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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촌수필’의 작가인 이문구(1941∼2003)가 글쓰기를 위해 기거했던 오두막은 충남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그가 10년 전 세상을 떠난 후 이 집은 그대로 비어 있다. 이제는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다. 나는 동향의 문단 후배가 되어 몇 차례 이곳에서 이문구와 만났었다. 집필실이라는 말에 그는 크게 웃었다. 이 조그만 오두막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 진당산 아래 골짜기는 조선 후기 유학자 토정 이지함을 배향하던 화암서원(花巖書院)이 가깝다. 나지막한 산자락 끝으로는 청천저수지가 널따랗게 펼쳐있다. 이문구는 1989년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온몸으로 가담했던 민주화운동 대신에 온몸으로 글다운 글을 쓰겠노라고 했다. 방 한 칸에 마루 하나 그리고 작은 부엌을 갖춘 이 집에서 그는 십년이 넘게 글을 썼다. 》 이문구는 충남 대천 갈머리(관촌마을)에서 1941년 토정과 같은 한산 이씨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나이 열 살이 되던 해 6·25전쟁이 터지자 남로당 간부였던 아버지는 예비검속에 걸려 처형당했고, 끌려간 형들마저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조부도 세상을 떠났고, 화병을 앓던 모친도 잃었다. 중학을 겨우 나온 이문구는 결국 고향을 등진 채 서울로 올라갔다. 그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전쟁을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지워버리고자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큰 상처로 덧났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는 글쓰기에 매달렸다. 힘든 고학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1966년 ‘현대문학’에 단편 ‘백결’로 등단했다. 작가가 된 후 그는 1970년대의 살벌했던 시대상황에 맞서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한 맺힌 고향 이야기를 마치 아름다운 화폭을 펼치듯 써내려갔다. 그것이 그의 대표작 ‘관촌수필’(1977년)로 완성되었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지워나갔던 고향 갈머리를 서사의 공간으로 살려내고는, 그 속에 온전하지는 않지만 빼앗긴 아버지와 형의 존재를 기억의 끝자락에 매달았다. 그는 1974년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이사, 부이사장, 이사장을 차례로 맡았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투쟁에도 적극 가담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살아남기 위해 힘썼다. 그의 작품 ‘관촌수필’을 통해 갈머리가 문학적 명소(名所)로 살아났다고 하자, 생전 그는 웃으면서 자신의 아호인 명천(鳴川)을 한자로 내게 써보였다. 나는 ‘울음내’라는 대천 인근의 옛 지명을 댔다. 그러자 그는 “알고 있네” 하면서 반겼다. 관촌수필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아예 울음내를 아호로 쓰기로 했다는 거였다. 이제는 좀더 깊이가 있고 듬직하게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서울을 떠났다고 그는 말했다. 단단히 결심을 하고 귀향한 그는 소설 ‘매월당 김시습’(1992년)을 썼다. 상당한 부수가 팔렸다. 자신의 뜻을 독자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고 그는 말했다. ‘장곡리 고욤나무’(1995년) ‘만고강산’(1998년) 등 후기 작품도 잇달아 나왔다. 문학적 성과들은 나왔지만 그는 “글쓰기가 자꾸 더 힘들어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매월당 김시습’을 쓰면서 몇 번이나 충남 부여군의 무량사(無量寺)라는 옛 절간을 찾아갔었다고 했다. 현실 정치를 뒤로 하고 김시습이 숨어 지냈던 무량사는 대천에서 성주산을 넘으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 그 절간을 가보면 그래도 옛날 모습이 남아 있어. 매월당이 어떻게 그 구석까지 숨어들어 왔었는지….” 상념에 젖은 이문구는 이야기 끝에 “한잔 할까? 그래도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야지” 하면서 나를 이끌곤 했다. 지난해 말 보령에 내려가 이문구의 생가 터와 집필실을 둘러봤지만 뒤늦게 글을 쓴다. 25일 이문구의 10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위해서다. 그가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갈머리 생가 터는 휑하고, 집필실은 찾는 이 없이 쓸쓸히 서 있었다. 흐릿한 날씨 때문인지 더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간 고인을 기리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문구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삶과 그 문학을 기리기 위한 이런저런 모임들이 생겼다. 그리고 ‘이문구 문학관’을 만들자는 계획도 세워졌다. 보령에서도 뜻있는 이들이 상당히 적극성을 보였다. 그런데 갈머리 생가 터에 문학관을 세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보령시의 계획이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두막 집필실에 남겨져 있던 유품의 보관에 대해서도 유족들과 갈등이 생겼다. 갈머리 생가 터에 문학관을 짓고 오두막 집필실을 기념관으로 보존하고, 보령시의 축제와 연계해 이문구 문학제를 개최하자고 했던 계획이 모두 중단되었다. 그가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니 부끄럽다. 이문구는 무덤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위암으로 투병 중일 때에도 글 쓰는 일만을 생각했다. “좁은 땅덩어리에 내 봉분까지 만들 필요가 없다. 내가 태어난 고향 뒷산에 재 한 줌을 뿌리면 되지”라던 그의 말은 그대로 유언이 되었다.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 갈머리의 솔밭 길 사이에 뿌려졌다. 허망한 이름자를 새기는 비석도 필요 없다고 했다. 문학관을 세우고 문학제를 열고 하는 일들도 이문구가 살아있다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라고 나무랐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의 고향 갈머리의 뒷동산 솔밭 길이 너무도 허전하다. 그나마 그가 남긴 소설들은 스물여섯 권의 전집으로 묶였지만, 그의 체취가 남아있는 마지막 집필실이 이렇게 날로 퇴락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 아프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추리소설 패턴에 익숙한 독자라면 적잖이 황당할 수 있다. 범인을 쫓아가는 팽팽하고 압축된 패턴보다는 형사들의 자잘한 일상이 상세하게 다뤄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당히 수다스럽다. 읽다가 어지러울 정도다. 이를테면 작품의 주무대가 되는 ‘87분서’라는 경찰서 풍경은 어떤가. 형사가 임신한 매춘부에게 성매매 여부를 조사하는 사이, 유치장에 들어간 술주정뱅이들은 고래고래 소리친다. 이 와중에 2인조 복면강도가 잡혀 들어오고, 매춘부는 급기야 경찰서에서 출산을 해 형사들을 패닉 상태에 몰아넣는다. 더군다나 이때 살인사건 신고가 들어온다. 