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동아일보

구독 174

추천

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97%
사설/칼럼3%
  • [송평인 칼럼]우리만 모른 방역의 기본

    방역은 지금 와서 보니 과학이라기보다는 정책적 결단인 듯하다. 대한의사협회도 대한감염학회도 중국인 입국 금지가 방역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정책 결정자에게 권고할 뿐이다. 그 권고를 받아들이느냐 마냐는 정책 결정자에게 달렸다. 한국에서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할 때 모리셔스가 한국인 신혼부부들을 예고도 없이 허름한 숙소에 격리시키고 돌려보냈다. 처음에는 괘씸한 나라라고 여겼으나 이어지는 각국의 유사한 조치를 보면서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도 알고 있는 방역의 기본을 우리만 몰랐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약 110개국이 한국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중국이 친 뒤통수다. 우리 외교부가 항의하자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외교보다 중요한 것은 방역”이라고 응수했다. 일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일(訪日) 연기를 확정하자 즉각 중국인 입국을 제한했다. 그동안 중국인 입국은 막지 않으면서 한국인 입국만 막는 것은 일관성이 없어 하지 않았던 한국인 입국도 함께 제한했다. 방역은 매정한 것이다. 우리만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들이 한국인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한 다음 날 호주가 한국인 입국을 금지했다. ‘2019 세계 보건안보지수’에서 호주는 한국보다 5계단 높은 세계 4위다. 세계 1위는 미국이다. 미국이 방역 능력이 다른 나라보다 모자라 중국인 입국을 금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외교는 세련돼야 하지만 방역은 투박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방역은 국방과 비슷하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고 골든타임을 놓치면 국민이 생명을 잃는다. 실제 그랬다. 한국은 평균 수준의 방역을 했을 경우에 비해 현재까지 최소한 수십 명은 잃지 않을 수도 있었던 목숨을 잃었다. 일본이 뒤늦게나마 중국인 입국을 강력히 제한하자 중국은 별 말 없이 양해했다. 그것은 중국보다 바이러스에 덜 오염된 일본이 가진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사이 오염이 심해져 이런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하다. 확진자의 절대 수로 보면 중국보다 훨씬 더 낫지만 인구 비례로 보면 중국만도 못하다. 우리로서는 덜 오염된 일본의 조치에 맞대응하려면 그 전에 더 오염된 중국의 조치에 먼저 맞대응을 했어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 방역은 외교처럼 하고 외교는 방역처럼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제 “한국이 방역의 세계 모범이 될 수 있다”며 뭐가 그리 급한지 미리 앞서서 자화자찬했다. 나중에 방역이 잘 끝났어도 방역을 책임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인데, 확진자가 신천지 관련을 빼도 세계 3, 4위권인 나라가 방역의 세계 모범 운운하니 중국의 시진핑 영웅 만들기 시도를 남 일처럼 볼 것도 아니다. 드라이브 스루 검사는 인천의료원 의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약국을 통한 마스크 판매는 경북 문경의 한 약사의 청원에서 시작됐다. 코로나19 신속 검사키트를 개발한 것은 민간기업들이다. 한국판 ‘칼레의 시민들’은 정부가 엎지른 물을 최대한 잘 수습하고 있다. 정부만 궁지에 처한 이웃 나라를 돕는 것과 자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방역을 하는 것을 구별해 결정적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평균 이상이었을 것이다. 박 장관은 감염원의 정확한 목록도 내놓지 않은 채 “감염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가 언젠가는 감염원의 정확한 목록을 내놓기 바란다. 신천지 감염원도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꼭 밝혀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판단처럼 설혹 감염의 가장 큰 원인이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방역 책임자는 중국인 입국 금지와 함께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을 격리하는 더 일관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반성했어야 한다. 중국인이든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든 중국발 모기(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것은 과학자에게 물어볼 것도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창문을 아무리 틀어막아도 비집고 들어오는 모기가 있어 팬데믹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하늘의 뜻으로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창문을 최대한 막는 것이 사람이 할 바를 다하는 방역의 진인사(盡人事)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3-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럽 감염원’ 이탈리아[횡설수설/송평인]

    일본은 섬나라다. 한국은 반도 국가이지만 북한으로 인해 대륙과 차단돼 섬나라나 다름없다. 항공만 막으면 대부분의 외국인 입국을 차단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다르다. 유럽연합(EU) 국가는 국경 이동을 자유롭게 한 솅겐 조약 때문에 엄격한 출입국 통제가 힘들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우한에서 온 중국인 부부 관광객이 확진자로 밝혀지자 중국발 직항기의 자국 착륙을 금지했지만 잠재적인 감염원이 인근 유럽 국가를 통해 들어오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이탈리아 밀라노는 세계 의류·섬유 산업의 중심지다. 패션 브랜드 회사의 하청을 맡은 업체 중에서 중국인 업자가 인건비가 싼 중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이탈리아는 유로존 채무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국 자본의 도움을 받으면서 중국인의 진출을 많이 수용했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에도 가장 적극적인데 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중국까지 여행한 마르코 폴로가 두 나라 협력의 상징이다. ▷이탈리아 최초의 코로나19 확진자는 밀라노에서 남동쪽으로 70km 떨어진 코도뇨에 사는 38세 남성이다. 이 남성은 중국을 다녀온 적이 없다. 그에게 바이러스를 전달한 0번 환자로 현지 중국인이 의심을 받았지만 현지 중국인 중에서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0번 환자는 국적은 알 수 없지만 인근 유럽 국가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왔다가 돌아간 감염자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은 나라는 한국이었으나 어제부터는 이탈리아가 한국을 추월하기도 했다. 이탈리아가 바이러스의 온상이 된 것은 알 수 없는 0번 환자가 휘젓고 다녔는데도 상당 기간 발견하지 못해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중국이 지리적으로 멀어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뺨키스 등 라틴 특유의 친밀감을 표시하는 인사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롬바르디아 등 15개 주에 중국 우한과 비슷한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에 코로나19를 확산시킨 감염원의 상당수가 이탈리아를 다녀온 사람으로 드러나고 있다. 유럽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크게 늘면서 팬데믹으로 가는 양상이다. 유럽 국가들은 의료기술도 높고 국가의료보험제도도 잘 갖추고 있지만 그 효율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한국과 일본은 의료기술도 높고 국가의료보험제도도 잘 갖추고 있고 그 효율성도 높다. 미국은 의료기술은 높지만 국가의료보험제도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 지역의 방역 결과가 마지막에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3-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구동산병원의 분투[횡설수설/송평인]

    대구에서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두 병원은 대구의료원과 대구동산병원이다. 대구의료원은 공공병원이지만 대구동산병원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돈 한 푼 지원받지 않는 민간병원이다. 대구동산병원은 대구 사정이 급박해지자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겠다고 자청했다. 기존 입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거나 퇴원시켜 병원을 비워야 하는 데다 소속 의료진을 코로나19와의 싸움에 내모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동산병원은 지난해 4월 대구 달서구 계명대 성서캠퍼스에 계명대 동산병원을 새로 지어 이전하고 대구 중구의 기존 동산병원은 대구동산병원이라고 해서 200개 병상만 유지하고 있다. 과거 동산병원은 1000개 병상까지 운영한 적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힘을 보태려는 의료진이 모여들었다. 대형병원들이 빠듯한 진료 일정을 쪼개 일부 의료진을 빼내 보냈다. 개인 병원 문까지 걸어 잠그고 대구로 향하는 개업의도 적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는 의사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부부도 합류해 힘을 보탰다. ▷최근 네이버의 한 카페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몇 년 전 첫아이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 동산병원 어린이중환자실을 수없이 드나들었습니다. 서울 유명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을 수없이 겪고 동산병원으로 갔습니다. 동산병원에선 가만히 누워만 있는 우리 아이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얼마나 예뻐해주고 기도해주던지…. 아이가 나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우리 아이가 너무 사랑을 받았기에 제게 동산병원은 은인과 같아요.” ▷의사가 단지 돈 잘 버는 직업이 아니라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는 곳이 동산병원이다. 동산병원의 역사는 구한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선교사들이 대구에 와서 대구제일교회를 세우고 의료기관으로 대구 제중원(濟衆院)을, 교육기관으로 계명학원을 설립했다. 대구 제중원이 오늘날 동산병원이다. 120년의 역사를 갖고 있기에 단지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병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는 병원인 듯하다. ▷‘충북 진천 시민’이라고만 적은 익명의 기부자는 동산병원을 지정해 예쁘게 포장한 샌드위치 수십 개를 보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대구의 한 샌드위치 가게가 주문을 받아 만들어 보낸 뒤 인터넷에 사진을 올려서 알려졌다. 큰 기부금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섬세한 배려가 담긴 정성들이 대구를 응원하고 있다. 대구 시민들이 홀로 싸운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 그들도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3-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미사·예배 중단[횡설수설/송평인]

