N’을 설립했다. 레진코믹스는 영화사 다이스필름과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에 대한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자체 제작 영화 ‘밤치기’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 카카오페이지의 웹소설에서 출발한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내년까지 누적 매출액이 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 메탈 밴드 ‘아모르피스’는 20년간 10장 이상의 앨범에 노랫말을 핀란드 독자 신화 ‘칼레발라’에 기반해 썼다. 칼레발라는 여타 북유럽 신화에 비해 난해해 응용 콘텐츠가 많지 않다. 헬싱키에서 만난 ‘아모르피스’의 멤버 올리-페카 레인은 “외부 신화 전문가에 의뢰해 핀란드어 가사를 먼저 쓴 뒤 이를 전문 번역가가 영어로 옮기는 식으로 가사를 만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의 신화나 역사, 전통문화에도 활용할 여지가 풍부하다. 국악계에서는 황해도 굿을 응용한 그룹 ‘악단광칠’, 남도 씻김굿을 응용한 그룹 ‘바라지’ 등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전통 서사도 마찬가지다.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의 저자 이경덕 씨는 “단군신화, 삼국유사도 흥미로운 요소와 함께 탄탄한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어, 훌륭한 콘텐츠로 재탄생할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최근 10년간 흥행한 음악 영화는 귀에 꽂히는 음악이나 몰입감 있는 서사로 승부를 건다. 2007년 개봉한 ‘원스’는 독립영화임에도 27만 명이 봤고 영화에 삽입된 음악(OST)이 국내 음원 차트에 오르며 파급력을 자랑했다. 2014년 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해외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국내에서는 343만 명이 관람하며 인기를 끈 이례적인 작품이다. 영화에 출연한 머룬5의 멤버 애덤 러빈이 부른 ‘Lost Stars’도 큰 사랑을 받았다. 한 번 들으면 금세 각인되는 음악과 삶의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가 공감을 이끌어 냈다는 분석이다. ‘보헤미안…’처럼 명곡을 듣는 재미가 있는 ‘주크박스 영화’로는 2008년 개봉한 ‘맘마미아!’(457만 명)가 있다. 이때도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어롱 상영’이 열렸다. 아바의 익숙한 노래와 놀라울 정도로 가사에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몰입도를 높였다. 최근 주목받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서사가 매력적인 음악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위플래쉬’(158만 명)와 ‘라라랜드’(359만 명)가 그 주인공. ‘라라랜드’는 서정적 음악으로도 큰 사랑을 받아 지난해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가 내한하기도 했다. 허위츠 감독은 71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야외에서 ‘라라랜드’의 음악 연주를 선보였다. 한편 ‘보헤미안…’은 개봉 첫 주말 북미에서만 5000만 달러(약 560억 원)의 수입을 거뒀다. 전 세계 수익을 모두 합치면 1억4100만 달러(약 1581억 원)에 달해 제작비(5200만 달러)를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록 밴드 퀸의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10월 31일 개봉)는 화제성과 별개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 ‘네이버 영화’ 기준 평점은 관람객이 9.55, 기자·평론가는 6.14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은 ‘걸작을 기대했다면 반드시 실망할 것’이라며 별 두세 개를 줬다. 그런가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눈물범벅의 리뷰가 넘쳐나고 영국 싱글차트 100위권 내에 퀸이 30∼40년 전 발표한 곡이 세 곡이나 재진입했다. 엇갈리는 평가에도 ‘보헤미안…’은 파죽지세. 개봉 9일 만에 국내 관객 수 100만 명을 넘겼다. ‘퀸 세대’라는 임희윤 기자(40대), ‘나도 퀸을 안다’는 김민 기자(30대)가 본 ‘보헤미안…’은 어떻게 달랐을까?○ “은근슬쩍 넘어가” vs “꽤 살아있는 디테일” ▽임희윤=비판할 준비를 하고 봤는데 당황스러웠어. 보다가 울컥했다니까. ▽김민=퀸을 사랑하는데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다니! 같이 비판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임=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재인 건가. ▽김=스토리가 엉망이야. 내가 생각한 프레디 머큐리를 망쳐 놨어. 머큐리가 제작자에게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주며 “우리도 오페라를 하겠다”며 앨범 ‘A Night at the Opera’를 제안하는 장면을 봐. 전혀 안 와닿아. 이렇게 가볍게 앨범을 만들었을 리가 없어. ▽임=감정 과잉은 맞지만 필요한 장면이야. 머큐리가 오페라를 각별히 사랑했다는 건 사실이거든. 나중에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듀엣(1987년 ‘Barcelona’)을 한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을 정도로. ▽김=최악은 노래 ‘Bohemian Rhapsody’를 여자친구와 누운 채로 피아노를 치다 작곡하는 장면이야. 가사의 철학적 의미나 과감한 실험성은 살리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갔어.○ “일차원적 인물 묘사” vs “퀸 이미지 살린 것” ▽임=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히트곡이 너무 많아 미안할 지경이지. 두 시간 안에 자세하게 담기엔 역부족이니까. 영화는 깊이는 없지만 퀸의 특징을 잘 알고 적소에 넣었어. 이를테면 음반 제작자가 ‘Bohemian Rhapsody’에 대해 “청년들이 머리 흔들며 따라 부를 만한 노래가 아니다”라고 어깃장 놓는 장면이 그래. 이 노래가 훗날 영화 ‘웨인즈 월드’의 차 안 헤드뱅잉 장면에 쓰여 폭발적 인기를 누린 것을 염두에 둔 유머 장치야. ▽김=머큐리의 특별함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어. 보수적 영국 사회에서 인도계이자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갖고도 성공한 인물인데. 후반부에서는 심지어 머큐리의 동성애가 밴드의 몰락을 이끈 것처럼 그렸잖아. 오해를 사기에 충분해. ▽임=1980년대에는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공포가 엄청났어. 그런 분위기를 오히려 잘 반영했다고 생각해. 퀸은 천체물리학도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쇼 맨’ 머큐리의 영혼이 결합된 그룹이야. 사이버펑크 세대의 예술적 농담이지. 영화의 허술한 만듦새가 퀸의 과장된 맥시멀리즘과 이상하게 맞아떨어지기까지 한다니까.○ “공연 영상이 나아” vs “상업영화의 영리한 선택” ▽임=소싯적 엘피판과 해설지, 잡지 활자를 보며 상상만 하던 퀸 멤버들이 눈앞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움직이고 클로즈업되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 ▽김=그런 이유라면 차라리 공연 영상을 보는 게 낫지 않아? 2018년에 퀸을 재현한 영화라면 좀 달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임=시중에 나와 있는 콘서트 영상물에서 카메라는 3인칭이야. 영화 속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에서 2인칭처럼 바싹 달라붙는 카메라 앵글을 봐. 음반 녹음 장면에서는 굳이 릴 테이프가 돌아가는 모습을 계속 삽입함으로써 중장년층의 아날로그 향수를 영민하게 자극했어. ▽김=난 그런 향수가 없어서…. 마지막 20분이 그나마 좋았어. 하지만 ‘유튜브로 다 볼 수 있는데…’ 싶었어. 영화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 2년 뒤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고 하니 속은 기분마저 든다니까. ▽임=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도, 공익영화도 아니야. 상업영화이고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어. 빼어난 캐나다 공연 실황 영상물 ‘퀸 락 몬트리올’(2007년)이 국내에도 개봉하고 블루레이로도 나왔지만 대중은 잘 몰랐잖아. 음악 마니아들은 알음알음 보고 눈물을 흘린 작품인데. ‘보헤미안…’이 다소 유치한 건 인정해. 하지만 상업적 드라마가 있기에 퀸을 다시 조명 아래로 올려놨어. 요즘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도 ‘퀸’으로 도배됐고. 이런 게 진짜 역주행이지. 그런데 ‘The Show Must Go On’이 흐를 때 자리를 뜨는 관객들은 아쉬웠어. 말년의 머큐리가 보드카 마시고 혼신의 힘으로 부른 곡이잖아. 퀸의 사실상 마지막 정규앨범의 마지막 트랙. 이 노래만 한 드라마가 어딨어. ▽김=그건 그래. 한편으로는 멤버들 중 메이와 로저 테일러(드럼)만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안정적으로, 프레디는 불안정한 사람으로 그렸다는 생각도 들어. ▽임=친구들의 수다 모임에서 자리 비우고 화장실 갈 때마다 불안하긴 해. 이 영화의 숨은 교훈일까. 아무쪼록 오래 살고 보자. 임희윤 imi@donga.com·김민 기자}