작품은 이렇게 작은 에피소드들을 겹치고, 연결시켜 무엇보다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마치 미드(미국드라마) 수사물을 보듯 통통 튀는 대사가 눈길을 끌고, 간간이 익살스러운 장면도 등장한다. 소설이 영상처럼 읽히는 까닭은 저자의 다른 경력으로 설명될 것 같다. 저자 에드 맥베인(1926∼2005)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 드라마 ‘형사 콜롬보 시리즈’ ‘87분서 시리즈’에서 각본을 맡았다. 소설은 한 정의 총기에 대한 의문점으로 시작한다. 대박 난 뮤지컬 공연의 백인 무용수인 샐리는 어느 날 밤 집 앞에서 총기 살인을 당한다. 앞서 다른 곳에서는 하부 마약 공급책인 히스패닉계 파코가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된다. 피해자들의 연관성은 없는 상황. 다만 살인에 쓰인 총기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소설의 대부’로 불리는 작가답게 작품은 형사의 눈을 따라가며 점차 사건의 실체에 체계적으로 접근한다. 흡사 수사 매뉴얼을 읽는 듯하다. 최초 신고자, 최초 출동한 경찰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해 피해자의 가족, 친구, 동료들로 범위를 넓히는 과정이 매우 꼼꼼하다. 이 까닭에 보통 추리소설이 두세 명의 형사를 중심으로 기술되는 것에 비해 20명 가까운 경찰이 등장한다. 경찰들의 정보교류, 상호협력의 과정도 흥미롭다. 하지만 등장하는 모든 경찰들에게 친절히 이름까지 달았고, 이들이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통에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87분서 시리즈’는 1956년 시작돼 50편 넘게 책으로 나왔는데, 이 책은 1983년 발표된 중기 대표작이다. 30년 전 작품이지만 예스러운 느낌은 찾아보기 힘들다. 살인과 살인이 꼬리를 물고, 이 가운데 범인에 대한 힌트들도 적절히 흘려주며 요즘 추리소설 못지않은 긴장감도 유지한다. 하지만 자신 있게 강력 추천하기는 힘들 것 같다.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후반 강력한 반전이 없을뿐더러 사건이 풍선의 바람 빠지듯 비실비실 해결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범인의 동기가 석연치 않으며, 그 범인의 최후도 생뚱맞게 느껴진다. 제목인 ‘아이스’의 실체가 드러날 때는 허무함마저 밀려왔다. 논리적이고 치밀한 머리싸움보다는 가볍고 다채로운 읽을거리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적합할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력은 막강했다. 핵무기나 B-29 폭격기의 엄청난 화력은 미국 승전의 계기 중 하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전쟁을 끝내는 것은 육군의 몫이다. 월간 ‘육군’ ‘국방과 기술’을 비롯한 군사잡지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 저자는 권총, 소총, 기관단총, 자동소총, 기관총으로 나누어 한 시대를 풍미한 53개 총의 역사를 조명한다. 특히 미 육군의 주력 개인 소총이었던 M1 개런드는 연속적으로 발사되는 능력에서 독일의 Kar98k를 압도했다. 강수지 인턴기자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고전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한자가 많을 뿐 아니라 어투도 낯설기 때문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지난해부터 아동·청소년을 위한 고전 도서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고, 이 책이 첫 번째 성과물이다. ‘조선의 과학자 홍대용의 의산문답’도 함께 나왔다. 번역원이 만들었다고 해서 딱딱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번역원이 기획·감수, 기존 동화작가와 화가가 글과 그림 작업을 맡았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윤색은 했지만 바탕이 되는 역사적 사실들은 번역원이 검증한 것이기에 믿음이 간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중국 황제에게 바칠 생일 선물을 전하러 떠난 축하 사행단에 참여했다. 책은 중국에서 신문물을 접하는 연암과 그를 보필하는 하인 장복이, 창대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견문을 넓혀야 한다’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옛 단어를 그대로 실었으나 친절히 해설을 달았다. 뒷부분에 원작인 열하일기에 대한 설명과 당시 시대적 배경을 전한다. 사행단의 경로를 표시한 지도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비밀의 강(마저리 키넌 롤링스 글·레도 딜런 외 그림·사계절)=지난해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에서 명예상을 받은 책.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여자 아이 칼포니아는 어느 날부터 마을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자 ‘비밀의 강’을 찾아 나서는데. 1만6800원 ○마고할미 세상을 발칵 뒤집은 날(양혜원 글·이지숙 그림·학고재)=‘마고할미’가 기지개를 켜니 하늘이 쩍 갈라지고, ‘장길손’이 참다못해 싼 똥이 태백산맥을 이루고….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거인들의 얘기를 다룬 동화책. 9800원 ○블랙 독(레비 핀폴드 글·그림·북스토리아이)=아빠도, 엄마도 깜짝 놀라게 만든 무서운 검둥개. 가족들이 무서워할수록 개는 점점 커지고, 막내 ‘꼬맹이’가 당당히 검둥개에 맞선다. 두려움과 용기에 관한 책. 1만2000원 ○안돼, 내 사과야!(그웬돌린 레송 글·일하임 압델 젤릴 그림·두레아이들)=꼬마 지렁이 ‘꼬물이’ 위로 떨어진 사과. 친구가 나눠 먹자고 하자 고민하다 결국 사과를 나눈다. 사과 씨를 심으니 더 많은 사과가 열리고, 더 많은 친구들이 몰려드는데. 1만 원}

아흔 살 노(老) 시인이 아흔 편의 시를 묶어 한 권의 시집을 냈다. 생애 두 번째 시집인데 첫 시집 이후 무려 27년 만의 출간이다. ‘왜 이리 뜸했냐’고 물었더니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가 항상 쓰이는 게 아니거든. 또 나도 놀러 다니고 사람도 만나고 술도 먹고 해야지. 허허.”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여덟 살 아래 동생인 우하 서정태 시인이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시와)를 펴냈다. 1946년 민주일보로 시작해 전북일보에서만 30년을 일한 기자 출신인 그는 1986년 첫 시집 ‘천치의 노래’(동아출판사)를 펴내며 형을 따라 시인이 됐다. “젊었을 때는 말이야, 친구가 많았어. 조병화니 구상이니 다 친구였지. 그런데 말이야, 그 친구들이 누구한테 나를 소개할라치면 꼭 ‘미당 아우 서정태’라고 말하더라고. 나도 독립된 사람인데 젊었을 적에는 그렇게 불리는 것에 불만도 많았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미당 서정주. 평생을 따라다닌 형의 그늘은 짙고 넓었지만 이제 동생은 크게 괘념치 않는다고 했다. “읽는 사람이 미당 시도 읽고, 내 시도 읽는 거지. 나는 유명하지 않지만 일부라도 내 시를 읽고 좋아하면 나도 좋은 거고.” 전북 고창군 부안면에 있는 미당의 생가(우하의 생가도 이곳이다) 맞은편에 초가집을 짓고 살고 있는 시인은 “문만 열면 전부 산이고 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시집에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이 눈에 띈다. ‘나비야/꽃향기에 머물지 말고/그 향에 취하여 바람 나부끼듯/훨훨 날아 먼 길 가자//개울물 소리 넘어/솔바람보다 앞서가는/봄빛 헤치며 가자//나비야/머문 흔적 없으면 어떻다냐/그냥 가자 산 넘어/훨훨 날아 먼 길 가자’(‘먼 길’ 전문) 발표된 시는 이미 내 것이 아니며 자신을 떠났다고 말하는 시인. 