    한국 천주교 모든 교구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사를 일시 중단했다. 한국은 신부가 들어오기 전부터 천주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난 나라다. 하지만 미사는 신부 없이는 드릴 수 없어 최초의 미사는 중국 베이징교구의 주문모 신부가 파견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1795년 4월 5일 부활절에 서울 가회동에 있는 신자의 집에서 최초의 미사가 몰래 거행됐다. 그 이후 조선 왕조의 박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사가 중단된 적은 있지만 한국의 모든 곳에서 자발적으로 미사가 중단된 것은 처음이다. ▷개신교회의 예배 중단과 천주교회의 미사 중단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개신교 예배는 설교가 중심이고 천주교 미사는 성찬(聖餐)이 중심이다. 천주교에서는 우리가 흔히 먹고 마시는 빵과 포도주라 할지라도 신부가 축성(祝聖)하면 그것이 예수의 몸과 피가 된다. 이런 성체(聖體)와 성혈(聖血)을 먹고 마시는 의식이 미사의 중심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걸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예배의 중심도 설교로 옮겨갔다. ▷많은 개신교회들이 오프라인 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고 있다. 설교가 중심인 예배는 온전하지는 않을지라도 온라인 예배로도 어느 정도는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미사는 신부가 축성한 빵과 포도주를 일일이 신자들에게 배달하지 않는 한 온라인으로는 불가능하다. 천주교회는 그 대신 대송(代誦)을 권하고 있다. 대송은 신자가 미사 참석 등 정해진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대신해 하는 묵주기도 성경읽기 등을 말한다. 대송은 신행(信行)일 뿐이다. ▷예배와 미사의 중단은 교회의 정체성 유지에 어려움을 초래할 뿐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힘든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온라인으로 헌금하는 제도를 정착시킨 선진적인 교회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이 입구에 헌금함을 마련해 놓거나 예배나 미사 시간에 헌금주머니를 돌린다. 몇 주씩 예배와 미사를 중단하면 재정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예배와 미사를 중단하고 있다. ▷성경에 ‘모이기에 힘쓰라’고 나와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모이면 모일수록 교회도 피해를 입고 교회 밖도 피해를 보는 난감한 상황이다. 박해를 피해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숨어서 미사를 드릴 때도 없던 어려움이다. 교회 절기로는 26일부터 사순절(四旬節)이다. 교회가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마음으로 국민이 처한 어려움을 나누고 그 극복에 동참하는 노력이 결실을 거둬 40일 이후에는 기쁨의 부활절을 맞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나라 거지꼴 만들고 웃음이 나왔나

    역병이 돌 때는 조선시대 임금들도 함부로 웃지 않았다는데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던 날 청와대에서는 웃음소리가 크게 들렸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영화 ‘기생충’ 팀과 짜파구리를 끓여 먹으며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우한 코로나가 돌기 시작하자 김정숙 여사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라졌다는 말이 들렸다. 다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타면 주변에서 말려도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나타나 예상했던 이상을 보여줬다. 고작 짜파구리 만드는 데 이연복이라는 유명 셰프를 대동하고 재래시장에 들러 장까지 봤다. 경제만 거지꼴이 아니고 나라가 거지꼴이다.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중국 다음으로 많다. 크루즈선 확진자 약 700명을 포함한 일본보다 많다. 크루즈선 확진자를 빼면 크루즈선 확진자 수 이상 차이 나는 압도적인 2위다. 한국이 또 하나의 우한(another Wuhan) 취급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주민 시위에 관광 온 한국인들을 자기들 돈으로 전세기를 마련해 돌려보냈고, 모리셔스에서는 신혼여행을 간 부부들이 느닷없이 격리돼 허름한 숙소에 갇혔다. 중국 산둥성은 한국인 입국자를 강제 격리했다. 미국 등은 한국 여행경보를 최고로 올렸다. 한 가지도 제대로 못 하면서 두세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화를 불렀다. 기생충 파티는 미뤄도 상관없는 일이었으나 관심이 식기 전에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모양이다. 우한 코로나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자 그새를 참지 못하고 ‘종식’을 거론하며 “이제 경제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결국 방역도 경제도 망치게 했다. 방역은 첫째도 감염원 차단이고, 마지막도 감염원 차단이다. 미국은 이 단순한 원칙에 따라 중국인 입국을 금지했고 크루즈선 확진자를 뺀 자국민 확진자를 30명대에 잡아두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지 않아 2, 3위 확진국이 됐다. 일본이야 도쿄 여름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중국의 협조를 구한다는 국민적 대의(大義)가 있다. 한국으로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찾아주면 좋지만 왜 조만간 꼭 와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미국은 중국인 입국을 차단하면서도 빌 게이츠 같은 민간 기업인이 중국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우리는 위정자들이 궁지에 처한 중국을 돕는 것과 방역을 위해 중국인 입국을 차단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한 결과 우한 꼴이 나고 결국 중국에 마스크 보내는 도움조차 어려워졌다. 신천지 대구교회의 감염 실태가 드러나고 있으나 역학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신천지 교주 형의 장례식이 청도대남병원에서 치러진 사실을 고리로 양쪽을 관련짓는가 싶더니 흐지부지다. 질병관리본부는 감염자가 많아 검사와 치료에 주력하겠다고 한다. 추적해서 찾아봐야 감염원이 중국인이나 중국인으로부터의 2, 3차 감염자로 나온다면 정부만 곤란해지는 상황이다. 신천지에서 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것이다.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절차를 강화한 후에도 입국자가 10만 명을 넘었다. 60∼70%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잠재적 감염원으로는 천문학적일 정도로 많은 숫자다. 정부는 중국 입국자 중 20%가량이 한국인이고 이런 한국인이 오히려 더 ‘밝혀지지 않은 감염원’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한국인은 추적이 가능하다. 중국인은 추적이 어렵다. 방역을 아예 포기하면 모르되 방역을 한다면 이제라도 중국인 입국을 막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뒤늦게 전문가 간담회라는 걸 열었다. 중국인 입국 금지 불가를 인정받기 위한 자리였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수차례 건의한 대한의사협회는 간담회에 초청받지 못했다. 정부 눈치를 보는 전문가들은 우한 코로나가 너무 많이 퍼져버려서 중국인 입국을 막아도 소용없다고 주장했다. 왜 그렇게 많이 퍼져버렸는지,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추경은 해야 한다. 하지만 추경을 요구하는 자세가 고약하다. 중국 다음 가는 최악의 방역 실패에 사과 한마디가 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회의에서 우한 코로나 사태 악화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대통령 대신 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회의석상에 앉아서 무성의하게 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추경에 필요한 돈은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다. 문 대통령이 정중히 사죄하고 추경을 당부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2-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은유로서의 질병 ‘우한 폐렴’