록 밴드 퀸의 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10월 31일 개봉)는 화제성과 별개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 ‘네이버 영화’ 기준 평점은 관람객이 9.55, 기자·평론가는 6.14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은 ‘걸작을 기대했다면 반드시 실망할 것’이라며 별 두세 개를 줬다. 그런가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눈물범벅의 리뷰가 넘쳐나고 영국 싱글차트 100위권 내에 퀸이 30~40년 전 발표한 곡이 세 곡이나 재진입했다. 엇갈리는 평가에도 ‘보헤미안…’은 파죽지세. 개봉 9일 만에 국내 관객 수 100만 명을 넘겼다. ‘퀸 세대’라는 임희윤 기자(40대), ‘나도 퀸을 안다’는 김민 기자(30대)가 본 ‘보헤미안…’은 어떻게 달랐을까?●“은근슬쩍 넘어가는 이야기” vs “꽤 살아있는 디테일”▽임희윤=비판할 준비를 하고 봤는데 당황스러웠어. 보다가 울컥했다니까.▽김민=퀸을 사랑하는데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다니! 같이 비판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임=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재인 건가.▽김=스토리가 엉망이야. 내가 생각한 프레디 머큐리를 망쳐 놨어. 머큐리가 제작자에게 오페라 아리아를 들려주며 “우리도 오페라를 하겠다”며 앨범 ‘A Night at the Opera’를 제안하는 장면을 봐. 전혀 안 와 닿아. 이렇게 가볍게 앨범을 만들었을 리가 없어.▽임=감정 과잉은 맞지만 필요한 장면이야. 프레디가 오페라를 각별히 사랑했다는 건 사실이거든. 나중에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와 듀엣(1987년 ‘Barcelona’)을 한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했을 정도로.▽김=최악은 노래 ‘Bohemian Rhapsody’를 여자친구와 누운 채로 피아노를 치다 작곡하는 장면이야. 가사의 철학적 의미나 과감한 실험성은 살리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갔어.●“일차원적 인물 묘사” vs “퀸 이미지 살린 것”▽임=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히트곡이 너무 많아 미안할 지경이지. 두 시간 안에 자세하게 담기엔 역부족이니까. 영화는 깊이는 없지만 퀸의 특징을 잘 알고 적소에 넣었어. 이를테면 음반 제작자가 ‘Bohemian Rhapsody’에 대해 “청년들이 머리 흔들며 따라 부를 만한 노래가 아니다”라고 어깃장 놓는 장면이 그래. 이 노래가 훗날 영화 ‘웨인즈 월드’의 차 안 헤드뱅잉 장면에 쓰여 폭발적 인기를 누린 것을 염두에 둔 유머 장치야.▽김=머큐리의 특별함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어. 보수적 영국 사회에서 아랍계이자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갖고도 성공한 인물인데. 후반부에서는 심지어 머큐리의 동성애가 밴드의 몰락을 이끈 것처럼 그렸잖아. 오해를 사기에 충분해.▽임=1980년대에는 에이즈에 대한 무지와 공포가 엄청났어. 그런 분위기를 오히려 잘 반영했다고 생각해. 퀸은 천체물리학도 브라이언 메이(기타)와 ‘쇼 맨’ 머큐리의 영혼이 결합된 그룹이야. 사이버펑크 세대의 예술적 농담이지. 영화의 허술한 만듦새가 퀸의 과장된 맥시멀리즘과 이상하게 맞아떨어지기까지 한다니까.●“공연 영상이 나아” vs “상업영화의 영리한 선택”▽임=소싯적 엘피판과 해설지, 잡지 활자를 보며 상상만 하던 퀸 멤버들이 눈앞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움직이고 클로즈업되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김=그런 이유라면 차라리 공연 영상을 보는 게 낫지 않아? 2018년에 퀸을 재현한 영화라면 좀 달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임=시중에 나와 있는 콘서트 영상물에서 카메라는 3인칭이야. 영화 속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에서 2인칭처럼 바싹 달라붙는 카메라 앵글을 봐. 음반 녹음 장면에서는 굳이 릴 테이프가 돌아가는 모습을 계속 삽입함으로써 중장년층의 아날로그 향수를 영민하게 자극했어.▽김=난 그런 향수가 없어서…. 마지막 20분이 그나마 좋았어. 하지만 ‘유튜브로 다 볼 수 있는데…’ 싶었어. 영화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 2년 뒤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고 하니 속은 기분마저 든다니까. ▽임=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도, 공익영화도 아니야. 상업영화이고 그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어. 빼어난 캐나다 공연 실황 영상물 ‘퀸 락 몬트리올’(2007년)이 국내에도 개봉하고 블루레이로도 나왔지만 대중은 잘 몰랐잖아. 음악 마니아들은 알음알음 보고 눈물을 흘린 작품인데. ‘보헤미안…’이 다소 유치한 건 인정해. 하지만 상업적 드라마가 있기에 퀸을 다시 조명 아래로 올려놨어. 요즘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도 ‘퀸’으로 도배됐고. 이런 게 진짜 역주행이지. 그런데 ‘The Show Must Go On’이 흐를 때 자리를 뜨는 관객들은 아쉬웠어. 말년의 머큐리가 보드카 마시고 혼신의 힘으로 부른 곡이잖아. 퀸의 사실상 마지막 정규앨범의 마지막 트랙. 이 노래만한 드라마가 어딨어.▽김=그건 그래. 한편으로는 멤버들 중 메이와 로저 테일러(드럼)만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안정적으로, 프레디는 불안정한 사람으로 그렸다는 생각도 들어.▽임=친구들의 수다 모임에서 자리 비우고 화장실 갈 때마다 불안하긴 해. 이 영화의 숨은 교훈일까. 아무쪼록 오래 살고 보자. ▼ 눈과 귀 홀리는 흥행 음악 영화 공통점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최근 10년 간 흥행한 음악 영화는 귀에 꽂히는 음악이나 몰입감 있는 서사로 승부를 건다. 2007년 개봉한 ‘원스’는 독립영화임에도 27만 명이 봤고 영화에 삽입된 음악(OST)이 국내 음원 차트에 오르며 파급력을 자랑했다. 2014년 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해외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국내에서는 343만 명이 관람하며 인기를 끈 이례적인 작품이다. 영화에 출연한 마룬5의 멤버 애덤 러빈이 부른 ‘Lost Stars’도 큰 사랑을 받았다. 한 번 들으면 금세 각인되는 음악과 삶의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가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보헤미안…’처럼 명곡을 듣는 재미가 있는 ‘주크박스 영화’로는 2008년 개봉한 ‘맘마미아!’(457만 명)가 있다. 이때도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어롱 상영’이 열렸다. 아바의 익숙한 노래와 놀라울 정도로 가사에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몰입도를 높였다. 최근 주목받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서사가 매력적인 음악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 ‘위플래쉬’(158만 명)와 ‘라라랜드’(359만 명)가 그 주인공. ‘라라랜드’는 서정적 음악으로도 큰 사랑을 받아 지난해 음악감독 저스틴 허위츠가 내한하기도 했다. 허위츠 감독은 71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야외에서 ‘라라랜드’의 음악 연주를 선보였다. 한편 ‘보헤미안…’은 개봉 첫 주말 북미에서만 5000만 달러(약 560억 원) 수입을 거뒀다. 전 세계 수익을 모두 합치면 1억4100만 달러(약 1581억 원)에 달해 제작비(5200만 달러)를 일찌감치 뛰어넘었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누군가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려면 마음속에 그만한 빈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핵가족과 인터넷 속에서 자란 청년 세대의 속은 오로지 나만으로 가득하다. 