그래도 오랜만의 시집인데 좋은 평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시는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데, 내 것이 감동을 주는지 어떤지 난 몰라. 몇 사람이 써둔 거 보고 좋다고 말은 하더구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빛바랜 책장을 넘기자 윤동주의 ‘서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익숙한 시어가 희미하게 보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가 1945년 2월 일본에서 옥사한 후 1948년 1월 유족들에 의해 발간된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정음사)이었다. 박물관 유리 너머로나 볼 수 있을 법한 귀한 물건을 손으로 만지니 묘한 흥분이 느껴졌다. 책 주인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 책이 얼마 전 (경매에서) 거래됐는데 아마 3000만 원이었지요.” 시집을 쥔 손이 살짝 떨렸다. 설 연휴 직전 찾아간 경기 용인시 죽전동 배우식 시인(61)의 집은 문학관 같았다. 아니, 웬만한 문학관보다 희귀 시집들이 많았다. 책들은 방 2개의 사면을 가득 채우고, 거실 책장과 베란다에도 넘쳐 나와 가지런히 책장에 꽂혀 있었다. 시집만 줄잡아 1000여 권. 대부분 초판본이다. 그의 소장 희귀본이 언론에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시인은 1999년 시문학으로 등단해 2005년 시집 ‘그의 몸에 환한 불을 켜고 싶다’(고요아침)를 냈다. 그가 시집을 여러 권 꺼내왔다. ‘정지용 시집’ 초판본(1935년 10월 27일 발행·시문학사), 이육사의 ‘육사시집’ 초판본(1946년 10월 20일·서울출판사),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이 함께 펴낸 ‘청록집’ 초판본(1946년 6월 6일·을유문화사)이 줄줄이 나왔다. 이병기 선생의 ‘가람시조집’ 초판본(1939년 8월 15일·문장사)을 비롯한 귀한 시조집도 다수 보였다. 광복 후 첫 시집으로 평가받는 이태환의 ‘조선미’(1945년 9월), 김경탁의 ‘얼’(1946년 10월 1일·취영암)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개인이 이런 희귀본을 모을 생각을 했을까. “소장가로 비치는 게 부담스럽다”는 시인은 30여 년 전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문청(文靑)이었지만 생업을 위해 대그룹 건설회사에 다녔다. 유럽, 아프리카 현장에서 일한 그는 현지 감독관에게 선물할 예술품을 구하기 위해 귀국하면 골동품 가게를 찾았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청계천 가게에서 ‘정지용 시집’ 초판본을 발견했다. 당시 회사원 월급의 서너 배, 현재로 치면 약 1000만 원 돈이었지만 잊었던 ‘시에 대한 열망’이 떠올라 과감히 질렀다. 시간이 흘러 1994년. 그는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더니 급기야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원인을 찾지 못해 병원을 다니길 몇 년. 절망 속에서 시를 되찾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때 ‘정지용 시집’이 생각났다.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란 구절(시 ‘유리창 1’)을 읽고 또 읽었어요. 눈앞이 캄캄했는데 시를 읽으면 뭔가 환해지는 듯했죠. 시집이 제게는 별 같은 존재였습니다.” 뒤늦게 뇌종양 판정을 받은 그는 2001년 수술을 통해 건강을 찾았다. 이후 초판본을 구하려고 전국의 고서 경매장과 고서점을 돌았다. 1년에 1억 원 넘게 쓴 적도 있다. 다행히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낡은 책을 사들이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돈도 있는데 왜 헌책을 사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한번은 백석의 ‘사슴’ 초판본(1936년 1월 20일·자가출판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1억 원을 들고 소유자를 찾아갔지만 “10억 원”으로 높여 부르는 바람에 접었다. 몇 년 전 일이다. 그는 “돈 얘기는 더 하지 말자”며 이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저는 수집가, 장서가가 아닙니다. 시 공부를 위해 시집을 구했을 뿐이죠. 지금도 정지용의 별이 제 가슴에 들어와 빛을 내는 것 같아요. 기회가 된다면 제 책들이 일반에 공개돼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별이 빛났으면 합니다.”용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희귀본 거래 대부분 인터넷 경매… 문학관이 ‘큰손’ ▼고서점과 수집가들 사이의 희귀 시집 거래는 1970∼90년대 호황을 이뤘다. 2000년대 들어 귀한 시집 구하기는 쉽지 않아졌다. 문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전국 각지에 들어서고 거래의 관문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온라인 경매로 이동하면서 눈에 보이는 거래가 크게 줄었다.여전히 거래가 이뤄지는 곳은 있다. 인터넷 경매나 전문 경매사를 통하면 된다. 코베이나 한옥션 같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종종 시집이 올라온다. 서울 인사동 화봉문고의 여승구 대표는 “박물관, 기념관 같은 국공립 기관이 시장에 대거 뛰어든 데다 소중한 자료는 개인수집가가 잘 내놓지 않아 거래가 많지 않다”고 했다.품귀 현상으로 값도 올라갔다. 여 대표의 설명은 이렇다. “1920년대 시집의 경우 초판본 자체가 남아있는 게 몇 권 안 되는 것으로 안다. 최근 큰 박물관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을 수배했다. 한 수집가가 억대의 가격을 불렀지만 500만 원 정도에 감정 평가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수집가들 사이의 거래가는 상상을 초월한다.”내용이 같으면 표지가 멀쩡한 것이 몇십 배 비싸다. 장서는 한정돼 있는데 좋은 물건이 나오는 경우는 적어 최근 발을 들인 수집가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다. 수집가들의 친목 모임에서 경매 정보가 공유되고 일대일 직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노벨문학상 심사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게 후보 추천권이 있다’ ‘매년 초 각국에서 후보자를 추천받아 5인으로 압축한 뒤 6개월 동안 집중 심사한다’는 얘기들도 들리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이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이 다가오면 각국 도박사이트들이 점친 수상 후보자군에 관심이 쏠린다. 2011년에는 눈길을 끄는 예측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인 재미 작가 이창래가 베팅사이트 나이스로즈에서 수상 가능성 3위(배당률 8 대 1)에 오른 것. 그해 다른 베팅사이트인 래드브록스가 고은 시인을 6위(배당률 14 대 1)에 올려놓은 것보다 높았다. 