    질병은 과학의 대상이다.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과학적으로 치료할 대상이다. 그러나 인류는 흔히 질병을 종교나 문학의 용어로 표현해 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질병을 신의 진노로 여겼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 때 유럽의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여겼다. 20세기의 암에 비견될 수 있는 19세기 결핵은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사랑의 질병으로 미화되기도 했다. 문학 속 비련의 주인공은 종종 결핵환자로 등장했던 것이다. 19세기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역병이 있었으니 콜레라다. 콜레라는 1800년 이전까지는 인도 벵골 지방의 풍토병에 불과했으나 인도를 식민지배한 영국이 중국 광둥에 그 병원균을 실어왔고 결국 조선에까지 전파됐다. 1821년 조선에 처음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죽은 사람이 도성에서만 20만 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고 시골은 그 수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조선 왕조는 사악한 기운 때문에 콜레라가 발생한다고 여겨 콜레라가 발병하면 죄수를 석방하는 등의 방법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풀려고 했다. 천주교와 동학 같은 종교가 민중 사이에 파고드는 데는 그 앞에서 인간이 완전한 무력감을 느낀 콜레라에 대한 공포도 큰 역할을 했다. 콜레라의 원인이 세균으로 밝혀진 것은 1880년대다. 이때부터 인류를 괴롭힌 병원균이 하나씩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구한말 지석영이 일본에서 배운 종두법으로 천연두를 치료하기 시작한 것도 1880년대다. 그럼에도 질병을 은유적으로 다루는 오랜 습관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980년대 에이즈가 확산되자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은 ‘성의 쾌락을 도착적으로 추구하다 신의 진노를 산 것’으로 여겼다. 에이즈가 동성애를 통해 많이 확산됐기 때문에 그런 은유가 가능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에이즈 치료의 길을 연 것은 도덕적 방종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과학적 진단에 의한 에이즈 치료제의 개발이다. 에이즈가 소멸하는 질병이 되고 있는 지금 그들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돌아선 것은 1978년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의 굴기(굴起)는 중국발 전염병의 굴기이기도 하다. 사스는 2002년 대유행을 했고 지금 우한 폐렴이 그 이상의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스는 닭을 사육하는 더러운 환경에서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한 폐렴은 가축이 아닌 야생동물을 함부로 먹는 식습관에서 비롯됐다는 추정이 있다. 우한 폐렴 사태를 두고 프랑스의 어느 신문은 ‘Alerte jaune(황색 경보)’이라고 칭했다. 서양에서 황화(黃禍)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죄와 벌’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전 세계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번지는 어떤 무시무시한 역병의 희생물이 될 운명에 놓이는 꿈을 꾼다. 도스토옙스키가 염두에 둔 것은 콜레라였다. 에이즈 때는 아프리카 기원을 문제 삼으며 흑화(黑禍)론이 일었다. 황화론이나 흑화론은 서양인의 나쁜 버릇 같은 것이다. 서양인의 눈에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모두 비슷하게 보인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묘한 입장에 빠져 있다. 그들은 중국인들처럼 바이러스 숙주 취급을 당하는 데 기분 나빠하면서도 그들 스스로는 또 중국인들을 바이러스 숙주 취급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중국인이 세계 시민이 될 만한 위생관념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조차도 19세기에 시궁창이 만연한 도시 환경이 콜레라의 온상이 됐다. 나라가 발전하면서 위생관념도 발전한다. 어느 나라나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화한다. 콜레라를 세계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영국 자신이다. 중국발 전염병도 중국이 세계의 물가를 낮춰준 긍정적 앞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정적 뒷면이다.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통해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시진핑은 중국을 마오의 1인 독재 시대로 되돌리려 한다. 우한 폐렴은 그 과정에서 공안통치의 강화로 확산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봉쇄된 도시에서 사투를 벌이는 중국 인민의 치열한 노력에 인류애적 차원의 성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다. 중국인을 도와서 하루라도 빨리 전염병을 극복하는 것이 모두가 황화의 잘못된 은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2-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죄 지어도 처벌 못 하는 계급 태어난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로 이뤄진 최강욱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 기소에 대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감찰 운운하면서 정권이 최강욱 기소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인 모양새가 됐다. 조국 아들에게 허위 인턴활동확인서나 써준 ‘천하의 잡범’(진중권 표현) 최강욱이 대단한 인물이라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새로 짜인 추 장관-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라인이 윤 총장을 중간에 두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려고 실전처럼 막아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이 진짜 걱정하고 있는 것은 유재수 비리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공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을 거쳐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는 상황이다.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 김경수 경남지사, 송철호 울산시장도 걸려 있다. 시험 가동의 결과는 100% 만족스러운 게 아니어서 감찰 운운하는 협박이 나왔겠지만 윤 총장 쪽도 이 지검장이 최강욱 기소안 결재를 깔아뭉개는 사보타주를 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최강욱을 기소했을 정도니 앞으로 수사가 첩첩산중이다. 백원우의 이름이 검찰 수사에서 자주 거론되자 임종석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잽싸게 사라졌다. 그러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보지 못한 파렴치한 검찰 물갈이 인사가 끝날 때쯤 다시 더불어민주당에 얼굴을 드러냈다. 손발이 잘린 윤 총장이 수사를 더 지휘해 봐야 자신에게까지는 칼날이 미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 듯하다. 임종석의 웃음에서 바야흐로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하지 못하는 계급이 태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강욱은 기소된 직후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향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면 자신을 기소한 윤 총장을 공수처가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불리한 사이비 연동형 비례대표제까지 해주면서 군소정당을 끌어들여 공수처법을 통과시킨 이 정권의 사람들이 공수처를 어떻게 활용하고 싶어 하는지 그 내심을 보여주는 말이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에 대해 누구를 수사하고, 누구를 수사하지 말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고위공직자 중 검사와 판사에 대해서는 수사할 권한을 넘어 기소할 권한까지 갖고 있다. 공수처가 그 존재를 각인시키는 길은 우선적으로 검·판사를 수사해 기소까지 하는 것이다. 정권의 뜻을 거스른 수사를 한 검사들이 공수처의 제1호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강욱의 말은 검찰 물갈이로도 모자라 검사들을 향해 조심하라는 협박장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공수처의 제2호 수사 대상은 판사들이 될 수 있다. 김경수 항소심 재판부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2차례나 선고를 연기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감찰 무마 혐의가 죄질이 나쁨에도 부인 정경심 씨가 구속돼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는데 정경심 재판부는 정 씨의 보석 석방을 고려하고 있다. 판사들도 굳이 정권에 밉보이면서까지 정의를 관철하려 하지 않는다. 김경수 재판이야 허익범 특검이 상대하고 있지만 조국 정경심 최강욱 재판에서 물갈이된 검찰이 공소 유지나 제대로 할지 의문이다. 조국과 그 가족의 비리가 터져 나올 때 그들을 신성(神性) 가족처럼 취급하는 지지자들의 해괴한 정신 상태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런 정신 상태로부터 귀태 같은 공수처가 태어났다. 고위공직자 수사를 독점하게 된 공수처는 정권의 반대자들은 가혹하게 다루면서 다른 한편으로 당성(黨性)만 좋으면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노멘클라투라를 만드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경찰권의 충분한 분산이 이뤄지면 대체로 법치의 모범국가들을 따라가는 개혁이다. 김학의 불기소 같은 일은 이번 조정으로 방지할 수 있고 오히려 경찰판 김학의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반면 공수처는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제도에서나 잘할 생각을 해야 한다. 형사사법제도같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자란 것들이 꼭 검증되지 않은 새것으로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공수처는 보수 정권이 장악해도 진보 정권이 장악해도 악이다. 그것이 악인 것은 처음 장악하는 쪽이 20년, 혹은 그 이상 집권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를 막지 못하면 올해는 후대에 2020년 체제라고 불릴 사악한 체제가 출범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1-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영원회귀하는 ‘동물국회’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완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법안을 국회선진화법이 정한 절차대로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걸 물리적으로 막은 것부터가 잘못됐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할 때도 이를 물리적으로 막겠다고 지금 여당이 과거 야당일 때 했던 추태를 재연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다. 민주주의의 숫자는 5분의 3이 아니고 2분의 1이다. 국회선진화법은 5분의 3의 합의를 표결의 원칙으로 하는 세계에서 드문 법이다. 5분의 3쪽만 보면 더 많은 다수의 합의를 요구하는 좋은 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5분의 2쪽을 보면 2분의 1도 안 되는 소수가 2분의 1 이상 다수의 의사 관철을 막는 나쁜 법이다. 다만 국회선진화법은 패스트트랙이란 절차가 있어서 최종적으로는 2분의 1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위헌 시비를 벗어났다. 패스트트랙은 그 말의 일상적 의미와는 달리 신속처리와는 거리가 멀다. 어느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건 길게는 1년까지 그 법안을 심사숙고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심사숙고는커녕 양대 정당이 싸우기만 하다가 막판에 여당이 군소정당과 야합해 표 대결로 끝냈다. 날치기 공세가 반복되고 날치기를 막는다는 명분의 몸싸움도 반복됐다. 국회선진화법이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든다는 점은 입증이 끝난 것이지만 이번에는 패스트트랙이 가동되면 국회는 다시 동물국회로 돌아간다는 점도 입증됐다. 국회선진화법의 5분의 3은 세계에서 드물게 가중(加重) 다수제를 채택한 미국 상원의 3분의 2를 어설프게 흉내 낸 것이다. 미국 상원에서조차 3분의 2의 합의를 요구하는 경우는 예외적인데 대통령 탄핵 의결 때와 합법적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때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분의 1의 합의로 회기를 종결시키는 꼼수를 써서 필리버스터조차 있으나 마나 한 제도로 만들었다. 정작 5분의 3의 합의가 꼭 필요할 때는 5분의 3을 회피하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것은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대선 주자였을 때다.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연합이 야당이었을 때 던진 합의정치의 미끼를 덥석 문 것은 새누리당 대표인 황우여와 쇄신파들이었고 이를 침묵으로 승인한 것은 박근혜였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내놓은 경제활성화 법안 등은 모두 국회선진화법의 5분의 3 규정에 묶여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남 탓 할 수 없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었다. 그때 왜 박근혜 정권은 여당이 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식물국회 타령만 하면서 패스트트랙을 가동할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패스트트랙이 어떻게 작동할지 그려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패스트트랙에 올릴 경우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참지 못할 정도로 조바심을 냈다고 볼 수도 있다. 개혁은 지식과 끈기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인데 둘 다 부족했다. 민주당이 정의당 등 범여권의 군소정당들에 유리한 선거법 개정을 해주는 대가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등의 통과를 보장받았다. 민주당이 공수처법에 매달린 것은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어서라도 후환을 막으려는 것이다. 언젠가는 더러운 야합의 결과를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야합일지라도 표결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아니 물리적으로 막아지지 않는다. 그런 뻔한 계산도 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한국당을 이끌었던 지도부는 아마추어였던 것이다. 패스트트랙에서 한국당과 범여권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범여권에서는 또 최루탄을 터뜨리고 해머로 문을 부수는 의원들까지 나왔을지 모른다. 한국당이 그 정도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흉내를 냈다. 정치의 품격은 의회주의를 존중하고 일관성을 지키는 데서 나온다. 앞으로 한국당이 다수의 표를 모아 패스트트랙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때 물리적으로 막는 반대편을 향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운동권 의원들의 행패를 흉내 내지 않는다고 해서 웰빙 체질인 것이 아니다. 한 번은 국회선진화법이 내세운 5분의 3이라는 합의정치의 환상에 속고 또 한 번은 패스트트랙을 통해 관철되는 2분의 1의 냉엄한 현실에 당하고도 절치부심(切齒腐心)하지 못하면 그것이 웰빙 체질이다. 요란한 분노보다 조용한 분노가 더 무섭다는 걸 선거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힘없으면 옳은 것도 관철 못 한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전세 사는 사람들은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 집값 잡는다고 한 조치가 이제는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집값은 못 잡아도 좋으니 제발 전셋값이라도 잡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다. 죽어나는 건 집 없는 사람이고 자영업자이고 아르바이트생이고 중소기업이고 신생 혁신기업이다. 살판 난 것은 서울 등 수도권 요지에 집을 가진 사람들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주52시간 노동제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는 대기업과 공공기업에 다니는 근로자들이다. 혁신은 없다. 다른 나라는 다 근미래(近未來)의 전기차로 가는데 우리만 올지 말지 알 수 없는 원미래(遠未來)의 수소차로 가고 있다. 정부가 바이오산업의 육성을 외친 올해 바이오산업의 주가는 오히려 추락했다. 공산당이 만사를 통제하는 중국마저 화끈한 규제개혁을 하는데 우리만 기득권 조합이나 노조에 발목 잡혀 지지부진이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정책 결정에 대한 시비로 감옥에 가거나 좌천한 선임자를 본 공무원들은 재량을 발휘할 생각을 않는다. 일본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시비이고 중국에 대해서는 사사건건 굴욕적 처신이다. 중국은 사드 보복에 무릎 꿇고 미세먼지조차 자기 탓하는 걸 보면서 한국은 무시해 버려도 되는 나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니 ‘홍콩과 신장위구르 사태는 중국 내정 문제’라는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중국 관영 언론이 써대는 것 아니겠는가. 중국 외교부가 고쳐줄지 지켜보겠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센카쿠열도 갈등을 극복하고 급속히 호전되고 있다. 일본 쪽에서는 일본인이 한국보다 중국을 더 좋아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중국도 일본도 동북아시아를 한중일 삼국지(三國志)가 아니라 중일 양국지(兩國志)로 이끌고 싶어 한다. 하수(下手)에게는 한일 관계와 한중 관계의 소국(小局)만 보이고 중일 관계의 대국(大局)은 보이지 않나 보다. 새로운 규칙은 그 규칙을 만든 자에게 먼저 적용돼서는 안 된다는 오랜 법언(法諺)이 있다. 적폐청산이라며 사화(士禍) 수준의 수사를 하면서 피의자를 공개소환하고 피의사실을 밥 먹듯이 유포하고 수갑까지 채워 수치를 주던 정권이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새로운 검찰사무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피의자 조국과 그 가족에게 제일 먼저 적용했다. 그러고도 파렴치하게 공정을 외치고 있다. 이런 정부에 무슨 공정한 검찰 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공수처에서는 조국, 유재수, 송철호, 그 윗선에 대한 수사가 가능할 것인가. 공수처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그런 수사가 가능하지 않다는 데는 별 의견 차이가 없다. 지지하는 자들은 그런 수사를 왜 하냐고 뻔뻔하게 물을 것이고 지지하지 않는 자들은 그런 수사 하지 말라고 만든 게 공수처가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렇다. 이유야 뭐라고 보든 그런 수사는 하지 않는 게 바로 공수처다. 그래서 정권의 보위부인 것이다. 건국 100주년이 제야 속으로 사라졌다. 가야사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고 법률가가 되지 않았으면 역사가가 됐을 것이라는 아마추어 역사가는 일제 식민지배의 한가운데인 1919년을 건국이라고 불렀다. 잃은 것을 잃었다 하고 얻은 것을 얻었다고 하는 사회는 걱정할 게 없다. 나라를 잃은 것을 나라를 얻었다고 하니 그 역사의식이 송두리째 걱정스러울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김정은의 말만 믿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비핵화의 진의가 있다고 전달한 것이 베트남 하노이 북-미 회담을 좌초시킨 근본적 원인이다. 시대의 중요한 문제는 말이 아니라 피와 철에 의해 결정됨에도 일방적으로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경계태세를 허물었다. 어리석은 송양공(宋襄公)이 따로 없다. 그 어리석음의 대가는 전멸이다. 경제성장률은 1%대로 추락시키고 부동산 값 하나 잡지 못하는 무능한 정권이 제 분수도 모르고 나라를 정초하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땀과 피와 철로 세운 것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부수는 건 한순간이다. 힘이 없으면 옳은 것도 관철하지 못한다. 정치는 옳은 것을 관철하는 힘이다. 좀 더 겸손하게 말하자면 옳지 못한 것을 막는 힘이다. 광장에서는 옳지 못한 것을 막아냈으나 국회에서는 막아내지 못했다. 올해는 총선이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1-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사설]공수처 ‘4+1’안 철회하고 독소 없앤 대안 찾아야

