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이승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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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승헌 부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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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2-16~2026-03-18
칼럼100%
  • “방송뉴스 새 포맷 만든 ‘뉴스 쇼’

    “동아일보가 동아방송의 정신으로 무장해 TV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로 반드시 다시 전파를 발사할 수 있도록 다 같이 힘을 합치자.” 동아방송 기자 출신 방송인들의 모임인 ‘동송회(東送會)’ 회원들이 동아방송 강제 폐방 29년을 맞아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음식점에서 다시 뭉쳤다. 매년 동아방송 폐방일 전후 모임을 가져 온 이들은 올해 특히 동아방송의 모태인 동아일보사 후배들이 새 방송을 준비하는 만큼 폐방 29년을 맞는 소감이 남달라 보였다. 폐방 직전 보도국장을 지낸 윤양중 동송회 고문(전 금호그룹 사장·동아일보사 감사)은 “동아방송은 ‘소리나는 동아일보’를 표방한 만큼 무엇보다 동아일보의 저널리즘적 가치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방송 언론”이라며 “폐방 30년을 맞는 내년에는 동아방송을 되찾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영일 불교방송 사장 직무대행은 “동아방송의 정신을 간직하고 모든 일에 임해왔다”며 “동아방송의 부활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동아방송 기자 출신 방송인들은 오가는 술잔 속에서 1960, 70년대 당시 타 방송을 압도한 동아방송의 보도 역량과 역사를 생생히 추억했다. 동아방송 정경부장을 지낸 최종철 전 SBS 전무는 “동아방송은 ‘DBS 뉴스 쇼’를 통해 현대 방송 뉴스 프로그램의 포맷을 창시했다”며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 현직 동아일보 편집국 부장들이 직접 참여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선보였다”고 회고했다. 당시 ‘뉴스 쇼’에는 천관우 전 동아일보 주필, 홍승면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박권상 전 KBS 사장 등 쟁쟁한 논객들이 참여했다. 이궁 SBS 논설위원실 국장은 “‘DBS 뉴스 쇼’는 단순히 아나운서가 원고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앵커와 기자가 프로그램의 성격을 상황에 따라 만들어간 ‘퍼스널리티(Personality) 프로그램’의 효시격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는 동아방송의 뉴스를 듣기 위해 종종 화장실에 라디오를 들고 갈 정도였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윤양중 고문은 “동아방송은 동아일보 편집국 등의 총체적인 지원과 협조 체계를 바탕으로 타 방송과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정환 법무법인 아태고문은 “내가 서울시청을 출입하던 시절 보도한 모든 뉴스는 서울시 공무원들이 듣지 않으면 정상적 업무가 불가능했을 정도로 정확하고 공정했다고 자부한다”며 “동아의 새 방송도 그 전통을 계승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앵무새 사건’으로 상징되는 동아방송의 날카롭고 합리적인 정권 비판에 대한 기억을 추억하며 동아의 새 방송은 방송 저널리즘을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마지막 ‘뉴스 쇼’를 진행했던 최종철 전 전무는 마지막 방송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당시 신군부가 주도한 계엄 상황이었는데 종방 원고 10장이 검열로 2장으로 줄어 도저히 방송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결국 그 원고를 버리고 동아일보의 사시를 읽은 뒤 ‘동아방송은 사시대로 방송을 해왔다. 그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 청취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코멘트를 내보냈다”고 회고했다. 또 뉴스 현장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도 소개했다. 이정석 전 특파원은 베트남전 당시 종군하면서 교전 상황을 한 시간 넘게 생중계하기도 했으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단일 언론 매체로는 가장 많은 기자를 현장에 파견하기도 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백환기 전 출판국 편집위원은 “지금 생각해봐도 동아방송은 참 매력적인 매체였다. 나중에도 이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하금렬 SBS 사장, 배석규 YTN 사장, 노한성 파라다이스그룹 상임감사, 박종렬 가천의과학대 교수, 이규민 전 동아일보 대기자, 정학철 언론중재위 감사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이승헌 기자 ddr@donga.com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200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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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방송 강제폐방 29년…DNA는 살아있다]신문-방송 겸영의 모델 보여주다