미국에 살며 영어 소설을 쓰는 이창래는 국내에서는 낯선 작가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세살 때 미국으로 이민했으며, 예일대와 오리건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월가의 주식분석가로도 일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95년 첫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로 헤밍웨이재단상, 펜문학상을 받았다. 1999년 두 번째 소설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로 아니스필드-볼프 도서상, 아시아계 미국인상을 받았고, 2004년 펴낸 ‘얼로프트(Aloft)’도 호평을 받았다. 2000년에는 뉴욕타임스가 ‘미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선정하며 문학계의 메이저리그인 미국 시장에서 주목받는 한인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무엇이 이창래에 주목하게 만드는가. 2010년 미국에서 발표된 이 작품을 읽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6·25전쟁의 고통을 이렇게 사실적이면서도 깊고 울림 있게 전한 소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은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흐른다. 전쟁고아인 ‘준’과 참전 미군병사인 ‘헥터’, 선교사의 아내인 ‘실비’. 이들은 6·25전쟁에서 지옥의 끝을 본다. 준은 아버지가 간첩 혐의로 사형됐고, 오빠는 전선에 끌려갔다. 피란길에 어머니와 동생들마저 잃은 준은 헥터를 만나 고아원으로 들어간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헥터는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신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생과 사의 전장에서 그는 짐승처럼 변해가는 동료와 자신을 보고 폭력사건에 휘말려 불명예 제대한 뒤 고아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한다. 만주사변의 혼란 속에서 성폭행을 당한 실비는 선교사의 아내가 돼 고아원에서 일하지만 과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약에 빠진다. 소설은 거대한 전쟁의 광풍 속에서 고통 받는 개인의 삶을 조명한다. 게다가 이들의 아픔은 휴전 이후에도 이어진다. 1980년대로 시점을 옮긴 작품은 살아남은 준과 헥터의 재회를 통해, 그들의 아들 니콜라스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통해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모습을 잔잔히 짚어낸다. 6·25전쟁을 다룬 소설이 많지만 국내 작가의 경우 한국인의 아픔에 주목한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전쟁고아, 미군병사, 선교사 아내의 시선을 통해 6·25전쟁을 좀더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동시대 인류의 아픔으로 승화시킨다. 또한 지옥과도 같은 전쟁 속에 짓밟히는 인간성, 양심, 윤리들도 낱낱이 까발린다. 국가에는 전쟁의 승패가 존재하지만 한 개인에게 전쟁은 고통과 상처뿐이라는 문제의식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책을 읽다보면 매우 사실적인 묘사에 놀라게 된다. 피란민들이 한 줌의 옥수수 가루를 두고 서로 죽이려는 장면이나 군인들이 피란민들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일삼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된다. 전후 세대이자 미국에서 자라고 생활하는 작가가 어떻게 이런 사실적인 전쟁 작품을 썼을까 싶을 정도다. 피란열차의 지붕 위에서 떨고 있는 소녀 준의 이야기로 시작한 작품은 그가 중년 여성이 돼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한 여성의 기구한 삶이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고, 코끝이 찡해지는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미 인상적인 작품을 발표한 그의 작품 가운데 단연코 가장 야심 차고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뉴욕타임스의 평가를 비롯해 언론의 극찬을 받았다. 2011년 테이턴 문예평화상을 받았고, 그해 퓰리처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저항시인 이상화(1901∼1943·사진)의 시와 수필이 새롭게 발견됐다. 근대서지학회는 반년간 잡지 ‘근대서지’ 최신호(6호)를 통해 이상화의 미발굴 시 두 편과 수필 한 편을 공개했다. 1926년 5월 잡지 ‘문예운동’ 2호에 발표한 ‘설어운 調和(서러운 조화)’와 ‘머-ㄴ 企待(먼 기대)’란 제목의 시 두 편과 수필 ‘心境一枚(심경일매)’다. 문예운동은 1926년 1월부터 같은 해 6월까지 통권 3호가 발간된 카프(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준기관지다. 이 작품들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인의 울분과 답답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은봄 말업는 한울은(이른 봄 말없는 하늘은)/한숨을 지여보아도 나즌텬정과가티 가위만눌린다(한숨을 지어보아도 낮은 천장과 같이 가위만 눌린다). (…) 일은봄 힘업는 이땅은(이른 봄 힘없는 이 땅은)/발버둥을 쳐보아도 죽은무덤과가티 가위만눌린다(발버둥을 쳐보아도 죽은 무덤과 같이 가위만 눌린다).’(시 ‘설어운 調和’에서) 시를 발굴한 염철 경북대 교수는 “말업는 한울, 즉 ‘하늘의 침묵’은 한용운 시 ‘님의 침묵’ 속의 ‘님의 부재’와 같이 절망적 상황 혹은 전망의 부재를 상징한다”며 “일제강점기 어떠한 역사적 전망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를 마주한 이상화의 답답한 내면이 형성화된 시”라고 평했다. 춘원 이광수(1892∼1950)가 1941년 1월 일본 잡지 ‘방송지우’에 발표했던 단편 ‘면화’와 1944년 7월 일본 잡지의 조선판인 ‘일본부인’에 발표했던 단편 ‘반전’도 이번에 함께 발굴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허름한 양복바지 뒷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은 아버지의 오래된 지갑. 그 속에는 고이 ‘모셔둔’ 자식들 사진이 있다. 거나하게 취해 불콰해진 얼굴의 아버지는 허름한 선술집 한편에서 사진을 꺼내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을 터. 이제 내가 아이들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이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속에서 내 아버지의 미소를 읽는다. 괜스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이달에 만나는 시’ 2월 추천작으로 이성복 시인(61·사진)의 ‘사진’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이성복 시인의 아버지는 2005년 세상을 떴다. 이 시를 쓴 것은 그 후로 3, 4년 뒤. 아들들의 사진 속에서 나를 보고, 그런 나를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는 윤회 같은 혈연. “아버지는 아주 내성적인 분이셨어요. 3대 독자셨고, 자기 취미생활이나 이런 것도 없었고, 당신을 위해서는 돈을 쓴 적이 없었어요. 아니 그 시대 부모들이 다들 그러셨죠.” 10년 만에 시집을 낸 시인은 지난해 계명대에서 정년퇴임했다. “사회생활에서도 명예퇴직했으니 제 시 작업도 한번 정리하고 싶었죠. 제게는 어떤 분기점 같은 시집입니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무엇을 써도 시가 되는 경지에 들어섰구나, 하는 느낌이다. 사물의 구체성은 명징하고, 묽은 슬픔과 괴로움은 갑자기 까칠해지고 날카로워진다. 