    범여권 ‘4+1 협의체’가 합의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이 오늘 표결 처리될 예정이다. 이 법안은 공수처의 중립성 및 독립성 보장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여당은 표결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 법안과 별개로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은 수정안을 28일 발의했다. 이 수정안은 ‘4+1’ 안의 독소조항으로 지적된 ‘고위공직자 우선 수사권’ ‘강제 이첩권’ 등을 삭제했다. 공수처 검사의 경력도 5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높이고 전문성 요건을 강화했다. ‘4+1’ 안은 검경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하고 공수처가 요청할 경우 무조건 이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정안은 공수처가 검경에 사건의 이첩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되 이첩 요청이 강제성을 띠지 않도록 해 검경이 독자적으로 인지한 수사는 계속할 수도 있게 했다.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수사 총량은 늘어나고 상호 견제가 가능해 공수처 설립의 본래 취지에 더 가깝다. ‘4+1’ 안은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7명을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추천에 국회 추천 4명을 더해 구성하지만 수정안은 7명 모두 국회 추천으로 구성해 대통령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줄였다. 또 ‘4+1’ 안은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의 경우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도록 한 반면 수정안은 공수처에 수사권, 검찰에 기소권을 부여하되 검찰이 불기소 처분할 경우 국민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에서 불기소 처분의 적절성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4+1’ 안은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원안보다 더 여권에 의해 좌우되는 방식으로 개악됐다. ‘4+1 협의체’ 정당에 속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의원들까지 나올 정도다. 무기명 투표에 부치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예측도 나온다. 권 의원 수정안에는 몇몇 자유한국당 의원도 찬성하고 나섰다. 한국당을 포함하는 여야 합의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개혁을 빙자해 공수처를 또 다른 무소불위의 검찰로 만드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공수처가 꼭 필요하다면 독소를 줄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 2019-12-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청두 삼국지[횡설수설/송평인]