그중 어떤 걸 비워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타인을 받아들여야 하니 혼란스럽고, 자아가 침해된 기분을 받는다. 이런 마음을 겨냥한 책이 최근 인기다. 이 책 역시 제목에서부터 혼란한 세대의 자존감을 높여주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책을 펴는 순간 마주하는 건 한 중년 일본 여성의 지독한 냉소다. “좋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건 훨씬 오래전부터다. 좋은 사람 노릇을 하다 보면 쉬 피곤해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쁜 사람이란 딱지가 붙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한 번이라도 나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쉽게 실망하지만, 나쁜 사람은 어쩌다 좋은 일을 하면 갑자기 달리 봐 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인간관계에 관한 짤막한 단상을 늘어놓는 책이 들려주는 건 우리가 ‘사회생활’을 빌미로 으레 하게 되는 인사치레, 호응 따위의 위선을 걷어버리자는 이야기다. 거침없는 그녀의 말들을 읽어내려 가면서 은근한 통쾌함을 느낀다. 그러나 최후에 맞닥뜨리는 건 사회의 위선에 대한 비판이나 불평이 아니다. 그것은 가식 없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은 한 인간의 솔직한 고백들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과거 영국 상류층의 쇼핑 거리였던 팰맬(Pall Mall)가. 런던 시내 중심지인 세인트제임스 지구와 트래펄가 광장을 잇는 이 거리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대저택이 늘어서 있다. “이곳은 19세기 상류층 남성들이 비공개 사교 모임을 가졌던 ‘젠틀맨 클럽’입니다. 셜록 홈스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만든 ‘디오게네스 클럽’의 배경이 바로 여기죠.” ‘셜록 홈스 투어’ 가이드의 목소리에 미국, 스웨덴, 러시아, 중국 등 전 세계에서 런던으로 모인 ‘셜로키언(Sherlockian·셜록 홈스 마니아를 일컫는 말)’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 투어는 공식 기관이 아닌 개인이 운영한다. ‘셜록 홈스’는 영국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재창작할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저작권이 소멸된 콘텐츠)이다. 그래서 셜록 홈스 박물관, 맥줏집 같은 공간으로도 풍부하게 재창작되며 대규모 제작사뿐 아니라 개인까지 먹여 살리고 있었다. 이 투어의 운영자 르위스 스완은 “고전을 다양한 관점으로 즐기는 마니아는 콘텐츠 재해석의 전문가들”이라고 했다. 이처럼 과거의 콘텐츠를 일상에서 즐기고 재창조하는 마니아는 전 세계 각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 “셜록에 대한 관심은 20년 주기로 돌아온다” 닉 우테힌(66)은 25년 동안 BBC 등 방송국에서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러나 그가 평생 가장 꾸준히 해 온 일은 ‘셜록 홈스 마니아’다. “8세 때 ‘바스커빌 가문의 개’로 셜록을 처음 만났죠. 14세 때 책 뒤의 엽서를 보고 ‘셜록 홈스 협회’에 가입했어요. 30년 동안 협회 저널 편집장을 맡았고 지금은 명예회원입니다.” 1951년 결성된 셜록 홈스 협회는 매년 1월 영국 의회 ‘하우스 오브 커먼스(하원)’에서 정기모임을 갖는다. 단순 친목모임이 아니라 셜록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저널에도 가벼운 글부터 ‘유사 논문’까지 게재한다. “저도 셜록 홈스가 옥스퍼드대에 다녔을 상황을 가정해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셜록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해요. 셜록의 의상을 입는 모임도 있고, 그 시대 방식으로 크리켓 경기도 해요. 가장 값비싼 취미는 컬렉팅이죠. 소설 원본이나 편지 등을 수집하는데 애플사 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오리지널 삽화 25개 중 7개를 갖고 있다는 소문도 있죠.(웃음)” 셜록 다큐멘터리에도 여러 번 출연한 그는 “셜록의 재창조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똑똑한 셜록과 평범한 왓슨, 두 캐릭터의 조합이 만든 보편적 스토리가 매력적이에요.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평가되진 않지만 셜록에 관한 관심은 20년 주기로 끊임없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 윤동주를 기억하는 ‘릿쿄 모임’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은 남의 나라/…/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쉽게 쓰여진 시’에서) 윤동주 시인(1917∼1945)은 1942년 일본 도쿄의 릿쿄(立敎)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이 시기 대표작 ‘쉽게 쓰여진 시’를 썼다. 이곳에선 매년 2월 윤동주의 기일을 전후해 그를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다.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이 주최하는데 매년 행사 때면 250석 규모의 고즈넉한 성공회 예배당에 3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다. ‘릿쿄 모임’은 ‘육첩방’의 위치가 ‘도쿄 신주쿠 구 다카다노바바 1초메’이며 ‘늙은 교수’는 동양철학을 가르친 우노 데쓰도 교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모임을 결성한 릿쿄대 동문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72·여)가 20년 넘게 윤동주의 발자취를 수소문한 끝에 이룬 결과다. 이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윤동주의 시를 대사로 사용한 연극을 만들어 DVD로 제작하거나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팀을 초청해 교정에서 공연을 여는 등 문화 사업도 진행한다. 2010년부터 릿쿄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윤동주장학금’ 또한 이들의 노력에 의해 탄생했다. 릿쿄대는 윤동주가 다닌 학교라고는 하지만 6개월 남짓, 그것도 청강생 자격으로 다녔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장 격렬하게 드러낸 시인이 아닌가. 야나기하라 씨와 ‘릿쿄 모임’에 윤동주가 이토록 특별한 존재인 이유를 물었다. “우리가 윤동주를 사모하는 것은 시어 하나하나에서 청년 윤동주의 고뇌와 아픔이 절절히 묻어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이 아름다운 청년을 아프게 한 우리(일본) 역사의 과오를 꼭 기억하고자 합니다.”(야나기하라 씨)○ 민요와 메탈 결합시킨 언어학 마니아 “페로제도는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 전통 민요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곳이에요. 결혼식과 국가의식이 있을 때마다 불리죠.”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사이에 위치한 페로제도에도 괴팍한 마니아가 있다. 북유럽 신화와 바이킹 영웅담을 주요 소재로 한 음악으로 인기를 얻은 헤비메탈 밴드 ‘튀르(T,r)’의 리더인 헤리 요엔센(45). 그는 튀르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전기기타와 검을 휘두르며 근육질의 고대 영웅을 연기하지만 사실은 책벌레이고 언어학과 문학 마니아다. “20대 초반에 인도유럽어족 언어 비교학을 전공하기 위해 덴마크로 유학을 갔어요. 근데 헤비메탈에 너무 심취해 음악으로 전공을 바꿨죠.” 메탈 음악이 좋았지만 열 살 무렵부터 자신의 세계를 뒤흔든 북유럽 신화와 바이킹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침 덴마크 록 가수 페르 프로스트가 페로제도 민요 ‘푸글라그라야’를 활용해 만든 곡이 나와 자극 받았다. 메탈과 신화, 둘을 합쳐 보기로 했다. 그는 북유럽과 페로제도의 민요를 뒤져 가며 그 선율과 가사를 자신이 지은 메탈 선율에 합쳐 창작했다. 튀르의 음악에 5박, 7박 같은 변칙 박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고대의 운율에 음악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현상이다. 팀명인 ‘튀르’ 역시 북유럽 신화 속 신의 이름. 요엔센은 2013년, 메탈 밴드 활동을 잠시 쉬고 늦깎이 학생으로 이번엔 코펜하겐의 학교가 아닌 자국 페로제도 대학교에 재입학해 페로제도어문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북유럽 각국의 언어에 독일어, 영어까지 7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북유럽 민요와 민담을 더욱더 좋은 메탈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싶습니다.”런던=김민 kimmin@donga.com / 도쿄=이지운 / 스톡홀름=임희윤 기자}