그 명징과 묽음이 만나 아득한 생의 풍경을 이룬다.” 김요일 시인은 “손을 쓸 수도 없는 생이라는 비극을, 그 슬픈 장르를 이성복은 소멸의 사유로 담아낸다. 그는 시를 넘어섰다”며 추천했다. “시집을 읽고 여행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뒹구는 돌이 되어 찾아가던 남해 금산과 그 여름의 끝에 있던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먼 여행에서 돌아온 선생의 시를 읽고 나는 문득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욱신거리는 생과의 지독한 사랑!”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원 시인은 “이성복의 시가 아니라 이성복의 ‘정신’이라고 해야 맞다. 가장 뜨거운 ‘최소’에 집어넣은 맨손을 거두어들이는 법이 없는 ‘불가능한 사랑’, 이것이 ‘빛’이다!”며 추천했다. 이건청 시인은 박희진 시인의 시집 ‘4행시 17자시’(서정시학)를 추천하며 “17글자로 한 편의 시를 이룬 ‘17자시’ 시편들은 형형한 정신을 담은 말의 극한을 추구해 보여준다. 지루한 서술이 판치는 요즘 한국시가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을 것”이라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현란한 조명 속에서 무용가들은 변화무상하게 움직였다. 극장을 울리는 꽹과리와 장구 소리는 휘모리장단으로 몰아치며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한바탕 광풍이 지나간 다음 남성 무용가 네 명은 관객들에게 등을 보인 채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흡사 상모를 돌리는 듯한 여운이 남는 마지막 장면. 베레시트 무용단(대표 박순호)의 ‘조화와 불균형’이 막을 내리자 극장 안에는 “원더풀”이란 환호와 함께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졌다. 3일 오후 인도 남부 벵갈루루 시의 랑가 샹카라 극장. 올해 6회를 맞은 인도 최대의 국제 현대무용 축제인 ‘아타칼라리 인디아 비엔날레’ 폐막작이 무대에 올랐다. 아타칼라리는 공연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22개국 무용가 250여 명이 지난달 25일부터 열흘 동안 펼친 축제의 마지막은 한국 무용가들이 준비한 ‘케이 스타일(K-Style)’ 공연이었다. 베레시트 무용단을 시작으로 이디엑스투 무용단(대표 이인수)의 ‘모던 필링’과 ‘헬프’, 최상철 현대무용단(대표 최상철)의 ‘논쟁’이 무대에 올랐다. 뉴델리, 뭄바이에 이어 인도 3대 도시인 벵갈루루는 인구 850여만 명의 대도시지만 현대무용은 아직 낯선 곳이다. 하지만 이날 공연의 좌석 330석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일부 관객은 계단에 앉아 공연을 볼 정도로 한국 무용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관람료는 200루피(약 4000원). 현지 패스트푸드점 KFC의 ‘크리스피 버거’가 25루피(약 5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조화와 불균형’은 관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안무와 함께 어우러진 판소리 별주부전의 통역이 안 되는 등 언어적 장벽이 있었지만 사물놀이와 빠른 안무가 공연장을 후끈 달궜다. 가끔 현대무용을 본다는 마유라 카두르 씨(29·치과의사)는 “전반적으로 공연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코리안 드럼(장구)이 매우 훌륭했다”고 말했다. 자야찬드란 파라지 축제 총감독(54)은 “케이 스타일 공연에 관객들이 크게 호응한 것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인기 때문만은 아니다”며 “한국 현대무용에는 ‘강함’ 속에 ‘섬세함’이 잘 녹아 있다”고 평가했다.벵갈루루=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소설가 최정희 선생(1906∼1990)은 1952년 첫 수필집 ‘사랑의 이력’을 펴냈다. 6·25전쟁의 혼란이 한창이던 서울에서였다. 먹고살기에도 바쁜 시절에 책을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들었던 때였지만 화가 김환기가 표지 장정 그림을 맡았고 계몽사가 선뜻 출판했다. 소설가 김동리는 이 책이 나오자 ‘평범한 말, 부드러운 문장으로 정한의 세계를 솔직하게 기록한 책’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책을 펴면 최정희 선생이 대구에 피란 갔던 시절을 전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 ‘요새는 상고예술학원을 세울 계획을 하고 교무처장인 최인욱 씨가 교사를 얻으러 분주히 돌아다니시고, 조지훈 박기준 박영준 구상 이분들은 벌써부터 교수할 준비에 바쁘십니다. 상고예술학원은 상화와 고월의 유고집(1951년)이 나온 것을 계기로 하여 세우게 된 학교인데, 상화(尙火·이상화)의 상(尙)자와 고월(古月·이장희)의 고(古)자에서 두 자를 따서 상고예술학원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뒷돈은 이곳 유지들이 담당하고, 교수는 우리들이 담당하기로 합니다. 문학 외에 음악과도 두고 미술과도 두게 한답니다. 하루 바삐 교사가 얻어지기를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선 매주 토요일마다 문예강좌를 하기로 되었습니다.’ 대구 출신의 문우(文友)였던 이상화(1901∼194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와 이장희(1900∼1929·‘봄은 고양이로다’의 시인)의 호에서 한 자씩을 딴 ‘상고예술학원’이란 무엇인가.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이 학원을 기억하는 문인은 별로 없다. 6·25전쟁 당시 ‘피란도시’ 대구에 설립되었던 이 학원은 당대 최고의 교수진을 갖춘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예술학원이었다. 대구에 피란 온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대구·영남 문인 예술가들과 힘을 합쳐 결성한 이 학원에는 무려 90명의 예술가가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소설가 박종화 김기진 김말봉 김동리 장덕조 최정희 정비석 최상덕 최인욱 박영준 김영수가 있고, 시인 이은상 오상순 유치환 구상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양명문 김달진 박귀송이 뜻을 더했다. 국문학자 양주동 이숭녕, 평론가 최재서, 아동문학가 마해송, 극작가 유치진, 연극인 이해랑, 수필가 전숙희, 음악가 김동진 김성태 등 문학을 넘어 여러 예술 분야의 인사가 참여했다. 대구의 문화예술인 가운데는 시인 백기만 이효상 이호우 이설주 이윤수와 소설가 김동사, 국문학자 김사엽 왕학수, 화가 서동진 박명조 등이 대구의 유지들과 뜻을 합하여 참여했다. 이 학원의 설립취지문을 보면 ‘선인의 업적과 민족예술의 전통을 깨우치게 하여 뒷날의 대성이 있게 하고자 한다’고 그 목적을 밝혔다.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예 초창기의 시인 이상화와 이장희의 뜻을 기린다’라는 뜻도 담아 지역 유지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1951년 10월 대구 남산동 향교 북쪽 편 길 건너 모퉁이의 단골 술집에 모인 문인들은 학원장에 마해송을 선임했다. 소설가 최인욱은 교무 담당, 시인 조지훈 구상, 소설가 박영준 최정희 등은 전임 강사가 됐다. 그리고 남산동 657 오르막길 옆에 있던 교남(嶠南)학교를 학원 교사로 정했다. 교남학교는 일찍부터 영남지역 근대교육의 출발점이었으며 이상화 시인이 1930년대 교편을 잡았던 곳이었다. 교남학교가 1942년 수성동으로 이전한 뒤 그 자리에 자리 잡은 상고예술학원은 교육기간 6개월 단위로 하는 단기 강습학원이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예술인들로 구성된 강사진과 수준 높은 강의 내용으로 전란 중에도 문학예술을 꿈꿀 수 있는 새 희망의 배움터가 되었다. 