    청두(成都)와 시안(西安)은 각각 중국 내륙에 위치한 쓰촨성과 산시성의 성도(省都)로 해안 쪽에 비해 낙후된 내륙 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다. 2017년 청두와 시안 사이에 고속철도 전 구간이 개통된 후 소요시간이 3시간대로 줄었다. 고우영의 만화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시안∼청두 기차가 17시간 걸린다고 나온다. 그가 중국을 답사한 시기가 한중 수교 직후다. 약 14시간의 단축에 중국의 고속 발전이 함축돼 있다. ▷청두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24일 열린다. 3국 정상회의는 2008년 제도화된 이후 8번째다. 그동안 정상회의가 열린 곳을 보면 3국의 수도 이외에서는 일본 후쿠오카, 한국 제주에 이어 이번에 청두다. 청두는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는 육상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중심기지로 중국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도시다. 중국 각지와 동남아에서 실려온 짐을 모은 대륙 간 기차가 여기서 출발해 시안을 거쳐 12일 만에 유럽에 도착한다. 올해 1500편 정도가 운행했다고 하니 하루 4대꼴이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청두가 있는 지방은 촉(蜀)으로 불리었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촉도난(蜀道難)이란 시에서 “촉 가는 길의 험난함, 하늘 오르기보다 힘들다”고 했다. 절벽으로 난 아슬아슬한 잔도(棧道)를 타고 조조의 추격을 피한 유비가 청두에 이르러 촉한(蜀漢)을 세웠으니 이것이 삼국지 위 오 촉 중 촉이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청두에서 유비와 제갈량을 모신 사당 무후사(武侯祠)를 방문하길 좋아한다. ▷청두에서는 촉이 한화(漢化)되기 전 고대 촉의 유적을 꼭 볼 필요가 있다. 기괴한 모습의 청동 가면이나 동상은 고대 이집트나 잉카 유적을 연상시킨다. 동아시아에 이런 문화가 있었다니…, 청두는 황허문화권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두는 중국이 정보기술(IT)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도시다. 1980년대 싼싱두이(三星堆)에서 발견된 고대 촉 유적과 IT가 결합해 청두는 세계의 SF 작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현장법사가 시안에 가기 전 수련했다는 대자사(大慈寺)란 절이 청두에 있다. 절 주변에는 온갖 럭셔리 브랜드가 모여 있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하촌(寺下村)이 형성돼 있다. 콴자이샹쯔(寬窄巷子)는 청나라 말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으로 외국인이나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먹고 마시길 즐긴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 내는 의외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한일 정상도 따로 만난다. 정상적으로는 조정하기 힘든 이해관계를 돌파하는 상상력을 발휘해 봤으면 한다.  ― 청두에서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2-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애국주의 폐쇄회로에 갇힌 韓中日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인 눈에는 애국적이지 않아 보일 때가 간혹 있다. 지난달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를 연기하자 사설에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라고 강조하며 이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가 봐도 보복인 것을 보복이라 말하지 않는 다른 일본 언론들을 보면 보복이라 말하는 것도 쉽지 않은 듯하다. 아사히신문의 그 사설은 한국 언론에 널리 보도됐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애국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한국에서는 오히려 애국주의를 강화하는 데에 이용된다는 점이다. 아사히신문은 같은 사설에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도 경솔했다고 쓰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주요 언론도 우리 입장에 동조한다’가 되고 만다. 결국 잘못된 기대로 갈등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논증하는 데 앞장섰으나 2012년 대법원 소부(小部)의 징용 배상 판결에는 비판적인 서울대 국제법 교수가 있다. 지난해 같은 내용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후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마침 그가 독일에 가 있어서 이메일로 의견을 듣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날 저녁 그가 서울대 홍보실을 통해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밤늦게 국제전화를 걸어와서는 자기 이름이 거론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유권적 결정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 판결이 성역인 것은 아니다. 판결을 비판하기만 하면 토착왜구라는 말로 낙인찍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일본이 판결에 따른 배상을 거부하는데도 정부가 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에 나서지 못하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판결 후 정부의 대응이었다. 사법부 판결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며 손을 놓았다. 그러나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당사자다. 일본에서 새로운 배상을 받아내지 못하면 이미 배상받은 정부에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나 몰라라 하다가 한일 갈등이 전례 없이 커지고 나서야 뒤늦게 봉합에 나섰다. 국회의장이 대타로 나서 추진하는 ‘문희상 안(案)’이라는 것이 일본 기업 돈을 조금 섞어서 우리 기업과 국민이 배상하는 것이다. 이럴 거면 왜 쓸데없이 갈등을 키웠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언론은 대단히 애국적이다. 런민일보 자매지인 환추시보는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김치만 먹어 멍청해졌느냐는 논평 등으로 종종 논란이 되는 신문이다. 중국 언론으로서는 한국의 사드 배치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국의 대표 음식을 들어 그것만 먹다 멍청해졌느냐는 표현은 필요 이상으로 상대국 국민을 자극하는 것이다. 나는 14일 중국 청두에서 런민일보사가 주최하는 한중일+10개국 미디어포럼에 참석했다. 토론회 사회를 후시진 환추시보 총편집인이 맡았다. 그는 패기 넘치고 언변에 능했지만 파키스탄 등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지원을 받는 주변국들로부터 중국에 대한 감사를 끌어내는 한편 한일 언론의 홍콩 사태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등 분위기를 고약하게 이끌어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일보만 해도 행간을 읽어야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장황하고 조심스러운 표현을 쓰고 배급망도 우편만 이용한다. 환추시보는 런민일보와 달리 가판대에서 팔리고 그 수익으로 운영된다. 중국인의 애국심을 직접 자극하는 노골적인 표현을 쓰면 더 많이 팔린다고 한다. 요즘 수익을 많이 내서 런민일보사 재정에 크게 기여하는 까닭에 후시진이 런민일보사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라는 말을 런민일보사의 다른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중국 언론이 상업망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애국심을 이용한다는 인상이다. 다음 주 청두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중 한일 중일 정상회담도 열린다. 중일 관계가 급격히 호전된 반면 한중 관계는 답습을 거듭하고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나라를 부하게 하는 것도 이웃 국가이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도 이웃 국가다. 중국 고대 관자의 말이다. 이웃이니까 교류가 많지만 또 이웃이니까 다툰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교류할 필요도 없고 다툴 이유도 없다. 애국적이어야 하지만 애국주의의 폐쇄회로에 갇혀 이웃과의 관계를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국 청두에서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2-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한 번 하고 마는 정치공작은 없다