과거 영국 상류층의 쇼핑 거리였던 팰 맬(Pall Mall)가. 런던 시내 중심지인 세인트 제임스 지구와 트라팔가 광장을 잇는 이 거리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대저택이 늘어서 있다. “이곳은 19세기 상류층 남성들이 비공개 사교 모임을 가졌던 ‘젠틀맨 클럽’입니다. 셜록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만든 ‘디오게네스 클럽’의 배경이 바로 여기죠.” ‘셜록 홈즈 투어’ 가이드의 목소리에 미국, 스웨덴, 러시아, 중국 등 전 세계에서 런던으로 모인 ‘셜로키언(Sherlockian·셜록 홈즈 마니아를 일컫는 말)’이 귀를 쫑긋 기울였다. 이 투어는 공식 기관이 아닌 개인이 운영한다. ‘셜록 홈즈’는 영국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재창작할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저작권이 소멸된 컨텐츠)이다. 그래서 셜록 홈즈 박물관, 맥주집 같은 공간으로도 풍부하게 재창작되며 대규모 제작사뿐 아니라 개인까지 먹여 살리고 있었다. 이 투어의 운영자 르위스 스완은 “고전을 다양한 관점으로 즐기는 마니아는 컨텐츠 재해석의 전문가들”이라고 했다. 이처럼 과거의 콘텐츠를 일상에서 즐기고 재창조하는 마니아는 전세계 각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 “셜록에 대한 관심은 20년 주기로 돌아온다” 닉 우테힌(66)은 25년 동안 BBC 등 방송국에서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러나 그가 평생 가장 꾸준히 해 온 일은 ‘셜록 홈즈 마니아’다. “8살 때 ‘바스커빌 가문의 개’로 셜록을 처음 만났죠. 14살 때 책 뒤의 엽서를 보고 ‘셜록 홈즈 협회’에 가입했어요. 30년 동안 협회 저널 편집장을 맡았고, 지금은 명예 회원입니다.” 1951년 결성된 셜록 홈즈 협회는 매년 1월 영국 의회 ‘하우스 오브 커먼즈(하원)’에서 정기모임을 갖는다. 단순 친목모임이 아니라 셜록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저널에도 가벼운 글부터 ‘유사 논문’까지 게재한다. “저도 셜록 홈즈가 옥스퍼드대에 다녔을 상황을 가정해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셜록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해요. 셜록의 의상을 입는 모임도 있고, 그 시대 방식으로 크리켓 경기도 해요. 가장 값비싼 취미는 컬렉팅이죠. 소설 원본이나 편지 등을 수집하는데, 애플사 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오리지널 삽화 25개 중 7개를 갖고 있다는 소문도 있죠.(웃음)” 셜록 다큐멘터리에도 여러 번 출연한 그는 “셜록의 재창조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똑똑한 셜록과 평범한 왓슨, 두 캐릭터의 조합이 만든 보편적 스토리가 매력적이에요.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되진 않지만, 셜록에 관한 관심은 20년 주기로 끊임없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 윤동주를 기억하는 ‘릿쿄 모임’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은 남의 나라/…/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쉽게 쓰여진 시’에서) 윤동주 시인(1917~1945)은 1942년 일본 도쿄의 릿쿄(立敎)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이 시기 대표작 ‘쉽게 쓰여진 시’를 썼다. 이곳에선 매년 2월 윤동주의 기일을 전후해 그를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다.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이 주최하는데, 매년 행사 때면 250석 규모의 고즈넉한 성공회 예배당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다. ‘릿쿄 모임’은 ‘육첩방’의 위치가 ‘도쿄 신주쿠 구 다카다노바바 1초메’이며, ‘늙은 교수’는 동양철학을 가르친 우노 데츠도 교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모임을 결성한 릿쿄 대학 동문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72·여)가 20년 넘게 윤동주의 발자취를 수소문한 끝에 이룬 결과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윤동주의 시를 대사로 사용한 연극을 만들어 DVD로 제작하거나,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팀을 초청해 교정에서 공연을 여는 등 문화 사업도 진행한다. 2010년부터 릿쿄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는 ‘윤동주 장학금’ 또한 이들의 노력에 의해 탄생했다. 릿쿄대학은 윤동주가 다닌 학교라고는 하지만 6개월 남짓, 그것도 청강생 자격으로 다녔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장 간절하게 드러낸 시인이 아닌가. 야스코 씨와 ‘릿쿄 모임’에게 윤동주가 이토록 특별한 존재인 이유를 물었다. “우리가 윤동주를 사모하는 것은 시어 하나 하나에서 청년 윤동주의 고뇌와 아픔이 절절이 묻어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이 아름다운 청년을 아프게 한 우리(일본) 역사의 과오를 꼭 기억하고자 합니다.”(야나기하라 야스코) ● 민요와 메탈 결합시킨 언어학 마니아 “페로제도는 북유럽 국가들 중에서 전통 민요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나라예요. 결혼식과 국가의식이 있을 때마다 불리죠.”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사이에 위치한 페로제도에도 괴팍한 마니아가 있다. 북유럽 신화와 바이킹 영웅담을 주요 소재로 한 음악으로 인기를 얻은 헤비메탈 밴드 ‘튀르(T¤r)’의 리더인 헤리 요엔센(45). 그는 튀르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그는 전기기타와 검을 휘두르며 근육질 고대 영웅을 연기하지만 사실은 책벌레이고 언어학과 문학 마니아다. “20대 초반에 인도유럽어족 언어 비교학을 전공하기 위해 덴마크로 유학을 갔어요. 근데 헤비메탈에 너무 심취해 음악으로 전공을 바꿨죠.” 메탈 음악이 좋았지만 열 살 무렵부터 자신의 세계를 뒤흔든 북유럽 신화와 바이킹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마침 덴마크 록 가수 페르 프로스트가 페로제도 민요 ‘푸글라그라야’를 활용해 만든 곡이 나와 자극 받았다. 메탈과 신화, 둘을 합쳐보기로 했다. 그는 북유럽과 페로제도의 민요를 뒤져가며 그 선율과 가사를 자신이 지은 메탈 선율에 합쳐 창작했다. 튀르의 음악에 5박, 7박 같은 변칙박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고대의 운율에 음악을 맞추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현상이다. 팀명인 ‘튀르’ 역시 북유럽 신화 속 신의 이름. 요엔센은 2013년, 메탈 밴드 활동을 잠시 쉬고 늦깎이 학생으로 이번엔 코펜하겐의 학교가 아닌 자국 페로제도 대학교에 재입학해 페로제도어문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북유럽 각국의 언어에 독일어, 영어까지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북유럽 민요와 민담을 더욱더 좋은 메탈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싶습니다.”런던=김민 kimmin@donga.com/페로제도=임희윤/도쿄=이지운 기자}

“참 영정 사진을 보니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 세상 떠나는 당신, 울면서 보내고 싶지 않아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6일 엄수된 배우 신성일의 영결식에서 아내 엄앵란 씨(82)는 눈물을 참았다. 분향과 헌화를 마친 엄 씨는 마지막 인사말에서 “(제가) 울면 망자가 마음이 아파 걷지 못하니, 밤에 집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실컷 울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희로애락도 많지만 그간 엉망진창으로 살았다. 남편이 다시 태어나 함께 산다면 선녀같이 공경하고 싶지만 늦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어 추모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댁에 계신 부인들에게 잘하시라. 그러면 기쁨이 온다”고 덧붙였다. 영결식에는 엄 씨를 비롯한 유가족 및 친지와 원로배우 신영균,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이장호 정진우 감독,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 배우 이덕화 독고영재 김형일 등 1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에게 영원한 작별 인사를 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장은 “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이 사라지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며 “고인은 한국 영화의 전설이자 신화였다. 