문학 음악 미술의 세 개 학과가 운영됐다. 수강 학생과 교수 모두가 강의가 끝나면 단골 막걸리집에 모여 피란생활의 고달픔을 서로 달래곤 했다. 상고예술학원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예술 전문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예술의 꽃을 피우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도 가득했다. 당시 전쟁은 국군의 서울 수복 후 중공군의 남하로 더욱 치열해진 상황이었다. 서남지역에서는 공비토벌작전이 전개되면서 민심이 극도로 흉흉하였고, 국민 모두가 생계를 꾸리기 어려울 정도로 궁핍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지역의 유지들은 피란 문인들의 뜻을 받들어 학원 설립 자금을 지원했다. 학원의 운영은 처음부터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지만 여기 참여한 강사들은 열의를 갖고 가르쳤다. 하지만 학원은 개교 후 2년 반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실상 폐교하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경영상의 적자였다. 1953년 휴전회담이 진전되면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문인과 학생이 속출하면서 설립 당시의 열정이 식어버린 것도 한 이유였다. 지난달 24일 학원이 있었던 대구 남산동 657 일대를 찾았다. 그 옛날 강사와 학생이 어울리던 뒷골목 싸구려 막걸리집도 다 사라졌고, 주택가가 생겼다. 한편에는 주상복합아파트가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생활고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예술에 매진했던 당시 예술인들의 뜻이 무위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다. 비록 학원은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그 취지는 이어졌다. 소설가 김동리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했던 ‘서라벌예술대학’이나 극작가 유치진이 세웠던 ‘서울예술전문학교’ 등으로 뜻이 이어졌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양파 같다. 까면 깔수록 진실을 알기 어렵다. 분량으로 치면 경장편이지만, 복잡한 사건과 인물 구성 때문에 읽고 나면 장편 하나를 담은 듯 머리가 묵직해진다. 간단치 않은 소설이다. 처음은 쉽게 읽힌다. 요코와 하루미란 30대 중반 여성의 등장. 요코는 지방의회 의원의 아내이고 아들 유타가 있다. 하루미는 미혼의 신문기자다. 대학 시절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만난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깊은 친구 사이가 된다. 둘 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하루미는 파란 리본을 주고 떠난 친모의 기억을 요코에게 털어놓고, 요코는 이를 그림책으로 발표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집안 살림만 하던 요코가 작가로 활동하게 된 것은 하루미의 친모를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선거를 앞둔 남편의 재선을 돕고 싶었기 때문. 잔잔히 흐르던 소설은 여기서 첫 번째 파문을 일으킨다. 요코의 아들 유타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소설은 본격적인 추리물로 변하는데 영리하게 ‘변주’를 시도한다.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진부한 숙제보다 ‘범인이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기 때문. 범인이 팩스로 보낸 요구사항은 한 줄로 요약된다. ‘세상에 진실을 공표하라.’ 밑도 끝도 없는 요구사항. 무슨 ‘진실’을 ‘어떻게’ 세상에 알리라는 건지? 요코를 비롯한 등장인물들도, 이를 읽는 독자에게도 물음표가 생긴다. 본격적인 양파 까기가 시작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요코와 하루미의 출생 비밀이 진실의 하나다. 이들이 태어나기 전 인근 지역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가해자의 아내가 출산을 했다는 것. ‘살인자의 딸은 누구인가’라는 추리와는 별도로 요코의 남편에게도 숨겨진 비밀이 있다. 한때 부정 기부금을 받아 검찰 수사를 받은 것. 고발자의 신원도 오리무중이다.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요코를 비롯한 인물들이 범인이 추가로 보내 주는 협박 팩스를 힌트로, 자신도 잘 몰랐던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는 것이다. 독자가 작중 인물에게 이입되기 쉬운 구조다. 물론 반전의 반전도 거듭한다. 결정적으로 ‘전혀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라는 추리소설 최대의 매력을 선물한다. 기자의 추리도 빗나갔다.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분은 선 굵은 남성적 색채가 강하지만, 이 소설은 좀 다르다. 동화 같은 추리소설이랄까. 요코와 하루미의 시선이 교차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그 묘사와 대화가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하드보일드 추리보다는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 가는 두뇌게임형을 즐기는 추리 팬에게 추천한다. 출판사는 출간에 맞춰 초판(4000부) 구입자에 한해 그림책 ‘파란 하늘 리본’을 함께 준다. 소설과 현실이 헷갈리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 기자는 소설을 읽고 그림책을 나중에 읽었는데, 소설의 여운이 더 짙어지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로 시작하는 신경림 시인(77)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 요즘도 널리 애송되는 이 시가 담긴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가 출간 25주년을 맞았다. 실천문학사는 이를 기념해 이 시집의 특별 한정판(2000부)을 이달 말 펴낸다. 반가운 마음에 시인에게 약속을 청했다. “에이 뭐 쓸 얘기가 있겠어?”라는 퉁명스러운 답변. 신년 인사를 겸해 “차나 한잔하시죠”라고 다시 청해 2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955년 등단한 시인은 1975년 자유실천문인협회를 결성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및 이사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을 지내며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시단의 원로.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멘토단에 참여했다. 시집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대선과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자격 논란으로 흘렀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언제 쓰셨나요. “1987년 내가 (서울 성북구) 길음동 살 때였어. 시내에서 (술을) 덜 먹고 들어가면 한 번씩 들르는 술집이 있었지. 그 집 딸이 남자친구라며 내게 데려왔는데 ‘지명수배가 돼서 결혼을 못 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술김에 ‘결혼해라, 내가 주례 서 줄게’ 하고 축시 써주고, 주례 섰지. 