    민주화 이후 수사기관은 선거 후보자나 그 주변인에게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선거 전에는 수사를 하지 않고 선거 뒤로 미루는 관행을 쌓아 왔다.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3개월도 채 남겨두지 않았을 때 울산지방경찰청이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이 근무하는 시청을 압수수색한 것은 뜻밖이었다. 당시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받은 제보의 근원지는 백원우 당시 대통령민정비서관으로 드러났다. 백원우는 반부패비서관실을 통해 경찰청에 넘기는 방식으로 제보를 세탁했다. 그러나 거기서 꼬리가 잡혔다. 백원우는 “많은 제보를 넘기기 때문에 김 전 시장 관련 제보가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으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 따르면 백원우가 단건(單件)으로 넘긴 유일한 제보가 김 전 시장 관련 제보였다. 게다가 제보는 공문으로 넘기게 돼 있는데 그 제보만 공문 형식을 취하지 않고 넘겼다. 지난해 김 전 시장 내사 단계에서 백원우 특감반원 2명이 울산을 방문했다. 그중 검찰로 복귀한 수사관이 유력한 증인이었는데 그가 검찰에 출두하기 직전 자살을 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황운하는 수사가 무혐의로 끝났는데도 좌천되기는커녕 오히려 영전했다. 백원우와 황운하 사이에 물밑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이 부분은 의혹일 뿐이다. 하지만 물 위로 드러난 몇몇 사실만으로도 정치공작이라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원우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간부 출신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향해 ‘사죄해’라고 고함치며 과격한 성정을 표출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부처별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는 기획안을 짠 장본인이다. 이후 각 부처에서 과거 정권의 정책 결정권자만이 아니라 실무자까지 경쟁적으로 문책하는 광란이 벌어졌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와 뒤처리도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아니라 백원우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백원우는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 20대 총선에서 연거푸 떨어지긴 했지만 재선 의원 출신이 차관급 수석비서관 밑에 비서관으로 들어갈 때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이 유재수 감찰을 무마한 정도로 끝이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울산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선거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의 유재수 단체대화방에서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등 친문(親文) 실세들이 등장한다. 잡담만 나눈 게 아니라 국장급 인사까지 논의한 것으로 나온다. 지금까지 드러난 퍼즐들을 맞춰 보면 백원우는 배후에서 움직이는 숨은 국정 운영 커넥션이 공식 조직과 연결되는 주요 접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경수는 드루킹 조직에 의한 댓글 여론 조작을 사주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2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한 번 하고 마는 정치공작은 없다. 정치공작은 한번 맛보면 그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공작을 정치로 알고 살아온 운동권 정치인 집단은 더 그렇다. 적폐청산 역사전쟁 정치공작, 셋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적폐청산은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권을 역사에서 지워야 할 정권으로 만들어 보수 정당의 존재 기반을 흔들려는 시도다. 역사전쟁은 대안의 틀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가 정착시켜 한국을 성공으로 이끈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의 틀을 깔아뭉개고 보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하는 집단은 정치공작의 유혹에서 벗어나려 하기는커녕 정치공작을 시도해서라도 권력을 잡는 것이 정당하다는 도착(倒錯)에 빠지기 쉽다. 김경수 조국에 이어 이번에는 백원우 차례다. 경찰이 놓친 김경수는 허익범이라는 내유외강(內柔外剛)의 정의로운 특별검사에 의해 법정에 회부됐다. 조국의 경우는 그의 위선적 행태가 널려 있어서 언론이 앞다투어 폭로하고 깨어 있는 국민이 몸으로 사퇴를 얻어냈다. 백원우의 정치공작은 청와대 권력의 한가운데서 일어났다. 결정적 증언을 해줄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 외에는 이 장벽을 뚫고 나갈 주체는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명운과 정권의 명운이 동시에 걸려 있다. 윤석열의 실력과 용기는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윤석열이 마지막을 맞든가, 정권이 일찍 레임덕에 들어가든가 할 것으로 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2-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나라가 ‘연목구어’하면 반드시 재앙을 맞는다”[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과거의 제도 법규 관행을 문제 삼기보다 그 제도 법규 관행에서 일한 사람을 문제 삼으니 안 걸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결과 정권에서 일할 수 있는 적재(適材)의 씨를 말리는 인재 풀의 왜소화가 일어납니다. 인재가 없는 게 아닙니다. 대기업에 가면 인재가 차고 넘칩니다. 삼성 하나가 갖고 있는 인재가 대한민국 정부 전체가 갖고 있는 인재보다 많습니다. 정권이 스스로 인재 풀을 줄이고 있을 뿐이죠. ‘현재가 과거와 싸우면 미래가 없어진다’는 잠언이 지금만큼 잘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겁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82세 나이에도 정정할뿐더러 논리가 총총해 ‘원로 학자’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다 만다. 우국(憂國)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절이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서 빚어지는 정치의 위기와 이를 극복할 지혜에 대해 물었다.》  ―보수의 위기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나라든 보수의 특징은 위기를 되풀이해서 맞는다는 데 있다. 보수의 원류로 300년 된 영국 보수당도 되풀이해서 위기를 맞았다. 19세기에는 자유당 글래드스턴에게 20여 년간 정권을 뺏겨 물러나 있다가 디즈레일리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나와 재집권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처칠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만나 대세를 회복했다. 되풀이해서 위기를 맞으면서도 나아가는 것이 보수다.” ―보수가 위기를 되풀이해서 맞는 이유는…. “보수는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므로 싸워봐야 소용없다. 과거와 싸우면 현재가 죽고 미래가 사라진다. 이것이 영국 보수당의 시관(time-perspective), 즉 시간에 대한 신념이다. 그래서 미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미래는 불확정적이다. 그렇다 보니 누구나 다 지지하는 목표를 갖기 어렵고 조직은 이완되기 쉽다.” 그는 보수의 또 다른 특징으로 정직과 성실을 강조했다. “미국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정직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여겨 ‘정직이 최고의 정책(Honesty is the best policy)’이라고 말했다. 성실이란 무슨 일이든 온 마음을 기울여 하는 것이다. 중용의 25장이 내세우는 가치가 불성무물(不誠無物)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수는 ‘무(無)정직’하고 ‘무(無)성실’한 포퓰리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도 어려움을 초래하는 원인 중 하나다.” “과거와 싸우면 미래 사라진다”―본래 진보가 미래지향적이지 않은가. “진정한 진보도 보수처럼 미래지향적이다. 다만 우리나라 진보는 자기들끼리 말로만 진보이지 실은 과거지향적이다. 그래서 수구 좌파라 부르는 것이 맞다. 과거지향의 대표적인 것이 적폐청산이다. 과거를 지향하면 미래를 지향할 때에 비해 공격할 목표가 확실하고 결속력이 강해진다. 이런 진보와 대결해야 하는 것이 보수의 어려움이다.” ―적폐청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적폐란 과거에 쌓인 폐단이다. 잘못된 제도 법규 관행이다. 그것을 바꾸는 게 뭐가 잘못이겠나. 그러나 실제로는 그 제도 법규 관행에서 일했던 사람을 몰아내는 데 주력한다. 이것을 사회학에서 목적전치(目的顚置)라고 부른다. 목적과 수단이 뒤집혀 자리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잘못된 제도 법규 관행의 개혁이 원래 목적인데 그 목적이 되는 제도 법규 관행은 그대로 둔 채 그 목적을 수단으로 해서 거기서 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을 몰아내는 것이다.” ―개혁은 어떠해야 하는가.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개혁도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 점진적 개혁은 서서히 가되 확실히 가는 것이다. 한국인은 이런 개혁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개혁은 밑뿌리부터 바꾸는 것이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는 경험주의자다. 경험해 보니까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극한의 위기에서 변화가 온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우려가 많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란 표현을 쓰고 싶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같은 경제정책도 그렇고 탈(脫)원전 같은 기술의 문제도 그렇고 사회 통합도 그렇다. 맹자 양혜왕(梁惠王) 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개인이 연목구어를 하면 저만 손해 보고 말지만 나라가 연목구어를 하면 후필재앙(後必災殃), 후일에 반드시 재앙을 맞게 돼 있다.”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보는가. “궁즉변(窮則變) 또는 궁즉통(窮則通)이란 말이 있다. 국민은 대개 참고 기다리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무섭게 반응한다. 노무현 정권이 끝날 때 즈음 이명박 대통령이 약 500만 표차로 이겼다. 역대 그렇게 큰 표차가 없었다. 10월 3일 광화문 집회도 이러다 죽겠다 싶어 뛰어나온 것이다. 견딜 수 없게 되는 시점이 오고 궁즉변 궁즉통이 일어날 것이다.” ―보수 통합은 가능할까. “위기의 극한까지 가서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내년 총선 직전에 가서 ‘총선에서 지면 연목구어식 정책이 연장돼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달라질 것이다. 내년 4월이 총선이니까 내년 2월 정도에는 변화가 있지 않을까. 정치에선 모든 것이 한때다. 더불어민주당이 득세하고 문재인 정부의 연목구어식 정책이 횡행하는 것도 한때다. 차일시피일시(此一時彼一時),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너무 초조해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많은 국민이 이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젊은이들이 보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보수를 좋아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젊은이들은 경험적이지 않고 이상적이니까 진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 상태대로의 좌파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실은 진보적이지 않으니까.” ―2030세대가 더 많이 국회에 진출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20대가 굉장했다. 그때 스무 살은 서른 살이 되면 세상이 끝장나는 줄 알고 서른 살은 마흔 살이 되면 죽는 줄 알았다. 그만큼 세대가 짧았다. 지금은 100세 시대다. 20대는 시대의 주인의식을 갖기 어려울 정도로 어린 나이가 되고 말았다. 2030세대의 국회 진출보다 중요한 것은 2030세대를 위한 정책 마련이다.” ―국회에서 정책 대결이 보이지 않는다. “2030세대 정책만 해도 2030세대와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현 정부의 것이 뭐가 틀렸다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번 한국당이 민부론(民富論)이란 걸 내놓았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 보수정당이 싸우는 방법은 정책 대결밖에 없다.” ―한일 관계, 한미 관계 등 주요한 국제 관계도 어려워지고 있다. “약속은 준수돼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것이 17세기 이래 국제 관례다. 국가 간 약속이 국내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다. 세계로 나가야 먹고사는 나라가 그 원칙을 지키지 못해 외교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우리나라가 취할 외교 전략은…. “구한말, 약 130년 전 황준헌(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이 주장한 바와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에 주재하던 중국 외교관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을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 수신사로 갔다가 가져왔다. 몇 쪽 되지도 않는다. 결일연미(結日連美)가 조선의 살길임을 강조한 내용에 위정척사파가 들고일어나고 조선은 쇠망의 길로 들어섰다. 오늘날도 우리 곁에 중국이 민주화하지 않고 패권국가로 남아 있는 한 결일연미 할 수밖에 없다.” 송 교수는 결일연미의 정신을 확대해 해외지향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정희 때도 구한말의 선택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1960년대 초 서울대 교수들을 포함해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수입 대체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을 때 박 대통령이 수출입국을 외치고 나왔다. 그때 경제학자들이 ‘군바리들이 판타지 속에 살고 있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1965년까지 1억 달러 수출 목표를 한 해 앞당겨 달성함으로써 경제학자들의 탁상머리 주장을 우습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바깥으로 향해야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데 현 정부 들어 해외지향성이 위축되는 느낌이 든다.” “결국 다 노심초사 속 평화”―문재인 정부는 평화만은 지켰다고 자부한다. “휴전 이후에 지금과 같은 평화는 늘 지속돼 왔다. 다만 그 평화가 ‘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가운데의 평화일 뿐이다. 지금의 평화라고 특별한 게 있나. 특별한 게 있다면 오히려 핵을 가진 북한 앞에서 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북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 안전이다. 체제 안전을 위해 핵을 개발했는데 핵을 포기하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핵 속의 평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전술핵이든 전략핵이든 핵 공유든 핵을 핵으로 막는 것만이 우리에게 가능한 평화다.” 근황을 물었더니 다음 달 2일 유학자 류성룡을 연구하는 서애학회를 발족할 준비에 바쁘다고 한다. 퇴계 율곡 등 유학자의 호를 내건 학회는 대개 사학자들이 주도하지만 서애학회는 사회학자이면서 ‘위대한 만남 서애 류성룡’이란 책을 쓴 송 교수가 주도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보기 드문 구국의 리더십을 보여준 서애 정신을 연구하는 학회다. 송 교수는 징비록에 담긴 ‘서애 정신’을 강조하면서 말을 맺었다. “징비(懲毖)의 주체는 나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징(懲)은 내 책임을 깨닫고 뉘우쳐 나를 철저히 징계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또 다른 실패나 파탄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고 준비해서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비(毖)다. 비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과거지향이다. 임진왜란은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전 정권 사람들을 어김없이 감옥에 보내는 처절한 당파싸움에 매몰돼 미래를 망각함으로써 초래된 비극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1-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트위터 ‘댓글 숨기기’[횡설수설/송평인]