이제 하늘의 별이 되었으니 우리 영화계를 잘 보살펴 달라”고 애도했다. 오석근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불과 한 달 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본 고인의 당당한 모습은 모든 영화인에게 무한한 든든함이었다”며 “고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 영화가 세계 정상에 오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고인의 영정은 손자가, 고인이 누운 관은 안성기 이덕화 김형일 독고영재 등이 운구차로 옮겼다.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서울 서초구)에서 화장됐고 이후 생전 자택이 있는 경북 영천시 선영으로 이동했다. 7일에는 경북 영천시 괴연동 고인의 한옥 자택 ‘성일가(星一家)’ 정원에서 추도식이 거행된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사무국이 주관해 추도식과 추모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대구 출신인 고인은 2008∼2013년 DIMF 이사장을 지냈다. 유해는 자택 정원에 안장되며 봉분은 하지 않는다. 고인은 2008년 10월부터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 한옥을 지어 살아왔다. 2011년 결혼 47주년을 기념해 심은 벚나무 5그루가 있다. 고인은 평소 지인들에게 “죽고 나면 이곳에 묻어 달라”고 말해왔다. 영천은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곳으로 별빛이 잘 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 영화의 별 신성일은 영천의 별빛 아래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김민 kimmin@donga.com / 영천=박광일 기자}

“참 영정 사진을 보니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 세상 떠나는 당신, 울면서 보내고 싶지 않아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6일 엄수된 고 신성일 배우의 영결식에서 아내 엄앵란 씨(82)는 눈물을 참았다. 분향과 헌화를 마친 엄 씨는 마지막 인사말에서 “(제가) 울면 망자가 마음이 아파 걷지 못하니, 밤에 집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실컷 울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희로애락도 많지만 그간 엉망진창으로 살았다. 남편이 다시 태어나 함께 산다면 선녀같이 공경하고 싶지만 늦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어 추모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댁에 계신 부인들에게 잘 하시라. 그러면 기쁨이 온다”고 덧붙였다. 영결식에는 엄 씨를 비롯한 유가족·친지와 원로배우 신영균,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이장호 정진우 감독,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 배우 이덕화 독고영재 김형일 등 150여 명이 참석해 고인에게 영원한 작별 인사를 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장은 “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이 사라지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며 “고인은 한국영화의 전설이자 신화였다. 이제 하늘의 별이 되었으니 우리 영화계를 잘 보살펴 달라”고 애도했다.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은 추도사에서 “불과 한 달 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본 고인의 당당한 모습은 모든 영화인에게 무한한 든든함이었다”며 “고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한국영화가 세계 정상에 오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고인의 영정은 손자가, 고인이 누운 관은 안성기 이덕화 김형일 독고영재 등이 운구차로 옮겼다.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서울 서초구)에서 화장됐고 이후 생전 자택이 있는 경북 영천시 선영으로 이동했다. 7일에는 경북 영천시 괴연동에 있는 고인의 한옥 자택 ‘성일가(星一家)’ 정원에서 추도식이 거행된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사무국이 주관해 추도식과 추모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대구 출신인 고인은 2008~2013년 DIMF 이사장을 지냈다. 유해는 자택 정원에 안장되며 봉분은 하지 않는다. 고인은 2008년 10월부터 지인의 소개로 이곳에 한옥을 지어 살아왔다. 2011년 결혼 47주년을 기념해 심은 벚나무 5그루가 있다. 고인은 평소 지인들에게 “죽고 나면 이곳에 묻어 달라”고 말해왔다. 영천은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곳으로 별빛이 잘 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국영화의 별 신성일은 영천의 별빛 아래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영천=박광일 기자 light1@donga.com}

《“어머니! 보고 싶어요.”“우리는 꼭 서울에 갈 거야.” 영국 런던의 국립극장 ‘로열내셔널시어터’. 무채색 콘크리트로 지은 극장 건물 밖에는 거리 음악가의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도도히 흐르는 템스강을 따라 늘어선 노점상에는 헌책이 가득하다. 클래식 공연부터 셰익스피어의 연극, 예술 전시까지 유럽 문화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공간이다. 내셔널시어터 내의 300석 규모 소극장 ‘도프먼 극장’에 올해 6월 말 ‘어머니’, ‘아버지’, ‘우리’ 같은 한국어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금발의 백인, 곱슬머리를 땋은 흑인 배우들이 진지한 얼굴로 한국인 역을 연기하고 있었다. 연극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문화 교류 프로그램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 런던 북부의 문화 공간인 ‘잭슨스 레인’의 10대 연극 제작 프로덕션에 소속된 이들이 영국의 권위 있는 극장에서 한국 이야기를 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강제 북송 탈북 청소년 이야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무대는 북한 양강도 혜산과 라오스 이민당국의 임시 수용소를 오간다. 연극의 제목은 ‘프리 나인(Free 9)’. 2013년 북한을 탈출했지만 라오스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다시 북으로 보내진 청소년 9명의 이야기다. 이 연극의 작가 인숙 차펠(44)은 영국 신문에 보도된 짤막한 기사를 보고 대본을 써 내려갔다. 2013년은 그가 영국의 탈북자 커뮤니티를 처음 접하고, 북한에 관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조사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내셔널시어터 ‘커넥션스’의 담당 프로듀서로부터 각본 제작을 제안 받은 그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기로 결심했다. ‘커넥션스’는 1995년부터 시작해 매년 열리는 청소년 연극 축제다. 내셔널시어터가 기성 작가 10명에게 의뢰해 대본을 받으면, 영국 전역의 13∼19세로 구성된 유스 프로덕션이 캐스팅부터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배우 키라 나이틀리도 어릴 적 ‘커넥션스’에 참여했다. 올해에는 270개 팀 5200명이 참가했고, 이 가운데 10개 팀이 선발됐다. 지난해부터 ‘프리 나인’으로 연극을 준비한 ‘트랜스미션’ 극단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완전히 다른 처지의 또래들을 이해하기 위해 뉴스를 찾아보고, 한국어 발음도 연구했다. 연예인이 되길 꿈꾸는 북한 소녀 ‘포피’를 연기하려고 유튜브에서 K팝 영상을 뒤져 안무 연습도 했다. 차펠은 연극을 통해 이들이 북한의 청소년들을 같은 인간으로 이해하길 바랐다. “영국 지방 프로덕션의 아이들 대부분은 백인이에요. 극 중 인물을 나와 다른 존재로 보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검은 머리의 가발을 쓰거나 아시안 악센트를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등장인물에게 외국 이름을 붙인 것도 같은 이유고요. 