작은 개척교회에서 했는데 하객이 10여 명밖에 안됐어.” ―결혼식 축시였군요. “아냐. 내가 써준 것은 ‘너희 사랑’이라는 시였어. 한 편 더 쓴 게 ‘가난한 사랑 노래’지. 실천문학사에 가져갔더니 ‘가난한 사랑 노래’가 더 좋다고 해 시집의 표제시가 됐어. 하지만 난 아직도 ‘너희 사랑’에 더 애착이 가.” ―그 부부하고 지금도 연락을 하시나요. “가끔 해. 그 사람(남편)이 결국 감옥 다녀왔고, 지금은 인천에서 조그만 가게를 해.” ―1980년대엔 시 쓰기 힘드셨죠. “‘가난한 사랑 노래’에 ‘기계 굴러가는 소리’란 대목이 있어. 사실 이게 원래는 ‘탱크 굴러가는 소리’였지. 하지만 출판사에서 수정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고쳤지.” “진짜 옛날 얘기들이네”라고 말한 시인은 회상에 젖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금방 민주주의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1980년대와 비교하면 많이 진화했고, 당시와 지금이 똑같다고 말하면 ‘사기꾼’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면 ‘박통시대’로 회귀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지. 어떻게 옛날로 돌아가. 박근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도 바보가 아니고 우리도 바보가 아니야.”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각종 의혹이 요즘 논란입니다. “보수층에 깨끗한 사람이 잘 없는 거야. 1970, 80년대 조금이라도 벼슬을 했으면 때가 묻은 거야. 지저분하게 부동산 투자하고, 자식들 군대 안 보낸 건데, 우리는 그럴 재주도 없어. 투기를 해놓고도 나쁘게 생각 안 하고 (후보자로)나온 게 문제야. 박근혜가 실패한다면 인사문제로 실패할 것 같아.” ―대선 재검표 얘기도 이어지는데요. “뭐 근거도 없잖아. 몽니 부리는 거지. 이런 것을 보면 민주(통합)당이라는 게 집권할 능력이 없는 것 같은 느낌도 줘. ‘문재인, 민주당이 됐어도 큰일이었다’ 그런 생각도 들지.” 하지만 시인은 선을 그었다. “다시 (지지)한다고 해도 문재인을 하겠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얘기야”라고 말한 그는 이 말은 꼭 써달라고 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박근혜 당선의 일등공신’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민주당이 패배 책임을 이정희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야. 이정희는 자기 지지자들을 위한 역할을 충분히 했을 뿐이야.” 대선 후 전국을 돌며 ‘힐링 토크’ 콘서트를 열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 얘기를 꺼내자 시인은 짧게 말했다. “얘기하지 맙시다. 원래 설치는 사람이니까.” 대선의 여파는 문단에도 이어지고 있다. 문인 137명이 지난해 12월 14일 한 일간지에 선언문 광고를 실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선거법 위반한 것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작가들의 정서, 양심에 비춰서 원만히 해결됐으면 좋겠어. 당국이 관용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어.”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오세영의 장편 ‘원행’(2006년)과 이를 원작으로 만든 케이블 채널 CGV의 ‘정조암살미스터리-8일’(2007년), 이정명의 장편 ‘바람의 화원’(2007년)과 이를 원작으로 한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2008년), MBC 드라마 ‘이산’(2007년)과 케이블 채널 OCN의 ‘조선추리활극 정약용’(2009년)까지. 몇 년 새 쏟아져 나온 이들 역사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모두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것이다. 오혜진 남서울대 교수(사진)의 ‘대중, 비속한 취미 ‘추리’에 빠지다’(소명출판)는 최근 소설과 드라마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팩션(사실에 허구를 붙인 이야기) 열풍을 분석했다. 그는 다양한 팩션 작품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역사 연구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왕조 중심의 거시사가 아닌 민중과 여성들에 대한 미시사 연구가 1990년대 들어 활발하게 전개돼 작가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는 것. 또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등 외국 팩션들이 국내에서 인기를 끈 것도 그 이유의 하나다. 그러면 왜 정조인가? 오 교수는 ‘상상력의 확장 가능성’을 꼽았다. “정조는 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매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죠. 사인에 대해서도 독살 등 여러 설이 존재해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독자들이 바라는 현재 지도자의 모습이 개혁적 인물인 정조에서 구현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정통 역사물의 시대가 기울고, 팩션에 추리적 요소가 가미되는 것도 요즘 추세다. 오세영의 ‘원행’이나 드라마 ‘조선추리활극 정약용’의 경우 정약용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한다.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에서는 김홍도가 사건을 해결한다. “역사 추리소설은 오락 요소가 강해 소설과 드라마를 넘나들죠. 회별로 이어지는 드라마가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기 위해 추리적 요소가 강화되는 추세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제주도4·3사건을 다룬 오멸(본명 오경헌·42) 감독의 영화 ‘지슬’이 미국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6일(현지 시간) 미국 유타 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제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 시네마 극영화 경쟁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1948년 11월 제주에 ‘해안선 5km 밖의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미군정의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슬은 제주 방언으로 감자를 뜻한다. 이 영화제는 초청작을 자국(미국)과 외국 영화(월드 시네마)로 나누고, 다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부문으로 나눠 4개 부문에서 상을 주는데, 심사위원대상은 각 부문 최고상이다. 한국영화가 이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2004년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특별상에 해당하는 표현의 자유상을 받은 바 있다. 시상식 전날 귀국한 오 감독은 비디오 동영상으로 식장에서 소감을 밝혔다. “개인적인 영광이라기보다는 제주 사람들과 함께 (영광을) 나누고 싶고, 함께한 수많은 영혼들과 함께하고 싶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올해는 우리 현대 시문학사에서 의미 깊은 해다. 