    인류가 말을 사용한 지는 수십만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살인을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대화의 기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일상에 등장한 지 겨우 반세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터넷에서의 대화 기법을 발전시키는 것은 인류에 주어진 새로운 숙제다. ▷온라인이 오프라인과 다른 점은 익명이 디폴트(기본) 상태라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익명 속에 숨어있다 보면 악의적인 말을 하기가 더 쉬워진다. 인터넷 시대에서도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등장하면서 악플은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SNS 중 하나인 트위터가 악플에 대처할 수 있는 ‘댓글 숨기기(hide reply)’ 기능을 추가해 22일부터 적용했다. ▷개인이 악플에 대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스스로 댓글을 보지 않는 것이다. 쉽다고 써놓고 보니 어폐가 있다. 사실 댓글을 보고 싶은 호기심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시청자 반응에 민감한 연예인들은 악의적인 댓글에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또 댓글을 보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국내 카카오(포털 다음 포함)의 경우 연예인 설리의 자살 이후 연예 뉴스 기사에는 댓글을 차단했다. 댓글은 인터넷에서 체류시간과 접속 횟수를 늘려주는 주요 수단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손해를 감수한 카카오의 조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네이버와 비교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트위터의 ‘댓글 숨기기’는 댓글 전체를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트윗을 날린 사람이 자신의 트윗에 달린 댓글을 본 뒤 그 댓글이 보기 싫으면 스스로의 결정으로 댓글을 숨기는 기능이다. 댓글을 보는 것 자체를 막거나 댓글을 본 뒤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그래도 악의적이거나 귀찮은 댓글을 다른 사람들까지 보게 되는 상황은 막을 수 있다. 차단에 비하면 부드러운 댓글 관리법이다. ▷국내에서 2007년부터 적용된 인터넷 실명제가 악플의 차단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도 범죄적인 악플이 아닌 일상적인 악플을 거르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해외에 기반을 둔 SNS는 실명제가 적용되지 않아 국내에만 적용되는 실명제가 큰 의미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인터넷에서 실명제가 과연 바람직한지도 논란이 있다. 그러나 SNS의 목적이 소통인 한 SNS만 발전시킬 게 아니라 SNS에서의 원활한 소통에 필요한 대안의 에티켓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1-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보수 통합, 광화문 집회의 求同存異에서 배워야

    조국 사퇴를 이끌어낸 10월 3일 대규모 광화문 집회는 보수 측의 단결과 동시에 보수 측의 분열을 보여줬다. 그날 광화문 집회는 주도권이 자유한국당에 있는지, 보수기독교인집회에 있는지, 우리공화당이나 태극기 부대에 있는지, 아니면 여기에도 저기에도 동질감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분노에 차서 뛰쳐나온 사람들에게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뿔뿔이였다. 보수 정당은 20대 총선 공천 파동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봉합하기 어려운 분열을 겪고 있다. 탄핵이 옳았음을 인정하라는 소리도, 탄핵이 틀렸음을 인정하라는 소리도 분열만 부추길 뿐이다. 언젠가는 탄핵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시점이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분열을 분열로 인정하는 게 탄핵의 강에 빠지지 않고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이다. 보수 측에 부족한 것이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였다. 조국 임명 강행 사태에서 야당의 비판도 언론의 비판도 통하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때 광화문 집회는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아스팔트 보수들이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열어온 집회가 10월 3일 대규모 집회의 불씨가 된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승민계는 좋게 보면 블루칩이고 나쁘게 보면 계륵이다. 그러나 블루칩이 아니라 계륵으로 보더라도 유승민계 없이는 광화문 집회가 만들어낸 운동의 동력을 제도적 표심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전망에는 차이가 없다. 유 의원은 자기 지역구만이 아니라 전국 어느 지역에서 출마해도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 밖의 유승민계 의원들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유승민계는 ‘버리자면 계륵이지만 취하자면 보배’가 되는 확장성을 갖고 있다. 광화문 집회에 와 봤다면 조국 사퇴 여론과 한국당의 지지도가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냐는 어리석은 질문은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당이 받고 있는 지지도가 본래 그 정도다. 지금은 거버넌스(governance), 즉 지배구조를 바꾸어 빅텐트를 치는 것이 중요하다. 빅텐트라 함은 한국당을 일종의 플랫폼(platform)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같은 플랫폼 정당은 아닐지라도 친박(親朴)이든 비박(非朴)이든 중도파든, 돌아온 비박이든 나가 있는 비박이든 나간 친박이든, 그 위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서 국민의 평가를 받는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헌집 헐고 새집 짓는 것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빅텐트를 치는 의미의 쇄신을 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공천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국민경선이든 뭐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공천의 룰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공정한 공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정리할 대상이 있다. 과거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지역의 의원들이다. 그런 의원들이 능력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 중에는 당선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비례대표 못지않은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공천된 경우가 의외로 많다. 다만 그들이 받은 기회가 민주주의 원칙에 비춰 공정하지 않았기에 보수가 분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선수(選數)에 상관없이 물러나는 것이 부당함을 바로잡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3선 이상 중진 의원 퇴진론은 화끈한 쇄신안 같지만 논리적이지 않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정치적 성향이 고정되지 않은 지역에서 정치적 바람이 이리저리 요동칠 때도 지역구를 지켜낸 중진 의원들이야말로 정당의 주축이다. 그런 의원들더러 물러나라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 않을뿐더러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의 목적에도 어긋나는 자해적인 조치다. 보수 측은 연대(連帶)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연대에 약하다. 조국 사퇴 광화문 집회는 분열된 보수의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다른 쪽과의 큰 차이를 봐야 자기 쪽의 큰 같음(大同)이 보이고 작은 차이(小異)가 사라진다. 탄핵을 둘러싸고 사분오열된 집단이 국민을 핫바지 취급한 조국 장관 임명 강행 앞에서 한목소리를 냈다. 보수 측으로서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희귀한 경험이다. 이 경험을 소중히 기억해야 빅텐트를 칠 수 있다. 보수 측이 통합돼 견제력을 가져야 진보 정권의 폭주가 제어되고 나라도 균형을 잡을 수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1-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요동치는 미국 대선[횡설수설/송평인]

    최근 미국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권 구도가 조 바이든 전 부통령 1강(强) 구도에서 바이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2강 구도로 바뀌는 모습을 보였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영향을 받아 지지도가 하락하는 추세인 반면 워런은 40대 신성(新星)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이 경주를 포기하면서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워런은 2012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 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진보 상법 교수 중 한 명으로 통했다. 대선 공약으로 거대 첨단 기업 분할, 최저임금 2배 인상, 부유세 신설 등 강력한 규제책을 내걸었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에게 지고 이번에 다시 경선에 나서는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못지않다. 빌 게이츠는 부유세 부과에 찬성하는 기업가이지만 워런의 부유세는 과도하다고 여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보다 못해 “일부 후보들이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고 있다”며 “많은 민주당원은 이치에 맞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고 충고했다. ▷공화당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선에 도전해 실패한 대통령은 민주당의 지미 카터와 공화당의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등 2명뿐인데 경제적 이유도 컸다. 트럼프는 성격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경제 실적을 자랑한다. 하지만 5일 켄터키주 주지사 선거와 16일 루이지애나주 주지사 선거에서 트럼프가 강력한 지지를 보낸 공화당 후보가 진 것은 트럼프에게는 불길한 조짐이다. 켄터키주와 루이지애나주는 모두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이다. ▷미국 대선은 내년 11월 3일 치러진다. 각 당은 내년 2월 3일 아이오와주를 시작으로 해서 주별로 코커스나 프라이머리를 통해 전당대회 대의원을 뽑는 순차적인 경선을 치른다. 14개주에서 동시에 코커스나 프라이머리가 실시되는 내년 3월 3일의 ‘슈퍼 화요일’을 지나면 대개 유력 후보의 윤곽이 드러난다. 후보는 8, 9월 각 당 전당대회를 통해 지명된다. ▷트럼프가 탄핵 추진에 영향을 받고 민주당 대선 주자들도 승산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민주당 경선에 출마할 채비를 하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도 정치적 경력이 없던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나타나자 블룸버그는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를 고려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블룸버그가 나와 경쟁력을 높인다면 트럼프도 재선에 도전했다가 떨어지는 현직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할 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1-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수능 한파[횡설수설/송평인]