    《“언론 통폐합이 가져온 비극이라면 동아방송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1960년대 초 국내에서 아직 방송의 언론적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세계적으로 드문 매우 언론적인 방송이었으며, 동아방송의 프로그램은 격조와 창의성이 넘쳐 있었다.” 언론학계의 원로인 강현두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1년 4월 18일 퇴임 강연 ‘체험적 한국 방송 40년’에서 동아방송을 이렇게 평가했다. 동아방송의 많은 프로그램은 이후 한국 방송의 모태가 됐다. ‘라디오 석간’ ‘DBS 리포트’ 등은 다양한 시사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정계야화’ ‘유쾌한 응접실’도 수많은 아류 드라마와 토크쇼를 낳아 디지털 방송 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30일 동아방송 폐방 29년을 맞아 동아방송의 가치와 성과를 재조명하고, 동아방송이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를 주도할 새로운 방송에 던지는 교훈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정부로부터 처음으로 방송 허가를 받은 동아방송은 1963년 4월 개국부터 1980년 11월 신군부에 의한 강제 폐방 직전까지 동아일보 DNA를 방송에 접목하면서 뚜렷한 차별화에 성공했다. 동아일보가 구현해온 저널리즘 가치를 방송 프로그램에 창의적으로 계승하면서 신문과 방송 겸영이 빚어내는 최적화된 시너지를 창출한 것이다. 개국 1년 만인 1964년 당시 공보부 조사에서 33.5%의 청취율로 전국 방송인 KBS를 제외하고 1위에 오를 정도였다.○ 신방 겸영의 시너지 극대화 동아방송은 이전과는 다른 뉴스를 보도하면서 한국 방송을 ‘동아방송 이전과 이후로’ 구분지었다. 관급 보도와 ‘아나운서가 읽는 뉴스’라는 기존 방송의 한계를 넘어 동아일보 기자들이 직접 취재한 다양한 특종과 해설 프로그램을 보도했다. 특히 뉴스 해설에는 이동욱 전 동아일보 회장, 천관우 전 동아일보 주필 등 당대의 논객이 대거 참여해 다른 방송보다 한 차원 깊은 해설을 선보였다. 신문의 심층분석 기능을 방송에 적극 도입해 진행자가 주도적으로 방송을 이끄는 ‘퍼스낼리티(personality) 프로그램’을 처음 정착시키기도 했다. ‘라디오 석간’이 대표적인데, 이후 다른 방송사들이 유사 프로그램을 잇달아 신설했다. 동아방송은 ‘여명 80년’ ‘정계 야화’ ‘특별수사본부’ ‘이 사람을!’ 등 저널리즘에 기반을 두면서도 흥미와 긴장을 잃지 않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방송했다. ‘정계 야화’는 최근까지 방송된 지상파 정치 드라마의 원조 격이었다. ‘이 사람을!’은 세미다큐드라마라는 새 장르를 열면서 일본 NTV에서 판권 구입 요청을 받기도 했다. 동아방송의 오락프로그램은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첨단의 문화 조류를 시시각각 안방에 전달했다. 전영우 아나운서실장이 진행하던 ‘유쾌한 응접실’은 고 양주동 동국대 교수 등 전문가들을 스튜디오에 초대해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낸 첫 토크쇼로 평가받고 있다.○ 동아방송의 가치는 현재진행형 동아방송은 갑작스러운 강제 폐방 결정으로 인해 17년간 쌓은 콘텐츠 제작 역량과 방송 저널리즘을 체계적으로 물려줄 기회를 잃었다. 많은 사람이 동아방송의 폐방을 안타까워했던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하게 해주던 방송을 권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잃었기 때문이다. 1964년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프로그램 때문에 방송인들이 구속된 ‘앵무새 사건’처럼, 정권에 대한 날카롭고 합리적인 비판을 방송에서 더는 기대할 수 없었다. 이는 이후 한국의 방송들이 편파 보도와 ‘저질드라마·오락’ 논란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 현실과 크게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다. 89년에 걸쳐 신문 저널리즘의 역량을 키워온 동아일보사는 강제로 단절된 동아방송의 미디어 가치를 계승하기 위한 발판을 다지고 있다.이승헌 기자 ddr@donga.com▼동아방송 일지▼1963년 4월 25일 개국(콜사인 HLKJ), 최초의 다큐멘터리 드라마 ‘여명 80년’ 시작1964년 5월 1일 방송캠페인의 효시 ‘걸어서 가자’ 시작1964년 6월 4일 프로그램 앵무새가 반공법 등을 위반했다며 간부 6명 연행(15일 구속)1964년 9월 19일 미도파백화점에 스튜디오 개설1965년 9월 8일 조동화 제작과장, (정권 비판에 불만을 품은) 괴한에게 납치돼 구타당함1966년 1월 25일 민간방송 첫 대북방송1966년 11월 29일 앵무새 관련자 전원, 서울형사지법에서 무죄 판결1971년 4월 15일 언론자유수호선언문 발표1975년 1월 8일 방송광고 무더기 해약 사태1979년 11월 14일 언론통폐합으로 KBS에 흡수통합 발표1980년 11월 30일 폐방}

    •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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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동아방송 강제폐방 29년… DBS 출신 방송인들 동아일보사 방문