상상하기 힘든 삶이지만 그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글과 연극의 힘이에요.” 차펠 역시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해 영어로 된 자료를 찾았다. 거기에 상상력을 입혀 영어로 작품을 썼고, 한국어 단어를 넣었다. ‘프리 나인’은 한국인 기자가 보기에는 캐릭터나 상황 설정이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영국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북한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커넥션스’의 총괄 프로듀서 홀리 애스턴은 “‘프리 나인’은 커넥션스에서 드물게 정치적 이슈를 다뤘지만 결국은 10대들의 우정, 외로움, 공포, 그리고 집에 관한 이야기다. 제작진과 관객들은 평소 몰랐던 이슈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시아인 역할 제한돼 직접 썼다” 차펠은 한국에서 태어난 직후 런던으로 입양됐다. 에식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그는 미국 뉴욕 앨빈 에일리 스쿨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무용수로 무대에 서다 부상으로 일을 쉬었어요. 그때 내 꿈에 비해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연기 학원에 등록했어요.” 큰 키에 광대뼈가 보기 좋게 나온 개성 있는 마스크의 그는 배우로서의 출발도 나쁘지 않았다. 단역이었지만 첫 무대를 영국 내셔널시어터에서 시작했고 단편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한계에 부닥쳤다. “아시아 여성의 역할이 한정적이었어요. 주연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강한 캐릭터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사고 방식은 영국인이지만 사람들이 보는 저는 아시아인일 뿐이었죠. 절망스러웠지만, 아예 직접 대본을 쓰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내가 강한 아시아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쓰면 그런 역할이 생기는 거니까요.” 절망을 기회로 바꾼 그는 꿈을 이뤘다. 2007년 집필한 연극 ‘이것은 로맨스가 아니야’로 신인 극작가의 등용문인 ‘베리티 바게이트 어워드’를 수상하고 2년 뒤 런던 소호 극장에 작품을 올렸다. 이 연극은 입양아로서 겪었던 두려움을 섬세하면서도 파격적으로 풀어내 큰 관심을 받았고 티켓도 매진됐다. “제가 입양됐을 때만 해도 영국은 한국을 가난한 나라로만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입양되지 않았더라면 공장에서 일하지 않았을까, 몸을 팔아야 하진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 한국에서 자란 남동생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를 안아주고 화해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별도의 교육을 받지 않고 직접 부딪치며 글을 써온 그이기에, 작품에 대한 평가도 갈렸다. 그러나 그는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파고들며 글을 써나갔다. 2016년에는 젊은 북한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평양’으로 영국 최대의 희곡 공모전인 브런트우즈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맨체스터 로열익스체인지 극장의 제안으로 헬렌 체의 소설 ‘스위트 만다린’을 극화했다. 소설은 영국의 유명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는 중국 이민자 3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차펠이 꿈꿨던 강한 아시아 여성의 성공 스토리다. “내가 한국과 아시아에 관심 갖는 건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스웨덴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제 딸도 지난해 한국에 가서는 ‘엄마, 여기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생겼어’라고 했어요. 신기하죠. 그러나 영국인들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핵무기나 포로수용소, 가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만 떠올려요. 잘 알지 못하니 그런 거죠. 저는 이곳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겁니다.”런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어머니! 보고 싶어요.” “우리는 꼭 서울에 갈 거야.” 영국 런던의 국립극장 ‘로얄 내셔널 시어터’. 무채색 콘크리트로 지은 극장 건물 밖에는 거리 음악가의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도도히 흐르는 템스강을 따라 늘어선 노점상에는 헌 책이 가득하다. 클래식 공연부터 셰익스피어의 연극, 예술 전시까지 유럽 문화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공간이다. 내셔널시어터 내의 300석 규모 소극장 ‘도프만 극장’에 올해 6월 말 ‘어머니’, ‘아버지’, ‘우리’ 같은 한국어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금발의 백인, 곱슬머리를 땋은 흑인 배우들이 진지한 얼굴로 한국인 역을 연기하고 있었다. 연극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문화 교류 프로그램으로 만든 게 아니었다. 런던 북부의 문화 공간인 ‘잭슨스 레인’의 10대 연극 제작 프로덕션에 소속된 이들이 영국의 권위 있는 극장에서 한국 이야기를 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강제 북송 탈북 청소년 이야기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무대는 북한 양강도 혜산과 라오스 이민당국의 임시 수용소를 오간다. 연극의 제목은 ‘프리 나인(Free 9)’. 2013년 북한을 탈출했지만 라오스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다시 북으로 보내진 청소년 9명의 이야기다. 이 연극의 작가 인숙 차펠(44)은 영국 신문에 보도된 짤막한 기사를 보고 대본을 써내려갔다. 2013년은 그가 영국의 탈북자 커뮤니티를 처음 접하고, 북한에 관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조사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내셔널 시어터 ‘커넥션즈’의 담당 프로듀서로부터 각본 제작을 제안 받은 그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기로 결심했다. ‘커넥션즈’는 1995년부터 시작해 매년 열리는 청소년 연극 축제다. 내셔널 시어터가 기성 작가 10명에게 의뢰해 대본을 받으면, 영국 전역의 13~19세로 구성된 유스 프로덕션이 캐스팅부터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도 어릴 적 ‘커넥션즈’에 참여했다. 올해에는 270개 팀 5200명이 참가했고, 이 가운데 10개 팀이 선발됐다. 지난해부터 ‘프리 나인’으로 연극을 준비한 ‘트랜스미션’ 극단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완전히 다른 처지의 또래들을 이해하기 위해 뉴스를 찾아보고, 한국어 발음도 연구했다. 연예인이 되길 꿈꾸는 북한 소녀 ‘포피’를 연기하려고 유튜브에서 K팝 영상을 뒤져 안무 연습도 했다. 차펠은 연극을 통해 이들이 북한의 청소년들을 같은 인간으로 이해하길 바랐다. “영국 지방 프로덕션의 아이들 대부분은 백인이에요. 극 중 인물을 나와 다른 존재로 보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검은 머리의 가발을 쓰거나 아시안 액센트를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등장인물에게 외국 이름을 붙인 것도 같은 이유고요. 상상하기 힘든 삶이지만 그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글과 연극의 힘이에요.” 차펠 역시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해 영어로 된 자료를 찾았다. 거기에 상상력을 입혀 영어로 작품을 썼고, 한국어 단어를 넣었다. ‘프리 나인’은 한국인 기자가 보기에는 캐릭터나 상황 설정이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영국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북한을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커넥션즈’의 총괄 프로듀서 홀리 애시턴은 “‘프리 나인’은 커넥션즈에서 드물게 정치적 이슈를 다뤘지만 결국은 10대들의 우정, 외로움, 공포, 그리고 집에 관한 이야기다. 제작진과 관객들은 평소 몰랐던 이슈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아시아인 역할 제한돼 직접 썼다” 차펠은 한국에서 태어난 직후 런던으로 입양됐다. 