최초의 근대시로 평가받는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 11월 1일 ‘소년’ 창간호에 실린 지 105주년을 맞았다. 또한 국내 첫 창작시집인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년)가 출간 90주년을 맞는다. 문학세계사는 현대 시집 역사가 90년이 된 것을 기념해 현대 시단을 밝힌 50권의 대표시집을 선정하고 해설을 곁들인 ‘한국 대표시집 50권’(사진)을 펴냈다. 기획위원으로 참여한 박덕규 배우식 송희복 이숭원 이승하를 비롯해 황현산 이남호 이숭원 최동호 정과리 유성호 박철화 구모룡 엄경희 김용희 정끝별 김수이 등 75명의 시인과 평론가가 대표시집 선정에 참여했다. 문인들이 10권씩의 시집을 추천해 총 투표 수는 750표였다. 김소월이 1925년 펴낸 시집 ‘진달래꽃’이 63표(8.4%)를 받아 ‘대표 중의 대표’로 뽑혔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으로 시작되는 ‘진달래꽃’이 표제시로 들어간 이 시집은 2011년 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송희복은 소월을 “곡진한 모어(母語)의 텃밭을 일구어낸 재능과 기량이 널리 인정되는 시인”이라고 평했고, 소설가 고종석은 “본원적 정서의 여분을 서럽게 쓰다듬는 가인(歌人)”으로 명명했다. 서정주의 ‘화사집’이 60표(8%)로 뒤를 이었고, 백석의 ‘사슴’(59표·7.9%), 한용운의 ‘님의 침묵’(56표·7.5%),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48명·6.4%) 순이었다. 책에는 흥미로운 분석도 들어 있다. 시집의 출간 연도 기준으로 봤을 때 선정된 50권 중 1980년대에 13권, 1950년대에 12권이 몰려 있는 것. 1950년대는 6·25전쟁 발발 이후 극심했던 사회 혼란기이고, 1980년대는 문단도 서릿발 같은 군사정권의 폭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짓눌리던 시기였다. 시인이 인내한 아픔과 고통 속에서 절창(絶唱)은 피는 것인가. 추천위원 대부분이 문학평론가였기 때문에 대중성보다는 ‘문학사적 의미’에 치중한 감이 있다. 감성의 시보다는 격정의 시, 서정시보다는 실험 시들이 많이 들어 있다. 책의 제목에 들어간 ‘대표’란 말보다는 원래 선정위원들에게 보낸 설문지에 들어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시집으로 이해하면 이견이 줄 듯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가 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소설을 쓰는 사람인 것은 맞겠죠.” 가수 루시드 폴(본명 조윤석·38·사진)이 소설집 ‘무국적 요리’(나무, 나무)를 펴내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8년 가사집 ‘물고기 마음’, 2009년 시인 마종기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에 이어 소설 창작에 문을 두드린 것.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주인공이 목욕탕을 찾아 헤매는 하루를 그린 ‘탕’을 비롯해 단편 8편을 묶었다. 매년 여름과 겨울 공연을 했던 루시드 폴은 지난해를 스스로 안식년으로 정하고 공연을 쉬었다.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1년 새 단편 8편을 탈고했다. “앞선 책들과 달리 순수한 창작물로 메운 책이라 저에겐 의미가 커요. 소설 공부를 따로 한 적은 없어요. 제 글이 나쁘게 말하면 서툴고, 좋게 말하면 신선하게 보일 것 같아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스위스 로잔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8년 밴드 미선이의 1집 ‘Drifting’으로 가수가 됐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의도보다 전달 방식을 문제 삼는 경우가 있다. 영화감독 김기덕의 문제의식에는 동감하지만 그가 앵글에 담는 잔혹하고 역겨운 날것 그대로의 영상에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식이다. 이런 공식을 소설로 옮겨본다면 이 책의 저자(32)를 거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첫 장편 ‘제리’를 통해 뜨거운 신인으로 떠올랐다. 적당한 성애묘사는 머리에 피가 돌 듯 아찔한 쾌감을 주지만 도가 지나치면 속이 불편해지는 이치였다. 지방대 여대생과 호스트바에 다니는 남성의 희망 없는 오늘을 그린 이 소설에서 그가 그린 섹스 장면들은 노골적이었다. 누군가에겐 ‘유희’로, 다른 이에겐 ‘치유’로 읽혔다. 호불호를 떠나 그가 문제적인 신인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2년 7개월 만에 들고 온 두 번째 장편도 파격적이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엄마를 둔 20대 후반의 동성애자(게이) 성재가 주인공. 성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만 길은 요원하다. 화장품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성재에겐 일곱 살 연상의 애인이자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 민수 형이 있다. 꿈도 사랑도 성재에게는 버겁기만 하다. 소설은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조명한다. 게이들이 주로 모이는 극장이나 찜질방, 호프, 클럽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대개 장면의 마지막은 격한 성애 장면으로 끝난다. 물론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19금’ 부류로 읽히지 않는 것은 그 섹스의 마지막에 짙은 비애와 공허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출입 불가’인 찜질방을 제외하고는 게이들이 모이는 장소를 거의 섭렵했다는 저자. 보통의 동성애자처럼 보건소에 가서 “저, 에이즈 검사 받으러 왔는데요”라고 말하고 검사도 받았단다. 발로 뛴 취재 덕분에 그는 어두운 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그러기에 그들의 아픔이 솔직하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타인의 아픔을 말하는 듯하지만 기실 저자는 자신의 아픔을 들춰내고 있었다. 그도 20대 초반 꿈도 희망도 없이 방황했다. 소설이라는 출구를 본 다음에 5년 동안 습작했지만 등단이란 벽 앞에 좌절하기를 여러 번. ‘제리’에 이어 ‘정크’까지 그가 우울한 20대에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이제 “힘들었던 지난 경험이 문학적 자산이 됐다”고 밝게 말한다. “동시대 청춘들과 함께 고민하며 절망을 극복하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면 어떨까.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스콧 피츠제럴드의 장편 ‘위대한 개츠비’.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업가 개츠비의 순애보로만 읽으면 안 된다. 개츠비는 온갖 불법사업에 손을 댄 부도덕한 기업가였으며 그의 집에서 벌어진 성대한 파티는 금주법 시대에 엄연한 불법이었다. 1920년대 미국 사회에 팽배했던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작품의 기저에 깔려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모비딕’ ‘작은 아씨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미국의 정체성과 문화를 확립하는 데 기여한 소설, 시를 비롯한 작품 25편을 선정하고 해설을 곁들였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