    “동아방송은 새롭고 다양한 프로그램 포맷 개발 등을 통해 한국 방송의 토대를 세웠다. 이를 계승해 영광스러운 새 동아방송을 만들어 주기 바란다.”(최창봉 전 동아방송 국장·전 MBC 사장) 한국 방송의 모태 역할을 했던 동아방송(DBS) 출신 방송인들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TV 종합편성채널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동아일보사 후배들과 만났다. ‘동아방송을 생각하는 모임’ 회원인 이들은 동아방송 강제 폐방 29년을 이틀 앞두고 마련한 자리에 참석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개국 준비 때처럼 가슴이 설레는 듯했다. 군사정권의 폭력으로 전파가 강제로 끊긴 방송이 디지털 시대에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동아방송 이은 새 방송 출발해야” 모임의 좌장인 최창봉 전 사장은 인사말에서 “한국에서 정치권력에 예속되지 않고 자본에도 독립적이었던 방송은 동아방송이 유일했다”며 “방송의 기준 역할을 했던 동아방송의 전통을 계승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새로운 방송을 시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강조했다. 모임의 회장인 안평선 한국방송인회 상임부회장(전 동아방송 제작2부 부장대우)은 “동아방송은 아직도 다 소화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프로그램 포맷을 창조했으며 이는 새 방송을 준비하는 동아일보의 역사적 자산”이라며 “동아방송을 반드시 되찾아 이를 디지털 시대에 맞춰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아방송 출신들은 폐방 이후 어느 방송국에서 일을 하든 동아방송의 정신을 잃지 않을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동아방송 폐방 이후에도 방송계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이들은 동아일보사의 방송 준비 상황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새 방송의 터전이 될 서울 마포구 상암동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가 연면적 9만9242m²(약 3만 평)에 지하 6층, 지상 19층 규모의 첨단 방송 통신 융합형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건설될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세세한 기술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 새 방송의 핵심은 동아일보의 장점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있다고 강조하며 동아방송의 융합형 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소개하기도 했다. 동아방송은 편집국 출판국 등 다른 콘텐츠 생산 주체와 유기적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송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동아만의 방송으로 차별화 기대” 이윤하 전 동아방송 국장대리는 “후배들이 새 방송으로 동아방송의 역사를 다시 이어줄 것으로 믿는다. 내가 작성에 참여한 동아방송사(史)가 1권에 그쳤는데 새 방송으로 2권 이상이 나올 것을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이 전 국장대리는 1964년 ‘6·3한일회담반대운동’ 당시 비판 보도로 6명의 동아방송 제작진이 구속된 ‘앵무새 사건’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한국 방송사의 첫 토크쇼 격인 ‘유쾌한 응접실’을 진행했고 한국화법학회 회장을 지낸 전영우 수원대 초빙교수(전 동아방송 아나운서실장)는 최근 방송의 언어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새 방송의 역할을 강조했다. 전 교수는 “요즘 지상파 방송을 보면 음성의 장단(長短)과 된소리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며 “동아의 새 방송은 구성원들에게 확실한 언어 표현 훈련을 시켜 기존 방송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DBS에서 ‘3시의 다이얼’ ‘톱튠쇼’ 등을 진행하며 한국 방송 최초의 DJ로 평가받는 최동욱 라디오서울코리아 대표는 “요새 방송인들은 개인의 말투, 사투리, 습관 등을 여과 없이 방송하는데 이는 기초 훈련과 철학이 부족한 탓이다. 동아일보 방송은 ‘남들이 하는 방송을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할 수 있다’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일부 방송사처럼 비대한 인력 운용에 따른 비효율성을 지양하고 전문가 중심으로 방송사를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사 최맹호 상무이사는 “동아방송을 되찾기 위해 지난해부터 체계적인 준비를 해왔다”며 “새로운 방송으로 선배들의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임 뒤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해 인터넷 동아닷컴 뉴스프로그램인 ‘동아뉴스스테이션’ 제작 스튜디오 등을 둘러봤다.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200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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