에식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그는 미국 뉴욕 앨빈 애일리 스쿨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무용수로 무대에 서다 부상으로 일을 쉬었어요. 그 때 내 꿈에 비해 능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연기 학원에 등록했어요.” 큰 키에 광대뼈가 보기 좋게 나온 개성 있는 마스크의 그는 배우로서의 출발도 나쁘지 않았다. 단역이었지만 첫 무대를 영국 내셔널 시어터에서 시작했고 단편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한계에 부딪쳤다. “아시아 여성의 역할이 한정적이었어요. 주연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강한 캐릭터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사고 방식은 영국인이지만 사람들이 보는 저는 아시아인일 뿐이었죠. 절망스러웠지만, 아예 직접 대본을 쓰자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내가 강한 아시아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쓰면 그런 역할이 생기는 거니까요.” 절망을 기회로 바꾼 그는 꿈을 이뤘다. 2007년 집필한 연극 ‘이것은 로맨스가 아니야’로 신인 극작가의 등용문인 ‘베리티 바게이트 어워드’를 수상하고 2년 뒤 런던 소호 극장에 작품을 올렸다. 이 연극은 입양아로서 겪었던 두려움을 섬세하면서도 파격적으로 풀어내 큰 관심을 받았고 티켓도 매진됐다. “제가 입양됐을 때만 해도 영국은 한국을 가난한 나라로만 알았어요. 그래서 내가 입양되지 않았더라면 공장에서 일하지 않았을까, 몸을 팔아야 하진 않았을까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 한국에서 자란 남동생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를 안아주고 화해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별도의 교육을 받지 않고 직접 부딪치며 글을 써온 그이기에, 작품에 대한 평가도 갈렸다. 그러나 그는 정체성에 대해 꾸준히 파고들며 글을 써나갔다. 2016년에는 젊은 북한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평양’으로 영국 최대의 희곡 공모전인 브런트우즈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맨체스터 로얄엑스체인지 극장의 제안으로 헬렌 체의 소설 ‘스위트 만다린’을 극화했다. 소설은 영국의 유명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는 중국 이민자 3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차펠이 꿈꿨던 강한 아시아 여성의 성공 스토리다. “내가 한국과 아시아에 관심 갖는 건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스웨덴인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제 딸도 지난해 한국에 가서는 ‘엄마, 여기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생겼어’라고 했어요. 신기하죠. 그러나 영국인들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핵무기나 포로수용소, 가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만 떠올려요. 잘 알지 못하니 그런 거죠. 저는 이곳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겁니다.”런던=김민 기자kimmin@donga.com}

“나는 내키지 않는 길은 가지 않았다. …‘나는 신성일이다’라는 자존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별은 끝내 별로 살다 갔다. 평생 창공에 머물며 낙조(落照)를 품지 않은 채. 스스로를 ‘쥘리앵’(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 주인공)이라 여겼던 ‘한국의 알랭들롱’ 신성일(申星一)은 4일 또 다른 하늘, 별들의 고향으로 날아갔다. 향년 81세. 신성일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성일이었다. 꼿꼿하고 강렬했다. 지난해 갑작스럽던 폐암 판정. 모두가 놀라 입을 다물 때도 그는 “그깟 암세포 모두 다 내쳐버리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된 지난달 동아일보와의 만남에서도 “할 일이 많다. 북한에 있다는 영화 ‘만추(晩秋·1966년)’ 필름을 찾아오고 싶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고인은 “스스로를 최고로 대접해야 진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사에서 첫 월급을 받아 반 이상을 호화로운 하숙집에 밀어 넣었던 그는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포츠머리’를 유행시켰던 그를 따라 남자들은 이발소에서 ‘신성일 머리’를 주문했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처음부터 스타였다. 1959년 508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는,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이자 배우 엄앵란을 만난 데뷔작 ‘로맨스 빠빠’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았다. ▼ “나는 신성일이다”… 마지막까지 영화 꿈꾼 맨발의 청춘 ▼ ‘맨발의 청춘’ ‘초우’ ‘별들의 고향’ ‘겨울 여자’ 등 찍는 작품마다 저잣거리를 들썩였다. 패션에도 자부심이 넘쳤다. 고인은 본보와의 마지막 인터뷰 때도 와인 빛이 감도는 빨간 스웨터에 실크스카프를 멋들어지게 곁들였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선 150만 원짜리 돌체앤가바나 청바지를 입고 레드 카펫을 뚜벅뚜벅 걸었다. “배우는 언제나 배우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일이 없어도 운동을 거른 적이 없었다. 2005년 구속됐을 때 감옥에서도 콘크리트로 만든 역기를 들고, 골프채 대신 3m짜리 빗자루로 하루에 20∼30번씩 스윙 연습을 했다. 추운 겨울에도 냉수로 샤워를 해 30대 청년처럼 근육이 잡힌 건강한 몸을 유지했다고 한다. 삶 자체도 세간의 기준과는 결이 달랐다. 1964년 역시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엄앵란과 전격 결혼을 발표했다. 11월 14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두 사람의 혼인식에는 전국에서 3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정작 최무룡 김지미 등 주요 하객이 식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2층 테라스에서 얼굴을 내민 신랑 신부를 향한 환호는 영국 왕실 예식이 부러울 것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탓일까.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말 못 할 고충도 적지 않았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마포·용산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큰 표차로 고배를 마시고 빚더미에 올랐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하며 오랫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식당을 운영하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던 엄앵란은 “어디 가도 기죽지 말라”며 매일 10만 원씩 쥐여주고 내보냈다. 고인은 2000년 대구 동구에서 세 번째 도전 만에 당선됐다. 2011년 발간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솔직하게, 이미 고인이 된 한 여배우와의 사랑을 고백한 게 세상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그때도 신성일은 당당했다. “난 그녀에게 일생을 빚진 자다.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두렵지 않다.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들려 드리는 것이 내 의무다.” 그는 마지막까지 신작 영화 제작의 꿈으로 부풀어 있었다.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방과 양방 복합 치료를 받으며 기력을 회복했다. 그러나 최근 감기에 걸린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다고 유가족이 전했다. 3일 오후 세상은 그의 ‘사망설’로 들썩였지만, 그는 생명의 끈을 쉽게 놓지 않았다. 결국 다음 날 오전 2시 반. 거성(巨星)은 마지막 숨결을 거둬들였다. “나는 자유인으로, 로맨티시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 숱한 유혹이나 강압에도 불구하고 권력자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나다. 난 젊은이들에게 ‘정면 돌파하라’고 외치고 싶다.” 