    찾아보니 2014년 ‘8년 만의 수능 한파’란 기사가 있다. 2014년으로부터 8년 전인 2006년에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에 한파가 몰아쳤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1년 영하로 떨어졌고, 그 전에는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 영하로 떨어졌다. 2014년 후로는 2017년에 이어 올해 다시 영하로 떨어졌다. 서울 지역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것을 기준으로 하면 1994년 수능이 시작된 이후 올해까지 7번 수능 한파가 찾아온 셈이다. ▷평년 기온과의 차이가 3도 이상 낮은 것을 기준으로 해도 큰 차이는 없다. 이 경우 2010년을 추가해 8번 수능 한파가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확률적으로 26분의 8, 즉 약 30%다. 실은 평년기온보다 5도 이상 높은 유난히 따뜻한 수능일도 몇 차례나 있었고 예년과 기온이 비슷한 수능일은 더 많았다. 그러나 그런 건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다. 기억이란 수학적이 되지 못해서 소풍날은 비온 것만 오래 기억에 남고 수능일은 한파가 몰아친 것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머피의 법칙이란 말이 있다. 나에게만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법칙이다. 슈퍼마켓에 줄을 서면 꼭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든다. 실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느낄 뿐이다. 슈퍼마켓 계산대가 5개 있다고 치면 내 줄이 가장 먼저 줄어들 확률은 5분의 1에 불과한 반면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5분의 4다. 수능일에 꼭 한파가 몰아친다고 느끼는 데도 비슷한 착각이 있다. ▷우리나라는 수능이 11월에 치러진다. 11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환절기로 날씨의 변화가 큰 시기다. 일본판 수능인 대학입시센터 시험은 1월에 치러진다. 1월은 한겨울이라 추운 게 당연하고 오히려 따뜻하면 뉴스가 되는 시기다. 중국판 수능인 가오카오(高考)는 6월 치러진다. 2002년까지는 7월에 치러졌다. 6, 7월은 베이징을 기준으로 하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다. 같은 환절기라도 시험 보는 사람은 갑자기 더워지는 것보다는 갑자기 추워지는 것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일본만 해도 대학입시센터 시험을 이틀에 걸쳐 치른다. 중국의 가오카오는 사흘 동안 본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2주간에 걸쳐 6일간 치른다. 미국의 SAT는 1년에 7차례 볼 수 있다. 우리만 유독 하루에 수능을 끝내버리다 보니 인생에서 수능일 하루의 컨디션이 무척 중요해지고, 날씨에까지도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이 수능 한파란 말 속에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1-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송평인 칼럼]청와대판 ‘관객모독’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 같은 불안은 세르비아의 전 대통령 밀로셰비치 때문일 것이다. 인종 학살을 한 그를 옹호했다나. 페터 한트케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관객모독으로. 연극을 좋아하지는 않아도 멋모르고 ‘고도를 기다리며’ ‘관객모독’ 같은 연극을 보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할 것. 안 보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정경심의 PC 반출은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보전이다. 유시민의 궤변, 노벨궤변상감이다. 공지영은 관객모독에서 배운 바가 있나 보다. 억지도 대놓고 부리면 문학이 된다. 때로 혁명적 당파성까지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은 궤변 늘어놓는 대가로 국민 세금은 받지 않는다.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궤변을 늘어놓는 청와대도 있다. 자고 일어나면 미사일 발사다. 그것도 신형. 이스칸데르. 초대형 방사포. 북한이 올해 12차례 미사일을 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우리도 북한 못지않게 미사일 발사 시험한다고 했다. 미사일을 몰래 쏠 수도 있나. 나라에서 그렇다고 하니 믿어 보자. 우리 미사일 능력이 북한보다 우수하다고도 했다. 그것까지 믿어 보자. 근데 궁금한 건 그게 아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어떻게 막을 건데? 필요한 답은 않고 딴소리를 하고 있다. 의미 없는 말들. 내년 예산안을 짜려면 세수 전망이 있어야 한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있어야 내년 전망치가 나오고 그에 맞춰 세수 전망이 나온다. 세수 전망이 나와야 필요한 국채 규모가 나오고 예산안을 짤 수 있다. 이호승 경제수석은 그 수치를 기억하지도 찾지도 못했다. 워낙 현실과 동떨어져 알 가치가 없는 수치를 왜 자꾸 묻느냐는 듯 쏘아보던 눈길. 최소한 숫자로는 앞뒤를 맞춘다는 계산적 합리성마저 사라졌다. 의미 없는 수치들.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광화문 집회니 서초동 집회니 나라가 찬탁 반탁 시절로 돌아간 듯할 때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분열이 아니라고 했다. 신묘한 능력으로 하나로 모아지는 국민의 뜻을 읽어냈으니 검찰 개혁이다. 분열을 통합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쪽에는 있고 다른 한쪽에는 없는 검찰 개혁을 양쪽에 다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헌법보다 높은 문법이다. 대통령이 설혹 헌법을 위반하더라도 문법을 위반할 수는 없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문장들. 억지를 강요하는 문장들. 독재의 문장들. 국정 혼란이 논리적인 언술이나 계산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트케의 연극 관객모독은 의미 없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러분이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여기서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본 적이 없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을 들려주는 것도 아니고 본 적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대사는 이어진다. “여러분은 늘 보았던 것을 여기서 전혀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늘 들었던 것을 여기서 전혀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연극 보고 싶은가? 그래서 관객모독이다. 그래도 최소한 문법적으로는 말이 되기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은 아니다. 관객모독이 의미 없는 말들로만 채워졌다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유명해지지는 못했다. 모독에도 클라이맥스가 있다. 욕설이다. 돈 내고 연극 보러 와서 막판에 끝이 없을 듯 이어지는 욕설을 들어야 한다. “허풍쟁이들아, 맹목적인 애국자(쇼비니스트)들아, 혐오스러운 상판대기들아, 비굴한 작자들아, 소심한 작자들아, 가치 없는 작자들아….” 청와대판 관객모독의 클라이맥스는 강기정 정무수석이 맡았다. 의미 없는 말들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이 최고로 고조되는 지점에서 고함이 터졌다. 반발을 불러일으킨 말은 ‘우기다’가 차지했다. 정 실장이 “북한 미사일은 우리에게 위협이 안 된다”며 근거도 대지 못한 채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자 ‘우기지 말라’는 항의가 쏟아졌고 정 실장 뒤편에 있던 강 수석이 벌떡 일어나 ‘우기다가 뭐냐’며 소리를 질렀다. 어떤 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장면이기에 클라이맥스로서는 인상적이었다. ‘촛불혁명’의 역사화로 그려놓아도 될 듯하다. 뭉크의 비명처럼 강기정의 고함이란 제목으로. ‘그로테스크하게’라는 지문을 달아서. TV로 지켜보는 사람이 야단맞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실감났다. 역시 깡패 역은 강기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1-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횡설수설/송평인]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서독 분단 당시 바로 앞에 베를린 장벽이 설치돼 있어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었던 곳이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 문이 바라보이는 옛 서독 지역에서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향해 “장벽을 허무시오”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미국 NBC 방송 앵커였던 톰 브로코는 1989년 11월 9일 장벽이 열리던 날 현장을 생중계한 유일한 미국 언론인이다. 그는 그날 밤 운 좋게 베를린에 출장 와 있었다. 브로코는 장벽 붕괴를 현장 중계하면서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에서 탱크를 보낼지 모른다는 걱정을 반복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탱크를 보내지 않았다. ▷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10주년 때 베를린은 장벽 인근의 국회의사당과 아들론 호텔 등 유서 깊은 건물들의 재건을 막 끝냈다. 20주년 때 베를린은 무인(無人) 완충지대였던 포츠담 광장 등에 초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면서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변했고 라이프치히 등 다른 옛 동독 도시로도 개발의 기운이 퍼져갔다. 30주년에는 옛 동독에서도 동쪽에 위치한 드레스덴마저 복원을 끝내 제2차 세계대전 폭격 전의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드레스덴은 첨단 산업시설까지 들어서 독일의 동유럽 진출의 전진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독일이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고 유럽연합(EU)의 선두 국가로 올라선 것은 2000년대 중반 무렵이다. 그때부터 물동량이 크게 늘었다. 독일을 자동차로 달려 보면 독일 전역의 고속도로에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옛 서독 구간만이 아니라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옛 동독 구간 등도 마찬가지다.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장벽 붕괴 30주년을 앞두고 “1990년 통일 당시 서독 지역의 43%에 불과했던 동독 지역 경제가 현재 75%까지 올라왔다”고 평가했다. 대단한 성공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남았다. ▷독일을 취재하다 보면 옛 동독 사람들도 간혹 만나게 되는데 대부분은 여느 유럽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개방적이지만 여전히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독일인끼리는 잘 내색하지 않지만 그 차이를 더 예민하게 느낀다고 한다. 단순히 다른 지역에 사는 데서 오는 차이를 넘어 다른 체제를 산 데서 오는 차이일 것이다. 그 차이가 의외로 깊어 장벽 붕괴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주인공이 될 때에야 완전히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9-11-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