은막의 청춘은 시대의 청춘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들려주었다. 정양환 ray@donga.com·김민 기자※본보와의 신성일 마지막 인터뷰 동영상은 동아닷컴과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인은 9일 열리는 시상식에 ‘들것에 실려서라도 꼭 가겠다’고 했어요. 몇 달 전에도 영화를 같이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로 언제나 열정적이었는데….” 4일 원로 배우 신영균 씨(90)는 ‘제8회 아름다운예술인상’(신영균예술문화재단 주최)에 공로예술인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신성일 씨(81)의 열정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깊이 애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였던 고인의 삶은 그 자체가 한국 영화사와 궤적을 함께해왔다.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북중·고교,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후 ‘맨발의 청춘’(1964년), ‘춘향전’(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을 쏟아내며 1960, 70년대 한국 영화의 독보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본명은 강신영이지만 신상옥 감독이 예명을 ‘신성일’이라고 지어줬다. 주연을 맡은 작품만 507편에 이르고 조연 등으로 출연한 영화까지 합치면 600편이 넘는다. 제작 및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연애교실’(1971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있다.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1990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년)에 제작자로 참여했다. 고인이 출연한 ‘초우’ ‘배신’을 연출한 정진우 영화감독(80)은 “로맨티시스트, 깡패 등 어떤 역할을 맡아도 제대로 소화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이자 솔직하고 맑은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정계로도 눈을 돌렸다. 1981년,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차례 낙마한 후 2000년 국회에 입성(한나라당·대구 동구)했다. 본명을 써야 하는 선거에서는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정치에 뛰어든 결과는 혹독했다. 2005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 연장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감옥에 수감된 것. 고인은 개인사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맨발의 청춘’ ‘청춘교실’ ‘가정교사’ 등에서 호흡을 맞춘 당대 최고의 배우 엄앵란 씨와 1964년 결혼식을 올려 큰 화제가 됐다. 1남 2녀를 뒀지만 고인의 끊이지 않는 외도로 오랜 기간 별거했다. 하지만 2015년 엄 씨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 곧장 달려가 간호했고, 지난해 고인이 폐암 진단을 받자 엄 씨가 고인을 돌보며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영화계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한국영화배우협회장(1979년),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1994년),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장(2002년)을 맡았다. 대구과학대 겸임교수, 계명대 특임교수를 지내며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것이 마지막 공식 활동이 됐다.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박찬욱 영화감독은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 영화사는 물론이고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김민 기자}

“고인은 9일 열리는 시상식에 ‘들 것에 실려서라도 꼭 가겠다’고 했어요. 몇 달 전에도 영화를 같이 만들자고 제안할 정도로 언제나 열정적이었는데….” 4일 빈소를 찾은 원로배우 신영균 씨(90)는 ‘제8회 아름다운예술인상’(신영균예술문화재단 주최)에 공로예술인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신성일 씨(81)의 열정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깊이 애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남 배우였던 고인의 삶은 그 자체가 한국 영화사와 궤적을 함께해왔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생후 사흘 만에 대구로 이사했다. 경북고,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후 ‘맨발의 청춘’(1964년), ‘춘향전’(1968년), ‘별들의 고향’(1974년), ‘겨울 여자’(1977년) 등 숱한 히트작을 쏟아내며 1960, 70년대 한국 영화의 독보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본명은 강신영이지만 신상옥 감독이 예명을 ‘신성일’이라고 지어줬다. 주연을 맡은 작품만 507편에 이르고 조연 등으로 출연한 영화까지 합치면 600편이 넘는다. 제작 및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 ‘연애교실’(1971년),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이 있다.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1990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년)에 제작자로 참여했다. 고인이 출연한 ‘초우’ ‘배신’을 연출한 정진우 영화감독(80)은 “로맨티스트, 깡패 등 어떤 역할을 맡아도 제대로 소화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이자 솔직하고 맑은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정계로도 눈을 돌렸다. 1981년,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차례 낙마한 후 2000년 국회에 입성(한나라당·대구 동구)했다. 본명을 써야 하는 선거에서는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정치에 뛰어든 결과는 혹독했다. 2005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 연장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감옥에 수감된 것. 고인은 개인사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맨발의 청춘’, ‘청춘교실’, ‘가정교사’ 등에서 호흡을 맞춘 당대 최고의 배우 엄앵란 씨와 1964년 결혼식을 올려 큰 화제가 됐다. 1남 2녀를 뒀지만 고인의 끊이지 않는 외도로 오랜 기간 별거했다. 하지만 2015년 엄 씨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자 곧장 달려가 간호했고, 지난해 고인이 폐암 진단을 받자 엄 씨가 고인을 돌보며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영화계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한국영화배우협회장(1979년), 한국영화제작업협동조합 부이사장(1994년), 춘사나운규기념사업회장(2002년)을 맡았다. 대구과학대학 겸임교수, 계명대 특임교수를 지내며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것이 마지막 공식 활동이 됐다.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청룡영화상 인기남우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박찬욱 영화감독은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 영화사는 물론이고 한국 현대 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 故 신성일 씨 연보 ▼△1937년 서울 출생△경북고,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로맨스 빠빠’(1960)로 데뷔△‘맨발의 청춘’(1964), ‘별들의 고향’(1974), ‘겨울 여자’(1977) 등 507편 영화에서 주연△‘연애교실’(1971), ‘어느 사랑의 이야기’(〃) 등 제작·감독△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1968), 청룡영화상 인기상(1963), 백상예술대상 인기상(1970) △제16대 국회의원 당선(한나라당, 대구 동구)△폐암으로 별세(2018)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